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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어비스넷 (3).
6.
어비스의 안개가 골치 아픈 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들이 마시는 순간 정신이 무너진다는 것.
두 번째는 인간이 가장 의존하던 눈이 제구실을 못한다는 것.
그런 이유로 어비스의 헌터들은 눈보다 귀로 대상을 느끼는, 낌새를 느끼는 훈련을 했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시각에 아주 의존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눈이 더 중요해졌다.
"수준급 헌터가 되면 얼핏 보이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상황 파악이 가능했으니까."
안개라고 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였다.
"그러니까 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어비스의 헌터들은 밤에는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비스의 안개 속에서 밤은 그야말로 칠흑, 뻗은 자신의 손조차 보이지 않는 장님의 세상이었으니까.
특히 이 부분은 관광객들에게도 적용됐다.
헌터는 몇 번이나 언급했다.
"밤에는 입 막고 코 막고 자세요."
밤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건 헌터들 입장에서도 수습이나 대처가 쉽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코골이 있으신 거 확인되면 그 순간 관광은 끝입니다."
더불어 관광객의 필수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코를 골지 않는 것이었다.
막연한 조건이 아니었다.
어비스의 관광객들은 관광을 하기 전에 다양한 검사를 받았다. 그중에는 수면검사도 있었다. 코를 걸거나 잠꼬대를 하거나, 잠버릇이 안 좋거나 그러면 관광이 불가능했다.
당연한 조치였다.
밤중에 코골이 때문에 관광객 본인과 헌터들이 몬스터에 전멸하면 그보다 더 웃기고, 참혹한 일도 없을 테니까.
특히 밤은 더더욱 위험했다.
"밤중에는 몬스터들도 안개가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본래대로라면 이레귤러 현상 지역, 그러니까 오아시스 지역에 몬스터들은 얼씬도 하지 않았지만 밤은 달랐다.
몬스터들도 눈이 멀어서 오아시스 지역에 저도 모르게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다.
여하튼 어비스의 밤은 여러모로 위험했다.
관광객이었던 이영후는 그 사실을 귀가 따갑게 들었다.
'까라면 까야지.'
하지만 그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김지운이 말했으면 따르면 될 일.
물론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비단 그만 그런 건 아니었다.
강현중 중사와 고강수의 걱정도 적지 않았다.
그 둘 입장에서도 김지운의 죽음은 정말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상황인바.
그래서였다.
"필요한 걸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했고, 그런 그들의 도움에 김지운은 기꺼이 응했다.
"필요한 물건들이다."
김지운이 메모장을 건넸다.
그리고 그것을 읽기 시작한 강현중 중사와 고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존식, 그래 식량이 중요하지.'
'잠금이 풀린 스마트폰.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좀비 유인용으로 쓴다고 했지?'
'따뜻한 패딩과 방한 용품들. 하긴, 지금 밖의 추위는 상식을 초월할 테니까.'
'보조배터리들. 확실히 가서 뭐가 필요해질지는 모르니까.'
항목 하나하나가 생존에 꼭 필요해 보이는 것들이었으니까.
'응?'
'어?'
그러나 마지막 항목에서는 둘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딸기방 케이크?'
케이크라니?
'네 조각?'
심지어 김지운은 한 조각도 아니고, 무려 네 조각이나 되는 케이크를 요구했다.
의문은 있었지만 반문은 없었다.
일단 케이크는 제법 있었다. 그리고 케이크는 비축 식량에서 우선순위가 낮기도 했다.
장기보관이 여러모로 힘들었으니까. 특히 전기가 끊긴 지금은 더더욱.
물론 이 추위라면 외부에 보관하는 것도 의미가 있었지만, 고기류도 아니고 케이크 같은 제품들은 유통기한을 넘겼을 때, 잘못 먹었을 때 치러야 할 대가가 작지 않았다.
해서 일단은 준비해 두었고, 그렇게 준비된 것을 본 김지운은 완벽한 준비에 만족했다.
"고맙다."
'케이크도 확실히 있군.'
특히 김지운은 준비된 케이크에 만족했다.
'오랜만이야.'
그에게 케이크는 보통 의미가 아니었으니까.
그는 언제나 임무를 진행할 때 디저트를, 특히 케이크를 준비해 두었고 임무를 끝난 후에 그것을 즐겼다.
헌터가 되기 전에도 그랬고, 된 후에도 그랬다.
그게 그의 루틴이었고 동시에 징크스였다.
그때도 그랬다.
김지운은 어비스의 헌터에서 은퇴하기 전에, 6개월 동안 어비스를 헤매다 돌아왔을 때도 준비해 둔 케이크를 먹었다.
맛이 가서 배탈이 났지만, 그럼에도 먹었다.
살아있기에 느낄 수 있는 맛이었으니까.
동시에 이것을 위해서 돌아올 수 있었으니까.
즉, 이건 의지였다.
'꼭 돌아온다.'
김지운은 살아서 이곳, 지하 1층으로 돌아오겠다는 의지.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김지운과 이영후, 그들 앞에 밤이 내려왔다.
겨울밤, 불빛 한 점 찾아보기 힘든 지독한 어둠이 깔렸다.
그 어둠 앞에서 김지운과 이영후는 화재용 마스크를 썼다. 일반 KF94 마스크와는 비교할 수 없는 명줄이 생긴 셈.
그러나 그 사실에 안심할 순 없었다.
이제부터 김지운과 이영후, 그 둘이 마주해야 할 세상은 그들이 알던 세상이 아니었으니까.
"다녀오겠다."
일단 이것을 끝으로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었다.
어비스의 방식은 지구의 방식과 너무나도 많이 달랐으니까.
김지운이 이영후를 데리고 간 건 이런 부분 때문이었다.
'여기서 가장 믿을 건 숙련자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은 어비스를 경험한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훈련의 문제가 아니었다.
김지운이 헌터가 됐을 때는 아니었지만, 그 후에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힌 이후부터는 헌터든 관광객이든 어비스에 들어가기 전에는 무조건 훈련을 받았다.
그럼에도 실전에서 베드 엔딩을 맞이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어비스란 공간은 그런 공간이었다.
안다고 해서 마주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그것을 견딜 수 있어야 살 수 있는 곳이었지.
이영후에게는 그 본능이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쉽지 않았다.
이제부터 김지운과 이영후가 마주할 세상은 그들이 봐온 어비스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으니까.
'이동한다.'
그렇게 김지운과 이영후가 바리게이트를 넘고, 잠겨있던 문을, 지하 1층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을 열고 나갔다.
후우우웅!
일단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혹독한 추위였다.
아침부터 상식 밖이었던 추위는 밤이 되자 더더욱 상식 선을 넘어서고 있었다.
'으어어어!'
이영후는 터져 나오려는 신음소리를 간신히 삼켜야 했다.
더 무서운 것은 이토록 추운데도 불구하고 안개는 더더욱 자욱해진 상태라는 점이었다.
어비스의 안개가 가지는 특징이었다.
혹한의 추위에도, 작열하는 더위에도, 쏟아지는 소나기에도, 휘몰아치는 눈보라에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어비스의 안개는 사라지지 않았다.
'차라리 추운 게 낫다.'
그렇기에 김지운은 이 혹한을 반겼다.
'이 정도 추위면 몬스터들도 쉽사리 나서지 않는다.'
일단 몬스터들도 너무 추운 경우에는 행동을 꺼렸다. 밤이라면 더더욱. 야행성 몬스터나 추위에 강한 몬스터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두 가지가 합쳐진 경우는 많지 않았다.
'어비스 좀비 역시.'
결정적으로 이 추위에는 어비스 좀비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사실 어비스 좀비가 김지운 입장에서는 제일 골치 아픈 존재였다.
몬스터는 피를 많이 흘리거나, 부상을 입으면 저마다의 방식으로 반응을 보였다.
특히 숨 쉬는 몬스터들은 숨을 막으면 그 효과가 즉시 왔다.
하지만 어비스 좀비는 달랐다.
'그 이해불가능한 놈들도.'
일단 어비스 좀비는 먹지 않아도 생존이 가능했다. 이건 정말 비상식적인 일이었다.
또한 어비스 좀비는 숨이 막혀도 죽지 않았다. 물속에 집어넣어도 몸뚱이가 불어 터질지언정 꺼내면 살아 움직였다.
팔다리가 잘리는 건 물론 내장, 심지어 심장이 적출되어도 움직였다.
멈출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뇌를 파괴하는 것뿐.
'추위에는 몸이 굳는다.'
그러나 이 불가해의 결정체인 어비스 좀비들도 혹한의 추위 앞에서 몸뚱이가 얼어붙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반응을 하더라도 여유가 있다는 의미.
물론 김지운이 지금 이 밤중에 나온 가장 큰 이유는 그거였다.
'여기에 거미줄이 있다면.'
자신에게는 레이더가 있다는 것.
그렇게 김지운이 염력을 이용해서 거미줄을 펼쳤다.
반경 5미터짜리.
그 상태에서 그 둘이 계단을 밟고 올라 지상 1층에 도달했다.
그리고 호텔이 있는 곳을 향해, 큰 도로가 있는 곳을 향해 그들은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자 그들은 볼 수 있었다.
'맙소사.'
도로 위의 지옥을.
말 그대로였다.
오늘 연말을 맞이해 엄청난 차량이 몰린 도로 위는 그야말로 자동차의 무덤이 되어 있었다.
차들이 서로 부딪친 채 가늠할 수 없는 광경을 보이고 있었다.
삐잉, 삐잉, 삐잉!
그나마 멀쩡한 차량들이 경고음과 함께 비추는 라이트에 비춘 그 광경 앞에서 이영후는 물론 김지운도 이를 꽉 물 수밖에 없었다.
더 최악은 그 차량들 사이였다.
으어어어!
어비스 좀비들이 동상처럼 선 채로 섬뜩하기 그지없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런 어비스 좀비의 숫자는 어마어마했다.
이상할 건 없었다.
문제가 터지는 순간 이곳 여의도에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밖으로 대피했을 것이다.
연말을 추억하기 위해 모인 수십만 명의 인파들이.
삐익, 삐익, 삐익!
'차 경보음 때문이구나.'
그렇게 어비스 좀비가 된 그들은 주인 잃은 차량들이 내는 쉴 새 없는 그 소리에 몰려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김지운과 이영후는 그곳을 뚫고 가야 했다.
'이거 불가능할 거 같은데? 차라리 지하 연결 통로가 낫지 않으려나?'
여기서 이영후는 차선책을 생각했다.
김지운의 생각은 달랐다.
툭!
그는 이영후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렸다.
신호였다.
이대로 바로 도로를 가로질러 호텔을 향하겠다는 신호.
그 신호에 이영후는 이제 머릿속에 괜한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젠장, 이래 죽나 저래 죽나.'
고민 대신 각오와 함께 이영후가 김지운을 따라 이동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서.
'마라톤이다, 마라톤. 시간 따윈 염두에 두지 마. 그냥 하나에 집중하는 거다, 하나에.'
그렇게 기나긴 여정을 생각하던 이영후, 김지운이 그런 이영후의 어깨를 두드렸다.
툭툭툭!
세 번.
'응?'
그 신호에 이영후가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어?'
그러자 볼 수 있었다.
'버, 벌써?'
어느새 도로를 갈로 질러 목적지인 호텔 건물 앞에 도달했음을.
'어, 어떻게?'
오랜 시간이 걸리리라 예상했는데 이토록 빨리 도달할 줄은 상상도 못한 바.
그러나 김지운은 달랐다.
애초에 빨리 올 자신이 없었으면 나오지도 않았을 터
'시간이 없다.'
결정적으로 김지운은 이번 파밍에서 다른 무엇보다 시간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호텔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김지운과 이영후는 올라가야 했으니까.
'27층까지 가려면.'
이 호텔의 27층까지.
그것도 엘리베이터 따위가 아니라 계단을 통해서.
더군다나 그건 빨리 올라가고 싶다고 해서 올라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비스 안개가 어디까지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최대한 호흡을 조절해야 했다.
그 사실을 이영후도 알기에 그는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그렇게 둘이 호텔 안으로 들어갔고, 이내 로비를 거닐었다.
으어어어!
로비 안 역시 어비스 좀비로 가득 차 있었고, 그렇기에 둘은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이윽고 계단으로 올라가는 문 앞에 도달하는 순간, 그 순간 김지운은 처음으로 걸음을 멈췄다.
이제부터 중요했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보다 더 먼저 해야 할 게 있었으니까.
'어비스 좀비를 빼야 한다.'
계단에 있는 가장 골치 아픈 것들을 제거하는 것.
그때였다.
삐익, 삐익, 삐익!
호텔 로비 밖에서 소리가 났다.
김지운, 그가 이미 들어오기 전에 알림을 맞춰 놓은 스마트폰이 내는 소리였다.
으어어어!
그 소리에 어비스 좀비들이 미친 듯이 반응했고, 그 틈을 노려 김지운과 이영후가 방화용 문을 열었다.
철컥!
하나를 열자, 곧바로 새로운 방화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서 김지운은 바로 두 번째 방화문은 열지 않았다. 방화문에 귀를 가져다 댔다.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기에.
'없다.'
그러나 이내 낌새가 없음을 확인하는 순간 김지운은 방화문을 열었다.
그러자 계단이 드러났다.
어둠으로 가득 찬.
그 어둠 속에서 김지운이 천천히 계단을 밟았다.
계단을 밟고 내려갔다.
지하 1층으로.
그리고 지하 2층으로. 그 후에 더 아래로.
위가 아닌 아래로.
그 후에 지하 4층 부근에 도달했을 때 김지운은 가방에서 준비해 온 것을 꺼냈다.
확성기를.
그것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김지운이 다시 계단을 타고 1층으로 왔다. 구리고 방화문이 닫히지 않도록 잡고 있던 이영후를 대신에 방화문을 잡은 상태에서 그 상태에서 김지운이 눈가를 가볍게 찌푸렸다.
염력을 사용해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시작됐다.
우에에에에엥!
확성기가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김지운과 이영후가 그대로 방화문을 받았고, 이내 그들은 들을 수 있었다.
우두두두두두두!
계단을 채우고 있던 어비스 좀비들이 쓰나미처럼 내려오는 소리가.
으어어어어!
두두두두두!
그야말로 지옥에서나 들을 법한 소리였다.
심지어 소리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쿵!
방화문 너머에서 일어난 소리에 호텔 로비에 있던 어비스 좀비들도 달려들었다.
쿵! 쿵! 쿵!
방화문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 상태에서 김지운과 이영후는 숨 죽인 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5분이 흘렀을 때.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을 때 김지운이 이영후에게 신호를 줬다.
'이제 올라간다.'
호텔 등정이 시작됐다.
'심박수가 늘지 않도록.'
여기서 핵심은 천천히 오르는 것이었다.
무려 27층을, 화재용 마스크도 쓴 채 올라간다?
무리를 하는 순간 심박수가 치솟을 터.
물론 어비스 좀비가 그 심장소리를 듣고 덤벼든다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어비스 안개에 중독이 되어서 심박수가 오르는 건지 아닌지 구분하기가 애매해진다는 것.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김지운은 딱히 걱정할 게 없었다.
'이영후는.'
걱정되는 건 이영후.
'잘 따라오겠지.'
그러나 의외로 여기서 김지운은 이영후를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체력 스탯이 9포인트나 되니까.'
그의 체력이 김지운과 비슷했으니까.
놀랄 일은 아니었다.
어비스의 관광객들은 기본적으로 관광을 하기 전에 일정 수준 이상의 체력을 달성해야 했다.
물론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고, 권고 혹은 장려 수준이지만 관광객들은 알아서 체력을 키워왔다.
체력이 부족해서 죽으면 억울한 건 헌터가 아니라 관광객, 본인이었으니까.
덕분에 가는 길은 순조로웠다.
대부분의 어비스 좀비는 끌어내린 상태, 물론 전부는 아니었다.
으어어어!
층이 높아질수록 소리를 듣지 못한 어비스 좀비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없었다.
스으으!
치실로 만들어낸 거미줄로 어비스 좀비의 존재를 확인한 김지운은 망설이지 않았다.
퍼걱!
오크의 도끼를 이용해 단숨에 어비스 좀비의 두개골을 쪼갰다.
