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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화 마왕성의 징표 (4)

설마 들킨 걸까?

아니다.

그럴 리 없다.

헤쉬테의 투명화는 완벽했고, 정인우는 헤쉬테가 기체화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건 무얼까?

'후웁.'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다.

숨을 내뱉는 순간 모든 게 들통나 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이놈 도대체 뭐야···!'

헤쉬테는 양손으로 입을 가린 채 자신의 코앞에서 가만히 서 있는 정인우를 바라보았다.

공포 영화가 따로 없다.

투명화고 나발이고 정인우는 분명한 눈동자로 헤쉬테가 서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니 헤쉬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움직이는 순간 소리가 날 테고, 그리 되면 정인우가 자신을 인지할 테지.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정인우가 언제 돌변할지 모를 일이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척.

이윽고 정인우가 안개와 대치중이던 광폭 어검을 거두고 대검을 창처럼 꼬나 쥐기 시작했다.

그 방향은 분명 헤쉬테의 코앞이었으며, 헤쉬테의 복부를 향해 있었다.

그제야 헤쉬테는 깨달았다.

'마, 맙소사! 들킨 건가!'

등허리를 타고 올라온 소름이 정수리를 가득 누빈다.

"크아아아아아아압!!"

순간 정인우의 얼굴이 야차처럼 일그러지며 거친 기합성이 터져 나왔다.

그제야 헤쉬테는 비명을 내질렀다.

"히, 히익!!"

그리고 그때.

쐐애애애애액!!

바로 코앞에서 인우의 대검 관통이 발동됐다.

"곱게 안 죽인다!!!!"

컨트롤이 불가능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코앞이었기에 곧바로 소시지처럼 관통될 거다.

레전드 마스터 레벨의 대검 관통이 명확한 목표를 향해 대포알처럼 터져 나온다.

푸욱!

"쿠훕!"

그것은 삽시간이었다.

인우의 대검이 헤쉬테의 복부를 깨끗하게 관통했다.

순간 헤쉬테는 목젖 끝까지 역류하는 비릿한 혈향에 의해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한 박자 늦게 살가죽이 찢기고 내장이 아작 나고 허리뼈가 끊어지는 고통이 육체를 가득 메웠다.

등 뒤로 삐죽 튀어나온 대검은 폭발적인 관통력을 머금고 멈춤 없이 헤쉬테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파바바바바밧!

"쿠훕!"

꼬챙이가 된 헤쉬테는 투명화가 해제되었고, 인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인우는 대검 관통을 멈췄다.

그리곤 양손으로 쥔 대검을 하늘 높이 치켜 올리며 양발을 넓게 벌렸다.

헤쉬테는 꼬챙이가 되어 있었기에 인우의 대검과 함께 딸려 올라간 상황.

"으라아아아아!"

인우는 그 상태로 땅바닥을 향해 내려찍기를 꽂기 시작했다.

까득! 까득! 까득!

장작을 패듯 끝도 없이 내려찍는다.

"으아아아악!!"

고통에 겨운 헤쉬테의 비명이 터져 나오고 그럴수록 인우의 내려찍기는 빨라졌다.

꽝! 꽝! 꽝! 꽝!

"끄아아아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아압!!"

산채로 몸이 찢겨 나가는 헤쉬테의 비명과 인우의 포효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쾅! 쾅! 쾅! 쾅!

인우는 멈추지 않았다.

대검의 손잡이를 움켜쥔 손바닥에서 피가 줄줄 흐른다.

손아귀가 찢어진 거였다.

레전드 마스터의 내려찍기였기에 보통 파괴력을 뿜어내는 것이 아니었다.

조금만 긴장을 늦춰도 내려찍기의 반동으로 인해 대검을 놓쳐 버릴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랬기에 인우는 손바닥이 찢어질 정도로 강하게 손잡이를 움켜쥐고 있었던 것이다.

쾅! 쾅! 쾅! 쾅!

본래는 단타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컨트롤이 가능했던 내려찍기였지만, 지금은 중간에 멈출 수 없었다.

쉽게 말해 시속 200km로 달리던 슈퍼카에 급브레이크를 거는 격이라고 보면 된다.

그랬기에 웬만한 근력으로는 지금의 내려찍기를 자유자재로 컨트롤하기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처럼 헤쉬테가 대검에 꽂혀 있는 상황이라면 컨트롤이고 나발이고 그냥 땅에다가 내다 꽂아 버리면 그만이었다.

"개자식!! 감히 누구 앞에서 속임수를!!"

쾅! 쾅! 쾅! 쾅!

대검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힐 때마다 헤쉬테의 피가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따지고 보면 굉장히 아까운 피인건데, 지금의 인우는 그런 걸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헤쉬테에게 끝도 없는 고통을 선사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게 인우의 내려찍기는 5분 동안이나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인우의 공격이 멈췄다.

"후우. 후우. 후우."

인우는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여전히 양발을 넓게 벌린 채 대검의 손잡이를 움켜쥐고 있었다.

여전히 대검에 꽂혀 있는 헤쉬테.

녀석은 이제 걸레짝처럼 넝마가 되어 있었다.

"크럭."

끝도 없이 내려찍히며 이빨마저도 몽땅 나가 버린 건지, 핏물을 토해 내며 하얀색 알갱이들까지 뱉어낼 정도였다.

헤쉬테는 찢기고 터진 얼굴을 간신히 치켜들었다.

그리고 인우를 바라보았다.

"···쿠훕."

무언가 말을 내뱉으려 했지만 끝내 입술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럴 만한 기운도, 이빨도 없는 거였다.

절로 불쌍해질 정도의 모습이었음에도, 인우의 얼굴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죽을 때까지 피를 채취해 주마. 속임수로 날 현혹한 대가다."

말을 마친 인우는 헤쉬테를 털어내기 위해 허공에 대고 대검을 휘둘렀다.

쐐액!

철퍼덕.

그러자 걸레가 된 헤쉬테가 종이인형처럼 땅바닥에 처박혔다.

인우는 그런 헤쉬테를 가만히 내려보다가 무언가가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이것도 마계의 마왕들이 지켜보고 있나?"

그리 말한 인우는 매서운 눈을 한 채 다시금 말을 이었다.

"지켜보고 있다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귀 열고 잘 들어라. 마왕 새끼들아."

이윽고 인우의 선전포고가 시작되었다.

* * *

마계신전.

49명의 마왕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 전운이 감돌았다.

"······."

"······."

그 누구도 선뜻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마왕들은 한참동안이나 멍한 얼굴로 수정구를 바라볼 뿐이었다.

"저놈··· 인간이 맞긴 한 거냐?"

누군가가 중얼대듯 말하고 있었다.

질린 어조, 나아가 질린 얼굴을 한 채로.

"마왕을 둘이나 쓰러트렸다. 이미 인간이라 부를 수 없지."

"이제 어쩌지?"

"저 정도 무력이라면 우리 중 둘 이상이 모여서 가야 한다. 그런데 인간 하나를 잡자고 몰려갈 수도 없는 거고, 결론은, 정인우는 이제 마왕이 되겠군."

"······."

"······."

또 다시 침묵이 감돈다.

그리고 그즈음.

수정구 속 정인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귀 열고 잘 들어라. 마왕 새끼들아.

정인우는 마왕들이 제 놈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의 거름도 없이 말을 내뱉는 인우는 그야말로 살벌했다.

-너희들, 날 잡기 위해 자꾸 한 놈씩 이곳으로 오고 있는데, 나도 더 이상 안 참는다.

참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어쩔 셈이지?

마왕들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정인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마왕. 니 새끼들은 더 이상 이곳에 올 필요가 없을 거다.

거기까지 말한 정인우는 잠시 말을 끊고 숨을 골랐다.

그런 뒤 표독스러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마계로 갈 거니까.

"······."

"······."

"···저 미친놈. 제정신인가···?"

"미쳤군."

자신이 직접 오겠다.

그것은 선전포고였다.

다시 말해 이건, 마왕이 인간계를 침공하는 것도 아닌, 일개 인간이 마계로 침공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 * *

떠도는 소문이 제법 불길하다.

NO.255 마왕성의 집사, 에노느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회랑을 걷고 있었다.

끝에서 끝까지.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가 중간에 멈춰서 다리도 달달 떨었다.

그러다가 다시금 걸었다.

머리도 헝클어뜨리고, 짝 소리 나게 제 뺨다귀를 후려치기까지 한다.

그러다가 에노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지 고개를 위로 치켜 올리고 난데없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신이시여! 나한테 왜···! 아니, 왜 그러는 건데요! 응!?"

신이 이곳에 있었다면 멱살이라도 움켜쥘 기세다.

물론 신은 이곳에 없다.

나아가,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도 않을 것이다.

이 때문인지, 아니면 화를 참을 수 없음인지, 그녀는 여전히 꽥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그 인간··· 아니, 새로운 마왕 전하···! 그분이 그렇게 또라이라며! 응!? 지금 마계에 소문이 자자하다고! 다른 마왕들을 죽이고 마계로 침공해 오겠다고 엄포까지 놓은 미친 또라이라고! 왜 그런! 그런 또라이를 왜 나한테···! 으아아아앙!"

에노느는 끝도 없이 소리치다가 저도 모르게 울음을 터뜨렸다.

돌아 버릴 노릇이었다.

제발 또라이만 아니었으면 했건만, 결국엔 사단이 벌어진 거다.

현재 마계에 하급 노예들도 알고 있을 정도로, 엄청난 대사건이 벌어진 상태였다.

그 대사건이란,

'정인우라는 인간 놈이 마계에 침공해 온다.'

물론 여기까진 괜찮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으니까.

저 인간 놈이··· 하필이면 에노느가 새로이 모시게 될 마왕 전하였다는 것 정도?

"푸훕. 푸히히히히히!"

이윽고 그녀는 실성을 한 듯 배를 부여잡고 웃기 시작했다.

"꺼, 꺼헉! 히히히히히히히!"

숨이 넘어갈 정도로.

그렇게, 미친 여자처럼.

웃었다.

차라리 웃다가 죽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 * *

"이거이거, 내가 괜히 왔나?"

그레모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정인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곳은 높은 고도의 상공.

그녀는 이러한 상공에서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마치 마법의 양탄자라도 깔린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녀의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까마득한 높이의 허공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머물고 있는 상공 저 아래에는, 정인우가 보였다.

"이거 참."

그레모리는 여전히 눈을 떼지 못한 채 정인우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계로 진입하지 못하면 어쩌나 했는데, 침공을 하겠다고 엄포까지 놓다니. 참 어처구니없는 남자야."

그녀는 정인우를 마계로 인도해 주기 위해 현신한 거였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헤쉬테는 정인우에게 묵사발이 났고, 그녀가 도울 것은 없었다.

이윽고 그레모리는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칼을 들이밀 거지? 정인우."

그리 될 거다.

그녀가 오랫동안 수정구를 통해 지켜보았다는 것도 모른 채,

다듬어지지 않은 그 거친 매력에 오랫동안이나 앓았다는 것도 모른 채,

칼을 들이밀 거다.

* * *

넓다.

빌어먹을 정도로.

아공간은 전보다 더 커져 있었다.

제라는 그러한 아공간 구석탱이에 웅크려 앉은 채로 훌쩍거리고 있었다.

"인간···또 날 잊은 거냐······. 어쩜 그러냐······."

그날.

제라는 마기로 인해 강해진 퀸을 보며 자신을 비하했다.

나아가 아공간에 넣어 달라 했다.

그래서 아공간에 들어왔다.

그리고 반나절 만에 후회했다.

왜냐하면, 슬슬 배는 고파지는데 정인우가 자신을 꺼내 줄 생각조차 안 하고 있어서였다.

그래 분명 또 잊은 거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그런 생각을 하며 고픈 배를 부여잡고 누워 있기도 한참.

어느 순간 아공간이 열렸고, 그때에 인우는 다급히 힘의 정수를 꺼내더니 아공간을 도로 닫아 버렸다.

아니, 어떻게 열었다가 다시 닫을 수가 있지?

놀리는 건가?

그리고 또 다시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아공간이 열렸다.

이와 동시에 정인우의 어이없어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너 언제부터 있었냐? 일단 나와."

정인우는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었다.

"우와아아악! 인간! 날 굶어 죽일 생각이었지!?"

제라는 볼 것도 없이 열린 아공간을 통해 바깥으로 나왔다.

언제 또 닫아 버릴지 모른다.

그러면 또 갇히는 거고, 그때는 정말 죽을지도 모르는 거다.

"후우! 후우!"

밖으로 나온 제라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채 정인우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지금 이곳의 풍경이 난생 처음 접하는 것들로 가득했던 것이다.

제라는 저도 모르게 멍청한 얼굴로 물었다.

"인간. 여긴 또 어디냐?"

"마계."

짤막한 답변이 날아온다.

제라.

나이 : 15세.

최후의 블랙오크.

그리고.

블랙오크 최초의 마계 입성이었다.

============================ 작품 후기 ============================

공지에 고퀄리티 팬아트가 7장 더 추가되었습니다.

바알, 그레모리, 퀸 등등 많아요!

시간이 되신다면 한 번 훑어보시는 것도! ^^

그럼, 즐거운 설 연휴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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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화 마계 입성 (1)

인우는 마계로 향하는 길을 알지 못했기에 헤쉬테를 길잡이로 이용했다.

그리하여 손쉽게 마계에 입성할 수 있었다.

진입과 동시에 헤쉬테의 이용 가치는 사라졌다.

인우는 볼 것도 없이 헤쉬테를 죽였다.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녀석은 인우의 칼날에 대항조차 못했다.

[경험치를 5,000,000,000+5,0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600레벨의 '신의 마력'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신체가 각성되었습니다.]

[근력이 1,600 증가합니다.]

[민첩이 1,280 증가합니다.]

[체력이 640 증가합니다.]

[마력이 160 증가합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무지막지한 양의 경험치가 들어왔다.

도합 100억.

이를 통해 간단히 600레벨을 돌파한 것 같았고, 새로운 패시브가 열렸다.

도대체 몇 개의 레벨 업을 했을까?

인우는 상태 정보부터 띄워 보았다.

<정인우>

레벨 : 604

특성 : 광전사

스텟 :

[근력 1,824+3,150+10+350]

[민첩 1,058+2,520+250]

[마력 827+330+250]

[체력 967+1,320+10+150]

*히든 스텟 : [괴력 100] [매력 1]

미분배 포인트 : 150

[EXP 955,820,255 / 1,453,000,000]

15개의 레벨이 올라간 상태였다.

이것은 기존 몰가스 때보다 작은 상승이었다.

가만 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존재했다.

600레벨이 되며 필요 경험치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늘어나 있었던 것이다.

600이 되기 전에는 필요 경험치가 3억 안팎이었으니, 14억 5천이라면 대략 5배의 차이였다.

즉, 레벨 업은 5배 더 어려워진 것이라 볼 수 있었다.

이어서 인우는 150개의 포인트를 모조리 근력에 투자했다. 당분간은 무조건 근력이다. 레전드 마스터 스킬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때까진 말이다.

그런 다음 인우는 새로이 생성된 패시브를 생각했다.

기존에 물음표 처리가 되어 있었던 패시브의 정체는 '신의 마력'이었다.

이것은 무엇일까?

지금 인우는 '신의 마력'으로 인해 특별이 무언가가 바뀐 느낌이 들지 않았다.

볼 것도 없이 패시브 스킬 창을 띄워 보았다.

<패시브 스킬>

1. [절대자의 걸음 - 발을 내딛을 때마다 경험치를 5 획득합니다.]

2. [절대자의 호흡 - 호흡할 때마다 경험치를 5 획득합니다.]

3. [절대자의 성장 - 획득 가능한 모든 경험치가 2배가 됩니다.]

4. [전능자의 잠재력 - 레벨 업 보너스 스텟이 2배가 됩니다.]

5. [전능자의 한계돌파 ? 액티브 스킬의 한계 레벨이 2배가 됩니다. (히든 스킬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6. [전능자의 무한성장 ? 레벨의 한계점이 사라집니다.]

7. [신의 마력 ? 발을 내딛을 때마다 마력이 1%씩 회복됩니다.]

8. [신의 체력 - 레벨 700 달성 시 활성화됩니다.]

.

.

.

"아!"

확인과 동시에 인우가 탄성을 내질렀다.

새로이 생성된 스킬은 자그마치 발을 내딛을 때마다 마력이 회복되는 패시브였다.

어쩐지, 다시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걸을 때마다 무언가 회복되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다만 그 양이 1%였기에 체감이 크지 않았던 것이다.

1퍼센트의 회복률.

이건 다시 말해 100걸음만 발을 움직여도 100%의 마력이 회복된다는 뜻이었다.

100걸음이라 봐야, 인우가 지닌 근력과 민첩이라면 순식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의 마력을 잘만 이용하면 마법을 무한대에 가깝게 사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현재 인우가 지닌 마력 스텟은 1,407.

이 마력으로 블리자드는 5번 연속 시전할 수 있었고, 헬파이어는 10번 연속 사용할 수 있었다.

여기서 헬파이어의 경우, 현재 인우가 지닌 마력의 10%정도를 소모한다고 볼 수 있었다.

이는 다시 말해 10걸음일 뿐이다.

이러니 엄청난 속력으로 이리저리 달려 나가면서 헬파이어를 사용한다면?

무한 난사가 가능할 것이다.

그야말로 마력이 무한대라 보아도 좋을 정도였다.

아마 정지은이 지금 인우가 얻은 패시브를 알게 된다면 부러워 미쳐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마법사였고, 이 패시브는 마법사들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꿈의 스킬이나 마찬가지였다.

