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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8화 잔당처치 (1) >

퀸은 혀로 입술을 핥으며 블랙오크들을 쏘아보았다.

그러자 4마리의 블랙오크들은 퀸의 허벅지를 바라보며 저들끼리 대화했다.

"저 여자가 지금 우리한테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했지? 그건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인데 말이야."

"취익. 저 여자는 기필코 생포한다. 나부터 저 여자를 취할 거다."

놈들은 그런 말을 내뱉으며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퀸이 불식간에 움직였다.

타다다닷-!

퀸은 단숨에 앞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놀라운 추진력이었다.

퀸의 원피스가 태풍 앞의 깃발처럼 펄럭였다.

"이야압!"

퀸은 뾰족한 외침과 함께 손톱에 피를 응축시켰다.

파바바밧-!

그러자 퀸의 손톱에서 붉은 빔이 쏘아져 나왔다. 빔은 이리저리 비틀리며 블랙오크들을 노렸다.

"취익! 위험하다!"

블랙오크들은 빔을 보자 기겁을 하며 황급히 피했다.

퀸은 거침없었다.

보통 전투력이 아니다. 블랙오크들은 뒤늦게 진지한 자세를 취했다.

녀석들은 저마다 강철 같은 손톱을 치켜들었다.

"취익! 이 여자가 이 무리의 대장인 것 같다!"

"이 여자만 제압하면 뒤에 있는 떨거지들은 별거 아닐 거다!"

"빠르게 제압하고 실험체와 여자를 챙긴다!"

놈들은 인우와 민철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한편, 인우는 잠자코 그 꼴을 지켜보고 있었다.

'공간을 비트는 종류는 아닌가 보군.'

일전에 싸워 보았던 나이트 길드의 블랙오크와는 달랐다. 그러나 비등한 무력을 지녔는지 더 낮은 무력을 지녔는지는 쉽사리 판단이 서질 않았다.

인우는 조금 더 지켜보았다.

쐐애애액-!

퀸이 쏘아 낸 붉은 빔이 뒤엉킨 실타래처럼 허공을 메웠다. 그 엄청난 광경에 블랙오크들은 경악했다.

"저 빔을 어쩌지 못하면 접근조차 불가능하다!"

"둘은 앞을 보고 둘은 뒤를 노린다!"

블랙오크들은 나름의 머리를 굴려 작전을 짰다.

아닌 게 아니라 저 빔은 앞을 가득 메웠을 뿐, 여자의 후방은 텅 비어 있었다.

"취-익!"

이윽고 두 마리의 블랙오크가 빔의 영역을 벗어났다. 그 뒤 재빨리 퀸의 뒤로 이동했다.

"치잇!"

그러자 퀸이 당황했다. 이 기술을 쓰는 동안에는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십 갈래로 갈라진 빔을 조종하는 건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으니까.

"취-익!"

이내 블랙오크가 새카맣게 자라난 손톱을 휘둘렀다.

카앙-!

그런데 그때였다.

블랙오크들의 손톱이 강한 마찰음을 일으키며 가로막혔다. 어느덧 인우가 퀸과 등을 맞대고 용작두를 치켜들고 있었던 것이다.

"취익! 남자 인간!"

"우리 공격을 막다니!"

놈들은 잔뜩 당황했다.

솔직히 뒤에 있던 인우를 여자의 졸개 정도로 치부했었기 때문에 놀라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놈은 도대체 뭔가.

손톱을 막아 낸 것을 보아 보통이 아니었다.

인우는 씨익 웃으며 등 뒤를 향해 말했다.

"퀸. 잠깐 올라가 있어라."

"네?"

퀸의 반문이 이어지기도 잠시.

인우가 긴 팔을 이용해 난데없이 퀸의 허리를 휘감았다.

"주, 주인님?"

"으랏차!"

인우는 답 대신 퀸을 사정없이 공중으로 던져 버렸다.

후우웅-!

퀸이 하늘 높이 떠올랐다.

그러자 인우의 눈동자가 살벌하게 빛났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놈들은 내 영역을 멋대로 침범하는 새끼들이야."

말을 마친 인우는 광폭화를 시전했다.

그리고 용작두를 치켜 들었다.

강하게 몰아붙일 생각이었다.

인우는 시작부터 광폭난무를 시전했다.

아군적군 가리지 않고 주변을 초토화시킬 정도의 위력을 지녔기에 퀸을 공중으로 던져 버린 것이다.

"크아아아압!"

인우의 얼굴이 아수라처럼 살벌하게 변했다.

이에 블랙오크가 다급히 외쳤다.

"기술을 쓰기 전에 죽인다!"

블랙오크 4마리가 인우의 지척까지 단숨에 다가왔다.

그러나.

파르르르르!

인우의 신형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를 머금고 팽이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취익!"

"놈을 공격해!"

"크악!"

블랙오크 한 마리가 손톱을 교차시켜 용작두를 막아섰다.

카드드득!

"크악!"

놈의 손톱은 용작두의 회전을 이기지 못한 채 단숨에 갈려 나갔다.

나이트 길드와의 싸움에서 보여 주었던 무위 보다 한 층 더 향상된 모습.

확실히 인우의 성장 속도는 가공할 만했다.

후우우웅-!

어느덧 공중에 떠올랐던 퀸이 바닥을 향해 빠르게 추락하고 있었다.

그러자 인우는 광폭난무를 멈췄다. 그리곤 블랙오크 한 놈을 향해 대검관통을 쏘아 냈다.

"으아아압!"

인우의 신형이 대포알처럼 허공을 가르며 블랙오크 한 놈에게로 쏘아져 나갔다.

카앙-!

"취-익!"

그러자 놈은 잔뜩 당황한 채 양손으로 용작두의 칼날을 쥐어 잡았다.

파드드득-!

"흐아아압!!"

인우는 놈을 그 상태로 5미터 앞까지 밀어 냈다.

한편 인우의 뒤쪽에는 퀸이 착지한 상태였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공중을 날아올라서가 아니다.

예고도 없이 허리를 휘감았던 인우의 손길 때문이었다.

만일 그녀가 혈색이 있는 인간이었다면, 지금쯤 볼이 발그레 달아올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퀸. 뒤에 놈들 움직임을 봉쇄해."

그때, 인우가 그녀에게 명했다. 그제야 퀸은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네!"

이윽고 인우는 왼손에 기가 라이트닝을 응축시켰다. 직접 부딪혀 본 결과, 놈들은 강했다.

맨손으로 대검관통을 막아 낸 것만 해도 그랬고, 광폭난무를 막아서는 것만 보아도 그랬다.

지금 이 블랙오크들은,

일전에 싸웠던 블랙오크가 사용하던 잡기술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육체적으로 상당히 강했다.

만약 인우 혼자였다면 패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우는 혼자가 아니다.

퀸이 있었고, 나아가 민철과 팜이도 있었다.

이들 모두 그간 인우가 일구어 놓은 영역에 속하는, 온전한 인우의 것이었다.

이윽고 인우는 기가 라이트닝을 쏘아 내며 외쳤다

"피 한 방울 남김없이 모조리 취해 주마!"

피는 퀸의 것.

고기는 팜이의 것.

경험치와 전리품은 인우의 것으로, 버릴 게 하나 없었다.

* * *

사일런스의 하진성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허억."

놈들은 지속적으로 몰려오더니 종국에는 16마리를 상대해야했다.

게다가 이놈들은 보통 블랙오크가 아니었다.

하진성은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가 이끌고 왔던 관리국 팀원 중 4명이 당했다.

하진성은 이를 갈았다.

4명의 팀원을 잃고 나서야 블랙오크 16마리를 제압할 수 있었다. 만약 하진성이 없었다면 관리국 팀은 전멸했을 것이다.

하진성은 제압당한 블랙오크들을 싸늘하게 응시했다. 그런 뒤 살아남은 관리국 팀원들을 향해 명령했다.

"놈들을 관리국으로 이송한다."

하진성이 할 일은 끝났다.

블랙오크들의 아지트에 갇혀 있는 여자들은 2팀이 구조해 올 것이다.

그런데 그때.

포박 당한 블랙오크들이 내뱉는 말이 거슬렸다.

"빌어먹을 공격조 놈들. 그 놈들이 오지 않아서 당해버렸다."

"공에 눈이 멀어서 도우러오지 않다니."

잠자코 듣고 있던 하진성이 블랙오크들에게 물었다.

"너희가 끝이 아니었군?"

"물론이다 멍청한 인간 놈."

"나머지 잔당은 어디 있지?"

"모른다. 놈들은 우리를 버렸다. 취익. 빌어먹을 놈들!"

진성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남아 있는 잔당을 찾아야 했다. 이렇게 강한 놈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기필코 제압해야만 했다.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진성이었지만, 10마리까지는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진성이 다시금 물었다.

"몇 놈이나 더 남은 거냐?"

그 물음에 블랙오크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공격조 넷이 남아 있다. 그 놈들을 찾거든 전해 줘라. 도와주지 않아서 당한 거라고. 다 너네 때문이라고."

이윽고 진성은 팀원들을 향해 다시금 명령했다.

"나는 남아 있는 잔당들을 잡고 가겠다. 이놈들을 이송해. 이상."

* * *

[경험치를 2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21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19000 획득하였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인우는 차례대로 3놈의 머리를 잘랐다. 그러자 엄청난 수치의 경험치가 들어왔다.

미개척지대마저도 5000가량의 경험치를 준다.

한데 이놈들은 일전에 블랙오크를 잡으며 느꼈듯, 막강한 경험치를 줬다.

덕분에 인우는 얼마 남아 있지 않았던 경험치를 채우고 레벨 업을 할 수 있었다.

이제 인우의 레벨은 123이었다.

인우는 조금 지쳤는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냈다.

"취-익! 감히 인간 따위가!"

아직 한 놈이 남아 있었다. 이 한 놈은 퀸에게 완벽히 포박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그저 도축하면 된다.

그러나 인우는 한 놈은 남겨 두었다.

퀸은 블랙오크를 땅바닥에 눕힌 채로 양손으로 머리통을 짓누르고 있었다.

인우는 땅바닥에 얼굴이 처박힌 블랙오크에게로 다가갔다. 그 뒤 쪼그려 앉았다.

"야."

"취-익! 전사답게 죽여라 인간!"

"됐고. 너네 4명이 다냐?"

인우가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었다.

이놈들은 엄청난 경험치를 준다. 인우는 이것을 기회로 놈들을 조금 더 잡고 싶었다.

지금의 전투는 이놈들이 먼저 쳐들어와서 하는 수 없이 전면전을 취했다.

그러나 인우가 이 녀석들의 위치를 알게 된다면 암습을 가할 수도 있었다.

인우는 블랙오크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다시금 물었다.

"묻잖아 새끼야. 너들이 다냐고."

"전사답게 죽여라!"

"이 새끼가 분위기 파악 못하네."

까득-

말을 마친 인우는 놈의 머리카락을 쥐어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크으으으!!!"

"새끼 엄살은."

인우는 히죽 웃었다.

그렇게 웃으면서 녀석의 머리카락을 뭉텅이로 뽑아버렸다. 그러자 놈이 소리쳤다.

"크악! 이노옴!!"

"대답은?"

인우는 그저 그렇게 물었다. 그러나 블랙오크는 살벌한 눈동자로 인우를 노려볼 뿐이었다.

"퀸. 이 새끼 안 되겠다. 이 자식 턱관절 좀 잡아 봐."

"네."

퀸은 답과 함께 블랙오크의 턱관절을 잡았다.

그러자 인우는 녀석의 입을 벌리게 만든 뒤 이빨 하나를 붙잡았다.

그 뒤 펜치보다 강한 악력으로 놈의 이빨을 뽑아 버렸다.

"크아아아악!"

놈은 내장까지 비틀어 대는 듯한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인우의 손에는 놈의 이빨이 뿌리까지 뽑힌 채로 들려 있었다.

"그렇게 비명 지를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러면서 인우는 다시금 손을 놀렸다. 그러자 블랙오크가 벌어진 턱관절을 이용해 다급히 말했다.

"머춰라!"

"내가 왜?"

인우는 놈의 이빨을 뭉텅이로 뽑아 내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놈의 끔찍한 비명과 함께 피가 튀었다.

"크아아아아!"

이윽고 놈의 이빨이 모조리 뽑혀 나갔다.

인우는 가만히 놈을 바라보았다.

이빨이 모조리 나가 버린 놈은 엉성한 발음으로 말을 내뱉었다.

"마, 마하게다."

그러나 답 대신 날아든 것은 턱관절을 강타하는 주먹질이었다.

퍽! 퍽! 퍽!

"크허! 크억!"

인우의 주먹질은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그제야 놈은 닭똥같은 눈물을 흘려 대며 사정했다.

"사려 주세오. 자모해스니다. 크흐."

"뭐라는 거야."

"다, 다 마하게스니다. 마하게스니다."

놈의 굴복에 인우는 그저 퉁퉁 부어올라 피떡이 된 놈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퀸 이 녀석의 피를 빨아."

인우는 퀸에게 명했다.

아닌 게 아니라 퀸은 블랙오크를 짓누르면서 연신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네!"

퀸이 힘차게 답했다.

그러더니 퀸은 붉은 입술을 벌렸다. 그러자 그 안에 담겨 있던 날카로운 송곳니가 들어났다.

이윽고 퀸이 블랙오크의 목덜미를 물었다.

까득-!

그러자 블랙오크가 움찔대며 비명을 질러 댔다.

"크아아악!"

블랙오크의 혈관을 타고 흐르던 피가 단숨에 퀸의 입속을 타고 빨려 들어갔다.

퀸은 송곳니에 조금 더 힘을 주어 녀석의 동맥에 흐르는 핏물을 강하게 흡입했다.

"크아아악!"

놈은 피가 뭉텅이로 빠져나가자 짙은 현기증과 함께 강렬한 공포를 느꼈다.

이것은 뱀파이어 퀸이 지닌 흡혈의 권능이었다.

흡혈을 당하는 대상은 저절로 공포를 느끼고 불가항력이 된다. 종국에는 심지어 노예가 되기도 한다.

이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퀸은 보통 뱀파이어가 아니다.

자그마치 뱀파이어들의 여왕이었으니까.

여왕은 단 한 명뿐이고, 그렇기에 이러한 권능을 지닌 것이다.

"크으으으으...!!"

블랙오크가 울부짖었다.

이 기세로 피가 빨리다가는 몸이 미라처럼 바짝 말라 버릴 것 같았다.

그제야 인우가 퀸을 저지했다.

"그만."

"크으."

그러자 퀸은 블랙오크의 목에 박아 두었던 송곳니를 거뒀다. 그녀의 입가에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퀸은 혀를 날름거리며 입가에 흐르는 남은 피마저 핥았다. 창백하기 그지없는 어여쁜 여인이 피를 핥는 광경은 참으로 묘했다.

섹시해보이기도 했고, 공포스럽게 보이기도 했다.

이윽고 인우가 몸을 바르르 떨어 대고 있는 블랙오크에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너희 넷이 다냐?"

"크흐으...더 이스니다."

블랙오크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 된 얼굴을 한 채 바른대로 이실직고했다.

아지트의 위치나, 그 근방에서 전투를 하고 있을 걸로 예상되는 동지들에 대해서도 모조리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인우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블랙오크는 그런 인우를 바라보며 사정했다.

"제바. 제바."

그러나 인우는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말했다.

"퀸. 이 녀석은 살려놨다가 심심할 때마다 피를 빨아먹고, 나머지 시체들은 전리품과 피 채취를 끝내고 고기는 팜이에게 줘라."

"네. 주인님."

퀸이 답했다.

그러자 살아남은 블랙오크는 절망했다. 인우는 자신을 살려 놓은 채로 저 미친 여자에게 주기적으로 피를 빨리게 만들 생각인 것 같았다.

블랙오크는 울부짖었다.

"으아! 제바!"

"그러게 왜 남의 영역에 침범해."

인우는 그렇게 말하며 갑옷과 용작두를 챙겼다.

남아 있는 블랙오크들을 암습할 생각이었다.

< 058화 잔당처치 (1) > 끝

ⓒ 호종이

< 059화 잔당처치 (2) >

산길은 제법 험했다.

블랙오크 16마리의 이송을 맡은 관리국 팀은 부지런히 걸었다. 이 블랙오크들이 동료를 4명이나 죽였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당장에라도 이 블랙오크들의 목을 비틀고 싶었으나 그럴 순 없는 노릇이었다.

하진성은 그들에게 이송을 명했고, 블랙오크들의 이송이 완료된다면 그들의 임무는 끝이 날 테다.

"취익. 천천히 가라 인간. 피가 멈추지 않는다."

"닥쳐라!"

블랙오크의 말에 관리국 팀원은 분노했다.

블랙오크들은 완벽히 제압당한 상태였다. 나아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기에 조금의 데미지만 주어도 죽게 될 것이다. 그들의 임무는 이 블랙오크들을 살려서 무사히 이송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관리국에서 고문과 심문이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지만 블랙오크가 한국으로 넘어온 이유에 대해 알아낼 수 있을 터였다.

"네놈들은 살아도 산 게 아니다. 지옥을 보게 될 거다. 개새끼들!"

아직도 동료가 블랙오크에게 당하던 광경이 선연했다.

사일런스 하진성이 없었다면 아마도 모두가 죽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관리국 팀원들은 블랙오크들을 이끌고 빠르게 이동했다.

산을 벗어나면 이송용 차량이 있을 것이다. 제법 험한 산세였기에 우거진 수풀을 헤치며 바삐 걸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후우웅- 퍽!

"컥!"

어디선가 암기가 날아들었다.

암기는 단숨에 블랙오크의 머리통에 박혔고, 블랙오크는 단말마와 함께 숨을 거뒀다.

이에 관리국 팀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뭐, 뭐지!"

"비상이다! 지원 요청해!"

이들은 그 즉시 잔당을 처치하러간 하진성과, 2팀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암기는 지속적으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암기는 정확히 블랙오크들의 심장과 머리통에 명중하고 있었다.

이미 체력이 닳을 대로 닳은 블랙오크들이었기에, 날아든 암기는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 * *

[경험치를 17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2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18000 획득하였습니다.]

[암기 투척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경험치를 21000 획득하였습니다.]

.

.

.

이건 뭐 거저나 마찬가지였다. 인우는 블랙오크를 고문하며 놈들의 위치를 대략적이나마 파악했다.

그리고 단숨에 추적했다.

산세가 험하고 수풀과 바위가 가득한 지형이라 게릴라로 녀석들을 무력화시킬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건 무엇인가?

블랙오크 16마리가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포박당한 채 걷고 있던 것이다.

게다가 놈들은 죽기 직전까지 두드려 맞았는지 먹기에 딱 좋았다.

인우가 한 것이라고는 암기 투척으로 블랙오크들을 한 놈씩 죽인 것뿐이었다.

블랙오크들이 차례로 쓰러지자, 이송하고 있던 사람들은 난리를 피워 댔다.

그러나 그들은 인우의 위치를 가늠조차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우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 몸을 숨기며 완벽한 타이밍이 갖춰질 때에만 암기 투척을 쏘았던 것이다.

'이거 완전 거저인데?'

* * *

하진성은 잔당들을 추격하기 위해 움직였다.

아직 4마리가 남았다고 했다. 그러나 하진성은 금세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블랙오크들의 이송을 맡은 팀이 지원 요청을 해 온 것이다.

"치잇!"

하진성은 빠르게 내달렸다.

지원 요청에 따르면 난데없이 날아든 암기로 인해 블랙오크들이 차례로 쓰러져 가고 있다고 했다.

도대체 누굴까?

누가 어떠한 목적으로 심문해야 할 블랙오크들을 노리는 것일까?

꼬리를 물며 늘어지는 생각도 잠시.

이윽고 하진성은 팀원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했다.

블랙오크들은 이미 모조리 숨이 끊긴 뒤였다.

"이런 씨팔!"

입술을 비집고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하진성은 팀원 한 명의 멱살을 틀어쥐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거냐! 누구야!"

"모, 모르겠습니다!"

"젠장!"

하진성은 멱살을 쥔 손을 풀었다. 그리고 고개를 세차게 돌려가며 눈을 번뜩였다.

이곳 어딘가에 암기를 내던진 놈이 존재할 것이다.

부스럭-

그리고 그때.

하진성의 극도로 발달된 청각에 나뭇잎 밟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에 있던 팀원들의 소리는 아니었다.

저만치 앞에서 들려왔던 것이었으니까.

하진성은 단숨에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내달렸다.

타다다다닥!

그의 신형이 단숨에 나무 사이를 비집고 나아갔다.

이내 하진성은 소리가 끊긴 지점에 도착했다.

"······."

그러나 주변은 고요했다.

그런데 그때.

부스럭-

또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오냐. 해 보자 이거지!"

하진성은 이를 갈며 숲속을 뒤졌다. 소리를 따라 대상을 추적했다.

뭐 하는 놈인지는 몰라도 놀라울 정도의 센스였다.

사일런스의 랭커인 하진성의 눈과 귀를 속이고 달아나고 있었으니까.

"기필코 잡아 주마!"

도대체 어떤 놈일까?

혹시 남아 있던 잔당 블랙오크들이 동족들이 무언가를 발설할 것을 우려하여 암습을 시도한 것일까?

그러나 만약 그렇다고 해도 잔당 블랙오크들이 이 정도로 하진성의 눈을 속이고 도주한다고?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진성은 눈을 번뜩였다.

* * *

'요것 봐라?'

인우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블랙오크들을 모조리 잡고서 경험치를 획득했다.

나아가 인우는 놈들의 전리품까지 취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병력들을 흩뜨려 놓으려 했다.

한데 난데없이 상당한 실력자가 나타났다.

놈은 분개하며 자신을 찾기 위해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척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예사 놈이 아니다.

필시 랭커일 것이다. 판단이 선 순간 인우가 택한 것은 몸을 빼는 것이었다.

'흐음.'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정말이지 거대했다. 랭커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놈일 테다.

하지만 그래 봐야 작정하고 몸을 숨기는 인우를 찾진 못했다.

인우의 입장에서는 이미 블랙오크의 경험치도 모조리 취했기에 미련 없이 산속을 벗어났다.

* * *

초인관리국의 국장은 하진성의 보고를 듣고 뒷목을 잡았다.

블랙오크 16마리를 생포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남은 것이라고는 관리국 초인 4명의 희생이 전부였다.

어떠한 것도 취하지 못한 것이다.

누군가의 암습 때문에 16마리의 블랙오크들이 모조리 죽었다. 블랙오크의 입을 열어 볼 새도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남은 희망은 잔당이었다.

블랙오크들은 총 20마리가 몰려왔다고 했다. 하진성은 나머지 4마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중, 팀원의 구조 요청을 받고 달려갔던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아직 잔당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 4마리의 블랙오크를 찾기 위해 관리국은 강원도에 엄청난 인력을 풀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좋은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블랙오크 잔당들은 하늘로 솟은 건지 땅으로 꺼진 것인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4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관리국은 현재 잔당의 털끝도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잔당 블랙오크에게 현상금을 걸고 전국적인 수배령을 발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되면 블랙오크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이 가중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관리국만의 힘으로 현 상황을 타개해야만 했다.

국장은 하진성을 포함해서 사일런스를 3명을 추가로 투입시켰다.

무슨 수를 써서든 잔당 블랙오크를 생포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놈들의 목적을 알아내야만 했다.

* * *

지난 4일간 인우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과를 보냈다. 다만 달랐던 것은 블랙오크에 대한 처리였다.

