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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6화 전면전 (3) >

"레벨 업이라고?"

블랙오크는 놀랍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경험치를 획득해야만 레벨 업을 할 수 있다.

또한, 경험치를 획득하기 위해선 괴수를 잡아야만 한다.

한데 괴수를 잡은 것도 아닌데 갑자기 레벨 업이라니?

"······."

인우는 이것저것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치지지지지직-!

대신 레벨 업을 증명하듯 공격을 준비했다.

인우의 손바닥에서 기가 라이트닝이 응축되었다.

이 또한 일전에 펼치던 기가 라이트닝보다 강화된 위력이었다.

블랙오크는 눈을 부릅떴다.

방금 전까지 숨을 몰아쉬던 모습은 대체 뭐란 말인가! 레벨 업이 진짜란 말인가! 이놈은 정녕 숨을 쉬면서 레벨 업이라도 한단 말인가!

그리고 그 순간.

쩌저저저저적!

"취-익!"

블랙오크는 재빨리 손을 들었다. 하지만 인우가 기술을 펼치는 속도를 막을 순 없었다.

블랙오크의 정수리로 강력한 번개가 꽂혔다.

블랙오크는 황급히 손톱으로 머리통을 감쌌다. 하지만 이 또한 인우의 계산대로였다. 놈은 당황한 탓에 방어하는 것이 한 발 늦고 말았다.

콰르르릉!

깔끔한 명중.

기가 라이트닝이 직격으로 내리꽂힌 블랙오크가 이빨 사이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바르르 떨었다.

인우가 웃었다.

"이 새끼. 이제야 좀 오크 새끼 같네. 그렇게 계속 짖어라. 괴물 새끼답게!"

기가 라이트닝에 그치지 않고 인우가 포효했다.

블랙오크의 귀에 포효가 꽂혔고, 놈은 다시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우는 대검을 양손으로 쥐어 잡은 채 허리춤에서부터 바닥까지 내렸다.

그 자세가 마치 발도와 같았다.

"후우우우우···!"

모으고 모으고 또 모았다. 기를 모으듯, 모든 에너지를 양손에 쏟아 부었다.

타다다닥-!

그리고 내달렸다.

19레벨의 회심의 일격.

후웅-!

인우의 용작두가 단숨에 허공을 가르고 놈을 쪼갤 기세로 쏟아졌다.

카가가가강-!

엄청난 타격음과 함께 용작두가 땅바닥에 꽂혔다.

한데, 놈은 그 자리에 없었다.

회피한 것이다.

"···"

블랙오크는 오간 데 없었고, 인우의 용작두는 애먼 바닥에 내리꽂혀 있었다.

인우가 재빠르게 주변을 쏘아보았다.

"이 새끼. 잔기술이 수준급이란 말이지."

도대체 무슨 마법일까.

놈은 지속적으로 몸을 숨기고 드러내길 반복하고 있었다.

다만 텀은 존재했다.

무작위로 시전하진 않고 있었으니까.

아까부터 거슬렸다. 공간을 짓이기고 사라지는 능력. 놈은 멀리서도 이 능력을 발휘하여 근접전을 펼치거나, 기가 라이트닝을 피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인우는 그 혼란 중에도 한 가지 사실을 알아챘다.

놈은 공간 사이로 사라지는 능력을 연속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 말은 즉 쿨타임이 있다는 뜻과도 같았다.

인우 역시 일부 기술은 연속적으로 사용할 수 없듯이, 놈이 공간 사이로 사라지는 능력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그렇다면 분명 치명타를 시도할 것이었다. 기술을 마구잡이로 펼칠 수는 없으니, 후퇴하는데 낭비하지는 않겠지.

"취-익!"

아니나 다를까, 인우의 예상대로 뒤편에서 블랙오크의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 기습공격은 예상 밖으로 치밀하고 날렵했다.

채 반응하기도 전에 블랙오크의 기다란 손톱이 인우의 어깨로 떨어졌다.

그 한방에 인형탈이 휴지조각처럼 갈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카앙-!

팔이 뜯겨 나가고 비명이 들려야 정상일 텐데, 난데없는 쇳소리가 터졌다.

"취-익! 속에 갑옷을 입고 있었구나. 이놈!"

인우가 어깨를 탈탈 털었다.

"당연한 거 아냐? 너 같으면 기백 명을 상대로 인형 탈만 뒤집어쓰겠냐?"

'치잇.'

여유로운 겉모습과 달리 인우는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리빙아머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어깨가 덜렁거렸을 것이었다.

이런 위기감을 언제 느껴 보았더라?

생각해 보면 지구에 온 뒤에 늘 때려 부수고 다녔다.

지금과 같은 위기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프로킨에 처음 떨어졌을 때와 같은 기분이다.

"하. 기분 더럽네. 고작 오크새끼 때문에."

그렇게 말한 인우는 왼손에 파이어 볼을 생성했다.

화르륵-!

파이어 볼이 허공을 가르며 놈에게 쏘아져 나갔다.

쐐액-!

그러자 놈은 손톱을 휘둘러 파이어 볼을 파훼했다.

"허!"

실소가 나왔다.

저 손톱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인우의 파이어 볼은 50레벨이다.

보통 불덩이가 아니란 말이다.

그러한 불덩이를 고작 손톱으로 흩어 버린다고?

저 손톱이 확실히 물리적인 공격력이 엄청나다는 것은 익히 체험했다.

그런데 설마 마법저항까지 붙어 있을 줄이야.

"클클. 역시나 재밌는 놈이로군."

"······."

놈은 웃고 있었다.

블랙오크.

인간과의 이종 교배로 태어난 놈들은, 괴수임에도 인간만의 특권인 레벨 업을 가지고 있다.

즉, 놈들은 지속적으로 성장이 가능한 괴수라는 거다.

그렇기에 위험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중국에도 헬게이트는 존재한다.

또한, 놈들은 그것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눈앞에 놈처럼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닌 블랙오크가 존재하는 것일 테다.

게다가 이종교배의 잡종답게 인우마저도 처음 보는 스킬을 펼치고 있었다.

어느덧 인우의 등허리를 타고 한줄기 땀이 흘러내렸다.

'초근접전으로 광풍난무를 쓸까.'

그러나 인우는 고개를 내저었다.

놈은 공간을 가르고 그 속에 숨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발동 액션이 큰 광폭난무는 충분히 회피할 것이다.

'후우···'

때를 잡아야 했다.

확실히 놈을 때려잡을 수 있는 그 때를!

그리고 그 이전에······.

'놈이 가진 기술의 원리를 파악해야 한다. 파악치 못하면··· 오늘 나는 죽는다.'

죽는다. 정말 죽는다.

인우는 이를 악물었다.

짚이는 구석은 있었다.

인우는 빠르게 움직였다.

"흐아아아압!!"

달렸다.

용작두를 치켜들고 놈의 몸통을 노렸다.

쐐액-!

캉!

놈은 손톱을 휘둘러 용작두를 쳐냈다.

하나, 인우는 물러서지 않았다.

인우가 노리는 것을 유도하려면 반드시 근접전을 펼쳐야만 했다.

"으아아아아아!!!"

미친 듯이 고함을 내지르며 용작두를 휘둘렀다.

마치 단 한 방으로 결단을 내려는 듯이 전력을 다하는 일격들이었다.

후웅, 후웅! 쐐액!

빠르게, 혹은 느리게. 또한 변칙적으로.

인우의 공격들이 너무 위협적인 나머지 블랙오크는 방어와 회피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놈의 신경이 쏠려 있는 그때.

단숨에 놈의 지척으로 훅 접근했다.

그 뒤, 연속 차기를 날렸다.

퍽! 퍽! 퍽!

"컥!"

뱃가죽을 강타당한 놈이 비틀거렸다.

그러고는 다시금 공간을 비틀었다. 또다시 몸을 숨기는 기술을 사용한 것이었다.

'지금이다!'

인우가 노린 게 바로 이것이었다. 놈이 다시 공간을 비틀도록 유도하기 위해 체력 분배 없이 그토록 몰아붙인 것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 인우는 용작두를 놓아 버렸다.

그리곤 양손으로 놈의 팔을 잡았다.

"취-익!"

그러자 놈이 당황했다.

"역시."

인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놈의 기술이 어떠한 구동방식인지는 아직도 파악하지 못했다.

다만, 놈은 육체가 다른 이에게 잡혀 있으면 공간을 비틀고 숨어 들어갈 수 없었다.

공간을 비트는 기술이기에, 시전자 본인 외에는 비틀린 공간으로 들어설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놈의 육체를 잡아 버리면······.

"취-익!"

"술래잡기는 끝났다. 이 새끼야."

화르륵-!

섬뜩하게 웃은 인우가 왼손에 파이어 볼을 생성했다.

쏘아낼 생각은 없었다.

대신 놈을 붙든 채로 화염구를 피웠다.

화르륵!

"크아악!"

팔뚝에서 전해지는 강렬한 고통에 블랙오크가 비명을 내질렀다.

연기가 번져 오르며 고기 굽는 냄새가 피어났다.

"크아아악!"

손톱이 강력한 무기인 것은 알겠다.

그러나 육체 자체에 마법저항이 있을 리 없다.

인우는 이 사실을 알아채고 이처럼 마법을 직격으로 쓴 것이다.

놈이 파이어 볼을 제거할 때, 반드시 손톱을 이용하는 것을 목격하고 알아낸 것이었다.

놈은 고통스럽게 몸을 바르작거리며 마구잡이로 손톱을 휘둘러 댔다.

그러나 인우는 손을 놓지 않았다.

캉!

주고받는 난타전.

녀석의 손톱이 리빙아머 구석구석을 들쑤셨다.

끼긱-!

놈이 리빙아머를 할퀴자 귀청이 아려오는 소음이 메아리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이번엔 오른손에 마법을 생성했다.

쩌저저적!

기가 라이트닝.

이윽고 인우는 양손에 응축시켜 놓은 마법을 그대로 발사했다.

"뒤져라."

"으그그그극!!!!"

블랙오크의 전신이 세차게 떨리기 시작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강력한 벼락과 불꽃이 놈의 전신을 후벼팠다.

그와 동시에 인우의 마력은 단숨에 거덜 났다.

마법은 끊겼고, 놈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안간힘을 써 대고 있었다.

"흐아아압!"

간신히 파고든 기회다. 인우는 놈의 팔을 잡고 그대로 바닥에 메쳐 버렸다.

퍼억!

녀석의 등짝이 바닥에 처박히며 살가죽이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타닥-!

인우는 곧바로 발을 놀려 바닥에 떨어진 용작두를 공중으로 걷어찼다.

이어, 붕뜬 용작두를 허공중에서 낚아챘다.

"으아아아!!"

이윽고 인우의 신형이 빙글빙글 돌며 광폭난무를 쏟아 냈다.

"취-익!"

놈은 다시금 당황했다. 인우는 눈을 부릅뜬 녀석을 향해 빠르게 쇄도해 나갔다.

놈은 서둘러 공간을 비틀려 했다.

파바바바밧!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인우의 용작두가 믹서기의 칼날처럼 휘몰아치며 놈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캉- 캉!

숨기가 불가능해지자, 놈은 손톱을 치켜들고 사력을 다해 방어했다.

파드드드득!

그러나 놈의 손톱 역시도 광폭난무의 위력에 단숨에 아작이 나 버렸다.

"이노옴!!"

블랙오크는 성대가 찢어져라 소리를 질러댔다.

손톱이 없으니 더 이상의 방어는 불가능했다.

파바바밧!

맹렬히 회전하는 용작두의 새카만 칼날이 놈의 육체 이곳저곳을 난자했다.

"크아악!!"

"으아아아압!"

인우는 멈추지 않았다.

힘들게 잡은 기회다. 결코 멈출 수 없었다.

써걱-!

이윽고.

놈의 팔목이 잘려 나갔다.

"크르!"

피분수가 튀었다.

급작스러운 출혈. 부릅뜬 놈의 눈동자에 거미줄 같은 핏줄이 돋아났다.

써걱-!

이어 놈의 어깨가 잘려 나갔다. 맹렬한 회전 공격이 제대로 꽂히자 놈은 속절없이 갈려 나갔다.

맞추기가 힘들 뿐이지, 광폭난무에 한 번 휩쓸리면 이처럼 산 채로 갈릴 수밖에 없었다.

"커럭!"

이윽고 골반에서부터 놈의 몸이 반 토막 나 버렸다.

그제야 인우는 공격을 멈췄다.

"하아.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놈의 숨통은 끊겨 있었다.

[경험치를 23000 획득하였습니다.]

2만이 넘어가는 경험치라니. 10존의 괴수인 말리오의 경험치가 500이라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납득조차 불가능한 수치다.

"도대체 얼마나 무지막지한 놈이었던 거냐······."

지구에 와서 잡았던 그 어떤 괴수보다 높은 경험치를 주었다.

도대체 놈의 레벨은 몇이었던 걸까?

인우는 일전에 박강중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놈들의 개체수는 현재 5억에 육박합니다.

이런 무지막지한 괴수가 5억 마리나 된다고···?

설마 그럴 리가.

인우는 고개를 저었다.

모든 블랙오크가 이처럼 막강하진 않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인류는 진작에 멸망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일례로 인우가 예전에 잡았던 블랙오크는 102의 경험치를 줬었다.

인간들의 무력이 제각각이듯, 놈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다른 말로 바꿔 보자면······.

이 녀석보다 강한 블랙오크도 분명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러나 많지는 않을 것이다.

애초에 많았다면, 놈들은 진즉에 인류를 향해 칼을 들이 밀었겠지.

"하아."

격전의 끝에서, 인우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놈들은, 암중에서 인류를 서서히 압박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어느덧 민철이 다가왔다.

그러자 인우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블랙오크 전리품부터 정리해."

* * *

인체실험을 하는 놈들이다.

그리고 이곳은 놈들의 본부.

그래서일까?

본부의 지하에는 인우의 눈을 부릅뜨게 만들 만한 거대한 연구소가 존재했다.

"허어. 참."

인우는 연구소 내부 곳곳을 훑었다. 바닥에는 정체불명의 서류들이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었고, 3미터는 될법한 거대한 유리관들이 즐비했으며, 그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푸른색 용액이 가득 차있었다.

한참을 살피길 잠시.

옆에 있던 민철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저게 도대체 뭘까요?"

민철의 시선 끝에는 통짜 유리로 만들어진 거대한 시험관이 보였다.

"얼씨구?"

인우의 시선도 그곳에 박히듯 꽂혔다.

놈들은 단순히 리빙아머와 데스나이트만 연구했던 게 아니었다.

어느덧 인우의 눈빛이 단번에 날카로워졌다.

"이 새끼들 이거 아주 미쳤구나?"

"형님. 이곳은 도대체 뭘 하는 곳입니까?"

"글쎄다. 인간들의 추악함과 욕심으로 만들어진 곳이겠지."

인우는 씁쓸히 웃었다.

이윽고 시험관 속에 있는 '그것'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인우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인우는 용작두를 치켜들고 시험관 유리로 다가섰다.

그러더니 단숨에 용작두를 휘둘렀다.

까앙-!

그러나 유리는 깨지지 않았다. 다만 미세한 금이 갈 뿐이었다.

"강화 유리라도 되는 건가."

다시금 용작두를 여러번 휘둘렀다.

쩌저저적-!

그러자 대번에 큼지막한 균일이 일어난 시험관이 깨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시험관 속에 가득 차있던 푸른색 용액이 쏟아져 흘렀다.

연구소 바닥이 금세 파랗게 물들어갔다.

"흐음."

어느덧 부서진 유리 파편과 함께 '그것'이 몸을 움츠렸다.

인우는 그것을 품에 안았다.

"이건 일단 데려가 봐야겠다."

"예 형님."

인형 탈 속 인우의 얼굴은 미묘한 감정으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 046화 전면전 (3) > 끝

ⓒ 호종이

< 047화 먹이사냥 (1) >

캄캄한 새벽.

인적 하나 없이 고요한 어느 건물의 앞.

음산한 분위기가 가득히 퍼져 있었다.

그때.

휙- 휙- 휙-

여러 차례 바람에 흩날리는 소리가 들리고 난 뒤.

그곳엔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들이 서 있었다.

약 열 명가량으로 보이는 그 인물들은, 마치 원래부터 여기 있었던 듯 미동조차 없이 가만히 정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복면을 쓴 채 하나같이 심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고 있는 그들의 눈에선 스산한 기색이 뿜어져 나왔다.

"들어가자."

가장 중간에 있던 덩치 큰 자가 입을 열었고, 그의 말에 따라 나머지 인물들이 발걸음을 옮겼다.

굳게 닫혀 있던 건물의 셔터가 열렸다.

그곳을 향해 예의 그 인물들이 들어섰다.

"셔터 닫아라."

덩치가 큰 사내가 명했다.

사내가 눈짓을 하자, 그 눈짓에 반응한 다른 사내가 손에서 빛을 내뿜어 그 공간을 비췄다.

"······."

빛이 비춰지자 주변을 조용히 훑었다.

사내의 시선을 따라 펼쳐진 내부의 광경은 흡사 지옥도를 보는 것만 같았다.

갈기갈기 찢긴 시체들은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고, 원래 계단이 있었어야 할 자리는 무수히 많은 파편들만 가득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그곳은 비릿한 혈향이 짙어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그리고 그 시선의 끝은 한 시체로 향했다.

양팔이 잘려 나간 채 난자되어 있는 검은 피부의 거대한 남자.

사내가 입을 열었다.

"개판이로군. 회장님께 그리도 말씀을 드렸건만··· 애초에 블랙오크 따위를 믿고 일을 맡기는 게 아니었어."

말 그대로 이곳은 초토화 되어 있었다. 그러나 복면인은 크게 상관치 않는 것 같았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이들의 목숨 따위가 아니다.

"지하로 간다."

그 뒤 그들은 지하 연구소로 진입했다.

"······."

연구소의 광경을 목격한 복면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시험관들은 모조리 깨어져 있었다.

그들은 그곳을 향해 걸었다. 그럴 때마다 바닥에 진득하게 깔린 파란색 용액이 찰박거렸다.

이윽고 복면인은 깨진 시험관을 보며 다른 사내들을 향해 명령했다.

"반드시··· 반드시 찾아내라. 회장님께서 아시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리고, 이곳의 흔적은 모두 지운다."

이윽고 오래지 않아 나이트 길드 본부에 불이 붙었다.

* * *

황궁은 끝도 없이 넓었다. 용용이는 항상 황궁을 가로지르며 날아다니곤 했다.

녀석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헤츨링이었기에 품에 안을 수 있을 정도로 아담했다.

그 모습은 참 귀엽긴 했다.

그러나 인우는 녀석의 덩치를 빨리 키워 주고 싶었다.

그리하면 녀석의 등에 올라탄 채로 대륙일주를 즐길 참이었으니까.

그래서 용용이에겐 항상 좋은 걸 먹였다. 갖고 싶은 황금과 보석이 있다면 모조리 사다 주었다.

그렇게나 애지중지 놈을 키웠다.

-빠빠!

놈은 알에서 갓 태어나자마자 동족인 드래곤 대신 인우를 보았다. 그에 대한 각인효과로 녀석은 인우를 아빠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인우에겐 몹시 곤혹스러운 경험이기도 했다.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졸졸 쫓아다니는 꼴이 제법 귀여웠으니까. 그런데 갑작스레 용용이가 없어졌다.

"하아······. 이 자식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인우는 용용이를 찾기 위해 황궁을 거닐었다. 역시나 끝도 없이 넓었다. 가늠조차 할 수 없을 만치 길고 긴 회랑을 걷고 또 걸었다.

시간이 꽤 지났다.

점점 숨이 가빠졌다.

뭔가 이상했다. 이 정도면 끝이 나올 법도 한데, 도무지 끝이 가까워지지 않았다.

게다가 평소의 인우라면 이렇게 숨이 차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너무도 숨이 찼다.

이상함을 깨달은 그 순간.

저만치 멀어져 있던 회랑 끝의 벽이 인우를 향해 순식간에 다가왔다.

"허억! 허억!"

그 즉시 인우는 눈을 부릅뜨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꿈이었다.

'···그 녀석 때문에 용용이 꿈을 꾼 건가.'

생각도 잠시.

"이게 얼마 만에 꿈이냐."

인우가 별안간 피식 웃었다.

[내려찍기의 스킬 레벨이 올랐습니다.]

[파이어 볼의 스킬 레벨이 올랐습니다.]

때마침 알람이라도 되는 건가. 두 개의 스킬 레벨이 올랐다.

스킬 정보창을 훑어보니 이것 말고도 다른 스킬들도 레벨 업이 되어 있었다.

어쨌든 자는 동안에도 숨은 쉬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읏차!"

