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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광활히 펼쳐진 물류센터의 전경.

가족들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지만, 이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여기서 키보드로 검색을 하면···"

우선은 각자 필요한 물자들을 뽑아 쓸 수 있도록, 픽킹 스테이션에서 물품을 주문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다음은 일종의 교통정리였다.

앞서 아공간 안에 들인 이용수의 가족과 카멜롯의 기사들이 있었으니까.

가족들에게 먼저 이용수를 소개했다.

"용수씨라고···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도와주신 분이세요. 이분 아니었으면 훨씬 오래 걸렸을 거야."

먼 길이었다.

차량이든 헬기든, 척척 운전을 도맡아준 그다.

그의 각성 능력과 용기가 없었다면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을 터.

아이러니하게도, 이용수가 아내에게 나를 소개했던 때와 비슷한 어투로 그를 소개하게 됐다.

우리가 서로 고마운 도움을 주고받았다는 증거였다.

이용수가 가족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웬걸요. 저야말로 아드님께 온갖 도움을 받았습니다. 바깥 상황이 흉흉한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무사하신 걸 보니 저도 보람이 크네요."

"아이고··· 먼 길 고생이 많으셨겠네요··· 어머나!"

어머니가 이용수의 딸 유정이를 보며 반색했다.

부르르 입술을 떨며 까꿍 소리를 내어주니, 금세 유정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여러모로 화기애애한 인사였다.

"그럼 다음으로는···"

카멜롯의 해골 기사들이었다.

녀석들의 으스스한 외관이 마음에 걸렸다.

어떻게 소개해주면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

텅텅!

할아버지가 란슬롯의 등을 두드렸다.

"이름이 뭐여?"

충청도 어르신의 구수한 어투가 중세 해골 기사의 무장을 해제했다.

"···란슬롯이라고 합니다."

"그려, 란씨. 저어기 옆집 사는겨?"

창문 너머로, 위병소 옆에 붙은 모텔, 아니 카멜롯 성이 눈에 들어왔다.

"예예, 그렇습니다."

"차림새가 신기해서 심심허진 않겄네. 장기는 둘 줄 아는감?"

"체스는 둘 줄 압니다만···"

"허허, 거 몸은 산더미만한 양반이 복잡허게 사네. 체스나 장기나 그게 그거여?"

할아버지가 너털웃음과 함께 눈주름을 접었다.

덩치를 봐서는 소도 잡아먹겠다는 말에 해골 란슬롯이 고개를 저었지만, 아무래도 할아버지는 란슬롯이 여간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드넓은 아공간이지만, 간단히 서로의 거처를 정해두기로 했다.

이용수와 그의 가족들은 여자 휴게실을 그대로 쓰기로 했고, 나를 제외한 김씨 일가는 국통사 사령관의 관사를 쓰도록 했다.

나름 마당 딸린 공간이니 전원주택까지는 아니어도 부족함은 없을 터.

당연하게도, 해골 기사들의 거처는 카멜롯 성으로 고정이었다.

다음은 형네 내외였다.

마침 전해 줄 소식이 하나 있었다.

"형 신혼집 박살 남."

"···?"

"베란다 쪽에 헬기가 오더니 미친 듯이 총알을··· 미사일까지···"

"···??"

알고 있기론, 풀 대출을 끌어당겨 마련한 집이었다.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이 나였다는 것, 그리고 현관문만큼은 내가 손수 뜯어버렸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았다.

"정겸이 너도 참."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기에,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어차피 요지경이 된 세상이다.

되찾을 수 있을지조차 확실하지 않으니.

"옆 군부대에 간부 아파트가 있어. 집 하나 꿰차서 쓰면 될 거야. 형수네 식구들도 하나 골라 쓰시게 하고··· 필요한 가구나 가전 같은 건 여기서 주문해서 써."

"···정말 고맙다. 이렇게까지 네 덕을 볼 줄은 몰랐어."

"그건 그렇고···"

물어볼 것이 있었다.

모처럼 만난 가족들.

그건 전력의 강화를 뜻하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아버지 말고 또 각성한 사람은 없나?"

아쉽게도 모두가 각성하는 가족 드라마는 벌어지지 않았다.

각성한 것은 아버지, 그리고 형수였다.

"시은이가 능력을 각성했어. 덕분에 그동안 식수 같은 것도 해결하기가 편했지. 어머니가 화분에 물 주려고 떠 놓은 물을 정수해줬거든."

아버지의 능력, 그리고 형수의 능력까지.

좀 더 파악할 필요가 있었지만, 아무쪼록 발전 가능성이 돋보이는 능력들이었다.

'···이제 됐나.'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군포에서부터 끝끝내 짊어지고 온 아공간.

허전하고도 텅 빈 이 장소에 마침내 가족들이 녹아들었으니까.

허전했던 아공간에 활기가 돌았다.

"주방이 그렇게 좋아요?"

"그렇다니까요!"

식사를 준비하겠다며, 어머니가 오지수와 함께 직원 식당으로 떠났다.

두 누나가 달려들어 아공간 안에 병원을 차리자느니, 헬스장을 차리자느니 시답잖은 수다를 떨어댔다.

형이 팍스를 통해 살림에 필요한 이런저런 가전을 주문했고, 란슬롯은 할아버지에게 붙잡혀 60년대 군생활이 얼마나 혹독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충청도 특유의 0.7배속으로 전해 들었다.

그야말로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었다.

잠시 우두커니 서 있던 중,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게 집이지."

시끄럽고, 정신 사납고, 이 사람 저 사람 말소리에 귓바퀴가 끌려다녀도, 외로움이라는 단어 한 조각조차 떠올리기 힘든, 밀도로 가득 찬 공간.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집의 정의였다.

하지만,

"아직 집 아니다."

슬그머니 뒤에서 나타난 아버지가 딴죽을 걸었다.

"아직 아니라고요···?"

"이웃이 있어야 집이지 이눔아."

가족이 있어야 진정한 집이라는 나의 생각.

아버지는 거기에 또 다른 사상을 덧붙였다.

"아무리 요즘 세상에 서로들 관심이 없다해도 그렇지, 옆집 사람이 죽어가는데 등 따숩다고 그게 집이냐? 동네 슈퍼에서 누구네 누렁이가 새끼를 깠네 마네까지는 못하더라도··· 서로들 별 일은 없어야 두 다리 뻗고 자는 거지. 어디 우리 가족만 가족이냐?"

우리 가족만 가족이냐는 낯 익은 말.

오지수가 나를 도우라며 이용수를 집 밖으로 내몰 때 했던 말이었다.

그 결심 덕에 나도 내 가족들을 찾을 수 있지 않았던가?

아버지의 말은 계속됐다.

"옆집 최씨네가 잡혀갔다. 저기 카센터 하는 윤씨도 그랬고. 웬 군복 입은 괴물들이 와서 이 동네 사람들 싹다 잡아갔어."

1군단의 이야기였다.

놈들은 진즉 의정부를 차치한 채, 아래 있는 도봉구에서도 인력을 수급하고 있었으니.

망령을 통해 보았던 대로, 놈들은 의정부 곳곳에 고블린 부락과 제단을 설치해가며 제물로 쓸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안락한 낙원이 된 아공간과 달리, 밖에는 여전한 멸망이 드리워 있었다.

그것도 인간의 손을 빌어서.

그리고 그건, 단순히 윤리적인 문제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더 이상 1군단이 세력을 키우게 둬서는 안 돼.'

정부군과 정면으로 대립할 만큼 거대한 세력을 자랑하는 그들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데 모자라, 다른 인간들까지 제물로 삼으려 하고 있었다.

망령들을 통해 확인한 의정부의 포로들.

얼핏 봐도 그 수가 어마어마했다.

그들 모두가 제물이 되는 파국이 벌어진다면, 1군단의 힘이 얼마나 막강해질지 차마 가늠할 수 없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여기에 계속 머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야.'

우리는 적진 한 가운데 있었다.

마석이 무한하지 않은 이상, 언젠가는 아공간에서 나가야 할 터.

그 시기를 정해야 한다면 놈들이 더 이상 강해지는 것을 막을 지금이 최적이었다.

지금까지 갖은 방해를 일삼던 1군단이었다.

