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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군주와 기사.

51. 군주와 기사.

[다니엘 중령! 언덕 아래 방진 대형을 만들어라!]

크롬웰 대령의 명령에 룩급 기간트가 고개를 돌렸다.

[공격이 아니라, 방진 말입니까?]

[그래 놈들이 이 기지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는다.]

[네! 대장님!]

다니엘 중령팀의 창과 방패를 든 7기의 기간트가 언덕 아래에 포진했다.

[메리 중령!]

[네! 대장.]

[자네 팀은 주변 함정을 파괴하고, 언덕 우측에 우회로를 만들게.]

[아!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메리 오블리 중령의 팀인 6대의 기간트가 움직였다.

이미 오랫동안 한 부대로 활동했기에 다들 크롬웰 대령의 의도를 바로 파악했다.

[병사들은 횃불을 대낮같이 밝히고, 남은 기사들은 주변의 방책을 이리 옮겨라!]

[네!]

크롬웰 대령은 11미터 크기의 오리지널 기간트를 올려다보곤 입맛을 다셨다.

살루스 기간트들과 전투를 보고 나선 더욱 저 기간트를 갖고 싶었다.

'너는 곧 내 것이 된다!'

조금 전까진 속공이었지만, 이젠 급할 게 없었다.

자기 부대의 일곱 기나 되는 기간트가 파괴되고 여섯 명의 기사가 죽었지만,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 하나를 나포하면 오히려 훨씬 큰 포상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저들은 어차피 달아날 길은 없었다.

그런데!

기이잉! 쿵! 쿵! 쿵!

[어? 대령님, 적 기간트가 늘어났습니다!]

[뭐라? 불빛을 언덕 위로 비춰라!]

크롬웰 대령이 언덕을 올려다봤다.

'뭐지? 3대가 아니었어?'

적 기간트가 2대나 더 합류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나는 비숍급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이트급 기간트였다.

'응? 설마 저것도 오리지널 기간트?'

검은 기간트 옆에 나이트급 기간트의 생김새가 어쩐지 평범하지 않았다. 기간트 겉모습만 봐서는 오래된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었지만, 방금 합류할 때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게다가 손에 들고 있는 창도 검은 기간트가 들고 있는 검과 방패처럼 예사 물건이 아니었다.

'그래! 저것도 분명 오리지널 기간트가 분명해! 오늘 내가 운이 트였군!'

기간트 기사라면 누구나 갖고 싶은 오리지널 기간트가 무려 2대였다!

어쩌면 이건 가디언 제국의 의뢰로 제국의 서쪽 기지를 혼란에 빠트리는 별동대 임무보다 더 중요할지도 몰랐다.

아리칸 공국의 오리지널 기간트는 겨우 7대.

양산형 기간트 숫자도 아베르크 제국에 한참 밀리는데 오리지널 기간트의 전력 차는 더 심했다.

'총 5대라······.'

오리지널 기간트가 2대라 조금 부담은 되지만, 이 정도 숫자면 어느 정도 피해는 있겠지만 충분히 포획할 수 있어 보였다.

***

늦은 밤.

나와 엘프들은 밤낮없이 달려 드디어 난민 기지에 도착했다.

'아! 무사했구나!'

세 자동인형이 운명의 실타래 범위에 들어왔다.

그 순간 엄청난 경험치가 정산됐다.

[인형술사 레벨이 올랐습니다.]

[lv.46 -> lv.51]

[인형술사 클래스 등급이 올랐습니다.]

[B등급 -> A등급]

[운명의 실타래 레벨이 올랐습니다.]

[운명의 실타래(lv.6) -> 운명의 실타래(lv.7)]

[인형 바꿔치기(lv.1) 스킬이 생겼습니다.]

울컥 감정이 복받쳤다.

경험치가 엄청나게 들어왔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싸움을 했다는 뜻이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힘들게 싸웠을지를 생각하자,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굵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서 오십시오! 황제 폐하!'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자동인형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물을 훔치곤 그들을 격려했다.

'모두 고생했다.'

'황제 폐하! 아직 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알아! 바로 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내 기지를 공격한 자들을 가만둘 수 없었다.

기지 입구엔 양팔이 잘린 기간트와 그 기간트 해치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기사가 보였다.

그리고 십여 명의 병사가 모닥불을 피우고 입구 옆에 서 있었다.

"타일러님, 여긴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에테나가 끼어들었다.

그녀는 내게 도움이 되고 싶어 하는 듯했다.

"그럼, 저기 기간트 기사는 살려 놔!"

"알겠습니다. 어서 들어가 보세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엘프들에게 맡기고 곧바로 표범인형을 타고 기지 안으로 달렸다.

팟! 다다다다!

"응? 저건 뭐야?"

"괴, 괴수?"

병사들과 기간트 기사가 경악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피슉! 피슉!

"크헉!"

"으악!"

"습격이다!"

병사들의 비명을 뒤로하고, 기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장 안쪽으로 내달렸다.

"타일러여! 이쪽이다!"

라스칼의 목소리가 들렸다.

드워프들을 보자 또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다들 힘을 합쳐 적을 필사적으로 막아냈을 것이다.

그 간절한 마음과 고생을 생각하자,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다들 고생했다!"

"타일러여! 이쪽으로 와라! 안전한 길을 알려주겠다."

거대한 삼각뿔 사이로 달려 언덕 뒤편으로 달렸다.

뒤편 언덕에 올라오자마자, 곧장 인형의 집을 열고 운명의 실로 거대한 토우인형을 조종했다.

쿵! 쿵!

밖으로 나온 토우인형의 양손엔 내 나이트급 오리지널 마장기와 비숍급 기간트가 들려 있었다.

'자할리!'

척!

자할리(lv.9) 꼭두각시가 인형의 집에서 나와 비숍급 기간트에 올라탔다.

나도 오리지널 마장기에 올라탔다.

그리고 우린 내 자동인형들이 있는 언덕 끝으로 이동했다.

기이잉! 쿵! 쿵!

'황제 폐하를 뵈습니다!'

[황제 폐하를 뵈습니다!]

[황제 폐하를 뵈습니다!]

처처척!

거신인형과 자동인형이 탄 기간트들이 한쪽 무릎을 꿇고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들을 보자 또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았다.

지금은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다.

눈앞에 적을 물리쳐야 했다.

'일어나라!'

척! 척! 척!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

자할리가 탄 기간트를 끝자리로 보내고, 난 거신인형 옆에 섰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내 기지를 공격한 자들이 이곳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적들의 숫자가 생각보다 많았다.

물론 나에겐 강력한 거신인형이 있었지만, 포위라도 당한다면 우리가 당할 수 있음이다.

다행히 저들은 바로 공격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럼 추가로 인형의 집에서 기간트를 꺼낼 시간은 충분했다.

아직 내 인형의 집엔 알리만(lv.7)과 네자드(lv.6), 라구즈(lv.5) 꼭두각시가 대기 중이었다.

알리만은 비숍급 기간트에 네자드는 나이트급, 라구즈는 폰급 기간트에 탈 수 있었다.

그들의 기간트까지 나온다면 우린 모두 8대의 기간트가 되는 셈이었다.

'아! 전에 내가 남겨놓은 기간트 있지?'

암 드로운이 대답했다.

'언덕 오른쪽 뒤편에 나이트급 기간트 2대와 폰급 기간트 1대가 있습니다.'

'그렇지!'

이걸 이렇게 쓰네.

전에 두 자동인형이 쓸 수 있게, 멀쩡한 기간트를 추가로 놓고 갔다.

난 바로 네자드와 라구즈를 언덕 끝에 꺼냈다.

'둘 다 내려가서 기간트를 타고 와라!'

두 꼭두각시가 언덕 뒤편으로 내려갔다.

이제 기간트가 7대가 됐다.

알리만 꼭두각시만 비숍급 기간트에 타면 내 전력은 모두 준비된 셈이었다.

'암 드로운, 고생했어!'

'황제 폐하! 소신은 폐하의 명을 행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 명령을 지키지 못한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 자동인형이었지만, 거신인형은 정말 충직한 기사였다.

'그리고 이제부터 황제 폐하라고 부르지 말고, 이름으로 불러!'

'소신 어찌 감히 폐하를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이들을 데리고 다니려면 황제라는 명칭은 삼가야 했다. 혹시나 역모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그럼 주군이라고 불러.'

'알겠습니다. 주군!'

'더그, 엘다크도 마찬가지야!'

'네! 주군!'

호칭 정리도 끝냈다.

주변을 살폈다.

삼각뿔 방책과 곳곳에 만든 함정, 언덕 아래 부서진 기간트들이 차례로 보였다.

그리고 이곳 언덕 위에서 방어하는 작전까지.

'이걸 다 누가 생각한 거야?'

'부족하지만 제가 작전을 세웠습니다. 주군!'

암 드로운이 대답했다.

나쁘지 않은 작전이었다.

아니, 아직 전략이나 전술을 배우지 않은 자동인형이 만든 것치고는 제법이었다.

하지만 내가 왔으니, 진짜 전투는 지금부터였다.

'총 23대라······.'

적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그러니 좀 줄여야 했다.

'암 드로운! 지금부터 마법을 쓰는 방법을 보여줄 테니까. 잘 봐둬.'

'네, 주군!'

암 드로운의 눈에서 푸른빛이 뿜어졌다.

난 마장기의 가슴에 왼손을 댔다.

척!

그리고 마장기의 왼손과 가슴 중앙에 마나를 집중적으로 뿜어냈다.

반쪽짜리 두 개의 마법진에 붉은빛이 반짝였다.