이내 인우는 천근만근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욕실로 향했다. 어제 제법 무리를 했다. 기백 명을 상대했으니 제아무리 단련된 신체라도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쏟아 내리는 물을 맞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를 했다.

그 뒤 머리를 말리고 주택을 나서 사육장으로 향했다.

"흠."

사육장 내부에서는 코고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어제 잡아온 '그것' 때문에 혹시 몰라 민철을 사육장에다가 재웠다.

철컥-

문을 열었다. 100평의 신축 사육장. 새 건물 특유의 냄새가 났다.

안쪽에 있는 숙식시설에서는 여전히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우는 민철을 깨우지 않았다. 녀석은 많은 무리를 했으니까.

어느덧 인우는 사육장 우리로 향했다.

우리에는 어제 잡아 온 그 녀석이 갇혀 있었다.

녀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인우를 바라보았다.

인우가 말했다.

"하, 이 희한한 놈을 뭐라고 불러야 돼?"

나이트 길드 실험실에 갇혀 있던 정체불명의 생명체.

녀석의 크기는 팔뚝만 할 정도로 작았다.

-파암.

놈은 입을 쩍 벌린 채 하품을 내뱉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녀석의 입에서 불덩이가 튀어나왔다.

제법 무시무시한 광경이다.

"드래곤이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해 보이고··· 흐음. 게다가 너무 작단 말이지."

인우는 처음 녀석을 보자마자 용용이가 떠올랐다. 그래서 이 녀석을 데리고 왔다.

녀석은 시험관 푸른 용액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어떠한 실험 때문인지 몹시 고통에 겨워했다.

척 보아도 실험을 통해 탄생 된 변종괴수였다.

나이트 길드 놈들은 실험을 통해 드래곤이라도 만들려고 했던 것일까? 역시나 미친놈들임에는 확실하다.

"흐음."

녀석은 안쓰러울 정도로 몸을 바르르 떨어 대고 있었다.

아마 녀석의 육체 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온갖 생체 실험이 진행되었을 거다.

녀석의 몸통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가득했으니까.

'얼마 살지 못하겠지?'

척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녀석은 곧 죽게 될 것이다.

애초에 종( 種) 자체가 존재치 않는 생명체다.

즉, 불안정한 생명체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 안에 담긴 생명이 안정적일 리 없었다.

"어디까지 크려나. 잘만 키우면 타고 다닐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흐음."

인우는 여전히 녀석을 바라보았다. 녀석의 입가에는 검붉은 선혈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호흡기관조차 불안정했기에 피를 토해 내기 일쑤였다.

어느덧 녀석이 한 걸음씩 걸어왔다. 그러더니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철창을 움켜쥐었다.

그러면서도 녀석은 인우의 눈을 끝끝내 바라보았다.

그러자 인우는 즉시 철창을 열었다. 놈은 그 즉시 인우의 머리 위로 뛰어 올랐다.

"요놈 봐라?"

인우는 눈동자를 올려 보았다.

녀석은 인우의 앞머리에 거꾸로 달라붙은 채로 인우와 눈을 마주쳤다.

아이컨텍을 하기도 잠시.

"형님?"

어느덧 민철이 잠에서 깬 채로 인우의 옆으로 다가왔다.

"일어나셨습니까?"

민철은 꽉 잠긴 목소리였다.

인우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다시금 민철이 물었다.

"형님. 그놈 그거 말리오 고기를 던져 줘도 안 먹고 요지부동입니다. 제가 어제 별의별 노력을 해 봤는데도 꿈쩍도 안한다니까요."

"흐음."

"형님. 그 이상한 생명체를 어찌하실 참입니까?"

"어쩌긴 뭘 어째. 애완동물 2호로 삼아야지."

"네?"

민철은 반문했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2호라는 것은 두 번째라는 말인데······.

1호가 따로 있었나?

* * *

강원도 사냥터.

이곳에 곰 인형 탈을 뒤집어 쓴 초인이 등장했다.

그는 바로 정인우였다.

꺼릴 건 없었다. 어차피 나이트 길드는 괴멸했다. 미친곰은 나이트 길드의 적이지, 다른 이들의 적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미친곰은 나름대로 유명세를 탄 상태다.

때문에 이 인형탈을 뒤집어쓰고 있으면 웬만한 놈들은 눈조차 못 마주친다. 시비를 거는 행위는 말할 것도 없다. 때문에 곰인형 탈은 귀찮음을 덜기 위한 아주 좋은 수였다.

어느덧 인우는 고개를 아래로 내려 보았다.

그러자 인형 탈 배주머니에서 고개를 빠꼼 내민 녀석이 보였다.

일단 뭐라도 먹여야 육체가 회복될 것이다.

그리고 먹어야 클 테고.

이 녀석도 배불리 먹이면 성장을 하지 않을까? 날개도 있고 달릴 건 다 달렸다.

녀석의 덩치를 키워서 타고 다닌다면 무척 편할 것 같다.

인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1존을 천천히 거닐었다.

그 걸음이 어찌나 여유가 넘치는지 하품이 나올 지경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인우의 레벨은 102다.

그리고 이곳 1존에 나오는 몬스터라 봐야 고작 고블린이다.

"케륵!"

겁 없는 고블린 한 마리가 인우에게 달려들었다.

인우는 등짝에 매달고 있는 용작두를 뽑을 생각조차 없었다.

그저 가볍게 왼손에 파이어 볼을 만들어냈다.

발사할 생각도 없다.

놈이 지척까지 다가올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케륵!"

고블린이 손도끼를 치켜 들고 인우를 내리찍으려 했다.

그제야 인우는 손바닥을 치켜들고 놈의 면전을 그대로 눌러 찍었다.

화르륵-!

"케에에에륵!"

파이어 볼이 피어나자 놈의 얼굴이 단숨에 녹아들어갔다.

[경험치를 5 획득하였습니다.]

놈을 죽이자 숨 한 번 쉬면 들어올 경험치를 획득했다.

풀어 말해 보자면 전혀 의미가 없는 경험치였다.

"흠."

인우는 고블린의 전리품조차 채취하지 않았다.

그야 귀찮았으니까.

이제 푼돈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조만간 나이트 길드 지부 사육장을 털어서 획득한 전리품을 처분할 생각이었다.

정확히 계산을 해봐야 알겠지만 최소 수백억은 나오지 않을까?

그랬기에 인우는 고블린이라는 십 원짜리를 줍고 싶지 않았다.

다만,

녀석의 고기는 필요할 것 같다.

이윽고 인우는 배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데리고 온 녀석과 도축용 단검을 꺼냈다.

"흠."

이내 단검을 이용해 고블린 뱃살을 채취했다. 그리곤 얇게 포를 떠서 데리고 온 녀석의 입가로 건네주었다.

그러나 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확실한 의사표현. 머리는 일반 짐승들보다 확연히 좋은 것 같았다.

그건 참 다행이다. 애완동물이 멍청하면 골치가 꽤나 아프니까.

그러나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인우는 녀석을 빨리 키우고 싶었으니까.

"그냥 좀 먹어. 이 자식아."

녀석의 입 앞에 대고 고블린 뱃살을 거칠게 흔들어 댔다. 그러나 녀석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아오."

인우는 투덜대면서 녀석의 머리통을 쥐었다. 그리곤 입을 벌려 고블린 고기를 넣어주었다.

퉷.

그러나 녀석은 씹지도 않고 고기를 뱉어 버렸다.

인우의 이마가 찌푸러졌다.

"이런 건 안 먹는다 이거냐?"

인우는 녀석을 배주머니에 넣어 버렸다.

쏘옥-

그러자 녀석은 자연스럽게 다시금 고개를 내밀었다.

인우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면서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지금은 인우가 이 녀석을 태우고 다니는 꼴이지 않은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우는 그게 썩 좋지만은 않았다. 반대로 인우가 녀석의 등에 올라타야 기분이 풀릴 것 같았다.

"후우."

어느덧 인우는 2존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곳에 존재하는 괴수의 고기도 녀석은 거부했다. 이윽고 3존에서 8존까지.

모든 괴수들을 죽여서 포를 떠버렸다

녀석의 입에 가져다대고 흔들어 댔으나, 녀석은 결단코 먹질 않았다.

이윽고 9존.

이곳은 어차피 언데드 계열의 몬스터만 나오는 곳이다. 그랬기에 인우는 이곳을 건너뛰었다.

그 뒤 10존. 이곳의 괴수 고기는 익히 경험했다. 민철의 말에 따르면 이 녀석은 말리오 고기를 줘도 먹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그랬기에 인우는 붉은 성수를 뒤집어쓰고 10존까지 넘어 버렸다.

혹시 몰라 10존에 있는 몬스터를 사냥해서 줘 봤지만······.

파앗-

오히려 녀석은 자그마한 불꽃 덩어리만 발사했다.

"하, 고놈 참 입 한번 더럽게 짧네. 내가 진짜 기가 막히는 놈으로 하나 갖다 준다. 그 놈의 고기라면 제아무리 니 입이 고급이라도 안 먹고는 못 버틸 거다"

이윽고 인우는 걸음을 옮겼고, 그 걸음의 끝엔 10존의 경계가 보이고 있었다.

< 047화 먹이사냥 (1) > 끝

ⓒ 호종이

< 048화 먹이사냥 (2) >

10존의 경계.

이곳을 넘게 되면 가장 먼저 메가붐을 조심해야 한다. 놈들은 땅 속을 파고들어 몸을 숨긴다.

그리고 일정 수준의 충격을 주게 되면 터져 버리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뢰와 비슷하다.

다만 그 위력이 터무니없이 강할 뿐이지만······.

인우는 천천히 걸었다. 그러나 인우의 걸음에 망설임은 존재치 않았다.

애초에 메가붐도 생포했던 인우다.

그는 메가붐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프로킨에선 이미 알려진 정보다.

메가붐의 위치를 파악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메가붐은 터지는 폭발 능력을 제외한다면 육체적 능력이 존재하지 않는 괴수다.

그렇기에 메가붐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특유의 호르몬을 뿌린다. 그렇게 되면 괴수들이 메가붐 주위로 몰리는 것이다.

즉, 특정 지역에 몬스터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 메가붐이 묻혀 있는 지대다.

이걸 다른 말로 바꿔 보자면, 메가붐을 채취하기 위해선 밀집되어 있는 괴수들을 모조리 죽여야만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인우는 메가붐을 채취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먹이사냥을 위해 온 것일 뿐.

이윽고 인우는 애완동물 2호를 내려다보았다. 녀석의 눈동자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지금 인우가 무엇 때문에 움직이는지, 어떠한 먹잇감을 줄지, 그러한 것들을 모조리 파악하고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 긴 시간을 함께하지 않았음에도, 인우는 녀석이 생각보다 상당한 지능을 갖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만약 녀석이 언어를 내뱉을 줄 알았다면, 간략한 대화도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주 눈이 돌아가게 만들어 줄게."

인우는 자신 있었다.

그것만 찾게 되면 이 녀석은 군침을 질질 흘려 댈 거다.

인우는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자신의 애완동물 2호의 먹이가 있는 곳을 향해서.

* * *

한참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9존이나 10존만큼은 아니더라도 드물게 몬스터들과 마주쳤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서쪽 하늘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을 때쯤.

"드디어 찾았다! 후, 거참 찾는 거 한번 더럽게 복잡하네."

인우의 시선은 3층 건물 옥상에 닿아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거대한 크기의 괴수가 둥지처럼 보이는 곳에서 알은 품은 채 자고 있었다.

"후우."

인우는 한차례 심호흡을 내뱉었다.

그 괴수는 바실리스크였다.

거대한 도마뱀 형태의 괴수.

녀석은 커다란 육체를 가진 만큼 가진 바 힘도 무지막지하다.

그러나 녀석의 가장 무서운 점은 바로 혓바닥이었다.

그 길이만 해도 얼추 2미터는 되었고, 둘레는 30센티가 넘어간다. 바실리스크는 그러한 혓바닥을 채찍처럼 휘둘러 댄다.

"슬슬 가 볼까."

그러면서 인우는 배주머니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애완동물을 바라보았다.

녀석의 눈동자가 제법 초롱초롱하다.

인우와 눈을 마주친 녀석이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빛내더니 이내 하품을 했다.

-파암

하품과 함께 나오는 자그마한 불꽃.

인우는 피식 웃으며 왼손에 기가 라이트닝을 응축시켰다.

파지지지직-!

기가 라이트닝의 레벨은 벌써 27이 되었다.

그 말은 곧 이 한 방의 위력이 어마어마하다는 뜻이었다.

자신의 왼손에 응축된 기가 라이트닝을 확인한 인우는 곧바로 건물 옥상을 향해 왼손을 뻗었다.

쩌저저저적-!

-크워어어어어!!!!

인우의 기가 라이트닝은 바실리스크의 목 언저리로 꽂혔고, 나른한 오후의 단잠을 즐기던 녀석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뱉으며 눈을 떴다.

녀석의 거대한 몸통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이윽고 녀석은 고개를 휙휙 돌려 자신을 공격한 대상을 찾기 시작했고,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아래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씩 웃고 있는 인우와 눈이 마주쳤다.

이에 인우는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그래, 여기야 여기. 얼른 내려와라. 빨리 끝내고 집이나 가게."

그 모습에 놈은 분노했다.

-크워어어!

녀석의 혓바닥이 곧바로 인우를 노렸다.

팟!

인우는 몸을 날려 혓바닥을 피했다. 저 혓바닥은 무조건 피해야한다.

잘라낼 수도 없다. 놈의 혓바닥을 잘라내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단단해서라기보다는, 말도 안 될 만큼 질겨서이다. 게다가 고무처럼 쭉쭉 늘어날 만큼 무지막지한 신축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점은······.

파스스슥-

산( 酸)이다.

녀석의 혓바닥과 부딪힌 지역이 거품을 일으키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혓바닥에는 염산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을 만큼 무지막지한 산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저 혓바닥에 한번 몸이 감기면 그대로 녹아내린다고 봐도 된다.

본래 프로킨에서는 바실리스크를 상대할 때 대신관이 무조건적으로 필요했다.

대신관은 신성력을 이용해 일시적으로 놈의 혓바닥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으니까.

아마 이쪽 세계 기준으로는 랭커급 사제 정도가 필요할 거다.

그러나 인우는 현재 혼자였다. 게다가 인우는 대신관도 아니며 그저 광전사일 뿐이다.

그렇기에 녀석의 공격은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어느덧 인우는 용작두를 양손에 쥔 채 자세를 잡았다.

츄릅.

-크르르.

녀석은 혀를 날름거리며 그런 인우를 노려보았다. 아마도 알이 있기 때문에 저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을 테다.

녀석을 움직이게 만들 방법은 단 하나.

'둥지를 개박살 내 주마.'

이윽고 인우는 3층 건물의 하단을 향해 내달렸다.

그 뒤 곧바로 광폭난무를 시전했다.

파바바바밧!

인우의 신형이 팽이처럼 돌아갔다.

파드드드득!

그러자 건물의 하단이 단숨에 콘크리트 덩어리를 뿜어내며 갈리기 시작했다.

-크워어어어!

둥지가 부서지고 있었다.

그러자 바실리스크는 분노했다.

푸드드득!

이윽고 움푹 패이던 건물은 중심을 잃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후우!"

그제야 인우는 공격을 멈췄다.

잠시 무너진 잔해의 먼지 구름을 바라보고 있을 때,

챠르륵-

먼지를 뚫고 또다시 녀석의 혓바닥이 날라왔다.

"헙!"

예상은 했지만, 둥지가 무너진 탓에 분노가 엄청났는지 녀석의 공격은 한 층 더 매서웠다.

무너진 잔해 속에서 바실리스크가 기어 나왔다.

녀석의 알이야 타조알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을 만큼 단단했으니 이 정도에 부서지진 않을 거다.

화르륵-!

인우는 곧바로 화염구를 생성했다.

그 뒤 무차별적으로 바실리스크를 향해 내던졌다.

-크르!

그러자 녀석은 가소롭다는 듯이 혓바닥을 움직여 모든 화염구를 녹여 버렸다.

무려 53레벨의 파이어 볼이다. 그러나 녀석에게는 성냥개비에 붙은 불보다 못한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인우의 배 근처에서 뭔가가 꿈틀 거리는 게 느껴졌다.

"응?"

시선을 돌려 쳐다보니 주머니 속에 있던 애완동물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그리곤.

-파암!

녀석은 입에서 하품할 때 뿜어 대던 불덩이보다 몇 배는 더 큰 불덩이를 뿜었다.

바실리스크를 향해 날아간 불덩이.

그러나.

츄릅!

바실리스크는 가볍게 혀를 놀려 불을 삼켜 버렸다.

-크르.

불은 삼킨 바실리스크가 마치 가소롭다는 듯 짧은 울음을 내뱉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크어

바실리스크가 고개를 흔들며 고통스러워했다.

미약하나마 화상을 입은 것 같다.

인간을 기준으로 보자면,

마치 뜨거운 라면 국물을 마시다가 혀를 댄 것처럼, 그 정도의 통증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호오······."

인우의 얼굴이 단숨에 흥미로 물들었다. 그리곤 애완동물을 바라보았다.

"밥값 하는 거냐?"

-푸푸.

녀석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나름 뿌듯한지 고개를 살짝 치켜들며 푸푸 거렸다.

이 조그마한 녀석이 바실리스크의 혓바닥에 데미지를 주다니.

솔직히 너무 극심하게 위태로워 보이던 녀석이라 인우가 꽉 움켜쥐면 뼈까지 통째로 으스러지진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처럼 굉장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을 줄이야.

짝퉁이나마 드래곤은 드래곤이라는 건가?

인우의 의지가 더욱 더 단단하게 굳어졌다.

"무조건 먹이를 구해 주마!"

인우는 곧바로 광폭화를 시전했다.

고오오오-

예의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난다.

그 뒤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들을 발을 이용해 공중에 띄웠다.

후웅-!

이어 스윙.

파앗! 파앗!

돌조각이 강렬한 기세로 바실리스크의 몸통에 꽂혔다.

-크르.

그러자 바실리스크는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통증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인우가 노린 건 통증이 아니다.

놈의 허세와 방심일 뿐.

"흐아아아아압!!!"

인우의 몸이 별안간 대포처럼 쏘아져 나갔다.

대검관통.

파바바바바밧!

그 엄청난 기세에 바실리스크는 다급하게 혓바닥을 휘둘러댔다.

팟! 팟!

그러나 인우는 공격이 오는 족족 피해 냈다. 이미 대검관통의 레벨은 72이다.

그렇기에 쏘아져 나가면서 경로를 비트는 경지에 닿아 있었다.

이것은 확실한 회피기술이기도 했다.

그러나 진정 무서운 점은 역시나 극강의 추진력을 이용한 관통이다.

푸욱-!

-크워어어어어!

인우의 용작두가 놈의 뱃가죽에 박혔다.

"흐압!"

용작두는 한 뼘 정도 박혀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이 정도만 해도 확실히 데미지는 들어갔을 테다.

그 뒤, 곧바로 광폭난무를 시전했다.

파바바바바밧!

소리와 함께 인우의 신형이 막강한 태풍처럼 회오리쳤다.

녀석의 뱃가죽이 찢겨 나갔다.

-크워어!

분노한 바실리스크가 혀를 휘둘렀다.

파밧!

인우는 곧바로 광폭난무를 그친 뒤 혀를 피했다.

맞지 않는 게 좋다.

아니 맞아선 안 된다.

리빙아머조차 녹일지도 모른다.

"크아아압!"

인우는 포효했다. 왼손으로는 꾸준히 파이어 볼을 뽑아냈다. 놈의 몸통에 화염구가 꽂힐 때마다 마나 드레인이 발동됐다.

그럴 때마다 마력은 회복되었고, 파이어 볼은 끝도 없이 바실리스크의 몸을 강타했다.

-크워!

어느덧 녀석이 거대한 뒷발을 움직여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인우는 놓치지 않았다. 녀석을 세게 내려치며 압박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쿠워어!

공격이 거듭될수록 지축이 흔들리고 돌가루가 공중으로 방방 뜨기 시작했다.

인우가 가진 스킬 중, 가장 높은 레벨인 내려찍기였다.

쾅! 쾅! 쾅!

놈은 혀만으로는 부족했는지 꼬리까지 이용해 인우를 압박해 왔다.

인우는 그럴 때마다 내려찍기를 단타로 끝낸 뒤 곧바로 몸을 내뺐다.

-크르! 크르!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녀석의 체력은 야금야금 깎여 나갔다.

단번에 죽일 순 없다.

그러나 피를 말리듯 천천히 죽일 순 있다.

인우의 집중력과 가진 바 능력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인우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파암!

그것은 애완동물도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날로 먹는 빈대 스타일이 아닌 것 같다.

제 몫을 철저히 하며 바실리스크의 상처를 향해 파파 거리며 불을 뿜어냈다.

-크르아아아아!

