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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화 루시퍼 (1)

루시퍼는 프로킨의 황궁에 꽤나 오래 머물렀다.

정오가 되면 어김없이 그곳에 들러 해먹을 설치하고 드러누웠다.

자신과 같은 능력을 지닌 정인우가 머물고 있는 곳은 분명 이곳이라 했다.

하지만 정인우라는 인간 놈을 찾을 순 없었다.

"그냥 다 날려 버릴까."

루시퍼는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어조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일말의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그 말은 마치 사이코패스의 그것과 같았다.

차가웠으며, 공허했다.

* * *

루시퍼가 힘을 되찾았다. 아니, 이렇게 대놓고 등장할 정도면 필시 과거보다 더욱 강해져 있을 것이다.

게다가 루시퍼는 가만히 놔둘수록 점차 강해진다.

때문에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

루시퍼는 본인의 목적을 위하여 마계를 통째로 날리고도 남을 녀석이었으니까.

놈은 감정이 없으며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러니 애초에 타락한 천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런 미친놈이 마신이 된다면, 더 이상 마계에는 미래가 없다.

때문에 바알은 즉시 움직였다.

"프로킨이라."

현재 루시퍼의 위치는 프로킨이라 불리는 하위 행성.

바알은 그곳으로 현신하기 위해 마기를 끌어올렸다.

우우우우웅-!

마계 서열 1위가 인간계로 직접 내려가는 것은, 처음으로 있는 일이었다.

* * *

프로킨의 황궁.

알렉산더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 있었다.

"뭐라? 신탁의 내용이 어떻다고?"

"그, 그것이… 신탁에 의하면 마, 마왕이 강림한다고 합니다."

마왕 강림.

엄청난 대재앙이다.

"이게 도대체…!"

알렉산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는 금세 정신을 차렸다.

그러곤 정인우의 가족들에게 향했다.

오래지않아 정지은, 김민철, 팜이, 용용이와 마주했다.

알렉산더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제 뭘 어쩐단 말인가?

정인우의 가족과 함께 마왕에 맞서야 하는가?

그게 아니라면 데리고 도주해야 하는가?

도주한다면 프로킨을 버리고 가는 거다.

만약, 자신이 프로킨을 버린다면 이곳은 마왕에 의해 파멸할 것이다.

이윽고 결단을 내린 알렉산더가 인우의 가족들을 향해 말했다.

"대재앙이 벌어질 겁니다. 지구라는 곳으로 대피하십시오."

"그게 무슨 말이야?"

정지은이 물었고, 알렉산더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모든 이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정인우도 없는데 이건 무슨 개 같은 경우인가?

알렉산더가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도망치십시오."

"...."

모두가 심각한 얼굴이 되어 쉽사리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하늘에서 피어가 들려왔다.

-크워어어어어어

"…에일린?"

하늘 위에는 금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드래곤이 보였다.

필시 드래곤 로드인 에일린이었다.

뿐만 아니다.

그녀를 포함한 모든 드래곤 일족이 보였다.

정인우에 의해 많은 숫자가 줄긴 했으나. 그럼에도 200마리는 되어 보였다.

후웅- 후웅-

이윽고 200마리의 드래곤들이 지상으로 내려서며 인간으로 폴리모프했다.

그렇게 내려선 에일린은 곧바로 용용이를 바라보았다.

용용이는 그녀의 딸.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하는 존재다.

하지만 에일린은 용용이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을 알기에 쳐다보기만 할 뿐 다가오진 않았다.

이내 에일린이 알렉산더를 바라보며 말했다.

"신탁은 받았겠지?"

"그렇다. 드래곤 일족도 신탁을 받았나?"

"드래곤은 인간계를 수호하는 존재다. 너희보단 일찍 받았지. 그 내용 또한 훨씬 더 상세하다."

드래곤은 신의 대리자다.

인간계를 지키는 수호룡이다.

물론 그건 '인간계'를 수호하는 거지 '인간'을 지킨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실제로 드래곤들은 인간을 벌레취급하며 파괴와 약탈을 일삼지 않나?

"인간계에 내려온 신탁은 끽 해 봐야 마왕이 강림한다는 내용이 다겠지. 맞나?"

에일린은 볼 것도 없다는 듯 단정지었다.

이에 알렉산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에일린은 설명을 덧붙였다.

"드래곤 일족에게 내려온 신탁의 내용은 조금 다르다."

"…어떻게 다르지?"

알렉산더가 침을 꿀꺽 삼키며 묻고 있었다.

"수십 명의 마왕이 강림한다. 그리고 프로킨은 오늘 대륙의 절반이 날아간다. 멸망에 가까운 타격을 입는다는 거지."

"…수십 명의 마왕…? 대륙의 절반이 날아간다고?"

"그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너희는 어서…"

에일린은 잠시 말을 끊고 용용이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딸인 용용이는 지켜야 한다.

"어서, 피해. 지구든, 마계든, 어디든, 프로킨만 아니면 된다. 나의 딸을 데리고, 피해라. 그리고 지켜라. 정인우가 있는 마계로 가도 좋을 테지."

거기까지 말한 에일린은 시선을 거뒀다.

문득, 용용이가 그녀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으나 에일린은 애써 무시했다.

자신은 드래곤 로드다.

이 신분의 무게는 무겁다.

살겠다고 도망칠 수 있을 정도로 가볍지 않다는 거다.

생각 같아선 용용이와 함께 도망치고 싶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생각도 잠시.

부스럭.

정원의 나무 사이에서 난데없이 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려보니, 나무 사이에 설치된 해먹에서 웬 사내가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그러자 알렉산더가 사내를 바라보며 아는 체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저 미친놈은 여전히 천하태평이군. 이봐, 당신 어제 떠난다 하지 않았나?"

저 사내는 분명 자신을 천사라 소개하던 그 녀석이었다.

정오가 되면 늘 해먹을 설치하고 낮잠을 자고 가는 그 녀석.

그 누구도 쫓아내지 못했던 귀신같았던 사내.

어느덧 사내가 입을 열었다.

"아아, 떠날 참이었지. 그런데, 맛있는 냄새가 나서 말이지."

에일린 또한 사내를 보았다.

그리고 그 즉시 에일린의 눈이 크게 뜨였다.

사내에게서 풍기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계와 천계의 존재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

드래곤 로드이니 당연한 능력이다.

그런 그녀가 바라본 저 사내는 대천사이기도 했으며 마왕이기도 했다.

어느덧 에일린은 수하 드래곤을 향해 메시지를 전했다.

-내 딸과 정인우의 가족들을 데리고 이곳에서 피해라. 정인우가 있는 곳으로 가. 녀석이라면 분명 도움을 줄 거다.

분명 그럴 것이다. 용용이를 포함한 정인우의 모든 가족들을 데리고 찾아간다면, 당연히 도움을 줄 것이다. 지금으로선 이것이 최선이었다.

-아공간에 넣어서 바로 이곳을 빠져나가.

거기까지 말한 에일린은 금발의 사내를 바라보며 물었다.

"마왕인가?"

"겁먹지 마라. 나는 루시퍼. 대천사다. 내가 마왕을 물리쳐 주지."

"…대천사 루시퍼...."

"그나저나, 네년이 드래곤 로드인가?"

"그렇다."

"호오. 맛있는 냄새의 정체는 네년이었군."

그리 말한 루시퍼는 혀로 윗입술을 훑었다.

그 모습에 에일린은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다시금 루시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를 포함한 모든 드래곤 일족. 나의 재물이 돼라."

루시퍼, 그는 성장을 위한 경험치를 얻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미친놈이었다.

이건, 누군가와 꽤나 닮아 있는 모습이기도 했다.

터벅- 터벅-

어느덧 루시퍼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러자 에일린은 저도 모르게 다리가 후들거림을 느꼈다.

그즈음, 정인우의 가족들이 하나둘 무기를 빼 들고 에일린의 옆으로 다가왔다.

"언니, 뭔진 모르겠는데, 우리는 도망가지 않아."

"아니, 지은 누님. 제 등 뒤로 숨어요."

아공간에 들어가 도망치게 해 주려 했건만, 이 녀석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도리어 전투태세를 갖추고 이를 갈고 있다.

하긴....

이들은 정인우의 가족들이다.

어쩔 수 없이 정인우와 닮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 제발 도망쳐라. 모두 다 개죽음을 당하고 싶어?"

"...."

에일린의 간절한 목소리에도 인우의 가족들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이곳을 향해 걸어오는 루시퍼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타닷!

불식간에 루시퍼의 신형이 천둥처럼 번쩍였다.

카아아앙!

* * *

루시퍼라는 놈이 프로킨에 있단다.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그곳에는 자신의 여동생을 포함한 가족들이 모여 있다.

그들이 위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니 인우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레모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인우는 프로킨으로의 현신을 준비했다.

"그만둬 정인우. 지금 그곳으로 가 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다고."

"애초에 그 녀석들과 다함께 마계로 오는 건데. 내 실수다. 사람이, 실수를 했으면 바로잡아야 맞는 거 아니냐? 구해 올 거야."

인우는 고집스러운 얼굴을 한 채 마기를 끌어올려 마왕의 권능을 발현시켰다.

곧바로 인우는 프로킨으로 현신했다.

150위 마왕의 현신이었다.

* * *

삽시간에 다가온 루시퍼의 일격.

에일린은 정인우의 가족들을 뒤로 물리고 앞으로 나섰다.

카가가가가각-!!

에일린은 단 일격도 버티지 못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건 무얼까?

"...."

칠흑과 같은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 온통 검은색 일색인 한 사내가 에일린의 앞을 가로막고 루시퍼의 검을 막아 냈다.

에일린은 본능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난데없이 등장한 이 검은 머리의 사내는 보통 마왕이 아님을.

어느덧 검은 머리의 사내가 루시퍼를 향해 말했다.

"오랜만이군."

"호오? 바알? 이게 얼마 만인가. 나의 오랜 친우."

루시퍼는 '친우'라는 단어에 힘주어 말하며 이를 갈았다.

그는 당장이라고 바알을 갈아 마실 기세로 쏘아보기 시작했다.

바알은 그 강렬한 시선에도 아랑곳 않은 채 말했다.

"드래곤들을 잡을 순 없을 것이다. 지금부터 나는, 네놈의 성장을 불허한다."

"예나 지금이나 광오하기 짝이 없군."

그 순간.

바알은 마기를 끌어올려 기세를 날렸다.

쩌엉-

이것은, 일전에 정인우의 무릎을 꿇리게 만들었던 그 기운이었다.

그 당시에는 정인우 한 명에게만 타격을 주는 기운이었으나, 지금은 달랐다.

바알은 그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기세를 날리고 있었다.

파바바바바밧!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이 이곳 정원을 뒤덮었다.

"커헉!"

"크윽!"

"으아악!"

반응은 곧바로 튀어나왔다.

이곳에 모여 있는 200마리의 드래곤들, 그리고 정인우의 가족들을 포함한 병사들까지.

그들 모두가 예외 없이 피를 토하며 무릎이 꿇려졌다.

수백 명의 인영이 동시에 무릎이 꿇리는 장면은 장관이었다.

단 한 방의 기세에 로드인 에일린마저 전투불능이 된 것이다.

엄청난 기운이다.

하지만 정작 루시퍼는 멀쩡해 보이기만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바알은 분신을 소환함과 동시에 전투태세를 갖췄다.

그런데 그때였다.

후우우우우웅-

허공이 일그러지며 붉은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터벅- 터벅-

그리고 그곳에서 대검을 어깨에 걸친 사내가 걸어 나왔다.

그 모습에, 무릎을 꿇은 채 괴로워하고 있던 정인우의 가족들이 눈을 부릅떴다.

"폐, 폐하…!"

"정인우!"

"형님!"

"아… 빠!?"

모든 이들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인우는 그들을 한번 바라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숨이 끊긴 녀석은 없었다.

모두가 무사하다.

일단은 그거면 됐다.

인우는 재회의 기쁨을 뒤로 물린 채 바알쪽을 바라보았고, 그와 동시에 루시퍼와 눈이 마주쳤다.

사아아아아아.

순간, 발끝에서부터 소름이 피어올랐다.

전신을 물들인 소름에 의해 피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루시퍼 또한 마찬가지였다.

"네놈이 바로 정인우로군."

"…루시퍼."

둘은, 본능적으로 서로를 알아보고 있었다.

신의 능력을 부여받은, 결단코 공존할 수 없는,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정인우와 루시퍼.

그들은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서로를 바라보았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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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화 루시퍼 (2)

한참동안 정인우를 바라보던 루시퍼가 말했다.

"내가 반드시 죽여야 할 녀석이 딱 두 명이 있지."

거기까지 말한 루시퍼는 양손바닥을 밀착시켰다.

우우웅-

그의 손바닥에서 새하얀 빛무리와 새카만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것은 각각 천기와 마기였다.

마왕도 천사도 아닌 그는, 달리 말해 마왕이기도 했으며 천사이기도 했다.

쩌저저저적!

어느덧 두 기운이 뱀의 또아리처럼 얽히고설키며 서서히 응축되어 갔다.

"하나는, 나의 길을 방해했던 놈."

그리 말하는 루시퍼는 바알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번엔 고개를 돌려 정인우를 바라보았다.

"또 하나는 나의 길을 방해하게 될 놈."

쩌어어어어억!

어느덧 루시퍼는 팔을 벌리며 양손에 응축시킨 기운을 쫙 늘렸다.

그러자 기운은 길게 늘어지며 하나의 칼이 되었다.

"그 두 녀석이 내 눈앞에 굴러오다니. 기쁘기 그지없구나."

우웅.

새하얗게 발광하는 천기의 기운이 담긴 검.

검면에는 새카만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천기와 마기는 상극이기에, 서로 융합되지 못한 채 뒤엉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반발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아니, 애초에 두 기운으로 검을 만들어 냈다는 것 자체부터가 미쳤다. 나아가, 두 기운을 다루고 있다니?

그것을 확인한 바알은 표정을 굳히며 정인우를 바라보았다.

"마계 서열 150위 정인우. 간덩이가 배 밖으로 튀어나온 건가? 네놈이 끼어들 만한 전투가 아니다. 마계로 복귀해라."

이즈음, 바알은 알게 되었던 것이다.

첫째로, 루시퍼의 무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해져 있음을.

둘째로, 루시퍼의 말을 유추해 보건대, 정인우가 신의 패시브를 지니고 있음을.

그때였다.

타닷!

난데없이 루시퍼의 신형이 점멸했다.

불식간에 꺼졌던 루시퍼는 삽시간에 정인우의 코앞으로 와 있었다.

루시퍼의 검이 허공을 베어 나가며 정인우의 목을 향했다.

쐐애애애액!

몇 박자 늦게 파공성이 들려온다.

루시퍼의 검은 그 정도로 빨랐다.

카가가가각!

슈우웅!

정인우는 본능적으로 블링크를 시전했고, 이와 동시에 바알이 루시퍼의 검을 막아섰다.

"네 상대는 나다. 루시퍼."

"…하아."

순간, 루시퍼는 한숨을 내쉬며 바알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공허하고 차가웠다.

* * *

드래곤, 지상 최강의 생명체.

그리고 그들을 다스리는 드래곤 로드.

달리 말해 지상 최강의 생명체들의 왕.

이것이 바로 자신의 위치였다.

높고도 높은 위치인 것이다.

골드 드래곤 에일린.

그렇게나 대단한 그녀는, 지금 멍청한 얼굴을 한 채 이곳에서 벌어지는 상식 밖의 전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는 놈 위에 걷는 놈, 그 위에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들 한다.

그런데, 나는 놈 위에 하늘이 있었고, 그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었다.

천외천(天外天). 하늘 밖의 하늘.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무언가가 번쩍이고, 그럴 때마다 대지가 박살나고 모든 것들이 쑥대밭으로 변하고 있었다.

저들은 도대체 얼마나 강한 것일까?

또한 정인우는 이번에 또 얼마나 큰 대형 사고를 쳤기에 저 천사에게 노려지고 있는 것일까?

저렇게나 엄청난 힘을 지닌 천사가 노릴 정도면, 정인우의 위치 또한 엄청날 것이다.

이즈음 와서 느끼는 건데, 정인우에게 까부는 게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나아가, 용용이를 지켜야 한다.

에일린은 즉시 정인우의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내가 했던 말 기억해? 신탁에 의하면, 오늘 프로킨에 수십 명의 마왕이 강림한다 했고, 프로킨은 멸망에 가까운 타격을 입는다 했다. 우리가 낄 자리가 아니야. 대피한다. 내가 도울게."

용용이, 알렉산더, 정지은, 김민철, 팜이.

이들 모두를 데리고 레어로 피신하는 것이 맞다.

높은 고도의 상공에 위치해 있는 자신의 레어라면 안전할 것이다.

"우리 오빠는!? 정인우도 데리고 가야 해!"

"정인우 또한 저 전투에 가담하고 있잖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나는 강제로라도 너희를 데려갈 거야."

말을 마친 에일린은 200에 가까운 드래곤 일족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 즉시 드래곤들이 움직였고, 정인우의 가족들은 그들의 손에 의해 공중 레어에 붙잡혀 가기 시작했다.

수십 마리라면 어떻게 해 보겠는데, 200에 가까운 숫자와 로드 에일린까지 가세하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드래곤들에게 붙들려 공중으로 떠오른 정인우의 가족들이 하나같이 지상을 향해 외쳤다.

"정인우우우우!"

"형님!!"

"아빠!!"

"폐하!!"

* * *

인우가 서열전에서 체험해 보았던 바알의 전투력은 정말이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하긴, 그때에 바알은 그저 기세를 한번 쏘아내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의 바알은 아니었다.

루시퍼를 막아서는 바알은 온전히 100%의 힘을 뿜어내고 있었다.

