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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5화 미친곰의 미친 계획 > 끝

ⓒ 호종이

< 086화 내가 다 먹는다 (1) >

바투는 패오 부족의 영토에서 잔치를 벌였다.

이번 패오 부족은 조금의 힘도 들이지 않고 삼켰다.

이 기세라면 통합은 시간문제일 뿐.

그래서인지 바투의 만면에는 즐거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이처럼 즐거워하는 것은 바투뿐만이 아니었다.

부족원들도 꽤나 기뻐하고 있었으니까.

-위대한 전사 바투 만세!

-우리가 세계를 지배한다!

부족원들은 저마다 맥주와 고량주를 병째로 입구멍에 들이 박고 마셔 댔다. 그리고는 아무 데나 오줌을 갈겨 대고 있었다. 이들 모두가 즐거워 보였다.

잔치가 한창이기에 즐거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바투도 큼지막한 고기 덩어리를 씹으며 맥주를 마셨다.

그는 거대한 덩치에 걸맞게 입까지 컸다.

족히 주먹만 한 고깃덩어리를 한 입에 꿀꺽 씹어 삼켰다.

그러길 잠시.

어느덧 요리를 담당하는 부족원이 바투에게 다가왔다.

"위대한 전사 바투. 고기를 더 내오겠습니다."

"아아. 됐다. 인간고기는 이제 물려서 말이지."

"아."

"그나저나, 패오 부족이 기르던 인간 노예들은 온통 중국인들뿐이로군. 한국인 여자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바투는 아쉬워했다.

한국인 여자를 통해 좋은 혈통이 탄생된다고 믿는 그였기에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가축의 고기는 어떻습니까?"

"됐다. 그나저나 오늘은 참, 나를 낳았던 년의 고기 맛이 그리워지는 밤이로군."

어느덧 바투는 자신을 낳아 주었던 한국인 여자를 떠올렸다.

이미 오래 전 이야기.

바투는 제 어미를 강간하고 산 채로 찢어 내어 부족의 전사임을 증명했다.

이는, 바투 부족의 전통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 때문인지 한국인 여자는 늘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크으. 인간들의 술은 언제나 좋다. 이건, 나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지."

바투는 오늘따라 말이 많았다.

이에 요리 담당 부족원은 졸지에 바투의 말상대가 되어 주고 있었다.

부족원은 가만히 바투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감히 자신의 이야기는 내뱉지 않았다.

부족원의 얼굴에는 끝도 없는 존경심과 경외가 담겨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대화를 나누었을까?

어느덧 바투를 향해 한 무리의 복면인들이 다가왔다.

"위대한 전사 바투를 뵙습니다."

붉은 복면의 사내를 중심으로 검은 복면은 쓴 사내들이 보였다.

"아아. 지천우로군. 좋은 밤이다. 축제를 즐겨라."

"감사합니다."

붉은 복면의 사내.

그는 지천우였다.

예전, SG그룹의 무력 집단인 멸살단의 수장이었던 사내.

대한민국에 수배령이 떨어지자 멸살단은 바투 부족에게 투항했었다.

이에 바투는 지천우를 비롯한 멸살단원들을 받아 주었고.

그리하여 이제 지천우는 바투의 충직한 수하가 되어 있었다.

어느덧 바투는 지천우에게 자신의 옆자리를 권했다.

"앉아라."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근래에 들어서 중국에 초인으로 보이는 인간 놈들이 꽤나 많이 보인다던데. 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나?"

바투는 중국에 급파된 초인부대의 존재에 대해 슬슬 눈치 채고 있었다.

신경이 쓰이긴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바투가 보기에 인간 놈들은 이 전쟁을 막지 못할 게 뻔했으니까.

어느덧 지천우가 답했다.

"으음. 제가 보기엔 무언가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대책이라? 그럴 필요까지 있나?"

바투는 의아해하면서도 지천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지천우는 꽤나 신뢰할 만한 두뇌를 지니고 있었다.

하긴, 대한민국 대기업의 비밀 무력 단체의 수장이었던 사내다.

머리가 나쁠 리 없었다.

이윽고 한참을 생각하던 지천우가 입을 열었다.

"물론 인간들은 바투님께 감히 맞서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언가 수를 쓸 것은 확실합니다."

"그래 봐야 기껏 꿈틀댈 뿐이겠지."

"그건 확실합니다만...아니, 아직까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말해라."

지천우가 말꼬리를 흐리자 바투가 보챘다.

이에 지천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이제, 바투님의 전력은 기존의 부족들보다 족히 3~4배 이상이 되었습니다."

"그렇지."

"때문에 병력을 조금 분산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분산시키다니?"

"이를테면...특수부대를 꾸려서 세계 각지에 침투시키는 것입니다."

"흐음."

그 말에 바투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잠겼다.

그런 바투를 향해 지천우가 다시금 강조했다.

"현재 중국에 와 있는 초인들은 필시 강력한 랭커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꽤나 많은 숫자이겠지요."

"그렇겠지."

"그렇기에 지금 인간들의 땅에는 그만큼 강한 초인들이 빠져 있는 상태라고 보아도 되겠지요."

"오호라."

"때문에 정예 병력으로 구성된 특수부대를 보내서 인간들의 영역에 혼란을 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혼란일 뿐. 그로 인해 나에게 돌아올 득이 있나?"

"물론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 인류는 중국으로 보냈던 초인 병력들을 도로 철수시켜야만 하는 상황이 오게 되겠지요. 인류의 땅이 그만큼 위험해지니 말입니다."

"재밌는 계획이로군."

바투는 웃었다.

이윽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지천우를 향해 명했다.

"모든 국가에 침투시킬 정예 병력을 추려라. 최소 3천의 병력으로 한 부대를 구성하고, 그 병력은 지천우 니가 지휘해라."

* * *

"인간. 이렇게 하면 정말로 다른가?"

"이 새끼는 속고만 살았나."

제라는 불안해했고, 인우는 성을 내고 있었다.

"으음. 이건 작전이라기 보단 그냥..."

"작전이다."

"흐음..."

제라는 말꼬리를 흐렸다.

인우는 그런 제라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병법을 사용할 순 없지.'

병법으로서 제라 부족을 도와선 안 된다.

제라는 후에 적이 될 부족이다.

그렇기 때문에 병법과 같은 전쟁의 기술을 보여 주어선 안 된다.

달리 말해 제라가 너무 똑똑해지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인우가 두뇌에 담긴 모든 지식을 활용하면, 제라 부족이 어떠한 상처도 없이 미로 부족을 삼킬 수 있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양날의 검이질 않나.

제라는 보고 배울 테니까.

해서, 인우가 취한 것은 간단했다.

그저 병력의 구성을 바꿔 주었을 뿐인 것이다.

블랙오크들 또한 레벨 업의 권능을 지닌 존재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처럼 저마다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인우는 그러한 특성 별로 병력을 구성했고 조를 나눠 주었다.

사방팔방 너저분했던 병력이 인우의 지휘로 인해 체계가 잡힌 것이다.

그리고 인우가 해 준 것은 이것이 다였다.

"그럼, 이대로 미로 부족을 밀어 버리겠다."

"그래. 아참, 나도 참전할 생각이니까 기대하라고."

"오오. 직접 힘을 써 주는 것이냐?"

"어. 그러려고 온 거다."

인우는 씨익 하고 웃었다.

이 전장에는 경험치 덩어리들이 사방팔방에 깔려 있을 터.

제라 부족을 방패 삼아서, 안전한 폭식(?)을 할 수 있을 테다.

이윽고 제라 부족은 미로 부족의 영역으로 단숨에 내달리기 시작했다.

* * *

-와아아아아아!!

-이야아아아아!!

폐허가 된 도심.

이곳에서 제라 부족과 미로 부족이 맞붙었다.

수천만에 육박하는 엄청난 규모의 병력.

이들이 움직일 때마다 지축이 흔들리며 지진과 같은 진동이 울렸다.

또한, 이들이 내지르는 함성은 폐건물을 반으로 쪼개 버릴 듯 우렁찼다.

나아가, 이들이 휘두르는 병장기 마찰음에 천지가 개벽하는 듯했다.

-죽여라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

제라 부족은 드래곤의 가호를 받고 있는 이들.

그래서일까?

그들이 뿜어내는 괴력은 본래의 2배 이상이었다.

반면 미로 부족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게다가 제라 부족은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에 따라 딱 잡힌 균형으로 인해 흔들림이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제라 부족에게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게 해 주었다.

-카아아앙!!

칼과 칼이 부딪혔다.

미로 부족의 블랙오크 병사는 어금니를 빠득 깨물며 팔뚝에 힘을 주었다.

그의 상대인 제라 부족의 블랙오크는 힘이 엄청났다.

제라의 병사는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상대 병사를 난자하기 시작했다.

푸욱-!

제라의 병사가 휘두른 일격이 상대 병사의 가슴 근육에 닿았다.

"크흑!"

이에 가슴근육이 종이처럼 찢어지며 그 안에서 핏물이 후두둑 하고 흘러내렸다.

"으아아아압!!"

제라 병사는 적의 피를 보고 흥분했다.

짙은 혈향.

그것이 자신의 본능을 일깨우고 있었다.

파괴 본능.

적을 짓이겨 놓아야만 풀릴 것 같은 갈증.

후우우웅-!

제라 병사는 미친 듯이 칼을 휘둘렀다. 한번 상처를 입게 된 상대는 단숨에 뒷걸음질 치며 이를 악물었다.

푹!

연이은 일격에 지속적으로 출혈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점차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때였다.

휘이이이익!

어디선가 맹렬한 파공성이 들리며 돌멩이 하나가 쏘아져 왔다.

푸욱!

이윽고 돌맹이는 미로 병사의 가슴팍에 정확히 꽂혔다.

단숨에 살갗을 파고 들어간 돌멩이는 갈비뼈를 짓이기더니 쿵쾅대는 심장에 틀어박혔다.

"커헉!"

한줌의 피가 목구멍을 역류한다.

단숨에 정신이 끊기며 심장이 멎었다.

철푸덕-

미로 병사가 쓰러지자 제라의 병사는 돌멩이가 쏘아졌던 뒤편을 바라보았다.

"다 먹어주마!!"

그리고 그곳엔 곰 탈을 뒤집어 쓴 인간이 보였다.

족장인 제라를 돕기 위해 왔다는 인간.

그 인간은 얍삽하게 제라 부족원들의 뒤에 숨어 있었다.

그리고는 마법과 돌멩이를 날려 댈 뿐이었다.

또한 그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적군이 죽기 직전에 끼어들어 막타만 쳐 댔다.

그것이 빌어먹을 정도로 절묘해서 눈 깜빡하면 적군이 나자빠져 있었다.

곰탈의 사내는 지속적으로 돌멩이를 던져 댔다.

[경험치를 2001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204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43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325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22200 획득하였습니다.]

.

.

.

"야! 거기 대갈통 치워! 돌 날아간다!"

인우는 급히 외치며 돌멩이를 뿌리듯 내던지고 있었다.

제라 부족 놈들은 열심히 싸웠고, 상처 입은 적군은 널려 있었다.

그래서인지 경험치는 미친 듯이 올랐다.

이건 거의 역대 급이었다.

10존의 괴수 말리오가 500의 경험치를 준다.

그에 빗대어 보자면 이건 미친 경험치였다.

게다가 제라 부족 병사들이 잔뜩 양념을 해 놓으면 살포시 돌멩이 하나씩만 던져주면 됐다.

그야말로 꿀이다.

경험치는 나뉘지도 않는다.

자세히 말해 보자면,

인간이 인간을 죽여서 경험치를 얻지 못하듯이,

블랙오크들은 동족을 죽이며 경험치를 얻지 못한다.

때문에 기존에 존재하는 경험치의 기여도 시스템도 적용되지 않았다.

해서, 모든 경험치가 온전히 인우의 것이었다.

-쐐애애애액!

인우가 내던진 돌멩이는 암기가 되어 날아갔고, 그것은 명백한 적군의 죽음이었다.

이미 인우의 암기투척 레벨은 90.

이러니 웬만한 마법 따위는 가볍게 씹어 먹을 정도였다.

"야! 불덩이 날아간다!"

화르르륵-!

게다가 만렙 파이어 볼은 어떠한가?

이 한 방에 상처 입은 적군은 새카맣게 타면서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경험치를 15000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레벨 업은 단숨에 이루어졌다.

적군은 아직도 지천에 깔렸다.

인우는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다 내꺼야! 뒈지기 싫으면 대갈통 치워!"

< 086화 내가 다 먹는다 (1) > 끝

ⓒ 호종이

< 087화 내가 다 먹는다 (2) >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전쟁은 오래도록 지속되었고, 경험치는 폭발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본래 인우의 레벨은 183이었으나, 단숨에 188까지 치고 올라갔다.

이것은 다시 말해 얼추 900만 가량의 경험치를 획득했다는 것이다.

엄청나지 않은가?

900만이나 얻었는데도 블랙오크는 줄어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으니까.

인우는 여전히 암기투척과 파이어 볼을 날려 댔다.

그러면서도 정보창을 훑어보았다.

실시간으로, 그것도 급속도로 올라가는 경험치는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정인우>

레벨 : 188

특성 : 광전사

스텟 : [근력 435+50+10+15] [민첩 250+40] [마력 55+10+40] [체력 215+40+10+10]

미분배 포인트 : 25

[EXP 51,000 / 1,780,000]

단숨에 올린 레벨은 무려 5개.

이에 따라 미 분배 포인트는 25개였다.

그리고 인우는 이 포인트를 모조리 마력에 올인 했다.

이로서 총 마력은 105에서 130이 되었다.

이 정도라면 분신스킬을 쓰고도 마력이 남을 것이다.

그것은 즉, 분신 스킬 사용 뒤, 파이어 볼과 기가 라이트닝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이 경우 파이어 볼 같은 하급 마법은 제법 오랫동안 난사가 가능할 것이다.

마법을 적에게 적중시키면 일정량의 마나를 흡수하는 마나 드레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나 드레인의 레벨은 마스터.

그렇기 때문에 기가 라이트닝의 경우도 어느 정도 연사가 가능할 테다.

실험을 해볼까?

이윽고 인우는 분신을 시전했다. 예상대로 마나는 충분히 남았다.

그리고 5초 정도가 흐르자 분신이 생성되었다.

<분신1>

레벨 : 19

한계 레벨 : 29 <시전자 레벨의 15.5%>

.

.

<분신2>

레벨 : 19

한계 레벨 : 29 <시전자 레벨의 15.5%>

현재 인우의 레벨은 188.

또한 분신 스킬의 레벨은 31이었다.

이에 따라 분신1,2의 한계 레벨은 조금 더 늘어나 있는 상태.

현재 분신의 레벨은 두 놈 모두 19였다.

일전에 자동 달리기를 시켜 놓았기에, 당시 한계 레벨이었던 19에 닿아 있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 소환 가능한 분신의 숫자는 2명.

3명이 되기 위해선 조금 더 높은 레벨이 필요해 보였다.

'좋아 우선 이 놈들은 내 옆에 대충 두고······.'

이윽고 인우는 남은 마나를 활용하여 마법을 시전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우와아아아아아!!

-미로가 저기 있다!!

전장 한편에 압도적인 무위를 지닌 존재가 보였다.

"제라여! 나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미로 부족의 족장인 미로였다.

미로는 족히 3m에 육박하는 거대한 해머를 휘둘러 대고 있었다.

파드드드득-!

미로의 공격이 전장을 휩쓸 때마다 제라의 병사들이 허수아비처럼 쓰러졌다.

막강한 무위.

역시 한 부족의 족장인 것일까?

그렇다면, 저 자식의 경험치는 몇일까?

인우는 입맛을 다셨다.

그리곤 자신의 앞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는 제라 부족원들을 향해 윽박을 질렀다.

"야! 저 대가리 새끼 잡아!"

인우는 직접 나설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물론 직접 나서서 족장이라는 녀석과 대결을 펼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제라 부족을 이용해서 자신의 피해를 최소화할 생각이었다.

이용할 때는 200% 이상 활용하는 것이 인우였기에.

"미-로!"

그러길 잠시.

어느덧 제라가 나섰다.

제라는 양손에 각각 검을 쥐고 있었다.

검의 외형은 무척이나 얇았다.

우락부락한 제라가 저러한 검을 들고 있으니, 마치 이쑤시개 같아 보였다.

제라는 찌르기를 주로 하는 스킬을 사용한다.

그랬기에 이러한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제라 네놈! 죽여 주마!"

"가소롭구나 미로!"

이윽고 둘이 격돌했다.

인우는 그러한 두 족장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제라 이놈은 드래곤의 가호도 받고 있으니 미로에게 패배할 일은 없을 테지.'

그런 생각을 하는 한편, 인우는 다시금 전장을 훑었다.

저 두 녀석이 싸우고 있는 동안 졸개들이나 먹을 참이었다.

시간은 곧 경험치였으니까!

쩌저저저적-

이윽고 인우는 기가 라이트닝을 시전했다.

그런 뒤, 제라 부족원들이 거의 다 잡아 놓은 미로 부족의 병사들을 향해 마법을 꼽아 버렸다.

우르륵!! 쾅! 쾅! 쾅!

붉은 번개가 미로 부족원들의 정수리에 꽂혔다.

이미 죽음의 문턱에 닿았을 정도로 지쳐 있던 미로 부족의 병사들.

놈들은 마력의 번개에 의해 게거품을 물면서 바닥에 처박혔다.

[경험치를 12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21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125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4700 획득하였습니다.]

.

.

.

또 다시 엄청난 양의 경험치를 획득한 인우.

이윽고 인우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버렸다.

'바투 부족과 제라 부족의 이파전이고 뭐고······. 그냥 제라 부족을 이용해서 계속 이렇게 경험치나 먹어 봐?'

인간이라면 빠질 수밖에 없는 유혹이었다.

솔직히, 제라 부대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상대 부족에게 항복을 받아 내어 병력을 최대한 불려야 옳은 처사다. 그래야만 바투 부족과의 전쟁에서 힘을 쓸 것 아닌가?

그러나 상황이 이쯤 되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흐음···!'

그러길 잠시.

이윽고 인우는 결단을 내렸다.

'뭐, 적당히 잡으면 될 일이지. 저렇게나 까마득하게 많으니까, 몇 천 마리 잡는다고 티 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맞는 말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인우 본인이 강해진다면, 후에 전쟁에서 엄청난 활약을 할 수 있을 테다.

그리고 제라와 바투의 이파전이 되었을 때.

그때는 정말로 마음 놓고 두 부족 놈들을 죽여서 경험치를 얻을 수 있을 테다.

"뭐, 일단은 즐겨 보자고!"

이내 인우는 한 움쿰의 돌멩이를 쥐었다.

그리고 돌멩이들은, 체력이 방전되다시피 한 미로 부족의 병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

.

몇 마리나 죽였을까?

아마 수천마리에 가까운 블랙오크들을 잡았을 것이다.

"큭."

인우는 여전히 상태창을 열어 둔 채로 실시간으로 올라 대는 경험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인우>

레벨 : 199

특성 : 광전사

스텟 : [근력 435+50+10+15] [민첩 250+40] [마력 80+10+40] [체력 215+40+10+10]

미분배 포인트 : 55

[EXP 11,540 / 2,890,000]

전쟁은 여전히 한창이었다.

그러나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188레벨이 199까지 올라가 있었다.

무려 11개의 레벨을 올린 것이다.

이에 따른 미분배 포인트는 무려 55개.

그러나 인우는 포인트를 분배시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레벨이 너무 빠르게 올라가니 나중에 한 번에 올리기 위해서였다.

그때그때 5씩 찍자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으니까.

누군가가 이러한 광경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200이 코앞이로군.'

오늘 도대체 레벨 업을 몇 번이나 했을까?

세다가 중간에 포기할 정도였다.

어찌되었건 현재의 결과물은 199.

달리 말해 두 번째 각성을 코앞에 둔 상태.

즉, 이제 곧 2차 각성이라는 것이다.

어찌되었건, 레벨은 99 단위로 한 번씩 막힌다.

이 구간을 돌파하면 육체가 그 레벨 단계에 걸맞게 각성하는 것이다.

인우의 경우 99에서 100레벨을 일구어 냈을 때 1차 각성을 완료했었다.

당시 99의 정인우는 홀로 용작두 광전사를 처치하여 '각성 정수'를 습득했었다.

그것으로 100레벨에 닿지 않았던가.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또 다시 마의 구간인 199였다.

그러나 199부터는 각성 정수와 같은 특정 아이템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기존의 필요 경험치량이 1.5배가량으로 껑충 뛰어 버리는 것이다.

말이 1.5배지 이것은 제법 난감한 상황이다.

애초에 기하급수적으로 높은 경험치 통이 1.5배로 늘어나는 것은 보통 큰 것이 아니었으니까.

199 레벨. 현재 필요 경험치량은 '2,890,000'

평범한 초인이었다면 한동안은 레벨 업을 미루고 싶어질 정도의 양이다.

그러나 인우는 아니었다.

인우에겐 두 종류의 절대자 패시브가 있지 않은가?

어디 그뿐인가?

현재 인우는 수천만 병력의 블랙오크들이 설치는 전장의 한복판에 와 있다.

경험치가 지천에 널려 있는 것이다.

"단숨에 치고 올라가 주지. 오늘 2차 각성까지 간다."

1차 각성이었던 100레벨 때는 광폭난무라는 각성 스킬을 얻었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200레벨인 2차 각성 스킬은 이보다 더 대단했다.

"이거야 뭐, 어떤 놈들부터 죽여야 할지 난감할 지경인데."

인우는 여전히 제라 부족을 앞세운 상태로 후방에 서 있는 상태였다.

이제 인우는 굉장히 능숙하고 자연스럽게 마법과 돌멩이를 날려 댔다.

[경험치를 24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

.

.

.

삽시간에 엄청난 양의 경험치를 획득했다.

이윽고 인우는 여전히 치고 박고 있는 제라와 미로를 바라보았다.

두 놈 모두 여전히 팔팔했다.

"저 새끼들 진짜 하루 종일 싸울 생각인가?"

인우는 인상을 구기며 답답한 가슴을 쳐댔다.

곤란하다.

곤란해.

이윽고 인우는 등허리에 매달아 두었던 용작두를 빼들었다.

거대하고 날카로운 용작두의 칼날이 번뜩였다.

이내 인우는 광폭화와 광기폭발을 동시에 시전했다.

그리곤 그대로 대검관통을 쏘아 내며 미로에게 쇄도해 나갔다.

쐐애애애액-!

인우의 신형이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나아갔다.

투두두두두두둑!

굉음이 울리며 땅거죽이 휴지조각처럼 부풀어 오르며 뜯겨져 나갔다.

"크아아아아아압!"

광기폭발로 인한 비약적인 스피드 상승.

이와 더불어 마스터 레벨인 대검관통의 추진력까지.

그야말로 미친 스피드였다.

인우는 단숨에 미로의 뒤통수를 향해 용작두를 휘둘렀다.

쐐액-! 카앙!

"이 놈은 뭐야!?"

"오, 인간. 도움을 주는 것이냐?"

인우의 등장에 미로와 제라가 동시에 반응했다.

인우는 둘의 반응을 가볍게 무시했다.

그러더니 아무런 망설임 없이 미로를 공격했다.

캉-! 캉-!

그러자 미로는 거대한 해머를 치켜들며 공격을 막아섰다.

제라 하나만으로도 압박감이 엄청났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등장한 이 빌어먹을 곰탈 인형은 누구인가?

이 자식 때문에 미로는 단숨에 위기에 봉착했다.

"으라아아아아!"

미로는 기합을 내지르며 온 힘을 다했다.

그런데 그때, 인우가 제라를 향해 말했다.

"야, 나와 봐. 이 새끼 내가 처리한다."

저 새끼는 용작두로 확실하게 대갈통을 깨부숴야겠다.