걷는 것만으로 마력을 회복하다니?

엄청날 수밖에 없다.

나아가 700레벨에 열리게 될 패시브는 '신의 체력.'

'신의 마력'을 통해 유추해 보건대 필시 사기적인 패시브일 것이 분명했다.

모든 생각을 끝마친 인우는 그제야 헤쉬테의 전리품을 채취했다.

[마계 민첩 영약]

[마계 모든 스텟 영약]

[레전드 스킬 볼]

[마계 스킬 경험치 영약]

NO.190 마왕성의 징표

이번에 나온 영약들도 몰가스 때와 마찬가지로 A급이었다.

가장 먼저 민첩 영약을 먹었다.

[민첩이 55 증가했습니다.]

마계 스킬 경험치 영약은 훗날 민철이를 포함한 가족들에게 주기 위해 아공간에 넣었다.

그나저나 이번엔 히든 스텟 영약이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레전드 스킬 볼이 떠 주었다.

마족들 또한 드래곤처럼 레전드 스킬 볼을 뱉는 모양이었다.

100%의 확률로 스킬을 랜덤 습득하며, 30%의 확률로 히든 스킬이 뜨는 막강한 스킬 볼.

인우는 그것을 삼켰다.

[히든 스킬 '그레이트 메테오'를 습득하였습니다.]

51. [그레이트 메테오 Lv.1 (14%)] - 하늘에서 거대한 운석을 소환합니다. 운석이 떨어진 지역은 용암지대가 되어 적들을 집어삼킵니다.

30%라는 확률은 은근히 크다.

이번에도 히든 스킬이 떠 주었으니까.

살펴보니 이건 보통 메테오가 아니었다.

보통의 메테오는 조그마한 운석 덩어리들을 비처럼 쏟아낸다.

하지만 인우가 얻은 그레이트 메테오는 거대한 하나의 운석을 소환하는 거였다.

척 보아도 보통 마법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마나가 소모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응축시켜보았다.

후웅-

양손이 붉게 물듦과 동시에 체내의 마력이 싹뚝 잘려나가는 느낌이었다.

순간 헛숨이 튀어나올 뻔했다.

마나의 소모가 엄청났다.

얼추 80%가량은 되는 것 같았으니까.

'주력기로 사용하진 못하겠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번에 얻은 신의 마력으로 인해 한결 수월하게 사용할 순 있을 거다.

다음으로 인우는 마계 모든 스텟 영약을 확인해 보았다.

이건 처음 보는 아이템이었다.

[마계 모든 스텟 영약]

종류 ? 영약

등급 ? A

기능 ? 모든 스텟 상승

확인과 동시에 그것을 삼켰다.

[근력이 11 증가했습니다.]

.

.

[매력이 11 증가했습니다.]

한계 수치 100에 닿아 있는 괴력을 제외한 모든 스텟이 11씩 증가했다.

매력의 경우, 찍을 생각이 전혀 없었건만 의도치 않게 상승해 버렸다.

* * *

마계라고 해서 인간계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

이곳에도 흙이 있고 나무가 있다.

집이 있었으며 도시가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었다면 구름이 새카맸고, 하늘은 붉었다.

이로 인해 마계는 온통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지옥의 풍경이 이러할까?

절로 오금이 저려오는 광경이다.

퀸은 인우가 뽑아 준 헤쉬테의 혈액을 마시며 마계의 전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은 어쩌면 자신의 고향일 수도 있었다.

혼자 마계에 가겠다는 인우를 졸라서 간신히 합류한 그녀였다.

꼭 와 보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인우와 떨어지기 싫었던 마음도 크게 작용했다.

그리하여 현재 마계에 입성한 이들은 정인우, 루시 퀸, 그리고 의도치 않은 제라까지였다.

제라의 경우 인우의 아공간에 갇혀 있다가 마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인간. 이제 어딜 가는 거냐?"

제라는 연신 안절부절 못하며 인우에게 묻고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짧은 답이 날아왔다.

"마왕성."

그리 말한 인우는 주머니에 쑤셔 넣어 두었던 두 장의 마왕성 징표를 만지작거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헤쉬테에게 듣기로는 NO.255 마왕성이 가장 가깝다고 했다.

* * *

NO.255 마왕성의 집사 에노느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빨리! 빨리!"

그녀는 마왕성의 마족들을 지휘하며, 거의 바닥이 벗겨질 정도로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바로 오늘인 것이다.

새로운 마왕이 이곳으로 오는 날이 말이다.

정인우는 이미 마계에 입성했다고 소문이 자자했고, 그가 가장 먼저 올 곳은 마왕성일 테다.

무조건 잘 보여야 한다.

밉보이면 곧바로 머리가 날아갈 수도 있었다.

청소를 마친 에노느는 손거울로 제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연신 단장했다.

에노느는 상당히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고 이를 통하여 정인우에게 최대한 어필을 할 생각이었다.

혹시 모를 일이다.

정인우가 예쁜 여자에게 약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이윽고 그녀는 마왕성 바깥으로 나왔다. 그런 뒤 입구에 가만히 선 채로 양손을 곱게 모았다.

그런 뒤 정인우가 오면 내뱉을 말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마왕 전하를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니야. 너무 식상해. 마왕 전하 오셨어요!? 아니야, 아니야. 인사가 짧다고 목이 날아갈 수도 있어. 그러면 차라리 대놓고 애교를···!"

잠시 말을 끊은 에노느.

이내 그녀는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짙은 눈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마왕 전하, 안녕, 안녕하세요! 저는 전하를 모시게 된 에노느예요! 꺄아! 너무 좋은 거 있죠!"

척.

그런데 그때.

주변의 공기가 싸해지며 묘한 기운이 풍겨왔다.

그제야 에노느는 눈웃음으로 인해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떠 보았다.

"아······."

그리고 멍청한 얼굴을 하고야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앞에, 정인우가 도착해 있었던 것이다.

왜 하필이면 타이밍이 이따윈 걸까?

이윽고 정인우가 표정 없는 얼굴로 에노느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이걸 어쩌면 좋지······.'

에노느는 울상을 지었다.

* * *

정인우의 마계 입성 소식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인간의 육체로 마계 진입이라는 최초의 업적을 이루어냈기에, 정인우는 한창 뜨거운 논란거리였다.

그는 마계에 들어서자마자 헤쉬테의 목을 날려 버렸고, 그 거침없는 행동에 모든 마왕들은 할 말을 잃었다.

사실 마왕이 마왕을 죽이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서열전을 통해 많은 마왕들이 죽고, 새로운 차기 마왕들이 등장하곤 하니까.

하지만 정인우는 고작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이것은 전례에 없는 대사건이라 볼 수 있었다.

이제는 정인우에 대해 모르는 마족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기나긴 마계 역사를 통틀어 이 정도의 파급력을 몰고 왔던 사건은 몇 개 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전설이라 일컬어지는 유명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 사건은 바로 '바알의 대학살'이었다.

바알은 서열전에서 20명의 마왕들을 도발했다.

그때에 전례에 없던 20:1이라는 싸움이 벌어졌고, 결과는 뜻밖이었다.

홀로 대적했던 바알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냈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납득조차 되지 않는 그 막강한 무력은 오래도록 마족들의 기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전설이라 불릴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현재 벌어진 정인우의 입성은 그에 준할 정도의 파급력을 몰아오고 있었다.

이즈음, 바알은 정인우라는 인간에 대해 관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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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화 마계 입성 (2)

머릿속이 백지다.

그냥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에노느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으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되돌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 아하하하···!"

그녀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정인우를 바라보았다.

정인우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지레 겁먹은 에노느가 본능적으로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인사 여, 연습하고 있었어요. 마왕 전하가 오신다기에, 잘 보이려고··· 그런데 마침 딱 오신 거 있죠?"

여전히 정인우는 아무 말도 없었다.

이를 어쩌면 좋지?

에노느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힐끗 힐끗 정인우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정인우에게서 호감을 비롯한 매력이 느껴졌으니까.

그녀는 잘 알지 못했지만, 인우는 모든 스텟 영약을 먹으며 의도치 않게 매력 스텟이 올라간 상태였다.

현재 인우의 매력 스텟은 12였고, 이는 집사 에노느의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에노느는 도저히 정인우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보기 드문 또라이라는 소문으로 피어난 두려움이 짓눌릴 정도였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마침내 정인우가 첫 마디를 내뱉었다.

"안내해."

"···에?, 아! 네! 그래야죠! 헤헤!"

'헉!'

에노느는 본인이 '헤헤'웃어 놓고 본인이 더 놀랐다.

실성이라도 한 건가?

왜 이런 바보 같은 웃음이 나온 거지?

절로 울상이 지어졌다.

이윽고 에노느는 어깨를 축 늘린 채 마왕성 내부로 인우를 안내했다.

* * *

정인우는 아직 마왕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해 공식적인 마왕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물론 몰가스와 헤쉬테를 박살내며 마왕으로서의 무력은 충분히 입증한 상태이긴 했다.

하지만 아직 마계신전의 성소에서 마왕 등록을 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바꿔 말해 등록만 끝마치면 마왕이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등록을 위한 준비물은 마왕성의 징표만 있으면 된다.

그 카드가 마왕의 모든 신분을 증명하는 그 자체였으니까.

"그러니까, 나더러 마계신전이라는 곳에 가서 등록을 하라는 이야기냐?"

"네네! 맞아요!"

에노느는 최대한 밝게 웃으며 인우의 궁금증을 풀어 주고 있었다.

가시방석이 따로 없다.

인우는 마왕좌에 앉지도 않고 서성이며 말하고 있었으니까.

"하나만 묻자."

"네.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내가 마왕 등록을 하면, 다른 마왕 놈들을 죽이고 경험치를 못 얻게 될 수도 있는 거냐?"

인우로서는 당연히 드는 의문이었다.

인간이 인간을 죽인다고 경험치를 얻는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마왕이 마왕을 죽이면 경험치를 못 얻게 되는 거 아닐까?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하다.

괜히 등록을 했다가 경험치 획득에 차질이 생기면 피눈물이 날 거다.

"음. 맞아요. 마왕은 마왕을, 아니아니, 정확히 말해 마족은 마족을 죽이고 경험치를 얻을 수 없어요."

인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노느는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전하는 인간이잖아요. 마왕 등록을 한다고 인간이 마족이 되진 않아요. 그저 마왕이 되는 거예요! 실제로 마계에는 천족 출신의 마왕 전하님도 계세요. 그분도 마왕 등록을 했지만 마족으로 변했다거나 하진 않았어요."

이건 뭐 볼 것도 없다.

인우는 즉시 마계신전이라는 곳으로 향할 준비를 하려 했다.

그러자 눈치 빠른 에노느가 잽싸게 인우의 어깨에 검은색 코트를 걸쳐 주며 물었다.

"제가 안내해 드릴까요?"

"됐어."

"네?"

"됐다고. 아, 그리고 퀸."

인우는 돌연 고개를 돌려 저만치 옆에 있는 퀸을 바라보았다.

"네. 주인님."

"갔다 올 테니까 여기에 잠자코 있어. 아직 이곳이 어떤 곳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니 위험할 수 있다."

"걱정해 주시는 거예요?"

"어. 아 그리고, 제라도 잘 챙겨. 그렇지 않아도 호기심이 많은 놈이라 이리저리 튀어 다닐 테니."

말을 마친 인우는 마왕성을 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이곳에는 퀸과 에노느만 남아 있었다.

퀸은 에노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꾸 교태를 부리는 말투를 내뱉는데, 보통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퀸은 에노느에게 한마디 했다.

"저 남자에게 허튼 마음을 품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제 주인에게 혀를 굴리는 마족 여자다.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지금 퀸의 눈동자는, 과거 미개척지대에서 홀로 생존해 왔던 야생적이고 공격적인 '뱀파이어 퀸'의 그것이었다.

"······."

하지만 에노느의 눈빛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녀는 마왕성의 집사.

이는 마족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직위의 계급이었다.

뱀파이어 퀸에게 꿀릴 것이 없었다는 거다.

"······."

"······."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을 것처럼 삽시간에 차가워지고, 그즈음 이곳에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아! 배고프다! 멸치 볶음!"

살벌한 분위기를 단박에 아작 내 버리는 외침의 주인공은 제라였다.

* * *

마계신전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곳 건물 중심부에는 새카만 레이저 같은 것이 하늘 높이 솟아나 있었으니까.

이러니 어디서 보아도 마계신전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었다.

하다못해 위저드 아이를 펼쳐도 위치를 단박에 확인할 수 있으니 찾는 게 어려울 리 없었다.

인우는 마계신전 내부로 들어섰다.

신전의 내부는 거대한 홀(hall)이었고, 중앙에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천사의 석상이 보였다.

마계신전에 천사의 석상이라니?

하지만 그런 의문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석상 복부에 박혀 있는 거대한 창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이것은, 죽어가는 대천사의 석상쯤 되리라.

석상은 굉장히 잘 만들어졌다.

극심한 고통에 의해 일그러진 대천사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비명을 내지를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때.

인우의 뒤편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석상, 인상적이지 않나?"

이에 인우는 뒤를 돌아보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인우 정도의 키를 지니고 있는 남자 마족이었다.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은 육체에는 준마 같은 근육이 언뜻 비쳤다.

특히나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검은색 눈동자와 흑발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놈은 도대체 누굴까?

"넌 뭐냐?"

"알아서 좋을 것 없지."

사내는 일축하며 인우를 위아래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썩 괜찮은 기세와 기운을 지녔군. 마왕 등록을 하러 온 것인가?"

"어."

인우는 짧게 답했다.

"마왕이 되는 인간이라. 재밌는 세상이야."

사내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인우는 이번에는 사내의 말을 무시했다.

그리고 저만치 앞에 있는 성소를 향해갔다.

그런 뒤 그 위에 마왕성의 징표를 얹었다.

[NO.255 마왕 등록을 하시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안내창이 뜨는 건가 보다.

볼 것도 없이 승낙했다.

[마왕이 되었습니다.]

[마왕의 권능이 생성됩니다.]

<마왕의 권능>

1. [마기방출 ? 지정한 차원에 마기를 방출합니다.]

2. [헬게이트 생성 ? 지정한 차원과 공간에 헬게이트를 생성합니다.]

3. [수정구 소환 ? 마계를 제외한 하위 행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수정구를 소환합니다.]

4. [차원이동게이트 생성 ? 차원이동게이트를 생성합니다. 그 어떤 패널티 없이 차원이동이 가능합니다.]

이로서 정인우는 마왕이 되었다.

그나저나, 마왕이 되어 보니 지난날이 이해되었다.

난데없이 프로킨과 지구에 마기가 가득 차 버렸다든지, 헬게이트가 열렸다든지, 따위의 것들은 마왕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우습지 않은가?

지구는 그 사건으로 인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간들이 죽었을 정도다.

그런데 그게 고작 마왕의 권능이라는 스킬로 발생된 현상이었다니.

몰가스는 이를 통해 하위 행성인 인간계를 지배하려 했었고, 결국엔 인우의 손에 의해 가로막히고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이제, 인우도 과거 몰가스가 그러 했듯 지구에 헬게이트를 생성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건, 기분이 참 묘했다.

'마왕이라······.'

이로서 마계신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끝마쳤다.

인우는 이 기분 나쁜 신전에서 나갈 준비를 했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기 위해 뒤로 돈 순간.

좀 전 보았던 사내는 보이지 않았다.

기척조차 없었는데 언제 사라진 것일까?

아니, 가만 생각해 보니 그 사내는 애초에 등장했을 때에도 기척이 없었다.

* * *

NO.255 마왕성으로 돌아왔다.

인우는 오자마자 에노느를 찾았다.

"물어볼 게 있어."

"얼마든지요! 그나저나, 마왕 등록을 하신 건가요?"

"묻는 거나 답해."

"···네!"

"검은 머리와 눈동자. 키는 나만하고 덩치도 나만해. 풍기는 기운은 거의 무(無)에 가깝고, 그래서인지 기척조차도 없어."

"···네?"

난데없는 설명에 에노느가 잠시 버벅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의 말은 이어졌다.

"목소리는 굵고 위엄 있어. 무장은 허리춤에 매달린 한손 검이 전부였어. 이게 누군지 알고 있어?"

"아··· 설마, 지금 말씀해 주신 그분과 마주치신 건가요?"

"응."

"그러한 생김새에 전하와 비슷한 체구를 지닌 마족··· 거기에 한손 검을 지니고 있었다······. 딱 한분이 떠오르네요."

"누군데?"

에노느는 잠시 뜸을 들였다.

하지만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았다.

권력의 끝자락에 있는 그가 정인우를 보기 위해 직접 움직였다고?

하다못해 근래에 들어서는 서열전에도 참여하지 않는 걸로 안다.

하나, 가만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했다.

정인우는 현재 뜨거운 논란거리였고, 그분 또한 정인우에게 관심이 생겼을 수도 있었다.

"그분은··· 마계 서열 1위이신 바알 전하가 분명한 것 같습니다."

* * *

NO.1 마왕성.

이곳 마왕좌에 앉아 있는 사내는 다름 아닌 바알이었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정색 일색인 복장.

그에게서 풍기는 기세는 절로 숨을 옥죄어 오게 만들 정도였다.

바알은 마왕좌의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기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터벅- 터벅-

누군가가 이곳을 향해 들어오고 있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바알과 독대할 정도의 마족이라면 엄청난 신분을 가진 자이지 않을까?

척.

들어온 마족이 바알의 앞에 섰다.

그제야 마왕좌에 앉아 있던 바알의 입술이 열렸다.

