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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화 침식 이계 (3)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허억. 허억. 끝났나...?"

던전에 진입한 뒤 얼마 되지 않아 펼쳐진 전투는 군단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중상자는커녕, 경미한 부상자도 나오지 않은 완승.

하지만.

"저기! 더 몰려옵니다!"

"미친."

전투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몰려오는 괴물들.

병력의 질은 이쪽이 압도적이지만.

끝없이 몰려드는 적들을 모조리 제거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신 병장님. 지금은 괜찮습니다만, 부상자가 생긴다면 이 환경에서 치료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의무병과 군종병이 다가와서 말했다.

애초에 이번 던전 공략은 장기전이 될 거라고 각오한 상태.

한 번의 싸움으로 던전을 공략할 욕심 같은 건 없었다.

"전투하면서 계속 이동한다! 저기 보이는 고층 건물로!"

물속에서부터 접근해 온 괴물들.

아가미가 달린 모습도 그렇고.

물이 없는 곳에서는 능력이 떨어질 확률이 높겠지.

"문이 박살 나 있습니다! 유리 같은 거 조심해서 들어오십쇼!"

"어차피 각성자는 그런 거엔 상처도 안 나! 들어가, 들어가!"

어떻게든 건물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건물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그대로 맞으며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어떻게든 계단을 찾아내 2층으로 올라갔다.

"올라오지는...."

"않는 거 같네."

도시를 채운 물도 2층 높이까지 올라온 것은 아니었다.

혹시나 괴물들이 물 밖으로도 따라 들어올까 경계했으나,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다들 휴식!"

"후우!"

일단은 안심하고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밖에서 진입할 때는 분명 낮이었지만, 건물 안은 빛 한 점 없이 어두웠다.

요리의 효과가 아니었다면 다들 어둠 속에서 고생 좀 해야 했겠지.

"아~ 전투차량들 밑에 두고 온 게 좀 맘에 걸리는데요."

"어차피 방수 처리는 다 돼 있잖냐. 나중에 이동할 때 챙기면 되는 거야."

전투에서는 움직이는 바리케이드처럼 이용할 수 있는 차량들.

하지만 차량들에도 요리를 먹이진 못하다 보니.

차량들까지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하지는 못했다.

자랑하는 톱날이나 뿔 같은 무기들도 수중에서는 속도가 줄어들어 활약하기도 힘들고.

아쉽긴 하지만.

굳이 챙기려고 노력해야 할 정도는 아니란 거지.

병사들이 휴식을 취하는 사이.

"어디 가십니까?"

"위쪽으로."

나는 몸을 일으켜 건물을 올라가 보기로 했다.

능력치 물약에 뱀파이어를 상대로 한 흡혈까지.

스탯이 엄청나게 올라 버린 덕에, 방금의 전투를 겪고도 피로도가 심하진 않았다.

"어차피 고층 건물에 올라가서 주변을 둘러본다는 계획이었으니까. 먼저 올라가 있으마."

"저희는 힘들어서 죽겠는데... 대단하십니다."

"쉬고 있어."

전기 따위는 진작에 끊긴 건물.

비상계단을 통해 일일이 한 층, 한 층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건물을 몇 층 정도 올라갔을까.

위쪽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

물에서 난리 치던 괴물들이 쫓아 오지 않는다고 너무 방심했던 것일까.

'물속의 괴물들이 땅에서 활동하지 못한다고, 건물 안에 다른 괴물이 없으리란 보장은 없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하기도 늦은 일.

스릉....

나는 칼을 쥐고 전투를 준비했다.

위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존재들.

그 기척이 계단 아래에서 정체를 드러낸 순간.

'일단 한 놈. 빠르게 처리한다!'

그 형체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런데.

"거, 거기 있는 건 누구요!"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멈칫.

당황한 나는 휘두르려던 칼을 멈췄다.

자칫하면 목을 벨 뻔한 사시미칼이 아슬아슬하게 목 앞에서 정지했다.

'미친. 죽일 뻔했네.'

내 쪽을 향해 소리친 남자는 자신이 죽을 뻔하고.

내가 죽일 뻔한 걸 아는지 모르는지.

"제기랄. 어둠 속에 숨어서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지만, 이 건물은 우리 영역이다!"

"어느 건물에서 온 녀석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전 조율도 없이 1층부터 침입해 와? 전쟁이라도 하자는 거야, 뭐야!"

뭐라 뭐라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는 사내들.

하지만 나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어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이 건물이 저들 영역이라고...? 다른 건물에서 온 녀석들이란 건 또 뭐야.'

섣불리 반응할 일이 아니라 생각해 대답을 아끼자.

저쪽도 나름대로 애가 탄 것일까.

"왜 대답이 없나! 제기랄. 기름 아깝게...."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드는 남자.

자세히 보니 나무 막대와 옷가지 같은 것으로 만든 횃불로 보였다.

그들은 거기에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화륵.

어둠 속에서 횃불이 켜지고.

그 붉은 빛이 나를 비추었다.

"어느 건물에서 온 놈들인지, 얼굴이나 한번...."

"...엉?"

횃불로 내 모습을 확인하자.

오히려 사내들의 얼굴이 멍하게 바뀌었다.

"...?"

"못 보던 사람 같은데."

"아니. 그보다 저 옷 좀 봐."

"군복...이잖아?"

경악하는 사내들.

나는 나대로 어이가 없었다.

던전 안에 저렇게 생존자들이 많다니.

여기 상황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 * *

"앉으시오."

건물 안에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인간들.

우리 부대원들은 그들의 안내를 받아 위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며 틈틈이 각 층의 모습을 둘러보았다.

본래는 사무 용도로 쓰이던 것 같은 고층 건물.

하지만 지금은 곳곳에서 생활 흔적이 보였다.

'여기서 생활을 시작한 지 꽤 된 건가.'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의 숫자도 꽤 많아 보였다는 것이다.

솔직히 신기할 따름이었다.

'던전 안에 이렇게 생존자가 많다니.'

지난번에 공략한 던전은 달랐다.

지하철의 공사를 담당하던 인부들은 모조리 벌레들의 먹이가 되었었지.

이 던전은 다르단 건가.

"박태완이라고 하오."

악수를 청해 오는 남자.

이럴 때 주로 나서는 것은 김 중위긴 했지만.

지금 상황은 외부 세력과의 만남이라기보단, 던전 공략이 주된 목적이다.

"신영준 병장이라고 합니다."

일단은 내가 나서기로 했다.

군인이라는 신분을 밝히자.

"...진짠가 보군."

이들이 놀라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까 들은 보고도 그렇고.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역시 군복이었어."

"대장님. 1층에 물에 잠겨 있는 차량 중에는 장갑차 같은 것도 있었다고 하던데요."

