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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5화 레벨 업! 레벨 업! 폭풍 레벨 업 (4) >

분신들의 광폭난무로 인해 피어난 강력한 회오리.

그 회오리는 금세 핏빛으로 물들어 버렸다.

파바바바바바밧-!

맹렬히 돌아가는 살인적인 광폭난무.

사방팔방으로 피와 살점이 튀었다.

블랙오크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통째로 갈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 제아무리 광폭난무가 이곳을 휩쓴다고 해도 녀석들의 숫자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블랙오크들은 후방에 침투한 인우를 막기 위해 엄청나게 몰려 버린 것이다.

이윽고 분신들의 광폭난무가 그칠 즈음.

인우는 팜이를 향해 외쳤다.

"내 분신들을 태워!"

광폭난무가 그치게 되면 분신들은 그대로 블랙오크들에게 둘러싸일 것이다.

아직 인우 본인에 비해 약한 분신들은 자칫 잘못하다간 사망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재소환까지 24시간이 걸린다.

어차피 각성까지 끝마친 분신들이다.

때문에 인우는 분신들을 이쯤에서 거두기로 결정했다.

-크아아아아암!

어느덧 공중에서 아래편을 걱정스레 지켜보던 팜이가 포효했다.

팜이는 빠르게 하강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인우는 곧바로 분신들에게 명령했다.

팜이를 향해 점프하라고.

그러자 분신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다.

챙! 캉! 캉!

블랙오크들은 도주하는 분신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에 인우가 나섰다.

"어딜!"

인우는 다급하게 암기투척을 사용하며 분신들의 안전을 도왔다.

분신들은 지금 여기서 쓰러지면 안 된다.

바투를 공략할 때 유용하게 쓰이지 않겠는가.

어차피 이제는 인우 본인의 1 레벨 업만을 남겨 둔 상태이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스윙으로도 밀리지 않을 만한 대군이 몰려버린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분신들을 빼내고 인우 홀로 1업을 마친 뒤 탈출해야 한다.

척-!

어느덧 4명의 분신들이 팜이의 등에 안착했다.

"취-익! 네 명이 드래곤한테 갔다!"

"젠장! 남은 한 놈을 처리한다!"

그러자 블랙오크들은 하늘을 포기하고 인우를 향해 내달려 왔다.

"그래, 와라!"

인우가 외쳤다.

그리고 그 모습에 팜이가 걱정스런 외침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크암! 크아아아! 크아아암!

하지만 팜이의 외침은 인우에게 닿지 않았다.

인우의 신경은 오로지 블랙오크들에게 쏠려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후우우우!"

이내 인우는 광기 폭발로 인해 비약적으로 상승된 스피드를 이용했다.

타다다다닥-!

인우의 신형이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전장을 누볐다.

"인간 놈을 잡아라!"

"취-익! 죽여라!"

어디로 이동해도 새카맣다.

이윽고 인우의 시야는 온통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블랙오크들은 그만큼 가득히 깔린 상태.

인우는 그저 본능적으로 파뇌를 휘둘렀다.

후웅-! 퍽!

한 번의 휘두름으로 인해 3~4마리의 블랙오크들이 타격을 입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파뇌를 휘두를 공간조차도 생기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까마득히 몰린 블랙오크들이 인우 하나만을 포위한 것이었다.

이에 인우는 기합을 내지르며 전방을 향해 대검관통을 날렸다.

"으아아아아아압!!"

인우의 파뇌가 가장 앞에 있던 블랙오크의 배를 꿰뚫었다.

푹!

"크헉!"

블랙오크는 울컥하고 치밀어 오르는 핏물로 인해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대검관통의 추진력.

파바바바바바밧-!

파뇌와 한 몸이 되다시피 한 인우가 로켓포처럼 쏘아져 나갔다.

츠즈즈즈즈즈-!

그러자 꼬챙이가 된 블랙오크가 뒤로 밀렸다.

이어 블랙오크의 뒤편에 있던 수많은 병력들까지 밀리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밧-!

이 모든 것이 온전히 인우가 뿜어낸 대검관통의 추진력이었다.

땅과 맞닿은 인우의 발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엄청난 마찰로 인해 불꽃이 피어날 지경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

인우는 핏발 선 눈동자로 전방을 노려보며 파뇌를 더욱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파밧! 파밧!

대검관통이 수백 마리의 블랙오크들을 밀어붙였다.

"취-익! 인간 놈의 후방을 노려라!"

누군가가 그렇게 외쳤다.

그러나 놈이 그렇게 외치기도 전에 이미 블랙오크들은 인우의 사방팔방을 공격해 대고 있었다.

퍽! 퍽!

엄청난 양의 병장기들이 인우의 전신을 후드려 치기 시작했다.

이에 인우는 곧바로 육체강화를 시전했다.

그런 뒤 대검관통을 거뒀다.

그러자 꼬챙이가 되었던 블랙오크는 생전 모습을 찾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나 새카맣던 녀석이, 붉은 피로 인해 하나의 고깃덩어리가 되어 있던 것이다.

인우는 곧바로 허공에 파뇌를 휘둘러 고깃덩어리를 떨쳐냈다.

후웅-! 철퍼덕!

그리고 곧바로 포효를 내질렀다.

"크아아아아압!"

인우의 포효로 인해 가까이에 위치해 있던 블랙오크들은 주춤거렸다.

인우는 볼 것도 없이 내려찍기를 꼽아버렸다.

쾅! 쾅! 쾅! 쾅! 쾅! 쾅!

이에 타격 당한 블랙오크들은 떡방아에 빻아지는 것처럼 으깨지기 시작했다.

사방팔방으로 블랙오크들의 저며진 고깃덩어리가 튀었다.

"으라아아아!"

이윽고 조금의 공간을 확보한 인우는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그러면서 죽기 직전까지 내몰린 블랙오크들을 향해 참살을 날렸다.

퍽! 퍽! 퍽!

연달아 열댓 마리의 블랙오크들이 쓰러졌다.

"하아! 하아!"

격한 움직임으로 인해 거친 숨이 뿜어져 나왔다.

도무지 정신이 없을 지경.

그런데 그때.

"취---이익!"

제법 덩치가 큰 블랙오크 한 마리가 인우를 향해 몸을 날렸다.

퍽!

이윽고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음이 들려왔다.

이 블랙오크는 인우의 등 뒤를 덮치며 넘어뜨리는데 성공했다.

"취-익! 내가 놈을 엎었다! 돌······!"

만세를 부르던 놈은 외침을 끝까지 토해 내지 못했다.

어느덧 푸르스름하게 물든 인우의 왼 주먹이 녀석의 아가리를 꿰뚫은 것이었다.

"꺼, 꺼, 꺼르."

이에 녀석은 피 끓는 헐떡임을 내뱉으며 눈을 부릅떴다.

"빌어먹을 새끼!"

인우는 욕설을 내뱉으며 녀석의 몸을 걷어찼다.

퍽!

그리고 재빠르게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하지만······.

"이야아아아아아!"

"인간 놈을 찍어라!!"

"죽여 버려어어어어!!"

그것은 삽시간이었다.

엄청난 숫자의 블랙오크들이 인우를 향해 슬라이딩을 해 대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녀석들이 몰려봐야 수천 마리 가량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지 않나?

후방에 위치해 있는 수십만 마리의 블랙오크들이 인우를 노리는 것이다.

다굴에 장사 있을까?

마구잡이로 뛰어드는 블랙오크 녀석들.

놈들은 인우를 내리깐 채로 미친 듯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인우는 새카만 블랙오크 무리에 깔려 버렸다.

블랙오크들은 층층이 뒤덮여 삽시간에 3층 건물 만한 높이까지 들어찼다.

그 광경에 팜이가 울부짖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암!

어느덧 팜이는 볼 것도 없이 하강하기 시작했다.

아래에는 엄청난 숫자의 블랙오크들이 깔린 상황.

그럼에도 팜이의 날갯짓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하나, 팜이는 오래지않아 비행을 멈추고 도로 하늘을 향해 올라설 수밖에 없었다.

파바바바바박!!

-크아아아아아아압!

지저의 깊은 곳에서 울리는 듯한 포효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광경은 실로 경악스러웠다.

햄버거 패티처럼 겹겹이 쌓인 블랙오크들.

파밧! 파밧!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놈들을 꿰뚫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음에도 블랙오크들이 잘려 나갔다.

피슈우우우욱!

강력한 레이저와 같은 그것은 미친 기세로 쏘아지며 블랙오크들을 통째로 뚫었다.

그리고 꿰뚫린 틈을 비집고 인우의 외침이 들려왔다.

"팜! 날 태워!"

인우는 곧바로 광폭 어검과 함께 하늘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인우는 어떻게 병력들을 꿰뚫었던 것일까?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존재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레벨이 올랐던 것.

인우는 드디어 300레벨을 달성한 것이었다.

광전사의 3차 각성 스킬.

이 무지막지한 스킬로 인해 간신히 길을 뚫은 인우였다.

* * *

<정인우>

레벨 : 300

특성 : 광전사

스텟 : [근력 510+50+10+15] [민첩 295+40] [마력 165+10+40] [체력 260+40+10+10]

미분배 포인트 : 310

[EXP 401,000 / 7,010,000]

팜이의 등 위로 무사히 안착한 인우.

그는 턱 끝까지 차오른 거친 숨을 토해 내고 있었다.

방금 전 300레벨을 찍었다.

그렇기에 닳았던 체력은 모두 회복되어야 정상이겠지만, 지금 인우의 모습은 그 반대였다.

"하아. 하아. 하아."

광전사의 3차 각성 스킬은 막대한 양의 체력을 소모한다.

한번 쓰고 나면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랄까.

그랬기에 지금의 인우가 이와 같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야말로 궁극의 필살기 급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이윽고 인우는 광전사의 3차 각성 스킬의 정보를 불러왔다.

.

.

.

9. [광폭 무형검 Lv.2 (8%)] - 보이지 않는 검을 쏘아 냅니다. 무형검의 대상은 무조건 타격당합니다. (발동 시 체력의 절반이 소모됩니다.)

10. 다음 스킬은 400레벨에 활성화됩니다.

.

.

.

광폭 무형검.

이 스킬은 설명대로 보이지 않는 검이다.

이에 따라 적은 이 스킬을 피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명중률 100%의 스킬인 것이다.

나아가 비정상적인 파괴력을 지닌 기술이기도 했다.

하지만 체력의 절반을 소모하여 발동하는 기술이다.

이 때문에 프로킨의 인우조차도 광폭 무형검의 레벨은 21에 불과했다.

주로 사용할 수 없는 스킬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정인우는 대략 50일이면 99레벨을 달성할 것이다.

-크아암.

어느덧 비행을 하던 팜이가 고개를 돌리며 인우를 불렀다. 이에 인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나 괜찮다. 새끼야. 바투와의 격전지까지 향하는 동안 체력이나 회복해야겠어."

-크암.

최상의 컨디션으로 바투와 대적할 참이었다.

힘의 정수가 두 개나 있긴 하다.

그러나 최대한 아껴 사용해야 했다.

그러길 잠시.

인우는 우선 여태 모아두었던 보너스 스텟부터 분배하기 시작했다.

무려 310개의 포인트.

이윽고 인우는 분배를 끝마쳤다.

한 번에 엄청난 양의 스텟이 올라서일까?

육체가 뿜어낼 수 있는 근력과 체력 따위의 것들이 증가한 것이 크게 느껴졌다.

그나저나, 전능자의 패시브는 무엇일까?

탈출을 하기 위해 정신이 없던 인우였다.

그랬기에 확인할 틈조차 없었다.

육체에 어떠한 변화가 있진 않았다. 전능자 패시브의 기능은 무엇일까?

어느덧 인우는 패시브 스킬 창을 열어보았다.

패시브 스킬

1. [절대자의 걸음 - 발을 내딛을 때마다 경험치를 5 획득합니다.]

2. [절대자의 호흡 - 호흡할 때마다 경험치를 5 획득합니다.]

3. [절대자의 성장 - 획득 가능한 모든 경험치가 2배가 됩니다.]

4. [전능자의 잠재력 - 레벨 업 보너스 스텟이 2배가 됩니다.]

5. [전능자의 ?? - 레벨 400 달성 시 활성화됩니다.]

6. [스피드 - 이동속도가 10% 증가합니다.]

7. [물리 공격력 강화 - 물리 공격력이 5% 증가합니다.]

8. [근력 증가 - 근력 스텟이 '10' 증가합니다.]

9. [체력 증가 - 체력 스텟이 '10' 증가합니다.]

10. [맹독저항 - 독을 저항합니다.]

11. [충격흡수 - 일정량의 데미지를 흡수합니다.]

드러난 전능자의 패시브는, 잠재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실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절대자의 패시브는 성장을 돕기 위한 스킬이었다.

그러나 전능자의 패시브는 성장보다는 실질적인 기능이 내재되어 있었다.

보너스 스텟 2배라니.

이렇게 된다면 지금부터 얻게 될 보너스 스텟은 5에서 10이 될 것이다.

그것은 즉 계산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남들보다 두 배 더 강해진다는 것을 뜻했다.

그간 마력 스텟에는 최소한의 투자를 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인우다.

그러나 이제는 포인트가 2배나 되니 조금 더 다양한 투자를 할 수 있었다.

물론, 힘에 올인을 하는 것도 비정상적인 강력함을 머금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기도 잠시.

어느덧 인우는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드디어 도착한 것인가.

챙-! 캉-!

-돌격해애애애!

-막아아아!

-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들.

절박한 외침들.

어느덧 인우는 그러한 외침들을 비집고 있는 힘껏 소리쳤다.

"으아아아아아! 내가 왔다!!"

< 115화 레벨 업! 레벨 업! 폭풍 레벨 업 (4) > 끝

ⓒ 호종이

< 116화 바투와의 혈전 (1) >

바투와의 격전지.

이곳에서는 비명과 절규가 끊이질 않고 있었다.

"끄아아아악!"

"비, 비켜! 난 도망칠 거야!!"

전쟁의 양상은 제라를 지키기 위한 세계초인급파부대와, 그들을 모두 찢기 위한 바투의 공세가 주를 이뤘다.

물론 이밖에도 제라 부대와 바투 부대와의 치열한 접전도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샐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블랙오크들이 죽어 나갔으며, 난징 전역은 짙은 피비린내로 뒤덮여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붉게 물든 진창으로 인해 질퍽이는 대지.

이곳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민철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용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다.

까딱하면 정말로 죽음이다.

인우가 올 때까지 어떻게든 버틸 생각이었다.

인우는 분명 이번 전쟁을 통해 민철의 레벨이 120을 가볍게 넘어서게 될 거라 장담했었다.

민철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인우가 거짓말을 친 적은 없질 않나.

살아남아야만 한다.

민철은 인우가 사준 용작두를 치켜든 채로 용맹하게 싸워 나갔다.

"이야아아아아!"

웬만한 블랙오크 병사들은 민철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물론 다수 대 일로 싸워 나갈 만큼 민철은 강력하지 못하다.

그래서일까?

지금 민철은 제라의 병사들 사이에 스며든 채로 영리하게 전투를 치러 나가고 있었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했다.

물론 3년까지는 아니더라도, 민철은 그간 인우를 따라다니며 많은 경험을 했고 엄청난 성장을 했던 것이다.

그러게 싸우길 한참.

"끄아아아아아!"

민철은 찢어질 듯한 여자의 비명소리에 다급히 고개를 젖혔다.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다.

그리고 민철은 보았다.

바투와의 격전지에서 한 움큼 피를 토한 채 공중에 떠오른 정지은을.

그러한 모습에 민철은 이성을 잃은 채 그곳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누니이이이이임!!"

* * *

격전지 최전방.

이곳은 지은의 등장으로 인해 판세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본래는 세계초인부대와 제라의 병력이 조금씩 밀리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법이 바투와 그의 정예병들을 노리자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지은의 분노는 대단했다.

늘 자신의 성질대로 살아왔던 그녀다.

하지만 바투가 내뱉은 성적인 이죽거림과, 녀석의 존재 자체는 지은의 분노를 더욱더 크게 만든 것이다.

한데도 바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도리어 바투는 지은의 마법으로 뛰어들며 해머를 휘두르기까지 했다.

"이따위 불장난으로 날 막을 수 있다고 여겼나!"

화르르르륵-!

지은은 답조차 없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리곤 온 정신을 집중하여 마법을 난사해 댔다.

그녀가 무차별적으로 뿜어내는 마법.

이러한 공격은 이곳에 위치해 있는 그 어떠한 초인들의 마법보다 강력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제이슨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애초 가브리엘 정이 저토록 강력할 줄도 몰랐었고, 나아가 그녀의 마법을 장난스레 받아내고 있는 바투의 모습은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도대체 저 괴물 같은 블랙오크 놈은 얼마나 강력한 것일까?

현재 이곳에 모여 있는 초인들 중 가장 강력할지도 모르는 가브리엘 정이 나섰다.

그런데도 녀석은 여유롭기 그지없다.

다만 그녀의 등장으로 인해 바투의 정예 병력들은 사정없이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바투이질 않나.

녀석이 제라를 치지 못하도록 최대한 막아 내야만 한다.

어느덧 제이슨은 칼과 방패를 고쳐 잡은 뒤 바투를 향해 내달렸다.

"내가 직접 돕는다! 텍사스의 악녀!"

"졸개들이나 조져! 이 새끼는 내꺼다!"

지은은 이를 악물며 제이슨의 도움을 거절했다.

그것은 자존심이었으며 분노였다.

이들이 이러거나 말거나 바투는 지은의 마법을 뚫으며 전진해 왔다.

"이대로라면 녀석과 부딪힌다! 위험해!"

"치잇!"

지은도 느끼고 있었다.

바투는 마치 빗길을 뚫듯 너무나도 가볍게 다가오고 있었다.

바투의 해머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지은의 마법들이 허무하게 부서졌으니까.

"큰 거 한 방이 필요해! 날 좀 지원해!"

자존심을 조금 버린 것일까?

지은이 다급히 외쳤다.

이에 제이슨은 그녀의 의중을 단박에 알아들었다.

애초 그녀는 듀얼클래스이기 이전에 강력한 마법사.

때문에 큰 거 한 방이라면 아마도 그레이트 메테오 스트라이크 급의 마법을 준비하려는 것일 테다.

그러한 최상위급 마법은 제아무리 지은이라도 시전 시간이 필요하다.

이내 제이슨은 지은이 영창을 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방패를 치켜든 뒤 바투를 막아섰다.

그리고 외쳤다.

"모든 초인부대는 날 지원해!"

안 그래도 연신 공격을 날려 대고 있는 초인부대였다.

그럼에도 제이슨은 강조의 강조를 거듭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그가 초일류 탱커라도 바투를 오랫동안 막아설 순 없을 것이다.

"최대한 막아 주마!"

이윽고 제이슨은 탱커의 1, 2, 3차 각성 스킬을 연달아 온몸에 둘렀다.

그러자 그가 서 있는 땅바닥이 움푹 꺼지며 공기가 단박에 응축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제이슨은 방패를 치켜든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뒤 떨리는 음성으로 바투를 향해 이죽댔다.

"와, 와라! 이 개자식아!!"

"호오. 꽤나 단단하겠군. 뭐, 그렇다면······."

바투는 흥미로운 눈동자로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그러길 잠시.

이내 바투는 몸을 낮춘 채 웅크리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오오-

그러자 웅크린 바투의 육체에서 검은색과 붉은색으로 이루어진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푸스스스스스스-

기체와 같은 기운이 끊임없이 바투의 육체를 감쌌고, 이어 바투는 웅크린 자세 그대로 고개만 든 채 제이슨을 노려보았다.

"영광으로 알도록. 전쟁에서 사용하는 첫 번째 스킬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그간 스킬조차도 사용치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바투였다.

그리고 이러한 순간에도 수많은 초인부대들이 멈춰선 바투에게 공격을 날려 댔다.

감히 근접전으로 나서지 못하는 초인부대.

이들은 대부분 마법과 투척을 통해 바투를 공략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투는 날아오는 모든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로지 제이슨만을 노려볼 뿐이었다.

그러한 바투의 모습에 제이슨은 침을 꿀꺽 삼키곤 다시금 외쳤다.

"오, 오너라······. 으라라라아아아아악!!"

파바바바바바바바밧!!

이윽고 바투의 신형이 대포알처럼 튕기며 제이슨에게로 쇄도해 왔다.

제이슨은 그 기세만으로도 겁이 덜컥 났다.

그랬기에 저도 모르게 기합을 내지르며 더욱더 다리에 힘을 주었다.

쐐애애애애앵-!

그리고······.

퍼어어어어엉-!

어느덧 바투의 육체가 제이슨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그러자 폭탄이 터지는 듯한 엄청난 소음이 들려왔고, 이어 먼지구름이 피어났다.

파스스스스스.

점차 걷히는 먼지구름 안에서는 그 어떠한 비명도, 신음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윽고 먼지구름이 모두 걷혔다.

그리고 그곳엔 바투의 육체를 그대로 받아낸 제이슨의 모습이 보였다.

"끄··· 끄흡······."

제이슨은 불안정한 호흡을 내뱉으며 입가에는 핏덩이가 물려 있었다.

그러나 제이슨은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서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바투가 제이슨을 향해 들이받았던 어깨를 빼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제이슨이 마치 트럭에 치인 사람처럼, 뒤늦게 퍽 하고 공중에 떠오른 것이다.

철푸덕-

이윽고 제이슨은 바닥에 쓰러진 채 피거품을 게워냈다.

이어 그의 전신이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후방에 위치한 사제들은 제이슨에게 회복마법을 마구잡이로 뿌려 댔다.

"끄, 끄으···!"

그러나 제이슨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저 경련할 뿐.

그리고 제이슨의 경련은 오래지않아 멈췄다.

이윽고······.

그의 가슴은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절명한 것이었다.

그러한 참혹한 광경에도 지은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저 끝끝내 마나를 모아댔다.

그러길 잠시.

뒤늦게 지은이 뒤편의 초인부대를 향해 말을 꺼냈다.

"다 뒤집어 버릴 예정이거든? 그러니까 지금 당장 최대한 뒤로 물러서."

말을 마친 그녀는 양손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쩌저저저저저적-!

그러자 그녀의 손바닥에 막대한 에너지가 응축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바투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뒤에 위치해 있는 정예병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가 감당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니다. 최대한 뒤로 대피해라."

그런 뒤 바투는 오히려 앞으로 나섰다.

이어 바투는 달렸다.

지은의 시전을 막기 위함이었다.

바투가 이 정도로 빠르게 움직임을 취하는 것을 보니, 보통 마법이 아닌 듯싶었다.

"으으으으으···!"

지은은 입술을 깨물었다.

제이슨이 조금만 더 시간을 벌어줬다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이제 곧 영창이 끝난다.

그러면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 미친 마법을 발사할 수 있었다.

타다다다다닥!!

바투는 이를 악물고 지은을 향해 내달려 오고 있었다.

이내 녀석은 단숨에 지척까지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 순간 지은의 영창이 끝났다.

지은은 다급히 시동어를 외웠다.

"퓨리 오브 더 헤··· 끄아아아아아!"

그러나 그녀의 마법은 불발되었다.

바투의 커다란 오른 주먹이 그녀의 복부를 그대로 때렸던 것이다.

그 한방으로 인해 지은은 공중에 붕 떠 버렸다.

어찌나 높게 떠올랐는지 지상이 까마득하게 보일 지경.

"끄, 끄흡······."

이내 복부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의해 숨이 덜컥 막혀왔다.

그런데 그 순간.

저편에서 민철의 외침이 들려왔다.

"누니이이이이임!!"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와 동시에 공중에서도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으니까.

"으아아아아아! 내가 왔다!!"

공중에 떠오른 채 고통스러워하던 지은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야 말았다.

"···동생이 다 죽어가니까 오는 거냐······."

-크아아아아아암!

쐐애애애애애액-!