그 공격은 적지 않은 타격을 주었는지, 바실리스크는 끔찍한 통증에 몸을 연신 비틀어 댔다.

더군다나 인우까지 미친 듯이 공격을 해 대니 녀석의 정신은 금세 산만해지기 시작했다.

차츰 밀려오는 통증. 그리고 점차 사라져 가는 생명력.

녀석은 본능적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우는 녀석의 그런 모습을 정확하게 캐치했다.

'공포에 질리면 반 이상은 진 거라고!'

전투에 있어서 진리에 가깝다. 공포는 공격을 소심하게 바꾼다. 그리고 도주하고 싶은 욕구를 만들어 낸다.

그것은 곧바로 빈틈으로 이어졌다.

바로 지금처럼!

-크르어!!

녀석은 철저히 빈틈을 드러내고 있었다.

인우는 이때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다시금 포효했다.

"크아아아압!"

기합을 내지름으로서 상대에게 두려움을 선사하는 기술.

애초에 인우의 포효에서 자유로웠던 녀석이지만, 지금은 달랐다.

녀석의 눈동자에 단숨에 두려움이 피어났다.

인우는 왼손에 기가 라이트닝을 응축시켰다.

좀 전에 한 방 썼으니, 이번이 마지막일 거다.

그리고 이 일격은 지금과 같은 찬스에 써야 마땅하다!

쩌저저저적-!

-크워어어어어!

번쩍이는 번개에 머리를 정통으로 가격당한 녀석의 동체가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이제 마무리다!'

인우는 이를 악물며 녀석의 몸 이곳저곳을 찌르고 베어 내고 찍어 눌렀다.

이때부터는 속수무책이었다.

놈은 뒷걸음질 치기 바빴고, 인우는 압박을 멈추지 않았다.

-크어······.

그리고 마침내 녀석이 쓰러졌다.

푸욱!

인우는 고통에 몸을 떠는 녀석의 목에 용작두를 찍어 넣었다.

-커··· 커억.

마침내 녀석의 숨이 끊겼다.

녀석은 미개척지대의 괴수답게 엄청난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인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경험치를 5,000 획득하였습니다.]

10존의 괴수인 말리오의 경험치보다 무려 10배가 높았다.

'경험치가 얼마나 남았더라?'

막대한 경험치를 보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숨을 몇 번 몰아쉬고 있었는데,

[레벨이 올랐습니다.]

102의 끝자락에 닿아 있던 인우의 레벨이 103이 되어버렸다.

'오호라.'

이윽고 인우는 바실리스크의 시체를 확인했다.

힘들게 잡았던 보람이 있었는지 놈은 S급 정수 5개를 내뱉었다.

이 밖에도 패시브 스킬 볼이 하나 나왔다.

그것을 보자 인우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맹독저항]

효과 - 독을 저항합니다.

"와. 이게 나오냐?"

맹독저항.

이 패시브 볼은 상당한 고가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거 하나를 취하면 웬만한 독은 무시할 수 있었으니까.

물론 만독불침지체( 萬毒侵之體)까진 아니다.

다만 말리오 독에 당하더라도 한두 시간이면 회복될 정도로 육체 독 내성의 급 자체가 달라진다.

말리오 독에 당한 초인이 3초 만에 숨이 끊기는 것에서 비교해 보자면, 말도 안 될 만큼 막강한 위력을 가진 스킬 볼인 것이다.

10존 이상을 누비고자 하는 초인들에게 꼭 필요한 패시브였다.

인우는 망설임 없이 맹독저항을 삼켰다.

['맹독저항'이 생성되었습니다.]

"하아. 요놈 자식 먹이 구해 주려다가 엄청난 걸 먹어 버렸네."

이윽고 인우는 바실리스크를 뒤로 한 채, 무너진 건물로 향했다. 그리곤 건물의 잔해를 뒤져 알이 묻힌 곳으로 다가갔다.

애초에 인우의 목표는 바실리스크의 알이었다.

프로킨의 해츨링들이 가장 좋아하는 특식.

그렇기 때문에 드래곤과 비슷하게 생긴 이 애완동물 녀석도 분명히 이 알에 반응할 것이다.

어느덧 인우는 잔해의 틈 사이에서 7개의 알을 찾아냈다.

-파아!

그러자 배주머니에 들어가 있던 애완동물이 단박에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그 뒤 녀석은 알을 향해 입을 들이밀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인우는 웃었다.

아주 흡족하게, 웃었다.

< 048화 먹이사냥 (2) > 끝

ⓒ 호종이

< 049화 무럭무럭 자라라 >

녀석은 제 몸만 한 알을 양손으로 움켜쥐고선 뒤뚱뒤뚱 인우 쪽으로 걸어왔다.

그러더니 인우 앞에 얌전히 알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손으로 알을 가리켰다.

-파암.

대번에 그 의미를 파악한 인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알 윗부분을 조금 깨부쉈다.

이렇게 해 놓으면 깨놓은 부분에 입을 대고 내용물을 쪽쪽 빨 수 있을 거다.

"응?"

그러나 녀석은 기대완 다르게 움직였다.

알을 거꾸로 들더니 내용물을 쏟아 버리는 것이 아닌가?

"흠. 흙바닥에 흘려 놓고 핥아 먹는 게 좋은 거냐?"

그러나 예상과 달리 놈은 바닥을 질척하게 적신 내용물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단지.

으득.

알의 깨어진 부분에 입을 갖다 대더니 껍질을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했다.

"요놈 봐라? 너 지금 편식하는 거냐?"

-팜!

인우가 핀잔을 주자, 껍질을 갉아먹다 말고 인우를 향해 마치 언짢다는 듯 티를 내는 녀석이었다.

"어쭈? 당돌한 녀석이네."

인우는 팔짱을 낀 채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녀석은 사람으로 치자면, 고등어나 치킨의 껍데기만 뜯어 먹고 살덩이는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정신 나간 식성이라고 봐야 했다.

이렇게 된다면 녀석의 사료는 상당히 많이 들어갈 것이다. 껍데기만 먹으니 별수 없지 않은가.

우선 인우는 남은 6개의 바실리스크 알을 배낭에 챙겼다.

사육장으로 가지고 가서 번식을 시켜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 녀석의 먹이는 충분히 공급될 거다.

새끼 바실리스크의 도축은 덤이겠지.

으드득.

녀석은 알껍데기를 맛있게도 먹고 있었다.

사실 알고 보면, 바실리스크의 알껍데기는 굉장한 영양분 덩어리다.

그렇기에 바실리스크 새끼는 알을 깨고 나온 뒤, 가장 먼저 알껍데기부터 먹는다.

영양을 보충하기 위함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녀석의 이런 식성은 나쁘지만은 않을 테다.

일단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았으니,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먹이면 될 것이다.

그러면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고 무럭무럭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가자. 읏챠!"

이윽고 인우는 알껍데기를 쥐고 있는 녀석을 들어서 배주머니에 넣어 버렸다.

으득. 으드득.

주머니 안에서도 녀석의 식사는 계속 되었다.

* * *

거주지에 도착한 인우는 가장 먼저 신축 사육장으로 향했다. 그런 뒤 사육우리 안에 바실리스크 알 6개를 넣어 두었다.

이 알은 이렇게 방치만 해 두어도 부화할 것이다.

사실 바실리스크가 알을 품는 이유는 그저 알을 지키려는 행위다. 가만히 방치해 뒀다가는 야생의 다른 괴수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마니까.

즉, 이 막강한 괴수의 알은 어미가 품지 않아도 알아서 태어난다.

"어? 형님. 그건 무슨 알입니까?"

민철이 인우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괴수 알이야."

"무슨 괴수요?"

"부화시켜 보면 알 거다."

쏘옥-

그때, 인우의 배주머니를 비집고 애완동물이 튀어나왔다. 어느덧 녀석은 사육장 내부를 거닐기 시작했다.

-파암.

그러다가 트림을 했다. 한데, 트림을 할 때마저도 불덩이가 튀어나왔다.

민철이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어라···? 저 녀석 왜 저렇게 힘이 넘치죠?"

"그야 좋은 영양식을 먹었으니까."

"그렇군요."

민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착각일까? 고작 하루도 지나지 않았건만 녀석의 살집이 조금 더 붙은 것 같다.

게다가 기운이 넘치는 건지 뭔지 소리를 내지르며 이곳저곳 쏘다니기 일쑤였다.

"음. 형님 저 녀석 이름은 지어 주신 겁니까? 팜팜 하고 우니까 그냥 팜 어떻습니까?"

"팜 같은 소리하네. 됐고, 당분간은 이곳 사육장도 관리해."

"아··· 넵."

민철은 짧게 답했다.

그런데 그때, 어느새 다가온 애완동물이 민철의 바짓가랑이를 잡기 시작했다.

"어라?"

-파암.

"팜?"

-파아암.

"팜팜!"

-파아아아암!

녀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민철은 그것이 어찌나 신기한지 신이나 소리치기 시작했다.

"형님! 얘 보세요! 제 말을 알아들은 것 같은데요? 보세요?"

말을 마친 민철이 앞으로 몇 걸음 걸었다.

그리다 뒤를 휙 돎과 동시에.

"팜!"

-파암!

"보셨죠? 보셨죠? 제 말을 알아듣는다니까요?"

하곤 낄낄대며 웃었다.

그 꼴을 가만히 지켜보던 인우가 혀를 차며 한마디했다.

"아주 덤앤더머 납셨네."

그렇게, 2호의 이름은 졸지에 팜이 되어 버렸다.

* * *

"야, 너."

들었을까?

분명 들었을 것이다. 녀석의 귀가 쫑긋거리긴 했으니까.

"야!"

녀석이 움찔거린다. 그러면서 꼬리를 살랑 흔들었다.

"야. 이리로 와 봐."

듣지 못한 척을 한다. 그저 짧은 팔로 아등바등 팔짱을 끼더니 한쪽 발을 떨기 시작했다.

제법 거만하고 건방지다. 그런데 조그마한 놈이 저러고 있으니 귀여운 건 어쩔 수 없다.

어느덧 인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아··· 거 새끼 참. 야, 팜!"

할 수 없이 이름을 불러줬다.

그런데.

-파암!?

그제야 녀석이 인우가 있는 쪽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그러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왜 이제야 불렀냐는 듯,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순진한 눈망울을 했다.

"참나."

이름이 생긴 녀석은 그와 동시에 고집도 생긴 것 같았다. 새로 생긴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다가오지 않았으니까. 하긴, 용용이도 그랬다.

팜이는 그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드래곤과 정말로 유사했다. 지능도 수준급이었고.

그리고 바실리스크의 알껍데기를 먹고 난 뒤부터, 확실히 건강 상태가 양호해졌다.

날이 갈수록 살이 붙고 있었다. 이제는 편식을 하지도 않았고, 육식도 즐겨했다.

고작 4일이 지났을 뿐이다.

팜의 성장은 굉장히 빨랐다.

성장을 하며 녀석이 뿜어 대는 불덩이도 점차 강력해지고 있었다.

어느덧 인우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옆으로 다가왔던 녀석이 인우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흐암."

어느덧 인우는 기지개를 켰다. 해가 중천이다.

스킬 목록을 훑어보니 몇몇 스킬의 레벨이 올라 있었다.

이윽고 인우는 씻지도 않고 러닝머신 위에 올라섰다.

하루 일과를 러닝머신 3시간을 뛰는 것으로 시작했다.

지난 4일간 인우의 레벨은 105가 되어 있었다.

달리고, 숨쉬고, 잘 때마저도 숨쉬고, 사냥터까지 다녔다. 그러니 벌써 레벨을 2개나 올린 것이다.

틱-

인우는 러닝머신을 작동시켰다. 이어 속도를 최고로 올렸다.

타다다다닥-!

빠르게 내달렸다. 그리곤 러닝머신에 달린 TV의 전원을 켰다.

때마침 뉴스가 나왔다.

팜이도 구석에 자리를 잡곤 털썩 앉더니, 도톰한 배를 쭈욱 내밀곤 TV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얼마 전, 나이트 길드의 본부가 화재로 전소되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정확한 원인에 대해서는 화재로 인해 파악이 힘든 상태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거대 길드들의 전쟁이 낳은······.

"···음."

뉴스를 접한 인우는 생각에 잠겼다. 분명 나이트 길드의 본부를 괴멸시킨 건 미친곰 정인우. 즉, 본인이다.

그러나 인우는 나이트 길드에 불을 지르진 않았다.

그저 팜이를 챙기고 나왔을 뿐이다.

'어떤 새끼들이지?'

누군가가 나이트 길드 본부를 화재로 전소시켰다. 누굴까? 그곳은 필시 블랙오크도 존재했고 인체실험도 자행하는 집단이었다.

본인들의 비윤리적인 실험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나이트 길드 본부를 전소시켰을 거다. 흔적도 없이 말이다.

'나이트 길드가 어떠한 집단의 의뢰를 받아 팜이를 연구하고 있었다면, 사라진 팜이를 찾고 있을 수도 있겠군.'

생각은 그쯤에서 그쳤다.

깊게 생각하진 않았다. 만일 알 수 없는 배후세력이 인우에게 칼을 들이 민다면, 인우는 흔쾌히 놈들을 깨부숴 줄 생각이었다.

"후우!"

이윽고 인우는 잡생각을 지우고 달렸다. 러닝머신은 레벨 업에 있어서 만큼은 최고의 아이템이다.

달리면 경험치가 걸을 때보다 빨리 오르고, 숨이 가빠지기에 호흡에 대한 경험치도 빨리 오른다.

그렇게 인우는 정확히 3시간 동안 러닝머신을 뛰었다.

그제야 러닝머신에서 내려왔다.

-푸후우.

시끌벅적한 러닝머신의 기계소리가 끊기자, 뒤편에서 새근대는 소리가 들렸다.

"저 새끼 저거 또 자네."

팜이는 배를 쑤욱 내민 채 대자로 뻗어 잠을 자고 있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미약하게나마 불꽃이 나왔고, 호흡에 맞춰 볼록 나온 배가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

인우는 녀석을 깨우지 않은 채 주택의 바깥으로 나섰다.

"후우."

길게 심호흡을 했다.

평범한 나날의 연속이다. 나이트 길드의 사육장에서 털어왔던 전리품도 모두 처분한 상태였다.

마나정수가 5자루에 더해서 커다란 배낭 4개 분량. 스킬 볼은 액티브와 패시브를 합쳐 자루 1개 분량.

모조리 팔았더니 201억이 나왔다.

막대한 금액이다.

이윽고 인우는 마당에 가만히 서서 저편에 보이는 3개의 사육장을 바라보았다.

40평 사육장에는 여전히 말리오를 사육했다. 그리고 첫 번째 100평 사육장에는 바실리스크의 알이 4개가 있었다. 본래 총 6개였지만, 팜이 때문에 2개가 줄었다.

아마 곧 부화할 테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100평 사육장에도 추가로 말리오 사육을 시작했다.

사육장은 금세 불어나고 있었다. 그에 따라 도축할 때는 보다 더 많은 경험치와 전리품을 획득할 것이다.

운이 좋다면 유니크 스킬 볼을 얻을 수도 있을 거다.

특히나 바실리스크의 도축 같은 경우엔 굉장한 득템을 노려볼 만했다.

미개척지대의 괴수이다 보니까 보통 물건은 안 뱉는다.

바실리스크만 제대로 사육해도 한 달에 한 번 뜨는 '용작두 광전사'를 사냥하는 것보다 큰 수익을 거둘 수도 있다. 물론 어떠한 스킬 볼이 나올지 모를 일이니 그건 그때 그때 다르겠지만.

"흐음. 이제 돈도 넘치겠다, 사육장도 몇 채 더 지어야겠어."

게다가 직원도 더 구해야 할 거다. 지금만 해도 민철 혼자서 일거리가 산더미처럼 불어난 상태였으니까.

녀석은 군말 없이 일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노예 부리듯 부리고 싶진 않았다.

게다가 홀로 하기에는 일거리 자체가 터무니없이 많다. 효율이 좋을 리 없다.

"전속 요리사도 구해야겠는데."

이윽고 인우는 지금쯤 사육장에서 일하고 있을 민철에게로 향했다.

인우는 어떤 방식으로 직원을 구하고 요리사를 구하는지 몰랐기에, 민철이에게 위임할 생각이었다.

* * *

어두컴컴한 밀실.

이곳에 나이트 길드의 본부를 전소시켰던 무리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골치 아프군."

기다란 테이블 끄트머리에 앉은 사내가 말하고 있었다.

실험체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이후 그들은 '실험체'를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우선적으로 나이트 길드 본부에 있던

그 결과, 나이트 길드에 쳐들어온 놈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이없게도.

녀석들은 단 두 명이었다.

그것도 곰 인형 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특히나 용작두를 들고 있는 녀석은 막강한 무력을 보여 주었다. 본부에 있던 수백의 병력. 그리고 마스터 백두진. 끝으로 블랙오크까지.

그동안 그들의 충실한 개의 역할을 해 주던 나이트 길드.

그런 나이트 길드가 무너졌다.

모조리.

그것도 단 한 놈에 의해 괴멸했다. 물론 또 다른 한 명이 존재하긴 했지만, 들러리였다.

거기까진 괜찮다. 어차피 충견은 더 있다. 설령 없더라도 다시 구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자신들에겐 소모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에······.

다만,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고작 나이트 길드 따위와는 감히 비교조차도 되지 않을 실험체.

그 실험체를 지키기 위해 나이트 길드 본부에 블랙오크까지 심어 놓았었다.

그런데 그 곰돌이 새끼가 나이트 길드를 괴멸시키고 실험체를 가져가 버렸다.

"꼭 찾아야 한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말을 마친 사내의 눈엔 공포심이 어려 있었다.

무슨 수를 쓰든 꼭 찾아야만 했다.

못 찾았다는 보고가 그분께 들어가는 순간.

그때는 정말 끝이었다.

< 049화 무럭무럭 자라라 > 끝

ⓒ 호종이

< 050화 가디언 (1) >

현재 대한민국 초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나이트 길드의 괴멸이었다.

언론에서는 나이트 길드의 본부가 화재로 전소 되었다고 알렸지만, 떠도는 소문은 달랐다.

어디서부터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정보.

고작 한 사람이 나이트 길드를 때려 부수고 괴멸시켰다는 것이다.

둘이서 활동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대체로 홀로 활동한다 했다.

그는 곰 인형 탈을 쓰고 용작두를 쥔 채로 나이트 길드를 궁지로 몰아넣었다고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초인들은 나이트 길드의 무력함을 비웃었다.

어찌 단 한 놈에게 농락당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나이트 길드의 본부가 괴멸하자 모든 초인들은 침묵했다.

단신으로 길드를 깨부순 정체불명의 인간.

미친곰.

그는 도대체 누구일까?

이에 대한 관심은 초인관리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관리국은 얼마 전 3개월 만에 100레벨을 달성한 '정인우'라는 초인 때문에 아직 폭풍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한데 이번엔 나이트 길드의 괴멸이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관리국은 즉각 조사에 착수했다.

거대 길드의 괴멸도 괴멸이지만, 그러한 태풍을 몰고 온 존재가 일개 개인이었기에 그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미친곰은 결단코 위치나 꼬리가 밟히지 않았다. 미친곰은 무서울 정도로 치밀하고 영악했다.

결국 관리국은 미친곰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찾지 못했다.

점차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초인관리국은 미친곰에 대한 조사를 뒤로 미루고, 우선적으로 3개월 100레벨의 주인공 '정인우'에 대한 건을 처리하기로 했다.

관리국은 정인우를 포섭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그리고 초인관리국 강원도 지부.

5팀의 팀장 박강중은 상부의 지시를 받고 정인우를 포섭하기 위해 움직였다.

최대한 정인우의 심기를 건드려선 안 된다. 강중은 약 3개월 전 처음 만났던 정인우에 대해서 떠올렸다.

당시 불법초인으로 의심해서 정인우를 잡아들였었다.

그러나 그때 정인우의 레벨은 고작 7이었다. 초인은커녕 일반인에 불과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난 것이다.

"100이라니. 하하······."

납득조차 불가능한 성장률이다.

간혹 재벌 2세들이 거대 사육장을 만들어 놓곤 순식간에 레벨을 올리는 경우도 있긴 했다.

그러나 제아무리 돈지랄을 해도 3개월 만에 100레벨을 달성한 초인은 없었다.

"그나마 안면이 있으니. 협조적이었으면 좋겠군."

정인우 포섭에 성공하면 승진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 * *

100평 사육장 두 채의 공사가 추가 진행됐다. 일전에도 그랬듯이 시간은 한 달 정도 걸릴 것이다.

이 두 채의 공사가 완료된다면 인우의 사육장은 도합 5개가 된다.

