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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화 계시

마왕성 그레이트 홀에서 술판을 벌였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의 술자리가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사실, 정인우에게 알코올이란 무의미에 가까웠다.

극에 달한 육체는 이것을 독으로 규정짓고 즉시 분해 배출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인우는 취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마구잡이로 들이붓다 보면 이 해독보다 알딸딸한 기분이 먼저 올 때가 있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때의 기분은 정말로 황홀하다.

그렇게 부어라 마셔라 주야장천 놀다가 어느새 가족들은 지쳐 잠이 들었다.

정지은은 바닥에 대짜로 뻗어 있었고, 김민철과 알렉산더는 서로를 끌어안은 채 잠들었다.

그리고 용용이와 팜이는 인우의 양 무릎에 각각 머리를 포개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

그 순간.

인우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는 이제 신의 아티펙트로 인해 수면의 필요성이 제거된 상태다.

무언가를 굳이 먹을 필요도 없었으며, 영생까지 얻었다.

"으으음...."

지쳐 쓰러져 있는 가족들을 바라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들도 언젠간 마지막 순간이 오겠지?'

당연한 이야기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생명체이며, 그 한계는 명백했다.

오래 살아 봐야 100년이나 더 살 수 있을까?

물론 용용이나 팜이는 굉장히 오래 살 거다.

어쨌든 그 끝은 분명히 온다.

그렇다면 그다음엔?

홀로 남을 터였다.

술로 인해 잠깐이나마 들떴던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기분이 끊임없이 추락했다.

오래 산다는 것이, 어쩌면 좋지 않을 걸 수도 있겠다.

이별과 외로움의 연속일 테니까.

"주인님. 무슨 생각을 그리 하세요?"

그때, 등 뒤로 루시 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아직 뻗지 않았었나 보다.

희한하게도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니 가라앉았던 기분이 조금이나마 나아졌다.

인우는 한결 밝아진 얼굴로 답했다.

"그냥, 별거 아냐."

어느새 퀸은 인우의 옆으로 다가와 다소곳이 앉았다.

그러더니 가만히 인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달달한 향기가 코끝에 닿았다.

인우는 미소 지었다.

* * *

천계의 최상위 직급자, 대천사장 엘.

그는 신의 대리자로서 중재의 역할만을 한다.

강한 힘을 지니고 있음에도 결코 힘을 남발할 수 없는 직위인 것이다.

이를테면, 엘은 천계와 마계의 힘을 조율하는 저울과 같은 존재였다.

두 차원의 힘은 늘 비슷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어긋난다면, 어느 한쪽이 나머지 한쪽을 잡아먹게 된다. 그리되면 차원의 균형이 무너지고 균열이 생긴다.

아침이 있으면 저녁이 있듯, 적절한 조화가 필요한 거다.

여태까지는 균형이 잘 맞았다.

그런데 오늘, 그 저울이 기울어질 것 같은 조짐이 보였다.

마계가 필요 이상으로 강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한 존재로 인해서 말이다.

대천사장 엘은 새로이 내려온 신의 계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정인우'를 제거하라.>

정인우라 하면 필시 그 녀석이었다.

루시퍼처럼 신의 선택을 받은 존재.

본래대로라면 루시퍼와 정인우가 혈투를 벌여 그들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고 마신이 되어야 한다.

한데, 지금 신의 계시는 그따위 것들을 모조리 무시하고 있었다.

'정인우를 제거하라.'

일방적이다.

나아가 가혹하다.

신이 직접 선택한 존재인데도, 이제는 그 존재를 제거하라 한다.

늘 그렇듯, 신의 뜻은 쉬이 헤아리기 힘들었다.

대천사장 엘이 보기에도 말이다.

"후우."

천계와 마계가 존재한 후로 이러한 극단적인 계시가 떨어진 적은 이번에 두 번째였다.

이 계시를 따라 정인우를 제거하면 무조건적으로 루시퍼가 마신이 된다.

여지가 없는 거다.

그냥 정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신은 어째서 자신이 직접 선택한 존재를 인제 와서 제거하려 하는 걸까?

그건 아마도....

"정인우가 신의 영역을 넘볼 만큼 대단한 잠재력을 가졌다는 건가...."

어쩌면 신은 위협을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정인우는 아직 미약한 존재이나, 신의 영역을 넘볼 정도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거겠지.

정인우가 위해로 다가올 수 있으니 미리 싹을 자르겠다는 거다.

처음에야 신은 그저 재미로 정인우와 루시퍼를 선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데, 선택했던 존재가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과할 정도로 강해진다면?

당연히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는 거다.

이윽고 엘은 천계에 있는 대천사들에게 뜻을 전했다.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지금부터 신의 계시를 전하겠다.

대천사들은 잠자코 들었다.

-지금부터, 천계의 모든 천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정인우를 제거한다.

"...!?"

침묵이 감돌았다.

본래 대천사들은 로드 에일린을 압박할 참이었으나,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는 피바람이 불 것이며 전면전이 시작될 거였다.

* * *

에일린은 정인우가 내어준 수정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앞에는 수백 마리의 드래곤들이 보인다.

"지구의 동족들이 왜 죽었는지 아나?"

"...."

모두가 침묵하자 에일린이 확고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멍청해서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모인 동족들 가운데, 그처럼 멍청한 녀석은 없었으면 한다."

좌중이 술렁댔다.

사실 그건 어쩔 수 없는 문제였질 않나?

드래곤들은 대천사들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우리에게도 대천사들이 접근할 거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뜻에 따르지 않는다."

"어째서입니까. 로드."

"우리는 정인우를 따를 거니까."

에일린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대천사들에게 결단코 굴복하지 않을 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나 강력한 의지를 품었음에도,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더 많은 날이 지나도....

대천사들의 압박은 없었다.

그녀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 * *

인우는 제 무릎에서 잠이 든 용용이와 팜이를 깨우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한참을 앉아서 명상했다.

딱히 할 것도 없었기에 얼마 전 드래곤들을 학살하며 얻었던 98개의 스킬들을 점검했다.

액티브와 패시브, 나아가 히든 액티브와 히든 패시브까지.

엄청난 양의 스킬이 새로 생성되었으며, 모조리 한계 레벨까지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솔직히 인우도 자세히 훑지 않았기에 무슨 스킬이 있는지 정확히는 몰랐다.

네크로맨서 계열, 성직자 계열, 암살자 계열, 탱커 계열, 등등, 별의별 스킬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중 가장 독특한 스킬은 이것이었다.

[외형 변경 Master] - 숨이 끊긴 대상의 외형을 흡수하여 변할 수 있습니다. 생전 대상의 외형이 100% 재현됩니다. (패널티 ? 능력치의 50%가 감소합니다.)

우선 이 스킬의 레벨은 마스터. 즉, 99레벨이었다.

다시 말해 히든 스킬이라는 말이다.

외형 변경은 어떻게 보면 폴리모프와 비슷하다.

하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

폴리모프는 전투적인 능력 향상을 위해 사용하는 경향이 짙다.

이를테면, 오크 광전사로 폴리모프하면 '광기'라는 특성이 생성되고, 뱀파이어가 되면 '흡혈'이라는 특성이 생성된다.

이처럼 능력치가 추가된다는 거다.

하지만 외형 변경을 그렇지 않았다.

도리어 능력치를 앗아간다.

현재 패널티는 능력치의 50% 감소다.

이는 마스터 레벨이라서 그나마 이 정도인 거다.

본래 스킬 1레벨 때는 능력치의 99%가 감소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 정도의 패널티를 감수하고 사용할 만하냐 묻는다면, 당연히 가치가 있다.

이 스킬을 통해 상대를 속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상대의 능력을 엿볼 수 있는 '탐색'의 권능을 지닌 고위급 마왕들이나 천사들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다.

그렇기에 조금은 한정적이다.

이 밖에도 특이한 스킬들이 꽤 많았다.

그렇게 스킬들을 훑으며 시간을 죽이자 금세 새벽이 걷히고 아침이 다가왔다.

그 무렵, 바알이 찾아왔다.

"팔자 좋군."

그레이트 홀로 들어선 녀석은 그리 말하며 주변을 훑었다.

이리저리 어지럽혀져 있는 술병과 음식물 접시들.

그리고 뻗어 있는 가족들.

바알은 깔끔을 떨며 발로 바닥을 슥슥 문대더니 그곳에 앉았다.

"...."

그러곤 인우의 양 무릎에 잠들어 있는 소녀와 소년을 바라보았다.

"헤츨링들인가?"

"응."

"귀여운 걸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수집이 아니라 가족이다. 감정결핍자 같은 놈아."

인우가 성을 내자 바알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내 마왕성에는 어떻게 들어온 거야? 서열 1위면 이렇게 마음대로 무단침입해도 되나?"

"굳이 안 될 것도 없지."

"말을 말자. 용건은 뭐냐?"

"할 말이 있어 왔다."

고작 그따위 이유로 이 새벽녘에 무단침입을 하셨다?

만일 대수롭지 않은 이유라면 주둥아리를 후려치고 시간 역행을 사용할 참이었다.

이내 바알의 입술이 열렸다.

"대천사장 엘에 대해서는 들어보았겠지?"

"아아."

대천사장 엘이라.

분명 천계의 대가리가 그 녀석이라 했다.

마계에 마신이 있다면, 천계에는 대천사장이 있다 했으니까.

물론 아직 마계에는 마신이 지정되지 않았다.

어쨌든, 엘, 그 녀석은 신의 대리자로서 신의 명령만을 따르는 호구 녀석인 걸로 알고 있었다.

"그, 뭐냐, 신의 쫄따구 놈을 말하는 거지?"

'쫄따구'라는 저열한 표현에 바알이 큭 하고 짧은 웃음을 날렸다.

어느 누가 엘을 두고 쫄따구라 칭할 수 있겠는가.

정인우이기에 가능한 무식함이었다.

"그가 4천 년 만에 움직였다더군."

"그런데?"

인우는 그게 뭐 대수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바알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심각성을 모르는군. 엘이 움직였을 때는, 반드시 피바람이 불었다."

바알의 말이 이어졌다.

과거, 4천 년 전에 엘이 움직였을 때.

바로 그때 전대 마신이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당시 마신의 목숨을 취하기 위해, 천계는 엘을 위시한 채 마계에 쳐들어왔었다.

그때, 마계의 마신은 마왕들을 이끌고, 있는 힘껏 저항했다.

하지만 결국 마신은 죽었다.

"엘이 마신을 제거하며 이런 말을 하더군. '모든 건 신의 뜻이다. 너의 강함을 탓해라.' 라고 말이야."

"그게 무슨 개소리야?"

"아, 이해되지 않나 보군. 알기 쉽게 설명하지. 빌어먹을 신은, 마신의 재능에 위협을 느끼고 엘을 통해 마신을 제거한 거지."

"...."

인우는 잠자코 들었다.

하지만 얼굴 근육이 꿈틀대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엘이 움직였다. 필시 신의 계시를 받은 거겠지. 그렇다면 그 대상이 누구일 것 같나?"

바알은 인우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마치, 이미 답은 알고 있지 않느냐는 듯한 얼굴로.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인우가 입을 열었다.

"나로군."

"그래. 너다."

인우의 얼굴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 정도로 기분이 더러웠다.

아니, '선택받은 자'라며 패시브를 쥐어 줄 땐 언제고, 이제는 죽인다고?뭐 이런 빌어먹을 개새끼가 다 있지?

인우가 어금니를 으득 갈며 씹어 뱉듯 말했다.

"천계의 녀석들이 언제 쳐들어올 거 같냐?"

"지금 당장 쳐들어온대도 이상할 건 없지."

"나 홀로 그들과 맞서야 하나?"

"그럴 리가. 나 또한 신에게 악감정이 있어서 말이지."

바알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마계는, 정인우 너를 버리지 않는다. 과거에는 마신을 잃고 굴욕을 당했으나, 이번에는 그리되지 않는다."

바알의 얼굴에는 확고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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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화 전쟁의 시작 (1)

마계 또한 하나의 행성이다.

크기는 지구와 비슷할 정도이나, 지구처럼 대부분의 땅덩어리가 개척되어 있지는 않았다.

물론 그럴 만한 이유가 존재한다.

지성을 갖추고 있는 마족과 괴수의 수는 지구인들처럼 많지 않았고, 그들이 필요한 땅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으니까.

바꿔 말해, 마족들의 전력은 한군데에 밀집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천족들은 필시 개척이 되지 않은 땅을 발판삼아 서서히 밀어 붙여 올 것이었다.

녀석들이 동서남북 중, 어떤 지역을 스타트지점으로 삼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정인우는 위저드 아이를 돌려가며 일일이 전 지역을 탐색했다.

하지만 위저드 아이로 마계를 한 바퀴 돌리는 것만 해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는 실정이었다.

그렇게 수일이 흘렀고, 예상치 못한 소식이 들려왔다.

-엘을 위시한 천사들이 들어섰다.

놈들은 대놓고 적진 한복판으로 들어선 것이다.

* * *

마계의 초입, 이곳에 천기를 풀풀 날리는 엄청난 숫자의 천족들이 보였다.

대천사장 엘.

루시퍼를 제외한 대천사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천사 10인대, 100인대, 1,000인대까지.

천계의 정예 병력이 마계에 들어서 있었다.

이 중, 가장 선봉에 서 있는 사내가 바로 엘이었다.

펑퍼짐하고 새하얀 항아리 바지에, 상의는 걸치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의 탄탄한 상체에는 근육과 더불어 온갖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엘은 기다란 은발을 이마 위로 쓸어 올리며 전방을 쏘아보았다.

그의 앞에는 마찬가지로 마계의 주축이나 다름없는 255명의 마왕이 보였다.

천계와 마계, 각기 최정예 병력이 지금 이곳에 모여 있는 것이었다.

엘이 한발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자 상대 진영에서도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새카만 눈동자, 짙은 흑발, 검정색 코트를 걸치고 있는 그는 바알이었다.

"이게 얼마 만인가, 바알."

엘은 마치 오랜 친우라도 되는 듯한 어조였다.

바알은 슬쩍 인상을 구기며 엘을 쏘아보았다.

순간, 바알의 육체에서 거대한 살기와 마기의 기운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엘의 뒤편에 자리 잡고 있던 일부 천사들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심지어 약한 천사들은 바닥에 무릎을 꿇었을 정도였다.

근래에 들어 제아무리 신의 선택을 받은 두 존재가 강해졌다고는 하나, 역시나 바알은 천계와 마계를 통틀어 가장 높은 레벨을 보유하고 있는 존재였다.

하다못해 대천사장인 엘조차도 레벨만큼은 바알에게 밀릴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있었다.

물론 엘은 신의 대리자답게 각종 혜택을 받아서 엄청난 아이템으로 무장한 녀석이었다.

이 밖에도 바알로선 꿈도 꾸지 못할 정도의 것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엘은 전혀 꿀릴 게 없었다.

바알이 제아무리 노력해 봐야, 그것은 결국 노력으로 끝남을 알기 때문이다.

신의 선택을 받지 못한 바알의 한계는 여기까지인 거다.

"바알, 정인우만 넘겨주면 전쟁은 벌어지지 않는다."

말을 마친 엘은 255명의 마왕 중, 왼쪽 선두에 서 있는 정인우를 바라보았다.

바알은 볼 것도 없다는 듯 답했다.

"너희들은 이미 선을 넘었다. 대병력을 이끌고 마계에 들어선 순간부터, 전쟁은 시작된 거였어."

"정녕 그리 생각하나? 후회하지 않겠나?"

"오만한 신에게 안부나 좀 전해 주라고. 지랄도 정도껏 하라고 말이지."

"...."

엘은 침묵했다.

지금 바알은 신을 욕했다.

그것도, 활짝 웃으며 말이다.

바알로서는 그간 쌓여 온 울분을 토해 낸 것이었으나, 엘이 보기엔 미친 녀석처럼 보였다.

정녕 신의 저주라도 받고 싶은 건가?

두렵지도 않은 건가?

엘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협상 결렬이군."

"잔말 말고 시작하지? 마계는 4천 년 전에도 그러했듯, 목숨을 걸고 긍지를 지킬 거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도 함부로 입을 떼지 못했다.

긴장으로 인해 근육이 꿈틀댄다.

아주 작은 움직임이라도 취하는 순간, 그때가 바로 전쟁의 시작이 될 것이었다.

누구 하나 함부로 움직이고 있지 않은 그때.

왼쪽 선두에 서 있던 정인우가 입을 열었다.

"대장. 지금이야."

"!?"

순간 엘의 얼굴이 구겨졌다.

인제 보니 저건 분신이었다.

그렇다면 정인우의 본체는 어디에?

타다다닥!

그때, 공중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엘과 천사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와 동시에 천사들은 눈을 크게 떴다.

"으라아아아아!"

정인우가 공중에서 마기광탄을 비처럼 뿌려대고 있었다.

그제야 바알의 입술이 열렸다.

"전쟁이다. 전원 공격!"

그의 명령과 동시에 마왕들은 마기광탄의 위력에서 떨어지기 위해 거리를 벌렸다.

그런 뒤 원거리 마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거대한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번 공격을 위해 255명의 마왕들은 마계에 존재하는 모든 마기광탄을 사들였다.

마계의 운명이 걸린 전쟁인데, 이 정도는 준비해야 하는 거다.

콰드드등! 콰와아아앙!

정인우는 수백 개의 마기광탄을 뿌림과 동시에 몸을 날렸다.

파밧!

공중에서 그의 신형이 단박에 지상을 향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그의 신의 코트 바깥 부분에 엄청난 양의 마기광탄이 추가로 매달려 있었다.

이건 인간 폭탄임과 동시에 자살 공격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인우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바알! 최대한 멀리 떨어져라!"

후우우우웅!

인우는 코트를 펼쳐 박쥐처럼 전신을 방어했다.

그리고 지상에 추락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코트 바깥에 매달린 엄청난 양의 마기광탄이 굉음을 내며 터져 나갔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신의 코트, 이것의 기능을 믿고 한 행동이었다.

코트를 펼쳐 전신을 감싸면 목숨을 위협하는 공격을 무조건 방어할 수 있었으니까.

다만 하루에 한 번만 발동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그렇기에 최대한의 타격을 줄 수 있는 공격을 펼칠 때, 그때에 코트의 기능을 활용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푸스스스스스슥!

버섯구름이 피어오른다.

거대한 폭발력은 천사들의 비명마저 앗아 갔다.

[경험치를 90,0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91,0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85,0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경험치가 미친 것처럼 쏟아졌다.

한 놈 당 대략 900억씩.

우선, 지구에서 잡은 게 아니니 10배의 보정을 받는다.

그리고 강화된 절대자의 성장으로 인해 추가로 20배를 보정 받는다.

본래대로라면 4억5천의 경험치였을 테지만, 지금은 900억으로 되먹지 못할 양이 되어 있었다.

그나저나, 기본 경험치가 4억5천이라면 최하위권 천사들 위주로 사망한 것 같았다.

아마도 천사 1,000인대 녀석들이 죽어 나간 듯 보였다.

거대한 폭발로 인해 여전히 약한 천사들이 죽어 나갔다.

.

.

.

[경험치를 89,0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90,0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88,0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900레벨의 '신의 언어2'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신체가 각성되었습니다.]

[근력이 12,800 증가합니다.]

[민첩이 10,240 증가합니다.]

[체력이 5,120 증가합니다.]

[마력이 1,280 증가합니다.]

.

.

10. [신의 언어2 - '화火, 수水'의 신언(神言)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덮쳐 오는 자연재해도, 신언의 앞에서는 꼬리를 내립니다.]

11. [신의 ?? - 1,000레벨 달성 시 활성화됩니다.]

대략 25명 정도의 천사들이 죽었다.

퍼부은 마기광탄에 비하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미약한 숫자였으나, 들어온 경험치는 단박에 900레벨을 달성했을 정도다.

순식간에 807에서 900이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신의 언어2'를 얻어냈고, 이번 언어는 '화, 수'였다.

일전에 느껴 보았듯, 신의 언어는 공격 수단이라기 보단 파훼 수단이었다.

자연재해 급의 마법도, 신의 언어 한 방에 소멸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인우가 얻어낸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시전자의 '분신1'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시전자의 '분신2'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시전자의 '분신3'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

.

모든 분신을 소환해 둔 상태였고, 녀석들의 레벨이 껑충껑충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인우의 레벨이 높아지니, 녀석들 또한 한계 레벨이 증가하여 단박에 최대 레벨이 된 것이었다.

그나저나, 꽤 의문이었다.

이 정도의 공격이라면, 필시 상대적으로 약한 1,000인대 정도는 전멸을 면치 못할 게 분명할 텐데, 고작 25명이 죽었다니.

푸스스스스스.

이윽고 연기가 그치고 그 속에서 이를 으득 갈고 있는 엘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엘을 발견하자마자, 인우는 강한 기시감이 들었다.

이 시간을 경험해 본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놈 봐라...."

* * *

마기광탄을 사용할 것이라고 예상하긴 했다.

하지만 그리 큰 걱정은 안 했다.

애초에 마기광탄은 실전에서 사용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아이템이니까.

내던진다 해도 상대방이 받아쳐 낼 수도 있었고, 하다못해 푹신한 워터 쉴드만 소환해도 멀찍이 튕겨 나간다.

마기광탄은 어디까지나 폭발력이 무서울 뿐이다.

해서, 강한 완력을 통해 움켜쥐어 자살할 때나 사용하곤 한다.

그래서 공중에서 정인우가 마기광탄을 내던질 때만 해도 엘은 비웃었다.

쉴드를 통해 마기광탄의 비를 튕겨 내며 피해를 최소화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엘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인우가 코트에 마기광탄을 매달고 돌진해 올지는 몰랐던 거다.

그 미친 공격에 천사 1,000인대의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

못해도 700명은 죽어 나자빠진 것이다.

이를 통해 정인우는 수백 번의 레벨 업을 한 것 같았고, 여러 개의 신의 패시브를 얻어낸 것 같았다.

최소한 가볍게 1,000레벨은 넘어선 것 같았으니까.

그야말로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 순간 엘은 결단을 내렸다.

'시간 역행.'

신이 내려준 대천사장의 권능으로 시간을 1분 전으로 되돌렸다.

하루에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지만, 지금 사용하는 게 맞다.