"그렇다는 건 역시."

자기들끼리 흥분하며 뭐라 뭐라 떠들기 시작하는 이들.

태완이라는 남자 역시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드디어 군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한 거로군."

...움직였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자, 흥분한 이들이 더 떠드는 게 들려왔다.

"거봐! 제기랄. 바깥은 멀쩡할 거라고 했지!"

"그럼 우리도 나갈 수 있는 건가?"

"군인들이 들어 왔다는 건, 나갈 방법도 있다는 거 아니겠어? 이 지긋지긋한 생활도 끝이란 거다."

여기까지는 뭐.

대충 이해가 가는데.

"아니. 바깥으로 나간다고 무조건 좋은 일은 아닐 수도...."

"그래. 각성에 대한 걸 들키면, 정부에 끌려가서 인체실험 대상이 될 수도 있어."

"그럼 저항해야지. 우리도 그럴 만한 힘은 있잖아."

"말이 됩니까? 암만 우리가 강해졌다고 해도 체계를 이룬 현대군은 못 이겨요."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맙시다. 인체실험 대상이 되는 게 아니라, 현대에 나타난 초능력자 취급을 받을 수도 있는 거예요. 고난 끝에 각성을 거친, TV에 나오는 히어로 같은 존재가 되는 거지."

...여기서부터가.

영 적응이 안 됐다.

'이 사람들. 군대가 전멸한 건 물론이고, 바깥 사회가 무너졌단 것도 모르는 건가.'

바깥의 생존자들과는 아예 다른 느낌.

내가 대답을 망설이자 태완이 물었다.

"하나만 묻겠소. 당신들. 원래 춘천에 숨어 있던 군인들이라던가 하는 건 아닐 테고. 벽 바깥에서 온 게 맞나?"

"...맞습니다."

"오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태완.

"영락없이 바깥세상은 멸망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멸망이라뇨?"

"그야 어쩔 수 없지 않소. 저 벽 바깥으로는 나갈 수도 없고, 밖에서 들어오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니.... 사정이 있어서 저 벽을 뚫고 들어오지 못할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난 우리 외의 인류는 전멸해 버린 거라고 생각했소. 저 물에 모조리 수몰돼 버린 거라고."

"...…."

"내가 잘못 생각했던 거였군. 하긴 수압이 저러니, 바깥에서 진입하는 방법을 깨닫는 데도 시간이 걸렸나 보지?"

"그 전에 잠시만."

뭔가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 오해를 고쳐 주기 전에 궁금한 것을 먼저 묻기로 했다.

"저 바깥에 벽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고 하셨죠."

"맞소. 어느 날 갑자기 바닥에서 천천히 물이 차오르는가 싶더니. 밖으로 나가려고 해도 저런 폭포 같은 벽이 생겨서 탈출을 막더군."

"그 날짜가 언젠지 아십니까?"

"그야 알고는 있소만."

남자가 말한 날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날이었다.

내 전역일 며칠 전.

즉.

'이 던전. 멸망의 날 당일에 생겨났다는 건가?'

우리 부대에 리자드들이 쳐들어온 날.

춘천은 이 던전에 갇혀 버렸다는 것.

바깥의 생존자들과의 정보 격차도 이해가 갔다.

"정말 당황스러웠지. 곧 군대가 구해 줄 거라던 사람들도 몇 달이 지나니 조용해졌어. 정말 군대가 도와줄 거라 믿는 이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이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둘로 갈렸었나 보다.

자신들을 제외하고 바깥세상은 모조리 수몰되어 멸망했다.

아니면 자신들만 이런 것이고, 바깥은 멀쩡하니 곧 군대가 들어와서 구해 줄 것이다.

답은 둘 다 아니었지만.

"추가 병력도 곧 들어오는 거겠지? 이런 환경이지만, 장갑차 같은 건 물속에서도 잘 활동할 수 있다고 들었으니...."

"병력은 우리가 전부입니다."

"...어?"

신나서 떠들던 이들의 얼굴이 약간 굳었다.

탄약대대 기지에 대기 중인 전차를 끌고 오는 방안도 있긴 하겠지만, 큰 병력은 아니니까.

"그, 그런가. 잘은 모르겠지만. 군대의 진입이 이렇게 늦은 걸 보면, 바깥에서도 저 벽을 뚫는 게 쉬운 일은 아닌가 보군."

그냥 걸어 들어왔다.

우리 이전에 들어온 이들이 없었던 건 딱 봐도 위험해 보여서였겠지.

"그, 그래도 괜찮소! 믿기 힘들겠지만, 이 안에서 우리는 조금 특별한 경험을 했거든. 나중에 우리가 얻은 힘에 대해 보여 주겠소. 아마 깜짝 놀랄 거요."

그거 아마 우리도 아는 힘일걸.

대충 사정은 알 것 같았다.

'멸망을 겪은 것 같지만, 장르가 다른 거다.'

인류의 멸망을 다룬 영화에도 종류가 있다.

좀비물도 있는가 하면.

재난 영화... 홍수로 인한 멸망을 다룬 영화도 있다는 거지.

멸망의 날은 동시에 찾아왔지만.

이들은 이 던전의 특별한 환경 아래, 바깥과는 다른 경험을 한 거다.

"일단 우리가 바깥에서 와서, 여기 사정이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릅니다."

"그건 그렇겠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음.... 알겠소."

태완의 입에서 나온 설명은 대충 예상했던 대로였다.

멸망의 날이 시작되고.

갑작스레 바닥에 물이 차오르는가 싶더니.

외부와의 모든 통신이 두절.

바깥으로 나가는 길은 돌도 베어 버리는 엄청난 수압의 폭포로 가로막혔다.

태양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고.

그걸 넘어서 구름조차 사라졌다.

"물이 허벅지쯤까지 차오르니. 괴물들까지 나타나더군."

"처음에는 악어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은 괴물과 물을 피해 2층 이상의 건물로 도망쳤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빠르진 않았소. 저지대에 있던 물자들을 높이 옮길 만한 시간은 되더군. 괴물들도 물 밖으로는 잘 나오지 않고. 덕분에 의외로 사망자는 적었지."

어?

사망자가 적었다고?

그 말을 들은 나는 눈이 크게 떠졌다.

내가 괴물들을 요리로 굴복시켜 가면서 부하로 삼으려고 한 이유가 뭐였는가.

애초에 평범한 인간들이 대부분 죽어, 남은 인류의 숫자가 적었기 때문이다.

세력을 키우려면 괴물이라도 들여야 했던 거지.

"춘천시의 시민분들은 대부분 살아 있다. 그렇게 봐도 되는 겁니까?"