둘이 하나가 되어.

완성된 붉은 마법진이 손바닥 위에 번쩍였다.

파지지지직!

그 손바닥을 언덕 아래쪽에 있는 기간트를 향해 뻗었다.

[플레임 더스트!]

팟! 파파파파팟!

십여 개의 작은 불꽃이 퍼지며 언덕 아래로 날아갔다.

'지금이다! 암 드로운, 언덕을 내려가라!'

'주군의 명을 받습니다.'

펑! 퍼퍼퍼퍼펑!

언덕 아래 떨어진 불꽃들이 터지고 화염이 타오르며 연기가 쉴새 없이 뿜어졌다.

[이게 뭐야?]

순식간에 언덕 아래는 뿌연 연기로 뒤덮였고, 내 거신인형은 언덕 아래로 쏜살같이 미끄러졌다.

[마법이다!]

[모두 자리를 사수하라!]

연기 때문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기에 적들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방패로 앞을 막아라!]

[저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막아!]

미안하지만 난 도망치지 않는다.

내가 노리는 것은!

'암 드로운! 우회로를 만들고 있는 기간트를 공격해!'

'네! 주군.'

언덕 아래에 내려온 암 드로운이 눈에 푸른 안광을 뿜어내며 언덕 옆으로 돌진했다.

마나를 뿜어내는 눈!

거신인형과 나만 이 연기 속에서 기사들의 위치와 흐릿한 기간트의 푸른 형태를 볼 수 있었다!

"주군을 위하여!"

쾅! 서걱!

[으헉!]

[적습이다!]

연기 속에서 비명과 큰 소리가 들렸다.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싸워라! 적이 옆에 있다!]

쩌억! 콰앙!

[크악!]

내 눈에 암 드로운이 무서울 정도로 적을 공격하는 모습이 보였다.

연막탄 마법은 실전에서 처음 써 보는데 그 효과가 상당했다.

마나가 많이 들어가는 게 하나 흠이었다.

순식간에 내 마나가 1/3이나 줄어들었으니까.

'앞으로 한 발 정도는 더 쓸 수 있겠어.'

연기 지속 시간은 2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암 드로운! 그만하고 올라와!'

'네! 주군!'

암 드로운은 다시 언덕을 올라왔다.

그리고 그가 언덕에 도착했을 때, 거짓말처럼 연기가 걷혔다.

[대체 무슨 일이야?]

[헉! 메이 중령님 팀이 당했습니다!]

[뭐라?]

우회로를 만들던 6대 기간트의 팔과 다리가 부서졌다.

빨리 치고 빠져야 했기에 저들을 죽이기보단 무기를 든 기간트의 팔이나 발을 공격해 무력화시키는 데 중점을 두었다.

'17대가 됐네······.'

그럼 할만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저들의 선택지에서 우회로는 사라졌다.

내가 또다시 같은 작전을 쓸 수도 있다는 것을 저들도 알고 있을 테니까.

이제 남은 것은 수적 우위를 살려 총공격하는 방법밖엔 없을 거다.

[젠장! 집결하라!]

[모두 언덕 아래 집결해!]

아리칸 공국의 기간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역시 총공격이군.

기이잉! 쿵! 쿵!

하지만 우리도 어느 정도 준비는 끝났다.

네자드와 라구즈가 나이트급과 폰급 기간트를 끌고 언덕 위에 섰다.

7대의 기간트.

알리만의 비숍급 기간트를 꺼내는 것은 아직 10분 남았다.

"쿠오오오크!"

[응?]

우회로를 막으러 갔던 오크 전사들이 언덕 위로 올라왔다.

"쿠오크! 타일러여! 우리도 싸우겠다!"

[쿠훌린! 이건 우리끼리 싸워도 충분해!]

"쿠오크! 아니다! 오크도 함께 집을 지킨다!"

"쿠오크! 쿠오크!"

오크들이 케네스 영감이 만들어준 무기를 들고 함성을 질렀다.

맞아! 이곳은 오크도 집이었지.

그럼 함께 싸우는 것이 맞았다.

"좋아! 그럼 대열 뒤로 빠지는 기간트를 너희가 맡아!"

"쿠오크! 오크가 뒤를 맡는다!"

기이이잉! 쿵! 쿵!

[가자! 우리가 선봉이다!]

방패와 창을 든 7기의 기간트들이 먼저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우리도 전진하라!]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나머지 기간트들도 언덕을 최대한 넓게 포진하며 움직였다.

여긴 고작 30미터 높이였다.

[공격하라!]

[와아아아!]

곧 창과 방패를 든 아리칸 공국의 기간트들이 10여 미터 앞까지 몰려왔다.

'암 드로운, 너의 마법 주문은 아이스 실드다!'

암 드로운에게 얼음 방패를 쓰는 방법을 알려줬다.

척!

거신인형이 방패를 든 왼손을 가슴에 댔다.

마법진이 손등에 번쩍이고.

파지지직!

그 순간 방패를 든 두 기간트가 암 드로운을 향해 동시에 창을 찔렀다.

"아이스 실드!"

쩌저저저적!

순식간에 얼음이 커지고!

암 드로운은 방패를 앞으로 내리꽂았다.

콰앙! 파아아앗!

창을 찌르던 두 기간트는 3배로 커진 얼음 방패에 밀려 뒤로 날아갔고, 깨진 얼음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헉! 검은 기간트가 마법을 쓴다.]

[괴, 괴물이야!]

[정신 차려! 언덕을 올라라!]

방패를 든 룩급 기간트가 소리쳤다.

그러자 다른 방패 기간트들이 방패를 내밀며 언덕을 올랐다.

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소리쳤다.

[놈들에게 마법인형 군단의 무서움을 보여줘라!]

"기사들이여 공격하라!"

[와아아아!]

암 드로운을 시작으로 내 마법인형의 기간트들이 올라오는 적의 기간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쾅! 콰콰콰쾅!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이었다.

나도 함께 싸우고 싶었지만, 지금 내 마나론 이 오리지널 마장기로 전투를 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난 전장의 지휘관이다.

내가 다치면 꼭두각시들은 통제 불능이 된다.

[밀리지 마라!]

쿵! 쿠쿵!

[뚫어라! 전진해!]

밀고 올라오는 적들도 필사적이었다.

하긴 모두 목숨이 달린 일이다.

대충 싸우는 전장이란 있을 수 없었다.

"으아아!"

콰앙!

거신인형의 방패에 나이트급 기간트 한 대가 맞고 언덕 아래를 굴렀다.

집단 전투에도 암 드로운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그의 검이 내려치면 기간트들의 팔이 잘렸고, 방패를 밀면 적들은 힘없이 뒤로 밀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자동인형 더그와 엘다크는 더 힘을 내고 적들을 막아낸다.

'중앙은 괜찮아!'

세 자동인형이 굳건한 중앙은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네자드와 라구즈가 있는 좌측은 언덕의 유리함이 있음에도 점점 뒤로 밀리고 있었다.

그쪽에 커다란 룩급 기간트가 한 대 보였다.

역시 체급 차는 어쩔 수 없네.

'네자드! 놈을 안고 뛰어!'

내 명령을 받은 네자드의 나이트급 기간트가 앞으로 달렸다.

쿵쿵! 콰앙!

그리고 막 언덕 위에 한발을 내디딘 룩급 기간트를 덮쳤다.

[헛!]

룩급 기간트가 중심을 잃고 뒤로 쓰러져 아래로 굴렀고, 나이트급 기간트 역시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인형의 집으로!'

난 네자드를 인형의 집으로 넣었다.

기간트는 잃어도 마법인형은 잃지 않는다.

그리고 네자드는 10분 후에 다시 출격할 것이다.

[이야!]

쿵! 쿵!

그때 라구즈의 폰급 기간트를 밀어내고, 나이트급 기간트 한 대가 언덕 위로 올라왔다.

적 기간트는 싸우지 않고 전열을 지나쳤다.

뒤에서 우리 대열을 공격할 생각인 것 같았다.

"쿠오크! 오크가 뒤를 맡는다!"

그때 쿠훌린과 오크 전사들이 나이트급 기간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디! 버러지 같은 것들이!]

부아아앙! 콰앙!

오크 전사 둘이 기간트가 휘두른 창에 맞고 날아갔다.

몸집이 2미터나 되는 오크였지만, 7미터의 기간트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그런데!

"쿠아아아!"

쾅!

쿠훌린이 몸을 날려 기간트의 다리를 밀어붙였다.

"쿠오크!"

"오오오크!"

쾅! 콰콰쾅!

순식간에 십여 마리의 오크들이 기간트에 붙었다.

[어? 어어!]

기이잉! 쿠웅!

커다란 나이트급 기간트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캉! 카캉! 캉!

오크들은 우르르 달려들어 칼과 도끼로 기간트를 내려쳤다.

불꽃이 번쩍였지만, 기간트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대여섯 명의 오크가 달려들어 일어서지 못하게 매달렸지만, 기간트의 힘을 당해내지 못했다.

오크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오크의 필사적인 모습에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됐다! 나와라!'

쿵! 쿵!

10분 전에 인형의 집에 들여보낸 거대 토우인형이 비숍급 기간트 2대를 들고 나왔다.

'알리만 출동!'

알리만(lv.7)이 비숍급 기간트에 올라타 이쪽으로 달려왔다.

"오크는 길을 비켜라!"

'알리만, 저자를 죽여라!'

쿵쿵쿵! 콰앙!

오크가 물러서자, 일어서던 나이트급 기간트를 어깨로 받아버렸다.