블랙오크 세 마리의 시체는 괴수들과 팜이의 먹이로 주었다.

그리고 살려 놓은 한 마리는 퀸의 비상식량이 되었다.

퀸은 블랙오크를 사육장에 가둬 놓고 심심할 때마다 피를 빨았다.

그 때문일까?

블랙오크는 넝마가 되어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피를 빨렸기에 피골이 상접해 버렸던 것이다.

놈이 싱싱함을 잃자 퀸은 흥미를 잃었다.

그리고 그즈음.

강원도가 시끌벅적해졌다. 엄청난 인원의 초인들이 강원도 전역을 수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관리국에서 나온 초인들이었다.

심지어 사일런스 팀에 소속된 초인들도 4명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형님. 관리국이 블랙오크를 찾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대로 가지고 있어도 괜찮겠습니까??"

민철이는 러닝머신 위를 내달리고 있는 인우를 향해 묻고 있었다.

인우는 퉁명스럽게 답했다.

"어쨌으면 좋겠는데?"

"국가에서 찾고 있는 놈이니 넘겨주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일반 길드라면 몰라도··· 저렇게나 강원도를 뒤적거리고 있는데 말입니다."

"으음. 그럴까?"

인우는 뜻밖으로 긍정을 표했다. 그러자 민철은 도리어 당황스러운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정인우가 누구인가.

자신의 이득은 철저히 챙기고, 손해는 결단코 보지 않는 인간이다.

그러한 인간이 블랙오크를 넘겨주겠다는 것에 대해 긍정을 표하다니!

"혀, 형님? 진심이십니까?"

"나쁘진 않지."

블랙오크를 잡기 위해 사일런스가 움직였다. 인우가 날름 먹어 버린 16마리의 블랙오크들은 이송 중인 놈들이었을 것이다.

관리국 입장에서는 놈들을 고문하여 입을 열게 만들 생각이었겠지만, 인우가 모조리 죽여 버린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잔당을 찾기 위해 개고생을 하고 있는 것일 테지.

그러나 잔당은 인우가 모조리 처치했다.

퀸의 먹이로 남아 있는 단 한 마리를 제외하고 말이다.

어찌되었건, 국가에 있어서 현재 인우가 생포하고 있는 블랙오크는 엄청난 가치를 지녔을 것이다.

그래. 엄청난 가치.

이윽고 인우는 러닝머신에서 내려섰다.

그 뒤 거실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 퀸을 불렀다.

"퀸."

"네. 주인님."

퀸이 한걸음에 내달려 왔다.

그녀는 커다란 유리컵에 피를 담아 둔 채로 빨대를 이용해 내용물을 쪽쪽 빨고 있었다.

"블랙오크를 처리할 생각인데, 불만은 없겠지?"

"어찌 물으시나요. 주인님의 뜻이라면 토를 달 생각은 없어요."

그 말에 인우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러더니 인우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민철은 그런 인우를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늘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취하던 인우였기에 조금의 불안감도 일었다.

그러나 민철은 잠자코 지켜보았다.

이윽고 인우는 수화기 너머를 향해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정인우 씨? 제 전화는 모조리 차단하더니 이렇게 다시 연락을 주시다니요. 혹시, 마음이 바뀐 겁니까?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정인우 씨라면 저······.

"아아, 됐고요."

인우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중간에 자르며 다시금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 산책을 갔다가 웬 새카만 놈을 한 마리 잡았는데 말입니다."

-···예?

"보아하니 관리국에서 이놈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던데."

-서, 설마 블랙오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정인우 씨가 블랙오크를 잡은 겁니까??

"잡설은 됐고요. 큰 거 100장에 넘기겠습니다."

< 059화 잔당처치 (2) > 끝

ⓒ 호종이

< 060화 버텨주마 (1) >

중국 베이징.

바투 부족의 족장 바투는 분을 이기지 못한 채 씩씩대고 있었다.

"한국으로 보낸 상급 전사들과의 연락이 두절 되었다고?"

"그, 그렇습니다."

바투가 보낸 전사는 도합 스물.

그들 모두 소식이 끊겼다.

한국인 여자의 납치와 실험체의 확보를 위해 녀석들을 보냈건만, 돌아온 것은 무소식이었다.

연락이 갑작스레 끊길 리 없다.

그것은 다시 말해 바투가 보낸 병력이 사로잡혔거나 괴멸 당했다는 것을 뜻했다.

만약 인간들의 손에 잡혔다면 바투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혹시라도 인간들의 고문을 이기지 못한 채, 바투 부족의 정보에 대해서 발설이라도 한다면?

그렇게 된다면 바투 부족은 지금처럼 한국 땅을 누비기 힘들어질 것이다.

경계는 더욱 삼엄해질 것이며, 나아가 한국의 초인들이 바투 부족을 처리하기 위해 움직일 수도 있었다.

그것은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바투 부족은 중국에 존재하는 13개 부족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런데 인간들의 공격을 받게 된다면 다른 부족들이 옳다구나 하고 바투 부족을 궁지에 몰아넣을 수도 있었다.

그것은 안 될 말이었다.

바투는 13개 부족을 통합하고 나아가 인간들의 땅까지 제패할 예정이었으니까.

그 목표를 위해 한국인 여자가 대량으로 필요한 것이다.

한국인 여자의 배를 가르고 태어난 것이 바투 본인이다.

한국인 여자는 다른 여자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바투였다.

그리하여 더 강한 블랙오크들을 양성하려 했건만 계획이 어긋나고 있었다.

이윽고 바투는 어렵사리 결단을 내렸다.

"당분간은 한국에 침범하지 않는다. 다른 부족 놈들이 하이에나처럼 몰려들 수도 있으니까.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 * *

SG그룹의 회장 윤대용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바투 부족이 넘어오고 사일런스가 나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블랙오크가 관리국에 넘어가선 안 된다. 바투 부족은 SG그룹과 깊게 관여되어 있는 놈들이다.

그러한 녀석들이 관리국에 붙잡혀 갖은 고문을 못 이기고는 SG그룹에 대해서도 실토를 하게 된다면?

그리되면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SG그룹은 생체실험 외에도 블랙오크를 섭외하기 위해 그간 한국인 여자를 조공으로 바쳐왔다.

그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다면?

SG그룹은 그 길로 끝장이다.

그리하여 SG그룹은 관리국 팀이 확보한 블랙오크 16마리를 제거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데 웬걸?

블랙오크는 정체불명의 누군가에 의해 모조리 목숨을 잃었다.

그제야 SG그룹은 한시름 덜었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었다.

잔당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잔당을 처리하지 못한다면, 블랙오크들이 모두 살아 있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4일이 지났다.

윤대용의 앞에는 일련의 사내들이 도열해 있었다.

이 사내들은 하나같이 범인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패도적인 기운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한번 훑어본 윤대용이 입을 열었다.

"나이트길드와 같은 실수는 용납하지 않겠다. 어떻게 해서든 바투 부족의 블랙오크가 관리국으로 넘어가는 걸 막아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윤대용의 말에 도열해 있던 사내 중 가운데 있던 자가 답을 했다.

"좋아, 가 보도록."

가운데 있던 사내를 필두로 한 명, 한 명 회의실을 나섰다.

그들이 모두 사라지자 윤대용은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부디 이 정보가 맞아야 할 텐데······."

* * *

100억이다.

이 말라비틀어져서 당장에라도 숨이 끊길 것 같은 새카만 놈이 말이다.

인우는 사육장 구석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블랙오크를 바라보았다.

"야."

"취-익!"

인우가 말을 걸자 놈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괴로워했다. 인우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공포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인간은 잔인했다. 미친 여자에게 자신의 피를 끝도 없이 빨리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 여자에게 피를 빨린 뒤부터 블랙오크의 정신체계는 무너졌다.

자그마치 퀸에게 며칠에 걸쳐서 피를 빨렸으니 정신이 남아날 수 없었다.

인우는 이 녀석을 넘길 생각이었다.

관리국은 블랙오크가 한국으로 넘어온 목적이 궁금할 것이다. 혹여 관리국이 이 블랙오크를 고문하며 인우나 퀸에 대해 물어볼 수도 있다.

그러나 걱정은 없었다. 그에 대해 발설하진 못할 테니까.

퀸의 권능 때문이었다.

퀸에게 완벽히 구속당한 녀석은 노예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즉, 퀸의 말은 녀석에게 법이나 마찬가지라는 소리였다.

이를 이용해 녀석에게서 필요한 정보는 이미 모두 획득한 상태였다.

나아가 이놈의 정신 개조를 완벽히 끝마친 뒤였다.

이것은 뒤탈이 없는 안전한 100억이다.

인우는 녀석을 커다란 포대에 담았다.

그 뒤 어깨에 녀석을 걸치곤 사육장을 나섰다.

통화 직후.

박강중은 이 블랙오크를 이송하기 위해 이곳으로 오겠다고 했지만 인우는 거절했다.

자신의 영역은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리하여 인우는 접선장소를 말했고, 그곳에서 관리국과 만나기로 했다.

이윽고 인우는 접선장소를 향해 달렸다.

약 1시간 정도를 달려서 도착한 그곳에는, 관리국의 이송용 차량과 박강중을 포함한 초인들이 보였다.

박강중은 인우를 보자마자 살가운 미소부터 지었다.

어찌되었건 현재 관리국의 섭외 1순위에 속하는 인물이 바로 정인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우는 박강중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포대자루를 바닥에 내던졌다.

그러자 박강중이 미세하게 꿈틀대는 자루를 보며 물었다.

"이것입니까?"

인우는 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강중은 잠시··· 라고 중얼거린 뒤에 포대를 들춰 보았다.

그곳엔 이빨이 뭉텅이로 나간 채 공포에 질려 있는 블랙오크 한 마리가 보였다.

박강중은 헛숨을 들이키며 인우에게 물었다.

"고문이라도 가한 겁니까?"

"그냥 몇 대 쳤을 뿐이야. 안심해. 곧바로 죽을 정도는 아니니까."

"허어······."

박강중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곤 뒤에 서 있던 한 남성에게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그 후, 위치해 있는 관리국 직원들을 향해 눈짓했다.

그러자 관리국 직원들이 블랙오크를 이송용 차량에 옮겼다.

그 장면을 본 인우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저 놈은?'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구면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인우만 기억하겠지만.

저자는 자신을 추격했던 사내였다. 상당히 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긴, 관리국 입장에서도 이번만큼은 블랙오크를 놓치는 우려를 범하고 싶지 않을 거다.

그렇기에 상당한 실력자들이 블랙오크 이송을 위해 대거 포진된 것 같았다.

직원들이 블랙오크를 옮기는 것을 확인한 강중이 말했다.

"저놈이 잔당 블랙오크인 것이 확실합니까?"

"이봐. 내가 국가를 상대로 사기 칠 정도로 무모한 놈으로 보여?"

"글쎄요······."

강중은 그렇게 말하다 말고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더니 뒤늦게 말을 이었다.

"몸값은 약속대로 내일 정오에 정인우 씨 계좌로 송금될 겁니다."

말을 마친 강중은 블랙오크 인계에 관한 내용이 담긴 서류를 건넸다.

"오케이."

거래는 끝났다.

더 이상의 볼일은 없었기에 인우는 지체 없이 몸을 돌려 집으로 향하고자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후우우우우웅-!

난데없이 커다란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제트기가 뿜어내는 배기음처럼 커다란 소음이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인우는 즉시 소음이 뿜어져 나오는 곳을 향해 고개를 올려보았다.

후우우우웅-!

공중에서 거대한 불덩이가 이곳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러나 그러한 고민을 할 여유 따윈 없었다.

불덩이는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석과도 같았다.

"메테오······?"

인우는 즉시 고개를 내리고 상황을 판단해 보았다.

메테오는 강력한 광역마법이다. 지금 즉시 몸을 빼내 봐야 타격 범위에서 벗어날 순 없을 거다.

혹시 몰라 무장을 하긴 했지만, 타격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인우는 박강중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정보 새어 나간 거 아니야!?"

누군가가 블랙오크와 함께 이곳 모두를 노리고 있었다.

한편, 이송용 병력에 포함되어 있던 사일런스 하진성은 매서운 눈동자로 메테오를 노려보았다.

메테오는 강력한 마법이다.

그러나 발동을 위한 시전 시간이 10분을 넘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전투용은 아니다.

엄청난 파괴력을 지녔지만, 순간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공격 수단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즉, 누군가가 이미 이곳 근처에서 자리를 잡고서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정보가 새어 나갔다는 것이다.

"젠장···!"

하진성은 욕지기를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진성의 육체가 단숨에 파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파드드드득-!

얼음이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하진성의 육체에서 냉기가 쏟아져 나왔다.

파밧!

이내 하진성은 날아드는 메테오를 향해 몸을 날렸다.

콰드드드드득!

그러자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메테오와 하진성이 부딪쳤다.

콰아앙-!

이어 공중에서 하진성과 메테오가 터져 나갔다.

"크헉!"

메테오는 파훼되었다.

그러나 하진성은 전신이 발갛게 물든 채로 바닥을 향해 추락했다.

콰앙-!

하진성은 몸을 부르르 떨며 한 움큼 선혈을 토해 냈다.

모두의 피해는 막았지만 사일런스라는 막강한 전력이 전투불능이 되어 버렸다.

그와 동시에 박강중이 관리국 팀원들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블랙오크를 사수한다! 빨리빨리 움직여 이 새끼들아!"

그의 다급한 외침에 관리국 팀원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이어 박강중은 즉시 관리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이곳을 향해 한 무리의 사내들이 둥글게 포진한 채 그들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강중이 놈들을 노려보며 외쳤다.

"너네 뭐야! 이러고도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관리국을 건들다니! 도대체 뭐하는 새끼들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정체불명의 사내들은 말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박강중은 인우를 향해 다급히 외쳤다.

"정인우 씨! 상황이 급박해졌습니다! 저희 지원 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도움을 주십시오!"

"..."

인우는 말없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러면서 다가오는 놈들을 바라보았다.

퇴로 따윈 없었다.

뭐하는 놈들인진 몰라도 작정하고 이곳 자체를 말살하려는 듯 보였다.

"이거 생각보다 귀찮아지겠는데."

관리국 소속의 랭커가 단숨에 전투불능이 됐다.

메테오를 막기 위해 제 한 몸을 희생한 것이다.

정당한 대결이었다면 저렇듯 허망하게 전투불능이 될 랭커가 아니다.

그로인해 이제 남은 병력은 박강중을 포함한 관리국의 최정예 초인들이 전부였다.

어느덧 인우가 말했다.

"지원 병력이 오기까지 얼마나 걸리지?"

"10분이면 될 겁니다!"

"10분만 버티면 된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인우는 투덜대면서 용작두를 치켜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10분을 버텨내야만 했다.

< 060화 버텨주마 (1) > 끝

ⓒ 호종이

< 061화 버텨주마 (2) >

사일런스 하진성의 전투불능.

그리고 정체불명의 복면인들.

한 번이면 족했다.

이번만큼은 절대로 블랙오크를 빼앗길 순 없었다. 애초에 접선장소에 사일런스를 한 명만 보내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후회할 여유조차도 없었다. 관리국의 국장은, 박강중이 지원을 요청하자 최고의 요원을 불러 냈다.

18명의 사일런스 팀의 대장 배다정.

그녀를 투입시킬 예정이었다. 애초에 사일런스 팀은 최강의 랭커집단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다고 평가받고 있는 배다정.

그녀는 불과 100레벨에 미개척지대를 누비던 초인이었다. 무적에 가까운 예지 계열이었기에 가능한 무력이었다.

국장의 호출에 응한 배다정은 팀을 이끌고 블랙오크의 접선 지역을 향해 빠르게 내달리고 있었다.

* * *

현재 접선지에는 팀장 박강중을 위시로 20명의 팀원이 존재했다.

거기에 인우까지.

그리고 상대의 숫자는 19명이었다.

쪽수는 비슷했다. 그러나 놈들이 풍기는 기운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인우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승리는 요원하다. 다만 버티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박강중의 말에 따르면 관리국의 지원 병력이 오기까지 10분이 소요된다 했다.

인우는 힐끗 고개를 돌려 박강중을 바라보았다.

강중은 눈을 부라리며 놈들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의 입장에선 화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관리국은 국가가 관리하는 기관이다.

그렇기에 저 정체불명의 복면인들은 국가를 상대로 공격을 감행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것일까?

'내가 데리고 온 블랙오크와 연관이 있는 놈들일 텐데. 도대체 뭐하는 새끼들이지.'

생각해 보았다.

퀸의 노예가 된 블랙오크는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내뱉었다.

인우는 이 블랙오크가 바투 부족 소속이며, 나아가 놈들의 대략적인 목적을 파악해 둔 상태였다. 놈들은 한국 여자를 납치해서 더 좋은 개체를 뽑기 위해 넘어온 것이었고, 나아가 팜이를 노리고 왔었다.

다만 놈은 자세한 내부 사정까진 몰랐다.

해서, 현재 인우가 알고 있는 정보는 수박 겉핥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은 인우로서도 쉽사리 납득되지 않았다.

블랙오크와 연관되어 있는 조직은 인우도 익히 알고 있었다시피 나이트 길드였다.

그러나 나이트 길드는 인우가 개박살을 내놓았고, 나아가 전소되었다.

이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전소되었지.'

인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인우는 TV뉴스를 통해 나이트 길드의 본부가 화재로 전소되었다는 것을 확인했었다.

나이트 길드를 괴멸시킨 건 정인우 본인이었지만, 인우는 나이트 길드에 불을 지르진 않았다.

나이트 길드의 생체실험과 블랙오크 사체를 처리하기 위해 불을 지른 집단.

그 놈들이 또 다시 인우가 잡아 온 블랙오크를 노리고 온 것이다.

'대체 뭐냐 너넨.'

놈들은 팜이에게 생체실험을 가했고, 블랙오크와도 연관이 있었다.

보통 지저분한 놈들이 아니다.

타다다닥!

인우의 생각은 거기에서 멈췄다. 어느덧 놈들이 저마다 무기를 뽑아들고 내달려오고 있었으니까.

그러자 박강중이 인우를 향해 외쳤다.

"부탁합니다!"

그러면서 강중은 전방을 향해 뛰어나갔다.

그 또한 강원도 지부의 팀장 직급을 맡고 있는 초인이다. 그런 만큼 강중은 강했다.

"으라아압!"

강중이 기합을 넣었다. 그러자 190 cm에 육박하는 거대한 그의 육체가 강철처럼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전장의 선두를 책임지는 탱커 계열의 능력이었다.

인우는 그 즉시 상황을 판단했다. 강중이 훌륭한 방패를 자처하니 인우의 역할은 더없이 명확했다.

강력한 창이 되는 것이다.

늘 홀로 전투를 해 왔던 인우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팀플레이 능력이 떨어지진 않았다.

어찌되었건 인우는 지구에 존재하는 그 누구보다도 전투 경험이 풍부했으니 말이다.

타다다닥!

어느덧 강중을 쫓아 19명의 팀원들이 따라붙었다.

그러자 앞서 달리던 강중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외쳤다.

"다 따라 붙으면 어쩌자는 거야! 새끼들아! 절반은 이송용 차량을 방어해!"

공격수만 잔뜩 몰리면 어쩌자는 건가. 수비와 키퍼도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팀원들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황은 그 정도로 급박했다.

팀원들은 즉시 그 명에 따랐다.

어느덧 9명의 팀원은 블랙오크의 이송용 차량을 방어했고, 나머지 10명의 팀원들은 인우와 함께 강중의 뒤를 따랐다.

이어 인우와 강중 그리고 팀원들은, 복면인들과 격돌했다.

화르륵-!

인우는 포효하는 대신 화염구를 만들어 냈다.

팀을 이루고 있었기에 함부로 포효할 수 없었다. 인우가 가지고 있는 스킬은 아군 적군을 가리지 않고 쑥대밭을 만드는 기술들이 대다수이다.

그렇기에 함부로 사용할 순 없었다. 대신에 인우는 마구잡이로 화염구를 만들어 낸 채로 놈들을 향해 내던졌다.

후와아아악!

89레벨에 이른 파이어 볼은 이미 그 자체로도 위력적이었다. 더 이상 파이어 볼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

그러한 화염구가 마구잡이로 놈들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마나 드레인도 존재했기에 파이어 볼은 아낌없이 뿜어져 나왔다.

파드드드득-!

그러자 복면인들은 저마다 무기를 휘두르거나 쉴드를 쳐서 파이어 볼을 파훼했다.

놀라운 능력이었다. 인우의 파이어 볼은 저렇게 간단히 파훼될 만한 마법이 아니었다.

그것은 즉, 역시나 저들은 상당한 고수라는 의미.

그러나 분명한 것은 놈들은 인우의 화염구로 인해 주춤했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화염구를 그대로 맞아 가며 공격을 할 순 없었기에 방어를 하며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수의 전투에서 그 작은 흐트러짐은 분명한 허점을 드러낸다.

어느덧 앞서 달리던 강중이 복면인들을 향해 그대로 몸을 날렸다.

파바바바밧!

강중의 신형이 마치 로켓포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 거대하고도 단단한 육체가 복면인들이 뭉쳐 있는 방향에 꽂혔다.

카앙-!

그러자 복면인들은 능숙하게 무기를 치켜들고 강중을 막아섰다.

그들의 무기와 강중의 몸통이 부딪혔다.

카앙-!

강중은 굴하지 않았다. 이미 신체 강화를 시전 했기에 웬만한 공격에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죽여주마!"

놈들은 한복판으로 굴러 들어온 강중을 마구잡이로 찍고 베어 나갔다.

"크아아아악!"

놈들도 사력을 다해 스킬을 사용하며 강중을 공격하자, 강중은 고통에 겨운 외침을 내뱉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강중은 눈을 번뜩이며 복면인들의 멱살을 틀어쥔 채 마구잡이로 공격을 시도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인우가 한 마디 했다.

"저 아저씨 덩치 값 제대로 하네."

그러면서 급히 강중을 따랐다.

단숨에 강중을 공격하고 있던 복면인들에게 다가선 인우.

쩌저저저저적-!

인우는 왼손에 응축시켜놓은 기가 라이트닝을 쏘아 버렸다.

콰과가가가강!

"크으으으으으!"

그 공격에 그대로 가격 당한 복면인 한 놈이 거품을 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럼에도 놈은 쓰러지지 않고 있었다.

이윽고 가격당한 놈은 단숨에 전력을 털어 낸 뒤 인우를 쏘아보았다.

"마법사 놈!"

놈이 말했다.

그러자 인우는 씨익 웃었다.

그러면서 용작두를 치켜들었다.

"유니크 스킬이었나?"

놈의 물음에 인우는 대답대신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대검을 오래 품고 있을수록 공격력이 증가하는 스킬.

인우가 날린 회심의 일격은 강한 파공성을 뿌리며 놈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자 놈은 재빨리 검을 들어 인우의 공격을 막아 냈다.

카앙-!

'허.'

인우는 손아귀가 얼얼해짐을 느꼈다.

최대한의 공격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한 방을 먹이기 위해 꽤 기다렸다.

한데, 큰 무리 없이 자신의 공격을 막아 냈다.

도대체가 근래에 들어서 왜 이리도 자신보다 강한 놈들이 많이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아니, 애초에 존재했던 강자들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일 테지.

"해보자 이거지?"

이를 악물었다.

