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novel

5

*

다음날, 광물 채집을 목적으로 홍성에 향하기 전.

나는 기쁜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멍멍아?!"

[멍멍이가 치프 다이어 울프로 진화하였습니다.]

-능력치가 향상되고, 1개의 스킬을 추가 획득합니다.

[멍멍이(치프 다이어 울프) / 레벨: 39]

-보유 스킬

돌격: 적에게 돌격해 몸통 박치기를 하거나, 더욱 빠르게 앞으로 달릴 수 있다.

절단: 마력이 깃든 이빨로 적을 물어뜯는다.

바로 멍멍이가 그랑 다이어 울프의 상위 개체로 진화한 것이다.

더구나 능력치도 오르고 스킬까지 새로 획득하면서 멍멍이는 더욱 강해졌다.

스킬도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돌격과 상성이 좋은 것을 얻었고.

'그런데, 진화 조건이 뭐지?'

레벨도 아니고, 특정 몬스터의 사냥도 아니다.

그래서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잘했어 멍멍아."

-컹컹!

멍멍이는 진화로 덩치가 더욱 커지면서 다른 치프 다이어 울프를 가볍게 내려보는 수준이 되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걸어 다니는 마을버스 수준이랄까?

윌리아가 멍멍이의 등에 타고 털로 좀 가리면 존재가 숨겨질 정도다.

'던전에 입장할 때, 길이 좁은 곳은 함께 들어가지 못하겠네.'

대체 어디까지 커지는 걸까?

-꾸익!

멍멍이의 진화에 뚱이도 진화하고 싶다는 듯 말한다.

[뚱이(오크) / 레벨: 27]

-보유스킬

참격: 검에 마력을 담아 휘두른다.

하지만 뚱이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오늘은 뚱이도 우리랑 같이 가자."

-꾸익!

한동안 따로 활동을 해서일까?

뚱이는 함께 가자는 말에 크게 기뻐했다.

나는 그런 뚱이에게 미소 띤 얼굴로 곡괭이를 쥐여주었다.

물론 나도, 윌리아도 마찬가지다.

'마음 같아선 콩쥐, 팥쥐도 데려 가고 싶지만, 레벨 10의 펫을 데려가봤자 끔살 당하기 좋으니까.'

잠시 후, 우린 홍성의 '잊혀진 광산'에 도착했다.

"홍성 대학팀은 오지 않았나 보네."

저번처럼 던전 제한 시간의 도중에 들어온 게 아니었다.

'그나저나 내 구독자님은 잘하고 있으려나.'

오늘 일을 마치면 한 번 들러봐야겠다고 생각을 하곤, 몬스터들을 순식간에 쓸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가 광물이 많으니까, 아예 자리 잡고 캘까요?"

"좋아요."

밝은 목소리로 대답한 윌리아가 곡괭이를 번쩍 들었다가 벽을 내리쳤다.

깡!

하지만 레벨은 나와 같아도 괭이질은 처음일 테니, 그대로 반사되듯 몸이 뒤로 기울면서 내게 부딪혔다.

"죄, 죄송해요."

"괜찮아요."

그에 반해 뚱이는 이달의 사원이 될 정도로 천부적이었다.

-퍽! 퍽!

광물이 붙은 벽을 치는 속도와 울려 퍼지는 소음마저 윌리아와 달랐다.

"오, 뚱이. 잘하고 있어."

-꾸익.

게다가 재미까지 붙였는지, 겉으로 드러난 광석 외에 벽 속에 파묻혀 있는 것까지 캐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투두둑.

벽 반대편에서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주먹 크기의 구멍이 생겨났다.

"설마 뒤쪽 공간까지 뚫은 거야?"

잠깐, 구조상 이 뒤의 공간은···.

그리고 희미한 빛이 뚱이가 뚫은 구멍에서 새어 나왔고.

"꺄악!"

윌리아가 비명을 질렀다.

뚫린 구멍에서 갑자기 눈동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뭔.]

잊혀진 광산의 보스, 하프리치였다.

050화 무기 강화 (2)

나와 윌리아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구멍을 향해 마력탄을 쐈다.

덕분에 하프리치는 눈에 2연발로 날아드는 마력탄을 맞고 신음했다.

[크윽! 이 비겁한···.]

"그러게 누가 구멍에 썩은 눈깔부터 들이밀래?"

[벽에 구멍을 뚫은 건, 네 녀석들이다. 비겁한 짓 말고 정정당당히 덤벼라.]

설마 던전의 보스몬스터와 구멍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설전을 벌이는 날이 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한껏 화가 난 하프리치도 우리를 향해 마력탄을 날렸지만, 윌리아의 디바인 쉴드에 가볍게 막혔다.

덕분에 녀석을 바라보는 내 표정이 놀람에서 황당함으로 바뀌었다.

"이거 잘하면. 어부지리로 던전 클리어하는 거 아닙니까?"

"무엇이든 시도해보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내 물음에 윌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윌리아 님!"

"네!"

긴 설명 따윈 필요 없다.

내 부름에 그녀는 바로 하프리치에게 힐을 사용했다.

[크윽!]

그리고 나는 녀석이 고통스러워하는 타이밍에 맞춰 마력탄에 불속성을 부여한 파이어샷을 날려 추가 타격을 입혔다.

물론, 모든 공격이 성공하는 건 아니었지만, 3번을 시도하면 한 번은 맞았기에 우린 신이 나서 구멍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쾅!

그에 하프리치를 보호하는 두 마리의 네임드 듀라한이 흥분하며 구멍에 검을 찔러왔지만, 어림도 없었다.

슬쩍 뒤로 피하니 놈들의 검날은 우리에게 닿지 못했다.

그렇게 듀라한들의 검이 빠질 때마다 하프리치 괴롭히기가 계속 이어졌고.

결국 녀석들은 작전을 바꿨다.

-팍! 팍!

좁은 구멍을 키우기로 한 것이다.

듀라한들은 검기를 두른 검으로 구멍을 부수며 크기를 키우기 시작했다.

금세 구멍은 사람의 몸통 하나 들어갈 정도로 커졌고, 우린 마치 네트를 중간에 두고 테니스를 하듯 공격을 주고받았다.

"어?"

하지만 오래지 않아 싸움은 끝났다.

우리가 광질을 하던 공간에 몬스터가 스폰함과 동시에.

"에이, 뭐야."

파괴된 던전의 지형이 자동으로 수복되었기 때문이다.

즉, 벽의 구멍이 막혀서 보스의 모습이 가려졌단 뜻이다.

"왠지 이럴 것 같긴 했어."

솔직히 싸우면서 큰 기대를 안 했다.

던전에 수복 기능이 없으면, 다들 꼼수만 생각하게 될 테니까.

우린 새롭게 리젠이 된 몬스터들을 빠르게 쓸어 버리곤 이야기를 나눴다.

"보스 공략을 이어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방금의 공방이 성과 없이 끝난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유는 녀석들과 쪼잔한 전투를 이어가면서 넓어진 구멍 너머로 보스룸의 내부를 찬찬히 살필 수 있었고.

그 보스룸에는 지금 우리가 있는 곳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많은 광물 채집물이 벽과 바닥, 천장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러니 우리의 목적이 광질에서 보스 토벌로 우선순위가 바뀌는 게 당연했다.

"우리가 많이 강해지긴 했어도, 레벨 35의 네임드 듀라한 2마리와 레벨 40의 보스를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지가 문제네요."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이 부분이다.

이곳은 과거 우리가 보스 토벌을 목전에 두고 도망쳤던 던전.

그때보다 모두가 강해졌다곤 하지만, 역시 네임드 2마리와 보스 1마리의 전력은 무시하기 힘들었다.

"진화한 멍멍이라면, 네임드 듀라한 한 마리를 상대로 시간을 끄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확실히 윌리아의 말대로다.

지금의 멍멍이라면 그 정도 백업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윌리아의 호위는 방패를 지닌 뚱이가 해도 되고, 내겐 블링크란 공간이동 스킬이 있는 만큼, 윌리아에게 빠른 지원을 갈 수 있다.

이어서 윌리아는 우리의 승률을 높이기 위해 이런 제안을 해왔다.

"보스는 저와 뚱이가 맡을게요."

"위험할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백호님께서 빠르게 네임드 한 마리를 처치해서 숫자를 줄이는 게 승률이 높다고 생각해서요."

그녀는 사냥 성공을 위해 스스로 위험한 임무를 자진하고 나섰다.

나는 그런 윌리아를 보며 걱정이 되면서도 속으로 놀라움을 표해야 했다.

그만큼 윌리아가 우리 파티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단 뜻이었으니 말이다.

그 모습만 봐도 그녀는 결코 짜여진 극본대로 움직이는 게임 속 NPC가 아니다.

우리와 다름없는 개성과 생각을 지닌 인간임을 증명했다.

"알겠습니다. 윌리아님의 계획대로 가죠."

*

우린 정상적인 루트로 보스룸에 다다랐다.

[네임드 듀라한 알칸 / 레벨: 35]

[네임드 듀라한 제르더 / 레벨: 35]

[보스 하프리치 카르시아 / 레벨: 40]

그러자 던전 보스인 하프리치 카르시아가 이를 악물며 으르렁댔다.

[네 녀석들···.]

"아쉽네, 데미지는 시간이 지나면 치료되는구나?"

부상은 치료되어도, 기억은 죽지 않는 이상 그대로인 모양이다.

길게 시간 끌 것 없다.

우린 작전대로 움직였다.

나는 먼저 블링크를 사용해 보스인 카르시아의 등 뒤로 돌아갔고, 흠칫 놀란 녀석에게 거력참에 검기를 담아 쳐냈다.

-콰아앙!

[큭!]

이왕이면 보스가 그대로 죽어주면 좋겠지만, 던전 보스가 한 방에 죽길 바라는 건 역시 도둑놈 심보다.

하프리치 카르시아는 일반적인 원형쉴드가 아니라, 정면만 방어하는 쉴드를 펼쳐 내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워낙 강력한 공격인지라 데미지를 크게 입지 않아도 튕겨져 나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녀석이 떨어진 곳은 윌리아가 대기한 장소였다.

"마력탄, 워터."

[뭣?]

윌리아는 녀석이 날아오는 타이밍에 맞춰 마력탄에 물속성을 담아 관통력을 가진 워터샷을 날렸다.

카르시아가 그녀의 공격을 알아챘을 땐 이미 워터샷이 코앞까지 쇄도한 상태였다.

미쳐 방어막을 펼칠 여유가 없던 녀석은 필사적으로 상체를 틀었고, 그대로 어깨가 뜯기며 한쪽 팔이 날아갔다.

성공적인 기습.

하프리치 카르시아를 윌리아가 묶어 놔야 하는 만큼 기습으로 최대한 데미지를 주려 했는데, 그 계획이 제대로 통했다.

[이, 이런.]

보스가 기습에 당하는 걸 지켜본 네임드 듀라한 둘이 당황하며 뒤늦게 카르시아를 지키기 위해 움직였지만, 아쉽게도 녀석들에겐 이미 상대가 정해져 있었다.

"어딜 가려고."

-콰아앙!

나는 다시금 거력참과 검기를 섞어 네임드 듀라한 하나를 멍멍이에게 날려 보낸 뒤, 어느새 혼자 남게 된 듀라한과 1대1 전투에 돌입했다.

'최대한 빨리 끝내자.'

같은 레벨이라 해도 네임드와 보스 몬스터 쪽이 일반 몬스터보다 월등히 강하다.

눈앞의 네임드 듀라한이 나보다 레벨이 11이나 낮다고 방심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방심과 자신감은 다른 법이다.

-쾅! 쾅! 서걱!

[크윽!]

거칠게 네임드 듀라한을 밀어붙이는 내 행동은 어디까지나 순수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나는 듀라한에게 검 한 번 휘두를 기회를 주지 않고 무차별 공격으로 대응했다.

'더 빠르고, 더 강하고, 아예 내 쪽으로 검을 뻗지 못하게끔.'

그렇게 공격 일변도 속에 간간히 변초와 스킬을 섞으면서 빈틈을 이끌어냈다.

'마력탄, 쾌격, 디딤판.'

그 순간, 정신없이 공격을 막아내기만 하던 듀라한이 한껏 흥분하여, 예상 밖의 수를 두었다.

[얕보지 마라!]

살을 주고 뼈를 취하겠단 작전인지, 복부에 파고드는 내 공격을 막지 않고 오히려 오히려 검을 찔러 온 것이다.

언데드이기에 할 수 있는 물귀신 작전이었다.

-푹!

내 검이 녀석의 복부에 깊이 틀어박히고, 거의 동시에 듀라한의 검붉은 검기가 나를 덮쳐왔다.

그에 나는 미련 없이 듀라한의 복부에 꽂힌 검에서 손을 놓으며, 스킬을 사용했다.

'블링크.'

시야 한가득 들어오는 듀라한의 등.

하지만 녀석은 이 패턴을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다.

[어딜!]

때마침 검의 방향이 바뀌며 내 목을 노려온 것이다.

카르시아에게 기습을 가할 때 블링크를 썼던 걸 본 만큼, 나름 머리를 굴린 것이다.

역시 네임드 이상 몬스터들의 지능은 무시 못 한다.

그러나 녀석은 스킬 하나에 너무 연연했다.

"상급 방어막."

나는 크리쳐 보아의 막타를 먹고 얻은 망토의 내장 스킬을 펼쳤고.

-깡!

녀석의 필살 공격이 맥없이 막히며 보조검을 빼 든 내 횡베기에 그대로 당했다.

[네임드 듀라한 제르더를 토벌하여 경험치 18,000을 획득했습니다.]

[네임드 듀라한 제르더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6,552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중급 회복물약 4개를 획득했습니다.

-스킬북 '검기'를 획득했습니다.

상체가 떨어져 나간 제르더의 하체가 무릎을 꿇더니, 이내 완전히 바닥에 고꾸라졌다.

전투 시작부터 토벌까지 채 1분이 걸리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곧장 윌리아와 멍멍이의 상황을 살폈다.

[이, 이년이?]

"뭐, 이놈아."

상대가 언데드여서인지, 서포터임에도 하프리치 카르시아와 대등하게 싸우는 윌리아 모습은 상상 이상으로 안정적이었다.

'역시 상황판단력하고 대응능력이 좋아.'

서울에 다녀오면서 윤시아란 인물의 전투 센스를 칭찬했었는데, 이제 보니 가장 가까운 곳에 보물이 있다는 걸 잠시 망각하고 말았다.

보스는 조금 더 윌리아에게 맡겨도 되겠다고 판단한 나는 멍멍이를 돕기 위해 움직였다.

그럭저럭 상대가 되고 있는 모양이지만, 어깨를 당했는지, 피가 발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녀석, 애썼다.

"고마워 멍멍아. 이제 윌리아님 도와줘."

-컹!

나는 회복의 반지를 이용해 멍멍이를 치료해주었다.

내 지시에 멍멍이는 하프리치에게 전광석화처럼 돌격 스킬로 달려가며 새로 얻은 절단 스킬을 이용해 다리를 물어 뜯었다.

윌리아 혼자서도 잘 싸우고 있던 만큼 멍멍이가 더해지면 더욱 안정감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나와 두 번째 네임드 듀라한과의 전투가 시작되었는데, 이건 앞선 싸움의 반복이었다.

[아, 안 돼!]

"얼른 뒈져."

-팟!

아니, 시간상으론 더 단축됐다.

토벌까지 30~40초 정도 밖에 안 걸린 느낌이니까.

[네임드 듀라한 알칸을 토벌하여 경험치 18,000을 획득했습니다.]

[네임드 듀라한 알칸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6,72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상급 회복물약 1개를 획득했습니다.

-스켈레톤 테이밍 목걸이를 획득했습니다.

'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손에 넣은 스켈레톤 테이밍 목걸이.

덕분에 한껏 기분이 업된 나는 불안에 떨고 있는 하프리치에게 다가갔다.

[감히!]

이미 네임드 듀라한 둘이 사라진 순간 녀석의 패배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보스 하프리치 카르시아를 토벌하여 경험치 25,000을 획득했습니다.]

[하프리치를 최초 토벌하여 경험치 15,000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라 '부상'과 '상태 이상'이 모두 회복됩니다.]

그래도 보스는 제법 분투했다.

마력을 쥐어짜 스킬을 마구 난사했으니 말이다.

물론, 그로 인해 마력은 오래지 않아 바닥이 났고, 분투에 비해 녀석의 끝은 허망했다.

"고생 많았다. 멍멍아, 뚱이야."

-컹컹!

-꾸익!

나는 오늘 전투에 많은 도움이 된 두 펫을 칭찬하곤 보상 메시지로 시선을 옮겼다.

[보스 하프리치 카르시아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8,70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상급 회복 물약 3개를 획득했습니다.

-인벤토리 2칸을 획득했습니다.

-카르시아의 로브를 획득했습니다.

[하프리치의 최초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2,00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스킬 '조사방해'를 획득했습니다.

[카르시아의 로브 / 등급: 특수]

-와이번의 가죽으로 만든 로브로 마법이 걸려 있어 매우 가볍고, 방어력이 높다.

-체온 유지 기능

-상급방어막을 하루 3회 펼칠 수 있다.

-마력+4

카르시아의 로브는 어제 얻은 크리쳐 보아 로브와 거의 똑같은 옵션을 갖고 있었다.

당연히 카르시아의 로브는 윌리아의 몫이 되었고, 이로써 우리 두 사람은 상급 방어를 6번이나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수준에서 상급 방어막이면 웬만한 공격은 전부 막아줄 테니, 앞으로의 전투는 더욱 수월해 질 것 같다.

"디자인도 좋네요."

"예뻐요. 그리고 따뜻해 보여서 더 좋아요."

이어서 나는 새롭게 습득한 스킬북을 살폈다.

[조사방해 / 상급 스킬북 / 액티브]

-조사, 탐색 등 상대의 정보를 볼 수 있는 스킬을 차단한다.

-유지시간: 30분

-소모마력: 3

스킬북의 정보를 본 나는 두 눈을 크게 떠야 했다.

솔직히 사람 많은 도시에 갈 때마다 걱정한 게 나처럼 탐색 스킬을 가진 누군가를 만나는 거였다.

탐색 스킬은 상대의 이름과 레벨을 표시하는 만큼 누군가에게 내 정보가 보인다면 단번에 서**이란 걸 들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조사방해 스킬은 도시에서의 활동을 더욱 자유롭게 만드는 가뭄에 단비와 같은 스킬이었다.

그래서 나는 바로 해당 스킬을 습득했고, 시험 삼아 윌리아에게 사용해 보았다.

[윌리아 / 레벨: 47]

그러자 이랬던 내용이.

[상대의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변했다.

사실 이것도 수상하긴 마찬가진데, 정보가 대놓고 드러나는 것보다야 낫다.

여기에 네임드 듀라한을 잡고 검기 스킬과 스켈레톤 테이밍 목걸이도 얻었다.

너무도 만족스런 보상 타임이었다.

하지만 보상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으니.

던전의 클리어 보상도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지하 무덤 던전을 최초로 클리어하여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특수 등급 아이템 뽑기권

최초 클리어를 통해 얻은 뽑기권은 그동안 모은 것까지 해서 오늘내일 중으로 한 번에 까볼 생각이니 일단 쟁여 두고.

[지하 무덤 던전을 클리어하여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대장장이 열쇠

이어진 일반 클리어 보상을 본 순간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대장장이 열쇠!"

즉, 이곳에도 대장장이 NPC가 숨어 있단 뜻이다.

광산 던전이 대장장이 NPC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단 추측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

"열겠습니다."

"네!"

나와 윌리아는 때깔부터 범상치 않은 크리쳐 보아 망토와 카르시아의 로브 자락을 펄럭이며, 잊혀진 광산 입구에 섰다.

'광물도 충분히 채광했으니 이제 남은 건 강화다.'

나는 성남의 최도겸이 그랬던 것처럼, 던전 입구에 열쇠를 찔러 넣었다.

-쿵!

그러자 검은 기운이 폴폴 풍기던 광산의 갱도 입구가 잘 다듬어진 문의 형태로 바뀌었다.

-끼익!

그리고 문을 여니 작은 오두막이 자리한 특수한 비밀 공간에 다다랐다.

[숨겨진 필드, 대장장이 토레프의 집을 발견했습니다.]

토레프가 확실한 드워프는 숨겨진 필드에 진입한 우리를 마중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오두막 앞에 서서 영문 모를 소리를 했다.

"남자 역할은 못 해도 엄청 강한 사람을 세 글자로 뭐라고 하는지 아는가?"

"네?"

"정답은 고자세."

뭐지? 이 이상한 드워프는?

051화 무기 강화 (3)

나는 그 아재개그가 토레프란 드워프만의 인사법인가 해서 첫인상을 좋게 가져가기 위해 조금 과하게 웃어주며 인사를 건넸다.

"하하, 재밌으신 분이군요. 반갑습니다. 서백호입니다."

내 반응에 그는 흡족해진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반갑네. 토레프라네."

첫인상은 좋게 남긴 것 같다.

우린 악수를 나눴다.

그리고 그는 내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비밀을 알려주듯 말했다.

"자네, 오크가 어떻게 웃는 줄 아나?"

"네?"

"크크크크크. 크가 다섯 번이라 오크라네."

그만해 미친놈아.

눈앞의 대장장이로 호감도 작업을 할 생각이었는데, 그냥 성남으로 가야 하나 망설여진다.

그래도 나는 체육계에서 오랫동안 생활해 와서인지, 이런 상황에 대한 대처는 완벽했다.

"하하핫!"

억지로 짜낸 웃음.

그러나 이런 내 반응에 토레프는 갑자기 눈물을 찔끔거렸다.

"그래, 이런 상황을 얼마나 바랐는지 몰라. 잘 와주었네. 친우여."

[토레프의 호감도가 10% 상승합니다.]

깜짝 놀랐다.