사육장이 늘어난다면 민철이 혼자서 감당할 순 없을 거다. 그래서 인우는 민철이에게 사육장 직원을 구해 놓으라 일렀다.

인우의 영역은 점차 크게 부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인우의 고민이 늘어났다.

'이 정도 영역이면 가디언이 있어야 돼.'

인우는 자신의 영역을 누군가가 침범해 오거나, 또는 자신의 것을 빼앗긴다거나 손해 보는 걸 극도로 꺼려했다.

사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이제 인우는 자리를 비우는 시기가 많아질 텐데, 사육장을 지켜낼 가디언이 필요했다.

'프로킨에 있을 때야 마탑의 대마법사 놈들이 알아서 다 준비해 줬는데······. 이제는 내가 구해야만 한다.'

당시 황제 정인우에게는,

황궁을 지키는 수호 골렘 부대가 존재했었다. 마력으로 만들어 낸 생명체이자, 웬만한 괴수나 검사들을 한 방에 날려 버리는 무지막지한 가디언이었다.

전쟁의 판도를 뒤바꾸는 가디언들이었으니, 가진 바 무력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밖에도 황궁 수호기사단을 비롯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병사들이 존재했었다.

그런데 지구에는 달랑 민철이와 팜이가 전부였다.

초라함을 떠나서 불안하다.

'가디언을 어떤 놈들로 구해야 하나······.'

우선 돈이 넘쳐흐르도록 많았으니 초인들을 돈으로 매수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그러나 인우는 인간을 그다지 신뢰하지 못한다. 특히나 지구인이라면 더더욱.

인간은 언제고 뒤통수에 칼을 꽂아 넣을지 모르는 존재다. 솔직한 말로 인우는 아직까지도 민철을 완벽히 신뢰하진 않았다.

물론 민철이 좋은 녀석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 변할지 모른다. 인우 본인조차도 인간이기에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차라리 괴수가 나을지도 모른다. 놈들은 먹고 파괴하고 번식하는 본능만이 만연한 놈들이다.

'바실리스크는 어떨까?'

잠시 고민해 보았다. 바실리스크가 알에서 깨어나면 새끼 때부터 교육을 시켜보는 거다.

그러나 인우는 금세 고개를 내저었다. 괴수는 괜히 괴수가 아니다. 놈들은 본능적으로 인간을 적대시한다.

물론 길들이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거다.

다만, 길들인다고 해도 집 앞마당에 풀어 놓을 정도는 못된다.

놈들은 어디까지나 괴수이기에, 집 앞을 지나가는 우체부를 난데없이 집어 삼킬 수도 있었다.

즉, 인우의 명령을 듣게 만들 순 있지만, 어디까지나 괴수이기 때문에 뒷감당이 힘들다는 거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지능를 겸비한 괴수가 필요했다.

이를테면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괴수.

'말이 통하는 괴수라······.'

한참을 고민했다.

깊어지는 고민과 함께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오래지않아 인우의 눈동자가 금세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아. 그래, 그 년이 있었지!'

이윽고 인우는 용작두를 챙겼다.

* * *

괴수라고 해서 무조건 파괴본능만이 가득한 괴물들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지성이 있는 괴수도 존재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러한 괴수들은 미개척지대에서나 볼 수 있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지성이 있다면 사냥터를 빠져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그에 대한 답은 존재한다.

사냥터에 박혀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 따위가 있다는 거다.

어느덧 인우는 일전에 민철이 바들바들 떨면서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혀, 형님··· 저기에 귀신이!

보라색 머리카락을 지닌 여자라고 했다. 인우의 예상이 맞다면 그 여자는 괴수일 것이다.

그것도 보통 괴수가 아니다.

그렇기에 가디언으로 딱이었다.

해서, 인우는 강원도 사냥터에 들어선 상태였다.

곰 인형 탈은 입지 않았다. 그저 리빙아머를 입고 용작두를 쥔 채 등에는 커다란 배낭을 하나 멨다.

배낭의 입구에는 팜이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녀석은 무엇이 그리 신기한지 연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주변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가 보자고."

인우는 걸었다.

강원도 사냥터는 오늘도 한적했다. 이곳이야 늘 인적이 드물곤 했다. 지방에 위치한 사냥터이니 당연한 일이다.

인우는 단숨에 10존의 경계를 넘었다.

그리곤 일전에 민철이 가리켰던 건물 앞에 도착해 있었다.

"저곳 3층인가."

인우는 그곳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유독 깨끗하게 닦여진 창문이 보였다.

다른 창문들은 깨지거나 먼지나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반면에, 저 창문만 깨끗하다.

누군가가 거주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 이 년이 인간 흉내라도 내려는 건가."

그렇게 말한 인우는 건물의 입구로 향했다. 그 뒤 계단을 타고 올랐다.

이윽고 3층.

문은 닫혀 있는 상태였다.

철컥-

그러나 잠겨 있진 않았다. 애초에 잠겨 있었다고 해도 부술 생각이었다.

"흐음."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말끔히 정돈되어 있는 거실이 한눈에 들어왔다.

인우는 신기함을 감출 수 없었다.

바닥에는 커다란 오망성이 그러져 있었다.

일종의 마법진이랄까?

"이 년이 저것 때문에 여기에 딱 박혀 있었군."

내부에서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자리를 비운 것 같았다.

이곳에는 4개의 방이 존재했다. 인우는 첫 번째 방을 열어보았다.

문을 열자마자 빌어먹을 냄새가 났다.

"크으. 썩은 내. 고약한 년 같으니라고."

그 방안에는 괴수들의 살덩이와 피가 한 가득이었다.

"먹이 창고인 건가."

방을 확인하자 다시금 확신이 들었다. 퀸의 거주지가 맞다.

인우는 코를 막고선 방문을 닫고 나왔다.

이어 두 번째 방문을 열어 보았다. 그곳엔 각종 옷가지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안경에서부터 모자, 나아가 악세사리까지.

구두와 신발도 잔뜩 있었다.

"너도 여자라는 거냐?"

아마도 경계를 넘어섰던 초인들이 죽게 되면 옷을 벗겨왔던 것 같다.

옷 욕심이 꽤나 있는 것 같다.

"오케이. 하나 접수."

그렇게 중얼거린 인우는 세 번째 방문을 열어보았다.

이곳엔 각종 책들이 보였다.

'생각보다 따분한 퀸 일수도 있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문을 닫아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방은 화장실이었다.

모든 방을 확인한 인우는 거실 마법진 중앙에 걸터앉았다. 그리곤 배낭에 있는 팜이를 꺼내주었다.

자유를 얻은 팜이는 팜팜 거리며 이곳저곳을 다니다, 괴수들의 시체가 있는 곳 근처를 가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인우에게로 도망쳐 왔다.

그 모습을 본 인우는 팜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했다.

"야. 팜아. 집주인 오면 얌전히 굴어야 한다?"

-파암.

녀석이 맡겨만 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인우는 벌러덩 드러눕더니 뒤통수에 깍지를 꼈다. 그리곤 한 쪽 발을 떨어 대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톡.

그러자 떨어 대는 발에 팜이가 올라탔다.

-푸후후후!

녀석은 떨려오는 진동을 만끽하며 인우의 발을 부여잡고 있었다.

한참 낄낄대며 놈과 놀아 주기도 잠시.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인우는 슬쩍 고개를 돌려 현관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보라색 머리카락을 한 창백한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절단된 바실리스크의 머리통이 들려 있었다.

절단면에선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후우."

그 여자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인우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인우 또한 그녀를 바라보았다.

백지처럼 창백한 얼굴.

보라색 머리카락.

피처럼 붉은 눈동자.

그리고, 인간이라기엔 지나치게 아름다운 얼굴.

덤으로 늘씬한 몸매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가슴.

그녀의 정체는 뱀파이어 퀸이었다.

"여, 왔냐?"

인우가 씨익 웃었다.

"······."

마치 자기 집 안방이라도 된 듯 자연스레 누워서 자신을 맞이하는 인우를 보곤 뱀파이어 퀸은 할 말을 잃었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지기도 잠시.

뱀파이어 퀸은 현관문을 닫고 거실로 들어섰다.

그러더니 첫 번째 방문을 열고, 그곳에 바실리스크의 머리통을 내던져 버렸다.

쾅-

그 뒤 방문을 닫고 거실로 걸어왔다.

이윽고 그녀는 인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인간? 꺼져라. 이곳은 나의 영역."

인우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팜이가 인우의 정수리로 날아올라 자리를 잡았다.

이어 팜이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뱀파이어 퀸을 바라보았다. 인우의 말이 있었기에 얌전히 있을 생각이었다.

어느덧 인우는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영역 같은 소리하네. 그리고, 곧 주인님이 될 사람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뒤지게 맞을라고."

"······."

순간 퀸은 잔뜩 벙찐 얼굴을 했다.

그리곤 순식간에 눈빛을 번뜩이곤 인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너 오늘 잘 걸렸다."

인우 역시 뱀파이어 퀸의 움직임에 응수하듯 신형을 날렸다.

< 050화 가디언 (1) > 끝

ⓒ 호종이

< 051화 가디언 (2) >

뱀파이어 퀸은 흡혈귀답게 피를 마시며 산다.

다만 인간의 피는 마시지 않는다. 퀸은 괴수의 피를 마신다. 그렇기 때문에 퀸의 먹이 창고에는 괴수의 사체들이 가득했던 것이다.

여하튼, 퀸은 송곳니를 드러낸 채 인우의 목덜미를 노리진 않았다. 그저 죽일 기세로 인우를 향해 손톱을 휘둘렀다.

그녀는 마치 고양이처럼 양손을 갈고리 모양으로 만든 뒤 휘두르기 시작했다.

파밧!

인우는 퀸의 공격을 피하며 기회를 엿봤다.

쐐액!

퀸의 손톱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붉은 레이저 같은 빔이 쏘아져 나왔다.

저 공격은 피를 뽑아내 마력으로 응축시킨 맹공.

리빙아머 따위는 단박에 잘라 낼 막강한 공격이다.

쉬이이익-!

붉은 레이저가 마치 실타래처럼 뒤엉킨 채 인우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오징어처럼 흐물거리는 실타래는 어디로 튈지 몰랐다. 그래서인지 회피는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었다.

그때.

"크아압!"

인우는 기합을 넣고 용작두을 가슴에 댔다.

대검 막기.

대검 막기 스킬이 발동 되자, 퀸의 붉은 레이저가 거짓말처럼 가로막히기 시작했다.

캉! 캉! 캉! 캉!

"칫!"

퀸이 이를 갈았다.

인우는 대검 막기를 발동시킨 상태에서 왼손에 화염구를 만들어 냈다.

그 광경에 퀸의 눈이 부릅떠졌다.

"마법이라고?"

분명 검사인줄 알았건만 난데없는 마법이라니.

그녀의 기겁을 비집고 인우의 화염구가 날아들었다.

화르륵-!

"꺄악!"

퀸은 비명을 내지르며 뱃가죽을 강타한 화염구를 바라보았다.

생각조차 못했던 마법 공격이었던지라 고통이라기 보단 놀라움이 깃든 비명이었다.

푸스스스스.

그녀의 몸을 강타한 불꽃은 단숨에 사그라들었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퀸의 마법저항은 파이어 볼에 당할 정도로 낮지 않다.

"재밌는 잔재주를 가지고 있구나!"

비명을 내질렀던 게 창피해서였을까? 퀸은 얼굴을 붉힌 채 소리치고 있었다.

그러자 인우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더 재밌는 거 보여 줄까?"

"뭐, 뭐라고?"

쩌저저저저저적-!

인우의 손바닥에 강렬한 스파크가 튀었다.

기가 라이트닝.

파이어 볼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고위급 마법.

퀸은 어찌나 놀랐는지 단숨에 신형을 날려 창밖으로 뛰어나갔다.

쨍그랑-!

창문이 깨지며 그녀가 사라졌다.

이렇듯 좁은 공간에서 기가 라이트닝을 피할 방법은 존재치 않았다.

그랬기에 바깥으로 나간 것이다.

인우는 그녀를 쫓았다.

타다닥-!

쿠우웅-!

인우의 신형이 단숨에 그녀를 쫓아 바닥에 내리꽂혔다.

어찌나 과격하게 뛰어내렸는지 바닥이 바르르 떨리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퀸은 저만치 앞에서 인우를 쏘아보고 있었다.

인우가 여전히 한손에 기가 라이트닝을 응축시켜 놓은 채 말했다.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난 넓은 공간 전문이야."

쩌적!

어느덧 인우는 기가 라이트닝을 거뒀다.

그리고 눈을 번뜩이며 광폭화를 시전했다.

고오오오오-!

그 뒤 포효.

"크아아아아압!"

이어 대검관통.

파드드득! 쐐애애액!

땅거죽이 갈라지며 인우의 신형이 총알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러자 인우의 정수리에 앉아 있던 팜이가 잔뜩 놀라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인우의 정수리는 안전바 없는 롤러코스터였다.

-파암!

팜이는 빽 하고 소리치고 있었다.

인우는 여전히 앞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이에 퀸은 기겁을 하며 붉은 레이저를 마구잡이로 휘둘러댔다.

캉! 캉! 캉!

인우는 쏘아져 나가면서 동시에 용작두를 휘둘러 그녀의 레이저를 쳐냈다.

"이··· 이!"

짜증이 나는지, 고왔던 퀸의 이마가 단숨에 신문지처럼 우겨졌다.

이윽고 그녀는 쏘아져 나오는 용작두에 두 손을 올렸다.

그 상태로 퀸은 공중제비를 돌았다.

퀸은 인우를 뛰어넘은 채로 다시금 거리를 벌렸다.

"오호."

인우는 감탄했다.

확실히 지능이 있는 괴수여서 상대하기가 번거롭다. 퀸은 검사를 상대하는 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더 욕심이 났다.

저 년은 가디언으로 딱이다.

"너는 반드시 내가 갖는다."

인우의 눈동자가 불타올랐다.

* * *

"커, 컥!"

"헥. 헥. 헥."

인우는 잔뜩 지쳐 버린 채로 퀸의 목을 지르밟고 있었다. 퀸은 숨통이 막히는지 바르작거리면서 인우의 발을 마구 할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손톱은 이미 깨끗이 잘려나간 상태였다.

게다가 인우는 리빙아머까지 입고 있다.

부질없는 저항일 뿐이다.

인우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긴말 안 해. 내 종이 되라."

"컥, 꺼져라··· 인간···!"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인우는 짧게 답하며 용작두의 검면으로 그녀의 머리통을 마구잡이로 쳤다.

쾅! 쾅! 쾅!

"크헉!"

결코 죽일 생각은 없다. 그저 퀸이 정신을 잃을 때까지 두드려 팼다. 결국 그녀는 코피를 쏟아 내며 기절했다.

"후우! 독하네."

인우는 기절한 그녀를 안아들었다.

그러더니 인우는 다시금 건물로 향했다.

그리곤 3층으로 들어섰다. 그 뒤 퀸을 거실에 눕혔다.

"아이고. 힘들다."

-파암!

어느덧 팜이가 인우의 정수리에 내려앉았다. 마치 '이제 어쩌려고?' 라고 묻는 것 같다.

인우가 말했다.

"보면 알아."

이내 인우는 그녀의 먹이창고로 들어섰다.

빌어먹을 냄새는 여전하다.

인우는 먹이를 다 치워 버렸다. 피를 추출해 담아 놓은 통도 창밖으로 죄다 쏟아 버렸다.

배고픔 앞에선 장사 없다.

이윽고 인우는 거실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퀸을 내려다보았다.

"확실하게 굴복시켜 주마."

그녀의 육체는 거실 중앙에 박힌 오망성 위에 얹혀진 상태였다.

"말 잘 듣는 강아지로···"

인우는 그녀를 확실한 노예로 정신 개조를 시킨 뒤 데려갈 참이었다.

이윽고 인우는 퀸의 거주지를 빠져나왔다.

* * *

퀸이 정신을 차린 건 한참이나 지나서였다.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신음부터 흘렸다.

"끄흑··· 빌어먹을 인간 놈······."

자신은 죽지 않은 것 같다. 그 미친놈은 인정사정없이 자신을 두들겼다.

당시를 떠올리자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놈의 용작두에 의해 손톱까지 아작 나 버렸다.

어떻게 가꾼 손톱인데, 이렇게 돼 버렸다는 사실이 화가 났다.

"으아악······."

이내 퀸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새웠다. 그리고 가장 먼저 거실 중앙에 설치 된 오망성부터 확인했다.

"휴우."

오망성은 멀쩡했다.

다행이다.

이 마법진은 퀸에겐 꼭 필요한 것이었다.

이것은 일종의 버프라고 봐도 좋았다. 이 마법진으로 인해 퀸은 뱀파이어임에도 태양 아래에서 멀쩡히 활동할 수 있었으니까. 오망성은 그밖에도 무수히 존재하는 뱀파이어의 약점들을 극복하게 만들어 준다.

그렇기 때문에 퀸은 가능하면 이 마법진에서 일정거리 이상의 지역으로는 나가지 않는다.

"···오망성의 위치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나?"

그러나 그것마저도 힘이 회복되어야 가능했다.

이윽고 퀸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놈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놈은 힘을 이용해 자신을 찍어 눌러 노예로 만들 생각인 것 같았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퀸은 그에 응해 줄 생각이 없었다.

"이 비겁한 인간 자식. 몸만 회복되면 그땐······. 끄으. 배고파··· 어서, 피를."

지독한 갈증이 느껴졌다. 어서 피를 마셔야 한다. 피를 마셔야 육체도 금세 회복될 테니까.

이내 퀸은 먹이 창고의 문을 열었다.

"···응?"

그러나 창고는 텅 비어 있었다.

다시금 머릿속에 그 빌어먹을 놈이 떠올랐다.

"이, 이, 나쁜 놈이 내 먹이를···!"

이를 바득 갈았다.

다행인 건, 창고바닥에 핏물이 조금씩 고여 있긴 했다. 이윽고 퀸은 혀를 내밀곤 바닥에 맺힌 핏물을 핥기 시작했다.

"학. 살아야 돼!"

그러나 가랑비 앞에 혀를 내미는 꼴이다. 결코 갈증이 채워지진 않았다.

"젠장!"

어쩌다 뱀파이어의 여왕인 자신이 이렇게 됐을까.

퀸은 욕을 내뱉으며 방을 빠져나왔다. 이렇게 된 이상 괴수를 사냥해서 피를 취해야 했다.

그러나 손톱은 넝마가 된 상태라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약한 괴수를 상대해야 돼."

그것이 아니라면 괴수의 시체라도 찾아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다.

"흐윽!"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열 받는다. 별 미친놈을 만나서 넝마가 될 때까지 두들겨 맞고 먹이까지 강탈당했다.

이윽고 퀸은 미개척지대의 땅으로 나왔다. 그리곤 괴수를 찾아 눈을 번뜩였다.

그리고 때마침, 저만치 앞에 코카트리스의 새끼가 보였다. 태어난 지 1개월이나 됐으려나? 저 정도의 새끼 녀석이라면 손톱이 없어도 사냥이 가능할 것이다.

퀸은 단숨에 신형을 날렸다.

-꼬끼이이이!

한참을 녀석과 씨름했다.

힘이란 힘은 모조리 쥐어짜내서 코카트리스의 새끼를 죽였다.

"하악. 하악. 하악. 갈증이 너무 심해··· 어서 피를······."

이윽고 퀸은 죽은 코카트리스 새끼의 목에 송곳니를 들이밀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쩌저저저저적-!

"꺄아아아아악!!"

난데없이 정수리부터 엄청난 양의 전압이 스며들었다.

"커, 커헉······."

철퍼덕-

그녀는 심지어 거품까지 물면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잔뜩 지친 상태였기에 이 한 방에 나가떨어진 것이다.

저벅. 저벅.

어느덧 저만치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퀸은 불안한 기색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서, 설마···"

어느덧 자빠진 퀸의 시선에 난데없이 얼굴을 들이민 사내가 보였다.

그놈이었다.

그 빌어먹을 새끼였다.

그 자식이 히죽 웃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내 종이 돼라."

"으아아아악! 이 독종 새끼!! 꺼져라!!"

"음. 그래? 싫다는 거지?"

이윽고 놈은 용작두를 치켜들고 또 다시 검면으로 그녀의 머리통을 사정없이 내려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꺼, 커헉."

퀸은 또 다시 기절했다.

* * *

그로부터 3일이 지났다.

오늘도 어김없었다.

퀸의 감겨 있던 눈꺼풀이 안쓰럽게 떨려 대며 간신히 열리고 있었다.

"끄으······."

퀸은 깨어나자마자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저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들었다.

"하아아······."

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그녀의 반들거렸던 피부는 푸석해져 있었고, 나아가 붉은 눈동자는 퀭한 빛만이 가득해 보였다.

그녀는 미칠 것 같았다.

