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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 * *

"…헉!"

'열다섯 번째 죽음인가?'

나는 몸을 떨며 서휼이 주변에 있나 둘러보았지만, 다행히도 없었다.

"…안 죽었군."

"흐하하하, 사람은 그 정도로 죽지 않는다."

흠칫!

나는 창호자를 보며 순간 몸을 떨었다.

하지만 나는 주변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도 약내가 풍기는 것이, 창천개벽문의 의약당이었다.

"못난 꼴을 보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아니다. 그나저나, 이제 너와 오현석의 자질 파악은 대충 알았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가르쳐야 하는지도 알았다. 그러니, 오늘부터 공법 수련을 시작하자꾸나."

우우웅!

창호자의 옆으로, 두루마리 저물법기가 떠올랐다.

두루마리가 펼쳐지며,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이 드러났고, 창호자는 두루마리 안으로 손을 넣어, 웬 커다란 비석을 꺼냈다.

쿠웅!

비석에는 빼곡하게 벽라국어로 적힌 공법 구결들이 있었다.

"자, 이게 오늘부터 익힐 공법 구결이다."

공법의 이름은 성광호체공(星光護體空)이었다.

창천개벽문(蒼天開闢門) (3)

성광호체공.

나는 공법의 구결을 한번 쭉 훑어보고는 뭔가를 깨달았다.

"이 공법, 전반부와 후반부가 없이, 중반부만 있는 것 같습니다만?"

내 말에 창호자는 껄껄 웃으며 장비 같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으하하, 안목이 있구나. 그래, 본래 성광호체공은 한 가지 공법을 세 부분으로 나눈 것이다."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공격과 힘의 폭발을 담당하는 창령격원결. 방어와 안정성을 담당하는 성광호체공. 지구력과 치유력, 재생력을 담당하는 오행장원전. 이 세 가지 공법이 각각 원 공법의 전반부, 중반부, 후반부를 담당하지."

파아앗!

창호자의 손 위로 푸른빛이 일렁였다.

생명과 치유의 힘을 지닌 목(木) 속성의 영기였다.

"창천개벽문의 제자들은 보통 오행장원전을 다시 다섯 조각으로 쪼갠 공법부터 시작해서 익히게 한다. 각각 오행 영근 속성에 맞는 공법을 익히기 시작하고, 익숙해지면 성광호체공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마지막이 되어서야 창령격원결을 알려 주지. 그렇게 창령격원결까지 어느 정도 익히면, 세 공법을 합친 원 공법, 창령성광오채대법(蒼靈星光五彩大法)을 제대로 전수하기 시작한다. 너는 내 직전제자로 거두었고, 또 네 가능성을 보아서 일단 바로 성광호체공부터 가르치기로 했다."

"감사드립니다."

나는 창호자에게 인사를 올린 후.

문득 호기심이 들어 물었다.

"그런데 혹시, 오 차장, 아니, 오 사형… 께서는 어떤 가르침을 익히시는지 알려 주실 순 없으십니까?"

"아, 오현석 말이냐?"

잠시 고민하던 창호자는 어쩐지 악랄한 미소를 지었다.

"너에게는 조금 미안한 소리일 수 있겠지만, 녀석은 앞으로 창령성광오채대법을 바로 전수받을 거다."

"호오…."

"과연 일문성체는 일문성체더군. 전투 감각 자체는 아직 너보다 한참 모자랄지라도, 몇 대 때리고 치료하기를 반복하니까, 금세 몸이 단단해지더구나. 일단 공법을 안 가르치고 대련하는 것으로 얼마나 단단해지는지 한계를 확인해 본 후, 그다음부터 제대로 공법을 가르칠 요량이다."

"…."

한 마디로, 앞으로 계속 붙어서 두들겨 팰 거라는 말이었다.

'창호자에게 간 오 차장님은 그래도 가장 즐겁게 지내지 않을까 생각했다만….'

아무래도 궤도에 이르기 전까지는 정말 미친 듯이 두들겨 맞는 게 일상인 모양이었다.

나는 앞으로 오현석 차장을 두들겨 팰 생각에 잔뜩 흥이 난 창호자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한 후.

성광호체공의 구결이 적혀져 있는 비석을 들고 내 처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성광호체공의 구결을 읽어 보며, 성광호체공이 만만치 않은 공법임을 알아챘다.

'아무리 광한계의 영기가 풍부하다고 해도, 내 재능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나는 진즉 내 재능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이런 몸으로 제대로 공법을 익혀 경지에 이르려면 얼마나 걸려야 한다는 것인가.

나는 잠시 고민해 보다가, 창호자의 말을 기억했다.

'분명, 창천개벽문에 들어온 제자들은 우선 성광호체공을 익히기 전에 '오행장원공'을 다섯 조각으로 쪼갠 공법을 익힌다고 말했다.'

그 말인즉슨.

성광호체공을 익히기 전에, 오행장원공을 익히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그래, 한 번에 공법을 익히려 하지 말고, 단계별로 시도해 보자.'

나는 우선 오행장원공을 찾아보기 위해 창천개벽문의 장서각을 찾아갔다.

'어디 보자, 몇 개월 전 장서각의 정리가 다 끝났다 했으니….'

창천개벽문 호출봉.

나는 그곳으로 가 오행장원공을 찾으려 했다.

그리고, 내가 호출봉까지 걸어갔을 때였다.

"…?"

나는 뭔가 이상한 걸 볼 수 있다.

'왜, 장서각이 들썩거리는 거 같지…?'

내가 조심스레 '들썩거리는' 장서각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였다.

나는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사…형?"

쿠구구구구!

장서각 건물 아래쪽.

그곳에서, 한 근육질 사내가 콧김을 뿜으며 장서각 전체를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며 상체를 단련하고 있었다.

그의 바지에는 한 개의 푸른 구름(雲)이 새겨져 있었다.

창천개벽문의 제자는 구름으로 분류되었다.

막 입문한 제자는 다섯 개의 구름이 그려진 옷을 입는 오운(五雲) 제자.

어느 정도 가르침을 받고 연기기 수준인 제자는 사운 제자.

축기기 수준인 제자는 삼운 제자.

결단기 수준인 제자는 이운 제자.

원영기 수준인 제자는 일운 제자로 취급을 받았다.

일운 제자부터는 창천개벽문의 장로직에도 도전할 권한이 주어지는, 엄청난 위치의 제자였다.

사실상 창천개벽문의 장로와 현직 장문인은 일운 제자였고, 창천개벽문을 이끌어 가는 계급의 제자들이었다.

그리고 이후 천인기 원로부터는 아무런 구름도 없이 창천(蒼天)을 뜻하는 푸른 도복만을 입고 다녔다.

…그리고 사축기 수준인 창호자는 아예 웃통을 벗고 다녔고.

나와 오현석 차장은 사실상 경지로만 따지면 오운 제자였지만, 창호자의 직전제자라는 신분 덕에 이운(二雲) 무늬를 받을 수 있었다.

"크후우우…."

내 부름에, 장서각 건물로 상체를 단련하던 일운 제자.

천훈(踐薰)이라는 이가 나를 바라보았다.

"오, 시조님의 새 제자 아니신가? 어디 보자… 항렬상 내가 자네를 뭐라 불러야 하더라? …흠, 모르겠군. 그래, 그냥 사제라고 부르지. 사제, 장서각에는 무슨 일로 왔지?"

그는 한 팔로 장서각 건물을 들어 올린 채, 다른 한 팔로 땀을 닦으며 내게 물어보았다.

나는 그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행장원공을 나눈 공법 구결 다섯 개가 있다고 해서, 익혀 볼까 하여 찾아왔습니다만…."

"아하, 그걸 찾아온 거군. 하하, 시조님의 직전제자라면 바로 더 높은 공법부터 익힐 수 있을 텐데 기초부터 다지려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아. 장서각 2층으로 들어가서, 들어가자마자 세 번째, 황색의 책장 세 번째 칸에 있다네. 그것들은 창천개벽문의 기초공법이니, 복제해서 가져가는 것에 문제는 없을 걸세. 다만 다른 공법서들을 가져가려 하면 자격을 증명해야 하니 유념하고."

"자격 증명이요?"

"그래, 본문에서는 자격도 안 되는 놈이 공법만 가져다 익히는 걸 지양하고 있거든. 그래서, 높은 공법을 익히려면 시험을 봐야 한다네."

"그 시험이라는 건 어떻게 봅니까?"

내 말에, 천훈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간단하네. 장서각 사서에게 공법서를 가져오고, 사서가 공법서의 중요도를 판정한 후 그에 맞춰 사서와 대련을 해서 이기면 되지. 보통 연기, 축기기 급 공법서는 가져오면 사서와 팔씨름을 해서 이기면 가져가게 해 주고는 하네."

"…이 장서각의 사서는 누구입니까?"

나는 속으로 눈앞의 인물을 부정하며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그러나 천훈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피식 웃었다.

"당연히 나지, 뭘 물어보는가?"

나는 장서각 건물을 한 손으로 든 채 근육을 씰룩이는 천훈을 바라보았다.

'저거랑 팔씨름을 해서, 이겨야 공법서를 가져가게 해 준다고?'

수련을 하지 말라는 말인가?

내 눈빛을 읽었는지, 천훈이 말했다.

"아, 혹시나 너무 오해할까 봐 그러는데, 연기기 급 공법서는 보통 내 새끼손가락과 팔씨름을 해서 이기면 가져가게 해 주니 오해는 말게. 나는 새끼손가락만 쓰고, 상대는 전신을 다 써도 되지."

"…."

나는 천훈의 새끼손가락을 쳐다보았다.

내 엄지발가락보다 굵기가 굵었다.

"…일단, 오행장원전은 그냥 익힐 수 있다니 가져와도 되겠습니까?"

"아, 물론이지. 그나저나 내가 상체를 단련하던 중이라 건물을 내려놓기가 좀 그래서 그러는데 말이지. 혹시 그냥 들어가 줄 수 있는가?"

"…예, 뭐. 그러지요."

타앗!

나는 훌쩍 뛰어올라, 높이 들려져 있는 입구에 내려앉았다.

저 아래쪽에서 천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해해 줘서 고맙네. 그리고 내가 상체 단련을 위해 조금 들었다 내렸다 할 거라서, 장서각이 좀 흔들려도 그러려니 하시게나."

"…마음대로 하십시오."

나는 천훈을 이해하는 것을 포기한 후, 장서각 위층으로 올라갔다.

얼마 후.

나는 천훈이 말한 곳에서 '오행장원전'이라 적힌 서책들을 발견했다.

오행장원전은 오월입도경처럼 각각이 공법으로 나뉘어 있었다.

화도장원전, 수도장원전, 목도장원전, 금도장원전, 지도장원전.

나는 우선 각각의 공법서를 펼쳐 읽어, 구결을 전부 익혔다.

'대략 이런 느낌인가….'

구결을 전부 머릿속에 집어넣은 나는, 다른 책장에 있는 공법서들에도 손을 뻗었다.

하지만.

우우웅!

다른 공법서들에는 하나같이 금제가 펼쳐져 있었다.

내가 다른 공법서를 집어 들었을 때였다.

[아, 사제. 그걸 익히고 싶으면 나와 팔씨름을 해서 이기면 내가 금제의 해주법을 알려 주겠네.]

"…."

나는 얌전히 공법서를 원래 자리에 내려놓은 후.

장서각에서 나왔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사형. 앞으로 뭔가 더 찾을 일이 있다면 일단 공법들을 더 익힌 후에 찾아뵙겠습니다."

"하하, 마음대로 하시게. 아, 그리고 오행장원전을 익힐 거면, 아마 오행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걸세."

천훈이 한 손으로 저 멀리, 다섯 개의 산봉우리를 가리켰다.

"오행관이 뭔지는 알겠지?"

"예, 알고는 있습니다. 본래 창천개벽문의 공법 수련이 가장 활발히 이뤄지는 곳이라 하더군요. 각각 속성에 맞는 연체공법을 익히는 곳이라 압니다."

"그래, 그래. 그곳에서 먼저 오행장원전을 익히는 사형제들이 많으니,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모두 좋은 마음으로 도움을 줄 걸세."

"아, 감사합니다."

나는 천훈에게 감사 인사를 하였다.

오행관이 어떤 곳인지는 대강 들어 알았지만, 아직까지 가 본 적은 없는 곳이었다.

애초에 수계에 있던 장소를 창한도에 복원하는 데에 시간이 걸려서 최근에야 복원이 다 됐기 때문이었다.

쿠구구구!

나는 장서각으로 훈련을 하는 천훈을 뒤로하고, 오행관을 찾아갔다.

* * *

오행관.

화도체련관(火道體練館).

쿠구구구구!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하하하! 더 뜨겁게 불을 지펴라!"

"흐아아아아악!"

"사, 사형님들! 살려 주십시오!"

"자, 뭣 하는 거냐. 이번에 새로 받은 신입들을 전부 구워라!"

화르르르르!

화형대를 아는가?

통나무를 세워 놓고, 죄인을 묶어 놓은 후.

그 아래에 장작을 잔뜩 쌓아 놓고, 불을 지피는 형벌이다.

그리고.

오행관, 화도체련관에서는 화도장원전을 익히게 한답시고.

막 창천개벽문에 입문했다는 제자들 중, 화영근을 지닌 제자들을 통나무에 줄줄이 묶은 후 불을 지피고 있었다.

"흐이이이익! 도, 돌아갈래! 이, 이런 곳인 줄 몰랐어!"

"시끄럽다! 수계에서 다들 이렇게 강해졌기에 지금의 이 강대한 창천개벽문이 있는 것이야! 광한계에서는 천지영기가 진하니 더욱더 효험이 있을 것이다! 불을 붙여라!"

"흐아아아아악!"

화르르르륵!

나는 화도체련관에서 연기기 급도 안 되어 보이는 제자들이 불에 구워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촤아악!

풍덩!

그리고, 나는 그 옆에서 결단기 급 이운 제자들이 수련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분화구!

화산의 분화구가 그 옆쪽에 있었고, 안쪽에선 용암이 펄펄 끓고 있었다.

"전원, 입수!"

그리고, 화도체련관의 이운 제자들은 일운 제자들이 입수(?)를 명하자마자 전부 숨을 참고 용암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풍덩, 풍덩!

이운 제자들은 용암 안쪽으로 들어가서, 얼마간 떠오르지 않았다.

"뭐야! 이놈들 왜 안 떠올라!?"

"다 흘러 빠져서는! 천혜야, 이놈들 끌어 올려라!"

"예!"

전신이 근육으로 가득 찬 여수사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용암으로 입수해, 몸이 시뻘겋게 달궈진 이운 제자들을 끌고 나왔다.

나는 잠시 그 광경을 보다가, 뒤를 돌아 바로 화도체련관에서 도망쳐 나왔다.

"아무래도, 역시 화도공법은 나와 조금 맞지 않는 것 같군."

나는 옆 봉우리에 있는 금도체련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금도체련관은 역시나 화도체련관과는 모습이 달랐다.

"흐아아악! 사형들,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막 입문한 제자들은 포승줄에 꽁꽁 묶여, 그대로 작은 구덩이 안쪽으로 천천히 들어가고 있었다.

카가가가가각!

카가가각!

카카카카칵!

자세히 보니, 제자들이 들어가는 구덩이 안쪽에는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자그마한 상어 같은 물고기들이 수천 마리씩이나 득시글거리고 있었다.

"모두 금도장원전을 운용해라!"

"금치교어(金齒鮫魚)의 이빨에 물리면 금령지력(金靈之力)을 느낄 수 있으니, 그 느낌을 놓치지 않고 잘 공법을 운용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흐아아아아! 미친 소리 하지 마! 미친…."

푸확!

발광하던 오운 제자 중 한 명이 그대로 금치교어들 사이로 빠져 버렸다.

"…."

놀랍게도 오운 제자는 물고기들에게 물어뜯기면서도, 죽지 않았다.

금기(金氣)를 운용하며, 어찌어찌 죽지 않고 안에서 미친 듯이 꿈틀거리며 버티는 듯했다.

나는 황급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금도체련관도 빠져나왔다.

'나머지 체련관도 이런 식인가?'

어째 그럴 것 같았다.

'…일단, 혹시라도 내게 맞는 수련이 있을 수 있으니. 나머지도 둘러는 보자.'

나는 숨을 들이쉬며, 다음 관으로 향했다.

수도체련관.

풍덩!

"끄르르르르릅!"

방금 전의 극악무도한 체련관들보다는 훨씬 시각적으로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수도체련관의 오운 제자들은 선배 제자들에 의해 수심 깊은 곳까지 그대로 끌려 들어가, 막대한 수압을 견디는 수련을 한다고 했다.

'…수심이 깊어 더 안 보이는군.'

"다음, 들어가라!"

"자, 잠시만요! 수압을 견디는 게 문제가 아니라 숨을 못 쉰단…."

"시끄럽다! 대창천개벽문의 제자에게 불가능은 없다!"

풍덩!

"끄르르릅…!"

수도체련관의 오운 제자는 양발에 제 머리통만 한 바위 추가 묶인 채 눈앞에 있는 호수로 빠져 버렸다.

호수의 수심은 딱 봐도 수십 장은 될 정도로 아득히 깊었고, 얼마 후 아래로 내려간 오운 제자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흔들며 다음 체련관으로 향했다.

목도체련관.

두두두두두!

"크워어어어억!"

"크으으읍!"

"으으읍!"

목도체련관에서는, 양 주먹에 치유와 생명력의 힘을 깃들인 삼운 제자들이 사운, 오운 제자들을 통나무에 묶어 놓고 마구 두들겨 패고 있었다.

이전 화도, 금도, 수도관의 제자들은 입이라도 뚫려서 비명이라도 지를 수 있었다면.

목도체련관의 오운, 사운 제자들은 입에 재갈이 물려 있어, 그저 이를 악물고 삼운 제자들의 주먹질을 견디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두두두두두!

목도체련관의 삼운 제자들이 사, 오운 제자들을 두들겨 팰 때마다 그들의 몸은 멍이 들고 뼈가 부러지기가 무섭게 선배들의 주먹에 몸이 다시 회복되고 재생되기를 반복했다.

그들의 뼈와 살이 부러지고 찢어질 때마다 계속해서 실시간으로 회복되며, 육신 자체가 더더욱 강인하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숨을 죽이고 목도체련관에서도 달아났다.

그리고, 마지막.

지도체련관.

"…."

지도체련관은, 여타의 공포스럽고 시끄러웠던 체련관과 다르게 매우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였다.

일, 이운 제자들은 눈을 감고 공법을 수련하는 중이었다.

물론, 천훈이 그랬던 것처럼 장서각만 한 바위 덩어리나, 산봉우리 같은 걸 들고 수련하는 게 조금 무지막지하긴 했지만.

'그런데, 삼, 사, 오운 제자들은 다 어디 갔지?'