상대가 자신과 실력이 비슷하다고 해서 물러설 인우가 아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게 바로 인우의 전투 철학이었다.

인우가 놈과 검을 맞대는 사이, 10명의 관리국 팀은 놈들을 향해 마구잡이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전장의 한복판과 같은 난타전이 시작됐다.

아드레날린이 끊임없이 분출하고 적을 죽이기 위한 손놀림이 빨라지는 그때.

파바바밧!

복면인들 중 3명이 이송용 차량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자 차량을 방어하고 있던 9명의 관리국 팀원들이 놈들을 막아섰다.

카앙-!

허나, 작정하고 덤빈 복면인들의 공격을 관리국의 초인들이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3명의 복면인들은 관리국 팀원들을 가볍게 몰아세웠다. 애초에 전투력자체가 급이 달랐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강중.

강중이 눈을 부라리며 외쳤다.

"나머지 팀원도 차량을 보호한다! 여긴 내가 어떻게든 막겠다!"

강중의 명령에 난타전을 벌이고 있던 10명의 팀원들이 발을 빼려 했다.

"어딜!"

그러나 복면인들이 그들을 곱게 보내줄 리 없었다.

이대로라면 블랙오크는 사살될 것이다. 강중의 얼굴이 단숨에 다급함으로 물들었다.

"젠자아앙!!"

이어 박강중은 분을 이기지 못한 채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면서 흡사 럭비선수처럼 차량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박!

이번에도 복면인들은 박강중을 막아섰다.

그때.

"뛰어!"

카앙-!

강렬한 소리와 함께 인우가 그 자리로 뛰어들었다.

인우는 대검을 치켜들고 온 힘을 다해 대검 막기를 펼쳤다.

이윽고 놈들의 공격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캉! 캉! 캉! 캉!

인우는 아려오는 손아귀를 느끼며 더더욱 강하게 용작두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이 새끼들 자꾸 열 받게 하네···!!"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이 따위 애송이들은 한주먹거리도 안 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랬기에 지금 인우는 열이 받았다.

"크아아아아압!"

인우는 참지 못하고 포효했다. 아군이고 나발이고 우선 눈앞에서 깝죽대는 이 녀석들에게 어떻게든 한 방을 먹여야겠다 싶었다.

"해보자고."

바로 이어 광폭화.

인우의 육체에서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러자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복면인들이 인우 한 명을 향해 집중공격을 퍼부었다.

"으아아아압!!"

인우는 코앞에 있는 놈을 향해 용작두를 창처럼 꼬나 쥔 채 대검관통을 퍼부었다.

파바바밧-!

인우의 신형이 용작두와 완벽히 동화된 채 놈을 향했다. 그러자 복면인은 황급히 무기를 치켜들고 인우의 공격을 막아섰다.

어느덧 복면인들은 단숨에 인우를 포위했다. 그 뒤 놈들은 인우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쓰걱!

"크으!"

사방팔방에서 빗발치는 공격에 인우는 팔뚝을 내어주었다. 인우의 어깨 죽지가 갈리며 피가 터져 나왔다.

쓰걱!

이어 등을 할퀴고 간 공격에도 당했다.

"으아아아아!"

인우는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면서도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고 정확하게 눈을 부릅뜨며 용작두를 휘둘렀다.

그러나 복면인들은 완벽한 포위망을 구축한 채 인우를 압박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위험하다.

그런데 그 순간.

뒤편에서 박강중의 안타까운 외침이 들려왔다.

"안 돼!"

박강중은 땅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잠깐 눈을 돌려 그쪽을 바라본 인우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인우의 시선 끝에는 블랙오크가 몸통에 구멍이 뚫린 채 축 늘어져 있었다.

블랙오크가 놈들에 의해 죽어 버린 것이다.

목표물은 사살 되었다.

그러나 복면인들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관리국 팀들을 모조리 죽일 작정인 것 같았다.

"모조리 죽이고 간다."

복면인들의 공격이 한 층 더 매서워졌다. 인우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그즈음.

관리국의 지원 병력이 도착했다.

이제야 10분이 된 것일까?

그러나 이미 블랙오크는 사살되었다.

어느덧 정신없이 공격을 받고 있는 인우의 옆으로 어떤 여자가 다가와 있었다.

여리여리한 여자였다. 그러나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엄청났다.

복면인들은 난데없이 끼어 든 그녀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녀는 마치 녀석들의 공격루트를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모조리 피해 냈다.

그 어떠한 공격도, 그녀의 머리칼 한 올을 건들지 못했다.

이윽고 그녀가 복면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복면인들은 단숨에 수세에 몰렸다.

실로 놀라운 무위였다.

"크윽!"

"목표물은 제거 했으니 그냥 몸을 뺀다."

위기를 느낀 복면인들은 단숨에 도주를 감행했다.

"어딜 가냐!"

인우가 소리쳤다. 그리곤 주변을 휙 둘러보더니 돌멩이 몇 개를 주워들곤 도망치는 녀석들을 향해 날렸다.

쐐애애애액-!

파공성을 가득담은 돌멩이들.

돌멩이는 눈으로 쫓기에도 힘들 만큼 빠른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하지만, 도망치는 녀석들의 속도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놈들은 블랙오크 사살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채 빠르게 멀어져 갔다.

* * *

사일런스의 대장 배다정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엄지로 꾹 눌렀다.

한 발 늦었다.

블랙오크는 사살됐고, 관리국 팀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박강중은 극심한 상처를 입은 채 이송용 차량 앞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숨이 끊인 블랙오크가 놓여 있었다.

"젠···장."

강중의 얼굴은 세상 모든 것을 놓은 것 마냥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휴우."

그 모습에 배다정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때, 용작두를 어깨에 걸쳐 놓은 사내가 이편을 향해 걸어왔다.

아마 저 사내가 블랙오크를 관리국에다 내다 판 장본인일 것이다.

이윽고 사내, 정인우는 박강중의 코앞까지 걸어왔다.

그 뒤 강중을 향해 말했다.

"나랑 잠깐 얘기 좀 할까?"

"무슨 얘기를······."

강중은 힘없이 답하고 있었다.

"어···어?"

한편, 인우의 말에 배다정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지간히 놀라운 모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예지특성으로 인해, 인우가 잠시 뒤 할 말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 061화 버텨주마 (2) > 끝

ⓒ 호종이

< 062화 3 MASTER >

박강중은 얼이 빠진 얼굴이었다.

그저 인우를 멍하니 바라보며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냐 물었다.

그에 인우가 입을 떼려는 순간.

엉뚱한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정말인가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사일런스의 대장 배다정이었다.

다정의 동그란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내 그녀는 단숨에 인우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인우의 어깨를 붙잡고 재차 물었다.

"정말로 정보를 알고 있는 거예요?"

인우는 뚱한 얼굴로 다정을 바라보았다.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벌거벗은 기분이랄까?

그녀는 예지 특성을 이용해 인우의 다음 말을 미리 알아낸 것이다.

이내 인우는 어깨를 붙든 그녀의 손을 떼어 놓고 다시금 강중을 바라보았다.

"그 블랙오크. 내가 이빨을 뽑아가며 고문했어. 내가 놈들의 목적을 알고 있으니까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바른대로 말해 보자면 퀸의 권능으로 무력화시킨 놈이 모든 정보를 이실직고한 것이었다.

어찌되었건 과정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결론이었다.

인우의 말에 죽어가던 강중의 눈동자에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러면서 강중은 의문도 생겼다.

아니, 애초에 정보를 알고 있었다면, 그 정보를 100억에 팔았어도 될 일 아닌가.

'아니지.'

그러나 강중은 금세 고개를 저었다. 만약 인우가 정보를 알려주었어도 관리국은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블랙오크를 인계받은 것이고.

어찌되었건 블랙오크가 죽었음에도 놈이 지닌 정보가 정인우의 머릿속에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인우가 거짓 정보를 흘릴 가능성도 존재했다.

그럼에도 관리국 입장에서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이윽고 강중의 눈동자는 대번에 진중함을 머금었다.

강중이 알기로 정인우는 거래가 확실한 인물이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정보를 알려주는 것을 대가로 금전을 요구할 수도 있었다.

"블랙오크는 이미 인계받은 시점이었습니다. 지키지 못한 건 저희고, 정인우 씨의 책임은 없지요. 송금은 약속대로 이루어질 겁니다. 아무튼··· 그래서 이번엔 얼마에 팔 예정입니까?"

"돈을 받을 생각은 없어. 다만 조건이 있어."

"조건이라면···?"

뜻밖의 친절. 그러나 조건이라니. 강중은 말꼬리를 흐리고 있었다.

인우는 그저 묵묵히 다음 말을 내뱉었다.

"복면인 새끼들이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 놈들인지 알게 되면 나에게도 알려줘. 조건은 이게 전부야."

인우는 이를 갈았다.

어차피 결판을 보아야 할 놈들이었다. 인우의 예상이 맞다면 저놈들은 도둑맞은 실험체인 팜이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즉, 놈들은 명확한 목표물과 목적이 있다. 그렇기에 팜이를 데리고 있는 인우는 늘 조심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우는 정작 놈들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정보가 필요했다. 놈들이 뭐하는 놈들인지. 또 누구인지, 그것을 알아야만 했다.

적을 알아야 움직일 수 있지 않겠는가.

다시금 인우가 강조했다.

"정말 그게 다야. 관리국이라면 금방 알아낼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박강중이 한결 풀린 얼굴로 답하고 있었다. 어차피 관리국 입장에서도 놈들이 누구인지 알아내야 했다.

감히 국가 소속의 관리국을 건드린 놈들이니 말이다.

어찌되었건,

놈들의 정체를 정인우에게 알려줌으로 인해서 블랙오크의 목적을 들을 수 있다면 충분히 합당한 거래였다.

"오케이 끝."

이윽고 모든 대화가 끝나고 인우는 대뜸 배다정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배다정은 이미 인우가 내뱉을 말을 예지했는지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인우는 아랑곳 않고 말했다.

"미리 알면 좋나? 능력 남발하지 마. 실례라고."

곧 죽어도 할 말은 하는 인우였다.

* * *

박강중과 하진성, 그리고 관리국의 초인 팀은 상처 치료를 위해 이송되었다.

그리고 사일런스의 대장 배다정.

그녀는 초인관리국 본부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동하며 생각에 잠겼다.

정인우라는 남자는 굉장히 까칠했다. 물론 첫인상은 굉장히 좋았다. 홀로 복면인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맞서는 뒷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용맹해 보였으니까. 그러나 입만 떼면 공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만일 정인우가 관리국의 섭외 1순위 인물이 아니었다면, 나아가 정보를 제공해 주는 인물이 아니었다면, 한 대 쥐어박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정인우는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인지, 놀랍도록 깝죽댔다.

그럼에도 딱히 밉지 않은 건 왜일까.

피식.

어느덧 배다정은 가볍게 웃음 지었다.

이맛살을 잔뜩 찌푸린 정인우의 얼굴이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버린 것이다.

묘한 인간이었다.

생각이 끝나갈 무렵.

어느덧 배다정은 관리국 본부에 도착해 있었다.

이어 그녀는 곧바로 국장실로 향했다. 그리곤 국장에게 보고서를 넘겼다.

초인관리국의 국장은 보고서의 내용을 훑어보았다.

보고서에는 블랙오크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정보의 내용은 간결하고도 명확했다.

1. 이 블랙오크는 중국의 바투 부족 소속의 상급 전사이다.

2. 바투 부족은 한국 여자를 납치해서 더 좋은 개체를 뽑아내려 했다.

3. 즉, 한국에 온 이유는 한국인 여자를 납치하기 위함이라 볼 수 있다.

4. 이 블랙오크가 알고 있던 내부 사정은 이게 끝이었다. 직급이 그리 높은 블랙오크는 아니었다.

정인우가 말해 준 것을 그대로 적어 왔다.

관리국은 이 간결하기 그지없는 정보를 얻기 위해 블랙오크를 100억이나 주고 인계받았었다.

블랙오크가 사살당하지 않았어도, 알 수 있는 정보는 이게 최선이었을 확률이 높다.

결국 블랙오크는 죽었지만, 다행히도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얻게 된 정보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

배다정은 시시각각 변해 가는 국장의 얼굴을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

이윽고 한참이 지나서야 국장의 입이 열렸다.

"이것이 정말로 사실이라면······."

긴 침묵이 이어졌다. 배다정은 묵묵히 국장의 다음 말을 기다릴 뿐이었다.

* * *

SG그룹의 회장 윤대용은 블랙오크가 사살 됐다는 보고를 듣고는 어금니까지 드러낸 채로 웃었다.

"그래, 이송용 차량에 들어가 있던 블랙오크를 분명히 죽였다 이거지?"

"네. 확실히 숨통을 끊어 놓았습니다. 회장님."

여전히 웃음 짓고 있는 윤대용을 향해 복면인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들은 블랙오크를 사살하기 위해 생각보다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임무는 완수했기에, 회장은 피해에 대해선 크게 상관치 않는 것 같았다.

"좋다. 좋아. 푸하하하하!"

윤대용의 기름진 얼굴에선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회의장의 분위기는 흡사 잔칫집 같았다.

한참을 배를 부여잡으며 웃기도 잠시.

어느덧 윤대용의 핸드폰이 울렸다.

윤대용은 핸드폰 액정에 떠오른 번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단숨에 굳었다.

이내 그는 잔뜩 굳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무슨 문제라도 발생했는가?"

-관리국이 정보를 알아냈습니다.

그 한마디에 윤대용의 얼굴은 단숨에 붉게 물들었다. 그러더니 윤대용은 복면인들을 노려보며 소리를 내질렀다.

"블랙오크 확실히 사살한 거 맞아!!?"

"예, 예! 확실히 죽였습니다! 회장님!"

복면인들 중 가운데에 서 있던 사내가 다급히 해명하고 있었다.

그때, 수화기 너머로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정하십시오. 회장님. 블랙오크가 사살된 것은 맞습니다.

"뭐라? 그렇다면 관리국이 정보를 어떻게 알아낸 거지?"

-블랙오크를 넘긴 사내가 정보를 내어준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번 보고는 관리국 내부에서도 극비였기에 자세한 내막은 저조차도 확신하진 못합니다. 다만······.

"다만?"

-새어나간 정보에는 다행히 SG그룹에 대한 것은 없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정말로 행운이었다.

그간 SG그룹이 바투 부족에게 한국 여자를 조공했다는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는 말이었으니까.

이것은 다시 말해, 애초에 그 블랙오크는 고위급이 아니었다는 말도 된다.

즉 SG그룹은 가만히 있어도 되는 문제였다. 무리해서 블랙오크를 사살하지 않아도 되었다.

후퇴하는 과정에서 날아온 돌멩이들로 인해 몇몇은 작지 않은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한 고비는 넘겼다.

이윽고 윤대용은 전화를 끊었다.

그 뒤 생각을 정리하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바투 부족 놈들이 또 다시 한국으로 넘어온다면 골치가 아파질 텐데. 놈들은 한번 당했기에 이번에는 고위급 블랙오크를 보낼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만일 고위급 블랙오크가 관리국에 잡히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때는 SG그룹의 악행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날이었다.

그러나 윤대용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지. 바투 놈은 이제 함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다른 부족 놈들도 경계하기 바쁜 마당에 더 이상 한국에 힘을 쏟아 넣을 순 없을 테지."

중국에 존재하는 블랙오크들은 도합 열세 개의 부족이다. 녀석들은 저들끼리 부족 통합을 위해, 언제 터질지 모를 활화산처럼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렇기에 바투는 더 이상 병력을 분산시키지 않으려 할 것이다. 당분간은 이빨을 숨긴 채 숨죽일 테지.

이윽고 윤대용이 복면인들을 향해 명령했다.

"당분간은 실험체를 찾는 일에 총력을 기울여라."

"네! 회장님!"

복면인들은 힘차게 답하고 있었다.

* * *

<정인우>

레벨 : 130

특성 : 광전사

스텟 : [근력 290+50+10+15] [민첩 200+40] [마력 35+10] [체력 165+40+10+10]

미분배 포인트 : 0

[EXP 555 / 1,200,000 ]

인우는 상태창을 확인하며 러닝머신 위를 내달리고 있었다. 관리국이 복면인들의 정체를 알아낼 때까지 레벨을 올릴 생각이었다.

세상엔 강한 놈이 너무 많았다.

"헥. 헥."

그리고 오늘의 인우는 사냥을 가지 않았다. 오늘은 도축의 날이었다. 40평 사육장과 100평 사육장의 말리오들이 불어날 대로 불어난 상태였으니까.

거기에다가 98레벨에 이른 스킬이 2개나 존재했다. 이 밖에도 90레벨이 넘어간 스킬은 도합 4가지였다.

내려찍기가 마스터 레벨에 도달한 뒤로 며칠이 흘렀다. 그랬기에 배운 지 오래되고, 자주 사용했던 순서대로 차례로 90레벨을 넘어선 것이다.

인우는 달렸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대검관통'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대검관통'의 레벨이 ' Master'에 도달했습니다.]

.

.

대검관통은 내려찍기 이후로 배웠던 광전사의 두 번째 스킬이었다. 그래서일까? 내려찍기 이후로 마스터 레벨에 도달하게 된 기술은 대검관통이 되어 버렸다.

['스윙'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윙'의 레벨이 ' Master'에 도달했습니다.]

.

.

스윙은 인우가 첫 번째로 습득한 전사 계열의 스킬 볼이었다.

세 번째 마스터 스킬은 스윙이 되었다.

인우의 눈동자가 기쁨에 가득 차올라 있었다.

프로킨에서조차 마스터 레벨의 스킬을 5개 보유했을 뿐인 인우였다.

그런데 지구에서는 벌써 3가지 스킬이 마스터 레벨에 도달했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내려찍기가 마스터에 도달하고 보다 더 강력해졌듯이, 대검관통과 스윙 또한 마찬가지였다. 기존의 위력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뿜어낼 수밖에 없었다.

마스터는 괜히 마스터가 아니었으니까.

인우는 계속 달렸다.

아직도 마스터 레벨에 근접해 있는 스킬들이 한 가득이었다.

< 062화 3 MASTER > 끝

ⓒ 호종이

< 063화 해보자고 (1) >

인우는 3개의 스킬을 마스터까지 올린 뒤에도 계속 달렸다. 러닝머신은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EXP 334,555 / 1,200,000 ]

아까 확인 했었던 경험치가 555였다. 지금은 30만을 넘게 채웠으니 꽤나 오래 뛰었을 거다.

이즈음 인우는 스킬창을 훑어보았다.

참살과 포효.

이 두 가지 스킬이 98레벨에 닿아 있었다.

그밖에도 파이어 볼 94레벨, 광폭화 90레벨이 뒤를 이었다.

확인도 잠시.

주택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민철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형님! 형님! 도축 빨리 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말리오들이 우리를 타고 넘어갈 지경이라고요!"

"후우우!"

그 외침에 인우는 러닝머신에서 내려섰다. 그러자 거실에 있던 퀸이 어느새 다가왔다.

다가온 그녀는 수건으로 인우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주었다.

인우는 드물게 얌전히 얼굴을 내어 주며 말했다.

"너도 와."

"네. 주인님."

그 뒤 주택의 바깥으로 나섰다.

인우는 사육장을 향해 걸었다.

인우의 다리가 제법 길었던지라 보폭이 굉장히 넓었다.

인우를 따라나선 퀸은 종종걸음으로 인우의 뒤를 따랐다.

현재 인우의 사육장은 도합 다섯 채였다.

공사 중이었던 두 채의 사육장이 완공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40평 사육장. 이곳은 인우가 가장 먼저 구매했던 사육장으로 0번이라 칭했다. 이곳에는 말리오가 있다.

100평 사육장 1번. 이곳에는 바실리스크가 있다.

100평 사육장 2번. 이곳에도 말리오가 있다.

그리고 완공된 100평 사육장 3번과 4번에도 말리오를 넣어 두었다.

오늘 도축이 진행될 사육장은 0번과 2번 사육장이었다.

인우는 우선적으로 40평 사육장인 0번에 들어섰다.

-쉬이이익!

들어서자마자 말리오들의 괴성이 들려왔다.

우리를 가득 메운 녀석들은 지렁이처럼 한껏 뭉친 채로 꿈틀대고 있었다.

민철의 말마따나 정말로 우리를 넘어올 지경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인우는 달마다 행하는 도축을 굉장히 좋아했다.

이내 인우는 뒤따라 들어온 민철과 퀸을 향해 말했다.

"내가 도축을 하면 민철이 너는 전리품을 채취해. 그리고 퀸은 피를 따로 담아두고 고기는 잘 모아 두었다가 팜이에게 주고."

"네 형님!"

"네."

졸개들의 대답에 인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 근처로 향했다.

그 뒤 도축용 단검을 치켜들고 민철에게 명했다.

"가지고 와."

곧이어 도축이 시작됐다.

붉은 성수로 인해 무력화 되어 버린 말리오들은 꼼짝없이 머리통을 내어주기 시작했다.

[경험치를 5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5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5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500 획득하였습니다.]

.

.

.

* * *

.

.

.

[경험치를 500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0번 사육장의 도축을 끝내고 바로 이어 2번 사육장의 도축도 끝냈다.

얼마나 많은 말리오들을 도축시켰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다만 도축이 끝나갈 무렵 한 번의 레벨 업을 했다. 그 뒤로도 경험치는 조금 더 올랐다.

도축으로 대략 90만이 넘어가는 경험치를 얻어낸 것이다.

인우는 수북이 쌓여 있는 말리오들의 시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얼추 2000마리 정도 되려나."

이윽고 인우는 민철이 채취한 정수를 바라보았다.

민철은 두툼한 이마를 따라 흐르는 땀을 닦아 가며 정수 채취를 완료했다.

"형님. A급 정수가 1777개. S급 정수가 32개입니다."

민철의 말에 인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도의 물량이면 못해도 40억은 나올 것이다.

한 달 간격으로 도축을 진행하고 있으니, 달마다 40억의 수익이 생긴다고 볼 수 있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음 달은 수익이 배수로 껑충 뛰어오를 테다.

완공된 사육장에도 말리오들을 풀어 놓았으니 말이다.

붉은 성수를 제조하는 값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사료 값 또한 일절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도축을 끝마친 말리오 고기를 가공해서 도로 사료로 주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순수익이 수십억에 달하는 것이다.

게다가······.

"형님. 이번에도 스킬 볼이 몇 개 나왔습니다!"

민철은 해맑게 웃으며 인우에게 스킬 볼을 건네주었다.

녀석도 10% 가량의 말리오를 도축했기에 손쉽게 레벨 업을 했다. 민철의 레벨은 벌써 50에 닿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녀석의 얼굴은 더 없이 밝아 보였다.

이 녀석도 언젠간 99레벨에 닿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인우는 녀석을 데리고 각성 정수를 얻기 위해 용작두 광전사를 잡으러 갈 예정이었다.

어느덧 인우는 민철이 건네준 스킬 볼들을 훑었다.

붉은 색 2개와 파란색 1개였다.

[맹독 사격]

[회복의 빛]

먼저, 액티브 스킬 볼의 경우 인우의 특성에 맞는 것은 없었다. 맹독 사격의 경우 레인저의 스킬이었고, 회복의 빛은 사제의 스킬이었다.

이어 인우는 파란색 스킬 볼을 바라보았다.

[충격흡수]

이 패시브는 광전사인 인우도 취할 수 있었다.

다만 조금 아쉬웠다.

'충격반사가 나올 것이지.'

