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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화 다스무르 공략전 (3)

[큭큭....]

신전 안의 물속에 누워 있던 존재

녀석이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어디까지 커지는 거야?'

2m.... 3m....

물속에서 몸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다리를 펴고, 굽었던 허리를 곧게 하고, 고개를 든다.

[눈치가 빠르구나. 벌레 같은 것.]

녀석이 몸을 완전히 일으키자.

그 높이는 전광일 상병의 2배 이상.

거의 5m에 달했다.

'어쩐지 건물의 크기가 너무 크다 했어.'

저 녀석이 활동하기 위한 크기였나.

거기에, 이 던전을 만든 것은 물론 이상한 방식으로 대화까지 시도해 온 녀석.

덩치 이상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겠지.

[더 강한 자가 살아남는 법이라. 옳은 말이다. 다만. 누가 살아남게 될지는 두고 봐야겠지.]

꿀꺽....

거인의 선언에 긴장한 사람들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너무 쫄 필요는 없지.

"이 녀석은 우리를 말로 설득하고, 속이려고 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거인을 향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소리쳤다.

뒤에 선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집중하는 게 느껴졌다.

"우리의 존재가 녀석에게도 위협적이라는 뜻이다!"

던전에 입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던전을 만든 괴물을 이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녀석이 정말 초월적으로 강력한 존재라면. 굳이 이런 장난을 칠 필요도 없을 터!"

저 녀석이 정말 이길 수 없을 정도의 강자라면.

이딴 심계를 시도하기보다, 우리를 짓밟아 버리고 끝내면 그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충분히 쓰러트릴 수 있는 괴물이란 거다!"

녀석은.

스스로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만 확인시켜 준 셈이다.

두두두....

"전투 차량! 준비됐습니다!"

저 거인 녀석이 오갈 수 있도록 제작된 것일까.

신전의 크기는 유독 거대했고, 정면의 문 역시 그러했다.

'전투 차량도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물속에서도 활동이 가능하도록 개조를 마친 차량들.

지상처럼 돌격하는 식의 운용은 어렵겠지만, 움직이는 바리케이드의 역할은 충분하다.

"덩치도 큰 녀석이니 대충 쏴도 맞을 거다! 편하게 갈겨!"

"쫄지 말고, 대형 몬스터 상대 연습할 때처럼만 가자!"

고레벨의 선임병들이 다른 병사들을 독려하고.

"저... 저 개자식이 우리를 속이려고 한 거야?"

"결국 전부 물에 빠트려 죽일 셈이었단 거잖아. 빌어먹을!"

조금 전까지 도주각을 재던 도시 출신의 각성자들.

그들 역시 크게 분노하며 무기를 빼 들고 신전 안쪽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이 진형을 갖추는 것을 보며 나 역시 칼을 뽑고 전투에 대비했다.

대형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한 진형.

그 진형이 완벽히 갖춰지기 직전.

[내 신세가 처량하구나. 예전이었다면 가볍게 밟아 죽일 수도 있었을 벌레들을 상대로....]

거인 녀석이 다소 울적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발버둥을 쳐야 하는 꼴이라니.]

막 물속에서 몸을 일으킨 거인의 몸이.

뒤쪽으로 쓰러져 간다.

'어?'

콰아아앙!!!

신장 5m가 넘는 거인이 물속에 뛰어들었다.

거대한 파도가 아군의 진형을 덮쳤다.

* * *

콰아아앙....

"쿨럭, 커허!"

커다란 파도에 휩쓸려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저 거구의 거인이 몸을 던져 일으킨 엄청난 파도.

'아니. 그 정도가 아니야.'

전투 스킬이 마땅치 않을 뿐.

나는 스탯만으로 따지면 누구에게도 꿇리지 않는 수준이다.

그런 내가 버티지 못하고 밀려날 정도의 파도라니.

'뭔가의 능력으로 강화된 거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몸 상태를 살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별다른 상처는 없었다.

위력이 상당하긴 했으나 그냥 파도에 불과하다.

이걸로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은 없겠지.

문제는.

"진형이 붕괴됐다...."

슬쩍 고개를 들어 올리자.

저 멀리에 파도를 일으킨 거인의 모습이 보였다.

쿠웅.... 쿠웅....

애초에 몸을 일으킨 것은 저 파도를 만들기 위함이었다는 듯.

지금은 넓은 신전을 기괴한 자세로 기어 다니는 거인.

얼핏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는 모습이지만.

방심하기에는 지나치게 빠른 속도와 위압감이었다.

그리고.

"사, 살려...!"

[죽어라. 벌레 같은 것.]

콰직.

녀석이 도시의 각성자를 향해 손바닥을 내려찍었다.

잠시 뒤.

둥둥....

물 위에 쫓기던 남자의 몸이 떠올랐다.

죽은 건지 정신을 잃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단 일격에 전투 불능 상태가 돼 버렸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진형을 붕괴시키고... 우리 병력을 각개격파할 셈인가.'

저 남자도 본래라면 저렇게 허무하게 쓰러지지 않았을 것이다.

부대원들이 모여 진형을 구축하면 대형 몬스터라고 한들 쉽게 뚫지 못하는 법이니까.

저 괴물은.

그걸 알고 진형을 붕괴시킨 거다.

"제기랄. 뭔 괴물이 그딴 짓까지 하냐."

"신 병장님!"

"흩어진 사람들부터 챙겨! 진형 복구가 최우선이다!"

그나마 정신을 차린 병사들이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지만.

진형을 다시 갖추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보, 복구하라고 하셔도."

"저 녀석이 쉽게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하기사.

기껏 붕괴시킨 진형을 다시 원상 복구하는 것을 넋 놓고 보고 있진 않겠지.

'하아.'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뺑이 좀 쳐야겠네."

"예?"

"너희는 내 말 믿고 진형 복구에만 전념해. 그리고... 전광일! 서수혁!"

먼 곳을 보며 소리치자.

