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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1화 재회 (1) > 끝

ⓒ 호종이

< 072화 재회 (2) >

텍사스의 악녀.

텍사스에서 활동하는 초인들 중에 그녀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오래 전, 대한민국에서 입양되어 온 한국인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가브리엘 정.

이름만 놓고 보자면 천사다.

외모를 놓고 보아도 천사다.

몸매를 두고 천사를 논해도 괜찮은가 싶긴 한데, 몸매 또한 천사다.

그러나 실상을 놓고 보자면 천사와는 거리가 달나라만큼이나 먼 여자였다.

그녀는 악랄하고 자비가 없으며 개차반 같은 성격으로도 유명했다.

지금 이곳 텍사스 사냥터 9존에 등장한 가브리엘 정은 단숨에 용작두 광전사를 눕혀버렸다.

이곳에 모인 초인들은 손가락만 빨면서 그런 그녀를 멍청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윽고 가브리엘은 용작두 광전사의 전리품을 모조리 챙기곤 주변에 모여 있던 초인들을 향해 말했다.

"이거 맨 처음에 발견한 새끼가 누구냐?"

그녀의 눈동자가 초인들을 한명씩 겨누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인들은 저마다 시선을 회피하며 입을 꾹 닫고 있을 뿐이었다. 워낙에 개차반 같은 여자인지라 괜한 불똥이 튈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초인들이 대답이 없자, 가브리엘 정은 고운 이마를 찌푸리며 다시금 물었다.

"아가리에 메테오를 퍼붓기 전에 말해라. 성질 돋구지 말고."

그 과격한 언사에 그제야 초인들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저마다 검지를 치켜들고는 한 중년 초인을 지목했다.

그러자 지목 당한 초인은 원망스러운 눈동자로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터벅- 터벅-

어느덧 가브리엘이 그를 향해 다가왔다.

이윽고 그녀는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는 눈을 질끈 감으며 움찔댔다.

그 모습에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니 몫이다. 받아."

"아....?"

그녀는 얻어낸 전리품 중 스킬 볼을 하나 건네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주저했다.

그러자 가브리엘이 으르렁댔다.

"빨리 받아."

"아, 아. 고맙....!!"

남자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가브리엘은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유유히 사라져버렸다.

이윽고 사냥터에서 빠져나온 가브리엘 정은 입구에 세워둔 붉은색 스포츠카로 향했다.

그녀의 애마로 알려진 포르쉐918 스파이더였다.

그런데, 주차된 그녀의 애마 옆에 웬 젊은 남자 한명이 서 있었다.

어느덧 남자는 가브리엘을 발견하자 반색하며 달려들었다.

"가브리엘! 오늘 저녁에 뭐해? 식사라도?"

"또 너냐?"

며칠 전부터 가브리엘에게 집적대던 랭커 초인이었다.

그러나 가브리엘은 관심 없다는 듯 차에 타고 있었다.

그러자 남자가 다급히 외쳤다.

"왜 그렇게 매몰찬데? 너도 외롭잖아!! 나는 좋은 남자라고!"

"나는 남자 새끼들 안 믿어. 그게 친오빠라도 말이야."

"그 말을 믿으라고?!"

남자는 어처구니없다는 투로 묻고 있었다.

게다가 친오빠라니.

그가 알기론 가브리엘은 철저히 혼자다.

5년 전 양부모도 돌아가셨고, 그녀에게 남은 가족은 단 한명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남자가 거듭 되물었다.

"내가 그렇게 싫어?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나 늘어놓고! 그리고 넌 오빠가 없잖아!"

"있었어. 오래전에 말이야."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미련 없이 엑셀을 밟았다.

이미 오빠인 정인우에 대해선 잊은 지 오래다. 게이트 사태가 일어난 시기에 실종된 오빠다.

당시, 많은 이들이 괴수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아마...

그녀의 오빠인 정인우는 죽었을 것이다.

아니, 죽었을 수밖에 없다.

"젠장."

오랜만에 떠오른 오빠 생각에 가브리엘은 울적해졌다. 그녀는 괜스레 음악을 틀고 볼륨을 최대치로 올렸다. 그리고 포르쉐918의 윗뚜껑을 오픈시켰다.

그러자 시원한 바람이 밀려들었다.

이윽고 가브리엘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참으로 맑았다.

그녀는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거긴 편하냐?"

차내에 울려 퍼지는 강렬한 사운드에 의해, 그녀의 목소리는 단숨에 묻혀버렸다.

* * *

"미국 간다."

인우가 퀸과 민철 그리고 팜이를 주택 거실로 불러놓고 내뱉은 첫마디였다.

퀸의 경우 미국이 무엇인지 몰랐기에 어리둥절하고 있었고, 팜이의 경우도 그저 파암파암 거릴 뿐이었다.

그러나 민철은 인우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이요?"

"응."

"갑작스럽게 미국은 왜 가는 겁니까 형님?"

"알아 무엇 하게? 난 간다."

그러면서 인우는 미리 짐을 넣어둔 캐리어를 끌고 현관으로 향했다.

지금 바로 출발 하려는 것 같았다.

참으로 인우답다고 해야 할까?

그때, 민철이 다급하게 인우의 뒤통수를 향해 외쳤다.

"혀, 형님! 그냥 이대로 가시는 겁니까? 저도 데리고 가세요!"

"널 왜?"

"형님 영어 못하시잖아요. 제가 가이드 해 드릴게요."

민철이 제 가슴을 탕탕 치며 자신감 있게 말하고 있었다. 확실히 민철의 말대로 인우는 영어는커녕 알파벳도 몰랐다.

그렇기에 가이드가 필요하긴 할 것이다.

물론 가이드는 구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만약 민철이가 영어를 할 줄 안다면 이 녀석을 데리고 가면 될 일이긴 했다.

어느덧 인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영어 할 줄 알아?"

"Yes Of course!"

민철이 그렇다고 영어로 답하고 있었다.

사실, 대한민국의 교육제도 아래에서 고등교육까지 온전히 공부를 했다면 어느 정도 영어 실력이 갖춰지긴 한다. 물론 이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다.

어찌되었건, 민철의 경우 학창시절 미국을 동경했고, 미국의 슈퍼스타들을 사랑했으며, 그에 대한 준비로 한때나마 영어를 공부했던 것이다.

당시 민철은 미국의 슈퍼스타 비연세를 만나고 싶다며 미친놈처럼 영어에 파고 들었었다.

때문에 다른 건 몰라도 영어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이윽고 인우가 말했다.

"따라와."

"Roger that!"

"나한텐 영어 쓰지 마. 짜증나니까."

"아, 네에...죄송합니다."

민철은 고개를 푹 숙이고 답했다.

그러나 자꾸 신이 나는지 히죽히죽 웃었다.

* * *

아침에 출발했는데 또 다시 아침이었다.

15시간이 넘어가는 기나긴 비행 끝에 인우와 민철은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인우는 여동생인 정지은의 거주지를 이미 파악해두었다.

어느덧 민철이 물었다.

"형님한테 여동생이 있었다니. 정말 놀랍네요..."

민철은 15시간의 긴 비행동안 인우가 미국으로 향하는 이유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정인우의 여동생이라니.

쉽사리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어느덧 민철은 힐끗 인우를 바라보았다.

같은 남자가 보아도 확실히 잘생긴 얼굴이긴 하다.

그랬기에 기대가 됐다.

여동생이라면 가족이기에 정인우와 같은 피가 흐를 것 아닌가?

'진짜 엄청 예쁠 것 같은데. 흐흐. 혹시 나랑 잘 되는 거 아니야? 나한테 반하면 조금 곤란해 질 수도 있겠는데? 아아 흐흐흐흐!'

민철은 그런 망상을 하며 멍청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퍽!

그러다가 난데없이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신음을 내뱉었다.

인우가 민철의 머리통을 손바닥으로 후려친 것이었다.

"뭔 생각을 하는데 그런 변태 같은 웃음을 짓냐?"

"아, 아닙니다!"

"뭐가 아닌데?"

"네? 아 음. 가실까요?"

민철은 말을 돌리며 앞장서기 시작했다.

미국은 땅덩이 자체가 한국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넓다.

그렇기에 가이드를 맡게 된 민철은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선 인우를 안내했다.

인우의 여동생이 살고 있는 곳은 이미 숙지되어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한참을 이동했다.

그리고 오래지않아 거대한 대저택에 도착했다.

드넓은 초원과 같은 마당을 끼고 있는 저택이었다.

도대체 저게 몇 평이나 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민철은 조금 주눅이 들었는지 인우를 향해 속삭였다.

"혀, 형님. 정말 여기가 여동생님이 머물고 계신 집이 맞을까요?"

녀석이 주눅들만 했다.

마당에는 심지어 수영장까지 보이고 있었으니까.

대한민국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형태의 주택이었다.

'얘가 이렇게 부잣집에 입양이 된 건가.'

인우는 그런 생각을 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이 집에서 대가족이 머물고 있지 않을까?

양부모와, 나아가 어쩌면...

'조카도 있으려나?'

정지은이 결혼을 했다면, 그녀의 아이들도 있을 수 있다. 인우는 모처럼만에 긴장이 되었다.

프로킨에서 드래곤 레어에 숨어 들어가 알을 훔쳐 올 때도 이처럼 떨리진 않았다.

두근- 두근-

인우는 드물게 굳은 얼굴로 초인종을 향해 손가락을 가지고 갔다.

'으.'

그러나 인우는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도대체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

어떻게 지낸 거야?

오빠가 좀 늦었다.

내가 사실은 프로킨이라는 곳에서...

"개뿔."

띵-동!

이윽고 인우는 뒷일은 뒤에 생각하기로 하고 무작정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나 안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꾸욱.

띵-동!

처음이 어려웠지 두 번 째는 쉬웠다.

인우는 수차례 벨을 눌러댔다.

그리고 대문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정지은!!"

이 이름을 도대체 얼마 만에 불러보는 거지?

그리고 그때였다.

마침내 대문 앞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중년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세요?

영어였다.

인우는 알아듣지 못했다.

게다가 이 목소리가 정지은의 목소리가 맞는지 아닌지도 쉽사리 파악되지 않았다.

벌써 30년이 흘러버린 것이다.

어느덧 민철이가 스피커를 향해 영어로 묻기 시작했다.

"아, 저희는 한국에서 온 사람들인데요, 혹시 이곳에 예전에 입양된...."

민철은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다시금 스피커에서 중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가브리엘 정? 그녀는 지금 사냥터에 나가 있는데. 아마 늦은 저녁때나 올 거예요.

"에, 예? 사냥터요?"

-네. 사냥터요. 내가 이 저택에서 오랫동안 일했는데 그녀는 늘 사냥을 했죠.

민철은 멍청한 얼굴을 했다.

사냥터가 무엇인가.

괴수들이 우글우글 거리는 무시무시한 곳 아닌가?

그런 곳에 인우의 여동생이 가 있다고?

도대체 왜?

어느덧 옆에 있던 인우가 궁금하다는 듯이 민철을 향해 물었다.

"뭐라는 거야?"

"어, 저, 음 그러니까. 형님 여동생님이 지금 사냥터에 나가 있다는데요?"

"...응?"

* * *

결국 인우는 민철이를 데리고 텍사스 사냥터에 들어섰다. 설마하니 미국까지 와서 이곳 사냥터에 들어올 줄은 몰랐다.

게다가 현재 인우와 민철은 무장조차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비행기에는 무기를 가지고 탑승할 수 없었기에 현재 인우와 민철은 그저 평범한 복장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여동생만 찾으면 됐기에 무기가 필요할까 싶었다.

그런데 그녀가 사냥터에 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실, 거기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도 되었다.

그러나 정인우는 이곳 사냥터에 들어섰다.

이곳은 제법 큰 규모의 사냥터였다.

미국의 사냥터도 존( zone)의 개념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어찌되었건 현재 일행은 고블린이 등장하는 1존에 서 있었다.

"으아아아악!"

"이야아아압!"

사냥터에서는 미국 초인들이 열심히 고블린을 때려잡고 있었다.

단지 초인의 인종이 달라졌을 뿐인데 무언가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인우는 생소한 기분을 느끼며 서서히 존을 파고 들었다.

어느덧 민철이 물었다.

"몇 존까지 진입하실 생각입니까?"

"찾을 때까지 진입해야지."

인우는 무장조차 되어 있지 않았음에도 별다른 걱정이 없어보였다.

하긴, 정인우는 맨손으로도 웬만한 몬스터는 다 때려잡을 수 있을 것이다.

민철은 든든한 인우의 등 뒤에 자리를 잡고선 이동했다.

그렇게 그들은 한참을 걸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어느덧 그들은 별안간 걸음을 멈췄다.

후두두두두둑-!

쾅! 쾅! 쾅! 쾅!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앞 지역에서 엄청난 위력을 뿜어대는 메테오가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메테오를 쏜 것으로 추정되는 여자가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빌어먹을 데스나이트 새끼들. 이 언니를 귀찮게 한 대가는 크단다."

웬 여리여리한 여자가 데스나이트 수십 마리에 둘러싸인 채로 마법을 난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법 중에는, 메테오와 같은 광역마법도 존재했던 것이다.

그녀는 주변에 사람이 있든 말든 제멋대로 데스나이트들을 폭격했다.

"츠으으으으!"

어느덧 분노한 데스나이트들이 그녀를 향해 검을 휘두르자, 그녀는 단숨에 텔레포트를 시전하며 몸을 피해냈다.

그야말로 수십 마리의 데스나이트들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데스나이트들은 금세 허물어졌다.

민철은 감탄했는지 입을 떡 벌린 채로 중얼거렸다.

"와아...저렇게 많은 데스나이트를 1분도 안 돼서 녹여버리네요. 랭커겠죠? 미국 랭커는 급이 다른 건가...? 어 근데 가만 있어봐. 저 여자 동양인 같은데요? 그런데 형님. 듣고 계세요?"

민철은 한참을 말하다 말고 인우를 불렀다.

그러나 인우는 답이 없었다.

그저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금 찌푸린 표정 같기도 하고, 감격에 겨운 것 같기도 하고, 도무지 쉽게 짐작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어느덧 저 멀리에서 다시금 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언니가 너희 같은 깡통 폐기물들하고 싸워야겠냐?"

그녀는 이미 죽은 데스나이트들의 머리통을 발로 툭툭 건들며 말하고 있었다.

정인우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영어로 말하고 있었기에 그녀가 내뱉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특유의 억양과 어조는 그대로였다.

그래, 여전히 개차반이었다.

이윽고 인우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지은."

"..."

그러자 저 멀리에 있던 그녀의 시선이 단박에 정인우에게 닿았다.

그리고...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 072화 재회 (2) > 끝

ⓒ 호종이

< 073화 재회 (3) >

"정지은."

"······."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정인우와 시선이 마주친 정지은은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너무 놀라면 말도 안 나온다.

그녀는 입을 떡 벌린 채였다.

"아, 아······."

닮았다.

켜켜이 먼지가 쌓인 기억 속 저편의 정인우의 모습과 소름끼치도록 닮았다.

"······."

이윽고 그녀는 천천히 인우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지척까지 다가온 그녀가 인우의 앞에 가만히 섰다.

그리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간신히 달싹였다.

"···너 뭐냐? 어떻게 내 이름을 알지?"

그녀는 한국어로 묻고 있었다.

혹시 저 인간이 자신의 오빠인 정인우라도 되는 건가?

그러나 정인우는 죽었다.

벌써 30년이 지났다.

그렇기에 말이 되지 않는다.

나아가 이곳은 텍사스다. 더 나아가 이곳은 텍사스 사냥터의 9존이다.

한데 이곳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정인우가 난데없이 나타났다고?

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상황인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랬기에 그녀는 눈앞에 버젓이 존재하는 인우를 목도하고서도 쉬이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들려온 인우의 대답에 그녀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야. 인우. 니 오빠."

"···뭐어···.?"

그 한마디에 정지은의 속에서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살아 있던 거였냐?

그리 묻고 싶었으나 입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미친 오빠 새끼가 이제야 나타났다.

살아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30년간 어디에 처박혀 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왜 이제야 나타난단 말인가?

다 잊고 살고 있었는데 말이다.

속이 끓어 올랐다.

이윽고 머릿속에 남아 있던 한 가닥 인내가 끊겼다.

이어, 급격히 달아오른 몸속에서 육두문자가 쏟아져 나왔다.

"야이 개자식아!!"

지난 30년간의 세월이 개자식이라는 한 마디에 모조리 함축 되어 있었다.

정지은은 얼마나 열이 받았는지 얼굴이 홍당무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사정없이 인우를 후려 패기 시작했다.

그 살벌한 기세에 인우의 옆에 있던 민철은 저도 모르게 훌쩍 물러섰고, 인우는 지은의 성격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우선은 맞아주었다.

일단, 폭력으로 그녀의 화가 모조리 분출된 뒤에야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다.

그 전에는 무슨 소리를 한다고 해도 그녀는 들으려 하지 않을 거다.

자신보다 곱절은 개차반이기 때문이다.

퍽! 퍽! 퍽!

'예상보다 좀 더 아픈데······.'

그러나 인우는 이때까진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컥!"

기절하게 될 줄은 정말로 몰랐단 말이다.

* * *

민철의 이마에서 솔방울 같은 땀이 떨어져 내렸다.

민철은 땀을 닦아내며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했다.

어찌나 불안한지 발을 동동 구르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 댔다.

'시, 씨팔 외모에 속았다. 피, 피는 못 속이는 거였어. 미, 미친 여자다!'

정인우가 누구인가.

그는 단신으로 나이트 길드를 압박하고 나아가 괴멸시켰다.

어디 그뿐인가? SG그룹을 몰락시키고, 관리국의 섭외 1순위에 해당하는 초특급 초인이 바로 정인우였다.

그렇기에 현재의 상황은 좀처럼 실감나지 않았다.

민철은 정말로 처음 보았다.

인우가 누군가에게 맞고서 가만히 있는 모습도 처음 보았으며, 인우가 기절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이게 말이 되나?

천하의 정인우가 기절을 했다.

민철은 멍청한 얼굴을 한 채로 정인우를 바라보았다.

'혀, 형님. 일어나세요!'

정인우는 피떡이 된 채로 땅바닥에 대자로 뻗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타 있는 괴물(?)은 거친 숨을 토해내며 연신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도, 도망갈까······.'

순간 민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던 비겁함이 기어 올라왔다.

그 정도로 무서웠다.

이곳 9존에도 여러 초인들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남매를 말리지 못했다.

아니 안 말렸다.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어보니 정인우의 여동생은 이 지역에서 악명이 높은 것 같았다.

어느덧 정지은이 주먹을 거뒀다.

이윽고 그녀의 거칠었던 호흡이 차차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기절해 있는 인우를 가만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제야 끊겼던 이성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한 번 꼭지가 돌면 꼭 이렇게 된다.

오늘은 정말로 오랜만에 꼭지가 돌았다.

평소의 그녀가 그냥 커피라면, 오늘의 그녀는 TOP였다.

"······."

어느덧 그녀는 기절한 인우의 옆으로 이동하더니 드러누워 버렸다.

그렇게 가만히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댔다.

"변한 게 없냐. 정인우."

* * *

예전, 그러니까 프로킨 20년 차 즈음 되었을 때였나?

당시 인우는 백작령 하나를 삼키기 위해 단신으로 쳐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때의 인우는 홀로 수만 명의 기사들을 때려 눕혔었다.

그렇게 온전히 무력만으로 백작령 하나를 꿀꺽 삼키고, 승리감과 안도감이 들었을 때 단 한 번 기절했던 적이 있다. 물론, 그때의 기절은 며칠 밤을 지새워 무리한 전투를 치렀기에 피곤함을 동반한 기절이었다.

그리고 오늘이 인우의 생에 있어서 두 번째 기절이었다.

인우가 눈을 떴을 때는 제법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눈을 떠보니 푹신한 침대였다.

인우가 눈을 뜨자, 그 옆에서 민철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혀, 형님. 일어나셨습니까."

인우는 민철을 힐끗 바라보았다. 녀석은 좌불안석인 채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우선 정지은의 집이었고, 민철의 바로 옆에는 정지은이 앉아 있었으니까.

그녀에게선 냉기가 풀풀 흘렀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로 인우에게 물었다.

"뒤지기 싫으면 말해라. 그간 어디서 뭘 했는지."

그 말에 인우는 피식 웃었다.

그녀는 이제 이성을 찾은 것 같았다.

즉, 대화 할 준비가 된 것이다.

"민철아 잠깐 나가 있어라."

"네. 형님.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소리치······."

"잔말 말고 나가."

"넵. 형님."

민철은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지 뒷걸음질 치며 끝끝내 남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철컥-

이윽고 민철이가 나갔다.

그러자 방에는 정지은과 정인우만이 남아 있었다.

인우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뻐근한 몸을 주무르며 생각에 잠겼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또한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까?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털어놓을 수 있었다.

이윽고 인우는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지난 30년간, 개처럼 굴렀던 프로킨의 정인우에 대해서 담담히 털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야기는 생각보다 길어졌고, 새벽에 이르러서야 끝이 나고 있었다.

"···그렇게 된 거야. 빌어먹을 드래곤 새끼들이지. 그 개자식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자다가 경기를 일으킨다."

정지은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오히려 인우를 정신병자 취급했으니까.

하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애초에 지구에 몬스터 게이트가 열린 시점부터 상식이라는 것은 사라진 시대였다.

그리고 자신의 오빠는 정확히 그 시점에 그 빌어먹을 세계로 소환된 것이다.

무언가 아귀가 척척 들어맞았다.

게다가 정인우가 하는 말은 지어 냈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광범위하고 디테일했다.

나아가 정인우가 이야기 중간 중간에 언급했던 괴수들은 모두 지구에 실존하고 있는 놈들이었고, 더 나아가 정인우는 그 괴수들의 특징과 약점 따위의 것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쯤 되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30년.

그간 자신의 오빠는 그곳에서 정점의 무력을 찍었고, 살기 위해 지구로 귀환해 온 것이었다.

"그리고 지구로 와 보니 프로킨에서나 봤던 괴수들이······."

이어서 인우는 지구에 와서 겪었던 일도 이야기했다.

그러나 경험치가 계속 오르는 절대자의 패시브에 대해선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 이야기 해 봐야 혼란만 가중될 뿐일 테다.

차차 밝혀도 될 일이다.

그리고 인우는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 각색하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어찌되었건 프로킨의 정인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구로 돌아오고 싶지 않아 했으니까.

