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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화. 집에 실려오다.

111화. 집에 실려오다.

세준이 동쪽을 향해 달리다 보니 멀리 독꿀벌들이 뭉쳐 있는 것이 보였다.

"저게 다 몇 마리야?"

위잉.위잉.

동쪽에서 3만 마리의 독꿀벌들이 세준의 농장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고

윙!윙!

반대쪽에서는 위협적인 소래를 내며 세준의 독꿀벌 1만 마리가 적들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경고를 보냈다.

일촉즉발의 상황.

"생포하기는 힘들겠네..."

동쪽 독꿀벌의 수가 너무 많았다. 생포하다가 우리 쪽 독꿀벌들이 먼저 전멸할 수도 있었다. 아까웠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꾸엥아. 날려버려."

꾸엥!

세준의 말에 꾸엥이가 거대화하며 동시에 자신이 매고 다니는 나뭇가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뿌드득.

거대해지는 나뭇가지.

꾸...!

꾸엥이가 20m로 길어진 나뭇가지를 전력으로 휘두르려 할 때

-멈추거라!

펄럭.펄럭.

검은 용 조각상이 날아왔다.

-박세준이놈! 이 쓸모가 많은 놈들을 왜 몰살시키려고 하는 것이냐?! 우리 에일린 치료 안 할 거야?!

카이저가 세준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독꿀벌들이 많으면 꿀젤리를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고 그럼 에일린의 치료가 좀 더 빨라지기 때문.

"그러고 싶은데 한 마리 한 마리 잡다가는 우리 애들 먼저 다 죽어요."

-흥! 잘 보고나 있거라.

세준의 대답에 카이저가 큰소리를 치며 동쪽 독꿀벌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윙!윙!

동쪽 독꿀벌들이 자신의 영역 한가운데로 들어온 카이저를 공격하려 했다.

그때

-복종하라.

카이저의 말 한마디에 동쪽 독꿀벌들의 움직임이 180도 변했다.

위잉.위잉.

갑자기 카이저를 호위하기 시작하는 동쪽 독꿀벌들.

펄럭.펄럭.

카이저가 유유히 동쪽 독꿀벌들을 데리고 세준에게 다가왔다.

-이제 됐느냐?

카이저가 '이정도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지.'라는 표정으로 우쭐해하며 세준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카이저 님."

-흥! 우리 손녀 때문에 도와주는 거야! 군고구마는 전혀 상관없어!

세준의 감사에 굳이 군고구마를 언급하는 카이저. 조만간 또 만들어 달라는 생색이었다. 카이저는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쌩하니 혼자 분수대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위잉.위잉.

4만 마리의 독꿀벌 사이에 홀로 선 세준.

'일단 꿀을 먹이면서 앞으로 고기는 먹지 말라고 해야지.'

철컹.

세준이 아공간 창고를 열어 꿀이 든 유리병을 꺼냈다.

딸칵.

뚜껑을 열자

꾸엥!

꾸엥이가 세준의 앞에 달려왔다. 자신에게 준다고 생각한 것이다.

푹.

세준이 말리기도 전에 꾸엥이가 유리병에 손을 넣고 꿀을 크게 찍었다.

그리고

핥짝.핥짝.

위잉?

꾸엥이가 꿀을 먹자 동쪽 독꿀벌들이 꾸엥이가 먹는 꿀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너희들도 먹어봐."

세준이 모두가 먹을 수 있게 접시 몇 개를 꺼내 꿀을 부으며 권하자 세준의 독꿀벌들과 동쪽 독꿀벌들이 사이좋게 접시에 앉아 꿀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

[야생 독꿀벌 여왕이 당신을 따르기로 합니다.]

[야생 독꿀벌 여왕이 거느린 독꿀벌 1만 1931마리가 여왕을 따라 당신을 따르기로 합니다.]

[야생 독꿀벌 여왕이 가진 벌집을 획득했습니다.]

"응?! 여왕도 있었어?"

독꿀벌들의 수가 너무 수가 많아 다른 독꿀벌들에게 가려 보이지 않았었다.

[독꿀벌들의 수가 2만 마리를 넘었습니다.]

[양봉 Lv. 5의 숙련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양봉 Lv. 5의 숙련도가 채워져 레벨이 상승합니다.]

독꿀벌의 수가 1만 마리가 되면서 레벨이 상승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양봉 레벨이 상승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야생 독꿀벌 여왕이 당신을 따르기로 합니다.]

...

..

.

세준의 양봉 레벨이 오르며 획득할 수 있는 벌집의 수가 늘어나자 다른 독꿀벌 여왕도 세준을 따르기로 했다. 이번에는 1만 7000마리의 독꿀벌을 거느린 여왕이었다.

[독꿀벌들의 수가 3만 마리를 넘었습니다.]

[양봉 Lv. 6의 숙련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독꿀벌들의 수가 4만 마리를 넘었습니다.]

[양봉 Lv. 6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양봉 Lv. 6의 숙련도가 채워져 레벨이 상승합니다.]

"와. 레벨이 2개나 올라갔어."

[야생 독꿀벌 여왕이 당신을 따르기로 합니다.]

...

..

.

이어서 독꿀벌 여왕 하나가 더 세준을 따르기로 했다. 이번에는 3000마리 정도를 거느린 독꿀벌 여왕이었다.

위잉.위잉.

3마리의 독꿀벌 여왕들이 세준을 향해 날아와 자신의 엉덩이를 세준의 몸에 비비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근데 너희들 왜 집까지 버리면서 이곳까지 온 거야?"

세준이 독꿀벌 여왕들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위잉.

[적의 공격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벌집을 버리고 도망쳤어요.]

위잉.

[저도요.]

위잉.

[헤헤헤. 저는 두 분이 도망치길래 같이 도망쳤어요.]

가장 규모가 작고 어린 여왕 독꿀벌이 쑥스러워하며 대답했다.

"적?"

동쪽 숲은 독꿀벌들이 지배한다고 알고 있었던 세준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위잉.

[뜨겁고 붉은 것들의 공격을 받았어요.]

위잉.

[불도 불이지만, 붉은 껍질이 문제예요.]

윙! 위잉.

[맞아요! 정확히 찌르지 않으면 독침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으니까요.]

독꿀벌 여왕들의 말을 들어보니 생각나는 게 있었다.

"설마 너희들 얘네한테 공격받았어?"

세준이 아공간 창고에서 불개미 일꾼의 사체를 꺼내오며 물었다. 불개미 일꾼은 뜨거운 불을 뿜어 내고 탄성이 있는 붉은 껍질을 가지고 있었다.

위잉.위잉.

불개미의 사체를 보고 흥분하는 독꿀벌들. 맞는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서쪽에서 나타나던 놈들이었다. 그런데 동쪽에서 나타나다니.

"남쪽인가?"

가운데는 자신이 있으니 불개미들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길은 남쪽뿐이었다.

"일단 벌집이 있는 곳으로 가보자."

세준이 독꿀벌 여왕들의 벌집을 챙기기 위해 꾸엥이와 독꿀벌들을 데리고 동쪽으로 이동했다.

***

"풉!"

흑랑단 중 한 명이 테오의 말에 참지 못하고 웃음소리를 냈다. 지구방위대라니? 어렸을 때 본 특촬물이 떠올랐다.

"감히 지구방위대 창립을 선포하는 자리에서 누가 웃은 것이냥?!"

지구방위대 부사령관 테오가 최대한 근엄하게 말했다.

"죄...죄송합니다!"

"조심하라냥! 지구방위대는 장난이 아니다냥!"

"네!"

"그럼 너희들도 코드명을 정하라냥!"

"네?!"

"당연하지 않냥? 여기 있는 모두가 지구방위대다냥!"

한태준은 계약서에 남은 부탁이 있고, 흑랑단은 빚을 갚을 때까지 테오 밑에서 일해야 하고, 김동식도 세준과 계약돼 있으니 테오는 그들을 강제로 지구방위대에 가입시켰다.

'무슨 놀이도 아니고 지구방위대라니?!'

테오의 허무맹랑한 소리에 위자드 길드의 길드장 루실리아의 얼굴이 분노로 붉어졌다. 이건 아니었다.

루실리아 화를 내려 할 때

"테오, 지구 방위대라니? 좀 더 자세히 말해줘."

한태준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구에 멸망이 찾아올 거다냥. 그러니까 우리 지구방위대가 지구를 지켜야 한다냥!."

"...!"

테오의 말에 정적이 흘렀다.

"멸망? 무슨 멸망?"

"전부 다 말해줄 수는 없다냥! 박 회장이 다 말하면 안 된다고 했다냥!"

너무 많은 정보가 풀리면 그것 자체가 혼란을 조장할 수 있었다.

특히 탑이 노아의 방주처럼 멸망 전에 생존자를 받아들인다는 게 알려지면 모두가 지구를 버리고 탑에 들어오기 위해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으면서 믿으라고?"

처음부터 불만을 가지고 있던 루시올라가 물었다. 테오의 말을 믿기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믿지 않아도 된다냥."

"뭐?!"

"대신 시키는 것만 열심히 하라냥!"

헌터들이 믿건 말건 상관없었다. 테오의 목표는 오로지 세준이 시키는 일을 완수하고 이쁨을 받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이걸 팔아 활동 자금을 만들어라냥!"

테오가 해독의 대파 2000개를 꺼내 헌터들에게 100개씩 나눠줬다. 힘의 호박고구마가 비싸게 팔리는지 알았다면 그걸 챙겨두었겠지만, 테오의 실수였다.

테오가 준 해독의 대파 100개에 루실리아의 불만이 많이 사라졌다. 밖에 나가 팔면 거의 150억에 가까운 거액. 이걸 팔아주기만 해도 얻을 이점들이 많았다.

"그럼 임무를 주겠다냥! 최대한 많은 땅을 사서..."

테오가 말하면서 봇짐에서 견고한 칼날 대파를 꺼냈다.

"이걸 심어라냥!"

"이게 뭔데? 악!"

한 헌터가 조심스럽게 칼날 이파리를 만졌다가 손이 베였다.

"조심하라냥! 아주 날카롭다냥!"

"근데 이걸 심는 게 지구 멸망을 막을 수 있어?"

한태준이 물었다.

"그렇다냥! 이걸 지구에 많이 심으면 지구가 멸망하는 일은 없을 거다냥!"

세준의 말은 다 맞기에 테오는 자신 있게 말했다.

"알겠다. 일단 해보지."

주는 해독의 대파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땅을 사고 대파를 심기만 하면 됐다. 거기다 부탁 하나를 소모하는 일이었기에 한태준은 손해 볼 것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지구방위대라니···뭔가 가슴을 웅장하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그렇게 다음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지구방위대원들이 흩어졌다.

