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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32화

9장 메노소르포(6)

프론디어의 말에 좌중에 침묵이 감돌았다.

그로벨은 일부러 입을 다문 게 아니었다.

잠깐 혼란이 온 것이다.

'뭐라 대답하지?'

지금 프론디어에게는 로크벨이 인질처럼 보일 터. 그로벨의 동생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프론디어가 당연히 로크벨을 요구한다. 인질의 안전을 위해.

애초에 프론디어가 도망치려다 말고 이 앞까지 나온 이유가 로크벨 때문.

"너희들이 뭘 원하는지는 몰라. 하지만 그 아이를 인질로 삼을 만큼 원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여기로 나왔다. 아이를 내게로 보내."

프론디어의 말에 그로벨이 웃었다.

그건 허세가 섞인 웃음이었다.

"허, 좀 전에 말했슴다. 제안 따위가 통할 거라고 보심까?"

"안 통한다면 나는 다시 이 집으로 들어갈 뿐이다. 눈치챘겠지만 지하에 탈출구가 있거든. 그 아이를 죽이든 말든 멋대로 해라."

"얘가 뒈지면 당신도 끝장인디요?"

"뭐, 어떻게 되든 죽을 거, 난 나중에 죽을란다."

그렇게 말하며 프론디어는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정말로 저 불타는 집에 다시 들어갈 기세였다.

그로벨의 어금니에 힘이 들어갔다.

'씨이벌, 뭐가 저리 당당해?'

집 밖으로 나오면, 겁을 먹고 벌벌 떨면서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당당한 자세와 눈빛으로 오히려 거래를 하고 있지 않은가.

그때 세르프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아이를 보내죠."

그로벨이 놀라 세르프에게 시선을 향했다.

이 애가 생판 남이라면 아무래도 좋다. 하지만 로크벨은 그의 동생이다.

동생을 저딴 인간늘보한테?

세르프는 그로벨에게 안심하라는 듯 웃었다.

그로벨은 영 내키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프론디어에게 말했다.

"좋아. 보내주지."

"아이 혼자 보내라."

"──그래."

그로벨은 로크벨의 등을 툭 쳤다.

가라는 표시였다.

로크벨의 불안한 발걸음이 프론디어를 향했다.

...이때 로크벨의 심경은 거의 패닉에 가까웠다.

'뭐야? 나 진짜 가?'

대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해도 안 가는 통에, 갑자기 형의 손에 밀쳐져 가고 있는 이 상황.

열 살 남짓의 소년에게는 충분히 무서운 일이었다.

'그냥 우는 연기만 하면 된다며!'

이젠 연기할 필요도 없어졌다. 진짜로 눈물이 나올 것 같다.

그런 표정으로 로크벨은 한 걸음, 한 걸음, 프론디어에게 다가갔다.

프론디어는 무심한 표정으로 로크벨을 보고 있었다. 그것이 로크벨을 더욱 무섭게 했다.

곧 로크벨의 발이 프론디어의 지척 앞까지 닿았을 때,

탓, 프론디어가 땅을 내딛는 소리.

그 무심한 표정의 프론디어가 순식간에 로크벨에게 달려들었다.

"히익!"

로크벨은 놀라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타앙!

자신의 등 뒤에서, 금속의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어?"

로크벨은 등 뒤를 보았다.

툭, 떨어진 것은 부러진 화살이었다. 프론디어가 로크벨을 향해 달려와, 화살을 막아주었다.

어떻게 막았는지는 몰라도. 어떻게 했는지 따위, 로크벨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나, 나한테 화살을 쐈어....'

로크벨은 멍하니 저편의 용병단 인원들을 바라보았다. 그 중심에 있는 세르프 다니엘을 보았다.

만나지 얼마 되진 않았어도, 언제나 친절한 미소를 짓고 있던 형이다.

세르프 다니엘이, 그 미소를 똑같이 띤 채로.

활을 쥐고 있었다.

"어어...?"

그런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눈앞이 어지럽다. 공포가 폐를 두껍게 누른다.

그 와중에, 화살을 막아주었던 프론디어가, 그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

"꽉 잡아라."

그 말에 로크벨은 저도 모르게 양손으로 프론디어의 소매를 붙들었고.

프론디어는 로크벨을 안고 불타는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 * *

"세르프 이 미친 새끼야!!"

