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novel

8

< 129화 인우 가(家)의 폭풍 레벨 업 (2) > 끝

ⓒ 호종이

< 130화 분신1은 욕심쟁이 >

분신의 숫자는 도합 8명.

녀석들은 한동안 저들끼리 위계질서를 잡기 바빴다.

인우는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한 가지 재미난 점은, 놈들은 저마다 성격이 달랐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분신1은 첫째다운 카리스마가 돋보였다. 인우 본인과 가장 비슷한 성격을 지닌 것 같았다.

그 다음, 분신2는 허세가 좀 보였다.

일례로 이 녀석은 다른 놈들이 군기를 잡고 있을 때, 저 홀로 바위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똥폼을 잡고 있었다.

나아가, 간혹 막내 분신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눈동자에 힘을 꽉 주며 부라렸다.

한 마디로 폼이란 폼은 다 잡았다.

그리고 분신3.

저놈은 말이 거의 없었다. 약간 흘러가는 대로 분위기를 타고 가만히 휩쓸려 가는 타입이랄까?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명언을 충실히 이행하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분신4는 히죽 웃는 모습이나 행동 따위의 것들이 무언가 덜 떨어져 보였다.

조금 어린 아이 같다 랄까? 좋게 표현하자면 천진난만 해 보이기도 하고······.

그리고 분신5부터 8까지.

새로이 태어난 4명의 막내들은 바짝 긴장한 티가 역력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어떠한 성격을 지녔는지 정확히 판단하는 게 불가능했다.

아마 조금 더 지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인우는 한참동안이나 녀석들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분신1이 모든 녀석들의 앞에 선 채로 인우를 바라보았다.

이어 녀석이 말했다.

"···귀찮으면, 내가 통제할까?"

녀석은 아마도 인우가 8명의 분신들을 일일이 컨트롤 하는 것이 귀찮을 것이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이에 인우는 고개를 끄덕여 승낙을 표했다.

그러자 분신들은 저들끼리 알아서 괴수를 모아 오고, 나아가 알아서 채취하여 아공간에 전리품들을 쌓았다.

인우가 할 것이라곤, 몰려오는 괴수 군단을 향해 블리자드를 뿌려 대는 것뿐이었다.

아, 물론 열심히 걷고 숨 쉬는 것도.

그렇게 정신없이 레벨 업을 하다가 불현 듯 퀸이 채취했던 아티펙트가 떠올랐다.

레벨 제한이 높아서 아공간에 넣어 두었던 헤츨링의 반지.

인우는 아공간에서 반지를 꺼냈다.

[헤츨링의 반지]

종류 ? 반지

기능 - 물리 저항력 20% 상승, 마법 저항력 20% 상승

발동조건 ? 350레벨 이상

현재 인우의 레벨은 352.

발동조건은 충족되고도 남았다.

기존에 착용중인 반지는 용맹의 반지와 주술의 반지.

반지의 특성상 2개까지밖에 적용이 안 되기에 둘 중 하나를 빼고 헤츨링의 반지로 교체해야만 했다.

용맹의 반지는 근력15.

그리고 주술의 반지는 마력40.

우선 올라가는 스텟 양으로만 보았을 땐 주술의 반지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렇기에 인우는 용맹의 반지를 착용 해제시켰다.

그런 뒤 헤츨링의 반지를 꼈다.

['용맹의 반지'의 기능이 사라집니다.]

[근력이 15 감소합니다.]

['헤츨링의 반지'의 기능이 발동됩니다.]

[물리 저항력이 20% 상승합니다.]

[마법 저항력이 20% 상승합니다.]

다시 보아도 굉장한 기능의 반지였다.

스텟이 아닌 특수 능력이 두 줄이었으니 말이다.

물리와 마법 저항력이 각각 20%씩.

이 수치는 절대 값이었기에 더욱 무서웠다.

이를테면 100의 데미지가 들어올 때에 80의 타격만을 입게 되는 것이니까.

"집에 돌아가면 퀸한테 뭐라도 해 줘야겠는데."

그녀가 도축을 하며 얻어냈던 반지다.

참으로 복덩이 같은 여자다.

그러한 생각을 하며 용맹의 반지를 도로 아공간에 넣으려던 순간이었다.

"···그거."

분신1이 검지를 치켜들고 용맹의 반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은 침을 한번 꿀꺽 삼키더니 말을 이었다.

"한 번만, 껴 볼 수. 있을까?"

"오호?"

인우는 답 대신 눈동자를 반짝 빛냈다.

일전에 인우는 분신들에게 스킬 볼을 먹여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놈들은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분신은 스킬 볼을 통해 기술을 습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긴, 그것이 가능했다면 이론상으론 엄청나게 강력한 제 2, 3의 인우들이 나타나게 되겠지.

어찌 되었건, 그랬기에 아이템에 대해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데, 녀석이 아티펙트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이 녀석들도 아이템의 능력으로 인해 수치가 플러스 될까?

인우는 볼 것도 없이 용맹의 반지를 분신1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 순간.

[분신의 아티펙트 정보가 추가되었습니다.]

'어?'

처음 보는 알림이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인우는 분신의 정보를 불러보았다.

<분신1>

레벨 : 189

한계 레벨 : 211 <시전자 레벨의 60%>

오른손 반지 : 無

왼손 반지 : 無

팔찌 : 無

목걸이 : 無

.

.

.

분신1부터 8까지 모두가 아티펙트 창이 생성되어 있었다.

이미 분신 스킬의 레벨이 마스터에 도달한 인우다.

그랬기에 변화는 끝이 난 줄 알았다.

한데, 아니었다.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마스터 이후의 분신은 무언가를 느끼고 알아갈 때마다 그 기능이 추가되는 것 같았다.

그렇다는 것은······.

'언젠간 이 녀석들도 스킬 볼을 먹을 수 있게 될지도?'

그러한 가정이 떠올랐다.

그러길 잠시.

어느덧 분신1은 조심스러운 손놀림으로 반지를 끼웠다.

인우가 물었다.

"근력이 올랐냐?"

"···15가. 올랐다."

분신1이 답했다.

그리고 다시금 분신 창을 불러 보았다.

<분신1>

레벨 : 189

한계 레벨 : 211 <시전자 레벨의 60%>

오른손 반지 : 용맹의 반지 (근력+15)

왼손 반지 : 無

팔찌 : 無

목걸이 : 無

.

.

.

녀석들 또한 아이템으로 인해 능력치를 상승시킬 수 있다!

이것이 확인된 순간 인우는 즉시 아공간을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한 순간에 눈치 빠른 분신1은 나머지 분신들에게 말했다.

"내가. 첫째. 줄 서."

그 말에 녀석들은 고유 넘버 순서대로 줄을 섰다.

"쳇."

바위에 비스듬히 엉덩이를 걸치고 똥폼을 잡고 있던 분신2까지도.

아이템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일까?

녀석들의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이윽고 인우는 아공간에서 '데스나이트의 팔찌'와 '행운의 반지'를 꺼냈다.

현재 남는 아티펙트는 아쉽게도 이 두 개가 전부였다.

그리고 두 아이템은 각각 레벨제한 80, 90으로서 분신도 충분히 착용 가능했다.

인우는 이것을 분신1에게 건넸다.

그러한 모습에 분신2부터 8까지 모두 부러운 눈동자를 한 채 분신1을 바라보았다.

이에 분신1은 나머지 분신들을 다독였다.

"너네도. 언젠간. 차례 온다."

그래 언젠간 오겠지··· 언젠간······.

이윽고 분신1은 아이템을 착용했다.

<분신1>

레벨 : 189

한계 레벨 : 211 <시전자 레벨의 60%>

오른손 반지 : 용맹의 반지 (근력+15)

왼손 반지 : 행운의 반지 (행운치 상승)

팔찌 : 데스나이트의 팔찌 (체력+10)

목걸이 : 無

녀석의 착용이 끝나자 분신4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소심히 중얼거렸다.

"욕심쟁이······."

한편 분신2는 미련 없다는 듯 허세를 부리며 똥폼이었고, 분신3은 잠잠했다.

물론, 5부터 8까지는 그 어떠한 내색도 보이지 않았다.

이놈들은 막내였으니까.

* * *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육체강화'의 레벨이 'Master'에 도달했습니다.]

전투 도중 육체강화의 마스터 소식이 들려왔다.

이 스킬은 탱커의 주력 스킬로써 육체가 강철처럼 단단해지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에 따라 물리 마법 저항력이 상승되는 것이다.

이 스킬은 헤츨링의 반지와 함께 시너지를 일으키며 최고의 저항력을 보여 줄 것이다.

이미 인우는 극강의 파괴력을 지닌 광전사이며, 또한 극강의 방어력을 지닌 탱커이기도 한 것이다.

이윽고 인우는 마스터 레벨의 육체 강화를 시험해 보기 위해 시전했다.

후웅-

시전과 동시에 방어력이 엄청나게 상승된 것이 느껴졌다.

-꼬끼기기기!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인우를 향해 공격을 퍼붓고 있던 코카트리스들이 있었는데, 인우는 놈들의 공격을 그대로 허용하면서도 체력의 감소를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며 방어의 효율을 크게 느낀 인우였다.

이 정도라면 육체 강화와 함께 대검 막기를 펼치면 웬만한 공격은 모조리 무위로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꼬끼기기긱!

-크워어어어!

이러한 생각을 하는 도중에도 여전히 괴수들의 공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분신들이 깔끔하게 몰아온 괴수들은 포효로 인해 모두가 대형 괴수들뿐.

인우는 미리 시전해 둔 블리자드를 퍼부어 버렸다.

파바바바바바밧!

엄청난 괴수들이 죽어 나가며 경험치가 쏟아졌다.

그리고 그 순간.

또 다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광폭 어검'의 레벨이 'Master'에 도달했습니다.]

스킬 경험치가 숨 쉬고 걸을 때마다 100씩 상승해 대니 연달아 마스터 레벨을 달성했다.

광폭 어검은 광전사의 2차 각성 스킬.

이 무지막지한 스킬이 드디어 마스터 레벨이 도달했다.

이것은 프로킨의 황제 정인우가 이루어 냈던 마지막 마스터 스킬이기도 했다.

당시 인우는 5스킬 마스터였다.

내려찍기, 대검관통, 광폭화, 광폭난무, 광폭 어검.

이것이 그 당시 인우의 한계였던 것이다.

어찌 되었건 광폭 어검은 인우의 주력 스킬 중 하나였고, 마스터 레벨에 도달하면 엄청난 능력을 보여 준다.

본래의 광폭 어검은 시전자 본인의 검을 자유자재로 조종한다.

하지만 마스터 레벨의 광폭 어검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실례 좀 하자."

말을 마친 인우는 곧바로 광폭 어검을 시전했다.

그러자 인우 본인의 파뇌가 허공에 떠올라 적들을 무자비하게 도륙했다.

그리고 이어서, 8명의 분신이 지닌 대검들마저도 인우의 의지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두우우우우우웅-!

도합 9개의 대검이 전장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꾸엑!

-꼬끽!

[경험치를 50,000+5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50,000+5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45,000+45,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50,000+50,000 획득하였습니다.]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보는 바와 같다.

이 스킬은 극에 달하면 심지어 타인의 무기를 조종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엔, 타인이 자신보다 현저히 낮은 레벨의 소유자여야지만 가능했다.

어찌 되었건 정신력과 체력이 닿는 한 무한정 무기를 조종할 수 있게 된다.

그야말로 마스터 레벨 다운 파괴력을 지닌 것이다.

파바바바바밧!

블리자드로 인해 이미 엄청난 괴수들이 죽어나가 있는 상황.

그래서일까?

9자루의 대검으로 인해 괴수들은 단숨에 정리되었다.

그러자 분신들이 전리품 채취를 시작했고, 인우는 아공간을 열어 두었다.

그런 뒤 현재 스킬 레벨을 점검해 보았다.

도합 19스킬 마스터.

그리고 마스터를 앞둔 스킬은 총 8가지.

아공간과 블리자드가 95레벨로 가장 높았고, 뒤이어 위저드 아이가 91이었다.

그리고 흡혈 칼날, 스트렝스, 힐, 헬 파이어가 각각 90이었고,

마지막으로 광전사의 3차 각성스킬인 광폭 무형검이 88레벨이었다.

이제 넉넉잡아 하루 정도면 올 스킬 마스터가 되는 것이다.

이 정도라면 헬게이트 클리어를 도전해 보아도 좋을 테다.

이윽고 인우는 헬게이트 필드 곳곳에서 사냥하고 있는 지은과 민철 그리고 제라를 불렀다.

그리고 필드 중앙에 솟아 있는 헬탑을 바라보며 말했다.

"필드 사냥은 이쯤하자고."

저곳이 진짜다.

바투 또한 헬탑의 보스를 처치하고 초월의 팔찌를 얻었을 테다.

오버 밸런스 아이템들과 엄청난 보상이 뒤따르는 곳.

이윽고 인우 가(家)는 헬게이트의 정수인 헬탑을 향했다.

< 130화 분신1은 욕심쟁이 > 끝

ⓒ 호종이

< 131화 헬탑 (1) >

헬게이트 필드에 가득한 괴수들을 뒤로한 채 헬탑을 향했다.

헬탑의 입구는 어떠한 저항도 없이 열렸다.

마치, 올 테면 와 보라는 것처럼 말이다.

인우 또한 바라던 바였다.

이윽고 인우 일행은 헬탑 내부에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일행을 반긴 것은 널따란 로비였다.

"혀, 형님. 저건 뭐죠?"

그때, 민철이 로비 중앙에 있는 것을 가리켰다.

그것은 붉게 응축된 레이저처럼 보였다.

그리고 레이저는 공중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고, 나아가 탑의 꼭대기까지 뻗어지고 있었다.

한편 지은은 레이저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으며 아쉽다는 투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헬게이트 필드에 있는 괴수들을 조금 더 잡아도 될 것 같은데 말이야. 우리가 안 잡으면 그대로 바깥으로 튀어나가겠지?"

그 말에 제라가 답했다.

"그럴 거다. 밖에는 그동안 우리 때문에 괴수가 안 나오다가, 이제야 나오는 거다."

"대충 원리는 알겠네. 그럼 이 탑에는 도대체 뭐가 있는 거야?"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탑의 1층 로비 중앙의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인우가 입을 열었다.

"준비해."

그 한마디에 모두가 긴장한 채 중앙을 노려보았다.

* * *

TV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캄캄한 방 안을 비추고 있었다.

퀸은 거실에 웅크려 앉아 가만히 TV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일은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

화면에서는 흥분으로 가득 찬 앵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인우 씨가 헬게이트로 진입한지 오늘로써 3일 하고도 4시간째입니다. 그가 진입한 뒤로 헬게이트의 괴수 리젠률이 급격히 감소했었는데요. 이는, 헬게이트 내부에서 정인우 씨가 아직까지도 생존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내부의 괴수들을 도륙하니, 바깥 사냥터에는 괴수가 출몰하지 않았던 것이죠. 하지만 지금 현재. 강원도 사냥터의 헬게이트가 다시금 괴수들을 평소처럼 뱉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앵커의 말이 끝나자 화면은 강원도 사냥터의 헬게이트로 전환되었다.

그의 말마따나 그곳에서는 괴수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헬게이트가 본래대로 돌아온 것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이윽고 다시금 화면이 전환되며 앵커가 이 박사를 향해 물었다.

"박사님. 현재 정인우 씨의 생사여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보는 바와 같습니다. 정인우는 분명 사망했을 겁니다."

거기까지 말한 이 박사는 모니터에 보이는 헬게이트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것 보십시오! 아주 줄기차게 튀어나오고 있는 괴수들을! 하하하하하! 아, 나도 모르게 웃음이. 죄송합니다."

이에 앵커는 이 박사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카메라를 바라보며 멘트했다.

"···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역시나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헬게이트 전문가인 이 박사님의 의견이 맞았던 것일까요?"

거기까지 말을 마친 앵커는 다시금 이 박사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이 박사님. 정인우 씨가 만에 하나라도 살아 돌아온다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신다고 하셨었는데,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재산을 지킬 수 있게 되셨군요."

"하? 나 참! 저는 승산 있는 게임만 합니다만?"

띡-

퀸은 TV를 꺼 버렸다.

그러자 거실은 온통 어둠으로 휩싸였다.

이윽고 거실 끝에서 끝까지 반복적으로 걷는 퀸이었다.

무언가 골똘히 고민하는 모습.

"하······."

그러나 나오는 건 한숨뿐이었다.

애초에 그녀는 오망성으로 인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몸.

때문에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이곳에서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의 무사함을 바라며 말이다.

* * *

헬탑 로비에 등장한 것은 거대 괴수였다.

-크으으으으으.

악마와 같은 형상을 한 괴물.

족히 4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크기.

불타는 검과 방패.

그리고 머리에 달린 두 개의 뿔과, 온몸이 불꽃으로 뒤덮여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발록 킹!?"

어느덧 지은이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외침에는 두려움은 단 한 올도 묻어 있지 않았다.

다만 놀라움과 기쁨만이 가득했을 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발록 킹은 미개척지대에 간간히 등장하는 히든 괴수였으니 말이다.

정말로 보기 드문 괴수였다.

미개척지대에서 발록 킹을 발견하는 것은, 산에서 산삼을 캐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런데 그러한 발록 킹이 지금 이곳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인우. 저게 이 탑의 보스냐? 와 진짜 대박이다. 설마하니 발록 킹이 나올 줄이야!"

"무슨 소리야?"

인우가 뚱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러자 지은은 여전히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발록 킹이라고! 아티펙트 드랍 확률도 엄청나고, 스킬 볼도 무더기로 뱉는 녀석이잖아! 어쨌든 저 녀석이 탑의 보스인거겠지?"

"저런 게 보스일 리가 없잖아. 그냥 로비의 문지기야."

그 말대로였다.

하긴, 보스가 발록 킹이라면 기존에 헬게이트 진입했던 인류가 다시금 지구로 돌아올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돌아오지 못했다.

이는 즉, 헬탑에는 엄청나게 강한 녀석이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럼 보스는 도대체 뭐하는 놈인 거야?"

"두고 보면 알아."

인우는 그저 그렇게 답해 주었다.

그리곤 8명의 분신들을 향해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함부로 나서지 마."

"···무슨 말인지 안다. 엄청나. 이곳의 기운."

분신1이 답했다.

현재 1~4분신들의 레벨은 200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레벨만 믿고 발록 킹에게 섣불리 접근했다간 된통 당할 것이다.

지금 이 멤버 중에서는 지은이나 제라 정도가 발록 킹과 1:1로 전투를 할 수 있을 테다.

발록 킹은 헬탑에서는 문지기에 불과하지만, 바깥에서는 미개척지대의 전설로 불리는 무지막지한 놈이었으니까.

-크으으으으.

지금 발록 킹은 불같은 숨을 토해 내며 인우의 움직임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함부로 움직임을 취하지 않는 모습.

발록 킹은 제법 높은 지능을 지닌 녀석이기도 했다.

때문에 놈은 지금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인우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그 정도로 엄청났으니까.

이윽고 인우가 발록 킹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크으으으.

그제야 발록 킹은 불검을 치켜들곤 전투 자세를 취했다.

이어 녀석이 불검을 휘둘렀다.

후우우웅-!

단순하기 그지없는 동작.

하지만 강력했다.

이에 인우는 곧바로 육체강화를 시전했다.

쩡!

마스터 레벨의 육체 강화는 인우의 물리 마법 저항력을 극대화시켰다.

이어서 인우는 파뇌를 치켜들고 대검 막기를 펼쳤다.

투웅-!

그러자 녀석의 불검은 허무하게 튕겨져 나갔다.

-크으······.

당황한 듯한 발록 킹.

하긴, 마스터 레벨의 방어 스킬을 두 가지나 사용해서 녀석의 공격을 막았다.

그러니 그 무지막지한 방어력에 얼마나 놀랐겠는가?

하지만 아직 놀라기엔 일렀다.

"민철아. 대검 잘 뽑아 놔라. 너희들도."

인우는 뒤편에 있던 분신들에게까지 대검을 뽑아놓길 명했다.

그리고 곧바로 마스터 레벨의 광폭 어검을 시전했다.

두우우우웅-

그러자 인우의 파뇌가 떠올랐고, 이어서 민철과 분신들의 대검까지도 모조리 떠올랐다.

그 광경에 발록 킹은 슬금슬금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바바밧!

이내 인우의 광폭 어검이 10자루의 대검을 이끌고 쏘아져 나갔다.

각각의 대검에 선명히 맺혀져 있는 강력한 에너지.

푸르게 빛나는 그것은 대검에 응축된 채로 맹렬히 빛났다.

푸푹! 푸푹! 푸푹!

이어 대검들이 발록 킹의 몸을 꿰뚫기 시작했다.

-크러어어어어어!

발록 킹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뱉으며 발광을 해 댔다.

후웅! 후웅!

어느덧 녀석은 사력을 다해 불검을 휘두르며 광폭 어검을 떨쳐내려 안간힘을 써댔다.

그러나 인우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10자루의 대검은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았다.

요리조리 움직이는 대검은 발록을 농락하며 급소를 노렸다.

푹! 푹! 푹!

-크어어어어어어!

또 다시 쏟아지는 녀석의 비명.

인우는 곧바로 광기 폭발을 몸에 둘렀다.

그러자 푸른빛이 일렁이며 인우의 스피드가 비약적으로 상승됐다.

그 순간.

인우는 광폭화와 함께 맨주먹을 쥐고 돌격했다.

"으라아아아아아!"

퍽! 퍽! 퍽!

이내 인우의 양주먹이 세게 치기를 머금고 발록 킹을 마구잡이로 후드려 패기 시작했다.

나아가 인우는 기가 라이트닝까지 쏘아 대며 녀석을 맹렬히 몰아붙였다.

쩌저저저저적!

-크어어어억······.

발록 킹은 마스터 스킬의 향연에 금세 피를 토해 내며 넝마가 되었다.

이윽고 녀석은 숨을 거뒀다.

[경험치를 250,000+250,000 획득하였습니다.]

본래 발록 킹의 경험치는 25,000.

하지만 헬게이트의 경험치 10배와, 인우가 지닌 절대자의 성장으로 인해 기존 20배로 뛰어오른 경험치였다.

도합 50만.

실로 엄청난 경험치였다.

블랙오크 족장 녀석들의 경험치가 100만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

한편. 인우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지은이 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야. 뭐 1분도 안 돼서 잡아 버리냐?"

"문지기잖아."

"이러면 전리품은 어떻게 되는 건데?"

"어차피 헬게이트가 여기 강원도 한 개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많다. 일단 이건 내가 가질게."

그러면서 인우는 잽싸게 분신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고가의 아이템 앞에선 동생이고 뭐고 없다.

우선 내가 먹고, 남은 건 동생 거. 그러고도 남은 건, 부하 것이 되는 거다.

어느덧 영원한 막내인 분신8이 나섰다.

"···내, 내가. 채취를."

녀석은 양팔을 쭉 핀 채 나머지 일곱 분신들을 가로막으며 말하고 있었다.