내가 의아해할 때였다.

푸확!

갑자기, 지도체련관의 땅에서 손바닥이 올라왔다.

"크허! 크허헉! 크헉!"

얼마 후.

완전히 지상으로 올라온 그는 넝마가 된 옷을 입은 오운 제자였다.

그는 숨을 들이쉬며, 땅으로 올라와서는 미친 듯이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여긴 미쳤어! 다들 미쳤다고! 창천개벽문이 이딴 문파인 줄 알았으면 오지 않았…."

그리고.

쿠구구구구!

잠자코 산봉우리 하나를 들고 몸을 단련하던 이운 제자 중 한 명이, 산봉우리를 내려놓고는 그 오운 제자의 앞에 떨어졌다.

"사제, 어딜 가시는가. 오늘치 수련을 계속 해야지?"

"시, 싫어…. 살려…."

동시에, 이운 제자가 발을 굴렀다.

쿠과과과광!

그의 발길질에, 발밑으로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

그는 도망치려는 오운 제자의 뒷덜미를 잡아, 구덩이로 그대로 던져 넣었다.

"자, 그럼 또 지도장원전을 운용하며 다시 올라오게나. 사제도 익숙해지면 별거 아닐세."

그가 인을 맺자, 구덩이가 닫히며, 방금 전의 오운 제자는 그대로 땅 밑에 갇혀 버렸다.

'그렇군….'

지도체련관이 조용했던 이유는, 저계 제자들이 땅속에 묻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저 땅 밑에서, 대지의 압력을 견디며 올라오는 게 지도체련관의 수련 방식인 듯했다.

나는 일련의 수련 과정들을 본 후 깨달았다.

'얌전히 성광호체공을 익히러 가자.'

그리고, 그때였다.

"잠깐, 그러고 보니 자네… 이번에 시조님의 직전제자로 새로 들어온 자가 아닌가?"

"…."

"하하, 이거 잘 됐군. 지도체련관에 온 것을 보아하니, 지도장원전을 익히려 하는 것이겠지? 시조님의 제자라면 더 높은 공법을 익힐 수 있었을 텐데도 기초부터 다지려 하는 그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군."

쿵, 쿵, 쿵, 쿵!

내 뒤, 양옆, 앞으로 각각 일운 제자와 이운 제자들이 내 퇴로를 막아섰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길을 잘못 들어온 것 같습니다. 이 사제는 다시 나가려 하니… 다들 즐겁게 다시 수련하시는 게 어떨지…."

"하하,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땐 아니라네."

타닷!

그와 함께, 네 사방을 점한 일, 이운 제자들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오랜만에 전력을 다해 의념을 읽어 내었다.

수많은 경로와 궤적이 눈으로 읽힌다.

'빠져나간다…!'

필생의 의지력으로 집중을 짜내며, 나는 기수식을 잡았다.

창천개벽문(蒼天開闢門) (4)

사방에서 뻗어 나온 붉은 선이 주변을 덮는다.

후방에서 일곱 개.

전방에서 세 개.

좌우에서 각각 두 개의 붉은 선.

빈 공간은 상공과 지반 밑.

하지만 지반 밑은 들어가면 내 스스로 지도체련관의 수련을 하겠다고 달려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거기에 상공 역시, 지금 당장은 의념이 향하지 않더라도, 너무나 다른 이들의 손이 향하기 쉬운 곳.

'그렇다면….'

나는 후방에서 나를 향해 달려드는 사형에게 역으로 달려들었다.

일곱 개의 의념이 내 팔다리를 향한다.

의념 너머에서 뿜어지는 투기를 보아, 여차하면 내 팔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지도체련관에 잡아 놓겠다는 투지가 흘러넘친다.

파아앗!

첫 손길이 내 어깨를 노렸다.

허용하면 어깨가 빠져 버릴 터.

너는 허리를 살짝 굽혀 손길을 피한 후, 사형의 팔 아래에 손을 가져다 댄 후 살짝 방향을 틀었다.

휘청!

"…!"

방향을 틀어 주자 그는 내게 내지르려던 힘 자체가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느끼며 휘청였다.

그 사이로 의념이 마구 흔들린다.

타앗!

나는 그 흔들리는 의념의 틈새 사이를 넘어가, 사형들의 포위망을 일차적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포위망은 벗어났지만, 지도체련관 바깥으로 나가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한 번에 체련관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나는 눈알을 굴리며, 저 멀리 절벽을 쳐다보았다.

지도체련관 옆에 있는 절벽으로 떨어지면 더 쫓지는 않을 터.

'절벽까지 스무 보.'

충분히 갈 수 있다!

타앗!

나는 황급히 걸음을 놀려 절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역시나 창천개벽문의 사형들은 어마어마한 속도를 지녔다.

파바밧!

순식간에 그들이 나를 뒤따라온다.

그냥 순수하게 신체 능력이 너무 높다 보니, 보법이나 경공조차 필요 없는 이들.

"게 섰거라!"

"어딜 도망치는 거냐!"

두두두두두두!

뒤쪽에서 소름 끼치는 발소리가 들렸다.

대여섯 명의 근육질 거한들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눈이 뒤집혀서 나를 잡기 위해 쫓고 있었다.

"놈이 절벽으로 간다! 잡아!"

전신이 근육으로 가득 찬 대머리 여수사가 나를 쫓아오며 소리쳤다.

촤악!

두 명의 사형들이 내 어깨를 향해 동시에 손을 뻗는다.

나는 의념을 읽으며 몸을 굽혀 손을 피했다.

파앗!

땅 밑에서 붉은 선이 올라와 내 다리를 향한다.

나는 몸을 굽힌 상태에서, 그대로 땅을 박차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내가 자리를 박찬 곳에서는 한 쌍의 손이 튀어나와 허공을 짚었다.

쿠구구구구!

하늘 위쪽에서, 마치 운석이 떨어져 내리듯, 머리의 반을 빡빡 민 근육질 여수사가 내게 떨어진다.

타앗, 탓!

나는 경쾌하게 보법을 밟으며 자리를 피했다.

콰아앙!

내가 있던 자리로 떨어져 내린 그녀가 내게 손가락을 뻗어 왔다.

통나무 같은 그녀의 손가락이 내가 있던 자리를 마구 할퀴고는, 반응이 없자 내가 피한 곳을 향해 그녀가 쏘아져 왔다.

투우웅!

나는 반 보를 비틀어 피한 후, 화경으로 그녀를 떨쳐 낸 후 다시금 절벽을 향해 달렸다.

이제 절벽까지 여덟 보!

"싱싱한 신입이 도망친다!"

"잡아라!"

'충분히 도망칠 수 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더욱 빠르게 보법을 밟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

파바밧!

땅 밑에서, 수십 개의 붉은 선이 허공으로 뿜어진다.

'제길….'

푸확, 푸확, 푸확!

그리고, 땅 밑에서 수 명의 사운, 삼운 제자들이 몸을 드러낸다.

"어딜 도망치느냐…!?"

"우리만 당할 순 없다…!"

총 16인의 사형들이 내 앞길을 막아섰다.

수만은 의념의 선들이 앞을 빽빽히 메운다.

도저히 나아갈 자리가 없을 지경.

하지만, 나는 의념의 세계에 진입한 상태에서 도리어 눈을 감았다.

수십, 수백의 의념이 눈 앞을 가린다.

이 모든 공세를 피할 순 없다.

그렇다고 무형검이나 강환도 없이 반격도 힘들다.

그렇다면.

'역이용한다.'

타앗!

나는 나를 향해 뻗쳐 드는 손길 하나를 화경을 이용해, 그대로 흘리는 듯하며 공곡전성의 초식을 이용해 그대로 다른 사형에게 되쳤다.

"크억!"

부웅, 붕, 붕!

여러 개의 권각이 나를 향한다.

내 앞으로 밀려드는 다리의 힘을 받아 내, 그대로 뒤에서 달려드는 사형에게 던지고, 옆에서 뻗쳐 오는 주먹을 받아 내, 앞에서 다리를 뻗은 사형에게 흘린다.

수십 개의 의념을 읽고, 수백 합의 공격을 다른 대상에게 흘려내며, 나는 수많은 손길을 피해, 마침내 사헝과 사저들의 무리를 돌파하는 데에 성공했다.

파앗!

그리고, 나는 그대로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드디어, 빠져나왔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 할 때였다.

"…!"

쿠구구구구!

절벽에서, 흙으로 된 거대한 손이 빠져나와 나를 향해 뻗쳐 온다.

"이런 제길…."

너무 맨몸으로만 달려들길래, 순간 잊고 있었다.

이 인간들이, 원래는 수도자였다는 사실을.

하지만 당황한 것도 찰나.

나는 빠르게 상황을 분석한 후, 내게 뻗쳐 오는 흙으로 된 손을 보고 허공에서 몸을 틀며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투욱!

손길이, 내 발에 막 닿을 때였다.

'지금이다!'

나는 눈을 빛내며 손의 힘을 역이용해, 그 힘에 힘입어 더욱더 멀리 뛰어올랐다.

파아앙!

삽시간에 지도체련관의 산봉우리가 눈앞에서 멀어졌다.

지도체련관의 사형제들이, 입맛을 다시며 내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 아쉬워한다.

순식간에 지도체련관의 봉우리, 목도관, 수도관, 금도관의 봉우리가 눈앞을 지나쳤다.

그리고.

"…어?"

나는, 뭔가 불길한 감각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지도체련관에서 빠져나온 흙의 손의 힘을 역이용해 더욱더 먼 곳으로 뛰었다만, 어째 그것 때문에 내가 향하는 곳의 방향이….

'화, 화도체련관!'

내가 황급히 사실을 알아낸 후, 필사적으로 방향을 바꾸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화르르르륵!

거대한 염룡(炎龍)이 입을 벌리며, 허공에서 날아가는 나를 집어삼켰다.

콰르르르!

나는 염룡의 입에 물린 채, 그대로 어딘가로 떨어졌고, 주변에서는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빌어처먹을.'

호랑이를 피하려다, 곰 굴에 들어왔다.

"하하, 신입. 허공에서 날아다니며 우리 화도체련관으로 오고 있던데, 그건 화도장원전을 수련하겠다는 의지인 건가?"

"어이, 잠깐. 그 신입 영근 검사는 해 봤나? 화영근이 아니면 정중하게 다른 체련관에 넘기는 게 맞지!"

"흐하하, 내 염룡의 술법으로 물 때 바로 해 봤지. 이 녀석은 확실한 화영근자다!"

화르르륵!

나를 물었던 염룡이, 불꽃으로 된 포승줄로 바뀌어 나를 꽁꽁 묶었다.

쿵, 쿵, 쿵, 쿵!

내 주변으로, 몸이 시뻘겋게 달궈진 수 명의 화도체련관 사형들이 나를 둘러쌌다.

"…잘못 들어온 것 같은데, 나가게 해 주시면 안 되는지요…?"

"하하. 자, 얘들아, 통나무 하나 더 올려라, 신입 왔다!"

내 말은 딱히 수용되지 않았고, 나는 그대로 꽁꽁 묶여 화형대에 묶여 버렸다.

"자, 지금부터 화도장원전의 공법 구결을 알려 줄 테니 잘 듣거라."

"아, 알고 있습니다."

"아, 알고 있느냐? 그럼 잘 됐군. 얘들아, 신입을 구워라!"

그리고, 내 아래쪽에 쌓인 장작더미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신입, 화도장원전을 잘 운용하면 아무 문제 없을 거다. 잘해 보려무나."

동시에, 나는 불길에 휩싸였다.

* * *

화르르르륵!

나는 불길에 휩싸인 채로, 이를 악물며 화도장원전을 강제로 운용했다.

전신이 숯이 되어 가는 느낌이었지만, 화도장원전을 운용하니 어쨌든 죽지는 않을 수 있었다.

'아프다.'

미친 듯이 아팠다.

훈제 서은현이 되어 가는 느낌.

하지만, 나는 이 불길 속에서, 뭔가를 느낄 수 있었다.

'아아, 그렇군….'

지글지글지글….

지난 생.

천 년 동안 '서 장군'에 갇혀 있으면서, 느낄 일이 없었던 감각.

고통.

나는, 고통을 느끼며 뭔가를 깨달았다.

'아프다. 하지만… 아프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

'그래, 나는….'

살아 있다!

번뜩!

"후우우…."

나는 화도장원전의 구결에 맞춰 불길을 흡수하며, 이글거리는 불길 속에서 씨익 웃었다.

'너무 오랫동안, 육체적인 고통을 느낀 적이 없어 엄살을 부렸었군.'

거기에다가 시각적인 효과도 굉장한지라, 지레 당황했던 것 같다.

하지만, 과연 이 고통보다 괴로운 것이 없었는가?

'아니, 그럴 리가.'

나는 고통보다 더 괴로운 것이 있음을, 불길 속에서 고통받으며 깨달았다.

죽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누구도 구하지 못하고, 힘이 없는 상태로 무력하고 비참하게, 그렇게 눈을 감는 것.

그것이야말로 더 괴로운 것이 아닌가?

지글지글지글….

치이이이….

뜨거운 열기 속에서, 나는 도리어 냉정을 되찾았다.

'어쨌든, 강해질 수 있겠어.'

이 정도 수련 방식이라면, 더 이상 무력하게 죽지 않을 만큼.

더 이상 한심하고 비참하게 스러지지 않을 만큼, 힘을 모을 수는 있으리라.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단 말이냐….'

나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도 미치광이 괴군 밑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김연.

몇십 년 뒤 확정적으로 진선에 의해 몰살당하는 금신천뢰문과 전명훈.

서휼에게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는 오혜서.

흑색귀골곡에서 미쳐 버려, 흑색귀골곡 전체를 멸망시키는 강민희.

언젠가 죽을 창호자와, 그 이후 폐인이 되는 오현석.

모두를 구하려면.

아니, 최소한 어떻게 되어 가는 것인지 사정이라도 알아내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내숭 떨며 멍청하게 앉아만 있어서는 안 된단 말이다, 서은현!'

히죽.

나는 불길 속에서 지글거리는 고통을 느끼며, 주변에서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형과 사저들을 마주 보며 웃었다.

"사형님들, 사저님들, 선배님들…!"

아프다.

하지만, 이제야 고통 속에서 할 일이 제대로 생각난 느낌이었다.

"이게 다입니까!? 화도체련관이 화끈한 곳이라 해서 조금 기대했습니다만, 이건 뭐 미적지근해서 불을 지핀 건지 아닌지 헷갈리는군요!"

내 말에, 불을 지피던 사형들의 얼굴에 힘줄이 돋았다.

"추워서 감기가 걸릴 지경입니다! 더 때 주십시오! 사제 감기 걸립니다!"

"…하, 하하하…."

내 말에, 얼굴에 힘줄이 돋은 선배 삼, 사운 제자들이 웃기 시작했다.

"흐하하하하! 오냐, 이거 아주 걸물이 들어왔구나! 그래, 신입! 네놈이 말하는 대로 해 주마! 우리 귀염둥이 신입이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지! 이놈들아, 거기 용암 좀 퍼 와라!"

나는 숯덩이가 되어 가며 웃었다.

그래, 그동안 꼭두각시에서 인간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던지라.

너무 엄살을 부렸던 것 같다.

오늘로써 정신을 되찾았다.

이제, 내숭 떨 시간은 지났다.

강해지자!

더욱더!

* * *

어느 날부터.

창천개벽문 오행체련관에는 괴담이 돌기 시작했다.

"어이, 그 소문 들었냐? 새벽 일찍 화도체련관에 가면 한 신입이 새벽부터 묶여서 타고 있거든."

"아, 그래?"

"그런데 들어 봐. 무서운 게 뭐냐면, 아침을 먹고 금도체련관에 가면, 분명 새벽에 불에 타던 거하고 똑같이 생긴 신입이 금도체련관에서 뜯기고 있다는군."

"오오, 열심히 하는 신입 아닌가?"

"아니, 아직 얘기 안 끝났어. 이제 점심을 먹고 수도체련관을 지나던 중인데, 오전까지만 해도 금도체련관에 있던 놈이 수도체련관의 수심이 가장 깊은 곳으로 입수를 하고 있는 걸 봤단 말이지."

"허어… 체련관을 세 개나…? 그게 가능한가?"

"그러니까 말이지. 그런데 또 무서운 게 뭐냐면, 저녁을 먹고 올라가던 중에, 그 녀석과 똑같이 생긴 신입이 목도체련관에서 피격 훈련을 받고 있는 걸 봤단 말이야."

"허어…? 잘못 본 거겠지?"

"그럴 리가 있나? 그리고 이건 내가 잘못 본 건지는 모르지만, 한밤중에 지도체련관 옆을 지나던 사제 중 하나가, 내가 본 신입과 똑같이 생긴 신입이 지도체련관 땅 밑에서 올라오는 걸 봤다고 하더군…."

"그게 무슨, 혹시 다섯 쌍둥이가 창천개벽문에 동시에 입문한 건가?"

"그랬으면 신기해서라도 소문이 났겠지. 그런데 그런 소문은 없어. 한 마디로…."

"그게 다 동일인이라고?"

얘기를 나누던 두 거한은 놀라운 듯이 입을 벌렸다.

"허어, 오행체련관에서 전부 훈련을 하고 있다고? 그게 무슨 괴담이란 말인가?"

"그러니까 말이지. 보통 오행장원전 다섯 공법 중 한 공법만 대성하고, 성광호체공으로 넘어가는 게 대다수인데 말이야…."

"그 말은 그러니까, 그 신입이 오영근자라는 말 아닌가?"

"그렇다는군. 오영근자라서, 오행장원전 다섯 가지를 전부 익히려 한다는 것 같아."

"…미쳤군."

"오행장원전 다섯 가지를 전부 익히면, 말 그대로 오행(五行) 그 자체에 대해 엄청난 내성을 가지게 되겠지…. 헛, 잠시만!"

거한 중 한 명이 한곳을 가리켰다.

"저, 저 신입이야!"

"호오, 저 신입이?"

두 사람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새벽부터 산길을 오르는 한 사내를 쳐다보았다.

* * *

나는 나에 대해, 저 멀리서 떠드는 두 사형들을 흘긋 보고는 숨을 고르며 오행관을 올랐다.

오행관에서 본격적으로 수련을 시작한 지, 약 3개월이 흘렀다.

회귀한 지는 9개월 차.

나는 오행관의 정신 나간 수련법과, 광한계의 막대한 천지영기.

거기에 광한계 내에서도 썩 영맥이 모이는 창한도의 좋은 영맥들에서 수련을 하며, 어느덧 연기기 극성에 도달한 상태였다.

'오월입도경은 대성했다.'

후우….

숨을 내쉬자, 오색의 구름이 내 주변을 돌다, 내 체내로 흘러 들어왔다.