충격흡수는 말 그대로 충격을 흡수한다. 그리하여 육체에 가해진 데미지가 줄어드는 것이다.

좋은 패시브다.

다만 더 좋은 패시브는 충격반사이다.

어찌되었건 인우는 파란색 스킬 볼을 입안에 넣고 삼켰다.

그러자 충격흡수가 활성화되었다.

인우는 실로 오랜만에 패시브 스킬 목록을 열어보았다.

패시브 스킬

1. [절대자의 걸음 - 발을 내딛을 때마다 경험치를 5 획득합니다.]

2. [절대자의 호흡 - 호흡할 때마다 경험치를 5 획득합니다.]

3. [절대자의 성장 - 레벨 200 달성 시 활성화 됩니다.]

4. [스피드 - 이동속도가 10% 증가합니다.]

5. [물리 공격력 강화 - 물리 공격력이 5% 증가합니다.]

6. [근력 증가 - 근력 스텟이 '10' 증가합니다.]

7. [체력 증가 - 체력 스텟이 '10' 증가합니다.]

8. [맹독저항 - 독을 저항합니다.]

9. [충격흡수 - 일정량의 데미지를 흡수합니다.]

패시브 스킬은 액티브와 다르게 레벨 업이 불가능하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패시브의 경우 습득만 해 두면 24시간 내내 발동하게 되어 있다.

배우는 순간 몸에 자동으로 적용이 되는 것이다.

"음!"

충격흡수는 인우의 9번째 패시브가 되었다.

이내 인우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절대자의 성장'을 바라보았다.

현재 131 레벨이니, 69레벨을 더 올리면 활성화될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200레벨에 걸맞은 막강한 패시브이지 않을까?

인우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길 잠시.

옆에 있던 민철이가 춤을 추며 날뛰고 있었다.

"이야호! 내가 벌써 50레벨이라니!"

민철은 50레벨을 달성하며 새로운 스킬도 열린 상태였다.

그간 민철은 무리해서 5존을 다녔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더 편하게 5존을 누빌 수 있을 것이다.

한참을 방방 뛰기도 잠시.

이윽고 민철은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인우의 시선을 느꼈다.

그제야 민철은 씰룩이던 엉덩이를 고이 접고 무안한 웃음을 머금었다.

인우도 그런 민철을 마주보며 씨익 웃었다.

"야. 나와 봐."

"···넵?"

민철은 멍청히 반문했다.

왜 웃는 것일까?

민철은 문득 등골을 타고 소름이 돋아남을 느꼈다.

이윽고 민철은 인우를 쫓아 바깥으로 나왔다.

퀸도 쫓아왔다. 인우는 퀸을 향해 말했다.

"내 용작두 좀 가지고 와."

그러자 퀸이 잽싸게 움직이더니 인우 앞에 용작두를 대령했다.

인우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민철에게 용작두를 던졌다.

척.

이에 민철은 저도 모르게 용작두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물었다.

"형님. 용작두는 왜 저에게···? 아니, 그건 그렇고 이거 진짜 가볍네요. 와아. 칼날 좀 봐. 역시 40억짜리 대검은 뭐가 달라도 다른···"

한참을 중얼거리기도 잠시. 인우가 민철의 말을 돌연 끊으며 내뱉었다.

"실력 좀 보자. 그래도 내 부하 1호인데, 그간 내가 너무 애정을 주지 못했어. 자세 잡아 봐."

"에, 예?"

인우의 말에 민철은 붕어처럼 눈을 꿈뻑거렸다.

그게 도대체 뭔 소리요?

그 말이 목젖 끝까지 차올랐다.

그런 민철을 바라보는 인우는 돌연 진지한 얼굴을 했다.

그 뒤 맨손으로 자세를 잡았다.

사냥터에 가기엔 시간이 너무 늦었고, 오늘은 민철이 녀석을 훈련시켜 줄 참이었다.

프로킨에 있을 당시 인우가 휘하 근위대원들을 교육하던 방법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놀랄 만한 성과를 거두곤 했다.

인우에게 참교육(?)을 받은 근위대원들이 하나같이 전투의 대가가 된 것이었다.

사실 그 방법이란 간단했다.

인간이라는 종족은 죽음의 위기를 느낄 때 본능이 튀어나온다.

그 본능을 잘 다루어 주면 자연스럽게 감각이 향상되고, 전투 실력이 늘어난다.

그리고 인우는 민철에게도 이 교육법을 시행할 생각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민철이의 전투 센스가 대폭 상승될 것이다.

이윽고 인우가 민철을 향해 다시금 말했다.

"들어와. 난 맨손으로 할 테니 마음껏 공격해 보라고."

"아니······."

"계속 그렇게 멍청히 서 있을 생각이면 내가 먼저 간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인우가 신형을 날렸다.

타다다다닷!

그리고······.

퍽! 퍽! 퍽! 퍽!

으아아아악-!

그날.

민철은 지옥을 맛보았다.

그리고 악마를 보았다.

인우의 참교육이 지구에서도 그 영향력을 뻗어가는 순간이었다.

* * *

그로부터 3주 뒤.

강원도 사냥터 미개척지대.

-쿠워어어어어!!

바실리스크 7마리가 괴성을 내지르며 용작두를 치켜든 인우를 공격하고 있었다.

인우는 포효했다.

"흐아아아압!"

Master레벨이 된 포효는 더없이 위력적이었다. 인우의 기합이 바실리스크의 귀에 닿자······.

-쿠워어어···!!

바실리스크들은 저마다 몸이 굳었다.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마스터에 이른 포효였기에 바실리스크조차도 몸이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인우의 용작두가 무차별적으로 놈들을 유린했다.

파바바밧!

써걱!

현재 인우의 마스터 스킬은 도합 6가지였다.

내려찍기, 대검관통, 참살, 포효, 스윙, 파이어 볼.

이미 프로킨에서 이루었던 스킬의 경지는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프로킨의 정인우는 500의 육체레벨.

그리고 5개의 마스터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500레벨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주력 스킬 다섯 개를 마스터했다.

한데 지구에서는 벌써 여섯 개의 스킬을 마스터한 것이다.

그렇기에 스킬의 경지만큼은 지구에 존재하는 그 어떤 랭커도 함부로 접근하지 못할 영역일 것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상위 랭커들도 많아 봐야 2~3개의 마스터 스킬을 보유했을 뿐이다.

대다수의 랭커들은 1개의 마스터 스킬을 보유한다.

그것과 비교해 보면 인우의 스킬 레벨은 말조차 되지 않는 경지인 것이다.

그리고 그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후우~"

-크르으으으으으······.

바실리스크 7마리는 제대로 힘조차 써보지 못한 채 숨통이 끊겼다.

[경험치를 5000 획득하였습니다.]

.

.

처억.

놈들이 죽자 인우는 용작두를 거뒀다.

그 뒤 스마트폰의 스톱워치를 확인했다.

[00 : 10 : 59]

7마리의 숨통을 끊기까지의 시간은 10분 59초.

"하아. 7마리를 10분 내로 끊는 건 불가능한가."

인우는 불만이 가득해 보였지만, 사실 이것은 말도 되지 않는 성장률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실리스크 2마리를 몰아 잡는 게 고작이었으니까.

현재 인우의 레벨은 149였지만, 6개의 마스터 스킬로 인해 엄청난 위력을 뽐내고 있는 것이다.

일전에 미개척지대에서 보았던 암살자 혜원조차도 최대치로 한 번에 사냥할 수 있는 바실리스크의 숫자는 7마리였다.

현재의 인우는 그녀의 경지를 뛰어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만일 이곳 사냥터가 구리시였다면, 지금쯤 아마 혜원이 눈을 부릅뜬 채 인우를 귀찮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찌되었건 인우는 구리시가 아닌 강원도 사냥터 미개척지대에 들어온 상태였다.

이곳의 미개척지대는 말 그대로 미개척지대였다. 초인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랬기에 인우는 마음 놓고 온전히 사냥에 몰입하고 있었다.

화르륵-!

어느덧 인우의 왼손에 파이어 볼이 피어났다.

그런데 파이어 볼은 기존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우선 크기는 똑같았다. 그러나 색깔이 달랐다. 파이어 볼은 새빨간 색깔을 뛰어넘어 투명한 불꽃을 이루고 있었다.

마스터 레벨에 이른 파이어 볼.

이 작은 불덩이 하나는 웬만한 고위급 마법은 모조리 씹어 먹을 만큼 위력적이었다.

이윽고 인우는 눈동자를 굴려 근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코카트리스를 노려보았다.

이어 녀석에게 파이어 볼을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따르르르릉-

인우의 핸드폰이 울려 댔다.

"흠. 저 코카트리스 녀석. 몇 분 더 오래 살겠네. 운도 좋아."

인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핸드폰을 꺼내들곤 다짜고짜 물었다.

"뭡니까?"

-아아, 정인우 씨. 저 박강중입니다. 초인관리국의 팀장 박강중이요.

강중이 인우에게 연락을 할 이유는 두 가지로 축약된다.

하나는 초인관리국으로 들어오라며 개소리를 씨부리는 것

둘은 인우가 일전에 넘겼던 정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것.

인우는 분명 초인관리국에 블랙오크 정보를 넘기며 한 가지 조건을 걸지 않았던가.

이윽고 인우가 말했다.

"복면인 새끼들. 알아낸 거야?"

-예. 그런데··· 문제가 조금······.

강중은 말꼬리를 흐리고 있었다.

< 063화 해보자고 (1) > 끝

ⓒ 호종이

< 064화 해보자고 (2) >

문제라고?

강중은 말꼬리를 흐리고 있었다.

인우는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오래지않아 강중이 말을 이었다.

-복면인들의 정체는 멸살단이라 불리는 초인집단입니다.

"멸살단?"

-예.

처음 들어보는 집단이다. 아니, 애초에 인우는 지구에 대해서 그리 잘 알고 있는 편이 아니었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게다가 멸살단은 관리국에서도 고위급 초인들이나 알고 있는 집단이었다.

그만큼 베일에 가려진 단체인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SG그룹에 대해서 들어보셨겠지요?

"아."

인우도 분명 알고 있었다. 일전에 강남에 있는 거대한 초인상점에서 구입한 갑옷도 SG그룹에서 만든 갑옷이었으니까.

거대한 기업이라고 알고 있었다.

-멸살단은 SG그룹에 소속 되어 있는 무력단체입니다. 그들은 회장 윤대용에게 복속되어 있고, 온갖 더러운 사건과 연관되어 있는 놈들입니다.

"그러니까... SG그룹이라는 놈들이라 이거지?"

-그렇습니다.

SG그룹.

그놈들이 나이트 길드를 앞세워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것이다.

흔적을 지우기 위해 나이트 길드의 본부마저 전소시켰을 테다.

거대 길드마저도 SG그룹 앞에선 한순간에 전소 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지닌 대기업.

-정인우씨. 그들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설마 대적하기 위함입니까?

"내 개인 사정이야. 이제 더는 개입하지 않아도 돼."

그러면서 인우는 팜이를 떠올렸다.

어느덧 강중은 강한 어조로 말했다.

-개입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SG그룹은 국가 소속의 관리국을 건드렸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저희도 조심스럽게 손을 쓸 예정입니다. 물론 대놓고 SG그룹을 압박하진 못합니다. 관리국 또한 복면인들이 멸살단이었다는 완벽한 증거를 확보하진 못했으니까요. 설사 완벽한 정보를 확보한다고 해도,

"아. 그래 뭐, 거기까진 내 알 바 아니고. 어찌되었건 거래는 끝났어. 정보는 고맙게 사용하지."

인우는 통화를 마무리하려 했다. 그러자 강중이 다급하게 외쳤다.

-사일런스가 움직일 겁니다. 정인우씨가 어떠한 목적으로 SG그룹을 노리는지 묻지 않겠습니다. 사일런스와 협력하십시오.

"..."

협력이라.

그러나 인우는 고개를 내저었다.

관리국은 SG그룹이 어째서 블랙오크를 사살한 것인지, 나아가 도대체 얼마나 더러운 일과 연류 되어 있는 것인지에 대해 캐보려 하는 것이다.

그러한 정보를 얻기 위해 사일런스가 움직인다.

관리국은 더 없이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그러나 인우는 아니다.

그렇기에 협력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이윽고 인우가 답했다.

"내가 왜?"

명백한 거절이었다.

자신의 뜻을 밝힌 인우는 전화를 끊었다.

그 뒤 주택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때, 인우의 핸드폰이 또 다시 울려댔다.

"아 것 참 안 한다니까!"

그러면서 인우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액정에 떠 있는 이름은 박강중이 아니었다.

"뭐야?"

액정에는 '김민철'의 이름이 떠 있었다.

급박한 일이 아니면 전화를 걸지 않는 녀석이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인우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 * *

팜이는 이제 어린아이만 할 정도로 커졌다. 지금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로 커질지 쉽게 짐작이 되지 않았다.

녀석은 유독 퀸을 좋아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인우는 예전처럼 팜이를 데리고 사냥터에 간다거나 자주 챙겨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녀석이 커졌기에 예전처럼 배낭이나 배주머니에 숨길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팜이는 주택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퀸과 친해졌다.

퀸도 이제는 팜이를 귀찮게 여기지 않았으니 둘은 죽이 척척 맞았다.

민철이가 무언가 따돌림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민철은 크게 상관치 않았다. 어차피 민철은 인우만 있으면 됐다고 생각했으니까.

산들바람 불어오는 대낮.

팜이는 주택 마당 잔디밭에 누워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아암.

잠꼬대가 제법 귀여웠다.

녀석은 날개를 활짝 펼쳐놓은 상태였다. 인간으로 치자면 대짜로 뻗어있는 모습일 테다.

팜이의 옆에는 퀸이 누워 있었다.

그녀는 따사로운 햇살을 만끽하고 있었다.

뱀파이어임에도, 오망성으로 인해 햇빛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둘의 모습은 피크닉이라도 와있는 것 같아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있기도 잠시.

퀸이 별안간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어 기지개를 켰다.

"으음."

말리오들에게 밥을 줄 시간이었다. 이내 그녀는 사육장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팜이가 슬금슬금 몸을 움직이며 눈을 떴다.

자고 있는 척이라도 했던 것일까?

퀸이 사라지자 팜이의 동그란 눈동자가 빛났다.

녀석은 근래에 들어서 호기심이 왕성해졌다. 그러면서 주변을 날아다니는 일이 잦았다.

퀸은 팜이가 주택 바깥을 나서지 못하게 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그저 인우가 그렇게 시켰기에 행할 뿐이었다.

때문에, 지금처럼 퀸의 감시 아닌 감시가 사라지면 팜이의 자유시간이 시작되곤 했다.

날아다닐 수 있었으니 어디로든 향할 수 있었다.

퀸이 일을 끝마칠 동안은 팜이의 시간이었다.

이윽고 팜이는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올랐다.

-파아암!

하늘로 솟구치자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강타했다. 이윽고 팜이는 바람을 타고 날기 시작했다.

팜이는 주택의 상공을 배회했다.

그러면서 귀를 쫑긋거렸다.

사육장에서는 퀸이 말리오들에게 사료를 내어주는 소리가 들려왔다.

퀸이 일을 끝내기 전까지 자유를 만끽해야만 했다.

어차피 금방 돌아올 생각이었다.

이내 팜이는 빠르게 주택을 벗어났다.

쉬이이이이이익-!

팜이의 몸이 마치 비행기처럼 허공을 꿰뚫었다.

그러자 삽시간에 주택과의 거리가 멀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날아다니며 바람을 만끽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팜이의 예민한 청각에 인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거!!"

"뭐? 왜 그래?"

"어, 어!!"

웬 복면을 뒤집어쓰고 있는 남자들이 검지를 치켜들고 팜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 * *

백지처럼 뽀얀 퀸의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팜이가 사라진 것이다.

불과 10분도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주인님은 분명 퀸에게 팜이를 주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라 명했다.

인우의 명령은 퀸에게 있어서는 법이었다.

애초에 잠든 줄로만 알았던 팜이를 그렇게 방치하는 게 아니었다. 안일했다.

퀸은 자책했다.

"아아!"

등줄기에 식은땀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퀸이 어쩔 줄 몰라 하자 어느덧 민철이 다가와 걱정스레 물었다.

"어디 아파요?"

평소엔 곱게 보이지 않던 여자였지만, 저렇게 두려운 얼굴을 하고 있으니 지켜주고픈 욕구가 발동될 지경이었다.

"팜이가 사라졌어. 빨리 주인님께 연락을 취해. 난 팜이를 찾고 있을 테니까."

"에, 예?"

그러고 보니 팜이가 보이지 않았다. 팜이는 워낙에 민철에게 관심을 끊은 놈이라 신경조차 쓰고 있지 않았었다. 민철은 퀸만을 따르는 팜이를 보고 음흉한 수컷이라며 장난스레 흉을 보곤 했었다.

"음..."

민철은 생각에 잠겼다.

그의 얼굴은 퀸과는 다르게 침착해보였다. 팜이는 퀸과 인우를 좋아한다. 결코 도망칠 녀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기 근처에 날아다니다가 금방 돌아오지 않겠어요?"

"근처에서 느껴지지 않아."

"예...?"

퀸은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그러더니 팜이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나 그녀는 주택에 설치 된 오망성으로 인해 멀리 떨어진 곳까진 움직일 수 없었다.

오망성을 기준으로 일정 반경 내외를 벗어날 수 없는 몸이다.

제발 그 반경 안에 팜이가 있어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퀸이 단숨에 사라졌다.

그에 민철은 황급히 인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파아아!"

저 인간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팜이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추락시켜! 강한 공격도 상관없다! 어차피 웬만한 공격엔 죽지도 않을 거다!"

"날개를 맞춰!"

피슈우우우욱!

마법의 화살과 속성마법들이 팜이를 향해 쏟아졌다.

그에 팜이는 공포감을 느꼈다. 팜이는 인간들의 공격을 간신히 피하며 울부짖었다.

-파아아아암!!

퀸이나 인우가 듣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홀로 바깥으로 나온 걸 금세 후회했다.

그러나 후회해도 늦었다.

-파아!

그렇게 비명을 내지르던 팜이.

어느덧 마법의 화살이 팜이의 날개를 꿰뚫고 지나갔다.

-파아악!

팜이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절로 몸에 힘이 빠졌지만, 추락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저 빠르게 주택을 향해 도망칠 뿐이었다.

주택에 도착하면, 퀸도 있고 민철도 있었다. 인우는 외출 중이었지만, 민철과 퀸이 충분히 자신을 지켜줄 것이다.

쐐애애액-!

다시금 마법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파아아!

팜이가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피해보아도, 화살은 집요하게 팜이를 추적해왔다.

마치 눈이라도 달린 것 같았다.

-파아!

마법의 화살은 다시금 팜이의 날개를 꿰뚫었다.

팜이의 날개를 비집고 붉은 피가 후두둑 흘러내렸다. 팜이의 움직임이 단숨에 느려졌다. 그러자 빗발치는 마법을 피할 길이 없었다.

후두두두둑!

강력한 마법들이 팜이의 몸 이곳저곳에 꽂혔다.

-파아악!

그에 팜이는 힘을 잃고 바닥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파아아...

"제대로 명중이다! 실험체가 떨어진다! 받아내!"

아래에서는 검은 복장을 입고 있는 남자들이 날뛰고 있었다. 그 사내들은 팜이가 떨어지는 곳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철퍽!

이윽고 팜이가 사내들의 품에 추락했다.

-파아...

"실험체 확보했다! 복귀한다!"

3명의 사내들은 저마다 기쁨의 탄성을 내질렀다. 회장의 명을 받들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멸살단이다.

그 중 자신들이 실험체를 확보한 것이다.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어째서 실험체가 이곳에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의문은 길지 않았다. 확보했다는 기쁨이 워낙에 컸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타다다닥-!

숲 저편에서 와인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여자가 뛰어 나오고 있었다.

멸살단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홀린 것 같다.

이러한 숲속에 저렇듯 아름다운 여자가 나타나다니?

도무지 매치가 되지 않았다.

이윽고 그녀, 퀸이 멸살단 3명을 향해 말했다.

"팜이를 놓아줘."

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나갔어도 오망성의 범위에서 멀어질 터였다.

때마침 이곳에서 팜이를 발견했으니 운이 따랐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웬 인간 놈들이 팜이를 제압한 뒤 끌고 가려는 현장을 발견했다.

저 인간들은 제법 강해보였다.

그러나 퀸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퀸의 주인인, 정인우는 분명 팜이를 부탁했고, 퀸은 그 명령을 지켜야만 했다.

그것이 설령 목숨을 내놓는 일이라도 해도 말이다.

"내려놔. 팜이는 우리 주인님의 애완동물이야."

다시금 퀸이 말했다.

그러자 3명의 멸살단 사내들은 저마다 웃으며 답했다.

"강원도 오지에 미친년이라니. 정신 놓았냐?"

"주인님의 애완동물이라니. 무슨 개소리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냥 미친 여자야. 근데, 그냥 돌려보내기엔 조금 아쉬운데...?"

이윽고 그들은 군침을 삼키며 퀸을 향해 다가왔다.

이곳은 인적이 드문 오지다. 게다가 그들 멸살단은 증거를 인멸하는데에 있어서 도가 튼 놈들이었다.

애초에 SG그룹의 더러운 똥을 치우기 위해 만들어진 집단이 그들이다.

그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그 현장을 덮는데 특화되어 있었다.

"흐흐."

녀석들은 흡사 발정난 개처럼 퀸의 몸 구석구석을 훑고 있었다. 퀸은 그들의 더러운 시선을 피하지 않고 직시했다. 그리곤 손톱을 치켜세웠다.

"난 분명히 경고했어."

"흐흐. 귀여운 년일세."

그런데 그때였다.

후두두두두-!

난데없이 숲속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강한 바람이 불었고, 나무에 앉아 쉬고 있던 새들이 퍼드득 달아났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압!!

그러한 숲속을 비집고 분노에 가득 찬 외침이 들려오고 있었다. 절로 오금이 저려오는 피어였다.

그 어떠한 괴수의 피어도 저처럼 공포스럽진 못할 것이다.

멸살단원들의 얼굴을 비집고 단숨에 불안감이 피어났다.

"뭐, 뭐지!?"

"사, 사람이 내는 소리 맞지?"

푸슈우우우우우우욱!

어느덧 저 멀리 숲길에서 태풍과 같은 바람이 일었다.

그리고 그 길을 비집고 용작두를 치켜든 사내가 총알처럼 튀어나오고 있었다.

납득조차 되지 않는 추진력이었다.

어떠한 스킬이 마스터까지 도달해야 저러한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까?

이윽고 용작두를 치켜든 사내가 퀸의 바로 옆에 멈춰 섰다.

사내, 그는 정인우였다.

인우는 멸살단의 품에서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팜이를 바라보았다.

그 뒤 인우는 멸살단 놈들을 향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뒤지고 싶냐?"

< 064화 해보자고 (2) > 끝

ⓒ 호종이

< 065화 해보자고 (3) >

복면인들은 강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인우를 바라보며 주춤댔다.

자연스럽게 그리 되었다.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과연 이게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으니까.

"저놈 뭐지······."

"조심해라. 실력자인 것 같다."

그들은 멸살단이다.

SG그룹의 무력집단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어중이떠중이 같은 초인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그들은 강했다.

그런 그들이 극심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단 한 놈에 의해서.

그 한 놈, 정인우는 옆에 있던 퀸에게 말했다.

