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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 *

콰아아아-

며칠이 지났다.

모래폭풍이 불어왔다.

나는 토 속성의 법력을 내 주변에 구부려서 모래들이 원판 위쪽을 비껴나가게 했다.

'며칠 동안 북쪽으로 가면서 지청술로 지하를 탐지해도 뭔가 잡히는 건 없군.'

아무래도 더 북쪽에 있거나, 그도 아니면 내가 지청술로도 탐지할 수 없을만치 지하에 파묻혔거나.

둘 중 하나 같았다.

'솔직히 답천사막을 다 뒤지려 하는 것도 조금 멍청한 짓 같기는 한데...'

언제 이 사막을 다 뒤진단 말인가?

어쩌면 슬슬 포기하고 벽라국 쪽으로 가서 그리운 얼굴들이나 보는 것이 상책일 수도 있었다.

'하루만 더 북쪽으로 가 보고 아무것도 없으면 그냥 벽라국쪽으로 방향을 틀어야겠어.'

휘이이이-

모래폭풍 속에서 모래바람을 맞으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사방이 모래, 모래, 모래 천지였다.

그 때였다.

"....!"

저 앞에, 무언가가 보였다.

작은 돌 같은 것이 모래사장 위쪽에 빼죽 튀어나와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 돌의 색깔이 석조 건물의 색과 똑같다는 것이었다.

'저거다...!'

나는 황급히 원판을 움직여 돌로 미끄러져갔다.

"이건, 대부분이 아래쪽에 파묻혀있군."

이 조그마한 부분조차도 사실상 모래폭풍때문에 모래가 많이 쓸려가서 간신히 고개를 드러낸 듯 했다.

나는 지청술을 써서 파묻힌 부분의 범위를 파악해냈다.

아무래도 석조 건물과 같은 자재인 것은 맞았지만, 석조 건물의 일부분인 듯 했다.

이건 마치...

'현판(懸板) 같군.'

법결을 맺어 석재를 모래더미 속에서 파내었다.

네모낳게 생긴 석재 현판에는, 예스러운 글씨체로 갑골문이 써져 있었다.

또한 뒷부분이 깨진 것인지 훼손된 것인지, 뒷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현판의 훼손된 부분을 보던 중, 훼손된 부분의 모양이 마치 내가 일전 등선향의 석조건물에서 본 글자 파편과 일치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뒤에 뢰(雷) 자가 오는 거겠군."

그럼 이 갑골문은 무슨 뜻일까?

나는 석재 현판에 써진 갑골문을 해석하며, 천천히 그 뜻을 해독했다.

"이건... 쇠? 아니, 빛나다란 뜻인가? 황금색? 금(金)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고..."

이전 무림맹 책사 시절 공부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차근히 갑골문을 해독하던 중.

나는 뭔가 기묘한 위화감이 드는 것을 느꼈다.

"이건... 귀신? 신령한 존재? 신(神)으로 해석하면 되는 듯 하고... 마지막, 훼손되기 직전의 문자는..."

나는 석재 현판에 새겨진 세 개의 갑골문 중 마지막 문자를 해석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늘(天)...?"

그리고, 이 뒤에는 등선향 근처 석조건물 옆에 있던 파편이 딱 맞으니.

뢰(雷)자가 온다.

금신천뢰(金神天雷).

내 눈이 커졌다.

"금신천뢰문(金神天雷門)...?"

그 석조건물이, 금신천뢰문과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건가?

하기사, 생각해보면 뇌운 아래에서 그토록이나 번개를 흡수하는 비석을 생각하니,

벼락을 다루던 금신천뢰문과 상당히 잘 어울리긴 했다.

하지만 기묘한 것은 석조건물의 취급이었다.

금신천뢰문과 관련된 건물 내지는 사당으로 보였었다.

금신천뢰문의 태상문주가 승천문으로 갔는데, 왜 금신천뢰문의 건물이 그렇게 뜯어져서 내팽개쳐져 있는가?

그리고 청문세가의 서고를 드나들며, 이전에 있었던 유명한 수도종문의 위치에 대해서 읽은 적도 있었다.

창천개벽문은 벽라국 북쪽 대초원에.

흑색귀골곡은 연국 남쪽 대해(大海)의 섬 중 한 곳에.

금신천뢰문은 성제국 서쪽 대산맥에.

연국을 기준으로, 동쪽이 벽라국, 그 너머 동쪽이 답천사막이었고.

연국의 서쪽이 성제국이었다.

그 성제국의 서쪽 대산맥에 위치한 종문의 현판이, 왜 정 반대쪽인 답천사막 한 가운데에 떨어져 있는가?

'이전에는 이곳이 금신천뢰문의 영역이었는가?'

하지만 내가 읽었던 어떤 서책에도, 금신천뢰문은 근 3천년동안 성제국 서쪽에서 활동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금신천뢰문이 이곳에 자리했던 일은 최소 3천년 전의 일이란 건데...'

"..."

수도자들은 하도 수명이 길고, 역사가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로 아득히 길어서 그 긴 시간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추후에 알아보거나... 아니면 다음 생에 금벽호에게 직접 물어보는 수밖엔 없을 것 같지만...'

그 자의 성격을 생각해 볼 때, 내가 질문을 했다가는 감히 연기기 따위가 자신에게 함부로 말을 거냐면서 벼락을 떨어뜨려 나를 죽이려 할 터였다.

문득 그걸 생각하니 기분이 나빠졌다.

'수도자들은 어찌된게 다들 그리 포악한지...'

잡생각을 할 때였다.

쿠구구구구-

모래폭풍이 더더욱 짙어진다.

"음...?"

문득, 저 모래폭풍 너머로 무언가가 보인다.

안력을 돋워서 보아하니, 저 너머로 흐릿흐릿하게 보이는 뭔가는 성(城) 같아 보였다.

시커먼 성이 모래폭풍 너머에 있었다.

"누가 있는 건가..?"

호기심이 생기려는 그 찰나.

흠칫!

'피냄새가... 나는 것 같다.'

나는 저 성에서 나는 묘하게 흉(凶)한 기운을 느꼈다.

수 번의 삶을 반복하며 누적된 내 경험과 직관, 그리고 하늘에게서 부여받은 일말의 영감이 경고하고 있었다.

위험하다.

일단 멀어지자.

나는 금신천뢰문의 석재 현판을 내려놓고, 원판을 돌려 다시 왔던 길을 향해 남쪽으로 빠르게 내려갔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모래폭풍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화악!

"후우... 엄청나군."

모래폭풍도 모래폭풍이었지만, 모래폭풍 너머로 얼핏 본 그 성에서 느껴진 흉험함은.

가히 식은땀이 줄줄 흐를 정도였다.

'답천사막... 모래밖에 없는 곳이라 해서 안심하고 있었다만. 상당히 위험한 곳이었던 건가.'

사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맘때즈음, 답천사막 부근에서 대학살이 일어났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답천사막과 인접한 청문, 벽씨, 공묘 삼가를 포함한 연국의 막리세가와 진씨세가, 성제국의 수도가문. 그리고 답천사막 동쪽의 나라에 있는 결단기 수도자들도 신경이 잔뜩 곤두섰다고 하였다.

'방금 본 그 성과 관련이 있는건가?'

그 성에서 은연중에 느껴지는 흉험함과 피의 기운은 절로 오한이 들 정도였었다.

나는 십중팔구 그 성이 답천사막 인근에서 일어났다는 대학살과 연관되었으리라 예상하였다.

아마 멍청하게 그 성이 궁금하다고 그쪽으로 계속 향했으면 나는 바로 다음 삶으로 넘어갔으리라.

얼마간 몸을 떨며 왔던 길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던 중.

다시 밤이 되었다.

별자리를 통해 다시금 내 위치를 확인하려 할 때였다.

'어...?'

뭔가 이상하다.

모래폭풍때문에 사막의 지형이 다 변했어서 지형에 대해서는 생각은 않고 있었다.

때문에 주변의 모래언덕들의 위치가 많이 변했어도 그러려니 하였다.

하지만, 별자리를 본 나는 뭔가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나는 성을 보자마자 남쪽으로 도망쳤는데, 왜...'

도착한 곳이 훨씬 서쪽인 벽라국 인근이지?

오싹!

수도진(修道陣)!

필시 그곳은 높은 수도자가 살던 곳이고, 어마어마하게 넓은 범위로 수도진이 펼쳐져 있던 것이리라.

수도진의 외곽에 접근했던 나는 그냥 방향이 틀어진채로 나올 수 있었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더 접근했었더라면...

'섬칫하군. 최대한 빨리 답천사막에서 벗어나고 싶어.'

나는 원판의 방향을 조종하며, 서쪽으로 방향을 틀고 벽라국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 * *

이십주야가 지났다.

"...답천사막이 넓기는 하군."

나는 혀를 차며 주머니에 들어있는 열매씨앗을 꺼내서 먹었다.

이젠 슬슬 등선향에서 가지고 온 식량과 물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음식을 안 먹고 오래 버틸 수 있는 건 축기기에 오른 괴물들부터고.

나는 고작해야 연기기 나부랭이였기에, 살기 위해서는 음식을 필요로 했다.

물론 내단이 생긴 이후부터는 일반인들보다는 훨씬 오래 버틸 수 있기는 했으나.

이렇게 끊임없이 법력을 소모하고 이동을 하며 버티는 것은 또 얘기가 달랐다.

'그래도 이제 거의 다 왔다.'

하루이틀 정도만 더 가면 벽라국 동쪽부근.

공묘세가의 영역이었다.

공묘세가의 영역에는 사막부족들이 많이 결집해 있었으니 식량과 식수를 구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하루 뒤.

휘이이이

바싹, 바싹...

목이 마른다.

이제 식수도 전부 떨어졌다.

식량 역시 어제 나무열매를 하나 먹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배고픈 것은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목이 마른 것이 문제였다.

목이 마치 타는 것 같다.

'물, 물 한모금만 마셨으면 소원이 없겠군...'

내단을 형성하고 연기기에 올랐어도 아직 인간을 초월한 것은 아니기에, 나는 타는 듯한 갈증을 참으며 이를 악물었다.

'그 개 같은 막리세가 놈들이 그리워질 줄이야...'

정확히는, 녀석들이 쓰는 음계법술과 수계법술들이 간절히 고팠다.

지월입도결은 매우 편리했지만, 이런 극한상황에서 물을 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수도공법이었다.

'제길, 목말라 죽겠군. 설마 이번 생은 아사(餓死) 하는 건가?'

내가 여러 번 죽어보았다지만, 별로 하기는 싫은 경험이었다.

그때였다.

"...!"

저 멀리, 새하얀 백의(白衣)를 입은 누군가가 보였다.

'사람, 사람이다!'

어쩌면 물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황급히 법결을 맺어 원판의 속도를 높였다.

백의를 입은 이는 흑발의 여성이었다.

