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너와 함께
주묘랑이 떠나자 사릉고홍은 당염원을 안고 동쪽으로 향했다.
당염원은 얌전히 그의 품 안에 안겨 있었다. 비록 아무것도 묻지 않았지만, 얼굴에 떠오른 궁금함과 의아함은 채 숨기지 못했다. 이를 알아챈 사릉고홍이 말했다.
“집을 구경시켜주겠소.”
집?
당염원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아……, 네.”
사릉고홍의 발걸음은 더없이 가벼웠다. 하얀 눈밭 위에 그 어떤 발자국도 남지 않을 정도였다. 마치 바람을 타고 가는 듯 주변의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만발한 매화꽃은 아름답게 빛났다.
설원의 매림에는 눈부신 설산을 배경 삼은 다락 한 채가 있었다. 주변으로 얼음 계곡과 서리가 하얗게 빛났고, 은어가 계곡에서 헤엄치는 모습은 마치 은하를 연상케 했다. 한겨울에도 푸르른 소나무의 가지에는 얼음 결정이 매달려 있었으며 다리 하나가 골짜기를 잇고 있었다. 날씨는 적당했고 마당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한쪽에선 물레방아가 돌아가며 맑은 물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가운데 성인 손목만 한 검은 쇠사슬이 세차게 흐르는 폭포 속에 숨어 있었다. 사릉고홍이 무언가 찾는 듯 손을 더듬거리더니 쇠사슬이 자연스레 그의 손에 와 닿았다. 그러자 그가 당염원을 향해 말했다.
“함께 올라가 봅시다.”
당염원이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쇠사슬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 꼭대기엔 구름이 뒤덮여 있어 구름 위까지 올라갈 듯했다.
“무섭소?”
“무섭냐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그러자 사릉고홍이 당염원의 볼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절대 떨어지지 않게 해 주겠소.”
당염원은 당연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사릉고홍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연히 그러리라 믿고 있어요.”
당염원을 죽이는 건 사릉고홍에게 너무나 간단한 일이었다. 구태여 이렇게 성가신 일을 벌일 필요가 없었다.
사릉고홍은 당염원의 말에 얼굴을 활짝 피며 웃었다. 해맑게 웃는 모습이 마치 어린 사내아이 같았다. 그는 신선이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 듯 펄쩍 뛰어올랐다. 쇠사슬을 당기는 그의 힘은 가늠할 수 없었고, 가볍게 날아오르는 모습은 날개를 활짝 편 기러기를 연상케 했다.
당염원은 말없이 속으로 계산을 했다. 이 사내의 공력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높았다. 그렇기에 짧은 시간 안에 그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당분간은 그에게 의존하며 비위를 잘 맞추고 복종하면서 목숨을 보전하는 편이 나았다. 동시에 가끔씩 콩고물을 얻어먹듯 좋은 것들을 챙기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일순간 거센 찬바람이 불어닥쳤다. 하지만 바람이 얼굴에 불어오기도 전에 흰색 소매가 바람을 막아 주었다. 등 뒤로는 따뜻한 그의 가슴팍이 느껴졌다. 깃털처럼 가벼운 잠사옷을 입고 있음에도 차디찬 날씨 속에서 추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보시오.”
사릉고홍이 어딘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당염원은 그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겹겹이 쌓여 끝이 보이지 않는 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흰 구름과 안개가 발밑으로 펼쳐져 있었고, 손을 뻗으면 푸른 하늘이 닿을 것만 같았다.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산봉우리는 꼭 한 마리의 짐승 같았다. 저쪽 산맥을 따라 바라보면 지금 서 있는 봉우리는 짐승의 머리 부분인 셈이었다. 아래쪽을 굽어보니 설연산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누각이 우뚝 솟아 있고 매화나무, 소나무 숲이 알록달록했다. 푸른 연못에는 눈과 얼음이 쌓여 있었다. 엷게 깔린 안개가 소리 없이 흘러갔고, 그 사이로 보이는 산장의 아름다운 풍경도 계속해서 변화했다.
“이건…… 반룡(盤龍)이네요.”
당염원은 쭉 펼쳐진 산맥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신수(神獸)라는 걸 알아차렸다. 지금 서 있는 곳은 용의 머리였고, 설연산장은 반룡산맥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래.”
사릉고홍은 당염원의 경탄 어린 눈빛을 알아채고 미소 지으며 물었다.