둘의 힘은 그야말로 막상막하였다.

주변은 삽시간에 초토화되기 시작했고, 인우는 그 잔류 여파에 대처하는 것만으로도 진땀을 빼고 있었다.

"빌어먹을 괴물 새끼들!"

인우는 이를 갈았다.

자신이 이렇게나 무기력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짜증이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저 루시퍼라는 녀석에게 한 방 먹여 줘야겠다.

"으라아아아압!!"

인우는 광폭화를 시전하며 버프를 둘렀다.

그런 뒤 곧바로 분신들을 소환했다.

"대장! 커어억!"

"으어어어억!!"

분신들은 소환되자마자 온 대지를 물들인 바알과 루시퍼의 기세에 숨조차 제대로 내쉬지 못했다.

하긴, 인우마저도 간신히 서 있는 것이 고작인데, 이 녀석들이 무얼 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인우는 루시퍼를 가리키며 명령을 내렸다.

"저 새끼를 조져!"

이와 동시에 인우는 대검에 광폭 절대검을 덧씌우며 대검관통의 추진력을 이용해 돌진했다.

"크아아아아아!!"

쐐애애애액!

목을 갉아먹는 거친 기합성과 함께 인우의 신형이 단숨에 전투의 한복판으로 끼어들었다.

"...."

루시퍼는 바알의 공격을 막아 내는 한편 돌진해 오는 인우를 향해 손바닥을 쭉 내밀었다.

쩌어어엉-!

순간 빛무리가 뿜어져 나왔고, 그것은 곧바로 인우의 복부를 관통했다.

"크훕!"

인우는 돌진하다가 복부에서 느껴지는 아찔한 통증에 나뒹굴었다.

도대체 저 공격은 뭐였을까?

그야말로 빛과 같은 섬멸이 일며 그대로 복부에 구멍이 뚫리다니.

피할 수조차 없었다.

"...!"

바알은 그런 인우를 힐끗 보더니 더욱 강하게 루시퍼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순간 바알의 육체에서 짙디짙은 칠흑의 마기가 튀어나오며 루시퍼를 휘감았다.

이와 동시에 바알이 인우를 향해 말했다.

"방어해라."

"뭐?"

"터뜨릴 거니까."

그 순간 루시퍼를 덮쳤던 마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척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

인우는 군말 없이 육체 강화와 쉴드를 침과 동시에 대검 막기를 펼쳤다.

그런 뒤 입속에 넣어 두었던 힘의 정수를 삼킬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때, 족히 반경 10미터가량까지 부풀어 오른 마기가 끔찍한 소리를 내며 폭발을 일으켰다.

퍼버버버버버벙!!

연쇄적인 폭발음과 함께 버섯구름이 피어올랐고, 저만치 있던 황궁이 무너지며, 정원은 단숨에 황무지가 되었다.

퍼버버버버버버벙!!

그럼에도 폭발은 멈추지 않았다.

주변에 있던 건물들이 날아가며 그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여파는 마치 쓰나미처럼 프로킨 대륙을 덮치기 시작했다.

미친 파괴력이다.

인우는 알지 못했지만, 이것은 바알의 주력기 중 하나인 마극 파뇌천이었다.

슈아아아아아악!!

마치 핵폭발과 같은 미친 위력의 여파 속에 인우 또한 있었다.

인우는 이를 악물며 날아가지 않기 위해 땅바닥에 발을 박았다.

푹! 푹!

"으아아아아아! 경고는 좀 더 빨리 하라고!! 이 개자식아!!"

인우는 고통에 이기지 못한 채 바알을 향해 불같은 울화를 터뜨렸다.

문득,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

바알, 저 개자식이 지금 웃는 건가?

인우는 정신을 간신히 잡으며 폭발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파바바바바바밧!!

건물의 잔해와 여파가 여전히 온몸을 때리며 날아간다. 체력은 금세 동났고, 인우는 힘의 정수 하나를 삼켰다. 아깝긴 했으나 지금은 이걸 아낄 때가 아니었다.

당장 뒈지게 생겼는데 어쩔 수 없는 거다.

휘이이이이잉.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에 드디어 폭발이 멈췄다.

바알은 정말 빌어먹게도 강했다.

인우는 넝마가 된 채 여전히 땅에 발을 박고 대검 막기 모션을 취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악. 하악. 그 새낀 뒈졌냐?"

"후우. 후우. 모르겠군."

인우는 바알을 향해 루시퍼가 죽었나 물었고, 바알은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아니, 상식적으로 잔류 여파만으로도 이 정도의 파괴력을 내뿜는 공격인데, 직격으로 맞은 루시퍼라면 골로 가고도 남지 않았을까?

인우는 내심 그런 생각을 했다.

공격을 내뿜은 바알마저도 지치게 만드는 미친 스킬이지 않은가?

그때, 폭발의 중심지, 즉 루시퍼가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먼지구름을 뚫고 깊은 숨소리가 들렸다.

"후우우우우우...."

"저 새끼 지금, 저거 맞고 살아 있는 거냐?"

"보면 알지 않나."

바알은 답지 않게 툴툴대듯 대답한 후 루시퍼를 노려보았다.

어느새 걷혀진 먼지구름을 바라보며 인우가 말했다.

"괴물이 따로 없네."

루시퍼는 살아 있었다.

그것도, 제법 멀쩡하게.

입고 있던 새하얀 코트를 박쥐의 날개처럼 감싸 매고 있던 루시퍼의 모습이 보인다.

저건 또 무슨 아이템인데 이 폭발로부터 루시퍼를 지켜 준 것일까?

촤락.

어느덧 코트를 젖힌 루시퍼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바알, 예나 지금이나 발전이 없군."

"...."

바알은 침묵했다.

* * *

바알을 제외한 마계의 72마왕들.

그들은 수정구를 지켜보며 이를 악물었다.

"전투가 제법 길어지겠어."

"애초에 바알이 홀로 움직였을 때부터 잘못됐던 거야."

"지금 상황을 봐선, 우리가 모두 현신해서 루시퍼를 단번에 궁지로 몰아넣는 게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

"누군가는 이 전투에서 목숨이 끊길 수도 있다. 그래도 현신할 작정인가?"

"...."

목숨이 끊길 수도 있다.

그 말에, 모두가 섣불리 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각. 또각.

그때, 56위 그레모리가 움직였다.

후웅-

그녀는 단숨에 현신을 위해 차원이동게이트를 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다른 마왕들이 소리쳤다.

"그레모리! 뭐하는 짓이야?"

"한심한 놈들."

"뭐라?"

"수정구를 통해 루시퍼가 하는 말을 들었겠지? 머리가 있다면 너희도 알게 됐을 거야. 정인우 또한 루시퍼처럼 신의 능력을 부여받은 존재라는 걸."

그 말에 마왕들은 입을 꾹 닫았다.

다시금 그레모리의 말이 쏟아졌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해. 만약 지금, 루시퍼가 바알과 정인우를 죽이게 된다면, 그 어떤 누구도 마계를 구원해 줄 수 없을 거야."

"…그건...."

"루시퍼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들이 지금 죽게 될 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되면, 루시퍼가 마계로 곧바로 침공해 오면, 그때가 되면 누가 그를 막을 수 있지?"

"...."

누구도 답하지 못했다.

그레모리는 그 침묵에 대고 날카롭게 소리쳤다.

"움직여. 굼벵이들아."

우웅.

그 말을 끝으로 그레모리는 프로킨으로 현신했다.

56위 마왕의 현신이었다.

"가야 한다."

"젠장."

또한, 마왕 수십 명의 현신이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

0207 / 0208 ----------------------------------------------

207화 루시퍼 (3)

그레모리와 72마왕들은 프로킨으로의 현신을 끝마쳤다.

퍼버버버버벙!!

저만치 앞에서는 커다란 폭발음이 연이어 들려오고 있었다.

"가자!"

후웅- 후웅-

마왕들은 볼 것도 없이 전투의 한복판을 향해 블링크를 시전했다.

이들은 도착과 동시에 루시퍼를 에워싸며 소리쳤다.

"루시퍼!"

"...."

루시퍼는 자신을 둘러싼 마왕들을 바라보았다.

바알을 포함한 최상위권 72마왕들이 모두 모인 것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놈들에게 최대한의 타격을 입히고 도주하는 것이 맞다.

거기까지 판단을 끝낸 루시퍼는 이번엔 정인우를 바라보았다.

저 녀석은 아직은 햇병아리기에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후가 문제다.

정인우 또한 신의 능력을 부여받은 존재.

즉, 시간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는 존재라는 것이다.

현재 정인우가 신의 패시브를 어디까지 개방했는진 모르겠으나, 저 정도라면 신의 마력과 체력이 고작일 것이다.

때문에, 더더욱 지금 죽여 버려야 한다.

이 자리에서 무슨 수를 써서든 정인우만큼은 죽이고 가야 한다.

생각 같아선 바알까지 처치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현재로선 불가능에 가까웠다.

훼방꾼이 너무 많았고, 바알 자체가 강하기도 하질 않나.

생각해 보면 그렇다.

신의 패시브도 없는 바알이 도대체 어떻게 저 정도의 경지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아마 바알은 소름이 돋을 정도의 독기와 인내를 지니고 있을 테다. 나아가 재능까지도.

그것들로 일궈낸 자리일 테지.

만약, 신이 바알에게 신의 패시브를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바알은 그야말로 절대적인 위치에 올라섰을 테니까.

하지만 현재로선 바알의 한계는 명확하다.

그리고 루시퍼는 점점 더 강해질 것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바알과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었다.

다시 말해, 마지막에 웃는 자는 바로 루시퍼 자신이었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루시퍼, 네놈은 이제 끝이야."

72위 안드로말리우스의 목소리였다.

루시퍼가 한창 마계에서 깽판을 놓을 때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던 녀석이다.

루시퍼는 안드로말리우스를 바라보며 양손에 천기와 마기를 응축시켰다.

"끝이라. 어처구니없구나. 끝이란, 내가 고하기 전엔 없는 것이다."

쩌저저저저적!

루시퍼가 공격을 준비하자 안드로말리우스가 다급히 소리쳤다.

"놈을 막아!"

순간, 모든 마왕들이 각자의 무기를 치켜들고 루시퍼를 향해 쇄도해 왔다.

바알 또한 공격을 준비했고, 정인우는 마왕들을 고기방패 삼아 앞세우고 그 뒤에서 틈을 노렸다.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었다.

괜히 전방에 나섰다가 골로 가는 수가 있었다. 인우가 자존심이 세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인 것은 맞지만, 제 것을 아끼는 성정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목숨은 제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이것을 어찌 아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우는 얍삽하게 마왕들의 뒤에서 손을 뻗을 뿐이었다.

끊임없이 발을 굴리며 신의 마력과 체력을 발동시켰고, 차오르는 마나를 이용해 헬파이어와 기가라이트닝을 끝도 없이 발사했다.

쩌적! 쩌적!

하나, 인우의 마법은 루시퍼에게 닿자 쿠션에 부딪힌 고무공처럼 부질없이 튕겨 나왔다.

'저 빌어먹을 코트.'

저 백색의 코트.

루시퍼는 저것을 이용해 바알의 공격까지 막았다.

저 아이템은 도대체 어느 정도의 기능을 지닌 것일까?

고오오오오오오-

어느덧 루시퍼의 육체에서 새하얀 빛무리와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결코 융합될 수 없는 두 기운이 루시퍼의 손에 의해 꽈배기처럼 돌돌 말려 갔다.

콰과과과과광!!

그 기운에서 천둥만큼이나 커다란 소음이 들렸다.

"으아아아아아압!!"

루시퍼는 기합을 토해 냈고, 이와 동시에 전후좌우. 아니, 사방팔방으로 그의 기운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쩡! 쩡! 쩡!

"젠장! 막아!"

상대적으로 서열이 낮은 마왕들은 이 공격 한 방에 대책 없이 나뒹굴었고, 바알과 서열 2위 아가레스, 3위 바싸고가 그 기운을 뚫고 루시퍼에게 닿았다.

이와 동시에 바알이 아가레스와 바싸고를 향해 소리쳤다.

"놈은 내가 맡는다. 너희는 아군을 도와라!"

바알은 지금 루시퍼가 일부 마왕들을 잡고 끊임없이 레벨 업 할 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라.

레벨 업을 하게 되면 모든 체력과 마력이 회복된다.

그렇게 되면 루시퍼는 지치지 않고 덤벼들 테고, 바알은 점차 지쳐 나갈 것이었다.

때문에 어정쩡한 마왕들은 이 싸움에 오히려 방해밖에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바알은 홀로 현신한 것이었는데, 72마왕 녀석들이 모조리 몰려왔다.

지금으로선 이 전투에 도움이 될 만한 녀석들은 10위권까지의 마왕들 정도였다.

애초에 바알은 2위든 3위든 몇 분 안에 작살내 버릴 만한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절대자다.

때문에 이 도움이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카가가가각!!

바알은 이를 악물며 루시퍼를 감싸고 있는 기운을 향해 칼날을 박아 넣었다.

"후우!"

그리곤 전신에 박혀 있는 수리검을 뽑았다.

두웅-

바알의 육체 곳곳에 숨겨져 있었던 수십 자루의 수리검들이 일제히 떠올랐다.

샤아아아악!

순간, 수리검들이 루시퍼를 마구잡이로 찌르며 녀석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놈!"

이에 루시퍼는 눈을 번뜩이며 또 다시 천기와 마기를 이용해 검을 만들었다.

쐐액!

캉! 캉! 캉! 캉!

불과 1초도 되지 않아 수십 번의 소음이 들려왔다.

루시퍼의 극 쾌검이 바알의 수리검들을 쳐낸 것이다.

이와 동시에 루시퍼는 또 다시 거머리처럼 돌격해 오는 다른 마왕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후웅!

새하얀 빛의 기운이 레이저처럼 뿜어지며 달려오는 마왕들의 복부와 가슴을 꿰뚫었다.

"크윽!"

그럼에도 마왕들은 곧바로 치유 마법을 발동시키며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루시퍼가 인상을 구기며 외쳤다.

"풍(風)!"

휘이이이이이잉!

그 한 글자에 담긴 위력은 대단했다.

루시퍼에게서 엄청난 풍압이 뿜어져 나왔고, 이 바람은 마왕들을 가볍게 밀어낼 정도였다.

심지어 바알마저도 미세하나마 뒤로 밀렸다.

바알은 생전 처음 보는 능력에 이를 악물었다.

저건 도대체 뭐였을까?

그저 바람이었는데, 그 바람 속에 담긴 기운은 예사 것이 아니었다.

"뭘 그렇게 놀라지? 신언(神言)이다."

드래곤들에게 용언이있다면, 신에게는 신언이 있다.

루시퍼가 내뱉은 언어는 신의 패시브의 기능 중 하나였던 것이다.

아직은 루시퍼조차 모든 신의 패시브를 개방한 것이 아니었다.

"으아아압!!"

어느덧 루시퍼는 꽤나 밀려난 마왕들을 향해 또 다시 공격을 퍼부었다.

파바바바바밧!

그의 손에서 형체화 된 마기천기가 튀어나올 때마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어느 정도 놈들에게 타격을 준 뒤, 루시퍼는 정인우가 서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루시퍼는 어금니를 까득 깨물며 궁극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것을 날리면, 72마왕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줄 것이 분명했다. 물론 바알같은 녀석은 어떻게든 대처를 할 테지. 하지만 이 공격은 애초에 단 한 놈을 노리고 쏟아 붓는 마지막 일격이었다.

정인우.

저 녀석에게 말이다.

놈은 결단코 이 공격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놈만 죽이면, 마신이 되는 길이 한결 편해질 테지.

애초에 신의 능력을 부여받은 자는 둘이 될 수 없다.

놈을 이 자리에서 없애야만 했다.

고오오오오오오-

루시퍼가 양손을 하늘 위로 뻗자, 그의 코트자락이 펄럭이며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알이 정인우를 향해 다급히 외쳤다.

"정인우! 방어해라!"

"저건 또 뭔데!"

정인우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 * *

분명한 낮이었다.

한데, 땅이 진동하며 태양이 자취를 감췄다.

먹구름이 꼈으며, 그 구름마저도 새카만 기운에 뒤덮여 버렸다.

주위는 암흑이었고, 프로킨은 예정된 신탁대로 대륙의 절반이 날아갈 판이었다.

신은, 이 모든 상황을 예견했던 것일까.

콰과과과과광!

천둥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때.

칠흑과 같은 어둠을 꿰뚫고 검붉은 덩어리들이 지상을 향해 박히기 시작했다.

푸북! 푸북!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땅이 녹아내렸다.

그 지옥과 같은 현장에서 그레모리는 정인우에게로 뛰어들었다.

정인우는 이미 심각한 타격을 입고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그레모리는 볼 것도 없이 그를 안아들었다.

그런 뒤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이 빌어먹을 현장에서 빠르게 빠져나가야 한다.

지직-

그런데 이건 무얼까.

루시퍼가 퍼붓는 공격에 의해 텔레포트가 먹히질 않았다.

이 경우, 차원의 균열이 일어날 정도의 맹공이기에 텔레포트가 먹통이 된 것이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이 공격 자체에 텔레포트를 방해하는 어떠한 기운이 담겨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워프게이트나 차원이동게이트는 말할 것도 없을 테지.

루시퍼는 어떻게든 정인우를 죽이기 위해 작정을 한 것 같았다.

그레모리는 이를 악물며 방어진을 발동시켰다.

치직-! 치직-!

하나, 공중에서 빗발치는 기운은 가볍게 진을 녹여버리고 흘러내렸다.

그녀마저도 이럴진대, 정인우가 애초에 전투불능이 되어 기절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치지지지직-!

어느덧 기운은 그레모리의 등에 닿았고, 단숨에 살이 타오르며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끄흐윽!"