알리만은 쓰러진 기간트로 달려가 배를 향해 검을 찔렀다.

쾅! 콰직!

'됐다! 라구즈를 도와라!'

비숍급 기간트를 가장 취약한 곳으로 보냈다.

[자할리(lv.9) 꼭두각시가 자아를 각성했습니다.]

[자동인형(lv.1)이 만들어졌습니다.]

유일하게 룩급 기간트에 탈 수 있는 마나인형이 각성했다.

마법인형이 늘어나고, 기간트가 생겼다고 좀 우쭐해 있었다.

'아직 멀었어!'

더 많은 마법인형이 필요했다.

더 많은 기간트가 필요했다.

더 압도적인 힘이 필요했다.

[플레임 더스트!]

팟! 파파파파팟!

불꽃과 연기가 전장에 피어올랐다.

[암 드로운, 좌측의 적을 쓸어버려!]

"주군을 위하여!"

[더그, 우측으로 이동해 적을 막아!]

[네! 주군!]

그렇게 군주와 기사는 적을 맞이해 싸웠고, 적들의 숫자는 계속 줄어들었다.

52. 출세했네.

52. 출세했네.

- 그렇게 군주와 기사는 함께 싸웠다. -

아주 짧은 설명이지만 이 안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내 마법인형들은 전투에 있어서 물러섬이란 없었다.

자신의 기간트가 파괴되고, 혹은 자신의 신체가 잘려도 오로지 인형술사의 명령을 수행한다.

그런 것을 보면 진정한 군주와 기사의 관계가 아닐까?

상대가 아무리 최정예 베테랑 기사에 훈련이 잘되어 있다고 해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을 이길 수 있을까?

[악귀다!]

[미친! 해치가 뚫려도 달려든다!]

[저리 가! 으아악!]

그 결과는 지금 보고 있었다.

[후퇴하라!]

[물러서!]

전투 시작 십여 분만에 아리칸 공국의 기간트가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내 마법인형이 타던 기간트가 크게 파괴되었고, 알리만(lv.7)과 라구즈(lv.5)는 심하게 다쳤기에 운명의 실이 절반 이상 끊어져 있었다. 더 싸웠다간 레벨이 초기화되거나 운명의 실이 완전히 끊어질 수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인형의 집에 넣었다.

그런데도 우린 적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적들은 이제 6대밖에 남지 않았다.

[대형을 지키며 후퇴하라!]

저들은 도망칠 때도 방진을 유지하며 물러섰다.

'얌전히 후퇴하도록 보내줄 것 같으냐!'

이를 악물어다.

[놈들을 추격해! 될 수 있으면 사로잡아!]

"주군의 뜻대로!"

[주군을 위하여!]

거신인형이 먼저 언덕 아래로 몸을 날렸다.

그 뒤로 더그와 엘다크가 조종하는 비숍급 기간트가 뒤를 따랐고, 꼭두각시 네자드(lv.6)의 나이트급 기간트도 언덕을 내려갔다.

그리고.

"쿠오오오오!"

"쿠오크! 쿠오크!"

오크들도 함성을 내지르며 우르르 기간트를 따라 몰려 내려갔다.

이미 승기를 잡았기에 성난 오크를 말리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막 자동인형으로 각성한 자할리는 남아 있었다.

[대체 여, 여기가 어딥니까? 나는 누굽니까?]

자할리는 조금 전까진 분위기에 휩쓸려 적과 싸웠다면, 적이 사라지자 이젠 자신의 존재가 의문인 것 같았다.

[나는 너의 주군이고, 너는 내 기사다!]

[기사?]

자할리가 탄 비숍급 기간트가 손을 들어 살펴보는 듯했다.

[나는 기사인가?]

[의심하지 마라, 너의 이름은 자할리! 너는 나의 다섯 번째 기사이니.]

[아아!]

기간트가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기사 자할리! 주군을 뵈옵니다.]

오! 기사 컨셉이 먹히네!

내 5번째 자동인형도 앞선 자동인형들처럼 기사 컨셉이 통했다.

아무래도 본래 기간트에 탔던 기사들이라 죽어서 내 마법인형이 됐음에도 기사 세포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제국어도 곧바로 쓸 수 있었고, 전생에 내 인간형 마법인형보다 성장 속도도 빠르고, 자동인형으로 각성 역시 훨씬 빨랐다.

역시 거신의 후손인가?

[주군이시여! 저는 이제 어찌합니까?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자할리, 나를 따라와라!]

난 자할리와 언덕을 내려갔다.

이미 전투는 끝났고, 내 마법인형들이 아리칸 공국의 기간트들을 포위했다.

[하, 항복하겠다!]

[응?]

룩급 기간트 한 대가 무기를 버리고 달려들던 거신인형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가 지휘관인 듯했다.

[항복한 자들은 죽이지 마라!]

내 마법인형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나도 항복하겠다!]

[항복!]

그러자 다른 기간트도 무기를 버렸다.

항복한 기간트는 대부분 크고 작은 생채기가 가득했고, 팔이 고장 나거나 머리가 날아간 기체도 있었다.

그리고 앞서 우회로를 만들었던 기간트들은 이미 전투 불능이었기에 곧바로 투항했다.

***

"크윽! 분하다!"

"제길, 이게 무슨 꼴이냐."

"쿠오크!"

쿠훌린과 오크 전사들이 열두 명의 인간을 끌고 왔다.

그들은 기간트 기사로 다친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오크들에 둘러싸인 400여 명의 병사가 뒤쪽에 앉아 있었다. 어차피 기지를 나가면 대수림이었기에 모두 무기를 버리고 투항한 것이다.

치이이익! 철컹!

나이트급 마장기에서 내렸다.

그리고 포로들에게 다가갔다.

"지휘관은 어디 가고 네놈이 오는 것이냐?"

"뭐?"

"저기 오리지널 기간트에 탄 너희 대장을 불러와라!"

피식 웃음이 났다.

지금 자신들의 처지를 모르는 건가?

"글쎄. 우리 지휘관께선 바쁘신데, 할 말이 있으면 내게 하라고."

"흥! 겨우 소령 따위가. 난 아리칸 공국의 남작이자, 팔콘 기사단 소속 크롬웰 대령이다! 정식으로 항복하겠다."

"정식 항복은 뭐지?"

"정식 포로로 대우해 달라는 말이다. 나와 기사들의 몸값은 아리칸 공국의 팔콘 기사단에서 지급할 것이다."

"아! 그렇군. 그럼 병사들은?"

"그건 나도 모른다."

"몰라?"

"보병들은 우리 소관이 아니다."

순간 너무 어이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기가 데리고 와 놓고선 소관이 아니라고?

웃기는군.

"그런데 내가 왜 너희를 살려줘야지?"

"뭐라? 너도 기간트에 타는 기사니, 기사의 명예가 있을 것이 아닌가."

"기사의 명예?"

또다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런 건 난 모르겠고. 오크가 아홉이나 죽었으니 너희도 죽을 각오는 해야지."

"뭐라? 그까짓 이계 난민과 우리 기간트 기사들을 비교하는 것이냐?"

난 쿠훌린을 바라봤다.

그리고 방금 이야기를 전해줬다.

"쿠오오오오크!"

오크들은 잔뜩 흥분했다.

"방금 오크들이 뭐라고 한 줄 알아?"

"누가 미개한 이계 난민 따위의 언어를 배우는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상관을 불러와라! 난 아리칸 공국의 귀족이다."

뼛속까지 귀족이네.

그동안 이자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것 같았다.

"오크들이 방금 처형은 자신들에게 맡겨 달라는군."

"말도 안 돼! 세상에 어느 나라에서 항복한 귀족을 그냥 처형한단 말인가!"

"난 아리칸의 기사다! 정당한 대우를 요청한다."

"정식으로 포로 대우를 해달라!"

기사들까지 합세해 큰 소리를 냈다.

'아예 죽여달라고 합창을 부르는구나!'

내가 아직 이 세상에 물이 덜 든 것인지, 기사나 귀족의 목숨이 오크의 목숨보다 중요한진 모르겠다.

[운명의 실을 연결합니다.]

[운명의 실을 연결합니다.]

.

.

난 일자로 무릎 꿇린 기사들에게 운명의 실을 연결했다.

"그럼 다음 세상에선 서로 보지 말자고."

"쿠오크!"

성난 오크들이 무기를 높이 들었다.

"잠깐 기다려라! 우리가 잘못했다."

"살려다오!"

"저기, 살려주세요!"

귀족은 내 다리에 매달렸고, 기사들은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정말 살고는 싶은가 보다.

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말했을 텐데, 오크가 아홉이나 죽었으니 책임져야 한다고. 그런데 지금 누구한테 비는 거야?"

"크릉!"

오크들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 순간 크롬웰 대령과 기사들이 고개를 돌렸다.

"쿠오오오!"

성난 오크들이 큰 칼과 도끼를 내려찍었다.

"으악!"

"크헉!"

난 기사가 아니기에 원래 살려줄 마음도 없었다. 그리고 공격은 자기들이 하고 이제 와 살려달라니, 정말 양심이 없다.

남을 죽이려면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걸 알아야지.

순식간에 검은색으로 물든 운명의 실.

[기사회생(lv.4) 스킬을 사용합니다.]

[기사회생(lv.4) 스킬을 사용합니다.]

.

.

40%의 확률.

기사회생 스킬을 쓸 일이 거의 없었기에 레벨이 지독히 안 오른다.

[허수아비(lv.1) 마법인형을 만들었습니다.]

[허수아비(lv.1) 마법인형을 만들었습니다.]

