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novel

15

=======================================

216화 발악 (9)

장관이다.

바닥에 깔렸던 뼈다귀들이 일제히 일어선다. 널따란 1층 홀에는 황금 해골들이 끝도 없이 포진되어 있었다.

-크르으으으!

덜그럭 소리를 내며 황금 해골들이 쏟아져 왔다.

족히 500마리는 되어 보인다.

그나마 다행인 건 놈들이 무기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거였다.

"이거 잘못하다간 골로 간다."

인우의 얼굴은 더없이 신중해 보였다.

능력치가 제아무리 높아졌다 한들 저렇게 많은 숫자와 전투하면 지칠 수밖에 없었다.

내려찍기와 대검관통이라도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스킬은 쥐뿔도 없다.

-카아아아아!

녀석들이 인우 하나만을 바라보며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인우도 기합을 내지르며 놈들을 향해 질주했다.

선두에 서 있던 황금 해골의 안면에 있는 힘껏 망치를 꽂아 넣었다.

빠각!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놈은 그대로 허물어졌다.

경험치를 획득함과 동시에 눈을 부릅떴다.

"개뼈다귀 같은 새끼들!"

예전 프로킨에서는 용용이 이빨에 낀 고기 찌꺼기를 빼낼 때나 쓰던 뼈다귀들이다.

한데 지금은 목숨을 위협하는 엄청난 뼈다귀 군단이 되어 있었다.

-크르으!!

"으라압!"

다수 대 일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철칙은 넘어지지 않는 거다.

자빠지게 되면 감당할 수 없는 발길질 세례에 다시 일어나기는커녕 정신을 차리는 것조차 힘들어진다.

이것은 그 어떤 싸움꾼이라 해도 명백하다.

그래서일까?

인우는 두 다리에 굳건히 힘을 주면서 자칫 허점이 드러날 수도 있는 커다란 동작들은 배제했다.

후웅-!

인우의 망치가 묵직한 소음을 뿜어내며 앞서 달려오던 해골의 가슴팍에 그대로 꽂혔다.

-케에에에!

망치를 뽑자 해골은 나사 빠진 로봇처럼 허물어졌다.

하나, 쓰러진 해골과는 별개로 인우의 양옆으로 두 마리의 해골이 다가왔다.

휘익!

두 해골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며 인우의 관자놀이를 향해 나란히 날아들었다.

휙!

인우는 녀석들의 주먹을 거뜬하게 피해 냈다. 하지만 적은 녀석들뿐만이 아니다. 이와 동시에 뒤에서 발길질이 날아든다. 뒤를 도는 대신 앞에 있던 두 해골의 양 얼굴을 쥐어 잡고 바닥에 메다꽂았다.

빠각!

그 커다란 동작을 위해 잠시 허리가 숙여져 있던 인우. 잠시의 주춤거림으로 인해 사방팔방으로 해골들이 진을 치고 인우를 둘러쌓았다.

"하!"

다수 대 일의 싸움에서 두 번째로 중요시해야 할 것은 뒤와 옆이었다.

뒤통수에는 눈이 없기에 동물적인 감각과 압도적인 스텟이 없으면 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옆은 어떠한가?

옆으로 다가오는 공격에 몸을 돌려 맞서 봐야 또 다른 적에게 뒤를 내어주는 꼴이 되는 거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선의 수는 그저 돌격이었다.

앞에 있는 적을 잽싸게 제거한 뒤, 포위를 뚫고 둘러싸이는 상황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크르으으!

포위망이 점차 좁혀져 온다.

인우는 볼 것도 없이 전방에 있는 해골들을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휘익!

그 공격에 맞서는 해골들은 피할 수 없음을 감지했는지 팔을 들어 재빨리 가드했다.

빠각!

놈들의 팔이 그대로 으스러졌다.

잠시의 주춤거림이 있었고, 인우는 이를 놓치지 않고 발을 들어 올려 놈들을 밀어냈다.

퍽! 퍽!

그제야 전방이 조금 뚫렸다.

하지만 그것은 찰나였고, 다른 해골들이 그 자리를 금세 메꾸었다.

'숫자가 너무 많다! 젠장!'

인우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가 제아무리 특출한 싸움의 재능과 제법 많은 스텟의 증가를 이루어 냈다고 해도, 수백 마리와 홀로 대적하는 것은 힘이 들 수밖에 없었다.

-크르으!

포위는 금세 좁혀졌고, 이제 사방팔방에서 밀려드는 해골 녀석들과 숨소리를 공유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인우는 앞에 있는 해골의 무르팍을 발로 내려찍었다.

빠각!

해골의 무릎이 기형적으로 뒤틀렸다. 녀석은 양손으로 무릎을 쥔 채 바닥에 너부러졌다.

휘익!

그때 귓전에서 공기를 가르고 다가오는 묵직한 주먹이 느껴졌다.

인우는 그대로 고개를 젖힌 뒤 다가오는 주먹을 낚아챘다.

이와 동시에 몸을 180도 틀었고, 해골의 팔은 마찬가지로 180도 돌아갔다.

-케에에에!

"뒈져!"

인우는 놈의 다리를 향해 로우킥을 꽂아 넣었다.

빡!

-크르! 크르!

하지만 한 놈을 향한 집중 타격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던 걸까?

인우는 다급히 몸을 숙였다.

휘익!

숙여진 뒷골을 타고 무수히 스치는 주먹이 느껴졌다.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는다.

퍽!

그때, 인우의 엉덩이를 타고 수 개의 발길질이 이어졌고, 인우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처박혔다.

퍽! 퍽! 퍽!

나자빠진 인우의 온몸 구석구석으로 해골들의 무자비한 발길질이 이어졌다.

인우의 육체가 언제까지 버텨 줄지 의문이었다.

무차별적으로 이어지는 발길질 세례에도 신음 한번 없이 견디며 틈을 찾기 위해 눈동자를 굴렸다.

퍽!

그때, 발길질이 눈까지 가격했다.

통증이 꽤 컸기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키르! 키르!

"후우우!"

숨을 내뱉으며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6단계 클리어는 물 건너갈 게 분명하다.

수십 개의 발길질 세례를 받아 본 자는 알 거다. 온몸을 수놓는 공격에 반격은커녕 정신을 차리는 것조차 힘들다는 걸.

이러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책이란 그저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오징어처럼 꿈틀대는 게 다였다.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인우는 압도적인 전투 경험과 재능을 겸비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최대한 냉정함을 유지하며 움켜쥔 망치를 놓치지 않았다.

빡!

인우의 망치가 한 해골의 발등을 작살냈다.

-케에에!!

중심이 잡히지 않아 당황한 비명이 들려온다. 놈은 그대로 나자빠졌다.

빡! 빡! 빡!

이어 발등이 찍힌 해골들이 속출했다.

"후우!"

간신히 드러난 출구. 인우는 전신이 아려오는 고통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재빨리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제 절대 안 쓰러진다. 너흰 다 뒈졌어!"

인우가 악에 받친 듯 소리쳤다.

* * *

30레벨 즈음이었나? 그때는 대략 10마리가량을 잡으면 레벨 업이 됐다.

체력이 차오른다.

그리고 다시 전투한다.

또다시 레벨 업을 한다.

이렇게 꾸역꾸역 전투를 이어나갔다.

시바와의 훈련을 통해 스텟을 증가시키지 못했다면 이마저도 불가능했을 거다.

진즉에 쓰러진 채 추방되어 바깥에 강제 소환되었겠지. 그렇게 됐다면 '수명'의 제한이 사라지는 신의 목걸이를 구매할 수도 없게 되는 거다.

"으라아압!"

확실히 시간이 지날수록 전세가 역전되고 있었다.

놈들의 숫자는 야금야금 줄어들었고, 인우는 레벨 업을 통해 모든 체력을 회복하며 조금씩 강해지고 있었다.

전투의 초반에는 까딱하면 죽을 뻔했을 정도였으나, 이제는 황금 해골이 100마리가량으로 확 줄어든 상태였다.

여태 400마리는 잡은 것 같다.

<정인우>

레벨 : 56

스텟 : [근력 310] [민첩 154] [마력 8] [체력 592]

히든 스텟 : [재생력 5]

미분배 포인트 : 145

[EXP 30,000 / 270,000]

이를 통해 56레벨이 되어 있었다.

도합 29개의 레벨을 올린 것이다.

미분배 포인트는 145개나 됐다.

원래대로라면 재깍재깍 찍어 주는 것이 좋다.

하지만 전투가 워낙에 격렬하고 정신없었기에 찍을 틈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야 틈이 조금 생긴 인우였다.

'히든 스텟은 무조건 한계치까지 때려 박자.'

인우는 해골들과의 거리를 벌리며 스텟을 분배하기 시작했다.

우선 재생력을 한계치인 100까지 올릴 생각이었다.

재생력이 높을수록 자연 치유력이 증가한다.

'신의 체력' 패시브가 사용 가능했다면 굳이 필요 없는 스텟이긴 하다.

하지만 이곳 신의 던전에서 만큼은 소중한 스텟임이 확실했다.

볼 것도 없이 100까지 찍었다.

그리고 남은 50개의 포인트는 3대 스텟에 각각 분배했다.

그제야 인우는 거리를 벌리던 걸음을 멈췄다.

이제 한껏 강해진 스텟이 있다.

게다가 재생력이 100이나 되니 전면전으로 붙어도 될 거다.

인우는 돌격했다.

"으아아아아!!"

퍽!

재생력 하나를 믿고 마구잡이로 망치를 휘둘렀다.

놈들의 반항은 상당했다.

퍽! 퍽! 빠각!

싸움은 그야말로 100대 1의 개싸움이었다.

인우는 맞으면서도 끊임없이 망치로 놈들의 골통을 깨부쉈다.

빠각!

체력이 금세 닳아 간다.

하지만 재생력으로 인해 조금씩이나마 체력이 회복됐다.

그리고 진짜 뒈지겠다 싶을 정도가 올 때 즈음에는 레벨 업이 됐다.

이 모든 아귀가 맞아떨어지자 인우는 물러설 필요성을 못 느꼈다.

"으하하!"

미친놈처럼 웃었다.

두더지 게임이라도 하는 것처럼 골통을 하나씩 깨부쉈다.

이건 정말 타격감이 끝내준다.

그렇게 오래지 않아 모든 황금 해골들을 부숴 버렸다.

"후우!"

속이 다 후련했다.

이내 몸이 축 늘어진다.

힘을 너무 많이 뺐다.

하지만 아직 방심하기엔 일렀다.

이제는 황금 리치왕을 찾아야 한다.

놈을 찾기 위해 눈을 번뜩였다.

황금색 뼈다귀로 이루어진 성.

이곳은 내부조차도 모조리 다 뼈였다.

놈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때였다.

쿠구구구궁!

난데없이 성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 같다.

"으어!"

성이 이리저리 뒤틀렸다.

중심을 잡기 힘들 정도로.

끼기기긱!

그때, 뼈마디가 들어맞는 소리가 들려왔다.

쿠구궁!

이어서 뼈다귀 성이 붕 뜬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마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쿠워어어어어어어!!

그리고 그때.... 성이 피어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인우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 채 중심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써 댔다.

"설마...!"

그 순간 인우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하니, 황금 리치왕이 바로....

-쿠어어어어어어어!

다시금 성이 피어를 내질렀고, 이번엔 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친! 이 성이 황금 리치왕이라고?"

그제야 6단계로 진입하자마자 보았던 성의 외형이 떠올랐다.

성처럼 생겼기에 당연히 성인 줄로만 알았다.

한데 돌이켜보니 아니었다.

성의 입구는 사람 하나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좁았고, 외형은 더없이 기괴했다.

그것을 다시금 상기해 보니 성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괴수처럼 보였던 것 같다.

상상조차 못 했기에 그 외형을 그저 '성'으로 단정 지었던 거다.

성인 줄로만 알았던 그것은, 바로 황금 리치왕이었다.

-크워어어어어어!!

인우는 가까스로 중심을 잡으며 잽싸게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다.

이 녀석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바깥으로 빠져나가 놈과 대적하려다가 한번 짓밟히기만 해도 몸이 다 터져 나갈 거다.

6단계 보상인 신의 목걸이, 그것을 구매하기 위해선 황금 리치왕의 심장이 필요하다 했다.

쿠구구구궁!

그것은 즉, 성의 내부, 아니, 황금 리치왕의 육체 내부인 이곳을 이 잡듯 뒤져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굳이 이 녀석과 싸울 필요가 없다.

심장만 찾으면 된다.

그리되면 심장을 잃은 황금 리치왕은 죽게 될 것이고, 아이템도 구매할 수 있을 거다.

'오케이. 해보자고.'

6단계 던전의 컨셉을 알 것 같다.

이건, 보물찾기랄까?

다만 엄청난 지진을 견뎌 내야 했고,

-케에에에에!

황금 리치왕의 소환물들을 피해서 심장을 찾아내야 했다.

타다다다다닥!

인우는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렸다.

=======================================

217화 발악 (10)

황금 리치왕의 뱃속을 들쑤시다시피 하며 내달렸다.

강력한 진동이 느껴졌으나 몸이 뒤집힐 정도는 아니었기에 충분히 달릴 만했다.

어서 빨리 심장을 찾아야 한다.

시간이 지체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인우는 달렸다.

하지만 한참을 달려도 심장을 찾을 순 없었다.

그때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츠츠츠.

괴기스러우나, 밉지만은 않은 그 웃음소리... 녀석은 시바였다.

"시바…?"

놈이 인우를 바라보더니 손짓했다.

그러고는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

보나 마나 따라오라는 의미일 테다.

믿어도 될까?

아니, 어차피 믿지 않는다 해도 딱히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서 녀석의 뒤를 따라붙었다.

* * *

두근- 두근-

주먹만 한 붉은 덩어리가 꿈틀대는 것이 보였다.

저것은 심장으로 보였다.

시바를 통하여 너무나도 쉽게 찾은 것이다.

한데 무언가가 이상했다.

두근- 두근-

신의 목걸이가 구매되지 않았다.

'뭐지 이건?'

인우는 혹시나 해서 심장의 정보를 불러왔다.

[황금 리치왕의 정수]

기능 ? 섭취 시 봉인이 해제됩니다.

"뭐야 이거, 심장이 아니잖아?"

그런데 아이템의 정보가 예사롭지 않다.

그때 시바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오물대며 칼을 휘두르는 시늉을 했다.

"이걸 먹으라고? 그리고 싸우라고?"

-츠.

시바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 거대한 황금 리치왕과 싸워서 이겨야지만 심장을 얻을 수 있다는 건가?

인우는 리치왕의 정수를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시스템 알림음이 끝도 없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봉인이 해제되었습니다.]

[아티펙트를 포함한 모든 아이템의 기능이 정상 작동합니다.]

[모든 육체 능력이 되돌아옵니다.]

[모든 패시브 스킬의 기능이 되돌아옵니다.]

[모든 액티브 스킬의 사용이 가능합니다.]

[모든 마왕의 권능의 사용이 가능합니다.]

"어, 어?"

[절대자의 걸음 스킬이 10배 강화됩니다.]

[절대자의 호흡 스킬이 10배 강화됩니다.]

[절대자의 성장 스킬이 10배 강화됩니다.]

[생명체의 제약 수면이 사라집니다.]

[1분 전으로 시간을 역행할 수 있습니다.]

.

.

1. [절대자의 걸음 - 발을 내딛을 때마다 경험치를 500 획득합니다.]

2. [절대자의 호흡 - 호흡할 때마다 경험치를 500 획득합니다.]

3. [절대자의 성장 - 획득 가능한 모든 경험치가 20배가 됩니다.]

.

.

[경험치를 1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10,000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10,000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10,000 획득하였습니다.]

.

.

['속사' 스킬의 레벨이 'Legend Master'에 도달했습니다.]

['요리의 본질' 스킬의 레벨이 'Legend Master'에 도달했습니다.]

