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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행복의 시작

12화. 행복의 시작

동말과 위 유모가 어멈과 시녀들이 가져다 나르는 생활용품들을 일일이 확인한 후, 놓아둘 위치를 정해 알려주었다.

잠시 후, 주 유모가 시녀들을 데리고 와 유랑 아래 순서대로 서 있으라 지시했다. 그리고 자신은 단정하게 매무새를 가다듬고는 방으로 들어와 무릎을 굽혀 예를 갖추었다.

“부인, 도련님, 아씨. 시녀들을 모두 데려왔습니다.”

“들여보내거라.”

주 부인이 분부하자 주 유모가 시녀들을 데리러 나갔다.

주 부인이 소난을 향해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고가에서는 자신을 모실 시녀를 직접 고르는 것이 규율이지만, 네가 아직 어려 사람의 됨됨이를 가려 볼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고소의 방에 있는 시녀들도 내가 미리 한 번 훑어보고 고소가 고른 것이란다. 너도 그리하면 어떻겠느냐? 우선 내가 뽑은 사람들을 데려다 써 본 후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바꾸면 된다.”

소난이 고소에게 잡힌 손을 살짝 빼내 주 부인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무릎을 굽혀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외숙모님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마침 걱정이 되던 참이었습니다.”

주 부인이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손가락을 뻗어 소난의 이마를 톡톡 건드렸다.

“너도 참 생각이 많구나. 어쩐지 오는 내내 뭔가 답답해하는 것 같더라니. 이를 걱정하고 있었던 게로구나.”

소난이 살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소가 얼른 소난 곁으로 다가와 놓았던 손을 다시 잡고는 진지한 얼굴로 위로했다.

“소난 동생,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거든 혼자 고민하지 말고 내게 말하도록 해. 내가 옆에 있지 않으냐.”

주 부인이 웃으며 손을 뻗어 고소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네 나이가 소난보다 얼마나 많다고 모두 책임지려 하느냐?”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주 유모가 서른 명에 가까운 시녀들을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와 세 열로 줄을 세웠다. 주 부인이 한 명 한 명씩 꼼꼼하게 살펴보더니 허드렛일하는 시녀 네 명과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이는 시녀 다섯 명을 골라냈다.

주 유모가 나머지 시녀들을 방에서 내보낸 후 주 부인의 분부를 기다렸다. 주 부인이 나이가 있어 보이는 시녀 다섯 명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주 유모에게 물었다.

“이 아이들은 어디서 일하던 아이들인가?”

“이들은 큰아씨와 둘째 아씨, 그리고 도련님의 거처에서 일하는 삼등 시녀들입니다.”

주 부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엄한 표정으로 분부했다.

“오늘부터 너희들은 이곳에서 작은 아씨의 시중을 들도록 해라. 무슨 일을 맡게 되든지 정성을 다해야 할 것이야!”

다섯 명이 주 부인에게 공손히 무릎을 굽히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바닥에 엎드려 소난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소난의 거처에 배정된 시녀들이 짐을 챙기러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자, 주 부인이 고소와 소난을 데리고 장방을 나섰다. 송풍원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유모에게 몇 가지를 더 지시했다.

가구의 배치와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나자 주 부인이 고소에게 이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소는 이제 나와 돌아가자꾸나. 소난이가 이곳까지 오는 동안 피로가 많이 쌓였을 테니 쉬도록 해 주는 게 좋겠다.”

고소가 망설이더니, 못내 아쉬운 얼굴로 소난의 손을 놓았다.

“소난 동생, 우선 쉬고 있어. 나중에 다시 오도록 할게. 요 며칠간 서책을 읽지 못했을 테니, 내가 공부를 도와주겠어.”

소난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소 오라버니.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책을 읽기 힘들 것 같아. 내일 알려줘.”

주 부인이 못 말리겠다는 듯 소리 내어 웃음을 터트리고는 실망한 얼굴로 서 있는 고소의 손을 잡아끌었다.

“소난 동생은 아직 어린 데다 요 며칠 피로가 많이 쌓였을 거야. 책은 앞으로도 언제든 읽을 수 있으니 지금은 돌아가도록 하자꾸나.”

고소가 주 부인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송풍원을 나섰다.

소난은 두 사람이 모퉁이를 돌아 뒷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한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정방으로 돌아왔다.

동말이 곧장 소난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아씨, 목욕 후에 낮잠 한숨 푹 주무시고 나서 시녀들을 만나 보시는 게 어떠세요?”

