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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선처

“온전한 신체와 자유로운 삶은 그녀가 지금껏 그토록 갈망하던 것이었다.” 썩은 내를 풍기던 몸과 가면으로 가려야만 했던 문드러진 얼굴은 더 이상 없었다. 눈을 뜨니, 거울 속엔 꽃다운 열여섯의 아리따운 여인만이 있을 뿐! 상림당가의 서출 둘째 딸 당염원의 몸에서 깨어난 그녀는 이복자매를 대신해 무시무시한 소문들을 달고 다니는 괴물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는 열두 명의 아내를 배 속에 삼켰다는 끔찍한 괴물은 없었다…. 그저 신비로운 분위기의 아름다운 남자, 설연산장의 장주 사릉고홍만이 있을 뿐이었다. 천성적으로 독을 내뿜어 아무도 곁에 둘 수 없었던 사릉고홍에게, 독을 도리어 약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특이한 체질의 당염원은 그토록 기다려 온 유일무이한 존재다. 하나, 전생에서 늙은 괴물에게 노예처럼 부려졌던 당염원은 그저 자유만을 갈구하는데…. 사릉고홍에게서 흘러나오는 독의 기운을 흡수하여 힘을 모아 이곳에서 탈출하고 마리라! 그때까진 그저 얌전히 그의 곁에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이 세계, 약육강식의 법칙이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에게 더없이 상냥한 사릉고홍에게 마음이 가고 마는데….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느껴본 당염원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원제: 莊主有毒之神醫仙妻

수천철 · Kỳ huyễ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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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6 Chs

11화. 잘해 준다는 말

11화. 잘해 준다는 말

매림의 북측에 위치한 빙연곡은 산과 산 사이에 있어 입구가 마치 동굴 같았다. 주변에는 눈뿐이어서 얼음 결정으로 가득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꼭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자연이 만들어 낸 얼음 나무들이 겹겹으로 우뚝 서 있었다. 다른 나무들처럼 생기 있지는 않지만 빙연곡의 풍경에는 더없이 안성맞춤이었다. 그야말로 정교하고도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중앙에 자리한 고요한 연못은 마치 옥으로 만든 쟁반 같았다.

연못 중앙에는 정말로 옥으로 만든 누대가 있었는데, 반사된 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그 주변에는 푸른 꽃술을 가진 흰 꽃들이 몇 송이 떠다녔다. 너무나 아름답고 짙은 향기를 풍기는 것이 월하미인(*선인장과의 여러해살이풀)을 연상케 했다. 월하미인보다도 더욱 고귀한 느낌을 자아내는 이 꽃은 고아한 군자의 기개를 지녔다.

빙연곡은 완전히 산으로 덮여 있지 않았기에 약간의 틈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어왔다. 깊은 밤 이 틈으로 비쳐 들어오는 달빛이 골짜기의 풍경을 얼마나 아름답게 할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사릉고홍은 당염원을 안은 채 연못 중앙의 옥누대에 섰다. 이때 굳게 경직되어 있던 그의 몸은 예전의 상태를 회복했다. 그는 몸을 굽혀 당염원을 옥누대에 잘 앉힌 뒤 손을 뻗었다. 그러자 곧 주변에 떠다니는 아홉 송이의 흰 꽃 중 파란 구슬 모양의 꽃술을 가진 한 송이가 그의 손에 떨어졌다.

사릉고홍은 진주알 크기의 꽃술을 당염원의 입가로 가져갔다.

“드시오.”

그러자 당염원의 눈이 번뜩였다. 꽃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꽃술 주위로 퍼져 나오는 영기를 봤기 때문이다. 뒤이어 그녀는 연못에 떠 있는 흰 꽃에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이 역시 꽃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 주변으로 퍼져 나오는 짙은 약의 기운과, 꽃의 정체 때문이었다.

벽주월화(碧珠月華).

벽천결에 기록되어 있는 영약은 영단의 영약을 조제할 수 있어 늙은 괴물조차도 한 번 보면 놀라워하는 보물이었다.

과거 늙은 괴물이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진귀한 보물들이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었다. 심지어 사릉고홍은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그녀에게 먹으라고 권해 주기까지 했다.

당염원은 처음으로 혼란스러워졌다. 그녀가 줄곧 가지고 있던 관념을 이 사내가 뒤바꿔 버린 것이다. 그녀는 그가 진정으로 자신에게 잘 대해 준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받았다.

대체 무엇 때문에? 당염원은 다소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사릉고홍을 바라보았다.

사릉고홍의 속눈썹이 팔락이며 눈을 반쯤 가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어두움이 묻어 있었다.

“이건 월경화(月璟花)의 열매요. 먹으면 원력이 갑절로 좋아진다고 하오. 인체에 무해하니 걱정 마시오.”