놈은 결코 자신을 죽이지 않았다. 그저 종이 되라. 묻고, 싫다고 하면 사정없이 패길 반복하고 있었다.

몸은 점차 말라갔다.

피를 마시지 못한다면 정말로 죽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나쁜 새끼."

여전히 그녀가 정신을 차린 곳은 거실 중앙 오망성이었다. 그 미친놈은 계속 여기다가 그녀를 옮겨다 놓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터벅 터벅-

거실 저편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퀸은 본능적으로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이제껏 그녀가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며칠간의 조련 끝에 본능적으로 인우에게 공포를 느끼고 있는 퀸이었다.

그리고 또 다시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얄밉게도, 놈의 목소리는 활기찼다.

"여, 일어났냐?"

"······."

퀸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은 거의 울상이었다.

인우는 그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연신 미소를 짓고 있었다.

퀸이 바들바들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도,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그러나 인우는 답이 없었다.

하다못해 그녀를 향해 종이 되라고 묻지도 않았다.

"야! 내가 묻잖아!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거냐고!"

그녀는 연신 인우를 향해 대답을 구했다. 이번에도 종이 되라고 말하면 그냥 알겠다고 할 참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

근데 인우의 입술은 굳게 닫힌 상태다. 심지어 폭행을 가하지도 않는다.

어처구니없지만, 퀸은 그것이 불안했다. 그렇게 묻지 않으니 도리어 불안감이 가중된다.

'이제라도 무릎 꿇고 빌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그때.

인우가 갑작스레 그녀의 앞에 앉았다.

퀸은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이윽고 인우의 손이 그녀를 향해 뻗어져 왔다.

그에 퀸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만큼 두려웠다.

그렇게 눈을 질끈 감고 있기도 잠시.

'···응?'

난데없이 코앞에서 달콤한 향기가 나기 시작했다.

킁킁. 킁킁.

코를 찡긋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이건 분명 피 냄새인데······.'

갈증이 솟구쳤다. 미칠 것만 같았다. 개처럼 핥아 댈 수도 있었다.

이내 퀸은 조심스럽게 눈을 떠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눈앞에는, 인우의 손에 들린 컵이 보였다. 투명한 컵에는 아주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싱싱한 붉은 피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곤 인우의 눈치를 살금살금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인우는 피식 웃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마셔라."

"······."

"마시라고."

갑작스러운 친절.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의문보다는 갈증이 더 컸다.

퀸은 저도 모르게 컵에 손을 가져갔다. 그 뒤 입술을 향해 컵을 단숨에 들이댔다.

꿀꺽 꿀꺽-

체하진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다급하게 피를 마셨다.

어찌나 급하게 마셨던지 그녀는 콜록거리면서 기침까지 내뱉고 있었다.

아! 달콤했다. 여태 먹어보았던 그 어떤 피보다 달콤했다.

어떻게 이토록 맛있는 피가 있을 수 있는가!

갈증을 해소한 퀸은 조심스럽게 인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금 들려온 인우의 말은 지금 마신 이 피보다 더 달콤했다.

"내 종이 되라. 그러면 이까짓 피는 배가 터지도록 제공해 주도록 하지."

말을 마친 인우는 퀸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러자 퀸은 몸을 덜덜 떨며 강아지처럼 얌전히 있었다.

< 051화 가디언 (2) > 끝

ⓒ 호종이

< 052화 몽땅이요? >

퀸을 데리고 온 뒤로 일주일이 지났다.

오망성은 인우의 주택 거실에 설치된 상태였고, 이제 퀸은 좋든 싫든 이곳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퀸은 인우에게 완벽히 굴복한 상태다.

나아가, 퀸은 이곳에 온 뒤부터 직접 사냥 할 필요도 없었다. 인우는 약속대로 괴수의 피를 배가 터지도록 제공해주었으니까.

피라고 해봐야 괴수를 도축하고 취하면 그만이었기에 넘칠 수밖에 없었다.

도리어 본래에는 쓰레기 정도의 의미밖에 되지 않았던 괴수의 피로 퀸을 완벽히 포섭한 것이다.

인우로선 나쁠 게 하나도 없었다.

퀸은 인우에게 절대복종하며 이곳 주택에 머물렀다. 인우의 거처는 200평의 초호화 주택이었기에 퀸이 기거할 공간은 충분하고도 넘쳤다.

그녀는 굉장히 깔끔한 성격으로 하루에 두세 번의 청소를 했다.

덕분에 인우의 초호화 주택에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먼지 한 톨 없었다.

역시 집안에는 여자가 있어야 한다.

나아가 인우는 퀸을 가디언으로 사용함과 동시에 사육장의 관리도 맡겼다.

그녀는 능숙하게 괴수들을 관리했다. 본래 미개척지대에 살았기 때문에 괴수에 대해 잘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때문일까? 퀸이 오고난 뒤로부터 민철은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퀸이 워낙에 괴수를 능숙하게 사육했기에 민철은 그만큼 할 일이 줄어든 것이다.

민철의 몸은 그만큼 편해졌다. 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마음까지 편하진 않았다. 이 상태가 지속되다가는 인우에게 있어서 민철의 가치가 떨어진다.

그랬기에 민철은 위기의식을 느꼈다. 본래 인우의 관심을 독차지 했었건만, 저 여자가 온 뒤부터 변해버렸다. 처음에야 민철도 좋았다. 다 떠나서, 저 여자는 너무 예뻐서 그냥 마냥 좋았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후우."

민철은 현재 말리오 사육장에 들어선 상태였다. 그곳에 퀸이 보였다.

그녀는 말리오들을 바라보며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민철은 한동안 그녀의 뒤태를 감상하다가 헛기침을 했다.

"크흠."

"..."

퀸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민철은 영 못마땅한지 한 마디 내뱉었다.

"붉은 성수의 농도는 주기적으로 체크해야 합니다. 말리오의 독성은 굉장히 위험하거든요. 물리면 그냥 죽는 거예요."

"..."

그녀는 답이 없었다. 늘 그랬다. 다만 인우에게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인우만 보면 강아지처럼 배를 까고 아양떨기 바빴으니까.

'에효...'

이윽고 민철은 고민에 잠겼다.

뭐라도 해야 한다. 다른 것은 제쳐두고서라도 민철은 인우가 좋았다.

'이대론 안 돼. 내 가치를 더 높여야 해.'

민철의 고민은 더욱 더 깊어지고 있었다.

* * *

러닝머신 위를 달리며 TV를 틀었다.

인우는 시간이 많아졌다. 사육장 관리는 알아서 척척 되었고, 누군가가 쳐들어온대도 퀸이 막아줄 테다. 인우가 신경 쓸 것은 없었다.

그랬기에 인우는 온전히 레벨 업에 돌입했다. 사냥과 러닝머신에 모든 시간을 할애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인우의 레벨은 110에 도달한 상태였다. 스킬 레벨마저도 엄청난 성장을 보여 내려찍기의 경우 벌써 85레벨이 된 상태였다.

마스터 레벨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스킬 레벨은 99가 마스터다.

200레벨 이상의 랭커 초인들이나 달랑 1개 정도의 마스터 스킬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한데, 인우의 경우 벌써 99에 가까워져 있다. 게다가 내려찍기 말고도 모든 스킬들이 막강한 레벨까지 올라간 상태.

그러니 다른 초인들과는 아예 급 자체가 달랐다.

타다다다닥-!

그렇기에 더 힘을 내서 달렸다. 발을 빠르게 내딛고, 호흡은 점차 가빠졌다.

['참살'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마나 드레인'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렇게 정확히 3시간 동안 달렸다. 달리기가 끝나 갈 때쯤엔 두 개의 스킬이 더 올랐다.

"후우."

육체는 후끈 달아오른 상태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레벨이 높아지며 체력이 크게 올랐기에 힘든 것도 없었다.

따르릉.

그러길 잠시.

인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러자 인우의 인상이 대번에 구겨졌다.

"이 새끼는 지치지도 않나."

받아보지 않아도 뻔했다. 며칠 전부터 초인관리국의 박강중에게 지속적으로 연락이 왔다.

그 인간은 인우를 관리국에 포섭하기 위해 온갖 아양을 떨어대고 있었다.

인우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어딘가에 소속되어 명령을 받으며 살고 싶지 않았다.

어느 누가 감히 자신에게 명령을 내린단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인우는 관리국이 정말 싫었다. 본래에는 그냥 그랬지만, 이렇게 거머리처럼 들러붙으니 싫을 수밖에 없었다.

"핸드폰을 바꿔버릴까? 아니지. 관리국 새끼들이 그런다고 모를 리 없지."

번호를 차단해놓아도 다음 날이면 다른 번호로 또 전화가 왔다.

"에라이."

하여튼, 무언가 시비라도 걸면 관리국이고 뭐고 죄다 뒤집어 엎어버릴 작정이었다.

털컥-

이윽고 인우는 핸드폰의 배터리를 분리해버렸다.

"개자식들. 그냥 나이트 길드처럼 대놓고 시비를 걸던가."

인우는 투덜대면서 옷을 갈아입었다. 그 뒤 집을 나서 사육장에 들어갔다.

사육장의 문을 열자마자 말리오들이 울어대는 교성이 울려 퍼졌다.

인우는 사육장 내부를 훑어보았다.

-파암!

팜이는 사육장 우리를 제집 안마당마냥 날아다녔다. 그러면서 녀석은 말리오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파아암!

-쉬이이이익!!

"저 자식 은근히 폭력적이란 말이지."

시선을 돌려 다른 쪽을 바라보았다.

퀸이 보였다.

그녀는 멍하니 말리오들을 바라보면서 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었다.

"은근히 식탐이 많단 말이지."

끝으로 인우는 구석으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그곳에는 민철이가 힘없이 주저앉아 있었다.

녀석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보였다.

인우가 민철을 불렀다.

"야."

그러자 민철이 고개를 듦과 동시에 팜이가 인우에게로 날아왔고, 퀸도 곧바로 몸을 돌려 인우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파암!

팜이가 퍼드득 날아들더니 인우의 정수리에 올라타려고 했다.

그러자 인우가 손을 들어 휘휘 내저었다.

"넌 이제 너무 컸어."

아닌 게 아니라, 녀석은 이제 성인 남자 허벅지 정도의 크기를 자랑했다.

이쯤 되면 이제는 인우가 녀석의 등에 올라타도 되지 않을까? 인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팜이의 등을 양손으로 쥐고선 등에 올라탔다.

그러나 강아지 등허리로 올라탄 격이다.

팜이는 잔뜩 엄살을 부리며 금세 바닥에 주저앉았다.

-파암....!

"흠. 아직 타는 건 이른가? 빨리 좀 커라."

인우는 나중에 여동생을 만나러 갈 때 폼나게 팜이를 타고 갈 예정이었다.

어느덧 인우는 다시금 민철을 바라보았다.

"따라와."

"예 형님? 어디 갑니까?"

"응. 돈이 너무 넘쳐나서 돈 좀 쓰려고. 갑옷이나 하나 장만할 생각이다. 사는 김에 니꺼도 하나 사려고. 그러니까 따라와."

"허억...! 넵 형님!"

민철은 단숨에 얼굴에 활기가 차 있었다. 갑옷을 사준다고 해서가 아니다. 인우가 이렇게 말해줌으로 인해서 자신이 아직 버림받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해서였다.

민철의 생각이 어떻든지 간에, 인우는 민철을 버릴 생각이 없었다. 녀석은 인우의 첫 번째 부하였으니까.

이윽고 인우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퀸을 향해 말했다.

"나 민철이랑 쇼핑 좀 하고 올 테니까, 사육장 잘 보고 있어. 알겠냐?"

"예. 주인님."

"아 그리고, 바실리스크 알 4개 넣어둔 사육장은 어떻게 됐냐?"

"부화 직전이에요."

"흠. 그래? 바실리스크 새끼가 알 까고 나오면, 알껍데기는 팜이 챙겨주고."

-파암!

"예, 주인님."

퀸이 조신하게 답했다. 그러자 인우는 민철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제야 퀸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한참을 멍하니 인우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서운한 기색이 어려 있었다.

* * *

중국의 베이징.

이곳에는 새카만 피부의 존재들이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개중엔 피부색만 제외한다면 인간과 흡사한 몇몇 존재들이 있었고, 그들은 다른 존재들에게 있어 상위의 개념인 듯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일 높게 솟아 있는 어느 거대한 빌딩 내부.

이곳 회의장에 칠흑처럼 새카만 피부를 지닌 괴수들이 열변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들이 말을 내뱉을 때마다, 입술 사이를 비집고 취-익 거리는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블랙오크였으며, 중국에 분포되어 있는 13개 부족 중 하나인 바투부족이었다.

그들 중, 상석에 앉아 있는 블랙오크는 다른 개체보다 유독 몸집이 컸다. 족히 3미터는 되어 보였으니까.

그 덩치 큰 블랙오크는 열변을 토하는 다른 동족들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한국에 보냈던 마독이 죽었다."

"실험체를 지키고, 회장 놈을 돕기 위해 마독을 보냈건만, 마독은 나이트 길드에 쳐들어온 인간 한 놈에게 당했다더군."

"인간에게 당하다니 멍청한 놈!"

"애초에 거만할 때부터 알아봤는데. 나약한 녀석."

이들은 인우에게 당했던 블랙오크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공급은 줄어드는 것인가?"

그때 누군가 공급에 대해 언급을 했다.

그리고 그 말이 나오자마자 침묵이 퍼져 나갔다.

이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들은 용병 형식으로 마독을 보냈고, 그에 대한 대가로 한국인 여자를 공급받았다.

그러나 이젠 마독이 죽음으로서 공급이 줄어든 것이다.

"이곳 중국인 노예 여자들은 좋은 개체를 뽑아 내지 못해. 우린 한국인 여자가 필요하다. 많이."

중국이 함락당하며, 1억 명 가량의 중국인들이 블랙오크들에게 노예로 잡혔다.

블랙오크들은 저들끼리 번식을 하기도 했지만, 인간 여자들을 주로 강간했다.

인간 여자의 배를 비집고 나오는 블랙오크들은 다른 블랙오크들에 비해 뛰어났다.

그리고 특히나, 한국인 여자에게서 태어난 개체는 더 없이 뛰어났다.

모두 그런 건 아니었지만, 한국인 여자를 통해 위대한 전사 '바투'가 태어났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블랙오크들은 한국인 여자에 집착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바투는 강했다. 다른 블랙오크들은 상대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그렇기에 바투는 자연스럽게 부족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흐음."

지금 이곳 상석에 앉아 있는 3m 크기의 블랙오크가 바로 바투였다.

짧게 신음한 바투는 이윽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모든 블랙오크들은 눈을 내리깔고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바투가 입을 열었다.

"애초에 인간 놈들과 거래를 하는 게 아니었다. 그 회장 놈과도 연락을 끊는다. 이미 실험체도 도둑맞았기에 볼 것도 없다. 이제 우리가 직접 구한다. 한국에 있는 녀석들에게 연락해라. 전사들을 증원해 한국에 보낸다."

바투의 명에 모든 블랙오크들이 반박조차 없이 수긍했다. 바투는 가장 강한 전사였기에, 그의 말이 곧 법이었으니까.

바투의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좋은 개체들을 많이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차근차근 정복을 시작할 것이다. 먼저 13개의 부족 통합, 그리고 나아가....

섬뜩한 붉은 안광이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왔다.

* * *

인우는 긴말 하지 않았다. 그냥 딱 하나만 물어봤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초인상점이 어디냐?'

민철은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인우를 안내했다.

그렇게 인우와 민철은 강남에 도착해 있었다.

강남에는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초인상점이 존재했으니까.

초인물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SG그룹이 운영하는 거대한 초인상점.

그 커다란 상점 안으로, 인우는 후줄근한 츄리닝 차림을 한 채 들어섰다.

매장 직원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다. 이곳은 최고의 물품을 취급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시선에 비치는 인우와 민철은 그저 거지나 다름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매장 내부를 제 집 거실마냥 휘적휘적 걸었다.

민철은 거대한 매장 분위기에 짓눌렸는지 주춤대며 인우를 쫓고 있었다.

인우는 매장 곳곳에 거치된 갑옷들을 멋대로 뽑아보며 성능을 점검했다. 리빙아머보다 훨씬 뛰어난 갑옷들을 구매할 예정이었다.

인우는 주먹으로 갑옷의 흉갑을 퍽 소리가 날 정도로 쳐댔다.

"음. 이거 괜찮네."

그러자 직원의 표정이 단숨에 우겨졌다.

그러나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저 아이템이 얼마인줄이나 알고서 저러는 걸까?

만일 저러한 행동으로 인해서 제품이 훼손되면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그만이다.

직원은 그런 생각을 할 뿐이었다.

이윽고 인우는 그 갑옷을 검지로 가리키며 직원에게 말했다.

"우선 저거 하나랑."

마치 과자라도 고르는 듯 가벼운 어투다.

인우는 그 후에도 갑옷 3개를 더 찍었다. 모두 다 리빙아머보다 뛰어난 갑옷이었다. 여분이 있어서 나쁠 건 없다. 게다가 민철도 사용하게 할 참이었으니까.

그렇게 4개의 갑옷을 찍어 놓았다.

직원은 여전히 '가격 보고 얼마나 놀라 자빠지려고 저러는 거냐.' 라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인우는 그밖에도 3종류의 아티펙트와, 매장에 단 한개 밖에 남아 있지 않은 매물인 유니크 스킬 볼 까지 찍었다. 유니크 스킬 볼만 해도 50억이 넘어간다.

그제야 직원은 비릿한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물었다.

"손님. 그 아이템들이 얼마짜리인 줄은 알고 그러시는 겁니까?"

"잔말 말고 몽땅 포장해."

그러면서 인우는 카드를 건넸다. 그 한마디에 직원은 단숨에 벙찐 채로 물었다.

"몽땅 말입니까...?"

그 말에 인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052화 몽땅이요? > 끝

ⓒ 호종이

< 053화 랭커 (1) >

퀸은 홀로 사육장 청소를 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팜이가 파드득대며 날아들었다.

-파암!

팜이가 말을 걸어왔다. 그러나 퀸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관심이 없어서였다.

주인님의 애완동물인 것으로 아는데, 꽤나 사랑을 받는 녀석이었다.

"저리 안가?"

-파암!

그녀의 경고에도 팜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걸 피를 몽땅 빨아 버릴 수도 없고··· 후우."

퀸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이마를 짚었다. 그러면서도 퀸은 피식피식 웃었다. 이곳 생활은 참 즐거웠다. 위험한 사냥을 할 필요도 없고, 먹을 양식도 풍부했다.

주인님은 아예 퀸을 위해 냉장고를 하나 들여놨을 정도였다. 그곳에 괴수의 피를 잔뜩 넣어 두었다.

생각날 때마다 꺼내 먹으라 했다. 솔직히 아직까지도 인우가 무섭긴 했다. 그러나 이곳에 온 뒤로는 손찌검 한번을 안했다. 그저 시키는 일만 잘 해내면 무척이나 잘 대해 주었다.

두려움이 걷히자 자연스럽게 인우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지금에 와서 호감으로 바뀌어 가는 중이었다.

그 무뚝뚝한 말투나 행동거지들.

하다못해 머리를 박박 긁어 대는 모습까지도.

그 모든 것들이······.

"인간에게 관심을 갖게 될 줄이야······."

퀸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퀸은 모든 사육장의 청소를 끝마쳤다. 그리곤 바깥에 나와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인우의 주택에 오망성을 설치해 뒀기에 뱀파이어임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해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노을 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에서 자동차 한 대가 내달려오고 있었다.

흰색 아반떼.

그곳에는 민철과 인우가 타고 있었다.

이윽고 차가 멈췄다. 그리곤 인우가 문을 열며 민철을 향해 말했다.

"야. 갑옷들 다 주택 안에다 넣어놔. 그리고 하나는 너 쓰고."

"예 형님!"

민철은 힘차게 외치며 갑옷들을 옮겼다.

이윽고 어둠이 깔린 마당에는 퀸과 인우만이 남았다.

집을 나설 때, 인우는 츄리닝 차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검정색 슈트를 입고, 구두를 신고 있었다.

슈트는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퀸은 홀린 듯 인우를 바라보다가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얌전히 주인의 손길을 기다렸다.

이윽고 인우가 퀸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그러더니 커다란 쇼핑백을 건네는 것이 아닌가?

"너 입어라. 옷이다."

그 한마디에 퀸은 더욱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

* * *

갑옷 4개, 도합 5억.

유니크 스킬 볼 51억.

아티펙트 3개 도합 25억.

옷 값 도합 8천만 원.

총 81억 8천만 원을 썼다. 그럼에도 돈은 150억 가량이 남았다.

만일 그 매장에 유니크 스킬 볼의 물량이 더 있었다면 돈이 되는 대로 구입했을 거다.