그로벨이 세르프의 멱살을 잡았다. 분노가 너무 앞질러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세르프가 로크벨에게 활을 쐈다. 동생에게 활을 쏜 것이다.

세르프는 멱살에 잡힌 채로도 뻔뻔한 낯짝으로 말했다.

"쯧, 실패했군."

"실패는, 이 무슨, 개새끼가-!!"

그로벨은 화가 머리끝까지 폭발해 외쳤다.

그런데 당장에라도 면상에 주먹을 꽂으려던 그로벨이, 돌연 멈췄다.

"손 내려라."

"...."

그로벨은 말없이 세르프의 멱살을 쥔 손을 풀었다. 그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용병단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뭐, 뭐가...."

"전부 닥쳐라."

그러나 말이 채 완료되기도 전에 세르프가 끊었다.

일순, 용병단원들의 전원의 초점이 흐려졌다. 그들은 그로벨과 똑같이, 그저 무력하고도 멍하니 몸에 힘을 뺀 채 서 있었다.

이것은 세르프의 능력, '정신조종'이었다.

조건이 성립하면 세르프는 상대를 자기 뜻대로 조종할 수 있다.

상대에게 명함을 내밀고, 상대가 그 명함을 읽고 이름을 확인 후, '세르프 다니엘'이라는 이름을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이 조건을 충족하고서도 정신력이 강한 사람에게는 잘 통하지 않지만, 이 용병단 정도라면 문제없다.

"쯧.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는데."

세르프는 혀를 찼다.

원래 여차하면 로크벨이라는 꼬마를 오두막에다 집어넣을 생각이었다. '프론디어가 아이를 집 안에 가두고 불태워 죽였다', 그런 식의 시나리오였다.

다음의 시나리오가 '프론디어가 꼬마를 화살로 쏴서 죽였다'는 식의 시나리오였는데,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다.

"프론디어, 듣던 대로 오러를 사용할 줄 아는군."

세르프는 확신했다.

그레고리의 보고가 있었다.

테이밍을 특기로 하는 그레고리. 그는 각종 동물을 사역해 지금껏 콘스텔 내의 정보들을 수집해 왔다.

그러나 그 정보망에 프론디어는 애초에 없었다.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당시의 세르프는 여느 때처럼 거처에서 그레고리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처음은 엘로디였다.

"엘로디와 프론디어가 함께 있었을 당시, 프론디어는 깨진 유리 조각을 전부 막아냈다. 당시에도 맨손이었어."

그레고리가 말했으나, 세르프는 미심쩍었다.

"그것만으로, 프론디어가 오러를 쓴다고 판단했다고?"

"그것만이 아니야."

세르프는 계속 말하라는 눈빛으로 그레고리, 그러니까 눈앞의 까마귀를 보았다.

그레고리는 뭔가 대단한 걸 말하는 듯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골렘."

"...!"

"우리 인더스의 원조를 받고 있던 콘스텔 '악토버' 회원의 상당수를 잃게 한 에드윈의 골렘. 그걸 부순 게 프론디어다. 당시에는 그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무시했지만, 앞뒤를 살펴보면 그 또한 프론디어의 짓인 건 명백하다. 그리고 그때도,"

"...맨손이었다는 거군."

그런 증거들이 모이면 프론디어가 오러를 사용한다는 것에 신뢰가 간다.

그러나, 그 무능의 프론디어가 오러를 그것도 맨손으로 사용한다니.

"어떻게 인간늘보 프론디어가 오러를?"

"신력이라도 받았겠지.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 우연히 나중에라도 어떤 계기로 인해 신의 눈에 띄는 사람이. 최근에 프론디어가 수업에 열심히 참여한다는 소리를 들었지? 신력을 받은 게 분명해."

...과연, 신의 도움으로 받은 오러인가.

"상대가 오러를 쓴다면 다수라 해도 위험하다. 세르프, 용병단을 구한 모양인데 일부러라도 프론디어를 불리한 상황으로 만들어라. 프론디어가 아이를 죽였든가, 납치했다든가 하는 증거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 죽이는 건 그 뒤다."

──그러한 그레고리의 보고를 듣고 생각해 보면, 방금 화살을 막았을 때.

프론디어는 맨손이었다.