이런 그의 간단명료한 설명은 사람들로 하여금 원망을 자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인체에 무해하다니? 월경화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진귀한 보물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꽃술 열매가 가장 값어치가 높았다. 보통 사람이 먹으면 몇십 배의 원력을 얻을 수 있었다. 무술에 재능이 없는 사람도 이것을 섭취하면 능히 해냈고, 독기가 침입하는 것을 막아 낼 수 있어 병들지 않고 오래 살 수 있었다. 무인(武人)에 대한 효과는 말할 것도 없고, 죽어 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는 약이었다. 그야말로 피와 뼈와 살 모두에 도움이 되는 보물이었다.

하지만 구하기 무척 어렵기 때문에 월경화는 그저 전설로만 전해졌고, 이를 직접 본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만약 설연산장에 월경화가 아홉 송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많은 부러움을 살 터였다.

당염원의 눈이 요동쳤다. 사릉고홍은 지금 그녀의 의심스러운 눈빛에 괴로워하는 듯 보였다. 왜 날 벌하지 않고 혼자서 괴로워하는 걸까? 당염원은 어딘가 마음이 불편했다. 그녀는 자신이 대체 무엇 때문에 마음 불편해하고 있는지 간과했다. 당염원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설사 독이 들어 있다 하더라도 그녀에겐 아무 소용없었다.

사릉고홍이 그녀를 바라보자, 당염원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저 저에게 왜 이렇게 잘해 주시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에요.”

사릉고홍은 그녀의 의심스러운 눈빛에 잠시 멍해졌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이 그녀에게 어떻게 대했기에 이리도 직접적인 의심을 내비치는 걸까?

심장이 콕콕 찔리는 듯이 아파 왔다. 사릉고홍은 그녀를 품에 안고 턱으로 머리를 부드럽게 부비며 말했다.

“원아.”

“네?”

사릉고홍이 그녀의 머리칼에 입을 맞추고 눈을 바라보며 운을 뗐다.

“내가 말했지 않소. 잘해 주겠다고, 아주 잘 대해 주겠다고 말이오.”

당염원은 그의 눈빛에 넋을 잃고 말았다.

“네. 기억할게요.”

그러자 사릉고홍이 답했다.

“난 거짓말을 하지 않소.”

당염원의 입이 조금 벌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사릉고홍이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소!”

마치 어린아이가 고집을 부리며 만족스러운 대답을 원하는 모양새였다.

“네.”

당염원이 눈을 내리깔았다.

사릉고홍이 그녀의 허리를 좀 더 세게 껴안았다. 마치 당염원이 아직 무언가 미심쩍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말했지 않소. 좋아하는 거라면 그게 뭐든 다 해 줄 거라고.”

사실 당염원은 자유를 원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그가 해 준 것에는 모두 대가가 따랐는데, 그 대가가 바로 그녀가 원하는 자유였다. 그래서 당염원은 연못 위의 아홉 송이 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꽃이 좋습니다. 저에게 주실 건가요?”

사릉고홍의 눈썹이 반달처럼 휘었다. 그의 눈에도 따뜻한 웃음이 가득했다. 웃음소리는 마치 맑고 시원한 바람 소리 같았다.

“저것들은 본래 당신의 것이오.”

당염원은 의아했다. 저게 어떻게 내 것이란 말인가?

그러자 사릉고홍이 덧붙였다.

“나의 것이 곧 당신의 것이니까.”

당염원은 그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곳 골짜기는 신선이 사는 곳처럼 아름다웠다. 벽주월화는 월화수령(月華水靈)이 만들어 낸 절경이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사람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그의 얼굴과 몸 모든 것이 완벽했다.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어째서 모두 제 것인가요. 그렇게 해맑게 웃을 일이 아니에요.”

당염원이 마음속에 품고만 있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러자 사릉고홍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 처음으로 당신이 먼저 원하는 것을 얘기했단 걸 아시오?”

당염원은 가만히 그의 미소를 보고 있었다. 항상 모든 걸 꿰뚫어 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닌가? 당염원의 목숨과 자유가 모두 그의 손안에 있었다. 그렇기에 항상 사릉고홍에게 주도권을 넘기고 조심히 행동하는 것이 당연했다.

“앞으로 원하는 것이 생기면 또 이렇게 말해 주시오. 산장 안에 없는 것이라도 전혀 상관없으니.”

“다른 이가 가지고 있는 것은요?”

“뺏어서라도 가져다주겠소.”

사릉고홍이 미소 지었다.

당연하다는 듯한 그의 말투가 너무도 담담하여 말 속에서 포악함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당염원 역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이 절도 행위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약자가 강자에게 의지하고, 강자는 약자를 부리는 것이 당연한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빼앗는 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약자로 평가받는다면 물건을 빼앗기는 게 당연했다.

강자를 믿고 약자를 괴롭히는 건 군자가 아니라고? 웃기는 소리. 애초에 당염원에게 그런 생각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 오십 년간 늙은 괴물과 함께하면서 굳어진 그녀만의 사고방식이었다.