그때

"테오."

한태준이 다가왔다.

"무슨 일이냥?"

"내 제자들도 지구방위대에 가입시키고 싶다."

한태준은 이미 테오의 말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구를 지키는 일이 결국 한국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제자들도 지구방위대에 가입시키려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조만간 지구방위대 멤버가 10명 늘어날 예정이었다.

"알겠다냥! 다음에 데려오면 계약서를 쓰겠다냥!"

"고맙다! 그리고..."

한태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뭐냥?"

"내 코드명은 캡틴 K로 하고싶다."

미블 영화에서 항상 캡틴 A가 부러웠던 한태준이었다.

***

세준이 독꿀벌들의 안내를 받아 벌집이 있은 곳으로 이동했다.

"와 이렇게 생겼구나."

저번에는 초입만 들어가서 잘 몰랐는데 동쪽은 대부분이 암석 지대였다.

1시간 정도를 이동하자 가장 나중에 도망친 어린 여왕의 벌집이 보였다.

"꾸엥아 챙겨."

꾸엥!

꾸엥이가 벌집을 들었다. 그리고 다른 벌집을 찾아 다시 이동했다.

30분 후.

콰득.콰득.

거대한 벌집을 이빨로 물어뜯어 이동하는 불개미 일꾼들이 보였다. 숫자는 대략 1000마리 정도.

위잉!위잉!

원래 벌집의 주인인 독꿀벌 여왕과 독꿀벌들이 전투 태세를 취했다.

"잠깐만 기다려. 먹구름 만들기."

세준이 자신의 완벽해진 우뢰 스킬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하늘이 먹구름으로 어두워졌지만, 불개미 일꾼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비 내리기."

세준이 전기가 잘 퍼질 수 있도록 물을 적당히 뿌려줬다.

그리고

"천둥 던지기!"

세준의 외침과 함께

콰과광!

하늘에서 거대한 푸른색 벼락 줄기가 불개미들이 들어가 있는 벌집에 꽂혔다.

쾅!

파지지직.

벌집을 때리고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뇌전들.

[불개미 일꾼을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1000을 획득했습니다.]

...

..

.

벌집에 들어가 있는 500마리와 벌집 주변에 있던 불개미 300마리가 순식간에 감전돼 죽어버렸다. 불개미들이 가진 금속 재질의 갑각이 오히려 전격 계열의 공격에는 쥐약이었다.

"오! 나 짱 쎄잖...어?!"

털썩.

세준이 쓰러졌다. 생각도 없이 마력을 전부 소모한 탓이었다. 마력 고갈 현상이었다.

꾸엥!

[역시 아빠는 너무 약하다요!]

꾸엥이가 고개를 흔들며 세준을 들었다.

"고맙다..."

일어날 힘이 없는 세준은 꾸엥이의 등에 실려 집에 도착했다.

112화. 마력 재능을 개화하다.

112화. 마력 재능을 개화하다.

세준이 마력 고갈 때문에 집에서 쉬고 있을 때

[꾸엥이 안녕!]

동굴로 내려온 꾸엥이에게 인사했다. 꾸엥이는 오전 오후 한 번씩 불꽃이가 차원의 바다에서부터 뿌리로 몰아온 작은 생선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꾸엥!꾸엥!

[안녕하지 못하다요! 아빠가 마력 고갈로 쓰러졌다요!]

[뭐라고?! 주인님이 쓰러지셨어?!]

꾸엥이에게 세준의 소식을 들은 불꽃이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쾅!

꾸엥!꾸엥!꾸꾸엥!

[천둥 한 번 떨어트리고 쓰러졌다요! 아빠 약하다요! 이러다 아빠가 죽을까 봐 걱정이 크다요!]

꾸엥이가 생선들을 주먹 한 방으로 사냥하며 불꽃이에게 자신의 걱정을 털어놓았다.

원래도 세준이 개복치급으로 약하다는 걸 알고 있던 꾸엥이지만, 세준에게 혼자서도 위험해지는 재주가 있는지는 몰랐다. 지금도 혹시 몰라 황금박쥐가 세준을 지키고 있었다.

[안되겠어.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지.]

꾸엥!꾸엥!

[맞다요! 대책이 필요하다요!]

불꽃이와 꾸엥이가 세준을 강화할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생각해도 마땅한 대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

탑 55층.

"얼음의 힘이여. 나의 명에 따라 주위를 가려라. 아이스 포그!"

일행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 이오나가 얼음 안개를 만들어 시야를 가리면서 적의 움직임을 둔화시켰다.

가뿐하게 그리드를 처치하고 제라스를 구하려 했던 일행은 결계 안에서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그건 바로 그리드의 저택을 지키고 있는 백색의 기사들. 온몸이 용의 뼈로 이루어진 용아병이었다.

용아병의 수는 100마리. 용아병은 강하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용아병은 파괴되지도, 지치지도 않았기에 용아병에게 쫓기던 일행들은 점점 지쳐갔다.

결계 밖으로 나가는 방법도 생각해봤지만, 들어올 때와 달리 내부에서는 결계가 부서지지 않았고 그들은 계속 용아병들과 싸우며 도망치고 있었다.

그렇게 일행들이 점점 지쳐갈 때

쀼쀼!

쀼쀼가 레드리본 왕가의 비밀통로가 아직 있을지도 모른다며 가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용아병의 추적을 뿌리치며 쀼쀼를 따라 비밀통로의 입구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드르륵.

쀼쀼가 바위의 아래쪽을 밀자

드드드득.

바위가 움직이며 숨겨진 비밀통로의 입구가 나타났다. 레드리본의 왕궁은 무너졌지만, 다행히 그리드가 지하 쪽은 건드리지 않아 비밀통로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서둘러라!"

"서둘러!"

엘카와 헤겔이 늑대들을 비밀통로로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

쀼쀼!

흑토끼까지 비밀통로로 다 들어가자 쀼쀼가 서둘러 스승을 불렀다.

"뀨-뀨-뀨- 알았어요. 얼음의 힘이여. 적에게 혹한의 눈과 바람을 주어라! 블리자드."

이오나가 마법을 사용하고 재빨리 닫히는 비밀통로로 들어갔다.

쿵.

휘우우웅.

비밀통로가 닫히는 것과 동시에 블리자드 마법이 발동하며 눈보라가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쩌저적.

동물들을 쫓던 용아병들이 눈보라에 얼어 추격을 멈췄다. 강한 바람에 비밀통로가 움직인 흔적도 사라졌다.

***

"으어..."

어제 하루를 누워만 있던 세준이 일어났다. 마력 고갈의 후유증 때문인지 오늘도 컨디션이 별로였다. 몸에 힘도 없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스윽.

세준이 침실 벽에 간신히 획 하나를 추가하며 조난 275일 차 아침을 시작했다.

날짜 표시를 한 세준이 밖으로 나오자

꾸엥!

세준이 먹을 아침을 챙겨가던 꾸엥이가 세준을 발견하고는 다급하게 달려왔다. 밤새 세준을 감시한 황금박쥐는 세준의 침실 천장에서 취침 중이었다.

덥석.

꾸엥이가 크기를 3m로 키워 세준의 양어깨를 잡아 다시 침실로 데려갔다.

"꾸엥아 왜 그래? 이제 나 움직일만해."

세준이 나가려고 했지만

척.

일어나려는 세준의 가슴을 꾸엥이가 앞발로 가볍게 눌렀다. 그것만으로 세준은 완벽히 제압됐다.

꾸엥!꾸엥!

[아니다요! 아빠는 많이 먹고 쉬어야 한다요!]

세준은 어쩔 수 없이 꾸엥이에 의해 강제로 잠자리에서 수프를 먹어야 했다.

잠시 후 세준이 나가지 못하게 감시하던 꾸엥이가 세준의 옆에 누워 잠들며 침실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꾸로롱.

배로롱.

꾸엥이와 황금박쥐의 코고는 소리만 들렸다. 너무 세준을 걱정하느라 피곤했던 둘이었다.

"녀석들."

자신을 생각해주는 둘의 마음에 가슴이 따듯해진 세준이 꾸엥이의 배를 쓰다듬었다. 포근했다.

그러다 문득 아까 꾸엥이에게 제압당했던 일이 떠올랐다.

"나의 응징을 받아라. 부부부붑."

세준이 꾸엥이의 배에 배방구를 하며 복수했다.

꾸헤헤헤.

세준의 배방구에 간지러웠는지 꾸엥이가 자면서 웃었다. 그렇게 장난을 치던 세준이 조심스럽게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집에만 있으니 너무 답답했다.

"후우."

밖으로 나온 세준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좀 있으면 씨앗 상점이 열리겠네. 좋은 씨앗이 나와야 되니까..."

철컬.

세준이 혼자 중얼거리며 아공간 창고를 열고 들어가 딸기 하나를 들고나왔다.

그리고

츄릅.

딸기를 한입 베어 물었다.

"으음."

딸기의 상큼함 덕에 몸의 기운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행운의 딸기를 섭취했습니다.]

[1시간 동안 행운이 상승합니다.]

"씨앗 상점이 늦게 열리면 좋겠다. 그럼 딸기 하나 더 먹을 수 있는데."

세준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위잉.위잉.

어제 세준을 따르기로 한 어린 독꿀벌 여왕이 뭔가를 들고 날아와 세준의 어깨에 앉았다.

꿀젤리와 비슷했지만, 중간에 금가루처럼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알갱이들이 박혀있는 꿀젤리였다. 황금빛 때문인지 굉장히 고급스러워 보였다.

"일곱째야 잘 잤어?"

세준이 어린 독꿀벌 여왕에게 물었다. 세준은 여왕들이 많아지자 들어온 순서대로 이름을 붙였다.

위잉.위잉.

[잘 잤어요. 그리고 이건 제 성의에요. 헤헤헤.]

툭.

일곱째 독꿀벌 여왕이 세준의 손에 들고 온 꿀젤리를 내려놓고는 앞발을 파리처럼 열심히 비벼댔다. 벌써부터 뇌물을 바치다니 재능이 있었다. 간신배의 재능이.

"고마워."

세준이 일단 일곱째 독꿀벌 여왕에게 감사를 전하고는 꿀젤리를 확인했다.

[골든 로얄젤리]

여러 종류의 꿀젤리를 독꿀벌 여왕이 자신의 비전을 사용해 오랜 기간 정제하고 정제해서 만들었습니다.

꿀젤리를 정제해 맛과 영양이 강화됐습니다.