인우는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과 같이 제라와 합공을 하게 되면, 경험치는 그대로 날아갈 수도 있었다.

그건 결단코 용납할 수 없었다.

한 부족의 족장이기에 필시 엄청난 경험치를 줄 터.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덧 제라가 답했다.

"큰 도움을 주는군. 인간. 좋다. 나는 미로 놈의 부족원들을 밀어붙이겠다."

제라는 순순히 물러섰다.

그제야 인우는 눈을 부릅뜨고 미로를 노려보았다.

"빨리 끝내자?"

"놈···!"

이윽고 인우의 신형이 번뜩였다.

* * *

"허억. 허억. 허억."

역시나 수천만의 부족을 이끄는 족장인가?

인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미로는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놈은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지경이었다.

그리고 인우는 망설임 없이 최후의 일격을 넣었다.

쐐-액!

푸-욱!

이윽고 인우의 용작두가 미로의 목을 베어 냈다.

인우로서도 제법 힘든 싸움이었다.

솔직히, 블랙오크의 족장이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다.

미로는, 여태까지 싸워 보았던 그 어떤 랭커보다도 강했다.

쓰-걱!

뎅-강!

이윽고 미로의 머리통이 바닥을 굴렀고, 몸통은 썩은 고목나무처럼 바닥에 처박혔다.

그리고······.

[경험치를 1,225,500 획득하였습니다.]

[신체가 각성되었습니다.]

[근력이 100 증가합니다.]

[민첩이 80 증가합니다.]

[체력이 80 증가합니다.]

[마력이 20 증가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200레벨의 '광폭 어검'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200레벨의 '절대자의 성장'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 087화 내가 다 먹는다 (2) > 끝

ⓒ 호종이

< 088화 전리품 >

<정인우>

레벨 : 200

특성 : 광전사

스텟 : [근력 435+150+10+15] [민첩 250+120] [마력 80+30+40] [체력 215+120+10+10]

미분배 포인트 : 60

[EXP 20 / 2,900,000]

<액티브 스킬>

.

.

8. [광폭 어검 Lv.1 (5%)] - 무기를 자유자재로 조종합니다. (레벨이 오를수록 파괴력과 발동거리가 증가합니다.)

9. 다음 스킬은 300레벨에 활성화됩니다.

.

.

<패시브 스킬>

.

.

3. [절대자의 성장 - 획득 가능한 모든 경험치가 2배가 됩니다.]

4. [전능자의 ?? - 레벨 300 달성 시 활성화됩니다.]

.

.

레벨은 200이 되었다.

이에 따라 육체는 2차 각성이 되었고, 해서 스텟이 대폭 상승된 상태였다.

또한 광전사의 2차 각성 스킬인 '광폭 어검'이 활성화되었고, 절대자의 성장도 활성화된 상태였다.

그리고, 절대자의 패시브는 이것으로 끝인 것 같았다.

이제는 조금 다른 형태의 패시브가 눈에 띄었다.

300레벨에 활성화 될 예정인 패시브.

저것은 과연 무얼까?

역시나 레벨 성장에 관련된 것일까?

아니, 어쩌면 이제부터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 나올지도 모른다.

절대자에서 전능자로 뒤바뀐 만큼 어떠한 차별점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어찌되었건 300레벨이 되어 보기 전까진 속단할 수 없었다.

이윽고 인우는 천천히 숨을 쉬어보았다.

[경험치를 5+5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5+5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5+5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5+5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5+5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5+5 획득하였습니다.]

.

.

"...."

절대자의 성장.

이로 인해 경험치는 뻥튀기 되어 있었다.

인우는 침묵했다.

그러면서 한참 동안 미로의 시체 앞에 서 있었다.

바로 그때.

미로의 병사 한 놈이 인우에게 덤벼들었다.

"취-익!"

"...."

인우는 그저 손을 들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우우우웅-!

용작두가 허공에 저절로 떠오른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용작두는 인우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며 병사의 목을 가볍게 그어버렸다.

"커르륵..."

목이 잘린 병사는 한동안 허우적대며 피 끓는 소리를 냈다.

이것이 바로 광전사의 2차 각성 스킬인 '광폭 어검'이었다.

어느덧 블랙오크 병사의 경험치가 들어왔다.

[경험치를 8700+8700 획득하였습니다.]

"하."

인우가 짧게 숨을 내뱉었다.

맙소사.

절대자의 성장.

그 설명 그대로였다.

획득하는 모든 경험치는 2배가 되어 있었다.

현재 200레벨이 되며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 총량은 꽤나 늘어난 상태.

그럼에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200이 되기 전보다 훨씬 더 빠른 레벨업이 가능할 수밖에 없었다.

자그마치 2배다.

[경험치를 5+5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5+5 획득하였습니다.]

어디 그뿐인가?

스킬 경험치를 보라.

이제는 5가 아닌 10이 오른다.

남들은 스킬을 한 번 시전 할 때, '1'의 스킬 경험치를 획득한다.

이에 빗대어보자면, 인우의 경우 다른 초인들보다 무려 10배의 스킬 경험치를 얻게 되었으며, 이 10배 마저도 초당 수차례 올라가지 않는가?

어쨌든 걷고 숨을 쉬는 것 아닌가?

그렇기에 수백, 어쩌면 수천 배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거...이대로 성장한다면, 내 영역을 빼앗은 드래곤 새끼들을 잡으러 가도 되겠는데...?'

프로킨의 정인우는 수백 마리의 드래곤들을 피해 도망쳤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정인우는 앞으로도 훨씬 더 강해질 것이다.

본래에는 스킬이 1에서 99까지 도달하기 위한 시간이 대략 100일 정도였다.

평균적으로 그러했다.

그런데 이제는 '절대자의 성장'으로 인해 경험치가 2배가 된 상태.

그렇기 때문에 이제 스킬 마스터에 도달하는 시간은 2배 축소된 50일이면 될 것이다.

100일 마저도 사기적인 빠르기였다.

그런데 50일이라니!

그렇기에 훗날 인우는 기존의 밸런스를 폭격할 만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인간.

그 이상의 영역인 드래곤.

나아가 마계에 존재하는 마물들.

더 나아가, 어쩌면 신마저도.

"..."

어느덧 인우는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그리곤 온 힘을 다해 전장 한복판에 포효했다.

"너희들의 대가리인 미-로는 뒈졌다!! 부족원 놈들은 다 꿇어!!"

인우는 미로 부족과 제라 부족 전쟁에 끝을 고했다.

* * *

인우가 중국에 가겠다고 말했던 날.

정지은은 미국으로 돌아간다 했다.

인우가 없다면 굳이 한국에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그녀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한국에 머물고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존재했다.

본국이 그녀를 간절히 찾고 있었으니까.

"빌어먹을 윗대가리 새끼들. 왜 내가 니 새끼들 말을 따라 중국에 급파 되야 하냐? 나는 벽에 똥칠 할 때까지 살 거라고."

정지은은 홀로 살벌히 외치며 독한 양주를 퍼붓고 있었다.

사실 무시할 수도 있긴 했다.

그러나 그녀는 미국정부가 얼마나 끈질긴지 알고 있었다.

분명 그녀의 과거를 들추며, 없는 죄라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말로 꼼짝없이 중국으로 급파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구가 망하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인데? 나는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 이거야."

그녀는 제법 취기가 올라와 있었다.

볼이 발그레 달아올라 있었으니까.

사실, 초인의 경우 일반인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력한 육체 재생력을 지니고 있다.

나아가, 괴물과 같은 회복력까지도.

어찌되었건, 그랬기에 지은처럼 강력한 랭커는 취하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취하고 싶다면 양주 수십 병을 마셔야 가능할 정도였으니까.

그 때문일까?

현재 지은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빈병들이 뒹굴고 있었다.

"후우우우."

이윽고 그녀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계산을 마친 그녀는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그녀가 향하고 있는 곳은 인우의 거주지인 강원도였다.

한국에서 갈 곳이라곤 그곳이 유일했다.

당분간은 그곳에서 숨어 지낼 셈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때까지 예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시작된 재앙이,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 * *

지천우는 3천의 병력으로 이루어진 5개의 특수부대를 꾸렸다.

이에 따라 바투 부족에서 빠진 정예 병력은 1만 5천.

그러나 티도 나지 않을 규모다.

바투 부족은 이제 족히 1억에 가까울 정도로 부풀어 있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어찌되었건.

1부대는 한국으로, 2부대는 러시아로. 3부대는 미국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몇몇 초인강국들을 압박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각 부대의 부대장들을 지정했고, 지천우는 1부대를 이끌었다.

지천우는 출전하기 전, 바투와 독대하고 있었다.

"위대한 전사 바투. 모든 정예 병력을 차출하였고, 5개의 특수부대를 꾸렸습니다."

지천우의 작전은 그럴 듯 했다.

각 나라에 혼란을 주어, 중국에 급파 되어 있는 초인부대를 다시금 각자의 본국으로 이끄는 것.

그 시작은 우선 5개의 부대였다.

이윽고 바투는 짤막하게 답했다.

"출전해라."

"알겠습니다. 맡겨주십시오."

* * *

배다정은 보고조의 보고를 듣고 적잖이 놀란 상태였다.

"설마하니 정말로 제라를 설득하고 거기에서 나아가 하나의 부족을 통합하다니..."

미친곰은 정말로 제라와 동맹협상을 했다.

그리고 정말로 부족 통합을 해나가고 있었다.

일전에 미친곰은 분명히 말했었다.

'바투와 제라의 이파전으로 간다.'

그리고 미친곰이 말했던 것은 점차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정은 등골부터 소름이 돋아났다.

미친곰은 그저 개인 일뿐이다.

그랬기에 기대도 안했다.

그리고 그랬기에 현 상황은 더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다정이 보고조를 향해 말했다.

"그만 나가 보도록. 그리고, 각조의 조장들을 불러와."

"알겠습니다."

이윽고 작전막사에는 조장들이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내 모든 조장들이 자리에 착석했고, 그제야 배다정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친곰이 해낼 수도 있겠어."

그 한마디에 모두의 시선이 단박에 다정을 향하고 있었다.

* * *

인우의 포효에 미로 부족은 순순히 투항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족장 미로가 이미 죽은 것이다.

게다가 전세는 이미 기울어버린 지 오래.

이윽고 수천만 미로 부족이 무기를 버렸다.

그 모습에 인우가 제라에게 말했다.

"축하해. 한 부족 통합했네."

"하하. 이로서 두 부족 통합한 거다. 아무도 모르게 한 부족 통합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참 쉽게 했다. 좋다. 인간. 너는 제법이로군."

제라는 얇은 쌍검을 허리춤에 꼽으며 만면 가득 웃음을 머금었다.

좋을 수밖에 없었다.

수천만의 병력이 추가되었는데 싫을 리 없다.

다시금 인우가 말했다.

"자, 이제 병력 정리하라고."

"그래. 그래야지. 그리고 오늘은 미로 부족의 영역에서 파티를 열거다. 너도 와라. 인간의 고기는 먹어보았나?"

"개소리하지 마."

"큭큭. 인간고기 싫은가 보군. 그나저나, 내가 병력을 정리하는 동안 무얼 할 거냐?"

미로의 물음에 인우의 시선이 전장 이곳저곳을 훑기 시작했다.

이곳 땅은 블랙오크들의 피와 내장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체에선 김이 모락모락 나올 정도.

지옥과 같은 광경이다.

족히 수천에 달하는 시체이니까.

그리고 그것은 다시 말해...

"전리품 채취라고 들어봤냐?"

"흐음. 전리품이라. 확실히 미로 놈의 영역에는 인간 전리품이 많다. 혹시 인간 여자가 필요한가?"

미로의 말에 인우는 피식하고 웃었다.

녀석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개한 놈이니까.

어찌되었건,

블랙오크.

놈들도 괴수다.

그리고, 그것은 즉 놈들에게서 나오는 전리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강력한 놈들이었던 만큼 마나 정수만 해도 최소한 A급으로 도배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S급으로 잔뜩 채취할 수도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스킬 볼이 나올 수도 있다.

이윽고 인우는 전장에 널브러져 있는 수천 마리의 블랙오크 시체를 바라보았다.

"흠. 근데 저걸 언제 다 채취한담."

이곳엔 민철도 없다.

민철이는 확실히 손이 빠른 놈이라 채취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했다.

생각도 잠시.

이내 인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블랙오크의 전리품을 직접 채취하기 시작했다.

저 빌어먹을 야만 오크새끼들이 인간 고기로 파티 하는 광경을 보고 싶진 않았다.

그러니 슬렁슬렁 수천 마리의 전리품 채취나 하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게다가 이것은 단순노동임에도 재미있는 노동이었다.

어떤 아이템이 나올지 모르는, 최상급 블랙오크의 시체가 수천 마리나 되는 것이다.

이내 인우는 블랙오크 시체의 가슴근육을 가르고 그 내부에 존재하는 마나정수를 채취했다.

그러자 제라가 인우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파티 안 올 거냐? 그런데 그건 뭐하는 거냐?"

"내가 이게 좀 필요하거든."

"오호."

제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녀석은 부족원 수백 명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명했다.

"여기 곰을 도와줘라. 그리고 곰 너는 그거 빨리 하고 파티 와라."

아무래도 제라는 인우가 제법 마음에 들었나보다.

물론 인우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찌되었건 도와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도 없다.

이윽고 부족원 놈들은 인우가 하는 것을 똑같이 따라했다.

그러면서 놈들은 동족의 사체에서 마나정수 따위를 채취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블랙오크들은 미개한 족속들인지라 마나정수가 얼마나 대단한 에너지원인지조차도 몰랐다.

어찌되었건 놈들은 열심히 일했다.

그러자 인우는 자연스럽게 놈들을 굴리며 모든 전리품을 채취하게 만들었다.

"좋네. 좋아."

그렇게 인우는 놈들을 굴려 놓은 상태로 어딘가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인우의 발아래에는 미로의 시체가 보였다.

'자그마치 120만의 경험치를 줬던 괴물 중의 괴물이다.'

한 부족의 지배자.

중국에 존재하는 13명 족장 중의 한명.

이 무시무시한 놈은 과연 무얼 줄까?

이윽고 인우는 미로의 시체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 088화 전리품 > 끝

ⓒ 호종이

< 089화 >

인우는 미로의 가슴을 단숨에 갈라 냈다.

그런 뒤 그곳에 손을 집어넣고 마구잡이로 휘젓기 시작했다.

괴수가 괴력을 낼 수 있는 주된 에너지원인 마나정수.

그것은 심장 근처에 존재한다.

그렇게 한참을 휘젓기도 잠시.

턱.

어느덧 인우의 손이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물컹한 것이 아닌 아주 단단한 물질이었다.

볼 것도 없이 마나정수였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이거, 왜 이렇게 커······?"

손가락으로 만져 보기에는 그 크기가 쉽게 짐작조차 되지 않을 정도.

도대체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큰 것일까?

이윽고 인우는 손을 빼냈다.

"가슴을 아예 때려 부셔야 추출이 가능하겠는데?"

인우는 미로의 갈비뼈를 모조리 작살 냈다.

그런 뒤 저 거대한 덩어리가 빠져나올 수 있을 만한 충분한 공간을 만들었다.

인우는 다시금 손을 넣고 휘저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덩어리를 빼냈다.

포옥-

경쾌한 소리와 함께 마나정수가 뽑혔다.

이와 동시에 인우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뜨였다.

"와··· 이건 뭐, 드래곤 하트냐···?"

보통의 마나정수는 엄지 한 마디 정도의 크기의 구슬 형태이다.

그런데 이것은 볼링공만 한 크기의 형태였다.

이 엄청난 정수의 급수를 매기는 것이 가능할까?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정수의 등급은 F~S급까지.

그런데 이 미친 정수는 그 크기만 놓고 봤을 때, S급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할 정도였다.

트리플 S급이라는 신규 등급이 생긴다고 해도 온전히 표현치 못할 것이다.

"흐음."

이윽고 인우는 미로의 마나정수를 배주머니에 넣었다.

현재 인우에게 마나정수는 그리 중요한 전리품이 아니다.

인우는 다음 전리품 채취를 위해 눈을 빛냈다.

이윽고 두 번째로 획득한 전리품은 조그마한 구슬.

이건 필시 스킬 볼이었다.

그런데 피에 잔뜩 젖은 상태였기에 그 색깔을 가늠할 수 없었다.

인우는 스킬 볼을 땅바닥에 대충 문대며 피를 닦아냈다.

그러자 마침내 스킬 볼의 색깔이 드러났다.

색을 확인한 인우의 입가가 미소로 물들었다.

"그래그래. 이 정도는 나와 줘야지."

구슬의 정체는 유니크 스킬 볼이었다.

이것은 지금 인우가 가장 필요로 하는 아이템이었다.

애초에 이것을 수당으로 받기로 하여 중국 파견에 참여하지 않았던가?

관리국은 인우에게 한 달에 한 번 지급되는 수당을 유니크 스킬 볼로 대체해 준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물품이니까.

그런데 이곳에서 전쟁을 하며 이것을 구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윽고 인우는 유니크 스킬 볼을 배주머니에 넣었다.

"한 개뿐인가."

아쉽게도 더 이상의 스킬 볼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전리품은 이것으로 끝인 것 같았다.

이윽고 인우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런데 그때였다.

우우우웅-!

갈라진 미로의 가슴팍 위로 무언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응···?"

인우는 가만히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저건 도대체 무얼까?

새하얀 무형의 기운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운은 점차 뭉쳐지더니 어떠한 형태를 띠우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웅-!

마침내 기운은 동그랗게 뭉쳐졌다.

그것은 여전히 허공에 떠 있었다.

"설마?"

그러한 광경을 지켜보던 인우는 무언가를 떠올리며 이마를 좁혔다.

분명 저것과 비슷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드래곤이 죽을 때 나타나는 힘의 정수였다.

드래곤의 하트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었다.

드래곤 하트가 생전 드래곤이 지녔던 힘의 원천이라면, 힘의 정수는 드래곤이 죽고 난 직후 떠오르는 힘이다.

힘의 정수.

그것의 생성 원리는 알고 보면 간단하다.

생전 엄청난 전투력을 지니고 있던 생명체들.

놈들이 죽게 되면 체내에 존재하던 모든 힘은 소멸되지 않는다.

심지어 그 힘은 지금처럼 어떠한 형태를 띠며 떠오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힘의 정수였다.

프로킨에서는 대체로 드래곤들이 힘의 정수를 남기고는 했다.

물론 지금 떠오른 힘의 정수가 드래곤의 것처럼 대단하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은, 미로라는 블랙오크가 그만큼 강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굳이 따져 보자면 태어난 지 10년 안팎의 헤츨링 정도랄까?

이윽고 인우는 허공에 떠오른 힘의 정수를 쥐었다.

우우웅-!

그러자 힘의 정수는 인우의 손아귀에서 미세하게 꿈틀대기 시작했다.

"흐음······."

프로킨에서는 힘의 정수를 만병통치약이라 칭했다.

섭취하게 되면 그 어떤 병이라도 치료가 되었으니까.

이것이 비교할 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인류에 존재하는 산삼을 떠올려 보아도 좋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힘의 정수는 기운을 북돋아주고 병마를 치료해 주는 최고의 영약이었다.

이건 언젠가는 분명 쓸 일이 생길 것이다.

이내 인우는 힘의 정수를 배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그즈음.

제라의 부족원들은 모든 전리품 채취를 끝낸 상태였다.

녀석들은 채취를 끝낸 마나정수와 스킬 볼들을 모조리 담아 내서 인우에게 건넸다.

그 엄청난 물량에 인우는 헛웃음을 흘리고야 말았다.

* * *

우우우우웅-!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그리고 액정에는 익숙한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어어!?"

민철은 '정인우 형님'이라고 떠오른 이름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거기서도 통화가 가능한 건가!?"

거기까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아마 임시기지국 따위의 것들이 설치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찌되었건 지금 인우에게 전화가 왔다.

민철은 단숨에 전화를 받았다.

"형-님!!"

-아오 귀 아파. 잘 먹고 다니나 보네? 목소리가 아주 기운이 넘치네.

"저야 뭐. 하하하! 그런데 형님 지금 중국 맞으십니까?"

-어. 블랙오크들이랑 있어. 사육장은 별 문제 없지?

"네에...? 블랙오크랑 있다니. 농담도 참. 아 그리고 사육장은 제가 완벽히 지키고 있습니다!"

-꼴깝은. 야, 됐고. 헬기 하나만 섭외해 봐.

"에에? 헬기라뇨?"

-들고 다니기 곤란할 정도의 전리품이 쌓였어. 아마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쌓일 것 같으니까, 헬기 하나 섭외해 둬. 끊는다.

"아, 네! 형님! 그럼, 좋은 하···!

뚜욱-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자기 할 말만 하고 끊는 인우였다.

그럼에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제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민철은 그저 헤죽 웃을 뿐이었다.

이내 민철은 주택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아직은 이른 새벽.

우선은 사육장 일부터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내 민철은 바실리스크 사육장에 들어섰다.

-···커어어, 커어어······.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바실리스크의 소리는 아니었다.

이건 바로······.

"팜이 이 녀석 이제 집에 두기엔 너무 커 버렸어. 어떻게 저렇게 빨리 크는 거지?"

팜이가 잠을 자며 들이 내쉬는 숨소리였던 것이다.

민철은 조심스럽게 사육장의 불을 켰다.

-···커어어, 커어어······.

그럼에도 팜이는 여전히 꿈나라였다.

이윽고 민철은 가만히 팜이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민철 자신보다도 훨씬 커진 팜이의 몸체.

정확히 따져보자면 민철보다 대략 2배가량은 커진 상태였다.

뿐만 아니다.

녀석이 내뱉는 숨에서 미약한 불꽃덩어리가 새어나왔으며, 얌전히 오므린 두 날개는 접혀 있음에도 제법 컸다.

그야말로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드래곤의 모습.

"자식. 잘 자네."

민철은 그런 팜이를 보며 흐뭇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선 바실리스크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다가갔다.

터벅- 터벅-

민철의 발걸음이 조용하기 그지없는 사육장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때.

-크아아아아암!

"어이쿠 썅! 놀래라."

민철은 난데없이 들려오는 피어에 깜짝 놀라며 바닥에 엉덩이를 찧었다.

-크암.

"아, 팜이. 일어났냐? 오늘도 하품 한번 거하게 하는구나."

-크아암.

피어의 주인공은 팜이였다.

팜이는 더 이상 '파암'하고 울지 않았다.

자랄 대로 자란 녀석의 성대는 '크암'이라는 거대한 흉성을 뿜어냈던 것이다.

터벅- 터벅-

어느덧 팜이가 민철의 등 뒤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녀석은 혀를 내밀곤 민철의 머리통을 핥기 시작했다.

"아하하! 간지러워 인마!"

-크암!

그렇게 인사를 건넨 팜이는 천천히 사육장 밖으로 나섰다.

이어 녀석은 거대한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크아아아아암!

날아오른 녀석이 내지른 피어에 숲속의 참새들이 놀라 달아나고 있었다.

* * *

퀸의 수면시간은 2시간이 넘어가지 않았다.

인간의 신진대사와는 확연히 다른 구조를 가진 그녀였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새벽에 거주지 주변을 산책하고는 했다.

캄캄한 어둠에 휩싸인 산골오지의 숲속은 위험하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그저 단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주택에 설치된 오망성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바스락-

그녀는 숲속의 낙엽을 밟으며 꾸준히 걸어 나갔다.

그런데 그때.

숲 저편에서 여러 개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산짐승은 아니었다.

풍겨 오는 냄새가 그러했으니 말이다.

'설마.'

제법 익숙한 냄새였다.

일전에 분명 겪어 보았던 냄새이기도 했다.

퀸은 놈들의 피를 빨아보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 냄새는 필시 블랙오크였다.