그때 사릉고홍이 다시 한번 꽃술 열매를 그녀의 입에 가져다주자 당염원은 망설이지 않고 그것을 받아먹었다. 보통 사람은 먹고 나면 원력이 급증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약력으로 바꾸었다. 양적으로 보았을 때 원력과 비할 바가 못 되는 것이 사실이나, 질적으로 보자면 약력이 더 뛰어났기 때문이다.

사릉고홍은 당염원의 맥을 짚어 보았으나, 원력이 늘어난 것이 느껴지지 않자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이내 그는 손을 뻗어 푸른 꽃술의 열매를 다시 당염원에게 먹여 주었다.

그녀는 다시 그것을 받아먹었다.

사릉고홍은 다시 한번 맥을 짚었다. 그러나 원력이 느껴지지 않자 일반 사람들은 꿈도 못 꾸는 귀한 열매를 아무렇지 않게 또 하나 따서 그녀의 입에 가져다주었다.

이쯤 되자 당염원은 그가 정말로 벽주월화를 신경 쓰고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입에 들어간 열매를 손바닥에 뱉고는 먹지 않았다.

“왜 그러시오?”

사릉고홍이 물었다.

“낭비입니다.”

당염원이 답했다.

이건 매우 귀한 영약이었다. 벽천결을 보면 적지 않은 영단이 모두 이 벽주월화를 필요로 했다. 이런 식으로 먹는 것은 큰 낭비임이 분명했다. 주인은 그렇지 않더라도, 당염원은 그것이 너무나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사릉고홍도 더 이상 요구하지 않았다.

“그럼 다른 것을 먹어 봅시다.”

“이것들은…….”

당염원이 남은 벽주월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릉고홍이 손을 살짝 휘젓고 주먹을 쥐자 연못 위에 떠 있던 나머지 여섯 송이의 꽃 가운데 푸른 꽃술 주과(珠果)가 사라졌다. 그가 손을 펴니 세상에서 가장 귀한 벽옥같이 생긴 푸른 주과 여섯 알이 드러났다. 하얀 그의 손이 그 덕에 더욱 환하게 빛나는 듯했다.

당염원은 그와 그의 손에 있는 주과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그것들을 받았다. 두 눈에는 이미 기쁨의 빛이 드러나 있었다. 그녀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욕심이 더 생긴 것이다. 그녀는 이내 연못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것도 제 마음대로 해도 되나요?”

천 년간 이어져 온 연못물에는 영력이 충만했기 때문에 아주 활용도가 좋았다. 오랫동안 물에 몸을 담그면 몸을 수련할 수 있었고, 피부를 가꾸거나 무병장수할 수도 있었다.

아무튼 그런 이유를 차치하더라도 그녀는 이곳 연못의 물, 벽주월화 아홉 송이, 얼음 나무들…… 이곳 풍경이 퍽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사릉고홍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간절히 갈구하던 그녀의 눈빛이 조금 어두워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가 당염원을 다독였다.

“원력이 충분해져서 물의 한기를 견딜 수 있게 되면, 그때 들어가서 수련하시오.”

당염원은 무엇인가 알고 싶다는 듯 두 눈을 깜빡였다. 뒤이어 손을 펼쳐 일곱 알의 주과를 보여 주며 물었다.

“이곳에서 수련하기 위해 이것들을 먹었던 건가요?”

그러자 사릉고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가볍게 당염원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대에게 이건 소용이 없는 것 같소. 다른 걸 먹어 봅시다.”

“저는 이곳에서 수련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물을 좀 가져가도 될까요?”

최근 이틀 동안 당염원은 매우 사치스럽게 지냈다.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할 수 있는 천마독을 가까이하고 지냈고, 주묘랑이 앞으로 식사에 약을 첨가하겠다고 약속한 이후로 다양한 약재를 더욱 쉽게 섭취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풍족한 공급과 녹녹의 협조 속에서 그녀는 이미 축기를 모두 이루었고, 천성약체의 근간을 모두 다졌다.

게다가 조금 전 벽주월화의 열매인 주과를 두 알이나 먹었다.

이 세계에서 현재 그녀라면 웬만한 원력을 가진 자들은 모두 이길 수 있었다. 다만 당염원은 이 세계에 온 후 벽천결을 배운 지 나흘도 되지 않았다. 다른 공격 수법은 아예 배우지 못했다. 할 줄 아는 건 약과 독을 다루는 것뿐, 그 외에 그녀는 자신에게 있는 능력들을 사용할 줄 몰랐다.

그렇다고 당염원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무능력한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런 공격 수법도 모르는 그녀지만, 진심으로 결투에 임하게 된다면 그녀는 자신의 약력으로도 충분히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다. 물론 사릉고홍과 같은 사람만 빼고.

당염원은 현재 자신의 능력이 사릉고홍에 비해선 새 발의 피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어떤 위협도 가하지 못할 뿐 아니라, 설사 능력을 드러낸다 하더라도 그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