“예쁘오?”
당염원은 하늘에 엷게 깔린 맑은 기운을 크게 들이마시고 사릉고홍을 바라보며 진심 어린 칭찬을 했다.
“네, 너무 예뻐요.”
이건 그녀의 단조로웠던 인생에서 본 것 중 단연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사릉고홍이 두 눈을 휘며 따뜻하게 미소 지었다. 그 속에서 반짝이는 광채는 햇빛과 흰 눈의 반짝임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곳이 우리의 집이오.”
뒤이어 그가 다시 물어 왔다.
“우리 집이 마음에 드시오?”
당염원은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답했다.
“마음에 들어요.”
그러다 당염원은 문득 그의 얼굴이 이곳 풍경보다도 더 아름답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 아름다웠다.
그동안 그녀의 생각을 이렇게 물어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동안 그녀의 말을 듣고 이처럼 기쁘게, 이처럼 아름답게 웃어 보인 사람도 한 명도 없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 * *
둘째 날, 이른 아침 일어난 당염원은 몽롱한 상태에서 사릉고홍이 입혀 주는 옷을 입고, 이를 닦고 세수를 했다. 그러다 제대로 잠에서 깨어났을 때 사릉고홍의 무릎 위에 앉아 그가 주는 아침 식사를 받아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일어났소?”
사릉고홍이 웃으며 물었다.
당염원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그가 먹여 주는 매화향 간식을 받아먹고 천천히 씹으며 음미했다. 그리고 어제 배운 것을 잊지 않고 반복했다. 그것은 바로 직접 사릉고홍에게 음식을 먹여 주고 손에 묻은 그의 침을 먹는 것.
주묘랑은 오늘 아침 당염원을 처음 봤을 때부터 그녀가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릉고홍이 아무 말도 하지 않기에 주묘랑 역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두 사람이 대화하는 것을 본 주묘랑은 놀라 입이 떡 벌어질 뻔했다. 일어났소? 장주가 지금 일어났냐고 물은 건가? 그럼 오늘 아침 장주가 씻겨 주고 옷도 입혀 주고, 안아서 매림까지 오고, 아침 식사를 몇 입 먹을 때까지 계속 잠들어 있었다는 말인가?
이 질문에 자신이 내놓은 대답은 퍽 곤란스러웠지만, 주묘랑은 그저 묵묵히 자기 합리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사릉고홍의 마음을 사고, 사릉고홍과 잠시도 떨어지지 않는 당염원이 당연히 평범할 리가 없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사릉고홍이 부드럽게 당염원의 배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어제 본 빙연곡(氷淵谷) 기억하시오?”
당염원은 사릉고홍이 그녀의 소화를 돕기 위해 배를 마사지해 주는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사릉고홍이 항상 당염원을 안고 있는 탓에 소화가 잘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염원이 보기에 이건 또 다른 의미가 있는 행동에 불과했다. 만일 만족스러운 대답을 하지 못하면 가볍고 부드럽게 쓰다듬던 손이 별안간 뱃가죽을 파헤칠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기억해요.”
당염원이 답했다. 그녀는 질문을 건넨 사람을 완전히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멈칫했다가 사릉고홍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어제 그곳에 천 년의 세월을 견딘 한담(寒潭)이 있다고 했지요. 또 빙옥이 응결된 숲도……. 고홍이 한 말은 모두 기억해요.”
당염원의 두 눈에는 진실함과 기쁨이 담겨 있었다. 촉촉하고 맑은 그녀의 눈동자가 다시 한번 사릉고홍의 마음을 간지럽게 건드렸다. 지금 품속에 있는 이 여인을 더 안에 파묻고 싶었다. 그녀가 좋아하기만 한다면 세상 그 어떤 것도 가져다주고 싶었다.
새의 날개처럼 길고 빽빽한 그의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 사릉고홍은 입술을 오므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요동치는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본능과 욕망에 따라 자신의 마음을 흔드는 말을 내뱉는 이 여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사릉고홍은 당염원의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르다는 걸 알지 못했다. 만약 당염원에게 큰 귀가 두 개 생기고 꼬리뼈에 꼬리가 하나 생긴다면 모두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렸을 것이다. 이처럼 그녀는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엄청난 애교를 부렸다. 그리고 그것은 명백히 사릉고홍의 마음에 적중했다.
