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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화 서열전 (1)

"······."

그날부터였다.

정인우는 퀸을 대하는 게 꽤나 어려워졌다.

"밥은 먹었냐?"

기나 긴 회랑에서 퀸과 마주친 인우가 먼저 말을 건넸다. 그리고 '아'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 참··· 너 밥 안 먹지."

빌어먹을.

멍텅구리가 된 것만 같다.

인우는 이맛살을 좁히며 한숨을 내뱉었고, 퀸은 그 모습에 웃음 지었다.

퀸은 생각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즉에 본능에 충실할걸, 하고 말이다. 그간 뭐 하러 홀로 그렇게나 가슴앓이를 했던 것일까?

알고 보니 제 주인은 순수했다.

적어도 여자에 대해서만큼은 어설펐다.

그건 꽤나 신선한 매력이었다.

그간 퀸이 알고 있던 정인우는 자비가 없는 냉혈한이었다. 적들을 굴복시키고 농락하는 사신과도 같았다.

그런데 지금 이 모습을 보라.

완벽한 줄로만 알았던 정인우는 사라지고 빈틈이 드러난 정인우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빈틈을 비집을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한명뿐이었다.

그건 바로 퀸, 그녀 자신이었다.

이것은 꽤나 아찔한 쾌감이었다.

이렇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엉덩이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을 정도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을 정도였으니까. 이 남자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요?"

퀸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매단 채 말을 내뱉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그녀는 정말로 행복했다.

당장이라도 녹아 없어질 것처럼 나른했다.

이 남자의 팔을 베고 하루 종일 누워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냐?"

반면, 인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할 뿐이었다.

적어도 그가 보기엔, 그녀가 난데없이 웃고 있는 모습으로 보일 뿐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 뭐······."

뭐가 됐건 분명한 건······.

그날 이후 인우는 퀸을 달리 생각하게 됐다.

항상 보던 얼굴, 목소리, 행동거지 따위의 것들이, 이제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이를테면 그녀가 여자로 보였다.

인우가 말했다.

"돈이 꽤 많이 생겼는데, 필요한 거 없냐?"

"음."

퀸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했다.

그러다가 인우의 손을 불쑥 잡더니 말했다.

"오늘은 이게 필요해요."

그렇게 둘은 손을 잡고 걸었다.

한 걸음을 뗄 때마다, 어색함이 한 움큼씩 사라져 갔다.

회랑을 걷고, 화원을 걷고, 마왕성의 외벽을 따라 걸었다.

아무것도 필요치 않은, 서로의 온기만으로도 충분한 날이었다.

* * *

이건 역대급 대사건이다.

자그마치 49명의 마왕들이 실종됐다.

그야말로 머리카락 한 올조차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것이다.

이에 따라 마계에는 흉흉한 소문이 감돌기 시작했다.

-루시퍼가 몸을 회복하여 복귀했다.

그래야만 현 상황의 아귀가 들어맞는다.

루시퍼는 애초에 천족 출신의 마왕이었다.

때문에 루시퍼는 마왕들을 죽이며 경험치를 획득할 수도 있었고, 이에 따라 모든 마왕들을 말살할 거라며 난동을 부렸던 전력이 있었다.

물론 이는 바알에 의해 제압되었지만 말이다.

어찌되었건 현 상황은 루시퍼가 등장하지 않고서야 벌어질 리 없었다.

물론, 정인우라는 가능성도 존재하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 정인우의 무력은 49명의 마왕들과 홀로 대적할 정도로 강력하지 않았다.

아니, 어림없을 정도다.

때문에 정인우는 아예 입방아에 오르지도 않았다.

루시퍼정도는 되어야 단신으로 49명의 마왕들을 상대할 수 있을 테니까.

이에 입각해 보자면,

하위 순위에 머무르고 있는 49명의 마왕들.

녀석들은 필시 죽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도 바로 루시퍼의 손에 의해서 말이다.

서열전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이즈음 마왕들은 바알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그들은 이번에도 바알이 나서줄 것이라 여겼으니까.

한데 바알은 침묵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서열전을 하루 앞둔 날이 되었다.

* * *

벨리알이 단탈리안을 찾아왔다.

예전 그레모리와의 내기 이후, 오랜만에 뭉친 그들이었다.

물론 이제 그레모리는 없었다.

그녀와는 이제 척을 졌다고 해도 충분할 정도로 관계가 좋지 않았으니까.

벨리알이 말했다.

"그레모리. 그년이 요즘 잠잠하단 말이야."

"모르겠다. 그 영악한 년. 이제 신경 쓰지 않을 참이다."

"하긴. 엮여서 좋을 게 없지."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그때에 내기에서 졌다. 이로 인해 마왕성의 최상급 아이템들을 그레모리에게 빼앗겼다.

"그레모리는 아마 오래전부터 수정구를 통해 정인우를 지켜봐 왔던 거겠지."

"그래.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돼. 한데, 도대체 어떻게 정인우에 대해서 안 거지?"

이건 여전한 의문이었다.

인간계를 노리던 몰가스조차도 훗날이 되어서야 정인우와 트러블이 생겼을 정도였다.

인간계와 마계의 간극은 멀다.

그런데 그레모리는 애초에 어떻게 정인우를 알고 있었던 걸까?

인간의 숫자는 엄청나게 많다. 마계의 마족들만큼이나 말이다.

그런데 그 많은 인간들 중에 정인우 한 명을 지켜보았다고?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애초에 마왕들은 인간계에는 관심조차 없다.

특히나 그레모리처럼 상위 서열의 마왕들은 더더욱 그랬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말이 안 된다.

"그레모리는 정인우를 어떻게 알게 된 걸까? 짐작이 안 된단 말이지."

두 마왕은 직감했다.

이 의문이 해결되는 순간, 엄청난 비밀이 풀릴 것만 같은, 그러한 직감을 했다.

* * *

18개의 광탄을 터뜨렸고 마왕들을 골로 보냈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기 위해 모조리 터뜨린 거였다.

전리품조차 찾을 수 없었을 것이고, 마왕들은 그야말로 머리카락 한 올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하다못해 18개의 마왕성 징표도 챙기지 않았다.

챙겨 봐야 판매를 할 수도 없었다.

그것을 팔게 되면, 인우 본인이 실종된 마왕들을 죽인 범죄자라고 광고하는 꼴이었으니까.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이를 통해 엄청난 레벨 업을 했으니 그걸로 됐다.

게다가, 그러고도 아직 일이의 아공간에는 마왕이 31명이나 남아 있었다.

놈들이 굶고 굶어 힘이 빠질 대로 빠지면, 그때가 놈들의 제삿날이었다.

마계의 마왕들은 상상이나 해 봤을까?

정인우가 49명의 마왕들과 홀로 대적하여 승리했다는 것을?

아마 모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잠잠한 것일 테고.

심지어 마왕들은 이번 사건의 범인을 루시퍼라 생각하고 있었다.

덕분에 인우는 조용하게 서열전이 열리는 곳으로 향할 수 있었다.

마계에서 역대급 범죄를 일으킨, 49마왕 몰살의 주인공, 정인우라는 최대의 범죄자는 보무도 당당하게 서열전이 열리는 '특별 게이트'로 향했다.

* * *

서열전이 열리는 곳은 마계의 신전도, 궁전도, 광장도 아닌 하나의 게이트였다.

마계 서열 1위인 바알의 영토 내에 설치된 특별 게이트.

이 내부에서 서열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또 다른 차원이나 마찬가지인 이 특별 게이트에서 벌어지는 서열전에 120명의 마왕이 참가했다.

49명의 마왕이 실종되었음에도 꽤나 많은 숫자가 참여한 것이다.

참여율이 저조할 때는 100명도 채 안될 때도 있었기에 이는 제법 이례적이었다.

물론 이렇게 참여율이 좋을 만한 이유가 존재했다.

오늘, 마왕들의 모든 귀추는 새로운 마왕 정인우에게 몰려 있었으니까.

마왕 서열 꼴찌인 정인우는 과연 오늘의 서열전에 참여할까?

참여한다면 그는 과연 어느 정도의 전투력을 보여 줄까?

이곳에 모인 마왕들은 그것이 궁금했다.

서열전을 통해 마왕들이 겨루게 되면, 다른 마왕들은 그것을 참관한다.

때문에 전투를 치르는 마왕의 능력과 전투력 따위의 정보가 공개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무분별한 서열전은 도리어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그만큼 정보가 노출되는 거였으니까.

어찌 되었건, 오늘 정인우가 등장한다면 놈은 필시 누군가를 지목할 것이다.

이를 통해 정인우의 전투력과 정보는 노출될 것이다.

마왕들은 서열전을 맞이하여 거하게 차려진 음식들을 집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 서열전에도 바알은 안 왔네."

"바알이 서열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도 벌써 50년째다. 올 리가 있겠냐? 바알은 명백한 생사전 대상자인데도 전혀 상관조차 안하고 있어. 강자의 여유인 거지. 걸어볼 테면 걸어보라 이런 거지."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 나누길 잠시.

게이트가 열리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계 서열 255위! 정인우 마왕 전하 입장하십니다!

그 즉시 모든 마왕들의 눈동자가 게이트 입구를 향했다.

검정색 코트를 입고 드래곤 본 대검을 어깨에 걸친 남자.

저 인간이 바로 정인우였다.

예상대로 서열전에 참여한 것이다.

정인우는 마족 집사와 뱀파이어 퀸을 양쪽에 대동한 채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120개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은 채 일말의 주눅도 들지 않았다.

도리어 정인우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보스룸이 따로 없네.'

이내 인우는 중앙 무대를 가로질러 음식들이 차려져 있는 거대한 식탁을 향했다.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은 인우는 다리를 꼬고 팔짱을 꼈다.

여전히 뒷통수와 옆얼굴, 그리고 앞 얼굴까지 따가울 정도였다.

모든 시선들이 쏠려 있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생각했던 것보다는 분위기가 좋았다.

이건 마치 파티장의 분위기 같았다.

만약 중앙에 1:1무대만 없었더라면 연회장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때, 다시금 게이트가 열렸다.

-마계 서열 56위! 그레모리 마왕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장내가 시끌시끌해졌다.

56위 그레모리.

그녀는 상위권에 순위를 올리고 있는 거물급 마왕이었다.

1위부터 72위까지는 마계의 주축이라 할 수 있는 최상위급 마왕이라 불리는 것이다.

이들은 바알이 그렇듯 서열전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

또한 이들의 순위는 고정적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강력했다.

때문에 이러한 일반적인 서열전에는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놀랍다.

그레모리의 등장이라니.

도대체 그녀는 무슨 변덕일까?

지난 수년간 등장하지 않았었기에 꽤나 의외였다.

애초에 그녀가 등장한다고 해도 지목할 정도의 강단과 무력을 지닌 마왕은 이곳에 없었다.

때문에 다른 목적 때문에 이곳으로 왔다고 보는 게 합당했다.

그렇다면 그 다른 목적이 무얼까?

모든 마왕들은 그레모리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만 바라보고 있었고, 이내 그녀의 시선은 서편의 식탁에 앉아 있는 정인우에게 향했다.

또각- 또각-

그녀가 그를 향해 걸어 나갔다.

순간 인우도 뭔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즉시 인우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저년은!"

분명 그 시녀다.

자신을 모리라고 소개했던, 정체를 알 수 없던 그 시녀.

그 여자가 자신을 또렷이 직시하며 걸어오고 있었다.

척.

어느덧 그레모리는 인우가 앉아 있는 식탁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곤 양손으로 턱을 괸 채 인우를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해맑은 웃음을 지으면서.

그러자 모든 마왕들이 영문을 몰라 하고 있었다.

수년 만에 등장한 그레모리가 정인우를 바라보면서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짓고 있으니, 이해가 되지 않는 거였다.

-마기광탄이라니. 정말로 인상적이었어. 정식으로 인사할게. 나는 그레모리, 오랫동안 당신을 지켜봐 왔어.

그레모리는 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인우에게 뜻을 전하는 마법을 펼쳤다.

"······."

인우는 침묵했다.

그녀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듯했다.

인우가 저지른 이번 일에 대해서 말이다.

하긴, 애초에 정보를 제공했던 것도 그녀다.

그렇다면, 저것을 가지고 협박이라도 할 참인가?

인우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레모리를 바라보았다.

도무지 저 여자의 목적을 모르겠다.

그리고 그즈음.

다시금 게이트가 열렸다.

-마, 마, 마계 서열 1위! 바, 바알 마왕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뭐!?"

순간 장내가 폭탄이라도 맞은 듯 커다란 혼란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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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화 서열전 (2)

바알의 등장으로 인해 장내가 침묵으로 점철됐다.

그는 특별 게이트에 모여 있는 마왕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러다 서편에 시선을 고정했고, 이내 그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터벅- 터벅-

그가 향하는 곳은 정인우가 앉아 있는 곳이었다.

'저 녀석이, 바알······.'

인우는 알 수 있었다.

이번엔 진짜다.

결단코 분신이 아니었다.

바알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무(無)였다. 그 무엇도 없었다.

공허했으며, 칠흑이었다.

한데 그것이 숨 막혔다.

그 무엇도 없는 바알은, 그 무엇이라도 집어삼킬 수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

"······."

여전히 바알은 뒷짐을 진 채 느린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척.

어느덧 바알이 인우의 앞에 섰다.

"나는 오늘부터 네가 누구인지 알아보려 한다."

"뭔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

"······."

바알은 공허한 눈동자로 인우의 눈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걸음을 돌려 다른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고저 없는 음성으로 좌중을 향해 한마디를 내뱉었다.

"뭣들 하나? 너희들의 재롱을 보러 왔다. 언제까지 나를 기다리게 할 참이지?"

바알은 지금 마왕들의 서열전을 두고 '재롱'에 비유했다.

그럼에도 다른 마왕들은 싫은 표정 하나 짓지 못하고 있었다.

저 광오하기 그지없는 마왕은, 이곳에 있는 모두가 덤벼들어도 어찌할 수 없는 마계 서열 1위였으니까.

* * *

164위 레갈과 150위 라지뉴는 저편에 앉아 있는 정인우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레갈이 말했다.

"최하위권부터 시작할 테니 정인우가 스타트를 끊겠네."

"놈이 누굴 지목할 것 같나?"

"글쎄. 끽해봐야 180위권 내의 마왕들에게 덤벼들지 않겠어?"

순서는 이곳에 모인 마왕들 중, 가장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마왕부터 선택권을 지닌 채 시작된다.

그 최하위권 마왕은 바로 정인우였다.

"저놈 저거 몰가스와 헤쉬테를 박살낸 뒤 기세가 등등해졌단 말이지."

"그래봐야 우물 안 개구리인 거야. 차라리 놈이 나를 지목해 준다면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을 텐데."

150위의 라지뉴가 그렇게 말하며 무대 위로 올라서는 정인우를 노려보았다.

몰가스나 헤쉬테라고 해 봐야 각각 255위 190위의 마왕이었다. 하위중의 하위 마왕들인 것이다.

그러한 마왕들을 잡았다고 해 봐야 전혀 위협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랬기에 라지뉴는 끝끝내 정인우를 노려보았다.

자신의 눈빛을 보고 녀석이 지목해 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 * *

무대의 중앙으로 올라선 인우가 좌증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계 재롱잔치 1번 타자 정인우다."

순간 장내가 찬물을 끼얹은 듯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정인우는 마계의 서열전을 비꼬고 있었으니까.

바알이 '재롱'이라 비유했고, 정인우는 그것을 굳이 끄집어낸 것이었다.

또한 놈은 놀랍게도······.

"······."

바알을 또렷이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저건 명백한 도발이었다.

그즈음 되자 마왕들은 힐끔거리며 바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바알은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정인우가 바알을 향해 말했다.

"내 재롱 한번 받아 보지 그래?"

순간 마왕들은 어찌나 놀랐는지 비명과 같은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저, 저 미친 새끼!"

"제정신인 거야!?"

"저놈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

정인우는 지금 바알에게 서열전을 신청하고 있었다.

진정 돌아버린 것인가?

그때, 바알이 정인우를 바라보았고 인우는 즉시 대검을 뽑으며 말했다.

"올라와."

함께 왔던 에노느나 퀸은 인우의 돌발행동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반면, 그레모리는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패배를 감안하고 한 행동이겠지.'

승리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정인우는 바알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서열전의 룰을 이용하여 바알의 무력을 체험해 보기 위함일 테지.

서열전은 하위 마왕이 상위 서열의 마왕에게 대결을 신청할 수 있다.

그리고, 대결이 진행되면 어느 한 마왕이 패배를 인정할 때까지 결투가 지속된다.

그렇다.

패배를 시인하는 '기권'이라는 안전장치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정인우는 그것을 이용하여 바알의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보려는 것일 테다.

하긴. 이런 자리가 아니라면 언제 바알의 전투력을 안전하게(?) 맛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서열 255위인 최하위권 마왕이 1위인 최상위권 마왕에게 대결을 신청하다니.

역시나 남다른 강심장을 지녔다.

바알은 어떻게 대처할까?

이윽고 모든 이들의 시선이 바알에게 향했다.

뜻밖으로, 그는 웃고 있었다.

인우는 그러한 바알의 눈동자를 직시했다.

바알 또한 정인우를 마주 바라보았다.

그리고 둘의 눈빛이 허공에 마주친 그때.

콰과과과과.

땅이 흔들리며 무형의 기운이 인우를 덮쳤다.

그러고는 밑바닥부터 알 수 없는 기분이 인우의 발끝을 잠식해 갔다.

인우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 어떤 대응조차 할 수 없었다.

