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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한 명의 VIP, 혹은 호구. >

솔직히 이런 상황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폭우침을 시전하자마자 냅다 달아나다니.

'···이것도 작전인가?'

혹시 몰라 경계는 하고 있었지만 도망친 건 확실해 보였다.

치졸한 새끼.

천마 신공이 아깝다.

진짜 영혼 연결자가 맞긴 맞아?

하긴!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는 같은 영혼이라도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

여긴 지구, 저쪽은 강호 무림.

자신도 그렇다.

김태주는 김태주고, 당군악은 당군악이다.

어쨌든 폭우침을 시작으로 벌어진 전투.

그 한수로 8명 정도의 마인들이 절명해버렸다.

황제는 멍하니 서 있는 부회주에게 돌진했다.

화들짝 놀라 마수화로 변해 황제의 공격을 막아내는 부회주 자말.

채앵!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느냐?"

"···이번엔 완전히 죽여주지."

한편 금수호는 새로 얻은 검을 한 번이라도 더 휘두르기 위해 광분했고.

서걱! 서거거걱걱!

"이게 바로 내 검이다!"

일이삼백이도 백호로 변해,

"캬르릉!"

태주의 지시에 따라 오직 진마들만 사냥했다.

꽈득! 꽈드드득!

태주도 놀고만 있지 않았다.

츠피피핏!

손에서 기관총처럼 쏘아지는 유엽비도.

묵직하게 날아가는 탈명비도.

츠파아앗!

사기를 잃은 마인들은 일반 마수보다 쉬웠다.

그러다 보니 살아있는 마인은 황제와 싸우고 있는 부회주 뿐.

얼추 다 정리된 것 같으니 이제 관전 모드로 들어갈까?

채앵! 챙챙챙챙!

마수가 된 자말, 기본 등급이 이미 마스터.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이글이글.

자말의 몸이 마기로 불타오른다.

공포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괴수의 모습.

웬만한 각성자들은 저 마기에 닿기만 해도 육신이 부서져 나갈 터.

그러나 자말의 상대는 황제였다.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각성자.

이전과는 완전하게 달라진 패도의 황제.

째앵! 째앵! 쨍!

황제의 검이 찍어누를 때마다 반격의 기회도 잡지 못한 채 연신 뒤로 물러나는 부회주 자말,

"겨우 이것뿐이더냐? 참으로 실망스럽도다."

"이, 이놈!"

자말의 눈에서 실핏줄이 터진다.

황제는 강해졌다.

더불어 그의 마나에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마기를 갉아먹고 있었다.

마기로 밀어내도 소용이 없었다.

끈질기게 몸속으로 파고들어 와 마기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었다.

'대, 대체?'

자말은 모를 것이다.

강해진 것도 강해진 것이지만 선계의 보물인 선도를 복용함으로써 황제의 마나에 선기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금수호의 몫까지 혼자서 먹었다는 사실을, 심지어 태주가 불쌍해서 금수호에게 준 신선주도 더 많이 마셨다는 사실을.

선기는 사특한 것을 물리치는 영험한 기운이다.

타인의 심장과 내장을 파먹고 힘을 키우는 마인은 사특한 존재.

따라서 마인 자말은 선기에 의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황제도 알고 있었다.

김태주 회장이 준 복숭아와 술.

'너무 큰 걸 받았어.'

그 속에 담긴 기운 덕택에 한때 자신을 죽음의 위기까지 내몰았던 놈을 가볍게 상대하고 있다는 걸.

급기야!

뎅겅!

팔꿈치가 잘려 나가고,

"아···,"

서둘러 다른 손으로 검을 막으려고 했지만···.

황제의 가로 베기가 허리를 갈랐다.

서거거거거걱!

상체와 하체의 완전한 분리.

미끄러지듯 옆으로 잘려 나가는 상체.

"···끅!"

죽어가면서도 자말의 뇌리에 남은 의문.

'회주는 왜 도망쳤지?'

부회주 자말의 죽음을 끝으로 살아있는 마인은 아무도 없었다.

"뭐야? 다 죽었나? 한 명쯤은 살려뒀어야 했는데."

황제는 금수호를 매섭게 추궁했다.

"자네, 새 검을 받았다고 너무 설쳐댄 거 아닌가? 한 명 정도는 목숨을 붙여놓았어야지."

금수호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일백이를 가리키며 답했다.

"저보다 이놈이 더 많이 죽였습니다만."

"냥?"

"···허어, 아까부터 꼬박꼬박 말대꾸야."

"냐앙!"

"아니, 그러니까 해고하시든지, 귀양을 보내시든지 하시라니까요?"

"감봉 6개월···, 뭐, 나하고 검을 바꾸면 봐줄 수는 있지만."

"사직서 내겠습니다."

황제와 금수호가 유치한 말다툼을 하는 동안.

태주는 마수화로 죽어있는 마인들의 시체를 살폈다.

'이놈은 아니고, 저놈도 아니고···,'

다행이다.

사망한 마인 중 정연희가 보여준 그 마인은 없었다.

그나저나 도망간 그 새끼는 어쩌지?

부하들은 내버려두고 혼자 꽁지 빠지게 도망치는 꼴이라니.

그것도 제대로 전투도 안 하고 폭우침이 시전되자마자 내뺐다.

약한 놈이었다면 이해는 한다.

하지만 놈은 태주, 자신도 장담할 수 없을 만큼 강자였다.

'도망친 놈을 어떻게 잡나.'

너무나 빨라서 쫓아갈 엄두도 못 냈다.

'본명과 진짜 얼굴을 알면 추적부로 쫓으면 되는데.'

선계의 보패 추적부(追跡符)라고 해서 만능이 아니다.

추적하는 대상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사용한 적은 딱 2번.

한번은 흑악지룡의 행방을 찾을 때였고, 또 한번은 파주 DMZ 밀집지대에서 아버지를 구할 때였다.

그러나 지구의 천마는 이름도 모르고, 본 얼굴도 모르니.

"근데 아까 도망간 그놈 말이야.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군. 제일 강한 놈인 것 같았는데, 사실 바짝 긴장하고 있었거든."

황제도 도망간 천마가 궁금한가 보다.

"그러게 말입니다."

"대체 누굴까?"

"도망갔으니 알 방법이 있나요?."

태주는 황제에게 자세하게 이야기해줄 생각이 없었다.

설명하자면 복잡하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천마가 아닐 수도 있다.

강호의 천마는 당군악에 의해 죽지 않았나.

천마 신공 익혔다고 다 천마인가?

'천마의 제자일 수도.'

즉, 강호 무림에 마교의 잔당이 남아있을 수도 있다는 말.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인간계의 일이다.

등선한 신선이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

이번 일 또한 지구에서 일어났다.

따라서 자신이 직접 처리한다.

당군악에게 말하면 괜히 걱정할라.

이제 정리하고 돌아가자.

금수호가 고비 초원 개척부대를 호출했다.

시체들을 수습하면서 한참을 기다리자.

투타타타타타!

저 멀리서 헬기 4대가 날아왔다.

폐하께서 바룬에 왕림하셨다는 소식에 정신없이 달려온 개척군단 총사령관이 서강진 중장.

"추, 충성!!!"

황제는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강진아."

"···네, 폐, 폐하!"

"이게 뭐냐? 김태주 회장 앞에서 못 볼 꼴 다 보이고, 나판도 그렇고, 바룬도 그렇고."

"주, 죽여주시옵소서. 다 제가 불민한 탓이옵니다."

"진짜 죽여줘?"

"···."

"마수만 때려잡는다고 다 제국의 땅이 되는 건 아니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잘하자, 응?"

그렇게 기강을 잡은 후, 태주를 보며.

"자네 다음 일정은?"

"집에 가야죠."

"···벌써?"

"누구 때문에 해야 할 일이 엄청 많아서요."

"험험."

헛시침을 하며 애절한 눈빛으로 태주에게 호소하는 황제.

"같이 좀 놀다 가세. 밀린 얘기도 나누고, 술도 한잔 마시고."

"으음."

"황궁이 얼마나 심심한 곳인지 아는가?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놀아?"

"니앙?"

심심한 황궁이라.

갑자기 선계에 있을 당군악과 신선들이 떠 올랐다.

무료한 선계에서 하릴없이 지내다가, 자신이 보내준 지구의 물건과 문화로 너무나 즐겁게 지내고 있다는 그들.

황제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

"···그렇게 하죠."

"오! 고맙네."

"니앙!"

그 모습을 흘깃 훔쳐보는 서강진 총사령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황제가 저렇게 저자세로 나오는 것 처음 봤다.

금수호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고.

직접 보지 않으면 과연 누가 믿어?

'이거 마수만 때려잡고 안심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제국의 실세는 황후도 아니고 황자도 아니고 김태주다.

현재 김회장과 가장 친한 장군은 지리산의 오진형.

이러다 진급이 밀릴지도 모른다.

'어떻게 김회장과 친해질 방법이 없을까?'

서강진에게 주어진 숙제였다.

어쨌거나 태주는 황제, 금수호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같이 마수 사냥도 하고, 캠핑도 하고, 고기도 구워 먹고, 술도 한잔하고, 파주로 돌아간 건 3일이 지난 후였다.

그런데 파주까지 따라오겠단다.

이 양반들 왜 집에 안 가지?

※ ※ ※

선계(仙界).

독선 당군악은 태주가 보내온 영상들을 보며 빙그레 웃음 지었다.

이미 그전 배송에서 보내온 영상이지만, 생각날 때마다 꺼내 보는 중이었다.

검선도 걸핏하면 보여달란다.

귀찮아 죽을 지경.

태주가 잘 지내는 모습을 보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호위하듯 그의 옆을 지키는 영물 한 마리.

"허허, 삼두백호라. 매번 봐도 든든해."

머리가 3개 달린 게 조금 징그럽긴 하지만.

이제 하던 일을 마저 해야지.

당군악은 정성스럽게 손질한 독들을 하나하나 각각의 상자 안에 넣었다.

인면지주와 만년오공의 독은 독단, 즉 내단의 일종이기에 그냥 먹는 것이 제일 좋다.

하지만 독각화망과 학정홍은 다르다.

법제를 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독성이 나온다.

먼저 독각화망의 뿔은 잘라서 말린다.

그리고 혼원무상독령공으로 고운 가루로 만들어 독각화망의 쓸개즙과 섞어서 환으로 빚는다.

학정홍은 이슬에 녹여 액체로 만들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도 혼원무상독령공이 필요하고.

태주가 직접 법제하는 것과 당군악이 법제하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일까?

다음으로 독물 섭취 방법을 직접 자필로 작성해 상자마다 넣었다.

이제 다 준비됐다.

배송 신호가 뜨기만 하면 끝.

이번엔 선도를 보내지 않기로 했다.

전에 많이 보냈으니 그걸로 충분할 터.

'슬슬 뜰 때가 됐는데.'

바로 그때!

찌르르르.

울리는 배송 신호.

"오!"

공유창고 확인.

이번에도 태주는 가득가득 물건을 보냈다.

서둘러 물건을 빼내고.

독물 상자는 아공간 가방에 넣었다.

스마트폰은 그냥 창고에.

"됐어."

아마 이 독물들이면 혼원무상독령공 10성은 충분할 것이다.

공기계 스마트폰에는 무간지옥의 천마에게서 들은, 지구의 천마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었다.

하지만 당군악은 태주가 천마 따위에게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탐탁치 않았다.

평생을 천마, 그리고 마교와 싸우면서 보낸 자신.

그 때문에 속절없이 사라진 청춘.

태주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지.

그러나 천마를 그냥 내버려 둬도 문제고.

태주가 결정하도록 놔두자.

※ ※ ※

태상노군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선학(仙鶴)의 가냘픈 목을 어루만져줬다.

"까악, 깍, 까아아악!"

"그래, 그래, 얼마나 아팠을꼬."

그에게 있어 선학은 탈것 이상이었다.

오랜 친구와도 같은 존재.

그런데 어떤 망할 신선 놈이 선학의 정수리를 홀라당 벗겨갔다.

"정녕 누군지 모르느냐?"

"까아아아···,"

"그냥 신선이었단 말이지?"

"까악."

"직접 보면 찾을 수 있고?"

"까아악! 깍! 깍!"

"그래, 같이 찾아보자."

태상노군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신선들의 망나니짓이 끝이 없다.

선도 도둑질에, 그마저 여의치 않자 매일매일 자신의 거처에 몰려와 선도 지급을 늘려달라고 하고, 급기야 애지중지하던 선학을 대머리로 만들어놨다.

뭐? 단결 투쟁? 선도 독점 폐지? 태상노군 퇴진?

어디서 요상한 것만 배워와서는.

열심히 일하고 대가를 달라면 이해나 하지.

선계에서 쳐 뒹굴면서 놀고먹는 새끼들이.

오죽하면 '신선놀음'이란 말이 나왔겠나.

하지만 지금까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선계를 관리하는 직위를 가지고 있다지만 신선들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

신선 개개인이 독립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태상노군 자신도 어찌 보면 같은 신선 아닌가?

