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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심봤다아아아아-!"

황야를 쩌렁쩌렁 흔드는 함성. 라키엘은 가라앉지 않은 흥분을 담고서 눈길을 내렸다. 그의 열렬한 시선이 향하는 곳. 방금 살금살금 파낸 지면 아래. 그곳에 감초의 뿌리가 살짝 드러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감초 뿌리였다. 하지만 라키엘에게는? 완전히 달랐다.

'세상에 이런 녹색이 있었어?'

짙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짙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본 모든 초록색 중에 가장 선명하고 짙은, 눈이 멀 것 같은 초록색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아니겠지만, 심마니 모드를 켜고 있는 라키엘의 시각에는 확실히 그렇게 표시되고 있었다.

'찾았다. 이거야.'

그는 흥분으로 주먹을 꽉 쥐며 시선을 들었다. 감초의 지면 위로 드러난 줄기 부분이 보였다. 놀랍게도 그곳은 여전히 쓰레기 잡초에 해당하는 회색이었다.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이거, 긴뿌리 감초가 확실해. 그런데 지면으로 드러난 줄기와 이파리에는 영양이나 약효 성분이 아예 없는 거였어. 그래서 회색으로 보인 거지. 어째서? 모든 영양이 뿌리에 몰빵되어 있었으니까.'

바로 그거다.

이 긴뿌리 감초가 힘(?)을 뿌리에 숨기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줄기만 봤을 때는 쓰레기 회색으로만 보였던 거다. 덕분에 이런 보물을 두 눈으로 보고도 모르고서 지나칠 뻔했던 거다.

"...."

소오름.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을 뻔했는지를 생각하자, 팔뚝에 닭살이 10열 종대로 오소소 돋아났다. 하지만 감상에만 매달릴 시간은 없었다. 라키엘은 좌우를 돌아보았다.

"우리가 오늘 목표를 달성한 것 같다. 다들 주위를 경계하도록."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지극히 희귀하다는 긴뿌리 감초를 찾았으니, 채집에 혼신의 정성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마침 온종일 동행한 오크 족장 브라쉬도 신중하게 쿵쿵쿵 뛰어왔다.

"설마 찾은 겁니까, 꾸익?"

"아무래도?"

"하지만 그냥 보기에는 다른 감초와 똑같은데 말입니다, 꾸익."

"아냐. 달라. 이 향기가 느껴지지 않아?"

"킁킁.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꾸익?"

"...어쨌건."

라키엘은 쓴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다른 이들에게 약초 탐색 스킬이나 심마니 모드가 없다는 걸 잠깐 깜빡했다. 당연히 브라쉬에게는 눈앞의 긴뿌리 감초도 다른 것들과 똑같이 보이겠지.

"뿌리가 훨씬 깊이 뻗은 것 같아. 파보자고."

"알겠습니다, 꾸익."

브라쉬와 함께 직접 호미를 들었다. 뿌리 옆을 살금살금 깊이 파보았다. 역시나 보통의 감초 뿌리가 끝나야 할 깊이의 지점에도 계속 뿌리가 뻗어 있었다. 비로소 브라쉬의 눈빛이 떨렸다.

"이, 이게 바로 전설의... 꾸익!"

족장이 흥분된 콧김을 풍풍 뿜어내더니 신중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 채집 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꾸익."

"채집 방식을? 어째서?"

"뿌리에 조금의 상처도 나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황태자여, 꾸익."

"으음? 설마?"

"생각하시는 그 설마가 맞을 겁니다, 꾸익."

"약간이라도 상처가 나면 그곳으로 뿌리의 영양이 다 빠져나간다거나, 뭐 그런 건가?"

"정답입니다, 꾸익."

브라쉬가 튼실한 비닐하우스 수박보다 커다란 고개를 끄덕였다.

"조상들께서 대대로 말씀하셨습니다. 긴뿌리 감초를 캘 때는 뿌리에 약간의 생채기라도 나면 모든 이로운 것이 흙으로 빠져나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다시 엄청난 시간을 기다려야 긴뿌리 감초를 캘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꾸익."

"얼마나 기다려야 하길래?"

"흙으로 빠져나간 이로운 물질이 새 감초의 뿌리에 다 모이려면 족히 100년은 걸린다 하였습니다, 꾸익."

"...."

난리 났네.

호미를 잡고 있던 라키엘의 손아귀가 아주 살짝 파르르 떨렸다. 브라쉬의 저 말이 사실이라면, 오늘 호미 컨트롤이 아주 살짝만 삑사리(?)가 나더라도 망한다는 소리다.

'아, 젠장.'

그냥은 안 되겠다. 게다가 뿌리의 깊이가 최소 10미터라니, 이건 호미 가지고 될 일이 아니다. 가히 토목공사의 범주에 들어가는 작업이랄까. 하지만 다행히 일행 중에 중장비에 버금가는 녀석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우루스!"

"누우!"

"여기, 이쪽을 좀 파줘."

라키엘은 긴뿌리 감초에서 한참 떨어진 옆쪽을 가리켰다. 그의 생각은 간단했다.

'제법 떨어진 지점에 10미터짜리 구덩이를 파고, 그 구덩이를 옆으로 넓혀가면서 감초 뿌리가 있는 쪽으로 접근하면 될 거야.'

그렇게 차근차근 감초 뿌리 옆면이 다 드러나면? 그때 비로소 옆쪽으로 살금살금 뾱, 빼내면 되지 않을까.

그때부터였다.

우루스가 황무지를 상대로 자신의 우람한 뿔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누우우우! 누우우!"

콰악! 콰적! 콰작!

거대한 한 쌍의 뿔 앞에선 단단한 지면이고 뭐고 소용없었다. 우루스는 아예 트랙터처럼 지면을 갈아엎었다. 이윽고 근위대와 특근대, 브라쉬가 삽을 들었다. 갈아엎어진 땅의 흙을 맹렬히 퍼냈다. 그때마다 라키엘의 구령과 일행의 기합성이 힘차게 울렸다.

"하나!"

"누우우우-!"

"둘!"

"으랴압!"

"하나아-!"

"누우!"

모두의 작업 과정이 기름칠을 잔뜩 먹인 톱니바퀴, 혹은 3억제기 밀고 바론에 장로용까지 먹은 팀의 스노우볼처럼 으샤으샤 돌아갔다. 라키엘의 가슴 가득 성공채집의 희망이 무럭무럭 익어갔다.

그렇기에 그와 일행 모두는 아무도 몰랐다. 자신들이 힘차게 진행하는 감초 뿌리 채집 공사 때문에 지하의 어떤 존재가 잠에서 깨어나 버렸음을. 일행의 공사가 일으킨 때아닌 층간소음(?) 때문에 굉장한 빡침에 휩싸여 버렸음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