춘천시는 강원도 최대의 대도시 중 한 곳.

그곳의 주민들이 모두 살아 있다면.

그 숫자만 해도 엄청날 터.

"아니.... 그건 아니오."

"예?"

"...뭐. 일이 많았단 것만 말하겠소. 자세한 건 나가서...."

태완이 어두운 얼굴로 말하자.

뒤에 서 있던 사람들 중 한 명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법정에서, 제대로 진술해야 할 일이니까...."

뭐라고 해야 하나.

괴물들에게 죽거나,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숫자는 많지 않은 것 같다만.

'...이거. 다른 이유로 죽은 사람은 많다는 거지?'

96화 복수자들 (1)

"법정에서, 제대로 진술해야 할 일이니까...."

...아무래도.

다른 이유로 죽은 사람이 많다는 것 같다.

"저도 하나 질문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때.

뒤에 있던 병사 중 한 명이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럼 여기는 좀비 같은 건 없는 겁니까?"

"좀비?"

"무슨 비유 같은 건가?"

"사람들 몰골이 좀비 같긴 한데...."

심지어 좀비도 없다는 것 같았다.

약간 우리 부대의 사정과 비슷한 느낌도 들었다.

'우리 부대에도 어째서인지 좀비가 출현하지 않았으니까.'

덕분에 리자드들을 상대하는 데 전력을 다할 수 있었지.

그런 환경이었기에 부대원들을 각성자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고.

그리고 이들 역시.

[식재료 감별]

[Lv. 3 창술사]

[Lv. 6 화염 마법사]

각성자의 비율이 상당했다.

이 공간에서 적은 물속을 돌아다니는 괴물들뿐이니.

각성법에 대한 정보도 꽤 빨리 퍼져나갔겠지.

"뭐... 아무튼 그렇게 된 거요. 그 후로는 어떻게든 위로 옮긴 식량들하고, 낚시를 통해 낚은 물고기들. 그리고 모종의 방법으로 얻게 된 빵이 있는데. 그걸로 버티고 있지."

"낚시?"

"아. 저 물속에 물고기들이 꽤 많소.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수아가 봤다던 댐이나 호수가 떠올랐다.

거기 있는 물이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고 했지.

'그 물들이 이 공간으로 들어온 것 같은데.'

그 과정에서 물고기도 딸려 들어온 건가.

"그럼 살아남은 사람들은 당신들뿐인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오. 적긴 하지만 교류를 하는 이들도 있지."

"교류라니."

이 빌딩에서 다른 곳하고 교류?

저 물속의 괴물들을 뚫고 다른 건물로 가는 건가? 했으나.

"이건 직접 보여 줘야 이해가 갈 것 같군. 따라오시오."

우리는 태완의 안내를 따라 이동했다.

그와 대화를 나누던 곳은 빌딩의 중간층쯤.

하지만 지금 향하는 곳은.

'옥상?'

옥상의 문을 열고 올라가자.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꽤 놀라운 것이었다.

건물의 벽을 폭포처럼 흐르는 물이나, 대낮일 시간대임에도 떠 있는 달.

그리고.

"대장님. 오셨습니까."

"그래. 이상은 없고?"

"옙."

옥상에 경비를 서고 있는 이들.

그들이 지키고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구름다리?"

"맞소."

건물과 건물 사이를 잇고 있는 구름다리들이었다.

"꽤 조잡하긴 하지만, 이 다리들을 통해 다른 건물의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소.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물물 거래를 하는 식이지."

구름다리라니.

나는 위태롭게 흔들거리는 다리들을 보며 옥상의 외곽으로 몸을 옮겼다.

그곳에서 바닥을 내려다보자.

건물 외벽을 흐르는 폭포와 그 아래에 돌아다니는 검은 형체들이 보였다.

'지상을 빼앗기고, 어쩔 수 없이 하늘로 도주한 건가.'

저 구름다리는 이 도시의 인간들이 살아남기 위해 궁리한 결과겠지만.

처량한 느낌이 들었다.

본래 지상의 주인이었던 인간들은 지상을 빼앗기고 고층 건물로 몰려났다.

그리고 지금.

지상을 빼앗은 괴물들은 저 물속에서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있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구름다리.

그곳을 지나다 떨어질 인간들을 받아먹기 위해.

* * *

"아. 이 구름다리들을 만든 방법도 궁금할 것 같은데. 아까도 말했지만, 조금 특별한 힘을 얻게 된 사람들이 있소. 그 사람들이 반대쪽 건물에 줄을 매달아 던진 다음...."

"...각성 얘기라면, 저희도 압니다."

"어? 안다고?"

내 대답에 놀랐던 태완이,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너무 우리 쪽 사정만 얘기했던 것 같군. 바깥의 사정에 대해서도 슬슬 듣고 싶은데. 알려 줘도 되지 않겠소?"

우리가 들어온 것을 보고 희망을 품은 이들.

그 희망을 부수는 것은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으니.

"저희를 보고 바깥세상은 멀쩡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만."

"응?"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온 나와 부대원들은 바깥의 사정을 상세하게 전했다.

군부대가 자신들은 구해 주러 왔다는 사실에 흥분했던 인간들이었으나.

"...맙소사."

얼굴을 가리며 침음성을 흘리는 이들.

이전까지의 희망에 찬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

"저 어인들도 아니고, 온갖 종류의 괴물들이 돌아다닌다고?"

"좀비? 좀비는 또 뭐야. 영화도 아니고."

"제기랄. 차라리 다른 사람들은 전부 수몰되었다고 생각하던 때가 낫지. 좀비가 됐다니.... 그냥 죽었다는 것보다도 안 좋은 소식이잖아."

신나서 떠들던 태완 역시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우리를 도우러 온 것도 정말 당신들이 전부인 건가."

"예."

"지원군은 없을 거고?"

"맞습니다."

우리를 보고 희망에 찼던 이들.

차라리 아무런 희망도 없던 상황이었으면 모를까.

"...X발."

작은 희망에 불타올랐던 이들이, 그 희망을 놓치자.

"하하.... 그러면 결국 여기서 나갈 방법은 없는 거로군."

찾아온 절망감은 엄청났다.

덤덤하게 얼굴을 가리고 말하는 태완의 눈가에 약간 물기가 고이는 것이 보였다.

"우린 여기에 갇힌 채 평생을 살아야 하는 거고."

"아니. 그건 아닙니다."

"뭐?"

눈을 크게 뜨며 우리를 바라보는 이들.

여기서 탈출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이 던전 어딘가에, 던전을 만든 주범이 있을 겁니다. 아마도 저 괴물들의 수장 격일 녀석... 그 녀석을 죽이면 됩니다."

"...쳇. 뭐야."