오직 판관의 저울추에 의해서만 그들에게 심판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한계에 도달했다.

태상노군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선학에 올라타고는.

"가자. 반드시 놈을 찾아서 무간지옥에 처넣어 네 한을 풀어주마."

"꺄악!!!"

태상노군을 태운 선학이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도착한 목적지.

그런데.

'응?'

선계 한 중앙에 세워진 마천루.

높게 세워진 건물이 태상노군의 눈앞에 나타났다.

'아니, 저것이 언제···,'

이곳에 와본 기억은 난다.

그때는 천막이었다.

'천막을 헐고 이걸 만들었나?'

그러고 보니 선계에 뭔가를 지으려 하는데, 힘센 신장들이 필요하다고 해서 몇 명 보내준 적이 있다.

독선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그저 작은 누각 정도려니 했는데, 저렇게 커?

대체 저기가 뭐 하는 곳이길래.

'상전벽해라더니.'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

"내려가자꾸나."

"까악!"

선학이 건물 앞에 착지했다.

신선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모두 저 건물 안에 있나?

겉모습부터 휘황찬란했다.

태상노군은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깔린 매끄러운 대리석.

그리고 그를 반겨 주는 주선(酒仙) 태백 선인.

"오! 태상노군 아니시오."

"···주선이 어찌, 그리고 입고 있는 옷은 뭐요?"

"바텐더 전용 복장이요. 태주 대협이 보내준 거지."

"바, 바텐더? 그리고 태주 대협이라면?"

"저어기, 다른 세상에서 우리에게 귀한 물건을 보내시는 분이지."

"아!"

주선은 갈홍 선인에게 은밀하게 눈짓했다.

독선을 불러오라는 뜻이었다.

선계엔 두 명의 거물이 존재한다.

바로 서왕모와 태상노군.

그 둘의 공통점이라면 바로 선도 부자라는 것.

큰 손이 왔다.

"이왕 오셨으니 내가 한잔 올리겠소."

"···으응?"

"서비스니 그냥 드셔도 되오."

"서, 서비스라니 무슨?"

"공짜라는 뜻이오."

주선은 계량컵에 술을 따르고, 오렌지와 크렌베리 주스, 얼음을 쉐이커에 담았다.

그리고 쉐킷! 쉐킷!

딸그락, 딸그락!

물 흐르듯이 능숙한 주선의 움직임.

"보드카가 주 베이스고, 꼭 들어가야 할 복숭아 증류주 대신에 신선주를 넣었소."

"···."

무슨 말인지 알 도리가 있나?

그래도 주선이 주는 유리잔을 손으로 받았다.

원래 태상노군도 술을 좋아한다.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이 술 이름이 섹스 온 더 비치라 하더이다."

"세, 섹스···, 뭐?"

"드셔보시오."

태상노군은 유리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쭈욱!

"흐음."

달콤하다.

강한 도수의 술이 신선주와 어우러지고, 달콤한 과즙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실로 환상적인 조화.

"어떠시오?"

"맛있군. 생전 이런 술은 처음 먹어봤소."

"헐헐헐!"

선계의 신선이 섹스 온 더 비치라는 칵테일을 마신다.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하, 한잔 더 없소?"

"아까는 서비스였고, 지금은 값을 치러야 하는데,"

"뭘로? ···아! 선도! 걱정 마시오. 드리리다."

"현물 거래는 하지 않아서···,"

"무슨? 현물로 살 수 없다니 그럼?"

"신용패가 있어야 하오."

신용패?

그게 무슨 말이지?

그때였다.

"노군의 술값은 내 앞으로 달아두시오."

독선이 왔다.

싱그러운 미소와 초롱초롱한 눈빛을 흘리며.

"맨 술만 마시면 쓰나. 이보오, 주선! 소맥 한잔 말아보시오."

"좋지."

그리고 무한공간에서 따끈따끈한 치킨 하나를 꺼냈다.

"소맥엔 치킨이지."

"치, 치킨?"

태상노군은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잊어버렸다.

그저 처음 맡아보는 자극적이고 기름진 향기에 눈을 둥그렇게 떴다.

대체 어떤 음식일까?

당군악은 마치 카지노에 처음 들어온 호구, 아니 VIP를 보는 사장처럼 태상노군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까악, 까악, 꺄아아···,"

멀리플렉스 밖에선 선학이 애처롭게 울어댔지만.

"자, 닭 다리 하나 뜯어보시오."

지금 태상노군에게 선학의 울음 따윈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아그작!

오히려 치킨 한입 베어 문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 또 한 명의 VIP, 혹은 호구.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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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업 확장을 위한 첫 발걸음. >

원래는 호구로 삼아 벗겨 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태상노군과 몇 마디 나눠본 뒤, 생각을 바꿨다.

의외로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사람.

이용하기 편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림을 크게 그려보자.

선계는 독립된 차원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아니다.

천계, 황천계, 여래계 등, 인간계와 분리된 여러 세계 중에 하나.

태상노군은 선계를 대표하는 인물.

천계는 상제, 황천계는 염라, 여래계는 석가여래.

각 차원은 서로 교류하며 소통한다.

허락된 범위에서 다른 세계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멀티플렉스가 건설된 이상, 당군악은 선계 장사로만 만족할 수 없었다.

산신, 지신, 용신, 선녀와 신장들이 존재하는 천계.

판관과 차사, 사자들이 있는 황천계.

장사할 고객이 얼마나 많나?

여래계야 물욕이 없는 자들이니 제외하고도 말이다.

문제는 계가 나누어져 있어 소문이 잘 퍼지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다른 계에서 방문하는 자들도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신장들 몇몇과 황천계 강림 차사만 가끔 왔다 갈 뿐.

손님들이 더 많이 와야 한다.

그래서 당군악은 태상노군을 광고모델로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선계 대표 태상노군은 천계, 황천계, 여래계로 자주 다니는 편, 따라서 발이 넓고, 만나는 이들도 많다.

"태상노군께서 이왕 오셨으니, 친필 사인 한 번만 부탁드리오."

"···사인? 그, 그게 뭐요?"

당군악은 주선 뒤쪽 벽에 붙은 종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런 거 말입니다."

"허어,"

유려한 글씨체로 쓰인 글귀였다.

<서비스가 마음에 듭니다. 독선도 친절하고, - 서왕모>

<사업이 번창하시길, 자주 들리겠습니다. - 강림>

<진저 하이볼이 맛있어요, 추천! - 미호 선자>

.

.

.

덕담 같은 건가?

못 해줄 것도 없다.

"좋소. 벼루와 먹, 붓을 꺼내 보시오."

"벼루, 붓? 그런 게 뭐가 필요하다고?"

"···음? 그럼 무엇을 가지고."

스윽!

당군악은 종이와 만년필을 꺼내 태상노군에게 내밀었다.

"만년필이라 하오. 이걸로 쓰시오."

"···허어."

"이렇게 뚜껑을 열고 종이에다 쓰면···,"

"해, 해보겠소이다."

태상노군은 만년필을 받아 들고 백색 종이에 글씨를 써 내려갔다.

스윽, 스윽, 스으으윽!

'응?'

왜 이렇게 잘 써지지?

미끄러지듯이 나아가는 펜.

아아아!

손끝에서 느껴지는 환상적인 필기감.

심지어 먹을 찍을 필요도 없다.

<대접 잘 받았소. 특히 치맥은 최고였소. - 태상노군>

몇 자 더 적고 싶었지만, 주선이 냉큼 종이를 집어서 뒤쪽 벽에 붙였다.

못내 아쉬운 듯한 태상노군의 표정.

"가지고 싶소? 이 만년필 말이오."

"···내 평소 물욕엔 관심이 없었으나, 이 만년필은 정말 탐이 나는군."

"그럼 선물로 드리리다."

"저, 정말이요?"

"그리고 이것도."

당군악은 무한공간에서 시계 하나를 꺼내 태상노군의 손목에 채워줬다.

찰칵!

"헉! 이, 이건 말로만 듣던 그···,"

"시간을 볼 수 있는 귀물이지요."

태상노군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 꼭 값을 치르리다. 사람을 시켜 선도를 보내겠소."

그러나 당군악의 공세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하하하! 선물이라니까요. 또 우린 선도로 거래하는 게 아니라 신용패로 거래해서···, 참! 신용패도 드리지. 선도 코인 5만 개가 들어있으니 마음껏 쓰시오."

의문 가득한 태상노군의 눈동자.

"독선, 대체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거요?"

"그야 노군께선 우리 선계의 얼굴이니까."

"으음···,"

진짜 이유를 모르겠다.

원래 친한 사이도 아니고,

판관의 저울추 재판에서 불협화음도 있었는데.

그런 심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당군악은 능청스럽게 말을 이어 나갔다.

"쯧쯧, 이 옷에 손목시계와 만년필이라니, 어울리지 않아."

"내, 내 옷이 어때서 그러오? 천계의 선녀들이 한땀 한땀 정성을 들여서 지은 옷이거늘."

"따라와 보시오."

태상노군을 2층 쇼핑몰로 데리고 가서.

"흐음, 이 정도면 딱 맞겠어."

당군악은 옷걸이에 걸린 양복 하나를 집어 태상노군의 몸에 대보았다.

"이, 이것도 옷이오?"

"그렇소. 신선은 수트빨이지. 손목시계와 만년필도 수트와 어울려야 그 진정한 가치가 드러나는 법."

"어허."

이미 반쯤 나간 태상노군.

그래서 당군악이 시키는 대로 옷을 갈아입었다.

"신고 다닐 것도 준비했소. 발에 꼭 맞을 거요."

구두도 신고.

"자, 거울을 보시오."

태주가 보내준 전신 거울 앞에 세우니.

"훨씬 낫네. 역시 명품이라 이름값을 하는구나."

몸에 짝 붙는 검정색 자켓, 밑으로 늘씬하게 떨어지는 바지 핏, 소매에서 살짝 드러나는 손목시계.

태산노군도 그렇게 생각했다.

뭔가 마음에 든다.

흐늘흐늘한 도포보다는 백배 나아 보인다.

"에잉, 그런데 헤어 스타일과 수염이 마음에 들지 않는구만."

"헤, 헤어 스타일?"

"자릅시다."

"뭘? 머리카락을? 아니 왜?"

"내 말대로 하시오. 더 어울릴 거요."

이미 저항할 의지를 잃은 태상노군.

"이보오, 검선!"

검선이 윗 층에서 게임을 하다가 당군악의 부름을 받고 내려왔다.

"불렀소? ···허어, 웬 멋쟁이 신선이 있나 했더니 태상노군이시군."

"노군의 머리와 수염을 정돈해 주시오."

"알았소."

검선은 태상노군의 얼굴을 요모조모 살피더니,

"머리는 짧게 깎는 게 좋겠군. 수염도 마찬가지고."

당군악이 건네준 유엽비도를 들고 태상노군에게 다가갔다.

상투를 한꺼번에 싹둑 자른 후.

"어어어어?"

사각, 사각, 사각···,

머리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가르마도 타고, 수염까지 깨끗하게, 마지막 화룡점정으로 선글라스도 착용시켜주자.

"됐어. 완벽하군."

그리하여 태상노군은 멋들어진 모습으로 변신했다.

노년의 패셔니스트.

아마 지구에서도 이와 같은 풍모를 가진 신사는 몇 없을 터.

당군악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모두 태주를 위해서다.

지구는 이상한 곳이다.

선계나 천계, 황천계보다 더 그렇다.

갑작스러운 마나의 침범, 그 영향을 받은 각성자, 비욘드 엘리트라는 극강의 마수, 그리고 시스템의 존재, 또한 태주나 천경호 같은 영혼 연결자도.

'어쩌면 천마 따윈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어.'

태주는 더 강해져야 한다.

선계의 지원만으로 부족할 수도 있다.

선도(仙桃)로 대표되는 선계의 자원.

황천계와 천계에도 선도 못지않은 물건들이 있다.

귀중한 자원들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구의 문물이 얼마나 새롭고 신묘한지 널리 알려져야 한다.

발 넓은 태상노군이 그 역할을 해줄 것이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돼.'

그리하여 사업 확장을 위한 첫 발걸음이 내디뎌졌다.

※ ※ ※

파주 영지.

졸지에 태홍 바이오 파주 지점장이 된 정연희는 하루하루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정신이 없었다.

뉴서울 지점에서 최동일 지점장과 마석우 부장이 직접 파주까지 내려와 그녀를 도와주었고, 구례에서도 백서연 사장이 인원을 파견해주지 않았다면 벌써 지쳐서 나가떨어졌을 터.

그녀의 할아버지인 백두 그룹 회장도 많은 도움을 줬다.

직접 내려오진 않았지만 전화 통화로.

- 사람 몇 명 보내주마. 네 사람으로 만들어.

"백두 그룹엔 지장이 없나요? 유능한 사람을 뽑아 쓰면?"