망설임 없이.
이미 어비스 좀비가 된 자들은 결코 원래 상태로 돌아올 수 없었으니까.
오히려 어비스에서는 좀비가 된 이들을 보내주는 게, 그게 예의였다.
그 누구도 저런 이해 불가능한 괴물이 된 채 평생 방랑하고 싶어 하진 않았으니까.
퍼억!
그렇게 김지운의 도끼질과 함께 그들이 층을 올랐다.
'아.'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김지운과 이영후의 발걸음이 멈췄다.
목적지에 도달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보였으니까.
'안개가 사라졌다.'
계단을 가득 채웠던 안개는 마법처럼 사라진 것을.
마치 이 이상으로는 올라오지 않는 것처럼, 안개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괜한 착각이 아니었다.
헌터들은 어비스의 안개를 그저 평범한 안개로 여기지 않았다. 그것을 어비스의 가장 강력하고 위험한 몬스터로 여겼다.
달리 말하면 안개가 올라오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는 의미, 여기부터는 안전지대였다.
그 사실을 알기에 김지운과 이영후는 바로 마스크를 벗었다.
"후우."
조심스럽게 신선한 공기를 폐부에 집어넣었다.
그 상태에서 숨을 골랐다.
모든 것을 진정시켰다.
놀란 감각을, 육체를 그리고 정신을.
이윽고 김지운과 이영후가 고개를 들어 층수를 가늠했다.
김지운이 손가락으로 말해줬다.
'24층이다.'
안개가 올라오지 못하는 것은 24층부터라고.
그 사실에 이영후의 표정이 굳었다. 이 정도 높이라면 지상에서 100미터, 그 이상이라는 의미.
즉, 여의도에 퍼진 어비스 안개의 높이가 무려 100미터를 훌쩍 넘긴다는 의미였다.
아득한 일.
그러나 그 아득함에 현기증을 느낄 틈은 없었다.
'이제 시작이다.'
긴장의 끈을 풀 수는 없었으니까.
어비스 좀비 때문은 아니었다. 어비스 좀비는 절대 안개, 그곳을 넘어오지 않으니까.
'어비스 좀비는 위협적이지만, 생존자는 더 위협적이다.'
경계하는 것은 생존자였다.
이제부터 생존자의 영역이었으니까.
하물며 이곳은 12월 31일, 여의도 중심가 호텔이었다. 그야말로 호텔이 만석일 터.
그만큼 호텔의 생존자들도 어느 때보다 많을 터였다.
그래서였다.
27층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섣불리 문을 열지 않았다.
낌새를 느꼈다.
조심스럽게.
김지운이 방화문에 귀를 가져다 댔다.
그리고 이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 김지운이 문을 열었다.
철컥!
열자 등장하는 또 방화문, 김지운은 그 방화문에서도 낌새를 가늠했고 이내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이영후는 준비했다.
'생존자가 덤벼들 수도 있어.'
전투를.
그런 각오 속에서 문이 열렸을 때 그 둘을 반긴 것은 아주 지독한 적막감이었다.
'응?'
예상 밖의 상황에 놀라는 이영후에게 김지운은 스마트폰으로 보여줬다.
[모두 방에 숨었다.]
'아!'
이 상황에서 투숙객들이 내린 선택이 무엇인지를.
어찌 보면 그게 맞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외부도 외부이지만 살아남은 생존자들 역시 위협적으로 느껴질 터.
그런 상황에서 호텔 문을 꽉 잠그고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신경을 끄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김지운과 이영후 입장에서는 기꺼운 상황이었다.
둘이 목적대로 움직였다.
'2703호.'
방을 찾았고, 받은 카드키를 이용해 문을 열었다.
조용하게.
이윽고 그 둘이 방으로 들어갔다.
그 후에도 소란은 없었다.
이영후와 김지운은 최대한 숨을 죽인 채 호텔방을 확인했다.
그쯤이었다.
이영후의 발걸음이 멎었다. 큰 유리창 앞에서.
달빛 아래에서 여의도의 모습이 보였다.
자욱한 안개로 뒤덮인 모습이.
그리고 그 안개는 여의도에서 멈추지 않고 그야말로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펼쳐져 있었다.
서울 전역이 안개로 덮인 느낌이었다.
꿀꺽!
예상 보다 더 아득한 광경에 이영후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를 깨운 것은 다름 아니라 김지운이었다.
툭!
김지운이 이영후의 어깨를 두드린 후에 턱짓을 했다.
'아!'
그렇게 김지운이 턱짓을 한 곳에는 가방 하나가 있었다.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여행 가방이.
그리고 펼쳐진 그 가방 안에는 지름 50센티미터 정도 되는 접시 모양의 안테나를 비롯해 여러 가지 전자 장비들이 있었다.
그제야 이영후가 정신을 차렸다.
그가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제부터는 그의 영역.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영후는 능숙한 솜씨로 위성 통신 장비를 세팅했다. 사실 어려울 것도 없었다. 초보자도 할 수 있을 만큼 장비는 단순했으니까.
문제는 세팅이 아니었다.
과연 이것이 작동하는가, 그 유무.
그쯤에서 이영후가 자신의 노트북을, 롤스로이스가 파괴되기 전 차에서 가지고 온 노트북을 꺼냈다.
그리고 몇 번의 조작을 하는 순간 이영후가 김지운을 바라보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작동합니다!'
그쯤에서 이영후는 괜히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는 헛수고를 하지 않았다.
밖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세상 꼴이 말이 아님을.
무엇보다 지금은 어비스를 모르는 자들이 떠드는 이야기를 눈과 귀에 담을 필요가 없었다.
'답은 어비스넷뿐이다.'
이영후, 그가 스마트폰을 꺼냈고,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연결했다.
'일단 안전망 좀 깔아놓고.'
타닥타닥!
이후 몇 가지 프로그램을 더 켜놓은 이영후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김지운을 바라봤고, 그 시선에 김지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접속합니다.'
그 순간 이영후가 스마트폰의 어비스넷 앱을 활성화시켰다.
그와 동시에 곧바로 그들의 앞에는 동영상 하나가 재생됐다.
그 영상에는 한 사내가 있었다.
매우 젊은 사내가.
그 사내가 말했다.
[지금 생존자들에게 상황을 전달합니다. 어비스가 세상을 덮쳤습니다. 때문에 이 시간부로 어비스넷은 생존자들을 위한 커뮤니티로 전환됩니다. 생존을 위한 모든 정보를 공유해주십시오.]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이상 삼족오 클랜의 마스터 이도준이었습니다.]
그렇게 영상이 끝나고 게시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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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아이템 뿌립니다 (1).
1.
[삼족오 클랜 마스터 이도준이었습니다.]
사내는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숙였다.
[삼족오 클랜 역시 어비스넷을 통해 상황과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사내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 눈빛으로 말했다.
[부디 살아남으십시오.]
영상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애초에 소리를 켠 상황이 아니었기에, 자막으로 보는 것이었기에 적막감은 그대로였다.
그러나 분위기는 분명 달라졌다.
김지운과 이영후가 침묵에 잠겼다.
그 침묵을 깬 건 이영후였다.
"보······."
그는 놀란 눈으로 김지운을 바라보며 무어라 말을 하려고 하다가 그대로 제 입을 막았다.
일부러 소리도 끄고 영상을 봤는데 이영후가 소리를 낸다면 그보다 우스운 일은 없을 터.
정신을 차린 이영후가 노트북에 메모장을 켠 후에 말했다.
[삼족오 클랜 이도준 클랜 마스터라니!]
제 놀란 심정을 텍스트로 보여줬다.
[맙소사, 한국 최고의 클랜 아닙니까? 세계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최강의 클랜! 절대 외부에 얼굴 노출도 안 한다고 알고 있는데 이렇게 얼굴을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상황의 심각함보다 삼족오 클랜의 마스터를 보게 됐다는 사실에 놀람이 더 큰 모양.
[대장도 아시죠? 삼족오 클랜의 마스터?]
이어진 그 이영후의 물음에 김지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를 리 없었다.
'살이 좀 빠진 걸 보면.'
긴 인연은 아니지만, 꽤 깊은 인연을 맺었던 이였으니까.
'고생 좀 했나 보군.'
그리고 은퇴하기 전, 어비스와 모든 것을 끊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얼굴이기도 했으니까.
물론 지금 이 순간 김지운은 회상에 젖지 않았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즉, 김지운이 잠시 침묵에 빠진 것은 이도준과의 추억을 되새김질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상황이 바뀌었으니까.
'어비스넷이 어떤 곳인지는 모르지만.'
조금 전까지 김지운은 어비스넷을 의심했다.
애초에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었을뿐더러 헌터와 관광객들이 활동하는 곳이라면 좋은 의도로 만든 곳이라고 해도 좋게 돌아가지 않으리라 확신했으니까.
어설프게 어비스넷을 이용했다가 역으로 추적되어서 처리될 가능성을, 함정이 될 가능성을 높게 봤다.
특히 이 어비스넷을 만든 건 클랜들일 게 뻔했다.
김지운 입장에서는 더더욱 믿을 수 없는 족속들이었다.
클랜은 야심이 넘쳤고, 야망이 넘쳤으며, 그것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이 만든 단체였으니까.
지금 이 상황을, 아포칼립스란 재앙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써먹고도 남을 자들이었으니까.
'이도준이 움직였다면.'
그러나 이 순간 김지운은 그 의심을 조금은 접었다.
'악의는 없다.'
그가 아는 이도준은 야망이 넘치지만 그렇다고 도의를 버리는 부류가 아니었으니까.
김지운이 어비스에서 만난 인연 중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다섯 명 중 한 명이었으니까.
그를 의심한다면 세상 모든 것을 의심해야 했고, 그럼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맞았다.
'그러니까 얼굴을 드러낸 거겠지.'
지금 이도준이 나선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다른 클랜 마스터가 나섰다면 어지간한 헌터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세상이 터져가는 와중에 개수작을 부리려고 하네, 응, 그래도 안 속아, 라고.
하지만 이도준은 달랐다.
그는 김지운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헌터들이 인정하는 어비스의 클랜 마스터였다.
그가 나선 이상 백퍼센트 신뢰를 아니더라도, 어비스넷을 꽤 신뢰하게 됐을 터.
'됐다.'
그쯤에서 김지운과 이영후의 눈앞에 로딩을 지나 게시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건 매우 심플한 게시판이었다.
그냥 하얀 화면에 로그인칸이 있고, 게시판이 있고, 그 게시판에 저마다 카테고리를 단 글들이 올라와 있는 식.
인터넷 태동기에 보던 그 단순하기 그지없는 게시판이었다.
그것을 본 김지운이 이영후를 바라봤다.
원래 이게 어비스넷이었냐고.
그 시선의 의미를 캐치한 이영후가 메모장에 글을 썼다.
[원래는 이런 느낌이 아니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 가까운 형식이었습니다.]
[일부러 게시판 형식을 바꾼 것 같습니다.]
[데이터 용량을 낮추기 위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위성 통신을 하면 통신 속도가 빠르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서버 상황도 제한적일 겁니다. 고화질 영상이나 사진이 노출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는 디자인을 한 것 같습니다.]
이 어비스넷이 변한 이유를.
그 후에 몇 번의 클릭을 거듭한 이영후가 말했다.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 됩니다. 로그인을 해서 올릴 수도 있고, 비로그인으로도 올릴 수 있습니다. 사진도 첨부가 가능합니다만, 고화질 사진은 불가능합니다. 게시글 카테고리는 일단 정보, 잡담, 거래 항목이 있습니다.]
이 심플한 게시판에 대한 설명을.
그것을 본 김지운은 이해했다.
최악의 상황에서 어떻게든 머리를 맞대기 위한 무대를 만들었음을.
'이도준답군.'
그리고 그게 김지운이 아는 이도준의 방식이었다.
어쨌거나 김지운 입장에서는 희소식이었다.
이 어비스넷을 통해서 지금 일어난 세상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그게 희망일지, 더 큰 절망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뭐든 간에 김지운에게는 희소식이었다.
김지운이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적어 이영후에게 보여줬다.
[여의도에 관련된 정보를 모아주도록. 부족하면 서울까지.]
이영후가 고개를 끄덕였고, 바로 게시판 탐구를 시작했다.
그사이 김지운은 방 안을 헤집었다.
이곳은 CIA요원이 작전을 위해 숙박하는 숙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 더 나올 수도 있었으니까.
실제로 몇 가지가 나왔다.
침대 아래, 옷장 안, 커튼 안쪽에서 몇 가지 작은 가방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가방 안에는 여러 개의 여권들이 그리고 한국 돈과 달러, 엔화, 위안화가 나왔다.
사진 뭉치들도 나왔다.
'엔화랑 위안화가 있는 걸 보면 중국이나 일본으로 도망칠 생각도 하고 있었군.'
그쯤에서 김지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결국 핵심은 다른 방에 있겠지만.'
김지운, 그가 이영후의 어깨를 한 번 두드린 후에 문으로 가더니 이내 문을 열었다.
그러자 보이는 문, 바로 넘어 호텔방을 향해 김지운이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새로운 카드키로 문을 열었다.
'이 냄새.'
문이 열리는 순간 김지운은 바로 알 수 있었다.
'화약 냄새군.'
한때는 너무나도 익숙했고, 한동안은 잊었던 냄새.
그리고 다시는 맡을 수 없을 거 같은 냄새.
그래서 잊었으리라 생각했던 냄새.
'탄약의.'
그러나 냄새를 맡는 순간 김지운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과거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은퇴를 하기 전의 기억들을.
물론 이번에도 추억에는 젖지 않았다.
그 대신 객실 내에 위치한 금고 앞에 섰고, 그 금고 앞에서 데이비드에게 받은 번호를 입력했다.
그러자 금고 안에 잠들어 있던 글록17과 탄약이 보였다.
탄약은 36발이었다.
그 사실에 김지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꽤 큰 임무를 준비했군.'
미국에서는 정말 보기 쉬운 총이었고, 36발은 연습용으로도 취급하지 않을 만큼 적은 양이었다.
그러나 한국이라면 달랐다.
총기 휴대가 매우 힘든 한국에서 권총과 이 정도 되는 탄약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일부러 방을 따로 잡아서 거기에 총을 보관할 정도, 혹여 들키더라도 둘러댈 명분이라도 내세우려고 할 정도였다.
사실 그래서 한국에서 활동하는 정보기관 요원들은 총을 휴대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총을 구비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나게 중요한 임무를 진행했다는 의미.
물론 김지운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들이 뭘 준비했든 관심이 없었고, 지금은 솔직히 의미도 없었다.
이 몬스터가 넘치는 세상, 어비스의 세상에서는 CIA 자체가 사라졌을 수도 있으니까.
'총을 얻게 될 줄이야.'
중요한 엄청난 무기를 얻었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섣불리 쓸 수 있는 무기는 아니었다.
어비스의 안개에서 총성이 가지는 의미는 결코 작은 게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쉽게 쓸 수 있는 무기도 아니었다.
지독한 안개 속에서 총이 가지는 사거리의 이점은 그렇게까지 크게 발현되지 못할 테니까.
물론 군대가 움직이면 이야기는 달랐다.
그 막강한 화력에는 솔직히 눈 따위는 필요 없었다. 무자비한 포격을 하면 될 터.
'군대랑 접촉하면 더 좋겠지만.'
김지운 역시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지금 군대가 제 역할을 해주기를, 전쟁을 위해 준비한 것들을 몬스터를 향해 토해내기를.
하지만 김지운은 그 가능성을 높게 보진 않았다.
'안개 앞에선 군인도 무용지물이지.'
병기는 강력하지만 그걸 다루는 인간에게는 내성이 없었으니까.
더군다나 화이트존이라면 모를까, 오렌지존 이상부터는 헌터가 아닌 자들 그리고 대비가 안 된 자들은 채 30초도 못 버텼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렌지 클래스만 되더라도 눈이 마주치는 순간, 포효를 듣는 순간 얼어붙으니까.'
그곳을 살아가는 몬스터들에게는 절대적인 위압감이 있었다.
속칭 포스라고 하는 것이.
그것에 범위는 생각보다 넓었고, 매우 위력적이었다.
오렌지 클래스의 몬스터가 내뿜는 포스에 노출되면 헌터가 아닌 일반인들은 쓰러졌다.