화살을 잡은 것도, 손으로 쳐낸 것도 아니다. 화살은 분명 허공에서 부러져 떨어졌다.

신의 도움으로 받은 오러다. 화살 정도는 우습게 막아내겠지.

"...증거라."

프론디어는 저택 안으로 다시 뛰어들었다. 저 안에 탈출구가 있다고 하는 건 사실이겠지.

아이 한 명을 데리고 좁은 탈출구 안을 기어간다면, 세르프가 뭘 하지 않아도 알아서 산더미 같은 증거가 생길 것이다.

프론디어가 아이를 납치하는 그림이 될 수도 있겠군.

세르프의 눈은 불타는 집으로 향했다.

"가라."

세르프의 말에 따라 용병단 모두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불씨를 치우고, 연기를 걷어내서 간신히 지하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지하로 내려와, 탈출구를 뒤지려던 순간.

"...흠."

세르프의 한쪽 눈가가 살짝 흔들렸다.

누가 봐도 탈출구인 것. 아니, 탈출구였던 것. 그게 지금 무너져 있었다.

위에서부터 돌이 무너져내려 틈 하나 없이 막혀 있었다.

프론디어가 들어간 뒤 안에서부터 위를 무너뜨린 것이다.

세르프는 외쳤다.

"나가서 찾아라! 이런 식의 탈출구는 길게 만들 수 없다! 멀리 나가진 못했을 거야!"

* * *

"후욱..., 후욱...."

나는 탈출구를 기어가고 있었다. 아이를 등에 업은 채.

겉옷을 이용해 아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묶어두었다.

나는 화살을 막은 뒤 아이를 안고 지하실로 도망쳐, 탈출구 안으로 들어가 입구를 무너뜨렸다.

그 전에, 아이를 내 밑에 두고 엎드린 뒤 흑천으로 방패를 만들어 등 위에 실었다.

그리고 그람으로 베어 입구를 무너뜨린 뒤, 쏟아지는 돌들을 방패로 막아냈다.

이 아이는 그때의 충격 때문인지 기절해 버렸다.

...아니 그것만은 아니겠지.

아이의 마음이 버티기에는 너무 큰 일이 있었다.

'세르프....'

아이에게 날아온 화살을 막아낼 때, 나는 직조로 방패를 만들어 막아냈다.

내 반응 속도가 뛰어난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세르프, 그 새끼가 화살을 쏠 줄 알고 있었다. 아이가 내 앞에서 화살에 맞아 죽으면, 나를 범인으로 만들기가 훨씬 쉬워질 테니.

'으윽, 더럽게 아프네.'

입구를 부술 때, 당연히 나도 온전치는 않았다.

방패는 내 몸을 완벽하게 가리지 못했고, 머리나 팔, 다리 등등은 돌에 얻어맞아 격한 통증을 느꼈다.

방패로 막은 부분도 데미지가 없진 않았다.

덕분에 기어갈 때마다 스치는 부위가 욱신거리고 뜨겁다. 땀인지 피인지 모를 것들이 몸을 흘러내렸다.

탈출로는 생각보다 길고 좁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불편한 자세로 억지로 기어가면서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러다 적에게 따라잡히면 어쩌지?

혹여나 폭탄을 가지고 있다면? 이 탈출구 전체를 무너뜨린다면.

혹은 이 탈출구의 출구를 먼저 찾아, 앞에서 이미 기다리고 있을 수도.

빠르게 뛰는 심장. 거친 호흡.

이리저리 긁힌 상처에서 핏방울이 흐른다. 땀에 섞여 뭐가 뭔지 분간이 안 간다.

그러나 이윽고,

"...밖이다."

탈출로의 끝. 저 멀리 빛이 새어 들어온다.

설령 저 앞에 적들이 도사리고 있다 해도, 내게 갈 길은 저기뿐이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목걸이 흑련을 손에 쥐고, 공방 안에서 적당한 무기를 찾으며.

그리고 출구를 향해 손을 뻗었을 때.

덥썩!

"?!"

뻗은 내 손이 붙들렸다. 그리고 거세게 당겨지는 힘.

빌어먹을, 역시 적이 이미 도착해 있었나!

흑련을 쥔 손에 힘을 주려는 찰나.

"프론디어!"

와락, 하고 나는 누군가의 품에 안겼다.

어안이 벙벙하고 눈앞이 잠시 하얘졌다.