이계의 존재들이 침입해 들어오는 마당에, 동족을 향해 밭다리를 거는 놈들.

이참에 씨를 말려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

멀찍이서 소리가 들렸다.

오지수와 어머니가 식사를 차렸으니, 와서 먹으라는 소리였다.

"······"

우뚝.

걸음을 멈춰 세웠다.

이상하게 배가 고프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다른 게 먹고 싶었다.

1군단이 어떤 곳인가?

수도를 지키는 부대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 1군단이다.

병과로만 보더라도, 안에 없는 게 없는 부대가 1군단이었다.

"기갑여단에··· 항공단, 공병부대에 군수지원 부대까지."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포로가 된 옆집 사람들.

의정부의 시민들.

더 나아가 한반도, 그리고 지구촌 사람들.

나는 그들 모두가 빠짐없이 행복하길 바랄 만큼 욕심이 끝도 없는 사람이었다.

나만의 아공간이다.

하지만 바깥의 모든 것을 빨아들일 만큼, 내 울타리에는 한계란 없었다.

혀를 날름거리며, 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먹고 싶다··· 1군단···"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담고 싶은 욕망.

나는 탐욕스런 물류센터의 주인이었다.

30. 울타리와 네트워크 (1)

다 같이 모여 식사를 마쳤을 즈음.

형수가 모두에게 작은 유리병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붉은 용액이 담긴 앰플이었다.

"이게 뭐죠?"

"포션이에요. 물류센터에 있는 영양제들이랑, 병원에서 가져왔다던 약품을 조합했어요."

그러고 보니, 능력을 각성했다던 형수였다.

존재하는 물질을 섞어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내는 능력.

레벨이나 구체적인 능력까지는 모르겠으나, 아공간에 있는 물건들이 재료로 사용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터였다.

포션의 성분 또한 휘황찬란했다.

"콜라겐, 트립토판에··· 히알루론산 액상, 그리고 각종 한약재를 조합했어요. 다양한 효능보다는 상처 또는 피로 회복이나 진정 효과에 초점을 맞췄고요."

그야말로 포션 그 자체였다.

능력으로 만든 물건이기 때문인지, 여느 아이템처럼 포션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

[수제 포션]

등급: [노말]

설명: [연금술사, 최시은에 의해 제조된 수제 포션입니다. 복용시 상처/피로 회복 및 진정 효과를 발휘합니다.]

속성: [없음]

옵션: [미약한 회복], [미약한 진정]

---

찰랑.

보기 좋게 흔들리는 붉은 액체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특유의 달달한 약국 딸기 맛이 입안을 맴돌았고···

"오···?"

신선한 활력이 몸을 휘감았다.

모르는 새 쌓여 있던 피로가 한순간에 날아가 버린 기분이었다.

.

.

.

식사를 마친 뒤, 나는 P999K 무전기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휘이이···

한바탕 놈들을 청소한 덕일까, 주변으로는 이렇다 할 적이 보이질 않았다.

물론 의정부 전체가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1군단이 파주는 물론, 고양, 의정부까지 장악한 상황일 테니.

한편, 지금쯤 정부군은 내가 뚫고 지나온 도봉구 일대를 수복하며, 서서히 의정부 진입을 시도하고 있을 터였다.

좀 더 정확한 상황을 가늠하기 위해 합참본부 쪽으로 무전을 걸었다.

뚜르르르···

신호음이 울렸고, 오래지 않아 작전본부장 유성철이 무전을 받았다.

그로부터 1군단의 동태에 관해 물었다.

"1군단 말이죠? 대공 방어선을 뚫어주신 덕에 저희도 간간이 드론을 날려보고 있습니다. 다행히 병력이 아주 많지는 않아요. 저희 정부군과 대치하느라 백련산 부근에 병력이 집중된 상태고··· 그렇다고 전방에 배치된 병력까지 끌어다 쓸 수는 없을 겁니다. 결국 지금 의정부나 고양 쪽에서 돌아다니는 건 대부분 고블린 변종들이고요. 한데···"

잠시 말을 멈춘 그가 떨떠름하게 말을 이었다.

"놈들이 국군 행세를 하며 사람들을 차출하고 있습니다."

"국군 행세요···?"

"예, 고블린 얼굴을 하고 무슨 국군 행세를 하겠나 싶으시겠지만··· 장갑차를 타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뒤에는 태극기까지 매달고요. 혹시나 하고 나왔다가 수용소에 끌려간 사람들이 꽤 많아요."

멸망한 세상.

여전히 많은 사람이 기대를 품고 있었다.

국가가 이 상황을 해소해줄 것이라고.

놈들은 바로 그 기대를 이용해 사람들을 꾀어내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힘을 키워줄 제물로 사용하기 위해서.

'뭐···'

이러나저러나 나의 행보에는 변함이 없었다.

고블린들을 사냥하고, 수용소들을 해방하며 1군단 사령부가 있을 고양에 다다를 계획이었으니까.

내가 유성철에게 제안했다.

"본부장님, 뒤처리 하며 올라오시는 게 쉽지는 않으시겠지만··· 조금만 더 힘내시죠."

"···무슨 말씀이시죠?"

"저는 지금부터 군단 사령부로 향할 겁니다. 1군단을 쓸어드릴 테니, 계속해서 꼬리를 물며 수용소에서 나온 사람들을 챙겨주세요."

"···1군단을요? 정겸 씨 혼자서 말입니까?"

"저희, 꽤 대가족입니다."

"아니, 그게···"

유성철은 퍽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아무리 내 능력을 알고 있다지만, 1개 군단을 상대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나는 한 가지 조건을 덧붙였다.

"대신, 이번에 정부군이 되찾게 될 무기, 장비, 전략물자, 보급품들 모두를 제게 한 번씩은 빌려주셨으면 합니다."

"아···"

유성철은 이제야 이해가 되는 듯한 눈치였다.

이미 한 차례 헬기를 빌렸던 나다.

그리고 1시간도 안 되어서 반납했던 모범 대여자가 또 나였다.

내게 사물을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그 또한 모르지 않았으니.

잠시 고민하던 유성철이 대답했다.

"제 선에서 허가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 이름을 걸고 꼭 그렇게 해드리죠. 이건 나라의 존망이 걸린 일이니까요."

나라의 존망.

유성철은 마치 아직 대한민국이 존속하고 있다는 투로 이야기했다.

아쉽게도 그건 사실이 아니었지만··· 혹시 또 모를 일이었다.

단, 존속이 아닌 재건이 맞는 표현이겠지만.

"그럼."

"무운을 빕니다."

그렇게 유성철과의 통신을 마쳤다.

'장갑차에 탄 고블린이라···'

난적으로까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좀 단단하기는 하겠지만··· 그 위로 헬기를 떨궈버리든, 불로 달궈진 볼링공을 던지든 하다 보면 어떻게든 해치울 수는 있을 테니.

위잉.

대충 그런 생각으로, 아공간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그새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

포탈 앞을 지키던 큰형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정겸아, 이거 받아라."

"···?"

붉은색 돌.

"이걸 왜 가지고 있어···?"

강화석이었다.

.

.

.

아버지의 전원주택이 요새가 된 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즈음.

이곳에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고 했다.

"무슨 코뿔소처럼 생긴 짐승이었어. 뿔로 무작정 집을 들이받더라고."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더랬다.

그간 숱한 괴물들이 진입을 시도했지만, 강고하게 버텨주던 요새의 장갑이었으니.

하지만 놈은 달랐다.

"한 번 박을 때마다 벽이 움푹 파였어. 그 상태로 폭발이 일어나기도 했고. 거의 뚫리기 직전이었는데···"

다행히, 놈의 공격은 저지되었다.

하늘에서 나타난 괴조, 그리폰으로 인해.

맞닥뜨린 두 괴물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꼬박 이틀간 사투를 벌였더랬다.

그리고···

승자인 그리폰이 코뿔소의 살점을 뜯어먹고는, 유유히 요새를 떠나갔다고.

그렇게 남은 코뿔소의 사체.

그곳에 강화석이 남아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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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석(D)]

속성 : 없음

옵션 : [관통], [폭발]

----

"······"

강화석을 받아든 뒤, 홀로 고민에 잠겼다.

"···어떻게 사용하는 게 좋을까?"