오월입도경을 대성한 후, 거기에 더해 오행장원전 역시 오행관에서 차근히 수련을 하는 중이었다.

우드득, 우득….

나는 주먹을 쥐었다 펴 보았다.

지난 3개월 전에 비해, 내 육신은 비약적으로 단단해지고 강인해져 있었다.

육신 자체의 강도만 따졌을 때는, 연기기의 몸으로 체내에 강기가 흐르는 축기기 수사의 육신 강도와 비견될 정도였으니 말이었다.

'선각후통으로 깨달은 연기기 기초법술들, 축기기 급의 육신, 거기에 오기조원의 경지까지 합하면….'

연기기 수준인 현재도 축기기 중기 수사와 한 판 겨룰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괴군의 회로로 상대의 법기를 무력화할 수 있으니….'

실질적인 전력은 괴뢰를 제하고서도 축기 후기 수준에 달할 터였다.

우득, 우드득….

나는 주먹을 쥐었다 피며 생각을 정리했다.

'모자라다.'

하지만 나는 별로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직도 고작해야 축기기 급 전력이었다.

물론, 내 성장 속도가 느린 것은 아니었다.

완벽한 조화를 갖춘 오기조원의 육신은, 육신의 강화를 빠르게 소화해 냈다.

환골탈태한 내 육신과, 연체공법의 궁합 자체가 굉장히 잘 맞았다.

창천개벽문의 사형제들 역시 내 괄목상대할 성장에 놀라는 중이었으니.

'하지만, 부족하다!'

나는 더욱더 주먹을 거세게 쥐며 오행관을 올려다보았다.

"더 빨리… 더 높이 가야 해."

이 정도로는, 아직 누구도 구할 수 없었다.

나는 굳은 결의를 다지며, 오행관을 향해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나는 그날 역시 수도체련관의 수심이 깊은 곳에서 숨을 참으며, 수압이 짙은 곳에서 검을 잡았다 치고 검술 연습을 했다.

기초를 잊지 않도록, 끊임없이 몸에 각인시킨다!

꾸구구국!

수압이 전신을 짓이기는 것 같다.

'부족하다.'

단악검법을 수련하며, 앞으로 익힐 축기기 공법들 역시 끊임없이 뇌리에서 분석하며, 선각후통의 예습을 다진다.

'부족하다!'

우우웅!

나는 그 상태에서 괴군의 기묘성심전 역시 수련하였다.

보통 한 번에 여러 공법을 수련하면 주화입마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심마(心魔)가 찾아오거나, 기혈이 꼬여 폭발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었다.

울컥!

문득 뇌리로 피가 쏠리며 머리가 지끈거렸다.

괜스레 화가 치밀어오르며, 눈앞에 있는 것들을 다 때려 부수고 싶은 폭력성이 꿈틀거렸다.

입마(入魔)의 증상.

하지만, 나는 아주 간단하게 입마를 해결했다.

퍼억!

주먹을 들어, 그대로 얼굴을 후려친다.

콰아앙!

머리에 피가 쏠리며, 폭발하려던 기혈이 그대로 터져 버렸다.

그리고 내 폐에 가득 차 있던 공기가 그대로 전부 바깥으로 나가며 위로 올라간다.

꾸르륵, 꾸륵….

주화입마?

심마?

그런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생각에 여유가 있으니 괜스레 생기는 잡것들일 뿐이었다.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목숨이 경각에 달하면, 자연스레 그런 어리석은 것들은 날아가기 마련이었다.

꾸르륵, 꾸륵….

나는 수압 속에서 공기를 내뱉으며 구조 신호를 보냈다.

촤아아악!

녹빛의 영기가 나를 향해 헤엄쳐 오더니, 내 몸을 부여잡고, 바로 물 위로 끌고 올라갔다.

얼마 후.

"푸학!"

나는 달달하게 느껴지는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정신을 차렸다.

우우웅!

목영근을 가진 사형 중 한 명이 내 머리에 손을 올리고 상처를 치료해 주는 중이었다.

"아, 사형. 감사합니다."

"그래, 뭐… 열심히 하는 건 좋다만, 최근에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그 무지막지한 오행관의 사형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올 정도로, 현재 나는 미친 듯이 수련하고 있었다.

"뭐든지 너무 급하게 하려고 하면 탈이 난다. 적절히 조절해 가면서 해라."

오운, 사운 제자들의 발에 돌을 매달아 물 밑으로 던져 버리는 사람이 하는 얘기치고는 참 따스한 얘기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은 그에게 알겠다고 하였다.

"자, 치료가 다 끝났다."

"감사합니다."

나는 감사 인사를 한 후, 바로 다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저 수면 위로, 살짝 질린 듯한 표정을 짓는 사형의 표정이 보였다.

나는 그의 표정을 흘긋 본 후.

깊은 심연을 향해 내려갔다.

우웅!

나는 수월입도경을 운용하며, 일단 잠시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게 영기를 운용했다.

"후우…."

물속에서 숨을 쉰다는 게 웃겨 보였지만, 의외로 수계공법을 익힌 이는 그런 짓도 가능하고는 했다.

폐활량 수련에는 도움이 안 됐기에 지양하고 있었지만, 나는 결인을 맺으며 입을 열었다.

"저물도(貯物圖), 개방."

우웅!

내 허리춤에 매여져 있던 두루마리가 허공으로 떠오르며, 내 옆에서 펼쳐졌다.

지난번 서령문 장로에게서 얻었던, 이 두루마리 형태의 저물법기는 통칭 '저물도'라고 불리는 저물법기의 일종이었다.

나는 저물도에서 지난번 서령문 장로에게서 빼앗은 옥패를 꺼내 들었다.

옥패에는 광한계 언어로 공법 구결이 적혀져 있었다.

공법의 이름은 '삼령공'으로, 자신의 분신을 세 조각 만들어, 안전한 곳에 보관해 두었다가 본체가 위험에 처해 수행을 전부 잃었을 시.

분신을 통해 수행을 되찾을 수 있는 공법이었다.

수시로 본인의 육신을 잃는 원영기 이상 수도자들이 쓸 만한 공법 같았다.

특이사항으로는, 분신을 만드는 것은 세 개가 최대고, 그 이상 분신을 만들면 점차 분신의 수행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차후에 수행이 떨어지는 분신으로 수행을 되찾으려 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 같았다.

그와 반대로, 분신을 세 체 이상이 아닌 단 한 체만 만든다면 그 위력은 본체와 다를 바가 없이 강력하다고 하였다.

'한 마디로, 분신을 만들어 목숨의 안전과 차후 수행을 잃을 때를 위한 보험을 둠과 동시에, 분신을 공격용으로도 쓰는 공법인 거군.'

썩 쓸 만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삼령공을 다시 한번 읽어 볼 때였다.

'잠깐.'

나는 삼령공의 구결을 쳐다본 후, 영기를 이용해 물속에 '군마용갱권'의 구결을 적어 내렸다.

그리고 나는 황급히 둘의 구결을 비교해 보았다.

'…잠깐, 이 공법들….'

나는 두 구결을 동시에 읽으며 뭔가를 알아챘다.

창천개벽문(蒼天開闢門) (5)

나는 두 구결을 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서로가 서로를 보완할 수 있겠어.'

군마용갱권의 공법.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법보, 혹은 법기를 구한 후.

그 법보와 서로 긴밀하게 의식을 연동한다.

그리고 그 의식의 연동을 통하여, 천천히 법보의 영성을 자극해 법보의 기령(器靈)을 형성한다.

생성되는 기령은 사용자가 인상 깊었던 대상으로 형성할 수 있으며, 사용자가 대상을 이해하는 만큼 기령은 법보의 힘을 써서 그 대상의 힘을 어느 정도 흉내 내는 게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그렇게 형성되는 기령의 형상은 사용자를 제외한 타인에게는 제대로 보이지 않고, 그저 희뿌연 안개의 형상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하는 기령의 개수에는 딱히 제한이 없었다. 그렇게 기령을 쌓고, 쌓고, 또 쌓아서 법보를 강화시키며 동시에 법보의 영성을 쌓아 만든 기령의 기운을 끌어모아, 천천히 경지를 올릴 수 있는 공법이었다.

이렇게 수많은 기령을 만들어 부리는 공법이고, 그 기령은 타인의 눈에는 희뿌옇게 보일 뿐이니.

공법을 익힌 이는 법보를 사용할 때마다 주변의 수많은 기령들이 나타나 마치 군마(群魔)를 부리며, 그가 지닌 법보는 수천의 기이한 군마를 담아내는 용갱(俑坑)이나 다름없다는 뜻에서 공법 자체가 세인들에 의해 '군마용갱권'이라는 이름이 붙었던 것이었다.

'안 그래도, 원래 흑색귀골곡의 공법이었는데, 흑색귀골곡의 사람들은 귀도공법을 주로 익히니….'

그들이 가진 법보도, 그들이 의식을 연계하며 만들어 내는 기령들도, 전부 귀기와 마기를 흩뿌리고 있었을 터였다.

괜히 '군마(群魔)'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니었다.

'마도인이 아니라, 그냥 정도공법을 익힌 이가 군마용갱권으로 기령을 형성하면, 군마용갱권이 아닌 군령용형권(群靈俑形券)으로 불려도 괜찮을 것 같군.'

물론 그런 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군마용갱권은 축기기부터 시작해, 종래에는 수많은 기령들로 혼(魂)을 자극하여 원영(元靈)의 경지에 도달할 수도 있는 공법이었으며.

무엇보다 내가 눈여겨보는 점은 바로 그 원영에 도달하는 방법을 기술해 놓은 구간이었다.

'수 개의 기령을 형성한 다음, 그 기령을 한데 모아서 단 하나의 강력한 기령을 형성한 다음, 그 기령으로 하여금 혼을 자극시키는 방법.'

한 마디로, 수백 개의 기령을 하나로 합칠 수가 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한 점이었다.

나는 삼령공의 구결을 읽어 보았다.

세 개의 분신을 만들어 내, 추후에 부활을 도모하는 공법서.

나는 두 개의 공법 구결을 읽으며, 삼령공의 '분신'과 군마용갱권의 '기령'을 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되면, 3개 이하로만 분신을 생성할 수 있다는 삼령공의 약점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

3개 이상으로 분신을 생성해서 분신의 위력이 약해져도, 기령은 결국 다시 합쳐질 수 있으니 군마용갱권의 요결을 이용해서 필요할 때에 다시 합쳐 버리면 끝이다.

한 마디로, 생존력은 생존력대로 높아지고 전투력은 전투력대로 이상이 없다는 말이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기대가 되는 부분은 다른 부분이었다.

'수행을 저장해 놓고 부활할 때에 분신의 도움을 받는 삼령공과, 법보의 기령을 만드는 군마용갱권을 잘 합치면, 어쩌면….'

나는 체내에 들어 있는 무색유리검을 떠올렸다.

'어쩌면, 무색유리검 자체에 두 공법으로 수행을 저장해서, 다음 생에도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만 되어도 어마어마한 소득이었다.

나는 얼마간 고민한 후, 우선 두 공법을 익혀 보기로 했다.

'일단, 축기기부터 들어가야겠지.'

연기기 극성인 지금 수준에서, 천겁만 맞지 않고 있는 게 딱 지금의 내 상황이었다.

천거 현상까지는 지난번에 양산형 서 장군으로 뚫었지만, 천겁까지 내리치면 천겁을 파훼하는 거야 둘째치고 이목이 끌릴 수 있기에 조금 걱정했었다.

하지만 최근 생각해 보니, 오현석 차장이 축기기에 갈 때 역시 천겁이 내리칠 확률이 매우 높았으니, 그때 그와 같이 축기기에 이르면 그만인 듯싶었다.

'좋아, 일단 그렇게 하기로 하고….'

우드득….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정리하고, 우선 다시금 수심 깊은 곳에서 수도장원전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 * *

저벅, 저벅….

늦은 밤.

창천개벽문의 숙소.

그곳으로, 몸에서 김이 잔뜩 솟아오르는 인영이 돌아왔다.

쉬이이이….

나는 내 전신에서 뿜어지는 열기를 보며, 머리를 흔들었다.

투둑, 툭….

머리에 조금 묻어 있던 용암 덩어리가 사방으로 튀겼다.

'화도체련관은 늘 뜨겁군.'

아침에 가나 밤에 가나 아무 차이도 없었다.

창천개벽문은 오직 연체, 연체만을 숭앙하는 문파이며, 그렇기에 오행관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물론 오행관의 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오행장원전 이외의 다른 공법을 익힌다면 굳이 오행관에 갈 필요는 없었다.

문제는, 오행장원전 이외에 다른 공법을 익히려면 장서각에 있는 '사서'와 팔씨름을 해서 이겨야 한다는 것이고.

'사서'와 팔씨름을 해서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면, 그 시점에선 이미 오행관의 수련을 짜릿하다고 여겨질 만큼 사람이 망가져 버리기 때문에 장서각에 있는 다른 공법들이 큰 의미가 없었다.

때문에 오행관은 늘 사람들로 붐볐으나, 최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오행관을 드나드는 나에게 자극을 받은 삼운, 이운 제자들이 더더욱 오행관에 많이 드나들며, 그 덕에 아예 오행관에 자리가 없을 때조차 있었다.

오늘 역시, 원래는 칠 주야 정도는 숙소에 돌아오지 않으려 했지만 오행관에 사형들이 가득 차서 자리가 없을 정도였기에 어쩔 수 없이 돌아온 것이었다.

"후우…."

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잘 있었나, 원유(援痏)."

원립의 혈체, 내가 원유(援痏)라고 이름 붙인 녀석이 붉은 장포를 입고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왔다.

원립(援)이 남긴 흔적(痏)이라는 뜻에서 원유라는 이름을 받은 녀석은, 내 숙소에 머무르며 숙소를 청소하고, 광한계의 천지영기를 이용하여 수행을 회복하고 있었다.

현재는 결단 최고봉인 수행 경지를 거의 회복한 상태였다.

나는 원유를 움직여, 유리로 된 상자를 가져오게 했다.

달각.

원유는 유리로 된 상자를 가져와 내 앞에 내려놓았다.

유리 상자 안쪽에는, 작은 사육장 안에서 어느새 검지손가락 크기로 성장한 지네 한 마리가 먹이로 제공된 사충환(飼蟲丸)을 먹고 있었다.

꿈틀, 꿈틀….

아직 지성이 없는 녀석인지라, 내가 저를 보고 있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잘 먹고 잘 크거라."

비록 이 생애에 영성을 얻어 요수가 되지 못할지라도, 어쨌든 지난 삶에서 은혜를 입었으니 잊을 생각은 없었다.

어쨌든 광한계의 막대한 영기에 의해 본래 수명보다는 조금 오래 살 터였다.

나는 곤충용 단약으로 제작된 사충환을 한 알 더 꺼내서 녀석의 앞에 놓아 준 후 원유를 시켜 다시 유리 상자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최근, 천거 현상이 한 번 더 일어났지.'

내가 연기기 칠성제를 끝마치고 그동안 해가 쨍쨍했던 창천개벽문의 영토였다.

그러나 최근, 창천개벽문의 한구석이 먹장구름에 잠시 뒤덮였었다.

물론 금세 아래쪽에서 올라온 뭔가에 의해 뚫려 버렸지만.

'천거 현상이 일어난 것을 보면, 오현석 차장님 역시 연기기 칠성제는 끝마쳤다는 뜻.'

그 말은 곧.

'축기기에 들어갈 적정한 시기가 찾아온다는 거지.'

괜스레 내가 먼저 창호자에게 내가 천거 현상을 달고 있어서 경지를 올릴 때마다 천겁이 내리친다는 걸 설명할 필요 없이, 오현석 차장으로 먼저 알게 하는 게 여러모로 귀찮음을 덜 수 있을 터였다.

꾸국….

나는 주먹을 쥐었다 펴 보았다.

'천겁을, 버틸 수 있을까.'

사실 원영기 서 장군이나, 혹은 내 것이나 다름없는 원유를 이용하면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지만, 나는 이번에 내가 단련한 육신으로 천겁을 극복할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솔직히 그동안 그 개고생을 하면서 오행관에서 오행장원전을 익혔는데, 천겁을 막기 힘들면 그것도 허탈할 것 같았다.

'우선 내 지금 전력은, 순수하게 위력만 따졌을 때는 축기 중기 수준이다.'

축기 중기 수준으로 결단기 수사가 아니라면 막기도 힘든 천겁을 막아 내기는 요원했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해.'

단순히 오기로 내 육신을 시험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무형검을 이대로 썩히고만 있을 수는 없다.'

심족의 첩자로 의심받을 수 있기에 그동안 한 번도 쓰지를 못했다.

하지만 내 삶의 일부이자, 내 정체성이나 다름없는 무형검을 못 쓴다는 사실은 내게 심리적으로 상당한 압박감을 주었다.

창호자에게 무형검이 무공이라고 설명해 봤자, 믿을 리도 없었다.

삼화취정의 경지에 이른 창호자인 만큼, 무림인들의 한계에 대해 더욱더 잘 알고 있을 테니 헛소리하지 말라고 두들겨 맞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물론 창호자는 심족 공법을 모를 테니, 그냥 특이한 공법이라고 속이고 무형검을 익히는 것 역시 어리석은 짓이었다.

'창한도에는, 인족 총령이라는 자가 있지.'

각 천공도에는 총령이라고 불리는, 인족 총연맹에서 파견한 사자들이 한 명씩 주둔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각 천공도에서 수상한 일이 일어나지 못하게, 특수한 대법을 사용해 천공도 전역을 주시한다고 하였다.

물론 범위가 범위인 만큼 그 정밀도는 형편없는 수준이라고 했으나, 그래도 대략적으로 창한도 전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있다는 듯했다.

'아무리 총령의 술법이 정밀도가 낮다고 해도, 그자에게 무형검을 쓰는 모습을 들키기라도 하면….'

끝장이다.

총령의 경지는 전해 듣기로 최소 천인기 최고봉.

사축기에 발을 걸친 이라고 전해 들었다.

'…재료를 모아 천천히 제작을 시도 중인, 진본 서 장군이 완성되기 전에는 경거망동할 수 없어.'

나는 지하실로 시선을 돌렸다.

지하실에는 내가 비싼 재료를 모아 천천히 제작을 시도 중인, 내 지난 생의 몸뚱이.

진본 서 장군이 제작되고 있었다.

다만 괴군이 나를 서 장군으로 개조하며 썼던 재료들은 말 그대로 정신 나갈 정도로 값비싼 재료들이었는지라, 쉽게 쉽게 서 장군을 제대로 만들 수는 없었고.

지금은 틀이나 다지는 정도가 한계였다.

그런 이유로, 나는 무형검을 꺼내지 않고도 무형검을 쓰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위해 이번 천겁을 맨몸으로 맞기로 한 것이었다.