소난이 그렇게 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동말과 함께 정방의 뒤편으로 갔다. 그곳에는 이미 뜨거운 물이 가득 채워진 물통이 준비되어 있었다.

소난이 동말에게 부축받으며 물속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물속에 몸을 담그자 그간의 피로가 모두 풀리는 것 같았다.

소난이 눈을 감고 편안한 듯 숨을 내쉬는 동안 동말이 소난의 머리를 감겼다.

일각 정도 지나 소난이 물에서 나왔다. 조금 더 물속에 들어가 있고 싶었지만, 물의 온도가 처음보다 많이 낮아져 있었다. 동말이 소난의 몸에 묻은 물기를 깨끗하게 닦은 후, 흰색 세포로 만든 짧은 상의와 하의를 입혀 주었다.

목욕이 끝난 후에는 동편 곁채에 마련된 내실(内室)로 들어갔다. 꽃무늬가 조각된 넓은 침상 위에 깨끗하고 푹신한 새하얀 세포 이불이 덮여있었다.

소난이 침상 끝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자 동말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성껏 말려 주었다.

소난은 머리 빗질까지 끝난 후에야 이불 속에 몸을 누일 수 있었다. 푹신하고 쾌적한 이불 덕분에 졸음이 쏟아졌다. 소난은 눈을 감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소난이 깨어난 것은 미시(*未時: 오후 한 시에서 세 시)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이불 속에 누운 채로 기지개를 켜고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지난 한 달여 동안 소난에게 꽤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소난이 생각한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자신의 고향 마을에서 손 유모가 보여준 행동으로 보아, 이미 사전에 이씨 노부인에게 따로 분부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자신을 고씨 가문으로 데리고 왔을 리가 없다.

소난은 손 유모의 태도를 통해 이씨 노부인이 처음부터 자신을 거둘 생각이었음을 확신했다. 이씨 노부인이 어째서 자신을 거두어 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에게 어떠한 계산이나 악의는 없어 보였다.

고씨 가문은 얼마 전 가주를 잃었다. 남은 사람들이라고는 어린아이들과 여인들뿐이었다. 거기다 앞으로 고씨 가문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은 고소밖에 없었다. 만약 고 대인이 죄를 짓고 죽은 것이라면 은음(恩荫)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노부인과 주 부인의 대화로 볼 때, 그들은 고소가 과거시험을 치르기를 바라는 것 같았지만 고소가 가진 자질은 평범했다.

다섯 살에 글을 깨우치기 시작해서 현재까지 겨우 일곱 권째 서책을 읽고 있으니, 뛰어난 자질을 가진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지금의 진도라면 아무리 빨라도 열네다섯은 되어야 합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마저도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소난이 겪은 이씨 노부인은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었다. 비록 명을 달리하긴 했지만 장원급제한 아들을 두었으니 은자로 수재를 살 일도 없었고, 아직 준비되지 않은 고소에게 경험 삼아 시험을 치르게 할 것 같지도 않았다. 아마도 이씨 노부인은 고소가 시험에 합격할 능력을 갖출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그러려면 앞으로 최소 육칠 년은 더 걸렸다.

고소가 수재(秀才)에 합격하고 나면 의혼(议婚)할 나이가 될 것이고, 이후 고가가 어찌 될지는 고소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느냐에 달려있었다. 고소가 원시(院试)를 준비할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고소에게 적당한 혼처를 찾기 위해 다시 경성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그가 과거시험을 치르기 전인 육칠 년 동안 고가에서 일어날 만한 대사(大事)라고는 운산과 운환의 출가(出嫁) 정도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출가는 소난과 무관했기에, 앞으로 소난은 고가에서 안락하게 생활하기만 하면 되었다.

소난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우선 앞으로 육칠 년 동안을 잘 보내고, 고소가 가정을 이루기 전에 소난 스스로 출가할 방법을 찾으면 될 것이다. 경치가 아름다운 이 상리진에서 혼처를 찾을 수만 있다면 가장 좋은 일이었다.

아직은 먼 훗날의 이야기이니, 지금은 좋아하는 서책 속에 묻혀서 즐겁게 생활하기만 하면 되었다.

* * *

소난이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켜자 동말이 인기척을 듣고 다가와 침상에 드리워진 발을 걷었다. 소난이 동말을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웃음이 감염된 것인지 동말도 덩달아 밝게 웃으며 말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푹 주무셨나 보네요.”