바알과 눈이 마주친 순간 느껴지던 것은 죽음, 다시 말해 사(死)의 기운이었다.

이제껏 자신이 대적한 그 어떤 상대와도 비교할 수 없는 그 기운에 인우가 밀린 것이다.

인우로서는 처음 접하는 기운이었다.

밀리지 않기 위해 어금니를 악물었다.

그 순간.

울컥.

피가 역류했다.

그제야 엄청난 기세로 다가오던 그것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불과 1초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으나, 인우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또한, 그 기세는 온전히 인우만을 향해 쏘아져 왔던 것 같다.

다른 이들은 멀쩡해 보였으니까.

이윽고 바알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답해 봐라."

"······!"

"네놈이 나를 상대로 뭘 할 수 있는지."

뭘 할 수 있냐고?

인우는 입가에 흐르는 핏물을 닦아 내며 후들거리는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크아아아아압!"

순간 인우는 불식간에 포효했다. 그리곤 대검관통의 추진력과 함께 바알이 있는 곳을 향했다.

후웅!

인우의 신형이 단숨에 쏘아져 나갔다.

그때, 바알의 육체에서 수십 자루의 수리검이 튀어나왔다.

철걱!

튀어나온 수리검들은 두둥실 떠오르더니 정인우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저것은 일전에 바알의 분신이 사용했던 그 수리검이었다.

하나, 그 강력한 수리검이 수십 자루라니.

저건 달리 말해 수십 개의 광폭 어검이다.

쐐애애애애앵!

"으라아!"

인우는 그 공격에 주눅 들지 않았다.

도리어 육체강화와 쉴드를 시전함과 동시에 수리검을 향해 뛰어들었다.

파바바바바밧!

순간 수리검이 인우의 몸을 낭자했다.

"크으!"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눈을 똑바로 뜬 채,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바알을 쏘아보았다.

타다다다다닥!

달려 나간다.

그와 동시에 체력과 마력이 차올랐다.

하지만 차오르는 체력보다 닳아 가는 체력이 더 컸다.

이 상태라면 얼마 버티지 못할 게 빤했다.

인우는 볼 것도 없이 광폭 무형검을 날렸다.

쩌엉!!

카가가가가가각!!

하나, 무형검은 바알의 근처에도 닿지 못했다.

수십 자루의 수리검에 가로막힌 것이다.

날파리 떼가 따로 없다.

인우는 스윙으로 수리검을 쳐내며 끝끝내 달렸다.

그러면서 레전드 마스터의 힐까지 사용했다.

이제 열 걸음. 그 거리만 좁히면 바알의 지척에 닿을 수 있다.

놈의 머리통에 내려찍기 한 방이라도 꽂고 말 것이다!

타다다다닥!

쩌엉!

그때 다시 바알의 기세가 인우의 전신을 덮쳤다.

"크윽!"

첫 번째 기세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무릎이 꿇릴 정도로.

철푸덕.

인우는 주저앉으면서도 대검을 놓지 않았다.

오징어처럼 풀어지려는 손아귀에 간신히 힘을 주었다.

"으으으!"

대결은 이미 끝났다고 보는 게 맞았다.

인우는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일까? 바알은 미련 없이 수리검을 거뒀다.

"너는 내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정인우."

촤르르르르륵!

수십 자루의 수리검이 단숨에 바알의 몸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인우의 눈이 빛났다.

쐐액-!

모든 수리검이 바알의 육체 내부로 스며드는 순간, 스며들지 않은 하나의 수리검이 보였다.

쐐애애액-!

그 수리검이 바알의 얼굴을 스쳤다.

쩌억-!

바알의 뺨이 일(一)자로 그어지며 핏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바알은 자신의 뺨을 훑고 간 수리검을 바라보며 손을 들어 올려 피를 닦았다.

그가 피식 웃었다.

"수리검이라······."

"기권."

인우는 거친 숨을 토해 내며 항복을 선언했다.

촤르르르륵!

그 순간, 바알의 뺨을 훑고 지나갔던 수리검이 인우의 손목으로 빨려 들어왔다.

장내가 침묵으로 점철됐다.

설마하니 마왕들은 상상조차 못했던 것이다.

정인우가, 서열 1위인 바알에게 미약하나마 공격을 성공시킬 줄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쏟아지는 맹공에도 굴하지 않고 나아가는 걸음.

기어코 바알의 피를 보고야 마는 끈기.

정인우는 지독한 독종이었다.

모든 마왕들이 혀를 내두르고 있던 그때.

인우는 꿇렸던 무릎을 간신히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좌중을 쭈욱 바라보았다.

이대론 울화통이 터져서 안 되겠다.

화를 풀어야 한다.

"아까, 내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겠다고 말한 녀석이 있지 않았냐? 나와라."

"······."

그 말에 라지뉴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그는 분명 이런 말을 했었다.

정인우가 자신을 지목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런 생각은 이미 지워진 지 오래였다.

바알과 정인우의 대결을 통해 직접 목격한 인우의 전투력은, 상상 이상이었으니까.

사용했던 스킬들의 레벨이나 바알의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강인함까지.

저 정도라면 자신이 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인지 라지뉴가 몸을 굳힌 채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넌 이미 한 번의 서열전을 치렀다. 너의 차례는 끝났어."

맞는 말이다.

서열전의 무대가 정인우만을 위한 것도 아닌데, 연속으로 대결을 하는 게 가능할 리 없다.

그런데 그때.

뜻밖으로 바알이 라지뉴의 외침에 답했다.

"나와의 대결을 두고 정인우가 서열전을 치렀다고 생각하나?"

그 물음에 라지뉴는 입을 다물었다.

바알이 직접 말을 할 줄은 몰랐던 거다.

"나는 놈의 서열전 신청에 동의를 표한 적이 없다. 놈이 일방적으로 나를 공격했을 뿐. 하니, 진행하도록."

라지뉴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이어 라지뉴는 군중을 의식하며 말했다.

"정인우는 이미 지쳐 있다. 나는 150위의 마왕으로서, 지친 상대와 대결을 펼칠 수 없다."

이 정도면 제법 잘 포장한 것 같다.

하지만.

"이미 회복한 것 같군."

바알은 황금색 구슬을 삼키고 있는 정인우를 가리키며 말하고 있었다.

"자, 그럼. 진행하도록."

* * *

대결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라지뉴는 150위답게 꽤나 강했던 것이다.

그러나.

끝내 라지뉴는 개처럼 얻어터지고 있었다.

퍽! 퍽! 퍽!

700레벨이 되며 비정상적으로 오른 스텟들.

이에 따른 자유자재의 스킬 활용.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는 깡따구까지.

"기, 기권이다!"

라지뉴는 피떡이 된 채 끝내 항복을 선언했다.

인우는 괜히 기분이 더러워져 그런 라지뉴의 뺨따귀를 한 대 갈겼다.

짜악!

순간 라지뉴의 눈이 크게 뜨였다.

라지뉴는 빨갛게 달아오른 뺨을 양손으로 어루만지며 인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눈동자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항복 선언 했는데 왜 때려!'

알게 뭐람.

인우는 라지뉴의 시선을 무시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서열 255위 정인우 마왕 전하가 서열 150위 라지뉴 마왕 전하에게서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로써 정인우 마왕 전하는 150위로 서열이 상승되었고, 라지뉴 전하는 151위로 서열이 내려갔습니다.

정인우가 본래 라지뉴의 자리를 꿰찼다.

이에 따라 라지뉴의 서열은 1위 내려갔고, 자연스럽게 라지뉴의 아래 순위였던 마왕들도 순위가 1개씩 내려갔다.

예를 들어보자면, 정인우가 올라섬으로 인해서 라지뉴부터 기존 254위까지 1순위씩 변동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서열이 변동됨과 동시에 인우가 지닌 마왕의 권능이 추가되었다.

[새로운 마왕의 권능이 추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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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화 실마리 (1)

서열전이 끝났다.

정인우에겐 선택권이 있었다.

기존 마왕성에서 라지뉴의 마왕성으로 거처를 옮기거나, 그러지 않거나.

그리고 집사를 기존 에노느에서 라지뉴의 집사로 교체하거나, 그러지 않거나.

이에 인우는 그 어떤 것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물론 그것은 겉만 바꾸지 않았을 뿐이지 속은 달랐다.

뭐가 됐건 현재 인우가 지닌 마왕성의 징표는 NO.150로 바뀐 상태였으니까.

이건 여담이지만, 집사를 교체하지 않자 에노느가 뛸 듯이 기뻐했다.

사실 집사는 마왕에게 있어서 소모품이나 다름없다. 한데 인우는 에노느를 버린다거나 하지 않았다.

만일 인우가 그녀를 버리고 새로운 집사를 택했다면? 에노느는 자동으로 라지뉴에게 귀속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라지뉴가 에노느를 곱게 생각할 리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순위가 떨어져서 기분이 최악일 텐데, 덤벙대는 에노느에게 온갖 구박을 놓았겠지.

이 때문에 에노느가 기뻐할 수밖에 없는 거였다.

서열전은 마왕들에겐 축제에 가깝지만, 사용인들에게는 불안과 초조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와아아아아! 내가 150위 마왕 전하의 집사라니!"

그렇게 좋을까?

어째 인우보다 더 좋아한다.

인우는 방방 날뛰는 에노느를 가볍게 무시하며 마왕의 권능을 훑어보고 있었다.

<마왕의 권능>

1. [마기방출 - 지정한 차원에 마기를 방출합니다.]

2. [헬게이트 생성 - 지정한 차원과 공간에 헬게이트를 생성합니다.]

3. [수정구 소환 - 마계를 제외한 하위 행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수정구를 소환합니다.]

4. [차원이동게이트 생성 - 차원이동게이트를 생성합니다. 그 어떤 패널티 없이 차원이동이 가능합니다.]

5. [대상 강제 이동 - 지정된 10레벨 이하의 생명체를, 하위 차원 중 한곳으로 강제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서열이 오르며 새로 생성된 권능은 '대상 강제 이동'이었다.

그리고 인우는 이것을 확인하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이거···?'

정인우는 스무 살 백수 시절, 영문도 모른 채 프로킨이라는 행성에 소환되었다.

그리고 개처럼 굴렀다.

물론 지금에 와선 그때가 후회되지 않는다.

다만, 그 당시에는 정말 수백 수천의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생존했었다.

이가 갈릴 정도로.

그 당시 인우는 아무것도 없는 1레벨 상태로 소환되었던 거니까.

그리고 이걸 보니 확실해졌다.

새로운 권능의 핵심 키워드는 두 가지.

1. 10레벨 이하의 생명체.

2. 하위 차원 중 한곳.

이건 뭐 볼 것도 없다.

이 마왕의 권능이 정인우를 프로킨으로 강제 이동 시켰던, 바로 그것이었다.

'어떤 새끼지?'

그동안 인우는 그때의 일을 '영문도 모른 채'로 규정짓고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 아니다.

적어도, 기존 1위~150위의 마왕 중에 자신을 프로킨으로 소환시켰던 녀석이 존재하는 것이다.

'오냐. 면상 한번 보자.'

인우는 궁금했다.

솔직히 악감정은 없었다.

따지고 보면 그로 인해 인우는 정말로 큰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으니까.

사실 그때에 일이 없었다면, 인우는 지구의 백수에서, 평범한 가장이 되었을 수도 있는 거였다.

물론 누군가는 평범함을 꿈꾸겠지만, 인우는 지금이 더 만족스러운 삶이라 생각했다.

공교롭게도 자신을 소환시킨 존재는,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준 장본인이나 다름없는 거였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로 힘들었다.

심지어 자살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긴 뭐, 정인우의 인생은 지구에서부터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부모도 없이 고아원에서 자라왔던 그다. 물론 여동생인 정지은 또한 마찬가지이겠지만.

어쨌든, 인우는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부모가 그립지 않았다.

어릴 때야 뭣 모를 때니 당연한 거다.

하지만 크고 나니 그랬다.

얼굴도 모르는 부모를 그리워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 거다.

실제로 인우는 부모라는 존재에 대해 0.1%의 그리움도,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인우는 아직도 기억한다.

고아원에서의 유년 시절.

늘 수녀님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는 어디 있느냐고.

그때 수녀는 늘 말을 얼버무리곤 했다.

부모는 아마 죽은 거겠지.

돌이켜보니 참 지랄 같은 과거사다.

인우는 머리를 헝클이며 금세 기억을 날려 버렸다.

그리고 다시 현실의 문제를 생각했다.

우다다다다닥!

인우는 여전히 날뛰고 있는 에노느를 불렀다.

"에노느."

"네! 마왕 전하!"

"대상 강제 이동이 150위권부터 사용할 수 있는 권능이 맞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그럼, 31년 전, 1~150위까지의 마왕들의 목록을 가지고 와."

"아! 어렵지 않아요! 알겠습니다!"

정확히 31년 전이다.

인우가 프로킨으로 강제 소환되었던 날은.

그때의 150위권 마왕들 중 한 녀석이, 자신을 프로킨으로 강제소환 시킨 거다.

그 녀석을 찾을 생각이었다.

찾아서 무엇 할 생각이냐 묻는다면, 딱히 뭘 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궁금했다.

자신도 모르게 일어났던 그 일을 일으킨 장본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 * *

루시 퀸은 인우에게 1억 마코를 받았다.

이건 마계의 화폐라고 했는데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녔는지는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묵혀 뒀다 똥 된다.

퀸은 마코도 사용하고 마계도 둘러볼 겸 마왕성을 나섰다.

그리하여 드넓은 마계의 한 도시에 들어섰다.

도시의 풍경은 지구보다는 프로킨과 흡사했다.

건물의 구조 자체가 직각의 네모가 아닌, 원형도 있었고 삼각형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도심에는 수많은 마족들이 보였다.

뿐만 아니라 이성을 지닌 괴수들도 종종 보였다.

퀸은 그러한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움직이고, 대화하고, 싸우고, 인간계와 다를 바 없는 군상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간혹 퀸을 힐끔대며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대부분 끈적했다.

하긴, 퀸의 미모는 그 어느 차원에서도 통할 정도로 아름다웠으니 당연한 시선이었다.

게다가 상체에 딱 달라붙는 붉은색 크롭티는 퀸의 쭉 뻗은 몸매를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으니, 사내라면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거다.

하지만 퀸은 그러한 시선에도 큰 신경을 두지 않았다.

간혹 윙크를 하는 마족들도 보였는데, 그럴 때마다 퀸은 고개를 내젓기 일쑤였다.

이윽고 퀸은 허리춤에 매달아 두었던 물통을 꺼냈다.

-쪼오오오옵.

한가득 들어 있는 혈액을, 빨대를 이용해 빨았다.

일전에 인우를 통해 마왕의 피맛을 봤던 그녀다.

그랬기 때문에 퀸은 지금 빨고 있는 드래곤의 피 맛이 퍽퍽하고 맛이 없었다.

하지만 마셨다.

그리고 그즈음.

퀸이 피를 거의 다 마셔 갈 때 즈음.

저 앞에 위치해 있는 술집의 테라스에서 소동이 벌어진 게 보였다.

"이놈! 뒤지고 싶은 거냐!?"

"마, 마왕 전하! 고정하시옵소서! 전하께서는 이미 오, 오 천만 마코를 빚지셨습니다···!"

"오호? 네가 그래서 지금 나에게 말대답을 하는 것이냐? 술을 내오라면 냉큼 내올 것이지! 감히 내 앞에서 말대답을 해!!"

얼큰하게 취한 덩치 큰 남자 마족이 깽판을 놓고 있었다.

상황을 보건대, 저 남자는 마왕인 듯싶었다.

술집의 사장으로 보이는 마족은 마왕 앞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하긴, 마왕이라 하면 마계에서는 으뜸의 권력을 지닌 이들이다.

그러한 마왕이 저렇게 대놓고 깽판을 치면 달리 방법이 없는 거다.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서 저 상황을 보고 마족들이 쑥덕거리는 게 들려왔다.

"어휴. 저 한심한 마왕. 이번에 순위도 254에서 255로 떨어졌다던데."

"맨날 술과 마약에 취해 사는 놈이 마왕이라니. 제롬 사장님이 고생이 많네. 저런 개망나니한테 된통 걸려서. 쯔쯧."

"마왕씩이나 된 작자가 허구한 날 와서 외상이나 놓고."

"그러게나 말이야. 그나저나, 메이슨 마왕은 이제 255위니까, 일반 마족들한테도 서열전에 걸릴 조건이 되는 거 아닌가?"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그리 말했다.

이번에 기존 255위였던 정인우가 승급하면서 그 아래 있던 마왕들은 모조리 1개씩 순위가 내려갔다.

이에 따라 저 메이슨이라는 마왕은 254에서 255위로, 최하위권 마왕이 된 것이었다.

마계는 어디까지나 약육강식의 세계.

그렇기 때문에 강자라면 누구든 마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255위는, 유일하게 일반 마족들에게도 서열전 신청 대상자에 포함되는 것이다.

즉, 이곳에 모인 이들 중, 자신 있는 이가 있다면 메이슨에게 대결을 신청할 수 있는 거였다.

무슨 마왕의 권위가 이따위냐 물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255위에게 만큼은 권위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긴, 이러한 루트라도 있어야 기존 마족들도 마왕이 될 수 있는 꿈을 꿀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어제까지만 해도 메이슨은 254위라서 건드릴 수 없었지만, 이제 255위다. 이봐 핸슨. 자네가 한 번 나서봐."

누군가가 묻자, 핸슨이라는 마족은 경기를 일으켰다.