각자 병력들을 수습하고 있던 두 명이 내 쪽을 바라봤다.

"너희는 나랑 같이 간다!"

"옙."

"충성충성!"

따라오는 두 녀석에게 말했다.

"우리 목표는 시간 끌기다."

"...그럴 것 같기는 했습니다만."

서수혁 상병이 총기를 점검하며 말했다.

"진형이 복구될 때까지 셋이서 괴물을 붙잡아 놓는다. 합리적이긴 합니다만.... 세 명이서 가능하겠습니까?"

"카하하. 수혁이 너 이 자식. 뭘 모르는구먼."

서수혁 상병의 질문에 전광일 상병이 호방하게 웃으며 말했다.

"군 생활이란 게 뭐냐!"

"뭐?"

"안 되면 되게 하는 거다!"

"...어이가 없지만. 틀린 말은 아니군."

깊은 한숨을 내쉰 서수혁 상병이 덤덤하게 따라붙었다.

"히, 히이이익!"

거인의 추격에 붙잡히기 직전인 사내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를 향해 내리쳐지는 거인의 주먹을.

쿵!

"어딜, 자식아!"

전광일 상병이 받아냈다.

"고, 고맙소."

"인사는 됐고! 진형에 합류하쇼!"

쫓기던 남자가 급하게 도망치고.

그를 쫓으려던 괴물의 앞에 나와 두 병사들이 섰다.

'민재 형이 빠진 걸 제외하면... 우리 부대에서도 최고의 정예들.'

이 셋이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만 한다.

[너희는... 그나마 큰 벌레들이로군.]

거인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우리도 녀석을 바라보았다.

[식재료 감별(강화)]

[요리사의 눈]

[깊은 자들의 교황]

[신선도 - 중]

[깊은 바다의 세계, 다스무르의 수호 종족인 다스무리안.]

[그들의 종교 지도자이자, 왕으로 군림하던 개체입니다.]

[노화와 부상으로 인해 신선도가 대폭 하락한 상태입니다.]

'종교 지도자라고?'

가까이에서 보니.

새삼 더 기괴하게 생긴 어인이었다.

인간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피부에는 비늘이 돋아나 있고 얼굴은 물고기의 그것에 가깝다.

크기는 엄청나게 거대하지만, 팔다리는 뼈의 형태가 보일 정도로 앙상했다.

저 가느다란 팔다리로 신전을 기어 다니는 모습은 공포 영화의 괴물을 보는 것 같았다.

'저딴 게 교황?'

신성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모습.

어디 마왕 숭배교 같은 거냐.

[물론. 조금 커 봐야 벌레는 벌레겠지.]

녀석이 말을 마치자.

그 주변의 물이 조금씩 하늘로 떠오르는가 싶더니.

허공에서 회오리치며 거대한 창의 모습을 취했다.

"허허. 미친."

"물을 조종하는 능력인 건가...!"

아까 파도의 위력이 묘하게 강력했던 게 떠올랐다.

몸으로 일으킨 파도에 저 힘을 더한 결과였던 건가.

녀석이 손에 쥔 창을 강하게 내리꽂았다.

"크윽...!"

전광일 상병이 양손을 교차해 창을 막아냈다.

다른 사람들처럼 일격에 전투 불능이 되지는 않았지만.

"쿨럭.... 커허.... 카하하. 그래. 이 정도는 돼야 할 만하지...!"

피해가 상당해 보였다.

우리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타다다다다당...!

[흐음!]

서걱-

[큭...!]

광일이 녀석이 창을 받아내는 순간.

서수혁 상병은 자랑하는 화력을 쏟아내고.

신체 능력만은 자신 있는 나는 녀석에게 접근해서 살점을 베어냈다.

'쯧. 약점을 노릴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 녀석의 약점은 다른 어인들과 마찬가지로 가슴 부위의 아가미였다만.

5m에 달하는 덩치.

약점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이 강함. 평범한 벌레들의 규격을 아득히 넘어섰구나. 정상은 아닌 게 분명하군.]

약점을 노리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피해는 컸던 걸까.

녀석도 조금은 고통을 느끼는 것 같았다.

엄청나게 강한 괴물이긴 하지만.

이대로 어떻게든 시간을 끈다면-

[과연. 원인이 뭔가 했더니. 요리였는가.]

"...뭐?"

그런데.

녀석의 입에서 나온 말이 뭔가 이상했다.

[괜찮은 수준의 요리사가 있나 보구나.]

뭐야.

이 녀석.

'어떻게 요리에 대한 걸 알았지?'

그리고.

그냥 아는 게 전부가 아닌 것 같았다.

[원인을 알아냈다면. 대응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살짝 몸을 일으키고 고개를 드는 녀석.

녀석의 복부가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고오오오오오오오오!!!

['깊은 자들의 교황'의 피어가 울려 퍼집니다!]

['다스무리안' 종족의 전투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다스무리안' 종족을 제외한 모든 종족의 능력치가 저하됩니다.]

['다스무리안' 종족을 제외한 모든 종족의 버프가 해제됩니다!]

피어.

몸이 무겁고, 물의 저항이 크게 느껴졌다.

요리의 효과가 사라진 결과.

능력치가 떨어지고, [환경 적응 - 수]의 특성 또한 사라졌다.

[이걸로 요리의 효과는 없어졌음이라.]

"...."

[이제 어떻게 하겠는가? 여기서 다시 요리를 해보겠나?]

우릴 내려다보며 비웃는 녀석.

녀석은 버프를 잃은 우리 따위는 나중에 정리해도 된다는 듯.

진형을 복구하려 하는 아군을 향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막아야 한다.'

애초에.

버프가 사라질 상황 정도는 예상했었다.

"전투식량 꺼내!"

"예!"

[음?]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음식을 꺼내 들었다.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전투식량] 스킬이지.'

버프가 해제되었다고?

다시 먹으면 그만이거든.

