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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급 네크로맨서가 은퇴하는 법

1화

달그락. 달그락.

끝없이 늘어선 스켈레톤들이 파죽지세로 밀어닥친다.

"쿠어어어어!"

그리고 그런 스켈레톤 군단의 선두에 서 있는, 온갖 살들이 얼기설기 누더기처럼 이어진 거대한 미트 골렘.

미트 골렘이 몸집만큼이나 거대한 손을 휘두르자 마왕군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진다.

그 압도적인 위용과 끝없이 밀려오는 스켈레톤 군단의 공격에 겁에 질린 마왕군이 도주하며 외쳤다.

"으아아! 도망쳐!"

데스 나이트의 호위를 받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고생한 보람이 있네."

저 미트 골렘 만들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저게 아무 생각 없이 막 이어 붙인 것 같지만 좌우 대칭과 피부의 색까지 고려해 깔맞춤을 해서 만든 내 걸작이라고.

"테로스의 악마!"

테로스의 악마는 마왕군이 나를 부르는 별명이었다.

그리고 테로스는 바로 나를 소환한 인류 연합군 측 대마법사이자 내 옆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의 이름이기도 했다.

"저··· 지혁 님?"

"응?"

"왜 매번 전투 때마다 저와 함께 오시는지······."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날 소환한 거잖아? 그럼 내가 얼마나 잘 싸우고 있는지 옆에서 봐 줘야지."

30여 년 전 테로스의 주도하에 용사 후보라며 소환된 나.

즉 나는 용사라는 말이었다.

물론 내가 용사라기엔 뭔가 비주얼적으로나 분위기적으로나 안 맞는 것 정도는 잘 알지만, 어쩌겠나.

위험한 걸 싫어하는 내 특성상 언데드 군단에게 전투를 맡기고 뒤에서 구경할 수 있는 네크로맨서 쪽이 가장 적성에 맞는데.

"추, 충분히 많이 봐 왔습니다. 그러니······."

테로스가 이러는 이유는 잘 알고 있다.

나는 마왕군뿐만 아니라 아군이라 할 수 있는 인류 연합군에게 있어서도 공포의 대상이었으니까.

지금이야 강해져서 이 정도지, 초반엔 아군의 시체에도 거리낌 없이 손을 대며 그야말로 살기 위해 발악을 했었지.

나를 혐오하는 사람들의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옆에 있던 전우가 갑자기 언데드가 되어 일어나는데 기겁 안 할 사람이 누가 있나.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테로스를 옆에 데리고 다닌다.

"아니. 부족해. 더 봐. 내가 늘 말했지? 애먼 사람 데려왔으면 책임감이라도 느끼라고. 집에서 낮잠 자다 불려 와서는 목숨 걸고 뭔지도 모를 전쟁에 끼어들어 30년을 싸워 왔어. 나는 너희 연합군의 대의니 뭐니에 공감할 시간조차 없었단 말이야. 그러게 그냥 너희끼리 해결하지 날 왜 불렀어?"

테로스가 우물쭈물하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얌전히 봐. 늘 말했잖아, 지구로 돌아가는 게 아니었으면 내 상대는 마왕군이 아니라 너네였을 거라고. 솔직히 말이 마왕군이고 침략군이지, 내 눈엔 쟤들이나 너네나 똑같아."

처음 왔을 땐 하도 겁을 줘서 진짜 뿔 달린 악마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마왕군은 그저 마계 출신의 지적 생명체일 뿐.

그들은 척박한 마계를 벗어나 인간계에 정착하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인종에 불과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류가 학살당한 건 사실이지만, 그거야 전쟁 중에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무튼 그럼에도 내가 여전히 인류의 편을 들고 있는 건 마왕군이 싫어서도 아니요, 인류 연합군의 대의에 동감해서도 아닌, 오직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선 이쪽이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었다.

"난 효율 말고는 생각 안 해. 애초에 그런 것 하나하나 따져 가며 싸웠으면 난 죽었어도 진즉에 죽었을 테니까."

나는 사체를 다루는 네크로맨서고, 마왕군이나 인간 연합군이나 그놈이 그놈처럼 보이는 상황.

내가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것은 바로 모든 것을 효율로만 판단하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아무튼 잔소리 그만하고 얌전히······."

그런데 그때.

"마왕님이! 마왕님이!"

"어?"

고개를 돌려 보니 미트 골렘의 손에 피떡이 된 마왕이 들려 있다.

잠깐 고개를 돌린 사이 무려 마왕을 잡아 버린 귀여운 미트 골렘.

"뭐야. 이렇게 허무하게?"

그때 테로스가 말했다.

"추,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마왕을 무찌르셨습니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생각보다 많이 약한데? 이렇게 약할 줄 알았으면 미리 처리할걸."

"···예?"

"미트 골렘 말고도 대마왕 결전 병기로 4개 정도 더 만들어 뒀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 알았으면 그냥 전부 꺼내서 빨리 끝냈지."

그러자 테로스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저런 게··· 4개나 더 있단 말입니까?"

"정확히 말해서 미트 골렘보다 강한 게 4개 더 있는 거지만, 아무튼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마왕이 죽었네? 약속 지켜야지?"

*

"으헤헤헤헤."

산더미처럼 쌓아 올려진 금괴와 보석들.

나는 금괴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난 이제 부자다."

이것들을 가지고 지구로 돌아가 여유롭고 평화로우며 동시에 호화로운 은퇴 라이프를 즐기는 거다.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고. 크. 그래! 요트도 살까? 세계 각지의 초호화 별장!?"

허구한 날 전장을 돌아다니며 사체만 만지던 생활은 이제 끝이다.

그야말로 부와 플렉스의 끝판왕으로서 평생 호의호식하며 살 거라고!

그때 테로스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했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바로 가실 건지요."

"왜. 빨리 갔으면 좋겠어?"

"아,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황제 폐하께서 축하연을 준비해 주신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 나만 보면 식은땀 줄줄 흘리면서 가까이도 안 오는 사람들이 축하연은 무슨."

내가 지구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하나를 꼽자면 일단 여기는 재미가 없단 것이다.

즐길 거리도 없고, 사람들은 나를 혐오하지만 동시에 의지하다 보니 내가 이곳에서 보낸 30년은 그야말로 외로움과 심심함이 전부였다.

"기다려. 일단 챙길게."

손을 휘젓자 거대한 아공간이 생겨나며 창고 가득 쌓여 있던 금괴와 보석들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간다.

이것들만 돈으로 환산해도 최소 수조 원은 넘을 거다.

어쩌면 십조가 넘어갈 수도 있고.

이 정도면 앞으로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잘 먹고 잘살 수 있겠지.

"자. 보내 줘."

내 말에 테로스가 사람 머리만 한 크기에 복잡한 마법 수식이 잔뜩 그려진 마정석을 내밀며 말했다.

"이 마정석이 인과율을 비틀어 그동안 지혁 님이 이곳에 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래서 나이도 드시지 않은 거고요."

테로스가 그동안 꽁꽁 숨겨 두었던 나를 지구로 돌려보내 줄 키.

"제 계산이 맞다면 이걸 박살 내는 순간 지혁 님은 인과율의 회귀성으로 인해 이곳으로 왔을 때 그 시점으로 돌아가실 겁니다."

"인과율이니 뭐니 난 그런 건 몰라. 난 언데드 전문이잖아. 아무튼 이걸 박살 내면 된다는 거지?"

"예. 그리고 인과율의 회귀성에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알았어, 알았어."

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거지?

나는 마정석을 받아 들며 말했다.

"다음부터는 사람 함부로 부르지 말고. 혹시 또 부르면 너네부터 죽일 거야?"

테로스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그럴 일 없을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어떻게 부수면 돼?"

"수십 년에 걸쳐 인과율을 비틀어 왔기에 이미 한계입니다. 작은 충격에도 부서질 겁니다."

"그래?"

나는 주먹을 높게 치켜들고 내리치며 말했다.

"그럼 나 간다! 개 같았으니까 다시는 보지 말자고!"

*

뭔가의 비틀림에 몸을 맡긴 후 눈을 뜬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돌아왔다."

수십 년간 꿈에서도 그리워했던 지구.

"이야호!"

피 튀기는 전장도 없고 나를 부추기며 혐오하는 사람도 없는 지구.

동시에 돈만 많으면 세상 그 어느 나라보다 살기 좋은 내 조국 대한민국이 바로 여기다.

나는 황홀한 표정으로 티브이에 연결되어 있던 게임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래 기다렸지?"

새로운 타이틀이 나와서 밤새 플레이를 하다가 잠깐 낮잠을 잤는데 눈을 뜨니 세론 대륙이었지.

"넌 모를 거다, 내가 널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나는 경건한 자세로 옛 기억을 더듬어 게임기를 실행했다.

그리고 30년 만에 불러온 세이브 파일.

하지만.

"···스토리가 기억이 안 나는데."

앞부분을 플레이 했던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어······."

거기에다 패드를 들기는 했는데 조작 키도 기억이 안 나니 총체적 난국.

"이거 튜토리얼부터 다시 해야 할 것 같은데."

하지만 나는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냥 나중에 처음부터 다시 하지 뭐, 널린 게 시간인데."

나는 패드를 내려놓고 그간 지구에 오면 하고 싶었던 1,000가지 버킷 리스트를 떠올렸다.

"일단 김치볶음밥, 김치찌개."

생각만으로도 입에서 군침이 돈다.

"아. 진짜 쌀이랑 김치가 없어서 죽는 줄 알았다고."

세론 대륙의 주식은 감자 비스무리한 구황작물로, 맛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쌀과 김치에 길들여진 내 입을 충족시켜 줄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 오늘부터 실컷 먹고 놀자!"

그러기 위해서 금이랑 보석을 왕창 가져온 것 아닌가.

나는 일단 외식을 위해 입고 있던 검은 로브를 30년 전 즐겨 입었던 스타일로 갈아입으며 말했다.

"역시 지구가 좋아."

옷의 감촉부터가 다르단 말이지.

천연 재료?

미안하지만 기초 소재 공학이 극도로 발달한 지구에서 만든 옷이 마감은 물론, 촉감도 그렇고 압도적으로 좋다.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돈을 꺼내 볼까."

나는 아공간에 넣어 둔 금을 꺼내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아공간 입구.

그런데.

"···뭐야."

금괴를 떠올렸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연이어 보석과 온갖 것들을 떠올렸는데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아공간.

"뭔데? 왜 안 나오는데?"

그렇게 당황한 표정으로 아공간에 손을 집어넣은 나는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

"없··· 어?"

하나도 없다.

단순히 특정 물품만 없는 게 아니라, 아공간 속에서 그 어떠한 물건도 느껴지지 않는, 그야말로 텅텅 비어 있는 상태.

제국의 곳간을 탈탈 털어 마련한 금괴와 보석은 물론 수십 년에 걸쳐 한 땀 한 땀 만든 언데드 군단까지 통째로 증발해 버렸다.

"이, 이게 뭐야! 다 어디 갔어!"

내 미트 골렘!

데스 나이트!

아니, 그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지.

"내 돈······."

내 유유자적 은퇴 라이프를 위해 세론 대륙에서 받아 온 퇴직금이 송두리째 사라지다니.

내 30년 고생이 이유도 모른 채 허무하게 사라졌다.

"잠깐만··· 나 이거 없으면 돈 없는데?"

내 목표는 전장을 떠나 조용하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그 이전에 끼니를 걱정하게 생겼다.

"이런 씹. 돈이 있어야 은퇴를 할 것 아니야!"

비록 신체 나이는 인과율 왜곡으로 인해 여전히 20대 후반이지만,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은 60이 다 되어 가는 아저씨라고!

은퇴할 나이란 말이야!

"아니! 도대체 다 어디 갔냐고!"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 나는 외쳤다.

"테로스 이 개자식이!"

진짜 테로스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내 분노를 받아 낼 수 있는 대상은 그 새끼뿐.

"으아아아아!"

그렇게 길길이 날뛰던 그때.

"···어?"

멀리서 무언가 마력 파동이 느껴진다.