"어이구! 어디 큰일 날 소릴 해? 내가 제아무리 뒷골목을 주름잡고 있다고 해도 메이슨은 마왕이야. 자네는 지금 나더러 한평생 반병신으로 살라는 말인가? 신청했다가 호되게 당할 게 빤하다고. 메이슨이 개망나니인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마왕과 마족과의 간극이 그리 쉽게 메꿔질 리 없었다.

때문에 그 어떤 마족도 깽판을 놓는 메이슨을 바라보기만 할 뿐, 감히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짜악!

그러던 중, 메이슨이 솥뚜껑 같은 손바닥으로 술집 사장 제롬의 뺨따귀를 갈겼다.

"이노옴! 내 오늘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흐으윽! 마음대로 하시지요!!"

제롬은 악에 받친 듯 소리치고 있었다.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똑같다.

마왕 메이슨이 항상 가게에서 깽판을 놓았기에 손님의 발길은 끊긴지 오래였다.

하긴,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개망나니 한 놈이 떡 하니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어떤 손님이 출입을 하겠는가?

더군다나, 메이슨은 술값도 계산하지 않고 외상을 지는 녀석이었다.

때문에 사장 제롬은 적자의 적자를 기록하다 이제 심지어 빚쟁이가 되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대들어 보았던 거다.

이를 악물고, 죽을 각오로 말이다.

츠르렁-!

어느덧, 메이슨의 허리춤에서 서슬 퍼런 한 자루의 칼이 뽑혔다.

"오냐, 죽여 주마!"

그리고 그 참혹한 광경에 모여 있던 모든 이들이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에구구구구!"

"마, 마신은 뭐하나 몰라! 이, 이게 말이나 되나!!"

"제롬 사장 불쌍해서 어떻게! 누가 좀 말려 봐요!!"

그리고 그러한 목소리 사이에서, 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아무나 저 마왕에게 대결을 신청할 수 있다는 거죠?"

지금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침착한 목소리였다.

이 때문인지 모여 있는 마족들의 시선이 단숨에 퀸을 향했다.

퀸은 그러한 시선을 가볍게 무시하며 바닥에 물통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새빨간 혀를 날름거렸다.

드래곤의 피는 물린다.

그리고 그녀의 눈앞에, 마셔도 법적으로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혈액이 떡 하니 보였다.

더군다나 메이슨을 잡고 마왕이 된다면 인우에게 보다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녀는 인우가 했던 말을 떠올려 보았다,

-앞으로는 참지 마.

망설일 필요가 있을까?

퀸은 칼을 치켜든 메이슨을 향해 피의 구속을 발휘했다.

쩌엉-!

순간 메이슨은 자신을 구속하는 힘을 느끼며 버벅댔다.

그렇잖아도 술에 취해서인지 몸이 휘청일 정도였다.

이내 메이슨은 자신을 방해한 녀석을 찾기 위해 눈을 치켜떴다.

터벅- 터벅-

그러자 퀸은 그의 시선을 그대로 받아내며 천천히 걸어왔다.

이윽고 퀸은 보랏빛이 감도는 긴 생머리를 이마위로 쓸어 올리며 차갑게 말했다.

"대결, 신청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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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화 실마리 (2)

상당히 강력한 구속력이다.

메이슨은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을 구속한 붉은 실타래를 끊어 버렸다.

뚜두둑!

무언가가 찢기는 소리와 함께 구속이 끊겼다.

"뱀파이어 퀸인가? 아니, 퀸이 이렇게 강력할 리가···? 네년은 뭐지?"

핏줄 하나하나에 가득히 담겨 있던 알콜이 단숨에 휘발되는 것 같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고 긴장이 바짝 됐다.

반면 퀸의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침착해 보였다.

그녀로서는 상당히 오랜만에 전투를 치른 셈이었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그간 인우가 내어준 드래곤의 혈액과 마왕들의 피까지.

많은 피를 마셨고 엄청난 레벨 업을 했다.

승산이 있다고 여겼기에 덤벼든 것이었다.

이윽고 퀸은 메이슨의 목을 바라보며 혀로 윗입술을 핥았다.

순간 메이슨은 목에서부터 소름이 돋아났다.

저 여자는 자신의 피를 빨 생각인 것 같았다.

아니, 감히 마왕의 피를 취하려 들어?

일개 뱀파이어 퀸 따위가!

"이녀언!! 무슨 방법으로 날 구속한지는 모르겠다만, 내 너를 무참히 박살내고 마창굴의 창마로 팔아 넣을 것이다!"

끔찍한 폭언이다.

그럼에도 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그녀는 그간 정인우의 전투를 지켜보며 상대의 도발에 대처하는 법을 자연스레 터득한 상태였다.

흥분은 움직임을 과격하게 만들고, 그 속에서 분명한 허점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때문에 어느 때고 침착해야 한다.

마창굴이니, 창마니. 그러한 악담은 우습게 씹어 삼킬 줄 알이야 한다.

나아가, 상대를 도발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주인인 정인우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쐐애애애애액-!

볼 것도 없이 선빵을 갈겼을 거다.

"흐엇!"

메이슨은 난데없이 솟구쳐오는 붉은 실타래에 종아리를 베었다.

살덩이가 두부처럼 썰리며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그러자 붉은 실타래는 바닥에 떨어진 핏물을 모조리 흡수했다.

촤아아아아!

이어 실타래가 퀸의 손톱으로 빨려 들어왔다.

곧바로 퀸은 손가락을 빨았다.

받아 온 놈의 혈액이 손톱 안에 깃든 실타래에서 듬뿍 빨렸다.

"하아."

그래, 이 맛이다.

드래곤의 혈액은 이제 텁텁하고 맛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다.

마왕의 피는 그 정도로 달콤했다.

메이슨은 자신의 피를 빨며 홍조가 떠오른 퀸의 얼굴을 보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저 깊은 곳에서부터 울화통이 치밀기 시작했다.

"이녀어어언!!!"

타다다다닥!

메이슨은 곧바로 한손 검을 치켜들고 퀸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들소 한 마리가 돌진해 오는 것 같았다.

3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육체를 지닌 메이슨.

놈의 앞에 있는 퀸은 끽 해야 165cm의 키를 가졌다.

그 차이만 해도 얼추 2배다.

그래서였을까?

이곳에 모여 있는 마족들은 저마다 눈을 질끈 감으며 퀸의 명복을 빌었다.

그녀는 그만큼 연약해 보였던 것이다.

쐐액-!

카득-!

"으읏!"

메이슨의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되자, 퀸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솟구쳐 오는 녀석의 한손 검을, 붉은 실타래를 겹겹이 쌓아서 막아 냈다.

"으아아아아압!!!"

퀸의 허리만 한 메이슨의 팔뚝 근육이 꿈틀댔다.

메이슨은 치켜든 검을 휘둘러 실타래를 가차 없이 베어 갔다.

까드드드득!

실타래가 찢기며 퀸의 눈동자에 다급함이 깃들었다.

한 번의 공방을 주고받아 보니 이 마왕이 지닌 능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근력'이었다.

그 어떤 속임수나 화려함이 깃든 마법은 없었지만, 태산과 같은 근력을 지닌 마왕이었다.

어느덧 메이슨은 거대한 무릎을 들어 올려 무방비 상태인 퀸의 복부를 올려쳤다.

퍽!

"크읏!"

퀸은 숨이 덜컥 막히는 느낌과 함께 바들바들 떨었다. 그러면서도 퀸은 안간힘을 다해 붉은 실타래로 놈의 공격을 막아 냈다.

까드드드드득!

"죽여 주마!! 빌어먹을 년!!"

메이슨은 여전히 크게 분노한 상태였다. 그러면서도 그의 공격은 허점 없이 집요하게 퀸을 압박하고 있었다. 흥분한 줄로만 알았던 그의 공격은 의외의 촘촘함을 지니고 있었다.

퀸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마왕을 너무 얕봤던 것일까?

퀸은 분명한 승산이 있을 거라 여겼다.

실제로도 그녀가 지닌 육체 능력은 최하위급 마왕과 필적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이제 고작 18살이지 않은가? 인간으로 치면 고등학생 소녀에 불과하다.

반면 메이슨은 어떠한가?

수천 년을 살아오며 산전수전 다 겪어 온 마족이며, 마왕인 것이다.

그 경험의 차이는 결코 낮지 않았다.

그리고 이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 * *

"마왕 전하! 31년 전, 그 당시 1위부터 150위권 마왕들의 목록을 가지고 왔습니다!"

에노느가 숨을 쌕쌕대며 단단히 봉해진 봉투하나를 건네고 있었다.

인우는 봉투를 찢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1위. 바알

.

.

.

150위. 데이븐

인우는 시녀가 내어준 코코아를 홀짝이며 빠르게 목록을 훑었다.

지금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이를 테면, 최상위권이라 칭해지는 1위부터 72위까지는 변동이 아예 없었다.

그 이후부터는 +1, -1 정도의 변동을 보일 뿐이었다.

뭐가 됐건, 이중에 인우를 프로킨으로 보냈던 마왕이 있을 것이다.

"수고했다."

"네에! 저어, 그런데 제 집무실은··· 요?"

"마왕성의 자금을 이용해 알아서 개설해."

기존의 집무실은 몰가스가 창마의 숙소로 만들었다고 들었다.

때문에 전부터 불만이 꽤나 많았던 에노느였다.

돈 아껴 뒀다 어디에 쓰겠는가.

9,000억 마코나 되는 돈을 가지고 있는 인우였기에, 필요한 순간이 오면 아낌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인우는 퀸에게 1억 마코를 주었던 것이다.

마계의 도시나 구경해 보라며 그러한 거금을 준 것이었다.

퀸은 신이 나서 뛰어나갔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걱정됐다.

그녀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으려나?

뭐, 확인해 보면 그만이었다.

인우는 주변 도시를 향해 위저드 아이를 사용했다.

그리고 오래지않아 인우의 눈동자가 분노로 물들기 시작했다.

* * *

퀸은 눈에 띄게 지쳐 있었다.

이대로라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만약 패배한다면?

메이슨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마창굴에 팔아넘긴다 했으며, 그 전에 엄청난 폭력을 휘두를 게 뻔했다.

"으라아아아아!"

"으읏!"

메이슨은 태산과 같은 힘을 내뿜었고, 퀸은 이제 방어와 회피에만 급급했다.

더군다나 지치지 않고 짐승처럼 돌격해 오는 메이슨을 보며 느껴지는 심리적 압박도 대단했다.

그녀에게 전투 경험이 조금만 더 풍부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녀는 어디까지나 정인우가 싸우는 것을 보며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운 것이 고작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애초에 전투를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 이 전투는, 조금 더 정인우와 가까워지고 싶어서, 마왕의 자리에서 그와 함께 하고 싶어서, 그래서 욕심을 부렸던 거다.

하지만 과욕이었던 것일까?

조금 더 멋지게, 그의 옆에 서고 싶었던 것은 정녕 욕심이었던 것일까?

그런데 그때였다.

퀸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

"아······!"

순간 퀸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이건 분명 정인우의 목소리였으니까.

카아아아아앙!

불식간에 메이슨의 공격이 가로막혔고, 퀸의 뒤에 나타난 정인우가 그녀를 확 끌어안아 보호했다.

"흐윽···!"

오만 가지의 감정이 단숨에 퀸의 가슴에 쌓여 버렸다.

그녀는 인우의 품에서 풍겨 오는 코코아 향기에도 눈물이 날 정도로 감정이 격해지고야 말았다.

"후우······."

인우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와 동시에 육체에서 검붉은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쿠오오오오오오오.

그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저, 정인우 마왕 전하다!"

"맙소사! 이번 서열전에서 단숨에 150위까지 올라섰다는 마왕!!"

"저, 저분이··· 인간의 육체로 마왕의 자리까지 올라선··· 그 정인우 마왕 전하란 말이지?"

그제야 메이슨은 무언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감을 느꼈다. 그는 애초에 난봉꾼이나 마찬가지여서 서열전에는 커트라인인 3개월에 한 번씩만 참여하곤 했다.

이번 서열전에는 가지 않았으나, 정인우라는 마왕에 대해선 귀에 딱지가 질 정도로 숱하게 들어왔다.

그런데, 그러한 태풍의 핵 같은 녀석이 왜 뱀파이어 퀸을 감싸고 있는가?

메이슨은 정인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인우의 얼굴에는 그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이윽고 인우는 안쓰럽게 떨고 있는 퀸을 바닥에 앉히고 드래곤 본 대검을 빼들었다.

순간 메이슨은 그 기세에 짓눌려 본능적으로 소리쳤다.

"150위의 마왕이 고작 255위인 나를 핍박하려는 건가?! 서열전이 아닌 자리에서는 생사전이 아니고서야 우리는 서로를 공격할 수 없다. 모르는 건 아닐 텐데?"

그 말에 인우는 고개를 끄덕여 동조를 표했다.

그와 동시에 불식간에 광폭 무형검을 펼쳤다.

쩌어어어엉-!

순간 보이지 않는 칼날이 메이슨을 꿰뚫었다.

"커허헉!!"

메이슨은 한 움큼 피를 토했고, 이를 지켜보던 마족들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인우는 지금 가만히 있지 않은가?

애초에 무형검은 보이지 않았기에 정인우가 공격을 했다고 하기엔 무리로 보였던 것이다.

인우가 말했다.

"알아. 내가 너를 후려치는 순간 범죄가 된다는 것쯤은."

"너, 너 이 자식! 네놈이 방금! 분명 나를 공격했다!"

"무슨 소리야 그게? 난 여기 가만히 서 있을 뿐이라고."

인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주변의 마족들에게 동조를 구했다.

그러자 마족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정인우 마왕 전하는 분명 가만히 계셨어."

"메이슨, 저 마왕··· 혼자 쑈를 하고 있는 거야. 정인우 마왕 전하에게 맞을 것 같으니 원맨쑈를 하고 있는 거라고."

"이이익! 이 멍청한 녀석들아! 너희도 분명 보았질 않느냐! 정인우가 나를 공격했다! 나에게 치명상을 가했··· 크아아아아악!!"

쩌어어어엉!

순간 또 다시 인우의 무형검이 발동됐다.

물론 이번에도 보이지 않았다.

인우는 또 다시 어깨를 으쓱거렸고, 곧바로 이죽댔다.

"배탈이라도 난 거야?"

울컥.

메이슨은 이성의 끈이 끊길 것만 같았다.

정인우의 죄가 성립되기 위해선 확실한 증거, 혹은 확실한 증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그 누구도 자신의 편은 없었다.

절로 이가 갈렸다.

"이 멍청한 놈들!! 똑똑히 보란 말이다! 정인우가 나를 공격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자업자득인 것이다.

평소 행실이 개떡 같은데, 누가 그를 믿어 주겠는가.

그 어떤 누구도 메이슨을 변호하지 않고 있었다.

터벅- 터벅-

그때, 인우가 메이슨의 코앞까지 걸어갔다.

그리곤 대검을 거두고 그 앞에서 걱정이 가득 담긴 어조로 말했다.

"진짜 어디 아픈 거냐?"

그러면서 인우는 손을 들어 올려 메이슨의 이마를 짚으려 했다.

그러자, 메이슨은 흠칫 몸을 떨며 저도 모르게 정인우의 손을 쳐냈다.

터억!

"으아아아아아아악!!"

그러자 정인우가 손을 부여잡고 비명을 내질렀다.

그 모습에 메이슨이 당황했다.

"이, 이 미친 새끼!! 어, 엄살 부리지 마라! 난 그냥!! 그냥······!"

"후! 후!"

인우는 대답 대신 자신의 손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리곤 슬쩍 생체기를 냈다.

순간 인우의 손에서 핏물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에 메이슨은 할 말을 잃었다.

바로 코앞에 있는 메이슨에게는 똑똑히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모여 있던 마족들에게는 아니었다.

그들이 저마다 숙덕거렸다.

"진정 개망나니가 따로 없군. 걱정해 주는 손길을 온 힘을 다해 쳐내다니."

"정인우 마왕 전하께서 얼마나 놀라셨으면 비명을 내질렀겠어."

"그나저나, 많이 다치신 것 같은데··· 저 피 좀 봐······."

그때.

인우가 붉어진 얼굴로 외침을 토해 냈다.

"너 이 개새끼···!!"

인우는 그리 말한 뒤 살벌한 기세로 다시금 대검을 뽑아들었다.

그러자 다급한 메이슨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오, 오바 하지 마라! 이, 이 무슨 개 같은 경우인가!!"

"닥쳐 이 개새끼야!!"

인우는 뱃가죽에 힘을 준 채 꽥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그런 뒤, 무기에 광폭 절대검을 둘렀다.

차라리 죽여 달라고 소리칠 때까지 패 버릴 작정이었다. 감히 퀸을 건드려?

"네놈이 분명 말했을 거다. 서열전이 아닌 자리에서는 생사전이 아니고서야 우리는 서로를 공격할 수 없다고. 한데, 그걸 아는 놈이 나를 공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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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화 루시 퀸, 마왕좌(座)를 향해! (1)

메이슨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인우는 보이지 않는 수단으로 자신을 공격했고, 심지어 자해까지 했다.

이로 인해 정당방위가 성립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 메이슨은 정인우에게 실컷 얻어터져도 어디 가서 하소연조차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터벅- 터벅-

어느덧 정인우가 서서히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메이슨은 정인우의 뒤편에 보이는 뱀파이어 퀸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저 여자가 정인우에게 각별한 존재이리라.

'제기랄!'

애초부터 잘못 건드린 거다.

아니, 건드린 건 사실 그녀다.

자신은 그저 단골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질 않은가? 물론 오늘도 외상을 하며 깽판을 놓긴 했다.