게다가 한두 마리가 아니다.

이윽고 퀸은 나무 뒤에 숨어 귀를 기울여 보았다.

-위대한 전사 바투는 왜 인간 따위의 작전을 신뢰하는 거지?

-알 수 없지. 그 인간의 작전은 마음에 들지 않아. 교란이라니.

-그러니까.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부족 통합이 코앞인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됐다 됐어. 그냥 하라는 대로 해야지 별 수 있겠어?

느껴지는 기운은 대략 10마리 가량.

게다가 매우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 정도의 기운이라면 일전에 잡았던 블랙오크보다도 급이 높은 수준이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일까? 퀸은 사력을 다해 숨을 죽였다.

바스락- 바스락-

어느덧 발걸음 소리가 차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퀸의 심장도 거칠게 뛰었다.

솔직히 말해서, 저 정도의 기운을 풍기는 블랙오크 10마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바스슥.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발걸음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있었다.

'갔나.'

퀸은 조심스럽게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고요했다.

또한 어두웠다.

컴컴한 새벽이지 않은가.

불현 듯 괜히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얌전히 집에서 TV나 볼 걸 그랬나······.'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그것은 불식간이었다.

"취-익! 인간 여자인가!"

"한국인 여자는 무조건이다!"

"풍기는 기운이 조금 다르다! 능력자 여자인가?"

"······."

나무 위에서 좀 전의 블랙오크 놈들이 퀸의 주변으로 떨어졌다. 퀸은 단숨에 포위되어 버렸다.

"하아······."

퀸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소리를 질러도 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주택에는 주인님도 없었으니 말이다.

즉, 퀸은 홀로 난관을 헤쳐 내야만 했다.

바스륵-

이윽고 블랙오크 놈들이 군침을 꿀꺽 삼키며 한 걸음씩 포위를 좁혀 왔다.

이에 퀸은 도주하기 위해 빈틈을 찾았다.

그러나 빈틈은 존재치 않는다.

이대로 끝인가.

파드드드득-!

그런데 그때 퀸의 머리 위 공중에서 거대한 날개를 휘젓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강력한 피어가 숲속을 가득 메웠다.

-크아아아아아아암!!

엄청난 피어였다.

이 한방에 숲의 나무가 통째로 흔들리며 잎들이 바닥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드드드드드득-!

게다가 지축까지 흔들릴 지경이었다.

도대체 어떤 괴물의 피어이기에?

이내 블랙오크들은 피어가 들려온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 올렸다.

그리고 그들은 보았다.

강철 같은 날개를 펄럭이며 공중에 떠 있는 존재.

녀석은 고개를 내린 채로 블랙오크들을 쏘아보고 있었다.

녀석의 새빨간 눈동자가 경고하고 있었다.

당장 이곳에서 꺼지라고.

< 089화 > 끝

ⓒ 호종이

< 090화 그곳을 지키는 존재 (2) >

블랙오크들은 본인들의 눈을 의심했다.

-크아아아아암!

하늘 위에 거대한 존재가 떠 있었으니 말이다.

"저거 설마······."

"맞는 것 같다······."

저것은 분명 드래곤이었다.

바투 부족의 일원인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들 또한 SG그룹을 통해 드래곤을 창조해 내기 위한 생체실험을 도왔었다.

그렇기 때문에 드래곤이 가지고 있는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드래곤이 왜 이곳에 있는가?

그러한 의문도 잠시.

어느덧 드래곤이 지상을 향해 서서히 내려서기 시작했다.

이어 드래곤은 퀸의 앞을 가로막으며 블랙오크들을 쏘아보았다. 드래곤의 크기는 성인 남성의 2배 정도로 아직은 작은 편이었다.

-크암.

"팜아."

퀸이 팜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팜이는 답이 없었다.

그저 블랙오크들을 쏘아볼 뿐이었다.

이에 10마리의 블랙오크들이 조금씩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지천우 부대장에게 보고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지원요청하고 일단 물러선다."

-크르르르······.

팜이는 멀어져 가는 블랙오크들을 끝끝내 주시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당장에라도 블랙오크들을 아작 낼 것 같았다.

블랙오크들은 이미 팜이가 풍기는 분위기만으로도 압도되어 있었다.

그렇게, 놈들이 제법 멀어질 때쯤.

퀸이 팜이를 향해 다급히 소리쳤다.

"이대로 놓아주어선 안 돼! 분명 더 많이 몰려올 거야!"

그러면서 퀸은 도망가는 블랙오크들을 향해 뛰어나갔다. 퀸은 알고 있었다. 그간 인우가 다른 인간들을 다루는(?) 것을 보고 배웠다.

확실한 기회가 있다면, 적을 놓아주어선 안 된다.

반드시 죽여 버려야만 한다.

물론 조금 전에는 어떻게든 도주할 생각이었다. 그야 승산이 없었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팜이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승산은 충분하다.

지난 몇 달간 급속도로 성장한 팜이.

퀸은 그런 팜이와 한 집에 살았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현재 팜이가 가진 무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고 있었다.

"팜! 어서!"

-크아암!

팜이도 퀸의 말을 이해한 것 같았다.

팜이는 단숨에 날아오르더니 도주하는 놈들을 향해 빠르게 쇄도해 나가기 시작했다.

쐐애애애액-!

타다다다닥-!

블랙오크들은 여전히 도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퀸이 블랙오크들의 뒤통수를 향해 피의 마법을 날렸다.

촤르르르-!

붉은 레이저와 같은 여러 갈래의 마법이 블랙오크들을 덮쳤다.

"크으!"

"도주는 무리인가!"

"젠장! 이렇게 된 이상 격돌이다!"

블랙오크들은 결단을 낸 것 같았다.

이내 놈들은 도주를 멈추고 병장기를 빼 들었다.

그리고 그때.

-크아아암!

울창한 나무숲 위쪽에서 예의 피어가 들려왔다.

블랙오크들은 본능적으로 위를 올려다보며 위치를 가늠하려 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퀸의 마법이 날아들었다.

촤르르르-!

캉! 캉!

이에 블랙오크들은 간신히 방어하며 이를 악물었다.

"젠장! 위쪽보다는 우선 저년의 목부터 날린다!"

"차라리 5명씩 조를 나눠!"

"닥쳐! 우선 저년부터 죽여!"

"멍청한 새끼들아! 차라리 도망치는 게 낫다고!"

위기의 순간이여서일까?

놈들은 저마다 다른 의견을 내밀며 단합이 되지 않고 있었다.

물론, 현재 놈들에게는 본인들을 이끌 우두머리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취-익! 그냥 싸운다!"

"그래 현재로선 그게 최선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바투 부족에서 선별된 정예 블랙오크들.

놈들은 공중에서 떨어지는 드래곤의 폭격과, 퀸이 내뻗는 피의 마법을 잘도 피하고 있었다.

"치잇!"

이에 퀸은 이를 악물었다.

전투는 생각보다 오래갈 것 같았다.

하지만 이놈들을 놓아주어선 안 된다.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필시 병력이 더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랬기에 기필코 죽여야만 했다.

* * *

민철을 통해 헬기를 섭외하라 했고, 이 엄청난 양의 전리품들은 헬기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후우."

인우는 끝도 없이 펼쳐진 보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라 부족원들은, 수천 개의 마나정수와 스킬 볼들을 보따리로 싸 놓은 것이다.

생긴 것 답지 않게 꼼꼼한 면이 있어 조금은 놀란 차였다.

그리고 인우는 보따리 안에 초대형 마나정수도 넣었다.

볼링공만 한 아이템인지라 들고 다니기엔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저것 하나만 배주머니에 넣어도 임신한 곰이 되어 버릴 지경이었으니까.

어찌 되었건 지금 인우의 배주머니에는 유니크 스킬 볼과 힘의 정수만을 넣어 둔 상태였다.

유니크 스킬 볼은 바로 먹어 볼 예정이었고, 힘의 정수는 가지고 다닐 참이었다.

힘의 정수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서 꽤나 유용하게 쓰일 테니 말이다.

이윽고 인우는 곰탈의 머리 부분을 벗었다.

그런 뒤 배주머니에 손을 넣어 유니크 스킬 볼을 꺼냈다.

그 광경에 제라의 졸개들이 보채기 시작했다.

"인간. 제라 족장님이 기다린다. 파티 안 가냐?"

"그 투명한 구슬은 뭐냐?"

"빨리 가야 한다. 우리가 배가 고프다."

인우는 놈들의 말을 싸그리 무시했다.

그저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아 유니크 스킬 볼을 입속에 넣었다.

꿀꺽-

이윽고 스킬 볼이 넘어갔다.

그리고······.

['육체강화' 스킬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오?"

이번 유니크도 나쁘지 않았다.

인우는 육체강화의 정보를 열어보았다.

.

.

20. [육체강화 Lv.1 (7%)] - 육체가 강철처럼 단단해집니다. 이에 따라 방어력과 마법저항력이 상승됩니다. (레벨이 오를수록 상승폭이 늘어납니다.)

.

.

육체강화.

이것은 탱커의 스킬이기도 했다.

인우는 지구에 와서 탱커 능력자들과 겨루어 보기도 했었다.

그리고 탱커들은 하나같이 육체강화를 시전하곤 했다.

육체강화는 방어형 능력자들에게 필수스킬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거야 뭐, 나중에는 갑옷을 입고 다니지 않아도 되겠는데······."

절대자의 성장이 활성화되며 경험치는 2배이다.

이에 따라 스킬을 마스터 레벨까지 도달하기 위한 시간은 50일 가량으로 대폭 줄어든 상태.

그리고 육체강화가 마스터 레벨이 된다면?

그때는 정말 웬만한 공격은 맨손으로 쥐어 잡아챌 수도 있을 것이다.

인우는 그야말로 인간병기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좋은 스킬이 생성될수록 유니크 스킬 볼에 대한 욕심이 커졌다.

조금 더 필요했다.

더욱 더 많이 필요했다.

'제라를 키워 주면서 다른 족장 놈들을 모조리 죽여야겠어. 그렇게 해서 유니크 스킬 볼을 최대한 많이 확보한다.'

인우는 그러한 목표를 세웠다.

* * *

"아가씨. 아가씨! 아가씨?"

택시기사는 술떡이 된 지은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은은 정신을 차리려 들지 않고 있었다.

"아오! 아가씨!? 강원도 영월에 도착했어요! 빨리 결제해 주시죠! 이러는 순간에도 돈은 계속 올라갑니다!?"

"아오. 씨팔. 시끄러워."

그제야 지은은 눈을 비비며 사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캄캄한 새벽.

이곳은 강원도 영월이었다.

그제야 술에 떡이 된 채로 택시를 잡았던 기억이 났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인우의 거주지를 향했던 것이다.

빌어먹을 미국 정부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곳으로 오는 것이 최선인 것이다.

"아가씨! 정신이 들어요? 어휴! 내가 점잖고 매너 있는 기사라서 다행이지! 아가씨 그렇게 떡 될 때까지 퍼붓지 마세요!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웁!"

한참 말을 내뱉던 택시기사가 돌연 웁 소리를 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은이 수표다발을 택시기사의 주둥이에 꽂아 버렸던 것이다.

"남은 돈은 팁."

말을 마친 지은은 택시에서 내려섰다.

그러자 택시기사는 잠시 수표를 확인하는가 싶더니, 단숨에 엑셀을 밟고 멀어져 가고 있었다.

지은은 그 꼴을 보며 혀를 찼다.

"그래, 요즘 세상 무섭지. 그런데 번지수를 잘못 골랐어. 나를 걱정하다니."

그녀는 아직까지도 정신이 알딸딸한 상태였다.

양주를 수십 병 들이켰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윽고 그녀는 지금 서 있는 곳의 풍경을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만······ 어디였더라?"

오빠의 집은 여기 어디였던 것 같다.

그런데 온통 산으로 뒤덮인 지역이었던지라 헷갈렸다.

"에라이. 걷다보면 나오겠지."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새벽 숲은 굉장히 조용했다.

간혹 가다 들려오는 돼지 멱따는 소리를 제외하면 말이다.

가만, 돼지 멱따는 소리라고?

"확실히 산이니까 멧돼지 같은 게 있는 건가? 아니지. 소리가 좀 다른데······."

-취익! 꾸에에에엑!

-크아아아아아암!!

-팜아! 조심해!

심지어 피어까지 들려왔다.

게다가 여자의 목소리까지.

그런데 언제 한번 들어 보았던 목소리 같았다.

"흐음."

지은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내 그녀는 본능적으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걷고 있었다.

* * *

-크아. 크아. 크암.

팜이는 지쳐 있었다.

그뿐이라면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른다.

팜이의 몸에는 칼자국들이 즐비했고, 그곳에서는 새빨간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으니까.

지친 것은 팜이뿐만이 아니었다.

"하아. 하아."

퀸도 넝마가 된 채로 주저앉아 있었다.

"취-익."

현재 살아남은 블랙오크는 5마리.

전투는 길었고, 상처는 깊었다.

놈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애초에 왜 도망갔나 싶을 정도였으니까.

아마도 팜이의 위압적인 모습을 보고 지레 겁을 먹었던 것일 테지.

어찌되었건 팜이는 괴력을 뿜어내며 놈들의 절반을 태워 버렸다.

그리고, 이것이 팜이의 한계인 것 같았다.

-크아아암······.

팜이는 찢겨진 상처를 혀로 핥으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그 모습에 퀸은 혼신의 힘을 다해 팜이의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그런 퀸을 보며 블랙오크들이 이죽댔다.

"큭큭. 꼴 좋구나."

"인간 여자. 넌 우리 거다."

그런데 그때였다.

블랙오크들의 뒤편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이 거기 터프한 오빠들. 나도 한 번 가져 보지그래?"

"취-익! 뭐냐?"

그녀는 바로 정지은이었다.

지은의 등장에 블랙오크들은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소리조차 없이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블랙오크들의 마지막이었다.

카드드드드득-!

어느덧 블랙오크들은 머리가 통째로 얼어 버린 채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성대까지 통째로 얼어붙었는지 비명조차도 내뱉지 못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마법.

그 마법을 사용한 지은은 그저 천천히 놈들을 향해 걸어갔다.

놈들은 고통스럽게 바르작거리며 막혀오는 숨통에 공포를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으드득-!

이윽고 지은의 발길질이 이어졌다.

이에 놈들의 머리통은 통째로 아작이 나 버렸다.

10초도 되지 않아 5마리의 정예 블랙오크들이 죽어 버렸다.

[경험치를 2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21,000 획득하였습니다.]

.

.

.

"이 새끼들은 뭔데 이렇게 많이 줘?"

지은은 놈들의 경험치를 받고서 조금 당황스러워했다.

그녀로서는 정예급 블랙오크를 처음 잡아보았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애초에 미국은 블랙오크를 찾아볼 수 없는 땅이기도 했고······.

때문에 지은의 당혹은 당연한 결과였다.

어느덧 팜이와 퀸이 지은을 보며 소리쳤다.

"아! 여긴 어떻게······?"

-크아암!

"흐음."

지은은 그저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는 무언가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그녀는 돌연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이어 그녀는 오빠인 정인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이어지고 머지않아 인우가 전화를 받았다.

-어.

"야 정인우. 아직도 중국이냐?"

-어.

"거기서도 곰탈 입고 깝죽대고 있지?"

-그건 왜 묻는데?

"내가 생각을 좀 해 봤는데 말이야······ 노란곰 필요하지 않냐?"

< 090화 그곳을 지키는 존재 (2) > 끝

ⓒ 호종이

< 091화 침공의 시작 (1) >

늦은 저녁.

서울의 밤거리는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러한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연인에서부터 취객까지.

더군다나 오늘은 주말.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많은 인파가 보였다.

모두가 별다른 걱정이 없는 얼굴이었다.

하긴. 휴일만큼은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즐기는 것이 이들의 낙일 것이다.

그렇게 밤이 깊어갈 무렵...

"저, 저건 뭐지!"

난데없이 도심 한복판이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꺄아악!"

"어, 엄마야!"

어디선가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비명은 마치 전염이라도 되듯이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다.

"꺄아아아악!"

"브, 블랙오크다!!"

"관리국! 관리국에 신고해!!"

도로를 점거한 채 도심을 향해 내달려 오는 새카만 무리들이 보였다.

놈들은 필시 블랙오크였다.

수천 마리의 블랙오크가 사람들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취-익! 비켜라 인간들!"

한데 무언가 이상했다.

녀석들은 사람을 헤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어딘가를 향해 있는 힘껏 달렸다.

그리고 놈들이 향하는 방향은...

"취-익! 벽을 허물어!"

"으자자자자자!!"

서대문 사냥터였다.

놈들은 서대문 사냥터의 방벽을 향해 돌진해왔던 것이다.

쿠웅-!

놈들의 육중한 어깨가 사냥터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철벽을 쳐 대기 시작했다.

물론 쉽게 무너질 철벽이 아니다.

헬게이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괴수를 막기 위한 철벽이 아닌가?

그러한 철벽이 그리 쉽게 무너질 리 없다.

콰아아아앙-!

그럼에도 놈들은 무차별적으로 철벽을 때려 대기 시작했다.

족히 수천에 가까운 블랙오크들.

놈들이 뿜어내는 힘은 엄청났다.

이들은 블랙오크 중에서도 상당히 강한 축에 속하는 놈들 같았다.

"취-익! 지천우의 말이 맞다면, 이 안에 헬게이트가 있다!"

"이 철벽만 부수면 도심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거다!"

놈들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놈들을 저지하지 못했다.

서대문 사냥터에 드나드는 초인들조차도 엄청난 숫자의 놈들을 보며 뒷걸음질 치기 바빴다.

콰아아아앙-!

철벽은 지속적으로 울려 댔다.

인류가 만들어 낸 신소재 금속으로 이루어진 철벽.

그러한 철벽에 차차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취-익! 얼마 남지 않았다!"

"한국 초인들이 몰려오기 전에 끝내야 한다!"

콰아아아앙-!

어느덧 놈들은 저마다 고위급마법과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콰지지지직-!

그러자 철벽에 일어난 작은 균열이 단숨에 벌어지기 시작했다.

크드드드드득-!

그리고 머지않아...

철벽의 일정 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안에는, 1존의 괴수인 고블린이 보였다.

"키륵! 키륵!"

"케륵!"

사냥터의 특성상 헬게이트를 주변으로 마치 나이테처럼 등급이 분류되어 있었기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고블린이었다.

"키륵...?!"

고블린들은 잠시 주춤하며 당황하고 있었다.

철벽 바깥에도 세상이 있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세상이 보였다.

이내 고블린들은 망설임 없이 바깥을 향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블랙오크들이 소리쳤다.

"가자아아아! 반격이다아아아!"

"우와아아아아아!"

탐욕이 가득했던 인간들은 철벽을 세워 이곳을 사냥터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주기적으로 괴수를 잡고 그에 대한 이득을 만들어냈다.

헬게이트는 괴수들을 끊임없이 배출해주었고, 인류는 마치 빨대를 꼽아 두듯 사냥터를 가동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케르르륵!"

"크워어어어어어-!"

사냥감들이었던 괴수들.

이제는 반대로,

괴수들의 사냥이 시작되었다.

목표는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였다.

그것이 괴수가 가진 본능이었으니 말이다.

"으아아악! 도망쳐!!"

"사람 살려요!!"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그리고 그즈음.

한발 늦게 대한민국의 초인관리국이 출동해왔다.

그러나 상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부푼 상태였다.

"젠장! 막아아!!"

"블랙오크 새끼들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평화에 도취되어 있었다.

나태했었다.

그리고.

그로 인한 결과물은 끔직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현재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강력한 초인들의 대부분은 자리를 비운 상태라는 것이었다.

강력한 랭커들과 초인들이 중국으로 급파되었지 않은가.

여러모로, 상황은 최악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상황은 대한민국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시각.

미국, 러시아, 일본 등 총 5개의 국가가 블랙오크들의 침공을 받았다.

* * *

정지은은 현재 인우의 주택에 머물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매우 화가 난 상태이기도 했다.

"아니 뭐 이딴 상황이 다 있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대한민국의 모든 항공이 마비된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에 있는 전용기를 불러올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미국 또한 비슷한 상황에 처한 것이었다.

그 상황이란, 블랙오크의 침공이었다.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상황.

"중국에 가 볼까 했더니 얘네가 단체로 약을 먹었나. 열받게..."

지은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이렇게 된 이상 좋든 싫든 당분간은 한국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걸어서 중국까지 갈순 없는 노릇 아닌가?

"아오!! 열 뻗쳐!!"

그녀는 제 가슴을 쳐 댔다. 그러자 주택 거실에 있던 퀸이 물어왔다.

"괜찮으세요...?"

"아아, 언니. 나 신경 쓰지 마요."

지은은 퀸을 안심시켰다.

퀸은 조금 겁을 먹은 것 같았다.

지은의 성질과 파괴력을 익히 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것을 알았다.

"아으. 아으."

어느덧 지은은 넓은 거실을 이리저리 누비며 생각에 잠겼다.

"서울이라고 했나...우선, 좋든 싫든 이 상황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겠어."

이윽고 그녀는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그 편이 더 좋기도 하다.

한국의 초인들을 도와주며 블랙오크들을 잡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우선 한국의 블랙오크들을 정리하고, 항공편이 정상가동 되면, 그때 이동하면 될 일이었다.

"그래. 서울로 가자."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칭다오 작전회의막사.

국장의 연락을 받은 배다정은 이마를 짚었다.

"하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수천 마리의 블랙오크가 대한민국의 영토를 침공했단다.

그뿐이라면 다행이다.

수천 마리라고 해도 막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놈들이 사냥터의 철벽을 허문 것이다.

그로인해 사냥터 내부에 존재하던 괴수들이 무차별적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이것은 무척이나 심각한 일이었다.

"...."

다정은 골이 아픈지 이마를 구기고 있었다.

국장은 다정에게 본국으로의 소환 명령을 내린 상태였다.

당장에 급한 불부터 끄기 위함일 테지.

이윽고 다정은 막사 안에 모여 있는 조장들을 향해 말했다.

"상황은 너희들도 알고 있다시피 최악이다. 나는 다시 한국으로 갈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대장의 자리는 공석이 된다."

"...."

조장들은 침묵할 뿐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다. 낸다고 달라질 것도 없었으니까.

다시금 다정이 말을 이었다.

"공석이 되어 버린 대장의 자리는 이미 지정된 상태다. 국장님이 직접 지시하셨고, 잠시 뒤 이곳으로 새로운 대장이 올 거다."

상황은 급박했다.

배다정은 최소한의 전달사항만 전한 채로 막사를 나섰다.

이윽고 그녀는 대한민국으로 향했다.

* * *

"임시대장이라."

인우는 국장의 전화를 받고난 직후였다.

국장은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고, 인우에게 임시대장직을 부탁했다.

현 상황은 다정이 호출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위험한 상태였다.

솔직히 인우로서도 놈들이 그렇게까지 움직일 줄은 몰랐다.

"바투 녀석..."

현존하는 최강의 블랙오크 바투.

놈의 노림수는 뻔했다.

각 국가를 흔들어 혼란을 주려는 심산일 테지.

그로 인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노렸을 것이다.

중국에 급파 되어 있는 초인들이 다시금 본국으로 귀환하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상황은 바투의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번 침공으로 인해 배다정마저도 귀환했질 않나.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인 것은 바투의 작전 구상 능력이었다.

바투는 블랙오크다.

블랙오크는 그리 지능적이지 못하다.

전투적이고 야만적이다.

놈들은 그저 돌진할 뿐이다.

그렇다면, 바투에게 작전을 구상해 주는 책사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았다.

뭐, 이러나저러나 현재의 문제는 바투에 의해 주요 5개 국의 테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흐음."

지금이라야 각 국가는 서로 눈치를 보느라 급파된 초인들을 전부 귀환시킬 순 없을 것이다.

