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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주가 작전 2팀장으로 승진한 지도 벌써 3일이 지났다.

아마 지금이 가장 바쁠 시기일 것이다.

뭐, 터지기 직전의 팀을 맡게 됐으니 안 바쁜 날이 있겠냐만.

부족한 팀원도 충당해야 할 거고, 팀원들 랭크 현황과 스테이터스 성장, 동시에 필요 아이템 분석도 해야 할 거다.

당연히 직접 토벌에 나설 기회는 적어지겠지만, 본인의 성장을 위해선 무리해서라도 작전에 참여해야 한다.

무엇보다 팀장의 주 업무인 작전 기획도 해야 할 테니 당분간은 얼굴 보기도 힘들겠지.

그래, 이제 어엿한 팀장이니 그게 당연한 건데....

"선생님! 해체 아직 안 됐어요? 통로 청소는 다 끝났는데."

근데 왜 여기서 청소나 하고 있는 거지?

"...너 이러고 있을 시간 있냐? 일 안 해?"

"무슨 소리예요. 이것도 일이잖아요."

"아니... 하, 됐다."

팀장 되고 처음으로 하는 일이 던전 청소라니. 머리가 어떻게 되먹은 게 분명하다.

팀장이 저 모양인데 팀원들이 가만히 있을까 싶다.

만약 내가 저 녀석의 팀원이었다면 절대 가만 안 놔뒀다.

작전팀 코가 석 자인데 청소팀이나 도와주고 있으니 그 누가 좋아하겠는가.

당연히 2팀의 팀원들 또한 반발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래, 그게 당연한 건데....

"청소 팀장님! 여기 벽에 묻은 살점이 잘 안 떨어지는데, 이건 어떻게 합니까?"

"김준우 청소부님! 해체는 이 정도면 충분한가요?"

"야, 이 멍청한 새끼야. 아까 문소연 청소부님이 오 등분 하랬잖아! 사 등분 해놓고 뭘 충분하냐고 물어봐. 숫자도 못 세?"

"참 나, 지도 아까 실수해서 한상혁 청소부님한테 까여 놓고 훈수는.... 누가 보면 청소팀 선배인 줄 알겠네."

"...."

저 새끼들은 대체 왜 또 따라온 거지?

저 팀에는 제정신 박힌 놈이 한 명도 없는 건가?

"4등분도 괜찮아요! 나머진 저희가 할게요, 조금 쉬고 계세요."

"아닙니다! 이왕 도와드리는 거 끝까지 해야죠!"

"그래요? 음… 그럼 상혁 씨랑 같이 소독 작업 좀 해주실래요?"

"제가 아주 친절하게 알려드립죠. 하하하!"

"넵, 알겠습니다!"

첫 만남의 어색함이 무색하게 문소연과 한상혁 또한 어느새 부쩍 그들과 친해진 모양이었다.

뭐, 사람 좋아하는 박 팀장이야 말할 것도 없고.

"오늘 마침 비번인 친구들이에요. 선생님 만나러 간다고 하니까 바로 따라 나오더라고요."

"하아… 그 팀장에 그 팀원이라더니."

칭찬이 아닌데도 김민주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왜 온 거냐. 진짜 청소나 도와주려고 온 건 아닐 거고."

"아, 별 건 아니고요…. 이번 달 작전 기획을 해야 하는데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가다 못해 결국 말끝을 흐린다.

염치가 없는 건 아는지, 덩달아 고개도 밑으로 떨어졌다.

"에휴, 그럼 그렇지.... 어떤 건데. 말해봐."

김민주의 표정이 갑자기 환해졌다.

기회를 놓칠세라 곧바로 입을 열었다

"이번 달 저희 팀 작전 할당량이 50개 던전이거든요. 그런데 지금 인원으로는 아무리 계산을 해도 맞출 수가 없더라고요...."

"50개라… 많긴 하네."

그 정도 할당량이면 인원이 30~40명은 넘는 팀 수준인데.

쯧, 아무리 내놓은 팀이라고 해도 정도가 있지.

"아, 그리고 작전 난이도는 블루 등급이 최소예요. 그 밑으로는 할당량에 포함 안 된다고 본부장님이...."

"그거 구라야."

"...네?"

김민주의 눈썹이 물결쳤다.

"최소 등급은 본부에서 임의로 정해주는 거야. 협회 실적이랑은 크게 상관없어. 뭐, 그렇다고 정해준 등급이랑 너무 차이 나면 안 되긴 하는데.... 블루면 네이비 등급까지는 할당량에 포함돼."

"...그,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요."

뭐, 협회 내사에 직접 개입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모르는 게 당연하다.

팀장 단 지 10년이 넘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하물며 그저께 팀장 된 녀석이 알 수 있을 리가.

"아무튼, 네이비 등급은 아무리 많아도 3~4인이면 충분히 토벌하니까 그걸 위주로 가. 팀 실적이 신경 쓰이면 간간이 블루랑 그린 등급 섞어주고. 일주일에 한두 개 정도면 될 거야."

"자, 잠깐만요."

김민주가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눈을 반짝이며 받아 적을 준비를 마쳤다.

아주 만반의 준비를 해오셨네.

"일단 17명밖에 없으니까 저번처럼 세 팀으로 나눠. 하루에 토벌은 오전, 야간 타임으로 딱 2회. 그 이상은 팀원들 컨디션 때문에라도 무리야. 당일 작전을 나간 팀은 다음날 꼭 비번 주고. 그렇게 한 2주 정도 해보고 많이 힘들어한다 싶으면 지원팀에 요청해서 케어 한 번씩 받게 해줘."

"네, 네. 알겠어요."

열심히 받아 적길 잠시.

이내 김민주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선생님한테는 항상 신세만 지네요."

어째 무기력한 목소리.

나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됐어. 볼일 다 봤으면 이제 가봐. 청소는 우리가 마무리할 테니까."

"제가 불편하세요?"

"...네가 아니라 쟤가 불편해."

나는 뒤쪽을 향해 고갯짓했다.

송혜연 보좌관이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고 있었다.

"왜요. 아는 사람 아니셨나요?"

"...무슨 소리냐. 난생처음 보는 사람인데."

"난 또. 어제 뚫어져라 쳐다보길래 전 여자 친구라도 되는 줄 알았죠."

김민주의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왠지 날카로웠다.

대체 뭔 헛소리를 하는 건지, 원.

"그런데 팀원들은 제 발로 따라왔다고 쳐도, 보좌관은 왜 데려온 거야?"

"저도 따라올 필요 없다고 했는데, 혼자 보낼 수 없다면서 제 발로 따라왔어요. 물론 청소까지 거들 필요는 없다고는 했지만요."

"…파이팅 넘치네."

"신입이니까요."

다시 한번 보좌관을 흘겨보려다 포기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여전히 너무 매서웠던 까닭이다.

어째 아까부터 뒤통수가 따끔따끔하더라니....

"김민주 팀장님! 이제 슬슬 가셔야 합니다. 오후에 작전 총괄 회의 참석하셔야죠."

그때, 연신 시계를 힐끔거리던 송혜연 보좌관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시간 아직 있잖아. 점심은 먹고 가야지."

"…아, 네, 네! 그럼, 여기 근처 한정식집으로 예약해둘까요?"

"그래. 9명으로 예약해줘. 청소팀 분들도 같이 가실 거죠? 승진 턱 쏠 생각인데."

"우리야 좋죠!"

한상혁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럼 혜연 씨, 먼저 나가서 예약해줄래? 던전 안에선 어차피 전화도 안 되고."

"네! 알겠습니다!"

걷는 법이 없다.

송혜연 보좌관은 곧바로 던전 밖으로 도도도 뛰어갔다.

나는 멀어져가는 그녀를 바라보다 이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 통화되는데?"

"저도 알아요. 혜연 씨 없을 때 할 얘기가 좀 있어서."

만난 지 3일 만에 뒷담화인가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건 아니었다.

"선생님, 혹시 지원팀에 아는 사람 있어요?"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야기다.

나는 눈을 한 번 끔뻑였다.

"아니. 그건 왜?"

"다른 건 아니고… 지원팀에서 선생님을 한번 뵙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요."

"지원팀에서 나를? 왜?"

"저야 모르죠. 그래서 선생님한테 물어본 거잖아요. 아는 사람 있냐고."

나는 곰곰이 생각을 정리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짚이는 게 없다.

아는 사람이 있긴 한데, 어차피 나 혼자 아는 사람이고. 그쪽은 내가 누군지도 모를 텐데.

아니면 혹시… 나한테 경고하려는 건가?

청소팀 주제에 작전팀 하나를 터트려버렸으니, 괜히 자기네들도 건드릴까 불안해서 미리 선을 그으려고?

어찌 됐든 좋은 일 때문에 보자는 건 아닌 듯하네.

음, 가지 말아야지.

"...시간 날 때 한번 찾아가겠다고 전해줘."

"네. 그럴게요."

"그런데 딱히 별 얘기도 아니구먼. 왜 굳이 보좌관 없을 때 하는 거야?"

"아 그게… 저도 잘 이해는 안 가는데, 헌터관리실 쪽에서 혜연 씨한테는 비밀로 해달라고해서요."

나는 미간을 좁혔다.

"뭔 소리야 그게."

"그러니까, 지원팀에서 선생님 뵙고 싶다는 거요. 혜연 씨는 몰랐으면 한대요. 선생님을 워낙 안 좋게 봐서 분명 싫어할 거라나?"

"그 사람은 왜 또 날 안 좋게 본대?"

"글쎄요. 전 남친이라 그런 거 아니에요?"

"...."

김민주가 방긋 미소를 지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묘한 느낌이다.

"예약하고 왔습니다!"

"수고했어요."

순식간에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내가 방금 뭘 본 건가 싶다.

"자, 다들 빨리 마무리하고 밥 먹으러 가자!"

"역시 여럿이 하니까 금방 끝나네요."

"리미트 한 시간 남기고 끝내는 건 거의 처음 아닙니까?"

청소팀은 서둘러 장비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작전팀은 누구랄 것 없이 거들었다.

작업이 빨리 끝나서인지, 아니면 점심을 얻어먹을 생각에 들떠서인지. 그도 아니면 친구가 생겨서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무척이나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뭐....

나쁘지 않은 풍경이었다.

***

「뉴스 속보입니다.」

「오늘 오후 12시 30분경, 남자 중학생 2명이 토벌이 완료된 건물형 던전에 실수로 출입했다가 가스에 중독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피해 학생들은 해당 사고에 대해 '던전 입구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일반 건물과 착각했다'라고 말했습니다.」

「피해 학생 보호자들 또한, 바리케이드 없이 던전을 방치한 협회에 대해 자세한 원인 규명과 강력한 책임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다행히 피해 학생들은 1도 화상의 경미한 상처만 입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편 협회는 부주의한 던전 관리의 원인이 무엇 때문인지에 대해선 아직까지 말을 아끼고 있는....」

본부장실.

호출받은 김민주 그리고 송혜연 보좌관이 서민철 본부장 앞에서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 자리에 함께였다.

청소팀에 내려온 다급한 호출에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박 팀장 대신 올라왔는데… 상황을 보아하니 좋은 선택인 듯싶었다.

"뭐냐?"

이윽고 서민철 본부장이 핸드폰을 우리 앞으로 툭 내던졌다.

김민주의 얼굴은 이미 사색이었다. 덩달아 입술까지 파르르 떨고 있었다.

"뭐냐니까? 이게 지금 뭔 일이냐고!"

서민철 본부장이 소리를 빽 지르자, 동시에 김민주의 어깨가 움찔했다.

"더, 던전은 애초에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누가 그걸 몰라? 그럼 쟤들이 던전인 걸 알고 기어들어 갔겠냐? 니네가 던전을 방치해서 착각했다잖아! 바리케이드는 대체 왜 안 친 거야! 기본이잖아, 기본!"

김민주는 내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크게 안 다쳐서 다행이지, 조금이라도 크게 사고가 났으면 니네는 진짜...."

서민철 본부장이 안도인지 아쉬움인지 모를 한숨을 쉬었다.

"아무튼,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사고 원인을 공표해야 해. 배상이랑 책임은 그다음 문제고. 그래서, 대체 누가 실수한 거야?"

"...."

잠시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물론 이 상황을 모면할 변명을 생각하고 있던 건 아니었다.

단지....

[폴리모프 - 해금 조건 : 일반 시민 내 던전 청소팀에 대한 관심도 상승]

여기서 이걸 푸냐 마냐, 고민하는 중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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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장실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무거웠다.

서민철 본부장 또한 평소답지 않게 진지한 얼굴이었고, 덩달아 김민주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송혜연 보좌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점심 먹으러 가자고 재촉하는 바람에.... 제가 아니었으면 청소팀은 평소처럼 완벽하게 정리했을 겁니다."

먼저 입을 연 건 김민주였다.

듣는 사람 귀까지 떨릴 정도의 목소리였다.

이윽고 본부장이 무어라 말을 꺼냈지만, 나에겐 들리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내 머릿속엔 온통 다른 생각뿐이었으니까.

일반 시민 내 던전 청소팀에 대한 관심도 상승.

여기서 사고 책임을 청소팀으로 공표한다면 필연적으로 관심도는 오를 수밖에 없다.

뭐, 당연히 긍정적인 관심은 아니겠지만....

"제 책임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두 사람의 대화를 자르듯 말했다.

"...뭐?"

"네, 네?!"

"제가 한 실수입니다. 그러니 전부 제 책임입니다."

"서, 선생님 책임이라뇨?! 그게 무슨 말이에요!"

"조용히 해. 본부장님 앞이야."

완강하게 말하자 김민주가 움찔했다.

당연히 이렇게 되면 인터넷이든 언론이든 한동안 물고 뜯기 바쁠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애초에 바리케이드 설치는 법적으로 정해진 사항은 아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정부에서 '권고'하고 있는 것뿐이니까.

불행 중 다행으로 학생들의 부상도 아주 경미한 수준이고.

뭐, 어찌 됐든 사고 책임은 져야겠다만… 그 경중이 생각보다 크진 않다.

경험상 이 정도 사안은 한 달을 못 간다.

딱 한 달만 지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런 도박을 하지 않더라도 대중의 관심을 끌어낼 방법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아쉽게도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공동 프로젝트 때도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찼다가 후회하지 않았던가.

그땐 운이 좋아 해금할 수 있었다고 쳐도, 이번에도 그런 요행을 바랄 순 없다.

기회가 오면 잡아야겠지.

"청소팀이 실수한 거라고?"

"아뇨. 청소팀이 아니라 제가 실수한 겁니다."

"...허어."

서민철 본부장의 미간이 찌그러졌다.

당연히 청소팀 전체의 탓으로 돌릴 수도 없다. 시민들에겐 한 달이면 잊혀진다고 해도, 본부는 그렇지 않으니까.

팀 전체의 책임이 되면 단체 징계를 피할 수 없다. 본부 내에서 청소팀의 입지가 무너지면 앞으로의 해금은 어려운 수준이 아니라 불가능해진다.

그러니 여기선 던전 청소팀 소속의 일개 청소부의 잘못으로 돌려야 한다.

"원래 청소가 완료된 던전에 바리케이드를 놓는 건 제 역할이었습니다. 그걸 깜빡하고 식사하러 갔습니다. 그러니까 순전히 제 책임입니다."

"무슨 소리예요?! 선생님이 바리케이드 치는 거 제가 분명...!"

"김민주. 한 번만 더 목소리 키워라."

곁눈으로 한 차례 김민주를 쏘아보았다.

그리곤 다시금 서민철 본부장을 향했다.

"아무튼, 내일 있을 입장 표명. 정확하게 '던전 청소팀, 김준우 청소부'의 관리 실수라고 말씀해주십시오. 아니면 제가 직접 나가도 좋고요."

쐐기를 박아넣자 서민철 본부장은 오히려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러니까, 자네 혼자서 실수한… 거다?"

"네, 그렇습니다."

"...대체 무슨 생각인가?"

"아무 생각 없습니다. 사실을 말씀드린 겁니다."

"아무리 자네라도 징계를 피할 수는 없을 걸세."

경고하는 건지, 아니면 위로하는 건지 모를 말이다.

나는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징계 한 번에 스킬 해금이면 싸게 먹힌 거다.

"...알았네. 입장 표명은 내일 아침 9시로 잡아 놓을 테니까, 직접 나가게."

"네. 알겠습니다."

"이야기 끝났으면 다 나가봐."

내가 먼저 등을 돌렸다.

내 뒤를 따라 모두 본부장실을 나왔다.

"무슨 짓이에요?"

아니나 다를까, 기다렸다는 듯이 김민주가 쏘아붙였다.

"아, 뭐… 나도 바리케이드 친 줄 알았는데, 깜빡했나 보다. 어쩌겠냐. 내 실수인데"

"무슨 소리예요! 제가 선생님 바리케이드 설치하는 거 봤다고요. 심지어 저희보고 설치하는 동안 기다려달라고 하셨잖아요!"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어디서 귀찮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선생님이 청소팀 생각하는 건 알겠는데, 이건 진짜 아니에요. 왜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뒤집어쓰려는 건데요!"

"참 나...."

김민주의 목소리가 흔치 않게 격양되고 있었다.

내 속을 알 리야 있겠냐만… 그럼에도 퍽 답답했다.

에휴,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둘러대는 것도 일이네 진짜.

"맞아. 바리케이드 설치했어."

"그러니까요! 분명 다른 사람이 치운 걸 테니까, 그 사람만 찾으면...."

"어떻게 찾을 건데?"

"...."

꾹 다문 입.

김민주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내일 입장 표명 때, 사실 누군가 고의로 바리케이드를 치운 것 같습니다~ 떠들어 놓고, 결국 못 찾으면? 책임 전가한다고 사태만 더 커지는 거야. 최악의 경우엔 작전팀, 청소팀 둘 다 징계를 받을 수도 있고."

비장하게 둘러댔지만, 실상은 제발 좀 내버려두라는 소리다.

오히려 찾으면 나만 더 곤란해진다고.

"그럴 바엔 그냥 신입이 실수했다고 하고 끝내는 게 낫지. 어차피 신입한테는 큰 책임을 물을 수도 없고, 해봤자 모양만 잡을 테니까."

"선생님이 징계를 받잖아요. 아무 잘못도 없으면서...."

"딱히 상관없어."

징계 한두 번 받아본 것도 아니고.

현역 때 협회장한테 대머리라고 놀렸다가 잘릴 뻔한 거에 비하면 뭐.

김민주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듯했다.

나는 곧바로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어, 어디 가세요?"

"입장 표명 때 입을 양복 사러."

방호복 입고 갈 순 없으니까.

***

늦은 시각, 작전 2팀 사무실.

"이건 아니야."

책상에 앉아 있던 김민주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선생님은 지금, 혹시나 일이 커져 청소팀에 피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책임을 혼자 뒤집어쓰려 하고 있고.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선생님의 성격이라면 오히려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이상하잖아.'

그래, 누군가 바리케이드를 일부러든 실수로든 치웠다고 치자.