황제가 되어 권력과 향락에 취해 끝끝내 그곳에 머물고 싶어 했다는 말을 어찌 여동생에게 할 수 있겠는가.

이윽고 인우는 모든 말을 끝마쳤다.

"···그렇게 해서 텍사스로 넘어온 거지."

그러자 정지은이 물었다.

"그 프로킨이라는 곳 말이야. 거기 다시 갈 수 있냐?"

"거긴 왜?"

"드래곤이라는 놈들이 오빠의 모든 것을 빼앗았다며. 내가 그 새끼들의 가죽을 통째로 발라 버릴 라니까. 갈 수 있냐?"

"무리다."

인우는 일축했다.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

인우 또한 놈들을 가만 둘 생각은 없었다.

인우는 늘 자신에게 피해를 준 놈들에게 곱절 이상으로 되갚아주곤 했다.

이곳 지구에서 인우는 과거 프로킨에서보다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비정상적인 패시브가 존재했으니까 말이다.

그즈음 생각을 그친 인우가 여동생을 또렷이 직시했다. 이제 그녀의 이야기도 들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느덧 인우가 물었다.

"결혼은?"

"아직."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정지은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냈다.

예상했던 것처럼 그녀는 랭커였다.

게다가 미국에서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유명한 랭커.

그녀는 현재 인우보다도 강한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인우가 가진 패시브의 특성상, 시간이 흐를수록 격차는 빠르게 뒤집힐 것이다.

어느덧 모든 이야기를 듣게 된 인우가 지은을 향해 말했다.

"미국 생활 정리해. 한국으로 가자고."

사실 지은은 그간 단 한 번도 한국으로 가지 않았다.

그곳에 가 봐야 아픈 추억들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정인우가 돌아왔다.

이제는 고향땅을 밟아 봐도 되지 않을까?

"오빠 새끼야. 또 사라지면, 그게 프로킨이든 지옥이든 내가 끝까지 쫓아갈 거니까. 가지 마라. 알겠냐?"

그렇게, 남매는 30년 만에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 * *

대한민국 초인관리국에 긴급콜이 떨어졌다.

SG사태가 해결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금 긴급콜이 떨어졌단 말인가?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현재 여의도 초인관리국 본부 회의장에는 각 지부의 지부장들과 본부의 국장이 착석해 있는 상태였다.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진중함을 머금고 있었다.

어느덧 남양주 지부장이 말했다.

"그녀가 30년 전 미국으로 입양 된 한국인인 것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 그녀가 미국의 랭커가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면서 남양주 지부장은 몇 가지 사실을 더 덧붙였다.

"아무래도 현재는 미국에 속해 있는 초인이기에 어느 정도의 레벨에 이른 랭커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만··· 그녀에 대해 들려오는 소문은 제법 유명하죠."

각국이 보유한 초인의 랭킹은 국가기밀이다.

이것은 세계초인협회에서 지정한 하나의 룰이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민감한 사항이 오픈되어 있다면 세계 각국에서는 타국의 랭커를 포섭하기 위해 혈안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도 아니면 제거하려 들 수도 있고 말이다.

이 때문에 그 유명한 3개월 100레벨 정인우라는 초인조차도 세계적인 이슈가 되지 않았지 않은가.

만일 정인우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간다면 아마도 좋지 못한 사태가 벌어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어찌되었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제법 유명했다.

다른 랭커들에 비해서 비교적 많이 오픈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워낙에 사고를 많이 치고 다녔기에, 아마 모든 나라의 관리국들이 그녀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가브리엘 정. 조금 전, 그녀가 한국행 비행기를 탑승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두 명의 동양인 남자와 동행하고 있다더군요,"

남양주 지부장의 보고를 끝으로 국장이 정리하듯 말을 내뱉었다.

"가브리엘 정. 본국은 그녀의 비위를 최대한 맞추어야 한다. 박강중. 자네가 공항으로 마중 나가도록. 그녀를 최대한 환영해 주고,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즉시 알아내도록."

"알겠습니다. 국장님."

박강중은 힘차게 답했다.

그러나 강중은 이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늘 폭풍의 주역이었던 '그'가 그녀와 함께 있을 줄은 말이다.

< 073화 재회 (3) > 끝

ⓒ 호종이

< 074화 미친 집안 >

박강중은 관리국 직원들과 함께 인천공항 게이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이제 곧 그녀가 한국 땅을 밟는다.

어느덧 강중은 정장 안주머니에서 그녀의 사진을 꺼내보았다.

"가브리엘 정."

사진 속에는 흑발에 양 갈래머리를 한 그녀의 뚱한 얼굴이 보였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녀를 보게 된다면 그저 미인이다. 정도로 생각하고 끝낼 테지만, 그녀는 미국에서도 요주의 인물로 손꼽히는 여자였다.

강중은 그녀의 사진을 조금 더 보다가 품속에 갈무리했다.

그리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나올 때가 됐는데."

그렇게 중얼거리기도 잠시.

어느덧 게이트 끝 쪽에서 동양인 여자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왔군!"

강중은 가브리엘을 곧바로 알아보았다.

몇 번이고 숙지를 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의 옆에 있던 동양인 남자 2명중, 1명의 얼굴이 매우 낯익었다.

"어···어···?"

박강중은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저 남자는 분명 박강중이 알고 있는 사내였으니까.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쌍커풀 없는 큼지막한 눈과, 한 성깔 한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한 매서운 눈썹.

눈매만 보아도 명확했다.

이어서, 반듯한 콧대와 고집스러워 보이는 입술까지.

"저, 정인우?"

미친곰 정인우.

그가 왜 가브리엘 정과 함께 나오는 걸까?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 둘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

한참 멍하니 있던 강중은 즉시 본분을 깨닫고 가브리엘 정을 맞이했다.

"아, 안녕하십니···!"

그러나 가브리엘 정은 가볍게 무시하며 강중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인우가 강중을 발견하고는 한마디 내뱉었다.

"어?"

"아아, 정인우 씨. 음, 오랜만이로군요. 외국에 나갔다 오시는 길입니까?"

"잠깐 볼일이 있어서."

인우가 그렇게 말하자, 옆에 있던 정지은이 물었다.

"누군데?"

"아, 그냥 아는 동네 아저씨. 몇 번 봤었거든."

"아, 그러냐? 빨리 가자. 나 배고프다."

"응."

인우와 가브리엘이 그런 대화를 나누며 가볍게 박강중을 지나쳐 갔다.

강중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동네 아저씨라니······.

그렇게 벙쪄 있기도 잠시. 이내 다급히 가브리엘을 불러 세웠다.

"저, 저기! 가브리엘 정님, 맞으십니까?"

그러자 정지은과 정인우, 그리고 김민철이 걸음을 멈추며 일순간 박강중을 바라보았다.

이에 강중은 뒷머리를 긁적대며 그들에게로 걸어왔다.

그러면서 명함을 꺼내더니 가브리엘에게 건넸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초인관리국 강원도 지부장 박강중입니다."

그러자 정지은은 명함을 받아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박강중은 그런 가브리엘과 정인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역시 정인우 씨는 예사 인간이 아니야. 설마하니 가브리엘과 친분이 있을 줄이야······.'

강중은 내심 그런 생각을 하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정인우가 불쑥 말을 내뱉었다.

"흠, 근데 당신, 내 동생한텐 무슨 볼일인데?"

"에, 예?"

동생.

그 한마디에 강중은 어찌나 놀랐는지 눈을 퉁방울만 하게 뜨며 입을 쩍 벌렸다.

벌어진 입에서 침이 흐르진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둘은 매우 닮아 있었다.

그러다가 강중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곧바로 입을 닫고선 이성을 되찾았다.

잠시 '동생'이라는 단어에 엄청난 혼동을 하긴 했으나, 다시 고민해 보니 친동생이 아니라 그저 아는 동생일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고 해도 둘의 조합은 무척이나 의외였다.

불과 불이랄까?

이윽고 박강중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았다.

"혹시 두 분이 남매이거나······."

"어. 내 친동생."

인우가 강중의 말을 도중에 자르며 씨익 웃고 있었다.

그 한마디에 박강중의 턱관절은 다시금 빠질 듯 벌어져 있었다.

'하, 이건 도대체? 정인우 씨··· 당신 도대체 뭐하는 사람입니까······?'

그러니까.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랭커인 가브리엘 정, 그녀가 정인우와 남매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개차반 같은 성격은 아마도 유전자인 것 같았다.

"관리국에서 내 동생한테 볼 일 있는 거야? 있다면 나중에 연락하라고. 지금은 방해 받고 싶지 않으니까."

이윽고 정인우와 가브리엘은 저만치 사라져가고 있었다.

어쩜, 걸어가는 뒷모습도 꼭 닮아 있었다.

결국 박강중은 가브리엘을 모시기 위해 가지고 온 리무진에 홀로 탑승했다.

"출발하지."

"예."

자리에 앉은 박강중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그리곤 손잡이에 올려 두었던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벌컥벌컥-

"거, 커피 한 번 졸라게 쓰네."

매일 마시던 커피가 오늘따라 유독 쓰게 느껴지는 박강중이었다.

* * *

정인우 일행은 인천공항에서 빠져나왔다.

인천은 남매의 고향이었다.

정지은은 30년 만에 되돌아온 인천을 보고서 이렇게 감상평을 남겼다.

"아오 배고프다."

그랬다.

그녀는 배가 고팠다.

고향땅을 밟고서 순수한 소녀처럼 감상에 젖을 리 없었던 것이다.

어느덧 인우는 택시를 잡고서 그녀를 데리고 강원도 거주지로 향했다.

그렇게 택시는 한참을 내달렸다.

택시는 주변에 어스름이 깔릴 무렵 강원도에 들어섰다.

정지은은 산골이나 다름없는 강원도를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시골도 이런 시골이 없었다.

오빠가 제법 힘든 생활을 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할 뿐이었다.

그렇게 조금 더 이동하자, 강원도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인우의 거주지에 도착했다.

일행은 마침내 택시에서 내렸다.

택시에서 내린 정지은이 제일 먼저 마주한 것들은 널따란 땅에 지어진 주택들이었다.

개중엔 사육장처럼 보이는 꽤 큰 건물들이 몇 채 있었다.

그 규모가 상당했다.

정지은은 인우의 거주지를 바라보며 잠시 침묵했다.

그 모습을 본 인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했다.

"놀랐냐?"

"조금? 쫌 산다? 간신히 입에 풀칠은 하겠네."

"뭐, 먹고는 살 만해."

이 모습을 지켜본 민철은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엄청난 규모의 땅과 건물들을 보며 하는 소리가 풀칠은 하겠다는 둥, 먹고 살만하다는 둥······.

그렇게 따지면 민철은 서울역 노숙자라도 되는 건가······.

'끄응.'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의 대화에 가만히 선 채 멍만 때리는 민철이었다.

그때.

"야, 뭐 해. 빨리와."

그 말에 퍼뜩 정신이 든 민철이 저만치 앞서가는 인우와 지은을 바라보며 뛰어갔다.

"예, 예!"

'정말 미친 집안이라니까······.'

다시 한 번 인우가( 家)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는 민철이었다.

* * *

주인님이 미국이라는 곳으로 떠난 지 오늘로서 4일째.

퀸은 오늘도 어김없이 사육장 일을 끝마치고 주택 거실 쇼파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무릎에는 팜이가 앉아 있었고, 둘은 호기심이 가득 담겨 있는 동그란 두 눈동자로 TV방송을 시청하고 있었다.

퀸은 늘 뉴스를 시청하곤 했지만, 근래에 들어서 예능 프로까지 식견(?)을 넓힌 상태였다.

-파암.

최근 덩치가 더욱 커진 팜이는 알껍데기를 씹으며 퀸의 허벅지에 머리를 부비적 대고 있었다.

그러길 잠시.

어느덧 주택의 현관문이 열렸다.

그리고 주인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퀸은 즉시 쇼파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무릎에 누워 있던 팜이가 바닥을 굴렀다.

-파암!

팜이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퀸을 쏘아보았지만, 퀸은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로 양손을 모은 채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이윽고 인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있었냐?"

"다녀오셨어요."

퀸은 그렇게 인사하며 허리를 폈다.

그런데, 그때 퀸의 시야에 민철 말고도 다른 한 사람이 더 보였다.

여자였다.

문득 퀸은 저도 모르게 경계의 눈초리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 정지은이 말했다.

"동거녀냐? 너도 남자다 이거지?"

"뭐라는 거야."

-파아암!

어느덧 팜이가 인우를 발견하고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인우의 품으로 뛰어 들어왔다.

"더 커졌네."

인우는 팜이를 품안 가득히 안아들며 말하고 있었다.

-파암······.

팜이는 인우의 단단한 가슴팍에 얼굴을 묻다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신음했다.

딱딱했기 때문이다.

그러더니 녀석은 그 즉시 인우의 옆에 있던 지은의 가슴으로 날아들었다.

-파암!

팜이는 폭신한 것을 참 좋아했다.

어느덧 녀석은 지은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파아암!

"······."

그러자 지은이 팜이의 겨드랑이 사이로 양손을 집어넣고 녀석을 번쩍 들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대로 팜이를 내던져 버렸다.

콰당-!

그러더니 손을 털며 한마디 했다.

"저건 뭔데?"

"내 애완동물."

"나한테 접근하지 못하게 해. 죽여 버릴라니까."

팜이와 지은의 경우 상성이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그 누구라도 지은과는 잘 맞지 않을 것이다.

옆에 있던 민철은 인우보다 곱절은 고약한 성격을 지닌 그녀를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민철은 이미 미국으로 향할 때, 혹시라도 인우의 여동생이 자신과 잘되진 않을까. 라는 망상 따위는 거둔 지 오래였다.

도리어 맞아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었으니까.

어느덧 퀸이 인우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며 물었다.

퀸의 얼굴에는 여전히 경계의 빛이 서려 있었다.

"주인님. 저 여자는 누구에요?"

"어, 내 동생."

"아······."

동생.

그 한마디에 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퀸은 지은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에 지은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주택 안으로 들어섰다.

지은은 마치 제 집이라도 되는 것 마냥 쇼파에 드러눕더니 양말을 벗어던졌다.

그리고 짧고 강렬히 말했다.

"됐고, 밥."

그 한마디에 퀸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 지었다.

주인님과 판박이였다.

좀 전의 경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주인님의 여동생이었으니 말이다.

* * *

챠륵- 챠륵-

바투 부족 영역.

그 중심부에 위치한 건물 내부의 회의실.

챠륵- 챠륵-

족장에게만 허락된 의자에 앉은 바투는 손에 든 목걸이를 천천히 던졌다 받으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지난 한 달간 병력을 재정비했다.

부족 최정예 전사들.

나아가, 3천만 명가량의 블랙오크 전사들.

그리고 얼마 전에 합류한 멸살단의 단장 지천우를 포함한 단원들.

굉장한 병력이다.

바투의 세력은 13개 부족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할 것이다.

게다가 바투 본인의 무력만으로도 능히 일당백의 전력이었다.

그러니 이쯤이면 중국의 통합을 위해 움직여도 되지 않을까?

어찌되었건 존재하는 모든 부족을 통합해야만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내부적인 문제를 해결해야만, 인간들의 세상에도 침공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의 모든 부족들을 통합한다면, 대략 5억 마리에 육박하는 블랙오크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이 정도의 전력이라면 인간들의 세상을 침공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통합은 꼭 거쳐야만 할 문제였다.

그러나 중국에 존재하는 13개 부족들은 저마다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했다.

어떤 한 부족이라도 먼저 움직인다면, 나머지 부족들이 연달아 움직여 합심하고는 공격을 감행해 올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바투는 초강수를 둘 예정이었다.

본래대로라면 한국인 여자를 통해 조금 더 혈통이 좋은 개체를 만들 요량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참을 만큼 참았다.

바투는 회의실에 각 전투단장들을 모조리 소집했다.

이윽고 회의실은 덩치가 산만 한 블랙오크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둘씩 자리에 착석하며 바투를 바라보았다.

회의장은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그 어떤 누구도, 바투가 입을 열기 전에는 한마디도 내뱉지 않고 있었다.

챠륵-

바투는 그저 가만히 생각에 잠긴 채 연신 목걸이만 던졌다 받을 뿐이었다.

나아가, 바투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중했다.

이윽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바투가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다 모였나?"

"위대한 전사 바투. 우리는 다 모였습니다."

그 말에 바투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피처럼 붉은 바투의 안광이 전투단장들을 하나하나 훑기 시작했다.

바투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모든 전투단장들의 눈동자를 일일이 직시했다.

그리고 그 보다 더 느리게,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말을 내뱉었다.

"이제 때가 되었다."

그러자 회의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바투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결 더 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부족 통합 작전을 시작한다."

명을 전달받은 전투단장들이 희의실에서 나가고 난 뒤에도 바투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손을 굴려 목걸이에 있는 어금니들을 만지던 바투.

그가 다시 생각에 잠긴 듯 목걸이를 위로 던지는 순간.

챠르륵 턱.

생각보다 높이 올라간 목걸이는 바투의 손이 아닌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인간들의 어금니로 만든 목걸이.

인간을 정복하고자 하는 뜻을 담아 만든 목걸이는 바닥에 널브러진 채 반짝 거렸다.

< 074화 미친 집안 > 끝

ⓒ 호종이

< 075화 폭풍전야 >

강원도 사냥터.

민철은 거대한 대검을 치켜들고서 6존의 입구에 서 있었다.

현재 민철의 레벨은 57이었다.

솔직히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았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만년 1존 초인이었던 민철이었다.

그러나 인우를 만나고 그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 버렸다.

민철은 아직도 인우와의 첫 만남을 기억한다.

맨손으로 사냥터에 등장했던 인우는 민철의 강철대검을 강탈(?)하고 오우거를 때려잡았다.

그때의 강렬한 기억은 지금도 눈앞에 선했다.

딱 보아도 초보처럼 보였던 인우에게 훈수를 두려다가 그의 강력한 무위를 목격하고 어찌나 놀랐던지.

그 뒤로도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민철은 인우와 함께 곰 인형 탈을 뒤집어쓰고 자그마치 길드까지 털러 가지 않았나?

과거였다면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역시 인생이 꽃피우기 위해선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

민철은 그런 생각을 하며 6존을 거닐었다.

철그럭-

그가 걸을 때마다 갑옷이 마찰을 일으키며 소리를 냈다.

이 갑옷조차도 인우가 사 준 것이었다.

그렇게 걷길 잠시.

-크워어어어어!

마침 저 앞에 오우거 한 마리가 피어하며 방방 날뛰고 있었다.

강원도 사냥터는 사람이 적다.

민철은 텅 비어 있다시피 한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내 오우거에게로 다가섰다.

민철은 침착하게 오우거의 몸통을 겨눈 채 대검을 휘둘렀다.

근래에 들어서 간혹 가다 인우가 훈련을 빙자하며 민철을 사정없이 구타하곤 했다.

민철은 그럴 때마다 정말로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인우의 손속은 그만큼 자비를 몰랐으니까.

그리고 놀랍게도, 죽음의 위기를 겪을 때마다 감각이 향상되었다.

그 때문인지 현재 민철은 57의 레벨로도 오우거를 두고서 전혀 겁먹지 않고 있었다.

인우에 비하면 이런 녀석은 오히려 하품이 나올 지경이다.

카앙-!

-크워어어어!

"와라 와라!"

민철은 고함을 내지르며 대검을 휘둘렀다.

오우거가 달려들 때마다 민철의 두툼한 팔뚝이 쉴 틈 없이 대검을 휘둘러댔다.

오우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끊겨 버렸다.

[경험치를 190 획득하였습니다.]

"훗. 이 정도라면 3마리까지는 거뜬하겠는데?"

민철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오우거의 전리품을 채취하기 위해 이동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이 거기 잠깐 스톱."

6존의 건물에서 웬 거구의 사내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민철을 꼬나보며 불량스럽게 말했다.

"갑옷 좋아 보인다?"

"······."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어딘가에서 많이 보았던 레퍼토리다.

흔히 드라마에서 삼류 건달 양아치들이 남자 주인공에게 덤벼들 때나 쓰는 수법 아닌가?

'흐음······.'

민철은 채취를 하다 말고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놈들의 숫자는 도합 3명.

아마도 건물 같은 곳에 숨어 있다가 혼자 다니는 초인을 털어 가는 양아치들 같았다.

이윽고 민철은 턱을 꼿꼿이 들고선 목소리를 최대한 깔았다.

민철 딴에는 인우를 흉내 내는 것이었다.

항상 언제고 따라해 보고 싶었다.

그 정도로 박력이 넘치고 멋졌으니까.

"뒤지고 싶냐?"

민철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세 놈이 배까지 부여잡고 폭소하기 시작했다.

"푸, 푸하하하! 저 돼지 새끼가 지금 뭐라 그러는 거냐?"

"야, 새끼야. 분위기 파악 안 되냐? 오우거 한 마리 때려잡았다고 기고만장인데?"

놈들이 으름장을 놓았다.

"말로 해선 안 되겠구나?"

민철은 지지 않고 되받아쳤다.

이 순간,

민철은 인우를 완벽히 연기했다.

그리고 정말로 몰입하고 있었다.

"크아아아압!"

민철은 포효 스킬도 없으면서 괜스레 기합을 내질렀다.

그러자 놈들이 순간적으로 움찔거렸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놈들은 또 다시 웃기 시작했다.

"푸하하하학!!"

"저 새끼 개그맨이냐!"

그러나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타다다다닥!

이윽고 민철이 놈들을 향해 몸을 날렸으니까.

지금, 민철의 머릿속에는 일전에 인우가 해 주었던 말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인우는 민철을 훈련시키며 항상 말했다.

-싸움은 선빵이야. 적들이 나를 얕잡아보고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건 없지. 일단 때리고 봐. 물어뜯건, 낭심을 가격하건, 흙을 뿌리건, 그 어떤 방법도 좋아. 이기면 장땡이다.

* * *

"크, 크흑. 자, 잘못했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민철은 팔짱을 낀 채로 자신 앞에서 무릎을 꿇고 양손을 싹싹 빌고 있는 놈들을 바라보았다.

놈들의 면상은 가관이었다. 코뼈가 부러지고 멍이 시퍼렇게 든 채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 정도는 양반이다.

심지어 한 놈은 귓불이 찢겨 있었다. 아마도 물어뜯긴 것 같았다.

"흐음."

민철은 지금 승리감에 고취되어 있었다.

인우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런데 솔직히 민철도 조금 놀랐다.