섭취 시 잠재된 마력 관련 재능을 강제로 개화시킵니다.

유통기한 : 100년

등급 : A+

"마력 관련 재능을 강제로 개화시킨다고?!"

골든 로얄젤리의 설명을 읽은 세준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거 완전 내껀데? 마력 고갈로 고생하고 있는 세준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마력 관련 재능이 생기면 마력 증가나 마력 회복 속도 상승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거기다 마력 관련 재능이 개화되면 꿀젤리로 재능을 강화할 수도 있다.

"대박! 정말 고마워. 일곱째야!"

위...위잉.

[헤헤헤. 제 뇌...선물이 주인님의 마음에 들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정말 뇌물이었냐?'

"근데 이거 네가 만든 거야?

위잉.위잉.

[아니요. 제 여왕님의 여왕님의 여왕님의...]

일곱째 여왕 독꿀벌은 '여왕님'을 10번을 하고 나서야 멈추었다. 일곱째 여왕 독꿀벌의 설명으로는 그때부터 보관하고 있던 거라고 했다. 아마 꽃이 없어지면서 만들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너는 못 만들어?"

위잉.위잉.

[글쎄요. 저는 꿀을 어제 처음 먹어봐서...하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일곱째 여왕 독꿀벌의 적극적인 대답이 세준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고민하지 않고 바로 일곱째 독꿀벌 여왕의 뇌물을 삼켰다.

행운의 딸기를 먹고 행운이 상승한 지금이야말로 골든 로얄젤리를 먹을 최고의 타이밍이었다.

물컹.

입에 넣자마자 황금빛 젤리가 반죽처럼 흐물흐물해졌다. 동시에 입안 가득 부드러우면서 강한 단맛이 느껴졌다. 머리가 아플 정도의 단맛이었지만, 이상하게 아프지는 않았다.

덕분에 세준은 순수하게 단맛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꿀꺽.

흐물흐물해진 골든 로얄젤리가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와."

입안에 단맛이 전혀 남지 않아 마지막까지 깔끔했다.

[골든 로얄젤리를 섭취했습니다.]

[잠재된 마력 관련 재능을 강제로 개화시킵니다.]

세준의 몸에서 푸른빛 덩어리들이 세준의 몸을 맴돌았다.

그때

[잠재된 재능보다 더욱 높은 마력 관련 재능을 강제로 개화시킵니다.]

메시지와 함께 더욱 큰 푸른빛 덩어리들이 나타났다.

"오! 여기서 터지네!"

세준이 행운의 딸기를 먹은 보람이 있다고 기뻐할 때

스르륵.

푸른빛 덩어리 중 하나가 세준의 몸에 흡수됐다.

[재능 : 마력 회로가 개화를 준비합니다.]

"마력 회로?"

처음 보는 재능에 세준이 무슨 능력인지 살펴보려 할 때

[재능 : 마력 회로를 개화시키기에는 육체가 너무 형편없습니다.]

[재능 : 마력 회로를 강제로 개화시킵니니다.]

"크헉!"

재능을 강제로 개화시킨다는 메시지와 함께 세준의 배에서부터 묵직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며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이게 뭔..."

세준이 고통을 참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위잉.

일곱째 독꿀벌 여왕이 서둘러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다. 물론 자신이 준 걸 먹고 쓰러졌다는 내용은 뺐다. 잘못하면 세준이 깨어나기 전에 죽을 수도 있었다.

잠시 후

꾸엥!

안에서 자고 있던 꾸엥이가 달려 나와 세준을 질질 끌고 다시 침실로 들어갔다. 역시 아빠는 약하다요!

꾸엥이는 약한 세준이 바깥바람을 쐬다 기절했다고 생각했다. 세준으로서는 억울한 오해였다.

그리고

[뭐?! 주인님이 또 쓰러지셨어?! 이 나쁜 불개미들!]

세준이 쓰러졌다는 소리에 불꽃이가 세준이 기절한 이유를 만든 불개미들을 혼내주기로 했다.

쿠구궁.

불꽃이가 뿌리를 남쪽으로 뻗기 시작했다.

***

"푸후훗.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났다냥!"

거래와 지구방위대 창설까지 끝낸 테오가 기뻐하며 다시 인턴들과 탑 99층으로 올라가려 할 때

"심상치 않다냥!"

"네?!"

조금 전까지 웃던 테오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심각해진 테오의 표정에 빌과 제프도 덩달아 긴장했다. 저런 표정이 나올 때마다 쉬지 않고 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박세준의 무릎이 약해졌다냥! 빨리 달린다냥!"

테오가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탑 70층에서 80층까지 통하는 상인 통로에 진입하려 할 때

"멋진 유랑 상인님들, 물건 하나 보고 가세요."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테오의 걸음이 뚝 멈췄다.

"나를 왜 불렀냥?!"

테오가 좌판에 물건을 깐 유랑 상인에게 물었다.

"네?!"

테오의 말에 유랑 상인이 잠깐 당황했다. 지나가는 다른 유랑 상인을 부른 것이지만, 당연히 자신을 불렀다고 생각한 테오였다. 멋진 유랑 상인은 나뿐이다냥!

"아! 멋진 고양이님에게 어울리는 물건들 좀 보시라고 불렀습니다!"

잔뼈가 굵은 유랑 상인답게 적절히 대처했다.

"그러냥?"

테오가 유랑 상인이 좌판에 깔아둔 물건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냥..."

눈을 현혹하는 크고 화력한 조각들이 많았다. 하지만 테오는 그런 물건들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앞발의 느낌에 집중했다. 이제 자신의 장점을 확실히 아는 테오였다.

그때

"냥?"

찌릿.

테오의 앞발을 끄는 끌림이 느껴졌다.

"이거를 달라냥!"

"네?! 이거요?"

테오가 가리킨 조각상에 유랑 상인의 표정이 밝아졌다. 테오가 가리킨 것은 작은 골프공 정도의 크기에 무엇을 조각했는지도 모를 이상한 조각상이었기 때문.

"정말요?"

"그렇다냥!"

'길 가다 우연히 주운 걸 올려둔 것뿐인데 사려는 상인이 있을 줄이야.'

"크흠. 어차피 싼 거니 3탑코인만 주시죠."

유랑 상인이 떨이로 준다는 투로 말했지만, 자신이 파는 조각상 중 가장 비싼 것도 3탑코인 안 됐다.

하지만

"깎아달라냥!"

상대를 잘못 만났다. 아무리 사고 싶어도 그냥 살 수는 없는 테오였다.

"그럼...2탑코인만..."

"깎아달라냥!"

테오가 3번 깎기로 이상한 조각상을 0.5탑코인에 사고 다시 세준을 향해 달려갔다.

'푸후훗. 박 회장, 기다려라냥! 내가 좋은 거 가져간다냥!'

113화. 보물창고의 물건을 꺼내다.

113화. 보물창고의 물건을 꺼내다.

"으음. 여긴?"

세준이 자신의 침실 천장을 보며 정신을 차렸다.

'아. 나 기절했었지.'

"으으으."

기절하기 전 끔찍한 고통을 떠올리자 몸서리가 쳐졌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때

(세준 님! 깨어나셨군요?!)

파닥.파닥.

천장에서 세준을 감시하던 황금박쥐가 세준이 눈을 뜨자 천장에서 몸을 던지더니 유유히 세준의 얼굴 옆에 착지했다.

(깨어나셔서 기뻐요!)

뱃뱃.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황금박쥐가 세준의 볼에 자신의 얼굴을 비볐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세준이 황금박쥐를 쓰다듬어 주기 위해 팔을 움직이려 할 때

"어?"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온몸을 꼼짝할 수 없었다.

"뭐야?"

설마 높은 재능을 받은 부작용?! 갑자기 겁이 났다.

"으윽."

세준이 힘겹게 고개를 들어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이게 뭐야?!"

세준은 밧줄로 애벌레처럼 꽁꽁 묶인 자신의 몸을 보며 당황했다. 세준이 또 밖에 나가 쓰러질까봐 아예 나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꾸엥이의 작품이었다.

"윽!윽!흐압!"

세준이 밧줄을 끊기 위해 노력했지만, 파 이파리를 여러 겹 엮어 만든 밧줄로 몸을 칭칭 감았기에 세준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황금박쥐야. 이것 좀 풀어줘."

결국 스스로 풀기를 포기한 세준이 황금박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어?! 꾸엥이 형님이 절대 풀면 안 된다고 했는데요?)

세준의 말에 곤란해하는 황금박쥐. 꾸엥이의 협박이라면 그럴 수 있었다. 꾸엥이의 주먹은 크고 가까우니까.

'내 말이 우선이야? 꾸엥이 말이 우선이야?' 이런 유치한 물음으로 황금박쥐를 곤란하게 할 수도 있지만 참았다.

'나는 어른이니까.'

절대 꾸엥이에게 질 거 같아서는 아니다.

"씨앗이나 사야지."

세준이 밧줄 풀기를 포기하고는 기절한 사이에 나타난 씨앗 상점창을 확인했다.

[무 씨앗 200개 - 3탑코인]

[배추 씨앗 100개 - 1탑코인]

[청양고추 씨앗 100개 - 0.7탑코인]

[오이 씨앗 100개 - 0.5탑코인]

"다 합치면 5.2네."

구매 제한인 5탑코인에서 조금 넘어갔다.

"청양고추는 빼자."

청양고추는 이미 수확까지 하고 다시 씨앗을 심은 상태. 청양고추 하나에 들어있는 씨앗이 200개 정도라 크게 아쉽지 않았다.

세준이 청양고추를 뺀 나머지 씨앗을 전부 구매했다.

[무 씨앗 200개를 구매했습니다.]

[배추 씨앗 100개를 구매했습니다.]

[오이 씨앗 100개를 구매했습니다.]

[씨앗 은행 박세준 님의 계좌에서 총 4.5탑코인이 빠져나갑니다.]

[씨앗 상점 마일리지 45점이 적립됩니다.]

[씨앗 상점 마일리지가 총 151점 적립됐습니다.]

잘그락.

세준의 묶인 손 위에 씨앗이 든 작은 가죽 주머니 3개가 떨어졌다.

[씨앗 상점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0일 후에 다시 씨앗 상점 Lv. 2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근데 지금이 몇 시야?"

(새벽이요.)

"그래? 그럼 더 잘까?"

세준이 다시 잠을 자기 위해 눈을 감았다.

하지만

뱃뱃.

세준의 가슴에 엎드려서 세준의 얼굴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황금박쥐. 너무 부담스러운 시선에 세준은 잠이 안왔다.

'재능이나 확인해야지.'