옐로우 클래스 몬스터라면 노출되는 순간 매우 높은 확률로 심정지가 왔다.
헌터들도 다를 건 없었다. 레벨이 낮은 헌터 역시 자신보다 강력한 몬스터의 포스에 짓눌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군대가 제 몫을 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였다. 제아무리 강력한 전차라고 해도 그 안에 탄 전차병이 죽으면 제 기능을 못 했으니까.
군대가 대응을 하더라도 지금 당장 섣불리 움직이진 않을 터였다.
여하튼 정리하면 김지운에게는 지금 이 총은 목숨, 그 이상의 값어치가 있었다.
그렇게 총을 챙긴 김지운이 방을 나왔고, 다시 이영후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쯤에서 이영후는 노트북을 닫고, 접시를 챙기고 있었다.
그 후에 스마트폰으로 문장을 보여줬다.
[일일이 찾으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여의도가 들어간 모든 게시판 글들을 복사해서 다운받아놨습니다.]
시간이 금인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어차피 지금 여기서 일일이 상황을 안다고 해서 당장 답이 나오는 건 아니었으니까.
고민과 분석은 돌아간 후에 해도 늦지 않았으니까.
집으로 돌아간 후에.
그러나 그것만큼은 달랐다.
이영후가 스마트폰에 썼다.
[하지만 이건 따로 저장해뒀습니다.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다시 몇 번 터치하고는 이내 사진 하나를 보여줬다.
그것만큼은 꼭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
그리고 그럴 만한 사진들이었다.
그 사진은 4시간 전의 여의도를 찍은 사진이었다.
헬리콥터 혹은 드론으로 찍은 듯 꽤 높은 곳에서 여의도를 전체적으로 찍은 사진.
'안개로 가득하군.'
곳곳에 솟아오른 고층 빌딩들이 아니면 이게 여의도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그 정도로 안개로 가득 찬 사진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여의도만 그런 게 아니었다.
여의도 너머의 한강 부근 그리고 그 너머 역시 끝없이 안개로 가득 차 있었다.
지역 구분이 무색해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을 본 김지운의 표정은 담담했다.
보이는 것은 하얀 안개였으니까.
화이트존, 어비스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위험하지 않은 영역이었으니까.
그래서였다.
스윽!
이영호가 그 사진을 보여주는 순간 김지운의 표정이 굳어진 것은.
'레드존.'
그것은 붉은색 안개로 가득 찬 곳이었다.
'여의도에 레드존이 생겼다.'
화이트존보다 한 단계 위였지만, 그 위험성은 차원이 달랐다.
레드존은 기본적으로 10레벨 이상의 헌터들만이 입장이 가능한 영역이었다.
그리고 헌터들에게 10레벨이란 엄청난 것이었다.
일단 레벨업으로 얻는 능력치 포인트가 40, 이걸 모두 근력에 투자할 경우 50포인트 이상의 근력 스탯을 달성 가능했다.
이쯤 되면 힘부터가 그냥 인간의 수준이 아니었다.
하물며 보통은 이 정도까지 레벨을 올리게 되면 도감을 채우며 얻는 능력치가 남달랐다.
또한 사냥을 통해 얻은 아이템들을 통한 전력 강화 역시 결코 무시할 게 못됐다.
그리고 사냥을 통해 얻은 경험까지.
결정적으로 스킬슬롯이 하나 더 열렸다.
이게 아주 큰 차이였다.
그냥 차원이 달랐다. 야구로 따지면 초등학생 리그랑 고등학생 리그 수준의 차이였다.
정리하면 국회의사당은 당분간은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영역이라는 소리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렌지 존까지.'
레드존은 몇 곳이 더 있었고, 심지어 김지운은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주황색 안개가 뭉쳐 있는 것도 봤다.
거기까지였다.
이 이상 보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건 이 호텔방이 아니라도 가능했으니까.
김지운이 신호를 줬고, 이영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둘이 챙길 것을 챙기고 왔던 길을 돌아갔다. 비상계단 방화문 앞에 섰다.
여전히 복도는 고요했다.
그들의 존재가 들키지 않은 모양 혹은 들켰어도 호텔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애써 외면하는 모양.
달리 말하면 이곳에는 생존자가 있었다.
그 사실에 김지운과 이영후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않았다.
어비스에서 다른 누군가를 걱정하고, 그들을 도와주겠다는 것은 너무나도 오만한 생각이란 걸 잘 알았으니까.
지금은 제 목숨을 지키는 것조차 쉽지 않음을 알았으니까.
그렇게 그 둘이 방화문을 열고, 다시 계단 위에 섰다.
그리고 준비해 온 또 다른 화재용 마스크를 쓴 후에 천천히 내려갔다.
이윽고 3층쯤에 도달했을 때였다.
으어어어어!
바로 밑 부근에서 어비스 좀비의 소리가 올라왔다.
'어?'
그 사실에 이영후의 숨이 잠시 멎었다.
'이거 지하 층까지 내려갔던 놈들 아닌가?'
지하층까지 유인했던 어비스 좀비들이 그 사이 1층까지 올라온 모양.
도망가야 하는 그 둘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일이었다.
어비스 좀비를 다 잡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어떻게 하지?'
그 사실에 고개를 돌려 김지운을 바라보는 이영후.
물론 칠흑 같은 어둠 탓에 보이는 것은 없었다.
대신 김지운은 이영후의 등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깊게.
'5?'
그 후에 숫자 다섯을 써줬다.
'뭐지?'
이영후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신호.
'뭐야?'
그렇게 이영후가 고민으로 시간을 보냈다.
5초를.
그러자 들렸다.
삐익삐익삐익!
김지운, 그가 지하 3층에 배치해 둔 스마트폰이 주어진 역할을 하는 소리가.
으어어어!
그 소리에 어비스 좀비들이 지하로 달려갔다.
그렇게 김지운과 이영후가 1층으로 내려왔다.
'집으로 돌아간다.'
그 둘이 호텔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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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아이템 뿌립니다 (2).
2.
김지운과 이영후, 그들이 다시 백화점 지하 1층으로 돌아왔을 때 지하 1층의 상황은 떠났을 때와 달라져 있었다.
소란이 있었다.
"어? 뭐야?"
생존자가 일으킨 소란이 아니었다.
"도그블린들?"
김지운과 이영후가 없는 사이 백화점 지하 1층으로 도그블린 무리가 습격을 했다.
그 숫자는 무려 서른하고도 세 마리였다.
꽤 많은 숫자였다.
"다 죽었네?"
그 많은 도그블린들이 사체가 된 채 바닥에 너부러져 있었다.
그쯤에서 고강수와 강현중 중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투의 흔적이 역력한 모습으로.
"나가시고 30분 후쯤에 도그블린 무리가 지상 1층을 통해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처리했습니다."
동시에 브리핑을 했다.
"다행히도 부상자 없이 마무리했습니다."
아주 놀랄 만한 브리핑을.
'서른 마리를?'
그 사실에 이영후가 놀란 반응을 보였다.
헌터로 각성한 건 단 둘, 그마저도 아직 레벨도 못 올린 상황이니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상태 아닌가?
그런데도 부상자 없이 잡는다니?
반면 김지운은 달랐다.
'고강수나 강현중, 둘이면 충분하지.'
일단 김지운의 기준으로 고강수와 강현중은 전투에 대한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동시에 전투 경험도 적지 않았다.
'보조까지 있는데.'
더군다나 그 둘만으로 싸우는 게 아니었다.
고강수는 이곳을 관리하는 동안 나름 싸울 수 있는 자들을 무장시킨 상태였다.
그것도 이제는 조잡한 무장이 아니었다.
김지운, 그가 지하 주차장에서 사냥한 오크들이 가진 무기와 방어구들을 이용한 무장이었다.
물론 오크들이 쓰던 물건들을 그냥 쓰기에는 꽤 컸고, 노멀 등급 아이템들로 추가 옵션도 없는 것들이었지만 그래도 무기는 무기였다.
여기에 식칼 등을 이용해 만든 창을 든 이들을 무려 1백 명 가까이 배치해둔 상황.
결정적으로 고강수와 강현중에게는 그게 있었다.
'오크에게 덤빌 정도라면.'
도그블린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오크를 마주하고도 전투 의지를 불태웠다는 경험.
'이제 기죽을 일은 없지.'
그것은 매우 중요한 경험이었다.
소득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둘 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강현중과 고강수가 레벨업을 했다.
도그블린 사냥만으로 가능한 건 아니었다.
강현중의 경우에는 앞서 김지운과 싸우면서 얻은 경험치 덕분이었고, 고강수의 경우에는 오크 한 마리를 잡은 경험치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말씀해 주신 대로 근력에 전부 투자했습니다."
어쨌거나 매우 큰 성과였다.
1레벨과 2레벨, 근력 스탯 4포인트 차이는 엄청난 차이였으니까.
'이제 되겠군.'
이제 김지운 입장에서는 제대로 된 파티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
"수고했다."
그렇게 그 둘에게 인사를 건넨 김지운이 바로 손짓을 했다.
"우리 쪽도 성과가 있었다. 바로 브리핑을 한다. 이영후."
"예!"
바로 무대가 만들어졌다.
이영후가 접시를 세팅했다. 그 모습에 모두가 기대감 어린 시선을 보냈다.
통신이 된다는 것, 그것은 지금 갇힌 그들의 숨통이 트이는 것과 같았으니까.
"아, 젠장."
그러나 그 기대감은 이내 사그라졌다.
"여기서는 안 되네요."
말을 뱉은 이영후가 밖을 바라봤다.
"안개가 방해하는 게 확실합니다."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의 인터넷 기능이 먹통이 된 것은 단순히 통신 장비 문제가 아님을.
"아마 다른 전파 통신도 불가능할 겁니다. 무선 조종 같은 것들. 라디오도 안 되겠죠."
지금 이 어비스의 안개가 주는 공포와 절망은 모두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크다는 것을.
"다운 받아놓길 잘했네요."
그러나 그에 절망하기는 일렀다.
이영후, 그가 보여줬다.
다운 받은 글과 그 글에 첨부된 사진들을.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다름 아니라 여의도 상황이었다. 앞서 김지운과 이영후가 봤던 그 사진들이었다.
여의도가 어비스의 안개로 자욱한 사진들, 마천루 같은 빌딩들도 가슴 언저리만을 내밀고 있고, 여의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국회의사당이라는 무대가 붉게 물든 사진들.
그리고 어렴풋이 보이는 여의도 너머 역시 안개로 뒤덮여 있는 사진들.
그 사진들이 말해줬다.
지금 느끼는 절망은 아직 시작도 한 게 아니라고.
"상황은 보시다시피 나쁘다."
그 절망감 앞에서 김지운이 말했다.
담담하게.
그 표현에 모두의 얼굴이 더 굳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김지운이 이토록 말한다는 것은 정말 상황이 안 좋다는 의미.
'생각만큼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들의 생각과 달리 김지운이 생각하는 지금 상황은 최악보다는 나았다.
당연했다.
'헌터들이 있으면 몬스터는 처리 가능하다.'
현재 모든 헌터들은 김지운처럼 상태창이 초기화된 상태이겠지만, 그들이 쌓은 역량과 경험은 초기화될 수 없었다.
또한 그들에게는 아이템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이곳은 지구였다.
어비스와는 달리 막강한 아이템들이 존재했다.
'조건이 붙겠지만, 총을 쓰게 되면 어비스 때와는 상황 자체가 전혀 달라진다.'
당장 총을 비롯해 드론이나 헬기, 전투기까지.
몬스터를 상대로 절대적이진 않지만, 굉장히 유효한 결과물을 낼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어비스의 헌터들이 수 년에 걸쳐 이루어진 작업을 1년 안에 끝낼 수도 있다.'
아마도 헌터들은 엄청나게 빠른 성장을 하게 될 터.
더군다나 어비스의 안개는 어떤 의미에서 헌터들에게 기회의 무대이기도 했다.
헌터들에게 안개는 살 수 없는 공간이지만, 몬스터들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상위 클래스, 그러니까 레드존의 몬스터는 화이트존에서 오랜 시간 버틸 수 없었다.
일정 수준의 레벨을 달성한 헌터들에게 화이트존은 도리어 안전지대가 된다는 의미.
물론 김지운은 낙관하지 않았다.
'옐로우 클래스만 되더라도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어비스의 몬스터들 역시 모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최악인 것들이 넘쳐났으니까.
'안개부터가.'
당장 레드존만 가더라도 안개의 수준이 차원이 달라졌다.
화이트존처럼 마스크로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김지운이 상황을 그렇게까지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헌터들이 빠르게 몬스터들을 처리하겠고, 그만큼 골치 아파지겠지.'
이제부터 헌터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리란 것.
그건 매우 안 좋은 소식이었다.
김지운은 헌터들을 잘 알았다. 그 본인도 헌터였고, 동시에 꽤 오래 버틴 케이스였으니까.
살아서 은퇴한 몇 안 되는 케이스.
그런 김지운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다. 헌터들 중에 올바른 놈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그건 김지운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헌터가 되기 위한 조건은 어비스에서 살아남을 재능 그리고 어비스란 미친 곳에 자진해서 들어갈 만한 탐욕이었다. 더불어 그 탐욕은 정상적인 탐욕은 아니었다.
그런 헌터들의 눈에 비친 지금 아포칼립스 세상은 끝내주는 대규모 업데이트를 마친 온라인 게임처럼 보일 터.
무엇보다 헌터들은 온갖 제한과 억압 그리고 상실감을 품고 왔었지만, 이제는 그조차 없었다.
그들을 막을 건 없었고, 어비스에서 돌아올 때마다 느껴지는 상실감 대신 이제는 가진 능력을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는 충족감만 남았다.
헌터들이 미쳐 날뛸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
이쯤 되면 오히려 상황이 생각보다 최악이었다.
실제로 김지운이 생각한 최악의 상황은 이 경우였다. 김지운이 어비스넷을 이용했을 때 위치가 들키는 것을 매우 큰 리스크로 생각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헌터는 클랜 단위로 움직이고, 클랜이 이곳을 차지하러 온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떠나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그나마 삼족오 클랜이 나선 게 믿을 구석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삼족오 클랜이 움직였고, 그게 생각보다 상황이 좋다는 의미였다.
삼족오 클랜이 질서를 운운한 이상, 이제부터 헌터들은 선을 넘었을 경우 삼족오 클랜의 눈총을 받을 각오를 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건 헌터들에게 매우 리스크가 큰일이었다.
삼족오 클랜의 눈총을 받은 클랜과 헌터가 어비스에서 어떤 응징을 당했는지, 김지운은 잘 알았으니까.
그 응징을 계획한 이도준, 그보다 훨씬 더 잘.
물론 어떤 상황이 됐건 해야 할 건 하나였다.
'집을 구한 이상, 이제 집을 지킬 힘이 필요하다.'
헌터답게 사냥을 하는 것.
그쯤이었다.
"어, 대장."
다운받았던 글들을 하나씩 읽던 이영후가 갑자기 김지운을 불렀다.
"혹시 모루뱀의 눈이란 걸 아십니까?"
그 말에 김지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모를 리 없었다.
'모루뱀은 내가 최초로······.'
모루뱀, 그린 존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로 놈을 잡기 위해 김지운이 했던 노력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니까.
'놈의 존재는 잘 알려지지 않았을 텐데?'
더불어 모루뱀은 매우 희귀한 몬스터로 만났다는 소문조차 들은 이가 없었다.
사실 헌터나 클랜은 자신들이 사냥한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함구하고자 했다.
희귀하고, 가치 있는 몬스터일수록 더더욱.
별이란 제도가 등장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헌터란 놈들이 뭘 해도 그냥 자기들끼리만 알고 있으니까, 뭐 좀 대단한 걸 공개하면 명예라도 주자, 해서 나온 게 별이었다.
하지만 그 별을 포기하면서까지 정보를 숨기는 몬스터도 있었다.
'삼족오 클랜도 전략 몬스터로 정체를 숨겼다.'
모루뱀이 그랬다.
놈을 잡으면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의 가치가 너무 높아서 삼족오 클랜도 정보를 은폐했다.
그런데 그걸 관광객 출신인 이영후가 말한다?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아니, 그게 그러니까······."