"그냥 헛소리였군."

던전을 탈출하는 방법을 알려 준 셈이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영 미적지근했다.

"저 괴물들이 몇 마리나 되는지는 아시오? 저 괴물하고 싸우려면 저놈들의 전장인 물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건?"

"...."

"한두 마리 정도야 어떻게든 사냥할 수 있겠지. 우리도 그렇게 각성했으니까. 하지만 저 녀석들의 우두머리를 사냥한다? 그딴 건 불가능해."

시작도 전부터 헛소리로 취급하는 태도에 약간 짜증이 났다.

"해 보기 전엔 모르는 것 아닙니까?"

"해 보기 전에 아는 것도 있는 법이지. 안타깝지만 인정하시오. 당신들도 이 안에 들어온 이상, 우리와 함께 죽어 나갈 운명이야."

어지간히 상심이 컸는지.

큭큭 하며 헛웃음을 내뱉는 태완.

"얘기는 끝난 것 같군. 이제 꺼지시오."

"예?"

"아까 말하지 않았나? 이 건물은 우리 영역이니까, 꺼지시라고."

갑작스러운 선언.

"우리도 여유는 없어. 비축해 놓은 식량은 다 떨어져 가는 참이고. 낚시로 얻은 물고기나 포인트로 사는 호밀빵 정도밖에 없지. 호밀빵은 맛대가리도 없는 게 뭐 그리 비싼지.... 당신들한테 줄 식량 같은 건 없고. 이 근처에서 돌아다니는 물고기들을 나눌 생각도 없소. 그러니까 가시오."

그 얘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그러면 더더욱 우리를 내쫓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때.

한 남자가 태완의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

"대장님. 다시 생각해 보시죠."

"뭐 임마."

"저 사람들. 그래도 군인이잖습니까. 숫자도 꽤 많고. 심지어 여기로 제 발로 들어온 녀석들이니."

그나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인가? 싶었으나.

아니었다.

"나름 전투식량 같은 걸 가지고 있지 않겠습니까?"

"흠."

"그냥 보내기엔 좀 아깝죠."

그 얘기를 들은 태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는 말이야. 당신들!"

"...."

"우리한테 들은 정보가 꽤 많지? 정보료는 좀 내주셔야겠소."

정보료?

"정보료가 좀 그렇다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한 통행료나, 아니면 여기 얹혀살아도 괜찮아. 그때는 숙박료를 받아야겠지."

"...."

"여기 들어왔으면, 가지고 있는 식량이 꽤 될 것 아냐? 같은 사람들끼리 좀 나누자고."

뻔뻔하기까지 한 모습.

'이 남자가 특별히 악인인 건 아닐 테지만.'

안 그래도 어려웠던 상황에.

그나마 희망을 품고 있던 바깥세상까지 멸망해 버렸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이다.

절망한 끝에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거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배려해 줄 필요는 없다.'

난 어깨를 으쓱하며 뒤를 보고 말했다.

"광일아."

"예."

"밑에 있는 전투차량 중에, 군용 전투식량 남은 거 있을 거다. 그거 3분의 1만 가져와."

"예?"

내 말을 들은 서수혁 병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신 병장님. 굳이...."

"괜찮아."

저들의 말대로.

정보를 얻은 건 사실이다.

게다가 전투식량 정도야.

"내가 만든 요리가 아니라, 탄약대대랑 전차대대에 쌓여 있던 전투식량이니까."

"아. 그런 거라면. 이해했습니다."

얼마든지 내줄 수 있다.

"생각보다 고분고분하시군."

"말씀하신 대로, 정보를 받은 건 사실이니까요. 여기서 머물 생각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십쇼."

"흐흐. 그건 고맙게 됐소."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거래.

주고받을 분량은 확실히 해야지.

"식량은 나눠드릴 테니 정보를 더 듣고 싶습니다만."

"그거야 뭐. 편한 대로 물어보시오."

"이 건물이 당신들의 영역이고, 다른 건물하고도 가끔 교류한다고 하셨습니다만. 다른 세력들에 대한 정보를 좀 알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들은 태완의 얼굴이 조금 찡그려졌다.

"그건 좀 복잡한 얘기가 될 텐데."

"싫으시면 뭐. 식량은 없던 걸로 하죠."

"뭐?"

몸을 일으키려는 태완을 향해.

나는 슬쩍 품을 열어, 가슴팍에 착용한 권총을 내보였다.

"혹시나 해서 말해 두는데. 힘으로 뺏는다고 순순히 뺏겨 줄 생각은 없습니다."

"...."

"당신들도 각성자 숫자가 꽤 돼 보이긴 하는데. 우리라고 만만할 거라고 생각하진 마십쇼."

"쯧. 그래 뭐. 정보 알려 주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지."

복잡한 정보라고 했지만.

실제로 들어보니 별건 없었다.

"저 건물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규모가 좀 작은 편인데...."

어느 건물에 어떤 이들이 자리 잡고 있고.

서로 연결된 구름다리를 통해 가끔 교류하는 정도.

그리고.

"가끔 전투가 벌어지기도 하지."

"전투?"

"지금은 그나마 안정된 편이지만, 중간에는 큰 싸움도 한 번 있었소."

식량은 고갈되어 갈 수밖에 없는 환경.

식량을 탐해 다른 건물을 공격해 들어간 약탈자들도 있었다고 한다.

"약탈자들은 중간에 사건이 있어서 전부 죽었지만.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로는 1층부터 접근하는 건 적대 행위라는 게 불문율이 됐지."

공중다리로 오는 적은 다리를 끊어 버리면 그만이지만.

물속의 괴물들을 피해 1층부터 올라오는 적들은, 아무리 계단을 막아 놔도 결국은 뚫릴 수 있으니.

그 얘기를 들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이 녀석들. 선택을 잘못해도 단단히 잘못했네.'

그렇게 필요한 정보는 모두 들었다고 생각될 때쯤.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군요. 이제 가 보겠습니다."

나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때.

"자, 잠시만요."

"?"

"대장님. 잠시 귀 좀 주십쇼."

뒤에 있던 이들 중 누군가가 태완의 곁으로 다가가 속삭였다.

-대장님. 생각해보십쇼. 저 사람들을....

-아. 그게 그렇게 되나...?

그의 얘기를 들은 태완의 눈이 점점 커지는가 싶더니.

이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큼큼. 굳이 떠날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예?"

"식량을 저렇게 많이 줬으니. 우리가 제공한 정보가 오히려 좀 부족한 것 같아. 잠자리도 제공해 줄 테니 우리와 함께 지내는 건 어떻소."

"마, 맞아요."