돌아왔다.

모조리 다 돌아왔다.

절대자의 경험치를 보라.

순식간에 최근에 배웠던 2개의 스킬이 레전드 마스터가 되었다.

이제 숨만 쉬어도, 걷기만 해도 경험치가 1만씩 들어온다.

스킬?

그딴 건 그냥 배우면 마스터다.

게다가 '절대자의 성장' 기능이 미쳤다.

획득 가능한 모든 경험치 20배.

이 말은 즉, 기존에 몰가스 같은 마왕 놈을 잡으면 45억의 경험치에서 20배가 된다는 뜻이었다.

그냥 레벨 업이 말도 안 되게 쉬워지는 거다.

"으아아아아아아!!"

인우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다.

강제로 쪼렙이 되어 해골 같은 놈들에게 시달렸던 기억이 단번에 날아간다.

다만, 아티펙트의 경우 반지의 기능만 작동하고 있었다.

신의 팔찌는 작동하지 않았다.

반지의 경우 절대자의 손가락을 통해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한데, 팔찌는 패시브인 절대자의 손목이 없으면 사용할 수 없었다.

이것을 사용하기 위해선 아포칼립소의 팔찌를 해제해야 한다.

인우는 볼 것도 없이 신의 아티펙트로 교체했다.

[생명체의 제약 허기가 사라집니다.]

[행동을 통해 스텟이 증가합니다.]

"됐다. 황금 리치왕, 넌 뒈졌다."

인우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의 옆에 있는 시바는 침을 꿀꺽 삼키며 인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츠으....

"놀랐냐? 이 자식아, 잘 봐라."

드래곤 본 대검도 돌아왔다.

인우는 망치를 아무렇게나 내던져 버리고 대검을 뽑았다.

"크아아아아압!"

포효와 함께 광폭화를 둘렀다.

이어서 광기폭발, 육체강화, 스트렝스, 헤이스트.

그리고 마지막으로 광폭 절대검까지 대검에 입혔다.

엄청난 검강이 대검을 휘감았다.

"으라아아아!!"

볼 것도 없이 바닥을 향해 내려찍기를 꽂아 버렸다.

쾅! 쾅! 쾅! 쾅!

그러자 황금 리치왕의 내부가 작살나기 시작했다.

-크워어어어어!

고통에 겨운 놈의 피어가 들려온다.

* * *

내부를 아수라장으로 만든 뒤 시바를 데리고 바깥으로 나왔다.

성만큼이나 거대한 리치왕과 마주했다.

이제 전혀 쫄리지 않았다.

"덤벼."

인우는 놈과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허공을 걸었다.

타다다닥!

신의 구두로 공중을 계단 걷듯 올라섰다.

단숨에 놈과 눈높이를 맞췄다.

쩌어엉-!

놈의 면상을 향해 광폭 무형검을 꽂아 버렸다.

-크워어어어어어!

황금 리치왕은 지랄발광을 해 대며 난동을 부렸다.

놈이 고통을 이기지 못한 채 거대한 팔을 휘둘러 댔다.

인우는 그 공격에 허공 위에서 대검막기를 펼쳤다.

척!

터엉!

놈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 냈다.

두웅-

손목에서 바알의 수리검을 뽑았다.

그대로 내던진다.

그리고 광폭 어검을 시전했다.

파밧 파밧!

두 자루의 칼이 황금 리치왕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크워어어어어!!

세상이 멸망할 것만 같은 거대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리치왕은 그 즉시 황금 해골들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곧바로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해골 놈들이 끝도 없이 튀어나왔다.

"참나. 이거나 먹어라."

용언으로 인해 캐스팅조차 없는 블리자드가 쏟아졌다.

후우우우우웅!!

거대한 얼음 바람이 필드를 얼리며 쏟아졌다.

황금 해골들은 뭘 어떻게 해보지도 못한 채 바스러졌다.

[경험치를 30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30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300,000 획득하였습니다.]

.

.

절대자의 성장 20배의 보정을 받은 경험치가 쏟아졌다.

"이번엔 너다. 그레이트 메테오!"

인우는 이번엔 양손을 공중으로 치켜든 채 황금 리치왕을 쏘아보았다.

그 즉시 하늘에서 거대한 운석 덩어리가 떨어졌다.

콰과과과과과과과!!

그즈음, 바닥에 있던 시바는 놀라 비명을 내지르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츠! 츠!

맞다. 저 녀석도 있었지.

인우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시바를 향해 블링크 했다.

후웅!

단숨에 놈에게 닿았다.

그리고 아공간을 열었다.

"넌 내가 납치한다. 빌어먹을 신 새끼가 만들어 놓은 것 중에 하나 정도는 훔쳐야지."

번쩍이는 황금 데스나이트!

서열전이 열릴 때 데리고 다녀야겠다.

폼 나게 말이다.

아마 다들 깜짝 놀랄 거다.

-츠! 츠!

시바가 당황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놈을 아공간에 쑤셔 넣었다.

즉시 입구를 닫았다.

"자, 이제 마무리를."

황금 리치왕은 이미 전투 불능이 되어 있었다.

광폭 어검과 수리검에 의해 넝마가 된 것이다.

마지막은 격렬하게 가자.

그런 결심을 한 인우는 파이어볼을 마구잡이로 소환했다.

후웅! 후웅!

레전드 마스터의 불덩이를 끝도 없이 놈에게 내던졌다.

그럴 때마다 마나 드레인으로 마나를 회복함과 동시에 발을 굴렀다.

신의 마력으로 인해 걸을 때마다 마나가 차오른다.

파이어 볼은 무한대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파밧! 파밧! 파밧!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

거대하기 그지없는 황금 리치왕이 무너졌다.

[경험치를 2,000,000 획득하였습니다.]

놈이 죽자 뼈로 이루어진 사체가 사라지며 심장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진짜 심장이 나온 것이다.

인우는 그것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신의 목걸이를 구매했다.

구매와 동시에 아포칼립소의 목걸이를 해제한 뒤 이것을 착용했다.

[생명체의 제약 수명이 사라집니다.]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대상을 현혹합니다.]

이로써 6단계는 끝났다.

후우웅-

오래지 않아 투명게이트가 열렸다.

이제, 마지막 단계만이 남았다.

인우는 제자리걸음으로 체력과 마력을 모조리 회복한 뒤 그곳으로 들어섰다.

* * *

[마지막 단계에 진입하였습니다. 사망 시 바깥으로 강제 퇴출되며, 재입장 대기 시간은 없습니다.]

[마지막 신의 상점이 오픈됩니다.]

참 오래도 걸렸다.

드디어 마지막이다.

한데, 입장과 동시에 들려오는 안내음이 평소와 달랐다.

'재입장 대기 시간이 없다고?'

1~6까지 어떠했는가?

모조리 재입장 대기 시간이 오천 년이었다.

한데 마지막 단계는 그 대기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말은 즉, 언제든 다시금 입장할 수 있다는 거다.

아니, 그렇다면 그만큼 깨기 어렵다는 건가?

언제든 도전해도 될 만큼 자신만만하게 선보였다 이건가?

인우는 날카로운 눈동자로 마지막 던전을 훑어보았다.

흙바닥에는 잡초가 무성히 자라나 있었다.

그리고 그곳 한가운데에 무언가가 보였다.

그것은 검이었다.

검정색과 금색으로 치장된 더없이 고급스러운 검.

그리고 그 검에 등을 기대고 있는 존재가 보였다.

단 한 명에 불과했지만, 풍기는 기운이 엄청났다.

'저놈이, 7단계의 보스인 건가? 그나저나 저 칼....'

무언가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신의 상점을 오픈해 보았다.

.

.

.

7. 신의 검 ? 마지막 단계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

있다.

역시나 마지막 단계의 전리품은 검이었다.

그리고 아마 신의 검이란, 저 존재가 등을 기대고 있는 저 칼일 것이다.

탐이 났다.

탐이 안 난다면 개소리겠지.

자그마치 마지막 전리품이다.

그런데 이번엔 무엇으로 구매할 수 있는지도 안 나와 있다.

그저 마지막 단게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설명이 보일 뿐.

알아서 차지하라는 것인가?

강탈하던? 훔치던? 그저 얻기만 하면 된다는 것인가?

우선 신의 검의 정보를 불러와 보았다.

[신의 검]

불명(不明)

인우는 인상을 구겼다.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궁금해 뒈지겠는데 정보가 안 나오다니.

직접 얻어서 확인해 보라는 건가?

그래, 그렇다면 확인해 주겠다.

어차피 마지막 단계는 재입장 대기 시간도 없다.

실패하더라도 언제든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거다.

부담될 리 없다.

인우는 신의 검에 등을 기대고 있는 존재를 향해 내달렸다.

"으라아아아!"

번쩍.

그때, 그 존재가 눈을 떴다.

온통 검정색인 그림자와 같은 존재, 녀석의 황금색 눈동자가 더없이 소름 끼쳤다.

그 존재가 말했다.

"네가 나를 가질 수 있을 거라 여기나?"

"음?"

인우는 잠시 멈췄다.

다시 녀석이 말했다.

"아직 햇병아리에 불과한 네가 나를 길들일 수 있을 리 없다. 너는 내 주인이 될 수 없어."

저 그림자 같은 존재는 곧 신의 검 자체인 듯 보였다.

흔히 에고 소드라고도 한다.

이성과 자아를 지닌 검.

그 정신이 실체화된 것이 저 존재인 듯했다.

다시 말해, 마지막 단계는 신의 검을 굴복시키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하여 신의 검을 차지하면 된다는 것이다.

"싹퉁머리 없는 자식이. 주인 될 사람에게 말버릇하고는."

인우는 그 존재를 향해 있는 힘껏 내달렸다.

번쩍.

그 순간 신의 검이 섬광처럼 뻗어져 왔다.

=======================================

218화 침공 (1)

신의 검을 쥐고 있던 존재는 어느새 검 속으로 빨려 들어가 있었다.

검 자체가 인우를 향해 날아 들어온다.

엄청난 빠르기였다.

정인우는 리치왕의 정수로 인해 봉인이 해제된 상태.

신의 방어구와 장신구를 비롯한 모든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인우의 자신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충만했다.

쐐애애액-!

섬광처럼 뻗어오는 신의 검.

인우는 대검 올려치기로 녀석의 경로를 비틀었다.

우선은 신의 검이 어느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너 따위는 아니다.

신의 검은 계속해서 기분 나쁜 말만 골라 내뱉으며 인우를 깔보았다.

순간 울컥했으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차피 굴복할 때까지 패대기를 쳐 줄 거니까.

쐐애애액!

신의 검이 빛처럼 빠른 속도로 인우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캉! 캉! 캉!

스파크가 번쩍이며 불똥이 눈동자까지 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눈을 부릅뜨고 녀석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캉! 캉! 캉!

만약 인우의 봉인이 해제되지 않았더라면 필시 1초도 견디지 못했을 거다.

신의 검은 그 정도의 맹공을 펼치고 있었다.

웬만한 마왕은 신의 검에게 상대조차 안 될 거다.

그즈음 되니 저 빌어먹을 검이 지구에 홀로 강림한대도, 지구는 멸망할 정도일 테다.

그 정도로 강력했다.

일개 검 따위가 이럴 수가 있나?

그래서 더욱 탐이 났다.

후웅 캉! 캉!

인우는 빠르게 쇄도해 오는 녀석을 스윙으로 쳐냈다.

그럴 때마다 신의 검은 공중으로 붕 뜨며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타다닥!

인우는 신의 구두의 기능을 이용해 공중을 계단처럼 짓밟았다.

"으라압!"

그런 뒤 떠오른 신의 검을 향해 대검관통을 쏘아냈다.

파바바바밧!!

허공이 꿰뚫리며 대검의 뾰족한 끝자락이 신의 검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콰드드드드득!

두 자루의 검이 부딪히자 격렬한 소음이 들려왔다.

신의 검과 인우의 대검은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으득.

인우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대검에 절대검을 입혔다.

일시적으로 엄청난 파괴력이 상승되었다.

하지만 신의 검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싸움이 제법 길어질 것 같았다.

* * *

독하다.

하루 동안 신의 검과 싸웠다.

마침내 녀석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너 따위 흔한 인간은 나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역겨운 놈!

신의 검은 여전히 자존심이 상하는 말만 골라 했고, 인우는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신의 검은 절대로 굴복하지 않았기에 더욱이 열 받는다.

"오냐."

인우는 짤막한 한마디를 내뱉으며 분신을 소환했다.

여덟 분신이 즉시 대검을 움켜쥐었다.

인우가 소리쳤다.

"이놈을 사정없이 뚜드려 패!"

"응!"

"알겠어!"

검을 두드려 패라니?

어리둥절 할만도 하건만, 분신들은 즉시 준비에 돌입했다.

분신 모두 유니크 스킬 볼을 통해 각자의 주력기를 보유하고 있다.

일이는 해골들을 마구잡이로 소환하며 물량 공세를 펼쳤다.

그런 뒤 광폭 어검을 이용하여 신의 검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 밖에도 둘이의 아이스 볼, 사이는 지친 형제 분신들에게 힐을, 오이, 육이, 칠이는 보조 버프를, 그리고 막내 팔이는 용작두 광전사 소환술을 펼쳤다.

삽시간에 엄청난 숫자로 불어난 인우의 군단.

분신들을 포함한 그들의 소환수까지 가세하자 신의 검은 분개하기 시작했다.

-이노옴! 홀로 시련을 깰 생각은 하지 않고 이게 무슨 짓이냐!

"닥쳐! 네놈을 산 채로 잡아서 펄펄 끓는 그레이트 메테오의 용광로 속에 넣어 줄 테니까!"

끔찍한 폭언이었다.

신의 검에게는 최악의 고문이리라.

용광로 따위가 신의 검을 어찌할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분명 고통을 느낄 것이다.

-날 가지고 싶었던 게 아니었나? 왜 날 망가뜨리려 하지?

"말을 듣지 않는 검 따윈 필요 없어. 어차피 내가 갖지 못할 거, 그냥 누구도 쓰지 못하게 망가뜨려 버릴 거다."

-....

신의 검은 침묵했다.

정인우는 위험하다.

다시금 인우가 말했다.

"그렇게 너를 괴롭히다가, 마지막에는 아공간에 처넣어 버릴 거다."

-그게 무슨.... 어찌 나를 짐짝 취급하려 드는가? 너 따위가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말도 안 듣는 새끼가 쫑알쫑알 말 참 많네. 너는 지금 나에게 있어서 바닥에 굴러다니는 목검보다도 못한 쓰레기야. 자존심만 센 쓰레기."

인우는 그간 신의 검에게 당했던 모욕을 갚기라도 하려는 듯 거침없이 쏘아 댔다.

"네깟놈이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리 유세를 떠냐? 응? 나는 지난 6단계의 모든 던전을 클리어했어. 아이템은 충분히 얻었다. 심지어 영생까지 얻었어. 솔직히 말해서 너같이 재수 없는 새끼는 필요 없어. 그냥 잡아서 고물상에다 처넣어버릴 거다."

-그, 그게 도대체 무슨!

인우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사실 인우는 신의 검을 굉장히 갖고 싶었다.

하지만 겪어본 바로는 녀석은 무척이나 까칠하다.

보통 가리는 게 아니라는 거다.

이 때문에 인우는 놈과 똑같이 까칠해져 보기로 했다.

아쉬울 것 없다는 듯이 말이다.

인우는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를 펼쳤다.

'갖고 싶다. 갖고 싶다. 갖고 싶다....'

"난 널 갖지 않을 거야. 내가 널 포기하면 앞으로도 영영 신의 던전으로 너를 찾기 위해 오는 놈은 없을 거다. 루시퍼란 놈은 애초에 덜떨어진 꼴통이라 7단계까지 오지도 못해. 다시 오려고 해도 5천 년 이후에나 가능하고. 나니까 여기까지 온 거다. 다시 말해 나 말고는 아무도 여기까지 못 온다고. 넌 지금 엄청난 기회를 놓쳤어. 최고의 주인을 네 손으로 팽개친 거라고. 멍청한 새끼."

