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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화 침입자

숲속에서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 이편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뭐, 뭐지 저 놈들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민철은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이윽고 녀석들은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인원은 총 다섯. 4명의 다부진 남자들과 한 명의 중년인이었다.

민철이 그들을 향해 외쳤다.

"무슨 일입니까!"

조금의 떨림도 없이, 당당함을 가장했다.

그러자 남자들은 잠시 멈칫 하더니 중년인을 향해 말했다.

"저놈이 확실합니까?"

"예. 일단 저 사람부터 잡아 주십시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유추할 수 있었다. 놈들은 결코 좋은 뜻을 가지고 민철에게 접근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놈들은 민철을 포함한 인우까지 노리고 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왜?

민철은 도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때, 어둠 속에 가만히 서 있는 중년인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

"저 사람은 분명히···!"

분명 아는 얼굴이었다.

생각도 잠시.

어느덧 4명의 남자들이 민철을 향해 쇄도해 왔다.

타다닥!

"젠장···! 대검도 사육장 안에 있는데!"

도망쳐야 할까?

아니다.

이미 너무 늦었다. 민철은 이를 악물고 녀석들을 향해 황소처럼 돌진했다.

"으아아아앗! 해보자 이거지!!"

그렇게 민철은 영문도 모른 채 녀석들과 싸웠다.

민철은 23레벨의 초인.

"크억!"

그러나 사내들도 초인인 것 같았다.

"제, 젠장··· 뭐야 니들!"

민철은 너무나도 쉽게 제압 당해 버렸으니까.

* * *

인우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사육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별것 없는 하늘이지만, 그렇기에 담백한 맛이 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다.

이윽고 인우는 사육장에 도착했다.

"후우!"

인우는 숨을 고르며 사육장 옆에 세워진 아반떼를 바라보았다.

"이 녀석. 알아보라는 건 다 알아봤을라나."

중얼대며 사육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육장 내부에서 얼핏 불빛이 보였다.

이내 인우는 사육장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쐐애애액-!

그것은 불식간이었다.

양옆에서 난 데 없이 야구방망이가 날아들었다.

예상조차 하지 못했기에, 인우는 그대로 기습을 허용했다.

퍽!

"크윽!"

보통 힘이 아니다.

다행히 본능적으로 몸을 틀어서 인우의 양 어깨에 배트가 휘둘러졌다.

인우를 가격한 알루미늄 배트는 단숨에 휘어져 버렸다.

분명 일반인은 아니었다.

통증이 꽤 컸으니까.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일까?

어느덧 인우는 앞으로 꼬꾸라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며 양발에 힘을 주었다.

쐐액-!

숨 쉴 틈 없이, 다시금 배트가 인우를 공격해 왔다.

척!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인우는 단숨에 놈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 뒤, 양손으로 두 개의 배트를 잡아챘다.

배트를 쥔 인우의 눈빛이 돌변했고, 단숨에 발을 날려 왼편에 위치한 녀석을 걷어찼다.

퍽!

"크헉!"

녀석은 사육장 벽에 그대로 꼬라박혔다.

남은 녀석은 셋.

인우는 움켜쥔 배트를 그대로 빼앗아 들곤 휘둘렀다.

후웅!

그러자 녀석들은 단숨에 거리를 벌렸다.

"어딜."

인우는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관통 스킬의 추진력을 이용해 녀석들을 향해 대포처럼 쏘아져 나갔다.

파바바밧!

신소재 금속으로 이루어진 사육장 바닥이 거칠게 울린다.

단숨에 거리를 좁힌 인우는 가장 앞에 위치한 놈에게 스윙을 날렸다.

퍽!

"크헉!"

녀석은 그대로 공중으로 떠 버렸고, 이내 바닥에 처박혔다.

움직임을 읽으며 순식간에 가해진 공격에 놈은 별다른 대처도 하지 못한 채 당하고 말았다.

이제 남은 녀석은 둘.

그때. 숙식시설의 문이 열렸고, 중년인 한 명과 민철이 고개를 숙인 채 끌려 나왔다.

청테이프로 입이 봉해진 민철의 양손은 밧줄로 칭칭 감겨 있었다.

고개를 든 민철은 인우를 확인하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읍! 으읍!"

마치 인우에게 도망가라는 말을 전하는 듯한 모습.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사내가 그쪽으로 다가갔고,

중년인은 단검을 빼들곤 민철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멈추시지요. 이 사람을 죽여 버리기 전에."

칼의 감촉이 목에 닿은 민철은 울상이 된 채 더욱 크게 발악했다.

"우웁!"

"후······."

인우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주먹을 그러쥐었다.

그러자 사내들은 알 수 없는 종이뭉치와 인주를 인우에게 던졌다.

"사육장 계약서다. 지장 찍어."

그제야 인우는 대강의 상황을 파악했다.

놈들은 사육장을 노리는 녀석들이었다.

이윽고 인우는 민철의 뒤에 서 있는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너구나?"

분명 아는 얼굴이다.

저 중년인은 다름 아닌, 이 사육장을 인우에게 팔았던 사람이었으니까.

중년인, 조남호가 답했다.

"이거, 죄송하게 됐군요. 그곳에 지장만 좀 찍어 주시죠. 이 사육장은 제가 다시 관리해야겠습니다."

조남호의 눈동자에 욕심이 가득 차 있었다.

조남호.

그는 그리 뛰어난 초인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초인으로 살아왔지만, 그의 능력은 미천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나이도 올해로 쉰.

초인의 능력과는 별개로 육체적인 노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랬기에, 사냥보다는 안전한 사업을 하길 원했다.

그래서 그간 모아 둔 재산을 쏟아 부어 강원도에 조그마한 사육장을 차렸다. 40평 남짓한 사육장. 이곳에서 고블린이나 몇 마리 사육하려고 했다.

하지만 괴수 사육장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없었다.

사정이 생겼으니까······.

그래서 팔았다.

사육장을 사간 사람은 새파랗게 젊은 남자였다. 남자는 무슨 자신감인지 별다른 고민도 없이 사육장을 인수해 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처분을 했음에도 한편으론 궁금했다. 젊은 사람이 이런 조그마한 사육장을 가지고 무얼 할지 말이다.

그래서 몰래 지켜보았다.

한데······. 그 사람의 사육 방식은 상식 밖이었다.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취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취한 것이다.

이 사람은 9급에서 취할 수 있는 소형 몬스터를 잡아왔다.

한데, 그 소형 몬스터가 자그마치 말리오였다.

9급 사육자가 10존의 괴수를 사육하다니.

설마하니 사육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말리오를 잡아들일지는 몰랐다.

나아가, 말리오 사육을 가능케 만들 줄이야.

그랬기에 남호는 이 사육장이 필요했다.

아니, 다르게 말해 큰돈이 필요했다.

"막상 나한테 사육장을 팔고 나니까 배라도 아팠던 거냐? 내가 잘 되니까?"

"···배가 아플 필요가 없지요, 빼앗으면 되는 거니까."

말하면서 남호가 민철의 목줄기에 들이민 칼을 더욱 깊이 붙였다. 살갗이 갈라지며 피가 방울져 흘러내렸다.

이윽고 인우는 계약서와 민철을 번갈아보았다.

"그러니까, 지금 민철이 잡아 놓고 협박을 하겠다는 거잖아?"

남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목적은, 정인우까지 제압을 해서 포박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해서 계약서에 지장을 받으려 했던 것이다.

남호는 깔끔하게 끝내려 했다.

그러나 인우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차선책인, 인질극을 벌이게 된 것이다.

"나 원 참, 얼 척이 없네. 지금 그걸 협박이라고 하냐?"

"뭐라?"

"이봐 아저씨. 협박이란 건 말이야, 못해도 인질의 팔 다리 하나쯤은 잘라내서 눈앞에 대고 대롱대롱 흔들어 줘야 효과가 있는 거라고. 지금 하는 짓은 마치 소꿉장난 같잖아?"

"그게 대체 무슨···."

"내가 아저씨 소꿉장난에 맞춰 주길 바래? 아이고! 우리 민철이 제발 살려 주십시오! 하면서 냉큼 지장을 찍을 줄 알았던 거야? 장난하냐 지금?"

인우는 그렇게 말하며 한걸음 성큼 다가왔다. 그러자 남호는 저도 모르게 한걸음 뒤로 주춤 물러나며 말했다.

"나는 지금 장난하는 게 아닙니다만. 지장을 찍어주지 않겠다면 이 사람의 목숨은······."

어느덧 인우는 남호의 말을 중도에 끊으며 짧게 말했다.

"죽여."

"무슨···?"

"죽이라고. 직원은 또 구하면 그만이야."

차갑다.

지독할 정도로.

남호는 눈을 부릅떴고,

민철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머지 두 명의 사내조차 놀랍단 눈으로 인우를 바라봤다.

"······."

다시금 인우가 말했다.

"죽이라고 이 개새끼야. 그래야 내가 니 새끼들 목을 따지."

죽여도 좋다.

대신, 너희들도 죽는다.

인우가 이렇듯 대범하게 나올 줄 몰랐던 걸까? 사내들 또한 주춤대며 조남호의 눈치를 살폈다.

"후 좋게 말하려고 했더니 안 되겠군요."

한숨을 쉰 조남호가 옆의 두 사내에게 눈짓을 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흥신소 사람들을 섭외했다.

이들은 이를테면 초인 깡패다.

이 사람들은 돈만 주면 무슨 일이든 해 준다.

바로 지금처럼.

남호의 눈짓을 받은 흥신소의 사내들이 움직였다.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다. 그들로서도 물러설 곳이 없어져 버렸다. 상대가 강한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상대는 자신들을 살려서 보낼 생각이 없는 것 같았으니까.

그렇기에, 살기 위해선 이겨야한다.

이미 그들의 동료 두 명도 당했다. 사내들은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들었다.

"이야아아아!"

사내들은 이번엔 배트가 아닌 칼을 손에 쥐었다.

인우는 히죽 웃었다.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말을 마친 인우는 다가오는 칼을 귀밑으로 흘리며 앞선 녀석의 코를 향해 주먹을 때려 박았다.

퍼억!

"크억!"

찰진 타격음과 함께 녀석은 함몰된 코뼈를 쥔 채로 주저앉았다.

쉴 새 없이 피가 뿜어져 나온다.

인우는 이에 그치지 않고, 주저앉은 녀석의 관자놀이를 향해 정강이를 뻗었다.

빠각-!

강한 타격음과 함께 녀석은 썩은 고목나무마냥 바닥에 쓰러졌다.

녀석의 부릅뜬 왼쪽 눈은 터진 혈관으로 인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사정 안 봐준다."

그렇게 말한 인우는 다음 녀석을 향해 거리를 좁혔다.

"흐익!"

녀석은 이미 전의를 상실했다.

인우는 놈의 명치를 향해 팔꿈치를 쑤셔 박았다.

푸욱-!

"꺼헉!"

녀석은 눈을 까뒤집으며 컥컥댔다. 숨통이 막혀 왔다.

놈은 그대로 굳어 버린 채 호흡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써 댔다.

"으아아압!"

인우는 고개를 숙인 녀석의 경추를 향해 있는 힘껏 팔꿈치를 내려찍었다.

뻐억-!

무언가 아작 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은 그대로 허물어졌다.

"후우,"

모든 녀석들을 처리한 인우는 조남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갔다.

저벅. 저벅.

압도적인 전투력이다.

"이익, 오지 마! 다가오지 마!"

다가오는 인우의 기세에 조남호가 겁을 집어먹고 칼을 휘둘렀다.

바로 그때.

"으아아악!"

조남호가 크게 비명을 질렀다.

민철이 남호의 발을 뒤꿈치로 내리찍었던 것이다.

잔뜩 겁을 먹었던 남호였기에 꼼짝없이 당해버렸다.

타닥-!

그 틈에 남호에게로 바싹 접근한 인우가 곧바로 주먹을 쳐 올렸다.

"커헉!"

남호는 턱이 뒤로 젖힐 정도로 크게 얻어맞고 나가떨어졌다.

인우가 쓰러진 남호에게 다가가서 머리채를 쥐어 일으키고는 발길질을 했다.

퍽!

"크으윽··· 그만. 그, 그만둬...난 어쩔 수 없었다고..."

남호는 신음을 내뱉으며 끊임없이 구걸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라...이봐,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애초에 건들질 말았어야지."

"크윽...제, 제발 목숨만은...저는 처자식이 있습니다. 돈이 필요했습니다. 어쩔 수가 없었다고요. 제발,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어느덧 남호는 울먹이고 있었다.

처자식이라.

인우는 크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마치 이해한다는 듯이.

그러나 막상 인우의 입을 비집고 튀어나온 말은 그 반대였다.

"야. 그거 아냐?"

퍽.

"난 있잖아."

퍽.

"너 같은 놈들이 제일 싫어. 그놈의 사정 운운하면서 온갖 더러운 짓을 행하는 놈들 말이야."

퍽.

인우의 말에 맞춰 남호에게 발길질이 가해졌다.

"그리고 너 같은 놈들 사정 다 봐줬으면 난 아마 여기에 없었을 거야."

퍽.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남호를 걷어찬 인우는 꿈틀대는 남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남호의 머리채를 잡아끌고선 말리오들의 사육장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쉬이이익!

말리오들은 저마다 울음소리를 내며 몸을 꿈틀대고 있었다.

"사정 같은 건 저승에 가서 말하라고."

말을 마친 인우는 그대로 남호를 들어 말리오의 사육장 안으로 처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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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화 레벨 Max (1)

사람 목숨이라는 게 참, 별 볼일 없다.

-쉬이이이익!

10존의 괴수인 말리오들이 조남호를 뜯어 먹고 있었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민철이의 목에 칼을 들이댔던 녀석이, 이제는 한낱 괴수의 먹이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피라냐 같은 건 상대도 안 되겠네."

"혀, 형님···괜찮으십니까?"

인우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뚱한 얼굴로 갈기갈기 찢기는 남호를 바라볼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구해 주셔서."

민철도 알고 있었다.

상황은 일촉즉발이었다. 만약 인질극 당시에 인우가 굴복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인우는 오히려 인질인 민철을 죽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야. 민철아."

"예?"

"저기 뻗어 있는 새끼들도 이리로 옮겨 놔."

"넵···!"

민철은 짧게 답하며 4명의 흥신소 사내들을 인우의 옆에다 옮겨 놓았다.

세 놈은 이미 숨이 끊겨 있었고, 한 놈은 아직까지도 숨이 붙어 있었다.

어느덧 인우가 말했다.

"장작 다 닳았다. 다음 장작 넣어라."

"에?"

민철은 단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장작 하나 가지고 되겠냐. 하나 더 넣으라고."

그제야 인우의 말을 이해한 민철이 움직였다. 이내 망설임 없이 사내 한 명을 사육장 우리에 내던져 버렸다.

쉬이이이익-!

말리오들이 다시금 먹이 쟁탈전을 벌이며 발광을 해 댔다. 사육용 방호복을 입지 않는다면, 말리오에게 무참히 찢길 수밖에 없다.

민철은 눈을 부릅뜨고 그 광경을 주시했다.

분명 끔찍하고 참혹한 광경이다.

자신을 죽이려 들던 놈들이 눈앞에서 갈기갈기 찢기는 광경.

지금 민철이 느끼는 기분은 통쾌함이었다.

민철이 말했다.

"하나 더 넣겠습니다. 형님."

"좋을 대로."

쉬이이이익-!

민철은 연달아 모든 사내들을 넣으며 중얼거렸다.

"나쁜 놈들······."

사내들은 금세 고깃덩어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 광경을 한참이나 지켜보던 인우가 중얼댔다.

"이 새끼들이나, 그 새끼들이나······."

인우는 분명 분노하고 있었다. 이곳은 인우의 영역이다. 인우에게 있어 영역이란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의 영역을 침범한 존재들은 묘하게도 드래곤들과 오버랩 되었다.

놈들도 자신의 영역을 무차별적으로 침범했다.

애초에 인우가 만만해 보이지 않았다면 함부로 침공하지도 못했을 거다.

"후우. 열 받네. 감히."

이윽고 인우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씹어 뱉듯 말했다.

"그 누구도 함부로 기어오르지 못하게 올라선다."

그냥 강해지는 것 따위가 아니다.

압도적으로 강해져야 한다.

인우의 눈동자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 * *

그날 이후, 평소와 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평소와 다른 일상이었다.

인우는 사냥과 달리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 집중도는 완전히 달랐다.

사냥 효율은 물론이고, 달리기에도 모든 힘을 쏟았다.

한편 민철은 땅을 알아보았다.

인우는 속전속결로 땅을 구입했고, 초호화 200평 주택의 공사를 진행했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여전히 사냥터와 달리기로 꾸준히 레벨을 올리고 자금을 불렸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뒤, 100평 사육장 두 채의 공사도 동시에 진행했다.

엄청난 공사 인력이 투입되었고, 인우의 영역은 점차 비대하게 불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 40일째가 되던 날.

"후우."

하루 평균 4시간 이상의 달리기를 했다. 그 뒤, 사냥터에서 사냥도 했다.

지난 40일을 온전히 레벨 업만을 위해 쏟아 낸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인우는 상태창을 보았다.

<정인우>

레벨 : 89

특성 : 광전사

스텟 : [근력 185] [민첩 139] [마력 35] [체력 125]

미분배 포인트 : 0

[EXP 400,239 / 405,000]

40일 동안 23개의 레벨을 올린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스킬 레벨의 성장도 대단했다.

80레벨의 스킬도 새롭게 열린 상태였고,

광전사의 다음 스킬의 경우 100레벨에 열릴 예정이었다.

'좋아. 더욱 빠르게 간다.'

실로 경악할 만한 성장속도였다.

그럼에도 인우는 만족하지 못했다.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99레벨을 만들어야만 했다.

'각성을 해야 한다.'

100레벨은 그저 경험치만 쌓는다고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초인은 99레벨에서 성장이 멈추게 된다. 기존의 신체로는 100레벨의 능력을 담아낼 수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환골탈태와 같은 과정을 겪은 막강한 신체가 필요했다.

그 과정이 바로 각성이다.

그렇기에,

99에서 레벨 업을 하기 위해선 반드시 각성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100레벨에 오른다면 아예 급이 달라진다.

'얼마 남지 않았다.'

각성의 조건은 간단했다.

'용작두 광전사.'

네임드 몬스터를 잡고 녀석의 '각성 정수'를 취해야 했다. 녀석은 강하다. 그러나 잡지 못할 건 없다. 과거에도 녀석을 잡고 각성했었으니까.

문제는 놈을 발견하는 데 있었다.

'경쟁이 치열하다는 거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용작두 광전사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9존에 출몰한다.

놈을 잡기 위해 온갖 길드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는 했다.

당연한 일이다. 본인들의 길드원들을 99에서 100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선, 용작두 광전사가 뱉어내는 '각성 정수'가 필요했으니까.

이 각성 정수를 구하기 위해서 초인들은 길드에 가입하기도 했다.

길드의 지원 없이는 녀석을 발견하기는커녕 구경하는 것조차 힘들었으니까.

그러나 인우는 길드 따위에 몸을 담고 싶지 않았다.

온전히 홀로 용작두 광전사를 독식할 생각이었다.

녀석이 들고 있는 용작두만 해도 40억이 넘어간다.

뱉어내는 전리품 자체가 급이 다르다.

'다 내 거다.'

이윽고 인우는 사육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 형님 오셨습니까."

민철이 인우를 반겨왔다.

괴수 사육용 방호복을 입은 녀석은 마치 우주비행사 같았다. 인우는 민철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쉬이이이익-!

말리오들은 쉴 새 없이 울어대고 있었다.

근래에 들어 활동이 왕성해지며 다시금 사육장이 차오를 만큼 번식을 끝마친 상태였다.

"시작하자, 민철아."

말을 마친 인우가 도축용 단검을 빼 들었다.

오늘은 바로, 두 번째 도축의 날이었다.

"예. 형님. 저번처럼 한주먹씩 가지고 옵니까?"

"좋을 대로."

"넵!"

민철이 힘차게 답하고 말리오들을 집어오기 시작했다.

인우는 망설임 없이 도축을 시작했다.

[경험치를 500 획득하였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던 경험치다. 레벨은 단숨에 90이 되었다.

그리고,

['행운의 반지'의 기능이 발동됩니다.]

"아, 이것도 있었지 참."

인우는 얼음방벽에서 죽였던 나이트 길드원을 떠올렸다. 그때 인우는 분명 이 아티펙트를 손에 넣었었다.

발동 조건이 90레벨 이상이었기에, 그간 그저 손가락에 끼워 두기만 했던 것이다.

이 아티펙트의 기능은 '행운치 상승'이었다.

행운치라는 것은 확실히 밝혀진 능력치는 아니다.

다만 예상할 뿐이었다. 드랍율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전에는 말리오를 도축하면서 유니크 스킬 볼이 나왔는데. 오늘도 분명 무언가 나오긴 나올 거다.'

-쉬이이이익

어느덧 인우는 500마리 가량의 말리오 도축을 끝마쳤다.

아쉽게도 레벨은 오르지 않았다.

대신 50%가량의 경험치를 획득했다.

레벨이 높아진 만큼 레벨 업에 필요한 경험치량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치가 필요했다.

"민철아 그만 가져와라."

"예 형님? 더 잡으시죠? 조금 더 잡아도 될 것 같은데요?"

"응, 난 됐으니까 그만 가져와."

"예?"

"20마리 정도는 더 도축해도 될 것 같군. 그건 니가 잡아라."

"아···! 감사합니다. 형님!!"

저번엔 몇 마리였었지······.

분명 3마리였던 것 같다.

그것만으로 민철은 행복했었다.

한데, 이번에는 자그마치 20마리를 도축할 수 있었다.

민철은 신이 나는지 단숨에 말리오를 옮겨와 도축했다.

[경험치를 500 획득하였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흐어억! 경험치가 계속 올라요 형님!"

"뭐라는 거야."

민철의 레벨은 단숨에 30이 되어 있었다.

민철이 뛸 듯이 기뻐하자 인우도 슬쩍 미소를 머금었다. 무언가 애완동물을 키우는 기분이랄까?

적절한 예일지는 모르겠으나, 그러한 기분이었다.

"다 도축했으면 채취 시작해."

"예 형님!"

힘찬 대답과 함께 민철은 단숨에 채취를 시작했다.

그렇게 200마리가량의 채취가 진행 되었을 때.

민철이 소리쳤다.

"형님! 오늘도 스킬 볼이에요. 음 이건······."

빨간색 스킬 볼에는 방망이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

인우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스윙이네. 줘봐."

이미 배운 스킬이다. 스윙을 건네받은 인우는 민철의 입에다 스킬 볼을 쑤셔 넣었다.

"배워 둬라. 쓸 만하더라."

"혀, 형님······."

오늘은 참 감사할 일 투성이다. 민철은 제대로 말도 잇지 못했다.

다시금 채취가 진행됐다.

"형님 하나 더 나왔습니다."

행운의 반지가 효력을 발휘한 것일까? 확실히 아이템의 획득률이 높아진 듯했다.

"뭐냐 이번엔? 아 그건··· 라이트닝 볼트네."

마법 계열의 스킬 볼은, 마법 계열의 초인만 습득할 수 있다. 광전사가 먹어 봐야 아무런 효과도 없이 녹아내릴 뿐이다.

"오늘은 자잘한 것만 나오네요."

민철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금 채취를 시작했다. 사실 라이트닝 볼트만 해도 2~3천만 원이다. 그러나 일전에 나왔던 유니크 스킬 볼의 충격이 너무 컸다.

그랬기에 '자잘한 것'이라는 말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고 있었다.

"휴우! 끝났네요. 형님."

어느덧 모든 채취가 끝이 났다.