"퀸. 물러서."

"네."

퀸은 그 즉시 손톱을 거뒀다. 인우가 직접 나설 생각인 것 같았다. 하긴, 그간 먹이를 주고 사랑을 듬뿍 퍼부었던 애완동물이 극심한 상처를 입고 잡혀 있다.

"SG그룹. 해보자 이거지?"

"······."

인우가 그들의 정체를 대번에 파악하자, 멸살단원들은 당황했다.

그들은 알려지지 않은 SG그룹의 무력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당황하거나 말거나 인우가 다시금 말했다.

"해보자고."

인우는 자신의 것에 손을 대는 놈들을 결단코 가만두지 않았다.

단 한 번, 드래곤들에게 황궁을 내어주고 지구로 귀환했을 때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인우는 SG그룹과 같은 거대한 집단의 특성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저런 놈들은 잡초와 같아서 밟고 밟아도 쉽게 죽지 않는다. 아예 뿌리째 뽑아야 함을 안다.

그 첫 뿌리는, 눈앞에 있는 멸살단 세 놈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고오오오오-

인우의 몸에서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나왔다.

그 모습에 멸살단원들이 속삭였다.

"아까 태풍과 같은 바람을 끌며 달려오던 것도 그렇고, 놈은 전사 계열이다."

"아직 모른다. 유니크 스킬일지도 모르니까."

"아니, 저 정도 기세면 전사 계열이야. 준비해."

멸살단원들은 저마다 무기를 뽑아들었다.

사실, 초인들은 유니크 스킬 볼을 습득하면 대부분 판매를 한다. 그야, 그를 통해 스킬을 습득해 봐야 스킬 레벨을 올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주력 스킬들을 집중적으로 키우기도 힘든 마당에, 유니크 스킬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을까?

인우의 스킬 중에 어정쩡한 레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90% 이상의 스킬이 마스터에 근접해 있다는 사실을 알까?

모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그들의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휘둥그레졌다. 엄청난 것을 목격했으니까.

화르륵-!

어느덧 인우의 왼손에는 백색의 고열을 뿜어내고 있는 불꽃이 피어나 있었다.

"헤, 헬 파이어?"

"이 무슨!"

"아니야, 헬 파이어가 저렇게 작을 리가 있냐?"

"뭐가 되었든 정신 똑바로 차려 다들!"

허둥지둥하고 있는 그들에게 인우는 친절히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파이어 볼이다. 새끼들아."

"······!?"

"뭐!?"

그때.

파이어 볼이 불식간에 멸살단원 한 놈에게 날아들었다.

화르르륵!

"마, 막아!!"

"피해!"

그들은 파이어 볼 하나에 진땀을 뺐다.

그러나 파이어 볼은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인우의 마나 드레인은 끊임없이 마나를 흡수했고,

화르르륵-!

후웅! 후웅! 후웅! 후웅!

파이어 볼이 끝도 없이 날아들었다.

"미, 미친 마법사였어!"

"쉴드 쳐!"

"냉기 마법으로 대응한다!"

말은 이렇게 해도 괜히 멸살단이 아니라는 듯 놈들의 방어는 점차 모양새를 갖춰 갔다.

그리고 놈들이 인우를 마법사라고 확신한 순간.

바로 그 순간이었다.

"크아아아아압!!"

인우의 광폭난무가 숲속의 나무를 개박살 내며 그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저건 대체!!"

제대로 대처할 틈도 없이 휘몰아치는 인우의 공세에 놈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그래도 쉽사리 당하지는 않았다.

얼마의 시간 동안 인우와 멸살단은 무수한 공방을 주고받았으니까.

하지만······.

인우의 어마무시한 스킬 레벨에 따른 무차별적인 공격은, 제아무리 멸살단이라도 감당할 수가 없었다.

* * *

-크워어어어-!

주변이 제법 시끄러웠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걸까?

세 명의 사내는 괴수의 울음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렸다.

"으으······."

"여긴···?"

그들은 눈을 뜨자마자 앓는 소리를 냈다. 뼈마디가 서너 개는 부러지거나 금이 간 것 같았고, 곳곳에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들은 눈동자를 굴려 이곳저곳을 훑었다.

"응···?"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세상이 거꾸로 뒤집혀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 바라보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아······."

그제야 그들은 자신들의 발목에 채워진 쇠사슬을 발견했다.

그들은 건물 천장에 설치된 사슬로 인해 거꾸로 매달린 상태였다.

"놈이 우릴 죽이지 않았나 본데···?"

"여길 봐······. 바실리스크가 있어. 설마 사육장인건가?"

"맞는 것 같아. 미친놈. 바실리스크를 사육하다니. 역시 예사 놈이 아니었어. 어서 보고를······."

"끄응."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들의 주머니는 텅 비어 있었다.

이윽고 그들 중 왼편에 있던 사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이노옴! 우릴 어찌할 참이냐!"

그때였다.

철커덕.

사육장의 문이 열렸다.

그러자 소리를 내질렀던 사내는 깜짝 놀라 움찔거렸다. 그리곤 입을 꾹 닫아 버렸다.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드르르륵-

문을 비집고 들어선 남자.

그는 정인우였다.

인우는 수레를 하나 끌고 왔다. 그 수레에는 각종 공구들이 보였다.

"철물점이 왜 이렇게 먼 거야. 그냥 건물을 통째로 사던가 해야지."

"주인님. 이걸로 저들을 다지려고요?"

"응 뭐. 고문에 취미는 없지만, 이왕 하는 김에 손을 더럽히는 것보다는 도구를 이용하는 게 낫지 않겠어?"

인우의 뒤에는 퀸이 있었다.

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과연'이라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인우와 퀸이 고문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있자, 사내들은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좆된 것 같다······."

중얼거리는 그들을 향해 인우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 뒤 인우는 몸을 낮춰 거꾸로 매달린 놈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그러자 놈들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인우는 그 모습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퀸을 향해 말했다.

"뭐 자를 수 있는 공구 아무거나 하나 줘 봐."

그러자 매달린 멸살단원들은 미친 듯이 악을 쓰기 시작했다.

"이, 이놈! 그만둬라! 원하는 게 뭐냐!?"

"원하는 거?"

"그, 그래! 정보를 원하냐? 아님 돈?"

그들의 말에 인우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곤 놈들의 눈을 직시한 채 말했다.

"일단 지금은 너희들의 고통."

착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감히 자신의 애완동물을 건드려?

저놈들 때문에 날개가 꿰뚫린 팜이는 당분간 날아다닐 수도 없을 거다.

조금만 더 크면 타고 날아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 놈들이 다 망쳐놓았다.

얼마나 더 치료를 해야 날개가 완치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인우는 매달려 있는 놈들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너네는 날개가 없지. 대신 다리는 있는 것 같네."

이윽고 인우는 양손에 든 절단기를 놈들의 발목을 향해 댔다.

"제, 제발!!"

"오늘 바실리스크 사료는 니들 다리다."

위잉-

인우는 절단기의 스위치를 눌렀다.

놈들은 고레벨 초인이기에 신체가 철근처럼 단단하다. 그렇기에 쉽게 잘리지 않을 거다. 그러나 인우가 바라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용작두 같은 무기로 놈들의 다리를 단숨에 자를 생각은 없었다.

공구를 이용해 천천히 잘라낼 생각이었다.

"제, 제발!! 크아아아아아악!!"

놈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사육장을 가득 매우기 시작했다.

* * *

인우는 사육장 샤워실에 들어섰다.

얼굴과 옷에 놈들의 피가 잔뜩 튀어 있었다.

인우는 옷을 훌러덩 벗고는 피를 닦기 시작했다.

솨아아아아-

칸막이 하나를 두고 옆에 있던 샤워실에선 퀸이 씻고 있었다.

그녀 또한 인우의 옆에 있었기에 피가 잔뜩 튀어 있는 상태였다.

인간의 피는 마시지 않는 퀸이었기에 잔뜩 튄 피에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이윽고 퀸은 먼저 샤워를 마쳤다. 그 뒤 가지고 온 가운을 걸쳤다.

그런 뒤에 칸막이를 두드리며 인우를 불렀다.

"주인님. 수건하고 옷 이 앞에 두었어요."

그때 마침 인우도 샤워를 마쳤다.

인우는 퀸이 바닥에 내려둔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그런 뒤 그녀가 가지고온 반바지와 티셔츠를 걸쳤다.

그러면서 인우는 힐끗 퀸을 바라보았다.

물에 젖은 채로 가운을 걸치고 있는 그녀의 자태가 상당했다.

프로킨에 존재했던 황궁의 수천 궁녀들 중에도 저만한 미모를 가진 여자는 드물었다.

그간 퀸을 너무 부하로만 생각했었던 걸까.

새삼스럽게 느낀 거지만 퀸은 예뻤다.

그러나 지금은 퀸의 미모에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으으으······."

"살려줘······."

어느덧 인우는 사육장 바닥을 기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멸살단원들을 바라보았다.

놈들의 발목은 모두 잘려 있었다. 바닥은 피로 흥건했고, 발목의 절단면은 무척이나 울퉁불퉁했다.

절단이 제법 힘겨웠으리라.

그리고 그것은 곧, 놈들이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했다.

단숨에 잘리는 것과 천천히 그리고 힘겹게 잘리는 것은 크게 다르다.

엄청난 고통이 동반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놈들을 고문하며 인우의 화는 조금 수그러든 상태였다.

"이제 일을 시작해 볼까."

인우가 놈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놈들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인우를 바라보았다.

놈들의 눈동자에는 조금의 반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온전한 두려움만이 가득했다.

무엇에 대해 물어본다면 머리를 쥐어짜내서라도 대답할 정도일 테다.

인우는 뒤따라오던 퀸을 향해 말했다.

"퀸. 샤워실 앞에 내 핸드폰 좀 가지고 와."

"네. 주인님."

퀸이 단숨에 핸드폰을 가지고 왔다.

이윽고 인우는 핸드폰을 들고선 동영상 버튼을 터치했다. 그 뒤 놈들을 향해 물었다.

"불어."

"무, 무슨 말씀이신지요······."

멸살단원은 달달 떨리는 턱에 안간힘을 줘가며 답하고 있었다.

그에 인우는 그저 다시금 물었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너희가 누구인지 불어."

"저, 저, 저희는 멸살단입니다······."

"좋아. 멸살단은 뭐하는 집단이지?"

"저희는······."

인우의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장면은 인우의 핸드폰으로 촬영되고 있었다.

애초에 정공은 무리다.

인우는 이 동영상을 시작으로 SG그룹을 흔들 것이다.

SG그룹.

놈들은 건드려선 안 될 핵폭탄을 건드린 것일지도 몰랐다.

* * *

대한민국에서 절대로 건드려선 안 되는 단체가 몇 군데 존재한다.

그 중 한곳이 SG그룹이라는 거대한 기업이다.

국가 소속의 관리국조차도 SG그룹과 척을 지고 싶지 않아 비밀리에 그들의 뒤를 캐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건 무엇일까?

도대체 어떤 정신 나간 놈일까?

SG그룹의 회장 윤대용은 자신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이 핸드폰은 윤대용이 멸살단과 연락을 취할 때나 쓰는 번호였다.

그것은 즉 멸살단을 제외한다면 이 번호를 아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대답해 새끼야.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분명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도대체 이 번호를 어떻게 알아낸 것일까?

"······."

윤대용은 침묵을 택했다.

그러자 놈이 다시금 말했다.

-내가 말이야······.

그리고 다음 순간 들려온 말에 의해 윤대용의 눈동자는 더할 나위 없이 크게 뜨여 버렸다.

< 065화 해보자고 (3) > 끝

ⓒ 호종이

< 066화 미친곰의 재등장, 그리고 전면전 선포 >

"내가 말이야······."

인우는 거실 쇼파에 드러누운 상태로 핸드폰을 들고 통화중이었다. 퀸은 바닥에 얌전히 앉아서 인우의 입에 사과조각을 넣어주고 있었다.

인우는 달콤새콤한 사과를 씹으며 수화기 너머로 말을 이었다.

"회장 니 새끼 쫄따구들을 잡았거든? 복면 뒤집어 쓴 새끼들 있잖냐. 멸살단인가 뭔가··· 야, 이거 맛있네. 더 줘 봐."

"네. 주인님."

인우는 말을 뱉다말고 퀸에게 사과를 받아먹었다.

-······.

수화기 너머의 회장 녀석은 여전히 침묵을 택하고 있었다.

그러자 인우가 이죽댔다.

"이 새끼 벙어리냐. 호구 같은 새끼."

-···크으······.

그제야 조금 반응이 왔다.

SG그룹이라는 거대한 기업의 회장 윤대용.

그가 언제 이러한 욕설에 당해 보았겠는가.

아마도 어금니를 꽉 깨물며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 있지 않을까? 인우는 보지 않음에도 분노한 회장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리고 그즈음 인우가 본론을 꺼냈다.

"내가 니 쫄따구 새끼들 조지면서 재미난 동영상 하나를 찍었거든?"

-동영상?

"이 새끼 이제야 말하네. 그래 동영상을 찍었어. 니 쫄따구들 말이지. 아주 물에 빠지면 입만 둥둥 떠다닐 새끼들이야. 아주 자~알 키웠어. 대단해."

-······.

윤대용 회장은 또 다시 침묵했다. 그는 인우의 이죽거림을 받아주면서도 전화를 끊지 않았다. 그 이유야 뻔했다. 인우가 멸살단과 관련된 사항을 말하고 있었으니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문제인 것이다.

"동영상이 굉장히 잘 뽑혔거든? 그래서 나 혼자 보기 아까운 수준이란 말이지."

-협박인가?

윤대용 회장은 인우가 동영상을 가지고 SG그룹을 협박하고 있음에도 목소리에 변화가 없었다.

윤대용은 어느새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의 재력을 노리고 협박을 행하는 너 같은 놈들이 한 둘이 아니다. 어떻게 이 번호를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니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해 봐라.

"응? 큰 거 1만 장에 넘겨주려고 했는데. 안타깝게 됐네. 그럼 이 동영상 뿌린다?"

-미친 새끼.

뚜욱-

전화는 곧바로 끊겼다.

핸드폰 액정에는 '녹음이 완료 되었습니다.'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인우가 투덜댔다.

"이 새끼 이거. 그래도 거대 기업의 대가리라 그런지 아주 철저하네."

통화 내용 또한 놈들을 압박하기 위한 유용한 증거로 사용하려 했다.

그러나 윤대용은 걸려들지 않았다.

만일 윤대용이 육성으로 '멸살단을 어떻게 알고 있지?' 내지는, '그 동영상을 사겠다.' 라는 말을 내뱉었다면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윤대용은 그에 관련된 사항에 대해선 모조리 입을 닫았다.

이렇게 되면 인우가 배포하게 될 동영상은 신빙성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윤대용은 역시나 거대 기업의 우두머리답게 대처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인우는 씨익 웃었다.

"발악해 보라고."

인우가 멸살단원에게서 촬영한 동영상에는 SG그룹의 악행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첫째로 SG그룹과 멸살단의 관계.

둘째로 나이트 길드와 SG그룹의 연관성 및 생체실험.

셋째로 SG그룹과 블랙오크의 연관성.

이 영상은 확실한 파급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 * *

익명이 보장되는 인터넷.

그 안에서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진다.

그리고 그 중, 익명으로 게재된 동영상 하나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 내용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영상은 3명의 복면인들과, 의문의 사내의 질문과 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

.

.

[멸살단은 뭐하는 집단이지?]

[저희는 SG그룹에 소속된 무력단체입니다.]

[너네가 SG그룹에 소속된 단체라는 걸 증명해 봐.]

[여, 여기 제 핸드폰에 사진들이 있습니다.]

그러자 영상에 핸드폰 속 사진들이 확대되었다.

사진들이 차례로 넘어갔다. 그 안에는 SG그룹과 관련된 사진들이 보였다.

그러나 사내는 사진을 끝까지 넘겨서 보여 주지 않았다.

마치 다른 사진들은 다음 이 시간에······.라는 듯한 뉘앙스였다.

다시금 사내의 질문이 시작됐다.

[너희들이 하는 일은?]

[저희는 SG그룹 윤대용 회장님의 명령을 받습니다. 최근에는 거대 길드를 흡수하여 생체실험을 진행하기도 했고, 그에 반하는 세력들을 제거했습니다.]

[생체실험과 연관되어 있던 길드는 나이트 길드이겠지?]

[그, 그렇습니다. 그러나 나이트 길드는 미친곰이라는 녀석에게 당했고, 저희는 나이트 길드 본부에 존재하는 생체실험에 대한 흔적을 지우기 위해 불을 질렀······.]

띠익-

영상은 그즈음 잘렸다. 이후의 내용도 존재하는 것 같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여기에서 잘렸다.

그리고 잠시 끊겼던 영상에서 곰 인형 탈을 쓰고 있는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라도 그 모습을 보고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바로 한때 초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장본인. 바로, 미친곰이었으니까.

이윽고 미친곰이 말했다.

[나는, SG그룹이 꼭꼭 감추어 두었던 악행들. 나아가 SG그룹이 세상에 알려지기 원치 않는 것들을 모조리 찾아서 공개할 거다. 그리고 나는 이 시간부로

띠익-

영상은 끝이 났다. 이 영상은 게재 된지 불과 1시간 만에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라섰다.

그에 뒤이어 2위로 SG그룹, 3위로 윤대용 회장을 이어 SG그룹과 관련된 것들이 연달아 검색어 10관왕을 휩쓰는 기염을 토해 냈다.

그즈음 되자 SNS에서는 해당 동영상에 대한 의견이 실시간으로 쏟아져 나왔다.

-dogzong44 : 저 동영상 진짜인가?

-dlsdnWkd : 증거 부족아님? 경쟁 기업이 SG그룹 물 먹이려는 거 아닐까?

-eotrmfwntpdy : 신빙성이 상당하지 않나? 나이트 길드 전소에 관해선 여전히 의문투성이였잖아. 각종 찌라시들이 무분별하게 쏟아지기도 했지. 그런데 저 영상에 나온 말이 사실이라면 모든 정황이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저 사진들이 정황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vkadlwhfrnl : 아다리가 딱딱 들어맞지 않음? 냄새난다고. 킁킁. SG그룹은 생체실험을 진행하기 위해 거대 길드인 나이트 길드를 흡수한 거임. 그리고 혹시나 걸릴 걸 대비해 뒤에서 조종만 한 거지. 혹시나 생체실험이 세상에 드러나면 나이트 길드를 방패로 쓰고 자신

들은 발을 빼려고.

-znlssexy : ㅇㅈ 그리고 아마 저 미친곰이라는 사람이 나이트 길드를 박살내고 생체실험에 대해서 알게 된 거 같음. 해서

-dogzong44 : 맞네 맞어. 거기에 동원된 SG그룹의 비밀 무력단체가 저 복면인들. 멸살단? 저 사람들인 것 같고.

-vkasmsla : 저것 말고도 뒷내용이 더 있는 것 같은데. 미친곰은 왜 저기까지만 공개한 거지?

-ehrwkslaemfS2 : 간 보는 거지. 그리고 저 영상만으로는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없잖냐. 솔직히 SG그룹이 저 복면인들을 모른다고, 자기들하고 관련 없다고 잡아떼면 그만인 상황임. 권력을 이용해 언론통제할 건 뻔하잖냐. 이런 상황임을 알기에 증거를 더 확보하려는 거

겠지.

-SGakstp : 딱 봐도 주작이네. 주작 ㅇㅈ. 이런 거에 선동되는 개돼지 클라스~

-ehrwkslaemfS2 : ㄴ이 위에 SG 알바임? 아님 눈갱인가? 저 새끼 수상한데.

-vkadlwhfrnl : 알바 맞는 듯. 아이디 보소ㅋㅋㅋㅋ아이디 풀면 SG만세임ㅋㅋㅋㅋㅋ빡대가리네.

-znlssexy : ㅋㅋㅋㅋㅋ멍청이 인증ㅋㅋㅋ야 너 시급 얼마냐?

-dlsdnWkd : 어쩌면 지능적 안티일 수도······.

-gmdgofk : 사실 내가 미친곰이다!!!!!!

-xhxhwoddl : 초기 자금으로 100배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토토사이트···

······.

미친 듯이 쏟아지는 댓글들이었다.

SG그룹의 윤대용은 영상과 네티즌들의 반응을 확인하며 분노의 외침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

이내 그는 붉게 물든 얼굴을 양 손바닥으로 감싸 쥐었다. 찌르르 울리는 뒷골. 윤대용은 진정하기 위해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간신히 혈압을 낮춘 그가 긴 숨을 토해 내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멸살단원들이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서 있었다.

윤대용은 그 중 멸살단장 지천우에게 말했다.

"멸살단원들 중에 연락이 끊긴 조가 있었나?"

"저희도 뒤늦게 알아챘습니···"

윤대용은 지천우의 말을 중도에 잘라내며 고함을 내질렀다. 연락이 끊긴 조가 있었다고?

"야이 개새끼야!! 그걸 말이라고 해? 똑바로 관리 안 해!?"

"죄, 죄송합니다. 회장님."

윤대용은 떨리는 가슴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힘겹게 내뱉었다.

"후우. 연락이 끊긴 조는 어느 지역에 투입된 녀석들이었지?"

"강원도에 투입된 녀석들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강원도에 전 병력을 투입해! 그리고 찾아!"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이윽고 멸살단장 지천우는 단원들을 이끌고 나갔다.

윤대용 회장은 미친곰을 추적을 명함과 동시에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였다.

제깟 놈이 홀로 뭘 어쩌겠는가.

그런데 그때,

윤대용의 핸드폰이 울렸다.

이 핸드폰은 멸살단원들과 연락을 할 때나 쓰던 핸드폰이었다.

놈이 다시 전화를 건 것일까?

윤대용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또 다시 이죽거리는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어. 영상 잘 봤어? 뒷내용 궁금하지 않냐? 난 꽤나 궁금한데.

"······."

-대답이 없어. 너희 말이야. 블랙오크와도 연관이 있더라? 한국 여자들을 조공으로 바쳤지?

"찢어 죽여주마."

윤대용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그러자 인우는 익살스러운 말투로 답했다.

-무서워 죽겠네. 니가 그렇게 까지 말해 주니, 나도 보답으로 한마디 할게. 윤대용. 니 새끼 머리통이 터져나갈 때까지 귓방망이를 후려쳐 주마."

뚜욱-

더 이상은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윤대용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정수리 부근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놈을 산채로 갈기갈기 찢어도 화가 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이제 곧 끝이 날 것이다.

멸살단의 모든 병력이 강원도로 투입되었다.

이제 놈은 독 안에 든 쥐였다.

제깟 놈이 제아무리 강해 봐야 멸살단 전부를 상대할 순 없을 것이다.

* * *

초인관리국은 비밀리에 SG그룹의 뒤를 캐고 있었다.

이번 사건에 투입된 인원은 사일런스 대장 배다정을 포함한 5명이었다.

엄청난 전력이었다.

그러나 배다정은 이번 작전이 못내 아쉬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번 작전에 정인우가 협력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인우는 박강중을 통해 명백한 거절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그는 도대체 어찌할 생각일까? 분명히 SG그룹과 대적한다고 했다.

그것도 홀로.

무식한 걸까 용감한 걸까.

배다정은 그런 생각을 하며 관리국의 회의실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번에 SG그룹과 관련해 큰 사건이 터져서였다.

그와 관련해 긴급회의가 소집된 것이다.