이에 나머지 선배(?) 분신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당연히 궂은일은 막내가 해야지!

녀석들의 표정은 딱 그래 보였다.

하지만 인우의 표정은 달랐다.

5~8번 분신들은 막내다.

이 녀석들은 그동안 잔뜩 긴장한 채 말조차 제대로 내뱉질 못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처음 말을 꺼낸 것이다.

그것도 조금 더듬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인우는 무언가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잠자코 지켜보았다.

이윽고 분신8이 채취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S급 마나정수 20개가 나왔다.

그리고 스킬 볼 3개가 나왔다.

우선 마법사 계열의 최상위급 스킬인 블레이즈 템페스트와 메테오 스트라이크가 나왔다.

이러한 고위급 스킬 볼은 일반적인 시장에서는 볼 수조차 없는 물건이다.

이 두 개의 스킬 볼을 알아본 지은이 말했다.

"와. 저거 두 개 배울 때 진짜 돈 엄청나게 깨졌는데. 저게 나와 버리네."

마법 계열인 그녀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엄청난 값어치를 하는 스킬일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그레이트 힐.

이것은 힐러 계열 스킬의 꽃이었다.

이 또한 엄청난 가격을 자랑하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이 3가지 모두 광전사인 인우는 배울 수 없는 스킬.

때문에 인우는 그다지 큰 감흥이 없었다.

저러한 타 클래스 스킬을 습득하기 위해선 오로지 유니크 스킬 볼을 먹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유니크 스킬 볼은 나오지 않았다.

이건 좀 의외이긴 했다.

발록 킹은 유니크 스킬 볼을 무척이나 잘 뱉는 녀석이었으니 말이다.

운이 좋질 않았던 거겠지.

이윽고 분신8은 채취를 끝마쳤는지 발록 킹을 저 멀리로 걷어 차 버렸다.

인우가 물었다.

"전리품은 이게 끝이냐?"

"···음."

분신8은 인우의 질문에 답을 못하고 있었다.

이에 인우는 놈의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분신8>

레벨 : 45

한계 레벨 : 211 <시전자 레벨의 60%>

오른손 반지 : 無

왼손 반지 : 無

팔찌 : 발록의 가죽 팔찌 (체력+20, 근력+20)

목걸이 : 無

'요놈 봐라?'

인우는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이 녀석의 아티펙트 창에 떡 하니 '발록의 가죽 팔찌'가 보였던 것이다.

이내 인우는 표정을 고치고 다시금 물었다.

"전리품은 끝이냐고."

"···음. 아마도?"

피식. 웃고 마는 인우였다.

이로써 분신8의 성격이 드러났다.

이놈의 자식은 거짓말쟁이에 사기꾼이었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아무래도 분신8은 특별 관리가 필요해 보였다.

< 131화 헬탑 (1) > 끝

ⓒ 호종이

< 132화 헬탑 (2) >

이 새끼를 어떻게 한담?

허락도 없이 전리품을 빼돌리다니.

물론 발록의 가죽 팔찌는 그리 고가의 아이템이 아니다.

지금 레벨이 45밖에 되지 않은 막내 녀석이 찬 것만 보아도 명확했다.

아티펙트의 경우 고성능일수록 착용 조건이 높아진다.

물론 모든 아티펙트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발록의 가죽 팔찌는 그리 나쁜 팔찌가 아니었다.

이를테면 저레벨 구간에서도 제법 좋은 성능을 뽐내는 아티펙트랄까?

당장에 그 기능만 해도 근력 20과 체력 20이다.

이는 보너스 포인트 40에 해당하고, 다시 말해 8개의 레벨 업이 필요한 수치인 것이다.

현재 인우의 팔찌는 바투에게서 얻어낸 초월의 팔찌.

그렇기 때문에 저 녀석이 차고 있는 팔찌는 굳이 필요 없는 상황.

그리고 잘 생각해 보면 이것은 큰 손해가 아니다.

어차피 자신의 분신이 착용했다.

분신은 곧 자신의 무력이니까.

하지만 녀석의 행동을 그냥 넘길 순 없었다.

훗날에 골치 아픈 녀석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질 않나?

잠시 고민하던 인우가 입을 열었다.

"소매 걷어 봐."

"나. 여기. 아픈데."

분신8이 울상을 지으며 오른 손목을 쓰다듬고 있었다.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소가 생각날 정도였다.

굉장한 연기력.

하지만 인우가 보기엔 속내가 뻔히 보이는 변명일 뿐.

"나는 니들 주인이야. 다 알고 있어. 체력과 근력이 20씩 올랐잖아."

"···허음."

우선은, '무슨 짓을 해 대도 나는 다 알고 있다.' 라는 인식을 심어 주는 것이 좋았다.

이렇게 교육해 두면 뻘짓의 빈도가 확연히 줄어들 테니까.

그리고 이처럼 삐뚤빼뚤한 녀석은 폭력을 휘두르면 더 심하게 어긋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녀석이 직접 느껴보는 것이 더 좋았다.

뒷감당에 대해서 말이다.

모든지 얻는 것에는 그만한 책임과 감당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것을.

그래 일단 느껴보아라.

판단을 끝낸 인우가 말했다.

"그 팔찌 갖고 싶냐?"

달콤한 미끼.

분신8은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져."

"정말?"

"응. 대신, 버리거나 다시 나한테 되돌려 주지 마라."

"당연하지!"

분신8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 * *

문지기 발록 킹을 퇴치하고 탑의 2층에 들어섰다.

이곳의 헬탑은 4층까지 존재했고, 모든 층에서 보스가 나올 것이다.

물론 모든 헬탑이 4층밖에 되지 않는 건 아니다.

강원도 사냥터 헬게이트는 본래 규모가 작은 편이었다.

이에 따라 헬탑의 규모도 작은 것이다.

어찌 되었건 현재 2층에는 발록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발록 킹과는 다른 일반 발록이기에 전리품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진정한 전리품은 2층의 보스.

그리고 발록들을 모조리 퇴치하면 2층의 보스가 나타난다.

인우 일행은 너나할 것 없이 신나게 발록들을 도륙했다.

그러나 유독 한 녀석만큼은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그것은 바로 분신8이었다.

분신8은 자신의 오른 소매를 잡아당기는 습관이 생겼다.

손목에 있는 무언가를 감추려는 행위 같기도 하고, 그저 의미 없는 습관처럼 보이기도 했다.

보는 사람이 더 불편할 지경.

그러다가 녀석은 선배 분신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금세 피하곤 했다.

제 발이라도 저리나 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전투를 할 때에도 소매가 젖혀질까 봐 대검조차 제대로 휘두르지 못했다.

이 때문인지 녀석은 제법 괜찮은 아티펙트를 착용했음에도 레벨 업이 가장 느렸다.

다른 분신들은 절대자의 걸음과 호흡을 최대한 활용하며 활동적으로 움직였지만, 이 녀석은 소매를 신경 쓰느라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티펙트를 선배들에게 걸리면 안 되니까 말이다.

이로 인해 점차 벌어지는 레벨의 격차.

그제야 분신8은 후회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녀석은 아티펙트를 착용한지 불과 30분 만에 인우를 바라보며 울상을 지었다.

보아하니, 이번만큼은 연기가 아닌 실제 표정 같아 보였다.

"못 쓰겠어."

"그게 무슨 말이야?"

인우는 능청을 떨었다.

제깟 놈이 제아무리 거짓말과 사기에 소질이 있어 봤자다.

어차피 인우의 손바닥 안인 것이다.

다시금 분신8이 울상이었다.

"제발."

"버리거나 나한테 돌려주지 말라 하니 알겠다며."

"으악."

분명 그랬다.

녀석은 제 머리털을 양손으로 움켜쥐며 괴로워했다.

그러자 분신1이 잽싸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으악."

하지만 녀석은 대답 대신 요상한 비명을 내뱉을 뿐이었다.

"야. 팔이야. 무슨 일이냐니까?"

분신1은 분신8을 팔이라 불렀다. 8번이라 팔이인가?

제법 귀여운 애칭이다.

어느덧 팔이는 제 소매를 걷고 팔찌를 빼 버렸다.

그리고 말했다.

"내. 차례 기다릴게! 일이. 너 해! 으악!"

일이는 아마 분신1을 지칭하는 애칭인 듯했다.

이윽고 팔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정인우와 똑같이 생긴 녀석이 눈물 콧물을 질질 빼는 광경이란······.

근처에 있던 지은과 민철은 그 생소한 광경에 벙찌고야 말았다.

* * *

일이, 둘이, 삼이, 사이, 오이, 육이, 칠이, 팔이.

놈들의 이름이었다.

발록의 가죽 팔찌 사건 이후.

녀석들은 제법 가까워져 있었다.

이제는 선후배의 관계라기 보단 친구같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 저들끼리 수다를 떨곤 했는데, 주로 팔이가 말이 가장 많았다.

"비둘기 변신술사가. 2층의. 보스다."

"비둘기 변신술사?"

멍청한 사이가 관심을 드러냈다.

그러자 팔이는 목소리를 깔고 답했다.

"그래. 엄청나."

"정말이냐?"

"물론. 거짓말이지."

"이 새끼가!"

팔이의 천성은 어디가지 않았다.

저놈은 입만 열면 허풍을 늘어놓았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 확실히 아이템을 뒤로 빼돌리지 않았다는 거다.

현재 이곳은 헬탑의 2층이었고, 발록들을 퇴치하며 꽤나 많은 전리품이 나온 상황이었다.

이즈음 되자 팔이는 금세 자신까지 차례가 오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가장 낮은 품질의 아티펙트를 물려받게 될 것이다.

첫째인 일이는 기존에 끼던 데스나이트의 팔찌를 둘이에게 물려주고, 제 놈은 발록의 가죽 팔찌를 낀 것이다.

이처럼, 받긴 받지만 물려받는다는 것.

그것이 핵심이었다.

한편.

민철은 묘한 눈동자로 둥글게 모여 앉아 있는 분신들을 바라보았다.

'저 녀석들.....'

현재 민철의 레벨은 155.

확실히 엄청난 성장을 하긴 했다.

허나 그럼에도 분신 1~4에겐 역부족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 정인우는 분신마저도 초고속으로 성장한단 말인가?

지금 민철은 분신들에게 경쟁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일전에 분신4와 대련을 했었고, 민철은 그때도 처참히 깨졌었다.

아니, 대련할 때마다 늘 패배했다.

승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그때 느꼈다.

분신1~4한테는 죽어도 안 되겠구나. 하고 말이다.

하지만 5~8한테마저 밀릴 순 없었다.

어느덧 민철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더 노력해야 한다.'

사실 현재 민철이 지닌 전투력은 결코 낮지 않다.

비교 대상을 찾아보자면 저택의 가디언인 퀸과 비슷했다.

하지만 지금 인우 가에는 괴물 같은 초인들이 가득한 상황.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해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다르게 본다면, 그렇기 때문에 민철은 급성장을 할 수 있었던 거다.

'반드시 넘어선다!'

이윽고 민철의 눈동자가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 * *

마침내 2층의 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도 문지기 때와 마찬가지로 중앙의 붉은 기둥에서 튀어나오는 보스였다.

"카아아."

모습을 드러낸 보스는 인간형 괴수였다.

금발의 짧은 고수머리를 했고, 안색은 지나칠 정도로 창백했다.

그 모습에 민철은 절로 오그라드는 가랑이 사이를 붙잡으며 말했다.

"혀, 형님. 저건 도대체 뭐죠? 저 사람이 보스입니까?"

"그런 것 같네."

인우조차도 조금은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녀석은 바로 뱀파이어 킹이었으니까.

이를테면, 인우 가의 가디언인 뱀파이어 퀸의 남자랄까?

"킹이라니···아하?"

무언가가 불현듯 떠오른 인우였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인우가 퀸을 발견한 곳은 바로 강원도 사냥터 미개척지대.

퀸은 히든 괴수로서 단 1개체뿐이다.

즉, 세상에 단 한 명뿐이라는 것.

그런데 그렇게나 유니크한 퀸이 강원도 사냥터 미개척지대에서 살고 있는 걸 발견했을 때, 그때에 인우는 제법 놀랐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곳 강원도에 위치한 헬게이트에 뱀파이어 킹이 존재했던 것이다.

아마 퀸을 그 상태로 계속 내버려두었었다면, 이놈이 퀸을 잡아갔을 것이다.

그 전에 인우가 퀸을 발견했던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

킹과 퀸.

어찌 보면 남자와 여자처럼 사랑을 나누는 짝 같아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결단코 그렇지 않았다.

킹은 퀸을 정상적으로 다루지 않으니까 말이다.

저 녀석은 그야말로 거친 짐승이다.

또한, 퀸은 괴수들을 사냥하며 피를 빨지만, 저놈은 잡식성이다.

게다가 뱀파이어 킹은 엄청난 전투력을 지니기도 했다.

프로킨의 헬탑에서는 4층의 보스로도 등장하는 놈이다.

그런데 2층에서부터 뱀파이어 킹이 나오다니.

도대체 이곳 4층에는 어떤 놈이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확실히 프로킨의 헬탑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그러한 생각도 잠시.

이윽고 킹의 입술이 열렸다.

"목이, 마르구나."

말을 마친 킹은 눈을 부릅뜬 채 일행을 하나하나 노려보았다.

실핏줄이 오도독 드러나 있는 새빨간 안광.

절로 위축이 될 만한 눈빛이다.

그러나 인우는 침착하게 뒤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지은아. 니가 민철이를 좀 보호해야겠다."

킹은 인간과 동일한 지능을 지닌 괴수다.

때문에 위기에 처하면, 상대적으로 약한 민철에게 들러붙어 동귀어진 할 가능성도 있었다.

"저, 전 됐습니다. 싸울 겁니다."

그런데 웬걸?

민철이 지은의 손길을 거절하는 것 아닌가?

"저 괴수는 발록 킹과는 달라. 정신 똑바로 차려라."

인우는 민철의 뜻을 존중해 주었다.

입씨름하며 민철을 설득할 시간조차 없었으니까.

곧바로 파뇌를 빼들고 킹을 겨눴다.

최대한 빠르게 끝내야 한다.

분신들이야 죽어 나가도 재소환하면 되지만, 민철이 죽게 되면 그걸로 끝이다.

인우는 민철을 아꼈고, 죽게 내버려둘 생각은 없었다.

예전에야 소모품 정도로 생각했던 녀석이지만, 이제는 정말 부하로 생각하고 있었다.

'다음 헬게이트 부터는 혼자 오던가 해야지 원.'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인우는 입술을 짓씹으며 킹을 향해 돌진했다.

파바바바밧!

그러자 킹은 양손을 맞잡고 중얼거렸다.

"피의 구속."

쩌어어어엉!

녀석이 시동어를 외우자 끈적한 핏물이 인우를 덮쳤다.

촤아아아악!

이어 핏물은 인우의 전신을 뒤덮으며 움직임을 방해했다.

"흡!"

선공을 내어주다니.

아무래도 신경 쓸 것이 많으니 정신이 분산된 것 같았다.

킹을 빠르게 도륙하기 위해 다급히 움직이니 그만큼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이따위 잡 기술에 놀아날 인우가 아니었다.

인우는 곧바로 분신들을 앞세웠다.

"전력을 다해라!"

파바바바밧!

그러자 잠잠히 지켜보던 분신들이 단숨에 킹을 향해 내달려 갔다.

수다나 떨어 대던 때와는 완벽히 달라진 분위기.

전투가 벌어지자 눈빛부터 바뀌는 분신들이었다.

그 광경에 민철의 눈동자가 돌변했다.

그것은 이제껏 보여 주던 겁에 질린 눈빛이 아니었다.

독기로 가득 찬 눈빛이었으니까.

'분신들! 두고 봐라. 뛰어넘어 줄게!'

< 132화 헬탑 (2) > 끝

ⓒ 호종이

< 133화 클리어, 그리고 후폭풍 (1) >

뛰어넘긴 개뿔.

민철은 지금 바닥에 나자빠져 있었다.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고, 내장 끝에서부터 역한 혈향이 치밀어 올라왔다.

"제기랄!"

일어설 수 없었다.

민철이 그렇게 무너져 있는 동안, 뱀파이어 킹은 이미 숨이 끊긴 뒤였다.

인우는 킹의 시체를 바라보며 욕을 내뱉고 있었다.

"빌어먹을 새끼. 분신을 다 잡아먹고 가네."

그 말대로였다.

현재 인우의 분신은 넷이 죽었다.

살아남은 분신은 절반뿐.

재소환까지는 24시간이 걸릴 테다.

어느덧 인우는 킹의 전리품조차 뒤로한 채 민철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힐을 시전하는 인우였다.

후우우웅-

마스터에 근접한 힐에 의해 민철은 금세 상처가 치유되고 있었다.

"일어나 자식아. 엄살 부리지 말고."

"···죄송합니다. 도움이 안 되네요."

"알면 잘하던가."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리는 인우였다.

이에 민철은 고개를 푹 숙였다.

민철도 잘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그저 자신의 한심함을 상기하며 점차 작아지는 민철이었다.

이내 민철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말했다.

"민폐인 것 같습니다. 저 그냥 아공간에 넣어 주세요, 형님."

그리 되면 확실히 짐이 되진 않을 터.

현재 민철로서는 이것이 최선이었다.

이에 인우는 별 말없이 아공간을 열었다.

그러자 민철은 힘없는 걸음으로 그곳을 향해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

뜻밖에 정지은이 입을 열었다.

"쟤 왜 저렇게 힘이 없어? 야."

지은은 민철을 불러 세우며 우다닥 달려갔다.

그런 뒤 민철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

"아, 아악! 아파요 누님! 그리고 이거 성추행이라고요!"

"그래서 싫다는 거냐?"

"흐, 흐흐흐."

"으!"

기분 나쁜 녀석의 웃음소리에 냉큼 손을 떼는 지은이었다.

그런 뒤 지은은 불결한 듯 후후 바람을 불며 손을 털었다.

이내 지은은 민철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아공간에 들어섰다.

그리고 뒤를 향해 말했다.

"제라랑 둘이서 충분하지?"

"그렇긴 한데. 너도 들어가려고?"

인우는 조금 의외인 듯 지은을 바라보았다.

풀죽은 민철이 녀석이 신경 쓰이는 것일까?

뜻밖에 조합이긴 했다.

그간 민철과 지은이 투닥거리는 것을 몇 번 보긴 했다.

한데 알게 모르게 지은이가 꽤나 신경을 썼던 것 같기도 하다.

"이 누님이 지쳐서 말이야. 어차피 헬게이트는 많다며? 나는 눈이나 좀 붙이련다."

참 속도 편해.

혹시라도 인우가 죽어 버리면 영영 아공간에 갇히는 건데 말이다.

물론 다르게 말하면 그만큼 인우를 믿는 것이기도 하겠지.

어느덧 인우의 옆에 있던 제라가 아공간을 향해 불쑥 말했다.

"인간들아. 거기에 11시 방향 구석은 내 자리다. 그곳엔 엉덩이 들이밀지 말아라."

엄포를 놓는 제라.

뒤이어 인우도 입을 열었다.

"야 김민철. 허튼 생각 말아라. 죽는다."

그래도 하나뿐인 여동생이라고 신경이 쓰였던 인우였다.

하지만 저 둘 중에 피해자가 발생한다면 그건 아마도 민철이 아닐까?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오빠다운 걱정을 할 뿐이었다.

남녀가 좁은 방안에(?) 같이 있는 건 매우 위험하다.

* * *

킹의 전리품은 꽤나 푸짐했다.

유니크 스킬 볼 2개.

액티브 스킬 볼 1개.

패시브 스킬 볼 1개.

그리고 S급 마나정수 40개와 아티펙트 2개였다.

우선 인우는 마나정수와 액티브 스킬 볼은 볼 것도 없이 아공간에 넣어 버렸다.

그런 뒤 패시브 스킬 볼부터 확인했다.

파란색 구슬에는 번개를 삼키는 그림이 각인되어 있었다.

[전격 저항]

종류 ? 패시브

기능 ? 전격 저항 15% 상승

마법 저항이면 몰라도, 전격 하나만 저항되는 것은 배울 가치가 없다.

왜냐하면, 인우의 경우 스킬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불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유니크 스킬 볼로 스킬을 습득할 때, 스킬의 개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중복 스킬을 습득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인우는 패시브의 경우 엄청난 성능이 아니고서야 배우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인우는 전격 저항을 미련 없이 아공간에 넣어 버렸다.

그러면서도 아공간 내부를 힐끔 바라 본 인우였다.

민철과 지은은 자고 있었다.

'쓸데없는 욕정만 품어 봐. 다시는 그런 본능을 느끼지 못하게 잘라 낼 테니까.'

이것은 진심이었다.

그것이 잘려도 부하 노릇은 충분할 테니 문제는 없을 거다.

이내 인우는 생각을 거두고 유니크 스킬 볼을 입 안에 넣었다.

꿀꺽 하고 익숙한 목 넘김이 느껴졌다.

[이미 배운 스킬입니다.]

['주술의 힘'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하나 건졌다!

하지만 까 보기 전엔 모른다.

쓸데없는 스킬이 뜬다면 그건 더욱 낭패다.

인우는 익숙하게 액티브 스킬 창을 띄워 보았다.

그런데 신규 스킬이 보이지 않았다.

'아, 패시브? 오랜만인데.'

주술의 힘은 패시브 스킬인 것 같았다.

그나저나 패시브 스킬은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이윽고 창을 띄웠다.

.

.

.

12. [주술의 힘 ? 마법 시전 시, 마나 소모량이 10% 감소합니다.]

"음······."

인우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나쁘진 않다.

그런데 좋지도 않다.

수치가 애매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패시브 인지라 성장도 불가하니 10% 고정이다.

물론 이로 인해 헬파이어나 블리자드를 사용할 때 엄청난 마나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무지막지한 양의 마나를 잡아 먹는 마법들이니, 그에 대한 10%라면 꽤나 클 테니까.

"뭐, 이건 됐고."

이제 킹의 마지막 전리품인 아티펙트 2개가 남아 있었다.

인우는 우선 피처럼 붉은 색깔의 반지부터 확인했다.

[뱀파이어 킹의 생명 반지]

종류 ? 반지

기능 ? 체력 40 상승, 생명 자연회복력 30% 증가

발동조건 ? 체력 355 이상

초월의 팔찌처럼 오버밸런스까진 아니지만, 제법 괜찮은 녀석이 떴다.

현재 인우가 착용중인 반지는 헤츨링과 주술.

인우는 볼 것도 없이 주술의 반지를 착용 해제했다.

['주술의 반지'의 기능이 사라집니다.]

[마력이 40 감소합니다.]

['뱀파이어 킹의 생명 반지'의 기능이 발동됩니다.]

[체력이 40 상승합니다.]

[생명 자연회복력이 30% 증가합니다.]

누구나 육체적으로 지친다. 그리고 지친 육체는 서서히 회복된다.

생명 자연회복력은 그 회복되는 양이 증가되는 것이었다.