그레모리는 간신히 비명을 삼키며 더욱 강하게 정인우를 끌어안았다.

그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새카만 어둠이었으나 그녀의 눈은 어느 정도 식별이 가능했다.

사방팔방, 어디로 도주한다고 해도 현재 퍼붓는 공격에서부터 안전한 지역은 없었다.

족히 대륙의 절반 이상은 뛰어 넘어야 이 공격권에서부터 안전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멀리 가기 위해선 텔레포트가 필수다.

"젠장!"

텔레포트는 여전히 먹히지 않았고, 공격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절로 숨이 턱 막힐 만큼 막막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둠을 뚫고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인우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알이었다.

그는 복부에 커다랗게 구멍이 뚫린 채였다.

척 보아도 치명타를 입었다.

홀로 루시퍼와 대적했던 그였기에, 크게 다친 것이었다.

어느덧 그레모리가 바알의 물음에 답했다.

"아직 숨은 붙어 있어."

"그렇군."

바알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모리가 걱정을 담아 물었다.

"루시퍼는?"

"도주했다."

말을 마친 바알은 모든 마기를 끌어올려 방어진을 펼쳤다.

후우우우웅-!

루시퍼가 생성해 놓고 간 미친 공격은, 바알의 진에 의해 가로막히고 있었다.

* * *

마계. NO.1 바알의 마왕성.

정인우가 정신을 차린 것은 그로부터 하루 뒤였다.

[경험치를 50+50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50+5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50+50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50+50 획득하였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인우는 경험치가 얼마 남지 않았었고, 레벨 업을 통해 체력을 회복하여 정신을 차렸던 것이다.

하긴, 잠만 자도 숨은 쉬니 성장은 당연한 결과였다.

인우는 정신을 들자마자 주변을 훑었고, 자신이 침대에 누워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저만치 앞에는 탁자에 앉아 있는 흑발의 사내, 바알이 보였다.

바알은 정신을 차린 정인우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이 들었나 보군."

"어떻게 된 거지? 루시퍼는?"

"그 생각은 잠시 뒤로 밀어라.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중요한 것?"

"신의 능력을 부여받은 정인우. 너에게 보여 줄 것이 있다. 따라와라."

바알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중해 보였다.

============================ 작품 후기 ============================

Arahess ? 저 밥 두 공기씩 먹는데, 감당할 수 있겠어요? 그렇다면 가둬주세요. 갇히겠습니다. 하하!

Candice ? 허허허.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scalate ? 헉... ㅠㅠ 음식을 주시려는 분이 굉장히 많네요. 행복해요(?)

시델핀 ? 댓글 감사합니다. ^^

돌미나리 ? 거~어~어~얼!

류스테리아 ? 헉 아닙니다. ㅋㅋ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어 버렸네요!! 하하...!!

바람돌이소닉 ? 돌이켜보니 정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신경 써야 되겠네요! 조언 감사합니다!

춈스케 ? 진짜 고맙습니다. ^-^

0208 / 0208 ----------------------------------------------

208화 발악 (1)

바알은 뒷짐을 진 채 휘적휘적 걸어 나갔고, 인우는 그 뒤를 쫓았다.

둘은 금세 마왕성을 빠져나왔다.

바알은 정원을 가로질러 한참을 걸었다.

묵묵히 따르던 인우가 물었다.

"어딜 가는 건데? 보여 줄 건 도대체 뭐고?"

"따라와 보면 안다."

바알, 이 자식은 친절이 결여되어 있다.

어떤 의미론 인우와 비슷한 부류인 것 같았다.

뭐, 복잡하게 말할 것 없이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재수 없었다.

'음침하고 기분 나쁜 새끼.'

인우는 새카만 코트를 걸치고 있는 바알의 뒷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바알이 움찔댔다.

그 모습에 인우는 저도 모르게 뜨끔 하고선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아아, 별거 아니다."

말을 마친 바알은 복부를 쓰다듬었다.

언뜻 붕대 같은 것이 옷 바깥으로 삐져나온 것이 보였다.

"루시퍼에게 당한 거냐?"

"놈 또한 무사히 도주하진 못했다."

그런 건가.

한데, 명색이 마계 서열 1위라는 녀석이 상처하나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는 꼴이라니.

무언가 우스웠다.

저건 힘의 정수 하나만 먹어도 치유될 상처인데 말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인우는 본인이 지닌 소중한 힘의 정수를 바알에게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단지 궁금했다.

"상처는 왜 치료하지 않은 건데? 마왕성에는 포션 같은 것도 없나?"

"오래도록 기억하려 이러는 것이다. 또한, 나태해지지 않기 위함이다."

뭐 이런 변태새끼가 다 있지.

인우는 그런 생각을 했다.

바알은 자기 자신을 혹독하게 대하고 있었다.

그것도 굉장히 지나칠 정도로 말이다.

하긴, 저렇게나 독종인 녀석이니 마계 서열 1위에 올라섰던 것이겠지.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남들이 보기에 저 무언가는 굉장히 의미 없는 몸부림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왜 아픔을, 아니,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냔 말이다.

인우 또한 독기나 오기 따위의 것들이 굉장하지만, 바알은 거의 병적인 수준이었다.

저 정도라면 혹시, 정신병 수준의 자기혐오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다.

무슨 수를 써도 마신이 될 수 없는, 자기 자신을 혐오하는.... 그러한 종류의 자기혐오 말이다.

인우는 왠지 모르게 측은해졌는지 한결 표정이 풀렸다. 그리고 군말 없이 바알을 쫓아갔다.

지금의 바알은 인우에게 굉장히 호의적으로 나온다.

결코 나쁜 의도로 인우를 대하는 것이 아닐 테다.

애초에 나쁜 의도를 품었다면 치료를 위해 본인의 마왕성에 눕히지도 않았을 테니까.

생각도 잠시.

어느덧 바알이 걸음을 멈췄다.

"이곳이다."

난데없는 그 한마디에 인우는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러나 보이는 건 드넓은 초원이 전부였다.

뭐 어쩌라는 건가?

"여기서 뭘 어쩌라고?"

그 물음에 바알은 검지를 치켜들고 발아래를 가리켰다.

"보이지 않는가?"

인우는 바알의 손끝을 쫓아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그러자 시야에 무언가가 잡혔다.

수풀이 가득한 초원.

그러한 한가운데 새카만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건 도대체 뭘까?

의문을 풀어 주려는 듯, 바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의 던전, 그곳의 입구다."

"…신의 던전?"

"그래. 입장 조건이 굉장히 까다로운 곳이지. 신의 능력을 부여받은 존재. 즉, 루시퍼와 너만이 입장할 수 있는 곳이니까."

바알은 왠지 모르게 씁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무슨 수를 써도 진입할 수 없는 구역이었으니까.

"루시퍼가 입고 있던 코트를 기억하고 있나?"

물론 기억하고 있었다.

루시퍼는 바알의 공격에서 긴 코트자락을 박쥐의 날개처럼 펼쳐서 공격을 막아 냈었다.

당시 인우는 저 아이템이 도대체 무슨 능력을 지니고 있기에 저러한 말도 안 되는 방어력을 지닌 것인지 궁금했었다.

"루시퍼가 지닌 모든 아이템은 신의 던전에 있다. 놈 또한 과거에 이곳으로 진입하여 얻어낸 아이템들이니까."

"…엄청난 곳이군."

"정인우. 네가 신의 능력을 부여받은 존재라는 걸 애초에 알았다면 진즉에 이곳으로 데려왔을 거였다. 너는, 루시퍼와 다르니까."

루시퍼와 다르니까.

마지막 그 한마디에 뜻 모를 신뢰가 담겨 있었다.

인우는 뜨끔했다.

생각해 보면, 인우 또한 루시퍼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자신 또한 마계의 모든 마왕들을 잡아 죽이려 했지 않은가.

하지만 바알은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때문에 저런 말을 내뱉는 것이겠지.

"내가 루시퍼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그렇다면 어쩔래?"

인우는 바알을 쏘아보며 그렇게 물었다.

바알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렇다면, 그때는 내가 널 죽여 주지."

"...."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만 한다.

마계의 마왕들을, 단순한 경험치 덩어리로 생각해도 되는 걸까?

인우는 인상을 구겼다.

그저 경험치를 주기에, 나아가, 마(魔)자가 들어가기에, 악으로 규정하고 모조리 잡아 족쳤던 것은 아닐까?

아니, 아니다.

실제로 몇몇 마왕들은 악이었다.

지구와 프로킨을 삼키려던 미친놈도 있었으며,

인우를 먼저 치려고 저들끼리 작당모의를 하던 놈들도 있었다.

이에 인우는 멍청하게 당하지 않았고 도리어 뒤통수를 쳤다.

막대한 경험치를 얻었으며, 엄청난 레벨 업을 했다.

그렇다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들은 악이었을까?

죽어 마땅했을까?

'물론.'

적어도 인우의 기준에서만큼은 죽어 마땅한 악이 맞다.

인우는 늘 그렇게 대응하며 살아왔다.

이것은 인우의 신념이었다.

시비 거는 놈, 위험한 놈은 볼 것도 없이 죽여 버리는 것 말이다.

만약 살려 놨다면, 언제고 뒤통수를 맞았을 거였다.

그렇게 살아왔기에 여태껏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거다.

물러먹은 솜방망이 같은 사고방식을 지녔었다면 진즉에 배신을 당해 죽었거나, 다굴빵에 당해 요절했을 거다.

'악'에게 맞서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악함'을 지녀야만 하는 것이다.

선은 악의 앞에서 호구가 될 뿐이다.

악은 언제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그 앞에 대적하는 선은 늘 무언가를 잃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악에 맞서기 위해선 악해질 수밖에 없는 거다.

이것이 인우가 여태껏 지켜 온 신념이었다.

이윽고 인우가 바알을 또렷이 바라보며 말했다.

"한 가지만 말할게. 나는, 바알 네놈이 제아무리 호의를 베푼다고 해도, 한순간 발톱을 드러내면 가차 없이 적으로 간주할 거다."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다. 정인우."

"그래, 우리는 동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적도 아닌 거야. 이번에 베푼 호의는 감사히 받지."

"나 또한 루시퍼에 대항하기 위해 너를 이용하는 것일 뿐."

둘은 금방이라도 싸울 것처럼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다, 바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들어가라 정인우. 신의 던전으로."

인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 새카만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물었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입장하는 건데?"

"그거야 나도 모른다. 신의 능력을 지닌 존재만이 입장할 수 있는 곳이니."

바로 그때.

연기가 인우의 육체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푸슈우우우우우욱.

다음 순간, 초원에는 쓰러진 정인우의 육체가 보였다.

정인우는 마치 시체처럼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다.

바알은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인우의 맥박에 손을 대 보았다.

맥박은 뛰지 않았다.

"무사히 입장했나 보군."

잠시 뒤, 새하얀 빛 무리가 정인우의 육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웅-

정인우가 신의 던전에서 나오기 전까진 그 누구도 이 육체에 해코지를 할 수 없게끔 말이다.

그것을 확인한 바알은 즉시 마계 신전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72마왕의 회의가 있을 예정이었다.

아주 중요한, 회의가.

* * *

['신의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아티펙트를 포함한 모든 아이템의 기능이 해제됩니다.]

[모든 육체 능력이 일시적으로 초기화되며, 이는 바깥으로 귀환할 때까지 유효합니다.]

[모든 패시브 스킬의 기능이 해제됩니다.]

[모든 액티브 스킬의 사용이 불가합니다.]

[모든 마왕의 권능의 사용이 불가합니다.]

"뭐야 이건?"

입장과 동시에 알림음이 들렸다.

그리고 육체에 깃든 막대한 힘이 사라진 것이 느껴졌다.

인우는 다급히 상태창을 불러 보았다.

<정인우>

레벨 : 1

스텟 : [근력 15] [민첩 12] [마력 8] [체력 18]

미분배 포인트 : 0

[EXP 0 / 100]

<액티브 스킬>

-사용이 불가합니다.

<패시브 스킬>

-기능이 해제됩니다.

<마왕의 권능>

-사용이 불가합니다.

아무것도 없었다.

스킬도, 아이템도, 그 무엇도 없었다.

이 던전은 모든 능력이 초기화되는 것 같았다.

입장과 동시에 '육체 능력이 일시적으로 초기화', '이는 바깥으로 귀환할 때까지 유효.'라고 했던 것 같다.

다시 말해,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초기화 현상이라는 뜻이다.

이곳 신의 던전에선 인간계나 마계에서 이륙했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거였다.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 한, 이는 유효할 것이다.

아니, 그렇다면 이 던전을 무슨 수로 클리어하라고?

레벨이 1이라면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인이다.

쉽게 말해 지금 인우는 남들보다 운동 신경이 좋은 성인 남성일 뿐이라는 거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 해도, 성인 남성 수십 명과 싸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긴 했다.

인우의 전투 감각과 경험은 그 정도로 뛰어났으니까.

하지만 그따위 것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적어도 괴수 앞에서 만큼은 말이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인우는 재빨리 던전의 전경을 훑었다.

전체적으로 동굴의 모양이었다.

직경 5미터 가량으로 매우 큼지막했으며, 주변은 시야 확보가 충분히 될 만큼 밝았다.

또한 뒤는 꽉 막혔으며, 오로지 전진이라는 선택지 밖에 없는 빌어먹을 동굴 형태였다.

그래 뭐, 일단 한번 가 보자.

인우는 천천히 걸어 나갔다.

-크워어.

그때, 저만치 앞에서 괴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인우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하아. 돌겠네."

* * *

마계신전.

이곳에 72마왕들이 모여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 71마왕들이었다.

서열 3위 바싸고가 말했다.

"이번 루시퍼와의 전투로 인해 희생이 따랐었다."

모두가 침울한 얼굴을 했다.

루시퍼의 마지막 일격으로 인해, 마계 서열 72위 안드로말리우스가 사망한 것이다.

이것은 굉장히 큰 문제였다.

72마왕은 마계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이들은 지난 마계의 역사와 함께해 왔던 그야말로 전설과 같은 마왕들이었다.

서열이 변동된 적이 거의 없다싶을 정도로 절대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 중 한 명인 안드로말리우스가 죽었다.

이에 따라 안드로말리우스의 'NO.72 마왕성의 징표'가 주인을 잃게 되었다.

다시금 바싸고가 말했다.

"애도는 충분히 표했을 거라 생각한다. 자 그럼, 72위 마왕의 자리에 누구를 앉힐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지."

그리고 그때, 잠자코 앉아 있던 바알이 입을 열었다.

"이야기해 볼 것도 없다."

============================ 작품 후기 ============================

Arahess ? 진짜 가서 얻어먹고 싶네요ㅋㅋㅋ(진지)

炫. - 헉! 1000회요!? 열심히 노력해보겠습니다. 하하..!

escalate ? 100첩이면 쉽사리 가늠이 되질 않네요ㅋㅋ

류스테리아 ? 그 지하에 난방 들어옵니까...?ㅠㅠㅋ

안느아 ? 네 심지어 주 5회 연재이죠. 그래도 계속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커피금단현상 ? 군만두 드립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만큼 재밌게 보아주신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

돌미나리 ? 네. 엄청나게 어려울 겁니다. 때문에, 마구마구 굴려야지요. 암.

Candice ? 팀이 아닌, 팀인 듯, 팀 같은 바알과 정인우입니다. ㅋㅋ

연트 ? 사실 이렇게 소통할 때 가장 뿌듯하죠. 늘 감사합니다. ^^

춉스케 ? 늘 감사합니다 춈스케님. ^^

하임즈짱쉪 ? 이탈리안 음식!? 그러고 보니 독자님 아이디의 쉪은 쉐프인가요?

박하온 ? 지금으로선 불가능한 것 같네요ㅎㅎㅎ 그러니까, 인우야 굴러라!

02.06 PM 5시 기준 리코멘트입니다!

늘 감사합니다. ^^

=======================================

209화 발악 (2)

"72위 마왕의 징표는 정인우에게 준다."

바알이 말했고, 마왕들은 납득이 안 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정인우가 신의 능력을 부여 받은 존재라는 걸.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인우가 72위 자리에 앉을 만한 무력을 갖추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73위부터 100위까지라면 모르겠는데, 72마왕의 자리는 아니다.

그때, 다시 바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래지않아 정인우가 돌아올 것이다. 그때까지, 이 마왕의 징표는 그대로 두는 걸로 하지."

"도대체 왜 그래야 하지?"

"그가 다시 돌아온다면, 72마왕좌에 앉을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추게 될 테니까."

"그게 무슨 억지인가. 납득될 만한 이유는?"

"정인우는 신의 던전에 들어갔다. 이제, 납득이 되나?"

"...."

모두가 침묵했다.

신의 던전.

그 던전이 어떠한 구조로 되어 있는지, 그 내부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로지 루시퍼밖에 알지 못하겠지.

다만 분명한 것은, 루시퍼는 신의 던전에 들어갔다 나온 뒤, 말도 안 되는 빠르기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루시퍼조차 신의 던전의 모든 구역을 클리어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렇게나 엄청난 성장을 한 것이다.

"이의 있나?"

바알이 말했고, 이번에는 그 어떤 마왕도 토를 달지 않았다.

* * *

루시퍼는 천계로 복귀했다.

이곳에서 그의 직위는 대천사였다.

천계에 존재하는 대천사는 4명으로 루시퍼를 포함한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이었다.

그 아래로는 천사 10인대, 천사 100인대, 천사 1000인대, 그리고 천족이 있다.

마계와 비교해 보자면,

4명의 대천사는 마계 서열 1위 바알과 비슷한 직위이다.

이밖에도,

천사 10인대 ? 2~72위 마왕.

천사 100인대 ? 73~149위 마왕.