이윽고 배다정은 회의실로 입장했다.

기다란 직각 테이블에는 관리국의 국장과 각 지부의 팀장들이 보였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인 것 같았다.

배다정은 사일런스 팀원들과 함께 자리에 착석했다.

그리고 잠시 뒤, 회의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모두가 회의장 전면에 설치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 앞에는 강원도 지부 5팀의 팀장 박강중이 서 있었다.

박강중은 자료 화면을 띄우며 말하기 시작했다.

"화면을 보시면 미친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지난 5월 경. 나이트 길드 본부로 쳐들어가는 미친곰이 도로

박강중은 다음 화면을 띄우며 다시금 말을 이었다.

"나이트 길드 본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날 이후 나이트 길드는 사라졌습니다. 미친곰 단 한 사람에 의해서 말이죠."

미친곰의 과거 행적이었다. 물론 그의 과거가 다시금 언급될 만한 이유가 존재했다.

"그리고 오늘··· 다시금 미친곰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SG그룹의 동영상을 유포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동영상은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게다가 동영상은 저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뒷내용이 더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박강중은 거기까지 말한 뒤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곤 회의실 내부에 존재하는 문을 바라보았다.

박강중의 시선은 그 문에 박힌 듯 꽂혀 있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 내부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도 문으로 향했다.

이윽고 박강중의 입술이 열렸다.

"지금 이곳에 미친곰이 와 있습니다."

그 한마디에 회의실이 삽시간에 침묵으로 점철됐다.

꿀꺽.

누군가가 침을 넘기는 소리만이 회의실 내부에 울려 퍼질 뿐이었다.

< 066화 미친곰의 재등장, 그리고 전면전 선포 > 끝

ⓒ 호종이

< 067화 뒤통수 (1) >

한참의 침묵을 깨고 누군가가 물었다.

"박강중씨...정말로 이곳에 미친곰이 와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미친곰이 이곳에 와 있다.

이에 관리국 고위 직급자들의 시선이 모조리 문쪽으로 향했다.

미친곰이 누구인가.

한때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장본인이 아닌가.

그는 단신으로 나이트 길드를 개박살 낸 인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친곰은 그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SG그룹에게 선전포고를 날렸다.

이건 보통 놈이 아니었다.

SG그룹의 뒷조사.

관리국조차도 제대로 된 해결방안을 찾지 못한 문제다.

그렇게나 민감한 문제를 미친곰 혼자서 풀어나가고 있었다.

현재 SG그룹 사태를 몰고 온 장본인.

그가 바로 미친곰이었다.

드륵-

이윽고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곰 인형 탈을 뒤집어쓴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러자 좌중이 술렁거렸다.

"미친곰. 정말로 왔어."

"허어······."

동영상 속 모습 그대로였다. 갈색 인형 탈을 쓴 미친곰은 천천히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

뽀옥-

미친곰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푹신한 발바닥이 짓눌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 정도로 현재 이 공간은 침묵에 휩싸인 상태였다.

씰룩-

분위기에 맞지 않게 미친곰의 엉덩이에 부착된 동그란 꼬리가 씰룩였다.

저 귀여운 곰 인형이 정말 단신으로 길드 하나를 개박살 냈다고?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개인이 거대 길드를 박살 내기 위해선 무력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대범함과 판단력. 더불어 지능이 필요하다. 그에 입각해 보자면, 미친곰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놈일까? 또한, 미친곰의 정체가 무얼까?

모두의 시선이 미친곰에게 꽂혀 있었다.

이윽고 미친곰은 손을 움직여 배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미친곰이 말했다.

"시간 없으니 빨리빨리 해 보자고. 우선 이것부터 봐."

미친곰은 자연스럽게 말을 놓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에 대해 지적하지 않았다.

그저 미친곰이 내뱉는 말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미친곰의 목소리는 조금 인위적이었다.

미친곰은 다시금 걸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 핸드폰에 저장 된 동영상을 여기 스크린에 띄워줘."

"아, 네."

박강중이 답했다.

박강중은 미친곰의 모습을 보며 회상했다.

* * *

SG그룹에 대한 동영상이 이슈가 된 후 관련 자료들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던 박강중.

그날도 강중은 어김없이 자료 조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따르르릉.

"아, 씨. 바빠 죽겠는데 또 뭔 전화야."

투덜거리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의 이름을 확인한 순간.

박강중은 전화를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 인우 씨! 오랜만입니다!"

* * *

회상을 마친 박강중은 피식 웃었다.

'미친곰과 정인우가 동일인물일 줄이야. 하여간 정말 괴물 같은 사람이야.'

알면 알수록 감탄밖에 안 나오는 인간이었다.

정인우의 정체는 오직 박강중만이 알고 있었다.

박강중은 문득 생각했다.

정인우를 만난 게 어쩌면 자신의 인생에 큰 행운일지도 모른다고.

어쨌든 관리국과 협력하고 싶다던 정인우는 자신이 미친곰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렇기에 SG그룹 사태의 중요회의에 인우가 미친곰의 모습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미친곰에 대해, 회의에 참여한 자들은 일말의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미친곰을 신뢰한다기보다는 박강중을 신뢰했기에.

그만큼 관리국 내에서 입지가 탄탄한 박강중이었다.

어느덧 박강중은 미친곰의 핸드폰을 연결했다.

그러자 스크린에 동영상이 떠올랐다.

치직-

이어 동영상이 시작됐다. 영상은 인터넷에 떠돌고 있던 내용의 뒷부분이었다.

[···저희는 나이트 길드 본부에 존재하는 생체실험에 대한 흔적을 지우기 위해 불을 질렀습니다. 증거인멸을 위함이었습니다.]

[그 생체실험이 도대체 뭐였냐?]

[종류가 상당히 많습니다. 이지를 가지고 있는 데스나이트를 만들기 위한 실험. 트롤의 피를 인간에게 주입하여 재생력을 얻기 위한 실험. 각종 이종교배. 불로불사에 관한 실험. 그리고 전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드래···]

[니들이 그러고도 사람이냐?]

영상 속 미친곰은 다짜고짜 말을 끊으며 화를 내고 있었다.

영상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면, 그 생체실험에 연관 되어 있는 새끼들은 누구냐?]

[우, 우선··· 저희 SG그룹의 생체실험이었습니다. 저희는 나이트 길드를 앞세워 생체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바투 부족도 저희를 도왔습니다.]

[바투 부족?]

[···예. 브, 블랙오크들입니다.]

영상에 담겨진 뒷내용은 인터넷에 풀려 있는 것보다 수배는 더 충격적이었다.

블랙오크라니.

좌중은 단숨에 술렁였다.

그러면서도 동영상은 여전히 재생되고 있었다.

[블랙오크? 니 새끼들과 블랙오크들은 무슨 관계지?]

[저, 저희는 바투 부족의 도움을 받기 위해···]

영상 속 멸살단원이 말꼬리를 흐리며 주저했다. 그러자 미친곰이 멸살단원의 머리통을 향해 사정없이 펜치를 휘둘렀다.

퍽! 퍽! 퍽!

피가 튀었다.

미친곰이 스산히 물었다.

[두 번 안 물어.]

[크, 크으으으흑··· 말하겠습니다! SG그룹은··· 바투 부족에게 한국인 여자를 조공으로 바쳤습니다...]

조공.

그 말에 회의장은 단숨에 혼란으로 물들었다.

SG그룹.

그 미친 집단이 인간의 탈을 뒤집어쓰고 악마보다도 더한 악행을 저질렀다.

일련의 실종사건은 이를 통해 발생한 것이었다!

아귀가 척척 들어맞고 있었다.

동영상은 계속 재생되었다.

[호오. 지금도 계속 조공을 바치나?]

[지, 지금은 아닙니다. 바투 부족과의 거래는 끝났습니다. 그 때문인지 얼마 전에 바투 부족이 한국인 여자를 납치하기 위해 한국으로 넘어왔던 겁니다. 그 때문에 저희 멸살단은 관리국으로 이송되는 블랙오크가 혹시라도 저희에 대해 발설할 것을 대비해, 블랙오크를

사살했습···]

치직-

동영상이 끊겼다.

미친곰은 팔짱을 낀 채로 관리국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크게 분노했다.

주먹을 꽉 움켜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사람부터,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사람까지.

미친곰은 묵묵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러길 잠시.

관리국의 국장이 일어서더니 미친곰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어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저희 관리국은 SG그룹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아아, 잠깐만. 마무리가 남았어."

"에, 예?"

미친곰은 손바닥을 들며 국장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실례이지 않을까?

감사를 표하는 사람이 무안해질 지경이었으니까.

미친곰은 그러거나 말거나 어느덧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러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뚜우 뚜우.

긴 통화음이 들려왔다.

철컥.

오래지않아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미친곰은 핸드폰 액정에 떠오른 스피커 버튼을 터치했다.

그 뒤 핸드폰을 테이블에 올려다 두고 말했다.

"너 강원도에 애들 풀었냐? 그 머리로 어떻게 회장을 하고 있지? 내가 동영상 넘기길 바라는 거지? 어림없다 저능한 놈아."

-건방진 새끼. 네놈은 곧 생포당할 것이다. 어디 내 앞에서도 그렇게 건방을 떨 수 있는···

뚜욱.

인우는 윤대용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아마

윤대용 회장의 입장에서는 현재 인우가 관리국에 와 있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역시나 이 새끼 강원도에 애들 풀었나보네."

놈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떠보기라도 했던 것일까?

"······."

치밀하고도 전략적이다.

윤대용과의 통화를 이후로 회의장은 더더욱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미친곰은 그런 관리국 인간들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희들 뭐하냐? 너희도 들었잖아? 지금 강원도에 멸살단이 개떼처럼 깔렸다고."

"아, 아···!"

"모조리 생포하라고. SG그룹의 멸망이다. 자, 출동!"

미친곰이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국장은 사일런스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사일런스를 포함한 관리국의 최정예 부대가 강원도로 급파되었다.

* * *

퀸과 민철은 주택 거실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거실에서는 팜이의 잠꼬대가 들려왔다.

-파아아아······.

팜이는 붕대를 칭칭 감은 채로 퀸의 무릎을 베고 잠들어 있었다.

민철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내심 부러운지 팜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한참동안이나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결단코 주택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길 잠시.

한참 자리를 지키던 민철이 따분해 미치겠는지 엉덩이를 뗐다.

그러자 퀸이 다급히 말했다.

"주인님이 오늘은 일을 안 해도 된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가만히 집 안에만 있으라고······."

"알아요. 저도 형님 말을 어길 생각은 없습니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 될 테니까."

민철의 대답에 퀸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리곤 얌전히 잠든 팜이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민철이 헛기침을 내뱉으며 중얼댔다.

"크흠, 것 참 다 큰 녀석이······."

"다쳤잖아. 그리고 얘는 아직 어려."

퀸의 말을 끝으로 다시금 침묵이 감돌았다.

그러길 잠시.

어느덧 퀸은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더니, 어렵사리 입술을 뗐다.

"주인님은 괜찮겠지?"

"에···? 인우 형님 걱정하시는 거예요?"

"아니, 뭐··· 그냥."

"아니 저기요. 형님은 걱정할 필요 없어요. 차라리 형님에게 찍힌 SG그룹을 걱정하라고요. 제가 아는 인우 형님은 한번 물면 안 놓쳐요. 미친개랄까요."

"쿡."

그 말에 퀸은 양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음 짓고 있었다.

그 말이 맞다.

인우는 미개척지대에 대뜸 찾아와 그녀를 결단코 놓지 않았으니까. 민철의 말대로 한번 물면 놓치지 않는 미친개가 맞다.

한편, 민철은 쿡 하고 웃는 퀸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렇게 웃을 때는 또 소녀 같다.

'허, 참······.'

저 여자 참 매력이 끝도 없구나.

그런 생각도 잠시.

어느덧 민철은 인우를 떠올렸다.

민철 또한 사실은 인우가 걱정되긴 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전혀 걱정이 되지 않았다.

민철에게 있어서 정인우란 그랬다.

'형님은 정말 무서울 정도야··· 홀로 SG그룹을 격파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판단하고, 관리국을 이용할 줄이야. 강원도에 피바람이 불겠어.'

* * *

두두두두두두두두-!

초인관리국 본부에서 떠오른 헬리콥터 10대가 빠르게 하늘을 가르며 나아갔다.

박강중과 사일런스 배다정을 포함한 최정예 병력. 그리고 미친곰이 1호기에 탑승했다.

미친곰, 정인우는 난생 처음 헬리콥터를 탔다.

이 거대한 기계 덩어리가 자신을 싣고 날아오르다니. 참으로 신기하기 짝이 없다.

프로킨에서는 어찌나 하늘을 동경했는지 용용이를 키워서 날아다닐 생각만 했었다.

인우는 하늘을 참 좋아했다.

헬리콥터에 달린 창 너머, 그 아래에는 빌딩숲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헬리콥터를 하나 살까.'

인우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나저나, 헬리콥터를 탑승한 채로 강원도로 향할 줄이야. 역시 국가 소속의 관리국이라 그런지 스케일부터가 달랐다.

이윽고 인우는 맞은편에 착석해 있는 인물들을 바라보았다.

오른편 끝 쪽에 앉아 있는 박강중.

인우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관리국의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배다정.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다.

그러나 인우는 인형 탈 너머에 완벽히 감춰진 상태다. 끽해 봐야 몇 초 이후의 상황을 예지하는 그녀다.

애초에 투시능력이 아니고서야 인우를 알아볼 순 없을 거다.

'으음···'

여전히 배다정은 맞은편에 앉아 있는 미친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곰 인형 탈을 뒤집어썼기에 표정을 알아볼 순 없었다.

나아가,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낯이 익을까?

배다정의 감각이 지속적으로 꿈틀댔다.

이윽고 다정은 참지 못하고 미친곰을 향해 물었다.

"당신, 나 알죠?"

그 말에 미친곰은 대답 없이 고개를 저었다.

배다정의 옆에서는 박강중이 참 뜬금없다는 얼굴을 하며 리액션을 취해주었다.

이에 배다정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 말을 끝으로 한참동안이나 침묵이 감돌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헬리콥터는 빠르게 나아갔고, 이윽고 강원도에 들어섰다.

그러자 미친곰이 박강중을 향해 말했다.

"작전은 간단해. 내가 미끼가 될 거야. 당신은 관리국의 병력을 모두 이끌고 강원도 사냥터에 들어가 있어."

"어떻게 하실 참입니까?"

"지금 떼거지로 내려서 놈들을 잡으려고 해 봐야 대부분은 도망치겠지. 그러니, 아예 몰아서 잡는 게 현명한 방법 아니겠어? 내가 놈들을 모조리 끌고 강원도 사냥터로 갈게."

미친곰은 그 말을 끝으로 일어섰다.

그런 뒤 대뜸 헬기의 문을 열었다.

두두두두두두두-!

문을 열자 엄청난 소음과 함께 바람이 휘몰아쳤다.

이곳은 제법 높은 상공.

"강원도 사냥터 9존에서 대기하고 있어. 주변 건물에 숨어 있으라고. 놈들을 끌고 금방 갈 테니까. 모조리 잡아 보자고."

거센 바람에 의해 인우의 목소리는 더 없이 작게 들렸다. 그러나 이곳 헬기에 탑승해 있는 정예부대는 모두 알아듣고 있었다.

그들의 청력은 일반인들과는 궤를 달리하니까.

이윽고 미친곰은 그 말을 끝으로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새카만 어둠으로 물든 밤의 도시.

후우우우우우웅!!

짜릿한 추락이다.

인우는 머리를 아래로 향하게 만든 뒤, 더 빠르게 추락했다.

강한 바람이 온몸을 강타했고, 삽시간에 지상의 풍경이 눈앞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덧 인우의 육체가 지상과 가까워졌다.

그러자 인우는 용작두를 꺼내들었다.

그 뒤 지상을 향해 스윙을 날렸다.

후우우우우웅!

그러자 엄청난 풍압이 허공을 강타했다.

그에 대한 반발로 인우의 육체가 허공중에서 강한 저지력을 머금었다.

이어 다시금 수차례에 걸쳐서 스윙을 날렸다.

마스터 레벨에 닿은 스윙은 엄청난 풍압을 쏘아내고 있었다.

후웅! 후웅!

인우는 스윙의 반발력을 이용해 천천히 지상에 닿기 시작했다.

처억-

이윽고 인우의 발이 강원도의 땅을 밟았다.

< 067화 뒤통수 (1) > 끝

ⓒ 호종이

< 068화 뒤통수 (2) >

두두두두두두두!

헬리콥터의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음에 귀청이 떨어질 듯 했다.

"와아."

그럼에도 배다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활짝 열린 헬리콥터의 문을 비집고 고개를 빼꼼 내민 상태였다.

그리곤 미친곰이 뛰어내린 곳을 향해 시선을 내리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도대체 어떤 계열의 초인이길래 이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거지?"

극강의 탱커 계열이라도 되는 것일까?

배다정의 시선 끝, 그 까마득한 아래. 그곳에 미친곰이 대검을 휘두르며 바닥에 착지하는 모습이 보였다.

배다정의 인간을 초월한 시력에는 그 모습이 온전히 보이고 있었다.

"우와."

초인의 육체는 일반인과 비할 바 안 된다.

레벨에 따라 강철처럼 단단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어찌되었건 살과 뼈로 이루어진 육체다.

때문에,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선 스킬이 필요하다.

어떠한 스킬을 보유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나아가 보유 스킬의 레벨에 따라서, 전투력과 활용도는 천차만별이다.

예컨대, 배다정이 보유한 예지 계열의 스킬은 이 높이에서 추락한다면 그녀의 육체를 지켜줄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약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대한민국에서도 손꼽히는 최강자였으니까.

그녀는 그저 특성이 조금 다른 것일 뿐이다.

어찌되었건.

육체 레벨이 마냥 높다 해도 스킬 레벨이 부족하다면 전투력과 활용도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전사 계열인 것 같긴 한데······."

미친곰은 도대체 어떤 계열이기에 이 높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내릴 수 있던 것일까?

미친곰은 그저 허공을 향해 대검을 몇 번 휘두른 것이 고작이었다.

어떠한 스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마스터 레벨에 닿아 있는 스킬일 것이다.

"궁금해 죽겠단 말이지···! 흐앙."

분명 대한민국의 유명 랭커 중 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미친곰의 정체는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이윽고 배다정은 생각을 그치고는 헬리콥터의 문을 닫았다.

후우우우웅-

그러자 바람이 그치며 소음이 한결 줄어들었다.

헬기 안에서는 박강중이 다정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미친곰은 무사히 착지했습니까?"

"네. 저 사람 완전 터프하네요."

"네, 뭐. 그런 것 같군요."

그렇게 답한 박강중은 다정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이에 다정은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다 어렵사리 물었다.

"박 팀장님은 미친곰에 대해서 알고 계시죠?"

"저도 모릅니다. 그저 동영상을 바탕으로 잠시 협력을 취했을 뿐이죠."

강중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거짓을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다시금 침묵이 감돌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헬기는 강원도 사냥터 앞에 도착했다.

총 10대의 헬기가 줄줄이 소시지로 도착하며 초인관리국의 최정예 병력이 내려섰다.

이 밖에도 초인관리국 강원도 지부에 존재하는 모든 초인들이 이곳에 집결한 상태였다.

그 병력만 해도 500여 명에 달했다.

어느덧 박강중은 한데 뭉친 관리국 병력들을 향해 말했다.

"우리는 강원도 사냥터 9존에 몸을 숨길 것이다. 그런 뒤, 미친곰이 멸살단을 몰고 오면 놈들을 체포한다."

"알겠습니다!"

그 옆에서는 배다정이 사일런스 팀을 향해 따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사일런스 팀은 부상당한 하진성을 제외한 17명이었다.

다시 말해, 사일런스의 모든 인원이 소집된 것이다.

이번 작전은 그 정도로 중요했다.

이윽고 배다정이 말했다.

"나는 관리국 병력들과는 따로 움직일 거야. 나를 제외한 모든 팀원은 9존에서 대기하도록 해. 그리고 나는, 1존에서부터 미친곰을 기다릴 생각이야. 이것은 만반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함이니 모쪼록 모두 따라주길 바라."

"그러지."

"알겠다."

사일런스 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일런스 팀은 최강 랭커집단답게 상하의 개념보다는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윽고 모든 병력들이 강원도 사냥터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 * *

늦은 밤.

강원도 영월읍 근방의 시골길.

가로등마저 드문드문 달려 있는 이 길목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인적이 드문 이곳엔 고적한 바람 한줄기가 스칠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저 멀리에서부터 바람을 뚫고 다급한 외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잡아!"

외침이 들려온 방향에서는 한 무리의 사내들이 웬 곰돌이 인형을 뒤쫓고 있었다.

"미친곰을 잡아!"

"지천우 단장님께 먼저 보고해!"

"모든 멸살단을 영월읍으로 집결시켜!"

그들은 멸살단이었다.

현재 강원도로 넘어온 멸살단원은 도합 400명.

그들 모두가 미친곰 한 명을 추적하기 위해 강원도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강원도 곳곳에 흩어져 있는 그들이다.

그리고 현재 미친곰을 발견한 영월읍 수색조의 인원은 도합 일곱이었다.

이곳 영월읍에서 그들의 조가 미친곰을 발견한 것이다.

타다다다다닥!

일곱의 멸살단원들은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르기로 미친곰을 쫓았다.

엄청난 속력이다. 그러나 미친곰은 잡힐 듯 잡혀 주지 않았다.

"저 새끼!!"

"으아아아! 잡히기만 해 봐라!"

"어디까지 도망칠 셈이지!?"

이미 지원을 요청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모든 멸살단원들이 이곳으로 집결해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친곰이 제아무리 날래게 도주한다고 해도 잡힐 수밖에 없을 터.

그렇기에 그들은 이를 악물고 미친곰을 쫓았다.

이윽고 미친곰과의 거리가 제법 가까워질 무렵.

"내가 덮친다!"

어느덧 멸살단원 한 명이 도주하는 미친곰의 뒤통수를 향해 냅다 몸을 날렸다.

"흐아아앗!"

"······."

그러자 미친곰이 힐끗 뒤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그대로 용작두를 치켜들고 허공에 휘둘렀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후우우웅-!

엄청난 풍압이, 날아드는 멸살단원을 덮치기 시작한 것이다.

후우웅!

막강한 힘을 머금은 바람은 멸살단원을 그대로 날려 버렸다.

"으아아! 젠장!"

철푸덕!

풍압으로 인해 공중에 떠올랐던 멸살단원은 이윽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이 자식!"

그는 단숨에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 다른 단원들과 함께 다시금 미친곰을 쫓았다.

타다다닥!

도주하는 미친곰의 엉덩이에 붙어 있는 꼬리가 끊임없이 씰룩거렸다.

마치 자신들을 약 올리는 것처럼 보여 멸살단원들은 더욱 흥분하고 있었다.

"도망가 봐야 네놈은 독 안에 든 쥐다!"

그렇게 한참동안 미친곰과의 추격전이 지속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슈우우욱!

영월읍을 향해 하나 둘 지원 병력이 도착했다.

어느덧 7명이었던 병력은 50명이 넘어갈 정도로 불어난 상태였다.

"우리 조는 미친곰의 앞길을 차단한다!"

"우리 조는 측면이다!"

"후방은 우리 조다!"

인원이 많아진 그들은 조금 더 확실하고 체계적인 추격을 위해 포지션을 짰다.