'체내에서 무형검을 생성해, 바로 월도답천에 이른다면, 어쩌면 무형검이 들키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체내에서 무형검 자체로 월수궁무록을 펼치면 무형검의 기운을 들키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은식술이나 기묘성심전을 응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연체공법에 무형검을 섞으면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은가.'

나는 무형검 그 자체에 대해 참오하며, 끊임없이 고민했다.

꾸욱….

아마 오현석의 재능 역시 신화적인 재능이라고 여러 사람들이 말했던 것처럼.

그가 축기기에 오르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을 터였다.

'그 안에, 무형검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법을 찾자.'

나는 무형검을 심상 안쪽에 띄워 올리며 눈을 감았다.

* * *

다시금 시간은 흘러, 3개월이 더 지났다.

회귀한 지 딱 1년이 되는 시점.

"흐하하, 이보게, 서 대리. 굉장히 오랜만이구만."

"…오, 차장님?"

나는 어느새, 창호자와 키가 똑같아진 오현석 차장을 볼 수 있었다.

쉬이이이….

그는 창호자와 비슷하게 웃통을 벗고 있었으며, 그의 근육은 마치 조각상처럼 선명해진 채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1년 만에 그 역시 연기기 극성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스승님께 지난 1년간 특훈을 받은 결과, 나름 이 세계에 대해 배우고, 또 육신을 단련하며 수도공법을 수련했다네. 자네는 어떤가, 조금 이 세계에 익숙은 해졌나?"

그는 창호자와 비슷하게 호탕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친근하게 두들겼다.

"아, 예. 이 세계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는 했습니다만…."

"좋아, 좋아.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다른 동료들 역시 각 종문에 가서 수련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안심이 되더군."

"…그러게 말입니다."

"걱정되는 건 그 하계? 그런 곳에 홀로 떨어졌다는 부장님이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뭐…."

"아마 그분이라면 잘 계실 겁니다."

지금쯤이면 내가 준 무학의 정보들을 바탕으로 오기조원이나 등봉조극 쯤 뚫지 않았을까.

"그랬으면 좋겠군. 어쨌든, 스승님이 말씀하시길, 이제 앞으로 축기기에 이르면 나도 자네도 같이 수련을 진행한다는 것 같더군."

"…."

오행관만으로도 꽤 무시무시했는데, 과연 창호자가 직접 내려 주는 수련은 어떨지.

떨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대도 되는 듯했다.

"그나저나 자네 역시 연기기 극성에 이른 것 같은데, 스승님께서 날을 잡아 축기기에 이르는 것을 보자고 하셨는데, 어때. 자네도 어쨌든 스승님의 직전제자이니 같이 축기기에 올라보겠나?"

그의 물음에, 나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지요."

지금껏,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형검에 대해 참오하며 얻은 깨달음을 시험해 볼 때였다.

며칠 후.

나는 오현석 차장과 함께 창호자의 앞으로 불려갔다.

축기기에 이를 시간이었다.

* * *

"둘 모두, 훌륭하게 공법을 익혀 냈구나. 특히나 오현석은 내 집중 지도가 있어서 이렇게 빨리 성장했다지만, 서은현 너는 신경 써 주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오행관을 찾아가 불철주야 수련했다 하니, 스승으로서 미안하기만 하구나."

창호자는 내가 대견하단 듯 솥뚜껑만 한 손바닥으로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순간 어깨가 빠질 것 같았지만, 다행히 힘을 주자 버틸 수 있었다.

"너희 둘 모두 동시에 축기기에 이르는 것을 내가 지켜봐 주마. 그리고 축기에 이른 후부터는, 둘 모두를 내가 신경 쓰며 집중 지도를 해 주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서은현 네게는 지금까지 신경 쓰지 못해 주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집중 지도'라는 말에 오현석은 흠칫 몸을 떨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창호자의 집중 지도 역시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자, 그럼. 이 앞에 있는 영맥으로 나오너라. 축기기에 이르는 것을 보자꾸나."

창호자는 껄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혹시나 싶어 창호자에게 물었다.

"스승님, 혹여 축기단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까?"

"음? 그런 것은 왜 묻지?"

"아, 저는 사실 축기단보다는, 제가 지금껏 수련해 온 제 수행을 더 믿고 싶었기에, 혹여나 축기단을 주실 생각이라면…."

"아니, 창천개벽문에 들어왔으면서도 그런 것도 몰랐다는 말이냐?"

내 말에, 창호자는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본문은 약을 먹어서 수행을 돌파하는, 그런 흘러빠진 짓 따위는 취급하지 않는다. 축기기에 이르지 못했으면 수행이 부족하다는 것이니, 오행체련관 가장 깊숙한 곳에 연기기 극성에 이른 녀석들을 1년 정도만 던져 두면 다들 살고 싶어서라도 알아서 축기기에 오르더군."

"…."

"나 역시 축기단 같은 흘러빠진 것 따위는 먹지 않고 지금 이 육신을 가꿨다는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가졌는데, 너 역시 같은 생각이라니. 이 사부는 매우 흡족하구나."

쾅, 쾅!

창호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내 등을 두들겨 주었고, 나는 피를 토할 뻔한 것을 겨우 참으며 웃어 보였다.

"자, 그럼 제자들아.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내가 도와줄 테니, 이제 축기를 시작해라!"

우리는 창호자의 명에 따라 각자 영맥 위에 앉았다.

"후우우…."

나는 내가 익혀 온 공법들의 영기의 구름을 내뱉었다.

주변으로 구름이 회전하고, 저 멀리, 하늘에 이상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반개하며, 내가 지금껏 벼려 왔던 무형검을 운용해 보기 시작했다.

'사축기 수도자인 창호자의 면전.'

만약 그의 눈앞에서도 들키지 않는다면, 앞으로 대략적으로밖에 창한도를 감시하지 못하는 총령의 눈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터였다.

우우웅!

전신에 예기(銳氣)가 서리기 시작하였다.

스승의 은혜 (1)

"음?"

창호자는 서은현을 보며 눈에 이채를 띄었다.

서은현의 몸에서부터, 기이한 기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창천개벽문의 연체공법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

물론 창호자로서는 출처 자체는 별 의심은 하지 않았다.

애당초 연기기도 되지 못한 몸으로 혼자서 비승을 한 녀석.

뭔가 그로서도 모를 기이한 공법을 익히거나, 특수한 능력이 있을 수도 있었으니까.

'음?'

그러나, 창호자는 순간 서은현에게서 섬뜩한 기운을 느꼈다.

꿈에서도 만나기 싫었던 기운이, 얼핏 그에게서 느껴진다.

'괴군!?'

창호자는 흠칫 몸을 떨었다.

분명, 서은현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괴군의 괴뢰들에게서 느꼈던 것과 비슷했다.

'분명 지난번에도 괴군에게 이상한 말을 했지…. 괴군의 첩자? 아니, 그럴 리 없어. 그 미치광이에게 첩자 같은 걸 보낼 이성이 남아 있을 리는 없으니….'

스르르….

그러나 창호자가 더 의심을 이어 나가기도 전.

서은현에게서 느껴졌던 기이한 기운은 다시 사그라들었다.

'…착각이겠지.'

쿠구구구구!

서은현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분명한 연체공법의 힘! 그는 고개를 저으며, 서은현을 바라보았다.

'아니, 설령 진짜 괴군의 공법을 익히거나 했으면 또 어떠한가.'

어차피 이미 자신의 아래에 든 한 사람의 제자였다.

스스로의 입으로 제자로 받겠다 하였으니, 스승 된 이로서 제자를 믿고 지켜보는 것 역시 필요했다.

창호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축기기에 오르는 두 제자를 바라보았다.

* * *

우우웅!

기(氣)를 조종하며, 정신을 도야시키기 시작했다.

시작은 아무것도 없는 무(無).

그곳에서부터, 삼류 무인 시절.

처음으로 검을 쥐었던 때를 떠올렸다.

나는 이 순간 삼류 무인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계속해서 허무밖에 없었던 나는 더욱더 도야하였다.

삼류 무인에서 이류 무인으로.

이류 무인에서 일류 무인으로.

'절정경에, 이른다!'

파아아앗!

정신이 도야하며, 나는 절정경에 이르렀다.

절정 다음은 삼화취정.

파아앗!

정신이 각성되며 시야에 수많은 의념들이 잡히기 시작했다.

'오기조원에 이른다.'

의념들이 얽히고설키며, 마침내 하나로 통합되어 의식 영역을 이뤄 냈다.

경지가 낮았던 시절에는 오기조원에 이르러 의식 영역을 만들면, 의념의 선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창호자와 대련하고 사형제들에게서 몇 번 도망쳐 본 후 깨달았다.

의식 영역을 만든 후부터는 의식 영역 자체로 상대의 움직임을 그대로 읽어 낸다고 생각했지만.

그 움직임을 '읽어 내는' 방법 자체는 의념의 선으로도 가능하며.

오히려 의식 영역은 전장 파악, 혹은 법술 준비에 쓰고, 순수하게 전투 중에는 의념의 선을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었다.

아마 창호자 역시 이런 사실을 전투로 체화하며 깨달았기에 의념의 선을 전투에 잘 활용했던 것일 터였다.

어차피 나도 상대도 둘 다 의식 영역을 가지고 있다면, 전투 중에는 더욱더 많은 것을 시야에 담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니.

수많은 의념의 선들 사이로, 내게 최적화된 경로.

상대에게 최적화된 경로가, 의식 영역 안쪽에서 유난히 또렷하게 보였다.

통합된 의식 영역을 의념의 수준으로 잘게 해체하여 따로 시야에 담는다.

수많은 의념이 온 세상을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괴군의 기묘성심전의 입장으로 냉철하게 의념들을 분석하였다.

의념이 가진 힘들이, 그 생각과 마음들이 천지영기에 영향을 미치는 미약한 반응들이, 기묘성심전의 앞에서 분석된다.

그리고, 나는 내게서 뿜어지는 의념, 주변에서 뿜어지는 의념을 분석하며 등봉조극에 이르기 시작했다.

우우웅!

체내.

단전 안쪽에서, 체내에서 강환이 생성된다.

하지만 강환은 체외로 배출되지 않고, 단전 안쪽에서 스러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평소와 같이 무형검으로 변하지도 않았다.

기묘성심전에 의해, 강환은 내 체내 곳곳에 [괴군의 회로]로 흩어져 깔리기 시작한다.

무형검으로 드러나기 전에, 내 의지로 강환의 기운을 전신에 회로처럼 깐다.

본래 괴뢰에게 까는 회로를 인간의 몸에 깐다면, 상당한 부하를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괴군은 멀쩡한 인간을 괴뢰로 개조해서 부하를 받아도 상관이 없게 만든 것이었고.

그러나, [지금]의 내 육신이라면 괜찮았다.

우득, 우드드득!

전신이 일순간 법보와 같은 기운을 내뱉었다.

나는 그 상태에서, 강환을 으깨서 깔아 놓은 회로에 연체공법으로 쌓은 영기를 회로에 불어넣었다.

쿠구구구구!

회로를 통해, 일반적인 연체술사와 같은 기세가 뿜어졌다.

'아직이다.'

동시에, 나는 기묘성심전을 통해 분석해 놓은 의념들의 결을 따라, 그 의념들을 회로에 자연스럽게 불어넣었다.

동시에 월수궁무록을 사용해, 의념의 흐름이 내게 향해도 누구도 이상한 점을 알아채지 못하게 했다.

무학(武學), 괴뢰술(傀儡術), 연체술(練體術).

세 가지를 전부 익힌 내가 아니라면 누구도 시도할 수 없는, 세 분야의 통합!

나는, 살아 있는 상태 그대로 내 몸에 생체괴뢰의 회로를 깐 것이었다.

'사축기 시절의 깨달음은 없다.'

당연했다.

그때의 [서 장군]은 법보나 다름없었으니까.

신외지물이나 다름없는 것을 천 년이나 다루었다 한들, 결국은 신외지물.

그것에서 어떠한 경지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천 년이나 다루었다면, 그 신외지물의 원리 자체는 꿸 수밖에 없지.'

우우웅!

괴군의 회로가 어떻게 더 큰 힘을 냈는지.

어떻게 작은 힘으로 큰 위력을 냈는지.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쿠구구구!

회로를 통해, 몸의 기운이 급격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사축기 급은 무리다.

하지만.

'축기 중기였던 전력이….'

축기기 극성까지 치닫는다!

여기까지가 괴뢰술, 연체술, 그리고 '등봉조극'의 경지를 이용해 닿을 수 있는 단계.

하지만 나는 여기서, 누구도 의심하지 않게 월도입천에 이르러야 한다.

'강환을 만들자마자 체내에서 으스러뜨려 회로로 변형시켰다.'

회로에는 현재 연체공법의 기운이 흘렀고, 그렇기에 겉으로 보기에는 연체공법이나 다름이 없는 상황.

'무공이라는 걸 들키지 않고… 월도입천에, 이른다!'

쿠구구구구!

전신에 예기(銳氣)가 서리기 시작했다.

강환을 으깨 만든 회로가 무형검화 되는 과정.

하지만, 무형검은 여전히 괴군의 회로의 형태를 띄었고, 그 안쪽으로 연체공법의 힘이 맴돌고 있었다.

거기에 괴군의 회로로 힘을 증폭시키고 있었기에, 무형검 자체의 특질은 연체공법의 힘에 아예 묻혀 버린 상황이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나는 조심스럽게, 월도답천에 이르기 시작했다.

회귀 직후에는 들키지 않게 월도답천의 경지를 숨기고 있었고, 그 이후로도 혹시라도 들킬까 싶어 몸의 상태를 답천에 이르게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

우우우우웅!

'오늘, 다시 한번 그 상태에 이를 수 있겠어.'

어쩌면 앞으로도 걱정 없이 쭈욱 가능할 것이다.

전신에서 빛이 끓어오르고, 천지간의 빛이 내게 쏠리는 듯했다.

전신에서 오행장원전의 힘이, 무형검으로 만든 괴군의 회로에 의해 끊임없이 증폭되어 폭사된다.

스릉!

그리고, 그렇게 폭사되는 힘의 형태가, 내 의지에 의해 가라앉았다.

그와 동시에, 힘이 마치 검(劍)과도 같은 형을 취하였다.

마치 오채색의 검(劍)이 내 몸을 뒤덮은 듯한 모습.

마침내.

'월도답천의 상태에, 이르렀다!'

키이이잉!

겉보기에는 굉장히 화려했지만, 오히려 무형검이 주는 그 특유의 의식과 합쳐진 기질이 주는 느낌은 연체공법의 힘 안쪽으로 가려져 버렸다.

나는 그 상태에서, 단전 안을 회전하는 영기의 구름을 모아, 단전에 별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쿠구구구구!

단전에 오색찬란한 별이 만들어졌다.

천기가 변화하며, 내 수명이 늘어나려 한다.

그와 동시에, 하늘의 먹장구름이 더더욱 짙어지며 푸른 섬광을 언뜻언뜻 뿜기 시작했다.

"하아아아압!"

옆에서 오현석 차장이 기합을 지르며, 축기에 이른다.

그와 동시에, 내 옆으로 청뢰가 떨어지며 그를 내리꽂았다.

쿠구구구구!

하지만.

"이까짓 정전기, 스승님의 손길에 비할쏘냐!"

오현석 차장은 주먹에 기(氣)를 모으더니, 그대로 하늘을 향해 내질렀다.

콰아아앙!

그의 손에서 뿜어진 푸른 섬광이 청뢰를 터트려 버리고 그대로 하늘로 날아가, 뇌운을 뚫어 버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더는 망설이지 않고 축기에 완전히 올랐다.

수명이 완전히 변화하며, 천뢰가 나를 향해 내리꽂힌다.

그리고, 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번쩍!

나 역시 주먹이었다.

내 주먹으로 모인 오채색의 빛이, 천뢰를 향해 쏘아진다.

하지만, 오채색의 빛은 오현석 차장의 것처럼 천뢰를 부수지 않고, 베어 내며 하늘로 전진하였다.

그리고.

촤아아악!

천뢰와 먹장구름이 내 주먹에 그대로 베여 나가며, 하늘에 거대한 검흔(劍痕)을 새겼다.

"후우우…."

나는 구름 너머로 보이는 천기를 읽으며 미소를 지었다.

이전처럼 무형검의 힘으로, 상대를 투과하여 베고자 하는 것만 베는 건 불가능했다.

월도답천의 힘을 제대로 드러낸다면 가능하지만, 월도답천을 연체술과 괴군의 회로 안쪽에 숨겨 놓은 지금 상태에서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쿠구구구!

오현석 차장이 주먹을 뻗은 곳의 허공은 그저 청명한 반면, 내가 올려 벤 곳의 허공은 어쩐지 일렁인다.

원영기 급의 일격!

그랬다.

나는 연체술과 무학, 그리고 괴군의 회로를 내 몸에 무형검으로 새기는 방식을 통해.

일순간 원영기 급에 해당하는 일격을 날리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었다.

나는 하늘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지난 생애에 칠성제를 지내며 알아낸, 월도답천이 주는 수명.

'월도답천에 이르면, 수명이 49년 늘어나는군.'

천기를 직접적으로 바꾸는 수도공법이나,

생명력을 극대화해서 천기를 간접적으로 바꾸는 요수공법에 비해.

무공 그 자체는 천기를 바꾸거나 생명력을 극대화하는 부분은 없었다.

아니, 어느 정도 건강하고 활발하게는 만들어 주지만, 그것이 천기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

도리어 무공이 이만큼씩이나 강해졌기에 부가 효과인 생명력의 증가가 필요 이상으로 강해져, 천기가 조금 변한 것일 터였다.

아마 하계에 있을 김영훈 역시 답천에 도달할 터고, 50여 년의 수명 증가는 있을 터였다.

거기에 장생과 역시 한두 알 먹을 테니, 못해도 250년 이상은 수명이 증가할 터였고.

월도답천 위쪽의 경지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수명이 조금은 더 늘어날 터였다.

지난 생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월도답천의 경지를 참오하며 이렇게 따로 생각할 기회는 별로 없었던 것 같았다.

김영훈에게 있어, 250년의 시간은 과연 충분할까.

지난 생에는 1000년이 지났어도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물론, 광한계의 공적 취급을 받는 괴군의 괴뢰인 몸이었으니 제대로 정보 수급이 될 리는 없었고.

승천문이 천 년마다 정확히 딱딱 열리는 것은 아니었으니 혹시 또 몰랐다.

'아마, 그라면 시간만 있다면 충분히 극한에 도달할 수 있겠지.'

다른 동료들은 충분히 걱정해 줄 수 있지만.

그라면 더 걱정할 필요조차 없다.

나는 몸의 기운을 갈무리하며 생각했다.