그 때문에 지금처럼 소수인원을 추려 귀환시킨 것일 테지.

그러나 상황이 지금보다 더 심각해진다면?

그때는 중국 급파 초인들이 모조리 소환될지도 몰랐다.

눈치고 뭐고 없을 것이다. 당장 나라가 망하게 될지도 모르는 비상사태이지 않은가?

어찌되었건 현 상황은 좋지 않다.

이 모든 것이 바투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었기에 더더욱 좋지 않았다.

적에게 휘둘리다보면, 당할 수밖에 없다.

적의 머리 꼭대기 위를 호령해야만 한다.

"흐음......"

인우는 긴 고민을 하며 걷고 있었다.

제라에게는, 당분간은 흡수한 미로 부족원들을 재정비하고 다음 전쟁을 준비하라 일러두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전쟁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그리고 지금.

인우가 향하는 곳은 대한민국 초인부대가 위치해 있는 칭다오였다.

* * *

배다정이 귀환하고 막사에는 49명의 조장들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침울한 얼굴을 한 채였다.

"한국에 남은 가족들이 너무 걱정이 되는데..."

"관리국이 최선을 다 하겠지. 우린 그저 우리 일을 하면 돼."

"젠장...계약파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어쩌겠냐. 좀 더 앞을 보는 수밖에. 어차피 중국이 통합되면 모두가 죽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곳에서 싸우는 게 최선이야. 그게 바로 가족들을 위한 길이기도 하고..."

"그나저나, 배다정 대장은 새로운 대장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없이 가 버리네."

"그만큼 급한 거지."

그들이 저마다의 심정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막사의 문이 별안간 열렸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막사 입구 쪽으로 쏠렸다.

그리고 모두의 눈동자는 제각각 다르게 물들었다.

누군가는 경외로, 누군가는 탐탁지 않음으로, 누군가는 궁금증으로...

포옥- 포옥-

걸을 때마다 쿠션이 꺼지는 소리가 막사를 울렸다.

지금 이곳을 향해 진입한 존재는 미친곰이었다.

이윽고 미친곰은 최상단에 위치해 있는 대장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선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에 두 다리를 올렸다.

그 모습에 몇몇 조장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했다.

"미친곰. 거긴 대장 자리라고."

"그나저나, 넌 제라 부족을 키우던 게 아니었나?"

미친곰은 대답 대신 다리를 달달 떨어 댔다.

그리고선 불량스럽게 배주머니에 양손을 꼽아 넣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 내가 니들 대장이야."

"뭐어??"

모두의 얼굴이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미친곰이 새로운 대장 자리에 앉았다.

모두가 알고 있듯, 미친곰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단신으로 제라 부족에게 찾아갔던 강심장이다.

그러한 미친곰이 임시 대장이 되었다.

이즈음 되면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미친곰은 도대체 얼마나 미친 작전을 펼칠 것인가?

그리고 걱정과 동시에 기대 어린 눈빛들도 몇 보이기 시작했다.

< 091화 침공의 시작 (1) > 끝

ⓒ 호종이

< 092화 침공의 시작 (2) >

긴급대피령이 떨어진 서울.

사냥터에서 쏟아져 나온 괴수들에 의해 서울은 쑥대밭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괴수들의 뒤에는 블랙오크가 존재했다.

블랙오크들은 인간만큼은 아니지만 지능을 가진 존재.

놈들은 굉장히 까다로웠다.

게다가 놈들이 가진 무력은 웬만한 초인들은 대적조차 불가능할 정도.

서울은 단숨에 괴수들에 의해 아작이 났고, 블랙오크들은 또 다른 사냥터로 이동하여 철벽을 까부쉈다.

"취-익! 지천우의 말이 맞았어! 이것만 박살 내놓으면 인간들의 땅은 초토화된다!"

"으자자자자자!"

놈들은 서대문 사냥터를 시작으로 이번에는 노원구 사냥터의 철벽을 깨부수고 있었다.

물론 대한민국은 그 광경을 얌전히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

관리국에서 출동한 초인들은 놈들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놈들이 철벽을 부수지 못하게 해!"

"막아!"

"몸으로라도 막아!"

수천 명의 초인들이 블랙오크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러자 블랙오크들은 뜻밖의 행동을 취했다.

"취-익! 지천우가 사냥터로 들어가라고 한다!"

"들어가자!"

"철벽 안으로 들어간다!"

이윽고 놈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냥터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빠르기로 놈들이 단숨에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에 초인들은 놈들을 쫓아 사냥터 안으로 향했다.

* * *

배다정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다급히 이동했다.

이동을 위해 군용헬기에 올라탄 그녀는 상황병을 향해 곧바로 물었다.

"현재 상황은?"

"예. 어제 밤 서대문을 시작으로 은평구, 강서구, 용산구까지 괴수들이 영역을 넓힌 상태입니다. 현재 상황은 관리국의 초인들이 괴수들이 퍼진 지역을 완벽히 봉쇄해 놓은 상태입니다."

"블랙오크들은 지금 어디 있지?"

"놈들은 서대문 사냥터의 방벽을 허물자마자 노원구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노원구 사냥터에서 초인들과 대치중입니다."

"좋아. 우선 노원구 사냥터로 이동해서 블랙오크 놈들부터 제거한다. 그리고 민간인 사상자 수도 집계해서 관리국으로 보고 올려!"

"알겠습니다!"

배다정이 탄 헬기는 단숨에 날아올라 노원구를 향했다.

* * *

정지은은 현재 서대문에 도착해 있는 상태였다.

뉴스를 통해 접하기로는 이곳에 블랙오크들이 있다고 했다.

"아오! 빌어먹을 리빙아머 새끼들!"

그러나 이곳에는 블랙오크는커녕 괴수들만 즐비했다. 게다가 마구 뒤섞여 있었기에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니었다.

방벽이 뚫린 서대문 사냥터는 엄청난 양의 괴수들을 뿜어내고 있었으니까.

이에 따라 서대문 쪽을 포함한 서울 전역에 대피령이 떨어진 상태.

그래서일까? 주변에 보이는 사람은 온통 군인들과 초인들뿐이었다.

초인들 중에는 국가에서 나온 이들도 있었지만,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 이곳에 온 초인들도 많았다.

엄밀히 말해 기존 사냥터는 1시간에 100만 원이라는 입장료는 받아먹지만, 지금 이곳은 그러한 입장료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무료 사냥터인 것이다.

다만, 괴수들이 무작위로 섞여 있었기에 웬만한 레벨이 아니고선 사냥이 불가능하다시피 했다.

어찌되었건, 정지은은 그러한 도심 한복판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오우거와 전투를 끝마친 군인들이 지은에게로 다가왔다.

"민간인이십니까? 서울은 지금 긴급대피령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빨리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아아, 신경 쓰지 마세요!"

지은은 어색한 존대와 함께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군인들은 지은을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데님 멜빵 팬츠 차림에 단정히 묶인 포니테일 머리.

시원하게 쭉쭉 뻗어진 팔다리는 흡사 모델과 같았다.

게다가 얼굴은 희고 고왔다.

한마디로 보기 드문 미인.

그리고 그것이 문제였다.

이곳에는 현재 각종 장비를 착용한 초인들과 군인들이 즐비한 전쟁터.

이러한 곳에 평범한 옷차림의 미녀가 나타났다면?

당연히 보호가 필요한 존재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군인들은 필요 이상의 친절을 베풀고 있었다.

"어떻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까. 저희가 군용 차량으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현재 이곳은 굉장히 위험한 지역으······."

"아, 참 친절도 하셔라."

지은은 군인의 말을 중도에 잘라냈다.

그러면서 귀찮은 티가 역력한 얼굴로 초인증을 내밀었다.

그러자 군인들은 멍청한 얼굴로 지은의 초인증을 바라보았다.

<Gabriel Jeong>

레벨 : 322

특성 : 전사+마법사

*초인증은 3개월마다 한 번씩 갱신이 필요합니다.

"끄허억."

"에에···?"

"가브리엘 정···어디서 들어봤는데······."

초인증을 확인한 군인들은 눈이 뒤집혀질 지경이었다.

말도 안 된다.

레벨이 322라면 초일류다. 정말로 극소수라는 말이다.

뜬소문처럼 어딘가에는 300레벨이 넘는 초인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라는 말이 있는데, 쉽게 볼 수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초인의 레벨이라는 것은 대부분 국가기밀이라 베일에 감싸여 있기 마련이었다.

그 때문에 군인들은 이와 같은 미친 레벨을 처음 보았다.

게다가 특성마저 범상치 않다.

한 가지만 놓고 보았을 땐 그저 흔한 특성이다.

그러나 두 개가 합쳐진 상태.

즉, 듀얼 클래스라는 의미.

그렇게 한참 벙쪄 있기도 잠시.

어느덧 지은이 군인들을 향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수고요!"

그녀는 단숨에 도심 깊은 곳을 향했다.

어딘가에 있을 블랙오크를 찾아서.

그리고 남겨진 군인들은 홀린 듯 중얼거렸다.

"가브리엘 정··· 분명히 들어본 적이 있어. 아!? 분명, 미국의 초일류 랭커! 그런데 그녀가 왜 이곳에······?"

* * *

배다정은 한국으로 귀환했고, 이로 인해 미친곰이 임시대장이 되었다.

대부분의 조장들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조장들이 이를 수긍하려 들진 않았다.

"흐음···. 임시조장이 미친곰이라니······."

하지만 별다른 반박은 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일전에 미친곰은 조장으로 합류하자마자 4조 조장 박혁을 개박살 내놓았다.

온전히 무력만으로 모두에게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때문에 지금 누군가가 미친곰에게 대장직을 인정할 수 없다며 지랄발광을 떨 경우, 미친곰은 필시 무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러고도 남을 놈임에는 분명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미친곰의 무력을 똑똑히 목격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녀석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내부 분열은 그 무엇보다 멍청한 짓임에 틀림없다.

때문에 조장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미친곰은 그러한 조장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테이블 위에 다리를 올려두고 양손을 배주머니에 꼽고 있는 모양새였다.

"오호. 뭐야 이거. 나는 한바탕 할 준비를 했었는데, 조용하네?"

"무력만 놓고 보자면 미친곰 니가 임시 대장직을 맡는 것이 맞다."

누군가가 말했다. 그리고 그를 뒤이어 김혜원이 말하기 시작했다.

"작전 구상 능력도 훌륭하다고 봐. 지금으로선 미친곰 당신이 임시 대장직을 맡는 것이 합당한 거겠지."

둘의 이야기가 끝나자 나머지 조장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모든 조장들이 미친곰을 인정하진 않았다.

특히나 박혁은 대놓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분위기가 쏠려 가는 형국이었기에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미친곰은 그러한 조장들을 바라보며 테이블에서 발을 내렸다.

그리곤 팔짱을 낀 채 진중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자, 그럼 작전에 대해 말할게."

그 말에 모든 조장들의 시선이 단숨에 미친곰을 향했다. 누군가는 침을 꿀꺽 삼켰고, 누군가는 기대 어린 눈빛을 했다.

"너희들도 알고 있다시피 지금 바투는 인류의 초인부대에 대해 확실히 인지하고 있어. 그 때문에 초인부대를 치워 버리기 위해 각 국가에 병력을 침투시킨 거지. 이로 인해 배다정이 귀환했다. 그리고 이대로라면 정말로 모든 초인부대가 본국으로 귀환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지. 현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아. 모든 것이 바투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는 형국이니까."

"잠깐! 어떻게 바투부족임을 확신하는 거지? 다른 부족이 병력을 보낸 것일 수도 있잖아."

박혁이 그렇게 물었다. 미친곰은 그 멍청한 질문에 피식 웃으며 답해 주었다.

"지금 시점에 병력을 쪼갤 수 있는 부족이 몇이나 될 것 같아? 다른 부족들은 그럴 여유가 없어. 설령 그렇다고 해도 다가올 전쟁을 준비하지 인류를 압박할 이유 따윈 없지. 이건 명백한 바투의 소행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런 멍청한 질문은 받지 않겠어."

"이, 이 자식이···! 그래! 니 말대로 바투의 소행이라고 쳐 보자! 그러나 바투는 블랙오크야. 놈들은 지능적이지 못하다고. 그러한 블랙오크가 지금처럼 지능적인 작전을 구상한다고? 이건 어떻게 설명할 거지?"

"설명할 필요가 있나? 이미 벌어진 상황이다. 놈들은 침공을 시작했고, 이것은 사실이야. 사실에 대해서 설명을 하라니? 그냥 네놈 눈알을 재정비해 보는 건 어떻겠냐?"

미친곰은 박혁의 멍청함에 대해 이죽댔다. 그러자 박혁은 입술을 깨물며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지난번 대결에서도 개 맞듯 맞았고, 이번 회의에서도 훼방을 놓았다가 본전도 찾지 못했다.

잔뜩 찌푸려진 박혁의 얼굴은 볼만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친곰은 이번에는 모두를 향해 말했다.

"납득되지 않겠지. 블랙오크가 그토록 지능적인 작전을 구상했다는 것이 말이야. 내가 판단하기에는, 바투 부족에게는 분명 책사가 존재할 거야. 책사는 아마도 인간일 확률이 높겠지. 어떠한 인간일진 몰라도, 그놈은 바투에게 병력을 소집해서 초인 강국인 주요 5개국을 압박하자고 제안했을 거다."

"인간이 바투의 책사로 있다··· 흐음. 그럴 듯해."

혜원이 답했다. 미친곰은 힐끔 그녀를 바라보았다가 이번에는 모두를 향해 질문했다.

"그렇다면 그 책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흐음··· 아마도······."

조장들은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자 미친곰은 단정 짓 듯 말했다.

"뻔하지. 그 책사 놈은 지금쯤 5개의 부대를 지휘하고 있을 거야. 인류를 침공하는 일은 제법 중요한 사안이니 직접 나섰을 확률이 높지."

"그건 어떻게 확신하지?"

"생각을 해 봐. 침공한 수천 마리의 블랙오크들이 가장 먼저 한 짓을 말이야. 놈들은 인간을 공격하지 않았어. 가장 먼저 사냥터의 철벽을 공격했지. 자, 보자고. 블랙오크 따위가 인류의 사냥터에 대해서 알고 있을까? 사냥터의 철벽을 깨부수면 난장판이 된다는 걸 알고 있을 리가 없잖아. 이건 다시 말해 분명 책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반증하고, 또한 그 책사가 지금 블랙오크들을 직접 지휘하고 있는 것을 뜻해."

"허어······."

미친곰은 논점을 확실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이윽고 모든 조장들의 눈동자는 점차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친곰의 다음 말을 주시할 뿐, 결단코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고 있었다.

이것은 현재 미친곰이 하는 말이 그만큼 신빙성이 높게 들렸기에 가능한 태도였다.

미친곰은 조장들의 그러한 태도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아무렴, 하나의 제국을 다스리던 황제였다.

그렇기에 이젠 대장이 되었으니 이들을 완벽히 통솔할 자신이 있었다.

"자, 그렇다면 다시 말해서, 지금 바투의 영역에는 책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지. 그것은 즉, 놈들은 지금 그저 블랙오크일 뿐이라는 거야."

"그래서 작전이 뭐지?"

"작전은 간단해. 받은 만큼 되갚아 준다. 놈들이 인류를 침공했던 것처럼. 우리는 오늘 밤, 바투 부족의 영역을 흔든다."

그 미친 작전에 조장들은 하나 같이 벙쪄 버렸다.

가능할까?

그러한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미친곰에게 설득당한 상태였다.

생각해보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바투 부족은 1억에 가까운 병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부족이 한데 뭉쳐 있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나만 믿어."

미친곰은 바투 부족의 취약한 부분을 흔들 셈이었다.

그리하여 나아가, 놈들의 통합에 훼방을 놓을 셈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 제라는 점차 커나갈 것이다.

< 092화 침공의 시작 (2) > 끝

ⓒ 호종이

< 093화 침공의 시작 (3) >

3천여 마리의 블랙오크들은 모조리 노원구 사냥터로 도주했다.

"놈들을 놓쳐선 안 돼!"

관리국에서 출동해온 수천의 초인들은 놈들을 쫓았다.

블랙오크들은 결단코 맞서지 않았다.

그저 끝끝내 도주하고 있었다.

"취-익! 지천우! 우린 언제까지 도망가야 하냐?"

블랙오크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녀석이 말했다.

놈은 왼손에 네모난 물체를 들고 있는 상태였다.

어느덧 물체에서 지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직-

-그냥 계속 달려라. 어차피 괴수들이 인간들을 저지할 거다.

"그런 다음에는!?"

놀랍게도 블랙오크는 무전기를 통해 지천우와 대화하고 있었다.

인간들이 일구어 놓은 현대지식을 알게 된 것이다.

물론 이 무전기는, 지천우를 통해 알게 된 것이었다.

어느덧 무전기를 통해 다시금 지천우의 명령이 들려왔다.

-사냥터는 헬게이트를 중심으로 원형의 구조다. 즉, 너희들은 지금 그대로 계속 달리기만 하면 반대편 1존까지 닿을 수 있겠지.

"좋다!"

사냥터는 둥글다.

중심에 헬게이트가 존재하고, 그곳으로부터 미개척지대, 10존, 9존, 8존, 이러한 방식으로 존이 나뉜다.

즉, 나이테와 같은 구조를 띄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현재의 1존에서 앞으로 계속 내달리기만 해도 반대편 1존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지천우는 다시금 말했다.

-그리고 반대편 1존에 도착하면, 그곳의 철벽을 부숴라.

"알겠다!"

블랙오크들은 마구잡이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초인들은 그러한 블랙오크들을 쫓았다.

이윽고 이들의 추격전의 무대는 삽시간에 9존에 도달했다.

그러자 9존의 데스나이트들과 듀라한들이 덤벼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관리국의 초인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데스나이트들은 종잇조각처럼 잘려 나갔다.

그러나 이 이상은 무리가 뒤따를지도 모른다.

초인들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블랙오크들을 쫓았다.

이윽고 10존을 넘어 미개척지대까지.

이곳까지 오는 동안 병력은 꽤나 많은 피해를 입었다.

말리오의 독이나, 식물 형태의 맹독 괴수 리갈, 그리고 메가붐과 같은 지뢰형 괴수에 의해 많은 초인들이 죽어 나갔다.

그리고 아직까지 살아남아 달리고 있는 이들은 모두 강자에 속했다.

그러나 블랙오크들은 애초에 정예 병력으로 출격해 온 상태.

그래서일까?

현재 블랙오크들은 이렇다 할 정도로 병력이 줄지 않은 상태였다. 많아 봐야 100여 명 정도가 괴수에 의해 죽어 나갔을 뿐이었다.

수적으로 굉장히 불리한 상황.

그럼에도 초인들은 달렸다.

물론 모두가 달리지는 않았다.

관리국에서 나온 그들은 모두가 강자가 아니었다.

이에 따라 누군가는 중도에 추격을 포기했고, 누군가는 괴수에 의해 죽어 나가고 있었다.

블랙오크들은 뒤를 힐끔 바라보며 점차 줄어 가는 초인들을 똑똑히 확인했다.

이윽고 블랙오크들의 우두머리는 답답한지 다시금 무전을 넣었다.

"지천우! 인간들은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지금 여기서 격돌하면 우리가 무조건 이긴다!"

-안 된다. 철벽까지 무조건 돌진해.

"왜냐!?"

-초인들과 전투를 하면 그만큼 시간이 흐르지 않겠나? 그렇게 되면 금세 지원 병력이 몰려올 거야. 그러니 빠르게 사냥터의 철벽을 허무는 것이 합당한 거다.

"취-익! 그렇군!"

지천우는 묵묵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블랙오크들은 지천우를 신뢰하고 있었다.

그에 대한 증거로 블랙오크들은 끝도 없이 내달리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녀석들은 한참을 내달렸다.

그리고 이제는 추격해 오는 초인들도 급격히 줄어든 상태.

오래지 않아 블랙오크들은 반대편 1존에 도착했다.

이곳 역시 반대편과 마찬가지로 철벽이 보였다.

"지천우의 말대로다! 자, 이제 철벽을 부수자!"

"가자아아아!"

이전에 깨부쉈던 서대문 사냥터의 경우, 외부에서 철벽을 부쉈다.

그러나 지금은 그와 반대로 내부에서 철벽을 부수고 있었다.

그리고 뒤따라 추격해 오던 초인들은 이러한 블랙오크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병력 자체가 너무나도 크게 차이 났던 것이다.

쾅-! 쾅-! 쾅-!

블랙오크들이 병장기와 마법을 마구잡이로 철벽에 때려 박았다.

그러자 땅바닥에 굳건히 박힌 철벽이 뿌리째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으자자자자! 부숴라!!"

"으라라라라라!!"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이었다.

이에 초인병력은 목숨을 걸고 블랙오크들에게 뛰어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지원이 올 때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

"블랙오크들을 막아!!"

"목숨을 걸어라!!"

아무래도 여기까지 추격을 해 왔던 초인들은 굉장한 의협심을 지닌 이들 같았다.

하긴.

추격해 오던 대부분의 초인들은 중도에 빠지거나 도주했다.

끝끝내 추격해 왔던 이들은 그만큼 강한 의협심을 지닌 이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고작 500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정예병에 속하는 블랙오크들을 막을 길이 없었다.

"막아아아아!"

"젠장!"

도대체 지원 병력은 언제 오는 것일까?

그러한 생각이 들 때 즈음이었다.

투두두두두두두-!

공중에서 헬리콥터의 모터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소리는 점차 가까워졌다.

초인들은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왔다!"

"지원이다!"

헬기는 얼추 보아도 10대가 넘어 보였다.

그리고 그러한 헬기에서 누군가가 뛰어내렸다.

자그마한 여자였다.

초인들은 그녀를 보자 환호성을 터트렸다.

"사, 사일런스의 대장 배다정이다!!"

국가 소속의 랭커팀 사일런스.

그리고 그곳의 대장 배다정이 도착했다.

* * *

바투 부족의 영역으로 침공하기 전.

인우는 개인막사에서 스킬과 상태를 점검하는 중이었다.

현재 레벨은 201.

미로 부족원들을 학살하며 200레벨까지 도달한 직후.

그 이후부터 사냥은 하지 않았다.

그저 숨 쉬고 걸어 다닌 것이 고작이었다.

그럼에도 벌써 1개의 레벨이 올라간 상태였다.

절대자의 성장이 활성화되고 나서부터 레벨 업은 확실히 빨라져 있었다.

스킬 레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암기 투척의 경우 92레벨로 마스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다만, 끝에 다다를수록 필요한 스킬 경험치가 비약적으로 상승되기에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경지는 아니었다.

그 뒤로는 광기 폭발이 78레벨이었다.

그리고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광폭 어검은 벌써 32레벨이었다. 확실히 저레벨이라 그런지 빠르게 올라갔다.

광폭 어검의 경우 무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광전사의 최상급 스킬에 속했다.

검 자체를 의지만으로 조종하는 것이다.

그리고 후에 스킬 레벨이 올라가다 보면, 조종할 수 있는 검의 개수가 늘어난다.

그뿐만 아니라 심지어 적의 검마저도 조종할 수도 있었다. 프로킨에서의 정인우 또한 광폭 어검을 자주 사용했었다.

이렇듯, 광폭 어검은 광전사에게 있어서 궁극의 기술이나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50일 정도면 광폭 어검은 마스터 레벨에 도달할 것이다.

물론 노력 여하에 따라 이 기간이 줄어들 수도, 늘어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최근 유니크 스킬 볼을 통해 얻어낸 육체강화 스킬.

육체강화는 액티브로서 레벨을 올려 성장시킬 수 있었다.

현재 육체강화의 레벨은 20.

이 스킬은 탱커의 주력스킬이었다.

오로지 파괴와 공격 위주의 광전사에게는 더없이 좋은 스킬임에는 틀림없다.