상황이 이쯤 되자 미친곰은 열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50여 명의 멸살단원은 미친곰을 궁지에 몰았다.

아니, 분명 궁지에 몰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뭐, 뭐어···?"

"저, 저건 도대체!"

미친곰의 몸통에서 난데없이 푸른 아지랑이가 넘실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미친곰은 흡사 로켓포처럼 빠르게 내달리며 멸살단을 따돌리기 시작했다.

슈아아아아아아악!!

그 엄청난 속력에 흙먼지가 피어나며, 태풍과 같은 바람이 미친곰의 육체에서 뿜어지고 있었다.

미친곰은 단숨에 포위망을 뚫었다.

"미, 미친!!"

"자, 잡아!!"

* * *

[경험치를 5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5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5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5 획득하였습니다.]

.

.

['광폭화'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기가 라이트닝'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150레벨의 '광기 폭발'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

.

인우에겐 놈들을 유인하는 것도 성장의 일종이다.

달리고 숨 쉰다.

그것은 변치 않았고, 한동안 149였던 인우의 레벨이 150에 닿았다.

그러자 광전사의 7번째 스킬인 광기 폭발이 활성화되었다.

'드디어.'

인우는 여전히 전력을 다해 달리며 생각했다.

사실 인우의 레벨이 150에 닿아 있지 않았다면 지금 펼치고 있는 도주 작전은 굉장히 힘들 수밖에 없었다.

인우는 레벨이 오르며 활성화될 광기 폭발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150이 된 것이다.

광기 폭발.

이 스킬은 굉장히 유용하다.

아니 애초에 일정 레벨에 도달할 때마다 열리는 광전사 전용 스킬 중에 유용하지 않은 건 없었다.

현재까지 인우가 활성화시킨 광전사 스킬은, 내려찍기, 대검관통, 참살, 포효, 광폭화, 광폭난무이다.

이 모든 스킬들이 스킬 볼로 얻어낸 기술보다 더 자주, 그리고 더 유용하게 사용되곤 했다.

이윽고 인우는 새로 활성화된 스킬을 확인해 보았다.

.

.

.

7. [광기 폭발 Lv.1 (5%)] ? 일정 시간동안 광전사의 광기를 폭발시켜 스피드가 비약적으로 상승됩니다.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지속시간과 효력이 증가합니다.)

8. 다음 스킬은 200레벨에 활성화됩니다.

.

.

.

인우는 현재 궁지에 몰린 상태였다.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멸살단원은 도합 50여 명가량.

이들 모두가 강자이다.

일전에 인우는 팜이를 생포한 멸살단원 3명과 싸워 보았었다.

그리고 그때 느꼈다.

멸살단원의 무력은 각기 조금씩 다르겠지만, 평균적으로 바실리스크보다 조금 더 강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지금 인우는 50마리가 넘어가는 바실리스크에게 포위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멸살단원들은 지속적으로 불어났다.

강원도에 급파된 수백의 멸살단원들이 인우를 향해 쇄도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우는 여유로워 보였다.

어느덧 인우는 자신을 뒤쫓고 있는 놈들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그리곤 광기 폭발을 시전했다.

고오오오-!

그러자 인우의 육체에서 파란색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1레벨에 불과한 광기 폭발이기에 유지시간이 길진 않을 거다. 그러나 놈들과의 거리를 벌리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푸슈우우우우욱!

인우의 신형이 부스터를 단 것처럼 엄청난 추진력을 머금었다.

인우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용작두를 치켜들고 대검관통을 시전 했다.

그러자 광기 폭발과 더불어 대검관통의 추진력이 덧입혀졌다.

그 속력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대로 놈들을 이끌고 강원도 사냥터에 들어설 예정이었다.

그리고 이대로라면 인우의 계획대로 놈들을 모조리 강원도 사냥터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강원도 사냥터에는 관리국의 최정예 요원들이 배치된 상태일 것이다.

이대로만 가면 된다.

"잡아아아아아!"

놈들의 외침은 단숨에 멀어져 있었다. 그제야 인우는 속력을 조절했다.

너무 멀어지면 안 된다.

놈들이 끝끝내 자신을 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우는 조금의 여유를 찾자 힐끔 뒤를 바라보았다.

'개떼로군.'

등 뒤편으로는 50여 명이었던 멸살단원이 어느덧 수백으로 불어나 있었다.

잡히면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을 테다.

멈추는 순간 죽는다.

목숨을 건 질주.

발끝부터 올라온 짜릿한 쾌감이 정수리까지 치솟았다.

전신에 아드레날린이 퍼질 대로 퍼지기 시작했다.

생각 같아선 이대로 멈춘 채 놈들과 혈전을 벌이고 싶었다.

그러나 저 병력은 다르게 말해 바실리스크 수백 마리라고 보아도 된다.

30초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인우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강원도 사냥터를 향해 내달렸다.

이윽고 인우의 시야에 강원도 사냥터의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푸스스스스스스!

인우가 내달리고 있는 앞길에 막강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그 사내 또한 복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내의 복면은 다른 멸살단원들과는 다르게 붉은색이었다.

인우는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저 놈이 멸살단의 대가리로군.'

엄청난 기세였다.

인우의 등골을 비집고 싸늘한 식은땀이 한줄기 흘렀다.

붉은 복면의 사내. 그는 인우의 예상대로 멸살단의 단장인 지천우였다.

그가 내달려오는 인우를 향해 말했다.

"끝이다. 미친곰."

'이놈. 수하들의 보고를 토대로 나의 경로를 예측한 건가?'

생각도 잠시.

어느덧 지천우가 어깨너머로 거대한 대검을 빼들었다.

족히 2 m는 넘어 보이는 무지막지한 크기의 대검.

지천우는 마치 나뭇가지를 다루듯 커다란 대검을 가볍게 쥔 상태였다.

그러자 허벅지만큼이나 두꺼운 그의 팔뚝이 불끈거렸다.

"후우우우."

그의 팔뚝을 휘감고 있는 근육 덩어리를 비집고 거머리 같은 핏줄들이 꿈틀댔다.

육체적인 위압감만으로도 상당하다.

이윽고 지천우가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아압!!"

그러자 놈의 몸에서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저놈 봐라?'

인우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저 녀석 또한 전사 계열의 초인이었다. 빠르게 뚫고 도주해야 한다.

인우의 뒤에서는 수백 명의 멸살단원들이 내달려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내 인우도 지천우를 바라보며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아압!!"

인우의 육체에서도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이윽고 지천우와 정인우가 격돌했다.

< 068화 뒤통수 (2) > 끝

ⓒ 호종이

< 069화 뒤통수 (3) >

초인은, 개화한 특성에 따라 전투력이 천차만별로 나뉘곤 한다.

이를테면 보조 계열 특성의 경우 전투력은 형편없지만 아군을 돕는 보조 마법이 막강하다.

이처럼 특성에 따라 전투력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광전사라는 특성은 전투력만을 놓고 봤을 때는 열 손에 꼽힐 만큼 막강했다.

흔히 말해 히든 클래스.

광전사라는 특성은, 전사나 검사의 특성과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인우의 부하 중 한 명인 민철이가 전사 특성에 속했다.

어찌되었건 광전사는 흔한 특성이 아니다.

또한 광전사는 그 이름에 걸맞게 미친 전투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지금.

인우의 앞길을 막아선 지천우는 필시 광전사였다.

광폭화를 시전한 지천우는 단숨에 대검을 창처럼 꼬나 쥐었다.

그 자세만 보아도 명백하다.

쐐애애애애액-!

이내 지천우의 대검관통이 인우를 향해 쏘아져 왔다.

이에 인우는 대검을 들어 대검막기를 펼쳤다.

카앙-!

지천우의 거대한 대검과 인우의 용작두가 쇳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크윽!"

그러자 인우는 손아귀가 찢어질 듯한 통증을 느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지천우의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천우는 그 상태 그대로 내려찍기를 꽂기 시작했다.

"흐아아압!"

"해보자 이거지!"

인우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녀석과 마주한 채 내려찍기를 시전했다.

쾅! 쾅! 쾅! 쾅!

용작두와 거대한 대검이 마주 찍히며 천지가 개벽할 듯한 소음이 들려왔다.

지천우의 내려찍기는 엄청난 위력을 뿜어냈다.

녀석의 대검에도 푸르스름한 검기가 맺혀 있었다.

그것은 즉, 지천우 또한 내려찍기의 레벨이 마스터라는 뜻이었다.

게다가 지천우의 육체 레벨은 인우보다 훨씬 더 높았다.

그래서일까?

인우는 차츰 밀리고 있었다.

힘으로 녀석을 압도할 순 없었다.

판단이 끝난 순간 인우는 빠르게 태세를 전환했다.

인우의 용작두가 단숨에 방어태세에 돌입했다.

그와 동시에 인우는 마법을 펼쳤다.

"이거나 먹어라!"

쩌저저저저저적!!

대검을 쥐고 있는 인우의 손바닥에서 강력한 스파크가 튀었다.

그러자 지천우의 눈동자에 다급함이 깃들었다.

설마하니, 광전사가 그냥 마법도 아닌, 상당한 레벨의 마법을 쏘아 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쩌저저저적!

예상치 못했던 고위급 마법.

"제엔장!"

번개보다 빠른 기가 라이트닝이 단숨에 지천우를 덮쳤다.

"크아아아아아악!!"

85레벨의 전격이 꽂힌 지천우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버리고 입가에선 거품이 게워 나올 지경이었다.

지천우는 확실한 데미지를 입었다.

그리고 인우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전세는 빠르게 뒤바뀌었다.

인우는 용작두를 전방을 향해 내민 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후두두두두두!!

인우의 신형이 팽이처럼 돌며 지천우를 덮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천우는 이를 악물며 대검을 들고 방어했다.

카가가가가각!!

무언가가 갈리는 소음과 함께 지천우는 차츰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밧!!

지천우가 밀린다.

인우는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인우의 신형이 토네이도처럼 지천우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천우는 고함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압!"

그리고 그 순간.

지천우는 어처구니없게도 대검을 놓아 버리는 게 아닌가?

파바바바바박!!

그러자 당연하게도 인우의 용작두가 지천우의 전신을 갈아 버릴 기세로 짓누르기 시작했다.

"크으으으윽!!"

지천우는 광폭난무의 타격을 그대로 받으면서 눈을 부릅떴다.

"죽여주마!"

두우우웅-!

지천우의 눈동자가 살벌하게 번뜩였다.

그리고······.

지천우가 놓았던 거대한 대검이 허공에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후우우웅-!

이것은, 지천우가 가지고 있는 스킬 중 가장 강력한 기술이었다.

지천우는 스킬을 쏘아 냈다.

쿠와아아아!

그러자 지천우의 거대한 대검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인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무지막지한 공격에 인우는 즉시 광폭난무를 거뒀다.

그리곤 눈을 부릅뜬 채로 대검과 맞섰다.

그러면서 인우는 힐끔 뒤를 바라보았다.

-우와아아아아! 저기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타다다닥!

지천우와 맞서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인우의 뒤편에서는 여전히 멸살단 놈들이 내달려오고 있었다.

500여명의 멸살단.

놈들은 인우를 바라보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지천우 단장님이 놈을 잡았다!!"

"더 빠르게 달려!!"

"이대로 놈을 생포한다!!"

상황은 일촉즉발이었다.

앞에는 1:1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괴물 같은 놈이 지키고 있었고, 뒤에서는 500여 명의 멸살단원 놈들이 내달려오고 있다.

인우는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앞이든 뒤든 포위를 뚫어 사냥터로 들어서야만 한다.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빈틈을 내주고 활로를 뚫는다!'

인우는 빠르게 판단했다.

활로를 뚫기 위해선, 치명상을 입을 각오 정도는 해야 될 것이다.

인우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 * *

한편.

관리국의 정예 병력은 모두 9존에 들어선 상태였다.

그리고 배다정은 사일런스를 9존에 투입시킨 뒤 홀로 1존을 지켰다.

언제라도 미친곰이 온다면 합류하여 도울 참이었다.

또한, 그녀는 예지 스킬을 이용해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하려 했다.

미친곰이 제아무리 두뇌가 비상하고 막강한 전투력을 지녔다고 해고, 멸살단 전원을 몰아서 데리고 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쾅! 쾅! 쾅! 쾅!

흐아아아압!

사냥터 바깥쪽에서 고함소리와 함께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건 전투할 때나 들려오는 소음이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배다정은 그 즉시 신형을 날려 사냥터 입구로 내달렸다.

그러자 그녀의 시선 끝자락에 미친곰과 수백의 멸살단원들이 보였다.

미친곰은 고함을 내지르며 수백여 명에게 둘러싸인 채 난자당하고 있었다.

저 상태라면 1분도 채 견디지 못할 것이다.

다정이 판단하기엔 그래 보였다.

"저런 무모한!!"

그녀는 눈을 부릅떴다.

그리곤 허리춤에서 가느다란 바늘 같은 검을 빼들었다.

동시에 병력을 호출하고자 무전기를 꺼냈다.

그때.

"으아아아아압!! 나와 개자식들아!!"

포효를 내지르는 미친곰.

그리고 그 포효에 잠시 움찔하는 멸살단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미친곰은 무차별적으로 용작두를 휘두르며 길을 뚫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성난 코뿔소 같았다.

배다정은 그 모습에 기겁을 했다.

나아가 할 말을 잃었다.

분명 위험해 보였다.

그래서 도움을 주려고 했다. 그러나 미친곰은 활로를 뚫고 있었던 것이다.

"목숨을 걸고 도박이라도 한 건가··· 대단하네······."

하긴.

그간의 미친곰은 덤벼 온 집단을 벌집 쑤시듯 난자하곤 했다. 웬만한 간 덩어리를 가지고는 그런 일을 벌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괜한 걱정을 한 건 아니었을까.

"내가 오지랖을 부렸었네."

배다정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몸을 뺐다.

이대로라면 미친곰은 멸살단원들을 이끌고 무사히 9존까지 향할 수 있을 것이다.

* * *

강원도 사냥터에 사람이 없는 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관리국은 비밀리에 입장 제한을 걸어 둔 상태였다. 그러니 더더욱 초인들이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관리국의 병력들은 9존에서 대기했다.

그들은 저마다 9존 곳곳에 포진된 건물에 은신한 채로 숨을 죽이고 있었다.

확실히 이곳을 향해 멸살단 전원이 들어선다면 완벽한 일망타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강원도 전역을 이 잡듯 뒤지며 놈들을 하나하나 체포하는 것보다는 나을 수밖에 없다.

현재 이 작전은, 간단해 보이지만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이 모든 작전을 구안해 낸 것은 다름 아닌 미친곰이었다. 더 이상 놀라울 것도 없다.

관리국은 그저 미친곰을 믿고 이곳에서 대기만 하면 된다. 멸살단은 기필코 미친곰을 잡기 위해 쫓아올 것이고, 미친곰은 기필코 멸살단을 사냥터에 몰아넣기 위해 도주할 것이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저편에서부터 시끌벅적한 외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미친곰! 도망가 봐야 부질없다! 미개척지대를 넘어서 헬게이트까지 도망이라도 칠 참이냐?"

"쿡쿡! 미친곰. 꽁지 빠지게 도망가는 꼴 좀 보라지! 그렇게 까불대더니 꼴좋구나!"

"이곳 사냥터가 미친곰 네놈의 무덤이 될 것이다!"

"벌써 9존이다 미친곰아! 얼마나 더 도망칠 생각이냐?"

후다다다닥!

복면인들의 외침이 들려오는 끝자락.

그 최전방에 곰 인형 탈을 뒤집어쓴 사내가 보였다.

그 모습에, 9존 건물에 은신하고 있던 관리국의 팀원들은 저마다 긴장한 채로 칼을 빼들었다.

이윽고 미친곰은 9존의 중앙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 순간.

미친곰이 포효하기 시작했다.

"나-와!!"

미친곰의 신호가 떨어지자 9존 사방의 건물에서 관리국의 정예병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더불어 사일런스의 팀원들마저도.

그렇게, 멸살단 500명은 단숨에 포위됐다.

그제야 인우는 도주를 멈추고 씨익 웃었다.

그리고 익살스러운 목소리로 허둥지둥 대고 있는 멸살단을 향해 이죽댔다.

"너거들은 모조리 다 체포다 새끼들아."

그러자 포위당한 멸살단원 놈들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소리쳤다.

"···아, 미, 미친!"

"뭐야 갑자기 이 많은 인원이라니!"

"하, 함정이었어!"

"미친곰이 우릴 함정에 빠뜨린 거야!"

멸살단장 지천우마저도 눈을 부릅뜬 채 당황하고 있었다. 미친곰은 검지를 치켜들어 멸살단을 가리키며 낄낄대고 있었다.

"미, 미친곰··· 이 영악한 놈!!"

"난 힘을 다 빼 놨다고. 뒤를 부탁해 친구들."

미친곰은 그 말을 끝으로 저만치 뒤로 물러섰다.

그러더니 얄밉게도 팔짱까지 낀 채로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관리국의 최정예 병력이 멸살단을 덮치기 시작했다.

미친곰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통쾌한 웃음을 머금었다.

과연 관리국 최정예 병력은 엄청난 기세를 뿜어내며 멸살단을 압박하고 있었다.

게다가 사일런스 팀원의 위력은 그보다 훨씬 더 막강했다.

역시나 괜히 국가 소속의 무력단체가 아닌 것 같다.

미친곰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돌연 무언가가 떠오른 미친곰은 배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러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리곤 핸드폰을 위로 올려 얼굴과 마주보게 했다.

뚜우. 뚜우.

인우의 핸드폰 액정엔 곰돌이의 얼굴이 보였다.

긴 통화음 끝에 액정이 검정색으로 바뀌었다.

-영상통화라니. 우습구나. 울며 비는 모습을 보여주기라도 할 참이냐? 사정해봐야 소용없다. 넌 이제 끝이다 미친곰.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윤대용 회장이었다.

인우는 윤 회장의 목소리에 큭큭대며 웃었다.

그러자 윤 회장이 물었다.

-두려움에 실성이라도 했나?

"아, 아니. 큭큭. 그게 아니라, 너무 웃겨서."

-드디어 미쳤군. 아니, 본래 미쳐 있었나?

윤 회장의 말에 인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향한 핸드폰을 돌려 전투현장을 보여 주었다.

인우의 핸드폰은 멸살단이 관리국 소속 초인들에게 실컷 얻어터지는 장면을 여과없이 보여 주고 있었다.

그리고 윤대용 회장을 향해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야, 잘 보이냐? 이거 생중계라고. 이거 보여 주려고 전화했어. 어떡하냐? 니 이제 끝난 것 같은데?"

< 069화 뒤통수 (3) > 끝

ⓒ 호종이

< 070화 SG그룹의 몰락 >

SG그룹의 악행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들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생체실험과 블랙오크들에게 여자를 조공으로 바쳤던 것을 포함하여, 자잘한 비리와 범죄가 양파처럼 까여져 나왔다.

그 중에는 효성동 초인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실험실도 존재했다.

효성동 9존.

그곳에 SG그룹의 생체실험실이 존재했던 것이다. SG그룹은 그곳 실험실을 유지하기 위해 사냥터 관리 공무원에게 뒷돈을 찔러 준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사냥터 관리직들에 대한 물갈이가 대거 이루어졌다.

어찌되었건,

그곳에서 이루어진 생체실험은 초인의 시체와 리빙아머가 재료로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간 사냥터에서 실종되거나, 시체조차 남지 않았던 초인들이 꽤나 존재했었다.

그들 모두가 SG그룹 생체실험의 희생양이 된 것으로 보였다.

이밖에도 공갈, 협박, 살인은 기본 옵션이었다.

이와 같은 SG그룹의 악행에 대한민국은 뒤집혔다. 그간 겉으로 드러났던 SG그룹은 자선사업과 봉사로 포장되어 있었기에 그 놀라움과 반전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SG그룹의 악행을 만천하에 공개한 미친곰은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누군가는 미친곰을 이 시대의 영웅이라 칭송했고, 누군가는 미친곰을 모방하며 사칭하기도 했다.

미친곰이 입고 다니는 갈색 곰 인형 탈을 만든 회사의 주가가 뛸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이른바 미친곰 효과.

미친곰은 대한민국에 커다란 파급효과를 가지고 온 것이다.

정인우는 그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거실에 드러누워 팝콘을 으적 대고 있었다.

멸살단을 생포하고 SG그룹이 몰락해 가는 지난 4일간, 정인우는 정말로 숨만 쉬면서 주택에 틀어박혀 있었다.

놀라운 것은, 고작 숨만 쉬었을 뿐인데도 1레벨 업을 했다는 것이다.

인우는 지구로 귀환한 뒤 처음으로 휴식다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러닝머신과 사냥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그럴 만한 이유가 존재했다.

현재 인우는 꽤나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날, 멸살단 놈들을 몰고 다니며 크고 작은 상처가 온몸을 가득 메웠다.

인우는 여전히 거실에 누워 있었다.

이윽고 인우는 거실 저편에 잠들어 있는 팜이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배를 내민 채 대짜로 뻗어 있었다.

"읏차!"

인우는 뒹굴뒹굴 굴러서 잠든 팜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인우는 녀석의 배에다 머리를 올렸다.

-파아아.

그러자 잠든 녀석이 조금 뒤척거렸다.

"하. 세상 편하다."

베개(?)의 상태는 매우 훌륭했다. 녀석이 숨을 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박자감에도 묘한 평온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윽고 인우는 리모콘을 들고선 TV를 켰다.

때마침 저녁 뉴스가 한창이었다.

-···미친곰이 몰고 온 SG사태 이후. 관리국은 경찰과 연계하여 정식으로 수사에 착수했었습니다. 수사 첫날.

오늘로 수사 4일째. 거듭 드러나는 SG그룹의 악행에 윤대용 회장은 자취를 감췄었습니다. 전국적인 수배령이 떨어졌고, 관리국과 경찰은 마침내 오늘 새벽 2시경 윤대용 회장을 체포했습니다.

발견 당시 윤대용 회장은 만취 상태였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한편 윤대용 회장이 발견된······

"저 새끼. 결국 잡혔네. 계속 도망 다니면 내가 직접 찾아서 강냉이를 모조리 뽑아 주려고 했는데. 운이 좋네."

인우는 여전히 팝콘을 씹어 대며 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따라 팝콘이 더더욱 고소했다.

왜 이렇게 고소할까?

"새끼가. 그러니까 왜 날 건드려 가지고."

인우는 그렇게 투덜댔다.

"그나저나 조금 아쉽긴 하네. 며칠만 더 도망쳐 다니지. 너무 빨리 잡혔어."

사실 상처가 깊지 않았다면 당장에 윤대용의 뒤를 쫓았을 인우였다.

관리국보다 놈을 먼저 발견해서 실컷 후드려 패준 뒤 넘겨주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오늘에 이르러서야 조금 회복이 된 것 같았으니까.

지난 4일간 정말 많은 고생을 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멸살단 놈들은..."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날.

관리국의 정예 병력은 모든 멸살단을 체포하지 못했다.

단장 지천우를 포함한 서른 명의 멸살단이 도주에 성공한 것이다.

"관리국이 병력을 대거 풀었으니 걔들도 곧 잡히겠지 뭐."

알 바인가.

인우는 신경을 끄기로 했다.

어찌되었건 인우를 귀찮게 했던 SG그룹은 몰락했으니 더 이상 손을 쓰고 싶지도 않았다.