그런데 어쩌다 한 번 바리케이드가 없던 그 타이밍에, 게다가 던전 소멸까지 채 30분도 남지 않은 그 시각에 딱 맞춰서, 하필 학생들이 기어들어 갔다고?

확실하다.

이건 누군가 의도한 것이다.

누군가가 청소팀에 문제가 터지면 선생님이 책임을 끌어안으리라는 걸 알고 움직인 것이다.

'이대로라면 선생님은....'

쿵, 김민주가 책상을 내리쳤다.

스스로가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선생님을 방해하는 놈들은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게 뭔가.

도움이 되긴커녕 두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지 않은가.

"저... 팀장님."

그때, 작전 2팀 소속의 최종훈 헌터가 김민주의 눈치를 보던 끝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솔직히 저희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멀쩡히 범인이 따로 있는데 김준우 청소부님 혼자 뒤집어쓰는 건...."

최종훈을 따라 몇 명의 팀원들이 거들었다.

이미 소문은 협회 내에 쫙 퍼진 상황이었다.

"이거… 저희가 도와드려야 되지 않을까요?"

"찬성입니다. 이전에 도움도 받았는데 모른 척하는 건 도리가 아니죠."

"저도 동감입니다."

열댓 명 팀원들의 표정이 하나 같이 진지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민주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작전 나간 인원… 몇 명이야?"

"서초 3명, 강남 4명. 총 7명입니다."

"모두 복귀시켜. 이 시간 이후로 남아 있는 작전 스케줄 올스탑 걸고."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목소리.

"지금부터 팀 내 모든 인원 동원해서... 우리가 진범을 잡는다."

"네!"

"CCTV, 목격자 수색, 블랙박스…. 방법이란 방법은 모조리 동원하고. 내일 아침까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찾아야 해. 시민들 사이에서 던전 청소부라는 단어가 퍼지면 다 끝이라고 생각하고."

김민주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점점 힘을 되찾는 목소리에 팀원들 또한 격양되었다.

"설령 할당량을 못 채우는 한이 있더라도 진행할 거야. 혹시 이의 있는 사람 있으면 미리 말해줘."

"에이, 어차피 내놓은 팀인 거 다 아는데요?"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게 없는 팀인데, 그까짓 실적!"

"이의 없습니다."

김민주는 미소를 지었다.

선생님 말이 맞았다.

어째 죄다 맛이 간 놈들뿐이다.

"그럼, 작전 2팀… 전원 출동해."

이윽고 작전 팀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

"혜연 씨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그냥 운이 나빴다고 생각해."

지원팀, 헌터관리실.

송혜연은 늦은 시간까지 퇴근하지 않은 채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이아영 부실장은 그런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하아...."

그럼에도 송혜연의 기분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보좌관 일을 시작한 지 불과 3일 만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재수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하지 말 걸 그랬나, 송혜연은 다시 한번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기로 했어? 누가 실수한 거래?"

이아영 부실장이 넌지시 묻자 송혜연은 대답을 머뭇거렸다.

"...김준우 청소부요. 내일 직접 입장 표명한대요."

"그래? 그건 또 의외네. 협회장 라인도 실수를 하는구나."

"...그건 아니에요. 김준우 청소부가 본인 책임이라고는 했는데… 그 사람이 실수한 게 아니래요."

"음…?"

송혜연의 앞뒤가 맞지 않는 말에 이아영 부실장의 눈썹이 꿈틀했다.

"김민주 팀장님이 바리케이드 치는 걸 직접 봤대요. 김준우 씨도 사실은 그렇다고 했고요. 그런데 괜히 범인 찾으려다 작전팀, 청소팀 둘 다 곤란해질 거라고...."

"그러니까 지금… 자기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혼자 책임을 뒤집어썼다는 소리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게 무슨… 이런 똥통 같은 곳에 그런 사람이 있다고?"

"아니 뭐, 아닐 수도 있고요...."

괜히 말끝을 흐렸다.

덩달아 송혜연의 시선이 자꾸만 바닥으로 향했다.

물론 김민주 팀장이 바리케이드 치는 걸 직접 봤다는 게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협회장 라인을 어떻게든 붙잡아 두려고 애쓰는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3일간 옆에서 일해 본 결과, 그녀는 절대 그런 일로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까 김준우 청소부의 잘못이 아닌 건 확실하다.

다만 이걸 인정해버리면....

"그러고 보니, 저번에 어디 사는 누가 조금이라도 청소팀에 문제 생기면 김준우가 제일 먼저 내뺄 거라 그랬던 것 같은데...."

"...그, 그건!"

아니나 다를까, 이아영 부실장의 비수가 날아와 꽂혔다.

"호언장담하면서 내기까지 걸었던 거로 아는데...?"

"그, 그건… 높은 사람들은 대체로 다들 그러니까… 그냥 그 사람도 그럴 것 같아서...."

송혜연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웠던 건지, 이아영 부실장은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어쨌든 김준우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거지?"

"그럴지도… 모르죠."

여전히 솔직하지 못한 태도에 이아영 부실장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까지 나오면 어떤 사람인지 더 궁금해지네.'

만약 송혜연 보좌관이 한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면, 그건 이아영 부실장에게 있어서도 기회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 고이다 못해 썩어버린 조직에 환멸을 느끼고 있던 참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게 없었지만… 그렇다고 일개 지원팀 직원이 협회를 뒤집어엎을 수도 없는 노릇.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때문에 송혜연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사퇴 날짜도 정해둔 뒤였다.

그런데 절을 뒤집어엎을 수 있는 인간이 있다면?

자신은 생각만 하던 그것을 정말로 해줄 수 있는 미친놈이 있다면?

'역시 꼭 한 번 만나봐야겠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아영은 송혜연을 향해 넌지시 입을 열었다.

"혜연 씨. 다른 팀원들한테는 비밀로 하고...."

"네?"

"우리가 좀 도와줄까?"

"...?"

024

'이번 던전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은 모두 저한테 있으므로....'

아니, 아니다.

이러면 내가 던전 청소팀인 줄 모르잖아.

'던전 후속 관리는 던전 청소팀 소속인 제가 맡은 임무 중 하나였고… 항상 완벽하게 일을 수행하던 던전 청소팀에 누를 끼치게 되어 면목이....'

어둑어둑한 퇴근길.

나는 계속해서 내일 발표할 성명문을 머릿속으로 읊어보는 중이었다.

벌써 자정에 가까운 시각이다.

본부장한테 실컷 깨진 후, 청소팀으로 복귀해서 남은 작업을 끝내고 나니 이런 시간이다.

본부장실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알 턱이 없는 팀원들은 이것저것을 캐물었지만, 나는 일부러 말을 아꼈다.

괜히 입장 표명이니, 책임이니 말을 꺼냈다간 다들 김민주처럼 귀찮게 굴 게 뻔했으니까.

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내일 뉴스로 확인하면 될 일이고.

그때까진 나를 위해서라도 책임 건에 대해선 모르고 있어 주는 편이 좋다.

'뭐, 그나저나....'

주머니에 두 손을 꽂은 채로 옅은 한숨을 쉬었다.

다른 걸 떠나서 솔직히 궁금하긴 하다.

바리케이드는 대체 누가 치운 건지. 중학생은 또 어디서 타이밍 좋게 튀어나온 건지.

누군가 청소팀을 엿 먹이려는 것 같긴 한데… 어째 그 방법이 유치하기 짝이 없다.

수작을 부린다는 게 고작 바리케이드나 치우는 거라니.

같잖은 수를 보아하니 역시 서민철 라인이 가장 의심되긴 하는데....

'...모르겠다. 그걸 알아서 뭐 한다고.'

나는 이내 고개를 털었다.

애초에 깊게 생각할 문제도 아니다.

무엇보다 누가 수작을 부렸든지 간에 어쨌든 나한테는 기회나 다름없지 않은가.

딱히 지금 시점에 방해되는 것도 아니니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다시금 걸음을 옮기던 그때.

전화가 울렸다.

"소연 씨? 이 시간엔 어쩐 일로...."

당연히 김민주겠거니 했는데 놀랍게도 아니었다.

「주, 준우 씨. 혹시 민주 언니 연락돼요?」

"…예?"

상당히 뜬금없는 질문에 눈썹이 물결쳤다.

「민주 언니한테 뭐 좀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는데… 아까부터 계속 걸어도 연락을 안 받아요. 아무리 바빠도 제 전화는 꼭 받았었는데....」

"글쎄요. 토벌 중인가 보죠."

「그건 아니에요. 민주 언니, 오늘 비번이거든요. 혹시나 해서 작전 팀원분들한테도 전화를 해봤는데… 아무도 연락이 안 돼요.」

문소연은 불안한 듯한 목소리였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원래 작전팀은 단체로 움직이는 일이 많습니다. 뭐, 팀끼리 기획 회의라도 하고 있나 보죠."

「그, 그런가요? 사실 저도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아까 민주 언니가 보낸 문자가 영 신경 쓰여서요.」

"문자요?"

「네. 자기가 내일 아침까지 연락이 안 되면 준우 씨 좀 설득해 달라고....」

"...."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준우 씨를 설득하라는 게 무슨 뜻일까요. 혹시 준우 씨… 오늘 본부장실에서 무슨 일 있었던 건 아니죠? 저희가 실수한 것도 아닌데 괜히 뭐 책임지라거나....」

"...아뇨.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 그래요? 그럼 다행이고요.」

"...."

「그, 그럼 이만 끊을게요. 푹 쉬고 내일 봐요.」

"네."

뚝.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설마 그 녀석....

'에이, 아니겠지. 이제 작전 팀장이나 되는 녀석이 자기 일도 바쁠 텐데 설마 쓸데없이....'

애써 행복회로를 돌렸다.

하지만.

"사고 던전 근처 CCTV 확보가 먼저야! 거긴 내가 갈 테니까 나머진 예상 동선 따라서 낙성대까지 모든 대로변 CCTV 확인해!"

"낙성대 쪽으론 내가 갈게!"

"보안용 없으면 교통 카메라라도 모조리 뒤져보자고!"

"블랙박스도 될 수 있는 한 끌어모으고! 내일 아침까지 찾으려면 빨리빨리 움직여야 해."

"오케이!"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모습들과 목소리.

어디론가 다급하게 뛰어가는 그들을 보자 내 얼굴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다.

작전 2팀 녀석들이다.

'김민주. 이 자식 설마....'

설마 진짜로 범인을 찾겠다고 작전팀을 푼 거야?

정말 미친 건가? 작전 팀장을 그러려고 달았나?!

아니, 그 전에… 진짜로 나한테 이러기야?

'어디 해보자 이거지....'

이가 으득 갈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절대 범인이 잡히게 둬선 안 된다.

햇병아리 헌터 17명, 엊그제 승진한 생초보 팀장.

이런 하꼬 작전팀이 내 거사를 망치게 둘 순 없다.

***

지원팀 헌터관리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각, 김민주는 송혜연 보좌관의 호출을 받곤 그곳에 발을 들여놓았다.

"금방 오셨네요?"

단발의 도도한 인상을 한 여성이 김민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김민주 또한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지만, 그럼에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아영 부실장님."

"그렇게 예의 차리시지 않아도 돼요. 직급으로 따지면 김민주 팀장님이 저보다 훨씬 높으시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다른 곳에선 어떨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협회 내에서 작전 팀장이란 직급은 그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있을 만한 게 아니었다.

"그나저나 갑자기 절 호출하신 이유가… 그것도 이런 시간에...."

"도와드리려고요."

이아영 부실장이 즉답했다.

하지만 김민주 팀장은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네?"

"김준우 청소부님 일은 혜연 씨에게 들어서 알고 있어요. 바리케이드를 치운 사람을 찾고 있으시죠?"

"아, 아… 네. 맞습니다."

"진척은 좀 있으신가요?"

그 말을 듣자 김민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뇨. 근방 CCTV를 확보하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경찰 허가 없이는 영상을 확인하는 건 불가능하다 보니."

"그럴 거예요. 그런 쪽에 빠삭한 팀이 해킹을 해주는 게 아닌 이상은 힘들겠죠."

"...저, 그 말씀은."

"네. 저희 쪽에서 도와드릴게요. 다만 이건 개인적으로 도와드리는 거니까, 지원팀원들한테는 비밀로 해주셔야 해요."

"...."

김민주가 말을 잇지 못하자 이아영 부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도와주는 건지 물어보고 싶은 거죠?"

"...네. 아시다시피 전 겨우 3일 전에 팀장을 달았습니다. 아직 아무런 힘도 영향력도 없어요. 저희를 도와주신다고 해도 지원팀에 이득 되는 게 아무것도 없을 텐데...."

"물론 공짜로 도와준다는 건 아니에요. 도와주는 대신 정보를 좀 받고 싶은데."

역시, 김민주는 쓰게 웃었다.

"제가 알고 있는 거라면."

"뭐,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에요. 김민주 팀장님, 김준우 청소부랑 평소에 꽤 친분이 있는 거로 아는데...."

이아영 부실장이 말끝을 흐리며 뜸을 들였다.

그러길 잠시.

"김준우 청소부, 실제론 어떤 사람이에요?"

"...네?"

"그 왜, 소문이 엄청나잖아요. 프리랜서 헌터다, 민간 길드 스파이다, 협회장 라인이다. 팀장님도 한 번쯤 들어봤을 거 아니에요. 그 소문들 중에 어떤 게 진짠지 궁금해서요."

그녀의 질문은 확인 절차 같은 것이었다.

김준우가 실제로 순수한 인격자인지, 아니면 송혜연의 말처럼 정말 협회장 라인이라는 명목하에 이미지 관리나 하고 있는 건지.

그 실체를 알아볼 생각이었다.

다만.

"전 그런 소문 처음 들어보는데요?"

"...?"

상대가 나빴다.

"아, 아니 진짜로 처음 들어봐요? 벌써 며칠은 본부에서 이걸로 시끄러웠는데?"

"아, 네… 죄송해요. 제가 협회에 수다를 떨 만한 친구가 없어서...."

창피한 듯 고개를 숙이는 김민주.

그녀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아영 부실장이 헛웃음을 뱉었다.

혼자 있는 경우가 많단 얘긴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적잖은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하고 있던 그때.

이아영 부실장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였다.

'자, 잠깐, 그럼 이 사람은 지금....'

설마 김준우를 진짜 청소부로 알고 있는 건가?

"사실 저도 이전엔 프리랜서 헌터 같다곤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딱히 토벌도 안 하시는 것 같고. 확실히 비범하기는 해도, 지금은 그냥 청소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뭐… 제가 그 이상 알 자격도 없고요."

김민주가 대답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였다.

"솔직히 말 안 되는 거 알죠? 내놓은 팀이라곤 해도 작전 팀장이시잖아요. 고작 청소부 한 명 때문에 소속 헌터를 죄다...."

"고작?"

그 순간 김민주의 눈빛이 확 바뀌었다.

그제야 이아영은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아무리 황당했기로서니,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짓을 할 줄이야.

창피함에 고개가 떨어졌다.

"미안해요. 말이 헛나왔어요."

"...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보면 분명 이상하다곤 생각할 거예요."

"그게 그렇게 이상한가요?"

김민주가 머리를 긁적였다.

진심이다.

저 여자, 진심으로 맛이 갔다.

이아영 부실장은 헛웃음을 뱉었다.

잘못도 안 했는데 모든 책임을 스스로 뒤집어쓴 청소부나, 그런 청소부 한 명 도와주겠다고 팀 전체를 푼 작전 팀장이나.

둘 다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다.

최소한 이런 빌어먹을 협회 안에서는 그렇다.

'어쩌다 저런 사람들이 이런 똥통 같은 곳에....'

급기야 측은해질 정도.

이아영 부실장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대답이 됐을지 모르겠네요."

"뭐, 그 정도면 충분한 것 같아요. 좋아요, 도와드릴게요. 대신 저번에 만나게 해준다는 약속 꼭 지켜주세요."

"네, 그럼요."

그제야 김민주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이아영 부실장은 이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송혜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혜연 씨, 교통국 전산망 액세스해놨어?"

"물론이죠."

"좋아. 사당 쪽부터 낙성대까지 모든 대로변 CCTV 화면 로드 해줘."

동시에 사무실에 기계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분주하게 깜빡이는 모니터와 복잡한 글자들이 오가는 화면들.

하지만 이런 쪽으론 아는 게 없던 김민주는 그저 뭔가 대단한 걸 하는 중이다, 정도로만 이해했다.

"그… 보통 지원팀에서 이런 것도 하나요?"

"아뇨. 원래는 모든 헌터 정보를 관찰하고 수집하기 위해 만든 시스템이에요. 이렇게 관공서를 해킹한 적은 처음이에요."

"부실장님도 처음이실 정도면 규정 위반...."

"아뇨."

이아영 부실장이 말을 잘랐다.

그리곤 김민주를 향해 획 돌아가는 고개.

"저 말고. 협회가 만들어지고 처음이라고요."

이아영이 방긋 미소를 지었다.

"로드 완료했어요. 전면 모니터에 CCTV 화면 띄울게요."

그때 송혜연이 손을 번쩍 들었다.

"이걸로 사고 시간부터 동선을 추적하면 범인은 금방 잡을 거예요."

이윽고 세 명의 시선이 모니터로 이동한 순간.

누구랄 것 없이 모두의 얼굴이 바짝 굳었다.

"...뭐야."

"어, 어떻게 된 거죠...."

어찌 된 영문인지, 제대로 출력되는 CCTV가 단 한 대도 없었다.

모든 CCTV가 고장.

누군가가 부순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수십 개가 넘는 걸 모조리 부쉈다고요? 대체 누가 그런...."

"안 봐도 범인이겠죠.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나올 줄이야… 이런 쓰레기 같은 새끼."

이아영 부실장이 가차 없이 욕지거리를 뱉었다.

동시에 김민주 또한 주먹을 꾸욱 쥐었다.

"개 같은...."

김민주는 진심으로 이를 으득 씹었다.

***

"후우...."

새벽 세 시가 넘은 시각.

나는 어느 골목에 멈춰 서선 거친 숨을 내뱉었다.

[습득 스킬 : 하이퍼 부스트]

[지속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되겠지.'

몸을 숨기면서 움직이느라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러면서도 계속 '전투 상태'를 유지해야 했기에, 5분 간격으로 전봇대에 머리를 박아댔다.

물론 웬만한 대미지로는 전투 상태는커녕 나만 아플 뿐이다. 어찌나 세게 박아댔는지, 몇 번만 더 했으면 정말 골로 갔을지도 모른다.

하암....

거사를 끝내니 급 피곤이 몰려왔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 하고, 또 만신창이가 된 이마도 치료해야 하니 빨리 돌아가야겠지.

이내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고철 덩어리를 발로 툭 건드리곤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귀가 간지럽지.

025

025

오전 8시 55분.

협회 서울 본부 1층, 로비.

이른 아침부터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뒤쪽 사무실에서 상황을 슬쩍 훔쳐봤다.