조금 전부터 두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주묘랑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놀란 것 같기도 하고, 기쁜 것 같기도 한 표정이었다.
“으읍!”
당염원에게 이것은 ‘깜짝 선물’과도 같이 갑자기 일어났다. 그녀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입을 벌려 사릉고홍의 혀가 자신의 입속을 탐하도록 허락했다.
이때 그녀의 눈은 특히나 더 반짝거렸다. 계속 이어 나가고 싶은 욕망이 담긴 눈빛이었다. 사릉고홍 역시 눈을 감지 않았다. 그의 눈은 항상 속눈썹이 드리운 푸른 그림자에 잠겨 있었고, 마치 엷은 구름이 달을 가린 듯 부드럽고 고요했다. 이런 그의 몽롱한 눈빛과 얼굴을 보고 있으면, 누구도 지금처럼 그가 격정적이고 거칠게 입맞춤을 퍼붓고 있다는 걸 예상하지 못할 것이다.
당염원은 자신의 무의식적인 표현이 꽁꽁 숨겨 놓은 그의 거친 면모를 천천히 드러나게 만든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를 통해 맹수 같은 그의 거친 모습이 조금씩 실체를 드러냈다. 누구도 이 맹수의 무서움을 알지 못했다. 그는 일단 한번 목표를 정하면 절대 놓아주지 않았다. 그가 찜한 사냥감을 훔쳐보는 모든 사람들은 그의 분노를 감당해야 했다.
“우음, 으응…….”
온몸이 저릿한 이상한 느낌이 또다시 느껴졌다. 게다가 이번엔 저번보다 강력해서 호흡하기도 힘들었다. 입 안에 고인 침을 삼키기도 벅차 침이 턱 아래로 흘러내렸다. 당염원의 콧방울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물안개와 구슬이 맺힌 듯한 눈동자는 사릉고홍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닫고 용서를 구하지도, 힘껏 발버둥 치지도 않았다. 당염원은 지금 힘이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대로 있는 것이 그의 화를 부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안긴 탓에 손발은 묶여 있었고, 입술은 포개어진 상태라 조금만 움직였다간 그를 방해하는 셈이 되었다. 오직 두 눈만이 자유로워서, 당염원은 눈에 살려 달라는 듯한 눈빛을 담았다.
그러자 사릉고홍은 깊은 어둠이 담겨 있는 눈을 찡긋하더니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당염원은 드디어 자유로워졌다. 숨이 턱 끝까지 차며 뒤이어 몸까지 떨려 왔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사릉고홍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설마 자신의 목적을 알아채고 이러한 방식으로 경고를 하는 것일까?
그러나 당염원이 먼저 다가간 적은 없었고, 항상 그가 먼저 다가오곤 했다. 만약 그가 먼저 다가오지 않았다면 그녀 역시 가만히 있었을 텐데, 대체 어떻게 알아차린 것일까?
사릉고홍 역시 당염원을 바라보았다. 그의 가슴은 숨을 쉴 때마다 가볍게 오르락내리락했고, 특유의 어두운 눈빛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그의 시선이 당염원의 눈에서 서서히 내려가더니 이미 붉게 달아오른 그녀의 입술에서 멈추었다. 이윽고 그는 당염원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매우 느린 속도로 다가갔다.
당염원은 천마독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머릿속을 꽉 채웠다. 그가 자신을 해칠 것 같진 않다고 여긴 당염원은 과감히 혀를 내밀어 그의 입술을 핥았다. 그런 뒤 주춤하며 거두어들이려던 그의 혀까지 건드렸다. 이내 당염원은 만족스러운 듯 입을 다물며 욕심에 지배된 자신의 혓바닥을 숨겼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맑은 두 눈이 빛났다.
사릉고홍의 몸이 긴장으로 굳어져 있었다. 그는 검은 화원이 이는 것 같은 눈으로 당염원을 응시해서 그를 바라보는 당염원마저 가슴 뛰게 만들었다. 사릉고홍은 별안간 당염원의 머리를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손길로 감싸 자신의 품에 끌어안았고, 위쪽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
“빙연곡으로 갑시다.”
꾹꾹 눌러 말했지만 잠긴 목소리가 숨겨지지는 않았다.
조금 전 욕망에 찬 자신의 행동이 선을 넘었다고 생각한 당염원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 서서 온 얼굴이 터질 듯 붉어진 주묘랑은 둘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더니 풋 하고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