"아까는 우리 대장님이 흥분해서 말실수를 좀 했습니다만. 같은 사람들끼리 실수도 하고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화해하고, 같이 지내 봅시다!"

갑자기 살가워진 모습.

그 태도의 원인은 알 만했다.

'이제야 눈치챈 거냐?'

비축된 식량은 다 떨어져 가고 있고.

햇빛이 없어 농사를 지을 수도 없으니, 식량을 얻을 구석은 포인트와 낚시 정도.

포인트로 사는 호밀빵은 최악의 효율을 자랑하니 실질적으로는 낚시가 끝이다.

하지만 여기가 어지간히 낚시가 잘되는 명소가 아니고서야.

이 건물 근처에 낚싯줄 내려놓고 낚시한다고 충분한 식량을 얻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즉.

이 상태가 계속 유지된다고 한다면.

'머지않아, 각 건물을 차지한 이들끼리 자리싸움이 일어날 거다.'

얼마 전에는 다른 이들의 식량을 빼앗기 위한 싸움이 있었다고 했던가.

앞으로 벌어질 싸움은 아마 다른 것이겠지.

'낚시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그 싸움은 아마 낚시만으로 먹고살기 충분한 인원만 살아남을 때까지 계속되겠지.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활용할 수 있는 전력의 확보가 필수.

몇 달 동안 여기서 생존해 온 이들.

이미 서로의 전력이 고만고만하단 것을 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던전에 진입한 거다.

'우리는 총을 가진 군인인 건 물론, 각성자들이 섞여 있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즉.

우리는 이 인간들 간의 세력전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엄청난 전력.

냉정하게 판단한다면 어떻게든 꼬드기려고 노력해도 모자랄 이들이란 거다.

저들은 그런 우리더러 '꺼지라'는 태도를 보였고.

"괜찮습니다. 잘 곳이야 뭐. 찾으면 나오겠죠."

"그, 그러지 마시고!"

떠나려는 우리를 이제 와서 붙잡는 사람들.

지금 이들의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의미를 가진 세력인지.

"아까 내가 실수한 건 사과하겠소. 그러니 제발. 얘기라도 좀 들어 보시오!"

제대로 이해했었다면 꺼지라느니 식량을 내놓으라느니 하는 말은 없었겠지.

그리고.

"이 손 놓으시지요."

저들이 오판한 것을 우리가 신경 써 줄 필요는 없다.

나는 내 소매를 붙잡으려는 태완의 팔을 뿌리친 채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전해 주신 정보는 감사합니다. 대가로 드리기로 한 전투식량은 두고 갈 테니. 맛있게 드시죠."

"가, 갑자기 그렇게 서두르는 이유가 뭐요! 얘기 정도는 해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혹시 우리 대장님이 막말한 게 신경 쓰이는 거라면, 저희가 대신 사과할 테니...!"

"그런 건 신경 안 씁니다."

우리의 가치를 뒤늦게 깨닫고 매달리는 이들.

그런 그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굳이 저희를 붙잡아 두고 싶으시다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무, 무슨 방법이 있단 말이오?"

"대가를 주시는 겁니다."

"...뭐?"

저들이 먼저 우리 관계를 거래로 규정했으니.

내가 저들에게서 식량으로 정보를 산 것처럼.

저들도 우리의 힘을 사야 하겠지.

물론.

"그럴 만한 대가를 지불하실 수 있을 경우에. 말입니다만."

97화 복수자들 (2)

"대가라니. 우리는 딱히 지불할 만한 게... 아! 아까 당신들이 준 전투식량들은 어떤가!"

그 말에는 살짝 웃음이 나왔다.

"하하... 장난하세요?"

"그 그러면 사람은 어떤가. 우리 쪽 사람들이 다들 인물이 괜찮아. 여자든 남자든, 필요하다면...."

쯧.

더 할 말은 없을 것 같네.

"자, 잠깐! 그러지 말고 대화를...!"

"아, 됐습니다."

우리를 붙잡으려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나와 부대원들은 건물을 내려가 지상으로 향했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왜 굳이 내려가는 겁니까?"

건물의 사람 중 누군가가 그렇게 물어왔다.

"저희가 설치한 구름다리가 있으니, 그거라도 쓰시죠."

"마, 맞아요. 굳이 위험하게 지상으로 가실 이유는 없잖아요?"

아무래도 우리를 붙잡는 건 글렀다고 생각했는지.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이미지라도 좋게 헤어지고 싶은 모양.

하지만.

"배려는 고맙습니다만. 괜찮습니다."

"아까 통행료가 어쩌구 했던 얘기가 걸리는 거라면, 그건 잊으시고."

"아니. 정말 괜찮아서 하는 말이거든요."

1층으로 내려오자.

물속에 잠겨 있는 전투차량들이 보였다.

"저 차들까지 구름다리로 옮길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그건, 그렇긴 해 보이는데."

"뭣보다. 저희는 던전에 진입한 이유가 따로 있어서요."

구름다리를 통해 이동하면 편하긴 하겠지.

하지만 우리가 던전에 진입한 이유는 둘.

하나는 구원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고.

두 번째는.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당신의 식사를 대접받은 이가 전투에서 활약했습니다.]

[요리사의 명성이 퍼져 나갑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계속 요격하면서 이동한다!"

"""예!!!"""

성장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기껏 먹인 요리.

효과가 끝나기 전에 뽕을 뽑아야 하지 않겠어.

다만.

"크흠."

"쩝...."

전투에 참가하지 못하는 이들이 몇 명 있었다.

마법사들.

그중에서도 화염과 전격을 다루는 이들.

'저번 던전에서는 화염 계열 마법사들이 꿀 좀 빨았지.'

지하철의 던전은 공기의 성질이 다른 것일까, 화염 계열 마법사들의 화력이 상승했었다.

몰려드는 괴물들을 상대로 가장 효과적인 광역공격이라는 점도 있어서, 던전 공략의 2등 공신이 화염계열 마법사 중 가장 레벨이 높은 병사로 나올 정도였지.

반면 이번엔.

"원래 수온이 높아지면 물고기도 죽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냥 물고기가 아니니까 그렇지."

물속에서 이루어지는 전투.

내 요리로 [환경 적응] 특성이 생겼다고 한들.

물속에 있는 괴물들에게 쏘는 화염은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

반대로 전격의 경우.

"너무 세져서 문제라니. 뭐 이런."

전투차량 위에 앉은 민재 형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 괴물들.

괜히 물고기처럼 생긴 게 아니다.

물속을 엄청난 속도로 수영해서 접근해 온단 말이지.

우리가 눈치챘을 때는 이미 근접전을 벌이게 되는 상황.

그래서 발생하는 문제가 바로.

'프렌들리 파이어.'

