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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동방소택의 보복 (2)

15화. 동방소택의 보복 (2)

“입 닥쳐라!”

고가의 둘째이자 고반반의 아버지인 고명이 고반반의 뺨을 때리며 분노했다.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아직도 모르는 게냐? 동방세가가 어떤 세력이냐? 우리가 그들을 건드리고 만 것이다! 고반반, 잘했다, 아주 잘했어. 동방세가는 원래부터 우릴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네가 거들어서 우리 고가가 연루된 것이다!”

고반반이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누구에게 맞아본 적이 있었던가? 게다가 자신을 때린 건 자신의 아버지였다.

“상공, 왜 이러십니까? 이 아인 당신의 딸 반반입니다.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고반반의 어머니인 둘째 부인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고반반을 품에 안았다.

“동방세가에서 고약운 그 폐물을 돌보고 싶다고 한다면, 줘버리면 그만 아닙니까? 어차피 고가에서는 그 아이를 원하는 사람도 없는데, 데려가고 싶은 사람더러 데려가라 하면 되지 않나요?”

그 말에 고명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 일이 어찌 그리 쉽게 풀릴 수 있단 말인가? 그새 고약운은 억척스러운 성격으로 변했는데, 순순히 동방소택을 따라가겠는가?

그리고 동방소택은 분명 그녀의 털끝도 건들지 말라고 했다. 이미 가문을 떠난 그녀를 데려오려면 손을 쓸 수밖에 없었다. 혹여 고약운이 동방소택에게 그간의 일을 일러바치기라도 하면 고 씨 가문은 정말 끝이었다.

마침내 정신을 차린 고일봉이 입을 열어 하인에게 분부했다.

“여봐라. 가서 고약운의 소식을 알아봐라.”

“예. 장군.”

고 씨 가문은 청룡국 내에서는 큰 세력인데다, 인맥도 넓었다. 이로 인해 조금도 지체 않고 서둘러 고약운의 행방을 알아볼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인이 소식을 가져왔다.

“고약운이 백신당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고 있다고?”

소식을 들은 고일봉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백신당의 배후 세력은 매우 강하지만,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지. 그렇지만 동방세가는 확실히 강력한 세력이다. 동방세가의 미움을 사지 않기 위해선, 백신당으로 사람을 보내 고약운을 데려올 수밖에 없다.”

그러자 고명이 나서서 말했다.

“아버지. 이 일을 제게 맡겨 주십시오.”

“좋다.

고일봉은 자신의 아들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녀오너라. 가서 고약운을 데려오도록 해라.”

“할아버지. 저도 가겠습니다.”

고반반은 그제야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사실 아직도 울분이 치밀었다.

‘그 망할 폐물만 아녔어도……! 어떻게 아버지가 나를 때리신단 말이야? 그리고, 고약운이 고가로 돌아온다고? 절대 그렇게 둘 수 없어!’

분명한 건 고약운을 찾아온 동방소택이란 사람 때문에, 아버지께서 고약운을 직접 데리러 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반반, 너는 가지 말거라.”

고일봉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직도 억울하다고 생각하느냐? 이번에는 절대 허락 못 한다.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집에 가만히 있거라!”

“할아버지!”

고반반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고일봉은 그녀를 본 척 만척하며 고명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동방세가를 오래 기다리게 할 수 없다. 시간이 늦었으니 어서 가보거라.”

두 사람 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고명은 고약운의 숙부이다. 그가 직접 나서서 어린아이 달래듯 고약운을 데려온다면, 고약운 역시 감사하며 돌아오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들의 생각처럼 일이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 * *

백신당에 들어선 고명이 웃으면서 말했다.

“조(赵)씨, 좀 봐주게. 약운이를 만나게 해주게!”

“고가 이노야(二老爷), 제가 이미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습니까. 고 소저는 저희 백신당에 없으니 이만 돌아가십시오.”