그러나 유니크 스킬 볼은 괜히 유니크가 아니다. 그만큼 구하기 힘든 것이다. 그런 만큼 비쌀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제아무리 큰 상점이라고 해도 매물이 없을 수밖에.

일단 한 개라도 구매했으니 다행이다.

인우는 주택에 들어서자마자 오늘 구매한 물품들을 훑어보았다. 그중엔 옷가지들도 보였다. 백화점도 들러서 좋아 보이는 옷은 모조리 구매해 버렸다.

퀸에게 줄 옷과 자신의 옷 그리고 민철이의 옷도 몇 벌 샀다. 그게 8천만 원이다.

"돈은 또 금방 쌓일 텐데. 비행기 같은 건 얼마나 하지. 비행기를 사야 하나?"

그러면서 인우는 우선적으로 구매해 온 물품 중 유니크 스킬 볼을 바라보았다.

인우는 투명한 구슬을 이리저리 만지작대다가 입 안에 넣어 버렸다.

꿀꺽-

순식간에 51억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그리고······.

['암기투척'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생성된 스킬은 암살자의 기술이었다. 인우는 평소에 암살자 놈들에게 관심이 없었기에 생소해 보이는 스킬이기도 했다.

'흐음.'

꽝이 아닌 게 어디냐.

인우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액티브 스킬창을 불러보았다. 기존에 배웠던 스킬의 설명은 빠르게 넘겼다.

1. [내려찍기 Lv.85 (38%)] - ...

2. [대검관통 Lv.80 (52%)] - ...

3. [참살 Lv.79 (12%)] - ...

4. [포효 Lv.79 (16%)] - ...

5. [광폭화 Lv.67 (62%)] - ...

6. [광폭난무 Lv.57 (25%) - ...

7. 다음 스킬은 150레벨에 활성화됩니다.

8. [스윙 Lv.80 (29%)] - ...

9. [파이어 볼 Lv.70 (56%)] - ...

10. [세게 치기 Lv.47 (26%)] - ...

11. [연속 차기 Lv.45 (66%)] - ...

12. [대검 막기 Lv.46 (12%)] - ...

13. [회심의 일격 Lv.45 (62%)] - ...

14. [마나 드레인 Lv.46 (6%) - ...

15. [기가 라이트닝 Lv.46 (2%)] - ...

16. [암기투척 Lv.1 (3%)] - 던지는 모든 것이 암기( 暗器)가 되어 날아갑니다.

막상 뚜껑을 열어 본 암기투척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전투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내심으로는 또 마법이 나왔으면 했지만, 이게 어디인가. 인우는 나름대로 만족했다.

이윽고 인우는 아티펙트를 바라보았다.

반지 1개와 팔찌 1개, 그리고 목걸이 하나였다.

[용맹의 반지]

종류 ? 반지.

기능 ? 근력 15 상승.

발동조건 ? 전사 계열. 레벨 95이상.

인우는 우선 반지를 보았다. 현재 인우가 사용하는 아티펙트는 일전에 나이트 길드원을 죽이고 나서 얻은 '행운의 반지'가 전부였다.

반지의 경우 총 2개까지 착용이 가능했다.

구매해온 용맹의 반지까지 착용하면 2개가 된다.

반지를 손가락에 끼웠다.

['용맹의 반지'로 인해 근력이 15 상승합니다.]

근력 15.

레벨 3개를 올린 것과 같은 효력을 지녔다.

다음으로 팔찌를 보았다.

[데스나이트의 팔찌]

종류 ? 팔찌.

기능 ? 체력 10 상승.

발동조건 ? 레벨 80 이상.

인우는 팔찌를 착용했다.

['데스나이트의 팔찌'로 인해 체력이 10 상승합니다.]

이윽고 인우는 마지막으로 남은 아티펙트인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코카트리스의 부리]

종류 ? 목걸이.

기능 ? 육체 저항력 상승.

발동조건 ? 110레벨 이상.

이 아티펙트는 이름답게 코카트리스를 잡아야 나오는 아이템이었다.

이 장신구의 가격은 20억으로, 아티펙트 중에 가장 비싼 값을 주고 구매했다.

물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육체 저항력 상승.

쉽게 말해 들어오는 데미지를 저항하는 능력이 늘어나는 것이다. 방어력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지만,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아도 좋다.

인우는 목걸이를 착용했다.

['코카트리스의 부리'로 인해 육체 저항력이 상승합니다.]

'흠 코카트리스는 미개척지대에서나 나오는데.'

이러한 아티펙트가 매장에 존재한다는 것은, 당연히 누군가가 코카트리스를 사냥한다는 이야기다.

인우야 버려지다시피 한 강원도 사냥터만 다녔기에 몰랐지만, 사실 규모가 큰 사냥터에는 미개척지대를 누비는 랭커들도 존재했다.

문득 인우는 궁금증을 느꼈다.

한국의 랭커들은 도대체 어느 정도의 수준일까?

"내가 너무 촌구석에만 처박혀 있긴 했지."

이윽고 인우는 새로 산 갑옷과 용작두를 챙겨들고 일어섰다.

* * *

퀸은 바실리스크 사육장에 쭈그려 앉은 채 가만히 알을 바라보았다.

바드득-

도합 4개의 알.

알들이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바실리스크는 곧 태어날 것 같았다.

주인님이 알면 필시 기뻐할 것이다.

퀸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숨조차 작게 내쉬며 알을 바라보았다. 퀸의 옆에서는 팜이가 얌전히 앉아서 알을 바라보고 있었다.

팜이도 아는 것이다.

알에서 바실리스크가 태어나서 녀석들이 지속적으로 새끼를 쳐야만 본인의 먹이가 늘어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랬기에 팜이는 당장에 알을 향해 주둥이를 들이밀고 싶었으나, 참아보기로 했다.

알껍데기는 정말로 맛있긴 하지만, 조금만 참으면 앞으로도 알껍데기를 계속 먹을 수 있을 거다.

빠지지지직-!

-쿠워어-!

이윽고 알이 갈라지며 바실리스크 새끼가 튀어나와 피어를 쏟아 냈다.

퀸은 그 즉시 주인님의 명령을 떠올렸다.

-바실리스크가 태어나면 즉시 혀부터 잘라내. 너도 알고 있겠지? 녀석의 혀가 얼마나 무서운지 말이야. 새끼 때는 혀가 여물지 않아서 쉽게 잘릴 거야.

파밧-!

퀸의 신형이 단숨에 우리를 타고 넘었다.

그 뒤 그녀는 태어난 바실리스크의 주둥이를 한 손으로 포박한 채, 다른 한 손의 손톱을 이용해 녀석의 혀를 잘라냈다.

쐐액-!

-쿠워어어어어어!!

그러자 새끼가 발광을 해 대며 입가에서 피를 줄줄 흘렸다.

츄릅.

퀸은 입맛을 다셨다. 그리곤 바실리스크의 주둥이에서 흐르는 핏물을 핥았다.

-파암!

뒤에선 팜이가 날개를 파드득대며 난리를 치고 있었다.

그러자 퀸은 바실리스크가 까고 나온 알껍데기를 팜이에게 던져 버렸다.

후웅-!

아그작!

팜이는 단숨에 날라들어 훈련된 개처럼 능숙하게 알껍데기를 받았다.

그 뒤 짧은 팔을 이용해 알껍데기를 움켜쥐고는 야금야금 갉아먹기 시작했다.

-파아아암!

"달콤해."

그렇게,

살벌하기 그지없는 두 괴수의 식사시간이 시작되었다.

"후우. 갓 태어난 새끼의 피라서 그런지 맛이 너무 좋다."

퀸은 입맛을 다셨다. 생각 같아서는 새끼의 몸통에 이를 박아 넣고, 녀석이 죽지 않을 정도로만 피를 빨고 싶었다. 그러나 참았다.

그러다가 바실리스크 새끼가 죽기라도 한다면 주인님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끙."

이윽고 퀸은 우리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곤 아차 싶었다.

"아······."

그녀의 옷에 바실리스크의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던 것이다.

"주인님이 새로 사준 옷인데······."

퀸은 울상이 되었다. 그러더니 옷을 훌러덩 벗고는 주택으로 향했다.

어떻게든 다시 깨끗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녀의 생에서 처음으로 받아 본 선물이었으니까.

* * *

인우는 규모가 큰 사냥터들을 알아보았다. 여러 군데가 존재했지만, 그 중 인우는 구리시 사냥터로 향했다.

이곳은 큰 규모를 자랑하는 만큼 사냥터에서 출몰하는 괴수들이 많았고, 랭커들도 존재한다고 했다.

인우는 구리시 사냥터 철벽 앞에 도착한 상태였다.

입구에서부터 엄청난 인파가 보였다.

효성동 사냥터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허, 참······."

깡촌에서 살다가 난생 처음 상경하는 촌놈의 기분이 이러할까?

"바글바글하네."

구리시 사냥터를 처음 접한 인우의 감상평이었다.

그 말대로 바글바글했다.

인우는 인파를 뚫고 걸었다.

그리곤 입장료를 지불한 뒤 구리시 1존으로 진입했다.

1존마저도 초인들이 득시글거렸다. 그들 대부분은 파티나 공격대 단위로 움직이고 있었다.

대다수의 초인들이 이렇다.

길드에 속해 공격대를 만들거나 저들끼리 파티를 결성한다.

다만 랭커는 다르다.

랭커는 애초에 독보적인 존재.

200레벨이 넘어가는 그들은 길드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물론 랭커들 중에도 길드에 귀속된 초인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초인들도 많았다.

길드에 속하든, 속하지 않든 어차피 강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랭커는 강하다.

그렇기에 거대 길드에서도 가급적이면 랭커와의 마찰은 피하고자 한다.

나이트 길드 역시 인우를 랭커라 생각하고 많은 골머리를 앓았지 않은가.

랭커란 그런 존재였다.

그리고 인우는, 그런 랭커들이 궁금했다.

이윽고 인우는 구리시 사냥터의 깊숙한 곳을 향해 걸었다.

< 053화 랭커 (1) > 끝

ⓒ 호종이

< 054화 랭커 (2) >

구리시 사냥터 9존.

인우는 이곳까지 줄기차게 달려왔다.

사냥터의 규모 자체가 워낙에 컸던지라 정말로 한참을 내달렸다.

-츠으으!

"조져!"

이곳 9존의 초인들은 언데드 괴수들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엄청난 인파가 모여 저마다 전투를 벌이니, 마치 전쟁터 한가운데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크르으.

한참을 구경하기도 잠시.

듀라한 한 마리가 인우를 쏘아보며 다가오고 있었다.

잘린 머리통을 오른손에 쥐고 있는 듀라한. 녀석은 고개를 돌리는 대신, 오른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곳에 들린 머리통으로 인우를 쏘아보고 있었다.

"마침 잘됐네."

인우는 그 즉시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 뒤 있는 힘껏 놈을 향해 내던졌다.

그 즉시 암기투척이 발동 되었다.

쐐애애애액-!

돌멩이는, 팔로 내던졌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을 만큼의 파공성을 흘렸다. 그렇게나 강렬한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과장하자면 이건 흡사 총알과도 같았다.

퓩!

이내 돌멩이는 듀라한의 가슴을 꿰뚫고 깊게 박혔다.

-크르르!

녀석은 언데드이기에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다만 분노할 뿐.

그런 녀석을 보며 인우가 미소 지었다.

"암기투척 이거 기대 이상인데?"

인우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며 지속적으로 돌멩이를 내던졌다.

쐐애애애액-!

퓩! 퓩!

듀라한의 몸통에 구멍이 늘어나고 있었다.

인우의 움직임은 갑옷을 입고 있음에도 경쾌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인우의 갑옷은 2억짜리.

SG그룹이라는 거대 기업에서 현대 기술을 이용해 만들어 낸 갑옷이다. 가벼운 무게감과 놀라운 방어력을 지닌 막강한 갑옷인 것이다.

물론 그래봐야 프로킨에서 사용했던 갑옷과는 비할 바 못됐다. 그때는 드래곤의 껍질을 벗겨다가 드워프들을 시켜 최강의 갑옷을 만들어서 입고 다녔으니까.

드래곤 비늘 갑옷의 무게는 깃털처럼 가볍고, 막강한 마법 저항과 더불어서 최강의 방어력을 지닌 갑옷이었다.

그러나 생각해 봐야 뭐 하나.

인우는 그저 열심히 움직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슬슬 귀찮아질 무렵.

"장난은 이쯤 할까."

용작두를 뽑아들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타다다닷-!

그 뒤 다짜고짜 내려찍기부터 꽂아 버렸다.

쾅! 쾅! 쾅! 쾅!

-크러억······!

딱 4방이었다.

그 4방에 듀라한은 무너졌다. 팔이 절단되고 몸통이 장작처럼 쪼개진 채 죽어 버렸다.

[경험치를 450 획득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광경을 지켜보았던 몇몇 초인들이 쑥덕댔다.

"오늘 용작두 광전사 뜨는 날인가? 9존에 랭커가 있네."

"그냥 미개척지대까지 넘어가는 길에 잠깐 몸 푸는 거겠지."

미개척지대와 9존의 경험치 차이는 못해도 10배 정도는 차이가 난다.

그랬기에 보통의 랭커들은 9존의 괴수들을 무시하곤 한다. 뿐만 아니라 미개척지대는 엄청난 아이템들을 드랍하기도 했으니 9존의 수익과는 비할 바 못됐다.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을까? 인우는 랭커가 아니라 이제 갓 100레벨을 넘은 초인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럼에도 내려찍기의 레벨이 86에 이른 상태였기에 듀라한을 고블린처럼 썰어 버린 인우였던 것이다.

그밖에도 암기투척의 레벨은 벌써 10이였다. 습득한 지 고작 반나절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끝도 없이 경험치가 올라 대니 이럴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인우는 듀라한의 전리품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전리품은 A급 마나정수 1개가 나왔다. 이제는 이마저도 푼돈이 되어 버린 인우.

그럼에도 인우는 정수를 배낭에 넣었다. 가만히 둬 봐야 다른 초인 놈들이 하이에나처럼 뽑아 갈 것 아닌가?

남 줄 바에야 차라리 자신이 갖는 게 나았다.

그 뒤 10존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윽고 인우는 10존에 들어섰다.

10존은 맹독 특성의 괴수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까다로운 지역이었다. 물론 인우는 맹독 저항 패시브가 존재하기에 적어도 이곳에서 죽을 이유는 없다.

다만 고통스러워 할 이유는 충분하다. 맹독 저항 패시브는 그저 저항의 의미일 뿐이기에, 중독이 되면 회복될 때까지 엄청난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어찌되었건, 인우에게나 다른 랭커들에게나 10존은 사냥터로서의 효율이 떨어지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10존이 인류가 개척한 마지막 구역이 되었던 것이다.

10존에서 사냥하기 위해선 각종 독 저항 패시브가 필요했다. 이 밖에도 무탈한 사냥을 위해선 최상급의 사제 초인까지 필요하다. 그렇기에 10존은 기회비용이 너무도 큰 지대였다.

차라리 10존 이후의 미개척지대가 효율이 좋다.

물론 그 효율이라는 의미는 그만한 전투력을 지녔을 때에 이야기였다.

미개척지대의 괴수는 애초에 가진 무력부터가 다르다. 그랬기에 경험치부터 급이 달랐고.

그만큼 그곳의 괴수는 강하다.

인우조차도 바실리스크의 알을 구하기 위해 놈과 힘겨운 사투를 벌였을 정도였으니까.

어찌되었건 인우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10존을 뚫었다.

말리오 말고도 맹독 리갈과 같은 괴수에게 걸리면 굉장히 골치가 아프다.

맹독 리갈은 식물 형태의 괴수인데, 뿌리를 다리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즉, 놈들은 식물 형태임에도 이동이 가능하다.

맹독 리갈은 인간을 보면 뿌리부터 들이밀고 본다. 그 뒤 결박시켜 맹독에 중독 시키는 것이다.

그 독성은 말리오와 비등한 정도이다.

그러니 맹독 리갈에게 포박 당하면 꽤나 골치가 아파질 거다. 이 밖에도 맹독류의 괴수가 몇 종류 더 있었다.

10존은 그야말로 맹독지대.

생각 같아서는 물탱크에다 붉은 성수를 잔뜩 담아다가 비처럼 뿌려 대고 싶은 인우였다.

하지만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다. 애초에 목적지는 미개척지대다.

인우는 10존의 괴수들을 피해 걸었다. 그러면서도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때, 인우의 눈에 활로를 뚫는 초인이 보였다.

날카로운 단검을 양손에 움켜쥔 여자였다.

그녀의 움직임은 날다람쥐처럼 경쾌했다. 때로는 괴수들 사이로 대놓고 진입해 은신 스킬을 사용하기도 했다.

인우는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다른 초인들과는 수준 자체가 다르다.

랭커일 테다.

그리고 사용하는 무기나 스킬 등을 보았을 때, 명백히 암살자 계열의 초인인 것 같았다.

'저 정도라면 프로킨에서도 손꼽히는 암살자의 수준 정도는 되겠네. 어마어마한데.'

인우는 내심 혀를 내두르며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녀는 말리오와 리갈을 농락하며 여유롭게 10존을 돌파하고 있었다.

기척과 형체를 숨기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능숙했다.

그렇게 가만히 지켜보고 있기도 잠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프로킨에 있을 당시 하루가 멀다 하고 암살자 놈들이 칼을 들이밀었다.

놈들은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몸을 숨기는 데에 최적화 되어 있기에, 공간 자체를 모조리 짓이겨 놓아야만 죽일 수 있었다.

후에는, 놈들의 기척을 자연스럽게 느끼며 능숙하게 대처했지만, 황제로 즉위한 초기에는 정말로 많은 고생을 했다.

인우는 그러한 기억 때문에 암살자를 굉장히 싫어했다.

한때는 자다가도 파리 새끼 한 마리가 얼굴에 붙으면, 암살자인가 싶어 경기를 일으키곤 하던 시절도 있었으니까.

"으."

이윽고 인우는 미개척지대로 향했다.

* * *

구리시 사냥터의 미개척지대.

이곳에 들어선 인우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주변은 고요했다.

'흠. 이래서야 강원도나 이곳이나 다를 게 없는 것 아닌가?'

인우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난데없이 지반이 뒤흔들리기 시작했으니까.

"응?"

그에 인우는 중심을 잡기 위해 발끝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바실리스크의 포효가 들려왔다.

-크워어어어어!!

한 마리의 포효가 아니다. 적어도 4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바실리스크 4마리를 몰아서 잡고 있는 초인이 보였다.

"크하하하하!"

그 초인은 미친 인간처럼 웃고 있었다.

생김새는 30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그러나 정확한 나이를 가늠할 순 없었다.

200레벨이 넘어가면, 강해질 대로 강해진 육체는 노화를 차단하는 것이다. 심지어 조금씩 역행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사냥을 한 랭커들은 대부분 노인일 것이라고 생각들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눈앞에 존재하는 남자만 해도 그랬으니까.

나아가, 프로킨의 정인우도 그러했다.

인우는 유심히 남자를 바라보았다. 자신조차도 바실리스크 1마리를 간신히 잡았다.

그런데 저 랭커는 무려 4마리를 몰고 있었다.

이윽고 남자는 양손을 하늘위로 치켜 올렸다.

"크하하하하!"

남자는 또 다시 웃으며 마법을 시전했다.

이윽고 남자가 양손을 내렸고, 그러자 공중에서 커다란 불덩이가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워어어!!

바실리스크들은 가죽을 꿰뚫는 강력한 마법에 비명을 쏟아냈다.

한참을 바라보기도 잠시.

난데없이 인우의 옆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인간 또 지 꼴리는 대로 다 때려 부수네."

인우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곳엔 아까 10존에서 보았던 암살자가 팔짱을 낀 채로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 년은 또 언제 다가온 거야.'

기분이 좋지 않았다.

현재 인우의 레벨로는 여자의 기척을 잡아낼 순 없었다. 이 여자나 저 남자나 막강한 랭커들이다.

'랭커라······.'

실제로 목격한 랭커의 무력은 굉장했다. 척 보아도 지금의 인우보다 강했다.

이러니 제아무리 콧대 높은 길드 놈들이라고 해도 랭커를 섭외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 테지.

이러한 랭커들이 얼마나 더 존재할까?

인우는 오랜만에 흥분이 되었다.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프로킨을 정복해 나갈 때에도 이러했다.

뛰어넘어야 할 벽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우에게 있어선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으니까.

이윽고 인우가 별안간 중얼거렸다.

"단숨에 올라서주지."

지구에 존재하는 상위 초인들은 자신보다 강할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애초에 인우는 1레벨부터 시작했으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다만, 두 눈으로 랭커들을 목격하자 인우가 가진 정복자의 기질이 꿈틀댔다.