윌리아로 인해 나는 NPC를 그냥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호감도 작업에 첫인상이 중요할 거라 생각해 그의 농담을 받아준 건데, 겨우 이걸로 호감도가 오를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더구나 단번에 10%가 올라? 성남의 최도겸네는 술을 열심히 가져다 바쳐서 이제 겨우 호감도 20%를 달성했다고 했는데.'

나는 그냥 웃어주고 10%호감도를 공짜로 얻었다.

부장님들이 자신의 개그를 받아주는 부하를 좋아하는 것처럼, 아무래도 눈앞의 드워프도 그런 부류인 모양이다.

"저야말로 앞으로 자주 마주하게 될 대장장이가 토 부장님처럼 유쾌한 분이라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개그 코드가 맞는 분과 일하는 건 즐겁죠."

"하하! 그런가?"

[토레프의 호감도가 3% 향상됩니다.]

어쩌면 호감도 작업이 가장 쉬운 드워프가 걸린 걸지도 모르겠다.

이건 당첨 복권이다.

나는 눈앞의 대장장이를 동료로 맞이해서 아예 월광도 안에 나만을 위한 대장간을 만드는 상상까지 했다.

"아, 일행이 또 있었지?"

한참 기분이 좋아진 토레프는 내 뒤로 시선을 옮겨 윌리아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네."

"네, 반갑습니다."

"병아리가 잘 먹는 약은?"

"삐약."

윌리아에게도 어김없이 날리는 하이개그.

하지만 윌리아는 단번에 정답을 맞추며 불필요한 개그가 이어지는 걸 차단했다.

'삐약이라니, 귀여워라.'

그에 무안해진 토레프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쉽게 물러났다.

그런데 이 NPC, 한글 패치가 너무 잘 된 거 아니야?

"하하!"

그런 둘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재밌다.

아까부터 계속 웃고만 있어서인지, 어딘가 불편해 보이던 토레프의 시선이 내게 향해지며, 인자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무슨 일로 왔는가?"

"장비를 강화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첫 번째 강화에는 흑철주괴가 소모되고, 두 번째 강화에는 미스릴주괴가 쓰이네. 재료들은 챙겨왔는가?"

물론이다.

보스룸을 완전히 거덜 내고, 그 외의 구역까지 싹싹 털어먹고 나왔으니까.

여유분은 충분하다.

[흑철 주괴 93개]

[미스릴 주괴 18개]

무려 10시간 가까이 잊혀진 광산을 들락날락하면서 채집한 광물들이다.

던전의 광물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스폰이 되는데, 아쉽게도 보스룸의 광물들은 리스폰이 되지 않았다.

만약 보스룸의 광물들도 계속 스폰이 되었다면, 그 양은 지금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즉, 다른 사람들은 우리처럼 한 번에 많은 광물을 채집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지. 이것도 클리어 보너스 같은 거라 생각하면 되려나.'

토레프는 우리의 준비성에 고개를 끄덕이며 강화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강화는 악세서리를 제외한 무기와 방어구만 가능하고, 총 5번까지 강화 할 수 있네. 2강까진 100% 확률로 강화가 되지만, 3강의 성공률은 40%, 4강은 20%, 5강은 10%지. 3강 이상부턴 강화 실패 시 장비가 파괴된다는 것을 알아두도록 하게나."

몰랐던 이야기다.

성남에선 들을 수 없던 내용인데?

혹시 같은 종류의 NPC여도 정보 공개의 기준이 다른 걸까?

'그나저나 3강부턴 강화 실패 시 장비 파괴가 된다니···.'

이걸로 확실해졌다.

신인지 외계인인지 이 사태를 초래한 존재는 100% K-게임 시스템을 참고한 게 분명하다.

토레프는 설명을 이어갔다.

"강화는 한 번 성공할 때마다 능력치(근력, 순발력, 마력) 1개가 랜덤으로 추가되네, 5강을 하면 능력치만 +5가 되는 거지. 엄청나지 않은가?"

그렇긴 하지.

장비만 깨지지 않는다면.

결국, 안전빵은 2강까지니, 각 부위별로 능력치가 +2씩 붙는단 거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엄청난 수준의 상승 폭이다.

레벨 1이 올라봤자 능력치 포인트를 1개밖에 주지 않는데, 강화에 성공할 때마다 레벨 하나가 오른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

더구나 착용하는 장비가 어디 한두 부위인가?

장비 강화는 단기간에 전투력을 급격히 끌어올릴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다.

"더불어 강화가 되면 무기는 더 날카롭고 예리하게, 방어구는 더 견고하고 튼튼해지지. 3강을 하면 한 단계 위의 비강화 장비와 비슷한 수준이라 생각하면 될 거네."

말 그대로 장비의 기본 요소 역시 충실하게 업그레이드된다는 거다.

하지만 그는 하이라이트가 남았다며 씨익 웃어 보였다.

"그리고 강화의 꽃은 장비가 가진 고유 스킬의 위력이 상승한다는 거네."

"오···."

"아, 참고로 내가 말한 장비의 고유 스킬이라 함은 횟수 제한이 붙은 반쪽짜리 내장 스킬 말고, 자네의 그 검에 붙은 거력참 같은 스킬을 말하는 걸세."

감정스킬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는 단번에 내 장비의 정보를 읽었다.

"강화로 인한 고유 스킬의 위력은 1강이 120%, 2강은 150%, 3강은 200%, 4강은 300%, 5강은 500%일세. 5강이 되면 스킬의 위력은 처음의 5배가 되는 거지."

"엄청나군요?"

"대신 고유 스킬이 붙은 장비는 구하기가 힘들어. 그런데 3강 이상부턴 강화 중 장비 파괴가 될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하네."

맞는 말이다.

당장 내 주력 무기인 제르카의 검이 강화 중 깨지면 눈물이 날 테니까.

그래도 2강만 해도 스킬의 위력이 1.5배가 되니, 그것만으로도 무시할 수 없다.

"일단 직접 보는 게 낫겠군. 그 검을 강화해보지."

그리고 그는 내 제르카의 검을 재료템과 함께 가져갔다.

[제르카의 검 / 등급: 특수]

-근력+2, 순발력+2

-자체 스킬: 거력참

그러자 이랬던 검이.

[제르카의 검 / 등급: 특수 / 강화: 2단계]

-근력+3, 순발력+2, 마력+1

-자체 스킬: 거력참(위력 150%)

이렇게 바뀌었다.

"엄청 좋은데요?"

"그렇지? 2강만 돼도 무시하긴 힘들지."

-후웅! 후웅!

검에 붙은 옵션이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휘둘러 보니 공기를 가르는 소리 자체가 달라진 느낌이다.

겨우 2강만으로 이 정도라니.

나는 한껏 고무되어 나머지 장비들도 맡겼다.

"전부 강화 부탁드립니다."

"그러지. 강화 비용은 1강이 1,000코인, 2강이 3,000코인 일세. 그 검은 특별히 서비스해준 거야."

상상 이상으로 비싼 강화 비용.

이래선 다른 사람들이 강화를 안다고 해도 한 번에 모든 장비를 강화하긴 힘들거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그 정도 재력은 충분하니까.

그리하여 나는 9부위, 윌리아는 7부위의 장비를 싹 다 2강까지 찍었다.

비용은 무려 64,000코인.

계산을 하면서도 흠칫흠칫 놀라야 했다.

아무래도 강화는 고렙들을 위한 시스템으로 보인다.

아무튼 그리하여 나는 능력치가 18개 상승하고, 윌리아는 14개 상승했다.

나의 경우 건틀렛과 각반이 더해져 윌리아보다 착용 부위가 더 많았다.

'천으로 된 건틀렛과 각반을 만들어서라도 윌리아도 장비 착용 부위를 늘려야겠어. 그럼 능력치 4가 거저 생기는 거니까.'

강화로 능력치 18이 추가된 현재 나의 상태는 이렇다.

[상태창]

-레벨: 47

-칭호: 각성자(모든 능력치+1)

-능력치

근력: 26(+14) 순발력: 24(+21) 마력: 22(+22)

잔여 능력치 포인트: 0

-보유 코인: 274,212

영약인 천년삼(마력+10)을 섭취하여, 기본 능력치 자체가 동렙보다 10이나 높을 수밖에 없는데, 장비로 인한 능력치 상승효과 역시 이에 못지않다.

레벨은 47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그 이상의 격차로 다가올 수치다.

'역시, 강화부터 시도하는 게 맞았어.'

윌리아도 크게 증가한 능력치를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이러면 앞으로의 전투는 더욱 쉬워질 거다.

나와 윌리아는 토레프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그에 토레프는 자랑스레 가슴을 펴면서도 우리 장비에 대한 감탄사를 잊지 않았다.

"새삼 대단하단 생각이 드는군. 벌써 자네 같은 사람이 나올 거라 생각하지 못 했어."

"더 노력해야죠."

"그래, 왠지 자넨, 뭘 해도 성공할 사람으로 보여."

잘 웃어줘서일까?

평가가 후하다.

*

강화를 마치고 바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나는 토레프에게 이것저것 먹을 것을 건네주며 함께 다과까지 즐기고 나왔다.

오랜만에 입의 봉인이 풀려서인지 그는 아재개그를 연발했다.

아무래도 내 리액션이 좋아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덕분에 토레프의 집을 나설 때, 호감도는 19%로 성남팀의 최도겸이 술을 바쳐가며 힘겹게 올린 수치를 거의 따라잡았다.

"지쳐 보이세요."

"네, 진짜 지쳤어요."

진이 빠진 느낌이다.

윌리아는 그런 내게 힐을 사용하여 조금이나마 정신적 피로를 해소시켜 주었다.

"어디 가시게요?"

나와 윌리아는 바로 월광도로 돌아가지 않고, 잠깐 다른 길로 빠졌다.

이유는 바로.

"대학교 좀 들려 보게요."

"아, 그 떡볶이 준 대학 말이죠?"

나는 홍성에 온 김에 구독자인 콩나물님이나 보고 가려는 건데, 윌리아는 홍성 대학팀의 존재보다 음식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어?"

그런데 홍성 대학팀이 본부로 쓰던 대학 건물 앞에 멈춰선 나는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무언가에 공격을 당한 듯 출입구가 거칠게 뜯겨 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윌리아는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 건물의 내부에 들어섰고, 곧 여기저기 시체가 늘어져 있는 풍경이 눈이 들어왔다.

구더기가 파먹고 있는 시체들은 적어도 2~3일은 지난 듯 보였다.

"이런···."

그나마 다행인 점은 사냥팀 멤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몬스터에게 당한 게 아니에요."

"확실히 그래 보이네요."

시체들은 목이 베이거나 칼에 관통당한 듯 보이는 상처를 입고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같은 인간에게 당했다는 뜻이다.

몬스터에게 당하면 시체가 저렇게 깨끗하지 않으니까.

"다양한 무기에 베이고 찔린 거 보면, 다른 사냥팀에게 공격을 당한 것 같네요."

그렇다면 콩나물님을 포함한 홍성 대학팀은 다른 곳으로 생존자들을 데리고 도망쳤던가, 잡혀갔단 뜻이 된다.

가벼운 마음으로 아는 사람을 만나러 왔다가 대재앙의 현실과 마주하게 된 나였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윌리아의 물음에 잠시 고민한 나는 이내 답했다.

"일단 주변을 살펴보죠."

"알겠습니다. 여기서 남쪽에 안전구역이 하나 더 있다고 했으니, 거기도 살펴볼까요? 가는 김에 웨이포인트도 찍고요."

좋은 생각이다.

건물을 벗어난 우리는 주변 일대를 살피고 윌리아의 말대로 안전구역에도 들러 겸사겸사 웨이포인트를 찍었다.

"어디에도 흔적이 안 보이네요."

하지만 홍성대학팀의 흔적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콩나물님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 내 시간을 무한정 갈아 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린 조금 조사를 진행했고, 이내 포기했다.

-띠이이이!

한껏 다운된 기분.

조금 더 일찍 찾아올 걸 후회가 밀려온다.

역시 이 미친 세상에서 인간은 몬스터 이상으로 위험한 존재란 걸 재차 인지하게 되었다.

-띠이이!

작게 울리는 통신반지.

때마침 아버지가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연락을 취해왔다.

"네, 아버지."

[목소리가 좋지 않은데?]

역시 부모님이라 그런지 내 기분에 민감한 아버지셨다.

그에 나는 솔직히 상황을 밝혔고.

아버지는 뜻밖의 답을 주셨다.

[그럼, 내가 조사해보마.]

"네? 여긴 정부에서 관리하지 않는 무정부 지역인데요?"

[그렇다고 국군의 세력이 전혀 없는 건 아니거든.]

"오!?"

역시 아버지.

지금의 상황에서 아버지가 계룡대에 계신 게 나의 또 다른 행운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중요한 소식을 전해왔다.

[네가 조사해달라던 미라가 나온다는 던전 있잖아?]

"네."

[그거 찾은 거 같다.]

너무도 든든한 아버지 아닌가.

미라가 나오는 던전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웨이포인트를 탈 수 있는 아이템이 나왔단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템이 있다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월광도에 오신 적이 없어도 나와 함께 이동할 수 있다.'

그래서 해당 아이템을 구하기 위해 열심히 이런저런 던전을 돌았던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끝내 아이템을 구하지 못했고, 결국 그 아이템이 나왔다는 던전을 가보기로 한 것이다.

문제는 하필 그 던전을 국가재건청에서 독자 관리해서 알려지지 않았단 건데, 아버지께서 기어이 그걸 찾아내셨다.

"어딘데요?"

[동대문. 거기에 수방사가 주둔하며 지키고 있는 던전이 있다고 해.]

수방사가 지키는 던전?

현재 수방사는 계룡대의 말을 듣지 않고 정부의 지시만 따르는 상태이니, 충분히 일리가 있단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던전이면 굳이 군인들이 지킬 필요가 없으니까.

아무래도 가봐야 할 것 같다.

콩나물님을 비롯한 홍성의 대학생팀이 걱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 할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의 조사는 아버지에게 맡기고 나는 재정비 후, 바로 동대문으로 향하기로 했다.

***

"웁···."

대통령 직속 부서인 국가부흥처의 제1 본부장인 강이솔은 금방이라도 넘어올 듯 헛구역질을 하며, 바퀴벌레와 곱등이가 여기저기 붙어 있는 지하 하수도에 살짝 얼굴을 들이밀었다.

"확실한 거야?"

"100% 확실하다고는 못하지만, 몬스터가 숨어 있다면 이곳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실종자들이 사라진 곳엔 핏자국이 하수구로 이어졌으니까요."

"지, 지하 하수도에 잘못 들어가면 질식한다던데?"

"이미, 가스 농도 전부 체크 했습니다. 어서 앞장서시죠."

강이솔은 국가부흥처장에게 말했다.

서울 한복판에 엘더 몬스터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그리고 그의 추측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듯, 그날부터 실종자들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얼추 확인된 인원만 해도 거의 1천 명에 육박했기에 결국 국가부흥처장은 조사를 지시했고, 그 과정에 하수도가 수상하단 결과로 이어졌다.

덕분에 강이솔은 오물로 가득한 지하 하수도에 진입하게 생겼다.

"엘더 몬스터는 지능이 높잖아. 진짜 이런 역겨운 데 있겠어?"

"어쨌든 괴물이니, 우리랑 심미관이 다를지도 모르죠."

"제기랄."

결국, 강이솔은 부하들과 운 없는 군인들을 이끌고 지하수도 조사를 시작했다.

052화 레이드 (1)

강이솔이 이끄는 국가부흥처 제1공략본부와 수방사 소속 병사들은 긴장감을 유지하며 차근차근 지하 하수도를 탐색해 나갔다.

-찰박. 찰박.

갯벌에서 흔히 입는 가슴 장화(장화와 일체형인 방수복)를 착용하고 있지만, 발목까지 잠기는 지하 하수도를 거닐고 있노라면 불쾌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시커메서 무엇이 잠겨 있을지 알 수 없는 물속과 지독한 냄새를 머금은 텁텁한 공기는 심하게 끈적여서 12월임에도 묘하게 더운 느낌이 났다.

거기에 바퀴벌레, 곱등이 등 수많은 벌레가 꿈틀대고.

밀폐된 공간이 주는 압박감에 조사단의 스트레스는 빠르게 상승하는 중이었다.

-으악!

그렇게 얼마나 조사를 이어갔을까?

먼 곳에서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그에 강이솔과 조사팀 멤버들이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다급히 달려갔다.

-차박차박!

오물이 사방팔방 튀었지만, 그럼에도 다들 불만 없이 이동을 시작했다.

그들은 곧 비명이 들려온 장소에 도착했다.

"이럴 수가···."

"우웁! 웨에엑!"

"미, 미친."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끔찍한 장면에 조사단은 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속에 있는 것을 게워냈다.

그곳엔 수많은 인간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대재앙이 발생하고 나름 산전수전을 겪어온 이들에게 시체는 익숙한 풍경 중 하나가 되었지만, 단언컨대 눈앞의 그건 지금까지 본 형태 중 가장 잔인하고 끔찍했다.

마치 빨래를 손으로 비틀어 짠 것과 같은 느낌.

온몸이 뒤틀려 있고, 머리는 압착기에 넣고 으깬 것처럼 납작했다.

거기에 온갖 벌레와 구더기들이 엉켜서 시체의 살점을 파먹고 있으니, 구역질이 날 수밖에 없었다.

"전부 닥쳐봐."

"······."

그때, 강이솔이 패닉에 빠진 사람들에게 거친 말을 쏟았다.

그로 인해 지하 하수도에 정적에 찾아오고.

그는 벽에 귀를 대고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다행히 근처에 몬스터는 없는 것 같네. 하던 거 마저 해."

이어서 강이솔은 침착하게 시체 더미에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머리는 터뜨리기만 하고 뇌를 먹은 것 같진 않아. 보니까 시체에서 피만 빠져나간 느낌이야."

살과 튀어나온 내장이 뒤엉켜 있는 그것에 혐오감이 일법도 하지만 그의 표정엔 큰 변화가 없었다.

그게 과연 지하 하수도에 들어가기를 꺼리며 연신 헛구역질을 하던 사람이 맞는지 헷갈리는 모습이었다.

할 때는 한다.

평소 허당 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강이솔은 정부 소속으로 하나의 팀을 이끌고 있다.

그만큼 나름의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진 인물이란 뜻이었다.

"아무래도 흡혈 몬스터가 사건의 범인인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이 알고 있는 선에서, 이렇게 잔인하게 피를 빨아 먹는 몬스터는 없었다.

그 말은 즉,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종류의 새로운 몬스터란 뜻이다.

"엘더 몬스터일까요?"

"그렇겠지."

강이솔은 확신에 가까운 어투로 말했다.

"사람을 이렇게 만들려면 덩치도 악력도 엄청날 거야."

그의 추론에 부하들은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강이솔은 기록을 남기란 지시를 했고, 그의 부하들은 주변의 상황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기록했다.

"이제 어떡할까요?"

부하의 물음에 강이솔은 고민했다.

가끔 대책 없이 나서기도 하지만, 이렇게까지 기괴하고 정체도 모르는 괴물에게 달려들 만큼 그는 멍청하지 않았다.

강이솔의 시선이 군인 중 리더인 인물에게 향했다.

"대위님."

"네."

"제가 말한 거 전부 챙겨 오셨죠?"

"물론입니다."

"그럼 그것들 이곳에 설치하고 물러나죠."

"알겠습니다."

강이솔이 말한 '그거'란, 크레모아와 지뢰, C4를 뜻했다.

그의 지시에 군인들이 시체 더미에 부비트랩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직접 싸울 수 있을 거란 판단이 서면 싸워보겠지만, 이 처참한 장소에 도착한 후, 강이솔은 이번 몬스터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 판단했다.

때문에 만약을 대비해 챙겨 온 장치들을 설치하고 물러나기로 한 것이다.

"한두 개씩 찔끔찔끔 터지는 게 아니라 한 번에 쓸어 버려야 합니다."

"네, 그렇게 설치하고 있습니다."

군인들은 구역질을 참으며 제 역할을 했고, 오래지 않아 부비트랩의 설치가 끝이 났다.

"신속히 벗어난다."

그에 강이솔은 전 부대 철수를 지시했다.

시체 더미의 충격이 너무 컸는지, 드디어 이곳을 벗어난다는 생각에 모두가 안도하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런데 그때.

-콰아아아앙! 쾅! 콰앙!

출구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강렬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놀란 표정의 강이솔이 외쳤다.

"방어막 스킬 있는 사람 전부 폭발음이 들려온 방향에 사용해!"

"네!"

강이솔의 지시에 4겹의 방어막이 폭음이 들려온 방향에 생성되었다.

곧이어 지하 하수도의 길을 따라 불꽃이 덮여왔다.

"큭!"

강렬한 열기와 압력이 방어막을 때리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사람이 바닥을 뒹굴었다.

그리고 불꽃이 잦아들자 희박해진 산소농도가 이들의 호흡을 방해해 왔다.

"나가!"

갑갑함은 공포심으로 이어지고, 모두가 우왕좌왕 출구로 향했다.

'죽었나?'

부비트랩이 작동했단 뜻은 괴물이 등장했단 의미다.

강이솔은 해당 몬스터가 방금의 공격으로 죽었길 바랐다.

-탁타타타탁!

그러나 세상일은 바람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법.

강이솔은 멀리서부터 무언가가 빠르게 다가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육중하면서도 날카로운 발소리였다.

"빨리 나가!"

다리가 여럿 달린 거대 벌레가 벽을 달리면 날 것 같은 소리.

강이솔은 마른 침을 삼키며 빠른 탈출을 지시했다.

다행히 출구가 코 앞이라 탈출은 신속하게 이뤄졌다.

그러나 아직 절반 정도의 인원밖에 탈출하지 못한 상황에서.

"젠장! 왔어!"

녀석이 등장했다.

노끈을 감아 여성을 형상화시킨 것 같은 모습의 괴물이.

절대 여성스런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된다.

마치 아귀가 벌레처럼 생긴 촉수를 흔들어 물고기들을 유인해 사냥하는 것처럼, 녀석의 등 뒤로 거대한 무언가가 스멀스멀 꿈틀대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화약을 그렇게나 처먹고도 멀쩡한 거냐."