근래에 들어서 레벨이 부쩍 올라서 자신감이 상승되긴 했다.

그러나 자신이 이 정도의 무력을 발휘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형님과 대련할 때가 생각났어.'

분명히 그랬다.

대련을 하며 목숨이 경각에 달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러한 순간이 거듭되며 민철의 전투 감각은 비약적으로 상승되어 있었다.

게다가 괴수와의 전투보다는, 대인 전투의 성장률이 무서울 정도였다.

이 녀석들의 공격은, 인우에 비하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윽고 민철은 녀석들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니들 착용한 아이템 다 해제 시켜서 땅바닥에 내려놔."

오늘, 민철은 득템했다.

* * *

정지은은 쇼핑을 갔고, 모처럼만에 평화로운 오후였다.

인우는 주택 마당 잔디밭에서 퀸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다.

무릎을 내어준 퀸은 연신 안절부절이었다.

"주인님···자요···?"

퀸은 그렇게 물으며 힐끔힐끔 인우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에게 머리를 맡긴 주인의 모습에 퀸은 행복감을 느꼈다.

"좋다······."

별안간 그렇게 중얼거린 퀸은 본인이 내뱉고도 깜짝 놀라 인우를 내려다보았다.

다행히 인우는 가만히 누워서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저도 모르게 저런 혼잣말이 튀어나왔기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

그저 이 순간이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했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저 멀리에서 자동차 배기음이 들려왔다.

그러자 잠들어 있는 줄 알았던 인우가 슬쩍 고개를 치켜세웠다.

길 저편에서는 주택을 향해 아반떼가 들어서고 있었다.

민철이의 차량이었다.

이윽고 주차를 끝낸 민철이 품에 무언가를 한가득 안고선 인우에게로 다가왔다.

"형님. 저 왔습니다!"

그러나 인우는 답이 없었다.

무릎을 내준 퀸은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며 인상을 찡그렸다.

닥치라는 의미일 테다.

"흐음······."

민철은 침묵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퀸의 얼굴에는 묘한 행복감이 떠올라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예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저 여자는 인우를 좋아하는 것 같아 보였다.

어느덧 민철은 다시금 인우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형님. 제가 오늘 아이템을 좀 얻었습니다."

민철의 얼굴은 굉장히 진지해 보였다.

이윽고 민철은 조금 더 진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오늘 대련 가능하십니까?"

"웬일로?"

대련이라는 말에 인우가 의외라는 듯 눈을 떴다.

이윽고 인우는 민철을 바라보았다. 녀석의 얼굴에는 묘한 흥분감이 깃들어 있었다.

아마, 훈련의 성과를 조금 본 것은 아닐까?

"부탁드리겠습니다. 형님."

그러면서 민철이 대뜸 대검을 치켜들었다.

성장이라는 것이 참으로 묘해서, 자신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면 재미가 있다.

현재 민철은 성장하는 재미를 느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인우는 퀸의 무릎에서 고개를 떼어 냈다.

그리곤 가볍게 몸을 풀었다.

인우가 퀸에게서 몸을 떼자, 퀸의 안색은 단숨에 똥 씹은 얼굴이 됐다.

그러면서 퀸은 원망스러운 눈동자로 민철을 쏘아 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민철은 굉장히 진중해 보였다.

"지금 바로 시작입니까?"

"더 강해지고 싶은 거지?"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울고 불며 사정해도 소용없다는 건 익히 겪어 봐서 알 거고?"

"물론입니다!"

그렇게 둘의 대련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얼추 1분이 지날 때쯤.

"으아아아아악! 혀, 형님! 살려주세요! 사, 사람 살려! 퀸! 좀 말려 줘!!"

주택 잔디밭에서는 괴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러나 퀸은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그 광경을 구경만 했다.

저 건방진 인간 놈이 주인님과의 달콤한 한 때를 방해했지 않은가.

민철이 괴로워할수록 퀸은 행복해지고 있었다.

"으아아악!! 제발 그만!! 그만!! 으하아아악!"

그리고 퀸의 귓가로 행복한 비명이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실로 평범한 인우네의 하루였다.

* * *

중국 베이징 근방에 위치한 폐허 도시.

이곳은 블랙오크 13 부족 중, 가장 약하다고 평가되는 헤라 부족의 땅이었다.

-와아아아아아!

그리고 현재 이곳을 향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블랙오크들이 침범해 오고 있었다.

달려오는 블랙오크들은 하나같이 기세가 대단했다.

그들의 정체는 바투를 비롯한 그의 수천만 부족원들이었다.

바투는 적진 한복판에서 우렁차게 외쳤다.

"오늘 이후로 헤라 부족은, 나 바투를 따르게 될 것이다!"

별안간 침공당한 헤라 부족이 바투의 병력을 막아섰다.

바투는 용맹했다.

그리고 그의 부하들도 용맹했다.

선봉에 선 바투는 휘하 전사들과 함께 헤라 부족원들의 사지를 비틀며 헤라를 향해 나아갔다.

"흐아아아아압!"

그 기세에 눌린 헤라 부족의 블랙오크들은 볏단이 베여 나가듯 우수수 쓰러지고 있었다.

블랙오크 13 부족 중 하나인 바투 부족.

그들에 의해 부족 통합 전쟁의 서막이 울리고 있었다.

* * *

30년 전.

지극히 평범한 어느 날.

별안간 지구에 게이트 사태가 발생했다.

게이트를 통해 괴수들이 쏟아져 나왔고, 당시 인류는 엄청난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인간은 이 땅의 지배자임을 증명하듯 차츰차츰 괴수들과 맞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괴수들은 이제 인간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그렇게 수십 년간 세계는 평화로웠다.

그러나 인간들의 욕심으로 인해 탄생한 괴물들로 하여금 인류의 평화가 위협받고 있었다.

중국에서 거대한 사건이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에 몰려 있던 블랙오크들이 움직인 것이 그것이었다.

놈들은 한동안 잠잠했다.

놈들 또한 각자의 부족이 있었기에, 그간 놈들은 인류와 마찰할 일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이었다.

바투 부족이 대륙의 통합을 위해 움직인 것이다.

블랙오크 통합.

만일 놈들이 통합된다면······.

어쩌면 인류는 30년 전 보다 더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2020년 현재, 추산되어진 블랙오크들의 개체수는 무려 5억 마리.

만일 하나의 지도자가 그 블랙오크들을 모조리 통합한다면?

그렇게 된다면 인류는 목숨을 걸고 블랙오크들을 막아야만 할 것이다.

블랙오크는 강했다.

놈들은 인간과 오크 사이에서 태어난 이종교배 괴수.

즉, 인간만의 권능인 레벨 업과, 괴수만의 권능인 괴력을 동시에 지닌 괴물인 것이다.

이것은 인류 최대의 위기였다.

* * *

각 국가에는 초인들이 있다.

그리고 각 정부는 대한민국과 같이 '초인관리국' 혹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초인들을 관리하며 괴수와 관련된 사건을 해결하는 기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각 국가에도 기관이 있듯 전 세계적인 초인 기관이 있었다.

세계초인협회.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세계초인협회는 국제기관의 하나였고, 평시에는 큰 힘과 권한을 갖지 않았다.

어떤 단체나 그렇듯 한 곳에 힘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다만, 괴수들에 의해 인류의 존망이 갈릴 만큼 위험이 있다고 판단이 될 때, 각 국가의 수장 및 초인 관리 기관의 장들을 소집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세계초인협회가 만들어진 이후 처음으로 각 국가에 비상 소집령이 떨어졌다.

< 075화 폭풍전야 > 끝

ⓒ 호종이

< 076화 미친 남매 (1) >

미국 워싱턴에 위치해 있는 세계초인협회.

이곳 회의장에는 각 국가의 정상들과 초인 관리 기관의 장들이 모여 있었다.

사상 최악의 사태에 각 국가에 비상 소집령이 떨어진 것이다.

회의장에서는 회의가 한창이었다.

미국 대표가 말했다.

"블랙오크가 통합 된다면 그것은 곧 인류 최대의 위기가 될 겁니다."

"지금 당장 각국의 랭커급 초인들을 모집하여 중국에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베트남 대표가 제안하고 있었다.

베트남은 중국과 닿아 있는 국가이다.

즉, 블랙오크가 통합된다면 베트남과 같은 접경지역에 속해 있는 국가들이 가장 먼저 블랙오크들의 마수에 당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접경지역 국가들은 애가 탈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인도 대표도 동조하며 거들었다.

"맞습니다. 통합이 되기 전에 속히 중국에 각국 초인들을 보내서, 블랙오크들을 저지해야 합니다."

그러자 일본 대표가 고개를 내저었다.

"국가 전력에 해당하는 랭커들을 사지로 내몰자는 겁니까?"

일본의 경우 섬나라 특성상 블랙오크의 침공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난 국가이다.

그래서일까?

일본 대표는 대놓고 표정을 구기고 있었다.

블랙오크 통합 저지.

솔직히,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지 자국의 손해를 덜 보기 위해 급급해 하고 있는 것이었다.

당장의 득실을 따지려니 이러한 태도를 일관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앞만 보는 멍청한 행태임에는 분명했다.

사실, 지금 가장 급한 국가는 중국과 접경지대에 닿아 있는 인도나 베트남과 같은 국가들이었다.

어긋나기 시작한 의견.

회의장은 점차 과열되어 가고 있었다.

어느덧 한국 대표가 말했다.

"결국, 블랙오크가 뭉치면 다 죽는 건 기정사실입니다. 그런데 당장의 득실을 위해 멍청한 눈치 싸움이나 하고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한국의 경우 초인강국 중 하나였기에 제법 큰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덧 미국 대표도 이에 동조했다.

"인류의 평화가 달린 문제입니다. 득실은 내려놓고, 합심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 당장 각국은 랭커를 비롯한 초인부대를 편성하여 중국에 보내야만 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든, 블랙오크의 통합을 막아내야만 합니다!"

이에 접경지대에 속한 국가들도 동조하며, 회의의 결론은 점차 드러나고 있었다.

지금은,

뭉쳐야만 할 때였다.

* * *

정지은은 백화점에서 제법 만족스러운 쇼핑을 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몇 억이나 썼지?"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에는 마치, '오늘 저녁 뭐 먹지?'와 같은 가벼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사실 그녀의 경우 돈이야 차고 넘쳤기에 금전에 구애받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가볼까나~"

정지은은 양손에 쇼핑백을 가득 든 채로 인우의 집으로 향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강원도에 도착한 그녀는 택시기사에게 지갑에서 집히는 대로 돈다발을 건네주었다.

졸지에 요금 10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건네받은 택시기사는 만면에 웃음을 그려넣더니, 직접 차에서 내려 택시 문까지 열어주며 정지은을 극진히 모셨다.

정지은은 그러한 대접이 싫지만은 않은지 헤실 웃으며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곤 곧바로 인우의 주택 마당에 들어섰다.

"오잉?"

마당에 도착한 그녀는 그런 추임새를 넣으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크흐흐흑. 혀, 형님. 오늘 대련은 이 정도로 끝마치....!"

"뭐라는 거야. 그건 내가 결정해."

마당에서는 오빠인 정인우와 뚱뚱한 그의 부하가 싸우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보자면, 일방적인 구타를 당하고 있었다.

어느덧 정지은은 그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외쳤다.

"재밌냐? 나도 껴줘!"

"흐, 흐이이익! 누님. 제발!"

민철은 지은을 바라보며 울상이 되어 있었다.

저 여자가 얼마나 무서운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여자는 자그마치 인우를 기절시킨 인간이 아니던가!

정말로 죽을 지도 모른다.

민철은 부들부들 떨며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

차라리, 기절이라도 해서 이 지옥 같은 현장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그러나 기절이라는 자비는 내려지지 않았다.

저 미친 남매는 악마처럼 웃으며 민철을 샌드백처럼 후려패기 시작했다.

"커헉!"

그리고 민철은 게거품을 게워내며 보고야 말았다.

저 편에 가만히 앉아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퀸을.

퀸은, 컵에 가득 담긴 붉은 액체를 쪽쪽 빨아대며 민철이 구타당하는 것을 끝끝내 지켜보고 있었다.

입가에 진한 미소를 그려넣으며 말이다.

주인님과의 꿀 같았던 시간을 방해한 민철이었기에, 퀸은 민철이 맞는 광경을 보며 막혀 있던 속이 뻥 뚫리는 것과 같은 쾌감을 맛보고 있었다.

* * *

민철은 코피를 질질 흘리며 마당 잔디밭에 대짜로 뻗어 있었다.

"후우. 후우. 후웁."

다행히 숨은 쉬어진다.

죽지 않은 것이다.

한편, 구타(?)를 끝마친 정지은은 쇼핑백을 흔들며 퀸을 불렀다.

"언니. 이리 와봐."

"...네에?"

그러자 퀸이 조금은 겁먹은 얼굴로 지은에게로 쪼르르 걸어왔다.

그러자 지은은 퀸의 자주색 원피스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설마 우리 오빠가 사준 거야?"

"네에."

"어휴, 그럴 줄 알았어. 무슨 노땅도 아니고 이딴 걸 입혀."

지은은 그렇게 투덜대며 쇼핑백 하나를 퀸에게 건넸다.

"언니 옷 좀 사왔어. 받아."

그러자 퀸은 잠시 주춤거리며 인우의 눈치를 보았다.

퀸의 눈동자에는 '받아도 되요 주인님?'이라는 뜻이 한 가득 담겨 있었다.

이에 인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퀸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쇼핑백을 받았다.

순박하기 그지없는 퀸의 미소에 지은은 흐뭇한 표정을 했다.

"이 언니 생긴 거랑은 다르게 노네."

"아니에요. 나는 놀지 않아요."

퀸은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렇게 답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은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윽고 퀸은 쇼핑백을 열어보았다.

그러자 그 안에는 값비싼 옷들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역시나 개방적인 지은이 고른 옷답게 의류들은 모조리 노출이 심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퀸은 관여치 않고 너무나도 기뻐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지은은 혀를 끌끌 차며 인우를 쏘아보았다.

"야, 정인우. 너 이렇게 예쁜 여자 데리고 살면서 옷 한 벌 달랑 사준 게 다냐? 설마?"

"흐음."

인우는 그저 팔짱을 끼고 퀸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퀸이 의류에 유독 관심이 많은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간 바빴던 인우는 퀸을 잘 챙겨주지 못했다.

뒤돌아 생각해보니 확실히 퀸은 매일 똑같은 옷만 입고 있었다.

인우가 사다주었던 저 리넨 원피스.

퀸은 무조건 저 옷만 입었다.

생각도 잠시.

어느덧 지은은 또 다른 쇼핑백 하나를 인우에게 건넸다.

"야, 이건 니꺼다. 이상한 옷 입고 다니지 말고 내가 사준 거 입어라. 경고했다."

"나 원 참."

쇼핑백을 열어 본 인우는 싫지만은 않은지 살포시 웃음 짓고 있었다.

어느덧 바닥에 홀로 쓸쓸히 누워 있던 민철이 몸을 일으켜 세우며 중얼댔다.

"누님. 제껀...?"

"아, 맞다. 너도 있었지?"

'아니, 방금 전까진 그렇게 신나게 후드려 패시더니 그새 절 잊으신 겁니까...'

민철은 목젖 끝까지 차오른 그 말을 간신히 눌러 담았다. 혹시라도 저 여자가 갑자기 폭주할 수도 있었으니까.

당분간 민철은 대련의 디귿자도 꺼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걸 어쩌지?"

지은은 중얼대며 민철에게로 다가왔다.

그러자 민철은 흠칫 하며 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이윽고 민철의 얼굴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정지은이 별안간 민철의 엉덩이를 토닥였기 때문이다.

"저, 저기. 제가 엉덩이는 좀 민감한데."

"됐고, 다음엔 너도 잊지 않을게. 우리 오빠 성격 맞추느라 힘들지?"

'당신 성격 맞추는 게 몇 배는 더 어렵거든요...'

민철은 그 말을 꾹 눌러 참으며 얌전한 강아지처럼 엉덩이를 맡기고 있었다.

그러나 지은의 손길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윽고 손을 뗀 지은이 인우가( 家)의 식구들을 향해 말했다.

"밥 먹자고."

그러면서 그녀는 마치 집주인처럼 자연스러운 발걸음으로 주택을 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우우우우우웅!

저편에서 커다란 배기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음에 인우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리고 시선의 끝에는, 거대한 버스가 보였다.

어느덧 버스는 인우의 주택 앞에 주차했다.

그리고 버스에서 거구의 사내들이 내려서기 시작했다.

사내들은 도합 30여명.

그들 중, 오른 쪽 끝에 있는 사내 3명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3명의 사내는 저마다 멍이 들고 귓불이 찢기고, 얼굴이 엉망이었다.

어느덧 30여명의 사내들의 대장 격으로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여기가 확실하냐? 강원도 사냥터에서 너희를 그 꼴로 만들고 아이템을 강탈한 새끼가 확실히 여기로 왔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팀장님."

"흐음."

이윽고 사내들은 인우의 허락도 맡지 않고 주택의 마당까지 들어섰다.

이어 놈들은 더러운 흙발로 잔디를 마구잡이로 밟으며 가래침을 뱉었다.

그러던 중, 3명의 사내가 검지를 치켜들며 민철을 가리켰다.

"팀장님. 저, 저기. 저 뚱뚱한 저 놈입니다!"

"호오? 그래?"

어느덧 팀장이라고 불린 남자는 민철을 향해 말했다.

"너냐? 우리 제로 길드의 길드원들을 패대기친 놈이?"

그러나 민철은 답 하지 않았다.

민철은 그저 인우를 향해 미안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러나 정작 인우는 재밌다는 듯 킥킥대고 있었다.

솔직히 인우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웃기겠는가.

저 놈들도 아마 거대 길드에 속해 있는 놈들인 것 같은데, 놈들의 코앞에 존재하는 남자가 미친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태도를 일관할 수 있을까?

이러나저러나 민철은 사내의 말은 가볍게 무시한 뒤 인우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형님. 제가 죄송합니다. 저 놈들이 저에게 먼저 시비를 걸어서 혼내준 건데, 놈들이 꼬리를 물고 쫓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어느덧 몰려온 사내들을 향해, 퀸과 정지은도 다가와 있었다.

그러자 사내들은 퀸과 정지은을 바라보며 혀를 날름거렸다.

"허어. 이거 이거, 어찌 이렇게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여기 있나 그래? 허허허!"

그러자 정지은이 인우를 향해 물어보았다.

"야, 정인우. 쟤네 뭔데?"

"응? 아, 음..."

어느덧 인우는 자신을 향해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민철의 뒤통수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민철에게 물어보았다.

"그래. 민철이 니가 저기 면상이 아작 나 있는 3명을 조졌다 이거지?"

"...네 형님."

"맞지도 않았고?"

"네. 형님."

"잘했다."

인우가 민철을 칭찬해주었다.

그러자 민철의 얼굴이 단숨에 풀렸다.

그러나 인우의 말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어느덧 인우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잘 했는데 말이야.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만들었어야지. 민철아. 잘 봐라. 내가 보여줄게. 적이 될 놈들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그렇게 말을 마친 인우는 스산한 얼굴로 사내들을 향해 한걸음 다가갔다.

그러자 사내들이 인상을 구기며 인우를 위협했다.

"야, 너 뭐야? 죽고 싶어?"

"그래서, 너네가 어디 길드라고 했지?"

"이 새끼 봐라? 우리는 제로 길드다. 뒤지기 싫으면 나와라. 우리는 저 뚱땡이한테 볼 일이 있으니까."

"아아, 제로 길드? 그런데 너희, 지부가 몇 개냐?"

"응?"

"지부가 몇 개냐고."

인우는 그저 그렇게 물었다.

어느덧 뒤편에 있던 정지은과 퀸도 걸어 나왔다.

지은은 양 손에 화염과 전기를 응축시키며 물었다.

"쟤들 뭔데? 그냥 다 때려 부수면 되는 거야?"

어느덧 마당에는 정인우와 정지은, 그리고 퀸이 사내들 앞에 섰다.

그리고 그즈음, 사내들은 무언가 묘한 분위기를 느꼈다.

이건 마치, 호랑이 굴에 들어온 것 같은 으스스한 기분이랄까...

< 076화 미친 남매 (1) > 끝

ⓒ 호종이

< 077화 미친 남매 (2) >

정지은이 인우를 뒤로 물리며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이어 그녀는 잔뜩 몰려온 제로 길드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나가 오늘 하루 종일 쇼핑 하느라고 배가 무지 고프거든?"

"난데없이 뭔 소리냐?"

그러자 사내들의 대장 격으로 보이는 남자가 답하고 있었다.

지은은 그런 사내를 정면으로 응시한 채 입을 열었다.

"뭔 소리냐니? 너희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내 식사시간이 늦어지고 있잖아. 죽고 싶어?"

"뭐, 뭐라고?"

사내가 당황했다.

어느덧, 지은의 뒤편에 있던 인우는 고개를 내저으며 중얼댔다.

"내 기억으로는 아마··· 쟤는 배고플 때 굉장히······."

파스스스슥-!

그렇게 중얼대기도 잠시.

어느덧 지은이 잔디를 박차며 사내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새빨간 화염이 응축되어 있었고, 왼손은 강력한 전격으로 인해 스파크가 튀었다.

그녀는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다.

그러나, 육체 전투까지 겸비한 마법사였다.

일종의 듀얼 클래스랄까?

하긴, 애초에 그녀의 불같은 성질머리를 하나의 클래스에 담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듀얼 클래스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후웅-

어느덧 달려들던 그녀의 신형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어어!?"

"뭐야!?"

난데없이 사라진 지은.

그러자 사내들은 잔뜩 당황한 채 사방을 훑기 시작했다.

그리고.

척!

어느덧 지은이 사내들이 모여 있던 중심부에 모습을 드러냈다.

"텔레포트??"

"마법사가 분명하다!"

"마법사인데 무슨 자신감으로 적진 한복판으로 들어선 거냐?"

"죽여!!"

사내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정지은을 보통 초인과 비교해선 안 된다.

그녀는 미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랭커.

거기엔 다 이유가 있었다.

"아가리에 헬 파이어를 꼽아 주마."

후웅-!

그녀는 스산히 말하며 화염이 물든 오른 주먹을 휘둘렀다.

퍼엉!

"쿠업!"

그리고 그녀의 조그마한 주먹은 전방에 있던 한 사내의 입속에 틀어박혔다.

그러자 사내는 엄청난 열기를 느끼며 고통에 떨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지은은 그 상태로 오른 주먹에 마나를 끌어 올렸다.