[중급 요리사의 다스무리안 아성체 어묵]

이런 일도 있을 줄 알고.

[환경 적응] 특성이 부여되는 종류의 전투식량을 미리 만들어 놨다.

[효과가 보존 가능한 요리라니? 말도 안 되는 물건을...!]

요리에 대해 아는 것 같긴 하지만.

전투식량 스킬까진 몰랐던 걸까.

거인 녀석이 당황한 듯 중얼거렸다.

[아니. 잠깐만. 방금 입에 넣은 그건...?]

다른 병사들이 요리를 입에 넣고 버프를 얻는 걸 확인한 뒤.

나 역시 전투식량을 입에 담으려던 순간.

[그 고기. 아이들의 것이구나.]

"...아."

기괴하게 생긴 거인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린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아무렇지 않게 요리하긴 했는데.'

이 요리.

저 녀석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동족.

그것도 동족의 어린아이를 재료로 만든 요리란 말이지.

'내가 생각해도 좀 그런 상황이긴 한데.'

아니, 그래도 그렇지.

괴물 녀석이 그렇게까지 동족을 신경 쓰겠어?

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무언가 공격을 당한 것도 아니지만.

고통에 찬 괴성을 지르는 거인.

...아무래도 엄청 신경 쓰는 녀석이었나 보다.

[아이들을 살해하는 것도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거늘... 네놈들...! 그 아이들을 잡아먹고 있었단 말인가!]

눈앞에서 동족의 어린아이가 다진 고기가 되어 버린 것을 보고만 교황.

그가 피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

분노에 찬 교황이 더욱더 격렬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너! 네가 요리사렸다!]

그것도 하필이면.

정확히 나를 향해서.

"크윽!"

일단은 다급하게 손에 쥐었던 어포를 집어삼켰다.

[요리에 담긴 마력이 몸 안에 스며듭니다.]

[절대 미각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본인에 한해, 요리의 효과가 증가합니다.]

다른 이들보다 더 크게 증폭되어 적용되는 버프.

제대로 된 요리보단 못하지만.

그래도 상당한 양의 능력치와 [환경 적응 - 수] 특성을 획득했다.

콰아앙!!!

덕분에 어떻게든 녀석의 공격을 피할 수는 있었으나.

그것도 한두 번이지.

[고오오오오오오!!!]

"제기랄!"

"저 녀석. 신 병장님만 노리잖아!?"

계속해서 나만을 노리고 들어오는 공격.

두 상병들이 나를 돕기 위해 달려왔으나,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신 병장님! 조금만 참으십쇼! 광일이가 갑니다!"

"...아니. 잠깐."

그렇게 나와 교황의 술래잡기가 이어지던 도중.

서수혁 상병이 전광일 상병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이렇게 된 게 오히려 좋을 수도 있어."

"뭐 인마!? 신 병장님이 위험하다는데. 그게 무슨!"

"잊어버린 거냐? 우리 목표는 시간 끌기다."

진형을 붕괴시킨 채로 우리를 각개격파하려던 거인.

우리 진형의 복구를 막으려 들 것은 뻔했다.

그런 녀석을 어떻게든 제지하고, 진형 복구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게 우리 목표였으나.

"저 녀석. 지금은 진형 붕괴 따윈 관심도 없고, 신 병장님만 노리고 있군."

"그게 뭐가...."

"오히려 잘됐다는 거다."

복구돼 가는 진형에는 관심을 끈 채.

동족의 아이를 다진 고기로 요리해 버린 당사자, 신영준 병장.

즉.

나만을 쫓아오는 교황.

냉정하게 판단을 마친 서수혁 상병이 고개를 끄덕이는가 싶더니.

나를 향해 소리쳤다.

"신 병장님! 저희는 진형을 수습하러 가겠습니다!"

"뭐!?"

"최대한 빨리 수습해 볼 테니, 버텨 주십쇼! 신 병장님 정도의 강자라면 충분히 가능하실 터!"

"너, 갑자기 무슨 개소리-"

거인 녀석의 공격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던 와중에 들려온 말.

어이가 없어져서 반문하려 했으나.

"그럼! 뺑이치십쇼!"

"야 이 미친...!"

뒤돌아서는 녀석들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괴물 앞에 선 나만을 둔 채 진형을 복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녀석들.

'작전 수행에 망설임이 없는 건 좋은 거긴 한데...!'

문제는.

'신 병장님 정도의 강자라면 충분히 가능하실 거라고?'

전제 조건부터가 잘못된 작전이란 것.

[동료들에게도 버려졌는가.]

혼자 남은 나를 간단하게 찢어발기려는 듯 다가오는 거인.

내가 저 녀석을 상대로 혼자 시간을 끌어야 한다니.

'셋이서도 힘들었는데, 그딴 게 되겠냐?'

나 정도의 강자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니.

애초에 난 후방 지원직인 요리사.

전투 관련 특성은 거의 전무하다.

'부대원들이 묘하게 나를 강자로 착각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일도 바쁘고 해서 오해를 풀 시간이 없었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결과가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동족의 아이들을 다진 고기로 만들었으니... 너 또한 그렇게 되는 게 순리일지라.]

하지만.

날 다진 고기로 만들 생각에 신나서 다가오는 괴물 녀석.

이미 이긴 싸움이라는 듯 의기양양하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자니, 뭐랄까.

'열받네.'

내가 성격이 그렇게 좋지는 못한 놈이라.

녀석이 원하는 대로 당해주기는 싫단 말이지.

"쯧. 어쩔 수 없지."

안 되면 되게 하라.

내가 후임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다.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고.

될 때까지 발버둥 쳐보는 수밖에.

'게다가... 아주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난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며.

시스템 창의 로그를 약간 거슬러 올라갔다.

[랜덤 스킬이 강화됩니다.]

[랜덤 스킬 선정 중-.]

['절대미각' 스킬이 강화되었습니다!]

