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화. 추측
놀고먹는 거면 경도만큼 좋은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더군다나 항왕은 태후의 막내아들이었고, 연로한 태후에겐 항왕이 곁에서 같이 있어 주는 게 필요한 때였다. 하지만 그는 일찌감치 영지를 받아서 내려갔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황위 찬탈을 위한 병란은 모두 영지에서 일어나곤 했었다. 영지에 사병을 기르고 몰래 대신들과 결탁하여 인심을 사는 형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황제는 경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는데 뜻밖에도 항왕은 숭조후부의 적녀인 고지운(顾芷雲)을 항왕비로 맞이하겠다고 했다.
항왕은 벌써 태후에게도 이 사실을 아뢰었고, 태후도 이 혼사에 매우 만족해했다. 혼사를 하사해줄 일만 남았던 상황이었으나 그 혼사를 태후가 내릴지 아니면 황제가 성지를 내려 진행시킬지는 모를 일이었다.
숭조후부의 배후 세력은 태후와 고 측비였다.
항왕이 숭조후부를 선택한 건 어떻게 봐도 그다지 큰 도움이 되는 선택은 아니었다.
태후는 그의 모친이었으니 당연히 도울 터였다. 그리고 고 측비는 이전에야 저력이 있었겠지만 훤친왕세자가 훤친왕과 훤친왕비의 친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지금엔 세자 자리는 훤친왕세자가 죽지 않는 이상 초환원에게 돌아갈 일은 없었다. 혹여 그런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앞엔 초앙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리고 왕위 찬탈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온 노왕비가 고 측비만 좋은 일 시키는 일도 없을 터였다.
그런데도 기어코 항왕이 숭조후부를 선택했으니 숭조후 손안에 쓸만한 패가 없다고 말한다면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훤친왕세자는 이 일에 대해 훤친왕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훤친왕은 숭조후부가 두려워할 만한 대상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훤친왕세자는 그래서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직접 고 측비를 선택해 훤친왕에게 시집을 보낸 노왕비가 고 측비와 지금까지 사이좋게 지내고 있는 일도 그랬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던 심모가 참다 못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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