"보고 왔나?"

"응."

"내가 직접 마주할 가치가 있는 자였나?"

"아니. 아직까지는."

"그렇군."

고개를 끄덕이던 바알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마족을 바라보았다.

검은 머리와 눈동자, 그리고 큰 키와 적당한 근육이 잡혀 있는 몸.

이 마족은 바알과 똑같은 생김새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은 다름 아닌 바알의 분신이었으니까.

* * *

인우는 생각했다.

'바알이라.'

현 마계 서열 1위.

다시 말해 마계에서 가장 큰 경험치를 가진 녀석.

그 경험치 덩어리가 마계신전에서 마주쳤던 그 녀석이었다니!

이거 참 기분이 묘했다.

그 녀석은 도대체 무슨 속셈으로 자신을 보러 온 것이었을까?

돌이켜보면 절대 공격적인 태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흥미와 궁금증.

딱 그 정도의 얼굴을 하고 자신을 바라봤었다.

'알아 둘 필요가 있겠지.'

인우는 그런 생각을 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잡아먹어야 할 녀석이다.

그렇기에 놈의 전력에 대해 파악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다.

인우는 분신1을 소환했다.

"대장. 전투인가?"

놈이 곧장 묻는다.

이에 인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 정찰이다."

0186 / 0208 ----------------------------------------------

186화 분신들의 격돌 (1)

"정찰?"

정찰이라는 말에 일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우는 답 대신 아공간을 열고 곰탈과 스마트폰을 꺼냈다.

나아가 에노느에게 받아낸 바알의 마왕성이 위치해 있는 지도까지 건넸다.

그것을 받아든 일이는 그제야 알아차렸다는 듯 말했다.

"이 지도에. 표시된 곳으로. 정찰을 가?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응."

"곰탈은 왜?"

이 대목에서 일이는 조금 억울한 얼굴이었다. 일이는 곰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설마 했었고, 아니길 바랐다.

"입어. 얼굴을 보여서 좋을 게 없으니까."

"나더러. 이걸 또. 입으라고?"

인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녀석이 어디까지 정찰을 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허무하게 죽진 않을 것이다.

현재 일이의 능력치는 분신들 중 가장 높았으니까.

<분신1>

레벨 : 301

한계 레벨 : 362 <시전자 레벨의 60%>

오른손 반지 : 뱀파이어 킹의 생명 반지 (체력 40 상승, 생명 자연회복력 30% 증가)

왼손 반지 : 행운의 반지 (행운치 상승)

팔찌 : 초월의 팔찌 (맨손 전투력 5배 상승, 근력 50 상승, 민첩 100 상승)

목걸이 : 디아볼로스의 이빨 (마나 소모량 50% 감소, 마법 공격력 2배 증가)

추가스킬 : [아공간 Master] [블링크 Master] [해골 소환 Master] <히든 스킬 습득 불가>

현재 인우의 레벨은 604였다.

이로 인해 분신의 한계 레벨은 이에 60%인 362였고, 일이의 레벨은 301이었다.

인우의 레벨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분신의 성장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어찌되었건, 301이라면 지구의 기준으로 최정상급 초인이다.

정지은과 처음 만났을 때, 미국의 최상위 랭커라는 그녀조차도 322레벨이었다.

때문에 지금 일이의 무력은 지구의 대형 길드를 혼자서 쓸어 버리고도 남을 정도였다.

게다가 일이는 아티팩트도 굉장한 것들로 가득했다.

인우는 아포칼립소 세트로 갈아타며 기존에 차고 있던 것들을 일이에게 내줬던 것이다.

이 정도면 못해도 10분은 생존할 수 있지 않을까?

그 10분간 스마트폰을 통해 바알 마왕성의 구조나 병력 따위의 것들을 촬영할 수 있을 것이다.

"참, 나머지 분신들도 모두 이끌고 가라. 비상시에는 순서대로 마왕성으로 진입하라고. 어떻게 해서든지 내부를 촬영하고 전력을 파악해."

이윽고 일이는 지도를 보며 모든 분신들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 * *

침입자라.

도대체 이게 몇 백 년 만인지.

바알은 이 상황이 꽤나 재밌는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현재 마계에 존재하는 모든 마왕들은 자신의 앞에서 꼬랑지를 내리기 바쁘다.

그렇기 때문에 침입은 꿈도 꾸지 못하고 하다못해 말도 못 건다.

마계에서 바알의 위치는 그 정도였다.

한데 침입자가 나타났단다.

이러니 재밌을 수밖에.

도대체 어떤 간덩이 부은 녀석이 침입을 한단 말인가?

혹시, 녀석일까?

하지만 아직 속단하기엔 일렀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여전히 집사의 보고가 이어지고 있었다.

"전신이 곰 인형 탈로 뒤덮여 있는 자들입니다. 도합 8명이고 놈들이 누구인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여덟의 침입자들은 현재 마왕성의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서서히 진입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바알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자신의 양 옆에 시립해 있던 8명의 분신들을 바라보았다.

이내 바알은 맨 끄트머리에 있는 분신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놈들을 모두 생포해 와라. 여의치 않다면 죽여도 좋다. 다만 한 놈이라도 생포해라."

"응."

명령을 받은 분신은 바알의 8번째 분신.

즉, 가장 약한 분신이었다.

이윽고 분신이 움직였다.

* * *

저번에도 인우의 명령을 받고 정찰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에 일이는 한국에 있는 드래곤들에게 갔었다.

그리고 죽었다.

하지만 썩 괜찮은 죽음이었다.

왜냐하면 그때 일이는 도주하며 유니크 스킬 볼을 두 개나 먹었으니까.

하지만 그때는 운이 좋았던 거다.

당시 드래곤들이 머물고 있던 곳이 하필 초인상점이 딸려 있는 빌딩이었고, 그리하여 유니크 스킬 볼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어떠려나?

일이는 마왕성을 향해 뒤뚱뒤뚱 걸어 나갔다.

머지않아 도착한 바알의 마왕성.

일이는 도착과 동시에 사방팔방으로 형제 분신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즈음.

까악- 까악-

어디선가 기분 나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흐음."

마왕성을 앞에 두고 잠시 멈춰 있던 일이.

그리고 그때.

마왕성의 거대한 철문이 열렸다.

"헛!"

난데없이 열렸기에 일이는 적잖이 당황했다.

순간 일이는 몸을 숨기려다가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한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즈음 마왕성 입구에 검은 머리칼을 지닌 사내가 떡 하니 등장했다.

사내의 키와 덩치는 일이와 비슷한 정도였다.

그나저나, 내뿜는 기세가 장난 아니다.

혹시 저놈이 이 마왕성의 주인인 바알일까?

"······."

"······."

까악- 까악-

휘이이이잉-

여전히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렸고, 이윽고 바람이 불었다.

제법 강한 바람이었다.

일이는 곰탈의 머리 부분을 꽉 움켜쥐었다.

'곰 인형인. 척을. 해 볼까?'

어쩌면 먹힐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상태로 일이는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먹히긴 개뿔.

저편의 상대가 말을 걸어왔다.

"뭐하는 놈인지 말해라."

그 한마디에 땀이 삐질 났다.

답을 해선 안 된다. 일이는 여전히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사내가 허리춤에서 새카만 날의 한손 검을 빼들었다.

츠릉-

칼날이 검집에서 뽑히는 소리와 함께 사내가 천천히 걸어왔다.

"대답이 없다면 적으로 간주하지."

'젠장. 정찰 초반부터. 들켰네.'

이로써 일이의 정찰은 물 건너 간 것이라 볼 수 있었다. 이제 믿을 건 나머지 형제 분신들뿐이다.

일이는 하는 수 없이 등짝에 매달린 대검을 뽑았다.

타다다다닥!

그 순간 검은 머리의 사내가 검을 치켜들고 내달려 왔다.

"크하아아아압!"

일이는 볼 것도 없이 광폭화를 시전했다.

동시에 광전사 300레벨의 각성 스킬인 광폭 무형검을 발동시켰다.

쩌어어엉!

순간 보이지 않는 칼날이 사내를 덮쳤다.

후웅-!

챙! 챙!

그와 동시에 쇠가 부딪히는 소음과 함께 사내가 무형검을 받아쳐 냈다.

"뭐, 뭣!?"

일이의 눈이 부릅떠졌다.

사내는 지금 보이지 않는 칼날을 막아 낸 것이다.

이럴 수가 있나?

무형검의 대상은 무조건 타격 당한다.

피할 수 없는 검이라는 거다.

물론 사내 또한 무형검을 피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무형검을 막아 냈다.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거지?

타다다다닥!

어느덧 사내의 신형이 지척으로 다가와 있었다.

"으아압!"

후웅!

사내의 검이 뱀처럼 꿈틀대며 일이를 덮쳐 왔다.

카득!

"크윽!"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친 속도.

일이는 그 칼날에 어깨를 내어주고야 말았다.

불에 덴 듯한 끔찍한 통증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대론 안 된다.

일이는 즉시 대검을 띄워 어검을 발동시켰다.

두웅!

일이의 대검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사내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이와 동시에 일이는 주먹을 움켜쥐고 돌진했다.

현재 일이는 초월의 팔찌로 인해 맨손 전투력이 5배다.

그렇기 때문에 어검과 함께 돌진하면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흐앗!"

그런데, 사내는 일이가 어검을 발동시킬 것이라고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의 속력을 머금은 어검을 가볍게 피해 냈으니까.

그러면서 오히려 카운팅을 날려 올 정도였다.

휙!

사내의 검이 또 다시 날아든다.

정직한 일직선의 공격이었다.

굉장히 빠른 속도였지만,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카득!

"크으윽···!"

하지만 일이의 예상은 빗나갔다.

일이가 옆으로 회피하자 사내의 검은 미리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일이를 찍어 내렸던 것이다.

도대체 이게 말이나 되나?

저 사내는 지금 일이의 움직임을 예측이라도 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마치, 예지 계열의 초인처럼 말이다.

아니 이 정도면 필시 예지 계열의 스킬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젠장! 이 정도면. 10초도. 못 버티겠어!'

일이는 핏물이 세어 나오는 어깨를 흘낏대며 놈의 공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때였다.

타다다다다닥!

"일아!"

저편 동쪽에서 곰탈을 뒤집어 쓴 팔이가 내달려 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일이는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멍청아! 뭐하는 거야!"

'내가 놈과 대적하는 동안 안으로 진입해서 정찰을 했어야지!'

뒷말은 차마 내뱉을 수 없었다.

바로 코앞에 적이 있었으니까.

"일아!!"

이건 갈수록 가관이다.

이번엔 서쪽에서 삼이가 내달려 오고 있었다.

일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너희들! 왜 이리로. 온 거야!"

"입구는. 이곳. 뿐이야."

"아······."

그랬던 건가.

사방팔방으로 보냈지만, 마왕성을 통하는 입구는 이 한 곳뿐인 거다.

그렇다면 나머지 형제 분신들도 이제 곧 이곳으로 올 거다.

"일아!"

아니나 다를까.

형제 분신들이 속속들이 등장했다.

이렇게 된 이상, 모두 힘을 합쳐 눈앞의 사내를 퇴치하고 마왕성에 쳐들어가는 것이 최선일 것 같았다.

몰래 침입하는 건 이미 물 건너갔다.

차라리 대놓고 들어가서 깽판을 놓으며 최대한 내부의 전력을 파악하는 거다.

이윽고 일이가 눈을 번뜩이며 형제 분신들을 향해 말했다.

"조심해. 보통 놈이. 아니야."

"응!"

"응!"

여덟 분신들은 하나같이 대검을 뽑아들고 사내를 에워쌌다.

이로 인해 사내는 완벽히 포위되었다.

그럼에도 사내의 얼굴에는 여유가 비쳤다.

순간 일이가 칼끝으로 사내를 가리키며 외쳤다.

"돌.진!"

"우와아아아와!!"

* * *

"허억. 허억. 허억."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일이는 대검조차 간신히 들어 올리고 있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미 대부분의 형제 분신들이 죽었다.

이제 남아 있는 분신은 팔이와 자신뿐.

나아가 저 괴물 같은 사내가 남아 있었다.

사내도 조금은 지쳐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젠장···!"

이 상태라면 필시 전멸을 면치 못할 테다.

"일아."

그때, 팔이가 일이를 향해 속삭였다. 귀를 기울이자 팔이가 말을 이었다.

"내가. 놈을 막을 테니. 진입해."

그렇게 말하는 팔이의 얼굴에는 조금의 장난기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평소에는 형제 분신들을 놀려 대는 녀석이건만, 진지할 때는 이처럼 한없이 진지하다.

일이는 저도 모르게 든든함을 느꼈다.

"알겠다."

일이의 대답과 동시에 팔이가 움직였다.

"으라아아아아!"

타다다다닥!

팔이는 곧바로 팽이처럼 돌며 광폭난무를 시전했다.

후우우우웅!

그 공격에, 사내는 한손 검을 휭휭 내저으며 짓이겨오는 광폭난무를 쳐내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스텟을 지녔기에 마스터 레벨의 광폭난무를 방어하는 걸까?

겪으면 겪을수록 되먹지 못할 정도의 강력함이다.

'지금이다!'

그리고 그때.

일이가 거리를 훌쩍 벌리며 마왕성문을 향해 블링크를 시전했다.

후웅!

순간 일이의 육체가 단번에 마왕성에 닿았다.

그 모습에 팔이가 광폭난무를 그치고 소리쳤다.

"달려!"

우다다다다닥!

일이는 달렸다.

뒤에서는 팔이의 비명이 들렸다.

상관없다.

자신들은 분신이고 재소환될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임무만 완수하면 된다.

"으라아아아아아!"

일이는 광기폭발과 함께 있는 힘껏 뛰기 시작했다.

휘잉-!

그런데 그 순간.

뒤통수를 향해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섬뜩할 정도의 살기가 느껴졌다.

일이는 볼 것도 없이 바닥을 데구르르 구르며 그것을 피해 냈다.

그런 뒤 곧바로 몸을 일으켜 세우고 날아든 물체를 확인했다.

그것은 섬뜩한 예기를 품고 있는 심상치 않아 보이는 수리검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 것이 아니다.

휘잉-!

어느덧 수리검은 사내의 손을 향해 진공청소기처럼 빨려 들어갔다.

마치 살아있는 듯한 수리검이었다.

사내가 말했다.

"이제 너 하나 남았군. 다른 놈들은 어쩔 수 없이 죽였지만, 너는 생포다."

주인인 바알은 생포를 명했다.

한 놈이라도 생포해야 한다.

사내가 다시금 수리검을 내던졌다.

쐐애애애액-!

"당할까. 보냐!"

순간 일이는 소리를 꽥 내질렀다.

저 수리검은 마치 광폭 어검처럼 살아 움직인다.

다시 말해, 피해 봐야 또 다시 덮쳐 올 게 분명하다는 거다.

그렇다면 아예 없애 버리자.

일이는 볼 것도 없이 자신의 앞에 아공간을 열어 버렸다.

후웅!

순간, 초소형 차원의 문이나 마찬가지인 아공간이 생성되었고, 사내의 수리검은 아공간 속에 박혀 버렸다.

이와 동시에 일이는 아공간을 닫아 버렸다.

그러자 사내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당황의 빛이 스쳤다.

"···그거. 돌려주는 게 좋을 거다."

사내는 동요한 기색이 역력했으며, 크게 흥분하고 있었다.

가만, 왜 저렇게 흥분하지?

설마 이거 좋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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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화 분신들의 격돌 (2)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저 수리검은 보통 무기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서 정말로 소중한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내는 바알의 8번째 분신이었고, 이는 즉, 아이템이 분배될 때면 늘 마지막 순서에 지급받곤 했던 것이다.

가장 좋은 아이템은 늘 1번째 분신에게 먼저 지급되었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 처음으로 지급받았던 아이템이 바로 저 수리검이었다.

그는 아직도 그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저것은 자신의 주인인 바알이 직접 제작한 수리검이기도 했다.

굉장한 위력을 지닌 저 수리검은 평시에는 손목 안으로 흡수된다. 나아가 자유자재로 조종이 가능하기까지 하다.

다시 말해, 저것은 사내의 육체 중 일부라 보아도 무방했다.

그랬기에 소중히 다루었고,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나 수리검을 소환하여 사용하곤 했다.

방금 저 곰돌이 녀석이 마왕성에 진입하려던 것과 같은 상황 말이다.

그런데 저 영악한 녀석이 아공간을 열어서 수리검을 받아냈다.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공간을 저러한 방식으로 응용하다니.

다른 건 둘째 치고 잔머리 하나는 대단한 녀석이었다.

"마지막으로 말하지. 순순히 돌려주는 게 좋을 것이다."

"뭘?"

일이는 능청을 떨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필시 대단한 아이템이 분명해 보였으니까.

이러니, 사내가 일이를 잡아서 온갖 고문을 가한다 해도 일이는 결단코 아공간을 열지 않을 생각이었다.

나아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도대체 이 아이템이 무엇이기에?

'무조건. 가져간다.'

일이는 그런 다짐을 했다.

정인우와 가장 많이 닮아 있는 일이였기에, 현재 품고 있는 의지와 독기가 대단했다.

'이 상태로는. 붙잡혀서. 고문이나 당할 거야. 차라리······.'

정찰이고 침입이고 이제 모두 물 건너갔다.

그랬기에 명령을 이행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고, 꿀꺽 해버린 아이템이라도 챙기는 것이 상책이었다.

다시 말해 현재 일이의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였다.

자살, 그리고 도주.

혹은 도주하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지면 자살.