그 의문에 이영후가 대답 대신 보고 있던 노트북을 보여줬다.
그러자 김지운은 볼 수 있었다.
3.
[제목 : 아이템 뿌립니다.]
[작성자 : 최강레이번스]
[내용 : 모루뱀의 눈이라고 유니크 등급 아이템이 있는데, 지금 그게 여의도에 존재한다.
어떻게 구했는지는 묻지 말고, 어떤 아이템인지도 묻지 마. 이 글을 왜 믿어야 하는지도 묻지 마. 이 글 쓰면서도 지금 격하게 후회 중이니까. 그걸 그냥 주는 게.
그래도 어차피 지금 가지지도 못하는 거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가면 나을 것 같아서 위치 공개한다.
누구든 가져가라. 먼저 가져가면 임자고, 가진 사람은 나중에 나보면 밥이나 한 끼 사줘라.]
마치 게임 관련 웹사이트에서나 볼 법한 글.
그야말로 밑도, 끝도 없는 글이었다.
그 글에 달린 댓글들도 마찬가지였다.
ㄴ ㅇㅇ : 이런 상황에서 낚시질을 하는 인간들이 있네.
ㄴ 123 : 인간적으로 지금 시국에 이런 지랄은 좀 그렇지 않아?
ㄴ ㅁㄴㅇ : 지금 인터넷 되는 걸 보면 상황 꽤 좋다는 건데 꼭 이렇게 사람을 놀려야 하냐?
모두가 이 글을 낚시로 여겼다.
ㄴ 술은맥캘란 : 이거 진짜라면 골 때리겠네.
ㄴ ㅇㅇ : 뭐야? 넌? 이거 뭔지 알아?
ㄴ 술은맥캘란 : 궁금해? 궁금하면 맥캘란 18년 한 병. 그거 주면 말해줄게.
ㄴ ㅇㅇ : 미친놈.
ㄴ 술은맥캘란 : 미친놈 아닌데? 미친년인데?
다른 댓글들도 있었지만, 그 역시 그냥 인터넷 게시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댓글놀이에 불과했다.
당연히 이영후도 보는 순간 별 관심이 없었다.
그냥 여의도를 검색해서 나온 글들을 전부 다운로드 하다 보니 찾게 된 결과물일 뿐.
김지운에게 모루뱀의 눈을 아느냐고 질문을 던질 때만 하더라도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대장?"
그러나 노트북을 바라보는 김지운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보는 순간, 그가 케이크를 먹던 것조차 멈추는 것을 보는 순간, 이영후의 표정도 달라졌다.
무언가 있음을.
그쯤에서 김지운이 말했다.
"이게 전부인가? 장소는?"
"아, 잠깐만요."
그렇기에 그 대답이 나오는 순간 이영후는 노트북의 커서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글에 사진 파일이 첨부되어서 사진 파일을 누르면 볼 수 있는데, 이건 그냥 무지성으로 다운받은 거라 그냥 텍스트랑 사진 파일을 통째로 묶여 있어서······ 아, 이거다."
그리고 이내 사진 하나를 띄웠다.
"어?"
그러자 등장한 사진을 보는 순간 모두의 얼굴은 그대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
몰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
반대로 대한민국 국민, 그중에서도 성인이라면 모르고 싶어도 모르기 힘든 것이었다.
"63빌딩?"
사진에 나온 것은 여의도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으니까.
그제야 비로소 이영후는 댓글 반응을 알 수 있었다.
"아, 새끼. 낚시였네. 빌어먹을."
63빌딩을 아는 인간이라면 이 글이 그냥 정말 대놓고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나 김지운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63빌딩을 보는 순간 확신했다.
'확실하다. 여기에 모루뱀의 눈이 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진화 그룹 소유니까.'
삼족오 클랜이 창설할 당시 가장 큰 후원을 하던 기업 중 한 곳인 진화 그룹, 그런 진화 그룹이 소유한 건물이 바로 63빌딩이었다.
더불어 진화 그룹의 회장이 가장 사랑하는 건물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대한민국의 랜드마크 중 하나였으니까.
여하튼 삼족오 클랜은 투자자들에게 기꺼이 투자에 어울리는 대우를 해주었고, 그 대우란 대부분 어비스에서 온 아이템들이었다.
'27층 집무실이 있다.'
그리고 진화 그룹 회장은 63빌딩의 27층에 집무실을 두고 있었다.
27층인 이유는 2와 7이란 숫자가 재물운을 따르게 해준다고 해서, 궁합이 좋다고 해서 그랬다.
물론 여기까지가 진실이었고, 그곳에 아이템이 있을지 없을지는 상상의 영역이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어비스의 아이템은 그 가치 때문에 공개적인 장소에 보관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걸 63빌딩에 보관한다?
하물며 모루뱀의 눈을?
말도 안 되는 일.
'모루뱀의 눈이 수중에 들어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하지만 반대로 그게 사실일 경우의 메리트는 김지운이 보기에 차원이 달라졌다.
그쯤에서 김지운이 말했다.
"이영후, 혹시 63빌딩 사진이 있나?"
"사진이요? 아."
그 말에 이영후가 바로 사진 파일 항목에 들어간 후에 사진 하나를 띄었다.
"여기 있습니다."
새하얀 안개에 가슴 언저리만을 빠끔히 내밀고 있는 63빌딩의 사진을.
'화이트존.'
63빌딩의 사진을 보는 순간 김지운의 머릿속에는 저울질이 끝났다.
"이영후, 63빌딩으로 갈 거다. 혹시 가는 길의 지도를 구할 수 있나?"
"지도요?"
그 질문에 이영후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평소 때라면 정말 어려울 것 없는 일이었다.
스마트폰을 켜서 앱만 작동시키면 여의도를 처음 오는 사람도 완벽하게 찾아갈 수 있는 길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스마트폰은 먹통인 상황.
그리고 고작 큰 도로 하나를 거너는 것조차도 막대한 각오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었다.
결정적으로 지도를 얻는 방법이 제한적이었다.
접시를 통한 위성 통신을 위해서는 안개를 벗어나야만 하는 상태였으니까.
그쯤에서 이영후는 되짚었다.
'내비게이션으로 지도는 여러 번 봤어.'
자신의 기억을.
'얼핏.'
물론 제대로 지도를 본 적은 없었다. 내비게이션을 검색하면서 지도를 세세하게 보는 이들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기억력을 더듬던 이영후가 말했다.
"찾아갈 수 있습니다. 차로이긴 하지만."
"확실한가?"
"예, 자신 있습니다."
그 자신감에 김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영후가 자신한다면 자신은 믿어주면 될 일.
한편 그 둘의 대화를 듣던 강현중과 고강수는 도무지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둘에게 김지운이 말했다.
"63빌딩으로 갈 거다."
그 말에 둘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 표정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 둘에게 고민은 필요 없었다. 그건 김지운의 몫, 그들이 해야 할 건 하나였다.
"예."
명령을 따르는 것.
"당장 출발하는 겁니까?"
그리고 이어진 물음에 김지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전에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가고 싶지만 어비스의 헌터들에게는 원정 사냥에 나서기 전에 꼭 해야 할 게 있었다.
"마무리요?"
"이곳을 노리는 오크놈들을."
여지를 제거하는 것.
"도그블린이 이곳을 내려왔다는 것은 도망쳤다는 의미다."
그리고 징조가 있었다.
"더 강한 존재들에게. 그게 아니면 도그블린들이 안개 밖으로 나올 일은 없으니까."
헌터들이 안개를 두려워하듯이 어비스의 몬스터들 역시 안개 밖을 두려워했으니까.
"오크 무리가 점차 이곳으로 온다는 의미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는 그 이유를 가늠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숫자는 제법 될 거다."
이미 김지운이 잡은 오크의 숫자가 서른 마리가 됐다.
이 정도면 오크 무리들 입장에서도 아주 크나큰 위협으로 여기고 그에 맞는 대응을 할 터.
움직일 수 있는 최대한의 전력을 움직일 터였다.
"운이 좋으면 오십여 마리 안팎, 재수가 없으면 천이 넘을 수도 있지."
서로의 운명을 건 싸움을 하게 된다는 의미.
"그러니까 오기 전에 잡는다."
그런 전투를 김지운은 자신의 집에서 치를 생각이 없었다.
공성전에서 수성이 유리하다고 하지만, 그건 정상적인 인간들의 전투에서의 이야기였다.
그것도 중세시대쯤의 이야기.
몬스터를 상대로는 지하 1층에서 바리게이트를 세우고, 하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무엇보다 포위를 당했을 경우에는 도망친다, 라는 선택지조차 구할 수 없었다.
이러한 설명을 김지운은 굳이 하지 않았다.
"고강수, 강현중."
단지 내밀뿐이었다.
"잘 부탁한다."
자신의 오른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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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아이템 뿌립니다 (3).
4.
어비스의 몬스터들은 크게 두 부류가 있었다.
무리를 이루는 것과 그러지 않는 것.
오크들은 전자였다.
그리고 그건 오크들이 나약하다는 증거였다.
크우, 크우!
2미터가 넘는 덩치가 근육질로 채워진, 그리고 조잡하지만 갑옷과 무기를 두른 그 무시무시한 괴물들을 보면 나약함이란 표현이 어울려 보이지 않았지만 현실이었다.
즉, 오크들은 알았다.
자신들이 나약한 존재임을.
크우!
그렇기에 오크 68마리로 이루어진 오크 무리들은 주변을 잔뜩 경계한 채 움직였다.
바위처럼 뭉친 채.
방심한 틈을 노린다, 그런 건 불가능해 보였다.
크우?
그때였다.
킁킁, 크우!
오크 한 마리가 무언가 냄새를 맡더니 기분 좋은 듯한 소리를 냈다.
이윽고 그 오크 한 마리가 나서서 무언가를 가지고 왔다.
크우!
도그블린의 사체였다. 꽁꽁 얼어붙어서 그냥 돌멩이라고 해도 다를 게 없는 사체.
그러나 도그블린의 사체를 본 오크들의 눈빛에 즐거움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꾸르르르륵!
그도 그럴 것이 오크 무리는 지금 매우 배가 고팠다.
사실 배고픔은 어비스의 모든 것들이 경험하는 일이었다. 굶주림을 버티지 못하는 몬스터들은 애초에 생존이 불가능했다. 오크 역시 하루이틀 굶는다고 죽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문제는 지금 오크들이 있는 곳이 어비스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들은 난생 처음 보는 특이한 세상에 왔고, 이 세상은 도무지 먹을 것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당장 목을 적실 물을 찾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런 와중에 도그블린의 사체가 나왔다?
크어!
심지어 도그블린의 사체는 하나도 아니고 제법 됐다. 스물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오크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경계를 풀고 도그블린의 사체에 손을 댔다.
그러나 완전하게 경계를 푼 건 아니었다.
쿵!
무언가 소리가 들리자, 오크들이 바로 반응했다.
먹던 것을 멈추고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커헝, 커헝, 커헝!
갑자기 들려오는 그 소리에 오크들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걸리기 시작했다.
커헝!
그건 도그블린의 소리였으니까.
동료의 피냄새를 맡고 몰려든 모양.
오크들 입장에서는 식량이, 그것도 따끈따끈한 생고기가 알아서 온 격이었다.
주저함은 없었다.
크우!
오크 중 덩치가 좋은 녀석 한 명이 덩치가 작은 녀석 다섯 마리에게 소리를 질렀고, 그 소리에 덩치 작은 다섯 마리가 두 눈을 부릅떴다.
크우!
그러자 이어진 덩치 큰 녀석의 외침에 다섯 마리가 손에 든 도그블린의 다리를 내려놓고는 그대로 일어섰다.
커헝, 커헝, 커헝!
도그블린의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경계심은 없었다.
오크에게 도그블린 따위는 걸어 다니는 식량에 불과할 따름이었으니까.
더군다나 들리는 숫자는 기껏해야 열 마리도 채 되지 않아 보였다.
오크 혼자서도 처리 가능한 수준.
그렇기에 경계심 따위는 없이 소리가 난 곳으로 다가간 오크 무리는 볼 수 있었다.
커헝, 커헝, 커헝!
작고 네모만 물체에서 도그블린의 소리가 나오는 것을.
크우?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사실에 오크들이 놀라는 순간, 그 순간이었다.
휘익!
무언가가 오크들의 목을 휘감았다.
꽈악!
그리고 그것은 단숨에 오크들의 목줄을, 숨통을 조였다.
크엑!
그 갑작스러운 옥죄임에 제대로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는 오크 다섯 마리들.
그런 오크 다섯 마리들에게 안개를 헤치고 세 명이 등장했다.
저마다 손에 도끼를 든 채.
후우, 후우, 후우.
화재용 마스크를 쓴 채.
그렇게 등장한 이들은 잽싸게 오크들의 뒤로 다가간 후에 놈들의 도끼를 휘둘렀다.
놈들의 무릎 부근을 향해서.
퍼억!
그렇게 휘두른 도끼가 살과 근육을 찢고, 뼈에까지 닿았다.
끄르르르!
비명이 터져야 할 정도로 깊은 상처였지만, 숨통이 막힌 오크들은 비명 대신 얼굴이 터지려고 할 따름이었다.
물론 오크들은 마냥 당하지만 않았다. 숨통이 막혔어도 몸부림은 칠 수 있는 법.
그들이 몸부림을 치고자 했다.
달라붙는 인간놈들을 내쫓으려고 했다.
하지만 인간들은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한 번의 도끼질을 마치고는 그대로 물러났다.
그쯤이었다.
크우!
다른 오크들이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동료들을 확인하러 왔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끄륵끄륵!
다리에 상처를 입은 채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내뱉고 있는 동료들을.
그 순간 오크들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뿐이었다.
오크들은 쓰러진 동료들을 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상처를 치료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그럴 능력도 없었을뿐더러 알아서 살아남는 것, 그게 어비스의 규칙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지금 오크들이 다친 곳은 다른 어디도 아닌 다리였다.
팔이 잘렸으면 다른 한 손으로 돌이라도 던질 수 있겠지만 다리가 잘리면 아무 쓸모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치료할 때도 아니었다.
크우!
주변에 있는 위협을 경계할 때.
그쯤에서 놈이 움직였다.
크르르!
3미터를 훌쩍 넘기는 덩치, 오크 무리 중에 가장 거대한 덩치를 가진 녀석이.
다른 오크들과 달리 붉은 눈을 가진 녀석이.
이 오크 무리의 우두머리인 놈이 성큼성큼 쓰러진 부하들을 향해 오더니 이내 등허리에 차고 있는 도끼를 집어 들었다.
꽤 큰 도끼였으나, 3미터 덩치를 가진 오크가 들자 마치 손도끼처럼 보일 따름.
그런 손도끼로 우두머리 오크는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진 오크의 목덜미를 내리쳤다.
콰직!
단숨에 부하들을 처치했다.
그리고는 이내 소리쳤다.
크어어!
경고였다.
이런 어수룩한 수작에 당하지 말라는 경고.
다들 정신 바짝 차리라는 경고.
빠아앙!
그때 오크들의 앞에서, 자욱한 안개 너머에서 아주 강렬한 클랙슨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오크 대장의 눈빛이 달라졌다.
크어어어!
소리를 내질렀다.
빠아아앙!
그에 대응하듯 클랙슨 소리가 났다. 더 크게.
빠아아앙!
빠아아앙!
심지어 이번에는 세 개였고, 그 사실에 오크 대장이 이를 꽉 물더니 그대로 도끼를 하늘 높이 들었다.
그 후에 팔을 내리면서 소리가 난 곳을 도끼로 겨누었다.
크르!
그러면서 짤막한 소리를 내뱉는 순간, 그 순간 오크 무리들이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크어어어!
총공세를 시작했다.
예외는 하나였다.
크어어!
지휘를 하는 우두머리만은 달려들지 않았다.
겁쟁이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
무리를 이루는 것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손발이 잘리는 게 아니라 머리를 지키는 것이었으니까.
어비스를 경험해 본 헌터라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당연히 그도 알고 있었다.
스윽!
우두머리 오크의 등 뒤에 위치한 무수히 많은 차량들, 그 차량 중 하나인 벤츠 S클래스에서 조심스럽게 내리고 있는 사내.