육체강화는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육체가 단단해지며, 그에 따라 방어력과 마법저항력이 상승한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육체강화를 마스터하게 될 경우, 따로 갑옷을 입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물론 탱커 중에서도 육체강화를 마스터한 이들은 랭커 중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인우는 달랑 50일이면 이룰 경지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분신 스킬.

현재 분신 스킬의 레벨은 40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40이 되자 기존에 2명이었던 분신이 3명으로 늘어난 상태였다.

인우는 분신들의 정보를 훑어보았다.

<분신1>

레벨 : 38

한계 레벨 : 40 <시전자 레벨의 20%>

.

.

<분신2>

레벨 : 38

한계 레벨 : 40 <시전자 레벨의 20%>

.

.

<분신3>

레벨 : 1

한계 레벨 : 40 <시전자 레벨의 20%>

걷기만 해도 경험치가 오르는 분신이 3명이나 된다.

현재 인우의 레벨이 201이기에, 이에 따른 20%인 40레벨이 한계치였다.

분신3의 경우 조금 전에 새로이 생겼기에 레벨은 올려두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분신1, 2의 경우 38레벨이었다. 이에 따라 광전사의 30레벨 스킬인 대검관통까지 사용하는 것을 확인했다.

아마 40이 된다면 40레벨 스킬인 참살까지 사용할 것이다.

이 분신들의 경우 그리 약하지만은 않았다. 어찌되었건 인우의 38레벨일 때의 위력을 뿜어내는 녀석들이니 말이다. 솔직히 말해 조금 무리를 한다면 6존에 풀어놓아도 될 정도다.

그러나 지금 이 전쟁터에서 사용하기에는 많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레벨은 틈틈이 올려 둬야지.'

인우는 분신 스킬을 시전했다.

하루에 한 번 시전 가능했기에 신중해야 하겠지만, 현재로선 그렇게 쓸모 있는 놈들은 아니었다.

'한계 레벨까지 무작정 뛰어라.'

인우는 3명의 분신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분신들은 저마다 앞을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반응이 왔다.

[시전자의 '분신3'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윽고 인우는 용작두를 걸치고 천천히 개인막사를 나섰다.

모든 정비는 끝났다.

이제, 초인부대를 이끌고 바투 놈의 꼬리를 야금야금 갉아먹을 때가 왔다.

* * *

바투는 지천우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천우는 1만 5천의 병력으로 총 5개국을 흔들었다.

나아가 몇몇 국가는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특히나 한국의 경우 고작 3천의 병력으로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그러나 그로 인해 한 발 뺄 줄 알았던 초인부대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몇몇 최상위급 초인들만이 귀환했던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바투는 크게 상관치 않았다.

현재 지천우의 활약만으로도 흡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현재 중국에 급파되어 있는 초인부대를 밀어 버릴 수 있다 여겼다.

바투가 이끄는 부족원들은 벌써 1억이 넘어가지 않는가?

그러나 그보다 더 급한 것은 통합이었다.

인류를 미는 것은 통합 이후이다.

현재 바투는 보다 더 빠르게 통합을 이루고 싶었다.

세력이 커질수록 마음은 조급해졌다.

그 때문일까? 현재 바투는 다음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 목표는 광저우에 위치해 있는 베일 부족.

대륙 끝자락에 자리 잡은 지역이었기에 이동을 위한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릴 터였다.

현재 바투 부족은 이를 위한 진군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병력 정비 및 식량에 대한 준비가 한창인 오후.

바투는 졸개들을 지휘하며 빠르게 정비를 끝마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즈음.

타다닥-!

보고병이 허둥지둥 대며 바투를 향해 내달려오고 있었다.

이윽고 보고병이 숨을 헐떡대며 말했다.

"위대한 전사 바투! 큰일 났습니다! 인간들이! 인간들이······!"

이에 바투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머리를 좌우로 한 번씩 꺾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인간?"

"에, 예! 정확하게는, 곰탈을 입고 있는 인간을 주축으로 인간들이 쳐들어왔습니다!"

"곰탈이라고?"

바투는 조용히 되물었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곰탈을 뒤집어쓴 인간.

분명히 들어 본 적 있다.

일전에 바투는 지천우에게 물었었다.

SG그룹을 단신으로 멸망시킨 인간이 도대체 누구냐고.

그때의 지천우는 답했다.

'미친곰이라고 불리 우는 놈입니다. 곰탈을 뒤집어쓰고 다니며 영악함이 하늘을 찌릅니다.'

지천우의 말에 따르면 놈은 필시 곰탈을 뒤집어쓰고 다닌다 했다.

"그놈이로군······."

필시 그놈이었다.

그놈이 온 것이다.

이윽고 바투는 병장기를 빼들며 말했다.

"그곳으로 나를 이끌어라."

바투의 전신에서 서릿발 같은 기세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 093화 침공의 시작 (3) > 끝

ⓒ 호종이

< 094화 바투의 분노 (1) >

바투 부족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그래서일까?

바투는 모든 병력들을 돌보지 못했다.

족히 1억에 가까운 병력이기에 취약한 부분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미친곰이 노리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미친곰은 모든 병력을 총동원해서 바투의 영역에 침범할 참이었다.

베이징 전역에 분포되어 있는 바투 부족.

그중, 한 구역의 구릉지에 미친곰의 부대가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들은 새카맣게 깔린 수천 마리의 블랙오크들을 내려다보며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가장 취약할 것이라 여겼던 이곳조차도 수천 마리로군··· 미친곰 대장. 이제 어쩔 참이지?"

"뭘 당연한 걸 물어? 개박살 내야지."

"······."

미친곰은 수천 마리의 블랙오크들을 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박혁이 눈가를 찌푸리며 말했다.

"배다정 대장이었다면 이렇게 무모한 작전을 취하진 않았을 거야."

"아직 무모하다고 하기에는 이른데."

"무슨 소리지? 도대체 얼마나 미친 작전을 구상 중인 거냐?"

박혁의 물음에 미친곰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그러자 박혁은 불안한지 재차 물었다.

"작전이 뭐지? 미친곰 대장?"

"작전은 간단해. 너희 조장들은 조원들을 이끌고 이 구역의 바깥 테두리에 둥글게 포진해. 지금 우리의 인원이 1000명가량 되니까 서로 어느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면 충분할 거야."

"포위 작전인가··· 그것보단 차라리 전면전이 낫지 않겠어? 테두리를 포위하면 우리의 힘은 그만큼 분산된다고. 차라리 한데 뭉쳐서 빠르게 밀어 버리고 몸을 빼는 것이 맞다고 보는데?"

박혁의 말은 일리가 있었고, 다른 조장들도 이에 동조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미친곰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너희는 그저 둥글게 포진하면 돼. 그리고 너희의 역할은 간단해. 마법사를 비롯한 원거리 딜러들은 지속적으로 공격을 날려. 그리고 자리를 무조건 유지해."

"그렇게 되면 원거리 딜러들은 확실히 멀리서 공격을 할 테지만, 나 같은 탱커나 전사 계열들은 놀게 된다고."

"상관없어. 자리만 지켜. 그러다가 도주하는 블랙오크들을 확실하게 족쳐 주기만 하면 돼."

미친곰의 작전은 무언가 허술해 보였다.

종합해 보자면, 1000명에 가까운 모든 초인들이 이 영역을 둥글게 감싼다.

그리고 원거리 딜러들은 공격을 하고, 근거리 딜러들은 공격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자리만 지킨다.

그리고 후에 도주하는 블랙오크들을 죽인다.

다시금 정리해보아도 무언가가 빠져 있는 작전이었다.

그렇기에 모두가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필시 아주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 있다.

이윽고 조장들은, 다음 순간 들려오는 미친곰의 목소리에 의해 중요한 무언가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중앙 침투는 나 혼자 한다."

"어···?"

"응···?"

혼자 간다고?

모두가 벙찐 가운데, 다시금 미친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후방을 부탁한다고. 그리고, 치유 계열의 초인들은 모든 버프와 회복 마법을 나한테 집중해."

현재 치유 계열의 초인은 80명가량.

모든 치유와 버프를 홀로 받으면 가능한 전투라 여겼다.

나아가, 후방에서는 마법 지원까지 받게 될 터.

게다가 빠르게 이어지는 레벨 업으로 인해 닳았던 체력은 금세 차오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좀비보다 막강한 생존력을 가질 수밖에 없을 터.

이 작전은 확실히 먹힌다.

이윽고 미친곰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작전명은, 오늘도 나 혼자 다 먹는다.'

이윽고 인우는 고개를 돌려 얼이 빠져 있는 병력들을 향해 말했다.

"뭐하냐? 버프 안 걸고."

그러자 침을 꿀꺽 삼키고 있던 초인들이 인우를 향해 지팡이를 지켜들었다.

['생명의 샘'에 의해 31분간 체력 회복력이 20% 상승합니다.]

['힘의 축복'에 의해 22분간 힘이 23 상승합니다.]

.

.

.

온갖 버프가 인우의 몸을 폭격하다시피 내려앉고 있었다.

* * *

"저 미친 새끼··· 진짜로 혼자 가잖아···?"

박혁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떡 하고 입을 벌렸다.

현재 그는 미친곰의 명령대로 조원들을 이끌고 영역 테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 곰돌이 인형이 용작두를 치켜들고 블랙오크들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제정신이 아니야······."

박혁은 다시금 중얼거리며 미친곰을 주시했다.

미친곰이 움직일 때마다 엉덩이에 붙어 있는 조그마한 꼬리가 살랑댔다.

미친곰은 그 정도로 자연스럽고 여유롭게 이동하고 있었다.

도대체 가당키나 한가?

저런 강심장이라고?

저 새끼는 정녕 미친 새끼인가?

박혁은 그런 생각을 했다.

한편.

미친곰, 정인우는 블랙오크 녀석들의 영역으로 성큼성큼 걷고 있었다.

몸은 평소보다 훨씬 더 가볍고 힘이 넘쳤다.

그도 그럴 것이, 버프를 그렇게나 받아 댔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80명의 사제들이 인우 한 명에게 모든 버프를 몰아주었지 않은가?

인우는 자신감 있게 걸어 나갔다.

그리고 오래지않아 블랙오크들이 인우를 발견했다.

"취-익! 뭐냐 저건!"

"모르겠다. 근데 뭔가······."

어느덧 블랙오크들이 하나둘 인우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녀석들은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그저, 호기심을 보일 뿐이었으니까.

하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블랙오크들로서는 생전 처음 접하는 생명체의 형태일 테니 말이다.

괴수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다.

곰이라고 부르기에도 무언가 애매했다.

그러나 블랙오크들은 오래지않아 깨달았다.

"저건 탈이다!"

"인간이 곰탈을 쓰고 있는 거다!"

그리고 그 순간.

인우는 광폭화와 광기 폭발을 동시 시전했다.

뒤이어 곧바로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압!!"

인우의 포효가 이어지자 몰려 있던 블랙오크들은 귀를 막고 주저앉았다.

랭커들조차도 멈칫하게 만드는 마스터 레벨의 포효.

그 효력은 확실했다.

"취-익! 침입자다!"

"모두 나와!"

"뿔피리를 불어라!"

후우우우우우웅-!

이윽고 블랙오크들은 적의 침입을 알리는 뿔피리를 불었다.

그러자 이곳 영역에 거주하고 있던 수천 마리의 블랙오크들이 단숨에 내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쿠쾅쾅쾅쾅!

사방팔방에서 블랙오크들을 향해 온갖 마법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블랙오크들의 진격에 제동이 걸렸고, 놈들은 허둥지둥대며 사방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놈들은 엉거주춤 거렸고, 인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쐐애애액-!

대검관통의 추진력을 이용해 곧바로 놈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으랴아아압!"

"취-익!"

"이, 이 미친 인간이! 혼자서!"

인우가 놈들이 포진 되어 있는 중앙에 단숨에 닿았다.

뒤이어 인우의 용작두가 맨바닥을 까부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푸르스름한 검기에 물든 용작두가 땅거죽을 가를 기세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흙먼지와 함께 대지가 통째로 흔들려 댔다.

푸스스스스스-! 쾅! 쾅! 쾅! 쾅!

저건 도대체 무슨 미친 스킬이란 말인가?

블랙오크들은 두려움보단 어처구니가 없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 지진이 이어지기도 잠시.

중심을 잡기 위해 허둥대는 블랙오크들을 향해 화염구가 날아들었다.

화르르륵-!

인우의 양손에서 새하얗게 불타는 고열의 불덩이가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취-익! 이, 이 미친 인간! 뭐냐 이건 도대체!"

"바투님께 알려라!"

"젠자아앙!"

끝도 없이 날아드는 파이어 볼로 인해 수십의 블랙오크들은 단숨에 목숨을 빼앗겼다.

물론 몇몇 블랙오크들은 용감히 돌진하여 인우를 공격했다. 하지만 인우는 개의치 않았다.

촤르르르르-

그 사이에 인우를 향해 사제들의 회복술이 빗발치기 시작했으니까.

그야말로 체력이 닳을 새가 없을 지경.

좀비도 이런 좀비가 또 없었다.

[경험치를 20,800+20,8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18,900+18,9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19,800+19,800 획득하였습니다.]

.

.

경험치의 경우 기여도에 따라 나뉜다. 인우에게 회복술을 펼쳤던 사제들에게도 소량의 경험치가 들어갔다.

그러나 소량일 뿐, 대부분의 경험치는 인우에게 쏟아졌다.

그야말로 폭격되다시피 쏟아져 흐르는 경험치.

인우는 지속적으로 올라 대는 경험치에 힘입어 또 다시 포효했다.

그런 뒤 난데없이 용작두를 공중에 던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두우우웅-!

놀랍게도 용작두는 추락하지 않았다.

그저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던 것이다.

광전사의 2차 각성 스킬인 광폭 어검이었다.

"취-익! 저 인간! 이번엔 또 뭐냐!"

"위, 위험한 기운이 풍긴다!"

어느덧 인우는 자신의 의지를 이용해 용작두를 조종했다.

그러자 용작두는 춤을 추듯 움직이며 블랙오크들을 베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어마어마한 기세에 수많은 블랙오크들은 주춤대며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용감한 블랙오크들이 존재했다.

"뒤로 빼지마라! 바투님이 올 때까지 버틴다!"

"달려! 막아!"

"물러서지 마라!"

어떠한 녀석이 선동하자 수백의 블랙오크들이 인우 하나를 향해 내달려 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인우는 씨익 웃었다.

그러면서 여전히 광폭 어검을 시전하며, 양 주먹과 다리로는 세게 치기와 연속차기 스킬을 시전했다.

두 스킬 모두 마스터 레벨에 닿아 있는 박투술.

퍽! 퍽! 퍽!

인우의 주먹과 발길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살인적이었다.

푸르스름한 기운과 붉은 기운이 응축되어 있는 팔 다리.

"꾸루어억!"

"꾸에에엑!"

그 얄짤 없는 흉기가 블랙오크들의 골통과 가슴팍을 함몰시켰다.

두우우우웅-!

어디 그뿐인가?

허공에 떠올라 인우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용작두는 어떠한가?

광폭 어검은 미친 기세를 뿜어내며 블랙오크들을 모조리 베어 나갔다.

[경험치를 21,000+21,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19,200+19,2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19,900+19,900 획득하였습니다.]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은 단숨에 올랐다.

익히 경험해 보았듯 블랙오크들의 경험치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높았다.

그러니 레벨 업이 빠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절대자의 성장으로 인해 경험치는 두 배인 상황이지 않은가?

인우는 그야말로 폭풍과도 같은 레벨 업을 하고 있었다.

그 미친 광경에 사방팔방에 포진 되어 있던 초인부대는 입을 쩍 벌렸다.

"허어······."

"허, 참···."

"허얼······."

특히나 그 중, 박혁은 말문마저 막히는지 꺽꺽 소리만을 내고 있었다.

설마하니 홀로 수천의 병력을 감당할 줄이야?

제아무리 80여명의 사제와 수백의 마법사 초인들이 뒤를 봐 주고 있다고 해도 이건 과하다 싶을 정도였다.

미친곰의 전투센스는 일대일을 제외하고서도 다수대일일 때에도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수십 년간 밥 먹듯 전쟁을 치러 왔던 전쟁병기 같아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러한 센스는 납득조차 불가능했다.

심지어 육체강화 스킬까지 존재하는지 맨손으로 날아드는 칼날을 막기도 했다.

"꾸에에엑!"

"끄어억!"

그렇게 수천의 블랙오크들은 빠르게 줄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경험치는 미친곰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겠지.

그러한 생각을 하기도 잠시.

뿌우우우우우우-!

저편에서 긴 나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에 박혁은 고개를 단숨에 젖혔다.

그리고 박혁은 보았다.

"저, 저 깃발은··· 바투···?"

바투가 병력을 이끌고 이곳을 향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벌써 오다니?

알아본 바에 의하면 바투의 본진과 이곳과의 거리는 꽤나 먼 편.

그럼에도 벌써 왔다는 것은?

아마도 전력을 다해 뛰어 왔다는 것일 테지.

그것은 즉, 지금 바투가 크게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 094화 바투의 분노 (1) > 끝

ⓒ 호종이

< 095화 바투의 분노 (2) >

현재 바투는 몇 안 되는 정예병들만을 이끌고 황급히 이곳으로 왔다.

도착한 영역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그러한 광경을 목격한 바투의 두 눈에서 불길과 같은 분노가 일었다.

바투는 쑥대밭이 되어 가는 자신의 영역을 향해 소리쳤다.

"노오오오옴!!"

미친곰.

그 놈이 감히 자신의 영역에 침범했다.

그것도 모자라 깽판을 쳐놓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인간 놈을 어떻게 조져놓아야 화가 풀릴까?

바투는 단숨에 영역 한복판으로 향했다.

그러자 뒤늦게 자신을 발견한 인간 마법사 한 놈이 헛숨을 들이켰다.

인간 놈은 영역 테두리에 위치한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였다.

"크워!"

바투는 거친 흉성을 내뱉으며 단숨에 인간 놈을 붙잡았다.

"으, 으어어!! 사, 사람 살...!!"

으드득.

바투는 인간 놈의 비명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그저 거대한 손으로 단숨에 목을 비틀어버렸다.

바투의 손에 절명한 인간의 목뼈가 기형적으로 꺾여버렸다.

철푸덕!

바투는 시체가 된 놈을 바닥에 내던지며, 함께 온 정예병들을 향해 외쳤다.

"아직 퇴각치 못한 인간 놈들을 모조리 잡아 죽여라."

"알겠습니다! 위대한 전사 바투시여!"

정예병들이 답했고, 바투는 이를 갈며 영역 중앙으로 향했다.

중앙에서는 아직도 끊임없는 비명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필시 저곳에 미친곰이 있다.

* * *

서대문.

정지은은 괴수들이 마구잡이로 뿜어져 나오는 이곳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아오! 블랙오크들은 도대체 어디 있냐고!"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중국에 갈 다짐을 하자마자 블랙오크 놈들이 침공해 왔다.

놈들은 영악하게도 인류의 사냥터를 공략했고, 이에 따라 주요 5개국이 단숨에 혼돈으로 뒤덮였다.

그 때문에 항공이 마비된 상태.

이제는 중국에 가고 싶어도 힘들 지경이 된 것이다.

더욱이 짜증나는 것은 미국 또한 한국과 상황이 같다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지은은 전용기를 부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어찌되었건 침공해온 블랙오크들을 정리해야만 했다.

그래야 다시금 항공이 정상적으로 운행될 것 아닌가?

-츠으으으!

그러한 생각도 잠시.

어느덧 한 무리의 데스나이트들이 지은을 향해 내달려오기 시작했다.

"떨거지 같은 새끼들이...!"

지은은 놈들을 향해 단숨에 블링크했다.

슈웅!

그런 뒤 푸르게 물든 주먹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이 언니가!"

퍽! 퍽! 퍽!

"바쁘거든!?"

푸스스스스스-

[경험치를 5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500 획득하였습니다.]

.

.

한 무리의 데스나이트들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제압되었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는 아직도 군인들이 정지은을 바라보고 있었다.

군인들은 여전히 '가브리엘 정이라니...', '322레벨 이라니...'라고 중얼거리며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민간인을 통제하기 위해 지은의 초인증을 확인한 직후로 줄곧 저 모양이었다.

"후우..."

그러거나 말거나 지은은 눈을 부릅뜨며 사방을 훑었다.

도대체 블랙오크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니, 애초에 서대문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 의문이 들기도 잠시.

난데없이 공중에서 피어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암!

-으아아아! 팜아! 갑자기 왜 이러는 거냐고!

-크아크아!!

-제발 멈춰!

피어와 함께 잔뜩 겁에 질린 남자의 목소리까지도.

이에 지은은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보았다.

하늘을 아작 낼 기세로 날아가는 드래곤과, 그 등에 올라탄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남자를.

-크아아암!

드래곤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북쪽을 향해 사력을 다해 날아가고 있었다.

"오호..."

분명 저 드래곤은 인우의 애완동물이었다.

못 알아볼 리 없었다.

그리고 그 등위에 올라타 있는 남자는 필시 인우의 졸개였다.

그러나, 강원도 원주에 있던 녀석이 왜 이곳까지 왔을까?

"흐음."

알게 뭐람.

이윽고 지은은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머어어어엄-춰어어어어-!"

저 놈이 딱이었다.

저걸 타고 중국까지 날아가서 인우와 합류하는 거다.

* * *

[경험치를 17,800+17,8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16,700+16,700 획득하였습니다.]

['육체강화'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

.

인우는 블랙오크 학살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길 한참.

어느 순간 박혁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바투가 온다!!

바투가 왔다면 이곳에 은신하고 있는 초인부대는 전멸이다.

이에 인우는 볼 것이 없이 초인부대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퇴각해!"

"미친곰 대장 당신은!?"

"뒈지기 싫으면 잔말 말고 퇴각해!"

이윽고 초인부대는 미친곰의 명령에 따라 퇴각하기 시작했다. 애당초 테두리에 위치하고 있던 그들은 손쉽게 퇴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우는 아니었다.

게다가 퇴각으로 인하여 테두리의 마법과 버프의 지원이 뚝 끊겼다.

이에 따라 인우는 온전한 단신으로 블랙오크들과 대적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럼에도 인우는 물러섬 없이 블랙오크들을 베어나갔다.

"꾸웩!"

"끄어어억!"

"으아아아아압!!"

인우는 비명에 가까운 기합을 내지르며 길을 뚫으려 했다.

쩌저저저적-!

인우의 왼손에 응축된 기가 라이트닝이 블랙오크들을 향해 내리꽂혔다.

그럼에도 놈들은 압도적인 물량을 앞세워 인우를 압박해왔다.

"으라아아아!"

후우우우웅- 척!

이에 인우는 광폭 어검을 거두고 용작두를 손에 쥐었다.

그런 뒤 마스터 레벨의 스윙을 휘둘러댔다.

퍼억! 슈웅!

스윙에 타격당한 블랙오크들은 마치 야구공처럼 날아갔다.

"끄어어어!"

"꾸에에엑!"

캉-! 캉-!

푸우우욱!

그럼에도 놈들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녀석들의 병장기가 사방팔방에서 날아들며 인우의 곰탈을 가볍게 헤집고 육체를 강타했다.

"크윽!"

인우는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눈을 부릅떴다.

더 이상의 원거리 공격과 버프, 회복 지원이 없었기에 점차 지쳐갈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이대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끝장이다.

"크아아아아압!"

인우는 다시금 포효를 내질렀다.

그러자 다가오던 블랙오크들이 귀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뒈져라!!"

기회.

인우는 지척에 있는 놈들을 향해 참살을 날렸다.

쓰걱-!

블랙오크 한 놈이 참살에 의해 목이 그대로 날아갔다. 그러자 머리를 잃은 놈의 몸체는 피분수를 뿜어내며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퍽-!