어느덧 팜이가 추락하고 있는 지은을 그대로 받아냈다.

그제야 지은은 팜이의 등에 앉아 있는 인우를 볼 수 있었다.

인우는 즉시 지은을 무릎에 눕히며 인상을 찌푸렸다.

"꼴이 이게 뭐냐?"

지은은 고통에 신음하며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됐고, 이대로 도망가라. 니가 상대할 만한 놈이 아니야."

"그럴지도 모르지."

인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그 태평한 어조에 지은은 다시금 얼굴을 찌푸렸다.

"진짜 죽고 싶냐······."

지은의 경고에 인우는 피식 웃으며 딴 소리를 해 댔다.

"프로킨에 있을 때. 나를 잘 따르던 신하가 한 명 있었지."

로이드라는 녀석이었다.

놈은 항상, '폐하! 폐하!' 거리면서 '위험합니다!', '그건 안 됩니다! 통촉하여주십시오!' 따위의 말만 내뱉는 겁쟁이였다.

그럴 때마다 인우는 답하곤 했다. '닥쳐 이 새끼야. 안 되는 게 어딨어!'

이내 인우는 저 먼 곳을 응시하며 다시금 말을 이었다.

"돌이켜보면, 난 그놈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 딱 한 번을 제외하고 말이지."

황궁에 수백 마리의 드래곤이 침공해 왔을 때.

그때에 신하는 절규했다.

-폐, 폐하! 피하셔야 합니다!

-폐하! 어서 빨리!

-고정하시옵소서! 폐하! 황궁은 곧 함락됩니다! 수백 마리의 드래곤들이 지척까지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인우는 도망쳤다.

부귀영화와 그가 일구어 놓은 모든 것들을 내동댕이쳐 버리고 말이다.

"다시는, 그러지 않으려고."

인우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시는 빼앗기지도 도망치지도 않을 것이다.

그뿐이었다.

이내 인우는 지은을 팜이의 등 위에 눕혔다.

그런 뒤 으스러질 듯 파뇌의 손잡이를 움켜쥔 뒤, 지상에 오연히 서 있는 바투를 쏘아보았다.

"곱게는 안 죽인다. 바투."

< 116화 바투와의 혈전 (1) > 끝

ⓒ 호종이

< 117화 바투와의 혈전 (2) >

인우는 볼 것도 없이 지상으로 내려섰다.

그러자 초인부대의 누군가가 외쳤다.

"정인우다!"

이에 최전방에 위치해 있던 모든 병력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리고 그 중, 배다정이 앞으로 나서며 인우를 불렀다.

"정인우? 어딜 갔다 온 거야! 제이슨이 사망했다! 상황은 최악이라고!"

"아, 내가 디금 대화를 나눌 사화이 아니데."

인우가 다정을 바라보며 답했다.

한데 정인우의 발음이 무언가 이상했다.

엉성하다 랄까?

마치 입 속에 무언가 가득 담고서 말을 내뱉는 것 같았으니까.

다정은 전쟁 중이라는 특수한 상황마저 잊은 채 인우를 바라보았다.

"···하. 뭐야? 뭘 먹는 건데?"

"아지근 먹을 새악 없어. 입 아네 너어 둬슬 뿐."

인우의 양 볼따구니가 햄스터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초인부대야 모를 수밖에 없을 테다.

지금 인우가 양 볼에 사탕처럼 물고 있는 것은 힘의 정수였다.

이것이 최선이다.

바투와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면 아공간을 열어볼 시간이 없을 것이다.

해서 인우는 위급한 순간에 언제든 삼킬 수 있도록 2개의 힘의 정수를 양 볼에 비축해 둔 것이었다.

어찌 보면 귀엽기도 한 그 모양새에 다정은 힘이 쭉 빠져 버렸다.

"좀 진지해질 순 없나! 지금 이곳을 봐! 엄청난 병력이 목숨을 잃었다고!"

그녀의 말마따나 전방의 상황은 처참했다.

여기저기 흩뿌려진 선혈.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는 병장기들.

그리고 곳곳에 널려 있는 블랙오크 시체들은 그들이 바투 소속인지, 제라 소속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처참한 몰골로 널브러져 있었다.

게다가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던 초인부대의 인간들도 많이 죽어 있었다.

그 중엔······.

제이슨이 처참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다.

배다정의 시선을 따라 주변을 둘러본 인우.

이윽고 인우는 어눌한 발음을 최대한 억누르며 힘을 주어 말했다.

"일단 물러서서 후방을 지원해. 바투의 저지는 내 몫이다."

"제이슨마저도 바투의 공격에 한 방을 버티지 못했다! 전면으로 나서는 건 무리야!"

"걔랑 나랑 같냐."

인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디선가 연달아 포효가 들려왔다.

슈우우우우웅-!

이윽고 인우와 똑같이 생긴 분신 4명이 내려섰다.

인우의 분신을 확인한 모든 이들은 눈을 크게 떴다.

물론 다정의 경우 인우가 분신을 사용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일전에 보았던 분신들이 아니었다.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으니까.

이뿐만이 아니었다.

정인우조차도 엄청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전과는 완벽히 달라져 있었다.

그러나 어찌 이렇게 단시간 내에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일까?

그러한 생각도 잠시.

이윽고 인우가 말했다.

"이 순간을 위해 다 때려 부수고 왔다."

그렇게 말한 인우는 저편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바투를 쏘아보았다.

바투는 그저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인우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왔구나. 미친곰 정인우."

"야, 기억하냐?"

인우가 파뇌를 치켜든 채 다짜고짜 물었다.

그러자 바투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내뱉는 말은 필시 유언이 될 터.

얼마든지 들어주겠다는 여유였다.

이윽고 인우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너는, 반드시 내가 죽인다고."

"크크.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할 말은 끝났나?"

"어."

인우는 대답과 동시에 움직였다.

타다다다닥!

인우의 신형이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의 속력을 머금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인우는 달려 나가며 광폭화와 광기 폭발을 연달아 시전했다.

데미지를 뻥튀기 시켜주는 광폭화.

그리고 육체의 스피드를 비약적으로 상승시켜 주는 광기 폭발.

이 두 스킬로 인해 인우가 풍기는 위압감 자체가 달라졌다.

"으라아아아아!"

인우는 달려 나가며 대검 관통의 자세를 취했다.

엄청난 레벨 업을 거치며 뿜어내는 근력과 스피드 자체가 달라진 인우다.

그래서일까?

파뇌를 치켜든 인우는 하나의 창처럼 엄청난 기세를 머금었다.

쐐애애애애액-!

곧 이어 인우의 파뇌가 바투에게 닿았다.

카아아앙-!

"크으···!"

내심 얕보고 있던 바투.

그는 본능적으로 해머를 치켜든 채 이를 갈았다.

생각지도 못한 파괴력.

그러나 놀라움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아낄 필요 없다! 녀석이 방심하고 있는 이 순간이 최고의 기회야!'

인우는 바투를 지척에 두고 거대한 한 방을 준비했다.

"크으으으으으으으으!!"

인우의 잇새에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어진 광경은 놀라웠다.

푸슈우우우우우웅!!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그 어떠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무언가가 바투의 육체를 꿰뚫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크아아아아아아!"

이곳 전장에서, 처음으로 바투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바투를 고통스럽게 만든 스킬은 바로 광폭 무형검이었다.

보이지 않는 검.

결단코 피할 수 없는 무형검은 바투의 전신을 꿰뚫으며 터져 나왔던 것이다.

그 놀라운 광경에 지켜보고 있던 초인부대원들은 입을 쩍 하고 벌려 버렸다.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광경인가.

그 누구도 타격을 주지 못했던 바투다.

그러한 바투가 단 일격에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공격을 해낸 인우가 더 크게 지쳐 보이는 것은 착각일까?

"하아! 하아! 하아!"

자그마치 체력의 절반을 잡아먹는 광폭 무형검이다.

단숨에 깎여버린 체력.

이러니 육체가 잔뜩 놀라 모든 근육이 비명을 내지를 수밖에.

인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 순간.

뒤편에서 배다정의 외침이 들리기 시작했다.

"토, 통했다! 정인우의 공격이 통한다! 모든 사제는 정인우를 지원해!! 나머지 병력은 다른 오크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녀의 외침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엄청난 양의 회복 스킬들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스킬은 인우의 체력을 회복시켜 주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초일류급 사제들의 버프 스킬마저도 인우의 전신을 뒤덮었다.

"후우우우우우우."

어느덧 인우는 한결 편안해진 호흡을 할 수 있었다.

그러는 한편, 복부를 움켜쥐고 있던 바투는 핏발 선 눈동자로 인우를 바라보았다.

"이 자식···!"

도대체 무슨 스킬이었을까?

보이지도 않았다.

아니, 다른 건 다 떠나서 어찌 갑자기 이렇게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일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바투는 이를 악물었다.

이러한 상처에 물러설 바투가 아니었다.

"찢어 주마!!"

바투는 분노했다.

이윽고 바투는 예의 스킬을 시전하기 위해 준비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바투의 육체에서 검정색과 붉은색의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이것은 제이슨을 한 방에 보내버린 그 스킬이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

이에 인우는 곧바로 육체강화를 시전했다.

그리곤 대검 막기를 펼칠까 하다가 생각을 바꿨다.

애초에 그는 광전사.

힘에는 힘이다.

"그래 새끼야 해보자!"

인우가 기합을 내질렀다.

그리곤 곧바로 파뇌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그런 뒤 준비 자세를 취하는 바투의 머리통을 사정없이 내려찍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새빨간 검강이 둘러쳐진 인우의 파뇌.

마스터 레벨의 내려찍기는 실로 대단했다.

방어를 포기한 오로지 공격만을 위한 스킬이지 않나.

'이 새끼 대갈통을 부숴라!'

이내 인우는 분신들을 모조리 불렀다.

타닥! 타닥!

"크아아아아압!"

그러자 4명의 분신들이 광폭화를 시전하며 내달려왔다.

이어 분신들은 에너지를 응축시키기 위해 웅크린 바투의 머리통을 사정없이 내려찍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전후좌우.

아니, 사방팔방에서 5명의 정인우가 내려찍기를 꼽아 대고 있었다.

그러나 바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윽고 바투는 인우를 향해 예의 그 스킬을 날렸다.

"으아아아아아!"

패애애애애애애앵-!

바투의 거대한 몸체가 로켓포와 같은 추진력을 머금고 인우의 복부를 가격했다.

츠즈즈즈즈즈즈즈!!

인우는 그 공격에 가격당하며 그대로 밀렸다.

퍼어어어어어엉-!

이내 먼지구름이 끌어 올랐고, 제이슨 때와 마찬가지로 그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길 잠시.

"크, 크흡!"

이내 걷혀진 먼지구름.

그 안에 정인우는 한 움큼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바투는 그러한 정인우에게서 들이 받았던 어깨를 뽑아냈다.

그러자 인우는 한 박자 늦게 뒤로 날아가 버렸다.

한참을 날아가던 인우는 어느덧 땅바닥에 처박혔다.

철푸덕!

그리고 그러한 광경에 초인부대원들의 비명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제, 젠장! 정인우마저 당한 건가!"

"아직 몰라! 속단하기엔 이르다고!"

그러면서 초인부대원들은 정인우를 향해 온갖 치료 마법을 쏟아냈다.

이어 배다정마저도 정인우가 쓰러진 방향으로 다급히 뛰어갔다.

"정인우!"

그러나 그들의 걱정이 무색하게, 정인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났다.

심지어 조그마한 생채기마저 없을 지경.

그야말로 그 어떠한 상처도 없는 것이었다.

다만, 햄스터처럼 부풀어 올라있던 정인우의 양 볼이 하나 줄어들어 있었다.

힘의 정수를 하나 삼킨 것이다.

그로 인해 모든 체력을 회복한 인우였다.

"썅! 진짜 골로 갈 뻔했네. 빡대가리 새끼가 힘만 무식하게 세네. 후우."

인우는 찌뿌둥한 목을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 * *

그러한 모습에 다정은 어처구니가 없는지 저도 모르게 물었다.

"당신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러나 인우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바투를 향해 터벅터벅 걸었다.

챙-! 캉-!

지금 이 순간에도 이곳에서는 끝도 없는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많은 블랙오크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으며, 초인부대마저도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지금껏 초인부대가 바투를 저지했기에 망정이었다.

아직 제라는 살아 숨 쉬며 바투의 병력을 몰살하고 있었으니까.

나아가, 두 부족은 서로 엄청난 병력을 잃었던 것이다.

이제 남은 병력은 확연히 줄어든 상태였다.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이들의 전쟁이다.

때문에 별 볼일 없는 병사들은 머신건 앞에 총알받이처럼 나가떨어진 것이다.

문제는 바투다.

이 괴물 같은 놈을 해결해야만 이번 전쟁을 인류의 승리로 이끌 수 있을 터.

다시 말해, 진정한 전쟁은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대결이라는 뜻이었다.

인우는 그러한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이내 인우는 분신들을 대피시킨 뒤 다시금 바투를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바로 그때.

"우리도 후방 지원이 아닌 전방으로 나설 참이다!"

희망을 보았던 것일까?

정인우의 공격이 바투에게 통한다는 것을 직접 목격한 이들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지금이 최고의 찬스라는 뜻.

기회를 놓칠 초인부대가 아니었다.

초인부대의 대장들은 합심하여 돌격해 오고 있었다.

인우가 힐끗 보니, 배다정도 무기를 치켜들고 이를 악문 채 달려 나오고 있었다.

이에 바투는 자신의 정예병들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잔챙이들을 막아라!"

지금 바투는 정인우라는 존재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바투의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인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킬로 타격을 주지 않았나.

그것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압도적인 칼날이었다.

그 어떤 기척도 없이 쏘아지는 스킬이라니?

그뿐이라면 다행이다.

여태 바투의 스킬을 맞고 살아남은 존재는 없었다.

그런데 인우는 멀쩡하지 않나?

심지어 인우는 바투의 스킬을 정면으로 맞고도 어떠한 상처도 없었다.

말이 되는가?

생채기 하나 없다니?

사실을 놓고 보자면 힘의 정수의 위력이었다.

그러나 바투로서는 알 리가 없었다.

그저 바투가 보기엔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으로 밖에 비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곧, 바투에게는 커다란 혼란으로 다가왔다.

'도대체······.'

나아가 바투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다.

오직 단 한 명에 의해.

이것은 생전 처음 맛보는 두려움이었다.

바투는 태생부터 달랐다.

애초에 위대한 전사로 태어난 블랙오크.

그러한 바투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에 대한 공감 자체를 할 수 없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알아야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아닌가?

하지만 이제야 두려움이 무언지 알게 되었다.

정인우.

저 녀석은 도대체 뭐냔 말인가!

이내 바투는 정예병들을 앞세운 채 인우를 향해 달려 나갔다.

설마 이번 공격도 통하지 않을까?

바투는 슬슬 조바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바투의 눈동자를 주시하며 내달려오던 인우가 난데없이 소리쳤다.

"한 방 더 먹여주마!"

그 도발에 초인부대원들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니, 나 지금 공격 들어간다? 하고 경고를 하는 인간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인우는 자신 있었다.

광폭 무형검은 결단코 피할 수 없는 칼이다.

그 증거로, 지금 바투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 117화 바투와의 혈전 (2) > 끝

ⓒ 호종이

< 118화 바투와의 혈전 (3) >

흔들리는 바투의 눈동자.

그의 시야에는 지금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돌격해 오는 초인부대.

그 중심에서 파뇌를 치켜든 인우.

그러한 모든 광경은 무의미했다.

지금 바투의 머릿속을 가득 메운 것은 다급함이었다.

인우는 분명 한 방 더 먹여 주겠다고 외쳤다.

그것은 분명 다시금 그 스킬을 사용하려는 것이겠지.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그 스킬을.

난생 처음 느껴보았던 통증과 고통.

그것은 참으로 끔찍했다.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복부의 통증.

좀 전의 기억이 선연했다.

바투는 주춤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죽대는 인우의 외침이 들려왔다.

"표정 봐줄 만하다?"

"놈! 감히 인간 따위가!"

"아가리 벌리면 그 사이로 칼날 들어간다?"

젠장.

역시나 또 다시 그 스킬을 쓸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러한 생각이 이어지기도 잠시.

어느덧 인우가 있는 힘껏 무언가를 내던지기 시작했다.

쐐애애애액-!

바짝 긴장한 바투.

그러나 그것은 돌멩이였다.

98레벨의 암기투척.

마스터를 앞둔 암기투척은 엄청난 파공성을 일으키며 총알처럼 쇄도해 왔다.

푝! 푝!

돌멩이들이 바투의 가슴에 닿으며 힘없이 으스러졌다.

이에 바투는 눈을 부릅떴다.

"나를 놀리는 것이냐!!"

"아, 하도 쫄탱이처럼 바들바들 떨길래. 정신 좀 차리라고. 그래야 내가 좀 싸울 맛이 나지 않겠냐?"

"······."

인우의 도발.

그러한 광경에 옆에서 함께 돌격하고 있던 초인부대의 대장들은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이놈은 간덩이가 강철이라도 되는 건가?

어느 누가 바투를 도발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바로 코앞에서 말이다.

인우의 도발은 도리어 그들을 주춤거리게 만들만큼 집요하고 악랄했다.

그 정도까지는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

라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지경이었으니까.

* * *

붉은 복면의 사내.

멸살단의 단장 지천우는 끝도 없이 몰려드는 제라의 병력들에게 사정없이 대검을 박아 넣었다.

바투의 명을 받아 멸살단을 이끌고 이번 전쟁에 참여한 것이다.

중요한 전쟁이다.

통합을 앞둔 전쟁이었으니까.

그러나 지천우는 오래지않아 대검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바투의 비명소리 때문이었다.

처음엔 잘못들은 것이라 여겼다.

바투의 비명이라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였다.

게다가 지금 바투는 지천우를 찾고 있었다.

-지천우! 지천우! 어디 있느냐!

얼이 빠지고 혼이 나간 외침.

이윽고 지천우는 멸살단을 이끌고 이동했다.

그러나 바투를 향해 가지 않았다.

그 대신 언덕바지에 올라갔다.

그런 뒤 그곳에서 바투가 전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때, 멸살단원 한명이 지천우를 향해 물었다.

"단장님. 바투님을 지원하러 가지 않습니까?"

"어디서 미친 소리를. 바투의 비명소리를 듣지 못한 거냐?"

그러면서 지천우는 저 먼 곳에 있는 바투를 가리켰다.

최강의 블랙오크 바투.

그는 지금 정인우라는 녀석에 의해 궁지에 몰린 상태였다.

그 광경에 단원은 강한 어조로 말했다.

"바투님이 이번 전쟁에서 지면 어떻게 합니까? 지원을 가야 하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멍청한 놈. 바로 그게 문제다."

"네?"

"바투는 여기까지다. 그것은 우리가 도우러 간다 해도 바뀌지 않을 상황이야. 저 정도의 전투력을 지닌 바투가 궁지에 몰렸는데, 우리가 도운다고 해서 뒤바뀔 것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냐?"

"······."

단원은 침묵했다.

그러자 지천우는 이어서 말했다.

"모두가 개죽음을 당하게 되겠지. 바투는 끝이다. 놈은 이제 더 이상 우리를 보호해 주지 못할 것 같군."

멸살단.

이들은 SG그룹의 비밀 무력단체였다.

그러나 만천하에 드러난 SG그룹의 악행.

그로 인해 멸살단은 수배령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들은 갈 곳을 잃었었다.

해서 빌붙은 것이 바투였다.

하지만 바투는 이제 명을 다해 가고 있었다.

그러니 더 이상 붙어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지천우는 냉철했고, 결단코 정이나 충성심 따위에 흔들리는 인물이 아니었다.

어느덧 단원이 다시금 물었다.

"단장님. 그럼 바투님이 죽으면···?"

"놈의 옆에 붙어 있으면 안전할 것이라 여겼지. 나아가, 세계정복까지 노려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끝이다. 더 이상 바투에게 빌붙어 있을 이유가 없지 않나?"

"그렇다면?"

"초인부대는 아마 이대로 바투를 죽이고 이번 전쟁을 끝낼 참인 것 같다."

"그러면 제라가 통합을 하게 되겠군요. 저희가 예상하기로는, 인류는 두 부족의 괴멸을 유도하려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제라의 통합이라니······."

"공멸. 그게 가장 좋긴 하지. 하지만 두 부족이 공멸할 때까지 싸우는 동안 바투는 누가 막지? 바투를 막지 못하면 제라는 죽고 그걸로 바투는 통합을 한다. 즉, 지금으로서는 바투를 죽이는 게 최선일 테지."

아마 이번 통합은 제라가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반쪽 통합일 테다.

이미 엄청난 숫자의 블랙오크들이 사망했다.

또한, 결정적으로 제라는 인간, 아니 정인우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것은 즉, 정인우는 적당한 때를 노려 제라의 뒤통수를 치는 영악함을 보여 줄 테지.

그러한 구도로 이어질 것이 뻔했다.

뭐가 되었건, 바투가 사망하면 블랙오크들은 인류에 의해 씨가 마를 것이다.

이 전쟁의 핵심 포인트는 어디까지나 바투였으니까.

어느덧 지천우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거 참······."

SG그룹이 최고였다.

해서 그들의 휘하로 들어갔다.

그리하면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거라 여겼으니까.

하지만 SG그룹은 망했다.

그로인해 벌어진 수배령.

멸살단은 갈 곳을 잃고 하는 수 없이 바투에게 붙었다.

그리고 이번에야 말로 안전할 것이라 여겼다.

바투는 비정상적으로 강했으니까.

하지만 바투마저도 무너졌다.

"참으로 우습지 않은가?"

두 집단 모두 정인우의 손에 의해 무너졌다.

도대체 저놈과 무슨 악연이기에.

아니, 다 되었고,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다.

저 빌어먹을 정인우라는 녀석 때문에.

이윽고 지천우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우선은···중국을 벗어난다."

그렇게······.

바투 부족 소속의 멸살단은, 중국에서 자취를 감췄다.

* * *

피가 흐른다.

입가에서도, 배에서도, 나아가 전신에서도.

피가 흐르지 않는 곳이 없다.

새카만 육체를 타고 흐르는 붉은 선혈은 굉장히 위험해 보였다.

"하아, 하아···하아······."

피를 흘려본 적이 있었던가?

바투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없었다.

피를 흘려본 적은.

그리고 아마 오늘 흘리는 피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그러한 예감이 들었다.

'마지막이라······.'

죽음을 목전에 두자 머릿속에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사고가 정지하고 시야가 흐릿해진다.

이런 게 바로 죽음일까?

이런 게 바로 공포인가?

바투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그런 뒤 어깨에 파뇌를 걸치고 있는 정인우를 노려보았다.

이윽고 녀석이 파뇌를 창처럼 꼬나 쥐고 돌격해 왔다.

파바바바밧!

흙덩이가 튀고 놈의 모습이 빠르게 가까워졌다.

바투는 본능적으로 다가오는 놈의 모가지를 움켜쥐었다.

"놈! 난 이대로 쓰러지지 않는다!"

바투는 그대로 놈의 목을 잡고 으스러뜨렸다.

뿌득-

뼈가 끊어지는 끔찍한 소음.

그리고 손을 타고 느껴지는 짜릿한 감촉.

놈의 목숨을 끊었다.

"크으으!"

바투는 이를 갈며 함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놈은 또 다시 나타났다.

하나, 둘, 셋, 넷.

아직도 4명이나 남아 있었다.

이윽고 4명의 인우가 바투를 향해 내달려 왔다.

카아아아아앙-!

거대한 해머와 파뇌가 부딪히며 커다란 소음이 전장을 메웠다.

현존하는 최강의 블랙오크 바투.

그리고 현존하는 최강의 초인 정인우.

둘의 대결은 그야말로 숨이 막혀올 지경이었다.