'역시.'
김지운, 그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예상대로군.'
그렇게 등장한 김지운, 그가 어렴풋이 보이는 오크 대장의 머리를 게슴츠레 바라봤다.
그러자 움직였다.
올가미가.
그러나 그건 피아노줄로 만들어진 올가미가 아니었다.
등산용 로프였다.
사람의 몸뚱이가 매달려도 거뜬히 버티는 로프!
꽈악!
그러한 로프 올가미가 그대로 오크 대장의 목덜미를 휘감았고, 그 순간 준비된 차량이 소리를 냈다.
위이이잉!
테슬라 모델 S 플레드!
초반 가속력으로는 그 어떤 슈퍼카들을 무시하는 그 차량이 전력을 다해 달렸다.
오크 대장의 목을 휘감은 올가미를 꼬리에 매단 채로.
크어어억!
그 갑작스러운 힘에 오크 대장이 그대로 뒤로 넘어지고는 거기서 끌려가기 시작했다.
크르르를!
그러나 오크 대장은 다른 오크들과 달랐다. 일단 목의 두께도, 근육도 남달랐다.
그리고 힘도 남달랐다.
놈은 끌려가는 와중에도 자신의 숨통을 조인 올가미를 풀기 시작했다. 이미 손가락은 들어간 상태였다.
사실상 숨통이 어느 정도 확보된 상태였다.
질식사를 할 일은 없다는 의미.
물론 이 역시 김지운이 예상한 바였다.
그렇기에 준비했다.
크르르르!
테슬라 모델 S에 질질 끌려 자신의 앞을 지나가는 오크 대장을 향해서 김지운이 총을 꺼내들었다.
타앙!
그러자 총성이 울렸다.
그런 총알은 단숨에 오크의 오른 눈알을 파고 들었다.
타앙!
타앙!
이후에도 두 번 더 들렸다.
그러나 총상은 한 곳뿐이었다.
오른쪽 눈알뿐.
그 찰나의 순간, 저항하고, 몸부림치고, 끌려가는 오크를 상대로 김지운은 단 한 점만을 사격했다.
놀라운 사격술이었다.
그러나 김지운은 감상에 젖지 않았다.
그에게는 딱히 대단한 게 아니었으니까.
또한 김지운에게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김지운은 그저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그러자 들렸다.
[붉은 눈의 오크를 처치했습니다.]
[붉은 눈의 오크가 도감에 등록됩니다.]
[근력이 2포인트 상승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우두머리의 죽음을 알리는 소리가.
'이제 사냥을 할 수 있겠군.'
그리고 머리 잃은 졸개들을 상대로 전투가 아닌 사냥을 할 때가 왔음을 알리는 소리가.
5.
어비스에서 무리를 짓는다는 것은 대개는 나약함의 증거였다.
그렇기에 무리 지어 다니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겁이 많았다.
그렇기에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는 다른 무엇보다 명령을 따르는 것을 중요시 했다.
명령에 대한 확실한 복종이 없다면, 나약한 것이 강력한 것에 덤비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으니까.
달리 말하면 우두머리를 잃는 순간 무리는 놀라울 정도로 무기력해지고는 했다.
해서 어비스의 헌터들은 말했다.
머리를 잡을 자신이 없으면 무리를 사냥하지 말라고.
김지운, 그가 오크 무리를 사냥하고자 할 때 핵심으로 잡은 것도 바로 그거였다.
우두머리를 잡는 것.
김지운이 펼친 수작들은 모두가 그것을 위한 수순이었고, 김지운은 우두머리를 잡아냈다.
그 후의 오크들은 더 이상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아니었다.
크우우우!
그저 겁에 질려 도망치는 고깃덩이일 뿐.
물론 그렇다고 무작정 덤벼들어서 잡을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
물소무리는 사자를 보면 겁에 질려 도망치지만, 멋모르고 물소무리에 덤벼든 사자들은 사체조차 찾을 수 없을 만큼 짓뭉개지는 것처럼, 도망치기 시작한 오크는 죽이는 건 도리어 더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김지운은 사전에 지령을 내렸다.
지령 하나, 올가미에 걸린 오크에게만 접근할 것.
지령 둘, 오크의 하체만을 노릴 것.
지령 셋, 큰 출혈이 보이면 망설이지 않고 물러날 것.
상처만 줄 수 있다면, 그 이상 무리할 이유가 없다고.
'다리를 다치면 잘 못 움직인다.'
특히 김지운이 강조한 건 기동력을 뺏는 것이었다.
일단 기동력을 뺏는 건 어비스에서도 매우 유효한 방법이었다. 다리가 멈춘 오크는 굳이 무리해서 접근할 필요도 없이, 먼 거리에서 활이든, 하다못해 돌이든 뭐든 던지면 됐으니까.
또한 출혈은 가장 확실한 사냥법이었다. 피를 흘리는 모든 것들에게 출혈은 시한폭탄의 버튼을 누른 것과 같았으니까.
'이 추위라면 더더욱.'
결정적으로 오크들이 등장한 곳은 밀림이나, 숲, 황무지 따위가 아니었다.
본 적 없는 자동차와 건물들이 즐비했으며, 그 사이로 이가 떨릴 만한 혹한의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큰 출혈이 있는 상태로 몇 분만 지나도 사실상 시체나 다름 없는 꼴이 됐다.
그럼 그때 잡으러 오면 됐다.
[오크를 처치했습니다.]
그렇게 김지운 파티가 오크 사냥을 마쳤다.
물론 쉬운 것은 아니었다.
추위는 오크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 김지운 파티에게는 어비스의 안개라는 추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페널티가 있었다.
언제 좀비가 될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 마스크를 바꿔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김지운 파티는 해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달콤했다.
그건 엄청난 성과였다.
'2레벨이나 올랐다!'
일단 모두의 레벨이 올랐다.
이영후를 비롯해 고강수와 강현중 모두가 3레벨을 달성했다.
스탯은 모두 여지없이 근력에 투자했다.
'여기에 도감 옵션도 얻었고!'
또한 우두머리를 잡고 얻은 도감 옵션 효과를 적용하면, 이번 사냥에서만 무려 근력 스탯이 10포인트나 오른 셈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기도 다량 얻었다.
무슨 천하제일보검이나 전설에 나올 만한 발뭉 같은 아이템이 아니었고, 현대 기술로 만들어진 무기에 비하면 조잡했지만 반대로 지금 지하 1층의 생존자들이 가지고 있는 식칼과 대걸레 자루로 만든 장난감 따위와는 다르게 분명한 무기였다.
그중에서는 특별한 것도 있었다.
지금 김지운의 수중에 들어온 우두머리 오크의 도끼가 그랬다.
[천 마리를 죽인 도끼]
- 아이템 등급 : 유니크
- 3레벨 이상 착용 가능
- 공격력 : E+랭크
- 내구도 : F+랭크
- 착용 시 근력 +10
- 착용 시 체력 -4
- 오크 우두머리가 몬스터 천 마리를 사냥한 도끼다. 강력한 힘이 깃들어 있으며 동시에 강력한 원한이 깃들어 있다.
천 마리를 죽인 도끼.
'엄청난 게 나왔군.'
김지운 입장에서도 놀랄 만한 소득이었다.
그만큼 강력한 아이템이었다.
'아이템 레벨이 3레벨짜리인데 공격력이 E+랭크라니.'
근력 스탯만 10포인트를 올려주는 것도 그렇지만 김지운이 집중하는 건 공격 랭크였다.
10레벨 미만 아이템 중에서 E랭크 공격력을 가진 아이템도 구하기 쉽지 않았는데, 심지어 E+랭크다?
위력은 확실했다.
장담컨대 지금 김지운이 이 도끼를 들면 염력 능력 없이 오크와 1대1로 싸우는 것도 가능했다.
오크의 그 두꺼운 팔다리는 단숨에 자를 순 없겠지만, 그 근육 너머의 뼈까지는 건드릴 수 있을 테니까.
그때였다.
툭툭!
이영후가 다급하게 다가오더니 김지운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는 건네줬다.
[룬(파워업)]
- 등급 : 레어
- 잠시 동안 마력을 소모해 근력을 높인다. 스킬 랭크가 오를수록 근력 상승 스탯이 늘어난다.
- 1 레벨 이상 습득 가능
- 우둔한 사냥꾼만 습득 가능.
스킬룬을.
'파워업이라니.'
더불어 매우 좋은 스킬이었다.
그 귀한 스킬슬롯에 기꺼이 넣을 수 있는 스킬.
어비스 시대에서도 값어치가 넘쳤고, 지금 같은 시대에서는 시대에서는 감히 가격을 매길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런 물건을 김지운이 건네줬다.
스윽!
다름 아닌 고강수한테.
'이건?'
그것을 본 고강수의 눈이 터질 듯이 커졌다.
이 물건의 값어치를 정확히 아는 건 아니었지만, 고강수는 본래 김지운에게 이빨을 들이밀던 자였다.
그것도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니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세상이 아포칼립스로 변하고 이제 하루가 지난 시점이었다.
그리고 전투를 같이 치른 것은 어떤 의미에서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자신에게 이런 걸 준다?
고강수조차도 이해하기 힘든 일.
반면 김지운에게는 딱히 고민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내가 가져도 의미가 없다.'
일단 김지운 입장에서는 쓸모가 없었다.
거래를 위해 남겨둔다? 이 역시 그리 현명한 생각은 아니었다. 거래를 할 대상도 없을 뿐더러, 거래를 하려는 대상이 그 거래를 준수하리란 보장은 더더욱 없었다.
오히려 약탈의 대상이 될 터.
그리고 기본적으로 어비스에서 얻은 아이템은 그 자리에서 가장 쓸모 있는 자가 가지는 게 규칙이었다.
과거에는 그랬다.
가지고 와서 판다, 그런 생각 따윈 아무도 하지 않았다. 특히 스킬 룬과 아이템은 그 자리에서 바로 쓰는 게 상책이었다. 어비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목숨이었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내 목을 노릴 수도 있겠지만, 그 전에 몬스터 목을 노리겠지.'
고강수가 혹여 배신을 하더라도 그건 나중의 이야기.
'그리고 고강수는 기대 이상이다.'
결정적으로 김지운이 평가한 고강수의 재능은 그가 봐온 우둔한 사냥꾼들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다.
일단 본능적으로 몬스터의 약점을 노렸다.
또한 강한 몬스터 앞에서도 주저함이 없었다.
'막싸움도 잘 하고.'
결정적으로 고강수의 싸움은 본능에 충실했다.
이게 강현중과의 차이점이었다.
고강수와 강현중, 둘은 일반인 기준에서는 엄청난 강자였다. 대신 스타일은 달랐다.
고강수가 길거리 싸움꾼이라면, 강현중은 훈련된 군인이었다.
몬스터와 달라붙어서 싸우는 소위 개싸움에서는 고강수가 훨씬 더 능력을 발휘했다.
여하튼 김지운 입장에서는 든든한 일이었다.
'파워업에 도끼를 들면, 이제 도그블린 정도는 그냥 도끼질만으로도 잡을 수 있겠군.'
강력한 무기가 생긴 셈.
고민은 여기까지였다.
고민을 더 하더라도 굳이 여기서 할 필요는 없었다.
'돌아간다.'
이제 그들에겐 돌아갈 집이 있었으니까.
6.
김지운 파티가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움직인 건 고강수였다.
"회수팀."
그의 말에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숫자는 열 명이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따뜻하게 옷을 입은 그들을 데리고 고강수가 다시 안개 너머로 사라졌다.
고강수가 말했던 대로 회수팀이었다.
밖으로 나가서 이번에 얻은 성과를 가지고 올 자들.
갑작스러운 준비는 아니었다.
식품관을 점령할 당시부터 고강수가 준비했던 카드였다. 생존을 위해서는 외부의 물건들을 회수하는 게 필수였으니까.
물론 처음에는 외부 상황을 몰랐으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안개에서 버티는 방법도 어느 정도 알았고, 어비스 좀비를 피해 가는 법도 어느 정도 알게 됐다.
"모두 마스크를 쓰도록."
무엇보다 그들을 이끄는 이가 고강수였다.
더더욱 강해진 고강수!
그들은 무리 없이 밖으로 나가서 아이템들을 회수해 오기 시작했다.
그 사실에 생존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거 괜찮은 거 같은데?"
"괴물도 잡아 오고, 밖으로도 나가고."
"여기서 버티다 보면 구조대가 오겠지?"
외부 사정을 알지 못하는 그들 입장에서는 외출이 가능하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으니까.
그래서였다.
김지운 파티가 없는 와중에도 모두가 통솔이 된 것은.
자신들을 대신해 위기를 감수하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이들이 있는데 소란을 피울 이유는 전혀 없었으니까.
"생각보다 잘 돌아가네요?"
"무서우니까."
"하긴, 그렇죠."
물론 고강수, 그의 공포가 아주 큰 역할을 했다.
망설임없이 사람 피를 볼 줄 아는 그의 존재는 모두에게 후환을 고민케 했으니까.
"그래도 소설이나 영화 보면 여기서 문제가 막 터지던데, 다행히도 당분간은 조용하겠네요."
그 사실에 미소를 머금는 이영후.
반면 김지운은 달랐다.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 이미 우리는 전기를 잃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곳이 더더욱 추워질 거다. 무엇보다 대부분은 모른다."
그가 보기에 상황은 매우 안 좋았다.
"이곳이 집이라는 것을."
모두가 이곳을 떠나는 것을 희망으로 삼고 있지만, 이제 그 희망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저기, 궁금한 게 있는데요."
그쯤에서 이영후가 조심스레 질문했다.
"솔직히 저 생존자들, 대장에게는 짐 아닙니까?"
냉혹한 이야기지만, 김지운 입장에서는 지금 생존자들 중에 90퍼센트가 필요 없는 짐이었다.
극단적으로 그들을 그냥 여기서 쫓아내면 식량을 비롯해서 모든 부분이 풍족해졌다.
생존 면에서는 그게 정답이었다.
그리고 헌터들은 다른 무엇보다 그 생존을 최우선으로 꼽는 자들이었다.
김지운도 알았다.
"어비스에서 약한 몬스터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무리를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였다.
"도그블린도, 오크도 무리를 이루지."
김지운이 생존자들을 살려둔 것은.
"어쩌면 여의도의 생존자들은 이들이 전부일 수도 있고."
이제는 사람이 매우 귀한 시대가 될 테니까.
그때였다.
으아아앙!
아이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쯧쯧."
"저러다 괴물 오면 어떻게 하려고."
그 소리에 몇몇은 혀를 찼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 괴물이 넘치는 상황에서 아이의 울음 때문에 모두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김지운이 말한 그 인적자원에 8개월짜리 아기는 포함될 수가 없었다.
"아이를 살려두시는 것도 이유가 있어서겠죠?"
아주 냉정한 현실을 생각하자면 아이를 버리는 게 모두를 위한 답이 될 수도 있다는 말.
"생존에는 도움이 되진 않지."
"예?"
김지운도 그 사실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가 그 절체절명의 순간, 도망치고자 했을 때 도망치지 않고 아이를 구하기 위해 움직인 이유는 하나였다.
"단지 저 작은 아이를 버리면서까지 살 바에는 그냥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뿐."
아이를 버리고 도망치는 게 아이를 구하다 죽는 것보다 더 좆같으니까.
김지운은 그랬다.
군인 시절에도 그는 중대한 임무를 수없이 수행했지만, 그건 엄청난 사명감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해야 할 일 있었고, 그 과정에서 옆에 있는 동료를, 부하를 죽게 놔두고 싶지 않았을 뿐.
헌터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어찌 보면 그게 전부였다.
'역시.'
그 대목에서 이영후는 김지운이 어떤 인물인 줄 알 수 있었다.
'믿을 건 대장뿐이다.'
그런 이영후에게 김지운이 말했다.
"그럼 슬슬 준비한다."
"예?"
"고강수가 회수를 마치면 63빌딩으로 간다."
8.
고강수가 회수를 마친 이후 다시 파티가 구성됐다.
멤버는 똑같았다.
김지운을 포함한 4명.
그런 그들의 63빌딩 원정 준비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진행도 매우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상황이 앞서 서와는 달랐다.
일단 낮이었다.