세준이 황금박쥐의 시선을 피해 천장을 보며 자신을 기절시켰던 재능 : 마력 회로를 확인했다.

[재능 : 마력 회로]

-전신에 마력이 순환할 수 있는 회로를 구축해 마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재능입니다.

-보유 마력 스탯 +5%

-마력 회복 속도 +100%

-마력 증가 아이템 섭취 시 효과 +50%

"와아아···"

세준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재능이었다.

보유 마력 스탯 +5%. 가진 마력 스탯이 100이라면 5가 추가로 상승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마력 회복 속도 100% 상승과 마력 증가 아이템 섭취 시 효과 50% 증가까지 옵션들 하나하나가 다 대단했다.

"흐흐흐. 이게 내 재능이라니? 나 이제 진짜 강해지는 건가?"

재능을 확인하니 자신감이 뿜뿜 솟아났다.

'이것만 있으면...'

앞으로 새로 얻은 재능을 어떻게 사용할지 생각하는 사이

커어어어.

세준이 잠들었다.

배로롱.

황금박쥐도 함께.

***

"비밀통로 상태가 아주 좋네요."

이오나가 빛 마법을 사용해 비밀통로를 둘러보며 말했다.

"근데 비밀통로가 어디로 연결된 겁니까?"

엘카가 쀼쀼에게 물었다.

쀼쀼.(이 비밀통로는 레드리본 왕국의 보물창고와 연결돼 있어요.)

뺙?!(보물창고?!)

쀼쀼의 말에 흑토끼가 설렌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쀼쀼.(보물창고에 보물은 없어. 예전에 이미 다 옮겼거든.)

쀼쀼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때는 쀼쀼가 태어나기도 전이라 그 보물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쀼쀼도 몰랐다.

"보물창고랑 연결돼 있다면 그리드의 저택의 밑까지 바로 갈 수 있을 거예요. 거기서 위로 올라가죠."

이오나의 말에 동물들이 비밀통로를 따라 이동했다. 중간중간 함정들이 있었지만

"바람의 힘이여! 나의 명에 따라 몰아쳐라! 윈드 블로우!"

이오나의 마법에 함정들이 전부 작동됐다.

그렇게 도착한 보물창고.

"너희들은 누군데?! 감히 내 앞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냐?!"

보물창고의 중앙에 있는 백색 용의 조각상이 그들을 보며 호통을 쳤다.

***

"무슨 일이지? 갑자기 오른쪽 앞발이 시큰하군."

카이저가 팔꿈치까지 길게 난 오른팔의 흉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8000년 전 흰둥이 켈리온과 싸우다 얻은 영광의 상처였다.

강력한 펀치로 켈리온의 아구창을 때리다 팔뼈가 부러지며 큰 부상을 입었지만, 켈리온은 앞니가 다 뽑혀버렸다. 원펀치 투에니 강냉이였다.

"크흐흐흐. 놈은 평생 부드러운 것만 먹게 됐지."

카이저가 그때 일을 생각하며 흐뭇하게 웃었다. 이후 켈리온은 자신의 이빨이 아까웠는지 빠진 이빨로 용아병을 만들었다고 들었다.

"이렇게 상처가 쑤실 때는 독한 술에 달콤한 안주가 최고지. 크흐흐흐. 세준이놈한테 군고구마 달라고 해야지"

카이저가 불당근주를 꺼내며 검은 용 조각상을 움직여 세준을 찾았다.

***

뱃!

세준의 가슴에서 자던 황금박쥐가 서둘러 일어났다. 누군가 접근하는 소리가 들렸다.

'꾸엥이 형님이다.'

파닥.파닥.

황금박쥐가 서둘러 천장에 매달림과 동시에 꾸엥이가 들어왔다.

(근무 중 이상 무!)

황금박쥐가 자신의 오른쪽 날개로 경례했다.

꾸엥.

꾸엥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세준의 모습을 확인했다. 다행히 잔 걸 들키지는 않았다.

"꾸엥아! 빨리 풀어줘!"

소란스러움에 눈을 뜬 세준이 꾸엥이에게 말했다. 일어나니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꾸엥!

트드득.

꾸엥이가 힘을 주자 밧줄이 허물할 정도로 가볍게 끊어졌다.

다다다.

세준이 급하게 볼 일을 보고 오자

꾸엥!

[배고프다요!]

꾸엥이가 배를 두드리며 세준의 가슴에 얼굴을 비볐다.

"꾸엥아 다음에는 아빠 이렇게 묶지 마 알았지? 이건 나쁜 거야."

꾸엥!꾸엥!

[나쁜 건지 몰랐다요! 다음부터 묶지 않겠다요!]

세준의 말에 꾸엥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밥 먹자."

세준이 텅 빈 냄비를 씻고 새로 수프를 끓였다. 어제 하루 쉬었다고 취사장 냄비들은 전부 비어 있었다.

"이걸 누가 자르지?"

세준이 꽁꽁 언 퍼플 로커스트 고기를 꺼내며 말했다. 테오가 거래를 하러 내려가 고기를 얇게 잘라줄 동물이 없었다.

세준이 고민하고 있을 때

(제가 도와드릴게요!)

황금박쥐가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괜찮겠어?"

(맡겨만 주세요!)

처음에는 비리비리한 모습에 황금박쥐를 걱정했지만

스륵.

황금박쥐의 날개에 마칭 푸딩을 자르듯 가볍게 잘리는 고기를 보면서 역시 이곳에서 남 걱정만큼 쓸데없는 일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세준이었다.

'그랬지. 나만 잘하면 되는데..."

"앞으로 요리 보조는 황금박쥐가 해."

세준이 황금박쥐에게 요리 보조를 맡겼다. 이유는 테오처럼 털을 풀풀 날리지 않아 위생적이기 때문.

(감사합니니다!)

뱃뱃.

황금박쥐가 가문의 영광이라는 듯이 감격했다. 그렇게 황금박쥐가 보조요리사라는 직업을 얻게 됐다.

그때

"내가 왔다냥!"

자리를 비운 사이 방금 직업 하나를 잃은 테오가 돌아왔다.

그리고

찰싹.

돌아오자마자 테오가 자신의 자리인 세준의 무릎에 매달려 머리를 열심히 비벼대기 시작했다. 다른 냄새는 다 물러거라냥!

그렇게 테오가 열심히 세준의 무릎에 자신의 체취를 묻히는 동안

"수고했어."

세준이 테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건 선물이다냥! 내 돈으로 샀다냥!"

잠시 후 자신의 체취를 다 묻힌 테오가 세준에게 길거리 유랑 상인에게서 산 조각상을 말랑한 앞발로 쥐어 세준에게 내밀었다.

"이게 무슨 조각상이야?"

"모른다냥! 그냥 손이 끌렸다냥!"

세준의 물음에 테오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뭔지는 몰랐지만, 자신이 골랐으니 대단한 게 당연했다.

슥.

세준이 테오가 작은 조각상을 받아 이리저리 살펴봤다.

"아?! 이거 토끼 조각상이네."

많이 마모되기는 했지만, 자세히 보니 희미하게 토끼 모양의 윤곽이 남아있었다. 무슨 조각상인지 확인한 세준이 조각상의 옵션을 확인했다.

[조각상]

???

제작자 : 비공개

등급 : F

"에일린, 이거 감정해줘."

[탑의 관리자가 자신에게 맡기라고 말합니다.]

세준의 손에 있던 토끼 조각상이 사라졌다.

그리고

[탑의 관리자가 등급은 높은 물건이라고 합니다.]

[탑의 관리자가 이거 우리 이모가 만든 거라고 자랑합니다.]

"이모?"

감정을 끝낸 에일린이 다시 세준에게 토끼 조각상을 보내줬다. 봉인이 풀리며 조각상은 원래의 귀여운 토끼 조각상 모습을 되찾았다.

"위험한 건 아니지?"

용이 만들었다고 하니 의심부터 들었다.

[탑의 관리자가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합니다.]

"진짜지?"

[탑의 관리자가 자신을 믿으라고 합니다.]

세준이 토끼 조각상의 옵션을 다시 확인했다.

[보물창고의 수호 토끼 조각상]

위대한 검은 용 타라 프리타니가 레드리본 왕국의 수호룡으로 있을 당시 드워프들에게 주문해 만든 토끼 조각상에 마법을 걸어 왕가에 선물한 조각상입니다.

왕궁 보물창고의 입출고를 통제해 보물창고의 물건을 마음대로 넣다 뺐다 할 수 있습니다.

제작자 : 검은 용 타라

등급 : S

스킬 : [입고 Lv. Max], [출고 Lv. Max]

"레드리본 왕국의 보물창고?"

왕국의 보물창고라니?

"우리 뭐가 있는지만 볼까?"

세준이 동물들을 보며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다시 넣을 수 있으니 전혀 흔적도 남지 않을 거다.

"좋다냥! 보물 창고를 털자냥!"

꾸엥!

[먹을 거 나오면 좋겠다요!]

(보물 구경하고 싶어요!)

동물들의 의도는 달랐지만, 보물창고에서 물건을 꺼내는 데는 모두 동의했다.

"좋아. 출고!'

세준이 조각상을 들고 말하자

[현재 레드리본 왕국 보물창고에서 출고할 수 있는 물건 리스트(총 1개)]

미등록 조각상 X 1

보물창고에서 꺼낼 수 있는 물건의 목록이 나왔다.

"에이. 1개 밖에 없어?"

누군가 다 털어가고 무거운 조각상만 남은 모양이었다.

"이거라도 출고해봐야지."

세준이 미등록 조각상을 선택했다.

[레드리본 왕국 보물창고에서 미등록 조각상 1개를 출고합니다.]

쿵.

하늘에 포탈이 만들어지며 하얀색 용 조각상 하나가 떨어졌다.

조각상에서 흉흉한 기운이 뿜어져나왔다.

"이거 안 위험하다며?"

[탑의 관리자가 자신이 감정한 물건만 위험하지 않다고 발뺌합니다.]

그때

"흰둥이 이놈!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기웃거려!"

세준에게 자신의 술 안주인 군고구마를 만들게 할 생각에 신나게 날아오던 카이저가 하얀색 용 조각상을 보며 노성을 질렀다.

114화. 치트키가 생기다.

114화. 치트키가 생기다.

탑 55층.

-누구냐고 물었다.

'뀽. 왜 보물창고에서 용의 기운이?!'

하얀 용의 조각상에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강대한 기운에 이오나가 당황했다.

그때

뺙!(나는 위대한 흑토끼족 전사 흑토끼다!)

흑토끼가 자신의 해머를 들며 외쳤다.