소난이 고개를 끄덕이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동말이 옷을 가져와 소난에게 입힌 후 얼굴을 씻겨 주었다. 소난이 방 안을 한 바퀴 돌며 여기저기 둘러본 후, 동편 곁채 외옥의 남쪽 창가 아래에 놓인 낮은 평상에 앉았다. 동말이 소난에게 차를 가져다주었다.

“이 차는 노부인께서 사람을 시켜 구해온 벽라춘(碧螺春)이에요. 주 부인께서 먼저 아씨께 드리라 하셨어요. 그리고 도련님께서도 말리화(茉莉花)차 반 근을 보내오셨어요. 올해 봄에 직접 향을 더한 것이라며, 아씨께서 맛보실 수 있도록 특별히 보내 주셨어요.”

소난이 차를 받아 한 모금 마시고는 차의 향과 맛을 천천히 음미했다.

“맛이 연한 것 같아.”

동말이 입을 오므리고 웃었다.

“제가 찻잎을 일부러 조금만 넣었어요. 아씨는 아직 어리시니 차는 연하게 마시는 게 좋아요. 너무 진하면 위가 상하실 수도 있어요.”

소난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평상 위의 등받이에 기대 천천히 차를 음미했다. 동말이 장식장에서 함을 가져와 소난의 앞에 보이며 싱글벙글 웃었다.

“아씨께서 주무실 때 징심원(澄心院)의 어멈이 아씨께 월례 은자를 가져다주셨어요. 전부 넉 냥이에요. 제가 우선 이 함에 넣어두었어요.”

소난이 찻잔을 내려놓고 허리를 세우고 함을 들여다보았다. 소난은 은자가 어찌 생겼는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함 안에는 두 개의 작은 끈으로 돈구멍을 꿰어 만든 은전이 있었다. 소난이 하나를 꺼내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함 안에 넣었다.

소난이 동말에게 물었다.

“징심원은 주 부인께서 거처하시는 곳이지? 월례 은자가 왜 이렇게 많아?”

“아씨 말씀대로 징심원은 주 부인께서 거처하시는 곳이 맞아요. 도련님은 오동원, 큰아씨는 장미원(蔷薇院), 둘째 아씨는 함담원(菡萏院)에서 지내고 계시죠. 아씨와 똑같이 도련님과 큰아씨, 둘째 아씨도 한 달에 두 냥씩 월례를 받아요. 이것은 팔월과 구월 두 달 치 월례 은자라 했어요.”

다시 함 안을 들여다보는 소난의 마음이 따뜻해졌다. 주 부인께서 가난한 소난을 안타깝게 여기시어 두 달 치의 월례 은자를 한꺼번에 주신 게 틀림없었다.

“휴……. 매달 은자를 넉 냥씩 받으면 좋을 텐데.”

소난은 은자가 담긴 함을 보며 탄식하는 동말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동말이가 열려있던 함을 닫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가의 시녀 중에는 강한 사람에게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 강한 자들이 많아요. 아무리 노부인과 주 부인께서 아씨를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고 해도, 아씨 같은 신분을 가진 분은 한 달에 한두 냥 정도는 시녀들에게 써야 해요. 그런데 월례가 고작 은자 두 냥뿐이니, 어찌 충분하다 할 수 있겠어요.”

동말의 말에 소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녀가 눈을 내리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물었다.

“이 월례 은자들을 모두 쓰고 나면, 시녀들이 운산, 운환 언니들에게 하는 것처럼 나한테도 똑같이 잘 대해줄까?”

동말이 실소를 터트리며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대꾸했다.

“에이, 그건 말도 안 되죠. 아씨가 이 은자의 열 배를 쓴다고 해도 그건 불가능할 거예요.”

“물론 그렇겠지. 어차피 은자들을 모두 다 쓴다고 해도 소용없을 텐데, 뭐 하러 이 귀한 은자를 애꿎은 시녀들에게 쓴단 말이야? 나는 앞으로 상을 줘야 할 땐 상을 줄 거고, 얼마를 써야 한다면 필요한 만큼만 쓸 거야. 절대 허투루 쓰는 일은 없을 거라고.”

소난의 단호한 말에 동말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소난을 바라보고 있다가 한참 만에 참았던 말을 꺼냈다.

“아씨는 정말이지 모든 것을 훤히 꿰뚫고 계시네요.”

소난이 동말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시 찻잔을 집어 들었다. 그녀가 찻잔을 입가로 가져가 찬찬히 음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