인우는 그러한 몸체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철푸덕!

그제야 놈의 육체가 바닥에 틀어박혔다.

그렇게 조금 뚫린 길을 비집고 인우가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척.

그러나 블랙오크들은 금세 빈자리를 메꾸며 인우를 향해 공격을 날렸다.

"으라아아압!"

인우는 볼 것도 없이 광폭난무를 시전 했다.

인우의 육체가 팽이처럼 돌아갔다.

그러자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태풍과 같은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쳤다.

회오리바람은 뱅뱅 돌아대는 인우의 육체를 감쌌다.

그리고 그 바람은 옅은 붉은 색의 안개와 같은 기운을 뿜어냈다.

마스터 레벨에 닿은 광폭난무이다.

이것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후두두두두두둑-!

회오리바람이 불어 닥치자 근방에 있던 블랙오크들이 휩쓸렸다.

쩌저저저저적-!

그러자 놈들의 시체는 마치 믹서기에 갈리는 토마토처럼 으깨지기 시작했다.

푸두두두두두!

사방에 피와 살점이 튀었다.

[경험치를 22,000+22,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11,200+11,200 획득하였습니다.]

.

.

.

경험치는 미친 기세로 올라갔고, 인우는 멈추지 않았다.

파바바바바밧-!

미친 듯이 돌아가는 인우의 신형.

두 손으로 꽉 쥔 용작두.

어느덧 용작두의 칼날은 블랙오크들의 머리와 몸통을 분리하며 빠르게 회전해나갔다.

"취-익! 막아라!"

"무기를 던져!"

이내 블랙오크들은 멀찌감치 거리를 벌리며 병장기를 던져대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우욱-!

그러나 병장기는 회오리바람에 의해 단숨에 빨려 들어갈 뿐 인우에게 닿지도 못했다.

"으라아아아아압!"

그렇게 인우는 단숨에 길을 뚫었다.

바투가 오기 전에 빠르게 이곳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현재 이 영역의 블랙오크들은 절반 이상이 절명하여 많이 줄어 있긴 했다.

그럼에도 천여마리가 넘게 남았다.

인우 혼자서는 부담될 수밖에 없는 병력이다.

푸스스스스스-

어느덧 인우의 광폭난무가 끊겼다.

"허억. 허억..."

더 이상 지속했다간 체력이 부족할 것 같았다.

-뿌우우우우우!

그리고 그즈음.

인우는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뿔피리 소리에 고개를 젖혔다. 이윽고 거대한 살기가 피부를 뚫을 기세로 쏘아져오기 시작했다.

"...엄청나군..."

거대한 존재가 뿜어내는 살기.

그 살기로 인해 온 몸의 털들이 쭈뼛 서버렸다.

아마 이 살기의 주인은 바투일 터.

이내 인우는 전우좌우를 살피며 초인부대가 무사히 퇴각했는지 확인했다.

대부분의 초인들이 퇴각한 것 같았다.

문제는 자신이었다.

"취-익! 인간 끝이다!"

"바투께서 오신다!"

이윽고 이곳 영역에서 살아남은 수백 마리의 블랙오크들이 인우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놈들은 인우에게 살해당한 동료들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그러면서도 놈들은 함부로 인우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동료들이 저 미친 인간 한 놈에 의해 요절이 난 것이다.

가히 압도적인 무위였다.

그랬기에 놈들은 그저 인우를 포위하며 바투를 기다릴 뿐이었다.

터벅- 터벅-

이윽고 저편에서 발걸음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인우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터벅- 터벅-

이윽고 한데 뭉친 블랙오크들이 길을 트며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길을 통해 압도적인 몸체를 지닌 블랙오크가 걸어 나왔다.

"....."

인우는 놈을 바라보았다.

3미터는 가볍게 넘어갈 거대한 장신의 블랙오크.

핏발선 두 눈동자와 광대까지 치솟아 있는 거대한 송곳니.

저 이빨만 해도 인간의 근육과 뼈는 가볍게 가를 법한 끔찍한 살상무기였다.

게다가 성인 허리둘레 크기의 거대하고 단단해 보이는 목.

이어 육중한 어깨를 지나 거머리 같은 핏줄이 꿈틀 대는 통나무만한 팔뚝.

바투, 놈은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또한, 압도적이었다.

'저놈이 바로 바투...'

그간 들려오는 풍문으로만 접해보았던 바투였다.

실제로 본 바투는 그야말로 블랙오크들의 우두머리라 불릴 만 해보였다.

바투가 풍기는 기운은 프로킨의 드래곤이 떠오를 정도였으니까.

이윽고 인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솔직히 인우는 게릴라를 통해 바투의 영역을 흔들 심산이었다.

그러나 바투 놈이 이렇듯 빠르게 이동해올 줄은 몰랐다.

그러한 생각도 잠시.

척.

어느덧 바투가 인우의 앞에 멈춰 섰다.

곰탈을 뒤집어쓴 인우보다도 훨씬 더 거대한 몸체.

이윽고 바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영역을 침범한 대가는 오로지 죽음뿐이다."

"웃기는군."

인우는 코웃음을 치며 바투를 노려보았다.

현재의 상황은 바투와 놈의 병력들이 인우를 완벽히 포위한 상태.

이건 마치 프로킨에서 드래곤들에게 도망쳐왔을 때나 느껴보았던 위기감이다.

당시에는 도저히 살아남을 구멍이 보이지 않았기에 차원이동을 택했다.

그러나 지금은?

차원이동은 꿈도 못 꾼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후우..."

고민은 길지 않았다.

선택지는 오로지 한가지뿐이었으니까.

이내 인우는 바투를 향해 용작두를 겨눴다.

그리고 그즈음...

-크아아아아아암!

-형니이이이이임!

-정인우우우우우!

난데없이 들려오는 외침에 인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 095화 바투의 분노 (2) > 끝

ⓒ 호종이

< 096화 미친곰 사망 >

-크아아아아아암!

-형니이이이이임!

-정인우우우우우!

외침은 공중에서 들려왔다.

분명 아는 목소리였다.

인우는 본능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저 멀리에서 드래곤 한 마리가 날아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팜이?"

저 드래곤은 필시 팜이였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커진 몸체임에도 알아보지 못할 리 없다.

그리고 팜이의 등 위에 올라타 있는 이들은 민철과 지은이었다.

그러나 저들이 왜?

아니, 어떻게 이곳에?

그러한 생각도 잠시.

바투가 인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도망갈 수 있을 거라 여기나?"

말을 마친 바투는 한걸음씩 인우에게 다가왔다.

바투의 전신에서 압도적인 기운이 풍겼다.

이에 인우는 용작두를 강하게 움켜쥐며 바투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둥글게 포위하고 있던 블랙오크들이 저마다 병장기를 치켜들고 광분했다.

-죽어라! 인간! 죽어라! 인간!

-죽어라! 인간! 죽어라! 인간!

놈들은 결단코 덤벼들지 않았다.

바투가 직접 나섰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에 인우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활로를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팜이가 이곳에 왔다.

녀석은 공중을 날아다닌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 탈출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다만, 지금 자신의 앞에서 분노하고 있는 바투가 문제였다.

이내 인우는 왼손에 기가 라이트닝을 응축시켰다.

그런 뒤 바투를 향해 내달렸다.

"으라아아아!"

쩌저저저저적-!

이어 인우의 왼손에서 붉은 전격이 쏘아져 나왔다.

그리고 전격은 바투의 정수리에 정확히 꽂혔다.

우르르르 쾅쾅쾅!

번쩍!

순간, 눈이 멀 것 같은 섬광이 일었다.

그리고 전격이 그치자...

"우습구나."

바투는 간지럽다는 듯이 정수리를 만지작댔다.

그 압도적인 마법저항에 인우는 할 말을 잃었다.

기가 라이트닝은 보통 마법이 아니다.

파이어 볼 보다 훨씬 더 상위급인 것이다.

게다가 마스터 레벨이란 말이다.

그런데 바투는 그 어떠한 타격도 입지 않았다.

어느덧 바투는 무기조차도 빼들지 않은 채로 인우에게 쇄도해왔다.

타다다닥-!

저 거대한 덩치가 어찌 저렇게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일까?

인우는 눈을 부릅뜨며 온 신경을 집중했다.

이미 블랙오크들과의 혈전을 통해 많이 지쳐있는 상태.

잠깐의 방심은 곧바로 죽음으로 이어질 터였다.

"크아아아압!"

인우는 포효를 내지르며 다가오는 바투를 향해 스윙을 날렸다.

투우웅-!

그러자 바투는 사람 머리통만한 주먹을 휘둘러 용작두를 튕겨냈다.

그런 뒤 곧바로 연계하여 거대한 무릎을 치켜 올렸다.

후웅! 퍼억!

바투의 무릎이 인우의 배를 강타했다.

이에 인우는 그대로 떠올라 한참이나 날아갔다.

"크헉!"

철푸덕!

인우는 그 엄청난 파괴력에 숨이 턱 막혀왔다.

놀란 내장기관이 쪼그라 들며 온 몸에 흐르는 피가 역류할 것만 같았다.

구토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럴 여유조차도 없다.

인우는 간신히 갓숨을 붙잡고는 힘겨운 호흡을 내뱉었다.

"허어억. 허어억!"

보통 놈이 아니다.

바투.

이 녀석은 어쩌면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그 어떤 생명체보다 강할지도 몰랐다.

저 정도면 정말로 성체급 드래곤과 비슷할 것이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현재 바투는 무기조차 빼들지 않은 상태였다.

"하아...하아..."

인우는 붉게 충혈 된 눈으로 바투를 쏘아보며 이를 악물었다.

후우우웅-!

이어 광폭화와 광기 폭발을 시전한 뒤 바투와의 거리를 조금 더 벌렸다.

그러나 바투는 여유롭기 그지없는 걸음걸이로 다가왔다.

"치잇...!"

그 모습에 인우는 용작두를 공중에 띄웠다.

후우우우우웅-

광폭 어검이었다.

이내 용작두는 인우의 의지대로 움직이며 바투에게로 쏘아져 나갔다.

쐐애애애액-!

강한 파공성과 함께 용작두가 바투의 목을 노렸다.

투우웅-!

그러나 바투는 오른 팔을 들어 올려 가볍게 방어했다.

바투는 이에 그치지 않고 용작두의 칼날을 움켜쥐었다.

"하!"

저게 말이 되는가?

저건 단순히 용작두를 쥔 것이 아니라, 인우의 광폭 어검을 취소시킨 것이다.

그것도 단순한 손동작으로 말이다.

"인간치고는 제법이로군. 하지만."

바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인우에게 용작두를 내던져버렸다.

쐐애애애액-!

용작두는 강력한 파공성을 일으키며 도로 날아왔다.

이에 인우는 온 정신을 쏟아내어 다시금 광폭 어검을 시전했다.

두우우우우웅-!

그러자 인우의 지척까지 다가왔던 용작두는, 인우의 의지에 의해 공중에 멈춰 섰다.

"하아..."

인우는 짧은 한숨과 함께 용작두의 손잡이를 그러쥐었다.

현재로선 바투에게 광폭 어검을 시전했다간 본전도 찾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지금으로선 도주만이 최선이었다.

인우는 다시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공중에서는 팜이가 빙글빙글 날아다니며 인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녀석의 커다란 눈동자에는 걱정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저 녀석은 어떻게 이곳까지 찾아올 수 있었을까?

어쩌면 주인의 위험을 본능적으로 감지하여 민철과 지은을 이끌고 이곳까지 왔을지도 모르겠다.

드래곤을 본떠서 만들어낸 생명체이기에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본능이 존재할 지도 모른다.

그러한 생각도 잠시.

바투가 비웃음 담긴 음성으로 인우에게 물었다.

"아직도 도망갈 수 있다고 여기는 건가?"

"...."

그 말에 인우는 생각을 거둔 뒤 바투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곰탈의 머리 부분을 벗었다.

그러자 인우의 얼굴이 드러났다.

인우는 땀으로 인해 흥건하게 젖어버린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바투야. 장님 새끼가 아니라면 내 얼굴이 똑똑히 보일 거다."

"잘 보이는군. 그런데, 얼굴을 보이는 이유가 뭐지? 눈물을 흘려 동정심이라도 사보려 하나?"

"빡대가리 새끼. 기억해두라는 거다. 이게 내 얼굴이고, 나는 정인우다. 바투야. 너는, 반드시 내가 죽인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그러한 소리를 짓거릴 수 있다니. 주둥이만큼은 인정해주지."

바투는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그 순간.

인우는 다시금 광폭 어검을 시전했다.

그 모습에 바투는 입가를 씰룩이며 이죽댔다.

"또 그것인가? 다시금 당하고 싶은 건가?"

후우우웅- 쐐애애애액-!

용작두는 단숨에 바투를 향해 날아들었다.

바투는 여전히 비웃고 있었다.

그리고 용작두가 바투에게 닿으려는 순간.

후웅!

용작두는 난데없이 경로를 틀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인우는 모든 힘을 쥐어 짜내어 용작두를 향해 도약했다.

"으아아아아압!!"

있는 힘껏 기합을 내질렀다.

이내 인우는 공중에 떠 있는 용작두를 잡아챘다.

그런 뒤 광폭 어검을 끊지 않았다.

용작두는 인우의 의지에 따라 새처럼 날아올랐고, 인우는 그러한 용작두를 움켜쥐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 아래에서는 바투가 인우를 바라보며 소리를 내질렀다.

"이노오오오옴!"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팜이를 향해 다급히 외쳤다.

"이거 오래 못 버틴다! 빨리 이쪽으로 와!"

-크아아아아아암!

그러자 팜이는 단숨에 인우가 떠오른 곳을 향해 날아왔다.

이에 지상에 있던 바투는 무기를 뽑아들었다.

그러더니 바투는 공중에 떠오른 인우를 향해 무기를 내던져버렸다.

쐐애애애애액-!

단숨에 날아든 무기.

인우는 피하기 위해 광폭 어검을 조절했다.

그러나 바투의 무기는 마치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인우의 배에 파고들었다.

푸욱-!

살갗과 근육이 찢기는 끔찍한 소리가 들렸다.

"쿠훕!"

날아온 칼은 인우의 배 중앙을 꿰뚫고 지나갔고, 인우는 한 움큼 피를 토해냈다.

뚫린 배를 비집고 피가 쏟아져 흘렀다.

그럼에도 인우는 이를 악물며 정신을 놓지 않았다.

"...어서!"

-크아아아암!

팜이가 인우를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그러나 인우는 오래지않아 용작두를 놓치고야 말았다.

더 이상 광폭 어검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니, 유지는커녕 달아나는 정신을 잡을 수조차 없을 지경.

이내 인우는 정신을 잃었고, 용작두를 놓쳤다.

인우는 용작두와 함께 빠르게 추락했다.

그 모습에 팜이의 등에 올라 타 있던 지은이 이를 악물었다.

"오빠아아!"

그녀는 외침과 함께 체내의 모든 마나를 끌어올렸다.

후우우우우우우웅-!

그러자 그녀의 육체에서 거대한 마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어 그녀는 곧바로 추락하는 인우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공중에서 인우를 안았다.

그런 뒤 곧바로 몸을 돌려 바닥을 향해 메테오를 난사해댔다.

"으아아아아아아!!"

그녀가 구사할 수 있는 최대의 반발력을 지닌 메테오 스트라이크.

그 강력한 마법이 마구잡이로 바닥을 향해 꽂혔다.

쿵! 쿠웅! 쿵!

그 엄청난 반발력과 함께 그녀는 추락을 늦췄다.

그러면서 팜이를 향해 찢어질 듯 고함을 내질렀다.

"추락하기 전에 어서!!"

-크아아아아암!

그녀의 말을 알아들은 팜이는 온 힘을 다해 날아들었다.

쐐애애애액-!

마치 제트기가 지나가는 듯한 강력한 소음이 들렸고, 팜이는 추락하는 지은과 인우를 받아냈다.

-크아아아아!

성공이었다.

팜이는 포효하며 잽싸게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 * *

현재 한국은 서대문 사냥터가 터진 상태였다.

그리고 서대문을 시작으로 은평구, 강서구, 용산구까지 괴수들이 영역을 넓힌 상태.

이것만 해도 골치가 아파올 지경인데, 블랙오크들은 노원구 사냥터로 향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즈음 한국으로 귀환한 배다정.

그녀는 볼 것도 없이 노원구로 향했다.

그녀가 등장하자 사냥터에서 깽판을 놓던 수천 마리의 블랙오크들은 완벽히 정리됐다.

관리국의 병력들은 무참히 밀렸었지만, 그녀 하나로 인해 단숨에 블랙오크들을 막아냈던 것이다.

이로서 한국으로 침공해온 3천여 마리의 블랙오크들은 모조리 정리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터져 버린 사냥터로 인해 엉망이 된 서대문 일대였다.

그리고 사냥터의 정리는 무력이 아닌 인력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어찌되었건 블랙오크들은 모두 정리 된 상태이기도 했고, 배다정은 모든 할 일을 끝마쳤다.

그랬기에 배다정은 다시금 중국으로 복귀했다.

이에 따라 그녀는 다시금 초인부대의 대장직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중국에 오자마자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현재 그녀는 칭다오에 위치한 초인부대의 작전회의 막사에 들어선 상태였다.

이곳에 모인 조장들은 하나 같이 침울한 얼굴이었고, 그들은 배다정에게 보고했다.

"미친곰 임시대장은 홀로 바투의 영역에 고립되었습니다."

그제야 배다정은 그간 있었던 일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미친곰의 생사는 불분명한 상황.

이에 그녀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당장 그곳으로 간다."

그렇게 배다정은 초인부대의 모든 병력을 이끌고 당시의 전투 현장을 찾았다.

이윽고 도착한 전투현장.

그곳에서는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수천 마리의 블랙오크 시체.

썩은 내장과 바닥에 검게 들러붙은 피.

배다정은 그러한 현장을 막연히 걸었다.

"미친곰은..."

미친곰은 작전 도중 모든 초인부대를 대피 시키고 이곳에 홀로 고립됐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수천 마리의 블랙오크들과 혈전을 벌였을 것이다.

그 무모함은 죽음이 코앞으로 닥쳐와도 여전했구나...

배다정은 코끝이 찡해졌다.

그러나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미친곰이라면.

그래, 영악한 미친곰이라면 분명 활로를 뚫고 탈출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덧 다정은 바닥에 꽂혀 있는 용작두를 발견했던 것이다.

피와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용작두는 반 토막이 나 있었다.

저 무기가 미친곰의 것임을 안다.

"하아..."

이윽고 그녀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렇게 그녀는 한참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뒤늦게 초인병력들을 향해 말했다.

"보고병."

"네. 대장님."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을 그대로 국장님께 보고할 수 있도록."

"네."

"미친곰은 작전 도중 고립되었고, 수천 마리의 블랙오크들과의 혈전 도중 전사했다."

이로서, 미친곰의 사망이 공식화되었다.

< 096화 미친곰 사망 > 끝

ⓒ 호종이

< 097화 또 다른 미친놈 >

퀸은 홀로 남았다.

드넓은 주택에서 온전히 홀로였다.

팜이와 민철마저 사라진 것이다.

얼마 전, 팜이는 난데없이 발작을 일으켰다.

녀석은 북쪽을 향해 울부짖으며 퀸과 민철을 흔들어댔다.

그건 도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어찌되었건, 그날.

팜이는 민철이를 태우고 하늘로 솟구쳐버렸다.

그렇게 날아간 녀석은 여태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퀸은 묵묵히 기다릴 뿐이었다.

그녀는 인우 영역의 가디언이다.

오망성으로 인해 움직일 수 없으며, 이곳을 지키기 위한 존재일 뿐.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가던 어느 날.

주택을 향해 리무진이 들어섰다.

퀸은 경계했으나 리무진에서 내려선 남자는 살가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초인관리국 강원도지부장 박강중입니다."

* * *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박강중은 애꿎은 쇼파만 바라보고 있었다.

정인우의 사망 소식을 알리기 위해 그의 주택으로 온 참이었다.

이곳에는 정인우와 같이 살던 보라색 머리카락의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표정 없는 얼굴로 박강중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박강중은 괜스레 크흠 하고 목을 풀며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정인우씨가 사망했습니다."

"...네?"

이에 여자, 퀸은 잠시 멍청히 반문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으니까.

그러나 오래지않아 강중의 말을 온전히 이해했다.

강중은 분명 '사망'이라 했다.

이윽고 퀸의 동공이 지진을 만난 듯 떨리기 시작했다.

"죽...었다고요?"

"...그렇습니다."

박강중은 침울한 어조였다.

솔직히 그로서도 믿기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정인우는 죽었다.

이윽고 박강중은 퀸에게 가방 하나를 건넸다.

"정인우씨가 중국으로 급파되며 받기로 한 유니크 스킬 볼입니다. 전사했기에 그에 대한 보상을 포함하여 총 5개의 유니크 스킬 볼이 지급되었습니다. 모쪼록...잘 견뎌내시길."

"아..."

강중의 말이 끝나자 퀸은 힘없이 주저앉았다.

* * *

그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바투는 나날이 영역을 넓혔고, 이제는 통합이 제법 가까워졌다.

이제 바투의 앞을 가로막는 부족은 몇 남지 않았다.

그 중, 가장 강력한 부족은 제라였다.

제라 부족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빠르기로 성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중국의 패자( ?者 )는 자신이 될 터.

제라 녀석이 안간힘을 써봐야 자신에게 맞설 수 있을 리 없다.

"이제 곧, 내가 이 땅의 주인이 된다."

모든 블랙오크들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나아가, 모든 인간들을 노예로 다룰 것이다.

이제는 정말로 코앞이었다.

블랙오크의 통합이 이루어진다면, 인류는 자신을 막을 수 없을 테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당장 인류를 침공해도 될 정도였다.

지금 가진 무력과 병력을 이용한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바투는 신중했다.

그는 순서를 지키기 위해 애썼다.

계단을 밟듯, 앞으로 나아가길 원했다.

통합이 완료된다면 못해도 4억에 가까운 블랙오크들을 다스리게 된다.

그 정도의 병력이라면 삽시간에 지구를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누구도 막지 못한다.

이렇게나 강력한 바투였지만, 못내 마음에 걸리는 것이 존재했다.

이윽고 바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면서 그는 막사 바깥을 향해 외쳤다.

"지천우."

그러자 장신의 사내가 막사의 문을 비집고 들어섰다.

사내는, 수천 마리의 블랙오크를 이끌고 인류를 혼란에 빠뜨렸던 지천우였다.

"부르셨습니까. 위대한 전사 바투시여."

"그 녀석의 행방은?"

바투는 이를 갈았다.

정인우.

그 녀석은 끝끝내 영악했다.

결국엔 수천의 병력을 비집고 탈출에 성공한 것이었다.

게다가 놈은,

곰탈까지 벗으며 얼굴을 보이더니 반드시 죽여주겠다는 헛소리까지 내뱉었다.

그리고 바투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정인우를 태우고 사라졌던 드래곤이었다.

'그건 분명...'

낯이 익었다.

몸체가 많이 커지긴 했지만 어찌 모를 수 있을까.

'SG그룹의 실험체였다.'

정인우.

그 녀석은 단신으로 SG그룹을 멸망시켰다고 했다.

그리고 녀석은 거기서 훔쳐온 실험체를 잘도 키워놓은 것 같았다.

그 실험체를 이용하여 도주하다니.

실로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한 방식의 도주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생각도 잠시.

이윽고 지천우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찾지 못했습니다. 워낙에 넓은 땅이기도 하고...."

바투는 지천우의 말을 도중에 자르며 강한 어조로 명했다.

"듣기 싫다. 찾아라. 실험체와 녀석을 찾아라."

말을 마친 바투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 * *

중국.

버려진 폐건물 안.

인우 일행은 이곳으로 피신한 상태였다.