인우는 이미 한쪽 볼따구니에 비축해 두었던 힘의 정수를 삼킨 뒤였다.

다시 말해 이제 남은 목숨은 없다.

그럼에도 인우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크아아아아아압!"

"크르!"

이미 대결은 둘의 구도로 굳혀진 상태였다.

바투를 궁지에 몰기 위해 모든 대장들이 합심했다.

그리고 대장들 중 3분의1이 바투에 의해 사망했고, 나머지는 극심한 부상과 함께 드러누워 있는 상태였다.

각국의 대표로 온 초인들이 이지경이 났을 정도다.

게다가 인우까지 가세하니 바투는 그야말로 궁지에 몰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대장들의 몫은 끝났다.

살아남은 대장들은 이미 전투불능.

그들은 그저 정인우와 바투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모든 것이 정인우의 손끝에 달린 상황.

인우는 그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몸을 사리지 않고 바투를 압박해 나갔다.

카아아아앙-!

인우의 파뇌가 바투의 해머와 부딪혔다.

이내 둘의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크르으으으!"

"으라아아아!"

둘은 기합을 내질렀다.

불끈 솟은 팔뚝 근육에서는 거머리 같은 핏줄들이 꿈틀댔으며,

머리 꼭대기까지 끓어오른 힘에 의해 눈동자에는 거미줄 같은 실핏줄이 튀어나왔다.

인우는 이를 악물었다.

어찌나 꽉 깨물었는지 턱이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바투의 힘을 견딜 수 없었다.

그나마도 지칠 대로 지친 바투였기에 힘겨루기가 가능했다.

그러길 한참.

이내 인우는 불시에 힘을 빼며 파뇌를 거뒀다.

그런 뒤 곧바로 육체강화와 함께 파뇌를 가슴팍에 대었다.

그러자 대검 막기가 펼쳐졌고, 바투의 해머가 인우의 방어에 가로막혔다.

카가가가가각!

쇠가 갈리는 소음. 그 순간 인우는 분신을 움직였다.

"크으!"

"크아아!"

그러자 남아 있는 3명의 분신들이 바투의 뒤를 노렸다.

퍽! 퍽! 퍽!

분신들의 무기가 바투의 전신을 두드렸다.

온몸 구석구석 상처가 가득한 바투다.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공격.

그러나 지금은 통증을 유발했다.

이에 바투는 부르르 몸을 떨며 고함을 내질렀다.

"크으으으으! 날파리 새끼들!"

어느덧 바투는 눈을 부릅뜨며 분신들의 목을 분지르기 위해 왼손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인우는 바투의 오른손을 공략했다.

녀석의 오른손에 쥐어진 거대한 해머.

인우는 그러한 해머를 향해 내려찍기를 꼽아 버렸다.

쾅! 쾅! 쾅! 쾅!

"크으으으!"

순간 바투는 해머에 가해진 충격에 의해 손을 부르르 떨었다.

손아귀가 찢어질 것만 같았다.

쾅! 쾅!

이어 두 차례 더 이어진 내려찍기.

바투는 기어코 해머를 놓쳐 버렸다.

무장이 해제된 바투.

녀석은 당황했다.

"이 노오옴!!"

"뭐 이 새끼야!!"

인우는 바투의 고함에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다.

"젠장! 무기를!"

그리고 바투가 떨어진 해머를 줍기 위해 손을 뻗은 순간.

그 순간 인우는 파뇌를 공중에 띄웠다.

우우우우우웅-!

그런 뒤 광폭화를 시전했다.

한순간, 2배로 껑충 뛰어오른 데미지.

이어 인우는 곧바로 광폭 어검을 날려 버렸다.

파바바바바밧-!

인우의 파뇌가 그의 의지를 따라 바투를 노렸다.

이에 바투는 해머를 향하던 손을 거둔 뒤 방어했다.

"크아아아아아아!!"

"으라아아아아아!!"

둘의 고함이 쏟아졌다.

어느덧 인우는 광폭 어검을 유지한 채로 떨어진 바투의 해머를 주워들었다.

족히 3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크기의 해머.

지금, 바투의 무기가 인우의 손에 들려 있었다.

"저며 줄게. 개자식아!"

인우는 볼 것도 없이 해머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인우에게서 엄청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인우는 혼신의 힘을 다했다.

파뇌의 광폭 어검.

그리고 해머의 내려찍기.

이것은 스킬 2중첩이었다.

< 118화 바투와의 혈전 (3) > 끝

ⓒ 호종이

< 119화 바투와의 혈전 (4) >

파밧 파밧!

바투는 인우의 광폭 어검을 막아내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

인우는 볼 것도 없이 해머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후우우우웅-!

이것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했다.

말해보자면 스킬 2중첩.

그나마도 인우의 내려찍기가 마스터였기에 가능한 더블 스킬이었다.

이윽고 인우는 하늘 높이 치켜 올린 거대한 해머로 바투의 머리통을 내려찍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해머는 내려찍기 스킬에 의해 붉은 검강에 둘러쳐졌다.

그리고 해머는 엄청난 파괴력을 머금고 바투를 짓누르고 있었다.

"크, 크훕!"

광폭 어검.

거기에 내려찍기까지.

"크아아아아아악!"

어느덧 인우의 공격을 막기 위한 바투의 팔뚝이 으스러지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인우는 멈추지 않았다.

"뒈져!! 이 새끼야!!"

핏발 선 눈동자.

목젖 끝까지 차오르는 광기.

인우는 미친 듯이 고함을 내질렀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쾅! 쾅! 쾅! 쾅!

어느덧 살아남은 분신들마저도 가세했다.

분신들 또한 인우와 똑같은 생각인지 볼 것도 없이 내려찍기를 꼽기 시작했다.

콰광! 콰광! 콰광! 콰광!

대포알이 땅거죽을 후려치는 듯한 무지막지한 소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크아아아아아!"

어느덧 팔뚝의 모든 뼈가 으스러진 바투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고함을 내질렀다.

살과 근육만 남아 버린 그의 거대한 팔뚝이 오징어처럼 꿈틀댔다.

콰광! 콰광! 콰광! 콰광!

그럴수록 인우의 해머는 더더욱 바투의 육체 깊숙한 곳을 찍어 눌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광폭 어검으로 움직이는 파뇌의 공격 또한 바투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었다.

점차 허물어지는 바투.

그리고 그럴수록 지켜보던 대장들의 입은 크게 벌어지고 있었다.

이건 그야말로 미쳤다.

정인우는 바투를 파괴하고 있었다.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지경까지 몰아가고 있었다.

도대체 정인우가 가진 무력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이제는 가늠조차 되지 않을 지경이다.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바투다.

그러한 바투가 지금 이 순간 무너지고 있었다.

이윽고 마지막 순간.

인우는 내려찍기를 거뒀다.

그런 뒤 모든 힘을 쥐어짜냈다.

이윽고, 체력의 절반을 소모하는 광폭 무형검이 펼쳐졌다.

파바바바바밧!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지만, 바투의 전신이 꿰뚫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다.

인우의 광폭 무형검은 근방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꿰뚫기 시작했다.

분신들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파바바바바밧!

가장 먼저 인우의 분신들이 사망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것이 최후의 일격이라 여기는 인우였다.

"쿠룹!"

어느덧 거대한 가슴팍 곳곳이 뚫린 바투가 피를 토해 냈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바투의 뚫린 가슴을 비집고 핏물이 쏟아져 나왔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인우는 쓰러져 가는 바투를 바라보며 거친 숨을 토해 냈다.

모든 체력을 쥐어짜냈다.

솔직히 말해 일어설 힘조차 없었다.

인우는 땅을 향해 거대한 해머를 거꾸로 처박은 뒤에 그곳에 간신히 기대 서 있었다.

"쿨럭!"

바투는 끊임없이 피를 토해 냈다.

철푸덕-

이윽고 바투의 무릎이 꿇렸다.

솨아아아아아아아.

그 순간.

주변은 고요로 점철됐다.

지켜보던 대장들도, 공중에 떠 있는 팜이도, 그 위에 누워있던 지은도.

그리고 초인부대도,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는 병력들도.

그들 모두의 시선이 이곳으로 집중됐다.

"카아아아······."

어느덧 바투는 선혈이 뿜어져 나오는 가슴팍에 손을 가져다댔다.

손바닥은 금세 붉게 물들었다.

"끄르으으······."

성대에 가득 차오른 핏물에 의해 말조차 똑바로 나오지 않았다.

바투는 그저 쿨럭대며 초점 없는 눈동자로 정인우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바투가 간신히 한마디를 내뱉었다.

"···니가, 이겼다······."

바투의 전신이 세차게 떨려왔다.

통합도, 정복도, 그러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눈앞에 서 있는 정인우라는 존재 때문에.

이윽고 인우는 바투를 향해 힘겹게 걸어 나갔다.

그리고 딱 한마디를 내뱉었다.

"내가 말했지. 다시 보게 되는 날, 널 죽여 버리겠다고."

그 말에 바투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내뱉었다.

"크, 크크, 크훕!"

그의 웃음 속에도 핏덩이가 배어있었다.

이제는 끝이다.

이윽고 바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빌어먹게도 푸르렀다.

"맑군."

쓰걱-!

그 순간.

바투의 목이 날아갔다.

데구르르르.

녀석의 목을 날린 인우는 땅바닥을 구르는 놈의 머리통을 향해 말했다.

"정복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나조차도 30년이 걸렸거든.

인우는 뒷말은 삼켰다.

[경험치를 11,550,000+11,550,000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이어진 바투의 경험치.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만, 인우는 놀라움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간 잡아온 족장들의 경험치는 100만 가량.

한데 바투는 2000만이 넘어갔다.

이마저도 깔짝대며 기여했던 초인부대의 대장들과 나뉜 것일 테다.

어찌되었건, 이제 바투는 죽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인우는 전방에 위치해 있는 바투 부족을 향해 소리쳤다.

"꿇어 새끼들아!!"

그 커다란 고함에, 녀석들은 굳었다.

최전방에서 굳었던 움직임은 마치 도미노처럼 뒤를 향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누군가가 병장기를 땅바닥에 버렸다.

순간.

타라라라라라라라라.

엄청난 숫자의 병장기들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것은 실로 경이로운 장면이었다.

단 한 명이 내지른 고함에 의해, 모든 블랙오크들이 병장기를 내던지고 백기를 들었으니 말이다.

그러길 한참.

어느덧 살아남은 초인부대의 대장들이 인우를 향해 다가왔다.

그들은 모두 바투의 시체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조금의 탐욕과, 궁금증이 담긴 시선들이었다.

인우는 피식 웃었다.

이번엔 폭탄이라며 사기를 칠 생각도 없었다.

그저 담담히 말했다.

"바투의 시체는 내꺼다. 이의 있는 놈?"

그 말에 모두가 입을 꾹 다물었다.

어느 누가 감히 이 남자에게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뒤지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 * *

퀸의 하루는 늘 같았다.

사육장을 돌보며 괴수들에게 먹이를 준다.

그리고 살이 오동통하게 오른 놈은 피를 조금 빨아준다.

죽여선 안 된다.

죽이는 것은 오직 한 달에 한 번, 도축을 할 때뿐이다.

그렇게 사육장 일을 끝마치면 빨래를 한다.

냄새나는 민철이의 작업복도, 아무 데나 굴러다니는 양말들도, 퀸의 옷도.

저택은 퀸 덕분에 24시간 내내 먼지 풍길 일 하나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는 굉장히 신경 쓰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주인님이 언제 돌아올지 모를 일이다.

뉴스를 통해 전해 듣기론, 가장 강했던 블랙오크가 사망했단다.

전쟁은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물론 아직 제라라는 녀석이 남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인류의 안전을 위해 세계초인협회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 전했다.

제라라는 블랙오크가 통합을 한 것은 맞지만, 그건 반쪽 통합이라나 뭐라나.

그딴 건 퀸에게 아무래도 좋았다.

정작 퀸의 관심은 다른 곳에 쏠려 있었으니까.

"헤에."

지금 퀸은 TV에 최대한 얼굴을 가까이 한 채였다.

그리고 퀸은 TV를 통해서 그토록 보고 싶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정인우.

그녀의 주인.

이번 전쟁으로 인해 정인우는 세계적인 이슈를 몰고 왔다.

샐 수 없는 마스터 스킬을 보유했다느니, 바투를 단신으로 물리쳤다느니, 전쟁의 증언들이 쏟아졌던 것이다.

언론매체는 이슈를 무더기로 몰고 다니는 정인우에 대해 연일 보도했고, 이 덕분에 퀸은 TV에서 항상 정인우를 볼 수 있었다.

역시나 주인님은 멋졌다.

그렇게, 퀸은 헤벌레 입을 벌리곤 드라마 대신 뉴스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 어떤 드라마 남자 주인공도 인우에 비할 바 못됐다.

인우에 비한다면 그야말로 오징어였고 외계인이었다.

물론 정인우가 그렇게 말도 안 될 정도로 잘생긴 외모는 아니다.

다만 남자답게 생겼다랄까?

하지만 콩깍지가 단단히 씌어 버린 퀸에겐, 그 무엇보다 빛날 수밖에.

-이상으로 9시 뉴스를 마칩니다.

어느덧 뉴스가 끝났다.

그러자 퀸은 아쉬움이 가득 담긴 얼굴이었다.

이내 그녀는 TV전원을 꺼 버렸다.

오늘 안에 TV녀석과는 다시 볼 일은 없었다.

이내 퀸은 컴퓨터를 켰다,

그런 뒤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그녀는 불현듯 무언가가 떠올랐다.

일전 도축을 하다가 채취했던 아티펙트.

퀸은 이 반지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목줄을 만들어 반지를 끼우곤 목걸이를 하고 다녔다.

어느덧 퀸은 반지를 유심히 훑었다.

역시나 범상치 않아 보인다.

반지는 물처럼 투명한 빛깔이었고, 중앙에는 에메랄드 빛깔의 보석이 박혀 있었다.

"아, 한번 찾아볼까?"

그녀는 이 반지의 정보를 찾아보기로 결정했다.

이내 초인관리국의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런 뒤 반지의 종류들을 모조리 훑기 시작했다.

그렇게 2시간쯤 지났을까?

"하아아암."

퀸은 피곤한지 하품을 했다.

여태껏 발견된 모든 아티펙트의 정보가 가득한 이 홈페이지.

그런데 이 반지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하다못해 비슷하게 생긴 반지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도대체 이건 뭘까?"

퀸은 반지를 만지작대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 * *

<정인우>

레벨 : 303

특성 : 광전사

스텟 : [근력 620+50+10+15] [민첩 395+40] [마력 165+10+40] [체력 360+40+10+10]

미분배 포인트 : 30

[EXP 1,500 / 7,040,000]

바투를 잡고 무려 3번의 레벨 업을 했다.

3차 각성된 후로 경험치의 총량이 70%가량 늘어났음에도 말이다.

이것은 실로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양이었다.

기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인우를 즐겁게 해 주는 것은 보너스 포인트였다.

전능자의 잠재력.

그로인해 2배로 뻥튀기 된 포인트.

해서, 본래는 3레벨 업을 통해 15포인트가 생겨야 정상이겠지마는, 지금은 무려 30포인트가 생겼다.

기존 15포인트는 근력, 체력, 민첩에 적절히 투자하고 나머지 15포인트는 마력에 꼽아 버릴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현재 인우가 지닌 마법만 해도 3종류다.

"흐음."

잠시 고민하던 인우.

이내 인우는 30포인트 중, 근력 10, 체력10, 민첩5, 마력5, 이렇게 나누어 투자했다.

어차피 이제는 보너스 포인트 부자가 될 테니 마력에도 조금씩 투자하는 것이 현명할 듯싶었다.

"흐음."

지금 인우는 제라를 뒤로 한 채 언덕에 홀로 서 있는 상태였다.

제라는 블랙오크를 통합했다.

그러나 그것은 반쪽 통합이었다.

병력은 확연히 줄어들어 있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어찌되었건 두 부족은 열심히 싸웠다.

이제 인류는 남아 있는 제라와 그의 병력들만 처리하면 되는 상황.

이것은 솔직히 어려울 것이 없었다.

줄어든 병력도 병력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제라가 인우를 단단히 믿고 있다는 것이다.

인우가 그러한 제라의 믿음을 짓밟아 주면 될 일이었다.

디테일한 작전은 이미 인우의 머릿속에 구상된 상태였다.

그리고 그보다 지금 인우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투의 시체였다.

어느덧 인우는 아공간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 넣어 두었던 바투의 시체를 꺼냈다.

자그마치 2000만 경험치가 넘어가는 바투다.

놈은 도대체 무얼 지녔을까.

"니가 얼마나 잘난 놈인지 지금부터 확인해 볼게."

이윽고 인우는 바투의 시체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 119화 바투와의 혈전 (4) > 끝

ⓒ 호종이

< 120화 바투의 전리품 >

머리통이 날아간 바투의 시체.

인우는 조금은 들뜬 기분으로 해체를 시작했다.

역시나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힘의 정수였다.

강력한 생명체들이 지녔던 생전에 힘은, 그들이 죽은 직후에 정수로서 남는다.

그리고 바투는 비정상적으로 강했던 만큼 여타 다른 족장들과는 달랐다.

떠오른 힘의 정수는 5개였으니까.

'이 정도면 성장기 드래곤 수준이려나?'

드래곤은 수천 년을 살아가는 존재다.

놈들은 그런 만큼 강하다.

현재 바투가 내뱉은 힘의 정수는 5개.

이는 500살 정도 되는 드래곤들이 토해내는 양이었다.

강하다강하다 생각은 했지만 역시나 대단했다.

'어쨌든, 첫 번째 전리품은 힘의 정수 5개로군.'

이 다섯 개의 정수는 굉장히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인우는 아공간에 힘의 정수를 모두 넣어버렸다.

이어서 바투의 신체 내부를 훑었다.

그러자 엄청난 크기의 마나정수가 보였다.

인류의 신개념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는 마나정수.

그러나 이것은 인우에게 그리 중요한 전리품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인우는 마나정수를 아공간을 향해 대충 내던져버렸다.

그런 뒤 무언가를 찾기 위한 눈동자로 유심히 녀석을 훑었다.

그리고 오래지않아 인우의 입가가 시원하게 벌어졌다.

"역시!"

가장 반가운 전리품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투명한 색깔을 지닌 유니크 스킬 볼이었다.

그것도 한 번에 가늠 되지 않을 정도의 개수.

"저게 도대체 몇 개야?"

인우는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으며 유니크 스킬 볼을 하나씩 채취하기 시작했다.

"하나."

우선 한 개.

채취한 유니크 스킬 볼에 묻은 핏물을 정성스럽게 닦아냈다.

자신의 입속에 들어갈 것이니까 당연한 처사였다.

"두 개."

이윽고 두 개.

그리고 셋, 넷, 다섯...

"허, 열 개냐."

바투의 몸을 비집고 튀어나온 유니크 스킬 볼은 도합 10개였다.

맙소사.

제아무리 중복 스킬의 꽝이 난무하는 유니크 스킬 볼이라지만, 이 정도의 양이라면 무언가는 반드시 습득할 것이다.

인우는 또 다른 전리품을 찾아보는 것조차 뒤로 미뤘다.

그리곤 채취한 유니크 스킬 볼을 입속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우움."

일단 3개를 넣었다.

입 안 가득 느껴지는 이질감.

이윽고 스킬 볼들을 삼켰다.

.

.

[이미 배운 스킬입니다.]

[이미 배운 스킬입니다.]

['흡혈 칼날'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

.

"오호?"

짧은 감탄과 함께 스킬의 정보를 불러왔다.

[흡혈 칼날 Lv.1 (3%)] - 대상을 타격할 때마다 생명력을 흡수합니다.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흡수율이 증가합니다.)

광전사인 인우는 스스로 생명력을 회복할 방법이 없다.

오히려 갉아 먹는 스킬이 대부분이었으니까.

해서, 생명력을 수급할 수 있는 스킬이 언제 나오나 싶었다. 그런데 때마침 생명력을 흡수하는 스킬을 얻게 되었다.

흡수하는 양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도움이 될 수밖에 없는 스킬이었다.

인우는 꽝이 2개나 떴음에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곤 다시금 3개의 유니크 스킬 볼을 입 안에 넣었다.

['스트렝스'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힐'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이미 배운 스킬입니다.]

"오우!"

연달아 복덩이가 굴러왔다.

사제의 고유 스킬을 2개나 습득한 것이다.

바투가 뱉어낸 스킬 볼은 뭐가 다르기라도 한 것일까?

오랜 시간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스트렝스 Lv1 (4%)] - 대상의 근력을 일정 시간동안 상승시킵니다.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증가율이 상승합니다.)

[힐 Lv1 (5%)] - 대상의 생명력을 조금 회복합니다.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회복력이 증가합니다.)

부족한 근력을 보완해주는 보조 버프 마법 스트렝스.

그리고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힐!

다른 건 몰라도 힐만큼은 대단히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테스트를 해볼까나.'

우선, 인우는 스트렝스부터 자신에게 시전 해보았다.

그러자 인우의 신체에서 파란 빛깔의 오로라가 일었다.

[스킬 '스트렝스'로 인해 시전자의 근력이 10 증가합니다.]

10의 근력.

나쁘지 않다.

두 개의 레벨을 올려야 획득 가능한 포인트 수치였으니까.

물론, 보너스 포인트 2배의 패시브를 지닌 인우에게는 한 개의 레벨만 올려도 획득 가능한 수치였다.

'스킬 레벨이 1밖에 되지 않으니, 아직 쓸 만한 수치는 아니네.'

이내 인우는 힐 시전을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회복률이 어느 정도이려나."

중얼거리던 인우는 아공간에서 단검 하나를 빼들었다.

이것은 일전 메리에게서 얻어냈던 전리품.

족장이 들고 있던 것 답게 상당한 위력을 지닌 단검이었다.

인우는 이 단검을 이용해 자신의 팔뚝에 생채기를 내보았다.

날카로운 칼날은 어떠한 소리도 없이 살갗을 베어냈다.

길게 그어진 상처에서는 한 박자 늦게 핏물이 흘렀다.

인우는 상처를 잠시 방치하다가 힐을 시전 해보았다.

이윽고 새하얀 빛 무리가 인우의 팔뚝을 뒤덮었다.

그러자 피가 멎으며 상처가 서서히 아물어가기 시작했다.

"음."

상처가 아물어 가는 동안 마나는 지속적으로 닳고 있었다.

애초에 블리자드를 시전하기 위해 마력에 꽤나 큰 투자를 했던 인우다.

그랬기에 상처가 아무는 동안 힐을 지속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이윽고 상처는 모두 아물었다.

시간은 대략 20초 정도가 걸렸다.

"회복률이 많이 아쉽네."

인우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고작 1레벨의 힐이니,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것도 우습긴 했다.

회복률이 약하니 조그마한 상처 하나를 치유하려 해도 엄청난 마나 소비가 있었다.

이것은 힐 스킬의 레벨이 올라가야지만 해결될 문제였다.

다시 말해, 열심히 숨 쉬고 걸어 다니면 될 일이다.

이내 인우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나머지 스킬 볼을 하나씩 입속에 넣기 시작했다.

현재 남은 유니크 스킬 볼은 도합 4개.

[이미 배운 스킬입니다.]

[이미 배운 스킬입니다.]

[이미 배운 스킬입니다.]

.

.

"으..."

여태 좋은 스킬들을 꽤나 많이 습득한 후폭풍일까.

3연속 꽝이 떠버렸다.

유니크 스킬 볼은 이미 배운 스킬이 뜰 확률이 굉장히 높은 악마의 볼.

그렇기에 스킬이 많아질수록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유니크 스킬 볼은 한 개가 남은 상황.

인우는 될 대로 되라며 미련 없이 그 한 개를 입속에 밀어 넣었다.

그런데 재밌게도 마지막 순간에 메인디쉬가 등장했다.

['헬 파이어'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

인우는 침묵했다.