-감히 털이 검은 녀석이 내 앞에서 말을 해?!!!

흑토끼의 말에 켈리온이 분노했다. 검은색을 보니 잇몸이 욱신거리며 과거 검둥이 놈과의 싸움이 떠올랐다.

"모두 도망가! 불의 힘이여. 나의 명에 따라 적에게 꺼지지 않은 지옥불을! 헬파이어!"

하얀 용 조각상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적대감에 이오나가 동물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 마법을 사용했다. 살 생각은 완전히 버렸다.

이오나의 목적은 동물들을 하나라도 더 살리는 것.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멈춰라.

"....?!"

하얀 용 조각상의 한마디 말에 이오나의 마법도, 이오나와 동물들의 움직임도 멈췄다.

-나에게 나쁜 기억을 떠올리게 한 것만으로 죽을죄거늘...감히 나 위대한 하얀 용 켈리온 님을 공격해? 너희들 편히 죽을 생각은 버려라! 그리드!

검은색을 증오하는 켈리온이 노성을 터트리며 그리드를 불렀다.

잠시 후

쿵.쿵.

켈리온의 부름을 받은 그리드가 땅을 울리며 급하게 달려왔다.

쿵.

"위대한 하얀 용이여 부르셨습니까?"

그리드가 하얀 용 조각상 앞에 고개를 박고 무릎을 꿇으면 말했다.

-그리드, 경비를 어떻게 했길래 이런 하찮은 것들까지 내가 처리하게 만드는 것이냐?!

"네?!"

그리드가 슬며시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에 조각상 외에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동물들이 보였다.

'저건 대파괴의 마법사 이오나?!'

씨익.

이오나와 다른 동물들을 본 그리드가 사악하게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밖에 침입자가 발생해 부하들에게 수색을 지시한 상태였는데 이곳에 있을 줄이야.

'오늘이 이오나 너의 제삿날이다.'

이오나를 보는 그리드의 눈에는 분노와 광기가 가득했다. 그동안 이오나가 자신의 일을 사사건건 방해해 곤란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리드가 이오나와 동물들을 처리하기 위해 일어났다.

그리고 이오나를 처리하기 위해 그리드가 하얀 용 조각상을 등졌을 때

스르륵.

바닥에 검은 구멍이 생기며 하얀 용 조각상을 집어삼켰다.

'어?! 하얀 용 조각상이 사라졌어!'

동물들이 하얀 용 조각상이 사라지는 걸 목격했다. 그리고 조금씩 움직여지는 몸. 하얀 용 조각상이 사라지며 마법이 풀린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겁도 없이 이곳에 들어오다니. 클클클. 이오나 네년은 쉽게 죽이지 않을 거다. 먼저 가죽부터 벗겨주마."

하얀 용 조각상이 사라진 것도 모르고 그리드는 흉측한 어금니를 보이며 막말을 뱉어내고 있었다.

그때

뺙취!

늑대들의 털에 코가 간질여지고 있던 흑토끼가 재채기를 했다.

"어?! 움직였어?"

시원하게 재채기를 하는 흑토끼를 보며 그리드가 당황했다.

그리고

끼긱.끼익.

돌아가지 않은 고개를 애써 돌리며 이오나를 봤다.

'세준 님,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이오나는 이 상황을 세준이 해결해줬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리고 이게 테오가 말하던 세준의 무릎 효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으쓱.으쓱.

이오나가 세준에게 마음속으로 감사하며 어깨를 움직이고 몸을 풀었다.

'어떻게?!'

"켈리온...님?"

그리드가 다급히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하얀 용 조각상은 증발한 듯 사라져 있었다.

"야이 켈리온 용 새끼야!!! 나만 두고 가면 어떡해?!"

그리드가 애타게 켈리온을 불렀지만, 그리드의 애절한 외침은 보물창고 안을 맴돌 뿐이었다.

뿌득.뿌득.

"뀨-뀨-뀨-뀨-뀨-그리드, 쉽게 죽이지 않을 거예요."

그리드가 한 말을 돌려주며 이오나가 주먹을 꽉 쥐고 그리드를 노려봤다. 분노가 한계치를 넘어가며 분노의 뀨 5단계가 되자 이오나는 오히려 차분해졌다.

"모두 나가 있어요."

뺙.

쀼쀼.

"네."

"네."

감히 이오나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동물들이 조용히 보물창고를 나갔다.

쿵.

나가면서 친절히 보물창고의 문까지 닫았다.

1시간 후, 보물창고에서 이오나가 후련한 표정으로 나왔다. 그리고 보물창고 출고 물품 리스트에 멧돼지 가죽, 고기, 뼈가 추가됐다.

***

-너...너는 설마? 검둥이 카이저?!

검은 용 조각상을 발견한 하얀 용 조각상이 당황했다. 검은 탑을 염탐하기 위해 일부러 탑의 시스템을 피하기 위해 결계까지 만들었는데...갑자기 이곳에 소환되면서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버렸다.

-어쩐지 팔이 시큰거리더니···흰둥이 켈리온,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온 것이냐?!

-뭐?! 시큰?! 카이저 너 때문에 난 고기도 못 먹어!

-그러게 누가 내 안주 뺏어 먹으래?!

-카이저, 네 성질이 더러운 거지! 누가 안주 하나 먹었다고 아구창을 날려?!

-그건 특별히 내 4만 살 생일에 먹으려고 아껴둔 거였다고!

둘의 나이를 합치면 거의 10만 살인데 저런 식으로 싸운다니...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이었다.

고오오오.

파스스스.

둘이 입으로 싸우는 동안 둘의 마력이 충돌하며 거기에 휘말린 농작물과 건물이 가루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 용들이!'

자신의 집이 부서지고 농작물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며 세준이 싸움을 말리기 위해 나섰다.

"카이저 님! 그리고 다른 용분! 진정하시죠!"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기에 신령스러운 비석의 파편 위에 올라 소리를 질렀다. 이상하게 그곳만은 두 용의 마력에 영향을 받지 않고 고요했다.

꾸엥!

꾸엥이가 세준의 옆에 서서 세준의 다리를 꼭 잡았다. 지금 비석을 벗어나는 순간 두 용의 마력 충돌에 휘말려 죽을 수도 있었다.

"냥냥냥."

반대로 테오는 주변에서 마력이 충돌하든 말든 콧노래를 부르며 세준의 무릎에서 쉬고 있었다.

-박세준이놈! 어른들 얘기하는데 어딜 끼어?!

-네놈! 머리가 검구나?! 아주 불길해! 재수 없어! 죽어라!

-어디! 감히 우리 세준이를!

다짜고짜 머리가 검다고 죽이려는 켈리온의 힘을 카이저가 막아줬다. 순식간에 생이 끝날뻔한 세준이었다.

-어쭈?! 내 공격을 막았다 이거지?

고오오오.

하얀 용 조각상이 힘을 더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감히 흰둥이 주제에 검은 탑 안에서 힘을 쓰겠다 이거지?!

고오오오.

검은 용 조각상도 힘을 끌어올렸다.

쩌저저적.

우지끈.

땅에 금이 가며 수로의 기둥들이 찌그러지며 수로의 물이 새기 시작했다.

"휴우..."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에일린, 불러야겠다."

이대로 뒀다가는 농장이 다 파괴될 것 같자 세준은 에일린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두 용 중 카이저를 막을 수 있는 최고의 치트키 에일린을.

그때

[검은 탑에 불법 침입한 용족의 영혼을 감지했습니다.]

[분석 결과 하얀 탑의 관리자 켈리온의 영혼이 30% 들어 있습니다.]

[중간 관리자의 권한으로 하얀 탑의 관리자 켈린온의 영혼 30%를 추방시킬 수 있습니다.]

[추방된 하얀 탑의 관리자 켈리온의 영혼 30%는 본체로 돌아가지 못하고 소멸됩니다.]

[하얀 탑의 관리자 켈리온의 영혼 30%를 추방하시겠습니까?]

세준에게 켈리온을 막을 수 있는 치트키가 들어왔다.

"에일린, 카이저 님 좀 말려줘."

[탑의 관리자가 자신이 할아버지를 조용히 시키겠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카이저를 에일린에게 맡기고

"켈리온 님, 힘을 거두시죠. 탑에서 추방돼 영혼이 소멸되기 싫으시면요."

세준이 켈리온에게 강하게 말했다.

-뭐?!

감히 위대한 하얀 용 앞에서 당당히 말하는 세준을 보며 켈리온이 분노했다.

"감히 하찮은 놈이! 죽어라."

쾅!

켈리온의 말과 함께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세준의 몸에 엄습했다.

[목숨의 위협을 받는 중입니다.]

[용족 스킬 - 드래곤 스킨이 발동합니다.]

[위대한 검은 용 카이저의 비늘이 파괴됩니다.]

크오오오.

세준의 왼팔에 있던 검은 용 문신이 포효하며 사라졌다. 원래라면 막을 수 없는 공격이었지만, 켈리온이 카이저와 대치 중이라 전력을 다하지 못한 덕분이었다.

"어?! 방금 저 죽일려고 하신 겁니까?! 추방 준비."

세준의 말과 함께 하얀 용 조각상의 밑에 검은 구멍이 생겨났다.

-이게?! 왜?!

자신을 추방시키려는 구멍이 생기자 켈리온이 당황했다. 켈리온이 알기로 검은 탑의 관리자는 에일린이었다. 그리고 에일린은 탑을 나올 수 없기에 자신을 추방시킬 존재가 없었다.

켈리온이 당황하는 사이.

"테 사장, 계약서 꺼내."

"냥!"

세준의 지시에 테오가 계약서를 꺼내 하얀 용에게 다가가 백지 계약서를 펼치고

"빨리 도장을 찍어라냥!"

하얀 용 조각상에게 큰소리를 쳤다.

'박세준의 무릎과 가까운 나는 무적이다냥!'

용 앞이지만, 세준의 무릎 버프를 받은 테오는 용기 +1000의 상태였다.

"절 절대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하시죠."

"박 회장 목숨값을 잊었다냥!"

테오가 서둘러 외쳤다.

"당연히 안 잊었지. 그리고 제 목숨을 노린 대가로 1억 탑코인을 보상금으로 주세요. 아니면 검은 탑에서 추방되실 겁니다."

세준이 오른손의 검은 용이 그려진 중간관리자 징표를 보이며 말했다.

-설마?! 너 중간 관리자냐?!

켈리온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용들이 관리하는 탑 중 중간 관리자를 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용들의 오만한 성격 때문이었다.