파바바바밧!

태엽이 감기듯 다시금 그 순간으로 되돌아 왔다.

되돌아 온 시간 속에서 정인우는 다시금 마기광탄을 매달고 지상을 향해 돌진해 온다.

엘은 날아오는 정인우를 막는 대신 모든 천사에게 강력한 쉴드를 먹였다.

삽시간에 천기가 숭덩숭덩 빠져 나간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이것이 최선이었다.

퍼어어어어엉!

곧바로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왔다.

"크으아아앗!"

드문드문 천사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번에는 고작 25명가량의 천사가 죽어 나갔을 뿐이었다.

시간을 되돌리길 잘했다.

푸스스스스스.

마기광탄의 폭발로 인한 연기가 그쳤다.

그 속에서 엘은 이를 으득 갈며 정인우를 노려보았다.

그때, 정인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놈 봐라...."

정인우는 무언가 기시감을 느낀 거다.

그리고 그 순간....

정인우가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엘이 되감아 놓은 시간을 또 한 번 되감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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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화 전쟁의 시작 (2)

시간 역행은 하루에 1회로 제한적이다.

한번 사용하면 24시간 이후에나 사용할 수 있다.

전쟁 최초에, 엘은 시간 역행을 사용했다.

그가 시간을 되돌린 이유는 간단하다.

정인우가 마기광탄으로 700명가량의 천사들을 죽였고, 수백 번의 레벨 업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감았다.

그리하여 다시금 돌아가는 시간 속에서, 엘은 천사 군단의 피해를 최소화시키기 위해 온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이번에 정인우는 고작 25명의 천사를 죽였고 레벨은 갓 900 정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정인우는 강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래서 정인우도 시간 역행을 사용했다.

그가 시간을 되돌린 이유는 간단했다.

25명의 천사가 아닌, 더 많은 천사를 죽이기 위해서였다.

전쟁으로 난전이 벌어지면 지금과 같은 찬스는 다시 생기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금, 마기광탄을 사용할 수 있을 때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래서 시간을 되돌렸다.

그리하여 시간은 다시 전쟁의 시작지점으로 돌아와 있었다.

정인우는 공중에 서 있었고, 코트에는 마기광탄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상태였다.

시간이 되감기며 자연스럽게 인우의 레벨은 다시 807로 되돌아와 있었다.

그가 죽였던 25명의 천사들도 버젓이 살아났기에 경험치를 획득했던 시간도 없었던 게 된 거다.

모든 것이 되돌아온 것이었다.

다만 한 가지. 되돌아오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시간 역행' 권능이었다.

시간 역행은 하루에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간 역행을 사용하고 1분 전 과거로 되돌아온다고 해서 '시간 역행'을 또다시 사용할 수 없다는 거다.

그게 가능했다면 무한 시간 역행도 무리는 아닐 테다.

저 혼자서 시간을 역행시켜 미래에 있던 일을 사라지게 만들고, 이를 통해 무한 시간 역행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엘도 인우도 오늘만큼은 더 이상의 시간을 되돌릴 수 없었다.

"이번엔 제대로 간다!!"

인우가 거세게 소리치며 천사들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엘은 눈을 부릅뜨며 천사 군단에게 쉴드를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우는 전과는 달랐다.

저 빌어먹을 쉴드 때문에 천사를 25명밖에 죽이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의 실수일 뿐이다.

이제는 전혀 다르다.

인우는 추락하는 와중에 탐색을 통해 적당한 천사를 물색했다.

<아비>

레벨 : 801

직위 : 천사 100인대

자신보다 레벨이 낮다.

그거면 충분했다.

신의 목걸이의 기능을 통해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대상을 현혹시킬 수 있었으니까.

'현혹.'

인우는 아비라는 천사를 향해 현혹을 시전했다.

이 능력 또한 하루에 한 번만 발동된다.

"으어."

아비라는 천사는 인우에게 현혹당했다.

인우는 녀석에게 명령을 내렸다.

'엘의 쉴드를 방해해라.'

"으어어어어!"

아비가 좀비처럼 소리치며 엘에게 훼방을 놓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쉴드가 일시적으로 끊겼고, 그 틈을 비집고 바닥에 몸을 때려 박았다.

쿠쾅쾅쾅쾅!!

코트에 매달린 엄청난 양의 마기광탄이 터져 나갔다.

이미 신의 코트에 걸린 전신 방어를 사용한 뒤였기에, 이번에는 신의 슈트에 달린 모든 체력 회복이 발동됐다.

목숨이 경각에 달한 순간 발현되는 이 능력 또한 하루에 한 번만 발동될 뿐이었다.

푸스스스스.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며 경험치가 쏟아진다.

그와 동시에 수백 번의 레벨업이 거듭되었고, 이를 통해 체력 또한 계속 회복됐다.

다시 말해, 폭발의 후속 데미지에서도 무사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경험치를 90,0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91,0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85,0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900레벨의 '신의 언어2'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신체가 각성되었습니다.]

[근력이 12,800 증가합니다.]

[민첩이 10,240 증가합니다.]

[체력이 5,120 증가합니다.]

[마력이 1,280 증가합니다.]

.

.

.

[1,000레벨의 '신의 각성'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신체가 각성되었습니다.]

[근력이 25,600 증가합니다.]

[민첩이 20,480 증가합니다.]

[체력이 10,240 증가합니다.]

[마력이 2,560 증가합니다.]

.

.

.

11. [신의 각성 ? 현재의 모든 능력치를 그대로, 레벨은 1이됩니다.]

12. [신의 ?? - 1,100레벨 달성 시 활성화됩니다.]

'어?'

수백 명의 천사가 죽어 나가자 전과는 다르게 1,000레벨을 가볍게 달성했다.

'신의 언어2'와 더불어 '신의 각성'이라는 것까지 습득했다.

한데, 이게 설명이 심상치 않다.

<정인우>

레벨 : 1

특성 : 광전사

스텟 :

[근력 2,872+51,150+10+2350]

[민첩 1,773+40,920+250]

[마력 1,341+5,130+250]

[체력 2,065+20,520+10+150]

*히든 스텟 :

[괴력 100]

[매력 42]

[지능 100]

[방어력 100]

[재생력 100]

미분배 포인트 : 1,930

[EXP 0 / 100]

807레벨에서 1,000레벨이 되며 보너스 포인트 1,930개가 생겼다.

능력치도 그대로다.

스킬 창 또한 그대로였다.

유일하게 달라진 것은, 레벨이 1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를테면 전승이랄까?

실로 무지막지한 혜택임은 틀림없다.

1레벨의 경험치 통은 100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중요한 건, 아직도 천사들의 경험치는 계속해서 오르고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경험치를 91,0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81,0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85,0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미쳤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1레벨대에 이런 미친 경험치가 들어오니 오죽하겠는가?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레벨 업을 해야 하는 건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인우는 마기광탄으로 수백 명의 천사를 죽였고, 이에 따른 경험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으니까.

마침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레벨 업이 끝이 났고, 드러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정인우>

레벨 : 1,077

특성 : 광전사

스텟 :

[근력 2,872+51,150+10+2350]

[민첩 1,773+40,920+250]

[마력 1,341+5,130+250]

[체력 2,065+20,520+10+150]

*히든 스텟 :

[괴력 100]

[매력 42]

[지능 100]

[방어력 100]

[재생력 100]

미분배 포인트 : 12,690

[EXP 0 / 78,000,000,000]

레벨은 분명 1로 초기화됐었는데, 1,077까지 올라가 있다.

807레벨에서 1,000레벨까지.

다시 1레벨에서 1,077레벨까지 오른 것이다.

그 정도로 수백 명의 천사가 가져다 준 경험치는 엄청났던 거다.

그리고 천 번이 넘어가는 레벨 업을 통해 얻어낸 보너스 포인트는 무려 12,690이었다.

다만, 100레벨 단위로 이루어지는 신체 각성은 추가로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마저 더블로 일어났다면 능력치는 터져나갈 듯 팽창했을 게 분명했을 텐데, 그 점이 조금 아쉽다.

나아가, 신의 검의 특수 기능은 이번에도 발동되지 않았다.

사망한 대상의 능력을 흡수하는 기능.

이는, 드래곤들을 잡을 때도 발동되지 않았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신의 검은 입이 무척 고급인 것 같았다.

웬만한 능력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랄까?

"허...."

엘 녀석의 표정이 썩어 들어가는 게 보였다.

놈은 아마 '탐색'을 통해 인우의 레벨을 확인했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저리도 충격적일 수밖에 없을 테지.

가만, 이제는 인우도 바알이나 엘 같은 강력한 놈들의 상태 정보를 확인하는 게 가능할 터였다.

<엘>

레벨 : 1,701

직위 : 대천사장 (신의 대리자)

엄청난 레벨이다.

17번의 신체 각성을 거듭했으니 능력치는 인우보다 높을 게 분명했다.

17차라면 수십만 정도의 각성 스텟이 지급될 테니 말이다.

그야말로 깡패같은 레벨이었다.

하긴, 천계의 마신과도 같은 직급의 존재인데 어련하겠는가.

"감히, 잘도 이런 짓을 벌였겠다?"

엘은 주먹을 부르르 떨며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이제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이곳에 있는 3명의 대천사 라파엘, 가브리엘, 미카엘도 그 정도의 권능을 발휘하진 못한다.

루시퍼가 온대도 크게 다를 건 없다.

그 녀석은 신의 던전을 3단계까지밖에 클리어하지 못했고,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라 봐야 구두, 슈트, 코트였다.

다시 말해, 지금 수백 명의 천사가 죽어 나자빠진 상황은, 이제 그 누구도 돌이킬 수 없다는 거다.

"모든 천사는 들어라! 다른 건 신경 쓰지 말아라! 오로지 정인우에게 모든 공격을 집중해라!"

엘의 명령은 파격적이었다.

집중 공격, 이내 모든 천사가 정인우를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타다다닥!

장관이다.

저 많은 녀석들이 인우 하나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꼴이 말이다.

하지만 인우는 혼자가 아니다.

곧바로 바알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정인우를 보호하고 놈들을 박살낸다!"

천사들과 마왕들은 이미 극강의 경지를 이뤄낸 존재들이다. 집단 난전이 벌어질 경우 행성이 파괴될 수도 있는 거다.

하지만 애초에 마계는 상위의 차원이기에 너끈히 견뎌 낼 터였다.

지구나 프로킨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콰과과과과광!!

형형색색의 마법들이 지상을 가득 메웠다.

수백 다발의 마법들이 온전히 인우 하나를 죽이겠다고 펼쳐지는 것이라니.

보고서도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토네이도 마법이 지상을 휴지조각처럼 드러내며 날아들었고, 초고열의 지옥 화염이 지상을 향해 쏟아졌으며, 땅이 진동하며 빙하기와 같은 얼음 덩어리들이 공기를 얼리며 쩌적 소리를 냈다.

지옥의 광경이 이러할까?

"풍風, 지地, 화火, 수水."

인우는 날아드는 속성 마법을 향해 신언을 날렸다.

패애애애애애애앵!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태풍과 같은 바람 속성의 마법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인우를 집어삼키려던 어스퀘이크가 단박에 멈추고 지상이 고요해졌으며, 날아드는 그레이트 메테오는 잿더미가 되어 잿비를 날렸다.

얼음 속성 마법이 녹아내리며 메테오의 잿비와 합세하여 검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끝도 없이 쏟아지는 검은 비는 모든 이들을 적셨다.

쏴아아아아아아-

그제야 그들은 실감이 났다.

정인우가 수백 다발의 마법을 단박에 파훼시켰다.

그 놀라운 광경에 마왕들이 환호했다.

"마신! 정인우!"

아직 마신이 되지도 않았건만, 그들은 천사들의 모든 마법을 막아 낸 신언만으로도 놀라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하아. 하아. 하아."

인우는 지친 숨을 토해 냈다.

머리가 띵하다.

마나가 숭덩 빠져나갈 때와 비슷한 빈혈 증상이 일어났다.

신언은 마나나 체력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신력을 이용하는 스킬인 것이다.

이를 무리하게 운용했더니 힘이 쭈욱 빠질 지경이었다.

무릎에 손을 얹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데 그 순간.

후웅!

3명의 대천사와 엘이 인우에게로 쇄도해 왔다.

"칫!"

인우는 이를 악물었다.

도무지 쉴 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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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화 이변 (1)

천계의 주축이나 다름없는 엘과 대천사들이 달려든다.

인우는 분신들을 이용하여 거리를 벌렸다.

"대자아아앙! 칵!"

선두에 나선 일이의 목이 대번에 날아갔다.

엘의 무기는 분신들을 두부 썰 듯 요리했다.

현재 분신들의 레벨은 646이었는데, 엘에게는 위협조차 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한데 그때.

후우우우우웅.

검붉은 기운으로 전신을 감싼 바알이 인우의 옆으로 블링크해 왔다.

바알 또한 분신들을 소환했다.

그의 여덟 분신이 무기를 치켜들고 엘과 대천사들을 쏘아보았다.

두우웅!

어느새 분신들의 몸에서 수리검들이 튀어나왔다.

인우도 익히 알고 있는 바알의 수리검이었다.

모든 세팅을 끝마친 바알이 스치듯 인우에게 말했다.

"고생했다. 신력이 회복될 동안은 내가 막지."

쩌어어어엉!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알이 대포알처럼 쏘아져 나갔다. 일순 공기가 매섭게 갈리며 로켓포가 쏘아지는 듯한 소음이 들려왔다.

그는 수십 자루의 수리검들을 조종하며 홀로 엘과 대천사들을 막아섰다.

그리고 바알이 녀석들을 막는 동안 나머지 마왕들은 천사들과 대적했다.

현재 천사들의 병력은 크게 줄어든 상태였다.

인우가 천사 1000인대의 대부분을 죽였고, 1000인대의 숫자는 전멸에 가깝게 줄어든 상황이었으며, 남은 병력은 천사 10인대, 천사 100인대였다.

천사 10인대의 경우 72마왕들과 동급이며,

천사 100인대는 73~149위 마왕들과 동급이었다.

현재 그들의 병력은 200을 가까스로 넘는 정도였다.

반면 마왕들은 255위까지 모조리 생존해 있는 상황.

머릿수는 마계의 마왕들이 조금 더 많다.

게다가 천사들은 마기가 아닌 천기를 사용하는 존재들.

그러므로 마계에서는 100%의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이는, 마왕들이 천계로 들어선대도 똑같은 결과가 초래된다.

결론적으로, 현 상황을 놓고 봤을 때는 마왕들이 더 유리했다.

애초에 엘은 마왕들보다 훨씬 더 많은 천사들의 쪽수를 믿고 자신 있게 침범해 왔을 터다.

하지만 그 병력의 대부분이 박살났고, 신의 대리자인 엘조차도 마계에서만큼은 모든 힘을 발휘할 수 없다.

타락한 대천사이자 소속이 불분명한 루시퍼라면 모를까....

루시퍼의 경우 천기와 마기를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존재였으니 말이다.

루시퍼는 지역에 구애받지 않는다.

천계건, 마계건, 100%의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그는 지금 이곳에 없었다.

게다가 루시퍼는 엘보다 한 수 아래였다.

애초에 루시퍼가 엘보다 강했다면 엘은 진즉에 소멸되었을 거였다.

루시퍼는 늘 엘을 죽이고 싶어 했다.

중재자인 엘만 없어진다면 제 놈이 천사들을 이끌고 마계를 침범할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했기에 루시퍼는 늘 홀로 다녔질 않나.

어쨌건 현재 엘과 대천사들은 100%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바알은 그들과 대적하고 있음에도 목숨을 유지하고 있었다.

파드드드드득!

바알의 수십 자루 수리검이 태풍처럼 회전하며 녀석들을 압박했다.

엘은 육체에 천기를 둘러 맨몸으로 수리검들을 퉁겨내며 내달려 왔다.

수리검이 장난감처럼 으스러진다.

엘이 뒤를 향해 말했다.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너희는 병력을 도와 나머지 마왕들을 제거하라. 나는 바알을 맡지."

"알겠습니다!"

순간 엘은 달리던 것을 멈췄다.

그러곤 맨땅을 향해 오른발을 내리찍기 시작했다.

쿵!

쩌저저저저적!

땅이 진동하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틈을 비집고 새하얀 손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왔다.

파바바바바밧!

튀어나온 손이 바알의 발목을 잡았다.

잡기로 치부하기엔 느껴져 오는 힘이 상당했다.

바알은 손을 뿌리치기 위해 땅바닥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쐐액!

땅을 뚫고 튀어나온 손목이 뎅강 잘려 나갔다.

한데, 잘려나간 손목은 여전히 힘을 잃지 않은 채 바알의 바지춤을 잡고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어서 수십 개의 손이 바알의 육체를 옥죄어 오기 시작했다.

엘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천기를 끌어올렸다.

"으어어어어어!!"

공기 중에는 마기가 가득했기에, 끓어오르는 천기는 자석의 같은 극처럼 반발력을 머금으며 시원하게 튀어나오지 않았다.

하나, 엘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엘이 제아무리 본신의 위력을 100% 발휘하지 못한다 해도, 천계의 일인자인 것이다.

천기를 실체화시킨 엘은 그것을 양손에 응축시켰다.

후우우우우웅!

손안에 태풍이 담긴 것처럼, 맹렬한 소음이 들려왔다.

엘은 반죽을 주무르듯 기운을 다뤘다.

기운은 콩알만 해지더니 종국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크기로 뒤바뀌었다.

엘은 손바닥 위에 먼지만 한 그것을 올려두었다.

그런 뒤 입바람을 불었다.

-후욱.

천천히 날아간다. 눈에 온전히 보이며, 하품이 나올 정도로 천천히.

그런데도 바알은 포박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의 온몸을 붙잡고 있는 수십 개의 손 때문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떤 기술인지는 모르겠는데, 마구잡이로 날려 댈 수 있는 포박술은 아닌 듯싶었다.

쿨타임이 못해도 몇 시간은 될 거다.

어느새 기운은 바알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목젖을 넘어 내장기관까지 단숨에 들어선다.

그 순간 엘의 입술이 움직였다.

"폭爆."

콰과과과과광!!

강력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바알은 내부 장기가 결딴난 채로 토를 쏟듯 피를 뿜었다.

"크헉!"

그제야 포박술이 풀렸고 바알은 무릎을 꿇었다.

"빌어먹을."

피투성이가 된 바알이 중얼거렸다.

신은,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엘에게 너무나도 강력한 힘을 주었다.

엘은 바알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억울한가?"

이해한다는 듯, 엘은 가여운 얼굴로 바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쓰러운 시선이 느껴졌다.

바알은 바닥에 피로 엉킨 끈끈한 침을 뱉어 내며 말했다.

"그런데, 그거 아나?"

"무얼 말이지?"

"신이 네놈에게 능력은 주었지만, 조심성은 주지 않았나 보군. 전투 경험이 형편없을 지경이야."

순간, 엘은 불길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러고 보니 무언가 이상했다.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바알의 무력이 굉장하다 했는데 너무 쉽게 당한 경향이 있다.

즉시 탐색을 펼쳤다.

<바알1>

레벨 : 1,079

직위 : 바알의 분신1

"아...?"

엘, 그는 능력을 부여받아 천계의 신처럼 군림했다.

싸움?

그런 건 수천 년에 한 번 해 봤을까 말까다.

반면 바알은 어떠한가?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으며 전투를 밥 먹듯 해 왔다.

"분신이라니!"

정신이 번쩍 든 엘이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그 순간.

등 뒤에서 진짜 바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극 파뇌천."

그 즉시 짙은 칠흑의 마기가 튀어나와 엘을 감쌌다.

쿠우웅!

마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종국에는 10미터가량까지 부풀어 오르다가 폭발할 것이다.

바알이 이죽댔다.

"엘, 아직도 나를 4천 년 전의 꼬맹이로 생각했나?"

"노오오오오옴!!"

마극 파뇌천 안에 갇힌 엘이 악에 받친 듯 소리쳤다.

* * *

인우는 신력을 회복하기 위해 숨을 고르며 격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알이 전투에 나서면서부터 쭉 지켜보았다.

놈은 마치 수십 년간 마술을 해 왔던 마술사 같았다.

상대를 속이는 사기에 굉장히 능했다.

"저거 순 사기꾼이었네."

엘은 바알에게 완전히 속아 버렸고, 제대로 한 방 먹기 직전이었다.

이건 마치 장기나 오목 같았다.

수를 두고 있는 장본인들은 상대의 속임수와 전략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데, 구경꾼들에게는 그것이 확연히 잘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인우는 실실 쪼개며 재밌어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저 기술은 일전에 프로킨에서 루시퍼에게 타격을 입힌 그것이었다.

그때 아마 바알은 뒤늦게 이렇게 외쳤던 거로 기억한다.

-방어해라, 터뜨릴 거니까.

아니나 다를까.

"대피해라, 터뜨릴 거니까."

바알 녀석이 격전지를 향해 뒤늦게 입을 열고 있었다.

한창 천사들과 대적하고 있던 마왕들은 잽싸게 공격을 거두고 피신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천사들까지 대피하기 시작했다.

무리도 아니다.

저 스킬은 후폭풍마저도 무시무시했었다.

주변을 모조리 초토화시켰을 정도였으니까.

이러니, 저 스킬에 직격으로 당하는 엘은 꽤 큰 타격을 입을 게 분명했다.

콰과과과과과광!!

어느새 엘을 감쌌던 구체가 터져나갔다.

귀가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또한, 탄산음료를 마시는 것처럼 시원했다.

인우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뒈져 버려라. 엘!"

막타는 내 것이다.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뒷말을 중얼거리는 인우였다.

이윽고 먼지가 걷혔다.

한데, 그곳에 엘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 인우는 어이가 없어서 한마디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대천사장이라는 새끼가 지금 천사군단을 내팽개치고 도주한 거야?"

그러길 잠시.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3명의 대천사들이 천사군단을 향해 외치기 시작했다.

"후퇴하라!!"

천사들은 꽁지가 빠지게 도주하고 있었다.

* * *

마계는 넓다.

동서남북, 그 어느 곳을 가더라도 미개척지대는 존재했다.

개척이 되지 않은 마계의 북쪽 땅.