"지구에서 마력 파동?"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느껴졌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나는 창문을 박차고 나가 플라이 마법을 쓰려다 멈칫했다.

"눈에 띄면 안 되지. 은퇴 라이프잖아."

다시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 마력 파동이 느껴지는 곳으로 달려가며 말했다.

"젠장. 이게 얼마 만에 뛰는 거야."

늘 스켈레톤 가마꾼들을 이용해 가마를 타고 다니던 나였기에 이런 뛰는 행위 자체가 어색할 지경.

"으아아!"

"도망쳐!"

그렇게 마력 파동 근처로 다가갈수록 겁에 질려 도망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도대체 뭔데?"

그리하여 마침내 도착한 곳.

나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어디서 그 마력 파동이 느껴지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는 거대한 아공간 입구처럼 생긴 무언가.

"시부럴··· 이건 또 뭐야."

그리고 그때, 아공간에서 괴상하게 생긴 생명체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지구에 저딴 게 왜 있어!? 테로스 이 개자식, 나를 어디로 보낸 거야!"

수십 년 세월의 결정체인 언데드 군단과 퇴직금이 사라진 걸로도 모자라, 이젠 괴상한 괴물들이 나오는 지구.

그런데 그때 여기저기서 갑옷과 무기를 든 사람들이 뛰어 내려와 몬스터들에게 달려든다.

"일반인들은 대피하세요!"

평범한 사람이라곤 믿기 어려운 실력으로 순식간에 몬스터를 도륙 내는 사람들.

"저건 또 뭐야."

지구에 저런 사람들이 있다고?

거의 세론 대륙 기사급인데?

급할 때 데스 나이트로 만들면 제법 쓸 만··· 아니, 이게 아니지.

나는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 은퇴······."

아직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내 은퇴 생활은 조졌다.

2화

며칠간 자료 조사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여기가 내가 아는 지구는 맞다는 거다.

대통령의 이름부터 지역명, 거기에 세계지도 등등.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게이트와 몬스터 그리고 각성자라는 게 존재한다는 것.

인과율 어쩌고저쩌고 과정에서 뭔가가 비틀어진 것 같은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씨부럴."

중요한 건 돈을 들고 호화로운 은퇴 생활을 보내려던 내 계획이 완전히 망가졌다는 것.

"잔고가··· 12만 원."

입고 온 로브에 붙어 있는 금붙이와 보석을 팔면 당분간이야 문제없겠지만, 그걸로 버텨 봐야 얼마나 버티겠나.

"돈이 필요해."

안정적인 수입원을 얻거나, 아니면 한 번에 목돈을 당겨야 한다.

나는 허무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 돌아와서도 먹고살 걱정을 해야 해? 이 나이에?"

상상만 해도 오금이 저리며 미칠 것 같다.

"돈을 쉽고 빠르게 버는 방법."

나는 잠시 고민하다 중얼거렸다.

"게이트. 각성자."

게이트는 몬스터를 토해 내는 시점에 따라 일반 게이트와 불안정 게이트로 나뉜다.

생겨난 후 일주일에서 한 달 정도 여유를 두고 몬스터를 토해 내면 일반 게이트. 그리고 저번에 내가 봤던 것처럼 생겨나는 즉시 몬스터를 토해 내면 불안정 게이트인 거다.

아무튼 불안정 게이트는 생성 확률도 낮고 상시 대기하는 긴급 대응 팀이 주로 처리하기에 논외로 치고, 일반 각성자들이 주로 활동하는 장소는 바로 일반 게이트였다.

게이트가 소멸되는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몬스터를 사냥해 몬스터 사체에서 얻은 부산물을 팔아 막대한 돈을 버는 각성자.

"수입도 높고, 내 마법 실력도 활용할 수 있고."

분명 지금 상황에서 이보다 좋은 선택지는 없다.

하지만.

나는 축 처진 얼굴로 말했다.

"하기 싫어······."

이래 봬도 세론에서 수십만이 넘는 언데드 군단을 이끌고 다니며 공포의 대명사로 군림하던 네크로맨서다.

당연히 주변에 널린 게 수족이라 손가락 까딱 한 번으로 모든 걸 해결하던 나한테, 갑자기 직접 몬스터를 사냥하고 그 사체를 가져다 팔면서 생계 유지를 하라고?

"이 짬에 그게 말이 되냐!"

전장과 사체 보기 싫어서 돈 들고 지구로 은퇴하러 왔는데 세론보다 더 처절하게 돈을 벌어야 한다니.

도저히 내 자존심과 귀찮음이 용납하지 못한다.

"언데드 만들어서 나 업고 다니며 알아서 사냥하게 할까?"

물론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람들은 네크로맨서가 언데드만 출동시키고 뒤에서 띵까띵까 노는 줄 아는데, 어림도 없는 소리.

애초에 언데드는 그저 사체에 남은 잔류 사기를 이용해 마력으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낸 지성이 없는 인형에 불과하다.

당연히 이 지성 없는 인형을 움직이고 전투하도록 지시하는 건 네크로맨서.

그렇기에 통제하는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네크로맨서에게 엄청난 부담이 되고, 네크로맨서마다 각자 개인의 역량에 따라 통제 가능한 언데드의 수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세론 대륙의 주연이 될 수 없었지.

그때 그런 한계를 나만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타파하여 수십만 단위의 언데드 군단을 끌고 다니던 게 바로 나지만, 아무리 그런 나라고 해도 바닥에서부터 언데드 군단을 다시 만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내가 직접 돌아다니며 사냥을 하는 것보다야 언데드 시키는 쪽이 훨씬 덜 귀찮지만.

"그래. 은퇴하러 와서 세론에서도 안 했던 짓을 할 수는 없잖아! 언데드로 간다!"

비록 다시 만들려면 상당히 고생해야겠지만, 어찌 되었든 다시 만들기만 하면 아주 편하게 내 은퇴 자금을 마련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결심하고 나니 한 가지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

"···사람들이 언데드를 받아들일까?"

세론에서 네크로맨서는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렇기에 용사인 나조차도 사람들이 등한시하며 외면했었던 것 아닌가.

"으음."

나는 잠시 고민하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말했다.

"고민해 봤자, 시간 낭비야. 그냥 부딪쳐 보자."

온갖 종류의 능력이 다 있던데, 거기에 언데드 하나 더 늘어난다고 뭔일이나 나겠어?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지.

"은퇴 자금 만들자!"

*

게이트에 합법적으로 들어가려면 각성자 등록이 필수.

그렇기에 과연 사람들이 받아들일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반신반의하면서 도착한 등록소는······.

"오오!"

"이건 또 새로운데?"

의외로 쉽게 받아들였다.

일반적인 능력이 아니기에 간이 연구소로 이동해 따로 테스트를 받았는데, 연구원들은 몬스터 뼈가 필요하다는 말에 곧장 구해 왔고 그렇게 스켈레톤 한 구를 만들어 주자 신기해하며 나에게 계속 질문을 날린다.

"움직일 수 있는 거죠?"

"보여 드려요?"

마력을 통해 내 의지를 전달하자 앞으로 걷기 시작한 스켈레톤.

"이야!"

"이런 소환 계열은 또 처음인데."

아.

소환 계열이란 게 있어?

나는 연구원에게 다가가 말했다.

"비슷한 능력이 있나요?"

"음··· 이거랑은 좀 다른데, 흙이나 돌로 골렘을 만들거나 물로 병사를 만드는 능력은 있죠."

골렘 소환?

물로 병사?

나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생각했다.

'마법이랑 비슷한 게 있다고?'

동시에 나는 연구원들이 어째서 이렇게 쉽게 받아들였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골렘 소환술은 원소 마법 계열이고, 물로 만드는 병사는 아마도 정령술 쪽과 비슷한 듯했다.

그리고 여기서 세론과의 결정적인 차이가 난다.

'분류 방법이 완전 다르구나.'

세론에선 원소 계열 밑에 골렘 소환술, 정령 계열 밑에 물의 정령, 이런 식으로 수직 분류 한다.

하지만 지구에선 골렘 소환술이든 물의 정령이든, 어찌 되었든 둘 모두 시전자를 대신해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무언가를 소환하니 그냥 전부 소환 계열로 퉁쳐 버리며 수평 계열화를 한 거다.

즉, 내 스켈레톤이 네크로맨서 계열의 일부가 아니라 골렘 소환술 같은 소환술 계열의 일종으로 분류된다는 거지.

'좋네, 굳이 귀찮게 설명 안 해도 돼서.'

그때 연구원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최대 소환수는 몇인가요? 혹시 한번 소환하면 계속 데리고 다녀야 하는 겁니까? 내구성 및 전투력은?"

질문이 너무 많아 귀찮지만 그래도 첫 단추는 잘 끼워야지.

내 목표는 조용히 돈 벌어서 은퇴하는 거니까.

"우선 최대 소환수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소환하고 나면······."

내가 손을 뻗자 생겨난 아공간.

그리고 스켈레톤이 그대로 아공간 안에 빨려 들어간다.

"이렇게 보관할 수 있습니다."

"오오!"

"혹시 다른 것도 넣을 수 있습니까?"

"못 넣습니다."

무생물이라면 무엇이든 넣을 수 있지만 귀찮으니까 대충 넘기자.

"그래요?"

그런데 의심이 패시브로 달려 있는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에 들고 있는 펜을 아공간 입구에 넣어 보는 연구원.

하지만 상관없다.

아공간엔 내가 거부하는 그 어떠한 것도 들어갈 수 없으니까.

당연하게도 펜과 함께 아공간 입구를 뚫고 나온 연구원의 손.

"정말이네."

"좀 믿어 보시죠."

"워낙 속이려는 분들이 많아서. 하하. 죄송합니다."

"···그렇습니까?"

아무튼 대충 잘 넘어간 것 같고······. 마지막 질문이 뭐였지?

아. 내구도랑 전투력.

내가 다시 손을 휘젓자 아공간에서 튀어나온 스켈레톤.

"전투력 말씀 하셨죠?"

"예."

"한번 때려 보세요."

그러자 연구원이 눈을 빛내며 어디선가 몽둥이를 들고 와 말했다.

"그럼 사양 않고······."

그렇게 연구원이 풀스윙을 날리려는 바로 그 순간, 나는 스켈레톤에 주입된 사기를 흡수하였다.

최대한 약해 보이도록.

그러자 연구원의 몽둥이를 맞고 순식간에 산산조각 난 스켈레톤.

"아······."

연구원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좀 약하네."

"그러게."

잠시 스켈레톤 잔해를 내려다보던 연구원이 말했다.

"테스트는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군요. 잠시 회의실에서 저희끼리 이야기 좀 하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우르르 회의실로 들어간 연구원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조용히 말했다.

"청력 강화."

정확히 말해서 청력을 강화하는 게 아닌, 특정 위치의 음파를 강하게 내 귀로 전달하는 기초 마법.

그렇게 마법을 시전하자 연구원들의 대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뭔가 새롭고 신선합니다.

-그러게요.

-그런데 능력이 좀··· 애매하군요. 내구도도 약하고 전투력도 별 볼 일 없어요. 저런 뼈다귀가 아무리 많아도, 각성자 하나 어찌하긴 힘들 듯한데.

얕잡아 봐 주면 나야 감사하지.

-희귀하지만 애매한 능력. F급이 적당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동의합니다. F급으로 하시죠.

F급이면 최하위 각성자 등급.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합법적으로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필요한 거지, 등급 따위에는 관심 없으니까.

그렇게 회의를 마치고 나온 연구원들이 말했다.

"심사 결과 F급으로 판정 나셨습니다.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F급으로 시작해서 높은 등급에 올라간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까."

실망은 무슨.

"또한 시내에서의 소환은 금지되어 있으니 주의하시고요."

그것도 상관없고.

"그럼 나가셔서 프런트에 이름을 말씀하시면 바로 발급해 드릴 겁니다."

좋아.

이제 나도 합법적으로 몬스터를 잡아 돈을 벌 수 있는 각성자다.

"감사합니다."

자··· 그럼 돈을 벌어 볼까?