바투와의 혈전 중, 인우는 분명 치명상을 입었다.

"..."

그러나 이곳에 앉아 있는 인우는 멀쩡해 보이기만 했다. 그러한 인우를 향해 민철과 지은이 물었다.

"형님...괜찮으십니까? 일주일이나 정신을 잃고 계셨다고요."

"정인우! 어쩌다가 그런 괴물 새끼들 한가운데에 있던 거야? 정말 죽을 뻔 했다고! 알아!?"

지은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었다.

그리고 둘의 걱정에도 인우는 답이 없었다.

평소와는 많이 다른 모습.

그 모습이 굉장히 낯설었다.

민철은 그러한 인우의 모습에 큰 이질감을 느꼈다.

그래서일까?

민철은 평소 인우가 좋아하던 곰탈을 손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곰탈은 여기저기 찢긴 채로 솜뭉치가 튀어나와 있었다.

"후우...형님. 곰탈은 제가 잘 챙겨놓았습니다. 어서 빨리 몸을 회복하세요. 중국이고 뭐고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서 예전처럼 사는 겁니다."

민철은 울먹이고 있었다.

인우는 그러한 민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머리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바투.

녀석과 대결했다.

그 결과.

지구에서의 첫 패배를 겪었다.

안일했다.

그 안일함으로 인해 목숨이 달아날 뻔 했다.

일전 미로 족장을 죽이고 얻었던 힘의 정수가 없었다면 정말로 죽었을 것이다.

"바투 이 새끼."

이내 인우는 이를 갈았다.

그리고 인우가 말하자 민철과 지은이 단숨에 물어왔다.

"형님! 집으로 갑시다!"

"정인우. 어쩔 셈인데?"

인우는 대답대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민철이가 잔뜩 헤진 곰탈을 챙겼다.

인우는 늘 이걸 입고 다녔으니까.

그런데 웬일인지 인우는 고개를 내저었다.

"형님. 곰탈은?"

"버려라. 이제 장난은 그만 칠 생각이니까."

말을 마친 인우의 눈동자가 살벌하게 빛났다.

* * *

팜이는 그간 정말로 크게 성장해 있었다.

인우와 민철 그리고 지은.

이렇게 세 사람을 태울 정도로 말이다.

-크아아아아암!

인우는 팜이를 타고 중국의 상공을 배회했다.

제라를 찾기 위함이었다.

현재로서는 제라가 유일한 희망이다.

녀석을 키워 바투와 전면전을 치러야만 한다. 그리고 인우는 오래지않아 제라 부족을 찾아낼 수 있었다.

제라 부족은 전쟁 준비가 한창이었다.

인우는 그러한 놈들을 바라보며, 팜이를 타고 천천히 하강했다.

후웅-! 후웅-!

거대한 날갯짓과 함께 팜이가 제라의 앞에 내려섰다.

-크아아아아아암!

팜이가 포효하자 제라는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드래곤!?"

비교적 작은 크기였지만 생김새는 분명 드래곤이었다.

그러나 아직 놀라기엔 일렀다.

드래곤의 등 뒤에 사람이 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중, 한 남자가 제라를 향해 말했다.

"오랜만이다?"

"...너는?"

제라는 단박에 인우를 알아보았다.

곰탈을 쓰고 있던 그 인간 놈.

함께 전장을 누비며 곰탈을 벗고 있는 모습도 몇 차례 보았던 것이다.

저 인간은 분명 제라가 미로 부족을 삼킬 때 큰 도움을 주었던 그 곰이었다.

언젠간 다시 온다고 하더니, 영영 소식이 없던 곰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나타난 것이다.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윽고 제라는 양팔을 활짝 벌리고 인우를 껴안았다.

"왜 이제 왔냐! 기다렸다!"

그 감격(?)의 상봉에 옆에 있던 지은은 인상을 찌푸렸고, 민철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민철은 문득 일전에 인우와의 통화 내용이 떠올랐다.

-블랙오크들과 함께 있는 중이다.

당시에는 무슨 그런 농담을 다 하냐고 웃어 넘겼다.

그런데 농담이 아니었던 것 같다.

정인우는 정말로 블랙오크들과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동지로서.

'혀, 형님은 정말...늘 나를 놀라게 하, 하네...그나저나 블랙오크들이 정말로 많네...와, 미친, 저 끝도 없는 병력들 좀 봐.'

민철이 그러한 감탄을 하고 있을 때.

어느덧 제라가 인우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 두 인간은 누구냐?"

"아, 앞으로 함께 할 거니까 미리 인사해둬."

"그래. 그런데 말이다. 저...드래곤은?"

제라는 드래곤에 대해서 공포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현재 제라 부족은 드래곤의 가호를 받고 있기도 했고, 그랬기에 드래곤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제라는 다음 순간 들려오는 인우의 대답에, 턱이 빠질 기세로 입을 벌리고야 말았다.

"아, 내 애완동물이다."

"허어....애, 애완동물?"

"그래. 애완동물. 그나저나, 무기 하나만 빌리자."

"무기?"

"내 용작두를 잃어버렸거든."

인우는 다시금 떠오르는 바투와의 혈전에 입술을 깨물었다.

빌어먹을 새끼.

다시 만날 땐, 기필코 목을 따줄 것이다.

"대검이면 되는 거냐?"

"어."

어느덧 제라는 수하들을 시켜 거대한 대검을 내왔다.

인우는 대검을 받아들고는 유심히 살폈다.

별 볼일 없는 검이었다.

그러나 당분간은 어쩔 수 없다.

이내 인우는 대검을 어깨에 올리며 제라를 향해 말했다.

"나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을 참이다. 어느 부족을 삼킬 거지? 내가 온 힘을 다해 도와주지."

그 말에 제라는 감격스러운지 두 손을 모았다.

정인우의 무력을 직접 목격한 제라다.

게다가 애완동물로 자그마치 드래곤을 끌고 와버렸다.

물론 뒤에 병풍처럼 서 있는 두 인간은 별 볼일 없다 여겼다.

그러나 제라는 아직 모를 수밖에 없었다.

민철은 별거 없다 쳐도, 정지은의 위력은 웬만한 족장들을 가볍게 찍어 누를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을.

나아가, 현재의 정인우는 독하게 마음을 먹었단 것을.

* * *

다시금 초인부대의 대장을 맡게 된 배다정.

그녀는 부대를 통솔하며 미친곰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녀는 현재로서 취할 수 있는 최상의 수를 선택할 참이었다.

그것은 바로 제라 부족과 바투 부족 간에 이파전.

이것은 생전 미친곰의 작전이었고, 현재 이보다 더 나은 작전은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나아가, 중국에 급파된 전세계의 초인부대가 이 작전을 공동수행 할 예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심히 접근해야한다.

미친곰은 특유의 언변과 강심장을 이용해 제라를 설득했다.

그러나 현재 급파된 초인부대에는 미친곰과 같은 인재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다정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고민이 이어지기 한창.

-대장님. 보고입니다!

배다정은 막사를 비집고 들어서는 다급한 병사의 보고를 듣게 되었다.

"대장님!"

"무슨 일이지?"

"관리국에서 내려온 내용입니다. 현재 위성 상으로 확인해본 제라 부족의 영역에, 웬 3명의 인간들이 접근했다는 소식입니다."

"사람이 접근했다고?? 도대체 누가??"

다정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물었다.

어느 누가 미쳤다고 블랙오크들의 영역에 들어가겠는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이지 않나?

현재 초인부대의 인재들도 제라에게 접근하지 못해서 다정은 이렇게 고민하고 있지 않나?

그런데 어느 누가 접근을 했단 말인가?

말 같지도 않은 보고다.

다정은 그런 생각을 했다.

이윽고 다시금 병사의 보고가 이어졌다.

"여기 사진을 확인해 보십시오."

보고병은 다정에게 사진을 넘겼다.

그리고 사진을 바라본 다정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사진 속 3명의 인간들 중 한명이 낯이 익었던 것이다.

분명히 아는 얼굴이었다.

'이 남자는!? 이름이 아마, 정인우였었나.'

첫 만남이 너무나도 강렬했기에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정인우,

그는 대범하게도, 정보를 가진 블랙오크를 가지고 관리국과 딜을 시도 했던 미친놈이었다.

그런데 그 미친놈이 수개월 만에 다시 나타났다.

그것도 제라와 접선한 채로.

그러나 희안한 일이었다.

미친곰이 죽자 또 다른 미친놈이 나타나다니.

"미친곰이 전사하고, 정인우가 나타났다...흐음..."

이윽고 배다정은 미간을 좁혔다.

< 097화 또 다른 미친놈 > 끝

ⓒ 호종이

< 098화 파뇌 (1) >

중국에 급파된 세계 초인부대들.

각 부대의 대장들은 영상수신을 이용해 임시회의를 진행했다.

그러나 좀처럼 뭉치지 않았던 그들이 임시회의를 진행하다니.

예삿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현재 새로이 등장한 초인으로 인해 임시회의가 열린 것이다.

난데없이 등장한 그 초인은 급파부대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았다.

때문에 이들은 궁금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정인우가 도대체 누군데?"

미국 초인부대의 대장이 물었다.

그는 제법 놀라워하고 있었다.

하긴.

그 누구도 제라에게 섣불리 접근하지 못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튀어나온 초인이 너무나도 간단히 제라에게 합류한 것이다.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어느덧 일본 대장도 놀라움을 표했다.

"현재의 작전은 제라를 키워 바투를 막는 것이잖아? 그런데 정인우라는 자가 제라와 접선했으니 그와 연락을 취하면 될 것 아닌가? 그는 한국인이라던데. 배다정 대장.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

"알고 있어. 한국 관리국에선 제법 유명한 초인이었으니까."

"하긴. 저 정도의 추진력이라면 유명세를 탈 수밖에 없었을 테지. 그래서, 그는 어떤 인간이지?"

그 물음에 다정은 한참동안 침묵했다.

정인우. 그는 어떤 인간일까?

솔직히 다정도 자세히는 몰랐다.

만나본 것은 고작 한 번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나 그 강렬한 만남을 잊을 수는 없었다.

정인우는 국가를 상대로 딜을 넣던 강심장이었다.

그래, 한마디로 표현해 보자면,

"정인우. 그는 확실히 정상은 아니지."

"그게 무슨 의미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미친 인간이야. 그가 도대체 왜 제라에게 합류했는진 모르겠지만, 그 이유를 알기 전까진 섣불리 움직여선 안 돼."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다정의 태도.

이에 일본 대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도 인간이지 않나? 이대로 가면 인류가 멸망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을 테고. 어찌되었건 그는 우리의 편이지 않겠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속단할 수 없어. 당분간은 정인우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리고 우리는 당분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라를 지원한다."

배다정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대장들이 그녀와 같진 않았다.

그래서일까?

회의는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 * *

인우는 제라가 내어 준 막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막사 바깥에서는 팜이가 뛰어 놀고 있었고, 막사 내부에는 민철과 지은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양새였다.

"으음."

어느덧 인우는 제라가 준 대검을 유심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강철을 통째로 달군 듯한 무식한 모양새의 대검.

용작두에 비하면 형편없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 이 대검이 자신의 힘을 견뎌 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내려찍기 한 방만 꽂아 버려도 두 동강이 날 것처럼 조잡해 보였으니까.

그러한 생각도 잠시.

어느덧 민철이 인우를 불렀다.

"형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이에 인우는 옆에 앉은 민철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녀석 또한 전사 계열의 초인.

게다가 녀석은 용케도 무기를 챙겨 온 상태였다.

SG그룹의 로고가 박혀 있는 대검.

나쁘지 않은 검이다.

이윽고 인우가 민철에게 말했다.

"대검 좀 바꾸자."

"···넵?"

민철은 멍청한 얼굴로 반문했다.

이 대검은 그가 월급을 차곡차곡 쌓아 힘겹게 구매한 대검이었다.

이제는 단종이 되어 버린 SG그룹의 제품 중에서도 명품에 속하는 대검!

자그마치 1억 2천만 원에 달하는 대검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인우를 보라.

마치 '나도 그거 한 입만'정도의 뉘앙스로 대검을 바꾸자고 말하고 있었다.

"에이! 에이!"

이윽고 민철은 본인의 대검을 꼭 껴안으며 말했다.

"이, 이건! 제 보물인데요···!"

"너, 여기가 어딘지 잊었냐?"

인우는 대답 대신 현실을 알려 주었다.

이곳이 어딜까?

이곳은 중국이다.

블랙오크들이 넘쳐나는 중국.

인우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너, 내가 이 거지 같은 대검으로 싸우길 바라냐? 내가 죽으면 너도 죽어."

"그, 그건 그렇죠."

"그럼 내가 최대한 힘을 쓸 수 있게 도와야 너도 살 것 아니냐."

"그것도 그렇네요······."

"그럼 그 대검을 내 대검과 바꿔야 하지 않겠냐? 살고 싶다면 말이야."

"끄응······."

이윽고 민철은 잔뜩 앓는 소리를 내며 본인의 대검을 인우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인우는 잽싸게 민철의 대검을 빼앗았다.

그리고 민철은 인우가 가지고 있던 엉성한 대검을 받았다.

"흐으··· 음······."

이런 거지같은 거래라니!

민철은 억울했다.

레벨 90이나 되어서 아이템을 강탈당할 줄이야.

그렇게 한참을 억울해 하고 있기도 잠시.

이윽고 인우가 민철에게 말했다.

"너도 이제 각성이 얼마 남지 않은 걸로 아는데. 맞냐?"

"아, 네. 99레벨도 얼마 남지 않았죠."

99레벨이 될 경우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레벨 업이 불가능하다.

신체를 한 번 각성시켜야 레벨 업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필요한 아이템이 바로 각성정수였다.

그러나 각성정수는 수십 억이 넘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민철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금액이기도 했다.

물론 길드 따위를 가입한다면 각성정수를 뱉는 '용작두 광전사'를 사냥하기 용이해진다.

하지만 각성을 위해 길드에 가입하여 노예 계약을 맺을 바에, 차라리 돈을 차곡차곡 쌓는 게 나았다.

어찌되었건, 현재로서 민철은 앞으로 다가올 각성에 대한 대비책이 없었다.

그리고 인우는 그러한 민철의 입장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인우가 말했다.

"여기 중국에도 헬게이트는 많아. 그리고 이곳에도 용작두 광전사는 뜨지. 게다가 여기에는 경쟁자도 없어. 뭐, 민철이 니가 중국까지 왔으니, 내가 각성까지 도와줄 생각이다."

"혀, 형님!?"

인우의 말에 민철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울먹거렸다.

그 모습에 인우는 피식 웃으며 이어 말했다.

"그러니까. 이 대검 나한테 빼앗겼다고 너무 억울해하지 말라는 거다. 내가 언제 양아치처럼 니 물건을 뺏기만 했었냐?"

"그건 아니죠! 암요! 암요!"

민철은 히죽 웃었다.

인우의 말이 맞았다.

인우와 함께 다니면서 손해를 본 적은 없었다.

죽을 뻔한 적은 더러 있었지만······.

"감사합니다! 형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윽고 민철은 대검을 빼앗겼음에도 감격에 젖은 충성심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은은 눈앞에 펼쳐진 놀라운 광경에 혀를 내둘렀다.

"미친. 정인우. 너 설마 여자 꼬실 때도 그렇게 입 터냐?"

* * *

제라 부족과 베가 부족의 전쟁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제라는 다음 타켓은 베가라며 공공연히 밝혔고, 베가는 언제든 와 보라며 으름장을 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끝도 없이 펼쳐진 거대한 평원에서 이 두 부족이 부딪쳤다.

베가는 수천만 명의 블랙오크들을 이끌며 선두에 서 있었다.

터벅- 터벅-

이윽고 베가는 저편에 서 있는 제라에게로 걸어갔다.

터벅- 터벅-

그러자 제라도 부족원들을 뒤로 한 채 앞으로 걸어 나왔다.

어느덧 둘의 거리는 서로의 이마가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둘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노려보았다.

베가가 먼저 입을 열었다.

"크르. 우리는 네놈 따위에게 굴하지 않는다."

"흥. 어디 모가지가 달아난 뒤에도 그런 소리를 짓거릴 수 있는지 보겠다!"

제라가 당차게 답하며 몸을 돌렸다.

이내 제라는 베가를 뒤로 한 채, 자신의 부족원들을 바라보며 포효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오늘 전쟁의 승리자는, 우리다!"

이에 베가도 지지 않겠다는 듯 몸을 돌려 본인의 부족원들을 향해 외쳤다.

"으라아아아아아!! 우리는 오늘, 가증스러운 제라의 목을 도려내고 그 피로 마른 목을 축일 것이다!"

뿌우우우우우우-

두 족장의 포효가 끝나자 뿔피리 소리가 평원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우와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

지축이 흔들리고 함성이 하늘 가득 울렸다.

이윽고, 수천만 블랙오크들이 격돌했다.

* * *

한편, 인우는 지은과 민철을 데리고 팜이의 등에 올라타 있는 상태였다. 현재 팜이는 상공에 떠 있는 상태.

아래에서는 새카만 피부를 가진 블랙오크들이 붉은 피를 흘리며 전투에 여념이 없었다.

팜이의 등허리 끝부분에 앉아 있는 민철은 달달 떨리는 턱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혀, 형님··· 만약에 제가 여기서 떨어지게 되면, 곧바로 죽겠죠···? 제가 기절하면, 잘 잡아 주셔야 합니다. 저는요, 굉장히 불쌍한 놈이라고요. 부양해야 할 어머니도 계시고요. 저는 더 오래······."

어느덧 인우는 민철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지은에게 말했다.

"야, 뭐 하냐 지은아."

"아, 공중 폭격인 거야?"

두 남매는 죽이 척척 맞았다.

그렇다.

현재 그들은 팜이를 이용해 공중에 떠 있는 상태.

이는 곧, 아래에 있는 블랙오크들은 이들에게 공격을 취할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아, 물론 마법이나 화살, 투척 따위의 공격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은의 쉴드는 그러한 모든 공격을 막아 낼 만큼 막강하다.

애초에 그녀는 랭커 중의 랭커인 마법사이질 않나?

어느덧 인우는 양손에 파이어 볼을 생성해 냈다.

그러자 지은도 한 손에는 얼음 덩어리와 반대 손에는 전격을 생성했다.

후웅! 후웅!

쩌저저저적-!

이윽고 두 남매의 폭격이 시작됐다.

아래에서 전쟁에 몰두 중인 베가 부족은 남매의 공격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긴.

당장 사방에서 날아드는 적의 공격을 신경 쓰기에도 바쁜 녀석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중 폭격을 인지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인지한다고 해도 이미 죽은 다음에나 가능할 터였다.

퍼엉! 퍼엉! 퍼엉!

[경험치를 11500+11500 획득하였습니다.]

.

.

.

인우는 제라의 병사들이 거의 다 잡아 놓은 적들만 노렸다.

인우의 마법이 강한 편이긴 했으나, 한 큐에 끝내기 위해선 이것이 최선인 것이다.

그러나 지은은 달랐다.

"우와아아! 미친! 경험치 돌았냐! 다 쓸어버려야겠어!!"

그녀는 마법을 몇 번 시전해 보더니 들어오는 경험치에 적잖이 놀란 상태였다.

너무 신이 나서였을까?

이윽고 그녀는 무언가 거대한 것을 준비하기 위해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그러더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오오-!

그러자 그녀의 주변으로 엄청난 마나의 회오리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막대한 기운에 뒤에 타고 있던 민철은 저도 모르게 지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으아! 누님! 자비 좀!"

그러나 지은은 민철의 손길도 느끼지 못할 만큼 집중한 상태였다.

이윽고 지은에게서 엄청난 진동이 느껴졌다.

그 기운에 인우도 흥미가 동하는지 힐끗 지은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마법이기에?

애초 지은은 메테오조차도 주문 없이 난사하는 폭격기다.

그런데 지은이 저 정도의 시동어를 외운다고?

고오오오오오오-!

이윽고 지은의 주문이 끝났다.

그러자 지은의 양손에는 거대한 구체가 매달려 있었다.

붉은 빛깔을 내는 구체에서는 소름끼치는 마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두 손을 쭉 뻗어 구체를 베가 부족의 머리통 위에 옮겼다.

그리고 조용히 뇌까렸다.

"다 뒤져라. 블레이즈 템페스트(Blaze Tempest)."

그녀의 입술이 한마디를 내뱉었을 뿐이었다.

펑! 펑! 펑! 펑!

그러나 그 위력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을 지경.

초고열의 불길이 폭풍우를 일으키며 베가 부족원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한방에 수백 마리의 블랙오크들이 숨을 거뒀다.

[경험치를 99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23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2500 획득하였습니다.]

.

.

.

그녀의 마법 앞에, 대상은 약하고 강하고를 떠나서 모조리 목숨이 끊겼다.

마법을 마친 그녀는 호쾌하게 웃기 시작했다.

"푸하하하하! 이거 완전 꿀이잖아!"

그녀의 괴력에 민철은 여전히 부들부들 거리며 몸을 떨었다.

'저건 사람이 아니야··· 분명 괴물일거야. 형님도 그렇고. 누님도······.'

그러나 앞에 앉은 인우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 인우의 시선은 전장 중앙에 박힌 듯 꽂혀 있었다.

전장 중앙에서는 지은의 마법을 막아 낸 베가가 이를 갈며 위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베가는 지은의 마법에도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은 듯 보였다.

심지어 인우조차도 정통으로 저 마법에 맞으면 무사할지 의문이 되는 위력이었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지은의 마법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단 말인가?

이내 인우는 베가를 내려다보며 눈을 찌푸렸다.

그리고.

인우의 시선은 베가의 양손에 들려 있는 거대한 무기로 향했다.

무기에서는 하얀 김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저 거대한 무기로 지은의 마법을 막았던 것이다.

이윽고 인우가 말했다.

"민철아. 니 대검 다시 받아갈 준비해라."

< 098화 파뇌 (1) > 끝

ⓒ 호종이

< 099화 파뇌 (2) >

지은의 입에서 시동어가 튀어나왔다.

"다 뒤져라. 블레이즈 템페스트(Blaze Tempest)."

이에 베가는 공중에서 가해지는 강력한 마법공격에 무기를 치켜들었다.

투웅-! 투웅-!

베가의 무기는 초고열의 화염 태풍을 거뜬히 막았다.

아무렴.

이 무기는 보통 무기가 아니니 당연한 결과이리라.

족히 2미터는 되어 보이는 이 무지막지한 대검은 묵빛을 띄었다.

어찌 보면 대검이라기보다는 쇠몽둥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기도 했다.

단순히 강철을 갈아 날카롭게 만든 것이 아닌, 살과 뼈를 통째로 아작 내기 용이한 둔기에 가까웠다.

이윽고 베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공중에 날파리가 있었군."

날카로운 베가의 시선.

그러나 인우는 녀석의 시선을 가볍게 무시한 채, 놈의 무기만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건 분명······.'

녀석의 무기가 대검이기에 강탈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보통 대검이 아니다.

저것은 인우도 익히 알고 있는 무기였다.

처음엔 긴가민가했으나 이제는 확신이 들었다.

저 무지막지한 대검의 이름은 '파뇌.'

파뇌는 용작두보다 한 등급 높은 유니크 아이템이었다.

그러니 저렇게나 강력할 수밖에.

지금 상황만 보아도 명확할 것이다.

저 베가라는 놈은 파뇌를 이용해 지은의 마법을 막아 냈지 않은가?

"······."

이윽고 인우는 군침을 꿀꺽 삼켰다.

저건 무조건 강탈해야만 한다.

한데, 의문이 남긴 했다. 저놈은 파뇌를 어떻게 구한 것일까?

용작두가 그러하듯, 파뇌 또한 네임드 보스를 잡아야만 얻을 수 있는 유니크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파뇌를 사용하는 네임드 보스는 지구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파뇌를 사용하는 보스는 괴수가 아닌 마족이었으니 말이다.