-아, 아....

신의 검이 움직임을 멈추고 주저하기 시작했다.

-잠깐 기다려라!

"응?"

-내게 생각할 시간을 좀 줄 순 없겠나?

"뭐라는 거야? 난 너처럼 멍청한 새끼를 거둘 생각이 없어."

다 넘어왔다.

그런데도 인우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금 녀석을 취하면 주인과 신하의 느낌보다는 동료의 느낌이 강할 테다.

인우는 갑이 되길 원했다.

그래서 한 번 더 놈의 자존심을 짓밟는 거였다.

-너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뭘?"

-그러니까.... 내가, 말도 안 되는 자존심을 내세웠다.

"그래서?"

-나도 이제 주인이 있었으면 한다.

[신의 검이 당신에게 귀속되길 원합니다. 승낙하시겠습니까?]

그때, 알림창이 떴다.

인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뭐, 썩 내키진 않지만, 네놈의 남은 생이 불쌍하니 데리고 나가 주지."

마음에도 없는 허세를 부리며 잽싸게 승낙했다.

[신의 검이 당신에게 귀속되었습니다.]

[신의 검은 세상에 하나뿐이며, 그로 인해 7단계 던전은 영영 봉인됩니다.]

아, 이 알림창은 루시퍼에게 꼭 보여 주고 싶을 정도다.

7단계 전리품은 오로지 인우의 독식이었다.

스르르륵-

잠시 뒤 고운 자태를 뽐내는 신의 검이 인우의 손에 들어왔다.

'오우....'

영롱하다.

광택 나는 칠흑의 검신은 2미터가량으로 꽤 길었다.

손잡이는 금색과 흑색으로 치장되어 있었고, 폼멜은 번쩍이는 황금이었다.

적으로서 마주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직접 손에 쥐어보니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인우는 가장 궁금했던 신의 검의 정보를 불러왔다.

[신의 검]

종류 ? 검

기능 ? 파괴력 +199,999

추가 기능 ? 주인의 명령이라면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입니다.

특수 기능 ? 사망한 대상의 능력을 흡수합니다.

능력1 - 無

능력2 - 無

능력3 - 無

좋을 것이라 기대하긴 했다.

하지만 이건 기대 이상이었다.

가장 먼저 압도적인 파괴력이 눈에 띄었다.

대략 20만의 파괴력.

드래곤 본 대검이 1만2천5백의 파괴력을 지녔으니 10배를 훌쩍 뛰어넘는 위력이었다.

이 정도라면 1,000살 드래곤도 평타 한 방에 골로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인우가 지닌 스텟과 신의 검이 함께라면 충분하고도 넘쳤다.

이 밖에도 자아를 지닌 검답게 스스로 움직이고 판단하는 기능이 있었다.

그리고 특수 기능의 경우 아마도 능력 흡수 같았는데 총 3가지를 흡수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예지 능력자를 죽이면 '예지'스킬을 습득할 수도 있는 걸까?

아직 사용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히는 모르겠다.

다만 활용도가 굉장히 높아 보이는 기능임은 분명했다.

* * *

루시퍼를 제외한 3명의 대천사들.

이들은 신의 사자인 대천사장 때문에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당장에라도 루시퍼를 도와 마계와의 전면전을 펼치고 싶었으나 그것이 불가능하단 이야기였다.

애당초 루시퍼야 신의 선택을 받은 존재이기에 활동의 제약이 없었으나, 그들은 아니다.

어쨌든, 욕심 많은 대천사들은 마계를 집어삼키고 대천사장마저 꺾고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길 원했다.

이를 위해 루시퍼가 마신이 되는 것을 바랐건만 정인우라는 걸림돌이 생길 줄 꿈에도 몰랐다.

정인우가 신의 던전에서 나오게 되면 엄청난 폭풍이 불어 닥칠 것이다.

"거점이 필요하다. 천계에서는 대천사장 때문에 뭘 할 수가 없다."

미카엘이 말하자 가브리엘과 라파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위 행성 하나를 삼키는 것이 가장 좋을 테지."

"동의한다."

이들은 하위 행성 한 곳을 점령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곳을 거점으로 삼고 마계를 공략할 심산이었다.

하위 행성이라면 대천사장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

유일한 문제라면, 하위 행성을 점령하기 위해 직접 현신할 수 없다는 거였다.

그렇게 대놓고 움직이다가는 금세 대천사장에게 발각당할 테니까.

루시퍼가 점령을 위해 직접 움직여 준다면 좋으련만, 녀석은 근래에 들어 굉장히 바빴다.

"방법이 전혀 없진 않아. 일단 타켓은 지구라는 하위 행성으로 정한다."

미카엘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가브리엘과 라파엘이 물었다.

"왜 하필 지구지?"

"간단하다. 지구의 인간들은 아직 헬게이트조차 클리어하지 못했을 정도로 미개하다."

"호오. 그렇다면 확실히 다른 행성보다 간단하겠군. 한데, 우린 직접 현신할 수 없다. 어떠한 방법으로 지구를 점령할 셈이지?"

"현재 지구에는 현대문물에 맛을 들인 드래곤들이 꽤 많이 상주하고 있지. 그 녀석들을 이용하면 될 일이다."

드래곤들을 협박하여 지구 점령을 대행시킨다.

대천사장의 눈에 띄지도 않을 테고,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 * *

지구에는 전설이 하나 있다.

미친곰 정인우.

곰탈을 입고 온갖 악행과 싸웠으며, 중국의 바투 일족을 막아 내었고, 끝내는 울트라 게이트라는 거대한 곳으로 자취를 감춰 버렸던 정인우.

그는 여전히 전설로 남아 있었다.

아직도 강원도 초인관리국 앞에는 미친곰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고, 많은 이들이 그곳에 들러 미친곰 정인우를 그리워하곤 했다.

햇살이 쨍쨍한 대낮.

오늘도 미친곰 동상 앞에는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그 많은 사람 속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한 남자가 보였다.

190cm는 거뜬히 넘어갈 장신에 우람한 어깨를 가진 중년 사내.

그는 말끔한 정장 차림을 한 채 뒷짐을 지고 미친곰 동상 앞에 서 있었다.

그때, 앳되어 보이는 단발머리의 여자가 그의 뒤로 다가서며 말했다.

"오늘도 여기 계셨네요. 박강중 국장님."

"아, 사일런스 대장 배다정이로군."

박강중.

이제 그는 한참이나 직급이 올라 대한민국 초인관리국의 국장이 되어 있었다.

박강중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여전히 미친곰의 동상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배다정이 물었다.

"그리우십니까?"

"그립지. 그 개차반 같던 성격도, 홀로 바투에게 진격했던 그 무모함도, 나는 늘 그가 그립지."

박강중의 눈동자에 쓸쓸함이 번졌다.

=======================================

219화 침공 (2)

[신의 던전의 모든 단계를 클리어하였습니다,]

[바깥으로 소환됩니다.]

드넓은 초원, 기약 없이 누워 있던 정인우의 육체가 별안간 눈을 부릅떴다.

"...."

이와 동시에 신의 던전에서 얻었던 스텟들이 오르기 시작했다.

[히든 스텟 '재생력'이 생성되었습니다.]

[재생력이 100 증가합니다.]

[근력이 360 증가합니다.]

[민첩이 154 증가합니다.]

[마력이 8 증가합니다.]

[체력이 592 증가합니다.]

시바와의 훈련을 통해 얻었던 스텟, 레벨 업을 통해 얻었던 스텟, 그것들의 양은 꽤 많은 편이었다.

"후우."

인우는 서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신의 구두, 슈트, 코트.

그리고 신의 아티펙트와 검.

던전에서 구했던 신의 아이템이 온몸에 입혀져 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절대자의 손목과 목이 없다는 거였다.

이 때문에 아포칼립소의 팔찌와 목걸이를 해제하고 신의 아티펙트를 장착한 상황이었다.

둘 다 취하기 위해선 마계 상점에 들러 일전에 보았던 절대자의 손목과 목을 구매해야 한다.

하지만 그때 접했듯, 그것들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인우는 지금 땡전 한 푼 없었다.

툭.

어느새 몸을 일으킨 인우의 아래로 쪽지가 하나 떨어졌다.

그것을 주워 읽어 보았다.

"이 자식은 지가 뭔데 오라 마라인지...."

바알이 남겨두고 간 쪽지의 내용은 간략했다.

복귀하면 나의 마왕성으로 오도록. -바알-

던전 입구 이곳저곳에 바알의 흔적이 있었다.

녀석은 꽤 오랫동안 자신을 기다렸던 것 같았다.

인우는 놈의 마왕성을 향해 한참을 걸었고, 그러는 동안에도 경험치는 1만씩 꾸준히 올라갔다.

게다가 생명체의 제약인 허기와 수면도 느껴지지 않는다.

컨디션은 더없이 최상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랜 걸음으로 당신은 더욱 튼튼해집니다.]

[체력이 1 상승합니다.]

신의 팔찌의 기능으로 인해 행동을 통해 스텟이 상승한다.

굳이 전투를 하지 않더라도, 또한 레벨 업이 아니라도, 단순한 행동만으로도 스텟이 오른다.

인우는 보무도 당당히 바알의 마왕성을 향했다.

도착과 동시에 바알과 마주했다.

바알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물어왔다.

"돌아왔군. 어디까지 갔나?"

"던전의 끝."

인우는 신의 검을 흔들며 답해 주었다.

그제야 변화 없던 바알의 안면근육이 꿈틀댔다.

"그것이… 던전의 마지막 전리품인가?"

바알은 결단코 얻을 수 없는, 아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던전의 전리품.

그것이 인우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응. 마지막 전리품인 신의 검이다. 그보다, 한 가지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무엇을?"

인우는 인정사정 보지 않고 바알의 머리통을 향해 꿀밤을 때려 박았다.

빡!

경쾌한 타격음이 들렸고, 순간 바알은 인상을 구겼다.

"갑자기 무슨 짓이지?"

인우는 히죽 웃었다.

그러면서 신의 반지를 이용해 1분 전으로 시간을 역행시켰다.

솨아아아아아-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건 마치 되감기 같다.

그것은 오로지 인우만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의 역행이 끝나자 1분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녀석이 다시 묻는다.

"돌아왔군. 어디까지 갔나?"

"그것이… 던전의 마지막 전리품인가?"

물음이 이어진다.

인우는 통쾌하게 웃었다.

신의 아이템의 기능은 정말이지 끝내 줬다.

* * *

바알이 인우를 부른 이유는 간단했다.

그날, 프로킨에서 루시퍼와의 격전으로 인해 72위 안드로말리우스가 사망했다.

이에 따라 72위 마왕의 자리를 인우에게 넘겨줄 참인 거다.

현재 그들은 마계 신전에 들어서 있었다.

인우는 바알이 준 NO.72 마왕성의 징표를 사용했다.

서열이 상승함과 동시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72위 마왕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마왕의 권능 '진화된 마기'가 생성됩니다.]

[새로운 마왕의 권능 '소통'이 생성됩니다.]

[새로운 마왕의 권능 '탐색'이 생성됩니다.]

마왕의 권능은 3가지가 추가되었다.

역시나 마계의 주축인 72위권답게 여러 가지 권능이 추가되었다.

인우는 마왕의 권능을 열어 보았다.

<마왕의 권능>

1. [마기방출 ? 지정한 차원에 마기를 방출합니다.]

2. [헬게이트 생성 ? 지정한 차원과 공간에 헬게이트를 생성합니다.]

3. [수정구 소환 ? 마계를 제외한 하위 행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수정구를 소환합니다.]

4. [차원이동게이트 생성 ? 차원이동게이트를 생성합니다. 그 어떤 패널티 없이 차원이동이 가능합니다.]

5. [대상 강제 이동 - 지정된 10레벨 이하의 생명체를, 하위 차원 중 한 곳으로 강제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6. [진화된 마기 ? 마기가 없는 지역에 현신하여도 100%의 위력을 냅니다.]

7. [소통 ? 모든 차원의 생명체와 대화가 통합니다.]

8. [탐색 ? 상대의 레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진화된 마기의 경우, 마왕들에겐 굉장히 유용한 권능처럼 보였다.

어딜 가나 본신의 힘을 뽐낼 수 있는 능력이니 말이다.

소통은 쉽게 말해 자동번역기라 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그 어떤 존재와도 대화가 가능해질 터였다.

마지막으로 탐색의 경우 상대의 레벨을 확인하는 권능이었다.

이것은 적과의 격차가 어느 정도 나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었다.

'가만.'

인우는 그간 궁금했던 바알의 레벨을 확인하기 위해 탐색을 발동시켰다.

[대상과의 레벨 차이가 커서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헐.'

저 독종 같은 놈.

도대체 레벨이 몇이기에 확인이 불가하다는 것일까?

현재 인우의 레벨이 744이니, 못해도 1,000은 가볍게 넘을 터였다.

그나저나, 72위라면 마왕의 제작 권능이 생길 줄 알았는데 쥐뿔도 없다.

그것을 이용하면 꽤 괜찮은 아이템들을 제작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물론, 이제는 신의 아이템으로 도배를 한 인우였기에 크게 필요한 권능은 아니었다.

제작으로 신의 세트보다 더 좋은 아이템을 만들 수 있을 리 없다.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는 와중에 바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 정인우 너의 고향이 지구인가?"

"응. 그건 갑자기 왜 묻지?"

"근래에 루시퍼를 추격하며 수정구로 하위 행성들을 훑던 중 드래곤들을 보았다."

"드래곤...?"

"그래, 드래곤. 네 고향 지구는, 드래곤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더군. 궁금하면 수정구를 소환하여 확인해 보도록."

정녕 미친 건가?

도마뱀 새끼들이 단체로 약이라도 먹은 건가?

인우의 눈썹이 꿈틀댔다.

딱히 지구를 지키겠다는 정의심이 피어오른 건 아니었다.

다만 기분이 더러웠다.

드래곤 놈들은 분명 자신의 고향이 지구인 것을 알 테다.

그런데도 지구를 건드리고 있다.

그것은 명백한 도전이었다.

뭐, 마침 잘됐다.

신의 아이템도 테스트해 보고, 절대자의 성장 20배를 보정 받을 테니 드래곤 학살로도 쏠쏠한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을 거다.

'에일린. 만약 이번에도 네년이 연관되어 있다면 사지를 찢어 주마.'

인우는 이를 갈았다.

* * *

신탁이 내려왔던 그날.

프로킨 대륙의 절반이 날아갔다.

루시퍼와 바알의 격돌로 인해 애먼 땅이 초토화된 것이다.

그때 에일린은 인우가(家)의 가족들을 데리고 높은 상공의 레어로 피신했었다.

그 뒤로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프로킨은 아직도 그때의 사건으로 인해 회복되지 않았고, 인우의 가족들은 에일린과 공생하며 살아갔다.

실제로 에일린은 이들에게 과하다 싶을 정도의 친절을 베풀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날, 에일린은 보았다.

상식이 배제된 초월자들의 전투를....

그 가운데에 분명히 정인우도 있었다.

이제 정인우는 반신에 필적한 존재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니 감히 과거처럼 까불 수 있겠는가?

최대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맞다.

사실, 가장 최선은 정인우를 자신의 남자로 만드는 거였다. 자신의 딸인 용용이도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수는 없다.

하지만 정인우는 그 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이즈음, 에일린은 지구에 있는 동족들에 대한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녀석들은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지구를 공격하고 있다고 했다.

순간 에일린은 가슴이 철렁했다.

만약 이 사실을 정인우가 안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멍청한 자식들. 제발 나한테까지 불똥 튀게 하지 말아라.'