밤과는 다르게 어비스 좀비나 몬스터들이 안개 너머로 어렴풋하게나마 보였다.
그리고 경험이 달랐다.
오크 무리마저 상대해 본 그들 입장에서 이제 어비스 좀비는 두려움보다는 조심해야 할 대상이었다.
결정적으로 김지운이 있었다.
스스스스!
치실로 펼친 거미줄은 그 어떤 위험도 조우하지 않게 도와줬고, 이제는 모두가 그것을 알았다.
덕분에 모두는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매우 순조롭게 63빌딩에 도달할 수 있었다.
'괜히 시간 끌 필요는 없다.'
그리고 김지운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바로 63빌딩에 진입한 후에 27층에서 목표물을 탈취할 예정이었다.
'최대한 빨리······.'
분명 그랬다.
자신의 앞에 있는 시체 한 구를 보기 전까지는.
'이건?'
그것을 보는 순간 김지운이 모두를 멈추게 했고, 그 사실에 모두는 당혹감을 느꼈다.
63빌딩이 코앞인데 멈추라니?
그런 그들에게 김지운은 손가락으로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가리킨 후에 스마트폰으로 말해줬다.
[시체에 총상이 있다.]
그 사실에 모두의 눈이 커졌다.
이곳은 대한민국, 총에 대한 제약이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심한 곳이었다.
하물며 여의도 아닌가?
심지어 김지운은 말했다.
[권총이 아니다.]
총상의 크기가 경찰들이 가지고 있는 권총 수준이 아님을.
그에 대해 강현중이 바로 대답했다.
[K2 같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투투!
총성이 들렸고, 모두가 총성이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는 고개를 들었다.
'63빌딩 방향이다.'
총성이 난 방향은 그들이 가려는 목적지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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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63빌딩 (1).
1.
총성, 그것도 권총이 아닌 자동소총의 총성이 들리는 순간 김지운 파티는 자세를 낮췄다.
긴장했다.
그러나 긴장감의 방식은 달랐다.
이영후와 고강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사실에 긴장했다.
반면 김지운과 강현중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군대군.'
'예, 빌딩 GOP같습니다.'
수도권 내의 초고층 빌딩에는 수도권 방공을 지키기 위한 군부대가 상주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군부대로, 그 무장 상태는 꽤 강력했다.
발칸, 그러니까 게틀링건은 물론 대공, 지대공 미사일까지!
당연히 그곳에서 근무를 하는 군인들 역시 K2소총을 기본으로 무장 상태로 지냈다.
그리고 여의도의 경우에는 63빌딩에 빌딩 GOP가 있었다.
정확히는 한때 있었었다.
[그런데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았었나?]
김지운의 기억에 오류가 생긴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가 알기로는 여의도에 초고층 건물들이, 더 큰 건물들이 생기면서 그곳으로 부대를 옮겼었다.
그러한 김지운의 질문에 강현중이 스마트폰으로 대답했다.
[북한의 드론 도발 이후 조사 결과 심각한 테러 계획이 발견되어 추가 설치했습니다.]
생각보다 운영도 쉽지 않고, 반발도 많은 빌딩 GOP를 추가로 설치할 정도라면 군이 파악한 그 위협이 정말 심각하다는 의미.
그러나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 시국에 북한의 테러를 염두에 두긴 해야겠지만, 드론을 날리진 않을 테니까.
그럴 여유도 없을 테니까.
그도 그럴 것이 한국만 지금 이 상태였다면, 북한은 어비스 아포칼립스를 경험하지 않는 상태였다면 진작에 그들이 그토록 울부짖던 서울 불바다의 꿈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보다 더 한 꼴이거나, 그들이 쏘려고 한 포탄들이 방산비리 때문에 불발했거나, 둘 중 하나라는 의미였다.
'예상 밖이다.'
어쨌거나 김지운 입장에서 이 총성은 그가 알던 지식과 다른 부분이었다.
은퇴 이후 그런 쪽의 정보는 들어오지도 않았고, 듣고 싶은 생각도 없었으니까.
[죄송합니다, 미리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강현중을 탓할 수도 없었다.
이곳에 빌딩 GOP가 있다, 그러니까 무기를 가지러 가자, 그런 사고가 쉽게 진행될 리 만무.
결정적으로 1층에 생존자가 있으리란 생각을 모두가 못했다.
일단 사진으로 봤을 때 63빌딩은 안개에 덮여 있었다.
그리고 63빌딩은 호텔과 다르게 숙박 시절이 아니었다. 대부분 층이 사무용 건물이었고, 최상층과 지상 그리고 지하층에 관광객을 위한 설비가 있을 뿐.
물론 연말이라고 해서 군부대가 문 닫고 개점휴업을 하진 않았을 테지만, 빌딩 GOP는 표현대로 GOP, 아예 그냥 다른 공간이었다. 허가 없이 층 하나만 내려와도 탈영이 되는 곳. 분명 대부분의 군인들이 그곳에 있었을 것이다. 그들 아래에는 안개가 깔렸을 테고.
정리하면 사실상 그곳에 갇힌 셈이었다.
혹은 멋모르고 안개로 가득 찬 63빌딩을 내려오다가 어비스의 방랑자가 되었거나.
이렇게 1층에서 총을 쏠 가능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존재하지 않았다.
김지운의 생각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자욱한 안개 속에서 총을 쏜다?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헌터가 있을 경우였다. 헌터가 63빌딩에 우연히 방문을 했는데, 어비스의 등장을 눈치 채고 이내 빌딩 GOP를 점거 혹은 그곳에 합류한 후에 총을 가지고 내려왔을 경우.
그러나 김지운은 그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김지운은 봤다.
'헌터라면 그 아까운 총알을 어비스 좀비의 몸뚱이에 박아넣을 리가 없다.'
총상이 난 게 누구도 아닌 어비스 좀비임을.
살아있을 때의 총상도 아니었다.
살아있다면 상처에 출혈이 지독해야 하지만, 피범벅이 되어야 하지만 시체는 그저 총상만 있었다.
어비스 좀비일 때 맞았다는 의미.
그럼 이제 남은 경우는 하나다.
김지운, 그가 총성이 난 방향을 향해 혼자서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역시.'
그 후에 그는 볼 수 있었다.
'오아시스군.'
안개들이 63빌딩 1층에만 범접하지 못하는 것을.
2.
상황 파악은 금방 이루어졌다.
안개, 그 속에서 안개가 없는 곳을 관찰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으니까.
'63빌딩 1층에 생존자들이 있다. 하지만 바리게이트나 군대는 보이지 않는다.'
오아시스에 생존자들이 모여 있으며, 그중에 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총을 든 이들이 있다.
'계획대로 진행한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서 김지운 파티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어차피 목표는 1층이 아니었다.
그리고 또한 63빌딩 생존자들은 안개가 위험하다는 것을 느끼고 나오지 않는 중이었다.
안개를 통해 움직이면 마주칠 일은 결단코 없다는 의미.
'대신 지하 주차장을 통해서 움직인다.'
지상 1층이 아닌 지하 주차장을 통해 움직이는 것.
시간이 좀 더 걸리는 일이었지만, 총을 들고 경계태세인 생존자 무리들과 접촉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총이란 무기는 그만큼 위험했다.
더욱이 지금 상황은 보통 상황이 아니었다. 백기를 들고 저들에게 간다고 하더라도 대화 대신 총알부터 날아올 터.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전하게.'
김지운, 그가 백화점 바로 옆에 붙은 여의도 최고층 건물인 파크원, 그 정상층에 위치한 빌딩 GOP를 노리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곳에도 무기가 있겠지만, 그곳에 무기를 가지러 가는 건 콘래드 호텔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콘래드 호텔은 땅에 떨어진 돈을 줍는 수준이었고, 빌딩 GOP로 무기를 가지러 것은 은행 금고 안에 있는 돈을 줍는 수준이었다. 그것도 그냥 금고가 아니라 닫힌 금고를 열고.
더군다나 빌딩 GOP는 특성상 계단이 아니면 진입이 불가능했다.
그곳을 진을 치고 있는다?
김지운이라고 해도 뚫을 방법은 없었다.
미션 임파서블에 나오는 톰크루즈처럼 유리창을 깬 후에 유리창을 타고 올라가는 게 아닌 이상.
그리고 김지운은 그 방법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지금은 힘들지만 근력 스탯이 어느 정도 갖춰지고, 장비만 구하면 크게 어려울 건 없었으니까.
어쨌거나 중요한 건 총을 들고 경계하는 무리들에게 가까이 갈 이유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보단 어비스의 좀비가 훨씬 더 안전했으니까.
그렇게 김지운 파티는 예정과 다르게 지하 주차장을 통해 이동한 후에 지하 주차장에서 건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에 도달했다.
그리고 김지운이 엘리베이터 문을 열었다.
끼이이!
조심스럽게.
그러자 보이는 텅 빈 공간, 엘리베이터를 움직이게 하는 줄들이 늘어선 그곳을 향해 김지운은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그리고 올라갈 준비를 했다.
27층까지.
그건 언뜻 보면 미친 짓이었다.
그냥 줄을 잡고 버티는 것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힘든 일인데, 그 줄을 잡고 27층까지 간다?
올림픽 클래스 선수라도 쉽지 않은 일.
김지운도 알았다.
그래서 줄을 잡았다.
꽉!
그의 지금 육체 능력 수준은 올림픽 클래스를 벗어났으니까.
일단 김지운은 5레벨을 찍고, 모든 스탯을 근력에 투자한 상태였다. 여기에 도감 옵션 효과로 근력 스탯이 33포인트인 상황.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김지운, 그의 등에는 이번에 얻은 오크 대장의 도끼가 있었다.
근력을 무려 10포인트나 올려주는!
도합 43포인트인 김지운의 근력 수치는 지금 줄을 타고 오르는 것쯤은 정말 우습게 만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김지운은 무리하지 않았다. 7층까지 올라갔다.
그 후에 벽을 향해 가볍게 점프한 후에 벽에 튀어나온 엘리베이터 통로 설비를 암벽 등반하듯 잡고는 엘리베이터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역시 아무도 없군.'
평소에는 사무실로 사용되던 7층에는 어떤 낌새도 없었다.
연말에 출근하고 싶어 하는 이는 없었으니까.
거기서 김지운은 준비해 온 로프를 지하 1층을 향해 던졌다.
이제는 나머지 동료들이 올라올 때.
물론 그들의 근력 스탯은 김지운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문제는 없었다.
그냥 하늘 높게 솟은 줄을 잡고 오르는 것과 달리 김지운이 던진 로프를 잡고 벽을 바닥 삼아 올라오는 것에는 근력 스탯 20포인트 정도면 부족함이 없었으니까.
그 작업을 이제 네 번 반복했을 때 김지운 파티는 목표인 27층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곳, 63빌딩의 주인인 진화 그룹 회장의 집무실로 들어가는 엘리베이터 문 앞에 도달했다.
그러나 김지운은 엘리베이터 문을 열기 전에 낌새를 봤다.
섣불리 들어가지 않았다.
'평소라면 문제는 없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이곳 63빌딩 건물 중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바로 27층이었다.
'사실상 일반인은 들어갈 수도 없으니까.'
일단 회장실은 계단을 통해서 출입이 불가능했다.
당연한 게 어디 공단의 중소기업 회장실도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는 재벌그룹의 총수가 있는 곳 아닌가?
계단으로 들어갈 때 잠금 장치가 있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
평소에 들어갈 수 있는 입구는 사실상 엘리베이터뿐이지만, 이 역시 조건이 필요했다.
기본적으로 일반인들이 엘리베이터 27층을 누르는 건 불가능했다.
누가 실수로 27층을 누르고 열리는 순간 급하게 똥 마려운데 화장실 어디죠? 라고 말하는 꼴을 회장이 보면 그 아랫사람들 처지가 그리 좋진 않을 테니까.
실시간으로 조치를 할 터.
연말이라면 더더욱 폐쇄적으로 변할 터였다.
사실상 경비원을 두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온갖 경비 시스템이 있겠지만.'
요즘 시대에는 사람보다 믿음직한 기계들이 넘쳤으니까.
정말 이곳에 누군가 들어오는 순간 모든 상황을 통보하는 최첨단 경비 시스템이 있을 터.
물론 지금 이 아포칼립스 세상에서는 정말 조금도 쓸모 없는 시스템이었다.
그럼에도 김지운이 섣불리 움직이지 않은 것은 글 때문이었다.
이곳은 김지운이 알고 온 곳이 아니었다.
'함정일 수도 있고.'
어비스넷의 게시판 글을 읽고 온 곳이었다.
'헌터들이 있을 수도 있다.'
무엇이 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는 의미.
사실 보통 경우라면 김지운도 움직이진 않았을 것이다.
확률이 낮더라도 리스크가 컸으니까.
그러나 지금 김지운이 믿는 구석은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모든 헌터들의 능력치가 초기화됐다는 점이었다. 그건 곧 김지운이 당장 밀릴 이유는 없다는 의미.
두 번째 믿음은 총이었다. 헌터들 중에는 강한 헌터들은 많지만 총기에 능숙한 헌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능숙해질 이유가 없었다. 어비스에서는 총을 쏠 일이 조금도 없으니까.
물론 믿을 수 있는 구석일 뿐, 이것을 맹신할 순 없었다.
김지운은 두 눈을 감고 낌새를 느꼈다.
숨 소리를 죽이며 모든 감각을 문 너머로 집중했다.
그런 김지운이 이내 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김지운은 바로 넘어가지 않았다. 대신 염력을 이용해 카메라 하나를 움직였다.
고프로 카메라, 격렬하게 움직일 때 사용되는 액션캠을.
김지운은 액션캠을 이용해 천천히 안개 속을, 회장실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지만 기꺼이 시간을 사용했다.
목숨보다 귀한 건 없었으니까.
그렇게 탐색을 마친 후에 액션캠을 회수한 김지운이 액션캠에 달린 작은 모니터를 통해서 상황을 살폈다.
안개로 자욱한 회장실 내부의 상황을.
그제야 비로소 김지운은 27층에 발을 들여놓았다.
물론 바로 움직이진 않았다. 자세를 최대한 낮췄다. 바닥을 기어다니는 것처럼. 그러면서 거미줄을 펼쳤다.
그렇게 주변을 한 번 더 수색한 후에야 비로소 김지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전하다.'
이곳에 아무것도 없다는 증거.
이후 김지운의 신호를 받은 그의 동료들이 뒤를 따라 27층에 올라왔다.
대화는 없었다.
시간이 금보다 귀한 상황에서 해야 할 건 이곳 회장실을 헤집는 것밖에 없으니까.
모두가 회장실 곳곳을 누비며 다녔다.
그러면서 모든 걸 살펴봤다.
모루뱀의 눈이 아니더라도, 재벌 그룹 총수의 회장실이라면 다른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진화 그룹의 회장은 삼족오 클랜의 열렬한 후원자 중 한 명이었다.
아이템이 있을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하지만 막상 이곳을 아무리 헤집어도 아이템으로 보이는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모르고 넘어간 게 아니었다.
헌터의 시스템은 근처에 아이템이 있을 경우에 알림을 통해서 그 사실을 알려줬다.
일종의 레이더 시스템인 셈.
손이 닿을 만한 거리 내에 접근한다면 모두가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예외가 있긴 했다.
'설마.'
상자 같이 밀폐된 곳에 있는 아이템은 근처에 가도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쯤에서 강현중이 김지운에게 신호를 줬고, 그 신호에 김지운을 비롯해 모두가 모였다.
그런 강현중이 가리키는 곳에는 고급스럽기 그지없는 검은색 금고 하나가 있었다.
매우 묵직해 보이는 금고가.
그 금고를 보는 순간 이영후와 고강수의 표정이 굳었다.
찾는 게 이 안에 있다면 사실상 지금 시점에서 이것을 구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금고는 폭약을 터뜨려도 멀쩡할 테니까.
금고를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했다. 금고의 무게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 하물며 이건 그냥 금고도 아니고 재벌 총수의 금고였다. 어떤 조치가 있을지 모르는 상황.
반면 김지운은 달랐다.
그는 금고를 보는 순간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고작 여기에 보관했을 리가 없다.'
알았으니까.
'어비스의 기념품을.'