아쉽게도 스킬 볼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A급 마나정수와 S급 마나정수가 수두룩하다.

이번에도 이것들을 판매하면 10억이 넘어가는 돈을 벌어들일 것이다.

* * *

그로부터 3주의 시간이 지났다.

초호화 주택의 건설도 마무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100평 사육장의 경우 2채 모두 이미 완공된 상태였다.

보기만 해도 뿌듯해질 지경이다.

이곳은, 인우의 첫 번째 영역이자 첫 번째 왕국이 될 것이다.

아니, 이 경우엔 왕국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인우는 집을 바라보았다.

감히, 예전 프로킨의 황궁에 비할 바는 못 된다.

그럼에도 인우는 미소를 지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올라서고 있었다.

"흐음."

나아가, 레벨 또한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

'절대자의 걸음'의 위력은 정말이지 놀라웠다.

누군가는 지금 인우의 레벨을 달성하기 위해 10년도 넘는 시간을 투자할 수도 있을 거다.

그러나 인우는 지구로 귀환한 지 이제 갓 100일에 근접했을 뿐이다.

"후우우우우우...."

길게 심호흡을 해 본다.

이렇게, 숨을 쉬는 행위가 곧 인우의 성장을 도와줄 것이다.

"숨만 쉬어도, 나는 성장할 테지."

그리고 귀환 100일 째,

인우는 상태창을 확인했다.

<정인우>

레벨 : 99

특성 : 광전사

스텟 : [근력 205] [민첩 159] [마력 35] [체력 135]

미분배 포인트 : 0

[EXP 각성 필요.]

드디어 100레벨을 달성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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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화 레벨 Max (2)

나이트 길드에 소속된 박해성 파티는 강원도 사냥터 9존에 진입한 상태였다.

"에효."

박해성은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얼굴에 불만이 한 가득이었다.

"우리 파티는 왜 맨날 강원도로 파견되는 거냐. 여기서 용작두가 나올 리가 없잖아."

그러자 옆에 있던 여자 길드원이 답했다.

"나올 리가 없으니까 우리가 파견된 거겠지. 정예 길드원들은 이미 다 효성동이나 서대문 쪽으로 몰려 있잖아."

그녀의 말대로였다.

현재 나이트 길드는 효성동을 포함한 규모가 큰 사냥터에서 4개월 째 용작두 광전사를 독식하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박해성 파티는 그저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강원도에 파견된 것뿐이다.

이들은 그리 뛰어난 인력은 아니었으니까.

물론 그럼에도 이들은 80에서 90레벨 대의 초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이트 길드의 규모는 그 정도로 크다.

어느덧 박해성은 여 길드원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누가 그걸 모르냐! 그냥 신세 한탄인 거지! 에효! 여기 강원도 9존을 봐라. 혹시 모를 일확천금을 노리고 온 하이에나뿐이잖아."

그 마저도 얼마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강원도에는 용작두가 출몰하지 않은지 꽤 되었으니까.

그렇기에 박해성은 더더욱 짜증이 났다.

"해성아. 인상 좀 풀어. 우리도 99레벨까지 올리면 효성동이나 서대문 쪽으로 파견될 거야. 그때는 우리한테도 각성 정수가 돌아오겠지."

"에효."

99레벨.

레벨이 멈추는 정체구간.

다시 말해 각성이 필요한 구간.

대부분의 초인들은 이 구간을 돌파하기 위해 대형 길드에 가입을 선호했다.

그것이 싫다면, 아예 돈을 주고 각성 정수를 구입하기도 한다.

그러나 각성 정수의 가격은 최소 100억.

제아무리 초인이 많은 돈을 번대도, 결단코 만만한 금액은 아니다.

"용작두 광전사는 진짜 돈 덩어리인데······. 쩝. 강원도에 떴으면 좋겠다."

박해성은 침을 꼴깍 삼켰다.

용작두 광전사가 내뱉는 각성 정수의 경우 100~110억까지 거래가 된다. 뿐만 아니라 녀석의 무기인 용작두도 40억이다.

이 밖에도 정수와 스킬 볼을 무더기로 뱉어 낸다.

다시 말해, 이 한 놈의 가치가 150억을 가볍게 넘어간다는 소리다.

그러니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다.

"에효. 생각할수록 한숨만 나온다."

그때였다.

이들의 눈에 어처구니없는 광경이 보였다.

"······야, 저거 보이냐? 뭐 하는 거지?"

"괴짜인 것 같은데. 몰아 놨다가 한 번에 채취하려고 그러나? 왜 시체 탑을 쌓는 거지?"

그들은 멍하니 한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오늘은 기다리던 용작두가 뜨는 날.

'나는 강원도 사냥터로 간다.'

인우는 강원도 사냥터에 도착해 있었다.

"오호."

평소엔 한적했던 이곳이지만 오늘만큼은 고레벨의 초인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강원도마저 이러한데, 규모가 큰 사냥터들은 아마도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을 것이다.

용작두 광전사.

각성 정수를 지니고 있는 9존의 보스.

녀석은 한 달에 한 번 출몰한다.

용작두가 어떤 사냥터에서 뜰진 모른다. 즉, 랜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용작두가 출몰하는 날에는 많은 대형 길드들이 눈에 불을 켜고 움직인다.

그들은 길드원들을 풀어 최대한 많은 사냥터에 배치하는 것이다.

즉, 사람이 많은 대형 길드일수록 용작두를 독점하기가 수월했다.

그렇기에 개인으로 녀석을 잡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다.

어느덧 1존에 들어선 인우.

이내 인우는 발끝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우."

길게 심호흡을 한 뒤, 대검 관통의 추진력을 이용해 대포처럼 앞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타다다다닥!

대검 관통의 레벨은 벌써 45에 달해 있다. 엄청난 가속력이 단숨에 붙었다. 9존까진 금방일 것이다.

쓔우우우우웅!

인우가 쏘아져 나간 방향에서 대기가 갈리며 시원한 바람이 쏟아졌다.

그러자 1존에 있던 초인들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뭐냐. 용작두 잡으러 온 랭커인가? 겁나 빠른데?"

"랭커인가 보네. 근데 왜 강원도 사냥터로 왔데? 강원도에서 용작두가 마지막으로 출몰했던 게 까마득한데."

"틈새시장 아닐까? 만약 여기서 뜬다면 그만큼 경쟁자도 없는 거 아니야."

"그야 그렇지. 뭐 근데, 알 바냐? 우리는 아직 꿈도 못 꾼다. 그냥 고블린이나 몰아 잡자고."

이윽고 1존의 초인들은 인우에게 관심을 끈 채로 사냥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인우는 단숨에 9존까지 내달리고 있었다.

"후우!"

다른 초인들은 어느 사냥터에서 용작두가 출몰할지 모르고 있겠지만, 인우는 아니었다.

용작두 광전사는 사기(死氣)를 쫓아 등장한다.

인우는 이를 이용할 셈이었다.

이윽고 인우는 9존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9존은 기본적으로 언데드 몬스터들이 주로 출몰한다.

데스나이트와 듀라한을 비롯해 맹독 구울과 용아병까지. 종류는 다양했다.

인우는 주변을 한번 슥 훑어봤다. 그리고.

화르르륵!

어느덧 인우는 왼손에 파이어 볼을 만들어 냈다.

슈우우욱!

그리고 저 멀리에 있던 무언가를 향해 화염구를 내던졌다.

"츠으!"

그러자 그 무언가가 이쪽을 향해 내달려 왔다.

9존 몬스터 중 하나인 용아병이었다.

인우는 씨익 웃었다.

그간 엄청난 성장을 이룬 인우다.

그의 스킬은 막강한 위력을 내뿜었고, 80레벨에 열리는 광폭화 스킬도 배운 상태였다.

액티브 스킬

1. [내려찍기 Lv.50 (88%)] - 양손 무기 장착 시 사용 가능. 거대한 검이나 도끼를 양손으로 틀어쥐고, 장작을 패듯 미친 듯이 내려찍습니다.

2. [대검관통 Lv.45 (92%)] - 대검을 창처럼 쥔 채, 폭발적인 추진력을 바탕으로 앞을 향해 쏘아져 나갑니다.

3. [참살 Lv.36 (21%)] - 생명의 불씨가 얼마 남지 않은 적을 일격에 참살합니다.

4. [포효 Lv.34 (12%)] - 광전사의 기합을 내지릅니다. 포효에 공격당한 적은 커다란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5. [광폭화 Lv.20 (32%)] - 일정 시간동안 물리 공격력이 2배 증가합니다.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지속시간이 증가합니다.)

6. 다음 스킬은 100레벨에 활성화됩니다.

7. [스윙 Lv.46 (11%)] - 적을 검면으로 후려쳐 날려 버립니다.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덩치가 큰 몬스터들도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8. [파이어 볼 Lv.25 (54%)] - 마력으로 이루어진 불꽃을 생성합니다.

과거, 프로킨에서 정인우도 99레벨의 정체 구간을 겪었다.

당시에 인우는 용작두 광전사를 죽이기 위해 2시간을 소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다르다.

그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막강한 전투 감각이 있었으며, 스킬 레벨은 그 당시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흐압!"

어느덧 인우를 향해 다가온 용아병.

콰드득-

용의 뼈로 이루어진 언데드인 녀석은 단숨에 골로 가버렸다.

"흐음."

그런데, 인우는 웬일인지 녀석의 정수를 채취하지 않았다.

그저 녀석을 바닥에 그대로 방치했다.

인우는 다시금 화염구를 날렸다.

화염구는 이번엔 맹독 구울을 향해 날아갔다.

화르르륵!

인우는 이에 그치지 않고 연속으로 맹독 구울과 용아병들을 향해 화염구를 날렸다.

"츠으!"

"끄르으으!"

온다!

녀석들이 이쪽을 향해 내달려온다.

"흐압!"

인우는 그렇게 맹독 구울과 용아병들을 때려잡으며, 놈들의 시체를 쌓기 시작했다.

마나 정수조차 채취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후우."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덧 인우는 4미터 가량의 높이까지 쌓여진 언데드들의 시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내 인우는 시체 탑으로 단숨에 올라섰다.

그 뒤, 그곳 꼭대기에 가만히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널 위해 준비했다. 용작두야."

인우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용작두 광전사.

녀석은 사기(死氣).

즉, 죽음의 기운을 쫓아 등장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규모가 큰 사냥터에서 많이 등장하기도 한다.

사냥터의 규모가 클수록 몬스터의 사체가 많아지고 사기(死氣)가 늘어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인우가 홀로 괴수의 시체 탑을 쌓았다고 해서, 다른 거대 사냥터 9존에서 죽어 나가는 괴수보다 더 많은 양을 잡을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마나 정수가 남아 있는 언데드의 사체.'

그것도 이렇게 한곳에 몰아 탑까지 쌓아 놓았으니, 용작두는 분명히 반응할 것이다.

효성동과 서대문을 포함한 거대 사냥터에는 당연히 등장할 것이고, 나아가 이곳 강원도 사냥터에도 등장할 것이다.

"후우."

어느덧 인우는 시체의 탑 꼭대기에서 하늘을 보며 드러누웠다.

하얀 뭉게구름이 떠다니는 풍경을 지그시 감상했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까악까악-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주변의 공기는 묘하게 변하기 시작했고, 인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나."

인우의 말이 끝나자마자 저 멀리서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츠으으으으으!!!!!!!!"

그 소리는 용작두가 내뱉는 피어였다.

지옥의 심연 끝자락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저러할까.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한 녀석의 피어.

저벅. 저벅.

땅 끝을 후벼 파는 소름끼치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발걸음은 인우가 있는 시체의 탑으로 향하고 있었다.

"왔구나."

이윽고 인우는 대검을 고쳐잡았다.

그리곤 녀석을 바라보았다.

"츠으······."

용작두 광전사는 3미터 정도의 크기였다.

녀석의 갑주에서 피어나오는 새카만 무형의 기운은 막강한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저놈의 무기는 다시 봐도 예술이네."

나아가 녀석은 그 특이한 이름답게 독특한 생김새의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녀석의 무기는 성인남성 크기의 거대한 대검이다.

다만, 대검의 칼날은 마치 작두날을 연상케 했다.

큼지막하고 새카만 통짜 날이 당장이라도 세상 모든 것을 반토막낼 듯 번들거린다.

압도적으로 거대한 작두날. 그리고, 검의 기다란 손잡이 끝 폼멜에 박힌 용의 머리.

저 위압감 넘치는 대검이 지구에서는 무려 40억이 넘어간단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무지막지한 대검은, 인류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초인무기와는 질적으로 달랐으니까.

프로킨에 존재하는 무기 중에서도 상급에 속하는 용작두.

용작두는 인류가 제아무리 뛰어난 기술력과 신소재 금속을 가공해서 무기를 만든다 해도 쫓아갈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다.

애초에 저러한 네임드가 지닌 무기는 '기술력'이라기보다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무기이니까.

인류의 지식으로는 납득조차 할 수 없는 금속과 구조를 지닌 무기.

그러한 무기 중에 하나가 용작두인 것이다.

"니 무기는 이제 내꺼다."

인우는 낡아빠진 강철대검을 치켜들었다.

그리곤 시체의 탑에서 땅을 향해 내려섰다.

처억.

대검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어 본다.

그리고 녀석의 눈을 직시했다.

"츠으으······."

녀석의 붉은 안광이 번들거렸다. 놈의 눈동자는 하나만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

나머지 눈은 거대한 안대로 가려져 있었다.

안대로 가려진 왼쪽 눈.

저 눈은 봉인 되어 있는 상태다.

저 눈의 봉인이 풀리는 그 순간.

용작두의 진정한 무서움이 나타나게 된다.

"10분, 무조건 10분 안에 끝낸다. 어디 한 번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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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화 레벨 Max (3)

쐐애애액-!

끔찍한 파공성과 함께 용작두가 날아들었다.

인우는 대검을 치켜 올려 방어했다.

카앙!

용작두날과 들이받은 강철대검의 검신이 부르르 떨려왔다.

'이거, 검의 차이가 너무 커.'

인우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강철대검은 오늘로서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걸.

"츠아아아!"

녀석이 소리를 내지르며 거대한 용작두를 마구잡이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인우는 녀석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며 기회를 엿봤다.

한 번의 틈만 비집고 들어간다면, 녀석을 10분 안에 아작 낼 수 있을 거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곳을 향해 다른 초인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인우를 향해 외쳤다.

"용작두다! 비켜라! 혼자선 무리니까!"

"저 새끼 무슨 깡으로 혼자 맞서는 거야?"

그들의 정체는 나이트 길드 소속의 박해성 파티였다.

박해성은 기뻤다.

강원도 9존에서 용작두가 뜬 것이다.

게다가, 다른 파티나 길드들은 이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애초에 강원도 9존은 사람이 적은 것에 비해 필드는 넓은 편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지금 용작두를 상대하고 있는 남자를 죽이고 용작두를 취해도 될 것이다.

물론 굳이 죽이지 않더라도 강제로 밀어 붙여서 빼앗으면 그만이다.

"전원 용작두를 공격한다!"

"응!"

"좋아 가자고!"

이윽고 그들은 인우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전투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인우는 놈들을 바라보았다.

'한 놈, 두 놈, 한 년······. 도합 열 명인가.'

꽤 많은 숫자다.

인우가 녀석들을 향해 말했다.

"좋은 말로 할 때 꺼지는 게 좋을 거다."

"히야압!"

그러나 놈들은 대답은커녕 용작두 광전사를 향해 뛰어들기 바빴다.

인우가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난 분명 경고했다."

"뭐라는 거야? 우린 나이트 길드 소속파티다. 우리가 대신 잡아 줄 테니 너야 말로 좋은 말로 할 때 꺼지라고."

"오케이. 경고 끝."

그렇게 말한 인우는 미련 없이 대검을 거뒀다.

그러더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나는 인우의 얼굴엔 비릿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그러자 박해성이 비열한 미소를 숨기지 않은 채 외쳤다.

"그래. 꺼져 버리라고. 딱 봐도 허접해 보이는데 넌 우리 때문에 목숨 건진 줄 알라고."

그에 인우는 대답 없이 한참이나 뒤로 거리를 벌렸다. 그러더니 팔짱을 낀 채로 녀석들을 주시했다. 어느덧 용작두 광전사는 박해성 파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츠으!"

"좋아! 이놈은 우리 거다! 다들 힘내라고! 강력한 스킬 위주로 공격한다! 무조건 10분 안에 끝내는 거다!"

80레벨 이상의 초인이 무려 열 명이다.

충분히 10분 안 쪽으로 퇴치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이 난 박해성은 파티원들을 독려했다.

'이게 웬 떡이냐!'

그런데 그때였다.

슈아아아앙-!

절묘한 순간에 파이어 볼 하나가 날아들었다.

푸스스슥-!

파이어 볼은 박해성의 갑옷 등짝에 들러붙었다.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기에 해성은 그대로 허용하고 말았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불꽃은 상당한 레벨을 가진 것 같았다.

그의 갑옷에 단숨에 불이 붙어 버렸으니까.

"이, 이런 제기랄!"

박해성은 그 즉시 갑옷을 벗어버렸다. 그 뒤, 새빨갛게 달아오른 갑옷과 파이어 볼을 날린 장본인을 바라보았다.

"아. 빗나갔네."

"뭐라고? 너 이 새끼 미쳤어?! 후방에서 도와줄 거면 용작두를 공격하라고!"

"아니,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니 새끼 머리통에 맞추려다가 빗나갔다는 거다."

파이어 볼을 날렸던 인우가 박해성을 향해 말하고 있었다.

해성은 이를 갈며 소리쳤다.

"뭐? 이 새끼 진짜 뭐라······."

"몰라서 묻냐? 니 새끼들이 먼저 내 경고 무시했잖아? 설마 뒷감당할 생각도 않고, 감히 내 떡에 손을 댄 거냐?"

"이 새끼가······!!"

"날 보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콰드드드드득-!

어느덧 용작두가 해성을 향해 검을 내리친다.

해성은 진땀을 빼며 간신히 공격을 피했다.

"너 이 새끼 한 번만 더 공격해 봐. 그럼 아주 그냥 뒤질 줄 알······!!"

해성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금 파이어볼이 날아왔다.

슈우우우우우악!

"크앗! 이 미친 새끼야!!!"

해성은 단숨에 땅을 구르며 파이어 볼을 피했다.

"츠으!"

그 위로 용작두의 공격까지 지나간다.

기겁을 하며 용작두의 공격을 피한 해성에게 한 사내가 말을 했다.

"저 새끼 족칠까요?"

"그럴 틈이 어딨어. 그냥 무시하고 용작두에 집중해!"

"예!"

"이 개새끼. 용작두 잡고 나면 그 다음엔 너다."

인우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웃기 시작했다. 어찌나 우스운지 참을 수가 없었다.

"한심한 새끼들. 너네도 길드 달고 행패 부리는 새끼들이냐? 아, 분명 나이트 길드라고 했었나? 마침 잘 걸렸다."

인우는 그렇게 말하며 절묘한 순간마다 파이어 볼을 날려댔다.

슈아아아악-!

"꺄악!"

인우의 파이어 볼이 여자 길드원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용작두의 공격을 피하기에 급급했던 그녀다.

뒤에서 날아드는 파이어 볼을 피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이내 그녀는 미친 듯이 발광을 했다.

그러더니 그 즉시 손에서 냉기 마법을 뿜어서 본인의 다리에 뿌려댔다.

치이이이익-!

그제야 파이어 볼이 사그라 들었다. 그러나 이미 다리는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그때, 박해성 파티의 사제가 그녀를 치료했다.

치료가 끝난 그녀는 인우를 노려볼 새도 없이 용작두의 공격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박해성은 이를 갈았다.

"저 미친 새끼 때문에 돌아버리겠네!"

언제 뒤통수에 화염구가 날아들지 모른다.

게다가 앞에는 무지막지한 보스가 존재한다.

"왜 그렇게 화를 내? 내가 양보까지 해 줬잖아. 용작두 너네 가져. 아 물론, 가져갈 수 있다면 말이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인우는 또다른 인원을 향해 파이어볼을 날렸다.

인우는 절묘한 순간마다 훼방을 놓으며 박해성 파티를 공격했다.

그렇게 인우는 녀석들이 최대한 고전하도록 유도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선 날파리가 제격이니까.

인우는 끝끝내 녀석들을 방해했다.

그리고 마침내.

"츠아아아아아아아!"

용작두 광전사가 포효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축이 흔들리며 대기가 찢어질 듯 팽창했다.

"크. 이제 시작이네."

그 모습을 보며 인우가 미소를 지었다.

슈우우우우욱-!

용작두의 주변으로 엄청난 양의 마기를 머금은 바람이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박해성이 질겁을 했다.

"미, 미친! 폭주한다! 정신 바짝 차려!"

"젠장! 안 되겠다. 누가 저 미꾸라지 같은 새끼 좀 잡아 봐!"

여전히 파이어 볼이 날아든다. 그 타이밍이 정말이지 기가 막힌다. 한 길드원은 미치겠는지 인상을 종잇장처럼 구기고 있었다.

"츠아아아아아아아!"

다시금 용작두 광전사의 포효가 쏟아졌다. 마기 바람은 더욱 거세어졌고, 마침내 용작두의 안대가 녹아 내리기 시작했다.

"츠으으으······."

이윽고 용작두의 왼쪽 눈의 봉인이 풀렸다.

용작두의 무서운 점은 바로 여기 있다. 놈은 10분간 마력을 모아서 폭주를 시작하면 언데드 군단을 소환한다.

쿠드드드득!

난 데 없이 땅바닥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땅을 비집고 엄청난 양의 언데드 몬스터들이 뽑혀져 나오기 시작했다.

"젠장! 일단 졸개들부터 상대한다!"

"한 사람은 용작두를 맡아! 어떻게든 시간을 끌라고!"

-케에에에에에에!!!

땅속에서 상당한 양의 언데드 괴수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인우는 시선을 돌려 시체 탑을 바라봤다.

"내가 분명히 경고했었지."

녀석이 폭주하면 소환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츠으으으으

용작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시체산을 휩쓸었다.

그러자 4미터 높이까지 쌓여 있던 용아병과 맹독 구울의 사체들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저게 다시 움직이는 거야?!"

맹독 구울과 용아병.

놈들은 용작두 광전사의 힘으로 인해 다시금 생명을 얻었다.

-츠아아아아아아!!

용작두가 소환한 놈들과 시체산에서 살아난 놈들.

못해도 300은 넘어 보이는 언데드 군단이었다.

"미, 미친! 이건 무리다! 일단 후퇴하고 지원 요청한다!"

"후퇴가 불가능해! 저 미친 새끼가 대검을 휘두른다고!"

"저 새끼 마법까지 쏘잖아! 도대체 뭐 하는 새끼인 거냐고!"

그러면서 길드원은 검지로 '미친 새끼'를 가리켰다.

그러자 미친새끼가 씩 웃으며 말을 했다.

"어딜 도망가려고 그러냐. 야 새끼들아. 시작은 너희들이 했어도 끝은 내가 낸다."

"이, 이 미친 집요한 새끼!!"

어느덧 박해성 파티는 수백의 언데드 군단에게 포위당했다.

박해성이 외쳤다.

"화, 활로를 뚫자! 일단 언데드 군단을 처치한다!"

박해성 파티는 이를 악물고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정인우는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 이제 날파리도 포박했고, 제대로 한 번 가 보자고."

화르르륵-!

인우의 파이어 볼이 용작두의 어깨를 후려쳤다.

그러나 불이 붙기는커녕 단숨에 꺼져 버렸다.

하지만 시선은 확실히 끌었다.

"츠으!"

용작두가 인우를 노려보았으니까.