['절대미각' -> '절대미각(강화)']

스킬이 강화된 직후에는 창수가 말을 걸어와서 효과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 후에 따로 효과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 효과가 내 예상대로라면....

'조금은 비벼 볼 만할 것 같거든.'

107화 비벼 볼 만할지도

"그럼! 뺑이치십쇼!"

[동료들에게도 버려졌는가.]

어쩌다 이렇게 돼 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저 괴물을 상대로 1:1로 시간을 벌어야 하게 생겼다.

하지만.

허리춤의 주머니에 손을 가져다 넣으면서 생각했다.

'조금은 비벼 볼 만할지도?'

그렇게 주머니에서 꺼내 든 물건은.

뭐, 내가 꺼낼 만한 게 뭐가 있겠어.

당연히 요리였다.

다만 이번엔.

[중급 요리사의 정성이 담긴 파란의 물방울 젤리]

예전에 이미 먹어 본 요리.

작은 비닐에 쌓여 있는 젤리였다.

[어리석구나.]

내가 요리를 꺼내 든 것을 본 거인이 말했다.

[요리의 효과는 하나밖에 적용되지 않는다. 상식이 아닌가.]

"...묘하게 잘 아시는구만."

아까도 느꼈던 거지만.

저 녀석.

[요리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느낌이란 말이지.

이번에 한 말도 마찬가지.

'원래라면... 요리의 효과는 한 번에 하나밖에 적용되지 않는다.'

사실 당연한 얘기지.

요리의 효과가 중첩된다면 최고의 직업은 전사도 아니고 마법사도 아닐 거다.

몇십인 분씩 가볍게 해치울 수 있는 푸드 파이터가 최고의 강자로 군림하겠지.

다만.

나에게만은 그건 좀 옛날얘기가 돼 버렸단 말이지.

[절대미각(강화)]

얼마 전.

창수의 그룹에 있던 사람들을 요리를 통해 치료한 뒤.

업적의 보상으로 [랜덤 스킬 강화권]을 얻었었다.

그 강화권의 효과로 인해 강화된 것이 바로 [절대 미각].

'강화라고는 해도, 기본적인 효과는 이전하고 비슷했지.'

요리의 효과 증가량이 약간 더 늘어나는 정도?

다만, 괜히 (강화)가 아닌 것일까.

딱 한 줄의 효과가 더 추가된 게 있었다.

그게 바로....

[본인에 한해, 요리를 통해 얻는 효과가 중첩 가능해집니다.]

정말 간단한 단 한 줄의 문구.

그러나.

'미친 사기.'

그 효과는 터무니없이 강력한 것이었다.

[중급 요리사의 정성이 담긴 파란의 물방울 젤리를 섭취하였습니다!]

[요리에 담긴 마력이 몸 안에 스며듭니다.]

[절대 미각(강화)의 두 번째 효과를 적용하시겠습니까?]

[원하시는 특성을 선택해주세요!]

['환경 동화' 특성을 획득합니다.]

[현재 적용 중인 요리]

[다스무리안 아성체 어묵 - 능력치 상승, 수속성 친화력 상승, 특성, '환경 적응 - 수']

[파란의 물방울 젤리 - 특성, '환경 동화']

스르륵....

이미 적용 중인 요리의 효과가 있음에도.

그 위에 중첩되며 적용되는 또 다른 효과.

[이 무슨!?]

내 몸이 주변의 환경에 동화되어 가는 게 느껴진다.

전차대대를 점거하고 있던 눈깔 괴물조차 발견하지 못한 은신 능력이다.

[...어디로 숨었느냐!]

그 부분은 강력한 괴물임이 분명한 저 녀석 역시 마찬가지.

바로 코앞에서 내 모습을 놓친 교황이 분노에 찬 소리를 내질렀다.

'물어본다고 알려 주겠냐?'

나는 괴성을 내지르는 녀석을 무시한 채 천천히 뒷걸음질로 녀석과 거리를 벌렸다.

일단 모습을 숨긴 뒤.

다시 복구 중인 진형을 공격하려 할 때 슬쩍 모습을 드러내 어그로를 끌 생각이었으나.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만. 아무래도 이곳이 누구의 영역인지 모르는 모양이구나.]

그렇게 혼잣말을 한 거인이 손바닥을 높이 들어 올리더니.

콰아앙!!!

바닥을 향해 내리쳤다.

가슴 어림까지 올라온 물이 파도를 치며 일렁거렸다.

아까와 같은 강한 파도는 아니었으나.

그 파도로 인해 생겨난 물결이 내 몸에 닿은 순간.

[거기렸다!]

거인의 시선이 정확히 내 쪽을 향했다.

'미친. 무슨 박쥐도 아니고...!'

물에 생겨난 파동을 통해 내 위치를 파악한 모양.

강한 게 전부가 아니라 묘하게 다재다능한 괴물.

녀석의 손에 쥐고 있던 거대한 물의 창이 더욱더 커다랗게 변하고.

창을 던지기 위한 자세를 잡는 것이 보였다.

"돌겠네, 진짜!"

그 창이 던져지기 직전.

나는 급하게 또 다른 요리를 꺼내 입 안에 쑤셔 넣었다.

[중급 요리사의 정성이 담긴 가벼운 발 슬레이파의 육포]

[요리에 담긴 마력이 몸 안에 스며듭니다.]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특성 - '슬레이파의 준족(열화)'을 획득합니다.]

[절대 미각의 효과로 인해, 요리의 효과가 증가합니다.]

[특성의 열화가 사라집니다.]

[특성 - 슬레이파의 준족]

[각력이 큰 폭으로 증가합니다. 인간을 초월한 마수의 영역에 근접합니다.]

423대대를 탈출해 산맥을 내려올 때 덤벼들었던 괴물, 슬레이파.

전투 능력은 그렇게까지 강력하진 않았지만, 특유의 각력을 통한 움직임이 특출났던 몬스터다.

그 특성의 효과는 이미 겪어 본 적이 있었다.

콰아아아아앙!!!