지금 내게 강화석의 용도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카멜롯의 망령을 기사로 서임하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공간에 있는 사물 중 하나를 강화하는 것.

내 결론은 후자였다.

"인력이 모자라는 상황은 아니니까."

전천후 기사인 란슬롯부터, 괴력의 베디비어, 탱커인 김솔과 힐러 큰누나까지.

완벽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의 풀 파티를 갖춘 상태였다.

남은 문제는 하나였다.

"그럼 뭘 강화하느냐의 문제인데···"

사실···

이 고민의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즉시 로 들어가 '물건' 하나를 분리해냈다.

그리고 팍스에게 요청해 방금 받은 강화석을 사용했다.

그렇게···

그 장엄한 사물이, 눈앞에 드리웠다.

---

[AGM-114 헬파이어 미사일 +1]

등급: [레어]

설명: [정보를 불러오는 데 실패했습니다. 직접 설명을 입력할 수 있습니다.]

속성: [없음]

옵션: [관통], [폭발]

---

"[폭발]에 미사일··· 이건 못 참지."

빼앗은 블랙호크에 장착되어 있던 헬파이어 미사일.

말 그대로 포탈에서 발사되는 '지옥불'이다.

[폭발] 옵션이 실로 주요했다.

보통의 미사일이 마하의 속도로 날아가는 반면, 아공간의 출하 속도는 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으니까.

적을 타격하더라도 충격이 모자라 불발이 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알아서 [폭발]해준다면, 안심하고 놈들을 지옥 불구덩이에 넣어줄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지."

----[강화 가능 항목]----

◈ 출하 소요 시간 [1초]

◈ 출하 사정거리 [50m] [+]

◈ 출하 속도 [최대 150km/h] [+]

-------------------------

강화한 지 꽤 오래되었다.

그동안에는 특별히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니까.

더욱이, 비용도 상당했다.

레벨 3에서의 최대 출하 사정거리는 100m까지.

미터당 마석 10개로, 최대치를 찍으려면 500개가 필요했다.

출하 속도는 최대 300km/h까지였는데, 이 또한 시속 1킬로당 마석 5개로, 최대치까지 750개의 비용이었다.

도합 1250개라는 거금.

원래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금액이었지만···

[보유하고 계신 마석의 양은 2,396개입니다.]

220여단장의 마석을 빼앗았고, 또 의정부의 집까지 올라오는 길에도 무수히 많은 고블린을 처치했다.

차원 계좌 덕분에 마석 수급이 한결 빨라진 것은 덤이었다

지금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만한 액수였다.

일말의 고민 없이, 마석을 지불했다.

[알겠습니다.]

[마석 1,250개 받았습니다.]

[남은 마석은 1,146개입니다.]

그렇게 모든 채비를 마쳤다.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이용수에게 출발 소식을 알리자, 그가 물었다.

"이번에도 헬기로 가십니까?"

"아뇨, 차로 가야 합니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 많아서 풀어주면서 가야 하거든요."

천릿길도 한걸음부터다.

나는 1군단이 차지하고 있는 의정부 일대를 서서히 수복해나갈 작정이었다.

그 끝부터 야금야금 먹어 치우면서.

***

쿠구구구···

무너진 도심을 누비는 장갑차.

거친 엔진소리가 아스팔트에 균열을 더하고 있었다.

쿠구웅.

장갑차가 잠시 멈춰 섰다.

멀찍이 작전을 떠났던 기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돌아오고 있었으니.

교묘하게 매달아 놓은 태극기가 연신 흔들렸다.

푸시이···

달칵!

반 고블린이 해치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대체 무슨 이유로 작전 지역을 벗어난 것인지, 그 책임을 묻기 위해.

"야, 여기서 뭐 해?! 지금···"

하지만···

위잉.

난데없이 다가오던 장갑차 주변으로 네 개의 포탈이 생겨났다.

그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미사일이었다.

쐐애애애액!

"······!!"

눈앞 정면에서 쏘아져 들어오는 공대지 미사일.

톡.

그 끝이 장갑차와 만났고···

꽈아아아아아아앙!

사방으로 '지옥 불'이 튀어 올랐다.

휘릭!

장갑차의 상판이 회전하며 하늘로 치솟았다.

뻥 뚫린 장갑차.

활활 타오르는 지옥을 담은 기체가 서서히 땅으로 허물어졌다.

이윽고 이어지는 소리.

···쿠웅.

"휘우!"

이번엔 내가 해치 밖으로 머리를 꺼냈다.

으로 빼앗은 장갑차였다.

연식이니, 모델이니 아는 것 하나 없는 물건이었지만, 역으로 놈들의 허를 찌르는 데에는 이만한 물건도 없었다.

놈들이 국군을 위장했던 것처럼.

의정부를 떠나온 지 벌써 어느덧 세 시간이다.

고블린들과 장갑차를 만나는 족족 미사일로 불맛을 보여주었고, 수십 개의 수용소로부터 포로들을 해방했다.

뽀옥!

병뚜껑처럼 시원하게 열린 수용소의 문.

갇혀 있던 사람들이 탄산처럼 쏟아져 나왔지만, 아쉽게도 상태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갇혀 있던 시간이 꽤나 길었던 탓.

하지만···

"포션이 꽤 유용하네."

네 개의 포탈로 쉴 틈 없이 포션을 투하해주었다.

완전한 치유까지는 아니더라도, 상태가 악화되는 것 정도는 막아줄 터.

정부군의 도착까지 충분한 시간을 벌어줄 수 있었다.

그렇게 수십 대의 장갑차와 수용소를 깨부수었을 때쯤,

우리는 1군단 사령부가 위치한 고양에 다다랐다.

휘이이···

우중충한 하늘과 불길하게 피어오르는 매연.

군단 사령부는 위병소로부터 이어지는 오르막의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길다면 길었다.

가족들을 만나는 과정 내내 줄곧 훼방을 놓던 1군단이었으니까.

"얼굴 한번 보자. 군단장."

이제는, 만날 때가 되었다.

31. 울타리와 네트워크 (2)

콜록! 콜록!

하늘은 온통 검은 매연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변 나무들이 온통 비쩍 말라 있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사령부의 전경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역겹네···"

이러나저러나, 기분 나쁜 냄새였다.

놈들이 무엇을 불태우는 것인지 짐작이 갔으니.

인신공양을 통한 번제(燔祭).

놈들은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쌓아온 역사를 거슬렀다.

고대에나 존재하던 야만을 끌어당기는 식으로.

그러니 내가 할 일은 놈들을 제 시대에 맞게 돌려보내는 일이었다.

죽음이라는 영원한 시간을 선사함으로써.

단, 이번 1군단 공략에서는 나와 해골 기사들만 나서기로 했다.

"이번만큼은 그게 낫겠지."

두 누나는 분명 큰 전력이다.

하지만 나와 기사들과 달리, 척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능력이 있는 작은 누나지만, 작은 방심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었으니.

200여 미터 너머, 군단 사령부의 위병소가 보였다.

보란 듯이 소총을 둘러메고 있는 고블린들.

그 모습에서 위화감이 치밀어 올랐다.

짜증나는 상대지만, 그래도 예의는 지키기로 했다.

놈들과 달리 나는 철저한 문명인이니까.

일단은 노크부터.

"출하."

슈우우우우웅!

빠른 속도로 쏘아지는 검은 몸체의 헬파이어 미사일.

그 우람한 몸체는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당목(撞木)의 타종과도 같았다.

꽈득!

이어지는 타격, 그리고···

꽈아아아앙!

거센 폭발과 함께, 지옥 불이 파도처럼 놈들을 덮쳤다.

굳게 닫혀 있던 위병소 철문은 종잇장처럼 찢어졌고, 그 사이로 불에 뒤덮인 고블린들의 사체가 나뒹굴었다.

따르르르르르!

경보가 울렸다.

줄곧 매연이 피어올랐던 걸 감안하면, 늦어도 너무 늦은 화재 경보였다.

위병소를 지났다.

고블린들, 그리고 이제는 익숙한 반 고블린 변종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투두두두···!

총질은 물론이고,

꽈앙!

수류탄도 심심치 않게 날아들었다.

물론, 별다른 타격은 없었다.