화르륵!

콰드드드득!

그러자 지은의 주먹에 스며들어 있던 화염이 일순간 폭발을 일으키며 터졌다.

철푸덕-

그렇게, 삽시간에 사내 한 명이 쓰러졌다.

이제 남은 놈들은 29명.

그들은 그녀의 위력을 코앞에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미, 미친!"

"저 년은 도대체 뭐야!?"

정지은이 주춤대는 녀석들을 향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이 우리 오빠 부하에게 무슨 짓을 했건, 또 무슨 짓을 당했건, 나는 조금도 관심 없어. 그냥 나는 빨리 밥을 먹고 싶을 뿐이야. 그러니까 이해 좀 해라."

텍사스의 악녀.

그녀는 괜히 악녀로 불리던 것이 아니었다.

이내 그녀는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 뒤에 숨겨진 그녀의 본모습은 결코 상큼하지 못했다.

"시, 시팔! 튀, 튀어!!"

"마, 마스터에게 연락해! 지원 요청을!!"

콰드드드드득-!

"이제 끝이다. 밥 먹자 밥."

지은은 끝을 예견했다.

이윽고, 공중에서 새파란 얼음덩어리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영창조차도 없는 빠른 마법이었다.

게다가 이것은 보통 얼음이 아니었다.

당연하다.

마나로 이루어진 얼음 덩어리들이니까.

이 얼음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최소 동상이었고, 직격으로 맞게 되면 그대로 얼어붙게 된다.

콰드드드득-!

이건 마치 파리를 잡기 위해 핵폭탄을 날리는 격이랄까?

빠르게 처치하기 위함이었다.

지은은 그만큼 배가 고팠다.

어느덧 지은이 인우쪽을 바라보며 뒤늦게 말했다.

"아아, 맞다. 오빠 너도 있었지? 니 여친하고 부하 데리고 알아서 피해라."

쾅! 쾅! 쾅! 쾅!

"크아아아아아악!"

"사람 살려!!"

이윽고 마당의 잔디밭은 쑥대밭이 되어 버렸다.

* * *

지은은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한가로이 쇼파에 누웠다. 그녀는 퀸과 함께 TV에서 방영되는 예능 프로를 보며 깔깔대고 있었다.

그러길 잠시.

어느덧 옷방의 문이 열리더니 정인우가 거실로 나왔다.

그러자 정지은이 인우의 꼴을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재롱 잔치라도 있냐? 꼴이 그게 뭔데?"

지은은 TV에서 시선을 거둔 채 어처구니없는 눈동자로 정인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우는 웬 곰 인형 탈을 뒤집어쓰고 있었으니까.

지은은 재차 물었다.

"내 앞에서 아양이라도 떨려는 거야?"

"뭐라는 거야. 됐고, 집에서 쉬고 있으라고."

"응? 그 꼴로 어딜 가려고?"

"알아 무엇 하게?"

"뭐라고 했냐 지금?"

남매의 대화에 거실 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던 민철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미친 남매야. 불과 불이 만났다. 저런 별 거 아닌 걸로도 싸울 수도 있다. 어, 어떡하지······.'

민철은 그런 걱정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퀸도 마찬가지였다.

'두 분이서 싸우면 주인님을 보호해야 해.'

그러나 팜이의 경우는 달랐다.

-파아암!

녀석은 눈치 없이 남매 사이를 방방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남매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쏘아보며 자기 할 말만을 내뱉고 있었다.

"야 정인우. 말 안 해? 그 꼴로 어디 가냐니까? 행사장 알바라도 가는 거냐? 솔직히 말해. 사는 거 힘들면 내가 도와줄 테니까 그딴 거 하지 말라고."

알고 보니 지은은 딴에는 걱정이 되어서 저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의 입장에서 돈이야 차고 넘칠 텐데, 오빠라는 인간이 저런 꼴을 하고 있으니 순간 답답함이 차올랐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덧 인우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이거 뒤집어쓰면,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해."

"그거야 당연하지. 얼굴하고 몸이 가려지니까. 그래서? 그래서 그거 뒤집어쓰고 알바하는 건 창피하지 않으니까 신경 꺼라 이거냐?"

"그게 아니라, 아까 왔던 새끼들 본부에 갈 생각인 거다."

"아?"

그제야 지은은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오빠 넌 지금, 아주 재밌는 걸 하러 가는 거구나?"

"재밌는 게 아니야. 당연한 거지. 놈들을 가만 둘 순 없지. 가만히 있던 민철이한테 시비까지 걸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내 영역까지 침범한 놈들이다. 경고쯤은 해 줘야지."

"오호! 좋아. 나도 간다."

지은은 마치 전쟁놀이를 처음 하는 꼬마처럼 발그레하게 상기된 얼굴이었다.

어느덧 인우가 거실에 거치되어 있던 용작두를 뽑으며 답했다.

"좋을 대로. 인형 탈은 옷 방에 많아. 그리고 갈색은 내 전용이니까 건들지 마. 죽는다."

"노땅 새끼. 내가 그딴 칙칙한 갈색 인형 탈을 입을 거 같냐? 잔말 말고 기다려."

말을 마친 지은은 단숨에 옷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민철과 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그들로서는,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과 같은 일촉즉발의 위기감을 떠안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오래지 않아, 옷방의 문이 열렸다.

"야, 정인우. 가자."

그리고 문을 비집고 나온 노란 곰 한 마리가 말하고 있었다.

* * *

세계초인협회의 첫 번째 회담이 끝났다.

결론은 비교적 공평하고 좋은 방향으로 나 있는 상태였다.

각국은, 200레벨 이상의 랭커급 초인 50명, 그리고 100레벨 이상의 초인 1000명을 차출하여 중국에 급파하기로 했다.

이는, 한 국가에 해당하는 사항이었고, 모든 국가의 전력이 합쳐진다면 엄청난 병력이 모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병력으로 중국의 부족 통합을 막는다.

이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었다.

핵미사일과 같은 인류의 살상무기는 애초에 사용이 불가능했다.

인류는 이미 오래전에 중국 땅에 들어선 블랙오크들에게 핵을 쏘지 못했었다.

중국은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괴수사육장 사업을 넘어서서 이종교배까지 했던 국가였다.

그리고 중국은 그러한 이종교배로 인해 태어난 블랙오크들에 의해서 함락 당했다.

그 때문에 현재 중국에는 살아남은 1억 명 가량의 중국인들이 노예로 잡혀 있었다.

중국인들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인종들도 존재했다.

즉, 중국 땅에는 블랙오크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핵미사일.

그것은 이미 오래전 인권 단체들의 반발로 인해 안보리에서 통과되지도 못했다.

게다가 핵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미사일도 아니고, 핵을 쏘게 되면 중국과 지형이 맞닿아 있는 국가들의 피해는 누가 책임질 수 있겠는가?

중국과의 접경 국가들의 반발도 심했던 것이다.

방사능으로 인한 2차 피해는 그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었으니까.

방사능에 의해 돌연변이 괴수가 발생할 확률도 무시는 못했다.

그랬기에 현재 인류가 빼든 카드는 '초인'이 된 것이다.

블랙오크가 부족 통합을 위해 움직였다.

막아야만 하는 것이다.

한국 초인관리국의 국장과 각 지부장들은 인원 차출을 위해 즉각적으로 움직였다.

* * *

인천.

제로 길드의 본부.

이곳 건물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은 모두가 잠든 늦은 저녁시간 때였다.

그야말로 천둥과 같은 전격 마법이 본부의 건물에 내리 꽂힌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본부 앞에는 갈색곰과 노란색 곰이 서 있었다.

갈색곰, 아니, 미친곰.

그가 노란곰을 향해 말했다.

"야. 건물 무너뜨리지 마라."

"이 정도로 안 무너져. 힘 조절 잘 한 거라고."

"아오, 내가 왜 너를 데리고 와서······."

인우는 그렇게 말하며 본부를 향해 한걸음 더 다가섰다.

방금 전, 여동생의 미친 마법이 본부 정수리에 꽂혔으니 곧 반응이 올 것이다.

-위이이이이이잉!

아니나 다를까.

어느덧 제로 길드 본부에 비상사태일 때나 울리는 뾰족한 경고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본부 입구에서 길드원들이 눈을 부라리며 나오기 시작했다.

"어떤 개새끼야!"

"죽고 싶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이에 인우는 대답 없이 용작두를 치켜들고 허공에 스윙을 날렸다.

후웅-!!

그러자 태풍과 같은 바람이 일며 놈들이 다시금 입구로 밀려났다.

"들어가. 들어가. 한데 모여 있어야 내가 편하지."

그러면서 인우는 성큼성큼 본부의 입구를 향해 걸었다.

지은도 인우의 뒤를 따랐다.

남매 곰은 걷는 모양새도 비슷했다.

* * *

"마스터! 마스터! 큰일 났습니다!"

제로 길드의 마스터는 인상을 찌푸렸다.

난데없이 마스터룸의 문을 두드려 대는 소리 때문이었다.

이내 그는 침대 양쪽에 나체로 엉켜 있는 여자들을 옆으로 밀치며 신경질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윽고 그는 가운을 대충 걸치며 밖을 향해 소리쳤다.

"야이 개새끼야! 내가 즐기고 있을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방해하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마스터!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고요! 바깥에 미친곰이 쳐들어왔습니다!"

"뭐어?"

제로 길드의 마스터는 잠시 벙찐 얼굴을 했다.

미친곰이 누구였더라?

아.

그 미친놈···?

나이트 길드를 개박살 내고 SG그룹을 괴멸시킨······?

"야이 씨팔!! 빨리 불렀어야 될 거 아니야!"

이윽고 그는 갑옷과 무기를 챙기며 곧장 나섰다.

그리고 로비까지 헐레벌떡 뛰어왔을 때 미친곰의 실물을 볼 수 있었다.

정말 그놈이었다.

용작두를 치켜들고 곰 인형 탈을 뒤집어 쓴 미친곰.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곰이 2마리라는 것이었다. 미친곰의 옆에는 노란색 곰도 보였으니까.

< 077화 미친 남매 (2) > 끝

ⓒ 호종이

< 078화 미친 남매 (3) >

갈색곰과 노란곰.

분명히 곰은 두 마리였다.

제로 길드의 마스터는 눈을 가늘게 떴다.

미친곰은 필시 홀로 활동한다고 알고 있었다.

사실을 까놓고 보자면, 정인우는 민철과 함께 나이트 길드 본부를 쑥대밭으로 만든 적도 있긴 했다.

그러나 세간에 알려진 사실은 미친곰은 한 명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

제로 길드의 마스터가 알기로, 미친곰은 단독 활동을 한다.

그렇다면 저것들은 애초에 가짜가 아닐까?

같잖은 놈들이 미친곰의 명성을 이용해 간덩이가 부은 행동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도 잠시.

이윽고 미친곰이 말했다.

"노닥거릴 시간 없다. 내가 바쁘니까 본론만 말할게. 니 졸개들이 내 영역을 침범해서 내가 왔다."

"우리 길드원들이 미친곰 당신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흐음, 그래서, 미친곰 당신이 원하는 게 뭐지?"

"나는 그저 경고를 하러 왔어."

인우는 제로 길드를 개박살 낼 생각이 없었다.

놈들은 미친곰을 두려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힘을 쓰지 않더라도 충분히 경고할 수 있다.

미친곰이라는 이름의 위력이 이정도인 것이다.

"흐으음······."

그러나 제로 길드 마스터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단숨에 이성을 되찾았다.

저 태도를 보건데, 저 미친곰은 가짜일 확률이 지극히 높았다.

아니, 애초부터 세간에 알려진 미친곰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 미친놈이라 알려져 있다.

괜히 '미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게 아니라는 거다.

즉, 마스터가 보았을 때 저 미친곰은 지금 전투를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마스터가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어디서 가짜 새끼가 겁도 없···"

"오호."

인우는 놈의 말을 중도에 자르며 팔짱을 꼈다.

그러자 인우의 옆에 있던 지은이 말했다.

"그냥 다 때려 부수자."

"흐음······."

인우는 잠시 생각했다.

이곳 마스터는 자신을 가짜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힘을 보여 주는 수밖에.

생각을 끝마친 인우가 말했다.

"그러지 뭐."

그러면서 인우는 용작두를 치켜들고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압!!"

마스터 레벨에 닿은 포효.

그 한 방에 건물 내부가 찌르르 울리며 모든 이들은 예외 없이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두려움은 랭커 중의 랭커인 정지은에게도 닿았다.

다만 다른 이들에 비해 비교적 얕긴 했지만 말이다.

어느덧 정지은이 조금 작아진 목소리로 인우를 향해 중얼댔다.

"프로킨이라는 곳에서 짱 먹고 왔다더니··· 살벌하다 너? 나도 있는데 그렇게 소···!!"

"으라아아아아압!!"

그러나 인우는 지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그저 대검관통을 쏘아내며 건물 내부를 부술 기세로 후드려 치기 시작했다.

쾅! 콰아아앙!

콰드드드드득!

순간 정지은은 그 난폭함에 할 말을 잃었다.

그녀로서는 정인우가 전투하는 것을 처음 목격하는 것이었다.

첫 만남에 정인우는 그녀에게 맞아 주었을 뿐 힘을 쓰지도 않았었으니까.

"얼씨구······."

지은도 개차반이라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자신의 오빠인 정인우는 그보다 더 했다.

다만, 평소에는 조용한(?)편이라면, 한번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하나의 폭격기가 되는 것 같았다.

"하아··· 이거 완전 비정상이네."

사돈 남 말하고 있다.

그리고 지은조차도 이처럼 놀라워하는데 제로 길드 놈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어느덧 마스터는 비명을 내지르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흐, 흐이이이익!"

그래.

분명히 잘못되었다.

저 곰돌이는 진짜 미친곰이었다.

진짜 미친곰인지도 모르고 깝죽대 버린 것이다.

그것은 즉, 현 시간부로 제로 길드가 개박살 나는 건 시간문제라는 뜻이었다.

* * *

푸스스스스슥.

제로 길드 로비에 돌가루가 흩날리며 먼지바람이 날렸다. 그리고 로비 중앙에는 노란곰과 갈색곰이 보였다.

그 둘 앞에는, 10열종대로 무릎을 꿇고 있는 제로 길드 녀석들이 보였다.

그 중, 가장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덩치 큰 사내가 유독 돋보였다.

그는 코까지 훌쩍이며 거대한 어깨를 떨어대고 있었다.

"모, 몰라 뵈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앞으로 길드원 관리 철저히 잘 하겠습니다."

"질질 짜지 마라. 내가 뭐, 니 팔을 잘랐냐. 목을 잘랐냐."

"죄송합니다!"

"그리고. 꼭 후드려 맞아야 말을 듣냐? 좋게좋게 가면 얼마나 좋아."

"아아. 죄송합니다! 크흑. 제가 무지하여···! 사죄의 의미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노여움을 푸십시오!"

"응?"

인우는 짧게 반문했다.

그저 다시는 깝죽대지 못하도록 버릇만 고쳐놓으려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겁이 많았던 저 마스터 놈이 간이며 쓸개며 모조리 내어주려 하고 있었다.

이러한 경우라면 뭐······.

어느덧 인우는 던지듯 내뱉었다.

"너희도 대형 길드이니까 유니크 스킬 볼이 있나?"

그 한마디에 마스터는 단숨에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더니 콧물과 눈물을 손바닥으로 훔치며 무릎 꿇고 있는 길드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놈들! 뭐 하는 거냐! 당장에 유니크 스킬 볼을 내와라!"

그렇게 외친 마스터는 다시금 얌전히 바닥에 무릎을 대고 꿇었다.

그러면서 이번엔 노란곰을 향해 물어보았다.

"하명해 주십시오."

"아, 난 됐어. 그냥 스트레스 풀러 온 거거든. 덕분에 잘 놀다간다."

지은의 말에 마스터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왠지 그 말이 더 무서웠다.

저 노란곰은 원하는 것도 없고, 그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이렇듯 깽판을 놓았단 말인가······.

실로 미친 인간들이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어느덧 미친곰은 유니크 스킬 볼을 받고서 무척이나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볼일을 끝마친 미친곰이 로비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미친곰은 제로 길드를 향해 한마디를 남겼다.

"또 올게."

아무래도 미친곰은 제로 길드 마스터의 선물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 것 같았다.

* * *

무색의 스킬 볼.

섭취 즉시 특성에 상관없이 랜덤으로 스킬을 습득할 수 있는 스킬 볼.

그러한 유니크 스킬 볼을 구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다.

돈이 있다고 해서 구할 수도 없는 것이다.

실제로 인우의 재산은 600억 가량이 되었지만, 시장에 풀리는 유니크 스킬 볼은 한 달에 3개가 나올까 말까였다. 때문에 돈이 많다고 해서 구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뜻하지 않게 득템을 하게 된 것이다.

현재 인우에게 가장 절실한 아이템은 오로지 유니크 스킬 볼뿐이었다.

인우는 제로 길드에서 2개의 유니크 스킬 볼을 받아냈다.

현금으로 치자면 100억 원 가량의 금액이다.

엄청난 가격.

그럼에도 제로 길드 마스터는 망설임 없이 내놓았다.

유니크 스킬 볼이야 길드 단위로 사냥을 다니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구할 수 있는 물건이다.

그렇기에 미친곰에게 밉보이는 것보다는 나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좋네."

인우는 현재 지은과 함께 택시에 탑승한 상태였다.

그리고 둘은 여전히 곰 인형 탈을 걸친 상태이기도 했다.

어느덧 지은이 물었다.

"오빠. 유니크 스킬 볼. 그거 배워 봐야 스킬들 다 키우지도 못해. 유니크 스킬 볼은 희소성 때문에 비싼 거지 좋은 게 아니라고."

"나한텐 이게 가장 좋은 거야."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데?"

"스킬은 배우는 족족 다 키울 자신이 있거든."

"응?"

지은의 반문에 인우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더 이상은 말해 주지 않았다.

인우는 그저 배주머니에 담긴 유니크 스킬 볼 2개를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아직 먹지 않았다.

물론 공짜로 구한 거긴 했지만, 워낙에 구하기 힘든 물건이라 그런지 단숨에 먹기보단 조금 더 이 기분을 즐기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는 택시 안에서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조금 심심해지기 시작할 때, 인우는 배주머니에서 스킬 볼을 꺼냈다.

그리곤 곰 인형 탈의 머리 부분을 살짝 들춘 뒤 입만 내밀었다.

인우의 옆에서는 지은이 그 광경을 잠잠히 지켜보고 있었다.

택시 안에서 100억 원을 꿀꺽 삼키는 광경이라기엔, 남매는 너무나 태연해 보였다.

어느덧 지은이 물었다.

"뭐 나왔는데?"

인우의 목구멍으로 단숨에 유니크 스킬 볼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

.

[이미 배운 스킬입니다.]

우선 하나는 꽝이었다.

그러나 인우는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어차피 쉽게 구한 것이기도 했고, 아직 하나가 남아 있지 않은가.

['분신'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

.

.

"···어라?"

순간.

인우는 드물게 벙쪄 버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지은이 궁금한지 인우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뭔데??"

"잠깐만."

인우는 그렇게 말하며 스킬을 열어 보았다.

.

.

.

18. [분신 Lv.1 (2%)] - 시전자의 분신을 소환합니다. (하루에 한 번 시전 가능하며, 레벨이 오를수록 분신의 숫자와 전투력이 증가합니다.)

이쯤 되면 인우도 무서워질 수밖에 없었다.

분신 스킬이라니.

이 스킬은 인우가 알기로는 프로킨에서도 몇 사람 사용하지 못했던 유니크 스킬이었다.

그 정도로 배우기 어려웠으며, 배운다 해도 레벨을 올리기 힘들었다.

프로킨에서도 분신 스킬을 마스터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스킬은 한 번 시전 할 때마다 스킬 경험치를 1씩 획득한다.

여기서 문제는, 분신 스킬은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를 잡아먹는다는 것이다. 또한, 분신 스킬의 특성상 하루에 한 번밖에 시전할 수 없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즉, 분신 스킬의 경우 하루에 경험치 1씩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분신 스킬을 마스터하는 존재는 불로불사의 리치 정도나 가능할 것이라는 이론이 존재했다.

어찌되었건, 여타 다른 스킬과는 차원이 다른 극악의 레벨업 속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나하곤 전혀 상관없지.'

인우는 절대자 패시브로 인해 스킬 경험치를 5씩 지속적으로 획득한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된다.

그렇기에 분신 스킬과 같은 사기급 기술이 나왔을 땐 더더욱 이득일 수밖에 없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발동이 되려나.'

이윽고 인우는 분신 스킬을 시전했다.

[마나가 부족합니다.]

그러나 시전 되지 않았다.

현재 인우의 마력 스텟은 45에 불과하다.

그간 기가 라이트닝이나 파이어 볼의 경우, 마나 드레인을 활용하여 충분히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분신 스킬의 경우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아, 이거. 당분간은 그림의 떡이겠는데?"

마나가 더 필요했다.

앞으로 레벨을 올린다면 마력에도 스텟 투자를 해야 할 듯 싶었다.

분신 스킬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으니까.

* * *

대한민국 초인관리국 본부.

이곳 회의장에는 현재 대한민국의 초인계를 쥐락펴락할 만한 직급자들이 모여 있는 상태였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간단했다.

중국으로 급파시킬 초인 병력 문제 때문이었다.

이미 인원 차출은 완료된 상태였다.

100레벨 초인 1000여 명과 랭커 초인 50명.

그리고 이들은 도합 50개 조로 나뉜 상태다.

각조에는 랭커가 한명씩 투입되어 조장이 되는 것이다.

한데, 문제가 생겨버렸다.

랭커 50명 중, 한명이 빠지게 된 것이다.

예기치 않은 공석.

이 때문에, 관리국은 공석을 메꾸기 위해 랭커를 급하게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좀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다.

마땅한 재목이 없었던 것이다.

애초에 100레벨 대 초인들은 리더로서 부적합했다. 그들 중 대표조장이 뽑힌다면 조원들이 쉽게 따를 리 없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랭커를 아무나 투입시킬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랭커란 어디까지나 단독 생활을 해 온 이들이고, 나아가 저마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기에 그들을 아우를 만한 리더쉽과 판단력을 갖춘 재목은 드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현재 대한민국에서 뽑힌 50여명의 랭커들도 대부분 관리국 소속이었던 것이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문제 때문에 회의는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구석자리에서 한참동안이나 침묵을 지키던 박강중이 불현 듯 입을 열었다.

