700장. 악운을 쫓은 거예요
바로 그때, 자상하면서도 온화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옛일은 이미 지나간 구름 같은 허상이지요. 아무것도 담지 않고 마음속을 텅 비운다면, 마음이 거울처럼 맑아질 겁니다.”
말을 마친 주지승이 다시 진운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제 눈동자 안에 노을빛이 가득하군요. 처음에 가졌던 한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아요.”
소근언은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옛일은 또 뭐고, 한은 또 뭐란 말인가?
“감사합니다, 대사님.”
진운서가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주지승을 향해 몸을 굽히며 예를 올렸다.
“근언, 근언도 예를 올리세요.”
소근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진운서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에서 실마리를 찾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진운서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만이 걸려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소근언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앞으로 나아가 향 세 개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서 향에 불을 붙인 다음 부들방석 위에 무릎을 꿇고 세 번 절했다. 그리고 다시 향로에 향을 꽂았다.
이때 주지승이 입을 열었다.
“평범한 소원은 아니었습니다. 절에 별채가 있으니 하룻밤 묵고 목욕재계를 한 다음, 내일 아침 일찍 불경을 외도록 하세요.”
소근언은 불사(佛事)에 대해 잘 모르지만, 서아가 이번에 환원(*還願: 소원이 실현된 후 감사의 표시로 신에게 한 약속을 지킴)하러 온 연유가 남들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남들보다 복잡하단 말인가? 그녀의 소원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 ‘한’이라는 것과 관계가 있을까?
“네, 모두 대사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진운서가 조용히 대답한 다음 손을 들어 소근언을 툭 쳤다.
“근언, 일단 별채로 가서 짐을 풀어요. 원래부터 여기서 하룻밤 묵을 계획이었잖아요.”
말을 마친 진운서가 불당 밖으로 나섰다.
소근언은 서둘러 그녀의 뒤를 따라가는 대신 주지승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의혹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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