이곳에 엘과 대천사들, 그리고 천사군단이 보였다.

그들은 임시 막사를 지어 놓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중앙 막사에서는, 엘과 3명의 대천사가 회의를 하고 있었다.

"전력을 점검하고, 다시금 놈들을 친다. 이번엔 내가 속아 어쩔 수 없이 후퇴했으나, 다음엔 어림없을 것이다."

엘은 전신에 끔찍한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방어술을 펼치지도 못했던 거다.

루시퍼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루시퍼는 엘보다 약했으나, 바알의 마극 파뇌천을 여유롭게 대처했으니까.

뭐, 물론 엘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곳이 마계이기에 100%의 힘을 발휘하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바알에게 당했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좀 쉬고 싶군. 우선 나가서 전력을 점검하라."

엘이 축객령을 내렸다.

그러자 대천사들은 막사에서 나왔다.

그들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어려 있었다.

대천사장 엘의 권능을 너무나 믿었기에 그 실망이 더 컸다.

바깥으로 나온 대천사들은 엘의 명령대로 전력을 점검했다.

천사 1000인대의 90% 이상이 죽었고, 온전히 생존해 있는 병력은 천사 100인대와 10인대뿐이었다.

남은 병력은 간신히 200명이 되었을 정도였다.

마계는 생각보다 강했고, 그들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상처를 입었다.

"이럴 때 루시퍼라도 있었으면...."

모두가 침울해하고 있을 그때였다.

정말로 거짓말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터벅- 터벅-

이곳에 루시퍼가 나타난 것이다.

새하얀 코트와 슈트를 입고 있는 그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대천사들은 즉시 반색하며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루, 루시퍼!! 너 이 자식! 어디에 갔던 거냐! 왜 이제야 나타난 거냐고!"

"아아, 간만이지? 그보다, 엘을 좀 보고 싶은데."

루시퍼는 혀로 붉은 입술을 핥으며 검을 뽑았다.

순간 대천사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루시퍼. 너 혹시?"

루시퍼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생각할 뿐이었다.

엘은 마계로 오며 힘을 제대로 못 쓴다.

게다가 이번 전쟁에서 제법 큰 상처를 입었다.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한참 뒤에 루시퍼가 말했다.

"쓸모없는 녀석은 사라져야지."

자신은 마계에서도 100%의 힘을 발휘한다.

게다가 엘을 잡게 되면 엄청난 성장을 할 수 있을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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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화 이변 (2)

루시퍼는 프로킨에서 마왕들과의 대격전 이후 조급해졌었다.

그즈음 정인우가 신의 던전으로 입장했고, 루시퍼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많은 날을 괴로움으로 보냈다.

자신의 재능은 3단계가 한계였으나 정인우는 던전의 끝을 보고야 말았으니까.

루시퍼는 마신의 길에서 그만큼 멀어진 것이다.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자기혐오였다.

역겨운 자신을 탓하며 대천사들과의 교류마저 끊은 채 홀로 지냈다.

그러던 중, 신의 계시가 내려왔다.

-마계의 북쪽, 미개척지. 엘을 죽여라.

* * *

"계시가 떨어졌다고?"

중앙 막사 내부.

그곳에서 엘은 힘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루시퍼가 보였다.

엘은 지금 상황이 쉬이 믿기지 않았다.

정인우를 제거하라는 계시를 받고 모든 천사를 이끌어 마계에 침공해 왔다.

신의 개답게, 신의 명령에 복종했다.

한데, 이게 무엇인가?

"정녕, 날 죽이라는 계시가 떨어졌다고?"

엘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루시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왼손목을 내밀었다.

그의 손목에는 새하얗게 빛나는 신의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저것이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징표임을 안다.

설마하니 진실이었던가? 엘은 망연한 얼굴을 했다.

루시퍼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 천사군단은 내가 이끈다."

"날 죽인다고 해서 바뀌는 게 무엇이지? 차라리 힘을 합치는 게 옳다. 마계는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

엘의 말은 확실히 옳았다.

지금은 힘을 합치는 게 맞다.

애초에 루시퍼와 엘은 같은 천족이기에, 루시퍼는 엘을 죽여도 경험치를 획득할 수 없지 않을까?

루시퍼가 제아무리 타락했다 해도 태생은 '천족'이다.

이는 엘 또한 마찬가지다.

즉, 루시퍼가 엘을 죽이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거다. 경험치 획득이 불가능하니 말이다.

아군의 전력만 소모하는 꼴이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엘의 생각일 뿐이었다.

루시퍼는 엘의 내심을 짐작이라도 한다는 듯 비릿하게 웃었다.

"신이 그렇게 멍청할 것 같나?"

"신 또한 실수를 한다. 이건 멍청한 짓이다 루시퍼!"

"과연 그럴까? 나의 태생이 천족이라 해서, 내가 아직도 너와 같은 동족일 거라 여기나?"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나는 타락했을 때부터, 이미 천사도, 악마도 아니게 되었다."

루시퍼의 손바닥에서 새하얀 빛무리와 새카만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것은 각각 천기와 마기였다.

마왕도 천사도 아닌 그는, 달리 말해 마왕이기도 했으며 천사이기도 했다.

"이게 도대체...."

"보고도 모르겠나? 나에게 태생 따윈 의미가 없다."

엘은 멍청한 얼굴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천계와 마계를 통틀어 그 어떤 존재도 마기와 천기를 둘 다 다룰 순 없다.

푸스스스스.

어느새 두 기운이 뱀의 똬리처럼 얽히고설키며 서서히 응축되었다. 루시퍼는 그것을 쫙 늘렸다.

이내 기운은 하나의 검이 되었다.

검면에서 눈이 부실 정도의 스파크가 튄다.

천기와 마기는 상극이기에 서로 융합되지 못한 채 뒤엉켜 있었던 것이다.

그 반발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상상을 초월했다.

엘은 잘 몰랐지만, 사실 루시퍼는 이미 프로킨에서 바알과 대적할 때 천기와 마기를 둘 다 다루는 힘을 사용하지 않았던가?

그때의 바알 또한 크게 놀라 할 말을 잃었었다.

"이건 말도 안 돼...."

"신의 대리자가 신의 계시를 거부할 생각은 아니겠지?"

"...."

엘은 답하지 못했다.

그는 단 한 번도 신의 명령을 거부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랬던 그였기에, 지금 루시퍼를 막을 수 없었다.

그저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을 뿐.

푸욱!

루시퍼의 검이 엘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피를 잔뜩 뒤집어쓴 루시퍼는 야차처럼 웃었다.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너를 내 안에 가둬 주마. 엘."

엄청난 경험치를 획득했다.

레벨 업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한데 루시퍼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이내 그는 엘을 토막 내기 시작했다.

[악마의 포식 Master] - 식인 행위를 통해 상대의 능력치를 흡수합니다.

그야말로 악마와 같은 히든 스킬을 떠올리며, 루시퍼는 엘을 먹기 시작했다.

* * *

1차 전쟁은 끝이 났다.

그제야 인우는 미분배 포인트를 투자할 수 있었다.

얻어낸 포인트는 도합 12,690.

807에서 1,000까지.

다시 1에서 1,077까지.

총 1,269번의 레벨업을 한 것이다.

이 모든 포인트를 3대 스텟에 투자했다.

이제 마력이 부족한 현상은 거의 발생 되지 않는다.

신의 마력으로 걸을 때마다 마력이 회복되고 마나 드레인까지 존재해서였다.

이 때문에 마력을 제외한 근력, 민첩, 체력에만 분배했다.

그러고 나서야 인우는 위저드 아이를 통해 마계 전역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엘과 천사군단이 천계로 돌아간 흔적은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필시 마계 어딘가에서 몸을 숨기고 전력을 점검하고 있을 터였다.

하루빨리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워낙에 넓은 땅덩이인지라 하루이틀 가지고 모든 지역을 탐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뭐가 좀 보이나?"

바알이 슬쩍 물어온다.

인우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뜬금없는 일이 벌어졌다.

[경험치를 910,740,003,135 획득하였습니다.]

난데없이 경험치가 들어온 것이다.

들어온 경험치는 9,100억가량이었다.

인우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을 쩍 벌렸다.

"뭐야 이거?"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정인우>

레벨 : 1,088

특성 : 광전사

스텟 :

[근력 7,102+51,150+10+2350]

[민첩 6,003+40,920+250]

[마력 1,341+5,130+250]

[체력 6,295+20,520+10+150]

*히든 스텟 :

[괴력 100]

[매력 42]

[지능 100]

[방어력 100]

[재생력 100]

미분배 포인트 : 110

[EXP 134,562,433 / 78,210,000,000]

레벨이 단숨에 11번 올랐다.

기존 1,077에서 1,088이 된 것이다.

필요 경험치가 엄청나게 늘어났음에도 11번의 레벨 업이라니.

아니 근데, 이게 도대체 갑자기 무슨 일이란 말인가?

얼이 빠져 있기도 잠시.

옆에 있던 바알이 불쑥 물어왔다.

"정인우. 혹시 너도?"

"응? 뭘?"

"너도 경험치를 획득했나?"

"너도?"

둘의 시선이 혼란으로 얽혔다.

그 순간 바알이 중지와 엄지로 딱 소리를 내며 외쳤다.

"엘. 그놈이다."

"뭐?"

"엘이 죽은 거야."

엘이 죽다니?

그것과 갑자기 들어온 경험치가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게다가 혼자 얻은 것도 아니고 바알과 동시에 얻었다.

"아!"

그러다가 인우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하나의 사실이 번뜩였다.

경험치는 기여도를 통해 지급 받는다.

전쟁 최초, 인우는 마기광탄을 통해 천사들에게 타격을 입혔다.

그러한 과정에서 엘에게도 타격을 주었다.

물론 그 양은 미미하다.

그리고 바알 또한 마극 파뇌천으로 엘에게 타격을 주었다.

다시 말해, 정인우와 바알은 엘에게 타격을 주었던 기여자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엘이 죽는다면?

당연히 타격을 주었던 만큼의 기여 경험치를 획득한다는 거다.

다른 차원이 아닌 이상, 이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다시 말해 엘은 마계에서 사망했다.

바로 조금 전에 말이다.

한데 놀랍다. 인우는 그다지 타격을 주지 못했음에도 9,100억이라는 미친 경험치를 얻었다.

아니, 그딴 건 다 필요 없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엘이 도대체 어쩌다가?"

"짐작되지 않는군."

인우와 바알은 의문형의 말을 내뱉었으나, 표정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왠지 기운 빠진 얼굴이랄까?

그럴 만도 했다.

제대로 긴장한 채 본격적인 전쟁을 준비했건만, 상대 진영 최고의 장수가 이유도 모른 채 사망한 거다.

인우나 바알같은 전투광들에게는 이 어찌 싱겁지 않을 수 있을까?

"이 무슨 이변이란 말인가."

그 말을 끝으로 바알과 인우는 침묵했다.

희한하게도, 상황이 너무나 좋아지니 도리어 불안감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 * *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은 중앙 막사의 바깥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조금 전 엘의 비명이 들려왔고, 그의 심장이 멎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이 모든 과정에도 그들은 침묵을 고수했다.

루시퍼의 손목에서 빛나는 신의 문자를 보았다. 그것은 징표였다. 신의 계시를 방해할 생각 따윈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잘됐다 여겼다.

그들은 늘 루시퍼를 지지하지 않았던가? 천계에서는 엘의 힘이 너무나 막강했기에 어쩌지 못했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이곳 마계에서는 달랐다.

엘은 루시퍼에 의해 끝났다.

우걱- 우걱-

그리고 지금.

막사 내부에서는 끔찍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살이 찢기고 씹히는 소리, 내장이 터지는 소리, 뼈가 씹히는 소리까지.

지옥에서나 들릴 법한 처참한 소음이다.

그들은 이 모든 참사를 계시한 신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탈라시아 신이시여, 당신의 뜻대로...."

그러나 신은 답조차 없었다.

* * *

그로부터 사흘이 지났다.

마계는 폭풍이 몰아치기 직전처럼 고요했다.

마왕들은 전쟁태세를 갖춘 채 대기했으며, 인우는 여전히 위저드 아이로 마계를 훑었다.

그리고 마침내 천족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어...."

확인과 동시에 인우의 눈이 찢어질 듯 부풀었다.

"루시퍼...?"

분명 그 녀석이었다.

놈은 선봉에 선 채 천사들을 이끌고 있었다.

즉시 바알에게 소식을 알렸고, 오래지 않아 모든 마왕은 평야에 집결했다.

이제는 전면전이다.

휘이이이이잉-

평야에 바람이 불었고, 이윽고 200이 채 안 되는 천사들과 255명의 마왕이 서로를 마주했다.

"마계의 쓰레기들이 모조리 모여 있군 그래."

루시퍼가 농을 건네듯 가벼운 어조로 말을 내뱉고 있었다.

마왕들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오직 바알만이 입을 열 뿐이었다.

"엘을 죽인 게 네 녀석이었나?"

"그래. 내가 죽였지. 녀석을 씹어 먹었지. 하하!"

루시퍼가 광소를 터트렸다.

엘을 먹었다고? 마왕들은 소름이 돋았다.

어느새 웃음을 그친 루시퍼가 입을 열었다.

"바알, 나의 오랜 친우. 오늘에야말로 길고 길었던 악연을 끝낼 수 있겠군."

그러는 동안 한편에 서 있던 인우는 이를 갈았다.

저 미친 새끼가 자신의 경험치 덩어리를 홀로 처먹은 범인이었다니.

열이 뻗쳐올라 헛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고 현기증마저 일었다.

반드시 저 개자식의 목을 따버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엘을 죽였다면 엄청난 레벨 업을 했을 터, 이는 다시 말해 엘이라는 경험치가 루시퍼에게 포함되었다는 뜻이다.

이미 프로킨에서 루시퍼가 천기와 마기를 동시에 다루는 광경을 목격했다.

놈은 천족이랄 수 없기에 반드시 경험치를 획득했을 거였다.

그러니, 그냥 저 자식을 죽이면 포식이 가능할 테다.

그나저나, 놈을 죽이려면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보아야 한다.

즉시 루시퍼의 레벨을 확인해 보았다.

엘의 레벨도 확인했는데, 루시퍼라고 못할 게 없다고 여겼다.

한데....

[대상과의 레벨 차이가 커서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이건 뭔...."

욕이 튀어나오려다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아니, 도대체 레벨이 얼마나 상승했기에 확인이 불가하다는 건가?

옆에 있는 바알이라면 혹 다를까?

확인해본 바에 의하면 바알의 레벨은 1,799다.

이는 엘보다 98이나 더 높은 수치였다.

그에게 물었다.

"너는 루시퍼의 레벨이 보이냐?"

"그래."

"몇이지?"

"...."

바알은 대답 대신 침묵을 지켰다.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일그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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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화 희생 (1)

바알은 지금 탐색을 통해 루시퍼의 레벨을 확인하고 있었다.

녀석의 레벨은 엄청났다.

본래부터 바알과 비등하게 싸웠던 루시퍼였다.

한데 거기에 막강한 레벨까지 덧입혀졌으니 끔찍한 대재앙이나 다름없었다.

"몇이냐고 이 자식아."

옆에 있던 정인우가 다시금 물어왔다.

<루시퍼>

레벨 : 2011

직위 : ?

바알은 탐색에 떠오른 루시퍼의 레벨을 다시금 확인하며 짧게 답했다.

"이천십일."

인우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바알은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최악이로군."

말마따나 최악이다.

재능과 운을 모조리 타고난 정인우조차도 이제 고작 1,088레벨이다.

지금으로써 믿을 것은 바알 자신뿐이건만, 그런 그조차도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엘의 경우, 레벨도 1,700대였고 마계에서 천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페널티까지 있었다.

하지만 루시퍼는 어떠한가?

레벨은 2,000이 넘어가며 페널티조차도 없다.

녀석은 무대가 마계건 천계건 전혀 상관치 않는다.

지이이이잉-

어느새 루시퍼가 마기와 천기를 이용해 검을 만들었다.

폭발적인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검을 치켜든 루시퍼가 말했다.

"유언들은 끝났나?"

광오한 한마디에 마왕들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하나,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어느덧 루시퍼는 정인우 쪽을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인우가 착용한 신의 아티펙트와 신의 검.

루시퍼의 시선이 거기에 꽂혔다.

루시퍼는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다.

"네놈에겐 과분한 것들이다."

"너에겐 과분하지 않고? 너는 3단계에 간신히 닿았던 형편없는 놈이잖냐."

인우는 지지 않고 응수하고 있었다.

제법 강하게 쏘아붙였건만, 루시퍼는 화를 내긴커녕 도리어 역겨운 미소를 지으며 답하기 시작했다.

"나 말고 그 어느 누가, 감히 신의 장비를 모두 착용할 수 있겠는가? 오로지 나뿐이다."

인우는 대답 대신 슬며시 아공간을 열었다.

힘의 정수를 있는 대로 꺼냈다.

그간 모아 둔 양이 꽤 많다.

그걸 모조리 사용할 참이었다.

이어서 인우는 모든 분신에게도 나오라 명했다.

아공간에서 시바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분신들이 모조리 나왔다.

그때, 홀로 남았던 시바가 츠츠 거리며 바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시바는 재밌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시바가 검지를 치켜들고 루시퍼를 가리켰다.

"...."

루시퍼는 시바가 누군지도 몰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애초에 3단계를 클리어하고 4단계 초입에서 클리어를 실패한 전력이 있었으니까.

시바는 5단계에서나 볼 수 있는 황금 데스나이트이질 않나.

-츠츠츠츠.

이내 시바는 루시퍼를 가리킨 손을 그대로 두고는 나머지 손으로 배를 부여잡고 껄껄대기 시작했다.

이곳에 모인 고위급 마왕들이나 천사들은 그 웃음의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권능인 '소통'을 통해 모든 차원 생명체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 시바는 이렇게 말하며 웃고 있었다.

-저 꼴통 놈 오랜만이네. 츠츠츠츠!

순간, 긴장감으로 터질 듯했던 전쟁터에 알 수 없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것은 어처구니없음이기도 했으며 황당함이기도 했고, 웃음을 참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시바의 눈치 없을 정도로 순수한 감상평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어느새 시바는 인우의 옷깃까지 부여잡으며 말했다.

-츠츠츠!

시바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5단계에서는 하위 단계를 지켜볼 수 있었는데, 그때 시바는 루시퍼를 보았다는 거다.

녀석은 처절하게 3단계까지 클리어하고 4단계에서 퇴출당할 때는 울상을 지었다고 했다.

시바는 아직도 그 표정을 기억한다며 낄낄 대고 있었다.

심지어 시바는 해골밖에 없는 얼굴을 이용해 당시 울락말락이었던 루시퍼의 얼굴을 흉내까지 냈다.

"풉."

결국 인우는 참지 못하고 웃어버렸다.

사실 사안이 사안이질 않나?

이곳은 전쟁터이고, 마계와 천계의 운명이 걸려 있는 곳이었다.

그만큼 무거운 분위기로 가라앉아 있는 곳이었기에, 쉬이 웃음이 나올 수 없었다.

한데도 웃고야 말았다.

시바의 흉내가 그 정도로 우스워서였다.

순간 루시퍼의 눈썹이 꿈틀댔다.

하나, 루시퍼는 결코 흥분하지 않았다.

그저 시바를 향해 마법을 날릴 뿐이었다.

후우우우웅-!

시바 하나를 죽이기 위한 강력한 단일 마법이 빠르게 쇄도해 오고 있었다.

마법은 초고열의 새하얀 불덩이였다.

인우는 그 즉시 신언 '화火'를 통해 마법을 파훼시키며 시바를 아공간에 밀어 넣었다.

-츠으으!!

시바는 들어가기 싫다며 부르짖었으나, 인우는 단숨에 아공간을 닫아 버렸다.

이 녀석은 육체가 초기화되는 신의 던전에서나 강력하지, 이곳에서는 그저 잡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저 조금 독특한 외형의 데스나이트일 뿐.

어쨌든 결코 죽게 놔두고 싶지 않았던 인우였다.

이내 시바의 안전을 확보한 인우는 착 가라앉은 눈동자로 루시퍼를 쏘아보았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주둥이로 전쟁을 할 참이냐?"

"뭐, 원하신다면. 전원 돌격!"

루시퍼가 피식 웃으며 천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콰과과과과광!!

천지가 진동하고 하늘이 갈리는 대격전이 시작되었다.

* * *

루시 퀸은 지금 정인우의 가족들과 함께 마왕성에 머물고 있었다.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제외한 모든 마왕은 목숨을 걸고 전쟁을 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곳에 잠깐 있다가 도로 빠져나왔다.

정인우의 부탁이 있었다.

이번 대전쟁에서 빠지라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녀가 전쟁에 참여하고 있으면 걱정이 되어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고 했다.

정인우에게는 퀸이 그만큼 소중했고, 퀸은 그것이 좋았다.

물론, 걱정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인우는 늘 살아 돌아왔다.

퀸은 인우를 믿었다.

그 믿음으로 인해 묵묵히 기다릴 수 있었다.

다른 건 없다.

그저, 기다릴 뿐.

퀸은 자신의 품에서 잠이든 팜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곤 눈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려 하자 잽싸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사실 그녀는 걱정이 되어 참을 수가 없었다.

"제발...."

* * *

-끄아아아아아아악!

드넓은 평야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비명은 오래지 않아 파묻히고 말았다.

콰과과과광!!

평야에 온갖 마법들이 빗발쳤다.

천사들의 천기가 들끓었으며, 마왕들의 마기가 폭발하다시피 분출되고 있었다.

전쟁은 이제 갓 시작했건만, 이곳 현장의 모습은 수백일간 전쟁을 한 것처럼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크아아아아압!!"

격전지의 중앙.

그곳에 유난히 많은 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그는 인간의 신분으로 마왕의 자리까지 올라선 정인우였다.

카가가가가각!

인우가 앞에 있던 천사를 향해 신의 검을 휘둘렀다.

천사의 무기와 인우의 검이 맞닿자 강렬한 스파크가 튀었다.

튀어 오른 불똥이 눈동자에 닿았다.

그런데도 인우는 눈을 깜빡이긴커녕 도리어 부릅떴다.

그 찰나의 시간이 승패를 좌우함을 안다.