그런데 카이저가 중간 관리자를 두는 것을 허락하다니?! 그것도 옆에 있는 하찮고 강한 몬스터가 아니라 하찮고 약한 인간에게···정말 놀랄 일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세준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영혼 30%를 잃으면 그만큼 힘과 기억도 같이 잃어버리며 영혼에 타격이 간다. 심하면 본체가 소멸할 수도 있었다. 좋을 게 없었다.

-알겠다. 박세준, 너를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하지. 보상금 1억 탑코인도 주겠다.

켈리온의 맹세와 함께 계약서에 켈리온이 말한 내용이 적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쿵.

계약서가 완성되자 하얀 용의 인장이 찍혔다. 용은 지고한 존재. 무게를 담은 말 자체가 계약이 됐다.

"여깄다냥!"

테오가 계약서를 가지고 달려와 세준에게 건넸다.

"테 사장, 잘했어. 일단 힘을 거둬주세요."

-알았다.

켈리온이 힘을 거두기 시작하자

-흥! 흰둥이 놈! 운이 좋은 줄 알아라!

그에 맞춰 카이저도 힘을 거뒀다.

그리고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을 때

[보랏빛 고구마수프를 완성했습니다.]

[요리 Lv. 4의 숙련도가 조금 상승합니다.]

세준이 준비한 아침이 완성됐다.

"아침을 준비 중이었는데 같이 드시죠."

세준이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두 용에게 음식을 권했다.

-군고구마도 있느냐?!

원래 이곳에 온 목적이 생각난 카이저가 물었다.

"아니요. 대신 고구마수프를 만들어 봤습니다."

-박세준이놈! 군고구마를 만들어 놨어야지! 흥! 일단 권하니 맛은 보도록 하지.

카이저가 괜히 투덜대며 세준을 따라 취사장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마력 충돌로 취사장의 지붕만 사라졌고 내부는 멀쩡했다.

"여기 있습니다."

세준이 대형냄비의 수프를 그릇에 담아 카이저에게 건넸다.

-흥! 잘 먹지.

벌컥.벌컥.

검은 용 조각상이 자신의 입에 수프를 부었다. 검은 용 조각상의 목구먹을 넘는 순간 수프는 카이저의 앞으로 공간 이동하게 될 것이다.

세준은 하얀 용 조각상의 앞에도 수프를 한 그릇 퍼서 놓고 서둘러 수프를 작은 냄비에 덜어내고 대형 냄비째 꾸엥이에게 줬다.

후루룩!

꾸엥!

꾸엥이가 받자마자 대형 냄비의 수프를 3분의 1정도 마시고 내려놨다. 맛있다요!

부욱.

"자."

"잘 먹겠다냥!"

촵촵촵.

세준이 츄르 봉지를 뜯어 무릎 위의 테오에게 주고 수프를 먹기 시작했다.

'맛있나?'

열심히 먹기만 하는 동물들을 보면서 켈리온은 궁금증이 일어났다.

벌컥.벌컥.

하얀 용 조각상이 수프를 삼켰다. 검은 용 조각상과 같은 형식이라 하얀 용 조각상이 삼킨 수프는 켈리온의 본체 앞으로 공간 이동했다.

"이거 더 없느냐?!"

켈리온이 뒤늦게 수프를 더 찾았지만

꾸로롱.

취사장 안에는 며칠 동안 세준을 감시하느라 제대로 쉬지 못해 수프를 먹다 대형 냄비를 붙잡고 잠든 꾸엥이 뿐이었다. 약한 아빠를 둔 것은 꽤 피곤했다.

그리고 조심히 두 개의 용 조각상.

"어?!"

"너두?!"

꾸엥이가 남긴 수프를 두 용이 노렸다.

115화. 감자전을 만들다.

115화. 감자전을 만들다.

"이게 정말 맛있나?"

앞니 10개가 없어 수척해 보이는 백발의 미남자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랏빛 수프를 바라보다가

"후루룩."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번쩍.

고구마수프를 마신 켈리온의 눈이 자신도 모르게 크게 떠졌다. 맛있어! 입안에 달달한 고구마의 맛과 풍미가 느껴졌다.

'고기도 들었군.'

오랫동안 끓여 푹 고아진 로커스트 고기가 어금니에 씹혔다. 씹지 않고 넘겨도 될 정도로 부드러워 켈리온이 먹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꿀꺽.

맛을 음미한 켈리온이 수프를 삼키자 목구멍을 타고 뜨거운 기운이 흐르며 배 안에 따뜻한 기운이 들어왔다.

"크하!"

어느새 수프를 다 먹은 켈리온이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토해냈다.

"한 그릇만 더 먹을까?"

켈리온이 서둘러 하얀 용 조각상을 움직여 수프를 공수해 왔다.

***

"냥냥냥."

아침을 먹은 세준이 테오를 다리에 매달고

톡.

[잘 익은 마력의 방울토마토를 수확했습니다.]

[직업 퀘스트 완료까지 4만 8792번 남았습니다.]

[직업 경험치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수확하기 Lv. 5의 숙련도가 아주 미세하게 상승합니다.]

[경험치 30을 획득했습니다.]

직업 퀘스트 완료를 위해 열심히 방울토마토밭에서 수확을 하고 있을 때

꿰에엥!

취사장에서 꾸엥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응?! 왜 그러지?"

수프를 먹다 꾸엥이가 곤히 잠들었길래 그대로 놔두고 나온 세준은 무슨 일인가 싶어 서둘러 달려갔다.

세준이 취사장으로 들어가자

꿰에엥!

텅 빈 대형 냄비를 부여잡고 서럽게 울고 있는 꾸엥이가 보였다.

"꾸엥아 왜 그래?"

꿰엥!

[자고 일어나니 수프가 없어졌다요!]

"자면서 먹은 거 아냐?"

꾸엥이가 잠결에 먹는 걸 평소에도 여러 번 본 적이 있기에 충분히 할 수 있는 합리적 의심이었다.

꿰엥!꿰에엥!

[아니다요! 안 먹었다요!]

세준의 말에 억울해하는 꾸엥이.

"아니야?"

꿰엥!꿰에엥!

[그렇다요! 용 할아버지들이 훔쳐먹은 게 분명하다요!]

꾸엥이의 의심도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용들이라면 그럴 수 있다. 용들은 아닌 척하면서 먹을 걸 엄청 밝혔다. 그러면서 또 자존심은 엄청나게 세 자신이 먹을 걸 좋아한다고 인정은 하지 않는다.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다시 만들어줄게. 일단 이거 먹고 있자. 농작물 거대화."

세준이 힘의 고구마에 스킬을 사용해 거대 고구마로 만들어 꾸엥이에게 줬다.

아그작.

꾸엥!

[맛있다요!]

먹을 걸 먹자 금세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뻐하는 꾸엥이.

"그래. 많이 먹어."

세준이 꾸엥이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다시 아공간 창고에서 퍼플 로커스트 고기를 꺼냈다.

"푸후훗. 내가 나설 때냥?"

테오가 고기를 썰기 위해 발톱을 뽑았다.

하지만

"아니. 테 사장은 이제 안 해도 돼. 황금박쥐 이것 좀 잘라줘."

(네!)

파닥.파닥.

세준의 주변을 맴돌고 있던 황금박쥐가 세준의 부름에 빠르게 날아와 고기를 썰기 시작했다.

"뭐냥?! 뭔가 내 역할이 사라지는 것 같다냥! 나도 잘 자른다냥!"

테오가 세준에게 따지며 말했다. 원래 좋아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못하게 하니 왠지 화가 났다.

"알았어. 그럼 테오는 감자 깎자."

"알겠다냥!"

와르르르.

그렇지 않아도 점심으로 쫀득한 감자전이 먹고 싶었는데 테오가 할 일을 달라고 하니 잘됐다고 생각한 세준이 감자를 1000개 정도 테오 앞에 부었다.

감자는 마지막에 물로 헹구면 털을 깔끔하게 떼어낼 수 있다.

"냥?! 너무 많은 거 아니냥?!"

깎아야 할 감자가 너무 많자 테오는 일이 하기 싫어졌다.

하지만

"하기 싫어? 그럼 황금박쥐 시키고..."

"아니다냥! 내가 하겠다냥!"

남한테 뺏기기는 싫었다.

사각.사각.

세준의 말에 테오가 앞발을 흔들며 서둘러 감자를 깎기 시작했다. 욕심 때문에 괜히 안 해도 될 일을 하며 스스로 감자 깎기 지옥에 들어가는 테오였다.

그렇게 테오가 감자를 깎는 동안

(세준 님, 다 잘랐어요!)

수프의 재료 손질이 끝났다.

첨벙.첨벙.

대형 냄비 3개에 투하되는 재료들. 이제 끓이다가 간만 맞추면 완성이었다.

그리고

쿵.

아공간 창고에서 불개미의 외피를 꺼내왔다. 금속 소재라서 감자를 갈 강판을 만들기에 제격이었다.

"테 사장, 이것 좀 뚫어줘."

"알겠다냥."

뽕뽕뽕.

테오의 발톱이 불개미 외피를 관통하며 세준이 원하는 구멍들을 만들어냈다.

"어떻냥? 내 발톱의 위력이?"

감자 깎기에 질린 테오가 우쭐해하며 은근슬쩍 세준의 무릎에 달라붙었다.

'그럴 줄 알았다.'

세준이 웃으며 테오를 다리에 매달고 테오가 깎은 감자 100개를 강판에 갈기 시작했다.

북북.

테오가 만든 구멍으로 감자가 갈리며 밑으로 갈린 감자들이 떨어졌다.

"좋아. 잘 갈리네."

"내가 만들었으니 당연하다냥!"

"그래."

"그럼 잘했으니 츄르를 달라냥!"

"안돼. 지금은 남는 손이 없잖아. 이따가 줄게."

정말 겸손함도 타이밍도 모르는 고양이였다. 그렇게 수프가 완성되는 동안 감자를 갈았다.

그리고

"꾸엥아 이것 좀 짜줘."

세준이 간 감자 반죽을 꾸엥이에게 건넸다. 물기를 제거해야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감자전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꾸엥!

세준의 부탁에 꾸엥이가 가볍게 감자 반죽을 쥐고 힘을 주자

주르륵.

감자전 반죽에서 물기가 제거됐다. 거의 탈수기에 돌린 것 같은 푸석한 반죽 상태로 만들었다.

"계속 그렇게 짜줘."

꾸엥!

세준은 꾸엥이에게 감자 반죽을 맡기고 충분히 끓여져 보라색으로 변한 수프로 가서 간을 맞췄다.

잠시 후

[보랏빛 고구마수프를 완성했습니다.]