우리는 놈들보다 높은 위계를 가지고 있었을 뿐더러, 총이나 수류탄 같은 평범한 무기로는 우리의 척력을 뚫어낼 수 없었으니까.

나는 그저 뒤에 서서 헬파이어 미사일로 놈들에 마땅한 지옥을 선사해줄 뿐이었다.

"···?"

오히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놈들을 처치할 때마다 떠오르는 계좌의 입금 알림.

그 사이에 도둑놈들이 끼어들었다.

[플랫폼 규약에 따라, 수익의 30%가 골드, 박정훈에게 수수료로 지급됩니다.]

[플랫폼 규약에 따라, 수익의 15%가 다이아, 이강민에게 수수료로 지급됩니다.]

[플랫폼 규약에 따라, 수익의 5%가 사파이어, 남도훈에게 수수료로 지급됩니다.]

벌써 절반을 떼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플랫폼 특수 규약에 따라, 수익의 10%가 제사장, 김봉수에게 수수료로 지급됩니다.]

[플랫폼 특수 규약에 따라, 수익의 10%가 메시카 차원의 '토나티우'에게 수수료로 지급됩니다.]

"···미친?"

추가로 20 퍼센트가 더 나갔다.

결국 내게 들어온 마석은 전체의 3할에 지나지 않았다.

정확한 원리는 알 수 없지만, 군단 사령부 전체에 내가 모르는 특수한 규칙이 적용되고 있는 듯했다.

그 와중에도 짐작할 만한 정보가 있었다.

제사장.

망령을 통해 220여단장을 엿봤을 당시 들었던 호칭이다.

보나 마나 이 모든 계획의 정점에 있는 존재일 터.

다시 말해···

"···제사장 김봉수. 이놈이 1군단장이겠네."

신경 쓰이는 건 이놈 뿐만이 아니었다.

메시카 차원의 '토나티우'.

그 아래에 나란히 적힌 또 다른 이름이었다.

얼마 전 만났던 '기사왕'처럼, 이 놈도 다른 차원에서 건너온 존재일 터다.

더욱이 그렇다면, 군단장은 타차원의 존재와 동업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인신공양을 주된 사업 아이템으로 하는.

"우선은···"

이 언덕을 거슬러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사령부 본청으로 이어지는 기나긴 오르막.

그 양쪽으로 익숙한 모양새의 제단들이 계단식으로 늘어서 있었다.

그야말로 피라미드 형태다.

그 길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바닥의 아스팔트가 신으로 이어지는 성스러운 길처럼 느껴졌다.

정말이지, 어처구니없는 인상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인상적인 광경이 눈을 사로잡았다.

"···연기?"

그 희뿌연 기체가 제단 곳곳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타고 남은 유골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뒤덮인 하얀 잿더미가 그 적나라한 진실을 애써 가려 감추고 있었다.

불에서 피어오른 연기는 천천히 하늘로 올라가며 흩어지기 마련.

하지만 제단 곳곳에서 피어오른 연기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나처럼 사령부로 향하는 길목을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마침내 사령부의 본청에 다다랐을 때.

나는 그 모든 연기가 한 사내에게 모여들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쉬이익···

놈은 주변에서 공양된 연기를 온몸으로 빨아들였다.

그러곤 눈, 코, 귀를 비롯한 온갖 구멍에서 연기를 뿜어냈다.

그렇게 빠져나간 연기가 마침내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걸 보면, 놈은 이 군단 사령부 전체의 굴뚝 노릇을 하고 있었다.

놈은 군복을 입고 있었다.

카라에 새겨진 세 개의 별.

즉, 이놈이 군단장, 김봉수였다.

놈은 멀쩡한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제 부하들을 몽땅 고블린으로 만든 것 치고는 꽤나 대조적인 그림이었다.

'출하.'

두고 볼 필요도 없었다.

놈을 향해 헬파이어 미사일을 발사했다.

쐐애애액!

시속 300킬로로 날아드는 미사일.

하지만··· 

후욱!

순간, 연기로 변한 놈의 몸을 고스란히 통과해버렸다.

놈이 나를 보며 의기양양하게 흐흐 웃음을 지었다.

슈우우웅!

저 멀리 날아가는 헬파이어 미사일.

하지만 나는 재활용에 능한 사람이었다.

미사일이 애먼 곳에 떨어지지 않도록 를 발동했다.

회애애애액!

우뚝 멈춰 선 미사일이 다시 시속 300킬로미터의 속도로 후진을 시작했고···

까앙!

"윽!"

꽈아아아앙!

놈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며 제대로 폭발했다.

연기로 변한 몸통과 달리, 정작 머리에는 물리력이 작용하고 있었다.

지옥불의 홍염이 붉게 타올랐다.

[관통] 옵션이 담긴 헬파이어 미사일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놈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이 씨발놈이···"

화는 좀 난 것 같았지만.

'···설마, 나보다 위계가 더 높다는 소린가?'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타격이 있기는 했는지, 놈이 헉헉 숨을 몰아쉬고 있었으니까.

놈이 뒤통수를 부여잡았다.

사령부 사방에서 피어오르던 제단의 연기.

그 잿빛 기체가 놈의 뒤통수로 두껍게 몰려들었다.

그러곤 얼마 지나지 않아···

"후우···"

놈이 홀가분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사령부 곳곳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놈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군단장이 나를 마주 보았다.

오만하면서도 냉담한 표정.

놈이 까칠한 목소리로 말했다.

"적당히 하지 그러나? 어차피 너는 날 못 죽여."

"그래···?"

내가 물었다.

"···혹시 방법을 알려줄 수 있을까?"

"······됐다."

놈이 한숨을 몰아쉬곤 마저 말을 이었다.

"똑똑히 들어라. 나는 너와 싸울 생각이 없다.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 네게 모습을 드러냈을 뿐이야."

갑작스러운 평화 제안.

그러고 보니, 놈은 내게 아직 별다른 공격을 가하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단순히 나를 죽일만한 능력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놈이 말했다.

"사람들을 구조하면서 왔다지? 네가 뭘 원하는지 얼추 짐작이 간다.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내 등 뒤로 깔린 수용소가 아직도 수십 개는 된다. 명수로 치면 한 사천 명 정도 남아 있지."

놈의 제안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모두 넘겨주마. 대신, 더이상의 파괴를 멈추고 여길 떠나."

"···싫다면?"

"남아 있는 인간들을 모두 죽여줘야겠지.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너는 나를 죽일 수 없으니까."

다시 말해, 인질이었다.

협상의 내용은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였고.

내가 대답했다.

"여기가 어지간히 귀중한가 보네?"

"빨리 데리고 꺼져. 쓸데없는 잔머리 굴리지 말고. 백 명쯤 죽여줘야 조건이 더 와닿겠나?"

놈이 나를 채근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장의 싸움을 멈추는 것은 놈에게 가장 유리한 수일 터였다.

기껏 애써서 모아둔 제물을 포기할 만큼.

'···무슨 속셈이지?'

당장 놈을 죽일 수 없는 건 분명했다.

제단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놈의 피해를 수복하고 있었으니.

아마도···

'여기에 있는 동안은 피해를 입지 않는 거겠지.'

뿌리처럼 촘촘하게 연결된 연기들.

놈은 하나의 나무와도 같았다.

지상으로부터 소산을 거두어, 하늘을 향해 제 기둥을 뻗어 올리는 나무.

놈의 정수리로부터 뻗어 올라가던 연기를 바라보던 나는···

"······!"

어떤 시선과 마주쳤다.

'···태양? 아니야, 저건···'

연기에 반쯤은 가려 있었다.

붉게 타오르는 작은 원.

어쩌면 태양의 조악한 모조품과도 같았다.

살갗에 돋는 소름과 함께, 어느 이름이 떠올랐다.

'···토나티우.'

내게서 수수료를 떼어간 개 같은 타차원의 존재.

이 된 군단장이 섬기고 있는 신격의 존재였다.

어쩌면 군단장의 똥배짱이 바로 이 '토나티우'에게서 나오는지도 몰랐다.

놈의 강림을 기다리며, 시간을 벌고 있는 것일지도.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놈의 제안을 반드시 거절해야 한다고.

'골드, 다이아, 사파이어··· 제사장까지.'

수수료를 떼일 때 붙었던, 웃기지도 않는 명칭이다.