"공석이 된 45조의 조장 자리. 그 자리에 앉힐 마땅한 인물이 존재합니다."

그 한마디에 회의장 모든 이들의 시선이 강중에게로 꽂혔다.

이에 강중은 잠시 침묵하다가 진중히 말을 이었다.

"미친곰. 그를 섭외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회의장은 단숨에 술렁댔다.

미친곰.

확실히 미친곰과 연락이 닿는 사람은 박강중뿐이었다.

또한 미친곰의 저력은 이미 너무나도 유명했다.

"미친곰. 그의 치밀한 판단력과 작전 구사력. 그 진가는 이미 SG사태 때에도 여과 없이 드러난 상태였습니다. 이의 없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또한, 차출된 초인들도 미친곰이 대표로 나선다면 별다른 불만을 갖지 못할 겁니다. 현재 미

친곰은 모든 초인들의 존경과 두려움을 받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미친곰을 추천하는 바입니다."

그 말에 모든 직급자들은 침묵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에 남양주 지부장이 말했다.

"미친곰, 그가 조 하나를 맡기 위해 나서준다면 그보다 더 좋은 건 없겠죠. 그러나, 그가 과연 저희의 뜻을 따라주겠습니까?"

그 말에 박강중이 씨익 웃었다.

그런 뒤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그가 혹할 만한 제안을 건넬 생각입니다."

< 078화 미친 남매 (3) > 끝

ⓒ 호종이

< 079화 45조 조장 미친곰 (1) >

스킬의 종류는 상당히 많다.

그리고 그중에는 인우가 알지 못하는 스킬도 존재한다.

그러나 '분신' 스킬의 경우, 인우도 잘 알고 있었다.

분신.

얼핏 보면 암살자들의 스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스킬은 그 어떤 특성의 클래스도 배울 수 없는 기술이었다.

이를테면, 유니크 스킬 볼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히든 스킬인 것이다.

히든 스킬은 일반적인 스킬과는 많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욕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온 인우는 곰탈을 벗고 곧바로 러닝머신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근래에 들어서 달리기를 게을리했다.

'분신 스킬을 사용하려면 당분간은 무조건 마력 스텟이다.'

인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달렸다.

[경험치를 5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5 획득하였습니다.]

.

.

['분신'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

.

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분신 스킬의 레벨이 올랐다.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스킬이여서 그런지 성장속도가 엄청났다.

그러나 육체레벨은 여전히 제자리였다.

인우는 육체 정보를 띄워 보았다.

<정인우>

레벨 : 179

특성 : 광전사

스텟 : [근력 435+50+10+15] [민첩 250+40] [마력 35+10] [체력 215+40+10+10]

미분배 포인트 : 0

[EXP 955,555 / 1,690,000]

레벨이 올라야만 포인트가 생성되고, 그래야만 마력 스텟을 올릴 수 있다.

경험치는 아직 70만 가량이 남은 상태.

'아오. 열 받네.'

꼭 필요할 때는 왜 이렇게 레벨 업이 더딘 것인지······.

평소에는 그냥저냥 달리다 보면 올라 있던 레벨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왜인지 너무나도 느리게 올랐다.

['분신'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반면 분신 스킬의 레벨의 경우 벌써 4레벨에 닿아 있었다.

웃긴 노릇이다.

마나가 딸려서 시전조차 못 해 본 분신 스킬이다.

그런데 레벨은 벌써 4였다.

"으아! 답답해!"

어느덧 인우는 러닝머신에서 내려왔다.

그러자 인우의 고함 소리를 듣고 거실에 있던 지은이 방문을 벌컥 열었다.

"정인우. 뭐하는데?"

"······."

인우는 고개를 빼꼼 내민 지은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인우는 무언가가 번뜩 떠올랐다.

정지은.

그녀는 마법 특성이지 않은가?

게다가 보통 마법사도 아닌, 랭커 중의 랭커다.

그런 그녀였기에 착용하고 있는 아티팩트도 마법 전용일 것이다.

"보자······."

어느덧 인우는 지은의 몸 이곳저곳을 훑기 시작했다.

현재 인우조차도 4개의 아티팩트를 끼고 있는 상태다.

행운의 반지, 용맹의 반지, 데스나이트의 팔찌, 코카트리스의 부리가 그것이었다.

이 아티팩트들 중에서 행운의 반지를 제외한다면, 모두 체력과 근력을 올려 주는 아이템들이었다.

왜냐하면 인우는 광전사였기 때문이다.

반면 정지은은 마법사이기 때문에 마력 스텟에 관련된 아티팩트 하나쯤은 착용하고 있는 것이 당연했다.

어느덧 정지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동생 몸을 뭘 그렇게 훑어 보냐?"

"야. 너 마력 올려 주는 아티팩트 뭐 끼고 있는 거 없냐?"

"마력? 당연히 있지. 최상급으로 샀다고. 나야 남는 게 돈이니까."

자랑 조가 가득했다.

도대체 어떤 아이템이기에?

어느덧 그녀는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를 가리켰다.

"대마법사의 반지다."

"오?"

대마법사의 반지!

저 반지는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예사 아티팩트가 아니다.

저거라면 충분했다.

대마법사의 반지는 상당히 많은 마력 스텟을 올려 준다.

그렇기 때문에 저 반지를 착용하면 당장 분신 스킬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윽고 인우가 지은에게 말했다.

"그거 잠깐 줘 봐라."

"싫은데?"

"잠깐이면 된다고."

"싫대도?"

지은이 연달아 거절을 하자 인우는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꺅! 왜 이래 이 미친 새끼야!"

쿠당탕탕!

* * *

이제는 다 큰 남매였지만, 어릴 때와 변한 게 없었다.

방에서 뒹굴던 남매는 거실까지 난장판을 쳐 놓고서야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노려보았다.

어느덧 지은이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서 인우에게 던져 버렸다.

"진짜 잠깐이다. 다른 건 몰라도 그건 못 줘. 돈이 있어도 쉽게 못 구한다고."

"어."

인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침내 인우의 손에 대마법사의 반지가 들어왔다. 물론 잠깐 빌린 것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어느덧 인우는 반지의 정보를 열어 보았다.

[대마법사의 반지]

종류 - 반지

기능 ? 마나 소모량 50% 감소, 마력 20 상승

발동조건 ? 레벨 160 이상.

엄청난 기능이었다.

첫째로, 마력 스텟 +20의 경우 레벨 4를 올려야 획득할 수 있는 포인트였다.

그뿐만 아니라 마나 소모량 50% 감소의 경우 상당히 파격적인 기능.

이렇듯 막강한 기능을 지닌 유니크 아티팩트였기에 정지은이 저렇게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인우는 대마법사의 반지를 착용했다.

['대마법사의 반지'의 기능이 발동함으로 인해서 '행운의 반지'의 기능이 사라집니다.]

[행운치가 감소합니다.]

['대마법사의 반지'로 인해 마력이 20 상승합니다.]

['대마법사의 반지'로 인해 마나 소모량이 50% 감소합니다.]

반지는 총 2개까지 발동된다.

본래 인우가 착용하고 있던 반지는 '용맹의 반지'와 '행운의 반지'였다.

그리고 대마법사의 반지를 착용함으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행운의 반지의 기능이 사라진 것이다.

어찌 되었건 이제 마나 소모량 감소와 마력 스텟을 얻었다.

어느덧 인우는 분신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더 이상 마나가 부족하다는 문구는 뜨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의 시간이 흘렀다.

대략 5초가 지났을까?

우우우웅-

어느덧 인우의 옆에 현재 인우와 똑같은 복장을 한 분신이 소환됐다.

"오호라."

그러자 인우의 눈동자가 금세 흥미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런 인우와 분신을 바라보던 지은의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크게 뜨였다.

"어, 어······정인우, 뭔데 저건?"

랭커 중의 랭커인 그녀조차도 처음 보는 스킬이었다.

이것은 분신 스킬이 그만큼 보기 힘든 히든 스킬이라는 것을 여과 없이 반증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편 인우는 지은의 목소리가 들리는지 들리지 않는지 분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현재 소환된 분신의 정보가 떴다.

<분신1>

레벨 : 1

한계 레벨 : 4

인우와 비교해보자면 간결하기 그지없는 정보창이었다.

그리고 분신 또한 성장이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다만, 현재 인우가 지닌 분신 스킬의 레벨이 낮기 때문인지 한계 레벨은 4밖에 되지 않았다.

어찌되었건, 분신 또한 레벨이 존재하니 괴수를 잡으며 키워 주어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도 잠시······.

[시전자의 '분신1'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

.

[시전자의 '분신1'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오호?"

인우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인우의 분신은 말 그대로 인우의 분신.

그것은 즉, 분신조차도 인우의 스킬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었다.

다시 말해, 현재 저 분신의 레벨을 보건대 '절대자의 걸음' 정도는 활성화되어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분신도 경험치가 계속 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분신의 레벨 업은 오래가지 않았다.

<분신1>

레벨 : 4

한계 레벨 : 4

한계 레벨에 닿았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레벨이 4라면 어디서 꺼내 쓰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고블린 사냥을 간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기도 잠시.

어느덧 스킬 레벨이 올랐다.

확실히 아직 저레벨 구간이라 그런지 상승폭이 빨랐다.

['분신'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

.

18. [분신 Lv.5 (2%)] - 시전자의 분신을 소환합니다. (하루에 한 번 시전 가능하며, 레벨이 오를수록 분신의 숫자와 전투력이 증가합니다.)

스킬의 레벨이 오르자 인우는 다시금 분신의 정보를 열어보았다.

<분신1>

레벨 : 4

한계 레벨 : 5

한계 레벨은 4에서 5로 상승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분신1의 레벨은 5가 되어 버렸다.

* * *

인우는 지은과 함께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민철과 퀸이 일 하고 있는 사육장으로 향했다.

"야, 정인우. 아까 유니크 스킬 볼 먹고 얻은 스킬이 저 도플갱어냐?"

"어."

"미친. 저건······ 들어본 적도 없는 스킬이라고. 으, 저것 봐. 너랑 걷는 것도 똑같아. 와. 소름 돋네. 아오. 그나저나, 부럽네······ 나도 유니크 스킬 볼이나 구해 봐?"

그 말에 인우는 피식 웃었다.

인우도 운이 좋아 얻은 히든 스킬이지, 마냥 유니크 스킬 볼을 흡입한다고 생성되는 스킬이 아니었다.

이윽고 인우는 사육장에 도착했다.

그러자 민철과 퀸이 인우를 반겼다.

그리고 퀸과 민철은 인우의 등 뒤에 서 있는 또 다른 인우를 보고 헛숨을 들이켰다.

"혀, 형님······ 쌍둥이······ 아니······ 헐."

민철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어느덧 인우가 민철을 향해 말했다.

"나와 봐. 얘랑 대련 한번 해 봐."

"네······?"

이윽고 인우는 마당을 향해 앞장섰다.

* * *

레벨 5에 불과한 인우의 분신은 민철의 주먹에 의해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제아무리 또 다른 인우라고 해도 레벨이 5밖에 되지 않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민철은 인우와 똑같이 생긴 분신을 두들겨 패며 극강의 카타르시스를 맛보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인우의 이야기를 통해 이것이 분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상태였다.

그러나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민철이 언제 인우(?)를 이렇듯 개 패듯 패 볼 수 있겠는가.

이것은 일종의 대리만족이었다.

한편 인우는 예상했던 결과에 그저 가벼운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레벨이 5밖에 되지 않으니, 뭐."

어느덧 민철에 의해 체력이 방전된 분신은 한 줌 재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하루에 한 번 시전이 가능하기에 내일이나 되어야 또다시 소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현재의 분신은 약했다.

"흐음. 스킬 레벨을 빨리 키워야겠네."

인우는 그런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손가락에서 대마법사의 반지를 빼서 지은에게 건넸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은은 이 아티팩트를 굉장히 아끼는 것 같았으니까.

어찌 되었건 잠시뿐이었지만 지은의 아티팩트로 인해 분신 스킬을 맛볼 수 있었다.

* * *

중국으로 급파할 초인 부대.

그중 한국의 45조 조장의 자리가 공석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박강중은 회의에서 미친곰을 영입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미친곰 정인우.

그가 혹할 만한 제안을 하겠다고 말했던 것이다.

강중은 회의를 마친 뒤 강원도 지부로 돌아왔다.

어느덧 그는 지부장실 소파에 앉아 커피를 홀짝였다.

"흐음."

강중은 이맛살을 좁히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그간 정인우에 대해 조사해 왔다.

정인우는 관리국의 섭외 1순위 초인이었으니 당연한 조사였다.

물론 정인우와 미친곰이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은 강중밖에 알지 못한다.

어찌 되었건, 강중이 알기로 인우의 재산은 수백억에 달한다.

이것은 즉, 애초에 돈으로 매수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정인우가 유독 집착하는 물품이 한 가지 존재했다.

"왜 그런 값만 비싸고 비효율적인 아이템에 집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말을 마친 강중은 정인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우. 뚜우.

철컥.

-응.

"아아, 정인우 씨.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나한테 예의 지켜서 언제 득 본 적 있나? 됐고, 용건만 간단히 말하라고.

"아하하하! 정인우 씨 답군요.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어, 다른 게 아니고, 이번에 중국의 바투 부족이······."

박강중은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바투 부족의 움직임과 부족 통합을 막기 위한 인류의 움직임.

그리고 공석에 대해.

끝으로 강중은 인우에게 힘을 보태 달라 제안했다.

그리고 강중의 말이 끝나자 인우는 무언가를 고민하다가 한 박자 늦게 답했다.

-흐음······ 블랙오크. 확실히 경험치가 높아서 언젠가는 한 번 쓸어버리러 가 볼까 하긴 했는데 말이야. 그런데, 내가 당신네들하고 합류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 난 혼자 움직이는 게 편하다고.

"조건을 마저 들어 주시죠. 정인우 씨가 45조의 조장을 맡아 주신다면, 그에 대한 수당으로 유니크 스킬 볼을 지급할 예정입니다."

강중은 자신감 있게 말했다.

이것이 확실한 카드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간 정인우가 유니크 스킬 볼을 구하기 위해 시장 바닥을 이 잡듯 뒤졌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적당한 수당이기도 했다.

현재 중국으로 급파되는 초인들의 경우, 엄청난 수당을 받게 된다.

다시 말해, 강중은 그저 인우에게 줄 수당을 현금에서 유니크 스킬 볼로 바꾼 것뿐이었다.

물론 유니크 스킬 볼은 돈이 있다고 해도 매우 구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을 구하는 단체가 국가 기관인 관리국이라면 이야기 자체가 달라진다.

-흐음······.

어느덧 인우가 고민하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전해져 왔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인우가 다시금 말했다.

-다른 것도 하나 구해 주면 생각해 보지.

"에? 어떤 것을······?"

-별거 아냐. 그냥 손가락에 끼울 수 있는 조그마한 아티팩트인데······.

인우는 그답지 않게 조금은 망설이고 있었다.

하긴, 그건 좀 가치가 높은 편이기도 했고, 구하고 싶다고 해서 구할 수 있는 아티팩트가 아닌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재 꼭 필요한 아티팩트임에는 확실하다는 것이었다.

이윽고 인우가 말했고, 그러자 이번에는 강중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 079화 45조 조장 미친곰 (1) > 끝

ⓒ 호종이

< 080화 45조 조장 미친곰 (2) >

통화를 마친 인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블랙오크.

놈들이 결국엔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칼을 빼든 것은 바투 부족이라 했다.

놈들은 인우의 애완동물인 팜이와도 깊이 연관되어 있기도 했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블랙오크가 부족 통합을 이룬다면 문제는 제법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하나로 뭉친 놈들의 다음 목표는 인류가 될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뭐가 되었건 움직이긴 해야 한다.

물론 인우는 인류를 구원한다거나 하는 거창한 목표 따윈 없었다.

그럼에도 인우가 블랙오크를 막는 이유는 간단했다. 놈들이 인류마저 통합한다면 인간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정인우.

자신조차도 결국엔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블랙오크를 막지 못한다면, 미래의 정인우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때문에 그러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해야 했다.

그렇기에 인우는 움직이기로 결심한 것이다.

어차피 언젠가는 블랙오크들을 사냥하기 위해 중국에 가 볼 참이긴 했다.

그러나 그 시기가 앞당겨졌을 뿐이다.

결국 인우는 수당으로 받는 유니크 스킬 볼을 제외하고 아티팩트도 받길 원했고, 강중은 어렵사리 승낙했다.

인우가 제시한 아티팩트는 마력 +40 이상의 아티팩트.

사실 대마법사의 반지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마법사의 반지는 너무나도 막강한 아티팩트였기에 적당한 합의를 본 것이 저것이었다.

그렇게 인우는, 상당한 수당과 함께 블랙오크를 잡으러 중국에 가기로 했다.

이는 이미 결정된 사항이었다.

그리고, 중국에 가게 될 자신은 정인우가 아닌 미친곰의 신분으로 가기로 했다.

미친곰이 조장이 된다면 그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초인들이 미친곰에게 호의적이진 않을 테다. 그럼에도 정인우보다는 미친곰의 신분으로 가는 것이 맞다. 미친곰의 명성이 압도적으로 높지 않은가.

"흐음······."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기도 잠시.

어느덧 인우가 앉아 있는 쇼파에 정지은이 엉덩이를 붙였다.

"후우."

그녀는 앉자마자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 인우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뭔데?"

"통화 내용 들었다."

"아."

인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그러자 지은이 아쉬움을 가득 담아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나도 미국 정부에서 요청이 온 상태였어. 그런데 난 응하지 않았지. 오빠랑 오랜만에 만난 거였으니 계속 같이 있고 싶었다고."

"어차피 길지 않을 거야."

"이미 결정했나 보구나. 니가 간다면 내가 굳이 한국에 있을 이유도 없지."

"흐음······."

말을 마친 지은이 미련 없이 일어섰다.

그리고 인우에게 등을 보인 채로 다시금 말했다.

"가서 뒈지지나 마라."

지은의 걱정에 인우는 그저 가볍게 웃음 지을 뿐이었다.

* * *

바투는 헤라 부족을 흡수한 뒤부터 급속도로 세력을 불렸다.

현재 바투는, 베이징을 넘어서 바오터우에 터를 잡고 있는 베가 부족과 뤼오 부족까지 흡수한 상태였다.

이로서 바투는 벌써 세 개의 부족을 통합한 것이다.

그 때문일까? 현재 바투의 세력은 그 어떤 부족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비대해진 상태였다.

그렇게, 바투 부족에 의해 중국에 존재하는 부족은 13개에서 10개로 줄어든 상태였다.

상황이 이즈음 되자 바투 부족을 제외한 9개의 부족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모조리 바투에게 흡수될 운명이었기 때문이었다.

당하지 않기 위해선 먼저 움직여야만 했다.

그 때문에 현재 중국 땅에는 피바람이 불고 있었다.

부족들은 저마다 세력을 불리기 위해 상대 부족 영역에 침투했고, 그로 인해 거대한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그렇게 전쟁은,

마치 산불처럼,

거세게 번져 나가고 있었다.

* * *

중국 칭다오.

이곳이 바로 대한민국의 초인부대가 급파된 위치였다.

전 세계 초인부대는 각기 다른 지역을 배당받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현재 중국에서는 동시다발적으로 통합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 나라의 초인부대는 당분간은 나뉘어 활동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칭다오를 맡게 된 것이다.

칭다오는 현재 블랙오크들에게 버려진 지역이었다.

하기사, 제아무리 5억 마리의 블랙오크라도 드넓은 중국 대륙을 전부 사용하진 못할 수밖에 없다.

어찌 되었건, 현재 칭다오에는 한국에서 급파한 50개 조의 초인 부대가 도착해 있는 상태였다.

이 50개 조는 한 조당 100레벨 대의 초인 20여명이 포함되어 있고, 조장은 랭커 한 명이 맡게 된다.

그리고 이들 모두를 통솔하는 대장은 사일런스 배다정이었다.

그녀는 칭다오의 땅을 밟자마자 부대를 통솔했다.

그리하여 이 지역에 임시로 군용 막사를 설치했다.

당분간은 이곳을 거점으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그러나 배다정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45조의 조장 자리가 공석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일까?

현재 이곳에 모인 병력들은 긴장감보다는 여유가 넘치고 있었다.

이곳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피와 살점이 튀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겠지만, 이곳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오늘도 각 조원들은 저마다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 바빴다.

이곳에서 수다라도 떨지 않는다면 따분해 죽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야, 너희들 소식 들었어? 45조 조장으로 굉장한 놈이 온다던데?"

"굉장한 놈? 그게 누군데?"

"나도 아까 우연히 조장들이 모여서 하는 얘기를 듣고 알게 된 건데, 미친곰이 45조의 조장을 맡기로 하고 지금 헬기 타고 이곳으로 오고 있는 중이라나 봐."

"뭐어어?"

그들은 미친곰이 온다는 소리에 저마다 크게 놀라워했다.

확실히 현재 45조의 조장 자리는 공석이다.

본래 45조의 조장을 맡았던 랭커가 돌연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찌 되었건, 그로 인해 미친곰이 공석을 메꾸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미친곰이라니.

쉽사리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늘 화제의 중심이었던 그가 이곳에 온다는 것이 말이다.

초인계에서 미친곰이라는 인물은 연예인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근데, 그 인간 얼굴 아무도 모르지 않나?"

"당연히 곰탈 쓰고 오겠지. 신변 노출되기 싫어서 대통령 표창장도 거절한 인간이라던데."

"하긴, 그러고 보면 보통 미친놈은 아니야."

그렇게 조원들의 수다가 한창일 때였다.

두두두두두두-!

하늘에서 헬리콥터 한 대가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공중에 떠 있던 헬리콥터의 문이 열렸다.

이곳에 모인 초인들은 제법 먼 거리임에도 헬리콥터를 온전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열린 헬리콥터 문 사이로 곰 인형이 뛰어 내렸다.

그러자 초인들이 말했다.

"이야. 미친곰 진짜로 오네."

"그러게나 말이다."

그렇게 그들은 저마다 고개를 치켜든 채로 공중을 주시했다.

후우우우웅-!

끝도 없이 추락하던 미친곰.

그는 어느덧 용작두를 치켜들었다.

그러더니 허공을 향해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엄청난 풍압이 땅바닥을 후려쳤고, 미친곰은 그에 대한 반발을 이용해 천천히 착지하고 있었다.