[허수아비(lv.1) 마법인형을 만들었습니다.]

[허수아비(lv.1) 마법인형을 만들었습니다.]

열두 명 중에서 허수아비 넷이 추가됐다.

숫자가 살짝 아쉬웠지만, 곧바로 허수아비들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크롬웰 대령은 실패했지만, 다른 룩급 기간트 기사 둘이 허수아비가 됐으니까!

그리고 다른 허수아비 둘도 비숍급 기사였다.

이번엔 양보다 질!

나름 대박이었다.

난 허수아비들을 인형의 집에 넣었다.

"쿠오크! 타일러여! 인간 병사들은 어떻게 할까?"

난 병사들을 쳐다봤다.

그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성난 오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으니 얼마나 무서울까.

"타일러여! 병사들은 살려주시게."

라스칼과 드워프들이 다가왔다.

"그들에게 일을 맡기고 싶다."

"아! 마석을 캐는 일을 시키게?"

"아니다! 인간들은 나약해 광부 일엔 맞지 않는다. 이곳을 정리하고 집과 성벽을 보수하는 건축 일에 쓰고 싶다."

"400명이 넘는데, 식량이 부족하지 않아?"

"괜찮다. 아직 식량은 여유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마석을 조금 더 캐면 된다."

아직 지하에 마석 광맥을 개발하지 않았기에 지금은 드워프로 충분했다.

하지만 전진 기지가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 그때부턴 엄청난 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의미로 병사들은 쓸모가 있었다.

어차피 누가 와서 구해주지 않는 한 탈출은 불가능했고.

난 병사들에게 드워프의 의견을 그대로 말했다.

그리고 거부하고 싶은 자들은 풀어줄 테니, 기지를 떠나라고 했다.

당연히 아무도 떠나지 않았다.

기간트 없이 2달 동안 대수림을 건너는 건 자살행위니까.

뒷정리는 오크와 드워프, 자동인형들에게 맡기고, 엘프들이 있는 기지 입구로 나왔다.

"응?"

이곳엔 포로 하나가 더 있었다.

"이름이 뭐지?"

"가, 가필드 대위입니다."

가필드의 두 눈은 크게 부어 있었고, 윗입술은 터지고, 턱과 목에 피멍이 가득했다.

대체 애를 얼마나 때린 거야?

난 에테나를 노려봤다.

그러자 에테나는 마르실을 쳐다봤다.

마르실은 날 보며 씨익 웃었다.

내게 쌓인 불만을 이렇게 푸는 건가?

난 가필드에게 말했다.

"내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말하면 살려주고, 아니면 앞서 죽은 동료들을 따라갈 거야."

"뭐든 물어만 주십시오."

그런데 이 녀석 왜 기분이 좋아 보이지?

엄마가 와도 못 알아볼 정도로 처맞았는데······.

난 그들이 이곳에 온 이유에 관해 물었다.

"그러니까, 가디언 제국이 의뢰했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우리 별동대는 아베르크 제국의 시선을 최대한 서쪽으로 끄는 역할이었습니다. 그리고 큰돈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서쪽으로 시선을 끈다?

기간트 30기로 시선은 충분히 끌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카야킨에 병력을 얼마나 빼낼 수 있을까?

기껏해야 30, 40기 정도일 것이다.

그게 과연 가디언 제국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지금 가디언 제국은 동쪽에 많은 기간트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아베르크는 카야킨 전진 기지에 5군단과 북부의 대영주 록체스터 가문의 기간트, 주변 전진 기지의 기간트까지 많은 병력을 집결해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그런데 과연 가디언 제국이 아베르크 제국의 전진 기지를 공격할까?

그러다 역으로 뒤를 잡혀 털리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병력 차가 대등한 상황에서 먼저 상대 기지를 공격하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럼 저들이 노리는 게 뭘까?

'이거 뭔가 있는데······.'

냄새가 났다.

저놈들이 뭘 원하는지, 뭘 숨기고 있는지 찾아야 했다.

그것이 대수림 정보대가 할 일이었다.

이곳 정리와 방어는 자동인형 자할리와 더그, 엘다크에게 맡기고 난 에테나와 거신인형을 데리고 카야킨으로 향했다.

***

[카야킨 전진 기지 6번 게이트]

쾅! 쾅! 쾅! 쾅!

"누구냐?"

게이트 위쪽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난 정보국의 타일러 빈스 소령이다!"

"돌아가라! 지금은 모든 게이트가 폐쇄됐다!"

"뭐?"

순간 어이가 없었다.

돌아가라니, 다시 난민 기지로 가란 말인가?

쾅쾅쾅!

"아무리 두들겨도 소용없다."

"이곳 책임자를 데려와라!"

그때였다.

드륵!

게이트 아래쪽에 작은 창문이 열렸다.

"어? 타일러 중위님!"

목소리를 들으니 누군지 알겠다.

그는 콜벳 대위였다.

"문을 열어라!"

"안됩니다! 상부에서 알면 큰일 납니다."

"괜찮아! 내가 아는 사람이야."

드르르륵!

게이트 문이 살짝 열리고, 나와 에테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게이트는 바로 닫혔다.

콜벳 대위가 다가왔다.

"오랜만······!"

콜벳 대위는 내 계급장을 보더니 눈을 뻐끔거렸다.

"오랜만이네. 콜벳 대위! 내 진급이 좀 빨랐지."

"충! 축하드립니다."

"고맙네."

"우와! 2계급 특진이라니 대단하십니다."

"뭐, 그렇게 됐네. 그런데 자넨 여기서 뭘 하나? 의무복무 기간도 끝났을 텐데."

콜벳 대위가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 저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죠. 동생 놈이 노모의 재산을 노리고 있으니, 안 가고 싶겠습니까. 하지만 준 전시상황이라 비상이 걸려 모든 길이 막혔습니다."

"응? 다른 전진 기지로도 못 가는 건가?"

"네, 우리 제국에서 관리하는 모든 전진 기지는 성문을 닫고, 대수림 사냥팀도 모두 기지로 귀환시켰습니다. 기지 밖으로 다닐 수 있는 것은 가디언 제국의 병력 이동을 감시하는 병력뿐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전진 기지가 문을 닫았단 말이네!"

"그렇습니다."

순간 뭔가 뇌리를 스쳤다.

그들의 의도가 만약 대수림의 사냥팀을 모두 귀환시키고, 우리 전진 기지의 활동을 멈추게 만드는 것이라면?

실제로 그렇게 됐고.

하지만 왜?

우리 사냥팀이 대수림을 다녀선 안 되는 건가?

'아! 이 새끼들! 우리 구역에서 뭔가 찾았구나!'

그것도 아주 중요한 것을!

이제야 실마리가 풀렸다.

그리고 그 구역이 어딘지 확인하려면 가디언 제국의 병력 배치를 살펴보면 대충 알 것 같았다.

"고맙네! 콜벳 대위!"

"네? 뭐가요?"

"에테나! 가자."

"네!"

가다 말고, 콜벳 대위에게 다시 돌아갔다.

"혹시 엘프가 찾아오면 자네가 문을 열어주게."

"네? 네, 알겠습니다."

난 곧장 커널 사령관을 찾았다.

***

"충!"

"오! 타일러 소령! 어서 오게. 진급 축하······."

"사령관님! 당장 가디언 제국의 병력 배치를 알아야 합니다."

"뭐?"

커널 대령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가디언 제국의 의도를 알아냈습니다."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가디언의 의도를 알아내다니?"

"저들은 지금 우리의 시선을 돌려 우리 구역에서 뭔가를 하고 있습니다."

커널 대령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지 말고 거기 앉게. 그리고 쉽게 설명해봐."

난 내 생각을 말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커널 대령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럼 놈들이 우리 구역에서 뭔가를 중요한 것을 찾았단 말인데······."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저들의 병력 배치와 병력 움직임에 집중하는 동안 놈들은 뭔가를 빼돌리려 하고 있을 겁니다."

"그럼 우리 구역과 놈들의 구역이 겹치는 곳이겠군."

"저들의 병력 배치를 보면 대략 위치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커널 대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건 자네가 직접 시안 5군단장께 말씀드리는 것이 낫겠네."

"제가요?"

"물론이네. 그리고 황자이시긴 하나 지금은 군단장으로 이곳에 계시는 것이니 과한 예를 취하진 말게."

"네."

타일러 빈스, 출세했네.

제국의 황족도 만나고!

53. 너, 내 부하가 돼라!

53. 너, 내 부하가 돼라!

"충! 정보국 소속 타일러 빈스 소령입니다."

"응?"

"정보국?"

회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날 쳐다봤다.

별이 반짝였고, 화려한 제복과 가슴에 많은 훈장도 보였다.

"아! 타일러 중위로군! 진급해서 못 알아봤네."

누군가 날 아는 듯했다.

"내가 5군단장 시안 오르도네. 그래 무슨 일인가?"

그때 커널 대령이 시안 군단장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내 의견을 먼저 전달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시안의 눈썹이 올라갔다.

뉘 집 자식인지 참 잘생겼다.

아! 황제 아들이지.

백옥같이 하얀 피부와 큰 키, 뚜렷한 이목구비, 타오를 것 같은 머리카락과 붉은 눈썹까지.

그가 적발의 오르도 황가 피를 이은 건 분명해 보였다.

꽉 막힌 사람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뭐라? 그게 말이 되는가? 가디언 놈들이 대수림에서 뭘 찾겠다고, 400기나 되는 마장기를 파견했다니! 그것도 우리를 전진 기지에 묶어 두는 게 목적이라고?"