지금으로써 최선은 그저 묵묵히 인우가의 가족들을 보필하는 거였다.

훗날 정인우가 돌아온다면, 내세울 거 하나쯤은 있어야 할 테니까.

그렇게 에일린은 지구로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용생에 있어서 최고의 한 수였다.

만일 그녀가 동족 드래곤들을 뜯어 말리기 위해 지구로 향했다면?

그리하여 정인우와 마주쳤다면?

정인우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단칼에 에일린을 베어 버렸을 거였다.

말리기 위해 왔다고 해도 믿어 줄 리 없을 거다.

그렇기에 지금의 에일린은 무척 운이 좋다고 볼 수 있었다.

* * *

마왕들의 평균 수명은 5천 년이나 된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따분함을 느끼곤 한다.

오래 살다 보면 모든 것이 따분하고 지루해지기 일쑤다. 마왕들이 그러했고, 그들은 늘 흥밋거리를 찾곤 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내기를 참 좋아했다.

예전 정인우를 두고 그레모리와 단탈리안과 벨리알이 벌였던 내기 또한 흥밋거리를 찾기 위한 발버둥이라 볼 수 있었다.

이번만 해도 그랬다.

신의 던전에 입장한 정인우를 두고 내기가 벌어졌었다.

많은 마왕이 참여했고, 그들은 주로 정인우의 한계를 2단계에 두고 많은 돈을 걸었다.

그리고 그 중....

홀로 유일하게 정인우가 마지막 단계까지 갈 것이라며 큰돈을 걸었던 마왕이 존재했다.

그녀는 바로 루시 퀸이었고, 정인우가 올 클리어와 함께 신의 검을 들고서 복귀하자 그녀는 벼락부자가 되었다.

이건 뭐, 로또 수준이었다.

수십 명의 마왕이 걸었던 천문학적인 마코(maco)를 모조리 쓸어 담은 것이다.

루시 퀸은 볼 것도 없이 제 주인을 만나기 위해 움직였다.

돈 욕심 따윈 없었다.

그가 돌아온 것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인우가 돈을 많이 번 자신을 칭찬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여겼다.

퀸의 바람은 그게 다였다.

그리고 마침내 인우와 마주했을 때, 그녀는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말끔한 정장 차림에 인우는 더없이 멋져 보였다.

오랜 세월 동안 단련했던 신체에 딱 들어맞는 슈트와 그 위에 걸친 코트.

온통 검정색 일색인 그 복장은 인우에게 더없이 잘 어울렸다.

그리고 그렇게나 멋진 남자가 자신을 보고 웃어 준다.

"오랜만이네. 루시."

"...."

순간 그녀는 움찔하고야 말았다.

그녀의 표정이 급변하자, 인우가 불쑥 물어왔다.

"뭐야, 갑자기 왜 그렇게 굳었어?"

"처음이에요."

"뭐가?"

"제 이름 말이에요. 처음으로 불러 주셨어요."

아, 이름?

그러고 보니 늘 '퀸' 혹은 '야'라고 불렀던 것 같기도 하다.

근데 이름이 뭐 대수인가?

아니, 그게 그렇게나 좋을까?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다면 진즉에 불러 줄 걸 그랬다.

루시 퀸은 더없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인우는 그녀를 따라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참, 제가요. 주인님이 마지막 단계까지 깨고 나온다는 것에 전 재산을 걸었어요. 엄청난 부자가 된 거 있죠?"

그녀의 말이 끝날 즈음, 인우의 미소가 더욱 짙어지기 시작했다.

이 여자를 어찌 예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 드릴게요."

루시 퀸은 해맑게 웃었고, 인우는 잘했다는 뜻을 담아 그녀를 바라봐 주었다.

그 눈빛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했다.

세상 전부를 가진 것만 같았다.

몸이 녹아 버릴 것만 같은 행복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

220화 침공 (3)

루시 퀸이 내기를 통해 벌어들인 금액으로 인우는 절대자의 손목과 목을 구매할 수 있었다.

각각의 금액은 1조와 9천억 마코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었으나, 충분히 구매할 수 있었다.

[절대자의 손목]

종류 ? 유니크 패시브

기능 ? 아티펙트 '팔찌'의 착용 개수 2배 증가.

[절대자의 목]

종류 ? 유니크 패시브

기능 ? 아티펙트 '목걸이'의 착용 개수 2배 증가.

이제는 신의 아티펙트와 아포칼립소 아티펙트를 동시에 착용할 수 있다.

사실, 복귀와 동시에 어떠한 방식으로 마코를 벌어들여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인우였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원하던 것을 얻게 되다니.

퀸이 없었다면 애당초 불가능했을 거다.

인우는 그녀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퀸의 입장에서는 늘 인우에게 빚을 지고 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녀는 인우가 내어준 엄청난 양의 드래곤 혈액과 마왕의 피까지 공급받았다.

인우는 그것들을 내어주며 그녀에게 어떠한 것도 요구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퀸은 그것이 늘 마음에 걸렸었다.

하지만 오늘 어느 정도의 신세를 갚게 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모르겠는데 정작 스킬을 배운 인우보다 퀸이 더 기뻐했다.

아이템 구매를 끝마친 인우는 지구로의 현신을 준비했다.

생각 같아선 그녀, 그리고 제라나 에노느와도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들을 뒤로 미루는 인우였다.

* * *

온갖 잡동사니들이 가득한 새하얀 공간이다.

시바는 넓디넓은 이곳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먹고 마시지 않아도 되는 언데드가 아니었다면 지쳐 쓰러졌을 거다.

시바는 이곳이 아공간인 것조차 몰랐다.

그는 그저 신의 던전을 지키던 존재.

그곳이 그의 집이었고 전부였다.

어서 빨리 던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 인간 놈이 자신을 꺼내 주었으면 좋겠다고 여겼다.

아니, 상식적으로 데려가겠다며 소유욕을 보였다면 챙겨 주어야 할 것 아닌가?

한데 이건 뭔가?

그 인간 놈은 마치 자신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만 같다.

"츠. 츠."

시바는 서러움을 토해 내며 하얀 벽을 쾅쾅 쳐 댔다.

하지만 소리는 어느 곳에도 닿지 못했다.

이내 시바는 체념했다.

그런 뒤 공간 구석에 쭈그려 앉아 무릎을 끌어안았다.

멍하니 바닥을 바라본다.

그러다 시바는 쪽지를 하나 발견했다.

이건 도대체 뭐지?

시바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채 쪽지를 펴 보았다.

<나는 제라다. 나는 이곳 아공간에서 몇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오늘 역시 마찬가지다. 이건 모두 정인우 때문이다. 그 인간은 나를 여기에 넣어 놓고 늘 까먹었다. 다른 인간들이 날 보면 죽이려들 거라나 뭐라나. 알 바인가? 나더러 바보라고 하면서 자기가 더 바보다. 꺼내 주는 것도 까먹고 말이다. 에효. 내 신세야. 나는 지금 사흘째 굶었다. 어쩌면 이곳이 나의 무덤이 될지도 모르겠다. 만약, 누군가가 이 쪽지를 본다면 이 말을 꼭 해 주고 싶다. 정인우는 바보다.>

쪽지는 못해도 몇 년은 된 듯, 색이 변질되어 있었다.

원망의 감정이 느껴지는 내용이었다.

시바는 이 글을 온전히 읽을 수 있었다.

뭐, 글이나 언어를 배운 적은 없으나 시바는 모두 알았다.

심지어 인우가 내뱉는 말도 모두 다 알아들었질 않나?

애당초 그렇게 창조된 생명체인 것이다.

어쨌든, 이 글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큰일이다.

정인우는 이 아공간이라는 곳에 생명체를 넣어 두고 자주 잊어버리는 것 같았다.

정인우가 정말 바보면 어쩌지?

불안감이 엄습한다.

"츠."

시바는 제라라는 쪽지의 주인공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그도 견뎠으니, 자신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츠츠츠!"

아니 뭐, 견디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시바는 혼자 있는 게 익숙했고, 신의 던전에서도 늘 그러했으니까.

무수한 세월을 그 안에서 견뎠다.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츠...."

시바의 인생은… 돌이켜 보자면 참 의미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랬던 그에게 정인우와 함께 훈련했던 시간은 유일한 추억거리로 남아 있었다.

그때가 가장 즐거웠던 것 같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이내 그는 아공간의 입구로 추정되는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언젠가는 저곳이 열리지 않을까?

"츳."

그래 뭐… 이제야 바른대로 고해 보자면, 사실, 시바는 정인우가 자신을 납치했을 때… 기뻤다.

친구가 생긴 것 같았으니까.

* * *

빌딩만 한 드래곤이 서울 한복판을 짓밟고 있었다.

쿠쾅쾅쾅쾅쾅!

거대한 꼬리를 채찍처럼 휘두르고, 날갯짓 한 번으로 초인들을 모조리 튕겨 버렸다.

그야말로 악몽과 같은 파괴력이었다.

"으아아아아악!"

"사람 살려!!"

-크워어어어어어!

드래곤이 피어를 내뱉자 사람들은 귀에서 피를 뿜어내며 모조리 주저앉았다.

드래곤은 인간들을 향해 화염 마법을 뿌려 버렸다.

화드드드드득!

사람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산채로 타들어 갔다.

누군가는 한 아이의 엄마였고, 누군가는 가장이었으며, 또 누군가는 이제야 옹알이를 내뱉는 아기였다.

그 모든 인간이 드래곤 녀석에 의해 죽어 나갔다.

끔찍한 광경이다.

신이 있다면 그는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아니, 애초에 신은 방관자다.

지금 이 재해를 이기기 위해 찾아야 하는 것은 신이 아니다.

"젠장할! 지원은 아직인가!"

서울 노원구 초인관리국의 지부장은 무너져 가는 도시를 바라보며 비명 같은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다.

한 초인이 답했다.

"현재 전국 곳곳에 드래곤들이 나타나서 인원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씨발 새끼야! 그걸 말이라고 해!? 노원구가 최초에 타격을 입었다고! 그러면 이곳부터 지원을 해 줘야 할 것 아니야!"

지부장은 애꿎은 초인에게 성을 내며 부들부들 떨었다.

이럴 때 사일런스는 뭘 하는 걸까?

초인관리국에 소속된 최강의 랭커팀인 그들이 필요했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비상사태가 아니고서야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그들이었으나, 지금은 비상, 아니 초비상사태이질 않나?

"으아아아아! 돌아 버리겠네! 당장 박강중 국장님 연결해 봐! 빨리 이 새끼야!!"

"네, 넵! 알겠습니...!"

"대답할 시간이 어딨어! 당장!"

날이 설대로 선 지부장의 호통에 초인은 헐레벌떡 국장 박강중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받지 않으십니다! 본부 또한 난리가 난 것 같습니다! 이 상태라면 머지않아 통신도 마비될 것입니다!"

그 말이 맞다.

드래곤들은 존재하는 모든 문물을 파괴하고 있었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통신은 물론 전기와 수도 그리고 인간들의 문명 자체가 사라질 터였다.

인류의 멸망이 코앞이라는 거다.

이 핵폭풍 속에서 지부장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현재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고래고래 악을 쓰는 것 뿐.

"으아아아아! 씨발 돌겠네!!"

그런데 그때였다.

타다다다다닥!

한 무리의 초인들이 드래곤을 향해 뛰어드는 것이 보였다.

지부장은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사, 사일런스!"

* * *

"노원구에 등장한 놈은 아까 죽였던 녀석보다 크기가 곱절은 크다. 모두 정신 바짝 차려!"

사일런스의 대장 배다정은 피범벅이 된 얼굴로 소리치고 있었다.

그 외침에 모든 사일런스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들의 숫자는 고작 18명에 불과했다.

적은 숫자이나,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랭커집단이었다.

현재 이곳 노원에 등장한 드래곤이 너무나 큰 녀석이었기에 이들이 직접 출동한 거였다.

다른 지역의 경우 사립 길드들이 발 벗고 나서서 드래곤들과 맞서고 있었다.

물론 드래곤의 전리품과 경험치를 노렸기에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뭐가 됐건 좋은 현상이다.

조금이라도 많은 초인 병력이 있어야지 드래곤을 막을 수 있었다.

현 사태를 초인관리국의 병력만으로 막아선다는 것은, 폭풍 앞에서 돛단배를 타고 항해하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대장. 저놈 우리끼리 잡을 수 있을까?"

팀원 하진성은 자신 없는 어조였다.

당연한 이야기다.

조금 전, 강북구에 등장했던 조그마한 드래곤과 대적하면서도 목숨을 걸었던 그들이다.

사일런스의 18명은 정말로 간신히 승리를 거뒀다.

한데 이번엔 곱절은 더 큰 드래곤이다.

배다정이 눈에 힘을 주며 씹어 뱉듯 말했다.

"하진성. 우리가 막지 않으면, 대한민국에 그 어떤 누가 드래곤을 막을 수 있지? 움직여. 이건 인류의 존망이 걸린 문제야."

이미 초인 약소국들은 드래곤들의 침공으로 무너진 지 오래였다.

대한민국은 그나마 초인강국이었기에 아직 버티고 있는 거였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지 않아 끝날 것임을 안다.

각 나라가 점진적으로 점령당하며, 드래곤들은 서서히 뭉쳐서 초인강국들을 압박할 것이다.

"더 빨리 달려! 우리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더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다!"

배다정이 악을 쓰다시피 외침을 토해 내며 내달렸다.

사일런스 팀원들은 각각 주력기를 준비하며 무너진 도심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드래곤 앞에 도착했다.

그들이 들어서자 곳곳에서 안도의 외침이 터져 나온다.

"사일런스다!"

이들은 노원구 사냥터를 이용하던 초인들이었다.

대략 백여 명은 되어 보였다.

본래는 훨씬 더 많았으나, 대부분이 사망한 상태였다.

-벌레 같은 인간들. 너희들이 뭉친다 해서 달리질 게 있다고 여기나?

은색으로 빛나는 드래곤은 소름 끼치는 눈동자를 한 채 초인들을 쏘아보았다.

저 눈동자 속에는, 인간들을 향한 일말의 동정심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 눈빛 한 방에, 그 차가운 목소리에, 심력이 약한 초인들은 떨려 오는 몸을 주체시킬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때, 사일런스 대장 배다정은 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돌격!"

타다다다닥!

사일런스는 각자 무기를 치켜들고 드래곤을 향해 내달렸다.

누군가는 헬파이어를, 또 다른 누군가는 투척술을, 또 다른 누군가는 버프를 지원했다.

톱니바퀴처럼 완벽한 합을 이룬다.

이들이 뭉친 이상 국력에 버금가는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우습군.

하지만 드래곤은 가소롭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레이트 블라지드.

드래곤이 용언을 이용해 재빠른 광역 마법을 펼쳤다.

후와아아아아앙!

웬만한 초인은 감당조차 할 수 없는 강력한 마법이 빗발쳤다.

"물러서지 마! 뒤를 도는 순간 죽는 건 우리다!"

그런데도 사일런스는 물러섬 없이 드래곤을 향해 나아갔다.

용맹하다. 아니, 무모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무모함을 감수하고 달려들어야 할 때였다.

여유 따윈 없다.

대장 배다정은 예지 능력을 이용하여 가장 선두에 선 채로 공격 범위를 벗어났다.

팀원들은 그녀의 움직임에 따랐고, 마침내 드래곤에게 일격을 가했다.

배다정이 움켜쥔 칼이 사선으로 길게 그어졌다.

그러자 강력한 풍압과 함께 검기가 난무했다.

드래곤은 쉴드를 펼침과 동시에 브레스를 날렸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

공기가 끓어오르며 건물들이 녹아 없어진다.

브레스에 타격 당한 팀원들은 여지없이 전투 불능이 되었다.

간신히 회피에 성공한 배다정은 이를 악물었다.

