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novel

10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

0157 / 0208 ----------------------------------------------

157화 집 나간 애완 용(龍) (1)

"크훕······!"

피닉스의 입구멍에서 검붉은 선혈이 터져 나왔다.

알렉산더의 단검에 의해 난도질당한 피닉스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

피닉스뿐만이 아니었다. 그를 포함한 5명의 용병들은 모조리 흙바닥을 붉게 적시고 있었다.

"지은··· 도망쳐라······!"

피닉스는 사력을 다해 마지막으로 남은 지은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알렉산더는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강했다.

이 정도의 강함이라면, 정인우의 죽음이 공식화된 이후에, 어째서 황제의 자리에 앉지 않았나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도망쳐···! 지은!"

피닉스는 다시금 사력을 다해 외쳤다.

그러나 피닉스는 지은을 몰라서 하는 소리였다.

지은은 물러섬을 모른다.

"끄흑!!"

게다가 지금 지은은 알렉산더의 커다란 손에 의해 목이 졸려 있는 상태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은의 눈빛만큼은 살벌했다.

"개···!"

지은은 억눌린 성대를 놀려 간신히 한마디를 내뱉었다.

저 화상자국이 그득한 사내는 말도 안 되게 강했다.

다수 대 일이라는 수적 열세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으니까.

"흐음."

알렉산더는 한 팔로 거뜬히 지은을 들어 올리며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목이 졸려 점차 빨갛게 달아오르는 얼굴에는 짙은 반항심이 가득해 보였다.

그리고 그러한 얼굴 위에 달려 있는 눈, 코, 입이 보인다.

도톰하고 고집스러워 보이는 입술.

높다랗고 자로 잰 듯 반듯한 코.

특히나 극한의 상황에 몰렸음에도 결코 수그러들지 않는 저 갈색 눈동자.

그래 저 눈빛.

"왜 이렇게, 닮았을까."

애초에 프로킨 대륙에 갈색 눈동자는 극소수다.

그리고 저러한 인종의 인간은 황제인 정인우뿐이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확실하다.

이 여자는 황제와 똑같은 인종이었다.

더더욱 놀라운 건, 인종을 떠나서 둘의 생김새는 너무나 닮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기도 잠시.

어느덧 알렉산더의 손에 의해 숨통이 막힌 지은은 정신을 잃었다.

그녀의 가냘픈 육체가 흐느적대며 축 늘어졌다.

그제야 알렉산더는 움켜쥔 손아귀에 힘을 뺐다.

무언가 느낌이 싸했다.

알렉산더는 그녀를 어깨에 들쳐 멨다.

그런 뒤 쓰러진 채 피를 흘리고 있는 피닉스와 그의 단원들을 바라보았다.

알렉산더는 볼 것도 없이 피닉스와 단원들의 목을 그었다.

크륵, 하고 잘린 성대를 부여잡은 피닉스와 단원들.

그들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숨을 거뒀다.

'폐하의 뜻대로.'

알렉산더는 다섯 구의 시체를 바라보며 오래전 황제가 해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적이라고 생각되는 놈들은, 절대로 살려 두어선 안 돼. 순간의 자비가 훗날 너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거다. 알렉산더.

'하지만 이 여자는....'

이윽고 알렉산더는 시체에서 시선을 떼고 어깨에 들쳐 멘 여자를 바라보았다.

아직 여자의 목을 긋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이것은 뭐랄까······.

애매했다.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가 적인지, 아군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보자면 그녀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 확신이 서는 순간, 알렉산더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목을 딸 예정이었다.

이윽고 알렉산더는 아공간을 열었다.

그런 뒤 그곳에 여자를 내던져 버렸다.

그리고 빠르게 루인 왕국을 향했다.

오래지않아 도착한 왕국.

그러나 알렉산더의 시야에 잡힌 왕국은 모조리 무너진 상태였다.

"흐음."

한 발 늦었다.

아니, 이 정도라면 애초에 자신의 도움 따윈 필요치 않았던 것일 수도 있겠다.

황제는 이미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든 이후인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중요한 건······.

"여전하시군요. 폐하."

황제는 여전히 자비가 없었다.

이로써 완벽히 확신할 수 있었다.

그가 정말로 돌아왔고, 이제 알렉산더는 황제에게 갈 것이었다.

* * *

인우는 어딘가로 떠났고, 팜이는 루인 왕국의 정원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이곳 정원은 너무나도 넓어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8미터에 육박하는 팜이가 코딱지만 하게 보일 정도였다.

-크아아아.

-크아아아.

팜이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여전히 단잠에 빠져 있었다.

휘잉-

그러다 바람이 불어왔다. 정원의 잡초와 꽃잎들이 흔들렸고, 그 작은 움직임에 팜이는 스르르 눈을 떴다.

-크암.

옅은 잠이었나.

쉽사리 깨 버린 팜이였다.

이윽고 팜이는 몽롱한 눈동자로 사방을 훑었다.

이곳의 풍경은 무척이나 새로웠다.

마치 동화 속 같은 풍경이었는데, 동화를 알지 못하는 팜이에게 있어서는 꿈결과도 같은 풍경이라 할 수 있었다.

편안하고, 늘어진다.

절로 행복함이 느껴졌다.

이러한 행복감에 떠오른 것은 공교롭게도 과거의 아픈 기억이었다.

팜이는 아직도 기억한다.

자신이 아주 작은 생명체였을 시절을.

그때에 팜이는 유리관에 갇혀서 생체 실험을 당했었다.

당시 팜이는 삶이 원래부터 이렇게 고통스러운건줄 알았다. 팜이의 세상은 작은 실험실이었고, 팜이의 집은 끔찍한 용액 속 유리관이었을 뿐이니까.

그런 작은 세상에서 자신을 구원해 준 것은 정인우였다.

그때의 강렬한 기억은, 아마 죽는 그 순간까지 잊지 못할 거다.

정인우는,

그렇게나 작은 세상에서,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는 큰 세상을 선물해 준 장본인이었으니까.

팜이는 정인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갈 참이었고, 인우를 위해 기꺼이 목숨도 버릴 수 있었다.

-크아.

어느덧 팜이는 커다란 입을 벌려 하품을 했다.

햇살이 따사로우니 등이 뜨끈뜨끈하다.

짹짹-

하늘에서는 새들의 지저귐이 들렸다.

팜이는 고개를 위로 쳐들고 새들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팜이는 거대한 날개를 활짝 폈다.

-크아아아아아아암!

그러면서 팜이는 포효했다. 그 소리에 새들은 저 멀리 도망쳐 버렸다.

오랜만에 한번 날아볼까?

그런 생각을 하며 팜이는 날갯짓을 했다.

후웅 후웅-

거대한 날개를 이용해 단숨에 공중에 떠올랐다.

하늘은 어디까지 펼쳐져 있을까?

문득 쓸데없는 것이 궁금해진 팜이는 끝도 없이 하늘 위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단숨에 지상이 작아지고, 구름이 보였다.

엄청난 고도까지 올라서자 새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쯤 올라섰을까.

어느덧 팜이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크아?

이곳은 분명 공중이건만, 엄청나게 거대한 섬이 보였던 것이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팜이는 그 섬을 향했다.

투웅-!

그런데 섬에는 무언가 투명한 막이 쳐져 있었다.

쉽사리 들어설 수 있는 곳이 아닌 듯싶었다.

그리고 그때, 팜이는 보았다.

섬에서 거대한 골렘들을 괴롭히고 있는 작은 소녀를.

10살쯤 됐을까나?

소녀는 마치 천사처럼 아름다웠다.

결단코 인간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특히나 소녀의 황금색 머리칼과 황금색 눈동자는 머리가 띵할 정도로 신비스럽게 느껴졌다.

어느덧 소녀는 골렘들을 실컷 후드려 패다가 팜이를 발견했다.

이윽고 소녀가 팜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드래곤은 나만 빼고 전부다 지구라는 곳으로 넘어간 줄 알았는데?"

* * *

"야. 내 애완용(龍) 어디 갔냐?"

루피안 왕국으로 돌아온 인우의 첫마디였다.

그 말에 루피안은 부들부들 떨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폐, 폐하··· 그것이··· 저도 잘······."

"······."

"차, 찾겠나이다!"

인우가 살벌한 얼굴로 침묵하자 제 발이 저린 루피안이 황급히 답하고 있었다.

"1시간 준다. 대륙을 이 잡듯 뒤져라."

"아, 알겠습니···!"

"아 그리고."

인우는 루피안의 대답을 중간에 잘랐다.

그런 뒤 아공간을 여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아공간에서 여덟 왕들을 꺼냈다.

왕들은 모두 극심한 통증을 이기지 못한 채 게거품을 물고 기절해 있었다.

그 모습에 루피안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지옥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루피안이었으니 말이다.

그러길 잠시.

다시금 인우가 말했다.

"내가 말이야.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일단은 궁형만 시켜놓은 거거든?"

"에, 예? 무슨···?"

"얘네 중에 걷기가 귀찮으니 마차를 보낸다면 생각해보겠다고 한 녀석들이 누구였지?"

이건 루피안이 내뱉은 '황궁을 재건하면······.'다음으로 기분이 나빴던 헛소리였다.

"거, 걷기가 귀찮다 한 왕은, 빌퍼와 프로우스입니다······."

루피안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빌퍼와 프로우스의 명복을 빌며 말이다.

루피안은 아가리를 잘못 놀렸다 하여 이빨이 뭉텅이로 빠졌는데, 이들은 과연 어떻게 되려나.

일단 지금 황제가 하는 걸로 봐서는, 1차적으로 궁형은 모두에게 평등했다.

아 물론, 엘리의 경우 애초에 황제에게 굴복해서인지 별다른 형을 받지 않았다.

아마 그녀도 명을 거부했다면, 궁형에 버금가는 끔찍한 형을 받았으리라.

어찌 되었건, 문제는 2차 형벌이다.

설마 다리를 자르진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인우가 말했다.

"해머 가져와."

"여, 여봐라! 해머를 대령하거···!"

"네가 가져와 이 자식아."

"예!"

루피안은 잽싸게 무기고로 내달려가더니 거대한 해머를 들고 왔다.

척.

인우는 쭈그려 앉은 채 한손으로 가볍게 해머를 받아들었다.

그런 뒤 다른 한손으로는 기절해 있는 빌퍼와 프로우스의 다리를 만지작대고 있었다.

"음. 어디쯤으로 하지. 아 근데 다리가 아작 나면 안 될 것 같은데. 얘네한테 시킬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인우의 혼잣말에 루피안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황제는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진심으로 무서운 인간이다.

어느덧 다시금 인우가 루피안을 불렀다.

"야. 발가락 몇 개 없어도 걷는데 지장 없겠지?"

"아, 아마··· 걷는 데에 엄청난 불편함을 느끼긴 하겠지만 괜찮을 겁니···"

쾅! 콰드득!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인우는 루피안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빌퍼와 프로우스의 발가락을 아작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끔찍한 통증에 빌퍼와 프로우스는 정신을 차렸다.

정신이 들자마자 이 무슨 끔찍한 통증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도 잠시.

눈앞에서 살벌한 미소를 짓고 있는 황제를 보자 곧장 눈물부터 나올 것 같았다.

"폐, 폐하!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시옵소서!"

빌퍼와 프로우스는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었다.

이에 인우는 다시금 루피안을 불렀다.

"야. 고삐 두 개 챙겨 와라."

"여봐라! 아, 아니다. 아, 제가 가야지요. 넵. 금방 고삐 두 개를 대령하겠나이다!"

루피안은 곧장 마굿간으로 향했다.

그리고 금세 말고삐 두 개를 가지고 왔다.

그것을 받아 든 인우는 빌퍼와 프로우스에게 고삐를 채웠다.

"아, 바깥에 마차도 하나 대령해라. 말은 빼고."

"마, 말을 빼다니요? 아, 아 말대답을 하다니 죽여 주시옵소서 폐하! 아니다. 어서 빨리 대령하겠. 으아아아!"

루피안은 귀신들린 놈처럼 미친 듯이 홀로 중얼대다 급히 마차를 대령하러 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인우는 다시금 빌퍼와 프로우스를 쳐다보았다.

"걷기가 귀찮으니 마차를 대령하라고? 후우. 따라와라."

인우의 명령에 빌퍼와 프로우스는 으깨진 발가락을 움켜쥐며 힘겹게 인우를 따라나섰다.

이윽고 궁 밖으로 나온 인우.

인우는 바깥에 마련된 마차를 보며 루피안에게 말했다.

"야, 이건 너무 가볍잖아. 강철 마차를 대령해라."

"며, 명을 받들겠나이다!"

루피안은 또 다시 달렸다. 황제는 너무 무섭다. 살고 싶었기에 사력을 다해 다시금 강철 마차를 대령했다.

그제야 인우가 미소를 짓는다.

"뭐하냐 루피안. 내 뒤에 있는 말들이 이 강철 마차를 끌게 해라. 나는 이걸 타고, 내 애완용을 찾으러 대륙일주를 할 참이니까."

그 말에 빌퍼와 프로우스는 죽을상을 지었다. 궁형에 의한 극심한 통증에, 발가락이 으깨져서 제대로 중심이 잡히지 않는 육체다.

그러나 명을 따르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고삐를 두르고 마차를 끌 준비를 했다.

0158 / 0208 ----------------------------------------------

158화 집 나간 애완 용(龍) (2)

드래곤의 성대는 언어를 내뱉기에 부적합하다.

물론, 나이를 충분히 먹고 고룡이 된다면 자연스럽게 언어를 내뱉을 수 있긴 하다.

하지만 헤츨링 상태일 때는 아니었다.

소녀가 보기에, 눈앞에 보이는 8미터 크기의 드래곤은 자신과 같은 헤츨링이었다.

"왜 대답이 없어? 보아 하니 갓난용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크암?

소녀의 말에 팜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애초에 인간의 말을 완벽히 알아듣는 팜이다.

그러나 프로킨 어는 알지 못했다.

"짐승처럼 크아 거리지 말고 말을 내뱉어 봐. 나도 폴리모프를 풀고 드래곤으로 돌아가면 혀 짧은 발음이긴 하지만 말을 할 수 있다고. 그게 아니면 인간으로 폴리모프를 하던가."

충분히 설명을 해 주었음에도 팜이는 여전히 알아듣지 못했다. 당연한 이야기다.

이즈음 되자 소녀는 답답한지 용언을 통해 '소통'마법을 구사했다.

이 마법은 굳이 언어를 모르더라도, 서로의 뜻을 통해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마법이었다.

심지어 이 마법은 말 못하는 짐승과도 교감이 가능하다.

-이제 알아들을 수 있을 거야.

-어, 어!?

난데없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려오는 목소리.

팜이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소녀는 재밌는지 꺄르륵 웃으며 다시금 말했다.

-넌 누구의 자식이지? 비늘의 색깔이 참 독특한데. 주황색이라니. 레드 일족은 분명 아닌 것 같고.

-난 누구의 자식도 아니야. 누구의 일족도 아니고.

팜이는 본인이 소통해 놓고 본인이 놀랐다.

이 마법이 무언진 잘 모르겠으나. 자연스럽게 뜻이 전달되었으니까.

항상 말 못하는 짐승처럼 크암 거리기만 해 봤지, 말을 내뱉어본 적은 없었다.

만약 자신도 이런 마법을 배운다면 정인우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을 거다!

팜이는 그런 상상만으로도 즐거운지 저도 모르게 물어보았다.

-이 마법은 어떻게 배워?

-마법을 배우다니?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응?

-드래곤은 마법을 배우지 않아. 이미 알고 있을 뿐이지. 그래서 때가 되면 알고 있던 마법을 하나씩 사용하는 것뿐이야. 우리는 마법의 종주잖아. 이건 기본이라고. 넌 도대체 뭐야?

-나, 난······.

-뭘 그렇게 얼버무려? 그냥 누구의 자식인지만 말해. 난 모든 드래곤들을 다 알고 있어.

-난···! 저, 정인우의 자식이야.

-뭐? 누구라고······?

소녀는 정인우라는 이름에 어찌나 놀랐는지, 그렇지 않아도 하얀 얼굴이 백지처럼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이윽고 한 박자 늦게 소녀의 입술이 열렸다.

-정인우는··· 우리 아빠인데······.

* * *

거대한 강철마차가 잘 뚫린 관도를 내팽개치고 자갈길을 달려 나간다.

가꾸지 않은 길을 나아가는 마차는 털그럭 소리를 내며 힘겹게 나아갔다.

게다가 이 마차는 마차(馬車)라 불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말이 끌고 있지 않았으니까.

다시 말해 이것은 인차(人車)라 볼 수 있었다.

인차를 끌고 있는 인간은 빌퍼와 프로우스였다.

이것은 황제가 내린 2차 형벌.

이로써 빌퍼와 프로우스는 황제를 무시했던 지난날들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이들의 참회를 아는지 모르는지, 인우는 인차 내부에서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정인우>

레벨 : 412

특성 : 광전사

스텟 : [근력 943+750+10+50] [민첩 658+600+100] [마력 427+90] [체력 622+360+10+40]

미분배 포인트 : 0

[EXP 6,500 / 16,060,000]

현재 인우의 레벨은 412.

1년 전 프로킨에서의 레벨은 500이었으니, 거의 다 따라잡은 거나 다름없었다.

물론 순수 무력만으로는 이미 과거의 자신을 뛰어 넘은 지 오래다.

가장 먼저, 스킬 레벨부터 압도적으로 차이가 났다. 또한 스텟 포인트마저도 과거보다 높을 정도였다.

전능자의 잠재력으로 인해 획득하는 보너스 포인트가 5에서 10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러니 인우는 과거보다 낮은 레벨임에도 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인우는 머지않아 과거에 가로막혔던 500레벨이 닿을 것이었다.

레벨 500.

그것은 초인 육체 레벨의 한계점이다.

즉,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그 한계점을 돌파할 수 없었다. 물론 그 이상의 영역은 분명히 존재했다.

때문에 과거 인우는 500레벨을 돌파하기 위해 꽤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었다.

그것을 뚫기 위해선 아마 무언가가 필요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인우는 그 비밀을 끝내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낼 참이었다.

* * *

"먹어라."

알렉산더는 품안에 담긴 육포를 꺼내 지은에게 건넸다.

지은은 여전히 반항심이 가득한 얼굴이었으나, 배가 고팠는지 별다른 거부 없이 육포를 받아들었다.

"아공간에 있던 아이템은 건들지 않았더군. 하긴, 그건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알렉산더는 육포를 씹고 있는 지은을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그녀를 제압한 뒤 아공간에 넣어 두었던 알렉산더다.

그리고 그의 아공간에는 1년 전 황제가 사용했던 아이템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날.

드래곤이 황궁에 침공해 왔던 날.

알렉산더는 목숨을 걸고 황제의 아티펙트를 챙겨 두었던 것이다.

이 아이템들은 모두 착용 레벨이 500이다.

즉, 대륙을 통틀어서 황제밖에 착용할 수 없었던 아이템들이었던 것이다.

황제는 헬탑을 밥 먹듯 드나들었고, 그곳에서 획득한 전리품만 해도 산더미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아티펙트들이다.

아마 지금 보관하고 있는 이 아티펙트가 헬탑에서 얻을 수 있는 최상위급 아이템일 것이다.

게다가 이 아티펙트들은 모두 다 헬스톤 작업을 끝마친 최강의 아이템들이었다.

이보다 더 좋은 아이템은 일반적인 루트로는 결단코 구할 수 없을 터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드래곤 본 대검이다.

그것은 황제의 애검이었다.

알렉산더는 그 대검만큼은 아공간에 넣어 두지 않았다.

혹시라도 자신이 죽는다면 소멸되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때문에 알렉산더는 드래곤 본 대검을, 자신의 오두막 내부 비밀창고에 넣어 두었다.

그 창고는 각종 함정 마법과 진들이 가득하기에 알렉산더 본인이 아니고서야 꺼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어찌되었건 지금 알렉산더는 오두막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티펙트만 달랑 들고서 황제를 뵈러 갈 순 없었으니까.

'대검부터 찾아온 뒤, 폐하를 뵈러 간다.'

생각을 마친 알렉산더는 여자를 데리고 오두막을 향했다.

한참을 걷다가 지은이 불안한 듯 물었다.

"아저씨.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건데?"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묻지 않을 수가 있나?

"······."

역시나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순간 지은은 도주를 생각했지만, 사내의 무력을 상기하며 이내 포기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저 사내가 지은에게 해를 가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숲 저편에 오두막이 하나 보였다.

그러자 알렉산더는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내 거처에 머물고 있는 뚱보가 너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던데. 아는 사이라도 되나? 뭐, 가보면 알 일이겠지만."

* * *

엘리의 궁.