"오냐 새끼야. 들어와라."

인우의 눈동자에 얼핏 남아 있던 장난끼는 모조리 사라진 상태였다.

이윽고 인우는 포효했다.

"흐아아아아아압!!"

그 뒤, 본격적인 전투 개시를 위해 광폭화를 시전했다.

후우우우웅-!

인우의 몸 위에 붉은 아지랑이가 깃들기 시작했다.

광폭화.

일정 시간동안 인우의 물리 공격력은 2배로 훌쩍 뛸 것이다.

"츠으!!"

용작두가 단숨에 인우를 향해 쇄도해왔다.

슈아아아악-!

사람 몸집만 한 작두날이 인우를 내려찍기 시작했다.

카아아아앙-!

그에 인우는 대검을 머리 위로 들어 방어했다. 폭주한 녀석의 공격력은 대단했다. 커다란 마찰음과 함께 인우의 발이 땅속에 틀어박혔다.

"이 대검도 오늘이 마지막이겠구나!"

무기 '용작두'의 칼날을 두 번이나 받아냈으니 얼마 버티진 못할 거다.

이내 인우는 박힌 발을 빼낼 생각도 않은 채 대검을 휘둘렀다.

후웅-! 카앙!

인우의 대검이 용작두 광전사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츠으!"

용작두는 거칠게 포효하며 검을 휘둘렀다.

후웅-!

"흣차!"

그제야 인우는 발을 박차곤 그곳에서 멀찍이 거리를 벌렸다.

"후아. 이거, 생각보다 고전하겠는데?"

놈의 전투력이 폭주로 인해 불어난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언데드 군단으로 인해 더 이상의 날파리는 꼬이지 않을 거다.

이젠 온전히 독식할 수 있다.

"후우. 조금만 더 버텨 줘라 강철대검아."

인우는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된 이상 단타로 조금씩 치고 빠진다."

* * *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하아. 하아. 하아."

인우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용작두를 노려보았다.

"츠으······."

녀석은 언데드이기에 지치지 않는다.

다만 녀석도 많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인우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녀석의 생명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챙-! 캉-!

"꺄악!"

인우의 주변에서는 여전히 언데드 군단과 박해성 파티의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카아아악!

그때, 소환되었던 언데드 한 마리가 인우에게 달려들었다.

후웅-!

인우는 녀석을 향해 가볍게 스윙을 날렸다.

그리곤 다시금 용작두를 쏘아보았다.

"작두야. 이제 좀 죽자."

"츠으."

이윽고 인우는 마력을 쥐어 짜내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륵-!

인우의 마지막 남은 마력이 타오르며 파이어 볼이 피어났다.

"후우우우우우."

길게 심호흡을 해 본다.

화르르르륵-!

어느덧 인우의 손바닥에서 엄청난 불길이 솟아났다.

그 뒤, 불길은 강철대검에 들러붙기 시작했다.

파드드드득-!

마치 강철대검에서 불길이 솟은 것처럼 검신이 타오른다.

"이제 끝낸다."

대검이 녹기 전에 끝낼 것이다.

"흐아아아아아아아압!!!"

이윽고 인우가 대검 관통의 추진력을 이용해 놈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타다다다닥-!

인우는 불타오르는 강철대검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츠으!"

녀석이 공격을 시도한다.

그러나 인우는 때리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리빙아머가 아작이 날 때까진 맞아줄 거다.

그리고 맞으며,

녀석을 뭉게 버릴 것이다.

"흐아아아아압!"

쾅! 쾅! 쾅! 쾅!

인우의 강철대검이 화염을 머금고 놈을 내려찍기 시작했다.

"츠으!"

쾅! 쾅! 쾅! 쾅!

불길이 치솟으며 강철대검은 점차 녹아간다.

쾅! 쾅! 쾅! 쾅!

그와 동시에 녀석의 안광도 서서히 빛을 잃기 시작했다.

"츠으으으으으······."

어느덧 인우의 강철대검이 불길로 인해 녹아 반토막이 나버렸다.

더 이상의 내려찍기는 무리다.

인우는 그 즉시 녀석을 향해 참살을 시전했다.

푸슈슈슈슈슉!

반토막난 대검이 녀석의 머리통에 박혔다.

그러자 용작두의 눈에 생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질기디질겼던 놈의 생명이 꺼졌다.

[경험치 획득이 불가능합니다.]

99 정체 레벨이기에 경험치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상관없다.

이내 인우는 녀석의 용작두를 빼앗아 쥐었다.

후우우우웅-

날카로운 작두날에서 소름끼치는 예기가 뿜어져 나온다. 100레벨에 걸맞은 훌륭한 대검이다.

인우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아직 진정한 전리품은 채취하지도 않았다.

"자, 이제."

인우는 녀석의 오른쪽 가슴에서 각성 정수를 채취했다.

그리고 마침내 인우의 손에 황금색으로 빛나는 각성정수가 쥐어졌다.

인우는 망설임 없이 각성 정수를 입에 넣었다.

"안 돼!!"

그 모습을 본 나이트 길드원들이 절규를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각성 정수를 삼켰다.

그리고······.

[신체가 각성되었습니다.]

[근력이 50 증가합니다.]

[민첩이 40 증가합니다.]

[체력이 40 증가합니다.]

[마력이 10 증가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100레벨의 '광폭난무'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100레벨의 '절대자의 호흡'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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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6화 추격 (1)

액티브 스킬

1

.

.

6. [광폭난무 Lv.1 (0%) - 대검을 쥐고 몸을 회전시켜 전장을 휩쓸어버립니다.

7. 다음 스킬은 150레벨에 활성화됩니다.

.

.

9

패시브 스킬

1. [절대자의 걸음 - 발을 내딛을 때마다 경험치를 5 획득합니다.]

2. [절대자의 호흡 - 호흡할 때마다 경험치를 5 획득합니다.]

3. [절대자의 성장 - 레벨 200 달성 시 활성화 됩니다.]

4. [스피드 - 이동속도가 10% 증가합니다.]

절대자의 호흡이 활성화 되었다.

뿐만 아니라, 다음 절대자 패시브도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

아마도 100레벨 단위로 절대자의 능력이 깨어나는 것 같았다.

"이건 정말이지..."

'호흡'이라는 것이 뭘까?

호흡은 삶 그 자체이기 때문에 누구든 무의식 속에서 숨을 쉰다.

걸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무슨 일을 하던 인간은 숨을 쉰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이 말은 즉, 인우는 하루 24시간 내내 성장한다는 소리였으니까.

"후우........"

인우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숨만 쉬었다.

아니, 숨을 쉰다는 인지 자체도 없다.

숨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니까.

그저.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경험치를 5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5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5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5 획득하였습니다.]

.

.

[광폭난무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끝도 없이 올라갔다.

게다가 인간은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호흡을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인우는 헥헥 거리며 인위적으로 가쁜 숨을 내뱉어보았다.

그러자 경험치는 더욱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상태로 걸어보았다.

[경험치를 5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5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5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5 획득하였습니다.]

.

.

[광폭난무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경험치는 더욱 빠르게 올라갔다.

"푸하하하하"

어느덧 걸음을 멈추곤 웃었다.

한참을 웃다가 숨이 넘어갈 정도로 꺽꺽대며 웃었다.

그 꺽꺽대는 웃음에도 호흡이 존재했다.

[경험치를 5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5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5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5 획득하였습니다.]

.

.

그것으로 인해 또 경험치가 오른다.

"이건 진짜 미쳤는데?"

그냥 자버릴까?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레벨 업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100레벨의 필요 경험치가 어느 정도였더라."

인우는 상태창을 확인해보았다.

<정인우>

레벨 : 100

특성 : 광전사

스텟 : [근력 205+50] [민첩 159+40] [마력 35+10] [체력 135+40]

미분배 포인트 : 5

[EXP 200 / 900,000 ]

"90만이라."

90레벨 대의 필요 경험치량보다 2배가량 더 많아졌다.

아무래도 각성을 했기에 그만큼 필요 경험치가 높아진 것 같았다.

아무렴 어떨까.

90만이라 해도 금방이다.

인간은 1시간에 900회 가량의 호흡을 한다.

그것은 즉, 하루 평균 호흡량이 대략 22,000회 정도라는 말이다. 여기에 절대자의 호흡으로 얻게 될 경험치인 5를 곱해 본다면?

그것은 즉, 인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루에 110,000가량의 경험치를 얻는다는 소리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것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호흡만 했을 때의 이야기질 않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할 것이다.

나아가, 사냥도 하고 도축도 할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 필요 경험치가 제아무리 2배가량 늘어났다고 해도, 막강한 패시브로 인해 인우는 도리어 예전보다 더 빠른 성장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주목해야 될 것은 200레벨에 열리게 될 '절대자의 성장'이었다.

어떠한 패시브일까?

그야 200레벨을 찍어보면 알게 될 문제다.

인우는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지금 얻게 된 절대자의 호흡만 해도 만족스럽기 그지없었다.

이윽고 인우는 용작두 광전사의 품을 뒤져보았다.

무기 '용작두'와 각성 정수를 제외하고도 전리품은 무더기로 쏟아졌다.

빨간색 스킬 볼 4개와, 파란색 스킬볼 1개.

그리고 S급 마나정수 5개가 나왔다.

액티브 스킬 볼의 경우.

[윈드 애로우]

[라이트닝 쇼크]

[체인 라이트닝]

[현혹의 노래]

마법 스킬3개 바드의 스킬 1개가 나왔다.

물리 계열보단 마법 계열의 스킬 볼이 더 비싼 편이니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패시브의 경우.

[마법 공격력 강화]

심상치 않아 보이는 것이 나와 버렸다. 마법 공격력을 영구적으로 늘려주는 패시브이기에 엄청난 가격이지 않을까 싶었다.

다만, 이 5개의 스킬 볼 중에 인우가 습득할 수 있는 스킬 볼은 없었다.

모두다 바드와 마법 계열의 스킬 볼이었으니까.

아무렴 어떠랴.

다 팔아버리면 그만이다.

이러한 구슬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인우는 스킬 볼과 정수를 백팩에 담았다.

그리고 손에 들린 용작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새카만 통짜 칼날은 섬뜩하기 그지없다.

이 용작두를 들고 내려찍기를 시전하면 웬만한 괴수들은 그대로 두 동강이 나버리지 않을까 싶었다.

"아주 마음에 들어."

기존에 인우가 들고 있던 강철대검의 시세가 700만 원 가량이었다.

한데, 용작두는 40억이다.

엄청난 가격차이가 나는 만큼 압도적인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흐음."

이윽고 인우는 난장판이 되어 버린 주변을 바라보았다.

챙-! 캉-!

"이제 절반 정도 해치웠다!"

"젠장! 난 너무 지쳤어!"

나이트 길드의 박해성 파티는 여전히 고전하고 있었다.

지칠 대로 지친 인우였지만, 그렇다고 놈들을 가만히 놔두고 싶진 않았다.

"우선은 용작두의 성능부터 테스트해볼까."

어느덧 인우는 포효했다. 그리곤 앞을 향해 내달렸다.

타다다닥-!

인우가 달리자, 맹독 구울 한 마리가 덤벼들었다.

"케에에!"

"읏차!"

인우는 용작두를 치켜들고는 구울의 허리춤을 향해 휘둘렀다.

쐐애애애액-!

써걱-!

"크르엑.....!"

9존의 구울이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두동강이 나버렸다.

동강난 구울의 상체와 하체가 오징어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경험치를 300 획득하였습니다.]

"이거 너무 심각하게 좋은데..."

강철대검을 사용하다가 용작두를 쥐니 압도적인 차이가 났다. 인우는 기분이 제법 좋은지 씨익 하고 웃었다.

"케르!"

"츠으..."

어느덧 5마리 가량의 구울과 용아병들이 인우를 쏘아보며 내달려왔다.

"으라차차차!!!"

그러자 인우는 거친 기합을 내뱉으며 용작두를 쥔 채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우웅-!

광폭난무.

인우의 몸이 빠르게 회전하며 흙과 돌이 튀었다.

푸스스스슥-!

인우의 주변으로 피어난 회오리바람에 땅바닥이 거칠게 벗겨졌다.

"크르으!!"

내달려오던 5마리의 구울과 용아병들이 광폭난무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카가가가각-!

"쿠엑!"

"끄르!"

놈들은 마치 믹서기에 갈리듯 통째로 아작이 나버렸다.

"후우!"

그제야 인우는 멈춰 섰다.

"오랜만에 써보니, 이거 너무 어지러운데."

이제 테스트는 모두 끝났다.

한편, 박해성은 여전히 고전하며 인우를 쏘아보고 있었다.

박해성이 인우를 향해 외쳤다.

"야이 미친 새끼야! 넌 진짜 뒤질 줄 알아라!"

그 외침에 인우는 귀를 후비며 땅바닥에 앉아버렸다.

"저 새끼들이 다 뒤질 때까지 숨쉬기 운동이나 해야지."

직접 나서지 않아도 용아병과 맹독 구울들이 알아서 처치해줄 거다.

만약, 처치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인우가 나서면 될 일.

"으아아아아! 돌아버리겠구나!!"

박해성이 다시금 분을 이기지 못한 채 소리쳤다.

9존에 포진 되어 있던 듀라한과 데스나이트까지 가세한 상황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박해성 파티는 전멸할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그냥 땅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아이고. 편하다."

챙-! 캉-!

주변에선 여전히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음이 들려온다.

"꺄악!"

가끔 비명도 섞여 들려왔다.

인우는 그러한 난장판 한가운데에서 눈을 감았다.

"후우우우....."

길게 심호흡을 내뱉어본다.

경험치는 계속 올랐다.

"무서워질 지경이네...."

"미안하다! 우리가 잘못했다! 제발 힘을 보태다오!"

더 이상은 한계인지 다시금 놈이 소리치고 있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했으니 자존심 따윈 떨쳐버린 것 같았다.

그제야 인우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이미 죽은 용아병과 맹독 구울의 사체로 다가갔다.

"쫄병들 잡아줘서 고맙다. 전리품은 내가 잘 사용할게."

그렇게 말한 인우는 박해성 파티가 처치한 괴수들의 전리품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박해성의 눈이 뒤집혔다.

"저, 저, 저런 씨팔! 야 이 개새끼야!!!!"

배알이 꼴려 당장이라도 내장이 역류할 것 같았다.

죽을힘을 다해 파티원들을 데리고 언데드 군단과 맞서고 있건만...

저 미친 새끼는 해성과 파티원들이 잡아 놓은 괴수의 전리품을 채취하는 것 아닌가?

어느덧 인우가 해성을 향해 외쳤다.

"야! 스킬 볼도 나왔는데? 잘 쓸게!"

"야!!!! 이!!!!! 씨팔놈아!!!!!!"

"그러게 내가 경고했잖냐. 아, 그리고 말이야. 조금만 더 힘내라고. 이러다간 너희가 괴수를 잡는 시간보다 내가 정수를 채취하는 시간이 더 빠르겠어."

인우는 익살스러운 어조였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박해성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금세 후회가 되었다.

잘못 건드렸다. 놈은 독종중의 개독종이었고, 굳이 본인의 힘을 사용하지도 않으며 박해성과 파티원들을 전멸로 몰아넣고 있었다.

* * *

"헥! 헥! 헥! 젠장!"

박해성 파티의 파티원 이해나는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웬 미친놈 하나 잘못 건드렸다가 박해성을 비롯한 모든 파티원들이 전멸해버렸다.

생존자는 그녀가 유일했다.

"잘못 건드린 거야! 잘못 건드린 거라고!"

그것은 악몽이었다.

박해성 파티는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으며 모든 언데드 군단을 간신히 물리쳤다.

용작두를 든 그놈은, 얄밉게도 그제야 몸을 움직였다.

지칠 대로 지친 박해성 파티는 제대로 손을 써보지도 못한 채 놈에게 당해버렸다.

놈은 말조차도 아꼈다.

딱 한 마디를 내뱉었을 뿐이다.

-그러게 왜 남의 것을 탐냈냐.

놈의 손속은 자비를 몰랐다. 나이가 많건, 여자건, 예쁘건, 그러한 것들은 놈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흑. 흐윽!"

부끄러웠지만, 해나는 그 광경을 목격하곤 도주했다.

박해성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해나에게 명령했던 것이다.

-너라도 도망쳐. 그리고 보고해라. 우리가 약해서 용작두를 빼앗긴 게 아니라, 무지막지한 놈이 나타난 거라고.

정말 간신히 탈출했다.

박해성과 파티원들은 목숨을 걸고 시간을 벌어주었으니까.

"젠장! 제기랄!"

이윽고 해나는 죽을힘을 다해 9존에 위치한 빈건물로 숨어들어갔다.

놈이 사라질 때까지 이곳에 숨어 있을 생각이었다.

이윽고 해나는 발발 떨리는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 뒤, 나이트 길드 간부에게 보고를 보냈다.

전화를 했다간, 그 괴물 같은 놈이 목소리를 듣고 추격해올 수도 있다. 그랬기에 해나는 무척이나 조심스러워보였다.

-강원도 9존. 용작두 출몰. 단 한 놈에게 저희 파티는 용작두를 빼앗기고 괴멸 당했습니다. 지원 요청합니다.

끼익-

바로 그때였다.

그녀가 숨어 있는 건물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녀는 보았다.

문을 비집고 들어온 사내는 분명 그 괴물 같은 자였다.

"내가 말했을 텐데? 시작은 너희가 했어도 끝은 내가 낸다고."

화르륵-!

이윽고 사내, 정인우의 손바닥에 피어난 파이어볼이 해나를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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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화 추격 (2)

-강원도 9존. 용작두 출몰. 단 한 놈에게 저희 파티는 용작두를 빼앗기고 괴멸 당했습니다. 지원 요청합니다.

나이트 길드의 간부 윤종선에게 온 보고 내용이었다.

지원을 요청한다는 이 보고를 끝으로 박해성 파티와의 연락은 끊겼다.

처음 보고를 접했을 때, 종선으로선 쉽사리 납득 되지 않았다.

단 한 놈이란다.

말이 되는가?

도대체 어떤 간 큰 놈이 나이트 길드의 파티를 건드린단 말인가.

게다가 강원도에 용작두라니.

미심쩍은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저게 만약 사실이라면..."

저 보고가 사실이라면 80레벨의 초인 10명으로 이루어진 박해성 파티가, 단 한 놈에게 괴멸 당했다는 말이 된다.

그럴 경우 적은 필시 랭커일 것이다.

보고에는 적대길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렇기에 적은 길드에 속해있는 초인이 아닌, 개인으로 움직이는 초인일 것이다.

만일 적이 정말로 랭커라면 신중해질 필요가 있었다. 랭커와의 전쟁은 거대 길드로서도 조심스러워지는 부분이었으니까.

일단, 윤종선은 보고를 받은 즉시 강원도 9존에 원군을 보낸 상태였다.

원군은 추격에 특화된 초인으로 이루어진 파티였다.

이들은 나이트 길드 내에서도 상당한 실력자들이였다.

이들, 원군의 목표는 두 가지.

플랜A, 만약 이 보고가 과장 된 것이라면 '적'은 별 볼 일 없는 놈일 것. 그렇게 되면 발견 즉시 즉단 척살.

플랜B, 만약 정보가 과장이 아니며, 정말로 '적'이 무지막지한 놈이라면, 놈을 정찰하고 신상을 파악.

이 임무를 받은 원군 파티의 지휘관은 박지우였다.

그녀는 레인저 특성의 초인으로서, 추격과 정찰에 최적화 된 초인이었다.

박지우 파티의 구성원은 총 다섯.

이들 모두 레벨 100 이상으로서, 나이트 길드의 상급 길드원들이었다.

현재 지우는 강원도 9존에 들어선 상태였다.

그녀는 완벽하게 기척을 지우곤 9존 전체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오래지 않아 흔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

"..."

난장판이 되어 있는 현장.

맹독 구울과 용아병의 사체. 그리고 수백의 언데드 사체와 용작두 광전사의 사체.

마지막으로, 이미 차갑게 굳어버린 박해성 파티원들.

이윽고 그녀가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대상은 괴물 같은 놈이다. 이러한 난장판 가운데에서 용작두를 처치하고 박해성 파티를 전멸시켰다. 현재 우리 인력으로는 놈의 즉단 척살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흔적을 쫓고, 녀석의 정체를 파악해 상부에 보고한다. 끝으로, 박해성 파티의 시체는 모두 수거한 뒤 효성동 9존의 실험실로 옮긴다. 이상."

"예."

"알겠습니다."

파티원들이 답했다. 박지우는 즉시 범인의 흔적을 찾아 움직였다.

* * *

나이트 길드의 간부회의가 소집되었다.

외부에 나가 있는 마스터에게 최종 보고를 하기 전, 상황을 정리해야했다.

그들의 앞에 선 박지우는 직접 확인하고 온 현장에 대해 보고하기 시작했다.

"먼저, 범인의 무기에 대해 보고드립니다. 용작두 광전사의 머리통에 꽂혀 있던 강철대검이 있었습니다. 범인의 것으로 판명됩니다. 대검의 검신은 반토막이 나 있는 상태였으며, 강력한 마법으로 인해 녹아내린 상태였습니다. 강철대검은 SG그룹의 구모델로서 제품번호 'H-109' 으로 판명 났습니다."

"지독한 고물 모델이로군. 범인은 고작 그런 검으로 용작두를 잡았다는 건가? 앞뒤가 맞지 않는데?"

"그러나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온 사실입니다. 두 번째로는 족적에 대해 보고드리겠습니다. 현장에서 채취한 족적에 의하면, 범인의 신발 사이즈는 280mm로 판명됩니다. 또한 발자국에 박힌 깔창 모양의 형태는, A사의 운동화인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발 사이즈로 추측해보자면 범인이 여자일 확률은 극히 희박합니다."

"강철대검과 운동화라. 그 다음 사항 바로 보고하도록."

"예. 세 번째로는, 범인은 박해성 파티원들을 살해 할 때, 용작두를 사용했습니다. 시체에 남은 상처들은 모두 용작두에 의한 날카로운 검흔 뿐이었습니다. 즉, 대검을 사용하는 육체계열 특성의 초인일 것으로 판명됩니다. 다만....."

박지우가 말꼬리를 흐렸다. 간부들은 팔짱을 낀 채로 지우의 다음 말을 묵묵히 기다릴 뿐이었다.

"시체에는 화상흔도 존재했습니다. 화염 마법을 사용하는 육체계열 특성의 초인일 것입니다."

"오호라. 유니크 스킬 볼인가?"

간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육체특성의 초인이 마법 계열의 스킬을 습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파이어볼을 배우자고 해당 스킬 볼을 삼켜봐야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전사가 마법을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존재하긴 했다.

유니크 스킬 볼.

투명한 색상의 랜덤 스킬 볼.

해당 스킬 볼을 삼키면, 전사라고 해도 운이 좋다면 마법 스킬을 습득할 수도 있었다.

"유니크 스킬 볼은 10존에서나 드랍 되지. 화염 마법을 사용하는 전사라. 마법과 대검을 동시에 사용하는 초인은 극소수지. 놈의 정체는 금세 파악해낼 수 있겠군."

결과는 모두 나왔다.

과거에 강철대검을 사용했었고, 현재는 용작두를 사용하는 초인.

발 사이즈로 보건대 남자일 것이며, 화염마법을 사용하는 전사일 것이다.

단서는 한 가득이었다.

이제, 놈을 찾기만 하면 된다.

* * *

'분명 추격을 해올 거다. 내가 남겨놓은 증거를 모두 발견한다면 말이지.'

인우는 바깥으로 나온 상태였다. 그는 일부러 증거를 남겨 놓았다. 일종의 미끼랄까?