이 녀석은 너무 강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상대했던 드래곤보다 족히 5배는 강력한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팀원들은 그 전투로 인해 많은 힘을 소모한 상태다.

"젠장!!"

이 상태라면 결국 모든 팀원을 잃고 전멸을 면치 못할 터였다.

한데, 그때.

놀라운 광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이이이잉.

난데없이 허공에 새빨간 게이트가 열렸다.

그곳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필시 인간이었다.

한데, 그 인간의 뒷모습이 제법 낯익다.

그 인간이 드래곤을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가리 다물어라, 도마뱀."

척.

그는 한 손으로 가볍게 드래곤의 브레스를 막아 냈다.

브레스가 마치 물총처럼 어처구니없게 쉬이 가로막힌다.

이건 너무나 말이 안 되는 광경이었기에 마치 꿈같았다.

모두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이윽고 누군가가 그 사내를 알아보곤 멍청한 얼굴을 한 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저, 정인우...?"

=======================================

221화 학살 (1)

"마, 말도 안 돼!"

"정인우가 도대체 어떻게?!"

놀라움으로 범벅된 외침들이 쏟아진다.

그 순간, 정인우는 뒤를 돌아보더니 사일런스 팀을 발견했다.

그가 배다정과 팀원들을 알아보고 말했다.

"어? 오랜만이다? 사일런스 아가들아."

"맙소사...."

배다정과 사일런스 팀원들은 엄청난 혼란으로 인해 할 말을 잃었다.

정인우는 심지어 지금 공중에 떠 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계단이라도 밟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여전히 손바닥을 들고서 브레스를 막아 내고 있었다.

당황 섞인 드래곤의 비명이 들려왔다.

-정… 인우라고?

"내가 아가리 다물라고 했지?"

정인우는 드래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오른손에 쥔 신의 검을 휘둘렀다.

써걱!

-크워어어어억!!

드래곤의 비명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날개가 잘려 나갔다.

쿠웅!

거대하기 그지없는 드래곤의 날개가 도심 한복판에 추락하여 꿈틀대고 있었다.

너무나 급속도로 잘려 나갔기에 아직 신경이 살아 있는 거였다.

후웅! 후웅!

날개 한 짝을 잃은 드래곤은 몇 초간 힘겨운 비행을 이어나가다 이내 추락했다.

콰아아아앙!

빌딩만 한 동체가 떨어지자 건물이 무너지며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울렸다.

-크어어...!

드래곤은 엄청난 고통에 경련하며 가까스로 정인우를 바라보았다.

저벅- 저벅-

정인우는 계단을 밟듯 허공에서 서서히 내려서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짓눌려 오는 살기에 의해 숨조차 막혀왔다.

드래곤은 죽음을 코앞에 둔 불치의 환자처럼 힘겨운 호흡을 몰아쉬었다.

써걱!

그때, 다시 신의 검이 휘둘러졌다.

남은 날개가 잘려 나갔다.

-크워어어어!

드래곤이 울부짖는다.

그 외침이 얼마나 큰지 도심이 울릴 지경이었다.

사일런스 팀원들과, 멀찍이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지부장과 초인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써걱! 써걱!

예리한 칼로 두부를 썰 듯 드래곤의 팔다리가 연이어 잘려 나간다.

이어서 꼬리, 그리고 비늘까지 벗겨지기 시작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드래곤은 핏발선 눈동자로 정인우를 바라보며 애원했다.

-그, 그만...!

"야."

인우는 답 대신 녀석을 불렀다.

그리고 도심을 훑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곳을 봐라. 이 많은 시체를 보라고. 네놈이 아무렇지도 않게 죽인 사람들을 보라고. 그들의 죽음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놈이, 이제 와서 목숨을 구걸해?"

-그, 그건...!

"재밌었겠지. 꿈틀대며 죽어 가는 인간들의 모습이. 너희 드래곤들이란 언제나 그랬으니까."

부정할 수 없다.

인우의 말은 틀리지 않았으니까.

애초에 드래곤들은 인간들을 벌레 취급해 왔다.

"너희 도마뱀들의 논리는 항상 똑같았지. 약자는 언제나 벌레 취급해도 된다. 라고 말이야."

프로킨에서도 그러했다.

강했기에 가능한 논리였다.

인우는 그 논리를 충실히 이행해 줄 참이었다.

적어도 드래곤들에게 만큼은 말이다.

"나도 그렇게 해 줄게. 강자로서, 네 새끼들을 벌레 취급해 줄게."

드래곤들이 어떠한 이유로 인간계를 노렸는지 알고 싶지도 않다.

인우는 오래전 프로킨에서부터 품어 왔던 드래곤들과의 악연을 다시금 끄집어내었다.

-후우우웅.

인우는 마왕의 권능을 이용하여 헬게이트를 생성했다.

이 드래곤을 죽일 것이다.

다만 지구에서 죽이진 않는다.

지구는 경험치 10배 보정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지역이다.

이 때문에 인우는 헬게이트를 생성한 거였다.

저 안에서만큼은 프로킨과 같은 경험치 10배가 적용된다.

일전에도 경험하질 않았나.

헬게이트에 진입했을 때, 절대자의 경험치를 5씩 받다가 50으로 껑충 뛰는 것을 확인했었다.

척!

인우는 사지가 절단되어 굼벵이처럼 꿈틀대고 있는 드래곤을 질질 끌었다.

그리고 헬게이트에 진입했다.

솨아아아아.

진입과 동시에 드래곤 녀석과 눈을 마주했다.

녀석의 눈동자는 인우의 키만큼이나 커다랗다.

하지만 그뿐이다.

이 녀석은 그저 벌레일 뿐.

"뒈져라."

써걱!

신의 검이 드래곤의 목을 갈랐다.

핏줄기가 분수처럼 터져 나오며 드래곤은 그대로 절명했다.

[경험치를 4,0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40억의 경험치를 획득했다.

이는 엄청난 경험치였다.

본래라면 2,000만 경험치였을 드래곤이다.

여기서 헬게이트 10배를 보정 받아 2억이 된다.

그 2억에서 신의 아티펙트로 진화된 절대자의 성장 20배를 보정 받아 40억이 된 것이었다.

일전에 몰가스를 잡았을 때 90억의 경험치를 획득했던 인우였다.

다시 말해, 드래곤 2마리면 마왕 한 명의 경험치에 필적한다.

확실히 절대자의 성장 20배의 효과는 엄청났다.

그야말로 미쳤다고 할 만하다.

레벨도 1개가 상승한 인우였다.

<정인우>

레벨 : 745

특성 : 광전사

스텟 :

[근력 2,745+6,350+10+2350]

[민첩 1,648+5,080+250]

[마력 1,216+650+250]

[체력 1,940+2,600+10+150]

*히든 스텟 :

[괴력 100]

[매력 42]

[지능 41]

[방어력 31]

[재생력 100]

미분배 포인트 : 10

[EXP 860,850 / 8,300,000,000]

도저히 차오를 것 같지 않던 엄청난 양의 경험치였다.

하지만 결국엔 레벨을 올렸다.

현재 인우의 경험치 총량은 83억.

다시 말해, 드래곤 2마리만 잡으면 레벨 업이 가능한 수치였다.

신의 던전에서 생고생한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마침 잘 됐다. 이참에 지구를 박살 내려는 드래곤 놈들을 깡그리 잡고 800레벨을 달성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되면 다음 단계의 신의 패시브도 오픈될 것이다.

한참을 생각하던 인우는 어느새 드래곤의 사체에서 떠오른 힘의 정수를 챙겼다.

그런 뒤 본격적인 전리품 채취를 시작했다.

다른 건 볼 것도 없다.

레전드 스킬 볼 1개만 챙겼다.

이건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유니크 스킬 볼과는 다르게 100%의 확률로 스킬을 랜덤 습득하며, 무려 30%의 확률로 히든 스킬을 습득할 수 있는 최강의 스킬 볼.

"간만이네."

볼 것도 없이 삼켰다.

그러자....

['라이트닝 레인'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

.

54. [라이트닝 레인 Lv.1 (0%)] - 마력의 번개를 비처럼 뿌립니다.

아쉽게도 히든은 아니다.

하지만 이게 어딘가?

게다가 현재 인우의 절대자 패시브는 더없이 막강하다.

기존에는 5에서, 나아가 50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젠....

숨 쉬고 걸을 때마다 1만의 경험치를 습득한다.

이곳은 헬게이트 내부였기에 온전히 1만씩 올라갔다.

[경험치를 1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10,000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10,000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10,000 획득하였습니다.]

.

.

['라이트닝 레인'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라이트닝 레인'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라이트닝 레인'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기존 50씩 올랐을 때는 마스터 레벨까지 5일이 걸렸고, 레전드 마스터 레벨까지는 추가로 50일이 더 걸렸다.

도합 55일인 셈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라이트닝 레인'의 레벨이 'Master'에 도달했습니다.]

['라이트닝 레인'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라이트닝 레인'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

.

숨 10번을 내쉬면 스킬이 마스터 레벨이 된다.

그리고 숨 100번을 내쉬면 스킬이 레전드 마스터 레벨이 된다.

물론 여기에 뜀박질까지 추가되면 그 시너지는 곱절을 넘어선다.

다시 말해서....

['라이트닝 레인'의 레벨이 'Legend Master'에 도달했습니다.]

5분이면 99+99인 레전드 마스터 레벨을 달성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하?"

인우는 조금은 얼떨떨한 얼굴로 삽시간에 진화한 라이트닝 레인의 정보를 훑어보았다.

이건 뭐, 미친 거다.

흥분을 가라앉힌 인우는 드래곤의 사체를 향해 대상 축소를 시전했다.

드래곤의 크기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생명체에겐 사용할 수 없지만, 이미 시체가 된 드래곤에게는 확실히 통한다.

그러곤 사체를 보관하기 위해 아공간을 열었다.

대충 내던져 버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츠! 츠츠츠츠!"

아공간 내부에서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제야 인우는 무언가 커다란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손뼉을 쳤다.

"깜빡했네. 번쩍이는 황금 데스나이트."

중얼거리기도 잠시.

타다다닥!

시바가 잽싸게 뛰어오더니 양팔을 벌리고 인우를 끌어안았다.

"츠! 츠! 츠!"

뭐라 말을 내뱉는다.

근데, 마왕의 권능 '소통'으로 인해 그 말이 자동으로 해석되었다.

"으!"

해석과 동시에 인우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답했다.

"나는 남자 싫어. 이 자식아!"

"츠츠츠!"

시바가 웃는다.

* * *

바알은 루시퍼를 추적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놈은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녀석이 완벽히 자취를 감춘 것은 정인우가 신의 던전으로 입장한 지 이틀이 지난 뒤부터였다.

그즈음 루시퍼는 정인우가 3단계를 뛰어넘고, 그 이후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테지.

당연히 심경의 변화가 있었을 거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겠지.

똥줄이 탔을 거다.

그렇다면 놈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짙디짙은 흑막이로군. 루시퍼. 너는 대체 무슨 꿍꿍이지...?"

허공을 맴돌던 바알의 목소리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되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 * *

모두가 눈을 끔뻑댔다. 그들의 시선은 한곳에 쏠려 있었다.

"방금… 정인우가 헬게이트를 만들었지? 잘못 본 거 아니지?"

"나도 봤다. 분명히 헬게이트를 만들고서 드래곤을 끌고 들어갔어."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수십 년 전, 지구에 헬게이트가 등장했을 때.

그때 인류는 엄청난 타격을 입었었다.

그 이후로 대초인시대가 시작되었고, 인류는 괴수에 완벽히 적응했다.

하지만 헬게이트에 대해선 미스터리였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헬게이트는 여전히 베일에 둘러싸여 있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 누구도 그 안으로 진입했다가 되살아오지 못했다.

아니, 인류 최초로 정인우가 헬게이트를 클리어하긴 했다.

하지만 정인우는 헬게이트에 대해서 그 어떤 말도 해 주지 않았고, 이에 따라 헬게이트는 여전히 의문투성이인 정체불명의 미지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인우가 헬게이트를 생성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설마 정인우가 지구에 헬게이트를 연 장본인이라도 되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헬게이트를 클리어한 뒤 무언가 비밀을 얻어서 생성해 내는 방법이라도 알아낸 것일까?

무엇이 됐건 현재로썬 그 어떤 것도 속단할 수 없었다.

중요한 건 정인우가 돌아왔다는 것이고, 그가 드래곤을 애 다루듯 손쉽게 처치했다는 것이다.

부르르르.

그때, 별안간 헬게이트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헬게이트가 저렇게나 큰 떨림을 머금는 경우는, 발록 킹 급의 보스 몬스터가 리젠될 때뿐이었다.

헬게이트 최고 권위 전문가 이 박사가 했던 말이니 확실했다.

뭐, 이 박사는 입을 잘못 놀렸다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게 된 비운의 인물이긴 했지만, 그의 지식만큼은 인정해 줘야 한다.

부르르르.

여전히 헬게이트가 진동한다.

어느덧 그곳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한데, 보스 몬스터가 아니었다.

모습을 드러낸 존재는 바로 정인우였다.

"아, 다들 안 갔냐? 난 그럼 이만."

"자, 잠깐 정인우! 어딜 갈 참이지? 인류를 도와줘라!"

"그 도움이 드래곤을 퇴치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수십 마리든 수백 마리든, 내가 모조리 다 개박살 내 주지."

말을 마친 인우의 신형이 별안간 사라졌다.

모여 있던 사일런스 팀원들은 멍청한 얼굴로 정인우가 사라진 곳만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

222화 학살 (2)

정인우가 나타났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본래라면 이렇게 빠르게 퍼지지 않았겠지만, 드래곤을 삽시간에 도륙했다는 증언이 속출하자 이에 대한 소문이 더더욱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특히나 드래곤들에 의해 괴멸 직전까지 몰린 국가들은 정인우를 섭외하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었다.

후우우우웅.

인천공항.

미국에서 날아온 전용기 한 대가 착륙했다.

그 꼴을 지켜보고 있던 인천 초인관리국 지부장이 혀를 찼다.

"미국 놈들. 막무가내로군. 정인우를 모셔 가겠다고 다짜고짜 전용기부터 때려 박다니."

후우우우웅.

그때, 또 다른 착륙장에서 한 대의 비행기가 추가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엔 베트남인가."

각기 비행기에서는 말끔한 정장 차림의 중년 사내와 이를 호위하는 강력한 초인들이 내려섰다.

저들은 각각 미국과 베트남의 대통령이었다.

그렇다.

저들의 나라는 사경을 헤매고 있었기에, 나라의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정인우를 섭외하기 위해 날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대한민국조차 정인우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게다가 정인우는 설득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그야말로 제멋대로이다.

하긴, 그 정도로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다면 그럴 만도 하지 않을까?

저벅- 저벅-

그들은 빠르게 공항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각 나라의 대통령이 왔음에도 그 어떠한 환대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인우를 찾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 무슨 수를 써서든 제 나라로 정인우를 모셔 가려 할 거다.

그렇지 못하면 그들의 나라는 멸망할 테니까.

"이럴 게 아니지. 어서 국장님께 보고를."

지부장은 곧장 국장 박강중에게 콜을 넣었다.

* * *

박강중은 정인우의 소식을 접하자마자 그를 찾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정인우라니, 그가 정말 돌아온 것일까?

쉽사리 믿기지 않는다.

만약 이게 진실이라면,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의 위치는?"

박강중은 정인우가 최초로 나타났다는 헬게이트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 옆에 있던 배다정이 답했다.

"사라졌습니다."

"어디로 갔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드래곤들이라면 몇십이든 몇백이든 모조리 잡아주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가 그랬단 말이지.... 참, 자네는 정인우의 얼굴을 알고 있지? 그가 확실하던가?"

"네. 정인우가 확실했습니다. 게다가 과거보다 훨씬 더 강해졌습니다. 1분도 되지 않아 드래곤의 사지를 절단해 버렸을 정도이니까요."