*

테스트에서 나는 마력을 이용해 스켈레톤에 내 의지를 투여해 움직이도록 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네크로맨서들이 언데드를 조종하는 대표적인 방법.

하지만 그걸로는 한계가 명확했다.

사람의 정신력과 마력은 절대 무한하지 않으니까.

즉, 소환해서 유지할 수 있는 머릿수에 한계가 있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내가 고안해 낸 방식은 바로······.

"가라."

내가 직접 사냥해서 얻은 뼈에 마력을 듬뿍 부여해 만든 스켈레톤들은, 내 명령을 듣고 미리 주입된 대몬스터 전투 방법에 따라 몬스터 3마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보자······."

나는 몬스터와 스켈레톤의 전투를 면밀히 분석하며 말했다.

"하단부 방어가 굼뜨고 어색하네. 이건 좀 패치가 필요하겠어."

그런데 그때 몬스터가 갑자기 스켈레톤을 향해 녹색 침을 뱉는다.

그러자 아무런 회피 반응도 없이 녹색 침을 그대로 뒤집어쓴 스켈레톤의 뼈가 천천히 부식되는 게 아닌가.

"저런 공격도 해?"

나는 손을 들어 올려 마법진을 연성했다.

"녹색 침은 6번 회피."

6번 회피는 적이 특정 행동을 할 경우 뒤로 회피하라는 명령어였다.

"6번 회피가 방해받을 경우 7번 회피, 그다음 8번 회피. 그것도 방해받으면 11번 막기로 저지."

일단 회피를 시도해 보고 만약 주변 환경으로 인해 회피가 불가할 땐 한쪽 팔로 막는 11번 막기를 연결한다.

"11번 막기도 불가한 상황에선 17번 공격··· 그리고······."

그렇게 줄줄이 명령어를 주입하고 마법진에 마력을 불어넣자, 마법진이 사그라들며 스켈레톤들에게 녹아 들어간다.

그러자 그때부터 몬스터가 뱉는 녹색 침에 적절히 대응하며 유기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스켈레톤들.

"대충 된 것 같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 귀찮아."

이게 바로 내가 어마어마한 양의 언데드 군단을 통솔할 수 있었던 나만의 독창적인 방법이었다.

일반적으로 네크로맨서가 마력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전달하여 언데드를 조종하는 것과 다르게, 나는 언데드에 마력 명령어를 주입하여 특정 상황에 처하면 알아서 움직일 수 있도록 일종의 매크로를 만들어 박아 넣은 거다.

이렇게 되면 굳이 개체 하나하나에 의지를 전달할 것도 없이 알아서 특정 조건에 따라 움직이니 유지에 따른 부담이 압도적으로 줄어든다.

물론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 짓을 다시 할 줄이야."

처음엔 전투는 고사하고, 명령어의 혼선으로 버그가 일어나 자기 혼자 박살 나는 등 그야말로 결점투성이였다.

하지만 조금 전 녹색 침에 대한 대응 방식을 주입한 것처럼 수십 년 동안 수없이 패치에 패치를 거듭하여 만들어 낸 최종 완성본은 거의 모든 상황에 대응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 협공까지 할 수 있는 완벽에 가까운 매크로였다.

물론 언데드 한 구 한 구를 만들 때 들어가는 마력의 양이 명령어의 양에 비례하여 엄청나게 높아지는 게 문제기는 했지만, 대신 유지에 들어가는 마력과 정신 소모가 거의 없는 수준.

즉, 처음 제작이 비싼 대신 유지비가 거의 없는 수준이라 일단 만들기만 하면 유지는 누워서 떡 먹기라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내가 수십 년에 걸쳐 완성한 매크로가 언데드 군단과 함께 통째로 날아갔다는 거다.

"젠장. 백업용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아무리 내가 제작자라고는 하지만 수십 년에 걸쳐 만든 그 복잡한 구동 명령어와 유기적으로 짜여 있는 알고리즘을 전부 외우고 있을 리가 없지 않나.

그래서 원래는 만들어 둔 개체 중 최소 하나 이상을 아공간에 넣어 두었다가 필요하면 꺼내서 주입된 마법 명령어를 복사해 다른 개체에 쑤셔 넣는 식으로 해 왔는데, 원본은 물론 그런 백업 파일까지 송두리째 사라진 셈.

다행히 그간 해 온 짬이 있어 어느 정도 봐 줄 만하게 즉석에서 만들기는 했지만, 원본을 생각하면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다.

"···그래도 해야지. 일단 대충이라도 만들어 두면 그다음은 편하니까."

안락한 은퇴를 위해 조금만 더 고생하자.

그때, 몬스터를 처리한 스켈레톤들이 몬스터를 들어 올리고 다시 내 주위로 도열한다.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벌써 4시간이나 사냥했네."

사실 수십 년간 사체를 만지고 전장을 전전한 나에게 있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몇 날 며칠 동안 먹지 않고 전투를 하여 살아남은 적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여긴 세론이 아니고 은퇴를 위해 온 지구다.

그런 지구에서 내가 일이란 걸 해야 한다는 이 상황 자체가 나를 지치게 한다.

"오늘은 그만할까."

나는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돌아가자."

*

그렇게 스켈레톤들을 거느리고 밖으로 나가자 한 상인이 득달같이 달려와 말했다.

"헤헤. 오셨습니까?"

처음엔 부산물 시장으로 직접 가져가 팔까도 고민했지만, 만사를 귀찮아하는 내가 또다시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할 리가 없지 않나.

그래서 영세한 상인을 하나 골라 출장을 부탁한 나.

상인은 저렴한 가격에 부산물을 살 수 있어 좋고 이미 노동 한계치에 달한 나는 빨리 돌아가 쉴 수 있으니, 이거야말로 윈윈이다.

"내려놔."

내 말에 스켈레톤들이 부산물을 내려놓자 상인은 입이 찢어지게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오늘도 많이 잡아 오셨군요."

"손도 안 댔으니까 확인할 필요 없어요. 대충 계산해서 주세요."

"여부가 있으려고요."

그간 몇 차례 거래하며 단 한 번도 장난질을 친 적이 없기에 상인은 빠르게 몬스터의 종류와 사체의 수만 계산한 뒤 바로 그 자리에서 돈을 결제해 준다.

"세금 떼고 총 200만 원입니다."

조 단위 돈을 아공간에 가지고 있던 내가 고작 200만 원 벌자고 이 짓을 해야 한다니.

그 초라한 금액에 더욱더 일하기 싫어진다.

"넣어 주세요."

"예. 그럼 바로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상인이 돈을 송금하기 위해 핸드폰을 조작하는 사이 나는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하아. 갈 길이 구만 리네.'

내가 굳이 낮은 등급을 받고 최하위 게이트를 들락거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높은 등급을 받으면 주목을 받아 귀찮아질 게 뻔하고, 또한 상위 몬스터를 상대할 만한 언데드는 만드는 것도 그만큼 어려우니, 차라리 낮은 게이트에 최적화된 언데드를 만들어 편하게 돈을 벌기 위해서.

'처음만 버티자. 매크로만 잘 만들어 두면 돼.'

매크로만 완성되면 언데드들이 알아서 돌아다니며 몬스터를 잡아 오고 나는 앉아서 편하게 돈을 버는 거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잡던 그때, 주변에서 나에 대한 대화 소리가 들려온다.

"저 사람이야?"

"어."

보통 몇 마리 이상 소환하지 못하는 소환 계열과는 다르게 나는 최소 열 구 이상의 스켈레톤을 데리고 다니니 제법 눈에 띌 수밖에.

"쪽수가 장난 아니네?"

"대신 엄청 약하다더라."

"그렇겠지. 그러니까 F급을 받았을 것 아니야."

떠들거나 말거나 관심 없다.

세론에서 수많은 사람의 공포와 혐오 섞인 시선을 받아 온 나에게 있어서 이 정도는 오히려 호감이라 느껴질 정도니까.

그런데 그때.

"그나저나 저렇게 소환수가 많으면 짐꾼 비용 아낄 수 있어서 좋겠네."

"그건 그렇지."

"솔직히 시간당 3만 원은 너무 비싸지 않아?"

그 말에 나는 굳은 표정으로 그쪽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3만 원?"

복잡한 지형의 게이트는 손수레 하나 끌기도 힘들어 짐꾼을 이용해 몬스터 부산물을 가져온다는 이야긴 익히 들었다.

그런데 그 비용이 시간당 3만 원이라고?

'잠깐만. 짐꾼은 직접 전투 안 해도 되잖아. 그냥 잘 들고 잘 따라다니다 전투할 때만 조용히 근처에 피해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먹지도 않고 불만도 없는 언데드.

이보다 완벽하고 훌륭한 짐꾼이 또 어디 있나.

게다가 고작해야 짐 들고 따라다니는 거라면 전투용에 비해 필요한 마력 명령어와 알고리즘도 압도적으로 적고 간단할 거다.

그때 각성자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위험수당이다 뭐다 하는데, 솔직히 이런 하급 게이트에서 사망자가 나오면 얼마나 나온다고."

"그러니까. 그럼 네가 가서 부탁해 볼래? 같이 하자고?"

"인마, 소환 계열이랑은 같이하는 것 아니랬어. 손발이 안 맞는다고, 손발이."

짐꾼.

시간당 3만 원.

순식간에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긴 나는 그들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실례합니다."

"어?"

"방금 짐꾼 말씀 하셨죠?"

그러자 각성자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호, 혹시 들으셨습니까? 죄송합니다. 그냥 저희끼리 대화 중에······."

"아니, 그건 상관없고, 혹시 짐꾼은 구하셨습니까?"

"예? 지금 마침 구하려던 중이긴 한데······."

그 말에 나는 내 뒤에 도열한 스켈레톤을 가리키며 말했다.

"혹시 새로운 짐꾼 써 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제가 개업 이벤트로 이번만 특별히 공짜로 해 드릴까 하는데."

3화

각성자 팀 3명이 게이트 속 숲을 거닐며 연신 뒤를 힐끔힐끔 바라본다.

그런 그들의 뒤엔 몬스터 부산물을 들고 뒤를 쭐레쭐레 쫓아가고 있는 스켈레톤들이 있었다.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거··· 가능성 있다."

기존 명령어 중 전투 명령어를 삭제하고 뒤를 쫓아다니는 것 하나만 추가했음에도 스켈레톤은 제법 그럴싸하게 짐꾼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어차피 공격 회피와 이동 알고리즘은 기본으로 깔려 있으니까.

그때.

스켈레톤이 들고 있던 부산물이 나무에 걸려 바닥에 떨어진다.

나 혼자 이끌고 다닐 땐 선두의 스켈레톤들이 장애물을 헤치면서 가기에 없었던 현상.

"회피 반경을 늘려야겠다."

어차피 내 마법진은 내 눈에만 보이기에 거리낌 없이 마법진을 생성한 나.

"회피 반경을 부산물 부피와 연동하고··· 오케이."

그렇게 간단한 조율을 마치자 이번엔 제대로 부산물을 들고 나무들 사이를 헤쳐 지나가는 스켈레톤.

나는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스켈레톤을 짐꾼으로 고용시키면 나는 앉아서 돈 벌 수 있는 거잖아."

비록 패치 해야 할 부분이 제법 많이 보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전투용 스켈레톤을 만드는 것보단 훨씬, 그것도 압도적으로 쉽다.

그때 몬스터들이 나타나며 전투태세를 갖춘 각성자 팀.

그런데 몬스터 중 하나가 짐꾼 역할을 하고 있는 스켈레톤을 노리고 달려들기 시작한다.

그러자 미리 입력된 명령어에 따라 각성자 주변을 따라 몬스터를 피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 스켈레톤.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좋아, 좋아."

그러는 사이 전투를 마친 각성자 팀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야··· 편한데?"

"그러게, 짐꾼 걱정 안 해도 되고."

전투도 전투지만, 각성자들에겐 짐꾼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도 있다.

그런데 이들은 생명이 없는 스켈레톤.

"저기에 가방만 메고 따라오면 딱 맞겠네."