아군의 공격에 아군이 피해를 입는 경우를 말한다.

마법사라는 직업이 존재하는 게임은 대부분의 경우 광역 공격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럴 경우.

아군에게는 광역 공격이 피해를 주지 않도록 설정해 밸런스를 조정한다.

하지만.

"현실성을 중시하는 몇몇 게임들은... 의도적으로 프렌들리 파이어가 가능하도록 설정하기도 하지. 그것만으로 현실성도 늘어나고 전략도 복잡해지니까."

"현실성을 넘어서 현실이 게임이 돼서 그런가. 더럽게 현실적이군."

이민재 병장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들의 세상은 빌어먹을 정도로 현실적이다.

마법사들의 광역 공격이 아군에게도 피해를 주니까.

'이전까지는 마법사들이 알아서 화력을 조절하는 식으로 아군을 피해서 공격했지.'

하지만 지금은 전장이 물속이라는 게 문제다.

물과 전기는 상극.

마법사들의 전격은 이전보다 배 이상으로 강해졌다만.

물속에서 덤벼드는 적을 상대하기 위해 거기에 전격을 날린다?

아군 병사들까지 전기에 구워지겠지.

'우리 쪽에서 가장 강한 마법사가 민재 형이고. 그 민재 형이 전기 마법사야.'

민재 형의 마법이 무력화된다는 것은 꽤 치명적이겠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근처의 괴물들은 그렇게까지 강력하지는 않았다는 것.

두 속성의 마법사들을 제외하고 그 외의 병사들은 몰려드는 괴물들을 처치하며 차곡차곡 경험치를 쌓았다.

물론.

끝없이 몰려드는 괴물들을 상대로 계속 전투를 진행할 수는 없는 법.

어디까지나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전투를 피하지 않았을 뿐이다.

"저기. 목적지가 보입니다!"

곧 우리가 목표로 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 잠깐만요."

"저기도 뭔가 이상한데."

저 먼 곳을 바라보는 병사들이 무언가를 보고 말했다.

"...전투. 전투 중입니다!"

"전방에서, 인간들과 어인들이 격돌 중입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잘 찾아왔네."

* * *

만류하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건물을 나온 직후.

밖으로 나가기 전.

-그럼 이제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병사들이 내게 질문해 왔었다.

나는 지도를 펼치며 대답했다.

-여기로 간다.

-예?

-평범한 건물로 보이는데. 여기에 뭐가 있습니까?

-이 건물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이 있겠지.

-예?

던전 안에 살아 있는 인간들이 다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도 한 번쯤은 만나 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한 제안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이라니.

-...굳이요?

부대원들의 반응은 묘하게 석연치 않았었다.

이게 우리 부대의 장점이자 단점이란 말이지.

'내부적인 단결력은 엄청 좋은데, 외부인들을 좀 꺼린단 말이야.'

멸망의 날 초기.

혼란스러워하는 병사들을 어떻게든 진정시키기 위해, 나는 [특별소스]가 담긴 요리를 먹였다.

효과는 상당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미쳐 가던 병사들도 지금은 훌륭한 전력으로 거듭났지.

하지만.

그때 먹인 요리의 효과가 대체로 '우리 부대원들을 믿고 함께 살아남자!' 같은 내용으로 귀결되어서 그런 것일까.

'반대로 부대 외의 인물들에게 너무 매정해져 버렸어.'

그냥 매정한 정도면 몰라.

쉽게 믿지 않는 것은 물론, 어지간해서는 의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거의 인간 불신 수준.

외부 세력에게 장난질을 당할 일이 없으니 장점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도 그럴 필요는 없잖냐.

-너희도 아까 대충 느꼈지? 이 던전 안에 있는 사람들. 이상할 정도로 각성자 비율이 높아.

-예. 신기하긴 하더군요.

그때.

민재 형이 내 말을 거들며 말했었다.

-아까 얘기를 들어 보니. 여기는 좀비가 없는 것 같더군. 괴물은 저 물속을 돌아다니는 녀석들뿐이고. 각성하기 쉬운 환경이란 점만 따지면 우리 부대 때와 비슷해.

-즉. 가용 전력들이 많다는 거지.

난 어깨를 가볍게 으쓱하며 말했다.

-쓸 수 있는 전력이 있다면. 써 보려고 시도는 해 봐야지 않겠냐.

-던전 안의 인간들과 협력하겠다는 거군.

-그러면 차라리 이 건물의 사람들하고 협력하는 게 나은 거 아닙니까?

-저 사람들은 안 돼.

던전에 진입해서 가장 처음 만난 인간들.

그들과 협력할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었겠지.

그럼에도 그들을 뿌리치면서 나온 이유는 하나.

-던전을 공략하겠다는 생각... 괴물들을 토벌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없었으니까.

괴물들을 처치하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얘기를 전했을 때.

저들은 내 말을 완전한 헛소리로 치부했다.

'뒤늦게 우리를 회유하려 한 것도, 다른 인간들 간의 세력다툼에서 필요하기 때문이었지.'

그런 녀석들은 도움이 안 된다.

어쩌다 협력을 한다고 해도, 위급한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으니까.

반면.

-아까 얘기를 들었던 그룹 중에 적당한 곳이 있었잖냐.

-아...!

저들에게 전투식량을 넘겨 가면서 들은 정보.

그중에는 도시에 살아있는 인간 세력들에 대한 정보도 있었다.

그리고.

-저기 저 건물은. 음. 좀 특이한 녀석들이 차지하고 있소.

-특이하다니?

-우리도 필요한 상황이라면 물속의 어인과 교전을 치를 때가 있지. 사람들을 각성시키기 위해선 어인을 사냥해야 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아무래도 위험 부담이 높은 만큼 대부분은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물로 내려가지 않아.

-그 얘기는.

-저 건물의 인간들은 우리와는 좀 달라. 생존이 아니라, 어인 사냥을 목표로 하는 놈들이오.

꺼림직하다는 듯 말하던 태완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물속도 거리낌 없이 들어가는 놈들이다 보니 쓸 만한 물건도 많아서 가끔 교류하긴 하지만, 그렇게 마음에 드는 놈들은 아니야. ...미친놈들은 피하는 게 상책이니까.

우리가 오기도 전부터 어인 사냥에 몰두하고 있었다는 이들.

'만나 볼 가치는 있다.'

그렇게 판단한 결과.

전투를 감행해 가며 여기까지 온 것이었는데....

"죽여라!"

"개같은 송사리 새끼들!"

"뒤져!!!"

괴성을 지르며 어인들과 싸우고 있는 인간들.

전투 중에 흥분해서 욕지거리를 내뱉는 정도야 우리 부대에도 흔하다지만.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뒈져!!!"