"허...."

그녀가 보고에 과장을 섞을 리 없다.

그렇다면 진실이란 이야기다.

박강중은 매우 놀랐는지 입을 떡 하고 벌렸다.

애초에 정인우는 세계 랭킹 1위였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그런데 그보다 훨씬 더 강해졌단다.

도대체 어느 정도일지 상상조차 안 된다.

"지금 당장 각 지부에 호출을 넣어 정인우의 위치를 파악하도록. 그를 만나봐야겠어."

* * *

지구를 점령하기 위해 세계 각지로 흩어져 있던 드래곤들.

그들은 정인우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통신 마법을 통해 회의를 진행했다.

-1시간도 되지 않아서 7명의 동족이 목숨을 잃었다.

정인우는 자신들의 위치를 귀신같이 찾아내고 있었다.

아마 예상하기론 위저드 아이를 이용하는 것 같다.

레벨이 얼마나 높은 위저드 아이인지 장거리든 단거리든 모조리 찾아내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이대로 가다간 찔끔찔끔 정인우에게 살해당하다가 결국엔 전멸을 당할 게 분명하다는 거였다.

지금으로썬 최선은 세계로 흩어진 이들이 한데 모이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게 될 거다.

-모두 한국으로 모여라. 현재 우리의 숫자는 200에 가까우니, 우리가 한 번에 덤벼들면 놈도 어쩌지 못할 테지.

이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이윽고 모든 드래곤 일족이 한국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 * *

-꾸에에에에!

높은 고도의 상공.

드래곤 한 마리가 돼지 멱따는 소리를 토해 내고 있었다.

가만 보니, 드래곤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잔뜩 겁에 질려 혼이 달아난 얼굴이랄까?

드래곤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안간힘을 다해 무언가로부터 도주하고 있었다.

타다다다닥!

드래곤 뒤에는 허공을 밟으며 내달려오는 정인우가 보였다.

드래곤의 입장에서는 이미 그 자체로 공포영화가 따로 없다.

"곱게 죽자. 좀."

말을 마친 인우는 신의 검을 내던지며 광폭 어검을 발동시켰다.

쐐애애애액-!

푹!

그 한방에 드래곤은 그대로 바닥을 향해 추락했다.

인우는 투덜대며 바닥을 향해 내려서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크워어어어어어어!!

수백 마리의 드래곤 피어가 연달아 들려왔다.

인우는 미소지었다.

"단체 동반 자살인가?"

온몸에 버프를 둘렀다.

신의 검의 새카만 날을 쓰다듬는다.

이 녀석은 곧 엄청난 양의 피를 머금게 될 것이다.

-굉장한 숫자로군.

신의 검이 중얼거린다.

인우는 가벼운 어조로 답한다.

"응. 파티다."

* * *

세상이 멸망 직전까지 내몰렸는데도 특종을 노리는 언론매체는 여전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지구가 멸망하는 특종을 놓친다면 죽어서도 후회할 테니 말이다.

MBN에서는 정인우에 대한 속보를 내보내고 있었다.

-...해서, 현재로써는 초인 정인우의 움직임에 세계의 귀추가 몰린 상황입니다. 각국의 정상들까지 모여 있는 가운데, 정인우는 벌써 10마리의 드래곤들을 퇴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각,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상공에 수백 마리의 드래곤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앵커의 멘트가 흥분으로 인해 떨리고 있었다. 이 방송은 대한민국. 나아가,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모든 이목이 대한민국으로 쏠려 있으니 이 뉴스를 보는 이들이 상당했던 거다.

온갖 드론이 상공을 배회하며 정인우가 서 있는 곳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무너진 빌딩의 잔해 한가운데에, 그는 그저 홀로 서 있었다.

말끔한 슈트 차림에 검 하나를 꼬나 쥔 채로.

그러한 모습은 실시간으로 방송을 타고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그때쯤 박강중과 사일런스 팀도 이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들은 감히 전투에 끼어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크워어어어어어!!

엄청난 숫자의 드래곤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자, 빛조차 가려진다.

멀찍이 서 있던 박강중이 중얼거렸다.

"미쳤군. 홀로 저 많은 드래곤들과 대적한다고?"

박강중은 저 멀리에 보이는 정인우를 바라보았다.

그는 조금의 떨림도 없이 검신을 쓰다듬고 있었다.

-정인우우우우우! 너는 이제 끝이다!!

드래곤들은 로켓과 같은 빠르기로 비행하며 소리치고 있었다.

콰과과과과!!

이어서 이백 줄기의 브레스가 터져 나왔다.

그 모든 공격이 정인우 한 명에게로 집중된다.

정인우는 검을 치켜들고 달렸다.

그러자 덮쳐오는 브레스 다발이 거짓말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건 마치 모세의 기적 같았다.

그 비정상적인 광경에 박강중이 입을 쩍 벌렸다.

옆에 있던 배다정은 눈을 문지르며 볼을 꼬집고 있었다.

"국장님. 지금 정인우가 드래곤들의 브레스를 일검에 막아 낸 거, 국장님도 보셨죠?"

"...빌어먹게 잘 보이는군."

블록버스터 영화는 이제 다 망했다.

당분간은 이 미친 장면이 전 세계의 브라운관을 지배할 것 같았다.

* * *

허공을 밟든 지상을 밟든 어쨌건 끊임없이 발을 굴렀다.

신의 체력과 마력으로 인해 생명력과 마나가 끊임없이 차오른다.

인우는 저만치 앞에 미리 생성해 두었던 헬게이트로 내달렸다.

저 안에서 잡아야 제대로 된 경험치 파티를 할 수 있다.

-놈을 쫓는다!

드래곤들은 쪽수를 믿고 인우가 진입한 헬게이트에 차례로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엄청난 속도로 헬게이트에 진입하였고, 이내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됐다.

인우는 드래곤들이 입장하자마자 양손을 치켜들곤 라이트닝 레인을 뿌렸다.

쩌저저저저적!

레전드 마스터의 라이트닝 레인이 장맛비처럼 빗발쳤다.

드래곤들은 황급히 쉴드를 펼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분신들을 소환했다.

"대장. 오랜만?"

"인사는 됐고, 죽지 않게 몸 간수 잘해. 경험치가 쏟아질 거다. 끝까지 살아남는 녀석은 엄청난 레벨 업을 하게 될 테니까."

"오오!"

팔이가 눈을 빛내며 드넓은 헬게이트 필드를 방방 뛰어 대며 드래곤들의 공격을 피했다.

"알겠다. 생존만 하면. 된다 이거지?"

"응."

나머지는 인우가 알아서 할 생각이었다.

인우는 여전히 쉴드를 펼친 채 마법을 막고 있는 드래곤들을 향해 질주했다.

타다다닷!

전방을 향해 횡으로 검을 휘둘렀다.

레전드 마스터의 횡 베기가 발동되며 길쭉한 검기 다발이 터져 나왔다.

쓰걱!

쉴드가 무처럼 잘려 나간다.

드래곤들은 그 어처구니없는 파괴력에 할 말을 잃었다. 심지어 몇몇은 도주를 고민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헬게이트는 입장은 자유지만 퇴장을 위해선 무조건 클리어해야만 한다.

그게 아니라면 바깥으로 나갈 방법 따윈 없는 거다.

다시 말해 이곳에서 도망치려면 중앙에 위치한 헬탑을 클리어하고 헬스톤을 얻어내야만 한다.

하지만 정인우가 그 꼴을 잠자코 지켜볼 리 없었다.

인우는 신의 검을 놓아 주며 명령을 내렸다.

"헬탑에 접근하는 새끼들은 모조리 베어 버려."

-그대의 뜻대로.

쐐애애애앵!

신의 검이 눈 깜짝할 사이에 헬탑 입구에 자리를 잡았다.

의지를 지닌 녀석은 인우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자, 그럼."

인우는 아공간에서 드래곤 본 대검을 꺼내 들었다.

신의 검과의 파괴력 차이가 천지 차이지만, 드래곤 따위는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게다가 이 대검은 드래곤에게 추가 타격치를 발휘하니 나름 쓸 만할 거다.

대검을 공중에 띄워 광폭 어검을 발동시켰다.

그런 뒤 손목에서 바알의 수리검까지 뽑았다.

두 자루의 검을 수백 마리의 드래곤을 향해 내던져 버렸다.

쓰걱! 쓰걱!

광폭 어검을 머금은 드래곤 본 대검, 그리고 암기 투척과 함께 날아간 수리검은 무차별적으로 드래곤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아!

여기저기서 놈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거다.

정인우의 무력이 제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새 엄청난 성장이라도 했던 것일까?

그들은 자그마치 200의 숫자다.

한데도 정인우 한명에게 쩔쩔매다니.

터벅. 터벅.

인우는 여전히 어검으로 대검을 조종하며 천천히 걸어 나갔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드래곤들은 헬탑을 향해 눈을 돌렸으나, 신의 검에 의해 그 뜻을 끝내 펼치지 못했다.

인우는 사방팔방에 블리자드와 라이트닝 레인을 뿌리며 놈들의 생명력을 갉기 시작했다.

척.

어느새 드래곤 본 대검을 회수했다.

포효와 함께 광폭화, 광폭 절대검을 입혔다.

인우의 파괴력은 뻥튀기의 뻥튀기를 머금는다.

"모조리 갈아 주마. 으라아아아!!"

인우는 몸을 뱅글뱅글 돌리며 광폭난무를 펼쳤다.

쐐애애애애앵! 써걱! 써걱!

-크허어어어어어!

놈들의 날개가, 다리가, 꼬리가, 머리통이, 속수무책으로 잘려 나가기 시작했다.

드래곤들은 최후의 발악을 하며 정인우에게 마법과 브레스를 토해 냈다.

한데, 정인우는 그 어떤 타격도 입지 않고 있었다.

도대체 정인우가 착용하고 있는 저 슈트가 어느 정도의 방어력을 지녔기에?

쿠과과과과광!

그야말로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서 굴러떨어지는 눈덩이 같다.

도저히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정인우는 지치지도 않으며 광폭난무의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쐐애애애애액!

[경험치를 3,2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4,6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2,55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3,90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쏟아지는 경험치 속에서 단숨에 800레벨을 달성했다.

8차 각성과 함께 새로운 신의 패시브가 열렸다.

=======================================

223화 상봉 (1)

[800레벨의 '신의 언어'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신체가 각성되었습니다.]

[근력이 6,400 증가합니다.]

[민첩이 5,120 증가합니다.]

[체력이 2,560 증가합니다.]

[마력이 640 증가합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실로 오랜만에 폭업이었다.

200마리가량의 드래곤들이 죽자 경험치가 비처럼 쏟아졌으며, 레벨은 단숨에 800을 돌파했다.

무엇보다 각성 스텟의 상승이 무서울 정도였다.

근력의 경우 6,400이 올랐다.

100레벨 단위로 올라가는 각성 스텟.

이는 2배씩 증가하며, 레벨이 올라갈수록 뻥튀기되기에 비정상적으로 부풀 수밖에 없는 거다.

일례로, 7차 각성 스텟 근력은 3,200이었는데, 현재 8차 각성 스텟은 6,400이지 않은가.

이러니 레벨의 차이는 결코 무시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실제로 정인우는 서열전에서 바알에게 덤벼들었다가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애초에 스텟부터 엄청난 차이가 나기에 그러한 현상이 벌어진 거였다.

만일 바알의 레벨이 1,000 이상이라면, 아직도 차이가 꽤 날 거다.

제아무리 아이템 빨과 레전드 마스터 스킬을 들이밀어도 격차를 좁히기 힘들 테지.

바알 또한 절대자와 전능자 패시브가 있기에 레전드 마스터 스킬을 꽤 보유하고 있을 터였다.

게다가 아이템 또한 마계 서열 1위답게 굉장한 것들을 착용하고 있을 거다.

여기에 최소 몇만 이상의 스텟 차이가 있으니 바알은 여전히 인우보다 강할 가능성이 짙었다.

바꿔 말해, 바알과 비슷한 위력을 내는 루시퍼는 말할 것도 없다.

그 녀석 또한 아직까지는 인우보다 강할 거다.

게다가 놈은 신의 아이템도 지니고 있기에 성장하는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이번만큼은 인우가 꽤 많은 격차를 좁혔음이 분명했다.

<정인우>

레벨 : 807

특성 : 광전사

스텟 :

[근력 2,745+12,750+10+2350]

[민첩 1,648+10,200+250]

[마력 1,216+1,290+250]

[체력 1,940+5,160+10+150]

*히든 스텟 :

[괴력 100]

[매력 42]

[지능 51]

[방어력 31]

[재생력 100]

미분배 포인트 : 620

[EXP 5,982,030,070 / 19,500,000,000]

레벨 807.

미분배 포인트로 가늠해 보건대 62개의 레벨을 단번에 올렸다.

800이 되고도 7개의 레벨을 더 올린 것이다.

경험치의 총량은 기존 700레벨대보다 2배가량 늘어나 있었다.

끔찍한 양이었으나 현재 인우에게는 어떻게든 채울 수 있는 수치임은 틀림없다.

'우선 히든 스텟부터 최대치까지 올려놔야겠어.'

인우는 미분배 포인트를 '매력'을 제외한 히든 스텟에 때려 박았다.

100까지 올린 뒤, 남은 포인트는 4대 스텟에 골고루 분배했다.

거기까지 끝마친 뒤, 신의 언어의 정보를 열어 보았다.

9. [신의 언어 - '풍風, 지地'의 신언(神言)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덮쳐오는 자연재해도, 신언의 앞에서는 꼬리를 내립니다.]

10. [신의 ?? - 900레벨 달성 시 활성화됩니다.]

.

.

신의 체력, 마력, 여기에 이어서 이번엔 언어였다.

이로써 3가지의 신의 패시브가 생성된 셈이다.

한데, 신의 패시브는 절대자나 전능자와는 다르게 3가지로 끝나는 게 아닌 것 같다.

900레벨에도 신의 패시브가 활성화된다고 적혀 있었으니까.

하긴, 일전에 루시퍼와 바알이 혈투를 벌일 때 어느정도 예상은 했었다.

일단은 그때 루시퍼가 사용했던 신언(神言)의 정체가 이것인 것 같다.

바람, 땅 2가지 속성의 언어.

당시 루시퍼는 '풍風'이라고 가볍게 한마디 하는 것만으로도 돌진해 오는 마왕들을 모조리 밀어냈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인우가 입을 열었다.

"풍(風)."

단 한마디의 신언.

이로 인해 헬게이트 필드를 누비던 공기의 경로가 비틀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바로 거대한 풍압이 되었다.

휘이이이잉-!

절대적인 바람이 불며 땅을 가득 메웠던 드래곤의 사체들이 휴지조각처럼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호오."

인우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려 넣었다.

그러던 중, 비명이 들려왔다.

"대자아아앙!"

헬게이트 필드 저편, 분신들의 외침이었다.

녀석들 또한 풍압에 의해 종이 인형처럼 허공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인우는 씩 웃었다.

죽지 말고 생존만 하고 있으면 엄청난 경험치를 획득할 거라 일러두었다.

녀석들은 성공적으로 생존해 있었다.

이를 통해 놈들 또한 엄청난 경험치를 지급 받았을 거다.

분신의 정보를 훑었다.

<분신1>

레벨 : 484

한계 레벨 : 484 <시전자 레벨의 60%>

오른손 반지 : 뱀파이어 킹의 생명 반지 (체력 40 상승, 생명 자연회복력 30% 증가)

왼손 반지 : 행운의 반지 (행운치 상승)

팔찌 : 초월의 팔찌 (맨손 전투력 5배 상승, 근력 50 상승, 민첩 100 상승)

목걸이 : 디아볼로스의 이빨 (마나 소모량 50% 감소, 마법 공격력 2배 증가)

추가 스킬 : [아공간 Master] [블링크 Master] [해골 소환 Master] <히든 스킬 습득 불가>

.