새하얀 백의와 새카만 흑발이 대조적이었고, 손목에는 오색 유리팔찌를 차고 있었으며, 허리춤에는 옥색 노리개를 차고 있었다.

생긴 것은 예쁘다기 보다는 대체적으로 순하게 생긴 인상이었으나, 왠지모를 고집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는 의식이 미간을 중심으로 원구를 그리고 있었다.

수도자였다.

"이, 이보시오..."

나는 말을 더듬으며 그녀에게 소리쳤다.

너무 오랜만에 타인과 말을 하다보니 제대로 말이 안 나온다.

"호, 혹시.."

"목이 말라 보이시네요. 목을 축이세요."

"가, 감사.."

난 그녀가 건내준 물주머니를 받아들고 미친 듯이 물을 삼켰다.

'물이다! 물!'

미적지근했지만, 여지껏 마셔본 어떤 음료보다 황홀했다.

꿀꺽, 꿀꺽, 꿀꺽...

"하아...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저."

"아니에요. 어차피 성(城)도 이곳에서 멀지 않은걸요. 동쪽에서 오시는 걸 보니, 여행자이신가요? 한데 그 옷차림은..."

"흠흠. 사정이 있습니다. 이 근처 성 이름이 무엇이지요?"

"천색성(天色城)이라고 하지요. 동남쪽으로 한 시진 정도만 걸어가시면 나올겁니다. 보아하니 같은 도우(道友)이신 듯 한데, 방금 이곳까지 오실 때 쓰신 법술을 사용하시면 일각 안에 도착하실 거에요."

"아, 정말 감사드립니다. 혹 소저의 성함을 알려주신다면 추후에라도 보답하겠습니다."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막에서 길손을 돕는 거야 당연하죠. 보답은 되었고, 살펴 가시길 바랄게요. 저는 이 근처에서 법기(法器) 재료를 찾아야 해서 이만."

그녀는 법결을 맺더니 모래를 움직여 파도처럼 타고 저 멀리로 가버렸다.

"연기기 13성 정도군. 감사한 소저야."

난 내게 물을 준 소저가 간 방향으로 읍을 하여 예를 차린 후.

그녀가 가리켜준 방향으로 원판을 몰아 이동했다.

그녀의 말대로 정확히 일각 후.

나는 벽라국 동쪽 끝에 있는 성인 천색성(天色城)에 도착하였다.

천색성은 공묘세가의 축기기 수도자인 공묘천색의 이름을 딴 성으로.

청문세가에서 들은 바로는 온갖 법기가 거래되는 장소로 유명하다 하였다.

또한 성의 유리공예품이 예술이라, 많은 곳에서 이곳의 유리공예품을 사가려 한다 했다.

물론 나는 그런 것엔 별 관심이 없었고, 천색성 내부에서 적당한 사파를 때려잡은 후 관청에 잡아가 현상금을 받았다.

그런 후 현상금으로 기본적인 옷가지와 식수, 식량을 사서 먹은 후.

벽라국 서쪽, 청문세가의 영역으로 향하였다.

내 수명은 이제 약 9년 정도가 남은 상태.

비록 40여년간 악을 써가며 제의만 치루느라, 많이 늦었지만.

지난 삶의 인연들이 어찌 지내는지는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나는 가장 먼저 스승님을 찾아가기로 했다.

천뢰(天雷)(3)

스승님은 청문세가 본가에 계신다.

투도를 지향하는 가문인 청문세가에 본가 인원이라는 것은.

투선회 서열 50위 안에 들어가야만 가능한 것이었으며, 스승님이 본디 청문세가의 최중요직이었음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일반적인 가문이라면 어디서 굴러들어왔는지 모를 나같은 놈팽이가 갑자기 한 가문의 최고 요직에 있는 장로를 만나기란 본디 요원한 일이었다.

물론, 일반적인 가문이라면.

"이번 청문세가가 주도하는 투련회(鬪練會) 참가 신청자는 이쪽으로 오시오!"

청문세가는, 시조인 창호자를 본받아서 투도를 숭앙하는 가문이었으며.

본가에서 청문씨들을 위해 열리는 투선회를 제하고도, 몇 년에 한번씩 저렇게 외부 가원을 충당하기 위해 투련회라는 명목으로 산수(散修)들을 모아 비무대회를 벌였다.

투련회 우승자와 차석, 삼위는 전부 청문세가의 외부 가원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결승 진출자들은 가문의 하청 산수가 될 자격을 얻는 식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투련회 우승자는 청문세가에 우승자의 권한으로 아주 작은 소원을 빌 자격을 가질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만나고 싶었던 축기기 장로와 한 시진 정도 대면하여 가르침을 받는다든지 하는 정도의 소원 말이었다.

"접수 받았소. 다음!"

나는 접수처로 걸어가며 접수관에게 말했다.

"이름 서은현. 출신은 벽라국 천색성. 경지는 연기기 9성 오행진의. 토 속성 공법을 익히고 있소."

"음? 연기기 9성?"

내 말에, 접수관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접수관은 연기기 6성의 청문가 외부 구성원이었다.

"아니... 선배님? 선배님의 수준이라면 굳이 투련회에 참석하시지 않으셔도, 청문세가 외부 가원 모집신청을 하시고 인성면접을 보신다면 바로 외부 구성원이 되실 수 있으십니다."

하청산수들이야, 연기기 2, 3성이 대부분이었고.

외부 구성원들도 연기기 4~9성 정도가 다반수였다.

그 이상의 수도자는 청문세가에서 준 혈족 취급을 하였고.

만약 연기기 11성 이상의 수도자가 나이가 어리다면 방계혈족과 혼인시켜 데릴사위로 들이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

승천문이 열리기 이전, 전 대륙에 연기기 수도자가 흔했을 때에야 일반적인 취급을 받는 것이 연기기 9성이었지만.

승천문이 열리고 난다긴다 하는 수도선파들이 상계로 비승한 지금.

수도자라는 존재 자체가 많이 희귀해졌기에, 연기기 9성만 되어도 각 수도가문에서 상당한 취급을 받는다 하였다.

당장 투련회에서 우승하는 일반적인 수도자들도 보통은 연기기 5, 6성 수도자들이었는데 갑자기 나 같은 거물이 나타난 것이었다.

내가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자, 투련회 참가자들이 헛기침을 하며 애써 시선을 피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하, 아무래도 처음 청문세가 접수처에 찾아오신 분들은 많이 헷갈리시곤 합니다. 후배가 제대로 된 곳으로 안내해드릴 테니..."

"아니 괜찮소. 본인 역시 청문세가에서 자랑하는 투련회를 늘 흠모해 왔다오. 부디 투련회에 참석하게 해 주시오."

"아... 그것이.."

"내 알기로 청문세가에서 주최하는 투련회에는 축기기 수도자만 아니면 누구든지 참석할 수 있는 것으로 아오만."

"아니.."

접수관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참가하기는 힘들다 했으나, 청문세가의 가율을 전부 꾀고 있는 내가 조목조목 반박하자 한숨을 쉬며 나를 신청란에 기입해 주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수도자들의 의념의 색이 가지각색으로 변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내가 접수처 바깥으로 나서고, 내 의식도 전부 건물을 빠져나가자 접수처 안에서 한숨을 쉬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성격도 나쁜 선배로군."

"굳이 투련회에 참석해서 후배들을 짓밟고 청문세가로 들어가겠다는 건가..?"

"제길, 연기기 9성을 어떻게 이겨! 그냥 저 선배는 부전승으로 쭉 올려버리면 안 되나?"

내 의식영역 바깥이라고 나를 향한 험담과 짜증을 토로 하는 모양이었지만.

안타깝게도 환골탈태를 하고 내단을 얻어낸 내 청각에는 그들이 떠드는 소리가 의식영역 바깥에서도 다 들려왔다.

'미안하게 됐군.'

하지만, 일반적인 외부 구성원은 공을 세우지 않는 이상 딱히 청문세가 장로를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투련회 우승자라면 얘기가 조금 다르다.

'게다가, 이번 삶에서는 딱히 청문세가에 들어갈 생각도 없고.'

투련회 우승자라고 무조건 외부 구성원이 되는 건 아니다.

내가 외부 구성원 자격을 포기하면 자연스레 다른 이에게 자격이 돌아갈 것이다.

나는 투련회 참가패를 들고 청문세가의 영지로 들어가 쉬었다.

* * *

한 달 후.

투련회가 열렸다.

"...우승자, 서은현!"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내가 우승하였다.

전투라고 할 것도 없었다.

연기기 2, 3성의 참가자들.

우승자가 아닌 하청산수 자리라도 노리고 왔던 이들은 나와 만나자마자 기권했고.

4, 5성의 수도자들은 내 일격을 받아내는 이가 없었다.

그나마 6성, 팔괘완로를 달성한 정도의 수도자들이 어느 정도 나와 법술대결이 성립되었으나, 압도적인 법력차로 패배해 버렸다.

나 역시 이제는 연기기 저계 수도자들 정도는 체급으로 찍어누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2, 3성 수도자들이 내게 기개있게 도전했다면 청문세가에서 대회가 끝나고라도 하청산수 제의를 했을텐데..'

난 나와 만나고 바로 기권해버린 연기기 저계 수도자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청문세가에서 일했던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투도를 숭앙하는 청문세가라면 호전적인 기개라도 보여주는 이라면 충분히 눈독을 들일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나저나 우승자에게는 청문세가 외부 가원 정식 추천권과, 소원권이 하나 주어진다네. 연기기 수도자에게 걸맞는 소원을 사용한다면 충분히 가문에서 들어줄 터. 뭔가 바라는 게 있나?"

투련회를 주관하는 수도자는 일전 만났던 적이 있는 청문벽이었다.

난 청문벽에게 청문령을 만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뜻을 전하였다.

"음, 청문령 말인가? 내 사촌 녀석인데, 하긴 그 녀석은 기초법술과 진법에 대해서라면 어디를 가더라도 따를 자가 없으니.."

"그리고, 가원 추천권은 반납하겠습니다."

"연단의 막리운련, 법기의 공묘천색, 그리고 진법의 청문령이 3대 수..아니 뭐라고?"

청문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내가 이런 행동을 할 줄은 몰랐다는 듯이.

"대진법사이자, 선각후통의 선구자, 기초의 대가이신 청문령 님을 뵙고자 대회에 참석하였습니다.

다른 것은 필요가 없습니다."

"네, 네 이놈.. 수도가문의 외부 가원이 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는 게냐?"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 저는 수도가문의 가율에 얽매이지 않고 만나야 할 이들이 있습니다."

진씨세가도 들어가서 제자들 안위도 확인해야 하는데.

청문세가로 들어가면 그런 일은 할 수가 없다.