다만, 향기가.

언젠가 맡았던 익숙한 향이 느껴졌다.

이건 그때의.

던전에서 슬라브를 처치한 뒤.

"...사이벨."

그녀를 업고 걸었을 때의, 그 향기였다.

"잘 왔어."

사이벨이 나를 보고 웃었다.

이해가 따라가지 않는다.

"여긴 어떻게?"

내가 묻자, 사이벨이 뒤로 시선을 던졌다.

그녀의 등 뒤, 내 정면에 누군가 서 있었다.

"...안녕."

그곳에는 엘로디 드 이니에스 리샤에가, 어딘가 복잡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33화

9장 메노소르포(7)

"프론디어가 위험해!"

리샤에 저택.

사이벨이 엘로디를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꺼낸 말이 그거였다.

"아, 뭐?"

엘로디는 당연히 이해를 못 했다.

모든 게 너무 갑작스러웠다.

애초에 엘로디는 사이벨과 거의 얘기해 본 적이 없었다. 오다가다 얼굴 마주치면 인사한 게 전부.

서로 워낙 유명하니까 이름 정도만 알고 있을 뿐.

그런데 대화 한 번 나눈 적 없는 상대가, 자신의 집에 찾아와서, 거기다 '프론디어'의 이름을 언급한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 그러니까...."

엘로디가 추궁하자 사이벨은 일의 전말을 간략히 전달했다.

"──흠."

사이벨의 얘기를 전부 듣고 나서 엘로디는 생각하는 듯 입술을 매만졌다.

그사이 사이벨은 설명하면서 조금 진정된 듯 보였다.

"물론 프론디어가 지금 당장 위험한지는 몰라. 타겟으로 정했다고 당장에 위해를 가한다는 얘긴 아닐 테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아냐."

엘로디는 고개를 저었다.

"아마, 지금 위험해. 프론디어."

"뭐?!"

"정말로 인더스가 프론디어를 타겟으로 삼았다면, 놈들은 프론디어가 혼자인 상황을 놓치진 않을 거야."

"걔네가 어떻게 알아? 프론디어가 지금 혼자라는 걸."

"놈들 중에 동물을 테이밍하는 녀석이 있어. 그 감시망에 걸렸을 테니까."

엘로디는 이전부터 자신을 감시하던 시선을 알고 있었다.

처음엔 그녀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마나 감지로 찾을 수 없을 만큼 너무도 엷은 기척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주 몇 달이 계속된다면.

마나 감지 이전에 '시선'을 느끼고 마는 것이다.

'동물을 죽이는 것도 꺼려지고, 별다른 짓을 안 하니 놔두고 있었는데.'

이런 귀찮은 일을 벌이다니.

엘로디의 눈이 가라앉았다.

"그, 그럼 어떡해? 프론디어가 어디로 갔을까?"

"그게 문젠데."

사이벨이 뭘 기대하고 왔는지 모르지만.

엘로디 그녀도 프론디어가 어디로 갔을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이젠 좋게 봐도 친하다고 할 수는 없는 관계니까.

옛날이면 모를까.

'...옛날.'

그렇게 생각하자 떠오르는 장소가 있었다. 어렸을 때 둘이 함께 놀았던 로아흐 가문의 별채, 오두막.

하지만 프론디어가 정말로 거기에 갔을까? 몇 년간 쳐다도 보지 않은 곳인데.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다.

철없던 자신이 프론디어한테 '프론~ 프론!" 거리며 조잘대던 그,

"아."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졌다. 프론디어를 구하는 것도 영 기껍지 않다.

죽어버려 프론디어.

"왜, 왜 그래?"

"아냐. 일단 가볼까?"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아?"

"대충은."

엘로디의 말에 사이벨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 모습을 엘로디가 잠깐 보았다.

사이벨은 프론디어를 찾을 수 있다는 게 이 정도로 기쁜가.

...프론디어에게, 혹은 프론디어가, 아니 설마.

사이벨이 너무 착한 탓이지.

"좋아, 어떻게 하지? 차를 타는 거야?"

사이벨이 조급해진 마음을 보여주듯 안절부절못했다.

엘로디가 사이벨의 허리를 잡았다.

"아니."

"응?"

"이게 더 빨라."

그리고.

"헛? 우와아아앗!!"

둘은 날았다.