남은 것은 관리국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자동 사냥이 따로 없다.

이 얼마나 편한 세상인가?

귀찮은 혹도 관리국을 이용해 간편하게 떼고, 남은 찌꺼기까지 처리해 준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인우에게 만큼은 정말로 살기 좋은 곳이었다. 인우는 언제든지 관리국을 주무를 만한 미친곰이었으니까.

이윽고 인우는 티셔츠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배를 벅벅 긁어 댔다.

그리고 그즈음, 현관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하루 일과를 마친 퀸이 주택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주인님. 몸은 좀 괜찮아지셨어··· 어엉······."

퀸은 말을 뱉다 말곤 돌연 얼굴을 굳혔다. 그러더니 양손으로 볼을 감싸 쥐는 것이 아닌가?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여전히 반쯤 풀어헤쳐진 티셔츠 사이로 드러난 배를 긁으며 답했다.

"뭐, 말하다 마냐. 많이 좋아졌지."

"···네에."

퀸은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심장이 사춘기 소녀처럼 두근두근 뛰었다.

그러다가 무언가 아쉬운 지 다시금 힐끔거리며 인우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인우의 티셔츠 사이로 드러난 선명한 복근이 눈에 확 들어왔다.

'끄앙...'

그간 퀸이 생각해 왔던 복근이라고 해 봐야, 뱃가죽이 굳어서 듬성듬성 드러난 채로 주름이나 쩍쩍 그어진 고깃덩어리?

정도로 취급해 왔었다.

그런데 정인우의 복근은 달랐다.

군살 하나 없는 빨래판 같은 복근은 볼수록 매끈했다.

퀸은 저 복근을 만져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인우가 아무렇지도 않게 손으로 긁어대는 저 복근을, 자신도 아무렇지도 않게 만져보고 싶었다.

그렇게 퀸은 인우의 복근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망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인우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망상은 황급히 달아났다.

"야, 뭐하냐. 니 표정 가관이야."

"아아. 아니여요. 바, 밥 먹을래요?"

"됐고. 팝콘이나 좀 튀겨와."

"아아, 네에!"

퀸이 힘차게 답하며 단숨에 주방으로 향했다.

인우는 그런 퀸의 뒷모습을 시큰둥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 * *

초인 관리국 강원도 지부.

지부 건물 내에 있는 어느 한 방.

그 방에 놓여 있는 책상엔 사람이 한 명 앉아 있었다.

그리고 책상에 놓인 명패에는···

지부장 박강중.

박강중의 이름이 적힌 명패가 있었다.

이번 SG그룹 사태 해결에 있어 가장 큰 도움을 준 미친곰을 섭외한 박강중이었다.

그 공로를 인정 받아 강원도 지부의 지부장으로 승진을 하게 된 것이었다.

책상에 조용히 앉아 서류를 검토하던 박강중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 * *

박강중은 SG그룹의 사태가 마무리되고 나서 정인우에게 연락했을 당시를 떠올렸다.

관리국에서는 가장 큰 공을 세운 미친곰에게 표창을 주려고 했다.

그리고 그 표창과 더불어 관리국 내에 좋은 자리를 주어 자신들의 사람으로 포섭을 하고자 했었다.

그 징검다리로 박강중이 채택되었고, 정인우와 접선을 하였다.

'정인우 씨, 저희와 함께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번 공로로 대통령께서도 정인우 씨의 섭외를 제안하며 대통령 표창을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난 대통령 표창 따윈 관심도 없는 사람이라고. 게다가 공무원은 딱 질색이야.'

'······.'

그 거절에 박강중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나 항상 예상 밖의 결말을 가져오는 사람이었고, 이번에도 역시 그랬다.

결국. 미친곰은 자신의 신변이 밝혀지는 걸 꺼려한다며 표창은 취소가 되었다.

대신, 강원도 지부 앞에 미친곰의 동상을 세우는 걸로 표창 건이 마무리가 되었다.

생각을 마친 박강중.

그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말을 내뱉었다.

"참 볼수록 특이하고 대단한 사람이란 말이지······."

인우를 만난 일이 역시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박강중이었다.

* * *

중국 베이징.

바투 부족의 본거지인 거대한 빌딩 안에서는 긴급회의가 시작되고 있었다.

거대한 테이블 끝자락 상석에는 바투가 팔짱을 낀 채 간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위대한 전사 바투. 한 번만 더 생각해주십시오. 놈들은 인간입니다."

바짝 마른 간부가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 있는 우락부락한 블랙오크 간부가 받아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 이상 한국에 머물 수 없어 우리에게 온 것입니다. 한국보다는 이곳이 더 안전하다 여긴 거겠지요. 30명에 가까운 정예 병력입니다. 그들의 뜻대로 거두어 주시는 게 합당하다고 봅니다."

그 말에 마른 간부는 부르르 떨며 질색을 했다.

"위대한 혈통인 바투가 이끄는 우리 부족에 인간들을 받아들이자니! 그 어찌 해괴망측한 소리인가!"

"허, 참. 우리는 중국인 노예와 한국인 노예까지 키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들도 그저 우리의 노예로 삼으면 될 일 아닙니까? 인간 전투 노예로 말입니다."

"이, 익!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될 말이다! 제아무리 다른 부족들의 경계가 심하다고 해도, 힘 조금 얻자고 인간을 받아들인다니! 네 이노옴!"

"진정하십시오. 안 그래도 홀쭉한 몸인데 살이 더 빠지겠습니다?"

덩치 큰 간부는 이죽대기 시작했다.

블랙오크들에게 있어서 덩치란 자존심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눈앞에 있는 바짝 마른 블랙오크는 간부의 직급을 꿰차기엔 한 없이 부족해 보였다.

물론 그러한 판단은 덩치 큰 간부의 생각일 뿐이었다.

애초에 족장 바투는 덩치를 제외하고서라도 판단력과 두뇌가 좋은 블랙오크들도 간부로 뽑았던 것이다.

이것은 다른 부족과는 차별된 바투만의 방식이었다.

이윽고 상석에 앉아 있던 바투가 팔짱을 풀며 그들을 중재했다.

"그만."

"······."

"······."

그 한마디에 두 마리의 블랙오크들은 단숨에 입을 꾹 다물었다.

바투의 말은 곧 법이었으니까.

이윽고 바투는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그놈들을 이곳으로 들여보내라."

바투가 회의실 바깥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회의실의 문을 비집고 복면을 뒤집어쓴 30명의 사내들이 들어섰다.

그들 중 유독 근육질을 가지고 있는 붉은 복면의 사내가 앞서 들어왔다.

이윽고 붉은 복면의 사내는 바투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가 무릎을 꿇자, 뒤에 있던 검은 복면인들도 모조리 무릎을 꿇었다.

바투는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바투의 얼굴에는 어떠한 표정도 드러나 있지 않았다.

이윽고 붉은 복면인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희를 받아주시면, 13개 부족 통합을 돕겠습니다."

붉은 복면인.

그는 멸살단장 지천우였다.

바투는 그런 지천우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그러더니 돌연 말을 꺼냈다.

"좋다."

그 한마디에 회의장에 모여 있던 블랙오크들의 표정이 제각각 구겨지거나 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투의 말이었기에 그들은 감히 토를 달지 않고 있었다.

바투는 잠시의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단, 테스트를 한다. 너희가 쓸 만한 전투병인지 알아야 하니까."

말을 마친 바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지천우는 고개를 들고 바투를 바라보았다.

익히 들어왔지만 실제로 보니 듣던 것보다 훨씬 더 컸다.

바투의 키는 못해도 3미터는 되어보였고, 바투가 풍기는 기세는 이곳 모두가 주눅이 들 정도였다.

어느덧 바투가 지천우를 향해 말했다.

"니가 대장이겠지. 일어서라."

그러자 지천우가 일어섰다.

바투는 그런 지천우를 향해 다시금 말했다.

"나를 상대로 1분을 버티면 네놈들을 받아주겠다. 만일 버티지 못한다면 당장에 목을 쳐 주지."

그 말에 지천우의 이마가 미세하게 꿈틀댔다.

지천우가 가진 무력은 멸살단의 단장 직급을 충분히 꿰찰 만큼 강하다.

그런데 1분이라니.

지천우의 내심으로는 바투 부족과 협력하여 다시금 재기할 꿈을 꾸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마주친 바투는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협력은커녕 노예로 삼으려 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이제와서 다시금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돌아간다 해도 초인관리국의 수사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나아가, 이곳에 들어오는 것은 마음대로였겠지만, 다시 나가는 것은 지천우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곳은 바투의 영역이고 모든 것은 바투의 뜻대로 이루어질 터.

피할 수 없다.

지천우는 이를 갈았다.

1분?

웃기지도 않는다.

'블랙오크. 인간을 너무 과소평가하는군.'

어느덧 블랙오크 간부 한명이 지천우에게 대검 하나를 건네주었다.

바투가 대검을 쥔 지천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주무기가 대검이라 들었다. 마음껏 발광해 보도록."

"크아아아압!"

지천우가 기다렸다는 듯이 움직였다.

그러자 바투는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지천우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 냈다.

저 덩치에 이런 스피드라니?

지천우의 눈동자가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놀라움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바투는 수십 초가 지나는 동안 단 한 번의 공격도 허용치 않았던 것이다.

지천우의 자존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마침내 바투가 주먹을 말아 쥐며 공격을 시도했다.

바투는 날아드는 대검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카앙!

대검의 검신이 거대한 바투의 주먹에 의해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크, 크헉!"

바투의 거대한 왼 손이 지천우의 목을 틀어쥐고 있었다.

바투는 움켜쥔 지천우를 허공에 띄웠다.

그러자 지천우는 대검을 놓고선 온 힘을 다해 바투의 손을 떨쳐내기 위해 발악했다.

그러나 바투의 앞에선 어린 아이의 발버둥밖에 되지 못했다.

점차 지천우의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멸살단원들은 어찌나 놀랐는지 저마다 몸을 부르르 떨어대고 있었다.

이윽고 점차 정신을 잃고 있는 지천우의 귓가에 바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쓸만 하군."

바투는 그렇게 말하며 지천우를 내던져 버렸다.

그리곤 다시금 말을 이었다.

"받아주지. 그런데, SG그룹을 무너뜨린 녀석이 누구라고 했지?"

어느덧 바투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떠올라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놈이기에 SG그룹을 몰락시켰던 것일까?

< 070화 SG그룹의 몰락 > 끝

ⓒ 호종이

< 071화 재회 (1) >

SG그룹의 멸망.

그 뒤로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지난 한 달간 인우는 모처럼만에 평화로운 일상을 보냈다. 인우의 일상은 늘 그렇듯 괴수들을 도륙하고 온종일 뛰어다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일상은 인우에게 늘 놀라운 결과물을 안겨다 주곤 했다.

한 달간 획득한 경험치는 실로 놀라울 정도였으니까.

그것이 어느 정도였냐 하면, 12개의 스킬을 Master 레벨까지 올린 것이다. 그밖에도 마나 드레인과 기가 라이트닝은 마스터레벨이 코앞이었다.

어찌되었건 지금은 12개 스킬이 마스터였다.

과거였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경지다.

"후우. 후우."

지금 인우는 사냥을 마치고 집으로 달려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경험치는 올랐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며 집으로 향하던 중, 반가운 알림이 떴다.

['마나 드레인'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마나 드레인'의 레벨이 ' Master'에 도달했습니다.]

['기가 라이트닝'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기가 라이트닝'의 레벨이 ' Master'에 도달했습니다.]

"이제 14개 스킬 마스터인가?"

인우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3개 마스터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4개 마스터라니.

이젠 정말 인우조차도 자신이 무서워질 지경이었다.

어느덧 인우는 마스터를 자축하며 스킬창을 열어보았다. 앞의 스킬들은 빠르게 넘겼다.

1. [내려찍기 Master] - ...

2. [대검관통 Master] - ...

3. [참살 Master] - ...

4. [포효 Master] - ...

5. [광폭화 Master] - ...

6. [광폭난무 Master] - ...

7. [광기 폭발 Lv.69 (15%)] ? 일정 시간동안 광전사의 광기를 폭발시켜 스피드가 비약적으로 상승됩니다.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지속시간과 효력이 증가합니다.)

.

.

훑기도 잠시.

어느덧 인우는 광기 폭발을 잠시 바라보았다. 배운지 얼마 되지 않은 스킬이다. 멸살단과의 추격전 도중에 생성된 광전사의 스킬이었으니까. 그런데 고작 한 달 만에 69레벨을 찍었다.

이제는 그저 헛웃음을 한 번 뱉어내며 놀라움을 덜어 낼 뿐이었다.

무지막지한 성장력에 차차 적응이 되어 버린 상태였으니까.

'이제는 대검을 어떻게 휘둘러도 마스터 스킬이 시전될 지경이지.'

그리고 인우는 그간 마스터 레벨에 몇 차례 도달하며 한 가지 기준이 생긴 상태였다.

스킬이 마스터 레벨까지 도달하기 위해선 대략 100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다.

100일.

놀랍다 못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자그마치 스킬의 마지막 경지를 고작 100일만 투자하면 이룰 수 있었다.

이것은 모두 절대자의 걸음과 호흡 덕분이었다.

어찌되었건, 스킬 레벨은 오를수록 필요 경험치가 비약적으로 상승된다.

물론 그래 봐야 인우에게 문제될 건 없었다.

인우는 이어서 다음 스킬들도 훑어보았다.

.

.

8. 다음 스킬은 200레벨에 활성화됩니다.

9. [스윙 Master] - ...

10. [파이어 볼 Master] - ...

11. [세게 치기 Master] - ...

12. [연속 차기 Master] - ...

13. [대검 막기 Master] - ...

14. [회심의 일격 Master] - ...

15. [마나 드레인 Master] - ...

16. [기가 라이트닝 Master] - ...

17. [암기투척 Lv.85 (3%)] - ...

방금 전 마나 드레인과 기가 라이트닝이 마스터에 도달했다. 그리고 이제 인우의 스킬 중에 성장의 여지가 남은 기술은 암기투척과 광기 폭발뿐이었다.

광전사의 다음 스킬은 200레벨이나 되어야 열리기 때문에 이 두 가지가 전부다.

현재 인우의 육체 레벨은 176이었고, 200레벨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이긴 했다.

이러나저러나 스킬 볼을 통한 새로운 스킬 습득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유니크 스킬 볼의 매물만 있었다면 바로바로 구매했을 텐데.'

그렇지 않아도 인우는 지난 한 달간 유니크 스킬 볼을 구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러나 드랍은 요원했고, 시장에 풀린 매물도 드물었다. 그 마저도 누군가가 잽싸게 구입하여 인우는 늘 한 발 늦고야 말았다.

현재 인우는 대략 500억 가량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는데, 유니크 스킬 볼의 매물만 충분했다면 당장에 10개라도 구매할 수 있는 거금이었다.

'돈이 많으면 뭘 해. 아오.'

그렇다고 몇 천 만원 밖에(?) 안하는 전사 계열의 액티브 스킬을 배우고 싶진 않았다.

물론 배운다면 배우겠지만, 이왕 돈을 투자하는 김에 유니크 스킬 볼에 올인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이었다.

전사 계열의 스킬은 지금도 충분히 차고 넘치지 않은가. 그렇기에 유니크 스킬 볼을 통한 타 클래스의 스킬이 절실했다.

만약 유니크 스킬 볼을 통해 성직자 계열의 스킬이 습득된다면···?

생각만으로도 무서워질 지경이다.

"후우. 후우."

인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여전히 달렸다.

아침 공기가 제법 시원한 것이 딱 좋았다.

오늘은 밤새 사냥을 했기 때문에 아침이 되어서야 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가 인우의 시선이 어딘가에 닿았다.

그곳은 바로 강원도 지부 초인관리국이었다.

그곳 앞에는 미친곰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고, 이른 아침임에도 몇몇 젊은이들이 동상 옆에서 포즈를 취한 채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현재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미친곰이 가진 인기가 이 정도였다.

이윽고 인우는 잠시 멈추곤 자신의 동상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미친곰은 인우의 또 다른 모습.

어느덧 인우는 볼을 긁적이며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흐음······."

동상은 제법 멋졌다.

큼지막하기도 했으며, 구릿빛이 감돌며 위풍당당한 기세를 뽐내고 있었으니까.

다만, 아무래도 곰 인형의 모습이었기에 조금 귀여운 면이 보였다.

어느덧 인우는 동상에서 시선을 거뒀다.

그러다가 인우는 불현 듯 무언가가 생각났다.

"아, 관리국 본 김에 초인증이나 갱신 받을까?"

생각해보니 초인증을 마지막으로 갱신 받은 뒤 꽤나 지난 것 같았다.

초인증은 3개월 마다 한 번씩 갱신해 줘야 하기 때문에 이왕 들른 김에 해결을 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아마, 인우가 마지막으로 초인증을 갱신 받았을 때의 레벨이 100이었을 것이다.

당시 인우는 3개월 100레벨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고, 관리국은 뒤집혔었다.

그리고 이번엔 두 번째 갱신이었다.

* * *

<정인우>

레벨 : 176

특성 : 광전사

*초인증은 3개월 마다 한 번씩 갱신이 필요합니다.

"···하하하······."

이제는 강원도 지부장이 된 박강중이 멋쩍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조금 전.

관리국의 데스크 공무원이 눈알의 흰자까지 보이며 박강중에게 긴급히 찾아왔었다.

이번에 신규로 들어온 직원이었던지라 그 놀라움과 경악이 더더욱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76이란다.

이번엔 3개월 만에 100에서 176이 되어 있다.

사실, 두 번째라서 그런지 이젠 처음만큼 놀랍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놀랍지 않다는 게 아니다. 그저 조금의 내성이 생겼을 뿐이었으니까.

사실 놀라서 미칠 지경이라고 해 두는 게 맞을지도 몰랐다.

하긴. 애초에 정인우라는 사람은 철저히 상식이 배제된 인간이었다.

어찌되었건, 박강중은 정인우가 갱신을 위해 이곳에 들렀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부리나케 인우에게 차 한 잔을 대접해 주고 있는 중이었다.

박강중은 자신의 집무실 쇼파에 아무렇게나 앉아 있는 인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또 이렇게 빨리 성장했는지··· 물어 보면 화내실 겁니까?"

"알면서 뭘 물어?"

인우가 뚱한 얼굴로 답하고 있었다.

내심 미친곰의 동상을 보고 기분이 좋았던지라 강중의 차 대접을 뿌리치지 않았다.

잠깐은 있어 줄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박강중은 여전히 애를 태우며 인우를 바라보았다.

그래봐야 무엇하겠는가.

정인우라는 괴물은 관리국에게 있어서 그저 그림의 떡이다.

더 이상의 섭외 제안은 인우의 기분을 저기압으로 추락시킬 뿐이겠지.

그래서일까?

박강중은 오늘 이 귀한 시간을 빌어서 정인우와 평범한 대화를 나눠보고자 했다.

그렇게 박강중은 어색함을 타파하고자 인우에게 '애인은 있느냐.'로 시작해 '집은 몇 평이냐?'까지 별의별 것을 다 물어보았다.

정인우는 웬일인지 생각보다 얌전하게 답해 주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박강중은 더 이상의 얘깃거리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인우는 짤막하게 대답만을 해 줄 뿐, 강중을 향해 물어본다거나 대화를 이어가려는 의지 자체를 보이지 않고 있었으니까.

그제야 대화가 단절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박강중은 뭐라도 생각해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냈다. 이 귀한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여 정인우와 더더욱 친분을 쌓아 두는 게 좋았다.

그즈음 박강중은 무언가가 번뜩 생각났는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런데 정인우 씨는 가족이 있습니까?"

"가족? 흐음."

가족이라.

여동생이 있긴 하지.

뒷말은 삼키는 인우였다.

인우의 여동생 정지은.

인우는 지구에 온 뒤에 그녀를 찾기 위해 자라왔던 고아원을 거쳐 성당까지 들어섰었다.

그리고 듣게 된 여동생의 소식은, 그녀가 해외로 입양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입양을 가기엔 상대적으로 많은 나이였긴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입양이 되었다.

그 당시.

게이트의 첫 등장으로 인해 인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특히 초기 대응이 늦었던 약소국들은 더더욱 큰 피해를 입었고, 안타깝게도 그 중에는 대한민국도 존재했었다.

때문에 괴수에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한순간에 불어난 고아들.

그리고, 고아원은 한정되어 있었다.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고아들은 넘쳐났고, 고아원에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한민국의 대책이 바로 해외입양이었다.

그 당시에는 정지은처럼 10대 중반의 아이들도 해외로 입양되곤 했었던 것이다.

'이제는 찾아가 보아도 괜찮지 않을까?'

정인우와 정지은은 본래에 고아였다.

인우가 프로킨으로 소환된 뒤에 그녀는 철저히 혼자였으리라.

그녀는 인우보다도 성격이 곱절은 개차반이었던지라 홀로 적응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바른대로 말해 보자면, 그녀가 제아무리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해도 영문도 모른 채 프로킨에 소환 된 정인우 보다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인우는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

우선은 하나뿐인 가족이었기에 그랬고, 그랬기에 미안했다.

물론 인우가 잘못한 것은 없다.

'음···'

일전에 인우는 그녀와의 만남을 미뤄 왔다.

그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었다.

멋진 모습으로 찾고 싶었고, 좋은 것들을 가득 주고 싶었기에 그랬다.

그러나 이제 돈은 넘치도록 많았다.

그리고 이제.

그녀를 보아야겠다는 결심이 굳었다.

"정인우 씨? 대답 하다 말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때, 들려오는 박강중의 목소리에 인우는 상념에서 깼다. 이윽고 인우는 한 박자 늦게 답했다.

"가족 생각."

* * *

미국 텍사스 사냥터.

이곳 사냥터 9존에 용작두 광전사가 리젠 되었다.

그래서일까?

지금 이곳에는 상당히 많은 미국 초인들이 몰려 있는 상태였다.

초인들은 저마다 군침을 삼키며 외쳤다.

"오 마이 갓!"

용작두 광전사는 돈 덩어리다.

그래서일까? 초인들은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초인들 사이에 유난히 앳되어 보이는 동양계 여자가 불쑥 나타났다.

난데없이 나타난 그녀를 발견한 몇몇 초인들이 기겁을 하며 외쳤다.

"맙소사! 가브리엘!?"

그러자 일시에 모든 초인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꽂혔다.

그녀는 갑옷 대신 짧은 핫팬츠에 나시티를 입고 있었다. 결코 사냥터에 어울릴 법한 복장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의 하얗고 가느다란 팔뚝은 뭇 남성들의 남심을 자극할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곳 사냥터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그녀의 외모는 20대 초반쯤?

그러나 그녀의 외모가 높은 레벨로 인해 노화가 역행된 것임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녀의 실제 나이는 45였으니까.

어찌되었건, 그녀는 높은 레벨의 랭커 초인이었기에 겉모습은 영락없는 20대 아가씨였다.

그녀는 무척이나 예뻤다.

한 번 보면 잊히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양쪽으로 땋은 양 갈래 머리.

잡티 하나 없는 뽀얀 피부.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흠잡을 곳 하나 없는 몸매까지.

그야말로 완벽해 보인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 하나 존재했다.

어느덧 그녀의 조그만 입술이 작게 달싹이기 시작했다.

"저거 내꺼다. 다 나와. 뒤지기 싫으면."

말을 마친 그녀가 초인들을 거칠게 밀치며 용작두 광전사를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