30% 증가의 기능은, 반지를 착용하는 즉시 체감되는 정도였다.

뒤이어 이번엔 두 번째 아티펙트를 확인했다.

[킹의 오망성]

종류 ? 목걸이

기능 ? 뱀파이어의 약점 극복

발동조건 ? 뱀파이어

"와. 이 자식은 오망성을 목걸이로 차고 다녀?"

뱀파이어의 오망성.

대개의 오망성은 마법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뱀파이어들이 태양 아래에서도 멀쩡히 활동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오망성이었다.

오망성은 이밖에도 무수히 존재하는 뱀파이어의 약점들을 극복하게 해 준다.

이 때문에 퀸조차도 저택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이동을 못하는 것 아닌가?

퀸의 오망성은 저택에 설치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흐음······."

인우는 목걸이로 된 오망성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것은 이를테면 초소형 오망성이다.

만약 이걸 퀸에게 준다면 그녀는 더 이상 가디언이라 불릴 수 없을 것이다.

'자유'를 얻게 될 테니까.

'일단은··· 보류다.'

그녀에게 자유가 필요할 날이 올까?

생각을 마친 인우는 킹의 오망성을 아공간에 넣었다.

* * *

제라와 함께 단숨에 3층을 돌파했다.

더 이상 민철이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본격적으로 실력발휘를 할 수 있었던 인우였다.

그리고 마침내 4층에 닿았다.

헬탑의 끄트머리.

그리고 이 거대한 헬게이트의 주인이 있는 곳.

지금 인우와 제라의 시선 끝자락에는 탑의 주인이 보였다.

-그르으으으.

녀석을 처음 목도한 제라가 입을 열었다.

"여자 인간을 부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걱정이 될 만도 했다.

보스가 풍기는 기운은 그 정도로 대단했으니까.

3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덩치.

머리카락 대신 솟아나 있는 빼곡한 뿔.

인간의 형상을 한 놈은 온몸이 붉었다.

흡사 마귀와 같은 생김새.

'디아볼로스인가? 오랜만인데.'

어느덧 인우는 조심스럽게 아공간을 열었다.

그러자 제라가 말했다.

"역시. 여자 인간을 부르려고?"

"아니."

짧게 답한 인우는 힘의 정수를 두 개 꺼냈다.

그런 뒤 양 볼에 하나씩 물었다.

아무래도 상황은 어떻게 흐를지 몰랐기에 대비하는 것이 좋아보였다.

이윽고 모든 준비를 끝마친 인우가 제라를 향해 말했다.

"단번에 끝낼 거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인우는 모든 스킬을 마스터까지 올렸다.

그 중, 가장 늦게 마스터에 도달한 스킬이 바로 광폭 무형검.

이는 프로킨의 정인우조차 도달하지 못했던 경지다.

이거면 충분했다.

광폭 무형검을 마스터한 초인은, 지구에서도 심지어 프로킨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정인우만이 유일하다.

"물러서."

인우는 제라를 뒤로 물렸다.

그런 뒤 디아볼로스를 향해 내달렸다.

-크크.

녀석이 웃는다.

그러나 저 웃음이 얼마나 갈까?

인우는 볼 것도 없이 가장 강력한 스킬을 준비했다.

이것은 실전이다.

만화영화처럼 조금씩 적의 체력을 갉다가, 위기의 순간 필살기를 써서 적을 물리치는 드라마 따위가 아니었다.

할 수 있다면, 최선의 최고의 공격으로 빠르게 적을 물리치는 게 바로 현실이다.

"으라아아아!"

우렁찬 기합과 함께 광폭화부터 시전했다.

순간 인우의 물리 공격력은 2배로 껑충 뛰었다.

이어서 광기 폭발.

다음으로 스트렝스까지.

[스킬 '스트렝스'로 인해 시전자의 근력이 100 증가합니다.]

마스터 레벨에 이른 스트렝스는 말도 안 되는 근력 수치를 올려 주었다.

이어서 육체 강화.

쩌엉-!

그리고 곧바로 내달리는 인우였다.

타다다닥!

그러자 탑의 주인이 그제야 가소롭다는 얼굴로 무기를 치켜들었다.

거대한 지팡이를 치켜든 놈은 하얗게 타오르는 불꽃을 발사해 댔다.

파바바바밧!

인우는 그러한 공격에 정면으로 맞서며 물러서지 않았다.

"일단 한 방 간다!"

파뇌를 치켜든 인우는 볼 것도 없이 광폭 무형검을 시전했다.

보이지 않는 검.

결단코 피할 수 없는 이 공격은 녀석에게 정확히 먹혀 들었다.

-크러어억!

효과는 확실했다.

놈은 피를 토해 내며 주저앉았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체력의 절반을 소모하는 광폭 무형검은 이론적으론 2번 연속 시전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이후엔 일어설 힘조차 없어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광폭 무형검을 또 다시 날려 버렸다.

-커어어억!

아무런 소리도 없이 또 다시 놈이 피를 토해 냈다.

이내 놈은 핏발 선 눈으로 인우를 쏘아보았다.

-크르!

"허억. 허억. 허억."

모든 체력을 소진한 인우는 곧바로 볼따구니에 있는 힘의 정수 하나를 삼켰다.

그러자 인우의 모든 체력이 단숨에 회복됐다.

그 광경에 놈은 그제야 사태를 파악하고 인우를 향해 내달려왔다.

타다다닥!

인우는 달려오는 놈을 향해 또 다시 무형검을 때려 박았다.

푹!

-크아아아아아아아!!

내장 끝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놈은 쓰러지지 않았다.

'이 새끼 도대체 체력이 얼마나 많은 거야?'

마스터 레벨의 광폭 무형검을 무려 3대나 견뎠다.

이 정도면 볼 것도 없이 프로킨의 디아볼로스보다 강력하다.

바투가 살아 돌아온대도 기필코 3대는 못 견딜 테니까.

"젠장!"

인우는 나머지 절반의 체력을 이용해 또 다시 광폭 무형검을 날렸다.

파바바바밧!

-커억······.

그제야 놈의 숨이 끊겼다.

[경험치를 15,000,000+15,000,000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5분 뒤 헬게이트가 소멸됩니다.]

그야말로 1분도 되지 않아 놈을 물리쳤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단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광폭 무형검을 4방이나 꼽았고,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힘의 정수를 1개나 소모했다.

인우는 볼따구니에 남은 힘의 정수 하나를 아공간에 도로 넣었다.

그리고 곧바로 입을 열었다.

이제 곧 헬게이트가 닫힌다.

"5분. 5분 안에 전리품 채취해야 돼. 움직여 제라."

"···어, 어. 어? 아. 그래!"

인우의 무력에 입을 쩍 벌리고 있던 제라는 뒤늦게 답하고 있었다.

분명 바투를 물리쳤을 때 사용했던 그 스킬이었다.

하지만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해져 있었다.

이 인간의 끝은 어디일까?

< 133화 클리어, 그리고 후폭풍 (1) > 끝

ⓒ 호종이

< 134화 클리어, 그리고 후폭풍 (2) >

"아, 아."

제라 녀석이 버벅거렸다.

놈은 어설프게 디아볼로스의 시체를 헤집고 있었다.

헬게이트는 곧 닫힌다.

이에 인우가 나섰다.

"에라이."

단숨에 디아볼로스의 가슴을 가르고 전리품을 채취했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힘의 정수였다.

무려 5개.

이 녀석을 잡기 위해 기존에 있던 힘의 정수를 1개 사용했다.

결론적으로 4개를 얻은 셈.

어찌 되었건 큰 이득이었다.

힘의 정수는 곧 무력과 직결된다.

이것은 많을수록 좋았다.

인우는 힘의 정수를 몽땅 아공간에 내던졌다.

그런 뒤 다음으로 마나정수를 채취했다.

이건 그리 중요한 전리품이 아니었기에 개수 파악 없이 그냥 아공간에 모조리 쑤셔 넣었다.

다음으론 당연하게도 유니크 스킬 볼이 등장했다.

개수는 3개.

일단 시간이 없었기에 이 또한 아공간에 넣어 두었다.

'이쯤이면 나올 때가 됐는데.'

지금 인우는 이러한 것들보다 더 중요한 전리품을 기다리고 있었다.

헬게이트를 이루는 주요 에너지원.

그 무시무시한 스톤은 탑의 주인이 지니고 있다.

하지만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즈음.

아티펙트가 하나 나왔다.

전체적인 생김새는 목걸이 형태로서, 붉은 이빨이 매달려 있었다.

이빨의 크기는 매우 거대해서 손가락 두 개를 합친 정도였다.

일단 풍기는 위용은 상당하다.

'오버밸런스로 떠라!'

자그마치 탑의 주인이 내뱉은 아티펙트다.

바투 녀석도 초월의 팔찌를 얻었는데, 인우라고 좋은 걸 못 얻을 리 없다.

인우는 기대를 품고 정보를 불렀다.

[디아볼로스의 이빨]

종류 ? 목걸이

기능 ? 마나 소모량 50% 감소, 마법 공격력 2배 증가

발동조건 ? 마력 400, 레벨 300 이상

떴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떴다.

스텟이 아닌 특수기능 두 줄이었다.

나아가, 특수기능도 최상급이라 봐도 무방했다.

우선 '마나 소모량 50% 감소.'의 경우.

이것은 인우가 지닌 마법을 시전할 때 발동되는 능력이었다.

현재 인우가 지닌 마력 스텟으로는 헬 파이어를 4번 정도 연속 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목걸이를 착용하면 8번까지도 충분했다.

게다가 두 번째 기능인 마법 공격력 2배 증가.

저건 그야말로 대박이다.

현재 인우가 지닌 헬 파이어는 마스터 레벨.

이에 따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파이어 볼 마스터만 해도 엄청난 위력을 뽐내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위력이 2배가 된다면?

볼 것도 없다.

오버밸런스가 확실하다.

하지만 착용 조건이 매우 높았다.

현재 인우의 마력 스텟은 362. 그리고 레벨은 360.

레벨제한 300의 경우 충분히 충족된다.

하지만 마력 스텟 400의 경우 모자랐다.

"으. 우선 아공간 행이로군."

일단은 보관했다.

그리고 그즈음.

5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오. 이거 시간이!"

인우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아공간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런 뒤 디아볼로스의 시체를 그 안에 내던지며 외쳤다.

"제라 너도 들어가."

"응? 나? 왜!"

그걸 말이라고 하나?

며칠 전 인우가 헬게이트에 입장할 때에 엄청난 초인들이 깔려 있었던 강원도 사냥터다.

그렇기에 헬게이트가 소멸되면 자연스럽게 제라 또한 초인들에게 목격될 것이다.

블랙오크는 곧바로 척살이다.

그렇기에 아공간에 숨기는 것이 최선이었다.

물론, 초인관리국이나 정부에서 제라를 척살하려한대도 인우는 제라를 내어줄 생각이 없긴 했다.

하지만 트러블은 최소화하는 것이 맞다.

괜한 트러블로 인간들과 척을 지다보면 세계의 적이 될 수도 있다.

그건 정말로 피곤할 테니 말이다.

인우는 다시금 외쳤다.

"말 들어 자식아."

"취-익. 알겠다. 저 보스의 전리품은 안에서 마저 채취하고 있겠다."

"그래."

제라는 곧바로 아공간에 들어갔다.

이내 헬게이트가 소멸되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저적-!

* * *

오늘로서 정인우 헬게이트 진입 4일째.

정인우 특집 방송은 이제 막바지였다.

그가 헬게이트에 진입하고, 사망했을 거라는 추측에 힘이 실리며 더 이상의 파급력이 사라진 것이었다.

이제 방송은 정인우가 진입했던 헬게이트를 촬영하는 것으로 막을 내리려 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이번 특집의 대미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었다.

이번 촬영을 위해 정인우 특집을 기획한 MBN은, 방송 매체로서는 최초로 미개척지대에 진입한 것이었으니까.

이로서 미개척지대의 모습이 공중파를 타게 됐으니 시청률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어쩌면 정인우 특집 첫 방송을 했을 때보다 더 높은 시청률이 나올지도 모른다.

물론 이를 위해 엄청난 인력의 랭커 초인들이 투입되었고, 나아가 촬영을 위한 초인관리국의 오케이 싸인을 따내기 위해 막대한 돈과 인맥을 투입한 MBN이었다.

어찌되었건, 현재 강원도 미개척지대 헬게이트 앞에서는 생방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전체적인 풍경은, 섭외한 랭커 초인들이 둥글게 포진하여 괴수들의 진입을 차단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안전권 안에 스태프들과 앵커 그리고 이박사의 모습이 보였다.

앵커는 헬게이트를 가리키며 멘트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정인우 특집의 진행을 맡은 이준호입니다."

그의 인사가 끝나자 옆에 있던 이박사도 입을 열었다.

"하. 경치 참 좋군요!"

이박사는 시청자를 향한 인사 대신 딴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그러더니 저 홀로 독단적인 멘트를 내뱉기 시작했다.

"자, 보십시오.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정인우는 분명 뒤··· 아니, 사망했습니다. 헬게이트에서는 여전히 괴수들이 튀어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자신만만하게 제 가슴을 탕탕 쳐 댔다.

이것 보라며.

너희들이 틀렸다며.

사실 그는 각종 인터넷 포탈에서 갖은 욕을 다 처먹었던 것이다.

세계 최강의 초인이 한국인인데, 그가 죽는 것을 바라냐며, 매국노라는 둥 개자식이라는 둥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먹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이 박사는 더더욱 증명하고 싶었다.

정인우가 제아무리 잘난 놈이라도 헬게이트에 들어선 순간 목숨이 끊겼을 수밖에 없었단 것을.

해서 이 박사는 오늘 기분이 좋았다.

정인우 특집의 마지막 챕터가 헬게이트로 변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정인우가 아니라 헬게이트다.

"자, 앵커님. 저기 저 헬게이트를 보십시오.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지 않습니까? 저 내부는 이를테면 다른 차원의 공간입니다."

"오호? 그렇다면 저 내부는 어느 정도의 규모를 이루고 있을까요?"

"하하. 자, 시청자 여러분도 매우 궁금해 하실 것 같군요. 잘 들어주십시오. 인류는 오래전부터 헬게이트 내부를 탐사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었습니다. 헬리캠부터 시작해서 각종 첨단 장비가 투입되었죠. 하지만, 저 내부에 투입된 장비들은 곧바로 신호와 전파가 끊겼습니다."

"그 말은?"

"저 내부는 지구와는 전혀 다른 구조라는 것이죠. 그 어떠한 인류의 과학기술도 통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미스터리한 공간인거죠."

이 박사는 헬게이트 내부에 대해 아는 척을 잔뜩 했다.

그러나 결국엔 미스터리 타령을 하며 시청자들의 궁금증만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이윽고 카메라는 헬게이트의 포탈을 줌인했다.

화면 가득 꿈틀대는 거대한 헬게이트가 잡혔다.

그 위로 앵커의 멘트가 시작됐다.

"정말 엄청난 광경입니다. 그간 사진으로만 접해 보았지 실제로 보는 것은 저로서도 처음이니까요. 지금 카메라를 통해 화면에 나타나는 헬게이트의 위용은, 실물에 비해 절반조차도 표현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오금이 저리고 말조차 헛 나올 정도의 공포감이 피어납니다. 저 안에는 과연 무엇이 존재할까요? 그리고 헬게이트는 누가 만든 것일까요? 신일까요? 악마일까요?"

그런데 그때.

줌인으로 확대되었던 헬게이트가 바르르 떨리는 광경이 포착되었다.

"어!?"

카메라맨이 깜짝 놀라 화면이 잠시 흔들렸다.

이에 앵커는 이 박사를 붙잡고 물었다.

"바, 박사님! 지금 헬게이트가 떨리고 있습니다! 저 현상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오? 이거이거. 시청자 여러분 굉장히 운이 좋으신데요? 여러분은 지금 발록 킹이 리젠되는 광경을 목격하실 겁니다!"

이박사의 지식으로는 그랬다.

헬게이트가 저렇게 진동하는 것은, 엄청나게 강력한 네임드 보스가 나타날 때 뿐이라는 걸.

"하하! 정인우가 그래도 죽기 직전까지 꽤나 힘을 썼나봅니다? 죽어 귀신이 된 그가 발록 킹을 보여 주려나 봅니다! 하긴! 그 정도는 보여 주어야 자신도 헬게이트의 위력엔 어쩔 수가 없었다는 변명을 할 수 있는 것이겠죠?"

이 박사는 그야말로 나오는 대로 지껄이며 헬게이트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 박사는 이번엔 헬게이트를 등지고, 카메라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정인우는 죽었지만, 그의 용기는 영원한 역사로 남겠죠! 물론, 저의 전 재산을 내건 용기 있는 도박도 오래도록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그나저나 이것 참 아쉽습니다. 저는 분명 좋은 뜻을 품고 전재산을 환원하려 했건만, 참으로 아쉬울 따름입니다!"

이 박사는 쉴 새 없이 조잘댔다.

그런데, 이박사를 찍고 있던 카메라맨의 표정이 이상했다.

이에 이 박사는 눈을 가늘게 뜨며 또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지금쯤이면 발록 킹이 튀어나왔겠군요? 지금 카메라맨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하하. 그렇습니다, 여러분! 아마도 지금 제 뒤에 튀어나온 녀석이 발록 킹일 것입니다!"

완벽한 예측이다!

이 박사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데 여전히 촬영 스태프들의 표정이 이상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들이랄까?

저 자식들 왜 저러는 거야?

이 박사는 머리를 긁적댔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발록 킹의 위용 때문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때.

앵커가 이 박사의 어깨를 톡톡 쳤다.

"저기···박사님······."

"응?"

"전 재산······."

앵커의 말이 채 끝맺기 전에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터벅- 터벅-

모두가 침묵했다.

현재 미개척지대는 침 넘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그리고 이 박사의 등 뒤에서 웬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거치면서도 뚱한 음성.

"다 들었다 새끼야."

난데없이 무슨 목소리지?

이 박사는 곧바로 뒤를 돌았다.

그리곤 눈을 부릅떴다.

"하, 하아악!?"

"전 재산을 환원하든 말든 내 알 바는 아니다만, 지켜는 볼게. 만약 거짓말이면 다음 헬게이트 행에 네놈을 데려가주지. 네놈 뱉는 말이 전문성이 없단 말이야. 저 안에 들어가 보면 헬게이트가 어떤지 알게 될 거다. 진짜 전문가가 되는 거지."

이 박사는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진 상태였다.

정인우.

분명 그였다.

게다가······.

헬게이트는 씻은 듯 사라져 있었다.

좀 전의 진동은 발록 킹이 아니라, 헬게이트가 소멸되는 진동이었던 건가?

"마, 말도 안 돼!"

이박사는 가슴을 움켜쥐며 무릎을 꿇었다.

꿈이라 해도 믿을 지경이다.

이윽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앵커의 외침이 쏟아졌다.

"저, 정인우 씨!!! 자, 잠시 인터뷰를!!"

이건 초대박이다.

특집 방송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헬게이트 촬영을 왔건만, 이럴 수가.

거기서 정인우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헬게이트가 소멸됐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정인우가 헬게이트를 클리어했다.

그리고 MBN 정인우 특집은 초대박 흥했다.

마지막으로, 이 박사는 거지가··· 될 것 같았다.

* * *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날.

아직 장마가 오기엔 일렀는데 며칠째 비가 오고 있었다.

끼이익-

그런 비를 뚫고 고급스러운 세단 한 대가 어느 건물 앞에 멈췄다.

그리고 그 세단이 오는 것에 맞춰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늘어서 있었다.

"오셨습니까, 각하."

정장 사내 중 한 명은 차에서 사람이 내리자 그를 향해 말을 걸었다.

"그래. 다들 모였나?"

"예, 가시죠."

말을 마친 두 사람은 천천히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134화 클리어, 그리고 후폭풍 (2) > 끝

ⓒ 호종이

< 135화 퀸 (1) >

1. 정인우

2. 정인우 헬게이트 클리어

3. 세계 최초 헬게이트 클리어

4. 강원도 사냥터 괴수 멸종

5. 괴수 멸종 가능성

6. 세계초인협회 반응

7. 정인우 레벨

8. MBN 정인우 특집

9. 정인우 나이

10. 이박사 전 재산 환원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가 모조리 그와 연관되어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보통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상황이 이러니 기사 또한 모든 것이 묻히고 정인우와 관련된 것들만이 도배되다시피 했다.

그래서일까?

현재 대통령의 움직임은 비밀스러운 것이 아니었음에도 국민들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 정도로 지금 정인우의 헬게이트 클리어가 가지고 온 파급력은 엄청났다.

어찌 되었건, 지금 이곳 회의실에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보였다.

"다들 모였군. 앉지."

그의 말 한마디에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이 자리에 착석했다.

현재 이곳 회의실에는 엄청난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초인관리국의 이종혁 국장.

국가정보원의 임우람 원장.

하창원 국무총리.

국가 소속 랭커팀 사일런스의 배다정 대장.

이밖에도 많은 수뇌부들이 보였다.

이윽고 회의가 시작되었다.

무거운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통령이 먼저 입을 열었다.

"헬게이트가 클리어됐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을 테지. 현재 세계의 시선이 대한민국. 아니, 정인우에게로 쏠려 있네. 그의 움직임으로 인해 세계초인의 판도가 뒤바뀌려 하고 있어."

그 말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었다.

모두가 정인우에 대해 한마디씩 내뱉었고, 하창원이 현재의 심각성에 대해서 우려를 표하기 시작했다.

"각하. 현 사태는 매우 심각합니다. 대한민국은 지난 30년간 초인강대국으로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었질 않습니까? 그런데 정인우가 헬게이트를 소멸시켜 버렸습니다. 그로인해 괴수가 멸종하면 한국은 더 이상 초인강대국의 자리를 지킬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날이 선 음성의 주인공은 초인관리국장 이종혁이었다.

"정녕 몰라서 물어보십니까? 괴수는 신개념 에너지원인 마나정수를 뱉습니다. 마나정수 에너지는 이제는 없어선 안 될 귀중한 에너지 자원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헬게이트가 소멸되면요? 마나정수는 어디서 얻습니까? 수입을 해 옵니까? 커다란 국가적 손해입니다. 나아가, 랭커 초인들과 자라나는 초인들. 그들 모두가 레벨을 올릴 방법이 전무해집니다."

"그래서요?"

이종혁이 또 다시 뚱한 음성으로 묻는다.

"아니! 후우··· 결론만 말씀드리죠. 정인우를 더 이상 헬게이트에 진입하게 두어선 안 됩니다."

"아니, 그렇다고 괴수를 멸종시킬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를 막자는 이야기입니까? 헬게이트 철벽 사냥터는 인류의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이었지, 언제든 소멸 가능하다면 없애야만 하는 악입니다."

"그래서, 정인우를 이대로 방치하자는 이야기입니까?"

회의장에서 불꽃이 튀었다.

이종혁과 하창원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때.