이곳 그레이트 홀에서 안타까운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퀸. 여기선 멸치볶음이 안 된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제라는 홀의 기다란 직각 식탁을 쾅 내리치며 흥분해 있었다. 이에 퀸은 안타까움을 담아 말했다.

"여기에는 멸치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럴 수가 있나! 으아아아아! 이럴 줄 알았다면 정인우를 쫓아오는 게 아니었다!"

제라는 고작 멸치볶음 때문에 프로킨에 온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퀸의 멸치볶음은 인육을 즐겨하던 제라에게는 새로운 맛의 신세계였던 것이다.

헌데 그 맛을 다시 느낄 수 없다니!

그런데 그때.

우당탕탕!

어느덧 제라의 고함 때문인지 그레이트 홀의 문이 벌컥 열렸다.

"부, 불편하신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그곳엔 엘리가 서 있었다.

엘리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황제가 이 검은 피부의 인간과 뱀파이어 퀸은 자신의 가족이라며 잘 보살피고 있으라 전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제라는 엘리를 바라보았다.

150이 간신히 넘어갈 듯한 조그마한 키.

주먹만한 얼굴에 풍성한 금발.

루비처럼 반짝이는 눈동자.

작고 아담한 코와 입술.

그녀는 마치 잘 만든 인형 같았다.

'크, 크헉.'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제라의 태도가 급변했다.

마치 점잖은 신사처럼, 식탁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크흠. 퀸. 멸치볶음이 없다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렇지?"

말을 마친 제라는 힐끔힐끔 홀의 입구를 바라보며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엘리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는데, 제라는 곧바로 시선을 피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면서 황급히 한마디를 덧붙였다.

"퀸. 오늘 날씨 참 좋다. 그렇지?"

"네, 뭐······."

퀸이 판단하기에, 제라는 아무래도 엘리에게 반한 것 같았다.

* * *

그러니까, 종합해 보자면······.

이 섬에 살고 있는 황금색 머리칼의 소녀는 사실 드래곤이라는 거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은 용용이이며, 그녀의 아빠는 놀랍게도 정인우라고 했다.

서로의 아빠가 같다니.

이들에겐 쉽사리 납득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팜이와 용용이는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래서 프로킨으로 다시 넘어왔다 이거지?

-그래.

-그럼, 어서 빨리 아빠에게 가서 내가 여기에 갇혀 있다고 말해 줘. 분명 구하러 올 거야.

용용이는 간절하게 말했다.

현재 이 섬은 로드의 마법으로 결계가 쳐져 있는 상태였다.

그랬기에 팜이도 섬에 들어서려다 투명한 막에 가로막히지 않았던가?

때문에 지금 팜이는 공중에서 비행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기도 했다.

이윽고 팜이가 말했다.

-하지만 말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난 이런 소통 마법도 쓰지 못하는 걸.

마법을 알지 못하는 드래곤이라니.

용용이는 한숨부터 나왔다.

드래곤에게 있어서 마법이란 본능이다.

인간으로 따지면, 그저 걷고 숨 쉬는 행동과 같은 본능이란 말이다.

그런데 팜이는 그 본능이 없었다.

하다못해 폴리모프라도 하면 발달된 인간의 성대를 통해 말을 내뱉을 수 있을 텐데.

-인간으로 폴리모프도 못하지?

-어떻게 하는지 알아야 하지.

-후우. 내가 알려 줄게.

드래곤한테 마법을 알려 주는 날이 올 줄이야. 로드가 듣는다면 배를 부여잡고 웃을 거다.

용용이는 그런 생각을 하며 팜이에게 폴리모프를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인간으로 따지면 호흡을 가르쳐주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호흡은 배우는 게 아니다.

그저 본능에 따라 숨을 쉬는 거지.

그러한 본능을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팜이와 용용이는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

용용이는 아빠를 보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임했고, 팜이는 이제 인우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는 일념 하나로 임했다.

그렇게, 팜이는 해가 지고 캄캄한 밤이 올 때까지 용용이에게 마법을 배웠다.

* * *

인우는 강철마차를 타고 다시금 루피안 왕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루피안이 말하길, 자신의 애완용이 돌아왔다고 했으니까.

인우는 왕국에 들어서자마자 정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엔 팜이가 있었다.

녀석은 인우가 오자 입가를 씰룩였다.

드래곤의 주둥이는 인간과 구조가 다르기에 씰룩이는 것 자체가 힘들다.

그럼에도 녀석은 억지로 안면을 비틀며 웃는 모양새를 보였다.

"뭘 좋다고 웃냐. 어디 갔다 온 거야."

-크암.

이윽고 팜이는 천천히 인우를 향해 다가왔다.

그러더니 가만히 인우를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그 진득한 시선에 인우는 고개를 갸웃댔다.

"이놈이 오늘따라 왜 이래?"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암!

바로 그때.

팜이가 난데없이 포효하기 시작했다.

순간, 팜이의 거대한 육체에서 새하얀 빛 무리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 어···? 설마?"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인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0159 / 0208 ----------------------------------------------

159화 용용이와 팜이

팜이는 사력을 다해 폴리모프를 시전하고 있었다.

용용이에게 이를 악물고 이 마법을 배웠다.

용용이는 아빠에게 자신이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알려달라고 팜이를 가르쳐준 것이지만, 팜이가 이 마법을 배우고 싶은 이유는 오로지 단 한 가지였다.

팜이는 그저 인우와 대화하고 싶었다. 나아가, 늘 인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팜이는 정말로 최선을 다했다.

후우우우우웅-!

새하얀 빛 무리가 거대한 팜이의 몸을 감싼다.

이에 인우의 눈이 어처구니없음으로 가득 찼다. 인우는 저 빛 무리가 무언지 알고 있었으니까.

저것은 드래곤들이 주로 애용하는 폴리모프라는 마법이었다.

드래곤들은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기에 조금 더 편리한 생활을 위해 인간의 형태로 폴리모프하곤 한다.

그런데 지금 팜이가 폴리모프를 시전하고 있었다.

인우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지 멍한 눈으로 팜이를 바라보았다.

솨아아아아아-

녀석의 거대한 머리통이 삽시간에 작아진다. 팔과 다리가 생기며 손가락과 발가락, 그리고 손톱 발톱이 서서히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다.

나아가, 조그마한 얼굴엔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체적인 외형은 10~12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의 모습이었다.

140정도의 작은 키.

홍시가 떠오르는 주황색 머리칼과 눈동자.

새하얀 피부와 대조되는 빨갛게 달아오른 양 뺨.

오동통한 볼살과 손 발.

녀석은 마치, 초콜렛 광고의 어린이 모델 같은 모습이었다.

그 정도로 깜찍하고 귀여웠다.

남자 아이가 이렇게 귀여워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이 경우엔 누드모델이라고 해야 하나?

옷을 걸치지 않은 녀석은 생식기를 훤히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팜이는 조금의 부끄러움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윽고 녀석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벌려 마침내 첫마디를 뗐다.

"아···빠!"

"너 어떻게 된 거야?"

기특하게 여길 만도 하건만, 인우는 다짜고짜 경위부터 따지고 들었다.

인우의 입장에선 당연했다.

도무지 납득이 되질 않았으니까.

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폴리모프를 사용한 것일까?

애초에 팜이는 특유의 불꽃 브레스를 사용하긴 했다.

그러나 마법은 사용치 못했다.

이러니 납득이 될 리 있나?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팜이가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주어 말했다.

"고마워."

다짜고짜 내뱉은 한마디가 뜬금없어서였을까?

인우는 잠시 벙쪘다.

갑작스레 고맙다는 말을 하는 팜이는, 마치 어버이날을 착각하고 카네이션을 달아 주는 자식처럼, 엉성하지만 뿌듯하게도 다가왔다.

그러나 팜이의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내뱉는 말이 '고마워'인 것이 당연했다.

어렸을 적엔 늘 파암 거리면서 고맙단 말을 했었다.

팜이의 입의 구조로 '고마워'를 발음하면 '파아암'이 됐던 것이다.

그것이 조금 덩치가 크고 성대가 자라자 '크아암'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후에는 '크아암'이 아예 제 울음소리로 굳어 버렸다.

그러나 인우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저 귀찮은 눈빛을 보내곤 했었으니까.

하지만 팜이는 늘 말하고 싶었다.

실험실 작은 유리관에서 자신을 구해 주어 너무나 고맙다고.

이제야 비로소 정확한 발음으로 이 말을 전하게 되다니.

감격스럽기 그지없었다.

이윽고 팜이의 주황색 눈동자가 단숨에 물기를 머금었다.

팜이는 또 다시 말했다.

"고마워. 정말로 고마워. 언제나 이 말을 전하고 싶었어."

그간 꼭 하고 싶었던 말을 끝마친 팜이.

이내 녀석은 그녀의 부탁을 떠올리곤 다시금 입을 열었다.

"용용이가 아빠를 찾고 있어."

"응. 뭐!?"

아무 생각 없이 대답을 내뱉던 인우가 뜬금없는 그 이름에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용용이라니?

그래 뭐, 용용이가 프로킨에 있는 것이야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팜이의 입에서 용용이의 이름이 나올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인우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뜬금포였던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팜이는 조그마한 손을 내뻗어 인우의 큼지막한 손을 꼬옥 쥐었다.

"가자. 아빠."

곰탈의 배주머니에 넣어 두고 키웠던 녀석이, 이제는 훌쩍 자라 자신을 이끈다. 인우는 기분이 묘했다.

* * *

팜이를 타고 구름을 뚫을 기세로 비행했다.

녀석을 통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모두 들은 뒤였다.

사실,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뒤에 인우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었다.

자그마치 로드 에일린의 레어로 다시금 쳐들어가는 꼴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팜이의 말에 따르면, 그곳엔 용용이와 가디언들뿐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에일린은 레어에 없었다는 것.

또한, 모든 드래곤 일족은 지구를 향했다고 한다.

전혀 몰랐다.

하긴. 원체 인간 세상에 관심이 없는 드래곤들인지라, 인우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이것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간단한 문제다.

드래곤들이 인간 세상에 관심이 없는 이유는, 사람으로 치자면 인간이 벌레의 삶에 관심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백년의 삶을 사는 인간이 일 년의 삶을 사는 벌레에게 관심이 없듯이, 수천 년의 세월을 살아가는 드래곤이, 고작 백년의 삶을 사는 인간에게 관심이 있을 리가 없다.

인우는 이를 인지하고서 마음껏 깽판을 친 것이기도 했다. 녀석들이 자신이 프로킨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즈음엔, 이미 모든 준비를 끝마친 뒤라 여겼던 것이다.

설령 준비를 끝마치지 못했다고 해도 드넓은 프로킨 대륙을 이용하여 놈들과 장기전을 펼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멍청한 놈들이 지구로 갔단다.

이유야 빤했다.

지구에 자신이 숨어 있다 여겼을 테지.

아니, 그렇다면 지구는 도대체 어떻게 됐을까?

수백 마리의 드래곤들이 지구로 들어섰다면, 이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드래곤은 인간을 벌레 취급하니 더욱이 큰 문제인 것이다.

물론 인우는 지구가 어떻게 되든 말든 크게 상관하진 않는다.

인우는 정의의 사도를 흉내 내는 어설픈 히어로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인류가 위험에 처했다! 내가 나서야만 해!'라는 사고방식은 인우와 조금도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자신과 연관된 문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인우가 살벌할 정도의 냉혈한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사이코패스는 아니었으니까.

때문에 인우도 죄책감을 느끼는 평범한 인간인 것이다.

그런데 자신 때문에 지구에 모든 드래곤들이 들어섰다는 것은, 인우로서는 크게 신경 쓰이는 문제였다.

"팜아. 레어에 들르기 전에, 울트라 게이트에 잠시만 들렀다가자."

-크암.

팜이는 지금 폴리모프를 풀었기에, 크암 하고 답했다. 이윽고 인우와 팜이는 엄청난 고도에 존재하고 있는 울트라 게이트에 들어섰다.

슈웅-!

단숨에 게이트 내부로 들어선 인우와 팜이.

기다랗고 거대한 통로가 그들을 맞이했다.

저편으로 나아가면 다시 지구다.

그러나 인우는 지금 당장 지구로 갈 생각이 없었다.

단지, 이 경우엔 정찰을 보내는 것이랄까?

어느덧 인우는 아공간을 열었다.

그런 뒤 그곳 내부에서 러닝머신을 타고 있던 분신들을 불렀다.

모든 분신들이 인우의 명령에 따라 바깥으로 나왔다.

"대장. 이번에도. 전투인가?"

일이가 묻는다.

이에 인우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뒤 통로 끝, 지구로 가는 입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구로 정찰이다. 누가 갈래?"

"내가!"

"아니. 내가. 간다!"

"날. 보내 줘!"

일이와 사이, 그리고 팔이가 동시에 답했다.

이에 인우는 잠시 고민했지만,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역시나 가장 믿음직스러운 놈을 보내는 것이 맞다.

"일이 네가 갔다 와."

"알겠다."

대답을 마친 일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구의 통로를 향해 내달렸다.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던 인우는 나머지 분신들을 도로 아공간 내부로 쑤셔 넣었다.

그런 뒤 다시금 팜이를 타고 프로킨으로 나왔다.

그리고 다시 용용이가 있는 곳을 향했다.

로드 에일린의 레어로 말이다.

한편.

일이는 통로를 넘어 지구로 나왔다.

터벅 터벅-

"······."

거대한 울트라 게이트를 통해 나온 일이는 천천히 걸어 나가며 이곳저곳을 훑어보았다.

그러다 별안간 일이가 중얼댔다.

"왜. 이렇게··· 변했지?"

* * *

수십 개의 마스터 스킬로 레어의 결계를 간신히 깨어 냈다.

아무래도 로드가 직접 만들어 놓은 쉴드였기에 보통 튼튼한 것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인간중에선 인우를 제외한다면 그 누구도 부술 수 없을 정도의 강도를 지녔다랄까?

이윽고 인우는 에일린의 레어로 들어설 수 있었다.

공중에 떠 있는 섬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굉장한 크기를 자랑했다.

그리고 인우는 이곳에서 금발의 소녀를 마주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용용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인우가 용용이를 키울 당시, 용용이는 폴리모프까지 사용하진 못했었다.

그랬기에 인우는 용용이가 인간 형태로 폴리모프를 하고 있는 것을 처음 본 것이었다.

"······."

솔직한 감상을 털어 놓자면, 저렇게 예뻐도 되나 싶었다. 도저히 현실성이 없는 비주얼이다.

황금색 머리칼은 외국인의 금발과 질적으로 달랐고, 반짝이는 금안은 더 없이 신비스러웠다.

고작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가 저렇게 예뻐도 되나?

보통 저 나이 때의 모습은 예쁨보다는 귀여움이 돋보이는데 말이다.

하긴, 골드 일족은 드래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렇게나 예쁜 아이가 더없이 해맑게 웃으며 외친다.

"아빠!!"

그런 뒤 오도도 달려오는데, 순간 가슴이 철렁하는 인우였다.

자신이 키운 녀석은 맞지만, 당시 녀석은 결코 저런 모습이 아니었다.

그때를 회상해 보자면, 용용이의 이빨 사이에 낀 고기 찌꺼기를 빼 주기 위해 스켈레톤의 뼈다귀를 활용했던 기억이 대표적이다.

그래서일까?

그때의 모습과,

지금 용용이의 모습은 인우에게 커다란 괴리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와락 하고 용용이가 인우의 품에 안겨왔다.

그러더니 녀석은 인우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울먹였다.

"왜 이제 왔어!"

울먹이는 그 한마디에, 그간의 오랜 기다림이 짙게 묻어 나왔다.

물을 잔뜩 먹은 외침은 끝내 커다란 울음으로 변하고 있었다.

"흑흑!"

"아."

순간 인우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단단한 팔을 들어 올려 조심스럽게 용용이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꽤나 길었네. 오래 기다린 거야?"

딸 바보가 된다는 말이 이런 건가.

인우는 본인이 내뱉고도 본인이 놀랐다.

저절로 다정한 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으니까.

아마 지은이나 민철이가 인우의 이런 모습을 본다면 소름이 돋는다며 소리를 꽥꽥 내지를 테다.

그러거나 말거나 알 바냐.

인우는 조심스럽게 용용이의 등허리와 엉덩이에 손을 대어 들어 올렸다.

그런 뒤 한손으로 너끈히 용용이를 안아 든 뒤 웃으며 말했다.

"가자."

그 한마디에, 용용이는 조그마한 손으로 눈가의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용이의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팜이는 그런 둘을 바라보며 후우.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그런 뒤 쉽사리 파악되지 않는 종잡을 수 없는 얼굴을 했다.

팜이는 지금······.

좋아해야 할까, 싫어해야 할까, 판단이 서질 않았던 것이다.

둘의 상봉은 기뻤지만, 그로 인해 팜이 자신이 인우에게 있어서 너무나 작아진 것만 같았다.

그것은 견딜 수 없는 초라함이었고 쓸쓸함이었다.

한없이 작아져 바늘 구멍도 너끈히 드나들 수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그럼에도 팜이는 안면을 비틀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지금은 기뻐하는 게 맞았으니까.

그랬으니까, 그냥 웃었다.

0160 / 0208 ----------------------------------------------

160화 겨우 이게?

30년 전, 정인우가 프로킨으로 강제소환을 당하고 지구에서 사라진 날.

그때에 지구에는 거짓말처럼 괴수라는 것이 등장했다.

인우가 사라졌다는 것은 그 누구도 인지하지 못한 것이었지만, 괴수가 등장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지구는 괴수의 등장으로 인해 크게 변했으며, 나아가 헬게이트라는 괴수 소환 차원문에 의해 골머리를 앓았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자면, 그건 그저 과거의 일일뿐이었다.

인간의 적응능력은 실로 놀라울 정도라고들 하지 않나?

그 말이 딱 맞다.

인간은 완벽히 적응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인류는 헬게이트를 이용하여 사냥터를 만들고 괴수의 마나정수를 돈벌이 수단으로 탈바꿈해 버렸을 정도였으니까.

나아가, 괴수 사육장을 만들어 몬스터를 한낱 가축으로 이용하는 모습은 실로 놀라울 정도였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다.

대단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어떨까?

현재의 말 같지도 않은 상식 밖의 상황에도 인류는 적응할 수 있을까?

수백 마리의 드래곤 침공······.

며칠 전 일어난 이 사건은, 전례에 없던 대재앙이었다.

또한 이것은 결단코 적응될 수 있을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인간이라는 종(種)이 멸종당할 수도 있는 엄청난 사건이었던 것이다.

인류에는 초인이라 불리는 강력한 인간들이 존재하며, 나아가 랭커까지 존재한다.

모든 괴수에 대한 대응책이 있으며, 인간은 그야말로 먹이사슬의 최상위층에 서 있는 존재다.

그럼에도 드래곤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이즈음 되자 인류는 당연히 구원자를 찾았다.

그들이 찾는 구원자는 다름 아닌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

세계 랭킹 1위라는 압도적인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는 존재.

바로 정인우.

그를 애타게 찾고 있는 인류였다.

하지만 정인우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인류는 알지 못했지만, 드래곤들 또한 정인우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그렇다.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지성을 가진 모든 생명체들은, 정인우를 찾고 있는 것이다.

분신 일이는 그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원도 한가운데에 가만히 서 있었다.

"건물들이··· 모두. 무너졌다. 대장에게. 보여 주는 게. 낫겠지."

이곳은 이미 일이가 알던 강원도의 모습이 아니었다.

일이는 곧바로 아공간을 열었다.

다른 분신들은 유니크 스킬 볼을 통해 버프 스킬이나 마법 공격 스킬, 나아가 소환 스킬을 배웠는데 자신만 아공간이라니.

일이는 툴툴대면서도 아공간에서 핸드폰 하나를 꺼냈다.

이곳의 처참한 상황을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일이는 이곳의 광경을 찍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때.

일이는 저편에서 다가오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했다.

그들의 모습은 흡사 거지꼴이었다.

여기저기 헤진 옷을 입고, 그러한 옷마저도 검붉은 핏물이 가득 묻어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누군가는 다리를 절고 있었고, 누군가는 팔 한쪽이 잘려나가 있었다.

일이는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그들은 국가 소속 랭커팀 사일런스였다.

* * *

드래곤 침공 이후, 인류의 모든 체계가 무너져 내렸다.

당장에 핵폭탄보다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드래곤들이 수백 마리인데, 그 앞에서 권력이 무슨 소용이고 정부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드래곤들은 흡사, 인간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곤충의 생태계를 망쳐 놓는 것처럼, 그 어떠한 망설임 없이 인류가 일구어 놓은 모든 것들을 멸망시켰다.