어제 새벽, 나는 사고 현장 근처에 설치된 CCTV를 찾아 모조리 부숴버렸다.

물론 그 짧은 시간에 블랙박스까지 회수할 순 없었지만, 뭐… 그건 김민주도 마찬가지겠지.

그들이 의존할 수 있는 건 결국 영상 증거뿐이다.

CCTV라는 증거가 막혀버린 이상, 햇병아리 작전팀만으로는 절대 범인을 찾을 수 없다.

'청소팀은 애초에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를 거고....'

뭐, 분명 기사 보고 왜 아무 말도 안 해줬냐고 노발대발할 건 뻔한데.

나중에 잘 이야기해두면 되겠지.

'그럼 이제 남은 변수는....'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겼다.

이걸로 끝.

더 이상의 방해꾼은 없다.

주먹을 불끈 쥐고 승리를 자축하고 있자, 서민철 본부장이 다가왔다.

"길게 말할 것 없네. 그냥 제 실수입니다, 한 마디면 돼. 이건 자네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괜히 변명을 붙이면 여론만 더 안 좋아질 거야."

"…알겠습니다."

주제넘은 훈수.

내가 입장 표명 한두 번 해보는 줄 아시나.

전생에선 매일이 사건 사고였는데.

"시간 됐어.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잘하고 오게."

"예."

양복 매무새를 정리했다.

오랜만에 입는 거라 그런지 꽤나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밤새 달달 외운 성명문을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읊으며, 사무실을 나와 기자들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시에 앞다퉈 들이미는 마이크와 무질서한 질문들. 그 사이에서 나는 담담하게 마이크를 쥐었다.

"안녕하십니까. 던전 청소팀 소속 청소부, 김준우입니다."

던전 청소팀 소속.

그 단어에 일부러 힘을 주며 말했다.

"우선, 작일 발생한 사고로 인해 피해를 보신 학생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무겁게 떨어지는 고개.

"당시 던전 구분용 바리케이드를 치지 않고, 던전을 방치한 것은 변명의 여지 없이 제 실수입니다."

곧바로 이어 본론을 꺼냈다. 그에 맞춰 쏟아지는 플래시.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배에 힘을 주며 입을 열었다.

"그러므로 이번 사고의 책임은 모두 던전 청소팀 소속인 저에게 있음을...."

"아뇨, 이번 사고는 제 책임입니다."

"...?"

그 순간, 내 뒤에서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대체 어떤 새끼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렸고.

"던전 청소팀, 팀장 박근태입니다."

동시에 눈이 크게 벌어졌다.

"바, 박 팀장님? 여긴 대체 어떻게 알고...."

"송혜연 보좌관님한테 들었다."

뭐, 뭐라고…?

그 사람이 왜?!

"팀장님, 이미 얘기 다 끝난 거니까 그냥 돌아가시는 게...."

"가만히 있어, 이놈아. 팀장이 뻔히 있는데 어디서 들어 온 지 한 달도 안 된 녀석이 건방지게 책임을 진다 만다야? 팀장이 왜 팀장인지 알어?!"

평소답지 않게 엄한 표정과 목소리였다.

"그동안 네 덕 많이 봤잖냐. 이번엔 팀장 기 좀 살려줘라."

"아니, 이게 뭐 좋은 일이라고...."

"됐으니까 나와, 이놈아."

박 팀장은 기어이 나를 밀어내곤 단상을 차지했다.

기자들 또한 예상치 못한 불청객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 앞에서 뜸을 들이길 잠시.

"...무릇 팀장이란 책임자의 자리입니다."

이윽고 박 팀장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김준우 청소부가 던전 청소팀 직원인 이상, 그의 실수는 모두 팀장인 제 책임이 되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참 나, 그렇게 따지면 잘못 없는 사람이 어디 있대. 후배 관리 못 한 선배 책임은 없답니까?"

곧이어 기자들 사이에 끼어 있던 한 남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한상혁이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던전 청소팀, 문소연입니다. 제가 김준우 씨 사수에요. 그러니 저에게도 당연히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옆에서 손을 들고는 강경한 목소리로 덧붙이는 문소연까지 있었다.

기자들이 웅성거렸고, 나는 사색이 된 얼굴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젠장, 대체 어디서들 튀어나와서 방해하는 건가.

내 선에서 마무리하면 될 일을 왜 나서서 크게 만드는 거야.

이딴 식으로 청소팀 전체가 들고나오면… 단체 징계를 피할 수 없다.

나는 하늘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시발…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끌어올렸는데.'

소리가 들린다.

다시 이전의 청소팀으로 돌아가는 소리가.

"저… 그럼 결국 이번 사고는 던전 청소팀 전원의 책임인 겁니까?"

"아니. 아닙니다."

미안하지만 그렇게 둘 순 없다.

"...네?"

"제 책임이라고 대체 몇 번을 말해야 합니까?"

"준우 씨!"

"새끼야, 그게 왜 네 책임...."

"다 닥치고 있어."

나는 눈을 부릅떴다.

그리곤 바로 앞에 있는 기자를 콕 집어 말했다.

"앞에 당신. 지금 말하는 거 그대로 받아 적으세요. 이번 사고의 모든 책임은 김준우 청소부의 실수로 벌어진...."

"그분의 책임이 아닙니다."

"이런 시발, 자꾸 어떤 새끼가…!"

결국,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또다시 끼어든 누군가의 목소리. 모든 시선이 한꺼번에 뒤로 향했다.

"청소팀에서 바리케이드 설치를 실수한 게 아니라, 누군가 고의로 바리케이드를 치운 겁니다."

"...김민주?"

위풍당당하게 로비로 걸어 들어오는 그녀.

뒤에는 작전 2팀 전원이 함께였다.

'설마… 범인을 찾은 건가?'

그럴 리가 없다. 확인할 수 있는 CCTV가 없었을 텐데....

"실례지만 어디 소속에 누구시죠? 같은 청소팀이십니까?"

"작전 2팀, 김민주 팀장이라고 합니다."

"작전팀?"

"작전 팀장이 왔다고?"

"야, 야! 그 사람이잖아! 이번에 최연소 작전 팀장 단 사람!"

나를 향하던 카메라와 마이크가 타깃을 바꿔 김민주에게 달라붙었다.

"하던 말씀 계속해주십시오! 누군가 고의로 바리케이드를 치웠다고요?!"

"이번 사고에 다른 사람이 개입했다는 소리인가요?"

"그게 누굽니까!"

득달같이 달려드는 기자들.

그 속에서 김민주가 입을 열었다.

"던전 청소팀이 설치했던 바리케이드를 치운 건.... 피해 학생들 본인입니다."

"...!"

"...?"

정적.

그렇게 몇 초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예?"

"진짜로…?"

"그, 그게 정말입니까?"

뒤늦게 반응들이 쏟아지며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헐."

나 또한 예상치 못했던 사실에 입을 틀어막았다.

"즈, 증거는요? 증거는 있는 겁니까?"

있을 리가 없다.

CCTV는 물론이고, 하룻밤 새에 차량 블랙박스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

"물론입니다."

"...?"

김민주가 자신만만하게 핸드폰을 들이밀었고, 이윽고 화면에 영상 하나가 재생되었다.

그건 CCTV도, 블랙박스 영상도 아닌....

"지원팀의 도움으로 입수한 사고 던전 근처 매장의 CCTV 영상입니다."

무려 그날 우리가 점심을 먹었던 한식당의 주차장 카메라 영상이었다.

'빌어먹을, 저거까진 생각을 못 했는데....'

아니 그것보다, 대체 저런 건 어떻게 구한 거야?

"확대한 영상이라 흐릿하지만… 잘 보시면 사고 시간대의 던전 입구가 찍혀 있습니다. 직접 확인해보세요."

모두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화면에 비친 것은.

"이거...."

"뭐야. 피해 학생들 맞는데?"

"여기, 여기! 자기들이 치우네! 여기 봐봐!"

"와 이놈들 봐라. 이래놓고 처음부터 없었다고 거짓말한 거야?"

여기저기서 탄식이 울려 퍼졌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던전 청소팀은 이번 사고에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저 평소처럼 완벽하게 작업했고 그것에 대해선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김민주가 다시 한번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내 기자들은 어딘가로 다급하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에휴....

모르겠다, 이젠.

***

[해금 조건 달성]

"진짜...."

[일반 시민 내 던전 청소팀에 대한 관심도 상승]

[습득 스킬 : 폴리모프 - 잠금 해제되었습니다]

"어이가 없네."

세상 졸라게 불공평하다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 사실 처음부터 별로 관심 없었음ㅋㅋ 바리케이드 안 친 게 뭐 그리 잘못이라고ㅋㅋㅋ

└ 근데 청소팀이 뭐하는 팀임?

└ 모름ㅋㅋ 던전 청소하는 애들이겠지 뭐.

└ 그건 모르겠고 청소팀에 있던 여자애 누구임? 개이쁘던데?

└ 문소연? ㄹㅇ그 얼굴로 왜 청소나 하고 있대.

└ 청소팀 입사하면 문소연 실물 볼 수 있는 거냐?

└ 청소팀 채용 공고 언제 올라옴? 바로 이력서 넣는다.

└ 방금 청소팀 앞으로 후원금 넣었다. 소연 씨에 대한 내 작은 마음이다.

└ 주접 오지네ㄹㅇㅋㅋㅋ

빌어먹을....

언론에 얼굴 한 번 노출했다고 뭔지도 모르던 청소팀에 이렇게까지 관심을 갖는다고?

미친 거다.

진짜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

'뭐, 정작 본인은 모르고 있는 것 같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애초에 핸드폰도 인터넷이 안 되는 구식 기종이지 않던가.

문소연 성격에 이런 꼬라지는 모르고 있는 게 백번 나을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댓글 창을 훑었다.

이후로 모두 문소연의 외모 이야기다.

뭐, 가끔 김민주에 대한 언급도 있긴 했는데… 빈도로 따지면 한 7:3 정도?

"제가 그날 밤을 새워 가지고 그런 거예요."

작전 2팀 사무실.

내 옆에서 핸드폰 화면을 훔쳐보던 김민주가 볼멘소리를 냈다.

"누가 뭐라 그랬냐?"

"오해하실까 봐요."

"오해할 게 뭐가 있다고?"

"...조용히 하세요."

…이게 미쳤나.

"그래도 다행이네요."

"대체 어디가?"

"이번 입장 표명이요. 다들 재밌었다는 반응이잖아요. 개그 프로인 줄 알았다고."

"...그게 다행이라고?"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자 김민주가 그럼 뭐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뭐... 썩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이번 입장 표명으로 인터넷에서 청소팀은 뜨거운 감자였으니까.

당연하겠지만 비단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 그 중딩들 솔직히 처벌 빡세게 때려야 됨;; 그놈들 때문에 몇 명이 모가지 날아갈 뻔한 거야.

└ ㄹㅇ임. 근데 그 청소부는 왜 자기가 잘못한 것도 아니면서 자기 책임이라고 그런 거임?

└ 괜히 일 커질까 봐 자기 선에서 끝내려 그런 거겠지.

└ 근데 솔직히 좀 오바 아니냐? 보통 이런 일 터지면 어떻게든 책임 전가하려고 별 지랄을 다 하는데.

└ ㅇㄱㄹㅇ. 어떤 팀이 서로 자기 책임이라고 나서냐;; 참된 동료애 ㅇㅈ합니다.

└ 작전 팀장까지 나서서 감싸줬잖아. 나름 협회에서 중요 직군인 듯? 아니면 그 청소부가 협회 실세거나ㅋㅋ

└ 엌ㅋㅋ 청소부 실세 설ㅋㅋㅋㅋㅋ

└ 그래도 청소는 좀;;

└ 동료애 없는 대기업 VS 동료애 넘치는 청소팀.

└ 닥전.

└ 닥전이라는 새끼들 최소 백수ㅋㅋ 방송에서 나온 거 진짜면 진지하게 청소팀 입사할 생각 있음.

"뭐가 그렇게 재밌어요?"

"…응?"

"아니… 웃고 계시길래. 저도 보여주세요."

김민주가 가까이 다가오려 했지만, 나는 그냥 핸드폰을 꺼버렸다.

"별로. 아무것도 아니야."

"...."

김민주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사무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진짜 너무들 하시네. 한 번 만나게 해달라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어쩜 끝까지 안 오시지?"

누군가가 씩씩거리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단발의 여자였다.

날카로운 것 같으면서도 도도한 얼굴. 어딘가 낯이 익은 듯한....

"부, 부실장님?"

"그때 정말 밤새워서 도와줬는데 이러기에요? 지원팀 직원이 작전팀 사무실 돌아다니는 거, 얼마나 눈치 보이는지 아시면서."

"아, 미, 미안해요. 그 후로 밀린 업무 좀 보느라 깜빡했어요."

"...그렇게 진심으로 사과해버리면 나도 할 말이 없는데."

김민주의 친구?

아니 그럴 리는 없는데.

그때 여성이 나를 향해 돌아섰다.

"아무튼… 처음 뵙겠습니다. 지원팀 헌터관리실 소속 이아영 부실장이라고 합니다."

"아, 예. 처음 뵙겠습..."

...…어?

누, 누구라고?

026

026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만남이었다.

나야 이아영 실장을 알고 있다지만, 그녀는 날 알 리가 없다.

이아영을 처음 만나게 되는 건, 내가 팀장을 달게 된 직후. 그러니까 아직 5년이나 뒤의 일이다.

전생에선 그전까지 얼굴 한 번 마주친 적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난데없이 먼저 나를 찾아온다고? 대체 왜?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예? 아, 아뇨."

나는 황급히 눈에 힘을 풀었다.

"안 해줄 거예요?"

"…예?"

"악수요. 안 해줄 거냐고요. 슬슬 힘든데."

그제야 이아영이 내민 손을 발견했다.

나는 뒤늦게 악수를 받으며 다시 한번 그녀를 바라봤다.

전생에서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젊은 모습. 그럼에도 내가 알고 있는 이아영의 얼굴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다만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내 보좌관이었던 시절보다 뭔가....

사람 같다고 해야 하나.

'아… 혹시 그 일이 있기 전인가?'

뜨문뜨문한 기억 속에서 시간대를 짜맞춰 보기 시작했다.

"김준우 청소부님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이번 입장 표명, 꽤 인상적이었어요."

"...."

너무 집중한 탓에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다.

때문에 찾아온 정적.

"좋은 뜻이에요."

"...아, 예. 뭐… 감사합니다."

"...."

또 정적.

분위기가 어색하기 짝이 없네.

결국, 이아영이 옅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듣던 것만큼 막 카리스마가 있진 않네요?"

"필요합니까?"

"뭐, 지금부터 할 얘기에선 좀 필요하죠."

이아영은 내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지원팀 부실장님이 저한텐 어떤 볼일이신지…?"

"음, 단도직입적으로...."

나를 지그시 살피길 한 차례.

"당신, 어디까지 가고 싶어요?"

"…예?"

"지금 위치에서 어디까지 가고 싶냐고요. 청소 팀장? 이능운용부장? 아니면 더 위?"

저의를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요."

"만약 더 위로 가겠다고 하면 저희가 좀 도와줄까 해서요. 가령 서민철 본부장을 밀어내고, 본부장이 되겠다거나...."

이아영이 떠보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동시에 내 눈이 동그래졌고, 김민주는 나보다 더 동그래졌다.

"갑자기 그게 무슨...."

"별 뜻은 없고....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거죠. 개인적으로 본부 뒤집어지는 꼬라지를 보고 싶기도 하고."

이아영이 다리를 꼬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좀 질리던 참이었거든요. 위계니, 질서니. 물론 필요한 거긴 한데 딱히 내 취향은 아니기도 하고. 그거 알아요? 당신이 들어올 때만 해도 청소팀은 구내식당 이용 못 했던 거?"

당연히 알고 있다.

전생에서는 내가 죽던 그 날까지 계속 그래왔으니.

"지원팀도 조금 낫다 뿐이지 사정은 비슷해요. 김민주 팀장님은 알 거예요. 어디서는 우리를 따까리라고 하더라고?"

"아, 아… 네...."

김민주가 말끝을 흐렸다.

이것 또한 알고 있는 내용이다.

이수용 팀장이 지원팀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었으니까.

"재밌는 건, 본부에서는 그게 당연한 거였어요. 아무도 딴죽을 건 사람이 없어서 뒤로는 씹어도 앞에선 입도 뻥긋 못했죠. 근데 웬 위아래 없는 놈이 갑자기 나타나선 청소부 신분으로 깽판을 치고 있으니... 관심 안 가고 배겨요?"

이아영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동시에 나는 한숨을 팍 내쉬었다.

"그러니까 지금… 지원팀이 도와줄 테니 저보고 본부를 먹으라는 겁니까?"

"딱히 그런 건 아니에요. 당신은 그냥 하던 대로만 해도 돼요. 다만 이왕 하는 거 좀 크게 했으면 좋겠다는 거죠."

"그게 그 소리 같은데."

"뭐, 그렇게 받아들이시면 어쩔 수 없고."

당당하기 그지없는 대답.

아주 한마디를 지지 않는다.

"앞으로의 당신 계획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청소팀 하나랑, 내놓은 작전팀 하나로는 힘들지 않겠어요? 쓸 수 있는 패가 많으면 그쪽 입장에서도 좋은 거 아닌가. 지원팀까지 붙으면 조금 더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맞는 말이었지만 나는 일단 대답을 아꼈다.

옳다구나 덥석 물기엔 걸리는 점이 있었던 까닭이었다.

내가 침묵을 유지하자, 김민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마음은 감사한대, 아무리 부실장님이어도 독단으로 결정해도 되는 일인가요?"

"네, 뭐. 그 정도는 돼요. 애초에 지원팀 내에서도 당신들 팬 많아요."

"그, 그럼 혹시 지원 가능한 범위가...."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뭐든지요. 장비 제작, 집중 케어, 기타 등등. 아, 근데 이건 청소팀보단 작전팀에서 더 혹할 조건인가?"

이아영의 목소리는 누구보다 당당했다.

뭐, 실장이나 팀장도 아닌 그녀가 이토록 자신감을 비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저 녀석 아버지가 협회 임원이거든.

'이두식 이사… 꽤 거물이었지.'

협회를 주무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권력자 중 한 명.

협회장을 제외하면 그의 선택에 토를 달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뭐, 아쉽게도 오래가진 않았지만.

앞으로 5년 안에 이두식은 이사회에서 해임당한다.

뭐, 사유야 온갖 것들이 붙었지만… 가장 큰 계기는 서울 본부 개혁을 추진하다가 다른 분들의 눈 밖에 났다는 것.

그리고 그분들 중 한 명, 어느 잘나가는 헌터분께서 협회장과 이사회에 바람을 넣었다지.

결국, 이두식은 이것저것 온갖 꼬투리를 잡혀 해임당하고, 그에게 협력했던 직원들이 크고 작은 본보기를 당했다.

그 대표 인물이 바로 이아영 실장.