임우람 원장이 묵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뭐, 다 좋습니다. 그런데, 누가 그를 막습니까? 그가 헬게이트에 들어가겠다고 난동을 피우면 막을 수 있는 초인이 존재는 합니까? 정인우는 바투를 넘어서 이제는 헬게이트까지 클리어해 버린 괴물입니다. 자, 한번 봅시다. 그가 만약 헬게이트 진입을 막는 국가에 앙심을 품고 각하를 노리기라도 한다면? 누가 막습니까?"

"그야 사일런스가···!"

하창원이 다급히 외쳤다.

이에 임우람 원장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예? 사일런스요? 지금 장난합니까?"

그러면서 그는 사일런스 대장 배다정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배다정이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저는 중국 전쟁에서 그의 무력을 직접 목격했던 초인 중 한 명입니다. 확실히 말해 두자면, 그 누구도 정인우를 막을 순 없을 겁니다. 설령, 막는다고 해도 피해가 어마어마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아예 못을 박았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정인우를 이대로 두어야 하는가, 막아야 하는가?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정인우는 이대로 방치하는 걸로 하지."

"예에!?"

"우선은 그것이 최선이야. 더 좋은 방법이 있나?"

"···그건······."

하창원은 끝내 말을 내뱉지 못했다.

그 위로 근엄한 대통령의 말이 쏟아졌다.

"막을 수 없다면 두어야지. 나아가, 그의 방향을 바꾸어 줘야지. 지금으로선 그것이 최선이겠지."

그러면서 대통령은, 현재 주인이 없는 땅인 중국을 떠올렸다.

그곳에는 헬게이트가 널려 있다.

중국 땅에 대한 문제는 아직 그대로였고, 이를 차지하기 위해 각국의 알력다툼 또한 한창이었다.

"다음 세계초인협회 회의가 언제이지?"

* * *

아공간 내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다.

지은은 조금 전 잠에서 깼는지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선 여전히 민철이가 자고 있었고, 11시 방향 구석에는 제라도 보였다.

"흐아암. 야, 제라. 너도 들어온 거냐? 어떻게 된 거야? 정인우는?"

"취-익."

무언가를 해체하고 있던 제라가 고개를 돌렸다.

녀석이 칼질을 해 대고 있는 것은 시체였다.

인간 형태의, 붉은색 악마와 같은 모습을 한 시체.

"정인우는 무사하다. 그리고 이게 보스다. 정인우가 죽인 거고."

"끔찍하게도 생겼네."

지은은 질색을 하며 이마를 찌푸렸다.

그러다 돌연 물었다.

"클리어한 지 얼마나 된 거야?"

"음. 한 5시간은 넘은 거 같다."

"5시간? 그럼 넌 여태 그 시체 하나를 해체하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정인우는 왜 여태껏 아공간을 안 열어 주는 거야? 뭐 문제 생긴 거 아니야?"

"큭. 인간. 이 시체는 생각보다 다루기 힘들다. 정인우는 쉽게 하던데. 그리고 말이다. 고작 그 정도 시간 가지고 놀라기는. 나는 이곳에서 며칠 동안 있던 적도 있다."

분명 그렇긴 했다.

인우는 제라를 아공간에 쑤셔 둔 것을 자주 잊곤 했다.

그로인해 제라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매우 익숙했다.

하지만 지은은 그렇지 못했다.

"아오 좀이 쑤시는데."

아공간 내부는 매우 넓긴 했다.

대략적인 크기를 눈대중으로 보자면, 10층 아파트 한 채가 들어올 정도였다.

그럼에도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지구가 아니라는 심적인 압박만으로도 말이다.

오래 있을 곳은 못됐다.

이윽고 지은은 구시렁거리며 여기저기를 누비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녀는 보스에게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아티펙트를 발견했다.

손가락 두 개만 한 이빨이 매달려 있는 위압스러운 생김새의 목걸이.

"뭐야 이건?"

지은은 목걸이의 정보를 열어 보았다.

[디아볼로스의 이빨]

종류 ? 목걸이

기능 ? 마나 소모량 50% 감소, 마법 공격력 2배 증가

발동조건 ? 마력 400, 레벨 300 이상

"허얼··· 미친."

그녀는 어찌나 놀랐는지 눈을 크게 부릅떴다.

마나 소모 50%에 마법 공격력 2배라고?

현재 지은이 지닌 대마법사의 반지보다도 압도적으로 좋았다.

대마법사의 반지는 마나 소모 50%에 마력스텟 +20이었으니까 말이다.

세상에 이런 아티펙트가 존재하다니.

지은은 적잖이 놀랐는지 조심스럽게 목걸이를 다뤘다.

"정인우. 엄청난 걸 얻었잖아···?"

헬게이트 최종 보스가 내뱉은 것이겠지?

이내 지은은 목걸이를 한번 착용해 보았다.

[중복 옵션은 수치가 더 큰 것으로 자동 적용됩니다.]

[마법 공격력이 2배 증가합니다.]

"와··· 마법 공격력 두 배라니······."

지은이 지닌 대마법사의 반지로 인해 마나 소모율 50%는 적용되지 않았다.

이를테면, 이론적으론 대마법사의 반지를 2개 착용하면 마법 소모율이 100%가 된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즉, 똑같은 옵션은 중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아가, 만약 40%와 60%를 동시 착용하면 100%가 아닌, 수치가 더 높은 60%만 적용된다.

이처럼 특수기능은 더 높은 기능만 인식한다.

하지만 +스텟의 일반 기능은 중첩 적용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민첩+20, 민첩+30의 두 가지 아티펙트를 착용하면 민첩+50이 된다는 것이다.

어찌되었건, 디아볼로스의 이빨은 마나 소모율 옵션을 제외하더라도 사기급 아티펙트였다.

공격력 2배만으로도 말이다.

지은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데 그때, 어느새 다가온 제라가 입을 열었다.

"정인우 거다 그건."

"아, 알아 이 자식아."

지은은 입맛을 다시며 착용중인 목걸이를 만지작댔다.

아쉬워도 어쩔 수 있나?

그래 뭐, 생각해보면 헬게이트는 많지 않나?

이윽고 그녀는 미련 없이 목걸이를 착용 해제했다.

"그나저나, 정인우 이 자식은 어떻게 된 거야?"

그녀는 괜히 무안한지 그렇게 말을 내뱉으며 제라를 힐끔댔다.

이에 제라는 눈가를 좁히며 지은을 째려보다가 다시금 시체로 다가갔다.

그리고 열심히 해체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10여분이 지났을까?

제라는 디아볼로스의 시체에서 붉은 빛깔로 강렬히 빛나는 보석을 발견했다.

"어, 어. 이게 도대체 뭐냐!?"

보석에서는 엄청난 기운이 느껴졌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제라는 알지 못했지만, 이 보석은 헬게이트를 유지하는 주요 에너지원인 헬 스톤이었으니까.

애초에 인우가 애타가 찾아댔던 전리품이 바로 이 헬 스톤이었다.

* * *

지금쯤이면 슬슬 지은이가 아공간 내부에서 콧김을 뿜어내고 있을 것 같았다.

헬게이트 클리어 이후 꽤나 시간이 지났으니까 말이다.

지금 인우는 강원도 거주지로 가는 길이었다.

생각보다 늦어졌다.

앵커 녀석이 예의바르고 살갑게 대하기에 인터뷰를 조금 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박사라는 놈의 망연한 표정을 감상하기도 했고.

나아가, 주변에 포진하고 있던 랭커 녀석들도 경외의 시선을 보내니, 인우는 간만에 프로킨의 황제로 있을 때처럼 기분이 좋았다.

자식들.

얼마나 놀랐을까?

인류에게 있어서 헬게이트란 사후세계나 마찬가지였으니,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인우는 그야말로 귀신보다도 더 놀라운 존재였을 테다.

그래서인지 질문은 끊임없이 쇄도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통해 많은 것을 이야기 하진 않았다.

이야기는 주로 '궁금하면 너희들도 가 봐!' 정도로 이끌었다.

가끔 이 박사를 가리키며 전문가에게 묻지 왜 자신에게 묻냐며 익살스럽게 대처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똥 씹은 표정의 이 박사는 참으로 봐줄 만했다.

타다다다닥-!

생각도 잠시.

어느덧 강원도 거주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즈음이면 사람들의 시선도 없으니 아공간을 열어 주어도 되겠지만, 인우는 신중했다.

다른 건 몰라도 블랙오크 제라가 있으니 말이다.

아공간을 열어 주는 건 저택 내부에서다.

그렇게 달려 나가던 인우는 이윽고 거주지 마당에 도착했다.

마당은 한산했다.

하긴. 퀸과 팜이는 저택 내부에서 콜콜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웬걸?

끼긱!

급작스레 저택 문이 벌컥 열리며 퀸이 뛰쳐나오는 게 보였다.

그녀는 우다닥 달려오더니 난데없이 인우를 꽉 끌어안았다.

"뭐야 너?"

인우는 그렇게 물으며 엉성하게 서 있었다.

"···걱정했어요."

"우냐?"

그녀의 물먹은 목소리에 인우는 머리를 긁적댔다.

이 여자가 갑자기 왜 이래?

"무서웠어요. 주인님이 사라질까 봐요. 그런데도 난 갈 수 없었어요."

아.

아마도 방송을 통해 자신의 헬게이트 진입을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리고 걱정을 했을 테고, 오망성으로 인해 멀리까지 움직일 수 없는 것이 통탄스러웠을 수도 있겠다.

이윽고 인우는 작게 미소지었다.

그녀의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퀸은 한참동안이나 인우를 껴안고 있었고, 그즈음 인우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헬게이트에서 얻어낸 전리품 중에는 킹의 오망성도 있다.

"너."

이윽고 인우가 짧게 말을 내뱉으며 퀸의 눈을 직시했다.

"···네?"

가까이에서 바라본 그녀의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

그녀에게, 자유를 주어도 괜찮을까?

< 135화 퀸 (1) > 끝

ⓒ 호종이

< 136화 퀸 (2) >

"너."

멈칫 하던 인우는 끝내 말을 삼켰다.

이 여자는 저택의 가디언이다.

그뿐이다.

자유를 얻게 된 그녀가 어딘가로 가버리기라도 한다면?

인우는 그러한 상황을 원치 않았다.

때문에 아직은 아니다.

조금 더 그녀를 믿을 수 있게 된다면, 그때에 주기로 결심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말한 인우는 앞장서 걸으며 저택으로 들어섰다.

퀸이 그 뒤를 종종걸음으로 쫓았다.

저택에 들어선 인우는 가장 먼저 아공간을 열었다.

후웅-

입구가 열리자마자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 자식아! 왜 이제 열어!"

지은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로 제라와 민철이 줄줄이 소시지로 튀어나왔다.

"형님. 제가 저 안에서 꿈을 꿨는데, 아공간에 형님이 좋아하는 러닝머신이 가득한 꿈이었어요. 분신들이 그 위에서 뛰어 놀더라고요.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기는 전기가 안 나오잖아요? 에라이 개꿈!"

민철이는 역시나 말이 많았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아공간에 분신들을 모조리 때려 박고 러닝머신을 설치해두는 건 참 기발한 아이디어다.

물론 불가능하겠지만······.

"취-익. 인간. 전리품 채취는 모두 끝마쳤다."

'나 좀 칭찬해주세요.' 라는 뉘앙스가 가득 풍기는 어조의 제라였다.

하지만 인우는 칭찬 대신 궁금한 것을 물었다.

"빨간색 보석도 나왔지?"

"흥."

"나왔냐고 묻잖냐."

"그래. 아공간 입구 쪽에 전리품을 다 모아뒀다. 흥."

말을 마친 제라는 거실을 가로질러 퀸에게 걸어갔다.

그런 뒤 멸치볶음을 요구하며 일찌감치 식탁에 자리 잡았다.

한편 인우는 아공간에 있는 전리품들을 확인했다.

디아볼로스에게서 나온 전리품들.

우선 탑에서 채취했던 킹의 오망성, 디아볼로스의 이빨, 유니크 스킬 볼 3개가 보였다.

그리고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붉은 보석이 보인다.

제라가 채취한 모양이었다.

이것이 바로 헬 스톤.

헬게이트에서 얻어낼 수 있는 가장 큰 전리품.

인우는 헬 스톤의 정보를 불러왔다.

[헬 스톤]

용도 ? 아티펙트 기능 강화.

기능 ? 추가 능력치 랜덤 생성.

제한 ? 하나의 아이템에 단 한 번만 사용 가능.

헬 스톤은 아티펙트 강화에 쓰인다.

본래 아티펙트란 무조건적으로 두 줄의 기능을 보유한다.

하지만 헬 스톤을 통해 3줄까지 늘릴 수 있었다.

또한, 그 능력치는 랜덤이며 무조건 S급으로 생성된다.

이 말은 즉, 형편없는 아티펙트라도 헬 스톤만 있다면 S급이 될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단 한 번만 사용가능했기에 신중해야만 했다.

이를테면, 강력한 아티펙트에 사용하는 것이 맞다.

현재 인우가 착용한 아티펙트 중 가장 강력한 녀석은 초월의 팔찌.

맨손 전투력 5배와 근력 50의 기능.

이 정도 급수의 아이템이라면 헬 스톤을 먹여도 될 것이다.

이내 인우는 초월의 팔찌를 착용해제 한 뒤 헬 스톤을 가져다댔다.

[정말로 사용하시겠습니까?]

볼 것도 없이 승낙했다.

그러자 헬 스톤이 강렬한 빛을 내뿜었다.

후우우우웅-

[헬 스톤이 흡수되었습니다.]

[초월의 팔찌의 기능이 추가되었습니다.]

어떠한 기능이 붙었을까?

인우는 팔찌의 정보를 불렀다.

[초월의 팔찌]

종류 ? 팔찌

기능 ? 맨손 전투력 5배 상승, 근력 50 상승

추가기능 ? 민첩 100 상승

발동조건 ? 근력 500 이상

"이 정도면 뭐···"

추가기능이 생겼다.

민첩 100 증가.

특수능력이 아닌 것은 아쉽다.

하지만 100이라면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치다.

헬 스톤으로 인해 붙는 능력치는 이처럼 무엇이 되었건 엄청난 수치가 붙는다.

100스텟이라면 20레벨에 해당한다.

물론 인우의 경우 10레벨에 해당하겠지만 말이다.

인우는 나름 만족하며 초월의 팔찌를 다시금 착용했다.

그 다음 전리품으로는 유니크 스킬 볼 3개를 몽땅 먹어버렸다.

[이미 배운 스킬입니다.]

[스킬 습득에 실패하였습니다.]

[스킬 습득에 실패하였습니다.]

젠장.

모조리 꽝이다.

그런데 저러한 문구는 처음 본다.

스킬 습득에 실패?

아무래도 스킬의 개수가 점차 늘어나며 발생된 현상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확률은 더욱더 줄어들었을 게 분명했다.

물론 제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계속 먹다보면 분명히 스킬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본격적인 헬게이트 폭격을 시작한 만큼, 유니크 스킬 볼을 습득할 수 있는 루트가 더 많아졌질 않나.

현재 인우는 27스킬 마스터.

지닌 스킬은 모조리 다 마스터다.

더 이상 올릴 스킬이 없다.

그렇기에 신규 스킬 습득은 꼭 필요했다.

유니크를 통한 타클래스의 스킬들이 더더욱 많이 필요한 것이다.

더 강해져야 한다. 그럴 만한 이유가 존재한다.

드래곤 녀석들이 모습을 보인만큼 상황은 언제 최악이 될지 모른다.

이에 대한 최대의 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 * *

한국에 국가 소속 랭커팀 사일런스가 있듯이, 각국에는 랭커팀이 존재한다.

그리고 현재 주요 국가의 랭커팀들은 모조리 한국행 티켓을 끊은 상태였다.

이것은 각국 정부의 지시였다.

한국에서 역대급 사건이 터졌질 않나.

이를테면 현재 한국행에 오른 랭커팀들은, 정인우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었다.

헬게이트 클리어에 대한 단서가 정인우에게 있었으니까.

그렇게, 각국의 랭커팀들은 하나둘 한국 땅을 밟기 시작했다.

* * *

저녁을 먹고 빈둥거리는 인우 가의 식구들.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그 어떤 집단도 이 식구들에게 쉽게 해를 가할 순 없을 것이다.

정인우와 정지은, 김민철, 블랙오크 제라, 뱀파이어 퀸, 그리고 팜이까지.

팜이의 경우 근래에 들어 몸집이 너무 커져서, 저택의 문을 통과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해서 녀석은 지금 사육장 한 채를 통째로 쓰고 있다.

인우는 놈을 아꼈기에, 드래곤 레어와 같은 공간을 설계하고 건축할 계획도 있었다.

그리고 이 계획은 민철에게 위임할 생각이었다.

아니면 분신들을 시켜도 될 일이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 각성정수도 필요했다.

막내 분신들도 곧 99레벨을 달성하게 될 테니까.

"시장에 매물이 있으려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인우.

그때 민철이 불쑥 물어왔다.

"어떤 거요 형님?"

"아, 각성정수."

"각성정수야 돈만 있으면 구할 수 있는 아이템 아닙니까? 이럴 게 아니라 오랜만에 초인샵이나 가시죠?"

"나도 갈래!"

쇼파에서 과자를 집어먹던 지은도 합세했다.

이윽고 그들은 외출 준비를 했다.

오직 퀸과 제라만이 잠잠했다.

제라는 자신이 블랙오크였기에 외출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퀸은 왜?

제라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취-익. 넌 안 가냐?"

"전. 멀리에 못 나가요. 그리고 여길 지키는 게 제 일이에요."

씩씩하게 대답한 퀸이었지만, 얼굴 한구석에는 분명한 아쉬움이 보였다.

그녀는 늘 이곳을 지켰다.

인우의 식구들이 어딜 가더라도, 그녀는 홀로 이곳에 남았다.

그럴 때마다 내색은 안했으나 그녀도 함께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인우는 지은과 민철을 데리고 저택 밖으로 나섰다.

그러자 퀸은 마중을 위해 헐레벌떡 따라나섰다.

그녀가 달릴 때마다 원피스의 아랫단이 세차게 흔들렸다.

늘 입던 그 옷이었다.

인우가 사주었던 원피스.

이 옷은 너무 자주 입어서 헤졌을 정도였다.

"다녀오세요!"

퀸은 민철의 차에 올라타고 있는 인우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인우는 잠시 멈칫거렸다.

그러더니 차에 올라타는 대신 퀸을 향해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어, 어···?"

퀸은 당황했다.

인우가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걸어오고 있었으니까.

인사에 문제라도 있었던 것일까?

가슴이 덜컥 주저앉는 것 같았다.

어느덧 인우는 그녀의 앞에 섰다.

그러더니 한숨부터 내쉬며 입을 열었다.

"옷이 그것뿐이냐?"

"아뇨···그냥···이게 좋아요."

머뭇대며 답하는 퀸.

바른대로 고할 만큼 대찬 성격이 아니었다.

적어도 인우 앞에서 만큼은 말이다.

그 순간.

인우가 양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퀸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인우는 아공간을 열고 자그마한 목걸이를 꺼내 드는 것이 아닌가?

단숨에 퀸의 목 뒤로 손을 가져간 인우.

퀸은 움찔댔다.

둘의 거리가 코 닿을 듯 지척이다.

인우의 짙은 향기가 순간 확 끼쳐왔으며, 정신은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철컥-

어느덧 퀸의 목에 '킹의 오망성'이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퀸은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순간.

['킹의 권능'이 생성되었습니다.]

[햇빛 아래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습니다.]

[뱀파이어의 모든 약점이 극복됩니다.]

.

.

[킹의 권능] - 흡혈을 통해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 업이 가능해집니다.

"이, 이건, 뭐예요?"

잔뜩 놀란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이에 인우는 답 대신 한마디를 내뱉었다.

"따라와."

"네?"

순간 퀸은 잘못 들었나 싶었다.

따라오라니.

어디를?

설마 바깥에?

퀸은 저도 모르게 멈칫하며 물었다.

"나, 나도 같이 가요?"

"넌 이제 어디든 갈 수 있잖아. 가자."

인우는 앞장서 걸으며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즈음.

차안에서는 지은이 민철을 향해 말하고 있었다.

"저 새끼 밀당하는 거지 지금?"

"그, 글쎄요."

민철은 머리를 긁적댔다.

마당 저편에서 거리를 두고 걸어오는 인우와 퀸.

다른 건 몰라도, 퀸의 입가에 커다란 미소가 걸려 있는 게 보였다.

그건 민철로서도 처음 보는 그녀의 미소였다.

* * *

TV로만 접하던 인간들의 세상이다. 퀸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렸다.

"아. 아."

그러면서도 그녀는 인우를 놓치지 않았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인우의 옷깃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저도 모르게 그리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걸었다.

그리고 이 둘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럴 수밖에 없질 않나?

세계최강의 초인이 엄청난 미모의 여성을 대동하고 서울 시내에 나타난 것이다.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인우를 보며 유명인이 떴다고 난리였다.

하지만 정작 인우는 심각한 얼굴로 간판들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퀸의 헤진 원피스를 보고 마음이 바뀌었던 인우다.

생각해보니 항상 이 옷만 입질 않나?

가디언이라고 저택에만 박아두려 했건만, 늘 일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그녀를 보자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사실상 이제 가디언이 크게 필요치 않은 인우다.

예전에야 사육시설이나 저택에 모아두었던 전리품 때문에 가디언이 필요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공간이라는 훌륭한 시설이 존재한다.

그리고 사육시설은 이제 인우에게는 불필요하기도 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킹의 오망성을 걸어주었다.

퀸은 생각보다 훨씬 더 기뻐했고, 인우는 활짝 핀 그녀의 미소에 조금 더 신경을 써주기로 결심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옷이었다.

현재 인우는 민철에게 각성정수를 사오라 시켜두고 퀸만을 데리고 옷가게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유명 메이커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인우였다.

그렇기에 최대한 좋고 비싸 보이는 옷가게를 찾고 있었다.

마침내 인우는 제법 괜찮은 옷가게를 찾았다.

그녀를 데리고 곧바로 가게에 들어선 인우.

직원의 인사마저 가볍게 무시하며 퀸에게 물었다.

"여기 옷 어때?"

퀸은 원피스 치맛단을 꽉 움켜쥐며 간신히 답했다.

"조, 좋아요."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옷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인우의 마음이 좋아서였다.

< 136화 퀸 (2) > 끝

ⓒ 호종이

< 137화 기가 막히네 >

탈의실에 들어갔다 나온 퀸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인 채였다.

그녀는 어깨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보트넥 단가라 티셔츠위에 데님 멜빵팬츠를 입고 있었다.

그리곤 양손으로 본래 입고 있던 리넨 원피스를 꼭 쥐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귀엽고 예뻤다.

본래 가진 몸매 자체가 아름다웠기에 멜빵팬츠도 굉장히 잘 어울릴 수밖에.

귀여움과 아름다움이 공존하기란 참 힘든 것인데도, 너무나도 쉽게 이루어 내는 몸매 깡패랄까.

그런데 정작 인우는 시선조차 주지 않는다.