- 허허, 우리가 사람 몇 명 빠진다고 휘청거릴 회사더냐? 이참에 출가외인이라 생각하고, 태홍 바이오 성장에 전념을 다하거라.

"출가외인요? ···저 나중에 그룹으로 돌아갈 건데,"

- 글쎄다. 그건 그때 가봐야 아는 거고, 난 안 돌아왔으면 좋겠는데.

"할아버지!!!"

- 쯧쯧, 귀청 나가겠다. 아무튼 열심히 해. 그리고 놓치지 말고 꼭 잡아.

"누, 누굴요?"

- 알면서 딴청 피우기는, 방심하다 닭 쫓던 개꼴 되지 말고, 나도 응원하마.

뚝,

전화가 끊겼다.

'나 쫓겨난 건가?'

그리고 잡으라니.

의미는 알겠지만 이 나이까지 솔로로 지내 온 그녀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회사 조직은 얼추 갖춰졌다.

태홍 바이오 파주 공장도 완공 직전에 와 있었고.

공장의 규모가 뉴서울 크기의 5배 이상, 거기서 쏟아져 나올 생기불끈과 새살쑥쑥의 물량은 제국의 수요를 감당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럼 슬슬 해외수출도 추진해야지.

이렇게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느덧 해가 졌다.

그녀가 복마검법을 수련하는 시간.

일주일 중 월화수목은 구례에서 올라온 김태주 회장 제자들의 수련을 봐준다.

요일마다 각각 2명씩, 총 8명이 돌아가며 파주로 와 정연희와 함께 검술을 익힌다.

그리고 금토일은 온전히 그녀의 것이다.

정연희는 파주 영주관 수련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복마검법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스마트 폰에서 흘러나오는 영상.

- 혹자는 초식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절대지만 그거야말로 멍청한 짓이다. 끝없는 반복 수련으로 초식을 몸에 새겨야 한다. 활용은 그다음이지.

- 활용은 초식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재능이지. 하지만 걱정 말라. 노력이 뒷받침해줄 것이다. 실전이 중요하다. 되도록 많이 싸워라.

- 때로는 완급 조절이 필요하노라. 허초로 상대의 공격을 유도하면서, 결정을 내야 할 땐 과감하게! 이런 식으로.

영상에 나오는 분이 누구신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무나 자세하게 무공을 시연해 주신다.

그래서 금방 복마검법 50%에 이르렀지만 문제는 여섯 번째 초식부터.

혼자선 어렵다.

누군가 자신의 검을 받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것도 검 대 검으로써.

하지만 누가?

김태주 회장은 검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의 제자들은 진도가 느려서 안 되고, 오황자가 있지만 대련 한번 하자고 감히 말을 꺼낼 수도 없고.

그게 현재 정연희의 가장 큰 고민.

하는 수 없다.

초식 수련이나 열심히 하는 수밖에.

바로 그때!

영주관 수련실의 문이 열리고.

"연희씨?"

"아! 회장님!"

태주는 땀에 젖은 그녀를 보면서 또 한 번 감탄했다.

재능에다 노력까지.

"참! 가셨던 일은?"

"잘 처리됐습니다. 그리고 그 마인은 없었어요."

"···휴우, 다행이네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정연희.

그런데 들어온 사람은 태주만이 아니었다.

그 뒤를 따라 문을 열고 들어온 두 명의 남자.

"여기가 수련실인가?"

"쯧쯧, 너무 허접하군. 돈 벌어 뭐하나? 인테리어 좀 하게."

"아예 영주관을 다시 지어야죠. 하도 낡아서 귀신 나오겠다."

그녀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수련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두 명의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황제 폐하와 금수호 비서관.

아니, 이 두 사람이 왜 여기서?

또 김태주 회장과는 이렇게나 격의 없는 사이였나?

'어떡하지?'

몸이 굳어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허둥대다가 즉시 무릎을 꿇고.

"폐하! 인사드리겠나이다. 저는 태홍 바이오 파주 지점을 맡은···,"

"아! 일어나라. 공식 석상도 아니니 구태여 예를 차릴 필요가 없다."

"황송하옵니다."

"네가 백두 그룹 욱철이 손녀인가?"

"그, 그렇사옵니다."

"하하하, 욱철이와는 다르게 재능이 있구나. 스킬 수련 중이었나 보군."

그들이 여기까지 따라온 이유.

금수호는 서필명을 만나기 위해, 황제는 막내아들 오황자 류진철을 보기 위해.

사실 다 핑계다.

황궁으로 돌아가기 싫은 거겠지.

서필명을 만나고 온 금수호가.

"에잉, 필명이가 얼굴이 확 폈더라고. 나가서 그렇게 좋나? 망할 놈, 내가 얼마나 귀여워해 줬는데."

황제도.

"확실히 막내는 막내야. 나를 잡고 얼마나 서럽게 울던지···, 원래 막내가 가장 귀여운 법이지만, 그렇다고 한번 내린 황명을 번복할 수야 있나."

금수호가 딱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쯧쯧, 제가 그렇게 결혼하지 마시라고 했는데."

"···냄새나는 홀애비 새끼보다는 훨씬 낫지."

"그래도 전 자유가 좋습니다."

"자유와 외로움을 혼동하지 말게."

"안 외로운데요?"

수련실 안에서도 황제와 금수호의 만담은 끊이지 않았다.

이 사람들 왜 집에 안 갈까?

정연희에게 볼 일이 있어 왔는데,

그때였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신호.

찌르르르!

배송이 왔다.

'하필 이때···,'

하는 수 없다.

잠시 자리를 비울 수밖에.

"저 잠시 배가 아파서, 화장실 다녀오겠습니다."

"어, 그렇게 하게. 시원하게 싸고 와. 우린 얘기나 나누고 있을 테니까."

"그럼."

아아!

이번에도 화장실에서 확인하게 생겼다.

벌써 몇 번째인가?

일단 걸어가면서 공유창고에서 물건을 빼내고 다시 가득 채우고, 비어있는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러고 난 후, 당군악이 보낸 물건을 확인해보니.

'응?'

공유창고엔 딸랑 아공간 가방 하나와 공기계 스마트폰이 있었다.

'뭐지?'

늘 빼먹지 않고 보냈던 선도도 없다.

설마 또 망한 건가?

태주는 먼저 아공간 가방부터 확인했다.

그 안에서 나온 4개의 상자.

'이건 뭐야?'

그중 하나를 열어보니.

"읏!"

진하게 풍겨오는 독물의 냄새.

정신이 나갈 정도였다.

이렇게 강한 독이?

심지어.

꿈틀!

"와!"

냄새만으로 독정이 반응했다.

뭔가 싶어 상자 안에 같이 놓인 종이를 읽어봤는데.

'···인면지주?'

사람의 얼굴을 한 거대한 거미 요괴, 전설에서나 나올 독물, 놈에게서 채취한 독단이었다.

'마, 맙소사!'

놀라서 까무러칠 지경.

상자를 마저 열었다.

만년오공 독단에, 환으로 빚은 독각화망의 독, 그리고 약물로 법제한 선학의 학정홍까지.

'미치겠네.'

이걸 다 보냈다고?

태주에겐 선도보다 더 귀한 물건,

'혼원무상독령공 10성은 충분하겠어.'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선계에서 독물이 넘어올 줄이야.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다.

게다가 각각의 종이엔 복용 방법과 순서까지 적혀있었다.

'답례를 어떻게 하나?'

태주는 스마트폰도 확인했다.

'영상도 보냈겠지?'

그냥 독물이나 선계 일상에 대한 내용인 줄 알았다.

그러나 전혀 아니었다.

감히 예상도 하지 못했던 내용.

동영상이 진행되자 태주의 안색이 점점 굳어졌다.

'어···, 천마?'

당군악이 이야기해주는 천마에 대한 자세한 정보.

'아니, 이걸 어떻게···.'

강호 무림의 천마가 아니었다.

지구의 천마.

바룬시 밀 농장의 회주, 그놈은 천마가 맞았다.

무간지옥의 천마와 영혼이 연결된 진짜 천마였다.

그럼?

'잡아야지.'

일단 혼원무상독령공부터 대성하고 나서.

< 사업 확장을 위한 첫 발걸음.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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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관수련 >

황천계 무간지옥에 천마를 만난 걸 시작으로 당군악의 설명이 쭉 이어졌다.

지구 천마의 이름은 천경호, 7년 전, 무한지옥에 수감된 강호의 천마와 영혼이 연결됐다고 한다.

'얘들 둘은 사이가 안 좋네.'

같은 영혼인데 죽여달란다.

다 거기서 거기인 놈들인데도 말이다.

마공을 수련하다 입마에 들어 제 아내와 자식을 살해한 천마.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모와 형을 죽인 존속 살해범, 천경호.

사이코패스에 소시오패스 새끼들.

한 명은 무간지옥에 있고, 한 명은 꽁지 빠지게 도망갔다.

'절대 살려두면 안 되는 새끼야.'

천경호의 정보를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

추적부로 찾을 수 있게끔.

그래서 태주는 화장실 안에서 제정원 문경식 차장에게 전화했다.

- 네, 회장님, 문경식입니다.

"범죄자 신상 정보 좀 얻으려고 하는데, 가능할까요?"

- 얼마든지요.

"이름은 천경호이고, 나이는 마흔둘, 대전에서 군수업체인 평화 산업 사장 둘째 아들이었고···,"

당군악에서 들은 정보를 쭉 늘어놓자.

- 아! 기억이 납니다. 꽤 유명했습니다. 존속살해 용의자여서, 설마 마인인가요?

"비슷합니다. 특히 사진을 많이 확보해주세요. 되도록 자세하게 나온 걸로."

- 즉시 처리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살짝 말끝을 흐리는 문경식.

그러고는.

- 혹시 폐하와 금수호 비서관과 함께 계시는지.

"네, 파주에 있어요. 황궁에 돌아가시면 좋겠는데, 좀 데려가세요."

- ···아, 알아서 하시겠죠. 전 그냥 확인차, 하하하.

알아서 안 할 것 같은데?

아무튼 둘이 파주에 있든 말든, 이제 같이 다닐 여유가 없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혼원무상독령공 10성 달성.

그리고 천경호를 잡는다.

태주는 화장실을 나와 수련실로 돌아갔다.

황제가 씨익 웃으면서.

"오! 이제야 왔군. 변비인가?"

변비는 무슨.

태주는 정연희에게 다가갔다.

줄 건 주고 가자.

원래는 둘이 안 보는 곳에서 조용히 주려 했는데···,

현재 태주가 입고 있는 옷은 환상 여우 가죽 코트.

안 보이게 안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어서.

스윽,

무한공간에서 보검 하나를 꺼냈다.

깜짝 놀라는 황제, 금수호, 정연희.

"응?"

"어머?"

"저게···, 설마 그 코트, 아공간 주머니가 달려있나?"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역시 부자야. 코트에 아공간 주머니도 달고."

그렇게 이해해주면 고맙지.

"연희씨, 이 검 어때요?"

"···네?"

"휘둘러보세요."

"지, 지금요?"

"그래요."

공동파 신물로 전해지다가 검선이 강탈해온 파사신검이었다.

복마검법의 원류가 공동파이기에 처음 꺼냈다.

휫! 휘리리릿! 파앗!

정연희는 파사신검으로 복마검법 초식을 펼쳤다.

"마음에 들어요?"

"네? 으음, 드, 들긴 하지만,"

당연히 마음에 들겠지.

강호에서도 이름난 보검 아닌가.

하지만 태주의 마음엔 들지 않았다.

왠지 정연희와는 맞지 않은 느낌.

무엇보다 너무 크고 두껍다.

그렇다면 그보다 더 작은 검으로.

화산파의 명검 중 하나, 자하검.

검면에 매화꽃 문양이 새겨진 아름다운 검이다.

"이거도 써봐요."

"···어, 아, 알았어요."

피핏! 피리리릿! 팟!

소리가 조금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부족하다.

태주는 하나 더 꺼냈다.

아미파 장문인 연화신니가 쓰던 독문병기인 대라신검.

"이것도."

"···."

품속에서 연신 보검이 나오자 휘둥그레지는 사람들.

아공간은 그렇다 치고, 저게 다 어디서 난거지?

츠핏! 츠피릿! 피피피핏!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

수련장에 번쩍이는 검광.

속도가 더 빨라지고 매서워졌다.

됐다.

딱 알맞다.

"가지세요."

"뭐, 뭘요?"

"지금 그 검."

침을 꿀꺽 삼키는 정연희.

휘둘러봐서 안다.

이 검이 얼마나 좋은 건지.

엘리트 마나 결정체가 들어간 무기보다 훨씬 나았다.

따라서 가격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한 검.

"···어떻게 이, 이걸."

"보너스라고 생각해요."

"아아아, 감사하지만 너무 부담스러워서."

"그럼 더 열심히 일해주시고."

나머지 검은 다시 무한공간에 넣고.

그런데 뒤통수가 따갑다.

슬며시 고개를 돌려보니.

"···."