팡!

[벌레 같은 것이... 귀찮을 정도로 날래구나.]

강화된 각력을 이용해서 빠른 움직임으로 몸을 날려 가까스로 공격을 피했다.

다만.

'조금만 늦으면 맞았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피한 공격.

창이 얼굴을 스쳐 지나가며 느껴진 풍압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제대로 맞았다면 이미 시체가 돼 버렸겠지.

식은땀을 흘리면서 생각했다.

'여러 몬스터를 사냥해 두지 않았다면... 이미 죽었겠는데.'

[절대 미각]이 강화된 덕도 있겠지만.

내가 지금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것은, 미리 만들어둔 여러 종류의 전투식량들 덕분.

여러 종류의 괴물과 조우하고, 전투하며.

그 녀석들의 특성이 담긴 고기를 얻어 왔기 때문이었다.

"이쪽도 그동안 산전수전 다 겪어 왔다 이거야."

[귀찮게...!]

콰아아앙!

멸망의 날 이후.

살아남기 위해 투쟁을 거듭하며 겪어 온 다양한 괴물과의 전투.

그 전투들이 지금 내 목숨을 구해 주고 있는 셈이었다.

그 후로도.

환경 동화를 통해 몸을 감추고.

발각돼서 공격이 날아오면 슬레이파의 각력을 통해 공격을 피한다.

그런 식으로 꽤 많은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큭...!'

계속해서 녀석의 공격을 피하던 중.

갑자기 몸에 부담이 느껴졌다.

부담감의 정체를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여러 요리를 적용한 부작용.'

[절대 미각(강화)]

여러 요리의 효과 중첩이 가능해지는 터무니 없이 강력한 스킬이 돼 버렸지만.

강한 힘에는 페널티가 따르는 법.

[주의!!!]

[지나치게 강력한 버프는 오히려 사용자의 몸에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적용 중인 요리 효과 - 3]

내가 전력을 다한 요리를 만들어 줬을 때.

그 강력한 버프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던 병사들이 떠올랐다.

이 페널티는 그것과 비슷했다.

'3개나 중첩해 버렸으니까.'

요리를 중첩할수록 강력해지는 버프.

그 버프 자체가 내 몸에 부담을 가하는 거다.

덕분에 혼자서도 저 괴물을 상대로 꽤 시간을 끌 수 있었다만.

슬슬 몸에 부담이 오기 시작했다.

그나마 깡 스탯이 높아서 지금까지 멀쩡했던 거겠지.

'몸이 무겁다.'

마치 독한 몸살이라도 걸린 것 같은 느낌.

몸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는 것 자체는 가능하지만....'

이런 움직임이어서야.

다음 피하지 못할 확률이 높겠지.

그렇다면야.

나는 마지막으로 전투식량을 꺼냈다.

[중급 요리사의 강철 리자드 육포]

[요리에 담긴 마력이 몸 안으로 스며듭니다.]

[물리 방어력이 크게 증가합니다.]

[마법 저항력이 크게 증가합니다.]

[일시적으로, 특성 - '강철 비늘'을 획득합니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앙-!

강력한 충격이 내 몸을 강타했다.

* * *

[드디어 잡았다! 이 벌레 같은 것!]

'커헉...!'

복부에 엄청난 충격이 느껴졌다.

내가 입고 있는 장비만 해도 리자드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

거기에 리자드의 요리까지 먹어 방어력을 더 키웠다.

그럼에도 이 정도 충격이라니.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나는 몸을 내려다보았다.

"하하...."

허리 부분의 군복이 통째로 뜯겨나갔다.

그 정도라면 그나마 다행이다만.

"돌겠네, 진짜."

공격이 직격한 허리.

정확히는 오른쪽 옆구리 부분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주륵....

안에서 새어 나오면 안 되는 무언가가 새어 나오려 하는 느낌이 들어.

급하게 손을 가져다 상처 부위를 막았다.

"너무 강한 거 아니냐?"

마지막에 먹은 리자드의 요리가 없었다면 저 구멍이 더 커져 있었겠지.

불과 며칠 전에 절대 미각 스킬이 강화되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죽었을 테고.

그나마 전력을 다해 비벼봤지만.

그것도 여기까지.

[나는 요리에는 조예가 없지만... 흉내 정도는 낼 수 있겠지.]

거인 녀석이 나를 다진 고기로 만들기 위해 다가온다.

걷는 정도라면 가능하겠지만, 다음 공격을 피하는 건 절대 불가능.

하지만.

나는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뭐. 이 정도면, 시간은 충분히 끌었지?"

[뭐라?]

"얌전히 죽어 줄 생각은 없거든."

내 말을 들은 거인 녀석이 주춤한 찰나.

쿵!!!

[크윽....]

커다란 충격이 교황을 덮쳤다.

"신 병장님!!!"

"합류하겠습니다!"

파도로 인해 뿔뿔이 흩어져 있던 아군 병력들.

그들이 진형을 갖추고 돌아왔다.

[하찮은 것들이 방해를...!]

거인 녀석의 손에 커다란 창이 쥐어진다.

온갖 버프를 떡칠한 내게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 공격.

하지만.

['군단의 기운' 효과가 발동합니다.]

[진형을 이룬 군단원들의 전투 능력에 보너스가 부여됩니다.]

진형을 복구한 부대원들에게는 조금 달랐다.

"공격! 온다!"

"방어 태세로!"

[지휘의 함성 - 방어 태세]

김 중위의 지휘와 함께 아군에 버프가 부여되고.

"방패 앞으로!"

"충성충서어엉!"

탱킹에 특화된 각성자들이 창을 향해 방패를 들이밀었다.

쿠우우웅!!!

그 결과.

"끄으윽. 미친, 묵직한 거 보소."

"위력이 엄청나다! 다들 조심해!"

"신 병장님은 이딴 걸 어떻게 버틴 거야? 그것도 혼자서."

아군 진형의 피해는 전무.