그저 매장에 있는 옷들을 모조리 아공간에 쑤셔 넣기 바빴다.

한 번쯤은 귀엽게 꾸민 그녀를 바라보며 한 마디 내뱉어도 좋으련만······.

여자를 몰라도 한참 몰랐다.

사실 알 필요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인우야 프로킨에서부터 궁녀를 끼며 이기적인 사랑을 나누는 황제였다.

이러니 모를 수밖에.

"저, 나왔어요."

보다 못한 퀸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한 번만 봐 달라는 의미였다.

"응."

그러나 인우는 대충 대답한 채 여전히 시선을 주지 않았다.

지금 인우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으니까.

'다 쓸어 담는 거다.'

제아무리 비싼 옷집이라 봐야 인우의 재산 앞에선 손톱만큼도 안 된다.

인우는 여전히 아공간에 옷을 쓸어 담았고, 그 뒤를 졸졸 쫓는 직원은 계산기를 두드리기에 바빴다.

그렇게 10여 분쯤 지났을까?

퀸은 여전히 가만히 서 있었고, 그즈음 인우는 계산을 끝마쳤다.

그제야 인우의 시선이 퀸을 향했다.

인우는 유심히 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잘 어울리네."

"정말요?"

"어. 그리고 다른 옷도 많이 샀으니까 자주자주 골라 입어. 아예 옷방을 하나 만들어도 좋고."

"···고마워요."

감사를 표한 퀸은 미소를 지었다.

다른 건 다 되었고, 지금 인우가 온전히 자신을 챙겨주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것만으로도 벅차오르는 퀸이었다.

* * *

해 주는 김에 다 챙겨주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퀸에게 스마트폰을 사 주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그때 인우의 폰이 울렸다.

액정에는 [부하1호 김민철]이라는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인우는 전화를 받았다.

"응."

-형님! 빨리요! 지금 일단 각성정수 4개는 다 구입했는데요, 형님이 좋아하실 만한 걸 발견했어요! 문자로 위치 찍어 드릴 테니까 오세요. 형님!

"초인샵이라면 위치는 알고 있다."

-아뇨 형님! 여기 헬스샵입니다!

헬스샵?

이내 인우는 전화를 끊고 곧바로 들어온 문자를 확인했다.

그런 뒤 위치를 확인하곤 퀸을 데리고 느적느적 걸어갔다.

한참을 걷는 동안 퀸은 새로 생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TV드라마에서는 자주 봤는데, 실제로 보니 더더욱 신기하다.

어떻게 된 것이 손가락 터치만으로 반응하고, 이걸로 목소리 통신도하고, 문자로 된 통신까지 한다.

심지어 이 자그마한 기계로 TV도 볼 수 있었고, 사진과 영상도 찍을 수 있었다.

퀸은 한손으로는 인우의 옷깃을 붙잡고, 또 다른 한손으로는 스마트폰을 붙든 채 그렇게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카메라 버튼을 이용해 인우를 촬영하며 놀았다.

자신의 얼굴도 촬영해 보고,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찍어 보았다.

처음 바깥으로 나올 땐 낯설기만 했는데, 어느새 그녀는 익숙함을 넘어서 행복하다는 감정까지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에겐 일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경험인 것이다.

그렇게 두 남녀는 한참을 걸었고, 마침내 헬스샵에 도착했다.

인우는 샵에 들어서며 민철을 불렀다.

그러자 민철이 졸졸 다가왔고, 저 뒤에는 지은이 샵 내부에 있는 쇼파에 드러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쟤는 참··· 눈치도 안 보나.

그런 생각을 하며 민철에게 물었다.

"뭔데?"

"아 형님. 아공간에 전기를 공급할 수단이 존재합니다!"

"정말?"

"넵! 바로 저 물건이요!"

그러면서 민철은 샵의 직원을 뒤로 무르고 제 놈이 인우를 안내했다.

보무도 당당한 민철.

이내 녀석은 희한하게 생긴 헬스용품 앞으로 다가갔다.

물론 희한하다는 것은 순전히 인우의 기준이었지만.

인우는 턱 끝에 손을 댄 채 헬스용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건 뭐랄까.

바닥에 고정된 자전거처럼 생겼다.

그렇다고 자전거라기엔 조금 이상하고.

어느덧 민철이 말했다.

"형님. 이건 자가발전 싸이클 자전거입니다."

"자가발전?"

생소한 단어다.

저 단어 그대로라면 저 혼자서 전기를 생산해 낸다는 것인가?

인우는 다시금 자전거를 바라보았다.

고정 된 형태에 페달과 손잡이, 그리고 안장이 달려 있는 생김새였다.

또한, 자세히 보니 앞부분에는 콘센트가 2개 달려 있었다. 저곳에 전기코드를 꼽을 수도 있는 건가?

감상도 잠시.

다시금 민철의 말이 쏟아졌다.

"각성정수 사고 돌아가는 길에, 헬스샵이 떡 하니 보이는 거 아니겠습니까? 마침 발견한 게 요놈입니다! 이건 페달을 돌릴 때 나오는 운동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변환해서 전력을 생산해주는 겁니다! 엄청나지 않나요?"

그 말대로였다.

그리고 페달의 회전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전기 출력을 더욱 강하게 끌어올릴 수 있었다.

다시금 민철이 말했다.

"이것만 있으면요, 아공간 내부에서도 전자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겁니다. 다만, 전기가 물처럼 마구마구 쏟아지지는 않는다네요."

가만.

이것을 이용해 러닝머신도 구동시킬 수 있지 않을까?

뿐만 아니라 수많은 가전제품도 구동시킬 수 있을 테고.

그렇다면 8명의 분신을 이용하여 절반은 자가발전 자전거를, 그리고 절반은 러닝머신을 태우는 거다.

놈들은 수면이라는 개념이 없으니 체력만 된다면 온종일 돌려놓을 수도 있다.

그것도 남들의 시선조차도 받지 않으며 말이다.

이윽고 인우는 자가발전 자전거 위로 올라가보았다.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자의 걸음이 자전거 페탈을 통한 걸음에도 적용될까?

그것이 가능하다면 전기를 생산해 내며 경험치까지 올릴 수 있다.

인우는 페달에 발을 올려놓고 가만히 있었다.

일단 지금은 절대자의 호흡으로 인한 경험치만 올라가고 있는 상태였다.

이윽고 페달을 밟았다.

[경험치를 5+5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5+5 획득하였습니다.]

[스킬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는 스킬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스킬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는 스킬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호?"

적용된다.

페달 또한 절대자의 걸음을 인식한다.

인우는 볼 것도 없이 직원을 불렀다.

"이거, 음··· 일단 뭐 한 8대 정도만 줘 보세요."

"에? 8대나요?"

그러면서 인우는 아공간을 열었다.

그리곤 아공간 내부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 안에다 넣어주시고."

그 다음 인우는 러닝머신들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자가발전 자전거가 어느 정도의 전력을 뽑아내는지에 대해선 자세히 몰랐다.

하지만 그리 대단한 에너지는 아닐 거다.

그렇기 때문에 러닝머신은 최대한 저전력인 놈으로 구해야 한다.

TV모니터 같은 잡동사니가 하나도 붙어 있지 않은 심플한 녀석으로.

마침 적당한 모델이 보였고, 인우는 러닝머신 또한 마찬가지로 8대를 구매했다.

뭘 타도 8대씩 구비되어 있으니 싸울 일은 없겠지?

아, 막내들은 아마 전력 공급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선배들은 우아하게 러닝머신 위를 달리려나.

뭐가 되었건 끊임없는 레벨 업을 시킬 수 있을 테다.

* * *

거주지에 도착한 인우는 가장 먼저 퀸의 옷을 꺼냈다.

매장에 있는 옷을 퀸에게 맞는 사이즈로 전부 다 구매했다.

이러니 아공간에서 튀어나온 옷만 해도 물량이 상당했다.

인우는 저택에 적당한 방을 하나 골라 그곳을 퀸의 옷방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제는 자유를 얻게 된 그녀이기에 언제 도망쳐도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이 정도 해 주면 도망치진 않겠지 싶었다.

정작 퀸은 '도망'이라는 단어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어찌되었건 거기까지 끝마친 인우는 모든 분신들을 소환했다.

8명의 분신들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인우는 그런 분신들을 전부 다 아공간에 쑤셔 넣었다.

이내 인우가 명령을 내렸고, 분신들은 곧바로 명을 이행했다.

녀석들은 자가발전 싸이클 자전거 콘센트에 러닝머신을 연결했고, 이내 모든 연결을 끝마쳤다.

그 모습을 확인한 인우가 아공간을 향해 말했다.

"그것들을 이용해 알아서 레벨을 올려. 그리고, 가장 많은 경험치를 얻어낸 놈한테 아티펙트를 줄게."

"흐아아아압!"

"크아아아아아아압!"

"으라아아아!!"

그 말에 분신들은 저마다 기합을 내지르며 무서운 기세로 싸이클의 페달을 밟아 댔다.

['분신8'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반응은 빠르게 오고 있었다.

하긴. 1등에게 아티펙트를 준다 했으니 눈이 돌아갈 만하다.

인우는 히죽 미소 짓고는 아공간을 닫아 버렸다.

이제 가만히 두면 알아서들 한계 레벨에 도달할 테다.

물론, 막내 분신들에겐 이번에 사온 각성 정수를 먹이는 것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거기까지 모든 일을 끝마친 인우는 그제야 쇼파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헬게이트고 나발이고 지금은 좀 쉬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퀸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인우의 옆에 앉았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저, 말이에요."

"너 뭐?"

"음······."

"말해."

퀸은 잠시 고민했다.

현재 그녀는 킹의 오망성을 착용하며, 킹의 권능이 발현된 상태였다.

이 때문에 레벨이 생겼고 경험치 획득이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들과는 다르게 오로지 흡혈을 통해서만 성장이 가능했다.

현재 퀸의 레벨은 1이다.

하지만 지니고 있는 육체 능력은 150레벨 초인에 필적할 수준이었다.

어찌 되었건 이제 레벨 업이 가능하다.

이것은 퀸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그간 그녀는 민철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민철이는 약하지만, 레벨 업이 가능했기에 인우가 늘 데리고 다녔다.

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그저 저택을 지키는 가디언이었을 뿐.

이윽고 그녀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앞으로 저도 데리고 다녀 주세요."

인우와 함께라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저택에서 홀로 걱정에 짓눌려 망연히 있는 것보다, 위험하건 말건 그의 옆에 있는 것이 좋았다.

'흐음.'

고민하는 인우를 기대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퀸이었다.

하지만 인우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뭐, 안 될 건 없지."

"저, 정말요!?"

퀸은 어찌나 기쁜지 양손을 꼭 모은 채 활짝 웃었다.

그 미소에 인우는 순간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뭘 저렇게 좋아해.

그게 뭐라고···

그런 생각도 잠시.

그때, 마침 안으로 들어오던 민철이 말했다.

"오, 그거 잘됐네요 형님!"

민철도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그런 민철을 보며 인우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입을 열었다.

"야, 민철아."

"예, 형님!"

인우가 어딘지 모를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어쩌냐, 너 조만간 분신들한테 따라잡히겠다?"

"넵?"

저게 당최 무슨 소릴까?

분신들이라고 해 봐야 신나게 러닝머신을 뛰고 있는 것이 전부일 텐데.

민철은 인우가 지닌 절대자 패시브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인우가 여전히 웃는 낯으로 말했다.

"얘네는 달리기만 해도 경험치가 올라."

"네에!?"

인우의 말을 들은 민철은 순간 벙찐 표정을 지었다.

하긴.

생각해 보니 분신들의 레벨 업 속도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빠르긴 했다.

그것이 달릴 때마다 경험치가 오르는 것 때문이었나?

정말 터무니없이 강력하잖아?

절대자에 대해 모르는 민철이었기에, 분신 스킬이 대단한 줄 착각하는 민철이었다.

'젠장!'

민철은 후회했다.

인우가 평소에 러닝머신을 좋아했기에 분신들도 운동을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다.

해서, 인우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가발전 자전거를 소개한 것이다.

그렇다.

자신이 제안한 의견이 반영되어 분신들은 더욱더 크게 성장할 발판을 갖게 된 것이다.

정말 기가 막힌 일이 된 것이다.

결국, 민철은 또 막내로 남는다는 것.

'내가 괜한 소리를··· 씁.'

저도 모르게 자책하는 민철이었다.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가만히 있는 민철을 보며 슬쩍 미소를 지은 인우.

그런데 그때. 인우의 미소가 삽시간에 기대로 바뀌었다.

난데없이 떠오른 메시지 때문이었다.

[분신1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

.

[분신의 새로운 정보가 추가되었습니다.]

< 137화 기가 막히네 > 끝

ⓒ 호종이

< 138화 본격적인 움직임 (1) >

.

.

[분신의 추가 기능이 생성됩니다.]

시스템 메시지는 이 뒤로도 쭉 이어졌다.

['분신1'의 신체가 각성되었습니다.]

['분신1'의 근력이 100 증가합니다.]

['분신1'의 민첩이 80 증가합니다.]

['분신1'의 체력이 80 증가합니다.]

['분신1'의 마력이 20 증가합니다.]

['분신1'의 200레벨의 '광폭 어검'스킬이 활성화됩니다.]

['분신1'의 200레벨의 '절대자의 성장'스킬이 활성화됩니다.]

이 자식들 아티펙트가 그렇게 탐났나?

하긴 분신1의 레벨은 199였으니 이즈음이면 200을 달성 할만도 했다.

하지만 빠르긴 빠르다.

벌써 2차 각성이라니.

'음.'

그런데 저건 무얼까?

분신의 레벨 업은 이해한다.

계속 달리라 명해 두었으니 지속적인 레벨 업을 할 수밖에.

아티펙트를 갖고 싶다면 죽어라 뛰겠지.

'추가 기능이라.'

저러한 메시지는 분신의 아티펙트 기능이 추가되었을 때나 접해 보았다.

인우는 분신의 정보를 불러왔다.

<분신1>

레벨 : 200

한계 레벨 : 216 <시전자 레벨의 60%>

오른손 반지 : 용맹의 반지 (근력+15)

왼손 반지 : 행운의 반지 (행운치 상승)

팔찌 : 발록의 가죽 팔찌 (근력+20, 체력+20)

목걸이 : 無

추가스킬 : 無 <히든 스킬 습득 불가>

.

.

'추가 스킬' 항목이 생성됐다.

기본적인 스킬은 인우와 동일하니 표시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인우의 200레벨 당시 광전사 스킬을 지니고 있을 테다.

물론, 절대자 패시브도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추가 스킬이란 말 그대로 스킬 볼을 통해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는 뜻.

하지만 조건이 하나 붙어 있었다. '히든 스킬 습득 불가'

히든 스킬이란 말 그대로 숨겨진 비밀 스킬.

예를 들어보자면, 배다정의 '예지' 스킬이나, 인우의 '분신' 스킬 따위와 같은 오버밸런스 스킬들을 의미했다.

다시 말해 분신이 유니크 스킬 볼을 통해 '분신' 스킬을 습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

하지만 헬파이어나 블리자드와 같은 최상위급 스킬은 습득이 가능할 테다.

물론 운이 따라주어야겠지만.

어찌 되었건 잘된 일이다.

안 그래도 인우는 요즈음 스킬 습득에 어려움을 겪고 있질 않나.

스킬이 너무 많아졌으니 말이다.

분신들에게 스킬 볼을 분산시켜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갑작스레 인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의 주인공은 강원도 초인관리국 지부장 박강중이었다.

강중은 인우가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히 말을 내뱉고 있었다.

-저, 정인우 씨! 지금 어디십니까? 아니, 아니지! 지금 TV에 나오는 뉴스 속보를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뉴스 속보?"

* * *

한국에 도착한 각국의 랭커팀.

그 중, 일본의 랭커팀은 속전속결로 일을 진행하기 위해 정인우의 행방을 쫓았다.

정인우는 헬게이트를 클리어한 유일무이한 초인.

그렇기 때문에 클리어에 대한 정보가 그에게 있다.

랭커팀의 목적은 바로 그 정보였다.

하지만 정인우는 만나고 싶다고 마음대로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워낙에 신출귀물하고 거주지 또한 불명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유명인.

이 때문에 기자를 피해 갈 순 없었다.

한국의 기사를 확인해 본 결과, 정인우는 불과 반나절 전에 미모의 여성과 동행한 채 서울 시내에 등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끝내는 사라졌다.

그리하여 랭커팀이 향한 곳은 강원도.

그들은 정인우를 찾는 대신 그가 클리어했던 강원도 사냥터로 향했다.

이곳에 어떠한 정보가 남아 있을지 모른다.

"우선 강원도라는 지역에서 정보를 입수하자."

도착한 사냥터 내부에는 괴수가 씨가 마른 채였다.

하긴.

이곳의 헬게이트는 소멸됐다.

그로인해 괴수는 더 이상 리젠되지 않았고, 남아 있던 괴수들마저 한국의 관리국이 모조리 처치해 놓은 상황.

나아가 강원도 사냥터는 재건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였다.

"역시 한국 사람들이 빠르긴 빠르다."

"그것 말고는 장점이랄 것도 없잖아?"

잔뜩 비꼬는 초인은 일본의 랭커 미우라 나오미였다.

세계에 몇 명 존재하지 않는다는 5스킬 마스터.

나오미는 일본의 4대 초인 중 한 명으로서 굉장한 능력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중국 급파부대에 참여하지는 않았었다.

랭커라고 무조건 참여하는 부대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나오미는 현 일본 랭커팀의 대장이기도 했다.

그녀는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로 투덜댔다.

"정인우는 헬게이트 클리어 이후 맨날 미녀나 끼고 놀러 다니는 놈팽이 자식 같은데."

그녀는 기분이 나쁘다는 듯 진절머리를 쳤다.

정인우에게 한수 접어주며 헬게이트에 대한 정보를 입수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짜증났으니까.

"정보고 나발이고 나한테 깔짝거리지나 않았으면 좋겠네."

나오미는 본인이 지닌 무력 이외에도 특출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때문에 거기에서 나오는 자신감과, 저 마음대로 생각하고 판단해 버리는 망상은 엄청났다.

모든 미녀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그녀는 자신을 쳐다보는 남자들을 모조리 한심한 인간으로 취급하곤 했던 것이다.

또 반했구나 싶은 거다.

중증의 도끼병이었다.

"그런 녀석쯤이야 내가 한마디 하면 헬게이트에 같이 입장해서 도와준다고 난리를 피워 댈걸? 클리어하는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안달이 나겠지. 만나기만 하면 끝인데 말이야."

나오미는 끊임없이 나불거리며 강원도 사냥터를 걸었다.

이윽고 나오미가 이끄는 랭커팀은 마침내 중앙 헬게이트. 아니, 본래 헬게이트가 존재하던 자리에 도착했다.

이곳은 매우 번잡했다.

괴수는 당연히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고, 도시 재건을 위한 커다란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흥. 이곳을 클리어했다. 이거지?"

나오미는 랭커 팀원들과 함께 가만히 주변을 훑었다.

간혹 지나가던 공사 노동자들이 이들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럴 때마다 인상을 구기는 나오미였다.

그러길 한참.

팀원들이 나오미를 향해 말했다.

"나오미. 이곳엔 딱히 정보나 흔적이랄 것도 없다. 그냥 어서 빨리 한국 초인관리국에 가 보는 게 낫지 않겠어? 정인우에 대해서 알아내려면 말이야."

일본 정부에서 어느 정도 작업을 쳐 놨기에 한국 초인관리국은 조금이나마 협조를 해 줄 것이다.

"쳇."

어쩔 수 없는 건가.

나오미는 혀를 참과 동시에 걸음을 옮겼다.

이곳에서 나갈 생각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콰드드드드드드득!!

난데없이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진?"

그러나 나오미는 태평한 어조로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태평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후우우우우웅-!

순간, 세상을 집어삼킬 정도의 강렬한 붉은 빛이 이곳을 뒤덮었기 때문이다.

쿠우우우우우.

이윽고 빛이 멎었고, 그곳엔 엄청난 크기의 초대형 게이트가 보였다.

"뭐, 뭐라고!? 게이트 생성이라고!?"

* * *

-헬게이트는 20년 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생성되지 않았었죠. 하지만 조금 전, 정인우 씨가 클리어한 바로 그 자리에, 헬게이트보다 규모가 큰 초대형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

인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강중의 말을 들으며, 뚫어질 기세로 TV화면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지구의 헬게이트는 20년 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생성되지 않았다.

인류는 헬게이트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사냥터로 만들었고, 그 이후로 쭈욱 적응하며 살아왔다.

다행인 것은 더 이상 헬게이트가 열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번 헬게이트 파괴로 인해 엄청난 크기의 초대형 게이트가 열렸다.

이건 도대체 무슨 현상일까?

인우는 프로킨에서 심심할 때면 헬게이트를 소멸시키곤 했다.

그때는 헬게이트를 부쉈다고 그 자리에 더 큰 게이트가 생성되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구는 도대체 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속보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초대형 게이트에서는 괴수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정인우 씨. 저희는 알아야겠습니다. 헬게이트 내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저건 도대체 왜 생긴 거구요?

난들 아나.

인우는 답하지 않았다.

TV화면에는 현재 강원도 사냥터 중앙에 생성된 초대형 게이트가 비춰지고 있었다.

정말 거대한 게이트다.

화면상이기에 정확한 크기는 가늠이 가지 않았다.

다만 저 정도라면 20층 아파트 크기 정도는 될 거다.

그렇게 클 정도면 드래곤이 튀어나와도 이상할 게 없을 지경이겠지.

'가만?'

드래곤이라고?

인우의 얼굴이 단숨에 심각하게 굳었다.

녀석들은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물론 드래곤 중에 700년 이상의 나이를 먹은 녀석들은 인간으로 폴리모프가 가능하다.

하지만 모든 드래곤 일족이 폴리모프를 하기 위해 700년을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골드나 실버 일족은 700살이 아닌, 10~50살만 먹어도 폴리모프를 하곤 한다.

이는 즉, 골드나 실버는 태생부터 다르다는 것이다.

그만큼 강력하기도 하고.

어찌되었건 이러한 문제는 다 제쳐 두고, 저 정도의 초대형 게이트라면 언제 드래곤이 튀어나와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기존 헬게이트는 드래곤이 넘어오기엔 규모에서 강도부터 모든 것이 불안정할 정도로 약했다.

딱 발록 킹 정도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강도를 지녔던 것이다.

하지만 저건 진짜 다르다.

-정인우 씨! 일단 지금 강원도 사냥터···!

뚝.

인우는 강중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 * *

현재 한국으로 넘어온 각국의 랭커팀은 일본, 미국, 러시아였다.

나오미를 주축으로 한 일본 랭커팀은 초대형 게이트 현상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과 러시아의 랭커팀은 뒤늦게 이 정보를 입수했다.

이들은 볼 것도 없이 강원도로 향했다.

애당초 목적은 정인우와 접선하여 헬게이트 클리어에 대한 정보를 캐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를 사건이 터진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게이트가 발생했다면 정인우 또한 이곳으로 올 확률이 농후했다.