으득.

인우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힘을 주었다.

콰당!

천사는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나자빠졌다.

엉덩방아를 찧은 천사의 명치를 향해 검을 역수로 틀어쥔 채 찍어 넣었다.

푸욱!

복부를 관통한 검을 그대로 그어 내렸다.

신의 검의 강력한 예기를 이기지 못한 채 천사의 복부 근육이 찌익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그 안에 있던 내장기관들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흘러나온다.

"크헉...!"

천사는 아직까지도 숨이 끊기지 않은 채로 인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인우는 고함을 내지르며 놈의 갈라진 복부를 향해 헬파이어를 난사했다.

화르르르르륵!

내장이 타오르며 끔찍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놈이 그대로 절명하며 경험치가 올랐다.

"하아! 하아!"

인우는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숫자의 천사와 마왕들이 죽어 나가며 비명들이 빗발쳤다. 피에 절은 인우의 눈빛이 살벌했다.

전쟁의 광기는 이성을 앗아가고 있었다.

"루시퍼어어어어!"

인우는 놈을 찾아 눈을 번뜩였다.

바알은 홀로 녀석을 막기 위해 어딘가로 향했었다.

당장에 찾아야 한다.

꽝!

그 순간, 거대한 해머가 인우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순간 인우의 몸이 기우뚱했다.

타닥!

하나 인우는 결코 쓰러지지 않은 채 중심을 잡았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광폭 어검을 날려 버렸다.

쐐애애애액!

의지에 자아까지 머금은 신의 검이 빠른 속도로 뒤에 있던 천사에게 꽂혀 버렸다.

푸욱!

살갗이 꿰뚫리는 소리를 확인함과 동시에 뒤돌려차기를 넣었다.

푸우우우욱!

꽂혀 있던 신의 검의 폼멜에 인우의 뒷발차기가 닿자, 검은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크훕!"

뒤에서 한 움큼 피를 토해 내는 소리가 났다.

철푸덕.

이내 무릎이 꿇리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솨악-

어느새 신의 검은 인우의 손을 향해 되돌아왔고, 동시에 경험치가 들어왔다.

아주 잠깐의 여유를 얻어낸 인우는 또다시 이리저리로 고개를 돌렸다.

바알과 루시퍼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콰과과과광!

그리고 그때, 인우는 마침내 두 녀석을 찾아냈다.

볼 것도 없이 내달렸다.

* * *

"하아. 하아. 하아."

바알은 지친 숨을 토해 내고 있었다.

그의 몰골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피와 멍으로 인해 얼굴은 알아볼 수조차 없었으며, 멋들어진 코트의 왼팔 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팔 하나를 잃은 것이다.

그런데도 바알의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매서웠다.

"괴물이… 따로 없군."

바알은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였다.

전투할 때는 전혀 힘들지 않은 척 연기를 해야 상대가 심리적 압박을 느낀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연기를 할 여유조차 없었다.

바알은 루시퍼를 상대하며 크게 지쳐 있었다.

반면 루시퍼는 상대적으로 멀쩡해 보였다.

"...."

이 순간 바알은 생각했다.

만일 자신이 루시퍼를 막다가 사망한다면?

그리된다면...?

루시퍼는 엄청난 경험치를 얻고 더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마왕들은 차례차례 죽어 나갈 것이며, 루시퍼는 점점 더, 더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정말로 돌이킬 수가 없다.

그 누구도 놈을 막을 수 없게 된다는 거다.

그 전에 반드시 해결을 보아야만 한다.

지금으로써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다.

정인우, 그에게 자신을 주어야 한다.

타다다다닥!

바로 그때, 정인우가 눈을 부릅뜬 채 다가와 있었다.

바알은 정인우를 바라보았다.

언뜻, 바알의 눈동자에 체념의 빛이 보였다.

둘의 시선이 맞닿자, 인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표정은 뭐냐? 인생 다산 노인처럼? 정신 차려 이 새끼야!"

"제법 긴 여생이었지. 여한은 없다."

바알이 어렵사리 입을 열고 있었다.

바알은 자기 자신을 희생할 셈이었다. 단번에 그 뜻을 알아차린 인우가 외치듯 물었다.

"끝까지 해 보지도 않고 포기할 셈이냐?"

"끝까지 해 보지 않아도 뻔하니 별수 있나? 루시퍼에게 줄 바에, 너에게 준다."

이대로 가다간 루시퍼에게 잡아먹힌다.

그리되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다.

루시퍼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질 것이다.

시간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루시퍼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바알은 단 한 올의 망설임조차 없이 N0.1 마왕의 게이트를 소환했다.

그러곤 그곳에 인우를 밀어 넣기 시작했다.

뒤늦게 루시퍼가 대응해왔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어느새 바알마저도 게이트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곤 게이트의 입구를 봉해 버렸다.

이곳 내부는 애초에 다른 차원이다.

그러므로 기여도를 통해 루시퍼에게까지 경험치가 닿지 못한다.

바알은, 온전히 정인우에게만 줄 생각이었다.

이내 자신의 목을 내밀었다.

"잘라라."

움찔.

순간, 인우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치고야 말았다.

이 미친 새끼가 지금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지?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그래 뭐, 마계에 입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그랬다.

바알을 죽이고 NO.1 마왕이 되겠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조금 달라졌다.

바알을 동지라 여겼으니까.

채 결심이 서기도 전에 바알이 또다시 말했다.

"신에게 닿으면, 한마디만 전해 줘라."

"허튼소리 마."

바알은 인우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제 할 말을 잇기 위해 입술을 달싹였다.

굳건한 의지가 담긴 바알의 한마디가 쏟아졌다.

"나는 다 이루었다고."

정인우는 끝내 신의 멱살을 틀어쥘 놈이다.

그렇게나 두려운 재능과 운을 겸비한 놈이기에 신조차 일찌감치 정인우를 죽이려 들지 않았나?

그러니, 바알 자신이 희생만 한다면, 정인우는 기필코 신에게 닿을 것이다.

그것으로 다 이룬 것이다.

바알, 그는 자신의 한계가 딱 여기까지임을 절감했다.

이내 바알은 스르르 눈을 감았다.

"어서 잘라라. 그리고 루시퍼를 막아라."

그래, 이것으로 다 이루었다. 여한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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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화 희생 (2)

어둡다.

눈동자를 뒤덮은 눈꺼풀이 꽤 무거웠다.

다시는 뜨고 싶지 않았다.

아니, 다시 뜨여져선 안 된다.

바알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

정인우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숨소리의 끝자락에서 심장박동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두근- 두근-

심장은 빠르게, 점점 더 빠르게 뛰고 있었다.

…망설임인가.

정인우의 성격은 익히 경험해 보았다.

녀석은 결단코 주저함이나 망설임을 두는 성격이 아니다.

장담할 수 있다.

한데, 지금의 정인우는 망설이고 있었다.

바알의 희생을 두고.... 천하의 정인우가 주저하고 있다는 거다.

피식.

바알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래, 웃음이 났다.

단박에 자신의 목숨을 거둬가지 못하는 정인우의 모습이....

공교롭게도 고마웠다.

자신의 목숨이 정인우에게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거니까.

솔직한 심정으로 단박에 목을 벨 줄 알았건만, 정인우는 여전히 숨을 토해 내며 망설이고 있었다.

"하하...."

힘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죽기 직전에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하는 걸까.

마계 서열 1위 마왕답게, 그렇게 가고 싶었건만, 왜 자꾸 망설임을 두는가.

우정이라는 건가?

만약 이것이 우정이라면,

죽음을 목전에 두고 확인한 우정의 앞에서 죽게 되는 건가.

"잘라라. 정인우."

바알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자꾸 지체되면 미련이 생긴다.

그 미련은 힘들게 낸 결단을 물컹하게 만든다.

그래서 더 강하게 말하고 있는 바알이었다.

바알, 그는 지금 동족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는 거였다.

이 모든 게 마계를 위한 일이다.

그가 루시퍼에게 죽게 되면, 루시퍼가 더욱 강한 힘을 머금고 마족들을 다 휩쓸어 버리고선 마계를 쑥대밭으로 만들게 빤했다.

마계의 평화를 위해 제 한 목숨을 희생하려는 거였다.

정인우 또한 제 뜻을 분명히 알고 있을 거다.

어느덧 정인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나 노력했으면서 이렇게 쉽게 포기하는 거냐?"

"포기가 아니다 정인우. 대를 위한 희생일 뿐."

희생이 없다면 결단코 극복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다.

누군가는 희생해야 하고, 그 누군가는 바로 바알 본인이었다.

끝끝내 망설이는 정인우를 향해, 바알은 분노를 내뱉기 시작했다.

"내가 희생하지 않으면, 마계 전체가 박살 난다. 그 꼴을 봐야만 직성이 풀리겠나? 뒤늦은 후회를 할 참인가? 정신 차려라, 정인우."

그 분노에 정인우는 할 말을 잃었다.

바알의 말이 맞다.

또한, 시간이 지체될수록 이곳 게이트 바깥, 즉, 마계의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질 거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왕들은 죽고 있을 것이며, 점점 더 강한 힘을 얻게 된 루시퍼는 마계 전체를 박살 낼 것이다.

마계에는 정인우의 가족들도 있었고 루시 퀸도 있었다.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그래, 대를 위한 희생을.

"으아아아아아!!"

정인우는 차마 움직여지지 않는 팔을 들어 올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쐐액-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래, 어쩔 수가 없다.

그리 합리화하며 칼을 휘둘렀다.

마지막 순간, 바알의 입술이 달싹였다.

"정인우. 믿는...."

뎅강!

차마 끝맺지 못한 말은 피와 함께 뿜어져 나왔다.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레벨이 오른다.

생전의 바알이 강력했던 만큼, 바알의 노력이 길었던 만큼, 레벨이 끝도 없이 오른다.

힘을 잃고 쓰러진 바알의 시체를 보며 녀석과의 첫 대면을 떠올렸다.

-뭣들 하나? 너희들의 재롱을 보러 왔다. 언제까지 나를 기다리게 할 참이지?

난데없이 서열전에 등장하더니 내뱉는 소리가 저거였다.

그때 아마 인우는....

-마계 재롱잔치 1번 타자 정인우다.

이렇게 말하며 바알에게 대놓고 시비를 걸었었다.

그게 바알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 이전에 만났던 건 다 녀석의 분신이었으니까.

어쨌건, 그날 인우는 신나게 털렸다.

바알은 기세만으로 인우의 무릎을 꿇려놓고는 자존심이 쩍쩍 갈라지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너는 내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정인우.

그때는 어찌나 열이 받던지, 바알놈을 어쩌진 못하겠고, 자신을 비웃던 라지뉴라는 마왕 놈을 피떡이 될 때까지 패놓고야 화가 좀 풀렸던 거로 기억한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바알은 조금씩 인우에게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인우 또한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바알을 죽일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후에는 그런 생각이 씻은 듯 지워져 버렸다.

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돌이켜보자면 아마 그건 정이었을 거다.

남자 대 남자로 느꼈던, 우정 말이다.

어느새 인우는 바알의 앞에서 무릎 꿇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중얼댔다.

"네놈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근데 결국 네놈이 이렇게 누워 있네? 나 원 참."

끝도 없는 레벨 업의 향연 속에서, 인우는 바알의 시체를 가만히 응시했다.

울고 싶거나 그러진 않았다.

애당초 인우는 눈물이 없는 인간이기도 했고, 녀석의 숭고하고 멋진 희생 앞에서 눈물 따윈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녀석 또한 그걸 바라진 않을 거다.

목숨까지 내놓으며 놈이 바랐던 건 오로지 단 하나뿐.

"한 놈도 남김없이, 모조리 박살 내 주지."

[1,100레벨의 '신의 자격'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신체가 각성되었습니다.]

[근력이 51,200 증가합니다.]

[민첩이 40,960 증가합니다.]

[체력이 20,480 증가합니다.]

[마력이 2,560 증가합니다.]

[1,200레벨이 되었습니다.]

[신체가 각성되었습니다.]

[근력이 102,400 증가합니다.]

[민첩이 81,920 증가합니다.]

[체력이 40,960 증가합니다.]

[마력이 5,120 증가합니다.]

[1,300레벨이 되었습니다.]

[신체가 각성되었습니다.]

[근력이 204,800 증가합니다.]

[민첩이 163,840 증가합니다.]

[체력이 81,920 증가합니다.]

[마력이 10,240 증가합니다.]

[1,400레벨이 되었습니다.]

[근력이 409,600 증가합니다.]

[민첩이 327,680 증가합니다.]

[체력이 163,840 증가합니다.]

[마력이 20,480 증가합니다.]

[1,500레벨이 되었습니다.]

[근력이 819,200 증가합니다.]

[민첩이 655,360 증가합니다.]

[체력이 327,680 증가합니다.]

[마력이 40,960 증가합니다.]

[1,600레벨이 되었습니다.]

[근력이 1,638,400 증가합니다.]

[민첩이 1,310,720 증가합니다.]

[체력이 655,360 증가합니다.]

[마력이 81,920 증가합니다.]

[1,700레벨이 되었습니다.]

[근력이 3,276,800 증가합니다.]

[민첩이 2,621,440 증가합니다.]

[체력이 1,310,720 증가합니다.]

[마력이 163,840 증가합니다.]

.

.

[신의 검이 '바알'의 능력을 흡수하였습니다.]

.

.

[신의 검]

종류 ? 검

기능 ? 파괴력 +199,999

추가 기능 ? 주인의 명령이라면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입니다.

특수 기능 ? 사망한 대상의 능력을 흡수합니다.

능력1 ? [Lv.1799 바알]

능력2 - [無]

능력3 - [無]

.

.

<정인우>

레벨 : 1,788

특성 : 광전사

스텟 :

[근력 7,212+6,553,550+10+2350]

[민첩 6,003+5,242,840+250]

[마력 1,341+330,250+250]

[체력 6,295+2,621,480+10+150]

*히든 스텟 :

[괴력 100]

[매력 42]

[지능 100]

[방어력 100]

[재생력 100]

미분배 포인트 : 7000

[EXP 5,468,789,123 / 1,378,220,000,000]

.

.

12. [신의 자격 ? 신계로 향하는 문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13. [? - ?]

.

.

레벨 700이 단숨에 오르며 1,788이 되었다.

루시퍼를 제외한다면, 천계와 마계를 통틀어 가장 높은 레벨의 소유자가 되었다.

다른 것보다 각성 스텟의 증가율이 무서울 정도였다.

1,700레벨이 되었을 때, 17차 각성 근력 스텟은 320만 정도였다.

그야말로 말 같지도 않은 양이다.

18차일 때는 이에 두 배가 될 거다.

100레벨 단위로 일어나는 각성 스텟의 변화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니, 바알이 루시퍼에게 밀렸을 수밖에 없었다.

루시퍼는 2,011레벨에다가 신의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가진바 깡스텟마저도 압도적이었을 거다.

바알이 그러한 루시퍼의 공격에서 팔 하나만을 잃은 채 버텨 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지경이다.

그야말로 온갖 노력을 기울였을 게 빤하다.

이제는 인우가 그 노력을 바통터치 받았다.

승산은 있다.

인우에게는 루시퍼에게 없는 신의 장비가 4개나 있다. 그중에서도 신의 검의 능력은 굉장하다.

이번만큼은 그렇게나 입이 고급이었던 신의 검도 능력 흡수를 했다.

하긴, 바알은 마계 서열 1위였다.

제아무리 신의 검이 고급일지언정 흡수하지 않고선 못 배기는 거다.

신의 검의 '능력1' 부분에 '[Lv.1799 바알]'이 추가되었다.

이 검의 파괴력과, 인우가 지닌 무력.

이 정도라면 2,011레벨인 루시퍼와의 스텟 차이를 메꿀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없다 해도 부딪혀야 한다.

바알은 이를 위해 목숨마저 걸었다.

그것을 우습게 만들어선 안 되는 거다.

어느덧 인우는 게이트 내부의 허공을 향해 신의 검을 휘둘렀다.

쐐액-

그 한 번의 휘두름으로 바알의 게이트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 게이트는 마계와는 아예 다른 차원의 공간이다.

바알은 제 놈의 경험치가 루시퍼에게 기여될까 봐 다른 차원인 게이트까지 생성하여 인우를 데리고 온 것이다.

"루시퍼. 박살을 내 주마."

인우는 흐트러지는 게이트 내부를 바라보며 이를 으득 갈았다.

* * *

천마전쟁의 대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마계의 드넓은 평야.

루시퍼는 바알과 정인우가 들어선 게이트의 입구를 열기 위해 안간힘을 써 댔다.

바알, 그 영악한 놈이 자신에게 죽을 바에야 정인우에게 죽을 생각을 한 것이다.

만일 놈이 마계에서 죽었다면 그 경험치가 루시퍼에게도 기여됐을 거다.

하지만 역시나 영악한 바알은 게이트까지 생성해 가며 그 안으로 정인우와 함께 들어섰다.

그건 견딜 수 없는 짜증이었다.

바알은 다 된 밥이란 말이다.

그걸 고스란히 빼앗기게 생겼으니 울화통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루시퍼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는 한참 동안 게이트에 들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써 댔다.

파바바바바밧!

그런데 그 순간.

게이트가 소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터벅- 터벅-

그는 바로 정인우였다.

루시퍼는 정인우의 레벨을 확인하자마자 목이 터져나갈 듯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이, 이런 개자식!! 네놈이 기어코 나의 것을 빼앗는구나!!"

루시퍼의 분노에도 인우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타다다다다닷!

어느새 루시퍼의 주변에 있던 수십 명의 천사가 정인우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정인우는 가만히 신의 검을 들어 올렸다.

순간, 신의 검에서 바알의 기세가 튀어나왔다.

쩌어어어어엉!

"크허어어어억!"

그 한 방에 인우를 에워쌌던 수십 천사들의 무릎이 일제히 꿇렸다.

이는 신의 검이 흡수한 바알의 능력 중 하나였다.

그제야 인우는 착 가라앉은 눈동자로 루시퍼를 가만히 응시했다.

"가장 고통스럽게, 그렇게 죽여 주마. 루시퍼."

인우의 눈동자에서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결단코 바알의 희생을 헛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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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화 마신 (1)

현재 루시퍼가 지닌 신의 장비는 총 3가지였다. 신의 구두, 슈트, 코트.

각기 기능은 절대자의 걸음, 호흡, 성장 스킬의 강화이며, 허공을 밟을 수도 있고, 목숨이 경각에 달한 순간 모든 체력을 회복하며, 코트를 펼쳐 전신을 감싸면 목숨을 위협하는 공격을 무조건 방어한다.

매우 까다로운 적임에는 분명하다.

물론 인우의 경우 루시퍼보다 4가지의 장비를 더 갖추고 있었다.

신의 검은 말할 것도 없고, 신의 아티펙트의 경우 생명체의 제약인 수면, 허기, 수명이 사라진다. 나아가 1분 전으로 시간을 역행하며, 행동을 통해 스텟이 증가하고,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대상은 무조건 현혹시킨다.

각기 하루에 1번이라는 제약이 있음에도 엄청난 능력임에는 분명하다.

가진바 아이템의 차이는 있으나, 둘은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건 바로 신의 선택을 받은 존재라는 것.

"...."

루시퍼와 정인우는 서로를 노려본 채 대치하고 있었다.

둘의 전투가 벌어지려 하자 전쟁은 잠시 소강상태를 맞이했다.

이 둘의 승패가 곧 마계와 천계의 운명이나 마찬가지였다.

루시퍼는 크게 변동된 정인우의 레벨을 확인하곤 전력을 다할 준비를 했다.

이 대결의 끝에 마신의 자리가 기다리고 있다.

그때가 되면 마계의 모든 것들을 제 발아래에 둘 수 있는 거다.

신이 예비해 놓은 그 자리는 온전히 제 것이라 믿는 루시퍼였다.

신은 정인우를 버렸고, 자신을 선택하여 계시까지 내려주었다.

지이이이잉.

루시퍼는 마기와 천기를 응축시켜 만들어 낸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 순간.

타다다다닥!

정인우가 선공을 취해 왔다.

"으라아압!!"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빠른 스피드로 단박에 루시퍼의 지척에 닿았다.

이와 동시에 인우는 놈의 정수리를 향해 내려찍기를 꽂기 위해 검을 들어 올렸다.

콰드드드드득!

신의 검이 하늘 끝을 가리키며 부들부들 떨려왔다.

막대한 에너지를 머금은 신의 검은 곧장 루시퍼를 내려찍기 시작했다.

하지만, 루시퍼는 잽싸게 회피한 뒤였다.

인우의 검은 애꿎은 허공을 갈랐다.

수웅!

인우는 그 즉시 검을 거두려 했다.

한데, 그때 신의 검이 말했다.

-그대로 맨바닥을 찍어라. 바알의 힘을 사용할 참이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와 달리 매우 적극적인 걸 보니, 신의 검 또한 루시퍼를 흡수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았다.

그 즉시 예리하기 그지없는 신의 검으로 맨바닥을 내려찍기 시작했다.

콰직! 콰직!

땅이 점토처럼 갈라지더니 급기야 지형이 두 갈래로 갈리기 시작했다.

신의 검이 머금은 바알의 능력까지 합세하니, 내려찍기조차도 변화해 버린 것이다.

쩌저저저적!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갈라진 땅속에서 용암이 튀어 올라왔다.

푸슈우우우욱!

용암은 한데 뭉쳐 루시퍼를 향해 쏘아지기 시작했다.

루시퍼는 가볍게 입을 열었다.

"화火."

푸스스스스스!

여지없이 파훼되었다.

루시퍼나 인우나 신언이 존재하기 때문에 속성 공격은 의미가 없었다.

물리적 타격이나 천기, 마기를 이용한 공격만이 상대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 테다.

그래 뭐, 물리적인 공격이라면 인우의 전문분야였다.

마법은 언제나 보조 수단으로 사용해 왔던 그다.

그는 분명한 광전사였으니까.

인우는 볼 것도 없이 검을 창처럼 꼬나쥐었다.

그런 뒤 상체를 수그림과 동시에 대검관통을 시전했다.

파바바바바밧!!!

인우의 신형이 미사일처럼 쏘아져 나가며 단박에 루시퍼의 지척에 닿았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였다.