주인장 조 씨는 잠도 자지 않고 백신당의 장부를 정리하느라 바빴다.

“조 씨, 그러지 말고 좀 도와주게나. 나는 약운이의 숙부라네. 가족이 만나러 왔는데, 왜 허락을 해주지 않는 겐가? 백신당의 세력이 아무리 강해도, 평민을 함부로 납치해선 안되지!”

고명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졌고, 말투에도 점점 짜증이 섞였다.

모든 소문을 이미 다 들은 조 씨가 들고 있던 장부를 내려놓고 고명을 쳐다봤다.

“숙부라 하셨습니까? 고가는 이미 고 소저를 내쫓은 게 아녔습니까? 그래놓고 후회는 하지 마셔야지요. 이제 와 고 소저를 내쫓은 걸 후회하면 어쩐단 말입니까?

그리고 방금, 백신당을 모욕하신 겁니까? 우리 백신당은 사람을 납치하지 않습니다. 어서 돌아가십시오. 노야를 환영하는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습니다.”

백신당은 장사가 잘되기 때문에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람들이 곧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고약운을 내쫓은 것을 후회한다고? 정말 조 씨의 말대로 고가가 후회를 하는 건가?”

그러자 고명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조 씨, 정말 약운이를 놓아주지 않을 건가? 약운이는 아직도 고가의 사람이네. 아직 정식으로 고가를 떠나지 않았어! 아직 우리 고가 사람인데, 이렇게 나오는 건 경우에 맞지 않네!”

이 말을 듣고 있던 손님들은 속으로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가 이 파렴치한 것들!’

그들은 이렇게까지 파렴치한 자들은 본 적이 없었다.

분명 고 씨 가문은 고약운을 쫓아냈었다. 그런데 지금 고명은 고약운이 아직 고가를 떠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염치가 있다면,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가?

“노야, 마음대로 하시지요. 저는 납치를 한 적도 없고, 데리고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말을 마친 조 씨는 고개를 숙인 뒤 계속 장부를 정리했다. 그는 얼굴이 새파래진 고명에겐 그 어떤 시선도 주지 않았다.

‘웃기는군. 소주께서 이미 모두 말씀해 주셨단 말이다. 그런 일을 겪었는데 고 아가씨가 고가를 따르겠어? 어쩜 이렇게 파렴치할 수 있지? 그리고 백신당이 납치를 했다니……. 백신당은 소주께서 이미 아가씨에게 주셨다. 그러니 지금 백신당의 주인은 아가씨인데, 우리가 납치를 했다니! 흥, 난 돈을 얼마를 받는대도 이 파렴치한 놈처럼 굴진 못할 거다. 이건 명백한 모함이라고!’

여기까지 생각한 조 씨는 고명에 대한 분노가 더욱 커졌다.

그러나 고명은 여전히 눈치가 없었다. 아마 그는 자신이 백신당의 미움을 샀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것이다.

조 씨에게 부탁해 봤자 성과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고명이 백신당을 향해 소리쳤다.

“고약운! 네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네가 감히 백신당에 아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말거라. 이 숙부의 말을 무시하는 게냐! 네 몸에 흐르는 피는 고가의 피다! 그러니 너는 고가의 사람이야! 죽어도 고가의 귀신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라!

네 조부께서 한 번은 틀릴 수도 있잖느냐? 네가 한 번만 양보할 순 없느냐? 네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화를 당할 것이다! 넌 천고의 죄인이 될 것이고, 그 악명은 영원할 거다! 그때 가서 아무리 후회한다 해도 소용없을 게다!”

그 말에 조 씨는 정신이 멍해졌으며 무척 당황스러웠다. 고명이 이렇게 나올 줄 전혀 예상치 못했다. 정신을 차린 후 조 씨가 창백해진 얼굴로 외쳤다.

“여봐라! 이 자를 얼른 끌어내라!”

‘제발 아가씨를 귀찮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들이 이렇게 나올수록 소주께선 고가를 가만 안 두실 텐데!’