당장에 드래곤이 날갯짓 한번 하면 빌딩이 무너져 내리는데, 그 앞에서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사실상 모든 정부가 무너졌고, 모든 군대가 무너졌다.

통신이 마비되고 수많은 인간들이 죽어 나갔다.

이러한 상황에 인류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많지 않았다.

끽 해야 생존 구역을 만들어 뭉치는 것이 고작이었다.

마치 좀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상대는 좀비가 아닌 드래곤이다.

놈들은 영리하고 잔인하고 인정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 한국의 랭커팀 사일런스는 정인우를 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움직였다.

그들이 향한 곳은 옛 강원도 사냥터.

더 정확히 말해 보자면 그곳의 울트라게이트였다.

"배다정 대장. 정말로 정인우를 찾으러 갈 셈이야?"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인 걸 알잖아."

"정인우가 마지막으로 종적을 감춘 구역은 이곳에 있는 울트라 게이트. 거기에 들어선다면 무엇이 나올지 아무도 알지 못해. 감당할 수 있겠어?"

"물론이야. 이미 목숨을 걸었다. 아니, 이대로라면 인류는 끝이야. 반드시 정인우를 찾아오겠··· 아?"

배다정은 말을 내뱉다 말고 멍청한 얼굴을 했다.

그녀의 예지 능력이 발현된 것이었다.

대략 5~10초 이후의 상황을 예지할 수 있는 그녀다.

"······."

그녀는 이후의 상황을 예지했는지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이내 그녀는 곧바로 전방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는, 예지에서 보았듯 인우의 분신 일이가 서 있었다.

그러자 팀원들 또한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다.

시선의 끝에는 대검을 쥐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곧바로 팀원들이 흥분을 숨기지 못한 채 소리쳤다.

"저, 정인우야!"

"아니, 정인우가 아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대장?"

"······."

배다정은 대답 대신 단숨에 분신 일이를 향해 다가갔다. 정인우의 분신이 이곳에 있다는 이야기는, 그 또한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반드시 정인우를 찾아야만 한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말이다.

이윽고 배다정은 일이의 지척에 선 채로 눈을 마주했다.

"정인우는 어디에 있지?"

* * *

알렉산더의 예상대로 이 여자와 뚱뚱한 남자는 서로 아는 사이였다.

저들끼리 뭐라고 떠들어대는데 남자 쪽이 꽤나 쩔쩔매고 있었다.

'덩치는 산만한 놈이 여자 앞에서 쯧쯧······.'

알렉산더는 그 둘이 이야기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오두막의 창고로 향했다.

드래곤 본 대검을 꺼내기 위해서였다.

창고의 잠금 마법과 진들을 해제하는 것만 꼬박 반나절이 걸렸다.

마침내 드래곤 본 대검을 챙긴 알렉산더는 창고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오두막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남자와 여자가 사라져 있었다.

알렉산더는 둘이 사라진 오두막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뭐 이제는 상관없겠지. 모든 과거를 청산하고 폐하를 뵈러 갈 것이니."

말을 마친 알렉산더는 오두막을 빠져나왔다.

그런 뒤 오두막을 불태운 뒤 루피안 왕국을 향했다.

황제가 그곳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왕성을 향했다.

살아생전 다시금 폐하를 뵐 날이 올 줄이야.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했던 황제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렸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함께 할 참이었다.

* * *

인우는 팜이와 용용이를 데리고 루피안 왕국으로 돌아왔다.

에일린의 레어에 있던 금은보화를 털어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인우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애초에 에일린은 인간 세상을 약탈해서 황금과 보석들을 갈취했던 악룡이다.

그랬기에 인우의 입장에선 빼앗겼던 것을 도로 회수해 오는 것이라 볼 수 있었다.

인우는 용용이와 팜이를 정원에서 놀게 놔둔 뒤 궁에 들어섰다.

"루피안은 어딨냐?"

인우는 가장 먼저 루피안을 찾았다.

이놈의 자식은, 황제가 돌아왔는데 맞이하는 것도 잊은 채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어느덧 신하가 쩔쩔대며 답했다.

"여, 연병장에 계십니다."

그 말에 인우는 연병장을 향했다.

"쉬익! 쉬익! 쉬익!"

그리고 그곳에서는, 루피안이 에페를 쥔 채 허공에 스킬을 시전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입으로는 굳이 내지 않아도 될 바람소리까지 내고 있었는데, 그 표정만큼은 무척이나 진중했다.

"쉬익! 쉬익!"

녀석은 여전히 수련에 흠뻑 빠져 있었다.

이에 인우는 팔짱을 꼈다.

그런 뒤 녀석이 자신을 볼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다.

오래지않아 루피안은 인기척을 느꼈다.

그러자 루피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살벌하게 입을 열었다.

"쉬익! 쉬익! 응? 내 뒤에 있는 놈은 누구냐? 내가 수련 중에는 누구도 들어오지 말라 일렀거늘! 놈! 감히, 히, 히이이익! 폐, 폐하! 프로킨의 태양 황······!"

"아, 인사는 됐다."

황제를 발견한 루피안은 곧장 부복한 채 후회했다.

수련 중에는 그 누구도 들어오지 말라 일러두긴 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황제가 왔다면 누구라도 와서 알려야 할 것 아닌가!

또 다시 황제가 직접 행차하는 상황이 발생됐다.

'젠장할. 크흑!'

아무래도 신하들의 교육을 다시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루피안이었다.

"뭐하고 있었냐?"

인우의 말에는 단단한 뼈가 박혀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중한 일이기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냐는 거였다.

"아, 스킬을 수련하고 있었습니다. 폐하의 신하로서, 수련을 게을리 하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하던 거나 계속해 봐."

그리 말한 인우는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며, 명을 받들겠나이다!"

힘차게 답한 루피안은 황제의 눈치를 살살 살피며 제 목 부분을 자꾸 가렸다.

무언가 의도적으로 가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인우의 눈빛이 대번에 날카로워졌다.

"목은 왜 자꾸 가리는데?"

"에?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잔뜩 당황하는 루피안.

이에 인우는 놈의 목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루피안은 또 한 번 쩔쩔 맸다.

"목에 걸어 둔 거, 아티펙트냐?"

"아, 아, 그러하옵니다. 이, 이건 저한테 굉장히 소중한···"

"줘 봐."

"아······."

망했다.

루피안은 울상을 지었다.

황제가 이 아티펙트의 기능을 확인한다면 분명 빼앗으려 들 것이었다.

그것만은 정말로 안 된다.

이게 어떤 아티펙트인데!

그러나 내심과는 전혀 다르게, 루피안은 황급히 목걸이를 해제한 뒤 인우에게 건넸다.

"헤, 헤헤헤. 다시 돌려주시는 거겠지요?"

루피안의 말에 인우는 대답 대신 아티펙트의 정보를 불러보았다.

[수련의 목걸이]

종류 ? 목걸이

기능 ? 스킬 경험치 획득량 +3 증가

발동조건 ? 1레벨 이상

"오호라."

비로소 인우는, 녀석이 이것을 차고 열심히 스킬을 수련하고 있는 이유를 알아챘다.

이건 급수로 따진다면 레어 중의 레어 아이템일 것이다.

스킬은 한 번 시전할 때에 '1'의 경험치를 획득한다.

그런데 이 아티펙트를 착용하면, 그 경험치에 +3이 된다.

그렇다면 스킬을 시전할 때에 경험치가 4씩 오르게 될 터.

이는 곱절의 곱절인 수치다.

"너 마스터 스킬이 몇 개냐?"

"여, 여덟 개입니다만······."

"오호. 꽤 많네. 이 목걸이 차고 수련 꽤나 했나 보다?"

"그, 그러하옵니다······."

루피안은 수련의 목걸이를 빼앗길까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인우는 피식 웃을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비웃음이었다.

[경험치를 50+5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50+50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50+50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50+50 획득하였습니다.]

인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숨만 쉬고 목걸이를 구경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스킬 경험치가 100씩 올라간다.

그것도 '모든' 스킬 경험치가!

이러니 이까짓 목걸이를 소중히 여기는 루피안이 우스워 보일 수밖에.

물론, 과거였다면 엄청나게 기뻐하며 이 목걸이를 빼앗았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현재 인우는 올 스킬 마스터에, 한계 돌파까지 하여 지속적으로 성장 중이었다.

이 마스터 스킬을 또 한 번 99를 달성하여 마스터를 찍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누군가가 황급히 연병장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크, 큰일 났습니다!"

"네 이놈!! 내가 수련 중에는 그 누구도 이곳에 발을 들이지 말라 일렀거늘!!"

"사, 사안이 사안인지라!"

루피안의 노호가 곧장 들려왔다.

그럼에도 신하는 물러섬이 없었다.

그렇다면 왜?

도대체 무슨 상황이기에?

이윽고 신하의 다급한 어조가 다시금 쏟아졌다.

"왕족 말살 집단의 수장, 미친개가 왔습니다!"

미친개?

그게 도대체 누구야?

인우는 의문을 품었다.

인우는 알지 못했지만, 왕족들은 알렉산더를 두고 미친개라 불렀던 것이다. 자그마치 왕족을 말살하겠다는 정신 나간 녀석이었으니, 미친개라 불릴 수밖에.

어찌되었건, 그랬기에 인우는 알아듣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인우가 바깥의 신하를 향해 재밌다는 투로 말했다.

"왕족 말살 집단의 수장이라고? 재밌는 녀석이네. 놈이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해라."

0161 / 0208 ----------------------------------------------

161화 알렉산더와의 재회

인우는 신하의 안내를 받으며 휘적휘적 걸어 나갔다.

왕족 말살 집단의 수장이라니. 도대체 뭐하는 놈일까?

게다가 왕족과 완벽한 적대관계를 가지고 있는 놈이, 무슨 배짱으로 왕국 한복판으로 왔을까?

생각할수록 재미난 놈이다.

그러한 생각을 하며 걷길 잠시.

어느덧 시끌벅적한 궁의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서는 경비병들이 어찌할 바를 모른 채 한 사내를 둘러싸고 있었다.

인우는 경비병들 사이의 틈을 통해 얼핏 보이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175cm쯤 됐을까?

크다고도, 그렇다고 작다고도 할 수 없는 사내는, 그저 오연히 서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인우는 경비병들을 향해 명했다.

"물러서. 왕족을 말살하겠다는 놀라운 꼴통 놈의 얼굴 좀 보자."

인우의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경비병들은 절도 있게 물러났다.

그제야 인우는 사내의 모습을 온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음."

옷 밖으로 나와 있는 얼굴, 목, 손 등을 가득 매운 끔찍한 화상자국.

그러한 화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깔끔한 검정색의 프록코트를 입고 있는 사내는, 감격에 겨운 눈동자로 인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인우는 알렉산더를 알아보지 못했다.

화상자국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인우는 이 사내가 낯이 익었다.

풍기는 분위기가 굉장히 익숙했으니까.

그런데 바로 그때.

화상자국의 사내는 인우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언뜻, 숙여진 사내의 얼굴과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이어 물기를 잔뜩 머금은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臣), 알렉산더. 프로킨의 태양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누구라고?"

"···폐하······."

"고개 들어."

그리 말한 인우는 저도 모르게 사내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주변에 있던 기사들과 신하들은 알렉산더 앞에서 똑같이 무릎을 꿇는 황제의 모습에 크게 놀랐지만, 인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었다.

이윽고 인우는 알렉산더의 얼굴을 양손으로 부여잡았다.

알렉산더는 감격에 겨워 뜨거운 눈물을 흘렸고, 인우의 양손에는 물기가 잔뜩 묻었다.

알렉산더.

알렉산더라,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황궁이 무너지기 직전, 피해야만 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던 녀석.

그때의 그 외침, 그 목소리는 아직도 인우의 머릿속에 선연히 각인되어 있었다.

황궁에 홀로 남아 드래곤들에게 죽은 줄로만 알았던 바로 그 녀석이, 살아 있었다.

비록 끔찍한 상처를 입었을지언정, 늠름한 모습으로 살아남아 자신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제 보니 왜 낯이 익었는지 알겠다.

제아무리 변했다 한들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또한 이제야 왕족 말살이라는 타이틀이 이해된다.

그래, 알렉산더라면 혼자서 배신한 10왕들을 심판하기 위해 왕족 말살 집단을 꾸렸을 만하다.

이 녀석은 그런 놈이니까.

"살아 있었던 거냐?"

"저의 목숨은 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폐하께서 저에게 죽으라 명하신 적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죽을 수 있겠습니까."

* * *

인우의 아공간에는 별의별 것이 다 있다.

지구에서 프로킨으로 넘어왔을 적에, 강원도 저택에 있는 모든 물품을 아공간에 쑤셔 넣었질 않나.

그리고 그 중에는 독하디독한 양주도 잔뜩 있었다.

인우는 프로킨의 허접한 술보다, 이 엄청난 양주를 알렉산더와 함께 마시고 싶었다.

그리하여 둘은 지금 루피안의 왕궁 그레이트 홀에 마주 앉아 있었다.

난데없는 대낮의 술판에 루피안 전속 주방장의 손이 바빠졌고, 홀의 거대한 식탁에는 먹음직스러운 안주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인우는 알렉산더에게 양주를 병째로 건네며 말했다.

"마셔."

둘은 한동안 말없이 술만 마셨다.

사실, 인우나 알렉산더 같은 극강의 초인들에겐 엄청난 내성이 존재한다.

하다못해 인우는 맹독저항이라는 패시브까지 존재한다.

하여, 알콜을 독으로 간주하는 패시브와 육체는 취기를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인우는 연달아 23병의 양주를 위장 속에 부어 넣었다.

오늘은 어떻게 해서든지 취하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이것은 알렉산더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둘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취기가 올라올 무렵. 알렉산더가 물었다.

"어디에 계셨던 겁니까."

"지구라는 차원. 나의 고향이랄까?"

그러면서 인우는 그간 지구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둘 풀어놓기 시작했다.

알렉산더에게 해 주지 못할 종류의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정도로 믿음직스러운 녀석이었으니까.

인우는 지구에서 레벨이 초기화되었던 것부터, 절대자의 패시브까지 말했다.

또한 그곳에 존재하는 길드라는 양아치 집단들과 관리국. 그리고 괴수를 사육하는 발상을 떠올린 영리한 지구인들의 이야기.

알렉산더는 이러한 이야기에 커다란 흥미를 느끼며 재밌어 했다.

녀석이 좋아하자 인우는 흥미가 동해 이야기보따리를 더 풀기 시작했다.

미친곰으로 활약했던 일.

그리하여 관리국 앞에 자신의 동상이 세워진 일.

그곳 동상에 사람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데, 자신이 곰탈을 벗고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았던 일.

나아가, 블랙오크라는 변종 괴수까지.

이 대목에서 알렉산더는 그 블랙오크라는 변종 괴수를 꼭 한 번 보고 싶다며 매우 궁금해 했다.

이에 인우는 제라라는 족장을 데리고 왔다며 언제 소개를 시켜 주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인우는 마지막으로 가족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나뿐인 여동생 정지은에 관한 이야기였다.

지구에서 다시 그녀와 재회했는데, 랭커가 되어 악녀라 불리던 그녀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즈음 알렉산더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저, 폐하. 혹시 여동생 분의 생김새가 어떠한지요?"

"응? 너도 외모 따지냐? 뭐, 물론 너라면 내 여동생을 내준다 해도 전혀 아깝지 않지."

"그것이 아니라······."

알렉산더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나 더는 묻지 않았다.

자신이 보았던 그녀가 황제의 여동생이라면, 애초에 왜 용병단에 들어가 있었겠는가.

애당초 황제의 옆에 있었겠지.

그래,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어느덧 알렉산더는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참, 폐하의 물품 말입니다."

그리 말한 알렉산더는 아공간을 열었다.

그런 뒤 그곳에서 드래곤 본 대검과, 본래 황제가 착용했던 아티펙트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 모습에 인우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건 뭐냐···? 설마, 황궁에 있던 내 물품을 챙겨 놓았던 거냐?"

"제가 목숨을 걸고 지켜 냈습니다."

알렉산더는 이것을 황제에게 다시 전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크게 기뻤다.

이윽고 물품은 인우의 손에 들어왔다.

인우는 술에 취해서인지, 아니면 정말로 감격에 겨워서인지 떨리는 손끝으로 드래곤 본 대검의 검신을 쓰다듬었다.

블랙 드래곤의 뒷다리를 간신히 챙겨 와서, 그 종아리뼈를 이용해 만들었던 대검.

프로킨 대륙 최고의 드워프를 섭외해 3개월이 넘도록 가공했던 자신의 대검.

블랙 드래곤의 뼈답게 블랙홀처럼 빠져들 듯한 칠흑의 검신을 지닌 대검.

사실, 드래곤 본은 종아리뼈보다는 갈비뼈가 훨씬 더 강력하다.

왜냐하면 갈비뼈는 드래곤 하트를 보호하고 있는 뼈인지라, 그 강도가 종아리뼈와는 비할 바 못된다.

그럼에도 종아리뼈도 무시할 게 못 된다.

어찌되었건 드래곤의 뼈니까 말이다.

또한 드래곤의 종류에 따라 그 뼈의 위력은 천차만별이다.

이를테면, 블랙 드래곤은 그린 드래곤보다 훨씬 더 강하다.

다시 말해, 지금 인우의 아공간에 있는 벨자므 사체의 갈비뼈도, 이것보단 약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이즈음 되면, 이 대검 앞에서 파뇌 따위는 애들 장난감으로 전락해 버릴 거다.

물론 파뇌가 좋지 않은 대검이라는 말이 아니었다.

그 정도로 이 드래곤 본 대검이 강력하다는 의미였다.

사실, 이 대검은 황제가 된 이후에 만든 무기였다.

만약 그 이전에 이 대검이 존재했다면 인우는 일찌감치 황제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

"이걸 다시 보게 되다니······."

인우는 저도 모르게 아공간을 열고 파뇌를 내던져버렸다.

그런 뒤 만족스러운 손길로 새로이 생긴 대검을 만지작거렸다.

"아티펙트도 확인해 보시지요. 폐하."

"아, 그래. 그래야지."

지금 알렉산더는 인우 본인보다 더 즐거운지 입가에 미소가 끊이질 않고 있었다.

인우를 위해서라면 뭔들 못할까.

어느덧 인우는 과거 자신이 착용했던 아티펙트를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이것은 세트로 이루어진 최강의 아이템이었다.

현존하는 헬탑에서 가장 강력하다고 평가되는 보스 '아포칼립소.'

그 녀석이 뱉어낸 아티펙트다.

인우는 가장 먼저 반지의 정보를 보았다.

[아포칼립소의 오른손 반지]

종류 ? 반지

기능 ? 모든 저항력 50% 상승, 모든 방어력 2배 증가

추가 기능 ? 민첩 100 상승

발동 조건 ? 500레벨 이상

[아포칼립소의 왼손 반지]

종류 ? 반지

기능 ? 모든 회복력 50% 상승, 모든 공격력 2배 증가

추가기능 ? 마력 100 상승

발동조건 ? 500레벨 이상

"캬아."

이건 다시 보아도 예술이다.

특수 기능 두 줄은 기본으로 달렸다.

그런데 그 특수기능 마저도 '모든'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다.

예를 들면, '모든 공격력 2배 증가'의 경우.

마법 공격력, 물리 공격력, 투척 공격력, 맨손 공격력, 등을 포함한 모든 공격력이 2배 증가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회복력이나, 저항력, 방어력, 모두 동일하다.

'모든'이라는 전제는 최강의 아이템에만 붙는다.

게다가 이 옵션은 현재 인우에게 있어서 더욱이 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애초에 인우는 엄청난 마스터 스킬을 보유하고 있고, 그 중엔 투척 공격, 마법 공격 등을 포함한 별의별 공격들이 다 존재하지 않나?

이 때문에 이 아티펙트의 효율은 그야말로 과거보다 극대화될 터다.

나아가 이 아티펙트들은 헬스톤 작업까지 끝마친 아이템이다.

헬스톤을 통해 부여된 '추가 기능'이 붙어 있다.

상승하는 스텟의 양만 해도 엄청나다 할 만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착용이 불가능했다.

아포칼립소 아티펙트의 발동 조건은 500레벨 이상이니 말이다.

이어 인우는 다음으로 팔찌와 목걸이의 정보를 불러보았다.

[아포칼립소의 팔찌]

종류 ? 팔찌

기능 ? 모든 공격 속도 5배 증가, 모든 소모량 50% 감소

추가 기능 ? 근력 100 상승

발동 조건 ? 레벨 500 이상

[아포칼립소의 목걸이]

종류 ? 목걸이

기능 ? 모든 스텟 +50, 모든 스킬 공격력 25% 증가

추가 기능 ? 근력 100 상승

발동 조건 ? 레벨 500 이상

이건 그냥, 매우 좋다.