"...정도가 좀 심한데."

태완이 꺼리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전투의 흥분이라는 말로는 커버가 안 될 정도의 광기.

저 정도의 모습을 보이는 건 우리 부대에서도 한 명 정도밖에 없다.

"쯧. 다들 눈이 돌아가 있군요."

"어? 어어."

그 한 명이 내 옆에서 팔짱을 끼고 말했다.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던지라.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는 전광일 상병.

"괴물들한테 원한이라도 있는 건지 뭔지. 저렇게 제 몸도 안 아끼고 저렇게 덤벼들어서야. 오래 살기는 힘들 겁니다."

"...."

"싸움에서는 어느 정도 저런 독기도 필요한 건 이해합니다만, 저 사람들은 좀 과하군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신 병장님."

맞는 말이다.

맞기는 한데....

"그게 니가 할 말은-."

"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니, 아니다."

뭐,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어.

중요한 것은 하나.

'괴물과 적극적으로 싸우려는 이들이라는 얘기는 사실이었군.'

그렇다면 더 망설일 게 있나.

"가세한다!"

"예!"

나와 병사들이 전투를 향해 달려들었다.

"카하하하!!! 피라미 새끼들! 순서대로 저승으로 보내 주마!"

광일이 녀석의 괴성은 묻어 두기로 했다.

* * *

원래도 어인들과의 전투에서 크게 밀리지 않던 인간들.

거기에 우리 부대의 전력이 가세하자.

"마지막 한 마리!"

콰직.

[당신의 요리를 대접받은 이가-.]

전투는 금방 마무리되었다.

물론 이 안을 돌아다니는 괴물들의 숫자가 상당한바.

금방 다음 적이 몰려올 테니, 지금 여유도 오래가지는 않겠지.

"뭐 하는 놈들이오, 당신들."

저들도 그 사실을 아는 것일까.

전투가 끝나자마자, 인간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나는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식재료 감별(강화)]

[영장류 - 인간종]

[신선도 - 상]

[각성자: 곽창수]

[직업: 하급 광전사 Lv. 18]

눈앞에 떠오른 문구를 보자.

솔직히 조금 놀라웠다.

'레벨이 18?'

우리 부대의 분대장급들보다도 조금 높은 레벨.

최근에야 부대장을 맡은 광일이 같은 녀석들이 겨우 20레벨을 돌파해 '중급' 각성자가 된 참이다.

10레벨 후반대는 우리 부대를 기준으로 해도 엄청난 고레벨.

적어도 생존자들 사이에서는 이만한 고레벨을 본 적은 없었다.

'정말 매일같이 괴물들하고 싸워야 가능한 수준....'

놀라운 건 놀라운 거고.

나는 남자를 향해 오른손을 내밀고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병장, 신영준이라고 합니다."

"병장?"

내민 손이 민망하게도.

악수는커녕, 인상을 찌푸리며 내 모습을 관찰하는 남자.

"이 안에 살아 있는 군인들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외곽에 숨어 있었나?"

"안쪽에는 없는 게 맞을 겁니다. 저희는 바깥에서 왔거든요."

"바깥에서?"

살짝 놀랐는지 눈이 조금 커진 남자였으나.

"바깥은 멸망했다고 생각했는데.... 뭐 상관없나."

그게 전부였다.

밖에서 온, 그것도 군인이라고 하면 흥미를 가질 만도 한데.

당연히 질문 세례가 쏟아질 거란 예상이 무색하게도,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안녕하냐고 물었나? 딱히 안녕하지는 않소."

"예?"

"당신네가 우리의 사냥감을 차지해 버렸잖소. 솔직히,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아."

"저희는 도움을 드리려고-."

"알고 있소. 기분이 좋지 않은 정도에 그친 것도 그래서고."

나름 도와주려고 한 일이었는데.

이제 보니 쓸데없는 오지랖이었나 보다.

"선의는 고맙지만, 필요 없었다는 것만 알아 두셨으면 좋겠소. 다음에는 이런 일 없기를 바라지. 그럼 이만."

"잠시만요!"

"뭐요? 더 할 말이 있나? 오래 있으면 어인 놈들이 몰려올 거요. 부하들도 지쳤으니 빨리 자리를 피하고 싶은데."

"죄송합니다만, 당신들하고 잠깐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우리랑? 왜?"

"...긴히 할 말이 좀 있어서."

"흠."

창을 든 남자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뭐. 얘기 정도야 못 할 건 없지."

"그럼-."

"다만. 조건이 있소."

"조건?"

설마 저번의 인간들처럼 식량을 내놓으란 건가, 했으나.

남자는 창으로 물 위를 가리켰다.

"저놈. 저놈. 그리고 저놈까지."

"아."

"살아 있는 어인들이 있는 것 같군."

그가 가리킨 곳에 있는 건 기절한 채 물에 떠다니고 있는 어인들.

전투는 끝났지만.

아직 확인 사살을 거치지 않은 괴물들이 있었던 거다.

"그놈들 시체를 넘겨주시오. 애초에 우리 사냥감이었으니까. 그 정도 권리는 양보해 줘야 대화할 마음이 들 것 같군."

"...그 정도야. 마음대로 하시죠."

"들었지? 다들 챙겨!"

"예!"

남자의 고함에 부하로 보이는 인간들이 괴물을 들쳐 맸다.

남자도 그중 한 마리를 어깨에 들쳐 매고는 말했다.

"따라오시오."

분위기 한번 살벌하네.

나와 부대원들은 창을 든 남자의 뒤를 따라갔다.

"신 병장님. 살아있는 괴물들을 넘겨받았다는 건."

"각성용으로 쓰려는 생각이겠지."

물을 헤집고 걸어가며 이들을 관찰한 결과.

생각보다 숫자가 많은 집단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던전에 입장한 우리 부대원들이 150명가량의 대인원이라면.

저들은 그 반의반도 안 되는 숫자.

'평균 레벨이 높은 것과는 별개로. 전력을 늘리고 싶겠지.'

각성에 필요한 무력화된 괴물이 필요하다는 점.

충분히 이해가 갔다.

"여기요."

그렇게 어느 정도 걸어가자.

이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상가 건물이 보였다.

얌전히 그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곧 2층으로 올라가, 물이 차오르지 않은 장소에 도착했다.

"그럼 본격적으로 얘기를...."

"거 급하시군. 조금만 기다리시오."

창을 든 남자가 바닥에 괴물 시체를 내려놓은 것을 보고 말을 걸었는데.

남자는 나를 제치고 구석으로 이동했다.

거기에는 한 사람이 주저앉아 있었다.

초라한 행색의 중년 여성.

"아주머니. 아주머니."

"...어?"