황제가 자신을 뜨겁게 노려보고 있었다.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왜 나는? 금수호도 주고 정연희도 줬는데, 왜 나는?

"나도 자네 회사에 입사하면 안 되나?"

"···황제 폐하시잖아요."

"겸직하면···, 열심히, 개처럼 일하겠네."

"되겠습니까?"

"그럼 아까 그 검 중에 아무거나 하나, 돈으로 사겠네. 얼마면 될까?"

"팔고 싶어도 못 팝니다. 줘야 할 사람이 있거든요. 숫자가 딱 맞아서."

"그럼 수호는?"

태주가 금수호에게 준 검은 무당의 태청검.

"그게 딱 한 자루 남는 거여서."

애처로운 황제의 눈빛.

마음이 약해진다.

그러나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한편 금수호는 마음이 불안했다.

김태주 회장에게 검을 얻기란 불가능한 것 같고.

황제가 어떻게 나올지 뻔하다.

바라는 건 다 이루어지고, 가지고 싶은 건 다 가지는 사람인데.

'내 검을 노릴지도 몰라.'

지금도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지 않나.

제국의 이름난 장인들이 합심하여, 최고의 재료로 만들어진 대검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것까지 뺏길 순 없어.'

그래서 금수호는 검 자루를 손에 꽉 잡고 정연희에게,

"스킬 수련 중이라 했지?"

"으음, 네네."

"검도 하나 얻었으니 나하고 어울려보는 게 어떻겠느냐?"

"가르침을 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등급은?"

"슈페리어 익스퍼트이옵니다."

태주가 깜짝 놀랐다.

그새?

미들 익스퍼트에 오른 지 얼마나 됐다고?

하긴, 특성이 무려 검후인데.

"인재로구나. 제국의 미래가 밝아. 그럼 검을 맞대보자꾸나."

"감사합니다."

수련장에 선 두 사람.

손이 근질근질 할 것이다.

둘 다 좋은 검을 가졌으니 써보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나?

금수호가 호기롭게 외쳤다.

"오너라! "

정연희가 먼저 검을 뻗었다.

채챙!

부딪히는 검.

수련장 안에 검광이 난무했다.

검후가 될 자질을 타고 난 정연희, 황제 다음으로 강한 각성자 금수호.

"좋구나!"

채챙! 채채채챙!

정연희의 스킬은 단순하지 않았다.

수많은 변화가 있었다.

각각의 변화는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서로 연계하면서 마치 하나의 검술처럼 펼쳐졌다.

금수호는 깜짝 놀랐다.

이런 식의 변화를 보이는 스킬이라니.

그래서 잠시 검을 멈추고,

"···대체 이 스킬의 이름이 뭔가?"

"아무리 금비서관님이시지만 각성자에게 스킬의 이름을 함부로 묻는 건 실례입니다."

"허어, 그렇군. 미안하네. 다시 가지."

채챙!

한층 더 격렬해진 대련.

우우웅!

휘몰아치는 마나.

황제도 멍하니 두 사람의 대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금수호의 실력을 잘 알고 있다.

그러하기에 정연희의 스킬을 봐주고 가르치는 방식으로 대련이 전개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팽팽하다.

비록 힘에선 정연희가 턱없이 부족했지만 기묘한 스킬의 힘으로 금수호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허허,"

자신도 각성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도 간다!"

황제가 대련에 난입했다.

채채챙! 챙챙!

검광이 수련실을 가득 채웠다.

어느새 무아지경으로 빠져드는 세 사람.

"쯧, 검사들이란···,"

"냐앙?"

품속에서 자다가 머리를 내민 일백이.

"더 자. 나오지 말고."

"냥."

태주는 끼어들 생각이 없었다.

그저 조용히 수련장을 나가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 바로 구례로 출발했다.

알아서 잘 놀다가 가겠지.

※ ※ ※

태주가 구례에 도착해 처음 간 곳은 바로 백화점이었다.

섭취해야 할 독이 무려 4가지.

무려 선계의 이웃에 있는 요마계에서 채취한 독물들.

평범할 리 있나?

하나 소화하는 데도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당군악도 하나를 완전하게 소화하고 나서 다음 독을 먹으라고 당부했다.

독을 완전하게 다 복용하기까지 최소 보름 이상은 걸릴 거라고.

15일.

폐관 수련이 필요하다.

그 기간 동안 방해받으면 안 된다.

자택 지하에서 엄중한 방비 아래 복용할 계획이다.

그런데 중간에 배송 신호가 오면?

무조건 물건 보내야지.

15일이면 최소 신호가 최소 3번에서 4번 이상은 올 것이다.

어쩌면 5번 올 수도.

그래서 백화점에 왔다.

무한공간 꽉 채웠다가 바로바로 보낼 수 있게.

미리 연락을 받고 나온 구례 백화점 사장.

백화점 초특급 VVIP 고객이 바로 태홍 바이오 김태주다.

당연히 달려와야지.

"아이고! 회장님, 그동안 뜸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마음껏 쇼핑하려고요."

"지금 문 닫을까요?"

"아뇨. 기다리죠."

폐점 시간까지 한 시간 정도.

다른 사람의 쇼핑을 방해할 필요가 있나?

이윽고 백화점이 문을 닫았다.

VVIP 전담 직원들이 태주를 안내했다.

1층엔 화장품과 명품 매장.

선계엔 선자, 즉 여자들도 많다고 하니.

"여기서 저기까지 다 주세요."

"네?"

"아니, 그냥 이 매장 전부 다 삽니다."

"···어어, 아, 알겠습니다."

태주의 쇼핑 방법.

물건이 아니라 매장을 통째로 샀다.

시계 매장도 통째로, 명품 매장도 통째로, 의류매장도 통째로, 신발매장, 전자 제품, 가구, 건강, 식품관···,

백화점을 찢었다.

돈으로 따져도 몇백억 단위.

하지만 뭐가 아까울까?

"물건들은 태홍 바이오 단지에 창고 아시죠? 거기로 배달해주시면 됩니다."

"야근해서라도 완료해 놓겠습니다."

"그리고 웬만하면 박스 포장을 벗겨서요."

"무, 물건에 흠집이 날수도···,"

"괜찮습니다."

쇼핑을 마치고 백화점을 나가자,

"안녕히 가십시오."

구십도 인사로 배웅하는 직원들.

이제 울트라 초특급 VVVIP 고객쯤 되려나?

태주가 사용하는 전용 창고엔 이미 사둔 물건도 많았다.

전동 킥보드, 전동 스쿠터, 엘리트 마나 결정체를 이용하는 자가 발전기.

나중에 창고로 가서 배달된 물건들과 함께 무한공간에 집어넣으면 그만.

'바로 넣을 수 있게 준비해둬야지.'

머릿속에서 울리는 배송 신호.

처음 독을 섭취할 때만 안 오면 된다.

그때는 무척 고통스러워서 신호도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독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뜨면 문제없다.

태주는 수련 도중에 10성에 오른다고 해도 4개의 독물을 끝까지 먹을 생각.

혼원무상독령공 대성에 천마 척살도 중요하지만 마나 거부증 치료제도 시급하다.

반드시 만들어 내겠다고 백홍표 사장에게 큰소리 떵떵 쳤는데.

300년 전, 전 세계 인구는 80억이었다.

하지만 마나의 침범으로 거의 절멸 수준으로 떨어져 버렸다.

이후 폭발적인 인구 성장으로 40억 가까이 성장했지만

여전히 남은 문제.

바로 마나 거부자들.

전체 인구의 5%가 마나 거부자로 추산된다.

만약 치료제 개발이 성공하면 인류의 대혁명이 될 것이다.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

현대 과학으로도 발명해내지 못한 치료제.

이건 그동안 만들어온 해독제나 회복제, 생기불끈이나 새살쑥쑥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지금 생산되는 약(藥)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나?

죄다 마나를 품고 있다.

그래서 마나 거부자에겐 약이 곧 독.

반대로 접근하자.

약이 아닌 독으로.

그러기 위해선 대성해야 한다.

독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높아지도록.

'꼭 만들어 낸다.'

물론 순서는 정해져 있다.

혼원무상독령공 대성, 다음은 천마를 잡고, 그러고 나서 신약 연구에 매진해야지.

※ ※ ※

태주는 백창훈과 장순철을 포함한 8명의 제자를 불러 모았다.

무한공간에서 빼놓은 8자루의 검을 주면서.

"이거 한 자루씩 나눠 가져라."

"이, 이거 진짜 비싼 거 같은데···,"

"비싼 거 맞아."

창훈이와 순철이가 먼저 골랐다.

연신 검을 휘둘러보면서,

"대박! 무게중심이 딱 맞습니다."

"엘리트 무기인가?"

"에이, 그깟 건 여기 비비지도 못해."

"근데 이걸 주신다고요? ···은혜를 언제 다시 갚지?"

"한 세 번은 다시 태어나야 할 듯."

이 두 놈은 자신을 스스럼없이 대한다.

함께 해온 시간이 있으니까.

하지만 나머지 6명과는 아직 서먹서먹하다.

원체 밖으로 나돌다 보니 같이 있는 시간이 부족해서 그렇다.

'곧 친해지겠지.'

그래도 이름과 신상은 다 외웠다.

다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백 원장이 거둔 고아원 출신의 태균이.

얼굴이 예쁘지만 성질은 왈가닥 같은 승혜.

병든 어머님을 간호하며 가장 노릇을 하는 도윤이.

역시 고아원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가은이.

정의감이 투철해 사고도 많이 치지만 배려심이 남다른 유환이.

앞으로 제자들과 해야 할 일들이 많다.

그중 하나.

파주 영지 DMZ 마수 밀집지대 대토벌 작전.

외부 지원 없이 오로지 제자들만의 힘으로 이룰 생각이다.

'슬슬 준비나 해볼까?'

태주는 창훈이와 순철이를 불렀다.

"내가 당분간 수련을 할 예정이거든. 그래서 너희들이 해줄 일이 있어."

"지시만 내려주십시오."

"밖에서 지켜줄 사람이 필요해. 당분간 아이들과 함께 내 집에서 지내."

"알겠습니다.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목숨을 걸고···,"

"그럴 필요까진 없고."

폐관 수련 장소는 태주의 자택, 지하 수련실.

"지하 수련장에 들어가면 철문을 바깥에서 용접해버려."

"···아! 네네."

"그리고,"

태주는 이백이를 품에서 꺼냈다.

"야앙?"

"이놈 먹을 것도 챙겨주고, ···같이 놀면 되겠다."

일이삼백이와도 잠시 이별.

그리고 백서연과 백홍표를 각각 찾아가 사정을 설명한 후, 백화점 물건들이 배송된 창고로 가서 모조리 무한공간에 집어넣었다.

마침내 폐관 수련 당일.

지하 수련실로 들어가 철문을 닫고,

치치치직! 치치칙!

바깥에서 용접까지 완전히 끝낸 후에.

"후우!"

태주는 심호흡을 하고 난 뒤, 먼저 만년오공 독단을 꺼냈다.

'독단은 씹지 말고 한 번에···,'

꿀꺽!

뱃속으로 넘어간 만년오공 독단.

'으흠, 잠잠한데.'

별 반응이 없다.

전엔 냄새만으로 꿈틀거리더니.

그때였다.

짜릿!

"···어?"

반응이 온다.

"윽!"

통증이 느껴졌다.

점점 더 심해진다.

"끄으으으윽!"

끝도 없이 더해졌다.

눈앞이 캄캄하다.

'주, 죽는 건 아니겠지?'

지금까지 수많은 독을 먹어왔지만 이 정도 고통은 처음.

"큭!"

태주는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몸을 일으킬 수도 없었다.

찌이이이잉!

세차게 진동하는 독정.

자연스럽게 혼원무상독령공이 운기되기 시작했다.

< 폐관수련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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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짝 이벤트 >

고통에, 고통을 더 하고, 그 위에 고통을 쌓고 또 쌓고, 쉼 없이 지속적으로, 계속 계속 이어지고,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좀 사그라지는 기미라도 보이면 참을 만하겠는데.

만년오공 내단 하나를 먹었을 뿐이었다.

물론 각오는 했다.

이게 어디 보통 독물인가?

만년오공, 선계 옆에 붙은 요마계의 대형 지네 요괴.

놈이 품은 독이 얼마나 강한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럴 수가 있나?

온몸이 산산이 찢어져 분해되는 느낌.

면도날로 몸 구석구석을 저며나가는 듯한 고통.

독의 종류는 융해 독이었다.

온몸의 세포를 녹이는.

물론 독정에 각인되면서 재생하고는 있었지만.

결국 기절해버렸다.

다행인 건 의식이 없던 와중에서도 혼원무상독령공이 쉬지 않고 움직여주었다.

시간이 흐르고.

태주는 슬며시 눈을 떴다.

얼마나 오래 지났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끄응,"

주변에서 풍기는 악취.

다 몸에서 흘러나온 것들.

'···살았구나.'

죽는 줄 알았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10일? 10일이나 지났어?'

미친!

이거 정말이야?