방패병들의 손목이 아려 오는 정도로 끝났다.

'이게 집단의 힘이다.'

새삼 깨닫게 되는 사실이었다.

홀로서기는 답이 없는 직업이라, 부대를 키워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만.

그렇게 키운 부대는 꽤, 상당히 잘 성장해버렸거든.

개개인의 능력은 저 거인의 상대가 되지 않을지언정.

모이면 모일수록 시너지가 발생하는 각성자들.

대형 몬스터를 상대하는 연습도 꾸준히 해 왔다.

그 병력이 모여 진형을 구축한다면.

강력한 보스가 상대라도 크게 꿇리진 않는다.

이게 바로.

우리가 쌓아 올린 힘.

내가 먹여 살린, 나의 부대였다.

* * *

"신 병장님! 이쪽으로!"

진형을 꾸린 병사들이 교황을 막아서는 사이.

후열에 있던 몇몇 병사들이 내게 다가와 어깨를 빌려주었다.

"하하! 진짜 굉장하셨슴다!"

"고생하셨습니다. 여기서부턴 후임들한테 맡기시고. 신 병장님은 뒤에서 꿀이나.... 어?"

나를 부축하려다가.

무언가를 눈치챈 듯, 흠칫하는 병사들.

"...!"

"이, 이 상처는."

"크흐흐. 아파 죽겠다, 야."

놀랄 만도 하지.

사람 옆구리에 손바닥만 한 구멍이 뚫려 버렸으니.

"...제기랄. 농담할 때가 아니었네."

"생각보다 부상이 심각하시다!"

"빨리 의무병 쪽으로!"

곧 후열에 있던 의무병과 군종병이 다가왔다.

"빨리 상처부터 보여 주십쇼!"

난 군말 없이 손을 치워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줬다.

손바닥만 한 구멍.

잘못하면 내장이 흘러나오지 않을까 무서웠는데.

슬쩍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스멀스멀 상처가 회복되고 있는 게 보였다.

"오오...."

조금 징그러운 광경이긴 하지만.

상처 부위의 살점이 조금씩 재생되는 모습이 꽤 신기했다.

"고맙다. 역시 우리 부대 힐러들이야. 대단한 치료술인걸."

"...."

"?"

그런데.

그 상처를 보는 의무병과 사제의 표정이 뭔가 이상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상처 부위를 바라보는 녀석들.

뭐야, 이 녀석들.

갑자기 왜 저래.

....설마.

"혹시, 치료가 불가능한 수준인 거냐?"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만."

식은땀을 흘리길래 혹시나 했는데, 다행히 아니었던 모양.

하긴.

이렇게 대놓고 새살이 돋아나고 있는데 치료가 불가능할 리는 없겠지.

그러나 그때.

사의준 일병이 찡그린 표정으로 말했다.

"신 병장님."

"엉."

"저희, 아직 아무 치료도 안 했습니다."

"...앙?"

슬쩍 복부를 들여다보자.

느리지만 확실히 재생되고 있는 상처가 보였다.

"아니. 누가 봐도 재생되고 있구만, 그게 무슨 소리...."

"신 병장님 하시는 일에는 일일이 놀라지 않는 게 저희 부대 국룰이긴 합니다만...."

"국룰이고 뭐고. 이건 묻지 않고 넘어가기가 힘든데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의 두 힐러들.

우리 부대의 군종병이자, [사제] 각성자인 신중수 일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상처가 재생되고 있는 겁니까?"

108화 깊은 자들의 교황 (1)

"어떻게 상처가 재생되고 있는 겁니까?"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힐러인 니들이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아냐.'

다시금 상처 부위에 시선을 옮겼다.

꾸물꾸물하며 재생되고 있는 살점들.

'요리의 효과...라기엔 짐작 가는 게 하나도 없는데.'

이게 힐러들이 한 짓이 아니라고?

"일단 한시가 급하니 치료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설명은 나중에 해 주십쇼."

"사실 상처가 오염되었을까 봐 걱정이었는데. 이 정도로 재생된 걸 보면 금방 끝날 검다."

의무병이 손에 바늘을 쥐고.

불교도 출신 사제가 십자가를 쥐며 기도를 읊는다.

잘은 모르겠지만.

저 앞에서는 아직도 부대원들이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다.

지금 원인을 찾을 여유는 없겠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밖에.'

다시금 거인과 병사들의 전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괴물.

"신 병장님은 혼자서도 상대한 괴물이다!"

"이 숫자로 지면 쪽팔린 줄 알아!"

전투가 진행되다 보니 아군 중에서도 부상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그나마 멀쩡하지만, 이 도시의 주민들은 대부분 오래 버티지 못하는 모습.

'...부상 입은 거 맞나? 뭐가 저리 강해.'

민재 형과 마법사들의 전격은 바로 이 건물의 상공을 직격했었다.

아마 그 전격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도 저 녀석일 터.

저게 부상당한 상태에서의 힘이라니.

'그래도 전황이 아주 나쁜 건 아니야.'

아군의 피해도 클 것 같긴 하지만.

계속 싸우다 보면 이기는 건 우리 쪽이 될 것 같았다.

'나머지는 쟤들이 알아서 잘해 주겠지 뭐.'

난 뒤쪽에서 후임들이 뺑이치는 모습을 편하게 구경하기만 하면 되겠지.

그런 생각을 했는데.

[동족의 아이들이 오지 않는구나.]

싸우던 녀석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동족의 아이들이라.

아마 밖에 넘쳐 나는 다른 괴물들을 말하는 거겠지.

저 교황 하나를 상대하는 데도 이렇게 힘겨운 싸움이 이어지고 있는 거다.

다른 괴물들까지 난입하면, 전황은 걷잡을 수 없이 불리하게 변하겠지만.

'그 녀석들은 안 와.'

그쪽에 대한 걱정은 애초부터 없었다.

이미 수를 써 둔 게 있으니까.

[필시 네놈들이 무슨 짓을 한 것이겠지.]