후드드드득!

이와 동시에 신의 검이 수십 자루의 바알의 수리검을 토해 냈다.

생전 바알이 지니고 있었던 바로 그 수리검이었다.

튀어나온 수리검들은 일제히 떠오르며 피라냐 떼처럼 루시퍼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밧!

인우조차도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바알을 흡수한 신의 검은 분명한 자아를 가진 채로 루시퍼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것, 인우는 신의 검의 장단에 맞추며 떠오른 수리검들에 흡혈 칼날을 입혔다.

쐐액!

수리검이 루시퍼를 스칠 때마다 생명력을 흡수했다.

구체처럼 떠오른 생명력은 인우의 육체에 빨려 들어왔다.

피가 빨린 루시퍼는 인상을 구기며 모기를 쫓듯 손을 휘저었다.

후웅!

그의 손이 강력한 풍압을 머금으며 수리검들을 날려버렸다.

파바바밧!

수리검들은 그대로 인우에게 쏘아져 왔다.

이에 인우는 신의 검을 배트처럼 쥐었다.

챙! 챙! 챙!

그러곤 야구공을 날리듯 날아드는 수리검들을 쳐냈다.

푸슉! 푸슉!

수리검들이 다시금 루시퍼에게로 쏘아져 나간다.

루시퍼는 귀찮음이 가득한 얼굴을 한 채 양손을 밀착시켰다.

후우웅!

그의 손에서 새하얀 빛무리가 흘러넘쳤다.

루시퍼는 그것을 넓게 폈다.

이것은 천기로 이루어진 쉴드였다.

퉁! 퉁!

쉴드에 닿은 수리검들은 푹신한 쿠션에 닿은 것처럼 튕겨 나왔다.

후드드드득.

이내 수리검들은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과연."

수리검은 분명 정인우가 쥐고 있는 무기에서 튀어나왔다.

루시퍼는 수리검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중얼거림을 이었다.

"신의 검은 상대의 능력을 흡수하는 기능을 지녔나?"

인우는 답하지 않았다.

루시퍼는 그러거나 말거나 말을 이었다.

"바알, 그놈이 그 검안에 깃들어있나 보군. 하나,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내 안에 엘이 깃들어 있지."

루시퍼는 악마의 포식을 통해 엘을 뜯어 먹었다.

이를 통해 엘의 능력을 흡수한 그였다.

물론, 이는 신의 검처럼 100% 그대로의 흡수가 아니다.

악마의 포식은 상대를 먹는 행위를 통해 일정 부분의 능력치를 흡수할 뿐이었다.

말 그대로 스텟의 일부를 흡수한다는 거다.

엘이 생전 지녔던 권능과 스킬들은 취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거로도 충분했다.

어차피 루시퍼는 정인우를 죽이고 신의 검마저도 취할 예정이었으니까.

그리하여 끝내 마신이 된다.

"내가 모든 걸 지배한다!!"

흥분을 이기지 못한 루시퍼는 별안간 소리를 내질렀다.

그 순간.

그의 등짝에서 날개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파드드드득!

골격이 뒤틀리는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곧바로 살갗을 꿰뚫고 날개가 튀어나왔다.

왼쪽은 새하얀 날개, 오른쪽은 새카만 날개.

정확히 반반이었다.

루시퍼는 날개를 펼치며 쏜살같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후우우웅!

그 모습을 확인한 인우는 레전드 마스터 레벨의 해골 궁수 소환을 발동시켰다.

-끄르으으.

그 즉시 해골 궁수의 활을 빼앗았다.

활을 쥔 인우는 속사를 발동시켰다.

푸슝! 푸슝! 푸슝!

날아오른 루시퍼의 날개를 향해 화살을 난사했다. 화살이 별똥별처럼 하늘을 수놓기 시작했다.

장관이다.

빛조차 삼킬 기세로 수천 발의 화살이 루시퍼를 덮치기 시작했다.

레전드 마스터의 속사는 그야말로 초당 수백 발의 화살을 쏟아내고 있었다.

파바바바바밧!

"풍風!"

루시퍼는 풍압을 일으키며 화살을 날려 버렸다.

힘을 잃은 수천 발의 화살이 바닥을 향해 추락한다.

푹! 푹! 푹!

인우는 바닥에 꽂히는 화살을 확인조차 않은 채 곧바로 공중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타다다닥!

루시퍼가 떠 있는 상공을 향했다.

신의 구두로 인해 공중을 계단처럼 밟는다.

걸을 때마다 체력과 마나가 차올랐다.

라이트닝 레인과 그레이트 메테오, 블리자드까지.

마구잡이로 시전해 버렸다.

타격을 주지 못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마력은 넘쳐날 지경이었으니까.

가지각색의 속성 마법이 하늘을 빼곡히 메웠다.

이곳이 만일 지구였다면 대지가 그대로 멸망해 버렸을 터였다.

인우의 마법은 레벨도 레벨이지만, 엄청난 스텟을 통해 발동되는 거기도 하다.

그 파괴력은 이미 자연재해 그 이상이었다.

상위 차원인 마계이니 인우의 마법 폭격을 버텨 내고 있는 거였다.

"으어어어어! 피해!"

지상에 있는 마왕들과 천사들은 더는 자신들이 관여할 수 있는 싸움이 아니라는 걸 여실히 느꼈다. 땅을 향해 처박히는 마법을 피하는 데에도 급급했으니까.

그들이 피해를 보든 말든 정인우와 루시퍼는 이를 악문 채 싸우고 있었다.

캉! 캉! 캉!

신의 검과 천기마기의 검이 부딪힐 때마다 엄청난 반탄력이 터져 나오며 구름이 흩어졌다.

우르르르릉!

그들의 검이 또 한 번 부딪혔을 때,

작렬하는 천기와 마기로 인해 새빨간 마계의 하늘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마계가 멸망이라도 할 기세다.

"크아아아아아!!"

"으라아아아아!!"

정인우와 루시퍼는 내장이 역류할 기세로 고함을 뿜어내며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캉! 캉! 캉!

하늘이 쪼개지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지상에 있던 천사들과 마왕들은 두려움에 떨었으며, 마계는 그야말로 종말을 향해 달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신의 선택을 받은 두 명의 절대자가 내뿜는 파괴력은 이 땅의 모든 것을 앗아갈 듯 맹렬했다.

"으아아아아아!!"

인우의 얼굴이 야차처럼 구겨지며 검을 움켜쥔 그의 손등에서 거머리 같은 핏줄이 꿈틀댔다.

어찌나 큰 힘을 주었던지 핏줄이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이는 루시퍼 또한 마찬가지였다.

"너 따위는 아니다 정인우! 마신은 바로 나다!"

루시퍼는 태엽인형처럼 그 말만 되풀이했다.

강렬한 전투로 인해 이미 이성의 끈을 놓은 그였다.

머릿속에는 오로지 정인우를 죽이고 마신이 되는 제 모습이 떠오를 뿐이었다.

가슴이 벅차오르며 갈비뼈를 꿰뚫을 기세로 심장이 뛰었다.

"나란 말이다!!"

콰과과과과과광!!

응축된 천기와 마기가 레이저빔처럼 인우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전력을 다한 그 공격에 인우는 곧바로 코트로 전신을 감쌌다.

파스스스스.

핵폭탄이 응축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그 공격은, 어처구니없게도 가볍게 가로막혔다.

인우는 신의 코트를 이용해 놈의 맹공을 막아 낸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하루에 한 번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만 한다.

인우는 곧바로 힘의 정수를 장전함과 동시에 광폭 무형검을 마구잡이로 날리기 시작했다.

"뒈져라 루시퍼!!"

쩌엉! 쩌엉! 쩌저저저정!

"크아아아아아!"

수백만이 넘어서는 근력과 민첩 스텟.

마스터의 마스터를 넘어선 광폭 무형검.

쩌엉! 쩌엉!

인우가 뿜어내는 무형검은 이미 신의 영역에 가까웠다.

"으아아아아아!"

루시퍼는 비명을 토해 냈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신의 코트로 전신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인우는 눈을 빛내며 신의 검을 띄웠다.

"가!"

신의 검은 기다렸다는 듯이 루시퍼를 향해 달려들었다.

후웅!

신의 검이 바알의 마극 파뇌천을 발동시켰다.

짙디짙은 칠흑의 마기가 루시퍼를 감쌌다.

마기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끔찍한 소리와 함께 터져 나갔다.

콰과과과과과광!!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인우는 전력을 다했다.

신의 검이 루시퍼를 공격하는 동안 드래곤 본 대검을 꺼내 들고 휘둘러 댔다.

후웅! 후웅!

바알 녀석이 살아 있을 적에, 진즉에 이렇게 놀아 볼 걸 그랬다.

녀석과의 격차가 너무나도 커서 합공을 해 본 적도 없는 것 같았다.

놈이 죽고 나서야 그게 가능해지다니.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으라아아아압!!"

인우는 공중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루시퍼를 향해 미친 듯이 대검을 휘둘렀다.

퍽! 퍽! 퍽!

드래곤 본 대검을 몽둥이처럼 휘두르며 놈의 뼈를 결딴내려 했다.

오징어처럼 꿈틀대다가 끝내 피를 토하며, 가장 끔찍하고 고통스럽게 죽일 참이었다.

한데 그때,

방어에만 급급했던 루시퍼의 별안간 눈을 부릅떴다.

"놈!"

루시퍼는 신의 검이 공격하건 말건,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심정으로 인우의 가슴을 향해 손을 뻗었다.

푸욱!

그 순간, 인우의 가슴이 꿰뚫렸다.

루시퍼는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커훕!"

인우는 피를 토해 냈다.

하필 심장이 위치한 왼 가슴이다.

전신이 싸해지기 시작했다.

즉시 힘의 정수를 복용하려 했으나 무리였다.

심장박동이 멈추는 것이 느껴짐과 동시에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으니까.

삽시간에 날아가려는 의식 끝에서, 인우는 눈을 부릅떴다.

"...!"

아직, 끝이 아니다.

인우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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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화 마신 (2)

신의 반지가 능력을 발휘하자 1분 전으로 시간이 역행되기 시작했다.

멀어지려던 의식이 점차 뚜렷해지며, 멎었던 심장이 다시 뛴다.

삽시간에 풍경이 뒤바뀌었고, 다시 그때가 되었다.

심장이 꿰뚫리기 전으로 돌아온 것이다.

쐐액!

신의 검이 루시퍼를 압박하고 인우는 드래곤 본 대검을 치켜든 채 휘두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순간, 루시퍼의 오른손이 꿈틀대는 것이 보였다.

불과 1분 전에는 심장이 꿰뚫렸으나, 지금은 아니다.

인우는 볼 것도 없이 거리를 벌렸다.

쐐액-!

벌어진 거리 사이로 루시퍼의 공격이 스쳐 지나갔다.

루시퍼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는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물었다.

"이게 도대체?"

"3단계가 한계인 놈이 뭘 알겠냐?"

인우는 대놓고 무시했다.

루시퍼는 신의 아티펙트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할 거다.

설령 알게 된다 해도 대처할 수 없다.

각기의 기능은 말 그대로 절대적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가만 생각해 보면 참 다행이었다.

만일 루시퍼가 6단계까지 클리어했다면?

그랬다면 신의 목걸이까지 손에 쥐었을 테다.

신의 목걸이의 경우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대상을 무조건 현혹시킨다.

그 말은 즉, 2,011레벨인 루시퍼는 말 한마디로도 1,788레벨인 인우를 자살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반대로 뒤집어보자면, 인우가 루시퍼보다 레벨만 높았다면 1초 만에 녀석을 제압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물론 현재로써는 불가능하다.

루시퍼보다 레벨이 낮은 인우는 오로지 전투를 통해서만 놈을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떠한 공격으로 놈을 처치해야 하는 걸까?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은 모조리 이용했다.

그런데도 루시퍼의 목숨을 취하진 못했다.

"...."

지금 인우가 유일하게 사용하지 못했던 스킬은 오로지 한 가지뿐이었다.

광전사의 마지막 스킬인 광폭 전능검.

사실 과거에도 몇 차례 사용해 보지 못했다.

발동 조건 자체가 매우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지구로 귀환한 뒤론 아예 한 번도 발동시켜 본 적이 없을 정도다.

프로킨의 황제 시절에나 두어 번 사용해 본 게 고작이었다.

이 스킬은 그야말로 죽기 직전에나 튀어나오는 일격필살이었으니까.

.

.

11. [광폭 전능검 Legend Master] - 광전사 최후의 스킬. 체력이 5% 미만일 때 자동으로 발동됩니다.

.

.

굉장히 까다로운 조건이다.

하다못해 조금 전 인우가 루시퍼에게 죽임을 당했을 때도 발동되지 않았다.

발동 조건은 어디까지나 '죽음'을 전제하는 것이 아닌, '죽기 직전'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물론 까다로운 만큼 압도적인 파괴력을 발휘하는 스킬이다.

만일 조건을 충족시켜 전능검을 발동시킨다면?

그리된다면.

과거와는 전혀 다른 위력을 보여 줄 거였다.

과거에는 스텟 수치가 높아 봐야 근력 3천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수만, 수십만도 아닌 수백만에 육박한다.

현재 인우는 근력만 해도 650만이 넘어간다.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인 거다.

그뿐만이 아니다.

신의 검은 어떠한가?

199,999의 파괴력을 지닌 신의 검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무기보다 강력하다.

이 모든 것이 덧입혀진 채로 광폭 전능검이 발동된다면?

제아무리 루시퍼라 해도 버틸 수 없을 거다.

'해 보자.'

우선은 놈의 방어벽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일단 놈은 광폭 무형검에 마구잡이로 당하며 코트로 전신을 한번 감쌌다.

하나의 방어벽은 제거된 셈이다.

하지만 아직 슈트가 남았다.

목숨이 경각에 달한 순간 모든 체력을 회복시켜 주는 슈트.

저 방어벽을 뚫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한 방에 끝내 버리는 것이다.

조금 전 인우조차도 루시퍼에게 심장이 꿰뚫리니 신의 슈트가 발동되지 않았었다.

다시 말해, 이 또한 죽기 직전에나 발동되지 죽게 될 정도의 공격을 방어해 주진 못한다는 거다.

죽어 버리는데 무슨 회복이 가능하겠는가?

죽음 앞에선 그 무엇도 불가능하다.

그게 아니라면 회복이 되든 말든 압도적인 파괴력으로 밀어붙이던가.

가능할 것이라 여겼다.

자신의 파괴력은 제대로 한번 꽂히기만 하면 도저히 어쩌지 못할 정도의 위력이지 않은가.

'잠깐 시간 좀 끌어 줘라.'

인우는 신의 검에게 명령을 내린 뒤 정신을 집중했다.

캉! 캉! 캉!

신의 검이 안간힘을 쏟아내며 루시퍼를 막았다.

그러는 동안 인우는 광폭화부터 몸에 둘렀다.

지속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가기에 버프부터 다시 두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후우우우웅.

새빨간 아지랑이가 인우의 육체를 감쌌다.

광폭화로 인해 인우의 물리 공격력은 2배로 껑충 뛰어올랐다.

다음으로 광기 폭발을 사용했다.

푸른 아지랑이가 감돌며 스피드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이어서 광폭 절대검을 발동시켰다.

후우우우웅!

저만치 앞에서 홀로 분투하고 있는 신의 검의 검신에 강력한 검강이 덧씌워졌다.

이 스킬은 엄청난 데미지 증가율을 보인다.

광폭화보다 훨씬 더 강력할 정도니까.

이쯤 해도 될 법도 하건만 인우는 멈추지 않았다.

'스트렝스, 헤이스트, 힘의 축복, 전투의 노래....'

가지고 있는 버프를 모조리 둘러 버렸다.

후우우우우우웅!

엄청난 능력치 증가율 때문인지, 인우가 서 있는 공중에서 그를 중심으로 태풍이 불 정도였다.

이 상태로 지상에 내려선다면 지축이 박살 나고 주변 모든 것이 초토화될 것 같았다.

그나마 이곳이 공중임이 다행이다.

마계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싶진 않았으니까.

'돌아와라.'

신의 검에게 명령을 내렸다.

검이 단숨에 인우의 손에 안착했다.

"그 검은 정말로 탐나는군!"

타다다닷!

루시퍼가 혀를 날름거리며 탐욕 어린 시선으로 내달려왔다.

방금까지 신의 검이 홀로 루시퍼를 막아 냈다.

바알을 흡수했으니 그 정도의 능력은 갖춘 것이다.

이쯤 되니 루시퍼로서는 신의 검이 탐날 수밖에 없었다.

"후우."

인우는 심호흡하고선 신의 검을 역수로 틀어쥐었다.

그런 뒤 자신의 배를 향해 검을 찍어 내렸다.

푸욱!

그야말로 할복을 하는 모양새였기에, 내달려오던 루시퍼가 잠시 벙한 얼굴을 할 정도였다.

"무슨 짓이지 정인우?"

"크훕!"

인우는 격렬한 통증을 느끼며 피를 토해 냈다.

모든 버프를 두른 채 복부를 관통시켰기 때문에 엄청난 타격이 있었다.

체력은 그야말로 단숨에 동났다.

그리고 그 순간.

인우의 코트가 발동됐다.

목숨이 경각에 달했기에 모든 체력이 회복된 것이다.

인우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한번 검을 뱃가죽에 쑤셔 박았다.

푹!

"크흑!"

이제는 그 어떤 방어벽도 없다.

게다가 생명력이 닳아갈수록 공격력이 증가하는 패시브 '광기'까지 제대로 불이 붙었다.

그야말로 극딜의 최고 조건을 달성한 상태.

후우우우우웅!

검신이 떨렸다.

그 순간 죽음에 임박한 체력으로 인해 광폭 전능검이 발동됐다.

"뒈져라, 루시퍼."

인우는 미소를 지었고, 루시퍼는 인상을 구겼다.

이내 심상치 않은 기운이 신의 검을 감싸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바밧!

격렬한 소용돌이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구름마저 삼켜 버린 태풍이 신의 검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우우웅!

검의 손잡이를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손이 부르르 떨려 올 정도다.

그럴수록 인우는 손아귀에 힘을 잔뜩 주었다.

검을 놓치면 뭣도 안 되는 거다.

"으아아아아아!"

어느새 손아귀가 터져나가며 핏물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인우는 핏발선 눈으로 루시퍼를 쏘아보며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신의 검은 지속적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머금기 시작했다.

-실로 놀라울 정도로군. 이 정도라면 거의 신의 영역에 닿았다 해도 무방하다.

자존심이 강하기 그지없는 신의 검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우르르르르.

천지가 진동한다.

대지에 얌전히 머물러 있던 에너지들이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검 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으아아아아아아!!"

신의 검을 쥔 인우는 그 모든 힘을 감당해 내야만 했다.

그래야만 발동시킬 수 있었으니까.

인우는 이를 악물고 버텨 냈다.

그 순간, 심상치 않음을 느낀 루시퍼가 일격을 가해 왔다.

"놈!"

잔뜩 당황한 녀석이 천기마기 검을 휘두르며 강력한 스킬을 쏘아 댔다.

수웅! 수웅!

파지지직.

하지만 스킬은 인우에게 닿자마자 으스러졌다.

"이게 도대체...!"

루시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그때.

우르르륵! 쾅쾅쾅!

급속도로 어두워진 하늘이 번개를 토해 내며 울부짖었다.

그 모든 자연의 힘이 신의 검으로 빨려 들어왔다.

추카가가가가각!!

-그, 그만 모아도 될 것 같다!

이즈음 되자 신의 검마저도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인지 당황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인우는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끌어모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목젖을 꿰뚫고 절로 비명이 토해진다.

마지막으로 인우의 체내에 내재되어 있는 마력과 마기마저 신의 검 속으로 모조리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무리다 정인우! 나조차도 박살이 날 지경이다!

신의 검은 연신 불안해하고 있었다.

녀석조차도 검신이 아작날 정도의 에너지가 모이고 있는 거였다.

솔직히 인우조차도 놀랐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과거 황제 시절 사용해 보았던 전능검은 이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었다.

지금은 거의 세계를 멸망시킬 기세다.

푸슈우우우우우웅!

그때 갑자기 바람이 빠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거짓말처럼 정적이 흘렀다.

그러더니 응축된 에너지가 신의 검의 검신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광폭 전능검'이 발동되었습니다. 지속시간 40초.]

드디어 응축이 끝났다.

부여받은 시간은 40초.

충분하다.

전능의 힘을 부여받은 신의 검이 환희의 외침을 토해냈다.

-하하하하하하!

인우는 신의 검의 웃음을 가볍게 무시하며 루시퍼를 향해 걸어갔다.

저벅- 저벅-

"이, 이놈! 너는 결국에 신의 아이템이 없다면 그 무엇도 하지 못하는 놈이다!"

인우는 답하지 않았다.

이건 아이템 따위가 아니다.

인우 본인이 지닌 스킬의 능력일 뿐.

루시퍼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쉽사리 인정할 수 없을 테지.

인우조차도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으니까.

"조각조각, 모조리 도려내 주마. 루시퍼!"

인우는 성난 외침을 토해 내며 전능의 힘을 머금은 신의 검을 휘둘렀다.

쐐애애액!

"으아아!"

루시퍼는 고함과 함께 모든 천기를 끌어올렸다.

그러곤 쉴드를 생성했다.

우드득!

하지만 쉴드는 전능검의 힘을 이기지 못한 채 플라스틱처럼 일그러졌다.

꽝!

결국, 힘을 이기지 못한 쉴드가 터져 나갔다.

인우의 검이 루시퍼의 복부를 꿰뚫었다.

푸욱!

"커헉!"

루시퍼는 눈을 까뒤집으며 고통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순간, 루시퍼의 방어벽인 슈트가 발동됐다.

금세 체력이 회복된다.

하지만 그따위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인우는 검을 뽑고서 다시금 놈의 복부를 향해 찔러 넣었다.

푸욱!

"크헉! 머, 멈춰라!"

루시퍼가 게처럼 피거품을 게워 내며 괴로워했다.

찌직!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루시퍼의 배를 갈라 냈다.

"끄어어어어...!"

순간 뱃심을 잃은 루시퍼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허망한 숨을 토했다.

배가 갈라지니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을 수밖에.