처억-

어느덧 미친곰이 칭다오의 땅을 밟았다.

미친곰이 등장하자 초인 부대의 대장을 맡은 배다정이 걸어 나왔다.

"또 보네?"

일전에 다정은 미친곰에게 존대를 해 주었지만, 이곳에선 그러지 않았다.

지금은 전시다.

그리고 그녀는 대장이었기에 하대를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기 때문에 미친곰은 그녀에게 존대를 하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미친곰은 답조차 없이 주변을 훑기 바빴다.

이곳은 폐허가 되어 버린 옛 도심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곳 폐허 공터에 군용 막사들이 잔뜩 설치되어 있었고, 병력은 대략 1천여 명은 되어 보였다.

저들 모두가 100레벨이 넘어가는 막강한 전력.

그리고 그중 한 개의 조를 자신이 맡게 된다.

어느새 미친곰은 뒤늦게 배다정을 향해 물었다.

"내가 맡을 조는 어디에?"

"아, 45조는 저기 오른쪽 끝에 보이는 막사 안에 있어. 우선 조원을 보는 것 보다, 이리로 들어오라고. 이제야 조장들이 다 모였으니, 움직일 방향에 대해 회의를 해야 하니까."

말을 마친 다정은 간부 막사로 걸음을 옮겼다.

미친곰은 그저 고분고분 그녀를 따랐다.

미친곰 정인우.

인우는 프로킨에서 황제였기에 하대를 당연시 여기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공과 사는 구분하고 있었다.

적어도 개념이 없는 인간은 아니었으니까.

또한 한 번 할 때는 확실히 하자는 주의였기에, 이왕 조장의 신분으로 온 거 이들 병력을 이용해 블랙오크들을 완벽히 말살할 생각이었다.

이윽고 도착한 간부 막사.

그곳에는 49명의 조장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이제 인우도 왔기에 50명의 조장들이 온전히 모인 것이다.

인우는 천천히 시선을 돌리며 조장들을 바라보았다.

이들 모두가 대한민국에서 한 가닥 하는 랭커라 들었다.

'호오, 저 여자는?'

그리고 조장들 중에는 인우가 익히 알고 있는 초인도 보였다.

짧은 단발에 웃음기 없는 얼굴.

구리시의 랭커 김혜원이었다.

인우는 분명 구리시 사냥터 미개척지대에 랭커를 구경하러 갔다가 그녀를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김혜원은 정인우의 가공할 만한 성장속도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어찌되었건, 그녀와 이런 곳에서 또 다시 마주칠 줄이야. 신기한 노릇이었다.

"······."

하지만 그녀는 역시나 인우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미친곰이 왔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

그녀를 시작으로 이윽고 모든 조장들의 시선이 미친곰에게로 쏠려 있었다.

"저놈이 바로 말로만 듣던 미친곰이로군."

"저렇게 귀여운 탈을 쓰고 다니다니. 취향 참 독특해. 큭큭."

미친곰은 그러한 시선을 일일이 마주하며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가 테이블에 도톰한 엉덩이를 걸치며 한마디 툭 내뱉었다.

"그래서, 어디부터 때려 부수면 되는 건데?"

"아니, 그보다. 당신 말이야. 일단 그 우스꽝스러운 탈부터 벗지 그래?"

미친곰을 향해 누군가가 아니꼽다는 듯 말을 내뱉고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4조의 조장 박혁이라는 사내였다.

박혁.

그는 꽤나 유명한 랭커였다. 애초에 그렇지 않고서야 조장의 신분으로 참전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어느덧 박혁은 팔짱을 끼며 재차 강조했다.

"내 말 안 들려? 전시라고. 진지하게 임해야 할 때다. 그 탈부터 벗어."

"흐음. 내가 이 탈을 쓰고 온 이유는 간단해. 당신들이 미친곰을 신뢰하니까. 그래서 나는 미친곰으로 이곳에 참전한 것뿐이야. 그게 불만이야?"

"불만이면 어쩔 거지?"

어느덧 박혁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곤 칼과 방패를 치켜드는 것이 아닌가?

그 꼴을 지켜보던 미친곰은 피식 웃었다.

"지금 꼬락서니를 보니 신뢰는 개뿔, 적대감만 가득하군."

"지랄. 낙하산으로 조장이 된 새끼가."

박혁은 대놓고 미친곰을 무시하고 있었다.

소문만 무성한 미친곰인 것이다.

"후우. 나와. 이 뚱땡이 새끼야. 내가 신뢰가 무엇인지 직접 가르쳐 주지."

말을 마친 미친곰은 막사를 빠져나갔다.

저런 것들은 초반에 확실히 뭉개 놓아야 한다.

이윽고 무대가 마련되었다.

그러자 바깥에는 수백의 조원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눈동자를 반짝이며 외쳤다.

"미친곰과 4조 조장 박혁이 붙는다!"

< 080화 45조 조장 미친곰 (2) > 끝

ⓒ 호종이

< 081화 45조 조장 미친곰 (3) >

미친곰과 4조의 조장 박혁이 붙는다.

그 소식에 초인 부대의 모든 병력들이 몰려왔다.

이윽고 그들은 동그랗게 둘러앉았고, 그 중앙에는 미친곰과 박혁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와아. 진짜 한 판 하는 건가!"

"그런데, 미친곰은 오자마자 싸움인가? 아직 소개도 안했잖아."

"바로 작전회의실로 들어가더라고. 그러더니 또 바로 시비가 붙어서 나와 버리네?"

"어쨌든 돈 주고도 못 볼 구경이다."

세상에 싸움 구경만큼 재밌는 게 또 있을까?

게다가 그 대상이 미친곰이라니?

이보다 더 좋은 구경거리는 흔치 않을 것이다.

"으음······."

상황이 이쯤 되어서도 부대의 대장인 배다정은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아니, 내심은 도리어 부추기고 싶었다.

박혁은 유명한 랭커다.

애초에 그렇지 않고서야 이곳에 조장 자격으로 참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미친곰과 박혁이 시비가 붙어 버린 것이다.

이쯤 되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소문만 무성한 미친곰의 전투력은 도대체 어느 정도 일까?

그랬기에 다정은 둘을 만류하지 않았다.

다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무기를 제외한 맨손 대련을 제안했을 뿐이었다.

이윽고 다정은 두 조장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두 조장 모두 움직임을 취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길 잠시.

어느덧 4조 조장 박혁이 비릿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뭘 멀뚱히 서 있는 거야? 겁이라도 먹었냐? 네놈 곰탈을 벗겨 보면 가랑이 사이가 노랗게 물들어 있는 건 아니겠지? 푸하하하!!"

박혁은 미친곰을 도발했다.

박혁은 자신 있었다.

그는 탱커 계열의 초인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무기가 없는 상태라면, 극강의 육체를 지닌 자신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결투였다.

무기가 없는 상태로 싸우는 것이기에 방어력이 뛰어난 탱커 계열이 유리하다 여긴 것이다.

그에 대한 반증으로, 미친곰은 바짝 굳은 채 움직임을 취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박혁은 확신했고, 다시금 미친곰을 도발했다.

"엄마곰이라도 불러주랴?"

이번에도 미친곰은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자 박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먼저 움직였다.

타다다닥!

박혁이 단숨에 지면을 박차고 미친곰에게로 쇄도해 왔다.

이에 둘의 거리는 지척에 닿았다.

박혁은 곧바로 주먹을 치켜들었다.

한데 이상했다.

미친곰은 여전히 움직임이 없었으니까.

"이 새끼 뭘 믿고 가만히 있는 거야!?"

박혁은 미친곰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는지 열이 오를 때로 올라 버렸다.

파바바밧!

이내 박혁의 주먹이 미친곰의 전신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

그러나 미친곰은 여전히 움직임이 없는 상태.

어느덧 미친곰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자 박혁은 단숨에 미친곰의 배 위에 올라탔다.

그런 뒤 무차별적으로 주먹을 날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헐!?"

"뭐, 뭐야!"

박혁의 전방에서 구경을 하던 초인들이 하나 같이 검지를 치켜들고 반대편을 가리키고 있었다.

'왜 저래?'

박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주먹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끝도 없이 맞아 주던 미친곰이 어느새 한 줌 재가 되어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뭐, 뭐어?"

박혁은 처음 목격하는 광경에 적잖이 당황했다. 재가 되다니?

그리고 그때.

반대편 관중석에서 또 다른 미친곰이 튀어나왔다.

타다다닥!

단숨에 박혁의 뒤통수까지 뛰어 온 또 다른 미친곰.

후우우욱!

그런 미친곰의 주먹이 박혁의 경추를 강타했다.

"커, 커헉!"

그러자 박혁은 엄청난 충격을 느끼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크어! 뭐, 뭐냐 도대체!"

박혁은 뒷목을 부여잡으며 즉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의 눈이 놀라움을 가득 담고 퉁방울만 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미친곰이 또 있었으니까.

분명, 방금 미친곰의 배 위에 올라탄 채로 주먹을 날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뒤에서 또 다른 미친곰이 나타났다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어느덧 미친곰이 입을 열었다.

"각오해라. 나는, 나한테 기어올랐던 새끼들을 가만둬 본 적이 없으니까."

그 한마디에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정적은 길지 않았다.

"크아아아아압!"

미친곰은 흡사 괴수와 같은 포효를 했다.

그러자 모여 있던 모든 초인들은 귀를 막고 주저앉았다.

"뭐, 뭐야!"

"공포를 주는 포효다···!"

이 공포는 박혁에게도 닿았다.

"크으!"

박혁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박혁은 랭커답게 조금의 충격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는 단숨에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런 뒤 탱커의 주력 스킬로 전신을 무장했다.

그러자 박혁의 육체가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타다닥!

그러거나 말거나 미친곰은 단숨에 박혁을 향해 내달려 왔다.

그리고 미친곰의 오른손에는 새하얀 백색의 불꽃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초인 부대원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배, 백색 불꽃이면 헬 파이어 아니야!?"

"미친!!"

"아니, 조금 다르다! 헬 파이어는 저렇게 작지 않아!"

그들이 목격하고 있는 불덩이의 정체는 만렙 파이어 볼이었다.

그리고 이를 눈치 챈 것은 일부 조장들과 배다정뿐이었다.

'마스터에 닿은 파이어 볼이라니. 확실히 흔치는 않지. 저것이 미친곰의 주력스킬이겠군.'

배다정은 팔짱을 낀 채 그런 생각을 했다.

대개의 랭커는 1개의 마스터 스킬. 많게는 3~4개의 마스터 스킬까지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미친곰이 파이어 볼을 마스터했다면, 저것이 미친곰의 주력 스킬일 가능성은 90% 이상이었다.

화르륵-!

어느덧 백색 불꽃을 머금은 미친곰의 오른 주먹이 박혁의 얼굴을 향해 쇄도해 왔다.

쐐애애액!

엄청난 빠르기였다.

나아가, 그 막강한 고열에 이곳 무대가 사막처럼 뜨거워질 지경.

그리고······.

퍼억!

미친곰의 주먹이 단숨에 박혁에게 꽂혔다.

"크흑!"

이에 박혁은 양팔을 교차한 채 방어했다.

치이이이익!

저 미친 불꽃은 강철처럼 단단해진 박혁의 팔뚝을 빨갛게 데우고 있었다.

탱커 계열의 랭커가 단숨에 화상을 입은 것이다.

박혁은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면서 어금니를 빠득 깨물었다.

그런 뒤 단숨에 뒤로 거리를 벌렸다.

타닥!

그런데 미친곰은 박혁을 쫓지 않았다.

단지······.

콰르르르릉!

어느덧 미친곰의 왼손에서 우레와 같은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엄청난 소음과 함께 미친곰의 손바닥 위에서 불그스름하게 빛나는 스파크가 튀었다.

그 놀라운 광경에 구경하고 있던 초인들과 조장들이 동시에 외쳤다.

"레, 레드 스톰!?"

마법사 계열 초인들의 궁극의 스킬.

일반적인 번개 마법과는 궤를 달리하는 미친 마법.

그러한 궁극의 마법이 미친곰의 손바닥 위에 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그저 마스터 레벨에 닿아 있는 기가 라이트닝일 뿐이었다.

이내 미친곰이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면서 미친곰은 짧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구경하는 놈들은 전방 10미터 바깥으로 피해라. 뒈져도 책임 안 질 거니까."

그 말에 초인 부대는 더 넓게 자리를 벌리며 도주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추카가가가각!

피처럼 새빨간 벼락이 박혁을 덮쳐 왔다.

"크아아아아아악!!"

그 무지막지한 전격에 박혁의 몸이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커허어어어어···!"

어느덧 전격이 끝났다.

그러자 박혁은 모든 쉴드가 개박살 난 채 상당한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박혁은 끝끝내 정신을 놓지 않았다.

"크, 크으···!! 죽여 버리겠다!!"

어느덧 박혁은 실성했다.

그는 단숨에 구경하고 있던 부대원들에게 다가가서 검을 빼앗았다.

그런 뒤 미친곰을 향해 내달렸다.

그 광경에 여러 조장들이 혀를 차며 저지하려 했다.

그러자 배다정이 조장들을 만류했다.

"둬 봐."

다정은 그렇게 말하며 대결의 끝을 지켜보았다.

타다다닥!

어느덧 박혁이 치켜든 검에 푸른색 검기가 일렁거렸다.

그의 공격기 중에 주력 스킬인 육체 베기였다.

그 광경에 미친곰은 곧바로 광폭화를 시전했다.

그러자 곰탈을 비집고 붉은 아지랑이가 일렁거렸다.

그에 이어 미친곰은 광기 폭발마저 시전했다.

푸른색 아지랑이가 미친곰의 발끝을 맴돌았다.

이것은 광기를 폭발시켜 스피드를 비약적으로 상승시키는 스킬.

타다다닥!

이내 미친곰의 신형은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아아아! 뒈져라!!"

실성한 박혁이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지만, 미친곰은 미꾸라지처럼 피했다.

이어 미친곰은 자신을 찔러오는 대검을 향해 도리어 앞으로 내달렸다.

그런 뒤 아찔한 거리를 내어주며 검을 비껴 나갔다.

척!

둘의 거리가 지척에 닿았다.

그리고, 박혁이 당황할 새도 없이 미친곰의 주먹과 발길질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퍽! 퍽! 퍽!

놀랍게도 미친곰의 주먹과 발에는 푸른 기운과 붉은 기운이 뭉쳐져 있었다.

이것은 마스터 레벨에 닿아 있는 연속 차기와 세게 치기였다.

이미 14개의 스킬을 마스터한 미친곰이다.

그가 어떠한 공격 수단을 취해도 그것은 곧 살인적인 기운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허어······?"

그즈음 되자 조장들과 배다정은 놀라는 것조차 잊었다.

이번엔 마스터 레벨의 격투 스킬인가···?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여태 그들이 목격한 미친곰의 마스터스킬은 못해도 5개는 되었다.

5개 스킬 마스터라고?

말이 되지 않는다.

역사상 존재해 왔던 그 어떤 초인도 일구어 내지 못한 경지였다.

현재 가장 많은 마스터 스킬을 보유한 초인이 4스킬 마스터였다.

그런데 미친곰은 그보다 1개 더 많은 5개의 마스터 스킬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퍽! 퍽! 퍽!

빗발치는 미친곰의 공격. 박혁은 단숨에 쓰러졌다.

그러자 미친곰은 박혁의 배 위에 올라탔다.

미친곰은 그 상태로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무차별적으로 주먹을 휘둘러 댔다.

퍽! 퍽! 퍽!

박혁은 이미 기절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미친곰은 멈추지 않았다.

퍽! 퍽! 퍽!

"그, 그만!"

그제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조장과 배다정이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나 미친곰은 들리지 않는 것인지 무시하는 것인지 아랑곳 않고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퍽! 퍽! 퍽!

그러자 배다정이 조장들을 향해 명령했다.

"미친곰을 말려!"

"네!"

"예!"

그 즉시 가까이에 있던 3명의 조장이 단숨에 미친곰에게 뛰어들었다.

타다다닥!

랭커 전력이 미친곰 하나를 뜯어말리기 위해 내달렸다.

그리고 3명의 조장들은 단숨에 미친곰의 팔과 허리를 끌어안고 박혁에게서 끌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자 미친곰이 괴수처럼 포효하기 시작했다.

"놔 이 새끼들아!! 아직 이 새끼가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미, 미친곰! 그만! 그만하면 됐다! 박혁은 이미 기절했다고!"

어느덧 배다정까지 미친곰을 향해 내달려 왔다.

다정은 단숨에 미친곰의 뒤통수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그녀는 예지 계열의 초인.

모든 방어와 회피에 대한 것을 예지한 그녀의 주먹은 완벽히 미친곰의 뒤통수에 꽂혔다.

퍽!

그런 뒤 다정은 팔과 다리를 이용해 미친곰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야말로 뜯어 말리는 형국이었다.

그 자세가 제법 요상하고 야릇했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러한 기분이 드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이곳에 모인 모든 병력들은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곰은 진짜다.

진짜배기였다.

그간 초인계에서는 소문만 무성하던 미친곰이었다.

단신으로 대형 길드 하나를 깨부쉈다든지, 대기업 하나를 요절냈다든지, 이와 같은 터무니없는 소문들.

소문이란 언제나 과장되기 마련이지 않은가?

초인들은 미친곰을 인정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으로는 다른 생각을 품기도 했던 것이다.

조금 과장 되지 않았을까?

그러한 생각 말이다.

그러나 이곳에 모인 모든 초인들은 지금 이 순간 확실히 깨달았다.

미친곰은 정말로 미친곰이었다.

"후우우우······."

어느덧 배다정의 강력한 힘에 의해 박혁에게서 떨어져 나온 미친곰.

그는 깊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한참동안 심호흡을 했다.

이 버르장머리 없는 박혁이라는 놈을 확실히 짓밟아 주려 했는데, 순간 너무 열이 받아 꼭지가 돌아버렸었다.

미친곰은 그렇게 한참동안이나 심호흡을 했다.

이윽고 미친곰이 진정되자 그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던 다정이 힘을 풀었다.

그러자 땅바닥을 뒹굴던 다정과 미친곰은 어느덧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일어선 미친곰은 여전히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흡사 턱관절이 빠질 듯 입을 벌린 초인부대원들을 향해 일일이 눈을 맞췄다.

마침 이곳에는 모든 병력이 모여 있다.

미친곰과 눈이 마주친 부대원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경외감으로 쳐다보는 표정, 두려움으로 가득한 표정, 미친놈 보듯이 보는 표정 등.

그러나 확실한 건 이 사건으로 인해 미친곰이 엄청난 강자임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윽고 미친곰은 모두를 향해 한마디 했다.

"소개가 늦었네. 나는 45조 조장 미친곰이다."

"······."

"아직도 나한테 불만이 있는 새끼가 있다면 지금 나와."

그러나 그 누구도 그에 대해 답하지 않았다.

불만이 있을 리 없다.

이렇게 접경지역에서의 신고식 아닌 신고식은 끝이 났다.

< 081화 45조 조장 미친곰 (3) > 끝

ⓒ 호종이

< 082화 특별임무 (1) >

인우가 중국으로 떠났다.

그리하여 강원도 거주지에는 민철과 퀸 그리고 팜이가 남아 있는 상태였다.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지속되고 있었다.

오늘도 퀸은 사육장 일을 했고, 민철은 사육 일과 더불어 사냥터에도 꾸준히 다녔다.

민철의 경우 몇 번에 걸친 인우와의 대련 이후, 전투감각이 확연히 상승한 상태였다.

그 때문일까? 이제 민철은 6존을 넘어서 7존에 진입할 정도였다.

이 정도의 속도라면 머지않아 99레벨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각성 정수를 구할 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에 대한 대비로서 민철은 꾸준히 사냥을 하며 돈을 모았다.

인우가 주는 월급만 해도 천만 원이 넘어간다.

그러나 이제 진정한 수입은 사냥을 통해 나오고 있었다.

민철은 악착같이 돈을 모으며 성장해나갔다.

인우에게 보탬이 될 만한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민철뿐만이 아니었다.

퀸의 경우도 능숙하게 사육 시설을 관리하며 TV와 인터넷을 통해 세상을 배워가고 있었다.

그녀의 경우 뱀파이어 퀸이기에 인간들만의 권능인 레벨 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본래 가진 능력이 우월한 괴수였기에, 현재 그녀의 전투력은 민철보다도 한참이나 위였다.

어찌되었건, 그렇다고 해도 언젠가는 민철이 퀸을 따라잡게 될 것이다.

민철은 레벨 업을 통한 성장이 가능했으니 말이다.

퀸은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퀸은 더더욱 괴수 사육에 온 힘을 쏟았다.

그녀는 레벨 업을 할 수 없었기에, 사육사로서 성장해나가는 것이 최선이라 여겼던 것이다.

퀸은 오늘도 열심 이였다.

그녀는 바실리스크를 넣어둔 1번 사육장의 청소를 하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청소하기도 잠시.

어느덧 사육장의 문을 비집고 팜이가 날아왔다.

-파아암!

이윽고 녀석은 사육장 내부를 날아다니며 요란법석을 떨었다.

일전에 찢겼던 날개는 완벽히 치료된 상태였다.

게다가 팜이의 덩치는 이제 성인 남성만큼이나 커져 있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성장이었다.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나가고 있었으니까.

-파아!

이내 녀석은 우리에 갇혀 있는 바실리스크 놈들에게 뛰어들었다.

-크워어!

-파아아!

팜이를 발견한 바실리스크가 포효하며 경고했다.

그러자 팜이도 마주 포효하며 날개를 활짝 폈다.

그러더니 팜이는 도합 4마리나 되는 바실리스크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불꽃을 뿜기도 했고, 물기도 했다.

-크워어어어!!

바실리스크 10마리는 팜이에게 꼼짝도 하지 못했다.

물론 이곳 사육장에 존재하는 바실리스크들은 혀가 존재하지 않는다.

바실리스크의 가장 큰 무기는 독성이 가득한 혀.

그렇기 때문에 순조로운 사육을 위해 새끼일 때 혀를 모조리 잘라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바실리스크는 미개척지대의 괴수 중 하나이다.

즉, 보통 강한 괴수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팜이는 일방적으로 바실리스크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크워어어어!

-파암!

실로 놀라운 전투력이었다.

팜이는 덩치가 커지면서 점차 사나워지고 있었다.

마치 괴수의 본능처럼, 피에 굶주린 괴물처럼,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퀸은 잠자코 그런 팜이를 지켜보았다.