패색이 짙어짐을 느낀 것일까.

녀석의 분위기가 조금 변했다.

[각오를 다져야겠구나.]

그리고.

-고오오오오오오오오!!!

거인의 몸에 새하얀 빛무리가 일었다.

* * *

"뭐 뭐야 저건."

"당황하지 마라!"

갑자기 하얀 빛무리에 둘러싸이는가 싶더니.

분위기가 크게 변한 거인.

'아까까지는 공포영화의 괴물 같았지만.'

새하얀 빛을 두른 지금.

녀석은 신이 강림시킨 빛의 거인처럼 보였다.

"흥. 그래봤자 한 마리야."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진 모르겠지만, 진형만 유지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예!"

하지만 이쪽도 그동안 온갖 경험을 쌓았다.

부대원들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러나.

콰아아앙!

"컥!"

"병민아!"

"진정하고, 진형 채워!"

공격을 받아낸 병사의 몸이 저 멀리 날아간다.

공격을 받아낸 무기에는 금이 가 있었다.

'우리 부대원을 한 방에 보낸다고?'

도시의 협력자들은 그나마 레벨이 낮은 편이다 보니, 그런 경우도 종종 있었다만.

우리 부대원들은 레벨도 장비도 비교가 안 되는 정예.

방금 날아간 병사만 해도 부대에서부터 함께 싸워 온 엘리트다.

안 그래도 강력했던 괴물.

녀석의 힘이 더 강해졌다는 뜻.

'2페이즈도 있다는거냐?'

안 그래도 빡센 괴물이 더 강해지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 순간.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깊은 자들의 교황이 마지막 남은 신성력을 발휘합니다.]

[다스무르 신전이 신역으로 지정됩니다.]

[신역이 유지되는 동안, 영역에서 탈출이 불가능해집니다.]

[깊은 자들의 교황의 신체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마지막 남은 신성력을 불태우는 대가로, 교황의 신체가 붕괴를 일으킵니다.]

과연.

"저런 능력이 아무런 페널티도 없을 리가 있나."

특히 나를 다진 고기로 만들고 싶어 하던 때 바로 사용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힘.

버티기만 한다면 녀석의 몸은 알아서 붕괴한다는 뜻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콰앙!

"제기랄, 몇 명이 떨어져 나간 거야!"

"진형의 빈틈이 너무 커졌습니다! 이 이상은...!"

"악으로 깡으로 버텨!"

그 붕괴란 게 끝나기 전에 우리 부대원들이 전멸할 것 같다는 거지.

에휴.

뒤에서 지켜보며 꿀이나 빨 생각이었는데.

"어, 신 병장님?"

"아직 좀 더 안정을 취하셔야...."

"이 정도면 충분해."

상처가 어느 정도 치료된 걸 확인한 뒤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 놨다.'

마법사들을 갈아 넣어서 번개를 꽂아 넣고.

도시의 인간들을 설득해서 병력도 추가하고.

그 병력들에게 요리를 통한 버프까지 뿌렸다.

온갖 요리 효과를 중복해가면서 저런 녀석을 상대로 시간까지 끌었고.

여기서 뭘 더 해야 하냐.

'...사실 생각해 놓은 방법이 하나 더 있긴 한데."

어디까지나 생각만 했을 뿐.

실제로는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방법.

-고오오오오!

"크악...!"

하지만 아무래도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이기기 힘들 정도로 강해진 녀석.

그렇다면.

"도박을 걸어 봐야겠네."

* * *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한창 전투가 진행 중인 진형에 다가갔다.

후열의 마법사들.

그들 사이에서 한 사람을 찾았다.

"정수아."

"아. 은인이시여!"

정수아.

우리 부대의 유일한 정령사다.

정령안이라는 특성을 가진 덕에 부대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만.

전투 능력은 영 높지 않은 그녀다.

거인이 일으킨 파도에 휘말려 저 멀리까지 밀려난 것을 봤었다.

"상처는 괜찮으세요!?"

"대충은."

"대충이라니.... 몸을 보전하셔야."

본래라면 전투에 참여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그나마 여기에는 물이 많다 보니.

물의 정령과 계약한 그녀도 나름대로 활약하고 있던 것 같았다.

걱정스러운 눈치로 내 몸을 살피는 그녀에게 말했다.

"작전이 있다. 알려 줄 테니까 준비해."

"네...!? 하지만."

부상으로 빠져 있던 내가 돌아온 게 영 걱정되는 모양이다만.

그녀도 이제는 우리 부대의 군인.

군인 정신이 좀 알려 줄 필요가 있겠는데.

"명령에는 예라고만 대답할 것."

"...예!"

"그렇지."

그녀에게 명령을 전달했다.

작전에 필요한 다른 부대원들에게도 얘기를 전달하도록 당부한 뒤.

나는 진형의 앞쪽으로 이동했다.

[...네놈.]

부대원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던 거인이 나를 보고 증오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 봤을 때도 민재 형의 마법의 영향으로 영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던 녀석인데,

가까이서 보니 지금은 더 심했다.

'빛무리에 가려져서 신성해 보였던 건가.'

여기저기 그슬리고 베인 전투의 흔적.

그 외에도 살점이 가루처럼 변해 흩날리고 있었다.

저게 그 '신체의 붕괴'란 거겠지.

[동족의 아이들이 오지 않는 것도 분명 네가 무슨 짓을 한 것이렸다.]

이곳은 괴물들이 넘쳐 나는 던전.

본래라면 보스 몬스터와의 1:1 따위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만.

"너희들 피. 꽤 질이 괜찮은 것 같더라."

그것도 생각하지 않았을 리가.

이 신전 바깥에선 추격해 오는 괴물들을 막기 위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겠지.

[원통하고 비참하도다. 이깟 벌레들에게 사냥당하는 꼴이라니.]

정말로 분한 듯.

부릅뜬 눈이 나를 응시했다.