"끄으음... 네가 우승자라 해도 본가 장로인 령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본디 한 시진이 다다. ...네가 가원이 되겠다면 내 요청으로 령이와의 면담 시간을 세 시진으로 늘려주마. 그런데도 싫단 말이냐?"

"...선배님의 제안에 사과드립니다."

"...쯧! 됐다. 그럼 그렇게 하거라."

청문벽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 후.

대회의 차석, 삼위를 발표한 후 이틀 후에 다시 간소한 대회를 열어 내가 포기한 추천권을 부여하겠다고 선포했다.

며칠 후.

나는 청문벽과 함께 청문세가의 영지로 들어갔다.

외부 구성원도 되지 않은 나를 청문세가의 본가로 데려갈 수는 없어, 중요도가 낮은 영지에서 만남을 가지기로 한 것이었다.

난 청문벽을 따라 영지 내의 한 낡은 초갓집으로 향했다.

수수하면서도 깔끔한 것이, 어째 스승님과 잘 어울리는 집이었다.

"령아, 너와의 대면을 청한 놈이다. 이 앞에 두고 갈 테니 알아서 상대해 주거라. 난 바빠서 인사는 못하고 가마."

"살펴 가시오, 형님."

초갓집 안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고, 청문벽은 비행법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 영지를 떠나버렸다.

난 숨을 가다듬고, 집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대뜸 절을 올렸다.

"...뭘 하는 것이냐?"

문짝은 열리지 않았지만, 의식으로 내가 뭘 하는지 감지한 청문령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선각후통의 선구자이시자, 대진법사, 기초법술의 대가이신 대청문세가 장로 청문령 대인을 뵙습니다."

"혀가 매끌매끌한 놈이군. 난 너 같이 뺀질뺀질한 놈을 좋아하지 않는다. 잡소리 들어와 앉아라. 네깟 놈이 감히 나와 무슨 얘기를 하려고 왔는지 들어나 보자."

벌컥!

여닫이 문이 열렸고, 난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바쁘게 서책을 들여다보면서 주석을 달고 있었다.

나와 만나는 날에도 꾸준히 하던 일을 하는 것이었다.

정말로...

'변함이 없으시군요.'

"...뭐냐? 갑자기 기분 나쁜 표정 짓지 말고. 물을 것이 있다면 물어라. 난 바쁜 몸이니 물을 거 묻고 빨리 가버려라."

"...예. 알겠습니다."

나는 자리에 앉아, 그에게 연기기 10성 사상이의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들.

그리고 11성 삼재규일, 12성 음양의일, 13성 일원일응에 대하여 궁금했던 점들을 질문하였다.

내 질문들은 선각후통에 기반한 논리와 의문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청문령은 내 정교한 질문들을 듣자 미간을 꿈틀거리며 주석을 쓰다 말고 나를 쳐다보았다.

"...흠, 뺀질뺀질하게 생긴 것과 달리 기초는 있는 놈이었군. 좋다, 네 물음에 답해보자면.."

나는 한 시진 동안 그와 함께 열성적으로 질문을 주고 받았다.

한 시진 후.

청문령은 본래 시간이 지난다면 나를 내쫓을 권한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알자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한 시진 더 추가해주도록 하지. 멍청한 놈이 지식욕은 많아서 가르칠 게 있는 것 같으니."

그리고, 다시 한 시진이 흘렀다.

"...벌써 또 한 시진이 흘렀느냐? 내 한 시진 더 시간을 내 주마. 잘 들어라. 음양의일이란 음맥과 양맥 쌍맥에 나누어서..."

총 세 시진이 흐른 후.

그분은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한 시진 한 시진 이렇게 찔끔찔끔 가르쳐서 뭐가 되겠느냐! 안 되겠다, 세 시진을 더 내어주마! 그 안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경을 칠 것이야!"

그렇게, 나는 청문령과 밤을 새웠다.

* * *

다음 날 아침.

"이제야 좀 후련하군. 이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느냐?"

"종사(宗師) 덕분에 충분히 이해하였습니다."

"...내 듣기로 네가 청문세가 외부 구성원이 되기를 거부했다 들었다.

네 이해도면 선각후통의 방식으로 경지를 올려, 충분히 본가의 준 혈족으로 대우받을 수 있을 터.

오늘 이론을 어느 정도 배웠다고 해도, 실제로 경지를 올리는 것과 이론은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이다. 네가 외부 가원이 된다면 내가 정식으로 가르침을 줄 수가 있는데, 어떠냐?"

"..."

청문령은 내게, 다시금 자신을 스승으로 모시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보며 작게 미소지었다.

"대종사의 말씀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청문세가에 가율에 얽매이면 만나지 못하는 이가 있습니다."

"...뭐, 됐다. 너 좋으라고 한 제안이다만, 밥상을 차려줘도 못 먹는 놈은 어쩔 수 없지."

그는 혀를 차며 서책을 폈다.

"...이제 다시 나가 봐라. 오늘 하루 배웠으면 그래도 이론은 빠삭해졌을 테니 추후에 도움이 될 거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다시 그에게 절을 하였다.

"일일위사(一日爲師) 종신위부(終身爲父)라 하였으니. 오늘 하루의 가르침이었으나, 평생토록 스승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멍청한 놈 같기는, 정녕 종신위부일 것이라면 네가 본가에 들어왔어야지. 됐다, 난 네놈을 하루 본 것 외에는 아무런 정도 관심도 없으니 냉큼 나가라!"

나는 청문령의 처소에서 나와, 다시금 그 앞 마당에서 그가 있는 방을 향해 절을 올리고, 청문세가의 영지를 나왔다.

그 날 하루동안 스승일지라도(一日爲師)

종신토록 아버지처럼 여겨야 할지니(終身爲父)

'스승님, 당신을 잊지 아니하겠습니다.'

몇 번이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지라도.

나는 청문세가의 영역에서 벗어나, 연국의 국경을 넘어 진씨세가의 영역으로 향했다.

김영훈과 제자들의 안부를 확인할 예정이었다.

* * *

김영훈의 소식은 생각보다 쉬이 들을 수 있었다.

참천자(斬天者).

그것이, 김영훈의 별호였다.

연국의 전조(前趙)인 막리황조의 마지막 황제, 막리정의 목을 벤 이.

그리고, 현조인 진가황조를 열어낸 개국공신.

김영훈은 내게 여러 지식을 전수받고, 이전 삶과 마찬가지로 등봉조극에 오른 듯 했다.

그리고 그는 내게 받은 막리세가의 무도한 짓과, 황제 막리정을 죽이면 그 무도한 일이 줄어든다는 정보에.

아예 대놓고 황궁을 쳐들어가서 막리정의 목을 벤 듯 했다.

막리세가에서는 길길이 날뛰며 그를 잡으려 수도자들을 보냈지만, 보내는 족족 김영훈에게 죽고.

축기기 수도자들마저 죽어나가자, 진씨세가에선 그의 잠재력을 높이 보고 그를 비호하기로 한 것 같았다.

여기까지가 진씨세가의 하청산수 중 한 명에게 들은 정보였다.

"서, 선배님. 차는 입에 맞으십니까?"

"음, 그래. 아주 좋소."

벽라국에서야 처음에 청문세가의 영지를 찾기 어려워했으나.

연국은 무림인 시절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하청산수들이나 막리세가나 진씨세가의 영지란 영지는 다 꾀고 있었다.

심지어 진씨세가 본가의 위치도 알고 있었고, 내가 모르는 것은 막리세가의 본가 위치뿐이었다.

이 하청산수 역시, 내가 무림맹주의 책사이던 시절 잠시 연을 맺었던 이였다.

그 당시에는 나와 김영훈에게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무릎을 꿇니 마니 하던 자였었다.

연기기 2성, 삼십육천강에 간신히 턱걸이한 자.

그는 오행진의에 다다른 내 경지를 확인하자마자, 바로 엎드려 절을 하며 나를 선배라 부르고 차를 대접하였다.

난 그에게 궁금했던 점 몇 가지를 물어보고 내가 없었던 연국의 일을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삼십육천강법결에서, 어디에 머물러 있지?"

"예, 저는 천맹(天猛)의 영성을 응집하는 중이고.."

"혹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나?"

나는 내 질문에 답을 해준 진가 하청산수에게 삼십육천강법결에 대한 전반적인 상세한 설명과, 그가 막혀있는 부분에 대한 가르침을 주었다.

하지만 처음 한두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흥미있게 듣던 하청산수는, 시간이 지나자 표정은 그대로였으나.

의념의 색에 지루하다는 의념이 떠올랐다.

'흠, 선각후통에 대해서 굉장히 상세히 설명한 건데...'

조금 더 설명이 이어지자, 아예 산수의 표정에는 못 알아듣겠다는 기색이 점점 더 생겨났고, 나는 그쯤 강의를 끝냈다.

"며칠간 머무르겠소. 그리고 아까 물은 참천자. 나는 그 자의 동향 사람이니 진가에 연락을 넣어 주시오. 연락이 올 때까지 머무르며 혹 법결에 대한 질문이 있다면 받아줄테니."

하청산수는 그제야 살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진씨세가에 연락을 넣으러 갔다.

난 어째서 스승님이 나를 아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천재들은 정작 그분의 가르침이 필요 없고, 정작 그분의 가르침을 필요로 해야 하는 둔재들은 끈기가 없었던 건가.'

난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었다.

며칠 후.

김영훈이 이곳으로 찾아왔다.

"...오랜만이구나."

"오랜만입니다."

40년만에 만난 우리는 어색하게 잠시 서 있었다.

"...수도자가 된 것 같구나. 그 의식의 크기와 영력.."

"예, 어찌어찌 연기기 중고계는 되었습니다."

"그래, 이 세계는 수도자가 살기 좋은 세상이니 좋은 선택을 한 거다. ...어떻게 지냈느냐?"

"이런 저런 일이 있었지요. 그나저나 김 형, 아니... 김영훈 부장님."

나는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내 손에 별빛이 맺혔다.

"...!"

그의 눈에 경악이 어렸다.

"한번 놀아봅시다."

등봉조극에 이른 수준의 무공대결이라면, 과연 어떤 대결일까?

천뢰(天雷)(4)

"그건..."

김영훈은 멍한 눈으로 내 손에 떠오른 강환을 바라보았다.

움찔, 움찔...

강환에 깃든 가공할 의념의 소용돌이.

그 깨달음.

그것을 목도한 김영훈은,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눈이 튀어나올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가 웃기 시작했다.

"하, 하하하하...하하하하...!"

비틀

그리고, 그는 갑자기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마구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의 의념은 이전에 보았던 것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다시없을 찬란한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또... 있었어... 나 말고 또... 이 경계에 도달한 자가... 또 있었어...!"

파아아앗!

그의 의념의 빛이 더욱 더 밝게 타오른다.

그 모습은 숫제 하나의 태양과도 같아보였다.

그러나 나는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눈 앞에 떠오른 태양과도 같은 의념이, 마치 언제라도 내게 달려들 듯한 사자의 아가리와도 같아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흥분하고 있다.

