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천재
고교는 고소순을 한번 쳐다본 후에, 시선을 거둬 사람들 뒤에 서 있는 소육랑을 쳐다봤다.
소육랑도 마침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두 쌍의 눈동자가 마주치자 고교는 그를 향해 살짝 웃었다.
순간 세상이 멈춘 듯, 그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소육랑은 곧바로 눈을 돌려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누님, 무슨 일로 우리를 찾았어?”
고소순이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고교는 평온하게 말했다.
“그냥 같이 밥 먹고 싶어서 왔어.”
소육랑이 반신반의하며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는 소순의 멱살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네가 수업 첫날인데, 마음이 놓여야 말이지.”
세 사람은 근처의 국숫집에 가서 양춘면 세 그릇을 먹었다.
바로 지난번 풍림이 소육랑을 데리고 왔던 그 집이었다.
소육랑은 입맛이 없는 건지, 그다지 맛있게 먹지 못했다.
“고향의 맛이라더니, 맛없어요?”
“네가 해준 것보다 맛없어.”
이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다니, 소육랑도 스스로 당황스러웠다.
고교는 잠시 멍하게 있다가 턱을 괴고 그를 쳐다봤다. 웃음이 나왔다.
“그럼 저녁에 만들어 줄게요.”
식사량이 많은 고소순은 한 그릇 다 먹고 또 한 그릇을 해치우려 했으나, 어쩐지 배부른 느낌에 젓가락을 멈췄다.
“먹은 것도 없는데 왜 배가 부르지?”
* * *
식사 후, 서원으로 돌아간 소육랑과 고소순은 침사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언제 무너진 것이오?”
소육랑이 물었다.
유생이 말했다.
“자네들이 나간 지 얼마 안 돼서 바로 무너졌다네. 모두 자네들이 침사로 가는 걸 보고 안에서 묻힐까 봐 걱정했어.”
원래 침사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소육랑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고소순은 무너진 침사를 보러 달려갔다. 벽이 무너져 내렸고, 바닥은 기둥에 의해 깨졌다. 저게 사람의 머리에 맞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하자 아찔해졌다.
“우리 누님이 와서 같이 밥을 먹었으니 망정이지, 둘 다 생매장당할 뻔했네!”
이번이 두 번째였다. 의관에 갔을 때도 그렇고 매번 그녀 때문에 예상치 못한 재난을 피해 갔다.
소육랑은 고교가 떠나는 방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천향 서원의 침사는 줄곧 여유 없이 꽉 찼다. 그리고 이번에는 경쟁률이 가장 심했던 해로, 무려 101명의 유생이 모집됐다.
때문에 여분의 침사가 없어서 두 사람은 계속 통학할 수밖에 없었다.
숙박비는 원래 학비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숙박을 하지 않아도 환불해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유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서원에서는 자발적으로 소육랑과 고소순의 차비를 부담했다.
고소순은 고씨 가문으로 돌아가는 건 싫었지만, 그렇다고 서원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어디를 가든 똑같았기 때문에,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매형은 좋지?”
교실로 돌아가는 길에 고소순은 작은 목소리로 소육랑에게 물었다.
“내가 왜?”
소육랑이 반문했다.
“매형은 돌아가서 우리 누나랑 같이 잘 수 있잖아!”
고소순은 거리낌 없이 말했다. 그는 올해 13살로, 그의 상식으로 부부는 같이 자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자면서 무엇을 하는지는 아직 잘 몰랐다.
그래서 그는 이 말을 할 때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소육랑은 사레가 들렸다.
“함부로 말하지 마.”
“아?”
그가 무슨 말을 함부로 했단 말인가. 매형이 누나랑 졸려서 같이 자는 게 뭐 어떻다고!
두 사람은 교실로 들어갔다. 오후는 산학(算学)을 공부했다. 과거시험은 산학 없이 팔고문만 있어 조정에서는 산학을 중시하지 않았다.
이 수업을 개설한 것은 모두 학장님의 뜻이었다. 학장은 소나라(昭国)를 위해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인재를 육성하고 싶어 했다.