하지만 그건 마왕으로서 당연한 권리다!

그런데 제깟 년이 뭐라고 덤벼든단 말인가?

터벅- 터벅-

어느새 정인우는 메이슨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3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덩치의 메이슨, 그 앞에 선 정인우는 유난히 작아 보였다.

180이 넘는 키였음에도 말이다.

게다가 팔뚝과 다리는 어떠한가?

정인우는 광전사답게 단단한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래봐야 메이슨 앞에서는 어린아이처럼 보일 뿐이었다.

메이슨은 괴력에 특화된 마왕으로서, 이에 맞추어 엄청난 덩치를 가진 것이었다.

즉, 메이슨은 힘 하나는 자신 있었다.

웬만한 녀석들에겐 밀리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근력 하나로 마왕의 자리를 꿰찬 그였다.

'단숨에 힘으로 제압한다면, 어쩌면 승산이···! 게다가 놈은 무슨 자신감인지 무기까지 거둔 상태다!'

메이슨은 코앞에 있는 정인우를 내려다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제아무리 150위권의 마왕이라 해도, 겁도 없이 괴력 특성인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오는 자신감이라니?

'이렇게 된 이상···!'

생각을 마친 메이슨은 불식간에 통나무 같은 팔뚝에 힘을 주었다.

그리곤 인우의 머리통을 움켜쥐기 위해 왼손을 뻗었다.

쐐액-!

허공이 찢기며 강렬한 파공성이 반 박자 늦게 들려왔다. 메이슨의 주먹은 그 정도로 빨랐다.

타닷!

한데, 그 순간.

인우는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뻗쳐 오는 메이슨의 왼 팔목을 잡아챘다.

"어, 어!!"

메이슨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우우우우욱-!

인우는 곧바로 몸을 회전시켰다. 그러자 메이슨은 내뿜었던 힘만큼 인우 쪽으로 쏠렸다.

순간 메이슨의 거대한 육체가 단숨에 중심을 잃고 기우뚱댔다. 그는 자연스럽게 정인우의 등에 업힌 형국이 되어 버린 것이다.

"으라아아아아아!!"

인우는 거친 기합을 터뜨렸고, 메이슨은 공중에서 그대로 한 바퀴 회전하더니 바닥에 내다꽂혔다.

콰아아아앙!

거대하기 그지없는 메이슨이 바닥에 대짜로 뻗은 채로 눈을 끔뻑대고 있었다.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것은, 상대의 힘을 그대로 역이용하는 업어치기였다.

으드득.

어느덧 인우는 나자빠진 메이슨을 쏘아보며 손가락 마디를 풀었다.

메이슨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이, 이놈··· 도대체 민첩 수치가 얼마나 높기에···?'

말도 안 되는 순발력이다.

정인우는 그 어떠한 스킬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을 메다꽂았다.

이 정도라면 깡스텟 자체가 괴물처럼 높을 거다.

메이슨은 전신이 빠개지는 듯한 고통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한 창피함이 온몸을 수놓고 있었다.

지천에 관중이 깔려 있지 않은가.

'이런 개망신이라니···!'

메이슨은 아픔을 찍어 누르며 자리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려 했다.

그가 스프링처럼 자리에서 솟구치는 순간.

빠각!

인우가 기다렸다는 듯이 정강이를 들어 올렸다가 메이슨의 면상을 찍어 눌렀다.

쿠우우우우우웅-!

순간 토네이도 킥이 발동되었고, 그 엄청난 위력에 땅거죽이 5cm가량 파이며 메이슨은 그대로 꽂혔다.

솨아아아아-

피어오른 흙먼지가 나자빠진 메이슨에게로 차곡차곡 쌓여 갔다.

"켁. 켁."

메이슨은 잔기침을 토해 내며 이를 갈았다.

으드드드드.

뼈마디가 욱신거린다.

정인우는 또 다시 가만히 서 있었다.

'이, 이 미친 새끼··· 나를 가지고 노는 건가!?'

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다.

게다가 방금 그 위력은 뭐란 말인가?

분명 어떠한 스킬을 사용한 것 같았다.

섬광과 같은 킥이 날아들더니 그대로 바닥에 꽂혀 버린 것이다.

"이, 이 새끼···!"

정인우는 압도적인 능력치를 이용하여 자신을 농락하고 있었다.

"일어나. 개자식아."

"으아아아아아!!"

메이슨은 온몸에 마기를 끌어올리며 벌떡 일어섰다.

곧바로 주력 스킬인 거대화를 시전했다.

으드드드드득!

순간, 메이슨의 육체가 크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가 입고 있던 옷이 삽시간에 찢겨 나갔다.

전신에 거머리 같은 핏줄이 꿈틀거렸고, 등짝에서 새빨갛게 꿈틀대는 날개가 튀어나왔다.

카드드드드드득!

움츠려들어 있던 날개가 활짝 펴지며 큼지막한 그림자가 졌다.

우둑! 우둑!

이어서 메이슨의 거대한 머리통에서 코뿔소 같은 뿔이 튀어나왔다.

"크워어어어어어어!!"

거대화를 끝마친 메이슨이 포효했다.

그렇지 않아도 큰 녀석이었는데, 이젠 거의 5미터에 육박할 정도였다.

모여 있던 마족들은 오금이 저리는지 떨리는 음성으로 저마다 속삭였다.

"어, 엄청나···!"

이것이 바로 메이슨을 마왕의 자리에 앉혀 준 주력 스킬이었던 것이다.

거대화를 끝마치면 기존보다 근력을 비롯한 육체 능력이 3배 상승한다.

"크우우우우우."

메이슨의 아가리를 비집고 뜨거운 김이 새어나왔다.

비주얼만큼은 마신의 볼기짝도 후려칠 정도다.

그 앞에 서 있는 정인우는 정말로 작아 보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조금의 주눅도 들지 않았으며, 조금의 기세도 꺾이지 않았다.

인우야 뭐, 수십 미터가 넘어가는 드래곤들 앞에서도 눈알을 부라리며 협박을 하던 놈이지 않은가.

애초에 겉모습, 즉 외형으로 인우에게 겁을 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죽여 주마!! 크워어어어!"

어느덧 메이슨은 가슴을 쫙 펴고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그런 뒤 날개를 펄럭이며 단숨에 날아올랐다.

슈우우우우욱!

메이슨의 거대한 육체는 높은 고도를 향하며 금세 점처럼 작아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인우는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쐐애애애애애앵-!!

운석이 떨어지는 것처럼 엄청난 소음과 함께, 메이슨이 지상을 향해 빠르게 신형을 날리고 있었다.

로켓포처럼 몸을 길게 늘어뜨린 그는 그대로 인우를 공격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제야 인우는 고개를 들고 공중을 올려다보았다.

마계의 붉은 태양이 제법 강렬하다.

"음."

인우는 느릿한 동작으로 손바닥 그늘을 만들어 눈썹에 댔다.

그러다가 그 손바닥을 그대로 뻗었다.

그 순간 메이슨이 인우를 향해 쇄도해 왔고,

녀석의 머리통과 인우의 손바닥에 닿았다.

퍼드드드득!

순간 엄청난 풍압이 일며 인우의 코트자락이 거칠게 펄럭거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인우는 심지어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공중에서부터 끌어 모은 메이슨의 일격은, 부질없이 가로막힌 것이었다.

손바닥 하나에 말이다.

"크으으으."

메이슨의 골이 찌르르 울렸다.

마치, 만년 마기 강철로 만들어진 망치에 머리통을 가격당한 것만 같았다.

인우가 말했다.

"재롱은 끝났냐?"

그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무차별 폭행이 시작되었다.

퍽! 퍽! 퍽!

"크아아아아아악!"

애초에 게임이 되지 않는, 압도적인 격차였다.

인우는 놈이 기절하면 힐을 주고, 깨어나면 후려치기는 것을 반복했다.

해가 질 때까지.

그리고, 화가 풀릴 때까지.

폭력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끝내, 놈을 죽이진 않았다.

* * *

인우는 퀸을 데리고 가까운 찻집에 들어선 상태였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퀸과 마주앉았다.

퀸은 양손을 무릎 위에 올린 채 고개를 내리깔고 있었다.

언뜻 보이는 그녀의 붉은 입술이 계속 오물거리고 있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인우는 잠자코 기다려 주었다.

"멋지게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주인님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고요."

말을 마친 퀸의 눈동자가 단숨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오래지않아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이처럼 울었다.

제 힘으로 해 내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했는가?

심려만 끼쳤고, 주인이 직접 행차했으며, 결국엔 또 신세를 지고야 말았다.

어찌 이리 한심한 것인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때, 인우가 말했다.

"죽이려다가 말았다."

"···네에?"

퀸은 여전히 물기 가득한 눈을 한 채 반문했다.

"메이슨 말이야. 죽이려다 말았다고. 왜 죽이지 않았는지 알아?"

"범죄가 되니까요···?"

"아니야."

"그러면 왜죠?"

인우는 대답 대신 가만히 퀸을 응시했다.

그녀가 다시는 그런 거지발싸개 같은 녀석에게 맞고 다니지 않도록, 반드시 그렇게 만들 것이다.

현재 일이의 아공간에는 31명의 마왕들이 갇혀 있다.

그 안에는 진까지 설치했었다.

때문에 놈들은 게이트나 텔레포트도 사용하지 못한 채 서서히 굶어 힘이 빠지고 있었다.

본래는 그놈들이 조금 더 지친 후에 꺼내 잡으려 했다.

하지만 이제 더는 안 되겠다.

인우는 바로 오늘 놈들을 잡을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막대한 경험치를 얻고, 그 31명의 피를 모조리 퀸에게 내어줄 것이었다.

"마왕이 되어라 퀸."

이왕 이렇게 된 것, 결판을 짓자. 그녀가 시작한 싸움을 확실히 밀어주자.

인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가 31명이나 되는 마왕들의 피를 마시고, 다시금 메이슨에게 대결을 신청한다면, 반드시 마왕의 자리에 올라설 것이다.

'내 여자라면, 그 정도는 돼야지.'

인우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 * *

놈들은 수천 년을 살아온 마왕이다.

결단코 만만하지 않다.

물론 시간이 꽤나 흘렀기에 배고픔에 지쳐있긴 할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31명을 홀로 상대할 순 없었다.

달리 말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거였다.

인우는 우선 에노느를 시켜 버려진 성 한 채를 구입했다.

그리하여 그 마왕 놈들이 그러했듯, 텔레포트와 게이트생성을 막는 진을 설치했다.

만약 아공간에서 빠져나온 놈들이 다짜고짜 텔레포트를 시전하면 곤란하지 않은가?

이것은 즉, 놈들의 도주를 막기 위한 장치였다.

인우의 철저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놈들에게 역습 당할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때문에 힘을 더욱 빼 놔야 한다.

인우는 진을 설치하는 한편 잘 익은 바비큐도 만들었다. 이미 '요리의 손맛'스킬이 레전드 마스터였기에, 인우가 만든 바비큐는 수십 년의 경력을 쌓은 요리사가 만든 것만큼이나 맛깔나게 조리되어 있었다.

배가 부른 사람도 이 냄새를 맡으면 눈이 돌아갈 정도랄까?

이건 딱 1인분만 준비했다.

이를 테면 이것은, 놈들의 분란을 조성하기 위한 음식이라 보아야 합당했다.

생각해 보라.

0.1초 정도 아공간을 열었다가 음식만 내던져주고 도로 닫는다.

만약 놈들이 몇 놈 튀어나온대도, 고작 몇 놈일 뿐일 거다. 31명이 다 튀어나오진 못한다. 그 몇 놈은 그냥 잡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아공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놈들이 이것을 두고 31조각으로 나누어 먹겠는가?

절대 아니다.

배고픔 앞에 나타난 1인분의 음식은, 그들을 미치게 만들 게 분명했다.

절벽에 고립된 두 남자가 초코바 하나를 두고 목숨을 걸고 싸운 일화는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이건, 놈들의 주린 배를 채워 주는 음식이 아니라, 놈들의 남은 힘과 기력을 모조리 빼앗아 낼 악마의 음식이었다.

누군가는 그냥 아공간을 열고 마기광탄을 넣으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영약과 피가 모조리 증발한다.

그건 안 될 말이었다.

깨끗하게 잡아서 모조리 채취해야 한다.

모든 준비를 마친 인우는 분신들을 소환했다.

그리고, 일이를 향해 말했다.

"아공간 열어라."

다 잡을 것이다.

드랍되는 각종 영약을 모조리 복용해 줄 것이다. 그리고 모든 피를 퀸에게 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다음 달에 있을 서열전에는, 그녀와 함께일 테지.

마왕 커플 탄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

0199 / 0208 ----------------------------------------------

199화 루시 퀸, 마왕좌(座)를 향해! (2)

아공간.

이곳에 갇혀 있다 보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곳은 밤과 낮이 없는 그저 백색의 공간일 뿐이었으니까.

만일, 홀로 갇혔다면 미쳐 버렸을 수도 있었을 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들이 31명이었다는 것 정도였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위안이 될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모조리 굶어 죽게 생겼으니 말이다.

마왕들이 체감하기로, 이 정도로 배가 고프고 힘이 빠진 걸로 봐서는 일주일은 지나지 않았나 싶었다.

"꼼짝 없이 죽는 건가······."

"목이 너무 마르다······."

제아무리 마왕이라 해도 분명한 생명체다.

때문에 무언가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정인우가 열어 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이곳에서 숨을 거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난데없이 아공간의 문이 열린 것이다.

순간, 입구 근처에 있던 3명의 마왕이 냅다 바깥으로 튀어나갔다.

"으어어어어! 정인우우우우우우!!"

그리고 상대적으로 뒤편에 위치해 있던 마왕들은 이를 악물고 입구를 향해 질주해 오고 있었다.

모든 힘을 다해, 살기 위해 말이다.

그러자 인우는 준비해 온 바비큐 1인분을 아공간 내부에 던져 버렸다.

"일아. 아공간 닫아라."

"응!"

후웅!

아공간이 닫혔다.

그리고 인우는 바깥으로 튀어나온 3명의 마왕들을 쏘아보았다.

굶주린 3명쯤이야.

인우는 씨익 웃었다.

* * *

아공간의 바깥을 향해 내달리던 마왕들은 금세 닫혀버린 입구를 보고 망연히 주저앉았다.

그런데,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엄청나게 맛있는 냄새가 났다.

"고, 고기 냄새···?"

눈이 돌아 버릴 것만 같은 강렬한 향기다.

제아무리 수천 년을 살아 왔던 마왕들이라 할지라도, 지금은 체면이고 뭐고 없는 거다.

마왕들은 곧바로 눈을 부릅뜬 채 사방을 훑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바비큐 한 토막을 발견했다.

주먹만 한 크기의 바비큐.

거기에서는 참기 힘들 정도로 맛난 냄새가 풍겨왔다.

현기증이 일 정도였다.

배고픔은 이성을 잃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곳에 남은 28명의 마왕들은, 일제히 바비큐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우다다다다닥!

"비켜!"

"나와 이 자식들아!"

우습기 그지없다.

누가 이들을 마왕이라 생각할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배고픔으로 인해 사고회로는 이미 꽉 막힌 지 오래다.

머릿속에는 오로지 저것을 먹어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물론, 모든 마왕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배고픔의 본능보다 이성이 더 강했던 마왕도 존재했던 것이다.

"잠깐! 모두 멈춰!! 이건 보나마나 함정이다! 우리가 바비큐를 두고 서로 싸우길 바라는 거라고!"

알게 뭐냐?

그의 외침은 단숨에 묻히고야 말았다.

이윽고, 바비큐를 두고 치열한 혈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즈음 되자, 이성이 강했던 마왕들도 어쩔 수 없이 아귀다툼에 껴들었다.

가만히 있다간 음식이 모조리 사라질 게 분명해 보였으니까.

"크아아아! 나와!"

* * *

아공간 바깥으로 튀어나온 3명의 마왕들은 잽싸게 주변을 바라보았다.

일단 벽으로 이루어진 공간이었다.

아마도 어느 건물의 내부인 듯싶었다.

"이, 일단 텔레포트로 이곳에서 빠져나간다!"

외침과 동시에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우웅. 끽.

하나, 텔레포트가 먹혀들지 않았다.

워프게이트나 차원이동 게이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제야 그들은 이곳에 진이 설치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즈음.

그들의 뒤편에서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다?"

정인우였다.

마왕들은 인우를 발견하자 노호를 터뜨렸다.

"이놈··· 감히!! 네놈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너희 걱정이나 해."

말을 마친 인우는 드래곤 본 대검을 빼들었다.

그러자 마왕들은 저마다 마기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미 힘이 빠질 대로 빠져 있었기에 미약할 뿐이었다.

"놈! 대검을 거둬라! 어찌 마왕의 자리에 올라 이리도 추저분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한단 말이냐!?"

"추저분이라 했냐?"

인우의 눈썹이 꿈틀댔다.

단어의 뜻을 그대로 보자면 더럽고 지저분한 짓을 뜻한다.

인우의 표정이 좋을 리 없었다. 애초에 추저분한 짓을 시작했던 것은 저놈들이지 않은가? 이건 뭐,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격이다.

"후우······."

인우는 관자놀이를 꾹 하고 눌렀다. 그의 얼굴이 굳어갈수록, 마왕들은 안절부절 못하며 끙끙대기 시작했다.

"진짜 추저분한 게 무언지 보여 줄게."

그리 말한 인우는 대검 대신 손목에서 바알의 수리검을 소환했다.

그런 뒤 단검처럼 움켜쥐었다.

"산채로 포를 떠서 피를 뽑아 주마."