시안 군단장은 가만히 있는데, 옆에서 몰래 듣고 있던 노친네가 발끈했다.

'아! 저 사람이 록체스터 가문의 기사단을 이끌고 온 솔버리 백작이군.'

가슴에 12개나 되는 훈장이 그의 화려한 경력을 말해주고 있었다.

시안 군단장이 잠시 고민하더니, 손짓했다.

"타일러 소령, 가까이 오게."

가까이 다가갔다.

"자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뭔가?"

"지금 상태론 저들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득이 없다?"

시안 오르도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솔버리 백작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난 말을 이었다.

"솔버리 백작님, 말씀대로 400기나 되는 기간트를 끌고 와서 2달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엄청난 손해가 아닙니까. 그리고 저들은 밤중에 몰래 병력을 이동시킨 것도 아니고, 대낮에 대놓고 우리 정보국 첩자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병력을 대수림으로 보냈습니다. 이건 마치 우리에게 미리 대비하라고 알려주는 것이 아닙니까?"

"흠······."

시안 오르도가 턱을 쓰다듬으며 지도를 쳐다봤다.

사실 아리칸 공국의 별동대가 난민 기지를 공격했다는 사실과 포로를 잡았다고 말하면 더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내가 다 처리했는데, 뭐라고 변명을 할 건가.

아리칸 공국의 기간트 30기와 살루스 기간트 7기를 제가 다 때려 부쉈습니다?

믿지도 않겠지만, 믿는다면 그게 더 큰 문제였다.

그리고 그들의 부서진 기간트는 내가 챙겨야 했다.

이걸 수리하려면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언젠간 내 전력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리칸 기사들과 기간트는 그냥 대수림에서 실종된 것으로 처리하면 되고.

"그러고 보니, 저들의 병력 배치가 조금 이상하군."

시안 오르도가 지도에 카야킨 기지를 가리켰다.

"이곳을 노린다고 하기엔 여긴 너무 멀리 병력을 배치했어."

그때 군단 제복을 입은 대령이 지도에 두 곳을 차례로 가리켰다.

"이 배치라면 북동쪽의 블랙힐 기지나 동쪽의 레이킨 전진 기지를 노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내가 이상하다고 한 것이 그거네. 동쪽의 레이킨 기지야 이곳으로 오는 최단 거리니까 그렇다고 치고, 블랙힐 기지를 가져가서 가디언 제국이 얻는 것이 뭐지? 가장 먼 기지부터 하나씩 점령해서 이곳까지 온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고."

대령도 뭔가 이상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내가 아는 얼굴이 앞으로 나섰다.

"제가 볼 때도 이 병력 배치는 블랙힐 기지나 주변의 우리 전진 기지에 긴장감을 조성하고 병력을 함부로 이동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전에 할데가르 기차역에서 내가 구해온 거신 갑옷에 피를 뿌렸던 파이컬 허먼 중령이었다.

시안 오르도가 솔버리 백작을 쳐다봤다.

"솔버리 경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음······. 지금 보니 조금 수상하긴 합니다. 하지만 이 배치가 꼭 우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으로 단정할 순 없습니다."

내가 다시 나섰다.

"얼마 전에 제가 대수림에서 거신 갑옷과 장비를 찾은 것을 다들 아실 겁니다. 아직 확신할 순 없지만, 만약 저들이 거신 갑옷이나 가치 있는 물건을 찾았다면 어떻게 할까요?"

"당연히 기간트와 병력을 투입해서 찾겠지."

솔버리 백작이 대답했다.

"그런데 그곳이 공교롭게도 우리와 가디언 제국의 경계선이라면요? 아니면 우리 쪽 전진 기지와 더 가깝거나요."

솔버리 백작이 입을 살짝 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 가디언 제국 놈들이 뭔가를 찾았군!"

시안 오르도가 피식 웃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누가 블랙힐 기지에 가본 사람이 있나?"

"제가 사냥팀에 있을 때, 한 번 가봤습니다."

앞으로 나선 것은 카야킨 전진 기지의 라그르 중령이었다.

"어떤 곳인가? 뭐가 나올만한 곳인가?"

"다른 곳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블랙힐 기지 북동쪽은 오래전 화산활동으로 인해 토양과 바위가 온통 검은색입니다."

"아! 그래서 이름이 블랙힐이군. 계속하게."

"네. 그리고 나무가 울창하진 않지만, 곳곳에 용암 분출로 생긴 구멍과 작은 언덕이 많습니다. 그 때문에 괴수들이 숨기 좋은 장소도 많아 매우 위험한 곳입니다. 그래서 사냥팀도 중급 이상의 규모로 움직여야 하는 곳입니다."

"화산지역이라······."

시안 오르도는 뭔가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가디언 제국이 뭔가를 찾은 건 다들 동의하는가?"

"제가 보기에도 수상합니다."

"아무래도 블랙힐 주변에 뭔가 있지 않겠습니까?"

지휘관들이 한목소리를 냈다.

시안 오르도가 날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타일러 소령, 추리력이 대단하군. 큰 도움이 됐네."

"감사합니다."

시안 오르도가 날 칭찬했다.

황족의 칭찬이라······.

갑자기 어깨가 올라간 기분이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시안이 지휘관들을 향해 물었다.

"우리도 병력을 블랙힐로 보내 저들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병력을 보내야 합니다."

"우리 록체스터 가문이 가지요!"

모두의 시선이 솔버리 백작에게 향했다.

"5군단은 우리 제국군의 주력이니 카야킨 기지를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동쪽에 주둔한 적의 주력 병력이 이쪽으로 올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희 가문의 기간트가 60기로 블랙힐 기지를 지키기 적당합니다."

순간 시안 오르도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진 것 같았다.

솔버리 백작의 의도는 간단했다.

그곳에서 뭔가 귀중한 것이 나온다면, 자신들이 꿀꺽하려 하겠지.

시안 오르도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다.

"좋소! 록체스터 가문의 병력이 블랙힐 기지로 가시오."

"감사합니다. 제가 놈들의 의도를······."

"록체스터 가문은 블랙힐을 지키고 저들의 병력을 견제해주시오."

"네? 견제요?"

"그대들이 블랙힐 기지를 빠져나가면, 저들도 눈치챌 것이고, 그럼 전면전이 벌어질 것이오. 그러니 블랙힐 화산 지대를 수색하는 것은 따로 내 부하들에게 맡기겠소."

순간 솔버리 백작이 당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파이컬 중령! 명을 받게."

척!

파이컬 중령이 앞으로 나서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자네 부대가 크게 우회하여 비밀리에 블랙힐의 화산 지대를 수색하게. 그리고 저들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게 바로 보고하게."

"충! 명을 받았습니다."

내가 끼어들었다.

"군단장님, 저도 같이 가도 되겠습니까?"

"응?"

시안 오르도는 날 빤히 쳐다봤다.

그러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위험한 임무네. 자네는 함께 갈 수 없네."

"하지만 제가 도움이 될 겁니다. 얼음 계곡에서 거신 갑옷을 가져온 것도 접니다. 그리고 이번에 가디언 제국의 의도를 알아낸 것도······."

"그만. 누구나 자신이 잘하는 분야가 있기 마련이네. 자네는 뛰어난 추리력과 리더십을 가지고 있지만, 수색 임무나 기간트 전투는 내 기사들이 전문이네. 그냥 내 기사들에게 믿고 맡기게."

"네······."

이렇게까지 반대할 줄은 몰랐다.

어쩔 수 없이 물러나야 했다.

물론 진짜로 물러난 것은 아니고.

난 정보국의 대수림 정보대 지부장으로 따로 조사할 것이다.

***

회의가 끝나고 회의실을 나섰다.

기다리고 있던 에테나가 다가왔다.

"잘 끝나셨습니까."

"잘은 됐는데, 아무래도 우리는 따로 움직여야 할 것 같아."

"그렇군요."

"타일러 소령!"

시안 군단장이 다가왔다.

"응? 엘프?"

시안은 에테나를 보더니 살짝 놀란 듯했다.

"이 엘프는 누군가?"

"제 부하입니다."

"그래?"

"아직 제국 법도를 잘 몰라, 예를 차리지 못함을 용서하십시오."

"괜찮네."

시안 오르도는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 일은 너무 섭섭하게 생각지 말게."

"네?"

"아까도 말했지만, 자네를 수색팀과 함께 보내지 않은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네. 보다시피 내 주변에 기사는 많은데, 자네처럼 머리를 쓰는 사람이 적어. 그러니 안전한 이곳에서 기다려 주게."

내 능력을 못 믿어서는 아니고?

"시안 황자님!"

그때 뒤에서 솔버리 백작이 따라왔다.

"황자님, 잠시 이야기 좀."

"알았소."

시안 황자는 날 쳐다봤다.

"나중에 술 한잔하면서 다시 이야기하지."

"네."

시안 황자는 솔버리 백작과 다시 회의실로 들어갔다.

'하긴 솔버리 백작도 쉽게 포기할 수 없겠지. 블랙힐에 뭐가 있는지 모르니까.'

시안 황자는 내게 말은 그럴듯하게 했지만, 얼음 계곡에서 거신 갑옷을 찾은 내 실력과 능력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지휘하면서 마법인형과 이계 난민들을 이용해 괴수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전투를 했기에 원정대가 큰 피해 없이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대수림에 대해선 5군단 기사들보다 내가 훨씬 많이 알고.

게다가 가디언 제국의 의도를 알려준 것도 나였다.

그러니 나를 배제한 이번 결정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무래도 라인을 타는 건 나와 맞지 않아.'