특히나 지금 인우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은 역시나 팔찌였다.

저 미친 기능을 보라.

모든 공격 속도는 말할 것도 없다.

모든 소모량의 경우 그야말로 사기적이었다.

저 기능에 대해 말하려면 소모량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인우가 착용한 목걸이 '디아볼로스의 이빨'에 붙어 있는 '마나 소모량 50% 감소'의 옵션.

이는 마법을 시전할 때 50%의 마나가 감소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모든 소모량은, 마나를 포함한 체력도 해당된다.

이를테면, 현재 인우가 발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스킬은 '광폭 무형검'이다.

그리고 무형검을 시전하면 체력의 50%가 소모된다.

즉, 2번을 쓰면 한계점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소모량 옵션이 적용된다면?

무형검의 체력 소모가 25%로 확연히 줄어들어 버린다.

무형검 2방을 꼽을 것을, 4방까지 꼽게 된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말로 설명이 안 될 정도로 어마무시하다 할 만했다.

이윽고 인우는 고개를 들어 알렉산더를 바라보았다.

"고생했다. 알렉산더."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인우의 그 한마디에 알렉산더는 그간의 고통이 싸그리 씻겨 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동안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술자리는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그리고 날이 어둑해질 무렵.

술자리는 서서히 끝나 가고 있었다.

그즈음.

지구로 정찰을 나갔던 일이가 돌아왔다.

녀석의 표정은 매우 어두워 보였다.

0162 / 0208 ----------------------------------------------

162화 드래곤들의 울화통을 터트려 보아요 (1)

몇 시간 전.

지구의 강원도 사냥터.

분신 일이는 난감해졌다.

자신은 그저 정찰의 임무를 받고서 지구에 온 것인데, 눈앞에 있는 사일런스 팀이 정인우는 어디 있냐며 다급히 묻고 있었으니까.

"말해 줘. 정인우는 지금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눈앞의 여자, 사일런스의 대장 배다정은 다시금 묻고 있었다.

무척이나 절박한 그 어조에 일이는 고민했다.

인우가 내렸던 명령 중에는 이러한 돌발 상황에 대한 것들은 없었다.

이것은 즉, 일이 스스로 판단하고 대답을 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이윽고 일이는 적당한 대답을 떠올렸는지 빠르게 입을 열었다.

"지구엔. 없어."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말을 마친 일이는 곧장 사일런스 팀원들을 지나치며 걸어 나갔다. 더 이상 볼일 없다는 의미였다.

그러자 배다정이 멀어져가는 일이의 뒤통수를 향해 다급히 외쳤다.

"잠깐 기다려!"

"빨리. 말해. 나는 정찰을 하고. 빠르게 돌아가야 하니까."

본능적으로 일이를 잡았던 배다정은 '정찰'이라는 단어에 눈을 빛냈다.

"정인우가 너에게 정찰의 임무를 맡긴 건가? 그는 아직 지구가 이렇게 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거야?"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럼 잘 됐네. 나를 정인우에게 데려다 줘. 굳이 위험한 정찰을 할 필요가 없다고. 내가 정인우에게 지구의 현 상황에 대해 모두 말해 주겠어."

그 말에 일이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생각했다.

만약 저 여자를 데리고 프로킨으로 간다면?

아니, 안 된다.

일이는 고개를 내저었다.

인우가 어떻게 반응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그저 인우가 시키는 것만 하면 된다.

이윽고 일이가 말했다.

"나에게. 말해. 지금 지구의 현 상황에 대해서. 내가 대장에게 다시 말할 테니."

그리 말한 일이는 고집스러운 입술을 매만지며 다정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 * *

인우는 돌아온 일이를 향해 물었다.

"정찰은 끝낸 거냐? 지금 지구는 어떻게 됐지?"

"음."

일이는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일이는 우선 사진을 찍었던 스마트폰부터 건넸다.

"이것부터. 확인해 대장. 지금 지구. 강원도. 찍었어."

폰을 받아든 인우는 사진을 확인했다.

"음······."

사진을 한 장씩 넘기던 인우의 표정에 점차 불편한 기색이 떠올랐다.

"이 새끼들이 날 찾는다고 애먼 지구에 깽판을······."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애초에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고, 선량한 지구의 인간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인우는 남은 한손으로 드래곤 본 대검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이를 갈았다.

그러던 중, 일이는 배다정에게 들었던 현재 지구의 상황에 대해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 말에 의하면, 지금 지구는 사실상 모든 기능이 마비된 상태라 했다.

각국은 드래곤들의 무차별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으며, 이를 통해 발생된 사망자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이밖에도 일이는 디테일한 부분까지 모조리 인우에게 보고했다.

그 보고를 모두 들은 인우는, 살벌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후우··· 너넨 진짜 뒤졌다."

인우의 눈동자가 오랜만에 독기로 물들었다.

단신으로 길드와 거대 기업을 무너뜨렸던, 예전의 그때처럼.

* * *

팜이와 용용이는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용용이는 어정쩡하게 쫓아오는 팜이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왜 그렇게 기가 죽어 있어?"

"···응?"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팜이는 한 박자 늦게 답했다.

이에 용용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슨 생각했는지 알 것 같아."

"아무 생각도 안했는데······."

팜이는 어린아이 같은 변명을 내뱉고는 저가 생각해도 웃긴지 피식거렸다.

그 웃음에 용용이도 마주 웃는다.

"이리 와."

용용이는 여전히 어정쩡하게 한 발 뒤에 서 있는 팜이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팜이는 머뭇거렸다.

그 모습에, 용용이는 손을 내밀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누나 손잡아."

팜이는 어렵사리 손을 뻗었다.

그러자 용용이가 잽싸게 팜이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둘은 별다른 대화 없이 손을 잡고 정원을 거닐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한참을 걷던 둘은 어느 순간 걸음을 뚝 멈췄다.

언제부터였을까?

뒤에서 누군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에 용용이와 팜이는 동시에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러자 그곳엔 인우가 보였다.

"아빠!"

용용이가 반갑게 인우를 맞이했다.

이에 인우는 단숨에 팔을 뻗어 용용이를 안아들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손으로는 팜이도 안아들었다.

둘은 각자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팜이는 어색하게 인우의 어깨를 부여잡았고, 용용이는 다정하게 인우의 목을 끌어안았다.

이윽고 용용이가 말했다.

"우리. 어디 가는 거야?"

"응."

"어디 가는데?"

"음, 가족사진 찍으러."

"가족사진?"

가족이라는 단어는 알고 있다.

그런데 사진이라는 단어는 무척이나 생소했다.

용용이가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러자 팜이가 넌지시 그녀를 향해 사진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자 용용이가 애처럼 좋아했다.

"오오! 좋다! 그럼 사진은 어디서 찍는 건데!?"

그 물음에 인우는 손가락을 하늘 위로 치켜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로드의 레어에서."

"잉···?"

* * *

인우는 다시금 에일린의 공중 레어로 왔다.

용용이와 팜이, 그리고 알렉산더를 데리고 말이다.

이윽고 인우는 레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알렉산더. 이곳을 파괴해라."

"······예?"

드래곤의 레어에 처음 와 본 알렉산더였다.

알렉산더는 그만큼 긴장하고 있었고, 인우의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자 인우는 한 자, 한 자 끊어 힘주어 말했다.

"다 때려 부숴 버려."

"명을 받들겠나이다."

그제야 알렉산더는 정신을 퍼뜩 차렸다.

그리곤 곧바로 무기를 치켜들었다.

이것은 인우의 또 다른 부하인 민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민철이었다면 아마도······.

-형님··· 정말 괜찮겠습니까? 뒷감당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저는 무섭습니다. 드래곤들이 엄청 화를 낼 텐데요!

라며 지레 겁부터 집어먹었을 터였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달랐다.

인우가 목숨을 끊으라면 진짜로 끊는 녀석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알렉산더는 가지고 있는 모든 스킬들을 동원해 로드의 레어를 가차 없이 때려 부쉈다.

쾅! 쾅! 콰드드득! 와르르륵!

가디언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가고, 로드가 가꾸었던 꽃밭이 모조리 타올랐다.

뿐만 아니다.

인간의 형태로 있을 때에 지내는 거대 황금 저택이 무너져 내렸고, 그 파편이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나아가 에일린의 형태를 본 따서 만든 거대 황금 동상이 찌그러졌다.

인우는 쑥대밭이 되어 가는 로드의 레어를 무심한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1시간쯤 지났을까?

로드의 레어는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히 망가져 있었다.

"으라아아아압!"

알렉산더는 더 부술 것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집요하게 로드의 레어를 때려 부쉈다.

기합까지 넣어가며 말이다.

왜냐하면 아직 황제가 그만하라고 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또 다시 1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거의 가루가 되어 가고 있는 레어였다.

그리고 그제야 인우의 입술이 열렸다.

"그만. 수고했다 알렉산더."

"예. 폐하. 이제는 무얼 합니까?"

"다시는 복구할 수 없게 태워야지."

이윽고 인우는 양손에 헬파이어를 응축시키기 시작했다.

99+40레벨의 헬파이어는 인우의 손바닥을 통해 끝도 없이 발사 됐다.

퍼엉! 퍼엉! 퍼엉! 콰르르르르륵!

개박살난 에일린의 레어는 단숨에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인우는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그런 뒤 폰을 분신에게 건네며 말했다.

"뒤에 타오르는 풍경 잘 나오게 해서 우리 찍어 줘."

그리 말한 인우는 알렉산더와 용용이, 그리고 팜이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알렉산더와 팜이는 어정쩡하게 서 있었고, 용용이는 인우의 볼에 기습 뽀뽀를 하고 있었다.

찰칵-

이내 사진이 찍혔다.

모든 촬영을 끝마친 인우는 분신에게 폰을 받아들고 사진을 확인했다.

사진은 아주 잘 나왔다.

쑥대밭이 되어 버린 레어는 더없이 잘 찍혔고, 용용이의 얼굴도 선명하게 잘 나왔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던 인우.

이윽고 인우는 살벌한 어조로 분신 일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걸 가지고 다시 지구로 가라. 드래곤들에게 말이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감히 지구에 깽판을 놓아?

그렇다면 인우는 더욱 강한 깽판으로 응수하면 그만이었다.

이 사진을 로드가 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수천 년 동안 유지해 온 레어가 타오르고, 그 앞에서 용용이가 황제의 볼을 향해 다정하게 뽀뽀를 하고 있는 이 사진을, 로드 에일린이 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눈깔이 뒤집힐 거다.

'한번 제대로 해보자. 나는 과거처럼 멍청히 물러서지 않을 거니까.'

인우는 이를 뿌득 갈았다.

이윽고 일이가 움직였다.

그때, 인우가 무언가 생각난 듯 아공간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언가를 꺼내 일이에게 건넸다.

"이거 입고 가라."

"···이걸. 나더러. 입으라고······?"

일이는 불만스러운 듯 입을 삐쭉 내밀었다.

* * *

드래곤들의 위치는 명확했다.

놈들은 서울 강남의 거대한 빌딩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건 누구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드래곤들은 자신들의 힘을 믿었기에 대놓고 서울 시내를 활보했던 것이다.

그랬기에 일이는 로드 에일린의 위치를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이윽고 일이는 뒤뚱거리며 서울 시내의 빌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 * *

정인우는 한국이라는 땅에 있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놈은 한국 태생이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활동했던 기록이 확실히 남아 있었으니까.

그랬기에 현재 수백 마리의 드래곤들 중에서 에일린을 주축으로 한 고룡들은 모조리 한국에 몰려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혹시 모를 정인우의 도주에 대비해 다른 나라에도 드래곤들이 분산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어찌 되었건 로드 에일린은 인간의 모습을 한 채, 인류가 만들어 놓은 건물을 근거지로 삼고 있었다.

"정인우. 이 자식은 도대체 하늘로 솟은 거야 땅으로 꺼진 거야? 어째서 찾을 수가 없는 거지?"

에일린은 열이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놈을 찾기 위해 지구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모든 것들을 파괴했다.

그런데도 놈을 찾을 순 없었다.

어느덧 이곳 회의실에 모여 있던 드래곤들 중, 블랙 드래곤 발로스가 말했다.

"차라리 이 지구라는 행성 자체를 날려 버리는 건 어때? 그즈음 되면 놈도 튀어나올 수밖에 없지 않겠어?"

"그러기엔 조금 걸리는 게 있다."

"아아."

에일린의 말에 발로스는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헬게이트 때문인 거지?"

"그래."

에일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지구에 열려 있는 수많은 헬게이트들.

지금 에일린이 걱정하는 것은 그 게이트를 생성한 존재였다.

"상위의 존재가 이 지구라는 곳에 헬게이트를 만들었다. 그 존재의 목적에 대해 알기 전까진, 이 땅을 소멸시킬 순 없어. 혹시라도 그러한 행위가 그 존재에게 반하는 행위라면, 우리 또한 위험해질 우려가 있으니까."

에일린은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자그마치 드래곤들의 로드인 그녀가 조심할 정도의 민감한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드래곤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든 드래곤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니까.

"미치겠군."

에일린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치솟는 짜증을 간신히 억눌렀다.

그런데 그때였다.

포옥- 포옥-

회의실 바깥,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니, 이건 발걸음 소리라기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이기도 했다.

마치 이건 솜뭉치가 밟히는 소리 같았으니까.

포옥- 포옥-

척.

어느덧 발걸음은 회의실 앞에서 멈추었다.

그 순간, 회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문을 비집고 들어선 녀석은 웬 곰탈을 뒤집어쓰고 있는 놈이었다.

"뭐야 저 자식은?"

"넌 누구야? 어디서 겁도 없이 이곳에 들어온 거지?"

"뭐야 넌?"

모든 드래곤들이 어처구니없는 시선으로 곰탈을 바라보았다.

그때, 곰탈의 사내가 답했다.

"나다. 이. 씹새끼들아."

"······."

"뭐야. 저 미친놈은···?"

"인간인 것 같은데. 겁 대가리를 상실한 미친놈인가 본데? 재밌는 놈이네."

드래곤들은 이 상황이 재밌는지 저마다 웃고 있었다.

그러자 곰탈의 사내도 드래곤들을 따라 웃으며 다시금 말했다.

"재밌냐? 내가. 더. 재밌는 거. 보여 줄게."

그러면서 곰탈의 사내, 일이는 배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터치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죽어도 인우가 24시간 뒤에 재소환을 해 줄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 일이의 주둥이에는 필터링이 없었다.

"이 사진. 잘 봐. 멍청한. 파충류 녀석들아."

0163 / 0208 ----------------------------------------------

163화 드래곤들의 울화통을 터트려 보아요 (2)

"······."

벌레 같은 인간 놈이 정녕 미친 걸까?

지상 최강의 지성체에게 멍청한 파충류라니?

한동안 드래곤들은 화내는 것조차 잊은 채로 벙쪄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이는 집요하게 핸드폰을 들고 서 있었다.

"이 사진 봐. 눈 똑바로 뜨고."

다시금 일이가 말했고, 그제야 드래곤들은 일제히 사진을 바라보았다.

"······."

순간.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이곳에 모여 있는 드래곤들은 사진과 에일린을 번갈아 바라보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사진 속에는 분명 로드의 헤츨링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

물론 단순한 헤츨링의 사진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 옆에 있는 남자와 배경이 문제였지······.

드래곤들은 뒤통수가 얼얼한지 얼빠진 음성으로 중얼댔다.

"정인우가. 프로킨에 있었던 거야. 그래서 찾을 수 없었던 거라고."

"로드. 당신의 레어가······."

사진 속 배경은 에일린의 레어였으며, 그곳은 폭격이라도 맞은 듯 개박살이 나 있었다.

그러한 풍경 앞에서 헤츨링이 황제의 볼에 뽀뽀를 하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다.

"······."

그 모습에, 에일린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그녀의 금안에 서릿발 같은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단숨에 눈동자를 가득 메운 분노는, 단숨에 끓어올라 폭발했다.

"정.인.우!!!!!!!!!!!! 으아아아아아아!!!!!!!!!!"

로드 에일린의 비명과 같은 피어가 회의실을 강타했다.

그 엄청난 기세에 일이는 순간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럼에도 일이는 결단코 주저앉지 않았다.

오연히 선 채로, 여전히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솔직히 일이도 무서웠다.

상대는 수십 마리의 드래곤들이다.

하지만 고통은 잠시일 것이다.

일이는 물러서지 않은 채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에일린을 향해 더 큰 목소리로 소리를 내질렀다.

"시.끄.러.워!!!!!!!!!!!"

그 순간.

에일린은 당장이라도 일이를 으스러뜨릴 기세로 쏘아보았다. 그러나 손을 뻗진 않았다. 죽여 버리기 전에 물어야 할 것이 있었으니까.

"넌 누구냐. 정인우의 부하인가? 살아 돌아갈 생각은 말아라. 그 정도 각오는 하고 왔겠지?"

"협박이냐."

"네놈을 곱게 죽이진 않을 거다."

"하나도. 무섭지 않다. 날 공포에 떨게 하려면. 적어도. 팔다리 하나쯤은 잘라내서. 내 눈앞에서 흔들어 보라고. 빌어먹을 파충류야!"

일이는 에일린의 눈동자를 직시하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예상외의 반응이었던 것일까?

에일린은 곰탈을 뒤집어쓴 일이를 바라보며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일이가 불식간에 움직였다.

일이는 단숨에 대검을 치켜들고 바닥을 겨눴다.

"크아아아아아아압!!"

일이는 볼 것도 없이 포효와 함께 바닥을 향해 내려찍기를 꽂았다.

쾅! 쾅!

으드드드드득! 콰르르르르!

순간, 일이가 서 있던 콘크리트 바닥이 박살났다.

후웅!

이에 따라 일이는 바로 아래층으로 추락했다.

그 모습에 에일린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저 스킬은? 저 곰인형은 정인우의 분신 놈이었군! 놈을 잡아!"

"이익!"

이곳 빌딩에 모여 있던 30여 마리의 드래곤들이 단숨에 일이의 뒤를 쫓았다.

"으아아아아아! 무, 무섭잖아!!"

포옥! 포옥! 포옥!

일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했다.

그럴 때마다 곰탈의 발바닥 쿠션이 울렸다.

이제 사진도 모두 보여주었고, 임무는 끝마쳤다.

때문에 그냥 죽어 주면 될 일이긴 하다.

하지만 제아무리 재소환이 가능한 분신이라 해도 순순히 목을 내주고 싶진 않았다.

한번 까불어 보긴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랬기에 일이는 도주를 위해 빌딩 1층까지 단숨에 내려왔다.

그런데 그 순간, 일이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아. 이 빌딩. 설마?"

행운도 이런 행운이 또 없다.

빌딩의 1층은 인류의 초인 상점이었고, 이곳 진열대에는 각종 무기와 방어구, 그리고 스킬 볼들이 널려 있었다.

일이는 사력을 다해 도주하며 진열된 스킬 볼들을 손에 집히는 대로 잡았다.

빨간색, 빨간색, 빨간색.

액티브의 연속이었다.

일이는 여전히 도망치며 빨간색 스킬 볼은 몽땅 버렸다. 사실상 현재로선 필요하지 않았다.

유니크로 충분히 뽕을 뽑았을 때에 필요해질 테니 말이다.

일이는 계속 달렸다.

다시 빨간색, 파란색, 빨간색.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보였다.

투명, 투명!

"유니크!"

운이 좋았다.

유니크 스킬 볼 2개가 진열되어 있었던 것이다.

보통 한 달에 한 개 꼴로 시장에 풀리곤 하는 유니크 스킬 볼이다.

그런데 그러한 유니크가 한 매장에 두 개나 존재하다니!

그렇지 않아도 자신만 아공간이라는 비공격형 스킬이 떠서 성질이 뻗쳤었는데, 이거 참 잘됐다.

일이는 볼 것도 없이 유니크 스킬 볼 두 개를 입속에 구겨 넣었다.

꿀꺽!

그것은 아주 잠깐의 지체였다.

그리고 그 잠시의 틈을 비집고 일이를 뒤쫓아 왔던 드래곤들의 공격이 쏟아졌다.

콰르르륵!

"끄악!"

일이는 짧은 비명과 함께 기체가 되어 사라졌다.

수십 발의 공격 마법이 꽂히며 골로 간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일이는 죽음의 직전까지도 웃고 있었다.

'스킬 두 개. 획··· 득. 안녕. 멍청이들아.'

* * *

['분신1'이(가) '블링크'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분신1'이(가) '해골 소환'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분신1'이(가) 사망하였습니다.]

"뭐야 이 녀석?"

드래곤들에게 사진을 전하라 보냈더니 스킬을 습득했다는 메시지가 뜬다.