[내 바다로 돌아갈지언정. 네놈만큼은 같이 데려갈 것이라.]

후웅!

엄청난 속도로 주먹을 날려 오는 녀석.

여전히 몸이 무거웠지만.

[슬레이파의 준족]

쿵!

여전히 중첩된 요리들의 효과는 지속되고 있었고,

대충이나마 치료를 받고 온 덕에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헛친 거인의 주먹이 내 옆의 바닥에 꽂힌 것이 보였다.

그 팔을 향해 손에 쥔 칼을 휘둘렀다.

[독고구식]

생선을 손질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칼.

본래의 용도로 쓰이게 된 것이 기쁜 것일까.

살점을 베어 넘기는 감각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고오오오오오!!!

분노에 찬 비명이 울려 퍼진다.

'엄살은.'

워낙에 덩치가 큰 녀석.

이 정도의 공격은 잔 상처에 불과하겠지.

애초에 나도 피해를 주는 게 목표는 아니었고.

[깊은 자들의 교황의 앞다리살]

잘라낸 녀석의 살점을 쥐고 진형의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어딜 가느냐!]

"너야말로 어딜!"

후퇴하는 나를 거인이 추격하려 했으나.

전열의 전사들이 몸을 던져 막아냈다.

"커헉...!"

등 뒤에서 들려오는 짧은 신음소리.

나를 대신해서 공격을 받아 준 부대원이 멀리 날아가는 게 보였다.

'얼굴 기억해 뒀다!'

저 녀석한테는 나중에 반찬 뭐라도 하나 더 해 줘야지.

덕분에 후방의 전투차량까지 도망친 뒤.

손에 쥐어진 거인의 살점을 보았다.

[깊은 자들의 교황의 앞다리살]

[깊은 바다의 세계, 다스무르의 종족들에게는 한 가지 민간 설화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그들 세계의 수호종족, 어인 다스무리안의 고기를 먹는 자는 불로불사를 이룩할 수 있다는 이야기.]

[많은 이들은 이 이야기가 그저 소문인 줄 알지만, 마냥 거짓은 아닙니다.]

[신에게 수호 종족으로 선택받은 다스무리안은 높은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나는바.]

[그 잠재력을 모두 개화한 성인의 살점은 최고의 식재료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뭐랄까.

"설명 한번 거창한데."

[주의!]

[격이 높은 재료입니다.]

[재료에 비해 요리사의 경지가 낮습니다.]

[지금의 실력으로 요리를 시도할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경지를 높인 뒤에 도전하기를 권장드립니다.]

지금까지 다뤄봤던 어떤 요리 재료보다도 상세하고 화려한 설명.

생각보다도 더 대단한 괴물이었나보다.

재료로써의 격이 높아 요리하기가 힘들 정도라니.

하지만....

"지금 내 실력으로는 다루기 어려울 거라고?"

나도 요리사로서 자존심이 있다.

내 자존심을 건드리다니.

'작전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요리해야 한다.'

어인의 살점.

제대로 된 요리 도구 따위 꺼내기도 힘든 환경.

지금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요리라고 해봐야 하나뿐이다.

제대로 배운 적은 없다만.

자칫 잘못하면 취사병 후임 녀석의 밑에 들어가 배울 뻔한 요리.

[독고구식]의 가장 올바른 사용법.

'회.'

교황의 살점에 조심스럽게 칼을 가져다 댄다.

그리고.

최대한 정성을 담아, 그 결을 베어 들어갔다.

'격이 높은 재료라고 하지만... 지금의 나도 평범한 상태는 아니거든.'

[적용 중인 요리 효과 (4)]

무리를 해가면서 버프를 중첩한 결과.

능력치의 상승량이 엄청났다.

요리사의 능력치는 요리의 효과에도 영향을 준다.

쥐고 있는 칼 역시 본래가 생선을 손질하기 위한 것.

어디까지나 도박이라고 한들.

도박의 승률은, 최대한 높여 놓았다.

그 결과.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깊은 자들의 교황의 회]

도박에서 승리한 쪽은.

아무래도 내 쪽이 된 것 같다.

[격이 높은 재료를 성공적으로 요리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요리사로서의 역량이 크게 증가합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경험치를...]

"...됐다!"

어떻게든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

'맘 같아선 부대원들한테도 먹이고 싶지만.'

[스킬 - 오병이어를 발동합니다.]

[격이 높은 요리입니다!]

[마력이 부족합니다.]

[스킬 - 오병이어의 발동이 취소됩니다.]

'대규모 조리' 재능을 각성한 나임에도.

복사에 필요한 마력이 부족하다고 나왔다.

'...어차피 부대원들한테 먹여도 너무 과한 버프였을 거야.'

과한 버프는 오히려 몸에 피해를 준다.

결국 혼자서 먹기로 결정했다.

완성된 회를 한 점 집은 뒤.

조심스럽게 입 안으로 옮겨 넣는다.

"...저 녀석. 짜증 나는 괴물이지만."

이 말은 해 줘야겠다.

"맛은 있네."

특별한 소스가 없음에도 불구.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깊은 맛.

[최고위 식재료 - 성자의 신체, 어인의 고기를 섭취하였습니다.]

[관련 효과가 적용됩니다.]

정체 모를 효과가 적용되었다는 메시지.

저런 건 나중에 확인하기로 하고.

[절대 미각의 효과를 적용하시겠습니까?]

기다리던 문구가 나왔다.

[절대 미각의 효과를 적용합니다.]

[대상 식재료의 특성 한 가지를 일시적으로 획득합니다.]

[원하시는 특성을 선택해주세요.]

식재료에서 원하는 능력만을 골라 적용시키는 효과.

[정신 언어]

[신성력]

[제한된 미래시]

[세계 침식]

뭔가.

엄청나게 화려한 특성들이 눈앞을 지나갔다만.

모두 걸러 버렸다.

내가 찾는 능력은 하나.

'찾았다.'

[수속성 지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