일단 나도 블랙힐로 정보를 수집하러 가야겠다.

혹시 아는가?

대박 물건을 찾아서 내가 챙길지······.

가디언 제국이 마장기 400대를 동원해 눈속임할 정도의 뭔가라면, 나도 살짝 욕심이 나긴 했다.

"에테나, 우리도 가자."

***

[트라스의 개]

"우리 용병대, 최고 고객님께서 오셨네!"

"여! 타일러 중위!"

타냐 블랙과 용병들이 날 보자마자, 손을 흔들었다.

"여긴 내가 의뢰하지 않으면, 일감이 없는 거요?"

"말도 마시오. 그놈의 봉쇄령 때문에 강제로 쉬고 있소."

타냐 블랙의 눈동자가 내 견장을 보더니 커졌다.

"어? 소령?"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소."

"2계급 특진이라니! 대단하군."

"축하하오! 타일러 소령!"

또다시 진급 축하 인사를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타냐와 난 둥근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봉쇄령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하니 의뢰는 아닐 거고?"

"의뢰 맞소."

"응?"

의뢰란 말에 용병들이 일제히 기대하는 얼굴로 날 쳐다봤다.

"트라스의 개 용병대를 한 100년쯤 고용할 생각이오."

"······?"

타냐 블랙이 피식 웃었다.

"그럴 돈은 있소? 농담할 생각이라면 그만두시오. 요즘 일거리도 없고, 머리 터질 일이 많으니까."

"돈 말고 다른 건 어떻겠소? 가령 기간트라든가?"

타냐 블랙이 날 빤히 쳐다봤다.

"농담이 아니군."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차피 이제 용병 일도 접어야 하지 않겠소? 망가진 기간트를 수리할 케네스도 없고, 기간트에 맞는 마석 배터리를 구할 때도 없으니까."

"서, 설마 케네스 영감이 사라진 것이?"

"맞소. 케네스 영감과 앨리슨은 나와 함께 헬다임으로 이주했소."

그때 대머리 용병 월터가 허리춤에서 단도를 뽑아 들었다.

"이런 씨발! 네놈이 우리를 망하게 했구나!"

"이 새끼가 미쳤군. 그리고 여길 와?"

다른 용병들도 흥분하긴 마찬가지.

그때 타냐가 손을 들었다.

"좀 닥쳐! 지금부터 시끄럽게 하는 놈이 있으면 쫓아내겠다."

타냐가 한마디 하자, 월터와 용병들이 씩씩대며 자리에 앉았다.

"대체 왜 그런 거지? 그들이 없으면 우리가 기간트 운용을 못 하는 걸 알면서?"

"한 가지 묻지. 케네스와 앨리슨이 당신들 소유인가?"

"그건 아니지."

"그럼 그들이 어디에 살건, 날 따라 장벽을 건너건, 그건 그들의 자유지 당신들이 관여할 문제는 아닐 텐데?"

타냐 블랙이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너무 정곡을 찔렀나?

"한 가지 더 묻지. 언제까지 이 어두컴컴한 곳에서 용병 일이나 하면서 살 거지?"

"지금 우리를 우습게 보는 건가?"

"그게 아니라, 아란노드 기사단의 후손으로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 살 거냔 말인가?"

"뭐라?"

타냐 블랙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주변의 용병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 그걸 어떻게?"

품에서 서류를 꺼내 내밀었다.

"정보국 자료실에서 재미있는 걸 찾았지. 100년이나 된 자료지만 잘 보관되어 있더군."

타냐는 내가 내민 서류를 펼쳤다.

대략 100년 전.

제국에 아주 유명한 사건이 있었다.

아란노드 기사단이라 불리는 아베르크 제국의 근위 기사단은 황제가 죽자, 평소 유언대로 어린 황태자를 다음 황제의 자리에 앉히려 했다.

하지만 대관식 전날 황태자가 암살당하고, 전대 황제의 동생이 새로운 황제가 되면서 충성을 강요당했다.

게다가 건강했던 전대 황제의 죽음도 석연치 않았다.

아란노드의 기사단장은 두 황제를 섬기는 것은 불충한 일이라 여기고 뜻을 함께하는 기사들과 황궁을 떠났다.

그들은 곧바로 반역자로 몰렸고, 제국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결국, 그들이 선택한 곳은.

"거기 기록에 보면, 30대가 넘는 기간트가 장벽을 넘어 대수림으로 갔는데, 그 이후론 아무런 기록이 없단 말이지. 그리고 그때 기종을 조사해 보니까. 당신들이 타던 그 골동품이 딱 100년 전 그 기간트더군."

"이 사실을 또 누가 알고 있는 거지?"

"아직은 나밖에 모르지."

그때 월터와 용병들이 입구를 막고 내 주변을 포위했다.

"타냐! 당신이라면 내 능력을 대충 눈치챘을 텐데?"

타냐 블랙이 이를 악물었다.

"멍청한 짓 하지 말고, 다들 그냥 앉아! 이 사람은 우리 상대가 아니야."

"현명하군. 처음부터 난 대수림에 기간트를 타는 용병대가 있어서 의심스러웠지. 당신도 알겠지만, 기간트가 어디 쉽게 탈 수 있는 물건은 아니잖아."

"그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게 뭐지? 우린 역적의 후손이고, 이제 당신 말처럼 기간트도 없는데."

난 고개를 흔들었다.

"역적은 무슨, 이미 오래전 일인데. 그리고 기간트는 내가 있지. 단지 기사가 부족해서 그렇지."

"기사?"

"자! 이제부터 잘 들어. 난 헬다임 근처에 작은 영지를 살 생각이야. 이미 후보지를 세 군데 생각해 놨어. 금화도 곧 준비될 거고, 기간트도 충분하지. 그리고 케네스 영감과 앨리슨도 나와 있으니, 마석 배터리 수급이나 기간트 수리 문제도 해결됐고."

"우리더러 당신 영지의 기사가 되란 말이군."

"모두는 아니야. 내가 알아보니 기간트에 탈 사람은 다섯 명뿐이더군. 작업용 기간트에 탈 사람은 서너 명 정도 되는 것 같고, 나머진 영지 경비 일을 맡기지."

타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것까지 다 파악했나?"

"내가 정보력이 좋지."

건물에 들어오기 전에 마나를 보는 눈으로 용병들의 마나를 살폈기에 대략 알고 있었다.

생각보다 이들의 마나량이 많아서 살짝 놀라긴 했지만.

"진짜 기간트가 있는 거요?"

"물론이야. 이미 난민 기지에서 오크와 드워프를 데려다주면서 내 부하들의 기간트를 봤을 텐데?"

"아! 혹시 그 룩급 오리지널 기간트도?"

"그렇다. 그리고 기간트를 지급하지 못하면 계약은 무효로 하지. 일단 급료는 다른 영지의 기사들 수준으로 맞춰주고, 숙식 제공. 어때?"

"잠시, 생각할······."

"······시간 따위는 없어. 내가 좀 바쁘거든."

단호하게 말했다.

"난 너희에게 기회를 주는 거야. 그걸 잡는 건 너희 자유고. 그리고 명예로운 기사들의 후예들이니, 지금 선택이 무슨 의미란 것쯤은 잘 알고 있겠지?"

"하아!"

타냐는 크게 한숨을 쉬고 부하들을 쳐다봤다.

용병들은 모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동안 이들이 이 험한 대수림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평탄한 삶은 아닐 것이다.

내가 좀 강제한 감이 있긴 하지만, 난 이들이 필요했고 이들도 내가 필요했으니 서로 윈윈 아닌가?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몸을 돌렸다.

망설일 자들에게 더 투자할 시간은 없다.

척! 처처처척!

"주군을 뵈옵니다!"

"주군을 뵈옵니다!"

고개를 돌리자, 용병들이 모두 내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

거절하기엔 너무 좋은 조건이겠지.

오늘 처음으로 정보국을 턴 보람을 느꼈다.

역시 정보의 힘은 강력했다.

그럼, 이제 가디언 제국을 털 차례인가?

54. 방법이 있습니다.

54. 방법이 있습니다.

늦은 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더니, 푹푹 찌는 더위도 거대한 나무 위에서 쪽잠을 자는 것도 이젠 꽤 익숙하다.

표범인형의 폭신한 털을 베고, 사마귀 꼭두각시는 불침번을 섰다.

그리고 표범인형 반대편엔 에테나가 곤히 자고 있었다.

자는 모습이 천사가 따로 없네.

"잠이 안 오세요?"

"어? 아니야."

조금 움직였는데도 그녀는 바로 알아챈다.

엘프의 능력이 살짝 무섭다.

에테나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어두웠지만 엘프는 실루엣조차 아름답다.

이건 설마?

"저기, 어제 그분이요."

"어? 누구?"

"붉은 머리를 한 분이요. 저 같은 엘프를 처음 본 게 아니었어요."

"알아. 나도 느꼈어. 그는 제국의 7황자고 아무래도 황실 어딘가에 엘프가 있는 거 같아."

"혹시 그 엘프가 시노우엘님이 아닐까요?"

"글쎄. 그건 확인해 봐야지."

시노우엘을 데리고 있는 것이 귀족이 아니라 황족이면 아주 많이 곤란한데······.

어디에 있는지 정보를 찾는다고 해도 황궁에서 엘프를 구해 나오는 것은 게임으로 치면 헬(x3) 난이도였다.

물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이건 좀 쉽게 갔으면 좋겠는데······.'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자, 파이컬 중령 부대가 보였다.