천사 1000인대 ? 150~255위 마왕.

일반 천족 ? 일반 마족.

이즈음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루시퍼는 자신과 같은 대천사인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과 대면하고 있었다.

"신의 능력을 부여 받은 인간은? 그놈이 프로킨의 황궁에 있다고 그곳 정원에서 매일 대기했었잖아? 잡았나?"

루시퍼는 고개를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실패. 마왕 녀석들의 훼방이 있었다. 그리고 놈은 프로킨의 인간이기도 했지만, 마계의 마왕이었다."

"마왕이라고? 호오. 역시나 루시퍼 자네와 같은 능력의 소유자인가? 인간의 육체로, 정말이지 대단하군."

"대단할 것도 없다. 아직은 햇병아리야. 신의 던전도 갔다 오지 못한 녀석이지."

"그래? 그렇다면 왜 죽이지 못했지? 도대체 훼방을 놓았던 마왕이 어떤 녀석이었기에?"

"바알을 포함한 72마왕 놈들이었다."

"하아. 바알이라...."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은 침울한 얼굴을 했다.

이들은 루시퍼가 마신이 되길 원했다.

그리하여 루시퍼가 대천사장을 제거해 주길 원했다.

대천사장.

마계에 마신이 있다면, 천계에는 대천사장이 있다.

물론, 아직 마신은 나오지 않았고, 대천사장은 분명히 존재했다.

마신의 경우, 신의 능력을 부여 받은 두 존재가 경쟁하여 차지하는 자리이다.

어디까지나 약육강식이며 강자생존이고 잔혹한 면이 보인다.

그에 따른 것인지 모르겠으나, 마신에게는 자유가 보장된다.

그 자유는, 심지어 신에게 대적할 수도 있는 자유였다.

하지만 대천사장은 그렇지 않았다.

신의 대리자로서, 무조건 신의 명령에 따르는, 쉽게 말해 신의 하수인 느낌이었다.

실제로도 대천사장은 지난 수만 년 동안 단 한 번의 전투도 치르지 않았었다.

이러니, 천계와 마계를 통틀어 가장 강한 존재를 바알이라 칭하는 것이었다.

뭐, 애초에 대천사장은 천계도, 마계도 아닌 신계의 존재이니 논외의 대상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어찌 되었건 4명의 대천사인 라파엘, 미카엘, 가브리엘, 루시퍼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당장이라도 마계에 침공하여 마왕 놈들의 무릎을 꿇리고 지배하고 싶었던 거다.

한데, 신의 대리자인 대천사장 녀석이 떡 하니 버티고 있었기에 그것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대천사장은 신의 대리자답게 고리타분하다.

마계를 집어삼키는 계획에 동참하지 않는다.

때문에 대천사장을 죽여야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현재 미카엘과 가브리엘, 라파엘이 직접적으로 루시퍼를 돕지 못하는 이유도 이것이었다.

루시퍼야, 신의 능력을 부여 받은 존재였기에 대천사장도 크게 관여하지 않았으나. 이들은 대천사장의 감시 아닌 감시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도, 과거 루시퍼가 마계에서 깽판을 놓을 때도 이들은 돕지 못했다.

빌어먹을 대천사장 때문에.

"루시퍼. 네가 어서 빨리 마신이 되어야만 한다. 대천사장을 제거하기만 하면, 우리는 우리 뜻대로 천계의 천사들을 움직여서 마계를 집어삼킬 수 있을 거다."

루시퍼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건 마신이 되기만 하면 해결된다.

그리 되면 대천사장을 제거하고, 천계와 마계를 통합할 것이다.

그리고 마신으로서, 신의 자리까지 넘보는 것이다.

"그런데 루시퍼, 그 정인우라는 인간 놈… 아직 신의 던전에 입장하지 않았다고 했지? 만약 하게 되면, 일이 조금 복잡해질 것 같은데."

"간다 해도, 어차피 제대로 클리어하지 못할 테지. 나 또한 4단계가 한계였으니. 놈은 끽해 봐야 1단계를 클리어하고 나자빠질 거다. 타고난 신체 능력이 엄청나지 않는 한...."

* * *

이런 기분을 느껴본 것이 언제였더라?

첫 번째에는 프로킨으로 강제소환 당한 채 괴수와 맞닥뜨렸을 때, 두 번째는 육체 능력이 초기화된 채 지구에서 괴수와 마주했을 때.

그리고 세 번째는 바로 지금이었다.

-크르으으....

눈앞에는 괴수가 있었고, 지금 인우의 레벨은 1이었다.

무기도 없고 맨손이 전부다.

인우는 5미터 가량의 거리를 유지한 채 놈을 훑어보았다.

우선은 전체적인 외형은 고블린이다.

일반적인 고블린과 다른 점이라면 육체가 황금색이라는 것 정도?

어쨌든, 고블린이라면 지구 기준으로 못해도 10레벨은 되어야 사냥할 수 있는 괴수다.

한데 인우의 레벨은 1.

그렇다면 인우는 저 녀석을 잡을 수 있을까?

잡을 수 있을 거다.

여기는 뭐가 됐건 던전의 초입부다.

저것조차 해결하지 못하면 뭣도 되지 않는 거다.

인우는 황금 고블린을 향해 한 발 앞으로 전진했다.

그런데 그때, 난데없이 알림음이 들려왔다.

[1단계 구역에 진입하였습니다. 사망 시 바깥으로 강제 퇴출되며, 재 입장 대기 시간은 5,000년입니다.]

'헐'소리가 절로 나왔다.

신의 던전은 한번 입장하고, 다시금 재 입장하려면 5오천 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쉽게 말해, 기회는 오천 년에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후우!"

그런 생각이 들자 절로 몸에 힘이 들어갔다.

이곳에는 분명 루시퍼가 착용했던 아이템들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신 또한 그것들을 구할 수 있다.

루시퍼가 했는데 못할 건 또 무언가?

인우는 황금 고블린을 향해 단숨에 몸을 날렸다.

타다다다닥!

쾅 쾅!

인우가 내달려오자 황금 고블린은 손도끼와 방패를 맞부딪히며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꾸에에에에에엑!

"으라아아아아!!"

인우 또한 놈의 면전에 대고 기합을 내질렀다.

그러자 황금 고블린이 손도끼를 휘두르며 다가오는 인우를 위협했다.

쐐액-!

공기가 찢어지는 파공성.

저 한 방에 팔이라도 내어주는 날에는 외팔이가 되고 말 거다.

기본 능력치밖에 없는 인우였기에 놈의 손도끼를 막는 대신 피했다.

척!

녀석의 도끼날이 귓불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 찰나의 순간 인우는 녀석의 복부를 향해 무릎을 치켜 올렸다.

후욱!

카득!

그러자 황금 고블린은 방패로 방어함과 동시에 그대로 인우를 밀쳐냈다.

퍽!

"크윽!"

인우는 그 한 방에 4미터 가량을 나뒹굴었다.

엄청난 힘이다.

무기라도 있다면 어떻게 해 보겠건만, 상황은 최악으로 번져 나가고 있었다.

-꾸에에에에에!

녀석이 괴성을 토해 내며 쓰러진 인우를 향해 돌진해 왔다.

인우는 단숨에 몸을 일으켜 세웠다.

쐐액!

번쩍이는 도끼날이 인우를 두 쪽 낼 기세로 베어져 왔다.

후웅!

"젠장!"

인우는 욕설을 내뱉으며 진땀을 뺐다.

황금 고블린이 마구잡이로 휘둘러 대는 공격을 피하는데 급급했다.

능력치 차이가 너무 많이 났기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푸욱!

"크악!"

-크르으으으!!

기어코 인우는 녀석의 도끼날에 의해 왼쪽 어깨를 내어주고야 말았다.

얇은 살갗이 찢기며 어깨뼈에 도끼날이 박혔다.

인우는 끔찍한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이 개자식…!"

이왕 이렇게 된 거, 뼈를 주고 놈의 목숨을 취하자.

결심을 굳힌 인우는 힘겹게 왼손을 치켜 올려 놈의 도끼날을 움켜쥐었다.

-크르!!

인우는 놈의 무기를 포박함과 동시에 오른 주먹을 치켜들었다.

후웅!

퍽! 퍽! 퍽!

볼 것도 없이 놈의 면상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꾸에엑!!

이빨이 나간 녀석이 비명을 토해 내며 핏물을 뱉어 냈다.

녀석은 골이 찌르르 울리는지 힘겹게 서 있었다.

손도끼마저도 놓쳤다.

"뒈져라!!"

이때다 싶었던 인우는 그대로 놈을 껴안으며 다리를 걸었다.

철퍼덕!

놈은 그대로 나자빠졌고, 동시에 당황했다.

그제야 인우는 어깨에 박혔던 놈의 도끼를 뽑았다.

순간 인우의 눈동자에 살기가 맺혔다.

인우는 손도끼를 부여잡고 번쩍 들어올렸다.

나자빠진 고블린은 자신의 면전을 향해 있는 도끼날을 보곤 잔뜩 겁을 집어먹은 채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보호했다.

"끝이다. 개자식아."

쐐애애애액!

푹! 푹! 푹! 푹!

인우는 놈의 머리통을 향해 사정없이 손도끼를 내리찍었다.

-꾸에에에에에엑!!

그럴 때마다 머리통을 보호한 놈의 손등이 잘려 나갔고, 마침내 드러난 놈의 얼굴에 도끼가 박혀 들기 시작했다.

푹! 푹! 푹! 푹!

-꾸럭.

두개골이 함몰되고 눈이 쪼개진 녀석은 기괴한 비명을 내뱉으며 숨이 끊겼다.

"하아. 하아."

인우는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얼굴 가득 튄 피를 닦아냈다.

[경험치를 100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100의 경험치.

프로킨의 고블린이 50의 경험치니, 그보다는 높은 양이었다.

한데 신의 던전이라면 무언가 다른 게 있을 텐데?

하지만 별다른 건 보이지 않았다.

우선 인우는 레벨 업으로 인해 닳았던 체력이 가득 찼기에 한시름 놓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앞에는 또 뭐가 나올지 모른다.

인우는 재빨리 상태창을 열었다.

<정인우>

레벨 : 2

스텟 : [근력 15] [민첩 12] [마력 8] [체력 18]

미분배 포인트 : 5

[EXP 0 / 200]

5개의 미분배 포인트.

마력을 제외하고 근력과 민첩, 그리고 체력에 분배했다.

어차피 마법을 사용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이곳에서만큼은 육체 능력이 갑이다.

"후우."

모든 스텟을 분배한 인우는 올라탔던 고블린의 몸 위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그때.

후우우우우우웅.

타다다다다다닥.

황금 고블린의 육체가 잿더미로 변해 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녀석의 육체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그 위로 손톱만 한 검정색 구슬 하나가 떠올랐다.

'전리품…?'

인우는 그 구슬을 집어 들었다.

그런 뒤 정보를 훑었다.

[신의 정수]

아이템명 말고는 그 어떤 정보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건 도대체 무얼까?

그런 생각도 잠시.

[신의 상점이 오픈됩니다.]

1. 신의 구두 ? 1단계 던전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 신의 정수 100개로 구매 가능합니다.

2. ?

3. ?

4. ?

5. ?

6. ?

7. ?

"아."

그제야 인우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검정색 구슬, 다시 말해 신의 정수를 가지고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지금 황금 고블린이 나오는 이 구역은 1단계인 것 같았고, 이곳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은 '신의 구두'였다.

아이템 목록이 7번까지 있는 걸 보니, 던전의 단계는 아마도 7단계까지일 확률이 높았다.

"신의 구두라...."

일단은 저것을 구매해야 할 것 같았다.

현재 인우는 1개의 신의 정수를 가지고 있었기에 앞으로 99개의 신의 정수가 더 필요했다.

그런데, 저 아이템의 성능은 어떻게 될까?

이런 개고생을 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 아이템일까?

인우는 유일하게 오픈되어 있는 신의 구두의 정보를 불러와 보았다.

[신의 구두]

종류 ? 방어구(신발)

기능 - '절대자의 걸음' 스킬이 강화됩니다.

추가 기능 ? 허공을 계단처럼 밟고 다닐 수 있습니다.

특수 기능 - 물 위를 걸어 다닐 수 있습니다.

확인과 동시에 인우의 눈이 크게 뜨였다.

"와… 우."

신의 구두.

그 기능은, 걸을 때마다 경험치가 상승되는 '절대자의 걸음' 스킬의 강화였다.

=======================================

210화 발악 (3)

절대자의 걸음.

애초에 패시브인 이것은 성장이 불가능했다. 오로지 절대값을 지니고 있을 뿐이었다.

한데, 이 신의 구두만 있다면 강화가 된다는 소리다.

게다가 허공과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추가 기능까지 포함되어 있다.

"반드시 취한다."

결심을 굳히고 있을 때였다.

난데없이 저만치 앞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꾸에에에에에에.

황금 고블린의 괴성이었다.

타다다다다닥!

이번엔 3마리나 됐다.

그런데도 인우는 웃고 있었다.

"신의 정수 100개. 금방 모아 주지."

현재 인우의 레벨은 2.

그리고 황금 고블린의 손도끼까지 쥐고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 * *

100마리째 황금 고블린의 심장을 향해 손도끼를 박아 넣었다.

커득!

끔찍한 타격음과 함께 녀석이 허물어졌다.

동시에 알림음이 들려왔다.

[경험치를 100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정인우>

레벨 : 7

스텟 : [근력 24] [민첩 20] [마력 8] [체력 26]

미분배 포인트 : 5

[EXP 0 / 6,000]

자그마치 100마리의 황금 고블린을 잡았다.

현재 인우의 레벨은 7.

절대자의 패시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초반의 레벨 업이 이렇게나 어렵다.

후우우웅.

잠시 뒤, 황금 고블린의 시체가 사라지며 신의 정수가 떠올랐다.

인우는 그것을 집었고, 이로써 100개의 정수가 모였다.

볼 것도 없이 신의 상점을 불러와 신의 구두를 구매했다.

이와 동시에 허공에 구두가 떠올랐다.

"호오."

인우는 그것을 잡고선 자세히 훑어보았다.

무광택의 검정색 구두였다.

현대 문물에 맛 들린 저승사자에게 어울릴 법한 외형이랄까?

구두는 그만큼 새카맸다.

감상을 끝낸 인우는 구두를 신어 보았다.

제법 커 보였는데, 신자마자 발사이즈에 딱 맞춰졌다.

"음."

능력치 상으론 막강한 기능을 지닌 구두였지만, 변화는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이곳 신의 던전에서는 모든 아이템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발동되지 않았으니까.

절대자의 걸음 강화의 기능이 몇 배 정도의 상승을 보이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선 바깥으로 나가 보아야 할 테지.

그렇다고 기능을 확인하기 위해 나가기엔 할 일이 태산이다.

이 던전의 끝을 보아야 할 테니까.

인우는 주변을 훑었다.

던전의 끝에 닿아 있었다.

더 이상의 황금 고블린은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100마리만 존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즈음.

인우의 앞에 투명한 포탈이 하나 열렸다.

'들어가라는 건가.'

인우는 망설일 것 없이 포탈을 향해 들어섰다.

후웅!

그 즉시 주변의 전경이 단숨에 뒤바뀌었다.

[2단계 구역에 진입하였습니다. 사망 시 바깥으로 강제 퇴출되며, 재 입장 대기 시간은 5,000년입니다.]

[2단계 신의 상점이 오픈됩니다.]

2단계 던전의 구조는 커다란 황색 벽돌로 이루어진 신전의 내부처럼 보였다.

제법 어두운 편이었으며, 4미터 간격으로 벽에 횃불이 하나씩 걸려 있었다.

인우는 긴장을 놓지 않은 채 집요하게 주변을 훑었다.

하지만 별다른 특이점을 찾진 못했다.

그냥 전진해도 되는 것일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흐음...."

그나저나 2단계 상점에서 오픈된 아이템은 무엇일까?

목록을 열어보았다.

1. 구매가 완료되었습니다.

2. 신의 슈트 ? 2단계 던전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 신의 정수 100개로 구매 가능합니다.

3. ?

4. ?

5. ?

6. ?

7. ?

일단, 루시퍼가 입고 있던 그 코트는 아니었다.

정확히 말해 코트 안쪽에 입고 있었던 정장이었다.

녀석은 확실히 정장차림에 하얀색 코트를 걸치고 있었으니까.

이즈음 인우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돌이켜보니 루시퍼는 슈트건 코트건 모조리 화이트 색상이었다.

그런데 인우가 구매할 예정인 슈트의 색깔은 블랙이었다.

확연히 다른 두 색깔이다.

무언가 차이라도 있는 걸까?

확신할 순 없었다.

우선은 가장 중요한 아이템의 정보를 불러 보았다.

[신의 슈트]

종류 ? 방어구

기능 - '절대자의 호흡' 스킬이 강화됩니다.

추가 기능 ? 물리 방어력 +30%, 마법 방어력 +30%

특수 기능 ? 목숨이 경각에 달한 순간, 모든 체력을 회복합니다. (하루에 한 번만 발동됩니다.)

'이건 신의 구두보다 더 미친 아이템이네.'

절대자의 호흡 강화. 거기에다 방어력까지 엄청나다.

나아가 특수 기능은 어떠한가?

하루에 하나의 목숨이 추가되는 셈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다.

게다가 외형 또한 무척이나 멋졌다.

사실, 신의 아이템이라면 견고한 갑옷의 종류가 떠올랐었는데 실상은 정장이었다.

상식이 파괴되는 순간이다.

정장을 입고 거대한 대검을 휘두른다?

결코 평범하지 않다.

다른 말로 해서 특별하다.

킹스맨의 주인공이 방탄 슈트를 입고 다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려나?

어쨌든 나쁘지 않았다.