"그런데 저러다 파괴되면 어떡하지?"

고객님들의 새로운 컴플레인.

나는 잠시 고민하며 생각했다.

'파괴라······.'

지금이야 내가 있으니 다시 만들면 그만이지만, 만약 고객들이 나 없는 상태로 스켈레톤 짐꾼을 끌고 가다 박살 나면 그 짐을 다 어떡하나.

물론 그런 염려는 사람 짐꾼도 마찬가지로 겪는 일이긴 하지만, 스켈레톤 짐꾼만의 뭔가 특별한 장점이 필요하지 않을까?

"잠깐. 가방?"

짐꾼이 가방을 드는 이유가 뭔가.

바로 수납을 위해서다.

그리고 이족 보행의 생물은 애초에 수납에는 적합하지 않은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지.

'잠깐만. 이거 잘만 조합하면······.'

나는 각성자 팀에게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실 수 있나요? 제가 지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

한지혁의 요청을 받고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한 각성자 팀.

"나쁘지 않지?"

"어."

"해골이 따라오니 조금 기분이 그랬는데, 생각보다 훨씬 편해."

그때 한 각성자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영 비실비실해 보여서 불안하단 말이지."

뼈다귀만 남아 돌아다니다 보니 한 대만 맞아도 부서질 것만 같은 느낌.

만약 부서지면 들고 돌아갈 수 있는 부산물의 양이 줄어드니 수입도 당연히 적어진다.

"공짜라니까 일단 오늘은 즐기자고. 부서지면 다시 만들어 줄 것 아니야."

"그건 그렇지."

그렇게 그들이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사이 한지혁이 뒤에 무언가를 끌고 다가오며 말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아. 다 끝나셨······."

그렇게 한지혁을 향해 고개를 돌린 각성자들은 한지혁의 뒤에 따라오고 있는 뼈로 만들어진 무언가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저, 저게 뭐야?"

뼈로 만들어진 커다란 타원형 바구니와 그 전면에 붙은 해골.

거기에 그 바구니 밑에 달려 있는 3쌍의 뼈로 된 다리까지.

한지혁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6족 보행 운반형 스켈레톤 MK.1입니다!"

*

나는 언데드 제작에 있어서 세론 대륙 역사상 최고라 불린 네크로맨서.

그런 나에게 이런 마개조 정도는 일도 아니지.

나는 스켈레톤이 들고 있던 부산물을 운반형 스켈레톤의 뼈 바구니에 담으며 말했다.

"이렇게 바구니 안에 담으면? 떨어질 염려도 없고 완벽하죠. 게다가······."

나는 운반형 스켈레톤을 향해 말했다.

"몬스터 출현."

그러자 운반형 스켈레톤의 다리가 얌전히 접히며, 마치 진짜 바구니처럼 그 자리에 조용히 앉는다.

"몬스터들은 움직이는 생명체에 적의를 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건 누가 봐도 그냥 바구니죠. 이렇게 그냥 전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전투가 끝나고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가자."

그러자 다시 조용히 일어서는 스켈레톤.

"그런 다음 이렇게 걸으면?"

운반형 스켈레톤이 내 뒤를 쭐레쭐레 쫓아온다.

"어떻습니까?"

내 말에 각성자들이 입을 쩍 벌리며 말했다.

"와······."

"저런 것도 가능해?"

"완전 편해 보이는데?"

"나 저런 것 본 적 있는 것 같아. 미국 어디서 게이트 운반용 로봇 연구 한다며 저런 비슷한 걸 개발 중이라 했던 것 같은데."

뭐?

경쟁자가 있다고?

물론 내 스켈레톤의 가성비를 이기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보여 주자.

"일단 한번 테스트해 보시죠. 갑시다!"

"아. 예."

그렇게 다들 신기한 표정으로 내 운반형 스켈레톤 MK.1을 바라보며 길을 가던 중 이번엔 또 다른 몬스터를 만났다.

"몬스터 출현!"

그 말에 자동으로 조용히 그 자리에 앉는 운반형 스켈레톤.

그리고 그 결과는······.

"크!"

역시 내 예상대로 몬스터들은 운반형 스켈레톤을 아예 적으로 인지하지도 못한다.

오히려 바구니라기보단, 수납한 부산물 중에도 뼈가 있다 보니 부산물 뭉치의 일부처럼 보인다고 해야 할까?

덕분에 눈앞에서 날뛰고 있는 각성자들만 공격하는 몬스터들.

"완벽하다, 완벽해."

내 은퇴를 책임져 줄 완벽한 일꾼이다.

매크로만 확실하게 완성해 짐꾼 대용으로 각성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대여해 주면 나는 이 지겨운 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다.

감동받은 나는 눈을 살포시 감으며 말했다.

"역시 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구나."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결국 나는 내 귀찮음을 이겨 낼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그렇게 내가 감동에 젖어 있는 사이 사냥을 마친 각성자들은 신이 나서 몬스터의 부산물을 운반형 스켈레톤에 싣기 시작했다.

"이건 진짜 편한데?"

"대박이다, 대박."

나는 호객을 위해 친절하게 말했다.

"연료도 필요 없고 지치지도 않는 친환경 소환수입니다. 안심하고 이용하세요."

각성자들은 신이 나서 물었다.

"이건 얼마에 파실 건가요?"

이 스켈레톤은 최소 짐꾼 3명분의 짐을 실을 수 있는 수준.

그럼 짐꾼 하나 비용이 시간당 3만 원이니까······.

"팔진 않고 대여만 합니다. 대여비는 시간당 3만 원. 이것 하나가 짐꾼 3명 몫은 할 겁니다. 뭐, 적재 방법에 따라 더 실을 수도 있고."

각성자들이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시간당 3만 원?"

"3분의 1 수준이잖아!"

그치?

완전 꿀이지?

"소문 좀 잘 내 주세요, 그럼 특별히 더 싸게 해 드릴게."

"으하하. 각성자가 아니라 완전 장사꾼 같으시네요."

장사꾼이 더 편하면 까짓것 못 하겠냐.

나는 편하게 돈 벌고 싶다고.

"다 실었습니다."

"가자, 이렇게 한 마디 하시면 일어나서 따라갈 겁니다. 아! 제가 목소리 등록을 안 해 드렸군요."

나는 다시 마법진을 연성해 운반형 스켈레톤에 새로운 명령어를 주입했다.

"말해 보세요."

"가자."

그러자 각성자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운반형 스켈레톤.

"오오!"

그런데 너무 많은 부산물을 실어서인지 부산물 일부가 일어서는 과정에서 흘러내린다.

"아. 너무 많이 실었나 보다."

"음···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나는 스켈레톤 한 구를 더 해체하여 바구니 주위에 뼈를 덧붙인 뒤 추가 명령어를 설정했다.

"닫아."

그러자 뼈다귀들이 자동으로 바구니 속 부산물을 감싸며 닫힌다.

나는 마치 새로운 상품을 소개하듯 말했다.

"자! 이번엔 덮개 기능이 추가된 6족 보행 운반형 스켈레톤 MK.2입니다!"

"오오!"

"참고로 이건 옵션비로 시간당 만 원 추가입니다. 어떠신지?"

"만족합니다!"

"완전 로봇 같아!'

좋아!

이 사업은 무조건 된다!

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시죠! MK.2를 넘어 완벽한 운반형 스켈레톤을 만들 때까지!"

*

"왜 이쪽으로 오자고 하는 거야?"

지인의 권유로 새로운 게이트로 향한 각성자.

"아. 혹시 임계점 다 된 게이트야? 끝물 사냥 하려고?"

임계점이 되면 게이트는 게이트 속에 남은 몬스터를 토해 내며 완전히 사라진다.

당연히 임계점이 되기 전까지 각성자들이 줄기차게 사냥하지만 구석에 숨은 몬스터까지 완벽하게 박멸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

그래서 임계점이 되면 각성자들이 모여 게이트에서 토해 내는 몬스터를 마지막으로 처치한다.

운이 좋으면 앉은 자리에서 다량의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그런데 지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런 것 아니야. 아직 며칠은 남았을걸."

"그런데 왜 굳이 여기까지 온 거야? 동네 근처에도 비슷한 등급의 게이트 있는데."

그러자 지인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여긴 좀 특별해서 말이야."

"특별하다고?"

"보면 알 거야."

그렇게 게이트에 도착한 각성자 팀.

그런데 그때, 초대를 받은 각성자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저, 저게 뭐야."

한 각성자가 가판에 앉은 남자에게 돈을 건네자 뼈로 된 바구니에 3쌍의 뼈 다리가 달려 있는 이상한 생명체가 그 뒤에 따라붙는다.

그리고 그 생명체와 함께 게이트 속으로 들어가는 각성자 팀.

"운반형 스켈레톤이라는 거야. 소환수인데 짐꾼 대용으로 훨씬 편하고 싸다더라."

"살다 살다 저런 건 또 처음 보네."

"신기하지? 그래서 한번 해 보려고."

"안전한 거야?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공격하거나 그런 건······."

"그럴 리가 있냐? 손도 없는데 어떻게 공격을 해? 게다가 그렇게 위험한 거면 사람들이 저렇게 쓰겠어."

"그건··· 그렇지."

"가 보자."

그렇게 가판대로 향한 각성자 팀.

가판대에 앉은 남자가 커피를 음미하며 말했다.

"음~. 어서 오세요."

"하나 빌리려고 하는데요."

"저는 두 개를 추천해 드립니다. 개당 짐꾼 3명 이상의 짐을 수납할 수 있고, 비록 갈무리는 대신 못 해 주지만 우월한 수납량으로 몬스터 사체를 통째로 들고 오면 되니까요. 비용은 한 개에 시간당 3만 원입니다. 두 개를 빌려도 짐꾼 6명 값보다 훨씬 싸죠."

그러자 각성자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한 개가 3명 몫을 하는데 시간당 3만 원? 반값도 안 되네? 이거 진짜 되는 건가요?"

"물론이죠. 혹시 의심되시면 사용해 보신 다른 분들께 여쭤보시면 알 겁니다."

그러자 이미 두 개를 빌려 들어가던 각성자 팀이 엄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무조건 쓰세요. 특히 MK.2. MK.2는 덮개 기능이 있어서 잘만 적재하면 4명분도 실을 수 있어요."

그러자 가판대 남자가 혀를 차며 말했다.

"적정 적재량 넘기다 고장 나면 고객님 책임인 건 아시죠?"

"에이. 해 보니까 그 정도는 너끈하더니만."

"튼튼하게 만들었으니 그거야 당연하지만, 그래도 사용 수칙은 잘 지켜 주세요."

그런 둘의 대화에 각성자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4명 몫을 한다고?"

"그 정도면 진짜 몬스터를 통째로 들고 와도 되겠는데?"

갈무리하는 이유는 최대한 가치 있는 것들 위주로 챙겨서 짐을 줄이기 위함.

그런데 그런 모든 고민을 해결해 주는 만능 운송 장비라니.

각성자가 가판대의 남자를 보며 말했다.

"MK.2는 뭔가요?"

"여기에 덮개 옵션이 붙은 게 MK.2입니다. 옵션비 만 원이 추가되고, 자동 수거 기능까지 갖춘 MK.3는 2만 원 추가고요."

"어··· 뭐가 좋은가요?"

"MK.2 인기가 가장 많습니다. MK.3 자동 수거 기능도 나쁘지는 않은데, 아직 베타 버전이라 완벽하지 않아서요."

"그럼 MK.2로 2개 주세요."

*

"감사합니다! 즐거운 사냥 되시길."

완벽하다.

그야말로 앉아 있어도 돈이 벌린다.

"으히히."

나는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마시고 시간을 때우기 위해 새로 산 휴대용 게임기를 꺼내며 말했다.

"이게 바로 무릉도원이지."

일을 왜 하나.

스켈레톤 시키면 되는데.

너무나 즐겁다.

"네크로맨서 하길 잘했어."

이렇게 착실히 스켈레톤을 굴려 돈을 버는 거다.

그렇게 돈을 벌어서 탱자탱자 놀면서 살 거다.