"...여지껏, 무림에는 바보들뿐이라고 생각했다. 절대 다수가 몸을 치고박는 일이류에서 머물고, 특출난 재능이래봐야 그저 붉고 푸른 정도의 의념을 보는 정도.

거기서 더 나아가봤자 고작 세, 네개. 많으면 열댓개의 색의 의념을 보는 삼화취정. 나와 같은 경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오기조원의 경지라도 도달하는 놈이 있을까,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하지만..."

드득, 드드드득...!

땅 위에 있는 작은 모래와 돌들이 진동하고 있었다.

진씨세가의 하청산수는 심상찮은 기류를 느꼈는지 눈치빠르게 벌써 저 멀리 도망가고 있었다.

"그 오기조원조차 전 대륙에서 간신히 몇백년에 한 번 나타날까 말까한 경지... 그래, 애초에 지닌 바 태생의 한계를 뒤엎을 깨달음이 오기조원이니 이해는 한다. 하지만, 하지만... 늘 너무나 허망했다."

나는 긴장을 끌어올렸다.

김영훈이 흥분했다.

그 말은 즉슨.

"수도자들조차도 나와 합이 맞으니 붙는 정도였지만. 나와 진정으로 무(武)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내 깊숙한 갈망을 들어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어...!"

김영훈이 오른손을 폈다.

그의 장심(掌深)에서 빛이 터져나오며, 나와 마찬가지로 강환이 튀어나온다.

"이제서야... 이제서야 이 한을 풀 수 있겠구나...!!!"

그는 너무나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강환을 들어올렸다.

파아아앗!

강환이 회전하더니, 세 개로.

그 세 개가 다시 세 개로 쪼개졌다.

아홉 개의 강환!

아홉 개의 강환이 김영훈의 뒤쪽으로 늘어선다.

"놀아보자!"

파앗!

순간 김영훈의 신형이 눈 앞에서 사라졌다.

채 의념을 읽을 틈새조차 없다!

그야말로 극속(極速)!

하지만 나는 거의 본능에 가까운 감각으로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콰앙!

파공성이 터지며, 김영훈의 도가 내 머리카락을 조금 잘라냈다.

'이 미친, 진짜 날 죽일 생각으로 휘두른 건가?'

아무래도 40평생을 외롭게 고고한 경지에 있다, 비슷한 경지에 있는 내가 나타나자 눈이 뒤집힌 모양.

'내단으로 인한 반응속도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죽었다.'

김영훈의 의념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뭐냐, 장난치는 거냐? 제대로 들어와라!]

파앗!

어느새 김영훈의 장심이 눈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장심에는 눈부시게 빛나는 강환이 떠올라, 내 머리를 향하고 있다.

마치 김영훈의 행동 하나 하나가 뚝 뚝 끊어지듯이 잘 보이지 않았다.

'지난 삶에서 잠시 대련했을 땐, 그야말로 놀아줬던 거군...!'

이게, 등봉조극 최고봉에 이른 초고수의 실력!

나는 온 내공을 짜내서 황급히 그의 손에서 날아드는 강환에 내 강환을 맞부딪혔다.

빛의 광류가 터져나오며 우리가 서로 밀려났다.

수많은 검광(劍光)과 도광(刀光)이 번뜩이며 폭풍을 만들어냈다.

'일단 거리를 벌린다.'

난 황급히 또 다른 강환을 만들어내며 다음 수를 준비했다.

빠르다.

일단 강환을 아홉 개씩이나 만들어내는 거야 둘째치고, 너무 빨라서 반응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나마도 김영훈이 느릿느릿한 초식으로 부딪혀와서 망정이지.

산바람 같은 극속의 초식을 사용하면 바로 머리가 꿰뚫려서 죽을지도 몰랐다.

'일단 근처에서 싸우면 주변이 남아나지 않을테니, 산골짜기 같은 곳으로...'

그리고, 김영훈의 손이 내 머리통을 붙잡았다.

"...어?"

쒜에에엑!

콰아앙!!!

그의 손바닥에서 가공할 척력이 느껴지며 나를 저 멀리 날린다.

나는 하청산수가 살던 장원을 벗어나, 민간을 벗어나 성 바깥에 있는 산골짜기로 그대로 쳐박혔다.

"커헉!"

나는 피를 한 움큼 토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적으로 호신강기를 안 펼쳤으면 그대로 머리가 뽑혀서 죽었다!

'뭐지? 뭐지? 시간이 잘려나간 것 같았다. 반응하는 것 자체가...'

단순히 내단의 효용 같은 게 아니다.

김영훈에게는, 뭔가 다른 게 있다!

툭-

그리고,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뭔가 부자연스럽게 김영훈이 내 눈 앞에 나타났다.

마치 영화에서 필름이 끊긴 것만 같았다.

월수궁무록처럼 인식을 잘라내 허깨비가 되는 게 아니다.

그냥, 너무 빨라서.

등봉조극에 이른 내 반응속도로도 감히 인지하기 힘들만치 너무 빨라서 이렇게 행동이 잘려나가듯이 보이는 것 뿐이다.

'도대체 무슨..'

"흠, 아까부터 뭘 하는 거냐. 왜 제대로 반응을 안 하는 거냐?"

잠시 나를 바라보던 김영훈은 의아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더니, 뭔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 넌 이 경지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은 거로구나!"

"...그렇긴 합니다."

"하긴, 그렇다면야 이 경지에서의 힘을 잘 쓰지 못하겠군. 이 경지에서의 힘만 제대로 잘 다뤄도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지. 이제 보니 강환도 한번에 하나밖에 못 다루는 것 같고."

그는 숨을 들이쉬며 즐겁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뭐 그래도 이건 정말로 요령 같은 거니까, 한번 배우면 쉽게 응용하겠지. 가르쳐줄테니 대련하며 성장해 보거라!"

"아니 잠..."

나는 당신처럼 전투 중에 성장하는 괴물이 아니라고 말하려 했으나.

김영훈의 발차기가 극속으로 나를 파고들어오는 바람에, 나는 간신히 호신강기를 펼치고 막는 수밖에 없었다.

쿠과과광!

내 등 뒤에 있던 삼 장 크기의 거석이 내가 흘려낸 충격파를 이기지 못하고 산산이 박살난다.

[걱정 마라, 성장할 수 있게 잘 가르쳐 줄 테니.]

그의 의념이 울려퍼진다.

나는 죽지 않기 위해 최대로 집중하며 의념의 세계에 진입했다.

그 순간.

'어...?'

왜, 김영훈이 열 명이지...?

난 빠르게 의념의 세계와 육안을 번갈아가며 인지했다.

육안으로 김영훈은 분명 한 명이었다.

하지만, 의념의 세상에서 김영훈은 열 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이건...!'

그리고, 의념의 세계에서 김영훈이 있던 자리에는.

현실 세계에서는 강환들이 늘어져 있었다.

한 명의 김영훈과 아홉 개의 강환.

[우선, 강환은 던져서 터트리기만 하는 폭탄이 아니다.]

타닷!

열 명의 김영훈이 내게 동시에 달려든다.

그가 속력을 조절한 것인지, 이번엔 반응속도가 나와 비슷했다.

하지만 열 명의 김영훈이 의념의 세계에서 너무나도 생생히 내게 공격을 퍼붓는다.

그리고, 한 명의 공격이라도 적중당하면 위험했다.

한 명은 등봉조극의 고수였고, 나머지 아홉은 터지면 몸이 그대로 갈려버리는 강환이었으니까!

"크윽...!"

가장 큰 문제는, 저 강환들이 의념까지 써낸다는 것이었다.

강환들도 나와 간합을 겨룬다.

동급 경지의 고수 열 명이 나를 사방에서 포위하며 간합을 겨루는 셈.

당연히 의념의 간합싸움에서 밀렸고, 나는 그 틈새에 김영훈의 주먹을 허용했다.

퍼억!

"끄윽..!"

"강환을 생성했다면 너도 알겠지. 이건 단순히 내공압축 폭탄이 아니다. 또 다른 나 자신이며, 분할된 정신체이다. 의념을 잘라서 무기에 입력하는 이기어검, 이기어도의 단계를 몇 단계는 초월한 경지.

무기에 다음 행동이 아닌, 자기 자신을 그대로 입력한 것. 그렇기에 강환을 하나 다룰 수 있게 된 후부터 그 전력(戰力)이 배씩 뛰게 되는 것이야!"

그와 공방을 겨룬다.

하단세로 다리를 공격하면 열 명의 김영훈이 각 방위에서 나를 찔러넣고, 그에 대응하느라 김영훈의 무릎에 허리를 찍힌다.

중단세로 찔러들어가면 열 명의 김영훈이 각자 다른 초식을 사용하며 의념의 흐름을 방해한다. 그 사이에 현실의 김영훈이 칼등으로 내 어깨를 내리친다.

상단세에서 베어들어가려 하면 전후좌우상하에서 김영훈들이 나를 덮쳐와, 황급히 뒤로 빠져야 한다.

"크으윽...!"

내가 의념을 일으키자, 사방에서 나뭇가지와 돌쪼가리들이 일어났다.

내가 허공을 격해 나뭇가지와 돌쪼가리에 강기를 입혀, 수천 개의 어검(馭劍)을 만들어 여러 김영훈에게 대응하려 했으나...

번쩍, 번쩍, 번쩍!

휘광이 몰아치며, 아홉 명의 김영훈이 동시에 폭발했다.

거대한 빛의 소용돌이와 함께, 무수한 도흔(刀痕)이 내 어검을 모조리 갈라버렸다.

그리고, 현실의 김영훈의 뒤쪽에서, 또 다른 김영훈 아홉이 다시 걸어나왔다.

육안으로 보자 그가 장심에서 강환을 뽑아내는 모습이었으나, 의념의 세계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비춰진다.

'또 다른 나 자신...'

나는, 문득 멍한 표정으로 김영훈과 같은 자세로 손을 뻗었다.

내 장심에서도 강환이 뿜어진다.

동시에, 내 뒤에서 또 다른 내가 튀어나와, 내 장심에서 뿜어진 강환을 자신의 손으로 받아든다.

'아아, 알겠다.'

어쩐지, 이해가 되는 느낌이었다.

나 자신.

그래, 어검이 무기에 의념을 넣어서 다음 행동을 입력하는 것이라면.

검환은 강기에 나 자신을 입력하는 것.

나 자신이 정말로 들어갔다면, 나 자신이 또 다른 의념의 주체가 되는 것 역시 가능한 것이 아닌가?

파앗!

시야가 분할된다.

동시에, 정신의 영역이 쪼개지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는 하나의 의식으로만 생각했다면, 이제는 두 개의 의식이 생긴 듯한 느낌!

동시에 의념의 세계에 나 자신의 형상이 완전히 또렷하게 드러났다.