맙소사.

헬 파이어라니.

이렇게 되면 파이어 볼은 이제 작별이다.

또한 마력 스텟을 올릴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이미 블리자드까지 시전 가능한 마당에 헬 파이어를 생성하지 못할 리는 없다.

다만, 연달아 사용하기 위해선 높은 마나 보유량은 필수다.

헬 파이어는 무시무시한 마법이다.

이 마법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시전시간이 없다는 것.

헬 파이어는, 블리자드와 같은 거대한 범위 마법이 아닌 단발 마법이었다.

즉, 마법사들이 지닌 실전 스킬의 꽃인 것이다.

헬 파이어는 파이어 볼 따위와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백색의 불꽃으로도 유명한 이 마법은 극강의 초고열을 자랑한다.

[헬 파이어 Lv1 (3%)] - 지옥의 불꽃을 소환하여 적을 태워버립니다.

인우는 볼 것도 없이 오른 손에 헬 파이어를 띄워보았다.

화르르르륵-!

그러자 지닌 마나의 절반이 닳아버리며, 새하얗게 타오르는 헬 파이어가 떠올랐다.

"와우..."

인우의 파이어 볼 또한 마스터 레벨답게 새하얀 불꽃이다.

하지만 헬 파이어는 그 크기부터가 남달랐다.

나아가, 느껴지는 기운 자체가 달랐다.

고작 1레벨이다.

그런데도 이 정도라니.

"후후."

이번 10개의 유니크 스킬 볼은 참으로 만족스러웠다.

이내 인우는 헬 파이어를 거뒀다.

그런 뒤 다시금 바투의 시체를 헤집기 시작했다.

무언가 더 나오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그 무엇도 나오지 않았다.

"더 없는 건가."

그렇게 중얼거리길 잠시.

어느덧 인우의 시선이 으스러진 바투의 팔뚝에 닿았다.

"어라...?"

인우의 동공이 잠시 흔들렸다.

왜 여태 저걸 못보고 있던 거지?

역시나 등잔 밑이 가장 어두운 것일까?

어느덧 인우는 홀린 듯 바투의 팔뚝에 감긴 팔찌를 빼냈다.

광택이 없는 검정색 팔찌는 단출해보였다.

이렇게나 새카맣고 특색이 없으니 보이지 않았을 수밖에.

팔찌는 바투의 살색과 똑같다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다만, 무언가가 각인 되어 있었다.

그것은 글자였다.

그리고 각인된 글자는 지구에 존재하는 문자가 아니었다.

고대 프로킨 어(語)였으니까.

이것은 일종의 주술 문자였다.

그것도 엄청난 수준의 존재가 남긴 문자.

이내 인우는 팔찌의 정보를 불러왔다.

[초월의 팔찌]

종류 ? 팔찌

기능 ? 맨손 전투력 5배 상승, 근력 50 상승

발동조건 ? 근력 500 이상

"미쳤다..."

이건 정말 인우조차도 놀랄 수밖에 없는 옵션이었다.

절로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러고 보니, 바투는 유난히 맨손을 자주 사용했다.

해머를 드는 것도 이번 전쟁에서 처음 보았으니 말이다.

"바투의 맨주먹이 강했던 이유가 이거 때문이었구나..."

확실히. 바투의 맨손은 비정상적으로 강했다.

"이정도면 진짜 프로킨에서도 보기 힘든 건데. 완전 봉 잡았네 봉 잡았어. 허어...참."

간만에 벙찌는 인우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팔찌, 반지, 목걸이.

이 세 종류를 아티펙트라 한다.

그리고 아티펙트에는 급수가 있다.

가장 흔한 아티펙트는 스텟을 올려주는 아티펙트다.

그리고 붙어 있는 스텟의 수치가 50 이상이면 A급으로 친다.

A급 아티펙트는 없어서 못 구할 지경이다.

인우조차도 A급은 없었다.

현재 인우의 팔찌는 '데스나이트의 팔찌'라는 물건이었다.

[데스나이트의 팔찌]

종류 ? 팔찌

기능 ? 체력 10 상승

발동조건 ? 레벨 80 이상

급수로 따져보자면 D급.

어찌되었건, 대부분의 아티펙트는 이처럼 스텟이 붙어있다.

그리고 붙어 있는 스텟의 양으로 급수가 정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간혹 가다 특수한 능력이 붙어 있는 아티펙트가 등장한다.

이를테면 지은이 소지한 '대마법사의 반지'가 그랬다.

그것의 경우 마나 소모량이 50% 감소하고 마력이 20 증가한다.

두 종류의 능력치가 동시에 붙은 아티펙트.

이러한 것들은 그 기능에 따라 S~SSS까지 나뉜다.

어찌되었건 대마법사의 반지는 SS급에 속했다.

그리고 지금 인우가 얻은 초월의 팔찌는...

솔직히 말해, 지구에 이보다 더 강력한 능력을 지닌 팔찌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것은 즉 SSS급이라는 뜻이었다.

온통 허접한 아티펙트로 도배되어 있는 인우다.

그랬기에 지금 얻은 초월의 팔찌는 가뭄의 단비였다.

이런 건 정말 돈을 주고도 못 구한다.

아니, 당장에 스텟 50이상을 올려주는 A급 아티펙트조차도 돈이 있어도 못 구하질 않나.

그러니 이것은 가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의 아티펙트였다.

인우는 볼 것도 없이 데스나이트의 팔찌를 빼버리고 초월의 팔찌를 팔목에 둘렀다.

팔찌는 하나밖에 적용이 안 되기에 한개는 빼버리는 것이었다.

['데스나이트의 팔찌'가 착용해제 되었습니다.]

[체력이 10 줄어듭니다.]

.

.

['초월의 팔찌'가 착용되었습니다.]

[맨손 전투력이 5배 상승합니다.]

[근력이 50 상승합니다.]

착용과 동시에 두 주먹에서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건 진짜 미쳤다."

지금 당장이라도 손아귀에 무언가가 쥐어진다면 가루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느껴지는 힘은 실제였다.

이것을 착용해보니 그제야 바투가 이해되었다.

"무기를 굳이 착용하지 않아도 웬만한 건 다 개박살내겠는데..."

더군다나 인우의 스킬 중에는 박투술이 2개나 존재한다.

세게 치기와 연속 차기.

두 스킬 모두 마스터 레벨이다.

다만 연속 차기의 경우 발을 이용한 스킬.

때문에 주먹을 통해 이용할 수 있는 스킬은 세게 치기였다.

어느덧 인우는 맨주먹에 세게 치기를 입혔다.

후우우우웅-

그러자 인우의 주먹이 푸르게 물들었다.

"이거 잘하면, 바투가 뿜어냈던 맨주먹보다 강할 수도 있겠는데...?"

이윽고 인우는 테스트를 해보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 120화 바투의 전리품 > 끝

ⓒ 호종이

< 121화 이 자식들 봐라? (1) >

인우는 언덕바지에 서서 위저드 아이를 시전했다.

이것은 멀리 떨어진 지역을 3초간 살펴볼 수 있는 스킬이었다.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횟수가 3번에 불과한 스킬이다.

그러나 아낄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보자."

시전과 동시에 인우는 눈을 감았다.

오래지않아 위저드 아이의 시야에 바실리스크 무리가 잡혔다.

"딱이네."

인우는 눈을 떴다.

초월의 팔찌와 스킬들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 제격이었다.

곧바로 바실리스크 무리가 있는 곳을 향했다.

이윽고 도착한 필드.

5마리의 바실리스크가 인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녀석들은 괴수의 파괴본능조차도 잊은 채 경계의 눈빛만을 쏘아낼 뿐이었다.

놈들도 아는 것이다.

인우가 지닌 무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인우는 놈들을 향해 걸어갔다.

왼손에는 메리의 단검을 쥐었고, 오른손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타다닥!

그리곤 불식간에 달려들었다.

가장 먼저 맨 앞에 위치해 있는 바실리스크에게 단검을 휘둘렀다.

쐐액-!

허공이 찢기는 날카로운 소음.

쓰걱!

어떠한 스킬도 입혀지지 않은 공격이었다.

그럼에도 바실리스크의 가죽이 대번에 찢겨 나갔다.

-크워어어어어어!

고통에 찬 비명.

이내 놈은 동료들과 합심해 인우를 공격했다.

인우는 놈들의 공격을 맞아 주었다.

그렇게 얼마동안 생명력을 깎은 인우.

그러다 인우는 흡혈 칼날을 시전하며 단검을 휘둘렀다.

쐐애액-!

단검의 칼날에 동그란 붉은 구체들이 떠올랐다.

쓰거억-!

다시금 바실리스크의 가죽이 찢겨나갔다.

그리고 찢겨진 가죽 사이를 비집고 붉은 구체들이 스며들었다.

스으으으으으.

바실리스크는 무언가가 자신의 피를 빨아가고 있음을 인지했다.

그 더러운 기분은 곧바로 바실리스크의 분노로 이어졌다.

-크워어어어어!

하지만 인우는 이제 놈의 공격을 맞아 주지 않았다.

여유롭게 놈의 맹공을 회피해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놈의 몸체에 스며들었던 붉은 구체가 튀어나왔다.

이내 구체는 인우의 육체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

그것은 처음에는 이질감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금세 따스함으로 이어지더니 이내 닳았던 체력이 조금 회복되는 것이 아닌가?

"오케이. 흡혈 칼날. 이놈도 마스터 레벨까지 끌어올린다면 제법 쓸 만하겠어."

말을 마친 인우는 단검을 아공간에 넣어 버렸다.

그런 뒤 두 주먹을 말아 쥔 채 바실리스크들을 꼬나보았다.

"들어와 새끼들아."

그 어떠한 보조 스킬도 사용하지 않았다.

우선은 맨손 그 자체가 어느 정도의 위력을 갖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크워어어어!

용감한 바실리스크 한 마리가 인우를 향해 뛰어 들어왔다.

그러자 인우는 놈의 머리통을 향해 사정없이 주먹을 박아 넣었다.

콰드드드드득!

놈의 가죽이 단번에 찢기며 두개골이 아작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께에에에에에에!

놈은 괴상한 비명과 함께 눈을 부릅떴다.

다시금 놈의 공격이 이어졌다.

츄룹! 하고 놈의 혓바닥이 쇄도해 왔다.

맹독이 입혀진 강력한 공격임을 안다.

인우는 가볍게 몸을 돌리며 놈의 공격 반경에서 벗어났다.

그런 뒤 놈의 머리통을 향해 다시금 주먹을 박아 넣었다.

콰드드드드득! 쾅! 쾅! 쾅!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르기.

인우의 주먹이 수차례 놈의 두개골을 강타했다.

그러자 녀석은 머리통을 짓누르는 압력을 이기지 못한 채 주저앉았다.

놈의 거대한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맨손 전투력 5배의 위력은 실로 놀라웠다.

[경험치를 5000+5000 획득하였습니다.]

즉사였다.

놈이 죽자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녀석들이 주춤댔다.

척 보아도 도주를 하기 위해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어딜. 테스트는 이제 시작이라고 이 자식들아."

-크르으으으!

놈들이 으르렁대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인우는 곧바로 세게 치기를 시전했다.

그러자 강력한 기운이 피어났다.

기운은 푸르스름한 형체로 주먹을 감싸며 이글거렸다.

타닥 타닥!

인우는 놈들을 향해 달려 나가며 주먹을 휘둘렀다.

퍽! 퍽! 퍽!

단 3방에 한 놈이 즉사했다.

무시무시한 위력.

인우는 죽은 바실리스크의 사체를 한손으로 들어올렸다.

족히 5미터에 달하는 놈의 사체가 마치 장난감처럼 들리고 있었다.

이내 인우는 사체의 다리를 꽉 움켜쥔 채로 통째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우웅-!

그리곤 끝내 놈의 사체를 내던져 버렸다.

쐐애애애액-!

그러자 암기투척이 발동됐다.

던지는 모든 것이 암기가 되는 스킬이다.

그것은 바실리스크의 사체라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어진 인우의 주먹질.

세게 치기가 입혀진 맹공에, 놈들은 맥을 못 추렸다.

[경험치를 5000+5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5000+5000 획득하였습니다.]

.

.

놈들은 단숨에 무너져 버렸다.

모든 전투를 끝마친 인우는 자신의 양 주먹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맨손 전투력 5배 상승.

역시나 엄청난 능력이었다.

이제 맨손도 엄청나게 강력해진 인우다.

그랬기에 광폭 어검과 같은 스킬을 병행하면 커다란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한 생각도 잠시.

"이, 인간!! 날 좀 도와줘라!!"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놈은 제라였다.

"응?"

인우는 제라를 바라보았다.

제라는 온몸이 피에 젖은 채였다.

* * *

3시간 전.

제라의 영토 난징.

통합을 마친 제라의 영토는 축제 분위기였고, 언제나 그랬듯이 파티가 열렸다.

한 부족을 흡수할 때마다 열렸던 파티다.

그런데 이번엔 자그마치 통합이었다.

이번 파티는 길게 이어질 것이었다.

제라는 술과 고기를 아끼지 않았다. 부족원들은 너도나도 축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제라는 자신이 이룬 통합에 큰 공을 세운 인간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마셔라. 인간들."

그러나 인간들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술을 거부했다.

하지만 제라는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다만 제라가 상관하는 유일한 것은 인우의 부재였다.

"정인우는 어디 있나?"

하지만 인간들도 정인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언젠간 오겠지.

그렇게 여긴 제라는 흥겨운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술을 퍼마셨다.

술은 충분하고도 넘쳤다.

인류의 초인부대가 엄청난 물량의 술을 선물해 준 것이었다.

마구잡이로 마셔 대도 닳지 않을 양이었다.

게다가 중국에선 절대 구할 수 없는 품질 또한 우수한 양주였으니, 제라는 입이 귀에 걸렸다.

그렇게 서서히 밤이 깊어 갔다.

이제 부족원들은 술에 취해 맨바닥에 헤딩을 하고 있을 지경까지 왔다.

그리고 그즈음.

샤샤샥-

사그락사그락-

인류의 초인부대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들은 빠르게 진형을 짜고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마치, 미리 준비라도 했다는 듯이.

그즈음에야 제라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다.

그러나······.

눈치를 챈 다음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파바바바바바밧!

영토의 중앙을 향해 거대한 광역 마법들이 수없이 빗발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취-익! 사, 살려!"

"끄아아아악!"

술과 흥에 취한 채 무방비 상태였던 제라 부족.

그리고 녀석들을 제거하기 위해 작전과 계획을 짠 초인부대.

전투는 일방적일 수밖에 없었고, 제라 부족은 별다른 대응조차 할 수 없었다.

도주하려던 블랙오크들은 미리 진을 치고 있던 초인부대에게 당했다.

그러한 모습에 제라는 비틀거리는 몸을 간신히 가누며 정신을 차렸다.

"이, 익!! 인간 놈들!!"

분노가 들끓었다.

애초에 이럴 계획이었던가?

이를 위해 술조차도 거부했던 것인가?

이미 이번 통합전쟁으로 인해 부족원의 숫자는 현저히 적어진 상황이었다.

거기에 더해진 급작스러운 기습에 제라 부족은 우후죽순으로 무너져나갔다.

자신의 부족원들이 무너지자 제라는 절규했다.

"인간들! 약속하지 않았나! 내가 통합을 하면 너희들의 땅을 노리지 않겠다고! 너희들도 나의 땅을 노리지 않겠다고!"

그러한 약속이 있긴 했다.

물론 그럼에도 제라는 훗날에 인간들의 뒤통수를 치려했다.

하지만 인간들과 함께하며 그러한 생각이 씻은 듯 사라졌다.

인간들은 자신의 일처럼 바투와 싸워주었고, 제라는 그러한 광경을 모조리 목격했다.

게다가 통합을 하며 엄청난 블랙오크들이 죽어나갔다.

그랬기에 정복이라는 원대한 꿈은 이미 씻은 듯 사라졌다.

그저 블랙오크들을 통합했으니, 평화롭게 이곳에 정착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정말로 인간들의 뜻에 따라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보라.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다는 것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인간들은 애초에 자신과 부족원들을 죽일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으아아아아아아!"

제라의 처절한 비명이 영토를 울렸다.

핏발선 눈으로 사방팔방에 뒤덮인 인간들을 쏘아보았다.

이 순간 제라는 다급히 정인우를 찾았다.

"정인우! 정인우! 어디 있냐!"

그라면 자신을 도와줄 것이다.

애초에 자신과 늘 함께 해주었던 믿음직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인우는 보이지 않았다.

"제기랄!!"

"제라 족장님! 피하십······ 크아아악!!"

제라는 이를 갈았다.

이대로라면 전멸이다.

지금 자신조차도 술에 잔뜩 취한 상태였다.

제아무리 한계치를 벗어난 육체라도, 술을 양동이 째로 들이 부어 댔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어느덧 간신히 정신을 차린 정예병들이 제라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족장님! 저희가 엄호합니다! 우선 이곳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 익!"

제라는 정예병들을 대동한 채 도주를 택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모든 정예병들이 죽어 나갔다.

이들의 희생을 통해 제라는 무사히 영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피투성이가 된 채로 앞만 보며 달리는 제라였다.

한참을 도주하던 제라.

그러다가 제라는 필드에 홀로 서 있는 정인우를 발견했다.

제라는 볼 것도 없이 소리쳤다.

"이, 인간!! 날 좀 도와줘라!!"

"응?"

온몸이 상처로 가득한 제라.

그 모습에 인우는 대번에 인상을 구겼다.

누가 감히 자신의 떡에 손을 댄 것인가?

저것은 자신의 경험치였다.

다시금 제라의 다급한 외침이 쏟아졌다.

"나, 날 좀 도와줘라! 너의 동료들이 날 배신했다!"

애초에 인우를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제라였다.

그랬기에 제라의 판단은, 인우는 저들과 다르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우는 답이 없었다.

"하아."

그저 한숨을 내쉬며 관자놀이를 꾹 하고 눌렀다.

"초인급파부대. 이 새끼들 봐라?"

자신에게 일언반구 말도 없이 작전을 진행해?

바투를 물리쳐주니 이제 자신의 도움 따윈 필요 없다 이건가?

실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상황은 보나마나 뻔했다.

초인부대는 파티가 열리자 제라의 뒤를 친 것 같았다.

술에 곯아떨어진 부족원들은 단숨에 나가떨어졌겠고.

솔직히 통합다운 통합도 아닌 제라의 부족은 그 물량부터가 현저히 적었다.

그랬기에 초인부대는 이제 자기들끼리 일을 추진하려들었겠지.

인우가 없어도 충분하다 여겼을 테니까.

"나 원 참."

인우는 이미 남아 있는 블랙오크들을 깨끗하게 처리할 계획을 짜 둔 상태였다.

하지만 이따위로 나오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흐음."

잠시 고민하던 인우.

이내 인우는 아공간을 열었다.

"이곳에 들어가 있어."

"고, 고맙다 인간!"

제라는 정말로 고마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라는 인우를 몰라서 저러는 것이다.

정작 인우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블랙오크들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지금 이곳에서 제라와 전투를 벌이면 그만큼 시간이 지체된다.

그렇기 때문에 제라를 이러한 방식으로 킵해 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속히 영토의 블랙오크들을 제거하고, 후에 홀로 제라를 독식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우의 내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라는 연신 고개를 숙여 대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가 다시금 말했다.

"안에 있는 내 물건은 건들지 마라."

"물론이다!"

어차피 제라에게는 가치가 없는 물건들뿐이었다.

어느덧 제라는 인우의 아공간 안으로 숨어들어갔다.

그 광경을 확인한 인우는 아공간을 거뒀다.

그러자 제라는 씻은 듯 사라져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인우는 영토를 향해 내달렸다.

"니들이 이렇게 막 나간다 이거지? 이 자식들. 막 나가는 게 뭔지 내가 제대로 한번 보여 줄게."

< 121화 이 자식들 봐라? (1) > 끝

ⓒ 호종이

< 122화 이 자식들 봐라? (2) >

인우는 전력을 다해 달려 나가며 광기 폭발을 시전했다.

파바바바바밧!

그러자 인우의 두 다리가 내뿜는 스피드가 비약적으로 상승됐다.

이것도 모자라 대검관통의 추진력까지 이용하여 달려 나갔다.

그런데 그때였다.

한 무리의 초인부대원들이 이편을 향해 내달려 오는 것이 보였다.

"제라를 놓치다니! 제정신이야!? 빨리 달려 이 새끼들아!"

한 사내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러길 잠시.

어느덧 사내와 초인들이 인우를 발견하고 외치기 시작했다.

"저, 정인우!? 속도를 줄여라! 제라를 보지 못했는가?"

인우는 답 대신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사내는 인상을 구기며 다시금 외쳤다.

"다시 한 번 묻지. 제라를··· 어, 어!"

빠르게 말을 내뱉기도 잠시.

그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쪽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던 인우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인우는 그의 지척에 닿았고,

"저리······."

순간 살벌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인우는 스피드를 줄이지 않고 손바닥을 펼쳤다.

그리곤 손바닥을 녀석의 면상에 대고 뻗어 버렸다.

"꺼져!"

콰과과과과곽!

녀석은 인우의 맨손에 의해 단번에 나자빠지며 땅바닥에 처박혔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강력한 맨손의 위력.

그는 얼얼해진 얼굴로 이미 저만치 앞을 향해 가는 인우를 바라보았다.

정인우는 엄청난 스피드로 영토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 * *

일전 바투와의 혈전에서 분신들은 모두 사망했다.

분신의 쿨타임은 24시간.

이미 하루가 지난 시점이었고, 인우는 망설임 없이 분신들을 소환했다.

후우우우웅.

허공이 일그러지며 4명의 분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녀석들은 모두 1차 각성을 끝마친 100레벨이 넘어가는 막강한 전력이었다.

이내 인우는 분신들을 이끌고 난장판이 되어가는 영토 중앙을 향해 내달렸다.

이미 꽤나 많은 숫자의 블랙오크들이 사망한 상태.

인우는 이곳저곳에 위치해 있는 초인부대원들을 아랑곳 않고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압!"

영토가 통째로 울릴 지경이었다.

마스터 레벨에 이른 포효는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두려움을 선사했다.

초인부대원들도, 블랙오크들도, 모두가 귀를 막거나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았다.

이윽고 인우의 모습을 확인한 초인부대원들이 저마다 외쳤다.

"저, 정인우? 아군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스킬은 자제해 줄 순 없겠나!?"

감히 막말은 못하겠고, 정중히 부탁하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인우는 냉랭히 말했다.

"아군? 누가 아군이야. 내가 바투를 잡아 준 시점부터 너희들은 독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나?"

"···그건! 세계초인협회의 지시였다!"

"전쟁을 하는 건 우린데 왜 그런 꼰대 새끼들 말을 듣냐? 걔네는 그냥 비싼 밥 처먹고 테이블에 둘러앉아 입으로 방정 떠는 새끼들 아니냐? 정신 차려 자식들아."

"······."

순간 초인은 반박조차 못하고 굳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가 말했다.

"됐고, 니들이 멋대로 행동하니, 내가 멋대로 행동하는 게 뭔지 한번 보여 줄게."

감히 날 빼놓고 블랙오크 경험치를 처먹어?

인우는 이를 갈았다.

그런데 그때.

큰 키를 지닌 동양인 남자가 인우에게로 다가왔다.

족히 2미터 20센티는 될 법한 그는, 인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전쟁의 마지막 종착역이다. 너에게 이번 작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던 것은 미안하다. 바투는 이미 사망했으니, 너와 같은 강자는 이제 편히 쉬는 것이 합당한 처사라고 여겼다."

남자는 일본어로 내뱉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의 옆에 있던 초인이 동시에 통역을 해 주고 있었다.

통역된 말을 듣던 인우는 인상을 구겼다.

저 남자는 말은 일견 대하기엔 제법 예의가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속내를 보면 참으로 뻔뻔한 놈이 아닐 수 없었다.