으득.

인우가 이를 갈았고, 마왕들은 그제야 뒤늦은 후회를 하고야 말았다.

배고픔에 잠시 잊고 있었던 걸까?

정인우는 제놈 목숨을 그대로 내건 채 마기광탄을 코트에 두르고 쳐들어왔던 미친놈이다.

한데, 그런 미친놈을 자극하고야 말았다.

"자, 잠깐 정인우···! 내, 내가 배고픔에 실성을 했다. 미, 미안하다!"

"뭐라는 거야. 나는 추저분해서, 너희들이 암만 설득하려 해 봐야 씨알도 안 먹힌다고."

"아니다! 아니야! 너, 너는 추저분하지 않다! 내 입이 추저분하지! 미안하다! 정말로 미안하다!"

정인우는 피식 웃으며 수리검을 들고 천천히 걸어왔다.

그 모습에 마왕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무래도, 곱게 죽긴 글러먹은 것 같았다.

* * *

바비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심지어 뼈다귀까지 없다.

모조리 씹어 먹은 것일 테다.

"헥. 헥. 헥."

남아 있는 28명의 마왕들은, 바비큐 한 입을 베어 물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졌다.

심지어 팔이 잘린 녀석도 있었고, 기절한 녀석도 있었으며, 목숨이 경각에 달해 있는 놈도 있었다.

그렇다.

배는 채우지도 못하고 힘이란 힘은 모조리 다 빼놓은 것이다.

그제야 28명의 마왕들은 후회했다.

남은 게 없었다.

이건, 정인우의 의도대로 놀아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1인분의 바비큐는 그들에게 지옥을 선사한 것이다.

바비큐를 두고 없는 힘까지 쥐어짜내 싸워 댔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최악이로군··· 한데, 만약 지금 아공간이 열리고 정인우가 들어온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얼른 마기를 끌어올려서 상처나 치유해."

그리되면 정말로 최악이다.

그냥 모조리 죽는 거라고 보면 된다.

후웅.

그런데 그때, 아공간의 입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열린다.

그곳을 비집고 한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정인우였다.

"좆된 것 같지···?"

"······."

입구를 비집고 들어온 정인우가 지쳐 나가떨어져 있는 마왕들을 한 명씩 내려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마디 내뱉는다. 그 말은, 지금의 분위기와는 전혀 맞지 않는 말이었다.

"바비큐 먹을 사람?"

저 빌어먹을 새끼!

끝까지 농락인가!

마왕들은 부들부들 떨었다.

애초에 저놈을 건드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후회해 봐야 늦었음을 안다.

"잔말 말고 죽여라. 정인우···!"

"바비큐 먹을 사람 정말 없어? 5인분이나 준비해 왔는데."

꿀꺽.

누군가가 침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을 시작으로 28명의 마왕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우스운 노릇이다.

죽음을 목전에 두었음에도, 배고픔이란 본능이 고개를 쳐들다니.

"음. 먹을 사람이 없으면 내가 먹는다."

그리 말한 인우는 바비큐 한 덩이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쫀득한 육질이 씹히는 소리, 그것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소리······.

그렇게, 뱃속에 음식물이 차면 행복한 포만감이 가득하겠지.

꿀꺽.

마왕들은 군침을 삼켰다.

하지만 두 번 당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경계하며 인우에게 물었다.

"왜 갑자기 음식까지 준비해 와서 잘해 주는 거냐? 우리는 이제 음식을 두고 싸우지 않는다."

그래, 이젠 정말 싸우지 않을 거다.

1인분의 바비큐 때문에 28명의 마왕들에게 남은 것은 상처뿐이었으니까.

그들은 얼마나 지쳤는지 아공간이 열려 있는데도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나간다 해도 문제다.

정인우가 저렇게 대놓고 아공간 문을 열어둘 리 없지 않은가?

필시 무언가가 있을 게 분명하다.

이미 마왕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정인우는 그렇게나 거대하고 대단해진 것이다.

인우가 바비큐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아아, 왜 갑자기 잘해 주냐고? 그거야 너희들의 피가 주기적으로 필요해져서야. 딱 5명 정도는 내가 다룰 수 있을 것 같아서 사육하려고. 그래서 5인분을 준비해 온 거고."

"······."

저렇게 대놓고 본인의 뜻을 말하니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육이라니······.

지금 정인우가 마왕들에게 권유하는 것은 악마의 유혹이나 마찬가지였다.

딱 5명에게만 음식을 주고 목숨을 보존해 주겠다.

대신, 주기적으로 피를 내놔라.

한마디로 가축이 되라는 소리였다.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들은 마왕이다.

그에 대한 자존심이 얼마나 강하겠는가?

꼬르르륵-

하지만 저 냄새, 저 반들거리는 윤기, 한 입 베어 물면 입에서 녹을 것만 같은 바비큐의 비주얼.

그것은 실로 참기 힘들 정도의 유혹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덧 한 놈씩 서서히 손을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딱 5명이 손을 들었고, 나머지 마왕들은 자존심과 배고픔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이제 끝인 거다. 정인우의 뜻에 따라 줘 봐야 끌려 가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은 거다.

어느덧 인우는 손을 든 다섯 놈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 근데 이거 어쩌지. 내가 방금 1인분을 먹어 버려서. 딱 4명만 뽑을게."

아주 가지고 논다.

이윽고 인우는 4명의 마왕에게 바비큐를 주었다.

받지 못한 1명의 마왕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두 번이나 넘나든 꼴이었기에 표정이 가관이었다.

차라리 자존심을 죽이고 빨리 말할걸. 그런 후회가 들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자, 그럼."

인우는 남은 24명의 마왕들을 바라보았다.

이미 놈들은 지쳐 나가떨어진 상황.

푹! 푹! 푹! 푹!

[경험치를 5,500,000,000+5,5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4,900,000,000+4,9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5,100,000,000+5,1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정인우>

레벨 : 743

특성 : 광전사

스텟 :

[근력 2,265+6,350+10+350]

[민첩 1,374+5,080+250]

[마력 1,088+650+250]

[체력 1,228+2,600+10+150]

*히든 스텟 : [괴력 100] [매력 12]

미분배 포인트 : 360

[EXP 2,648,860,850 / 8,270,000,000]

장기적으로 피를 착취할 4명의 마왕을 제외한 27명을 죽였다.

그로인해 36개의 레벨 업을 했다.

무려 2700억에 가까운 경험치를 획득한 것이다.

700레벨 대의 경험치는 정말이지 끔찍할 정도여서, 600대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였다.

어찌되었건, 이제 743레벨이 되었으니, 800레벨에 열리는 신의 패시브까지 보다 더 가까워졌다.

절대자 패시브 3종, 전능자 패시브 3종······.

그리고 신의 패시브 또한 3종일 것이다.

현재 신의 마력과 체력이 열린 상태다.

그렇기에 800레벨에 열릴 신의 패시브는 마지막일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이 패시브 종류는 '신'에서 멈추는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이보다 더 높은 종류의 시리즈가 시작될까?

현재로서는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지금 확실한 것 하나는 엄청난 양의 마왕 피를 채취했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각종 영약과 레전드 스킬 볼을 비롯한 전리품이 한 가득이었다.

인우는 들뜬 마음으로 보너스 스텟을 분배하고 마왕성으로 향했다.

이제, 파티를 시작할 시간이었다.

0200 / 0208 ----------------------------------------------

200화 루시 퀸, 마왕좌(座)를 향해! (3)

NO.150 정인우의 마왕성.

채취해 온 전리품은 굉장히 많았다. 혈액을 비롯한 영약, 그리고 레전드 스킬 볼까지.

인우는 기다란 직각 식탁에 전리품들을 쫙 펼쳐 놓았다.

[마계 스킬 경험치 영약] 27개.

[마계 근력 영약] 20개.

[마계 민첩 영약] 25개.

[마계 체력 영약] 22개.

[마계 마력 영약] 19개.

[마왕성의 징표] 27개.

[마계 히든 스텟 영약] 3개.

[마계 모든 스텟 영약] 6개.

[레전드 스킬 볼] 3개.

굉장히 많다. 우선 스킬 경험치 영약은 불필요하다. 이건 훗날 정지은이나 김민철, 그리고 알렉산더에게 줄 생각이었다.

자신에겐 숨 몇 번 쉬면 얻게 될 스킬 경험치지만, 그들에겐 수천수만 번 스킬을 사용해야 올릴 수 있는 경험치였으니까.

인우는 27개의 스킬 경험치 영약을 아공간에 넣었다.

다음으로 4대 스텟 영약.

이건 어찌 해야 할까?

저걸 다 먹으면 확실히 엄청난 스텟 상승을 할 수 있을 거다.

'음.'

그냥 먹는 것보다 더 좋은 효율을 발휘할 방법이 있을까?

그런 생각도 잠시.

소환해 두었던 분신 중 팔이가 인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대장. 한 입만."

팔이는 그렇게 말하며 검지로 스텟 영약을 가리키고 있었다. 놈은 본능적으로 이것이 무언지 아는 거다.

먹으면 강해진다는 것을 말이다.

이윽고, 팔이를 시작으로 나머지 분신들도 득달같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나도."

"나도. 난 두입."

"난 다섯 개 주라."

"그럼 난 열 개."

"먹어 보고. 싶군."

마지막 목소리는 허세킹 둘이였다.

웬만하면 한마디도 내뱉지 않는 도도한 둘이조차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래 뭐, 까짓것. 이건 다 너희에게 줄게."

인우가 흔쾌히 말하자, 모든 분신들의 얼굴이 활짝 펴지기 시작했다.

분신은 곧 인우 자신의 무력.

인우 홀로 다 먹는 것보다 녀석들에게 나눠 주는 것이 효율이 더 좋을 것이다.

"정! 정! 정!말이야?!"

"대장! 최고다!"

"다 조용히. 해! 내가 먼저. 대장한테. 한 입 달라고 해서. 너희도. 먹을 수 있게. 된 거라고!"

팔이가 팔짱을 끼며 녀석들을 물렸다.

그러더니 녀석은 금세 팔짱을 풀고 공손히 양손을 내밀었다.

"대장. 내손 크다. 여기에. 가득 줘."

그러면서 녀석은 요령 좋게 손가락 사이를 벌렸다.

그 틈은, 영약이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였다.

최대한 많이 받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인우는 차별을 둘 생각이 없었다.

어느새 인우는 기다란 식탁 위에 있던 4대 스텟 영약을 최대한 공평하게 8등분했다.

그리고 말했다.

"각자의 몫이다. 챙겨."

"우와아아아악!!"

"우우우움!"

놈들은 걸신들린 것처럼 영약을 양 볼에 우겨넣고 모조리 삼키기 시작했다.

['분신8'의 민첩 스텟이 15 증가합니다.]

['분신1'의 근력 스텟이 20 증가합니다.]

['분신2'의 체력 스텟이 15 증가합니다.]

.

.

.

엄청난 양의 메시지가 단번에 떠올랐다.

그리고 메시지가 그칠 즈음, 녀석들은 저마다 팔을 걷어 붙이고 알통이 더 나온 것 같다고 아이처럼 좋아했다.

물론, 정말로 알통이 더 나오진 않았다.

그렇다고 치면 인우는 이미 산처럼 커졌을 게 분명하지 않겠는가?

"대장! 이것. 봐라! 으압!"

인우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다가 나머지 전리품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중, 스물일곱이나 되는 마왕성의 징표는 헬파이어로 소멸시켜 버렸다.

괜히 아깝다고 남겨 뒀다간 큰 화를 입을 수도 있다.

가지고 있거나, 판매하거나, 그러다가 들키면 마왕 살해범의 범인이 자신이라고 광고하는 꼴이었으니 말이다.

이내 인우는 다음 전리품을 바라보았다.

'이제 히든 스텟과 모든 스텟 영약.'

우선은 히든 스텟 영약을 먼저 먹는 게 좋을 거다.

왜냐하면, 새로운 스텟을 추가 시키고, 그 이후에 모든 스텟 영약을 먹는다면 효율이 더 좋기 때문이었다.

꿀꺽.

인우는 3개의 히든 스텟 영약을 삼켰다.

[히든 스텟 습득에 실패하였습니다.]

[히든 스텟 '지능'이 생성되었습니다.]

[히든 스텟 '방어력'이 생성되었습니다.]

어라?

이 영약은 습득 실패에 대한 확률도 존재하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그 확률이 그리 크진 않은 것 같다.

3개 중에 2개를 습득했으니 말이다.

새로이 생성된 히든 스텟의 정보를 불러보았다.

[지능] - 암기력을 비롯한 두뇌회전이 빨라집니다.

[방어력] - 맨몸의 방어력이 높아집니다.

한계 수치가 '100'에 불과한 히든 스텟.

이 막강한 스텟은 정말이지 대단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방어력의 경우, 방어구나 스킬을 이용해야지만 상승시킬 수 있는 능력이었다.

일반적인 4대 스텟으로는 상승이 불가능하다는 거다.

체력의 경우 생명력에 영향을 주는 거지 방어력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방어력은 꽤나 좋은 스텟이 분명해 보였다.

볼 것도 없이 100까지 올려두는 게 맞다.

그리고 지능.

이것 또한 그냥 방치하기엔 너무나 아까운 스텟이다.

자그마치 두뇌회전이 빨라진다고 하지 않는가?

일례로 지능 스텟을 100까지 찍으면, 전세계 언어를 모조리 외우는 것도 가능할지 몰랐다.

어느덧 인우는 상태 정보창에서 '히든 스텟'란만을 불러보았다.

*히든 스텟 :

[괴력 100]

[매력 12]

[지능 1]

[방어력 1]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해지는 스텟들이다.

아 물론, 매력은 빼고!

'이제 모든 스텟 영약을.'

이건 총 6개였다.

볼 것도 없이 모조리 삼켰다.

[모든 스텟이 3 증가했습니다.]

[모든 스텟이 7 증가했습니다.]

[모든 스텟이 5 증가했습니다.]

.

.

영약의 등급별로 조금씩 차이를 두고 스텟이 상승됐다.

기존 4대 스텟을 비롯하여 모든 히든 스텟까지.

모두가 똑같이 +30씩 증가했다.

인우는 다시금 히든 스텟 창을 불러봤다.

*히든 스텟 :

[괴력 100]

[매력 42]

[지능 31]

[방어력 31]

괴력의 경우 이미 맥스 수치였기에 변동이 없었다.

그리고 나머지 스텟들이 크게 상승한 것이 보였다.

가장 먼저 체감된 것은 '지능'이었다.

수치가 31이 되자, 머리를 통해 받아들여지는 주변의 정보 자체가 각인되는 듯했다.

'녀석들에게 나눠 주었던 4대 스텟 영약.'

그것이 뚜렷하게 생각났다.

너무나도 완벽하게 말이다.

"팔이, 너 근력 62, 민첩 55, 마력 57, 체력 70. 이렇게 상승했지?"

"으응?"

팔이가 잠시 머뭇거린다.

그러다가 녀석은 손가락을 하나씩 굽히기 시작했다.

그러길 1분쯤 지났을까?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왔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알았어? 암산이. 그렇게. 빨라? 그런데, 근력은 62가. 아니라 61이다!"

"호오."

1의 오차가 있었던 건가.

어찌되었건 지능 스텟 31의 기능은 굉장했다.

녀석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영약들, 그 영약들은 각각 F급부터 C급까지 다양하게 나뉘어 있고, 이에 따른 상승폭도 각각 다르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뚜렷하게 생각났고, 녀석들에게 몇 개를 주었고, 이를 통해서 얼마의 수치가 증가했는지 명확히 파악되었다.

굳이 알림 메시지를 보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건, 제법 대박이다.

인우는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조금 아쉽게 됐네. 이럴 줄 알았다면 보너스 포인트를 남겨 두는 건데.'

레벨 업을 하며 얻었던 360개의 포인트는 4대 스텟에 투자한 뒤였다.

그랬기에 현재로서는 남은 포인트가 없었다.

아쉽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후에 레벨 업을 하면 그때 투자하면 그만이다.

"보자······."

이제 탁자에는 레전드 스킬 볼과 혈액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스킬 볼은 때마침 잘 얻은 거라고 생각했다.

현재 인우는 지니고 있는 모든 액티브 스킬.

즉, 51개의 스킬을 끝까지 올린 상태였다.

4개의 히든 스킬은 Master였고, 나머지 일반 스킬들은 모조리 Legend Master에 닿아 있었다.

즉, 51스킬 마스터라는 뜻이었으며, 더 이상 키울 스킬이 없다는 거였다.

어느덧 인우는 3개의 스킬 볼을 삼켰다.

['속사'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요리의 본질'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히든 스킬 '절대자의 손가락'을 습득하였습니다.]

.

.

<액티브 스킬>

52. [속사 Lv.1 (5%)] - 활 착용할 시 발동되며, 레벨이 오를수록 장전과 발사가 빨라집니다.

53. [요리의 본질 Lv.1 (5%)] - 원재료 고유의 맛을 살려 더욱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있습니다.

.

.

.

<패시브 스킬>

28. [절대자의 손가락 - 아티펙트 '반지'의 착용 개수를 2배 늘려 줍니다.]

히든이 하나 떴고, 동시에 눈이 크게 뜨인다.

레전드 스킬 볼을 통해 새롭게 얻어낸 히든 스킬은 '절대자'라는 명칭이 붙어 있었으니까.

한데, 절대자 시리즈는 걸음, 호흡, 성장으로서 도합 3가지가 끝이 아니었던가?

'절대자의 손가락이라니······.'