아빠 빽이었는지 아니면 실력이었는지 모르지만, 꽤나 어린 나이에 실장을 달고 나름 협회에서 힘 좀 쓰는 녀석이었는데....

이두식이 그렇게 되고 나서 그녀는 지원팀에서도 힘을 잃고 어느 잘나가는 헌터분의 보좌관이 됐다.

이아영이 기계처럼 변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나쁘게 보면 그 자신감 넘치던 사람이 순응해버린 거고, 좋게 보면....

'...덕분에 내 보좌관이 됐다는 거?'

아무튼, 보아하니 아직까진 해임당하지 않은 것 같고… 이아영이 내민 조건도 이두식의 계획 일부인 게 틀림없다.

그러니까 여기에 협력했다간....

'청소팀이고 작전팀이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

재볼 가치도 없다.

"도와주신다는 마음은 고마운데, 거절하겠습니다."

"...네?"

진심으로 당황스럽다는 반응.

"이해할 수가 없네요. 뭐 조건을 내건 것도 아니고, 그냥 하던 대로만 하라는 건데...."

"네 하던 대로는 할 건데, 도움은 받기 싫다는 겁니다."

"...자신감인가요? 아니면 제가 마음에 안 드시는 건가?"

"둘 다 아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부를 뒤집는다거나, 누구를 밀어내고 본부장이 된 다거나… 애초에 난 그런 거창한 목적이 아니라서."

"하, 참...."

이아영이 기가 찬 듯 실소를 뱉었다.

"알아들으셨으리라 믿고… 그럼 전 오후 작업 하러 가야 해서 이만."

매몰차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으로선 청소팀에 그 어떤 흠집도 내선 안 되니까.

나는 그렇게 먼저 사무실을 나섰다.

***

"...뭐예요, 저 사람?"

이아영 부실장은 한참이나 사무실 문에 시선이 고정된 채였다.

그러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김민주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무 조건 없이 도와주겠다는데 그걸 거절해? 와, 이거 되게 쪽팔리네? 저 지금 얼굴 빨갛지 않아요?"

"원래 저런 분이에요."

하지만 김민주는 놀랄 것 없다는 반응이었다.

"애초에 선생님이 관심 없을 만한 얘기였어요. 저였으면 음… 본부장이 되라는 것보다는 차라리 청소팀을 지원해준다는 조건을 걸었을 거예요."

"...진짜 당신들, 보면 볼수록 더 제정신이 아니야."

이아영은 고개를 내저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얼굴엔 미소를 띤 채였다.

"선생님도 부실장님 마음은 이해하셨을 거예요. 표현이 조금 딱딱하셔서 그렇지."

"팀장님이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네요."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어쩔 수 없잖아요. 제발 도와주게 해 달라고 비는 것도 좀 웃기고.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줘야지 뭐."

김민주가 싱긋 웃었다.

"가끔 놀러 오세요. 선생님도 저 도와주시러 자주 오시거든요."

"와… 그 말 되게 질투 나는 거 알아요? 작전팀은 껴주면서 지원팀은 안 껴준다는 거잖아."

이아영은 과장되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곤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튼, 혹시 나중에라도 우리 도움 필요하다고 오면 그땐 쉽게 안 들어줄 거예요."

"그렇게 전해둘게요."

"그리고 뭐... 가끔 놀러 올게요."

이아영은 그 말을 던지곤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

***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나는 늦지 않게 다음 던전 앞에 도착했다.

청소팀원들과 같이 점심을 먹지 않고, 김민주의 사무실로 피신했던 이유는 딱 하나.

어제 있었던 입장 표명에 대해 잔소리가 너무 심했거든.

그렇게 혼자 뒤집어쓰면 우리는 편할 줄 알았냐.

너무하다.

서운하다.

앞으로 안 그러기로 약속해라.

기타 등등....

아무래도 당분간 쉬지 않을 예정인 것 같았기에, 틈만 나면 그들을 피해 도망 다니기 바빴다.

"어, 준우 씨가 먼저 오셨네요?"

"이야, 저기 새로 생긴 중국집 괜찮더라. 다음엔 다 같이 가자고."

때마침 문소연과 박 팀장도 던전 앞으로 도착했다.

"자, 그럼 바로 작업 들어갈까?"

"...한상혁이 아직 안 왔는데요."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점심 먹으러 어디까지 갔답니까."

"음? 말 안 했나? 상혁이 오늘 반차야."

"갑자기요? 몸이라도 안 좋답니까?"

"아니 아니, 누나가 오랜만에 한국에 왔대서 마중 나간더라고."

"누나요?"

"그래. 그 친구 누나가 국제 협회 소속 헌터야. 뭐, 일이 좀 있어서 입국했다는데… 자세한 건 상혁이도 모른다네?"

"...."

나는 꽤 흥미로운 사실에 고개를 끄덕였다.

국제 협회 소속 헌터라니.

보통 재능으론 어림도 없을 텐데.

누나는 국제 헌터, 동생은 청소부라....

한상혁 그 새끼도 이래저래 고민이 많겠군.

"사실 상혁이 유일한 가족이 누나 한 명이거든.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며칠 쉬다 오라고 했어. 일주일 정도는 우리끼리 해야 할 거야."

"…그렇군요."

남 가정사야 내 알 바는 아니고.

'3명이서 작업이라....'

일주일간 막차 타긴 글렀네.

"자자, 빨리 작업하고 조금 쉬자고. 다들 장비 점검 한 번씩...."

"안녕하십니까!"

그때였다.

박 팀장의 말을 끊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저만치에서 말끔한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다가와, 우리에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

물론 그 남자를 아는 사람은 우리 중엔 없었다.

"아, 중심일보 구상찬 기자입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남자가 자기소개를 했음에도 역시 다들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치다.

기자라니. 기자가 여긴 왜?

다짜고짜 잘 부탁한다는 건 또 뭔 소린가.

"엑? 서, 설마 연락 못 받으셨습니까?"

"…? 저흰 아무것도 들은 게 없는데."

"저, 정말요?! 크, 큰일 났네. 이거 어떡하냐...."

남자가 진심으로 당황하며 연신 머리를 긁적였다.

"아, 이거 다시 연락을 드려봐야 되나… 허가받느라 엄청 힘들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그러곤 설명을 해줄 생각도 없이 계속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결국, 보다 못해 내가 먼저 물었다.

"그래서, 대체 무슨 볼일이십니까. 허가는 또 무슨 말이고요."

"아, 아…! 그게 사실 오늘부터 청소 3팀 여러분들을 취재하기로 약속을 잡아놨거든요."

"...예?"

"본부 측에서 겨우 허가를 내줘서, 당연히 여러분들하고도 말씀이 된 줄 알았는데...."

...취재?

우리를?

027

027

갑작스런 이야기에 벙쪄 있길 잠시.

"갑자기 청소팀 취재는 왜…?"

내가 먼저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러자 구상찬 기자는 오히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엥? 혹시 모르십니까? 그저께 있었던 입장 표명 때문에 요즘 청소팀이 인터넷에서 아주 난리도 아니잖습니까!"

"그건 알고 있는데… 이슈 한 번 됐다고 취재까지 나옵니까, 보통?"

"뭐, 그만큼 사람들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뜻이죠. 특히나 청소팀의 문소연 씨가...."

"…큼큼."

내가 다급하게 눈치를 주자 구상찬이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나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본인 앞에서 할 말은 아니었으니.

다행히 본인 또한 자각은 있었던 모양이다.

"아, 음. 그런데 뭐… 청소팀이 실세다, 협회에서 대우받는 팀이다, 뭐 이런저런 말은 많은데 정작 정확한 정보가 별로 없어요. 청소팀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고요."

구상찬은 다시금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마침 이슈도 됐겠다, 이번 기회에 청소팀 특집으로 기사 하나 내면 좋을 것 같아서요. 어떤 팀인지, 어떤 업무를 하는지도 알릴 겸요. 그런데, 뭐… 얘기가 안 됐다니...."

이내 땅이 꺼질 정도로 깊은 한숨.

그의 표정이 금세 죽을상이 됐다.

협회는 워낙 많은 정보가 오고 가는 곳이다.

그러니 아무리 위에서 허가가 떨어졌다고 한들, 당사자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취재는 불가능했다.

다시 말해, 지금 여기서 우리가 거절한다면 구상찬 기자는 취재 허가를 받아놓고도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서로 눈치를 살폈다.

"뭐, 전 괜찮다고 봐요. 우리 일에 대해 사람들이 알아주면 우리야 좋죠. 혹시 알아요? 기사가 좋게 나면 신입도 받을 수 있을지."

문소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한편 박 팀장은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글쎄… 난 좀 걱정이다. 사람들이 썩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잖냐. 괜히 인식만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지 않겠어?"

"아!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좀 힘든 일이어도 팀 분위기가 좋다, 협회에서도 대접받는다, 뭐 이것저것 섞어서 최대한 긍정적으로 내보낼 생각이거든요."

놓칠세라 중심일보 기자, 구상찬이 말했다.

기자라는 놈이 대놓고 거짓말을 하겠다고 한다.

"준우 씨는 어때요?"

찬반이 갈리는 상황.

문소연은 마지막으로 내 의견을 물었다.

"일단 저도 박 팀장님과 동감이긴 합니다만...."

"그래요? 준우 씨가 그렇다면 뭐… 죄송하지만, 취재는 조금 힘들 것...."

"잠깐. 잠깐만요."

나는 다급하게 문소연의 말을 끊었다.

"저, 혹시 말입니다. 어느 직업에 관한 기사가 나가면, 정말 입사 지원자가 늘고 그럽니까?"

"음… 백 프로는 아닌데. 일이 좀 쉬워 보이거나, 딱히 전문 지식이 없어도 되는 직업 같은 경우는 한시적으로 몰리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

"그렇군요."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구상찬은 영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썩 좋은 현상은 아닙니다. 이런 일 정도는 나도 하겠다, 하고 만만하게 보는 거니까요.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끔 제가 최대한 잘...."

"아뇨."

"...네?"

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최대한 만만하게 보여주십쇼. 이 정도는 나도 하겠다 싶게끔. 가능하겠습니까?"

"마, 말씀드렸다시피 그게 그렇게 좋은 일은...."

"가능하다면 취재하셔도 좋습니다."

"청소 일이 어려워 봤자 뭐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청하는 악수.

그렇게 취재가 체결됐고.

[과다출혈 - 해금 조건 : 던전 청소팀, 신규 입사자 1명]

동시에 해금 기회가 열렸다.

***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는 본부장실

"취재 허가는 왜 내주신 겁니까?"

이수용 팀장은 연신 머리를 움켜쥐고 있는 서민철 본부장을 향해 넌지시 입을 열었다.

"...뭐?"

그러자 대번에 날카로운 시선이 날아들었다.

"너 언제부터 내가 하는 일에 토를 달았냐? 왜. 고까워?"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서민철 본부장은 평소보다 유독 심하게 날이 서 있었다.

이수용은 고개를 숙이며 재빨리 꼬리를 말았다.

"하.... 어떻게 되는 일이 하나가 없냐."

이윽고 본부장실에 울려 퍼지는 서민철의 깊은 한숨.

아닌 게 아니라, 최근 들어 골머리를 썩이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장 골칫거리인 건 역시 청소팀.

그나마 이번 사고를 계기로 그 기세가 꺾이나 싶었다.

김준우 혼자 책임을 덮어쓰던, 아니면 청소팀이 단체로 징계를 받건 어느 쪽이든 좋았다. 제발 얌전히 찌그러지기만 한다면.

그런데 설마하니 김민주가 끼어들 줄이야....

'어떻게 거기서 범인을 찾냐… CCTV도 모조리 부서졌다면서.'

결국, 난장판이 된 입장 표명 한 번으로 남 좋은 꼴만 됐다.

인터넷에서 실세니 뭐니 떠들어대는 꼬라지를 보고 있자니, 없던 위경련까지 도질 지경이다.

그리고 작전 2팀.

그 팀은 애초에 공중분해 될 걸 상정하고 만든 팀이다.

김민주에게 팀장을 달아준 건 어디까지나 모양만 세워줄 생각이었고....

17명밖에 없는 팔다리 다 잘린 팀에, 경험 없는 팀장.

자연히 실적은 바닥을 칠 거고, 결국 조금만 내버려두면 알아서 분해되리라 예상했다.

물론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대체 이런 기획은 누구 대가리에서 나온 거야....'

서민철 본부장은 책상 위에 놓인 2팀의 작전 기획서를 뚫어져라 노려봤다.

이 기획대로라면 정말 17명밖에 없는 팀으로 50명 수준의 작전이 가능하다.

아니 가능한 수준이 아니라....

작전 1팀을 넘어선다.

1팀의 실적은 곧 서민철 본부장의 실적이다.

최소한 본부에서 이수용이 자신의 라인인 걸 모르는 놈은 없다. 작전팀들 눈치에도 어렵사리 꽂아 준 놈인데, 실적까지 죽 쒀버리면 본인의 체면이 뭐가 되는가.

"뭔가… 처음부터 크게 잘못된 거 같다."

"그러니까 더 확실한 방법으로 눌러줘야죠! 언제까지 김준우 빽 하나 믿고 나대게 할 수는...."

"몰라, 시발. 난 이제 그 새끼들한테 손 뗐어."

"네…?"

한껏 목소리를 높이던 이수용 팀장이 맥 빠진 목소리를 냈다.

"김준우, 그놈… 협회장 라인인 건 둘째 치고, 그냥 인간 자체가 또라이야. 난 이제 그놈 건드릴 자신이 없다."

"뭐, 뭐 저도 그렇게는 생각합니다만… 암만 그래도 위아래가 있는 조직인데, 본부장님이 숙이실 필요는...."

서민철이 고개를 저었다.

"보통은 말이야. 어떤 사람의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의 목적이 보이고, 말하는 걸 들으면 명분이 보이기 마련인데… 그 새끼는 둘 다 보이지가 않아."

"목적이야 뻔하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계속 청소팀을 위해서 애쓰고 있잖습니까."

"그러니까 그 이유 말이야. 그 미친놈이 왜 뭣도 없는 청소팀을 위해서 그 지랄을 떨고 있냐고."

"그건...."

그 질문에 이수용이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튼, 또라이 새끼는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야. 우리가 안 건드리면 그놈도 가만히 있어 주겠지. 생각해보면 우리가 괜히 먼저 건드렸다가 이 지경까지 온 거잖냐."

"…굳이 따지자면 그렇긴 하죠."

"딱히 이아영처럼 본부를 뒤집어엎으려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냥 지들끼리 놀게 내버려두자고."

서민철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위계고 지랄이고 이제 털끝 하나 안 건드릴 테니, 그냥 제발 좀 조용히만 있어 줬으면 좋겠다.

서민철은 진심으로 그렇게 빌었다.

"저, 그래서...."

"또 뭐?"

"취재는 왜 허가해 주신 건지.... 그렇지 않아도 요즘 인터넷에서 청소팀이 꽤나 반응이 좋은데, 여기서 좋은 기사까지 하나 나오면 더 기세등등해지지 않겠습니까."

"아, 난 또 뭐라고. 걱정 마. 그럴 리는 없어."

서민철이 즉답하자 이수용이 눈을 깜빡였다.

"생각을 해봐. 가스 차는 던전 들어가서 몬스터 시체 자르고, 누구 건지도 모르는 피 닦고. 그런 직업을 취재하겠다는데 기사가 좋게 나오겠냐?"

"아...."

그제야 이해했다는 표정.

서민철의 말처럼 제아무리 포장한다 한들, 결국 청소부는 청소부일 뿐이니까.

제대로 눈이 달린 기자라면, 결코 사람들의 관심에 부합하는 기사는 나올 수가 없다.

"취재는 그냥 이번 계기로 분수를 좀 알았으면 해서 허가 내준 거야. 큰 의미는 없어."

"...알겠습니다."

"알겠으면 너도 이제 청소팀 놈들 관심 끄고 네 실적이나 신경 써. 곧 정산 시즌이잖아. 내가 통제팀이랑 얘기해서 최대한 정보 몰아줄 테니까 기획만 제대로 준비해."

"네. 감사합니다."

이수용은 고개를 꾸벅거리며 인사를 하던 그때.

"아."

"…왜 그러십니까?"

서민철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가 청소팀한테 취재한다고 말했었나...?"

***

결국, 구상찬 기자는 당분간 우리와 함께하기로 했다.

꽤나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어쨌든 이야기는 잘 마무리된 셈이었다.

던전에 들어가기에 앞서, 박 팀장은 구상찬에게 몇 가지 주의사항을 일러주었다.

동시에 장비를 챙겨주고 절대 혼자 다니지 말라고까지 당부했다.

또한, 최대한 작업에 방해되지 말 것.

구상찬 기자는 절대 그럴 일 없도록 쥐 죽은 듯 있겠다고 맹세했다.

뭐, 자긴 그냥 없는 사람 취급하고 평소처럼 작업하면 된다고 했지만....

"우아아악! 모, 몬스터!!"

"아, 죽었어요? 와 씨, 놀래라… 근데 다들 익숙하신가 봐요? 겁도 없으셔들. 저 같으면 만지지도 못할 텐데."

"헐, 이건 뭐예요?! 이거 설마 아티펙트...."

"...우욱! 우엑!"

저 지랄을 떨고 있다.

"근데 형님! 아, 형님이라고 불러도 되죠? 형님은 청소팀에서 일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

"와, 진짜요? 신입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그럼 문소연 씨는요?"

"2년?! 여기서 제일 선배네요?"

졸라 시끄럽네, 진짜.

넉살이 좋은 건지 아니면 염치가 없는 건지....

걸레질하는 손에 나도 모르게 점점 힘이 들어갔다.

여차하면 이 걸레로 저놈 주둥이를 틀어막아야겠다, 생각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럴 일은 없었다.

"...아, 더 가야 해요?"

"아, 아뇨. 괜찮습니다."

"...네."

"...."

작업이 진행될수록 구상찬의 말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으니까.

말수만 줄었다 뿐인가, 표정도 점점 굳어가고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너무나 명백했다.

나는 과장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 하하. 오늘 작업도 너무 쉽고 재밌네. 다들 그렇지 않습니까?"

"그, 그러니까요. 매일매일 일하고 싶네요. 하하...."

"이야~ 이거 정말 보람찬 일인걸?"

어쭙잖은 액션.

박 팀장은 약간 진심인 것 같기도 한데.

어쨌든 나는 다시 한번 구상찬의 눈치를 살폈다.

"...하하."

젠장, 씨알도 안 먹히네.

딱 봐도 곤란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업무 내용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모양이었다.

뭐, 아무리 즐거운 척을 해도 일 자체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하필 3명밖에 없을 때라 훨씬 바쁘고 힘들어 보일 수밖에.

'한상혁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할 걸 그랬나....'

젠장, 역시 박 팀장 말이 맞았다.

그나마 있던 이미지도 다 깎아 먹게 생겼네.

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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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하하! 그래도 하루에 던전 하나 정도면 나쁘진 않네요. 업무 강도가 세긴 해도 빡세게 두 시간 일하면 끝 아닙니까!"