강이솔은 식은땀을 흘리며 생각했다.

악마가 실존한다면 분명 저런 모습일 거라고.

'저건 못 이겨.'

그 감상과 동시에 군인들이 사격을 시작했다.

-타타타타탕!

***

"저긴가?"

나는 아버지가 알려준 동대문 던전에 다다랐다.

정확한 위치는 동대문역 흥인지문 뒤쪽.

근처 건물에 숨어서 보니, 정말 수방사 군인들이 주둔하며 던전을 지키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귀한 곳이길래 저러나 했는데.

던전의 정보를 본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해당 던전은 클리어를 할 때마다 난도가 상승합니다. 현재 1단계가 클리어되어 2단계에 도전하실 수 있습니다.]

[지하미궁 2단계]

-등급: 상급

-적정레벨: 40

-시간제한: 12시간

-클리어 조건: 제한시간 이내 보스를 토벌하거나, 미션 수행 완료.

보통의 던전은 최초 클리어 시, 입구가 보이게끔 외부에 드러난다.

하지만 해당 던전은 한 차례 클리어가 되었음에도 입구가 여전히 숨겨져 있었으며, 던전의 난도가 상승했다.

'성장하는 던전이라니.'

정부에서 관리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던전의 수준도 수준이지만, 뭔가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문제는 역시 던전의 주변을 군인들이 빼곡하게 둘러싸고 있다는 점이다.

윌리아의 물음에 나는 씨익 웃어 보였다.

"뚫고 들어가죠."

내 말에 윌리아 역시 악당같이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린 검은색 로브로 전신을 가린 후, 어제 얻은 조사방해 스킬로 정보를 숨겼다.

[조사방해 스킬이 적용되어, 30분 동안 타인의 탐색 관련 스킬을 차단합니다.]

멍멍이와 뚱이는 너무 눈에 띄어서 모두 섬에 두고 왔기 때문에 지금의 우린 흔하디흔한 남녀일 뿐이었다.

그리고 우린 던전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거기, 뭡니까!? 정지!"

우리의 접근을 알아챈 병사들이 섣불리 총을 겨누지 않고, 위협적인 말투로 우리를 멈춰 세우려 했다.

아무래도 세상이 흉흉하다 보니, 총을 겨누면 칼부터 뽑고 보는 미친놈들이 많아져서 그런가 보다.

-타타탁!

아마 그들의 눈엔 우리가 바로 그런 미친놈들로 보일 터.

나와 윌리아는 그들의 경고에도 무시한 채 속도를 높이며 달려나갔고, 군인들은 결국 총을 겨누며 다시금 정지를 지시했다.

"저, 정지! 여긴 군사 시설이다! 더 이상 다가오면 쏜다!"

그에 윌리아의 중급 방어막, 디바인쉴드 스킬이 우리를 감쌌다.

"침입자다!"

-타타타탕!

군인들은 우리의 목적이 던전에 있음을 알아채고 즉각 대응사격을 실시했다.

처음엔 땅이나 하늘을 쏘는 엄포를 놓았지만, 점점 총구가 우리를 겨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반 총알은 중급은커녕 하급 방어막도 못 뚫는다.

분명 웬만한 스킬보다 위력이 훨씬 강할 테지만, 어째서인지 현대 병기는 스킬이나, 아이템 앞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

"이, 이런!"

"놓친다!"

"따라 들어가지 마! 들어가면 죽어!"

덕분에 우린 방어막의 보호를 받으며 여유롭게 던전에 입장할 수 있었다.

-팟!

"이건?"

던전에 입장한 나와 윌리아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유는 이곳이 던전임에도 머리 위에 태양이 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를 중심으로 주변엔 연갈색의 벽이 둘러져 있었다.

"신기한 곳이네."

바닥은 꽤나 푹신한 모래가 깔려있어서 함정이 설치되어 있으면 알아채기 힘들어 보였다.

진짜 진작에 탐색 스킬을 구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일단, 높은 곳에 올라가서 주변 좀 살피고 올게요."

"네."

벽의 높이는 30미터 정도 되어 보인다.

수직으로 올라가는 경우는 도약과 디딤판을 사용하는 것보다 블링크가 실용적이다.

그래서 나는 벽 위로 공간이동 스킬인 블링크를 사용했다.

-팟!

"어?"

하지만 나는 당황했다.

블링크는 단번에 50미터를 이동할 수 있는 만큼, 바로 벽 꼭대기에 닿을 거라 생각했는데, 중간 정도밖에 다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을 바꿔 도약과 디딤판 스킬을 이용해 몸을 날리고 또 날렸다.

그리고 곧 벽의 비밀을 알아챘다.

"거리가 안 좁혀지네···."

벽은 내가 올라가는 거리에 맞춰 점점 더 높아졌다.

"이게 뭐야?"

벽을 넘을 수 없으니, 머리 위에 하늘이 있으나 마나다.

형태만 야외일 뿐, 이곳은 길이 정해져 있는 던전의 내부가 맞았다.

"이거 미로 형태네요."

내가 허공을 뛰어오르는 동안 윌리아도 놀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주변을 살폈고, 벽과 벽 사이에 착시를 이용해 교묘하게 가려져 있던 길을 찾아낸 것이다.

"던전 이름이 괜히 미궁이 아니군요."

"미로는 한쪽 벽을 짚고 나아가면 결국 출구에 도착한대요."

그 이야기는 나도 들었다.

문제는 이 던전이 평범한 미로냐는 것이다.

그래도 별수 없으니, 우린 윌리아의 말대로 한쪽 벽을 짚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강화된 미라 / 레벨: 40]

우리의 눈앞에 붕대로 온몸을 칭칭 감은 미라가 등장했다.

"번지수를 제대로 맞춰 찾아왔단 뜻이네."

나는 길게 잴 것 없이 바로 달려들어 공격을 시작했다.

[강화된 미라를 토벌하여 경험치 2,000을 획득했습니다.]

[강화된 미라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43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혈석 1개를 획득했습니다.

레벨 40의 미라를 잡았지만, 최초 토벌 보상은 주지 않았다.

아무래도 국가재건처에서 이곳 던전의 초반 부분을 탐색한 게 아닐까 싶다.

네임드도 아니고, 일반 몬스터라면 정부 사냥팀이라도 쪽수로 충분히 잡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좋은데요?"

"그러게요. 경험치도 많고, 언데드 속성이고."

하지만 최초 토벌 보상을 못 먹었다고 아쉬워할 필요 없었다.

무려 레벨 40에 달하는 일반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인 만큼, 벌리는 경험치의 양이 심상치 않았으니 말이다.

"한동안 여기서 레벨업 해도 될 것 같아요."

"동감해요. 그런데 매번 올 때마다 군인들 뚫고 와야 할까요?"

"아, 그것도 그렇네요. 뭐 어려운 건 아니니까."

등장하는 몬스터들이 레벨 40임에도 어제 풀강화를 때려서인지 사냥이 어렵지가 않았다.

덕분에 우린 뜻하지 않게 좋은 사냥터를 찾았다며 좋아했다.

국가부흥처의 제1본부장 강이솔이 들었다면 뒷목 잡기 딱 좋은 대사였다.

이후로도 우린 신이 나서 열심히 던전을 돌았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라 '부상'과 '상태 이상'이 모두 회복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린 레벨을 하나 올려 48이 되었고, 머지않아 던전의 탐색 목적 중 하나를 발견했다.

"보물 상자다!"

웨이포인트 단체 이동 아이템이 이곳, 미라가 나오는 던전 보물 상자에서 나왔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는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상자에 다가갔는데.

[강화된 미믹 / 레벨: 45]

탐색 스킬이 표기하는 보물 상자의 정보에 얼굴을 일그러뜨려야 했다.

그건 보물 상자로 둔갑하고 있는 몬스터 '미믹'이었다.

"하긴, 쉽게 줄 리가 없지."

나는 사람을 속여먹기 위해 기다리는 미믹의 대가리에 2강화로 스킬의 위력이 50% 상승한 거력참을 꽂아 주었다.

[강화된 미믹을 토벌하여 경험치 3,000을 획득했습니다.]

[강화된 미믹을 최초 토벌하여 경험치 12,000을 획득했습니다.]

[강화된 미믹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482코인을 획득했습니다.

[강화된 미믹의 최초토벌 보상이 추가 지급됩니다.]

-2,50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인벤토리 2칸을 획득했습니다.

그래도 최초 보상이라도 떠서 짜증 나는 기분은 좀 덜했다.

그 후 사냥의 연속이었다.

강화된 미라 잡고, 중간중간 엿 먹이기 위해 나온 강화된 미믹 잡고, 그렇게 탐색을 한참 이어가다가 우린 어느 방 앞에 다다랐다.

"벌써 보스룸일 리는 없고."

"혹시, 네임드 몬스터도 방이 따로 배정되어 있는 거 아닐까요?"

"오, 가능성 있어 보이네요."

우린 그 방문을 열어보기 전에 잠시 쉬기로 했다.

마력 충전 겸, 배를 채우기 위해.

지치거나 다치면 힐 혹은 포션을 마시면 되는데 허기에는 장사가 없다.

윌리아의 경우 특히나 식사 시간을 좋아라 하고.

"오늘 제가 준비한 음식은."

"두구두구두구."

입으로 효과음을 내는 윌리아였다.

난 씨익 웃으며 인벤토리에서 뚝배기와 K-술안주 통조림을 꺼냈다.

번데기였다.

통, 토도도통통.

장작도 꺼내 불을 붙이고 그 위에 뚝배기를 올린 다음 통조림을 까서 부었다.

윌리아는 하마터면 머리 끝이 불에 닿을 뻔할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밀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이게 뭐예요?"

"뭐 같아요?"

"어떤 열매 말린 거? 그런데 냄새는 좀 꼬릿하고."

우선 먹여서 맛을 음미시키고 알려줄까 했지만, 나중에 듣고 비위 상해하면 미움받을 테니 정답을 공개했다.

"번데기예요. 벌레 고치."

"군침 도네요."

"···에?"

기겁하는 외국인 리액션을 기대했지만, 윌리아는 가리는 게 없었다.

***

국가 부흥처장 노성흠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 태연하게 담배를 태웠다.

예전이라면 실내 흡연을 하면 난리가 났겠지만, 세상이 미치고 나서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담배 하나가 소중한 시대.

그는 필터 직전까지 담배 쪽쪽 빨아 피웠고, 이내 그 잔향을 만끽하듯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으며 휴식을 취했다.

"조사는 잘하고 있으려나?"

그리고 노성흠 처장은 문뜩 떠올랐다는 듯, 지하 하수도를 조사하러 간 강이솔 본부장을 떠올렸다.

딱히 걱정돼서라기보다, 부하를 위할 줄 아는 건 상사의 미덕이라 생각하는 그였기에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는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국회의원 출신이고, 강이솔은 운동선수 출신의 경찰이었기에 둘의 배경은 근본부터 달랐다.

그런데 그때.

[보, 본부장님? 처, 처장님께 들어가도 되냐고 여쭤보겠습니다.]

[비켜! 바쁘니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고 했던가?

-쾅!

"응?"

지하 하수도에 조사를 나갔던 강이솔이 거지꼴이나 다름없는 행색으로 국가부흥처장실에 들이닥쳤다.

그 기세가 어찌나 흉흉한지, 노회한 정치인인 노성흠 처장도 움찔 놀라야 했다.

"자, 자네 괜찮은가? 꼴이 그게 뭐야?"

노성흠 처장의 물음에도 강이솔은 말없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가 가까워짐에 따라 정화조 푸는 냄새가 진동을 했고, 노성흠 처장은 불편함에도 감정을 표정에 드러내지 않았다.

"전부 죽을 겁니다."

"뭐?"

-쿵!

강이솔이 책상을 쾅 내려쳤다.

그러자 알 수 없는 액체가 노성흠 처장에게 튀면서 처음으로 그의 표정에 균열이 생길 뻔했다.

"이대로 있다간 서울 시민 다 죽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자세히 설명해 보게."

그리고 강이솔은 자신의 착용하고 있던 바디캠에 저장된 영상을 실행했다.

영상 속엔 총을 난사하는 군인들과 공들여 키운 국가부흥처 소속 사냥팀 멤버들이 어떠한 몬스터와 싸우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아니,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그도 그럴 게 몬스터 앞에선 군인이건 사냥팀 멤버건 너무도 쉽게 찢겨 나갔기 때문이다.

"우리가 민간 사냥팀인 윤시아 쪽보다 레벨이 밀리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저도 제 부하들도. 도망치는 게 고작이었죠."

"······."

"그런 녀석이 지금 서울 지하에 숨어 있는 겁니다."

덕분에 노성흠 처장도 한껏 심각해졌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책상에 앉아 펜을 두들기는 그도 느낀 것이다.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노성흠 처장의 물음에 강이솔은 단호하게 말했다.

"모아야 합니다. 실력 있는 사람 전부. 서**, 윤시아, 수원의 김현수 등 능력 있는 사냥팀과 군부대의 빽업까지. 최대한 빨리 토벌부대를 만들어 레이드를 진행해야 합니다."

053화 레이드 (2)

***

우린 지하미궁 2단계 던전의 네임드가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방의 문을 열었다.

"보스도 아니고 네임드 몬스터가 방을 차지하고 있다면···."

"적어도 보통의 난이도는 아니란 거겠죠."

윌리아도 같은 생각인지, 내 말을 이어받았다.

일단 지하미궁 2단계는 우리가 지금까지 도전한 여러 던전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와 레벨이 높다.

일반 몬스터의 레벨만 해도 기본 40이고 45짜리도 나오고 있으니까.

즉, 여기서 나오는 네임드는 적어도 레벨이 50 이상이란 뜻이 된다.

그리고 네임드의 수준에 따라 보스 몬스터의 수준도 가늠할 수 있으니, 이번 네임드 토벌전 결과에 따라 안전을 위해 던전 클리어는 뒤로 미뤄질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의 목적은 던전의 클리어가 아닌, 조사와 보물상자 찾기였으니까.

'하지만, 뭐···. 지금의 우리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지.'

우리의 레벨이 48에 지나지 않지만, 장비 강화 덕분에 실제 전투력은 레벨 70에 근접한 수준이라 자체 평가하고 있다.

물론, 단순 능력치만 보면, 우리의 수준은 레벨 70 이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레벨이 상승함에 따라 장비의 질이 올라가는 건 당연한 순리라 생각하고 있다.

레벨이 높으면 그에 맞는 장비를 착용하고 있을 터이고, 자연히 몬스터들의 레벨도 그걸 감안해 책정해야 정상 아닐까.

[네임드 미라 근위전사 아칸 / 레벨: 55]

일반 몬스터는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네임드 이상의 몬스터는 내 예상이 맞을 거라 본다.

그 증거가 눈앞의 위치한 네임드 몬스터였다.

처음 보는 레벨 50이 넘는 네임드 몬스터.

날이 유독 긴 세이버를 든, 아칸이란 미라는 검은색의 기운을 온몸에 두르고, 핏빛 안광을 번뜩이고 있다.

장담컨대 지금까지 본 어떤 몬스터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 포스를 지니고 있었다.

[살고자 한다면 지금이라도 도망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녀석은 검을 검집에 보관한 상태로 자세를 낮췄는데, 그 모습이 꼭 만화에서 자주 보던 발도술의 자세와 흡사했다.

'한때 중2병 기질이 있던 시절, 나도 검도장에서 발도술을 연습하곤 했지.'

발도술은 많은 사람의 의견이 갈리는 기술이다.

실전성이 없다는 측과 있다는 측.

하지만 과거의 의론은 둘째치고, 판타지 설정이 실존하는 지금의 세상에서 저런 자세를 취하는 것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냥 갈 거면 이 방에 들어오지도 않았지."

[무모하군]

녀석은 코웃음을 흘렸다.

이어서 몸 여기저기에 붕대와 금장식을 두른 아칸의 모습이 흐릿해지더니, 새빨간 검기가 레이저처럼 뻗어왔다.

지금까지 봐온 어떠한 공격보다 빠른 쾌검.

"디바인 쉴드."

윌리아는 그런 아칸의 공격을 방해하기 위해, 진로 방향에 디바인 쉴드를 펼쳤다.

-깡!

그러나 윌리아의 쉴드는 조금도 방해가 되지 못했다.

붉은색의 선은 원래의 속도 그대로 나를 향해 날아올 뿐이었다.

'중급 방어막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다니.'

빠르기만 한 게 아니라 충분한 파괴력을 머금고 있다는 뜻.

그 공격에 대해 나는 검막을 펼치는 것으로 대응했다.

-콰아앙!

-까앙!

애석하게도 검막 또한 여지없이 꿰뚫렸다.

하지만.

[제법이군.]

"후덜덜하네."

아칸의 발도술은 끝내 검기가 둘러진 내 검에 가로막혔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심상치 않은 압력에 몸이 사정없이 뒤로 밀렸지만, 오래지 않아 자세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쿵!

[큭! 미친놈, 무슨 힘이.]

그리고 검을 맞댄 상태에서 내가 힘껏 뿌리치자 네임드는 크게 뒤로 밀려났다.

뛰어난 기술과 강력한 한 방 스킬을 보유한 아칸.

하지만 능력치만큼은 내가 우위에 있는 듯했다.

"잘난 척했으니 한 대 맞아야지."

나는 거리를 벌리기보다 녀석에게 바짝 붙었고.

"힐!"

윌리아는 언데드에게 특효약인 힐로 아칸의 행동을 방해했다.

중급 회복인 일반 힐로는 레벨 55의 네임드에겐 아주 잠깐 움찔하는 수준의 방해밖에 되지 않았지만, 콤마초 단위의 검격을 주고받는 입장에서 보자면 무시할 수 없는 빈틈이었다.

-푹!

내 검이 그대로 아칸의 쇄골을 갈랐다.

덕분에 깜짝 놀란 아칸은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일진일퇴의 교환.

하지만 나는 데미지를 전혀 입지 않고, 상대만 데미지를 입었다.

[재밌군.]

그런데.

이 상황에 녀석이 익숙한 대사를 내뱉었다.

나는 참지 못해 아칸에게 물었다.

"이제부터 전력을 다하겠다던가 그런 대사 내뱉는 거 아니지?"

[······. 이제 쉽지 않을 것이다.]

"진짜냐. 대사를 바꿔도 그게 그 뜻이지."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내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대사를 입에 담았다.

거기에 불필요한 설명을 덧붙이기까지.

[시간 길게 끌 생각 없다. 빠르게 네 목을 취하도록 하지. 만약 1분을 버텨낸다면 네놈의 승리다.]

쉽게 말해 이거 아닐까?

유지 시간이 1분밖에 되지 않는 전투력 강화 스킬을 사용하겠다는 거?

스킬이 끝나면 오히려 페널티가 발동해서 내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그런 스킬 말이다.

나는 친절한 설명에 헛웃음을 흘리며, 얼마나 강해지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팟!

잠시 후, 설명충 아칸의 풀풀 풍기던 검은 기운이 그의 안광처럼 붉어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콰앙!

"큭!"

녀석의 그 호언장담이 허풍이 아님을 증명하듯, 붉은 기운이 잔상처럼 눈 앞에 펼쳐지며 믿기 힘든 속도로 공격을 가해 왔다.

첫 번째 공격을 막은 건 순전히 감이었다.

내가 예전에 검으로 총알을 쳐냈을 때와 비슷한 반사적인 행동.

당연히 아칸이 총알보다 느리다.

하지만 직선으로 날아드는 총알과 달리, 녀석은 공격 경로에 변화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총알을 검으로 쳐내는 것만큼이나 방어가 쉽지 않아 보였다.

-흠칫.

그리고 왼쪽 목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감각.

나는 서둘러 목을 틀며 그곳에 검을 가져다 댔고, 붉은색의 검기가 내 검과 함께 얼굴을 훑었다.

-팅!

다행히 내 머리엔 빛을 엮어 만든 투구가 씌워져 있다.

손으로 만져도 실체가 느껴지지 않는 특수한 개념 장비가.

이 투구가 놈의 공격으로부터 얼굴을 지켜줬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같은 검을 쓰는 상대에게 끌려다니면서 제대로 반격다운 반격을 못 하는 건.

'젠장.'

나도 고속으로 이동할 수 있는 스킬이 있다.

아예 공간이동을 할 수 있는 블링크 스킬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전투에선 블링크는 함부로 사용하기 힘들어 보였다.

아칸이 워낙 전광석화 같은 데다가, 움직임도 불규칙적이었기 때문이다.

'자신감을 가질 만한 스킬이네.'

그런데 앞선 두 번의 공격이 연이어 실패했기 때문일까?

녀석은 꽤나 당황한 듯 보였다.

돌연 공격 대상을 나에서 윌리아로 바꾼 것이다.

붉은빛이 접근하자, 윌리아는 침착하게 외쳤다.

"상급 방어."

바로 최근에 얻은 카르시아 로브의 내장 스킬을 사용한 것이다.

-쾅!

현재 우리가 보유한 방어 스킬 중 가장 강력한 상급 방어.

그러자 지금까지 한 번도 아칸의 움직임을 막지 못한 방어막이 처음으로 제 몫을 해냈다.

방어막 전체에 실금이 가긴 했지만, 붉은 검격을 완벽하게 막아내고 찰나에 가까운 잠깐이나마 녀석의 움직임도 멈추는 데 성공했다.

"나이스, 윌리아님!"

처음 만들어진 완벽한 블링크 사용 타이밍.

나는 그 찰나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칸의 뒤쪽으로 블링크를 사용함과 동시에 참격을 날렸다.

'거력참.'

-콰아앙!

[큭!]

강력한 스킬이 작렬하며 바닥이 산산조각 났다.

아쉽게도 아칸은 붉은 기운을 뿌리며 이미 사라진 상태였으나, 작게 울려 퍼진 신음소리를 들었기에 어느 정도 타격을 줬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보인다.'