그들은 5군단 내에서도 능력이 뛰어난 기사들로 이번 수색 임무를 맡고, 화산 지대로 가고 있었다.

난 그들의 뒤를 따라갈 생각이었다.

안전하기도 하고, 솔직히 북쪽은 전혀 길을 모르니까.

"에테나, 어서 자! 내일도 기간트를 따라가려면 힘들 거야."

"네! 주무세요."

자라고 말을 했지만, 정작 잠이 오지 않는 것은 나였다.

'갑자기 너무 일을 크게 벌인 건 아닐까?'

아직 영지가 있는 것도 아닌데, 타냐와 용병대 그리고 그 가족들까지 모두 내가 품에 안기로 했다.

문제는 생각보다 용병들 숫자가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거느린 식구들까지 합하면 300명에 달했다.

일단 용병들과 가족들을 장벽 너머가 아니고 난민 기지로 보내기로 했다.

난 아직 영지가 없으니 임시로 그곳을 쓰도록 했다.

또 난민 기지에 타냐와 트라스의 기사들이 탈 만한 기간트가 몇 대 있었고, 마석 배터리도 남겨 놨기에 당장 기간트를 운용해 기지를 지키고 마석 광산을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기간트를 줘야 내 말을 믿겠지.

'아니야! 잘한 거야.'

좀 급한 감이 있긴 했지만, 그들이 가장 절실할 때 도움을 줘야 나를 향한 충성심이 커질 것이 아닌가.

'한 가지 아쉬운 건······.'

그 옛날 아란노드 기사단의 기사들은 뛰어난 마나 능력자들이었지만, 오랜 세월 범죄자들의 후손이나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전진 기지에 삶의 터전을 잡은 평범한 사람들과 결혼하고 어울려 살았다.

그랬기에 기사의 자질은 대를 이을수록 줄어들고, 그 결과 지금은 다섯 명만 기간트에 탈 수 있었고, 작업용 기간트에 탈 수 있는 사람도 고작 네 명이었다.

사실 그 정도만 해도 내겐 큰 도움이 된다.

그래도 그들의 마나량이 많아서 더 등급이 높은 기간트에 타고, 숫자가 더 있었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뭔가 효과적인 마나 수련법 같은 거 없을까?'

가문의 비기 같은 거 말이다.

그래도 근위 기사단의 후손들이니, 기사의 자질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을 테니, 그들이 성장하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다.

'아! 정보국에서 털어온 서류를 한번 찾아봐야겠다.'

거기엔 대영지를 가지고, 기간트를 생산하며, 한 지역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네 명의 공작 가문에 대한 정보도 있었다.

그들이라면 뭔가 있을 것 같았다.

누가 내가 가진 정보를 찾아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앗! 알베르토 소위에게 들른다는 걸 까먹었다!'

커널 사령관이 알베르토 부관에게 정보대 지부 사무실을 내줬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깜빡했다.

뭐, 일이 끝나고 다시 들러야지.

그리고 샤를린 위네스도 카야킨 기지에 있었을 텐데······.

왜 자꾸 그녀만 떠올리면 아련한 느낌이 들까?

아마도 타일러의 옛 기억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타일러의 첫사랑이자 끝 사랑이었으니까.

젠장, 그래도 타일러가 나보다 낫다!

난 군대 제대하자마자, 게이트가 터졌고 괴수와 20년을 싸우다가 죽은 모태솔로니까.

'그런데 대체 가디언 제국은 뭘 찾았을까?'

나에겐 마나를 보는 눈이 있으니, 거신 갑옷이라면 훨씬 찾기 유리했다.

그리고 나보다 더 멀리 마나를 볼 수 있는 거신인형 암 드로운도 있었으니 보물찾기라면 내가 더 유리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병력 규모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중요한 일이 많으니 생각이 많아 잠이 오지 않는다.

머리를 식힐 겸 상태창을 열었다.

[타일러 빈스(24)]

[클래스 – 인형술사(A)]

[레벨 – 51]

[고유 스킬 – 운명의 실타래(lv.7), 기사회생(lv.4), 영혼 이동(lv.6), 병렬사고(lv.1), 토우인형 제작(lv.2), 인형 바꿔치기(lv.1)]

[특수 스킬 – 도약(lv.3), 앞발 후려치기(lv.2)]

[인형의 집]

벌써 A등급이라니!

엄청나게 빠른 성장이었다.

이래서 소설 속 인생 2회차가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턴 경험치 마의 구간에 들어왔다.

1레벨을 올리기 위해선 엄청난 경험치가 필요했다.

전생에도 A등급에서 S등급이 되는 데 8년이나 걸렸으니까.

고유 스킬은 꽤 올랐는데, 특수 스킬이 너무 없네.

이거 폐관 수련 같은 거라도 해야 하나?

전생에 위기의 순간 날 구해준 것은 수많은 헌터 스킬이었다. 기간트에 타면 그래도 어느 정도 보호는 되지만 기간트에 타기 전에 기습이라도 당하면 한 방에 훅 갈 수도 있었다.

영혼 이동을 많이 할수록 마법인형이 가지고 있는 스킬을 배울 기회가 많아지지만, 최근엔 기간트 훈련을 주로 하고 있었기에 스킬이 너무 없었다.

그리고 영혼 이동으로 스킬을 배울 수 있는 것도 괴수 꼭두각시뿐이었다.

그렇다고 괴수 마법인형을 늘릴 수도 없고.

'아니, 그냥 더 만들어볼까?'

또 다른 고민이 들자, 고개를 흔들었다.

이러다가 정말 밤을 새우겠다.

인형의 집을 열었다.

'허! 스파르타야?'

암 드로운에게 새로운 꼭두각시들의 훈련을 맡겼다.

그런데 24시간 동안 아주 빡세게 굴린다.

내가 영혼 이동을 하거나 일일이 운명의 실을 움직여 동작이나 검술을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

그래서 한 달 만에 모두 5레벨이 되었다!

그리고 원래 룩급 기사였던 둘은 벌써 폰급 기간트에 타기 시작했다.

이렇게 효율이 높으니, 앞으로도 꼭두각시 훈련은 암 드로운에게 쭉 맡겨야겠다.

'그러고 보면, 다국적군이네.'

자동인형인 더그와 엘다크는 아베르크 제국의 기사를 마법인형으로 만든 것이었고, 자할리와 알리만, 네자드, 라구즈는 살루스 왕국의 기사, 그리고 이번에 만든 네 꼭두각시는 아리칸 공국의 기사들이었다.

한 마디로 내 마법인형은 3개국 연합군이었다.

그런데 슬슬 기간트가 부족하네······.

그동안은 꼭두각시 하나당 기간트가 3대씩 돌아갈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전투로 기간트 4기가 부서졌다.

물론 이번에 얻은 아리칸 공국의 기간트가 상당했다.

그러나 대부분, 팔, 다리가 없고, 마석 배터리 삽입구나 해치가 부서져 큰 수리가 필요한 것들이었기에 시간이 꽤 필요했다.

그리고 수리하려면 케네스 영감과 드워프들이 있는 장벽을 넘어가야 했기에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그런 의미로.

'이참에 가디언 제국의 마장기도 좀 챙길 수 있지 않을까?'

***

[보르자 전진 기지 북쪽]

'그래도 파이컬 중령이 머리는 있는 사람이네.'

5군단 수색팀이 곧바로 화산 지대로 갈 줄 알았다.

하지만 파이컬 중령의 선택은 블랙힐 기지를 크게 우회해 가디언 제국의 보르자 기지 후미로 가는 것이었다.

보르자 전진 기지는 현재 가디언 제국의 병력이 1/3이나 집결해 있는 곳으로 블랙힐 기지와 주변에 있는 우리 측 전진 기지의 움직임을 막고 있었다.

파이컬 중령이 이곳에 온 이유는 간단했다.

'수송 부대를 미행하려는 거겠지.'

우리가 출발할 때는 가디언 제국이 대수림에 병력을 파견한 지 거의 3개월 된 시점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이곳까지 2개월 보름을 이동했으니, 도합 5개월 보름을 지금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건 아직 화산 지대에서 그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찾지 못했거나 챙길 게 너무 많을 수도 있다는 소리였고, 아직도 화산 지대를 수색하는 많은 사람과 마장기가 있다는 소리였다.

그럼 그들에게 식량이나 물자, 보급품 등을 전달할 수 있는 곳은 이곳 보르자 기지뿐이었다.

"타일러님! 마장기와 마차가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결국, 파이컬 중령의 생각이 적중했다.

나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화산 지대가 너무 넓었기에 그곳을 다 수색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렸을 테니까.

잠시 후.

십여 대의 마장기와 수십 대의 보급품을 실은 마차가 우리 근처를 지났다.

'이거 보급품이 엄청난데!'

희소식이었다.

그건 가디언 제국이 원하는 것을 찾으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리고 이 정도로 많은 투자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찾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는 방증이었다.

가디언 제국의 수송대를 파이컬 중령의 팀이 멀리 떨어져 미행했다.

난 파이컬 중령을 미행했고.

대수림의 거대한 나무가 조금씩 줄어들더니, 이제 수십 미터로 작아졌다. 물론 아직 인간의 기준으론 높은 거지만, 다른 곳보다는 1/3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곳곳에 화산암이 많고, 토양이 점점 검은색으로 변했다.

'아직도 매케한 냄새가 나네.'

근래엔 화산이 터지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곳곳에서 코를 찌르는 유황 냄새가 났다.

가디언 제국의 수송팀은 작은 화산을 여러 개 돌아서 드디어 멈췄다.