"하루에 평균 3, 4개씩 합니다."

"아...."

구상찬의 눈이 빠르게 돌아갔다.

"그, 그래도 말입니다. 이렇게 고생하시는데 협회에서도 나름 대접해주지 않습니까?"

"며칠 전까진 구내식당도 이용 못 했다고 하던데요. 더럽다고."

"아...…."

깊은 탄식.

그럼에도 구상찬은 한 번 더 질문을 던졌다.

"…그래도 익숙해지면 이것도 꽤 할 만한 일이겠죠?"

"...."

"...."

이젠 더 이상 포장할 생각도 없다.

사실 이 정도 봤으면 구상찬 본인도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까.

제아무리 포장하려고 해도 결국 청소는 청소일 뿐이라는 걸.

이대로라면 내가 원하는 기사는 나오기 어렵다.

지금 이 꼴을 보고도 이 정도는 나도 하겠다,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생각이 짧았네....'

처음부터 업무 내용으로는 가망이 없었다.

그러니 업무 외적으로 어필할 만한 걸 찾아야 한다.

'김민주 팀 불러서 단체로 인사라도 시켜?'

...자존심이 있지 쪽팔리게.

"아, 그러고 보니 준우야. 확인해봤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던 그때.

박 팀장이 손뼉을 치며 뜬금없는 말을 건넸다.

"...뭘 말입니까?"

"뭐긴! 오늘 월급날이잖냐."

"아, 벌써 그렇게 됐습니까."

"얼씨구? 이놈 봐라. 첫 월급인데 별로 기대도 안 하네?"

"뭐...."

대수롭지 않은 대답.

지금 이 상황에서 월급이 뭐가 중요하다고... 그렇게 생각한 순간.

머리가 번뜩였다.

동시에 이거다 싶어 나는 재빨리 핸드폰을 확인했다.

사실 기대를 안 하고 있었던 건 맞았다.

기대를 떠나서, 애초에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처음 회귀를 하고 며칠간은, 택시 탈 돈도 없는 궁핍한 생활에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본격적으로 스킬 해금에 열을 올리고 나서부턴 모든 게 뒷전이었다. 시내버스? 세 끼 편의점 음식?

그쯤이야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이 나오니 또 생각이 달라졌다.

그래, 업무적으로 어필할 게 없으면 결국 돈이다.

월급이 많으면 일이 아무리 개 같아도 사람들은 관심을 갖는다.

무슨 일이 됐든 돈만 많이 준다고 하면 너도나도 하려고 달려드는 놈들이야 깔리고 깔렸으니까.

그렇게 마지막 희망을 걸며 금액을 확인한 순간.

"...와, 미친."

동공이 방향을 잃고 흔들렸다.

총 출근 일수 25일.

총 근로 시간 300시간.

일일 평균 12시간 근로.

+공동 프로젝트 참가 성과급.

실 급여액.

[3,563,240원.]

이게 대체 어떻게 돼먹은 계산법인가....

25일을 12시간씩 일했는데 350만 원?

아니, 성과급까지 포함한 게 이 금액이라고?

'아니야. 이건 아니야....'

뭔가 착오가 있는 거다. 아직 돈이 덜 들어왔다거나....

그래, 그러지 않고서야 이 금액은 말도 안 된다.

나는 그렇게 굳게 믿으며 박 팀장을 향해 핸드폰 화면을 들었다.

"저… 이, 이거 금액이 잘못...."

"이야, 역시 이번 달엔 많이 들어왔네!"

"...?"

핸드폰 화면을 보던 박 팀장이 손뼉을 쳤고, 문소연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성과급까지 있어서 꽤 넉넉하네요."

"...??"

이게 맞는 금액이라고?

0이 하나 빠진 게 아니라?

당연히 헌터 때와 비교할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100배가량 차이가 나는 금액이다.

'아니면 헌터가 특별하게 많이 받는 건가.... 원래 이게 평균이고?'

그런 생각이 들어 구상찬에게도 슬쩍 보여줬다.

아니나 다를까, 표정이 확 굳는다.

딱 봐도 이 돈 받곤 절대 이런 일 못 하겠다는 표정이다.

'일 났네....'

더럽고 위험한 일인 주제에 빡센 업무 강도.

그런데도 급여는 쥐꼬리.

심지어 이게 이들에겐 많이 받은 수준.

이건 끝났다.

이대로 기사가 나면 n년차 백수조차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어떻게든 수습을 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던 끝에.

"하하하… 아직 반밖에 안 들어왔군요."

"...네?"

"...뭐?"

무리수를 던졌다.

"워, 원래 우리 팀이 월급이 나눠서 들어온답니다. 하하."

"아! 역시 그렇습니까? 난 또...."

"에이, 설마하니 이 정도 일을 하는데 이런 금액일 리가 없잖습니까."

나는 과장되게 웃었다.

구상찬은 그제야 표정을 풀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반만 들어온 거니까, 평균 700만 원 정도는 되는 거네요?"

"...그렇죠."

"에?"

"저놈 지금 뭐래냐?"

내게 쏠리는 두 개의 시선.

하지만 그걸 애써 무시하며 쐐기를 박아 넣었다.

"평균 그 정도 됩니다."

"이야, 그 정도면 괜찮네요! 엔간한 대기업보다 더 받네!"

"하하...."

"야, 야…!"

애매하게 웃고 있자, 박 팀장이 나를 확 끌어당겼다.

"야, 이놈아!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어떡하시게요?! 어떡하려고 그래요!"

"과장도 정도가 있지…! 팀장인 나도 그 정도는 못 받아!"

"빠, 빨리 농담이라고 해요!"

"그래! 이거 이대로 기사 났다가 거짓말인 거 들통나면 10년간은 신입 못 받는다!"

목소리를 죽이고 문소연과 함께 닦달을 해댔지만....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나는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거짓말 아닙니다."

"...뭐?"

[시간 초과 - 해금 조건 : 던전 청소팀 임금 인상]

"거짓말 아니라고요."

***

무리수였다.

그걸 깨닫는 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젠장, 어쩌자고 그딴 말을....'

깊은 한숨과 함께 머리를 쓸어 넘겼다.

말을 하면서도 이건 아니다 싶었는데… 너무 앞뒤 생각 없이 뱉어버렸다.

고작 신입 하나 받겠다고 임금 인상까지 걸어버리다니.

그것도 두 배씩이나.

어째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 버렸지만....

어차피 언젠간 달성해야 할 조건이었다.

이참에 한 번 시도라도 해보는 셈 치지 뭐.

안 되면 깔끔하게 꼬리 말고 더 좋은 타이밍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고.

취재 건은....

'김민주 팀 불러서 청소팀한테 인사라도 시키지, 뭐.'

일은 개 같아도 나름 대접은 받습니다, 정도로 밀고 나가자고.

나는 팔짱을 끼며 최대한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스렸다.

어쨌든 뱉은 말이 있으니 시도야 해보겠다만, 사실 큰 기대는 안 한다.

되면 되는 거고, 안 되면 말고.

그렇게 애써 가벼운 마음인 척 찾은 본부장실.

내 이야기를 들은 서민철의 표정은 정말이지 가관이었다.

"안 건드린다고 마음먹자마자 이게 무슨...."

"예?"

"아무것도 아닐세."

서민철 본부장이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보아하니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뭐, 당연한 일이다. 그로서는 갑작스러운 걸 넘어서서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일 테니.

계약이 끝난 것도 아니고, 들어온 지 한 달밖에 안 된 비정규직 청소부가 다짜고짜 임금 협상을 꺼내든 게 아닌가.

나 같았으면 면전에 욕 박고 당장 꺼지라 그러고도 남았다.

그렇게 보면 서민철이 성격은 참 좋아.

"그… 왜 임금 협상을 하려는지 먼저 물어봐도 되겠나? 비정규직에 그 정도 임금이면 나쁜 편은 아닐 텐데."

내 눈이 순식간에 가늘어졌다.

진심인 건가?

350만 원이다.

한 푼도 안 쓰고 모은다고 했을 때 내 벤X리를 다시 사려면 대충 100개월.

무려 8년이 걸리는 금액인데, 이게 나쁜 편이 아니라고?

물론 그대로 말할 수는 없겠지.

"네, 뭐. 임금만 보면 나쁘지는 않죠. 다만 업무 수준과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나는 최대한 표정을 관리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 알겠네, 얼마를 인상해줬으면 하나?"

"두 배."

"이런 씨...."

우는 건지 화가 난 건지 모를 표정이었다.

"물론, 이건 제안입니다. 판단하시기에 그 정도는 아니다 싶으면 협상을 하셔도 됩니다."

"아냐, 아냐. 올려 주겠네. 그래. 자네 정도면 두 배 정도야...."

"아뇨. 저뿐만 아니라, 저희 팀 전체 두 배입니다."

"...…."

방금 이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자세히 보니 본부장의 주먹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한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가. 내가 본부장인 게 그렇게 마음에 안 드나?"

"…? 아뇨. 전 그런 말씀 드린 적 없는데요."

"팀 전체 임금을 두 배 올려달라는 건 일반 회사에서도 말이 안 되는 제안이잖나. 게다가 전문직도 아니고 고작...."

서민철이 황급히 입을 닫았다.

"왜 그러시죠?"

"아, 아닐세."

그리곤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내 눈치를 본다.

뭐, 영문은 모르겠지만 나로선 다행이다.

고작 청소부가 두 배를 올려달라는 게 가당키나 하냐고 물었다면… 나도 할 말 없어서 조용히 빠꾸할 생각이었는데.

"아무튼, 이건 내 권한 밖일세. 이 정도면 이사회에서 결정할 일이야."

"흐음...."

"어떻게든 내 꼬투리를 잡으려는 건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이건 맹세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세. …미안하네."

서민철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나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다른 게 아니라, 그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던 까닭이었다.

그냥 권한 밖이라고 하면 될 걸, 왜 진심으로 변명을 하는 건지....

게다가 사과까지?

이 방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라도 있나?

"뭐, 알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서민철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그, 그냥 가는 건가?"

"안 된다면서요. 그럼 더 남아 있어봤자 뭐 하겠습니까."

"...그, 그래."

어딘가 풀 죽은 목소리.

나는 한 번 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나저나… 결국엔 이렇게 되는군.

큰 기대는 안 했다만, 막상 대놓고 고배를 마시니 아쉽기는 하네.

뭐, 별수 없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시기상조였다.

일단 최대한 좋게 기사를 내서 신입을 받는 것에 집중하고, 임금은 그 이후에 다시 노려봐야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본부장실을 나서려던 그때.

벌컥―

"이봐, 서민철이!"

사무실 문이 큰 소리를 내며 활짝 열렸다.

다짜고짜 본부장 이름을 부르며 들어온 한 중년 남자.

그를 발견하자마자 서민철이 벌떡 일어났다.

"이, 이사님?!"

"이번 1팀 작전 배분, 이거 너무 대놓고 몰아주기식 아닌가! 내 보자 보자 하니까 이놈이 아주...!"

남자가 성이 잔뜩 난 듯 고래고래 목소리를 높이던 중.

문득 그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어이쿠, 손님이 있었군."

"...나가려던 참입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곤 사무실을 나섰다.

이윽고 복도로 들어서서 몇 걸음을 옮기던 그때.

"거기 자네! 잠깐 나 좀 볼 수 있나?"

"...?"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뒤돌아보니, 조금 전 중년 남자가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다.

"자네 혹시… 청소팀인가?"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름이?"

"김준우라고 합니다."

그 순간 딱, 손가락을 튕기는 남자.

"드디어 만나는구먼."

"...예?"

그리곤 씨익 미소를 짓는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반응.

이윽고 그가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반갑네. 이두식이라고 하네. 자네 얘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네."

"아, 네. 반갑습...."

동시에 내 눈이 번쩍 뜨였다.

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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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영 부실장의 아버지.

현 이능차원관리 협회 임원.

이두식 이사.

난데없이 거물이 나타났다.

"하하! 그렇게 경계하지 말게. 나쁜 사람은 아니야."

"그… 이사님께서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나는 최대한 예의를 갖춰 물었다.

물론 곧 꺼질 불이지만, 그럼에도 현재까지는 협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임은 틀림없다.

그런 자가 나를 알고 있다니.

괜히 불안한데.

"지금 본부 안에서 자넬 모르는 사람도 있나? 모르고 싶어도 이것저것 들려오던데. 청소팀을 위해서 엄청 애쓰고 있다면서."

"아뇨? 그건 아닌...."

"게다가 공동 프로젝트에선 임동빈을 날려버리고, 작전팀까지 운용하면서 본부 곳곳에 라인을 심어두었다지? 조금씩 본부를 집어삼키려고 밑밥을 깔아 둔다는...."

"...?"

대체 누구 망상인가 그건.

"하하하! 농담일세. 뭐, 그만큼 자네에 대한 소문이 많다는 뜻이야. 오히려 난 자네가 날 알고 있다는 게 더 신기하구먼. 이거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과찬이십니다. 그런데 저한테는 어쩐 볼일로...."

"음? 아니, 딱히 볼일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유명인이 지나가길래 말 한번 걸어보고 싶었네. 한창때 아이돌 따라다니던 딸내미 기분이 이런 거였군. 하하하!"

이두식 이사가 호탕하게 웃었다.

변한 게 없는 사람이다.

전생에서 협회장은 이두식을 두고 '아직도 고등학생인 줄 아는 철없는 놈'이라 표현했다.

다시 보니 그 이상 어울리는 표현이 없네.

'그나저나 그 천하의 이아영이 아이돌을 따라다녔다고?'

도저히 상상이 안 가는데.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서민철이를 찾아왔나?"

이두식은 계속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지, 또다시 말을 걸었다.

"별건 아니고, 임금 협상을 하러 왔습니다."

"표정을 보아하니 잘 안 됐나 보군. 이상하네… 그 정도야 서민철이가 바로 해줬을 텐데."

"팀 전체 두 배 인상을 제안했거든요."

"아.... 그, 그럼 뭐… 그럴 만하지."

큼큼, 몇 차례의 헛기침.

다른 사람 같았으면 미친놈이냐고 윽박을 질러도 모자랐을 일이다.

"뭐, 저도 사실 큰 기대는 안 했습니다. 이사회에서나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을 본부장한테 들고 갔으니… 당연한 결과였겠죠."

"흐음… 포기가 빠른 건지, 아니면 염치를 중시하는 편인 건지."

"...예?"

이두식 이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 이사회 소속이 지금 자네 앞에 있는데, 나한테는 부탁하지 않는 건가?"

내 눈썹이 순간 꿈틀거렸다.

이렇게 대놓고 들어온다고?

"...부탁드린다면, 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뭐, 물론 확답은 못 하지.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그래도 최소한 서민철이보다는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

애매한 대답.

나는 반사적으로 눈에 힘을 주었다.

"지금부터 말하는 건 이사회랑 상관없는, 지극히 내 개인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난 솔직히 자네 부탁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곤 생각하지 않네."

"무슨 말씀이신지."

"청소팀 임금 말일세. 나도 얼추 들어 알고는 있는데, 솔직히 그 돈 받으면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야. 작전팀 헌터들은 한 달에 두어 번만 토벌을 나가도 연봉이 억을 뚫는데 말이지."

"청소부를 헌터랑 비교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자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구먼. 그래, 맞는 말이긴 한데… 최소한 같은 조직에서 일하는 직원으로는 대우를 해줘야 하지 않겠나."

이두식의 목소리가 무거워졌다.

"자네 말대로, 헌터가 청소부보다 많은 돈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청소부가 터무니없이 적은 돈을 받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 그들도 나름 협회 소속이지 않은가. 그럼, 그 정도의 대우는 해주는 게 마땅하다고 보네."

"그렇다는 건 임금을 인상해주시겠다는...."

내가 넌지시 묻자, 이두식이 또 한 번 호쾌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하하하! 말했잖나, 이건 개인적인 의견이라니까. 지금 이사회 분위기로썬 섣불리 제안할 수 없는 일이야. 나로서도 리스크가 상당하고."

"...."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만약, 내가 자네 부탁을 들어준다고 한다면… 자네는 내게 뭘 해줄 수 있는가?"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결국, 이러려고 쓸데없는 말을 그리 한 건가.

대단한 빌드업 납셨네.

"제가 크게 해드릴 건 없고.... 훗날 이사님이 위기에 처했을 때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는 이두식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실로 어마어마한 제안이다.

협회에 계속 남아 있게 해주겠다는, 상당히 수지맞는 장사.

뭐, 물론....

"음, 별로 직관적이지 않은데?"

본인은 자기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알 턱이 없겠지만.

"나도 협회 사람이고, 이 자리에 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성과를 중시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 직관적인 성과가 필요하네."

"결과요?"

"임금을 올려줄 가치가 있는지, 결과로 설득하라는 거야. 그래야 나도 이사회에 들이밀 명분이 생기지 않겠나."

"이해가 잘 가지 않는군요. 주어진 일만 하는 청소부가 대체 어떤 성과를 내겠습니까."

이두식 이사가 씨익 웃었다.

마치 미끼를 물었다는 표정이었다.

"듣자 하니 작전 2팀장이 자네 라인이라지?"

"라인이라고 하기엔 조금 거창합니다. 그래 봤자 일개 청소부인데요."

"뭐, 자네가 청소부건 헌터건 나는 관심 없고...."

이두식 이사는 슬쩍 본부장실 문을 흘긴 뒤,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자네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달이 작전팀 정산 시즌일세. 그런데 통제팀에서 1팀에 제공한 정보만 해도 100개 던전 가까이 되더군. 서민철이 그놈이 대놓고 이수용한테 실적을 몰아주겠다는 거지. 쯧… 역시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이야."

미간을 구기며 고개를 내젓는다.

"그렇다고 나로서도 1팀을 건드리긴 뭐해. 어쨌든 협회 간판이 아닌가. 그런 놈들을 깎아내려봤자 내 얼굴에 침 뱉는 꼴이야. 뭐... 그놈들을 대체할 팀이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리곤 이내 다시금 나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그러니까, 자네가 2팀 친구들 데리고 이번 실적 싸움에서 1팀을 이겨봐."

"...…예?"

눈썹이 꿈틀거리다 못해 하늘로 승천할 뻔했다.

"자네 공동 프로젝트 때 리더 위임받았다면서. 보아하니 이번 달 2팀 작전 기획도 자네가 조언해줬다던데…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아,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성공한다면 이사회에 밀어붙일 명분도 생길 테니… 청소팀 전체 임금 두 배 인상, 내가 어떻게라도 해줌세."

이두식이 환한 미소와 함께 내 어깨를 탁 짚었다.

"어디 한번 실력 좀 보여줘."

"...."

망할.

어째 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은데....

***

자정이 다된 시간.

나는 청소팀과 작전 2팀을 모두 불러 모았다.

할 일이 없던 건지, 아니면 그냥 부르니까 쪼르르 달려온 건지 모르겠지만… 겨우 5분 만에 모든 인원이 사무실에 모여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모인 이들 중....