.

.

분신1부터 8까지.

현재 인우의 레벨인 807의 60%인 484가 녀석들의 한계 레벨이다.

그리고 이들 모두가 484까지 레벨이 올라가 있었다.

4차 각성까지 끝마친 분신이 8명이나 되는 거다.

엄청난 전력이 분명했다.

1인 군단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그나저나 레전드 스킬 볼이 엄청 나왔겠군.'

물론 드래곤이 레전드 스킬 볼을 100% 드랍하지는 않는다.

그렇다 해도 얼추 100개는 될 것이다.

그리고 인우는 그 100개를 모조리 먹을 생각이었다.

무슨 스킬이 뜬다 해도, 5분이면 레전드 마스터까지 도달할 터였다.

이윽고 인우는 드래곤들의 전리품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채취가 끝났고, 최종적으로 98개의 레전드 스킬 볼이 떴다.

'포식 좀 해 볼까나.'

인우가 눈을 빛내며 레전드 스킬 볼을 바라보더니 이내 하나씩 삼키기 시작했다.

[히든 스킬 '폴리모프 - 뱀파이어'를 습득하였습니다.]

['해골 궁수 소환'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히든 스킬 '그레이트 블리자드'를 습득하였습니다.]

['섬멸검'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힘의 축복'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생명의 샘'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전투의 노래'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

.

.

스킬들이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98개의 스킬이 생성되었다.

그렇게, 레전드 스킬 볼을 다 먹었을 때 즈음.

['폴리모프 ? 뱀파이어'의 레벨이 'Master'에 도달하였습니다.]

['해골 궁수 소환'의 레벨이 'Legend Master'에 도달하였습니다.

.

.

.

앞서 배웠던 스킬들의 레벨이 끝까지 차올라 있었다.

거의 뭐, 배우자마자 레전드 마스터를 달성한 거였다.

이제 인우는 100개가 넘어가는 스킬의 마스터였다.

인류의 초일류 랭커들이 3~5 스킬 마스터였으니, 그야말로 압도적인 격차였다.

인간계에 인우가 자리를 잡는다면, 거의 신적인 존재로 군림할 테다.

그 어떤 누구도 인우를 막지 못할 테니까.

손짓 한 번에 국가 하나를 꿀꺽 삼킬 수도 있었으며, 조금 더 힘을 발휘하면 세계를 정복할 수도 있을 거다.

'이제 나가 볼까.'

어느덧 인우는 헬게이트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돌렸다.

* * *

그새 개미떼처럼 몰려든 언론사들은 각자 카메라를 들이밀고 헬게이트를 촬영하고 있었다.

정인우는 수백 마리의 드래곤들을 끌고서 저곳으로 진입하였고, 아직까지 별다른 소식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아마도, 격렬한 전투가 벌어져 인류가 피해를 입을까 싶어 저곳으로 드래곤들을 끌고 들어간 것 같았다.

그야말로 영웅다운 모습이었다.

뭐, 사실 인우는 경험치 10배 보정을 받기 위해 헬게이트로 진입한 거였지만, 인류가 그러한 사실을 알 리 없었다.

이 밖에도 초일류급 정상 초인들과 사일런스 팀, 나아가 각국에서 몰려온 초인들과 정부의 인물들까지.

엄청난 존재들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어? 어!?"

그때였다.

난데없이 헬게이트가 소멸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곳을 비집고 정인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찰칵! 찰칵!

이와 동시에 플래시 세례가 터져 나오며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드래곤들은 어떻게 되었느냐?' 부터 시작해서 '당신의 정체가 무엇이냐?', '혹시 신이냐?'는 멍청한 질문까지.

그중에는 외국의 언론사들도 많았다.

세계 각국의 언어가 쏟아진다.

하지만 인우는 마왕의 권능인 '소통'으로 인하여 그 모든 언어를 해석할 수 있었다.

주된 질문은 '드래곤'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인우는 짤막하게 한마디 했다.

"드래곤들은 이제 멸종 위기종이 되었으니 걱정 따윈 말라고."

말뜻을 알아들은 사람들은 모조리 벙해지고야 말았다.

설마하니 홀로 그 많은 드래곤들을 물리쳤다는 것인가?

하긴, 정인우는 헬게이트로 진입하기 전에 200줄기의 브레스를 일검에 막아 내는 어처구니없는 강력함을 보여 주었다.

"잘 놀다 간다."

이윽고 정인우는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는 별안간 사라져버렸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 * *

지구에 정착했었던 드래곤들은 애초에 멍청한 녀석들이다.

에일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로드인 그녀의 명령을 불복종하고 현대 문물에 빠진 채로 허우적대는 멍청한 족속들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 녀석들이 모조리 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간담이 서늘해졌다.

정인우는 순식간에 놈들을 제거한 것이다.

애초에 지구에 있던 드래곤들이야 정인우가 마왕이 된 줄도 모르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그러니, 한데 뭉쳐 발악하면 이길 수 있을 줄 알았겠지.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에일린이 예상하기로 정인우는 마계에서도 상당히 고위급에 해당하는 직위를 갖추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이러나저러나 여전히 의문이었다.

지구가 좋아서 정착했던 드래곤 동지들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지구를 박살 내려 했던 걸까?

그리도 좋아서 인간으로 폴리모프한 채 지구에서의 유희를 즐기던 그들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갑자기 지구를 공격했던 걸까?

그녀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에일린의 입장에서는, 천계의 대천사들이 직접 개입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못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저 불안했다.

이참에 정인우가 프로킨에 머무는 드래곤들까지 노릴까 봐, 그것이 무서웠다.

'정인우를 만나러, 마계에 가야겠어.'

그녀는 그런 결심을 했다.

로드인 그녀는 마계로 진입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곳으로 가면 정인우를 만나볼 수 있을 거다.

그간 그녀는 정인우의 가족들을 보살피며 우호적인 태도를 취해 왔다.

이를 증명하면 정인우도 무작정 에일린을 죽이려 들지 않을 거다.

모든 계획을 세운 에일린은 정인우의 가족들을 불렀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말했다.

"정인우를 보러, 마계에 갈 거야. 우리 모두 말이야."

정지은, 김민철, 팜이, 용용이, 알렉산더······.

모두의 눈이 크게 뜨였다.

=======================================

224화 상봉 (2)

에일린은 정인우의 가족들을 데리고 마계의 문턱을 넘었다.

고오오오오.

입장과 동시에 발끝부터 으슥한 한기가 치밀어 올라왔다.

인간계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새카만 구름, 핏빛 하늘.

빨간색 셀로판지로 된 안경을 쓰고 본다면 이런 느낌이려나?

본능적으로 위축이 될 만한 광경이었다.

에일린 일행은 침을 꿀꺽 삼키며 마계 초입 이곳저곳을 훑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난데없이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크렁! 크렁!

아니, 개라기보다는 호랑이의 울음소리 같다.

큼지막했으며, 절로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일행의 시선이 단박에 소리의 근원지를 향했다.

-크르르릉…!

거대한 개 한 마리가 보였다.

붉은색 눈동자와 새카만 동체, 그리고 발끝에서부터 피어오르고 있는 불꽃까지.

"헬 하운드?"

에일린이 중얼거렸다.

-크렁 크렁!

어느새 헬 하운드가 이빨을 들이밀고 일행을 향해 뛰어들기 시작했다.

에일린은 본능적으로 용언을 펼치며 아이스 계열의 마법을 날렸다.

쩌저저저저적!

순간, 마력으로 이루어진 얼음 덩어리가 헬 하운드에게 들러붙었다.

-깨개개갱!

그 즉시 녀석의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푸스스스스.

연기가 피어오르며 헬 하운드가 쓰러졌다.

에일린이 투덜댔다.

"초입부터 웬 똥개가. 자, 이제 어서 가자고. 정인우에게."

일행을 안내하기 위해 앞서 걸었다.

솔직히 그녀도 마계의 지리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일단은 조그마한 마을이라도 찾아내어 정인우에 관해 물어볼 생각이었다.

정인우는 언제나 그렇듯 요주의 인물이 되곤 하니 금세 소식을 접할 수 있을 거였다.

막 걸음을 옮기던 순간이었다.

한 무리의 마족 사내들이 살기를 풀풀 풍기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인간들? 너희들이 감히 위대하신 마계 서열 253위 벨토르 님의 사냥개를 죽였느냐?"

푸르스름한 피부. 인간을 깔보는 표정.

놈들은 분명 공격적인 어조였다.

에일린은 그러한 녀석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대번에 인상을 구겼다.

그녀는 드래곤 로드이다.

근래에 들어 정인우처럼 비정상적인 인간들을 마주하며 기가 많이 죽긴 했으나, 그렇다고 성질까지 죽은 건 아니었다.

"꺼져라. 벌레들."

순간, 마족들은 잘못 들었나 싶었다.

척.

어느새 정지은과 김민철을 비롯한 일행들도 앞으로 나섰다.

정지은이 말했다.

"푸르죽죽한 게, 꼭 시체 새끼들 같네."

그 말에 마족 사내들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칼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사내들 중 가운데에 위치한 마족이 손을 들어 올리며 중재했다.

"잠깐."

"벨토르 님. 저 녀석들이 위대한 베토르 님의 사냥개를 죽였습니다. 저희가 나서겠습니다. 놈들에게 지옥의 고통을 주겠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건대, 가운데에 있는 저 녀석이 서열 253위 벨토르인 것 같았다.

벨토르가 에일린 일행을 향해 말했다.

"하나 묻자, 내 사냥개를 왜 죽였지?"

지은이 답했다.

"개새끼가 난데없이 공격하기에 죽인 거지. 눈깔 없냐? 응? 그리고, 네놈이 개주인이냐? 마침 잘 만났다. 개새끼를 키울 거면 제대로 교육하던가. 물불 안 가리고 덤벼들잖아. 아, 뭐, 그 개새끼에 그 개주인인가?"

가만히 듣고 있던 벨토르는 어처구니가 없는지 허허 하고 웃었다.

자신이 누구인가?

마계의 지배자들인 255명의 마왕 중 한 명이다.

서열전이나 마왕 모임이 아니고서야 어디서 무시 받을 만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한데 한낱 인간 여자가 겁도 없이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고 있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더니만,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이내 벨토르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호위병들을 향해 명했다.

"죽여라. 다만, 저 인간 여자는 내가 직접 죽일 터이니 포박만 하도록."

"예. 알겠습니… 허어어어억!"

그때, 정지은이 불식간에 헬 파이어를 꼽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에일린의 용언이 쏟아졌고, 김민철과 알렉산더가 검을 치켜들고 마족들을 베기 시작했다.

그즈음 벨토르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이놈들, 보통이 아니다.

* * *

애초에 그리 뛰어난 호위병들을 데리고 간 것이 아니었다.

사냥개인 헬 하운드를 훈련시킬 겸, 가볍게 산책하는 느낌으로 나간 거다.

호위병들은 일격에 나자빠졌고, 벨토르는 홀로 녀석들과 대적했다.

처음에는 다수 대 일의 싸움에서 호각을 다투었다.

사실 여기까지 만으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낱 인간의 육체로 자신과 맞서다니?

한데 놀라기엔 일렀다.

-크워어어어어어!

황금색 머리칼의 여인이 알고 봤더니 골드 드래곤이었던 거다.

생각조차 못 했기에 그만큼 더 놀라웠다.

그녀는 동료들이 벨토르를 막아서는 동안 드래곤으로 폴리모프했다.

그러자 전투의 양상이 바뀌었다.

그녀의 파괴력이 상상 이상이었던 것이다.

보통 드래곤이 아니었다.

아니, 저 정도라면 필시 로드일 테다.

역대 로드 중에서도 가장 강한 축에 속할 정도다.

게다가 저 인간들은 어떠한가?

화상 자국이 가득한 사내는 인간계에서도 영웅으로 불릴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다.

뚱뚱한 남자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늘씬한 체형의 동양인 여자.

입이 제법 거칠었던 저 여자는 성격만큼이나 거칠고 강력했다.

물론, 각각 1:1의 대결이었다면 필시 자신이 승리했을 거다.

하지만 저들 모두가 덤벼들며, 드래곤까지 합세하자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사실 벨토르는 이번 49마왕 실종 사건 때문에 자리를 메꾸기 위하여 비교적 쉽게 마왕이 된 케이스였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한 감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왕은 마왕이다.

한데 이게 무슨 개꼴이란 말인가?

"하...! 이 무슨!!"

벨토르는 상처 입은 가슴팍을 어루만지며 결단을 위해 눈을 굴렸다.

지금 상태로는 도주가 최선이었다.

잽싸게 판단을 끝낸 벨토르는 자신의 마왕성을 향해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뒤에서 녀석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크워어어어어어!

"거기서! 경험치는 내놓고 가라고 이 개자식아!"

"놈! 놓치지 않는다!"

"누님! 저 헤이스트 좀! 살이 너무 쪄서 뛰기 힘들다고요! 헥헥!"

벨토르는 힐끔 뒤를 돌아보고는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놈들의 기세가 미쳤다 싶을 정도로 매섭다.

-크워!

설상가상으로 이제는 거대한 골드 드래곤이 모두를 태우고 자신을 쫓기 시작했다.

"젠장!"

텔레포트를 할 시간적 여유조차 없다.

벨토르는 진땀을 빼며 도주를 하는 와중에 통신 마법을 발동시켰다.

-나 좀 도와줘라! 인간들에게 쫓기고 있다!

이번에 함께 마왕좌에 오른 244위, 246위, 251위의 마왕들에게 통신을 날렸다.

되돌아 온 답변이 가관이다.

-뭔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 인간한테 쫓기다니?

-설명할 시간 없다! 드래곤 로드도 있어! 당장 나를 좀 도와줘! 위치를 전송할게!

벨토르는 이를 갈았다.

이제 동료 마왕들이 텔레포트로 곧바로 이동해 올 거다.

그리되면, 저 빌어먹을 드래곤과 인간 녀석들을 뼈 채로 씹어 먹을 수 있을 거였다.

* * *

루시 퀸은 정인우가 지구에서 마계로 복귀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볼 것도 없이 그의 마왕성으로 달려갔다.

정인우의 집사인 에노느가 그녀를 반겼다.

"아, 안녕하세요!?"

"응. 그는?"

"마왕좌에 앉아 계세요."

에노느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이제는 안다.

이 사이에 자신이 낄 자리가 없음을.

한때는 정인우에게 강한 호감을 느낀 에노느였으나, 이제는 포기했다.

정인우는 감히 자신이 바라볼 수 없는 거대한 존재였으니까.

처음 인간계에서 넘어와 마왕이 될 때까지만 해도 백마 탄 왕자님으로 보였다.

하지만.

후에, 모든 신의 던전을 클리어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백마 탄 왕자님이 경외의 대상으로 바뀌어 버렸던 거다. 결단코 자신의 짝이 아님을 안다.

하지만 이 뱀파이어 퀸은 정인우에게 어울리는 짝이라 생각했다.

저 둘이 함께 있는 것을 멀찍이서 지켜볼 때면 저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오르곤 했으니까.

"고마워. 에노느."

어느새 퀸은 인사를 하고 날아갈 기세로 달려갔다.

그리도 좋을까?

그래 뭐, 좋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하기도 잠시.

어느새 72마왕성의 순찰병들이 보고를 위해 에노느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에노느 집사님. 소식은 접하셨습니까? 지금 인간들과 드래곤이 쳐들어와서 난동을 부린다더군요."

"아아. 그렇구나."

에노느는 영혼 없이 답했다.

별 관심이 없어서였다.

순찰병이 다시 말했다.

"마왕 전하께 보고 안 하십니까?"

"지금은 방해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긴 한데. 음...."

말끝을 흐린 에노느는 돌연 고개를 저었다.

그래, 보고를 핑계로 전하를 한 번 더 뵙자.