녀석이 난데없이 저렇게 사나워진 것은 요 근래였다.

인우가 기약도 없이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저렇게 되었던 것이다.

-파아아암!

팜이의 입 속에서 새하얀 백색의 불꽃들이 뿜어져 나오며 바실리스크들을 공격했다.

그렇게, 팜이는 한참동안이나 바실리스크들을 괴롭혔다.

결코 죽이진 않았다.

팜이도 알고 있는 것이다.

저 바실리스크들이 낳는 알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라는 것을 말이다.

"....저 정도의 성장력이면, 주인님이 올 때쯤에는 얼마나 더 커질까?"

퀸은 혼잣말을 내뱉으며 팜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이제 팜이가 마음먹고 공격하려 들면 그녀가 말리지 못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주인님의 애완동물.

저 생명체의 정체는 무엇일까?

퀸은 고민에 빠졌다.

* * *

박혁은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랬기에 작전회의는 박혁이 깨어날 때까지 미루어졌다.

어찌되었건, 미친곰은 뒤늦게 45조 막사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곳에서 20명의 조원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조원들의 눈동자는 하나 같이 경외로 물들어 있었다.

하긴, 4조 조장 박혁을 애 다루듯 했던 미친곰이다.

그렇게나 무시무시한 인간이 자신들의 조장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시선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만 했다.

이윽고 미친곰은 막사 중앙에 마련 된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반갑다."

그러자 모든 조원들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미친곰은 그러한 조원들을 한명한명 훑어보았다.

특이한 것은, 조원들 중 남자가 한 명뿐이라는 것이었다.

여자 19명에 남자 1명.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흐음.'

인우는 여자라고 마냥 헤벌쭉하지는 않았다.

대개의 여자들은 이성보단 감성이 월등히 높다.

이러한 특성 때문인지 대개의 여자들은 인우와 잘 맞지 않고는 했다. 물론 모든 여자들이 그렇진 않았지만.

어찌되었건,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인우는 꽃밭이라 칭해도 좋을 만한 45조의 성비에도 딱히 감흥이 없었다.

그렇게 막사에서 시간을 죽이기도 잠시.

어느덧 45조 막사의 문이 열렸다.

"박혁 조장님이 깨어나셨습니다. 지금 즉시 작전회의 시작한답니다."

* * *

중국 칭다오 작전회의 막사.

이곳에는 50명의 조장들과 배다정이 테이블을 두고 모여 앉아 있었다.

오른쪽 끝에는 박혁이 앉아 있었는데, 그의 얼굴은 온통 퉁퉁 부어오르고 멍이 들어 있었다.

박혁은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았다.

미친곰에게 무참히 박살난 것이다.

솔직히 저 정도의 강자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어느덧 박혁은 두려운 눈동자로 저편에 앉아 있는 미친곰을 힐끔 바라보았다.

미친곰은 팔짱을 낀 채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그 꼴을 보자니 울화가 치밀 것 같았다.

그럼에도 박혁은 입을 꾹 닫았다.

저 미친 녀석과는 다시는 상종하지 않을 생각이었으니까.

저 녀석은 얄짤이 없다.

다음에는 정말로 죽이려들지도 모를 일이다.

박혁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기도 잠시.

이윽고 작전회의가 시작됐다.

배다정은 현재 중국 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 뒤 조장들을 한명씩 호명하며 지역과 임무를 배정해주었다.

이내 그녀는 48명의 조장들에게 모든 임무를 내려주었고, 마지막으로 두 개의 조가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러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미친곰에게로 쏠렸다.

미친곰은 아직 임무를 배정 받지 않았던 것이다.

과연 대장 배다정은 미친곰에게 어떤 임무를 맡길 참일까?

그런 생각들도 잠시.

이윽고 배다정이 말했다.

"45조 조장 미친곰, 33조 조장 김혜원. 이 둘만 이곳에 남고 다른 인원은 즉시 임무 수행을 위해 나가 보도록."

다정은 강하게 말했다.

그러자 모든 조장들이 막사에서 나갔다.

이윽고 막사에는 미친곰과 김혜원 그리고 배다정만이 남게 되었다.

허나,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다른 조장들 까지 다 물린 것일까?

이윽고 배다정이 말했다.

"둘은 특별히 수고 좀 해줘야겠어."

수고.

그 단어에 곰탈 속 인우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그것은 김혜원도 마찬가지였다.

혜원이 물었다.

"무슨 임무입니까?"

"이걸 받아."

어느덧 다정은 미친곰과 김혜원에게 지도를 하나씩 건넸다.

미친곰은 그것을 받아들고 읽어보았다.

-위 지도에 표시된 지역으로 진입하여 제라 부족의 동태를 감시.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곤 전투는 최소화할 것. 또한, 그들의 움직임만 파악한 뒤 즉시 복귀할 것.

제라 부족.

놈들은 현재 미로 부족과의 전쟁을 앞둔 녀석들이었다.

그리고 배다정은 미친곰과 김혜원을 통해 놈들의 동태를 감시하고 그 전쟁에 훼방을 둘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현재 정찰 임무는 매우 중요했다.

때문에 그들이 발탁된 것이었다.

이윽고 배다정이 다시금 말했다.

"조장 김혜원은 미로 부족의 동태를, 그리고 조장 미친곰은 제라 부족의 동태를 보고 오도록. 그리고, 수시로 무전을 통해 상황을 보고해. 그럼, 행운을 빌지."

* * *

중국 땅에는 괴수들이 범람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 존재하는 헬게이트 때문이었다.

지구 곳곳에 생성된 헬게이트.

인류는 이러한 헬게이트를 닫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에 대한 방비로서 헬게이트를 중심으로 거대한 철벽을 세웠다.

당연하게도 이 철벽 안에는 엄청난 양의 괴수들이 포진되어 있었고, 인류는 이를 사냥터라 규정하고 상업적으로 이용했다.

그러나 중국은 어떠한가?

이곳에는 철벽 따윈 있을 수 없었다.

무법지대 그 자체.

애초에 이곳은 블랙오크들의 땅이지 않은가.

어찌되었건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중국 땅에는 각종 괴수들이 우글거렸다.

그리고 블랙오크들은 이러한 괴수들을 잡으며 레벨 업을 했던 것이다.

괴수는 헬게이트를 통해 끊임없이 나왔고, 블랙오크는 이를 통해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는 통합전쟁의 서막이 울린 상태였다.

그 주축에는 당연하게도 바투 부족이 있었다.

바투는 블랙오크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강한 전사였다.

이러한 바투였기에 단숨에 3개의 부족을 통합한 것이다.

바투는 이에 그치지 않고 완벽한 통합을 꿈꾸고 있었다.

그리고...

바투가 움직이는 사이,

다른 부족들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동쪽의 제라 부족과 미로 부족은 전쟁을 앞두고 있는 상태였다.

그 중 제라 부족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제라 부족.

그들은 중국의 블랙오크 부족들 중에서도 약체로 평가 받고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제라는 이미 몰래 하나의 부족을 흡수한 상태였으니까.

사실, 제라에게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 존재했다.

터벅 터벅-

제라는 지금 캄캄한 동굴 속을 걷고 있었다.

동굴은 매우 크고 견고해 보였다.

그리고 끝에 다다를수록, 붉은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척.

이윽고 제라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그가 걸음을 멈춘 그곳에는 거대한 게이트가 보였다.

우우우웅-

붉게 물든 거대한 게이트.

저것은 바로 헬게이트였다.

한데, 동굴 속에 헬게이트라니.

게다가 이 헬게이트는 굉장히 독특했다.

왜냐하면, 괴수들이 나오지 않고 있었으니까.

그저, 붉게 물든 채로 웅웅 거릴 뿐이었다.

제라는 그러한 헬게이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길 잠시.

이윽고 제라는 헬게이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pa la gil."

그리곤 의미를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웠다.

그러길 한참.

우우우웅-

어느덧 헬게이트가 더욱 강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헬게이트 안에서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

제라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저 헬게이트를 통해 보이는 것은 그저 거대한 동체의 일부일 뿐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거대한 존재가 저 안에 웅크리고 있는 것일까?

이윽고 다시금 제라가 말했다.

"pa la gil."

-.......

그러자 또 다시 헬게이트가 꿈틀대기 시작했고,

어느덧 거대한 생명체의 동공으로 유추되는 것이 헬게이트를 통해 보였다.

"하아아..."

제라는 긴 숨을 토해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저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리고 바지춤이 축축해져왔다.

< 082화 특별임무 (1) > 끝

ⓒ 호종이

< 083화 특별임무 (2) >

45조 미친곰은 제라 부족의 정찰을, 33조 김혜원은 미로 부족의 정찰을 맡게 되었다.

모든 작전회의가 끝이 나자 늦은 저녁이 되어 있었다.

하여, 오늘은 막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인우는 즉시 인원을 추렸다.

정찰의 경우 인원이 많을 필요가 없다.

발이 빠르고 상황판단이 빠른 인원을 추려내어 소수로 이동할 셈이었다.

그리하여 인우는 45조 조원들 중에 2명을 뽑았다.

레인저 계열의 초인 박진아.

보조 버프 계열의 초인 이지윤.

인우는 이 두 사람을 데리고 지도에 표시된 지역으로 향했다.

인우는 이동과 함께 분신 스킬의 정보를 훑어보았다.

.

.

.

18. [분신 Lv.21 (2%)] - 시전자의 분신을 소환합니다. (하루에 한 번 시전 가능하며, 레벨이 오를수록 분신의 숫자와 전투력이 증가합니다.)

분신 스킬의 레벨은 꾸준히 오르더니 이제 21에 닿아 있었다.

어제만 해도 19였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21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21레벨이 되며 분신의 숫자가 늘어났다.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한계 레벨의 수치도 퍼센트로 바뀌었다.

인우는 분신들의 정보를 불러보았다.

<분신1>

레벨 : 15

한계 레벨 : 19 <시전자 레벨의 10.5%>

.

.

<분신2>

레벨 : 2

한계 레벨 : 19 <시전자 레벨의 10.5%>

인우는 어제 박혁과 대결할 때 분신 스킬을 사용했었다.

그 와중에 분신은 박혁의 공격에 의해 소멸됐다.

그럼에도 레벨 정보는 올려둔 그대로 남은 상태.

즉, 분신은 한 번 키워두면 레벨이 영구적으로 남는 것이라 볼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소환할 때마다 초기화 되어 새로 키우는 개념이 아닌 것이다.

어찌되었건 인우는 박강중에게서 받은 아티팩트로 인해 가까스로 분신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

현재 인우는 행운의 반지 대신 마력을 40 증가시켜주는 주술의 반지를 착용한 상태였다.

'분신 스킬을 사용하고도 마나가 넉넉해야 해. 기가 라이트닝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흐음, 역시나...당분간은 마력 스텟인가.'

그러한 생각도 잠시.

함께 이동 중이던 조원인 박진아가 말했다.

"조장님. 엉덩이에 붙은 꼬리가 너무 귀엽네요."

"..."

박진아는 해사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인우는 답하지 않았다.

아마도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분위기를 전환해보기 위해 저러한 말을 내뱉는 것 같았다.

이를 보건대 박진아는 제법 살가운 성격인 것 같았다.

반면 이지윤의 경우 굉장히 조용했다.

이지윤은 지속적으로 이동을 하면서 주변을 살피기에 바빴다.

이를 보건대 굉장히 조심성이 많고 신중한 타입으로 보였다.

이지윤은 말 한마디라도 쉽게 내뱉지 않고 있었으니까.

인우는 상반된 성격의 두 여자를 살피다가 이내 관심을 거뒀다.

그리고 다시금 분신 스킬을 훑었다.

분신은 하루에 한 번 시전 가능하다.

어제 사용한 뒤로 하루가 지났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시전이 가능할 터였다.

이윽고 인우는 분신을 소환 했다.

그러자 인우와 똑같이 곰탈을 뒤집어 쓴 두 명의 분신이 소환 되었다.

분신들은 심지어 용작두까지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그 광경에 박진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조장님! 그건 박혁 조장님과 대련할 때 사용했던 스킬 아닌가요?? 우와..."

"어...!"

말수가 적은 이지윤 조차도 입을 뻥긋하려 할 정도였다.

그녀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인우는 두 개의 분신을 향해 명령했다.

'전투는 무조건 피하고 지구 끝까지 달려라.'

그러자 인우의 분신1과 분신2가 앞을 향해 무작정 내달리기 시작했다.

현재 분신들은 레벨이 낮아 절대자의 호흡은 없다.

그러나 절대자의 걸음이 있었다.

액티브 스킬의 경우 내려찍기까지 사용하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스킬 볼을 통해 얻었던 기술들은 사용하지 않았다.

이를 통해 유추되는 것은, 분신들은 레벨이 오를수록 그 레벨에 맞는 광전사 특성의 기술을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즉, 본신인 인우의 기술만을 사용하는 걸로 보였다.

스킬 볼을 통해 새로이 얻은 스킬들은 인식하지 못했다.

어찌되었건 인우는 지금 분신들에게 무작정 달리라고 명령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시전자의 '분신2'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거야 뭐, 거저먹기나 마찬가지였다.

분신들은 끝도 없이 달리며, 절대자의 걸음으로 인해 한계 레벨까지 성장할 것이다.

인우는 분신들을 보내놓고 걸음을 재촉했다.

"제라 부족의 영역이 얼마 남지 않았어. 집중하라고."

그 한마디에 박진아와 이지윤은 진중한 얼굴을 한 채 눈을 크게 떴다.

어디까지나 이곳은 전장.

그리고 그들은 제라 부족의 영역을 정찰하기 위해 이동 중인 것이다.

* * *

동쪽의 제라 부족.

이들은 미로 부족과의 전쟁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별다른 움직임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이들은 영역에 모여 무릎을 꿇고 광신도처럼 기도와 같은 행위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전쟁이다.

한데, 기도라니.

아니, 기도를 할 수도 있다.

어떤 종족이든지 자신이 믿는 신이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들은 블랙오크이다.

다시 말해 오크.

그러한 오크가 기도라니?

원래대로라면 다가올 전쟁을 위해 병장기를 준비 한다던가 작전을 짜야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이들은 아니었다.

제라는 영역 중앙에 위치해 있는 단상 위에 올라선 채로 양팔을 하늘 위로 치켜 들고 있었다.

그러한 제라를 중심으로 엄청난 숫자의 부족원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으어어어!!"

기도는 점차 고조 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제라는 흡사 간질 환자처럼 몸을 부르르 떨며 발광을 해댔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덧 제라의 움직임이 차츰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제라는 눈을 떴다.

번쩍!

그러자 제라의 눈동자가 뒤바뀌어 있었다.

눈동자는 흰자위가 존재하지 않았고, 온통 새카맣게 물들어 있었다.

"후우우우우...."

이윽고 제라가 깊은 숨을 토해냈다.

눈알 전체가 검게 먹칠 된 제라.

그는 마치 악마 같아보였다.

이내 제라는 부족원들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분의 가호가 우리 부족에게 힘을 더해줄 것이다!"

* * *

"조장님. 쟤네 단체로 미친 거 아닐까요?"

박진아가 검지로 제라 부족을 가리키며 묻고 있었다.

현재 인우와 박진아, 그리고 이지윤은 커다란 바위 뒤에 몸을 숨긴 채 녀석들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조장님?"

박진아가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러나 인우는 답이 없었다.

곰탈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현재 인우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한 상태였다.

'어처구니가 없네. 어째서 놈들에게 저 기운이...?'

분명 익숙한 기운이었다.

프로킨에서도 익히 경험해보았던 기운.

한데, 그러한 기운이 어째서 저 놈들에게서 느껴지는 것일까?

'...제라 부족. 놈들의 뒤에 분명 무언가가 있다.'

아직 속단하기엔 일렀다.

그러나 불길한 기운이 등골을 따라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어. 만일 저 부족이 가호를 받고 있다면, 분명 다를 거다.'

그러한 생각을 하던 와중.

다시금 박진아가 말했다.

"조장님? 괜찮으세요?"

"어."

"이제 복귀 할까요? 쟤들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 동영상 촬영까지 해놨다고요."

"아, 복귀는 아직."

"네?"

아직.

그 말에 박진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인우는 아랑곳 않고 말했다.

"제라 부족. 놈들의 부족원 한두 놈 정도와 싸워보고 복귀한다."

"네에에??"

분명 이번에 떨어진 특별임무는 정찰이 주된 목적이었다.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곤 전투를 최소화하라 했고, 제라 부족의 움직임만 파악한 뒤 즉시 복귀하라 했다.

그런데 조장인 미친곰은 제라 부족원과 전투를 해보고 복귀하자 말하고 있었다.

박진아는 단숨에 고개를 내저었다.

"조장님. 그건 안 됩니다. 최소한, 배다정 대장님께 무전을 통해 보고한 뒤 움직여야 합니다!"

"그럼 먼저 복귀해. 나는 조금 더 훑어보고 갈 테니까."

말을 마친 인우는 즉시 바위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런 뒤 조심스럽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현재 제라 부족원들은 한데 뭉쳐 있는 상태.

지금 건드릴 순 없었다.

또한 들켜서도 안 된다.

들키면 그냥 죽는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놈들의 숫자는 못해도 수천만일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놈들이 각자의 거처로 흩어지고, 정찰을 위해 소규모로 움직일 때 급습해야만 했다.

그리고 오늘 밤.

반드시 제라 부족원 놈들과 전투를 해봐야만 했다.

인우는 자신의 촉을 믿었다.

자신의 예상이 맞다면 놈들은 전투할 때 평범한 블랙오크들과는 다른 기운을 풍길 것이다.

가호에 의해 기운을 방출할 테니까.

어느덧 바위 뒤편에 남은 박진아와 이지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뜻밖으로 이지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먼저 복귀하자."

"에? 그럼 조장님은요?"

"그렇다고 명령불복종을 하게? 우리 목표는 그저 정찰이었어."

지윤의 말에 박진아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저도 함께 움직이겠어요. 조장님이 갑자기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휴우. 뒷감당은 알아서 하라고."

이지윤은 고개를 내저으며 부대를 향해 복귀했다.

그리고 박진아는, 조장 미친곰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 * *

미로 부족의 땅으로 정찰을 갔던 김혜원은 다음 날 아침 부대에 복귀했다.

배다정은 김혜원의 보고를 통해 미로 부족의 동태와 규모에 대해 보다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미로 부족의 세력은 굉장히 컸다.

게다가 미로 부족은 괴수까지 다룰 줄 아는 특이한 능력을 지닌 블랙오크들이 포진 되어 있었다.

아직 장담할 순 없지만, 이번에 동쪽에서 벌어질 전쟁은 미로 부족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짙었다.

물론, 제라 부족에 대한 보고도 들어보아야 보다 정확한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정오쯤 되었을 때, 부대를 향해 이지윤이 복귀했다.

그러나 함께 갔던 조장 미친곰과 박진아는 보이지 않았다.

배다정은 눈을 가늘게 뜨며 이지윤을 향해 물었다.

"어째서 혼자 오는 거지?"

"그것이..."

이지윤은 제라 부족의 동태를 감시하다가 조장 미친곰이 취한 독단적인 행동을 보고했다.

"미친곰에 대한 건은 후에 다시 말하고, 우선 보고부터 하도록."

"네."

이윽고 지윤은 촬영해온 영상과 제라 부족의 규모에 대해 보고하기 시작했다.

그 모든 보고를 듣게 된 배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견을 취합했다.

그 결과, 이번 전쟁은 미로 부족의 압승이 될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제라 부족은 쓸데없는 행위에 집착하며 전쟁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제라 부족은 미로 부족에 비해 한참이나 떨어지는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윽고 배다정은 미친곰에게 무전을 해보았다.

"미친곰은 무전도 받지 않는군.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이미 모든 파악이 완료 되었다.

이제는 제라 부족과 미로 부족의 전쟁에 훼방을 두어 두 부족을 괴멸하게 만들 작전을 구상하면 되었다.

현재 미로 부족이 압도적으로 강했기에, 미로 부족을 중점적으로 한 작전을 짜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다시금 간부 회의를 해야 한다.

그러나 미친곰은 도대체 뭘 하는 걸까?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리고, 미친곰은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복귀했다.

배다정은 복귀한 미친곰과 박진아를 향해 불같이 노호했다.

이건 전쟁이다.

장난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보인 미친곰의 행동은 자기 멋 대로이지 않은가?

그래, 들어나 보자 싶었다.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사안이기에 모든 무전을 무시한 채 독단적인 행동을 취했는지 말이다.

이윽고 배다정은 미친곰을 향해 물었다.

"뭘 하다 이제 왔지?"

"제라 부족을 조금 더 살펴보았어."

"45조 조장 미친곰. 나는 이미 이지윤을 통해 제라 부족에 대한 보고를 다 듣고 난 후다. 제라 부족. 놈들은 별 볼일 없어."

"그래. 놈들은 별 볼일 없지."

미친곰은 배다정의 말을 똑같이 따라했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말을 이었다.

"놈들의 뒤에 있는 존재가 무서운 것일 뿐."

"그게 도대체 무슨...?"

미친곰은 다정의 말을 중도에 자르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드래곤. 그 최악의 생명체가 난입했으니까."

< 083화 특별임무 (2) > 끝

ⓒ 호종이

< 084화 바투 >

드래곤의 종류는 상당히 많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호를 내려 줄 수 있는 드래곤은 흔치 않았다.

이를테면 골드 드래곤이나 실버 드래곤 정도?

골드나 실버는 드래곤 중에서도 최상위급에 속한다.

그러한 놈이 지금 제라 부족의 뒤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인우는 분명 느낄 수 있었다.

제라 부족원들은 저마다 가호의 기운으로 전투력이 상승되어 있었으니까.

"드래곤. 그 최악의 생명체가 난입했으니까."

인우가 말하자 배다정은 의문을 표했다.

"드래곤이 난입했다니?"

다정은 의문일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은 인간들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괴수일 뿐이다.

즉, 실존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미친곰은 드래곤이라 했다.

이윽고 미친곰이 말했다.

"뭐가 되었건, 이제 제라 부족은 단숨에 급부상할거야."

"아니, 이지윤의 보고를 통해 이미 확인했다. 제라 부족은 미로 부족에게 질 수밖에 없어."

"뭐, 그건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미친곰은 그저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지금으로선 드래곤의 가호를 배다정에게 납득시켜 줄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인우가 무슨 말을 한다 해도 통하지 않을 터.