남자의 말은 한마디로 이거였다.

'넌 엄청 강한데 또 레벨 업을 하면 안 돼. 이제는 우리도 좀 커야지.'

라고 말이다.

바투가 살아있을 적엔 일촉즉발이었던 전쟁터였다.

그 속에서 인류는 다급했고, 정인우는 구원자였다.

그러나 구원이 끝나자 놈들은 돌변했다.

참으로 인간답게, 욕심을 드러낸 것이다.

이제는 다급하지 않았기에, 경험치를 저들끼리 처먹으려던 것이었다.

웃기지도 않는다. 인우가 없었다면 모두가 전멸했을 것이었으며 인류는 멸망했을지도 몰랐다.

이내 인우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으며 물었다.

"꺼져라. 턱주가리를 날려버리기 전에."

그러자 남자는 긴장을 숨기지 못한 채 침을 꿀꺽 삼키며 답했다.

"나는 제이슨의 전사로 인해 임시 총대장 직을 맡은 일본 대장 히로시다. 너 또한 초인부대에 속해 있는 걸로 아는데, 그렇기 때문에 나는 너에게 명령을 내릴 권한이 있다. 나의 지시를 따라 이번 작전에 참여해 줘라. 부탁이다."

이 자식이 이번에도 예의라는 것으로 본심을 숨기고 말을 내뱉는다.

대화를 나누어 보니 본래 이런 자식인 것 같았다.

남들이 보기엔 예의바르기 그지없지만, 대화를 나누는 당사자만 답답해지는······.

왜, 그러한 놈들이 있지 않은가.

어찌되었건 히로시라는 놈은 인우의 화를 더 돋우는 것에는 성공한 것 같았다.

인우는 이제 대화를 포기한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솔직히 인우로서는 말로서 녀석을 찍어 누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화가 풀릴 것 같지 않았다.

말해보자면, 좀 후드려 패야 할 것만 같았다.

판단이 끝난 순간.

후욱- 척!

인우의 오른손이 히로시의 목을 움켜쥐었다.

인우보다도 족히 머리통 하나는 큰 히로시.

그는 간신히 까치발을 든 채로 인우의 손을 떼어내려 발버둥 쳤다.

'무, 무슨 악력이 이렇게 강해!?'

말조차 튀어나오지 않는 상황.

바투의 맨손이 그러했듯, 인우 또한 마찬가지였다.

히로시는 눈동자를 굴리며 초인부대원들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녀석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어느덧 인우는 다른 손을 치켜 들어 히로시의 뺨따귀를 치기 시작했다.

짝- 짝- 짝-!

순간, 히로시는 뺨을 타고 올라오는 통증과 굴욕감으로 인해 삽시간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럼에도 인우는 따귀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말했다.

"차라리 욕을 하면서 바락바락 대들어 새끼야. 어디서 예의 있는 척 고상한 척하면서 유세야. 니가 정치가냐? 확 그냥."

후욱-!

다시금 뻗쳐진 인우의 손바닥.

이에 히로시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이번에 인우는 뺨을 때리지 않았다.

그 대신 목을 부여잡았던 손을 놓아주었다.

"켁. 켁!"

숨통이 트인 히로시는 단숨에 주저앉으며 괴로워했다.

인우는 그러한 히로시의 이마를 검지로 꾹꾹 눌러대며 말했다.

"예전의 나였으면 넌 그냥 뒈졌어 새끼야. 까불지 마라."

그것은 정말이었다.

프로킨의 정인우는 황제였기에 그 자체가 이미 법이었다.

그곳은 지구와는 다르게 약육강식이질 않나.

그랬기에 까부는 놈은 가만둬본 적이 없었다.

"자, 그럼 내 몫을 챙기러 가 볼까나."

이윽고 인우는 히로시를 뒤로한 채 블랙오크들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그즈음.

"형-니임!"

-크아아암!

인우는 공중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히죽 웃었다.

저 자식. 때마침 잘 왔다.

부하1호 김민철.

녀석도 마지막 파티에서 많은 레벨 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 *

이곳은 애초에 독립된 차원의 공간.

온통 새하얀 바탕으로 이루어진 아공간은 깨끗했다.

제라는 이곳 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인간··· 나 지금 아프다······. 상처 많이 입었다. 언제 꺼내 주냐."

피투성이가 된 제라는 안쓰러울 정도로 떨어 대고 있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제라의 말은 바깥 차원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그저 이곳 내부에서 웅웅대며 울릴 뿐.

"하아······."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렸기에 현기증이 일 정도였다.

제라는 간신히 정신을 잡고 있었다.

그러길 잠시.

이내 제라는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아공간 이곳저곳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별의별것이 다 보였다.

데스나이트의 팔찌, 스킬 볼들, 마나 정수, 초특급 마나 정수, 용작두, 메리의 단검, 그리고 힘의 정수5개를 비롯한 잡다한 온갖 물건들까지.

그러나 제라가 아는 물품은 이중에서도 절반뿐이었다.

그 중 제라는 거대한 기운을 뿜어내며 허공중에 떠 있는 힘의 정수들을 바라보았다.

"···엄청난 기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것을 먹으면 몸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을.

어느덧 제라는 몸을 일으켜 세운 뒤, 힘의 정수 하나를 손에 쥐었다.

우우웅-

힘의 정수가 작게 진동했다.

하지만 제라는 차마 정수를 입에 넣지 못하고 있었다.

정인우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안에 있는 내 물건은 건들지 마라.

인우는 분명 그리 말했다.

그리고 제라는 알겠다고 답했다.

그랬기에 제라는 힘의 정수를 차마 먹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자신을 이곳에 숨겨 준 것만 해도 너무나도 고마웠던 것이다.

그런데 폐를 끼칠 순 없었다.

"아아······."

어느덧 제라는 다시금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곤 양손으로 힘의 정수를 꼬옥 쥐었다.

"인간······. 빨리··· 나 더는 못 버티겠다······."

그렇게나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끝끝내 힘의 정수를 먹지 않는 제라였다.

* * *

잔류 병력 퇴치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체감상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지난 것 같았으니까.

이마저도 100%의 블랙오크들을 말살하진 못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숫자도 숫자였지만, 도주하는 녀석들까지 모조리 잡아 버릴 순 없었던 것이다.

어찌되었건 이제 전쟁은 끝났다.

아직까지도 이 땅에 살아남아 있는 소수의 블랙오크들.

앞으로는 그러한 놈들을 찾아 완벽히 박멸할 수 있도록 힘쓰는 일만 남아 있었다.

이것은 아마도 세계초인협회가 마땅한 대안을 내지 않을까?

이를테면 블랙오크에게 현상금을 걸어버리던가 말이다.

그렇게 되면 초인들은 눈에 불을 켜고 블랙오크들을 잡으러 다니겠지.

하지만 이를 악용하여 현상금을 무한정 받아내기 위해 블랙오크들을 사육하는 미친 인간이 생길 수도 있겠다.

때문에 아마 다른 대안을 내놓겠지?

뭐가 되었건, 이것은 앞으로 인류가 해결해야 할 마지막 숙제였다.

이제 13개의 블랙오크 부족은 사라졌다.

그리고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덩이가 남았으며, 이를 차지하기 위한 각국의 치열한 이권다툼이 시작될 것이다.

물론 인우는 이러한 모든 것들에 대해서 일절 관심이 없었다.

저들끼리 알아서 하겠지.

싶었으니까.

인우로서는 이미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었다.

이번 전쟁을 통해 엄청난 레벨 업을 했으며,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아이템들을 획득했다.

나아가 유니크 스킬 볼을 얻어내서 새로운 기술 또한 많이 배웠다.

이즈음 되면 이제 인우는 지구에서 가장 강한 초인으로 이름을 떨치게 될 것이었다.

그의 활약은 모두가 보았고, 그것은 널리 퍼질테니까.

"길었다. 길었어."

인우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지은과 민철. 그리고 팜이가 있었다.

이곳에 정말로 오래 있었다.

이제 한국에 가면 무얼 할까나.

아니, 퀸은 뭘 하고 있을까나?

인우는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인우는 무언가 엄청난 것을 떠올리고야 말았다.

아니, 어떻게 이걸 잊고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아."

어느덧 인우는 다급히 아공간을 열기 시작했다.

< 122화 이 자식들 봐라? (2) > 끝

ⓒ 호종이

< 123화 제라의 눈물 >

아공간이 열렸다.

인우는 곧바로 열린 틈 사이로 고개를 집어넣었다.

온통 새하얗게 도배된 공간.

그러한 공간 구석에 제라가 보였다.

"야. 이제 나와."

인우는 뒷짐을 쥔 채 그렇게 소리쳤다,

녀석이 나오자마자 기습할 생각이었다.

제라 또한 족장이기에 굉장한 무력을 갖추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놈이 자신을 믿고 있을 때 힘들이지 않고 쉽게 처리할 참인 것이다.

그러나 제라는 답이 없었다.

그제야 인우는 표정을 굳히고 중얼거렸다.

"아직 죽으면 안 되는데······."

그러자 옆에 있던 민철과 지은이 입을 열었다.

"뭔데요 형님?"

"뭐하는데? 빨리 가자 정인우."

"잠깐만 기다려 봐."

인우는 일축한 뒤 아공간에서 제라를 꺼내 왔다.

그 광경에 민철과 지은이 기겁을 했다.

제라가 인우의 아공간에 있었다니?

그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인우의 시선은 온통 제라를 향해 있었다.

녀석의 검은 피부에는 검붉은 핏물이 덕지덕지 붙은 채 굳어 있었다.

설마 죽어 버린 것일까?

인우는 놈의 코에 손을 갔다대 보았다.

후우우우우.

다행이었다.

놈의 코에서 미약한 숨이 새어 나오고 있었으니까.

상처입고 지쳐서 정신을 잃은 듯싶었다.

척보아도 심각해 보이는 상태.

그렇다면 힘들이지 않고 쉽게 처리할 수 있다.

이내 인우는 메리의 단검을 빼들고 놈의 목을 겨눴다.

그런데 그때.

인우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응?"

제라.

녀석은 양손에 무언가를 꽉 쥐고 있었다.

그것은 힘의 정수였다.

'요놈 봐라···?'

그 모습을 보니 상황이 얼추 짐작 됐다.

놈은 상처입고 지친 상태로 아공간 내부로 들어섰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힘의 정수에 시선이 갔을 테지.

본능적으로 그것이 상처를 치유해 주는 약임을 인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놈은 힘의 정수를 취하지 않았다.

그저 정수를 꼭 쥔 채로 정신을 잃은 것이다.

기절하기 직전까지 놈은 정수를 쥔 채 고민했던 것 같았다.

"흐음······."

놈은 약속을 지킨 것이다.

인우가 자신의 물건에 손을 대지 말라 일렀고, 놈은 그에 따랐다.

그러한 생각들이 이어지자, 인우는 제라를 달리 보게 되었다.

제라는 자신이 내뱉은 말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켰다.

녀석은 그만큼 인우를 신뢰한다는 뜻이었다.

이윽고 인우는 단검을 쥔 손을 거뒀다.

이어서 단검을 아공간에 내던져 버렸다.

그리고 제라 녀석이 쥐고 있는 힘의 정수를 빼앗았다.

그러더니 제라의 입을 벌리고 힘의 정수를 쑤셔 박아 버렸다.

"나에게 믿음을 줬으니, 그에 대한 보답이다."

인우는 그저 그렇게 중얼거렸다.

비록 지능은 낮아 보이는 녀석이었지만, 그게 대수인가?

믿음직한 수하를 구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그런데 인우는 그러한 수하가, 거기다가 자그마치 레벨 업의 권능을 지닌 강력한 족장이 굴러 들어온 것이다.

이제 곧 멸종하게 될 블랙오크다.

기념품으로 한 마리쯤 가지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솨아아아아-

어느덧 힘의 정수가 제라의 육체에 완벽히 스며들었다.

그러자 익히 알고 있듯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제라의 상처가 모조리 아물며 놈의 혈색이 안정을 되찾은 것이다.

그래 봐야 본래 시커먼 녀석이기에, 검정색 가죽에 광택이 나는 정도였지만 말이다.

"···허어······."

이윽고 제라가 눈을 떴다.

녀석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 나의 부족원들은!"

일어나자마자 자신의 부족원들을 찾는 제라였다.

악몽에서 간신히 깨어난 듯, 제라의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홀로 아공간에 숨어 있었던 것이 뒤늦게 마음에 걸리기라도 했던 것일까.

어느덧 인우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제라는 고개를 푹 숙였다.

"역시. 다 죽은 건가. 인간··· 왜 이리 늦게 꺼내 준 것이냐. 나는 목숨이 아까워서 도망쳤다. 나의 모든 부족원들을 내팽개치고 도망쳤단 말이다······. 저 안에서 계속 후회했다. 빨리 꺼내 주지 그랬냐. 내가 놈들과 함께 죽을 수 있게."

모든 걸 내팽개치고 도망친 제라.

그 모습은 묘하게도 프로킨의 황제 정인우와 꼭 닮아 있었다.

인우는 그 묘한 동질감에 저도 모르게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누구라도 그랬을 거다."

"···하지만."

"니가 무슨 죄가 있겠냐."

죄가 있다면, 애초에 원죄는 인간이었다.

블랙오크 또한 인간들의 욕심으로 인해 괴수와의 이종교배로 탄생된 종(種).

제라에겐 정말로 잘못이 없었다.

"크흡······."

어느덧 제라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니가 무슨 죄가 있겠냐.'

그 짧은 위로 한마디에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내 제라는 커다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윽고 놈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 * *

하늘은 더없이 맑았다.

따사로운 봄바람에 빨래를 널어 둔 퀸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녀는 지금 굉장히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주인에게 연락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오늘이 인우가 돌아오는 날이었다.

그랬기에 퀸은 제법 신경을 쓴 상태이기도 했다.

지금 그녀는 와인색 리넨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이 옷은 예전에 인우가 사 준 것이었다.

제법 많은 퀸의 옷들 중에, 그녀는 이 옷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첫째로는 역시나 인우가 사 주었기에 그랬고, 둘째로는 뱀파이어 퀸인 그녀에게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원피스였기에 그랬다.

퀸은 원피스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하염없이 마당에 서 있었다.

오늘 온다고 했으니, 올 때까지 이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을 참이었다.

이미 준비는 단단히 끝마쳤다.

그녀는 빨래 건조대 옆에 돗자리를 깔고, 그곳에 괴수의 피를 넣어 둔 물통을 잔뜩 준비해 둔 것이다.

이 정도 준비를 해 두었으니 하루가 아닌 며칠이라도 버틸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퀸은 해가 지고 으스스한 바람이 부는 저녁이 될 때까지 그 자리에 박힌 듯 서 있었다.

기다림에 지칠 법도 하건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생기가 가득했다.

그러길 한참.

어느덧 퀸의 예민한 청각에 거대한 날개가 허공을 내젓는 소리가 들려왔다.

팜이의 날갯짓임을 단번에 알아챘다.

"왔다!"

그녀는 아이처럼 들떠 버렸다.

그리곤 하늘을 주시했다.

-크아아아아암!

"팜이야!!"

그녀는 '주인님!'하고 외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누른 뒤에, 괜히 팜이를 불러 댔다.

-크아아아!

어느덧 팜이가 주택에 내려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퀸은, 감격에 겨워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내려선 팜이가 퀸을 발견하고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정작 퀸은 팜이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바로 코앞에 그가 있었으니까.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튀어나오고야 말았다.

"주···인님······!"

인우가 보였다.

나아가, 민철, 그리고 지은이 있었다.

그러나 퀸은 인우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인우의 입이 열렸다.

"잘 지냈냐?"

"···네에!"

퀸은 헤실헤실 웃었다.

그 모습에 인우는 피식 웃고는 퀸에게 다가왔다.

"어···어······."

인우가 지척까지 가까워지자 퀸은 고개를 숙이곤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어느덧 머리 하나는 더 큰 인우가 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혼자 있느라 고생 많았다."

그러면서 인우는 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잠시 뒤, 퀸은 항상 머릿속에 맴돌던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보고 싶었어요···! 정말로!"

* * *

거대한 대저택과, 5채의 괴수 사육장.

이곳은 온전한 자신의 영역.

인우는 오랜만에 자신의 영역을 둘러보며 점검했다.

사육장에서는 말리오와 바실리스크들이 열심히 번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몇 달간의 도축은 퀸이 해 주었는지, 엄청난 전리품들이 쌓여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을 확인한 인우는 민철에게 전리품 처분을 맡겼다.

아마 엄청난 금액이 나올 테다.

하지만 그리 큰 감흥은 없었다.

이미 인우는 마음만 먹으면 단기간 내에 엄청난 거금을 벌어들일 수 있는 능력자이질 않나?

바실리스크를 맨손으로 3~4방에 골로 보내는 인우다.

마음먹고 사냥터를 휩쓸고 다니면 모조리 쑥대밭이 될 것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우습기도 했다.

마치 놀이터에 놀러가는 어른과 같은 모습이랄까?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그 어떤 초인보다도 강한 정인우.

그러한 인우는 그야말로 두려울 것이 없는 인간병기였다.

"자, 사육장 전리품은 민철이가 알아서 처분하겠고."

어느덧 인우는 저택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퀸이 요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괴수의 피를 먹고 사는 그녀가 요리라니?

인우는 알지 못했지만, 퀸은 그간 많은 요리 연습을 했던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주인인 인우를 위해서였다.

그리고 거실 쇼파에는 지은이 누워 있었다.

그녀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한국행을 택했다.

이미 이 집안에서 숨 쉬고 있는 존재들만 해도 웬만한 대형 길드 수십 채를 때려 부술 수 있는 초강자들.

그러한 이들이 한가롭고 태평하게 있는 모습은 굉장히 재미있었다.

"주인님! 저녁 밥 다 됐어요! 드세요!"

어느덧 퀸이 식탁에 밥상을 차려놓았다.

그러자 지은은 귀신 같이 일어나 식탁을 향했다.

그것은 인우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인우와 지은은 늦은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저녁을 다 먹고 난 뒤에 퀸은 인우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이거요."

"응?"

포만감에 배를 두드리던 인우는 퀸이 건네는 물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것은 반지였다.

반지는 물처럼 투명한 빛깔이었고, 중앙에는 에메랄드 빛깔의 보석이 박혀 있었다.

척 보아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반지.

어느덧 지은조차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거 아티펙트 같은데? 언니 저거 어디서 났어요?"

"아, 도축하다가 나왔어요."

"와아. 아티펙트 드랍율은 진짜 극악인데, 운도 좋아. 근데 저건 완전 처음 보는데."

아티펙트는 지은조차도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하긴.

퀸은 이 반지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관리국 홈페이지를 이 잡듯 뒤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반지의 정보는 알아낼 수 없었다.

때문에 제아무리 지은이라도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덧 인우는 반지를 손바닥에서 굴려 대며 정보를 불러보았다.

그러자 반지의 정보가 떴다.

[헤츨링의 반지]

종류 ? 반지

기능 - 물리 저항력 20% 상승, 마법 저항력 20% 상승

발동조건 ? 350레벨 이상

"어······."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궁금증을 참지 못한 지은이 반지를 빼앗듯 낚아챘다.

이어 그녀는 인우가 그랬듯 반지의 정보를 불러보았다.

"허어······."

그녀조차도 눈을 부릅뜬 채 '미쳤다.'라는 말을 연달아 내뱉을 뿐이었다.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아티펙트는 기본적으로 스텟의 기능이 붙어 있다.

그리고 간혹 가다 특수한 기능이 붙어 있는 아티펙트가 존재한다.

그러한 아티펙트를 S~SSS급이라 하는데, 지금 이 헤츨링의 반지는 기존 아티펙트의 틀을 완벽히 뒤집는 반지였다.

스텟+특수기능, 이 아닌, 특수기능+특수기능의 반지인 것이다.

하지만 레벨 제한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높았다.

자그마치 350레벨 이상.

현재 인우는 마지막 파티에 참여하며 333의 레벨이 된 상황이었다.

인우조차도 착용 미달인 반지.

이윽고 인우는 지은의 손에 들린 반지를 빼앗듯 낚아챘다.

우선은 350을 달성할 때까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간에 보관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볼 것도 없이 아공간을 소환했다.

그리고 반지를 아공간에 넣으려던 순간.

인우는 또 다시 무언가를 깨달았다.

"아, 또 잊고 있었네."

녀석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면 안 된다.

그랬기에 몸을 회복한 녀석을 다시금 아공간에 넣어 뒀던 것이다.

* * *

아공간 내부.

여러 잡동사니들 가운데 시커먼 형체가 몸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움찔 움찔.

"취익. 저, 정···인우······. 설마 날 또 잊었냐······."

제라는 탐탁지 않은 표정을 한 채, 꼬르륵 거리는 배를 만지작거렸다.

< 123화 제라의 눈물 > 끝

ⓒ 호종이

< 124화 커허어어어억 >

인우는 아공간을 향해 [헤츨링의 반지]를 살포시 넣으며 안쪽을 향해 말했다.

"야. 이제 나와도 돼. 우리 집이니까."

여태 까맣게 잊고 있었음에도, 인우는 마치 이제 막 도착한양 능청을 떨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라는 본능에 충실했다.

"여태 뭐하다 이제 열어 주냐! 배고프다!"

제라는 콧김을 뿜어 대며 열린 아공간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왔다.

제라의 등장에 퀸은 적잖이 당황했는지 부엌칼까지 쥐고 있었다.

하긴, 그녀의 입장에서 보자면 당연했다.

그녀는 일전에 블랙오크들에게 당할 뻔했던 적이 있질 않나.

나아가, 제라는 2미터가 훌쩍 넘어가는 장신에 거대한 덩치를 지녔다.

그러니 풍기는 위압감이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퀸은 인우의 눈치를 보며 속삭였다.

"주, 주인님. 어떻게 된 거예요? 왜 블랙오크가 거기서 나오는 거죠?"

"음··· 중국에서 데려왔어. 앞으로 여기에서 사육··· 아니 함께 지낼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인우의 말은 퀸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진리.

퀸은 대번에 부엌칼을 거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제라는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잠시 넋을 놓았다.

지금 제라의 시선이 꽂혀 있는 곳은 식탁이었다.

-킁킁.

그곳에는 난생 처음 보는 요리들이 가득했다.

고소하고 매콤한 향을 풍기는 요리들.

절로 군침이 넘어갔다.

물론 저 식탁에 있는 요리들은 이미 인우와 지은이 한바탕 먹고 난 뒤에 남은 음식물들이었다.

그럼에도 제라는 전혀 상관없었다.

미개한 삶을 살아왔던 블랙오크 제라.

그에게 있어서 지금 이곳에 차려진 음식은 그야말로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애초에 원시적인 삶을 살아왔기에 고기를 불에 통째로 굽기나 해 보았지 '요리'라는 개념이 없는 것이다.

제라는 식탁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인우에게 물었다.

"인간··· 설마··· 날 위해 음식을 준비해 준 것이냐?"

제라의 음성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엄청난 감동을 한 것 같았다.

인우는 차마 거기다 대고, '아, 방금까지 먹다가 남은 음식물 쓰······.'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줄 뿐이었다.

인우의 끄덕임에 제라는 다시금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내 평생 이런 냄새는 맡아 본 적도 없다. 이것이 인간들이 먹는 음식인가? 아아, 나 혼자 먹을 순 없다. 인간. 같이 먹자."

이 자식은 이럴 때마저 의리인가.

같이 먹자는 제라의 말에 인우의 인상이 단번에 찌그러졌다.

배가 불러 뒈져 버리겠는데 어떻게 또 먹겠는가.

그랬기에 인우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 다 먹어라. 너 주려고 준비한 거니까."

"크흡··· 나,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어린오크처럼 아공간 안에서 칭얼대고 있었다. 니가 이렇게 큰 준비를 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고맙다. 고맙다 인간."