견고한 갑옷은 여러모로 불편함이 따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무게, 행동제약, 부자연스러운 관절 부분 등.

갑옷은 막강한 방어력을 선사하는 대신 그만큼의 패널티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슈트라면 그러한 단점은 존재하지 않을 테다.

게다가 그 슈트가 갑옷보다 훨씬 더 막강한 방어력을 지닌 아이템이라면 두말 할 것도 없다.

'이건 진짜 탐나는데.'

2단계 아이템 또한 신의 정수가 100개 필요했다.

이는 즉, 이곳 던전에 최소 100마리의 괴수가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최소치로서, 한 마리가 2개씩 내뱉는다면 그 숫자는 50마리가 될 수도 있었다.

"인간? 취-익."

그때.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오크인가?'

인우는 전방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횃불에 의해 어렴풋하게 적의 형태가 보였다.

"허. 황금 오크라니. 제라가 보면 기겁을 하겠는데?"

이번에 등장한 괴수의 정체는 황금 오크였다.

반짝 빛나는 오크라니. 굉장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취-익. 인간. 죽여 주마."

황금 오크 또한 인우를 발견했는지 이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인우 또한 허리춤에 매달린 손도끼를 쥐어 잡았다.

언제라도 튀어나갈 준비를 했다.

7레벨로 오크와 전투를 하려면 꽤나 힘겨울 것이다.

터벅- 터벅-

황금 오크 녀석이 신전의 벽돌 바닥을 지르밟으며 다가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인우는 침을 한번 삼키고 만반의 태세를 끝마쳤다.

끼긱.

"취익?"

한데 그때, 황금 오크가 밟고 있는 벽돌 바닥에서 기괴한 소음이 들려왔다.

이와 동시에 녀석은 당황했고, 곧바로 황금 오크가 밟고 있는 벽돌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꾸에에엑!!"

콰르르르르르.

쿠우우우웅.

"엥…?"

인우는 벙찐 얼굴을 했다.

잔뜩 긴장하고 있었건만 황금 오크 놈이 추락한 것이다.

이제 보니, 이 던전은 함정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인우는 막연한 얼굴로 벽돌 바닥을 쭈욱 훑었다.

벽돌은 끝도 없이 나열되어 있었고, 저 중에는 반드시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터였다.

이건 다시 말해....

'함부로 전진할 수 없다.'

2단계 던전의 컨셉은 명확했다.

함정 던전.

그렇다면 인우가 전진하는 것이 아닌, 황금 오크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맞았다.

그리하여 녀석들이 함정을 모조리 해제하길 바라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이곳 또한 1단계 던전처럼 정확히 100마리의 괴수만 등장할 가능성이 높았다.

딱 맞춰져 나오기에 한 마리라도 비게 되면 아이템을 구매하지 못한 채 3단계로 넘어갈 수도 있는 거다.

그건 절대로 안 될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인우는 고개를 쭉 내밀고 오크가 빠졌던 함정을 확인해 보았다.

"흠."

함정의 깊이는 쉽사리 가늠되지 않았다.

아래에는 새카만 어둠만이 가득할 뿐이었으니까.

우선은 추락한 황금 오크가 죽었든, 죽지 않았든, 내려가서 확실히 한 뒤 신의 정수를 취해야만 했다.

물론 이것은 가장 마지막에 해야 한다.

한번 내려서고 나면 다시 올라오지 못할 테니까.

일단은, 신전 곳곳에 위치해 있는 모든 황금 오크들을 불러야겠다.

인우는 뱃가죽에 힘을 단단히 준 채 크게 외쳤다.

"다 덤벼라!! 돼지 새끼들아!!"

타다다다다다닥!

곧바로 반응이 왔다.

황금 오크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 *

"취-이이익!"

쿠구구구구궁.

"아흔 둘."

쿠구구구구궁.

"아흔 셋."

"꾸웨에에에엑!"

쿠우웅!

"아흔 넷."

인우는 아빠다리를 한 채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서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94마리의 황금 오크들이 추락했다.

이것은 다시 말해 94개의 함정이 발견됐다는 뜻이기도 했다.

만일 뭣도 모르고 전진했다면, 인우 또한 함정에 걸려 바닥에 추락했을 테다.

그리 되면 죽거나, 죽지 않았다 해도 클리어는 요원해졌을 테지.

'빌어먹을 신의 던전.'

그런 생각을 하며 여전히 전방을 주시하는 인우였다.

"취익!"

오크 녀석들은 제 동료들이 함정에 추락하는 광경을 보았음에도 물러섬이 없었다.

역시나 전투의 종족답다.

'한 놈, 두 놈… 여섯 놈.'

황금 오크는 정확히 6마리가 남아 있었다.

추락한 녀석들이 94마리니, 도합 100마리인 셈이다.

남은 녀석들은 이미 드러나 있는 함정들을 피해 내며 전진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놈들이 인우의 1미터 앞까지 다가왔다.

"함정은 끝인가."

더 이상 추락하는 놈들은 없었다.

그제야 인우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도끼를 꼬나 쥐었다.

"취익!"

이와 동시에 6마리의 황금 오크와 인우의 피 튀기는 혈전이 시작되었다.

* * *

"헥. 헥. 헥."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전신이 상처투성이였으며, 피를 너무 많이 흘렸는지 짙은 현기증마저 일어났다.

인우는 서 있을 기운마저 부족한지 구부정한 자세로 손도끼를 치켜들고 있었다.

그 앞에는 5마리의 황금 오크들이 머리통이 날아간 채 나자빠져 있었다.

"취익… 인간.... 살려 줘라."

그리고 한 마리의 황금 오크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인우는 이 녀석을 죽이지 않고 있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존재했던 것이다.

"후우. 후우."

인우는 숨을 골랐다.

그러는 도중 5마리의 황금 오크 시체들이 잿더미로 변하며 사라졌다.

5개의 신의 정수가 떠올랐고 인우는 그것을 챙겼다.

이 5마리를 잡으며 인우가 얻어낸 경험치는 5,000이었다.

한 마리당 1,000의 경험치를 주는 셈이다.

그리하여 현재 인우의 경험치 창은 아래와 같았다.

[EXP 5000 / 6000]

"취익. 인간. 날 죽이지 마라."

여전히 황금 오크가 목숨을 구걸하고 있다.

인우는 전투불능이 된 놈을 내려다보았다.

이 녀석을 잡게 되면 1,000의 경험치를 얻으며 레벨이 오를 것이다.

그리 되면 지친 체력이 모두 회복될 것이다.

마치 모든 것이 계산된 것 같다.

함정은 94개뿐이었고, 황금 오크는 정확히 6마리가 덤벼들어 딱 레벨 업을 할 수 있는 숫자만 덤벼들다니.

이건 확실히 이렇게 되게끔 설계된 던전이 분명하다.

이놈을 잡으면 힘겹게 숨을 몰아쉬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굉장히 달콤한 유혹이었다.

그런데도 인우는 끝끝내 놈을 잡지 않고 있었다.

"후우."

이내 인우는 한 마리의 황금 오크를 내버려둔 채 벽에 걸려 있던 횃불 하나를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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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화 발악 (4)

횃불을 집어든 인우는 가까운 함정으로 걸어갔다.

내려다보니 새카만 어둠만이 가득했다.

그 아래를 향해 횃불을 내던졌다.

후우우웅.

횃불이 추락하며 지하 함정의 전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턱.

어느덧 횃불이 바닥에 닿았고, 그제야 함정의 깊이가 가늠되었다.

그 깊이는, 꽤나 깊었다.

바닥에는 핏자국이 흥건했고, 출혈을 이기지 못한 황금 오크들은 모조리 사망한 것 같았다.

수십 개의 신의 정수가 보였으니 말이다.

세어 보진 않았으나 보나마나 94개일 것이다.

이제 저 아래로 추락하여 신의 정수를 모조리 취해야 한다.

물론 인우 또한 아래로 떨어진다면 저 황금 오크들처럼 상처 입고 출혈을 이기지 못한 채 사망할 것이 분명했다.

이곳에서는 아이템의 효과도 발동하지 않는다.

신의 구두는 있으나 마나인 것이다.

재수가 없으면 즉사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인우는 망설임이 없었다.

"자, 가 보자고."

인우는 마지막으로 남은 황금 오크를 쳐다보았다.

"취익. 인간."

"참 빌어먹을 던전이야. 머리 나쁜 놈은 클리어가 불가능하게 설계된 던전이라니."

그리 말한 인우는 황금 오크를 껴안아 들었다.

여태 이 녀석을 살려둔 이유는 단 한 가지뿐이었다.

추락한 94마리의 전리품을 채취하려면 인우 또한 함정으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한데, 그냥 떨어진다면 필시 반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사를 피한다 해도, 신의 정수를 모조리 줍지도 못하고 과다 출혈로 인해 숨이 끊길 테지.

하지만 황금 오크 한 마리가 남아 있다면 어떨까?

현재 인우의 경험치는 정확히 1,000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즉, 황금 오크 한 마리만 잡으면 레벨 업이 된다는 뜻이다.

레벨 업을 하면 모든 체력이 회복된다.

그렇다.

2단계를 클리어 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후웅!

인우는 황금 오크를 쿠션 삼아 뛰어내렸다.

퍽!

"크아아아아악!!"

"취릭!"

추락과 동시에 끔찍한 비명을 토해 냈다. 그나마도 황금 오크가 쿠션이 되어 충격이 덜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그렇다 해도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다리가 기형적으로 꺾이며 그대로 주저앉은 인우였으니까.

간신히 고통을 참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곳곳에 신의 정수가 보인다.

이대로 저 정수들을 모조리 취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인우는 이 모든 상황에 대한 대비를 해 오지 않았는가?

"크우웁…!"

"마지막 남은 경험치, 네가 채워 줘야겠다."

그러면서 인우는 데리고 온 황금 오크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죽어 가고 있었다.

볼 것도 없이 녀석의 목에 손도끼를 박아 넣었다.

쿠션도 쿠션이지만, 애초에 이러려고 데리고 온 놈이었다.

푹!

[경험치를 1,000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후우!"

레벨이 오르며 즉시 모든 체력이 회복되었다.

동시에 인우는 가뿐한 걸음으로 이곳저곳에 퍼져 있는 신의 정수를 줍기 시작했다.

가을 산에서 밤 줍듯이 말이다.

"하아. 2단계부터 이러면 곤란한데. 정신 바짝 차려야겠어."

확실히 긴장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인우가 마지막으로 남은 6마리의 황금 오크들을 모조리 다 죽여 버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쩔 수 없이 함정으로 추락을 했겠고, 크게 다쳐 움직이지도 못한 채 서서히 죽어 갔을 거였다.

레벨 업 직전에 1마리의 황금 오크를 이용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후우우우웅-

이윽고 인우는 신의 슈트를 구매한 뒤 투명한 게이트로 들어섰다.

* * *

[3단계 구역에 진입하였습니다. 사망 시 바깥으로 강제 퇴…]

"아아, 스킵 스킵."

[3단계 신의 상점이 오픈됩니다.]

이제 3단계인가. 인우는 신의 상점을 열어 보았다.

1. 구매가 완료되었습니다.

2. 구매가 완료되었습니다.

3. 신의 코트 ? 3단계 던전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 신의 정수 100개로 구매 가능합니다.

.

.

.

7. ?

"이건가?"

아이템 명을 확인하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

루시퍼가 바알의 공격을 막아 냈던 그 코트.

그것이 분명하다.

인우는 코트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신의 코트]

종류 ? 방어구

기능 ? '절대자의 성장' 스킬이 강화됩니다.

추가 기능 ? 물리 방어력 +30%, 마법 방어력 +30%

특수 기능 ? 코트를 펼쳐 전신을 감싸면, 목숨을 위협하는 공격을 무조건 방어합니다. (하루에 한 번만 발동됩니다.)

"빙고."

인우는 미소지었다.

이것이 확실했다.

당시, 루시퍼는 신의 코트의 특수 기능을 이용하여 바알의 공격을 막았을 것이 분명했다.

하루에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지만, 이 또한 목숨이 하나 더 생기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방어력 또한 슈트와 같은 30%다.

이렇게 되면 슈트와 코트를 모두 착용하면 60%의 방어력 상승이 된다.

엄청난 수치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자의 성장' 스킬의 강화.

앞서 구두와 슈트에는 걸음과 호흡의 강화가 있었다.

그리고 절대자의 성장은 획득 가능한 모든 경험치가 2배로 상승하는 기능이다.

한데 이것이 강화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걸음, 호흡, 성장이 모조리 강화된다면 시너지의 시너지를 머금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3단계도 무조건 클리어한다."

인우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욕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눈을 부릅뜬 채 3단계 던전의 전경을 훑었다.

"흐음...."

이곳은 나무와 꽃이 보이는 숲의 형태였다.

"쉽게 가늠이 안 되는데."

1단계는 기본적인 육체 능력.

2단계는 함정.

그리고 3단계 던전의 컨셉은 무얼까?

맹독지대? 늪지대?

아니, 아니다.

서바이벌? 숨바꼭질?

여러 가정들이 머릿속을 수놓으며 두뇌가 빠르게 돌아갔다.

이럴 때 히든 스텟인 '지능'이라도 있었다면 한결 수월하게 클리어 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신의 던전은 인간계와 마계에서 이륙했던 능력치를 활용할 수 없는 곳이다.

때문에 지능은커녕 머리통만 터질 듯 아프다.

"도대체 뭐냐…!"

2단계 던전에서 함정이라는 당혹감을 느껴서일까?

인우는 답지 않게 쉬이 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신의 아이템이 탐났기 때문에 더더욱 신중해진 것이다.

그렇게 인우는 눈을 부릅뜬 채 사방을 훑으며 머리를 굴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엥! 인간이잖아! 인간!"

"어라. 정령?"

난데없이 나타난 것은 분명 정령이었다.

그것도 굉장히 보기 드문 축에 속하는 빛의 정령.

정령은 인간의 생활에 도움을 주는 요정이다.

그러한 정령이 왜 이곳에 있는 걸까?

혹시 저 녀석이 바로 3단계에서 퇴치해야 할 괴수인가?

인우는 손도끼를 치켜들고 공격 태세를 갖췄다.

그러자 정령이 손사래를 치며 발광을 해 댔다.

"난 적이 아니야! 치지 말라구!"

"뭔데 그럼?"

"당신의 도우미, 골디."

"골디? 도우미라고?"

"응. 이곳 3단계의 괴수는 황금 오우거야. 내가 아니라!"

"이게 누굴 호구로 보나."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하나?

당연히 사살해야 하는 것 아닐까?

척!

인우는 손도끼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멈칫하고야 말았다.

아직 이 던전의 컨셉을 정확히 알지 못하질 않나.

혹시 저 골디라는 녀석이 클리어에 어떠한 역할을 하는 녀석이라면?

'흐음....'

그래, 정확히 뭐 하는 놈인지 알게 되기 전까진 건들지 않는 게 맞다.

"도우미라 했지?"

"응!"

"증명해 봐."

그러자 골디는 금세 날아오더니 인우의 지척으로 다가왔다.

빛의 정령인 골디의 몸에서는 반딧불이처럼 빛 무리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자체발광이다.

"증명해 볼게!"

인우의 손바닥만 한 골디가 제법 우렁찬 목소리를 내뱉더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인우의 육체에 버프가 둘러지기 시작했다.

[근력이 100 증가합니다.]

[자연 생명 회복력이 50% 증가합니다.]

[물리 공격력이 10% 증가합니다.]

[물리 방어력이 10% 증가합니다.]

[모든 스텟이 20 증가합니다.]

파란색, 빨간색 등 가지각색의 버프들이 인우의 몸을 수놓았다.

버프를 둘러 준 골디가 말했다.

"황금 오우거는 강해! 내 버프가 없다면 대적하기 어렵다고! 그리고, 나는 버프뿐만이 아니라 전투에도 일가견이 있지! 증명해보라고 했지? 내가 클리어를 도울게!"

일단은, 이용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골디의 말대로 오우거는 강했고, 8레벨로 대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뭐, 한 마리 정도야 어떻게든 처치한다고 해도, 100마리를 모조리 퇴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테지.

"그 도움, 받지."

일단은 받자.

물론, 긴장의 끈을 놓쳐선 안 된다.

골디라는 녀석을 믿어서도 안 된다.

어디까지나 이용하는 것이다.

언제든 명심해야 한다.

이곳은 신이 직접 만든 던전이라는 것을....

* * *

[경험치를 5,000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3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황금 오우거가 썩은 나무처럼 꼬꾸라진다.

"으라아아아!!"

인우는 쓰러지는 황금 오우거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다음 타켓을 확인했다.

-크워어어어어!

고막이 터질 듯한 피어가 쏘아져 온다.

인우는 인상을 구기며 황금 오우거와의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골디가 나섰다.

"야아아아압!"

골디는 오우거의 눈을 향해 엄청난 빛 무리를 쏘아 버렸다.

-끄어어어어어!

그러자 오우거는 일시적으로 시력이 마비되고야 말았다.

골디는 그런 오우거를 마구잡이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저건 마치 피라냐 같았다.

-크워! 크워!

오우거의 살덩이가 골디의 작은 입에 한 가득이었다.

인우는 그러한 도움에 힘입어 오우거의 정수리를 향해 손도끼를 내려찍기 위해 몸을 날렸다.

후웅!

도약과 함께 양손으로 그대로 내려찍었다.

카드으으윽!

골이 빠개지는 소리와 함께 오우거의 눈동자에 실핏줄이 오도도 튀어나왔다.

쿠우웅!

놈이 쓰러졌다.

즉사였다.

[경험치를 5,000 획득하였습니다.]

"후우. 후우."

인우는 거친 숨을 토해 냈다.

골디는 그런 인우를 향해 회복의 빛을 시전해 주었다.