이것은 그저 배다정이 직접 눈으로 목격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우는 더 이상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괜찮아 보이긴 하니······.'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재 드래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인우의 예상으로는 아마,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드래곤이 바깥으로 나오기 위해선 헬게이트 정도로는 감당할 수 없을 터.

못해도 헬게이트보다 수백 배는 큰 게이트가 열려야 지구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드래곤은 헬게이트 뒤에 웅크린 채로 제라 부족에게 가호를 내려주는 것이 고작일 테고.

'그러나 의문인데······.'

확실히 의문이었다.

사실, 드래곤이 지구로 넘어올 이유가 없다.

놈들은 프로킨에서 떵떵거리면서 황금이나 핥아 댈 놈들이다.

원체 귀찮은 것을 꺼려하고 나태한 족속들이다.

그런데, 그러한 드래곤이 왜 지구로 넘어오려 하는 것일까?

도대체 목적이 무얼까?

도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한 생각도 잠시.

이윽고 인우가 배다정에게 말했다.

"단독행동에 대해서 처벌을 내린다면 달게 받지. 그러나 지금은 아니야. 우선은 제라 부족이 우선이야. 작전회의부터 시작하지?"

말을 마친 인우는 작전회의막사를 향해 앞장섰다.

너무나도 태연한 그의 행동에 배다정은 할 말을 잃었다.

하긴, 따지고 보면 미친곰의 말이 맞다.

지금은 제라 부족과 미로 부족의 전쟁에 대한 작전회의가 우선이었다.

* * *

3개의 부족을 통합한 바투는 단숨에 북쪽을 향했다.

현재 바투 부족의 전력은 대략 7천만 가량으로 늘어난 상태.

3개의 부족을 통합하며 병력을 많이 잃었음에도 이렇게나 크게 불어난 것이다.

바투는 현재 북쪽의 패오 부족의 땅에 들어선 상태였다.

이에 패오는 2천만 가량의 병력을 끌고 바투의 앞을 막아섰다.

드넓은 벌판.

거대한 두 부족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윽고 최전방에 서 있던 패오 부족의 족장 패오가 외쳤다.

"바투! 전쟁을 몰고 오다니! 욕심에 가득 찬 멍청한 놈!"

"큭. 어차피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다. 패오. 순순히 투항해라.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나의 부족원이 되어라. 그렇게 하면, 너의 전투력에 걸맞는 직위를 내려 주지."

적절한 제안이다.

패오의 입장에서는 확실히 저 제안에 따르는 것이 맞았다. 왜냐하면 현재 패오 부족의 병력은 바투 부족에 비해 절반도 채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때문에 순순히 투항한다면 그 어떤 피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지 않나?

패오는 부족원들을 이끄는 족장이다.

쉽게 굴복해선 안 되는 것이다.

부족원들의 운명이 패오의 어깨에 달려 있었으니까.

어느덧 패오는 짓눌려오는 압박감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내 패오는 포효하듯 외쳤다.

"거절한다!"

"흐음. 기어코 죽고 싶은 것이로군."

거절.

그 한마디에 커다란 정적이 감돌았다.

누구 하나라도 움직인다면 곧바로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길 한참.

다시금 패오가 외쳤다.

"나 패오 부족의 족장 패오! 바투 너에게 결투를 신청하지! 만일 내가 진다면, 내 목을 베고 나의 부족원들을 거두어라. 다만, 내가 두 눈을 뜨고 있는 동안에는 결단코 나의 부족원들을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이윽고 패오가 결단을 내렸다.

그러자 패오의 최측근 장군들이 젖은 목소리를 내며 소리쳤다.

"위대한 전사 패오! 안 될 말입니다! 저희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몸! 긍지를 가지고 싸울 겁니다! 당신 혼자 희생하려 들지 마십시오!"

장군들의 만류.

그에 패오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의 수천만 부족원들이 어깨를 부들부들 떨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한 것이리라.

이윽고 패오가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에게 긍지를 다오. 족장의 사명을 다하겠다."

말을 마친 패오가 저편에 있는 바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자 바투도 이편을 향해 걸어왔다.

이윽고 둘은 벌판 중앙에서 마주쳤다.

바투가 말했다.

"전사다운 긍지로군. 약속하지. 고통 없이 끝내 주겠다. 그리고 너의 부족원들을 내가 잘 이끌어 주겠다."

"······."

패오는 답하지 않았다.

그는 끝을 예견하고 있었다.

바투는 모든 블랙오크 중에서 가장 강할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존재.

패오 자신이 바투를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다만 긍지는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이윽고 패오가 거대한 도끼를 치켜들고 바투를 겨눴다.

이에 바투는 그저 양 주먹을 치켜 들 뿐이었다.

무기조차 빼지 않는 여유.

"으아아아압!!"

어느덧 패오가 선공을 취했다.

패오의 거대한 도끼가 허공을 가르며 바투의 심장을 노렸다.

그러자 거대한 덩치의 바투는 믿을 수 없는 빠르기로 공격을 피해 냈다.

파스스스스슥-!

도끼가 허공을 빠르게 누비며 소름끼치는 파공성이 벌판을 메웠다.

이를 보고 있던 부족원들은 저마다 침을 꿀꺽 삼키며 양 주먹을 꽉 쥐었다. 손 틈 사이로 땀이 새어 나왔다.

카앙-!

어느덧, 바투는 패오의 도끼를 양 손바닥으로 막아 냈다.

그러자 패오의 도끼가 부들부들 떨며 길을 잃었다.

엄청난 힘에 가로막힌 것이다.

바투는 순수한 악력만으로 패오의 도끼를 결박시켜 버렸다.

패오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이윽고 바투는 양 팔에 힘을 주었다.

끄드드득-!

그러자 바투의 거대한 팔 근육에 거머리 같은 핏줄들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패애애애앵-!

도끼는 그대로 두 동강이 나 버렸다.

패오의 눈이 부릅떠졌다.

"으!"

바투가 강한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느덧 바투는 돌덩이 같은 양 주먹을 휘두르며 패오를 압박했다.

"크읏!"

마치 막을 수 없는 거대한 강물이 떠밀려 내려오는 듯한 압박감이었다.

패오는 침음성을 내뱉으며 점차 뒤로 물러났다.

이윽고 패오는 자신의 부족원들이 서 있는 곳까지 밀려났다.

그때까지도 바투는 공격다운 공격은 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패오가 어느 정도 물러나자 주먹은 휘두르지도 않은 채 천천히 패오를 향해 다가가기만 했다.

저벅. 저벅.

바투에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패오로 하여금 공격 의지조차 잃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패오 부족원들도 동일했다.

패오가 뒷걸음질 치기 시작한 그 순간.

그때 이미 전투의 승패는 갈려 있었다.

패오는 그저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피해 뒤로 물러날 뿐.

그리고 마침내 패오 부족원들과 바투의 거리가 지척에 닿았을 때.

바로 그때.

바투가 단숨에 패오의 목을 움켜쥐었다.

"커, 커헉!"

"······."

바투는 자신의 손에 결박 되어 고통스럽게 호흡을 내뱉는 패오를 바라보았다.

바투의 붉은 눈에는 그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바투는 그 상태로 패오 부족원들 전원을 쏘아보았다.

수천만에 달하는 패오 부족원.

그들은 본인들의 지척에서 죽어가고 있는 패오를 바라보면서도 그 어떠한 움직임을 취하지도 못했다.

바투의 눈빛은 그 정도로 기세가 대단했다.

"크, 크허어어어!"

이윽고 숨통이 막혀 오던 패오는 서서히 눈알이 뒤집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컥."

패오가 숨을 거뒀다.

그러자 바투는 긴 숨을 토해 냈다.

"후우우우우우."

그리곤 패오 부족원들을 향해 족장 패오의 시체를 내던져 버렸다.

철퍼덕!

그 광경에 패오 부족원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이를 갈았다.

바투가 말했다.

"약했기에 이렇게 된 것이다. 강한 족장을 따르면 될 일이지. 패오는 긍지를 지켰다. 나는 그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지. 그리고 이제, 너희들은 나를 따라야 할 것이다."

말을 마친 바투는 패오 부족원들이 몰려 있는 곳을 뚫으며 걸었다.

저벅 저벅-

그리고, 바투가 걸을 때마다 패오 부족원들은 양쪽으로 갈라지며 길을 내주었다.

압도적인 기운에 내주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저벅 저벅-

바투는 계속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패오 부족원들의 중앙에 도착해서야 걸음을 멈췄다.

"이것은 시작일 뿐. 이제, 온 세계가 우리의 것이 된다."

현재까지 바투는 4개의 부족을 통합했으며, 이제는 9천만 가량의 병력을 지휘하게 되었다.

* * *

"지금 방금 바투 부족이 하나의 부족을 더 흡수했다더군."

무전을 받은 11조의 조장이 배다정을 향해 말하고 있었다.

그 말에 배다정은 인상을 구겼다.

현재 바투의 영역 쪽에 급파된 초인부대는 미국과 일본.

"바투가 움직이는 동안 미국과 일본은 무얼 했던 거지?"

"어찌해 볼 수 있는 규모가 아니란 것을 잘 알잖아. 미국에서 증원을 요청했어. 지금 당장 바투 부족을 향해 모든 부대를 투입시키지 않으면······."

"뻔하지. 이러다가 바투 부족이 지금보다 더 커진다면 그때는 정말로 위험해지겠지."

그렇게 답한 배다정은 팔짱을 낀 채로 눈을 감았다.

그녀는 깊은 고민에 빠질 때면 늘 이러했다.

그녀가 침묵하자 막사에 모인 모든 조장들은 저마다 의견을 피력했다.

"차라리 바투가 더 이상 세력을 늘리지 못하게 비교적 작은 부족들을 깨부수는 게 맞지 않겠어?"

"깨부수는 게 쉽겠냐? 그리고 그러는 동안 바투가 가만히 있겠냐고. 이제 녀석도 슬슬 우리가 급파되었다는 것을 눈치 챘을 거라고."

"사태를 해결하려면 이미 불어날 대로 불어난 바투 부족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은데?"

의견은 엇갈리고 있었다.

게다가 현재 중국에 급파된 모든 초인부대가 한데 뭉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애초에 각 국은 지역을 배분해서 임무를 전담하지 않았는가?

인류의 존망이 걸린 사태임에도 각국의 알력이 작용한 것이다.

이를테면 한국의 경우, '제라 부족과 미로 부족만 케어하면 끝!' 정도의 느낌이랄까?

이는 타 국가 또한 마찬가지인 것이다.

물론 한국이 제라 부족과 미로 부족을 괴멸 시킨다면 타국의 영역으로 증원을 가는 시스템이었다.

어찌되었건 현재로선 별다른 방안이 없는 상태.

턱. 턱. 턱.

그런데 그때.

테이블 왼쪽 끝자리에서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모든 조장들은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보았다.

"허, 참······."

"흐음······."

그리고 그들은 침음성을 내뱉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미친곰이 팔짱을 낀 채 두 다리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는 달달 떨어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아니꼬운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든 시선이 미친곰에게로 쏠리자, 미친곰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내게 좋은 방법이 있어."

< 084화 바투 > 끝

ⓒ 호종이

< 085화 미친곰의 미친 계획 >

미친곰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최악의 사태에 좋은 방법이라니?

도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설마 핵과 같은 인류의 살상무기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애초에 핵 사용이 가능했다면 각국의 초인부대가 중국으로 급파될 일도 없었을 테니까.

현재 중국에는 기존 땅의 주인이던 1억 명 가량의 중국인들이 노예로 잡혀 있지 않은가?

게다가 애초 핵 사용은 인권 단체의 반발로 안보리에서 통과되지도 못했다.

나아가 사용한다고 한들 거대한 중국 대륙을 폭격하려면 핵 한두 개 가지고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그 엄청난 양의 핵을 쏘아 중국 땅을 휩쓴다고 쳐보자.

그렇다면 그 후의 감당은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중국과 지형이 맞닿아 있는 국가들의 피해는 누가 책임지는가?

그로 인한 중국과의 접경 국가들의 반발은?

게다가 방사능으로 인한 2차 피해와, 그로 인한 변종 괴수의 출현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렇기에 더욱이 궁금했다.

미친곰은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정말로 방법이 있는 것일까?

이윽고 미친곰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지금으로선 인류의 초인부대로 바투를 막는 게 불가능하다고 봐."

"그래. 불가능하지! 그래서 우리가 여태 고민하는 거잖아."

무슨 당연한 이야기를 하냐는 듯. 배다정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답하고 있었다.

미친곰은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아랑곳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불가능한 일에 머리를 싸맬 필요는 없잖아?"

"뭐라고?"

"가능한 일을 떠올려 보라고. 발상을 전환해 봐. 현재 실현 가능한 최상의 수는 무얼까?"

미친곰은 도리어 물었다.

그러자 모든 조장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우리가 그걸 알면 이러고 있을 이유도 없잖아."

누군가가 불만을 담아 툴툴대고 있었다.

그러자 미친곰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말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현재 급파된 초인부대의 병력으로는 바투를 막는 것이 불가능해. 그러나, 놈들을 이용하면 가능하지."

"놈들을 이용하자니? 놈들이 누군데? 도대체 무슨 뜬구름 잡는 얘기야?"

"간단해. 바투에게 대항할 만한 부족."

"장난해? 지금 시점에 그런 부족이 있을 리가 없잖아."

"키워 주면 그만이지."

"키워 주자고?"

모두가 의문을 품었다.

미친곰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래, 키워주면 그만이었다.

"내 생각에는 제라 부족이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여. 그러니까, 우리는 제라 부족을 돕는다."

"이 미친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저 새끼 완전 또라이야!"

"배다정 대장! 당신도 뭐라고 한마디 해 보라고! 저 미친 새끼가 지금 개소리를 하고 있잖아!"

모두가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언성을 높였다.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상황.

배다정은 손을 들어 그들을 저지했다.

그런 뒤 미친곰에게 물었다.

"계속 말해 봐."

"들어보라고. 제라 부족을 키워준다면, 끝장에는 바투 부족과 제라 부족만이 남겠지."

"그래서?"

"그렇게 되면 결국에는 두 부족의 이파전 양상이 될 거야."

"······."

다정은 침묵했다.

슬슬 무언가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그 침묵에 마침내 미친곰이 쐐기를 박아 넣었다.

"그렇게 두 부족이 싸우다가 어느 한 부족이 승리를 하겠지. 그것은 즉 통합. 그리고, 그 통합이 되는 시점이 바로 블랙오크들이 가장 많이 상처 입고 지쳐있을 때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초인부대는 그때를 노려서 전면전을 한다."

"······."

그 미친 계획에 모두가 침묵했다.

확실히 지금 시점에서 인류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계획이긴 했다.

물론, 저대로 실현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그러나 저것은 벼랑 끝과 같은 위험한 수이기도 했다.

허나 달리 말해, 미친곰은 핵심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미친곰의 말이 맞았다.

인류는 현재 블랙오크의 통합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통합을 막기 위해선 오히려 통합을 하게 만들어야만 했다.

물론!

지금처럼 한쪽으로 치우쳐진 통합은 안 된다.

현재처럼 막강한 바투 부족이 블랙오크들을 야금야금 한 부족씩 흡수한다면, 엄청나게 강력한 부족 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때는 정말로 막지 못한다.

그러나!

미친곰의 말대로 바투 부족에게 대항할 만한 막강한 부족이 만들어진다면?

그리하여 두 부족이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결국 승자가 탄생되어 통합이 된다고 해도······.

그것은 상처만 남은 통합이 될 것이었다.

블랙오크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고 당분간은 출혈에 의해 고생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인류의 기회일 테고.

바로 그때가, 블랙오크들이 가장 취약해질 시점이었으니까.

"······."

모두가 침묵했다.

역시나 미친곰인건가?

확실히 미친 계획임에는 분명했다.

이윽고 미친곰이 다시금 말했다.

"자, 이제 시작해 보자고. 역시나 중요한 건, 제라 부족을 바투 부족만큼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제라 부족에게 갔다 오겠어. 너희들은 쫄보라

서 못할 것 같거든."

본인이 직접 제라 부족과 대면한단다.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미친 계획을 짠 미친놈다웠다.

* * *

제라 부족의 영토.

드넓기 그지없는 이곳에는 수천 만의 블랙오크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이들은 모두 드래곤의 가호를 받고 있는 상태.

그래서일까?

이곳 제라 부족원들은 저마다 육체에서 강력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영토 중앙 단상에는 족장 제라가 보였다.

제라가 부족원들을 향해 외쳤다.

"오늘, 우리는 미로 부족을 굴복시킨다."

제라는 미로 부족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이미 1개의 부족을 비밀리에 흡수한 제라였다.

병력부터가 다르다.

게다가 드래곤의 가호까지 받고 있는 상태.

하늘이 제라를 돕고 있었다.

제라는 병장기를 하늘 높이 치켜든 채 외쳤다.

"출정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출정식이 끝나자 모든 부족원들이 기합을 내질렀다.

이윽고 제라는 선봉에 선 채 달렸고, 모든 부족원들이 제라를 따랐다.

이 상태로 평원을 가로질러 미로 부족의 땅까지 침투할 참이었다.

작전?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힘으로 몰아붙일 자신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그들은 한참이나 달렸다.

그런데 그때.

그들의 눈앞에 이상한 생물체가 포착되었다.

괴수는 아니었다.

생전 처음 보는 형태였으니까.

마치 곰 같다랄까?

전체적으로 갈색으로 이루어진 곰이었다.

이윽고 곰이 말했다.

"멈춰."

"······."

수천 만의 병력을 가로 막고 있는 존재.

그 존재는 온전히 홀로였다.

제라는 곰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가까이에서 바라본 곰은 실제 곰이 아니었다.

어떠한 탈을 뒤집어쓰고 있었으니까.

이윽고 곰은 탈을 벗었다.

그러자 곰의 실제 얼굴이 드러났다.

인간 남자였다.

짧은 흑발 머리에 짙은 눈썹.

쌍꺼풀 없는 강인한 눈매와 고집스러워 보이는 입술까지.

이윽고 남자는 자신을 소개했다.

"난 대한민국에서 온 정인우다."

"인간?"

어느덧 제라는 한 손을 들어 올리며 진군을 멈췄다.

미친 인간일까?

저 인간은 이토록 많은 블랙오크 병력 앞에서도 전혀 주눅이 들어 있지 않았다.

저것은 여유였다.

강자에게서나 풍기는 여유.

그러나 달리 말해 허세다.

이 많은 병력과 단신으로 싸울 생각이라면 말이다.

어느덧 제라는 흥미를 감추지 않은 채 물었다.

"어째서 우리 앞을 막는 거지?"

제라 또한 여유가 있었다.

그와 그의 부족원들은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블랙오크들이다.

미로 부족 따위야 언제든 밀어 버릴 수 있다.

지금 제라는 눈앞에 존재하는 이 미친 인간이 궁금할 뿐이었다.

"막는 게 아니야. 도우려는 거지."

"인간 따위가 우리를 돕겠다고?"

"도움이 필요할 텐데? 제라. 네놈과 부족원들이 제아무리 드래곤의 가호를 받고 있다고 해도, 바투는 넘을 수 없는 벽이야."

"······!!"

그 말에 제라의 눈이 단숨에 부릅떠졌다.

다른 건 다 무시해도 될 만한 말이다.

그러나 딱 한 가지.

저 인간은 지금 '드래곤의 가호'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었다.

그것에 대해 아는 인간이라니?

제라로서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다.

인우는 시시각각 변하는 제라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이곳으로 비대한 몸을 붙들고 나올 수도 없는 드래곤 새끼 따위, 헬게이트에 갇혀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그런 병신한테 가호 하나 받았다고 바투를 넘을 수 있을 줄

알았냐?"

"뭐라?"

인우의 도발.

이에 제라의 얼굴이 단숨에 구겨졌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제라는 함부로 인우에게 덤벼들지 못하고 있었다.

인우가 내뱉은 두 마디 때문이었다.

'드래곤 새끼.'

'움직이지도 못하는 그런 병신의 가호.'

제라로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드래곤을 비하하는 저 인간이 심상치 않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을 알고 있다.

그에 대한 가호도 안다.

마지막으로, 드래곤을 비하한다.

그렇다면 저 남자의 정체는 도대체 무얼까?

제라는 점차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다. 제라는 헬게이트 내부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드래곤의 시선만으로도 바지춤을 적셨었다.

그렇게나 무시무시한 드래곤이다.

그에 빗대어 보자면 저 인간은 도대체 무얼까?

그러한 생각도 잠시.

다시금 인우가 말했다.

"너희들이 통합을 할 수 있게 도와주지."

"···어째서 우리를 돕는 거지?"

"이유야 간단해. 바투가 중국을 통합해선 안 되거든. 그놈은 블랙오크 통합. 그에 더 나아가서 세계정복까지 꿈꾸고 있는 놈이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전쟁을 건 것

이지. 그러나 제라 너는 달라."

"다르다?"

"제라. 니가 중국을 먹어라. 그렇게 해서 지금의 현상을 유지하는 거다. 늘 그래 왔듯이, 중국은 인류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인류 또한 중국에 침범하지 않을 거

야."

인우의 말에 제라는 한참동안이나 생각에 잠겼다.

인우의 말대로 보자면 지금 인류는 바투를 경계하고 있었다.

인류의 평화가 위협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인류는 역으로 자신의 부족인 제라 부족을 도우려는 것 같았다.

거절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 없었다.

손해 볼 게 없었으니까.

"그 도움 받들지."

그렇게 답한 제라는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저 멍청한 인간은 바투는 못 믿고 자신은 믿는 것일까?

제라 또한 블랙오크를 통합하면 인류의 영토마저 노릴 참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통합을 인류가 도와주겠단다.

우스워서 말도 잘 안 나온다.

제라로서는 쌍수를 들고 반길 수밖에 없었다.

"······."

한편 인우는 시시각각 변하는 제라의 표정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니 새끼 표정만 봐도 다 보인다. 덜떨어진 오크 새끼. 그래, 도움을 받고 무럭무럭 커라. 그리고 바투 부족만큼 성장해서, 바투 부족과 공멸해라.'

인우는 그런 생각을 하는 한편 제라를 향해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야, 그리고 말이야. 그렇게 무식하게 몰려가면 어쩌자는 거냐? 대가리가 달렸으면 생각을 좀 해라. 최소한의 피해로 미로 부족을 삼켜야 될 거 아니냐? 내가 작전

을 짜 주지."

"······."

그 말에 제라는 꾹 하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 085화 미친곰의 미친 계획 > 끝

ⓒ 호종이

< 086화 내가 다 먹는다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