[요리 Lv. 4의 숙련도가 조금 상승합니다.]

수프가 완성됐다.

"자. 여기."

세준이 꾸엥이의 그릇에 수프를 퍼주고 꾸엥이가 짠 반죽 물을 천천히 버리며 바닥에 가라앉은 전분만을 남겨 다시 감자 반죽에 부었다. 이제 이걸 부치기만 하면 완성이었다.

그때

-크흠. 벌써 점심 시간이 됐군. 켈리온, 우리 수프나 한 그릇 할까?

-흠흠. 그럴까? 어이쿠! 카이저, 우리가 시간을 딱 맞췄군!"

수프가 완성되기 기다리고 있던 두 용 조각상이 발 연기를 하며 날아와 당연하다는 듯이 테이블 앞에 앉았다.

"원래 용은 잘 안 먹는다면서요? 군고구마만 입에 맞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세준이 카이저를 보며 물었다. 카이저가 분명 용은 배고픔이 없어 자주 먹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먹은 지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았는데 또 먹겠다고 오다니···수상했다.

"수프가 입에 맞았나 봐요?"

-······

-······

새준의 물음에 괜히 딴 곳을 보며 대답을 회피하는 두 용. 세준은 꾸엥이의 수프를 훔쳐간 범인이 눈 앞의 두 용이라고 확신했다.

"여기요. 괜히 애들 먹는 거 뺏어 먹지 마세요."

세준이 수프를 퍼서 두 용에게 주며 말했다.

-크흠!

-흠!흠!

세준의 말에 민망한지 두 용은 헛기침을 하고는 수프를 삼켜 본체에 수프를 전송했다.

그렇게 용에게 수프를 준 세준은 점심을 먹으러 온 토끼들에게 수프를 주고 프라이팬을 달구며 감자전을 만들 준비를 했다. 식용유는 없었지만, 장어를 잡을 때마다 모아둔 지방이 있었다.

슥.

세준이 프라이팬 위에 손을 가까이 가져가 프라이팬이 잘 달궈졌는지 확인했다.

'됐다.'

프라이팬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자

휙.

세준이 엄지손톱 크기의 장어 지방을 프라이팬에 던져 넣었다.

치이이익.

달궈진 프라이팬의 열기에 지방이 녹으며 금세 액체로 변하며 프라이팬을 기름으로 코팅했다.

삐익?

뺘아?

삐릭?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지방이 녹는 소리에 토끼들의 귀가 쫑긋 섰다.

"좋아."

세준이 감자 반죽을 크게 한 국자 떠 프라이팬에 올렸다.

치이이이익.

노릇한 소리와 함께 일어가는 감자전 반죽을 국자로 누르며 넓게 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면이 적당히 구워지자

"잇차."

손목의 스냅을 줘서 감자전을 뒤집어줬다.

착.

높은 민첩 스탯 덕분에 감자전이 아름답게 포물선을 그리며 180도 돌아간 상태로 프라이팬에 완벽하게 착지했다.

"훗."

감자전을 망치지 않고 뒤집었다는 흐뭇함에 세준이 코를 한껏 세우고 우쭐함을 즐기고 있을 때

삐익!

뺘아!

삐릭!

토끼들이 자신의 그릇을 들고 세준의 뒤에서 세준을 불렀다.

"응? 아 먹어보고 싶다고? 잠깐만."

세준이 넓은 접시에 감자전을 올리고 젓가락으로 감자전을 쭉쭉 찢고

꿀렁.꿀렁.꿀렁.

옆 그릇에 꿀을 3꿀렁 부었다.

"그냥 먹어도 되는데 조금 식으면 여기 꿀에다 찍어 먹어. 그럼 더 맛있어."

세준이 토끼들에게 감자전 먹는 방법을 알려주고

치이익.

장어 기름을 넣으며 다음 감자전을 준비했다.

그렇게 감자전을 10장 정도 굽자 토끼들은 배불리 먹고 다시 일을 하러 갔고 꾸엥이만 남아 열심히 감자전을 꿀을 찍어 먹고 있었다.

꾸엥!

감자전 하나를 통째로 꿀에 듬뿍 찍어 입에 넣은 꾸엥이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팔을 흔들며 자신의 흥을 표현했다.

"그렇게 맛있어?"

꾸엥!

꾸엥이가 강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꾸엥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나도 하나 먹어봐야지."

졸졸졸

세준이 테오가 이번에 얻어온 새로운 소스를 꺼내 검은색 액체를 작은 접시에 부었다. 간장이었다.

송송송.

거기다 청양고추 하나를 썰어 넣었다. 이러면 짭쪼롬하면서 매운맛이 어울려 감자전을 아무리 먹어도 느끼함 없이 계속 먹게 만들어준다.

"흐흐흐. 먹어볼까?"

세준이 젓가락으로 감자전을 한 점 집어 간장을 찍었을 때

-그것이 무엇이냐?

-그건 뭐로 만든 거지?

수프를 다 먹은 두 용이 감자전에 관심을 보였다. 원래는 입맛이 까다로운 용들이지만, 세준이 만든 건 일단 먹어보고 판단하기로 했다.

***

탑 55층.

이오나가 그리드를 처치하는 동안 늑대들과 흑토끼와 쀼쀼가 저택을 지키는 수비병들을 처치했다. 결계와 용아병은 켈리온이 탑 99층으로 가는 순간 사라졌다.

덕분에 수월하게 저택을 점령했다. 그리드의 대저택에는 엄청난 보물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창고에 가득한 농작물들.

이것들을 보니 이오나는 그리드가 얼마나 탐욕스러웠는지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이것들의 처분은 나중에 세준 님에게 물어보도록 하죠. 봉인!"

이오나가 대저택을 마법으로 봉인하고 밖으로 나와 주변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토끼들을 해방하기 시작했다.

물론 멧돼지들의 저항이 있었지만, 농장의 토끼들을 관리하던 나태한 관리병들뿐. 이오나와 동물들의 상대는 아니었다.

그렇게 마을 몇 개를 점령하자 합류한 토끼들의 수가 300마리로 늘어났다. 생각보다 그리드에게 잡힌 토끼의 숫자가 많았다.

"마력의 힘이여. 나의 명에 따라 적을 공격하라. 폭격!"

이오나의 마법과 함께 수천 개의 매직 미사일이 방어라인의 선두에 있는 멧돼지족들을 향해 퍼부어졌다. 이오나가 농작물에 피해가 가지 않게 가장 피해가 적은 마법을 골랐다.

"멧돼지들을 몰아내라!"

"적을 물리쳐라!"

무너진 방어라인을 향해 블랙 울프족과 실버 울프족이 달려 나갔다.

뺙!

뾰옥!

뾰옵!

그런 늑대들의 등에는 해머를 든 흑토끼와 탑 55층에서 합류한 농기구를 든 노예 토끼들이 함께 했다.

토끼들은 오랜 노예 생활로 움직이기도 힘들어 보였지만, 멧돼지들을 몰아내는 데 기꺼이 힘을 보탰다.

그렇게 전투가 이어지자 멧돼지들이 다른 층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구심점을 잃었기에 다시는 탑 55층을 노리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레드리본 왕국이 망한 지 100년 만에 다시 레드리본 왕국의 깃발이 탑 55층에 휘날리기 시작하며 왕국의 재건이 다른 층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16화. 울었네.

116화. 울었네.

-크흠! 세준아 감자전 한 장만 더 구우면 안 될까?

-허엄! 나도...

감자전을 맛본 카이저와 켈리온이 감자전을 더 만들어달라고 세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어느새 카이저가 세준을 부르는 호칭에서 놈이 빠졌다. 군고구마, 고구마수프, 감자전으로 이어지는 3단 콤보의 위력이었다.

하지만

"안 돼요. 저 이제 일해야 돼요."

새준은 두 용의 요청을 매몰차게 거절했다. 지금 세준의 우선순위는 직업 퀘스트를 완료하고 51레벨이 되는 것. 대신 남은 고구마수프를 한 그릇씩 더 줬다.

-빨리 술이랑 먹어야겠군.

-또 술이냐?!

-크흐흐흐. 나에게는 세준이한테 받은 불당근주가 있거든.

-뭐?! 불당근주?! 그걸 어떻게 구한 거지?!

카이저의 말에 캘리온이 크게 놀랐다.

불당근주라니?! 붉은 탑의 탑농부가 생산하는 술로 붉은 용들이 탑 밖으로의 유출을 엄격히 막고 있어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자신도 천 년 전에 간신히 한 병을 구해 맛을 본 정도였다.

-며칠 전에 수확제가 있었거든.

-수확제를 하려면 10가지 농작물이 필요할 텐데...

켈리온의 목소리에서 부러움이 숨겨지지 않았다. 세준 같은 훌륭한 탑농부가 있는 카이저가 부러웠다. 자신의 탑은...

-으휴...

탑농부 생각을 하니 켈리온은 한숨만 나왔다. 웬수 같은 놈이 괜히 탑농부는 한다고 해서...

-크하하하. 힘내라고!

펄럭.펄럭.

카이저가 호탕하게 웃으며 분수대 위로 올라갔다. 흰둥이 놈의 부러움을 받다니 오늘 술맛은 정말 좋을 것 같았다.

-제길...부러우면 지는 건데...

켈리온은 세준에게 매일 맛있는 음식들을 제공받는 카이저가 너무 부러웠다.

-한 번 불러서 진척이 있는지 확인해야겠군.

카이저가 가고 켈리온은 세준의 집 지붕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본체를 움직여 하얀 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톡.톡.

세준은 몇 시간 동안 방울토마토 수확을 이어갔다.

"휴. 끝났다."

그렇게 세준이 방울토마토 수확을 끝냈을 때

파닥.파닥.

황금박쥐가 세준에게 날아왔다.

(세준 님! 저 곧 지구로 갈 것 같아요!)

"진짜?"

그러고 보니 황금박쥐가 라면을 가져온 지 벌써 일주일이 됐다.

"황금박쥐는 내가 가르쳐준 거 복습하고 있어!"

(네-!)

슥.슥.

(라면, 콜라...)

세준의 말에 황금박쥐가 경례를 하고는 바닥에 세준이 알려준 핵심 키워드들을 시험을 앞둔 수험생처럼 열심히 복습했다.

그사이 세준은 아공간 창고에서 나무판자들을 꺼내왔다.

"자 이거는 챙겨가고."

(네!)

황금박쥐가 세준이 건네는 손바닥만 한 나무판자를 발로 잡았다. 나무판자에는 세준이 쓴 글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이걸 발견하신 분은 010 - XXXX - XXXX로 연락주시면 1000만 원을 드리겠습니다.(한국 각성자 협회 협회장 한태준)

세준은 황금박쥐가 나타나는 곳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자 방법을 바꿔 황금박쥐가 나타난 곳에 연락처를 남겨두기로 했다.