다시 말해 이번에 생성된 초대형 게이트가 모든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었다.

이윽고 이들 모두는 강원도 게이트에 모였다.

물론 한국의 초인관리국 또한 빠른 대처를 위해 움직임을 취했다.

국가소속 랭커팀 사일런스 전원이 이곳으로 소집되었고, 비상이 걸린 초인관리국은 랭커급 초인들을 모조리 게이트 앞으로 보냈다.

난생 처음 목격하는 현상이기에 어떠한 변수가 벌어질지 모른다.

이에 따른 대비는 오로지 강력한 초인뿐이었다.

채 1시간도 지나지 않아 강원도 사냥터 초대형 게이트 앞에는 엄청난 강자들이 몰려 있었다.

현재 언론은 철저히 통제되었다.

그래서인지 지금 이곳에는 민간인이라고는 한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오미는 엄청나게 몰린 인파가 꽤나 신경 쓰였는지 표정이 좋지 못했다.

그런데 나오미의 표정이 단숨에 뒤바뀌기 시작했다.

터벅- 터벅-

고요하지만 묵직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으니까.

터벅- 터벅-

이 사태의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초인이 거대한 무기를 치켜든 채 이곳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저 남자가 바로······.'

나오미는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

'실물이 더 낫네.'

그런 생각을 하며 나오미는 금세 자세를 고쳐 잡았다.

저 남자는 지금 볼 것도 없이 이쪽을, 아니 자신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나오미는 우쭐한 기분을 느끼며 저 남자의 호의를 거절 할 준비를 했다.

도도하게 팔짱을 끼고···

터벅- 터벅-

정인우의 진로가 닿을 곳 즈음에 가슴을 쭉 들이민다.

그때 인우의 입이 열렸다.

"뭐야 이 새끼는."

그리 말한 뒤 나오미를 지나치는 인우였다.

< 138화 본격적인 움직임 (1) > 끝

ⓒ 호종이

< 139화 본격적인 움직임 (2) >

지구라는 곳에는 헬게이트와 게이트가 존재했다.

일반 게이트의 경우, 별다른 조건 없이 마나만 충분하다면 언제든 열 수 있었다.

하지만 헬게이트를 생성하는 방법은 굉장히 복잡하고 어렵다.

우선은 지구라는 땅에 차원의 균열이 조금이라도 생성된 지역에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균열이 없는 땅에는 무슨 수를 써도 헬게이트를 생성할 수 없다.

그리고 지구에는 현재 존재하는 모든 균열에 헬게이트가 생성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자리가 없다.

이것을 누가 생성했는지는 드래곤들조차 알지 못했다.

어찌 되었건 드래곤들은 정인우가 지구로 도주했음을 알고 있음에도 쫓아갈 수 없었다.

현재 지구에 생성된 헬게이트는 그들이 넘나들기엔 불안정했으며, 넘나들 수 있는 헬게이트를 생성하자니 위치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그런데 얼마 전 헬게이트 하나가 소멸되었다.

균열의 지역이 텅텅 빈 것이다.

이를 통해 드래곤들은 그곳에 울트라 게이트를 생성할 수 있었다.

울트라 게이트는 완벽히 설치되었고, 이제 드래곤들은 이것을 통해 지구로 진입할 수 있었다.

드디어 정인우를 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반대로 보자면 울트라 게이트는, 이론상으로는 지구인들이 프로킨으로 넘어올 수도 있는 이동문이었다.

이것은 괴수를 리젠시키는 헬게이트와는 종류 자체가 다른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울트라 게이트 내부에는 엄청난 존재가 보였다.

그린 드래곤 벨자므.

사실 벨자므는 드래곤들 중에서는 가장 약하다고 알려진 그린이다.

하지만 인간들에게 있어선 재앙이나 다름없다.

벨자므의 나이는 1,000살이었고, 엄청난 세월을 살아온 드래곤답게 강력했다.

벨자므는 로드인 골드 드래곤 에일린의 명을 받아 지구로 진입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인우 녀석이 지구로 넘어간 지 2년도 채 되지 않았다.

드래곤들이 알기론 정인우가 사용한 차원이동게이트는 육체 레벨을 초기화시킨다.

이 때문에 정인우는 1부터 다시 시작했겠지.

정인우가 대단한 인간이라는 것은 모든 드래곤들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간 강해져 봐야 얼마나 강해졌겠는가.

벨자므 정도면 충분하고도 넘쳤다.

그나마도 벨자므는 자존심이 상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벨자므가 올 수밖에 없었다.

정인우는 본래 황제였던 녀석인지라 지구라는 곳에서도 병력과 영역을 구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쫄병을 구슬리는 잔머리 하나는 끝내줬으니까.

이 때문에 1,000살 드래곤 벨자므가 나선 것이다.

이건 이미 끝이 예견된 싸움이다.

놈은 그래봐야 레벨 100조차 넘기지 못했을 터.

벨자므는 짙은 미소를 지었다.

"후후. 인간치고는 제법 괜찮았는데 말이야. 뭐, 이제는 끝인가."

녀석을 산 채로 잡아 프로킨으로 끌고 오라 명받았다.

골드 드래곤 에일린은 지금쯤 정인우를 기다리며 칼을 갈고 있을 테다.

* * *

정인우의 등장에 장내가 시끌벅적해졌다.

"저 인간이 정인우야?"

"보면 모르냐."

"저 거대한 몽둥이 같은 대검으로 바투를 쪼갰다 이거지?"

수군대는 목소리.

적어도 한국어는 아니었기에 인우는 귓구멍을 후비며 걸어 나갈 뿐이었다.

초대형 게이트라······.

헬게이트의 생성은 20년 전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물론 자잘한 일반 게이트의 경우 간혹 열리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저건 일반 게이트도, 헬게이트도 아니다.

고개를 하늘까지 치켜 올려야 끝이 가늠될 만할 정도로 거대하다.

도도도도도.

그리고 인우의 뒤에 딱 붙어 있는 퀸.

인우의 존재감 자체가 너무 컸기에 그녀는 뒤늦게야 입방아에 올랐다.

"기사에서 봤던 그 여자다."

"저 여자도 초인인가··· 저렇게 예쁜 여자가 괴수 머리통을 터트리는 게 상상이 안 되는데."

미미하게 회색빛이 감도는 흑발의 머리.

흰 우유처럼 새하얗지만 촉촉해 보이는 피부.

이와 대조되는 강렬한 붉은빛을 띄는 입술.

그리고 푸른 눈동자.

인종을 가늠할 수 없는 생김새였으나, 분명한 것은 치명적인 미인이라는 점이었다.

지금 이들이야 잘 몰랐지만, 본래 퀸의 머리칼은 보라색이며 눈동자는 피처럼 붉은 색깔이었다.

하지만 보통 튀는 생김새가 아니었기에 염색을 하고 컬러 렌즈를 착용했던 것.

퀸은 인우의 옷깃을 놓지 않으며 이리저리로 큰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주변에 존재하는 인간들은 모조리 엄청난 기운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괴수인지라 위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본능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때.

일본 랭커팀의 대장 나오미가 입을 열었다.

"저 여자 풍기는 기운이 이상해!"

그러면서 나오미는 칼을 뽑아들었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퀸이 풍기는 기운은 이질적이다.

뱀파이어의 여왕이니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나오미는 그 이질적인 기운보다는 질투가 들끓었다.

본인을 무시하는 인우를 인정할 수 없었고, 그 원인의 화살을 퀸에게 돌리는 나오미였다.

확실히 저런 여우같은 년이 붙어 있으면 자신에게 눈길을 안 줄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런데 그때.

인우가 걸음을 우뚝 멈추더니 주변을 향해 말했다.

"나를 향해 칼을 뽑는 새끼들은, 그 칼을 그대로 본인 입구멍에 쑤셔 넣어 주지. 한국어 알아듣는 새끼가 있다면 알아서들 통역해."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인우의 몸에서 엄청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인우가 내딛고 있는 땅바닥의 자갈이 미세하게 튕길 정도였다.

그 미친 기운에 무기를 뽑았던 나오미는 저도 모르게 칼을 놓쳤다.

'하······.'

숨이 덜컥 하고 막힐 지경이다.

이윽고 이곳에 모인 모든 랭커 초인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두려운 눈동자로 인우를 바라보았다.

정인우는, 자신들과 질적으로 다르다.

한 번의 살기만으로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인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려넣었다.

이내 인우는 검지로 초대형 게이트를 가리키며 퀸을 향해 물었다.

"저거, 어떻게 생각해?"

혹시 그녀는 알까?

아니, 모를 거다.

"음··· 나는 몰라요. 설마 들어갈 건 아니죠?"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인우는 잠시 고민했다.

들어가야 하나?

만약 저 게이트 내부에 정말로 드래곤들이 존재한다면?

그렇다면 그대로 개죽음이다.

그린 계열의 1,000살 이하의 드래곤이라면 한두 마리까지는 어떻게 버텨 낼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이상은 무리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인우가 걱정하는 것은 그 이상의 숫자였다.

그렇게 되면 그대로 개죽음이다.

'만약 정말로 드래곤들이라면···'

그렇다면, 녀석들 또한 인우가 그러했듯 지구로 넘어오며 레벨이 초기화되진 않을까?

하지만 인우는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이야 애초에 차원이동게이트로 넘어왔다.

차원폭풍을 막을 수 없었고, 그에 따른 여파로 초기화가 되어 버렸던 것.

하지만 드래곤들은?

만약 저렇게 거대한 게이트를 이용한다면 육체가 초기화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곧 악몽이다.

프로킨 황궁의 병력으로도 막지 못한 놈들이다.

그러한 놈들이 다시금 수백 마리 떼를 지어 지구로 침공해 온다면?

볼 것도 없이 지구 종말이다.

드래곤들이란 족속들은, 본인들의 목적인 인우의 목숨을 취하기 위해 지구를 개박살 내 놓고도 남을 놈들이다.

심심하다고 마을 하나를 불태워 버리는 싸이코 놈들이니까.

그만한 무력을 지녔고, 그래서인지 인간을 벌레 취급하는 빌어먹을 파충류 새끼들이다.

드래곤은 비교적 약한 놈들 하나하나가 바투급이다.

강한 놈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정도나 강한 놈들이었으니, 프로킨의 황제 정인우조차 도주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생각이 이어지는 가운데.

난데없이 초대형 게이트가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 * *

워싱턴 세계초인협회.

오늘은 본래 회의가 있는 날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회의란 중국 땅에 대한 것이었지, 한국에 생성된 미친 게이트 때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현재 진행되는 회의는 모조리 초대형 게이트에 관한 것들뿐이었다.

러시아 국장이 입을 열고 있었다.

"애초에 저 게이트는 정인우 때문에 생성된 것 아닙니까? 그가 헬게이트를 소멸시키니 저렇게나 거대한 게이트가 열린 것이잖습니까."

"뭐, 열린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저곳에서는 괴수가 튀어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인우가 처음 헬게이트를 파괴하자 가장 먼저 대단한 일이라며 엄지를 치켜드시더니, 이제는 태도를 바꾸시는군요? 아주 멋지십니다?"

한국 국장 이종혁이 잔뜩 비꼬는 어조로 답하고 있었다.

그러자 러시아 국장이 언성을 높였다.

"어허! 그때와 지금이 같습니까?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정인우의 헬게이트 입장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습니다. 실로 두렵군요. 저 정도 규모의 게이트라면 거인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 애초에 우리나라 땅에서 우리나라 초인이 헬게이트를 클리어한 것이고, 우리나라 땅에 생성된 게이트인데 왜 그렇게 거품을 무시는지?"

회의장의 분위기는 팽팽했다.

본래 회의의 양상은 서로의 속내를 숨기며 중국을 먹기 위한 회의였지만, 현 회의의 양상은 어떻게 해서든 정인우를 까 내리려는 양상이었다.

정인우는 존재 자체가 무질서다.

본래 질서와 규율이 딱 잡혀 있던 초인계였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무력을 내뿜는 정인우는 타국의 권력자들에겐 눈엣가시일 수밖에.

해서, 이 기회를 이용해 정인우를 실컷 까 내리려는 심보가 분명해 보였다.

이제 바투는 죽었고, 세계는 정인우가 필요치 않았으니까.

이것이 바로 인간이었다.

이기적인 이중성.

모두가 감추고 살아가는 이중성이, 지금 이곳에서는 마구잡이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이윽고 이종혁은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 * *

게이트의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한 것은 인우였다.

인우는 재빨리 아공간을 소환했다.

그런 뒤 곧바로 분신들을 불러냈다.

러닝머신과 싸이클을 타고 있던 분신들이 단숨에 튀어나왔다.

도합 9명의 인우.

놀라운 광경이었으나, 지금은 변화가 시작되는 게이트로 모든 시선이 쏠려 있었다.

인우는 거대한 게이트를 직시하며 파뇌를 꽉 움켜쥐었다.

절로 힘이 들어간다.

그런데 그때.

문득 인우는 자신의 옷깃을 붙잡은 퀸의 손이 안쓰러울 정도로 떨려오고 있음을 감지했다.

내색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녀는 두려운 것이겠지.

이에 인우는 단숨에 뒤를 돌아 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자연스레 퀸은 인우의 옷깃을 놓쳤다.

"안 되겠다."

"···네?"

인우는 반문하는 퀸의 겨드랑이와 허벅지 사이로 양팔을 들이밀었다.

그런 뒤 단숨에 그녀를 들어 안았다.

"꺅!"

퀸은 어찌나 당황했는지 양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쑥쓰러움, 그리고 쿵쾅대는 가슴.

그 설렘이 단숨에 그녀의 두려움을 앗아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그녀를 아공간에 쑤셔 넣었다.

"들어가."

"하, 하지만! 저도 있을 거예···!"

"헛소리."

후웅-

짧게 일축한 인우는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아공간을 닫아 버렸다.

그런 뒤 다시금 파뇌를 치켜들고 게이트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게이트 내부에서 어떠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인우의 눈이 크게 뜨였다.

< 139화 본격적인 움직임 (2) > 끝

ⓒ 호종이

0140 / 0208 ----------------------------------------------

140화 드래곤들은 상상조차 못했다 (1)

울트라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벨자므,

그는 지구로 진입하자마자 엄청난 인간 떼와 마주쳤다.

"오호라?"

벨자므 또한 지금의 모습은 인간이었다.

폴리모프를 한 것이었다.

정인우를 완벽히 무시하고 있었기에 드래곤의 모습으로 있을 필요가 없었다.

브레스까지 뿜어 낼 필요가 없다는 얘기였다.

벨자므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가며 인간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많이도 모였다.

그리고 인간들 중앙에는 놈이 보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정인우 녀석이 눈을 크게 뜬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벨자므가 인우를 향해 말했다.

"정인우? 마중 나왔네? 그나저나. 지구라는 곳에서도 쫄병들을 모아 뒀던 거냐?"

벨자므가 보기엔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실을 놓고 보자면 난데없이 생성된 울트라 게이트에 의해 모여든 랭커팀들이었지만 말이다.

"훗. 대답조차 못 하는구나 정인우. 이 쥐새끼 같은 놈. 이제 다 끝났다. 로드 에일린이 널 기다리고 있어."

벨자므는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2년조차 되지 않았다.

정인우의 레벨은 100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이 마저도 드래곤들은 정인우를 높게 평가해서 쳐준 수치다.

실상은 70도 힘들다.

하지만 저건 좀 의외다.

'흐음······.'

분신 스킬까지 습득한 것인지 정인우가 9명이나 보였으니까.

"오로지 대검 하나로 프로킨을 쑥대밭으로 만들던 녀석이, 이제는 희한한 잡기술도 취급하네? 하긴. 그래야 간신히 목숨을 유지할 수 있을 테지."

이번에도 역시나 인우는 답이 없었다.

그리고 그즈음 벨자므는 조금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정인우가 풍겨 내는 기운이 희한할 정도로 컸던 것이다.

게다가 저 분신들은 숫자가 왜 저리 많은 것일까? 분신 스킬에 대해 자세히는 알지 못했지만, 프로킨에서도 분신을 다루는 초인은 극소수였다.

게다가 그들 모두 분신의 숫자가 많아 봐야 3명이었다.

그런데 정인우는 무려 여덟이다.

본체까지 합하면 도합 아홉.

게다가 정인우는 자신을 보고서 도망치지도 않는다.

무언가 이상하다.

벨자므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정인우. 왜 도망치지 않는 거지?"

결국 벨자므는 멍청한 물음을 건네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때서야 인우의 입술이 열렸다.

"니 새끼 혼자 왔냐?"

현재 인우와 벨자므가 나누는 대화는 모조리 프로킨어(語)였다.

그랬기에 이곳에 모인 세계초인 랭커팀들은 이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온전한 둘만의 대화.

인우가 다시금 재차 물었다.

"니 새끼 혼자 왔냐 묻잖냐."

"무, 뭐라는 거야?"

"혼자 왔구나. 하긴······."

인우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드래곤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이야기다.

놈들은 자신이 이렇게 성장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해서 벨자므 혼자 넘어온 것이겠지.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벨자므를 곱게 보내선 안 된다.

아니, 아예 죽여서 뼈까지 모조리 다 취해야 한다.

만일 벨자므가 살아 돌아간다면?

그리하여 벨자므가 로드 에일린에게, '정인우는 약하지 않다!'라는 보고를 하게 된다면?

당연히 엄청나게 강력하고 더더욱 많은 숫자의 드래곤들이 몰려오게 될 것이다.

그때는 대책이 없어진다.

때문에, 반드시 벨자므를 죽여야 한다.

녀석은 그린 드래곤.

그린은 드래곤 중 가장 약하지만, 그렇다고 상대하기 쉬운 것은 아니었다.

놈이 주로 다루는 것은 맹독.

독에 관한 저항력이 없다면 매우 성가실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지닌 무력으로 상대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인우는 파뇌를 치켜들었다.

그런데 그때.

이곳 게이트 앞에 모인 랭커팀 중 한 명이 벨자므를 가리키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 인간은 초대형 게이트에서 튀어나왔다. 게이트 생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거다."

그렇게 말한 랭커가 벨자므를 노려보았다.

그리곤 언제라도 공격하기 위한 태세를 취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벨자므의 신형이 불식간에 움직였다.

이어 벨자므는 말을 내뱉은 랭커를 향해 왼손을 치켜들었다.

쩌어어엉-!

그러자 랭커가 단번에 벨자므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가는 듯 했다.

이윽고 벨자므는 랭커의 얼굴을 그대로 그러쥐었다.

"우, 웁!"

순간 느껴지는 엄청난 악력에 랭커는 벨자므의 팔을 부여잡고 버둥거렸다.

하지만 버둥거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벨자므의 손에서 녹색의 연기가 피어올랐고,

"우우우웁 우욱!!!!!!"

랭커는 내장 끝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끔찍한 비명과 함께 그대로 숨이 끊겼다.

철푸덕-

그제야 벨자므는 랭커를 놓아 버렸고, 바닥에 너부러진 랭커의 얼굴은 맹독으로 인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끓어올라 있었다.

그 광경에 다른 랭커들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저마다 무기를 치켜들었다.

그러나 감히 앞으로 나서진 못했다.

벨자므에 의해 랭커 한 명이 죽었다.

랭커를 단 한 번에, 그것도 맨손으로 얼굴을 녹여서 죽이는 건 이제껏 듣도 보도 못했다.

그 말은 곧, 지금 게이트에서 나온 이 사내가 상상도 안 될 정도로 강하다는 증거였다.

이 엄청난 광경에 누구 하나 제대로 나서질 못하고 입술만 질끈 깨물고 있을 때.

인우가 랭커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물러서 뒈지기 싫으면."

"뭐!?"

한국어를 알아들은 랭커들이 저마다 반문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스윙의 풍압을 이용해 랭커 녀석들을 밀어 버렸다.

조금의 경험치라도 기여되어선 안 된다.

그린 드래곤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인우의 내심을 짐작조차 못하는 초인들이었다.

그들은 단지, 초대형 게이트에서 엄청난 존재가 튀어나오자 정인우가 대표로 나서 싸워 주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야말로 영웅과 같은 모습.

특히나 나오미의 경우, 그 착각이 더욱 심했다.

'내가 다칠지도 모르니까. 그가 나선 거야.'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나오미였다.

하긴.

그리 쉽게 완치될 도끼병이었다면 진즉에 다 치유되었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벨자므를 바라보며 이죽댔다.

"폴리모프해라. 고기에서 비늘 그리고 뼈까지. 모조리 다 써먹어 줄 테니까."

"감히 인간 놈 따위가!"

"처맞아야지 변신할 모양인가 보지? 뭐, 그래. 몇 대 맞고 시작하자 그럼."

인우는 광폭화부터 시작해서 스트렝스까지 모든 버프 스킬을 시전했다.

그리고 벨자므를 직시한 채 천천히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야 벨자므는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 * *

프로킨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생명체.

드래곤들의 로드, 골드 드래곤 에일린.

그녀는 여전히 그날을 기억한다.

수백 마리의 드래곤들을 이끌고 황궁으로 쳐들어갔던 날.

'나의 딸. 내가 너무 늦었다.'

황궁을 파괴했고, 황제 녀석은 도주했다.

마침내 그녀는 자신의 헤츨링을 만날 수 있었다.

빌어먹을 황제 놈이 알 상태일 때부터 납치해 갔다.

그랬기에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때에 딸이 내뱉은 말은 아직까지도 그녀의 가슴을 후벼 파곤 했다.

'넌 뭐야! 우리 아빠 불런다!'

발음조차도 엉성한 헤츨링.

젖살조차 빠지지 않은 이 불쌍한 아기용은 그녀의 딸이 분명했다.

그녀와 꼭 닮은 금빛이었으니까.

하지만 아기용은 에일린을 엄마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은 지상최강의 생명체이지만, 유일한 약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바로 각인효과.

알에서 처음 깨어났을 때 접하는 존재를 부모라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보다도 월등히 높은 최강의 지성을 지닌 드래곤이, 이러한 약점을 지닌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어찌 되었건 이것은 인간들로서는 결단코 이해하지 못하는 드래곤의 습성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알을 품은 어미 드래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민감하고 위험했다.

알을 품을 때는 엄청난 숫자의 가디언들을 레어에 두고 그 어떤 누구의 침입도 허용치 않는다.

이때의 드래곤 레어에는 정말 파리 새끼 한 마리조차 침입하지 못한다.

하지만 황제 놈은 잔대가리를 굴려 레어로 유유히 침입하여 알을 훔쳐갔던 것이다.

그것은 치욕이었다. 결단코 씻기지 않을.

'놔! 놓으라고!'

자신의 딸의 이름은 용용이 따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부모라 생각되는 존재에게 부여받은 '용용이'라는 이름은 완벽히 각인되어 떼어낼 수 없게 되었다.

에일린은 자신의 딸을 용용이라 부를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

이게 다 그 빌어먹을 황제 놈 때문이다.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간다.

그리고 이제 곧 그 황제 놈이 자신의 앞에 무릎 꿇게 될 것이다.