푸욱!

어느덧 인우는 놈의 뱃속을 향해 손을 뻗고 내장을 움켜쥐었다.

으득!

그대로 끊는다.

"끼어어어어...!"

루시퍼는 고통을 이기지 못한 채 바르작대기 시작했다.

인우가 천천히 중얼댔다.

"아직 25초나 남았어. 벌써부터 이러면 곤란하지."

쐐액!

말을 끝맺음과 동시에 신의 검을 휘둘렀다.

루시퍼의 양팔이 깨끗이 잘려 나갔다.

쐐액!

두 다리가 잘려 나갔다.

사지에서 핏물이 뿜어져 나오며 루시퍼는 힘을 잃고 추락하려 했다.

"어딜."

인우는 포크로 스테이크를 찍듯 신의 검으로 놈을 찍어 누른 채 들어 올렸다.

우지끈!

맨손으로 놈의 귀를 뜯어 버렸다.

푹!

눈알을 파 버렸다.

짐승처럼 울부짖는 놈의 혀를 뽑았다.

"에레에에. 에레...."

검에 꽂힌 채 굼벵이처럼 꿈틀대는 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로써 마계는 지켰다.... 바알."

그 말을 끝으로 루시퍼의 목을 잘랐다.

뎅강!

루시퍼의 피가 비처럼 내렸고, 지상에 있던 마왕들은 피를 잔뜩 뒤집어쓴 채로 외침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마, 마신! 마신이다! 정인우가 마신이 되었다!!"

그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상식 밖의 경험치가 들어왔다.

[경험치를 1,140,000,0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마신이 되어 가는 변화가 시작되었다.

=======================================

235화 마신 (3)

[경험치를 1,140,000,0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1,800레벨이 되었습니다.]

[근력이 6,553,600 증가합니다.]

[민첩이 5,242,880 증가합니다.]

[체력이 2,621,440 증가합니다.]

[마력이 327,680 증가합니다.]

[1,900레벨이 되었습니다.]

[근력이 13,107,200 증가합니다.]

[민첩이 10,485,760 증가합니다.]

[체력이 5,242,880 증가합니다.]

[마력이 655,360 증가합니다.]

[2,000레벨이 되었습니다.]

[2,000레벨의 '?'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근력이 26,214,400 증가합니다.]

[민첩이 20,971,520 증가합니다.]

[체력이 10,485,760 증가합니다.]

[마력이 1,310,720 증가합니다.]

.

.

[신의 검이 '루시퍼'의 능력을 흡수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정인우>

레벨 : 2,091

특성 : 광전사

스텟 :

[근력 10,212+52,428,750+10+2,350]

[민첩 8,003+41,943,000+250]

[마력 1,341+2,624,010+250]

[체력 8,295+20,971,560+10+150]

*히든 스텟 :

[괴력 100]

[매력 42]

[지능 100]

[방어력 100]

[재생력 100]

미분배 포인트 : 3030

[EXP 678,964,745 / 4,008,000,000,000]

[신의 검]

종류 ? 검

기능 ? 파괴력 +199,999

추가 기능 ? 주인의 명령이라면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입니다.

특수 기능 ? 사망한 대상의 능력을 흡수합니다.

능력1 ? [Lv.1799 바알]

능력2 - [Lv.2011 루시퍼]

능력3 - [無]

[모든 신의 패시브가 개방되었습니다.]

7. [신의 마력 ? 발을 내딛을 때마다 마력이 1%씩 회복됩니다.]

8. [신의 체력 ? 발을 내딛을 때마다 체력이 0.5%씩 회복됩니다.]

9. [신의 언어 - '풍風, 지地'의 신언(神言)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덮쳐 오는 자연재해도, 신언의 앞에서는 꼬리를 내립니다.]

10. [신의 언어2 - '화火, 수水'의 신언(神言)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덮쳐 오는 자연재해도, 신언의 앞에서는 꼬리를 내립니다.]

11. [신의 각성 ? 현재의 모든 능력치를 그대로, 레벨은 1이 됩니다.]

12. [신의 자격 ? 신계로 향하는 문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13. [신의 부활 ? 심장과 머리만 온전하다면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

.

[마신의 권능이 생성되었습니다.]

루시퍼를 죽이고 얻은 경험치는 천조가 넘었다.

이를 통해 303번의 레벨 업을 했다.

필요 경험치는 1조를 조금 넘는 수치에서 4조까지 뛰었다.

2,091레벨.

이로써 천계와 마계를 통틀어서 가장 높은 레벨을 보유한 존재가 되었다.

이제 인우의 위에는 오로지 신뿐이었다.

신, 그 빌어먹을 녀석은 인우의 성장력과 재능을 두려워해 계시까지 내렸었다.

그것 때문에 바알까지 죽고 마계는 멸망 직전까지 내몰렸었다.

하지만 이겨냈다.

루시퍼를 박살 낸 것이다.

이제 신의 검은 루시퍼의 능력까지 흡수한 상태였다.

1,799레벨의 바알과, 2,011레벨의 루시퍼가 신의 검에 내재되어 있다.

이 검에게 명령만 내려도 천계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 버릴 수 있을 거였다.

정인우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간 '[? - ?]'로 표기되며 닫혀 있었던 신의 패시브도 2,000레벨이 되자 개방된 상태였다.

'신의 부활' 이것이 마지막 패시브인 것 같았다.

부활이라니, 그야말로 마지막에 걸맞은 패시브다.

물론 부활을 하기 위한 조건이 존재한다.

머리와 심장이 온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이 중에서 하나라도 온전치 못하다면 부활은 불가능하다고 적혀 있었다.

이에 대한 방증으로, 루시퍼는 부활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100%에 가까운 완벽한 부활 스킬은 아닌 듯싶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굉장한 능력임에는 분명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금 인우는 선택받은 루시퍼를 제거하고 마신이 되어 가는 변화를 거치는 중이었다.

우드드드득.

세포 한 올, 한 올이 날뛰며 재구성되고 있었다.

이미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신체였지만, 마신의 권능을 담기 위해선 더 진화된 신체가 필요한 것이다.

몸의 독소가 모조리 빠지며 뼈마디가 뚝 소리를 내며 단단하게 맞춰지고 있었다.

연약한 살갗이 벗겨지고, 우주 한복판에 내놓아도 터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살갗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변화하고 있는 인우의 뼈는 드래곤 본 보다 수십 배 더 강력해졌으며, 인우의 살가죽 역시 드래곤의 비늘보다 수십 배 더 강해졌다.

그야말로 신체 자체가 강력한 무기로 변해 버린 거다.

만일 인우의 뼈로 검이라도 만드는 날에는 신의 검에 필적할 만한 것이 만들어질 게 분명해 보였다.

"후우우우...."

마침내 변화가 끝나자 깊은숨을 토해 냈다. 외형은 인간일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가진 능력은 확연히 뒤바뀌었다.

그제야 인우는 새로이 추가된 마신의 권능을 열어 보았다.

<마신의 권능>

1. [마신의 지휘 - 모든 몬스터들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몬스터들을 조종하고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2. [마신의 기세 ? 기세를 분출할 수 있습니다. 마신의 기세 앞에서 적들은 꼼짝하지 못합니다. (레벨 차이가 클수록 효과가 증가합니다.)]

3. [마신의 죽음 선고 ? 살아있는 자의 영혼을 강제로 퇴출시켜, 산 자를 죽입니다. (쿨타임 4,444일.)]

4. [마신의 부활 선고 ? 죽은 자의 영혼을 강제로 불러내어, 죽은 자를 되살립니다. (쿨타임 4,444일.)]

마신의 권능은 모두 4가지였다.

인우는 첫 번째 권능부터 천천히 훑기 시작했다.

'마신의 지휘'의 경우 괴수들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이라는 단어였다.

그 어떠한 몬스터라 할지라도 인우의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

'마신의 기세'는 말 그대로 마신이 내뿜은 일종의 패기인 것 같았다. 한 마디로 상대를 쫄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랄까?

그리고 '마신의 죽음 선고'의 경우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뭐, 마신은 재앙을 주는 신이기 때문에 그에 어울리는 권능인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마신의 부활 선고.'

"...."

마(魔)자가 붙어도 일단 신은 신이라는 건가.

4,444일이라는 쿨타임이 있긴 하지만 그야말로 신의 권능이라 불릴만한 능력이었다.

"바알."

이 능력을 보자마자 그 녀석이 떠올랐다.

바알은 희생했다.

목을 잘라 냈지 않았던가.

그 녀석의 시신은 아공간에 잘 넣어 둔 상태였다.

그때쯤, 지상이 시끌벅적해졌다.

"으아아아아!!"

"빌어먹을 천사놈들! 이제 와서 도주할 생각이냐!"

인우는 여전히 하늘에 떠 있는 상태로 가만히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흠."

대천사들을 포함한 천사 녀석들.

놈들은 루시퍼가 죽자 도주하고 있었다.

가 봐야 천계일 것이다.

인우는 강력해진 만큼 여유가 생겼다.

그저 묵직한 목소리로 마왕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내버려 둬."

"...하, 하지만!"

그 목소리에 도주하던 천사들마저 고개를 들고 정인우를 올려다보았다.

누군가는 겁에 잔뜩 질린 채로, 또 다른 누군가는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인우는 놈들의 얼굴에 대고 간단히 말했다.

"저 벌레들이 도망가 봐야 천계일 테고, 천계는 내가 조만간 멸망시켜 버릴 거다."

터벅- 터벅-

인우는 허공을 밟으며 천천히 내려왔다.

얼이 빠져 있던 천사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며 잽싸게 도주하기 시작했다.

마왕들은 인우의 명령대로 그 꼴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었다.

정인우는 이미 마신이다.

그가 천계를 멸망시킨다 했으니 그리될 거였다.

이제 천계를 지키는 이는 누구도 없다.

대천사장 엘은 죽었고, 타락천사 루시퍼도 죽었다.

오로지 신계의 절대신 탈라시아가 있을 터였다.

탈라시아. 달리 말해 신은 여태껏 단 한 번도 마계나 천계로 현신해 온 적이 없었다.

그가 무한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은 오로지 신계였고, 그곳에서 모든 세계와 시스템의 창조가 이루어졌다.

그 권능은 오로지 신계에서만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만일 그가 마계나 천계로 현신해 온다면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할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이번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신은 현신해서 정인우를 직접 처치하는 것이 아닌, 루시퍼에게 계시를 내렸을 뿐이었다.

이는, 신이 지상으로 현신해오면 무언가 결함이 발생한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었다.

터벅. 터벅. 척.

어느새 지상에 내려선 인우는 가만히 선 채로 마왕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마왕들은 저마다 커다란 흥분과 환희에 가득 찬 얼굴을 했다.

드디어 4천 년 만에 마계에도 마신이 나타났다.

처음 정인우가 인간 신분으로 마계에 진입했을 때만 해도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그가 마신이 될 것이라고 어느 누가 예상했겠는가?

털썩. 털썩.

어느덧 마왕들은 정인우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마계의 무한한 어둠, 마신 정인우 님을 뵙습니다!"

이건 마신을 향한 '예'인 것 같았다.

프로킨의 신하들이 황제 정인우를 볼 때마다 예를 지켰던 것처럼 말이다.

인우는 싫지만은 않은지 모든 마왕이 인사를 끝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 끝났을 때, 인우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바알을 살릴 거다."

"아...!"

마왕들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드러나 있었다.

바알은 그간 마계를 이끌어온 최강의 마왕이었다.

그의 죽음을 부활로 돌이킬 수 있다는데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마침 바알의 시체는 인우의 아공간에 잘 보관되어 있었다.

바알 녀석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본래 이것은 루시 퀸에게 주려고 챙겨 두었던 거였다.

하지만 마신의 권능이 생긴 이상 그리하지 않을 작정이다.

'마신의 부활 선고'를 사용할 참이었으니까.

이미 육체와 분리된 녀석의 영혼을 강제로 끌어와 이 육체에 넣어 버리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일한 문제는 딱 한 가지뿐이었다.

현재 바알의 육체는 목과 몸이 분리된 상태라는 거다.

이 상태라면 부활을 사용한다 해도 또다시 3초도 되지 않아 죽어 버릴 터였다.

그리되면 부활 선고의 4,444일의 쿨타임을 또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그때까지 바알의 시체가 썩지 않게끔 방부 마법도 걸어놓아야 하고 말이다.

여러모로 한 번에 끝내는 게 좋다.

우선은 바알의 목과 몸통을 다시 붙여 놓아야 한다.

인우는 아공간에서 녀석의 시체를 꺼냈다.

목을 완벽하게 붙이고 되살아나도 신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행히 녀석은 아직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살과 뼈는 아직 썩지 않았고 되살린대도 좀비가 될 일은 없을 거다.

인우는 놈의 몸통과 목을 잘 맞춘 후에, 레전드 마스터 레벨의 회복 스킬을 퍼붓기 시작했다.

마력은 바다처럼 넘쳐 났기에 그야말로 무한대에 가깝게 들이붓고 있었다.

그러자 이미 죽어버린 세포들이 꿈틀대며 이어지기 시작했다.

새 살이 돋고 오래지 않아 목과 몸통이 붙었다.

이제 부활 선고를 위한 기본적은 준비는 모두 끝났다.

'부활 선고.'

인우는 바알을 향해 부활을 선고했다.

후우우우우우웅!

바알의 육체가 부들부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바알의 눈이 번쩍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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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화 바알 (1)

확고한 믿음이 있다면 죽음이 두렵지 않다.

바알이 그랬다.

그는 목이 날아가는 그 순간까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정인우를 믿었기 때문이다.

그가 루시퍼를 처치하고 마신이 되어 마계를 구원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거다.

두려울 리가 없었다.

자신의 희생으로 모든 것이 바로잡힌다.

그렇게 바알은 눈을 감았다.

뎅강!

목이 잘려나가는 그 순간, 목 언저리에서 피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고, 곧바로 끔찍한 통증이 느껴졌었다.

하지만 그건 그리 길지 않았다.

5초도 되지 않아 고통이 가시고 육체가 허물어졌다.

바알의 영혼은 그 즉시 육체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그 상태로 목과 몸통이 분리된 자신의 육체를 바라볼 수 있었다.

흔히 말하는 유령이라도 된 것일까?

그리도 강력했던 자신의 육체가 피를 뿜으며 허무하게 주저앉는 걸 목격하자 괜스레 허망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죽었다.'라는 인지가 생기자마자 그의 영혼이 끝도 없는 순백의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굉장한 평온함이었다.

그 어떤 걱정근심도 없는 세계에서 평화로운 수영을 하는 기분이랄까?

바알은 그 기분을 만끽했다.

이곳에서는 시간이나 공간의 개념조차도 없는 듯했다.

그는 아마 이곳에서 무한한 평화를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터널은 무한하지 못했다.

끝이 보였던 거다.

터널의 끝, 그곳에는 어딘가로 향하는 입구가 있었다.

당장에 들어서기 위해 발을 뗀 순간이었다.

슈우우우우욱!

바알은 난데없이 자신의 영혼이 뒤로 빨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마치 진공청소기로 빨려드는 것처럼 강력한 잡아당김이었다.

순식간에 입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빨려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 막강한 힘은 그저 한마디를 내뱉을 뿐이었다.

'부활 선고.'

그것은 절대적인 존재의 명령이었다. 결단코 거부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한데 굉장히 익숙한 목소리다.

가만 생각해 보니 정인우의 목소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동시에 바알은 삽시간에 이승으로 빨려 들어왔다.

슈우우우우우욱!

순간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목 언저리가 칼에 베인 것처럼 따끔했으며, 신체의 장기가 강제로 구동되는 것처럼 버벅거림과 동시에 고통이 느껴졌다.

바알은 절로 눈을 부릅떴다.

"크윽!"

영혼 상태일 때는 몰랐으나, 육체에 들어서자 엉망이 된 몸 상태로 인해 엄청난 통증이 느껴지는 거였다.

입가를 비집고 절로 쌍소리가 튀어나왔다.

"빌어먹을!"

그 순간, 바알은 자신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인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목소리도 크게 나오고, 목은 제대로 붙었나 보네."

"...정인우?"

단숨에 이 순간이 이해될 리 없다.

지금 바알은 이곳이 이승인지 저승인지조차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머릿속이 엉망이었다.

"천국이라도 갔다 온 거냐, 바알?"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나는 분명 죽음 이후의 세계에 닿기 직전이었다."

바알은 터널의 끝자락에서 보았던 문을 떠올리며 답하고 있었다.

인우는 흥미로운지 더 캐묻기 시작했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어? 무(無)가 아니고?"

"내가 본 것이 착각이 아니라면, 필시 존재하는 거겠지. 그나저나, 여긴... 아니, 도대체 어떻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물어야 할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랬기에 물음은 뒤섞여 튀어나왔다.

다행히도 인우는 센스가 있는 녀석이었기에 단박에 바알의 물음을 알아들었다.

"루시퍼는 죽었고, 나는 마신이 됐다. 내가 널 살렸고."

굉장히 압축시켜서 한 말이었지만, 바알은 단박에 알아듣고 있었다.

그는 금세 이성을 찾고선 이곳이 마계라는 것을 인지했다.

나아가, 정인우가 부활의 권능을 얻어낸 것까지 유추해 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갔으면 그만큼 정신이 없을 텐데도, 대단히 차분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이럴 때 보면 괜히 마계의 NO.1 마왕이 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바알은 천천히 시선을 굴렸다.

아직 전신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는 않았다.

고작 눈동자를 굴리는 게 다였으니 말이다.

현재 그의 육신은, 마치 부팅 중인 컴퓨터처럼 버벅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허전하지?"

그러다 바알이 난데없이 물었다.

이에 인우는 답지 않게 난처한 얼굴을 했다.

"음...."

<바알>

레벨 : 1

직위 : 최하위 마족

상태창에 녀석의 정보가 떠오른다.

인우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초기화된 것 같다."

"...."

바알도 본인의 상태 정보를 확인한 뒤인지 얼굴이 똥통에 처박힌 것처럼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거기다 대고 인우가 위로랍시고 몇 마디를 내뱉기 시작했다.

"어차피 넌 희생할 생각이었잖냐. 되살아난 거에 만족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로군...."

바알은 답 대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인우가 얼굴을 들이밀며 또다시 위로를 건넸다.

"나도 초기화가 된 적이 한번 있었는데, 그거 별거 아니다?"

장난하나?

바알은 딱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혼자 있고 싶군."

* * *

생각해 보면 초기화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이미 신의 검이 바알의 능력을 흡수한 뒤였다.

신의 검은 바알의 능력 그 자체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만일 바알이 기존의 능력을 그대로 부여받은 채 부활한다면, '바알'은 '둘'이 되는 거다.

그것은 이 세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가능했다면 똑같은 무력을 지닌 도플갱어를 무한대로 만들어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거다.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결론은, 바알의 육체 초기화는 돌이킬 수 없는 문제라는 거였다.

"후우."

지금 바알은 자신의 마왕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위풍당당한 위용을 자랑하는 거대한 자신의 마왕성을....

한데 바알은 차마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크르으으으...!

마왕성 입구를 지키는 지옥견 켈베로스 킹 때문이었다.

녀석은 지금 주인도 알아보지 못하고 이빨을 들이밀고 있었다.

바알은 어처구니없는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퍽 난감해졌다.

자신이 키웠던 개가 무서워 마왕성에 입장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꼴이라니.

-크르으으!

"나다."

바알이 짤막하지만 강한 어조로 말했다.

-컹! 컹! 컹!

개뿔,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다.

켈베로스 킹은 물러서기는커녕 짖어 대고 있었으니까.

녀석이 기억하는 주인은 1,799레벨의 바알이지, 1레벨의 바알이 아닌 것이다.

"후우."

바알은 한숨을 토해 냈다.

그런 뒤 힘없는 걸음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부스럭. 부스럭.

뒷걸음질로 후퇴했다.

켈베로스 킹에게 뒤를 보이면 바로 물리는 거다.

그렇게 되면 즉사다.

꼬르륵.

상황에 맞지 않게 뱃속이 진동한다.

배가 고팠다.

순간 이게 뭐하는 건가 싶어 울컥 짜증이 치밀었다.

* * *

인우는 마왕성으로 복귀했다.

일단은 NO.72 마왕성이다.

이제 인우의 신분은 마신이었으나, 그렇다고 마왕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이 마왕성은 프로킨의 황궁보다도 넓고 컸기 때문에 쭈욱 거주지로 사용할 예정이었다.

복귀와 동시에 아공간에 챙겨 온 루시퍼의 사지를 꺼냈다.

엄청나게 잔인한 광경임에도 이제 그저 덤덤하다.

인우는 그것을 손수 짜내어 피를 뽑기 시작했다.

이미 출혈이 꽤 많았기 때문에 뽑힌 혈액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정도면 간신히 1리터 정도 되겠네."

본래대로라면 3~4리터는 나올 거였는데, 출혈이 그만큼 심했다는 거다.

하긴, 인우는 루시퍼를 잔인하게 토막 내며 천천히 죽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어쨌건 이 피는 루시 퀸에게 줄 참이었다.

인우는 퀸을 불렀다.

단숨에 내달려온 그녀는 다소곳이 손을 모은 뒤 얌전히 서 있었다.

평상복 차림을 한 그녀는 윗도리의 밑단을 양손으로 잡아당기며 눈을 맞추지도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앞에서는 늘 소녀처럼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퍽 귀엽다.

퀸은 다른 이들 앞에서는 결단코 저러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 앞에서만 저런다.

일례로 그녀는 민철이 앞에서는 쌍심지를 켜기도 하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하긴, 퀸과의 첫 만남을 떠올려 보자면 결코 다소곳한 성격은 아니었던 거로 기억한다.

도리어 거칠었다.

그랬기에 가끔 상상하곤 한다.

그녀가 자신에게 익숙해지고 오래도록 살다 보면 언젠간 돌변하지 않을까?

흔히 드라마에서 접하는 바가지 긁는 마누라처럼 말이다.

뭐, 그렇게 된다 해도 상관없다.

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행복감이 있을 테니까.

그저 중요한 건, 지금 인우는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 또한 인우를 좋아한다는 거다.

그래 그뿐이다.

뭐가 더 필요할까?

생각을 그친 인우는 뽑아낸 혈액을 퀸에게 건넸다.