마족.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헬게이트에서는 마족까진 튀어나오지 않은 상태이질 않나?

'블랙오크 놈들··· 바투의 비정상적인 전투력도 그렇고, 놀라움의 연속이로군.'

일전 제라 부족의 드래곤의 가호도 그렇고, 이번에는 난데없이 파뇌가 등장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일단은 접수부터.'

온갖 의문도 잠시.

인우는 생각을 길게 하지 않았다.

이미 등장해 있는 파뇌를 보고 암만 고민을 해 봐야 풀릴 리 없다.

그저 눈앞에 존재하니, 자신이 취하면 그만이었다.

'우선 최대한 힘을 빼 놓는다.'

이윽고 인우는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베가를 향해 이죽댔다.

"분수에 맞지도 않는 무기를 들고 있네."

"뭐라?"

베가의 눈썹이 꿈틀댔다.

그러자 인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놀렸다.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겠다만, 너 따위가 들고 있을 만한 무기가 아니다."

화르르륵-!

말을 마친 인우는 베가를 향해 마구잡이로 화염구를 내던졌다.

이에 베가는 파뇌를 휘둘렀다.

투웅-!

묵직한 배트를 휘두르는 듯한 파공이 일며 화염구들은 단숨에 파훼되었다.

파스스스스스.

역시나 놀라운 대검이다.

마스터 레벨의 파이어 볼을 단숨에 무용지물로 만들다니.

탐나지 않을 수 없었다.

파뇌의 장점은 보는 바와 같이 막강한 저항력이다.

그러나 진정한 장점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무지막지한 파괴력.

파뇌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데에 최적화된 강력한 병기인 것이다.

그나저나, 베가 놈이 제라에게 굴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저것 때문인 듯싶었다.

현재 제라는 엄청난 규모의 병력을 이끄는 족장이다.

그럼에도 베가는 전면전을 취했다.

처음에는 역시나 덜떨어진 블랙오크답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직접 대면해 보니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하긴. 저렇게나 강력한 무기를 들고 있다면, 지니고 있는 자신감도 껑충 뛸 수밖에.

그러나.

파뇌는 이제 곧 자신의 것이 될 터였다.

이윽고 인우는 베가를 꼬나보며 무기 강탈을 위해 머리를 굴렸다.

우선 베가 녀석이 파뇌를 들고 있는 이상 1:1 대결은 자살행위이다.

그래서일까?

인우는 신중히 기회를 노릴 뿐 결단코 아래로 내려서지 않았다.

* * *

베가와 제라의 전쟁이 시작됐다.

이에 배다정은 제라의 승리를 확신했다.

현재 병력의 차이만 보아도 명확했으니 말이다.

3천만 대 1억의 싸움이다.

애초에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예정대로 제라는 베가 부족을 흡수할 테고, 제라는 한층 더 성장할 테지.

"흐음······."

이렇듯, 모든 것이 예정대로 흘러간다.

바투는 여전히 진격 중이고, 대륙은 전쟁이 한창이다.

그런데 이러한 예정에서 유일하게 어긋나는 존재가 한 명 있었다.

그것은 바로 현재 제라와 합류한 정인우였다.

다정을 포함한 모든 세계 초인들의 이목이 정인우에게 쏠려 있는 상태였다.

확인해 본 바에 의하면, 정인우는 현재 괴상한 생명체를 타고 공중폭격을 가하고 있었다.

정인우가 타고 있는 생명체는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드래곤과 똑같이 생겼다.

그것은 정말로 드래곤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어디서 드래곤을 구했으며, 어떻게 길들인 것일까?

놀라움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정인우는 미국의 초일류 랭커인 가브리엘 정과 함께였다.

텍사스의 악녀 가브리엘 정이라니.

더욱이 놀라운 것은 둘의 관계가 남매라는 사실.

그제야 정인우의 성질머리가 집안내력이었구나 싶었다.

또한 '김민철'이라는 한국인 남자도 함께였다.

그러나 민철의 경우 별 볼일 없었기에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나저나, 지금 정인우가 취하고 있는 행동패턴이 사망한 미친곰과 너무나 흡사하단 말이지······."

문득 소름이 돋았다.

실제로 바투와의 격전지에서 미친곰의 애검인 용작두는 발견되었지만, 그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때문에 미친곰이 살아 있을 확률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만약 정말로 정인우가 미친곰이었다면?

그렇다면 그보다 더 놀라울 순 없을 것이다.

"으음······."

다정은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았다.

미친곰 사망이 공식화되자마자 보란 듯이 나타난 정인우.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라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완벽히 합류했다.

미친곰이 그러했던 것처럼.

만일 정인우가 미친곰이라는 가정이 맞다면 모든 것이 맞물리게 된다.

그러나 속단하기엔 일렀다.

일단은 정인우와 접선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저번 회의를 통해, 정인우와 그나마 안면이 있는 그녀가 접선에 발탁되었다.

그리고 오늘 밤.

제라의 전쟁이 끝나면, 그녀는 정인우에게 접근할 예정이었다.

* * *

베가는 머리꼭대기까지 치솟아 오르는 화를 간신히 억눌렀다.

"네놈이 진정 죽고 싶은 것이냐!"

베가는 공중을 노려보고 있었다.

공중에서는 인우가 파이어 볼을 날려 대고 있었다.

물론 베가는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최전방에 위치한 병력들을 움직여 공중에 엄청난 공격을 퍼부어 댔던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공격을 막아서는 쉴드가 펼쳐졌다.

쉴드는 지은이 펼친 것이었는데, 그녀의 쉴드는 웬만한 마법공격은 가볍게 무시하고도 남았다.

게다가 팜이의 비행 실력 또한 발군이었다.

웬만한 마법공격들은 팜이에게 닿지도 못할 정도였으니까.

챙-! 캉-!

주변에서는 여전히 피와 살점이 튀는 전쟁이 한창이다.

그럼에도 베가는 여전히 공중에 집착했다.

너무 열이 받아서 저 인간 놈을 격추시키지 않고서는 못 베길 지경이었으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인간 놈을 잡아라!!"

베가가 소리쳤다.

그러자 우습게도 전쟁의 양상이 뒤바뀌고 있었다.

베가의 최전방 병력은 공중에 화력을 집중했고, 이에 제라는 이때다 싶어 병력을 이끌고 단숨에 베가를 밀기 시작했다.

베가의 바보 같은 집착 때문에 제라는 한결 더 수월하게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베가를 수세에 몰리게 만들었다.

이에 베가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젠장!"

놀랍도록 어처구니가 없었다.

별 같잖은 똥파리가 귀찮게 해서 잡으려고 방방 날뛰다 보니, 어느새 사방에 적들이 깔려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즈음.

모든 안전이 확보된 그때.

그제야 인우는 공중에서 내려왔다.

이어 인우는 제라의 병력들을 앞세우며 그 뒤편에 섰다.

그러자 베가는 눈앞에 내려선 인우를 보고 이성을 놓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이미 패배는 기정사실화가 되어 있는 상태.

어차피 목숨을 빼앗길 거, 저 미친 인간 놈을 족치고 죽어야겠다 싶었다.

이내 베가는 파뇌를 치켜들고 길을 뚫기 위해 제라의 병력들을 마구잡이로 후드려 팼다.

후웅! 퍽! 퍽!

그러한 광경에 인우는 아직도 공중에서 마법을 난사해 대고 있는 지은을 향해 외쳤다.

"야 지은아! 이놈 잡아라!"

"응? 왜 하필 그놈인데? 지천에 널려 있는 게 블랙오크라고."

"그런 거 백날 먹어 봐야 이놈만 못해!"

그러면서 인우는 저만치 앞에서 광분하고 있는 베가를 가리켰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얘는 최소 100만 이상이다."

"뭐, 뭐라고!?"

"엥!!"

최소 경험치 100만.

그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지은은 당장에 눈을 빛냈고, 민철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에 인우는 웃었다.

겁 많은 민철이 자식마저 내려오다니.

꽤나 재밌는 상황이다.

하긴, 100만이라면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경험치일 수밖에.

말리오 도축으로 500씩 먹던 민철이가 100만이라는 수치가 와 닿기나 할까?

그러나 명백한 사실이지 않나?

일전 인우는 미로 족장을 죽이며 실제로 100만이 넘어가는 경험치를 얻었었다.

족장들은 말도 안 되는 경험치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과 지은 그리고 민철.

이렇게 3명이서 족장 베가를 사살한다.

기존 블랙오크 사냥에서는 막타만을 쳐서 경험치를 몽땅 다 먹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이 3명이기에 각자의 기여도에 따라 경험치가 분배될 것이다.

민철의 경우도 몇 대만 기여해도 최소 수만에 달하는 경험치를 먹을 터였다.

그리고 인우는 경험치가 분배되어도 기분 좋게 받아들일 예정이었다.

인우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파뇌였으니까.

저 파뇌만 얻어내면, 블랙오크 사냥을 훨씬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앞으로 있을 바투와의 혈전에서도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은 자명한 일.

이윽고 인우는 블랙오크들을 앞세우며 베가를 향해 전진했다.

"자, 포식하러 가자고!"

인우는 대검을 치켜들었다.

지은도 공중에서 양손에 마나를 끌어 올려 마법을 준비했다.

최대한 많이 쳐야 경험치가 더 들어온다.

그리고 그러한 모두의 욕심은 종국엔 베가의 죽음으로 이어질 터.

"이야아아아압!"

그리고 인우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치 포효를 내지르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적진을 향해 뛰쳐나갔다.

그 누군가는 바로.

민철이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선빵은 민철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민철은 기세 좋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마치 눈앞에 있는 무엇이든 벨 수 있는 자신감에 가득 찬 검성처럼.

하지만.

"이야아아아아아압!"

타다다다닥.

점점 멀어지는 듯했던 포효 소리는 다시금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이야압! 받아라!"

휘익! 턱!

단단한 짱돌만이 전장을 가로지르고 있을 뿐이었다.

픽! 픽!

민철이의 돌멩이가 베가의 가슴팍에 힘없이 꽂히고 있었다.

그 모습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던 인우와 지은, 그리고 제라였다.

그리고 민철의 화려한 신고식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은이 나섰다.

후우우웅.

한 발을 앞으로 내디딘 그녀의 양 주먹에서 막대한 마나가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막대한 마나의 양으로 인해 주변엔 모래바람이 일 정도였다.

그리고.

터벅 터벅.

"야, 너 뭐 하냐?"

마지막으로 인우가 나섰다.

* * *

베가 사냥은 굉장히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역시나 족장답게 엄청난 맷집과 괴력을 지닌 녀석이었다.

제라의 도움까지 받아 녀석을 어렵사리 물리쳤다.

제아무리 파뇌를 들고 있어도 쪽수 앞에서는 녀석도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베가는 숨을 거뒀다.

그리고 인우, 지은, 민철의 순으로 경험치가 들어왔다.

[경험치를 750,000+75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77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42,000 획득하였습니다.]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세 사람 모두 레벨이 올랐다.

그리고 인우는 드디어 파뇌를 손에 쥐었다.

그러자 양손 가득 묵직함이 느껴졌다.

용작두와는 전혀 다른 느낌.

2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파뇌는, 세상 모든 것을 묵사발 내 버릴 것만 같은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내려찍기 한 방만 꽂아도 지상이 개박살 날 것 같은 기분이랄까?

파뇌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그 정도로 강렬했다.

-우와아아아아!! 제라 족장님 만세!!

-우와아아아아!! 우리가 이겼다!!

이윽고 베가의 죽음으로 인해 전쟁은 끝을 알리고 있었다.

< 099화 파뇌 (2) > 끝

ⓒ 호종이

< 100화 민철이의 사투 >

전쟁이 끝나고 남은 것은 식어 버린 시체뿐만이 아니었다.

족히 수만에 가까운 블랙오크의 시체는 그야말로 돈 덩어리이질 않나.

인우는 이번에도 전과 같이 막대한 양의 전리품을 채취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얻어 낸 것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마나정수와 스킬 볼이었다.

그리고 진정한 전리품은 족장 베가의 시체에서 나왔다.

'미로 녀석과 똑같군.'

베가에게서 채취한 전리품은 역시나 힘의 정수와 초특급 마나 정수.

그리고 유니크 스킬 볼이었다.

'힘의 정수는 많을수록 좋지. 언제든 전투불능에 빠졌을 때를 대비할 수 있으니.'

일전 미로에게서 얻었던 힘의 정수의 경우 바투와의 전투 이후에 사용했다.

그랬기에 때마침 얻어 낸 힘의 정수는 언제가 되었건 큰 힘이 될 것이 명백했다.

그리고 유니크 스킬 볼.

이것은 현재 인우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리품이기도 했다.

인우는 거의 광적이다 싶을 정도로 유니크 스킬 볼에 집착했다.

이윽고 인우는 왼손에 들린 투명한 색상의 스킬 볼을 입속에 넣었다.

그리고.

[이미 배운 스킬입니다.]

"아오."

인우는 짧게 탄식했다.

이번엔 꽝이었다.

하긴, 늘 필요로 하는 스킬을 습득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뭐, 이번엔 파뇌를 얻었으니 이것으로 만족해야지···'

인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스킬창을 점검해 보았다.

현재 인우의 액티브 스킬은 도합 19가지.

이 중 14개의 스킬이 마스터였다.

이는 지구에 존재하는 그 어떤 초인도 이루지 못했던 엄청난 경지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조만간 나머지 5개의 스킬도 마스터에 도달할 것이다.

현재 스킬 중 암기 투척이 96레벨로 마스터가 임박해 있는 상태였다.

뒤이어 광기 폭발이 83레벨.

그리고 분신 60레벨, 광폭 어검 51레벨, 육체강화 45레벨이 뒤를 이었다.

스킬 레벨은 90대부터 성장이 비약적으로 더뎌진다.

해서 암기 투척의 경우 여전히 90레벨 대에 머물러 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리고 현재 인우가 가진 스킬 중 가장 사기성이 짙은 기술은 분신.

분신 스킬은 60레벨에 도달하며 소환 가능한 개체수가 4명으로 늘어난 상태였다.

그간 인우는 분신들을 꾸준히 달리게 만들었고, 대부분의 분신들은 높은 레벨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였다.

<분신1>

레벨 : 60

한계 레벨 : 64 <시전자 레벨의 30%>

<분신2>

레벨 : 60

한계 레벨 : 64 <시전자 레벨의 30%>

<분신3>

레벨 : 41

한계 레벨 : 64 <시전자 레벨의 30%>

<분신4>

레벨 : 1

한계 레벨 : 64 <시전자 레벨의 30%>

현재 인우의 레벨은 214였고, 이에 따라 한계 레벨은 30%인 64였다.

이 분신들은 이제 제법 그럴 듯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전에 투입해도 될 정도로 말이다.

이윽고 인우는 4명의 분신을 모두 소환했다.

후우우우웅-

그러자 허공에서 인우와 똑같이 생긴 4명의 분신이 소환되었다.

그리고 소환된 분신으로 인해 옆에 있던 지은과 민철이 한마디씩 했다.

"아오. 깜짝이야. 정인우. 깜빡이 좀 키고 들어와라? 응?"

"어라? 형님. 분신 숫자가 늘었네요. 오호라. 그런데 말이죠. 일전에 형님의 분신은 저한테 한주먹 거리도 안 되던데. 크으. 그때는 정말로 즐거웠습니다. 형님과 똑같이 생긴 분신을 두들겨 팼을 때 말이죠! 하하!"

그러면서 민철은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일전 인우가 분신과의 대련을 제안했었고, 당시 레벨이 한 자리 수밖에 되지 않았던 분신은 민철이에게 깔끔하게 털렸었다.

그러니 민철이는 그때를 회상하며 즐거운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떨까?

이윽고 인우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민철에게 물었다.

"민철아. 지금 너 레벨이 91이냐?"

"아, 네 형님. 엄청나죠? 저 김민철의 성장속도는 정말이지 기네스급입니다! 푸하하하하!"

"흐음 91이라."

충분하지 않을까?

현재 분신 1의 레벨은 60.

저 분신은 다시 말해 또 다른 인우이며, 60레벨의 정인우이다.

그렇다면, 60레벨의 정인우는 31레벨의 격차를 무시할 수 있을 것인가?

민철의 경우 그간 인우와의 대련과 실전 전투를 통해 제법 급성장해 있는 상태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민철과 60레벨의 정인우가 붙어 본다면 어떻게 될까?

이윽고 인우가 다시금 말했다.

"너, 내 분신이랑 다시 한 번 붙어 볼래?"

"넵? 아니 형님. 저번에 형님 분신이 저한테 먼지 나도록 맞았던 것을 잊은 것입니까? 흐음. 뭐, 잊으셨다면 제가 다시 일깨워 드리죠. 흐흐."

민철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대검을 치켜들었다.

민철의 대검은 다시금 SG그룹의 명품 대검으로 바뀌어 있었다.

인우가 파뇌를 얻게 되며 자연스럽게 다시금 받았던 것이다.

'흐흐. 이번엔 천천히 고통스럽게 요리해 주마. 인우야.'

민철은 그런 생각을 하며 인우의 분신을 바라보았다.

민철이 언제 인우를 때려볼 수 있겠는가.

저 분신을 실컷 후드려 패며 그때와 같은 대리만족을 다시금 만끽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럼, 명령 내린다."

이윽고 인우의 분신1이 명령을 받고선 민철을 적으로 인지했다.

분신은 인우와 정말로 똑같았다.

심지어 들고 있는 무기조차도 파뇌였다.

그러나 분신의 파뇌는 실제 인우의 파뇌보다 풍기는 기운이 미약했다.

어디까지나 분신의 형태로 생성된 무기이기에 실제 무기와는 다를 수밖에.

물론 그렇다고 해도 충분한 위력을 뿜어낼 수 있을 것이다.

어느덧 민철은 대검을 어깨 위에 걸치며 건방진 표정으로 분신을 향해 말했다.

"선공은 양보하도록 하지. 얼마든지 들어와 보도록! 하하하하하하··· 하···응!?"

카아앙-!

그것은 불식간이었다.

분신은 단숨에 내달려 오더니 민철을 공격했던 것이다.

이에 민철은 이를 악물며 간신히 방어에 성공했다.

"뭐, 뭣!?"

민철은 대검의 손잡이를 타고 전해져 오는 강력한 힘에 적잖이 놀란 상태였다.

"어, 어떻게?? 전과는 전혀 다르잖아?? 뭐야 이건!!"

"크···크아아아아아아압!!"

이윽고 분신은 포효했다.

그 강력한 외침에 민철은 순간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제야 민철의 눈빛이 진중함을 머금었다.

이러다가 분신에게 얻어터지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민철은 땀으로 인해 흥건히 젖은 손바닥을 다급히 엉덩짝에 문대며 대검을 재차 꼬나 쥐었다.

"이, 익! 질까 보냐!"

분신은 말없이 공격해 왔다.

그 스타일이 정인우와 판박이였다.

역시 인우의 분신이라는 건가?

현재 분신은 4가지 스킬을 보유한 상태였다.

광전사의 60레벨 스킬까지 열려서, 내려찍기, 대검관통, 참살, 포효가 활성화 된 상태.

그리고 분신은 고작 4개의 스킬만으로도 영리하게 전투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쾅!

분신은 내려찍기를 단타로 끊으며 곧바로 대검관통을 시전했다.

쐐애애애액-!

그러자 분신의 파뇌가 단숨에 대기를 가르며 민철에게로 쏘아져 왔다.

"히, 히익!"

회피가 불가능할 정도의 빠르기.

이에 민철은 진땀을 흘리며 옆 구르기를 시도했다.

데구르르!

흙바닥을 구르는 민철.

이에 분신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려찍기를 꽂았다.

쾅! 쾅! 쾅! 쾅!

이번에는 단타가 아닌 연타!

그 미친 공세에 민철은 바닥에 누운 상태로 대검을 치켜 올려 간신히 방어에 성공했다.

"혀, 형님! 자, 잠시만요! 타임! 타임! 저 일단 일어서고요!"

"아, 죽기 직전까지만 패 놓으라 명령했으니 죽을 일은 없을 거다. 즐기라고. 민철."

민철의 다급한 외침에 인우는 얄밉도록 침착히 내뱉고 있었다.

이에 민철은 이를 악물며 여전히 바닥을 굴렀다.

"제, 젠장!"

이대로라면 언젠간 방어가 뚫린다.

어떻게 해서든 일어서야만 했다.

그러나 인우의 분신은 용납하지 않았다.

이것이 명백한 기회인 것을 인지한 것일 테다.

분신의 내려찍기는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쾅! 쾅! 쾅! 쾅!

"제길!"

이대론 안 된다.

이내 민철은 한손으로 대검을 치켜들고 다른 손으론 흙을 쥐었다.

이어 분신의 얼굴을 향해 흙을 뿌렸다.

"받아라!"

"크으."

정확히 먹혔다.

분신은 눈동자를 파고든 흙에 의해 잠시 주춤했다.

그리고 민철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일어섰다.

이내 민철은 이마를 타고 눈가를 찌르는 땀을 닦아 내며 기합을 내질렀다.

"이야아아아압!"

카앙-!

다시금 둘이 격돌했다.

그리고 수차례의 공방이 이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분신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지기 시작했다.

지치기라도 한 것일까?

그럴 리가 없었다.

저건 마치 일부러 틈을 보이고 있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틈을 보인단 말인가?

'나한테 틈을 보이다니! 무슨 작전인진 모르겠지만 그건 실수다!'

민철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한편.

인우는 난데없이 느려진 분신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녀석은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그러길 잠시.

어느 순간 분신이 전혀 예상치도 못한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다.

분신은 민철의 공격을 그대로 맞아 주며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그러나 바보 같은 행위이다.

공방을 하며 틈을 노려 공격을 가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난데없이 공격을 맞아 주다니?

그러한 생각도 잠시.

이내 민철의 대검이 분신의 뱃가죽을 그었다.

그럼에도 분신은 굴하지 않고 어떻게든 민철과의 거리를 좁히기에 바빴다.

"쯧. 분신의 전투 센스는 영 꽝이로군."

인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러나 인우의 눈살이 펴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윽고 들려오는 시스템 메시지 때문이었다.

[시전자의 '분신1'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아?"

그제야 인우는 분신의 의도를 파악했다.

이제 곧 레벨 업을 할 것을 인지한 분신은 일부러 틈을 보였던 것이다.

레벨 업을 하면 닳았던 체력을 다시금 회복한다.

영악하게도, 분신은 이를 노렸던 것이다.

어차피 곧 체력이 회복된다.

그렇기에 일부러 맞아 주며 상대의 방심을 노렸던 것이다.

"크아아아압!"

이윽고 분신은 단숨에 태세를 전환했다.

쌩쌩해진 분신은 공격에 심취해 있는 민철에게 커다란 한방을 넣었다.

후웅-!

"뭐, 뭣!?"

약해진 분신을 구타하며 방어 따윈 개나 주었던 민철이었다.

그렇기에 이 커다란 한 방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다.

쿠웅-!

그리고 그 한 방은 정확히 민철의 어깨에 꽂혔다.

단숨에 나자빠진 민철.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던지 고통조차도 몇 박자 늦게 다가왔다.

"뭐, 뭐야!?"

그러한 민철을 향해 분신이 마구잡이로 발길질을 해 대기 시작했다.

퍽! 퍽! 퍽!

"으, 으아아아아악!!"

미친 듯이 공격만을 해 왔던 민철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래서일까?

어느덧 민철은 대검을 놓쳤다.

그리곤 미친 듯이 내리꽂히는 발길질에 몸을 잔뜩 웅크릴 뿐이었다.

"혀, 형님! 그만! 그마아아아아안!"

퍽! 퍽! 퍽! 퍽!

민철의 비명은 오래도록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