다리에 데미지가 있는지, 아니면 눈이 적응을 한 건지, 약간이나마 아칸의 움직임이 눈에 포착되었다.

-핏!

물론, 보인다고 해도 아칸의 공격에 대응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 대가로.

-팟!

[하하!]

내 왼팔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칸은 보았냐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계속 웃어보시지?"

하지만 나는 팔 하나를 잃은 대신, 녀석의 목을 가르는 데 성공했다.

뼈를 주고 살을 취하는 공격.

아칸은 뒤늦게 이상함을 깨닫고 벙찐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그의 머리가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돌며, 툭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네임드 미라 근위전사 아칸을 토벌하여 경험치 68,000을 획득했습니다.]

[미라 근위전사를 최초 토벌하여 경험치 25,000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업은 못했지만, 현재 경험치는 레벨업을 목전을 둔 상태다.

나는 경험치 메시지에 이어 녀석이 떨군 보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최초 토벌인 만큼 스킬북이 나올 확률이 제법 높으니, 마지막에 아칸이 사용한 능력치를 극대화 시키는 스킬이 나오길 바랐다.

[네임드 미라 근위전사 아칸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15,70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상급 회복 물약 3개를 획득했습니다.

-인벤토리 3칸을 획득했습니다.

-아칸의 세이버를 획득했습니다.

[미라 근위전사의 최초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4,00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스킬북 폭주를 획득했습니다.

한 줄씩 보상을 살핀 나는 쾌재를 불렀다.

"오오!"

[아칸의 세이버 / 한손반 곡도 / 등급: 특수]

-아칸이 사용하던 세이버로 속검에 특화되어 있다.

-순발력+4

-발도술을 사용할 경우 최대 검속이 30% 상승한다.

-자체 스킬: 일섬

[일섬 / 상급 스킬 / 액티브]

-횡베기 또는 발도술 중 검기를 머금은 강력한 쾌검으로 적을 공격한다.

-소모마력: 3

[폭주 / 최상급 스킬 / 액티브]

-1분간 모든 능력치를 50% 증가시킨다.

-폭주 스킬은 중첩되지 않는다.

-스킬이 종료되면 30분 동안 모든 능력치가 50% 하락하는 페널티가 부여된다.

-소모마력: 5

이보다 좋을 순 없는 수준의 보상이 나왔다.

아칸의 세이버는 내가 기존에 사용하던 제르카의 검과 비슷한 능력치를 갖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특색이 매우 강한 무기였다.

제르카의 검과 동급인 메인급 무기로 두 검을 번갈아가며 착용하면 될 것 같다.

'무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특히나 이렇게 특색있는 검이면 더욱 환영이야.'

더불어 바라고 있던 그 스킬이 나왔다.

이름은 폭주.

무려 모든 능력치가 1분 동안 50%나 증가하는 스킬로, 블링크에 이은 두 번째 최상급 스킬이었다.

스킬을 1분간 사용하면 페널티가 무려 30분간 발생하기에 남발할 순 없어도, 결정적인 순간에 비장의 한 수가 되어줄 스킬이었다.

덕분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윌리아는 그런 나를 보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보상이 마음에 들어도 부상부터 치료하셔야죠. 안 아프세요?"

"네?"

뒤늦게 내 시선이 뜯겨져 나간 왼팔로 향해지고.

"끄아아악!"

엔도르핀이 과다분비 돼서인지, 상처를 두 눈으로 보고 나서야 엄청난 통증이 밀려오며 바닥을 굴러야 했다.

"위, 윌리아님."

절단 부상은 상급회복 이상의 치료수단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윌리아를 불렀고, 그녀는 실소와 함께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내가 만약을 위해 분배해놓은 상급회복 물약을 꺼내 상처 부위에 뿌려 주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왼팔이 소생되었고, 타오르는 것 같은 극심한 통증 역시 싹 사라졌다.

"죽는 줄 알았네."

"백호님이 순간 무통인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요."

"하, 하하."

이번 보상은 전부 내게 알맞은 것들이다.

그래서 윌리아를 슬쩍 바라보았더니.

"각자에게 맞는 보상이 있는 거죠. 이번 건 누가 봐도 백호님의 것이니,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처, 천사."

"헷!"

나는 그녀가 사용한 상급회복 물약을 채워주고 아칸의 방을 살폈다.

혹시라도 보물상자가 따로 숨겨져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오!?"

그러다가 정말 보물상자가 숨겨져 있는 공간을 발견했고.

[안전텐트(특대)를 획득했습니다.]

[7,50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거기서 두 번째 안전텐트를 획득할 수 있었다.

"특대 사이즈 안전텐트?"

기존의 안전텐트의 실내 공간이 3m*2m*2m로 2~3인용 정도의 넓이라면.

이번 안전텐트(특대)는 5m*5m*3m로 6명은 무난히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의 넓이였다.

"기존 안전텐트는 어머님하고 아버님 드리면 되겠네요."

"좋은 생각입니다."

우리야 안전텐트를 자주 사용하지만, 부모님은 진짜 비상상황이 아닌 이상 사용할 일이 없다.

그래서 자그마한 것을 준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안전텐트는 몬스터의 접근을 막아주는 만큼, 비상상황 시 부모님을 더욱 안전하게 지켜줄 터.

비록 바라던 웨이포인트 단체 이동 아이템은 아니지만, 충분히 만족스런 선물이었다.

'그나저나 어머님, 아버님?'

윌리아의 말에 다시금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나였다.

-띠익.

그런데 그때.

예상 밖의 메시지와 함께 알림음이 울리며 나를 망상 속에서 억지로 잡아끌었다.

[2번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가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들끼리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능이 있었지.'

2번 시나리오 조각 보유자가 누군지는 이미 알고 있다.

굳이 익명이 보장되는 메시지임에도 자신의 정체를 떳떳하게 밝혔던 대통령 직속기관인 국가부흥처의 강이솔 본부장.

첫 만남부터 몬스터의 뱃속에 들어가는 뻘짓을 보여주며 내겐 허당으로 인지되고 있는 남성이다.

나는 뭔가 싶어서 녀석의 글을 살폈다.

[2번 보유자]

-안녕하십니까, 서**님. 저는 국가부흥처 제1공략본부 본부장인 강이솔이라고 합니다.

갑작스레 연락을 드려 죄송합니다.

실례지만 언제든 한가하실 때 잠깐 대화를 나눌 수 있을는지요.

부디 답변 부탁드립니다.

너무도 정중한 메시지.

정부와 얽히기 싫은 나로선 그냥 무시할까 했지만, 이렇게까지 그를 저자세로 나오게 만드는 용건이 궁금해서 답을 해보기로 했다.

무시를 하더라도 충분히 이야기를 들어보고 나서 무시해도 되지 않겠는가.

054화 레이드 (3)

나는 바로 강이솔의 답변 요청을 받아들였다.

[나]

-무슨 일입니까?

[2번 보유자]

-빠른 답변 감사합니다. 실은 무례를 무릅쓰고 지원 요청을 부탁하려 연락드렸습니다.

이번에 서울에서 지하 하수도에 숨어 있던 엘더 몬스터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토벌을 위한 레이드팀을 구성하려 하는데, 부디 서**님께서 토벌팀의 일각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서울에 숨어 있는 엘더몬스터를 발견했다는 소식에 나는 앓는 소리를 내야 했다.

안 그래도 아버지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누군가가 했다는 추측이 정말 맞아 떨어질 줄이야.

더구나 정체도 모르는 내게 이렇게 지원 요청을 할 정도면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하단 뜻이다.

[나]

-지금 어떤 상황인데요?

내 물음에 강이솔은 자세히 설명을 시작했다.

최근 수중 몬스터 중에 한강 다리를 끊는 개체가 등장했었는데, 강이솔은 그 개체의 행동이 수상하다 판단했고, 상부에 엘더 몬스터가 서울에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알렸다.

그리고 이런 강이솔의 의견에 힘을 더해주듯 서울 내에서 실종자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직접 조사를 진행한 결과 지하 하수도에서 엘더 몬스터를 발견했다고 한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두 번 놀라야 했다.

'엘더 몬스터의 존재 가능성을 추론한 게 얘라고? 심지어 지하 하수도에 직접 들어가 엘더 몬스터를 발견하기까지 했고?'

아무래도 그에 대한 평가를 수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나는 강이솔을 그저 입만 산 놈이라 생각했는데, 이번 엘더 몬스터의 건만 보면 정부 소속으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로 보였다.

만약 그가 사전에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면 엘더 몬스터가 발견되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을 수도 있다.

[2번 보유자]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제가 레벨 55의 해양 몬스터와 싸워 본 적이 있는데, 그땐 어렵긴 해도 싸움이라는 게 성립했지만, 이번엔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습니다.

함께 조사에 나섰던 많은 군인과 정예 사냥꾼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죠.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 수도권의 유력 사냥팀을 모두 모으고, 수방사의 주요 전력들도 투입할 예정입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탄도미사일 사용까지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서울 지하에 숨어 있는 엘더 몬스터가 그 정도라니···.

그가 한껏 심각해진 것도 당연했다.

[2번 보유자]

-서**님이라면 이미 아실 수도 있지만, 엘더 몬스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해지는 몬스터입니다.

지하 하수도에서 발견된 엘더를 지금 단계에서 정리하지 않으면 언제고 서울을 넘어 한반도 전체를 위협하리라 생각합니다.

대체 레벨이 몇이나 되는 엘더 몬스터길래 이런 반응일까?

[2번 보유자]

-서**님이 무엇을 우려하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정부에선 서**님의 신변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당연히 뒤를 캐는 등의 배신행위도 하지 않을 것이며, 정부에서 서**님의 앞으로의 활동에 어떠한 지장도 주지 않을 것이라 약속합니다.

아니 오히려 정부의 힘이 필요하시다면 말씀만 하십시오.

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이렇게까지 애원하니, 나는 턱을 짚으며 고민해야 했다.

[나]

-제가 여러분의 생각만큼 강하지 않으면 어쩌시려고요?

[2번 보유자]

-아뇨, 감히 장담하건대 서**님의 수준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다고 장담합니다.

떠보듯 물어본 건데 너무 자신 있게 답해서 오히려 내가 당혹스럽다.

[2번 보유자]

-대재앙이 발생하고 3주가 지난 지금, 던전을 공략해나가는 지역 사냥팀들이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님은 무려 4일 만에 던전을 최초로 클리어하셨죠.

즉, 서**님께선 상위등급 사냥팀이라며 목에 힘주고 다니는 사람들의 수준을 17일 전에 달성했단 뜻이 됩니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과까지 같을 수는 없는 거죠.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지금 대화하는 상대가 몬스터에게 잡아 먹혔던 그 인간이 맞나 싶다.

[2번 보유자]

-전방에서 엘더 몬스터의 어그로를 끄는 역할은 저희 정부팀과 서울 사냥팀이 담당할 예정입니다.

서**님은 프리롤로 자유롭게 딜을 넣어주시면 됩니다.

위험한 일은 자기들이 맡는 데다가, 내 신변도 캐지 않고 보호해줄 것이며, 내가 원하는 게 있으면 최선을 다해 돕겠다라.

'솔직히 제안만 들어선 그리 득이 되진 않는다. 어쨌든 이번 일로 공식적으로 내 모습을 드러내는 거니까. 하지만···.'

이번 일은 개인의 이득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

시민들의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나는 득실을 따지고 있었다.

'단체 사냥으로 한 몬스터를 잡으면 공로가 높은 사람에게 좋은 보상이 주어질 텐데, 과연 나보다 사냥 공로가 높을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거다.

얼마나 많은 인원이 참가한들, 내가 보상을 독식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강이솔의 부탁이 꼭 나쁘지만 않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

-해당 엘더 몬스터의 레벨은 어느 정도라 생각합니까?

[2번 보유자]

-추측이지만, 적어도 70 이상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녀석은 온몸이 촉수로 이뤄져 있고, 사람을 쥐어짜 흡혈을 하는 특수종입니다.

그럼 일단 최초 토벌 보상도 함께 붙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레벨 70 이상 엘더 몬스터의 토벌 보상과 특수 개체의 최초 토벌 보상까지.

의외로 빵빵하게 챙겨올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나]

-토벌 보상은 각자 챙기는 거겠죠?

[2번 보유자]

-물론입니다.

만약 보상이 만족스럽지 않으실 경우, 제가 개인적으로라도 추가 보상을 구해다 바치겠습니다.

[나]

-내가 좋은 아이템을 구하고도 그 말을 악용하면 어쩌려고요?

[2번 보유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간절한 건 이쪽이니까요.

솔직히 강이솔의 태도를 보면 뜯어 먹기로 마음먹으면 더 뜯어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러진 말아야겠지.

서울 시민들 살리겠다고 저렇게 바짝 엎드리는데, 내 실속 챙기겠답시고 등을 쳐서야 되겠는가.

어차피 그가 줄 수 있는 보상 수준은 뻔하고, 엘더 몬스터를 잡고 나오는 것에 비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애초에 내 몫은 충분히 알아서 챙길 수 있으니까.

*

레이드를 위한 회의는 오늘 오후 8시, 서울 현충원 생존구역에서 진행된다고 한다.

내게는 꼭 와주셨으면 좋겠다고는 하나, 어떤 결정을 내리든 존중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대화를 종료했다.

그나저나 오후 8시면 긴박한 것치곤 시간이 꽤 남아 있는 상태다.

서울뿐만 아니라, 인천, 수원 등 수도권의 주요 사냥팀들을 한자리에 모으기 위해 어느 정도 여유 시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나와 윌리아는 지하미궁 2단계의 공략을 계속 이어갔다.

우린 레벨 49를 달성하고, 또 빠르게 경험치를 늘려 갔다.

이곳은 레벨업을 위한 최적의 사냥터라 자신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린 레벨 50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태가 되었고.

"두 번째 네임드 방이네요."

레벨 50 달성을 화려하게 장식할 네임드 몬스터를 마주하게 되었다.

[네임드 미라 워메이지 비악스 / 레벨: 55]

이전 검사형 네임드에 상반되는 마법사형 미라 몬스터였다.

지하 미궁의 네임드들은 하나같이 만만치 않았다.

그중에서도 미라 워메이지 비악스의 전투 스타일은 사람을 제대로 열 받게 했다.

"빌어먹을!"

-쾅! 쾅!

이유는 녀석의 공격이 유도 기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이어 샷 또는 윈드 샷을 천장 또는 측면으로 아무렇게나 발사해도 여지없이 우릴 노려오고, 시간차를 두고 쏘기도 했다.

[클클클! 내가 마법사니, 거리만 좁히면 승기를 가져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짜증 나게 블링크 스킬도 갖고 있어서, 아예 공간이동으로 도망친 후 사방에서 원거리 공격 스킬이 날아들게 했다.

공격이 어찌나 변칙적인지, 거의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 총알을 쳐냈던 것처럼, 감각을 갈고 닦는 훈련을 하는 느낌이었다.

-팟!

"크윽!"

덕분에 나는 하루에만 두 번이나 팔이 날아가는 통증을 느껴야 했고.

"꺄악!"

"윌리아 님!"

윌리아도 처음으로 발목이 뜯기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네임드 미라 워메이지 비악스을 토벌하여 경험치 68,000을 획득했습니다.]

[미라 워메이지를 최초 토벌하여 경험치 25,000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라 '부상'과 '상태 이상'이 모두 회복됩니다.]

포션과 힐로 부상을 회복해나가며 차근차근 녀석을 공략한 우리는, 끝내 승리하며 '레벨 50'을 달성했다.

그리고 보상도 너무 좋았다.

앞선 네임드를 잡고 검사용 스킬북과 무기만 나왔다면, 이번엔 마법사용 스킬북 2권이 나왔다.

[타깃 포인트 / 상급 스킬 / 액티브]

-타깃 포인트를 설정하면 30초간 사용하는 모든 원거리 스킬이 목표를 따라가며 타격한다.

-소모마력: 3

[폭발 / 최상급 스킬 / 액티브]

-적에게 압축된 불꽃을 날려 강력한 폭발 피해를 입힌다.

-소모마력: 5

말이 필요 없는 최고의 스킬북들.

공격 스킬을 유도탄으로 만들어 주는 '타깃 포인트'도 분명 좋지만, 나는 '폭발'이란 스킬을 보고 크게 놀랐다.

무려 마력 5를 소모하는 강력한 한방 스킬이라니.

내가 직전에 얻은 폭주 스킬의 경우 버프에 가까운 형태였기에, 장담컨대 이 스킬은 우리 파티 최고의 화력이 될 게 분명했다.

"이 두 개는 윌리아님이 가지세요."

"네?"

솔직히 욕심이 안 난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나의 마력은 한정되어 있고, 주력기는 엄연히 검인 만큼 역할을 확실하게 구분 짓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난 전방, 윌리아는 후방.'

고로 이번 보상들은 윌리아가 갖는 게 맞다.

더구나 윌리아는 마력 회복 스킬도 가지고 있는 만큼 금상첨화라 할 수 있다.

두 개의 스킬북을 받아든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다가 숄더 차지를 날리듯 거칠게 내 뒤에서 안겨 왔다.

"고마워요. 잘 쓸게요."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녀 역시 자신의 강화에 꽤나 관심이 많아 보였다.

그러니 이렇게 좋아하는 거겠지.

"레이드전을 앞두고 확실하게 강화했네요."

"네!"

이후 우린 보물 상자를 찾아 이곳저곳을 뒤졌으나 아쉽게 발견하지 못했고, 그 후로도 사냥은 계속되었다.

"보스룸은 어딨지?"

"던전이 미로 형태라서 지나왔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우린 아쉽게도 시간제한이 끝날 때까지 보스룸에 닿지 못하고, 그대로 던전 밖으로 쫓겨났다.

"한 번에 공략할 수 있는 던전이 아니네요?"

"어쩔 수 없죠."

그리고 우린 뒤에서 총을 들고 쫓아오는 군인들에게서 도망치며 웨이포인트를 이용했다.

*

서울의 4대 생존구역 중 하나인 현충원에 도착한 내게 가장 눈에 띈 건 의외로 밝은 생존구역의 풍경이었다.

태양광 패널 덕분인지, 현충원 생존구역 곳곳에 설치된 가로등에 불이 들어와 있고.

유리병과 천, 휘발유로 만든 간이 램프로 곳곳을 밝히고 있었다.

더불어 하수구마다 라바콘이 쳐져 있었는데, 시민들이 그 근처로 다가가지 않는 것을 보니, 모두가 엘더 몬스터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뭐지?"

"다들 표정이 심각해 보여요."

그런데 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의아함을 느꼈다.

생존구역의 사람들이 술렁이고 있어서 엘더 몬스터 때문에 그런가 싶었는데, 왠지 분위기가 그것 때문만이 아닌 것 같았다.

[한강···.]

[강북··· 끊겨···.]

결국, 궁금증을 못 참고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다행히 이들은 대뜸 정보료를 요구하진 않았다.

"한강대교를 비롯해 서울의 강남과 강북을 잇던 모든 다리가 끊겼답니다. 워낙 기습처럼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일이라 군대와 사냥팀들도 대응을 못 했다네요."

"네?"

그리고 이야기를 들은 나는 헛바람을 삼키며, 이동을 서둘렀다.

이거 생각 이상으로 상황이 심각해 보였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내가 도착한 곳은 현충원이 끼고 있는 D중학교로, 수방사의 군부대가 주둔 중인 곳이었다.

나와 윌리아가 정문으로 다가가자 입구를 지키고 있던 군인들이 움찔 놀라며 우릴 멈춰 세웠다.

당연한 반응이다.

지금의 우린 너무도 수상해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외투의 후드를 뒤집어쓰고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누가 보면 연예인인 줄 알 것 같은 모습이다.

"강이솔 본부장이 와달라고 해서 왔습니다."

그에 군인들은 뭔가 들은 게 있는지, 급히 길을 열며 우렁차게 경례를 붙여왔다.

"실례했습니다!"

나와 윌리아는 너무 오버하는 군인들의 모습에 서로 어깨를 으쓱이며 D중학교 체육관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수도권의 유명 사냥팀이 모두 모여 엘더 몬스터의 토벌을 논의할 예정이라 들었다.

-웅성. 웅성.

체육관 밖에서부터 제법 한가닥 하게 생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양이태 / 레벨: 30]

[한배수 / 레벨: 29]

[오민수 / 레벨: 29]

그중에서도 시선을 잡아끄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체육관 입구를 지키고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인상이 꽤나 더러운 3명의 남자였다.

아마 지금쯤이면 서울의 윤시아도, 수원의 김현수도 레벨을 더 올렸을 터.

그 둘보단 딸리겠지만, 주변에서도 눈에 띄게 우수한 레벨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야, 너흰 꺼져."

그런데 그들의 행동이 뭔가 이상하다.

분명 모두 정부의 요청을 받고 모인 사냥팀일 텐데, 그들이 몇몇 사람들을 내쫓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태봉 / 레벨: 22]

[이을성 / 레벨: 21]

[배영욱 / 레벨: 21]

쭉 지켜보니 왜 저러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레벨이 낮은 사람들을 솎아내고 있었다.

'탐색 관련 스킬 보유자군.'

그렇다고 해도 저렇게 사람들을 돌려보낸다는 게 뭔가 이상했다.

강이솔은 굉장히 급박해 보였기 때문이다.

"당신들 뭐하는 겁니까!"

그리고 때마침.

강이솔이 등장하며 성을 냈다.

"급 떨어지는 애들 돌려보내고 있잖아."

"아니, 당신들이 무슨 권한으로요!"

"다들 뭐 하나 주워 먹겠다고 기어온 모양인데, 원래 게임에서도 '먹자'를 쳐내야 사냥이 수월한 거거든."

"우린 게임을 하는 게 아닙니다! 생존 싸움을 하는 거지!"

역시 그들의 행동은 정부의 허가를 받은 게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뭐지? 저 미친놈들은?'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강이솔이 뭐라 하는데도 껄렁이며 귀를 후비는 게 양아치 같기도 하고.