거듭 감사를 표한 제라는 단숨에 식탁에 다가갔다.

이윽고 제라의 폭풍 식사가 시작되었다.

큼지막한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

달콤하고 매콤한 제육볶음.

감자를 정성스레 갈아서 만든 감자전.

바삭하고 고소한 식감이 일품인 멸치볶음.

이 밖에도 수많은 음식들이 즐비했다.

이 모두가 퀸의 솜씨였다.

인우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했던 그녀였기에, 엄청난 노력과 시간, 그리고 정성이 들어간 요리였다.

맛이 있을 수밖에 없질 않겠는가.

게다가 지금 제라는 극도의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

-우걱 우걱 짭 짭 짭

제라는 흡사 접시까지 씹어 먹을 기세로 음식을 입속에 쑤셔 박고 있었다.

그 모습에 지은은 고개를 내저었고,

인우는 배가 부름에도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으며,

음식을 차렸던 퀸은 미소를 지었다.

세상 어떤 여자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이 만든 요리를 저렇게나 맛있게 먹어 주면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 * *

-커허어어어억.

처음에는 저 자식이 피를 토하고 죽어 버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저것은 트림소리였던 것이다.

인우는 어처구니가 없는지 헛웃음을 흘렸다.

반면 지은은 코를 막으며 한마디 내뱉었다.

"차라리 방귀를 뀌어라! 이 나쁜 자식아!"

진지하기 그지없는 지은의 외침.

이에 퀸은 '큭'하고 웃어 버렸다.

한편 방귀, 아니 트림의 주인공 제라는 기다란 손톱을 치켜들고 이빨 사이에 낀 멸치 대가리를 쑤시고 있었다.

"비축해 둘 필요 없다. 먹을 땐 다 먹는 게 현명하다."

어느덧 손톱으로 빠져나온 멸치대가리를 다시금 입 속으로 가져가는 제라였다.

-짭 짭 짭

"세상에 어떻게 이런 맛이. 너무 좋다."

그 인간적인(?) 모습에 지은은 할 말을 잃었다.

"오빠. 저 인간, 아니 저 오크 사료 값 감당 되겠냐?"

10인분 밥솥을 거덜 내고, 김치찌개를 양동이 째로 입속에 퍼붓고, 프라이팬 한가득 담겨 있던 멸치볶음을 모조리 씹어 먹고······.

그야말로 식기를 제외하고 모조리 다 씹어 먹어 주었다.

"······."

제라의 활약(?)은 실로 놀라웠다.

덩치가 큰 만큼 많이 먹는 것일까?

이러나저러나 인우는 제라가 마음에 들었다.

많이 먹는다고 경제적으로 타격이 올 정도로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오히려 녀석의 순박함이 마음에 든 인우였다.

어느덧 인우는 퀸을 불러 몇 가지 명령을 내렸다.

"저 녀석을 원시인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퀸 니가 잘 알려 줘."

그렇게, 제라의 한국 적응이 시작되었다.

* * *

민철이는 그로부터 5시간 뒤에 도착했다.

도착한 녀석은 마당에서 잡초를 뽑고 있는 인우에게 말했다.

"형님! 다 처분하고 왔습니다."

"어. 고생 많았다."

"얼마 나왔냐고 묻지 않습니까?"

민철의 물음에도 인우는 잡초를 뽑으며 한가로이 마당을 누비고 있었다.

절대자나 다름없는 최강의 초인이, 자신의 집 앞 마당에서 잡초를 뽑는 광경은 뭐랄까...

민철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민철이기에 가능했다.

어느덧 민철은 인우의 뒤를 졸졸 쫓으며 말했다.

"도합 254억 나왔습니다 형님."

254억.

인우가 중국에 가 있는 동안 퀸이 사육장을 관리하며 얻어냈던 전리품.

그 모든 것들을 처분하고 나온 금액이었다.

입이 쩍 벌어지는 금액이었으나 인우는 큰 감흥이 없었다.

돈 따위야 마음만 먹으면 무한정 벌어낼 자신이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마당에 잡초가 너무 많았으니까.

"아, 왜 이 생각을 못했지?"

"넵?"

민철의 반문.

그러나 인우는 답 대신 분신을 소환했다.

이내 4명의 분신이 튀어나와 인우의 명령에 따라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

민철은 침묵했다.

블랙오크들을 개박살 내던 인우 군단이 졸지에 잡초나 뽑아대는 광경이란······.

그러길 한참.

어느덧 인우는 한가로운 여유를 만끽하며 자신의 상태창을 불러보았다.

<정인우>

레벨 : 333

특성 : 광전사

스텟 : [근력 703+350+10+65] [민첩 478+280] [마력 247+50+40] [체력 442+200+10]

미분배 포인트 : 0

[EXP 201,500 / 7,340,000]

마지막 블랙오크 파티에서 대략 30개의 레벨을 올렸다.

이에 따라 기존 2배에 해당하는 300개의 보너스 스텟을 얻었다.

그래서인지 현재 인우의 스텟은 매우 짱짱했다.

근력의 경우, 가장 앞에 위치해 있는 703이 순수 근력이었다.

그 다음 350은 각성으로 인해 추가된 보너스 스텟이었다.

1차 각성때 근력+50.

2차 각성때 근력+100.

3차 각성때 근력+200.

이렇게 해서 도합 350이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드러났겠지만, 각성이 거듭될수록 추가되는 스텟은 곱절로 늘어난다.

그야말로 '각성'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것이다.

엄청난 육체 능력이 상승되니 말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위치해 있는 10은 패시브 스킬로 인해 붙은 수치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붙은 65는 아이템으로 인해 붙은 수치다.

근력이 15증가하는 용맹의 반지, 그리고 근력 50의 기능도 붙어 있는 초월의 팔찌.

이를 통해 65의 수치가 추가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인우의 총 근력은 1,128.

이 수치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일 것이다.

올 근력을 찍은 초인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봐야 밸런스가 맞지 않아 높은 레벨까지 성장하지 못했을 테니까.

또한, 더욱이 놀라운 것은 이렇게 높은 근력을 유지하면서도 마력 스텟까지 제법 쓸 만하게 올려놓은 것이다.

마지막 파티에서 인우는 마력에만 80의 포인트를 투자했으니 말이다.

어차피 포인트는 2배씩 받았기에 남들보다 훨씬 더 유리한 인우였다.

하지만 마력이 이렇게 높아졌음에도 이제야 헬 파이어를 3연속 시전 할 정도였다.

기존 2연속까지 간당간당했던 것에 비하면 크게 성장한 것이긴 했다.

마나가 닳지 않는 능력이 있지 않고서야······.

지금으로서 최선은 마나 소모량을 줄여 주는 아티펙트를 구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무려 50%의 마나 소모량을 줄여 주는 대마법사의 반지와 같은 것들 말이다.

그것만 착용해도 지금은 3연발에 불과한 헬 파이어를 6연발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기능이었다.

'흐음··· 차라리 헤츨링의 반지로 대마법사의 반지를 구해 볼까······.'

이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나, 헤츨링의 반지가 훨씬 더 아까웠다.

거래가 성립되려면 대마법사의 반지+@ 정도는 주어야 가능할 터.

'일단 당분간은 초인시장에 나온 매물들을 이 잡듯 뒤져 봐야겠다.'

그렇게 해서 마나 소모량을 줄여 주는 아티펙트를 구하는 것이 최선일 것 같았다.

그것과 헤츨링의 반지를 동시에 착용하면 그야말로 최고일 것 같았으니까.

어찌되었건 아티펙트는 언제 시장에 풀릴지 모른다.

해서, 언제든 시원하게 구입하기 위해선 최대한 돈을 모아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느덧 인우가 민철을 향해 말했다.

"야. 아까 얼마 나왔다고 했지?"

"네? 뭐가요?"

"전리품 처분하고 나온 돈 말이야."

"아아. 254억입니다 형님."

"오케이."

'1주일 안에 저 금액을 곱절에 곱절로 불려 주지.'

인우는 자신 있었다.

그냥 사냥터에 들어가서 다 때려 부수면 될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 주는 고마우신 길드라도 하나 걸리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였고.

그러한 계획을 세우기도 잠시.

어느덧 인우가 여전히 멀뚱히 서 있는 민철을 향해 말했다.

"저녁 안 먹었을 거 아냐. 들어가서 밥이라도 먹어."

"···저 챙겨 주시는 겁니까. 감동입니다 형님."

민철은 그렇게 답하면서도 잡초를 뽑고 있는 분신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표정이 묘했다.

그제야 인우는 녀석이 무얼 바라고 여태 서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오랜만에 내 분신이랑 대련 한번 해 보지 그래?"

"좋죠!"

민철은 씨익 웃으며 기다렸다는 듯이 용작두를 뽑아들었다.

민철 또한 이번 블랙오크 전쟁을 통해 1차 각성을 완료했다.

거기서 더 나아가 130레벨이 된 것이다.

이 정도면 소규모 길드의 마스터급 레벨이다.

결코 작은 레벨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에 따라 민철은 자신감이 크게 상승 되어 있기도 했다.

"내 분신은 죽여도 좋아. 전력을 다해 보라고."

"넵···!"

인우는 자신의 분신 중 레벨이 가장 낮은 4번을 민철과 붙일 예정이었다.

현재 분신4의 레벨은 115.

이윽고 분신4와 민철의 대련이 시작됐다.

그간 인우의 분신에게 수차례 당해 왔던 민철.

오늘만큼은 민철이 선공을 취했다.

"으라아아아아!"

민철의 눈빛이 제법 매서웠다.

* * *

-커허어어어억.

주택 내부에서는 또 다시 제라의 트림 폭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녀석의 적응력은 놀라웠다.

쇼파에 누운 녀석은 TV에 흠뻑 빠진 채 한손에는 멸치 볶음이 담긴 프라이팬을 들고 있었다.

무척이나 잘 먹는 제라를 위해 퀸이 다시금 볶아낸 따끈한 요리였다.

"이곳 마음에 든다. 그런데, 인우는 언제 들어오나? 중요한 할 말이 생각났는데."

그러면서 제라는 그것을 떠올렸다.

헬게이트의 드래곤.

그 드래곤이 내뱉었던 말 중에 유독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 124화 커허어어어억 > 끝

ⓒ 호종이

< 125화 끈질긴 악연 >

분신과의 대련.

민철의 레벨은 130이었고, 분신4의 레벨은 115였다.

둘의 레벨 차이는 15.

민철은 정말로 자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인우의 분신은 인우와 같지만 다르다.

이것이 무슨 의미이냐면, 인우 본신은 유니크 스킬 볼로 인해 사상 최강의 잡캐가 되었지만, 인우의 분신들은 광전사 본연의 스킬만 지닌 것이다.

이 때문에 제아무리 인우와 같은 전투센스를 지녔다고 해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민철의 예상으로는 최소 20분은 대결을 펼칠 수 있을거라 여겼다.

잘하면 승리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한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민철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가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허억."

모든 체력을 소모하며 스킬을 아끼지 않은 민철.

그는 짙은 현기증과 후들거리는 다리로 인해 죽을상을 짓고 있었다.

반면 분신4는 숨조차 고르게 내쉬며 민철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분신은 결단코 선공을 취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검을 치켜들고 카운터만을 시도했다.

그러던 중, 분신이 민철을 보며 슬쩍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것은 마치 인우가 자주하는 이죽거림처럼 보였다.

민철은 분개했다.

"이, 이 자식이!"

"···뭐······."

그때.

분신의 입술이 열렸다.

단어를 내뱉은 것이다.

그 광경에 민철은 눈을 크게 부릅떴고, 인우조차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마, 말을 해?"

"크아아아아아압!"

그러나 분신은 답 대신 포효를 내질렀다.

그런 뒤 지칠 대로 지친 민철을 마구잡이로 후드려 패기 시작했다.

퍽! 퍽! 퍽! 퍽!

"으, 으아아악!"

민철의 비명이 마당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 *

대련을 빙자한 맷집 강화(?)훈련은 끝이 났다.

민철은 마당 잔디밭에 대자로 뻗어 있었고, 분신4는 인우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며 서 있을 뿐이었다.

인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에 잠겼다.

분신은 짧긴 하지만 분명 말을 내뱉었다.

그간 스킬로 인해 소환된 전투인형쯤으로 여겼지, 하나의 인격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인우가 느낀 놀라움은 클 수밖에.

어느덧 인우는 4명의 분신들을 자신의 앞으로 집결시켰다.

그런 뒤 놈들을 향해 말을 건네 보았다.

"야."

"······."

그러나 분신들은 묵묵부답이었다.

"흐음."

분신 스킬은 경험치를 올리기 매우 까다로운 기술.

이에 따라 이 스킬을 마스터한 초인은 지구. 아니, 프로킨에서도 없었다.

사기적인 패시브를 지닌 인우이기에 이와 같이 스킬 레벨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즉, 분신 스킬의 경우 그만큼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현재 '분신 스킬'의 레벨은 73.

아마도 레벨이 상승할수록 분신들의 기능이 다양해지는 것 같았다.

자그마치 말을 내뱉다니 말이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기능이라 할 수 있었다.

여러 다양한 방면에서 고루 이용해먹을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지금 지닌 스킬 중에서는 역시나 분신이 가장 기대될 수밖에 없네.'

이쯤 되니 기대감과 궁금증이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분신 스킬이 마스터 레벨에 도달하면 어떠한 변화를 보여 줄까?

그러한 생각도 잠시.

"···혀, 형님······. 제가 도저히 못 일어날 것 같은데. 정말 죄송하지만 저 좀 일으켜···"

인우는 민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힐을 시전했다.

후우우우웅-

그러자 새하얀 빛 무리가 민철의 전신을 골고루 누비기 시작했다.

힐 스킬의 레벨은 벌써 28.

이에 따른 회복률은 1레벨 때보다도 강력해진 편이었다.

다만 가장 초급 회복술이기 때문에 그다지 큰 위력을 발휘하진 못했다.

"아아······."

어느덧 민철의 혈색이 눈에 띄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우는 본인의 마력이 다 닳아 버릴 때까지 힐을 시전했다.

그제야 민철은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형님은 진짜··· 없는 스킬이 뭡니까······."

녀석은 몸의 회복보다 인우의 잡다한 스킬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나아가, 부러움이 가득 담겨 있기도 했다.

"유니크 스킬 볼 덕분이지 뭐."

"허. 저도 이참에 형님처럼 유니크 스킬 볼을 구해서 먹어볼까요? 저도 마법을 한번 써 보고 싶은데! 크으. 엄청날 거 같은데요? 간지가 그냥! 대검을 휘두르면서 썬더 볼트 같은 걸 날려 대면!"

"넌 안 돼 자식아. 나니까 가능한 거야."

정말로 인우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모든 스킬을 성장시킬 수 있는 막강한 패시브를 지녔으니 말이다.

반면 민철은 유니크 스킬 볼로 마법을 배운다 할지라도, 스킬 레벨을 성장시킬 수 없을 것이다.

당장에 전사 스킬을 키우기도 바쁜 녀석이, 괜한 멋에 취해 마법을 배워 봐야 진정한 의미로 잡캐가 되어 버리고 말겠지.

"마나가 닳지 않는다면 모를까. 너 같은 일반 초인이 나를 따라올 수 있을 것 같냐?"

"아니 형님! 형님처럼 엄청난 존재는 제아무리 마나가 닳지 않는 초인이라도 어쩌지 못할 거 같네요! 제가 장담합니다! 암요! 게다가요! 세상천지 마나가 닳지 않는 초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말을 마친 민철은 낄낄 대며 웃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넓다.

자신이 경험치가 계속 오르는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지닌 것처럼, 이 세상 어딘가에는 별의별 능력자들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러한 생각도 잠시.

어느덧 저택의 문이 벌컥 열리며 마당을 향해 커다란 외침이 들리기 시작했다.

"인간! 안 들어오냐! 나 할 말이 생각났는데 말이다!"

외침의 주인공은 제라였다.

녀석은 입속에 가득 담긴 멸치볶음을 발사해 대며 말을 이어나갔다.

"빨리 와라! 빨리!"

녀석은 솥뚜껑 같은 손을 휘저으며 요란법석을 피워 댔다.

* * *

"할 말이 뭔데?"

"···어. 잠깐 기다려 봐라."

제라는 쇼파에 인우를 앉히며 제 놈은 바닥에 앉았다.

이렇게 하니 둘의 눈높이가 조금이나마 맞았다.

워낙에 큰 덩치와 키를 지닌 제라였으니 말이다.

어느덧 제라는 입속에 담긴 멸치볶음을 마저 삼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드래곤에 대해서다."

드래곤.

그 한마디에 인우의 표정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드래곤이라면 그때 그 헬게이트 안에 숨어 있던 자식을 말하는 거지?"

"그렇다. 나의 부족에게 가호를 내려주었던 존재."

일전에 인우는 제라를 따라 문제의 그 헬게이트로 향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에 인우는 헬게이트를 통해 보이는 놈의 거대한 눈동자를 마주했었다.

놈은 인우의 말을 무시로 일관하다가 난데없이 '크크'하며 웃질 않았나?

그 웃음의 의미를 파악하기도 전에 놈은 '정인우.'라는 한마디를 내뱉은 채 사라졌다.

놈은 분명 자신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놈은 필시 프로킨의 드래곤이었을 것이다.

생각도 잠시.

제라가 입을 열었다.

"내가 드래곤과 처음 마주했을 때였다. 그때 난 너무 무서워서 떨고 있었다. 드래곤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만 내뱉었다. 나로서는 전혀 모르는 말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프로킨 어(語)였을 테다.

제라가 알아듣지 못할 수밖에.

"그런데 말이다 인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드래곤이 내뱉은 말에는 내가 아는 단어도 끼어 있었다."

"아는 단어?"

"그렇다. 드래곤은 나에게 가호를 내려주며 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 했었다. 그 말은······."

제라는 잠시 말을 끊고 인우를 직시했다.

그런 뒤 또렷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사파하. 사파하. 사파하 정인우.' 라는 말만 계속 했다. 너무 많이 들어서 머리에 틀어박힐 지경이었다. 그런데 인간. 내가 너를 만나고 보니, 네 이름이 정인우다. 그래서··· 이 말은 뭔가 너에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알려 주는 거다."

"······."

인우는 입술을 굳게 닫고 생각에 잠겼다.

사파하.

그것은 인우도 익히 알고 있는 단어였다.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프로킨의 언어이니 말이다.

사파하의 의미는 '찾아라.'였다.

"사파하 정인우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거지?"

"그렇다."

정인우를 찾아라.

드래곤은 제라에게 가호를 내려주며 그러한 지시를 내렸던 것 같다.

그제야 인우는 놈을 처음 마주했을 때가 이해되었다.

놈은 '크크'거리며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그때는 그 의미를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마침내 인우를 찾게 되었으니, 그러한 웃음을 내뱉은 것이었겠지.

"빌어먹을 드래곤 새끼들······."

이제 놈들은 자신이 지구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프로킨에서 이룩해 놓았던 것을 모조리 다 빼앗겼다.

그것도 모자라 놈들은 인우를 쫓아 지구에 넘어 오려하고 있었다.

참으로 끈질긴 악연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때처럼 무력하게 당할 생각 따윈 없었다.

어느덧 인우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지금의 무력으로는 부족했다.

"민철아 장비 챙겨라."

지구의 최강자가 되었다고, 평화에 도취되어 잡초나 뽑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프로킨에서도 그러다가 당했다.

최강자, 그 너머에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 * *

인우는 관심이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워싱턴 세계초인협회에서는 언쟁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바투가 죽고, 모든 블랙오크 부족이 멸망했다.

이에 따라 중국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각국의 이권다툼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러는 한편.

세계의 언론들은 정인우로 인해 들끓고 있었다.

특히나 한국의 경우, 정인우는 그야말로 핵폭탄급의 이슈 덩어리로 다가왔다.

온갖 언론매체가 정인우에 대해 다뤘다.

대표적으로,

<각국의 대표 초인들도 힘을 쓰지 못하는 최악의 사태. 그러한 사태를 해결한 초인은 한국의 '정인우.'>

<바투를 단신으로 물리친 초인. 한국의 랭커 정인우.>

<수십만 마리의 블랙오크들과 홀로 대적한 정인우.>

<초인급파부대 임시 총대장 히로시. 정인우에게 귀싸대기 맞고 굴욕 당하다.>

<대한민국의 초인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미친곰. 그가 바로 정인우.>

<초인계에 등장한 지 1년 만에 최강자로 등극한 사내.>

중국에서의 전쟁.

그곳에서 인우가 세운 공은 실로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이러니 언론이 들끓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제 모든 국민들은 미친곰이 바로 정인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마치, 배트맨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나이트 길드를 단신으로 박살내고, 초인관리국을 이끌고 SG그룹을 멸망시킨 장본인이 바로 미친곰이질 않나?

이 때문에 누군가는 미친곰을 시대의 영웅이라 칭송했고, 누군가는 미친곰을 모방하며 사칭하기도 했었다.

곰탈이 유행했으며, 미친곰을 코스프레하는 이들로 넘쳐나던 때도 있었다.

미친곰이 입고 다니는 갈색 곰 인형탈을 만든 회사의 주가가 뛸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나 대단한 정인우다.

터벅- 터벅-

그러한 정인우가 놀랍게도 강원도 사냥터에 등장했다.

이 소식은 각종 SNS를 통해 널리 퍼져 나갔고, 평온하기 그지없는 강원도 사냥터에 한국의 초인들과 언론매체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 125화 끈질긴 악연 > 끝

ⓒ 호종이

< 126화 헬게이트 탐험 (1) >

민철을 데리고 강원도 사냥터에 진입한지 10분쯤 지났을까?

"야. 강원도 사냥터에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았냐? 이래가지곤 아공간에 넣어둔 제라를 빼줄 수도 없겠네."

"그러게요 형님··· 오늘 무슨 날인가? 용작두 젠 되는 날인가?"

말을 마친 민철은 핸드폰을 꺼내들고 날짜를 확인해 보았다.

그러나 오늘은 용작두의 날이 아니었다.

그때.

사냥터에 모인 이들이 속삭이는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SNS에 뜬 사진이 진짜였나 보네. 뉴스에서 본 그 얼굴이 맞잖아. 정인우다.

-와. 저런 인간도 사냥터에 오는구나. 그럼 도대체 어디서 사냥하는 거지? 당연히 미개척지대겠지?

-바투까지 단신으로 물리치는 미친 능력자인데 미개척지대 괴수라고 해봐야 몇 초면 끝날 것 같은데.

-설마. 그 정도 이려고? 어디 얼마나 잘난 능력자인지 내가 두 눈으로 확인을 해봐야겠어.

-저 인간 방어구도 없어. 그냥 커다란 무기 하나뿐이네.

-그나저나, 사냥터 입구에 기자 새끼들 쫙 깔렸던데. 공무원들이 출입 못하게 통제해서 다행이지, 근성 가진 기자 놈들은 뒷구멍으로라도 들어올 것 같단 말이지. 정인우 한 명 때문에 강원도에 폭풍이 부네, 폭풍이 불어.

그제야 인우와 민철은 지금 펼쳐진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들은 인우를 구경하기 위해 몰린 초인들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인지 뒤에 다시금 주변에 포진된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그제야 명백히 보였다.

그들은 저마다 사냥은 뒷전이고 인우를 힐끔거리기에 바빴다.

그리고 개중에는 정인우의 전투 영상을 확보하기 위해 핸드폰을 몰래 들이밀고 있는 녀석들도 보였다.

그러한 모습에도 인우는 찍든지 말든지 제 갈 길을 갔다.

현재 인우가 위치해 있는 곳은 5존.

오늘 인우는 색다른 곳을 탐색하기 위해 사냥터에 왔다.

그랬기에 이곳에 나오는 괴수들 따위는 인우의 관심거리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괴수들 입장에선 그렇지 않았다.

어느덧 오우거 4마리가 인우를 향해 내달려오기 시작했으니까.