금세 체력이 회복됐다.

"멋져 멋져!"

골디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로써 99마리의 황금 오우거를 퇴치했다.

이제 한 마리가 남았을 테다.

그 한 마리만 잡으면 100개의 정수로 신의 코트를 구매할 수 있을 거였다.

'레벨은 18이 된 건가.'

<정인우>

레벨 : 18

스텟 : [근력 43] [민첩 38] [마력 8] [체력 44]

미분배 포인트 : 5

[EXP 5,000 / 60,000]

어디가서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의 능력치다.

하지만 이마저도 소중했다.

"이제 마지막 남은 괴수를 찾는다."

그렇게 중얼거리기도 잠시.

투명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음...?"

4단계로 진입할 수 있는 게이트였다.

하지만 아직 신의 코트를 구입하지 못했다.

한데, 99마리만 잡아도 클리어를 인정해 주는 건가?

여러 가지 의문이 떠올랐지만 어쨌든 결론은 하나다.

아직은 4단계로 진입할 때가 아니라는 것.

인우는 게이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숲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마지막 남은 오우거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켰다. 하지만 숲으로 이루어진 이 지역은 은신할 수 있는 구역도 많았고, 꽤나 넓었기에 퍽 난감했다.

"...."

골디는 말없이 인우를 쫓아왔고, 그렇게 인우는 한나절 내내 오우거를 찾으러 다녔다.

한데, 끝내 발견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이대로라면 지쳐 죽을 수도 있었다.

"...."

골디는 언제부터인가 말이 없다.

그리고 그즈음, 머리가 번뜩였다.

'아… 설마?'

하나의 가정이 떠오른다.

이 던전의 컨셉을 알 것 같았다.

애초에 황금 오우거는 99마리가 전부였다.

그러니 못 찾을 수밖에.

하지만 99마리로는 아이템을 구매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마지막 1마리의 괴수는?

인우는 뒤쫓아 오는 골디를 바라보았다.

'저 녀석이 마지막이었던 거야.'

이 던전의 컨셉은 '속임수'였다.

그래, 마지막 한 마리의 괴수는 바로 골디가 분명했다.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도움을 주는 골디에게 1%의 적대감이나 의심도 갖지 않을 테지.

하지만 정인우는 달랐다.

닳고 닳은 녀석이었다.

다시 말해, 웬만하면 속지 않고 뒤통수를 맞지도 않는다는 거였다.

생각을 마친 인우가 눈을 번뜩였다.

그러고는… 손도끼를 고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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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화 발악 (5)

드넓은 초원.

이곳의 한복판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위에는 영혼이 빠진 정인우의 육체가 보였다.

새하얀 빛 무리들이 육체를 감싸고 있었기에 그 누구도 해코지를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루시퍼 때도 저러했다.

그리고 정인우의 영혼은 지금 신의 던전에 입장해 있을 테지.

녀석이 진입한 뒤로 벌써 이틀이 흘렀다.

루시퍼의 경우, 이틀을 버티다 끝까지 클리어하지 못한 채 바깥으로 나왔었다.

한데, 정인우는 어떠할까?

"반드시 루시퍼보다 높은 곳으로 가라. 정인우."

바알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빛 무리에 휩싸인 정인우의 육체를 바라보았다.

* * *

마계에 심어둔 밀정을 통해 정인우가 신의 던전에 입장한 지 이틀이 지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

루시퍼는 그때를 회상했다.

신의 던전에서 자신의 한계는 4단계였었다. 그곳에 가로막혀 클리어하지 못하고 나왔다.

그리하여 현재 루시퍼는 신의 구두, 슈트, 코트만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정인우가 신의 던전에 입장한 지도 벌써 이틀째다. 놈은 아직까지도 나오지 않고 있어.'

슬슬 똥줄이 탔다.

이틀의 시간이라면, 4단계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을 거다.

루시퍼는 정인우의 한계를 1단계로 보았건만, 가볍게 뛰어넘고 있었다.

'내가 놈을 너무 과소평가 했던 거야. 그날,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 녀석을 죽였어야 했던 건데.'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불안감이 끓어오른다.

설마 놈이 4단계까지 클리어할까?

아니, 아니다. 안 된다. 불가능하다.

우선 1차적으로 3단계에서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 99마리의 황금 오우거를 잡고 4단계로 바로 진입한다.

실제로도 99마리만 잡아도 투명 게이트가 생성된다.

그렇게 4단계로 입장하게 되면 3단계 아이템인 신의 코트를 포기하고 진입하는 셈이다.

둘, 정령을 마저 잡고 신의 코트를 구매한 뒤 4단계로 진입한다.

루시퍼의 경우 두 번째 선택지를 취했었다.

그렇게 얻어낸 신의 코트인 것이다.

하지만 이 선택지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하나 존재했다.

'4단계가… 그런 곳일 줄은 상상조차 못했던 거지.'

자신이 가로막혔던 바로 그 구간.

정인우 또한 정령을 죽이는 선택지를 취한다면, 4단계에서 가로 막힐 가능성이 높았다.

* * *

정인우의 눈빛이 돌변하자 눈치 빠른 골디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3단계의 마지막 괴수인 걸 눈치챘구나? 멍청한 놈인지 알았는데. 의외야!"

인우는 답하지 않았다.

골디는 마저 말을 이었다.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아. 날 죽이게 되면 넌 100개의 신의 정수로 신의 코트를 구할 수 있겠지."

"…뭐, 골디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내가 다 무안해지네. 도움은 고마웠다. 보답으로 고통스럽지 않게, 곱게 죽여 줄게."

"한 가지만 명심해."

골디가 대답 대신 진중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고, 인우는 묵묵히 들어주었다.

"이 앞의 4단계는, 내가 없다면 클리어하기 힘든 구역이라는 것만 기억해."

그 말에 인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골디의 말을 종합해 보자면, 두 가지의 선택지가 존재하는 셈이었다.

하나는 골디를 죽이고 신의 코트를 취한 채 4단계로 진입하는 것.

둘은 골디를 살리고 신의 코트를 포기한 채 4단계로 진입하는 것.

골디가 4단계에서 어떠한 도움을 주는지 모르겠으나, 인우는 신의 코트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4단계로 진입하게 되면 정수가 있다고 해도, 3단계 아이템인 신의 코트는 영영 구매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신의 코트를 구하고 싶다면 골디를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널 죽이고 코트를 산 뒤 4단계로 갈 거다."

"그것이 너의 선택이라면...."

스으으으으으윽.

어느덧 빛의 정령 골디의 육체가 기체화되더니 증발되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자체발광이나 마찬가지였는데, 녀석이 죽자 주변이 금세 컴컴해졌을 정도였다.

그리고 골디가 죽고 난 자리에는 신의 정수 하나가 보였다.

"...."

인우는 그 정수를 집어 들었다.

이로써 100개의 정수가 모였다.

즉시 신의 코트를 구매한 뒤 4단계로 향하는 투명 게이트에 진입했다.

* * *

[4단계 구역에 진입하였습니다. 사망 시 바깥으로 강제 퇴출되며, 재 입장 대기 시간은 5,000년입니다.]

[4단계 신의 상점이 오픈됩니다.]

"헐...."

인우는 멍하니 서 있었다.

이건 그냥… 그저 멍하다.

"이게 뭔 개 같은 경우야?"

4단계 던전.

이곳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었다.

정말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의 완벽한, 그런 어둠이 깔려 있었다.

그제야 골디의 경고가 떠올랐다.

'이 앞의 4단계는, 내가 없다면 클리어하기 힘든 구역이라는 것만 기억해.'

그랬던 건가.

빛의 정령인 골디는 그 자체로 자체 발광이다.

때문에 골디가 존재했다면, 이 어둠은 걷혔을 것이다.

최소한의 시야는 확보할 수 있었다는 거다.

그런데 골디가 없으니 그 무엇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인우는 후회하지 않았다.

만약 골디를 죽이지 않고서 4단계로 왔다면 신의 코트를 구매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조금의 후회도 없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빌어먹을. 뭐가 보여야 뭘 어떻게 해 보던가 하지."

인우는 투덜대면서 허리를 굽히고 바닥을 만져 보았다. 일단은 이곳이 어떤 구조인지부터 보자.

"모래?"

분명히 모래의 촉감이 느껴졌다.

이따금 자갈도 하나씩 집혔다.

이어서 조금씩 옆으로 이동해 보았다.

하지만 벽은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꽤나 넓은 공간의 던전인 것 같았다.

"하아. 뭐 어쩌라는 거냐."

4단계 던전의 컨셉은 장님 체험인가?

빌어먹을 신 녀석이 옆에 있었다면 멱살이라도 틀어잡고서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울화통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때, 괴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카아아아악!

"아."

이 소리는 분명 리자드맨의 울음소리였다.

물론 보이지 않았기에 정확한 확인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울음소리만큼은 리자드맨 특유의 그것이 분명했다.

스슥 스슥!

모래와 자갈을 짓밟는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저 녀석은 자신이 보일까?

일단 적이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부터 알아야겠다.

인우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숨조차 멈춘 채로 말이다.

스슥! 스슥!

여전히 리자드맨의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스슥! 스슥!

순간, 인우는 옆에서 무언가가 지나갔음을 느꼈다.

그리고 발걸음 소리는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놈 또한 나를 못 보나 본데.'

일단은 한 가지는 확인했다.

완벽한 어둠.

패널티는 동등한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인우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임에도 놀라울 정도의 침착함을 보이고 있었다.

잡생각이 단숨에 걷히며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스슥.

그때, 모래와 자갈 바닥을 걷던 리자드맨이 걸음을 멈추는 소리가 들려왔다.

-킁킁.

이어서 놈이 코를 킁킁대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인우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빌어먹을. 리자드맨이 개코라는 걸 깜빡했네.'

스륵.

어느덧 리자드맨이 조금씩 이편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생각을 하자. 생각을.'

우선은 전투가 한번 벌어지면 서로 보이기 않기에 개싸움이 될 확률이 높았다.

현재 인우의 레벨은 18.

1:1대결은 승리할 수 있을 거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곳 또한 리자드맨이 100마리는 있을 테니 말이다.

전투를 하는 격렬한 소음을 듣고 동료 리자드맨들이 몰려온다면?

그때는 정말로 난감해질 테다.

스슥.

리자드맨이 점차 가까이로 다가온다.

'일단은 최대한 빠르게 놈을 죽인다.'

판단을 끝낸 인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해 무기를 치켜들었다.

스슥. 스슥.

'와라. 와라.'

-카아아....

리자드맨 또한 긴장했는지 조심스럽게 숨을 내뱉고 있었다.

인우는 침을 한번 삼키고는 그 방향을 쏘아보았다.

오래지않아 바로 지척에서 녀석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인우는 볼 것도 없이 그 방향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쐐애애액!

푹!

무기의 손잡이를 통해 묵직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결코 허공을 벤 것이 아니다.

-카아악!

놈의 비명이 들려왔고, 이와 동시에 리자드맨의 공격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쐐애애애액-!

카아아앙!

놈의 망치와 인우의 무기가 맞닿자 스파크가 튀었다.

순간 인우는 눈을 번뜩였다.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빛이 존재했다.

황금 리자드맨이 보였고, 놈이 치켜들고 있는 무기 또한 보였다.

놈들의 몸이 황금이라도 자체 발광은 안 되는 것 같았다.

놈이 들고 있는 망치의 몸체는 나무로 되어 있었고, 끄트머리에 쇳덩이가 달려 있는 모습이었다.

스파크로 인해 피어난 빛은 그야말로 꺼지듯 사라졌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후우!"

인우는 기합을 내지르는 대신 숨을 한 번 참고 있는 힘껏 무기를 휘둘렀다.

후웅!

푹!

-카아아아아악!

또 다시 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느껴져 오는 감각으로 보건대 어깨를 베어 낸 것 같았다.

놈이 주춤대는 것이 느껴져 왔다.

필시 도려진 어깨를 쥔 채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인우는 볼 것도 없이 놈에게 뛰어들었다.

퍽!

-카악!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움직임이 소극적으로 변한다.

그게 당연한 거다.

보이지도 않고,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큰 움직임을 취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인우는 그렇지 않았다.

과감하게 움직였으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풀썩!

리자드맨의 복부를 밀며 눕힌 인우는 쓰러진 녀석을 향해 마구잡이로 무기를 휘둘러 댔다.

푹! 푹! 푹! 푹!

-끄르....

[경험치를 10,000 획득하였습니다.]

놈의 숨이 끊겼다.

그제야 인우는 참고 참았던 거친 숨을 토해냈다.

"후우. 후우. 후우."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오래지않아 리자드맨의 시체는 사라졌고, 그 위에 신의 정수가 떠올랐다.

물론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신의 정수는 발광이 없으며 검은색이었으니까.

인우는 손을 더듬으며 신의 정수를 챙겼다.

그리고 방금 벌어졌던 전투를 회상했다.

서로의 무기가 부딪히며 스파크가 튀자 빛이 생겼었다.

'흐음....'

모래자갈 바닥에 주저앉은 인우는 리자드맨의 무기였던 망치를 주워들었다.

손잡이를 포함한 몸체 부분은 단단한 나무였고, 끄트머리에 쇳덩이가 달려 있는 망치.

'이거라면....'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마족이나 천족들은 모르겠는데, 인간은 원시인이었을 때도 불을 만들었다.

나무와 돌을 이용해서 말이다.

그래, 그것은 너무 나약했기에 도구를 이용해 왔던 인간들만의 방식이었다.

천사나 마족들은 이렇게 불을 피우는 방법을 알지도 못할 거다.

애초에 그들은 마법을 사용하면 되는데 이런 방법을 알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원시적인 불꽃은 나약한 자의 특권이었다.

'스파크. 쇳덩이. 자갈… 그리고 나무.'

재료는 충분했다.

* * *

망치의 나무를 뽑아냈다.

쇳덩이와 자갈을 마찰시켜 일어난 불꽃으로는 이 나무에 불을 붙일 수 없었다.

해서 인우는 나무의 일부를 갈아 톱밥을 만들었고, 그곳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 불꽃으로 나무를 태웠고,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어둠이 밝혀진다.

시야가 확보되자 답답함이 확 가셨다.

'이 정도라면, 충분하다.'

클리어 할 것이다. 반드시!

아, 그러고 보니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새로이 오픈된 4단계 신의 상점을 확인해 보지도 못했다.

이번에 오픈된 아이템은 과연 무엇일까?

골디까지 포기한 채 힘겹게 생존 중이다.

그에 상응하는 막대한 보상이길 바라며 신의 상점을 오픈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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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화 발악 (6)

1. 구매가 완료되었습니다.

2. 구매가 완료되었습니다.

3. 구매가 완료되었습니다.

4. 신의 반지 ? 4단계 던전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 신의 정수 100개로 구매 가능합니다.

.

.

.

7. ?

4단계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은 신의 반지였다.

정수의 필요 개수는 기존과 같았다.

신의 반지의 정보를 열어 보았다.

[신의 반지]

종류 ? 반지

기능 ? 생명체의 제약 '수면'이 사라집니다.

추가 기능 - 1분 전으로 시간을 역행합니다. (하루에 한 번만 발동됩니다.)

'하하....'

진정 신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되는 걸까?

반지의 기본적인 기능은 수면이 사라지는 거였다.

이것은 굉장한 기능이라 할 수 있다.

인간에게 수면이란 매우 중요하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가장 먼저 체내에 산소가 원활히 공급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운동 능력이 저하되고 감각이 둔해진다.

어디 이뿐인가?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예민해지며 인지 능력까지 저하된다.

몸이 무거워지고 무기력해지며 우울함과 불안감을 느낀다.

잠이란,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란 말이다.

한데 수면의 제약이 사라진단다.

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이로 인해 벌어지는 모든 페널티가 사라진다는 것을 뜻하는 거였다.

나아가 언제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수면에 빼앗기는 시간을 활용할 수도 있을 거다.

엄청난 기능임이 틀림없었다.

두 번째 기능인 시간 역행 또한 굉장하다.

아니, 굉장하다는 표현만으론 부족한 감이 있다.

시간을 역행하다니?

시간은 흐른다.

이것은 진리다.

그리고 그 시간은 그 누구도 멈출 수 없으며 되돌릴 수도 없다.

그 시간 속에서 인간은 후회를 한다.

한데 이 반지는 그 후회를 되돌릴 수 있게 해 준다.

비록 하루에 한 번이라는 페널티가 있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시간을 돌린다.

그로 인해 위기를 극복할 수도 있고, 현재를 경험하고 시간을 역행하여 남들이 겪지 못한 미래를 예지할 수도 있었다.

응용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거다.

그 정도로 활용도가 높은 기능이다.

'4단계도 무조건 클리어하자.'

인우는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못할 것도 없다.

이미 자갈과 나무 등을 이용하여 불을 피워 낸 인우였다.

시야는 확보되었고, 이제 남은 리자드맨을 싹 다 잡으면 된다.

현재 99마리의 리자드맨이 남아 있을 터였다.

놈들을 한 마리씩 유인해 잡으며, 그럴 때마다 지닌 망치를 빼앗을 참이었다.

망치의 몸통인 나무를 이용하여 끊임없이 불꽃을 유지하며 시야를 확보한다.

완벽한 어둠이라는 페널티를 이미 극복했기에 어려울 게 하나 없었다.

* * *

리자드맨은 리자드맨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놈들은 변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반면 인우는 어떠한가?

그는 성장했다.

[경험치를 10,000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하며 레벨이 올라갈수록, 스텟이 증가할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초반에는 1마리씩 유인해서 잡았던 리자드맨이었다.

그것이 중반에 가서는 2마리, 후반에는 3마리가 되어 있었다.

-카아아아악!

리자드맨 한 마리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인우를 향해 내달려왔다.