이곳은 보르자 전진 기지에서 보름이나 떨어진 곳이었다.

"에테나, 우리가 앞서가자!"

"네, 타일러님!"

***

난 에테나와 길을 돌아 가디언 수송팀이 멈춘 곳으로 이동했다.

파이컬 중령팀은 기간트라 접근이 쉽지 않을 것이다.

'땅속이야?'

비스듬한 방향으로 거대한 땅굴이 보였다.

기간트도 한 번에 3대씩 들어갈 정도로 입구도 컸고, 입구를 중심으로 높은 울타리도 보였다.

그리고 울타리 안엔 수십 대의 마장기와 수십 개의 텐트가 있었다.

입구가 이 정도면 저 동굴 안에는 더 많은 마장기가 병사가 있다는 소리였다.

'대체 땅속에서 뭘 찾은 거지?'

혹은 뭘 찾는 걸까?

궁금증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건 파이컬 중령 팀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그들은 내가 숨어 있는 반대편 바위 뒤에서 나와 같은 곳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저 많은 기간트를 뚫고 들어갈 수도 없고.

아! 기간트가 아니라 마장기지.

자꾸 헷갈린다.

그리고 동굴을 뚫고 들어간다고 해도, 저들도 아직 찾고 있는 것 같은데 뭔가 챙겨서 나올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일단 저 안에 뭐가 있는지 수색이 먼저였다.

'그렇다고 혼자 들어가긴 부담스러운데······.'

도망치는 거야 암 드로운도 있고, 내 마법인형도 있으니 문제 될 건 없었다.

하지만 저긴 은밀히 들어갔다가 은밀히 나와야 했다.

만약 발각될 경우 저들의 경비는 강화되고 다시 물건을 훔치거나 빼내오는 것은 몇 배는 더 힘들어진다.

***

"대장, 저기 뭐가 있는 건 분명합니다."

바오트 대위가 말했다.

파이컬 중령이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블랙힐 기지에서 병력을 더 이끌고 와! 싹 쓸어버리죠?"

"그렇게 되면 보르자 기지에 가디언 제국군도 몰려올 거야. 숫자상으로 우리가 불리해."

로제 소령의 말이었다.

"그럼 아예 군단장님께 연락해 카야킨에서 병력을 더 이끌고 오죠. 그리고 주변 전진 기지의 병력도 더 데려오고요."

가만히 있던 파이컬 중령이 말했다.

"전면전이 문제가 아니야. 저 안에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걸 알아야 군단장님과 다른 영지군을 설득할 것이 아니냐."

"그러게 뭐가 있을까요? 혹시 거신 갑옷이 아닐까요?"

키튼 소령이 물었다.

하지만 파이컬 중령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걸 5개월 반이나 찾고 있다고? 그건 아닐 거다. 400기의 마장기 외에도 몰래 이 정도 규모의 병력을 운용할 정도면 더 중요한 걸 찾고 있다고 봐야지"

"하지만 지금 거신 갑옷 말고 더 중요한 게 뭐가 있습니까?"

"그건 우리가 알아봐야지."

파이컬 중령의 말에 기간트 기사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설마, 들어가 보시려고요?"

로제 소령이 물었다.

"그래, 최대한 은밀히 들어갔다가 빠르게 나와야 해. 들켰다간 저 동굴이 우리 무덤이 될 거야."

"기간트 전투라면 자신 있는데, 몸을 쓰는 건······."

"대장, 저 삼엄한 곳을 어떻게 들어간다는 말입니까? 들켰다간 목숨이 10개라도 부족할 겁니다."

바오트 대위뿐만 아니었다.

다른 기사들 역시 표정이 안 좋긴 마찬가지였다.

"몰래 들어갈 방법이 있습니다!"

"응?"

"어?"

"타, 타일러 소령?"

기사들은 귀신을 본 것처럼 기겁했다.

55. 잃어버린 유산.

55. 잃어버린 유산.

기사들이 크게 당황한 가운데, 두 사람이 날 보고 반가운 얼굴을 했다.

기사들 옆을 지나는데 바오트 대위가 먼저 아는 척을 했다.

"타일러 소령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진급 축하드립니다."

"저도 축하해요."

로제 소령도 웃으며 말했다.

난 두 사람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고, 파이컬 중령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파이컬 중령은 날 노려보고 있었다.

"타일러 소령! 그대가 여긴 무슨 일인가?"

"저도 중령님과 같은 이유입니다. 가디언 제국의 꿍꿍이를 알아보러 왔습니다."

"내가 그걸 물은 게 아니지 않은가! 시안 군단장님의 명을 듣지 않은 이유가 뭐지?"

"그것이 곤란한 명령이라서······."

"뭐라? 곤란해?"

발끈하는 것이 파이컬 중령은 완전히 시안 7황자의 수족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그는 내가 기차역에서 봤을 때 친절했던 파이컬 중령은 아니었다.

그러니 나도 할 말은 해야겠다.

"제가 명색이 정보국 대수림 정보대 지부장입니다. 아무리 위험한 곳이라고 해도 대수림의 정보는 이제 제가 관할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고를 올리면 정보국 부국장에게 전달이 되고, 부국장은 정보국장에게, 정보국장은 추밀원장에게, 그리고 추밀원장은 위대하신 케인 오르도 황제 폐하께 보고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움직이는 것은 황제 폐하의 명령입니다. 설마 시안 5군단장님의 지시가 황제 폐하의 명령보다 우선하신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겠죠?"

"그, 그건······."

반박할 순 없을 것이다.

엄연히 소속이 다르고, 명령체계 또한 달랐으니까.

또한, 정보국의 상급 기관인 추밀원은 황제의 오른팔로 영주 회의와 더불어 제국의 실세라고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7황자가 5군단장에 후계 서열 3위라고 해도 현 황제의 자문인 추밀원장을 무시할 순 없었다.

"험! 그런데 여길 어떻게 왔나? 우리도 방금 도착했는데?"

"어떻게 오긴요. 저도 계속 중령님 팀과 계속 함께 이동했는데요."

"뭐? 우릴 따라왔단 말인가?"

"대수림은 이제 제 안방과도 같은 곳입니다. 다들 제가 미행했는지도 몰랐을 겁니다."

파이컬 중령은 자신의 부하들을 쳐다봤다.

부하들은 중령의 시선을 피했다.

내 말대로 아무도 내가 따라오는 걸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난 여유롭게 미소 지어줬다.

"그보다 어서 가디언 제국의 꿍꿍이를 알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파이칼 중령이 미간을 좁혔다.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하지."

"제가 지금까지 듣기엔 방법이 없어 보이던데요."

"뭐라, 우리가 하는 말을 엿들었나?"

"우연히 들었습니다."

파이칼 중령은 자존심이 상한 표정이었다.

제국 5군단의 기사로 정보국 장교의 미행을 눈치채지 못한 것도 그렇고, 바로 옆에서 엿듣고 있었는데도 몰랐다는 것이 기사의 자존심으로 용납하지 못하는 거겠지.

"제게 몰래 들어갔다가 나올 방법이 있습니다. 어떻게 저와 함께 들어가시겠습니까?"

"정말 방법이 있다는 건가?"

"물론입니다. 대신 저 안에 들어가선 제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뭐라?"

"지금 우리더러 정보국 장교의 명령을 들으란 말이야?"

5군단 기사들은 발끈했다.

그때 파이칼 중령이 손을 들었다.

"조용! 지금은 임무가 최우선이다."

파이칼 중령이 날 쳐다봤다.

"우선 그대의 방법을 들어보고, 결정하지."

난 파이칼 중령과 기사들에게 작전을 설명했다.

그러자 모두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위험하긴 해도 나보다 좋은 작전을 생각한 사람이 없었으니까.

***

바오트 대위가 인상을 찡그렸다.

"제길, 하필 암내 나는 놈의 갑옷이라니······."

"난 갑옷이 너무 커!"

로제 소령도 가디언 제국의 병사 갑옷을 입었으나, 솔직히 너무 커서 이상해 보였다.

"안 되겠다. 옷을 더 껴입어야지."

하지만 침투 작전에 함께 가고 싶다는 그녀를 말릴 순 없었다.

바오트 대위가 말하길, 그녀가 부대에서 마나량도 제일 많지만, 검술 실력도 제일 좋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로제 에니슨 소령은 윌리엄 사령관의 호위이자, 비숍급 오리지널 기간트 기사인 엠버 에니슨 중령의 동생이었다.

이번에 두 자매가 나란히 대수림에 온 것이다.

지금 엠버 중령은 시안 군단장의 호위로 카야킨 전진 기지에 있었다.

"난 준비를 끝냈네."

가디언 병사 옷을 입고 온 파이컬 중령은 약속대로 내게 지휘를 맡겼다.

그래도 그는 임무를 위해선 타협할 줄도 알고,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은 아니었다.

"기간트는 대기 중입니까?"

"10대의 기간트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놈들의 출구 가까운 곳에서 기다리고 있네. 일단 동굴을 무사히 빠져나오기만 하면 블랙힐 전진 기지까지 곧장 이동할 것이네."

"그럼 슬슬 출발하죠."

난 고개를 끄덕였다.

만반의 준비는 끝냈다.

내 작전은 간단했다.

보급품을 가져왔던 수송대가 보르자 전진 기지로 돌아가는 길에 병사를 납치 처리하고 갑옷을 챙긴다.

대수림에선 이동 시 병사 몇 명 사라진다고 다시 수색하진 않는다는 점을 노렸다.

그냥 괴수가 물고갔구나 하고 그러려니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