"응?"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던 남성의 눈빛이 나와 윌리아에게 고정되었다.

그의 얼굴에 놀람이 깃들고 이어서 험악한 표정으로 우리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왜 스킬이 안 통하는 거지? 거기 당신. 이름이 뭐야? 얼굴은 왜 꽁꽁 가리고 있고?"

초면에 반말로 이름을 묻다니.

그럼에도 나는 친히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물음에 어울려주었다.

"서아 아즈나블."

본명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없기에 아무 이름을 댔고, 그에 강이솔이 눈을 크게 뜨며 달려왔다.

"혹시 서땡땡(서**)님이십니까?"

055화 압도적 무위 (1)

나름 그럴싸한 이름을 댔는데, 강이솔이 나를 서땡땡(서**)이라 부르는 바람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머지않아···.

"!!!!!"

"어?"

"설마."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금방이라도 덤벼올 것처럼 행동하던 양아치 3인방도 움찔 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강이솔은 공개된 장소에서 나를 서**이라 부른 것이 실수라 생각했는지,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당황했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얼굴도 가려놨고, 실전에 들어가면 나는 모두의 주목을 끌 수밖에 없는 무력을 지니고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걱정하는 건 서**으로서 알려지는 게 아니다. 서**이 서백호이며, 서백호는 서인호 대령의 아들이란 게 알려지는 게 싫은 거지.'

내가 정체를 드러내길 꺼리는 건 복잡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정부와 국군이 내 가족에게 귀찮게 굴까 봐 그런 거다.

'원래는 신변의 위협이 가장 큰 걱정이었지만, 솔직히 이젠 신변을 걱정할 짬밥은 아니긴 하지.'

만약 부모님이 계룡대에 계시지 않았다면, 굳이 정체를 숨길 필요도 없긴 하다.

지금의 나라면 어느 단체의 방해도 돌파할 여력이 있으니까.

그 순간, 강이솔은 면목 없다며 고개 숙이고는 내게 사과와 감사가 담긴 인사를 건네왔다.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안 오시는 거 아닐까 싶어서 걱정했거든요."

"저도 한국 사람이니, 당연히 힘을 보태야죠."

입에 발린 말이지만, 그에 강이솔은 크게 감동한 모습을 보였다.

사실 계산기 두드릴 만큼 두들겨 보고 충분히 이익이 될 거라 생각해서 온 건데.

오랫동안 내 주력무기로 자리 잡고 있는 '제르카의 검'은 가의도에 등장한 엘더 몬스터를 잡고 구한 검이다.

이번에 새로 얻은 '아칸의 세이버'가 그것과 동급이긴 한데, 제르카의 검을 떨군 엘더 몬스터의 레벨이 30이었던 반면, 아칸의 세이버는 레벨 55의 네임드 몬스터에게서 나왔다.

그럼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레벨 30의 엘더를 잡고 얻은 무기를 아직까지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레벨 70 이상으로 평가되는 엘더를 잡고 나온 장비는 어떤 수준일까?'

어쩌면 '희귀 등급'의 장비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것이 만약 검이면, 레벨 100까진 무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이런 걸 누구에게 양보하겠는가.

당연히 내가 먹어야지.

"서땡땡이 초반에 눈에 띄긴 했지. 하지만 최근 최초 업적은 대부분 외국인들이 띄우고 있던데? 그럼 한물간 거 아닌가?"

그런데 내 입에 발린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양이태 / 레벨: 30]

나는 황당한 말을 하는 양아치 3인방 중 레벨 30의 양이태를 보며 피식 실소를 흘렸다.

대재앙이 발생하고 이제 겨우 3주 차인데, 한물가고 말고 할 게 어딨어?

솔직히 이런 사람들의 심리는 잘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히 이해하고 있는 게 있다.

'이런 놈들에게 우습게 보이면 귀찮아진다는 거.'

그래서 녀석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에 양이태는 악수를 하자는 것으로 이해했는지, 별생각 없이 내 손을 붙잡았고.

-콰직!

"끄아악!"

나는 높은 근력으로 녀석의 손을 반으로 접어 주었다.

뼈가 부러져 덜렁거리는 녀석에게 동료들이 달려왔다.

"이, 이태야."

"괜찮아?"

하지만 감히 내게 뭐라 하지 못했다.

단번에 능력치 차이를 깨달은 것이다.

나는 그런 그들을 스윽 바라보다가, 윌리아에게 치료를 부탁했다.

그녀의 힐 한 번에 부상은 즉시 완치되었다.

"가죠."

그리고 나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바로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강이솔이 황급히 나와 윌리아를 따라오며 말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제가 마련해둔 자리가 있습니다."

그도 양아치짓 하는 양이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회의를 주관하는 사람이면서 내 행동에 아무런 추궁도 하지 않았다.

옛날이었으면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히면, 경찰이 출동하고 피해자는 고소한다며 떠들어댔을 텐데, 세상이 많이 바뀌긴 바뀌었다.

"앞으로 서아 님이라 부르면 될까요?"

"서아?"

강이솔의 물음에 나는 순간 이해를 못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좀 전에 내가 '서아 아즈나블'이라 소개했던 게 뒤늦게 떠올랐다.

누가 봐도 가명이지만, 언제까지 서땡땡이라 불릴 수는 없는 노릇.

'서아'란 이름이 살짝 여성스런 느낌이지만, 임시 이름이니 아무렴 상관없었다.

"네, 그렇게 불러 주세요."

체육관 내부는 마치 결혼식 피로연처럼 사냥팀 별로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고, 그 위엔 꽤나 공을 들인 듯한 음식과 디저트, 음료가 푸짐하게 놓여 있었다.

대재앙 이후 보기 힘든 풍경이었기에 체육관에 들어서는 모두가 작게 감탄했다.

강이솔이 내게 안내한 자리는 맨 앞줄에 위치해 있으나 사람들의 눈에 크게 띄지 않는 구석 자리였다.

"마음 같아선 정중앙에 자리를 마련하려 했으나, 왠지 그건 싫어하실 것 같아서 이렇게 배치했습니다."

다만 다른 자리들과 달리 파티션이 쳐져 있고, 테이블과 의자 자체가 훨씬 고급스러워 보였으며, 차려진 음식까지 특별 취급을 하고 있단 분위기가 풀풀 풍겼다.

나는 신경 써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파티션 덕에 마스크 내리고 음식 먹어도 되겠는데?'

슬쩍 윌리아를 바라보니, 이미 그녀는 음식을 보고 전투태세에 돌입한 상태였다.

"그럼 잠시 쉬고 계십시오. 잠시 후 브리핑을 겸한 작전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강이솔이 물러나자 윌리아와 나는 바로 마스크를 내리고 식사를 시작했다.

원체 먹기를 좋아하는 윌리아도 윌리아지만, 나도 사냥 직후 방문한 것이어서 허기가 졌기 때문이다.

'용케 재료들을 구했네.'

다른 테이블엔 보쌈과 치킨, 피자 등 이제는 먹기 힘들어진 음식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우린 거기에 불고기와 잡채, 전을 포함한 잔치 음식이 추가되어 있었다.

"오오?"

"와···."

나는 불고기에 보쌈김치를, 윌리아는 치킨을 뜯으며 동시에 감탄사를 흘렸다.

한입만으로도 굉장히 솜씨 좋은 사람이 만들었단 것을 알 수 있었다.

보통의 시민들이 끼니 걱정을 하는 상황에서 레벨이 높다는 이유로 이렇게 호화로운 식사를 대접받다니.

새로운 세상에선 레벨이 곧 권력임을 단적으로 느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운 나는 파티션 위로 머리를 빼꼼 내밀어 앞줄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김현수 / 레벨: 34 / 수원1팀]

[윤시아 / 레벨: 35 / 서울1팀]

[박행기 / 레벨: 31 / 서울2팀]

[권미영 / 레벨: 30 / 서울3팀]

[양이태 / 레벨: 30 / 인천1팀]

눈에 띄는 건, 위 다섯 사람과 그들이 이끌고 있는 파티였다.

방금 내게 손이 짓이겨진 양이태도 큰소리 칠만큼 이 안에서만 보면 고렙임은 분명했다.

그중에서도 자칭 나의 검도 라이벌인 수원의 김현수와 지하미궁의 힌트를 주었던 윤시아가 다른 사람들보다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게 특징적이다.

'확실히 내 성장 속도가 비정상적이긴 하네. 레벨 40이 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데, 혼자 레벨 50을 찍고 있으니.'

대충 체육관에 모인 사람들의 수를 세니 족히 200명은 될 것 같았다.

즉, 이들이 현재 서울과 인천, 수원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사냥팀들 중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정예들이란 뜻이다.

[아아, 지금부터 브리핑 및 작전회의를 시작할 예정이니, 모두 지정된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얼마나 탐색을 이어갔을까?

강이솔이 단상에 오르며 마이크에 대고 위와 같은 말을 하자, 먹고 마시며 시끌벅적하던 체육관이 빠르게 조용해졌다.

그에 만족한 강이솔은 브리핑을 시작했다.

브리핑 내용은 사전에 이미 들었던 이야기를 자세히 푼 것이었다.

어쩌다가 엘더 몬스터를 발견하게 되었는지, 지금 서울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으며, 이번 토벌에 실패할 경우 발생할 리스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2가지였다.

이만한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무슨 일이 있겠냐는 측과 강이솔의 이야기를 경시하지 않고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부류.

하지만 후자보단 전자의 반응이 월등히 많아 보였다.

'재앙 속에서도 적응하면서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걸까?'

대체로 위기의식이 부족해 보였다.

그리고 강이솔은 이런 반응을 예상했는지, 작전회의 전에 엘더 몬스터와의 전투 장면이 담긴 영상을 실행했다.

'실뭉치처럼 생긴 촉수 덩어리.'

그것이 내가 엘더 몬스터를 보고 느낀 감상이었다.

"저런 형태는 처음 보네. 혹시 아시는 몬스터입니까?"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저건 엘더 중에서도 상당히 특수해 보이는 개체군요."

내 물음에 피자를 입에 가져가던 윌리아가 고개를 내저으며 답했다.

해당 몬스터는 특이한 외형만큼이나 뛰어난 전투 능력을 갖고 있었다.

녀석이 날리는 촉수 다발은 마치 기관총처럼 보일 정도였다.

덕분에 방금까지 가볍게 생각하던 사냥팀 멤버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확인결과 어중간한 위력의 현대 무기로는 녀석에게 상처 하나 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검기를 비롯해 마력을 사용한 전투 스킬은 데미지가 들어가더군요. 이번 전투에서 군대가 여러분의 뒤를 받쳐주긴 하겠지만,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겁니다.]

차라리 그게 낫다.

괜히 군대가 필요 이상으로 데미지를 주면 몬스터는 경험치와 보상을 제공하지 않으니까.

이어서 강이솔은 작전을 설명했다.

[작전은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1단계는 유도.

먼저 지하 하수도에 결사대가 들어가 녀석의 위치를 파악하고, 폭탄으로 하수도를 붕괴시켜가며 전장이 될 장소로 엘더 몬스터를 유도하는 것이다.

2단계는 전투.

1단계를 성공한다면, 녀석은 서초 대법원 앞 하수구에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럼 그곳에 대기하고 있던 사냥팀들에 의해 본격적인 레이드가 시작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대로 엘더 몬스터를 사냥하는 데 성공하는 것이고, 만약 실패하게 된다면 마지막 3단계 작전을 진행한다.

3단계는 최악의 상황에 대한 마지막 발악이다.

사냥팀들을 물리고, 엘더 몬스터를 향해 현무4 탄도 미사일이 발사된다.

[현무4 미사일을 사용하게 되면 주변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무고한 희생도 많이 발생하겠죠. 도심 한가운데서 탄도 미사일 사용은 정말 최후의 수단입니다. 그럴 일이 없도록 반드시 우리가 엘더 몬스터 사냥에 성공해야 하는 거고요.]

작전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오히려 심플한 편이다.

[내일 전투가 시작되면 누군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적지 않은 희생자가 발생할 것이라 보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내일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여러분은 역사에 남을 영웅이 될 겁니다.]

이어진 강이솔의 비장한 모습은 가벼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작전은 내일 오전 9시에 시작됩니다! 그러니 모두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컨디션을 조절해주시기 바랍니다.]

강이솔이 너무 겁을 줬다.

이거 어쩌면 탈주자가 발생할지도 모르겠다.

*

결전의 날이 밝았다.

"겁쟁이 새끼들."

"몇 명쯤은 줄행랑칠 거라 생각하긴 했는데, 설마 3분의 1이 사라질 줄이야."

-웅성. 웅성.

내 예상대로 탈주자가 발생했다.

무려 70명에 달하는 탈주자가.

그나마 다행이라면, 고레벨의 주력 사냥팀은 모두 남았단 것이다.

그래서 우린 예정대로 서초로 이동했다.

목적지는 대법원.

이곳에서 엘더 몬스터가 도착하길 기다렸다가 녀석이 나타나면 그때부터 토벌전이 시작된다.

특별히 이 장소가 결전의 장소로 선택된 것은 현무 미사일의 사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작게나마 산을 끼고 있어서 현무 미사일의 폭발이 확산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줄여볼 생각인 것이다.

"으음?"

그렇게 남은 130명의 사냥팀들은 방어팀과 딜러팀으로 나뉘어 배치가 됐는데, 나와 윌리아가 배치된 프리롤팀에 2명이 추가되면서 불편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뭘 봅니까?"

"죄, 죄송합니다."

그 두 명이란 나와 형동생을 하기로 한, 수원의 김현수(레벨:34)와 서울의 제일 사냥꾼 윤시아(레벨:35)였다.

사실 지금 이 순간 가장 마주하기 꺼려지는 게 김현수고 그다음이 윤시아다.

김현수는 내 본명과 얼굴을 아는 사람이고.

윤시아는 내가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지하미궁의 정보를 건네준 사람인데, 어제부터 나와 윌리아가 신나게 정부에서 관리하는 지하미궁을 공략하고 있는 중이라 여러모로 찔렸다.

연신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윤시아를 향해 쏘아붙이자, 그녀는 금세 꼬리를 내렸다.

평소 당돌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는데, 왠지 내 앞에선 약해지는 그녀였다.

'그런데 김현수는 왜 나에 대해 관심이 없지?'

특히 의외인 점은 윤시아 이상으로 수상하단 반응을 보이리라 생각한 김현수가 과묵하게 입을 닫고 있단 것이다.

알면서 모르는 척해주는 건지, 아니면 레이드 전이라 긴장한 건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나는 불편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서아님, 우리끼리 알고 있어야 하는 사인 같은 게 있을까요?"

윤시아의 물음에 비로소 김현수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나는 그에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처음에 간 좀 보다가 패턴이 익숙해지면 공격을 쏟아붓는 거죠."

지금 이 순간 나는 평소보다 목소리를 굵게 내고 있는데, 이는 김현수를 의식한 행동이었다.

만약 그가 알고 있는데도 모르는 척해주고 있는 거라면 나중에 이불킥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엘더가 등장한 직후 바로 달려들지만 마세요."

"그러고 보니, 공대장(강이솔)에게 그 이야기를 미리 전달받긴 했는데, 왜 그런 거예요?"

"보면 압니다."

"네?"

이후 나는 입을 닫아 버렸다.

그렇게 불편한 파티가 한자리에 모이고 10분, 20분, 30분이 지났다.

-드드드드!

"유도에 성공했어! 모두 전투 준비!"

긴장감과 기쁨이 동시에 느껴지는 강이솔의 외침에 사람들이 모두 마른침을 삼켰다.

"준비해주세요."

"네."

나는 윌리아에게 공격 준비를 지시 했고, 그녀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

-키에에엑!

전신을 떨리게 만드는 날카로운 피어와 함께 녀석이 등장했다.

[엘더 크림슨 로드 / 레벨: 81]

"레, 레벨 81?"

"네?"

"헉!"

내 혼잣말에 김현수와 윤시아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녀석의 레벨을 보고 동요한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어제 인천의 양아치들처럼 탐색 관련 스킬을 가진 사람들이 또 있었으니 말이다.

"갑니다."

하지만 이런 혼란스런 상황에서도 윌리아만은 동요 없이 주어진 역할을 수행했다.

"폭발."

윌리아가 유려한 디자인을 뽐내는 특수 등급의 지팡이 사파이어 완드를 앞으로 뻗으면서, 새로운 강력한 원거리 스킬 사용했다.

윌리아의 완드를 떠나는 압축된 마력.

이어서 그것이 촉수 괴물에게 닿았다.

-콰아아아아아앙!

"으악!"

"뭐, 뭐야!?"

그러자 마치 미사일이 떨어진 것처럼 지면을 뒤흔드는 강렬한 폭발이 발생했다.

"무, 무슨?"

김현수와 윤시아뿐만 아니라, 모든 사냥팀의 시선이 윌리아에게 모였다.

하나같이 경악한 표정으로.

그런 그들의 모습에 답을 하듯 윌리아는 폭발 스킬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056화 압도적 무위 (2)

마력을 무려 5나 소모하는 원거리 스킬 '폭발'.

그 스킬이 적중될 때마다 레벨 81의 엘더 몬스터 '크림슨 로드'는 거친 비명과 함께 온몸을 비틀었다.

-콰아앙! 콰아아앙! 콰아아앙!

한 방, 두 방, 세 방, 네 방.

강렬한 폭발 스킬이 연이어 크림슨 로드를 때리니, 레이드팀의 누구도 쉬이 다가가지 못하고 하나같이 입을 쩍 벌린 채 윌리아만 바라보았다.

"저, 저 여자는 대체?"

"역시 서땡땡의 파트너란 건가?"

"서땡땡? 그게 뭔데?"

"있잖아. 그···."

레이드에 참여한 공대원 중엔 내가 서**이란 걸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다.

아는 사람들은 윌리아의 무력을 보며 역시 서**파티가 폼은 아니라며 감탄하고.

모르는 사람들은 윌리아의 무력에 경악해 대체 저런 존재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얼굴은 왜 가리고 있는 건지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연이어 작렬하는 폭발 스킬의 강렬함이 윌리아를 경외케 하기 충분하단 것이었다.

-키에에엑!

-콰아아앙!

"저대로 죽는 거 아냐?"

"포, 폭탄 세례에도 멀쩡하던 엘더 몬스터가···."

그녀의 손짓 한 번에 크림슨 로드의 촉수 다발이 터져 나가고, 아스팔트 지면은 폭발의 압력으로 조각조각 깨졌다.

스킬과 현대 무기는 위력이 비슷하더라도 몬스터에게 들어가는 데미지가 다르다.

그것을 증명하듯 강이솔이 설치했던 폭탄에도 멀쩡했던, 크림슨 로드가 윌리아의 공격에는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그때.

"위험해!"

"피하세요!"

먼 거리에서 일방적으로 공격을 날리는 윌리아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게 된 크림슨 로드가 그녀를 처치하기 위해 촉수 더미를 한 번에 뻗어왔다.

엄청난 속도를 가진 위협적인 촉수 공격.

그에 잠자코 있던 내가 윌리아의 앞을 막아서며 새로운 무기인 '아칸의 세이버'로 발도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일섬.'

세이버의 내장 스킬인 일섬을 섬전 같이 휘둘렀다.

-휙!

내 순발력은 44, 이는 김현수나 윤시아와 비교해도 배 이상 높은 수치일 거다.

거기에 '발도술 사용 시 공격속도 30% 증가'가 붙은 세이버 옵션에 쾌검을 자랑하는 일섬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일격필살의 기술이 펼쳐졌다.

-팟!

유려한 곡선의 칼날이 허공을 가르고, 소닉붐처럼 공기가 폭발했다.

그로 인해 촉수 더미는 단번에 토막이 나며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키에엑!

엘더 몬스터는 지능이 제법 높다.

녀석은 동시 공격이 막히자 방법을 바꿔 촉수들을 순차적으로 날려오는 계산적인 행동을 취했다.

'또 수련하는 느낌이네. 이런 공격을 막는 건 이제 어렵지 않지.'

곧바로 이어지는 공격에 당황하는 것 없이. 나는 차근차근 검으로 그것들을 베어냈다.

아무런 스킬 없이.

그냥 칼질로.

'묵직하네. 쇠를 때리는 느낌이야.'

크림슨 로드를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강이솔은 녀석의 촉수 공격을 기관총 같다고 비유했다.

하지만 직접 상대해 보니, 그 정도는 아니다.

'총알보단 느리고, 마력탄보단 빠른 느낌이랄까?'

능력치가 낮은 사람들 눈엔 속도 차이가 구분되지 않는 모양이니, 평범한 칼질로 기관총처럼 난사되는 탄환을 베어내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짐작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듯, 어렵지 않게 촉수 공격을 쳐내는 내 모습을 보며 김현수와 윤시아가 마른침을 삼켰다.

"허···."

크림슨 로드의 공격에 그들의 반응이 반박자 느렸던 것을 떠올리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도울까요?"

"괜찮습니다."

윤시아는 힘들어도 김현수라면 한두 번 정도는 쳐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굳이 이들에게 위험을 무릅쓰게 할 필요는 없다.

나 혼자 처리하는 편이 더 확실하고 편했다.

-파파파팟!

윤시아와 김현수가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크림슨 로드는 끈질기게 촉수를 쏘았고, 나는 중간중간 칼질로 해결이 안 될 땐 스킬을 섞었다.

덕분에 단 한 번의 돌파를 허용하지 않고, 촉수가 윌리아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이런 나의 노력에 보답하듯 윌리아가 피날레를 준비했다.

"뭐지?"

"어째서 스킬을 엉뚱한 곳으로 날리는 거야?"

세 방향으로 발사되는 폭발 스킬.

남들에겐 엉뚱해 보일 수밖에 없는 공격이었다.

하나는 홈런처럼 허공으로 높이 날아가고, 다른 하나 측면으로 크게 빗나갔으며, 마지막 공격만 올곧게 직선으로 날아갔다.

-휙!

그런데, 빗나간 거라 생각했던 스킬들이 갑자기 방향을 틀면서 유도탄처럼 크림슨 로드에게 쇄도했다.