예상보다 너무 지났잖아.

'그래도 용케 살았네.'

순간!

꼬르르륵,

배가 고프다.

일단 먹고 하자.

태주는 무한공간에서 생수를 꺼내 한 병 다 비우고는 편의점 도시락도 하나 꺼내 먹었다.

입가심으로 선도 하나, 아니 두 개.

와그작! 와그작!

역시 선도가 최고.

"후우,"

살 것 같다.

이제 상태를 확인해보자.

달라진 게 있나?

기절해 있는 동안 독정은 잘 성장했다.

전신에 독기가 충만하게 흐른다.

그러나 10성 대성은 실패.

독정 폭발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가만!

'공유창고는?'

빛나지 않는다.

정신을 잃은 사이에 배송 신호가 지나갔겠지.

'하씨, 물건 못 보냈네.'

10일이면 두 번은 넘겠는데.

그것도 그거지만 당군악이 많이 걱정하겠다.

하지만 그도 시간이 걸릴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괜찮을 것 같다.

두 번째부터는 훨씬 나을 터.

성장한 독정이 잘 받아줄 테니까.

최소한 정신을 잃지는 않겠지.

독도 충분히 소화를 시킨 것 같고.

태주는 스마트폰으로 태홍 바이오 임직원이 모인 단톡방에 메시지를 남았다.

[태주] : 저, 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자 폭발적으로 줄줄이 올라오는 톡들.

[백총괄경영자] : 자그마치 열흘이에요! 걱정했잖아요.

[백원장님] : 다행이군. 오늘 연락이 없었다면 수련실 문 따고 들어갈 뻔했어.

[창훈이] : 싸부님! 염려하지 마십시오. 철통같이 지키겠습니다.

[순철이] : 일백이 잘 먹고 잘 자고 있습니다.

[순철이] : ㅎㅂㅇ[깆,..ㅂ후774[;'/려 ㅜㅗ

[순철이] : 위의 글은 일백이가 쓴 겁니다.

.

.

.

[태주] :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릴 것 같습니다. 간간이 톡 날릴게요.

하나 소화했으니 계속 가자.

또 10일이 걸리진 않겠지.

다음 독은 독각화망의 뿔.

그걸 먹기 좋게 가루를 내어 환으로 빚었다.

'이건 씹어서 먹으라고 했으니까···.'

태주는 입에 넣어서 오물오물 씹어서 목구멍으로 넘겼다.

순간!

"어우야."

바로 반응이 왔다.

뜨겁다.

매우 뜨겁다.

치지지직! 치치칙!

내장이 타 들어간다.

용암 속으로 빠진 기분.

"···씨발!"

피부에서도 뜨거운 열기가 발산됐다.

전신이 그랬다.

피부, 내장, 뼛속까지 전해지는 엄청난 열기.

만년오공의 독과는 성질이 다르다.

열독(熱毒).

만년오공의 독이 융해로 전신 세포가 녹아내렸다면 독각화망의 독은 뜨거운 열기로 녹인다.

이것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독.

'저, 정신을 잃으면 안 되는데···,'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또 기절.

그리고 다시 눈을 뜬 태주.

'···며칠 지났지?'

8일.

만년오공 때와 합하면 무려 18일.

독물 소화 예상 시간이었던 15일에서 3일이나 지났다.

문제는 아직 2개가 더 남았다는 것.

'상태는?'

다행히 가뿐하다.

독각화망 독도 완전하게 흡수한 모양.

하지만 독정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고.

'공유창고가···.'

여전히 빛이 꺼져 있었다.

'또 못 보냈구나.'

당군악이 많이 걱정할 텐데.

'배송 신호 받고, 물건 보내고 먹을까?'

아니다.

멈추지 말고 끝까지 가자.

물과 도시락으로 배 채우고, 선도도 세 개씩이나 해치우고, 단톡방에 생존 메시지도 보냈다.

'다음으로···.'

학정홍.

이건 액체로 된 독물.

한입에 꿀꺽 삼켰다.

그러자.

독정이 반응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그러나 진동하기만 할 뿐 폭발은 하지 않았다.

대신 태주의 전신에 새하얀 얼음꽃이 피어났다.

"무, 무슨?"

드드드드드···,

쉴 새 없이 부닥치는 이빨.

춥다.

추워 미치겠다.

방금 전까지 불구덩이에 있었는데 이번엔 얼음 속에 갇혔다.

태웠다, 얼렸다, 난리가 아니었다.

이러니 적응이 될까?

극양의 독, 그리고 극음의 독.

번갈아 가면서 고통을 주니, 또 정신을 잃을 수밖에.

"제기랄···."

기절.

그리고.

눈을 떠보니 6일이 지나있었다.

하지만 달라진 건 별로 없다.

독정 폭발이 될 듯하다가 멈췄다.

'이러다 대성 못 하는 거 아냐?'

마지막 남은 하나.

인면지주의 독.

무지막지한 환각 독으로 먹이를 유인해 체액을 쪽쪽 빨아먹는다는 전설 속 거미 요괴.

'가자!'

끝을 내자.

이번에도 안되면 어쩔 수 없고.

태주는 인면지주의 독단을 한 번에 삼켰다.

꿀꺽.

독단이 순식간에 녹아서 전신으로 퍼졌다.

반응이 온다. 반응이 와.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

"아아아아!"

날아갈 듯한 기분.

세상이 알록달록 총천연색으로 변했다.

이번엔 물감 구덩이에 빠졌나?

그래도 고통은 없어서···,

"끄허어어억!"

내 이럴 줄 알았다.

고통이 없기는 왜 없어?

바들바들, 떨리는 몸.

추워서 그런 게 아니다.

일종의 금단현상.

목이 마르다.

배도 고프다.

똥오줌이 마렵고, 피부가 간질간질, 미칠 지경.

그리고 성욕도,

여자의 살냄새가 그립다.

누구라도 옆에 있으면 확 덮쳐버릴 것 같다.

더불어 세상에 대한 살의.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누구든 만나면 죽여버리고 싶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욕망이 한꺼번에 밀어닥치는 것 같다.

뭐든 하고 싶다.

이것도, 저것도.

그런데 뭐든 할 수 없다.

그래서 더더욱 미치겠다.

아니지.

밖으로 나가면 되잖아.

스슷!

만리비검을 꺼내든 태주.

지잉!

강기를 일으켜 철문을 잘라내려고 했는데.

바로 그 순간!

웅! 웅! 웅! 웅! 웅! 웅···.

세차게 진동하는 독정.

찌잉! 찌이잉! 찌잉! 찌잉! 찌이잉!

독정이 팽이처럼 돌아갔다.

그리고,

파아아아아아아앗!

터져버렸다.

파앙! 파파팡! 팡팡팡팡!

큰 거 하나 터지고, 뒤를 이어 조각난 파편들도 터지고.

마치 불꽃놀이처럼.

독정 폭발의 순간이었다.

그전과는 다른 강렬한 대폭발이었다.

※ ※ ※

선계(仙界) 멀티플렉스.

"후우···,"

건물이 꺼질 것 같은 한숨 소리.

주선(酒仙)이 당군악의 눈치를 보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독선, 아직 연락이 닿지 않았소?"

"···."

"그, 그렇군. 너무 걱정 마시고···,"

"씨발! 자꾸 말 걸지 말고, 날 좀 내버려 두시오!!!"

찔끔!

주선은 입을 꾹 닫았다.

지구에서 자주 쓰는 욕설이 당군악의 입에서 연신 튀어나오고 있음에도.

"에이, 썅! 씨발, 씨바알!"

"···."

독선의 기세가 너무나 날카로웠다.

하지만 뭐라 할 수 없었다.

왜 저러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군악은 속이 답답해서 미칠 지경.

태주와의 소통이 중단된 지 너무 오래됐다.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처음엔 보름 정도 예상했다.

4개의 독물을 완전하게 소화하는 기간 말이다.

독물이 넘어가는 시간이 있으니 넉넉잡아 18일.

그런데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그 기간에 벌써 공유창고가 7번이나 반짝였다.

첫 번째는 가득 차 있었지만 두 번째부터는 텅 빈 공유창고, 세 번째도, 네 번째도···, 일곱 번째마저도.

즉 처음을 제외하고는 지구 쪽에서 물건을 넣지 않았다는 의미.

그래서 멀티플렉스 쇼핑물에 비치된 물건도 거의 품절 상태.

물건을 통 받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물건 따위가 뭐가 중요한가?

아예 받지 않아도 된다.

당군악의 뇌리는 온통 태주에 대한 걱정뿐.

독을 무리하게 섭취하다 잘못된 건 아닌지.

천마를 잡으러 갔다가 당한 건 아닌지.

순간!

위층에서 뛰어 내려오는 귀곡 선인.

"독선! 도옥선! 기, 기쁜 소식이요. 글쎄, 태상노군이 곧 있으면 천계로 가서 회합을···,"

"쉿!"

"아, 아니 왜···,"

고개를 사정없이 옆으로 흔드는 주선, 귀곡 선인이 눈으로 물었다.

'아직?'

'아직.'

귀곡 선인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슬며시 의자에 앉았다.

갈홍 선인도 호들갑을 떨며 내려왔다.

"독선, 독선, 이거 큰일 나게 생겼소. 지금 품절된 물건이 몇 개인지 아시오? 곧 있으면 천계, 황천계에서 고객들이 우르르 몰려올 텐데···."

그러자 불같은 눈빛으로 갈홍 선인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주선과 귀곡.

"···어."

머리가 좋은 갈홍 선인이라, 분위기 파악은 기막히게 잘한다.

"험험."

그래서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갑자기 저 바깥에서 들리는 바이크 소리.

푸다다다다닥!

더거덩! 더거덩, 푸르르륵!

검정색 바이크 수트를 입을 검선이 헬멧을 벗으며 들어왔다.

"독선, 휘발유가 다 떨어졌소. 한 통 더 있어야···,"

멈칫!

검선은 발걸음을 멈췄다.

슬며시 곁눈으로 독선의 표정을 살펴보고는,

"생각해보니 요즘 운동이 부족한 것 같군. 가끔은 걸어 다니는 게 좋겠어."

그대로 뒤를 돌아 나갔다.

사실 당군악은 주위에서 무슨 말을 하든,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답답해서 미쳐버리겠는데.

'정녕 방법이 없나?'

지구가 강호의 인간계였다면 당장 강림했을 텐데.

전혀 다른 세상이라 그럴 수도 없고.

'상제나 염라라면 무슨 수가 있을지도···.'

그때였다!

차르르르르르!

당군악의 단전에서 세차게 요동치는 독정, 아니 독령.

'무슨···,'

혼원무상독령공 대성은 물론, 독령도 이루었고, 등선까지 한 마당에 뜬금없이 왜? ···가만!

'설마?'

파앗!

영혼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기분.

그리고 연결.

드디어 이루어졌다.

다른 세상의 나.

지구의 절대독마.

김태주와의 영혼 연결이.

'아!'

연결되자마자 깨달았다.

'독물을 다 소화했구나.'

저쪽 세상에서도 응답이 왔다.

예를 들어 이런 식으로.

태주, 대성에 이르렀나?

네.

영혼 연결.

첫 번째는 설악산과 강호 무림에서, 혼원무상독령공을 비롯한 무공이 전해졌고.

두 번째는 구례 지리산과 선계에서, 무한공간이 전해졌고 그후 공유창고가 생성됐다.

지금은 세 번째.

그런데 뭔가 남다르다.

왜 독령이 반응을 하지?

태주의 독정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기운, 당군악에게도 익숙하지만 또 낯선 것.

'독령? ···그러기엔 너무 약해. 아니, 비슷한가?'

그렇다면?

'아···, 씨앗, 그래, 씨앗이야. 씨앗이 만들어졌어.'

원래 독령이라는 것이 각성하듯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태주의 경우엔 미약하나마 씨앗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

즉, 단계적인 성장을 예고하는 듯한, 예를 들어 독령으로 나아가는 발판 말이다.

'그래서 내 독령이 반응을 했구나.'

사실 태주의 독령은 너무 미약하다.

자아도 갖춰지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독령의 깨달음이 자신과 다른 원인은 뭘까?

아마 선기(仙氣) 때문일 것이다.

'선도와 신선주를 마시면서 꽤 많은 양의 선기가 태주의 독정으로 흘러 들어갔을 테니.'

한마디로 독령의 출발점부터가 달랐다.

선기를 받아들이면서 성장한 태주의 독정.

그리하여 혼원무상독령공이 대성을 이루는 순간, 한발 더 나아가 독령의 씨앗도 만들어 냈다.

그간 당군악을 그토록 답답하게 짓눌렀던 근심과 걱정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의 눈이 촉촉하게 젖었다.

동시에 뒤를 이은 환희.

'고생했다.'

태주가 미안하다고 전해왔다.

자신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아니, 멍청한 내 탓이지.'

태주와 영혼이 연결되고 나서야 알았다.

독물의 독성이 생각보다 강했다.