시각적 효과만으로도 노린내가 풍겨 오는 것 같다.

"이빨을 털어 주마!"

쐐액!

허리춤에 매달아 두었던 망치를 집어 던졌다.

깡!

둔탁한 소음과 함께 리자드맨이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해롱대고 있는 놈을 뒤로 한 채 나머지 2마리의 리자드맨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카아아악!

인우는 또다시 허리춤에 매달린 망치를 빼 들었고, 이번엔 양손에 하나씩 들었다.

바닥에는 여전히 나무가 타오르며 불꽃을 발하고 있었고, 인우는 또렷한 시선으로 놈들의 공격을 회피했다.

후웅! 후웅!

날아드는 망치를 귓불로 스치며 마구잡이로 무기를 휘둘러 버렸다.

후웅! 후웅!

빠각!

한 녀석의 경추에 인우의 망치가 꽂혔고, 놈은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거품을 물며 기절했다.

마무리는 잠시 뒤로 무르고, 아직 남은 한 놈의 복부를 향해 발을 날렸다.

쿠득!

-칵...!

리자드맨은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과 함께 숨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

목젖을 향해 무언가가 꾸물거리며 역류한다.

놈은 어떻게든 호흡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몸을 숙이며 주저앉았다.

인우는 볼 것도 없이 놈의 뒤통수를 향해 그대로 망치를 내려찍었다.

빠각!

머리통이 아작 나며 놈은 경련조차 없이 나무처럼 쓰러졌다.

[경험치를 10,000 획득하였습니다.]

기절한 두 녀석의 머리통도 마저 날려 버렸다.

[경험치를 1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10,000 획득하였습니다.]

"아아. 보너스 스텟."

모든 적을 처치한 인우는 상태창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레벨 업을 하면 즉각적으로 스텟을 올려 주는 게 좋다.

고작 1의 차이라도 저레벨의 구간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니 말이다.

<정인우>

레벨 : 27

스텟 : [근력 58] [민첩 53] [마력 8] [체력 59]

미분배 포인트 : 5

[EXP 30,000 / 120,000]

5개의 포인트를 근력과 민첩, 체력에 투자했다.

확실히 스텟이 50대로 접어드니 전투가 한결 수월했다.

후우우우웅.

그때, 리자드맨의 시체가 사라지며 신의 정수가 떠올랐다.

인우는 그것을 챙겼다.

이로써 100개가 모였다.

즉시 신의 반지를 구매했다.

"호오...."

이번에도 어김없이 구매한 아이템이 허공에 떠올랐다. 인우는 누가 채가는 것도 아닌데도 잽싸게 그것을 낚아챘다.

검은색과 금색으로 이루어져 있는 반지였다.

외형은 굉장히 고급스러웠다.

인우는 이 두 가지 색깔이 이렇게나 잘 어울리는지 처음 알았다.

반지에는 알 수 없는 언어도 각인 되어 있었다.

무슨 뜻인진 알 수 없다.

신이 만든 것이니, 신이 알 테지.

아니, 알 필요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얻었으니 되었다.

인우는 그것을 어느 손가락에 낄지 고민하다가 왼손 검지에 끼었다.

"음...."

인우가 기존에 착용하던 반지는 '아포칼립소의 오른손 반지', '아포칼립소의 왼손 반지'이다.

그리고 일전에 레전드 스킬 볼을 통해 히든 패시브가 하나 떴었다.

절대자의 손가락, 그것은 착용 가능한 아티펙트 반지의 개수를 2배 늘려 주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반지는 도합 4개까지 착용하여 능력치를 얻을 수 있다.

그 때문에 인우는 마계 상점에서 '괴력의 전능 반지'를 하나 구매하여 착용했었다.

그리하여 3개의 반지가 있었고, 이제 신의 반지를 착용했으니 4개가 되었다.

이곳 던전에서는 기능의 발현이 제한되지만, 바깥으로 나간다면 당장에 시험해 보고 싶었다.

시간의 역행. 그것은 정말이지 매력적인 기능이었으니까.

후우우우웅.

생각을 마친 인우는 눈앞에 열려 있는 투명 게이트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이제, 5단계의 시작이었다.

* * *

[5단계 구역에....]

[5단계 신의 상점이....]

"음."

주변을 훑었다.

일단 암흑천지는 아니었다.

5단계의 전경은 동그란 홀이었다.

그리고 두 개의 문이 보였다.

문은 쇠창살로 이루어져 있었고, 내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좌측 문 너머에는 신의 정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우측 문 너머에는 황금 데스나이트가 서 있었다.

한마디로 이건 갈림길이었다.

선택하라는 거다.

선택은 때론 후회를 동반한다.

신의 반지로 그 후회를 돌이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이템의 능력은 그림의 떡이다.

신의 던전에서는 아티펙트의 기능이 발휘되지 않았으니까.

그게 됐다면 2단계에서 함정으로 추락했을 때, 신의 구두를 활용하여 허공을 밟고서 안전하게 내려설 수도 있었을 거다.

이번 또한 마찬가지다.

신의 던전은 인우를 약 올리고 있었다.

나아가 선택을 강요한다.

저 두 개의 문 중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 걸까?

겉으로만 본다면 당연히 신의 정수가 놓여 있는 곳으로 가는 게 맞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일까?

이곳은 신의 던전이다.

전리품인 신의 정수를 거저 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황금 데스나이트가 보이는 문으로 들어서야 하나?

모르겠다. 겉만 보고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이쯤 되니 위저드 아이가 그리워질 지경이다.

그 스킬만 쓸 수 있다면 저 내부의 구조를 헬리캠처럼 훑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때, 황금 데스나이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우는 즉시 양손에 망치를 들고서 전투태세를 갖췄다.

-츠으으으으.

황금 데스나이트는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열쇠를 집어 들었다.

그러더니 제 놈이 갇혀 있던 쇠창살 문을 열었다.

철컥.

터벅. 터벅.

놈이 인우를 향해 걸어왔다.

그러더니 그 열쇠를 인우에게 던지는 것이 아닌가?

인우는 본능적으로 열쇠를 받았다.

황금 데스나이트는 인우를 가만히 바라볼 뿐 더는 다가오지 않고 있었다.

"뭐하자는 거냐."

놈은 열쇠로 문을 열었다.

다시 말해 문은 열쇠로 열린다.

잠시 망설이던 인우는 황금 정수가 보이는 쇠창살 문을 바라보았다.

같은 구조의 문이기에 이 열쇠로 저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열어서 가져갈 수 있다면 해 보라는 건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인우는 좌측 문으로 갔다.

그리고 열쇠로 문을 열었다.

그때까지도 황금 데스나이트는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침을 꿀꺽 삼킨 인우는 그곳에 있는 황금 정수를 집어 들었다.

후우우우웅.

그러자 이번엔 투명게이트가 생성되었다.

이건 다시 말해 5단계를 클리어했다는 뜻이었다.

'뭐가 이렇게 쉬워?'

그렇다면 5단계 아이템은 어떻게 되는 거지?

신의 상점을 열어 보았다.

.

.

4. 구매가 완료되었습니다.

5. 신의 팔찌 ? 5단계 던전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 신의 정수 1개로 구매 가능합니다.

.

.

7. ?

심지어 5단계 아이템은 신의 정수 1개로 사들일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찝찝했다.

무언가 분명히 있다.

인우는 아이템을 구매하고 투명게이트로 진입하는 대신, 황금 데스나이트가 서 있는 홀을 향해 되돌아왔다.

저놈에게 분명 무언가가 있다.

그냥 존재하는 놈일 리 없다.

속임수와 함정으로 가득 찬 신의 던전이다.

인우는 불신으로 가득 찬 눈을 한 채 놈을 쏘아보았다.

"뭐하자는 거냐?"

-츠으으으.

황금 데스나이트는 기분 나쁜 울음소리를 낼 뿐이었다.

인상을 구기던 인우는 망치를 강하게 움켜쥐고 놈을 향해 걸어갔다.

일단은 괴수이니 잡으라고 놔둔 것일 테다.

한데, 던전까지 손쉽게 클리어하게 해서 다음 단계로 진입하도록 유도하다니.

이렇게까지 하면서 달콤한 꿀로 6단계로 진입하라 유인하고, 위협거리인 황금 데스나이트는 선제공격조차 하지 않는다.

당연히 무언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의외로 해답은 간단하다.

잡으면 된다.

인우는 놈을 향해 망치 하나를 내던졌다.

쐐애애애액-!

탁.

황금 데스나이트는 방패를 치켜들어 망치를 막아 냈다. 멍하니 있는 줄 알았건만 순발력이 발군이다.

타다다닥!

인우는 놈을 향해 뛰어들며 망치를 휘둘렀다.

후웅!

묵직한 소음과 함께 곧이어 손끝에 둔탁한 느낌이 전해져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휙!

한데, 황금 데스나이트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망치를 피해 냈다.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그야말로 고개를 살짝 돌리는 것만으로 피해 냈다는 것이다.

이건 웬만큼 회피에 자신이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움직임이었다.

-츠으!

이와 동시에 황금 데스나이트는 방패를 휘둘러 인우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빡!

인우는 뒷골이 띵해지며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이 자식 이거 뭐야…? 엄청 강하잖아?'

예사 놈이 아니다.

녀석은 추가 공격을 하지도 않았고, 그저 묵묵히 인우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저건, 들어올 테면 들어와 보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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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화 발악 (7)

"해보자 이거지?"

-츠으으.

인우는 으르렁대며 황금 데스나이트를 쏘아보았다.

녀석에게 맞은 뒷골이 찌르르 울린다.

뭐가 됐건 일단 잡아 보자.

다행히도 지금 저 녀석은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었다.

들고 있는 검을 휘두르지도 않았고, 선제공격을 하지도 않는다.

인우는 망치를 꽉 움켜쥔 채 몸을 일으켜 세웠다.

"각오해라!"

-츠으.

타다다닥!

거리를 좁히고 망치를 휘둘렀다.

후웅!

깡!

황금 데스나이트는 방패를 치켜들고 방어했다.

그리고 이번엔 칼등으로 인우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빡!

"컥!"

절로 몸이 주저앉는다.

충격 때문에 몸이 석고처럼 굳어 움직여지지 않을 정도였다.

인우는 혀를 깨물며 움직이기 위해 안간힘을 써 댔다.

그때, 황금 데스나이트가 발을 들어 인우의 복부를 차 버렸다.

퍽!

"꺽!"

강한 충격 때문에 오장육부가 뒤틀리며 숨이 턱 막혀왔다.

인우는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츠으으.

황금 데스나이트는 이번에도 쓰러진 인우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때였다.

[고통에 저항하기 위해 당신은 더 강인해집니다.]

[체력 스텟이 1 상승하였습니다.]

"...뭐?"

순간 인우는 고통조차 잊은 채 벙해지고야 말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스텟은 레벨 업을 통해서만 올릴 수 있다.

한데 지금은 그냥 올라 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해 놈에게 얻어터져서 오른 거긴 했다.

'잠깐, 맞아서 올랐다고?'

고통에 저항하기 위해 체력이 1 올랐다?

그 말은 즉, 맞기만 하면 성장이 가능해진다는 뜻인가?

인우는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황금 데스나이트를 쳐다보았다.

인제 보니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황금 데스나이트는 6단계로 넘어가기 전 수련을 돕는 역할을 하는 놈인 것 같았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인우가 황금 데스나이트를 무시하고 6단계에 곧바로 진입했다면?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보너스 스테이지 격의 훈련은 없었을 거다.

"빌어먹을 신의 던전!"

아주 미세한 거 하나까지 섬세하게 신경 써야 한다.

다 때려 부수는 데에 특화된 인우였기에 이럴 땐 정말 아찔했다.

"그래 뭐, 해보자고."

인우는 이를 악물고 다시금 황금 데스나이트에게 뛰어들었다.

퍽!

* * *

[고통에 저항하기 위해 당신은 더 강인해집니다.]

[체력 스텟이 1 상승하였습니다.]

"헥… 헥...."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인우는 대짜로 뻗어 있었다.

저 빌어먹을 깡통 녀석에게 얼마나 처맞았는지 기억도 안 난다.

다만 20개의 체력 스텟을 올렸으니 꽤 맞았을 거다.

이제 움직일 기력조차 없었다.

체력을 회복할 때까지는 누워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다시 놈에게 뛰어들 수 있을 테니까.

-츠으으으.

그런데 그때, 황금 데스나이트가 인우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그러더니 무언가를 던져 주었다.

인우는 그것을 낚아챘다.

주먹만 한 유리병에 검붉은 액체가 담겨 있었다.

"뭐냐 이건...?"

-츠으.

인우가 턱 끝으로 묻자 황금 데스나이트가 입을 벌리는 시늉을 했다.

먹으라는 의미인 것 같았다.

일단은 정보부터 확인해 보았다.

[시바 포션]

황금 데스나이트 '시바'가 직접 만든 포션.

100년간 발효시켜 썩어 있다.

굉장한 효과가 있을지도?

"...."

인우는 녀석이 준 유리병의 정보를 훑다가 얼굴을 굳혔다.

아이템의 정보가 의문형으로 되어 있는 것은 인우조차도 처음 보았다.

그래서 효과가 있다는 건가 없다는 건가?

뭐가 됐건 이걸 먹고 체력을 회복해서 다시금 덤비라는 말 같긴 한데....

아니, 다 됐고 왜 하필 발효시켜 썩은 포션을 주는 건가?

"후우."

그래, 일단 마시자.

인우는 유리병의 마개를 따고 입으로 가져다 댔다.

그 즉시 저도 모르게 헛구역질을 했다.

"우욱!"

썩은 내도 이런 썩은 내가 또 없다.

코를 막았다.

눈을 질끈 감고 물약을 삼켰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모든 체력이 회복되었습니다.]

몸이 개운해졌다.

심지어 허기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입 안 가득 느껴지는 썩은 냄새 때문에 인상이 풀어지지 않았다.

그 모습에 황금 데스나이트 시바가 웃었다.

-츠츠츠.

상당히 괴기스러운 웃음이었다.

녀석은 진짜 웃겨서 웃는 것 같았다.

그때, 인우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놈의 머리통을 한 대 쳤다.

퍽!

체력 스텟이 꽤나 올라 있었기에 인우의 공격은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하! 처음으로 때려 보네."

계속 회피와 방어만 하는 녀석이었기에 한 대 쥐어박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야 공격에 성공한 것이다.

-츠츠.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더욱 강한 타격을 주기 위해 당신은 더 강력해집니다.]

[근력 스텟이 1 상승하였습니다.]

"아...!"

그런 건가.

맞으면 체력이, 때리면 근력이....

그런 방식으로 상승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녀석의 공격을 회피하면 민첩이 오르는 건가?

-츠!

그때, 시바가 불식간에 칼등으로 공격을 가해 왔다.

퍽!

"악!"

체력이 제법 많이 상승한 인우였음에도, 이 빌어먹을 공격을 맞으면 절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마, 체력과 근력을 더 상승시키지 않는 한 회피는 요원한 일이 분명해 보였다.

놈의 공격은 빈틈이 없다.

더 많은 능력치가 필요했다.

인우는 시바를 향해 마구잡이로 망치를 휘둘러 대기 시작했다.

퍽! 퍽!

* * *

근력 스텟 6개.

체력 스텟 29개.

도합 35개의 스텟을 얻었다.

이건 바꿔 말해 7개의 레벨 업을 한 것과 같았다.

본래는 시바의 공격을 3분도 버티지 못했는데, 스텟이 상승하니 이제 6분은 버틸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이따금 공격을 적중시킬 정도가 되었다.

이곳에서 시바와의 수련을 얼마나 더 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최대의 최대까지 스텟을 끌어올리고 다음 단계로 진입할 예정이었다.

"헥. 헥. 야, 포션 하나 줘 봐."

"츠. 츠."

시바가 고개를 내젓는다.

인우는 쌍심지를 켰다.

"아오!"

시바는 계속 이런 식이었다.

인우의 체력이 1%도 남아 있지 않았을 때, 극한의 상황이 왔을 때만 포션을 줬다.

이러니 인우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이 더 들 수밖에 없었다.

-츠!

시바가 칼을 들고 흔들었다.

잦은 경험으로 저것이 들어오라는 의미임을 안다.

어서 빨리 덤비라는 것이다.

"오냐!"

외침과 함께 인우가 돌격했다.

그의 돌격은 막무가내였다.

어차피 어떻게 달려들어도 시바의 공격을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였다.

그 때문에 맞고, 공격을 가하며 체력과 근력을 상승시키는 것이 최선이었다.

-츠으!

또다시 저 빌어먹을 칼등이 날아든다.

저 공격은 마치 태산과 같은 기세를 품고 있다.

빠르고, 강하다.

뻑!

순간, 별이 반짝였다.

머리통에서 느껴지는 아찔한 충격과 함께 인우는 놈의 몸을 끌어안았다.

뻑!

한 대 더 맞았다.

체력 스텟이 올랐고, 인우는 맞으면서 묘한 쾌감을 맛볼 수 있었다.

마조히스트는 아니었지만 맞을수록 강해지니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뻑!

거리가 밀착되어서인지 이번엔 팔꿈치로 얻어맞았다.

그런데도 인우는 떨어지지 않았다.

"으라아아아아!!"

놈의 다리를 걸고 있는 힘껏 밀어 버렸다.

꽈당!

그러자 둘은 나자빠졌다.

그때 인우는 손을 뻗어 망치를 마구잡이로 휘둘러 댔다.

퍽! 퍽!

시바는 두 대를 얻어맞았다.

인우의 근력이 올랐다.

-츠츠츠!

시바가 흥분했는지 비명과 같은 고함을 내질렀다.

녀석도 자빠진 채로 인우에게 주먹과 방패를 날려 대기 시작했다.

퍽! 퍽!