열 명의 김영훈 앞에, 두 명의 내가 섰다.

그들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어떠냐, 이제 좀 감이 잡히나?"

"...그렇군요."

난 씨익 웃으며 기수식을 잡았다.

또 다른 나 역시, 나와는 다른 기수식을 잡았다.

이건 재능이라기보단, 요령과 경지의 인식에 대한 영역.

그렇기에 재능 없는 나 역시 이렇게 단기간에 깨칠 수 있었던 것이다.

10대 1과, 10대 2의 양상은 많이 다를 것이다.

파밧, 파바바밧!

의념의 공방이 오갔고, 나와 김영훈의 실제적인 공방 역시 수 합을 오갔다.

[좋군, 여기까진 그럭저럭 이해한 것 같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볼까?]

김영훈의 안색이 황금빛으로 불타오르는 듯 했다.

동시에, 김영훈 한 명이, 본체에게로 걸어가더니, 그대로 김영훈에게 흡수된다.

육안으로 보자, 김영훈이 주변에 도열시켜 두었던 강환 중 하나를 자신의 손 위에 올려둔 것이었다.

'어?'

위험하다.

본능이 경고한 순간, 나는 망설이지 않고 허공으로 튀어올랐다.

꽈과과광!

부채꼴 형태의 강기가 퍼져나가며, 내가 있던 자리, 그 너머의 나무들을 그대로 잘라버렸다.

마치 방금 전과 같이 시간이 잘려나간 듯한 현상.

그리고, 그 자리에 갑자기 나타난 김영훈이 나를 바라보았고.

콰악!

"커헉!"

어느새, 김영훈의 손아귀가 내 얼굴을 쥐고 있었다.

난 생존본능으로 호신강기를 펼쳤고, 김영훈의 발길질이 내 배를 세 번 두들겼다.

쾅, 콰앙, 콰앙!

포탄 터지는 소리가 울리며, 난 그대로 하늘로 치솟았다.

'호신강기를 안 펼쳤으면 허리가 사라졌다..!'

푸콱!

어느새 구름을 뚫었다.

새하얀 운해가 발 아래에 펼쳐진다.

하지만 난 운해의 경관을 감상할 틈새조차 없이 호신강기를 펼치고 의식을 집중했다.

[잘 관찰해라.]

콰앙!

또 다시 파공성이 울리며 어느새 내 앞에 나타난 김영훈이 도를 휘두른다.

그의 뒤쪽으로는 구름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네 수준을 생각해서 두 배로만 높인 것이니.]

뻐어엉!

그가 도신으로 나를 후려쳤고, 난 구름을 찢고 다시 땅으로 떨어졌다.

지금까지 버틴 것도 내단의 내공제어력으로 인한 반응속도가 없었다면 못 버텼다!

'두 배로만 높였다고..?'

두 명의 김영훈이 합쳐진 것을 떠올렸다.

그 모습은 분명, 김영훈이 강환에 입력한 자신의 의식을 회수한 것.

'아니, 회수한 게 아니다.'

파앗!

또 다시 김영훈이 내 바로 위쪽에 나타나, 허공에서 한 바퀴를 회전하더니 도신으로 나를 내리찍었다.

나는 간신히 검을 들어 그를 막았다.

콰과광!

내가 발을 디딘 산골의 바닥이 함몰되고, 주변으로 거미줄같은 균열이 생겨난다.

난 그의 공격을 받아내며, 의념의 세계에서 김영훈의 모습을 관찰하고, 또 관찰했다.

'회수한 게 아니야. 저건...'

단순히 김영훈이 혼자 움직이고 있지 않다.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두 명의 김영훈이, '겹쳐져' 있었다.

'아, 그런가.'

연동(聯動)되고 있다.

두 명의 김영훈이, 서로의 사고(思考)를 연동시키며, 두 배로 자신의 모든 것을 가속시킨다.

'아아아...'

난 무(武)의 천재가 아니다.

그렇기에 싸우면서 엄청난 깨달음을 얻거나 엄청난 폭으로 성장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나는 무의 달인(達人)이었다.

김영훈이 보여주는 것은, 등봉조극의 경지 안에서 응용되는 '요령'이었으며.

달인인 이상, 같은 경지 내에서의 요령이라면, 무수한 경험을 통해서 바로 알 수 있었다.

'와라.'

파아앗!

저 멀리 있던 내 강환, 또 다른 나 자신이 날아오듯이 내게 왔다.

그리고, 나와 그대로 겹쳐졌다.

내 사고와 정신체의 사고가 연동되기 시작했다.

사고의 속도와 효율이 두 배로 뛰어올랐다.

갑자기 세계가 느려보였다.

동시에 내단을 이용한 내공통제력과 반응속도가 수 배 이상 증폭되는 것이 느껴졌다.

부웅!

김영훈이 다시 도를 휘둘렀고, 나는 이번에는 지근거리에서 그의 도신을 잡아챘다.

이번에는 김영훈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드디어 깨달았군. 훌륭하다.]

의념을 통해서 그의 뜻이 전해진다.

나 역시 의념을 통하여 내 뜻을 전한다.

[...이제야 이 정도일 뿐이지요. 당신은, 최대 열 배 이상 사고를 가속할 수 있다는 것 아닙니까..?]

그의 주변으로 몰려드는 여덟 개의 강환들.

[맞는 말이지. 그럼 한번, 제대로 놀아볼...]

콰앙!

내 검이 그의 간합을 뚫고 그의 배로 짓쳐들어갔다.

퍼억!

그 찰나, 나는 입산, 단애, 용맥, 첩첩산중, 산중호걸, 산명곡응, 유릉.

일곱 번의 공격을 김영훈에게 적중시켰다.

[등맥.]

콰앙!

난 검면으로 김영훈의 턱을 후려쳐, 김영훈을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김영훈 역시 찰나간 호신강기를 펼쳤기 때문에 무사한 듯 했으나,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았다.

[무슨, 강환은 한 개밖에 못 다루는 게 아니었나...? 속도가 갑자기..]

[이런 느낌이군요...]

일류에서 절정에 이를 때도.

절정에서 삼화취정에 이를 때도.

삼화취정에서 오기조원에 이를 때도.

항상 이전의 경지와는 완전히 다른 '영역'에 접어들었었다.

그러나 오기조원에서 등봉조극은, 내단을 형성한 후에야 그저 반응속도가 조금 빨라진 정도.

그 이외에는 오기조원과 깨달음의 차이만 있을 뿐.

완전히 이전 경지를 압도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야 체감이 된다.

세상이 느리게 보인다.

나는 이제야, 진정으로 '다음 경지'에 접어들었구나.

나는 그를 체감하며, 전신으로 강기를 뿜어냈다.

축기기 수도자들처럼 전신 경맥에 강기를 펑펑 흐르게는 못하지만, 일시적으로 전신을 검강으로 둘러.

일순간 나 자신이 검(劍)이 되는 것은 가능했다!

등맥!

꽈과광!

나는 나 자신으로 등맥의 초식을 사용하며 김영훈에게 달려들었고, 김영훈은 내 속도에 순간 대응하지 못하고 그대로 내 공격을 맞았다.

쩌어엉!

그가 저 멀리 산골짜기의 봉우리로 튕겨나갔고, 봉우리에 거미줄같은 균열이 생기며, 우리의 흔적을 남겼다.

"...하하하, 그런 거로군...!"

김영훈이 육성으로 웃음을 터트리며, 몸을 툭툭 털었다.

순간적으로 맞은 공격이었지만 역시 호신강기를 둘러 피해를 무화시킨 듯.

그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수도선술(修道仙術)...! 그것도 연기기 후반의 경지이니. 나보다는 의식의 크기가 크다는 건가!"

그는 내 반응속도의 비밀을 알아챘다는 듯이 눈빛을 빛냈다.

그렇다.

이전까지는 그의 속도에 반응을 하지 못했지만, 막상 사고를 가속시키는 요령을 알게 되자 그와 같은 수의 강환을 썼음에도 그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였던 이유.

그것은 내가 연기기 9성의 경지이며, 일반적인 연기기보다 의식의 크기가 비대하여 사실상 연기기 12, 13성 수준의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같은 정신체라도, 가속되는 효율과 용량이 다르다!

사고의 크기 자체가 다르기에, 한 번 증폭됐을 때의 증폭률 자체가 다른 것이었다!

"무공과 수도술이 상부상조(相扶相助) 하는군. 아예 체급이 다르단 건가...? 같은 기술을 익혀도 정신의 크기가 다르니 체급에서 밀린다라..."

김영훈이 히죽 웃으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뭐 좋다. 굉장히 색다른 경험이군. 수도자에게 큰 의식은 신체 특징이나 다름없으니, 어디 한번 덤벼봐라. 오히려 재밌겠군!"

우우웅-

그의 옆을 맴돌던 강환 하나가 다시 그의 체내로 흡수되었다.

김영훈의 가속률이 세 배로 증폭되었다.

"한번 모든 것을 부딪혀 보자꾸나! 수도법술이든 뭐든 다 써서 덤벼봐라! 흐하하하!"

그리고, 또 다시 나와 김영훈이 부딪혔다.

나는 수결을 맺으며, 주변에 진도를 그리고 주변의 대지를 변화시키며 그와 부딪혔다.

우리의 싸움은 아침에 시작해서 저녁이 될 때까지 이어졌고.

주변의 산골짜기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난 결국에는 김영훈에게 패배했다.

하지만, 이젠 이전까지와는 달리, 김영훈은 절대적인 벽이 아니었다.

높기는 했으나, 어느 정도 끝이 보이는 벽.

그것이 이제 나와 김영훈의 수준 차이였다.

* * *

"허억, 허억..."

김영훈이 이가 잔뜩 빠진 자신의 도를 지팡이 삼아 일어서며, 웃음을 지었다.

"...정말 오랜만에 즐거운 경험이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난 완전히 산산조각이 난 내 검을 보며 피식 웃었다.

못 일어나겠다.

전신의 힘이 전부 빠져버렸다.

"그나저나 하청산수를 통해 내게 연락을 넣었더구나. 너 역시 진가에 들어오려는 거냐? 아마 너 정도의 전력에, 내 추천이면 바로 외당 장로가 될 수 있을 거다."

"...그것도 좋겠지만, 장로직보다는 확인할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나는 욱씬거리는 몸을 일으키며 말하였다.

"진씨세가에서 일하는 일반인들 중, 아는 사람이 있어서 말이지요."

"흠, 그러냐. 일반인들 정도라면 내 권한으로 만나게 해 줄 수 있지. 그러면 넌 진씨세가에는 안 들어올 거냐?"

난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내 수명은 이제 10년 남짓 남았다.

그 안에 최대한 연기기의 경지를 끌어올리고.

이번에는 성제국 쪽으로 갈 예정이었다.

금신천뢰문.