일이는 볼 것도 없이 블링크를 시전하기 시작했다.

슈웅! 슈웅!

그나마 참 다행인 건, 현재 일이가 지닌 '디아볼로스의 이빨'로 인해 마나 소모량이 50% 감소 된 상태라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도주를 위해 충분한 블링크를 시전할 수 있을 거였다.

슈웅! 슈웅!

"놈! 어딜!"

사내가 이를 악물고 일이를 쫓아왔다.

이에 일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가슴이 쿵쾅대며 목젖을 비집고 절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 무섭잖아!"

* * *

정인우는 위저드 아이를 통해 마왕성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물론, 이를 통해 마왕성 내부까지 살필 순 없었다. 애초에 그것이 가능했더라면 정찰을 보낼 일도 없었을 거다.

게다가 마왕성에는 어떠한 마법적 처리가 되어 있는지, 그 부분만 뿌옇게 흐려진 상태로 보였다.

아마 분신 녀석들은 저 뿌연 부분 어딘가에서 열심히 마왕성 내부로 침투할 준비를 하고 있을 거다.

그랬기에 인우는 주구장창 그곳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본다고 달라질 것도 없지 않은가?

이내 인우는 위저드 아이를 끊고 마왕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드래곤 본 대검을 뽑았다.

남는 시간을 활용해 테스트를 해보기 위함이었다.

현재 인우의 근력 스텟은 도합 5,495였다.

레벨 600이 되며 6차 각성이 진행되었고 이를 통해 상승된 근력만 1,600이였다.

기존의 근력과는 엄청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라면 레전드 마스터 스킬을 충분히 컨트롤 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판단이 끝난 즉시 인우는 대검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내려찍기의 준비 자세였다.

"으."

그저 대검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있을 뿐인데도 벌써부터 손아귀가 아려오는 듯 했다.

물론 이것은 착각일 것이다.

일전에 부족한 근력으로 내려찍기를 꽂다가 손아귀가 다 찢어져버린 적이 있질 않나?

그때의 기억을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기억 따윈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지금 인우의 근력이 5천을 넘어섰다는 것이었다.

"으라아아아아!!"

인우는 거친 기합과 함께 바닥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대검을 내려찍기 시작했다.

후웅! 후웅!

대검이 바닥에 닿으려는 순간 곧바로 거두고 다시금 내려찍기를 반복했다.

후웅! 후웅!

단타로 한 번씩 찍어 보기도 하고, 여러 번 찍어 보기도 했다.

최대한의 힘을 주어 내려찍다가 중도에 끊기도 해 보았다.

휙!

"후우."

완벽했다.

손아귀는 그다지 아프지 않았고, 대검을 놓칠 정도의 반동도 모두 제어가 가능했다.

내려찍기는 100%이상 컨트롤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어서 대검관통.

쐐애애애액-!

인우의 신형이 허공을 짓이길 듯 쏘아져 나간다.

휙!

그러다 불식간에 경로를 확 비틀었다.

파밧!

마왕의 방의 미스릴 바닥이 거친 소음을 내며 인우의 발과 마찰했다.

치지지직!

"으아아!!"

인우는 이를 악물고 비튼 경로를 향해 다시금 대검관통을 쏘았다.

후웅!

파바바밧!

푸스스스스···

이윽고 미스릴 바닥에서 마찰로 발생된 연기가 피어올랐다.

'대검관통도 제어가 가능해졌다.'

완벽까지는 아니었으나, 중간에 경로를 휙 뒤바꿀 정도는 되었다.

그나저나, 지금의 근력 스텟으로도 부족한 감이 있을 정도라니.

이 즈음되면 터무니없을 정도다.

물론 이건 바꿔 말해 레전드 마스터 스킬이 비정상적으로 강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생각도 잠시.

['분신3'이(가) 사망하였습니다.]

['분신2'이(가) 사망하였습니다.]

['분신6'이(가) 사망하였습니다.]

.

.

['분신8'이(가) 사망하였습니다.]

줄줄이 소시지로 분신들이 사망했다는 알림창이 떴다.

'뭐야 이 녀석들. 정찰은 끝내고 죽은 건가?'

분신의 재소환 시간은 24시간이었기에 불러내서 물어볼 수도 없었다.

일단은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팔이를 마지막으로 일곱의 분신이 사망했고, 이로써 생존해 있는 분신은 일이가 전부일 터였다.

도대체 저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좀처럼 짐작이 되지 않았다.

마왕성 내부라면 역시나 위저드 아이가 먹히지 않을 거다. 그래도 인우는 혹시나 싶어서 위저드 아이를 시전해 보았다.

그리고 인우는 보았다.

마왕성이 아닌, 필드를 질주하고 있는 곰 인형 탈을.

'일이로군.'

그리고 일이의 뒤에선, 흑발의 사내가 한손 검을 치켜든 채 쫓아오고 있었다.

순간 인우의 눈이 부릅떠졌다.

'저놈은···!'

필시 마계 신전에서 보았던 그 녀석이었다.

에노느의 말에 따르면 저 녀석이 바로 바알이라 했다.

맙소사.

그렇다면 분신들은 모조리 바알의 손에 의해 죽은 건가?

그렇다면 이제 어찌 해야 할까.

역시나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상책이려나?

자신이 저곳으로 간다고 해서 바알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에노느에게 듣기론 바알의 무력은 마신에 가깝다고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그렇다고 하기엔 조금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지금 위저드 아이에 비치는 저 흑발의 사내는 확실히 강해 보이긴 했다.

어쩌면 인우 본인과 비슷할 정도로.

그래, 그것이 문제였다.

바알이 가진 무력이 자신과 비슷할 리 없지 않은가?

마계 신전에서 보았을 때는 기척조차 못 느꼈을 정도로 엄청난 녀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사실 인우야 알지 못했지만, 마계 신전에 등장했던 바알은 1번 분신이었고, 지금 저 바알은 8번 분신이었다.

이러니 그 차이가 확연할 수밖에 없다.

어찌되었건 인우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확실히 캐치해 냈고, 이윽고 결단을 내렸다.

후웅-

인우는 히든 스킬 '폴리모프 ? 오크 광전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살아생전 이 스킬을 사용해 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닌 게 아니라, 인우는 이 히든 스킬이 마스터에 도달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건 정말로 온 우주를 통틀어 기네스에 등재해도 될 정도 일거다.

그 어떤 존재가 스킬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채 마스터에 도달하겠는가?

"취-익."

'빌어먹을.'

폴리모프를 끝마치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주둥이를 비집고 튀어나온 거대한 어금니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벌어진 입이 닫히지 않았고, 숨이라도 뱉으려 하면 저절로 '취-익'하고 입과 이빨 사이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오크 녀석들이 괜히 취-익 거리는 게 아니었다.

'사람으로 태어난 게 이렇게 감사해질 줄이야.'

인우는 속마음으로 짧은 감사를 표했다.

어찌되었건, 이를 통해 저 바알 녀석을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을 거였다.

* * *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계에도 괴수가 존재한다.

기존 지구에 열린 헬게이트를 통해 등장했던 괴수들도 사실은 모두 마계 태생이라 볼 수 있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드넓은 마계 필드에는 별의별 괴수들이 등장하곤 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흔한 괴수들 중 하나가 바로 '오크'였다,

오크는 고블린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개체수가 많았다.

녀석들은 마계에서 저마다의 영역을 지니기도 했고 자기들끼리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후다다다닥!

"으아아아아!"

"놈!"

그리고 지금.

일이와 바알의 분신8이 추격전을 벌이고 있는 필드에도 괴수들은 존재했다.

"흐헥! 흐헥!"

지금 일이는 땀범벅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도주와 동시에 앞을 가로막는 오크 새끼들을 모조리 쳐 냈기 때문이었다.

입고 있는 곰탈이 축축하게 젖었을 정도다.

일이의 레벨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쉬지 않고 이렇게 내달리며 전투를 하면 지칠 수밖에 없었다.

인우처럼 걸을 때마다 마나가 1% 차오르면, 도주와 동시에 마법을 난사해 대며 지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이는 그게 불가능했다.

"헥! 헥!"

차라리 대가리에 대검을 박고 자살을 할까?

잠시 그런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이가 아무리 분신이라고 해도 고통을 느낀다. 제 손으로 제 목을 분지를 수 있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다.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조건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언제나, 죽음이라는 것은 썩 좋게 다가올 수가 없는 거였다.

"취-익!"

여전히 빌어먹을 오크 놈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런데 이번엔 숫자가 좀 많았다.

못해도 500마리는 되어 보일 정도였다.

체력이라도 있었으면 저기다가 광폭 난무를 3초만 시전해도 모조리 싹쓸이 일 거다.

하지만 지금 일이는 지쳐 있었으며, 나아가 체력을 최대한 아껴야만 했다.

그랬기에 일이는 수백 마리의 오크들을 향해 포효를 내질렀다.

"크아아아아아!!"

그러자 오크들은 저마다 커다란 두려움을 느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척.

그런데 이건 참 이상한 일이었다.

오크 새끼들 중에 포효에 타격 당하지 않는 개체가 딱 한 마리 존재했던 것이다.

저 오크는 도대체 뭐지?

어떻게 저게 가능 한 거지?

레벨을 가지고 있는 블랙오크도 아니면서, 일개 오크 따위가 일이의 포효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리 없다.

일이는 도주하면서도 그 오크를 눈여겨보았다.

그런데 가만 보니 오크의 등짝에 거대한 대검이 보였다. 대검은 예사 것이 아니었다.

또한, 일이도 익히 알고 있는 대검이었다.

그건 바로 드래곤 본 대검이었다.

"아···!?"

그 순간.

그 오크가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아마도 저건 닥치라는 의미일 테다.

'대···장! 대장이다! 대장이. 온. 거야!'

일이는 활짝 웃었다.

물론 곰탈에 의해 일이의 미소는 가려졌지만 말이다.

타다다다닥!

어느덧 오크, 아니 오크로 폴리모프 한 정인우가 흑발의 사내의 앞을 가로막았다.

척.

흑발의 사내, 바알의 분신8은 그 즉시 멈춰 섰다.

"······."

"······."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오크에게서 엄청난 기운이 느껴졌으니까.

0188 / 0208 ----------------------------------------------

188화 바알의 수리검

가까이서 보니 더욱 확실해졌다.

이 녀석은 그때 봤던 그 '바알'이 아니었다.

풍기는 기세가 확연히 달랐던 것이다.

게다가 일전에 마계 신전에서 보았던 그 바알은 기척조차도 없었다.

한데 이 녀석은 그렇지 않았다.

여기에서 인우는 한 가지 가정을 떠올렸다.

'분신···?'

그게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분신이 맞다면, 일전에 보았던 '바알'도 분신일 가능성이 있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났다.

만약 그런 거라면, 도대체 바알의 본체는 어느 정도의 무력을 지닌 것일까?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때, 사내의 물음이 들려왔다.

"네놈, 정말로 오크인가?"

"취-익."

인우는 대답 대신 오크를 흉내 냈다.

아니 이건 뭐 흉내 낼 것도 없었다.

그냥 숨만 쉬어도 취-익 소리가 났으니까.

"일개 괴수 따위가 내 앞을 막아서다니, 일도에 목을 날려 주마."

사내는 이를 갈았다.

그렇지 않아도 수리검을 먹고 도주하는 곰을 빨리 잡아야 하는데, 이 빌어먹을 오크는 또 뭐란 말인가.

사내는 볼 것도 없이 검을 치켜들고 내달려 왔다.

"으라아아아!"

8마리(?)의 곰과의 전투로 인해 크게 지친 사내였으나, 기세까지 죽은 건 아니었다.

챙!

사내의 검과 인우의 대검이 맞닿으며 강렬한 불꽃이 튀었다.

손아귀를 타고 전해지는 힘이 장난이 아니다.

검의 손잡이를 쥔 손이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으득!

사내는 이를 갈았고, 순간 인우는 대검을 올려쳤다.

캉!

대검 올려치기가 발동하며 강한 반탄력과 함께 사내가 뒤로 튕겼다.

파바바바바밧!

흙덩이가 튀고 먼지바람이 일었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고, 그 속에서 인우가 대검관통과 함께 쏘아져 나왔다.

파바바바바밧!

사내는 예지 능력을 발동시켜 인우의 공격 루트에서 미연에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카앙!

인우가 너무 빨랐다.

예지를 통해 대비하기도 전에 벌써 지척에 다가온 것이다.

"크아아아아압!!"

순간 인우는 눈을 부릅뜨며 내려찍기를 꽂기 시작했다.

콰왕! 챙! 콰앙! 챙!

이에 사내는 검을 일(一)자로 머리 위로 올린 뒤 내려찍기를 방어했다.

쿠득! 쿠득!

그럴 때마다 망치에 박히는 못처럼 사내의 발이 땅속을 파고들었다.

곧게 뻗은 허리뼈가 쩌엉 하고 울리며 부서질 것 같았다.

도대체 이건 무슨 스킬이기에 이처럼 되먹지 못한 위력을 발휘한단 말인가?

나아가 이 오크의 정체는 또 뭐고?

"으으으!!"

사내는 신음을 내뱉었다.

너무나 지쳐 있었다.

지치지만 않았다면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지금은 온 힘을 다해 곰들과 대적하며 녀석을 추격했기에 기운이란 기운이 모조리 빠진 뒤였다.

"으아아아아아!"

분하고 원통했다.

지니고 있는 가장 강력한 아이템인 수리검마저 빼앗기고 죽게 생겼질 않나.

사내는 인우를 죽일 듯이 쏘아보며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대항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인우는 내려찍기를 그치고 전격을 응축시키기 시작했다.

츠즈즈즈즈!

붉은 빛이 감도는 그것은 레전드 마스터의 기가 라이트닝이었다.

파바바바밧!

사내는 코앞에서 쏘아지는 전격에 잽싸게 거리를 벌렸다.

보통 수준의 마법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인우는 기가 라이트닝을 쏘아 냄과 동시에 발을 빠르게 굴리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훅! 훅! 훅!

그럴 때마다 인우의 마력이 1%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인우는 기가 라이트닝을 마구잡이로 난사하기 시작했다.

츠즈즈즈즈즈!

꽝! 꽝! 꽝! 꽝!

강렬한 섬광을 동반한 번개가 사내가 서 있는 곳을 향해 끝도 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예지를 통해 피해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윽고 비처럼 쏟아지는 전격과 함께 투명하게 타오르는 헬파이어가 끝도 없이 날아들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아!"

마나가 무한대라도 되는가?

저 정도 위력의 마법을 숨 쉴 틈 없이 난사하다니.

어쩔 도리가 없었고, 이윽고 사내는 허물어졌다.

* * *

8번 분신의 숨통이 끊겼다.

사실 막내 분신은 아직 아티팩트조차 챙겨 주지 않았다. 준 것이라곤 수리검 하나가 전부였다.

물론 그 수리검만 해도 보통 아이템은 아니었다.

인간계를 기준으로 둔다면 저거 하나만 있어도 웬만한 괴수는 골로 보낼 수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얘기하면 수리검이 바알에게 굉장히 소중해 보일 수도 있었는데, 사실 그에게 있어서 별거 아닌 아이템에 불과했다.

"오크와 곰 인형이라······."

이윽고 바알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얼마든지 기다려 주지. 과연 네놈이 지루했던 나의 지난 마생(魔生)을 뒤엎어 줄 수 있을까?"

* * *

예상대로 경험치는 없었다.

예측이 확신으로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흑발의 사내는 바알의 분신이었다.

마왕성으로 돌아온 인우는 일이와 마주보고 있었다.

일이 녀석은 숨을 씩씩대며 고조되어 있었다.

"대장. 보여 줄게. 있다."

"응?"

의문을 표하자 일이가 아공간을 열었다.

슬쩍 들여다보니 드래곤의 사체만 한가득 들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인우 본인의 아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저 안에도 드래곤들을 보관했다.

못해도 수십 구는 되어 보인다.

'대상 축소'를 활용해 사체의 부피를 확연히 줄여 놨으니 저게 가능한 거였다.

그나저나, 무얼 보여 준다는 걸까?

어느덧 일이는 아공간에서 손바닥만 한 수리검을 꺼내왔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인우는 웃었다.

"그래서 그놈이 그렇게 이를 악물고 쫓아왔던 거였군."

"응."

그렇다면 이 수리검은 도대체 무얼까?

인우는 수리검의 정보를 불러왔다.

[바알의 수리검]

종류 ? 수리검

기능 ? 파괴력 +20,000

추가기능 ? 내던진 수리검은 자동으로 되돌아옵니다.

특수기능 ? 귀속자의 손목과 발목에 흡수되어 평소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귀속자 ? 바알의 분신8 (귀속 해제 가능.)

* 바알의 심심풀이 졸작. 다트놀이에 최적화 되어 만들어진 수리검.

"······."

인우는 할 말을 잃었다.

무슨 수리검 따위가 이런 파괴력을 지닌 거지?

말도 안 된다.

저 미친 파괴력을 보라.

자그마치 20,000이다.

이는, 현재 인우가 착용하고 있는 드래곤 본 대검의 12,500보다 높은 수치였다.

일개 수리검 따위가 저 정도의 위력을 지녀도 되는 건가?

저 정도 파괴력이라면 드래곤을 세워 놓고 수리검을 내던지면, 한 움큼 피를 토해 내며 도대체 무슨 최고위급 마법을 썼냐며 발광해 댈지도 모를 정도였다.

