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바느질의 장점
운산이 일어나 고소에게서 쌈지 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나도 좀 보자꾸나.”
운환도 운산 곁으로 다가와 작고 소박한 쌈지 주머니를 살펴보았다.
한편 소난은 놀란 표정으로 이씨 노부인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외가가 한때 명성을 날리던 집안이었다니. 꿈에도 몰랐었다. 복음사에 있을 때 위 유모가 만든 자수품을 팔아 푼돈을 벌곤 했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물건의 제값에 맞지 않게 헐값에 팔아넘긴 거나 다름없었다.
이씨 노부인이 온화한 눈빛으로 소난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네 외가의 규율에 따랐더라면 너도 이미 바느질 솜씨가 상당했을 터인데, 아쉽구나. 다행히 위 유모의 바느질 솜씨가 출중하니 이제라도 배우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느냐. 내일부터 소난이는 위 유모의 가르침을 받아 바느질법을 배우도록 하거라.”
소난이 얼른 대답했다.
“예! 내년 고소 오라버니 선물은 제가 직접 만들어 주도록 하겠습니다.”
이씨 노부인이 기특하다는 듯 소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네가 총명하다는 것은 내 이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바느질은 총명한 것과 다르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노력해야 한단다. 삼 년, 오 년의 노력만으로는 이런 쌈지 주머니를 만들지 못할 것이야.”
소난이 민망한 표정으로 웃었다. 한편 운환은 조금 전부터 쌈지 주머니를 들고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씨 노부인을 향해 말했다.
“조모님, 저도 바느질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주 부인이 깜짝 놀란 얼굴로 운환을 돌아보았다. 이씨 노부인이 웃으며 주 부인을 향해 말했다.
“보게. 이 쌈지 주머니가 어찌나 정교한지, 이 녀석들 모두 다 바느질을 배우려 드는구나!”
주 부인이 이씨 노부인에게 마주 웃어 보였다. 이씨 노부인이 운환의 청을 받아들였다.
“바느질을 배우고 싶다니 참으로 기특한 일이구나. 이왕 이리된 거, 운산도 함께 배우거라. 우리 상리진에서는 삼 년에 한 번 걸교회(乞巧会)가 열린다. 위주(卫州), 윤주(润州)의 규수들도 모두 바느질 솜씨가 뛰어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우리 양강로가 최고지! 어느 집 규수든 우승을 차지하기만 한다면 집안의 경사가 아니겠느냐. 못해도 오 년 후에는 너희 세 명 모두 걸교회에서 우리 고가를 빛내도록 하거라!”
“걸교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 너희 세 사람 모두 성심성의껏 바느질을 배워야 할 것이야.”
주 부인이 진지한 목소리로 이씨 노부인의 말을 거들었다. 소난은 두 눈을 끔뻑이며 운산과 운환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운산은 자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운환은 잔뜩 들뜬 표정이었다. 소난이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소난은 세상에서 바느질이 제일 싫었다. 배우는 것 자체도 싫은데, 심지어 양강로 전 지역에서 손에 꼽힐 만큼 잘해야 한다니. 소난이 마음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이게 다 쌈지 주머니 때문이야! 고소 때문이야!’
* * *
다음 날 아침, 위 유모는 일찍부터 주 부인에게 가서 몇 가지 지시를 받은 후, 운산과 운환에게 바느질을 가르쳤다.
주 부인은 어멈을 시켜 송풍원에 자수틀과 자수실 등을 가져다 두도록 지시했고, 동말은 이를 받아 위 유모에게 전달했다. 일찍부터 소난에게 바느질을 가르치고 싶었던 위 유모는 기뻐서 연신 싱글벙글 웃었다.
오후에 잠에서 깨어난 소난이 매무새를 단정히 가다듬고 앉자, 위 유모가 만면에 웃음을 띠고 들어와 예를 갖추었다.
“나리와 마님께서 그리되지만 않았다면 아씨께서도 일찌감치 바느질을 배우셨을 텐데, 이제야 배우는군요. 글자 몇 자 더 아는 것보다 바느질이나 요리가 시집가서 더 쓸모 있는 거랍니다. 여인이라면 응당 그래야지요!”
중얼중얼 잔소리가 끊이지 않는 위 유모를 바라보며 소난이 체념한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소난은 가사 일이 너무나도 싫었다. 바느질은 물론이고 주방 일에는 더더욱 관심조차 없었다.
동말이 입을 오므리고 웃으며 평상의 공간을 확보하기 창가 앞에 놓인 국화를 치웠다.
위 유모는 어설프게 바늘을 쥐는 소난에게 바늘 잡는 법부터 시작해서 자수틀 사용법까지 하나하나 가르치기 시작했다. 소난이 고개를 숙인 채 바느질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위 유모에게 물었다.
“유모, 오늘 아침에 주 부인을 찾아갔을 때, 부인께서 뭐라고 하셨어?”
“주 부인께서 앞으로 세 아씨의 바느질을 성심성의껏 가르치라고 하셨어요. 오전에는 큰 아씨와 작은 아씨의 처소에 가서 바느질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왕 부자님의 수업을 마치고 온 아씨에게 바느질을 가르치라고 하셨죠.”
위 유모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던 소난이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유모, 조모님께서는 언제 걸교회에서 우승하라고 하셨지?”
위 유모가 소난의 물음에 멈칫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녀가 몸을 돌려 동말을 바라보자 동말이 조금 망설이는 듯한 표정으로 대신 대답했다.
“상리진의 걸교회는 양강로 전 지역의 처녀들이 자수품을 뽐내는 대회인데, 우승은 정말 쉽지 않아요.”
위 유모가 손에 쥐고 있던 자수틀을 내려놓고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받았다.