사이벨은 자신이 순식간에 지면과 멀어지는 것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뭐, 뭐야 이거?! 비행마법?! '날개'?"

"아니, 그거보다 쪼끔 더 상위."

"와아아아앗!"

엘로디는 사이벨을 안고 오두막을 목표로 날아갔다.

사이벨에겐 기념할 만한 첫 비행이었다.

그리고 그 감상.

'무, 무거워...!'

바람과 중력 때문에 몸이 무겁다.

그녀 스스로 나는 게 아니니까.

첫 비행치고는 쾌적하진 않았다.

* * *

"그렇게 해서 온 거야. 짜잔, 대단하지?"

사이벨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V까지 그리며 말했다.

난 대답했다.

"...어. 진짜 대단하다. 고마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걱정해서, 내가 위험하다는 것이 확실하지도 않은 상황에 이리저리 뛰어다닌 그녀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사이벨은 내 대답을 듣고는 또 멍해졌다.

"──어, 어? 아니 뭐, 별거 아닌데...."

뭔가 목소리가 기어 들어간다.

왜 별거가 아닌데.

대단하지? 라고 방금 스스로 자랑했잖아.

"그 애는?"

엘로디가 내가 업고 있는 아이를 보고 물었다.

"놈들 중 한 명의 동생."

"왜 여기 있어?"

"내 인질이기도 하고, 놈들의 인질이기도 하고."

"응?"

내 말이 이해가 안 가는 듯 둘이 고개를 갸웃했다.

난 쓴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이 아이한테 우는 연기를 시키고 나를 불러냈는데, 이 아이가 나한테 가까이 오자 놈들 중 하나가 화살을 쐈어."

"뭐? 자기 동료의 동생인데?"

"그래. 뭐 동료는 아니지. 고용한 용병인 거 같던데."

사이벨의 물음에 답하자, 엘로디의 눈이 금세 차가워졌다.

"...나도 화살 한 발 쏴도 될까?"

"안 돼."

"왜? 저쪽도 쐈는데."

"네가 쏘면 죄다 죽잖아. 한 발은 무슨."

엘로디가 쏘는 화살이면 다섯 신 중 하나, '루드라'의 '폭풍시'다.

그딴 거 쐈다간 사람만 죽는 게 아니고 여기 지형이 바뀔 거다.

이 지역이 초행길인 사람이 지도 보면서 찾아오면 '시벌 이 지도 엉터리네'라고 말할 정도로 변한다.

"그럼 이제 괜찮은 거지?"

사이벨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엘로디가 있으니."

"뭐야? 뒷일을 다 나한테 맡길 셈이야?"

"그럴 필요도 없어. 놈들의 목적은 나를 살인자로 만들어 매장시키려던 거니까. 그건 여기에 나만 있어야만 통하는 일이지. 엘로디가 있으면 오히려 녀석들이 불리해. 콘스텔의 선생들이 내 말은 안 믿어줘도 네 말은 믿을 테니까."

세르프가 계속해서 이 꼬맹이를 이용하는 게, 나를 살인자로 만들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아마 지금쯤 세르프는 내가 이 아이를 납치한 것처럼 만들려 했겠지.

만약 지금 여기에 나만 있었다면, 그리고 인더스라는 '착한 조직'이 나를 안 좋게 보고 있다는 걸 알리면 손쉬웠을 것이다.

'어쩌면 세르프가 사이벨에게 귀띔한 게 그걸 노린 것일지도 모르지. 인더스가 나를 타겟으로 삼았다는 걸 알리면 주위는 당연히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엘로디는 사이벨 이상의 평판에, 무엇보다 놈들 전부가 덤벼도 이길 만한 힘을 갖고 있다.

"문제는 얘야. 일단 깨워야 할 텐데."

나는 업고 있는 아이를 내려놓았다.

엘로디가 아이의 얼굴 앞으로 손을 가져갔다.

마나의 빛이 잠깐 발하더니, 아이가 천천히 눈을 떴다.

아이는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내 얼굴을 확인하자 상황을 깨달은 모양이다.

사이벨과 엘로디를 겁먹은 눈초리로 보고 있다.

"걱정 마. 내 동료들이니까."

...이 말이 아이한테 안심이 되려나 싶었는데, 다행히 안심한 모양이었다.

나는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모르네. 이름이 뭐니?"