'월도답천을 괴군의 회로와 연체공법으로 가리며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계위를 넘나드는 공격은 월도답천을 더더욱 드러내지 않으면 불가능하니 쓸 수 없지만, 일신의 무력 자체는 원영기 급이 되었어.'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이제, 슬슬 종문의 임무를 맡아, 다른 동료들을 만나러 가 볼 수는 있을….'

그리고, 상념에 빠져 있을 때였다.

콰아아앙!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붉은 의념이 내 얼굴에 내리꽂히더니.

피할 틈도 주지 않고 솥뚜껑만 한 주먹이 내 얼굴을 가격했다.

"크어어어억!"

나는 피를 토하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피한다든가, 반응을 한다든가 할 틈새도 없을 정도로 빠른 일격!

그리고, 창호자의 호탕한 목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쿠구구구구!

[자, 이제 축기기가 됐으면 명줄이 다들 조금 질겨졌을 테니, '제대로' 훈련을 해 보자꾸나, 제자들아!]

빠르게 얼굴에 묻은 피를 떨쳐 내고 보니, 어느새 오현석 차장 역시 저 멀리서 날아가고 있었다.

부웅!

그와 동시에, 축기기에 이른 몸을 점검한 틈새도 없이 내 위로 창호자가 떠올랐다.

그는 양손으로 깍지를 낀 채로, 양 주먹을 높이 들었다가 내 배를 향해 내리쳤다.

[신나는 훈련 시간이다!]

창호자의 의념과 그의 심상을 읽어 내며, 그의 의념의 소리가 들려왔다.

―축기기쯤 됐으면 마음 놓고 패도 안 죽겠지!?

"잠…."

콰아아앙!

스승의 은혜 (2)

오현석은 번뜩 눈을 떴다.

"허억! 헉!"

너무 아파서, 순간 기절했던 것 같았다.

'바, 방금 뭐였지?'

순간 그의 스승인 창호자가 앞에 나타나, 주먹을 들어 올렸던 것이 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아, 그런가.'

오현석은 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대련하다가 기절한 것이었다.

펑볌할 것도 없었다.

늘 평소에 하던 식의 대련이었으니까.

'…그런데 뭔가 이상하군.'

하지만 그는 기묘한 기시감에 머리를 갸웃했다.

지금쯤이면 분명, 창호자가 다시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그의 앞에 나타나, 오현석을 다진 고기로 만들어 놓고 있어야 했다.

콰과과과광!

그때, 저 멀리.

수련장 한쪽의 산봉우리가 무너지는 것이 보였다.

산 위로 푸른 빛살과 하얀 빛살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흰 빛살은 푸른 빛살을 피해 안간힘을 다해 도망치는 듯했다.

'아, 그랬군.'

오현석은 다시금 방금 전의 상황이 이해가 갔다.

'서은현이랑 함께 축기기에 오르고 난 직후였지?'

분명 그랬다.

서은현과 함께 축기에 막 오르고 난 직후.

그의 스승인 창호자가 싱글벙글 웃으며 축기기에 오른 기념으로 대련하자고 해서, 실컷 두들겨 맞고 기절했었다.

'휴우, 정말 무시무시한 일격이었지.'

상상만 해도 몸이 오싹해졌다.

하지만 그는 저 멀리 산봉우리를 무너뜨리고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두 빛 덩이를 보며 눈을 빛냈다.

"그나저나 서은현이 저거, 어떻게 스승님 밑에서 저 정도로 버티고 있는 거지?"

이 세상은 이미 익숙해졌다.

언어도 완벽히 익혔고, 문화와 별자리.

그리고 수도공법이라는, 이 무협지에 나올 것 같은 기이한 주술 같은 것들 역시 진즉 익숙해졌다.

연기기니, 축기기니 하는 경지들 역시 이해한 지 오래였다.

그러나, 오히려 이해했기에 오현석은 이해할 수 없었다.

"저 녀석, 방금 나랑 같이 축기에 올랐던 게 아니었나?"

쿠구구구!

다시금 저 멀리 산봉우리 하나가 또 무너졌다.

쿠구구구!

하얀 빛살 속에 있던 인영이, 푸른 빛살을 향해 손을 뻗자.

거기에서 나온 하얀 권풍이 산을 함몰시킨 것이었다.

가히 말도 안 되는 힘!

'나보다도 훨씬 재능 있는 녀석이군.'

오현석은 1년 만에 축기를 찍은 자신의 재능 역시, 원래대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던 스승님의 말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진짜 재능 같은 건, 저런 녀석이지. 나 같은 게 무슨 재능이란 말이냐.'

1년도 안 되어서 축기기를 찍는 재능.

1년도 안 되어서 축기기의 몸으로 원영기 급 일격을 내지르고 다니는 재능.

뭐가 더 뛰어난지는 보기만 해도 알 것이리라.

"회사에서도 열심히 하던 녀석이었는데. 여기 오니까 그래도 재능을 찾았나 보구나."

그는 회사에서의 서은현을 떠올렸다.

분명 말수는 적었지만, 그래도 뭐든지 열심히 하려고 하는 후배.

'챙겨 주기만 했던 녀석이, 어느새 저 정도로….'

오현석이 회사에서의 일을 기억하고 있을 때.

콰아아앙!

푸른빛이 폭발하더니.

저 멀리서 흰색의 빛살이 산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가 반응할 틈도 없이, 그의 앞으로 빛이 번쩍이더니 푸른 기운을 몸에 두른 창호자가 오현석의 앞에 나타났다.

"저런, 기다리고 있었구나. 서은현 녀석이 여간 흥미로운 재간을 많이 보여 주길래 잠시 흥이 돋아 녀석만 봐 주고 있었구나."

"하하… 재능 있는 녀석 같으니 조금 더 봐 주셔도…."

"무슨 소리. 제자로 받았는데 편애하는 일 따위는 없다! 걱정하지 마라! 너 역시 내가 강하게 만들어 줄 테니!"

"잠시…."

콰아아앙!

그리고, 그가 뭐라 말하기도 전.

창호자의 주먹이 오현석의 배를 후려쳤다.

오현석은 단박에 피를 토하며 정신을 잃었다.

창호자는 껄껄 웃으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훌륭한 제자들이로고. 걱정하지 말려무나. 너희가 지닌 재능은 둘 다 엄청난 것들이기도 하지만, 설령 너희가 천하의 둔재더라도, 인간이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의 생물이니.

스승 된 자로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희를 잘 포기하지 않고 가르쳐 주마."

창호자는 기절한 오현석의 한쪽 발을 잡아, 질질 끌고 어딘가로 가기 시작했다.

"1년쯤 됐으니, 이제 슬슬 수련장이 완성되었겠군. 이 녀석들 재능에, 축기기쯤 되었으면, 슬슬 인간의 몸으로 자연에 대적하는 훈련도 시킬 수 있겠어."

창호자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저 멀리 떨어져서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서은현을 보며 눈을 빛냈다.

그리고 서은현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

창호자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서은현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콰아아앙!

서은현은 다시 피를 토하며 기절했고, 창호자는 두 사람의 발을 질질 잡아끌며, '수련장'으로 향하였다.

* * *

"크아아아아아아!"

쿠오오오오!

거대한 물살이 사방을 휩쓴다.

오현석은 눈앞에서 자신을 향해 덮쳐 오는 '해일'을 향해 고함을 지르며 주먹을 내뻗었다.

쿠구구구구!

창령성광오채대법을 익힌 그의 주먹에서, 푸른 빛살이 회오리치며 용권풍을 만들어 냈다.

콰아아아아!

오현석의 주먹에서 뻗어 나간 용권풍이, 해일을 뻥 뚫어 버렸다.

"하아아아압!"

쿠우우웅!

그가 기합을 주자, 그의 기세에 밀려 주변의 물살들이 사방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그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경계했다.

그리고, 천지사방으로 창호자의 음성이 울렸다.

[오채(五彩) 치환(置換). 폐백(肺白), 금(金).]

키링, 키리리리링!

그와 동시에, 오현석의 주변을 뒤덮고 있던 '바다'가 일시에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딱딱하게 굳은 '바다'가 사방으로 가시처럼 뻗쳐 왔다.

"크윽!"

오현석은 황급히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촤좌좌좌좍!

쇠!

쇠로 된 가시들이, 천지사방으로 뻗쳐 나가며 오현석을 쫓아왔다.

채챙, 챙!

저 멀리서, 흰빛이 불어닥치며 쇠로 된 가시들이 날아가고 있었다.

'저쪽은 서은현인가. 일단 녀석과 합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오현석이 무언가 판단을 하기도 전.

다시금 사방에서 창호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현아, 오행장원전을 운용해야 수련이 되지 않겠느냐. 네겐 너무 쉬운 듯하니, 조금 더 수련 중량을 올리겠다.]

그와 동시에.

쿠구구구구!

하늘에서, 산만 한 쇳덩이가 서은현에게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앙!

주변이 울리며, 폭음이 터지고 광풍이 사방으로 불어닥쳤다.

오현석은 연체공법의 호체지력(護體之力)을 몸에 두르며, 쇳가루가 섞인 광풍 너머를 바라보았다.

'괜찮으….'

그리고, 그의 걱정이 무색하게.

번쩍!

쇳덩이가 백색의 섬광과 함께 반으로 갈라지며, 안쪽에서 서은현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미 사람의 범주는 넘어섰군.'

오현석이 걱정할 필요조차 없었던 모양.

카가가가각!

하지만 그가 서은현이 무사한 것을 보고 안도할 틈새도 없이, 수십 수백 개의 쇠로 된 가시들이 그를 향해 덮쳐 왔다.

"크으으윽!"

얼마간 쇠의 영역에서 씨름했을까.

오현석이 익숙해졌을 때쯤, 다시 하늘에서 창호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오채 치환. 비황(脾黃), 토(土).]

쿠구구구!

쇠로 된 천지사방의 속성이 변하더니, 땅에서 산들이 치솟기 시작했다.

쿠과과과과!

끊임없이 지형이 변하며, 오현석을 압박했다.

'사방 십 리라고 했던가.'

사방 십 리가, 창호자의 의지에 따라 오행(五行)의 성질이 변하는 수련장이었다.

얼마간 다시금 오현석과 서은현이 익숙해지면 다시금 성질이 변한다.

[적심(赤心), 화(火).]

쿠구구구구!

산이 녹으며 반경 십 리가 용암의 바다로 치환되었다.

오현석은 전신이 녹아내리는 끔찍한 기분을 느끼며, 공법을 운용하여 극한 환경에 대한 적응도를 높였다.

[청간(靑肝), 목(木).]

쿠구구구!

불길 속에서 갑자기 나무가 자라나더니, 사방이 다시금 수해(樹海)로 뒤덮였다.

[흑신(黑腎), 수(水).]

촤르르르!

얼마 후 나무의 바다는 창호자의 말에 따라 주르르 녹아내리며 다시금 푸른 바다가 되어 그를 덮쳤다.

창호자의 오행태응(五行太應)이라는 수련법.

제자들을 수시로 바뀌는 극한 환경에 던져 둔 후 살아남게 하며, 더 높은 경지의 수사를 상대로.

자연재해를 상대로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수련법이었다.

[잘 들어라, 현석아. 네가 타고난 일문성체(一紊聖體)는, 혼원성체(混元聖體)라고도 불리우며 만상 만물의 경계를 흩어 버리는 게 가능한 자질이다.

일문성체에는 수많은 공능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공능은 역시나 오행혼원(五行混元)! 일문성체는 사실상 오영근에 대응되는 체질이지만, 그 수련 속도는 천영근보다 최소 일곱 배 이상 빠르다!

그렇기에 오행속성 모든 것을 전부 익힐 수 있으며, 음양지력 역시 다루는 게 가능하지. 서은현이 지닌 날카로운 힘은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공능 하나만으로도 너는 사실상 서은현보다도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

쿠구구구!

사방의 오행이 변화하며 오현석의 몸을 압박했다.

[거기에 일문성체는 알려지지 않은 공능들 역시 잔뜩 타고난 신의 육신! 창령성광오채대법을 잘 수련하기만 하면, 너는 말 그대로 무적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공법을 잘 운용하거라, 제자야! 너를 믿고 있다!]

쿠구구구!

'그런 소리는, 이런 무지막지한 곳에서 조금 꺼내 준 후에 하십시오!'

오행이 그의 주변에서 변화하며 점차 압박의 강도를 높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오현석은 무언가, 자신의 몸이 '임계점'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퍼어어엉!

푸른빛이 폭발하며, 오현석의 몸에 난 자잘한 생채기들을 전부 치유했다.

"이, 이건…."

우우우웅!

오현석은 자신의 단전 안에서, 영기의 별이 하나가 더 생겨난 것을 확인했다.

[역시 놀랍구나! 축기기에 오른 지 하루 만에 각수, 항수 두 개의 별을 이루다니!]

창호자가 껄껄 웃는 소리가 사방을 울렸고, 얼마 후.

더욱더 심한 오행의 폭풍이 오현석과 서은현을 덮쳐 왔다.

[자, 그럼 계속 수련을 해 볼까?]

오현석은 이를 악물고 창호자가 내리는 수련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10년이 지났다.

* * *

쿠구구구!

땅에서 산이 솟구쳐 오른다.

"하아아앗!"

오현석이 기합을 주자, 그의 눈앞에 솟구친 산 하나가 그대로 터져 나갔다.

쿠구구구!

산 위쪽에서 나무들이 자라나며, 오현석을 향해 달려들어 그를 묶었다.

"흐하하하!"

그러나 오현석은 가소롭다는 듯이 안쪽을 향해 달려 나갔다.

나무들은 그대로 종잇장처럼 찢어지며 전혀 오현석을 막지 못하였다.

화르르륵!

나무에 불이 붙으며, 곧이어 주변이 화염 산으로 변하였다.

하지만 오현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 곳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콰아아앙!

산 하나가 그대로 뜯겨 나가며, 그 안쪽에서 푸른빛이 터져 나왔다.

푸른빛의 중심에는 가부좌를 틀고 있는 창호자가 있었다.

창호자가 빙그레 웃었다.

"어느새 오행장원전의 구결을 역추적해서 나를 찾을 수 있게 되었구나. 훌륭하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쿠우웅!

오현석은 껄껄 웃으며 창호자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내뻗었다.

창호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그를 향해 마주 주먹을 뻗쳐 왔다.

"훌륭하지만, 아직은 안 된다!"

콰아아앙!

둘의 주먹이 부딪쳤고, 오현석의 팔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크윽…!"

오현석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섰으나, 오히려 창호자와 똑같이 호탕하게 웃으며 다시금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의 팔에서 뿜어지는 피는 어느새 멎은 후였다.

말도 안 되는 재생력이 그의 몸을 치유한다.

그리고, 두 근육질의 거한이 미친 듯이 주먹을 치고받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콰앙!

한 번의 주먹이 오갈 때마다, 사방의 오행이 바뀐다.

화염산이 녹아내리며 대해로.

대해가 굳으며 쇠의 천국으로.

쇠가 물러지며 흙으로.

퍼엉, 퍼엉, 퍼엉!

포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창호자의 주먹이 오현석의 몸을 두들겼다.

그때마다 오현석의 몸이 뜯겨 나갔으나, 오현석이 힘을 주자 푸른빛이 맴돌며 그의 육신을 치유하였다.

쿠광, 쿠과과과광!

얼마간 폭음이 더더욱 빠르게 울리며, 두 사람이 주먹을 주고받는 속도가 빨라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콰앙, 쾅, 콰앙!

오현석의 주먹이 절묘하게 창호자의 주먹을 빗겨 때리며, 더더욱 많은 부위를 타격하기 시작했다.

오현석의 타격 속도가 빨라지며 창호자가 한 대를 때릴 때, 오현석이 일곱 대를 때리는 교환비가 일어났다.

그리고 두 사람의 격돌이 절정에 치달았을 때.

콰아아앙!

창호자의 주먹이 오현석의 공격을 전부 밀어 버리며 오현석에게 내리꽂혔고.

오현석의 몸이 폭발해 버렸다.

쿠구구구구!

그와 동시에.

콰르르르릉!

하늘에서 푸른빛의 낙뢰가 내려와, 오현석의 몸에 내리꽂혔다.

"허, 허허허허! 흐하하하하!"

창호자는 그 모습을 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쉬이이이….

연기 속에서 오현석이 걸어 나왔다.

"축하한다! 10년 만에 결단(結丹)이라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수련 속도구나. 광한계 토박이들도 결단기는 50년씩은 걸리는데."

오현석은 멋쩍게 웃었다.

"아닙니다. 서은현보다야 느리지요."

"뭐, 그 녀석 재능도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니."

창호자는 껄껄 웃었다.

오현석은 같이 웃으며, 서은현을 떠올렸다.

5년.

서은현은 5년 만에 진즉 결단기에 올랐으며, 오행장원전을 익힌 후.

성광호체공을 익히는 과정으로 넘어갔다.

"자, 그럼 결단기에 올랐으니…."

"또 대련입니까?"

오현석의 말에, 창호자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지! 서은현! 어디 있느냐!"

얼마 후.

저 멀리서 백색의 둔광을 타고 서은현이 날아왔다.

쿠웅!

수련장에 떨어진 서은현이, 둔광 속에서 걸어 나왔다.

오현석은 서은현을 보며 침을 삼켰다.

'이번에는,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창호자의 아래에서, 두 사람은 창호자를 상대로 끊임없이 대련해 왔지만.

창호자는 두 사람끼리 대련을 시키기도 자주 시켰다.

그리고 결과는 오현석의 필패.

그는 한 번도 서은현을 이긴 적이 없었다.

'녀석에게 악감정은 없긴 하다만.'

꾸우욱….

벌써 천 번도 넘게 지기만 했다.

이쯤 되자니,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회사에서는 늘 가르쳐 주기만 했던 녀석이었는데, 오히려 여기서는 내가 늘 배우는 입장이지.'

방금 전 창호자와 주먹을 주고받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서은현이 만들었다는 투괴무흔권(鬪怪無痕拳)을 통해 창호자에게 맞섰었다.

서은현은 지난 10년간, 오현석에게 권법은 물론이고, '싸우는 법'에 대해 전반적으로 가르쳐 주었었다.

"결단기에 오르셨나 보군요.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그래, 고맙다. 결단기에 이르렀으니, 이제 다시 한번 겨뤄 보자꾸나."

오현석은 두 주먹을 부딪치며 말했다.

그 말에, 서은현은 피식 웃었다.

"아직 제겐 안 되십니다."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알지 않겠느냐."

그는 서은현을 쳐다보며 말했다.

10년.

10년 동안 서은현과 함께 창호자에게 두들겨 맞고, 함께 싸우고, 대련했다.

하지만 아직도 오현석은 서은현을 이길 수 없었고.

아직도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창호자에게 살아남느라 정신이 없었던 나날들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등을 맞대고, 때로는 주먹을 맞대 온 서은현.

