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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난

신비한 부의(符醫)가 되어 인생을 뒤바꾸다! 까맣고 거친 피부에, 이마와 볼에 난 여드름, 턱에 남은 여드름 자국까지…… 회인백부의 셋째 아가씨 정미는 여러모로 ‘부잣집 아가씨’의 틀에서 많이 벗어난 규수다. 게다가 적녀임에도 불구하고 적녀 취급은커녕, 서녀들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어머니에게는 ‘쌍둥이 오라버니를 죽게 만든 아이’라는 이유로 미움을 받으니! 그러나 소꿉친구이자 상냥한 친척 오라버니인 한지와 자신만을 진정한 친여동생으로 바라봐주는 둘째 오라버니 정철 덕분에 꺾이지 않고 당찬 성격의 아가씨로 자라는데…… 하지만 어느 날, 사고로 정신을 잃은 날부터 정미의 눈앞엔 믿을 수 없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행복할 줄만 알았던 한지와의 신혼은 완전히 무너져내리고, 불타 죽은 어머니와 등에 화살이 잔뜩 꽂힌 채 눈도 감지 못하고 죽은 정철, 태자를 낳지 못하고 죽어버린, 태자비이자 큰언니인 정아까지…… 눈앞의 장면이 너무나도 생생하여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던 그때, 정미의 머릿속에 어느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이봐, 만약 지금 네가 본 것들이 미래에 정말로 일어날 일들이라면 어떻게 할래?」 과연, 정미는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원제: 娇鸾(교난)

겨울버들잎 · แฟนตาซี
เรตติ้งไม่พอ
376 Chs

5화. 독설도 기술이다

5화. 독설도 기술이다

한 씨는 문 앞에 서 있는 작은 마차에 올라탔고, 자매 셋은 조금 더 큰 다른 마차에 올라탔다. 반주향(*약 15분) 정도 기다리자 낮고 어지러운 발소리가 들려왔고, 소녀의 목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둘째 외숙모, 늦어서 죄송합니다.”

한 씨가 대답하기도 전에 자매들이 탄 마차의 문발이 걷혔고, 정미의 또래로 보이는 소녀가 찬바람을 일며 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소녀의 용모는 평범했으나, 짙은 눈썹과 커다란 눈을 가져 아주 영리해 보였다. 그녀는 마차 안을 한 번 훑어보더니 먼저 정요에게 인사했고, 정미를 한 번 흘겨보고는 업신여기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진령운은 정동의 옆에 바싹 붙어 앉아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왜 더 푹 쉬지 않고? 앞으로 나갈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닌데.”

정동이 꾸짖으며 물었다.

최근 몇 년간 양갓집 규수들에 대한 통제는 아주 느슨해졌다. 아가씨가 외출하고자 할 때, 집안 어른들께 허락을 받고 시종들과 호위를 데리고 가기만 하면 대부분은 허가되었다. 때문에 외출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진령운은 정미를 바라보며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원래는 우리 어머니께서도 나가는 걸 허락하지 않으셨는데, 네가 혼자 가면 무지막지한 누군가 괴롭힐까 걱정돼서.”

평소 같으면 정미가 이를 듣고 벌써 진령운과 날카롭게 싸웠겠지만, 오늘은 한 씨에게 맞은 탓에 마음이 공허해 진령운의 도발에 맞설 힘도 없어 정미는 그저 멍한 표정이었다.

진령운은 이를 보고 의아한 듯이 눈썹을 치켜세우고는 눈을 깜빡이며 정동에게 물었다.

“오늘 참 희한하네. 혹시 내가 모르는 일이 있었나?”

아까 한 씨가 동 이낭을 오랫동안 밖에 있게 했을 때, 정동은 시녀에게 은반지 하나를 주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전해 들었다. 그래서 진령운의 질문에 입을 가리고 살짝 웃고는 소곤댔다.

정동의 목소리는 작았으나, ‘분을 바르고’, ‘기어올라서’, ‘뺨을 맞았다’는 말은 정미의 귀에 또렷이 들렸다.

정미는 손을 올렸다가 내리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왼쪽 손목에 찬 특이한 꽃무늬가 그려진 팔찌 위로 손을 올리고 꾹 누르며,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화를 억눌렀다.

정미가 조용하자 진령운은 더욱 신난 듯 깔깔 웃더니, 정동의 말을 들으며 힐끗댔고, 지난날의 원수가 연신 묵묵하자 이내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모전여전(*母傳女傳: 딸의 성격이나 생활 습관 따위가 어머니부터 대물림된 것처럼 같거나 비슷함)이라 하더니, 전혀 틀린 말이 아니었나 봐!”

일전에 한 씨가 황제의 어명을 빌려 억지로 둘째 나리에게 시집간 것을 비꼰 말이었다.

정미는 결국 고개를 들고 진령운을 차갑게 훑어봤다.

진령운은 이를 보지 못한 듯 한숨을 쉬며 정동을 향해 말했다.

“만약 네 어머니가 둘째 외숙부의 본처였다면 얼마나 화목했을까?”