만약 정말 어비스의 기념품을 노리고 도둑들이 들어왔다면 금고는 그리 믿을 만한 선택지가 못 됐다.
더 나아가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했다면 애초에 이곳에 두지를 않았을 것이다.
'트로피를.'
즉, 진화 그룹 회장이 이곳에 모루뱀의 눈을 가져왔다면 그건 보람을 느끼기 위함이었다.
보는 순간 자신의 선택에, 투자에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
그런 트로피라면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었을 터.
그쯤이었다.
'여기가 회장 자리인가?'
김지운이 금고 앞쪽에 있는 회장석에 앉았다.
푹신하고 안락한 감촉이 온몸을 감쌌다.
자연스레 몸이 적당히 뒤로 넘어갔다.
편안한 자세가 갖추어졌다.
그 순간 김지운은 볼 수 있었다.
천장에 있는 예술품과 같은 조명, 그 조명 사이에 특별하게 녀석을.
특별하게 제작된 유리 안에서 마치 뱀의 눈처럼 가로로 갈라져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녀석을.
'사안(蛇眼) 스킬을 여기서 손에 넣게 될 줄이야.'
김지운, 그가 원하던 것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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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63빌딩 (2).
3.
'이게 그건가?'
모루뱀의 눈의 크기는 어린 아이의 주먹만 했다.
그뿐이었다.
'평범해 보이는데.'
그 외의 특별해 보이는 점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뱀의 눈이라고 하지 않았다면 그냥 뱀의 눈을 닮은 돌멩이처럼 느껴질 따름이었다.
그때였다.
'어?'
김지운이 모루뱀의 눈을 감싸고 있던 유리를 제거하는 순간 모두의 눈앞에는 창이 떴다.
[모루뱀의 눈]
- 아이템 등급 : 유니크
- 5레벨 이상 사용 가능
- 공격력 : F-랭크
- 내구도 : C-랭크
- 보유 시 마력+10
- 보유 시 사안(蛇眼) 스킬 사용 가능
- 모루뱀의 눈 중 하나다. 매우 단단하며, 신비한 힘이 담겨 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모두는 놀랐다.
그러나 그 놀람은 그냥 창이 떴다는 사실에 놀람일 뿐, 이 옵션에 대한 놀람이 아니었다.
예외는 한 명이었다.
"씨이발!"
이영후는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질렀다.
"헙!"
그리고는 잽싸게 입을 제 손으로 막았다.
물론 무의미한 짓이었다.
모두는 마스크를, 그것도 화재용 마스크를 쓰고 있었으니까.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는.
달리 말하면 이영후가 그조차도 인지하지 못할 만큼 이 모루뱀의 눈은 엄청난 아이템이었다.
'뱀눈이라니!'
사안 스킬의 가치 때문이었다.
어비스에서 특정 몬스터를 잡거나 아이템을 통해서만 사용 가능한 사안 스킬의 능력은 간단했다.
열화상 카메라를 쓴 것처럼 눈으로 열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
이 설명을 듣는 순간 어비스의 관광객이나 헌터들은 이 스킬의 가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만능인 스킬은 아니었다.
일단 사안 스킬은 마력 소모량이 엄청났다. 기본적으로 마력 포인트 1포인트로 1분 정도 유지가 가능한 수준.
또한 쿨타임도 적지 않았다. 아이템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100분 이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비스의 안개를 꿰뚫어 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사안 스킬이 담긴 아이템은 돈으로 거래되는 경우가 거의 존재치 않았다.
거래가 되더라도 물물 교환이 기본이었고, 그마저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클랜 입장에서는 가진 사안 스킬 개수가 전력을 가늠하는 요소 중 하나였으니까.
'이걸 알고?'
김지운이 적잖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63빌딩에 온 것도 그 가치 때문이었다.
물론 달리 말하면 열화상 카메라가 존재하는 지구에서는 그 가치가 엄청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열화상 카메라가 저렴한 건 아니지만, 군부대나 특수 현장에서 구하고자 하면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으니까.
단, 지금 시점에서 군부대를 공격하는 게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을 구하는 것보단 이게 나았다.
무엇보다 김지운은 생각했다.
'어쩌면 야간투시경도 안 통할 수 있다.'
어비스의 안개 속에서 통신장비도 먹통이 된 상황인데, 야간투시경이나 열화상 카메라가 먹히지 않을 가능성도 있음을.
반면 모루뱀의 눈은 이미 어비스의 안개에서 그 능력이 검증된 물건이었다.
만약 정말 야간투시경이 안개에서 통하지 않는다면 모루뱀의 눈이 가진 가치는 더욱 치솟을 터.
'열 감지도 좋지만.'
또한 김지운은 알았다.
'마력 스탯 증가는 더 좋다.'
여기서 더 중요한 건 다름 아니라 마력 증가 옵션임을.
당장 김지운의 마력 스탯은 단 1포인트에 불과했고, 그로 인해 염력 사용에 한계가 명백했다.
그런데 당장 마력 스탯이 11포인트가 된다면?
염력 사용의 폭이 차원이 달라질 터.
어쨌거나 이걸로 성과는 전부 챙겼다.
김지운이 고개를 돌렸다.
이 이상 의미 있는 것은 구할 수 없을 터.
그럼 남은 것은 하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게 본래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김지운의 생각은 달랐다.
상황이 달라졌으니까.
김지운, 그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등정을 한다.'
4.
63빌딩 41층.
그곳에 도달했을 때 김지운 파티는 안개가 펼쳐지지 않은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제야 비로소 모두는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었다.
"후우."
그리고 소리를 냈다.
"정말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목소리는 매우 작았다.
귀를 기울여야 간신히 구분이 가능할 정도.
그래도 목소리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모두가 숨을 마음껏 편하게 쉴 수 있다는 사실에 활기가 돌았다.
"브리핑을 시작한다."
물론 김지운이 이곳에 올라온 것은 팀의 활기를 넣어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고층에 올라왔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내려갈 때도 더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
무엇보다 어떤 일이 있을지 몰랐다.
원하는 목적을 이루었으면 오아시스로 돌아올 것, 그게 어비스의 철칙이었다.
여유가 있다고 나대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뒤지는 게 바로 어비스란 곳이었으니까.
김지운이 이제까지 목숨을 부지했던 비결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지운이 계획을 수정한 이유는 간단했다.
"상황이 달라졌다. 오아시스가 발견됐다."
일단 가장 큰 이유는 오아시스의 등장이었다.
현 시점에서 오아시스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이템들이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라면, 오아시스는 생존에 직결됐으니까.
무엇보다 김지운이 봤을 때 63빌딩의 위치는 그들이 있는 백화점보다 나았다.
"이곳은 주변에 큰 건물도 적고, 무엇보다 가까운 거리에 한강이 존재한다."
특히 한강과의 근접성은 매우 큰 이점이었다.
식수로 쓴다,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었다.
어비스 좀비가 넘치는 지상과 달리 한강은 어비스 좀비의 방해를 거의 받지 않고 이동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몬스터들의 공격도 피할 수 있었다. 어지간한 몬스터들도 굳이 물에 뛰어들면서 사냥감을 쫓지는 않았으니까.
결정적으로 한강은 그냥 도심에 흐르는 작은 강이 아니었다. 빠지면 사람이 얼마든지 죽고도 남을 만큼 넓고, 거대한 강이었다.
"무기도 있다."
또 하나의 메리트는 본래대로라면 어찌하기 힘든 빌딩 GOP의 화력과 군인들이 지상에 있다는 점이었다.
필시 군인들이 무기를 챙기고 지상 1층으로 내려왔다는 의미.
상황은 얼추 이해가 됐다.
갑자기 몬스터가 등장했고, 그 사실에 군인들이 다급하게 무장을 한 채 밑으로 내려왔을 터.
그 후에 어비스의 안개가 등장하고, 안개의 위험성을 판단한 군인들을 중심으로 지상 1층에 진지를 구축했을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메리트가 생겼다.
"빌딩 GOP가 비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나는 쉽게 군부대를 털 수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
"그리고 지상의 군인들에게서 무기를 노획할 수도 있다."
혹은 탈취도 가능했다.
뭐가 됐든 이건 김지운이 권총을 손에 넣은 것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메리트였다.
빌딩 GOP에 있는 화력이라면 어지간한 몬스터들은 그냥 쓸어버릴 수 있을 테니까.
이것을 놓고 그냥 떠나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웠다.
"계획대로라면 백화점에서 정비를 하고 오는 거지만."
특히 김지운이 걱정하는 건 그 부분이었다.
"이곳은 노출된 상태다."
어비스넷에 63빌딩이 언급됐다는 것.
더군다나 그 게시글을 보고 이곳을 알 정도라면 어비스 헌터 출신일 게 분명했고, 여기까지 올 수 있는 자라면 그 실력이 보통 이상일 가능성이 높았다.
"클랜이 올 수도 있다."
또한 헌터로 구성된 무리가 올 수도 있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만약 그렇다면 이곳에 오는 순간 이곳의 메리트를 확인한 클랜은 63빌딩을 바로 점령할 게 뻔했다.
그때는 김지운네 파티가 뚫고 가는 게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들이 여기를 거점을 삼으면 필연적으로 우리 쪽으로 오게 될 거다."
오히려 그때부터는 수성전을 준비해야 했다.
"어비스 헌터들이 자동소총을 비롯해 무기를 들고."
김지운은 그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건 비유가 아니었다.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정말 도망치겠다는 의미였다.
여러모로 시간이 생명이라는 의미.
그 사실에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디부터 할까요?"
"1층부터다. 빌딩 GOP에 대기 병력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럼 오히려 우리가 당한다."
우선순위 역시 고민할 건 없었다.
"협상 방법은 어떻게 됩니까?"
남은 건 하나, 방법.
"상대가 당나귀라면 다행이지만."
물론 김지운은 여기서 당근을 주고 당나귀를 꼬시는 방법을 쓸 생각이 없었다.
"그럴 것 같지는 않군."
지금 상황에서 무기를 버리고 머리 위에 손을 든 채 다가가서 우리는 당신을 헤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라는 제스처를 보이자 상대방이 감동의 눈물을 흘릴 거 같진 않았으니까.
오히려 그 경우가 더 위험할지도 몰랐다. 상대방이 미친놈이라는 증거가 될 테니까.
"일단 상황부터 파악한다."
어쨌거나 당근을 주든 채찍을 휘두르든 그 전에 파악해야 할 건 1층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건 어려울 게 없었다.
김지운은 곧바로 2층으로 내려간 후에 그대로 밖으로 고프로를 던졌다.
그렇게 던진 고프로가 마치 파리처럼 1층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모두는 1층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아, 심심하네. 야, 너. 밖으로 나가."
5.
나가는 순간 좀비가 되어버리는 안개 속에 갇힌 상황.
그런 상황에서 등장한 괴물.
외부와의 통신조차 불가능하고, 이렇다 할 구조대나 어떤 외부 소식도 들어오지 않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무기라는 아주 강력한 무기를 든 군인이 내릴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에 많은 이들은 대답할 것이다.
살인, 강간, 약탈을 일삼는 무법자가 될 거라고.
그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그러나 막상 이런 상황에 처한 이들 열 명 중 아홉 명은 사람을 구하고자 움직였다.
인간의 본성이 착하다,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이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는 도리어 섣불리 무법자가 될 수 없었으니까.
또한 군인이란 건 그저 단순히 총 든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쉼 없이 군인에 걸맞은 교육을 했고, 훈련을 받았다.
빌어먹을 군대에 끌려와서 시간 날린 것도 좆같은데, 전쟁 터지면 난 해외로 튈 거다 개새끼들아! 라는 말을 쉴 새 없이 하더라도 막상 상황이 오면 군인답게 행동했다.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었다.
63빌딩의 GOP에 있는 군인들도 그랬다.
연말, 건물 높은 곳에서 전역일까지 남은 시간을 보내던 그들은 문제가 터지는 순간 일단은 멈췄다.
그러다가 1층에서 괴물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모든 군인들은 망설이지 않았다.
무장을 하고 내려갔다.
"책임은 내가 진다."
간부의 그 말과 함께.
그 후 그들은 내려갔고, 그곳에서 등장한 무시무시한 괴물들, 난생처음 보는 괴물들과 싸웠다.
전투는 치열했다.
투투투!
총은 강력했지만, 이런 실전은 경험은커녕 상상조차 못한 바.
커헝!
특히 총에 맞고도 기세 좋게 달려드는 도그블린 앞에서 군인들 세 명은 산채로 씹혔다.
그래도 일단은 살아남았고, 살아남은 이후에 군인들은 생존자들을 모았다.
"외부 상황을 알 수 없으니 통제에 따라주십시오."
신뢰 있는 모습으로.
누구보다 멋진 군인다운 모습으로.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매우 특별한 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열 명 중 아홉 명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소극적이라도 노력할 테니까. 협조할 테니까.
문제는 그 부분이었다.
열 명 중 한 명은 다르다는 것.
투투투!
빌딩 GOP에 근무하던 이재돌 병장이 그랬다.
"으아아악!"
"시끄러워 새끼들아!"
그는 처음부터 문제가 많은 이였다.
아무리 편해진 군대라고 하지만 들어올 때부터 상급자에게 욕지거리를 내뱉는 부류.
그냥 양아치 쓰레기 같은 놈이었다.
군인이 아니라 교도소에 갔었어야 하는 놈이었고, 실제로 중학생 때도 학교폭력을 비롯해 범죄가 잔뜩 있었다.
단지 판사의 애정 어린 조언과 배려 덕분에 실형을 살지 않았을 뿐.
그런 인간이 군대라고 사고를 치지 않을 리 만무.
실제로 후임을 괴롭히는 바람에 국군 교도소까지 다녀왔다. 어지간한 괴롭힘이 아니라 후임이 자살 시도를 했을 정도로 크게.
물론 군대라는 조직은 그렇게 단순한 조직이 아니었고, 그 후부터 이재돌 병장은 군대 내에서 없는 인간 취급을 받았다.
이재돌 병장도 더 이상 나대지 않았다. 몇 달 동안은 조용히 지내고 있을 뿐이었다.
"십새끼들, 아주 그냥 그동안 살판 났었지?"
그러나 2023년 12월 31일, 모든 게 바뀌었다.
투투투!
모든 상황이 종료됐을 때 이재돌 병장은 남은 군인들 전부를 죽였다.
그리고 소리쳤다.
"이제부터는 내 세상이야, 새끼들아!"
그가 생존자들의 우두머리가 됐다.
그리고 동시에 유린이 시작됐다.
이재돌 병장에게 생존자들은 장난감이었다. 그는 당장 마음에 안 드는 인간들은 쏴서 죽였다.
이유 같은 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 심심하네. 야, 너. 밖으로 나가."
이재돌 병장이 모여서 겁에 질린 생존자 무리 중 한 명을 총구로 겨누며 말했다.
"너 말이야, 너."
"아, 아빠!"
이제 막 네 살도 안 됐을 것 같은 아이를 품고 있는 사내를 향해서.
"아, 아빠 아빠!"
그 순간 아이는 상황을 잘 모름에도 절규를 했다.
반면 아버지는 달랐다.
아이를 아내의 품에 넘겨준 아버지의 눈에는 어느 때보다 단호한 결의가 있었다.
자신이 죽어야 아들이 산다, 그에 대한 각오가.
그때였다.
타앙!
이재돌 병장이 천장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자, 각오를 다졌던 아버지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각오가 총성에 풀린 탓.
그것을 본 이재돌 병장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자자, 빨리 일어나. 응? 빨리 나가. 나가기 싫어? 어?"
그는 이 광경을 즐겼다.
'씨발 세상 살 맛나네.'
모든 것이 제 마음대로 된다는 사실을.
'일단 천천히 가지고 놀다가 남자새끼들은 전부 죽여 버려야지, 반반한 년만 남기고.'
더 나아가 그는 이곳의 사람들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가지고 놀 몇몇 이들만 제외하고 다 죽일 생각이었다.
당연히 아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즉, 죽이기 전에 장난을 치는 것뿐이었다.
'어차피 뷔페에 가면 먹을 것도 넘치겠다, 문제 없어. 이제 남은 군바리 새끼들도 없고.'
그 순간이었다.
삐비비비!