"당신은 여기 왜 껴있는 겁니까?"

구상찬 기자까지 당당하게 한자리를 꿰차고 있다.

"에이, 청소팀 일거수일투족을 취재하는 게 제 역할인데. 그렇게 말하면 저 섭합니다?"

사실 누가 끼든 상관이야 없다만....

'허세 부린 거 수습하려다 여기까지 왔다는 건 들키고 싶지 않은데....'

나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저, 그래서 선생님이 어쩐 일로 소집을…?"

그때, 기다리던 김민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른 건 아니고. 요즘 작전팀 정산 시즌이지?"

"아, 네...."

"준비는 잘 되고 있냐?"

"아, 아뇨. 지금 저희 인원으로는 할당량 채우기도 벅차서...."

목소리가 기어들어 간다.

"듣자 하니 서민철이 1팀을 대놓고 밀어주고 있답니다. 3팀도 최근에 프리랜서 몇 명 영입한 거로 봐선 꽤 칼을 간 것 같고요."

"뭐, 아무래도 굵직한 팀들의 실적 싸움에 끼어들기엔 인원도, 지원도 부족하니까… 어쩔 수 없죠."

동시에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지 말고 시도라도 해보는 게 어때?"

"저희도 그러고 싶은데, 아무래도 여건이...."

"여건이 된다면 할 수 있다는 거야?"

"…네?"

김민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에 청소팀한테 좋은 제안이 들어왔어. 뭐, 자세한 내용은 알 거 없고...."

나는 몸을 앞으로 당기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것 때문에라도 너희가 이번 정산 시즌에서 성과를 좀 내줬으면 하거든. 솔직히 너희한테도 도전해볼 만한 가치는 있을 거 같은데? 잘만 하면 하꼬팀 딱지 벗을 수도 있고."

"...."

"물론 막무가내로 싸움에 끼어들라는 건 아니야. 대충 계획은 세워놨어. 나도 최대한 도와줄 거고. 그러니까 지금 말해줘."

나는 팀원들을 한 명씩 훑어보며 말했다.

"낄 거야, 말 거야."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말하면 안 할 수가 없는데요."

동시에 김민주가 작게 미소를 흘렸다.

"아니 뭐, 도와주신다면 저희야 감사하죠."

"김준우 청소부님이 손수 도와주신다는 데 안 할 이유가 있습니까?"

"당연히 할 수 있습니다!"

이어 줄줄이 목소리를 내는 팀원들.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대신 주의해야 할 게 있어."

"말씀만 하십쇼!"

"이건 작전팀의 싸움이지만, 청소팀도 끼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야."

어딘가 어리둥절한 팀원들의 표정.

나는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정산 시즌에 토벌되는 던전은 일주일에 평균 50개꼴. 서울 내에서 한 달 동안 출현하는 던전이 일주일 새에 모두 토벌되는 수준이지. 뭐, 중요한 시기니까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뒤처리는 모두 우리 몫이야."

"아...."

"지금 우리 인원으로는 하루에 3개도 벅차. 일주일에 50개? 턱도 없는 소리지."

숙연해진 사무실.

다들 미쳐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다는 분위기다.

뭐… 나라도 몰랐을 것이다.

막상 내가 하게 생겼으니 와닿는 것뿐이지.

"그러니까 무턱대고 토벌만 하는 건 안 돼. 그랬다간 청소팀이 감당할 수 없으니까. 작전팀이랑 청소팀이 한 팀이 돼서 완벽하게 맞물려야 해."

"역시...."

"알겠습니다!"

"결국, 두 팀의 연합 작전이군요!"

"…아니. 그건 아니야."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한 팀 더 있거든...."

떨떠름하게 말을 꺼낸 그 순간.

벌컥―

"참 나...."

때맞춰 그녀가 사무실로 들어섰다.

"면전에서 대차게 거절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필요해지니까 부르시네."

등장과 동시에 면박을 주는 그녀.

"되게 섭섭한 거 알아요? 다른 사람 같았으면 거들떠도 안 봤을 텐데."

"미안하게 됐습니다."

나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 지원군은 다름 아닌 지원팀 헌터관리실, 이아영 부실장.

이번 작전은 작전팀과 청소팀만으론 불가능하다.

토벌은 현실이다.

같잖은 자신감이나 근성으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내가 기똥찬 기획을 짜고, 작전팀이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분명하게 한계는 존재한다.

때문에 자존심 다 굽히고 찾아가서 이아영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몇 번 튕기긴 했지만… 그래도 못 이기는 척 수락은 해줬으니 다행인 셈이지.

"한 번 떠난 버스 다시 잡으려면 그냥은 안 되는 거 아시죠?"

"...압니다."

"미리 말하지만 나 뒤끝 심해요. 나중에 가서 딴말하기 없기."

"그러죠."

마지못해 대답하자, 이아영 부실장이 싱긋 웃는다.

"뭐, 일단 그건 나중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그래서… 제가 뭘 도와주면 돼요?"

030

030

작전 2팀 사무실.

앞에 놓인 화이트보드는 이미 난장판이었다.

벌써 한 시간이나 떠들어댔지만... 아직까지 할 말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러니까 무조건 많이 토벌한다고 좋은 게 아니야. 그건 다른 작전팀도 마찬가지고. 말했듯이 닥치는 대로 토벌을 할수록 다른 청소팀한테 과부하가 올 테니까."

"네!"

수첩에 필기를 이어가던 팀원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다른 청소팀이 살인적인 일정에 작업이 지체되면, 작전팀은 어쩔 수 없이 토벌량을 줄일 수밖에 없어. 우리에겐 그 기점이 기회다."

당연히 인원이 부족한 만큼, 처음에는 다른 팀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 기획대로라면 우리는 어느 팀 하나 지체되는 것 없이 일정하게 토벌이 가능하다.

다른 팀의 토벌량이 줄어드는 그 기점까지만 버티면… 그때부턴 우리가 치고 올라갈 수 있다.

"그러니 지원팀은 우선 장비부터 지급해주세요. 지금 2팀 전력으로는 하루에 던전 한두 개가 고작입니다. 최대한 A+급 이상의 무기와 소모품을 지원해주시고 매일 수리할 수 있도록 준비해주세요."

"와… 뻔뻔해라."

이아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입만 움직였다.

"청소팀에도 지원이 필요합니다. 플라즈마 절단기 세 대. 강화 로봇. 그리고 드론도 좀 필요할 것 같군요."

"...."

"헌터들은 이틀에 한 번씩 케어해주시고. 또 무기 수리할 때 대용으로 쓸 수 있는 여분 장비도 필요합니다.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관리해줄 지휘시스템도 마련해주시고요. 그리고 또...."

"자, 잠깐! 잠깐만요"

쉬지 않고 쏟아내자, 이아영이 손을 들어 나를 급히 멈췄다.

"대, 대체 뭐가 그렇게 많이 필요해요? 그렇게까지 안 해도 정산 안정권은 어렵지 않을 텐데?!"

"...? 안정권이라니, 무슨 소립니까. 제가 그런 어중간한 등수나 보려고 이러는 줄 압니까?"

"...?"

"...?"

눈이 동그래진 팀원들.

그 반응을 보고 나서야 내가 목표치를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 저는 작전에 지읒도 모르는 낙하산 팀장, 인원이 전부인 줄 아는 모지리 팀들, 그런 놈들한테 질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나는 다시금 팀원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런고로, 이번 정산 시즌에서 우리 목표는 1등이다."

"...."

일동 침묵.

그러면서도 다들 묘한 미소를 띠고 있다.

눈빛들을 보아하니 바라던 바라는 낌새다.

"참가에 의의를 두자? 혹시라도 그런 생각으로 임할 놈은 지금 빠져. 내가 도와주는 이상 그런 배포도 없는 놈은 필요 없으니까."

쿵, 주먹으로 화이트보드를 가볍게 두드렸다.

동시에 기합을 내뱉는 팀원들.

계속 말을 아끼고 있던 문소연과 박 팀장도 얼떨결에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그… 딴죽 거는 건 아닌데...."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이아영은 여전히 탐탁지 않은 듯 입을 열었다.

"통제팀이 이번에 작전 1팀한테 던전 정보를 거의 몰아줬어요. 아무리 우리끼리 연합을 한다고 해도 정보량에서 차이가 엄청 심할 텐데?"

"그건 걱정 마세요."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우린 던전이 언제 어디서 출몰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잖아요."

"뭐, 제가 나름 감은 괜찮으니까."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이아영은 더욱더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자, 아무튼 작전팀은 내일부터 내가 말해준 루틴대로 토벌 진행해. 추가적인 사항이 있으면 김민주를 통해서 전달할 테니까 무전기 켜두고."

김민주가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지원팀도 잘 부탁드립니다. 아마 팀 전체가 많이 바쁠 겁니다. 팀원들에겐 부디 잘 설명해주세요."

"걱정 마요. 그 정돈 된다니까?"

이아영 부실장은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청소팀은… 뭐, 늘 하던 대로만 합시다."

"네, 네!"

문소연은 바짝 굳은 얼굴이었지만, 기세는 두 여자에게 지지 않았다.

그렇게 슬슬 회의가 마무리되고 있던 그때.

"저, 회의 중에 실례지만...."

잠자코 앉아 있던 구상찬 기자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뭡니까?"

"그… 원래 협회에선 이 정도 규모의 연합 작전을 청소팀이 지휘합니까?"

"...."

"...."

아닐걸?

***

그렇게 해서 청소 3팀, 작전 2팀 그리고 지원팀의 연합 작전이 시작됐다.

작전의 가장 선두에 있는 이들은 당연히 김민주 팀장과 작전 2 팀원들이었다.

실질적인 토벌을 해야 하는 팀인 만큼,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긴장을 유지해야 했고 단 한 순간도 집중을 놓치면 안 됐다.

"두 명만 남고 나머진 곧장 보스 방으로 가! 그린 등급에서 2시간이나 잡아먹으면 어떡해!"

그린 등급의 '킹 고블린' 던전.

김민주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팀장님, 포지션이 흔들립니다!"

"힐러들 체력도 바닥입니다. 포션도 거의 다 소모했고요!"

"잠깐 후퇴해서 재정비를...."

"여기서 지체되면 루틴이 깨져! 한 번에 몽땅 때려 부으면 충분해!"

[고유 스킬 : 천수관음(千手觀音)]

[스킬 발동]

이윽고 발동된 김민주의 고유 스킬.

그것을 필두로 다시금 2팀의 공격이 쏟아졌다.

***

같은 시각.

지원팀 헌터관리실.

"B팀 무기 수리 아직도 멀었어요?"

이아영 부실장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목소리를 키웠다.

"재, 재료가 모자랍니다! 재료 확보될 때까지 작전을 잠시 중지하는 게...."

"우리가 지체되면 나머지 팀 루틴이 깨지잖아요! 재료관리실에 부탁해봤어요?"

"네, 말해봤는데… 안 된답니다. 자기들도 부족하다고...."

"지랄하고 있네. 부족한 게 아니라, 줄 사람이 정해져 있는 거겠지. 계속 못 주겠다고 하면 훔쳐라도 와요!"

"아, 알겠습니다."

그녀의 말도 안 되는 지시에 지원팀 직원은 상당히 곤란한 표정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들어온 지 일주일도 안 된 신입조차 알 것이다.

저 훔쳐 오라는 말이 절대 농담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B팀 복귀하면 부상자 바로 치료 들어가고, 나머지는 회복에 집중해요. 3시간 간격으로 교대할 수 있게 신경 써주고."

"네, 네!"

그럼에도 이아영의 지시는 멈출 줄 몰랐다.

그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서류를 빠르게 넘겼다.

"또 CCTV 최대한 활용해서 다음 동선 겹치지 않게 해주세요. 아, 무기 제작은 어떻게 되고 있어요?"

"거의 완성 됐습니다. 내일이면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

"저, 저... 그런데 부실장님."

그때 한 팀원이 어딘가 께름칙한 표정으로 넌지시 입을 열었다.

"이거… 이래도 괜찮을까요?"

"뭐가요? 뭐 문제 있어요?"

"아, 아뇨. 다른 게 아니라… 작전 2팀 모두에게 A+급 무기를 제작해주면 1팀에서 분명 말이 나올 텐데...."

"참 나, 그동안 1팀한테 따까리 소리 들으면서 퍼준 게 얼만데 고작 이거 가지고.... 그 정도는 내가 책임질 테니까 지금은 일에만 집중해요."

"네, 네!"

하여간 그 새끼들은 염치가 없는 건지, 개념이 없는 건지.

이아영 부실장은 굉장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이아영을 아까부터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직원.

"...."

송혜연 보좌관.

"왜 그래?"

"아니… 되게 즐거워 보이셔서요."

"음, 뭐...."

송혜연 보좌관은 굉장히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당연히 그녀 입장에선 놀랄 만한 모습이었다.

지금껏 그녀가 봐온 이아영은, 늘 세상 다 산 표정으로 출근하는 순간부터 퇴근할 때까지 하품만 쩍쩍하던 사람이지 않았던가.

그런 그녀가 이렇게 바뀌다니.

"서민철 본부장이랑 이수용 팀장, 단체로 엿 먹이는 거잖아? 재미없을 수가 없지."

"...."

이유는 왜 또 저 모양이야.

***

서울 본부장실.

서민철의 호출로 차민수 비서와 통제 팀장이 급히 소집된 참이었다.

"현재까지 상위 세 팀의 누적 토벌 던전은… 작전 3팀 총 19개, 작전 1팀 총 22개 그리고 작전 2팀...."

차민수 비서는 중간 정산 현황을 보고하던 중, 말끝을 흐렸다.

그리곤 서민철의 눈치를 살피던 끝에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22개입니다."

"이런 씨발!!"

쿵!

책상이 부서질 듯 요동쳤다.

"대체 뭐가 문제야? 임금 안 올려줬다고 시위하는 거야?! 시발, 내 권한으로 할 수 있는 걸 들이밀던가!!"

진심 어린 분노.

서민철의 목에 핏줄이 바락바락 섰다.

"무, 문제는 점점 차이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청소팀이랑 지원팀까지 연합해서 거의 완벽한 기획을 했습니다. 이대로면… 1팀을 재끼는 건 물론, 압도적으로 1등을 할 것 같습니다."

"잠깐… 지원팀까지 붙었다고? 그놈들은 왜?"

"그것까진 잘...."

지원팀이라면 이아영, 그년이 실세로 있지 않던가.

설마 이번 작전에 이두식 이사가 끼어 있는 건....

아니, 아니야.

그럴 리는 없다. 물론 실적 몰아주기를 못마땅해하긴 했어도… 이사나 되는 사람이 협회 간판인 1팀을 깎아내리는 짓을 할 리는 없다.

그렇다면 이건 그냥 어중이떠중이 같은 놈들끼리 대충 뭉쳤다는 건데....

"젠장… 고작 청소팀 하나에 하꼬 작전팀 하나, 따까리 팀 하나 연합했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성과가 나온다고?"

"저… 아무래도 다음을 생각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

차민수 비서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이러다 통제팀까지 붙게 되면… 본부의 영향력을 넘어설 겁니다. 자체 토벌이 가능한 '사단'이 만들어지고 맙니다."

"...."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민철과 차민수의 시선이 동시에 한 남자를 향해 움직였다.

"편 팀장."

"…네, 네."

뒤에서 잠자코 자리를 지키고 있던 편창현 통제팀장.

그가 바짝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떻게 생각해?"

"뭐, 뭘 말씀이십니까."

"몰라서 묻는 거야? 자네들도 청소팀에 붙을 거 같냐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확실해?"

편 팀장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서민철은 아직도 뭔가 부족한 듯했다.

"그럼 이제부터 토벌 허가 내주지 마."

"...네?"

"작전 2팀한테 허가 내주지 말라고. 일주일에 3번 정도만 하게 해. 나머진 전부 1팀한테 몰아주고."

"그, 그걸 저희가 임의로 할 수는...."

쿵, 책상이 한 번 더 요동쳤다.

"변명거리는 내가 알아서 만들어줄 테니까 그냥 하라는 대로 하라고! 아니면 뭐, 니들도 청소팀에 붙을 생각이야?"

"아, 아닙니다."

"그럼 할 수 있다는 뜻이지?"

편 팀장이 침을 꿀꺽 삼켰다.

"...예."

서민철은 그제야 만족한 듯했다.

이윽고 나가보라는 말에, 편 팀장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본부장실에서 나오자 마침 기다리고 있던 통제팀 소속 황동휘 대리가 따라붙었다.

"본부장님이 뭐라십니까? 이번에도 1팀 몰빵하랍니까?"

"그거밖에 뭐 더 있겠냐."

"쯧, 우리가 그렇게 퍼주는 대도 꼴랑 17명밖에 없는 팀을 못 이겨서...."

황동휘 대리가 대놓고 혀를 찼다.

"솔직히 1팀 놈들이 암만 정예라고 떠들어 봐도 2팀한텐 안 돼. 그놈들 작전 기획이랑 토벌 루틴 짠 거 봤냐? 야… 진심으로 감탄 나오더라."

"뭐, 본부장님도 그걸 아니까 유치하게 편 가르기나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게 말이다. 에휴, 살다 살다 청소팀이랑 본부장 사이에서 고민할 줄이야...."

편 팀장과 황동휘 대리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잖습니까. 결국, 청소팀은 청소팀이니까…. 저희로서는 뭐, 당연히 본부장님 편에 서야죠."

"알지. 나도 아는데...."

편 팀장은 이 상황이 적잖이 답답했다.

때문에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였고.

"에휴, 시벌 모르겠다. 일단 하라는 대로 해야지 뭐."

깊은 한숨과 함께 결정을 내렸다.

"이제부터 2팀 허가 내주지 말고, 출현 던전 전부 1팀한테 우선 허가 내줘."

"엥? 전부요? 그건 너무 많지 않겠습니까?"

"하라는 대로 해주는 건데 뭐가 문제야. 일 생기면 지들이 책임지겠지."

편 팀장은 더 이상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먼저 복도를 가로질렀다.

031

031

3번째 던전의 청소 작업이 거의 마무리 된 시점.

"A팀, 서초동 완료했어?"

나는 무전기를 들어 작전 현황을 체크했다.

「네! 방금 막 끝났습니다!」

"그러면 바로 사당으로 가서 대기해. 아직까지 청소는 문제없으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사당 완료하면 오늘 토벌은 끝입니까?」

"그래. 어제보단 좀 널널하게 끝날 것 같네."

「그럼 몇 개 더 토벌할까요? 시간도 남는데....」

"아니. 말했잖아. 하루에 딱 5개 던전만 하라고. 그 이상은 딱히 의미가 없어. 우린 최대한 이 루틴을 유지하면서 마지막에 역전을 노릴 거야."

「네, 알겠습니다!」

작전 2팀원의 우렁찬 목소리.

나는 무전기를 내려놓으며 옅은 한숨을 쉬었다.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2팀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토벌을 이어갔다.