사람은 붙어 있을 때 서로의 감정이 느껴지는 법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태껏 한 번도 서은현에게서 감정 같은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다.

'이 세계에 오고 나서, 녀석은 뭔가 바뀌었다.'

육체적인 변화가 아니었다.

무언가, 정신적으로.

완전히 사람이 달라졌다.

회사에서 보여 주었던, 조금 어리바리하지만, 묵묵하고 노력하며.

때로는 잘 웃어 주었던 후배 서은현.

하지만, 이 세계에 온 뒤로는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

가끔 웃어 보이기는 했지만 그 웃음에서는 이전의 그 순진한 웃음이 느껴지지 않았고.

그 외에 그의 눈을 들여다볼 때면 항상 끝없는 무저갱을 쳐다보는 듯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 떨어지고 나서는.

한 번도 서은현은 오현석에게 따로 찾아온 적이 없었다.

'회사에서는 쉬는 시간마다 같이 커피도 마시면서 잡담을 했던 녀석이었는데.'

주로 오현석이 서은현의 고민을 들어 주는 쪽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상담을 하러 오거나, 잡담을 하지도 않았다.

남는 시간이 있으면 늘 수련을 하거나, 공법서를 뒤적이며 뭔가를 하고 있었다.

그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이 갑자기 바뀐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는 법이지.'

대련이 시작되었다.

타앗, 탓!

두 사람이 부딪친다.

세 번.

단 세 번의 공방이 지나갔고, 그 안에 오현석은 서은현에게 바로 제압되었다.

"제가 이겼습니다."

무미건조한 얼굴로 오현석의 팔을 뒤로 젖힌 서은현이 말했다.

그러나.

쿠구구구구!

오현석의 전신에서 푸른빛이 뿜어졌다.

"아직 안 끝났다, 녀석아!"

오현석은 생각했다.

'녀석은 강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많이 변했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파아앙!

어마어마한 거력을 쏟아내며, 힘 그 자체로 서은현에게서 벗어난 오현석이 서은현을 쳐다보았다.

'거기에 물어도 당최 어쩌다가 저렇게 변했는지를 안 말해 주니, 어쩔 수 없겠지.'

꾸우우웅!

오현석의 양 팔에, 각각 한 마리의 푸른 용의 환영이 맴돌았다.

푸른 용들을 잠시 그의 팔 주변을 맴돌다가, 팔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파아아앗!

용들이 들어간 자리에서, 각각 한 장의 푸른 날개가 돋아났다.

'무미건조한 녀석이지만, 그래도 분명. 스승님과 싸울 때는 가끔 감정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창령성광, 제일익(第一翼)!"

'녀석만큼 강해져서, 녀석과 제대로 겨룰 수 있게 된다면. 그 속내를 제대로 알 수 있을지도…!'

오현석은 그렇게.

이전까지는 자신의 후임이었던 서은현의 마음을 듣겠노라 다짐하며, 그를 향해 땅을 박찼다.

스승의 은혜 (3)

오현석이 서은현을 처음 본 건, 서은현의 입사 첫날이었다.

회사 건물에 들어와서, 첫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허둥대던 그를 도와준 것이 오현석이었었다.

어째서일까.

지금 그 순간이 생각이 났다.

환한 얼굴로 감사하다고 인사했던, 예의 바른 후임.

촤락, 촤락!

오현석의 팔에서 삐져나온 날개가, 그의 몸에서 떨어지더니 그의 등 뒤로 날아가 오현석의 등을 떠받쳤다.

창령성광오채대법.

첫 번째 날개.

쿠릉, 쿠르르릉!

오현석은 자신의 주먹에 담긴 거력을 보고는, 서은현을 쳐다보았다.

"스치기만 해도 위험할 거다."

"그래 보이는군요."

"피하려 하지 말고, 너도 자신 있는 기술로 맞부딪치는 게 좋을 텐데?"

"자신 있는 기술이라…."

서은현은 옅게 웃으며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

"아직 제게서 그런 걸 끌어내기엔, 너무 이른 것 같습니다만."

"하하하…."

역시, 바뀌었다.

절대적인 자신감이 깃든 저 말투.

심유한 눈빛.

어딘가, 위화감이 드는 서은현의 행동 하나하나.

왜인지는 몰랐지만, 오현석은 서은현이 어느 순간 망가져 있다고 느꼈다.

정말로 왜인지는 몰랐다.

그는 예전부터 사람의 감정을 읽는 건 잘 했으니까.

"뭐, 한번 받아 봐라."

오현석은 양팔에 담긴 기운을 더욱더 활성화시키며, 푸른빛으로 물든 주먹을 서은현에게 내질렀다.

쿠구구구구!

천지가 뒤집어지며 눈앞의 공간 자체가 일그러지는 듯했다.

서은현을 향해 압도적인 권풍이 날아갔다.

타앗!

그러나, 서은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보보를 디뎠다.

그리고, 오현석이 내지른 일격의 범위에서 빠르게 벗어난다.

스치기라도.

아니, 하다못해 그 범위에만 있어도 치명상은 피할 수 없는 일격.

하지만, 서은현이 허공을 향해 손을 몇 번 휘두르자 그는 권압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렸다.

'베었군.'

오현석은 눈을 빛내며 서은현이 한 짓을 알아차렸다.

그는 마치 한 자루의 검(劍)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그가 손을 내저을 때마다, 허공을 흐르는 미약한 힘의 흐름들이 전부 베여 나가며, 서은현이 빠져나갈 퇴로를 만들었다.

하지만 오현석은 씨익 웃었다.

양손 중 한 손만 뻗은 공격이었다.

나머지 하나가 더 남아 있다!

쿠구구구구!

오현석의 손에서부터 푸른 청격이 다시 한번 서은현에게 뿜어졌다.

'막 피한 직후다, 과연 피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서은현은 보란 듯이 다시금 바로 오현석의 일격을 피해 냈다.

그리고 순식간의 그의 앞에 다가온 서은현이 손바닥을 뻗었다.

투웅!

그리 강하지는 않은 힘.

그러나, 그 일격에는 기이한 묘리가 섞여 있어 오현석의 내부를 뒤흔들었다.

티잉!

오현석은 자신의 몸 안에서 검명(劍鳴)이 울린다고 생각했다.

푸확!

반응할 새도 없이, 오현석은 칠공에서 피를 토하며 기절해 버렸다.

'제, 길….'

너무 강하다.

서은현은, 그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 * *

"그러니까, 이건… 아니! 그건 회의용 파일이잖나! 부장님이 준 파일은 이쪽에다가 모아 두는 거네."

"아, 감사합니다!"

'아, 이건….'

오현석은 순간 눈을 꿈뻑였다.

그러나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꿈이군.'

이 세계에 떨어지기 전.

회사에 있었을 때의 기억이었다.

"아니, 이건 그게 아니고… 줘 보게. 보여 주지."

"네, 죄송합니다!"

입사 초, 자신에게 일을 배우며 잔뜩 긴장한 서은현과, 그에게 일을 가르치는 오현석 자신의 모습이었다.

'입사 초에는 실수를 많이 했지.'

심지어 서류들을 정리하다가, 자신의 자리에 놓인 커피를 툭 쳐서 오현석의 서류들을 커피로 물들였을 때도 있었다.

'그때는 조금 화가 많이 났었는데 말이지.'

오현석은 기억을 더듬었다.

'저 서류를 보아하니, 아마 이 시점은 커피 사건 이후로군. 그때 내 안색이 한참 안 좋아졌어서 그 이후로 바싹 긴장한 모습이야.'

얼마간 실수를 하면서 혼난 서은현을 보며, 과거의 오현석은 잠시 한숨을 쉬었다.

"은현 씨, 잠시 와 보게."

오현석은 제3의 시점에서 그 광경을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 이때… 그것도 생각나는군.'

"네, 오 과장님."

그는 서은현을 대리고 흡연실로 갔다.

둘은 담배를 태우며 잠시 서 있었다.

"은현 씨, 회사 생활은 어떤가?"

"예, 만족스럽…."

"좆같지?"

"어…."

오현석은 피식 웃으며 서은현의 어깨를 두들겼다.

"이해하네. 상사란 놈은 뭘 하든 꼬치꼬치 달라붙어서 트집 잡지. 입사 동기인 전명훈 그 새끼는 씨발 전무님 이름 믿고 일은 안 하고 놀러만 다니지. 듣자 하니 민희 씨하고는 저번에 대판 싸웠다면서?"

"…."

너무 솔직하게 뒷담을 까는 오현석의 말에, 서은현은 당황스러운 기색이었다.

"일단 상사로서 자꾸 트집 잡는 건 조금 미안하네. 그래도 일을 완벽히 배울 때까지는 계속 꼬집어 주는 게 상사의 일이거든. 그리고 뭐… 솔직히 전명훈 그 새끼는 나도 볼 때마다 짜증이 치밀어오르지만, 어쩌겠나. 우리는 그 새끼한테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리고 내가 볼 때 그런 놈들은, 십중팔구 문제 하나 터트려서 제 발로 회사 나가게 되어 있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게."

"그… 일단 감사합니다."

"그래, 뭐. 솔직히 우리 부서에서 전명훈 그 녀석 일 안 하는 거 누가 모르겠나. 사람이 나쁜 건 아닌데. 뭐랄까, 너무 좀 떠받들어지면서 사는 데에 익숙해진 놈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좀 있는 놈이야."

오현석은 전명훈의 뒷담을 까며 서은현과 대화를 나누었다.

역시 사람과 사람이 빠르게 친해지는 데에는 뒷담만 한 것이 없었다.

오현석에게 꾸지람을 들으며 혼나던 서은현의 얼굴이 어느새 상당히 밝아졌다.

"그리고 뭐 민희 씨는, 자네랑 그냥 사고방식이 너무 상극이라서 그런 것 같으니까 자네가 좀 이해하게. 내가 볼 때는 민희 씨가 말하는 것도 맞는 부분이 있는데, 아마 자네가 생각하는 방식이랑 너무 다른 게 문제인 것 같아."

"예, 저도 이해는 합니다. 다만 조금, 업무가 겹칠 때는 다투는 일이 많으니까 그게 문제지요."

"하하, 뭐 앞으로는 두 사람 업무가 안 겹치게 조금 신경 써 주겠네. 아, 그리고…."

치익….

오현석은 담뱃불을 끈 후 두 손을 털며 말했다.

"앞으로도 힘든 일 있으면 담배 타임 좀 가지자 말하게. 같이 나가서 얘기 좀 들어 주지."

"…감사합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흡연실을 나섰다.

* * *

"…역시."

번뜩!

오현석은 눈을 떴다.

"다른 사람이야."

아직도 전신이 욱신거렸다.

꿈 속에서 봤던 서은현의 얼굴과, 그를 향해 무표정하게 일격을 내지르던 서은현의 얼굴을 비교해 보았으나, 너무나도 다른 것이 느껴졌다.

쿵, 쿵, 쿵!

주변이 흔들리며, 그의 앞으로 창호자가 걸어왔다.

오현석이 주변을 둘러보자, 수련장이었다.

기절하고 나서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괜찮으냐, 현석아? 오늘도 또 졌구나."

"예, 괜찮습니다."

오현석은 몸을 털고 일어났다.

"제일익을 펼칠 수 있게 되었구나. 결단 중기는 되어야 펼칠 수 있는 기술이건만. 막 결단에 오르고서 이제야 펼치다니…."

"스승님께서 잘 가르쳐 주신 덕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미소를 지으며, 창호자 너머에서 투명한 눈동자로 담담하게 그들을 보는 서은현을 바라보았다.

"이봐, 서은현!"

오현석은 창호자를 지나치며 서은현에게 말했다.

"역시, 오늘에서야 확실해졌다. 너 말이다, 예전이랑 너무 바뀐 게 아니냐?"

"뭐, 환경이 바뀌었으니 사람도 바뀐 게 아니겠습니까."

"글쎄, 사람이 바뀐 정도가 너무 극심한 것 같아서 말이다. 정말로 나랑 얘기나 나눠 볼 생각은 없는 거냐?"

"…죄송하군요, 할 게 많아서 그럴 시간은 없을 듯 합니다."

타앗!

말을 마친 서은현은 비둔술을 쳘쳐 저 멀리로 날아가 버렸다.

잠시 그 모습을 보던 오현석을 향해, 창호자가 다가와 호탕하게 웃었었다.

"녀석도 열심히 수련하려 하는 것이겠지. 너무 상심하진 말거라."

그 위로에, 오현석은 문득 기이한 기분이 들어 피식 웃었다.

'예전에는 내가 후임들을 위로해 주던 입장이었는데 말이지.'

어느새 그가 제자가 되어 스승에게 위로를 받고 있었다.

"…수련도 좋지만, 그래도 예전 동료였던 저와 최근 너무 대화를 안 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대화를 안 한다라…."

그 말에 창호자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껄껄 웃으며 오현석의 등짝을 두들겼다.

"우리 창천개벽문의 사람은 원래 주먹으로 하는 대화를 가장 신뢰한다. 앞으로 더욱더 강해져서, 저 녀석과 제대로 주먹의 대화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정진하면 되잖느냐."

"…하하, 그렇군요."

너무 무식한 근육 이론.

하지만 어쩐지 오현석은 스승의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주먹의 대화라….'

주먹의 대화인지는 몰랐지만.

최근 창호자와 대련을 하며 간혹 느껴지는 게 있었다.

어떠한 선 같은 것들이 그와 창호자 사이에서 얼핏얼핏 보이고는 했다.

그 선을 따라가면 상대의 공격을 알 수도 있었고, 가장 좋은 경로를 알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선을 따라가다 보면 간혹 상대의 감정 같은 것들이 느껴지고는 했다.

'필시 그런 걸 말씀하시는 거겠지.'

그는 그 선을 느꼈던 감각을 떠올렸다.

'상대와 대련을 할 때에 느껴지는 선들. 하지만 분명… 대련이라는 건 상대와 대등해야만 성립되는 것이다.'

서은현과 그는, 너무 압도적인 차이가 났다.

대련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강해져야지.'

서은현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때까지.

그와 최소한 대등한 위치에서 말을 나눌 수 있을 때까지.

오현석은 하늘을 바라보며, 더욱더 강해지고자 마음먹었다.

* * *

세월은 무상하게 흘러, 또 다시 10년이 지났다.

어느덧 오현석은 결단 초기를 완공하였다.

쿠구구구구!

전신의 기운이, 한 곳의 어색함도 없이 전신을 흘렀다.

어떤 것도 이상함이 없이, 한없이 자연스럽다.

우우웅!

오현석의 몸에서 빛이 흘렀다.

그는 감았던 눈을 반개하였고, 그러자 그의 눈에서 서광이 흘러나왔다.

"결단 초기. 천시원(天市垣)."

오현석의 금단 안쪽.

그곳에서 창령성광오채대법을 상징하는 영기의 별들이 일렁이며, 대법을 상징하는 별자리를 굳혔다.

우우우웅!

오현석은 하늘 저 너머.

거대한 궁창의 너머에서 전해지는 하늘의 천지영성을 내려받으며 읊조렸다.

"명(命)에는 꾸밈이 없으니."

결단기(結丹期)에는 총 네 가지의 경지가 존재했다.

결단 초기, 천시원(天巿垣) 기형명야솔(其形也命率).

결단 중기, 태미원(太微垣) 기봉명야경(其奉也命敬).

결단 후기, 자미원(紫微垣) 기양명야혜(其養命也惠).

결단 대원만, 천상열차분야(天象列次分野) ― 기사명야의(其使命也義).

천시원은 자신의 몸을 흐르는 생명과,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운명이 막힘이 없게 몸 곳곳을 흐르는 흐름을 완벽하게 정돈한다.

자신의 몸을 흐르는 기(氣)를 자신의 백성으로 보고 백성들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숨김없는 순수한 생명력이 전신에 돌며,

숨김도 꾸밈도 없는 순수한 운명의 형태를 얻을 수 있다.

태미원은 전신의 기혈을 바깥과 통하게 해방시키고, 자신의 몸을 하늘과, 자기 자신의 운명과 통하게 하여, 스스로를 운명을 받드는 제단(祭壇)으로 삼는다.

자신의 몸을 흐르는 백성인 기(氣)를 장악한 후 기를 다스리기 위하여, 운명의 힘을 빌려 그의 몸을 제단이자, 하나의 나라로 삼아 대신(大臣)들을 소집하여 몸을 다스리는 단계였다.

자미원은 터를 다지고 제단을 만들어, 마침내 자신이 하늘과 땅을 잇는 제사장이 되는 것이었다.

백성을 장악하고, 대신들을 소집한 후 스스로가 왕(王)이 되어 자기 자신이라는 이름의 나라를 완벽하게 장악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력을 극한으로 장악했기에, 이 단계에 이른다면 목이 잘려도, 전신이 발기발기 찢어져도 금단만 남아 있다면 몸을 회복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마지막.

천상열차분야의 단계는 천시원, 태미원, 자미원에 이어져, 제사장으로 화하여 운명에 제의를 치르는 것이었다.

이 단계에서부터는 자신의 생명력은 물론 외물과 타인의 생명력에도 간섭이 가능하며, 원영기에 이르기 직전인 단계인 만큼 '계위'라는 것에 어느 정도 감을 잡기 시작한다.

결단기에 해당하는 이 네 가지 단계는,

명의 형태는 꾸밈이 없고(其形也命率).

명을 받듬에는 공경스러우며(其奉也命敬).

명을 살게 함에는 은혜로웠고(其養命也惠).

명을 부림에는 의로웠다(其使命也義).

라는 구절로 이해가 되었다.

'이 결단기의 구결들이라는 건 마치, 인간이 운명을 받드는 과정 같아 보이는군.'

처음에는 명을 꾸밈없이 바라보고.

다음에는 명을 받들며, 그 다음에는 명과 하나가 되어 은혜로이 사는 듯했으나.

종래에는 명을 부리게 된다.

'이래서 수도가 곧 역천이라는 것인가.'

하늘을 바라보고, 닮아 가며, 제의를 치러 하늘을 받들지만.

어느 순간 또 하나의 하늘이 되어, 하늘을 부려 버리는 역천(逆天).

하늘을 스승으로 삼다가, 종래에는 자신이 그보다도 위대해지겠노라는 오만함의 극치.

그것이, 수도자.

운명에 다가서는 천족(天族)인 셈이었다.

그리고, 오현석은 최근에 수도공법이라는 것을 수련하며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

'하늘을 스승으로 삼고, 종래에는 부리는 것이 수도공법이다. 그런데, 왜 이리도 수도공법을 수련하면 할수록….'

수도공법들은 모두, 하늘이란 것을 '살아 있는' 객체로 대하는 것 같은 기분.

'그리고 만약 하늘이란 게 살아있는 것이라면, 자신보다 높아지려 하는 패륜적인 이들을 가만히 놔 두는 게 맞는가? 천겁이라는, 신외지물의 힘을 빌려도 충분히 극복 가능한 것을 천겁으로만 내버려 두는 것이 정말… 끝인가?'