고생은 세론에서 할 만큼 했다고.

"보자··· 이번엔 이 게임 해 볼까?"

그렇게 휴대용 게임기를 조작하던 그때 새로운 손님이 왔다.

"MK.2 대여하려고 하는데요."

나는 죄송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고. 기본형이랑 MK.2는 다 나갔는데. MK.3밖에 없어요."

"MK.3요? 아오. 그거 자동 수거 기능 별로던데."

"아직 베타 버전이라서······."

"그냥 자동 수거 기능 빼고 대여해 주시면 안 돼요? 덮개만 있으면 되는데."

"그건 안 되는데요."

"하아. 어쩔 수 없지. MK.3라도 주세요."

"예! 감사합니다!"

필요 없는 옵션이지만 어쩔 수 없이 대여하는 각성자들.

옵션 장사야말로 기본 중의 기본이지.

그렇게 각성자 팀이 어쩔 수 없이 MK.3를 데리고 게이트로 들어가는 사이 나는 다시 의자에 기대 휴대용 게임기를 플레이 하며 말했다.

"장사 잘~ 된다."

그렇게 내 운반 스켈레톤 사업은 순식간에 인근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이 되어 버렸다.

4화

-띵동!

초인종 소리에 나는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으아아! 벌써 출근 시간이야?"

내가 지금 보유하고 있는 운반형 스켈레톤은 3가지 버전 모두 합쳐 11개.

운반형 스켈레톤 한 대당 평균 수입이 대략 30만 원이니 다 합쳐서 하루에 대략 330만 원 정도를 벌고 있었다.

물론 내가 작정하고 게이트에 죽치며 대여를 해 줬으면 더 많이 벌 수 있겠지만, 그건 내 노력 상한치를 아득히 넘어서는 일이라 불가능하고······. 아무튼 330만 원이 누군가에겐 많다 느낄 수 있겠지만, 아공간에 어마어마한 돈을 넣어 두었던 나로선 전혀 만족할 수 없는 금액.

"겨우 이거 벌어서 언제 은퇴해."

난 세론 대륙 역사상 유례가 없는 최고의 네크로맨서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전례가 없는 만큼 나도 내가 몇 살까지 살다 죽을지 감이 안 온다는 말이지.

그래서 지구로 돌아올 때 제국 곳간을 탈탈 털어 준비해 온 건데······. 뭐, 그건 이미 사라지고 없고, 아무튼 수명이 얼마나 될지를 모르니 최대한 넉넉하게 은퇴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

"딱 몇 조만 벌자. 아니면 매달 통장에 수백억씩은 꽂히게 만들어 두든가."

그래서 내가 정한 목표가 바로 이거다.

평생 아무 걱정 없이 호화로운 생활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목표.

그래서 살살 눈치 보며 조금씩이라도 운반형 스켈레톤을 늘리기로 결정했는데······.

문제는 내가 출근하는 게이트의 각성자들은 이미 운반형 스켈레톤에 맛을 들여 몬스터 사체를 갈무리할 시간에 한 마리라도 더 잡는 게 이득이라는 마인드로 모든 사체를 통으로 가져오니, 뼈만 골라서 살 방법이 없다는 거다.

물론 사체를 급속도로 부패시켜 뼈만 일어나게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고 오히려 그렇게 해야 더 많은 사기를 활용할 수 있어 더 강한 스켈레톤이 나오지만, 그렇게 되면 돈도 많이 들고, 무엇보다 뒤처리가 귀찮아진다.

전장에서야 썩은 살쯤 대충 아무 곳에나 버리면 그만이지만 여기는 그게 불가능하니까.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쾅쾅!

"한지혁 사장님! 접니다! 박 사장!"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바로 내가 사냥을 할 때 게이트 앞으로 출장을 왔었던 영세 상인 박 사장.

문을 열어 주자 박 사장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배달 왔습니다!"

박 사장을 출장에서 배달로 업종을 바꾸게 한 것이었다.

매일 부산물 시장에 들러 사냥한 지 얼마 안 된 싱싱한 뼈들을 최대한 빠진 부위 없이 모아 나에게 아침마다 배달하는 것.

"전부 어제 사냥한 싱싱한 놈들입니다."

언데드를 움직이는 건 마력이지만 그들을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동력원은 바로 사체에 잔류해 있는 사기다.

그리고 이 사기는 생명체가 죽는 순간부터 빠르게 빠져나가지만, 그중에서 그나마 사기가 가장 오래 잔류하는 것이 바로 뼈.

그렇기에 네크로맨서들이 뼈를 이용한 스켈레톤을 가장 주력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나는 뼈들의 사기를 살피고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싱싱하네요."

죽은 지 얼마 안 된 사자의 기운.

사기가 듬뿍 느껴진다.

이 사기가 충만해야 더 강한 스켈레톤을 만들 수 있지.

그리고 더 강한 스켈레톤이 더 많은 짐을 들 수 있는 것은 물론 튼튼하기도 하고.

"수고하셨습니다. 얼마인가요?"

"예. 다 해서 170만 원 들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아무나 장사 잘 안돼 보이는 상인 골라잡은 건데, 거짓말할 줄 모르고 성실 그 자체인 박 사장은 여러모로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서 아예 그냥 원가를 말해 주면 내가 마진 붙여서 넘겨주기로 했지.

"200만 원 드릴게요."

그렇게 옆에 있는 가방에서 박 사장에게 줄 돈을 세는데, 문득 이조차도 귀찮아진다.

"그냥 한 번에 500 드릴 테니까 거기서 까고 까고 하는 건 어때요?"

그러자 같이 일해 오며 날 대충 파악했는지 박 사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제가 좀 부담스러우니 3일에 한 번씩만 결제해 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에이. 그건 아니지."

어음거래 하자는 건데, 그게 을 입장에서 얼마나 짜증 나는 일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게 나다.

지구에 보내 준다는 약속 하나만 믿고 30년을 주구장창 싸워 왔으니까.

나는 가방에서 500을 꺼내 내밀며 말했다.

"여기요, 500. 다 떨어지면 말해 줘요."

내 말에 결국 박 사장이 돈을 받아 들며 말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모시겠습니다!"

나는 엄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굿."

그렇게 박 사장을 돌려보내고, 간단한 아침밥을 위해 냉동 김치볶음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며 본격적으로 운반형 스켈레톤 제작에 들어갔다.

이런 건 싱싱할 때 만들어야 효과가 좋으니까.

위잉~.

전자레인지 돌아가는 소리를 배경음 삼아 아직 덜 깬 눈을 비비며 손을 들어 올리자 뼈들이 서로서로 달라붙으며 모양새를 갖춰 가기 시작한다.

"흐아아암."

수십만에 이르는 언데드를 거느렸던 나다.

당연히 이 정도 작업은 일도 아니지.

순식간에 3개의 새로운 운반형 스켈레톤 MK.2를 만들어 낸 나는 명령어 복사를 위해 아공간을 소환해 백업용으로 비치해 둔 MK.2를 한 구 꺼냈다.

"명령어 복사."

그렇게 아공간에서 꺼낸 백업용에 저장된 마법 명령어를 똑같이 복사해 새로운 3기에 적용한다.

이걸로 오늘부터 돈을 벌어다 줄 새로운 MK.2 3개 완성.

이제 내 수입은 3개분만큼 더 늘어날 거다.

띵.

그리고 그와 동시에 완성된 냉동 김치볶음밥.

"돈 벌어 와라~. 돈 벌어 와."

나는 전자레인지에서 김치볶음밥을 꺼내며 말했다.

"하. 빨리 은퇴하고 싶다."

*

운반형 스켈레톤을 늘리면 늘리는 족족 수입이 뻥튀기된다.

제작 비용이라 해 봐야 뼈가 전부인데, 그 비용은 운반형 스켈레톤 이틀 치 일당이면 거의 퉁이었으니까.

물론 그만큼 내 마력이 소모되기는 하지만 나는 언데드 군단을 제외하고도 세론에서 손에 꼽히던 마법사 중 하나였단 말씀.

이 정도 마력 소모는 눈 감고 잠깐만 쉬어도 금방 복구된다.

아무튼 그렇게 순조롭게 대여 사업을 해 오고 있었는데 드디어 오늘 다른 사업장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 왔다.

"슬슬 끝나 간다!"

"준비들 해!"

임계점에 도달한 게이트는 게이트 속에 남은 모든 몬스터를 토해 내고 사라진다.

그리고 내가 계속 출근하던 게이트의 임계점이 바로 오늘.

나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이런 날은 피해야 되는 거구나."

운반형 스켈레톤은 어디까지나 장거리를 위해 필요한 짐꾼이다.

즉, 임계점에 도달해 몬스터를 토해 내는 게이트에선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말.

"나온다!"

그때 각성자의 외침과 함께 게이트가 엄청난 속도로 남은 몬스터를 무차별로 토해 낸다.

"죽여!"

그렇게 시작된 몬스터와 각성자들의 전투.

심드렁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아공간을 열어 운반형 스켈레톤들과 잡일용으로 만든 스켈레톤 몇 구를 꺼내 명령했다.

"실어."

그러자 가판대와 파라솔 그리고 최근 구입한 최고급 가죽으로 만든 리클라이너 소파를 운반형 스켈레톤 위에 적재하는 잡일용 스켈레톤들.

그렇게 퇴거 준비를 하는 사이 모든 사냥을 마친 각성자들이 실망 섞인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뭐야."

"끝물 한탕 하러 왔는데 별로 없네?"

"그렇게 많이 사냥했어?"

많이 실망한 듯한 각성자들의 모습.

어쩌면 운반형 스켈레톤 덕분에 갈무리에 시간을 들이지 않고 계속 싸돌아다녀서 그런 것 아닐까?

뭐··· 사냥은 내 소관이 아니니까.

나는 잠시 운반형 스켈레톤을 바라보다 말했다.

"걷기 귀찮은데. 타고 갈까?"

내가 다음 타깃으로 정한 게이트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는 상황.

시내에서 소환수를 소환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여긴 인적이 드문 곳이니 상관없지 않을까?

게다가 딱 봐도 전투력이라곤 하나도 없는 놈들이잖아.

잠시 고민하다 아직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신품 운반형 스켈레톤을 꺼낸 다음 뼈 바구니에 준비해 온 담요를 깔고 올라가 몸을 눕힌 나.

"그냥 타고 가자."

뭐라 뭐라 지랄하면 그때 다시 들여보내면 되지.

그때 사냥을 마친 한 각성자 팀이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사장님!"

어느새 사람들 입에 완전히 정착한 사장님이라는 말.

"예~."

"어느 쪽으로 가실 건가요?"

"근처 산에 있는 게이트로 갈 건데요."

"그럼 저희도 같이 가죠. 임계점 끝물이 생각보다 별로라 조금 더 사냥해야 할 것 같아서요. 도착한 다음 제일 먼저 MK.2로 대여해 주세요."

첫 예약 손님이 나오자 덩달아 다가오는 다른 각성자 팀들.

"저희도!"

"MK.2 2개 예약이요!"

그럼 나야 좋지.

"예약 접수 완료. 출발들 하시죠."

그렇게 각성자들이 옆 동 게이트를 향해 가기 시작하자 나는 운반형 스켈레톤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따라가."

그러자 타고 있는 운반형 스켈레톤이 뒤뚱뒤뚱 각성자들의 뒤를 따라 걷고, 그 뒤로 내 가판대 같은 짐을 실은 운반형 스켈레톤도 따라붙는다.

"와. 저런 것도 되는구나."

"재미있어 보이는데?"

하지만 그런 각성자들의 반응과 다르게 나는 운반형 스켈레톤의 형편없는 승차감에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 아!"

여기가 야산이다 보니 움직일 때마다 얇은 담요 하나를 사이에 두고 딱딱한 뼈와 내 온몸이 부딪힌다.

"승차감 최악이네."

세론에서 타던 가마가 너무나도 그립다.

하지만 이미 없는 걸 그리워해 봐야 뭐가 달라지나.

지금 상황에 최대한 적응해야지.