처음엔 경험이 적은 놈들뿐이라 내심 불안했지만, 이젠 다들 익숙해진 건지 나름 작전팀 값은 하고 있다.

물론 지원팀의 활약도 한몫했다.

장비 제작 및 수리 그리고 로테이션 케어를 지체 없이 수행해주었다. 듣자 하니 작전 1팀 엿 먹일 생각에 다들 야근을 자처하고 나섰단다.

참 이상한 데서 열을 내는 팀이 아닐 수 없었다.

여하튼 두 팀의 노력 덕에 그만큼 청소팀은 할 일이 늘었지만....

그것도 딱히 문제는 없었다.

"이야, 역시 기계가 좋긴 해!"

"와, 이거 엄청 잘 잘리는데요?"

지원팀의 장비 지원으로 이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작업이 가능했으니까.

"준우야! 이거 계속 우리가 쓰면 안 되냐? 이거 하나만 있으면 하루에 10개도 거뜬하겠는데?"

박 팀장은 플라즈마 절단기를 앞에 두고 상당히 탐이 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마 힘들 겁니다. 애초에 지원팀에도 3대 밖에 없는 거고… 원래 무기 제작용으로 해외에서 비싸게 주고 들여온 거라더군요. 오죽하면 이아영 부실장이 고장 내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겠습니까."

"그러냐? 그럼 어쩔 수 없지...."

맥 빠진 목소리.

박 팀장이 저렇게 아쉬워하는 건 또 처음이다.

뭐, 마음은 이해한다.

장비 몇 대 지원 받은 것뿐인데, 작업 속도가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니까.

드론 날려서 통로에 약품 뿌리고, 몬스터 해체는 더 이상 손으로 일일이 할 필요 없이 플라즈마 절단기로 5분 만에 가능했다. 몬스터를 나르는 것 또한 강화 로봇이 대신해주었다.

던전 하나를 청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한 시간.

실로 엄청난 단축이다.

'뭐… 이대로면 1등은 문제없겠네.'

나는 옅은 미소를 띠었다.

지금이야 아직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지만, 시간은 우리 편이다.

이 상태만 유지한다면 내일을 기점으로 역전이 가능하다.

임금 인상은 이거로 확정이나 다름없고.

나머지는....

"어때. 이 정도 일이면 아무나 할 수 있겠지?"

나는 구상찬 기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걸 아무나 할 수 있다고요?"

그런데 어째 기가 차다는 표정이다.

"그럼 이 정도야 누가 못 해. 해체도 기계 돌리면 되고, 무거운 것도 로봇이 대신 날라주고. 우린 아무것도 안 하고 구경만 하는데도, 한 시간 만에 던전 하나 뚝딱. 이보다 만만한 직업이 또 있냐."

"참 나! 그건 다 공짜로 받아냈답니까? 형님이 전부 기획하고 받아낸 거 제가 모르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빌린 장비도 다시 지원팀한테 돌려줘야 한다고...."

"...상찬아."

옅은 한숨.

틀린 말은 아니다만… 어째 말뜻을 못 알아먹는 녀석이네.

"…예, 옙?"

"나 신입 받고 싶다."

나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도와줘라, 좀."

"...아, 하하하."

구상찬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멋쩍게 웃어 보였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해야겠냐....

에휴, 기자라는 놈이 눈치가 이렇게 없어서야.

속으로 진심 어린 한탄을 하고 있던 그때.

「김준우 청소부님! 크, 큰일 났습니다!」

다급하게 나를 찾는 무전이 울렸다.

"왜 그래. 무슨 일 생겼어?"

「저, 그게… 사당 쪽 던전 말입니다. 작전 1팀이 이미 토벌을 진행하고 있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거기 우리가 허가받은 던전 아니야?"

「마, 맞습니다. 아무래도 통제팀에서 착오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

아니,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통제팀이 토벌 허가를 착오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산 시즌 같은 민감한 시기에 무슨 욕을 처먹으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하겠는가.

게다가 전생에서도 그런 실수는 한 번도 없었다.

이건 딱 봐도 실수가 아니라....

「지원팀입니다! 긴급 보고 드릴 게 있습니다!」

그 순간, 이번엔 지원팀에서 무전이 날아들었다.

"…또 뭡니까?"

「현재, 출현 던전 전부 작전 1팀한테 우선 허가 떨어졌습니다!」

"젠장, 역시...."

확실하다.

통제팀이 서민철한테 붙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막무가내 허가를 내린다고?

빽도 생겼겠다, 뒤처리는 알아서 해주겠거니 싶은 건가?

「저, 그런데 문제는 1팀의 토벌량입니다. 현재 시각 기준, 어제 대비 세 배로 늘었어요.」

"…예? 그건 말이 안 됩니다. 다른 청소팀들이 감당할 수 있는 양이 아닙니다."

「그, 그게....」

지원팀 직원은 뜸을 들이길 한 차례.

「무시하고 있어요.」

예상을 아득히 벗어난 대답을 내뱉었다.

「다른 청소팀 속도는 무시하고 닥치는 대로 토벌만 하고 있습니다.」

"그랬다간 미청소 던전이 생길 텐데…?"

「이미 3개의 미청소 던전이 발생했습니다. 이대로면 계속 늘어날 거예요.」

"...이런 미친놈들을 봤나."

머리가 없는 건가?

미청소로 인해 던전이 재출현하면 피해를 보는 건 지들인 걸 모르나?

아니, 그 새끼들이야 피해를 보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다.

그런데 그거… 결국 우리가 치워야 하잖아.

상식을 아득하게 벗어난 행동에 나도 모르게 무전기를 쥔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아...."

나 또한 즉답할 수 없었다.

어차피 우선 허가가 떨어졌다고 해도 주먹구구식 토벌에는 한계가 있다.

해봤자 2~3일만 지나면 지들이 먼저 나가떨어지겠지.

그때까지 토벌을 하루 한두 개로 축소하고, 1팀이 나가떨어진 이후에 다시 스퍼트를 내면 페이스를 찾을 수는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동안 미청소 던전이 미친 듯이 나오겠지.'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당연하겠지만 이번에 1등을 놓치면 임금 인상은 둘째 치고, 허세 부린 걸 수습하지도 못한다.

그러면 덩달아 좋은 기사를 기대하기도 힘들어진다.

나에겐 이번 작전에 너무 많은 것이 걸려 있다.

그것들을 포기할 바에, 차라리 나중에 조금 고생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스친 순간이었다.

"주, 준우 씨? 왜 그래요?"

"무슨 문제 있나?"

문소연과 박 팀장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그들의 얼굴을 보자, 문득 예전에 박 팀장이 한 말이 떠올랐다.

- 미청소 던전은 우리 입장에선 죽으라는 소리야.

가스는 C레벨 방호복으로 버틸 수준이 아니고, 완전히 부패한 몬스터는 어떤 위험이 있을지 가늠할 수도 없다지.

기존에 쓰던 장비는 당연히 무용지물.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다른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미청소 던전이 위험한 가장 큰 이유는....

토벌과 청소의 순서가 바뀌게 되는 것.

그 말은 결국 몬스터가 살아 있는 던전에 우리가 먼저 들어가서 청소를 해야 한다는 소리다.

나야 그렇다 쳐도 다른 팀들은....

'에휴, 거의 다 왔는데....'

나는 그들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끝에 다시 무전기를 들었다.

"작전팀, 지원팀. 응답 바람."

***

여의도에 위치한 이능차원관리협회 행정본부, 이사실.

"서민철, 이 개새끼를 봤나!"

이두식 이사는 보고를 받자마자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본부에 작전팀밖에 없어?! 다른 팀 생각은 안 해? 미청소 던전 출현하면, 그거 청소는 지들이 한대냐?!"

"...."

이두식에게 보고를 한 비서는 잔뜩 움츠러든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그가 대답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이런 미친놈! 나름 정예라고 오냐오냐 눈감아줬더니 결국 이 사달을 내네. 고작 실적 싸움 한 번 이기겠다고.... 유 비서! 지금 당장 통제팀장 연락해!"

"네, 네?"

"이대로 계속 가면 미청소 던전 감당 못 해! 당장 편 팀장 연락해서 모든 작전 허가 철회하라고...."

"아뇨."

그 순간, 한 여성의 목소리가 격양된 이두식 이사의 말을 끊었다.

"그럴 것까진 없어요."

때마침 이사실로 들어온 이는, 다름 아닌 이아영 부실장.

하지만 딸아이가 찾아왔음에도 이두식 이사의 표정은 영 좋지 못했다.

"...근무 시간에는 찾아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걱정 마세요. 저도 전해드릴 게 있어서 온 거니까."

"업무 때문에 온 거면 조금 더 예의를 갖추는 게 어떠냐."

"어머, 그런 것까지 신경 쓰실 줄은 몰랐네요. 그런데, 그렇게 예의를 중시하시면서 왜 집에선 밥 먹고 설거지도 안 하세요?"

"…잘리고 싶냐?"

"...."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아무튼, 미청소 던전 때문이라면 굳이 작전 허가까지 철회할 필요는 없어요."

무의미한 기 싸움 끝에, 이아영 부실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미청소 던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면서!"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지금 연합팀 전원이 청소팀으로 투입됐어요."

"...…?"

이두식 이사의 눈이 동그래졌다.

"청소 3팀을 포함해서 작전 2팀, 헌터관리실 팀원 전원이 청소팀으로 투입됐다고요. 뭐… 썩 내키진 않지만, 대장 명령이라 토를 달 수도 없고...."

"그, 그게 무슨...."

"아, 그리고 대장이 말 좀 전해달래요. '이번엔 자기가 졌다'고."

이아영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이두식의 반응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순식간에 뺨이라도 얻어맞은 듯한 얼굴이 되었다.

"뭐 둘이 내기라도 했어요? 아니 것보다, 둘이 언제 만났대?"

"...몰라도 돼."

"진짜… 다들 나만 왕따 시킨다니까."

이아영 부실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곤 볼일을 다 봤다는 듯,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벌써 가냐?"

"말했잖아요. 말 전하러 왔다고. 저도 시간 없어요. 청소하러 가야 해서."

이내 이아영은 씨익 웃으며 사무실을 나섰다.

"하아."

동시에 이두식 이사가 헛웃음을 뱉었다.

"하하, 하하하! 이런 또라이를 봤나!"

사무실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

그런 완벽한 기획을 세워놓고 이렇게 나온다니!

팀 전체 임금 두 배 인상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게다가 '이번엔' 졌다는 건, 다음엔 이길 거라는 건가?

'아니 그런 것보다....'

자칭 '일개 청소부'가 작전팀이랑 지원팀을 청소에 투입해?

그놈들은 그걸 또 고분고분 따르고 있고?

제정신이 아니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야.

대체 어디서 이런 놈이 굴러들어와서는....

이두식 이사의 얼굴에 진심 어린 미소가 지어졌다.

'서민철이… 넌 이번에도 청소팀한테 진 거야.'

그리곤 곧바로 의자에 걸쳐놨던 코트를 집어 들었다.

"유 비서, 협회장님한테 연락해서 징계위원회 준비해놔. 이번 건 그냥 못 넘어가"

"네, 네. 알겠습니다."

이두식 이사는 이내 사무실 문을 부서져라 열어젖혔다.

032

032

통제팀, 작전 지휘실.

미청소 던전이 세 개나 발생했다는 소식에 통제팀 직원들은 단체로 패닉에 빠진 채였다.

물론 황동휘 대리와 편창현 팀장도 마찬가지였다.

"어, 어떡합니까? 지금이라도 중지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시발...."

편 팀장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떻게든 수습은 해야겠는데, 서민철이 끼어 있는 한 독자적으로 허가 철회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젠장할, 이렇게 앞뒤 없이 나가면 우리는 어떡하라고.'

서민철이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다, 그렇게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 또한 이렇게 되리라는 걸 내심 알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1팀한테 전부 우선 허가를 내준 이상 다른 팀과 속도를 맞출 수 없다.

미청소 던전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건, 편 팀장 또한 어렴풋이 상정하고 있는 일이었다.

다만 애써 무시했을 뿐.

협회 들어온 지 13년, 팀장 자리도 어언 4년째다. 여태껏 협회에 있으면서 윗사람 말 들어서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간 조직 생활 그리 어렵지 않다고 느낀 것도 그 덕분이다.

하라는 대로 하고, 하지 말라는 건 안 한다.

딱 그것만 지키면 됐으니까.

그런데 이게 뭔가.

하라는 대로 한 결과가 이것인가.

"야, 동휘야. 우리가 임의로 작전 철회시키면… 어떻게 될 거 같냐?"

편 팀장이 황동휘 대리에게 넌지시 물었다.

"본부장한테 쌍욕 처먹겠죠."

"본부장 외에는?"

"팀장님. 이미 저희가 토벌 허가 몰빵 해준 시점부터 다른 팀들 싹 다 적으로 돌린 겁니다. 이제 와서 주변 시선 신경 쓰기엔 늦었어요."

후우, 편 팀장이 길게 한숨을 늘어트렸다.

맞는 말이다.

이제 와서 수습하려 한들 이미 너무 많은 적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내버려둘 수도 없다.

선택의 기로.

여태껏 그래왔듯이 본부장 끈을 잡고 있을지, 아니면 황동휘 말대로 이제라도....

"티, 팀장님! 허가 철회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 순간, 전화를 받던 어느 직원이 목청을 키웠다.

"…갑자기 뭔 소리야."

"작전 2팀과 지원팀 전원, 청소팀으로 투입됐답니다! 작업량도 따라잡고 있고요. 미청소 던전은 더 이상 안 나올 것 같으니, 이대로 밀고 나가도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

심장이 쿵 떨어졌다.

작전 2팀이 실적 싸움에서 빠졌다고?

게다가 지원팀이면 이두식 이사의....

"이야, 진짜 불행 중 다행입니다. 이제 저희가 수습 안 해도...."

"야!"

편 팀장의 입에서 새파랗게 날이 선 목소리가 나왔다.

"네가 볼 땐 이게 다행이냐?"

"...예?"

멍청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수습을 안 해도 되는 게 아니라, 이제 수습할 수 있는 기회조차 뺏긴 것이다.

"우리 이제 다 좆 된 거야...."

편 팀장의 공허한 목소리가 통제실에 메아리쳤다.

***

"저기요! 이거 왜 이렇게 안 잘려요?!"

아까부터 낑낑거리고 있던 이아영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거 그렇게 힘으로 하면 안 돼요. 결을 따라서 몇 번 흠집을 내줘야 해요."

"…에?"

이내 김민주가 다가가 설명해주자, 이아영의 표정이 퍽 이상해졌다.

"흘러나온 피는 꼭 닦아주시고요. 보통은 해체하면서 틈틈이 닦아주는데, 그러기엔 지금 시간이 너무 없으니까 먼저 다 해체를 하는 게 좋을 거예요."

"...."

"그래도 처음치곤 꽤 감이 있으시네요. 잘 하고 계세요."

"...."

이아영의 시선은 몬스터가 아닌, 김민주를 향했다.

"왜, 왜 그렇게 보세요?"

"김민주 씨, 작전팀장… 맞죠?"

"네? 그, 그렇긴 하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하지만 이아영은 더욱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무슨 작전팀장이 청소 일에 이렇게 빠삭해? 원래 청소팀 출신이었어요?"

"아, 이전에 며칠 일을 도운 적이 있어서요."

"…또 나 빼고?"

"그, 그땐 부실장님을 모를 때였는데...."

"농담이에요. 농담."

익살맞게 웃는 이아영.

보아하니 김민주 놀리는 거에 맛을 들인 모양이다.

"아, 준우야! 오늘 남은 던전 몇 개냐?"

그때, 저만치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박 팀장이 나를 불렀다.

"오늘 저희 할당량은 이게 마지막입니다. 몇 개 남은 건 다른 팀이 투입됐고요. 뭐, 그쪽도 곧 마무리될 겁니다."

「역삼동 던전 청소 완료했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울리는 무전.

「대치 1동 던전도 완료했습니다!」

「논현동, 곧 완료됩니다!」

「삼성동까지 마무리됐습니다.」

줄줄이 무전이 날아들었다.

"오케이. 다들 수고했어."

후우, 나는 길게 한숨을 뱉었다.

꼬박 4일이 걸렸다.

4일 내내 김민주 팀과 이아영 팀의 모든 인원이 청소에만 매달렸다.

이제야 겨우 1팀의 토벌량과 얼추 비슷해졌다.

뭐, 예상했던 대로 얼마 가지 않아 1팀 놈들이 제풀에 나가떨어진 게 컸다. 덕분에 이젠 토벌량도 확 줄었고....

이 정도면 더 이상 미청소 던전은 나오지 않겠지.

이미 발생한 세 개는… 어쩔 수 없겠지만.

"수고하셨어요, 선생님."

그때, 김민주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나는 대답 대신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왜, 왜 그러세요?"

"아니, 그냥 뭐...."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너희들 실적 싸움에 끼라고 실컷 부추겨 놓고, 이제 와선 또 발 빼라고 했잖냐. 괜히 고생시킨 것 같기도 하고...."

"...."

애초에 관심도 없던 녀석들한테 바람 넣어서 싸움을 부추겼는데… 그것도 지원팀까지 끌어들였는데. 게다가 1등 아니면 관심도 없다고 허세까지 부렸는데....

결국, 미청소 던전 작업하기 싫어서 다 내팽개친 꼴이지 않은가.

'쪽팔리게.'

나는 고개를 숙였다.

"와, 설마 그런 걸 신경 쓰고 계실 줄이야."

"...?"

"걱정 마세요. 만약 선생님이 작전 밀고 나갔어도 우리가 안 했을 거니까."

사뭇 진지한 표정.

"그리고… 정말로 다들 1등에만 혈안이 돼 있었으면, 청소팀으로 투입하라는 한 마디에 우리 팀이랑 지원팀이 한걸음에 달려왔겠어요?"

하긴, 장관이었지.

헌터라는 놈들이 겨우 지원받은 A+ 무기를 들고 오질 않나. 지원팀은 세 대밖에 없다던 플라즈마 절단기를 모조리 뜯어 오질 않나.

별안간 미친놈들만 다 모아 놨다.

"실적은 한참 뒤처졌겠죠?"

작업을 마무리하고 던전을 나가던 도중, 김민주가 넌지시 물었다.

"당연하지. 뭐, 4일을 꼬박 청소에만 올인했으니."

"그래도 아직 3주나 남았으니까 지금부터라도 다시 시작하면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음... 아슬아슬하긴 한데."

나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돌렸다.

현재 1팀과의 차이는 거의 두 배.

하지만 현재 1팀의 전력이 상당히 소진된 걸 감안하면....

"아주 못 할 것도 아니긴 한데… 확신은 못 해."

"뭐, 우리가 야근해줄게요."

난데없이 이아영이 불쑥 끼어들었다.

"저희 팀도 아직 할 만한 것 같고요."

김민주가 덧붙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팀원들의 상태를 살폈다.

하나 같이 시켜만 달라는 표정이다.

그 모습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럼 이제라도 다시...."

"아니. 미안하지만 늦었네."