어느새 에노느의 얼굴에는 조그마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벨토르의 도주는 그리 길지 않았다.

통신을 보낸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서 동료 마왕들이 온 것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도대체 어떤 녀석들이기에 마왕인 네가 도주한다는 거냐?"

도착한 3명의 마왕 또한 모두 다 하위권이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마왕.

게다가 이제 벨토르와 합세하여 4명의 전력이 되었다.

이 정도라면 상대가 같은 마왕이 아니고서야 밀릴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지원을 온 마왕들의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척!

어느새 벨토르를 쫓던 에일린도 서서히 지상에 내려섰다.

그제야 동료 마왕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중얼댔다.

"워. 골드 드래곤이로군?"

"그래."

벨토르는 아직도 욱신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답하고 있었다.

지원 온 마왕 중 하나가 에일린 일행을 향해 외쳤다.

"너희들, 우리가 누구인 줄은 알고 있느냐?"

"알게 뭐야. 시비는 저 새끼가 걸었고, 우리는 그저 대응했을 뿐이야."

지은이 에일린의 등에서 내려서면서 답하고 있었다.

그녀를 시작으로 일행이 하나둘 내려섰다.

곧바로 각자의 병장기를 치켜들었다.

명백한 전투태세였다.

마왕들은 어이없는 감정이 피어오름과 동시에 강렬한 분노를 느꼈다.

감히 드래곤과 인간들 따위가 마왕들에게 칼을 겨누다니.

용감한 것일까 멍청한 것일까?

마왕들은 볼 것도 없이 마기를 끓어 올리며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밧!

예고도 없이 지상에 먹구름이 생성되며 그 안에서 번개가 튀어나왔다.

까강! 까강!

"뭐야 저건!"

에일린은 용용이와 팜이를 보호하며 쉴드를 펼쳤고,

나머지 일행은 질겁을 하며 공격권 바깥으로 이동했다.

"아주 고통스럽게 죽여 주지."

고오오오오.

어느새 4명의 마왕들은 각자의 마기를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퍼어어어어엉!

마치 활화산이 터지는 것과 같은 소음이 퍼지며 공기중이 들끓기 시작했다.

"누님. 알렉산더, 이거 심상치 않은데요?"

김민철이 땀을 비질비질 흘리며 다급히 입을 열고 있었다.

헬탑의 보스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강렬한 기세에 살갗이 따끔거릴 지경이었다.

그것은 정지은과 알렉산더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지은이 말했다.

"광역기인 것 같다. 에일린. 일단 용용이랑 팜이를 보호해 줘."

정지은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저들이 바로 마왕인 걸까? 실로 엄청난 힘이다.

4명의 마왕이 마기를 폭발시키자 숨조차 쉬이 내뱉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야. 민철. 내가 큰 거 한 방 준비할 때 동안 시간 끌어."

민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알렉산더와 함께 마왕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 순간.

쩌저저저저적!

마왕들은 양손을 뻗었고, 각자 발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을 펼쳤다.

지상을 씹어 삼키는 토네이도가 불었으며, 존재하는 모든 것을 얼려버릴 것만 같은 거대한 눈보라가 불어닥쳤다.

"크으으으읏!"

일행 모두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정지은은 마법이 없는 김민철에게 쉴드를 걸어 주었다.

와장창!

하지만 쉴드는 곧바로 깨져 나갔고, 선봉에 있던 김민철이 토네이도에 휩쓸렸다.

"으아아아아아!"

녀석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들려왔다.

저 상태라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전신이 조각날 거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풍(風)."

어디선가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우우우.

자연재해에 버금가는 강력한 토네이도가 거짓말처럼 소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저벅- 저벅-

어느새 모두의 눈이 놀라움으로 인해 크게 뜨였다.

검은 슈트 차림에 한 손에 검을 쥐고 있는, 그는 정인우였다.

"드래곤과 인간들이라기에, 혹시나 싶더니만… 그나저나, 누가 내 가족을 건드린 거냐?"

그의 눈빛이 제법 살벌했다.

=======================================

225화 상봉 (3)

벨토르를 포함한 4명의 마왕은 어찌나 놀랐는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전력을 다한 토네이도 마법이 거짓말처럼 파훼되어서가 아니었다.

'허얼. 마왕 정인우.'

그들의 눈동자에는 커다란 존경이 담겨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정인우는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최초로 마왕이 되었으며, 그도 모자라 단박에 72위가 되었다.

어디 이뿐인가?

이제는 신의 던전까지 끝까지 클리어한 인물이 아니던가?

정인우는 마계의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이 때문에 이들이 존경심을 느낄 수밖에 없는 거다.

어느새 4명의 마왕은 저마다 고개를 푹 숙이며 인우를 향해 말했다.

"마계 서열 72위 정인우 마왕님의 가족 분들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이런 미친 짓을 하진 않았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이제는 고개도 모자라 무릎까지 꿇는 마왕들이었다.

상황이 이즈음 되자 에일린과 정지은을 포함한 일행들은 할 말을 잃었다.

재회의 기쁨이 커다란 놀라움으로 인해 지워졌을 정도다.

"······."

설마하니 정인우가 마계에서 이 정도로 높은 위치일 줄은 몰랐던 거다.

물론 어느 정도의 지위를 갖추고 있을 거라 생각은 했다. 하지만 결단코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저벅- 저벅-

정인우는 격전지의 중앙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그러더니 제 가족들을 살펴보았다.

토네이도에 휩쓸렸던 민철이가 조금 다친 것을 제외하면 모두가 무사하다.

확인을 마친 인우는 이번엔 마왕들을 바라보았다.

녀석들은 이미 잔뜩 얼어붙어 있었다.

존경과 두려움으로 말이다.

놈들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인우가 제아무리 순위가 높아졌다 한들, 생사전이 아니고서야 이렇듯 대놓고 마왕들을 살해할 순 없다.

마침 가족들도 다치지 않았으니 이쯤에서 정리하는 게 옳다고 판단됐다.

어느덧 인우는 정지은과 김민철, 알렉산더, 팜이, 용용이를 바라보며 손짓했다.

"너흰 이쪽으로 빠져."

"어··· 뭐, 그래."

"넵. 형님."

"예. 폐하."

그런 뒤 마왕들에게 말했다.

"나는 내 가족들을 데리고 간다. 그럼 수고해."

"살펴가십시오!"

마왕들이 땅에 고개를 처박는다.

그리고 그때, 홀로 남은 에일린이 원망스러운 눈동자로 인우를 향해 소리쳤다.

"저, 정인우! 나는? 난 안 데리고 가······?"

"아, 너도 있었구나. 참."

"······."

"따라와."

정인우가 일행을 데리고 사라지자, 그제야 마왕들은 땅에 처박았던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근래에 들어 가장 잘나가는 마왕인데, 척을 질 뻔했잖아."

"벨토르. 다음에 지원을 요청할 땐 생각을 하라고 좀!"

"맞아 이 멍청한 녀석아! 생각 좀 하고 살자 우리! 앙?"

마왕들은 애꿎은 벨토르를 탓했다.

사실 벨토르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있다면 그저 헬 하운드를 산책시킨 게 죄였다.

* * *

지구의 고층빌딩부터, 프로킨의 황궁까지.

높다랗고 거대하고 웅장한 건축물들을 참 많이도 보아 왔다.

"헐······."

하지만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김민철은 고개를 하늘 끝까지 치켜들고는 멍청한 얼굴을 했다.

정인우를 따라서 도착한 72위 마왕성은 상상 이상의 웅장함을 뽐내고 있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첨탑이 고드름처럼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고 있다.

광택이 나는 검정색의 외벽은 스케이트를 타도 될 것만 같다.

"이곳이, 형님의 성입니까?"

"응."

정작 성의 주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내뱉는다.

끼긱! 쿵!

어느덧 성으로 통하는 거대한 다리가 내려섰다.

척. 척. 척.

그 길목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마족과 괴수들이 절도 있는 자세로 창을 꼬나쥔 채 서 있었다.

저벅- 저벅-

인우가 그사이를 걸어가자, 녀석들은 가슴에 창을 대며 가벼운 묵례를 했다.

마치 도미노처럼, 파도타기를 하듯 긴 행렬의 병력이 인우가 지나갈 때마다 고개를 숙인다.

"장관이로군요."

그 말마따나 장관이다.

심지어 로드인 에일린조차도 얼이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레어는 소꿉장난 수준이었다.

"들어와."

이내 성의 입구에 도착했다.

문이 열렸고, 그 사이로 집사인 에노느가 인우를 반겼다.

"마왕 전하를 뵙습니다. 잘 다녀오셨나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마친 인우가 덧붙였다.

"알현실로 갈 거다. 달콤한 차를 준비해."

"예!"

길고 긴 복도를 지나 도착한 알현실.

인우는 푹신한 소파에 눕다시피 앉으며 일행을 바라보았다.

잠시 뒤 일행 모두 소파에 앉았고, 그제야 인우는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에일린. 네가 그간 내 가족들을 지켜 준 거겠지."

"맞아."

에일린은 짧게 답하며 기쁜 얼굴을 했다.

정인우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 노력을 그가 알아 줬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다시금 인우가 물었다.

"이들을 마계로 데리고 온 것도 너겠지. 묻자, 무슨 일 때문에 온 건지."

"얼마 전, 지구에 정착했던 드래곤들이 날뛰었단 소식을 접했어. 너도 알고 있듯이 말이야."

인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우가 그 드래곤들을 모조리 요절냈으니 알고 있을 수밖에.

"일단, 나는 그 일과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을 말해 두고 싶어."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애초에 그녀가 가담했었다면 200마리가 아니라 500마리는 되었을 거다.

이것은 지구의 드래곤들이 로드의 명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었다.

아니 뭐, 애초에 지구의 드래곤들은 그곳에 정착하는 순간부터 독단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볼 수 있다.

"나 또한 동족들이 지구를 왜 공격했는지 몰라. 녀석들은 도리어 지구의 현대문물이 좋아서 정착한 놈들이라고. 그런 녀석들이 왜 지구를 멸망시키려 했는지, 가늠이 안 돼. 다만 예상하기론······."

"상위의 존재들이겠지."

에일린이 말꼬리를 흐리자 인우가 대신 답했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에일린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럴 거야. 상위의 존재. 아마 마계의 인물은 아닐 거야. 천계의 천사들이 가담한 것 같다."

"흐음."

인우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마계의 인물은 아니다.

마계의 마왕들은 바알을 통해 모조리 꿰고 있다.

그렇다면 천계가 확실하다.

또한, 수백 마리의 드래곤들을 협박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천계에서도 대천사급의 존재일 거다.

서서히 퍼즐이 맞춰져 갔다.

바알을 통해 듣기론, 천계의 대천사들은 '대천사장'이라는 중재자에 의해 마음껏 활개를 치지 못한다 했다.

그것이 가능했다면 애초에 루시퍼가 모든 천사를 이끌고 공격을 해 왔을 거라 했으니까.

즉, 대천사들은 마왕들관 다르게 마음껏 움직일 수 없다는 거다. 그러므로 드래곤들을 이용하여 지구를 차지하려 했을 거다.

그런 뒤 대천사장의 눈에 띄지 않게 지구를 무대로 마계를 공격할 생각이었을 거다.

하지만 대천사들은 변수를 고려하지 못했다.

지구가 바로 정인우의 고향이었다는 변수를 말이다.

생각도 잠시.

에일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너의 가족들도 모두 데리고 왔으니, 나는 프로킨으로 돌아가 볼게. 동족들을 모아서 회의해 볼 참이야. 천계의 천사들이 프로킨의 드래곤들에게도 마수를 뻗쳐올 테니. 그 전에 대응해야겠지."

"아, 좋을 대로. 참, 가기 전에······."

인우는 품속에서 수정구 하나를 꺼냈다.

그것을 에일린에게 주며 덧붙였다.

"나와 통신할 수 있는 수정구다. 천사들의 압력이 들어온다면 바로 나에게 연락해."

"응."

에일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에 담겨 있는 것은 든든함이었다.

한때는 적이었던 정인우였으나, 이제는 동지이다.

손바닥 뒤집듯 가벼워 보이는 관계일 수도 있으나, 이것만으로도 에일린은 충분했다.

이윽고 그녀는 마계를 떠나 프로킨을 향했다.

그리고 그제야 인우는 가족들과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가족들이 가장 놀라워했던 것은 바로······.

끼익.

"오랜만이에요."

루시 퀸이었다.

뒤늦게 알현실로 들어선 그녀는 활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녀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드래곤의 뺨따귀를 가볍게 후려칠 정도였고, 그녀가 자그마치 마왕좌에 앉았다는 사실을 접하자 가족들은 크게 놀라워했다.

아마, 전 차원의 괴수들을 통틀어서 그녀보다 성공한 존재는 없을 것이 분명했다.

* * *

천계의 대천사인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그들은 정인우에 의해 계획이 틀어졌음을 인지했다.

그 빌어먹을 녀석이 지구로 현신하더니 드래곤들을 모조리 요절낸 것이다.

심지어 24시간도 안 걸렸다.

신의 던전을 다녀온 뒤로 놈의 무력이 엄청나게 강해진 게 분명했다.

이렇게 된 이상 차선책이 필요했다.

"루시퍼와의 연락은 아직인가?"

"도대체 어디로 간지 모르겠어. 어떻게 해서든 우리끼리 해결을 봐야 해."

사실, 루시퍼만 있었다면 지구 따위는 순식간에 점령했을 거다.

애초에 루시퍼는 신의 선택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대천사장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이러니 루시퍼라는 병기가 필요한 상황인데, 녀석은 어디론가 사라진 뒤 연락조차 닿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드래곤 로드 년을 압박하는 게 최선이다."

"동의한다."

"나 또한 동의."

대천사들은 만장일치로 드래곤 로드를 압박할 계획을 세웠다.

로드가 나서서 직접 움직인다면 지구 점령은 순식간일 거다.

로드의 명에 의해 엄청난 숫자의 드래곤들이 움직일 테고, 로드 자체의 위력도 굉장했으니까.

"만약 이번에도 계획이 실패한다면······."

그때가 되면 조금 더 극단적인 수를 찾아야만 할 것이다.

"이게 무슨 개고생인지. 하아."

사실, 중재자인 대천사장만 제거할 수 있다면 이런 고생 따윈 하지 않았을 거다.

가장 이상적인 최선의 수는 루시퍼가 정인우를 제거하고 마신의 직위를 얻어 대천사장을 소멸시키는 거다.

하지만 루시퍼의 소식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 * *

바알은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근래에 들어 한계가 명확함을 여실히 깨닫는 중이다.

엄청나게 높은 레벨로 인해 더 이상의 레벨 업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정인우나 루시퍼는 신의 아이템으로 인해 빠른 레벨 업을 할 테지만, 그에겐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저 노력에 노력을 거듭할 뿐······.

빌어먹을 신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것.

그것은 바알의 한계를 절대자와 전능자 패시브까지로 한정 지었다.

절대자와 전능자 패시브.

여기까지는 마계에 숨겨진 히든피스를 통해 얻어낼 수 있었다.

때로는 아티펙트에 붙어 있거나, 때로는 스킬 볼을 통해 등장했다.

그리하여 현재 바알이 얻어낸 것들은 도합 4가지.

절대자의 걸음, 호흡, 성장.

그리고 전능자의 한계돌파.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능력들과 액티브 스킬의 한계 레벨을 2배까지 끌어올려 주는 패시브.

이를 통해 바알은 비교적 쉽게 스킬 레벨들을 올려 왔었고, 99+99의 경지인 레전드 마스터에 닿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이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신의 패시브는 그 어떠한 수단을 이용해도 얻어낼 수 없었으니까.

만약 강제로라도 신의 패시브를 얻을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신의 던전에도 입장할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자신에게도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함을 안다.

"빌어먹을 절대신."

바알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노력뿐이었다.

=======================================

226화 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