바투 같은 녀석들은 이 수리검에 10방도 못 견딜 거다. 더욱이, 인우는 현재 레전드 마스터의 암기투척까지 지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수리검은 인우에게 있어서 엄청난 위력을 선사할 수밖에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작은 수리검 하나 가지고 지구정복도 충분히 가능할 정도다.

"일아······."

"응. 대장."

"잘했다."

일이는 인우에게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다.

이에 일이는 얼마나 기뻤던지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인우와 똑같은 얼굴로 저런 미소를 지으니 꽤나 묘했다.

퀸이 보았다면 심장을 부여잡고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거다.

그나저나, 이 수리검 기능이 너무 많다.

추가 기능에 특수 기능. 나아가 귀속자까지 존재한다.

우선 기본적으로 내던지면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모양이었다.

인우는 시험 삼아 허공에 수리검을 내던져 보았다.

순간 암기투척이 덧입혀진 수리검이 메테오보다 강렬하게 허공을 찢어 삼키며 쏘아져나갔다.

쐐애애애액!

그러더니 수리검은 금세 인우의 손으로 되돌아왔다.

이건 정말이지 마음에 드는 기능이었다.

일회성이 아니었으니까.

20,000의 파괴력을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다음으로 특수 기능이 있었는데, 수리검은 귀속자의 손목에 흡수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인우는 수리검의 '귀속자'가 아니었고, 수리검은 흡수되지 않았다.

현재 수리검의 귀속자는 바알의 분신8이라 적혀 있었다.

그런데 가만.

8번째 분신이라면, 그 분신이 막내였다는 말이 된다. 물론 바알이 지닌 분신 스킬이 인우와 똑같은 것이라는 전제가 붙지만 말이다.

뭐가 됐건 그 분신이 8번째라는 것은 변치 않는다.

'허어.'

고작 8번째가 그 정도로 강하다니.

게다가 무척 지쳐 있었으니, 본래에는 더 강했을 것이다. 이건 뭐 터무니없을 정도였다.

어찌되었건 인우는 이 수리검의 귀속자가 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랬기에 집사 에노느를 불렀다.

그녀라면 분명 알고 있을 거다.

에노느는 한참이나 지난 후에 인우의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강렬한 레드 칼라의 드레스를 입고 다소곳이 인사했다.

"마왕 전하를······."

"인사는 됐고."

뭘 저렇게 꾸민 거야?

인우는 한마디 하려다가 이내 수리검을 에노느에게 보였다.

"그거, 귀속자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지?"

그 물음에 에노느는 수리검의 정보를 훑다가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하지만 이것저것 묻진 않았다.

자신으로선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대답이 들려올 것 같았으니까.

"귀속 해제를 하기 위해선 주문서가 필요해요."

"주문서?"

"네. 본래 주인의 흔적을 지워 주는 주문서에요. 마코(maco)만 있다면 금방 구할 수 있어요!"

"마코?"

"마계의 화폐입니다."

돈인가.

빌어먹을.

지구의 통장에 수백억 원이 들어 있는데, 그딴 건 여기서 통용되지도 않을 거다.

게다가 프로킨은 어떠한가?

인우는 그곳의 황제이고 화폐는 끝도 없이 쌓여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이곳은 마계인데.

가만.

돈이라······.

그때 인우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였다.

"여기 마왕성에 금고는 없냐?"

"···네. 본래 주인이시던 몰가스 전하께서는 향락에 빠져서 유흥과 마약, 그리고 도박에 전재산을 탕진하셨습니다."

참으로 한심한 놈이다.

하긴, 그러니 마계에서 벗어나 지구를 지배하려 들었던 거겠지.

"마코는 어떻게 구할 수 있지?"

"구할 수 있는 루트는 정말로 다양하죠. 아이템 판매에서부터 사냥, 나아가 서열전도 있고······."

에노느의 설명은 길게 이어졌다.

듣고 보니 인간계와 크게 다를 건 없었다.

하긴. 돈이 도는 방식이야 어딜 가나 비슷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즈음.

인우는 '그것'의 가치가 제법 궁금해졌다.

어느덧 인우는 아공간에서 NO.190 마왕성의 징표를 꺼냈다.

이건 헤쉬테를 죽이고 얻어낸 거였다.

"이런 건 얼마나 하냐?"

"······."

에노느는 침묵했다.

'이런 건'이라니!

마왕성의 징표는 모든 마족들의 꿈이다.

저거 하나만 있으면 하급 마족에서 마왕이 될 수도 있는 거다.

다시 말해, 대부호 마족들이 게거품을 물고 달려들 정도의 아이템인 것이다.

신분상승의 꿈.

그것이 바로 마왕성의 징표다.

에노느가 말했다.

"쉽게 가치를 매길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닌걸요. 마계의 역사를 통틀어 판매된 전례도 없었고요. 그렇지만 만약 판매를 한다면··· 엄청난 가격이 나올 거예요."

"그럼, 이걸 판매하면 주문서 같은 건 문제도 아니겠네?"

"당연합니다! 한순간에 엄청난 재산을 손에 쥐실 거예요! 그리고 마코만 충분하다면, 마계의 아이템을 구매하실 수도 있는 걸요! 어디 그뿐인가요? 집사의 전용 집무실도 만들어 줄 수 있고요!"

에노느는 '전용 집무실'이라는 단어에 꽤나 힘을 주고 있었다. 기존에 있던 그녀의 집무실은 몰가스가 창마(娼魔)들의 숙소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잠시 말을 끊은 에노느가 또 다시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었다.

"마왕성의 병력을 재정비할 수도 있고요! 맛있는 걸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저에게 조금 나눠줄 수도 있다는 거죠! 아, 아하하하!"

에노느가 웃었고, 인우 또한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려넣고 있었다.

특히나 인우가 가장 마음에 든 대목은 '마계의 아이템'이었다.

확실히 인간계와는 궤를 달리하는 아이템들이 가득하지 않을까?

역시나, 어딜 가나 돈이 최고다.

"에노느. 지금 당장 마왕성의 징표를 판매할 거다. 경매처, 판매처, 따위의 것들을 모조리 알아 놔라."

"네! 금방 섭외하겠어요!"

후다다닥!

에노느는 밖으로 뛰어나가다가 드레스 자락에 걸려 꽈당 하고 넘어졌다.

"에, 헤헤!"

그런데도 좀비처럼 일어나서 다시금 뛰어나갔다.

신이 난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늘 감사합니다! ^-^

0189 / 0208 ----------------------------------------------

189화 경매, 그리고 제작 (1)

NO.190 마왕성을 판매하기 전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그곳을 싹 비워야 한다.

인우는 마왕성을 판매하려는 거지 그곳의 재물까지 내놓는 건 아니었으니까.

아닌 게 아니라 그곳 또한 마왕성이기에 재물이 있지 않겠는가?

물론 본래 그곳의 주인이었던 헤쉬테가 몰가스처럼 한심한 삶을 살아왔다면 재물은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인우는 즉시 그곳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

그렇게 채비를 하고 있기도 잠시.

제라가 불쑥 나타나 말을 걸어왔다.

"인간. 퀸이 요즘 이상하다."

"걔가 왜?"

"요즘 밥도, 아니 피도 안 마시고 우울해 보인다."

"그럴 리가."

"진짜다. 그리고 어젯밤에는······."

이 대목에서 제라는 목소리를 낮춘 채 속삭이기 시작했다. 중요한 말이라도 되나?

"울었다."

"응?"

순간 인우는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녀가 울었다고?

아니 도대체 왜?

* * *

퀸은 뚱한 얼굴로 마왕성의 화원을 거닐고 있었다.

붉게 물든 마계는 지옥의 풍경과 같지만, 이곳에도 꽃은 있었다.

심지어 인간계의 꽃보다 더 아름답다.

살짝 건들기만 해도 피를 흘릴 것처럼 붉을 꽃들이 지천에 깔려 있었다.

그곳에서 풍기는 향기가 질식할 기세로 후각을 마비시켰다. 그것은 꽤나 좋은 느낌이었다.

인위적인 향수의 향이 아닌, 자연적인 향 그 자체였으니까.

"······."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이렇게나 아름다운 화원을 혼자 걷고 있지 않은가?

제 주인은 마계에 입성하자마자 바빠졌고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있었다.

이런 걸 원하진 않았다.

물론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족한 퀸이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그것마저 힘들어지려 하고 있었다. 바라보는 게 괴로웠기 때문이다.

에노느라는 마족 때문이었다.

그 마족은 한시도 정인우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심지어 어떨 때는 하루 종일 붙어 있는 것 같았다.

뭐, 이해는 한다.

그 마족은 마왕성의 집사이니까.

하지만 에노느라는 마족이 정인우를 바라보는 시선을 보면 견딜 수가 없었다.

퀸의 눈에는 보였던 것이다.

그 마족이 정인우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

같은 여자이기에 느낄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어찌나 신경이 쓰이던지 피의 갈증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심지어 어제는 훌쩍대기까지 했다.

"휴우."

절로 한숨이 튀어나온다.

그런데 그때.

난데없이 그녀의 뒤에서 쑥덕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퀸이 우리 마왕전하가 데리고 온 여자래."

"아아, 그 여자가 쟤였어? 햐. 괴수 인생 폈네. 누구는 마왕성의 똥통이나 치우고 있는데 말이야."

"솔직히 쟤보단 내가 더 예쁘지 않니? 내가 한 번 마왕 전하한테 들이대 봐!?"

"헛소리! 너보단 내가 더 예쁘다 얘! 내가 한 번 들이대!?"

"누가 됐건 저 퀸보단 우리가 훨씬 낫지 않겠어? 아하하!"

3명의 마족 시녀들이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퀸은 그녀들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주 대놓고 앞에서 험담을 한다.

이건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생각 같아선 단숨에 달려들어 머리 끄댕이를 모조리 뽑아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퀸이 참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은 정인우의 마왕성이고, 그의 영역이다.

감히 자신 따위가 함부로 나서선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하나의 그림자가 그 재수 없는 마족 시녀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곧바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친 소리."

그 한마디에 퀸, 그리고 3명의 시녀가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난데없이 등장한 이는, 바로 정인우였으니까.

* * *

이 전개 뭔가 익숙한데?

이건 마치 한국의 막장드라마에서나 봤던 전개 같다. 러닝머신을 타면서 자주 봤었는데 말이다.

인우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약한 시녀들과 퀸을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아오!'

퀸이 참지 않고 저 시녀들을 마구잡이로 폭행하길 바랐다. 싸다구를 갈기고 강냉이를 뽑아냈으면 싶었다. 아니, 심지어 어디 하나 잘라 버린대도 넘어가 줄 참이었다.

인우가 듣기에도 시녀들의 말은 모욕적이었고, 참을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웬걸?

퀸은 부들부들 떨면서도 결코 나서지 않고 있었다.

'아니 저걸 왜 참어!'

답답해서 고구마가 입구멍에 5개는 처박히는 느낌이었다. 숨이 막힌다.

순간 인우는 그림자 은신술을 풀고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차갑게 말했다.

"미친 소리."

"마, 마왕 전하···!"

"전하···!"

"다시 한 번 지껄여 봐."

인우는 시녀들의 인사를 가볍게 무시하며 물었다.

그러자 시녀들이 안절부절못했다.

"다시 한 번 지껄여 보라고 명했다."

"죄, 죄송합니다! 마왕 전하!"

시녀들이 모두 고개를 푹 숙였다.

인우는 그런 시녀들의 이마를 검지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눈을 마주했다.

시녀들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감히 퀸을 모욕해?"

"저, 전하! 저희는··· 죄, 죄송합니다!"

"됐고, 썩 꺼져. 이 마왕성에서."

인우는 해고를 명했다.

그러자 세 명의 시녀들이 동시에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저언하! 저는 병든 아버지를 홀로 모시며······."

"저는 집에 고픈 배를 부여잡고 있는 동생들이···!"

"그 병든 아버지와 배고픈 동생들까지 모조리 혀를 뽑아 버리기 전에 썩 꺼지라 했다."

인우는 얄짤이 없었다.

마왕성의 시녀는 또 뽑으면 그만이다.

반면 그녀들에게 이 직장은 엄청나게 소중한 곳이었다. 다른 마족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밤낮으로 노력해서 겨우겨우 마왕성의 시녀로 취직했다.

그런데 해고라니.

말도 안 된다.

시녀들은 여전히 오열했고 인우는 여전히 냉담했다.

그제야 시녀들은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윽고 인우는 시녀들을 내쫓아버리고 퀸을 향해 말했다.

"묻자, 왜 참은 거냐?"

"···몰라요."

인우의 한마디에 퀸은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저 짧은 물음에 그간의 고통이 씻겨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퀸은 그렇게나 좋았다.

"우냐?"

"······."

언뜻 비치는 퀸의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인우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앞으론 참지 마. 명령이야."

그 말에 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재차 물었다.

"참지 말라고요?"

인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모욕을 당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이 감정의 정체가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 나오는 건지, 혹은 다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싫었다.

저깟 것들에게 무시당하는 퀸의 모습이 말이다.

* * *

NO.190 마왕성.

과거 헤쉬테의 것이었던 이곳은 현재 주인이 없는 상태였다.

이곳의 집사는 아란이라는 여자 마족이었다.

그녀는 정인우라는 인간이 어째서 NO.190인 이곳을 포기하고 NO.255로 향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장 순위만 보더라도 이곳이 훨씬 더 높다.

한데 정인우는 상식 밖의 행동을 보이며 255로 입성한 것이다.

사실, 정인우는 그곳이 가장 가까워서 들어선 거였으나, 그녀로서는 알 수 없었다.

애초에 그런 어이없는 이유가 전부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그녀는 확대해석을 하고 있었다.

"에노느. 이년이 미리 선수를 친 거야."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에노느가 정인우를 등에 업고 더 높이 비상하려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정인우의 무력은 무척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때문에 그는 분명 서열전을 통해 더 높은 순위로 올라설 것이다.

이에 따라 에노느는 몸이라도 팔아 끝끝내 정인우를 쫓아다니며 받들어 모시겠지.

"창마(娼魔)같은 년."

에노느는 봉을 잡은 거다.

반면, 자신은 이제 불안정한 운명에 놓여 있었다.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현재 정인우가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했다.

그 이유가 자그마치, 이곳의 재물을 모조리 빼 놓기 위해서란다. 나아가 이 마왕성을 판매한다고 하는데······.

아니, 애초에 마왕성의 징표는 판매된 전례가 없다.

그런 발상을 하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을 지경이었다.

하긴.

애초에 인간이었던 정인우는 충분히 그런 발상을 떠올릴 수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마족들은 감히 상상조차 못하는 일이었다.

"이제 어쩌지···!"

마왕성의 징표가 팔리면 자신은 호구같은 마왕을 모시게 될 수도 있었다.

생각해 보라.

돈만 많고 강력하지 못한 마왕이라니.

약육강식의 세계인 마계에서는 도무지 통용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으아아아아아!"

아란은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를 꽥 내질렀다.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즈음.

정인우가 이곳에 도착했다.

아란은 볼 것도 없이 넙죽 절을 하며 외쳤다.

"마왕 전하! 255마왕성을 팔고 이곳에 머물러 주십시오! 그리하여 저를 사용해 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모시겠나이다! 저는 에노느보다 능력이 뛰어납니다!"

"싫다."

"왜, 왜입니까!?"

"이게 순위가 더 높으니 비쌀 거 아니야. 잔말 말고 이 성에 있는 재물들을 모조리 다 내와라."

"······."

뭐 이딴 자식이 다 있지?

아란은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 * *

헤쉬테의 마왕성에서 5천만 마코를 얻어냈다.

이 금액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녔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귀속해제 주문서의 가격이 5만 마코였고, 구매하고도 충분히 남을 금액이었다.

그리하여 인우는 '바알의 수리검'의 귀속자가 될 수 있었다.

'바알의 졸작'이라는 설명이 붙었음에도 자그마치 2만의 파괴력을 지닌 수리검이다.

스스스스슥.

새 주인을 맞이한 수리검은 단숨에 인우의 손목으로 빨려 들어갔다.

살갗을 헤집고 들어서는 수리검.

처음에는 고통이 상당했다.

하지만 수리검이 손목 속으로 완벽히 자취를 감추자 고통은 씻은 듯 사라졌다.

마치, 신체의 일부가 된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매우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흐음."

인우는 수리검을 사용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손목에서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처럼 수리검이 튀어나왔다.

후웅-

수리검은 허공을 맴돌았다. 인우는 의지를 통해 그것을 자유자재로 다루어 보았다.

별다른 무리 없이 수리검이 움직였다.

이건 뭐, 광폭 어검과 다를 바 없는 스킬이 입혀진 수리검이라 볼 수 있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기능이다.

만약 1레벨 초인이 이 수리검의 주인이 된다면 어찌될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1레벨부터 미개척지대 괴수를 사냥할 수도 있을 거다.

이건 굉장히 막강하다. 그렇기에 가능하다면 가족들에게도 하나씩 주고 싶을 정도였다.

역시나 마계의 아이템은 철저히 상식이 배제되어 있었다.

이런 건 어떻게 제작하는 걸까?

마왕이라면 모두가 가능할까?

혹시 권능일까?

현재 인우가 지닌 마왕의 권능은, 마기 방출, 헬게이트 생성, 수정구 소환, 차원이동 게이트 생성으로 도합 4가지였다.

이러한 인우의 마계 순위는 255위.

혹시 순위가 높아지면 이밖에도 다른 권능이 생기는 걸까?

이를테면 제작에 관련된 권능이라든지······.

'흐음······.'

스킬로 이루어진 제작을 통해서는 이 정도 위력의 아이템을 결단코 만들 수 없었다.