잠시 후 백신당의 건장한 사내 두 명이 고명을 붙잡고 사람들이 보는 대문 앞에 내던지자, 고명은 행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 * *

“밖에 무슨 일입니까?”

정자에 앉아있던 고약운은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알아차리곤 눈썹을 살짝 추켜올렸다.

여로는 불만이 가득 찬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조 씨는 왜 일 처리를 이따위로 하는 게지? 아가씨께서도 놀라시고, 이게 다 뭐란 말인가.’

동방소택은 절대 고 씨 가문 사람들이 고약운을 만나게 놔둬선 안 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고약운에게 화풀이를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괜찮습니다.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뿐이지요.”

여로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아가씨, 왜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할 말이라도 있으신지요?”

“여로의 도움이 필요해요.”

고약운은 수려한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띤 채, 정자 돌기둥을 손으로 매만지고 있었다.

“내겐 강력한 세력이 필요해요. 사람을 한 명 찾아야 하는데, 여로라면 날 도와줄 수 있을 겁니다.”

그녀는 현재 적이 너무 많아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대륙에 발을 붙이려면 강력한 세력이 필요했다.

그 세력이 바로 그녀의 시작점이 되어줄 것이다.

여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가씨,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사람을 찾아보러 다녀오겠습니다.”

“여로, 잠깐만요.”

여로가 몸을 돌려 떠나려 할 때, 고약운이 갑자기 그를 막아섰다.

“또 다른 분부라도 있으십니까?”

여로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이 종이에 쓰여있는 약재들을 내 방으로 좀 보내주세요. 난 지금 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 오겠어요.”

그녀는 손에 든 종이를 여로에게 건넨 뒤, 마당으로 걸어 나갔다.

고약운은 궁을 떠난 이후로 라음에게 어떤 말도 전하지 못해, 라 장군부로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에 라음의 웃는 모습이 스쳐 지나가자, 고약운은 절로 마음이 따듯해졌다. 고생소를 제외하고 그녀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은 오직 라음뿐이었다.

* * *

라 장군부.

라 장군부는 위엄이 있고 웅장하여, 대문만 봐도 그들의 기세가 엿보였다.

같은 장군부라 할지라도 고 장군부는 호화로운 느낌이라면, 라 장군부는 매우 진중하고 웅장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라 장군부의 사람들은 모두 라음과 친한 고약운을 잘 알고 있어서, 그녀가 안으로 들어설 때 아무도 저지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약운이 눈살을 찌푸렸다.

“라 장군, 벽락과(碧落果)를 가지고 있다 해도 소용이 없을 겁니다. 어떻게 처리하는지도, 복용하는 법도 모르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건네준다면 셀 수 없이 많은 혜택을 드리지요.”

‘연기종?’

그 목소리에 고약운은 차갑게 웃었다. 하필이면 라 장군부에서 원수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고약운은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벽락과?’

그녀는 갑자기 긴장하기 시작했다.

벽락과는 늪지대에서 자라는 약재로, 그것을 먹으면 어떤 독이 몸에 침투해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연기종의 말대로 벽락과는 특수한 처리를 거쳐 복용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안에 있는 강력한 능력으로 인해, 몸이 폭발해버릴 수도 있었다.

이내 라홍천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혼비 장로. 이 벽락과는 서역 상인에게 큰돈을 주고 구매한 것이오.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있다 해도 별 쓸모는 없지. 만약 필요하다면 금화를 주고 사시오. 절대 함부로 가격을 부르진 않겠소이다. 내가 천만 금화로 이 벽락과를 샀으니, 이걸 가지고 싶으시다면 천만 금화를 내게 주시오.”

금화 천만 개는 연기종에겐 아무것도 아닌 금액이었다.

그렇지만 파렴치한 연기종이 어디 가겠는가? 혼비는 라홍천더러 꿈 깨라고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