이를 보건대 절대자의 손목도 있을 테고, 목도 있을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티펙트는 반지를 제외하고도 팔찌와 목걸이까지 있지 않은가?

그나저나, 이 패시브 스킬. 기능이 장난 아니다.

반지의 착용 개수 2배 증가라니.

본래 반지는 총 2개까지만 적용된다.

하지만 이 패시브로 인해 4개까지 늘어난 것이었다.

이로써 인우는 아포칼립소 세트를 제외하고도 반지 2개를 추가로 더 착용할 수 있었다.

이건 굉장한 이득이었다.

현재 인우는 마코도 충분하기 때문에, 마계 상점에 들러서 꽤나 괜찮은 반지를 구매할 수도 있을 거였다.

이건 정말 마음에 든다.

반면······.

새로이 생성된 액티브 스킬 2가지는 적어도 인우에게만큼은 쓰레기였다.

속사는 궁수의 스킬이고, 요리의 본질은, 이미 요리의 손맛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또 요리 스킬이 뜬 거였으니까.

"에효."

인우는 툴툴대면서도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다 됐고, 절대자의 손가락만으로도 엄청난 이득을 보았다고 생각했으니까.

이제 마지막 전리품이 남았다.

그것은 바로 마왕들의 혈액.

어느새 인우는 채취해 온 피의 양을 가늠해 보고 있었다.

스물일곱 마왕들의 혈액은 대략 110리터 가량.

어마무시한 양이다.

모두 퀸의 것이다.

좀 무리를 해서 하루에 20리터씩 먹인다고 치면 대략 5일하고도 반나절이면 마실 수 있을 거다.

이를 통해 그녀는 엄청난 성장을 할 테지.

생각을 마친 인우는 분신을 시켜 퀸을 불러오라 명했다.

그녀는 오래지않아 인우가 있는 곳을 향해 왔다.

"부르셨어요?"

퀸이 뒷짐을 지고 고개를 불쑥 내밀며 말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어 왔냐."

근래에 들어 그녀가 예쁘다거나 귀엽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했다.

"네!"

현재 퀸의 레벨은 320.

본래 지니고 있던 '뱀파이어 퀸'만의 무력에 덧입혀진 320개의 레벨이라고 보면 된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능력치만 보자면, 최하위권 마왕인 메이슨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능력치에만 국한된 이야기.

이를테면 스킬이라거나 전투경험 따위의 것들은 한참이나 부족한 퀸이었다.

그랬기에 메이슨에게 일방적으로 당했던 것이다.

인우는 그것들을 메꿔 줄 생각이었다.

이 혈액을 이용해서 말이다.

깡 레벨을 무지막지하게 올려서 부족한 능력들을 뒤덮어버리는 거다.

"110리터의 마왕의 혈액이다."

인우는 5개의 물통에 나누어 두었던 피를 건넸다.

"하루에 한통은 무조건 마셔. 할 수 있겠지?"

"네에!"

퀸은 당차게 답했다. 주인이 자신을 위해 마련해 준 이것을, 최선을 다해 마실 생각이었다.

0201 / 0208 ----------------------------------------------

201화 루시 퀸, 마왕좌(座)를 향해! (4)

<루시 퀸>

레벨 : 320

특성 : 뱀파이어 퀸

스텟 :

[근력 420+280]

[민첩 650+280]

[마력 680+280]

[체력 720+280]

* 히든 스텟 : [재생력 11]

미분배 포인트 : 0

[EXP 160,987 / 7,210,000]

퀸의 능력치는 인우에 비하면 정말로 갓난아기 수준이었다. 물론 지구나 프로킨의 기준으로는 엄청난 수치였다.

우선 근력의 '420'의 수치는 기존 퀸의 무력과 보너스 스텟으로 올린 수치가 모두 합산된 것이었다.

그리고 뒤에 280은 각성 스텟 수치였다.

현재 그녀는 3차 각성까지 완료한 상태였고, 그에 따른 스텟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뱀파이어의 여왕답게 재생력이라는 히든 스텟을 가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경험치 총량은 720만 가량.

인우의 320레벨 시절과 똑같은 양이었다.

지금에 와서 그때를 돌이켜 보면, 정말로 얼마 되지 않는 경험치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저것조차도 굉장히 힘들게 올렸었다.

하지만 퀸은 아니다.

그녀는 마왕의 피라는 말도 안 되는 경험치 획득 루트가 코앞에 있는 것이다.

"마실게요!"

퀸은 제 머리통보다 더 큰 물통을 들고서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경험치를 1,320,078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1,130,4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1,220,099 획득하였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한 모금이 넘어갈 때마다 대략 100만 정도의 경험치가 차올랐다.

그렇게, 퀸은 그 자리에서 배가 가득 차 오를 때까지 혈액을 마셨다.

이건 맛이 굉장히 좋아서 한 번에 많이 마시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이로 인해······.

[레벨이 올랐습니다.]

.

.

[신체가 각성되었습니다.]

[근력이 320 증가합니다.]

[민첩이 320 증가합니다.]

[마력이 320 증가합니다.]

[체력이 320 증가합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루시 퀸>

레벨 : 412

특성 : 뱀파이어 퀸

스텟 :

[근력 420+600]

[민첩 650+600]

[마력 680+600]

[체력 720+600]

* 히든 스텟 : [재생력 11]

미분배 포인트 : 460

[EXP 1,286,345 / 16,060,000]

92개의 레벨을 올렸다.

400레벨을 넘기며 신체는 4차 각성이 되었고, 엄청난 양의 각성 스텟이 올랐다.

기존 280이던 각성 스텟이 600까지 뛰어오른 것이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혈액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하긴, 27명이나 되는 마왕들의 피였으니 양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 * *

절대자의 손가락.

이를 통해 반지 2개를 추가로 착용할 수 있다.

정인우는 퀸에게 시간이 날 때마다 피를 마시라 일러두고 마계 상점에 들렀다.

9,000억 마코가 있으니 굉장한 아티펙트를 구매할 수 있을 터였다.

"아아, 정인우 마왕 전하! 간만에 오셨군요! 그나저나, 소식 들었습니다. 단번에 150위권까지 올라갔다지요? 역시나! 대단하십니다!"

상인은 인우를 보자마자 반색하며 한껏 치켜 올리기 바빴다.

인우는 싫지만은 않은지 고분고분 들어주었다.

"아아, 이럴 게 아니라, 차라도 한 잔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그나저나, 아이템 구매를 위해 오신 겁니까?"

"응."

"찾는 물건이 무엇인지요?"

"반지를 좀 보고 싶은데."

말을 마친 인우는 아티펙트가 걸려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역시나 예상답게 심상치 않아 보이는 아이템들로 가득했다.

제법 눈에 익은 아이템들도 보인다.

심지어 인우가 착용하고 있는 아포칼립소 세트도 보였다.

인우는 자신이 지닌 아티펙트가 마계에서는 어느 정도의 가치를 하는지 궁금해졌다.

"이건 얼마지?"

"아포칼립소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반지의 경우 한 짝 당 천억 마코입니다."

엄청난 가격이다.

하긴, 인간계에서 아포칼립소보다 더 좋은 아티펙트는 찾아볼 수 없었다.

때문에 마계에서도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닌 것이겠지.

"아포칼립소보다 좋은 것들을 좀 보고 싶은데."

"아아! 물론 많지요!"

상인은 많다고 언급했다.

인우는 내심 놀랐다.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이곳은 마왕들의 단골 상점이지 않은가?

당연히 엄청난 아티펙트들이 즐비할 수밖에 없는 거다.

"저어, 마왕 전하. 실례지만 마코를 어느 정도 가지고 계신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가격에 맞추어 물건을 보여드리겠습니다."

"9천억 마코가 있다."

"허업. 예! 그럼 잠시!"

상인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래지않아 상인이 반지 하나를 내왔다.

그는 이미 정인우의 특성을 모조리 알고 있었기에, 그에 맞추어서 인우가 좋아할 만한 반지를 내왔다.

"괴력의 전능 반지라는 물건입니다. 한번 훑어보시지요."

[괴력의 전능 반지]

종류 ? 반지

기능 ? 근력 2,000 상승, 파괴력 25,000 상승

발동 조건 ? 600레벨 이상

'미친.'

인우는 반지의 정보를 훑다가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을 뻔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런 미친 반지를 보았나?

근력의 2천 상승이라면 인우의 기준으로 200레벨을 올려야 상승시킬 수 있는 스텟이었다.

만약 인우가 아니라면 400레벨은 올려야 획득할 수 있는 수치다.

깡스텟 자체가 이미 오버밸런스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이것마저도 놀라울 지경인데 저 파괴력은 또 무언가.

25,000이라면, 드래곤 본 대검의 12,500 파괴력보다 훨씬 더 높은 수치였다.

아니 이게 말이 되나?

일개 반지 따위가 인간계 기준의 최상급 대검보다 파괴력이 높다고?

진정 미친 건가?

"마왕 전하. 사실 이 반지는 다른 마왕 전하들도 쉽게 구매하지 못하는 반지입니다."

"이유는?"

"가격 때문이지요. 8,500억 마코나 하기 때문에······."

상인은 말꼬리를 흐렸다.

하긴, 인우도 수십 명의 마왕들을 조져서 이 금액을 얻어낸 거다.

단 한 명의 마왕이 이 정도의 금액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하아. 무조건 사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이왕이면 2짝을 사고 싶건만, 이걸 사면 500억밖에 남지 않게 되는군······.'

괜히 어정쩡한 반지를 살 필요는 없는 거다.

사는 김에 엄청난 걸로 구매를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한 짝은 나중을 기약하고, 우선 이걸 구매해야겠군.'

인우는 그런 결론을 내렸다.

"이거. 내가 사지."

"오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상인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인우는 반지의 값을 치르고 착용해 보았다.

[근력이 2,000 상승하였습니다.]

[파괴력이 25,000 상승하였습니다.]

이건 정말 다시 보아도 엄청나다.

게다가 현재 인우의 반지는 도합 3개였다.

아포칼립소의 오른손과 왼손 반지를 포함하여 괴력의 전능 반지까지.

모든 반지들의 기능이 정상 작동되었다.

그러고도 아직 1개를 더 착용할 수 있다.

'돈이 더 필요하다···!'

돈을 벌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이내 인우는 상점을 나서기 위해 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그때.

돌아서려는 인우의 시야에 무언가가 보였다.

그것은, 고급스러운 진열대에 전시되어 있는 구슬이었다.

척 보아도 예사 물건이 아니다.

인우가 물었다.

"저건 뭐지?"

"아. 스킬 볼입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인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상인은 조심스럽게 스킬 볼을 꺼냈다.

스킬 볼은 총 3개였다.

곧바로 정보를 훑어보았다.

[절대자의 손목]

종류 ? 유니크 패시브

기능 ? 아티펙트 '팔찌'의 착용 개수 2배 증가.

[절대자의 목]

[절대자의 손가락]

"어······."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레전드 스킬 볼을 통해 랜덤으로 획득이 가능한 스킬이라면, 당연히 '존재'하는 스킬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스킬 볼 자체가 '존재'할 수밖에.

"이건 얼마지?"

인우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물었다.

"손가락은 1조마코, 손목도 1조마코. 목은 9,000억 마코입니다. 전하."

미친 가격이다.

만약 이 반지를 구매하지 않았다면 '절대자의 목' 하나를 간신히 구매할 수 있을 정도겠다.

이로써 인우는 돈이 필요한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었다.

절대자의 손목과 목을 반드시 구입해야만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팔찌와 목걸이도 하나씩 더 착용할 수 있을 거다.

그나저나, 절대자 시리즈의 종류가 이렇게 많다면······.

설마···?

"혹시, 절대자의 호흡이라던가 걸음이라는 스킬 볼도 있나?"

"네에?"

"호흡, 혹은 걸음, 아니면 성장이나."

3종류 모두 인우가 지니고 있는 패시브다.

그러나 상인은 고개를 갸웃대고 있었다.

"제가 이곳에서 수백 년 동안 장사를 해 왔지만, 그런 패시브가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듣습니다."

"그렇군."

역시나 의문이다.

이 패시브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이며, 누가 내려준 것일까?

마계에서 가장 큰 상점의 주인조차도 모르고 있는, 이 미친 패시브의 정체는 무얼까?

* * *

다음날.

꼴깍. 꼴깍.

퀸은 오늘도 마왕의 피를 마시고 있었다.

[경험치를 1,320,078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1,130,4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1,220,099 획득하였습니다.]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

.

[신체가 각성되었습니다.]

[근력이 640 증가합니다.]

[민첩이 640 증가합니다.]

[마력이 640 증가합니다.]

[체력이 640 증가합니다.]

.

.

[1,550,000의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육체 레벨이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획득된 경험치는 자동으로 저장됩니다.]

퀸은 육체 레벨 한계인 500레벨이 되어 있었다.

<루시 퀸>

레벨 : 500

특성 : 뱀파이어 퀸

스텟 :

[근력 510+1,240]

[민첩 740+1,240]

[마력 770+1,240]

[체력 821+1,240]

* 히든 스텟 : [재생력 100]

미분배 포인트 : 440

[EXP 1,550,000 / ?]

인우가 그랬듯이, 그녀 또한 500에서 더 이상의 성장이 불가능했다.

인우의 경우, '전능자의 무한성장'으로 인해 레벨의 한계점이 사라진 상태이나, 그녀에게는 그러한 패시브가 존재할 리 없는 것이다.

이를 돌파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바로.

"메이슨에게 갈 때가 됐네. 준비해 퀸."

"네! 주인님!"

마왕이 되는 것이다.

마왕이 되면, 육체 레벨의 한계가 사라진다.

즉, 무한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한성장의 끝에 '마신'의 경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어찌 되었건 이제 때가 되었다.

마왕의 혈액은 아직도 90리터 남은 시점이었으며, 그녀는 오늘 반드시 마왕이 될 것이었다.

* * *

뭐, 예상했던 바다.

루시 퀸은 메이슨에게서 승리를 거뒀다.

오늘도 그때의 그 술집에서 난동을 부리던 메이슨은, 퀸에게 제압된 것이다.

그녀는 승리와 동시에 메이슨이 지닌 마왕성의 징표를 손에 쥐었다.

[NO.255 마왕성의 징표]

이제, 마계 신전으로 가서 마왕으로 등록하기만 하면 된다.

인우와 퀸은 곧바로 마계 신전을 향했다.

인우로서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다.

그때에 보았듯, 오늘도 신전 중앙에는 복부가 관통당한 채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석상이 보였다.

루시퍼의 석상이라 했던가.

저 석상은 여전히 인상적이었으며, 여전히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우중충해졌다.

"주인님! 저기로 가면 되어요!?"

그때, 퀸이 아이처럼 웃으며 묻고 있었다.

인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퀸은 곧바로 마계 신전의 성소로 향했다.

그런 뒤 그 위에 마왕성의 징표를 얹었다.

[NO.255 마왕 등록을 하시겠습니까?]

물음이 들려왔고, 퀸은 볼 것도 없이 승낙했다.

[마왕이 되었습니다.]

[마왕의 권능이 생성됩니다.]

퀸은 감격에 겨운지 눈을 감고 몸을 떨었다.

마왕이 된 게 좋아서가 아니었다.

마왕의 신분으로서, 보다 더 가깝게 인우의 곁에 머물 수 있어서였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

0202 / 0208 ----------------------------------------------

202화 나는 제라다

본래 퀸의 경험치 총량은 '?'로 표기되어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제아무리 경험치를 많이 획득해 봐야 '?'는 충족되지 않는다.

[EXP 1,550,000 / 200,000,000]

하지만 마왕이 되면서 한계 레벨은 사라졌다.

이를 통해 수치가 생겼으며, 그 수치는 2억이었다.

필요 경험치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긴 했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

끝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퀸이 말했다.

"저어··· 주인님. 누구부터 치면 될까요?"

이것이, 퀸이 마왕이 되고나서 처음으로 내뱉은 소감이었다.

그나저나, 저렇게 침착하고 예쁜 목소리로 살벌한 말을 내뱉으니······. 무언가 엉뚱하면서도 귀엽게 느껴졌다.

마왕들을 쳐 죽이겠다는 말이 저렇게 귀엽게 들릴 수도 있는 거구나, 인우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윽고 퀸은 조그마한 주먹을 꽉 움켜쥐고 가슴에 댔다.

그녀는 마왕이 되자마자 서열을 올리기 위한 열의에 불타오른 것 같았다.

* * *

괴수의 종류는 굉장히 많다.

고블린부터 바실리스크. 나아가 이지(理智)를 지닌 인간형 괴수들까지.

샐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괴수가 마왕의 자리까지 올라선 전례는 여태 없었다.

마계의 지난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큰 충격을 몰고 온 마왕은 천족 출신의 루시퍼였다.

그 이후로 이보다 더 큰 충격을 주었던 마왕은 인간의 육체를 지닌 정인우.

그리고 이제는 뱀파이어 퀸이라는 괴수가 마왕이 된 것이다.

이는 엄청난 파급력을 몰고 왔다.

마계에 살고 있는 이지를 가진 괴수들은 환호했고, 제법 큰 힘을 가지고 있는 마족들은 말세라며 혀를 찼다.

마족들은 아니꼬운 것이었다. 어찌 일개 괴수가 마왕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단 말인가?

반면, 괴수들은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레벨 업이 불가능한, 이를테면 무력이 정해져 있는 생명체다.

물론 일부, 아주 소수의 괴수들은 레벨 업이 가능하기도 했다.

일례로 뱀파이어 킹이나 인큐버스 킹과 같은 괴수들은 레벨 업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마왕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그 어떤 괴수도 넘지 못한 벽을, 루시 퀸이라는 뱀파이어가 해 낸 것이다.