놈들을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는 매연.

어쩌면 이건 놈들이 세운 계급 사다리의 일환이 아닐까?

"아···"

그것이 1군단의 정체였다.

네트워크 마케팅, 다단계, 사이비 종교.

이건 기사왕과는 또 다른 종류의 '사업 모델'이었다.

군단장이 죽지 않는 이유 또한 바로 이 '사업 모델'에 있을 터.

뿌리 하나 잘라낸다고 무성한 나무가 죽지 않는 것처럼, 놈은 아래로부터 짜낸 고혈을 바탕으로 왕성한 생명력을 보충하고 있었다.

'네트워크'와 '다단계'로 무장한 놈의 생명력은 나의 '지옥 불'보다도 끈질기고 강인했다.

내가 군단장에게 말했다.

"좋다, 군단장. 우리 신사적으로 해결하지."

곧장 란슬롯과 베디비어를 아공간에 들여보냈다.

군단장은 내 능력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내심 안심하는 눈치였다.

"잘 생각했다. 아쉽군··· 뜻이 맞았다면 꽤 높은 자리를 내어줬을 텐데."

다이아, 루비, 사파이어···

놈이 다단계의 보석상자를 뒤적거렸다.

다가올 자신의 운명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채.

내가 말했다.

"하지만, 군단장. 나는 가장 먼저 너부터 구해야겠다."

"뭐···?"

"지금 너는 심각한 환경에 처해 있다. 네트워크 마케팅, 다단계, 사이비 종교, 도박 중독, 약물 중독, 세상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이 새끼가··· 무슨 소리야?"

"출하."

쐐애애애액!

커다란 은빛 물체가 빠른 속도로 발사되었다.

그 정체는 외팔이 기사, 베디비어.

내가 그를 아공간에 넣은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덥썩!

"아악!"

베디비어가 군단장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챘다.

몸통과 달리, 유일하게 물리력이 미치는 머리였으니.

그야말로 가공할만한 완력이었다.

사로잡힌 군단장의 머리가 뿌리채 뽑힌 잡초처럼 흔들렸다.

군단장이 반발했다.

"이 새끼가···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치이이익!

놈의 몸에서 긴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연기가 향하는 곳은 놈의 뒤에 놓인 수용소.

약속이 결렬되었으니, 당장이라도 인질들을 죽이겠다는 심산이었다.

내가 대답했다.

시간이 없으니 최대한 빠르게.

"다단계, 사이비, 도박 중독에는 공통적인 해결 방법이 있다.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일단 집으로 데려오는 일이지."

나는 위아래로 촘촘하게 연결된, 놈의 생명을 이루고 있는 네트워크 그 자체를 끊어버릴 작정이었다.

분명··· 내 '울타리'는 놈의 뿌리보다 강할 테니까.

화악!

포탈을 열었고··· 

"아··· 안돼!"

머리채를 잡힌 군단장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베디비어의 손속에는 거침이 없었다.

'한 판만 더'를 외치는 도박 중독자를 구하는 어머니의 손길처럼.

나는 포탈을 향해 앞장서며, 말했다.

"봉수야, 이제 집에 가야지."

"안돼···! 아아악!"

놈도 직감한 것일까.

매연으로 이루어진 몸을 발버둥을 치며, 고성을 내질렀다.

그렇게···

내가 들어선 위치는 국통사의 커다란 연병장이었다.

뒤로 보이는 푸르스름한 포탈.

그 표면 사이로, 나를 따라서 온 베디비어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녀석의 손에 딸려온 것은 모든 연결점을 잃어버린 군단장의 머리였다.

하얗게 질린 얼굴, 까뒤집힌 눈까지.

연기로 무한한 생명을 보충받던 놈이다.

하지만 그 연결점을 잃은 지금, 놈은 목이 잘린 나무처럼 파리하게 죽어 있었다.

휙!

베디비어가 놈의 머리통을 포탈 밖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차원 계좌가 소유 이전되었습니다.]

[이미 차원 계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금액이 합산됩니다.]

[보유하고 계신 마석은 도합 14,915개입니다.]

수수료 한 톨 떼지 않은 멀쩡한 돈이 들어왔다.

"후우···"

고개를 들었고,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아공간의 텅 빈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내 아공간에도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단··· 위아래는 없다.

놈들의 '네트워크'와는 달리.

32. 뉴 테크놀로지 (1)

군단장 김봉수를 처리한 뒤, 다시 포탈 밖으로 나섰다.

황량한 1군단 사령부.

곳곳에서 피어오르던 매연은 이제 자연의 순리대로 곧장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꿰액!

켁!

얼마 남지 않은 잔당을 처리했다.

군단장을 처리한 덕인지, 더는 수수료가 부과되지 않았다.

네트워크의 중추에 있던 놈이다.

이로써 놈들의 기이한 다단계 시스템도 막을 내렸을 터.

이를 증명하듯 매연 사이로 떠 있던 타차원의 존재 '토나티우' 또한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처리는 이걸로 됐고···"

이제는 수용소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하나둘 꺼내줄 차례였다.

쐐애액!

타앙!

다닥다닥 배치된 수용소의 잠금장치를 부쉈고,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에게 수십 개의 포션을 뿌리며 이동했다.

"곧 정부군이 구하러 올 겁니다. 이곳 사령부를 나가셔도 좋지만, 도움이 필요하다면 너무 멀리 벗어나지는 마세요."

그들의 시선에는 의심의 눈초리가 불안과 함께 섞여 있었다.

이미 한차례 1군단을 겪은 이들이니.

하지만, 내가 수백 개의 프로틴바와 생수를 눈앞에 내려놓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거렸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람들은 내게 인사를 전하면서도, 온전히 기뻐하지만은 못했다.

'하긴 그렇지···'

저게 사람의 반응이었다.

내가 살아남았더라도, 남이 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웃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그게 죄의식이든, 알량한 위선이든지 간에.

단지 그것이 사람다운 반응이라는 것에서 의미를 찾으면 될 터였다.

그렇게, 수용소에 갇혀있던 모든 사람이 해방을 맞이했다.

반면, 내게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후욱!

후우욱!

10명의 망령을 불러냈다.

그러곤,

"주변에 쓸만한 물건이 있는지 알아봐 줘. 특히, 군단장 집무실 같은 곳."

명령을 하달했다.

망령들이 빠른 속도로 산개했고, 조만간 내가 챙길 수 있는 전리품이 무엇인지 알려줄 터였다.

물론 가장 중요한 전리품은 이미 손에 넣은 참이었다.

군단장의 차원 계좌.

자그마치 만 삼천 개가 넘는 마석이 들어있었다.

아공간 레벨 4를 찍고도 삼천 개가 남는 액수.

원래 있던 마석, 그리고 그새 고블린들을 처치하여 얻은 마석을 합하니 자그마치 만 오천 개가 넘어갔다.

당연히 급선무는 레벨업이었다.

그 전에, 마지막으로 팍스에게 물었다.

"팍스, 혹시 레벨 3에서 아직 안 올린 게 남아있나?"

[아직 '아공간 생명유지 시스템'을 개방하지 않으셨습니다.]

[개방 비용은 마석 250개 입니다.]

"아, 맞다."

아공간에 부패, 변질, 노화를 지연시켜주고, 미약한 치유 효과를 부여해주는 능력.

유용하기는 하지만, 당장의 전력에 도움을 주는 능력은 아니었던 탓에 차일피일 개방을 미루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마석이 만 개도 넘게 쌓인 상황이다보니, 그리 부담되는 가격도 아니었다.

"그래, 개방해줘."

[알겠습니다.]

[마석, 250개 받았습니다.]

[남은 마석은 14,823 개 입니다.]

"레벨 4로도 올려주고."

[괜찮으시겠습니까?]

[아공간 레벨 4에서는 전력 유지 비용이 24시간마다 마석 30개로 조정됩니다.]

[수도/가스의 합산 비용 또한 동일합니다.]

세 배가 껑충 뛰어올랐지만, 이제는 그리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진행해. 앞으로는 3일치씩 네가 알아서 긁어주고··· 이번에 쓰고 남은 유지비용도 그냥 같이 사용해 줘." 

[알겠습니다.]