그렇다면.

정말로 하늘이 살아있는 어떠한 존재라면.

그들이 과연 하늘마저 넘어설 경지에 이르렀을 때, 하늘은 어찌 반응하는 것인가?

오현석은 체내에 자리 잡은 금단을 관조하며, 그러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스승의 은혜 (4)

기이하다.

하지만 오현석은 그 기묘한 위화감을 뒤쫓는 것보다는, 우선 다른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그의 몸에서 사르는 서광이, 오현석의 몸 안쪽으로 들어간다.

결단 초기 천시원을 완공하고, 결단 중기 태미원의 영역에 진입하였다.

'결단 중기.'

오현석은 그 상태에서 하늘을 바라본 후, 주먹을 들어 올렸다.

쿠구구구구궁!

그리고, 그가 하늘을 향해 주먹을 뻗자.

파랗게 물든 하늘 전체가 일렁이는 듯했다.

"후우…."

파아아아앗!

오현석의 주위로 창령격원결의 푸른빛과, 성광호체공의 별빛, 그리고 오행장원전의 오채색이 빛났다.

그리고, 그가 집중하자 그의 몸 주변에 떠오른 모든 기운들이 하나로 혼재되며, 혼원(混元)의 힘으로 화하였다.

파츠츠츳!

얼마간 오현석의 몸 안쪽에서 뒤섞이던 혼원의 힘이 일순간 보랏빛으로 변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오현석의 몸을 덮은 보랏빛은 사라지고, 다시금 창령성광오채대법이 뿜는 빛살이 그의 몸을 덮었다.

'일문성체라고 했나?'

오현석은 자신의 체내에서 방금 전 '혼원'의 힘을 끌어올렸던 능력을 떠올렸다.

일문성체에 대한 권능은 이미 창호자에게 전부 전해 들은 오현석이었다.

그리고, 그가 전해 들은 일문성체의 공능 중에는 방금 전처럼 혼원을 구현하는 공능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지닌 힘은, 단순히 일문성체가 아니다.'

어쩐지 오현석은, 일문성체는 그저 '부가 기능'일 뿐.

그가 가진 진정한 힘은 따로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 일단 지금으로써는 그렇게밖에 알 수 없겠지만.'

오현석은 잠시 자신의 몸을 관조한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혼원의 상태를 뭔가…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으련만. 혼원을 끌어올리고 있으면 서은현도 이길 수 있을 거 같은데 말이지….'

오현석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고는 어느 한 곳을 바라보았다.

어찌 되었든, 일문성체의 공능인지, 창령성광오채대법의 공능인지는 모르겠지만.

오현석은 자신이 결단 중기에 오르며 어마어마한 힘의 상승폭을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의 난, 결단 대원만은 넘어선 힘을 지녔다."

원영기에는 미칠지 안 미칠지 잘 몰랐지만.

여하튼 일반적인 결단기는 넘어선 것이었다.

"기다려라, 서은현."

오늘에야말로.

반드시 그를 이기겠노라고.

오현석은 그리 생각하였다.

* * *

번쩍! 번쩍!

천지가 번뜩인다.

창호자의 수련장 위에서, 오현석이 발을 구르자 작은 산들이 수련장 위로 솟아올랐다.

반경 십 리를 가득 채웠던 창호자의 산과 비교하자면 굉장히 앙증맞은 크기의 산이었으나.

그래도 산은 산.

20장이 넘어가는 거대한 지반이 사방팔방으로 뻗쳐 나갔다.

그리고, 그 지반들을 피해서 한 사내가 오현석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하하, 자아, 어떠냐! 내 힘은 이제 결단기는 확실히 넘어섰다! 이제 조금 상대해 줄 만 하느냐!?"

쿠구구구!

오현석이 서은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쿠구구구!

거대한 힘 그 자체로 화한 오현석이, 서은현에게 몸통박치기를 하였다.

서은현은 피했고, 오현석이 부딪친 곳에 있던 산 하나가 그대로 박살이 나 버리며 폭발하였다.

파아앗!

"제이익!"

폭발한 산의 한 가운데.

그곳의 중심에서 푸른빛이 터져 나오며, 오현석의 등 뒤로 두 쌍의 날개가 펼쳐졌다.

창령성광오채대법의 공격기, 창익천쇄(蒼翼天碎)는 한 쌍의 날개로 펼치는 일익부터 시작해.

아홉 쌍의 날개로 펼치는 구익까지가 존재했다.

열 번째 날개인 십익도 존재한다는 전설은 있으나, 그것은 말 그대로 전설일 뿐이었다.

일익은 결단 중기 수도자가 결단 후기 급 일격을 낼 수 있게 해 주었으며.

이익은 결단 후기 수도자가 결단 대원만을 넘어선 힘을 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오현석은 결단 중기 수준에서 벌써 두 번째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쩌어엉!

오현석의 주변으로 공간이 일렁였다.

창익천쇄를 펼치지 않아도, 이미 평타가 결단기 대원만을 넘어선 수준의 공격!

그런 오현석이 펼치는 두 쌍의 날개는, 엄연한 원영 초기 급의 위력을 자랑했다!

"긴장해라! 아무리 너라도, 이건 맞고 무사할 수 없을 거다!"

그는 호기롭게 외쳤다.

하지만 서은현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있었다.

"…제 생각엔, 기운을 낭비하시지 말고 근접 박투로 승부를 보는 게 그나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하! 시끄럽다! 받아라!"

그리고, 오현석이 주먹을 내질렀다.

키이이이잉!

푸른 빛이 폭발하며, 와류(渦流)를 만든다.

소용돌이치는 빛살이 서은현을 집어삼킬 듯이 날아갔다.

하지만 서은현은 이번에도 직접 맞서지 않고 발을 놀려 피할 뿐이었다.

하지만 서은현이 막 자리를 피했을 때.

쿠구구구구!

서은현이 피한 자리를 향해 다시금 빛의 와류가 쏟아진다.

그는 눈에 이채를 띄며 미소를 지었다.

"제 의념을 읽었군요. 슬슬 이쪽의 시야에 진입하시려는 겁니까."

그리고, 그가 다시금 오현석의 공격을 피했다.

'또… 피했는가.'

오현석은 숨을 들이쉬며 서은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는 이전만큼 침울해하지 않았다.

'이전에는 그냥 보법을 밟으며 여유롭게 내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마지막에 그의 공격을 피할 때는, 여유가 없었다.

평소 펼치던 보법에 더해, 비둔술까지 합쳐서 나름 허겁지겁 피한 것이었다.

구름을 뚫고 올라가 꼭대기가 보이지 않던 아득한 산.

그것이 지금까지의 서은현이었다면.

오현석은 순간, 구름이 잠깐 걷히며 꼭대기가 잠시 보인 기분이었다.

"긴장해라, 서은현!"

오현석은 기분 좋은 듯이 소리쳤다.

"너와 내가, 제대로 대련을 할 수 있을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파앗!

그렇게 소리치는 오현석의 눈 앞에.

서은현이 빠르게 나타났다.

서은현은 은은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느리다, 그리고 부드럽다.

그러나 오현석은 어쩐지 서은현의 손을 피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쿠우웅!

서은현의 손이 오현석의 몸을 후려치자, 그는 피를 토하며 바로 나가떨어졌다.

'놈, 오랜만에 웃는군.'

"…그거 좋군요. 빨리 성장해 주십시오."

오현석은 뒤를 돌아 숙소로 돌아가는 서은현을 보며 생각했다.

'언젠가 제대로 대련할 수 있다는 기대에 웃은 거냐, 서은현?'

사람이, 어떤 것에도 무미건조하게 반응하며.

늘 심유한 눈빛으로 무표정하게, 한없이 바쁘다는 듯이 미친 듯이 수련만 한다.

그런 그가, 제대로 싸울 때.

혹은 제대로 싸울 상대가 생겼을 때에만 간혹 미소를 짓는다.

'도대체 왜 그렇게, 또 얼마나 망가진 거냐.'

그것이 과연 제대로 된 인간인가?

제대로 된 삶을 사는 사람인가?

사람이 얼마나 망가지면 전투 외에 미소를 잃어버린다는 말인가.

지난 10년간.

오현석은 서은현의 곁에서 그와 수련하고, 대련하며 더더욱 확실히 느꼈다.

그랬다.

서은현은, 분명 확실하게 망가졌다!

'도대체 네가 왜 그렇게 망가졌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러니….'

오현석은 불끈 주먹을 쥐었다.

'더더욱 열심히 수련하여, 너와 대등한 위치에서, 제대로 물어보겠다!'

그는 굳은 결의를 하며, 바로 몸을 회복시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호자를 찾아갔다.

"스승님, 제자가 대련을 청합니다! 부디 가르침을 주십시오!"

"흐하하! 최근 좋은 눈빛이 되었구나, 현석아. 자, 그럼 오늘도 계속해 볼까?"

오현석은 창호자에게 두들겨 맞을 준비를 하며 주먹을 쥐었다.

'쇠가 되자.'

두들기고 두들겨져서, 더더욱 단단해질 수 있는 쇠가 되자.

그리하여, 한때 자신의 후임이었던 저 녀석이 더 망가지지 않게 지켜 줄 수 있는 방패가 되자.

그런, 어른이 되자.

그리고, 5년이 흘렀다.

* * *

파아아앗!

하늘과 땅의 영기가 통하며, 오현석은 결단 중기 태미원의 과정을 끝마치고 결단 후기 자미원에 진입하였다.

스스로가 자신의 몸과 하늘을 잇는 제사장이자, 자기 자신의 육신을 나라로 삼은 왕이 되는 단계.

결단 후기.

자미원!

오현석은 눈을 반개하며 몸을 일으켰다.

지난 5년간, 많은 일이 있었다.

결단 중기에 이른 후부터는, 오현석 역시 창한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창천개벽문의 임무를 수행하고는 했다.

서은현 역시 마찬가지로 임무를 수행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오현석과 서은현이 나선 임무는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최근에, 녀석이 창한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뭘 모으고 있던데….'

근 5년간, 종문의 임무를 맡아 하며 서은현은 어떤 재료들을 모으고 있었다.

하나같이 상당히 값비싼 재료들이었는지라, 창천개벽문 곳곳에 꽤 소문이 난 일이었다.

듣자하니 창호자는 서은현에게 이유를 들어 뭘 모으는지 알고 있는 듯했지만, 오현석이 물어도 '직접 물어봐라'라며 알려 주지는 않았고.

오현석이 직접 서은현에게 물으면 '동료를 구하기 위한 걸 만들고 있다'며 제대로 답해 주지 않았다.

'비밀이 많은 녀석이라니까….'

그동안 수련하는 것만도 바빴는데, 그 사이에 뭔가를 배워서 또 만들고 있다는 게 아닌가?

'내 생각보다 다재다능한 녀석이었어.'

잠시 서은현에 대해 생각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호자에게로 찾아갔다.

"스승님, 제자 자미원에 이르렀습니다."

"흐하하, 역시 내 제자들이다! 은현이도, 너도 늘 내 기대를 충족시키다 못해 뚫고 나아가 버리는구나! 결단기에 오른 지 50년도 안 되어서 벌써 결단 후기라니…."

"예, 전부 스승님의 은혜 덕분이지요."

"무슨 소리, 전부 네가 밤낮없이 노력한 덕에 이룩한 경지지."

"하하, 진짜 밤낮없이 노력하는 것은, 서은현이지요."

말 그대로.

서은현은 오현석에게 말을 걸지 않는 만큼 미친 듯이 수련했다.

무슨 강박증이라도 있는 것인지, 늘 어딘지 초조해하는 얼굴로 수련하고, 수련하고, 또 수련했다.

그 결과, 그는 현재 결단 후기, 자미원의 최고봉에 진입하였다.

아마 얼마 후면 결단 대원만.

천상열차분야의 단계에 오를 터였다.

"뭐, 확실히 서은현이 독종은 독종이긴 하지."

"그렇지요. 어쨌든, 그건 그렇고 제자가 자미원에 이르렀는데 축하는 해 주셔야지요?"

오현석이 은근한 눈빛으로 묻자, 창호자가 껄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닜다.

"맞다! 축하의 의미로 즐거운 대련을 해 보도록 하자꾸나!"

그리고, 두 사제는 수련장으로 가 자세를 잡았다.

쿠구구구구!

먼저 시작된 것은 창호자의 신통술이었다.

그가 발을 구르자, 수련장 전체가 숲으로 변하며 진한 목 속성 영기를 흘리는 진도가 되었다.

동시에 창호자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오현석은 당황하지 않고, 그 역시 오행장원전을 운용하며 영기의 흐름을 역추적했다.

"거기입니까!"

콰아앙!

오현석의 권격이 숲의 어느 곳을 강타했다.

숲의 한 구석이 지반째로 날아가며, 잠시 몸을 숨겼던 창호자가 씨익 웃었다.

"이제는 몸을 숨기는 건 안 통하는구나."

타앗!

근육으로 뒤덮인 두 사제가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콰앙, 쾅, 콰앙!

그 다음부터는 여지없이 육탄전!

오현석과 창호자의 주먹이 서로를 노렸다.

"흐하, 이제는 확실한 원영기 급이구나!"

오현석의 주먹이 지나간 자리로, 공간이 일렁인다.

물론, 창호자의 주먹이 지나간 자리는 공간이고 뭐고 그대로 뜯겨 나가는 중이었다.

콰앙, 쾅, 콰앙!

몇 번이고 둘의 주먹이 부딪친다.

그리고 그때마다 오현석의 팔에서 피가 터져 나왔고, 창호자의 팔에서 치유의 힘이 흘러나와 얻어맞는 오현석을 치유해 주었다.

그와 동시에, 오현석은 두들겨 맞으면서 실시간으로 계속 단단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웅!

오현석의 기세가 바뀌었다.

'간다.'

콰앙, 콰앙, 콰앙!

사방으로 폭음이 울린다.

오현석의 주먹이 창호자를 때리면, 창호자의 뒷편에 있는 지반이 그 충격파에 못 이겨 그대로 함몰된다.

직접 강타하지 않고, 그 여파만으로 사방의 지형이 마구 변하고 있었다.

촤작, 촤작, 촤자자작!

계속해서 창호자의 공격에 얻어맞으며, 살이 뭉텅이로 뜯겨 나가던 오현석은, 창호자를 쳐다보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더욱더 거센 권격의 폭풍이 오현석을 덮쳐 왔다.

하지만 그는 다시금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한 걸음, 한 걸음, 한 걸음.

그리고 마침내.

오현석은 권격의 폭풍 속에서, 그의 눈앞에서 일렁이는 뭔가를 볼 수 있었다.

'이제야, 확실히 보이는군.'

붉은 선.

저 선에 따라 상대가 공격을 한다.

파앗!

오현석은 창호자의 주먹을 피한 후.

주먹을 으스러져라 쥐었다.

푸른 선.

이 선을 따라가면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으로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

그동안은 그저 얼핏얼핏만 보이던 선들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

오현석은 마침내 제대로, 원하는 때에 원하는 선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우우우웅!

"제삼익."

오현석의 뒤편에서, 세 쌍의 날개가 펼쳐졌다.

오현석은 전신의 기운을 팔에 집중하며, 그대로 창호자를 향해 푸른 선을 따라 내질렀다.

창호자의 눈이 호승심으로 번들거리며, 그대로 맨주먹을 오현석의 주먹에 마주 뻗었다.

콰아아아앙!

폭음이 울리며, 천지사방이 뒤집어졌다.

푸른빛이 대지를 집어삼켰다.

얼마 후.

빛이 잦아들었다.

슈우우우….

"놀랍군. 제삼익을 펼치는 거야 둘째치고, 제삼익의 위력이 어떻게 원영 후기 급인 게냐."

"그냥, 되더군요."

오현석은 껄껄 웃으며 대답하였다.

그를 보던 창호자가 갑작스럽게 오현석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파앗!

오현석은 최소한의 동작만을 사용해 창호자의 주먹을 피했다.

마치 지금껏 서은현이 그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 왔던 것과 같은 모습.

창호자는 그 모습을 보며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너도 진입했구나! 그 시야에!"

"부끄럽지만 이제에야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흐하하하!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 나는 의념을 제대로 볼 수 있기까지 80년이 걸렸는데. 너는 50년도 안 되어서 벌써 그 단계라니. 무공에도 나름 재능이 있었던 녀석이었군. 벌써 절정 무인의 시야를 얻었으니, 세 번째 색도 몇십 년이면 얻겠어."

창호자는 껄껄 웃으며 팔짱을 꼈다.

"이 스승은 80년에 걸쳐 의념의 세계에 진입하고, 다시 60년에 걸쳐 겨우 세 번째 색을 봤는데, 역시 너는 그쪽에도 재능이 있어. 뛰어난 제자들을 얻으니 입이 귀에 걸리는구나!"

"과찬이십니다. 그나저나, 스승님."

오현석이 진중한 눈으로 창호자를 바라보았다.

"이 제자가 이룬 경지라면, 스승님께서 보시기에 서은현 그 녀석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 보십니까?"

"흠…."

그 말에, 창호자는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말했다.

"필패다. 하지만, 네가 더욱 더 정진하면 분명 가능하다. 은현이는 최근 성장이 더뎌지는 것 같은데 너는 여전히 꾸준하게 성장 속도가 오르고 있지 않으냐."

"그렇습니까."

'단호하게 필패라. 나와 녀석의 차이가 그만큼 심대하다는 뜻이겠지.'

그러나 오현석은 씨익 웃었다.

'스승님께서, '필패'라고 말해 주셨다.'

이전까지는 그와 서은현의 격차를 물어보면 저렇게 결과를 말해 주지 않았다.

그저 더욱 더 정진하라는 말만 했을 뿐.

한 마디로, 이전까지는 그와 서은현의 싸움이 성립조차 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최소한 싸움이 성립은 된다는 뜻!'

그 말인즉슨.

'녀석과, 어느 정도는 붙어 볼 수 있게 되었단 말이지.'

오현석은 호승심이 어린 표정으로 서은현을 떠올렸다.

'이제, 곧이다!'

* * *

쿠웅!

다시금, 서은현과 오현석이 서로를 마주했다.

'녀석의 주변은….'

완전히 붉다.

그리고 틈새도 없었다.

오현석은 서은현의 의념을 읽어 내며, 왜 창호자가 자신의 필패라고 했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수백, 수천, 수억 개는 될까?

무수한 붉은 실선들이 오현석을 뒤덮고 있었다.

'거기에, 저 하나하나가 즉사기 급.'

하나라도 제대로 맞으면 죽을 수 있다.

너무 경지가 낮았을 때에는 오히려 서은현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경지가 오르고 나니,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렇군, 벌써부터 녀석을 이기고자 하는 것은, 오만이었다.'