"...로크벨."

"넌 그로벨의 동생이지?"

아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떨고 있다. 아직 혼란과 공포가 몸을 뒤섞고 있을 것이다.

"얘 그냥 녀석들한테 보내면 되잖아. 그중 한 명이 얘의 형이라며?"

"이대로 되돌려보내면, 다시 인질이 될 거야."

"...설마. 형이 그걸 내버려 둘까."

물론 그로벨이 그걸 가만두고 보진 않겠지만.

...내가 아는 세르프라면 아마.

"그럼 일단 움직이자. 놈들을 만나지 않는 게 베스트인 거 아냐?"

사이벨이 그렇게 말했으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엘로디도 마찬가지 생각이겠지.

"늦었어."

내 말에 마치 타이밍이라도 잰 것처럼.

"──한참 찾았습니다."

그 기분 나쁠 정도로 친절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세르프의 곁에는 염탐을 하는 테이머가 있으니까. 도망치는 건 어차피 소용없다.

세르프의 목소리는 들렸지만, 보이진 않았다. 저 숲 속 안쪽에 숨어 있다.

어느새 늘어난 인기척과 발자국 소리. 숨어서 우리를 포위하는 듯 보였다.

"움직이지 마. 프론디어, 사이벨."

엘로디가 낮게 말했다.

그녀의 마나 감지라면 놈들의 위치를 대충이나마 알 수 있겠지.

엘로디의 긴장 상태로 봐서, 놈들의 포위는 완료되었다고 봐도 좋을 터다.

"──세르프 다니엘! 이제 포기해!"

엘로디가 외쳤다.

"이제 쓸데없는 짓이라는 거 알고 있잖아! 프론디어에게 누명을 씌우는 건 무리야! 내가 프론디어의 증인이 될 테니까!"

엘로디, 말 잘하네.

내가 좀 전에 한 말이긴 하지만. 아무튼.

"예에. 그건 아무래도 틀려먹은 것 같군요. 사이벨 양이 이 정도까지 해줄 줄은 몰랐으니까요."

여전히 세르프는 숲속에 숨은 채 말한다.

어지간히 모습을 보이기 싫은가.

"그러니 여기서 여러분 모두 죽이려고 합니다."

"...뭐?"

세르프의 말에 엘로디는 귀를 의심하는 것처럼 되물었다.

그래, 저런 놈이다.

'인더스'의 목적은 평민의 영향력을 키우는 것. 그 이면에는 '혁명'이라는 더 위험한 단어를 내포하지만, 표면상의 인더스는 아직 정의의 편이다. '혁명'은 그들에게도 아직 시기상조다.

그러나 세르프 다니엘, 그 개인의 목적은 다르다.

'귀족 혐오자. 세르프 다니엘.'

에티우스 게임의 훗날, 유명한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세르프. 그가 처음에 인더스에 가입한 것도 귀족을 죽이기 위한 적당한 명분을 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조금씩 인더스 내에서 실적을 쌓아, 언젠가 터지는 혁명과 함께한다.

세르프는 보통 앞에 나서지 않는다.

다른 이들에게 보여줄 '가짜 리더'를 정하고, 본인은 뒤에서 암약하는 스타일.

'문제는 이게 사전 지식에 불과하단 말이지.'

나는 에티우스를 플레이하는 동안 세르프와 싸워본 적이 없다. 결국 혁명은 실패하고, 세르프는 수사대에게 붙잡혀 '테이번의 방벽'으로 보내졌으니까. 그곳의 가주인 리드위 우르파가 고생했다고는 들었다.

놈의 능력도, 기술도 모르는 상황.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세르프가 엘로디를 이길 수 있을까?'

세르프는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목소리는 평온하기 그지없다. 엘로디가 있는 이 상황에서도,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 것처럼.

어떻게?

엘로디를 이기는 자는 정말로 손에 꼽을 터.

"로크벨."

세르프가 갑자기 로크벨의 이름을 불렀다.

내 옆에서 몸을 움츠리고 있던 로크벨이 갑자기 굳었다.

"프론디어를 찔러라."

푸욱!

"...!"

──상황은 나중이었고.

일단 나에게는, 정신을 잃을 정도의 격통이 치달았다.

옆구리, 인가.