나무판자에 적힌 연락처는 한태준의 전화번호로 이번 일에 대해 미리 한태준에게 설명하고 전화번호를 받아놨다.

돈을 준다는 글 자체가 너무 의심스러워 보였기에 신뢰를 줄 수 있는 한태준의 이름을 썼다. 한태준은 가끔 뉴스에도 나올 정도로 유명했다.

"테 사장, 이 번호 한태준 협회장님 거 맞지?"

"맞다냥! 날 믿지 못하는 것이냥?!"

세준이 자신을 믿어주지 않자 테오가 발끈했다.

"당연히 믿지."

세준이 테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예 먹을 수 없다면 모를까 곧 라면과 콜라 등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자 조바심이 났다.

"당연하다냥! 박 회장은 나만 믿어라냥!"

테오가 큰소리를 치며 세준의 무릎에 더 찰싹 달라붙었다.

"알았어. 그럼 시작하자."

(네!)

"황금박쥐 이게 뭐지?"

세준이 나무판자에 그려진 그림을 보여주며 빠르게 물었다.

(치킨!)

"정답. 이거는?"

세준이 빠르게 나무판자를 넘겨 다른 그림을 보여줬다.

(소보로빵!)

"좋아! 잘했어!"

뱃뱃.

세준의 칭찬에 황금박쥐가 소리 내 웃었다. 이걸 왜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맞추면 칭찬을 받아서 좋았다. 세준이 그렇게 나무판자를 넘기며 황금박쥐와 스피드퀴즈를 이어갔다.

(가나슈 케이크!)

모든 그림이 세준이 먹고 싶은 음식 그림이었다. 피자, 햄버거, 짜장면 등.

참고로 세준의 그림 실력은 형편없어 그림을 보고 똑같은 걸 가져오는 건 100% 불가능했다. 만약 황금박쥐가 그림에 있는 걸 가져온다면 그건 전적으로 황금박쥐가 천재기 때문이었다.

"전부 맞혔어. 잘했어."

세준이 준비해둔 나무판자를 다 맞춘 황금박쥐를 칭찬했다.

뱃뱃!!

세준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황금박쥐의 텐션이 올라갔다.

그렇게 스피드 퀴즈가 끝나자

(세준 님, 다녀올게요!)

"조심히 다녀와."

황금박쥐가 사라졌다.

***

파닥.파닥.

툭.

지구로 이동한 황금박쥐가 일단 발에 쥐고 있던 나무판자를 조용히 떨어트리고 서둘러 모습을 숨겼다. 이번 장소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몸을 숨긴 황금박쥐가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며 '라면'이라고 쓰여있는 글자를 찾았다. 저번에 라면이라는 것을 가져가 세준에게 큰 칭찬을 받았기에 이번에도 라면을 가져가고 싶었다.

'뱃뱃. 세준 님이 좋아하는 걸 가져가야지.'

하지만

(없어...)

이번에 나타난 장소에는 라면이라는 글자가 아예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커피는 보였다.

'저거라도 가져가자.'

황금박쥐가 빠르게 움직여 커피 10개를 집어 구석에 숨었다.

'이제 기다리다 돌아가야지.'

그때

드르륵.

한 여자가 서랍을 열자 안에 생선 그림이 그려진 작은 박스가 보였다.

(앗! 생선!)

테오 형님이 좋아하는 생선이었다. 남은 시간은 10초 정도. 잘하면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파닥.파닥.

황금박쥐가 빠르게 날아 박스를 잡아채는 순간.

팟.

황금박쥐가 사라지며 다시 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어?! 내가 술이 덜 깼나?"

새벽까지 클럽에서 놀다 출근한 한성은행 직원 김경미는 서랍에 넣어둔 흑등고래밥이 자신의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지자 당황했다.

***

"아! 허탕인가?!"

세상에 그런 일이 보조 PD 배정호가 건물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코인노래방에서 보낸 CCTV 제보를 보면서 잘하면 방송 거리가 나오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인노래방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며칠을 기다렸지만, 영상에서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

그때

"이봐 김 씨, 여기 빌딩에 귀신이 나온다는 거 알아?"

"귀신이요?!"

"그래. 건물주가 입단속을 시키고 있지만, 여기 황금 귀신 나오는 빌딩으로 유명해."

경비들이 신참 경비와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얘기를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신참에게 거들먹거리고 싶은 선배 경비의 허세로 봤겠지만

'귀신?!'

'세상에 그런 일이'의 PD에게 귀신은 좋은 방송 소재. 배정호의 귀가 경비들의 대화를 듣기 위해 활짝 열렸다.

그리고

'뭐야?! 물건이 사라진 게 코인노래방뿐이 아니었어?'

배정호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경비들의 말로는 황금 귀신은 일주일에 한 번 빌딩에 나타나 물건을 가져간다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물건은 반짝이는 텀블러.

하지만 요즘은 취향이 바뀐 것 같다며 앞으로는 사람을 노릴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신참을 겁주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거 잘하면 대박 소재가 되겠는데?'

배정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아작스, 당장 튀어오거라."

하얀 탑의 관리자 구역에 들어온 켈리온이 자신의 손자를 불렀다.

잠시 후

"할아버지 왜 불러?! 나 농사짓고 있는 거 몰라?!"

윤기가 흐르는 백발에 10대 중반으로 보이는 미소년이 온몸에 흙먼지가 잔뜩 묻은 채로 투덜거리며 나타났다.

"농사?! 그럼 어디 네가 키운 그 잘난 농작물 하나라도 보여 줄 수 있겠느냐?"

"노...농작물을 보여달라고요?!"

켈리온의 말에 갑자기 당황하며 존댓말을 하는 아작스. 딱 봐도 엄청 캥겨 보였다.

"휴우..."

아작스의 태도에 켈리온이 한숨을 쉬었다. 안봐도 뻔했다.

"그러게 왜 탑농부를 한다고 나서?!"

"나는 위대한 하얀 용이니까 잘할 줄 알았죠..."

아작스가 침울해하며 대답했다. 용은 농사와는 전혀 상성이 맞지 않았다. 용의 강대한 기운이 농작물을 다 죽여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작스가 수확한 농작물의 수는 제로. 씨를 아무리 뿌려도 싹이 나지 않았다.

"이거나 먹어봐라. 검은 탑의 탑농부가 키운 고구마라는 작물로 만든 건데 맛이 좋구나."

켈리온이 세준이 만든 고구마수프를 아작스에게 건넸다.

"고구마?"

후루룩.

"앗뜨!"

"어허! 천천히 먹어야지. 앱솔루트 힐!"

아작스가 혀를 데이자 켈리온이 서둘러 마법을 사용했다. 상처에 비하면 너무 과분한 치료 마법이었다.

"히히히. 할아버지, 이거 맛있어!"

"허허허. 먹고 다시 힘내보거라."

"응!"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아작스를 보기만 하면 켈리온은 자신도 모르게 화가 풀리고 미소가 지어졌다. 카이저가 손녀 바보라면 켈리온은 손자 바보였다.

***

황금박쥐가 사라진 지 1분이 지나자

(세준 님, 저 왔어요!)

지구에서 돌아왔다.

"오! 수고했어."

황금박쥐의 발에 들린 물건들을 보면서 세준의 표정이 밟아졌다.

'어?! 저건 흑등고래밥?!"

평소에 잘 먹는 과자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보니 너무 반가웠다.

"자 여기요."

황금박쥐가 세준의 손에 커피만을 내려놨다.

어?! 내 과자는?

세준이 당황하는 사이

파닥.파닥.

(테오 형님, 여기 형님이 좋아하는 거요.)

황금박쥐가 테오에게 흑등고래밥을 건넸다.

하지만

"바보 녀석! 여긴 생선이 없다냥!"

본능적으로 안에 생선이 없다는 것을 귀신같이 간파한 테오가 황금박쥐의 선물을 칼같이 거절했다.

(그래요?)

테오의 말에 실망하는 황금박쥐.

"괜찮아. 그거 내 거야."

세준이 황금박쥐가 든 과자 상자를 뜯어 안의 봉지를 꺼냈다.

그리고

촤악.

봉투를 뜯자

"으음."

인공적인 향신료 냄새가 세준의 코를 간지럽혔다.

"맛있겠다."

세준이 안의 과자를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바삭.

역시 이곳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맛과 식감이었다.

"황금박쥐, 잘했어."

세준이 과자를 먹으며 연신 황금박쥐를 칭찬했다.

(정말요?! 세준 님이 좋아해 주셔서 너무 기뻐요!)

뱃뱃!뱃뱃!

세준의 칭찬에 황금박쥐가 세준의 주변을 맴돌며 기뻐했다.

"이제 서쪽 숲으로 가자. 꾸엥아!"

과자를 다 먹은 세준이 엔트의 씨앗을 수확하러 가기 위해 연못에서 사냥하고 있던 꾸엥이를 부르자

꾸엥!

꾸엥이가 바로 달려왔다.

"읏차!"

세준이 거대화한 꾸엥이의 등에 탔다.

그리고 출발하기 직전.

"응?!"

세준은 자신의 무릎이 허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테오가 어디 갔지?"

세준이 테오를 찾아 주변을 둘러봤다.

"박 회장, 어디 있냥?!"

세준은 집 뒤편에서 흑득고래밥 상자에 머리가 낀 테오가 앞발을 허우적거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마 앞이 보이지 않자 헤매다가 집 뒤편까지 이동한 것 같았다.

"테 사장, 여기야! 빨리 와!"

세준이 테오를 불렀다.

하지만

"박 회장! 안보인다냥! 도와달라냥!"

상자를 빼면 되는데 테오는 상자를 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바보야. 상자를 빼면 되잖아."

쏙.

답답한 세준이 테오가 쓰고 있는 과자 상자를 당겨주자

"박 회장! 보고 싶었다냥!"

테오가 서둘러 세준의 무릎에 달라붙었다. 테오의 눈가가 촉촉했다.

"울었네."

꾸엥?

[큰 형님, 울었어?]

(테오 형님, 우신 거예요?)

"아...아니다냥! 나는 울지 않았다냥!"

"에이. 뭘 아니야. 여기 콧물도 흘렸데요."

"아니다냥! 콧물은 진짜 안 흘렸다냥!"

세준은 테오를 놀리며 서쪽 숲으로 이동했다.

117화. 버섯 개미들을 만나다.

117화. 버섯 개미들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