프로킨에 존재하는 그 어떤 드워프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다못해 인우가 제작 스킬을 배워 레전드 마스터 레벨까지 끌어올려도 힘들 것이 분명했다.

크게 좋아 보이는 재료로 만든 것도 아닌데 이 정도 급수의 아이템이 나올 리 없었다.

다시 말해 이것은 바알이 지닌 어떠한 '권능'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드디어 에노느가 도착했다.

우다다다닥!

그녀는 가쁘게 움직이는 커다란 가슴에 양손을 얹고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헥! 헥! 마왕 전하! 놀라지 마세요! 마계에서 가장 큰 경매처를 섭외했어요! 그리고요! 전하께서 마왕의 징표를 경매에 붙일 거라는 소문이 쫙 퍼졌다고요! 이제 대부호들이 모조리 몰려올 거예요!"

인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 징표를 판매하고 큰돈을 손에 쥘 수 있을 거다.

그러나 그 전에, 인우는 지금 막 생긴 궁금증에 대해 에노느에게 묻기 시작했다.

"하나 묻자. 마왕들은 어떤 방식으로 무기를 제작하지?"

바알은 애초에 마왕이다.

그가 했다면 자신 또한 가능하지 않을까?

마왕이니 말이다.

이윽고 에노느의 답이 들려왔다.

"아아. 제작이요?"

에노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리춤에 양손을 얹었다.

0190 / 0208 ----------------------------------------------

190화 경매, 그리고 제작 (2)

에노느가 제작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왕이라면 본인의 이름과 권능이 부여된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죠. 그런데, 모든 마왕이 가능한 건 아니에요."

정확히 무슨 뜻일까?

에노느의 성격상 부연 설명을 덧붙일 거다.

인우는 묻는 대신 잠자코 에노느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서열 100위. 그 안에 들어서면 제작에 관한 권능을 부여받을 수 있어요!"

현재 인우는 최하위권 마왕.

이에 따른 순위는 255위였다.

즉, 인우는 제작에 대한 권능이 없었다.

"이 순위는 서열전을 통해 올릴 수 있고, 마침 일주일 뒤에 서열전이 열리네요!"

"서열전이라······."

작게 중얼거린 인우가 곧바로 이어서 말했다.

"그곳에서 말이야, 다른 마왕들을 죽일 수도 있는 건가?"

"그, 그건···공분을 살 수도 있어요! 서열전은 서열을 올리기 위한 결투이지 죽음을 각오하는 혈투까지는···! 아니, 마왕 전하께서는 어째서 그렇게까지 할 생각을 하시는 거죠? 아······! 혹시?"

에노느는 말을 내뱉다말고 너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정인우를 제외한 마왕들의 경우, 서로를 죽이는 것을 기피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계는 255명의 마왕들이 존재하며 틀 자체가 잡혀 있다.

즉, 마왕들은 곧 마계의 힘인 것이다.

그런데 마왕이 죽게 되면 마계의 힘이 약해지는 거나 마찬가지인 거다.

때문에 남는 게 없다.

하다못해 그들은 서로를 죽인다 해도 경험치를 획득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인우는 아니었다.

그는 인간.

즉, 마왕이면서도 마왕들을 죽이고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하긴··· 과거에도, 마왕 전하와 똑같은 생각을 하던 마왕이 있었어요."

'있었다'라.

에노느의 말은 과거형이었다.

지금은 없다는 말인가?

이윽고 에노느의 긴 설명이 이어졌다.

과거에도 정인우와 같은 마왕이 존재하긴 했다.

다른 마왕들을 죽이며 성장했던 마왕이 말이다.

그는 천계의 천족 출신이었다.

그의 이름은 루시퍼.

모든 마왕들을 죽이고 마신이 되겠다고 날뛰던 자였다.

하지만 그는 현재 자취를 감췬 상태였다.

떠도는 소문으로는 바알과 대적하다가 큰 상처를 입고 은신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 증거로, 마계신전 내부 중앙에 세워진 석상을 들 수 있었다.

그 석상은 바알이 루시퍼를 쫓아내고 제작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피눈물을 흘리며, 복부에는 거대한 창이 박혀 있는 죽어 가는 대천사······.

그 석상의 주인공이 바로 루시퍼였다.

에노느의 설명이 거기까지 이어지자 인우가 '아!'하며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 마왕등록을 하러 마계 신전을 향했을 때, 그곳에 세워진 석상을 본 적이 있었다.

당장이라도 비명을 내지를 것처럼 엄청난 고통으로 일그러진 대천사의 석상.

그것은 인우의 기억에 선명히 각인되어 있었다.

그 정도로 강렬했다.

그리고 그때에, 바알 혹은 바알의 분신이 등장했었다.

그가 인우에게 묻지 않았던가.

-그 석상, 인상적이지 않나?

분명 그리 물었던 것 같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건만 다시 생각해 보니 소름이 돋았다.

돌이켜 보니 그것은 바알의 경고였던 것 같았다.

고통이 가득한 석상을 보아라.

그리고 깨달아라.

루시퍼와 같은 실수를 하려든다면, 너 또한 나의 손에 의해 쫓겨날 것이고, 고통과 절규로 가득한 너의 석상이 세워질 수도 있다.

-그 석상, 인상적이지 않나?

다시 한 번 놈의 물음이 떠오른다.

그리고 인우는 뒤늦은 답을 뱉어 보았다.

"그래, 빌어먹게 인상적이군."

돌이켜보니 그것은 분명한 협박이었다.

놈은 이미 인우가 이러한 결심을 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물러설 인우가 아니었다.

인우가 말했다.

"에노느. 나는 일주일 뒤에 열릴 서열전에 참여할 거니, 준비해 둬."

"···네! 그런데, 혹시 다른 마왕 전하들을 죽일 생각이신가요?"

"······."

에노느가 물었고, 인우는 답이 없었다.

그러자 에노느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만약 그렇다면, 서열전이 아닌 다른 방식을 취하셔야만 해요!"

* * *

"하아."

내뱉은 한숨이 욕조에서 피어난 수증기와 뒤섞였다.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뿌연 욕실에는 그레모리가 보였다.

철벅.

그녀는 욕조 끝에 긴 다리를 올려 세웠다. 옆에서는 시중을 드는 하녀들이 그녀의 몸을 닦아 주고 있었다.

'서열전··· 그가 제발 날뛰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이번 일만 해도 그렇다.

정인우는 마왕성의 징표를 경매로 붙이는 미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한 것이다.

이는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었다.

형편없는 마족이 마왕의 자리에 올라설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된다면 다른 마왕들의 반발이 만만찮을 거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일의 원흉인 정인우를, 가만두지 않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서열전을 통해 보복을 하면 양반이겠지.

하지만 그리 신사적인 보복을 가할 리 없었다.

생사전이 들어올 수도 있는 것이다.

과연 정인우가 그러한 모든 역경에서 무사할 수 있을까?

"그레모리 전하.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시는지요?"

그때, 목욕 시중을 드는 시녀가 그레모리를 불렀다.

그레모리는 시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러다가 그레모리는 난데없이 욕조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

* * *

"다음 주에 서열전이 열린다."

1개월에 한 번씩 공식적인 서열전이 열린다. 그것이 바로 다음 주였다.

그리하여 일전에 프로킨의 정인우를 없애려 했던 49명의 마왕들이 모여 있었다.

본래는 50명이었으나, 이제 헤쉬테는 없고 그들이 남아 있는 거였다.

"놈을 지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다들 알고 있겠지?"

서열전에서는, 마왕이 다른 마왕을 지목하여 대결이 펼쳐진다.

물론 이 지목에는 조건이 하나 걸려 있었다.

약자가 강자에게 대결을 신청하는 것은 가능하나, 그 반대의 경우는 불가능하다는 거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서열전은 애초에 '서열'을 올리기 위한 전쟁이고, 때문에 상위 서열이 하위 서열을 지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정인우의 공식적인 순위는 255위.

최하위권이다.

즉, 그 어떤 마왕도 '공식적 약자'인 정인우를 지목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해, 모든 선택권은 정인우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놈을 죽이려면 해답은 생사전뿐이야."

정인우는 서열전에서 영악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짙었다.

모든 선택권을 쥔 그 녀석은 결단코 자신보다 강한 이에게 서열전을 신청하지 않을 거다.

그렇기 때문에 정인우를 제거하기 위해선 생사전이 답이었다.

생사전이란, 강자나 약자를 따지지 않는 전쟁을 뜻한다. 또한 서열전과 다르게 상대의 죽음을 두고 전쟁을 치른다. 단어 그대로 생사전인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바알이 정인우에게 생사전을 신청할 수도 있다는 거였다.

액면 그대로 보자면 이 무슨 막장인가 싶을 거다.

그렇기에 생사전에는 하나의 장치가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50명 이상의 마왕들이 동의를 해야 생사전이 진행된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바알이 정인우에게 생사전을 걸었다 치자.

그리 되면, 이 둘을 제외한 모든 마왕들에게 그 소식이 전해지고, 찬반을 구하게 된다.

여기서 찬성이 50표 이상 넘어간다면 그 생사전이 성립되는 거였다.

바로 이 때문에 약육강식인 마계에도 친목이 있고 정치가 있는 거였다.

일례로 이곳에 모인 49명은 지금 친목과 정치질을 보여주고 있는 아주 좋은 예인 것이다.

만일 이 중에 누군가가 정인우에게 생사전을 건다면, 자동으로 48표의 찬성은 받고 들어가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이 생사전 또한 마구잡이로 신청할 수 없었다.

"정인우에게 생사전을 걸기 위해선, 놈이 서열전에 참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생사전이 벌어질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자세히 설명해 보자면, 해당 마왕이 3회 연속으로 서열전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 마왕은 생사전에 걸릴 조건에 부합되는 것이다.

때문에 정인우를 3개월간 묶어 둘 필요성이 있었다.

그래야만 놈에게 생사전을 신청할 수 있다.

"머리를 굴려 보자고. 우리는 숫자가 많다. 놈이 하나를 생각할 때, 우리는 49가지의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야. 정인우. 그놈을 반드시 3개월간 묶어 놔야만 해."

정인우는 반드시 제거해야만 한다.

마왕성의 징표까지 판매하며 마계의 질서를 흐리고 있는 녀석이었으니까.

아니, 애초에 그 녀석은 존재 자체가 무질서였다.

인간이질 않나.

* * *

에노느에게서 서열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인우는 듣던 중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생겼다.

"하나 묻자. 그럼 원래 이 마왕성의 주인이던 몰가스 녀석도 서열전에 참여했냐? 안 했던 걸로 아는데."

"네. 몰가스 전하께서는 평생을 통틀어 서열전에 참여한 횟수가 딱 2회가 전부였어요."

"그래서 묻는 거야. 그러면 몰가스는 생사전에 걸릴 대상이 되지 않았나? 어떻게 그리 오래 살아남았던 거지?"

"아아. 몰가스 님은 친목과 정치에 능했거든요."

혀를 굴려 살아남았던 건가.

애초에 생사전은 50명의 동의만 없다면 벌어질 일이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몰가스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마왕들의 비위를 맞추기만 했다면, 생사전에 걸릴 일이 없었던 거겠지.

그러했으니 오랫동안 인간계를 지배하려는 뻘짓을 행하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거였다.

"다시 돌이켜 봐도 참 한심한 놈이었네."

결국은 그런 결론이 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재미난 발상이 떠올랐다.

"에노느. 서열전에서 다른 마왕을 죽이는 것이 공분을 살 일이라면, 생사전을 통해서 죽이는 것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잖아?"

"그, 그렇···지요?"

"좋다. 그러면, 너는 지금 당장 생사전에 걸릴 조건에 부합되는 모든 마왕들의 목록을 가지고 와."

그것들은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 경험치 목록일 테지.

자 이제, 머리를 굴려볼 때였다.

* * *

NO.190 마왕성의 징표의 경매는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시작 가격은 10억 마코.

그리고 그 금액은 끝내 120억 마코까지 올라섰다.

이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라 할 수 있었다.

현재 마계의 최상위급 직업이라 꼽을 수 있는 마왕성 집사의 연봉이 5천만 마코였다.

이를 통해 비교해 보자면, 저 120억이 어느 정도의 금액인지 유추가 될 것이다.

하긴. 마계의 큰손들이 서로 경쟁했으니 이 정도의 금액이 뜰 수밖에.

그리하여 NO.190 마왕성의 주인이 된 자는 '맥스'라는 자였다.

한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는 대부호도 아니었고 강자도 아니었던 것이다.

즉, 유명인사가 아니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이러한 큰돈을 마련했는지, 또 그는 누구인지에 대한 것은 하나도 밝혀지지 않았다.

어찌 되었건 경매는 무사히 끝맺었고, 인우는 큰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 돈을 어디에 써야 할까?

이 정도 금액이면 마왕 50명의 동의표를 구할 수 있을까?

인우는 여러 고민들을 하며 마왕성 앞의 화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인우는 화원에서 물을 주고 있는 시녀를 발견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 시녀 또한 인우의 기척을 느꼈는지 금세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마왕 전하를 뵙습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아, 저는 오늘 새로이 들어온 시녀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인우는 퀸에게 깝죽대는 3명의 시녀들을 쫓아냈다.

이로 인해 에노느가 새로운 시녀를 뽑은 것 같았다.

마왕성에서 벌어지는 모든 잡일을 도맡는 에노느였기에, 알아서 척척 진행한 듯했다.

'음······.'

그나저나 이 시녀, 분위기가 묘했다.

이건 뭐라 할까,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오로라가 풍기는 듯 했다.

인우는 저도 모르게 시녀의 이름을 물었다.

"이름이 뭐지?"

"······."

"이름이 뭐냐 물었다."

"···모리··· 모리입니다."

0191 / 0208 ----------------------------------------------

191화 십팔 마기광탄 (1)

49명의 마왕들이 저마다 머리를 굴려 내놓은 작전은 바로 이것이었다.

'정인우를 죽지 않을 정도로 패 버려서 이번 서열전에 참가하지 못하게 만들자!'

애초에 숫자부터가 압도적으로 많은 그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인우를 유인하여 폭행을 가하는 것이다.

절대로 죽여선 안 된다.

생사전이 아니라면 그것은 큰 죄가 되니까.

이것은 간단하지만 확실한 작전이기도 했다.

물론 정체를 숨기기 위해 저마다 폴리모프를 해야 할 것이다.

뭐, 설령 정체를 들킨다 해도 크게 문제가 될 건 없다고 여겨졌다.

정인우는 혼자이지 않나?

홀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들 49명의 마왕들이 각자 지닌 인맥과 마코를 이용하면 '폭행'정도의 사건은 충분히 덮을 수 있었다.

설령 그 대상이 마왕이라 해도 말이다.

더군다나 그 마왕이, 서열 255위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못해도 1년 정도는 걸어 다니지도 못하게 만들어 주자고. 그리고 3개월 뒤, 정인우가 생사전 대상자가 되면··· 그때가 놈의 제삿날이다."

* * *

강렬한 붉은 색깔의 파도처럼 출렁이는 긴 머리카락.

블루홀처럼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푸른 눈동자.

자로 잰 듯 반듯한 콧날.

시녀는 자신의 이름을 '모리'라 밝혔다.

인우는 그녀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해 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난데없이 모리가 말했다.

"조심해요. 근래에 들어서 소문이 좋지 않답니다."

그러면서 모리는 인우에게 수정구 하나를 건넸다.

"이건 뭐지?"

"선물이랄까요."

모리가 의미심장한 말을 건네며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꽤나 포근한 미소였다.

그리고 잠시 뒤, 수정구에서 영상이 떠올랐다.

떠오른 영상에서는 49명의 마왕들이 보였다.

그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으며,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이 수정구에 담겨 있었다.

-못해도 1년 정도는 걸어 다니지도 못하게 만들어주자고. 그리고 3개월 뒤, 정인우가 생사전 대상자가 되면··· 그때가 놈의 제삿날이다.

이윽고 영상이 끝났다.

"······."

이건 보통 영상이 아니다.

마왕들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계략을 꾸미고 있는 현장이 담겨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일개 시녀가 그러한 영상을 준 것이다.

"마계도 인간계와 같아요. 법을 지키지 않으면 범죄자가 되죠. 그런데 지금 그 49명의 마왕들은 권력과 힘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려 하고 있어요."

"이걸 왜 나에게 주는 거지? 넌 도대체 누구고?"

"저는··· 오래전부터 전하를 사모해 왔던, 모리···입니다."

뜻 모를 소리다. 나아가, 인우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다만 지금으로서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팩트는 바로,

마왕들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이었다.

"하."

이가 갈렸다.

애초에 인우는 서열전과 생사전만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이 영상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놈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해보자 이거지?"

이렇게 나온다면, 인우 또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참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 * *

인우는 에노느의 안내를 받아 마계의 아이템 상점에 들어선 상태였다.

마왕들에게서 대비를 할 참이었다.

아이템의 종류는 상당히 많았으며, 지닌 능력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일례로 인우가 지닌 드래곤 본 대검 정도의 능력치를 지니고 있는 무기가 흔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또한, 이에 따른 아이템의 가격마저 상상을 초월했다.

현재 인우는 마왕성 한 채를 판매하고 120억 마코가 있었는데, 15,000정도의 파괴력을 지닌 대검 한 자루가 60억 마코였다.

다시 말해 대검 두 자루가 마왕성 한 채 가격이라는 이야기였다.

에노느에게 듣기론 이 상점의 주 고객이 99% 이상 마왕들이라고 했으니 가격대도 만만찮은 거였다.