인우는 위로 올라갈 생각이었다. 오르고 올라 정상에 닿아서 여유롭게 아래를 내려다볼 것이다.

어느덧 여자가 다시금 물었다.

"당신, 처음 보는데. 풍기는 기운을 봐선 랭커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무슨 깡으로 미개척지대까지 온 거야? 레벨이 몇이야?"

"백십."

"응?"

"백십이라고."

"뭐? 110 레벨에 미개척지대에 왔다고? 죽고 싶은 거야?"

"아, 111이네. 잊을만하면 올라 대네. 이거."

인우는 중얼대듯 말했다.

그러자 여자는 별 미친놈 다 보겠다는 얼굴로 인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가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다시금 말했다.

"너들. 나를 잘 기억해. 너희들 위로 단숨에 올라갈 사람이니까 말이야."

그러면서 인우는 투구를 벗었다. 그 뒤 여자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그에 여자는 고개를 내저었다. 생긴 건 말끔한 녀석이 벌써부터 저렇게 미쳐서야.

"쯧쯧."

그녀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인우가 작정한 이상 랭커의 순위변동은 오래지않아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 054화 랭커 (2) > 끝

< 055화 너 도대체 뭐야? >

인우는 투구를 벗으며 말하고 있었다.

여자는 한심한 듯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러기도 잠시.

'자, 잠깐······.'

어느덧 여자 얼굴에는 놀라움이 깃들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어려?'

분명 111레벨이라고 했다.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랭커답게 상대의 레벨을 가늠하는 능력도 수준급이었으니까.

인우의 생김새는 많이 쳐줘 봐야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100레벨 넘긴 초인 중에 이렇게 어린 사람이 있었던가?'

물론 존재는 한다. 흔히, 재벌 2세들은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사육시설을 이용해 폭렙을 하기도 했으니까.

다만 존재할 뿐 흔하진 않다. 그 경우엔 웬만한 재력으로는 꿈도 못 꾸니까.

이윽고 인우는 투구를 다시금 뒤집어썼다. 그제야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그녀 또한 인우만큼이나 어린 얼굴이긴 했다.

다만 그녀는 200레벨이 넘어가며 육체의 노화를 거슬렀기에 이러한 생김새일 수밖에 없었다.

"······."

어느덧 인우는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곤 미개척지대를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멀어지는 인우를 한참이나 응시했다.

"어린 건 둘째 치고 말이야. 고작 111레벨로 이곳의 괴수를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잖··· 응?"

"크아아압!"

지켜보던 그녀의 눈동자가 단숨에 크게 뜨였다. 인우가 바실리스크 한 마리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 저런 무모한 놈을 봤나!"

바실리스크의 크기는 족히 5미터는 되어 보였다. 성체다. 그녀는 나름의 측은지심이 발동되어 단숨에 인우를 향해 뛰어 나갔다.

타다닥!

그런데······.

쐐애애액!

-크워어어어!

그녀는 중간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허어······."

인우는 바실리스크 성체를 상대로도 전혀 밀리고 있지 않았으니까.

빠른 회피와 방어에 이은 완벽한 공격 연계.

인우가 전투를 하는 모습은 수십 년간 사냥터를 누볐던 랭커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녀는 여전히 멍청한 얼굴로 인우가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바로 그때.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다.

"김혜원. 거기서 뭐 하냐. 멍청한 얼굴로 말이야."

"어어어······. 미친개. 저것 좀 볼래?"

미친개.

방금 전까지 바실리스크 4마리를 몰아서 메테오를 쏘아 대며 미친 사람처럼 웃던 랭커였다.

그가 혜원의 시선을 따라 인우와 바실리스크를 바라보았다.

"뭔데 저 새끼는? 랭커야?"

"랭커가 아니야······."

"더위 먹었냐. 랭커도 아닌 놈이 어떻게 바실리스크를 상대하냐. 랭커겠지 뭐."

"풍겨지는 기운을 보라고. 이제 갓 각성한 녀석이라고."

"지랄. 큭큭."

미친개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큭큭 웃어 대며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 * *

퀸은 옷에 튄 피를 닦아 냈다. 완벽히 닦이진 않았다.

바실리스크의 혀를 자르고 흐르는 피를 괜히 마셨나 싶었다. 이놈의 식탐이 문제였다.

"에효······."

속상함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옷은 와인색이었기에 그다지 티가 나진 않았다.

이윽고 퀸은 주택 거실에 달린 전신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곤 옷을 입어 보았다.

인우가 사다 준 옷은 와인색 리넨 원피스였다.

뱀파이어 퀸인 그녀에게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원피스였다. 퀸은 이 원피스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드레시한 느낌이 나면서도 상당히 편했다. 대개 편한 옷들은 이처럼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기 힘들지 않은가.

"으음."

이윽고 퀸은 허리 부분의 리본을 묶었다. 그러자 퀸의 잘록한 허리가 그대로 살아났다.

다시금 거울을 바라보았다.

퀸의 시선은 피가 튀었던 하단과 중단에 꽂혀 있었다.

"다행이다······. 휴우."

막상 입고 움직여 보니 확연히 티가 줄었다. 그제야 퀸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 갔다.

퀸은 한껏 좋아진 기분으로 다시금 사육장으로 향했다.

이윽고 들어선 사육장.

-쿠워어!

바실리스크의 새끼들은 혀가 잘렸음에도 힘이 넘쳐 보였다.

하긴, 달리 괴수가 아니다.

"쌩쌩하네."

바실리스크 4마리가 모두 무사히 커나갈 것 같았다. 암수의 쌍도 맞았기에 번식 또한 문제없을 거다.

주인님이 좋아할 것 같았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퀸은 기분이 좋아졌다.

아드득- 아드득-

한편, 사육장 한편에서는 팜이가 알껍데기를 갉아 먹고 있었다.

퀸은 조심스럽게 그런 팜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보았다.

그러자 팜이가 먹는 걸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파암?

녀석은 의외라는 듯한 얼굴이었다. 늘 귀찮음으로 일관하던 그녀였기에 갑작스러운 손길이 납득되지 않는 것 같았다.

-파아암···?

팜이는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 * *

인우가 돌아온 것은 자정이 다 되어서였다.

퀸은 저 멀리에서 내달려오는 인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인우가 금세 다가왔다.

퀸은 즉시 고개를 숙였다.

인우가 퀸을 슬쩍 훑더니 말했다.

"내가 사준 옷 입었네?"

그렇게 퉁명스럽게 한마디 내뱉고는 퀸은 스쳐 지나갔다. 그제야 퀸은 고개를 들고 인우에게 말했다.

"바실리스크가 태어났어요."

"아, 그래? 이제야 태어나다니. 혀는 잘랐겠지?"

"그럼요."

"잘했어. 늦었다. 쉬어."

그리 말하곤 금세 주택으로 쏘옥 들어가 버렸다.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으나 도리가 없다.

퀸은 조금 아쉬운 얼굴로 주인을 쫓아 주택으로 들어섰다.

타다다다다닷!

이윽고 들어선 주택.

한데, 주인은 쉬지도 않고 러닝머신 위를 내달리고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자정이 넘어가면 잠자리에 들던 인우였다.

의아함을 느낀 퀸이 인우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안 주무셔요?"

"어. 아니. 자긴 자야지. 오늘부터 하루에 2시간씩만 잘 거다. 그리 알고, 먼저 쉬라고."

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우의 달리기는 새벽 어스름이 깔릴 때 까지 계속 되었다.

* * *

일주일째.

"여어, 오늘도 왔네?"

오늘도 변함이 없었다. 혜원은 어김없이 미개척지대에 들어서는 인우를 바라보았다.

인우는 가볍게 손을 흔들곤 제 갈 길을 갔다.

"···흐음."

혜원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런 인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고작 일주일이다.

한데 놀랍기 그지없었다. 인우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었으니까.

그게 가당키나 한가?

처음 인우를 보았을 때에는 간신히 바실리스크 1마리를 상대했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난 지금.

인우는 바실리스크 2마리까지도 상대해 나갔다.

관심이 안갈 수가 없다.

혜원은 인우를 쫓으며 연신 말을 건넸다.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

"무슨 시간?"

"근데 너. 내가 너보다 한참 누님인 걸 알면서도 자꾸 말 놓을래?"

인우는 피식 웃었다.

따지고 보면 인우는 50살이다.

다만 말할 수 없었고, 말한다 해도 증명할 방법도 없으며, 증명을 할 이유도 없다.

그저 저 여자가 말을 놓기에 놓았을 뿐.

다시금 혜원이 말하고 있었다.

"우리 알고 지낸지도 일주일이나 됐고 말이야. 내가 한 잔 살게. 어때? 니가 언제 랭커랑 술 한 잔 마셔 보겠냐? 응? 야!"

인우는 말을 무시하고는 앞서 걷기 시작했다.

현재 인우의 레벨은 121.

일주일 만에 무려 10레벨을 올렸다.

뿐만 아니다.

내려찍기의 경우 98레벨이 되어 있었다. 물론 나머지 스킬들도 엄청난 성장을 보여 주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스킬 레벨이 99가 되면 변화가 일어난다. 그리고 바로 오늘, 내려찍기는 마스터가 될 것이다.

숨을 쉴 때마다 경험치가 오르던 인우의 레벨과 엇비슷할 만큼 오른 내려찍기.

이를 바꿔 말하면 그 필요 경험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다른 초인들은 해당 스킬을 사용할 때에만 경험치가 올랐으니 말이다.

이윽고 인우는 저편에 보이는 코카트리스와 바실리스크를 바라보았다.

그 뒤 놈들을 향해 돌멩이를 내던졌다.

쐐애애액!

그러자 40레벨에 이른 암기투척이 발동 되었다.

퓩! 퓩!

-크워어어!

-꼬끼이이익!

놈들의 몸통에 돌멩이가 박혔다.

고작 돌멩이일 뿐이다. 그런 돌멩이가 미개척지대 괴수의 가죽을 뚫다니.

파바바밧!

인우는 한 손에 기가 라이트닝를 만들어 놓고 녀석들을 향해 내달렸다.

혜원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전사 계열의 초인이 마법이라니. 그러나 지난 일주일간 익히 보아 왔다. 그리고 저것이 유니크 스킬 볼에 의한 능력임을 안다.

그런데, 유니크 스킬 볼로 습득한 기술들마저도 저런 위력을 보인다고?

스킬 1~2개를 키우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한데 눈앞의 인우는 가지고 있는 모든 스킬들이 숙련되어 있다.

그러니 볼 때마다 놀라울 수밖에.

-꼬끼이이익!

이윽고 코카트리스가 부리를 이용해 인우를 쪼아 댔다.

인우는 그 즉시 생성해 두었던 기가 라이트닝을 쏘아 버렸다.

쩌저저저적!

-크워어어어!

-꼬끼기기긱!

62레벨의 기가 라이트닝.

그 위력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두 괴수는 강력한 전압에 몸을 부르르 떨어 대며 연기를 뿜어냈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화르르륵-!

뒤이어 파이어 볼이 끝도 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크워!

파이어 볼은 이미 일전의 그 위력이 아니었다. 파이어 볼마저도 86레벨이다.

그 강력한 마력의 화염구는 확실히 두 괴수를 괴롭히고 있었다.

과장한다면 파이어 볼인지, 헬 파이어인지 구분이 힘들 정도의 위력이었다.

뿐만 아니다. 마법이 명중한 뒤엔 어김없이 마나 드레인이 발동되었다.

마나 드레인마저도 67레벨이다.

인우의 마나는 파이어 볼 따위는 우습다는 듯이 끊임없이 솟아났다.

그렇게 두 괴수와 한참을 투덕거리길 잠시.

여전히 공격을 위해 이동하고 숨을 쉬었던 인우다.

이윽고 반가운 알림창이 보였다.

['내리찍기'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내려찍기'의 레벨이 ' Master'에 도달했습니다.]

마스터.

내려찍기가 완전체가 된 것이다.

"크, 끝났다. 이제."

인우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걸렸다.

인우는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압!"

그 뒤 광폭화를 시전했다.

고오오오-!

이어 인우는 용작두의 손잡이를 힘껏 말아 쥐었다.

99레벨의 내려찍기는 웬만한 아귀힘으로 버텨 내기 힘들다. 이제는 내려찍는 것보다 대검을 놓치지 않는 게 더 중요할 터였다.

그 정도로 마스터 스킬은 강력하니까.

"으아아아압!!"

쾅! 쾅! 쾅! 쾅!

인우의 용작두가 두 녀석을 무차별적으로 찍어 내리기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지금 발동된 내려찍기에 푸르스름한 검기가 맺혔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엄청나게 빨랐다.

98레벨일 때에 비해 족히 3배속은 되어 보였다.

쾅! 쾅! 쾅! 쾅!

그뿐만 아니었다.

본래 내려찍기는 뒤를 생각하지 않는 파괴만을 위한 공격이다.

즉, 시전하는 순간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용작두의 내려찍는 속도가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다.

그 정도의 속도이니 내려찍히는 괴수들은 공격은커녕 허둥지둥 방어에만 급급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누군가 말했었던가.

너무나도 파괴적이었기에 빈틈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푸르스름한 검기는 명백히 놈들의 가죽과 뼈를 찢으며 깎아 내리고 있었다.

쾅! 쾅! 쾅! 쾅!

땅거죽이 갈라지며 두 괴수의 다리가 지면에 박히기 시작했다.

지면은 미세하게 떨려 왔고, 내려찍기의 여파로 인해 인우의 주변으로 동그랗게 바람이 일었다.

이것은 마치 망치를 이용해 대못을 박는 것 같았다.

쾅! 쾅! 쾅! 쾅!

-크워어어!

-꼬끼이이!

놈들은 분노했다. 죽기 살기로 혀와 부리를 쏘아 댔다.

"치잇!"

그제야 인우는 내려찍기를 거뒀다.

그런 뒤 단타로 내려찍었다.

쾅!

그리곤 곧바로 대검 막기.

쾅!

또 다시 찍고 대검 막기.

이 과정을 반복했다.

지독한 꼼수였다. 두 괴수의 공격은 인우의 대검에 가로막혔고, 드러난 빈틈은 여과 없이 내려찍혔다.

녀석들은 확연히 지쳐 있었다.

"마무리다."

인우는 그 틈을 비집고 광폭난무를 시전했다.

"으아아아압!"

인우의 몸이 믹서기의 칼날처럼 빠르게 돌아간다.

파스스스스슥-!

지칠 때로 지친 두 괴수는 광폭난무에 그대로 가격 당했다.

-쿠어어······.

-끼기긱······.

[경험치를 5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4500 획득하였습니다.]

불과 5분 만에 9500의 경험치를 얻었다.

어제만 해도 이정도 까지는 아니었다. 두 마리를 몰아서 잡으면 못해도 15분은 싸워야 했다.

그런데 내려찍기가 맥스 레벨에 도달하자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인우는 내려찍기의 정보를 훑어보았다.

1. [내려찍기 Master] - 양손 무기 장착 시 사용 가능. 거대한 검이나 도끼를 양손으로 틀어쥐고, 장작을 패듯 미친 듯이 내려찍습니다.

내려찍기의 레벨이나 '%' 경험치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이제 정상에 닿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머지 스킬들도 차례대로 마스터에 도달할 거다.'

그렇게 되면 정말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터였다.

이윽고 인우는 코카트리스와 바실리스크의 시체로 다가가 전리품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한편 혜원은 그런 인우를 바라보며 입을 쩍 벌린 상태였다.

물론 그녀는 코카트리스를 7마리까지 상대할 수 있는 랭커다.

그녀가 놀란 것은 인우의 전투력이 아니다.

인우의 성장력이었다.

"또, 또 강해졌어··· 계속 강해지고 있잖아?"

여전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자신이 알기론 이제껏 그 어떤 초인도 이런 성장속도를 가진 적은 없었다.

사실 혜원은 재능이 특출나 어렸을 때부터 초인의 길에 접어들었다.

특유의 능력으로 인해 전투에 두각을 보였고, 남들보다 더 빠르게 성장을 했었다.

하지만, 결국 혜원도 사람이었기에 지치는 건 당연했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루에 얻을 수 있는 경험치의 양은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어떻게 된 게 미친 듯이 성장을 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레벨이 계속 오르는 것 같았다.

이윽고 혜원은 얼굴을 굳히곤 인우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곤 전리품을 채취하고 있던 인우를 불렀다.

"야."

혜원의 얼굴은 더 없이 진중해 보였다.

< 055화 너 도대체 뭐야? > 끝

ⓒ 호종이

< 056화 사일런스 (1) >

"야."

혜원의 얼굴은 굉장히 진지해 보였다.

인우는 그녀를 휙 돌아보고는 다시금 전리품을 채취했다.

혜원은 무시를 당했음에도 아랑곳 않고 물었다.

"너, 뭐야 도대체···?"

"세상에 그 따위 질문이 어디 있어? 무슨 대답을 바라는 거지?"

이윽고 모든 전리품을 채취한 인우가 답하고 있었다. 인우는 혜원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정수와 스킬 볼을 가방에 넣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혜원이 다시금 물었다.

"어떻게 계속 강해지느냐고. 이게 말이 돼?"

"말이 되건 되지 않건,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

혜원은 눈동자는 더 없이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인우는 오래 걷지 못했다.

다시금 들려온 혜원의 말 때문이었다.

"100레벨 때부터 미개척지대를 돌아다녔던 초인이 분명히 있긴 했지. 하지만 그녀조차도 너처럼 계속 강해지진 않았다고."

제법 흥미로웠다. 인우는 고개를 돌리고 혜원을 바라보았다. 인우 말고도 미개척지대에 들어왔던 100레벨 대의 초인이라니.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인우는 계속 이야기해 보라는 듯 잠자코 있었다.

그러자 다시금 혜원이 말했다.

"관리국 소속의 랭커팀 사일런스에 대해서 들어 봤을 거야."

"사일런스라······."

"그래. 그곳에 소속된 랭커 중에 괴물 같은 여자가 한 명 있지."

인우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자 혜원은 그 랭커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예지 계열의 초인. 그렇다고 그녀가 예언자 같은 능력을 발휘하는 게 아니야. 단지 몇 초 뒤를 예상할 뿐이지. 그리고 그 능력은 승패의 판도를 바꿔 버리더군."

그제야 인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킨에서도 분명 그런 놈이 존재했었다. 예지 특성을 지닌 초인은 앞을 내다보는 스킬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강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공격을 해 봐야 예지를 통해 모조리 예상하는 것이다. 만약 인우가 내려찍기를 사용하려 한다면, 예지 능력자는 이미 저만치 뒤로 물러나 있거나 그에 대한 대응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앞을 알기에 패배할 변수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다.

확실히 그러한 초인이라면, 미개척지대의 괴수라 해도 100레벨을 가지고 어떻게든 잡아 낼 순 있을 거다.

'사일런스 소속 랭커라. 지구도 프로킨 만큼이나 대단한 녀석들이 제법 있는 것 같네.'

예지 능력자가 얼마나 더 있을진 모른다.

어찌되었건 예지 스킬조차도 '유니크 스킬 볼'을 통해서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었으니까.

게다가 예지 계열은 상대조차 되지 않는 스킬들도 존재한다. 프로킨의 정인우조차도 모든 스킬들을 파악하진 못했을 정도였으니까.

그 당시 인우의 레벨은 프로킨에서도 유일무이한 500이였는데, 그럼에도 인우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은 존재했다.

스킬은 둘째 치고, 레벨 업에 대한 것만 해도 그랬다.

당시 인우의 레벨은 500에서 멈췄지만, 분명 그 이후의 영역도 존재했다.

어찌되었건 500에서도 경험치가 오르긴 했었으니까.

다만 레벨 업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마의 구간이었을 뿐.

만일 500레벨을 돌파하게 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에 대해선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어찌되었건, 프로킨에서 정인우의 레벨은 500이였다.

500레벨로도 성체 급 드래곤 2마리 정도는 충분히 상대가 가능했다.

그러니 그 이상의 영역을 개척하게 되면 얼마나 강해질지에 대해선 인우조차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분명 인우는 지구에서 그 영역을 개척할 수 있을 거다.

현재 100레벨 단위로 생성되고 있는 절대자의 패시브만 존재한다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과거에는 힘이 모자라 드래곤들의 침략을 피해 도망쳐 왔지만, 또 다시 누군가에게 자신이 일궈 놓은 영역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인우는 다짐하며 다시금 사냥을 재개했다.

* * *

하루는 빠르게 저물었다.

퀸과 민철은 모든 사육장의 관리를 끝마쳤다.

총 3군데 사육장의 관리.

그리고 추가로 2군데 사육장의 공사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이 두 군데의 사육장마저 완공이 된다면 도합 다섯 채의 사육시설이 생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굉장히 바빠질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민철도 할 일이 꽤 생길 것이다.