그것도 보통 스킬이 아니다.

마법 계열 하나와 네크로맨서 계열 하나.

[블링크 Lv.1 (1%)] - 시야에 잡히는 지역에 한하여 순간이동을 합니다. (먼 거리를 이동할수록 높은 마나를 소비합니다. 레벨이 오를수록 소비 마나가 줄어듭니다.)

[해골 소환 Lv.1 (1%)] - 스켈레톤을 소환합니다. (레벨이 오를수록 개체수와 위력이 증가합니다.)

광전사 계열인 일이가 일반적인 루트로는 습득할 수 없는 스킬이었다.

이것은 즉, 일이 녀석이 유니크 스킬 볼을 먹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녀석은 스킬 습득과 동시에 사망했다.

이에 따라 인우는 24시간 뒤에나 일이를 다시 소환할 수 있을 거였다.

어찌 되었건, 녀석이 사망했다는 건 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마쳤다는 것이라 볼 수 있었다.

레벨이 247이나 되는 녀석이 죽을 상황이 뭐가 있겠는가?

드래곤들 앞에서 사진을 보여 주다가 단번에 골로 갔겠지.

때문에 사진을 확인한 드래곤들은 인우가 프로킨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거다.

이로서 드래곤들은 다시금 모조리 프로킨으로 몰려올 테고, 지구인들의 고통은 끝이 날 테다.

이것으로 인우는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수단은 모조리 동원해 주었다.

'시작인가.'

그리고.

이제, 길고 긴 전쟁이 시작 될 터였다.

인우는 우선 드래곤 놈들을 몇 마리 잡아서 500레벨부터 달성할 생각이었다.

그리 된다면 새로운 전능자 패시브가 열릴 테고, 아포칼립소 아티펙트 세트도 착용할 수 있었다.

나아가 아포칼립소의 세트 효과도 얻을 수 있을 테고 말이다.

그즈음이 되면, 훨씬 더 수월한 전쟁이 가능해질 것이다.

* * *

세계각지로 흩어져 있던 드래곤들.

이들이 다시금 한국으로 모이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애초에 포탈을 설치하던 과정 중에 있었기에, 현재로선 한국의 울트라 게이트까지 직접 날아와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에일린은 우선 한국에 있던 30여 마리의 드래곤들만을 이끌고 먼저 프로킨으로 진입했다.

지구 곳곳에 흩어져 있는 드래곤들은 차례대로 울트라 게이트를 통해 프로킨으로 진입해 올 것이다.

프로킨으로 돌아온 에일린은 가장 먼저 자신의 레어를 향했다.

두 눈으로 목격하기 전까진 쉬이 믿을 수 없었으니까.

그 레어가 어떤 레어인데······.

수천 년간 드워프들의 대대손손을 괴롭혀 가며 건축한 극강의 레어란 말이다.

보통 시간과 정성을 들인 게 아니었다.

이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

일말의 희망은 단숨에 무너져 내렸다.

레어는 사진 속 모습 그대로였던 것이다.

모든 쉴드가 깨어지고 가디언들이 죽었다.

개박살이 났으며, 헤츨링은 정인우를 따라간 것 같았다.

"하아······."

이곳엔 당연하게도 알람 마법도 설치되어 있었다.

그것은, 침입자가 발생하면 에일린 본인이 알 수 있도록 해 주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에일린은 지구에 있었고, 프로킨과는 애초에 다른 차원의 공간에 있었다.

이 때문에 알람은 정상 작동되지 않았고, 이러한 최악의 사태가 발생됐다.

에일린은 분노를 넘어서 광기로 가득 찬 눈동자를 한 채 말했다.

"정인우··· 놈을··· 찾아라. 반드시."

에일린의 명령과 동시에 30마리의 드래곤들이 움직였다.

* * *

"폐하. 제가 설치해 두었던 알람 마법이 울렸습니다."

"그래? 에일린이 벌써 돌아왔나 보네. 슬슬 움직이자."

알렉산더가 말했고, 인우가 답했다.

알람 마법이란, 알렉산더가 에일린의 레어에 설치해 둔 것이었다.

그 레어에 누군가가 들어서면 울리도록 만들어 둔 것이다.

울리는 즉시 소멸되는 마법이라 설치해 두었다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종류의 마법이었다.

이 알람이 울렸으니, 지금 이 순간 에일린은 레어에 들어선 것이 확실해 보였다.

또한, 모든 드래곤 일족이 한 번에 돌아오진 못했을 거다.

강원도에 설치된 울트라 게이트를 이용해 곧바로 프로킨으로 진입할 수 있는 드래곤들은, 한국에 머물고 있던 녀석들뿐일 테니까.

인우의 예상으로는 지금 프로킨으로 들어선 드래곤들은 대략 10분의 1가량의 숫자일 것이라 여겨졌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예상이므로, 그 이상일 수도 이하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현재 인우가 실행할 계획에 있어서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폐하. 그런데 어떠한 방식으로 놈들과 전쟁을 치를 예정입니까?"

"전면전은 자살 행위고, 당연히 게릴라지. 자, 생각해 봐 알렉산더. 현재 게릴라를 펼치기에 가장 좋은 지역이 어디일까?"

인우의 물음에 알렉산더는 한참을 생각했다.

그러다 확신이 서지 않는 어조로 답했다.

"대륙은 넓으니, 어디라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건 근본적인 답이 아니야."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지역이 게릴라를 펼치기에 가장 좋은 지역입니까?"

알렉산더는 과거 늘 인우와 함께 했음에도, 항상 인우의 속을 짐작조차 못했다.

인우는 사고방식 자체가 일반인의 기준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이번에도 기상천외한 답이 들려올 것이라 여겼다.

아니나 다를까.

"울트라 게이트. 그곳 내부다."

"···예?"

울트라 게이트.

사실상 그곳이 가장 제격이었다.

에일린은 인우가 프로킨에 있다고 생각하지, 울트라 게이트로 들어섰다고는 상상조차 못할 테니 말이다.

"폐하. 그곳이라면 확실히······."

지금 지구에는 세계 각지에 대략 400마리 이상의 드래곤들이 흩어져 있을 것이다.

애초에 프로킨으로 돌아온 드래곤들은 한국에 있던 에일린의 무리가 전부일 테니 말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지구 각지에 흩어져 있던 드래곤들이 알아서 쪼개진 채로 게이트 내부로 진입해 온다는 이야기였다.

이를 테면 이것은, 자동 게릴라다.

그렇기에, 인우로서는 울트라 게이트에서 자리를 잡고 조금씩 들어오는 녀석들을 죽여 버리면 될 일이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놈들은 뭉치지도 못한 채 조금씩 숫자가 줄어들 터였다.

게다가 울트라 게이트 내부는 프로킨과 경험치 비율도 같다.

10배라는 말이다.

"가자. 알렉산더."

"······."

경험치가 쏟아질 것이다.

============================ 작품 후기 ============================

비축분이 슬슬 동나고 있습니다.

이제 조금씩 페이스를 조절하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

0164 / 0208 ----------------------------------------------

164화 어서 와, 죽는 건 처음이지?

인우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용용이와 팜이를 아공간에 들어가게 했다.

에일린은 눈에 불을 켜고 용용이를 찾으려 들 테고, 인우로서는 이것이 최선의 수였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끝마친 인우는 알렉산더만을 데리고 울트라 게이트로 향했다.

게이트 내부에 도착한 인우는 드래곤 본 대검을 쓰다듬으며 드래곤들을 기다렸다.

그리 오랜 기다림은 아닐 것이다.

가장 가까운 지역에 있던 놈들부터 차례로 들어올 테니까.

물론 그 숫자가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각 나라와 지역별로 3~10마리의 드래곤들이 투입되었다는 가정을 둔다면, 그 정도의 숫자는 충분히 감당할 자신이 있는 인우였다.

현재 인우가 판단하기엔 종류와 나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10~30마리의 드래곤까지는 충분히 상대가 가능하다 여겨졌으니 말이다.

게다가 지금은 알렉산더까지 동행했으니, 이보다 더 큰 숫자가 몰려온대도 충분한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사실 파뇌를 들고 있을 때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드래곤 본 대검을 들고 있는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블랙 드래곤 본 대검 (제작)]

종류 ? 대검

기능 ? 파괴력 + 12,500

특수 기능 ? 드래곤들에게 1.5배의 타격치를 줍니다.

* 드워프들의 회심의 역작. 프로킨의 황제 정인우의 명으로 만들어진 이 대검은, 대륙력 566년에 제작되었다.

대검의 정보는 참으로 오랜만에 열어본다.

인우는 기존 지구에서 사용했던 용작두나 파뇌의 정보를 굳이 열어보진 않았었다.

그것은 인우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용작두나 파뇌나 익히 잘 알고 있었던 대검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제작으로 만들어진 이 드래곤 본 대검의 파괴력은 12,500이다.

이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치라 볼 수 있었다.

일례로, 용작두의 파괴력은 1,500이며,

파뇌의 파괴력은 5,200이다.

그렇기에 드래곤 본 대검의 파괴력은 파뇌보다 2배는 더 높은 것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드래곤 본 대검의 특수 기능을 보면, 드래곤들에게 1.5배의 추가 타격치를 준다고 적혀 있다.

이는 즉, 드래곤들을 상대할 때에는 18,750가량의 파괴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수치가 잘 가늠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이 정도라면 바실리스크같은 괴수들은 그냥 평타로도 한 방에 골로 보낼 정도였다.

그것도 아주 가벼운 평타로 한 방이다.

그러고도 힘이 남을 테다.

이윽고 인우는 게이트 내부, 지구로 향하는 입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빨리 와라. 느려터진 놈들아."

모든 준비는 끝마쳤다.

재소환 시간이 남은 일이를 제외한 7명의 분신들.

그리고 알렉산더.

나아가, 인우의 양 볼에 알사탕처럼 물려 있는 두 개의 힘의 정수까지.

놈들은 결단코 인우의 상대가 되지 못할 거였다.

* * *

'정인우는 프로킨에 있었다. 다시금 프로킨으로 복귀하라.'

이 명령에 가장 빠르게 움직인 것은 일본에 모여 있던 드래곤들이었다.

일본은 한국과 가장 가깝기도 했고, 마침 일본에 있던 드래곤들은 연이은 깽판에 질려 가던 차였다.

이러한 시점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민 정인우는 드래곤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정인우 그 녀석은 도대체 무슨 깡으로 에일린을 도발한 거지?"

"보기 드문 별종 새끼니까 뭐."

"내가 보기엔 아마도 제 놈 고향이 쑥대밭이 되어 가니 성질이 난 거 같은데?"

"제깟 놈이 성질이 나 봤자지.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큭큭. 아무튼 미친놈이라니까."

일본에 있던 다섯 마리의 드래곤들은 저마다 정인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여유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유일하게 홀로 굳은 얼굴을 한 채 침묵하고 있는 드래곤이 보였다.

그녀는 바로 블랙 드래곤 아리다였다.

일전에 아리다는 에일린의 명령을 받고 지구로 갔었다.

그리고 벨자므가 정인우에 의해 죽었다는 것을 알아내었고, 마침내 정인우와 1:1로 대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아리다는 꽁지가 빠지도록 도망쳤다.

그것은 매우 치욕적인 경험이었다.

심지어 정인우는 사력을 다해 도망치는 아리다를 쫓아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자존심이 상했었다.

그것은 아리다에겐 정말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이윽고 아리다는 함께 비행하고 있던 드래곤들을 향해 괜히 성질을 내며 소리쳤다.

"조금 더 빨리 날 순 없냐? 답답해 죽겠군."

그 말에 드래곤들은 능글맞게 웃으며 답하기 시작했다.

"어? 정인우한테 죽다가 살아난 아리다로군? 그런데, 왜 그렇게 혼자 성질이야?"

"크크크큭!"

"푸후웁!"

아리다를 제외한 4마리의 드래곤들은 비웃음을 날리며 아리다를 조롱했다.

그러자 아리다는 간신히 화를 찍어 누르며 말했다.

"누가 그딴 소리를 했지? 난 죽다 살아난 적이 없어. 오히려 정인우 그 녀석이 날 보더니 꽁지 빠지게 도망치더군. 다시 본다면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다."

아리다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그럼에도 다른 드래곤들은 여전히 비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아리다는 허세를 부리며 몇 마디를 덧붙였다.

"만약 정인우가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난다면, 내가 증명해 보이지. 놈이 내 아래라는 것을."

"오호?"

아리다는 자신 있었다.

어차피 정인우와 다시금 마주할 가능성은 없었다.

에일린이 직접 나선 이상, 자신보다 더욱 강한 고룡들이 정인우를 처치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아리다는 더더욱 허세를 부렸다.

"놈은 내 밥이다. 내 마법 앞에서 단 5초도 못 버틸걸?"

* * *

"폴리모프 해라. 도마뱀. 5초 준다."

아리다를 포함한 다섯 드래곤이 울트라 게이트에 들어서자마자 듣게 된 말이었다.

이들의 앞에는 정인우가 떡 하니 서 있었던 것이다.

"정인우···?"

드래곤들은 상상조차 못했기에 놀란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아리다를 바라보았다.

"아리다 네가 나서."

"내, 내가 왜?"

"5초 안에 제압할 자신이 있다며."

"흐, 흐음. 그럴까···나?"

아리다는 당당함을 가장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말했다.

"또 보는 구나 정인우. 그때는 잘도 도망쳤겠다?"

인우는 그 말 같지도 않은 말에 대답을 하는 대신 제 할 말을 내뱉었다.

"5초 지났다. 도마뱀."

그리 말한 인우는 단숨에 온갖 버프를 두르기 시작했다.

광폭화와 광기 폭발.

육체강화와 스트렝스.

그리고 분신들이 시전해 주는 모든 버프들까지.

삽시간에 인우의 능력치가 뻥튀기 되었다.

하지만 인우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드래곤 본 대검에 광폭 절대검까지 입혀 버렸던 것이다.

절대검이 입혀지자, 인우의 대검에는 길쭉한 검강이 일렁거렸다.

그제야 아리다는 침을 꿀꺽 삼키며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인우는 그러한 아리다를 바라보며 딱 한마디를 내뱉을 뿐이었다.

"이거 한 대 맞으면, 폴리모프 하고 싶지 않아도 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러면서 인우는 냅다 광폭 무형검을 꽂아 버렸다.

인우의 체력이 단숨에 절반이 줄어들었고, 그만한 리스크를 담아내고도 넘칠 만한 공격이 튀어나온다.

푸슉!

보이지 않는 칼날이 단숨에 아리다의 육체를 베어 댔다.

모든 버프와 드래곤 본 대검의 파괴력을 머금은 무형검은, 이미 버틸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크아아아아아악!!!!!!!!"

아리다는 끔찍한 비명을 토해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아리다가 단 일격에 치명상을 입고 전투불능이 되자, 그제야 남은 4마리의 드래곤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녀석들은 볼 것도 없이 폴리모프를 풀고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인간의 모습일 때보다 드래곤의 모습일 때 5배가량 강해진다.

이것은 엄청난 차이다. 때문에, 드래곤들은 폴리모프와 함께 힘을 합친다면 어떻게든 정인우를 막아 낼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후우우우우웅-!

이내 드래곤들의 육체에서 새하얀 빛 무리가 터져 나오며 삽시간에 모습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드래곤들은 생각조차 못했다.

보통의 인간들은 드래곤의 모습을 갖추는 폴리모프를 직면할 때에 겁을 집어먹거나 벙쪄 있곤 한다.

그러나 인우는 결단코 그런 종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를 테면······.

"크아아아아아압!!"

변신이고 나발이고 허점이 보인다면 냅다 공격을 감행하는 종류의 인간이랄까?

어린이 판타지물의 주인공처럼 악당의 변신을 넋 놓고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바바바바밧!!

인우의 육체가 곧바로 팽이처럼 돌아가며 아직 채 변하지 못한 놈들의 육체에 치명상을 가하기 시작했다.

콰드드드드드득!

갓 피어난 드래곤들의 비늘이 아작 나며 그 속을 비집고 드래곤 본 대검의 칼날이 파고든다.

"크아아아아악!"

살이 찢겨 나가는 끔찍한 고통.

드래곤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비명을 내지르며 힘겹게 변신을 끝마쳤다.

그런데 어째, 변신을 하고 나서 더 큰 위기에 직면한 것 같다.

드래곤들은 역류하는 핏물을 간신히 찍어 삼키며 볼 것도 없이 브레스를 뿜어냈다.

그러자 인우가 뒤를 향해 외쳤다.

"알렉산더! 놈들의 아가리가 벌어졌다!"

그 외침에 알렉산더가 움직였다.

"으라아아아아아!"

알렉산더는 거친 기합과 함께 놈들의 아가리 사이로 수리검을 투척했다.

피슈우우욱!

강력한 스킬을 머금은 수리검은 브레스를 뚫고 맹렬히 나아갔다.

그리고 인우는 힘의 정수를 삼킬 준비를 하며 대검 막기와 함께 브레스 사이를 질주했다.

"으라아아아!!"

콰르르르르륵!

4종류의 드래곤 브레스가 인우의 육체를 단번에 녹일 듯 쏟아진다.

인우는 단숨에 떨어지는 체력에 힘의 정수 하나를 꿀꺽 삼켰다.

그러자 단번에 체력이 회복되었다.

이와 동시에 인우는 다시금 무형검을 발동시켰다.

"크아아아아압!!"

파바바바바밧!

인우의 무형검이 드래곤들의 연약한 입천장을 꿰뚫었고, 그 순간 인우의 분신들까지 움직였다.

"지금. 이야!"

팔이가 선동했고, 일곱 분신들은 저마다 광폭 난무와 광폭 어검으로 무장한 채 드래곤들을 공격했다.

파밧 파밧!

"크아아아아악!"

이즈음 되자 드래곤들은 별다른 힘조차 써 보지 못한 채 목숨이 경각에 달했음을 느꼈다.

인우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또 다시 힘의 정수를 삼킴과 동시에 광폭 무형검을 시전했다.

-크르르르르······.

전투는 삽시간에 종결되었다.

어찌 보면 싱겁다 여겨질 정도로 말이다.

아리다는 폴리모프를 해 보지도 못한 채 분신들의 후속 공격에 의해 이미 숨이 끊겨 있었고, 나머지 4마리의 드래곤들도 피떡이 된 채 힘없이 쓰러졌다.

철푸덕.

그리고······.

[경험치를 250,550,000+250,55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208,600,000+208,60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177,700,000+177,700,00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191,000,900+191,000,900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

.

[500레벨이 되었습니다.]

[신체가 각성되었습니다.]

[근력이 800 증가합니다.]

[민첩이 640 증가합니다.]

[체력이 320 증가합니다.]

[마력이 80 증가합니다.]

[500레벨의 '광폭 전능검'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500레벨의 '전능자의 ??'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

.

인우의 레벨은 단번에 500까지 올라갔다.

벨자므 때 느껴 보았듯, 역시나 미친 경험치였다.

이로써 인우의 레벨은 과거와 같아졌다.

나아가, 인우가 얻어낸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익히 경험해 보았듯, 드래곤 녀석들은 레전드 스킬 볼도 지니고 있을 것이다.

0165 / 0208 ----------------------------------------------

165화 오크라니, 장난하냐 도마뱀?

"······."

인우는 전리품 채취조차 잊은 채로 서 있었다.

의문 때문이었다.

[경험치를 50+50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50+50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50+50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킬 경험치를 50+50 획득하였습니다.]

.

.

경험치가 정상적으로 오른다.

그래, 바로 그것이 의문이었다.

스킬 경험치가 오르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육체 레벨의 경험치도 정상적으로 오른다.

"흐음."

이미 과거에 500레벨을 달성해 본 적이 있었던 인우였기에, 지금의 상황은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다.

레벨 500.

프로킨의 경험치는 매우 풍부하다.

그런데도 인우가 레벨을 500까지밖에 올리지 못한 이유가 존재했다.

500은 초인 육체 레벨의 한계점이었으니까.

때문에 인우는 진즉 예전에 500을 달성하고, 또한 한참 이후에도 줄곧 500레벨이었다.

그 이상의 영역에 도달하기 위해선 무언가가 필요한 것 같았지만, 당시의 인우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현재의 인우도 그 무언가를 알지 못한다.

지금 인우가 아는 것이라고는, 레벨 500이 한계점이라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정상적으로 경험치가 오르고 있으니 놀라울 수밖에.

본래에는 저렇게 오르지 않는다.

원래대로라면,

[50의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육체 레벨이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획득된 경험치는 자동으로 저장됩니다.]

라는 안내 문구가 뜨지.