나는 내 가마를 몰던 스켈레톤들의 명령어를 최대한 떠올린 뒤 마법진을 연성했다.

"조금 더 부드럽게. 반동은 좀 더 약하게. 균형을 맞춰야지, 균형을."

고작 수분도 안 되는 사이에 수십 개의 명령어를 주입한다.

그러자 마치 자동차 서스펜션처럼 움직임에 따라 바구니의 위치를 자동으로 조절하며 사뿐사뿐 걷기 시작한 운반형 스켈레톤.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좀 쓸 만하네."

비록 가마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그럭저럭 편하게 누워서 이동할 정도는 된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말했다.

"덮어."

그러자 덮개를 덮어 차양막까지 만든 운반형 스켈레톤.

나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말했다.

"가자, 다음 장사 하러."

*

그렇게 새로운 게이트에 또다시 자리를 잡은 나.

장사는 이번에도 호황이었다.

심지어 유명세를 타고 다른 곳에서 활동하던 각성자들까지 이 게이트로 올 정도였으니까.

매일 아침마다 새로운 운반형 스켈레톤을 만들고, 그만큼 수입이 늘어나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 방식의 한계를 느끼고 말았다.

"···남는다고?"

스켈레톤들이 남는다.

나는 잠시 리클라이너 소파에 기대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말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게이트 속 몬스터의 수는 무한하지 않다.

당연히 그 몬스터를 사냥해 돈을 버는 각성자의 수도 한계가 있다는 말.

아무리 운반형 스켈레톤 효율이 좋다 해도 몬스터가 없으면 아무런 소용도 없으니까.

"위기구나."

무작정 늘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다른 게이트로도 손을 뻗어야 한다는 말.

하지만 어떻게?

"알바라도 둬야 하나."

하지만 알바가 나처럼 마법을 써서 운반형 스켈레톤들이 각성자들을 따라다니도록 임시 각인을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이거 골치 아프네."

일꾼은 무조건 계속 굴려야 돈이 되는 건데.

"좋은 방법 없나?"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그때 얼마 전 타고 온 운반형 스켈레톤이 떠오른 나.

"어? 잠깐만."

뭔가 아이디어가 번뜩인다.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거, 사람 짐꾼이랑 잘만 조합하면······."

*

한 건장한 체격의 짐꾼이 가판대에서 무언가 골똘히 고민하는 듯한 한지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완전히 밀렸네."

그러자 동료 짐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전부 저 뼈다귀만 찾지, 짐꾼 고용을 안 하려 해. 찬수야, 그냥 우리도 다른 게이트로 가자."

건장한 체격의 짐꾼, 강찬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여기가 제일 가까운데."

잠시 고민하던 찬수가 말했다.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던데 조금 부탁을 해 보면 어떨까?"

"부탁?"

"가격을 비슷하게라도 좀 맞춰 달라 부탁해 보는 거야."

일반 짐꾼 3분의 1 가격의 운반형 스켈레톤.

이건 도저히 가격적으로 경쟁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게 되겠어? 그냥 우리가 다른 곳으로 가는 게 빠를걸?"

찬수가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해결책이 아니니까 그런 것 아니야. 봐 봐."

찬구가 한지혁 뒤로 도열해 있는 운반형 스켈레톤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남았잖아. 전부 빌려주고도 저렇게 남았다는 건 뭐야. 조만간 인근의 다른 게이트로도 진출할지 모른단 뜻이라고. 이렇게 계속 밀리고 밀려서 어디까지 갈 건데?"

그때 험악한 인상을 가진 짐꾼 하나가 다가와 말했다.

"오랜만에 맞는 소리를 하는군."

듣기 싫은 목소리의 등장에 찬수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김용기."

짐꾼들을 규합해 다른 짐꾼들에게 텃세를 부리며 일감을 독차지하는 걸로 악명 높은 김용기의 등장.

김용기가 한지혁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 전부 이 근방에서 밀려날지도 몰라."

"우리가 아니라 너희겠지. 너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다른 짐꾼들 신경 썼다고."

그러자 김용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간에 위기인 건 너도 인정하잖아?"

"···그건 그렇지. 그러니 부탁을 해 보려는 거였고."

"아니지, 아니지. 부탁? 그런 게 먹힐 리가 있나. 듣자 하니 저 인간, F급이라며? 그것도 소환 계열."

"그건 딱 보면 알지."

"그런데 소환수를 전부 짐꾼으로 사용 중이네? 얼마나 약하면 전투도 포기하고 저렇게 돈을 벌겠어."

그러자 찬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지금 건드리겠다는 거야? 각성자를?"

"물론 나도 바보는 아니야. 아무리 약해도 각성자는 각성자니까. 그런데 내가 정말 믿는 구석 없이 이렇게 나섰을까?"

"믿는 구석?"

"내 뒤를 봐주시는 각성자분들이 좀 화가 나셨어. 벼룩의 간을 빼먹어도 유분수라며 말이야."

이제야 상황이 모두 이해된 찬수.

김용기는 각성자를 뒷배로 두고 그들의 보호 아래 상납금을 내며 짐꾼들을 규합해 왔던 거다.

"각성자님들이 나서 주기로 했으니까 너희는 그냥 얌전히 따라와서 쪽수나 채워."

그러자 찬수와 함께 김용기 패거리에 맞서던 짐꾼들이 주저하더니 말했다.

"나쁘지 않은 제안 아니야?"

"뭐!?"

"우리가 저 사람이 만든 뼈다귀랑 경쟁하려면 시간당 만 원을 받아야 한단 소린데, 그게 말이나 돼? 그 돈 받고 게이트 갈 거면 그냥 편의점 알바 하지. 먼저 상도의를 어긴 건 저쪽이라고!"

찬수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저건 아니지! 충분히 말로 해결할 수도 있는 건데!"

"그게 먹힌다는 보장 있어?"

"그, 그건."

"미안하다. 우린 김용기한테 한번 걸어 볼래."

그렇게 순식간에 김용기의 패로 합류한 짐꾼들.

김용기가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어떡하냐, 친구들이 다 이쪽으로 왔는데. 아무튼 너도 생각 바뀌면 찾아오라고, 일감 넉넉히 챙겨 줄 테니까. 너, 힘 하나는 좋잖아? 하하!"

그렇게 짐꾼들을 이끌고 우르르 몰려간 김용기.

강찬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닌데."

강찬수가 씁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보다, 저 사람 위험해질 텐데 경고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랬다간 김용기의 뒷배를 봐주고 있는 각성자들에게 자신도 찍힐지 모르는 상황.

잠시 고민하던 강찬수가 결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폭력은 옳지 않아. 일단 쪽지라도 몰래 건네줘서 경고를······."

그런데 그때.

"오호?"

뒤에서 들려오는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강찬수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뭐, 뭐야!"

"나한테 경고를 해 준다고?"

그 사람은 바로 방금까지 대화의 주제였던 한지혁이었다.

"제법 마음에 드는 친구네?"

"예, 예?!"

"사실 아까부터 다 듣고 있었는데요."

찬수는 경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저 멀리 있던 사람이 그걸······."

"다 방법이 있죠. 아무튼 나 가지고 함정 파는 걸 제가 참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전부 조질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지혁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쪽 말하는 게 기특해서 왔어요."

"기, 기특?"

"알바해 볼 생각 없어요? 내가 그렇지 않아도 일손이 딸려서 짐꾼 알바 구하려던 참이었거든. 시급도 제법 넉넉하게 주려고 하는데."

한지혁의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한 강찬수가 말했다.

"알바요? 그게 무슨······."

그렇게 알바에 대해 이야기해 준 한지혁.

그 이야기를 모두 들은 강찬수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 정말입니까? 그런 거라면 다른 짐꾼들도 모두 환영할 겁니다!"

"그쵸? 내가 고민해 봤는데 이게 제일이더라고. 그런데 설마 다른 짐꾼들이란 게, 방금 나 조지겠다고 떠난 저 사람들은 아니겠죠?"

찬수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최근 일을 계속 못 해 돈이 부족해서 그런 거지, 나쁜 사람들은 아닙니다! 이 조건이라면 제가 설득 할 수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흠. 원래 내 뒤통수치는 놈은 절대 안 봐주는데······."

한지혁이 한숨을 살짝 내쉬며 말했다.

"하아. 내가 또 돈 없는 그 서러움은 잘 알지."

"예?"

"그쪽 얼굴 봐서 한 번 더 기회 줄게요. 대신······."

5화

"데려왔어?"

"예."

그러자 김용기를 따라온 짐꾼들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김종혁네 팀이었어?"

E급 각성자인 김종혁이 꾸린 팀으로, 이 근방 최하급 게이트에선 나름 먹어 주는 각성자 팀.

그 팀이 바로 김용기의 뒷배였던 거다.

"김종혁네 팀이라면 소환 계열 각성자 하나 손보는 건 일도 아니겠네."

"맞아."

짐꾼들이 웅성거리는 사이 김종혁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대충 들어서 알겠지만, 오늘 그놈을 손볼 거야. 솔직히 말해서 나도 써 봤는데··· 엄청나게 싸고 편하더라고, 짐꾼이 왜 필요한가 싶을 정도로."

김종혁의 말에도 조용히 침묵하는 짐꾼들.

"하지만 나는 좀 상황이 다르잖아? 여기."

김종혁이 김용기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이 친구가 나한테 적잖게 벌어다 주는데, 나라도 나서서 짐꾼의 권리를 지켜 줘야지. 안 그래?"

그러자 짐꾼들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우리도 먹고살아야지요!"

김종혁이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주 좋아. 그럼 오늘 계획을 알려 줄게. 좀 있으면 그놈이 집으로 갈 거야. 퇴근 시간은 아주 칼이더라고. 아무튼 너희가 그때 맞춰서 찾아가 항의를 해. 노골적으로, 그놈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그렇게 놈이 도발에 넘어와 손을 쓰려는 순간 증거 사진을 찍은 다음 우리가 나서서 손을 봐 주지."

짐꾼들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오!"

"그렇게 되면 해골 놈이 먼저 손을 쓴 거니까 문제될 것도 없겠네?"

김종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대신 우리도 나선 값은 받아야겠지? 상납금은 기존 15퍼센트에서 25퍼센트로 올린다."

그러자 조용히 있던 김용기가 놀란 표정을 말했다.

"자, 잠시만요. 그런 이야기는 없었지 않······."

하지만 그런 김용기의 항의는 김종혁이 싸늘한 표정으로 볼을 툭툭 두드리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럼 각성자를 손봐 주는데 공짜인 줄 알았어?"

"그··· 그건······."

"그놈한테 일감 전부 빼앗길래, 아니면 그냥 조용히 25퍼센트 내고 다른 짐꾼들보다 일감 많이 받을래. 선택해."

말은 선택이라 하지만 여기서 거부하는 순간 결과는 뻔했다.

결국 김용기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아. 우리 용기는 말이 통해서 좋다니까? 좀 있다 보자고들."

그렇게 종혁 팀이 사라지자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던 짐꾼들이 나서며 말했다.

"정말이야? 정말 25퍼센트를 떼 간다고?"

"세금 내고 거기에 25퍼센트까지 떼 가면 우리보고 뭐 먹고 살라고!"

그러자 김용기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말했다.

"닥쳐!"

김용기가 가쁜 숨을 내쉬며 저 멀리 리클라이너 소파에 누워 게임을 하고 있는 한지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모두 저놈 때문이야. 저놈만 아니었어도 우리 수입이 줄어들 일도, 이렇게 부탁을 할 일도 없었다고!"

"하지만······."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으면 아예 다른 지역으로 가든가! 그쪽은 또 그쪽대로 텃세 없을 것 같아!?"

결국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조용히 입을 닫은 짐꾼들.

그렇게 짐꾼들을 진정시킨 김용기가 충혈된 눈으로 한지혁을 노려보며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하자고. 우리 밥그릇은 우리가 지켜야지!"

*

어느덧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며 날이 저물어 가자 한지혁이 해골 몇 마리를 소환해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김용기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준비해!"

그렇게 짐꾼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김용기의 말을 기다리던 그때.