그렇게, 퀸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괴수들 사이에서 스타덤에 올랐다.

수많은 괴수들이 그녀와 함께 하길 원했으며, 직접 모시길 원했다.

물론 팬이 있으면 안티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괴수들이 그녀의 팬이 된 건 아니었으니까.

실제로, 마계 도시의 뒷골목을 주름잡고 있는 괴수들은 그녀에게 서열전을 신청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현재 루시 퀸의 서열은 NO.255위.

즉, 최하위권 마왕이었으며, 이는 누구라도 그녀에게 서열전을 신청할 자격이 주어진다는 뜻이었다.

254위만 되도 이러한 귀찮음은 없을 테지만, 지금으로선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물론 퀸이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 준다면, 이에 대한 소문이 퍼지며 어중이떠중이들은 도전을 해 오지 않을 것이었다.

일례로 정인우는 마계에 입성하자마자 마왕들을 조지며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시 인우는 마왕도 아니었기에 그 파급력이 더욱 컸었고, 그는 단숨에 부각되었다.

그렇게 인우가 255위의 마왕이 되자 그 어떤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고, 실제로 마족이나 괴수들의 서열전 신청도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퀸은 아니다.

심지어 정인우가 뒤를 봐줘서 마왕이 된 거라는 소문마저 일었다.

실제로 그녀는 메이슨에게 패배하지 않았나?

그런데 불과 며칠 만에 다시 도전해서 곧바로 승리하다니?

도무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기에, 정인우의 도움이 있었다는 소문이 붙어 버린 것이었다.

"마계 역사상 지금처럼 마왕좌의 진입장벽이 낮았던 적은 없었어."

많은 괴수들이 퀸의 마왕성으로 향했고, 그녀에게 서열전을 신청했다.

하지만 그 도전은 누군가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

NO.255 퀸의 마왕성.

그곳 입구에는 우람한 덩치를 지닌 오크 사내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는 오크라기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였다.

피부의 색이 검정색이었으니까.

이곳 마왕성으로 다가서고 있던 사내들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가장 똘마니로 보이는 사내가 꽥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길을 비켜라 오크놈! 뒷골목의 지배자 말론님이 보이지 않느냐!"

"크흠."

그러자 말론이 헛기침을 하며 수하를 뒤로 물렸다.

그는 곧바로 검은 피부를 지닌 오크를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자네. 큰 화를 입고 싶지 않다면 나와 주시게. 나는 그저 이 마왕성의 주인에게 도전을 하러 왔을 뿐, 자네와 같은 약자와 싸우려고 온 것이 아니니까."

"흥."

그러자 블랙오크, 제라가 콧방귀를 끼며 말론을 쏘아보았다.

말론은 벌써 마왕이라도 된 것 마냥, 말투부터 재수가 없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아래로 보이나보다.

제라가 꿈쩍도 않자 말론이 소리쳤다.

"이놈! 비키래도!"

"난 이놈이 아니다. 제라다. 그리고 너나 비켜라."

"···덜떨어진 녀석인가?"

"나 요즘 기분 안 좋다."

타닥! 턱!

어느덧 제라가 섬광처럼 몸을 날리며 말론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크읏! 이, 이놈이···!"

"흥!"

퍽! 퍽! 퍽!

제라는 말론을 포함한 사내들을 마구잡이로 구타하고 쫓아내버렸다.

근래에 들어 이런 불량배 녀석들이 끝도 없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물론, 제라의 노력으로 인해 이제 차츰 그 빈도가 줄어들고 있긴 하다.

벌써 마계에는 소문이 돌고 있었던 것이다.

루시 퀸의 마왕성에는 엄청난 가디언이 있다고······.

그 가디언은 거대한 덩치를 지녔으며, 칠흑의 밤 같은 피부에 악귀 같은 웃음을 흘리는 괴물이라고...

그렇게, 제라는 본의 아니게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 * *

제라는 힘없이 걸었다.

불량배 같은 떨거지 놈들과의 전투가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근래에 들어 제라는 기가 많이 죽었던 것이다.

정인우가 자신을 예전처럼 챙겨주지 않는다.

'내가 약해서 그런 거다.'

제라는 그런 결론을 내렸다.

퀸은 이제 마왕까지 되어서 정인우에게 큰 힘이 되려하고 있다.

하지만 그간 자신은 무엇을 했는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레벨을 크게 올리지도 못했다.

제라는 관심 받고 싶었다.

나아가, 예전처럼 정인우가 자신을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도 퀸의 마왕성 앞을 지켰다.

이건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다.

자발적으로 한 일이었던 것이다.

터벅- 터벅-

어느덧 제라는 마왕성 내부에 도착했다.

이 드넓은 공간이, 온전히 그녀의 것이라니.

제라가 멸치볶음을 달라고 울부짖을 때, 그녀는 사력을 다해 노력했나 보다.

"나는 바보다."

제라는 자조적인 얼굴을 했다.

그때, 저만치 앞에서 정인우와 퀸이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오는 게 보였다.

뭐가 그리 좋은지, 퀸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계속 웃고 있었다.

인우도 그런 퀸을 바라보며 웃는다.

둘은, 제라가 보기에도 꽤나 잘 어울렸다.

'저 가운데에 끼면 욕먹겠지?'

어느덧 제라는 저도 모르게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낄 자신이 도저히 없었다.

그래, 저곳에 자신의 자리는 없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끼어 들 미세한 틈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느새 제라는 마왕성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있는 힘껏 달렸다.

* * *

수많은 마족들과 괴수들이 뒷골목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이곳에 놈이 있다 이거지?"

"그래. 분명하다."

엄청난 숫자였다.

이들은 각기 세력을 거느린, 어느 집단들의 우두머리들이었다.

"그 자식. 무슨 자신감으로 뒷골목을 배회하는 거지?"

"넋이 나가 있다던데? 이 정도 숫자면 반드시 보복할 수 있을 거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리는 거다. 뒷골목에서 시체 나오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뒤처리만 잘 하면 별 탈 없을 거야."

이들은 마왕이 되기 위해 퀸의 마왕성을 찾았다가 제라에게 두들겨 맞은 이들이었다.

블랙오크 제라가 뒷골목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모조리 뭉쳐서 나타난 것이었다.

이윽고 이들은 쥐똥이 가득한 뒷골목 구석에서 제라를 발견했다.

"놈!"

제라가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나 지금 싸울 기분 아니다. 가 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마왕성에 갔을 때도 그렇게 경고를 해 주지 그랬냐! 너는 인정사정없이 우리를 폭행했지! 그렇지 않더냐?"

경고를 한다고 놈들이 돌아갔을까?

절대 아니다.

제라에게 꺼지라며 침을 뱉던 놈까지 있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오히려 제라는 녀석들이 죽지 않도록 노력했을 정도였다.

괜히 살인이 일어났다가 퀸과 인우에게 해가 갈 수도 있기 때문에, 정말로 조심했던 거다.

하지만 제라는 항변하는 대신 묵묵히 앉아 있었다.

녀석들을 설득시키고 싶지 않았다.

아니 사실, 설득시킬 만큼 언변이 뛰어나지도 않았다.

놈들이 다시 외쳤다.

"이제 입장이 바뀌었다! 이번엔 우리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경고는 하지도 않는다. 네놈이 그랬듯이!"

사내들은 볼 것도 없이 병장기를 치켜들고 제라에게 뛰어들었다.

엄청난 숫자의 암기와 화살, 그리고 마법까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제라는 무기도 두고 온 맨손.

하지만 그는 제라 부족의 족장 출신인 제라다.

가장 위대했던 13명의 블랙오크 중 한명이었다.

그 자리는 꽁으로 먹은 게 아니다.

마계의 불량배들쯤이야 수천수만이 몰려와도 겁나지 않았다.

"으아!!"

제라는 불식간에 몸을 일으켜 세우며 달려드는 녀석들의 면상을 향해 사람 얼굴만 한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퍽! 퍽!

삽시간에 두 놈이 쓰러졌다.

제라는 이와 동시에 몸을 빙글 돌리며 뒤에서 내달려오는 녀석의 얼굴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쫘악!

그런 뒤 놈의 얼굴을 그대로 그러쥔 채 땅바닥에 꽂아 버렸다.

파밧!

동시에 놈은 뒤통수가 으깨진 채 피를 줄줄 흘렸다.

제라는 정말 화가 났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괴성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아!!"

그러곤 귀신들린 듯 놈들을 후려패기 시작했다.

퍽! 퍽! 퍽!

주먹을 한 번 내뻗을 때마다 정확히 한 놈씩 바닥과 마주했다.

그의 주먹은 거대한 해머처럼 사정없이 마족과 괴수들을 찍어 눌렀다.

하지만 놈들의 숫자는 도무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골목을 향해 끝도 없이 밀려 내려오고 있다.

싸움은 꽤나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었다.

* * *

쏴아아아-

마계의 붉은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빗물이 몸을 두드릴 때마다 끔찍하게 짓이겨진 상처를 비집고 핏물이 씻겨 내려갔다.

"하아. 하아. 하아."

모든 불량배 녀석들을 혼내 준 제라는 본능적으로 마왕성을 향해 걷고 있었다.

사실, 그냥 죽이려고 했으면 이 정도까지 상처 입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힘을 조절하느라 꽤나 많은 고생을 했다.

괜히 놈들이 죽어서 정인우나 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면 안 되는 거다.

"하아······."

어느덧 제라의 흐릿한 시야에 마왕성이 보였다.

철벅. 철벅.

그런데 그때.

마왕성 앞에 누군가가 보였고, 그가 제라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제라는 흐릿한 의식을 간신히 붙잡고 다가오는 자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인간······."

그는 정인우였다.

제라는 저도 모르게 말했다.

"인간. 나 싸웠다."

"응."

어느덧 다가온 인우가 제라의 겨드랑이 사이로 목을 밀어 넣고 부축했다.

"더 안 묻냐?"

"응."

"인간. 우린 친구지?"

문득 울컥한 제라가 물어왔다.

인우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뭘 당연한 걸 묻냐? 밥 먹으러 가자. 퀸이 저녁을 차렸으니까."

"···밥?"

"그래 밥. 배고플 거 아니야?"

"어, 어···? 어! 나 배고프다···! 크흑······."

그것은 아주 작은 관심이었다.

하지만 제라는 그런 관심이라도 받고 싶었다.

순간 제라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고, 이윽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크흑. 흐으윽!"

"비가 꽤 오네?"

인우는 그런 말을 내뱉으며 제라의 눈물을 모른 척해 주었다.

0203 / 0208 ----------------------------------------------

203화 천사 (1)

시간은 빠르게 흘러 서열전을 하루 앞둔 시점.

퀸은 들뜬 마음으로 상태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루시 퀸>

레벨 : 615

특성 : 뱀파이어 퀸

스텟 :

[근력 770+2,520]

[민첩 1,000+2,520]

[마력 1,030+2,520]

[체력 1,056+2,520]

* 히든 스텟 : [재생력 100]

미분배 포인트 : 0

[EXP 870,578 / 1,563,000,000]

인우가 내어주었던 마왕의 혈액을 다 마신 결과물이었다.

엄청난 레벨이다.

이 상태로 인간계로 내려가면 드래곤 로드의 할배가 와도 그녀를 막지 못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미 그녀는 더 이상 '뱀파이어 퀸'이라 불릴 수 없었다.

이제 어엿한 마왕인 것이다.

그간 그녀는 마왕성의 세력을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괴수가 굉장히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퀸은 그들 모두를 받아 주지 않았다.

이를 테면, 그녀는 성별이 여자인 마족과 괴수들만을 모집했다.

절대로! 결단코! 무슨 일이 있어도! 남자는 들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에 출입할 수 있는 남자는 오로지 정인우뿐이었으니까.

"취-익! 퀸. 밥 주라!"

아, 쟤도 포함이다.

블랙오크 제라.

퀸은 녀석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밥을 먹고 싶으면 주인님이 시켰던 수련을 다 하고 말해."

"흥!"

제라는 콧방귀를 꼈다.

그러면서도 그는 묵묵히 칼을 들고 수련장으로 향했다.

근래에 들어서 제라는 독하게 수련에 임하고 있었다.

그 수련이란 바로 스킬의 레벨을 올리는 것이었다.

인우는 마계 상점에서 '수련의 목걸이'를 구입하여 제라에게 주었고, 이를 통해 스킬을 하루 종일 사용하며 키우라 일러두었던 것이다.

익히 알고 있듯, 수련의 목걸이는 김민철도 지니고 있는 아이템이었다.

지구에서는 초 레어에 속하는 아티펙트이건만, 이곳 마계에서는 비교적 싼값에 구할 수 있는 목걸이였다.

자그마치 스킬 경험치 획득량 +3의 기능을 지닌 막강한 아티펙트.

제라는 투덜대면서도 목에 걸린 수련의 목걸이를 소중히 어루만지며 수련을 시작했다.

한편 제라를 보낸 퀸은 침대에 누워 수정구를 소환했다. 근래에 들어 퀸은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 수정구는 마왕의 권능 중 하나로서, 마계를 제외한 하위 행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능을 지녔다.

"우리 팜이. 잘 지내지?"

이윽고 수정구를 바라보는 퀸의 눈꼬리가 곱게 휘어졌다.

* * *

평화롭기 그지없는 날이었다.

달리 말해 따분했다.

"흐아아아암."

정지은은 길게 하품하며 침대 위에서 몸을 배배꼬았다.

오빠 녀석은 마계라는 곳에 간다며 떠난 지 오래다.

그곳을 완전히 정복하면 오겠다나 뭐라나.

"야. 팜. 이리로 와 봐."

그녀는 티셔츠를 걷어 올리고 배를 벅벅 긁으며 말하고 있었다.

"왜?"

"아, 그냥 좀 와 봐."

"저번처럼 헤드록 걸려고?"

"······."

그 말에 지은은 배를 긁던 걸 멈추고 정색했다.

"이게 이 누님을 뭘로 보고!"

"맞는가 보네."

팜이는 웃었다.

인간형으로 폴리모프한 녀석은 정말이지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다.

그래서인지 정지은은 이곳 궁, 자신의 방에서 늘 팜이를 재우곤 했다.

"누나. 나 산책하러 갈 거야."

"그러던가!"

정지은은 팜이에게 헤드록을 걸지 못한 것이 못내 서운한지 투덜대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팜이는 밖으로 나섰다.

궁의 회랑을 가로 지르고 금세 바깥으로 나왔다.

정원의 분수대에서는 물이 뿜어져 나오며 햇살을 받아 무지개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엉? 팜이!? 팜팜팜팜!!"

그때, 팜이의 뒤에서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팜이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민철이구나."

"팜팜팜팜! 파아아아암!"

김민철은 한때 살이 쭉 빠졌었는데, 근래에 들어서 다시 뚱보가 됐다.

그래 뭐 사실, 김민철이 날씬했을 때는 정말로 낯설었다.

김민철은 뚱뚱해야 어울린다.

"아아, 소화도 잘 안 되는데 헬게이트나 갈까? 팜아 같이 갈래?"

"정지은이랑 같이 가."

"쳇. 쌀쌀한 놈."

어느새 김민철은 정지은이 드러누워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놀랍다.

1존의 제왕이었던 겁쟁이 김민철.

그런 그가 이제는 밥 먹고 소화가 안 된다며 헬게이트를 간단다.

오래살고 볼 일이다.

그나저나 용용이는 어디에 있을까?

역시나 오늘도 그곳에 있을까?

어느새 팜이는 다시금 궁으로 들어서더니 어딘가로 향했다.

터벅- 터벅-

그리고 이곳 궁에서 가장 큰 방의 문 앞에 섰다.

문을 열었다.

이곳은, 본래 정인우가 기거하던 방이었다.

"용용아."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녀는 침대에 쪼그려 누운 채 잠들어 있었으니까.

팜이는 안쓰러운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용용이는, 아직도 정인우의 채취가 남아 있는 옷을 꼭 끌어안은 채 잠들어 있었다.

그런 용용이를 바라보며 팜이는 조용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아빠 보고 싶다."

* * *

'프로킨 대륙의 황제 자리를 맡아 줘라.'

정인우는 그렇게나 가벼운 목소리로, 이렇게나 무거운 직책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어주고 떠났다.

때문에 알렉산더는 팔자에도 없던 프로킨의 황제가 되었다.

그 어떤 누구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알렉산더가 원체 강하기도 했고, 정인우라는 거대한 산이 뒤에 있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는 늘 정인우가 그리웠다.

이런 자리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를 모시는 것만이 자신의 유일한 낙이자 행복이었다.

그랬기에 알렉산더는 행복하지 않았다.

게다가 근래에 들어서는 골칫거리까지 생겼다.

"폐하. 황궁의 정원에 또 다시 그놈이 나타났습니다."

"하아······."

얼마 전.

웬 미친놈이 등장했다.

그놈은 정오가 되면 항상 프로킨의 황궁에 왔다.

그러고는 정원에 있는 커다란 나무 사이에 해먹을 설치한다. 그리고 잔다.

이게 무슨 문제인가 싶겠지만, 이건 제법 큰 문제였다.

첫째로, 황궁의 삼엄한 경비를 아무렇지도 않게 뚫어냈다는 것.

둘째로, 그 누구도 저놈을 내쫓지 못했다는 것.

그랬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사내는 그야말로 귀신과 같았다.

"오늘도 정원에 있나?"

"그러하옵니다."

"내가 직접 가 보지."

알렉산더가 일어섰다.

이내 그는 정원을 향했다.

도착한 정원.

오늘도 사내는 해먹에 드러누워 있었다.