이내 인우는 자신의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정인우>

레벨 : 500

특성 : 광전사

스텟 : [근력 943+1,550+10+50] [민첩 658+1,240+100] [마력 427+170] [체력 622+680+10+40]

미분배 포인트 : 880

[EXP 1,200,000 / 200,000,000]

상태창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레벨은 정확히 500.

그리고 스텟의 경우 5차 각성을 이루며 엄청난 양이 플러스되었다.

이제는 순수 스텟보다, 뒤에 +로 붙어 있는 각성 스텟이 더 높을 지경이었다.

사실 500레벨이 되고 5차 각성을 이루면 이렇게 되는 것이 당연했다.

뒤이어 미분배 포인트는 88개의 레벨업을 통해 880개가 쌓여 있었다.

여기까진 정상이다.

그런데 저것.

저 경험치.

저것이 비정상이었다.

[EXP 1,200,000 / 200,000,000]

"흐음······."

이건 인우가 알고 있는 것과 달랐다.

본래 500레벨이 되면······.

[EXP 1,200,000 / ?]

경험치를 나타내는 표시가 이렇듯 '?'로 바뀐다.

그것은 즉, 제아무리 엄청난 경험치를 획득해도 언제 레벨 업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과거 프로킨의 정인우는 수십억에 달하는 경험치를 획득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 '?'는 충족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경험치를 정상적으로 획득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저때에는 비정상적으로 획득한다.

그랬기에 인우는 의문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경험치는 정상적으로 오르며,

물음표 대신 분명한 숫자로 경험치 총량이 표시되어 있다.

물론, 기존 400레벨 대의 2천만도 되지 않던 경험치 총량이 무려 2억으로 불어난 것은 실로 충격적이긴 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분명한 건 끝이 존재한다는 거였으니까.

다시 말해, 저 2억의 경험치를 채우면 필시 501레벨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도대체 왜?

왜 과거와 다른 것일까?

"아."

그리고 그제야 인우는 무언가 집히는 구석이 생겼다.

혹시, 이것은 새로이 생성된 전능자 스킬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늘 예측 불가한 패시브를 내뱉던 절대자와 전능자였다.

이번에도 역시 그런 걸까?

인우는 볼 것도 없이 패시브 창을 열어 보았다.

1. [절대자의 걸음 - 발을 내딛을 때마다 경험치를 5 획득합니다.]

2. [절대자의 호흡 - 호흡할 때마다 경험치를 5 획득합니다.]

3. [절대자의 성장 - 획득 가능한 모든 경험치가 2배가 됩니다.]

4. [전능자의 잠재력 - 레벨 업 보너스 스텟이 2배가 됩니다.]

5. [전능자의 한계 돌파 ? 액티브 스킬의 한계 레벨이 2배가 됩니다. (히든 스킬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6. [전능자의 무한 성장 ? 레벨의 한계점이 사라집니다.]

7. [신의 ?? - 레벨 600 달성 시 활성화됩니다.]

.

.

.

22. [방어의 달인 ? 물리 방어력이 10% 증가합니다.]

"허?"

스킬의 확인과 동시에 인우는 놀랐다.

새로이 생성된 스킬은, '전능자의 무한 성장.'

역시나 원인은 이것이었다.

이 알 수도 없고 어디서 온지도 모를 패시브 시리즈가 이번에도 어처구니없는 스킬을 내뱉었다.

무한 성장이라니.

인우는 어디까지나 인간이다.

물론 정확히 말해 보자면 인간의 한계를 돌파한 초인이다.

하지만 정인우라는 존재는 어디까지나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신을 지닌 인간.

그러한 육체가 무한 성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인우는 늘 500레벨 이상의 영역이 존재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었다.

그런데 그 영역을 이런 식으로 돌파하게 될 줄은 몰랐다.

도대체 정확한 원인도 모른 채 난데없이 생성된 이 패시브의 정체는 무얼까?

아니 애초에 인우는 어째서 프로킨에 소환되었으며, 그곳에서 죽을 고생을 하며 굴러야 했을까?

만일 그것이 어떠한 초월적인 존재에 의한 것이었다면, 그 존재는 도대체 누구이며,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현재 인우로서는 그 어떤 것도 짐작할 수 없었다.

하다못해 절대자, 전능자, 그리고 이에 이어 앞으로 생성 될 '신의 ??' 패시브조차 예상할 수 없었다.

그저 예상되는 것이라곤 한 가지뿐이었다.

이 패시브 시리즈는 어떠한 규칙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가장 먼저 생성되었던 절대자 시리즈.

이것들은 걸음, 호흡, 성장으로 도합 3가지다.

또한 이 3가지 스킬들은 모두 '경험치'와 관련된 패시브였다.

다음으로 전능자 시리즈 또한 도합 3가지였다.

그리고 이것들은 그 연관성이 작던 크던 '레벨'과 관련된 패시브였다.

이렇듯 3종류씩 어떠한 명확한 규칙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600레벨에 열리게 될 '신의 ??' 패시브도 3가지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 정도였다.

현재의 인우가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인 딱 여기까지였다.

"폐하. 제가 전리품 채취를 하겠습니다."

그때 들려오는 알렉산더의 목소리.

이에 인우는 생각을 그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 분신들까지 동원해 드래곤들의 전리품을 채취하게 만들었다.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만큼, 전리품 채취에 꽤나 큰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이 긴 시간 사이에 드래곤들은 또 다시 들어올 테고, 인우는 지속적으로 전투를 할 생각이었다.

그 이전에 정비를 끝마쳐야 한다.

이제 인우는 광전사의 5차 각성 스킬인 광폭 전능검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

.

11. [광폭 전능검 Lv.3 (43%)] - 광전사 최후의 스킬. 체력이 5% 미만일 때 자동으로 발동됩니다.

.

.

광폭 전능검의 경우 과거의 인우도 자주 사용하지 못했던 스킬이었다.

발동 조건이 매우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죽기 직전에 튀어나오는 일격필살이었으니까.

그 특수성 때문에 스킬 레벨을 올리기도 굉장히 까다로웠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잠깐 서 있었던 것만으로 벌써 3레벨이 되어 있다.

어찌되었건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 전능검이 광전사의 마지막 스킬이라는 것이었다.

이로서 인우는 광전사가 배울 수 있는 모든 스킬들을 열게 된 것이다.

내려찍기, 대검관통, 참살, 포효, 광폭화, 광폭난무, 광기폭발, 광폭 어검, 광폭 무형검, 광폭 절대검, 광폭 전능검.

도합 11개의 스킬.

물론 이 외에도 인우는 도합 38개의 스킬이 존재하고, 이는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끝은 광전사라는 특성에만 해당되는 사항이었으니까.

그리고 이제 500레벨이 된 만큼 본래 착용하지 못하고 아공간에 넣어 두었던 아포칼립소 세트를 착용할 수 있었다.

이내 인우는 기존에 착용 중이던 아티펙트를 해제했다.

그런 뒤 아공간에서 꺼낸 아포칼립소를 하나씩 착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만한 엄청난 능력치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모든 저항력이 50% 상승합니다.]

[모든 방어력이 2배 증가합니다.]

[민첩이 100 상승합니다.]

[모든 회복력이 50% 상승합니다,]

[모든 공격력이 2배 증가합니다.]

[마력이 100 상승합니다.]

[모든 공격 속도가 5배 증가합니다.]

[모든 소모량이 50% 감소합니다.]

[근력이 100 상승합니다.]

[모든 스텟이 50 증가합니다.]

[모든 스킬 공격력이 25% 증가합니다.]

[근력이 100 상승합니다.]

[아포칼립소의 세트 효과가 생성됩니다.]

[아포칼립소 세트 ? 모든 스텟이 100 증가합니다.]

이즈음 되면 인우의 눈에는 드래곤이 정말로 도마뱀으로 보일지도 모를 정도다.

실제로도 인우의 앞에서만큼은 드래곤들은 최강이라는 호칭으로 불릴 수 없을 것이다.

에일린과 10마리의 장로 드래곤들이라면 모를까, 그 아래에 것들은 정말로 도마뱀이었다.

이윽고 모든 정비를 끝마칠 즈음, 분신들과 알렉산더는 유니크와 레전드 스킬 볼을 채취했다.

레전드 4개.

유니크 35개.

실로 엄청난 양이었다.

인우는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레전드 스킬 볼을 바라보았다.

일전에 보았듯, 레전드는 100%확률로 스킬을 습득하며, 나아가 30%의 확률로 히든 스킬을 습득한다.

망설일 필요가 있을까?

인우는 곧바로 스킬 볼을 삼켰다.

['요리의 손맛'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요리의 손맛 Lv.1 (5%)] - 더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 뭐, 요리라는 행위에 이 스킬까지 입혀진다면 꽤나 그럴듯한 요리를 만들 수도 있을 거다.

스킬의 힘은 위대하니까.

하지만!

"장난치냐? 나더러 요리를 하라고?"

첫 번째는 인우에게 있어서 정말로 끔찍한 스킬이었다.

저도 모르게 불만스러운 혼잣말을 내뱉는 인우였다.

이어서 두 번째.

['매력의 화술'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매력의 화술 ? 대화를 할 때에, 상대방은 당신을 조금 더 신뢰하게 됩니다.]

이건 패시브였다.

누군가에겐 정말로 간절한 스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다 때려 부숴 버리면 되는데 화술이 필요할 것 같냐?"

인우에겐 불필요하다.

이어서 세 번째.

['쉴드'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쉴드 Lv.1 (5%)] - 시전자의 육체에 마나로 이루어진 쉴드를 소환합니다.

"후우. 그래 그나마······."

그나마 필요성이 있는 스킬이다.

그리고 이제는 마지막 레전드 스킬 볼이 남아 있었다.

인우는 스킬 볼을 삼켰다.

[히든 스킬 '폴리모프 ? 오크 광전사'를 습득하였습니다.]

[폴리모프 ? 오크 광전사 Lv1 (5%)] - 오크 광전사로 폴리모프합니다. 폴리모프 시, 오크 광전사의 '투지'특성이 생성됩니다. (레벨이 오를수록 투지의 효율이 증가합니다.)

"······."

인우는 침묵했다.

마지막 스킬은 히든이 떠 주긴 했다.

하지만 이건 뭐······.

제라랑 친구 해도 되겠다.

도대체 이 스킬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래 뭐, 히든 스킬이니 한번 써 보긴 해야 할까?

인우는 여전히 침묵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즈음, 울트라 게이트 내부로 드래곤 한 마리가 들어섰다.

-크으으으으. 웬 인간들··· 억!

드래곤은 말을 내뱉다 말고 난데없이 꽂혀 오는 보이지 않는 칼날에 타격 당했다.

그리고 드래곤은 엄청난 고통을 느낌과 동시에 살벌한 중얼거림을 듣게 되었다.

그 중얼거림은, 드래곤으로서는 영문조차 알 수 없는 종류의 말이었다.

"오크 광전사라고? 장난하냐 도마뱀?"

-그게 도대체 무, 무슨 말··· 크으으으윽······.

인우의 무형검은, 드래곤을 한 방에 골로 가게 만들고 있었다.

-크헉. 허··· 허······.

드래곤은 숨통이 끊기는 그 순간까지도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명실상부 지상 최강의 존재인 드래곤이 원킬이라니.

[경험치를 150,000,000+150,000,000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놈을 처리한 인우가 분신들을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놈의 몸에서 레전드 스킬 볼을 빼 와."

이번에도 똥 같은 스킬이 뜬다면, 앞으로 들어올 드래곤들은 곱게 죽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졸지에 드래곤들은 레전드 스킬 볼의 확률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게 생겼다.

0166 / 0208 ----------------------------------------------

166화 레전드 스킬 볼 대량 흡입

분신들은 인우의 명령에 따라 레전드 스킬 볼을 채취해 왔다.

이윽고 인우의 손에 레전드 스킬 볼 한 개가 들어왔다.

인우는 볼 것도 없이 그것을 삼켰다.

[히든스킬 '발록 킹 소환술'을 습득하였습니다.]

[발록 킹 소환술 Lv.1 (5%)] - 발록 킹을 소환합니다. 발동 시, 10분의 캐스팅 시간이 필요합니다. (레벨이 오를수록 발록 킹의 위력이 증가합니다.)

히든 스킬의 습득이 이렇게 간단히 이루어질 줄이야.

레전드 스킬 볼의 위력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이번에 얻게 된 스킬은 상당한 위력을 지닌 소환술이었다.

발록 킹 소환.

발록 킹은 헬탑을 제외한 일반 필드의 최상위급 보스 괴수였다.

미개척지대의 지배자랄까?

그러한 발록 킹을 소환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건 제법 유용할 거다.

그럴만한 이유가 존재했다.

소환술의 경우 어떠한 공식이 있었으니까.

그것은, 1스킬 레벨의 발록 킹은 일반 필드의 오리지널 발록 킹과 동등한 위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이 말은 즉,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하다못해 2스킬 레벨만 되어도 오리지널보다 강한 위력을 머금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네크로맨서들은 해골 소환술로도 데스나이트를 사냥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찌되었건, 현재 인우에게 있어서 이 소환술의 위력은 엄청나다 할 수 있었다.

금세 마스터에 이를 것이며, 하다못해 10분의 캐스팅 시간이라는 제약조차도 인우에겐 별다른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현재 인우는 '용언' 패시브가 존재하질 않나?

용언은 마나를 소모하는 모든 마법을 캐스팅 없이 즉시 시전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때문에 인우는 블리자드 같은 초대형 범위 마법도 즉시 시전하지 않나.

어느덧 인우는 발록 킹 소환술을 발동시켜보았다.

-크으으······.

그러자 1초도 되지 않아 곧바로 발록 킹이 소환되었다.

소환술에 목숨을 건 네크로맨서들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눈을 까뒤집고 기절초풍할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정작 발록 킹을 소환한 장본인인 인우는 무덤덤한 눈빛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족히 5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덩치.

머리끝에 달려 있는 거대한 두 개의 뿔.

-크르으으으······.

안구 속에는 눈동자 대신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보였으며, 나아가 온몸에 초고열의 불꽃이 일렁거리는 극강의 비주얼을 보여 주고 있었다.

하다못해 들고 있는 검조차도 불타오르고 있다.

그 모습에 팔이는 자신의 소환수인 용작두 광전사를 바라보며 앓는 소리를 냈다.

"대장 것이. 내 것보다. 훨씬 크네······."

녀석은 일전에 유니크 스킬 볼을 통해 이것을 배웠었고, 현재 팔이의 용작두 광전사는 마스터 레벨이었다.

하지만 용작두와 발록 킹은 내뿜는 기세 자체가 달랐다.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후로는 속전속결이었다.

드래곤들은 들어오는 족족 인우의 무형검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현재 아포칼립소의 기능 중, 모든 소모량 50% 감소가 있기에, 이로 인해 무형검을 기존 2번에서 4번까지 시전할 수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인우는 그야말로 드래곤 학살자라 불릴 정도였다.

뿐만 아니었다.

드래곤들은 힘의 정수까지 두둑이 지니고 있었다.

그랬기에 인우는 힘의 정수를 아낌없이 사용하며 무형검을 날려 댔던 것이다.

어차피 사용하는 힘의 정수보다 드래곤들을 채취하며 얻어내는 힘의 정수가 더 많았던 것이다.

이즈음 되니 인우의 레벨은 벌써 550에 달해 있었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대략 50마리가 넘어 가는 드래곤들이 목숨을 잃었다.

본래 400레벨 대에는 드래곤 한 마리면 20개의 레벨도 한 번에 오르곤 했었다.

하지만 500에 이르며 경험치의 총량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났고, 이는 레벨이 오를수록 더더욱 극심하게 올라갔던 것이다.

어찌되었건 인우는 엄청난 폭풍 레벨 업을 할 수 있었다.

나아가, 10개의 레전드 스킬 볼과 80개의 유니크 스킬 볼을 모았다.

물론 의도적으로 모은 것은 아니었다.

한동안 드래곤들은 주구장창 들어왔었고, 이에 따라 전투는 쉼 없이 이어졌던 것이다. 이 때문에 전리품 채취는 맨 나중으로 미루어졌다.

그리고 그러한 드래곤들 중에서는 인우에게 죽을 바에 마법으로 육체를 소멸시키는 드래곤들도 있었고, 비교적 약한 드래곤들도 있었다.

그러한 놈들은 레전드 스킬 볼을 뱉지 않았기에, 현재 인우가 얻어낸 레전드는 10개가 되었던 것이다.

본래라면 40개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10개도 충분했다.

이것은 말 그대로 10개의 스킬로 돌아올 테니 말이다.

확률은 100%다.

인우는 울트라 게이트 내부에 수북이 쌓인 드래곤들의 시체 산 위에 앉아서 레전드 스킬 볼을 하나씩 삼키기 시작했다.

[히든스킬 '그림자 은신술'을 습득하였습니다.]

[그림자 은신술 Lv.1 (5%)] - 그림자가 지는 지역에 몸을 숨길 수 있습니다. (레벨이 오를수록 은신의 효율이 증가합니다.)

첫 번째부터 운이 좋다.

암살 계열 초인의 숨겨진 스킬이 떴다.

인우는 그렇지 않아도 극강의 파괴력을 지닌 광전사다.

그러한 광전사에게 은신술이 주어진다는 것 자체가 이미 사기적이라 할 수 있었다.

['아이스 볼'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아이스 볼 Lv.1 (5%)] - 마력으로 이루어진 얼음 덩어리를 생성합니다.

이것은 그냥 파이어 볼의 물 속성 버전이었다.

더울 때나 몇 번 써야겠다 싶었다.

스킬의 홍수에 직면하니, 이러한 잡기술이 인우의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체력 포션 제조'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체력 포션 제조 Lv.1 (5%)] - 괴수의 피를 이용해 포션을 제조합니다. (레벨이 오를수록 포션의 효율이 증가합니다.)

사실, 모든 드래곤의 피를 퀸에게 줄 생각이긴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피는 남을 테고, 인우는 그러한 피를 이용해 포션을 제조할 수도 있게 되었다.

['블링크'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블링크 Lv.1 (5%)] - 시야에 잡히는 지역에 한하여 순간이동을 합니다. (먼 거리를 이동할수록 높은 마나를 소비합니다. 레벨이 오를수록 소비 마나가 줄어듭니다.)

이건 일이가 지구로 드래곤들을 도발하러 갔을 때에 배워 왔던 스킬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인우도 배웠다.

블링크는 매우 유용할 수밖에 없었다.

체력이 낮은 마법사들이 순간적인 적의 공격을 피해 내기 위한 마법이었으니까.

지금 시점에서 인우가 필요하다고 할 만한 스킬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히든 스킬 '모든 독 저항'을 습득하였습니다.]

[모든 독 저항 ? 모든 독을 저항합니다.]

.

.

[히든 스킬 '전설의 주먹'을 습득하였습니다.]

[전설의 주먹 ? 맨손 전투력이 4배 증가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아포칼립소의 세트로 바꾸며 바투의 초월의 팔찌를 해제했었다.

이에 따라 맨손 전투력의 위력이 감소했었는데, 이것으로 충분히 그 자리를 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암살검'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암살검 Lv.1 (5%)] - 대상이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 공격할 시에 발동됩니다.

이것은 그림자 은신술과 함께 사용한다면 극강의 효율을 발휘할 것이다.

그나저나 암살 계열의 스킬이 꽤나 나온다.

모든 드래곤들을 죽이고 평화가 도래해 올 때, 곰탈을 뒤집어쓰고 프로킨에서 암살자 집단이라도 꾸려야 하려나?

인우는 그런 우스꽝스러운 생각을 했다.

['블러드 볼'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블러드 볼 Lv.1 (5%)] - 적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구체를 소환합니다. (레벨이 오를수록 흡수율이 증가합니다.)

.

.

['헤이스트'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헤이스트 Lv.1 (5%)] - 순간적으로 몸의 움직임을 빠르게 만들어 줍니다.

.

.

이로써 9개의 스킬을 얻어냈다.

그리고 이제 인우의 손에 남아 있는 건 마지막 레전드 스킬 볼이었다.

.

.

['대상 축소'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대상 축소 Lv.1 (5%)] - 지정한 대상의 크기를 축소시킵니다. (생명체에겐 사용할 수 없습니다. 레벨이 오를수록 축소의 효율이 증가합니다. 축소된 대상을 향해 다시 한 번 대상 축소를 시전하면, 대상은 본래의 크기로 돌아옵니다.)

마지막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 만한 스킬이 떴다.

"축소···축소라······."

사실 이 마법이 생명체에게 사용 가능했다면 말도 안 되는 위력을 발휘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당연한 제약이 걸려 있었다.

때문에 이것은 주로 물건의 크기를 줄일 때 사용되곤 한다.

무거운 짐들도 대상 축소를 이용한다면 손쉽게 운반이 가능해지니 말이다.