"잠깐! 잠깐!"

갑자기 이들 앞에 나타난 강찬수.

김용기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뭐야?"

"다들 진정해. 이건 절대 해답이 될 수 없어!"

"그럼 뭐가 해답인데?"

강찬수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저분이랑 따로 만났어!"

그러자 김용기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뭐? 그사이에 벌써 쪼르르 달려가 전부 까발렸다고!? 이 배신자 새끼가!"

"아니! 나는 다른 말은 안 했어! 그냥 부탁한 거야! 우리 먹고살 길도 열어 달라고! 그랬더니 방법을 찾아 주겠다 했어!"

그러자 찬수와 함께해 오던 짐꾼들이 눈에 띄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힘이 난 찬수가 말했다.

"분명 같이해 나갈 방법이 있는 거야! 아무리 소환수가 있어도 결국 혼자잖아! 기계도 결국 관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거고!"

그때 한 짐꾼이 말했다.

"그 방법이 뭔데?"

그러자 강찬수가 흠칫하더니 말했다.

"그, 그건 아직 말해 줄 수 없어."

그러자 김용기가 한껏 비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이가 없네. 그럼 대충 해 준다는 말만 듣고 지금 그만두라는 거야? 그걸 어떻게 믿어?"

"···물론 당장 뭔가 말해 줄 수 없는 건 맞아. 하지만 저분, 절대 나쁜 분이 아니었어. 충분히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찬수는 동요하는 짐꾼들을 보며 말했다.

"정 못 믿겠으면 나를 믿고 한 번만 더 참아 줘. 나 강찬수야. 알잖아!"

그러자 짐꾼들이 흔들리며 말했다.

"찬수는 믿을 수 있지."

"나 힘들 때 돈 빌려준 것도 찬수인데······."

일부 짐꾼이 동요하자 김용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알긴 뭘 알아! 정말 뒈지고 싶어서 그래?!"

하지만 그런 김용기의 협박에도 결국 찬수와 함께해 오던 짐꾼의 일부가 찬수 쪽으로 가며 말했다.

"그래. 찬수 말이면 믿어 봐야지."

"돈이 너무 급해서 내가 뭐라도 씌었었나 봐. 미안하다, 찬수야."

그들의 말에 찬수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잘 생각했어! 다들 나랑 같이 가자! 응?"

그 모습에 결국 참지 못한 김용기가 말했다.

"좋아, 빠진다? 인정해 주지. 하지만 이것만 기억해 둬. 저놈을 처리한 다음 이곳에 너희 일자리는 없을 거야. 내가 확실하게 장담해 줄게."

그러자 주저하던 일부 짐꾼들이 결국 찬수를 외면한 채 조용히 침묵한다.

그렇게 불만을 잠재운 김용기는 찬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이 새끼··· 끝까지 날 방해해?"

"방해는 네가 다른 짐꾼들에게 한 거고."

"젠장."

찬수는 계획을 말하지 않았다 했지만, 그걸 온전히 믿지 못한 김용기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움직인다!"

모든 짐을 정리하고 산을 내려가기 시작한 한지혁.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급해진 김용기가 말했다.

"오늘 마무리하지 못하면 하루 공쳤다며 더 과하게 요구할 텐데······."

결국 김용기는 짐꾼 몇 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랑 너! 이 자식들 지켜보고 있어. 핸드폰에 손대기만 해도 바로 나한테 알려 줘."

그러곤 찬수를 향해 주먹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만약, 만약 놈한테 우리 계획을 일러바쳤다면··· 저놈 다음은 너야."

그러자 찬수가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너처럼 그렇게 거짓말하는 놈이 아니야."

평소 마음에 안 들던 놈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신뢰가 간다.

본인의 장담대로 최소한 찬수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가자!"

그렇게 김용기가 몇 명만을 남겨 둔 채 한지혁에게 몰려가자 노선을 갈아탄 짐꾼이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말해 줘야 되는 것 아니야? 방법을 찾아 준다 했다며. 만약 잘못되기라도 하면······."

"지금 걱정해야 할 건 저 사람이 아니야."

"뭐?"

"하아. 그러게 그냥 내 말 듣고 빠졌어야지."

강찬수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심하게만 안 했으면 좋겠는데······."

*

"흠~. 흠~. 흠~."

콧노래를 부르며 산을 내려간다.

"족발이나 시켜 먹을까?"

게임과 영화 그리고 먹는 게 내 유일한 낙.

"그래, 오늘은 족발에 소주다. 크. 역시 이게 진리지."

그렇게 룰루랄라 산을 내려가던 그때.

"잠깐."

내 앞을 막아서는 짐꾼 무리.

"음?"

나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설마 나에게 항의를 하러 온 짐꾼들인가!"

내 말에 김용기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강찬수 이 개자식··· 역시 전부 말했구나!"

"어? 그 친구가 왜? 그 친구는 나한테 부탁한 것밖에 없는데? 그래서 내가 알바로 써 주겠다고 했고."

내 말에 잠시 당황한 김용기가 말했다.

"아, 알바?"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어버버하는 김용기.

"음······."

원래는 적당히 장단 맞춰 주면서 약 올릴 생각이었는데, 그냥 빨리빨리 하지, 뭐.

나는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바인딩."

그러자 짐꾼들이 모두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잡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대로 굳어 버린다.

애초에 스켈레톤을 약한 척 보이게 만들고 내 힘을 드러내지 않은 건 주목을 받아 귀찮아지는 걸 피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시비 걸어오는 놈들 시선까지 걱정하며 살기는 더 귀찮단 말이지.

그냥 차라리 화끈하게 손봐 주고 나만 봐도 오금이 저려 아무 말도 못 하게 만드는 쪽이 훨씬 쉽고 간단하다.

"일루 와."

그러자 짐꾼들이 아니라 카메라를 들고 숲에 숨어 있던 각성자 팀 전원이 굳은 자세 그대로 허공을 날아 내 앞에 살포시 착지한다.

나는 몸이 굳어 있는 각성자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슬슬 감이 오지? 뭔가 잘못 건드렸다는 걸."

뭔가 필사적으로 말하려는 듯하지만 풀이라도 발린 듯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눈알만 굴리는 각성자와 짐꾼들.

"그러게 찬수 씨가 눈치 줬을 때 알아서 빠졌어야지. 난 기회 줬다? 거절한 건 너네고."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우리 재미있게 놀아 볼까?"

*

다음 날.

"가, 감사합니다!"

강찬수의 설득에 넘어온 짐꾼들이 알바로 써 준다는 말에 연신 감사 인사를 한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내 말에 사람들이 갑자기 내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음?"

뭐지?

써 준다는데 왜 그래?

그때 강찬수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게··· 그, 사람들한테 뭘 하신 겁니까?"

"설득했죠, 다시는 그런 나쁜 마음 먹지 말라고."

물론 물리와 마법을 동반한 설득이지만.

놈들이 인적 드문 위치를 잘 잡아 준 덕에 눈치 보지 않고 미리 준비한 뼈들로 내 마력을 듬뿍 받은 스켈레톤을 만들어 두들겨 팼지.

거기에 더해 환영 마법도 살짝 섞어 아마 그놈들은 대규모 언데드 군단에 둘러싸여 몇 시간 동안 처맞은 기억만 있을 거다.

그래도 나름 동향 사람에 대한 배려로 회복 마법도 써 주며 마지막엔 잘 달래서 돌려보냈다고?

"어제 일 물어보니 겁에 질려 아무 대답도 못 하던데······."

잘 달랜 게 효과가 있나 보네.

"설득이 잘 먹혔나 보죠. 아무튼 뭐, 지금 그게 중요한가요? 알바하러 온 거예요, 그게 궁금해서 물어보러 온 거예요?"

그냥 대충 넘어가자고.

둘러대기도 귀찮으니.

"아,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시급은 기존보다 조금 더 저렴한 2만 5천 원."

그러자 짐꾼들은 티 내지는 않았지만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대신 일감이 부족한 게 아니라 일감이 넘쳐 나 시간이 없어서 일을 더 못 하도록 만들어 드리죠."

내가 사람들을 끌어모은 이유는 하나다.

매번 새로운 사람에게 대여해 줄 때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등록해 줘야 하는데, 그걸 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하지만 새로운 목소리를 등록하는 게 아니라, 목소리가 등록된 사람과 스켈레톤을 하나로 묶어 통째로 대여하면?

이미 목소리가 등록된 사람이 각성자 팀과 스켈레톤 사이의 중간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뿐만이었다면 굳이 시급이 비싼 짐꾼을 고용할 이유가 없지.

나는 아공간을 꺼내 내 회심의 네 번째 작품을 선보였다.

"짜잔! 이름하여 6족 보행 운반형 스켈레톤 MK.4! 인간 탑승 기능을 갖춘 최신형 스켈레톤이죠."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알바생들은 이제부터 이걸 가지고 다른 게이트로 가서 일하면 됩니다."

*

"듣자 하니 옆 동네 스켈레톤이 그렇게 좋다며?"

"좋다곤 하더라. 그런데 덕분에 사람이 제법 몰려서 버는 돈은 거기서 거긴가 봐."

"그래? 궁금하긴 하네. 한번 써 보고 싶은데."

"그 사람, 제법 많이 만들 수 있다는 것 같던데, 혹시 알아? 이쪽까지 진출할지."

그렇게 각성자들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그때.

"어?"

한 각성자가 저 멀리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뼈로 만들어진 6족 보행 바구니를 보고 놀라며 말했다.

"저거 그 스켈레톤 아니야?"

"맞네? 설마 진짜 여기도 진출한 거야?"

"그런데··· 뭔가 듣던 거랑 미묘하게 다르다?"

분명 3쌍의 다리가 달린 바구니라 들었는데, 그 바구니 뒤쪽에 작은 좌석이 달려 있고 그 좌석에 한 남자가 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때, 타고 있던 남자가 각성자 팀을 가리키자 각성자 팀을 향해 걸어오는 스켈레톤.

그렇게 각성자 팀 앞에 도착하자 스켈레톤에 타고 있던 사람이 말했다.

"혹시 짐꾼 구하셨나요?"

"어··· 아직 안 구했는데······."

그러자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희 조를 이용해 보실 생각 없으신가요? 저희 조는 조장인 저와 운반형 스켈레톤 두 대, 이렇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격은 모두 합쳐 시간당 12만 원. 짐꾼 4명을 고용할 돈으로 짐꾼 하나와 대당 짐꾼 3명 이상의 몫을 할 수 있는 스켈레톤 2대를 대여하실 수 있는 셈입니다."

그러자 한 각성자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가격은 나쁘지 않지만··· 사람이 끼어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 그냥 스켈레톤만 대여하면 안 됩니까?"

그러자 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조는 오직 조 단위로만 대여가 되어서."

"그래요?"

그 말에 잠시 상의를 하기 시작한 각성자 팀.

"가격은 나쁘지 않은데, 굳이 사람 한 명분 돈 더 내 가며 빌려야 하나? 왠지 바가지 쓰는 기분인데."

"그래도 경험 삼아서 해 보자. 궁금하지 않아?"

"그건 그렇지."

결정을 내린 각성자 팀이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하죠."

그러자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거라 약속드리겠습니다!"

*

그저 궁금했던 스켈레톤을 써 보기 위해 사람 하나 없는 셈 치고 대여하기로 한 각성자 팀.

하지만 게이트에 들어서고 본격적으로 사냥에 임하자 그 생각은 바로 뒤집혔다.

"흣차."

사냥이 끝나자 스켈레톤조 조장이 바구니에서 내려와 몬스터의 사체를 1호기에 싣는다.

그렇게 사체를 모두 싣고는 1호기의 바구니 뒤쪽에 뚫려 있는 두 개의 구멍에 다리를 한쪽씩 넣고 앉은 다음 단검을 꺼내 든 조장.

"바로 출발하시면 됩니다. 갈무리는 이동하면서 하면 되니까요."

일반적으로 각성자들은 사냥이 끝나면 짐꾼들이 몬스터 사체 갈무리를 끝낼 때까지 기다린다.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야 더 많은 양을 들고 돌아갈 수 있으니 비싼 부위 위주로 골라내기 위해서.