소육랑은 자리에 앉자마자 장 스승이 그를 불러냈다.
“학장님이 너를 찾는구나.”
소육랑은 학장님이 있는 중정당으로 향했다.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중정당에서 나오는 고대순과 우연히 마주쳤다.
고대순의 얼굴에는 아직 채 벗지 못한 의기양양한 표정이 걸려있었다. 소육랑을 보자마자 그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여기는 무슨 일로 왔는가?”
소육랑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 지팡이를 짚어 걸음을 옮기며 그의 곁을 지나쳤다.
고대순은 눈살을 찡그렸다.
소육랑도 학장님을 찾으러 온 것인가?
고대순이 입학한 첫날에 진 스승님이 그에게 말하길, 학장님께서 그를 매우 마음에 들어 한다고 했다.
후에 남몰래 일러주기를, 학장님이 이번의 신입생들 수제자를 고를 것이니, 그에게 열심히 해보라고도 했었다.
당연히 노력해야 했다.
타고난 자질이 이렇게 좋은데, 만약 학장님 같은 대가의 섬세한 가르침을 받는다면, 그는 분명 과거에 급제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는 어젯밤에 자지 않고 문장을 써서 아침에 진 스승님께 보여 드렸다. 점심에 진 스승님은 그것을 학장님께 보여줬다. 학장님은 그를 불러 문장과 관련된 질문 몇 개를 물었고, 그는 모든 대답을 잘 마쳤다.
그는 학장님이 매우 만족스러워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수제자가 되는 것은 십중팔구 그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소육랑이 왔다.
아무래도 침사 문제 때문이겠지?
그와 고소순의 침사가 정오에 무너져 내렸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재수 없는 일이 생기는 걸 보면, 그는 운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고대순은 냉소를 지으며 교실로 돌아갔다.
중정당(中正堂) 안, 학장은 책상 위에 있는 팔고문을 가리키며 소육랑에게 물었다.
“자네가 쓴 게 맞는가?”
“예.”
학장의 날카로운 시선이 소육랑에게 꽂혔다. 소년은 17세밖에 되지 않아 보였다. 얼굴에는 풋풋함이 있었으나, 나이에 맞지 않는 침착함과 서늘함이 있었다.
그는 한쪽 다리를 절었지만, 다른 건강한 유생들보다도 더 고결해 보였다.
“앞선 두 과에서는 왜 답안을 적지 않았나?”
학장이 물었다.
외부인은 소육랑의 시험 성적이 안 좋았다는 것만 알았지, 그가 세 과목의 시험 중에서 두 과목에서 백지를 제출했다는 것은 몰랐다.
원래 합격할 수 없었으나, 그가 낸 답안은 실로 놀라웠다.
비록 고대순이라는 유생의 문장도 괜찮았으나, 그것은 유생의 수준에서 괜찮았던 것이고, 소육랑은 그와 차원이 달랐다.
소육랑은 학장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고집 한번 세군. 학장은 속으로 탄식하며 손을 흔들었다.
“되었다. 가 보거라.”
소육랑은 예를 갖춰 인사한 후 몸을 돌렸다.
그가 나가자, 휘장 뒤에서 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스승님.”
학장은 바로 일어나 공손히 인사했다.
백의의 노인은 소육랑의 답안을 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유생은, 원한이 많구나.”
* * *
고교는 소육랑과 헤어진 후, 인근의 저잣거리로 갔다.
읍의 동쪽 저잣거리는 서쪽의 장터와 비슷했으나 좀 더 고급스러웠다. 비슷한 물건도 조금 더 비쌌다. 고교는 장터로 가고 싶었으나, 지금은 문을 닫아 갈 수 없었다. 물건을 사려면 점포나 저잣거리로 가야 했다.
고교는 점포에서 밀가루 다섯 근을 사고, 삼겹살 두 근과 소금 두 근을 샀다. 그렇게 총 백여 개의 엽전을 썼다.
포목점을 지나면서, 그녀는 소육랑의 찢어진 중의와 내복이 생각났다. 며칠 전 소육랑의 옷을 걷을 때 발견한 것이었다.