"아."

그리고 그때.

인우는 무언가가 떠오른 듯 자신이 깔고 앉아 있는 드래곤들의 시체를 향해 대상 축소를 시전했다.

생명체에게는 사용이 불가능하지만, 이미 숨이 끊긴 드래곤들은 생명체라 불릴 수 없었다.

필시 사용이 가능할 것이다.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지금 부피가 너무 커서 아공간에 따로 챙겨 넣지도 못하는 이 시체들을 모조리 챙길 수 있을 거다.

-후우우우우웅

철퍼덕-

어느덧 대상 축소 마법이 발동되었고, 인우는 곧바로 바닥에 꺼지듯 내려앉으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드래곤은 3미터 정도의 크기로 확연히 줄어들어 있었다.

"오호."

인우는 볼 것도 없이 스무 구의 시체를 향해 대상 축소를 시전했다.

그런 뒤 그 시체를 모조리 아공간에 챙겨 넣었다.

이것들은 전부 다 전설의 무구가 될 좋은 재료였으니까.

* * *

정인우를 찾기 위해 지구로 넘어왔던 수백 마리의 드래곤들.

그 중에서는 지구에 왔다가 눌러 붙은 드래곤들도 다수 존재했다.

드래곤들이란 족속들은 수천 년의 세월을 사는 만큼 인생이 따분하다 여기는 놈들이다.

그러한 녀석들이 처음 지구라는 차원에 넘어 왔을 때, 녀석들은 지구의 현대 문물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뭐 마법도 아닌 것이, 마법 정도의 위력을 보이는 물건들 투성이었으니 말이다.

네모난 상자 안에서 떠드는 사람들.

말이 있는 것도 아닌데, 네 개의 바퀴를 달고 홀로 질주하는 차.

장작을 태우지 않아도 불꽃이 발생하는 놀라운 물건.

이러한 모든 것들은 일부 드래곤들의 눈을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프로킨이라는 대륙의 역사를 함께해 온 드래곤들이다.

이미 알건 다 알고 배울 것도 없었다.

그런데 지구에는 배울 것도, 알고 싶은 것도 수두룩했던 것이다.

이곳은 그야말로 파라다이스였다.

그리하여 일부 드래곤들은 울트라 게이트로 진입해 프로킨으로 가는 대신 지구에 눌러 앉아 버렸다.

아예 지구에 레어 건설을 시작하는 놈도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어떤 녀석은 쑥대밭이 된 지구의 인간들이, 다시금 현대 문물을 일으켜 세울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하기도 했다.

그 모든 것들은 순전히 놈들의 욕망 때문이었다.

세상천지에 마법보다 재미난 물건들이 가득한 세상이 존재하다니!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드래곤들이 발광하는 물건은 바로 스마트폰이었다.

그 안에는, 세상 모든 것이 들어 있었으니까.

아니 이게 말이나 되는가?

이 조그마한 기계 안에 없는 게 없다니.

그리하여 세상(?)을 손에 쥔 일부 드래곤들은, 또 다른 자신들의 세상을 등지고야 말았다.

이미 그들의 머릿속에, 정인우와의 전쟁과 같은 고리타분한 것들은 잊혀진 지 오래였다.

0167 / 0208 ----------------------------------------------

167화 기 싸움 (1)

이즈음.

에일린과 10마리의 장로 드래곤들은 불길한 징조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어떻게 된 것이 동족들은 아직까지 단 한 녀석도 돌아오지 않는단 말인가?

이미 지구에서 프로킨으로 빠르게 복귀하라 명령을 한지 오래다.

그런데도 깜깜 무소식이라니!

'혹시······.'

설마 지구에서 무슨 일이 터진 것은 아닐까?

에일린은 불안했다.

걸리는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구라는 차원을 소멸시키진 않았지만, 그곳에 엄청난 깽판을 놓고 왔다.

그로 인해 지구에 헬게이트를 열었던 상위의 존재가 분노한 것은 아닐까? 무언가를 위해 노리던 땅을, 에일린을 포함한 드래곤들이 휘저어 놓아서 분노했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지구에 있던 드래곤들이 상위의 존재에게 당한 채 넘어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에일린은 그러한 생각을 했다.

그녀로서는 당연히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에일린이 보기에 확실해 보이는 것은 딱 한 가지뿐이었다.

정인우는 자신의 레어를 박살 낸 뒤 단단히 숨어 버렸다.

그렇기에, 현재로서는 숨어 있는 정인우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동족들에 대한 일은 그 이후에 해결할 셈이었다.

정말 상위의 존재가 개입한 것이라면 이것은 보통 민감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에일린은 10마리의 장로 드래곤들을 이끌고 루피안의 왕궁으로 들어섰다.

정인우의 수하들을 모조리 소집하여 놈의 행방을 찾기 위해서였다.

인간의 형태로 폴리모프한 이들은 살벌한 기세를 풍기며 루피안을 찾았다.

한편 연병장에서 스킬 수련을 하고 있던 루피안은 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헐레벌떡 자신의 궁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루피안은 현 프로킨에 존재하는 최강의 생명체라 평가받고 있는 에일린을 보게 되었다.

드래곤들의 왕, 로드 에일린.

한 왕국의 국왕인 루피안조차도 에일린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

그녀의 첫인상은 무척이나 강렬했다.

드래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고 일컬어지는 골드 일족. 그리고 그 일족 중에서도 극강의 미(美)를 갖추고 있다는 로드 에일린.

루피안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숫자의 궁녀들을 접해 보았지만, 저렇게 아름다운 생명체는 맹세코 처음 보았다.

그래서였을까?

루피안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잠시 넋이 나가 있었다.

에일린은 그러한 루피안을 한심한 눈동자로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이 왕국의 왕인가?"

"······아, 아! 그, 그렇습니다!"

"정인우. 그놈은 어디에 있지?"

다짜고짜 본론부터 꺼내든 에일린은, 당장이라도 눈앞에 있는 벌레 같은 인간을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그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루피안은 여전히 넋이 나간 어조로 답하기 시작했다.

"모, 모르겠습니다. 황제 폐··· 아니, 정인우는 일언반구 말도 없이 알렉산더라는 자를 데리고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지금 당장 대륙의 모든 왕들을 소집해서, 놈을 찾아내라."

"며, 명을 받들겠습니다! 아아, 그리고 황제의 가족들이 엘리의 왕궁에 머물고 있는 줄로 압니다."

루피안은 촉새처럼 입을 나불대고 있었다. 로드가 직접 나선 이상, 정인우도 이제 끝이다.

루피안이 취할 방향은 명백했다.

황제를 버리고 드래곤에게 붙는다.

이윽고, 예상대로 에일린의 눈동자가 살벌하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곳으로 날 안내해라."

"네, 넵! 가시지요!"

* * *

"드래곤 놈들은 이제 더 이상 오지 않으려나 보네."

울트라 게이트에서 5일 가량을 머물렀다.

한동안 꾸준히 이곳으로 들어오던 드래곤들이었다.

그러나 어제부터 드래곤들은 단 한 마리도 들어서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못해도 수백 마리의 드래곤들이 아직도 지구에 머물고 있다는 뜻이었다.

프로킨과 통하는 차원의 통로는 이곳 한 군데뿐이었고, 놈들은 어떠한 이유 때문에 더 이상 넘어오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이유가 도대체 무얼까?

인우는 잠시 고민해 보았다.

하지만 쉽사리 예측되진 않았다.

순간, 인우는 지구로 가 볼까 하다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프로킨에 벌려 놓은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에일린이 프로킨에 있다는 걸 안 이상 굳이 지구에 갈 필요가 없어졌다.

이윽고 무언가를 다짐한 듯한 인우는 알렉산더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알렉산더."

"예. 폐하."

"가자. 로드 족칠 때가 온 것 같다."

이제는 강해질 대로 강해진 인우였다.

전쟁은 오래지 않아 끝이 날 테고, 머지않아 에일린은 인우의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 * *

지구.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이곳 도심 한복판이 강진이라도 만난 듯 개박살이 나 있었다.

부서진 건물들의 잔해와, 인력거인 릭샤(Rickshaw)가 이리저리로 굴러다닌다.

그러한 도심 한복판에 붉은 복면의 사내와 예쁘장한 여자가 서로를 노려본 채 서 있었다.

거대한 덩치를 지닌 사내는, 자신의 키만한 대검을 움켜쥔 채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압!!"

그 외침에, 여자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양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러자 여자의 몸에서 새하얀 빛무리가 터져 나왔고, 이윽고 여자는 거대한 덩치를 지닌 드래곤으로 변했다.

-크으! 지구에도 너처럼 강한 인간이 존재했다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 물음에도, 사내는 대답 없이 대검을 치켜 올렸다.

그러자 사내의 대검에서 길쭉한 검강이 피어올랐고, 이내 대검은 허공에 두둥실 떠오르며 드래곤에게로 쏘아져 나갔다.

쐐애애애액!

그 엄청난 기세에 드래곤은 단숨에 블링크를 시전하며 사내의 후방을 노렸다.

그러자 사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후방의 드래곤을 향해 보이지 않는 칼을 꽂았다.

파드드드드득!

그 칼날은, 드래곤의 강력한 비늘 사이를 헤집으며 살갗을 가볍게 가르고 근육을 짓이겼다.

찢겨진 근육 사이로 파고든 칼날은, 빛 한 점 본 적 없었던 내부의 장기들을 갈라냈다.

이윽고 무언가가 터져나가는 끔찍한 소음과 함께 드래곤의 비늘 사이로 핏물이 분수처럼 튀어나왔다.

-크아아아아아아아!

드래곤은 난생 처음 느껴보는 끔찍한 통증에 도심이 흔들릴 정도의 비명을 내질렀다.

-감히! 벌레 같은 인간 놈이!!

"으라아아아아!"

붉은 복면의 사내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기합을 내지르며 대검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후웅!

허공이 찢기는 소리와 함께 대검의 칼날이 드래곤의 심장을 노린다.

드래곤은 위기를 느낌과 동시에 뒤로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사내는 이번에도 기다렸다는 듯한 움직임을 취했다.

푸슈우우우웅!

사내의 몸이 멀어지는 드래곤을 향해 마치 대포알처럼 쏘아져 나갔다.

이어 사내는 창처럼 꼬나 쥔 대검을 드래곤의 종아리에 꽂아 버렸다.

푸욱!

-크아아아아! 이놈!!

드래곤은 미칠 듯한 통증에 분노하며 제 발을 향해 브레스를 날렸다.

그러자 사내는 브레스에 정면으로 응수하며 하늘 높이 대검을 치켜 올렸다.

후우우우웅!

그런 뒤 드래곤의 발끝을 향해 대검을 내려찍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쿠우우우우웅!

-크아아아아아아아!

드래곤은 브레스를 내뱉다 말고 거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 다시금 사내는 보이지 않는 칼날을 쏘았다.

파바바바바밧!

-커어억!

그 최후의 일격에 드래곤의 거대한 동공에 힘이 풀리며 이내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쿠우웅!

"후우우우."

그제야 사내는 대검을 거뒀다.

그런 뒤 익숙한 손길로 드래곤의 시체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이내 드래곤의 몸에서 황금색 구슬 여러 개와, 투명한 색상의 스킬 볼, 그리고 무지개 색깔의 스킬 볼을 채취했다.

사내는 황금색 구슬은 아공간에 넣어 두었고, 스킬 볼들은 볼 것도 없이 모조리 삼켜 버렸다.

그런 뒤 땅바닥에 대검을 꽂아 버렸다.

푸욱!

그리고 그 대검에 등을 기댄 채 편한 자세로 바닥에 앉았다.

"참, 길었구나."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사내는 이내 상념에 빠져들었다.

"후우."

그것은 사내로서는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기억이었다.

한국에 이어 중국에서까지 모든 것을 잃고 배회하던 사내.

그러던 어느 날 사내의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그림자와 같은 희끄무레한 잔영과 함께 나타난 존재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만 같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덜컥 막히고 입조차 쉬이 움직여지지 않았으니까.

이어 눈을 마주하는 순간 정신이 달아나며 죽을 것만 같은 공포감이 전신을 수놓았을 정도였다.

삽시간에 다리에 힘이 풀리고 바지춤이 축축하게 젖어오는데도 인지를 하지 못했다.

그러는 순간에도 그 존재는 그저 사내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눈빛.

그래, 그 눈빛만으로도 범접할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한참이 지난 후. 그 존재는 세상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만 같은 공허한 눈동자로 지천우를 직시하며 말했었다.

아직도 그 존재가 건넸던 말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힘을 주지. 지천우.

-···당신은 누구지?

-나는 악의 근원이며, 모든 악을 관장하는 존재. 다른 말로, 마왕이라고들 하지.

* * *

엘리 왕국의 엘리는 루피안의 전언을 듣고 곧바로 움직였다.

자그마치 드래곤이다.

드래곤들이 직접 루피안의 왕국으로 들어선 것이었다.

이즈음 되니 아무런 언질 없이 사라진 황제가 야속하기만 했다.

엘리는 이제 정말로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드래곤들이 왔다면 그 누구도 막지 못한다.

그들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황제뿐이다.

그런데 황제는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엘리는 답답함을 느끼며 곧장 이곳에 머물고 있는 제라와 루시 퀸에게 향했다.

"피하셔야 합니다!"

엘리는 다급히 제라와 루시 퀸을 붙들었고, 둘은 영문을 모르겠는지 눈만 끔뻑대고 있었다.

이윽고 루시 퀸이 안쓰럽게 떨리는 엘리의 어깨를 부여잡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언어가 다르기에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엘리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어보였다.

"괜찮아요. 진정하세요."

"하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루피안 녀석이 드, 드래곤들에게 붙었습니다! 지금 드래곤들이 이곳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피하셔야 합니다!"

엘리는 손짓 발짓을 총동원해가며 도망쳐야 한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제야 퀸은 엘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렴풋이 깨달았다.

이윽고 퀸은 단호히 말했다.

"그가 돌아오기 전까지, 난 어디에도 가지 않을 거예요."

이어서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제라마저도 한마디 거들었다.

"나도 안 간다."

제라는 엘리에게 호감이 있었기에 미소까지 지어가며 말하고 있었다.

이즈음 되니 엘리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셋이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어느덧 다급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신하의 외침이 들려왔다.

"여, 여왕 폐하! 루피안 폐하께오서 드래곤님을 모시고 궁에 들고 있사옵니다!"

"이익···! 루피안 이 촉새 같은 놈!"

엘리는 이를 갈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러자 다시금 루시 퀸이 차분한 어조로 엘리를 진정시켰다.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루시 퀸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려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

터벅- 터벅-

이윽고 셋이 머물고 있는 홀의 문이 벌컥 열리며 루피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서 비겁함이 가득 담긴 루피안의 외침이 홀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정인우! 어서 나와서 에일린님 앞에 무릎을 꿇어라! 그렇지 않으면 네놈 가족들이 모조리 몰살당할 것이다!"

정인우가 이곳에 있던 말던 상관없다.

중요한건 에일린의 앞에서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었으니까.

이미 대세는 기울어졌다 여기는 루피안이었다.

"정인우 이 겁쟁이 자식! 넌 이제 끝이다! 어디에 숨···!"

"그만."

그리고 그때.

루피안의 뒤에 있던 에일린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자 루피안은 금세 고개를 조아리며 뒤로 물러났다.

이윽고 에일린이 루시 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퀸 또한 에일린을 바라보았다.

에일린은 '소통'마법을 이용해 루시 퀸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네년이 정인우의 가족인가?"

그런데 그때였다.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그들이 있던 알현실의 문이 박살났다.

그 여파로 인해 주변은 뿌연 먼지가 가득히 들어차 버렸다.

터벅- 터벅-

희미한 시야를 뚫고,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퀸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어. 걔는 내 가족이다. 그나저나, 오랜만이다 에일린?"

이윽고 날카로운 인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0168 / 0208 ----------------------------------------------

168화 기 싸움 (2)

박살이 나 버린 문 사이로 뿌연 먼지가 피어오른다.

그 사이로 들려오는 정인우의 날카로운 목소리.

"어. 걔는 내 가족이다. 그나저나, 오랜만이다 에일린?"

그 한마디에 이곳에 모여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부서진 문 쪽을 향했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루피안이었다.

"히, 히익! 폐, 폐···아니, 정인우!"

루피안은 에일린의 눈치를 살살 살피며 인우의 호칭을 바꿔 불렀다.

그 모습만으로도 인우는 대번에 상황이 파악됐다.

인우가 살벌히 말했다.

"도대체가, 너는 어떻게 된 것이 부랄이 두 쪽이 났는데도 갱생이 안 되는 거냐? 혹시 한 개 더 있냐?"

인우는 루피안을 또렷이 직시했다. 그러자 루피안은 땀을 뻘뻘 흘리며 인우의 시선을 피했다.

'부랄'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그날의 끔찍했던 악몽이 절로 떠오른다.

에일린에게 붙긴 했지만, 그렇다고 정인우가 무섭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인우는 미친놈이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무섭다.

눈앞에 정인우가 떡 하니 등장하니, 그제야 오금이 저리는 루피안이었다.

그러길 잠시.

어느덧 에일린이 인우를 향해 말했다.

"정인우. 1년 만인가? 아직도 네놈이 나라와 황궁을 버리고 꽁지가 빠지게 도망치던 기억이 또렷하구나."

그것은 인우에게 있어서 잊고 싶은 치욕적인 기억이리라.

그럼에도, 뜻밖에 인우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에일린."

인우는 그저 에일린을 한번 불렀다.

잠시 메마른 입술을 쓰다듬던 인우가 돌연 이어 말했다.

"유언은 그걸로 끝이냐?"

"···뭐라?"

"네년 묘비명에 써 갈길 잡소리도 몇 자 내뱉어 봐라. 드래곤의 피로 지워지지 않을 묘비명을 써 줄 테니까. 그리고 그 무덤 위에 황궁을 재건해 줄 테니, 너는 죽어서도 내 밑에 깔려 있을 거다."

말을 마친 인우는 드래곤 본 대검을 빼들었다.

그런 뒤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눈동자로 에일린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과거처럼 물러서지 않는다. 도망치지 않을 것이며,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자리에 굳건히 박혀 있을 셈이었다.

로드가 강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보통의 드래곤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이를테면, 블랙오크의 일반 족장들과 바투정도의 차이였다.

프로킨에 존재하는 그 어떤 생명체보다 강력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

최강의 생명체는 에일린에서 자신으로 뒤바뀔 것이라고, 그럴 것이라고 인우는 생각했다.

이윽고 인우는 에일린에게로 향한 대검을 거두지 않은 채 퀸이 있는 쪽을 향해 말을 내뱉었다.

"아공간을 열 테니, 너희 모두 들어가 있어. 너희들이 들어가면, 이곳에 남아 있는 모든 것들을 깨부술 거니까."

그 말에 루시 퀸과 제라, 뒤이어 엘리와 그녀의 충신들이 인우의 아공간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에일린은 팔짱을 낀 채 여유롭게 그들을 지켜보았다.

어차피 정인우는 독 안에 든 쥐였으므로, 에일린은 여유가 있었다.

게다가, 에일린이 보기에 저것은 무척이나 멍청한 행동이었다.

때문에 에일린은 잠자코 지켜보고만 있었다.

터벅. 터벅.

어느덧 아공간에는, 마지막으로 루시 퀸이 들어서고 있었다.

하지만 퀸은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지 머뭇거렸다.

그 모습에 인우가 말했다.

"뭐해. 어서 들어가지 않고."

그 한마디에 퀸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간 억눌러 왔던 무언가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저는 왜 항상 지켜봐야만 하는 거죠? 왜 항상 주인님을 걱정해야만 하는 거죠? 주인님은 왜 항상 무서운 적들과 싸워야만 하는가요? 나는 늘 두려워요. 너무 무서워요. 주인님이 사라질까 봐요. 제발, 주인님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내 소원이고 행복이란 말이에요······."

인우로서는 처음 듣는 퀸의 솔직한 속내였다.

하지만 인우는 불안정한 퀸의 상태에도 결단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저 묵직한 어조로 한마디를 내뱉을 뿐이었다.

"소원 한번 소박하다. 일단 들어가 있어라 퀸."

자신이 행복해지는 게 그녀의 소원이란다.

나 원 참.

저것은 인우의 사고방식으로는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어느덧 인우는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리지 않고 아공간을 닫아 버렸다.

그런 뒤 다시금 에일린을 바라보았다.

에일린은 그제야 기다렸다는 듯이 웃겨 죽겠다는 투로 말하기 시작했다.

"재밌군, 정인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가족들을 아공간에 밀어 넣은 거지?"

"······."

"정인우. 넌 내 손에 죽는다. 그렇게 되면 아공간도 소멸하겠지."