이로써 인우는 마코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자고로 돈은 많고 봐야 한다.

'무기는 나중으로 미뤄야겠네.'

인우는 그런 결론을 내렸다.

아직까지는 드래곤 본 대검으로도 충분한 위력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보다 파괴력이 조금이라도 더 높은 대검을 구입하려면 엄청난 돈이 깨진다.

때문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스펙업을 하기 위해선 무기는 나중이라 여겨졌다.

게다가 훗날 서열을 올려 제작이 가능해진다면, 이보다 더 좋은 무기를 만들 수도 있는 일이다.

그리하여 인우가 시선을 돌린 것은 방어구였다.

사실 인우는 리빙아머 이후로 이렇다 할 방어구를 입지 않았다.

프로킨이나 지구에서는 지닌 방어 계열 스킬만으로도 충분했으니 필요성이 없었던 거다.

하지만 이곳에선 아니다.

방어는 최대한 높고 봐야 했다.

자그마치 49명의 마왕들이 자신을 노리고 있지 않은가?

'보자······.'

방어구의 종류는 굉장히 많았다.

갑옷에서 경갑, 그리고 의류까지.

특히나 코트 종류의 방어구도 존재했는데, 이는 갑옷을 입고 그 위에 걸칠 수도 있었기에 상당한 효율을 발휘할 것 같았다.

인우는 검정색 롱코트 하나를 보았다.

[악마의 검정실 코트]

종류 ? 방어구

기능 ? 물리 방어력 +15%, 마법 방어력 +15%

추가기능 ? 40레벨 이하의 모든 단일 마법 무시.

*마계 장인 수아의 회심의 역작. 악마의 실로 제작한 코트.

일개 의류 따위가 이 정도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니.

놀라울 정도였다.

방어력도 웬만한 갑옷의 뺨따귀를 후릴 정도이고, 추가 기능은 말할 것도 없다.

40레벨 단일 마법을 무시하는 기능이라니.

이를테면, 파이어 볼이나 헬파이어 같은 마법들이 단일 마법이다.

이러한 마법들이 40레벨이 넘지 않는다면 모조리 방어된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메테오나 블리자드같은 광역기는 포함되지 않을 거다.

어쨌든 이 코트 또한 인간계를 기준으로 두자면, 마법 계열 초인들의 공격을 가볍게 무시할 정도였다.

랭커급이 아니고서야 40레벨 이상의 마법을 보유한 초인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이건 얼마지?"

"예. 30억 마코입니다. 마왕 전하."

상점 주인의 대답이 들려왔다.

인우는 볼 것도 없이 코트를 구매했다.

이로써 인우는 90억 마코가 남았다.

다음으로 갑옷을 보기 위해 눈을 돌렸다.

그러다가 무언가가 인우의 눈에 띄었다.

그것은 주먹만 한 크기를 지녔고, 철퇴의 대가리처럼 뾰족한 가시들이 튀어나와 있는 외형이었다.

저건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일까?

인우는 그것을 손에 쥐고 정보를 훑어보았다.

[마기광탄]

종류 ? 폭탄

기능 ? 핀을 뽑고 일정한 힘을 가하면 터집니다.

그때, 상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전하. 그것은 매우 조심히 다루어야 하는 물건입니다. 절대로 핀을 뽑지 마십시오."

가만 보니 이건 폭탄인 것 같다.

"위력이 어느 정도이지?"

"설령 마왕 전하라 하여도 커다란 타격을 입을 정도이옵니다. 10개만 터트려도 견딜 수 있는 마왕 전하가 없다고 들었나이다."

그럼 거의 사기 아닌가?

이것만 대량으로 들고 있어도 마계를 지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 다시금 상인의 설명이 이어졌다.

"물론 실전에서는 사용하기 매우 까다롭습니다. 내던진다고 해도 상대방이 받아쳐 낼 수도 있으며, 실제로도 그러한 전례는 상당히 많았습니다. 때문에 근래에 들어서는 자살을 위해 이것을 손으로 꽉 움켜쥐어 사용하는 마족들이 간간히 있을 정도입니다."

하긴.

육체의 능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마족과 마왕들인데, 이거 하나 내던진다고 못 받아내겠는가?

하다못해 푹신한 워터 쉴드만 소환해도 튕겨 나올 것 같다.

게다가 그렇게 받아낸다고 터지지도 않는 것 같고.

때문에 강한 완력으로 움켜쥐어 자살을 할 때나 사용하는 것 같고.

한마디로 전혀 쓸모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발상을 전환해 보면 어떠할까?

그야말로 반대로 말이다.

이윽고 인우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이건 하나에 얼마지?"

"5억 마코입니다만··· 말씀드렸다시피 자살을 하는 게 아니라면 전혀 쓸모가 없는 아이템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남은 90억 마코를 상인에게 건넸다.

"돈이 되는 대로 모조리 다 사겠다."

"이걸 사겠다는 말씀이십니까? 허허. 상인으로서 이런 말씀을 드리긴 좀 뭐합니다만, 전하께서 이걸 사가시면 저는 봉을 잡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정말 팔리지 않는 물건이란 말입니다. 그런데도 구매할 생각이십니까?"

"물론."

"알겠습니다. 흐음, 90억 마코라면, 도합 18개로군요."

숫자 한번 기가 막히다.

십팔개로 딱 떨어지다니.

씨발놈들인 그 마왕 녀석들에게 제격일 것 같았다.

* * *

49명의 마왕들은 임시로 마련한 그들의 회의장에 모여 있었다.

이곳은 버려진 성으로서, 그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곳이었다.

"자, 이제 서열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계획은 오늘 바로 진행하지."

"그래. 정인우 그놈을 이곳으로 유인하기만 하면 돼. 현재 이 성은 한번 들어오면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게 개조가 완료된 상태지."

그의 말대로였다.

심지어 현재 이 성에는 49명의 마왕들이 엄청난 마코를 모아서 거대한 진까지 설치해 둔 상태였다.

그 진은, 차원이동게이트와 워프게이트와 같은 이동 마법을 차단하는 진이었다.

즉, 이곳에 들어서면 무슨 수를 써도 도망칠 수 없다는 거였다.

때문에 정인우를 이곳으로 유인만 한다면, 반병신이 될 때까지 폭행을 가할 수 있을 거였다.

"사실, 눈에 띄지만 않는다면 납치도 좋을 건데. 가장 좋은 건 역시나 놈이 스스로 이곳으로 오게 만드는 거지."

"나는 개인적으로 플랜 쓰리가 좋을 것 같다."

"아, 그 정인우의 여자라던 퀸을 말하는 거군? 그 년을 납치해서 정인우를 불러들이자는 계획. 맞지?"

"그래 그거."

"나 또한 그게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그걸로 하지. 지금 당장 실행에 옮겨 보자고."

저벅- 저벅-

그런데 그때, 그들이 전부인 이 성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쉿. 누군가 온다."

"도대체 누구지?"

49명의 마왕들은 나쁜 짓을 하다가 걸린 아이처럼 모두 다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아니, 사실 나쁜 짓을 하려다 걸린 게 맞긴 하다.

저벅- 저벅-

발걸음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끼이이익-

그리고, 그들이 머물고 있는 회의실의 나무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 즉시 49명의 마왕들은 열린 문 사이를 바라보았고,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미친! 정인우?"

"정인우라고?"

"······."

저마다 크게 놀랐는지 벙찐 기색이 만연했다.

그러다가 그들은 금세 정신을 차렸다.

"푸하하! 정인우!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건가? 어떻게 알고 왔는진 모르겠다만, 이곳에 온 이상 넌 무사하지 못할 거다."

도대체 무슨 깡따구일까?

정인우는 뭘 믿고 49명이나 되는 마왕들이 모여 있는 적진 한복판으로 온 것일까?

의문이 머리를 때렸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야 답은 하나뿐이었다.

정인우가 제 발로 걸어 들어왔고, 놈은 오늘 반병신이 될 때까지 폭행을 당한다.

으드득-

어느덧 49명의 마왕들이 저마다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정인우가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마침내 처음으로 인우의 입술이 열렸다.

"멈추는 게 좋을 거다."

그러면서 인우는 입고 있던 코트를 활짝 열어젖혔다.

촤락!

그러자 마왕들의 시야에 코트에 걸려 있는 동그란 물체들이 보였다.

그 즉시 마왕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저, 저건!"

"마기광탄!?"

"저 미친 새끼!! 마기광탄을 매달고 왔어!!"

놈들이 기겁을 하자 인우는 피식 웃었다.

"보시다시피, 너희들은 나를 구타할 수 없을 거다. 그렇게 되면 난 터져 버릴 테니까."

자폭을 각오하고 온 건가?

도대체 저건 무슨 깡따구지?

"미, 미친놈···!"

정인우의 말대로였다.

저 마기광탄을 어쩌지 못하는 한, 정인우의 털끝도 건들 수 없었다.

물론 정인우도 죽겠지만, 놈은 그런 걸 전혀 상관안하는 듯 했다.

그야말로 미친놈이다.

저 엄청난 폭탄을 저렇게 무식하게 활용할 줄이야.

이윽고 정인우가 한 발 앞으로 걸어왔다.

그러자 마왕들은 두 발 뒤로 물러섰다.

"······."

척.

어느덧 멈춰선 인우가 코트 안쪽에 매달린 마기광탄을 쓰다듬으며 소리쳤다.

"꿇어! 이 씨발 새끼들아! 다 터트려 버리기 전에!"

그러면서 인우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마기광탄 하나를 입속에 쑤셔 넣었다.

"허튼 수작 부리면 바로 이걸 씹어 버릴 거다! 꿇어!!"

그 모습에 49명의 마왕들은 할 말을 잃었다.

0192 / 0208 ----------------------------------------------

192화 십팔 마기광탄 (2)

역으로 이곳에 침입하기 전.

수많은 가정들을 떠올려보았다.

분신에서 암기투척까지.

그리고 인우가 선택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내 뒤통수를 치는 게 그렇게 쉬울 줄 알았냐?"

바로 본인이 직접 광탄을 매다는 것 말이다.

이건 미친 거다.

인우조차도 18개나 되는 마기광탄을 매달고 다니다가 터지는 날에는 골로 가는 거였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건 저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인우가 터지면 저들도 죽는다.

18개의 마기광탄은 이곳에 모인 모든 마왕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테니까.

터벅- 터벅-

정인우는 놈들을 향해 걸어 나갔다.

"······."

아찔함을 느껴 본 적 있는가?

안전장치 하나 없이 놀이기구를 탄다든지, 고속으로 질주하는 바이크 위에서 손 한 번 잘못 놀리면 골로 가는 공포감을 느낀다든지, 고층 빌딩 사이에 줄을 놓고 줄타기를 한다든지, 그때의 스릴을 느껴 본 적 있는가?

아이러니하지만 인간이 가장 큰 스릴을 느낄 때는 죽음의 공포와 직면할 때였다.

이건 정말 강한 쾌감이 동반하는 거였다.

조금만 실수해도 죽는다.

하지만 달리 말해, 조금의 실수만 하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

오로지 이것만이 팩트였다.

게다가 이로 인해 녀석들을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다. 이 얼마나 통쾌한지.

인우는 웃었다.

죽음이 코앞에 있는 건데도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다른 마왕들로 하여금 강렬한 공포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저 새끼는 미쳤다."

"······."

'미쳤다.'그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다른 말은 나오지도 않는다.

인간이나 마족이나 제 목숨 소중한 건 다 똑같다.

때문에 마족 또한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마족 특유의 강인한 심장이 존재한다.

이는 인간들에 비해서 2~10배 이상의 강인함을 지녔다.

한데, 눈앞에서 고작 인간 따위가 이러한 49명의 마왕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숨조차 제대로 내쉴 수 없을 정도였다.

저벅- 저벅-

"뒷걸음질하지 마라."

"···젠장!"

정인우가 다가올수록 마왕들은 진땀을 흘렸다.

이건 뭐, 스스로 무덤을 판 꼴이었다.

이들은 애초에 버려진 성을 근거지로 잡았다. 그리고 이곳을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게 개조해 놓았다.

성에 설치되어 있는 거대 진은 모든 이동 마법을 차단한다.

애당초 정인우를 이곳으로 유인해서, 단 1%의 가능성이라도 탈출을 꿈꿀 수 없게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래야지 정인우를 반병신될 때까지 팰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러한 공간이 도리어 자신들에게 위협거리로 다가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들이 준비한 이 공간을, 그들의 적인 정인우가 이용하고 있는 꼴이었다.

죽 쒀서 개 줬다.

아니 다 됐고, 다 죽게 생겼다.

그때, 마왕 한 놈이 불같이 노하며 소리쳤다.

"놈! 이러고도 네가 무사할 것 같으냐! 만일 이 일이 알려진다면 네놈은 마왕의 직위를 박탈당하고 마계의 공적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물러선다면 입을 다물어 주겠다!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

"아아~ 그래. 어디 한번 바깥에 떠벌리고 다녀 봐. 마흔아홉 놈이 모여서 나 하나 조지겠다고 작당모의를 하다가 역으로 털렸다고. 누가 믿어 주려나? 마왕 서열 255위 정인우가 수십 명의 마왕들을 밀어붙였다고? 푸웁. 아니, 설령 믿어 준다 해도 그런 개망신이 또 있을까? 너희들. 얼굴 들고 다닐 수 있겠냐?"

"···이놈!"

정인우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이렇게 되나 저렇게 되나 그들에게 이로울 게 하나 없었다.

갑과 을이 명확한 49대 1의 싸움이건만, 지금 이 순간 갑과 을은 뒤바뀌어 버린 것이다.

"너희들이 먼저 시작한 거다. 나는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말이지."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비겁한 수를 써? 네놈이 그러고도 마왕이더냐!"

근데, 아까부터 저 늙은 마왕 새끼가 주제를 모르고 자꾸 짖어 댄다.

비겁한 수?

인우는 이마를 구기며 말했다.

"비겁하다 했냐? 수십 놈이 모여서 다굴빵을 놓으려는 놈들은 어디 비겁하지 않고? 야. 내가 너희처럼 쓰레기 짓을 하는 놈들에게 정당하게 나서야 하냐? 정당한 게 뭔지는 아냐? 내가 호구처럼 이곳에 잡혀 들어와서 너희한테 죽기 직전까지 맞아야 정당한 거냐?"

"이놈이 그래도!"

"닥쳐! 정당한 건 없는 거야. 적어도 너희 같은 놈들에게는 말이지. 시작은 네놈이다. 늙은 마왕."

말을 마친 인우는 이를 갈았다.

그러나 무엇을 시작한다는 걸까?

마왕들은 불안한지 눈알을 굴리기 바빴다.

그리고 그때.

인우가 아공간을 열고 분신들을 불렀다.

"대장. 좋은 아침? 아. 밤인가."

팔이가 먼저 인사를 건넸고 차례로 한 녀석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종일 아공간 내부에 있는 러닝머신을 사용한 건지 몸이 제법 후끈하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그래, 좋은 밤이다. 자, 저기 있는 늙은 마왕 새끼의 무릎을 꿇려라."

"응!"

명과 동시에 분신들이 튀어나갔다.

타다다다닥!

"이놈들! 멈추지 못할까!"

그러자 늙은 마왕이 소리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분신들은 늙은 마왕의 무릎 뒤 관절을 향해 로우 킥을 날렸다.

빠악!

순간 마왕이 휘청이며 무릎이 꿇렸다.

그럼에도 마왕은 분신들을 노려보기만 할 뿐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했다.

정인우가 매달고 있는 마기광탄을 어쩌지 못하는 한 달리 방도가 없는 것이다.

"그놈의 아가리를 벌려라."

분신들이 늙은 마왕의 턱주가리를 붙들기 시작했다.

"이느므! 느아라!"

마왕이 발광했다.

그리고 인우는 그런 마왕의 입에 마기광탄을 하나 넣어 버렸다.

"컥."

그제야 마왕은 얌전히 있기 시작했다.

혀를 잘못 놀렸다가 터지면 골로 가는 거다.

그러니 닥칠 수밖에.

순간 마왕은 죽음의 공포와 함께 머릿속이 백지처럼 뿌예지고야 말았다.

그때, 정인우의 목소리가 텅 빈 머릿속을 울린다.

"삼켜라."

"으. 으어······."

마왕은 거절을 표하기 위해 천천히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걸 삼키면 죽음을 달고 다니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살기 위해서 광탄이 배변으로 나오길 기다리다가, 너무 힘을 줘서 그곳에서 터질 수도 있는 거다.

그렇게 되면 사인은 '항문 파열사'인가?

뭐가 됐건, 삼키면 죽는다고 보면 된다.

"삼키라고."

말을 내뱉으며 인우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드러난 물건의 정체는 물통이었다.

그때서야 인우의 의중을 알아챈 마왕들은 저마다 입을 가리며 눈을 크게 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물통의 마개를 열고 늙은 마왕의 주둥이에 박아 버렸다.

쪼르르.

그 즉시 마왕의 입으로 물이 들어갔다.

이와 동시에 인우는 마왕의 정수리와 턱주가리를 꽉 붙들고 벌어지지 않도록 동여맸다.

"삼켜."

다시 한 번 인우가 말했다.

동시에 인우는 무릎을 치켜들고 마왕의 명치를 꽝 찍어 버렸다.

퍽!

-크읍!

그러자 마왕은 숨이 덜컥 막히며 어쩔 수 없이 입안에 담긴 물을 삼키고야 말았다.

꼴깍.

물과 함께 마기광탄이 목젖을 타고 내려간다.

그제야 인우는 마왕의 턱을 놓아 주었다.

철푸덕.