민철은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전과 같은 조바심을 지운지 오래였다.

게다가 인우는 여전히 민철에게 잘 대해 주었으니까.

물론 그 잘 대해 준다는 것이 머리를 쓰다듬거나 하는 다정한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전과 다름없이 대해 주었다.

그리고 여전히 으르렁댄다.

민철은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그 때문인지 근래에 들어 민철은 다시금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

"팜이야. 너 좀 씻어야겠다."

민철은 팜이를 보며 말하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녀석에게서 풍기는 냄새가 제법 고약했다.

-파암!

그러나 팜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씻어야 해. 가만히만 있어. 내가 씻겨 준대도?"

그러면서 민철은 팜이를 안아들었다. 그러자 팜이가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으잇!"

-파아아아!

팜이가 허공에 대고 불꽃을 토해 냈다. 그러자 민철은 기겁을 하며 팜이를 놓았다.

"어, 어휴! 알겠어. 알겠다고! 형님이 오시면 대책을 강구해야겠어. 어휴!"

엄청난 불길이었다. 허공에 뿜어짐에도 민철의 머리카락이 오징어처럼 비틀려 있었으니까.

게다가 얼굴까지 화끈거렸다.

-팜!

팜이는 바닥에 착지하며 짧은 팔로 팔짱을 꼈다. 팔이 너무 짧았던지라 팔짱이라기 보단 팔을 모으고 있는 꼴이랄까?

어찌되었건, 팜이는 경고하기 위해 일부러 저 멀리에 불을 쏘아 냈다.

그럼에도 이 정도였으니, 민철이 당황한 것도 당연했다.

팜이는 날이 갈수록 덩치가 커지고 강력해지고 있었다.

도저히 민철이 다룰 수 없었다.

퀸이라도 나서 주면 좋으련만, 퀸은 나서지 않았다.

그녀는 애초에 팜이가 냄새가 나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퀸은 오로지 인우의 명령만 따랐다. 시키지 않는 일은 하지 않았기에 팜이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근래에 들어 녀석을 귀여워 해주긴 했다.

어느덧 팜이는 퍼드득 날아들며 퀸에게 향했다.

그리곤 퀸의 품에 안겼다.

퀸은 멀뚱히 녀석을 안아들었다.

그 꼴을 지켜보던 민철이 투덜댔다.

"저 녀석 분명 수컷일 거야. 예쁜 여자한테는 저렇게 얌전해지고 말이야. 흥이다."

그러면서 민철은 샤워실로 향했다.

이윽고 덩그러니 남은 퀸과 팜이.

퀸은 얌전히 안겨 있는 팜이를 보며 군침을 삼켰고, 팜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길 잠시.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주인님이 오신 걸까?

어느덧 퀸은 팜이를 내려놓고 사육장 바깥으로 나섰다.

달빛이 한 줄기 비치는 캄캄한 밤길.

그곳 저편에서 인우가 달려오고 있었다.

퀸은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 지었다.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웃음이 나는지 본인조차도 몰랐다.

이내 퀸은 다급히 웃음을 지우곤 고개를 숙였다.

그 뒤, 주인의 손길을 가만히 기다렸다.

터벅 터벅-

이윽고 인우가 가까이 다가왔다.

"어. 야, 넌 왜 항상 마중 나와 있냐. 너 할거 해."

"우연히 나와 있었던 거예요."

"아 그러냐. 밥은 먹었냐? 아, 넌 밥 안 먹지 참."

그 말에 퀸은 피식 웃었다.

그러자 인우가 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웃기는. 별일 없었지?"

"네."

바로 그때.

-파암!

사육장 문을 비집고 팜이가 파드득 날아들었다.

흡사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 같았다.

녀석은 단숨에 인우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인우는 얼떨결에 녀석을 안아들었다.

팜이는 머리를 인우의 가슴에 비벼 대며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그러자 퀸의 표정이 대번에 굳어 갔다. 저 놈이 주인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니 질투심이 피어났던 것이다.

이윽고 퀸이 일러바치듯 말했다.

"주인님. 팜이 말이에요. 냄새가 심하지 않나요?"

"음. 그러고 보니 그러네. 퀸. 이 녀석을 당장에 씻겨. 비누 아끼지 말고 문대 버려.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물론이에요!"

퀸이 당차게 답했다.

그러자 팜이의 얼굴은 단번에 울상이 되었다. 샤워는 정말이지 최악이었으니까.

* * *

팜이를 무사히 씻겼다.

퀸은 무력으로 팜이를 제압한 뒤 물을 마구마구 뿌려 버렸다. 그리고 정말로 깨끗하게 씻겼다.

참으로 개운했다.

녀석을 씻긴 뒤, 퀸은 주택 거실에 앉아 얌전히 TV를 바라보았다.

TV라는 상자는 볼 때마다 신기했다.

저 안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었으니까. 퀸의 지식으로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 물건임에는 틀림없었다.

퀸은 오늘도 남는 시간에 어김없이 TV를 틀었다.

때마침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뉴스는 그녀가 가장 즐겨 보는 방송이었다.

- 의문의 실종 사건이 발생하기 시작한 지 벌써 일주일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실종자들은 모두 20대에서 30대의 젊은 여성들이었습니다.

정부는 이를 두고 불법초인으로 이루어진 범죄 단체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한편, 불법초인들은······.

대한민국은, 얼마 전부터 발생한 대규모 실종사건으로 인해 시끌벅적했다.

"인간 여자들을 납치해서 어디에 쓰는 거지?"

퀸은 그런 의문을 품고선 TV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인간들의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배우고 이해해야 할 게 참 많다. 퀸은 그런 생각을 할 뿐이었다.

* * *

초인관리국 본부.

관리국의 수장인 국장과 각 지부의 팀장들은 저마다 머리를 맞대고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근래에 들어서 블랙오크를 목격했다는 신고 접수가 늘어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대규모 실종사건이 벌어졌고, 초인관리국의 일거리는 늘어난 상태였다.

특히나 산간에 속하는 강원도에서 실종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강원도 산간은 CCTV조차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은 길이 널려 있다. 그랬기에 범인의 꼬리조차 잡기 힘들었다.

이번 대규모 실종사건으로 인해 인터넷에는 각종 음모론과 국민들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었다.

-대한민국 초인관리국은 뭐 함. 불법초인들 모조리 안 잡고.

-불법초인들이 뭐가 아쉬워서 여자들을 납치하겠냐. 걔들이 범죄자는 맞지만, 그 범죄는 여태껏 금전적인 이익이 되는 것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ㄴ위에 생각리스임?? 딱 봐도 각 나오잖아 이거. 불법초인들이 장기매매하는 거임.

-정말로 불법초인이라면, 그리고 걔들이 통나무 장사를 한다면, 뭐 하러 여자만 납치하겠냐? 어찌되었건 초인이라고. 그들의 힘은 남자건 여자건 가리지 않아.

-내 생각엔 저건 블랙오크다. 정부는 국민들의 불안감을 덜어 내기 위해 불법초인들을 범인으로 몰고 있는 거라고.

-그게 뭔 소리냐? 블랙오크가 가끔씩 넘어오는 경우는 있었지만, 저렇게 대놓고 인간들을 납치할 정도로 노출되진 않았다고. 놈들은 바짝 쫄아서 중국에 짱박혀 있는데 무슨 소리인지.

댓글을 확인한 국장은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반응은 다양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이대로 두었다간 걷잡을 수 없이 사건이 커나갈 것이다.

블랙오크이든, 불법초인이든, 빠르게 진압해야 한다.

비상사태임에는 분명하다.

이윽고 국장이 입을 열었다.

"관리국의 랭커 팀 '사일런스'를 소집한다."

사일런스.

그들은 국가에 소속되어 있는 최정예 랭커팀이었다.

초인관리국은 초강수를 두었다.

< 056화 사일런스 (1) > 끝

ⓒ 호종이

< 057화 사일런스 (2) >

나이트 길드를 휘하에 두고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집단.

이들은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인 SG그룹이었다.

이곳의 회장 윤대용은 '실험체'를 도둑맞았다는 보고를 듣고 분노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실험체는 보통 존재가 아니다. 전설 속에서나 나오는 용과 드래곤을 본떠 탄생시킨 최강의 생명체다.

연구비용만 해도 천문학적인 액수가 들어갔다.

그랬기에 단단히 감춰 두었던 것이다.

나이트 길드 본부에 실험실을 만들고, SG그룹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실험체에 대한 모든 연관성을 끊어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생체실험의 배후가 SG그룹이라는 것이 들통 나게 되면 큰 사단이 벌어질 것이 자명했으니까.

그랬기에 언제든 발을 뺄 준비를 하고, 나이트 길드의 본부를 지키기 위해 블랙오크까지 가디언으로 심었다.

한 마디로 나이트 길드와 블랙오크를 이용한 것이다.

바투 부족 또한 실험체에 대해 관심이 상당했기에 협력은 수월하게 이어졌다.

물론 그에 대한 대가로 바투 부족에게 한국 여자를 조공으로 바쳤던 것이다.

그렇게나 온갖 노력을 바쳤던 실험체다. 그런데 도둑을 맞아 버렸다. 미친곰이라는 녀석한테 말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바투 부족과의 협력이 끊기며, 놈들은 한국으로 넘어왔다. 이유야 뻔했다. 한국 여자들을 납치하고, 실험체에도 눈독을 들이는 것일 테다.

그렇기에 SG그룹은 빠르게 움직여야만 했다. 한국인 여자들이 납치를 당하건 말건 알 바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실험체다. 바투 부족에게 실험체를 빼앗길 순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바투 부족이 넘어오면서 초인관리국의 랭커팀 사일런스까지 움직인 것이다.

사건은 더 없이 거대해지고 있었다.

실험체를 훔쳐간 미친곰 한 마리 때문에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미친곰은 도대체 어디에 있으며, 실험체는 어떻게 되었을까. 뭐가 됐건 찾아야만 한다.

사일런스가 움직인 이상, 관리국도 점차 사건을 파헤치며 그 수사망이 SG그룹까지 닿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 * *

"하루가 멀다 하고 쑥쑥 자라네."

인우는 팜이를 보며 말하고 있었다. 녀석의 몸집은 이제 성인 남성의 상체 정도의 크기로 불어나 있었다.

인우는 한 손에 알껍데기를 쥐고 팜이와 함께 마당에 나와 있는 상태였다.

"엎드려 봐."

알껍데기를 쥐고 살살 유혹하며 녀석에게 명령했다.

-파아암.

녀석은 알껍데기가 탐나는지 잠자코 땅바닥에 엎드렸다. 그러자 인우는 단숨에 녀석의 등허리에 앉아 버렸다.

-파암!?

팜이가 당황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생색을 냈다.

"야. 내가 너 팔뚝만 할 때부터 배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키웠다. 응? 기억나지? 힘들어도 그렇게 널 안고 다녔어 인마. 부모라고 부모. 많은 거 안 바래. 효도 한 번 해 봐."

-파아암······.

인우의 말에 팜이는 고개를 땅바닥에 푹 숙여 버렸다.

그런 인우와 팜이를 지켜보던 민철이 한마디했다.

"형님. 그 녀석 갑자기 불을 뿜을 수도 있어요. 조심하세요!"

그 옆에 서 있던 퀸은 그저 입맛을 다시고 있을 뿐이었다. 확실히 저 생명체한테는 맛있는 냄새가 진동한다.

어느덧 인우는 다시금 팜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날기 힘들면 걷기라도 해 봐. 알껍데기 먹고 싶지 않냐?"

-파아암.

"자, 달려 봐."

인우는 낚싯대로 당근을 꿰어 나귀를 유혹하듯, 긴 팔을 이용해 알껍데기를 팜이의 눈앞에 대고 흔들었다.

-파아아아암!

그러자 팜이가 고함을 쏟아 냈다. 마치, 후회하지 마. 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타다다다닥!

이윽고 팜이가 불식간에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팜이의 등에 타고 있던 인우는 단숨에 몸을 낮춰 팜이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녀석의 힘이 상당했다.

"옳지! 가자!"

타다다다닥!

녀석이 짧은 다리를 이용해 사냥개보다도 빠르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엄청난 추진력이었다.

등에 타고 있던 인우는 시야가 빠르게 뒤바뀌는 것을 느꼈다. 머리카락은 바람을 맞아 마구 헝클어지고 녀석의 등판에 맞닿은 엉덩이가 아려 올 무렵.

-파아아아암!

녀석이 난데없이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인우가 소리쳤다.

"좋아! 날아!"

퍼드드드득!

팜이의 짧은 날개가 파닥 거리며 허공을 휘저었다.

그리고······.

후우우우우우-!

단숨에 공중에 떠올랐다.

그러나 그 높이는 불과 2미터에 불과했다.

"더 높이!"

-파아아암!

팜이의 조그마한 날개가 더욱 빠르게 허공을 휘저었다.

그러나,

콰당-!

얼마 지나지 않아 팜이는 바닥에 추락했다.

이에 인우는 가볍게 몸을 비틀어 팜이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바닥에 착지한 인우가 헝클어진 머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이거, 일부러 오버액션 하는 거야? 아님 진짜 날 못 태우는 거야?"

-파암!

알 수가 없었다. 이 녀석은 분명 드래곤과 흡사했다. 그렇다면 드래곤의 반의반 정도라도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도 인우 하나를 태우지 못하고 나자빠졌다.

"흐음."

-파암!

이윽고 팜이가 쪼르르 내달려오더니 인우의 손에서 알껍데기를 낚아챘다.

인우는 순순히 내어주었다.

"그래. 먹어라. 그리고 더 커라. 만약 덩치가 더 불어났는데, 그때도 나 하나 못 태우면 그때는 진짜 엄살 피우는 걸로 간주하겠어."

아드득-

인우가 뭐라고 말하건 말건 팜이는 정신없이 알껍데기를 갉아 댔다.

인우는 녀석이 알껍데기를 삼킬 때마다 움직이는 목울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지금처럼만 커라. 나도 전용기 하나쯤은 있어야지."

* * *

한국으로 넘어온 바투 부족은 도합 20명이었다.

이들은 바투 부족 중에서도 실력이 제법 괜찮은 상급 전사에 속했다.

바투는 최상급 전사들을 보내는 대신 상급을 보낸 것이다. 이것은 바투의 자존심이었다. 상급 정도만 보내도 충분할 것이라 여긴 것이다.

어찌되었건 이들은 4인 1조 체제였고, 5개 조로 나뉘어 실험체의 흔적을 찾는 한편, 한국 여자들을 납치했다.

이들 모두 강원도에 몰려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강원도 실종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출동한 사일런스.

사일런스는 단숨에 이들의 꼬리를 물었다.

대한민국 초인관리국의 최정예 전력.

사일런스 팀은 18명이 존재할 뿐이었다. 사일런스는 국가의 존망이 걸릴 만한 비상시가 아니고서야 18명 모두가 출동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현재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투입된 사일런스는 2명이었다.

2명의 사일런스는 각각 팀원을 이끌고 2개의 팀으로 나뉜 상태였다.

그 중, 1팀의 하진성은 차갑게 식은 눈을 한 채 말하기 시작했다.

"너네 넷이 다냐?"

사일런스 하진성은 관리국의 초인팀을 이끌고 블랙오크 4마리를 포위한 상태였다.

블랙오크들은 산속에 지어 놓은 아지트에 여자를 끌고 가다가 덜미가 잡혔다.

"사, 살려 주세요!"

블랙오크에게 잡혀 있던 여자는 하진성과 관리국 초인팀을 보자 목이 찢어져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블랙오크가 인상을 찌푸리며 여자의 목을 그대로 비틀었다.

우득-

여자의 숨은 단숨에 끊겼다.

"시끄럽군. 인간 여자야 또 구하면 되니까."

그 광경에도 하진성은 동요가 없었다.

그저 다시금 물었다.

"너네 넷이 다냐고 물었다."

"더 있다. 안 그래도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을 거다. 너희들은 우리를 봤으니 살아 돌아갈 순 없을 거다."

블랙오크가 강철 같은 손톱을 가다듬으며 말하고 있었다. 그 지독한 여유에도 하진성은 어떠한 표정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하진성이 관리국 초인들을 향해 명령했다.

"놈들을 잡는다. 어디를 자르던 관여치 않겠다. 다만 머리는 남겨라 가볍게 죽일 생각은 없으니."

그러자 관리국의 초인 20명이 움직였다. 하진성 또한 놈들을 향해 내달렸다.

"으아아압!"

새파랗게 변한 하진성의 주먹이 놈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 * *

"취익. 이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다."

블랙오크 한 마리가 다급히 산을 오르며 말하고 있었다.

인간 여자를 옮기던 운송조 놈들이 구조신호를 보내왔던 것이다.

이들은 총 5개의 조로서, 공격조 3개조, 운송조 1개조, 정찰조 1조개로 나뉜 상태였다.

운송조 놈들은 구조신호를 보낸 뒤 연락이 두절됐다.

정찰조에 속하는 이들은 다급히 다른 공격조에도 무전을 보냈다.

"상당한 실력을 가진 인간이 개입한 모양이다. 빠르게 도와야 해. 운송조는 아지트 주변에서 연락이 끊겼다."

-간다.

-인간 따위가. 빠르게 가겠다.

2개의 공격조로부터 답신이 왔다.

한데, 1개의 공격조가 말썽이었다.

-취익. 우리 조는 조금 후에 합류하겠다.

"그게 무슨 소리냐!"

-우리는 지금 실험체를 찾았다. 실험체를 확보하고 가겠다.

그 답신에 블랙오크의 얼굴은 단숨에 구겨졌다.

"동지를 구하는 게 우선이다!"

-위대한 전사 바투도 그렇게 생각할까? 우리조는 실험체부터 확보한다. 이상.

"젠장!"

하필이면 이런 위급 상황에 실험체를 발견하다니. 저놈들은 실험체를 발견하고 공에 눈이 먼 것 같았다.

"우리는 빠르게 이동한다!"

"알겠다!"

정찰조는 아지트로 향했다. 동지들을 구해야 한다.

* * *

"하나, 두울, 셋, 넷. 얼씨구야."

인우는 주택 마당에 들어선 블랙오크 4마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놈들은 명백히 팜이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우리조가 실험체를 찾게 될 줄이야!"

"바투는 우리의 공을 인정해 줄 거다."

놈들은 저들끼리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실험체를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 여겼다.

단지 그들은 인적이 드문 강원도를 누비며 인간 여자들을 납치했을 뿐이다.

그러던 중 이곳 강원도에서 월척을 만난 것이다.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편 마당에는 인우와 팜이, 그리고 퀸과 민철이 있었다.

이윽고 인우가 놈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이트 길드 본부에서 본 놈이랑 비슷한 부류인가?"

공간을 비틀어 몸을 숨기던 블랙오크.

인우는 그 한 놈 때문에 엄청난 고전을 했다. 인간 정도의 지능을 지녔으면서도 막강한 무력을 가지고 있던 블랙오크. 꽤나 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데 이번엔 그런 놈들이 4마리나 몰려왔다.

그리고 놈들은 인우에게 신경조차 쓰지도 않으며 팜이를 노릴 뿐이었다.

역시나 팜이는 보통 실험체는 아니었던 것 같다.

-파아···

팜이는 블랙오크들을 보자 잔뜩 겁을 먹고, 인우의 뒤로 숨었다. 실험실에 갇혔을 때가 생각났던 것이다.

그때에도 저렇듯 피부가 새카만 놈 하나가 자신을 괴롭혔었다.

그때의 기억은 참으로 끔찍했다.

"······."

그렇게 대치중이기도 잠시.

민철은 질겁을 하며 인우에게 말했다.

"형님. 4마리나 되는데. 괜찮겠습니까?"

민철은 잔뜩 겁먹은 목소리를 내뱉으면서도 무기를 치켜 올려 든 상태였다.

인우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을 뿐이었다.

처음에 봤을 때는 오우거 한 마리에 게거품을 물던 녀석이 많이도 컸다.

그런 생각도 잠시. 인우의 옆에 다소곳하게 서 있던 퀸이 움직였다.

퀸은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블랙오크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었다.

"인간 여자?"

"아니야. 느낌이 좀 다르다."

"위험한 기운이 풍긴다."

"도대체 저 여자는 뭐지?"

퀸은 블랙오크들을 향해 성큼 다가섰다. 그 뒤 원피스를 허벅지 위까지 걷어 올렸다. 전투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복장이었으니 이게 최선이었다.

이윽고 걷어 올린 원피스를 비집고 퀸의 매끈한 다리가 드러났다.

블랙오크들은 그 자태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침을 삼키고 있는 것은 퀸도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퀸이 날카로운 어금니를 드러내며 블랙오크들을 향해 말했다.

"맛있는 냄새가 나는구나."

< 057화 사일런스 (2) > 끝

ⓒ 호종이

< 058화 잔당처치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