남자가 어깨를 흔들며 몇 번을 부르자.

뒤늦게 고개를 드는 중년의 여성.

하지만 여전히 멍한 표정에, 눈에는 빛이 없었다.

그러나.

"접니다. 창수예요."

"아아... 창수 왔구나. 무슨 일이니...?"

"차례가 됐습니다."

창수라는 남자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아... 드디어!"

힘차게 몸을 일으키는 중년 여성.

창수는 그녀의 손에 자신의 창을 쥐여 준 뒤.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부드럽게 안내했다.

그가 향한 곳에는.

아까 창수가 내려놓은 괴물이 그새 사슬에 묶인 채 벽에 매달려 있었다.

-케, 케륵.

'지상에서는 숨을 제대로 못 쉬는 건가.'

호흡을 못 하는 탓인지 괴로워하는 괴물.

호흡이 어려운데도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게 신기하다고 해야 하려나.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건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각성.'

우리 부대도 안전하게 각성하기 위해 리자드를 결박하곤 했지.

아마 비슷한 방식으로 각성을 하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예상 자체는 적중했으나....

"죽어죽어죽어죽어!!!!"

푸욱푸욱푸욱푸욱!!!

'아 씨, 깜짝이야.'

갑작스럽게 괴성을 지르는 여인.

조금 전까지의 영혼 없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카하하하하하!!!"

오히려 희열에 찬 듯.

이상한 웃음 소리를 내지르며 괴물을 향해 창을 내지르는 모습.

우리 부대의 각성과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우리가 리자드의 겨드랑이 부위를 찔러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숨통을 끊었다면.

'최대한 늦게 죽도록, 급소를 피해서 찌르고 있다.'

저들은.

각성보다도 어인에게 고통을 주는 게 목표인 것처럼 보였다.

"이게 대체...."

"영자 아주머니는 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을 잃었소."

그 모습에 조금 아연해 있자니.

내 옆에 선 창수라는 남자가 말했다.

"그녀에게 남은 건 두 딸뿐이었지."

"저 아주머니 얘기군요."

"여자 혼자 몸으로 두 딸을 키우기 위해 엄청나게 고생했다고 들었소. 육아에 드는 돈이나 노력도 노력이지만, 아빠가 없다는 이유로 딸들이 상처를 받을 게 두려웠다고 하더군. 그래서 다른 가정들보다 더욱더 애지중지해 주고 사랑해 줬다고. 그 노력이 빛을 본 건지, 두 아이 모두 엄마 속 썩인 적 한번 없는 훌륭한 아이들로 자랐소. 첫째는 꽤 유명한 대학에 장학금까지 받으며 입학할 게 확정된 상태였다지."

"축하할 일이군요."

"그런가? 두 딸 모두 어인들에게 씹어 먹혀 죽기 전까진 그랬겠지."

"...."

"저놈들의 이빨이 얼마나 단단한지, 뼈까지 씹어 먹어 버려서 흔적도 남지 않았다더군."

그제서야.

저 모습이 이해가 갔다.

"물에 빠져 죽거나, 괴물에게 살해당한 사람은 생각보다 적다고 들었습니다만."

"뭐야. 밖에서 왔다더니만. 이쪽 사정에도 꽤 자세하시군?"

"여기 오기 전에도 다른 사람들을 만났거든요. 이쪽이랑은 분위기가 꽤 달랐습니다만."

"그랬겠지. 뭐. 그렇게 죽은 사람이 적다는 건 틀린 말은 아니오. 하지만, 적다고 해서 없는 건 아니니까."

미친 듯이 웃으며 계속해서 괴물을 찌르는 여인.

결국 그 괴물의 숨통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창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면, 우리 숫자도 지금보다 많았을 테지. 난 우리 그룹의 숫자가 적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오."

그 말을 통해.

이들이 어떤 인간들인지 굉장히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복수에 사로잡힌 사람들.'

괴물들에 의해 파괴된 일상.

그 분노를 그대로 괴물들에게 돌리는 이들이다.

아마도 모두가 안타까운 사정을 가지고 있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최고잖아?'

98화 복수자들 (3)

괴물 사냥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이들.

태완이 이들을 꺼린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미친놈들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던가.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지.

'복수에 사로잡힌 사람들.'

자신들의 일상을 빼앗아 간 괴물들에 대한 복수만을 목표로 하는 이들.

바깥에서도 괴물에 대한 증오심으로 불타는 이들은 종종 있었다.

이곳은 그런 이들만이 모인 그룹인 거고.

'몸을 아끼지 않으면서 싸우던 것도 이해가 가네.'

삶의 목적이 복수인 이들에게 자기 몸의 안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거겠지.

창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뭐. 그런 거요. 우리 사정은 대충 이해되셨나?"

"예. 대충은."

"저 물고기 놈들하고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투를 벌이고 있소. 하지만 보다시피, 다들 괴물들을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이고 싶어서 혈안이 되어 있거든. 생포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

"아. 그래서."

"당신들이 사냥한 어인들 중에 살아 있는 놈들이 있어서 다행이었지. 전투가 끝난 뒤에는 아무래도 사람들의 흥분도 좀 줄어드는 편이니까. 덕분에 각성자가 3명이나 늘어나게 되겠군. 정말 잘된 일이야."

-꺄하하하하!!!

이미 숨통이 끊긴 괴물의 시체에 계속해서 창을 쑤셔 박는 여자가 보였다.

이게 잘된 일이라고 해도 되는 광경인지.

나는 창수를 슬쩍 곁눈질하며 물었다.

"그러면. 당신도 비슷한 사정이 있는 겁니까?"

"나 말인가?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대단한 사정은 아니오. 드디어 총각 딱지를 떼고 결혼하려나 싶었는데, 결혼 상대가 사라져 버린 정도지."

"...."

꽤 대단한 사정으로 들리는데.

"우리 얘기는 이 정도면 됐을 거고."

굳이 이 이야기를 더 하기는 싫다는 듯.

창수는 대화 주제를 돌렸다.

"우리를 일부러 찾아왔다고?"

"예. 여기에 오기 전에 만난 다른 사람들에게서 당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래? 다른 건물의 사람들은 우리를 썩 좋게 보진 않을 텐데."

"알고 계셨습니까?"

"우리가 눈치도 없는 놈들로 보이나? 뭐. 그런 놈들을 왜 찾아왔는지, 얘기나 들어 보지."

팔짱을 끼며 어디 한번 말해 보라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 창수.

복수심에 불타는 이들.

이들 모두가 꽤 안타까운 사정을 지니고 있겠지만.

괴물에 대한 적대심에 불타오르는 것은 물론.

오랜 전투로 평균 레벨까지 높은 이들.

'최고의 동맹.'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