"마셔."

짧게 말한 인우는 탐색을 통해 그녀의 레벨을 확인했다.

<루시 퀸>

레벨 : 650

직위 : 뱀파이어 퀸, NO.240 마왕

현재 그녀의 레벨은 650이었다.

그리고 모든 피를 다 마셨을 때, 그녀의 레벨은 712가 되어 있었다.

총 62레벨 업을 한 것이다.

인우는 히든 스텟인 지능을 토대로 그녀가 얻어낸 경험치를 유추해 낼 수 있었다.

5초도 되지 않아 계산을 끝낸 인우는, 그녀가 루시퍼의 피를 마심으로써 대략 4,500억의 경험치를 획득했음을 알아챘다.

인우가 얻어냈던 1천조가 넘는 경험치에 비한다면 터무니없이 낮은 수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타당한 수치였다.

우선 퀸은 경험치의 비율을 수십 배 뻥튀기 시켜 주는 절대자 패시브도 없었고, 나아가 현재 루시퍼의 혈액은 100%가 아닌 일부일 뿐이었으니까.

물론 다르게 본다면 이 정도 양만으로도 4,500억의 경험치를 줄 정도로 루시퍼의 시체는 가치가 있었다.

인우는 뿌듯한 얼굴을 하고선 퀸을 바라보았다.

퀸의 눈동자도 반짝반짝 빛났다.

아주 꿀이 떨어진다.

그런데 그때였다.

에노느가 황급히 내달려오는 게 보였다.

"전하! 마왕 전하! 아니, 마신...!"

"됐으니까 예의는 접어 두고 말해."

"아아, 아 네! 지금 말이죠! 바알 전하께서 성문 앞에 와 계세요!"

"응? 혼자 있고 싶다던 놈이 여긴 왜 온 거지? 아니, 그건 그렇고, 왔으면 들어오지 않고 뭘 하는 거래?"

거기까지 말하다 인우는 무언가 하나를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바알 녀석은 초기화가 되었질 않나?

그렇다면 인우의 마왕성 입구를 지키고 있는 가디언들을 어쩌지 못하고 있을 터였다.

"아아."

녀석의 표정이 절로 떠올랐다.

아마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을 테지.

부활이 달갑지 않고, 나아가 자괴감 들고 괴로울 수도 있다.

인우는 당장에 녀석을 마중 나갔다.

입구에 도착했을 때, 바알은 뒷짐을 진 채 여유를 가장하고 있었다.

인우가 물었다.

"혼자 있고 싶다며?"

"심심하더군."

죽어도 자기가 키우던 켈베로스 킹에게 가로막혔다고는 말 못 한다.

바알은 아무렇지도 않은 어조로 덧붙였다.

"저녁은 안 먹나? 죽다 살아났더니 배가 고픈데."

그 말에 인우는 풉 하고 웃으며 말했다.

"들어와라. 아 그리고, 당분간은 나와 함께 행동하는 게 어떻겠어? 도움을 좀 주고 싶은데."

"좋을 대로."

짧게 답한 바알이었으나, 얼굴에 미세하게 피어난 미소를 감추진 못했다.

바알은 기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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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화 바알 (2)

마왕성의 그레이트 홀에 맛있는 음식들이 차려졌다.

핏물이 살짝 배어 나오는 암송아지 스테이크부터 신선한 딸기가 얹혀진 푸딩까지.

이 모든 음식은 바알을 위한 거였다.

요리의 종류는 수십 가지가 넘어 보였다.

척 보아도 엄청난 실력자가 만들어 낸 요리들이 분명해 보인다.

참고로 인우의 마왕성에서 일하고 있는 전속 요리사의 요리 스킬은 3가지가 넘었고, 모조리 마스터 레벨이었다.

3스킬 마스터, 지구에 내놓으면 랭커 중에 랭커가 될 테지.

물론 비전투형이기에 전투 랭킹은 한참 낮을 테지만....

뭐가 됐건 허기가 진 바알에게는 최고의 만찬이었다.

녀석은 포크와 나이프를 쥐고 음식들을 입속에 넣고 우물거렸다.

바알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진다.

그러나 바알은 알까?

지금 그가 우물거리고 있는 스테이크를 만든 요리사가, 포크만 들고 덤벼도 단번에 요절날 정도로 약해졌다는 것을 말이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인우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신의 아티펙트로 인해 허기가 제거된 지 오래였다. 먹는다면 먹겠지만, 굳이 먹을 필요가 없었다.

식사가 끝날 때쯤, 바알이 입을 열었다.

"이제 신계로 갈 참인가?"

인우가 고개를 내젓자 바알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어쩔 생각이지?"

"우선은 천계부터 박살 내려고. 너도 데려갈 생각이야."

"내가 가 봐야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도움을 구하려 데려가는 게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지."

바알을 데려가 편법을 이용해 레벨을 올려 줄 참이었다.

인우는 바알의 레벨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바알>

레벨 : 1

직위 : 최하위 마족

여전히 레벨은 1이다.

이를 통해 보건대 절대자 패시브고 뭐고 모조리 다 사라진 것 같았다.

하긴. 녀석은 초기화를 겪었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아직 아이템은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아이템이 초기화될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인우는 바알이 입고 있는 슈트나 아티펙트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티펙트는 레벨 제한이 없는 것들이냐?"

"반지와 팔찌는 레벨 제한이 없다."

"기능은 뭔데?"

"선택받지 않고선 얻을 수 없는 것들."

그 대답에 인우가 눈가를 좁히자 바알이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나는 마계에 숨겨진 히든피스들을 제법 많이 찾아냈다. 거기에서 절대자의 걸음, 호흡, 성장, 그리고 전능자의 한계돌파까지 4가지를 얻어낼 수 있었지."

"그래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스킬이 초기화되며 모조리 날아갔잖아."

"히든피스들은 스킬 볼을 통해 등장할 때도 있었지만...."

잠시 말을 끊은 바알이 씨익 웃으며 본인이 착용하고 있는 반지와 팔찌를 가리키며 덧붙였다.

"때론 아티펙트로 등장하기도 했지."

"아."

어느새 바알이 반지와 팔찌를 착용 해제하여 인우에게 넘겨 주었다.

"정보를 확인해 봐라."

[절대자의 성장 반지]

종류 ? 반지 (hidden)

기능 ? 획득 가능한 모든 경험치가 2배가 됩니다.

추가기능 ? 모든 스텟 +100

[전능자의 한계돌파 팔찌]

종류 ? 팔찌 (hidden)

기능 ? 액티브 스킬의 한계 레벨이 2배가 됩니다. (히든 스킬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추가기능 ? 모든 스텟 +100

인우가 지닌 '성장'과 '한계돌파'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

그러니까, 바알은 원래 4가지 중, 아티펙트형으로 얻어낸 패시브는 남아 있는 셈이었다.

아쉽게도 스킬 볼을 통해 얻었던 절대자의 걸음과 호흡은 초기화되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게 어디인가?

우선 '성장'의 경우 경험치 획득률을 올려 주기에 무조건적으로 필수였다.

천계에서 천사들을 박살 내며 바알의 레벨을 올려 줄 때 굉장히 유리하게 작용할 거다.

그리고 전능자의 한계돌파 또한 스킬 레벨을 레전드 마스터까지 올릴 수 있으니 필수다.

다만, 바알의 경우 걸음과 호흡이 없으므로 걷거나 숨 쉴 때마다 스킬 경험치를 올릴 수 없다.

그러니 스킬 레벨 업을 하기 위해선 정말이지 토악질이 나올 정도로 훈련에 훈련을 거듭해야 할 테다.

인우는 구경을 끝마친 아티펙트를 바알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그 정도면 충분해. 그런데, 그 히든피스라는 거 마계에서 또다시 얻을 수 있는 건가?"

아무래도 바알에게 절대자와 전능자의 모든 패시브를 얻을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마계에서는 더 이상 얻을 수 없다."

"이미 발굴되었다 이건가. 그러면 천계는?"

"천계 또한 이미 발굴되었지. 다만, 대천사들은 절대자나 전능자 패시브를 모조리 아티펙트로 착용하고 있다더군."

"아아, 스킬 볼로 얻어낸 게 아니라 모조리 아티펙트로 착용하고 있다 이거지?"

"내가 알기론 그렇다."

바알 또한 나머지 패시브 시리즈를 얻어내기 위해 분투하며 살아온 녀석이다.

녀석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확실할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러나저러나 천계를 개박살 내러 조속히 가 봐야 할 것 같다.

"이 형이 모조리 강탈해서 너한테 줄게."

인우가 자신 있게 말하자 바알은 어이가 없는지 입을 크게 벌리곤 '허'하고 헛숨을 들이켰다.

"내 나이가 4천 살이 넘었다. 네놈이 나의 형이 되는 건 절대로 불가능하다."

대충 넘겨듣지, 대단히 진지하다.

이럴 때 보면 확실히 할배는 할배다.

인우가 답이 없자 바알이 빠르게 말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음, 뭐 어쨌든. 구해 준다면 내가 착용은 해 보겠다."

뛸 듯이 기쁘면서, 또 저런다.

인우는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밥 다 먹은 거냐? 천계로 가자. 모조리 다 개박살 내러."

"좋을 대로."

둘은 곧장 일어섰다.

그리고 천계로 향했다.

이로써 천계의 멸망이 더 빨라질 터였다.

* * *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3명의 대천사들은 참담한 얼굴로 신전에 앉아 있었다.

정말로 간신히 천계까지 도주해 왔다.

중간중간 정인우가 뒤쫓아 올까 불안에 떨며 갖은 마음고생을 다했다.

놈은 분명 루시퍼를 죽이고 마신이 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저 벌레들이 도망가 봐야 천계일 테고, 천계는 내가 조만간 멸망시켜 버릴 거다.'

맞는 말이다.

그들은 천계가 아니고서야 어디도 갈 수 없다.

인간계로 도주한대도 금세 정인우에게 잡힐 거였다.

정인우는 원래 인간이었고, 녀석은 지구와 프로킨의 지형에 무척이나 익숙하지 않은가?

게다가 이들은 인간계로 가면 힘이 줄어든다.

천계에 있어야 그나마 100%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거다.

그러므로 천계에 있는 게 최선이었다.

정인우는 이런 상황을 모조리 꿰고 있는 것 같았고, 도주하는 이들을 붙잡지 않았다.

참담한 현실에 미카엘이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살아남은 천사들은 얼마나 되지?"

"우리를 포함해서 175명이다."

천사 1,000인대, 100인대, 10인대를 포함하여 1천이 넘어가는 병력이 1/6가량으로 현저히 줄어버렸다.

전쟁 발발 최초.

정인우의 마기광탄에 수백 명이 뭘 해 보지도 못한 채 골로 갔고, 마왕들과의 전투로 인해 또다시 많은 숫자의 천사들이 죽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루시퍼가 정인우를 제압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데 결과를 보라.

모든 게 끝나 버렸다.

이대로 정인우가 천계에 쳐들어온다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거였다.

"이제 어떡하지?"

"...."

"...."

묻는다고 답이 나올 리 없다.

절대신 탈라시아가 계시를 내려오진 않을까 싶어 신전에 짱박혀 있었지만, 신은 침묵을 고수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신.

원래대로라면 신은 육체의 한계 레벨을 정해 놨어야 했다.

실제로 인간계는 500레벨로 한계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상위차원인 천계와 마계는 어떠한가?

한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무한대로 강해질 수 있었다.

이를 반대로 보자면, 천족이나 마족이 무한대로 강해진 채로 신의 영역을 넘볼 수도 있는 거다.

신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

알고 있다면 멍청한 거고, 모르고 있다면 바보인 거다.

뭐가 됐건 한심한 신이다.

지금 정인우를 보라.

거의 신의 영역에 근접해 있다.

레벨은 2,000이 넘어가고 신의 장비로 무장한 채 모든 스킬이 레전드 마스터다.

그냥 손 한번 휘두르면 인간계를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해져 있다는 거다.

다시 말해 정인우는 거의 신이다.

이쯤 되니 아마 탈라시아 신도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한 방증으로 실제로 신은 엘과 루시퍼에게 계시를 내리기도 했지 않은가?

정인우를 죽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엘과 루시퍼가 역으로 당했다.

이건 정말 신조차도 예상치 못했을 거다.

"으아아아아! 이제 어쩐단 말인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기도 잠시.

신전의 탈라시아 석상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대천사들은 눈을 번쩍였다.

"시, 신의 계시다!"

침을 꿀꺽 삼키고는 계시가 떨어지길 기다렸다.

그래, 전지전능한 신, 모든 세계와 시스템을 창조한 신, 당신이라면 이 최악의 사태에 대한 계시를 내릴 수 있겠지?

-도망쳐라.

그 계시를 끝으로 석상은 빛을 잃었다.

순간 대천사들은 할 말을 잃었다.

"이, 이따위 계시라니!!"

"으아아아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아마 신조차도 어찌할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도망치라고?

어디로 말인가?

어디로 간대도 정인우에게 덜미가 잡힐 거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할 것 아닌가?

막막함에 머리를 쥐어뜯기도 잠시.

신전 앞에 모여 있던 천사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크, 큰일 났습니다!!"

그 외침에 대천사들은 직감했다.

올 것이 왔구나.

직감과 동시에 바깥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 기, 기세다!"

그 외침이 들려오자마자 최악의 메시지가 떠오른다.

[마신의 기세가 발동되었습니다. 모든 이동 마법이 봉쇄됩니다.]

* * *

천사 녀석들을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바알의 조언을 따라 천계에 들어서자마자 위저드 아이로 신전을 훑어봤던 거다.

확인해보니 정말 그곳에 모든 천사가 모여 있었다.

바알은 천사들의 심리를 정확히 꿰고 있었던 거다.

저벅- 저벅-

인우는 바알과 함께 신전의 입구를 향해 걸었다.

천사들의 눈동자가 두려움으로 인해 거칠게 떨리고 있었다.

인우는 그런 동공지진에 대고 마신의 기세를 발동시켰다.

쩌어어어엉!

[마신의 기세를 발동시켰습니다. 적들의 텔레포트와 게이트 마법을 포함한 모든 이동 마법이 봉쇄됩니다.]

"호오?"

인우는 조금 놀랐는지 감탄을 흘리고 있었다.

새로이 생성된 마신의 권능 4가지.

이중 마신의 기세는 단순히 적을 쫄게 만드는 능력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런 숨은 기능도 있었나 보다.

겁먹게 만드는 것을 넘어서서, 적들의 도주로까지 완벽히 차단하다니.

뭐, 어쨌든 좋다. 그렇지 않아도 천사들이 도주하면 한 놈 한 놈 찾으러 다니기가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니 말이다.

잘됐다 여겼다.

우다다닥!

어느덧 신전의 문이 벌컥 열리며 대천사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로써 175명의 천사들이 모조리 모였다.

그들의 눈은 찢어질 듯 부릅떠져 있었다.

"제, 젠장! 정인우! 게다가 바알이라고? 바알은 죽은 게 아니었나!?"

"바알까지 있어! 이대로라면 끝이다! 오 신이시여!"

하긴, 녀석들은 바알이 죽은 줄로 알 거다.

한데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으니 놀라울 테지.

하지만 놈들은 지금 꽤 놀란 상태인지 바알의 육체가 초기화됐다는 것까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뭐가 됐건 좋다.

어차피 인우는 이번 대학살에서 바알을 철저히 밀어줄 생각이었다.

자신이야 여기 모두를 죽인다 해도 그다지 많은 레벨 업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바알은 어떠한가?

엄청난 레벨 업을 할 수 있을 거다.

제대로 밀어 줄 수 있었다.

어느덧 바알은 인우를 힐끔대며 묻기 시작했다.

"이제 어쩔 참이냐. 난 스쳐도 사망이다."

"걱정하지 마. 다 편법이 있으니까."

말을 마친 인우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광렙의 시작이다. 바알."

그리 말한 인우는 무언가를 발동시키려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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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화 멸망

인우는 가장 먼저 분신들을 소환했다.

그의 여덟 분신이 저마다 대검을 치켜들고 의기양양 서 있었다.

자신감이 넘쳐 흐를 지경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현재 분신들의 레벨은 1,255나 되었던 것이다.

인우의 레벨은 2,091이고 이에 따라 60%의 레벨을 보유하고 있는 거다.

분신 한 녀석만 해도 천사 10인대보다 강하고 대천사보다 조금 더 약한 수준이었다.

그렇게나 강력한 녀석이 여덟이나 된다.

인우는 분신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후좌우, 사방팔방, 퇴로를 모조리 차단해라."

"응!"

분신들이 후다닥 뛰어나간다.

녀석들은 인우의 명령에 따라 신전 사방팔방에 선 채로 경계태세를 갖추었다.

이로써 천사들은 도주로를 차단당했다.

마신의 기세 때문에 이동 마법까지 막혀 버렸으니 그야말로 완벽히 고립된 거였다.

거기까지 끝마친 인우는 어깨에 걸쳐 두었던 신의 코트를 벗었다.

"바알, 내 코트를 잠시 대여해 주지."

휘릭-

내던진 코트가 바람을 타고 바알의 어깨에 정확히 착지했다.

바알은 코트의 정보를 훑더니 눈을 크게 떴다.

[신의 코트]

종류 ? 방어구

기능 ? '절대자의 성장' 스킬이 강화됩니다.

추가 기능 ? 물리 방어력 +30%, 마법 방어력 +30%

특수 기능 ? 코트를 펼쳐 전신을 감싸면, 목숨을 위협하는 공격을 무조건 방어합니다. (하루에 한 번만 발동됩니다.)

심지어 착용 조건도 없다. 1레벨인 바알에게도 이 기능이 온전히 적용되는 거다.

"엄청난 기능이로군."

인우가 신의 코트를 빌려준 이유는 간단했다.

현재 바알은 절대자의 성장 스킬을 지니고 있다.

이 코트는 성장 스킬을 10배 강화해 준다.

다시 말해, 본래 경험치 2배 증가를 지닌 성장이 10배 더 강해지니 도합 20배의 증가율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2배에서 20배. 엄청난 차이다.

경험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가 된다.

바알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현재 그의 레벨은 1에 불과하지만, 단숨에 올라갈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떠한 방식으로 천사들을 잡게 해 주려는 걸까?

지금의 바알은 스쳐도 한 방이다.

의문도 잠시.

인우가 3명의 대천사들을 자세히 훑기 시작했다.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이 중 가장 높은 레벨을 보유한 놈은 미카엘이었다.

<미카엘>

레벨 : 1,456

직위 : 대천사

인우는 미카엘에게 현혹을 시전했다.

그 즉시 미카엘의 동공이 풀리며 꼭두각시처럼 변했다.

"후딱 이리로 와라."

하루에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지만, 그 기능은 가히 절대적이다.

인우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미카엘이 달려왔다.

녀석은 여전히 풀린 동공을 한 채로 가만히 인우 앞에 서 있었다.

인우는 미카엘이 착용한 아이템들을 훑어보며 바알을 향해 말했다.

"대천사 놈들이 절대자와 전능자를 아티펙트 형으로 가지고 있다고 했지?"

"그럴 거다."

바알은 지금 이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는지 조금 붕 뜬 어조로 답하고 있었다.

어느새 인우는 미카엘의 아티펙트를 하나씩 빼앗기 시작했다.

미카엘은 현혹에 걸려 그 어떤 방어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다른 천사들마저도 지금 이 상황을 어쩌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괜히 나섰다가 정인우에게 죽을 수도 있는 거다.

"음."

인우는 빼앗은 미카엘의 아티펙트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절대자의 걸음 반지]

종류 ? 반지 (hidden)

기능 ? 발을 내딛을 때마다 경험치를 5 획득합니다.

추가 기능 ? 모든 스텟 + 100

[절대자의 호흡 목걸이]

종류 ? 목걸이 (hidden)

기능 ? 호흡할 때마다 경험치를 5 획득합니다.

추가 기능 ? 모든 스텟 + 100

[전능자의 잠재력 팔찌]

종류 ? 팔찌 (hidden)

기능 ? 레벨 업 보너스 스텟이 2배가 됩니다.

추가 기능 ? 모든 스텟 + 100

이 밖에도 이미 바알이 가지고 있는 절대자의 성장 반지, 전능자의 한계돌파 팔찌도 존재했다.

인우는 바알이 이미 가지고 있는 아이템은 아공간에 챙겼다.

그리고 없는 것들만 골라내어 바알에게 줬다.

"착용해."

"...."

바알은 얼떨떨한 얼굴로 아티펙트를 받았다.

자그마치 4천 년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절대자와 전능자의 모든 패시브를 얻기 위해 지옥 같은 고투를 벌여왔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너무나도 간단히 아티펙트 시리즈를 모았다.

실감이 날 리 없다.

바알은 5줄 모두 1등 당첨된 로또 용지를 보는 사람처럼 벙벙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놀라기엔 일렀다.

인우가 미카엘에게 다음 명령을 내렸다.

"바알이 선제공격을 하면, 그 대상을 죽여라."

"아."

그제야 바알은 인우의 생각을 알아챘다.

그래, 이 방법이라면 엄청난 경험치를 날로 먹을 수 있었다.

현재 현혹에 걸린 미카엘은 바알의 전투를 도울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나 기여도 시스템이다.

바알이 천사들에게 공격을 가해 봐야 데미지가 1도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선제공격을 하게 되면 미카엘이 알아서 그 대상을 죽여 줄 것이다.

만약 정상적인 기여도가 적용된다면 미카엘에게 99%의 경험치가, 그리고 바알에게 1%의 경험치가 들어갈 거였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가 하나 생긴다.

미카엘은 '천족'이다.

다시 말해, 천사 미카엘이 바알의 전투를 도와 천사를 죽여봐야 경험치를 획득하지 못한다는 거다.

그렇게 된다면 어찌 될까?

경험치는 100% 바알에게만 쏟아질 거였다.

실제로 인우는 블랙오크 대학살 현장에서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공짜 경험치를 배가 터지도록 먹기도 했었다.

어느덧 바알은 인우를 향해 고마움을 표했다.

"신세를 지는군."

"나야말로 너의 희생으로 인해 많은 신세를 졌지."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바알은 그 즉시 손에 돌멩이 하나를 쥐어 들었다.