그 정도의 정보만 있다면 놈들은 희망을 갖고 자신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될 것이다.

'나이트 길드라...자꾸 엮인단 말이지.'

생각할수록 열이 받는다. 리빙아머에 대한 건도 그렇고, 이번 용작두 건도 그렇다.

'아예 지도상에서 없애주마. 욕심만 가득한 새끼들.'

아직까지는 인우의 무력이 제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거대 길드에 단신으로 맞설 정도는 되지 못한다.

그렇기에 인우는 정공보다는 다른 방식을 취할 셈이었다. 30년을 개처럼 굴렀던 인우다. 끝내 황제는 되었지만, 결단코 쉽게 그 자리에 앉은 게 아니다.

인우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놈들이 재기불능이 될 정도로 짓밟아줄 생각이었다.

'후우. 그건 그렇고, 이제는 새집에서 두 다리 쭉 펴고 잘 수 있겠구나.'

강원도 200평 초호화 주택의 공사가 끝났다. 그리고 100평 사육장 두 채의 공사도 끝났다.

이제 인우의 레벨도 100.

그렇기에 이제는 9급 괴수사육자격증도 1급으로 승급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커다란 괴수도 사육할 수 있다.

돈과 경험치의 획득량을 더 늘릴 수 있다.

"어, 가만 있어봐. 그러고 보니..."

사육증을 생각하다말고 인우는 불현 듯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초인증의 존재를.

<정인우>

레벨 : 23

특성 : 광전사

*초인증은 3개월 마다 한 번씩 갱신이 필요합니다.

"갱신기간을 넘겨버렸네."

초인증은 일정 기간마다 새롭게 갱신해줘야 한다.

변동 되는 초인의 레벨이 주기적으로 관리국에 입력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를 무시하고 1년 이상을 방치한다면, 초인특별법에 의해 불법초인으로 분류되고 처벌 받는다.

다행히 인우의 경우 고작 열흘 가량을 넘겼을 뿐이다.

이윽고 인우는 강원도 지부의 초인관리국을 향해 달렸다. 물론, 숨도 쉬고 있었기에 경험치는 중복되어 오르고 있었다.

육체 레벨이야 그냥 그렇다고 쳐도, 스킬 레벨의 성장은 무서워질 지경이다.

걸음의 5와 호흡의 5. 도합 10의 스킬 경험치가 초마다 올라가는 꼴이니, 스킬 레벨은 단숨에 올라가고 있었다. 이 정도의 속도라면 스킬 레벨은 금세 99까지 오를 것 같았다. 잠자는 동안에도 오를 테니까.

"후우. 다 왔네."

그렇게 한참을 달리길 잠시.

어느덧 인우는 강원도 지부 초인관리국에 도착해 있었다.

"여기도 참 오랜만이네."

인우에게 있어서 이곳은 매우 익숙한 곳이다.

그가 프로킨에서 차원이동게이트를 타고 도착한 곳이 바로 강원도 원주였으니까.

뭣도 모르고 고블린을 잡았다가 이곳 강원도 지부의 초인관리국에 끌려왔었다.

참 귀찮은 일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저러나, 여러모로 강원도와는 인연이 각별한 것 같다.

인우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관리국 내부로 들어섰다.

그 뒤, 초인증 갱신을 위해 번호표를 뽑고 데스크로 향했다.

"어서오세요. 어떤 업무 보러 오셨죠?"

관리국의 공무원이 살갑게 인우를 맞아주었다.

"갱신이요."

"아, 초인증 갱신하러 오셨군요. 초인증 주시겠어요?"

인우는 초인증을 건네주었다.

어느덧 자판을 두드리며 모니터를 바라보던 공무원이 말했다.

"아, 갱신기간 10일 초과되셨네요. 벌금 내셔야 하는 건 알고 계시죠?"

"얼마입니까?"

"하루당 200으로 도합 2000만원이네요."

초인과 관련된 초인특별법이 매우 강하다는 이야기는 들어왔었다. 한데, 이정도로 독할 줄은 몰랐다.

예전 같았으면 필시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뜻밖으로 인우는 피식 웃고 있었다.

어느덧 인우는 백팩에서 대충 집히는 스킬 볼 하나를 꺼냈다.

[아이스 볼트]

아이스 볼트의 시세는 2500만원이다.

인우는 관리국 직원에게 스킬 볼을 건네며 말했다.

"잔돈은 됐습니다."

"...에, 예?"

"거스름돈은 됐다고요."

"이, 이런 걸로는 결제가 불가능합니다."

"것 참. 피곤하게 사시네. 그거 그냥 받으셨다면 500만원 꿀꺽 하실 수도 있으셨을 텐데. 뭐 어쩔 수 없죠. 다시 주시죠."

"아."

인우는 공무원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는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국립기관이다.

즉, 시장터가 아니란 소리다. 이내 그녀는 아쉬움을 간신히 찍어 누르곤 스킬 볼을 건네주었다.

그 뒤, 인우는 카드로 벌금을 지불했다.

어느덧 공무원이 말했다.

"이제 레벨 측정 할게요. 이쪽에 손 대주시고요."

"아, 예."

지구에 떨어진 첫날에도 아마 이러한 방식으로 레벨을 측정했던 걸로 기억한다. 인우는 익숙하게 손을 내밀었다.

그 뒤, 레벨 측정은 단숨에 끝이 났다.

삐빅-

측정기가 울렸고, 액정에 레벨이 나타났다.

[Level : 100]

"...응?"

액정에 뜬 숫자에 관리국 직원은 눈을 꿈뻑대며 비비기 시작했다.

"자, 잠시만요. 이게 고장이 났나?"

분명 초인증에 적혀 있던 정인우의 레벨은 23이었다.

한데, 시간이 10년이 흐른 것도 아니고, 불과 몇 개월 만에 77개의 레벨을 올렸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어느덧 인우가 말했다.

"이야. 이건 언제 봐도 신기하네. 도대체 무슨 방식으로 이렇게 정확하게 레벨을 측정하는 거지?"

'이 미, 미친 새끼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정확할 리가 없잖아!'

관리국 직원은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금 말했다.

"저, 저기 아무래도 측정기에 이상이 있는 것 같네요. 다른 측정기로 재측정 도와드리겠습니다."

그에 인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분고분 따랐다.

그리고 이어진 재측정.

[Level : 100]

여전히 측정기의 액정은 100이라는 숫자를 보여주었다.

관리국 직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인우가 보챘다.

"초인특별법에 레벨 빨리 올린다고 잡혀간다는 조항이라도 있습니까? 갱신 빨리 좀 끝내주시죠? 바쁩니다."

"자, 잠시만요..."

말을 마친 직원은 당황한 표정으로 뒤쪽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이윽고... 오래지않아 강원도 지부 초인관리국이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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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8화 습격 (1)

초인과 일반인의 경계선은 10레벨이다. 10레벨이 되어 특성이 개화되고 스킬이 생성된 이들을 초인이라 부른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초인의 비율은 약 5% 정도였다. 이들 초인 중, 0.01%에 해당하는 이들을 랭커라 부르고, 랭커는 200레벨 이상의 초인이다.

랭커들 또한 모두 100레벨을 겪어왔다.

그리고, 그 누구도 3개월 만에 100레벨을 달성하진 못했다.

통계적으로 100레벨을 달성하기 위한 시간은 10년이다. 게다가 현재까지 가장 빠른 수치는 3년이었다.

한데, 3개월이라니.

압도적이다.

나아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래서일까?

인우에 의해 대한민국 초인관리국이 뒤집혔다.

각 지부의 국장들과 관리국의 랭커들을 필두로 긴급 회의가 열린 것이다.

안건은 정인우라는 초인에 대한 것이었다. 단 3개월 만에 100레벨을 달성한 초인.

그 막대한 핵폭풍에 긴급 회의가 열린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성장력을 가진 초인.

관리국의 일각은 이를 두고 경계의 눈빛을 보냈고, 또 다른 일각은 환영의 눈빛을 보냈다.

막강한 초인.

그것은 곧 그 나라의 국력이다.

다만 인우에 대한 정보가 세계각지에 풀리게 되는 날에는 그 파급력이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다행인 것은, 각 국가가 보유한 초인의 랭킹 시스템은 국가기밀이다.

다시 말해 초인관리국은 자국 초인에 대한 레벨 정보를 오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초인협회에서 지정한 하나의 룰이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이러한 룰이 없었다면 인우는 세계적인 핫이슈가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세계 각국에서 인우를 포섭하기 위해 전용기를 띄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제거하려 들지도 모를 일이고...

전자이건 후자이건 각 국가들의 관심을 받는다는 건 당연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랭킹 시스템은 예민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고, 랭킹은 여전히 국가기밀이다.

정인우.

전대미문 초유의 성장력을 보여준 초인.

앞서 언급했듯이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긴급회의가 열렸다.

새로운 헬게이트가 생성되었을 때에나 열리는 중요한 회의가, 정인우라는 초인 한 명 때문에 열리고 있는 것이다.

* * *

인우는 투덜대면서 관리국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관리국이 인우를 잡아 둘 명분은 없었다. 레벨 업이 빠르다는 이유로 그를 억압할 법안은 존재치 않는다. 다만, 무슨 작당을 하는지 시간을 꽤나 오래 잡아먹혔다.

"아오 귀찮은 새끼들."

괴수 사육증을 1급으로 승급하기 위해선 초인증 갱신은 필수였다.

이러한 문제들 외에도 일정 기간을 넘기면 불법 초인으로 분류되니, 그것은 곧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 될 것이다. 범죄자가 되어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면 그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을 테니까.

어찌 되었건 현재 인우는 초인증도 새롭게 갱신했고, 괴수 사육증의 승급도 완료한 상태였다.

관리국의 직원은 어떠한 지시를 받았는진 모르겠지만 인우를 귀빈 모시듯 했었다.

그러나 인우는 영 아니꼬운 듯했다.

"시간이나 질질 끌고 말이야."

어느덧 인우는 새롭게 승급 완료한 사육증을 바라보았다.

<정인우>

1급 괴수사육자.

번식 가능한 모든 괴수 사육가능.

예전에 인우가 발급 받았던 사육증은 9급이었다.

9급의 경우 자격제한이 20레벨이다.

또한, 9급의 경우 50kg이하의 소형 몬스터만 사육가능하다. 그랬기에 인우가 사육할 수 있는 몬스터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인우는 그럼에도 10존의 몬스터를 사육하긴 했다. 애초에 말리오는 초소형 몬스터였으니까.

"이제 돈 되는 경험치 덩어리들은 죄다 잡아넣어야지."

사육증의 경우, 10레벨 단위로 1급씩 올라간다.

그렇게 100레벨이 되면 1급 괴수 사육자격증을 발급받을 수 있는 것이다.

1등급의 경우 무게 제한이 없다. 번식 가능한 괴수라면 어떤 것이라도 사육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곧 인우의 경험치와 돈이 더욱 다양하게 불어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초인증 갱신은 마냥 회피할 만한 문제는 아니었다.

물론 인우도 자신의 성장속도로 인해 어떠한 파장이 벌어질지에 대한 생각은 했었다.

다만, 그런다고 지들이 어쩌려나 싶었다.

애초에 레벨을 빨리 올린다고 잡혀갈 일은 없지 않겠는가. 오히려, 관리국에서 인우를 포섭하려고 온갖 아양을 떨어 댈 확률이 존재할 뿐일 테다.

"일단 집부터 가 볼까."

이윽고 인우는 강원도 거주지를 향해 달렸다.

이제는 200평 주택에 가구도 놓고, 잔뜩 튜닝한 러닝머신 컬렉션도 만들고, 가능하다면 요리를 잘하는 가정부도 들이고 싶었다. 가정부의 성별이나, 나아가 얼굴이나 몸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인우는 맛있는 걸 먹고 싶었으니 요리를 잘하는 가정부여야만 했다.

민철이의 요리 실력은 생긴 것만큼이나 최악이어서 인우는 녀석에게만큼은 요리를 시키지 않을 생각이었다.

녀석은 정이 많고 충성심도 좋은 인우의 첫 번째 부하일 뿐이다.

"후우! 도착인가."

어느덧 인우는 강원도 거주지에 도착해 있었다.

이곳의 규모는 이제 크게 불어난 상태.

말리오 사육장과 100평 사육장 두 채. 그리고 초호화 주택까지.

이내 인우는 말리오 사육장 옆 편에 주차된 아반떼를 바라보았다.

"이 놈 오늘은 일찍 왔네."

요즘 민철은 시간이 날 때마다 강원도 사냥터에 다니곤 했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에나 들어오던 녀석이, 오늘은 제법 일찍 온 것 같았다.

이윽고 인우는 말리오 사육장에 들어섰다.

"끄응....."

그러자 사육장 숙식시설에서 잔뜩 앓는 소리가 났다.

그에 인우는 단숨에 숙식시설에 문을 열어보았다.

"아, 형님 오셨습니까."

그러자 민철이 인우를 반겼다. 인우는 민철을 바라보며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너,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 요즘에 무리해서 4존 사냥터에 다니더니, 몬스터한테 두드려 맞았냐?"

"아, 그게 아니라요 형님. 후우."

민철은 잔뜩 멍이든 얼굴을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인우가 다시금 물었다.

"그럼 뭔데?"

"아니...나이트 길드 새끼들이..."

"나이트 길드? 그 새끼들이 왜?"

"누구를 찾고 있는진 모르겠는데, 대검 들고 있는 초인들을 들쑤시고 다니더라고요. 게다가 영악한 놈들이...길드에 소속되지 않은 저 같은 약자들이나 괴롭히고. 에효. 약한 게 죄입니다."

그제야 인우는 사태를 파악했다.

증거는 명백했다. 놈들이 자신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방법 한 번 요란하다. 아주 독을 있는 대로 품은 것 같았다.

인우는 본래 내일부터 슬슬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얼굴에 멍이든 민철을 보자 생각이 바뀌었다.

"흐음. 오늘은 집 정비나 좀 해 볼까 했건만...새끼들이 감히 내 애완견을 뚜드려 패?"

"...예 형님? 애완견이요...?"

민철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고 있었다. 그러나 인우는 무언가 깊은 고민에 빠져 있는지 답조차 없었다.

민철이가 다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 녀석은 말리오 사육을 해야 하는 놈이다. 한데, 부상을 입게 되면 인우가 말리오 사육 같은 '잡일'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그것만큼은 결단코 사양이었다.

'개새끼들. 감히.'

리빙아머, 그리고 용작두, 마지막으로 잡일까지.

놈들은 인우의 심기를 극단적으로 건드리고 있었다.

어느덧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던 인우가 말했다.

"일단 너 내일부터는 사냥터 다니지 마."

"예.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더러운 새끼들 에효."

"그리고 이제 신축 사육장에 대형 괴수도 들여 놓을 생각이니까 내일부터는 니 아래에 둘 직원도 구해 놔. 알겠냐?"

"예. 형님."

"그래. 쉬어라."

이윽고 인우는 사육장을 뒤로 한 채 밖으로 나왔다.

바깥에 나온 인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개박살을 내 주마."

나이트 길드는 분명 인우를 랭커로 추측할 것이다.

용작두를 단신으로 잡고, 80레벨의 파티를 괴멸시킬 만한 존재는 랭커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놈들은 애꿎은 민철이 같은 놈들까지 괴롭혀대고 있다. 이 얼마나 악질인가.

"악은 악으로."

이윽고 인우의 입가에 살벌한 미소가 걸렸다.

* * *

나이트 길드의 강원도 지부.

이곳 지부의 규모는 작은 편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강원도 사냥터 자체가 규모가 작고, 보스 출몰의 빈도가 낮았기에.

그렇기에 지부 건물도 작은 편이었다.

건물은 5층으로서 약 100명 가량의 초인이 존재했다.

물론 이 모든 병력이 항상 지부에 박혀 있진 않았다. 대부분은 사냥을 나가거나, 수배서가 떨어진 리빙아머나 용작두 혹은 대검을 든 초인을 찾아다녔다.

그렇다고 해도 현재 지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초인은 30명 가량은 되었다.

"으아!! 머리 빠개지겠다!!"

강원도 지부의 지부장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업무를 보고 있었다.

골치 아픈 일 투성이다. 하필이면 강원도에서 일이 터져서 그의 업무가 이중으로 늘어났던 것이다.

"빌어먹을 용작두를 잡은 랭커 새끼나, 리빙아머를 입고 있다는 얼토당토 않는 놈이나. 존재하기나 하는 거냐? 그런 놈이? 빌어먹을 윗대가리들아!? 어!?"

그는 허공을 향해 외치며 상부를 욕하고 있었다.

"어!? 진짜로 그런 놈이 존재하기나 하냐고! 아오! 있다면 한번 나와 보라 그래! 진짜로 그런 놈이 내 앞에 나타난다면 아주 그냥 대갈통을 해머로 아작 내 줄 테....!!!"

쾅! 쾅! 쾅! 쾅!

바로 그때였다. 난 데 없이 지부 건물이 지진이라도 만난 듯, 통째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건 씨팔!"

순간 지부장은 이마에 핏대를 새웠다. 안 그래도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중인데, 이건 도대체 무슨 소란이란 말인가?

이윽고 지부장은 해머를 챙겨들고 문을 박찼다.

그 뒤, 단숨에 1층 로비로 내려가 보았다.

쾅! 쾅! 쾅! 쾅!

"이 새끼 이거 뭐야!"

"제압해! 뭐해!"

"지부장님 불러!"

로비는 난장판이었다. 웬 곰 인형 탈을 뒤집어 쓴 녀석이 커다란 무기를 들고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놈은 혼자였다.

"뭐냐 저 미친 새끼는...?"

순간 지부장은 벙쪘다.

아니, 강원도 지부가 아무리 작다고 해도 그렇지...

어떤 정신 나간 미친놈이 혼자서 길드 지부에 처들어온단 말인가?

제정신일까?

게다가 곰 인형 탈이라니.

정체를 들키고 싶지 않기에 뒤집어쓰기라도 한 건가?

그리고 녀석의 무기가 유독 눈에 띄었다.

"용작두...?"

혹시?

지부장의 얼굴은 단숨에 심각해졌다.

놈일까?

강한 예감이 지부장의 머리를 때렸다.

강원도 사냥터에서 박해성 파티를 괴멸시키고, 용작두 광전사를 독식했다던 그 랭커.

그 랭커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나이트 길드 강원도 지부에 처들어온 것일까?

생각도 잠시. 곰 인형 탈을 뒤집어쓴 사내가 그들을 향해 경고하기 시작했다.

"항복은 용납 못한다. 다만, 지금부터 딱 5초 준다. 도망갈 새끼들은 지금 도망가라. 그리고 5초 뒤에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모조리 다 개박살 낼 거다."

"뭔 개소리야! 저 미친 새끼 족쳐!"

어느덧 해머를 치켜든 지부장이 외치고 있었다.

그러자 곰 인형 탈이 답했다.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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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화 습격 (2)

"5초 같은 소리 하네! 뭐 하냐 새끼들아! 저 새끼 빨리 족쳐!"

지부장은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소리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정작 지부장은 나서지 않았다. 그저 2층 난간에서 명령을 내리며 눈알을 굴리고만 있었다.

'두, 둘 중 하나다. 저놈이 가짜라면 족치면 그만이지만, 진짜라면······.'

무조건 튀어야 한다.

랭커일지도 모르는 놈을 막기엔 현재 자신의 실력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30명의 인원은 모조리 몰살이다.

'분명 상부에서 이 상황을 보고 있을 거야.'

이곳 건물 곳곳에 박힌 CCTV로 인해 현재의 상황을 상부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강원도 지부에 원군을 보내올 것이다.

다만 강원도 지부는 오지다. 그렇기 때문에 원군이 도착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테다.

하다못해, 강원도 사냥터에 나가 있는 길드원들이 소식을 듣고 이곳으로 바로 내달려온대도 최소 15분은 걸린다.

즉,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싸워서 이기거나, 도주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 말이다.

지부장이 다시금 1층 로비를 향해 꽥 하고 소리쳤다.

"당장 저 곰새끼 족치라고! 놈은 한 명이다!"

그리고 그때.

곰 인형 탈을 뒤집어쓰고 있던 인우가 별안간 용작두를 하늘 높이 치켜 올렸다.

그 뒤, 맨바닥을 향해 내려찍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땅이 거칠게 진동하며 지부 건물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과 같은 착각이 일었다.

로비의 타일 바닥은 모조리 아작이 나 버렸다.

이윽고 인우는 바닥을 향한 공격을 멈췄다.

그리곤 무슨 생각인지 그 자리에 박힌 듯 가만히 서 있었다.

슈아아악-!

그때를 노린 것처럼 원거리 마법사들이 인우를 향해 마법을 날려 댔다.

그에 인우는 가볍게 용작두를 들어 마법을 막았다.

스억-!

거대한 용작두의 검면에 박힌 마법은 단숨에 파훼되었다.

한편, 근거리 딜러와 탱커들은 인우를 둥글게 포위했다.

놈들은 침을 꼴딱 삼키며 점차 포위망을 좁혀 왔다.

인우는 그저 주시한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놈들의 포위망이 나무의 나이테 끝자락만큼이나 좁혀져 왔을 때.

"흐아아아압!"

포효를 내뱉은 인우는 곧바로 광폭화를 시전했다.

고오오오오-

인우의 몸에서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물리공격력은 단숨에 2배로 껑충 뛰어 올랐다.

그 뒤 인우는 광폭난무를 시전하기 위해 용작두를 치켜들고 몸을 빙글빙글 돌렸다.

후웅, 후웅, 후웅후웅-!

인우의 신형이 빠르게 돌아가며 거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트드드드득-!

그러자, 내려찍기로 인해 아작이 났던 날카로운 타일의 파편들이 회오리바람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그 압도적인 위용에 30명의 길드원들은 주춤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파바바바바밧!

광폭난무의 폭풍에 휩쓸렸던 타일 조각들이 사방을 향해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파바바바바밧!

마치, 수류탄 파편과 같은 날카로운 조각들이 쏟아지자 적들은 단숨에 방어를 위해 몸을 웅크리거나 쉴드를 시전했다.

"크억!"

그러나, 사제 계열의 초인들은 별다른 대응조차 하지 못한 채 단숨에 벌집이 된 채로 바닥에 쓰러졌다.

"사제를 먼저 보호한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4명의 사제는 모두 회생불능이었다. 사제가 있다면 그나마 치고 빠지며 다친 상처를 돌볼 수 있었을 거다.

그렇기에 이들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놈들에게 더욱이 최악인 것은, 인우의 광폭난무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파바바바밧!

어느덧 믹서기의 칼날처럼 거칠게 회전하던 인우의 신형이 로비 곳곳을 노렸다.

쐐애애애애액!

용작두가 허공을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소음.

"젠장! 탱커 뭐해! 막아!"

"미친놈아! 저걸 어떻게 막아! 토마토처럼 갈릴 거라고!"

"흐이익! 저 새끼 저거 뭐야!"

"나, 난 못해! 난 도망칠 거야!"

평균 50레벨 대에 이르는 그들로서는, 100레벨 각성 스킬인 광폭난무의 형상만으로도 오금이 저려올 것이다.

나아가, 인우의 전투 경험은 랭커들에 비해 더하면 더했지 절대 뒤처지지 않았다.

"끄아아아아아악!"

어느덧 광폭난무의 희생양이 된 2명의 초인이 산채로 갈려나갔다.

파바바바밧!

인우는 멈추지 않았다. 짐승처럼 포효하며 녀석들을 쫓았다.

"크아악!"

놈들은 인우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민철과 같은 대검을 든 저렙초인들을 핍박하며 우월감을 느꼈을 거다. 거대 길드라는 양아치 집단을 끼고 쏘아 다니던 놈들이지만, 진정한 강자 앞에선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크아아아아아악!"