[잔여 유지비용으로 레벨 4에서의 유지비용 일부를 충당하고, 추가로 3일치 비용을 결제하겠습니다.]

[레벨업 진행 및 유지비용 3일에 필요한 마석 10,180개를 받았습니다.]

[남은 보유 마석은 4,643 개입니다.]

[레벨업 진행 중···]

"그러고 보니 아공간 밖에서 레벨업 하는 건 처음이네."

아공간 안에는 한순간 붉은 빛이 하늘을 뒤덮었을 것이다.

정작 내게는 레벨업을 마친 팍스가 별다른 기색 없이 돌아왔을 뿐이지만.

[레벨업이 완료되었습니다.]

[출하 스킬 및 아공간 능력에 관한 추가 강화를 진행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 이번에 새로 강화할 수 있는 항목을 띄워줄 수 있을까?"

[알겠습니다.]

띠링!

----[개방 가능 항목]----

[비용 1,000]

◈ 동시 출하(3)

-최대 여덟 개의 상품을 동시에 출하할 수 있습니다.

◈ 아공간 실험실(2)

-강화 또는 상품 조합에 따른 결과 정보를 사전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강화 또는 상품 조합에 대한 모의 시뮬레이션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 카테고리 상품 등록(2)

-물류센터에 포함될 새 카테고리를 신설할 수 있습니다. (최대 2회)

(단, 카테고리 신설에 비용이 소모됩니다.)

-------------------------

완전히 처음 보는 능력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의 효과와는 달리, 나머지 두 개 능력에는 주목할만한 효과가 적혀 있었다.

실험실에 추가 능력이 부여되었고, 유용하게 써먹던 카테고리 등록에서는 아예 새로운 카테고리를 직접 신설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더 다양한 사물을 흡수하고, 또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

점차 아공간에 담긴 사물들의 활용 방안이 다채로워지고 있는 지금이었다.

후우욱!

이런저런 능력을 살펴보고 있자니, 어느덧 망령들이 돌아왔다.

반전은 없었다.

녀석들을 따라 군단장의 집무실에 다다랐고, 책상 서랍에서 쓸만한 전리품을 확보할 수 있었다.

팔랑.

A4용지 크기의 여러 장.

그리고 고블린들을 위한 존재 등록 신청서 수백 장이 발견됐다.

마지막으로···

덜그럭.

서랍 안쪽을 구르던 강화석 하나를 발견했다.

여느 때와 같은 강화석이지만, 이 녀석은 어딘가 특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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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석(D)]

속성 : 없음

옵션 : [내성]

---- 

"···관통이 없네?"

[내성]이라는 단출한 옵션 하나.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방어구에 쓰라는 거네."

[관통]이 없는 한, 공격 무기에는 활용할 수 없었다.

애초에 지금껏 [관통] 효과를 노리고 쓰던 것이 바로 이 강화석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용한 옵션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말마따나 방어구를 강화할 수도 있는 한편, 코란도, 블랙 호크와 같은 이동수단을 강화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리고···

"어쩌면 그런 방식으로 쓸 수 있을지도···"

번뜩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새로운 활용 방법을 떠올리며, 아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김정겸 너 이 자식··· 대체 뭘 한 거야···?"

아공간에 들어가자마자, 두 누나가 내게 달려들었다.

당최 무슨 일인가 했더니, 작은누나 김솔이 제 볼따구를 콕콕 찌르며 말했다.

"···여드름 흉터가 말끔하게 사라졌다고···"

"코에 블랙헤드도 없어졌어···"

큰누나도 덧붙였다.

내가 물었다.

"힐이라도 주고받은 거 아니야?"

"그랬으면 너한테 물어봤겠냐."

두 사람은 시큰거리는 무릎이 오늘따라 말짱하다느니, 이 시간쯤 막히는 코가 뻥 뚫려있다느니 하는 시답잖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싸우고 온 사람 앞에서 왜 이렇게 태평한가 했는데, 먼저 들어온 란슬롯이 가족들에게 내 승전 소식을 알렸다고 했다.

하도 나를 칭송하며 장광설을 늘어놓은 탓에, 걱정하던 김이 다 새어버렸다고.

김솔이 혀를 꼬부라뜨렸다.

"칭송하나이다. 적장의 머리 끄댕이를 잡으신 우리 위대하신 김정겸 동지···"

"······"

두 누나가 나란히 잔망스런 눈주름을 접었다.

'뭐··· 모르는 편이 낫지.'

누나들과 동행하지 않은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1군단에서의 참상은 결코 좋지 못한 기억으로 남을 테니.

희생자들도 있었다는 것.

그 사실에 대해서는 차차 말해주어도 되리라.

그때였다.

"···주군!"

란슬롯이 다급하게 내 앞에 부복했다.

항상 근엄하고 충성스러웠던 란슬롯.

그가 이토록 다급하고, 애처로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미칠 것 같습니다. 온 몸이 가렵고, 따갑고···"

란슬롯이 휘적휘적 가리키는 곳에는 베디비어가 있었다.

녀석 또한 란슬롯과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굽힌 외팔을 갑옷 안쪽으로 집어넣더니, 제 몸을 사정없이 벅벅 긁어대고 있었다.

"대체 왜들 이래···?"

잠시 멍하니 있던 나는, 그제야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을 떠올릴 수 있었다.

.

그 아래 적혀 있던 짧은 문구 하나를.

-생명의 손상을 소폭 재생합니다.

생명의 손상.

따지자면 카멜롯의 기사들은 손상 그 자체였다.

놈들은 해골로 이루어진 언데드였으니까.

다시 말해···

"너무 간지럽습니다! 주군···!"

그 뼈다귀에 새살이 돋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것도 아주 느린 속도로.

어쩌면 해골 기사들이 생전의 모습을 되찾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런 걸 따지기엔 당장 이놈들이 너무나도 괴로워 보였다.

신난 강아지마냥 배를 뒤집어 깐 채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으니.

"젠장, 따라와."

당장 떠오르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

.

.

내가 다다른 곳은 위병소 옆에 위치한 모텔··· 아니 카멜롯 성.

나는 이 카멜롯을 망령을 부리고, 기사들을 소환하는 용도로만 사용해왔다.

남은 건 [피의 제사]라는 이름의 파렴치한 인신공양 기능이었지만, 한 가지 주목할만한 문구가 있었다.

[피의 제사]

-내부에 담긴 생명력을 '숙성', 또는 '착취'하여 강화석(랜덤)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카멜롯은 생명력을 재료로 강화석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때, 그 재료를 충당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숙성, 혹은 착취.

기사왕이 사용했던 방법은 단연코 숙성이다.

놈은 맛 좋은 생명력을 위해, 제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바쳐가며 내게 이 시커먼 김장독을 선사했었다.

하지만 착취는 달랐다.

숙성보다는 효율이 낮지만, 지속해서 야금야금 생명력을 갈취하는 형태.

다시 말해···

"···이제야 살 것 같습니다. 주군!"

"역시 우리 주군이십니다!"

란슬롯과 베디비어가 충성을 맹세하며 카멜롯의 1층 로비에 널브러졌다.

다시 서서히 썩어들어 가는 새살.

아공간의 치유 능력으로 인해 고통받던 그들이다.

이보다 좋은 환경이 있을 수 없었다.

"후우!"

연거푸 시원한 숨을 몰아쉬는 녀석들.

그들은 에어컨 파워 냉방 18도를 반나절 내내 틀어 놓은 모텔방에 들어온, 습하고 찌는 여름날의 퀴퀴한 남정네들과도 같았다.

우우웅···

참으로 오랜만에 가동된 카멜롯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곤 탈수를 시작한 통돌이 세탁기처럼, 해골기사들의 생명력을 서서히 갈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땡그랑!

익숙한 돌멩이가 란슬롯의 투구를 때렸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란슬롯이 떨어진 물건을 주웠고, 밖에 서 있던 내게 가져다주었다.

푸르스름한 색상의 돌.

[강화석(D)]

속성 : 전기

옵션 : [관통], [감전]

강화석이었다.

"······"

한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물류센터나 국통사와 달리, 카멜롯의 로서의 역할만큼은 아쉬운 면이 있다고.

망령을 부리고, 기사를 소환하는 능력이 실로 유용하지만, 그렇다고 이 아공간 능력과 완전히 똑 맞아떨어지는 물건까지는 못 된다고.