성제국 서쪽 대산맥에 자리했었다는 그 문파가, 등선향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어쩌면, 우리가 이곳에 떨어진 것과 어떤 관련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천뢰(天雷)(5)

나는 김영훈에게 허락을 받아 진씨세가의 영지에 있는 내 제자들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삶에도 역시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계화는 아이를 둘 낳았다.

만호는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 일을 가르치고 있었다. 둘은 좋은 부모가 될 듯 했다.

녹현의 조각술은 지난 삶보다도 훨씬 뛰어나게 성장했다.

녀석도 새로 부인이 생긴 것 같았다. 다만 내가 모르는 얼굴인 것으로 보아, 진씨세가 영지에서 만난 다른 여인인 것 같았다.

청야는 비단을 짜내는 일을 하고 있었으며, 그녀가 뽑아내는 비단은 굉장히 고왔다.

희아는 곽기와 혼인했고, 아직 아이는 없는 것 같았다.

지난 삶과 비슷한 인연들도 있었지만.

나비효과로 인해 조금씩 달라진 모습들도 보였다.

그들 모두 잘들 지내고 있었으며.

누구도 죽은 녀석은 없었다.

나는 녀석들이 사는 마을을 몰래 한번 돌아본 후, 김영훈과 다시 영지를 빠져나왔다.

"좋군요. 모두 잘들 사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런데 아는 이들이냐?"

"...안다면 알고, 모른다면 모르는 인물들이지요."

"무슨 인연인지 물어도 되겠느냐?"

무슨 인연이냐라...

난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냥, 인연입니다."

한번 맺어졌던 인연에 어떤 이름을 붙여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냥, 인연일 뿐이다.

사제의 연이 아니더라도, 내 가슴 속에서 잊혀지지 않을 인연들...

"그냥 인연이라..."

김영훈은 뭔가 더 궁금한 듯 싶었지만, 내 복잡한 의념을 읽고는 딱히 더 묻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배웅해주며 여러 대화를 나누었다.

40년 동안 도대체 뭘 하고 지냈느냐, 무공을 익히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어떻게 수도법술과 무공을 전부 그 수준으로 익힐 수 있었느냐 등...

"벽라국 쪽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김 형이 그랬던 것처럼 저 역시 눈을 떠보니 완전 다른 곳이더군요."

"하하, 그러냐. 눈을 떠보니, 연국의 언어랑 처음 보는 무공 등이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기에 사실 큰 어려움은 없더구나."

"...저도 그랬습니다. 등선향에서 보았던 그 괴인들이 한 짓이 아니겠습니까?"

난 내가 김영훈에게 생존을 위해 넘겨준 지식을,

등선향의 천인기 수도자들이 한 것으로 돌렸다.

"...쯧, 동료들 다 납치해가고 이런 걸 해 줘 봤자지만... 됐다. 뭐 지나간 일을 내가 어쩔 순 없지."

그는 혀를 차며 한숨을 쉬었고, 나는 그와 무공에 대한 여러 깨달음을 나누었다.

그리고, 연국의 서쪽 경계지역.

그곳에서 나는 김영훈에게 세 권의 책을 넘겨받았다

"월도월무록이라는, 그 괴인들이 내 머릿속에 넣어준 무학서. 그 무학서를 극한까지 익히고, 다음 경지에 대해 알기 위해 시행착오를 한 깨달음들이 추가된 것이다. 너도 읽어보면 썩 도움 될 거다."

"음, 제목은... 그대로 월도월무록입니까?"

난 이번에도 김영훈에게 그가 분량을 늘려놓은 무학서를 받아들며 되물었다.

그러나 김영훈은 자조적인 표정으로 혀를 찰 뿐이었다.

"제목을 바꾸긴 뭘 바꾸느냐. 간신히 매달려서 멍청한 시행착오만 반복해 추가한 것들이다. 등봉조극 그 너머 경지라는 게 실존하는지조차 솔직히 의문이고. 뭐가 나올때까지 무식하게 부딪힌 일기나 다름없는데.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등봉조극이 무림인이 도달할 수 있는 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말이다."

푸흣!

"...뭐가 웃기냐?"

난 문득 그의 말을 들으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무림인이 도달할 수 있는 끝?

김영훈에게 몇 번이나 들었던 말이었더라?

하지만, 그는 여태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기어코 그 너머 경지를 만들어내었다.

끝의 끝조차 몇 번이고 그 한계를 박살내버리고 전승되며 강해지고 높아졌다.

그것이, 김영훈이었다.

"...산 너머 산이 다함이 없으니(山外山不盡), 길 가운데에 길도 다함이 없더라(路中路無窮)."

나는 천천히 경구를 읊으며 말했다.

"끝이라 생각해도 그 너머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김 형이라면 반드시 그 너머에 도달할 겁니다. 정 바꿀 생각이 없으시다면, 아쉽지만 월도월무록으로 받아놓지요."

"...괜히 띄워줘봤자... 후, 됐다. 그나저나 정말 성제국으로 갈 게냐?"

"예. 성제국에 찾을 것이 있습니다."

성제국 서쪽 대산맥에 있다는 금신천뢰문에 대한 기록.

나는 그를 뒤져서 최대한 승천문에 대한 정보를 더욱 더 끌어모을 예정이었다.

"아쉽군... 네가 남아서 더욱 더 나와 대련해줬으면 싶었는데."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아무래도 꼭 찾아야 할 것이 있어서요."

"그래, 알겠다. 그래도 간혹 들르기는 하거라."

나는 그에게 말없이 포권을 했다.

김영훈도 마찬가지로 포권을 했고, 우리 둘은 그렇게 짧은 작별인사를 했다.

* * *

성제국은 경전의 나라라고도 불리는 국가였다.

온갖 경전과 학식이 범람했고, 문인의 나라라고도 불리는 만큼 수많은 시구들과 시집들이 거리마다 넘쳐났다.

성제국어에 대한 지식은 약소한 편이었지만, 한껏 강화된 수도자의 정신으로 말을 배우니 달포가 되지 않아 성제국어를 모국어마냥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말을 배운 이후부터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성제국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성제국은 총 일곱 개의 수도가문이 통치하고 있다 하였다.

하지만 수도가문의 수가 많다 하여 이들이 연국이나 벽라국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막리세가, 진씨세가보다 조금 세력이 큰 진루세가(珍累勢家)라는 거대가문이 성제국의 절반을.

그 외에 하씨세가, 거씨세가, 준씨세가, 열전세가, 오리세가, 전씨세가 등 여섯 군소 가문의 연합이 나머지 절반을 장악한 형태라 하였다.

여러 수도세가들이 난립하는 국가인지라 각 가문에서 주장하는 여러 사상과 학문이 쏟아져 나오는 학문과 경전의 성지.

그곳이 성제국인 셈이었다.

나는 성제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았다.

* * *

성제국에 온지 약 1년차.

나는 곳곳의 하청산수들과 수도가문의 방계 등을 찾아 묻고 다닌 결과.

금신천뢰문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얻을 수 있는 곳을 알아냈다.

"성제국 제일종문이었던 금신천뢰문에 대한 정보라면야, 성제국 황실 서고에 상당히 많을 거요."

"황실 서고라..."

성제국의 황실은 놀랍게도 딱히 어느 가문의 방계가 아닌, 순수한 범인이라 하였다.

여러 가문이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어느 특정 가문의 방계가 황실을 차지한다면.

연국과 같이 나라 배후의 가문들끼리 엄청난 혈투가 벌어질 터이니, 일곱 가문이 서로 약조를 맺어 범인들끼리 황조를 맺게 하였다 했다.

그리고 그러한 힘의 균형 속에서, 범인들의 황조인 난씨황조는 무려 칠백 년을 존속했고.

그 칠백년이라는 기간 동안 수도계의 귀중한 공법 등은 수집하지 못했지만,

수도자들이 공법서적보다는 비교적 덜 중요히 여기는 역사서적 등은 꾸준히 수집했다고 한다.

때문에 성제국 황실의 서고에는 온갖 수도종문들에 대한 역사, 특히 성제국 제일종문이었던 금신천뢰문에 대한 비사는 상당히 많이 비치되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황실 서고에 접근하는 방법이었다.

'수도자는 서고는 고사하고 황궁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안 된다니..!'

일곱 수도가문이 혹여 상대 가문의 수도자들이 황실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제약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일곱 가문의 가원은 물론이고, 산수들도 황궁 안쪽으로는 못 들어가게 황궁 내부에는 강력한 결계가 쳐져있다고 하였다.

'흐음, 이것 참 곤란하군. 결계를 뚫지 못하면 들어갈 수 없는건가.;

나는 정보를 제공한 눈 앞의 하청산수에게 물었다.

"하면, 황궁 안에는 수도자가 한 명도 없다는 말인가? 수도자는 아예 들어가는 게 불가능한 거고?"

"아, 아마 그건 아닐 겁니다 선배님. 황궁 안에도 황실 감시역으로 연기기 고계 수도자들이 몇 정도는 있다 들었습니다. 그들은 칠대 가문에서 제작한 결계에 저항하는 특별한 부적을 받아,

유사시에 황실을 보호하거나. 황실이 칠대가문의 의지에 반할 때에 황제를 갈아치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그 말인 즉슨, 들어가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는 거로군?"

"예, 맞습지요."

"흠..."

아무래도 결계에 대해서 직접 보고 판단해야 할 듯싶었다.

나는 성제국의 수도인 진경(津京)으로 가서 황궁의 배치와 황궁 주변을 흐르는 영기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스승님께 배운 진도에 대한 지식과, 하청산수들에게 들었던 증언 등으로 보아.

황궁에 쳐진 결계는 수도자의 진입을 막는 결계가 아닌, 결계 내부로 들어온 수도자의 법력을 억누르는 결계였다.

즉, 결계 내부에서는 수도자라고 해도 칠대가문에서 지급한 특수한 부적을 지니지 않으면 일반인과 다름없다는 얘기였다.

"...그러니까, 이 말인 즉슨."

나는 황궁을 드나드는 이들과, 황궁 안쪽에서 얼핏얼핏 보이는, 검기를 뿜어내는 무림인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난 그냥 들어가면 된다는 말이군."

법력이 제약당하든 말든 내 알바는 아닌 것이었다.

법력을 가진 존재가 아예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 법력을 가진 존재가 들어가면 법력이 제약당하는 형태의 결계.

하지만, 나는 법력 말고도 다른 힘이 있었다.

슈칵!

월수궁무록으로 인식을 베어낸 후, 나는 유유히 황궁의 정문으로 들어갔다.

쿠구구구!

황궁 안쪽으로 들어가자 확실히 법력이 제약당하는 게 느껴졌지만.

의식과 내공, 내단 등은 멀쩡했다.

하기사 결계 내에서 무림인마저 무공을 못 쓴다면 황궁에서 일어나는 돌발상황에 대한 대처가 아예 안 되는 수준일 것이다.