그 사내는 얼굴을 책으로 덮은 채 코까지 골았다.

"······."

알렉산더는 모든 기척을 죽인 채 살금살금 사내에게로 향했다.

오늘이야 말로 잡아서 내던져 버릴 거다.

그런데 그때.

자는 줄로만 알았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내일 떠날 참이거든."

여전히 책으로 얼굴을 덮은 채, 알렉산더를 바라보지도 않고 말을 내뱉고 있다.

알렉산더는 탐탁지 않은 듯 눈썹을 모으며 물었다.

"범죄자인가?"

"아니다."

"그럼 당신은 뭐지?"

"천사."

"하아··· 오늘도 역시나 미친 소리를 하는군."

"참, 이건 숙박비다."

그러면서 사내는 누운 자세 그대로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뎅!

그리곤 알렉산더를 향해 동전 하나를 던졌다.

척.

동전을 받아 든 알렉산더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동전에는 '10,000천코(cheonco)'라고 적혀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화폐다.

"이것이 어딜 보아서 돈이지?"

"잘 간직하라고. 언젠간 쓸 데가 있을지 누가 아나?"

"다시 한 번 묻지. 당신은 도대체 누구지?"

"말했잖은가. 나는 천사다."

어느덧 사내는 얼굴을 덮었던 책을 치웠다. 그런 뒤 알렉산더를 바라보며 하얀 이를 드러내곤 씨익 웃었다.

늘 저런 식이었다.

모든 상황을 저 미소로 넘기려든다.

그런데도 내칠 수가 없다.

저 사내는 알렉산더가 제아무리 용을 써도 옷자락 하나 스칠 수 없었으니까.

어느덧 사내는 다시금 책으로 얼굴을 덮었다.

곧바로 코고는 소리가 이어졌다.

* * *

서열전 당일.

정인우는 루시 퀸과 함께 특별 게이트로 향했다.

오늘은 특별한 서열전이다.

왜냐하면, 오늘은 루시 퀸도 서열전에 참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인님! 이제 저도 서열이 오르면, 다른 권능도 생기겠죠?"

"응."

"빨리 다른 권능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원하는 권능이라도 있어?"

"···음, 비밀이예요."

퀸은 해맑게 웃었다.

인우는 그런 퀸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마주 웃었다.

그나저나, 오늘 서열전에도 바알이 올까?

잘 모르겠다.

그리고 56위인 그녀도 올까?

시녀로 위장한 채 꽃밭에 물을 주던 모리.

마계의 최상위권 서열인 72마왕들에 속해 있는 그레모리.

암만 생각해 봐도 그녀에 대해서는 늘 의문점만 일었다.

다짜고짜 사모한다 하기도 했고, 마왕들의 공격을 미리 알려 주기도 했다.

인우에게 더 없이 친절한 그 태도.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유 없는 친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인우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암만 생각해 봐야 답은 나오지 않았다.

어느덧 루시 퀸과 정인우는 특별 게이트 앞에 도착해 있었다.

인우는 자연스럽게 퀸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퀸은 흠칫 몸을 떨더니 이내 맑은 미소를 지었다.

터벅- 터벅-

입장과 동시에 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곳의 사회를 맡은 마족의 목소리였다.

-서열 150위 정인우 마왕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서열 255위 루시 퀸 마왕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곧바로 내부의 시선이 확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두 남녀는 요즘 태풍을 몰고 다니는 주역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어느덧 마왕들이 쑥덕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녀석들, 그렇고 그런 사이라며?"

"정인우가 직접 힘을 써서 저 뱀파이어 퀸을 마왕의 자리까지 끌어올렸다고 하더군."

"쯔쯧. 그럼 보나마나 별 볼일 없겠네. 듣기론 퀸의 마왕성에도 엄청난 가디언을 심어놓았다던데."

"아아, 그 오크? 조금 특별한 오크같다던데."

"어쨌든 저 여자는 별 볼일 없다는 거지."

"그럼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데리고 온 거지? 서열전은 무조건 1:1대결인데, 저 여자가 서열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여기선 정인우가 아무리 대단해도 퀸을 도울 수 없을 텐데?"

"알게 뭐냐."

터벅- 터벅-

정인우와 루시 퀸은 그런 마왕들의 대화를 가볍게 무시하며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쟤들 말은 귀담아 듣지 마. 넌 오늘 반드시 서열이 올라갈 테니까."

"···네!"

퀸이 간신히 웃는 얼굴을 하며 답했다.

그녀는 조금 움츠러든 상태였다.

하긴, 엄청난 숫자의 마왕들이 그녀만을 쳐다보며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데, 견디기 힘들 수밖에.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결국 바알이나 그레모리는 오지 않았다.

이들을 제외한 72마왕들 중 그 어떤 누구도 오지 않았다.

하긴. 그게 정상이다.

그들은 애초에 생사전에 걸리든 말든 서열전 따위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은 이 드넓은 마계, 그 자체였다.

이윽고, 서열전 시작을 알리기 위해 특별 게이트의 입구가 닫히려 하고 있었다.

0204 / 0208 ----------------------------------------------

204화 천사 (2)

서열전이 열리는 특별게이트.

이곳에 모여 있는 모든 마왕들은 루시 퀸을 얕잡아 보고 있었다.

정인우가 도와서 마왕좌에 앉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긴, 일개 뱀파이어 퀸이 마왕이 된다는 건 상상조차 안 된다.

그리고 이것은 퀸에게 꽤나 유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전력을 다해서 덤비는 적과, 자신을 얕잡아 본 채 덤비는 적을 상대하는 것은 크게 다르다.

그래서일까?

퀸은 240위 마왕에게서 어렵지 않게 승리를 거두었다.

단박에 15위를 올린 것이다.

상대 마왕은 시체와 괴수를 조종하는 특성을 지닌 녀석이었는데, 놈의 소환수는 모조리 퀸에게 피를 빨리고 나가떨어졌다.

애초에 괴수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그녀에게는 더없이 좋은 상대였던 것이다.

물론, 아무리 그녀에게 유리한 상대였다고 해도, 루시 퀸은 자신의 강함을 분명히 증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마왕들은 더 이상 그녀를 우습게 보지 못했다.

결코 운이나 도움을 통해 얻어낸 마왕좌가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로 강했다.

그렇게, 퀸의 차례가 끝나고 다른 마왕들의 서열전이 쭈욱 이어졌다.

정인우는 150위권이었기에 아직 차례가 오려면 한참이나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하위권 마왕들은 정인우에게 서열전을 신청하지도 않고 있었기에 더더욱 지루한 기다림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마침내 인우의 차례가 되었다.

그러자 모든 마왕들은 인우를 바라보았다.

저번에는 바알에게 시비를 걸던 녀석이다.

오늘은 어떨까?

그런데 그때, 사회를 보는 마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재, 이곳에 모인 마왕 전하들 중 정인우 마왕 전하께서 순위가 가장 높습니다. 이에 따라, 정인우 마왕 전하께서는 서열전을 신청할 대상이 없으므로 서열전은 종료됩니다!

"뭐?"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72마왕들은 그렇다 치고, 73부터 149위의 마왕들 중 단 한 놈도 오지 않았다는 건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생사전을 걸어달라는 거지?"

* * *

마계 그 자체라고 불리우는 72마왕들.

이들은 마계의 최상위권 마왕들이다.

서열1위 바알부터, 72위 안드로말리우스까지.

이들 모두가 마계신전에 모여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73위부터 149위까지. 상위권 마왕들 또한 이곳에 모여 있었다.

중위권에 포함되는 150위부터 최하위인 255위까지를 제외한, 모든 마왕들이 보였다.

정리하자면, 1위부터 149위의 마왕들이 이곳에 모여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

"······."

이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신전 중앙에 닿아 있었다.

그곳엔 으스러진 돌가루가 보였다.

"석상이 깨졌다··· 루시퍼의 등장인가?"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본래 이 돌덩이는 하나의 석상이었다.

바로 서열 1위인 바알이 직접 만든 것으로, 보통의 석상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이를테면 봉인 석상이다.

그날, 바알은 루시퍼를 몰아냈고, 상처 입은 루시퍼는 천계로 도주했다.

그 즉시 바알은 루시퍼가 흘린 피를 이용해 이 석상을 빚었다.

이를 통해 루시퍼의 힘을 구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

석상이 깨졌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루시퍼는 이미 힘을 되찾았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어."

또 다시 누군가가 말했고, 이윽고 모든 마왕들은 바알을 바라보았다.

"······."

바알은 팔짱을 낀 채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 뒤에 바알의 입술이 열렸다.

"루시퍼··· 위험한 녀석이지."

바알의 입에서 '위험'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이제 석상마저 깨졌으니, 루시퍼는 당장이라도 마계에 진입해 올 수 있을 것이었다.

모든 마왕들을 말살하고 마신이 되겠다던, 그 타락한 미친 대천사가··· 다시금 피바람을 몰고 올 수도 있었다.

* * *

이제 퀸은 더 이상 255위가 아니었기에 귀찮은 도전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이로써 인우는 한시름 놓았고, 에노느가 내어준 마왕들의 목록을 훑고 있었다.

31년 전, 1위부터 150위까지.

이 중에 자신을 프로킨으로 보낸 녀석이 분명히 존재할 거다.

"56위 그레모리."

그리고 인우는 이중에서 그레모리의 이름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여자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무언가 짚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녀가 내뱉는 말을 종합해 보자면, 마치 예전부터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뉘앙스가 강했으니까.

그것은 다시 말해······.

그레모리가 자신을 프로킨으로 보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무슨 이유로 자신을 프로킨으로 보냈을까?

거기까지는 도저히 모르겠다.

그즈음 인우는 생각을 그치고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나저나, 이번 서열전에서는 1위부터 149위까지 마왕들이 모조리 불참했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이번 서열전에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되었기에, 인우는 지금 꽤나 답답했다.

이렇게 된 이상 3개월간 서열전에 참여하지 않은, 다시 말해 생사전 대상자를 물색해서 도전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서열을 더 올려서 더 많은 마왕의 권능을 지니는 것이 유리할 테니까.

에노느의 말에 따르면 권능 중에는 아이템 제작과 관련된 것도 있다고 했다.

바알이 수리검을 만들어서 전신을 무기로 만든 것처럼, 인우 또한 무언가 한 끗 다른 무기가 필요했다.

그러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아이템 제작이며 서열의 상승인 것이다.

때문에 오늘 서열전은 아쉬움만 가득했다.

똑- 똑-

생각도 잠시.

노크 소리와 함께 에노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왕 전하!! 손님이 오셨어요!! 어, 어···! 빨리 나오셔야겠는데요! 접견실에 모셨어요!"

손님?

퀸인가?

그녀 말고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퀸이라면, 에노느가 왜 저렇게 호들갑을 떨까? 게다가 퀸이라면 접견실에 모실 필요도 없다.

당장에 지금 인우가 머물고 있는 방으로 왔겠지.

인우는 금세 몸을 일으키고는 접견실로 향했다.

그러면서 에노느에게 물었다.

"손님이 누군데?"

"서열 56위 마왕 전하이신 그레······."

"그레모리?"

"에? 네! 그레모리 마왕 전하께서 오셨어요."

인우의 걸음이 빨라졌다.

* * *

눈앞에 그녀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예전에는 모리였으며, 저번 서열전부터는 정체를 드러냈던 그레모리였다.

그녀는 오늘도 묘한 미소를 지으며 인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접견실에 마주 앉은 두 마왕은 그렇게 한참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그레모리는 긴 다리를 꼬며 말했다.

"재밌는 이야기와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어. 어떤 이야기부터 해 줄까?"

"너지?"

그레모리의 물음에 인우는 다짜고짜 그리 물었다.

그러자 그레모리의 입꼬리가 휘어지며 웃음이 피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금세 정색하고는 되물었다.

"무얼?"

"날 프로킨에 보낸 거. 그거, 너지?"

"글쎄?"

그레모리는 애매한 답을 남기며 꼬았던 다리를 풀며 반대 다리를 다시 꼬았다.

"음, 선택하지 않았으니 내 임의로 이야기를 시작할게. 우선 재밌는 이야기부터."

난데없이 찾아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녀는 무작정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바알이 마신의 경지에 닿지 못한 이유가 무언지 아니? 마계의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강력했던 그가, 그 어떤 마왕보다도 압도적으로 강했던 그가, 마신이 되지 못한 이유, 그게 무언지 아니?"

도대체 이 이야기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건 인우 또한 궁금했기에 일단은 들었다.

이윽고 길고 긴 이야기가 시작됐다.

바알, 그는 마계뿐만이 아니라 천계를 통틀어서도 가장 높은 레벨을 보유하고 있는 존재였다.

그럼에도 바알은 마신의 경지에 닿을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신은 애초부터 선택받은 자만이 닿을 수 있는 경지였으니까.

정확히 말해, 마신이 되기 위해선 신의 능력이 필요했다.

그 능력이란 바로 신의 패시브.

걸을 때마다, 호흡할 때마다 변화하는, 그야말로 신의 영역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막강한 권능.

신이 직접 내려준 그 권능을 지닌 존재만이 마신의 경지에 닿을 수 있다.

하지만, 바알에게는 신의 패시브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절대자, 그리고 전능자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가 그의 한계였다.

여기까지 말한 그레모리는 잠시 말을 끊었다.

그러더니 팔짱을 끼고 다시금 입을 열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이젠 흥미로운 이야기."

"나 원 참······."

이건 분명 바알의 이야기였지만, 그 속에는 분명 자신의 이야기가 있었다.

절대자, 전능자, 그리고 신의 패시브까지. 모두 다 인우가 가진 능력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 정체불명의 패시브의 출처가 신이였다고?

하긴, 신이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 어떤 존재가 이러한 미친 패시브를 줄 수 있겠는가?

그래, 신뿐이다.

그레모리가 여전히 빙긋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신이 가혹한 이유를 알려 줄까?"

"?"

"신은, 신의 권능이 담긴 패시브를 절대 한 명에게만 주지 않아. 정확히 말해, 두 명에게 주지."

어느덧 인우는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저도 모르게 물음이 튀어나왔다.

"두 명? 왜지?"

"경쟁하라는 것이고, 둘 중 하나는 죽으라는 거지. 가혹하지 않니?"

"그게 사실이라면, 신은 정말 빌어먹을 새끼가 분명하네."

"자, 여기부터 흥미로워져. 그 신의 능력을 받은 존재 중 한 명이 누군지 아니?"

설마 이 여자는 자신이 신의 패시브를 지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인우는 침묵했고, 이어진 그레모리의 이야기는, 다른 의미로 충격적이었다.

"그 중 한명이 바로 루시퍼라는 천족이야. 그는 신의 패시브를 열 수 있는 레벨에 닿기 위해 모든 마왕들을 말살하려 했지. 하지만, 루시퍼는 끝내 마신으로 각성하기도 전에 바알에게 가로막혔어."

"루시퍼······."

인우는 그 이름을 되뇌었다.

알고 있다.

분명 마계 신전에서 보았던 그 석상의 주인공이라 했다.

그 석상을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었기에, 루시퍼라는 이름은 기억 깊숙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루시퍼가 다시 등장했어. 아마 오래지않아 마계에 들어서겠지."

"그가 등장한 걸 어떻게 알지?"

가만히 듣던 인우는 의문이 피어나는지 그리 물었다.

그러자 그레모리가 친절히 설명을 덧붙였다.

"오늘 서열전에 참여한 마왕들이 꽤나 적지 않았니? 1위부터 149위까지, 모두 마계 신전에 모였었거든. 루시퍼의 석상이 깨져서 말이지."

그래서 오늘 마왕들의 참여율이 저조했던 것인가?

오늘 서열전에 참여한 가장 강력했던 마왕이 정인우였을 정도다.

"그래. 좋다. 다 좋다 이거야. 근데,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냐?"

인우가 날카로운 눈을 한 채 묻고 있었다.

도무지 그녀의 의중을 모르겠다.

그 날선 음성에, 그레모리는 여전히 포근한 음성으로 화답했다.

"한 가지 알려 줄게. 선택받은 자는, 마찬가지로 선택받은 자를 마주하면 본능적으로 알아채게 되어 있어. 이 또한 신의 뜻. 서로를 알아보고 이를 갈며 싸우라는, 신의 뜻인 거지."

'선택받은 자'란 바로 신의 패시브를 지닌 존재를 지칭하는 뜻이리라.

루시퍼가 그렇듯 정인우 또한 선택받은 자.

가만 생각해 보니 그랬다.

인우는 루시퍼의 석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이곤 했었다.

그래, 그 기분의 정체가 이제야 이해된다.

그건 바로 그레모리가 언급한 그 '본능'이었다.

단지 석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러한 본능이 튀어나왔던 것이다.

인우가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내 말은, 피하라는 거야. 정인우. 나는 네가 죽는 걸 원하지 않아. 루시퍼가 온다면, 반드시 너와 마주하게 될 거야. 그리 되면··· 루시퍼와 너는 서로를 알아보고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겠지. 마신이 둘이 될 순 없는 거잖니? 루시퍼는 마신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너를 죽일 거야. 너는 아직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해. 그러니까, 그러니까 도망쳐. 신의 선택을 받은, 정인우."

그녀는, 정인우가 루시퍼와 같은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신의 선택을 받은 존재라는 것을, 모두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정인우가 도망치길 바라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녀는 늘 그랬다.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인우를 도우려 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모든 비축분은 끝입니다.

내일부터는 정상적(?)으로 연재 될 예정입니다.ㅠㅠ

연재주기는 월~금 주 5일을 기본 원칙으로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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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화 루시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