1,000살 드래곤 벨자므를 보냈고, 황제 놈은 제아무리 잔대가리를 굴려봐야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어느덧 에일린은 상념을 그쳤다.

"후우······."

그리고 자신의 품 안에서 버둥대고 있는 헤츨링을 향해 물었다.

"아직도 그 미친놈을 아빠라고 생각하니?"

"흥!"

에일린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미소는 이내 서서히 광기로 변해 갔다.

'정인우··· 차라리 죽여 달라는 말을 내뱉게 만들어 주마.'

* * *

인우는 파뇌를 치켜들고 달려 나갔다.

이에 벨자므 또한 양손에 초록색의 기운을 응축시키며 인우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이러한 광경에 주변을 가득 메운 초인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초대형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정체불명의 존재.

이 존재는 랭커마저도 한손으로 녹여 버린 막강한 무력을 지녔다.

그리고 그러한 존재를 향해 망설임 없이 돌격하는 정인우.

모든 이들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인우의 파뇌가 푸르스름한 기운을 머금고 벨자므를 쪼갤 기세로 내려 찍혔다.

파박!

벨자므는 양손을 들어 올려 인우의 파뇌를 막아섰다.

그리곤 소스라치게 놀랐다.

직접 부딪혀 보니 보통 스킬이 아니다.

아니, 이건 필시······.

"마, 마스터 스킬이라고?"

"응. 한 스물일곱 개 정도 될 걸?"

모든 액티브 스킬을 마스터했으니 그즈음 될 것이다.

파바바바밧!

인우는 끊임없이 공격을 이어나갔다.

"27개라니! 도, 도대체가!"

이건 크게 잘못됐다.

벨자므는 이를 악물었다.

"이 미친 인간 놈! 어떻게 2년 만에!?"

"그 잘난 녹색 낯짝이나 좀 보자. 변신해 새끼야."

"이익!"

벨자므는 끝끝내 폴리모프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자존심이었다.

인간의 형태로도 얼마든지 네놈을 상대할 수 있다는 오만함.

하지만 그 오만함은 서서히 씻겨 나가고 있었다.

정인우는 강했다.

벨자므가 밀리고 있을 정도로.

이게 말이 되나?

고작 2년이다.

어떻게 그동안 이렇게 강해질 수 있었던 걸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벨자므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네놈!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성장한 거지!?"

인우는 답 대신 왼손에 헬 파이어를 응축시켰다.

화르륵!

그리곤 곧바로 녀석의 대가리를 향해 헬 파이어를 날려 버렸다.

치지지지직!

벨자므는 식겁하며 양손으로 헬 파이어를 파훼시켰다.

일견 간단해 보이지만, 이것은 벨자므가 마법의 종주인 드래곤이었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데미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인우의 헬 파이어는 마스터 레벨이었으니까.

벨자므는 빨갛게 달아오른 양손바닥과 정인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여전히 돌격했다.

후웅!

인우의 파뇌가 허공을 매섭게 찢으며 벨자므를 노렸다.

이어 인우는 볼 것도 없이 광폭 무형검을 날렸다.

체력의 절반이 떨어져 나가며 무형검이 벨자므를 난도질 했다.

"크헉!"

벨자므는 눈을 부릅뜬 채 입속 가득히 치밀어 오른 핏물을 뱉어냈다.

지금 정인우가 시전한 스킬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프로킨의 황제 정인우가 사용했던 광폭 무형검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정인우의 광폭 무형검은 마스터가 아니었다.

정인우가 마스터까지 끌어올린 스킬은 광폭 어검이 마지막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정인우는 마스터 레벨의 무형검을 사용했다.

벨자므는 당황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인우는 벨자므의 멱살을 움켜쥐고 밀치며 울트라 게이트를 향해 진입하기 시작했다.

벨자므는 옥죄어 오는 숨통에 간신히 입을 열었다.

"무슨 짓이냐!"

"먹는 김에 제대로 먹게."

경험치 10배.

저 안에서 놈을 잡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기필코 폴리모프 시켜야 한다.

놈이 드래곤으로 변신한다면 기존보다 최대 5배 이상까지 강해진다.

하지만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

드래곤의 시체는 버릴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0141 / 0208 ----------------------------------------------

141화 드래곤들은 상상조차 못했다 (2)

투웅-!

울트라 게이트는 물처럼 일렁이며 인우와 벨자므를 받아냈다.

둘은 단숨에 게이트 내부로 흡수되었고, 이제 이곳에는 각국의 랭커팀들만이 멍한 눈동자로 게이트를 바라볼 뿐이었다.

"정인우가··· 정체불명의 사내를 끌고 들어갔다."

"이제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들로서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울트라 게이트 내부로 진입할 용기도 없었다.

헬게이트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들이다.

사실을 놓고 보자면, 울트라 게이트는 프로킨과의 연결통로 역할을 할 뿐인데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이러한 사실을 알 리 없었다.

때문에 쉽사리 진입할 용기가 날 리 없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서로 눈치만 살피기에 급급한 랭커팀들이었다.

그리고 한참 이후에도, 울트라 게이트에 진입하는 이는 없었다.

* * *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이 거대한 게이트에서 괴수가 나오지 않았을 때부터 말이다.

울트라 게이트 내부는 굉장히 단순했다.

그냥 거대한 백색의 공간이 일렬로 쭉 이어져 있을 뿐이었다.

하나의 통로처럼 보인다랄까?

그리고 저편의 끝 부분에는 빛이 보였는데, 아마 저곳으로 넘어가게 되면 프로킨에 갈 수도 있을 거다.

인우에게 있어선 제2의 고향인 그곳에.

역시나 인우에게 조금 더 익숙한 곳은 지구보다는 프로킨이었다.

지구에서의 삶은 20년뿐이었지만, 프로킨에서는 30년이나 있었으니까.

바로 코앞에 프로킨이 있다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도망쳐오지 않았나.

바로 눈앞에 있는 이 빌어먹을 드래곤 새끼들 때문에.

"변신하라고 개자식아."

프로킨 생각이 나자 조증 환자처럼 기분이 급격히 추락한다. 인우는 그저 놈들의 시비에 화답해 주었을 뿐이었다. 다만, 그 화답이 로드의 알을 훔쳐 냈다는 거였기에 문제였지만.

"크으!"

당장에 이 녀석을 찢어 죽이고 싶어졌다.

인우는 놈의 목을 움켜쥔 손에 더욱 큰 힘을 주었다.

"크으으으!"

그러자 벨자므는 양손에 맹독을 응축시켜 인우의 팔을 부여잡았다.

그러자 인우의 옷이 단숨에 녹아내리며 피부에 독이 닿았다.

지글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팔뚝의 피부가 끓는다.

그럼에도 인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도리어 끔찍한 통증으로 인해 분노가 가라앉았다.

곧이어 이성이 돌아온다.

그래, 잘근잘근 천천히 씹어 죽여 주마.

인우는 벨자므의 목을 더욱 강하게 움켜쥘 뿐이었다.

으드득 소리가 연거푸 들려올 지경이다.

초월의 팔찌로 맨손 전투력이 5배나 상승한 인우다.

이에 따른 맨손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도대체가···!"

벨자므는 아직까지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뜰 뿐이었다.

어떻게 된 것이 마법을 쓰나, 주먹을 쓰나, 검을 쓰나, 모조리 마스터 스킬뿐이다.

당장 이 사실을 로드 에일린에게 알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인우에게서 달아나야만 했다.

명색이 1,000살이나 먹은 드래곤이 인간에게서 도주라니.

자존심이 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황제 정인우.

로드도 이해할 것이다.

정인우는 예전 무력의 70%이상을 되찾았다.

아니, 예전에 사용했던 드래곤 본 대검이나 아티펙트들만 갖춘다면 오히려 기존보다 강할지도 모른다.

'이 자식··· 이대론 개죽음이다······. 도망쳐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곳은 바로 울트라 게이트 내부.

저편으로 내달리기만 하면 곧바로 프로킨에 진입할 수 있었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이윽고 벨자므의 녹색 눈동자에 광채가 스미기 시작했다.

폴리모프를 위한 준비였다.

그러한 모습에 인우가 놈의 멱살을 놓고 파뇌를 치켜들었다.

곧바로 벨자므의 폴리모프가 시작되었다.

그의 육체가 단숨에 강력한 마나를 머금으며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크어어어어어어!

강력한 피어와 함께 눈이 질끈 감길만한 빛무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인우는 눈을 부릅떴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

어느덧 서서히 드래곤의 형체를 갖춰 가는 벨자므.

녀석의 피어가 더더욱 거세졌다.

이제 더 이상 인간의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빌딩만 한 녹색 드래곤이 보일 뿐이었다.

그러한 모습에 인우의 뒤에 숨어 있던 분신 팔이가 겁에 질린 듯 중얼거렸다.

"으어어어. 저게. 도대체. 뭐냐!!"

분신들 입장에선 드래곤의 모습을 처음 본 거일 테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직 폴리모프가 끝나지 않은 것인지 거친 숨을 토해내는 벨자므.

그리고 인우는 그러한 벨자므를 향해 파뇌를 휘둘렀다.

어차피 변신 중에는 무방비상태이다.

유아용 히어로 만화영화처럼 악당이 변신을 할 때에 멍청한 리액션을 넣으며 놀라고 있을 이유가 없다.

최대한 조져 놓는 것이다.

인우는 광폭화를 시전하며 경련하는 놈의 거대한 육체를 향해 내려찍기를 꼽아 버렸다.

콰득! 콰득! 콰득! 콰득!

놈의 비늘이 짓눌리는 끔찍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이어서 인우는 뒤편에 있던 분신들까지 모조리 불러냈다.

분신들 또한 광폭화와 함께 내려찍기를 꼽는다.

콰득! 콰득! 콰득!

하지만.

솜털처럼 가벼우나, 고무보다 질기고, 강철보다 단단한 녀석의 비늘은 모든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저것이 바로 드래곤이다.

벨자므는 드래곤으로 폴리모프 함으로써 기존보다 5배 이상은 강력해진 것이다.

어느덧 완벽한 드래곤의 모습을 갖춘 벨자므가 다시금 피어를 쏟아냈다.

-쿠워어어어어어! 꺼져라!

놈의 거대한 아가리에서 용언이 튀어나온다.

역시나 마법의 종주인 드래곤다웠다.

'꺼져라'라는 단어 한마디에도 마법의 힘이 깃들어져 있었으니까.

이에 상대적으로 약한 8명의 분신들은 모조리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하지만 인우는 도리어 벨자므를 향해 성대가 갈릴 듯 소리칠 뿐이었다.

"닥쳐 이 개자식아!"

움찔.

도리어 벨자므의 피어보다 거세다.

물론 인우는 용언을 사용하지 못하기에 외침에 담긴 힘은 없었다.

다만 그 기세는 하늘을 꿰뚫을 듯하다.

그 미친 기세에 벨자므의 동체가 살짝 떨린다.

어느 누가 감히 드래곤 앞에서 저따위 욕설을 내뱉을 수 있겠는가.

저렇게나 막무가내인 인간은 프로킨의 역사를 통틀어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로써 벨자므는 더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저 혼자선 안 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주하여 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하여 동족들과 함께 와야 한다.

모든 판단을 끝낸 벨자므는 단숨에 거대한 날개를 폈다.

후우우우웅-

항공기의 본체보다 거대한 날개가 펼쳐지며 강력한 풍압이 쏟아져 나왔다.

벨자므의 날갯짓 한 번에 눈알이 모조리 밀리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하지만 인우는 눈을 감지 않았다.

이번에도 도리어 부릅떴다.

"속이 뻔히 보인다. 어딜!"

인우는 놈이 도주를 준비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벨자므의 눈동자보다 작은 인우가 단숨에 공중을 향해 몸을 날렸다.

후우우우웅!

흡사 스프링과 같은 놀라운 점프력이었다.

단숨에 허공에 떠오른 인우는 벨자므의 아가리를 향해 기가 라이트닝을 쏟아냈다.

콰지지지지직!!

-크으.

붉은 섬광이 벨자므의 입가를 짓이기듯 들끓는다.

하지만 벨자므는 가소롭다는 듯 기가 라이트닝을 씹어 삼켜 버렸다.

드래곤들의 마법 저항은 거의 90%에 육박한다.

이 때문에 마법으로 타격을 주기 위해선 이 정도 마법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인우 또한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지금 인우는 공중에 지속적으로 떠오르기 위해 바닥을 향해 스윙의 풍압을 날려 대고 있었다.

놈의 머리통을 개박살 내기 위해선 이것이 최선이었다.

그리고 벨자므가 뒤로 돌아 도주하려는 순간.

그때에 인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광폭난무를 시전했다.

"크아아아아아압!!"

인우의 신형이 믹서기의 칼날처럼 맹렬히 회전하며 공중을 수놓았다.

패애애애애애앵!

이어 인우는 도주하는 벨자므의 뒤통수를 그대로 때려 박았다.

파드드드드드득!

벨자므의 뒷골 비늘이 진동하며 벌어졌다. 단숨에 살갗을 파고든 파뇌가 근육을 짓이기며 놈의 뼈에 닿았다.

-크워어어어어어어!

그 끔찍한 통증에 벨자므는 날개로 뒷목을 가리며 그대로 쓰러졌다.

쿠우우우우우웅!

빌딩만 한 육체가 바닥에 쓰러지자 엄청난 소음이 통로를 메웠다.

그제야 인우는 광폭난무를 그쳤다.

여전히 공중에 떠오른 상태인 인우.

인우는 볼 것도 없이 쓰러져 있는 놈의 머리통을 향해 대검관통을 쏘아냈다.

쐐애애애애액!

인우의 신형이 놈이 쓰러진 바닥을 향해 로켓포처럼 내리꽂힌다.

카드드드드드득!

인우의 파뇌가 놈의 머리통을 다시금 가격했다.

-크어어어어어어!

벨자므는 끔찍한 통증이 이는지 비명을 내지르며 눈을 부릅떴다.

이어 녀석은 핏발선 눈동자로 인우를 쏘아보았다.

-이노오오오옴!

이미 도주를 위해 마음먹었기에 공격다운 공격조차도 해 보지 못한 벨자므다.

하다못해 브레스조차 써 보지 못했다.

이즈음 벨자므는 도주를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인우에게 타격을 입혀 드래곤의 자존심이라도 지켜낸다.

그리 다짐한 벨자므는 거대한 아가리를 벌렸다.

그리고 인우를 향해 브레스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쿼어어어어어어어!

마치 토사물을 내뱉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인우는 놈의 브레스를 피하지 않았다.

그저 이 순간을 기다렸을 뿐이었다.

드래곤의 유일한 약점이라 하면, 역시나 입속이다.

이 세상 그 어떤 금속보다도 강력한 비늘로 전신이 뒤덮인 드래곤이 아닌가? 그러한 드래곤의 약점이라면 입속밖에 더 있겠는가?

하지만 드래곤이 입 안을 드러낼 때는 브레스를 뿜어낼 때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강의 기술을 사용할 때에 약점이 드러나는 것이다.

인우는 볼 것도 없이 육체강화를 시전했다. 그리곤 맹독으로 이루어진 놈의 녹색 브레스를 뚫고 내달렸다.

"크아아아아압!!"

전신이 녹아내리는 듯한 끔찍한 통증이 이어졌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걸로 끝을 낼 작정이었으니까.

인우는 파뇌를 치켜들고 벌어진 놈의 아가리를 향해 마지막 광폭 무형검을 펼쳤다.

쩌어어어어어엉-!

-쿼어··· 커억!

그러자 무형검에 입 속을 타격당한 벨자므는 브레스 대신 핏줄기를 뿜어 대기 시작했다.

혀가 잘리고 잇몸이 아작 났다.

나아가 별다른 방어막조차 없는 얇은 목 내부의 피부가 찢기며 핏물이 목울대에 가득 찼다.

-쿨럭!

벨자므는 끓어오르는 핏물을 간신히 삼켜내며 숨을 내쉬기 위해 입을 크게 벌렸다.

그리고 그러한 입 속을 향해 인우의 공격이 다시금 쏟아졌다.

콰득! 콰득! 콰득!

실컷 타격을 마친 인우는 놈의 아가리에서 빠져나왔다.

"하아. 하아. 하아."

벨자므의 브레스에 의해 전신에 끔찍한 타격을 입은 인우가 독기 가득한 눈동자로 벨자므를 쏘아보았다.

벨자므는 두려움 가득한 눈동자로 인우를 바라보았다.

이 미친 인간은 어떻게 된 게 브레스를 향해 돌진하며 공격을 감행하나?

이내 벨자므는 죽음에 임박했는지 힘겨운 숨을 내쉬며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었다.

-놀··· 랍군.

곧이어 벨자므의 숨통이 끊겼다.

[경험치를 200,000,000+2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400레벨이 되었습니다.]

[신체가 각성되었습니다.]

[근력이 400 증가합니다.]

[민첩이 320 증가합니다.]

[체력이 160 증가합니다.]

[마력이 40 증가합니다.]

[400레벨의 '광폭 절대검'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400레벨의 '전능자의 ??'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수십 개의 레벨이 연달아 올라간다.

단숨에 4차 각성이 완료되었다.

그야말로 미친 경험치였다.

0142 / 0208 ----------------------------------------------

142화 푸짐한 벨자므

4억의 경험치.

만약 지구에서 벨자므를 잡았다면 2천만+2천만 경험치를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게이트 내부에서 잡았기에 무려 10배가 뻥튀기 되어 2억이 되었고, 절대자의 성장으로 인해 모든 경험치 2배가 적용되었다.

그렇게 해서 도합 20배의 경험치인 4억이 올랐다.

이를 통해 올라간 레벨은 46개였다.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레벨 업 행렬이 마침내 끝이 났고, 인우는 가장 먼저 상태정보부터 띄웠다.

<정인우>

레벨 : 406

특성 : 광전사

스텟 : [근력 768+750+10+50] [민첩 543+600+100] [마력 312+90] [체력 507+360+10+40]

미분배 포인트 : 460

[EXP 500 / 16,000,000]

엄청난 능력치였다.

4차 각성을 통해 상승된 스텟은 근력400, 민첩320, 체력160, 마력40이다.

현재 민첩 스텟을 보자면, 순수 스텟인 543보다 각성 보너스 스텟이 더 높았다.

무려 600이었으니까.

1, 2, 3, 4차 각성을 통한 보너스 스텟은 이처럼 '각성'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해낸다.

다음으로, 미분배 포인트는 460개가 생성되어 있었다.

본래 46개의 레벨 업을 했다면 230개의 스텟을 지급받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전능자의 잠재력을 통해 레벨 업 보너스 스텟은 2배이다.

남들보다 2배씩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푸짐한 양이다.

인우는 460개의 포인트를 4대 스텟에 골고루 분배했다.

이즈음 되면 프로킨 때의 무력을 되찾았다고 봐도 좋았다.

물론 그 당시 인우의 레벨은 500으로 5차 각성까지 완료했던 상태였으나, 현재 지닌 능력치는 그 당시와 비등할 만했다.

마스터 스킬의 개수부터 다르지 않나.

하지만 아이템은 그 당시보다 한참이나 뒤쳐져 있었다.

'이 정도라면 500 레벨도 금방이다.'

인우는 그런 생각을 했다.

프로킨에서 인우가 이루어 냈던 마지막 경지는 500레벨이었다.

그 이상으로 성장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것이 인우의 한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잠시.

인우는 새로 생성된 스킬을 떠올렸다.

'그나저나. 이번 전능자는 어떤 게 뜬 거지.'

패시브 스킬창을 열어 보았다.

1. [절대자의 걸음 - 발을 내딛을 때마다 경험치를 5 획득합니다.]

2. [절대자의 호흡 - 호흡할 때마다 경험치를 5 획득합니다.]

3. [절대자의 성장 - 획득 가능한 모든 경험치가 2배가 됩니다.]

4. [전능자의 잠재력 - 레벨 업 보너스 스텟이 2배가 됩니다.]

5. [전능자의 한계돌파 ? 액티브 스킬의 한계 레벨이 2배가 됩니다. (히든 스킬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6. [전능자의 ?? - 레벨 500 달성 시 활성화됩니다.]

.

.

.

"어···?"

목록을 훑던 인우의 눈동자가 단숨에 크게 뜨였다.

새로이 열린 전능자 패시브는 한계돌파였다.

저 설명대로라면 기존 99레벨 마스터 스킬의 한계가 돌파된다는 것인가?

궁금증을 참지 못한 인우는 액티브 스킬 중 한 가지를 불러보았다.

1. [내려찍기 Master Lv.1 (2%)] - 양손 무기 장착 시 사용 가능. 거대한 검이나 도끼를 양손으로 틀어쥐고, 장작을 패듯 미친 듯이 내려찍습니다.

"맙소사."

인우는 저도 모르게 그리 중얼거렸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본래 스킬은 99레벨까지 성장시킬 수 있다.

그것이 마스터이고,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

하지만 이건 무엇인가?

내려찍기의 레벨이 Master Lv.1 로 다시금 성장시킬 수 있게 되었다.

말 그대로 한계돌파였다.

그리고 아마 마스터 레벨은 다시금 99까지 상승될 것이다.

기존 마스터만 해도 엄청나게 강력하다.

그런데 마스터 레벨99가 된다면 도대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당장에 마스터 레벨인 광폭 무형검만 보아도, 디아볼로스를 4방에 골로 보낼 정도다.

그런데 여기서 99레벨이나 더 성장시킨다면?

"허. 이거 참······."

처음 절대자의 걸음도 그러했지만, 전능자의 패시브는 오버밸런스의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즈음 되면 무서울 정도였다.

500레벨에 열릴 전능자는 도대체 얼마나 무지막지한 패시브일까?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물론 아쉬운 점도 존재했다.

전능자의 한계돌파의 설명 중, 히든 스킬은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문구도 보였으니까.

현재 인우가 지닌 히든 스킬이라 봐야 분신밖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인우는 분신 스킬의 정보도 띄워 보았다.

21. [분신 Master] - 시전자의 분신을 소환합니다. (하루에 한 번 시전 가능하며, 레벨이 오를수록 분신의 숫자와 전투력이 증가합니다.)

역시나.

분신 스킬은 한계돌파가 적용되지 않았다.

마스터로 끝이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다른 스킬들은 모조리 한계가 돌파되어 있었으니까.

게다가 이제는 광전사의 4차 각성 스킬인 광폭 절대검 마저도 생겼다.

.

.

10. [광폭 절대검 Lv.1 (5%)] - 시전자의 대검에 강력한 검강을 덧씌웁니다. <지속 시간 5초> (레벨이 오를수록 지속 시간이 증가합니다. 발동 시 50%의 마나를 소모합니다.)

11. 다음 스킬은 500레벨에 활성화됩니다.

.

.

광폭 절대검은 설명을 통해 드러났듯이 대검에 검강을 씌운다.

그 위력은 4차 각성 스킬답게 엄청나다.

그리고 절대검의 진정한 무서움은 바로 중첩에 있다.