그녀는 포목점에 들어가 새 옷 한 벌을 사면서 남는 헝겊을 달라고 부탁했다. 기워 입을 수 있는 것들은 직접 수선해 입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옷을 수선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심장은 꿰매본 적이 있으니, 옷감을 사람의 피부라고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고교는 오늘 산 물건들을 모두 바구니에 담은 후, 포목점을 나섰다.
마을로 돌아가려던 고교는 거리를 가득 메운 병사들을 보고 멈춰 섰다.
한쪽에서는 백성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문둥산(麻风山)에 있던 병자가 도망가서 관청에서 수색하러 나왔대요!”
“아이고, 나병 환자라면 큰일 난 거 아니오?”
“그러게나 말이오. 요 며칠은 문밖출입을 삼가야겠소. 운 나쁘게 부딪혀서 전염되면 고칠 방도도 없으니!”
고대에서 나병은 불치병이었기 때문에, 감염된 후에는 문둥산으로 보내져 죽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고교는 소육랑의 형님도 나병으로 돌아가신 것이 갑자기 생각났다.
군부대는 거리 수색을 마친 후, 다음 거리로 수색하러 떠났다.
고교는 마을로 돌아갔다.
거리에서의 일은 마음에 두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 양춘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밀가루 반죽을 만들고 있을 때였다. 문밖에서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집 문짝에 부딪힌 것 같았다.
마른 천으로 손을 닦고 나가보니, 한 할머니가 그녀의 집 앞에 쓰러져 있었다.
할머니는 얼굴이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고, 꾀죄죄한 무명옷을 입고 있었다.
고교는 할머니가 마을 주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왜 그녀의 집 앞에 쓰러졌는지 알 수 없었다.
방금 들렸던 큰 소리는 할머니의 머리가 문짝에 부딪힌 소리인 듯했다. 할머니는 이마가 깨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고교도 전생에 이리저리 굴렀지만, 생명의 위협을 당한 적은 없었다.
반면 할머니는 진짜로 기절한 상태였다.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는 누군지 확인해야 했다. 고교는 몸을 웅크려 할머니의 몸을 잡고 똑바로 눕혔다. 확실히 이상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옅은 붉은 반점과 피부 손상이 대칭으로 나타나 있었다. 반점의 경계가 모호하며, 양쪽 손등에도 똑같은 증상이 있었다.
고교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이건 분명…….
“누님! 우리 왔어!”
고소순은 낡은 책 보따리를 들고 고교를 향해 달려왔다.
그를 발견한 고교의 눈빛은 날카롭게 변했다.
“오지 마!”
처음 들어보는 고교의 날카로운 말투에, 고소순은 얼어붙었다.
“누님……”
소순이 또 앞으로 두 걸음 내디디자, 고교는 더 차가워진 말투로 소리쳤다.
“오지 말라니까!”
이번에야말로 소순은 꼼짝도 못 하고 고교와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미련하게 서 있었다.
고소순은 고교를 보다가 자연스레 문 앞에 쓰러진 할머니를 봤다.
그는 고교의 반응이 할머니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누님, 이 분은 누구셔?”
고교는 할머니를 응시하며 말했다.
“나도 모르겠어. 너는 먼저 집으로 돌아가 있어.”
원래 그녀는 고소순을 불러 같이 밥을 먹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발생했으니,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고소순에게 해를 끼칠 수는 없다.
고소순은 내키지 않았지만, 고교의 말대로 먼저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럼 매형, 나 먼저 갈게.”
그는 몸을 돌려 뒤에 있는 소육랑에게 말했다.
고교는 경악했다. 소육랑도 돌아왔다고?
소육랑뿐이겠는가, 풍림도 함께 왔다.
풍림은 짝꿍을 도와 공부를 복습했고, 짝꿍은 그에게 감사 인사로 유자(柚子) 한 바구니를 선물했다.
그는 곧바로 소육랑에게 반을 나눠줬고, 소육랑이 들지 못할까 봐 마을까지 배웅하던 참이었다.
게다가 고소순은 계속 소육랑을 괴롭혔다. 그러니 두 사람이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게 마음에 걸려, 지켜보려는 이유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