마왕은 그 즉시 망연자실한 얼굴로 바닥에 엎어졌다.

"자, 이제 폭탄은 17개 남았다. 누가 먹을래?"

"······."

"······."

이번에는 그 어떤 마왕도 인우에게 큰소리를 치지 못했다.

심지어 눈까지 피하며 바닥을 바라볼 정도였다.

"난 오늘 무조건 열여덟 놈은 죽일 거야. 즉, 서른한 놈만 살 수 있다."

그제야 마왕들은 슬그머니 인우를 바라보았다.

정인우의 말대로라면 폭탄의 개수만큼만 마왕들을 죽이겠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즉, 나머지는 살 수 있다!

하지만 조건이 도대체 뭐지?

그때 마침 인우의 입술이 다시금 열렸다.

"목숨 서른한 개. 경매 들어간다. 50억 마코부터 시작이다."

말을 마친 인우는 웃었다.

놈들은 살기 위해 장기라도 팔 기세로 경매에 임할 것이고, 이로 인해 돈이 쏟아질 것이다.

* * *

인우는 이곳에 거대 진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놈들은 정말 치밀할 정도로 진을 설치해 두었다.

말하자면 필요 이상으로 설치해 두었다랄까?

동서남북 총 4곳에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하나만 있어도 게이트를 비롯한 텔레포트가 차단된다.

그런데도 이렇게 설치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를 갈았다는 뜻이리라.

그리하여 인우는 일이를 시켜 4개의 진 중 하나를 아공간에 설치했다.

진이 설치된 것은 일이의 아공간이었다.

"일아. 네 아공간 입구 열어 둬라."

"응. 대장."

진이 설치된 일이의 아공간이 열렸다.

그리고 인우는 경매를 통해 목숨을 구매한 마왕들을 한 놈씩 아공간에 넣어 버렸다.

경매 시작가는 50억 마코였으나. 평균 300억 마코로 팔려 나갔다.

심지어 놈들은 목숨을 사기 위해 서로 멱살을 틀어쥐고 싸우기까지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경매는 진행되었고 모든 목숨은 팔렸다.

이로 인해 인우는 대략 9,000억 마코를 손에 쥐었다.

한순간에 벼락부자가 된 것이다.

어느덧 목숨을 구매한 31명의 마왕들이 모조리 일이의 아공간으로 들어갔다.

"일아. 아공간 닫아라."

"응."

일이의 아공간이 닫혔다.

그리고 이곳에는 마기광탄을 삼킨 시한부 마왕 18명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부들부들 떨며 인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인우··· 이제 어쩔 셈이지?"

"하나만 묻자 정인우. 아공간에 진을 설치한 이유가 목숨을 산 31명의 마왕들이 도주를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냐?"

녀석들의 질문이 쇄도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살고 싶었기에 시간을 끄는 것이리라.

인우는 녀석들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 말대로였다.

마왕들은 게이트를 열거나 텔레포트를 사용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공간에 넣어 둬도 충분히 도주할 수 있는 거다.

이 때문에 인우는 일이의 아공간에 거대 진을 옮겨 놓은 것이었다.

텔레포트를 방지하기 위해서. 그리하여 놈들을 감금하기 위해서였다.

"목숨을 산 31명의 마왕들을 정말로 살려 줄 참이냐?"

누군가가 물었다.

인우가 피식 웃었다.

"내가 미쳤냐? 살려 주긴 왜 살려줘."

"놈! 애초에 우릴 다 죽일 작정이었군!"

마왕들은 이를 갈았다.

정인우는 목숨을 빌미로 돈까지 갈취하고 그런 마왕들을 아공간에 감금했다.

절대로 탈출까지 불가능하게 말이다.

광탄을 삼킨 18마왕들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아공간으로 들어선 31명의 마왕들에게 알려 줄 수 없었다.

"악마 같은 놈···!"

"아공간에 들어가 있는 놈들은, 나중에 지쳐 있을 때 꺼내 줄 거다. 서른한 놈이나 되니 덤벼들면 곤란하잖아? 지쳤을 때 죽일 참이다."

다시 말해 이건 경험치 보관용 창고였다.

빌어먹을 정도로 치밀하다.

18마왕들은 혀를 내둘렀다.

돈도 뜯기고 목숨도 뜯기는 거다.

어떻게 보면 저들보다는 자신들이 더 나은 걸지도 모른다.

"자 이제."

인우는 짧게 작별을 고하고 성을 나섰다.

인우가 사라지자 마왕들은 저마다 마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탈출해야 한다!"

그러나 이 성에는 아직도 거대 진이 3개나 남아 있었다.

정인우를 묶기 위한 진이, 지금 그들의 텔레포트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정인우는 18마왕들의 아킬레스건을 끊어 놓아서, 이들은 바들바들 기고 있을 뿐이었다.

"젠장!! 끝인가!!"

"큰소리 내지 마 이 자식아!! 광탄이 터진다!!"

* * *

바깥으로 나온 인우는 멀찍이서 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흔적도 없이 없애야만 한다. 뒤탈의 여지가 남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만일 이 일이 발각되면 정말로 공적이 될 수도 있다.

"이 정도 거리라면 마기광탄의 폭발력에서 무사하려나?"

그리 중얼거린 인우는 양손에 그레이트 메테오를 응축시켰다.

후우우우우웅!!

패시브 스킬 '용언'으로 인해 그 즉시 거대한 운석이 소환되었다.

쐐애애애애애액!

집채만 한 운석이 성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앙-!

이 정도 충격이라면, 저 마왕 놈들의 위장 속에 있는 마기광탄에도 충분한 충격이 전해질 것이다.

콰과과과과과과광!!!

그것은 다시 말해, 18개의 마기광탄이 한 번에 터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푸우우우우우우우우-!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며 성이 먼지조각으로 변했고, 그와 동시에 18 마왕들의 경험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언제쯤 멈추려나.

정말로 끝도 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0193 / 0208 ----------------------------------------------

193화 꽃밭에서

[경험치를 5,000,000,000+5,0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4,800,000,000+4,8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5,200,000,000+5,2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700레벨의 '신의 체력'스킬이 활성화됩니다.]

[신체가 각성되었습니다.]

[근력이 3,200 증가합니다.]

[민첩이 2,560 증가합니다.]

[체력이 1,280 증가합니다.]

[마력이 320 증가합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18명의 마왕들을 잡고 얻어낸 경험치는 대략 2,000억 가량이었다.

녀석들 모두 비슷한 경험치량을 보였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은 마계에서도 통용되는 것이다.

하긴. 상위권에 있는 마왕들은 정인우를 크게 생각하고 있지 않고 있었다.

정인우를 배척하려는 이들은 모조리 최하위권 마왕들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드디어 길었던 레벨 업이 끝이 났다.

그제야 인우는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정인우>

레벨 : 707

특성 : 광전사

스텟 :

[근력 1,985+6,350+10+350]

[민첩 1,124+5,080+250]

[마력 838+650+250]

[체력 978+2,600+10+150]

*히든 스텟 : [괴력 100] [매력 12]

미분배 포인트 : 1030

[EXP 1,148,820,255 / 7,550,000,000]

'103개의 레벨이 오른 건가?'

인우의 기존 레벨은 604였다.

그런데 지금은 707이 된 상태였다.

엄청난 상승폭이긴 했으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자그마치 18놈이나 죽였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전에 600레벨이 되며 경험치 총량이 5배 증가했었고,

이제 700레벨이 되며 또 다시 5배가 증가했다.

다시 말해 본래 600레벨 대의 경험치 총량이 15억 정도였는데, 현재 필요 경험치량은 75억 가량으로 껑충 뛰어 올라 있는 상태였다.

역시나 100레벨 단위로 비정상적인 상승폭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승폭은 경험치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각성 스텟.

경험치가 늘어난 것은 좋지 않았지만, 각성 스텟이 늘어난 것은 대환영이었다.

700레벨이 되며 신체가 또 한 번 각성되었고, 엄청난 스텟이 상승한 것이다.

근력의 경우 3,200이나 상승되었는데 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치였다.

인우 기준으로 320개의 레벨 업이 필요한 스텟이었으니까.

7차 각성은 그야말로 환골탈태라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이에 따라 인우는 이제 레전드 마스터 레벨에 닿은 모든 광전사 스킬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거였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인우의 근력은 도합 8,695나 되었다.

거의 1만에 가까운 수치인 것이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 자체가 달라졌을 정도였다.

쉽게 말해 내려찍기 한 방으로 산도 두 쪽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뿐만 아니다. 포인트까지 있다.

'미분배 포인트가 1,030개나 되네. 음······.'

4대 스텟에 골고루 투자하는 게 맞다.

인우는 최강의 잡캐인지라 모든 스텟이 다 필요하니 말이다.

현재 유일하게 필요성이 없는 스텟은 히든인 '매력'이 전부였다.

영약을 먹지 않고서야, 일부로 매력을 찍을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그냥 다 때려 부수면 그만이었으니까.

이윽고 인우는 미분배 포인트를 모조리 찍어 버렸다.

그런 뒤 새로이 생성된 패시브를 확인했다.

.

.

7. [신의 마력 ? 발을 내딛을 때마다 마력이 1%씩 회복됩니다.]

8. [신의 체력 ? 발을 내딛을 때마다 체력이 0.5%씩 회복됩니다.]

9. [신의 ?? ? 800레벨 달성 시 활성화됩니다.]

.

.

솔직히 말해서······.

이제 더 놀랄 것도 없을 거라 여겼다.

한데도 이 패시브 시리즈는 늘 놀라움을 선사했다.

신의 체력은 여태 인우가 얻었던 8종류의 패시브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사기성이 짙었다.

한걸음에 0.5%의 체력 회복.

이는 다시 말해 200걸음을 딛으면 모든 체력이 회복된다는 뜻이었다.

나아가, 50걸음만 있어도 체력의 25%가 회복된다.

이는 즉, 50걸음으로 광폭 무형검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본래에 광폭 무형검은 체력의 50%를 소모한다.

하지만 인우는 아포칼립소 세트로 인해 '모든 소모량 50% 감소'의 능력을 지니고 있질 않나?

이 때문에 광폭 무형검의 체력 소모율은 25%로 줄어있는 상태였다.

정리하자면, 50걸음에 한 번씩 광폭 무형검을 시전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인우는 상상해 보았다.

그의 상상은 과거의 블랙오크들을 도륙했던 중국에 닿아 있었다.

타다다다닥!

끝도 없이 달리면 마력과 체력이 지속적으로 회복된다.

광역 마법을 무한대에 가깝게 시전하여 수십만 마리의 블랙오크 병사들을 휩쓸어 버린다. 곧바로 족장을 향해 광폭 무형검을 끝도 없이 꽂아 버린다.

"하하······."

이건 사기다.

* * *

9,000억 마코와 마왕 31명의 경험치를 킵해 두고 마왕성으로 복귀했다.

인우는 복귀와 동시에 모리를 찾았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일이 발생하기 전에는 모리가 있었다.

그녀가 전해 준 수정구를 통해 마왕들의 뒤통수에도 역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거다.

모리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당했을지도 모른다.

반병신이 될 때까지 맞아서 폐인이 되었을 거란 말이다.

도대체 모리는 누굴까?

그녀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그 엄청난 영상이 담긴 수정구를 건네주었던 것일까?

이윽고 인우는 모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오늘도 화원의 붉은 꽃밭에 물을 주고 있었다.

"모리."

"오셨네요."

모리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하고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의 음성에는 안도와 따스함이 묻어 있었다.

또한 모리는 지금 마왕에게 예를 표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인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딴 건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하나 묻자, 왜 날 도와준 거지?"

인우는 그리 물었다.

'너의 정체가 무엇이냐?'라는 물음은 뒤로 미뤄 두었다. 그에 대해 쉽게 답할 리 없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말씀드렸지 않았나요?"

모리는 물뿌리개를 내려놓고 인우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활짝 웃고 있었다.

그건 꽤나 예쁜 미소였다.

이내 그녀가 인우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다가온 그녀는 머리 하나는 큰 인우를 올려다보았다.

"사모한다고, 그리 말씀드렸지요. 그게 이유이고요."

그녀는 인우의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허리를 끌어안았다.

"다행이에요. 정말로."

* * *

인우는 모리를 뿌리치고 에노느를 찾았다.

"아, 마왕 전하! 오셨어요!"

"야. 저거 어디서 뽑아 온 거야?"

인우는 인사에 대한 답 대신 물음을 건네고 있었다.

"네? 진정하시고요. 지금 굉장히 고조되어 있으셔요. 코코아 한 잔 드시겠어요?"

인우는 단 거를 좋아한다.

쓴 거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그 분명한 입맛을 알고 있었기에 인간계의 코코아를 권유하는 에노느였다.

"됐고, 이번에 새로 뽑은 시녀 말이야. 어디서 뽑아 온 거냐고."

"네?"

이 여자가 귓구멍이 막혔나.

"모리 말이야."

"모리는 누구지요? 그리고 새로 뽑은 시녀라니요?"

"너 시녀 안 뽑았어? 그 왜, 맨날 화원에다가 물주고 있는 애 말이야."

분명 일전에 퀸에게 깝죽대는 3명의 시녀들을 해고 했다.

그리고 그 직후 '모리'가 보이기에 당연히 에노느가 새로이 고용한 인물인 줄로만 알았다.

한데 에노느는 모리에 대해 일절 알고 있는 게 없었다.

"모리? 시녀? 뽑지 않았어요. 혹시 마왕성 내부에서 보셨나요? 기본적으로 사용인들에게는 마왕성 출입 카드가 지급 되요. 그게 없으면 입장이 불가능하거든요."

그 말에 인우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마왕성 내부에서 모리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모리는 언제나 마왕성 바깥, 그러니까 화원에 있었다.

늘 그곳에서 물을 주고 있었으니까.

다시금 생각해 보니 그녀는 마왕성 내부로 들어온 적이 없었다.

"이년 이거 뭐지···?"

그리 중얼거린 인우는 곧바로 문을 박차고 화원을 향해 달려 나갔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직도 물로 인해 촉촉이 젖어 있는 꽃밭뿐.

* * *

인우는 꽃밭에서 한참이나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새벽이 지나 해가 떠오를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기분이 이상했다.

-사모한다고, 그리 말씀드렸지요. 그게 이유이고요.

모리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도는 듯 했다.

나아가 안겨 왔던 그녀의 모습, 향기, 온기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는데, 이런 생각을 할수록 인우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루시 퀸이었다.

왜 지금 시점에서 퀸이 떠오르는 걸까.

심지어 양심까지 찔려 오는 기분이었다.

퀸의 미소와 모리의 미소가 겹쳐 보인다.

그리고 그즈음.

인우는 아침잠에서 깨어 꽃밭으로 산책을 나온 퀸을 발견할 수 있었다.

'···퀸. 쟤는 맨날 혼자 있네.'

저 꼴을 보니 또 다시 기분이 언짢았다.

근래에 들어서 자주 이러했다.

그녀가 자꾸 걱정되기도 했고, 자꾸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이것은 인우에게 있어서 실로 당혹스러운 감정이었으며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는 모를 수밖에 없었다,

알 턱이 있나?

본디 감성보다는 이성에 충실한 삶을 살아왔던 인우다.

이러니 지금 느끼는 감정에 대해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을 수밖에.

51년의 인생을 살아왔던 인우였지만, 이런 면에서만큼은 무척이나 부족했다.

인우는 여자, 즉 연애에 대해서 무지했던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인우는 지구에서 20년을 살다 연애 한번 해 보지 못하고 프로킨으로 강제 소환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황제로 군림하기까지 수많은 전투를 치렀는데 연애를 할 시간이 있었겠는가?

물론 황제로 지내며 엄청난 숫자의 궁녀들을 끼고 놀아본 경험은 많았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인우가 궁녀들에게 가하는 일방적인, 일종의 놀이일 뿐이었다.

궁녀들은 인우의 손길을 거부할 수 없었고, 인우는 그 어떤 궁녀도 취할 수 있었다.

그러하니, 쌍방의 감정을 교류하는 복잡하고 미묘한 '연애', 다시 말해 '여자'에 대해서 쑥맥일 수밖에 없었다.

즉, 경험이 전무하니 모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전설로 남은 카사노바라는 역사 속 인물 또한 숱한 경험을 통해 여자에 대해 도가 튼 거다.

물론 타고난 언변과 외모, 그리고 그것(?)이 크게 작용했겠지만, 어찌되었건 경험을 통해 배우고 습득해 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인우는 연애의 경험치가 제로였다.

다시 말해 정인우의 연애 레벨은 1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러한 정인우가 묘한 눈동자로 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퀸 또한 인우를 발견했는지 몸을 돌렸다.

"······."

"······."

그런데, 오늘은 왠지 그녀의 눈빛이 평소와 많이 달랐다.

어느덧 화원의 꽃길을 사이에 두고 퀸이 말했다.

"참지 말라 하셨죠?"

아, 저번에 분명 그런 말을 하긴 했다.

그런데 뭐?

왜 그런 눈을 하고 그 말을 내뱉는 건데?

인우는 영문을 몰라 가만히 서 있었다.

그때.

퀸이 단숨에 꽃을 짓밟으며 다가왔다.

삽시간에 지척까지 다가온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인우의 얼굴을 부여잡았다.

순간, 퀸은 까치발을 들고 인우와 입을 맞췄다.

무척이나 따스한 느낌.

당황한 숨결과 떨리는 숨결이 맞닿으며 서로의 온기가 느껴졌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그리고 다시금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을 때.

퀸이 입술을 떼고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참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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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화 서열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