절대검을 발동한 채로 스킬을 사용하면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특이한 점이 한 가지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절대검이 광전사의 스킬 중 드물게 마나를 소모한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50%나 잡아먹는다.

이는 숫자로 정해진 수치가 아니었기에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만약 절대검을 발동한 상태로 무형검을 사용한다면, 기존 4방이었던 디아볼로스를 1~2방에 끝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된다면 소모된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힘의 정수를 섭취해야 할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안 그래도 힘의 정수를 아껴야 하는 시점이다.

때문에 절대검 같은 폭딜 중첩 스킬은 환영이었다.

이로써 모든 스킬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제야 인우는 벨자므의 거대한 시체를 바라보았다.

사실 저게 가장 중요하다.

드래곤의 전리품.

인우조차도 드래곤의 전리품을 채취해 본 적은 없었다.

죽여 본 적은 있으나, 시체 확보를 하지 못했었으니까.

간신히 드래곤의 시체에서 뒷다리를 뽑아내서 챙겨 간 게 고작이었다.

그 당시 인우는 뒷다리를 알차게 사용했다.

엘프들을 고용해서 살과 피는 포션으로 제조했고, 뼈는 드워프를 시켜 대검으로 가공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무기가 바로 황제 정인우의 전용 무기였던 드래곤 본 대검이다.

그 무기를 다시 쥘 수만 있다면 엄청난 파괴력을 낼 수 있을 텐데.

참 아쉬웠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빌딩만 한 드래곤의 뼈가 넘치도록 있다.

이 정도라면 분신들의 무기까지 모조리 만들어 주고도 한참이나 남을 양이다.

물론 인우는 무기를 가공하는 방법을 모르기에 현재로선 그림의 떡이긴 했다.

포션 가공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시체 자체는 아공간에 넣어 두었다가 훗날을 노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시체는 곧바로 사용할 수 없겠지만, 이 녀석이 지닌 아이템은 채취해 낼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을 지녔을까?

인우는 거대한 드래곤의 시체를 조심스럽게 갈라 내기 시작했다.

비늘은 도저히 잘리지 않아 그 사이의 살점에 단검을 꼽아 넣고 배를 갈랐다.

채취는 오래도록 이어졌다.

워낙에 커다란 녀석인지라 당연한 이야기다.

이러한 순간에도 스킬 레벨은 꾸준히 올라갔다.

[경험치를 50+50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50+50 획득하였습니다.]

['광폭 절대검'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절대검의 레벨은 벌써 10이 되어 있었다.

이곳은 게이트 내부이기에 올라가는 스킬 경험치가 엄청났다.

다만, 한계돌파를 한 스킬들의 경우 고작 3~4%의 경험치가 올랐을 뿐이었다.

그렇게 1시간쯤 지났을까?

그제야 인우는 첫 번째 전리품을 획득했다.

"힘의 정수는 15개네."

드래곤답게 본래 가졌던 힘의 원천인 정수가 푸짐하게 들어 있었다.

현재 아공간에 있는 힘의 정수는 7개.

그리고 이제는 22개가 되었다.

"하아. 이 자식 너무 커서 채취가 만만치 않은데?"

투덜대면서도 인우는 꿋꿋하게 전리품을 채취했다.

이윽고 다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전리품은 유니크 스킬 볼이었다.

그 개수는 10개.

"오케이. 좋고."

이건 뭐 언제든 환영이다.

게다가 이제는 분신들 또한 스킬 볼을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100개가 나온대도 부족한 유니크 스킬 볼이었다.

"후우!"

인우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다음 전리품을 찾았다.

그리고 아티펙트를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종류는 반지였으며, 색상은 전체적으로 짙은 녹색이었다.

당연히 오버밸런스겠지?

인우는 기대를 품고 아티펙트의 정보를 불렀다.

[벨자므의 반지]

종류 ? 반지

기능 ? 착용 시, 패시브 <벨자므의 가호> 발동

발동조건 ? 420레벨 이상

기대는 금세 궁금증으로 변했다.

이러한 아티펙트는 인우도 처음 보았다.

가진 기능 자체가 패시브 스킬 발동이라니?

그리고 그 패시브가 자그마치 드래곤의 가호라니.

역시나 벨자므는 1,000살 드래곤답게 가호를 내릴 수도 있었을 테다.

그리고 그 기능이 이 아티펙트에 담겼다.

그런데 레벨 제한이 말도 안 되게 높았다.

420이라니.

이 정도라면 지구에 존재하는 그 어떤 초인도 이 아티펙트를 착용할 수 없을 거다.

인우조차도 착용이 불가하니 확실하다.

앞으로 14개의 레벨을 더 올려야 비로소 확인이 가능할 터였다.

"일단은 아공간행이로군."

그렇게 중얼거리기도 잠시.

인우의 시선이 어딘가에 꽂히기 시작했다.

아티펙트를 채취했던 위치에 또 다른 전리품이 보였던 것.

척 보아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아이템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것은 아티펙트도 아니었으며 무기도 아니었다.

인우로서도 난생 처음 접하는 아이템이었다.

"이건 뭐지···?"

의문을 표하는 인우의 손바닥 위에는 어느새 동그란 구슬 하나가 들려 있었다.

크기는 딱 스킬 볼만 하다.

그런데 색상은 기존에 존재하던 스킬 볼과 전혀 달랐다.

본래 액티브 스킬 볼은 빨강색, 패시브는 파랑색, 그리고 유니크는 투명한 색상이다.

그런데 이 구슬은 무지개 색깔이었다.

그야말로 빨주노초파남보가 다 보였으니까.

실로 짐작조차 되지 않는 아이템이었다.

이건 도대체 뭐야?

이윽고 인우는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구슬의 정보를 불러보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헉!"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구슬의 정체는 스킬 볼이었으니까.

그것도, 보통 녀석이 아니었다.

[레전드 스킬 볼]

기능 ? 100% 확률로 스킬을 랜덤 습득합니다. (히든 스킬 습득 확률 +30%)

100%라니.

나아가, 히든 스킬 습득 확률이 +30%라니!

유니크 스킬 볼 따위는 단숨에 쓰레기로 만들 만한 엄청난 녀석이 등장했다.

네임자체도 '레전드'다.

드래곤들은 모조리 이 스킬 볼을 뱉는 것인가?

유니크 스킬 볼 10개가 나왔을 때는 그러려니 했지만, 이건 상상조차 못했다.

유니크는 10개를 다 먹어도 꽝이 뜰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데 이건 그렇지 않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인우는 레전드 스킬 볼을 입속에 넣었다.

0143 / 0208 ----------------------------------------------

143화 퀸의 먹방

고민은 없었다.

유니크 스킬 볼을 먼저 먹는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모두 분신들에게 줄 생각이었다.

자신이 배워 봐야 아주 높은 확률로 꽝이 나올 터.

하지만 분신들이 배운다면 아주 높은 확률로 스킬을 습득할 테다.

지금으로선 그편이 더 효율이 좋은 것이다.

이윽고 레전드 스킬 볼은 단숨에 인우의 목을 타고 넘어갔다.

그 즉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히든 스킬 '용언'을 습득하였습니다.]

떴다.

100% 확률이기에 스킬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제대로 떴다.

생성된 스킬은 히든이었으니까.

스킬명조차도 범상치 않다.

용언이라니?

용언이라하면 마법의 종주인 드래곤들의 능력 아닌가?

그러한 사기적인 능력이 스킬로 존재한다고?

인우는 간신히 흥분을 가라앉힌 채 스킬 목록을 훑었다.

그리고 패시브 스킬에 새로 생성된 용언을 확인할 수 있었다.

.

.

14. [용언 ? 모든 마법을 캐스팅 없이 즉시 시전할 수 있습니다.]

.

.

14번째 패시브 스킬 용언.

그 기능은 가히 사기적이었다.

용언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드래곤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드래곤들은 마법을 사용할 때 캐스팅이 존재하지 않는다.

녀석들은 용언이라는 힘을 이용하여 마법을 즉시 시전하곤 한다.

그리고 이제 인우도 그러한 용언의 힘을 얻었다.

게다가 이것은 패시브이기에 언제 어느 때고 적용되어 있는 힘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무섭다.

"가만······."

현재 인우가 지닌 마법 중에 캐스팅이 존재하는 것은 블리자드.

블리자드는 되먹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범위 마법이었다.

하지만 인우는 블리자드를 자주 사용하지 못했다.

그 이유가 바로 캐스팅 시간 때문이었다.

실전에서는 파이어 볼이나 헬 파이어같은 단발 마법들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적들은 캐스팅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캐스팅을 끝마치는 몇 분의 시간 동안은 무방비 상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인우는 마스터 레벨의 블리자드를 지니고 있음에도 실전에 이용하지 못했다.

끽 해봐야 중국 전쟁에서 팜이를 타고 블랙오크들을 휩쓸 때 사용해 봤던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그때 들어왔던 경험치는 상당했었지 않나.

이내 인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용언의 스킬 설명대로면 블리자드를 즉시 시전할 수 있다는 게 분명하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인우는 시험해보기 위해 공간 저 너머를 향해 양손을 뻗었다.

그런 뒤 블리자드를 시전했다.

그러자 0.5초도 되지 않아 강렬한 기세를 뿜어내는 블리자드가 튀어나왔다.

쐐애애애애애앵-!

주변이 급속도로 냉각되며 마법의 얼음 눈꽃송이들이 허공을 수놓는다.

만약 이곳에 괴수들이 존재했다면 모조리 숨이 끊겼을 것이다.

"맙소사."

범위 마법 즉시 시전.

이건 지은조차도 불가능할 거다.

아니, 지구에 존재하는 그 어떤 초인도 불가능하다.

할 수 있다면 프로킨의 드래곤들이나 가능할 테지.

"이건 제대로인데······."

인우는 아직도 얼떨떨한지 블리자드의 눈꽃송이들을 멍하니 응시할 뿐이었다.

만약 마력 스텟만 갖춰 준다면 무한정 블리자드를 뿜어 낼 수도 있을 거다.

현재 인우가 지닌 마력 스텟은 블리자드를 3번 정도 연속 시전할 수 있는 양이었다.

물론, 실제로 적들을 타격하면 4번에서 크게는 5번까지 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적을 직접 타격하면 마스터 레벨의 마나 드레인이 발동될 테니 말이다.

게다가 마나 드레인조차도 이제는 한계 돌파를 한 상태다.

때문에 마나 드레인의 레벨이 조금 더 큰다면 7번 8번까지도 가능할지 모른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인우는 그간 아공간에 넣어 둔 채 착용하지 못했던 아티펙트를 떠올렸다.

"디아볼로스의 이빨."

분명 그게 있다.

헬탑을 클리어하며 얻었던 오버밸런스 목걸이.

하지만 착용 조건이 부족하여 차지 못했던 아티펙트다.

그러나 이제 엄청난 레벨 업을 하며 착용조건은 충분해졌을 것이다.

인우는 곧바로 아공간을 열었다.

그런 뒤 그곳에서 디아볼로스의 이빨을 꺼냈다.

[디아볼로스의 이빨]

종류 ? 목걸이

기능 ? 마나 소모량 50% 감소, 마법 공격력 2배 증가

발동 조건 ? 마력400, 레벨300 이상

"이거다."

이제 마력 스텟은 427+90이 되어 있는 상황이다. 조건은 충분하고도 넘쳤다.

인우는 볼 것도 없이 기존에 착용하던 '코카트리스의 부리'를 해제시키고 디아볼로스의 이빨을 목에 걸었다.

['디아볼로스의 이빨'의 기능이 발동됩니다.]

[마나 소모량이 50% 감소합니다.]

[마법 공격력이 2배 증가합니다.]

됐다.

이렇게 되면 블리자드를 기존보다 2배 더 연달아 퍼부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마법 공격력까지 2배이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아티펙트다.

초월의 팔찌도 그렇지만, 역시나 오버밸런스 아티펙트는 헬탑이 정답이다.

게다가 헬탑에서는 헬스톤까지 얻을 수 있질 않나.

헬스톤은 아티펙트를 강화할 수 있고, 현재로선 최대한 많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이제 본격적인 드래곤들과의 전쟁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인우는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해 둘 필요가 있었다.

"그나저나 이건 누구한테 주지."

인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코카트리스의 부리와 분신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자 분신들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난다.

어느덧 분신 일이가 인우를 향해 말했다.

"그때. 분명 그랬잖아. 우리가 아공간에 들어갔을 때 말이야. 가장 많은 경험치를. 획득한 녀석한테. 아티펙트를 준다고."

아, 분명 그리 말하긴 했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녀석들은 그 한마디만 믿고 죽어라고 자전거와 러닝머신을 탔던 것 같다.

그렇다면 누가 가장 큰 경험치를 획득했을까?

그건 녀석들의 레벨 상태를 보면 알 수 있을 테다.

인우는 분신들의 정보를 훑으며 계산을 시작했다.

207, 201, 202, 200, 76, 77, 79, 80

이것이 현재 8명 분신들의 레벨이었다.

가장 큰 폭의 레벨 업을 한 것은 분신 팔이었다.

그 다음으론 분신 칠이.

물론 저레벨 구간과 고레벨 구간의 레벨업은 경험치의 총량이 아예 다르다.

인우는 그러한 것들까지 감안해서 1위를 뽑았다.

"팔이 나와."

그 한마디에 팔이가 잔뜩 촐싹이며 인우의 앞으로 다가왔다.

이내 녀석은 히죽 웃으며 양손바닥을 내밀었다.

인우는 놈의 손 위에 아티펙트를 올려 줬다.

녀석은 곧바로 그것을 착용한 뒤 나머지 분신들을 향해 손가락 브이를 날렸다.

<분신8>

레벨 : 80

한계 레벨 : 244 <시전자 레벨의 60%>

오른손 반지 : 無

왼손 반지 : 無

팔찌 : 無

목걸이 : 코카트리스의 부리 (육체 저항력 상승)

추가 스킬 : 無 <히든 스킬 습득 불가>

그다지 좋은 아티펙트는 아니었으나, 팔이는 꽤나 만족한 것 같았다.

제 놈이 노력해서 얻어낸 것이기에 더욱더 기분이 좋을 테지.

반면 일이는 그다지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첫 째인 일이는 현재 목걸이만 빼고 모든 아티펙트를 갖춘 상태였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더더욱 아쉬웠다.

일이는 입맛을 다시며 인우에게 또 다시 물었다.

"그나저나. 그 스킬 볼들. 어쩔 거냐."

일이는 역시나 눈치가 빠르고 똘똘하다.

인우는 10개의 유니크 스킬 볼과 놈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민을 끝내고 명령을 내렸다.

"저 드래곤 시체를 아공간에 넣어야 하는데, 비늘과 살덩이 그리고 피와 뼈를 모조리 분리해. 피는 바닥에 조금도 흘리지 않게 조심해서 다뤄. 드래곤 피는 극히 소량으로도 포션을 만들 수 있는 귀한 거니까."

"저걸. 다 정리하면. 스킬 볼을 준다는 거지?"

"그래."

인우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바닥에 걸터앉았다.

이제 나머지 일은 놈들에게 맡기고 인우는 숨이나 쉬고 있을 작정이었다.

여기서는 숨만 쉬고 있어도 5일이면 광폭 절대검을 마스터한다.

우선 이곳에 들어온 김에 마스터 레벨을 찍고 간다면 좋을 테지.

그리고 그 5일 안에 드래곤 사체는 어느 정도 정리가 완료될 것이다.

그렇게 휴식을 취하기도 잠시.

열어둔 아공간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이윽고 아공간 입구에서 누군가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 모습에 인우는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댔다.

"아, 퀸."

그러고 보니 울트라 게이트에서 벨자므가 튀어나올 때,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떠는 퀸을 아공간에 강제로 내던져 버렸었다.

그 이후로 까맣게 잊고 있던 것이다.

그녀는 뱀파이어이기에 피를 마시지 않으면 지독한 갈증에 시달린다.

그래서일까?

지금 퀸은 안 그래도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다시피 했다.

퀸은 인우의 무사한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힘겨운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에요."

무사해서 다행이다.

퀸은 긴장이 풀리는지 아공간에서 나오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았다.

저 안에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그런 그녀에게 인우가 단숨에 다가왔다.

인우는 그녀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고 단숨에 들어올렸다.

그런 뒤 파랗게 질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날 선 음성으로 물었다.

"지금 그게 문제냐? 너부터 걱정하지?"

퀸을 까맣게 잊고 있던 건 바로 인우다. 제 놈이 잘못해 놓고도 무척이나 당당한 태도는 인우다웠다.

인우는 퀸을 어깨에 들쳐 멨다.

퀸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어정쩡하게 인우의 옷깃을 붙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드래곤의 시체를 향해 휘적휘적 걸어 나갔다.

그녀에게 드래곤의 피를 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차고 넘친다.

훗날 만들어질 포션의 개수는 줄어들겠지만, 그녀에게 주는 것은 아깝지 않았다.

이 여자는 열심히 저택을 지켜온 충실한 가디언이었으니까.

이내 인우는 벨자므의 시체에서 혈액을 뽑아 그녀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피다. 마음껏 마셔."

퀸의 입술이 열리고, 그 안으로 짙은 핏물이 흘러들어갔다.

퀸은 난생 처음 맛보는 진귀한 맛에 저도 모르게 눈을 부릅떴다.

그녀가 여태 마셔 보았던 피 중 가장 맛있었던 것은 고작 바실리스크 정도였다.

하지만 이 피는 급 자체가 달랐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퀸은 킹의 오망성으로 인해 '킹의 권능'이 생성된 상태이질 않나?

[킹의 권능] - 흡혈을 통해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 업이 가능해집니다.

이 권능은 피를 마시면 경험치를 획득하게 해준다.

퀸은 일전에 권능을 얻고 나서 말리오의 피를 마셔본 적이 있었다.

그때에 퀸은 말리오의 피 한 컵에 30 가량의 경험치를 얻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경험치를 35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3500 획득하였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한 모금에 무려 3500의 경험치를 획득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건 보통 피가 아니질 않나?

자그마치 드래곤의 피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치 획득량 자체가 다른 것이다.

퀸의 레벨은 단숨에 10까지 올랐다.

그녀의 얼굴은 금세 펴졌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인우가 그녀의 변화를 눈치 챘다.

'드래곤의 혈액은 엄청난 경험치를 주는가 보군.'

판단을 끝낸 인우가 퀸을 강하게 움켜쥐며 말했다.

"입 벌려."

"···네?"

"이곳에서, 너를 최대한 키워 줄게. 잔말 말고 입 벌리고 가만히 있어."

이윽고 인우는 분신들을 시켜 드래곤의 피부터 채취하게 만들었다.

그녀라면, 드래곤의 피쯤이야 얼마든지 내어 줄 수 있었다.

0144 / 0208 ----------------------------------------------

144화 버프가 너무 많아

벨자므의 크기는 대략 70피트 가량이었다.

이 거대한 크기의 드래곤이 지닌 무게는 30~40톤 정도는 될 것이다.

이에 따라 녀석이 지닌 혈액은 최소 3,000리터 이상이었으며, 이는 2리터 페트병으로 치면 1,500병이 나오는 양이었다.

2리터 한 병은 200ml컵으로 따지면 10컵의 분량이 나오고, 이를 다시금 한 모금으로 환산하면 되먹지 못한 양이 나온다.

누구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퀸은 2리터 정도의 피를 80모금 정도로 나눠 마셨다.

"몇씩이나 오르는데?"

인우가 묻자 퀸은 붉게 물든 입술을 혀로 핥으며 답했다.

"삼천 오백씩 계속 올라요."

오호라.

그렇다면 3,000리터의 피를 한 모금씩으로 환산한다면 120,000 모금 정도가 나올 테다.

여기에 3,500의 경험치를 곱해 본다면....

'4억 2천 경험치.'

벨자므의 혈액을 다 마시면 얻을 수 있는 경험치의 총량이었다.

미친 수치다.

이는 인우가 벨자므를 죽이고 얻어낸 4억의 경험치와 비슷할 정도였다.

여기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한 가지.

인우는 헬게이트 10배와 절대자의 성장 2배를 합친 20배의 경험치를 지급받아 4억이었다.

그런데 퀸은 그냥 마시기만 해도 4억 2천이다.

그녀가 '킹의 오망성'을 통해 얻어낸 킹의 권능은 실로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만약 아티펙트인 킹의 오망성의 발동 조건에 '뱀파이어'라는 조건이 걸려 있지 않았다면, 인우도 저 아티펙트를 착용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 뱀파이어로 변신하는 히든 스킬은 존재하지 않으려나?

그렇게 된다면 인우도 킹의 오망성을 착용하고 혈액을 마시며 경험치를 획득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역시나 가장 중요한 건....

"배불러요 주인님. 그만요."

"아."

그렇다.

그녀의 배는 무척이나 얇았기에 3,000리터를 다 퍼부을 수 있는 양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 배불뚝이 민철이가 와도 5리터도 못 마시고 다 토해 낼 테다.

그랬기에 퀸이 마셔봐야 얼마나 마셨겠는가.

생각 같아선 다 퍼부어 주고 싶었던 인우였기에 아쉬움이 남았다.

"레벨은 몇이 됐냐?"

"51이요."

"허."

인우는 제법 놀란 듯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현재 분신 팔이만 보더라도 레벨 80이다.

그런데 퀸은 단 한순간에 51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도 몇 리터 마시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하긴 그녀가 한 입에 3,500의 경험치를 얻을 때, 팔이는 러닝머신 위를 질주하며 땀범벅이 되어 가며 꼴랑 5의 경험치를 획득했을 뿐이었다.

이즈음 되면 그녀가 어느 정도까지 성장할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현재 퀸은 본래 가진 육체 능력만 하더라도 150레벨의 초인과 비등한 정도였다.

그런데 레벨이 생겼고, 거기에서 51레벨이 되었다.

이 정도라면 선배 분신들과 비등한 정도의 무력을 뽐낼지도 모른다.

'이제는 가디언이 아니라 보디가드로 써야겠는데.'

인우는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더 못 먹겠냐?"

"네. 숨이 막힌단 말이에요."

웬만해선 거절하지 않는 그녀가 고개를 도리도리 내젓는다.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마신 거겠지.

"그래. 아무튼 잘했어. 앞으로도 피는 무조건 드래곤의 피만 마셔. 어느 때고 말하라고."

"정말이에요?"

"응."

인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편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포션을 만드는 것도 좋겠지만, 그녀에게 투자하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이었다.

애초에 그 어떠한 것들보다 효율과 이득을 따지는 인우였기에, 그녀를 위해 벨자므의 피를 모조리 투자하기로 결정한 듯 보였다.

'이 여자는… 남들이 레벨을 키울 때 위장을 키워야 하나?'

인우는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며 퀸의 배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에 퀸은 그 시선을 달리 받아드려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저 원래 이렇게 많이 안 먹어요. 주인님이 주셔서 먹은 거라구요."

말을 마친 퀸은 여전히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헤헤 거리는 그 모습이 굉장히 귀여웠는데, 인우는 여전히 그녀의 배만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