귀여웠던 곰 인형 탈은 어느새 빨갛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 * *

"저, 저 새끼 진짜다! 진짜인 거야!"

지부장은 혼이 빠진 듯한 모습으로 줄행랑을 치고 있었다.

이내 그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채로 F2층을 마구잡이로 눌러 대고 있었다.

"빨리! 빨리 좀 닫히라고!"

비상구로 도망치다 녀석에게 발각될까 봐 엘리베이터를 탄 것이다.

바로 지하 주차장으로 이동해 차를 타고 도주할 생각이었다.

드디어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휴우, 무조건 도망가야 해."

그제야 안심이 된 지부장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부원들의 안위 따위는 생각지도 않는 모습.

그런데 그때였다.

쿠웅-!

엘리베이터 천장에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뭐, 뭐야 씨팔."

지부장은 불안한 눈초리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엘리베이터 천장에 있던 형광등이 깜빡거렸다.

"설마······."

그 뒤, 해머를 꽉 쥔 채로 전투 준비를 했다.

이래 보여도 그는 지부장이다. 날로 이 자리를 꿰찬 것이 아니다.

다만 전투보다는 관리 업무에 능했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낮은 레벨임에도 지부장 자리를 꿰고 있던 것이다.

하나, 그렇다고 해도 그 또한 101레벨의 초인이다.

무조건 빠져나가겠다는 각오를 세웠다.

쿵- 쿵-

천장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분명 무언가 있다.

지부장의 관자놀이를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이내 지부장은 천장을 향해 버럭 소리 질렀다.

"내려와···!"

쾅! 쾅! 콰지지직-!

그 순간, 천장이 꿰뚫렸다.

그리고 균열을 비집고, 피로 물든 곰돌이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젠장!!"

싸우려 했건만, 막상 미친곰을 마주하자 덜컥 겁이 났다.

땡-!

그때 마침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지부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틈 사이를 비집고 도주했다.

그러곤 주머니를 뒤졌다.

주머니를 뒤지는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평소 아날로그를 좋아해 스마트 키가 아닌 열쇠 방식을 고집한 것이 미친 듯이 후회가 되었다.

'씨발, 이놈의 키가 어딜 간 거야!'

간신히 키를 움켜쥐고 차에 올라탔다.

그리곤 단숨에 키를 꼽고 시동을 넣었다.

우우우웅-!

그리고 그와 동시에.

쿠웅!

자동차 지붕에 곰이 들러붙었다.

썬루프를 통해 곰돌이의 머리통이 보였다.

한낱 곰돌이 머리통이 이처럼 무시무시해 보일 줄이야!

"이 미친 새끼 이거!! 졸라 집요하네!!"

지부장은 단숨에 있는 힘껏 엑셀을 밟았다.

그러나 질주는 오래 가지 못했다.

스ㅡ컥!

자동차 한가운데에 용작두가 틀어박혔다.

"어어어어?"

끼이이익- 쿵!

차는 그대로 주차장 기둥을 들이받았다.

본네트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났다.

"씨, 씨발···"

지부장은 단숨에 차문을 뜯어내고 탈출했다.

그 역시 초인이었기에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

문짝을 벗어나는 즉시 뒤를 돌아봤다.

곰돌이가, 아니 곰의 탈을 쓴 초인이 차 옆에 서 있었다.

"······."

* * *

차 지붕 위에서 뛰어 내린 정인우.

인우는 녀석을 향해 용작두를 휘둘렀다.

쐐애애액-!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그런 인우를 향해 지부장은 해머를 들어 올려 용작두를 겨눴다.

카앙-!

지부장의 해머도 고가의 아이템이었기에 만만치 않은 위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내가 만만해 보이냐? 앙? 도망치니까 만만해 보이···"

그때.

인우의 왼손에서 난 데 없이 화염구가 뿜어져 나왔다.

슈앙-!

"미, 미친!!"

바로 코앞에서 쏘아져 나온 파이어 볼. 지부장은 예고도 없는 그 공격을 그대로 허용했다.

화르르륵-!

지부장의 뱃가죽에 불길이 틀어박혔다.

불덩이를 얻어맞은 지부장이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압!"

그와 동시에 지부장의 육체에 하얀 수증기가 피어났다.

푸스슥-

어떠한 신체 특성인진 모르겠으나, 마력으로 이루어진 강력한 레벨의 화염구를 꺼 버렸다.

그러나.

화르르륵-!

이번엔 동시에 2개의 화염구가 튀어나왔다.

"젠장!"

지부장은 단숨에 거리를 벌렸다.

"크아아아압!"

다시금 포효.

그러자 지부장의 피부가 청동색으로 바뀌더니, 마치 강철과 같은 모습을 띠었다.

푸스슥-!

화염구가 지부장의 육체에 닿자마자 사그라들었다.

그 모습에 인우가 중얼거렸다.

"탱커였군."

게다가 저 탱킹 스킬은, 인우가 알고 있기론 100레벨 각성 스킬이다.

웬만한 공격은 모조리 흡수하는 막강한 방어 스킬.

그렇다면, 광폭난무의 위력도 흡수할까?

'어디 한 번 시험해 볼까?'

인우가 몸을 빙글빙글 돌렸다. 그 모습에 지부장의 얼굴이 굳었다.

'저 기술은!'

파바바바밧!

어느덧 인우의 신형이 팽이처럼 회전하며 단숨에 지부장을 향해 날아들었다.

쐐애애액-!

엄청난 속도로 인우가 쏘아져 왔다.

회피란 불가능할 것이고, 도주한다고 해도 뒤통수가 온전할 리 없다.

지부장은 101레벨답게 곧 결단을 내렸다.

"흐아아아아압!"

바닥에 발을 박아 버린 채로 탱킹 능력을 극대화시켰다.

그의 육체가 단숨에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이윽고.

쾅!

인우의 광폭난무와 지부장의 육체가 격돌했다.

"크윽······!"

지부장은 이를 악물었다.

1초, 2초, 3초.

"쿨럭!"

채 4초를 넘기지 못하고 한 움큼 피를 토해 냈다.

그리고.

쓰컥-!

용작두가 가차없이 지부장의 뱃가죽을 갈라 버렸다.

"크으."

지부장의 무릎이 꿇렸다. 육체 극대화 스킬을 극성까지 끌어올렸으나 역부족이었다.

아니, 역부족은커녕 4초도 넘기지 못했다.

미친곰은 도대체 어느 정도의 무력을 지닌 것일까?

어느덧 지부장은 핏발선 눈으로 인우를 노려보았다.

"쿨럭! 너, 너 이 새끼···"

타악-

인우가 단숨에 지부장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그러자 지부장의 갈라진 상처를 비집고 핏물이 끊임없이 흘렀다.

지부장은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 인우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카앙!

그러나 인형 탈을 비집고 들어간 발끝이 아려올 뿐이었다.

"아, 안에다 뭘 입은 거냐. 이 개···!"

그에 인우는 다른 손으로 인형 탈의 배 부분에 있는 지퍼를 내렸다.

지퍼 사이로 보이는 새카만 흉갑.

지부장은 눈을 부릅떴다.

"너, 너···!!"

분명 저것은 리빙아머였다.

이 곰돌이 놈이 어째서 리빙아머를 입고 있단 말인가?

잠깐, 설마?

"니 새끼가··· 그 새끼였냐······?"

"응."

인우가 답했다.

"말도 안 돼···. 리빙아머를 입은 초인도 너였고, 용작두를 든 랭커도 너였다고?"

"그래. 니 새끼들. 데스나이트를 가공하지? 그래서 리빙아머를 입고 있는 날 찾고 있는 거지?"

"크, 크윽. 나에게 고통을 줘도 그에 대한 답은 듣지 못할 거다···!"

"데스나이트를 가공하기 위해 인체 실험을 하고 있잖아. 내 말이 틀렸냐?"

"···큭큭."

"흐음. 겁쟁이 새낀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입이 무겁네."

"크아아아악!"

어느덧 지부장의 발목이 날아가 있었다.

인우는 잔뜩 성이난 목소리로 말했다.

"야. 난 있잖아. 그냥 조용히 사냥만 하며 살려고 했어. 먼저 들쑤신 건 니들이라고. 알아듣겠냐? 리빙아머? 인체 실험? 데스나이트 가공? 그딴 거 아무래도 좋아. 이 싸움은 너희들이 먼저 시작한 거다. 난,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는 타입이 아니라고."

이내 인우는 미련 없이 놈의 목을 비틀었다.

그 뒤 근처에 놈을 던졌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인우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

인우가 그곳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올리곤 유유히 자리를 벗어났다.

* * *

나이트 길드의 본부.

한 남성이 그림자에 가려진 채 상석에 푹 눌러 앉아 있었고, 그 앞에 놓여 있는 기다란 테이블엔 초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공간에 있는 인원들은 전부 끝 쪽에 있는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쾅- 쾅- 쾅- 쾅-

스크린 안에는 웬 곰 인형 탈을 쓴 녀석이 무언가를 열심히 부수고 있었다.

그리고.

- 항복은 용납 못한다. 다만, 지금부터 딱 5초 준다. 도망갈 새끼들은 지금 도망가라. 그리고 5초 뒤에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모조리 다 개박살 낼 거다.

팟-

······.

영상이 꺼지자 침묵이 그 공간을 가득 메웠다.

잠시 후, 스크린 근처에 서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영상 속 저 미친곰이 강원도 지부에 쳐들어온 시간은 22시 15분입니다. 그······."

하지만 남자는 말을 다 마치지 못했다.

"그로부터 6분 뒤, 강원도 지부의 길드원 30명 전멸. 또 다시 3분 뒤, 강원도 지부장 사망."

상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기에.

······.

순간 정적이 흘렀다.

칙칙-

상석에 앉아 있던 남자는 조용히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 모금 담배 연기를 내뱉은 남자가 좌중을 향해 조용히 뇌까렸다.

"놈을 찾아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렇게 말한 그는 최측근에 앉아 있는 간부를 향해 말했다.

"네가 직접 맡아라. 일주일 내로 놈의 목을 가져와."

그의 명령에 간부가 답했다.

"예."

"상급 길드원으로 팀을 짜도록. 대신, 확실하게 해라."

"예. 맡겨만 주십시오."

이윽고 회의가 끝나고, 그 공간엔 상석에 있던 자만 남게 되었다.

조용히 앉아서 담배 연기를 연신 내뿜던 그가 돌연 한마디를 뱉었다.

"미꾸라지 같은 새끼. 잡히기만 해 봐라."

말을 마친 그는 조금 전 스크린에 나왔던 놈의 모습을 상기했다.

지부장을 처리한 뒤, 카메라를 보며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든 그놈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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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화 도발하다

지부 하나를 개박살 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놈들은 곧바로 추격대를 보내 올 것이다. 길게 끌고 싶지 않았다. 인우는 빠르게 움직였다.

어느덧 인우는 민철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예 형님. 저녁은 드셨습니···

"됐고, 지금 당장 말리오 사육장에서 출산 임박한 암컷들 추려 놔라."

-...예?

"30분 안에 사육장으로 갈 거니까. 빠르게 준비해 놓으라고."

뚝-

말을 마친 인우는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올 테면 와 보라고."

인우는 강원도 사육장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갔다.

* * *

강원도 지부가 괴멸하기까지 정확히 9분이 걸렸다.

그곳에 속해 있던 지부원들은 30명이었으며, 지부장은 101레벨의 초인이었다. 이 많은 인원이 고작 10분도 되지 않아서 휩쓸린 것이다.

"보통내기가 아니다."

나이트 길드의 간부 이성진은 상급 길드원 5명으로 팀을 구성한 채로 강원도 지부에 나와 있는 상태였다. 이들 모두 100레벨 이상의 실력자들이다.

마스터의 명이 아직까지도 귓전을 때린다.

- 놈을 찾아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특급 척살령이다.

그렇기에 찾아야만 했다. 이곳 사건 현장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

이윽고 성진은 로비 곳곳에 처박혀 있는 시체들을 바라보았다.

시체들의 상태는 참혹했다. 온몸에 타일이 박힌 시체부터 두 동강난 시체까지.

'너무 요란하게 저질러 놨다.'

이 지경이 나 버렸으니 실험체로 쓸 수도 없을 거다. 그랬기에 더욱 열이 받았다.

'초인관리국에서도 조사대를 파견할 수도 있다.'

그 전에 이 상황을 종료시켜야 했다.

이내 성진은 팀원들에게 명했다.

"이 잡듯 뒤져라. 놈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그 어떠한 단서라도 좋다."

"알겠습니다."

생각이 깊어지는 가운데였다.

팀원 한 명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팀장님! 보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급한 외침이었다. 그 얼굴에서 긴박감이 넘쳐흘렀다.

성진은 서둘러서 걸음을 옮겼다. 도대체 무엇을 목격했기에?

이윽고 팀원이 안내한 곳에 다다랐을 때였다.

성진의 발이 바닥에 붙은 듯 멈추고 말았다.

이윽고 눈앞의 광경을 지켜보던 성진의 입에서 나지막한 말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런 미친."

그가 도착한 곳은 1층 로비의 화장실이었다.

성진의 눈동자는 짙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팀원의 목소리도 흔들리고 있었다.

"하, 이놈 봐라······."

화장실의 벽면에 새겨진 붉은 글씨는 분명한 놈의 흔적이었다.

아니, 이 경우엔 놈이 남겨 놓았다고 봐야 옳겠지.

- 긴말 안 한다. 빨리 끝내자. 강원도 태기산 북동쪽에 공터가 하나 있다. 그리로 와라. 빨리 안 오면 다른 지부도 이곳과 똑같이 만들어 버릴 거다.

도대체 뭐 하는 놈일까?

이건 대범함 이상이었다.

이것은 마치 협박 같다.

아니, 분명 협박이다.

협박이라니 가당키나 한가?

협박이 무엇인가?

겁을 주어 남을 억지로 행동케 하는 것이 협박 아니던가?

그런데 여기서 겁을 줄 수 있는 대상은 누구인가?

무려 수천의 길드원을 거느린 나이트 길드다.

일개 개인이 협박할 만한 계제가 아닌 것이다.

한데, 그 거대한 규모를 신경 쓰지 못하는지, 아니면 그것도 구분 못하는 멍청이인 건지.

"하."

황당함을 넘어서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런 또라이 새끼를 봤나."

어느덧 5명의 팀원들 모두 현장에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두 주먹을 불끈 쥔 채로 분노했다.

"이런 미친 자식······!"

"도대체 무슨 깡다구지?"

"팀장님! 당장에 저곳으로 저희를 보내 주십시오! 놈을 당장 족치겠습니다!"

"일단 진정해라. 놈의 계략일지도 몰라."

그들은 분명 미친곰을 추격하기 위해 흔적을 찾으려 이곳에 왔다.

한데, 미친곰은 보란 듯이 흔적을 남겼다. 그것도 정확한 위치까지 적어 놓았다.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다.

이윽고 팀원 하나가 성진을 향해 말했다.

"팀장님. 이건 분명 함정일 것입니다."

"그렇겠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옳다구나 하며 함정에 걸려 줄 이유가 없지 않나? 먼저 정찰조를 보낸다."

"알겠습니다!"

* * *

"생각이 있는 놈들이라면 정찰부터 보내겠지."

붉게 물든 곰 인형 탈. 그리고 백팩을 메고 있는 인우가 말하고 있었다. 민철은 붉은 액체가 가득 담긴 말통 두 개를 든 채로 낑낑대며 물었다.

"아니, 그보다 형님··· 상대는 거대 길드라고요······. 정말 괜찮겠습니까?"

"지들이 날뛰어 봐야 내 손바닥 안이다. 잔말 말고 따라와 새끼야. 놈들은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우선은 이곳으로 올 테니까."

"으으.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인 거지···!"

민철은 잔뜩 겁을 먹은 상태였음에도 인우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랐다.

인우를 통해 들었다.

이미 지부 하나를 개박살 냈단다.

나아가 친절히 위치까지 적어 줬단다.

'에효. 내 신세야.'

민철은 그런 생각을 하며 인우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형님. 정찰조가 오면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보면 알 거다."

민철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느덧 그들은 태기산 북동쪽 공터에 도착해 있었다.

인우가 말했다.

"야 말통 나한테 들이부어."

"···예?"

"들이 부으라고. 시간 없어 새끼야."

"아아. 넵 형님!"

민철은 대답과 동시에 말통의 입구를 열었다. 그 뒤, 곰 인형 탈을 뒤집어 쓴 인우에게 들이부었다.

콸콸콸콸-

이내 민철은 두 통의 말통을 모조리 부어 버렸다.

인우는 붉은 액체에 흠뻑 젖은 상태였다.

"됐다. 이제 저리 가. 곧 놈들이 올 테니까."

"제가 도와드리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방해 되니까 저기 멀리로 가 있어. 내가 부르면 와."

"예. 형님. 혹시 형님이 잘못되···"

"그럴 일 없으니까 냉큼 저리로 가 새끼야."

"알겠습니다, 형님."

이윽고 민철이 저만치 사라졌고, 인우는 공터 한가운데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길 한참.

타다닥-!

주변에서 소음이 들려왔다.

인우가 중얼거렸다.

"굼벵이들. 빨리도 왔다."

* * *

성진의 명을 받아 3명의 정찰조가 공터로 왔다. 그들은 잔뜩 긴장한 채로 공터 한 가운데를 바라보았다.

이내 그들이 속삭였다.

"함정 같은 건 안 보이는데? 별 볼 일 없는 공터야. 놈은 대놓고 가만히 서 있는데?"

"일단 놈에게 조금 더 접근한다."

"좋아."

이윽고 그들이 기척을 죽인 채 미친곰을 향해 접근했다.

사라락-

짙은 어둠이 깔린 공터에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을 타고 짙은 피비린내가 흘러들어왔다.

미친곰은 붉게 물들어 있는 상태였다.

이미 CCTV로 확인했을 때도 저 모습이었다.

바로 그때.

미친곰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젠장! 들켰다!"

"이미 보고는 완료했다! 우리 할 일은 끝난 거야! 함정은 없어!"

"제길! 일단 지원 요청부터 한다!"

타다닥-!

그러나 미친곰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 * *

쉽사리 믿을 수 없는 보고였다. 그렇게 어수룩한 놈이 아니었으니까. 한데 놈은 그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막상 무방비 상태로 서 있는 놈을 보고도 성진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분명 무언가 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허허벌판인 공터일 뿐이고, 놈은 온전히 홀로였다.

성진은 혹시나 싶어 강원도 사냥터에 있는 길드원들까지 모조리 끌어 모아 데리고 온 상태였다. 한 번에 확실히 끝낼 생각이었다.

성진은 미친곰을 노려보며 명령했다.

"어떤 함정이 존재할지 모른다. 이용훈. 네가 먼저 놈에게 접근해라."

"······."

그 명령에 용훈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저 말은 즉, 가서 먼저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 아닌가?

함정이 있다면 먼저 접근해서 함정의 존재를 확인하는 미끼가 되라는 소리고, 함정이 없다고 해도 미친곰의 손에 죽을 테다.

"어서!"

"알겠습니다."

이윽고 용훈이 움직였다.

타다다닥-!

용훈은 미친곰을 향해 빠르게 내달려 갔다.

10미터. 5미터. 이윽고 1미터.

단숨에 놈에게 접근했다. 함정 따윈 없었다. 미친곰은 그저 가만히 용훈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용훈은 놈의 앞에 가만히 선 채로 뒤를 돌아 소리쳤다.

"함정은 없습니다! 다시 복귀하겠··· 크아아악!!"

바로 그때.

미친곰이 불식간에 용작두를 휘둘렀다.

쓰컥-!

용훈의 다리가 무릎에서부터 잘려 나갔다.

철퍼덕-!

"크아아아아악!! 빌어먹을!!!!"

용훈은 그대로 나자빠진 채 뒹굴뒹굴 굴렀다. 그럴 때마다 잘린 절단면에서 피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그때, 미친곰이 말했다.

"뭐하냐, 쫄보 새끼들아. 내가 함정이라도 설치 했을까 봐? 그런 거 없다. 냉큼 덤벼라."

"저, 저 새끼가!"

성진은 이를 갈았다.

이로써 명백해졌다. 이 공터 바닥에는 그 어떤 함정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함정을 설치할 만한 지형도 아니다. 수풀이 우거진 산길도 아니었고, 그 어떤 폭탄을 설치할 만한 공간도 없는, 그저 공터였을 뿐이었다.

놈은 정말로 단신으로 그들을 도발한 거다.

'빌어먹을 새끼. 그 오만함 때문에 네놈은 죽을 것이다!'

성진의 팀 5명은 모두 100레벨이 넘었고, 강원도 사냥터에서 불러온 20명의 인원도 모두 90레벨이 넘어가는 실력자들이었다.

이 정도의 인원이라면 저놈이 제아무리 랭커라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CCTV를 통해 놈의 특성과 기술. 그리고 전투방식을 모조리 꿰고 있는 상태였다. 그랬기에 사제와 마법사를 포함해 완벽한 조합으로 이곳에 왔다.

그 인원만 해도 무려 서른이다.

성진이 소리쳤다.

"족쳐!!!"

"가자아아아!"

이윽고 그들이 내달려 왔다.

10미터. 5미터. 그리고 단숨에 3미터.

그리고 바로 그때.

미친곰이 난데없이 용작두를 내려놓는 게 아닌가?

"무기를 버리다니, 이 미친 새끼!"

"입만 살았구나! 이제 와서 무릎 꿇고 빌기라도 할 작정이냐!"

그러나 미친곰은 답이 없었다.

그저 백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 들고 있었다.

-카아아아악!

그리고 백팩이 열리는 순간.

"···뱀?"

아니, 정확하게 말해 그것은······.

"저, 저건!"

그럴 리 없다. 그렇지만 저 모습은 분명······.

"마, 말리오?"

팀원들이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없지! 저게 말리오라면 저놈이 맨손으로 벌레 잡듯 잡겠냐?"

멈칫하는 팀원들 옆을 지나가며 고렙 초인이 소리치고 있었다.

그랬다. 그 말이 정답이었다.

그의 외침이 끝나는 즉시 팀원들이 다시 인우에게 달려들었다.

타다닥-!

그들의 거리는 이제 지척.

미친곰.

정인우는 어느덧 인형 탈 배주머니에서 도축용 단검을 빼들었다.

"잘 가라고."

인우가 말했다.

출산이 임박했던 말리오 3마리를 가지고 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말리오 새끼는 독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물론 그런다고 말리오가 출산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인우는 곧바로 말리오의 배를 갈랐다.

-카아아아악!

산채로 배가 갈린 어미 말리오가 울부짖었다.

그리고······.

-카아아아악!

비늘을 잔뜩 부풀린 새끼 말리오가 튀어나왔다.

3마리의 어미 말리오의 배를 가르고, 총 6마리의 새끼 말리오를 꺼냈다.

인우는 새끼 말리오를 나이트 길드원들 쪽으로 집어던졌다.

-카아아악!

이내 바닥을 구르던 새끼 말리오들이 나이트 길드원들을 발견하곤 본능적으로 독샘이 가득 찬 비늘을 부풀렸다.

그리고······.

말리오의 비늘이 수류탄 파편처럼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쐐애애애액-!!!

파바바바밧!!!

독 비늘들이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크아악!"

"미, 미친! 말리오다! 진짜 말리오였....!"

"으아아아!"

놈들은 단숨에 비늘을 얻어맞고 벌집이 됐다. 그리곤 그 독성에 의해 피부가 새파랗게 변하더니 3초도 되지 않아 숨이 끊겼다.

물론 독 비늘은 인우에게도 쏟아졌다.