“됐어. 우리 어머니가 운이 나쁜 걸 어쩌겠니. 멀쩡히 본처 부인이었는데 갑자기 첩실이 되었으니, 나에게 적녀의 신분이라도 주셨지만, 결국 명분이 서지 않는걸. 내 남동생 둘은 더 딱하게 되었지. 적자에서 서자가 되었으니 다른 이들이 늘 낮잡아볼 텐데…….”

정동이 능숙하게 소매에서 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이때, 정요가 입을 열었다.

“울지 마. 지 오라버니의 생일을 축하하는 날인데, 기뻐해야지. 그동안 네가 힘들었던 건 이해하지만, 정미와는 관련 없는 일인 걸 알고 있지 않니?”

정요가 정미를 옹호하자, 정동은 더 억울해져 손수건을 붙잡고 흐느끼며 말했다.

“맞아, 정미 언니와는 관계없는 일이야. 그저 팔자 좋게도 본처 부인의 배 속에서 나왔을 뿐!”

이 말에 진령운은 더욱 화가 나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정동의 말대로 정미 언니가 운은 좋지. 근데 정아 언니는 더 타고났는걸? 태어나자마자 태자비가 될 운명이라니!”

그러고는 멍하니 들은 체 만 체하는 정미의 얼굴을 힐끗댄 뒤 차갑게 웃었다.

“하지만 태자비 자리가 아무리 존귀한들, 안타깝게도 결점은 있기 마련이지.”

정동은 잠시 흐느끼는 것을 잊고 물었다.

“무슨 결점?”

진령운이 피식 웃으며 손을 뻗어 정미를 가리켰다.

“정미 언니처럼,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거!”

진령운의 말이 끝나자마자 정미는 몸을 낮춰 일어섰다. 마차 안 공간엔 한계가 있어, 눈 깜짝할 새 그녀는 벌써 진령운의 코앞에 와있었다.

진령운은 깜짝 놀라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뭐 하는 짓이야? 싸우자는 거야?”

정미는 입을 꾹 닫고 진령운을 내려다봤다.

정미의 입술은 다른 사람들보다 특히 붉고 얇아서, 지금처럼 입술을 꾹 닫고 눈을 깊게 뜨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도도함이 느껴졌다. 그 모습이 열세 살의 소녀답지 않아, 그녀의 부족한 용모는 무의식적으로 신경 쓰이지 않게 되곤 했다.

진령운은 순간 멍해졌다.

그녀가 멍하니 있는 새에 정미는 발을 번쩍 들어 올려 가죽 신발로 진령운의 어깨를 짓밟았고, 진령운은 그대로 나자빠졌다.

헉, 하는 소리가 들렸고, 정요와 정동은 약속이나 한 듯 서로를 바라보다 정미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

보통 양갓집 규수들이 다툴 때는 그저 말싸움만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한마디 한마디 주고받으며 원한과 시비가 칼날이 되어 상대의 가슴에 내리꽂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발로 짓밟는 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옆에서 지켜보던 두 사람은 당황했고, 짓밟힌 진령운은 더욱 당황스러웠다. 진령운은 비명을 지르는 것조차 잊은 채 나자빠진 상태로 손발을 휘저었다. 이런 흉한 자세에서, 어떻게 우아하게 일어날 수 있을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정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요 옆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리고 날카로운 눈매로 진령운을 흘겨보며 업신여기듯 말했다.

“거북이!”

이 말에 진령운을 포함한 세 사람 중 아무도 반응하지 못했다.

정미는 정요의 팔짱을 끼며 활짝 웃었다.

“언니, 봐봐. 얘 모습이 꼭 현청관(玄清观) 연못에 사는 거북이 같지 않아?”

정요는 무의식중에 조금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참기 위해 기침을 한 번 하고는 말했다.

“정미, 장난이 심해. 어떻게 사촌 동생에 대고 그렇게 말할 수가 있니?”

진령운이 마침내 일어났고,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할 겨를도 없이 바로 정미에게 달려들려 했다.

“정미, 넌 끝장이야!”

정미는 그런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무표정으로 말했다.

“덤비든지. 어차피 난 이 꼴이니 상관없어.”

이 말은 그 어떤 영약보다도 효과가 좋아, 진령운은 바로 몸을 멈추고 이를 부득부득 갈며 정미를 사납게 쳐다볼 뿐이었다.

“너 정말 무서울 게 없구나. 백부의 체면을 구길 셈이야?!”

정미는 아까의 발길질이 아주 통쾌했던 터라, 바로 지난날의 성깔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녀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진령운, 살벌하게 굴지 마. 너희 어머니의 엉망진창인 얼굴 때문에 태자비 자리를 놓친 것을, 괜히 우리 큰언니한테 화풀이하는 것 아니니?”