버리자.

녀석을 이기겠다는 생각을 접고, 겸허히 받아들이자.

그리고.

'녀석에게 배울 것을, 배워 간다!'

타앗!

오현석과 서은현.

두 사람이 다시 한번 부딪쳤다.

오현석이 발을 구르며 주변의 오행을 장악하였다.

주변의 지형이 시시각각 변화하며 오현석에게 알맞은 전장을 제공하였다.

쿠구구구!

오현석은 마치 폭풍처럼 서은현에게 쇄도하며 주먹을 날렸다.

쩌엉, 쩡, 쩌어엉!

오현석의 일격에, 지반이 뜯겨 나가며 지형이 변해 간다.

'전부 피하는군.'

하지만 오현석은 한 번도 서은현을 맞추지 못했다.

서은현에게는 푸른 선도 통하지 않았다.

전부 서은현의 붉은 선이 푸른 선을 차단하며 무화된다.

'하지만….'

붕, 붕, 부웅!

오현석은 더더욱 속도를 높였다.

육신의 속도와 더불어, 비둔술이 그의 몸에 겹쳐지며 오현석은 마치 빛살처럼 서은현에게 따라붙어 주먹을 날렸다.

그의 속도가, 원영기 수도자의 비둔술과도 같은 속도에 도달하였다!

'어떠냐! 과연 네가 이것도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아무리 의념으로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더라도, 결국 몸이 따라오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오현석이 속도를 높이자 점차 여유롭게 피하던 서은현이 아슬아슬하게 오현석의 공격을 피하기 시작했다.

'된다.'

오현석은 진한 미소를 지었다.

이전에는 길어도 10초 안에 서은현과의 승부가 났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비록 제대로 공격은 하지 못했지만, 서은현 역시 그의 틈새를 제대로 파고들지 못해 어느 정도 합이 맞고 있다!

싸운다는 구색이 갖춰진 것이었다!

그리고, 오현석의 공격을 피하던 서은현이 옅게 미소지었다.

"훌륭히 성장하셨군요. 그럼 이제…."

동시에, 서은현의 몸에서 환한 빛이 떠올랐다.

"저도 조금 제대로 해 드리겠습니다."

파아앗!

서은현의 움직임 위로, 비둔술의 둔광이 겹쳐졌다.

그와 함께, 서은현의 속도가 폭증하였다.

'뭣!'

다음 순간.

서은현의 손이 오현석의 전신 곳곳 요혈을 점했다.

쿠웅!

무언가 날카로운 기운들이 오현석의 요혈들로 파고들며 그의 체내에서 흐르는 기의 흐름을 헤집는다.

"크윽!"

그리고, 끝이었다.

오현석은 헛웃음을 흘렸다.

'여태까지, 비둔술도 안 쓰고 그냥 육체의 빠르기와, 의념의 향방, 그리고 발놀림 약간만으로 내 공격을 전부 피해 왔다는 건가.'

실로 압도적이다.

그러나 오현석은 씨익 웃었다.

'그러니까, 내 힘으로 녀석이 비둔술을 꺼내게 만들었단 거로군.'

그는 좌절하지 않고 웃으며 생각했다.

'다음번에는, 다음번에는 너에게서 뭘 꺼내게 만들 수 있을까.'

"그럼 이제 제 승리…."

우득, 우드득!

요혈이 점해진 상태로, 오현석이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서은현이 불어넣은 기운들이 그의 요혈을 자극하며 오현석의 움직임을 방해했지만, 억지로 움직이자 피기 뿜어져 나올지언정 움직여지기는 했다.

그리고, 피가 뿜어진 곳의 상처는 이내 바로 재생되어 버렸다.

"이것마저 받아낸다면, 오늘은 네가 이겼다 해 주마!"

촤라락!

오현석의 등 뒤로 세 쌍의 날개가 돋아났다.

그리고 서은현이 반응하기도 전.

오현석은 주먹을 내질렀다.

쿠구구구구!

이전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어마어마한 권격의 폭풍!

위럭도, 속도도 다르다.

'과연, 이번에도 피하겠느냐!?'

피할 수 없다!

이번만큼은!

다음 순간.

서은현이 비둔술을 덮어쓰고, 몸의 기운을 폭발시키며, 동시에 마치 예리한 검 같은 기운을 몸에 둘렀다.

파아아앗!

서은현은 일순간 빛이 되어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오현석은 그것을 보며 웃었다.

'이번에는, 여유가 없었군?'

어쩐지 느껴졌다.

방금 전의 일격은, 서은현이 상당한 힘을 쏟아내서 피한 것이다.

어쩌면, 전력을 다해 피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창익천쇄는 두 번 나간다.

콰과과광!

오현석의 다음 일격이 서은현을 향해 뻗쳐 나갔다.

그리고, 처음으로.

처음으로 서은현이 허공에서 손을 마주 뻗었다.

슈캉!

그리고, 오현석의 공격이 잘려 나갔다.

그것이 끝이었다.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소리소문없이 그의 일격을 베어 갈랐다.

인지조차 되지 않았다.

그냥, 그것이 끝이었다.

"…하, 하하하하!"

그는 기쁘게 웃었다.

'즐겁군.'

즐겁다!

처음에는 망가져 버린 서은현과 대등하게 대화를 나눠 보기 위해 강해져 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그냥 몸을 움직이며 강해지고, 서은현과 대련하는 것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즐기면서 해 온 모든 것들이.

마침내, 서은현이 처음으로 그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마주 공격을 뻗어 온 것으로 보답 받았다.

"그래, 내가 졌다."

오현석은 씨익 웃으며 선선하게 말했다.

"하지만 다음 번에는, 네가 그 공격을 나와 제대로 주고받을 수 있기를 바라지."

서은현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어쩐지 쓰게 웃었다.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을 향해 창호자가 웃으며 다가왔다.

"자, 그나저나 두 사람도 이제 다들 쓸 만한 수준까지 컸으니, 슬슬 새 임무를 내릴까 한다."

오현석과 서은현은 창호자를 쳐다보았다.

"일단 너희에게 줄 임무는 두 가지가 있다. 원하는 걸 맡아서 하면 되겠지. 최근 들어, 괴군 조연이 뭇 종족들을 학살하고, 그들을 생체 괴뢰로 만든다는군. 그 때문에 천족 연맹회에서 괴군을 잡는 수배를 강화했다고 한다."

창호자의 말에, 서은현이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합체기 태수분들께서 가서 잡으면 괴군을 잡을 수 있을 텐데, 어째서 태수분들은 움직이지 않으시는 겁니까?"

"글쎄… 나도 그 이유는 모른다. 다만, 합체기 태수분들은 현재 우리 인족 구역 인근에 뭔가 찾을 것이 있다고 하며 인족 구역에 전부 몰려 계신 상태지. 해서 괴군을 상대할 이들이 부족한 모양이더구나."

"…."

"해서, 천족 총연맹에서 임무를 내렸다더군. 일단 괴군의 기묘성채 인근에서 괴군을 감시하고, 염탐하며 그의 정보를 모으는 임무다."

오현석은 창호자에게 물었다.

"두 가지 임무가 있다고 하셨는데, 나머지 하나는 무엇입니까?"

"나머지 하나는 진마계 관련 임무다. 진마계에서 광한계로 넘어온 마족이 하나가 있는데, 잡아 오는 임무지."

"그럼 저희가 각각 그 임무들을 맡아 하면 되는 것입니까?"

오현석의 질문에 창호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 임무는 하나하나가 극히 위험한 임무들이라 너희가 둘 다 가야 할 것이다. 너희 외에도 일운 제자 셋, 이운 제자 열 명이 함께 갈 것이다. 너희에게 물어본 것은, 너희 둘이 어디로 함께 가고 싶냐는 걸 물어본 거지."

"흐음…."

오현석이 고민할 때, 창호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솔직히 말해서, 스승된 자로서 괴군 관련 임무는 맡지 않기를 바라마. 그 미치광이를 염탐해 정보를 수집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야. 더군다나 너무 위험하기도 하다. 물론 너희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너희가 진마계 임무를 맡았으면 한다."

창호자의 말에, 오현석은 서은현을 바라보았다.

"스승님이 저렇게 말하시니 일단 나는 말씀하신 대로 하려 하는데, 넌 어떻게 할 거지?"

그 말에 서은현은 오현석과 눈을 마주쳤다.

흠칫!

오현석은 몸을 움찔했다.

'감정'.

정말로 오랜만에, 서은현의 눈에서 '감정'의 빛이 드러나 있었다.

"저는… 괴군에게 가 보고 싶습니다."

그 말에, 창호자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어째서냐."

"괴군의 밑에, 제 동료가 있으니까요."

"흠, 그랬었지."

서은현의 말에 오현석은 몸을 떨었다.

'그랬군, 김연 주임이 있었어.'

괴군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미치광이.

그 미치광이에게 잡혀 있다는 김연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듣고도, 그는 여지껏 뭘 했는가.

'그래, 그런 자 밑에서 있을 김 주임을 걱정했었던 거군.'

오현석은 정말 오랜만에, 서은현의 인간적인 면모를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는 굳은 결의와 함께 창호자를 쳐다보았다.

"아시겠지만, 저와 서은현은 같은 곳 출신입니다. 괴군에게 잡혀 있다는 그녀 역시 제 동료이기도 하니, 저 역시 가겠습니다!"

"…휴우."

창호자는 옅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 너희의 선택을 존중하마."

그렇게, 운명이 비틀리며 본래 진마계의 마족을 잡는 임무를 맡았어야 했던 오현석은, 괴군의 기묘성채를 염탐하는 원정대에 참여하게 되었다.

스승의 은혜 (5)

후우웅!

새하얀 구름이 낀 운해.

그 위를 한 무리의 수도자들이 날아가고 있었다.

비둔술에 휩싸여, 둔광을 뿜으며 저 멀리 날아가는 이들.

창천개벽문의 일운(一雲) 제자들과, 몇몇의 이운(二雲) 제자들이었다.

무리의 선두에는 일운 제자 둘이 앞서 나가고 있었고, 후위에는 이운 제자 다섯이 뒤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무리의 중심에는 서은현과 오현석이 날아가고 있었다.

"그나저나, 언제쯤 도착하는 겁니까? 거의 꼬박 반나절을 날아온 것 같은데…."

오현석의 질문에, 선두에 선 일운 제자가 외쳤다.

"조금 참게, 이제 거의 다 도착했어."

"흐음, 그나저나 궁금하긴 하군요. 사형들도 가 보신 적은 있는 겁니까?"

"뭐, 우리도 처음일세. 창한도 자체도 워낙 넓어서 익숙해지는 데에 오래 걸렸고, 다른 인족 천공도라 해 봤자, 바로 옆에 있는 섬이나 몇 번 가 본 게 끝이니까."

"기대되는군요…. 인족 총연맹 본부, 말하자면 수도 같은 개념 아닙니까?"

"뭐, 그렇겠지, 아무래도."

그들이 두런두런 잡담을 나누며 구름 사이를 날아가던 때.

화아아악!

"오오, 저기가…."

구름이 걷히며, 그들의 눈앞에 지금껏 그들이 거쳐 왔던 그 어떤 천공도보다도 거대한 천공도가 눈앞에 나타났다.

얼핏 보이는 것으로만 창한도의 스무 배 크기의 땅덩어리.

다른 천공도에 있는 것들보다도 압도적으로 두껍고 거대한 결계진이 둘러쳐져 있었고, 신령스러운 영기가 땅 전체를 감싸 안고 있었다.

"인족 총연맹 본좌, 천인도(天人島)…!"

촤아아아!

창천개벽문의 제자들은 모두 천인도의 압도적인 크기에 입을 벌리며 눈 앞의 정경을 관찰했다.

"모, 모두 일단 들어가지."

그 모습을 보던 일운 제자 중, 가장 배분이 높은 제자가 창한도의 사람임을 증명하는 영패를 내밀고 천인도를 향해 날아갔다.

파아앗!

그들이 천인도의 결계진 앞에 도착하자, 영패가 빛나며 결계진에 작은 구멍이 뚫렸다.

오현석은 천인도 내에 들어서자, 천인도 안쪽에서 느껴지는 농밀한 영기에 놀랐다.

"창한도도 영기가 굉장히 짙다고는 알고 있었는데, 이건 거의 창한도의 두, 세 배 정도 영기의 밀도가 높군요."

"아니, 실제로는 대여섯 배다. 오 사제가 느꼈던 창한도의 영기라는 건, 창한도에서도 특히나 영기가 짙은 본문의 영맥의 영기니까."

무리의 대표인 일운 제자, 청문규가 천인도의 영기를 들이마시며 말했다.

"자, 그럼 일단, 광령지 인근 부족으로 향할 수 있는 전송진을 찾자고."

"예!"

인족 총연맹 본좌, 천인도.

그곳에는 다른 천족 연맹의 부족과 연결될 수 있는 전송진법들이 있었다.

물론, 천족 연맹 중에서도 인족과 관계가 우호적인 종족들과의 전송진만이 활성화되어 있었으나, 광령지 인근에 사는 종족들은 대부분 인족과는 교역으로 이득을 보는 이들이 대다수였기에 큰 문제는 없다고 했다.

"광령지의 호숫물이네!"

"광령성수?"

"광령성수가 물품으로 들어왔다!"

오현석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광령지라는 곳의 호숫물이 꽤 인기가 많은 모양이군요."

"그렇군…."

일운 제자들 역시 뭐가 뭔지 몰라 얼떨떨해하며 천인도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그때, 서은현이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광령지의 호숫물은 타 종족에서 광령성수라고도 불리며, 복용할 시 체내에 있는 생명력을 크게 늘려 주며, 광령성수를 통해 일순간 불사(不死) 신통을 펼치는 게 가능합니다. 때문에 다들 예비 목숨으로 광령성수를 복용하려 하는 것이지요. 괴뢰에 집어넣고 특수한 공정을 마치면, 괴뢰가 망가져도 저절로 회복되는 자가 수복 기능을 얻기에 괴뢰사들 사이에서도 눈이 뒤집힐 만한 보물이지요."

"오, 서 사제, 그런 건 어찌 아는 건가?"

"…뭐, 그냥저냥 소문을 듣고 알아낸 겁니다. 그보다, 광령성수가 인근에 돈다는 건 광령지로 향하는 전송진법이 인근에 있다는 거겠지요."

서은현은 담담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한 곳을 가리켰다.

"저곳으로 수많은 이들의 의념이 이동합니다. 저곳이 전송진일 듯하군요. 가 보지요."

"어, 그, 그러지."

서은현의 안내에 일행은 그를 따라가, 거대한 탑 앞쪽에 도착할 수 있었다.

총 오 층으로 지어진 탑의 아래쪽에는 수많은 이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가 광령지 전송진이 맞다고 하는군. 그나저나 전송진을 찾았으니, 인족 총연맹 본좌로 가서, 괴군 정탐 임무 등록을 제대로 마친 후에 전송진을 이용하도록 하세."

청문규의 인솔에 따라, 그들은 천인도의 중심에 있는 인족 총연맹 본좌를 찾아갔다.

오현석은 주위를 둘러보던 도중, 서은현 역시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것을 보았다.

"오, 은현아. 너도 여기는 신기한가 보구나?"

오랜만에 서은현의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한 것이 신기했는지, 오현석은 서은현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서은현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예, 뭐. 아무래도 그렇군요. 아무래도 처음 오는 곳이니, 관찰해 두면 차후에 올 때도 편하겠지요."

"하하, 꼼꼼하구만."

껄껄 웃던 오차장은, 문득 전신에 소름이 끼치는 기색이 들었다.

'뭐지?'

흠칫!

오현석뿐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 온 원정대도, 그리고 주변을 지나던 다른 천인도의 수도자들도, 모두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서, 갑자기 하늘을 바라보았다.

얼마 후, 그들의 전신을 맴돌던 소름이 끼치는 기운은 금세 사라져 버렸다.

"무, 무슨 일입니까?"

방금 느껴진 오싹한 기운에, 개벽문의 이운 제자 중 한 명이 주변인들에게 물었다.

그때, 서은현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방금 것은 합체기 태수(太修)의 의식이 주는 느낌입니다. 합체기 태수는 의식의 크기가 우리보다 압도적으로 크니, 우리가 느끼지 못하게 하려면 얼마든지 그리 할 수 있었겠지만… 굳이 그런 배려를 해 줄 기분을 느끼지 못하고 의식으로 이 일대를 잠시 관찰했던 것 같군요."

서은현의 말에, 주변을 지나던 결단기 수도자 중 한 명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최근 몇십 년간, 인족 총연맹이 있는 천인도 인근으로 각 종족의 합체기 태수분들이 모두 몰려오셔서 뭘 찾으시겠답시고 주변을 둘러보신다오. 하도 자주 있는 일인지라, 이제는 모두 그러려니 합니다."

"…그렇군요, 알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서은현은 결단기 수도자의 말에 감사를 표하며 말했다.

"거 참. 이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 원…."

청문규는 찝찝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며 총연맹 본좌의 대궐로 들어가, 얼마 후 임무 확인 영패를 받아들고 나왔다.

"뭐 일단 됐네. 괴군 염탐 임무를 제대로 확인받았으니, 전송진을 이용할 수 있어."

그렇게, 그들은 광령지 인근으로 전송하는 전송진에 올라탔다.

* * *

파아앗!

오현석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허, 이곳이 광령지 인근입니까?"

주변의 영기가, 생명력을 자극하는 것이 굉장히 상쾌한 기분.

오현석은 주먹을 꾸욱 쥐었다.

'어쩐지 이곳에서 수련하면, 경지를 돌파하기가 조금 더 수월할 것 같군.'

청문규가 원정대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맞다. 참고로, 광령지에 왔다고 해서 놀러 온 게 아니니 모두 유의하도록. 우리는 약 5년간 광령지 인근에서 최근 정복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괴군을 관찰해야 한다. 질문 있나?"

"질문 있습니다. 광령지 인근에 제 수행을 돌파하게 해 줄 영약들이 자라난다는데, 임무 중 위험을 줄여 주도록 그런 것들을 채취해 와도 됩니까?"

서은현의 물음에, 다른 이들 역시 눈을 빛냈다.

"상관없다. 단, 광령지 인근 종족들을 자극하지 말고, 최대한 거래를 통해 교류하도록 해라."

"옛, 감사합니다!"

"이놈들, 다들 광령성수를 구할 생각에 신이 났군, 다들 다시 말하지만, 강탈하거나 협박해서 물건을 탈취하면 안 된다. 모두 알겠지?"

"예!"

"그럼 모두 하루 정도 시간을 줄 테니 광령지 인근을 다녀와라."

그 말에, 순식간에 서은현을 비롯한 다른 원정대원들이 모두 흩어져 버렸다.

오현석은 의아해하며 생각했다.

'광령성수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