그러나, 인우는 이미 곰 인형 탈에 붉은 성수를 잔뜩 들이 부은 후다.

인형 탈에 박힌 비늘은 별다른 힘을 뿜어내지도 못한 채 녹아내릴 뿐이었다.

* * *

터벅 터벅-

이윽고 인우는 녀석들을 향해 걸었다.

"하아. 하아 너, 이 새끼······."

녀석들의 대장격으로 보이는 사내는 어떠한 스킬을 사용한 건진 모르겠으나, 숨이 붙어 있었다.

인우가 놈에게 말했다.

"어디부터 잘라 줄까? 아, 물론 목은 맨 나중이다. 너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한 가득이거든."

"크으으윽, 이 자식······."

성진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파랗게 변한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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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화 교란

나이트 길드의 본부.

마스터 백두진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미친곰을 처치하기 위해 간부 이성진을 포함한 척살대를 보냈다.

최신 보고에 의하면 이성진은 미친곰의 위치를 파악했으며, 총 30여 명의 상급 병력들을 이끌고 놈을 치러 갔다고 했다.

그러나, 그 보고를 끝으로 성진에게서 더 이상의 연락은 받을 수 없었다.

그 뒤로 시간은 꽤 흘렀다.

보고가 왔어도 몇 번은 왔을 정도로 말이다.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혹시, 이번에도 미친곰에게 괴멸 당한 것일까?

아니,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척살대 팀장, 이성진은 유능한 간부다. 미친곰이 제아무리 강하다 해도 이성진을 쓰러트릴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강원도 지부의 경우 급습을 당한 것이었지만, 이번 경우 그들이 놈을 치러 가는 것이다.

즉, 준비를 단단히 끝마쳤다는 것이다.

생각도 잠시.

"마스터님! 성진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드디어 문을 비집고 간부 하나가 헐레벌떡 들어오고 있었다.

"그래. 미친곰의 처리는?"

"···저, 그것이··· 우선은 이걸 받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간부가 난감한 기색으로 휴대 전화를 내밀었다.

이건 뭘까?

혹시, 처치하지 못한 것일까?

놓치기라도 했단 말인가?

묘한 불안감.

이윽고 백두진은 전화를 넘겨받았다.

그러자 곧바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이트 길드의 대가리가 너냐? 빨리 빨리 안 받냐?

"······."

백두진의 얼굴이 단숨에 구겨졌다. 이 목소리는 분명 CCTV의 그 '미친곰'이었다.

그렇다는 건, 척살대가 놈에게 당했다는 말이 된다.

'하아······.'

백두진은 머리가 아파오는지 양 주먹으로 관자놀이를 눌러 댔다.

다시금 놈의 이죽대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대답해 새끼야. 바빠.

"네놈······."

-니가 나이트 길드의 대가리다 이거지?

"그러고도 네놈이 무사할 수 있을 것 같나?"

백두진의 경고에 미친곰은 웃었다.

-긴 말 안 할게. 빨리 끝내자. 이리로 와라. 아 맞다. 그리고 올 때 말이야, 니 새끼 부하들처럼 되고 싶지 않으면 단단히 준비하고 와라. 알아듣겠냐?

"···뭐라?"

푸스스스스슥-

명백한 도발.

분노한 백두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니, 이건 단순히 달아오른 것이 아니다. 그의 눈동자가 급격히 빨갛게 물들었고, 정수리에서는 하얀 김이 뿜어져 나왔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간부가 허둥지둥 백두진을 향해 말했다.

"마스터님! 분노를 제어하십시오! 본부가 통째로 녹아 버릴 수도 있습니다!"

"후우······."

백두진은 가까스로 분노를 억눌렀다. 깊은 숨을 내뿜는 그의 입을 비집고 불길 같은 입김이 새어나왔다.

이윽고 백두진은 수화기 너머를 향해 물었다.

"어디냐."

-한 번만 말할 테니까 잘 들어. 강원도 태기산 북동쪽 공터다.

"내 너를 곱게 죽이진 않을 것이···"

뚝-

전화가 끊겼다.

백두진의 두 눈동자가 살벌하게 물들어 갔다. 미친곰의 행동 패턴은 명확했다. 놈은 여태껏 위치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어느덧 간부가 급히 말했다.

"제가 팀을 꾸려 놈을 치러 가겠습니다!"

"아니."

"예? 아니, 제가 확실하게 처리···"

"내가 직접 간다."

백두진은 간부의 말을 중도에 끊으며 말하고 있었다.

간부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지, 직접 가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나가서 대기하고 있도록 그리고, 애들을 소집해라."

"알겠습니다. 어떻게 인원을 꾸리면 되겠···"

간부는 말을 하다말고 주춤댔다. 백두진이 간부를 찢어 죽일듯 쏘아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 최상급 요원들로 준비해 두겠습니다!"

그 말에 백두진은 손을 휘 내저으며 축객령을 내렸다.

그러자 간부는 뒷걸음질로 마스터룸을 빠져나갔다.

이윽고 마스터룸이 고요로 점철되었다.

오로지 백두진 홀로 남았을 때였다.

그때······.

백두진의 입술이 난데없이 허공을 향해 물었다.

"제가 직접 나설 생각입니다."

스르르륵-

백두진의 말이 끝나자, 놀랍게도 어두운 공간이 일그러지며 그림자에 감싸여 있는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백두진은 그림자를 바라보며 다시금 말했다.

"필시 보통 놈은 아닐 겁니다."

-그럴지도.

그림자의 목소리는 쇠와 쇠가 갈리듯 거북하기 그지없었다. 이윽고 그림자는 그 말을 끝으로 허공에 녹아들듯 사라졌다.

* * *

민철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바들바들 떨며 말하기 시작했다.

"형님!!! 도대체 어찌하실 작정이십니까!"

"뭐가?"

"아니, 나이트 길드의 마스터를 도발하다니요! 분명 이곳으로 엄청난 병력을 끌고 올 것 아닙니까?"

"응. 그렇지. 그놈은 아마 내 말을 무시하진 못할 거야. 놈들은 뭐가 됐건 이곳으로 올 테지."

그 말에 민철은 답답하다는 듯 제 가슴을 탕탕 쳤다.

"가지고 온 말리오도 다 써 버리지 않았습니까! 승산 없는 싸움입니다!"

"응 승산이 없지."

"형님!"

"귀 안 먹었다. 내가 그깟 놈들 상대하고 있을 시간이 있겠냐? 됐고, 따라와 봐."

말을 마친 인우는 성진의 핸드폰을 바닥에 내던지며 부숴 버렸다.

"예?"

"따라오라고."

인우는 성진을 고문하며, 놈이 내뱉었던 이야기를 생각해 냈다.

그건, 정말이지 놓치고 싶지 않은 보약과도 같은 거였다.

* * *

태기산 공터.

인적이 닿을 리 없는 이곳에, 다수의 초인들이 몰려와 있었다.

그들의 선두에선 한 남자가 싸늘한 기광을 번뜩였다.

바로 나이트 길드 마스터 백두진과 인우를 처지하기 위한 나이트 길드 정예원들이었다.

시간은 이미 새벽.

솨아아아아-

바람이 불었고, 어두컴컴한 공터에서 분명한 피 냄새가 났다.

이윽고 백두진의 시선이 공터 한가운데에 닿았다.

"······."

그곳엔 시체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 광경에 백두진의 뒤편에 시립해 있던 간부들이 이를 갈았다.

"성진이도··· 병력도, 모두 당했군요······."

미친곰은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그들은 시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시체들은 모조리 무언가에 중독된 것처럼 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성진의 시체 위에 메모가 하나 보였다.

백두진은 메모를 주워 들었다.

-설마 진짜로 왔냐? 이거 생각보다 빡대가리 새끼네.

"······."

놈이 남겨 둔 메시지.

말도 안 나온다.

그저, 격렬한 분노.

백두진의 주먹이 바들바들 떨려오며 메모를 휴지조각처럼 움켜쥐었다.

"이 새끼가······."

자신들은 미친곰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꼴이었다.

백두진의 얼굴이 더없이 붉어진다.

그리고 바로 그때.

따르르릉-

눈치 없는 벨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뒤편에 시립해 있던 간부 중 한 명이 전화를 받았다.

이런 상황에 전화를 받아?

백두진의 눈에 살기가 떠올랐다.

그러나.

-크, 큰일 났습니다! 남양주 지부에 미친곰이 쳐들어 왔습니다! 이번엔 두 마리입니다!

"뭐라고!?"

고요하기 그지없는 이 공간에, 핸드폰에서 튀어나온 비명과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은 다급한 보고 전화였다.

그에 백두진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놈은 나이트 길드의 최상위급 병력을 이곳에 몰아넣고, 다른 지부를 털러 간 것이었다.

이윽고, 백두진이 격노하여 미친 듯이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악!! 이 개 같은 새끼!! 반드시 산 채로 잡아 찢어 주마!!"

* * *

민철은 곰 인형 탈을 뒤집어쓴 채로, 마찬가지로 곰 인형 탈을 뒤집어쓴 인우를 바라보았다.

"형님······."

"왜."

"제가 죽게 되면, 저희 어머니와 아버지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꼴깝을 떠네 아주. 저만치 나와 있어."

"···아! 그럴까요?"

민철은 잽싸게 명령을 이행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민철이 나설 만한 상황이 아니다.

현재 둘은 나이트 길드의 남양주 지부에 쳐들어온 상태였으니까.

"미친곰······."

이미 지부 로비에는 20명 정도의 병력이 보였고, 남양주 지부장조차도 미친곰을 노려보고 있는 대치 상태였다.

지부장은 미친곰에 대해 익히 들어왔다.

보통 미친놈이 아니라 했다. 단신으로 박해성 파티를 요절내고, 용작두를 취했다고 한다. 나아가, 강원도 지부를 박살내고, 이성진 척살대를 공터로 유인해 말살한 인물.

"······."

어쩌면 오늘.

오늘이 바로 그가 숨 쉬는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른다.

지부장은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그때, 미친곰이 말했다.

"남양주 지부 지하에 아주 좋은 게 있다고 들었다."

"······."

"긴말 안 해. 난 지하에 있는 것들을 좀 취해야겠다. 그러니까 비켜라. 4초 줄게."

이내 미친곰 정인우는 손가락을 하나씩 굽히며 숫자를 셌다.

인우의 손가락이 2개 굽혀졌을 때였다.

남양주 지부장이 다급하게 입술을 뗐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인지 묻겠다!"

"몰라서 묻냐?"

지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모른다. 상부에서 내려온 놈에 대한 것이라고는, 그저 무력으로 용작두를 빼앗고 나이트 길드원들을 개처럼 죽이는 미친개라고 들었을 뿐.

"일단 명심해야 할 건, 4초는 지났다. 이 점 잘 알아 두라고. 음, 내가 왜 이러느냐고? 되묻자. 니들이야 말로 나한테 왜 그러는 거냐? 그렇게 남의 떡이 탐났냐? 난 있잖아. 니들이 내 떡을 탐내니까 나도 니네 떡을 탐내는 것뿐이야."

잠시 말을 끊은 인우가 다시금 이었다.

"공평하잖아? 나는 니네 방식대로 해 주려는 거야. 강한 새끼가 다 먹는 거다. 그뿐."

말을 마친 인우가 용작두를 치켜들었다. 단숨에 대검관통의 추진력을 이용해 대포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 광경에 지부장이 비명 같은 고함을 내질렀다.

"막아!!!"

후우우우웅-!

"크아아악!"

단숨에 지부원 한 명을 꼬치처럼 꿰어 버린 용작두.

"이야아아아압!"

어느덧 제법 용맹한 지부원 하나가 인우에게 달려들었다.

화르륵-!

그때, 인우의 왼손에서 불꽃이 피어났다.

레벨 45에 달하는 강력한 파이어볼.

화염구는 매섭게 타오르며 지부원에게 들러붙었다.

"크아아아아악!"

녀석의 강렬한 비명은, 산 채로 타들어 가는 고통을 그대로 보여 주는 듯했다.

이내 인우는 용작두를 치켜들고 녀석에게 참살을 날렸다.

쑤컥!

용작두의 새카만 날이 지부원의 목을 가볍게 가르고 지나갔다.

피분수가 뿜어지고 인우는 포효했다.

"흐아아아아아압!"

생지옥과 같은 광경에 지부장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간, 아무렇지도 않게 생체 실험을 자행해 왔던 지부장이다.

하나, 그것은 '다른 사람'의 고통이었기에 대수롭지 않을 수 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입장이 반대로 다가올 수도 있었다.

지부장이 악에 받친 듯 소리쳤다.

"막아라! 못 막으면 우린 다 죽어!"

이미 희망이 없는 남양주 지부다. 정예 길드원들은 모조리 강원도 태기산에 몰려 있는 상태.

"으아아아 제기랄!!"

남양주 지부장은 눈에 독기를 머금고 인우에게 달려들었다.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그들을 보고도, 인우는 웃었다.

"강원도에 있던 놈이랑은 달라서 좋네. 좋은 패기다. 전사답게 죽어라."

* * *

민철은 인우가 20명의 초인을 단숨에 물리치는 광경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지금 민철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형님이 내 적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님 감사합니다. 정인우 형님이 저를 각별히 아끼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인우의 손속에는 자비가 없었다. 목숨을 구걸하는 자에게도, 인우를 저주하는 자에게도, 그 어떤 자에게도 동등한 죽음을 내려주었다.

그 어떤 뒤탈의 여지도 남기지 않았다.

그야말로 깔끔했다.

'흐아아. 그런데 형님이 내 앞에서 허세를 부리려고 날 데리고 왔을 리는 없고··· 도대체 왜 날 데리고 온 거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인우가 민철을 불렀다.

"민철아 가자."

"어딜 말입니까?"

"지하에."

"아니 뭐 때문에 지하까지 가십니까! 놈들이 오기 전에 어서 뜨죠 형님!"

"잔말 말고 따라와. 몸보신하러 가 보자고."

이윽고 곰 인형 탈은 피를 뚝뚝 떨구며 뒤뚱뒤뚱 앞장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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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화 다 먹어 치울 거야

이 지하는 도대체 몇 층까지 존재하는 것일까?

-크르르르······.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지하 1층에서는 낮은 그로울링이 울려 퍼졌다.

민철은 주춤거리며 인우의 엉덩이에 부착된 동그란 꼬리를 붙잡았다.

"혀, 형님. 같이 좀 갑시다."

"놔. 인마."

"아, 형님······."

이번만큼은 민철도 물러서지 않았다. 인우의 꼬리를 놓치는 순간 바지에 오줌을 지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일었기 때문이다.

지하의 분위기는 그만큼이나 음산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철장을 경계로 바로 지척에 수백의 괴수들이 보였으니까. 어느덧 민철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중얼거렸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육장이네요······."

"이 경우엔 공짜 사냥터라고 해 두는 게 맞겠지."

인우가 답했다.

사냥터의 경우 1시간에 100만 원이나 받아 처먹는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아니다.

말 그대로 공짜.

게다가, 못해도 7존 정도는 가야 나오는 괴수들이 즐비해 있었다.

-크르르르르······.

사육장의 도축 시설은 완벽히 구축되어 있는 상태.

레일을 돌려 신소재 금속으로 완벽히 포박된 괴수를 손쉽게 도축할 수 있었다.

레벨이 35밖에 되지 않는 민철이라도 말이다.

"아오. 것 참."

어느덧 인우는 엉덩이 쪽으로 손을 움직여 민철의 손길을 쳐냈다.

그 뒤 민철을 향해 말했다.

"야. 시간 없는 거 알지? 레일 돌릴 테니까 빠르게 목을 따 버리라고."

그러면서 인우는 성큼 걸었다.

중앙에 있는 장치의 버튼을 눌렀고, 그러자 왼편과 오른편의 레일이 돌아갔다.

"내가 오른쪽 도축을 할 테니, 넌 왼쪽 도축을 해."

"형님, 저희 이러고도 무사할까요?"

민철은 지금 이 상황을 즐겨야 할지, 앞으로 다가올 나이트 길드의 분노를 두려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새끼. 걱정은."

인우는 드물게 민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생소한 손길에 민철은 히죽 웃으며 얌전히 머리를 내어 주고 있었다.

"자, 시작이다."

이윽고 인우가 움직였다.

그 모습에 민철도 도축용 단검을 주워 들고 외쳤다.

"에라이! 모르겠다!"

[경험치를 35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3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290 획득하였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은 단숨에 올랐다.

민철이 소리쳤다.

"으아아아아아! 형님! 이거 너무 대박이잖아요!!"

민철은 신이 나는지 안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경험치를 29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310 획득하였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인우의 경우, 100레벨의 경험치가 거의 가득 차 있는 상태였고, 금세 101로 레벨 업을 했다.

민철은 여전히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며 도축을 하고 있었다.

"형님! 형님! 감사합니다!"

연신 인우에게 고개를 숙이는 민철이었다.

민철의 레벨은 벌써 2개가 올라서 37이 된 상태였다.

그간 무리해서 4존 사냥터에 다녔던 민철이다. 그러나 오늘을 기점으로 4존을 조금 더 쉽게 다닐 수 있을 거다. 아직도 도축할 괴수는 무지막지하게 많이 남은 상태였으니까. 어쩌면 오늘 40레벨을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덧 인우가 민철을 향해 외쳤다.

"야! 도축하면서 정수 채취도 동시에 진행해! 시간 없다!"

"예 형님!"

그리고 오래지 않아, 둘은 지하 1층의 800마리 가량의 괴수를 모두 도축했다.

그러자 인우가 말했다.

"빨리 움직이자."

"예 형님!"

"지하 2층으로 가자."

"아, 넵!!"

민철은 신이 났다.

이곳의 지하는 분명 5층까지 존재했으니까.

본격적인 시작은 이제부터였다.

"흐힛!"

민철은 이제 인우의 엉덩이에 붙은 꼬리를 붙잡지도 않았으며, 그저 방방 날뛰며 인우의 뒤를 쫓고 있었다.

그렇게 미친곰 두 마리는 단숨에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 * *

지하 4층.

이곳까지 수천에 이르는 괴수를 날로 도축했다.

그야말로 꿀이 흐르는 낙원이랄까?

민철의 레벨은 43이 되어 있었으며, 인우 또한 102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민철과 인우가 가지고 온 4개의 배낭도 가득 찬 상태였다.

구슬만 한 크기의 정수가 수천 개에 이르렀으니, 제아무리 큰 배낭을 가지고 왔다고 해도 가득 찰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간간히 스킬 볼까지 나왔으니 오죽하랴.

"이, 이게 도대체 얼마일까요 형님?"

"숫자 놀이는 나중에 하자고."

이윽고 그들은 지하5층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지하5층에는 사육장이나 괴수가 보이지 않았다. 그 광경에 민철은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4층이 끝이었던 것 같은데요 형님?"

"아니지. 진짜 보물은 5층이야."

"예?"

민철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인우가 말했다.

"민철아. 이 정도 규모의 사육장이라면 한 달 도축양이 얼마나 될 것 같냐?"

"그야··· 어마어마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그럼 그 엄청난 양의 전리품들은 어떻게 처리할까?"

"아···?"

"시간 단위나 하루 단위로 전리품을 처분하진 않을 거란 말이다. 워낙 막대한 양이기 때문에, 모아 뒀다가 한 번에 정산할 테지. 안 그러냐?"

그 말에 민철은 만세를 부르며 외치기 시작했다.

"혀, 형님!! 그러면???"

"그래. 아마 막대한 양의 전리품들을 쌓아 두는 일종의 '창고' 정도가 분명 존재할 거다."

"그 창고가 분명 이 지하 5층일 테고요!?"

"그렇지."

지하 5층에는 총 4개의 문이 보였다.

이윽고 인우는 첫 번째 창고의 문으로 다가갔다.

단단히 잠겨 있는 문.

인우는 용작두를 휘둘러 문을 아작 냈다.

그러자, 창고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히익!"

창고의 전경을 목격한 민철은 질겁했다.

그곳엔, 빨간색 스킬 볼이 한가득이었으니까.

"이 창고는 액티브 스킬 볼만 모아 둔 곳이네."

"허, 허얼··· 형님 그런데 저희 배낭이 가득 찼는데요. 이걸 어떻게 챙기죠?"

"일단 배주머니에 넣어 보자."

인우는 그렇게 말하며 앞장 서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곰 인형 탈의 배주머니에 스킬 볼을 우겨 넣기 시작했다.

이윽고 인우의 배주머니가 캥거루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어찌나 가득 담았는지, 인우가 움직일 때마다 배주머니에서 스킬 볼이 한두 개씩 흘러내렸다.

그것은 민철도 마찬가지였다.

민철의 배주머니도 가득 차올랐다. 게다가 민철의 경우 뱃살이 도톰하게 오른 체형이었기에, 인우보다 얼마 담지도 못했다.

인우가 그 꼴을 보며 혀를 찼다.

"돈 벌고 싶으면 살부터 빼라 새끼야."

"끄응······."

민철은 머리를 긁적댔다.

이윽고 민철이 말했다.

"형님. 남은 스킬 볼은 어떻게 하죠?"

"어떡하긴 뭘 어떻게 하냐. 이제 주머니라곤 입 밖에 없잖냐."

"···예?"

단숨에 이해하지 못한 민철이 반문하고 있었다.

그러자 인우는 손수 시범을 보이기 시작했다.

손으로 스킬 볼을 한 움큼 쥐더니 입에다 가득 넣어 버린 것이다.

인우는 마법 스킬 볼이건, 전사 계열이건, 암살 계열이건, 가리지 않았다.

어차피 남겨 봐야 적들이 이득을 취할 스킬 볼이다.

이내 인우는 스킬 볼을 그대로 삼켜 버렸다.

[특성에 맞지 않는 스킬입니다.]

[이미 배운 스킬입니다.]

[이미 배운 스킬입니다.]

[특성에 맞지 않는 스킬입니다.]

['세게 치기'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특성에 맞지 않는 스킬입니다.]

['연속 차기'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특성에 맞지 않는 스킬입니다.]

['대검 막기'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회심의 일격'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

.

.

인우는 마치 햄스터처럼 양 볼에 스킬 볼을 가득 문 채로 민철을 향해 외쳤다.

"아! 어도 빠리 처머거!"

"아, 아 네 형님!"

이윽고 민철도 인우를 쫓아 스킬 볼을 입에 우겨 넣기 시작했다.

[특성에 맞지 않는 스킬입니다.]

['내려찍기'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

.

.

민철의 특성의 경우 '전사'였다.

가장 기본적인 계열의 특성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려찍기와 같은 '광전사'전용 스킬은 민철에게 있어서 더없이 귀중한 스킬이었다.

그래서일까?

민철은 인우를 붙잡고 기뻐 날뛰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빠르게 움직였다.

이윽고 두 번째 창고.

이번에도 인우는 용작두를 휘둘러 문을 날려 버렸다.

그리고 그곳엔 파란색 스킬 볼이 있었다.

"패시브 스킬 볼이로군."

액티브에 비해 양은 적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패시브 스킬 볼은 드랍 확률이 좋지 않다. 그런 만큼 비싸기도 하고.

이윽고 인우가 본인의 특성에 맞는 패시브 스킬 볼을 추려 내기 시작했다.

그 뒤 곧바로 먹었다.

['물리 공격력 강화'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근력 증가'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체력 증가'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

.

"좋아. 야. 저기 구석에 포대 있다. 저거 가지고 와."

이제 더 이상 담을 공간도 없다 싶을 때, 굉장한 것이 보였다. 창고 구석에 노란 자루 포대가 한 가득이나 있었던 것이다.

그에 민철이 단숨에 포대를 가지고 오더니 스킬 볼들을 쓸어 담았다.

그런 민철을 향해 인우가 말했다.