하지만···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아공간의 생명유지 시스템, 그리고 카멜롯의 생명력 착취가 환상의 하모니를 자아낼 줄은.

이럴 때 쓸 수 있는 표현이 하나 있다.

바로···

"무한동력."

그것이 아공간에 갖춰졌다.

33. 뉴 테크놀로지 (2)

"···이게 왜 되는 거야?"

황당하지만, 되는 건 되는 거다.

손끝에 닿는 매끈한 감촉.

비현실적인 감각과는 별개로, 손에 들린 강화석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진짜였으니까.

이대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이제 카멜롯은 강화석을 생산하는 농장 그 자체가 되었으니.

생명력을 갈취한다는 점에서는 기사왕과 다를 바 없었으나, 정작 기사들이 에어컨을 쐰 여름날 강아지들마냥 기뻐 혀를 내두르는 것을 보며 작게나마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어느덧 강화석이 두 개가 되었다.

군단장을 잡고 얻은 [내성] 강화석 하나, 그리고 방금 얻은 [감전]까지.

서로 다른 두 개의 강화석을 바라보며, 나는 고민에 빠졌다.

"그럼··· 어디다 쓰면 좋을까?"

.

.

.

첫째로는 기사들을 추가로 소환하는 방법이 있다.

당장의 전력이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제는 강화석을 만드는 원동력으로도 쓸 수가 있을 테니.

당장 두 명만 늘리더라도, 지금보다 두 배는 빠른 속도로 강화석을 생산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위험부담이 좀 있지."

이번만큼은 카멜롯을 가동하자마자 운 좋게 곧장 강화석을 얻었지만, 다음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어쩌면 기사왕이 이미 쌓아두었던 생명력이 있었고, 우연히 이번 계기로 넘치는 한스푼을 얹었을지도 모를 일.

벌써 몇 시간이 흐른 지금 만해도 카멜롯에서는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더욱이, 아직 '소폭' 회복에 불과한 이다.

당장은 카멜롯이 얼마마다 강화석을 뱉어내는지 한번 두고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다음 용도는···"

아이템 강화였다.

헬기, 차량, 헬파이어 미사일까지.

강화하고 싶은 물건은 잔뜩이었지만···

"이번에 꼭 강화해보고 싶은 게 있지."

터벅터벅.

아공간의 로 향했다.

갓 출하한 따끈따끈한 신상품을 손에 들고.

마침내 실험실에 도달한 나는, 검은 몸체의 녀석을 '척'하니 꺼내 보았다.

철컥!

소총.

하지만 K2는 아니다.

국방개혁이니 뭐니 하는 이름과 함께 전방부대부터 보급됐던 녀석.

K2C1이라는 이름의 신형 소총이었다.

1군단을 쓸어버리던 중 으로 들여온 물건이었는데, 여러모로 K2보다는 준수한 생김새를 자랑했다.

"사실 뭐가 얼마나 더 좋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왕 강화하는 겸, 신상을 강화하는 게 낫지 않을까?

보통의 K2보다 뭐라도 낫기는 더 나으리라.

사실, 소총 강화를 고민했던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소총이 아닌, 탄알을 강화해야 했을뿐더러, 그렇게 강화된 탄알을 소총 몸체가 버텨줄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

[강화석(D)]

속성 : 없음

옵션 : [내성]

----

충격을 감당해줄 옵션이 더해졌으니까.

"관건은···"

[내성]이 부여된 소총이 강화된 탄의 위력을 감당할 수 있는지.

다행히도, 내게는 그 여부를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었다.

바로, 정밀한 이었다.

.

.

.

띠링!

팍스가 요청한 설명을 띄워주었다.

---

[비용 1,000]

◈ 아공간 실험실(2)

-강화 또는 상품 조합에 따른 결과 정보를 사전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강화 또는 상품 조합에 대한 모의 시뮬레이션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

새롭게 강화된 실험실 능력.

이 능력만 있다면 강화석을 사용하기 전에 미리 그 효과를 테스트해보는 것이 가능했다.

바로 이 을 통해.

"개방해줘."

[알겠습니다.]

[마석 1,000개 받았습니다.]

[남은 보유 마석은 3,643 개입니다.]

겉보기엔 평소와 다를 바 없다.

텅 빈 공간, 그리고 원하는 상품을 홀로그램으로 불러낼 수 있다는 것까지 동일했으니까.

그 대신···

---

※ 시뮬레이션을 통해 제공된 모의 정보입니다.

[5.56mm NATO 탄 +1]

등급: [레어]

설명: [정보를 불러오는 데 실패했습니다. 직접 설명을 입력할 수 있습니다.]

속성: [전기]

옵션: [관통], [감전]

----

이렇듯, 강화를 적용하기 전에 미리 예상되는 정보를 띄워볼 수 있었다.

강화된 탄알의 정보를 확인한 직후,

나머지 두 개의 상품을 추가로 홀로그램으로 불러냈다.

[K2C1 소총, 가격이 설정되지 않았습니다.]

[쟌슨빌 오리지날 스모크 소시지, 360g, 가격은 9,710원입니다.]

공중에 떠오른 세 상품의 홀로그램.

일단은 평범한 소총 탄창에 강화된 [감전] 탄환을 끼워 넣었다.

그리고, 소총의 레일 위로 먹음직스런 소시지를 턱하니 올려두었다.

남은 건, 격발.

단, 진짜 격발이 아닌 시뮬레이션을 통한 격발이었다.

타아앙!

격발과 함께,

꽈앙!

소총이 몸통째 터져나갔고, 동시에 소시지의 잘 익은 살점이 껍데기를 뚫고 이곳저곳에 흩뿌려졌다.

예상했던 결과지만, 그 이상으로 무시무시했다.

"총알만 강화해서 썼으면 곧장 저승길이었겠구나."

탄알의 폭발을 이기지 못해 소총이 터져나간 건 그렇다 쳐도, 위에 올려둔 소시지까지 익어버렸다.

탄알의 [감전] 옵션이 거기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뜻.

실전이었다면, 총을 쥐고 있던 내가 역으로 감전당한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

※ 시뮬레이션을 통해 제공된 모의 정보입니다.

[K2C1 제식소총 +1]

등급: [레어]

설명: [정보를 불러오는 데 실패했습니다. 직접 설명을 입력할 수 있습니다.]

속성: [없음]

옵션: [내성]

---

이번에도 조건은 동일했다.

[내성]이 부여된 소총이라는 점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감전] 탄환을 끼워 넣었고, 위에 싱싱한 소시지를 올려두었다.

즉시 격발을 시행했고,

타아앙!

결과는···

"오···?"

성공이었다.

[관통]과 [감전] 옵션이 부여된 총탄이 성공적으로 날아갔고, [내성]이 부여된 소총은 조금 삐걱거리기는 했으나 큰 무리 없이 충격을 버텨냈다.

위에 올린 소시지는···

"생소시지 그 자체···!"

전혀 익지 않았다.

[내성]이 사격자에게 흘러드는 [감전]을 차단했다는 뜻.

물론,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내성]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총탄을 연발로 발사할 경우, 혹은 단발이어도 그 횟수가 많아질 경우 어김없이 소총이 터져나가며 소시지가 먹음직스럽게 구워졌다.

실험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무리 [내성]이 부여되었다 한들, 소총이 얼마나 버텨줄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려웠으니까.

에서 몇 번의 테스트를 거친 끝에, 소총이 최대로 버틸 수 있는 한계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발로는 세 발. 단발로는 다섯 발."

딱 여기까지였다.

아쉬운 숫자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때그때 새로 뽑아서 쓰면 되지 뭐."

어차피 소총도 무제한이니까.

***

고소한 냄새 탓에, 직원 식당으로 이끌렸다.

수십 개의 접시가 나란히 도열해 있었고, 주방에서는 어머니와 오지수가 스테인리스 보울 위로 부단히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은빛 보울 위를 헤엄치는 초록색 참나물.

한 가닥이 어머니의 손에 딸려 나오기에, 날름 입에 집어 넣었다.

"와···"

너무나도 익숙한 맛.

하지만 그만큼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맛이었다.

오독 씹히는 통깨, 그다음으로 고소한 들기름과 참나물의 향이 어우러지듯 밀려들었다.