'응?'
갑작스러운 소리에 이재돌 병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구야? 누구 전화가 온 거야!"
그건 너무나도 분명한 스마트폰의 벨소리였으니까.
통신이 두절된 상황에서 통화가 왔다?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희망이었다.
"씨발!"
반면 이재돌 병장에게는 절망이었다. 만약 자신이 저지른 짓이 외부에 알려진다면 자신의 꼴은 결코 좋은 꼴이 될 리 없었으니까.
그때였다.
'저거!'
이재돌 병장의 눈에 벨소리를 내는 스마트폰이 보였고, 이재돌 병장은 다른 누가 먼저 손을 댈 것을 두려워하며 당장 스마트폰에 달려갔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을 집었다.
'응?'
그런 이재돌 병장의 눈에 보인 것은 다름 아니라 벨소리 선택 화면이었다.
'이거?'
그 사실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이재돌 병장, 그러나 그의 생각은 오래 가지 않았다.
"끄엑!"
무언가가 그의 목을 강하게 옥죄였고, 그 사실에 본능적으로 이재돌 병장이 제 목을 움켜쥐었다.
"끄엑끄엑!"
그제야 이재돌 병장은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등 뒤에 누군가 있음을.
"협상을 제안한다."
그 사내가 말했다.
"질문에 답해주면 곱게 죽여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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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63빌딩 (3).
6.
이재돌 병장, 고프로를 통해 그의 추악한 짓을 보았을 때 김지운은 그다지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고강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자식을 가진 강현중 중사도 마찬가지였다.
예외는 한 명이었다.
'이 새끼 미친 새끼 아니야?'
이영후, 그는 어느 때보다 격한 반응을 보였다.
'당장 죽이죠! 이대로 놔두다가 애먼 사람 죽을지도 모릅니다!'
본인이 나서서라도 이재돌 병장을 죽일 기세였다.
그에 대해서 김지운은 말했다.
'절대 죽여서는 안 된다.'
'예?'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이영후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김지운, 그가 스마트폰의 벨소리를 미끼로 이재돌 병장을 유인한 후에 목을 옥죄는 것을 보는 순간.
"곱게 죽여주겠다."
그리고 단숨에 제압한 그를 향해 그 제안을 하는 것을 보는 순간 이영후는 깨달았다.
'죄 안 저질러서 다행이다.'
김지운을 적으로 두지 않은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반면 김지운을 적으로 둔 이재돌 병장의 꼴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지, 지랄하지 마!"
대답을 듣기 위해 숨통을 열어주는 순간 이재돌 병장은 김지운의 제안을 거절했다.
"십새끼, 그냥 죽여! 죽이라고! 죽여 봐!"
악을 썼고, 그 사실에 김지운이 대답하지 않았다.
"고강수."
"예."
"팔 잡아."
고강수를 불렀고, 고강수가 너무나도 능숙하게 이재돌 병장을 눕게 한 다음에 가슴팍을 무릎으로 누르고는 그대로 팔을 잡았다.
이후 손가락을 펴게 했다.
마치 도마 위에 고깃덩이를 잘 올려놓은 것처럼.
그것을 본 김지운이 그대로 도끼를 내리쳤다.
콰직!
도끼는 단숨에 이재돌 병장의 검지 끝을 잘랐다.
"끄악!"
그 사실에 비명을 내지르는 이재돌 병장에게 김지운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별거 아니다. 1밀리미터 정도 자른 거다."
"으윽, 으윽!"
"아직 10센티미터 넘게 남아있다."
"으으으!"
"다시 제안하지. 질문에 대답을 하면 곱게 죽여주겠다."
그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이게 허언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힘이.
실제로도 그건 허세 따위가 아니었다.
김지운, 그는 헌터가 되기 전에 무수히 많은 이들을 마주했었고, 그들 중에 이재돌 병장보다 덜 미친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김지운 기준에서 이재돌 병장은 미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임자 한 번 제대로 못 만나본 개새끼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본래대로라면 사회가 알아서 손 좀 봐줬어야 했는데 때를 놓쳐서 이런 사단이 일어난 것뿐.
덜덜덜!
그제야 비로소 이재돌 병장이 공포로 가득 찬 눈으로 김지운을 바라봤고 대화가 됐다.
질문은 몇 개 없었다.
애초에 김지운이 이재돌 병장에게 궁금한 건 하나였다.
빌딩 GOP의 상황.
병력이 얼마 남았는지, 어떤 상태였는지,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
공포로 이성이 마비된 이재돌 병장은 그 모든 것을 순순히 말해줬다.
'지금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모든 것을 파악하는 순간 김지운의 머릿속에는 계획이 세워졌다.
나머지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GOP로 간다.'
무주공산이 된 빌딩GOP를 놔두고 다른 곳을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곳에서 가져올 수 있는 무기는 다 챙겨야 하는 셈.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했다.
이곳에 누군가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
"고강수."
"예."
"1층 정리, 가능하겠나?"
"10분 안에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 있어서는 고강수가 제격이었다.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남은 건 하나.
"놈은."
이재돌 병장뿐.
"마저 처리하도록."
그에 대한 처분을 김지운은 고강수에게 맡겼고, 그 사실에 고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으, 으."
그리고는 고강수는 누워 있는 이재돌의 두 손을 자신의 발로 내리찍었다.
콰직!
도장을 찍듯이.
콰직!
오른손, 왼손, 연달아 두 번.
"으아아아악!"
그 갑작스러운 공격에 비명을 내지르는 이재돌 병장을 고강수가 짐짝 들듯 일으켜 세운 후에 말했다.
"이제부터 이곳을 통솔하게 된 고강수라고 한다. 긴 말을 하지 않겠다. 명령을 따르면 생존을 도와주겠다."
남아있는 모두를 향해서.
그 후에 고강수는 보여줬다.
"반대로 명령에 반하는 자."
"으악! 으으으아악!"
비명을 내지르는 이재돌 병장을 짐짝처럼 집어 든 후에 그대로 1층 건물 밖으로 던졌다.
새하얀 세상 너머로.
"으악! 으아아!"
그 사실에 기겁한 이재돌 병장이 1층으로 돌아오려고 했지만, 고강수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재돌 병장을 발로 차서 다시 뒤로 구르게 했다.
그쯤에서 이재돌 병장이 바닥에 주저앉고 소리를 내질렀다.
"고, 고, 곱게 주, 죽여 준다면서! 야, 약속했잖아!"
그 말에 고강수는 무덤덤한 표정을 말했다.
"평소에 약속을 잘 지켰나 보군. 그렇게 억울해하는 걸 보니까."
그것을 끝으로 더 이상 이재돌 병장은 무어라 말하지 않았다.
그럴 여유도 없었다.
마스크를 쓴 고강수와 달리 이재돌 병장은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으으으으!"
어비스의 안개가 이재돌 병장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분노를 솟아오르게 했으니까.
좀비처럼.
"으아아아악!"
그렇게 분노에 미쳐 달려오는 이재돌 병장의 머리통을 고강수가 손에 든 도끼로 내리찍었다.
콰직!
순식간에 머리가 쪼개졌고 이재돌 병장의 몸뚱이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 후에 고강수는 말했다.
"이제 약속은 지켰다."
이재돌 병장이 아니라 이 광경을 지켜보는 생존자들을 향해서.
애초에 이 모든 것은 퍼포먼스였다.
그 퍼포먼스는 분명하게 통했다.
"다시 말하지. 명령에 따라라."
그 순간 그 누구도 감히 고강수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지 않았다.
1층이 정리됐다.
그리고 김지운 일행이 63빌딩의 최상층을 향해 움직였다.
7.
63빌딩에 위치한 빌딩 GOP.
그곳은 GOP란 표현처럼 그야말로 격리된 세상이었다.
단 하나의 층을 두고 그 아래는 관람객들을 위한 전망대가 있었고, 반대로 그 위에는 서울 도심에서 정말 보기 힘든 전쟁 무기들이 적잖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을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이 열려있군."
여차하면 문 혹은 벽을 부술 생각으로 준비를 했던 것이 무색해질 정도.
물론 김지운 파티는 그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어려운 것보단 쉬운 게 나았으니까.
해서 김지운 파티는 바로 계획을 실천했다.
"강현중."
"예, 제가 들어가서 챙겨 오겠습니다."
김지운이 주변 경계를 하는 사이 강현중이 GOP에서 쓸만한 무기를 챙겨왔다.
매우 합리적인 조치였다.
강현중 중사는 현직 특수부대 군인, 군부대에 대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 수밖에 없었으니까.
"자, 그럼 저도 밥값 좀 하겠습니다."
그러는 사이 이영후는 접시를 세팅했다.
63빌딩 고층은 안개 한 점 보이지 않는 상황, 위성 통신을 하기에 최적의 공간이었으니까.
"여기 괜찮네요."
그쯤에서 이영후가 질문을 건넸다.
"오아시스도 있고, 위성 통신도 되고, 한강하고도 가깝고. 차라리 이곳을 집으로 삼는 게 어떻습니까?"
타당한 질문이었다.
특히 안개의 영향을 안 받는 고층과 오아시스가 공존한다는 점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위성 통신은 물론 이 높은 층에서 여의도를 볼 수 있다는 이점은 이루 말할 수 없으니까.
물론 식량 부분이 부족했지만 그야 운송하면 될 일.
김지운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다.
나쁘지 않다고.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 비행 몬스터만 없다면."
비행 몬스터란 말에 이영후는 입을 다물었다.
어비스에는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날개 달린 몬스터들도 존재했다.
그리고 그 날개 달린 몬스터에 대한 공포는 다른 몬스터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지독했다.
안개 때문이었다.
그 날개 달린 것들이 지척에 오기 전까지 눈치 채는 것이 어비스의 안개 속에서는 불가능했으니까.
물론 반대로 그건 비행 몬스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안개 속에 있는 먹잇감을 찾는 것은 물 속에 있는 것을 찾는 것보다 어려운 일.
해서 종종 비행 몬스터들은 오아시스에서 머무는 헌터나 관광객을 공격하기도 했다.
잘 보였으니까.
"여기 있다가는 오히려 공격 당할 수도 있겠군요."
그런 비행 몬스터들에게 이 거대한 빌딩은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타깃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곳이 매력적인 위치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이곳에는 M61 발컨포도 있겠지.'
이곳에 있는 무장은 전투 헬기나 전투기를 상대하기 위한 수준이었으니까.
아득한 화력이었다.
"그런데 대장, 여기 뭐뭐 있습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이곳에 있는 화력은 상식 밖이었다.
"기본적으로는 K2소총이지만, 메인은 M61 발컨포와 신궁, 미스트랄이겠지."
"······그게 뭡니까?"
"군대 안 다녀왔나?"
"아, 네. 저 산업체였거든요. 가서 신나게 코딩했죠."
"M61은 개틀링건이다. 남은 두 개는 그냥 미사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곳에 있는 화력 수준은 지금까지 김지운이 마주한 몬스터들을 가소롭게 만들 만큼 강력했으니까.
'미사일의 존재는 결정적이다.'
특히 김지운이 아는 몬스터들 중에는 총이 통하지 않는 몬스터들이 적지 않았다.
사실 오크만 되더라도 자동소총으로 잡는 것은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오크의 몸뚱이는 인간보다 그 내구성이 두세 배는 더 강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에 오크는 어쨌거나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
그런 놈들을 자동소총으로 무작정 난사해서 잡으려면 탄창 하나는 비워야 할 터.
탄약이 귀해진 시대에서는 너무 큰 낭비였다.
그마저도 잡으면 다행이었다.
탄창 하나가 비워지는 동안 오크가 그냥 맞아만 줄 리 만무, 놈들은 달려들 것이다.
오크의 돌진이 만들어내는 파괴력은 소 한 마리가 전력으로 달려오는 것과 비슷했다.
어설픈 엄폐물로는 버티지 못한다는 의미.
만약 뚫리면?
같이 죽는 것이었다.
심지어 이 오크조차도 어비스의 화이트존을 기준으로는 그리 강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트롤도 잡을 수 있다.'
트롤 같은 경우에는 김지운이 예상컨대 자동소총 따위로는 잡을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그래서 미사일이 중요했다.
사람이 아니라 전차를, 전투기를, 쇳덩이를 파괴하려고 만든 거라면 트롤 정도도 무리 없이 잡을 터.
'발칸포도 매력적이지만, 이동하면서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전투기의 장갑을 꿰뚫는 M61 발칸포도 트롤을 종잇장처럼 찢어버리기엔 무리가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미사일보다 더 강력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미사일은 단발이지만, M61 발칸포는 그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휴대성을 놓고 본다면, 무엇보다 기동력이 중요한 몬스터와의 전투를 염두에 둔다면 김지운 입장에서는 휴대성이 가장 좋은 신궁이 지금 당장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뭐든 감사할 따름이지만.'
여하튼 어떤 것이든 김지운 입장에서는 엄청난 무기였다.
'만족하기에는 문제가 있지.'
문제는 어비스의 트롤도 화이트존 클래스, 어비스를 놓고 보면 약한 축에 속한다는 점이었다.
김지운, 그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은퇴를 했다.
"대장."
그쯤에서 이영후가 김지운은 불렀다.
"공지가 올라왔습니다."
"공지?"
"아, 두 가지 공지인데요, 일단 하나는 게시판을 국가별로 구분하겠다고 합니다."
그 말에 김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게시판에 전부 몰아넣으면 정보 교류가 어려워지는 건 당연한 일.
"다른 하나는 쪽지 기능을 추가했습니다."
"쪽지?"
"메시지 보내는 거죠. 가입자에게."
보통 게시판이라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있는 기능.
그러나 이것을 본 이영후의 판단은 달랐다.
"이거 서버 좀 제대로 확보한 모양인데요?"
"서버?"
"게시판 나누는 건 그렇다 쳐도, 쪽지 보내는 것은 여차하면 서버에 과부하 줄 수 있거든요. 뭐, 텍스트만으로는 모르지만 그래도 사람 일 모르는 거니까요. 어떤 또라이가 또라이짓을 할지 모르는 세상 아닙니까? 물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냥 기능을 추가한 걸 수도 있고요. 여하튼 이것저것 하는 거 보니까 이거 관리할 인력이나 인프라는 있는 모양이네요."
이 게시판을 관리하는 제대로 된 자들이 있다는 것.
"어딘 가는 돌아가긴 돌아가는 모양입니다. 서버든, 뭐든."
그리고 이 서버라는 것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생각 이상으로 많은 인프라가 돌아가야 했다.
그런 설명에 김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어, 글 하나 올라왔네요?"
"글."
"공지글입니다. 한국 게시판에."
그 말에 김지운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 순간 글을 본 이영후가 기겁하며 말했다.
"대, 대장! 공습 경보입니다!"
그 기겁함에 노트북 모니터를 본 김지운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김지운이 소리쳤다.
"이영후, 최대한 밀폐된 곳으로 도망가! 책상 밑이든 어디든!"
그리고는 동시에 김지운이 달려갔다.
강현중이 있는 곳으로.
그러면서 소리쳤다.
"강현중! 숨어라! 밖으로 절대 나가지 말고! 어디든 밀폐된 공간으로 숨어라!"
그리고는 GOP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그 순간 소리를 들은 강현중 중사가 움직였다.
"잘 못 들었습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여기 방으로 들어가서 엎드려! 귀 막고 눈 감고!"
그 이어진 경고에 강현중이 고개를 갸웃하는 대신 방으로 들어갔다. 김지운도 마찬가지였다.
같이 내무반으로 들어갔고, 김지운이 말한 대로 두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그 순간이었다.
우우우우우우!
그들의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아니, 그건 소름이 아니었다.
공포였다.
공포들이 개미들처럼 그들의 발끝부터 타고 오르며 단숨에 그들의 머릿속까지 올라탔다.
덜덜덜덜덜!
김지운과 강현중의 몸이 공포에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쯤에서 강현중은 이미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김지운도 마찬가지였다. 당장에라도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보통이라면 나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경험한 덕분이었다.
이 공포를.
그 덕분에 김지운은 기절하지 않은 채 떠올릴 수 있다.
[공습 경보, 유리룡 여의도로 이동 중!]
어비스넷 한국 게시판에 올라온 그 공지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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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흑랑 클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