점차 개싸움이 되어 갔다.

그리고 그 엄청난 전투 속에서, 마침내 인우는 처음으로 시바의 공격을 회피했다.

휙!

-츠!

"봤냐!"

인우가 우쭐댔다.

동시에 시스템 음성이 들렸다.

[상대의 공격을 회피하기 위해 당신은 더 민첩해집니다.]

[민첩 스텟이 1 상승하였습니다.]

처음으로 민첩 스텟이 올랐다.

이것을 시작으로 더욱 많은 민첩을 확보할 가능성을 열었다.

뻑!

그때, 우쭐대던 인우의 면상에 시바의 주먹이 직격으로 날아들었다.

녀석은 그간 힘 조절이라도 했었던 걸까?

전과는 비교조차 불가한 파괴력이었다.

인우는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채 기절하고야 말았다.

-츠츠츠.

쓰러진 인우의 귓가에 시바의 웃음소리가 흘러들어왔다.

* * *

빛 한 점 없다.

똥통에 빠졌고, 그곳에서 허우적거렸다.

"으어!"

인우는 출구를 찾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출구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수영장 물 만큼이나 높다란 똥물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푸우우!"

입술에 똥물이 묻자 질겁하며 난리를 쳤다.

그런데도 똥물은 기어코 인우의 입속으로 들어왔다.

"으아아아아악!"

비명을 내질렀고, 그 순간 의식의 저편에 갇혔던 정신이 깨었다.

"허억! 허억!"

꿈이었나?

인우는 눈을 크게 뜨며 가쁜 호흡을 내뱉었다.

자신은 누워 있었고, 시바가 보였다.

시바는 쪼그려 앉은 채로 썩은 포션 병을 인우의 입속에 박아 넣고 있었다.

아, 저거였나....

"개자식아! 깨운 다음에 먹이던가! 그거 때문에 더러운 꿈을 꿨잖아!"

-츠츠츠.

시바가 웃었다.

저 빌어먹을 100년 묵은 썩은 포션이 입속에 들어오니, 당연히 똥통에 빠지는 꿈을 꿀 수밖에.

정말 고약한 냄새다.

시바 녀석이 어떤 재료를 써서 포션을 만들었는지 모르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알게 되면 구토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척.

인우에게 포션을 먹인 시바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또다시 칼을 빙글 돌리며 덤비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그때, 또다시 시스템 음성이 들려왔다.

한데 이번에 뜬 알림음은 조금 달랐다.

[육체의 한계가 올 때까지 여러 차례 버티며, 당신은 더욱 끈질겨졌습니다.]

[히든 스텟 재생력이 생성되었습니다.]

[재생력 ? 상처 치유 속도가 증가합니다. 재생력이 높다면, 작은 타박상 정도는 몇 초 만에 치유되기도 합니다.]

"아."

인우는 꽤 놀란 눈동자로 시바를 바라보았다.

그랬던 건가.

그러해서 기절하기 직전까지 내몰리지 않는 이상 포션을 내어주지 않았던 건가?

놀랍게도 시바 녀석은 인우가 히든 스텟을 얻을 수 있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츠츠츠."

시바는 인우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제 저 웃음이 제법 정겹다.

* * *

"하아. 하아."

몇 주가 지났을까?

아니 몇 개월이 지났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1년?

아니, 모르겠다.

시간이라는 개념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다.

한계의 한계를 끝도 없이 경험했다.

정신은 더욱 강력해졌으며, 인우는 오로지 오기와 끈기만으로 버티고 있었다.

시바와의 훈련을 통해 엄청난 능력치를 상승시켰다.

근력 250.

체력 533.

민첩 99.

재생력 5.

모두 887개의 스텟이다.

레벨로 따진다면 177개의 레벨을 올렸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인우의 레벨은 여전히 27이었다.

변한 건 오로지 스텟뿐.

<정인우>

레벨 : 27

스텟 : [근력 310] [민첩 154] [마력 8] [체력 592]

히든 스텟 : [재생력 5]

미분배 포인트 : 0

[EXP 30,000 / 120,000]

레벨에 비해 말도 안 될 정도로 높은 능력치였다.

이쯤 되자 당연히 스텟이 아까워진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신의 던전 바깥으로 나갔을 때 이 스텟이 증발하면 기분이 대단히 더러워질 것 같다는 뜻이었다.

인우는 시바에게 물었다.

"묻자, 하나."

한동안 말을 안 해서 그런지 말이 문장 단위가 아닌 단어로 끊겨서 튀어나왔다.

게다가 그 단어마저도 앞뒤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그런데도 시바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듣고 있었다.

-츠으.

얼마든지 물어보라는 의미였다.

인우가 물음을 이었다.

"스텟, 나갈 때 가져가나?"

-츠으.

시바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레벨은?"

-츠으.

이번엔 고개를 젓는다.

이로써 확인이 됐다.

이곳에서 수련을 통해 얻은 스텟은 바깥으로 나가도 증발하지 않는다.

다만 레벨은 증발한다.

하지만 레벨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근본적인 것은 스텟이다.

그 스텟을 챙길 수 있다.

이 수련의 끝을 보아야겠다.

인우는 망치를 치켜들었다.

"후우."

-츠. 츠.

오늘은 시바도 꽤나 지쳐 있었다.

인우는 잘 알지 못했지만, 시바와의 훈련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츠.

시바는 웃으며 칼을 빙글 돌렸다.

이제는 그 의미가 뭔지 너무나도 잘 안다.

"오냐."

인우는 시바를 향해 돌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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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화 발악 (8)

100년 동안 발효시킨 시바 포션의 맛은 최악이다.

썩은 동태찌개의 맛 같기도 하고, 푹푹 찌는 여름날의 음식물 쓰레기 맛 같기도 했다.

물론 그딴 걸 먹어 보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그따위 것들이 생각났다.

먹어도 먹어도 적응되지 않는 맛이었다.

그래서인지 인우는 작은 목표가 하나 있었다.

시바도 포션을 마시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놈을 궁지로 몰아야만 했다.

그리고 오늘.... 인우는 시바를 몰아붙이는 데에 성공했다.

시바가 드디어 백기를 든 것이다.

-츠.

"후우. 후우. 후우."

인우도 제법 지쳤기에 거친 숨을 토해 내고 있었다.

시바는 이미 대자로 뻗어 있는 상태였다.

녀석은 떨리는 손으로 품속에서 발효 포션을 꺼냈다.

그래, 죽고 싶지 않다면 저걸 마실 수밖에 없을 거다.

마개를 따고 조심스럽게 입으로 가져다 댔다.

유리병 속 썩은 포션이 놈의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츠으으윽!!

비명 또한 들렸다.

시바는 지랄발광해 댔다.

투구 속에 가려진 놈의 표정이 저절로 떠오른다.

아마 인상이란 인상은 잔뜩 쓰고 있을 것이다.

녀석이 썩은 맛에 괴로워할수록 인우는 즐거운 얼굴을 했다.

드디어 시바 놈에게 발효 포션을 먹였다.

여한이 없을 지경이다.

"큭큭."

인우가 한참 웃음을 삼키고 있을 때, 몸을 회복한 시바가 다가왔다.

시바는 인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때, 시스템 알림음이 들려왔다.

['시바'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더는 시바에게 배울 게 없습니다.]

시바는 언제나 그랬듯 가만히 인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바가 저편에 있는 투명게이트를 가리켰다.

인우가 물었다.

"다음 단계로 가라고?"

-츠.

시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끝인 건가.

이 공간에서 꽤 오래 머문 것 같았기에 이곳이 어디인지 잠시 잊었었나 보다.

이곳은 신의 던전.

그리고 인우는 던전의 끝을 볼 거라 다짐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아쉬울까?

인우는 저도 모르게 물었다.

"너는?"

-츠츠츠.

시바는 그냥 웃었다.

그래, 당연히 함께 갈 수 없는 거겠지.

그때.

터벅. 터벅.

시바가 투명게이트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녀석은 그 앞에 선 채로 잠시 인우를 바라보더니 손짓을 했다.

그러곤 제 녀석이 먼저 투명게이트에 진입했다.

"응...?"

시바가 6단계로 진입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인우 또한 진입을 위한 준비를 했다.

이제 5단계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

아, 딱 하나 있다.

신의 팔찌 구매.

일전에 보았듯, 구매를 위해 필요한 신의 정수는 1개였다.

이 1개는 시바가 준 열쇠를 이용해 얻은 상태다.

언제든 살 수 있다는 의미다.

인우는 5단계 신의 상점을 오픈하고 아이템을 구매했다.

신의 팔찌가 떠올랐고, 그것을 손에 쥐었다.

[신의 팔찌]

종류 ? 팔찌

기능 ? 생명체의 제약 '허기'가 사라집니다.

추가기능 ? 행동을 통해 '스텟'이 증가합니다.

팔찌의 기능은 반지만큼이나 쇼킹했다.

반지의 경우 수면과 시간 역행의 기능이 있었다.

'허기라.'

기본적인 기능은 허기가 사라지는 거였다.

허기라는 것은 배고픔을 느끼는 인간의 본능이다.

그런데 그것이 사라진다는 것은, 다시 말해 무언가를 먹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선 그 누구라도 무언가를 먹어야만 한다.

한데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신의 영역에 다가서는 것과 같았다.

신의 아이템 시리즈는 말 그대로 착용자를 신의 영역으로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추가 기능이 제법 놀랍다.

행동을 통해 스텟이 상승한다?

시바와의 대련을 통해 능력치를 올렸던 것과 같은 기능일 것이다.

이제 바깥으로 나가게 되면 굳이 레벨 업을 하지 않아도 스텟을 증가시킬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레벨 업을 멈출 생각 따윈 없었다.

어차피 레벨 업은 끝없이 이루어질 것이었다.

절대자 패시브 시리즈가 강화될 것이었으니까.

'이제 6, 7단계가 남아 있는 건가.'

인우는 투명게이트를 향해 갔다.

6단계의 시작이었다.

* * *

정인우가 사라진 뒤로 10개월이 지났다.

정상적이라면 10번의 서열전이 열렸어야 한다.

하지만 서열전은 벌어지지 않았다.

루시퍼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기에 마계는 비상이 걸렸던 것이다.

이 때문에 비어 있는 49자리의 마왕좌를 메꾸었고, 서열전를 비롯한 생사전은 무기한 정지됐다.

같은 편이나 다름없는 마족들끼리 투덕거릴 때가 아니었다.

마계는 초긴장 상태를 유지했고, 정인우의 소식은 여전히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루시퍼도 며칠밖에 머물지 못했던 신의 던전이건만, 정인우는 벌써 열 달째 나오지 않고 있었다.

도대체 신의 던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루시퍼의 한계를 뛰어넘고 모든 단계를 클리어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마계의 마족들과 마왕들은 정인우의 귀환을 손꼽아 기다렸다.

바알의 뜻에 따라 72위 마왕 자리까지 공석으로 만들어두지 않았던가?

이 모든 것이 정인우를 위한 자리였다.

처음에야 이에 대해 반발이 심했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모든 마왕의 반발이 수그러든 상황이었다.

정인우, 그는 정말로 마신이 될지도 몰랐다.

그가 돌아오면, 그때부터는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될 가능성이 컸다.

루시퍼는 정인우를 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마계와 천계의 상황은 폭풍전야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대천사장만 없었더라면 벌써 전쟁이 벌어지고도 남을 상황이긴 했다.

미치광이 루시퍼와 욕심 많은 대천사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전쟁은 반드시 벌어질 거였다.

마계는 루시퍼를 주시했고, 루시퍼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섣부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 * *

인우는 6단계에 진입했다.

주변의 전경을 훑어보았다.

흙길이 보였고, 주변에는 앙상한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당장 귀신이 나온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성이 하나 보였다.

성은 괴기스러운 모습이었다.

벽돌 대신 뼈다귀로 지어져 있었고, 사람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만한 입구가 하나 보일 뿐이었다.

척 보아도 저 안에 무언가가 있을 게 분명해 보였다.

그나저나, 시바 녀석이 먼저 진입했는데 보이지 않는다.

놈은 어디로 간 것일까?

대화 상대 하나 없는 이곳에서, 시바는 인우의 유일한 친구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꽤 정이 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귀환할 때 놈을 납치해서 함께 가고 싶었다.

아마 '츠! 츠!'거리면서 당황할 테지.

그 꼴을 한번 보고 싶다.

그리고 함께 바깥으로 나간다면,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 데스나이트니까 데리고 다니면 제법 모양새가 날 텐데.

나름 귀여운 면도 있고 말이다.

더군다나 시바 포션의 효과를 경험했던지라, 녀석을 포션 셔틀로 사용해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림의 떡이다.

지금으로선 시바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일단은 6단계 아이템부터 확인해 보자.'

신의 상점을 열었다.

.

.

.

6. 신의 목걸이 ? 6단계 던전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 황금 리치왕의 심장으로 구매 가능합니다.

7. ?

'리치왕의 심장?'

기존의 던전과는 조금 달랐다.

더는 신의 정수가 필요치 않게 된 것이다.

구매에 필요한 아이템을 보건대, 아마도 황금 리치왕이라는 녀석을 잡아야 하는 것 같았다.

필시 저 뼈다귀 성안에 있을 테지.

망설임은 불필요했다.

인우는 성을 향해 걸었다.

이와 동시에 신의 목걸이의 정보를 불러왔다.

[신의 목걸이]

종류 ? 목걸이

기능 ? 생명체의 제약 '수명'이 사라집니다. (수명이 사라질 뿐, 불멸은 아닙니다.)

추가기능 ?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대상을 현혹합니다. (하루에 한번 시전 가능합니다.)

신의 장신구들이 지닌 기본능력은 모두 '생명체의 제약'과 관련된 것이었다.

수면, 허기, 그리고 이제는 수명이다.

생명을 지닌 존재라면 수명을 지니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명은 닳아 가고, 결국 생명은 사라진다.

그것이 바로 수명이다.

한데 수명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그건 죽지 않게 된다는 말이었다.

즉, 영생이다.

불로장생을 꿈꿨던 진시황도 영생을 얻진 못했다.

아니, 그 어떤 누구도 영생을 얻진 못한다.

영생이란 그야말로 신만이 가능하다.

한데 이 목걸이는 그것을 가능케 해 주었다.

다만, 수명이 사라지는 것일 뿐 불멸은 아니라 적혀 있었다.

액면 그대로 보자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해석해 보자면 아마도 이런 의미일 것이다.

수명이 사라져서 죽지 않겠지만, 소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거나 상처를 입으면 여지없이 숨이 끊긴다는 말일 테다.

한마디로, 무적이 된다는 뜻이 아니란 말이다.

생각해 보면, 제아무리 수명이 사라졌다 해도 목이 잘리면 죽을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런 뜻이리라.

물론 이것을 반대로 풀이하면, 그저 얌전히 숨만 쉬고 살면 영원토록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즉, 인간이 가진 욕망의 끝, 영생이었다.

욕심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아니, 개소리다.

욕심이 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추가 기능은 어떠한가?

대상을 현혹할 수 있는 기능이다.

하루에 한 번밖에 시전할 수 없지만,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기술이었다.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생명체라면, 여지없이 현혹으로 조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뒤에서 적을 조종하여 적진 한복판으로 들어가서 난동을 부릴 수도 있고, 현혹으로 무방비 상태를 만들어 단칼에 목을 베어 버릴 수도 있었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선 반드시 대상보다 레벨이 높아야만 했다.

그간 인우가 레벨을 올리는 이유는 스텟의 증가와 신의 패시브 개방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제는 한 가지가 더 늘어난 셈이었다.

'목걸이도 반드시 취한다!'

인우는 더욱 빠르게 뼈다귀 성을 향해 걸었다.

황금 리치왕이고 나발이고 단칼에 베어 줄 것이다.

도착과 동시에 망설임 없이 진입했다.

그러자 뼈다귀가 삐걱거리는 소음과 함께 성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절로 소름이 돋는 소리였다.

성 내부를 훑었다.

아니, 훑으려 했다.

쐐애애애액!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들었다.

휙! 휙!

인우는 고개를 가볍게 젖히는 것으로 화살을 피해 냈다.

이따위 공격은 이제 위협 거리도 안 된다.

시바와의 훈련을 통해 얻어낸 능력치는 그만큼 높았다.

인우는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높은 시력을 통해 전방을 쏘아보았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황금 해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척 보니, 황금 리치왕은 아니다.

비실거리는 것이 황금색이 아니었다면 눈길조차 안갈 정도로 별 볼 일 없어 보였다.

타다다다닥!

인우는 놀라운 속도로 놈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츠륵! 츠륵!

황금 해골 궁사는 인우의 스피드에 당황하며 재빨리 화살을 장전하려 했다.

한데, 놈의 장전 속도 보다 인우의 돌격이 훨씬 더 빨랐다.

우직!

인우는 놈의 활을 단숨에 부러뜨렸다.

그리고 면상을 향해 망치를 사정없이 때려 박았다.

빡! 빡! 빡!

골통이 빠개지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손끝을 타고 짜릿한 타격감이 느껴졌다.

역시나 해골은 두들겨 패야 제 맛이다.

-꾸엑!

[경험치를 15,000 획득하였습니다.]

이따위 쫄몹들은 이제 상대가 안 된다.

능력치가 터질 듯 넘쳐 났으니까.

리치왕을 찾기 위해 눈을 굴렸다.

그때.

촤르르르르륵.

성의 바닥에 잔뜩 깔렸던 뼈다귀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그 숫자가 말도 안 될 정도로 많았다.

"이건 좀.... 너무 많지 않나?"

망치를 꽉 움켜쥐었다.

성의 입구는 이미 꽉 막혔고, 도주로는 존재치 않는다.

아무래도, 피 튀기는 혈전이 벌어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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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화 발악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