칼에 찔, 린, 건가─

쓰러지는 와중 보인 것은 당황한 사이벨과 엘로디의 눈동자와.

그 반면에, 완전히 초점을 잃은 채 단검을 들고 서 있는 로크벨의 모습이었다.

* * *

침잠하는 의식.

나는 그 가라앉는 의식 속에서, 깨어나려고 발버둥이었다.

병신 같은 놈.

칼침 한 방 맞았다고 기절을 해?

일어나!

일어나라고!

거대한 무의식의 거품이 밀려오고, 실 한 올 같은 의식을 겨우겨우 붙잡는다.

그리고 밀려 들어오는, 온갖 과거의 기억들.

──엘로디가 밉다.

──왜 내 옆에서 나를 힘들게 하지?

─왜 언제나 내 앞에서 웃고 있는 거야?

─왜 항상 나에게 상냥한 거야?

─그래, 알고 있어. 너는 신력이 있으니까 그렇지.

─신력과 재능이 넘치니까, 나 같은 놈을 보면 자연히 웃음이 쳐 나오는 거다!!

이건 프론디어의 기억인가.

그가 갖고 있던 혐오와 열등감, 불쾌함이 내 속을 뒤집어놓는다.

그래, 내가 프론디어니까.

마치 억지로 막아놨던 구멍이 뚫린 것처럼. 그의 기억이 진흙처럼 쏟아진다.

─죽어라, 엘로디.

─모든 것에 추락해서 절망하다가 죽어버려라.

─이게 내 진심이다.

─이게 거짓 없는 내 솔직한 말이다.

프론디어의 기억이 점차 선명해진다.

어떠한 장면이 내 눈앞에서 영화 필름처럼 재생되었다.

오두막에서 누군가와 만난 프론디어.

펄럭거리는 로브를 입어, 성별조차 구분이 안 간다.

그가 프론디어에게 무언가 귀띔을 하고, 프론디어는 홀린 것처럼 고대어를 해석했다.

그 해석의 편린들이, 나에게 주입되는 것처럼 들어온다.

마침내 해석이 완료된 주문서 하나를 보며, 프론디어는 희열에 몸을 떨었다.

─이것만 있으면, 엘로디의 신력을...!

그 기쁨과 희열마저도 나는 느꼈다.

마치 프론디어가 아닌 내가 엘로디를 혐오하는 것처럼.

내가 엘로디의 신력을 없애고 싶어하는 것처럼.

내가 그 계획에 정말로 기뻐하는 것처럼.

...그러나.

"닥, 쳐...!"

너무 당연하게도.

결국 나는 프론디어가 아니다.

내가 프론디어가 아니기에, 나는 언제나 마음 한편에 죄책감이 있었다. 프론디어의 인생을 내가 뺏었으니까.

게으르든 무능력하든 어쨌든, 오롯한 그의 인생일 텐데.

그 인생이 어떻게 종료되든 간에 그에게는 그 나름의 가치가 있을 텐데.

그러나 프론디어가 사람을 죽이려 든다면.

죄 없는 누군가를 불행에 빠트리려 든다면.

나 또한 더 이상 가릴 것이 없다.

프론디어는 고대어를 해석했다. 엘로디의 신력을 없애기 위해서.

하지만 나에게 그딴 건 중요치 않다.

엘로디에 대한 증오 하나로 열심히 공부했겠다만. 나는 내 입맛에 맞춰 사용할 뿐.

'고대어를 해석한 기억, 내가 써주마.'

'프론디어 드 로아흐'는, 이제 이렇게 살아갈 거니까.

멸망이 예정된 세계에서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칠 거니까.

포기해라, 프론디어.

넌 최저의 악역이다.

나는 프론디어의 기억을 복기하고, 복기하고, 끝없이 복기했다. 그의 모든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그건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게 아니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린 것과 같이, 나는 빠르게 지식을 흡수했다.

얼마 전 다우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이 마법진은 '고대어'일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말했었지.

메노소르포가 고대어로 이루어져 있다고.

그 기호, 문양, 배열의 법칙이 고대어라고.

나는 프론디어의 모든 지식을 흡수한 뒤, 공방에 있는 메노소르포의 마법진을 마주했다.

'...그렇구나.'

알았다.

메노소르포가 무엇인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전부 깨달은 순간,

나는 눈을 떴다.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34화

9장 메노소르포(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