'거기다가 힘을 쓰는 게 허용된 수도자들도, 어차피 전부 연기기 수준이라 하니...'

유사시엔 황궁을 뒤엎어버리고 도망쳐도 아무 문제가 안 될 수준이었다.

나는 황궁 곳곳을 돌아다니며 황실 서고를 찾아, 그 안으로 몰래 들어갔다.

"어디보자, 금신천뢰문에 대한 서적... 서적이..."

나는 그렇게 서고에서 금신천뢰문에 대한 서적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 * *

나는 금신천뢰문에 대한 서적을 찾아 읽어가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금신천뢰문은 무려 12만 3천 200여 년 전에 세워진 종파라고 했다.

12만 3천년!

기가 질리다 못해 어이가 없을 정도의 숫자단위였다.

'무슨 정신나간 숫자단위란 말인가..?'

그냥 장난이나 전설 같은 것이라 치부하며, 다른 서적들을 전부 찾아보았다.

그러나 황실에서 보관하고 있는, 연국어나 벽라국어로 된 완전히 다른 서적들 역시 금신천뢰문의 출현을 약 12만 3천여년 전으로 잡고 있었다.

물론 3천년 이하의 세세한 년도들은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어쨌든 모든 서적에서 동일한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진짜란 말인가...'

하기사, 천인기 수도자만 하더라도 수명이 2000년을 넘는다.

'지구에서 서기가 2000년을 조금 넘은 수준이었는데, 가진바 수명이 이천년이 넘는 괴물들이면...'

그렇게 생각하니 12만년이란 정신 나간 시간단위도 이해가 되는 것도 같았다.

'음? 심지어 흑색귀골곡 이 종파는... 50만년? 이게 숫자놀음인가 아니면 진짜인건가...?'

난 흑색귀골곡에 대한 허황된 숫자는 빠르게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빠르게 금신천뢰문에 대한 정보로 눈을 돌렸다.

저런 머리아픈 숫자는 잡고 있어봤자 어이만 없어질 뿐이었다.

난 금신천뢰문에 대한 서적들을 읽고 정보들을 취합했다.

여러 서적에서 교차검증이 된 정보들은 신빙성 있는 정보로.

한두 서적에서만 언급된 정보들은 야사 정도로.

그렇게 교차검증을 하며 신빙성 있는 정보들을 모아 추려낸 금신천뢰문에 대한 정보들은 다음과 같았다.

금신천뢰문은 12만 3천여년 전 금신자(金神者) 앙수진이라는 도인이 세운 종파라고 했다.

이 금신자 양수진이라는 자에 대한 기록은 황실 서고 어디를 찾아보아도 없었다.

말 그대로, 그냥 갑자기 뚝 떨어진 존재였다.

하지만 양수진이라는 자에 대한 특이한 기록이 존재했는데, 바로 천거(天拒) 현상이었다.

'내가 겪은 것과 같다...!'

그는 연기기 7성에서 칠성제의를 치룰 당시.

하늘에 먹장구름이 끼며 그의 수선을 불허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온갖 고련을 다해 강환으로 먹장구름을 찢어발기고 칠성제의를 완료한 것에 비해.

양수진은 가진 바 재능이 워낙에 엄청났어서, 그 재능으로 하여금 천거 현상을 스스로 극복하였다고만 기록되어 있었다.

무슨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나와있지 않았다.

'신기하군, 12만 년 전의 사람도 천거 현상이란 걸 일으켰다니...'

하지만 신기한 것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기이하게도, 양수진의 시대에는 천거 현상을 겪은 이들이 대여섯 정도 더 존재했다는 정보들도 있었다.

'대여섯 명이라...'

안타깝게도 그들이 누군지에 대한 정보는 수록되어있지 않았고.

그들이 천거 현상을 극복한 방법에 대해서도 찾기 힘들었다.

심지어 그 중 한명은 아예 그냥 천거 현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늙어죽었다는 야사까지 있는 마당이었으니.

어쨌든, 한 시대에 그토록 희귀한 천거 현상의 보유자가 그토록 많이 동시에 등장했다는 건 조금 신경쓰이는 대목이었다.

'신경쓰이는데...'

하지만 뭔가 결정적인 단서가 없어 섣불리 생각을 정리할 수는 없었다.

양수진에 대한 기록 중, 가장 특이한 기록은 바로 금신천뢰문의 개파에 대한 기록이었다.

-그리하여 조사(祖師)께서 하늘에 손을 뻗자, 하늘이 갈라지며 중령성국(中靈聖國)의 수도 개천성(開天城) 위로 빛의 문이 열리니. 그곳으로 문파의 신물(神物)이 떨어져내렸노라. 금신자(金神者)의 도호와 신물(神物)의 이름을 따, 그분께서 금신천뢰문(金神天雷門)을 세우시니. 성국(聖國)의 백성들은 이를 기리고자, 개천성에 금신천뢰문을 숭앙하는 사당을 세워 기도하고...

"빛의 문...?"

나는 다른 서적들을 찾아 정보를 교차검증하며, 해당 비사가 신빙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여러 서적들에서 묘사하는 '빛의 문'에 대한 묘사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건, 승천문(昇天門)이군."

확실하다.

"그리고 여러 서적에서 묘사하는 성국이라는 나라는..."

12만년 전에 존재한.

현재의 답천사막의 위치에 있던 국가였다.

"12만년 전에는 답천사막이 사막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나본데, 하면 승천문이 있던 답천사막은 성국이라는 국가의 중심에 있던 것이고, 등선향에 있던 석재 사당은, 12만년 전의 그것이란 소리인가...?"

그 돌조각들이 무려 12만년 전의 것이라니.

조금 단단하다 싶긴 했지만, 그 정도로 오래 묵은 물질인줄은 몰랐다.

'일반적인 돌이 그게 가능한가 싶긴 하지만, 날아다니는 신선 같은 것들이 있는 시점에서 그런 건 생각해봤자긴 하지.'

하여튼, 여러 정보들을 종합한 나는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승천문이란 것은, 금신천뢰문의 개파조사인 금신자 양수진이란 이가 만들어낸 것이다..."

하면, 이 자가 우리를 이 곳에 떨어지게 만든 원흉인 건가?

'아니, 그건 아닐 것 같다.'

양수진이라는 이가 연기기일 때 겪었다는 천거 현상.

그리고 그와 동시대에 있었다는 대여섯명의 천거현상자들.

그리고 나와 회사 동료들.

이들간의 결정적인 관계는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어째선지 양수진 역시 하늘로부터 휘둘린 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양수진이 승천문을 연 곳 근처엔 애초에 공간이 불안정해서 공간균열이 많았었군.'

이 역시 여러 서적에서 교차검증한 정보였다.

중령성국이란 곳의 수도가 개천성이란 것 역시.

수시로 하늘의 공간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기현상에서 발원한 것이라 하였다.

'더 자세한 정보가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12만년 전의 비사인 탓인지.

수도자들에게서 구한 정보를 간직한 황궁서고에도 세세한 사정 같은 것은 없었다.

그냥 그 때엔 이런 일이 있었다 하더라 라는 식의 정보가 대부분이었다.

"그럼 금신천뢰문의 신물이란 건 뭐지...?"

나는 또 다시 여러 서적을 뒤지며 금신천뢰문의 신물이란 것에 대해서 찾아보았다.

그러나 '금신천뢰문의 신물은 종파의 핵심기밀이라는 이유로 민간에 알려지지 않았다' 라는 정보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알려진 것은 금신천뢰문의 모든 문인은 신물과 자신의 수행이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금신천뢰문에서 신물을 어마어마하게 중요히 여기며 대대로 문주에게만 전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신물이니 중요하게 여기고, 문주 같은 최상위층에게만 전하는 게 맞겠지!'

너무 당연한 정보라서 조금 짜증이 나기도 했다.

나는 다른 서적들을 계속 뒤적여 봤지만, 신물에 대한 정보는 황실 서고 어디에도 없었다.

황실 서고에 12만년 전의 정보가 있다고 해서, 황실에 12만년어치의 모든 서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몇천년 단위로 굉장히 유명한 사건들을 담은 서적들이 있었을 뿐이었고.

금신자가 승천문을 열고 금신천뢰문을 세운 사건은 너무 유명한 사건이라 기록된 것이 많을 뿐이었다.

"흠, 이건 야사집인가."

나는 서고를 뒤지던 중 금신천뢰문에 대한 또 다른 야사집을 발견하곤 펼쳐서 읽었다.

야사집에는 신빙성은 없지만 재미있는 내용도 많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는 양수진이 승천문을 연 것에 대한 것이었다.

야사집에서는 양수진이 승천문을 열고 하늘 너머에서 신물을 받아낸 것이 아닌.

애초에 천인기에 올라 상계로 비승을 한 후, 상계에서 신물을 가지고 다시 이 세계로 내려올 때 공간을 가른 것이 신물이라는 추측을 제기하고 있었다.

'확실히, 승천문이 상계와 이어지는 이유로는 이게 적합하군.'

애초에 상계에서 내려오며 만들어진 균열이기에 상계와 이어져있다.

하지만 이 야사집에서 논하는 추측엔 기묘한 것이 있었다.

'그 말대로라면, 양수진은 천인기에 올라 상계로 비승을 하고, 다시 이 세계로 내려와야만 했던 어떠한 이유가 있었다는 말인가?'

나는 양수진이라는 인물이 어떤 말년을 보냈는지를 마구 찾아보았다.

대체적으로 비슷한 기록이었으나,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기이하게도 전부 서적마다 기록이 달랐다.

어떤 서적에선 자살했다고도 하고.

어떤 서적에선 다시 상계로 비승했다고도 하고.

어떤 서적에선 치매에 걸려 이상한 소리를 하다가 미쳐서 공간 균열로 들어갔다고도 했다.

어떤 서적에선 수명이 다 되어 늙어죽었다고 하기도 했으며.

어떤 서적에선 그냥 실종되었다고 하기도 했다.

'왜 다 다르지?'

하지만 분명한 건, 일단 양수진은 죽거나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기이한 자로군.'

출생도 명확하지 않고, 사망도 명확하지 않다.

문제는 기록이 오래되어 정확하지 않은 게 아닌, 그냥 정보가 없다는 것이었다.

'동시대의 다른 흑색귀골곡 곡주나 거대 종문 문주들의 출생은, 그 지역이 어딘지라도 대략적으로나마 추정하는 기록이 많다. 하지만 양수진에 대한 것은 아예 추정기록조차 없다.'

이 자는 어쩌면...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며 다른 서적들을 계속해서 읽고 또 읽었다.

승천문, 혹은 기타 정보를 통해서 뭔가 새로운 정보를 도출해낼 수 있을 테니까....

* * *

내 수명이 다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황실 서고에서 숨어지내며, 서적들을 읽고 정보를 규합하며.