정미의 고조부는 원래 떠돌이 의원이었는데, 엉터리 고약(膏药)을 팔고 부적을 써 병을 다스리고 악귀를 쫓아내는 돌팔이였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유명한 의원이 되었고, 태의서(太医署)에 특별 채용되기까지 해 한동안 진기한 이야기로 전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얼마 후, 당시의 황태자가 역적에게 당해 몸에 독이 퍼져 생명이 위독해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어의들은 속수무책이었고, 황제부터 백성까지 모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하였다.

수년 전 번국(*藩國: 제후국)의 난 때, 황실의 사내가 모두 죽고 오직 황태자만 남은 상황에서 그마저도 떠난다면, 황제가 늘 편하게 앉아 있던 황위는, 백 년 후면 조카들에게 빼앗겨버릴 것이 뻔했다!

게다가 나라에 후계자가 없다는 것은, 성실한 백성들에게 있어 천하가 어지러워지고 도탄에 빠질 징조로 받아들여지지 않던가?

그렇게 위에서부터 아래로 실컷 시달리던 때, 정씨 가문의 고조부가 등장해 단번에 황태자를 낫게 한 것이다!

황제는 크게 기뻐했고, 고조부 옆에 있는 작은 소녀를 훑어보고는 엉겁결에 그녀에게 태자비 자리를 약속했다.

당시 기쁨이 극에 달했던 황제 가덕제(嘉德帝)에게 태자비의 출신이 낮은 것은 전혀 상관이 없었고, 그녀의 아버지가 황제의 아들을 지켜내어 이 천하를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게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하늘만큼 큰 공로이며, 하물며 그중 태자비 또한 한몫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원래 정미의 고조부에게는 아들 셋과 딸 하나가 있었는데, 그는 특히 딸을 가장 아껴 그의 의술을 가르쳐줌은 물론이었고, 외진을 나갈 때 항상 딸을 데리고 나가 그를 돕게끔 했다.

그때부터 딸의 총명함이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미녀는 박복하다’는 말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은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이에 가덕제는 다시 명을 내려, 정씨 가문에 회인백의 작위를 하사해 황은을 베풀었다.

여기까지가 끝인 줄 알았는데,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아 가덕제는 또 어명을 내렸다. 이 어명을 듣고 문무백관들이 놀라 입을 벌림은 물론이고,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의 사관들 모두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가덕제가 약속하기를, 회인백부의 후손 중 품격과 용모가 단정한 적녀를 태자비 자리에 앉히기로 한 것이다.

허나 이상하게도 그 후 회인백부에선 적녀가 태어나지 않았고, 다른 자제들 또한 그저 평범할 뿐이었다. 이후 정미의 고모인 정방영이 태어나자, 경중(京中)의 사람들이 모두 곁눈질하며 회인백부가 드디어 해방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몇 년 지나지 않아 정방영은 천연두에 걸려 곰보 얼굴이 되었고, 태자비 자리에는 앉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훗날 정아가 태자비의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앞의 두 사건 탓에, 경중에는 점차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회인백부는 농촌 출신이라 박복하고 근본이 없어 이런 부귀영화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정아가 황태자의 예쁨을 받지 못하는 것도 비밀이 아니었기에, 회인백부에서 태자비가 나왔다 한들 사람들은 그리 좋게 보지 않았다.

정방영은 태자비 자리의 영광을 잃은 것에 대해, 이미 마음에 평생의 응어리가 지고 말았다. 그래서 늘 한 씨 모녀에게 화풀이하곤 했다. 진령운은 이를 보고 들으며 자랐기에 이런 한(恨)이 전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헛소리!”

정미가 자신 어머니의 얼굴을 비하하자, 진령운은 화가 나 귀 끝까지 빨개지고 말았다.

정미는 턱을 치켜세우며 당당한 기세로 물었다.

“뭐가 헛소리라는 거니? 고모님 얼굴이 엉망진창이라고 한 게? 아니면 너희 모녀가 우리 언니에게 화풀이를 한다고 한 게?”

“정미 언니, 말이 너무 심하잖아!”

정동이 눈살을 찌푸리며 비난했다.

“너도 입 다물어!”

정미의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명백한 비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입을 열 때마다 우리 어머니가 너희 어머니 자리를 빼앗았다고, 아버지가 너희 어머니한테만 진심이라고 했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네 어머니가 첩이 될 것이란 걸 분명 알면서도, 어찌 기뻐하며 백부로 돌아왔겠어?”

여기까지 말하니 정미는 싸움에서 이긴 고양이인 양 굴었다. 그녀는 거만하게 방석에 기대어 몸을 축 늘어트리고는 가볍게 웃었다.

“앞으로 내 앞에서 적자니, 서자니 말하면서 대단히 억울한 척하지 마. 그 산골짜기에 남았으면 커서 밭을 매는 일밖에 더 했겠어? 작위를 물려줄 때, 재산을 나눌 때, 제사를 지낼 때나 적자와 서자를 나누지. 내가 모를 거라 생각 마. 밭을 매는 일에 적자 서자를 나눈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으니까!”

“너, 너……!”

정동은 몹시 화가 나 눈물도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때, 마차가 삐걱대는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정미는 마차의 휘장을 걷고 바깥을 보고서야, 위국공부에 도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