그리고 응축된 마력이 크림슨 로드에게 닿는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앙!

폭발 스킬 셋이 마치 하나의 스킬처럼 일제히 화염을 토해내며, 강렬한 충격파를 발생시켰다.

-끼아아악!

-챙그랑!

날카로운 크림슨 로드의 비명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나를 공격해 오던 촉수들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주변 건물의 유리창들이 요란하게 터져 나갔다.

지하미궁 2단계에서 폭발 스킬과 함께 얻은 '타깃 포인트'를 활용한 묘기였다.

타깃 포인트 스킬을 사용하면, 원거리 스킬은 어떤 방향으로 발사해도 유도탄처럼 대상을 쫓았다.

윌리아는 그걸 이용해 스킬이 날아가는 거리에 차이를 둬서 한 번에 터지게 만든 것이다.

"······."

쥐죽은 듯 조용해진 엘더 몬스터 공략팀.

짧지만 인상 깊은 활약에 모두가 말을 잃었다.

"급이 달라."

복잡한 감정이 느껴지는 짧은 대사.

사람들이 술렁대기 시작하자,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이 놀란 모습을 하고 있던 공대장 강이솔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며 외쳤다.

"다들 집중해!"

그 외침에 모두가 깜짝 놀라며 시선이 연기에 둘러싸인 크림슨 로드에게 향해졌다.

이어서 연기가 걷히고.

-키아아아악!

애석하게도 크림슨 로드는 여전히 그곳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과 형태가 많이 바뀌었는데.

첫 등장 때만 해도 촉수를 실뭉치처럼 동그랗게 뭉쳐 놓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슬라임처럼 바닥에 축 늘어져 있었다.

"마력 다 떨어졌어요."

"고생했습니다. 잠시 쉬고 계세요."

마력을 모두 쏟아부은 윌리아는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태연하게 인벤토리에서 의자를 꺼내 앉았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흔들의자를.

-끼익. 끼익.

마력은 편한 자세일수록 빠르게 충전이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게다가 윌리아는 마력 회복 스킬도 갖고 있어서 남들보다 더욱 빠르게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전원 전투 준비!"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축제로 치면 앞선 윌리아의 공격은 전야제, 이제부터가 본행사라 할 수 있다.

강이솔의 지시에 사냥팀들이 빠르게 전투태세를 갖췄다.

희망적인 점이 있다면 영상으로 봤을 때만 해도 매우 어려울 거라 생각한 레이드가 윌리아 덕분에 상황이 바뀌었단 거다.

"어쩌면 쉽게 이길지도?"

"맞아, 거의 죽어가고 있는 느낌이잖아."

다들 활기찬 표정으로 엘더 몬스터 크림슨 로드와의 전투에 나섰다.

"움직임이 굼뜨다! 데미지가 큰 것 같아!"

"포위해! 포위해!"

크림슨 로드는 100명이 넘는 사람이 복잡하게 움직이자 더는 윌리아를 향해 공격을 가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도 어젯밤 홍성을 다녀와 2강까지 강화한 아칸의 세이버를 쥔 채, 크림슨 로드를 향해 다가갔다.

그런 나의 뒤로 김현수와 윤시아도 눈치껏 쫓아왔다.

"무리하지 말고, 차라리 둘이 페어를 이뤄서 싸우세요. 서로 레벨이 엇비슷하니, 어쩌면 유일하게 합이 맞는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알겠습니다."

윤시아는 바로 내 제안을 받아들이며 김현수를 바라보았고, 그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빠르게 수긍했다.

원거리 공격력이 뛰어난 투창의 윤시아와 제대로 검을 배운 김현수 조합은 그리 나쁘지 않을 거다.

"탱커! 방패 땅에 박아!"

"네!"

레이드팀의 작전은 심플하다.

무게가 100kg에 달하는 투박한 강철 방패를 쥔 탱커팀이 크림슨 로드를 둘러싸고, 탱커팀 뒤로 딜러들이 배치된다.

즉, 탱커들은 움직이는 벽이 돼주고 딜러들은 보호를 받으며 공격을 퍼붓는 것이다.

그리고 탱커뿐만 아니라, 곳곳에 레이드팀을 위한 시설을 밤새 구축해 두었다.

철판을 넣은 두꺼운 벽과 참호가 여기저기 만들어져 있어, 언제든 위험에 직면하거든 숨으면 된다.

"그물!"

-촤아악!

거기에 피아노줄과 사슬을 있는 대로 모아 만든 튼튼한 그물로, 움직임이 굳어진 크림슨 로드를 포박하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가뜩이나 힘이 빠져 보이는 엘더 몬스터를 상대로 질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이야! 공격해! 이러다 좋은 보상은 죄다 서땡땡 파티에게 빼앗기겠어!"

하지만 아무리 약해진 듯이 보인다 해도 녀석의 레벨이 81이란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거기 뭐하는 거야!? 위험한 짓 하지 마!"

욕심에 눈이 멀어서 무리를 한 순간.

-파파파팍!

"끅···."

그물을 뚫고 튀어나온 촉수에 당해 전신에 구멍이 뚫린 시체가 되고 만다.

자신들의 수준을 망각한 사냥팀 두 곳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작전대로 움직여! 철저히 방어 라인을 끼고 싸우란 말이야!"

그에 강이솔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은 사망자들을 기릴 여유 따윈 없고, 흐름을 끊어놓은 그들을 불쌍하게 여겨야 할 이유도 없었다.

결국, 그제야 사람들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약속된 패턴을 지키기 시작했다.

"큭!"

"아악! 내 다리!"

크림슨 로드의 대응은 거셌다.

마치 성게처럼 사방으로 촉수를 가시처럼 세우고, 이리저리 쏘아대며 사람들을 공격했다.

더구나 녀석에겐 사각이 없는지, 어느 방향에서도 공격이 날아들었다.

"좋아! 잘하고 있어!"

"젠장, 방패 뚫렸어!"

"새것 꺼내! 넉넉히 지급했잖아!"

일진일퇴의 반복.

비록 힘들게 준비한 방패는 촉수 공격을 오래 막아내지 못했지만, 방패가 뚫리면 인벤토리에서 새것을 꺼내 쓰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렇게 조금씩 시간이 흐르고. 레이드팀의 손발이 맞아가자 우위가 우리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할 만한 것 같은데?"

"그러게, 강이솔이 말한 정도는 아닌 것 같아."

물론, 그물이 뜯겨나가는 돌발상황이 발생하긴 했지만, 그때는 이미 승기가 완전히 넘어온 상태였다.

나는 전체적인 상황을 살피면서도 무섭게 크림슨 로드의 촉수를 베어내며 기회가 될 때마다 스킬로 강력한 타격을 주었다.

'촉수 공격이 눈에 익으니, 반격하기 쉬워졌어.'

화려하진 않지만, 깔끔한 전투.

나는 절대 무리하지 않고, 신중하게 적에게 익숙해지는 데 주력했다.

그럼에도 가장 크게 활약하고 있는 상태란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말이다.

-그그그그그!

그물을 벗어난 크림슨 로드가 사방으로 촉수를 날리고 어떻게든 승기를 가져오기 위해 발악했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녀석은 그렇게 점점 더 활동성을 잃어 갔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그런 엘더 몬스터의 모습에 사람들은 더욱 신이 나서 힘을 냈다.

"힘내!"

"곧 끝난다!"

하지만···.

이 순간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승리의 '기쁨'이 아닌, 의문 속에서 피어오르는 '불길함'이었다.

'이게 레벨 81의 엘더 몬스터라고?'

앞서 말했듯, 나는 무리하지 않고 적을 탐색하듯 싸웠다.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레벨 81에 '크림슨 로드'라는 거창한 이름을 갖고 있는 녀석이 너무 약했기 때문이다.

무언가 숨겨놓은 패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저 계속 지켜만 봐요?"

"일단 마력을 아끼면서 서포트에 집중해 주세요. 뭔가 낌새가 심상치 않으니까요."

그래서 마력이 다 찼다며 전장에 복귀한 윌리아에게 공격보단 보조 위주의 활동을 지시했다.

"공대장! 사람들이 너무 해이해지고 있어요! 토벌 메시지 뜰 때까지 방심하게 하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더불어 강이솔에게도 경고를 했다.

강이솔은 내 말을 경시하지 않고, 바로 공대원들에게 끝날 때까지 긴장 늦추지 말라며 호통을 쳤다.

"아직 안 끝났어! 마지막까지 집중해!"

"뭔 소리야. 다 끝났구만."

"보라고! 이젠 미동도 안 하잖아!"

하지만 때마침 크림슨 로드의 시커멓게 탄 몸체가 움직임을 멈췄고.

그렇게 경고를 했음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방심했다.

[즐길 만큼 즐겼나?]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어?"

"말했어?"

사람들이 한참 기쁨에 빠져 있을 때.

그 기쁨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죽였다고 생각한 크림슨 로드로부터 갑작스레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폭발하듯 사방으로 촉수 더미를 날린 것이다.

-파파파팍!

"끄악!"

"아아악!"

"사, 살려."

강이솔의 지시대로 방심하지 않고 방패 또는 은폐물 뒤에 숨어 있었거나 실력이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방심하고 있던 사람들은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몸이 꿰뚫리고 말았다.

이어서 촉수는 사람들의 피를 빼앗아 갔다.

촉수에 당한 사람들이 순식간이 미라처럼 몸이 말라붙으며 절명했다.

"뭔가 벌어질 것 같더라니."

그리고 크림슨 로드의 본체가 허공에 서서히 떠오르고.

-드드드드드!

이에 호응하듯 일대에 강한 지진이 발생했다.

"젠장! 떨어져! 빨리 녀석에게서 벗어나!"

잠깐의 방심은 사망자의 대량 발생으로 이어졌다.

강이솔은 별수 없이 공대를 뒤로 물려야 했다.

나도 윌리아의 곁으로 이동했고, 협업하며 꽤나 활약했던 윤시아와 김현수도 눈치껏 물러났다.

"대체 뭘 하려고 이렇게 요란을 떠는 거지?"

"그러게 말이에요."

나의 실없는 감상에 윌리아도 공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콰아앙!

크림슨 로드의 새까맣게 탄 본체에서 붉은빛과 함께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걸 보며 어떤 가능성을 떠올렸고.

"설마?"

곧이어 내가 예상한 장면이 고스란히 펼쳐졌다.

크림슨 로드의 본체를 알처럼 깨고 새하얀 손이 튀어나온 것이다.

"박혁거세야 뭐야?"

불만 어린 내 대사와 동시에,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에 박쥐 날개를 등에 단 여성이 크림슨 로드였던 것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엘더 크림슨 로드 루시엘라 / 레벨: 81]

"저, 저게 무슨?"

"아니. 시발 이게 뭔···."

이전에 비하면 덩치는 작아졌지만, 모두가 직감하고 있었다.

지금 눈앞의 여인은 이전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할 것이란 사실을.

나는 완전히 멘탈이 나간 듯한 강이솔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싸운 건 본체가 아닌 껍데기였나 봅니다. 게임으로 치면 최초로 2페이즈 보스의 등장이네요."

"······."

어쩐지 쉽다 했지.

곧이어 나신이나 다름없던 엘더 몬스터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하얀 천을 꺼내 몸에 둘렀다.

그 천은 이내 그리스 여신 풍의 원피스가 되었다.

그녀는 허공에서 가볍게 맨발로 지면에 착지했고, 이내 낮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그나마 두 녀석이 눈에 띄는군.]

크림슨 로드 루시엘라의 시선이 나와 윌리아에게 날아와 꽂혔다.

하지만 왜일까?

녀석의 위협 속에서도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원피스, 윌리아가 입으면 예쁘겠는데?'

057화 압도적 무위 (3)

-드드드드!

크림슨 로드 루시엘라의 등장에도 지진이 멈추지 않았다.

설마 이대로 싸우는 건가 싶었는데, 바닥을 뚫고 새로운 촉수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그때서야 지진은 멈췄으나, 뭐랄까?

녀석에게 쉬이 다가가기 힘든 환경이 만들어졌다.

초토화된 대법원 일대가 촉수의 숲으로 변모한 것이다.

'무슨 영역화 스킬 같은 건가?'

주변이 완전한 루시엘라의 영역이 되었다.

[일단 쓰레기들부터 치워 볼까?]

그 범상치 않은 위용만으로도 전의를 잃게 하기 충분했는데, 그녀가 돌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러자 붉은색의 기운이 루시엘라의 손끝을 타고 하늘로 솟구쳤고.

이내 붉은색의 빛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리아 씨!"

"네!"

내 부름에 윌리아가 하늘 높이 디바인 쉴드를 펼쳐 해당 공격의 위력을 측정했다.

-팟!

단 1초도 버티지 못하고 찢긴 디바인 쉴드를 보며 나는 외쳤다.

"중급 방어막이 1초도 못 버텼어요! 막으려 말고 그냥 피해요!"

"네? 네!"

공대장이 아님에도 다급한 나의 외침에 모두가 순순히 따랐다.

그리고.

붉은빛이 떨어진 곳엔 지름 5미터가량의 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문제는 그 살벌한 공격이 하나로 끝난 게 아니란 것이다.

-콰콰콰콰콰콰쾅!

주변의 모든 것을 짓이기는 공격.

그 무차별 공격에 대법원 건물이 맥없이 붕괴되었다.

"저, 저걸 어떻게 이겨."

아연실색한 생존자들이 넋을 놓았다.

내 지시에 따르지 않고 방패로 막아보려 한 사람은 방패가 압착 프레스가 되어 그대로 몸이 짓눌렸으며, 내 지시에 따랐으나 능력이 되지 않아 회피에 실패한 사람들은 그대로 신체가 뜯겨나갔다.

방금 공격으로 족히 스무 명은 당한 것 같았다.

루시엘라가 등장하기 직전에 이어진 촉수 공격으로도 비슷한 수가 죽었고, 초기에 당한 사람도 있으니, 어느새 공대원 130명 중 사망자가 50이 넘었다.

'강이솔이 서울의 명운을 건 싸움이라고 하긴 했는데···.'

아마 이 정도일 줄은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솔직히 이건 내 예상조차 상회하는 무력이었으니까.

이런 괴물의 토벌에 실패한다면 서울은 정말 붕괴할지도 모른다.

"저건 안돼."

"도망쳐!"

덕분에 두려움에 잡아 먹힌 사람들이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고.

"자, 잠깐!"

강이솔이 말릴 틈도 없이 사람들이 현장을 이탈했다.

나는 오히려 지금까지 잘 버텨줬다고 생각한다.

누군 신념 때문에, 누군 보상을 바라고 이곳에 왔겠지만, 목숨 앞에선 모든 게 평등했으니까.

결국, 죽으면 말짱 꽝이 아닌가?

"······."

어느새 자리를 지키고 선 사람은 20명 정도밖에 안 됐다.

도주한 사람 중엔 강이솔과 윤시아, 김현수의 부하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반면 남은 사람들은 각 사냥팀의 리더거나 그에 준하는 지위를 가진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뿐이었다.

[하하하하하!]

이런 상황이 우스운지 루시엘라가 실컷 비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남은 분들이 녀석의 시선만 잘 끌어 주시면 됩니다."

"네?"

"그럼 승산 있을 거라고요."

"······."

오히려 이만큼이라도 남아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망연자실해 하던 사람들은 태연한 내 태도에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두 눈을 껌뻑였다.

"지금부턴 제가 메인 탱커 겸 딜러입니다."

위험을 무릅쓰는 건 딱 질색이다.

당연히 나도 내 목숨이 가장 소중하다.

하지만, 피할 수 없거나, 피해선 안 되는 타이밍 정돈 이해하고 있다.

나는 그게 지금이라 생각했다.

"스, 승산이 있는 겁니까?"

"물론이죠."

승산?

당연히 있다.

승산도 없는데 나서는 건 용기가 아닌, 만용 아니겠는가.

"원거리 공격 능력이 있는 사람은 리아 씨와 함께 녀석을 견제해 주거나 기회 봐서 한 방을 노리고, 나머지 분들은 원거리 딜러들을 지키세요."

"그 말씀은 근접전을 혼자 치르시겠단 뜻입니까?"

"네."

내가 말하는 승산.

그건 바로 나와 윌리아 그 자체다.

"리아 씨. 폭발이요."

"네!"

내 지시에 윌리아는 지체 없이 루시엘라를 향해 폭발 스킬을 날렸다.

그것에 당한 경험이 새삼 다시 떠오르는지 루시엘라는 와락 인상을 찌푸렸고.

나는 루시엘라가 폭발 스킬을 막아내려 촉수를 담벼락처럼 세우는 것을 보자마자, 즉시 발도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의문을 표하는 공대원들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낸 직후, 블링크 스킬을 사용했다.

-콰아아앙!

루시엘라가 폭발 스킬에 정신이 팔린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블링크를 사용해 녀석의 등 뒤로 이동했고, 그와 동시에 일섬 스킬을 사용했다.

'일섬.'

내가 가진 스킬 중 가장 빠르면서 살상력이 높은 스킬.

그에 흠칫 놀란 루시엘라가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나의 검은 그녀의 허리를 베어가고 있었다.

[하하핫!]

시끄럽게 웃음을 흘리는 루시엘라.

분명 허리를 베었다고 생각했지만, 손에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파닥. 파닥.

그 순간 박쥐 떼가 시야를 가득 채웠고, 깨닫고 보니 루시엘라는 내게서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몸을 옮긴 뒤였다.

"촉수 괴물이라서 말미잘의 사촌쯤으로 생각했는데, 흡혈귀란 거네?"

[재밌는 놈이로군.]

크림슨 로드라고 해서 긴가민가했는데, 녀석은 뱀파이어 계열인 모양이다.

그때, 사방에서 촉수들이 날아들었다.

나는 어떠한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콰아아앙!

윌리아가 폭발 스킬을 재차 사용해 주변의 촉수들을 날려버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윌리아의 대응.

때문에 나는 촉수를 무시하고, 오로지 크림슨 로드 루시엘라를 향해 도약스킬로 달려들었다.

우리 사이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어리석은.]

그런데 이런 내 행동에 대해 녀석은 손가락을 튕겼고.

그로 인해 눈앞의 공기가 폭발하며 나를 밀어냈다.

속에서 울컥 피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그걸 꾹 삼키며 검기가 깃든 검을 휘둘렀다.

[내가 마법형으로 보여서 필사적으로 엉겨 붙는 건가?]

-까아앙!

그러자 루시엘라는 나와의 장단을 맞춰주려는지 손톱을 길게 뽑으며 내 검을 맨손으로 받았다.

-끼기긱!

그리고 이어지는 힘겨루기.

접근전에도 자신 있어 보이는데, 내가 쉽게 밀리지 않자, 루시엘라는 꽤나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 반응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팡!

[귀찮은!]

윌리아가 루시엘라에게 타깃 포인트 스킬을 사용했는지, 큰 곡선을 그리며 날아든 워터샷(마력탄+워터)이 그녀의 정수리를 향해 내려꽂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공격은 루시엘라의 날개가 우산처럼 펼쳐지며 막아냈다.

높은 관통력을 지닌 워터샷은 중급 방어막 정돈 어렵지 않게 뚫어낸다.

하지만 그게 평범하게 펼친 날개에 막혔다.

이는 그녀의 날개가 상급방어막에 비견되는 방어력을 지니고 있단 뜻이 된다.

'미친.'

말도 안 되는 견고함.

순간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나는 빠르게 감정을 수습하며 재차 검을 뻗었다.

이번 공격은 쾌격.

강력한 찌르기 스킬이다.

-깡!

그런데 황당하게도 루시엘라는 내 공격을 파리 쫓듯 휘휘 내저은 손짓으로 쳐냈다.

단순한 힘과 스피드는 경쟁이 될지 몰라도, 신체의 내구도 자체가 아예 급이 다른 느낌이다.

[승산이 없어 보이는데?]

이죽거리는 루시엘라.

그럴 만하다.

녀석이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녀석의 패턴을 끌어내는 게 지금 전투의 목적이니까.'

내 강점은 빠른 성장을 통한 '선점'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반드시 선행 조건이 있어야 한다.

그건 바로 남들보다 빠른 성장을 가능케 하는 능력이다.

나는 그게 적의 전투 패턴을 '분석'하는 감각과 뛰어난 '적응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똑똑하다곤 할 수 없지만, 목숨을 건 싸움에서만큼은 이상하리만치 머리가 냉정하고, 신체는 기민하게 반응한다.

때문에 다양한 공격을 쏟아 부으며, 녀석의 패턴을 이끌어 내는 거였다

-철컥!

나는 보조검을 뽑아 들었다.

보조검 자리에는 또 다른 주력 무기인 제르카의 검(거력참)이 아니라, 크루더의 검(분열검)이 자리하고 있었다.

'분열검.'

나는 보조검을 빼 들며 바로 자체 스킬을 사용했고, 그러자 상하좌우 네 방향으로 쪼개진 검기가 루시엘라를 삼키려 압박해갔다.

-팡!

그녀는 날개를 펄럭이며 빠르게 뒤로 빠졌다.

-콰아앙!

그로 인해 분열검은 엉뚱한 허공을 때리며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루시엘라의 날개는 단순 방어용이 아닌, 정말 하늘을 날기 위한 것임을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콰앙! 콰앙!

[끈질긴 녀석들!]

루시엘라가 거리를 벌리자 곧바로 윌리아를 포함한 원딜러들의 공격이 연거푸 쏟아졌다.

그에 루시엘라는 날개를 더욱 크게 펼쳤고, 붉은색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지며 날아드는 모든 공격을 쳐냈다.

"큭!"

루시엘라가 발한 기운은 이내 나까지 집어삼켰다.

동시에 내장을 뒤집히는 느낌이 들며, 순간적으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힐!"

멀리서 윌리아가 내게 힐을 써줌으로써 상태는 빠르게 호전되었지만, 나는 루시엘라를 보며 질린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전투패턴도 다양한데 하나같이 위력도 높았다.