끊임없이 지월입도결의 수행도 멈추지 않았다.

대지에서 토 속성의 영력을 추출하며 오행의 의를 전 영맥에 적용시킨 결과.

나는 3년여만에 오행진의를 완공하고 연기기 10성, 사상이의로 넘어갈 수 있었다.

사상이의는 체내의 팔괘완로로 구성된 여덟 괘상의 영력을 네 가지 사상의 이치에 따라 이의(二意)로 이어 두 줄기의 음맥과 양맥으로 나누는 작업이었다.

이 부분은 선각후통의 방식으로 미리 전부 깨우쳐 놓기도 했고, 애당초 법력을 인도하는 게 주인 경지였기에 내가기공으로 훈련한 진기도인 경험으로 충분히 선행을 할 수가 있었다.

쿠구궁!

나는 황궁의 심처, 영력이 잔뜩 모이는 곳에 월수궁무록을 사용하며 자리를 잡고 불철주야 노력한 결과.

1년 반 만에 사상이의를 완공하고, 연기기 11성 천지인규일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삼재규일의 단계는 삼재에 해당하는 하단전, 중단전, 상단전을 잇는 길을 영맥으로 더더욱 강화시켜 삼단전을 이어놓는 작업이었다.

나는 다시 3년 반의 시간을 거쳐, 삼재규일을 겨우겨우 뚫고 연기기 12성, 이의합일에 진입하였다.

'천지인은 곧 하나라...'

삼재가 곧 하나.

그것이 삼재규일에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부웅, 부웅, 부웅...

동시에 나는 삼재규일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인해, 내 강환에도 뭔가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지? 뭔가 알 것도 같은데...'

왜 김영훈은 항상 하나의 강환을 세 개로 쪼개고, 그걸 다시 세 개로 쪼개서 아홉 개의 강환을 생성할까.

그냥 처음부터 아홉 강환을 뽑아내면 안 되는가?

'종이 한 장 차이의 깨달음이 부족한데... 그걸 알 도리가 없군.'

도대체 무슨 깨달음이 부족한 것일까.

'천지인은 곧 하나라...'

나는 어쨌든 11성 삼재규일을 완공하고, 12성 이의합일로 진입하였다.

이의합일은 음맥과 양맥으로 나눈 영맥의 음양이기를 끊임없이 순환시켜, 두 개의 음양쌍맥을 단 하나의 일맥(一脈)으로 통합시키는 단계였다.

이의합일의 단계는 영기의 끊임없는 순환이 중요했고, 이것은 진기의 흐름과도 비슷했기에 이전에 해왔던 어떤 단계보다도 더욱 빨리 경지를 뚫는 것이 가능했다.

퍼버벙!

약 6개월만에 나는 이의합일을 끝내고, 연기기 13성 일원일응으로 진입하였다.

그리고.

내 수명이 거의 다 되었다.

* * *

우우웅!

나는 그날도 서적을 꺼내 읽으며, 체내를 흐르는 영기의 흐름을 느꼈다.

연기기 13성, 일원일응의 경지는 하나로 통합한 영맥의 영기를 빠르게 돌려, 단전에 일점(一點)으로 영기를 응집시키는 것이었다.

이 역시 영기의 일원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기에 깨달음을 요하고는 있었으나.

나는 이제 곧 13성도 완공에 달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 생에 14성. 연기기의 극한을 보지는 못하겠지만, 다음 생만 해도 충분히 연기기의 극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축기기가 문제군.'

연기기 14성, 무극영운의 경지까지는 사실 스승님에게 워낙 잘 배워두어서 탄탄대로일 것 같았다.

그러나, 축기기에 이르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자질이 좋은 진영근 수도자들조차 축기기에 오르는 것은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했고.

천영근자 정도나 되어야 무난하게 수련만으로 축기기에 오르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랬기에 인간을 갈아서 만드는 축기단 같은 단약이 여기저기에서 떠도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축기단을 먹을 수 없다.'

그 역겨운 것을 입에 대기조차 싫다.

인간이 같은 인간을 갈아만든 단약을 먹는다고?

'인간이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선은 있지 않느냔 말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현실적으로 내 오영질로는 진영근자들조차 힘들어한다는 축기기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찌해야 하는가...'

성제국의 황궁 서고를 뒤적이며, 나는 금신천뢰문뿐이 아닌 기타 서적들도 10여년간 굉장히 많이 찾아보았다.

그 중에서 축기단 없이 축기기에 오른 사례를 찾아보려 했지만.

축기단 없이 축기기에 오른 이들은 특이한 체질을 지녔거나, 천영근자. 혹은 아주 오성이 뛰어난 이영근자 정도가 다였다.

사영근자 이상이 축기단 없이 축기에 성공한 사례는, 전무(全無) 했다.

"...어찌해야 하는가."

내 수명은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두 번의 생을 바쳐 겨우 연기기 13성일 뿐이다.

그조차도 최고의 스승을 만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불철주야 노력을 한 덕에 도달한 것이니.

일반적인 둔재의 노력으로는, 사실상 도달도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축기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시간이 부족하다."

한 번의 생은 어째서 고작해야 50년도 채 되지 않는가.

어째서 그렇게 딱 정해져 있다는 말인가.

조금만 더 시간이 있다면, 내가 조금이라도 더 할 수 있을텐데.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준다면..."

축기기.

축기기에 오르기에는 수명이 부족하다.

하지만 새로운 수명은 오직 축기기에서부터만 주어진다.

어찌해야 한다는 말인가.

사락-

나는 문득, 서적을 뒤지던 중 수명(壽命)에 대한 한 가지 흥미로운 이론을 발견해냈다.

-대저 인간의 수명이란 하늘이 정해준다고 한다. 그렇기에 인간은 수명을 극복하고 싶다면 축기에 성공하여 새로운 수명을 내려받아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필자는 다르게 생각한다.

하늘은, 어쩌면 수명을 내려주는 존재가 아니다. 하늘은 그저 정해진 수명을 기록하는 존재고, 인간이 그 기록을 넘어서지 못하게 운명을 부여하여 막아설 뿐이다. 그 말인 즉 하늘이 보내는 운수조차 막아설 힘을 손에 넣는다면.

하늘은 그 인간의 명을 다시 기록하게 된다. 다시 한번 기록하는 명의 길이는 약 300여년. 그리고 또 다시 인간이 300여년의 명조차 뛰어넘을 힘을 가지게 되면 다시 하늘이 황급히 새로 수명을 기록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하늘이 수명을 내려준다는 이야기의 진실이리라.-

"호오..."

나는 이 글귀를 눈여겨보았다.

여지껏 보았던 논지 중 가장 흥미로운 논지이기도 했고.

"왜... 이 이야기 앞에 수록된 거지..?"

먼 옛날.

스승님과 함께 찾았던, 어머니에게 먹일 잉어를 찾기 위해 한겨울에 옷을 벗고 빙판을 녹인 사내와, 다른 여러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설화들의 사례.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이야기를 담은 고전설화 모음집의 앞에 수록된 말이였기 때문이었다.

'이건 꼭...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설화의 저자, 혹은 엮은이가 하늘이 부여하는 수명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처럼 보이는군.'

난 설화집의 앞뒤를 펼쳐보았다.

하지만 설화집에는 저자명이 없었으며, 제목도 없이 그냥 설화집일 뿐이었다.

황궁서고에 있던 것과 청문세가 서고에 있던 두 설화집은, 책의 표지와 설화집 앞에 쓰인 말을 빼고는 모든 부분에서 똑같았다.

난 내공과 법력을 불어넣고, 불을 쬐거나 물에 종이를 적셔보는 둥 몇몇 방법으로 종이를 자극했지만.

책이 너덜너덜거려지기만 할 뿐 딱히 숨겨진 것도 없었다.

'헛수고했나...'

난 혀를 차며 다시 설화집을 제자리에 꽂아놓았다.

흥미로운 주장이었지만, 딱히 증명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저 글을 쓴 설화집 엮은이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었다.

'하지만, 맞는 말이라면 굉장히 흥미로운 주장이다.'

저 말에 의하면, 축기기에 이르지 못해도 하늘이 부여하는 운수를 전부 뿌리칠만큼 강한 힘을 가진다면 하늘이 수명을 재설정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축기 초기급의 전력을 가진, 등봉조극에 이른 무인인 나라면.

과연 수명을 극복할 수 있을까?

'분명, 이전 삶에선 내 정해진 수명보다 하루를 더 살았다..!'

하늘이 내게 심장마비를 내렸지만, 나는 강기를 억지로 짜내서 심장을 강제로 자극시켜 아침해가 뜰 때까지 살아있었다.

물론 고작 하루밖에 되지 않아, 그게 수명을 극복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힘이 있으면 수명을 티끌만치 극복하는 정도는 가능하단 것이었다.

'수명을... 극복할 수 있는가...?'

어째서인지 무명의 엮은이가 펼쳐낸 저 이론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엮은이의 말이 왠지 마음에 끌렸다.

앞으로 남은 내 수명은 약 달포.

과연, 등봉조극에 오른 이는, 축기기처럼 수명을 극복할 수 있는가?

천뢰(天雷)(6)

'수명이 다하면, 하늘은 어떻게든 그 자를 죽일 운수를 만들어낸다.'

지난 삶의 막바지에서도 갑자기 나무가 쓰러지거나 독사가 나를 무는 둥.

말도 안되는 액운이 연속해서 일어나다가, 갑자기 심장마비가 일어났었다.

'하지만, 강기를 끝없이 흘려보내 심장을 억지로 뛰게 하면... 하늘은 나를 얼마 정도는 살려놓는다.'

만약 그렇다면.

그 강기를 계속해서 흘려보낸다면 어떨까?

끊이지 않고 강기를 흘려보내어 죽지 아니한다면?

그렇다면 어쩌면, 하늘은 내 수명을 재설정할지도 몰랐다.

축기기 수도자들이 강기와 같은 정순지력으로 전신 경맥을 마구 돌리는 것과 같이.

나 역시, 강기로 계속해서 심장을 자극하여 이 삶을 얼마간이나마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내단을 형성한 지금이라면... 어쩌면, 정말로 수명이 재설정될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삶, 단순한 오기조원일 당시와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내공의 총량이 불어났다.

'해볼만 하지 않은가?'

나는 우선 황실 비고에서 쓸만한 영과나 영초들을 전부 털어 먹어, 내단 안으로 내공을 꽉꽉 담아 압축했다.

그런 후 영매 재료를 찾아 성제국의 난씨황가가 제사를 지내는 천성단 근처에, 아무도 모르게 진법을 깔았다.

그런 후, 나는 월수궁무록을 풀고 천성단 위로 올라가 앉아, 천천히 심신을 정리했다.

그리고 연기기 13성, 일원일응의 깨달음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정리하며, 선각후통의 방식으로 탐구해 나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