솔직히 자신도 처음 보는 독들.

만년오공, 인면지주, 독각화망, 선학의 학정홍.

강호 무림에서도 지극히 희귀해서 독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꿈꿔오던 것들이었다.

그런 것들을 자신의 기준에 맞춰버렸다.

물론 태주의 성취를 감안했다지만 독물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저렇게 씩씩하게 이겨내다니.

'천마를 만났군. ···잡을 건가? 흐흐, 그래야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거네.'

영혼의 소통.

생각과 생각이 전해진다.

저쪽에서 무엇을 말하는지 다 알 것 같다.

'마나 거부증 치료제에 대한 단서도 찾았구나.'

그런데?

찌르르르, 찌르르르, 찌르르르.

연신 머릿속에서 울리는 배송 신호.

영혼이 연결되고 있는데 무슨?

태주도 인식하고 있었다.

이쪽도 배송 신호가 울리고 있다고

'자네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한공간을 열고 공유창고를 열어보려 했는데···,

'아!'

당군악은 깜짝 놀랐다.

스슷!

무언가 커다란 공간이 눈앞에 보인다.

자신의 것이 아니다.

다른 세상의 나, 태주의 무한공간이었다.

태주도 마찬가지.

당군악의 무한공간이 보이면서 온통 반짝이고 있었다.

'이게 대체?'

공유창고 형식이 아닌 그냥 무한공간.

태주의 무한공간에 차곡차곡 쌓인 물건들이 보인다.

당군악은 무심결에 태주의 무한공간으로 손을 뻗었다.

스숫!

건드리자마자 자신의 무한공간으로 옮겨지는 물건.

"허허!"

원인이 뭔질 알겠다.

'이렇게 된 거군.'

영혼이 연결되는 도중에 배송 신호가 떴다.

그러면서 무한공간도 함께 연결되어 버린 것.

결과적으로 서로의 무한공간을 볼 수 있고, 그 안에서 물건을 꺼낼 수도 있다.

'반짝 이벤트야.'

영구적이 아닌 일시적이다.

영혼 연결이 끝나면 사라질 것이다.

태주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뭐 하세요? 빨리 옮겨요. 이러다 연결이 끊길라.

당연히 옮겨야지.

그리하여 선계에 백화점 하나가 통째로 건너왔다.

주선과 귀곡, 그리고 갈홍은 울다가 웃다가, 멍하니 정신줄 놓았다가, 갑자기 화들짝 놀라는 당군악을 수상한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었다.

'독선 왜 저러나? 울다가 웃다가.'

'태주 대협 걱정에 아마 미쳐버렸나 보오.'

'쯧쯧,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거늘.'

이유를 알 리가 없는 신선들이었다.

< 반짝 이벤트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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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으러 가자. >

태주가 폐관 수련에 들어가기 전.

그러니까 천경호가 폭우침을 만천화우로 착각하고 겁에 질린 나머지 정신없이 도망쳤던 그때.

천경호는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고비 초원을 내달렸다.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자 그제서야 드는 생각.

'···진짜 만천화우가 맞을까?'

무간지옥의 진짜 천마와 기억을 공유한 천경호.

그래서 십만대산 마교 본단에서 당한 그 끔찍한 만천화우의 위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흐음, 조금 모자란 것 같은데.'

하지만 도망친 건 잘했다.

현장엔 황제와 금수호, 거기에 김태주의 명령을 따르는 엘리트 이상급의 마수가 함께하고 있었으니까.

싸웠어도 밀렸을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절대 자신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잠시 쉬자.'

조금 지친다.

천마 신공이라도 돌리면 괜찮을 텐데 매개체가 없다.

급하게 도망치느라 엘리트 결정체 하나 챙기지 못했다.

고비 초원을 통과했으니 중앙아시아쯤인가?

가까운 곳에 도시라도 있을 법한데.

바로 그때!

부르릉! 부릉! 부우우웅!

'음?'

저 멀리서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자동차들,

거의 다 오프로드 SUV였다.

'설마?'

천경호는 벌떡 일어났다.

추적자가 붙었나?

'이런!'

눈에 힘을 주고 자세히 살펴보니.

'휴우.'

제국군은 아니었다.

평범한 사냥꾼 복색.

머리와 눈동자를 보니 중국 유민 혹은 제국민.

부르릉, 부릉!

천경호를 가운데 두고 뱅뱅 도는 자동차들.

차 유리창을 열고 소총과 권총을 든 놈들이 고개를 내밀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끼얏호!"

"겁도 없는 놈이구나. 여길 혼자 지나가다니."

"크하하하하!"

"쫄았냐? 새끼야?"

중국어.

어떤 놈들인지 알겠다.

'마적이네.'

대부분 일반인, 각성자는 단 한 명, 저놈이 두목 같다.

그런데 저 각성자가 평범한 놈이 아니다.

'···이게 웬 떡이지?'

그렇지 않아도 지쳐서 마기가 고프던 참이었는데.

천경호의 얼굴엔 각성 문양이 없다.

그래서 안심하고 달려왔겠지.

끼익!

SUV 차량들이 멈췄다.

그 안에서 줄줄이 나오는 마적들.

"손들어!"

"어딜 꼬나봐?"

"야! 넌 저 새끼, 홀라당 벗겨버려."

그러자 천경호가 한발을 내디뎠다.

쿠웅!

파아아앗!

발밑에서 피어오르는 먼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강렬한 기세.

"흡!"

"···어."

"이, 이게?"

"으으으으으."

"···."

모두들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툭! 투투툭! 투둑!

가지고 있던 총기들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천마군림보.

단 한 발자국 움직임으로써 상대를 제압하는 천마의 독문 무공.

때로는 빠르고 변화무쌍한 보법의 일종이지만 동시에 상대를 제압하는 공격 기술이기도 하다.

천마군림보는 원래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다.

도망치는 게 아니라.

뿌득! 뿌드드득!

마적 중 딱 한 명 있던 각성자의 몸이 변했다.

커진 몸체, 길어진 손톱, 날카로운 이빨, 털이 숭숭 올라온 얼굴.

놈은 마인이었다.

천마군림보로 인해 강제 마수화됐다.

저벅저벅 다가가는 천경호.

"제, 제발 사, 살려···,"

씨익, 웃으며 마인의 정수리로 손을 뻗었다.

"큭!"

삽시간에 빨려가는 마기.

"끄아아악!"

그 커다란 마인의 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마기 흡수.

동시에 천마 신공이 운기를 시작했다.

"한숨 돌렸군."

여전히 다른 마적들은 꼼짝도 못 했다.

천경호가 그들을 보며 물었다.

"여기서 유럽으로 가는 길 아는 놈? 손 들어봐."

그러지 슬며시 손을 올리는 일반인 마적.

"운전은?"

"···하, 할 줄 아, 압니다."

"그래?"

순간!

퍼벅! 퍼버버버벅! 퍼벅!

손을 든 마적을 제외하고 나머지 놈들의 머리가 한순간에 터져나갔다.

"허억! 제, 제발!"

"쫄지마. 살려줄 수도 있어."

"저, 정말입니까?"

천경호는 오프로드 자동차 한 대에 올라타며 말했다.

"가자."

"네, 네!"

덕분에 편하게 가게 생겼다.

유럽 제국에서 적당한 도시를 골라 일단 거기서 숨어지낸다.

될 수 있으면 조용히.

그리고 다시 아메리카 공화국으로.

아메리카 대륙은 숨을 데가 많은 곳이다.

특히 남부 아메리카는 마인의 천국이라 불려서 먹을 것도 많다.

일단 유럽에서 여비도 마련하고 숨을 돌렸다가 건너가야지.

누가 자신을 알아봐?

절대독마 김태주와는 절대 마주칠 일이 없을 것이다.

천경호의 생각은 맞은 듯했다.

유럽에 도착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갔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 ※ ※

태주의 자택 지하수련실.

아직 당군악과의 영혼 연결이 끊기지 않았다.

독정 폭발.

거의 하루 꼬박 이루어졌다.

인면지주의 환각독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육체가 아닌 정신에 작용하는 극독.

때마침 독정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바깥으로 나가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 모른다.

파파팡! 팡팡!

독정 폭발로 인한 분해, 그리고 재구성.

혼원무상독령공 10성 대성의 순간.

독에 대한 이해도가 급상승했다.

머리로 익히는 지식이 아니라, 독정의 독 분석 및 조합 능력 말이다.

또한 당군악과의 영혼 연결.

그간의 경험과 기억이 머릿속에 쏙쏙 박혔다.

'선계가 많이 변했네.'

더 이상 무료한 감옥이 아니었다.

활력과 생동감 넘치는 세상이었다.

당군악의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

영혼이 연결되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주고받는 교감.

순간!

찌르르르, 찌르르르, 찌르르르.

마구마구 울리는 배송 신호.

이게 왜 지금?

'···어.'

두 개의 창이 떠올랐다.

하나는 자신의 무한공간, 하나는 당군악의 무한공간.

심지어 옮길 수도 있었다.

이게 웬 대박?

자신과 당군악의 무한공간이 공유되었다고?

영혼이 연결되면서 이루어진 반짝 이벤트.

'어서 가져가요. 연결이 끊길라.'

당군악이 태주의 무한공간에 든 물건을 자신의 공간으로 옮겼다.

태주가 일상에서 쓰는 물건들을 제외하고,

예를 들어 암기라든가, 독물이라든가, 개인용 장비라든가.

태주도 그렇게 했다.

당군악의 무한공간엔 수백 개의 선도가 가득 쌓여있었다.

개중엔 상품과 최상품 선도들도

'다 가져가도 되나?'

이 귀한 물건들을.

그럼 염치없는 짓이다.

지구로 따지면 100억 넘은 최상급 영약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이 선도인데.

그러자 당군악이 자신의 의사를 전달해왔다.

먼지 한 톨 남기지 말고 싹 가져가라고, 자신도 그렇게 하겠다며.

뭐, 하는 수 없다.

싹 옮겨야지.

그래서 당군악이 선계에서 사용하는 물건만 빼고 싹 옮겼다.

서로 비워지고 채워지는 무한공간.

너무 기분이 좋다.

이런 이벤트 또 한 번 안 하나?

아마 독령이 씨앗을 틔워 완전하게 각성하면 다시 기회가 생길 수도.

그리고 잠시 후.

영혼 연결이 결국 종료됐다.

'하아,'

많이 아쉽다.

그냥 얼굴 대고 마주 앉아서 밤새도록 썰이나 풀고 싶다.

아니면 정연희, 황제, 금수호처럼 둘이서 대련이나 해보던가.

물론 상대도 안 되겠지만.

아무튼 이룰 건 다 이뤘으니.

'밖으로 나가자.'

지하실 수련장 문 가장자리를 용접해놓아서 열지도 못한다.

태주는 탈명비도에 강기를 일으켰다.

찌이잉잉!

선명하게

확실히 강해진 느낌이 들었다.

독기뿐만이 아니라 강기도 농밀해졌다..

가장 괄목할 만한 성장은 바로 무한공간.

엄청나게 커졌다.

그에 발 맞춰 공유창고도.

쑤욱!

생크림 케이크에 칼을 집어넣듯 별 저항 없이 들어가는 탈명비도.

서거거거거거!

그 두꺼운 강철문이 네모반듯하게 잘렸다.

"어? 스, 스승님!"

"순철아. 잘 있었니?"

"넵! 기다렸습니다."

순간!

어떻게 알았는지 삼백이가 조그만 발을 빠르게 움직여 달려오더니.

도도도도도도!

폴짝, 뛰어서 달려와 안겼다.

"니앙!"

마침내 폐관 수련이 끝났다.

하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았다.

※ ※ ※

폐관 수련이 끝난 뒤, 태주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돌렸다.

그동안 받아놓고 답장을 하지 못해 쌓였던 엄청난 숫자의 미확인 메시지들.

황제부터 시작해서 금수호, 오진현 중장, 리더스 클럽 오너 이고르, 백두 그룹 정욱철 회장···.

그러고 나서 고아원 원장 백홍표를 만났다.

"어떤가? 진전이 있었나?"

"거의 다 왔습니다."

"흐음, 내가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했네만···,"

어쩐지 표정이 어두운 백홍표.

"무슨 일 있습니까?"

"사실 얼마 전에 우리 고아원에 마나 거부증을 앓고 있는 아이가 왔거든. 청소년인데도 증상이 심해서 계속 누워지내는 상황이라."

서둘러야겠다.

혼원무상독령공을 대성은 마나 거부증 치료제를 만들기 위한 마지막 퍼즐 조각이었다.

천마 처리하고 돌아와 바로 실험에 들어갈 생각.

그러고 나서 태주는 백서연을 만났다.

"또 가신다고요?"

황당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백서연.

물론 김태주 회장님이 계시지 않아도 회사 돌아가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아니, 거의 한 달 동안이나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봤으면 됐잖아요. 그리고 전화도 받을 수 있으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주세요."

"흐음, 딱히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주 후에 파주 공장 준공식이 예정되어 있어요."