그러곤 가까이에 있는 천사 한 놈에게 내던져 버렸다.

퍽!

돌멩이를 맞은 천사는 얼빵한 얼굴을 했다.

분명 바알에게 공격을 당하긴 했는데 0.000001%의 데미지도 들어오지 않아서였다.

"이건 뭐.... 으어!!"

그 순간, 미카엘이 불식간에 움직이더니 천사의 멱을 따 버렸다.

촤륵!

피가 터져 나오며 천사의 경험치가 바알에게로 쏟아졌다.

[경험치를 900,0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9,000억 경험치. 그야말로 미친 경험치였다.

본래라면 45억이었겠지만, 프로킨이나 마계 천계의 10배 보정과 절대자의 성장 20배 보정을 받아 9,000억까지 뛰어 버린 것이다.

인우가 빌려준 신의 코트가 단단히 한몫한 것 같았다.

그리고, 들어온 경험치를 보건대 천사 100인대 녀석인 것 같았다.

천사 100인대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바알>

레벨 : 733

직위 : 상급 마족

레벨은 한 번에 733이 되어 버렸다.

상대적으로 저레벨(?) 구간이기에 엄청난 상승폭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마족의 경우 첫 번째 각성인 100레벨 때에 '각성 정수'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인간의 경우 나약한 신체를 극복하고 각성하기 위해 100레벨 때 최초로 한 번 각성 정수가 필요하지 않나?

각성 정수는 용작두 광전사를 잡아야 얻을 수 있는 고가의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그건 인간 세계에서나 통용되는 거다.

이미 완성된 신체를 지닌 마족에게는 각성 정수 따위가 필요하지 않았다.

바알은 그야말로 한 번에 엄청난 레벨을 올렸다.

성장 20배의 경험치 비율은 되먹지 못한 경험치를 제공한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군."

바알은 그런 감상을 날렸다.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며, 그야말로 끈질긴 수련을 통해 레벨을 올려 왔던 그였다.

하지만 그런 과거의 모습이 무색해질 정도로, 너무나도 간단하고 쉽게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쯤, 천사들은 그제야 바알의 정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이상했던 거다.

바알이 돌멩이를 날리며 공격을 가하긴 했는데 너무나 약하지 않았나?

어느덧 확인을 끝마친 그들의 눈이 크게 뜨였다.

"바알의 레벨이 초기화된 거였어!"

그제야 그들은 바알을 제거하기 위해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허사였다.

"풍(風)"

정인우가 신언을 날리며 천사들을 밀어내 버린 것이었다.

밀려난 천사들은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이를 갈았다.

그 순간 정인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뒤는 내가 봐줄 테니, 천천히 즐기라고. 바알."

* * *

이 세상에서 레벨이 가장 높은 존재가, 이 세상에서 레벨이 가장 낮은 존재를 도와주면....

이런 일이 발생한다.

<바알>

레벨 : 1,200

직위 : 최상위 마족

미카엘을 이용해 30명가량의 천사들을 죽였을 즈음, 레벨은 1,200에 닿아 있었다.

레벨이 오를수록 바알이 낼 수 있는 위력은 증가하였고, 이제 바알은 굳이 미카엘의 도움이 없어도 천사 100인대쯤은 간단히 처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쯤 바알은 현혹에 걸린 미카엘을 죽여 버렸다.

촤륵!

심장이 깨끗하게 관통당한 미카엘은 단숨에 허물어졌다.

그 즉시 대천사 미카엘의 경험치가 들어왔다.

[경험치를 90,000,000,000,000]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바알>

레벨 : 1,522

직위 : 최상위 마족

90조의 경험치가 들어왔다.

레벨은 1,200에서 1,522가 되어 있었다.

그의 주력기인 마극 파뇌천도 활성화된 상태였다.

바알은 즉시 남은 천사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이제 도움 같은 건 필요하지 않은 듯 보였다.

바알은 1,522레벨만으로도 남아 있는 모든 천사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는 그저 가지고 있는 전투 센스만으로 천사들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가진 바 재능만큼은 인우마저도 혀를 내두르게 했다.

역시 될성부른 잎은 떡잎부터 다르다더니, 저러니 신이 무서워서 선택하지 않았을 수밖에.

인우의 경우, 신이 선택한 이유가 하위 생명체인 인간 따위가 재능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는가? 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컸을 테지만.

"끄아아아악!!"

천사들의 비명이 들려오고, 바알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뛰어놀고 있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리고 레벨이 1,700에 닿을 즈음.

그제야 바알은 공격을 멈췄다.

남아 있는 천사들은 10인대와 100인대 일부와 대천사를 포함하여 32명이었다.

바알은 기세를 이용해 놈들과의 거리를 벌리고는 코트를 벗었다.

"빌렸던 코트는 잘 썼다. 나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응? 왜? 더 잡지 않고? 아직 과거의 레벨까지 닿지도 못했잖냐."

"1,700이면 충분하다. 나도 양심이 있다. 어찌 나 홀로 독식하겠는가."

인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알이 남겨 놓은 적은 알짜배기뿐이었다.

천사 10인대와 대천사 2명. 그리고 100인대 일부.

진정한 경험치는 10인대와 대천사가 줄 게 분명한데, 바알은 그것들을 잡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았다.

어느덧 인우는 바알에게 코트를 받았다.

"뭐, 그럼. 남은 녀석들은 내가 처리할게."

번쩍!

신의 검이 번쩍이며 천사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신의 검이 흡수한 바알의 능력인 마극 마뇌천과 수리검들이 튀어나온다.

나아가 루시퍼의 천기마기 기운이 비처럼 쏟아지며 천사들을 짓이겼다.

쾅! 쾅! 쾅! 쾅!

신의 검은 3분도 채 되지 않아 모든 천사들을 도륙해냈다.

[경험치를 89,000,0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85,000,0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9,100,0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900,0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

.

.

경험치가 비처럼 쏟아졌고, 그 비는 천계의 멸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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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화 칼데아인

남은 천사들을 몰살하고 들어온 경험치는 280조 가량이었다.

이 모든 놈을 합쳐도 루시퍼가 주었던 1,000조의 경험치에는 못 미친다.

그럼에도 엄청난 경험치 임에는 분명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2,100레벨이 되었습니다.]

[근력이 52,428,800 증가합니다.]

[민첩이 41,943,040 증가합니다.]

[체력이 20,971,520 증가합니다.]

[마력이 2,621,440 증가합니다.]

레벨 : 2,152

특성 : 광전사

스텟 :

[근력 11,212+104,857,550+10+2,350]

[민첩 9,033+83,886,040+250]

[마력 1,341+5,245,450+250]

[체력 9,295+41,943,080+10+150]

*히든 스텟 :

[괴력 100]

[매력 42]

[지능 100]

[방어력 100]

[재생력 100]

미분배 포인트 : 610

[EXP 234,265,347,457 / 5,018,000,000,000]

61레벨을 올렸다.

신의 패시브는 모두 개방되었기에 더는 열리지 않았다.

21번째 각성이 완료되었으며, 소환해 두었던 분신들의 레벨도 모조리 올랐다.

분신들은 여덟 명 모두 1,291이었다.

이로써 천계는 끝났다.

아직 수많은 천족들이 남아 있을 테지만, 천사가 없기에 그들은 머리를 잃은 거나 다름없었다.

탈라시아 신전 앞에서 멸망을 맞이한 천계의 천사들.

인우는 무심한 눈동자로 그들의 시체를 바라보다가 녀석들을 모조리 아공간에 챙겼다.

대천사들의 아티펙트는 절대자 전능자 세트가 있을 테고, 가족들에게 나눠줘도 좋을 거다. 또한, 이들 모두의 피는 퀸에게 줄 참이었다.

여러모로 풍족함을 남긴 채 천계는 멸망했다.

* * *

인우와 바알은 마계로 되돌아왔다.

마계에 도착한 바알은 괘씸한 문지기 켈베로스 킹을 떠올렸다.

"조만간 좋은 술을 가지고 찾아가지. 축배를 하기 위해선 여간 독한 술 가지곤 안 될 테지만."

"취하는 건 불가능해. 모조리 다 해독된다고. 그나저나, 마왕성에 갈 참이냐?"

"그래. 손볼 녀석이 있어서 말이지."

인우는 더 묻지 않았다.

바알은 즉시 발을 놀려 마왕성을 향했다.

도착과 동시에 켈베로스 킹이 보인다.

살랑살랑.

꼬리를 흔드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참으로 이중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군."

바알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레벨이 1이었을 땐 주인이고 나발이고 죽일 기세로 으르렁대더니, 이제는 혀까지 내밀며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든다.

자연스레 얼마 전 일이 떠올랐다. 배가 고픈데 들어서지도 못하고, 어찌나 난감하고 화가 나던지....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지. 나라는 존재가 너의 주인이란 걸 확실히 알려 줄 것이다."

타다다닥! 퍽! 퍽!

-깨개개갱! 깽! 깽!

그날, 바알의 마왕성에서는 켈베로스 킹의 절규가 터져 나왔다.

* * *

인우도 마왕성으로 복귀했다.

에노느가 인우를 반겼다.

"다녀오셨어요!"

참 한결같은 여자다.

특유의 발랄한 목소리 톤과 웃는 얼굴.

가만히 에노느를 지켜보기도 잠시, 그녀가 말했다.

"참! 화원에 손님이 와 계세요!"

"손님?"

"네! 그레모리 전(前)마왕 전하가 기다리고 계세요!"

그레모리라.

늘 수상했던 그녀가 오랜만에 등장했다.

인우는 천마전쟁에 그녀가 참여했었는지 떠올려보았다.

당시 모든 마왕이 참여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녀는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생각이 이어지는 와중에, 방금 에노느가 내뱉은 말이 뇌리에 번쩍였다.

전(前)마왕.

"그레모리가 마왕 직위를 박탈당했었나?"

"오잉? 모르셨어요? 박탈은 아니고 자의로 직위에서 내려오셨어요. 꽤 됐는데...."

그래서 보이지 않았던 것인가.

돌이켜보자면, 그녀는 늘 인우에게 도움을 주었다.

아무 대가도 없이 위험을 미리 알려 주기도 했으며, 프로킨에서 루시퍼와의 전투가 벌어질 땐 마왕들을 모조리 몰고 오더니, 급기야 온몸으로 인우를 감싸며 보호까지 했었다.

그렇게나 인우를 위해 움직였던 그녀가 천마전쟁 때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었다.

아니, 그 이전부터 없었던 것이리라.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녀가 어디에 와 있다고 했지?"

"마왕성의 화원이요."

인우는 즉시 화원을 향했다.

도착과 동시에 마계의 꽃들이 뿜어 내는 향기로운 냄새가 났다.

그레모리는 화원의 중앙에 서 있었다.

뒤돌아 있던 그녀가 인우의 기척을 느꼈는지 몸을 돌리곤 활짝 웃었다.

"오랜만이네요."

인우는 대답 없이 그녀의 지척까지 단숨에 걸어나갔다.

그런 뒤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며 물었다.

"용건이 뭐야?"

"뭐긴 뭐겠어요. 마신을 알현하러 왔지요."

그 대답에 인우는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그녀가 등장할 때면 늘 수상했다.

처음에는 '모리'로 위장하여 시녀로 잠입을 해 오더니 나중에는 대놓고 정체를 드러냈다.

그레모리가 시녀 위장을 했던 당시, 그녀는 근래에 들어 소문이 좋지 않다며 인우에게 수정구 하나를 건넸었다.

놀랍게도 그 수정구에는 49명의 마왕이 회의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고, 놈들은 인우의 뒤통수를 치려 하고 있었다.

그 당시 인우는 18개의 마기광탄을 쥐고서 역으로 놈들을 치지 않았던가?

따지고 보면 이 사건은 그레모리 덕분에(?) 벌어진 거였다.

그 뒤로 모리는 사라졌고, 훗날 인우는 마왕의 권능인 '대상 강제 이동'을 알게 된 직후 그녀에게 물었었다.

자신을 프로킨에 보낸 존재가 네년이냐고.

그 물음에 그레모리는 '글쎄?'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그래 뭐, 그런 건 다 됐다.

가장 의심스러운 건 바로, 그녀는 애초부터 자신이 신의 선택을 받아 신의 패시브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우는 그것들을 밝힌 적이 없었다.

게다가 인우는 그 패시브들이 신이 내려 줬다는 것조차 몰랐었다.

그러한 모든 사실을 알려 준 게 바로 그레모리다.

그녀는 모두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수상했다.

"의심을 품고 있군요. 사실 전 애초에 당신이 마신이 될 거란 것을 알고 있었어요. 죄송하지만 그걸 이용해 다른 마왕들과 내기까지 했었답니다."

그랬었다. 그녀는 단탈리안, 벨리알과 내기를 하며 정인우가 몰가스를 이길 것이라며 아티팩트까지 걸자고 제안했었다.

물론 인우는 이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때 인우는 그저 인간계의 인간이었고, 이제 갓 마계에 진입할 준비를 하고 있었을 때니까.

인우가 궁금한 것은 그저 하나였다.

그것을 묻기 위해 입을 열었다.

"넌 어떻게 내가 인간계에 있을 때부터 나를 알고 있었지?"

그레모리는 잠시 뜸을 들였다.

인우는 잠자코 기다렸고, 이내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

"정확히는 당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알고 있었죠."

"그게 무슨 말이야? 마왕들은 인간계에 관심이 없던 거 아니었나? 어떻게 나를 알고 있었던 거냐?"

"대답은 간단해요. 저는 칼데아인이니까요."

칼데아인?

조금은 생소한 그 단어에 인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예언자라는 뜻이지요. 저는 다 알고 있었어요. 마신이 지구에서 태어날 거라는 예언도, 그가 프로킨의 황제 직위를 거치게 될 것이란 예언도, 그걸 알았기에 이전부터 지켜보았던 것이고요."

인우는 답하지 않았다.

그레모리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당신을 프로킨으로 강제 이동시키기도 했고, 때론 당신을 지키기도 했습니다. 예언이 떨어졌기에 어차피 벌어질 일이었겠지만, 저는 그 과정이 조금 더 짧아지길 원했거든요. 그래서 미리 손을 썼던 거지요."

인우를 프로킨으로 보낸 존재는 예상대로 그녀였다.

다만, 인우가 프로킨으로 가게 되는 것은 예언대로 당연히 벌어질 일이었다.

그레모리는 그 예언의 결과를 빨리 만들어 내기 위해 강제로 손을 쓴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녀가 인우를 강제로 프로킨에 보내지 않았더라도, 인우는 지구에서 성장하며 어차피 프로킨으로 가게 될 운명이었던 거다.

이즈음 되자 인우는 의문이 풀렸다.

다만 한 가지. 그녀가 칼데아인이든 뭐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거다.

애초에 신은 루시퍼와 정인우를 선택했고, 그레모리는 그 과정을 예언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녀는 신과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인우는 의문을 숨기지 않은 채 물었다.

"그레모리 넌 뭐지? 넌 신인가? 아니라면, 신의 사자라도 되나?"

"둘 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칼데아인일 뿐.... 저 또한 신의 피조물일 뿐입니다, 정확히 말해 보자면, 신이 예상치 못한 피조물이라는 것이 맞을 테지요. 예언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권능. 신은 절대로 피조물들에게 이러한 권능을 주지 않아요. 저는 애초에 어긋난 존재였던 거지요."

이 말을 내뱉을 때 그녀의 얼굴은 무척이나 울적해 보였다. 늘 매력적인 미소를 짓고 있던 그녀가,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구나, 싶을 정도였으니까.

어느덧 그레모리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드러난 물건의 정체는 황금색으로 번쩍이며 정사각형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마신의 옥새입니다. 전대 마신님께서 남기신 마지막 유품이지요."

"...."

그레모리는 덤덤히 말을 이었다.

"전대 마신님은 참 좋은 분이셨어요. 저는 오랫동안 그분을 사모해 왔지요. 그분이 신의 계시로 인해 명을 달리하시고, 저는 오랫동안 그분을 그리워했어요. 그리고 몇 천 년이 지난 뒤, 다시금 마신이 등장할 것이란 예언이 들렸고, 그것이 바로 정인우 당신입니다. 나는 당신을 오랫동안 지켜봤어요. 그럴 때마다 전대 마신님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사모하였고, 늘 즐거웠습니다."

기나긴 말을 마친 그레모리가 그제야 매력적인 웃음을 지으며 마신의 옥새를 인우의 손에 쥐여 주었다.

"저의 안배는.... 여기까지입니다."

인우는 옥새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전대 마신의 마지막 유품이라기엔 참 단출하다.

"전대 마신은 어떤 녀석이었지?"

"당신과는 정반대였어요."

그녀는 지난 추억이 떠오르는지 아련한 얼굴을 했다.

"자신보단 남을 위했고, 늘 따뜻했죠. 상처가 되는 말은 조금도 내뱉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늘 신중히 말을 하다 보니 말수도 적은 분이셨어요."

거기까지 말을 마친 그레모리는 잠시 숨을 골랐다.

한데, 다음 순간 그녀의 얼굴이 표독스레 변했다.

"하지만, 신이 다 망쳤죠."

단어 하나하나에 원망이 묻어 있었다.

인우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인우였다.

"그럼 하나 묻자. 그레모리, 네가 예언자라면 이것도 하나 점쳐 봐."

"무엇이든지요."

"나는 신계에 갈 참인데, 그 뒤에 나는 어떻게 되지?"

인우가 마신이 될 것이라는 걸 예언하고 있었단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이후도 알고 있지 않을까?

인우는 기대를 품고 그레모리를 바라보았다.

"제가 예언한 당신의 운명은 여기까지랍니다. 마신 정인우, 이 뒤는, 당신이 당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지요. 당신은 이미 신. 마신입니다. 감히 제가 예언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이제 신계로 가세요. 그곳에 당신의 마지막 운명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마지막 운명.

어찌 될지 오직 신만이 안다, 라고들 한다.

하지만 아니다.

이 앞이 어찌 될지는 인우만이 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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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화 경험치가 계속 올라

신이란 무엇일까?

초자연적인 위력을 지닌 채 인간의 생사고락을 결정하는 존재?

태초의 세상을 창조한 존재?

우주의 근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시작과 끝?

인우가 보기엔 모두 다 틀렸다.

적어도 그가 느끼기에 신은 방관자에 불과했다.

신은 그저 창조해 놓은 세계를 관조하며 낄낄대는 변태 새끼일 뿐이다.

책임지지도 못할 세상을 창조해 두고선 그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방관하는 녀석이란 말이다.

그 과정에서 위협이 되는 피조물들을 제거하려 들며 늘 안주하길 원한다.

그런 신이 자격을 갖추고 있는 걸까?

아이를 낳은 어머니라 해서 모두가 어머니의 자격을 갖는 건 아니다.

그만한 책임과 감당을 해야만 비로소 어머니가 된다.

낳았다고 끝이 아니란 거다.

그렇다면 신은 어떠한가?

그는 창조한 세상을 책임지는가?

인우가 보기엔 아니었다.

신은 마신을 정하겠답시고 루시퍼와 인우를 선택했다.

둘이 싸우라는 거다.

오로지 한 놈만 마신이 될 수 있다는 거다.

결국엔 인우가 되긴 했지만, 그 과정은 어떠했는가?

루시퍼가 죽는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천사와 마왕들이 죽었다.

이 모든 죽음들이 결국엔 신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신은 위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며 인우와 천사들이 싸우는 것을 지켜보며 낄낄대고 있었을 거다.

제 놈이 만든 피조물들이 싸우는 게 그렇게도 재밌었을 거다.

마치, 인간이 투견장에 개들을 가둬 놓고 싸움을 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신이란 결국 그런 존재다.

잔인하고, 감정이 없으며, 기나긴 생의 유흥거리가 될 만한 거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움을 붙인다.

피조물들은 신의 꼭두각시가 되어 어쩔 수 없이 서로 원수가 되고 척을 지기도 한다.

물론 그 안에서 사랑과 우정이 싹트기도 한다만, 그건 그저 일부일 뿐이다.

대부분이 미워하고 싸우고 죽는다.

그게 지금의 세상이었다.

평화란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적인 꿈에 불과하다.

역사를 통틀어 봐도 그렇다.

평화는 일시적이었지만, 전쟁과 죽음은 영원히 이어지고 있었다.

역시나 신은 지켜본다.

비겁한 방관자다.

그 누구도 신에게 대적할 수 없으며, 도움을 구할 수도 없다.

설령 도움을 구한다 해도 신은 대답조차 하지 않는다.

신전의 사제들이 신의 음성을 들었다며 기쁨에 춤을 추곤 하는데, 그래서 뭐 어쨌단 건가?

세상이 바뀌었는가?

세상은 그대로다.

잔인하며, 미움이 가득하고, 불신이 가득하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며, 언제든지 상대의 등에 칼을 꽂을 준비를 한다.

그사이에 미세하게 담긴 평화는 언제 꺼질지 모르는 성냥불처럼 불안정할 뿐이다.

결국엔 신이 창조한 세계가 이렇다.

그의 방관이 세계를 이렇게 만들었다.

"신계에 가면, 신을 만날 수 있는 거냐?"

"그렇겠지요."

인우의 물음에 그레모리가 답했다.

인우는 생각이 깊어지는지 미간을 좁혔다.

그는 지금 신을 만나보고 싶었다.

세상 모든 것들의 주인이라는 그 오만한 작자의 면전에 대고 욕이라도 날려 보고 싶었다.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워서, 마신이 된 인우다.

이제야 신과 마주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이 자격이라는 것 또한 결국엔 타인의 피를 끝도 없이 묻히고서야 얻어낼 수 있었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는 거다.

그렇다면 이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금껏 이렇게까지 바득바득 기어올 만한 가치가 있었던 걸까?

문득 인우는 가족들이나, 소중한 친구들이 결국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종국엔 모두가 죽게 될 거다.

끝에는 그저 재가 될 뿐일 거다.

남은 게 없다. 결국엔 모두가 끝이다.

인우는 지금, 근본적인 것들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우주의 시작이었으며, 끝이 될 그곳을.

"신계에 가겠어."

'신의 자격'을 통해 언제든 신계로 향할 수 있었다.

인우의 입술이 달싹였다.

그 순간, 시야가 뒤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