"······."

"멍청한 인간 놈. 대답조차 못하는군. 역시나 이기적인 인간답게, 혼자 죽을 바에는 다 같이 죽겠다는 건가?"

에일린은 끝도 없이 쏘아 댔다.

그러자 뒤늦게 인우가 입을 열었다.

"우웩. 아, 미안 미안. 뭐라고 했냐? 내가 도마뱀이랑 오래 이야기를 나누면 이렇게 구역질이 나오는 병에 걸려서 말이야."

인우는 굉장히 능글맞은 어조였다.

구역질을 하며 내뱉는 인우의 말에 에일린은 어이가 없는지 답했다.

"이 건방···"

그러나 에일린의 말은 끝까지 이어질 수 없었다.

"아, 에일린. 혹시 그거 아냐?"

"무얼?"

"내 아공간에는 용용이도 있다."

"···뭐라?"

여유로웠던 에일린의 눈동자가 삽시간에 분노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인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는 날 죽이지 못해. 네가 말했듯, 내가 죽으면 아공간도 소멸한다."

"놈···!! 하다하다 이젠 거짓말까지 하는군. 내가 그 말을 믿을 거라 보는가?"

"뭐, 못 믿겠으면 말고."

인우는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야. 너는, 나를 그렇게 겪어봤으면서 아직도 나를 그렇게 모르냐?"

"······."

알다마다.

잔대가리라는 잔대가리는 있는 대로 굴려 가며 드래곤들을 귀찮게 했던 유일한 인간 놈인데.

그래, 정인우라면 그러고도 남을 놈이었다.

다른 곳도 아닌, 제 놈 아공간에 숨겨 두고도 남을 놈이란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 에일린을 협박하고도 충분할 정도로 미친 인간이다.

그러나 에일린으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어찌 되었든 인우를 제압하지 않고선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정인우······. 거짓말이라면 각오해라. 너라는 존재를 세상에서 지워줄 테니."

"거 참 도마뱀이 입만 살았네."

말을 마친 인우는 불식간에 광폭화를 시전했다.

뒤이어 모든 버프를 몸에 둘렀다.

그런 뒤 함께 왔던 알렉산더를 향해 말했다.

"알렉산더. 그 누구도 이 싸움을 방해하지 못하게 만들어라."

"명을 받들겠나이다."

든든하다.

인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단숨에 홀 내부의 커튼이 있는 곳을 향해 블링크를 시전했다.

후웅!

인우의 신형이 사라지며 커튼 앞에서 나타났다.

"놈!"

가소롭다는 듯한 에일린의 고함이 들려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우는 커튼의 그림자가 진 지역을 이용하여 그림자 은신술을 사용했다.

후웅!

순간 인우의 육체가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은신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에일린은 그러한 인우가 또렷이 보이기라도 하는 듯 인우를 향해 헬파이어를 난사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투명하게 타오르는 초고열의 불덩이가 커튼을 태우며 타올랐다.

그리고 그 불꽃 속에서, 투명한 쉴드가 빛나고 있었다.

마나를 이용한 쉴드로 에일린의 마법을 막아선 인우.

인우는 곧장 발록 킹을 소환했다.

그런 뒤 이번에는 발록 킹의 그림자 뒤에 은신했다.

-크워어어어어!

발록 킹은 인우의 명령에 따라 에일린에게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쿵! 쿵! 쿵!

거대한 발록 킹이 홀의 바닥을 박찰 때마다 지면이 흔들리며 커다란 소음이 울렸다.

에일린은 무식하게 달려오는 발록 킹을 향해 슬로우 마법을 사용했다.

지이잉-!

순간 발록 킹의 뜀박질이 슬로우 모션처럼 확연히 느려졌다.

"블레이즈 파이어."

에일린은 용언을 이용해 고위급 마법을 사용했고, 거대한 불덩이가 발록 킹의 육체를 강타했다.

콰르르르륵!

단숨에 발록 킹이 소멸한다.

그리고 그 순간.

타오르는 발록의 시체 뒤에서 인우가 대검을 역수로 틀어쥔 채 잽싸게 튀어나왔다.

"으라아아아아!"

인우는 그 자세 그대로 에일린을 향해 점프 찍기를 꽂았다.

콰드드드드드득!

허나, 인우의 공격은 애꿎은 바닥을 내려쳤고, 에일린은 이미 블링크를 통해 뒤로 피한 뒤였다.

인우는 볼 것도 없이 대검을 뽑은 채, 검신에 광폭 절대검을 입혔다.

새파란 검강이 일렁이자, 광폭 어검을 시전하며 대검을 날려 조종했다.

후우우우웅!

인우의 대검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허공을 찢으며 매섭게 날아왔다.

에일린은 그런 대검을 확인하자, 이번엔 허리춤에서 얄팍한 검 하나를 빼들었다.

에일린은 그 검에 인첸팅을 시전해 전격을 담았다.

이내 에일린은 보검을 휘두르며 인우의 어검을 막아서기 시작했다.

그러자 인우는 어검을 조종하는 한편, 양 주먹을 꽉 움켜쥔 채 에일린을 향해 내달려갔다.

다다다다다닥!

광기 폭발과 함께 비약적인 스피드를 머금은 인우의 육체는 눈으로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단숨에 에일린에게 닿은 인우는 곧바로 그녀의 복부를 향해 토네이토 펀치를 꽂았다.

커득!

허나, 에일린은 드래곤 스케일을 시전함과 동시에 인우의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막아섰다.

이제 둘의 거리는 지척.

인우는 조종하던 대검을 거둔 채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그런 뒤 에일린의 바로 앞에서 광폭 무형검을 사용했다.

쩌저저저저적!

순간, 보이지 않는 칼날이 에일린의 전신을 난도질하기 시작했고, 에일린은 눈을 부릅뜨며 고함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아!!"

"폴리모프 풀어라. 비늘을 모조리 벗겨줄 테니까!"

인우는 마주 소리치며 다시금 광폭 무형검을 시전했다.

* * *

'허, 허얼! 미, 미친 거다! 저건 미친 거야!'

루피안은 눈앞의 광경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에일린이 누구인가?

그녀는 지상 최강의 생명체다.

수백 마리의 드래곤들을 이끄는 대장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런 로드 에일린이 정인우에게 밀리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얘긴가?

물론 지금 에일린은 인간의 육체를 하고 있다.

때문에 최소 5배 이상 강해지는 드래곤의 육체가 아니긴 하다.

그렇기에 에일린이 폴리모프를 해제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따위 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여전히 이건 말이 안 된다!

프로킨의 오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더라도 저런 인간은 없었다.

드래곤 로드와의 전투에서 밀리지 않는 인간이라니?

'미친!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이즈음 되면 역사가 새로이 쓰여야 할 것 같았다.

도대체 정인우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정말 신이라도 될 참인가?

설마...정말로 로드 에일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건 아니겠지?

루피안은 금세 후회했다.

만일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아마 정인우는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였다.

저번에는 이빨이 뭉텅이로 나갔으며 생식기가 파열 됐다. 그런데 이번엔 두 번 째 배신이다.

그렇다면 못해도 생식기 파열보다 더한 형벌을 내릴 것이었다.

루피안은 금세 두려워졌다.

그래서 고래고래 외쳤다.

"에일린님! 어서 빨리 폴리모프를 해제하십시오! 아니, 아니 이럴 게 아니라!"

루피안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허리춤에서 에페를 꺼내들었다.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에일린이 승리할 수 있게 만들어야만 한다.

그랬기에 루피안은 이를 악물었다.

"으아!!"

"......"

그런데 그때였다.

척.

인우의 충신인 알렉산더가 루피안의 앞을 가로막았다.

알렉산더가 말했다.

"폐하께오서 명하시길, 그 누구도 이 전투를 방해하지 말라 하셨다."

"나, 나와라 이 미친놈아!"

"하아."

실성하다시피한 루피안.

그 모습에 알렉산더는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살벌히 말하기 시작했다.

"루피안. 너는 내가 누군지 잊은 건가? 나는 왕족 말살 집단의 수장이다. 지금은 폐하를 모셔야하기에 과거를 청산하였지만, 나는 지금도 네놈들을 말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

"잠자코 지켜보아라 루피안. 그리고 폐하의 처분을 기다려라. 너는 도망칠 수도, 그렇다고 에일린을 도울 수도 없을 것이다."

황제의 처분을 기다리라는 알렉산더의 말에, 루피안은 절망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새하얗게 변해가며, 바닥이 푹 꺼지는 기분이다. 지금 루피안은 이곳이 어디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혼이 달아나고 있었다.

0169 / 0208 ----------------------------------------------

169화 복수는 길고 잔인하게 (1)

루피안은 완전히 이성이 날아갔다. 도주는 꿈도 꾸지 못하겠지.

이윽고 알렉산더는 고개를 돌려 황제와 드래곤을 바라보았다.

드래곤, 에일린은 완벽히 수세에 몰려 있었다. 방어에만 급급했던 것이다.

솔직히 두 눈으로 목도하면서도 믿기지 않는다.

자신 또한 정인우와 같은 초인이기 때문에 더더욱 저 강함이 믿기지 않는 것이다.

이를테면, 국내의 탑 가수가 세계적인 탑 클래스의 가수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리라.

아는 만큼 보인다고, 지금 알렉산더가 보고 있는 인우의 전투력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물론 일전에도 인우가 드래곤들을 때려잡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때에는 냅다 무형검을 꽂으며 단번에 드래곤들을 아작 냈기 때문에 실질적인 전투를 구경할 순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인우는 지니고 있는 모든 전투 스킬을 사용해 가며 에일린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스킬에 대한 이해도나 그 응용력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수련이 된다 랄까?

하다못해 대검을 그러쥐고 있는 자세마저도 엄청났다.

지금 인우는 마치 야구배트를 쥐듯 가볍게 대검을 쥐고 있었는데, 이는 마치 어디로 공격이 튀어나온다 해도 너끈히 막아 낼 것처럼 자유로우면서도 강해 보였다.

한마디로 가볍다. 허나, 휘어질지언정 부러질 것 같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통의 인간들은 대검을 저렇게 쥐지 못한다.

수련할 때야 저것이 가능하겠지만, 목숨을 내놓는 실전에서, 그것도 드래곤 로드 앞에서 저렇게 긴장을 풀고 가볍게 검을 쥘 수 있다고?

그건 그야말로 말 같지도 않은 말이었다.

인우는 전투적인 멘탈마저도 타고난 것이라 볼 수 있었다.

겁 대가리를 상실한 비정상적인 뇌가 저렇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깡따구와 전투에 대한 이해도, 그리도 막강한 무력이 공존하는 인간이 정인우였다.

그야말로 인간들이 꿈꾸는 최종적인 진화의 표본이랄까?

한마디로 사기캐다.

이윽고 알렉산더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피가 끓는다.

"으아!!"

어느 순간 알렉산더는 저도 모르게 외침을 토해 내고 말았다.

* * *

'뭐야 저놈 갑자기.'

인우는 에일린을 몰아넣다가 난데없이 들려오는 고함소리에 힐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알렉산더가 두 주먹을 꽉 움켜쥔 채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붉은, 화상 자국이 그득한 녀석의 얼굴이 활화산처럼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이내 인우는 다시금 고개를 돌려 에일린을 바라보았다.

에일린은 안 그래도 백지 같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창백하게 질려 도화지 같았다.

하긴, 인우는 힘의 정수를 복용하며 그녀에게 도합 12방의 무형검을 꽂아 넣었다.

절대검과 모든 버프가 입혀진 무형검이었다.

그러니, 그리 맞고도 멀쩡하다면 드래곤이 아니라 신이겠지.

"하아. 하아. 하악. 정···인우······."

신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미인이 피범벅이 된 채 하얗게 질려 있다면, 한 번쯤은 측은하게 여길 만도 하건만, 인우의 얼굴은 뚱할 뿐이었다.

인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그녀를 향해, 도움의 손길을 내뻗는 대신 대검을 꽂아 버렸다.

"으라아아아!!"

콰득!

인우의 내려찍기가 에일린의 정수리로 향했고, 이에 에일린은 부들부들 떨리는 양손을 들어올렸다.

대검의 검신을 맨손으로 받아낸 그녀.

이윽고 둘의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자석의 다른 극처럼 꽉 맞물려 있던 대검과 에일린의 양손.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인우는 그 상태 그대로 무기 돌리기를 사용했다.

후웅! 후웅!

그러자 에일린이 풍차의 날개처럼 따라 돌아갔다.

그녀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애처롭게 돌아간다.

순간 인우는 대검을 놓았고, 어검을 이용해 대검을 띄웠다.

그리고 붕 떠 있는 그녀의 복부를 향해 토네이도 펀치를 날렸다.

퍼억!

"끄훕!"

에일린은 한 움큼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인우는 날아가는 그녀를 쫓아 달렸다.

죽기 직전까지 패 놓을 참이었다.

폴리모프를 한다면 더 좋다.

거대해진 덩치는 때릴 곳이 더 많았으니까.

"약한 척하지마라. 니 새끼가 지금까지 심심하다고 불태운 마을이 한 가득이고, 짓밟은 인간들이 셀 수 없을 지경이다."

다른 건 다 필요 없다.

그것만이 팩트다.

그녀는 악룡이고, 패고 또 패 주어도 죗값을 덜어 줄 수 없다.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잃은 양민들 중에서는, 한 아이의 아버지도 있었을 것이며, 갓난아이도 있었을 것이다.

부모의 생일상을 준비하다 변을 당한 효녀도 있었을 것이며, 들꽃을 따다가 수줍은 고백을 하던 시골 청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모든 이들이 저년의 브레스 한 방에 생을 마감했다.

이유?

이유라고 해 봐야 고작 심심해서가 다였다.

심심하다는 이유로 모든 것들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래 뭐, 수천 년의 세월을 살아간다면 뭘 해도 심심할 만하다.

그리고, 그렇게 심심한 인생이라면 인우는 기꺼이 그 심심함 대신 공포를 선사해 줄 생각이었다.

생전 느껴본 적이나 있었을까?

타오르는 마을에서 부모를 잃고 절규하던 꼬마 아이의 공포를?

아이를 잃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불꽃에 대항하며 타올라가던 부모의 공포를?

저 빌어먹을 도마뱀이 느껴본 적이나 있었을까?

"일어나!"

인우는 피범벅이 된 채 쓰러진 에일린의 얼굴을 향해 싸커킥을 날렸다.

퍽!

순간 토네이토 킥이 발동되었고, 그녀는 얼굴을 부여잡은 채 날아갔다.

이대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과거를 떠올려본다.

인우는 드래곤들의 횡포에 대항하던 유일한 인간이었다. 놈들의 횡포에 고통 받고 핍박받던 왕들을 대신해 홀로 싸웠던 인간이었다.

에일린에게, 양민들이 느꼈던 똑같은 고통을 선사하기 위해 헤츨링의 알까지 훔쳐 냈던 미친 인간이었다.

물론 그러다가 인우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었다.

"으라아아아아아!!"

인우는 날아가는 그녀를 향해 블링크를 시전했다.

후웅!

단숨에 그녀와 거리를 좁힌 인우.

인우는 그녀의 멱살을 틀어쥔 채 바닥에 메다 꽂아 버렸다.

크득!

홀의 대리석 바닥에 그녀의 육체가 처박혔다.

인우는 그녀의 몸 위에 올라 탄 채로 끝도 없이 주먹질을 했다.

퍽! 퍽! 퍽!

"크, 크흑! 그, 그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에일린은 별다른 방어조차 하지 못한 채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후우······."

그런데 웬일인지 인우가 공격을 멈췄다.

이내 인우는 에일린의 배 위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런 뒤 손을 뻗어, 어검을 이용해 떨어져 있던 대검을 불러들였다.

"······."

이윽고 인우는 살벌한 눈동자로 에일린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뒤 포효와 함께 그녀의 얼굴을 향해 내려찍기를 꽂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압!!"

쾅! 쾅! 쾅! 쾅! 쾅! 쾅!

에일린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무너지고 있었다.

* * *

이렇게 허무하게 죽일 생각 따윈 없었다.

인우는 상처입고 죽기 일보직전까지 내몰린 에일린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정···인우···날 어찌할 셈이지···?"

"······."

인우는 대답이 없었다.

다만 다시금 생각할 뿐이었다.

이제 에일린과 맞붙어도 밀리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 인우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녀에게 곧바로 죽음이라는 자비를 내려줄 생각이 사라진 인우였다.

자신은 앞으로도 더더욱 성장할 것이며, 에일린은 성장보다는 세월을 머금을 뿐일 테다.

그렇기에 지금 인우는 에일린을 말 잘 듣는 개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인우는 산산조각 박살이 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발악해라 에일린. 앞으로 너에게, 공포가 무언지 철저히 알려 줄 테니까."

드래곤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만큼 강인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정신력을 으깨어 귀여운 애완견으로 만들기 위해선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크게 어려운 것은 없다.

그저, 패고, 괴롭히고, 패고, 또 패면 된다.

사실 그것은 인우가 가장 잘하는 것이기도 했다.

인우는 적어도 '적'들에 한해선 자비를 몰랐으니까.

그 어떠한 사사로운 감정과 정에 휘둘리지 않는 인간이다.

그리하여 에일린의 눈에서 눈물이 나고, 제발 살려달라는 절규가 나오고, 나아가 주인으로 받들어 모시겠다는 충성의 맹세가 나올 때까지, 괴롭히면 된다.

그녀가 인간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어느덧 인우는 몸을 돌려 저 멀리로 사라졌다.

"······."

홀로 남은 에일린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동자를 한 채 사라져가는 인우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그 무언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반드시 존재한다.

헬게이트가 그러했다.

그냥 생긴 것이 아니란 말이다.

헬게이트를 생성한 장본인.

그는, 마계의 주인 마왕이었다.

마왕은 지구와 프로킨이라는 세계에 헬게이트를 생성했다.

그 두 곳에 헬게이트를 만든 이유는 간단했다.

식민지화를 위해서였다.

해서, 마왕은 그 두 땅에 입성하기 위한 사전 준비로서, 헬게이트를 만든 것이었다.

그 두 세계는 마계가 아니기에 '마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우선은 균열이 일어난 지역에 헬게이트를 마구잡이로 뿌려두는 것이 최선이었다.

다시 말해, 헬게이트는 마기를 뽑아내는 용도로 설치한 것이었다.

물론 인간들은 헬게이트를 단순히 괴수를 생성해 내는 지옥의 문이라 여길 테지만 말이다.

어찌되었건, 그리하여 마기가 그득히 차기 시작하면, 그때는 마왕이 직접 몸을 이끌고 현신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초창기 때부터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마기에 감염된 '모든' 인간들이 마족들만의 권능인 '레벨 업'을 각성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인간들은 헬게이트의 괴수들에게 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지구라는 차원의 인간들은 괴수들을 사육하고, 헬게이트에 철벽을 세워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엽기적인 행각까지 벌였다.

이즈음 마왕은 똥줄이 탔다.

이러다가 레벨이 높아진 인간 놈들이, 헬게이트를 클리어라도 하는 날에는 마기가 가득 차기도 전에 모든 일이 틀어지게 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머지않아 헬게이트를 최초로 클리어하 무지막지한 놈이 나타나 버렸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놈은 지구의 인간이었는데 프로킨에 있기도 했다.

인간의 몸으로 차원이동이라니.

가당키나 한가?

한데 자세히 보니, 그놈도 제 놈이 어째서 갑자기 프로킨에 떨어졌는지 몰라 하는 것 같았다.

어찌되었건 놈은 프로킨에서 최강의 자리를 꿰차며 헬게이트를 주구장창 파괴했다.

마왕은 당장이라도 놈을 죽이고 싶었지만, 지금으로선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중, 놈은 드래곤들과 시비가 붙었고 지구라는 곳으로 도주를 감행한다.

마왕은 당시를 회상해 보자면, 멍청한 인간 놈이라고 녀석을 양껏 비웃었노라고 기억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몸으로 차원이동을 하면 육체가 초기화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놈은 지구에서 적응하지 못할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건 웬걸?

놈이 알 수 없는 능력을 얻어 버렸다.

그것은 마왕으로서도 짐작하지 못한 능력이었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그러니까··· 놈은, 경험치가 계속 올랐다.

그 사실을 확인한 마왕은 지난 1년간 부지런히 움직여왔다.

잠자코 있다가는 놈에 의해 어떠한 변수가 생길지 모를 일이었다. 안 그래도 그 이후 간간이 헬게이트를 클러어하는 놈들이 나왔다.

나아가, 시간이 더 지난다면 지금 남아 있는 헬게이트가 모조리 클리어될 수도 있었으니까.

0170 / 0208 ----------------------------------------------

170화 복수는 길고 잔인하게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