그렇기에 운반형 스켈레톤이 환영받았던 거다.

가격 대비 적재량이 훨씬 우월해서 굳이 그런 귀찮은 작업 할 것도 없이 사체를 통째로 실으면 되니까.

그런데 여기에 사람이 한 명 더 더해지니 그렇지 않아도 효율적이던 운반형 스켈레톤들이 더욱더 효율적으로 변했다.

슥. 스윽.

이동 중임에도 마치 서스펜션이라도 장착한 것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는 운반형 스켈레톤 위에서 몬스터를 갈무리하는 짐꾼.

그렇게 한 마리를 모두 해체한 조장이 필요 없는 내장 부위는 지나가는 길에 대충 버려 버리고 돈이 되는 부위와 저렴한 부위를 나누어 2호기에 적재한다.

그리고 이어서 바로 다음 사체 작업에 돌입한 조장.

각성자 하나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좋은데?"

짐꾼 여럿을 두는 이유는 짐도 짐이지만 갈무리에 들어가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여럿이 한꺼번에 작업을 해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끝내고 다음 몬스터를 찾아 나서니까.

그런데 그 갈무리 과정을 이동하면서 하다 보니 기다릴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여유 시간이 많아 혼자서 느긋하게 여러 명 몫을 해 버리는 조장.

그야말로 버리는 시간 없이 최고의 효율을 선보이는 스켈레톤조였다.

그때 몬스터를 발견한 각성자가 외쳤다.

"몬스터!"

그러자 갈무리를 하던 조장이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몬스터 출현. 덮어."

조장의 말에 1호기가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덮개로 바구니는 물론 조장까지 전부 한 번에 덮어 버린다.

순식간에 조장의 안전이 확보되자 각성자 팀은 느긋하게 사냥을 했고, 그렇게 사냥이 끝나자 조장이 덮개를 해제한 뒤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바로 싣겠습니다."

"아까 하던 거는요?"

"전투하시는 동안 모두 끝냈죠."

덮개 안에서 보호받으며 마지막 남은 몬스터의 갈무리까지 훌륭하게 완수해 낸 스켈레톤조 조장.

그야말로 1분, 1초도 허비하지 않는 완벽한 동선이었다.

그 말에 각성자가 엄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최고네요."

"그렇죠?"

"내일도 사냥해야 하는데, 미리 예약 좀 해도 됩니까?"

"물론이죠! 언제든 환영입니다!"

그렇게 사람과 스켈레톤이 힘을 합쳐 탄생한 새로운 스켈레톤조는 그 압도적인 효율성과 가성비를 무기로 몬스터 부산물 산업의 맨 밑바닥을 천천히 잠식해 나가기 시작했다.

6화

운반형 스켈레톤 작동 교육을 받은 짐꾼들을 스켈레톤과 조 단위로 묶어 대여하는 새로운 운영 방식.

이 방법은 그야말로 효과적이었다.

명령어로만 움직이는 스켈레톤의 한계를 사람과 조합하여 완전히 상쇄했으며, 동시에 나에게 불만을 쌓아 가던 짐꾼들이 오히려 내 앞에서 절절매도록 만들었으니까.

"저도 스켈레톤 배정해 주세요!"

"제가 먼저!"

시급이 2만 5천 원인 대신 안전하며, 동시에 쉴 틈 없이 일할 수 있어 안정적으로 고수입을 가져가는 조장들.

당연히 조장들은 주변 짐꾼들의 부러움을 샀고, 그만큼 많은 짐꾼들이 너도나도 스켈레톤을 배정 받기 위해 안달이 날 수밖에.

그때 강찬수가 나서 짐꾼들을 제지하며 말했다.

"기다리세요! 그렇게 하신다고 먼저 배정해 드리지 않습니다! 진정들 하세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강찬수는 특별히 신규 조장 교육 및 총괄 관리를 맡기며 내 직속 직원으로 배치했다.

일은 스켈레톤이 하고 영업과 스켈레톤 운영은 조장이, 그리고 그 조장들을 총괄 관리 하는 강찬수까지.

이제 나는 정말로 앉아서 스켈레톤만 주구장창 만들면 돈이 들어오게 된 거다.

그때 강찬수가 나를 보며 말했다.

"사장님, 오늘은 몇 명인가요?"

"4개 만들었으니까 2명이요."

그때 강찬수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2명 말입니까? 그럼 누구를 뽑아야······."

"그런 건 알아서 해요."

내 말에 짐꾼들이 너도나도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요! 저!"

"저 진짜 잘할 수 있습니다! 시급 2만 원만 받을게요!"

"뭐?! 2만? 야! 그건 선 넘었지!"

그렇게 과열 양상으로 치닫자 강찬수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은 제가 아는 지인 중 괜찮은 사람으로 뽑았는데, 이제는 저도 정말······."

"흠······."

하긴.

강찬수 본인이 사장도 아닌데, 아무리 많은 권한을 준다 한들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보자······."

가장 트러블이 적고 모두가 납득할 만한 선발 방법.

애초에 짐꾼들 이력서라 해 봐야 거기서 거기다.

즉,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구별해 낼 만한 판별력이 없다는 말.

그럼 어설프게 사람을 비교해 가며 모두의 불만을 사느니, 그냥 아예 게임으로 완전 랜덤하게 뽑지 뭐.

안 뽑힌 사람은 억울하겠지만, 그래도 다음 기회를 노리며 도전할 수 있을 테니까.

"오늘 7일이니까, 7월생들 앞으로 나와요."

그러자 환한 표정으로 걸어 나오는 짐꾼들.

나는 강찬수를 보며 말했다.

"신분증 확인해 봐요."

"예."

그렇게 강찬수가 신분증을 통해 7월생이 맞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는데, 한 짐꾼의 신분증을 보더니 말했다.

"8월생으로 되어 있으신데요."

"그건 양력 생일이고, 음력은 7월 맞습니다."

아··· 다음엔 뽑기 상자라도 만들어서 가지고 와야 하나.

나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양력이고 자시고, 신분증에 적힌 것만 카운트. 출생신고가 어쩌고저쩌고도 전부 안 됩니다."

그러자 서 있던 짐꾼 중 일부가 은근슬쩍 다시 뒤로 돌아 나간다.

그렇게 모든 확인을 마친 강찬수가 확인이 완료되었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가위바위보로 갑니다. 안 내면 진 거, 가위바위보!"

그러자 필사적으로 가위바위보를 하기 시작한 짐꾼들.

처음엔 계속 무승부가 났지만, 이내 하나둘 나가떨어지고 결국 마지막으로 남은 최후의 3인.

"자, 다시. 가위바위보."

그러자 드디어 최종 우승자가 가려졌다.

"이야호!"

그러자 패배한 두 짐꾼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마 마지막 한 자리를 두고 둘이 가위바위보 하면 안 되냐는 뜻이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아예 기회조차 없던 사람들이 억울하잖아?

"나머진 탈락. 이번엔 7에 3 더해서 10월생. 3을 더하는 이유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숫자라서."

막무가내식 선출이지만 여기 있는 짐꾼 중 나에게 뭐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10월! 저 10월입니다!"

"무조건 이긴다!"

다시 강찬수가 신분증 검사를 마치고 시작된 가위바위보.

"으아!"

"이겼다!"

한참의 승부 끝에 드디어 10월 출신 최종 승자가 가려졌다.

"자. 오늘은 이걸로 끝."

할 말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지만 결국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가는 짐꾼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나쁜 기분은 아니네."

내 스켈레톤들이 이렇게 진심 어린 환영을 받는 건 오랜만이니까.

"좋아. 계속 이렇게 가자."

*

사업은 그야말로 순항 그 자체다.

나는 내가 원하던 대로 가만히 앉아 스켈레톤만 만들면서 돈을 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감질나는데."

세론에서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언데드에 대한 공포가 확산될까 우려해 조심스럽게 스켈레톤을 늘려 왔다.

하지만 전투용이 아니라서 그런지 뭔지, 막상 보니 사람들 반응이 제법 좋단 말이지.

"막 뿌리면 안 되나?"

마음 같아선 마구잡이로 만들어서 돈도 확확 벌고 싶다.

하지만 그 정도까지 규모를 확장하면 필연적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될 거다.

조사해 보니 보통 소환 계열 각성자들은 많아야 소환수의 수가 열을 넘지 않는데, 나는 이미 수십 개를 넘어섰으니까.

그런데 여기에 갑자기 하루에 수십 개씩 추가하며 수백, 수천을 운용하면?

지금보다 더 압도적인 주목을 받게 될 게 분명했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인데······."

잠시 집을 거닐며 고민하던 나는 순간 멈칫하며 말했다.

"잠깐."

내가 이걸 왜 고민하고 있지?

"어차피 조 단위로 돈을 벌면 주목을 안 받으려야 안 받을 수가 없잖아."

조 단위 재산을 지닌 사람은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부자다.

그런 부자가 주목을 안 받는다는 게 애초에 말이 안 된단 말이지.

"내가 너무 소심했나?"

귀찮은 게 싫어서 주목을 피할 생각만 했는데, 내 최종 목표를 생각하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던 거다.

천천히 스켈레톤을 늘려서 나중에 주목을 받는 거나 지금 갑자기 폭발적으로 늘려 주목을 받는 거나 뭐가 다른가.

게다가 특이한 운반 수단을 선보이며 이 근방에선 이미 제법 유명세를 떨치는 상황.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그래. 그냥 뿌리자."

나는 그냥 내가 가진 능력을 제공하고 그 대신 돈을 버는 것뿐이잖아.

운반형 스켈레톤이 많아진다고 해서 언데드 군단처럼 전투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내가 주목받기를 꺼려 했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내가 꿈꿔 온 평화로운 은퇴 생활에 지장이 있을까 걱정해서일 뿐.

그런데 어차피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굳이 고민할 필요가 뭐 있나.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들어 박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사장님.

"내일부터 매입량 늘려 주세요."

-정말이십니까?

박 사장이 행복해하며 말했다.

-얼마나 늘릴까요. 두 배든 세 배든 말씀만 하시······.

"지금 내 잔고가 3,200이니까 3,200만 원어치!"

-···예?

수십 개의 운반형 스켈레톤을 대여하며 지금 내 하루 수입은 천만 원을 넘어선 상황.

이제부터 버는 돈을 모조리 뼈에 투자해 사업을 대대적으로 키운다.

빨리 돈 벌어서 빨리 은퇴해야지!

-가, 갑자기 말입니까?

하루 평균 200만 원어치를 사던 내가 갑자기 16배로 주문을 늘렸으니 당황할 수밖에.

"예. 일단 3,200이고, 앞으로 수익금 나오는 족족 전부 뼈 사는 데 모조리 투자할 거니까 빨리 움직이세요!"

내 말에 잠시 침묵하던 박 사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

-감사합니다! 제가 최고로 싱싱한 것들만 모아 가져가겠습니다!

그렇게 박 사장과의 통화를 마친 나는 눈을 감고 말했다.

"뼈 매입은 박 사장에게 맡겼으니 됐고, 또 뭐가 필요하지? 음··· 회사?"

버는 금액이 늘어나면 그만큼 세금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기회에 아예 회사를 차려서 제대로 하는 거다.

"좋아. 그럼 창고 하나 임대해서 회사 차리고, 본격적으로 하루에 수십 개씩 뿌리면······."

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이건 하책이야."

전쟁에서 소수의 부대를 계속 순차적으로 보내는 건 나를 각개격파 해 달라 비는 꼴밖에 안 된다.

차라리 대규모 군대를 모아 확 치고 가야 오히려 손해도 적은 법이지.

이것도 마찬가지다.

주목은 피할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생길 귀찮은 일들을 최대한 줄이려면 조금씩 조금씩 뿌릴 게 아니라 한꺼번에 왕창씩 때려 박아야지.

상상도 못 한 압도적인 물량에 오히려 상대가 넋이 나갈 정도로.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래. 한 방에 밀어 넣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