“연가에서는 매년 자수품을 몇 개 선별해서 상리진에 보내곤 했었죠. 하지만 다른 집의 처녀들과 비교하지는 않았어요.”
“이상하네요. 자수품을 선보이는데 다른 집 처녀들과 비교하지 않았다니, 이해가 되지 않아요. 왜 그런 거예요?”
동말이 평상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위 유모가 동말의 행동을 나무라듯 흘겨보고는 꿋꿋하게 말했다.
“연가의 자수품은 연가 내에서 모두 한데 모아 경쟁한다네.”
동말은 더더욱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소난이 그런 동말에게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동말 언니는 잘 모르겠지만 연가는 양강로에서 바느질 솜씨로 제일가는 집안이었어. 궁 안의 자수품들이 모두 연가의 자수공방에서 납품되었을 정도니까. 연가의 규율에 따르면, 연가의 처녀들은 걸음마를 뗀 순간부터 바느질을 배우기 시작한다고 해. 내가 생각하기로는, 다른 집안 처녀들의 바느질 솜씨는 연가 출신 처녀들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거야.”
동말의 눈썹이 서서히 치켜 올라가더니 그제야 알겠다는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 편지금수라고 불리던 연가 말이에요? 아씨의 모친께서 그 연가 사람이었다니! 어쩐지 위 유모 바느질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암요! 연가의 바느질 솜씨라면 양강로에서 그 어느 집안도 따라올 수 없죠!”
위 유모가 자부심이 담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말이 그 말일세. 그러니 연가의 규수들은 시집을 잘 가기 위해 우승을 거머쥘 필요가 없다는 말이네.”
이번에는 소난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우승하면 시집을 잘 간다는 게 무슨 뜻이야?”
“이건 제가 알아요!”
동말이 냉큼 끼어들었다.
“많은 집안이 바느질 솜씨로 며느릿감을 찾아요. 그래서 걸교회가 열릴 때면 우승을 거머쥔 처녀를 며느리로 삼으려는 집안들이 벌떼처럼 몰려든답니다. 어렸을 적에 저의 모친께 몇 번이나 들은 적이 있어요. 어느 집 규수가 우승해서 많은 집안의 구혼을 받았고, 그중 가장 좋은 가문으로 시집갔다는 등의 이야기를 말이죠.”
순간 소난의 두 눈이 반짝였다. 그녀가 입술을 깨물고 손에 든 자수틀을 내려다보았다. 하얀 천위에 놓아진 수를 보며 소난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옆에 있는 동말을 보며 말했다.
“이것 좀 봐. 이 실력으로 내가 걸교회에서 우승한다는 게 가당키나 하겠어? 우승을 하려면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동말이 가까이 다가와 수틀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리 나쁘지 않네요. 제가 막 바느질을 시작했을 때는 이것보다 훨씬 더 엉망진창이었는걸요.”
위 유모가 소난의 손에서 자수틀을 가져가 빛에 비추어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씨께선 제가 한 말을 제대로 듣지 않으셨네요. 이리 엉망이라니.”
소난이 히히 웃으며 위 유모의 곁으로 바짝 붙어 아양을 떨었다.
“유모, 한 번만 더 알려줘. 아까는 이해가 잘 안 가서 그랬어.”
동말이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유모가 반나절 동안 자세히 가르쳐 주었는데, 아씨께서는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으셨네요.”
소난이 동말을 곱게 째려보고는 생떼를 썼다.
“이해를 못 하겠는데 어떻게 해! 내 손이 이리 멍청한 걸 어쩌라는 거야!”
소난의 말에 동말이 웃겨서 자지러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난은 위 유모의 소매를 붙잡고 늘어지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계속 아양을 떨었다.
“유모, 한 번만 더 알려주면 안 돼? 이번에는 정말 잘 들을게. 나도 반은 연가의 피를 이어받았는데, 지금 제대로 잘 배워야 유모에게 우승을 안겨주지.”
유모가 자수틀을 내려놓고 소난을 품에 안았다. 그러고는 부드럽게 소난의 등을 쓰다듬으며 애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몇 번이고 알려드릴게요. 몇 번이든 좋아요. 아씨가 이리 총명하신데 무엇이 걱정이겠어요. 배우려는 마음만 있으시다면 얼마든지 금방 배우실 거예요.”
“아씨는 위 유모 앞에 있을 때 가장 아이다우시네요.”
동말이 이제야 제 나이로 보이는 소난을 보며 농담을 건넸다.
소난이 더욱 위 유모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생각해보니 걸교회에 좋은 점도 있었다. 인륜지대사인 출가는 여인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대한 일이었다. 소난에게는 위 유모라는 훌륭한 스승도 있으니, 몇 년만 노력하면 우승을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러 집안에서 소난에게 혼담을 건네 올 것이고, 이후의 삶도 걱정할 것이 없었다. 소난의 눈이 금세 반달 모양이 되었다.
* * *
바느질을 배우기로 한 이후부터 소난은 하루하루가 바빠졌다. 아침 일찍 수업을 듣고 오면 점심을 먹은 후 가볍게 낮잠을 자고, 반 시진 정도 습자를 한 후 위 유모와 함께 곧바로 한 시진 가까이 바느질했다. 하루가 모두 끝나고 나면 어느새 바깥에 어둠이 내려와 있었다.
고소는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소난을 찾아와 함께 숙제했고, 그가 지극한 열정으로 소난에게 서법을 가르치면 소난은 열심히 배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소난이 고소를 가르치게 되었다. 두 사람이 함께 암기하게 되면서, 나중에는 서로 암기를 겨루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고소는 더욱더 공부에 흥미가 생겨났고, 매일 소난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기다렸다 그는 어서 빨리 소난에게 자신의 총명함을 뽐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