"그때까지는 돌아올게요."

그리고 태주는 파주 영주관으로 갔다.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변하는 장소가 있다면 바로 선계(仙界)와 파주일 것이다.

서필명은 얼굴도 보지 못했다.

영주관 직원들과 파주 영지 곳곳을 돌아다니느라 영주관에 있는 시간도 거의 없단다.

지금도 곳곳에서 기반 시설 공사가 이루어지는 파주.

돈 들어갈 데가 좀 많나?

그래서 태주의 몫으로 들어오는 약품 판매 수익금 통장 중 하나를 서필명에게 맡겼다.

"류 부대장."

"네! 영주님. 흐흐."

류과장, 이젠 파주 영지 영지군을 맡게 된 류진철 부대장.

"현재 영지군 상황은?"

"일반 병사 50명, 적합자 부사관 5명, 그리고 각성 장교는···, 저 한 명입니다."

상당히 열악하다.

원래 영주였던 김웅방 준장이 파주 영지를 다시 제국에 반납하겠다는 뜻을 밝히자마자, 각정 장교와 적합자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떠났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후, 태주가 영지를 물려받았다는 소식이 들리자 다시 영지군에 입대하겠다고 신청이 쇄도했지만, 절대 받아주지 않았다.

떠난 사람들을 왜 받아?

"DMZ 마수 밀집지대 토벌 계획은 그대로 진행될 거니까, 걱정 말고 그에 맞춰 준비해."

"하하하, 형님, 아니 영주님만 계셔도 마수들은 죽은 목숨인데, 제가 걱정을 왜 합니까?"

정연희가 손을 들면서 말했다.

"저도 있어요."

"아! 그러네요."

자신에 찬 정연희의 표정.

한 달 동안 실력이 얼마나 늘었을까?

"70% 달성이에요. 아마 반년 안에 100% 달성 확신하고 있어요."

반년?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아마도 그보다 더 빠를 것이다.

특성이 검후인데, 그깟 복마검법쯤이야.

"검은 잘 쓰고 있죠?"

"너, 너무 좋아요. 어디서 이런 검을···."

"황제 폐하가 바꾸자고 해도 바꾸면 안 돼요."

"절대!"

어쨌거나 사람들 잘 들이니 편해서 좋다.

대가는 충분히 줬다.

서필명에겐 거액의 연봉과 집, 그리고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권한을 줬고, 정연희에겐 복마검법과 검을 줬다.

오황자 류진철은?

생명을 구해준 은혜 때문에, 자신의 옆에 붙어있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누구에게 붙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아는 놈이다.

당연히 황제의 눈에 들려고 말이다.

나쁘지 않다.

만약 황권에 욕심이 있다면 그 정도 머리는 있어야지.

태주는 오랜만에 파주 영지 영주관에 머물렀다.

제정원 문경식 차장이 메일로 보내온 천경호에 대한 자료를 읽어보는 태주.

역용술로 변한 얼굴이 아닌 놈의 진짜 얼굴 사진, 동영상, 그리고 존속 살해 용의자로서 경찰이 수사한 기록.

서서히 감이 잡힌다.

놈의 정체가 머릿속에서 구체화 되었다.

천마.

절대독마 당군악의 대적자.

그러나 태주에겐 아무것도 아니다.

놈은 아직 천마 신공을 대성하지 못했다.

자신은 대성했고.

당군악에게 미안하지만 그가 혼원무상독령공을 대성했을 때보다 지금의 자신이 훨씬 강하다.

독정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기존 독의 기운에, 마나와 선기까지 각인된, 그래서 이미 독령으로 성장을 준비 중인 독정.

따라서 만천화우가 없어도 놈을 죽이는 건 너무나 쉽다.

어느덧 늦은 밤.

영주관 앞마당에서 선계의 보패, 추적부를 꺼내 천마 천경호의 존재를 떠올리자,

화르르륵!

추적부가 불타면서 하얀 재가 훨훨 날아갔다.

'북서쪽이구나.'

방향이 정해졌다.

혼자 갈 생각이다.

그래서 일이삼백이도 구례에 두고 왔다.

그깟 천마 하나 잡는 데 둘이나 갈 필요가 없지.

※ ※ ※

선계(仙界).

싱글벙글, 당군악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허허허, 검선! 기름이 떨어졌으면 바로바로 이야기하지, 그랬소."

"···."

"자자, 내가 넣어드리리다. 서비스요."

"괜찮···,"

"어허! 가만히 계시오. 내가 다 할 테니."

주선이 영업하는 칵테일 바로 가서.

"주선! 황금종을 울리시오."

"화, 황금종을?"

"오늘 신선들이 마시는 술은 전부 내 앞으로 달아놓으시라고."

딸랑딸랑!

멀티플렉스에 황금종, 골든벨이 울렸다.

"헉! 고, 공짜 술?"

"독선 만세!"

"김태주 만세!"

"화선, 저 뒤에 태주 대협 얼굴을 그려서 붙여놓으시오. 매일매일 보면서 인사하게."

"좋지. 솜씨 한번 부려볼까?"

쇼핑몰에도 물건이 꽉 들어찼다.

커다란 플래카드엔.

<우주의 자랑 김태주, 혼원무상독령공 10성 대성 기념 전 품목 30% 세일>

"자자, 오늘 아니면 이 가격에 못삽니다. 지금 바로 결정하시오."

"이거, 이거 빨리 계산해주시오! 신용패 여기 있소."

"내가 먼저 잡았잖아!"

"증거 있어?"

축제였다.

선계에 활기가 가득가득 흘러넘쳤다.

< 잡으러 가자.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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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이 다르다. >

선계의 보패인 추적부도 한계가 있었다.

거리가 너무 멀면 가리키는 방향이 흐릿하다.

만리비검을 타고 열심히 북서쪽으로 달려왔는데 도착한 곳은···,

"후우,"

지금은 폐허가 된 바룬의 밀 농장.

놈과 처음 마주친 그곳.

'그래도 성능은 확실하네.'

어쨌거나 천경호가 여기 있었던 건 분명했으니까.

태주는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천경호의 얼굴, 놈의 행동, 여기서 도망치기 위해 놈이 펼쳤던 천마군림보.

그리고 다시 무한공간에서 추적부를 꺼냈다.

화르르륵!

다시 날아가는 재.

쓰면 쓸수록 점점 효과가 좋아지는 추적부.

'서쪽.'

태주는 만리비검으로 계속 날았다.

쐐애애애액!

그러다가.

'···여긴가?'

저 밑에서 SUV 자동차들과 시체들이 보인다.

추적부가 이리로 안내했다.

태주는 밑으로 내려갔다.

'흐음,'

곳곳에 널린 시체들.

대부분은 머리에 구멍이 뚫려 죽었다.

이미 부패해서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다.

'마적이군.'

그런 모양.

중앙아시아 지역에도 도시가 있지만 사이사이 거리가 꽤 멀다.

마수에 의해 철도가 파괴되어 오직 자동차, 혹은 직접 걸어서 오고 갈 수 있고.

근처에 숨어 있다가 여행자나 상인들이 지나가면 습격해서 돈을 빼앗는 마적들이 많다고 들었다.

'천경호에게 당했네.'

시체 중 하나는 각성자였다.

몸이 바짝 말라서 미라가 된 걸 보아 마기 흡수에 당한 것이 틀림없다.

확실히 위험한 놈이다.

죽은 놈들이 마적이라 그나마 다행.

추적부 하나 더 꺼내서.

화르르륵!

서쪽으로, 또 서쪽으로.

마침내 유럽 제국 초입에 위치한 대도시 기차역 상공에 도착했다.

'유럽? 멀리도 갔다. 여기서부턴 기차로 이동했군.'

이러다 대륙을 넘어버리는 거 아니야?

추적부도 아깝다.

벌써 3장이나 소모했다.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고.

점점 추적부의 방향이 명확해졌다.

멀지 않았다.

또 서쪽, 계속 서쪽.

결국 최종적으로 도착한 목적지가 프리 바르셀.

'그래도 대서양은 안 건넜네.'

태주는 밤이 되어서야 프리 바르셀 도시 번화가로 들어섰다.

추적부가 명확해졌다.

가까운 곳에 놈이 있다.

결국,

'찾았다.'

도심 한가운데 허름한 호텔.

테라스로 나와 음료수 같은 걸 들이키는 천경호.

'거기 있었구나.'

※ ※ ※

300년 전 전 세계가 멸망의 위기에 처할 무렵 유럽도 아비규환의 지옥 그 자체였다.

마나에 의해 죽어가는 사람들.

시체가 산을 이루었다.

순식간에 유럽 인구의 절반이 죽었다. 곧이어 절반의 절반이 죽었다.

데자뷔 현상.

이런 경우가 한 번 있지 않았나?

중세 유럽을 초토화한 흑사병 말이다.

하지만 전염병이야 감염원을 차단하고 치료제를 개발하면 되지만 마나는 대기에 녹아있어 속수무책이었다.

100년쯤 지나자 마나에 적응하기 시작한 인류.

물론 동식물도 마찬가지였다.

마수들이 나타났다.

당연히 각성자도 나타났다.

국가의 경계가 무너지고, 사람이 많은 도시를 중심으로 국가를 건설해 뭉치기 시작한 유럽.

그 시점에 걸출한 영웅이 나타났다.

알렉스 카이사르 황제.

역사적 위인인 알렉산드로스와 카이사르를 합친 초기 각성자 영웅, 알렉스 카이사르는 도시 국가 메가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 정복에 나섰다.

그리하여 세워진 국가가 바로 유럽 제국이었다.

천경호는 유럽 제국 서쪽에 있는 프리 바르셀에 있었다.

기존 바르셀로나는 온난화의 영향으로 바다에 잠겼다.

원래 지역의 동북쪽에 새로 건설된 도시.

유럽의 대도시 네오 베를린이나 수도 메가 로마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낙후됐다.

초거대 마수 밀집지대인 피레네산맥이 바로 프리 바르셀 북쪽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동 인구가 워낙 많다 보니 치안도 그리 좋지 않다.

수많은 빌런 조직들이 프리 바르셀에서 암약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경호의 입장에선 이보다 더 좋은 도시가 없었다.

적당한 빌런 조직 하나 접수해서 쥐어짜면 돈을 모으는 데 편하기도 하고, 간간이 마기를 흡수해 힘도 키우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프리 바르셀에 와서 쓸 돈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며칠 전 마주친 껄렁껄렁한 익스퍼트급 각성자 한 놈을 몰래 쫓아가 마기 흡수로 해치우고, 쓸 돈도 마련했다.

그 돈으로 호텔 방도 잡고, 이렇게 피로회복 드링크제도 사서 마시고.

그나저나 이 드링크, 마시면 마실수록 감탄이 절로 나온다.

육체적 피로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피로도 해소시켜 준다.

유럽 제국 산(産)이 아니다.

역시 물 건너온 거라 그런지 다르다.

'지낼수록 마음에 드는군.'

원래 계획은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 공화국으로 넘어가 기반을 닦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도 괜찮다.

프리 바르셀.

낙후된 시설의 도시지만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삼한 제국에 비유하면 이곳은 구례와 비슷하다.

지리산 마수 밀집지대 때문에 항상 마수 웨이브의 위협에 시달려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던 도시, 그러나 마수 사냥으로 인한 부가적 이익 덕택에 유동 인구가 많아서 돈의 흐름이 활발한 도시.

김태주가 바로 그 구례에서 성장했다.

해독제를 만들어 돈을 벌고, 고아원을 접수해서 세력을 모은 후, 마침내 삼한 제국 실세로 거듭났다.

'나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프리 바르셀도 구례와 비슷한 환경이다.

마수 밀집지대, 유동 인구, 넘쳐나는 돈.

'이곳에 머무는 것도 괜찮겠어.'

굳이 아메리카 공화국으로 넘어가는 것보다는.

'조직을 하나 접수해야겠군.'

아니지.

이참에 빌런 조직을 모조리 통합하자.

프리 바르셀의 빅보스.

천마 천경호.

나아가 마교까지 건설하면?

김태주가 구례를 기반으로 훨훨 날아오른 것처럼, 자신도 프리 바르셀을 기반으로 힘을 기른다.

'진작 이리로 올 걸 그랬구나.'

절로 웃음이 나온다.

천마로서 다시 태어났으니, 지구에 마교를 건설하는 건 의무나 다름없다.

천경호는 손에 든 피로회복 드링크제를 들고 자신이 기거하는 호텔 방 테라스로 나갔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화려한 조명으로 훤하게 보이는 거리.

오고 가는 수많은 사람, 일반인과 적합자, 그리고 각성자.

'이들을 흡수해 마교도로 삼으면···,'

인종은 자신과 다르다.

언어도 다르겠지.

스마트폰 통역프로그램으로 간신히 소통해야 했으니까.

그러나 여기서도 삼한 제국의 언어를 쓰는 자들도 찾아보면 몇 명은 있을 것이다.

찾아서 종복으로 만든다.