[이제 놀이는 그만하도록 하지.]

그때.

루시엘라가 따분하단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그녀의 기세가 바뀌기 시작했다.

전신에서 핏빛 기운이 줄기줄기 내뿜어지는데, 우연히 날아든 나뭇잎 하나가 그녀의 기운에 닿자 가루가 되어 버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끼아아아아!]

그리고 루시엘라는 돌연 비명과도 같은 포효를 내질렀다.

[엘더 크림슨 로드 루시엘라의 포효에 모든 능력치가 20%하락합니다.]

[엘더 크림슨 로드 루시엘라의 포효에 주변의 몬스터가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연이어 떠오른 메시지.

그 내용을 본 나는 표정을 굳혔다.

[정신력 강화 스킬이 부여되었습니다.]

[포효에 따른 능력치 하락이 복구됩니다.]

다행히 디버프는 윌리아의 '정신력 강화' 스킬로 바로 상쇄가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절망해라.]

-키아아아!

-꾸아아악!

사방에서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요란하게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엘더 몬스터의 또 다른 특징.

하위 몬스터를 조종하는 능력이었다.

"군인들이 백업할 겁니다! 그냥 엘더 공략만 신경 쓰시면 됩니다!"

이럴 때를 대비한 존재가 바로 군인들이다.

일반 몬스터라면 군인들의 개인화기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니까.

강이솔이 대기하고 있던 군인들에게 명령을 내리면서 내게 그렇게 외쳤다.

-타타타타탕!

그와 동시에 요란한 총성음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강이솔의 말과 달리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강북과 강남을 잇는 모든 다리가 끊기면서, 끌고 온 군대의 규모가 예상보다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리를 끊은 건 루시엘라 본인의 판단이다.

그러니, 그녀도 우리의 상황이 불리하단 것쯤은 알고 있을 터이다.

'조급해하지 말자.'

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지금은 눈앞의 표적만 신경 쓰기로 했다.

[꺼져라.]

루시엘라가 내게 날개를 펄럭였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칼날이 내게 날아들었고, 나는 어깨와 허리에 깊은 부상을 입었다.

"큭. 쾌격."

부상을 입어도 나는 윌리아가 치료해줄 거라 믿으며 꾹 참고는 검을 찔러 넣었고.

설마 한 대 맞은 상황에서도 검을 뻗어 올 거라 생각 못 했는지, 루시엘라의 뺨에 긴 상처가 생겼다.

피가 뚝뚝 덜어지는 상처.

그런데 트롤이라도 되는지, 그 상처는 금세 아물었다.

다만 스친 것이어도 한 대 맞은 게 성질을 긁었을까?

[이놈이.]

루시엘라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하며 온갖 공격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차량에 치인 느낌이 들게 하는 타격 공격에 갈비뼈가 함몰되고.

화생방의 괴로움을 몇십 배 키운 것 같은 독 안개는 호흡기를 난도질했으며.

거대한 핏빛의 창이 날아들어 내 왼쪽 어깨를 뜯어가기도 했고.

앞서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붉은 비를 내게 집중시켜 온몸을 잘게 다진 고기로 만들기도 했다.

"힐!"

그럼에도 나는 윌리아의 회복 스킬에 버티고 또 버티면서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렸다.

"힐!"

"힐!"

"힐!"

이쯤 되니, 루시엘라의 표정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아무리 강력한 공격을 퍼부어도 필사적으로 머리를 지키며 신체를 복구하는데, 복구 능력이 보통의 힐을 넘어서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상급 회복은 되어야 복구가 가능한 부상이었고, 상급 회복은 그리 쉽게 남발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니었다.

[뭐, 뭐냐? 대체.]

처음으로 당황한 듯 보이는 루시엘라의 모습에 나는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설마 아무 대책 없이 달려들었겠냐."

내 회복의 비밀은 윌리아가 착용 중인 반지에 있었다.

[회복력 전달 반지 / 특수]

-자신이 섭취한 회복 물약의 효과를 다른 파티원에게 전달해줄 수 있다.

-10회 한정

즉, 이 반지를 끼고 있으면, 윌리아가 마신 회복 물약의 효과가 내게 전달된단 뜻.

이 아이템의 획득 경로는 바로 이것이다.

[던전 최초 클리어 보상]

-최고급~특수 등급 아이템 뽑기권.

그동안 던전을 클리어하고 클리어하면서 모아놨던 뽑기권.

나는 레이드를 앞두고 뽑기권들을 쓸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모조리 사용했고, 그중 딱 하나 '회복력 전달 반지'를 건지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나는 죽음의 위기를 수차례 넘기고도 냉정을 유지할 수 있는 거였다.

[그래, 결국 저년이 문제인 거군. 저년 덕에 네놈이 그렇게 버틸 수 있는 거야.]

루시엘라의 시선이 윌리아에게 날아가 꽂힌다.

하지만 소용없다.

"이제 패턴 학습 끝났어."

[뭐?]

지금부터 녀석은 윌리아에게 신경 쓸 틈이 없을 테니까.

나는 서늘한 눈빛으로 루시엘라를 바라보며 아끼고 아껴왔던 스킬을 사용했다.

'폭주.'

[폭주 / 최상급 스킬 / 액티브]

-1분간 모든 능력치를 50% 증가시킨다.

-폭주 스킬은 중첩되지 않는다.

-스킬이 종료되면 30분 동안 모든 능력치가 50% 하락하는 페널티가 부여된다.

-소모마력: 5

빠르게 내 전신에 루시엘라와 비슷한 붉은 기운이 치솟고.

세상의 모든 게 느려 보이기 시작했다.

"죽어."

나는 그 짧은 말을 마지막으로 루시엘라에게 달려들었다.

이전과 전혀 다른 스피드와 파괴력.

내가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루시엘라의 표정이 굳어졌다.

***

강이솔, 그는 스스로를 나름 엘리트라 생각하고 있다.

유도 국가 대표 출신에 세계 선수권과 아시안 게임에서도 메달을 땄고, 미리 은퇴를 대비하며 경찰시험을 꾸준히 준비해온 결과.

바라던 대로 경찰이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세상에 대재앙이 닥치면서 위기를 겪었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오히려 더욱 출세하여 대통령 직속 기관의 본부장이 되었다.

때문에 강이솔은 모든 일에 자신만만했고, 자신을 엘리트라 평가했다.

오늘 한 사람의 무위를 목격하기 전까진.

-촤악! 촥! 서걱!

[크윽! 이노옴!]

압도적인 포스를 뽐내며 등장했던 엘더 몬스터.

단 한 번에 수많은 사냥팀의 전의를 꺾으며 사람들을 도망치게 만들었던 그 몬스터가 붉은 기운을 줄기줄기 내뿜은 서**에게 유린을 당하고 있었다.

처음 서**이 엘더 몬스터에게 끈질기게 달라붙어 버틸 때만 해도 눈뜨곤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처절했는데, 단 한 순간에 전세가 역전되고 만 것이다.

-타타탁! 탁! 탁!

그 무시무시했던 엘더 몬스터가 서**의 스피드를 쫓아가지 못했다.

디딤판 스킬로 벽과 천장을 만든 서**은 마치 스쿼시볼이 된 것처럼 복잡하고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며 엘더 몬스터를 난도질했다.

[젠장!]

그러다가 엘더 몬스터가 공간이동을 시도하면, 서**도 똑같이 공간이동으로 쫓아가며 공격을 날렸고.

오히려 공간이동 직후, 상대의 위치를 잘못 파악하는 바람에 엘더 몬스터가 위험에 빠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보는 이의 숨을 막히게 하는 공격.

[아아악!]

엘더 몬스터는 자체적인 회복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회복이 점점 상처가 발생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이길지도 모른다.

이대로라면···.

[끼아아아아악!]

그리고 그런 강이솔의 응원과 바람을 이뤄주듯, 엘더 몬스터가 처절하게 비명을 내질렀다.

정확히 서**의 공격 스타일이 바뀐 지 1분이 됐을 때.

[축하드립니다. 최초로 로드급 엘더 몬스터를 토벌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058화 격차 (1)

***

[폭주 스킬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폭주 스킬의 반동으로 30분간 모든 능력치가 50% 하락합니다.]

전신에 넘치던 힘이 사라짐과 동시에 몸이 물속에 빠진 것처럼 무거워졌다.

더불어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던 사고가 평범해지니, 갑자기 천재에서 둔재가 된 느낌이다.

근력, 순발력, 마력 이 세 가지 능력치가 상승하면서 만들어 내는 부과효과가 생각 이상으로 다양하단 것을 증명하는 상황이다.

"웁."

갑자기 능력치가 확 떨어져서일까?

뒤늦게 극심한 두통이 밀려오고, 멀미에 구토감을 느꼈다.

하지만 꾹 참고, 머리와 몸이 분리된 엘더 크림슨 로드 루시엘라의 사체로 시선을 옮겼다.

눈을 감지 못하고 죽은 녀석의 얼굴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과 분노가 담겨 있었다.

이어서 루시엘라는 모든 몬스터가 그러하듯 푸른빛으로 변해 사라지기 시작하고.

[축하드립니다. 최초로 로드급 엘더 몬스터를 토벌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최초의 로드급 엘더 몬스터 레이드 성공, 이 위대한 업적이 명예의 전당에 기록됩니다.]

로드급 엘더 몬스터?

즉, 지금 사냥한 루시엘라는 엘더 몬스터 중에서도 특수개체란 뜻이 아닌가.

'어쩐지 강하더라.'

심지어 시스템에서도 레이드를 언급했다.

이 말은 애초에 단체 사냥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몬스터란 의미 같다.

"와, 와아! 서아 님!"

곧이어 굳어 있던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며 내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환희에 빠져 있는 사람들.

지금까지 상대해 본 적 없는 난적이었던 만큼 모두가 기뻐했다.

"괜찮으세요?"

그 사이에서 폭주 스킬의 디버프에 대해 유일하게 알고 있는 윌리아가 다가와 나를 부축했다.

-타타타탕!

이는 나 혼자만의 승리라 할 수 없다.

지금도 필사적으로 몬스터들의 접근을 막고 있는 군인들과, 루시엘라가 영역화한 필드에서 촉수들이 나를 방해하지 못하게 공대원들이 열심히 막아주었기에 마음 놓고 싸울 수 있었다.

물론, 공적을 비율로 따지면 내가 가장 높겠지만, 끝까지 도망치지 않고 자리를 지킨 이들도 충분히 기뻐할 자격이 있었다.

"네가, 아니. 당신이 모두를 살린 겁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러니 편히 쉬고 계십시오. 뒷일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내 정체를 알아챈 것 같기도 하면서, 아닌 것 같기도 한, 수원팀의 리더 김현수가 감동한 표정으로 눈물을 훔치며 그리 말했다.

'아니, 이 형은 왜 우는 거야?'

그런 김현수의 말에 윌리아 다음으로 가장 많은 촉수를 막아낸 윤시아와 레벨은 아직 부족해도 공대장 역할에 충실했던 강이솔도 똑같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멋졌습니다. 평생 오늘을 잊지 못할 거에요."

"함께해서 영광입니다. 김현수 님의 말처럼 푹 쉬고 계십시오. 금방 정리하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와 윌리아를 대법원 부지에 남기고 아직까지 싸우고 있는 군인들을 돕기 위해 움직였다.

"후우···."

손끝이 떨린다.

아슬아슬했던 전투의 감각이 남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고, 윌리아는 그런 내 주먹 위로 살포시 손을 얹었다.

"저들이 왜 저러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셨어요."

"아아, 살아남아서 기쁜 건 당연하긴 한데, 다들 눈물이 그렁그렁한 게 재밌어서요."

그런데 윌리아는 그런 게 아니라며,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흔들의자를 꺼내 거기에 나를 앉혔다.

"그만큼 백호님의 전투가 처절했거든요. 그런데 끝까지 버티고 버텨서 극적인 역전을 해내시니, 모두가 감동한 겁니다."

나야 적의 패턴에 익숙해지기 위해 공격을 당하는 것도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 입장에선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마 앞으로 저들은 백호님이 무얼 하든 지지하고, 응원해 주겠죠. 오늘 백호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신 거예요."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내가 직접 나 자신의 전투를 지켜본 게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솔직히 나도 자신의 이득을 위해 싸웠을 뿐인데.'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엄해서일까?

윌리아는 무던한 내 반응에 피식 실소를 흘리며 화제를 전환했다.

"보상 메시지 아직 안 보셨죠?"

"아!"

보상 메시지란 말에 나는 그때서야 손뼉을 치며 기대감 섞인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메시지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엘더 크림슨 로드 루시엘라 레이드에 마지막까지 참여한 23명에게 공적에 따라 보상이 분배되며, 도주자에겐 보상이 지급되지 않습니다.]

막바지에 도망친 사람들도 크림슨 로드 1페이즈에선 나름 활약한 사람들일 텐데, 얄짤 없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그들의 선택에 의한 것.

나는 크게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내용을 살폈다.

[레이드 공적 순위를 표기합니다.]

1위. 서백호 65.1%(본인)

-다른 사람들에겐 서**으로 표기됩니다.

2위. 윌리아 21.4%(동료)

-다른 사람들에겐 서**으로 표기됩니다.

-단체 사냥 시 동료(전 NPC)의 공적은 따로 표기되며, 이는 당사자의 정보보호를 위한 조치입니다.

당연하지만 공적 1위와 2위는 나와 윌리아의 차지였다.

시스템의 의외로 친절한 조치 덕분에 윌리아가 NPC란 사실을 들킬 염려는 없어 보였다.

'근데 둘 다 서**이면 남매로 아는 거 아냐?'

그나저나 우리 둘이서 차지한 공적 수치가 무려 86.5%.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럼 나머지 21명이 13.5%를 나눠 먹었다는 뜻인데···.

꽤나 냉정한 평가 같았다.

그대로 나는 다른 사람들의 순위를 살폈다.

3위. 강** 5.0%

4위. 윤** 2.5%

5위. 김** 1.5%

6위. 한** 0.6%

.

.

.

23위. 박** 0.2%

그런데 3위가 의외다.

윤시아와 김현수가 3위와 4위를 차지할 줄 알았는데, 강씨면 강이솔이란 뜻 아닌가.

강이솔의 공적이 윤시아와 김현수를 합친 것보다 높다니?

'아, 하긴···. 강이솔이 엘더 몬스터의 존재를 눈치채고, 먼저 조사를 진행하긴 했지. 만약 엘더 몬스터의 존재를 늦게 알아챘다면 더욱 큰 참사가 벌어졌을 수도 있으니까.'

정보 탐색, 공략까지 지대한 영향을 준 게 강이솔인 만큼, 그 공로까지 포함된 게 아닐까 싶다.

아니면 단순히 공대장 보너스일지도 모르고.

그리고 순위표 아래엔 이런 메시지가 떠 있었다.

[보상 분배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을 획득하시겠습니까?]

나는 윌리아에게 물었다.

혹시 보상을 내가 몰아서 받는 건가 싶어서.

"윌리아 님도 보상이 따로 주어집니까?"

"네, 이번엔 저도 공적치에 따라서 보상을 별도로 주네요."

시스템이 익명 보호에 최선을 다하는 느낌이다.

평소엔 내가 윌리아의 보상까지 한 번에 몰아받아서 분배해주는 식이었는데, 단체 사냥에선 NPC란 것을 들키지 않게끔 보상까지 따로 챙겨주는 것을 보니 말이다.

"좋네요. 보상을 두 배로 받는 느낌이라. 서로 바꿀 보상이 있으면 나중에 교환할까요?"

"넹!"

나는 보상받기 버튼을 터치했다.

그러자 요란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엘더 크림슨 로드 루시엘라를 토벌하여 경험치 823,200을 획득했습니다.]

[최초 토벌 보상은 가장 큰 공을 세운 1인에게 제공됩니다.]

[뱀파이어를 최초 토벌하여, 경험치 100,000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라 '부상'과 '상태 이상'이 모두 회복됩니다.]

가장 먼저 엄청난 양의 경험치가 쏟아졌다.

한 번에 레벨이 3이나 오르다니, 레벨이 10을 넘은 뒤로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리고 루시엘라 앞에 붙는 명칭이 '크림슨 로드'라고 해서 아예 그런 몬스터가 있는 줄 알았는데, 그냥 칭호 같은 건가 보다.

최초 토벌 보상이 뱀파이어로 표기되는 것을 보니 말이다.

'한 번에 오른 레벨도 레벨이지만···. 보상은 역시 아이템이지.'

레벨업 효과로 인해 '폭주' 스킬의 상태 이상이 회복되었다.

덕분에 온몸에 힘이 돌아오고, 나는 기분 좋게 웃으며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스크롤을 내렸다.

[엘더 크림슨 로드 루시엘라의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325,50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상급 회복 물약 12개를 획득했습니다.

-인벤토리 10칸을 획득했습니다.

-영약 '로드의 내단'을 획득했습니다.

-스킬북 '검강'을 획득했습니다.

-스킬북 '단독비행'을 획득했습니다.

-춤추는 검을 획득했습니다.

[뱀파이어 최초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25,000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스킬북 '마력회복'을 획득했습니다.

무려 9줄.

보상 메시지가 무려 9줄이었다.

"하, 하하."

아니, 코인과 포션, 인벤토리처럼 꾸준히 얻는 보상을 뺀, 신규 보상만 해도 5개였다.

나는 그 보상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로드의 내단 / 영약 / 희귀]

-근력, 순발력의 능력치가 일정량 영구적으로 향상된다.

첫 번째는 영약 '로드의 내단'.

나는 이미 천년삼이라고, 마력을 10이나 올려주는 영약을 섭취했다.

그 천년삼에 이어 이번엔 근력과 순발력의 능력치를 올려주는 영약을 손에 넣은 것이다.

이번에도 천년삼처럼 근력과 순발력을 5씩, 총 10을 올려주면 좋겠다.

다만 이건 안전한 곳에서 섭취하기 위해 일단 인벤토리에 수납했다.

[검강 / 최상급 / 액티브]

-검기보다 더욱 뛰어난 절삭력과 파괴력을 무기에 부여한다.

-검강을 사용한 상태에서 근접 스킬을 사용할 경우 위력이 크게 상승한다.

-검기와 검강을 중복으로 사용할 수 없다.

-마력소모: 2(1초간 유지)

두 번째 보상은 '검강', 검기 상위 스킬이 등장했다.

보조 설명부터 범상치 않다.

검강을 사용한 상태에서 근접 스킬을 사용하면 위력이 크게 상승한다니.

마력소모가 큰 게 조금 흠이지만, 전투력을 높여주는 스킬은 언제든 환영이다.

[단독비행 / 최상급 / 액티브]

-10초 동안 하늘을 날 수 있다.

-단, 해당 스킬은 단독비행으로 본인을 제외하고 20kg 이상의 대상을 들고 날 수 없다.

-마력소모: 2

세 번째 보상은 '단독비행'이다.

하늘을 날 수 있는 스킬이라니, 순간적으로 많은 활용법이 생각나게 했지만, 설명을 읽은 나는 묘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당연히 하늘을 날 수 있는 스킬이 생긴 건 좋은데. 무슨 비행기 수화물도 아니고, 꼴랑 들고 날 수 있는 무게가 20kg이냐?'

무게 제한이 없다면 사람들을 들고 이리저리 옮겨 다닐 텐데 아쉽게 되었다.

그래도 하늘을 날 수 있게 된 건 환영할 수밖에 없다.

[춤추는 검 / 단검 / 등급: 희귀]

-소유자의 의지에 따라 하늘을 날고, 대상을 공격하거나 견제하는 단검이다.

-별도의 훈련이 필요하며,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마력을 두 배로 소모하여 검기나 검강을 춤추는 검에 담을 수 있다. 단, 그 외의 전투 스킬은 사용이 불가하다.

-자체 '회수' 기능과 자체 '수복' 기능이 있다.

네 번째 보상은 '춤추는 검'으로 무려 희귀 등급의 장비였다.

먼저 검의 디자인을 본 다음 등급을 봤더니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희귀 등급의 장검이 나왔더라면 훨씬 좋았을 테니까.

하지만 설명을 읽은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판타지로 치면 플라잉 소드, 무협으로 치면 어검을 흉내 낼 수 있는 마법 무기였기 때문이다.

물론, 훈련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내 머릿속에선 이미 어검을 날리며 상대를 압박하는 전투가 그려지고 있었다.

'와씨, 대박 간지템이네.'

나는 바로 춤추는 검을 뽑아 들고 허공에 띄워 보았다.

처음엔 잠시 주춤했으나 오래지 않아 허공에 띄우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툭.

금세 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생각 이상으로 다루기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연습해야지 어쩌겠는가.

이 무기의 사용법이 숙달되기만 한다면 강력한 비장의 수가 될 테니 말이다.

당장은 미숙해서 크게 도움이 안 되더라도, 나는 미래를 생각해 싱글벙글 웃으며 춤추는 검을 허리에 채웠다.

[마력 회복 / 최상급 / 패시브]

-휴식 중 마력회복 속도가 100% 증가하며, 전투 중에도 50% 속도로 마력을 회복한다.

마지막 보상은 바로 이것 '마력 회복'이다.

윌리아가 보유하고 있는 것과 같은 스킬이다.

능력치 중에서도 늘어도 늘어도 항상 부족한 게 바로 마력이다.

마력 회복은 그런 약점을 조금이나마 극복시켜주는 스킬이다.

이로써 나는 더욱 긴 시간을 싸울 수 있고, 같은 시간 대비 더욱 많은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좋아!"

보상을 모두 확인한 나는 허공에 어퍼컷을 내질렀다.

무엇 하나 버릴 게 없는 최고의 물건뿐이었다.

크림슨 로드 루시엘라랑 싸우면서, 죽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 만큼 위험하긴 했는데, 보상을 보자 그 끔찍했던 존재가 너무도 아름다운 추억 속의 그녀가 되어 버렸다.

'지옥에선 행복하렴. 루시엘라.'

나는 아낌 없이 주고 떠난 루시엘라를 떠올리며 고마움을 표했다.