던전에서 나오자 대번에 초를 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싶어 고개를 획 돌리자.

"정산이 끝났거든."

던전 앞에 서 있던 이두식 이사가 눈에 들어왔다.

보아하니 우리를 기다린 모양이다.

"정산이 끝났다뇨. 시즌은 한 달이잖습니까. 아직 3주나 남았는데요."

"자네도 알면서 뭘… 지금 실적에 눈먼 머저리 한 명 때문에 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 여기서 더 할 수는 없지.

이두식 이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튼, 통제팀에서도 오늘 이후로 모든 작전 허가 철회했어. 아마 청소팀 상황이 진정될 때까진 더 이상 토벌은 못 할 거야."

"그, 그럼...."

"작전 3팀 24개. 1팀 55개. 그리고 2팀은 25개. 이게 최종 정산이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민주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2, 2등?!"

동시에 팀원들의 눈도 순식간에 동그래졌다.

"이야! 4일을 쉬었는데도 2등입니까?!"

"크하하핫! 나머지 팀은 대체 뭐한 거래?"

"말이 2등이지, 1팀 똥 싸재껴 논 거 누가 치워줬냐! 그거 생각하면 우리가 1등이지!"

큰소리로 자축하는 팀원들.

하지만 내 반응은 사뭇 달랐다.

"...그렇군요."

자연히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물론 2등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결과지만, 나에겐 의미가 없었다.

이두식 이사가 내민 조건은 1팀을 재끼는 것이었으니까.

"혹시 내가 넓은 아량으로 이긴 거로 해줄 거라 기대하는 건 아니지?"

"애초에 그런 기대를 할 거였으면 밀고 나갔겠죠. 진 건 진 겁니다."

"하하하!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진 건 진 거지. 하지만 그건 자네뿐이고...."

이두식의 시선이 나에게서 팀원들에게로 향했다.

"자네들은 이겼어. 완벽하게."

다들 머쓱한 표정이다.

구상찬은 왜 거기 껴서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고맙네. 자네들이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 뭐… 포상이라고 할 순 없지만, 이번 일에 대해선 서민철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을 생각이야. 1팀과 통제팀한테도 마찬가지고."

"쉽지 않으실 텐데요. 워낙 빌어먹을 놈이라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놨을 겁니다."

"...."

이두식 이사의 눈썹이 순간 꿈틀거렸다.

"마치 오랫동안 같이 일해본 사람 같은 말투군."

"...촉이 그렇다는 겁니다. 촉이."

급하게 변명을 했지만, 여전히 의아하단 표정이었다.

"기획력, 지휘능력, 리더십, 정보력 그리고 촉. 뭘 갖다 붙여도 다 자네 얘기군."

"예?"

"자네 대체 정체가 뭔가. 내가 평가할 수준은 안 되지만, 자칭 정예라고 떠드는 1팀 놈들이 비할 바가 못 되는 거 같은데. 민간 길드에서도 자네만큼 젊은 인재가 있다곤 못 들어봤고."

"...."

똑같은 대답을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고 있자.

"뭐, 정체가 뭔지는 사실 그리 중요한 건 아니고… 자네 혹시 나랑 일 하나만 같이 할 생각 없나?"

이두식이 갑작스런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어떤 일입니까?"

"음… 여기서 말하기엔 조금 그런데. 생각 있으면 시간 날 때 사무실로 찾아오게."

"...알겠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전생에서와 마찬가지로 본부 개혁 건일 것이다.

절대 안 가야지.

"그래, 그럼… 어이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구먼. 그럼 난 먼저 가볼 테니 며칠은 좀 쉬엄쉬엄하게. 아, 그리고 조만간 좋은 소식 하나 있을 걸세. 자네 덕분에 일이 좀 수월해졌거든."

이두식 이사는 끝까지 호쾌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걸음을 옮겼다.

좋은 소식이라.

괜히 불안한 건 기분 탓인가.

자기 할 말만 하고 홀연히 사라지는 거물.

팀원들은 다들 뭔가 싶은 표정들이었지만… 이아영만큼은 달랐다.

"회식하죠?"

...얘도 어지간히 지 할 말만 하는 녀석이다.

"그거 좋지! 작업 끝난 친구들도 다 불러오라고!"

"회식도 되게 오랜만이네요. 언니도 갈 거죠?"

"아… 네."

"형님! 저도 껴도 됩니까?! 저도 고기 좀 먹을 줄 아는데!"

순식간에 분위기가 왁자지껄해졌다.

그런 와중에 김민주와 문소연의 시선이 날아들었다.

"선생님도 갈 거죠?"

"이번엔 준우 씨도 갈 거죠?!"

동시에 찾아온 정적.

"에휴...."

옅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033

033

다음 날 아침.

본부에서 이번 정산 시즌에 있었던 일을 두고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내가 알 턱은 없지만....

이번 일의 주축들에 대한 후속 조치만큼은 본부 내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수용 팀장은 '허가를 받고 토벌을 했을 뿐'이라면서, 몰아주기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변명했다.

연기가 좋았던 건지, 아니면 정말 몰랐던 건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 변명 덕에 이수용은 경고 처분만을 받았다.

이아영 부실장이 슬쩍 전해주길, 서민철은 더 가관이었단다.

-정예팀 간판이 있지 않습니까. 협회 내적으로도, 대외적으로도 1팀이 이기는 편이 좋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저로서도 조금 몰아주라고 했기로서니, 통제팀이 그렇게 모조리 허가를 내줄 줄은 몰랐습니다.

역시 어디 가지 않는 개새끼다.

'뭐, 애초에 그렇게 나올 거 같긴 했지만....'

사실 그의 말이 썩 틀린 건 아니다.

작전 1팀이 협회의 간판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아무리 협회 임원들이라고 해도 협회 간판을 손에 쥐고 있는 서민철을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 그 누가 됐든, 협회 밥을 먹고 있는 이상 1팀의 덕을 보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을 테니까.

서민철 또한 경고 처분에서 그치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텐데....

'설마하니 대놓고 감봉을 때릴 줄이야.'

이두식 이사도 참 빠꾸 없는 인간이다.

본부장한테 감봉 처분을 내리다니, 그거 한 번으로 다른 이사들에게까지 눈 밖에 날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건가.

자기 무덤을 아주 포크레인으로 파 재끼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5년은 개뿔, 1년 안으로 해임을 당해도 모자랄 판국이다.

아무래도 앞으론 더욱 엮이면 안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통제팀장은 견책 처분을 받았다.

뭐, 그놈이야 서민철이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이니 가장 억울할 만한 입장이겠다만....

왜인지 나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서 거듭 사과를 전했다.

다신 이런 일 없을 거라나 뭐라나. 그리곤 나중에 꼭 한 번 찾아뵙겠단다.

참 나, 청소부한테 전화해서 사과하는 통제팀장이라니. 이렇게 품위가 떨어져서야 원.

어쨌든 이번 일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김민주와 이아영은 심심한 징계가 퍽 아쉬운 듯했지만... 뭐, 그놈들이 무슨 징계를 받든 내가 알게 뭐람.

"그동안 실례 많았습니다!"

출근 직후 던전 앞.

막 작업 준비를 끝낸 우리에게 구상찬 기자가 허리 숙여 인사했다.

일주일간의 길었던 취재가 드디어 끝이 났다.

원래 예정된 취재 기간은 3일이었지만....

중간에 정산 시즌이다 뭐다 해서 이런저런 일이 터져버리니, 그로서도 이야깃거리를 놓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저희도 재밌었어요.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봬요."

"이야, 덕분에 우리도 좋은 경험 했습니다. 하하!"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암만 생각해도 방해밖에 안 됐구만.

"역시 소문대로 장난 없는 팀이던데요! 취재하면서 나도 여기서 일할까 싶었다니까?"

"그러면 사표 쓰고 청소팀 들어와."

"...."

바로 입을 닫는 구상찬.

하여간 말은....

"하, 하하하! 그래도 진짜 재밌었습니다. 이건 진짜예요!"

"그럼 다행이고. 빨리 가, 이제."

"형님도 안녕히 계십쇼! 종종 연락드리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아, 그리고...."

슬쩍 눈치를 보며 구상찬에게 다가갔다.

"부탁한 거 꼭 좀...."

그리곤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산이 끝난 날, 회식 자리에서 나는 구상찬에게 임금에 대해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그때 사실 허세를 부렸다, 사실은 그게 맞는 금액이다.

그랬더니 이놈의 자식이 말하길...

'임금이요? 워, 원래 얼마였죠…?'

내가 볼 때 이놈은 회식하려고 취재 허가받았다.

하마터면 주먹이 나갈 뻔했지만… 그래, 어차피 인상도 물 건너간 판국에 까먹든 말든 뭐가 대수겠는가.

결국, 그에게 대놓고 다시 한번 부탁했다.

신입이라도 받고 싶으니, 최대한 사람들이 만만하게 보게끔 기사를 써달라고.

"아유, 알았어요, 알았어. 몇 번을 말씀하신대. 저 못 믿으십니까?"

"...말이라고 하냐?"

딱히 부정은 않고 껄껄 웃는다.

"아무튼, 진짜 가볼게요. 복귀 늦어서 부장님 전화 엄청 와서요."

"그래. 빨리 가봐."

"또 뭐 재밌는 일 생기면 저한테 제일 먼저 연락 주기입니다!"

"알았으니까, 가 쫌."

몇 번이고 말을 끌다가, 드디어 등을 돌리던 그 찰나.

그의 의미심장한 미소가 순간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

지원팀, 헌터 관리실.

"아, 안녕하세요!"

"김준우 청소부님이시죠? 처음 뵙겠습니다."

"정산 시즌 수고하셨어요!"

부담스러울 만치 과한 환대.

발을 들여놓자마자 직원들의 인사가 쏟아졌다.

"왔어요?"

한껏 어색한 얼굴을 하고 있자, 이아영 부실장이 뒤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바쁜데 왜 자꾸 오라 가라 합니까."

"와… 누가 보면 내가 몇 번은 불러낸 줄 알겠어요."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사무실 구석에 놓인 자리로 나를 안내했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입을 열었다.

"그래서, 지원팀에는 왜 오라고 한 겁니까?"

"너무 당당하게 나오니까 내가 다 당황스럽네. 설마 잊어버린 거 아니죠?"

"뭘 말입니까."

"이번 연합 작전 도와주기로 한 조건이요! 아직 정산 안 했잖아요."

칫, 기억력도 좋네.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주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속물일 줄 몰랐...."

"웃기고 있네! 조건이고 뭐고 다 들어줄 테니 도와만 달라고 사정사정할 때는 언제고!"

농담이었는데 반응이 꽤 과하다.

대체 얼마나 이를 갈고 있었던 건가.

그래, 뭐… 약속은 약속이니까 지켜야겠다만.

일단은 그 전에.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이두식 이사님이랑 관련 있는 일입니까?"

이건 짚고 넘어가야 한다.

혹시라도 이두식 이사와 연관된 일이라면, 미안하지만 약속이고 뭐고 발을 빼야 할 테니.

"그건 아니에요.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조건."

"다행이군요."

"네, 뭐. ...잠깐. 생각해보니 이상하네."

이아영의 눈썹이 물결쳤다.

"그분이 저희 아버지인 건 어떻게 알았어요? 그거 아는 사람, 본부 내에서도 몇 명 없는데?"

"...그, 그냥 어쩌다 보니."

"혹시… 다른 사람한테 말한 건 아니죠? 김민주 팀장이나...."

"날 뭘로 보고."

슬쩍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사실 이미 말했다.

말하면 안 되는 건 줄 몰랐는데?

"흐음… 알았어요. 뭐, 그건 일단 넘어가고."

이아영이 다리를 꼬며 말을 이었다.

"정산 시즌 이후로 본부 내에서 청소팀에 대한 시각이 심상치 않아요."

"뭐, 그렇겠죠. 주제넘게 작전팀 싸움에 끼어들었으니…. 게다가 다른 팀을 제치고 2등까지 해버렸고. 책잡힐 만한 일이긴 합니다."

"아니. 그 반대예요."

"...예?"

"서민철 라인을 제외하고는 다들 청소팀을 진심으로 선망하고 있어요."

나는 대답 대신 눈을 깜빡였다.

"부러워할 게 없어서 청소팀을 부러워한답니까?"

"뭐, 엄밀히 말하면 청소팀에 붙은 우리를 부러워하는 거지만요."

이아영이 어깨를 으쓱였다.

"결과가 말해주잖아요. 하꼬팀, 따까리팀이 청소팀에 붙자마자 최종 정산에서 2등을 했으니. 뭐, 중간에 그런 일만 없었어도 압도적으로 1등을 했을 거라는 걸 모르는 사람도 없고요."

"글쎄요. 그 정도 연합이면 누가 기획해도 2등은 했을 것 같은데."

"헐 소름. 보기와는 다르게 겸손하시네?"

"...."

한 대 씨게 쥐어박고 싶네.

"그리고 무엇보다 1등을 포기하면서까지 전원 청소팀에 투입한 거. 그거 하나로 본부 내에서 실적에만 혈안이 되어 있던 놈들한테 크게 한 방 먹였어요. 당연히 충격이었겠죠. 여태껏 협회에선 상상도 못 했던 일일 테니까."

"...그게 그렇게도 해석이 되는군요."

"정말 완벽한 한 수였어요."

이아영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완벽한 한 수? 어이가 없네.

그 한 수로 지금 해금 기회를 두 개나 잃었는데, 쯧.

"뭐… 띄워주는 건 고마운데, 그 이야기가 조건이랑 무슨 관련이 있는 겁니까?"

"이번에 청소팀이 추가로 하나 신설된대요."

꽤나 생뚱맞은 대답에 눈썹이 꿈틀거렸다.

"...청소팀이 하나 더 생긴다는 소립니까?"

"네. 이번 일로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윗사람들도 그렇고, 다들 이래저래 청소팀의 필요성을 느꼈나 봐요. 벌써부터 인사 발령 얘기도 나오고 있는 걸 보면… 아마 빠르면 다음 달?"

"뭐, 그렇군요."

"별로 안 좋아하네요?"

"좋아할 일입니까?"

"한 팀이 늘면 그만큼 업무량이 줄잖아요! 임금 변동도 없다는데 당연히 좋아할 일이죠!"

아니, 지가 청소팀이야?

내가 관심 없다는데 왜 본인이 더 난리인가.

"됐고, 빨리 조건이나 말해보십쇼. 저 오후 작업 가야 하니까."

"흠흠… 아무튼 제 조건은 이번에 신설될 청소 6팀. 거기에 어울릴 만한 사람을 당신이 좀 뽑아줬으면 좋겠는데."

"...?"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이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제가 무슨 권한으로 사람을 뽑아요."

"또 겸손한 척하는 거예요? 사람 한 명 뽑는 거야, 팀장 권한이면 충분하잖아요."

"당연히 팀장 권한이면 충분하겠죠. 그런데 전 겨우.... 잠깐, 뭐라고?"

순간 뭔 소리를 들은 건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이아영이 더 당황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충격적인 소식이 이어졌다.

"아… 아직 얘기 못 들었나 보네요. 당신, 이번에 승진 내정되어 있는데...."

"그, 그런 얘기를 어떻게 당사자보다 먼저 알고 있는 겁니까?!"

"저만 알고 있는 거 아닌데… 청소팀원들도 알고 있어요. 김민주 팀장도 알고 있고."

"...."

머리를 탁 짚었다.

어째 세상이 나만 빼고 돌아가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두 달 된 놈이 팀장을 답니까? 박 팀장님은 또 어떻게 하고요. 협회는 위아래도 없답니까?"

"당신이 그런 말 하니까 좀 웃기네요."

이아영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곤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번에 청소팀 내부적으로 인사개편이 있을 거예요. 일단 가장 크게는… 청소과장이 생긴다는 거?"

"과장?"

눈썹이 꿈틀거렸다.

협회에는 과장이 없다.

과가 나뉠 필요가 없었기에, 초창기 때부터 유지해온 조직도였다.

그런데 작전팀에도 없는 과장이 생긴다니....

갑자기 없던 티오가 생길 정도면 절대 서민철 선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최소 이사회. 그중에서도 이두식 작품이 분명하다.

'참 나, 좋은 소식이란 게 이걸 말했던 건가.'

보아하니 슬슬 개혁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참 쓸데없는 데서 발이 빠르시네.

"사실 처음에 당신이 청소과장 자리에 올라갈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뭐...."

"죽어도 싫습니다."

"...그럴 거 같아서 제가 말렸죠."

여태껏 없던 자리가 생겼다는 건 결국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어떤 일을 맡게 될지도 모르고 어떤 책임을 질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엔 어떤 말도 안 되는 일을 뒤집어쓰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도 있다.

구실 좋은 무덤에 스스로 들어갈 만큼 바보는 아니다.

"뭐, 당신 성격 모르는 것도 아니니까요. 선배를 무시하면서까지 직책에 욕심을 낼 사람도 아니고요."

...꿈보다 해몽이군.

"그래서 박근태 팀장님이 올라가는 것으로 최종 결정 났어요."

"그리고 빈 청소 3팀장 자리에 내가 가게 됐다, 이 말이군요."

"그렇죠."

고개가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팀장이라는 직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니다. 앞으로의 해금을 위해선 어쨌든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야 하는 건 필수 불가결하니까.

다만 내가 걱정하는 건, 팀장은 생각보다 꽤나 귀찮은 자리라는 것이다.

빌어먹을,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하네.

"뭐, 어쨌든 그건 나중 일이니까요. 일단은 아까 말했던 신설 팀 채용 건부터 진행해보자고요.

후후 웃음을 흘리는 이아영.

나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신설 팀원을 뽑는 거랑 그쪽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 겁니까? 아무리 봐도 당신한테는 이득이 없는데."

"당연히 저야 누가 들어오든 상관은 없죠. 그래도 이왕 들어오는 거 재밌는 사람이 들어오면 좋잖아요? 천재는 천재가 알아본다니까...."

날 보며 씨익 웃는다.

딱 봐도 칭찬은 아니다.

"아무튼, 주변에 적당한 사람 있으면 좀 찾아봐요. 민간 길드에서 스카우트해 와도 좋고. 아니면 길거리에서 꼬셔도 좋고."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조만간 청소팀에 신입들이 몇 명 지원할 테니까."

"…음? 신입이라뇨?"

의아한 목소리.

생각해보니 이아영은 내 완벽한 계획을 모르고 있었다.

"이번에 우리 팀 취재했던 기자 있지 않습니까. 사실 그놈한테 최대한 만만하게 보이게끔 써달라고 부탁을 좀 했습니다. 뭐… 그렇게라도 안 하면 아무도 안 들어올 팀이니까."

"...?"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

"아무튼, 조금 있으면 어중이떠중이 같은 놈들 몇 명 지원 들어올 테니까, 그놈들 중에서 뽑으면...."

"저기, 말 끊어서 미안한데요...."

이아영이 뺨을 긁적이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 기사 벌써 났는데… 아직 확인 못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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