"야. 챙기면서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바로 먹어 버려."

"아··· 정말 감사합니다 형님!"

민철 또한 패시브 스킬 볼을 2개 먹었다. 그리고 나머지 것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자루에 챙겨 담기 시작했다.

민철이가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인우는 스킬을 점검하기 위해 스킬창을 열어 보았다.

절대자의 호흡을 배운 이후로, 인우의 스킬은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

게다가 새로운 스킬까지 대량으로 배운 상태.

액티브 스킬

1. [내려찍기 Lv.71 (28%)] - 양손 무기 장착 시 사용 가능. 거대한 검이나 도끼를 양손으로 틀어쥐고, 장작을 패듯 미친 듯이 내려찍습니다.

2. [대검 관통 Lv.68 (12%)] - 대검을 창처럼 쥔 채, 폭발적인 추진력을 바탕으로 앞을 향해 쏘아져 나갑니다.

3. [참살 Lv.62 (11%)] - 생명의 불씨가 얼마 남지 않은 적을 일격에 참살한다.

4. [포효 Lv.60 (14%)] - 광전사의 기합을 내지릅니다. 포효에 공격당한 적은 커다란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5. [광폭화 Lv.40 (12%)] - 일정 시간동안 물리 공격력이 2배 증가합니다.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지속 시간이 증가합니다.)

6. [광폭난무 Lv.25 (55%) - 대검을 쥐고 몸을 회전시켜 전장을 휩쓸어 버립니다.

7. 다음 스킬은 150레벨에 활성화됩니다.

8. [스윙 Lv.67 (19%)] - 적을 검면으로 후려쳐 날려 버립니다.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덩치가 큰 몬스터들도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9. [파이어 볼 Lv.45 (54%)] - 마력으로 이루어진 불꽃을 생성합니다.

10. [세게 치기 Lv.1 (66%)] - 대상을 세게 칩니다.

11. [연속 차기 Lv.1 (66%)] - 빠르게 발을 놀려 대상을 연속으로 타격합니다.

12. [대검 막기 Lv.1 (66%)] - 대검을 들어 적의 공격을 방어합니다.

13. [회심의 일격 Lv.1 (66%)] - 발도 상태를 오래 유지하면 할수록 회심의 일격의 공격력이 증가합니다.

새롭게 얻은 액티브 스킬은 총 4가지.

세게 치기의 경우 배워 두면 무조건 좋은 스킬이었다.

대상을 공격 할 때마다, 세게 치기 스킬이 발동하기에, 기본 공격력이 증가되는 거라고 볼 수 있다.

다음 연속 차기의 경우, 근접전에 용이한 박투술이다.

다음 대검 막기의 경우, 대검을 들어 방어할 때에 발동 된다. 이 스킬의 존재 유무에 따라, 대검을 들고 방어하는 행위에 대한 효력은 급 자체가 다르다.

방어 모션을 취하는 순간 대검 막기가 발동될 것이다.

다음, 회심의 일격. 이 스킬은 쉽게 말해 기를 모아 때린다는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오랫동안 발도 자세를 취하다가 한 번에 공격을 뿜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패시브 스킬도 3개가 추가로 생성된 상태다.

패시브 스킬

1. [절대자의 걸음 - 발을 내딛을 때마다 경험치를 5 획득합니다.]

2. [절대자의 호흡 - 호흡할 때마다 경험치를 5 획득합니다.]

3. [절대자의 성장 - 레벨 200 달성 시 활성화됩니다.]

4. [스피드 - 이동속도가 10% 증가합니다.]

5. [물리 공격력 강화 ? 물리 공격력이 5% 증가합니다.]

6. [근력 증가 ? 근력 스텟이 '10' 증가합니다.]

7. [체력 증가 ? 체력 스텟이 '10' 증가합니다.]

물리 공격력 강화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힘과 체력 증가.

1레벨 업 당 받게 되는 스텟 포인트는 '5'다.

그렇기 때문에 증가 패시브로 보정 받는 '10'이라는 수치는, 무려 2레벨 업을 한 것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

엄청난 양의 스킬이 새로이 생겼다.

인우는 기분이 좋은지 민철을 향해 윽박을 지르지도 않았다.

이윽고 모든 패시브 스킬 볼을 챙긴 일행은 3번째 창고로 들어섰다.

그곳엔 마나 정수가 한가득이었고, 민철은 곧바로 자루에 마나정수를 쓸어 담기 시작했다.

인우까지 자루를 들고 가세했다.

마나정수는 총 5자루가 나왔다.

"이게 얼마냐······."

민철은 낑낑대며 자루를 들면서도 기뻤다.

이윽고 마지막 4번째 창고.

이곳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인우와 민철은 단숨에 그곳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곳엔······.

"월척이다······."

대단한 물건이 보였다.

일전에 인우에게 '파이어 볼'을 습득하게 만들어 주었던 랜덤 스킬 볼.

현존 하는 스킬 볼 중에서 가장 비싼 가격을 자랑하는······.

그 '유니크 스킬 볼'이 떡 하니 보였다.

심지어.

투명한 색상의 유니크 스킬 볼이 2개씩이나 있었다.

옆에 있던 민철도 입을 떡 하고 벌려 버렸다.

"와··· 저게 다 얼마냐······."

유니크 스킬 볼의 경우 평균 가격이 50억이다.

그렇게나 엄청난 스킬 볼이 무려 2개다.

어느덧 인우는 유니크 스킬 볼 2개를 모조리 입안에 쑤셔 넣었다.

바로 옆에선 민철은 인우를 응원했다.

"형님! 대박 스킬 뜨길 기원하겠습니다!!"

꿀꺽-

어느덧 유니크 스킬 볼이 인우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이윽고.

인우는 스킬창을 열어 보았다.

'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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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화 빈틈

그 어떤 스킬이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공짜로 취한 유니크 스킬 볼이다.

그랬기에 인우는 '그냥 대충 아무거나 나와라.' 정도의 바람을 가질 뿐이었다.

한데······.

이건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스킬이 생성됐다.

먼저, 첫 번째 스킬의 경우.

14. [마나 드레인 Lv.1 (6%) ? 적에게 마법 공격을 명중시킬 경우, 일정량의 마나를 흡수합니다. (레벨이 오를수록 흡수량이 높아집니다.)]

광전사이기에 마력이 터무니없이 낮았던 인우다.

그랬기에 '파이어 볼'이 존재하는 인우에게 있어서는 최상의 스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파이어 볼의 경우 마나 소모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우는 마력이 낮아 20회 이상 연속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나 드레인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마나 드레인은, 하위 마법의 경우 거의 무제한으로 난사가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사기적인 스킬이다. 나아가, 마나 드레인은 마법사라고 해도 아무나 배울 수 없는 스킬이였다. 애초에 가격도 무지막지하게 비싼 스킬이기도 했다. 한데, 그러한 엄청난 스킬을 랜덤으로 얻게 된 것이다.

게다가 마나 드레인은 레벨이 오를수록 효율이 증가할 것이다. 어차피 절대자 패시브가 존재하는 인우이기에, 어떠한 스킬도 커버가 가능했다.

"오호······."

운이 좋았다.

그러나 인우의 행운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다음 액티브 스킬의 경우.

15. [기가 라이트닝 Lv.1 (6%)] - 마력의 전기를 응축시켜 발사합니다.

기가 라이트닝.

스킬 명부터 범상치 않다. 파이어 볼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상위 급 마법이다.

다만, 엄청난 양의 마력을 소모하는 스킬이기에, 인우의 경우 1~2회 쏘아내는 것이 한계일 것이다.

제아무리 마나 드레인이 존재한다고 해도 2회 정도 쏘고 나면 마력이 바닥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마나 드레인을 99레벨까지 올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테다.

어느덧 민철이 인우를 향해 물었다.

"형님! 어떤 스킬이 생성됐습니까? 설마 전사 계열 스킬은 아니겠지요?"

"···음."

인우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더니 난데없이 왼손에 기가 라이트닝을 응축시키기 시작했다.

치지지지직-!

인우의 손에서 강렬한 스파크가 튀었다.

민철은 눈을 퉁방울 만하게 뜨며 외쳤다.

"전격 마법입니까!!"

"후우우."

이윽고 인우는 지하 5층 한가운데에 시험 삼아 기가 라이트닝을 쏘아보았다.

치지지지직!

콰아아앙!

마력으로 이루어진 상위급 번개가 건물 바닥을 후려쳤다. 섬광이 번쩍이며 땅이 갈라지고 움푹 파였다.

"허얼······."

민철은 입을 쩍 벌린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한데, 아직 놀라기엔 일렀다.

우드드득-!

그들이 밟고 있는 지하 5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가 라이트닝에 가격 당한 건물이 심상치 않은 기세를 보인 것이다.

인우가 다급히 말했다.

"야. 도망쳐야겠다. 지하 무너질 것 같아."

기가 라이트닝의 레벨은 고작 1이다. 그런데도 이런 무지막지한 위력이라니.

"흐아아아악!"

어차피 이젠 털 것도 없었겠다.

어느덧 민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인우도 대검 관통의 추진력을 이용해 단숨에 앞으로 쏘아져나갔다.

* * *

"···하하하······."

나이트 길드 마스터 백두진은 풀린 동공으로 멍청한 웃음을 내뱉었다.

그러자 옆에 도열해 있던 간부들은 안절부절 못하며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광경을 보라.

빌어먹을 미친곰.

이번에는 지부의 지하를 통째로 무너뜨리고 도망가 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상의 건물은 무사했다.

하지만 사육장이 모조리 털려 버렸다.

놈은······.

사육장의 괴수를 모두 도축하고, 창고에 존재하는 모든 마나정수와 스킬 볼마저 털어갔다.

그것도 모자라 사육시설을 무너뜨린 것이다.

'무서운 놈······.'

간부들은 그런 생각을 하며 연신 백두진의 눈치를 살폈다.

그때.

데굴데굴.

백두진이 서 있는 곳에 빨간색 스킬 볼 하나가 굴러왔다.

끊임없이 구르던 스킬 볼은 백두진의 구둣발에 턱 하고 부딪혔다.

남양주 지부가 박살나고 남은 것은 이것 하나인가.

이윽고 백두진은 스킬 볼을 집어 들었다.

한데, 스킬 볼에는 쪽지가 하나 붙어 있었다.

-나이트 길드 대가리 보아라. 주머니가 가득 차서 하나 남겨 두고 간다. 나중에 다시 돌려줘라. 경고했다.

ps. 아 사육장 부숴 버린 건 미안하다. 이걸 남겨 둬야 니들이 또 사육해 둔 걸 털러 올 수 있는 건데, 뭐 좀 시험해 보느라고 이 지경이 되어 버렸네. 참, 일산 지부에도 거대 사육장이 있다며?

뚝.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한 가닥 인내가 끊겼다.

이윽고 백두진의 손바닥 안에 놓인 스킬 볼은 단숨에 녹아 없어지기 시작했다.

스으으으윽-

새카만 연기가 나며 흔적조차 없이 녹아버렸다.

간부들이 백두진을 불렀다.

"마스터··· 괜찮으십니까?"

그러나 백두진은 답이 없었다.

그저 고개를 치켜들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되짚어 보았다.

박해성 파티 전멸. 용작두. 강원도 지부 박살. 이성진 척살대 전멸. 남양주 지부 박살.

"······."

단 한 놈이다.

빌어먹을 단 한 놈이 이 짓을 벌였다.

그랬기에 더 열 받는다.

길드 대 길드의 전쟁이었다면 수긍이라도 했을 것이다.

"미친곰······."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명백한 현실이다.

이윽고 백두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반드시 너를 잡아 갈기갈기 찢어서 몬스터의 밥으로 내던져 줄 것이다!! 으아아아!!"

백두진은 성대가 찢어져라 악을 내질렀다.

그렇게 한참을 소리쳤다.

간신히 정신을 갓 잡은 그가 간부들을 향해 명령했다.

"현시간부로 나이트 길드는 대 전시상황에 돌입한다. 사냥터에 있는 모든 길드원들을 소집한다. 그리고, 핵심 지부를 방어한다. 목표는, 미친곰의 척살이 아닌 지부 방어다."

어쩔 수 없었다. 사냥터에 있는 모든 길드원을 소집하면 도합 6천 이상의 길드원들이 모일 것이다.

그 모든 병력을 각 지부의 방어를 위해 투입시킬 것이다. 또한, 놈은 일산 지부를 눈독 들이고 있다.

다만 이상한 것은, 쪽지에 일산을 노리겠다고 적어 놓았다는 것이다.

대놓고 남겼을 리 없다. 불안감이 가중된다. 이번에도 함정일까?

갈피조차 잡을 수 없다.

이미 백두진의 정신은 갈갈이 찢겨 붕괴된 상태였다.

다만 확실한 것은, 방어해야만 한다.

'제기랄! 미친곰 한 놈 때문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꼴이라니!!'

이윽고 백두진이 고래고래 악을 내질렀다.

"목표는 방어다! 또 다시 놈이 처 들어온다면, 해당 지부는 기필코 방어한다! 그리고, 병력이 충원될 때까지 무조건 방어하면서 버틴다!"

백두진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쥐새끼 같은 놈. 어디 한 번 갈 때까지 가보자!'

"기필코 방어한다! 이상!"

이윽고 백두진은 모든 간부를 물렀다.

고요해진 로비.

이윽고 백두진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을 향해 속삭이고 있었다.

"이대로 무너지진 않을 겁니다."

-클클클.

괴기스러운 웃음소리가 답하고 있었다.

* * *

강원도 거주지에 도착한 인우와 민철.

그들은 모든 전리품을 주택 창고에 쑤셔 넣었다.

인우가 말했다.

"당분간은 전리품을 처분하면 안 돼. 꼬리가 밟힐 테니까."

"예. 옳으신 말씀입니다. 한데, 형님. 이번에도 또 지부를 털러 갈 겁니까? 사육장이 존재하는 지부는 또 있잖습니까."

민철은 오늘 엄청난 레벨 업을 했다. 그래서일까? 은근히 바라는 어조로 묻고 있었다.

그러나 인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당분간은 안 돼."

"예?"

민철이 의문을 표했다. 그러자 인우가 물었다.

"니가 나이트 길드 대가리라면, 이 지경이 될 정도로 털렸는데 어떤 대책을 내놓겠냐?"

"···음. 글쎄요?"

"지부가 두 개 박살났다. 당연한 말이지만, 놈들은 더 이상 지부가 박살나길 원치 않을 거야."

"오호. 그렇죠."

"그렇다면 어떤 행동을 취하겠냐? 당연히 지부를 최대한 방어하려고 용을 쓰겠지. 단단히 쫄아서 거북이처럼 목과 팔다리를 숨길 거란 말이야."

확실히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무엇이 되었건 놈들은 어쩔 수 없이 사력을 다해 방어 병력을 늘릴 것이다.

다시금 인우가 말했다.

"이럴 때는 그냥 지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게 내비 두는 거야. 잔뜩 긴장한 채로 심력은 심력대로 소비하겠지."

"오! 형님??"

민철은 감탄했다.

"하지만 정작 난 움직이지 않을 거고. 내가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수록, 애타는 건 놈들이야. 놈들은 똥 참는 것 보다 더 찝찝하고 힘들어지겠지. 전세는 이미 기울었다. 이제, 한 방을 노리는 거다."

한 방이라고 말하는 인우가 씨익 웃고 있었다.

민철은 이제 인우를 완벽히 신격화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진정 단신으로 거대 길드를 압박했으며, 나아가 가지고 놀고 있었다. 어느 누가 이럴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인우가 말한 그 한 방이 도대체 무얼까?

궁금증을 참지 못한 민철이 물었다.

"형님 도대체 그 한 방이 무엇입니까?"

"독이 오를 대로 오른 놈들을 박살내려면, 웬만한 한 방으론 어림도 없을 거야. 민철아. 붉은 성수 챙겨라. 사냥터로 간다."

* * *

인우와 민철은 강원도 사냥터에 진입했다.

사냥터는 완벽한 빈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나이트 길드원들을 찾아볼 순 없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놈들은 이미 지부 방어를 위해 모조리 소집된 상태였으니까.

이 모든 것을 예상했던 인우는 여유롭게 용작두를 치켜들고 사냥터에 진입한 상태였다.

심지어 인우는 곰 인형 탈을 벗지도 않은 상태였다.

마찬가지로 곰 인형 탈을 입고 있는 민철이 말했다.

"와 형님. 정말 조용하네요."

민철은 대검을 등허리에 매단 채로 양손에는 말통 두 개를 들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민철은 여전히 의문이었다.

인우는 도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 사냥터에 진입한 것일까?

둘은 말없이 걸었다. 민철은 인우를 완벽히 믿었기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렇게 1존을 넘어 2존. 그리고 9존에 다다랐을 때였다.

민철이 주춤하며 물었다.

"혀, 형님. 설마 더 진입하려는 건 아니죠?"

설마 싶은 민철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고 있었다.

한데, 생각해 보면 인우는 왜 붉은 성수를 챙기라고 했을까?

붉은 성수는 말리오의 독을 막을 수 있는 방어수단이다.

이 방어수단을 챙기라는 이유는 역시······.

"따라와."

인우는 10존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민철은 울상을 지으면서도 인우를 따랐다.

그리고 10존에 닿았을 때, 인우는 민철에게 명했다.

"한 통은 너한테 붓고, 다른 한 통은 나한테 부어."

10존을 가로지르기 위해선 곰 인형 탈에 붉은 성수를 잔뜩 묻히는 수밖에 없다.

"목표는 10존이 아니다 민철아."

인우는 헬게이트의 깊숙한 곳까지 진입할 생각이었다.

10존 이상의 영역은 지구인에겐 미지의 세계다.

그리고, 그곳에 인우가 필요로 하는 괴수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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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화 전면전 (1) <기존 무료 분량입니다.>

일전에 인우는 말리오를 포획하기 위해 10존에 진입했었다.

10존은 헬게이트와 상당히 근접해 있었다.

이곳에 들어서면 헬게이트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였다.

물론 거리는 상당히 먼 편이다.

육안으로 간신히 헬게이트를 확인할 수 있달까.

딱 이정도까지가 초인들이 개척해 낸 구역이었다.

인류가 10존 너머의 구역을 개척해내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10존의 괴수부터는 특별한 속성을 지닌 녀석들이 많기에,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시피 했다.

물론, 무리를 해서라도 진입은 가능했다. 하지만 그것은 개척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현재 인우는 붉은 성수의 노하우를 이용해 10존을 돌파한 상태였다.

"형님...경계를 넘었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 초인들이 수두룩한 건 아시죠?"

이미 10존의 경계를 넘었다.

이곳부터는 정식 명칭조차도 없다. 그저 미개척지대일뿐.

민철은 부들부들 떨며 인우의 곰인형 꼬리를 붙들고 있었다.

"형님..."

"금방 끝날 거다."

"정말 괜찮은 거죠? 도대체 뭐가 필요해서 저기까지 가시는 겁니까?"

민철은 궁금했다.

인우는 나이트 길드가 지부를 방어하는 동안 그 혼란을 틈타 사냥터로 진입했다.

그리고 나이트 길드를 쓸어 버리기 위해 인우는 큰 거 한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형 길드를 한 방에 쓰러트릴 만한 무시무시한 것이라니.....

민철로서는 상상 자체가 불가능했다.

생각도 잠시.

"여기서 잠깐 기다려.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가야겠다."

"저 혼자 두고 어딜 가신단 말입니까!"

"그럼 따라오든가. 대신 너는 골로 가는 수가 있어."

"아니 형님. 그럼 애초에 왜 저를 여기까지 데리고 오신 겁니까. 무섭습니다!"

"가지가지 한다. 사내놈이."

그 말을 끝으로 인우는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다.

홀로 남은 민철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굴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현재 민철이 있는 곳에는 괴수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기사, 인우가 민철을 죽게 내버려둘 리 없다.

"끄응..."

현재 밟고 있는 이곳은 마치 안전지대 같았다.

저승으로 가기 전 건너야 하는 요단강처럼,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 * *

얼마나 기다렸을까?

1분이 1시간 같았다. 그만큼 두려웠다. 저만치 앞에서 드문드문 인우의 포효소리가 들렸다.

"형님...제발 살아 돌아오세요. 형님이 안 돌아오시면 전 여기서 꿈쩍도 하지 못하고 굶어죽을지도 몰라요. 형님 제발!"

민철은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었다.

쾅! 쾅! 쾅!

땅이 진동하고 다시금 포효소리가 들려온다. 도대체 얼마나 무지막지한 놈을 잡고 있기에 이처럼 요란하단 말인가!

하기사 이곳에 존재하는 괴수는 보통 놈이 아닐 테다.

이곳이 미개척지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존재할 테니까.

푸스스스슥-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에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이윽고 민철이 중얼거렸다.

"후우... 뭐지? 끝난 건가?"

민철은 흙먼지 사이를 샅샅이 훑었다.

이곳의 풍경 또한 인류의 과거가 녹아든 도심의 형태.

이곳저곳에 건물들이 즐비해 있다.

여러 간판과 건물. 그리고 구식 자동차와 오토바이들이 보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민철의 눈동자가 바로 지척에 놓인 3층 건물에 박힌 듯 꽂혔다.

"...어어?"

그곳 3층 건물 창문에서 누군가가 민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미개척지대에 사람이라니?

순간 등허리를 타고 정수리까지 소름이 오도도 돋아났다.

너무 놀라면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달까?

민철은 눈조차 깜빡이지 못하며 그곳을 응시했다.

"귀...신?"

그것은 사람 형체가 분명했다. 보라색 머리카락의 젊은 여자.

그 여자는 마치 민철의 얼굴을 기억이라도 해두겠다는 듯이 또렷한 시선이었다.

"허얼..."

어느덧 그 여자는 창문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하아...!"

착각인가 싶은 순간, 여자가 사라졌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민철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붉은 성수로 인해 인형 탈이 철벅거렸다.

엉덩이에는 흙먼지가 잔뜩 들러붙었다.

저벅 저벅-

그때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또 뭐란 말인가!

민철은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거기 앉아서 뭐하냐?"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인우였다.

그제야 민철은 눈 녹듯 긴장이 풀려왔다.

살았다.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형님이 있다면 그 어떤 상황도 위험거리가 되지 못할 것이다.

떨리는 가슴은 금세 진정되었다.

"아 형님, 보고 싶었습니다! 형님이 안 계신 동안 귀신을 봤을 정도였다니까요! 머리 색깔도 보라색이고, 뭔가 제가 홀린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민철은 검지로 앞에 있는 건물을 가리켰다.

그에 인우는 녀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그러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여기 한 번 더 와봐야겠네. 일단 그건 됐고. 복귀하자."

"예? 복귀요? 괴수는요? 포획하신 겁니까?"

"응."

그러면서 인우는 도톰해진 배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민철은 인우가 이처럼 조심스러운 손길로 무언가를 만지는 것은 처음 보았다.

그랬기에 절로 긴장하며 침을 꼴깍 삼켰다.

"..."

인우의 손에는 주먹만 한 백색의 덩어리가 들려 있었다. 덩어리는 마치 성게처럼 가시가 돋아 있었다.

민철은 눈을 꿈뻑거리며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인우가 말했다.

"인류가 10존을 넘어설 수 없었던 두 번째 이유지. 메가붐이라는 괴수다."

"그게 도대체 뭡니까?"

메가붐.

미개척지대를 지뢰밭으로 만든 괴수.

10존 이후의 지역이 미지의 세계로 남을 수밖에 없던 이유.

그것은 바로 메가붐 때문이었다.

메가붐은 땅 속에 숨어사는 괴수다. 애초에 발견은 고사하고, 밟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만약 밟게 되면 강력한 마력을 뿜어내며 터지는 괴수다.