"보상은 만족스러우셨나요?"

그때, 윌리아가 다가와 내게 물었다.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자한 미소로 답했다.

그리고 윌리아가 손에 넣은 보상에 대해 들었는데, 그녀도 나와 같이 단독비행 스킬을 얻었으며, 거기에 내가 윌리아에게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던 루시엘라의 흰색 원피스를 얻었다.

등급은 무려 희귀, 어중간한 근접 스킬로는 뚫을 수도 없을 만큼 견고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잘됐네요. 둘 다 비행 스킬을 얻은 김에 같이 하늘이나 날아 볼까요?"

내 제안에 윌리아는 바로 답을 하지 않았다.

"총소리가 점점 잦아드는 거 보면 함께 싸운 사람들이 곧 돌아올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굳이 기다릴 필요 없죠. 용무도 마쳤으니, 우린 이만 빠지도록 해요."

어차피 그들에게 붙들려있어 봤자 축하 파티라며 여기저기 끌려다니기밖에 더하겠는가?

서**은 서**답게 조용히 사라지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나는 윌리아에게 춤을 청하듯 손을 내밀었고, 이윽고 그녀는 내 손을 맞잡았다.

'단독비행.'

우린 둥실 허공에 떠오르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비행 몬스터들의 간섭을 받지 않을 만큼 높이.

***

"후우···."

강이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엘더 몬스터가 불러들인 일반 몬스터를 군인들은 큰 부상자 없이 처치하는 데 성공했다.

실은 위험할 뻔했지만, 알고 보니 계룡대 파벌인 지상작전사령부가 이번 일의 위험성을 알아채고 수원에서 적응군(레벨업 병사)과 병사들을 급파하여 상황을 무사히 해결할 수 있었다.

이번 일로 인해 계룡대와 청와대가 다시 사이가 좋아질 수도 있는 일이기에, 강이솔은 들떠서 서**에게 상황 종료 소식을 알리려 했다.

"서아 님?"

하지만 쉬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장소에 서**은 없었다.

그에 강이솔은 당황했고, 뒤늦게 자리에 나타난 윤시아와 김현수 등 레이드팀 주축 멤버들은 아쉬움을 표해야 했다.

"바람 같은 분이네요."

"후, 같이 이야기 좀 나누고 싶었는데."

그렇게 그들은 지원을 온 수원의 군부대와 적응군과 함께 현충원 생존구역으로 복귀했다.

도망친 레이드팀 멤버들은 모두 현충원에서 안절부절못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강이솔과 각 팀의 리더들은 굳이 그들을 욕하지 않았다.

일반 몬스터를 상대했던 군인들과 달리, 엘더 몬스터를 상대했던 사냥팀은 무려 4할에 가까운 대원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들의 행동도 이해가 되었다.

다만 정부 소속 인원들에겐 형식상 징계를 하리라 경고하고는 엘더 몬스터 토벌 소식을 상부에 전했다.

"그게 무슨?"

그런데 위성전화로 보고를 하던 강이솔은 국가부흥처장이 아닌 보좌관이 전화를 받아 의문을 표했고, 이어진 보좌관의 설명에 말을 잃어야 했다.

[어, 국가부흥처장님은 대통령님과 함께 잠시 강화도로 이동하셨습니다. 그···. 웨이포인트 단체 이동 아이템을 이용하셔서요.]

알고 보니, 국가부흥처장과 대통령은 엘더 몬스터 토벌전이 실패할 기미가 보이자, 뒤도 보지 않고 서울을 떠난 거였다.

"이런 개새끼들이···."

059화 격차 (2)

강이솔은 국민을 보호한다는 사명감 아래, 정부와 함께 일하고 있다.

만약 그가 제 혼자 잘 먹고 잘살 거였으면, 마음 편하게 민간 사냥팀으로 활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선 울타리가 필요하다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당연히 그 울타리에 정부만 한 존재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정부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게 이 나라와 국민을 위한 거라 생각했으니까.

때문에 그는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자리를 지킨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정부에 대한 강이솔의 믿음이 깨졌다.

'아무리 정치인들이 믿음이 안 가는 족속이라지만···. 이렇게까지 한다고?'

로드급 엘더 몬스터를 토벌하는 데 성공했단 전체 메시지가 전해졌으니, '강화도에 간사람들도 곧 돌아오지 않겠냐'는 보좌관의 이야기를 들으며 강이솔은 허탈한 표정으로 현충원 생존구역 본부를 나섰다.

정부 소속 사냥팀이란 타이틀이 처음으로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무슨 일이야?"

서울 대표 사냥팀의 리더인 윤시아의 물음에 상부에 보고하겠다며 생존구역 본부에 들렀던 강이솔은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그리고 그는 윤시아에게 말했다.

"독립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뭐?"

생각지도 못한 강이솔의 발언에 윤시아는 깜짝 놀랐다.

"아니, 어쩌면 독립 수준이 아니라, 지금의 정부와 싸우게 될지도 모르겠네."

"무, 무슨 일인데 그래?"

대체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 건지, 윤시아는 혼란스런 표정을 지어야 했다.

***

엘더 크림슨 로드 루시엘라를 잡고 레벨이 50에서 53이 되었다.

그래서 레벨업에 따라 능력치를 분배하려고 상태창을 열었는데···.

[상태창]

-레벨: 53

-칭호: 선구자(모든 능력치+2)

-능력치

근력: 29(+14) 순발력: 24(+21) 마력: 22(+22)

잔여 능력치 포인트: 6

뭔가 이것저것 바뀌어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칭호다.

각성자(모든 능력치+1)에서 선구자(모든 능력치+2)로 바뀌었다.

아무래도 이번 루시엘라 토벌로 인해 생긴 것 같다.

어쨌든 능력치가 상승한 거니 기뻐하기만 하면 되는데, 나는 잔여 능력치 포인트를 보며 미간을 좁혀야 했다.

분명 레벨은 3개가 올랐다.

그런데 능력치 포인트는 6개가 주어진 것 아니겠는가?

"음···."

설마, 레벨 1~50까진 주는 능력치가 1이고.

레벨 51부터 주는 능력치는 2인 걸까?

'하긴, 그럴 만도 하지. 레벨 1에 능력치를 고작 1개 주는 건 너무 적은 느낌이었으니까.'

레벨은 점점 올리기 힘들어지고, 아이템에 따른 능력치 상승 폭이 커지면서 이래선 레벨업에 의미가 있냐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차라리 장비를 더 좋은 걸로 바꾸는 편이 훨씬 체감이 크니까.

그런데 레벨이 오를수록 주는 능력치도 많아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럼 혹시 레벨 101부턴 주는 능력치가 3이고, 151부턴 4인 건가?'

확실하지 않지만, 이로써 한가지 깨닫게 된 게 있다.

그건 바로.

'다른 사람들도 레벨이 51을 넘지 않는 이상, 한동안 나와의 격차는 더 커진다는 뜻이네?'

이제부터 나는 레벨업을 할 때마다 능력치를 2개씩 받는데, 다른 사람들은 레벨업을 해도 능력치를 1개씩 밖에 못 받지 않는가?

초반에 벌려둔 격차가 좁혀지긴커녕 계속해서 벌어지게 생겼다.

'거기에 이번에 얻은 내단도 있지.'

나는 루시엘라를 토벌하고 얻은 로드의 내단을 꺼내 들었다.

근력과 순발력을 높여 준다는 영약.

안전한 곳에서 섭취하기 위해 월광도로 돌아올 때까지 인벤토리에 고이 모셔 놓고 있었다.

[로드의 내단을 섭취했습니다.]

[영약의 기운이 흡수될 때까지 적게는 수분에서 많게는 수십 분이 걸립니다.]

[안정을 취하십시오. 영약이 흡수되는 동안 불필요하게 움직이면, 흡수율이 낮아집니다.]

나는 조용히 월광도 침실에 누웠다.

그런 나를 윌리아가 잠자코 지켜보았다.

그리고 약 30분이 흘러···.

[영약 흡수가 완료되었습니다.]

-근력이 4 상승합니다.

-순발력이 3 상승합니다.

흡수가 끝이 났다.

그런데 두 개 합쳐서 오른 능력치는 7.

천년삼을 먹고 마력이 10이나 올랐던 걸 떠올리면, 같은 희귀 등급의 영약인데 내단은 상승치가 적어 아쉬운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영약을 섭취한 경험이 있어, 흡수율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곧 지난번과 차이가 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영약은 구하기만 하면 대폭 능력치를 올려주는 만큼 제한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능력치가 7이라도 오른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레벨업으로 생긴 6개의 잔여 포인트도 근력과 순발력에 반씩 투자했다.

이것으로 루시엘라 토벌 보상의 수습이 모두 끝이 났다.

이번 레이드로 인해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한두 단계 더 도약을 했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새삼스럽지만, 큰일이 무사히 끝나서 다행입니다."

내 말에 맞은편에서 캔 커피를 홀짝이던 윌리아가 예쁜 미소를 띠며 답했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그럼 이제부터 한동안은 지하미궁 공략 이어가실 생각이죠?"

"네, 그래야죠."

솔직히 지금은 무엇과 싸워도 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윌리아의 말대로 한동안은 지하미궁 공략이 주요 과제일 것이다.

"다른 던전의 네임드와 보스도 스폰이 될 때마다 꾸준히 사냥하고요. 아무래도 보상이 좋으니까."

결론은 역시 사냥의 연속이다.

덤으로 대장장이 NPC호감도 작업도 하고,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으니, 겸사겸사 월광도와 주변을 구석구석 살필 예정이다.

'더 바빠지겠네.'

무엇보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부모님과의 연락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통신 반지를 이용해 아버지에게 연락했다.

[안 그래도 지금쯤이면 월광도에 도착했을 것 같아서 연락하려 했는데.]

이미 아버지에게 엘더 몬스터와의 전투를 치를 예정이라 알려놨기 때문에 아마 걱정이 많으셨을 거다.

그리고 아버지는 의외로 전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잘 알고 계셨는데, 알고 보니 계룡대에서 수원의 지작사 병력을 지원 보냈었다고 한다.

내가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말한 아버지는 이어서 질린다는 투로 말씀하셨다.

[우리 아드님, 아주 전설을 쓰고 왔더라?]

"하하···. 그냥 열심히 싸웠습니다."

[모두가 절망하고 있던 상황에서 본 실력을 드러내며 홀로 엘더 몬스터를 처치해낸 서**. 이렇게 토벌전에 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고 있다던데?]

"칭송이라니···. 무슨 오글거리는 말씀을."

[몇몇 사람들이 떠드는 거 보면 이 정돈 아무것도 아냐. 수원의 김현수는 너를 인류의 희망이라 표현하고, 서울의 윤시아는 너를 두고 뭐라 했더라? 아, '전신'이라더라.]

왜들 그러는 거야.

창피하게시리.

하지만 장난기가 서려 있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이내 진지해졌다.

[아무튼 무사해서 다행이다. 얼마나 크게 놀랐는지 몰라. 무려 고레벨의 사냥꾼 50여 명이 죽었다니까.]

확실히 희생당한 사람들을 떠올리면 마냥 웃고 떠들 수만은 없는 큰 사건이었다는 게 실감된다.

나는 아버지에게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 이야기를 묵묵히 들은 아버지는 나를 칭찬하셨다.

[고생 많았다. 네가 내 아들이라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

나는 뺨을 긁적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연 한숨을 내쉬는 바람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뭔가 굉장히 답답할 때 내쉬는 그런 한숨 같았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걸까?

그래서 물었더니, 상상치도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실은 대통령하고 국가부흥처장, 국정원장 등 주요 인사들이 토벌전이 불리하게 흘러가자 웨이포인트 단체 이동 아이템을 사용해 강화도로 도망쳤었다고 하더라.]

"네?"

사람이 너무 황당하면 웃음이 나온다는 게 맞는 거 같다.

나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그래서 지금 난리 났어. 수방사 사령관도 뒤늦게 상황을 알아채서 상황이 아주 곤란해졌거든. 그런데 대통령과 그 일파는 도망친 게 아니었다며 딱 잡아떼고 있어. 인천 시장과의 회담이 예정되어 있었다고.]

"그게 통해요?"

[웃기게도 통하더라. 인천과는 이미 말을 맞춰 놓았더라고.]

나는 어떠한 대꾸도 하지 못했다.

뭐, 이런 미친 인간들이 다 있지?

"왜, 굳이 인천까지 갔대요? 숨을 곳은 많잖아요. 안전구역이나 지하벙커처럼."

[레이드가 실패하면 서울에 남아 있어 봐야 시민들 학살당하는 모습밖에 더 보겠어? 결국엔 책임 회피인 거지. 그게 더 안전하기도 하고.]

"허···."

[소문이지만, 강이솔 본부장이 국가부흥처장을 흠씬 두들겨 팼다는 이야기도 있어.]

"잘했네요."

그럴 만하다.

누군 목숨 걸고 싸우고 돌아왔는데, 그 상부는 도망이나 쳤으니 말이다.

솔직히 강이솔의 행동은 속이 시원하지만, 뒷일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강이솔 본부장은 크게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아.]

"그래요?"

[윤시아를 포함한 서울의 주요 사냥팀들이 강이솔 본부장의 독립을 도우려는 것 같아. 아무리 정부여도 그들 전부를 건드리기는 부담스럽겠지.]

정나미가 심하게 떨어진 모양이다.

바로 독립이 이야기가 나오는 거 보니.

"대통령이 자리에서 쫓겨나진 않았지만, 힘이 약화 되겠네요."

[잘하면 수방사와의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군인이 없다고 해도 대통령에겐 아직 경찰이란 전력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부하를 버리고 도망친 대통령을 순순히 따를지는 모르는 일이다.

당장은 자리를 보전할 수 있을진 몰라도 대통령의 몰락은 시간문제란 뜻이다.

"만약 정부가 기능을 잃으면 빈자리를 계룡대가 대신하는 건가요?"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적어도 정부보단 나을 수도 있다.

계룡대라면 대통령처럼 불리해진다 해도 냅다 튀는 뻘짓은 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군인들이 나라를 움직인다는 게 뭔가 긍정적인 느낌은 아니다.

[그래서 말인데, 잘하면 아빠가 서울에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네?"

[계룡대에서 수방사와 화해를 하고 싶어 하거든. 그래서 수방사가 다시 계룡대를 따르게 되면, 내가 거기 참모장으로 가게 될 수도 있어.]

수방사 참모장?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이내 눈을 크게 떴다.

"그 말은 진급하신다는 거예요?"

[아마도?]

나라가 난리가 나도 진급할 군인은 진급을 한다는 건가?

나는 감탄사를 흘리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축하드려요. 그토록 바라던 별을 다는 거잖아요?"

[여기저기 눈치를 보지 않게 되는 거 빼곤, 사실 그다지 기쁘지도 않아. 나라 꼴도 말이 아닌데.]

아무튼 나쁘지 않은 소식이다.

아버지가 수방사 참모장이 된다면 내게 더욱 큰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어? 그럼 그건 어떡하죠? 웨이포인트 단체 이동 아이템을 구하게 되면 두 분을 모시고 올 생각이었는데요?"

[고민해봐야지. 내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편이 네게도 좋지 않겠냐?]

장점이 크지만 그만큼 단점도 있다.

아버지의 말대로 이건 고민이 필요해 보였다.

이후 나는 아버지와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약 5분 후, 통화를 끊었다.

그런 내 머릿속에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스치고 지나갔다.

[홍성의 대학팀에 대해선 조사를 하고 있어. 내일 중으로 정보가 들어올 거야. 문제는 상황이 썩 좋지 않을 가능성이 크니까. 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

홍성 대학팀은 내 구독자 콩나물 님이 소속된 곳이다.

그들이 행방불명되어 아버지가 조사를 대신 해주겠다고 하셨는데, 관련 정보가 내일 들어올 예정이라 한다.

아버지는 부정적인 투로 말씀하셨지만, 부디 콩나물 님이 무사하길 바랄 뿐이다.

망해버린 세상에서 몇 안 되는 인연이니 말이다.

"오늘 식사는 새집에서 해요."

"네, 좋아요!"

나는 기분 전환을 위해 윌리아에게 김씨가 지어준 새 보금자리에서 식사를 하자는 제안을 했고, 그녀는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

작은 오두막과 같은 집을 나서자 코앞에 웅장하단 말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저택이 등장했다.

코인 상점에서 판매하는 간편 자재를 이용해 지은 집이지만, 규모가 크고 이런저런 요구가 더해지는 바람에 예정보다 이틀 늦게 완공이 되었다.

물론, 고작 며칠 만에 집이 완성된 거니 말도 안 되게 빠른 속도지만, 코인 상점의 간편 자재들은 이를 가능케 했다.

"아, 백호씨 나왔어? 새로 지은 집을 소개해 줄까?"

"네!"

그리고 밖으로 나오자, 김씨 아저씨와 펫인 '콩쥐, 팥쥐, 감자'가 나와 윌리아를 반겨주었다.

콩쥐, 팥쥐는 홉고블린이고, 감자는 스켈레톤이다.

감자의 경우 얼마 전 잊혀진 광산 던전을 클리어하고 얻은 스켈레톤 테이밍 목걸이로 길들인 새로운 펫이다.

녀석은 다른 펫들과 달리, 언데드 몬스터라 잠을 자지 않기 때문에 마구 부려먹기 참 좋았다.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이뤄진 이 집은 12kw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여 웬만한 전자 제품은 모두 이용할 수 있고, 주택의 난방은 요구대로 화목 난로 시스템을 넣었네."

감자에게 부여된 역할은 가정부다.

겨울의 서해 섬 날씨는 몹시 추우니 화목 난로에 땔감을 주기적으로 넣어주고, 나와 윌리아가 필요한 게 있으면 대령하는 존재.

참고로 녀석의 이름이 감자인 이유는 심플하다.

그냥 스켈레톤의 뼈다귀를 보니까, 뼈다귀 감자탕이 생각나서 감자라 지었다.

김씨 아저씨는 내 작명 센스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셨지만, 부르기 편하면 그만 아니겠는가.

"와, 너무 멋지네요. 역시 전문가는 달라."

오가며 볼 때마다 놀랐지만, 이건 내가 지은 허접한 집과는 차원이 다르다.

잘 정돈된 고급 저택 그 자체였다.

김씨는 저택뿐만 아니라, 주변의 조경도 완벽에 가깝게 만들어 놨는데, 겨울이 지나고 풀들이 자라나는 시기가 되면 어찌 변할지 너무 기대되었다.

"방은 총 4개고 화장실은 5개네. 각 방에 개인 화장실이 있고, 1층에 공용 화장실을 만들어 뒀지."

"오오."

150평의 저택에 방이 4개인 건 방을 하나같이 크게 뺐기 때문이다.

나와 윌리아의 방은 2층에 작은 거실을 사이에 두고 배치되어 있다.

1층의 방은 부모님의 방 또는 게스트룸으로 이용될 예정이다.

"지하엔 부탁한 대로, 파티풀이란 걸 만들어봤네만, 이걸로 될까?"

그리고 저택 지하엔 제법 큰 수영장이 자리하고 있다.

지하 수영장이라니, 곰팡이 생기기 딱 좋은 조건이지만,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 재질로 만들어져서 이런 현실적인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집 구경은 오래지 않아서 끝났다.

참 넓고 아름다운 집이지만···.

"음···."

딱 하나, 아쉬운 점이 뒤늦게 드러났다.

"왜, 마음에 들지 않나?"

"너무 마음에 듭니다. 정말 감사해요. 다만 가구랑 전자제품이 아직 없어서 휑해 보여서 그래요."

"그건 어쩔 수 없지. 두 사람이 육지에 가면 마트 같은 거라도 털어서 채워 넣는 수밖에."

인테리어의 완성은 가구와 가전이란 말이 있다.

그걸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풍경이었다.

"아무래도 해야 할 일에 쇼핑도 추가해야겠네요."

"좋아요, 마트는 언제가도 즐겁죠!"

내 계획 수정에 마트를 좋아하는 윌리아도 기대감에 들떠서 소리쳤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김씨 아저씨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럼 두 사람이 쓰던 집기들은 옮겨 놓도록 하겠네. 그리고 그 집은 내가 쓰도록 하지."

"네? 여기 같이 묵으시면 되잖아요?"

내 물음에 김씨 아저씨는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도 눈치란 게 있네. 연인 사이에 끼어서 뭐하겠나, 빠질 땐 적당히 빠져줘야지."

너무도 합당한 이유.

연인은 아직 아니지만,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강이솔이 국가부흥처장을 죽기 직전까지 팼다는 이야기는 정부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강이솔을 건드리지 못했다.

강이솔이 국가부흥처 소속의 사냥팀을 모조리 끌고 나갔음에도 말리기만 할 뿐, 힘으로 어쩌지 못했다.

이제 법보다 힘이 우선인 시대다.

그걸 모두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어쩌게? 그냥 사냥팀으로 활동하게?"

강이솔은 독립 후 가장 먼저 루시엘라를 상대로 마지막까지 함께 싸운 전우들을 불러 모았다.

모두 하나의 단체를 이끌고 있는 리더거나 그에 준하는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강이솔이 국가부흥처장을 참교육했다는 이야기에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통쾌하다면서.

그래서인지 강이솔을 바라보는 시선엔 하나같이 호의와 관심이 담겨 있었다.

그런 강이솔을 향해 가장 친한 윤시아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생각해 둔 게 있어. 여기 있는 사람들이 도와주면 쉽게 해결되는 일이야."

그에 강이솔은 진지하게 사람들을 훑어보며 말했고, 다들 곤란한 부탁이면 거절하겠지만, 일단은 들어보겠단 제스처를 취했다.

"게임이나 만화를 보면 많이 나오잖아. 모험가 길드, 혹은 용병 길드라 불리는 단체."

"그렇지."

"그런 거 만들어 보려고."

"뭐?"

"정부나 군대에 휘둘리지 않는 사냥팀들이 모인 강력한 독립단체 말이야."

060화 격차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