쿵! 쿵! 쿵!

3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성체 오우거들.

놈들은 인간을 보자 발광을 해대며 땅을 으스러뜨릴 기세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앞을 향해 걸었다.

심지어 하품까지 하는 인우였다.

그때.

인우의 지척까지 다가온 오우거 한 마리가 주먹을 휘둘렀다.

쐐애애애애액!

허공이 찢기는 맹렬한 소음과 함께 거대한 주먹이 날아든다.

이에 인우는 걷는 것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팔을 뻗었다.

척!

오우거의 주먹이 인우의 손에 의해 가로막혔다.

현재 인우는 바투의 전리품인 초월의 팔찌로 인해 맨손 전투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우드드득!

-크워어어어어어!

그래서일까?

인우에게 까불던 오우거는 팔뚝이 그대로 뽑혀져 나갔다.

녀석의 팔을 통째로 뜯어버린 인우는 여전히 걷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곤 다가오는 나머지 오우거들을 향해 뜯긴 팔을 내던져버렸다.

푸슈우우우우욱!

암기가 되어 날아가는 팔.

-꾸웨에에에엑!

[경험치를 190+190 획득하였습니다.]

.

.

.

오우거 4마리가 불과 몇 초 만에 절명했다.

그리고 그 순간.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암기투척'의 레벨이 'Master'에 도달했습니다.]

90레벨 대에 제법 오래 머물렀던 것 같다.

느낌상 그랬다.

언젠간 마스터가 되겠지 싶었는데, 드디어 마스터에 도달했다.

그러한 생각도 잠시.

민철이 오우거 사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형님. 채취합니까?"

"저런 건 됐다."

말을 마친 인우는 여전히 걷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태평한 걸음은 마치, 산보라도 나온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

한편, 지켜보고 있던 초인들은 저마다 입을 쩍 벌렸다.

저것이 세계 최강자의 위력인가.

맨손으로 오우거를 종이처럼 찢어 버리다니.

절로 꿀꺽하고 침이 넘어갔다.

그러길 잠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이들 중, 남성 한 명이 인우가 있는 곳을 향해 전력질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저, 정인우씨! 정인우씨! 저도 파티에 껴 주십시오! 오오악!"

꽈당!

다급히 외침을 내뱉던 남자.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오우거 사체에 발이 걸려 볼품없이 나자빠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 갈 길을 가는 인우였다.

심지어 민철조차도 그간 인우의 사고방식에 전염이 된 것인지,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귀찮은 일은 질색이랄까?

* * *

사냥터에 들어선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간은 능력이 안 돼서 헬게이트 외부에 마련된 인류의 사냥터를 이용했다.

하지만 이제 인우에게 있어서 사냥터에 속하는 10존과 미개척지대는 의미가 없다.

때문에 인우는 끊임없이 걸었다.

그리고 10존을 넘어갈 즈음.

민철이 물어왔다.

"형님. 역시 미개척지대로 가는 겁니까?"

"아니."

"···에? 그럼요? 그럼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겁니까?"

"헬게이트 안으로."

"···허얼."

순간.

민철의 걸음이 멎었다.

헬게이트라니?

지구에 괴수가 나타난 지 수십 년이 흘렀다.

여태껏 지구의 많은 초인들이 헬게이트 내부로 진입했었다.

그러나 다시 되돌아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저곳은 그야말로 블랙홀이다.

그랬기에 인류의 최선은 철벽을 세우고 헬게이트를 가둬 놓는 데에 그친 것 아니겠는가.

"혀, 형님! 잠시만요!"

"왜 인마."

"진심입니까?"

"어."

인우는 진심이었다.

정말로 헬게이트에 진입할 생각이었다.

물론 예전에는 불가능했기에 쳐다보지도 못했다.

죽을 게 명백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기존과는 다르게 엄청나게 강해졌다.

이 정도면, 프로킨의 정인우가 그러했듯 헬게이트를 박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랬기에 인우는 자신만만했던 것이다.

"민철아."

"에, 네? 형님?"

목이 떨어지는 상상이라도 하고 있던 것일까.

민철은 떨리는 음성으로 답하고 있었다.

"인류의 초인들이 헬게이트에 들어섰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 이유가 뭔지 아냐?"

"그야! ···모르겠네요."

"약해서 그런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인우는 앞장서서 걸었다.

"혀, 형님 같이 가요!"

민철은 부랴부랴 인우를 쫓았다.

사실, 민철의 입장에서 보자면 인우를 쫓아다니며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싸움들을 해 왔었다.

하지만 인우는 늘 해 냈다.

그 믿음은 이제 제법 커진 상황.

이번에도 인우는 해내지 않을까?

하지만 여전히 걸리는 게 하나 존재했다.

"형님! 그래요! 약해서 다시 나오지 못했다고 쳐봐요! 그렇다면 나오는 방법은 도대체 뭡니까?"

"그건 되게 간단해."

인우는 여전히 걸어 나가며 말하고 있었다.

"간단하다뇨?"

"그냥 개박살을 내놓으면 알아서 소멸 돼. 그렇게 되면 우리는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거고."

"아, 그렇구나···가 아니라! 형님! 그게 정말 가능하다고 봅니까!?"

"안 되는 게 어딨냐. 그리고, 헬게이트를 파괴하면 엄청난 걸 얻을 수 있다."

"어, 엄청난 거요?"

"그래."

어디 그뿐이겠는가.

헬게이트 내부에 존재하는 무지막지한 보스들은 굉장한 전리품을 내뱉는다.

프로킨에 있는 황실 금고의 최상급 아이템들도 대부분 헬게이트에서 얻어낸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하다.

사실, 드래곤 녀석들만 아니었다면 인우도 헬게이트 진입을 고려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드래곤들이 언제 침공해 올지 모르는 마당에 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윽고 인우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드래곤 자식들. 지구까지 쫓아오려 하다니.'

역시나 용용이 납치사건으로 인해 놈들이 자신을 죽이려드는 걸까.

확신할 순 없지만 지금으로서 짐작되는 부분은 이게 전부였다.

자그마치 드래곤 로드의 알을 훔쳐서 키워냈다. 어찌 보면 인우답다고 할만 했다.

사실 인우도 뒈지고 싶지 않았기에 웬만하면 드래곤들을 건들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드래곤들은 인우의 역린을 건드렸고, 인우는 그에 대한 보복으로 로드의 알을 훔쳐 버린 것이다.

물론 지상 최강의 생명체를 기르고 싶어 했던 마음도 제법 컸다.

그리고 깨어난 알은 각인효과로 인해 인우를 아빠라고 생각하며 잘 따랐다.

그래서 신나게 타고 다녔다.

그러다가 덜미가 잡혔고, 분노한 로드는 모든 일족을 끌고 인우의 영역을 침공해 왔다.

그렇게 인우는 지구로 도망쳐 왔었다.

'니들이 자초해 놓고 왜 니들이 더 성질인 거냐? 빌어먹을 드래곤 새끼들.'

생각할수록 열이 받았다.

놈들이 먼저 건들지만 않았어도 알을 훔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을 거다.

오만하고 방자한 드래곤 로드와 그의 일족들.

이왕 이렇게 된 거, 인우는 놈들을 깨끗하게 쓸어 버릴 작정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의 딸(?)인 용용이를 되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이 끝날 즈음.

인우와 민철은 어느덧 미개척지대에 닿아 있었다.

* * *

윤기자는 SNS에서 강원도 사냥터에 정인우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그곳을 향했다.

그러나 윤기자는 사냥터 내부로 진입할 수 없었다.

강원도 사냥터 입구에서는 혼란을 막기 위해 언론매체의 진입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했다.

일반인에 불과한 기자들이 취재나 인터뷰를 따내기 위해 사냥터에 진입했다고 쳐 보자.

사냥터는 괴수들이 즐비한 곳이질 않나?

때문에 일반인들의 목숨은 금세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기자의 신분으로는 진입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초인 신분으로는 진입이 가능하다.

윤기자는 다행히도 33레벨로서 초인증이 존재했다.

그리하여 윤기자는 그 즉시 단독 인터뷰를 따내기 위해 인우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4존 이상으로 넘어갈 순 없었다.

그의 레벨로 이 이상을 넘어간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정인우는 점차 멀어지고 있을 것이다.

다급해진 윤기자.

해서 그는 즉시 국장에게 콜을 넣어 초인을 섭외했다.

큰돈을 들여 150레벨대의 초인 두 명을 포섭했고, 그 즉시 저 멀리로 사라진 정인우를 쫓았다.

정인우를 쫓아다니는 초인들이 제법 많았기 때문에 굉장히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주변 괴수들은 씨가 말랐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정인우를 발견한 것은 헬게이트 근처에서였다.

단숨에 그에게 다가가 접선을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윤기자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정인우가 헬게이트를 가리키며 헛소리를 내뱉고 있었으니까.

* * *

강원도 미개척지대에 오늘처럼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처음이었다.

100레벨을 넘어가는 초인들에서부터, 랭커들까지.

시간이 갈수록 점차 많은 이들이 몰렸다.

이들 모두가 세계 최강이라는 인우를 한번 보겠다고 몰린 이들이었다.

용작두의 젠타임 때보다도 더 많은 인파가 몰렸으니, 그 인원은 엄청나다 할 만했다.

인우는 그들이 보란 듯이 바실리스크를 맨손으로 후드려 패 버렸다.

이것은 힘자랑이라기보다는, 귀찮게 하면 가만 안 두겠다는 의미였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초인들은 감히 인우에게 다가서지 못했다.

그저 멀리서 그의 전투를 구경하거나 촬영하는 게 고작이었으니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민철을 끌고서 끊임없이 걸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헬게이트의 지척까지 걸어왔다.

그러자 몰려 있던 초인들이 저마다 놀라 눈을 치켜 뜬 채로 소리쳤다.

"어, 어쩌려는 겁니까?"

"헬게이트에서 물러서요! 위험해집니다!"

"서, 설마···!"

인우는 그들의 시선을 즐기며 그제야 입을 열었다.

"난 이 안으로 갈 건데. 당신들. 그래도 쫓아다닐 거야?"

"미, 미친! 헬게이트에 들어간다고요?"

"응. 개박살을 내버릴 거거든."

그 말을 끝으로 인우는 민철을 데리고 헬게이트 내부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오오-!

붉게 빛나는 차원의 결계.

이윽고 헬게이트는 인우와 민철을 삼켜 버렸다.

마치, 본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 진짜 들어갔어!!"

남은 자들의 어처구니없는 외침만이 이곳을 울릴 뿐이었다.

< 126화 헬게이트 탐험 (1) > 끝

ⓒ 호종이

< 127화 헬게이트 탐험 (2) >

모두가 놀라서 입을 쩍 벌리고 있을 때.

윤 기자는 본능적으로 정인우가 헬게이트에 진입하는 광경을 찍었다.

기자의 사명을 다한 것이다.

그 직후 윤 기자는 양 팔을 하늘 위로 뻗으며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특종이다아아아!!'

단독 인터뷰를 따내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하지만 엄청난 특종을 물었다.

[헬게이트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정인우. 그는 살아 돌아올 것인가?]

뭘 더 꾸미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이 문장 자체로 최고의 헤드라인이었다.

현 최강 초인 정인우.

그리고, 그 누구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던 헬게이트.

이 조합은 그야말로 핵폭탄급!

윤기자는 그 즉시 움직였다.

* * *

헬게이트는 또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문의 역할을 한다.

이 내부는 그야말로 또 다른 하나의 세계다.

쉽게 말해 아공간을 생각해 봐도 좋을 것이다.

다만, 아공간의 경우 전리품을 넣어 둘 정도의 협소한 공간이라면, 이곳은 대규모 공간, 다시 말해 또 다른 세계였다.

게다가 아공간과는 다르게 마기가 넘쳐나고 괴수들이 끝도 없이 포진되어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곳은 필드라고 할 수 있는 1~10존과는 궤를 달리하는 곳인 것이다.

프로킨에서는 이곳을 다른 말로 던전이라고도 불렀다.

우우우우우웅-

인우와 민철은 그러한 헬게이트에 진입했다.

입장과 동시에 민철은 몸을 부르르 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이곳이 바로··· 헬게이트 내부."

이곳에도 하늘과 땅은 존재한다.

그러나 이곳의 풍경은 흡사 지옥과 같아 보였다.

쩌저저저적-!

하늘에서는 우레와 같은 천둥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천둥이 들끓는 구름은 온통 붉은 색이었고, 그래서인지 이곳의 풍경은 전체적으로 핏빛이었다.

붉은빛의 향연은 사람을 본능적으로 위축되게 만든다.

하지만 민철은 피어오르는 두려움을 애써 내리눌렀다.

저벅-

용기를 내어 한 발 내딛어 보았다.

밟히는 땅은 지구의 돌과 비슷해 보였다.

그러나 온통 붉은 색인 이곳에서는, 돌조차도 붉었다.

"형님······."

민철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우를 불렀다.

하지만 인우는 대답 대신 저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인우의 시선 끝자락에는 거대한 철문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편에는 높게 솟아나 있는 탑이 보였다.

인우는 탑의 꼭대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우리가 박살 낼 곳이 바로 저기 꼭대기다."

"우, 우리요? 저도요?"

꾸웅!

"아야!"

인우는 민철의 뒤통수에 꿀밤을 놓았다.

그러면서 다시금 말했다.

"일단 저 탑까지 가는 길도 굉장히 흥미진진할 거야."

인우조차도 전성기 때나 클리어해 보았지, 지구에서는 처음이었다.

흥분으로 인해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어쩌면 위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전리품을 제외하고서도 말이다.

원래라면 좀 더 성장하기 전엔 들어가지 않았을 거다.

왜냐하면 헬게이트는 들어갈 땐 자유롭지만 나오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더 성장하길 기다릴 수 없다.

조금 위험하더라도 성장 속도가 훨씬 빠른 곳에서 해야 했기에.

'드래곤 새끼들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른다.'

생각도 잠시.

-케륵!

"혀, 형님. 저기 고블린이 있는데요···?"

민철은 조금은 어처구니가 없는 어조였다.

하긴.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고블린들이 튀어나오니 황당할 만도 할 것이다.

하지만 당연한 현상이었다.

바깥 필드에 존재하는 모든 괴수들은 결국 이곳에서 튀어나온 것이니까.

다만 이곳은 필드와는 다르다.

인우의 예상이 맞다면, 이곳의 경험치는 아마도······.

-케륵!

퍽!

[경험치를 50+50 획득하였습니다.]

"역시나."

고블린을 일격에 박살낸 인우가 중얼거렸다.

이곳의 경험치는 10배였다.

인우로서는 당연히 예상 가능한 부분이었다.

애초에 인우는 프로킨에서 지구로 귀환했을 때 경험치 때문에 굉장히 놀란 적이 있었다.

난데없이 튀어나온 고블린들을 잡았는데 경험치를 5밖에 주지 않았으니까.

그때 알게 되었질 않나.

지구와 프로킨의 경험치 차이는 무려 10배라는 것을.

이에 입각해보자면, 헬게이트 내부는 지구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곳은 다른 차원.

즉, 프로킨과 같은 경험치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너도 한 마리 잡아봐라. 깜짝 놀랄걸?"

인우가 말했다.

그리고 그때.

-츠으으으으!

데스나이트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아무래도 존의 개념이 없는 던전인지라 마구잡이로 뒤섞인 괴수들이었다.

이에 민철은 침착하게 대검을 치켜들고 데스나이트를 공략했다.

후웅-! 후웅-!

푸스스스스스.

그리고 민철은 데스나이트를 어렵지 않게 잡았다.

[경험치를 5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한 민철.

그는 잠시 멍한 얼굴을 했다.

그가 알기로는 데스나이트의 경험치는 분명 500이었다.

그런데 5000이라니!

"혀, 형님. 이게 도대체?"

민철의 의문에 인우는 씨익 웃으며 답했다.

"경험치 10배다."

"마, 맙소사!!"

민철은 만세를 불렀다.

10배라니!

그렇다는 건, 이곳에서 바실리스크라도 사냥하면 5만의 경험치를 얻는다는 것 아닌가?

이는 웬만한 블랙오크보다도 높은 경험치였다.

"하하하하!!"

분명 이곳에 입장할 당시에는 지옥과 같은 광경에 위축된 민철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낙원이었다.

세상천지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다니?

"와! 미쳤네요 미쳤어! 헬게이트에 입장했다가 되돌아온 초인이 단 한명도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 정보조차도 알려지지 않은 거겠죠? 경험치 10배라니. 여기에 입장 했던 초인들은 엄청 기뻐했겠는데요?"

"뭐, 처음엔 그랬겠지."

정말로 그랬을 것이다.

마치 지금 민철이 그러하듯, 굉장히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절망했겠지.

도저히 나갈 방법이 없었을 테니까.

이곳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탑의 꼭대기를 파괴하는 것뿐이었다.

심상치 않아 보이는 높다란 탑.

초인들도 처음에는 이곳에서 사냥을 하다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탑을 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강력함에 절망했을 테지.

그 뒤로는 명백한 죽음이 존재했을 테다.

그러한 생각도 잠시.

어느덧 인우는 데스나이트의 사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마나정수 채취는 너무 오래 걸리니 건너 뛰어. 그리고 스킬 볼이 있다면 그것만 채취하고."

"넵 형님!"

"우선 탑에 오르기 전에 몸부터 좀 풀어 보자고."

말을 마친 인우는 파뇌를 빼들었다.

* * *

인우가 헬게이트에 진입하는 한 장의 사진과 짤막한 헤드라인의 파급효과는 대단했다.

정인우의 헬게이트 입장 소식이 포털사이트 메인에 걸렸으며, 온갖 매체에서 이를 다뤘다.

방송매체에서는 헬게이트 전문가를 초빙하여 생방송을 진행했고, TV에서는 정인우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고 멍청한 것인지에 대해 말하기 바빴다.

"그러니까, 이 박사님의 의견은 정인우 씨는 절대로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이란 말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지난 30년간 헬게이트에 진입했던 초인들은 굉장히 많았습니다. 하지만 누가 돌아왔습니까? 확률적인 통계를 내보아도 그가 살아 돌아올 확률은 0.0001%도 되지 않습니다."

"단순한 확률 문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정인우 씨는 여타 초인들과는 확연히 다른 무력······."

"아니, 아니, 아 일단 말씀 도중에 끊어서 죄송하고요. 자, 앵커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헬게이트는 지난 30년간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괴수들을 뽑아냈습니다. 그 어떠한 물리적 타격도 불허했고요.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어떠한 또 다른 차원의 공간이란 말입니다. 이론상으로는, 헬게이트 내부에는 어떤 엄청난···"

띡-

TV의 전원이 꺼졌다.

전문가라는 자식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기에 꺼 버렸다.

배다정은 쇼파에 몸을 기댄 채 이마를 짚고 중얼거렸다.

"여전히 막무가내야."

대한민국 초인 급파부대 대장 배다정.

아니, 이제는 다시금 예전의 직위로 돌아온,

국가 소속 랭커팀 사일런스의 대장 배다정.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막을 순 없었다.

"이번에도 모두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비웃듯이 뒤엎어 버리겠지?"

혼잣말을 마친 배다정은 이내 샤워를 하기 위해 쇼파에서 일어나 걸어간 뒤, 옷을 훌훌 벗었다.

* * *

대략 20분 정도의 사냥을 했다.

인우와 민철은 상당한 경험치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즈음.

인우는 무언가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아 맞다."

"뭐가요 형님?"

옆에 있던 민철은 싱글벙글 웃는 낯짝으로 물어왔다.

민철은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기존보다 10배는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니까 말이다.

민철은 인우를 믿었고, 그랬기에 현재는 마음을 놓고 있었다.

"놈을 잊고 있었어."

"놈이라뇨? 아, 제라요?"

"어. 사냥터에 사람이 하도 많아서 헬게이트에 들어오면 빼 주려고 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네."

"큭큭. 또 큰소리 내지르겠는데요?"

어느덧 인우는 민철의 말을 뒤로한 채 아공간을 열었다.

그러자 아공간에서 성난 콧김을 뿜는 제라가 튀어나왔다.

"인간! 왜 이렇게 늦게 열어 주냐!"

녀석은 무엇이 그리 분한지 열을 잔뜩 올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녀석은 돌연 몸을 굳히고는 주변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여긴 어디냐···?"

"헬게이트 내부."

"헬게이트에 들어왔다고!?"

제라 또한 알고 있었다.

헬게이트가 얼마나 위험한지.

"서, 설마 드래곤을 찾으러 들어온 거냐!?"

"그때 그 헬게이트가 아니야. 이 헬게이트는 강원도에 있는 거니까."

"그럼 왜 온 거냐?"

"깨 부수려고."

"흐음··· 인간. 우리 블랙오크 전사들 중에서도 헬게이트에 들어갔다가 살아 돌아온 전사는 없었다. 아, 아니구나. 아니다. 그래. 유일하게 한 명 있긴 했는데······."

제라의 말은 조금은 의외였다.

헬게이트를 깨부순 블랙오크가 있었다니?

아, 녀석이라면 가능했을까?

"바투였겠지?"

"어? 어떻게 알았냐! 역시 인간 넌 똑똑하구나!"

누구나 예상 가능하단다.

차마 그리 말할 순 없었던 인우.

인우는 그저 웃으며 제라의 말을 받아주었다.

"인간. 어찌 되었건 바투조차도 헬게이트에 들어섰다가 반 년 만에 겨우 탈출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 반 년 만에 엄청나게 강해져서 돌아왔지?"

"어!? 또 어떻게 알았냐!?"

제라의 눈이 퉁방울만해졌다.

제라가 보기엔 인우가, 마치 점쟁이와 같은 신기를 지닌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한편 인우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바투 녀석. 아마 초월의 팔찌도 헬게이트에서 얻은 거였겠군.'

그래야만 말이 된다.

일반적인 필드에서 초월의 팔찌와 같은 오버 밸런스의 아이템을 얻을 순 없었다.

녀석은 아마 탑의 보스를 제거하고 그것을 취한 것일 테지.

그러한 생각도 잠시.

인우는 반가운 알림음에 피식 웃고 말았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가만. 벌써 레벨 업이라고?'

그러다가 인우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곳 경험치가 10배인 것은 알겠다.

그런데 그것을 제외하고서라도 레벨 업이 너무 빨랐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서, 설마······."

바로 그때.

무언가 하나의 가정이 인우의 뇌리를 스쳤다.

그리고 인우의 전신에 소름이 올라왔다.

평소, 인우는 절대자 패시브로 인해 얻는 경험치 획득 창을 꺼둔다.

그럴 수밖에 없질 않겠는가?

실시간으로 끝도 없이 떠 대는 경험치 창은 피곤과 짜증을 유발하니 말이다.

그랬기에 패시브로 인해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경험치를 구경해 본 적도 꽤나 오래 전이었다.

어느덧 인우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절대자로 인해 얻는 경험치 획득 창을 켜 보았다.

그리고 그 즉시 인우의 눈이 크게 뜨였다.

[경험치를 50+5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50+50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50+50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50+50 획득하였습니다.]

.

.

.

['헬 파이어'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힐'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 127화 헬게이트 탐험 (2) > 끝

ⓒ 호종이

< 128화 인우 가(家)의 폭풍 레벨 업 (1) >

[경험치를 50+50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50+50 획득하였습니다.]

.

.

['스트렝스'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비교적 낮은 레벨의 스킬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이민다.

절대자 패시브의 경험치까지 10배라니.

인우는 즉시 절대자 스킬의 정보를 불러와 보았다.

1. [절대자의 걸음 - 발을 내딛을 때마다 경험치를 50 획득합니다.]

2. [절대자의 호흡 - 호흡할 때마다 경험치를 50 획득합니다.]

3. [절대자의 성장 - 획득 가능한 모든 경험치가 2배가 됩니다.]

.

.

.

"미친."