말 그대로 괴수계의 폭탄이라고 보면 된다.

메가붐이 터지게 되면 반경 3M내의 생명체는 모조리 즉살당한다. 그것은 초인이라 해도 예외는 없었다. 말리오의 맹독보다 무서운 폭탄이다.

현대무기인 수류탄이 터져도 살아남는 초인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메가붐의 위력이 얼마나 무지막지한지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인우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손길로 메가붐을 배주머니에 넣었다.

"세 마리를 생포해왔어. 이걸로 나이트 길드의 대가리를 죽일 거다."

"대체 그 조그마한 게 뭐길래요?"

"두고 보면 알아. 모든 준비는 끝났어. 이제 나이트 길드의 본부로 간다."

"네에...? 저도 말입니까?"

"내키지 않으면 나 혼자가고. 본부에는 좋은 게 있지 않을까?"

좋은 것.

그 한마디에 민철은 다급히 소리쳤다.

"가, 같이! 저도 가겠습니다 형님!"

인우를 쫓아다니다가 손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민철은 이번에도 인우를 믿기로 했다.

* * *

나이트 길드 본부.

백두진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로부터 벌써 하루가 지났다.

그는 6천의 길드원들을 전국 각지 9개 지부에 투입했다. 이 정도의 인원이라면 필시 놈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친곰은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중이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길드원들이 사냥을 하지 않으니 수익은 멈췄다. 한데 그렇다고 길드원들을 다시금 사냥터로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길드원들을 다시금 사냥터로 보내면, 분명 약해진 지부를 비집고 미친곰이 처들어올 것 같았다.

"빌어먹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놈의 정체라도 파악했다면 선공을 취하겠지만, 그것마저도 불가능하다. 백두진은 놈이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똑 똑 똑!

그때였다.

다급한 노크가 들려왔다.

"들어와라."

무슨 보고이길래 저리도 다급할까?

어느덧 마스터룸을 비집고 간부 한명이 헐레벌떡 들어서고 있었다.

"마, 마스터! 미, 미친곰이 처들어왔습니다!"

"뭐라?"

백두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지방에 있는 지부도 아니고 이곳 본부에 쳐들어왔다고?

도대체 머리통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 녀석이란 말인가?

겁이라는 게 존재는 할까?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곳은 나이트 길드의 본부다.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놈이 아니고서야!

"네놈의 그 오만함이 죽음을 앞당길 것이다. 산채로 포를 뜨듯 천천히 죽여 주마."

이윽고 백두진은 으득 하고 어금니를 깨물었다. 결코 곱게 죽이지 않을 것이다.

* * *

나이트 길드 본부.

로비에 미친곰 두 마리가 들어서 있었다.

그중, 용작두를 들고 있는 미친곰은 거대한 빨간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망토를 두른 미친곰. 바로 정인우였다.

인우는 하품을 쩌억 내뱉으며 로비 중앙에 드러누웠다.

타다다닥-!

얼마 지나지 않아 본부에 있던 나이트 길드원들이 로비를 빼곡히 메웠다.

얼추 보기에도 수백 명이다.

옆에 있던 민철이 인우를 향해 속삭였다.

"혀, 형님...지금이라도 도망칠까요?"

그러나 인우는 답이 없었다.

그저 가만히 누운 채로 점차 몰려드는 적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적들은 쉽사리 인우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 미친곰은 무력을 떠나서, 보통 영악한 게 아니라고 했다. 잔꾀를 부리는 수준이 매우 높다고 했다.

게다가 가진 바 무력도 랭커란다.

"..."

그래서일까? 인우는 가만히 누워 있음에도, 지레 겁먹은 적들은 함부로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처억-

어느덧 인우가 손을 들었다.

"히익!"

그러자 모여 있던 수백의 나이트 길드원들이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개중에는 심지어 엉덩방아를 찧는 놈까지 존재했다.

그러나...

"하아아암."

인우는 하품을 내뱉으며 치겨 올린 손을 이용해 허벅지를 벅벅 긁기 시작했다.

"..."

그 여유롭기 그지없는 태도에 적들은 저마다 주먹을 움켜쥐었다.

겨우 허벅지를 긁는 모션에 지레 겁먹고 엉덩방아까지 찧었으니 얼마나 쪽팔리겠는가.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가만히 있었다.

그러길 잠시.

이윽고 인우가 말했다.

"야. 니네 대가리는 언제 오냐? 이 굼뜬 새끼. 내가 왔는데 마중이 왜 이리 느려. 얼마나 쳐 맞아야 정신을 차릴라고."

그러자 로비 위의 2층 난간에서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바로 나다. 미친곰."

그에 인우는 힐끔 위쪽을 바라보았다.

터벅 터벅-

붉은 머리를 한 거구의 사내가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바로 백두진이었다.

"미친곰. 제 무덤을 알아서 팠구나."

"아. 대가리냐? 한참 기다렸잖아."

자리에서 일어선 인우가 엉덩이를 탈탈 털었다.

그러자 백두진은 주변에 있던 길드원에게 명령했다.

"셔터 내려라. 그 누구도 이 건물을 들어설 수도, 또한 빠져나갈 수도 없게."

"예. 마스터!"

이윽고 셔터가 내려갔다.

그러자 백두진은 3명의 간부를 끌고 인우를 향해 다가왔다.

3명의 간부. 그리고 700명가량의 병력.

그리고 마스터 백두진.

사상초유의 병력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곳이 바로 나이트 길드의 본부였다.

미친곰은 결단코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없을 것이다.

백두진이 눈길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이윽고 백두진은 인우의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그러자 인우가 난데없이 망토를 활짝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망토 안쪽에는 선물상자 안에 포장된 박스 3개가 나타났다.

"야. 이게 뭔지 아냐?"

"무슨 개수작이지?"

"내가 뭔지 알려 줄게. 일단 하나 받아 봐."

그러더니 인우가 망토 안쪽에 붙여 놓은 선물박스를 하나를 떼어 백두진을 향해 내던졌다.

후웅-

백두진은 그것을 허공중에서 낚아챘다.

백두진이 말했다.

"장난하자는 건가?"

한데 인우는 그런 백두진을 보며 손가락을 하나씩 굽히기 시작했다.

"하나. 두울. 세엣. 펑!"

퍼어어엉-!!!

인우의 카운터가 끝나자 강력한 폭발음이 번졌다.

실로 무지막지한 굉음에 모든 이들은 귀를 틀어막았다.

이윽고 백두진이 있던 자리에 새카만 연기가 피어올랐다.

푸스스스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연기가 가라앉아 갔다.

그리고 그 자리엔...

새빨간 고깃덩어리들이 가득했다.

그 광경에 모두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민철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혀, 형님...설마 저 고깃덩이가 나이트 길드 마스터입니까?"

두 눈으로 목격하고도 믿을 수 없었다.

나이트 길드의 마스터가 누구인가.

대형 길드의 수장을 맡고 있는 초인이다.

한데, 그런 백두진이 제대로 손조차 써보지 못하고 터져 나갔다.

인우는 단지 박스를 집어 던지는 것만으로, 나이트 길드장을 없애 버린 것이었다.

실로 믿기 힘든, 믿을 수도 없는 현실이었다.

어느 누가 있어, 이런 단순한 손짓으로 나이트 길드장을 지워 버릴 수 있겠는가.

삽시간에 장내가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으아아아아악!!"

수장을 잃은 나이트 길드원들 사이로 엄청난 혼란이 이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백두진이 위치해 있던 자리, 뒤편의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그리고 그 일그러진 공간을 비집고 검정색 후드를 뒤집어쓴 인영이 걸어 나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인우의 눈동자가 점차 크게 뜨이기 시작했다.

터벅- 터벅-

2미터는 가볍게 넘어가는 거대한 덩치.

흉기나 다름없어 보이는 기다란 손톱.

-큭.

쇠와 쇠가 긁히듯 거북한 웃음소리.

이윽고 정체불명의 괴인이 거대한 후드를 벗기 시작했다.

-아주 재밌는 걸 들고 다니는구나.

"..."

인우의 눈동자가 더없이 진지하게 가라앉았다.

후드를 벗은 괴인의 얼굴은, 밤처럼 새카만 칠흑의 빛깔이었다.

인우의 옆에 있던 민철이 주춤거렸다.

그리고 민철의 입에서 바들바들 떨리는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브, 블랙오크...??"

< 045화 전면전 (2) <유료 시작 회차입니다.> >

정인우.

그는 프로킨의 황제였다.

그런 그가 알지 못하는 괴수는 없었다.

한데, 이 지구에서 새로운 괴수와 마주쳤다.

인우는 녀석을 또렷이 바라보았다.

"······."

인간과 오크의 이종교배로 태어난 저주 받은 괴수.

중국이라는 땅덩어리를 점령한 괴수.

저 녀석은 바로 블랙오크였다.

놈은 분명히 허공에서 튀어나왔다. 도대체 어떠한 특성을 지닌 것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인우는 실로 오랜만에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다시금 블랙오크가 입을 열었다.

"메가붐이라. 재미난 장난감을 가져왔군."

여전히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저 블랙오크는 어느 정도의 무력을 지녔을까?

게다가 녀석은 메가붐에 대해서 알고 있다.

예사 놈이 아니다.

'메가붐을 알고 있어?'

인우의 눈에 경계의 빛이 날카로워졌다.

블랙오크는 메가붐을 알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위력에서도 긴장감이 보이지 않았다. 대체 저 느긋함은 뭐란 말인가? 메가붐을 막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인가?

인우가 말했다.

"오크 나부랭이가 사람 말을 내뱉으니 영 적응이 안 되는데."

"가소로운 놈. 그 말버릇부터 고쳐 줘야겠구나."

"니 새끼 얼굴을 보니 말이 곱게 튀어나오질 않는다."

인우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물론 곰 인형 탈을 뒤집어쓰고 있었기에, 찌푸린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인우의 이죽거림에도 블랙오크는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강자의 여유일까?

다시금 블랙오크가 말했다.

"단신으로 나이트 길드를 궁지로 몰아넣다니. 솔직히 인정해 줄 만한 실력이다. 나는 네놈을 높게 평가한다. 그러니 제안을 하나 하지. 내 밑으로 들어와라."

"그렇군, 바로 네놈들이었구나."

인우는 답 대신 다른 말을 내뱉었다.

비로소 일련의 상황들이 이해되었다.

리빙아머. 인체실험. 데스나이트 가공.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저놈, 블랙오크의 짓이었다. 저놈이 나이트 길드를 아래에 두고 인체실험을 진행한 것이 분명했다.

"데스나이트를 가공해서 세계정복이라도 꿈꿨던 거냐? 감히 일개 몬스터 따위가?"

"이놈······ 필요 이상으로 말이 너무 많구나."

"허, 맞나 보네? 이 새끼들 미쳤구나? 정복? 꿈도 꾸지 마라."

"정녕 죽음을 맞아야만 그 입을 막을 수 있겠구나."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니까짓게? 나를?"

인우가 고민 없이 용작두를 치켜들었다.

한데 블랙오크는 그 용작두의 기세를 보고도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어리석은 것. 그 잘못된 판단으로 네놈은 죽을 것이다."

순간, 블랙오크의 신형이 단숨에 꺼졌다. 인우의 동체시력으로도 쫓지 못한 기민한 움직임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찰나의 순간에 꺼졌던 블랙오크가 인우의 코앞에서 나타났다.

"헛!"

하반신으로부터 느껴지는 그것은 거대한 살기였다.

그에 맞서 인우는 내리치려던 용작두를 그대로 직선으로 내리꽂았다.

카앙-!

인우의 용작두와 블랙오크의 손톱이 맞부딪쳤다.

튕겨 나오는 용작두를 붙든 손에 묵직한 반탄력이 전해졌다.

'분명 뭔가 다르다. 이놈의 등급은 얼마나 되는 거지?'

인우는 한 차례 블랙오크와 맞부딪친 전적이 있었다.

당시 박강중의 말에 따르면 놈은 하급이라고 했었다.

한데, 이 블랙오크는 그때 그놈과는 차원이 달랐다.

비교도 안 되는 강한 힘과 더불어 인간과 흡사한 모습, 그리고 인간의 지능까지.

한 차례 공방이 끝난 뒤 둘은 서로를 노려봤다.

나이트 길드원들은 주춤거리며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블랙오크가 근처에 있던 나이트 길드의 간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 정도라면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너희들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순간 명령을 받은 간부는 머뭇거렸다.

뭔지 모르는 능력으로, 자신들의 마스터를 비롯해 수많은 길드원들을 학살한 미친곰이었다.

그리고 그는 최대한 손실을 줄여야 했다. 그래야 길드 마스터의 공백을 메울 수 있었기에.

그렇기에 잠시 망설인 그 순간.

휙- 서걱-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저 녀석을 처리해. 망설이는 놈은 내 손에 죽는다."

간부가 머뭇거린 그 찰나의 순간.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 블랙오크의 손에 의해 간부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모, 모두 공격해!"

그 모습에 질겁한 또 다른 간부가 길드원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나이트 길드원들은 공포에 질려 공격을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아!"

"죽이자!!"

놈들이 로비를 가로질러 인우와 민철에게로 내달려왔다. 조금 전만 해도 바짝 쫄아 있던 놈들이 개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그들의 마스터는 이미 죽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블랙오크가 나타나더니 미친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길드원 중 고위급들은 이미 인체실험이나 블랙오크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하위급들은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기에 당황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지금 미친곰을 공격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목숨은 블랙오크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게 분명하다.

"쳇, 뒤지기 싫으면 정신 바짝 차려라!"

"예, 형님!!"

인우의 말에 대답한 민철도 강철대검을 빼 들었다.

원래 인우의 계획대로라면, 이런 사태는 없을 것이었다.

메가붐을 이용해 마스터를 단번에 죽여 버리면, 나이트 길드원들은 혼란으로 사분오열될 것이었다. 그리되면 나머지 잡놈들만 처리하면 되는 그야말로 단순하지만 확실한 계획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블랙오크의 등장으로 모든 게 반전되었다.

민철은 강철 대검을 빼 들고 이를 악물었다.

현재 민철의 레벨은 43.

결코 낮은 레벨은 아니다.

민철은 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이것은 장난이 아니다. 인우마저 이를 악물며 외치고 있었다.

인우는 언제나 여유로운 인간이었다. 그러한 인간이 궁지에 몰릴 만한 상황이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야아아아압! 난 아직 해 보고 싶은 게 많다고! 이대론 못 죽는다!"

민철은 기합을 내지르며 대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수백 대 2의 싸움이다.

나아가, 블랙오크까지 존재한다.

다수의 적을 상대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빨 게 없어서 블랙오크를 빨아? 이 미친 새끼들! 곱게는 안 죽인다!"

열이 뻗쳤다. 이 얼마나 멍청한 족속들인가.

한낱 괴수의 지시로 같은 인간에게 칼을 들이밀어?

어느덧 인우는 망토를 벗어 버렸다.

그 뒤, 망토에 붙어 있는 2개의 메가붐을 손에 쥐었다.

잠시 뒤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수십 명의 적들이 찢겨나갔다.

이제 메가붐은 다 썼다.

인우는 즉시 민철을 향해 소리쳤다.

"야! 계단 위로 올라가! 둘러싸이면 답 없다!"

민철은 대답할 틈조차 없었다.

그저 허겁지겁 인우의 말대로 계단으로 달려갔다. 확실히 좁은 계단으로 이동하면 놈들이 한번에 달려들진 못할 거다.

게다가 계단은 메가붐으로 인해 절반 정도는 날아가 있는 상태였다. 저곳으로 올라가면 적들이 몰려오는 것을 위에서 찍어내릴 수 있었다.

마치 공성전 중, 성벽에서 방어를 하듯이 말이다.

민철은 달렸다.

그러던 중 민철은 크게 놀라고 말았다.

자신과 같이 계단에서 나이트 길드원들을 막아 낼 줄 알았던 인우가, 홀로 남아서 나이트 길드원들을 상대했던 것이다.

"형님!"

"내가 이깟 놈들한테 당할 것 같냐! 니 걱정이나 해!"

그러면서 인우는 용작두를 세게 휘둘렀다.

쐐애애액-!

그럴 때마다 세게 치기 스킬이 발동됐다. 이 스킬로 인해 인우의 기본 공격력 자체가 높아진다.

써걱-!

용작두 날에 가격 당한 나이트 길드원들의 머리통이 휙휙 날아갔다.

"이야아아아압!"

어느덧 뒤편에서 한 놈이 인우를 덮쳐 왔다.

"어딜!"

그에 인우는 연속 차기를 날려 놈의 접근을 막았다.

"이야아! 죽어라 미친곰!"

또다시 뒤.

하나, 그놈만이 아니었다. 한 놈을 베면, 또 다른 놈이 그 자리를 메우고, 그 뒤편이고 옆이고 할 것 없이 나이트 길드원들이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정신을 가다듬을 여유 따윈 존재치 않는다.

인우는 왼손에 파이어 볼을 만들어 냈다.

화르륵-!

그 뒤 다가오는 놈의 면상을 향해 화염구를 쏘아 버렸다.

"크아아아악!"

무려 50레벨이 넘어가는 파이어 볼이었다.

그 위력은 일개 파이어 볼이라고 얕잡아 볼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파이어 볼에 엊어맞은 놈이 얼굴을 부여잡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인우는 쉴 새 없이 파이어 볼을 만들어 냈다. 그리곤 곧바로 쏘아 냈다.

화르륵-!

"크아아악!"

개떼처럼 사방팔방에 몰려 있던 나이트 길드원들이다. 대충 내던져도 월척이 걸렸다.

또한, 파이어 볼을 적중시킬 때마다 19레벨의 마나 드레인이 인우의 마력을 회복시켜 주었다.

이 정도의 회복력이라면 파이어 볼 정도는 아낌없이 쓸 수 있었다.

"흐아아아압!"

어느덧 인우는 다시금 포효했다.

적들의 고막을 강타하는 포효. 레벨이 낮은 적들은 단숨에 두려움을 느끼곤 주춤댔다.

"으라차차!"

그리고 그 찰나의 시간.

인우의 용작두가 사정없이 놈들을 잘라 냈다.

써걱!

그와 동시에 손톱이 치고 들어왔다.

"클클!"

바로 블랙오크의 손톱이었다. 놈은 절묘한 순간에는 빠짐없이 치명상을 노리고 인우를 압박했다.

"젠장!"

그러자 인우는 대검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카앙-!

그러자 대검 막기 스킬이 발동하며 놈들의 공격은 단숨에 가로막혔다.

"크아아압!"

거침없이 계속되는 공격에, 인우가 크게 포효했다. 그러고는 가슴팍 가까이 대검을 가져다 붙였다.

카카카카카캉!

그러자 거짓말처럼 모든 공격들이 대검에 맞부딪쳐 튕겨나갔다.

대검 막기 스킬이 발동하며 수십의 공격들을 단숨에 막아 냈던 것이다.

'광폭화는 아직이다!'

아직 블랙오크 놈이 남아 있다.

그렇기에 아껴 두어야 한다.

전투를 하면서도 인우는 블랙오크의 위치를 추적했다.

광폭화는 순식간에 공격력을 2배로 띄워준다. 그러나 한번 사용하면 한참이나 후에 다시금 사용할 수 있었다.

놈과 본격적인 일대일 대결을 벌일 때에 써야만 했다.

"으아아아아!"

이내 인우는 손바닥에 기가 라이트닝을 응축시켰다.

치지지지지직-!

그 이름에 걸맞는 극강의 전격 마법. 많이 써 봐야 두 방이다.

"오호?"

심상치 않았던 것일까? 감탄사를 내뱉은 블랙오크가 또다시 공간을 짓이겼다.

어느덧 기가 라이트닝이 수백의 나이트 길드원들에게 쏟아졌다.

콰지지지지직-!

"크아아아악!"

응축된 번개가 적들의 정수리에 사정없이 꽂혔다.

적중당한 나이트 길드원들이 비명을 쏟아 내며 통구이처럼 새카맣게 타 버렸다.

"커어억!"

"으기기긱!!!"

삽시간에 50명 이상의 적들이 쓰러졌다.

인우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들어와, 새끼들아!"

인우는 용작두를 치켜들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광전사의 각성 스킬.

광폭난무였다.

* * *

"허억. 허억."

"끄윽. 형님."

인우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민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곰 인형 탈은 다 찢어져 몰골이 엉망이었다.

로비에는 적들의 시체가 한가득이었다.

인우가 물었다.

"괜찮냐?"

"허억, 허억 네, 네!!"

민철은 정말로 잘 싸워 주었다.

인우와 함께 싸운 덕에 수월했던 것도 있었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나이트 길드원과의 싸움에서도 잘 버텨 주었다.

"새끼야. 어금니 꽉 물고 있어라. 그 정도 상처론 안 죽으니까."

"···하하. 저 끄떡없습니다. 형님."

녀석은 피를 제법 많이 쏟았는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대화도 잠시.

"클클클클."

다시금 허공이 갈라지며 듣기 싫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블랙오크의 웃음소리였다.

놈이 갈라진 틈 사이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인우는 그 꼴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게이트 마법의 일종일까?

쉬이 짐작되지 않았다.

인우가 놈을 쏘아보며 말했다.

"이 변종괴수 놈. 중국산이라 그런지 더럽게 질척대네."

놈은 하나도 지쳐 있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다.

인우는 수백 대 일로 싸웠지만, 녀석은 수백 가운데에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놈이 느긋하게 인우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크크큭. 고작 이걸로 지친 거냐? 내가 너무 과대평가했나 보군."

"하아, 하아, 하아,"

인우는 지쳐있었다.

인우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자 블랙오크가 비웃었다.

"하아, 하아, 엿이나 먹어라. 하아."

인우는 가운데 손가락으로 들어올리며 헥헥거렸다.

"여전히 입만 살았군. 이만 끝내도록 하지."

말을 마친 블랙오크가 쇄도해 들어왔다.

인우는 재빨리 몸을 돌려 놈의 공격권으로부터 피해 냈다.

블랙오크가 그런 인우를 뒤쫓았다.

"도망친다고 될 줄 아냐!"

쾅. 쾅.

블랙오크의 공격이 재차 인우에게 쏟아졌다.

하나, 인우는 지금까지 체력을 쏟아 부은 게 너무 컸다.

"방어를 할 기력도 안 남은 모양이구나. 클클클."

"학, 학, 시끄럽다. 돼지 머리."

인우의 숨결은 가빴다.

"어디 이것도 피해 보거라."

한껏 오만함을 담은 말을 뱉고서 블랙오크가 사라졌다.

그리고 놈과 처음 마주쳤던 것 같이 눈앞의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불쑥 오크 놈이 면전에서 나타났다.

한데, 그때였다.

인우는 더 이상 피하지 않았다.

블랙오크의 손톱이 파고드는 그 순간, 인우는 대검막기를 펼쳤다.

쾅!

그와 동시, 인우가 광폭화를 시전했다.

"흐아아아압!"

인우의 몸 주위로 새빨간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물리 공격력은 단숨에 2배로 뛰어올랐다.

이를 으득 깨문 인우가 블랙오크를 머리통에 대고 대검관통을 시전했다.

쐐애애애액-!

지쳤을 때의 관통과는 질적으로 다른, 위협적이기 그지없는 관통이었다.

"허억!"

블랙오크가 헛숨을 들이키며 허겁지겁 손톱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콰쾅!

잔뜩 당황한 블랙오크가 소리쳤다.

"놈! 필시 지쳐있었을 텐데! 갑자기 강해지다니! 무슨 짓을 한 거냐!"

그러자 인우가 씨익 웃으며 답했다.

"레벨 업 했다, 새끼야."

< 045화 전면전 (2) <유료 시작 회차입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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