회(會)를 만들 때 그랬던 것처럼 마기를 주입해 심령을 제압해서.

이번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저기도 한 명 보인다.

삼한 제국민 같은 사람이.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하얀색 코트를 입고 자신을 바라보는···,

"···어?"

천경호는 눈을 쉴 새 없이 깜빡였다.

'뭐지?'

트라우마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진 걸까?

'기, 김태주?'

알려진 얼굴과는 전혀 다르다.

역용술로 변장했겠지.

자신도 그러고 있고.

그러나 숨길 수 없이 흘러나오는 놈의 기세.

놈이 맞다.

바룬 밀 농장에서 마주한 그놈이다.

게다가 이쪽을 바라보며 빙긋 웃고 있다.

덜덜덜덜.

드링크 병을 든 손이 떨린다.

"마, 말도 안 돼."

공포에 질린 천경호는 뒷걸음질 쳤다.

※ ※ ※

태주는 너무나 반가워서 저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가려는 천경호.

어딜 가려고?

츠핏! 츠피피피피피핏!

손에서 기관총처럼 쏘아지는 유엽비도.

"허억!"

천경호는 상체를 뒤로 젖히며 방안으로 굴렀다.

머리카락을 스치며 지나가는 암기.

'이, 이놈이, 어, 어떻게?'

천경호는 허둥지둥 호텔 방문 앞으로 달렸다.

순간!

스팟! 콱! 떼르르르르르···,

유엽비도가 호텔 방문에 박혀 세차게 떨고 있었다.

김태주가 왔다.

바로 등 뒤에 있다.

"천경호?"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천천히 뒤를 돌아보니.

"···누구? 나, 난 그런 이름 모르는데."

태주는 피식 웃었다.

"까불지 말고 역용술 풀어. 되다 만 천마 새끼야."

"무, 무슨?"

역용을 알아차린 건 그렇다 쳐도···, 천마?

분명 들었다.

자신을 천마라고 부르는 소릴.

이건 또 어떻게 알았지?

"강호의 천마 새끼는 무간지옥에 있고, 지구의 천마 새끼는 도망치기나 하고."

천경호는 당황했다.

모든 게 까발려졌다.

벌거숭이가 된 느낌.

"너도 내가 누군지 알고 있잖아."

"···."

"내가 바룬에서 폭우침 시전하는 것도 봤을 테고."

"···절대독마."

"그래, 나다."

영혼 연결자끼리 만났다.

그것도 서로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고.

그런데 폭우침?

"···폭우침이라니, 만천화우가 아니었어?"

"그 어려운 걸 내가 어떻게 익혀? 그냥 흉내만 냈을 뿐이다."

천경호는 잠시 머리가 띵했다.

만천화우가 아니었다고?

고작 폭우침으로 겁을 먹었다고?

어쩐지.

갑자기 자신감이 차올랐다.

만천화우만 아니라면···,

"흐흐흐, 반쪽짜리 절대독마로구나."

"그러는 넌? 천마 신공 대성했냐?"

"···."

천경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김태주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저놈도 대성하지 못했다.

그럼 해볼 만하다.

천경호는 자세를 바로 하고 김태주의 동태를 살폈다.

길다란 코트.

아마 옷 구석구석에 암기가 숨겨져 있겠지.

'암기만 피하면 돼.'

하지만 김태주에게서 전해지는 지독한 살기.

저릿저릿, 팔뚝에 닭살이 돋을 정도.

어째 더 강해진 듯하다.

바룬 밀 농장에서 보다 더.

"하나만 물어보자. 내가 천마란 건 어떻게 알았지? 그리고 여기 이 장소도."

"나한테서 들었어."

"···나? 아! 절대독마 당군악 말이냐? 영혼 연결이로군."

"그래, 무간지옥에서 천마와 만났다더군. 걔도 널 죽여달라던데?"

"제, 제기랄···,"

가만?

당군악이 천마와 만났다는 말은···.

"낄낄낄, 그 무시무시한 절대독마도 뒈져서 지옥으로 간 모양이구나. 이거 재미있네. 지옥에 나란히 갇혀있는 천마와 독마라니."

"아닌데? 당군악은 죽지 않았어."

"뭐?"

"우화등선해서 신선이 됐지."

"그, 그런 허무맹랑한 개소릴!"

스슷!

태주는 무한공간에서 신령비도를 꺼냈다.

우우우우웅!

영험한 기운을 품은 신령비도가 허공에서 둥둥 떠 올랐다.

"아!"

천경호는 몸으로 체감했다.

저 비도에서 느껴지는, 마기 같은 건 가볍게 부숴버릴 것 같은 상서로운 기운.

"이게 선계에서 넘어온 보패거든."

천경호는 보기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졌다.

"네 영혼과 연결한 천마 새끼는 무간지옥의 죄수, 난 등선한 신선의 영혼···."

싸늘하게 말을 이어가는 태주.

"애초에 너와 난 격이 달랐어."

꿀꺽.

천경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하는 수 없다.

'전력을 다해···,'

도망친다.

천마와의 영혼 연결로 습득한 마교의 무공.

모든 걸 쏟아부으면 도망이 가능할 것이다.

게다가 여긴 도심이라 인질들도 많고.

그런데.

"어때? 기분이."

"무슨 기분 말이냐?"

"천마와 같은 영혼이라면 강호에 떠도는 소문 정도는 들어봤을 텐데."

"뭘···,"

"절대독마와 함께 있게 되면 먹지 말고, 마시지 말고, 숨도 쉬지 말라고, 특히 밀폐된 장소에선."

"아! 독, 독을 말하는 건가?"

천경호는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천마 신공을 익히면 만독불침은 기본으로 장착된다.

마기가 독의 침범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대성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흐흐흐, 그깟 독이 나한테 통할 것 같더냐?"

"어. 통해."

"헛소리마라. 난 만독불침···. 어?"

흠칫!

표정이 일그러지는 천경호.

마기의 흐름이 이상하다.

"이제 알았어?"

"아, 아냐. 사기치지 마라! 어디서 개수작을."

"그럼 움직여보던가."

"가, 감히! 널 죽여···, 우욱!"

혼원무상독령공 10성의 독기방사(毒氣放射).

독정에 선기가 각인됐고, 그 선기에 독기가 실렸다.

선기가 먼저 마기의 방호막을 뚫었다

그리고 독기가 천경호의 육신을 잠식했다.

매우 은밀하고, 지독하게.

이미 첫 대화를 나눌 때부터.

"커헉!"

울컥.

그의 입에서 붉디붉은 선혈이 토해졌다.

털썩, 주저앉고 마는 천경호.

"지, 진짜 중독? ···왜? 어째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뒤를 이어 덮쳐오는 극악한 고통.

온몸이 녹아내릴 것 같다.

"살려다오."

천경호는 태주에게 애걸했다.

"사, 살려주면 네 종이 되어서, 크헉! 주, 죽을 때까지 봉사하마. 날 사냥개로 사용해. 황제든, 금수호든, 다 죽이고 삼한 제국을 너에게 바치겠다. 우욱, 그러니 날 해독해···,"

좋은 제안?

웃기는 놈이다.

"역시 소시오패스들은 보통 사람하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달라."

"뭐···?"

"내가 그걸 못해서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을까, 이 존속 살해범 새끼야!"

우웅!

세차게 진동하는 태주의 독정.

"해도 되는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는 거다. 보통 사람들은 다 알아. 넌 그걸 모르는 놈이고, 그러니 그만 뒈져!"

각인된 만년오공의 분해 독이 방사됐다.

요마계의 극독.

"제, 제발···,"

치치치치칙!

장기부터 녹기 시작했다.

위장, 심장, 간, 폐···.

그래서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내부는 한 줌의 독수,

"···끅."

천경호는 그대로 절명했다.

시체는 무한공간에 집어넣고.

이제 천마는 하나만 남았다.

무간지옥의 죄수 신분으로 말이다.

'이제 슬슬 돌아가 볼까?'

스우웅!

태주는 방사한 독을 다시 거둬들였다.

호텔 방 바닥은 깨끗하게 청소해놓고.

순간!

왠지 익숙한 냄새가 태주의 콧속으로 솔솔 들어왔다.

'음?'

어디서 나는지 찾아봤다.

그러자 바닥에 떨어진 작은 병 하나.

좀 전에 천경호가 테라스까지 나와 마시든 그 드링크제.

'이거 설마···,'

그 냄새가 맞다.

바닥에 떨어져 다 쏟아졌지만.

'더 없나?'

태주는 호텔방 냉장고를 열었다.

그러자 똑같은 모양의 드링크제가 10병이나 들어있었다.

하나 돌려 따서 마셔봤는데.

'틀림없어.'

생기불끈이다.

그러나 상표는 생기불끈이 아닌 '바이탈 주스(vital juice)'

'어디서 만든 거야?'

제조국이 라벨에 적힌 제조국.

메이드인 알오에이(Made in R.O.A)

즉 리퍼블릭 오브 아메리카 (Republic of America), 아메리카 공화국이었다.

'혹시 카피?'

태주는 나머지 드링크제를 무한공간에 집어넣었다.

일단 돌아가서 조사해보자.

< 격이 다르다. > 끝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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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베꼈네. >

태주가 떠나고 나서 한참 뒤.

천경호의 시체마저 사라져 아무도 없는 호텔 방에 남자 두 명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 명은 호텔 사장, 한 명은···.

"여긴가? 그놈이 묵은 방이?"

"···네네."

"아무도 없군."

"어, 어디 갔지? 분명 어젯밤까지 있었습니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옷장엔 투숙객의 것으로 추정되는 신발과 겉옷까지 있었으니까.

"이름은?"

"숙박부엔 '스카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가명 같지만."

"호텔 체크인하면서 삼한 제국 언어를 사용한 것이 확실한가?"

"맞습니다. 제가 통역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그만 가봐. 내가 따로 조사할 테니."

"아, 넵!"

호텔 사장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서둘러 내려갔다.

그럴 수밖에.

같이 온 남자는 블랙 마피아 프리 바르셀 지부의 간부였기 때문이다.

블랙 마피아는 유럽 제국에서 가장 큰 빌런 조직이었다.

대도시마다 지부를 두고 유럽의 밤을 지배하고 있었다.

블랙 마피아 간부 마르코 산토스는 천경호가 묵었던 방은 샅샅이 살펴봤다.

'도망쳤나? 그럼 신발은 신고 갔을 텐데.'

그가 여기 온 이유.

익스퍼트급 각성자 조직원 하나가 죽었다.

비쩍 마른 미라처럼.

죽은 지 오래됐다면 모를까, 전날까지 쌩쌩하던 놈이 갑자기 그리되었다.

죽은 것도 죽은 거지만 원인이 심상치 않다.

그래서 조사에 착수했다.

하루아침에 미라가 된 조직원.

짐작 가는 것이 있긴했다.

사망한 시체를 해부해보니, 완전히 말라붙은 마나 로드.

심증이 확증으로 굳어졌다.

사망한 장소에 주차해있던 자동차에서 블랙박스 영상도 확보했다.

동아시아계로 보이는 남자가 그때는 살아있던 조직원의 정수리에 손을 대자 몸을 부르르 떨면서 형편없이 쪼그라드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분명 뱀파릭 터치였어.'

뱀파릭 터치.

산 자의 생기를 빨아들여 마력을 키우는 흑마법.

게다가 굉장히 숙련도가 높다.

최소 5클래스 이상의 흑마법사는 되어야 그 정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터, 아니 그 이상일지도.

문제는 그놈이 외부인이라는 점.

흑마법은 블랙 마피아의 조직원이 아니고서는 배울 수 없는 마법이기 때문이다.

'혹시 흑마법이 유출됐나?'

아니다.

절대 그럴 리 없다.

그나저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방에 스카이라는 놈이 남긴 기운이 남아있을까?

"데스 디텍션."

순간!

우우우우웅!

흑마법사 마르코의 손에서 퍼져나가는 불길한 기운.

그리고 짙게 피어나는 죽음의 향기.

'···이곳에서 누군가 죽었군.'

그렇다면?

"팬텀 비전."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육신을 떠난다.

영혼이 떠나면서 남긴 찌꺼기, 그걸 잔류 사념이라 부른다.

잔류 사념을 들여다보면 죽기 직전의 상황을 아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파팟!

마치 정지화면처럼 떠오르는 장면.

한 명이 더 있었다.

이 장면은 죽어가는 놈이 남긴 것.

죽은 자의 시야에 한 사람이 싸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죽음 직후에 펼쳤다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은 시간이 지나서 흐릿하다.

'스카이란 놈이 둘 중 누구야?'

얼굴을 자세히 볼 수가 없다.

다만 확실한 건 둘 다 인종이 같다는 것.

원숭이 생김새가 거기서 거기지.

'···아무튼 둘 다 삼한 제국인이겠군.'

그중 하나가 뱀파릭 터치를 사용했다.

어느 놈인지 확실치 않지만.

'일단 상부에 보고를 해야겠어.'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판단은 높으신 분들이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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