성대를 비집고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지구로 귀환했던 날, 걷다가 들어오는 경험치를 확인했을 때와 비슷한 충격이었다.

걸음과 호흡은 5에서 50으로 껑충 뛰어 올라 있었다.

수치가 정확하게 정해져 있는 경험치는 예외 없이 10배가 된 것이다.

다만 '절대자의 성장'과 같이 경험치 수치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은 해당되지 않았다.

애초에 경험치 10배의 능력이 덧씌워진 것이지, 패시브의 기능이 10배가 된 것이 아니었으니까.

절대자의 걸음과 호흡은 '5'라는 경험치 수치를 포함하고 있고, 그랬기에 경험치 10배의 효과를 받을 수 있는 것일 테다.

또한 이것은 헬게이트 내부에서만 적용되는 게 분명했다.

다시금 지구로 간다면 5가 되겠지.

만약 무한정 10배의 혜택을 받으려면 프로킨으로 넘어가는 것이 정답일 테다.

"형님! 형님! 무슨 일인데 갑자기 그렇게 벙찌신 겁니까?"

"인간. 배가 고파서 그러냐? 얼굴이 창백하다."

녀석들의 걱정에도 인우는 대답 없이 생각을 이어나갔다.

역시나 가장 무서운 것은 스킬 경험치였다.

본래 인우는 스킬 마스터에 도달하기까지 50일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지금은 5+5가 아닌, 50+50이다. 즉 10배.

다시 말해, 이론상으로 보자면 스킬 마스터 달성까지의 시간이 50일에서 5일로 축소되었다는 것이다.

단 5일.

게다가 현재 1레벨의 스킬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최대 4일 정도면 모든 스킬을 마스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우선 올 스킬 마스터를 달성한 뒤에 탑에 오르는 게 올바른 판단이었다.

탑은 만만치 않다.

원래는 15스킬 마스터를 믿고 왔던 인우였다.

하지만 올 마스터라면 생각보다 쉽게 클리어가 가능할 것이다.

'가만, 분신들도 절대자 패시브가 있으니 나와 똑같을 거 아니야?'

아무래도 너무 충격적이었던지라 뇌가 굳기라도 한 것일까.

뒤늦게 분신을 떠올린 인우였다.

이내 인우는 아공간 내부에서 숨 쉬고 있던 분신들을 꺼냈다.

"······."

인우의 앞에 나란히 서 있는 4명의 분신.

현재 분신들의 레벨은 번호 순서대로 122, 122, 122, 115였다.

한계 레벨은 시전자의 41.5%에 해당하는 138.

이 녀석들은 이곳에 가만히 놔둬도 금세 한계레벨에 도달할 것이다.

'키울 수 있는 건 모조리 키우고 가자고.'

모든 정비를 끝마친 인우가 그제야 제라와 민철을 향해 말했다.

"일단 헬게이트 필드에서 4일간 사냥을 할 거야. 그 후에 헬탑을 공략할거고."

말을 마친 인우는 저편에 우뚝 솟아 있는 헬탑을 바라보았다.

탑의 꼭대기.

그곳에는 헬게이트를 유지해주는 막강한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다.

그 에너지는 조그마한 스톤에 담겨 있고, 굉장한 성능을 지니기도 했다.

목표는 명백했다.

* * *

헬게이트 필드는 일곱 남자에 의해 쑥대밭이 되어 가고 있었다.

지금 가장 신이나 보이는 것은 제라였다.

"쿠하하하하!"

제라는 호탕하게 웃으며 쌍검을 휘둘러댔다.

필드에 존재하는 괴수는 끊임없이 리젠되었고, 제라는 마구잡이로 괴수들을 도륙했다.

애초에 제라 또한 레벨 업이 가능하다.

인간과의 이종교배를 통해 태어난 블랙오크이니 말이다.

"와라 이 녀석들아!"

제라는 제 가슴을 쾅쾅 쳐대며 괴수들을 몰아잡고 있었다.

현재 제라의 레벨은 355.

이것은 인우보다도 높은 레벨이었다.

물론 스킬은 2스킬 마스터로 한참이나 뒤쳐져 있었다.

어찌되었건, 본래 중국에 존재했던 족장들의 레벨은 대부분 300을 넘긴 녀석들뿐이었다.

그랬기에 그리도 엄청난 경험치를 주었던 것이고.

그렇게 보자면 아마 바투의 레벨은 400을 가볍게 넘겼을 것이다.

또한 바투는 레벨을 제외하고서라도 기본적인 능력치 자체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녀석이었다.

어쨌든 그렇게나 무지막지한 괴물조차도 인우의 손에 의해 목이 달아났다.

그리고 필드 구석에는 민철이 보였다.

민철의 사냥법은 역시나 녀석다웠다.

우선은 코볼트나 구울이나 가리지 않고 적당한 양을 모은다.

그런 뒤 구석탱이에 박혀서 2~3놈씩 차근차근 사냥을 해 나갔다.

이렇게만 해도 성장속도는 엄청났다.

현재 민철의 레벨은 130에서 141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폭풍 레벨 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우와 분신들의 경우.

"싹 다 몰아와!"

인우는 눈을 부릅뜨고 분신들을 굴렸다.

이에 따라 4명의 분신들은 온 힘을 다해 필드를 누비며 괴수들을 몰아왔다.

애초에 수십만 마리의 블랙오크들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던 인우다.

이러니 괴수가 무섭게 다가올 리 없었다.

적어도 헬게이트 필드에서만큼은 거칠 것이 없는 것이다.

헬탑이라면 모를까······.

"크아아아!"

분신들은 저마다 포효를 내지르며 괴수들의 어그로를 끌었다.

다만 포효의 특성상, 두려움을 느낀 잔챙이들은 도주를 택했다.

이에 따라 분신들이 몰아오는 괴수들은 대부분 덩치가 큰 대형 괴수들뿐이었다.

알아서 필터가 된 채 경험치가 큰 녀석들만 굴러 들어온다.

쿵-! 쿵-! 쿵-!

4명의 분신들은 동서남북 사방에서 각자 엄청난 양의 괴수들을 몰아오고 있었다.

이윽고 넷 모두가 인우가 서 있는 중앙에 도착했다.

-크워어어어어어!

사방팔방을 뒤덮은 엄청난 양의 괴수들이 인우를 덮쳐왔다.

그러자 인우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인우는 분신들이 뛰어다니는 동안 블리자드의 시전 주문을 모두 외워 둔 상태였다.

"모조리 냉장고행이다. 블리자드."

인우의 입술에서 '블리자드'라는 시동어가 튀어나오자마자 엄청난 냉기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아아-!

블리자드가 괴수들을 덮쳤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얼어붙을 기세다.

-쿠워어어어어!

내장 끝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듯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블리자드의 공격반경에 존재했던 바실리스크의 몸이 단숨에 얼어붙기 시작했다.

까드드드득!

-쿠워! 쿠워!

바실리스크는 사력을 다해 몸을 움직였다.

이 상태가 지속되다간 꼼짝없이 온몸이 얼어붙을 것이라는 걸 알아챈 것이다.

쿵-! 쿵!

고통스러움을 참지 못한 채 바르작거리는 바실리스크.

콰드드드드!

어느덧 얼어붙은 바실리스크의 다리가 무리한 움직임으로 인해 쩌적 하고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속전속결이었다. 이어서 몸이, 그리고 심장이 얼어붙었다.

-크어······!

[경험치를 50,000+5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50,000+5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45,000+45,000 획득하였습니다.]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광기 폭발'의 레벨이 'Master'에 도달했습니다.]

['광폭 어검'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블리자드 한 방에 3분의1 가량의 경험치가 차올랐고, 레벨 업이 이어졌다.

스킬 레벨이야 뭐, 지속적으로 올라 대고 있었다.

현재 이곳에서 가장 먼저 마스터에 도달한 스킬은 광기 폭발.

마스터에 도달한 만큼 엄청난 능력을 보여 줄 것이다.

이로서 인우는 16스킬 마스터였다.

"자, 이제 2차전."

-크워어어!!

블리자드가 휩쓸고 간 자리.

그러고도 아직 살아남은 괴수들이 존재했다.

워낙에 많았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이에 인우는 파뇌조차 빼 들지 않은 채로 맨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퍽! 퍽! 퍽!

-꾸웩!

[경험치를 45,000+45,000 획득하였습니다.]

.

.

이미 몸이 얼어붙은 녀석들은 인우의 주먹질 한 방에 모조리 동강나 버렸다.

푸스스스스스스.

엄청난 물량의 괴수들이 단숨에 숨을 거뒀다.

그 광경에 구석에서 쫄보마냥 사냥하고 있던 민철은 부러운 눈빛을 보냈고, 제라는 지지 않겠다는 듯 더 많은 괴수들을 몰기 시작했다.

뭐가 되었건 인우로서는 좋았다.

제라와 민철 모두 인우의 부하이질 않나?

부하들의 무력이 꾸준히 증가하니 좋을 수밖에.

물론 제라의 경우 부하라기보다는 친구에 더 가깝지만 말이다.

"후우,"

어느덧 인우는 가볍게 숨을 뱉어내며 입을 열었다.

"채취 시작."

그 명령에 분신들이 단숨에 움직였다.

녀석들은 죽어 버린 괴수들의 사체를 뒤적이며 전리품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이에 인우는 그저 아공간을 크게 열어둘 뿐이었다.

그러자 분신들은 마치 전략 게임의 일꾼처럼 채취한 전리품들을 아공간에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그렇게 채취가 진행되는 시간은 대략 1시간가량.

그동안 인우는 숨을 빠르게 내쉬거나, 주변을 걸어다니며 고블린들을 괴롭혔다.

-케륵! 켉!

인우의 딱밤에 이마뼈가 으스러진 고블린들은 혀가 꼬인 비명을 내지르며 도주했다.

이렇게 살벌한 장난을 치며 노는 동안에 닳았던 마나는 차츰 회복되었고, 다시금 블리자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스킬 레벨 또한 꾸준히 올랐다.

그리고 그즈음.

분신들은 모든 전리품 채취를 끝마쳤다.

이내 인우의 앞에 선 채로 명령을 기다리는 분신들.

상황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마침 스킬 레벨도 빠르게 오르니 아공간도 금세 마스터 레벨에 도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제아무리 전리품이 많이 쏟아져도 모조리 다 쓸어 담을 수 있을 터.

"아주 좋아."

인우는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인우의 명령을 기다리던 분신 중 한 녀석이 돌발행동을 했다.

터벅- 터벅-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결단코 움직이지 않는 분신이다.

그런데 녀석은 지금 본인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인우는 그 광경을 잠잠히 지켜보았다.

돌발행동을 하는 녀석은 '분신1'이었다.

어느덧 분신1이 인우의 코앞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건 ······좋아하지?"

어색하게나마 말을 내뱉은 분신.

그리고 분신의 손에는 유니크 스킬 볼이 하나 들려있었다. 엄청난 숫자의 괴수들을 채취하며 운이 좋게도 유니크가 뜬 것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이 자식이 또 말을 했다.

저번엔 '뭐'라는 단어 하나만 내뱉더니, 이번엔 나름대로 문장으로 이루어진 말을 내뱉었다.

현재 분신 스킬의 레벨은 80이 넘어가는 상황.

이에 따른 변화일까?

인우는 유니크 스킬 볼이라는 달콤한 사탕조차도 잊은 채 분신1을 바라볼 뿐이었다.

녀석들은 점차 변화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인격이 생기려하고 있었다.

그렇게 분신의 눈동자를 직시하고 있기도 잠시.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으드드드드드드드-!

헬게이트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인우가 알고 있기로 헬게이트는, 누군가가 입장할 때만 떨린다.

"야 정인우!"

잠시 뒤 성난 여자의 외침이 들려왔다.

< 128화 인우 가(家)의 폭풍 레벨 업 (1) > 끝

ⓒ 호종이

< 129화 인우 가(家)의 폭풍 레벨 업 (2) >

세 남자는 뜬금없이 사라졌다.

그 덕에 저택에는 지은과 퀸 그리고 팜이만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이 녀석들이 마당에서 놀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 아닌가?

그럼에도 지은은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제 놈들이 나가 봐야 어딜 가겠나 싶었던 거다.

그렇게 밤이 깊어졌고, 심심하던 차에 TV를 시청하던 지은이었다.

발가락으로 리모컨을 조종하는 수준 높은 묘기를 펼치며 말이다.

그런데 방송매체가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지은은 보고야 말았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방송을 말이다.

그 방송에서는 제 오빠 놈인 정인우의 헬게이트 입장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저, 저게 미쳤나! 어디 갔나 했더니!"

얼마나 놀랬던지 쇼파에서 벌떡 일어선 지은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저기가 어디라고 기어 들어가는가!

죽고 싶어 환장한 것인가?

헬게이트는 들어갈 때는 자유다.

그러나 다시 되돌아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나 무시무시한 곳이다.

마치 사후세계를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헬게이트 내부에 무엇이 있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 민철이까지 끌고서 들어가 버리다니!

단체로 자살이라고 하려고!?

게다가 사라진 놈은 정확히 세 놈.

아마도 아공간에 제라까지 챙겨서 뛰쳐나간 모양이었다.

지은은 짙은 현기증을 느끼며 이마를 짚었다.

화가 나는 것도 그랬지만, 그것보다는 걱정이 더 컸다.

지은은 그 즉시 TV를 끄고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도 입장해야 하는 건가?

그렇다면 다 같이 개죽음을?

"에라이! 정인우 이 개자식!"

지은의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지은은, 인우가 들어선 강원도 헬게이트를 향해 내달려 갔다.

* * *

헬게이트 내부.

이곳에 들어선 지은은 눈을 부라리며 외쳤다.

마침 저 앞에 정인우가 보였으니까.

"야! 정인우! 미쳤냐!"

"어? 왔냐?"

"뭐? 왔냐? 뭐가 그렇게 태평해 이 자식아!"

그러면서 지은은 답지 않게 조심스러운 태도로 이곳의 땅을 밟았다.

온통 붉은색 일색인 이곳은 으스스하기 그지없었다.

주변을 향해 빠르게 고개를 내저어 가며 경계했다.

그 누구도 이곳에 들어섰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제아무리 그녀라도 긴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에 민철이가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크하, 크하하하학!! 아니, 누님! 크, 크흐흐흐! 너무 귀여운 거 아닙니까? 여기 바닥 멀쩡하다고요! 자, 이거 보세요! 아니, 저처럼 밟아보라고요! 아, 아하하하학! 누님 지금 겁먹은 고양이 같아. 크, 크흐흐흐, 크훕! .....컥!"

눈물까지 빼 놓으며 웃고 있던 민철.

그러나 녀석의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덧 단숨에 거리를 좁혀온 지은의 주먹이 뱃가죽을 강타했으니까.

민철은 숨이 턱 막혀 오는지 허리를 푹 숙이고는 지은을 바라보았다.

언뜻 바라본 지은의 눈이 평소보다 촉촉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야이 개자식아! 지금 장난할 때야?"

그녀는 지금 최고로 심각해 보였다.

그제야 저편에 있던 인우는 묘한 미소를 베어물고는 그녀를 향했다.

"야. 정지은."

"왜 이 자식아! 구하러 왔더니 히히덕대며 배꼽이나 잡고! 이 새끼나 저 새끼나!"

그녀가 내뱉는 말은 거칠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분명한 걱정이 담겨 있다.

지금 그녀는 큰 결심을 하고 이곳에 진입해 온 것으로 보였다.

하긴.

지구에서 쭉 지내왔던 그녀다.

그랬기에 민철이 처음에 그러했듯 헬게이트는 곧 지옥이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박혀 있을 것이다.

"일단 진정해 정지은."

"후우. 진정? 그래. 어디 말이나 한번 들어보자. 무슨 생각으로 들어온 거야?"

"깨 부수려고."

"뭐?"

반문하는 지은.

그리고 그즈음.

제라가 끼어들었다.

"여자 인간. 그렇게 걱정할 거 없다. 헬게이트는 바투도 돌파했던 곳이다. 정인우라면 못할 리가 없다."

제라가 바투를 언급하며 부연설명을 했다.

그제야 지은은 조금 진정이 됐다.

바투를 물리친 게 바로 인우였으니 말이다.

또 생각해 보니, 그녀가 알기로 정인우는 프로킨이라는 행성에서 황제까지 해먹다 온 놈 아닌가?

어느덧 지은은 다른 이들을 의식하며 돌려 물어보았다.

"그곳에서도 깨 본 적이 있냐?"

"전성기 때는 밥 먹듯이 다녔지."

그러면서 인우는 헤드록을 걸어 놓은 고블린 한 마리를 지은에게 내던졌다.

-케륵!

그제야 숨통이 트인 고블린이 발광을 해 댔다.

인우가 말했다.

"잡아 봐."

"고블린을?"

"그래. 잔말 말고."

퍽!

-켁!

고블린은 단번에 목숨이 끊겼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지은의 눈이 크게 뜨였다.

"뭐, 뭐야 이거!!"

"10배. 이왕 들어왔으니, 제대로 한번 개박살을 내 보자고."

사실 인우는 혹시 몰라서 지은을 데리고 오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만에 하나라는 경우가 있질 않나?

제 동생까지 위험해지면 곤란하니 말이다.

그리하여 만약 이번 헬게이트를 무사히 클리어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지은까지 데리고 다닐 참이었던 것이다.

어찌 되었건 현재로서는 의도치 않게 지은이 합류하게 되었다.

이로서 인우, 지은, 제라, 민철, 그리고 분신들까지.

막강한 전력이 헬게이트를 누비게 되었다.

* * *

분신1이 건네주었던 유니크 스킬 볼.

시기적절하게 잘 나와 주었다.

그러나 운이 너무 좋은 것 같아 불길한 예감도 들었다.

꽝이 나오진 않을까? 하고 말이다.

우선은 아공간에 넣어 둘 바에야, 꽝이든 당첨이든 먹는 것이 맞다.

현재 이곳에서는 스킬 레벨 업이 엄청나게 빠른 상황.

그렇기 때문에 신규 스킬은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 유리하다.

인우는 스킬 볼을 입속에 넣었다.

분신이 직접 준 거니 무언가 다르지 않을까?

그러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아들이 알려 준 숫자를 듣고 로또를 맞추려는 아빠처럼 말이다.

부질없는 합리화.

이내 인우는 스킬 볼을 삼켰다.

[이미 배운 스킬입니다.]

"아오."

개뿔.

쥐뿔도 없다.

얄짤 없는 시스템 메시지에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액티브와 패시브를 포함하여 스킬이 꽤나 많아진 상황.

그렇기 때문에 중복 스킬이 뜰 확률이 높은 유니크는 얄짤 없이 꽝을 선사했다.

그리고 분신들은 이러한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인우의 표정을 확인한 분신들은 저마다 안타깝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확실히 인격이 생성되려는 것 같았다.

"뭐, 됐다. 헬게이트가 여기 하나뿐인 것도 아니고. 우선은 있는 스킬이나 제대로 키워 보자고."

그렇게 중얼거린 인우는 파뇌를 치켜들었다.

* * *

오늘도 어김없이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정인우 특집.

TV에서는 앵커와 이박사의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박사님. 현재 강원도 사냥터에 괴수 리젠률이 급격히 줄어든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아, 당연한 결과입니다. 아직 정인우 씨는 살아 있을 테니까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본래 사냥터에 출몰하는 괴수들은 무조건적으로 헬게이트를 통해 나옵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자면, 현재 헬게이트에 진입한 정인우 씨가 그 안에 있는 괴수들을 모조리 도륙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 때문에 강원도 사냥터에 괴수 리젠률이 줄어든 것이지요."

"오호, 확실히 일리 있군요. 그런데 벌써 24시간이 넘었습니다. 현재까지도 정인우 씨가 살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인정하긴 힘들지만, 현재 상황만을 놓고 보자면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정인우 씨는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헬게이트 클리어를 할 수 있을까요?"

앵커의 질문에 이박사는 피식 웃어 버렸다.

그리고 비웃음을 숨기지 않은 채 말했다.

"장난합니까? 만약 그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습니다."

이박사의 호언장담은 생방송으로 전파를 타고 온 국민에게 전해졌다.

나아가, 온 나라로 생중계 되어 전 세계인들에게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 * *

헬게이트 필드에서 2일째.

"꺄하하하하하!"

정말로 특이한 웃음소리였다.

인우는 지은이가 저렇게 웃는 것을 난생 처음 보았다.

얼마나 좋으면 저렇게 웃을까?

물론 괴수들에겐 참으로 딱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파바바바바바밧!

지은의 마법이 빗발칠 때마다 엄청난 양의 괴수들이 죽어나갔다.

현재 지은의 레벨은 361.

제라가 그렇듯, 그녀의 레벨 또한 인우보다 높았다.

애초 미국의 랭커이니 엄청난 레벨의 소유자인 것이다.

그렇게나 고레벨이니 그간 레벨 업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물론 일전에 중국 전쟁에 참여하며 꽤나 많은 레벨을 올리긴 했다.

하지만 헬게이트 필드는 블랙오크보다도 훨씬 더 좋았다.

지금 그녀는 경험치 10배에 맛이 들릴 대로 들려 있었다.

물론 그것은 인우 또한 마찬가지였다.

현재 인우의 레벨은 350.

그리고 현재 마스터에 가장 근접한 스킬은 분신이었다.

분신 스킬의 레벨은 98.

분신들은 한계 레벨을 제외하면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하다못해 숫자도 여전히 4명이었다.

<분신1>

레벨 : 189

한계 레벨 : 189 <시전자 레벨의 54%>

.

.

.<분신4>

레벨 : 189

한계 레벨 : 189 <시전자 레벨의 54%>

분신 스킬은 98이 되면서 한계 레벨이 시전자의 54%로 올라간 상태였다.

이를 통해 드러났겠지만, 퍼센트 상승은 스킬 레벨 1업당 0.5%씩 증가한다.

물론 무조건적인 절대 값은 아니다.

간혹 1%씩 뛸 때도 있었으니까.

어찌되었건 현재 분신들은 189의 한계 레벨을 지녔고, 모두가 동일한 레벨을 갖추게 되었다.

경험치 획득이 용이한 곳이니 이렇듯 균등하게 맞춰진 것이다.

그야말로 깔끔했다.

그리고 지금.

.

.

20. [분신 Lv.98 (99%)] - 시전자의 분신을 소환합니다. (하루에 한 번 시전 가능하며, 레벨이 오를수록 분신의 숫자와 전투력이 증가합니다.)

.

.

인우는 분신 스킬 마스터를 코앞에 둔 상황이다.

잠시 이 기분을 음미하기 위해 숨을 참고 걸음을 멈춘 인우였다.

이윽고.

"후우우우."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자.

['분신'스킬의 레벨이 'Master'에 도달했습니다.]

드디어 마스터에 도달했다.

변화는 곧바로 일어났다.

현재 인우의 앞에서 가만히 서 있던 분신들.

녀석들 옆으로 나란히 몇 놈이 더 보였다.

드디어 분신의 숫자가 늘어난 것이다.

<분신1>

레벨 : 189

한계 레벨 : 210 <시전자 레벨의 60%>

.

.

.

<분신8>

레벨 : 1

한계 레벨 : 210 <시전자 레벨의 60%>

분신의 숫자는 무려 2배로 불어났다.

도합 8명.

게다가 한계 레벨은 기존 54%에서 60%가 되었다.

한 번에 6%나 상승한 것이다.

그야말로 마스터 레벨다운 위엄이었다.

그리고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오."

분신1의 중얼거림이 들렸던 것이다.

이윽고 분신들이 귀여운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분신1은 새로 태어난 4명의 분신들을 바라보며 군기를 잡기 시작했다.

"···막내가 4명 생겼다······."

그러면서 분신1은 분신4에게로 시선을 돌린 채 말을 이었다.

"···이제 너는··· 지긋지긋한 막내 생활···끝."

"휴우······."

그 말에 분신4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새로 생긴 막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