어머니가 덧붙였다.

"보통은 마늘을 넣어서 무쳐도 되는데, 이렇게 안 넣어도 꽤 괜찮아. 나물 향이 확 살아나거든."

어머니가 이해하는 맛의 저편.

그 넓이가 차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방대하게 느껴졌다.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무언가다.

그 말 하나하나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기록한다 해도, 과거의 유산은 필연적인 실전을 거듭한다.

문득 두려워졌다.

그것이 사라진 뒤에도 과연 세상이 존속할 수 있을지 차마 걱정이 될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최대한 그것이 미뤄지도록 발버둥 치는 것뿐이었다.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머니가 명령을 하달했다.

"거의 다 됐으니까, 가서 다들 밥 먹으러 오라 그래."

"아···"

밖에서 농땡이를 부리는 다른 베짱이들을 모아오는 것.

그것은 주방을 기웃거리다 뭐라도 한 입 얻어먹은 베짱이가 해야 할 당연한 도리이자, 임무였다.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아공간 곳곳에 흩어진 가족들을 찾으러 나섰다.

.

.

.

"꺼윽."

김솔이 떡두꺼비 같은 표정으로 제 배를 매만졌다.

어느덧 시원하게 비어 있는 밥상.

어머니와 오지수는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내게 부탁했다.

"정겸아, 막걸리 하나 빼다 주어. 란씨랑 한잔해야겠다."

아무래도 이곳 풀필먼트 센터의 주문 시스템이 할아버지에게는 퍽 낯선 모양이었다.

"여기 막걸리도 있던가? 그리고 해골들이 무슨 술을 먹어요."

"엥? 란씨 술 못 혀?"

"아니 그게 아니라···"

그때, 누군가 쿡쿡 옆구리를 찔렀다.

"소주도··· 빨간 뚜껑···"

돌아보니 시선을 먼데 놓은 아버지가 복화술로 대화를 시도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술을 찾는 두 베짱이의 여정은 열심히 식사를 준비한 개미에 의해 그 끝을 맞이했다.

"이 마당에 술 드시게?"

"···!"

벌떡!

아버지가 대뜸 몸을 일으켜 그릇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는 것.

그건 식사를 얻어먹은 베짱이들이 해야할 당연한 도리이자, 임무였으니.

아버지야 어쩔 수 없지만, 울상이 된 할아버지에게는 몰래 막걸리를 가져다드릴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사진 찍자!"

아래층으로 내려갔던 큰누나가 돌연 손바닥만 한 카메라를 들고 나타났다.

흔히 폴라로이드 카메라라고 알려진.

[인스탁스 미니에보 즉석카메라, 가격은 349,000원입니다.]

그녀의 뒤에는 온몸을 벅벅 긁고 있는 두 명의 해골 기사가 서 있었다.

큰누나, 김주연 씨께서 말했다.

"여기 두 분 힘드시다니까, 빨리 끝냅시다!"

그렇게···

찰칵!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김씨 일가, 이용수의 가족, 형수네 친정 식구들, 카멜롯의 기사들까지.

고성능 AI답게 혹 서운해 할까 싶어, 팍스의 마스코트 인형까지 주문해 합류시켰다.

지이잉···

카메라가 즉석으로 사진을 뽑아냈고,

"꺄악! 이거 뭐야!"

배경을 채운 카멜롯의 망령들이 가족사진을 심령사진으로 만들어주었지만, 아무쪼록 아공간의 식구들 모두가 담겼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먹은 자리를 정리하고, 찍은 사진을 나란히 놓으며 왁자지껄 목소리를 틔울 때쯤이었다.

띠링!

모두의 눈 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각성 유무를 가리지 않고.

알 수 없는 스산한 감각이 찾아들었다.

메시지의 발신인은···

다차원상공회의소였다.

.

.

.

놈들이 보내온 것은 그야말로 '공문서' 그 자체였다.

---

다차원상공회의소에서 알려드립니다.

지난 자유 개척 시기 동안, 지구 차원으로의 내사(內射) 및 외사(外射)가 진행되었습니다.

귀 차원은 내사(內射)의 축복에 관한 13,117 건의 신규 사례를 창출했으며, 자유 상인들을 상대로 한 17건의 역성장 유도를 통해, 귀 차원이 충분한 성장 가능성과 수익성을 담보하고 있음을 다차원에 시사하였습니다.

그 노고에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

알 수 없는 표현과 숫자로 표기된 딱딱한 문구.

우리에게 생생하게 들이닥쳤던 멸망은 놈들에게 있어 문서 몇 줄에 정리될 수 있는 하찮은 일에 불과했다.

그저, 너희들의 발악이 제법 인상적이었노라 비행기를 태워줄 뿐.

당연하지만, 이 놈들의 용건은 우리를 칭찬해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메시지의 내용은 계속됐다.

---

다차원상공회의소는 지난 자유 개척에서의 성과를 토대로 지구 차원이 가진 성장 잠재성을 면밀히 평가하였습니다. 지구 차원은 자유 개척 단계에서 이례적으로 성장 등급 [BB-]를 달성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하는 다차원에서의 2차 개척 사업 공모 또한 성황리에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차원상공회의소의 개방 세부 전략에 따라, 지금으로부터 7일 뒤 지구 전 지역에 대한 공식적인 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공모에 참여한 타차원과 지구 차원의 주민들은 설정된 룰에 따라 서로의 수익 잠재성을 겨룰 예정이며, 타차원이 승리할 경우 해당 지역에 게이트 포탈을 설치하여 향후 개척에 대한 혜택을, 지구 차원의 주민이 승리할 경우 별도의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경쟁 시작 24시간 전, 에 관한 자세한 사항이 지역별로 공지될 예정입니다.

지구 차원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과 참여 바랍니다.

다차원상공회의소 배상.

---

메시지의 내용을 읽은 우리는 한결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다시 말해···

"···아예 제대로 밀고 들어오겠다는 소리네."

완전한 선전포고였다.

다만, 놈들에게는 이 모든 멸망이 저들 손바닥 위의 놀이처럼 여겨지는 듯했다.

사업 공모, 입찰 경쟁, 승리와 보상을 운운하는 걸 보면.

중요한 것은 그 망할 '입찰 경쟁'이라는 것이 '룰'이 설정된 일종의 경기라는 것.

그리고 전 지구 곳곳에서 개최된다는 점이었다.

분명, 이곳 서울에서도 놈들이 이야기한 경기가 벌어질 터였다.

"···어떻게 할 거야?"

가족들이 물었다.

한차례 막아낸 멸망이 더 높은 파도가 되어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더욱이 나는 놈들의 공세를 막아낼 가장 큰 전력이었으니.

"용산으로 가자. 합참본부와 이야기를 해봐야겠어."

전 지구적 싸움.

이건 더 이상 나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었다.

34. 중력과 은총 (1)

그날 저녁, 우리는 합참본부가 있는 용산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상공회의소의 메시지를 받은 것은 비단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깜깜한 밤이 내려앉은 용산의 하늘을 보며, 유성철이 말했다.

"저희도 대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군단 지역이 수습되는 대로 본격적으로 각성자들을 군 편성에 포함시킬 예정이에요. 물론···"

군은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놈들이 말하는 '입찰 경쟁'이라는 게 도무지 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당장은 정보가 부족했다.

일주일 뒤로 예고된 새로운 멸망.

그 시간을 알차게 채우고 있을 수밖에.

한편, 작전본부장 유성철은 나와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다.

1군단을 쓸어주는 조건으로, 차후 군이 수습하게 될 장비들을 내게 한 번씩 빌려주기로 했던 일.

유성철이 내게 양해를 구했다.

"현장에서 운용되고 있는 장비들도 많은 탓에, 모두 한번에 모아서 빌려드리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세상이 요지경인데, 놀고 있는 군용 장비가 있을 리 없었으니까.

"해서··· 준비가 될 때마다 하나씩 대여해드리는 방향은 어떠실까요? 무리한 장비만 아니라면, 이번에 1군단에서 되찾은 것 외에도 이것저것 대여해드릴 수 있을 겁니다."

오히려 좋았다.

나로서도 그 많은 장비들을 한 번에 먹어 치울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

에는 비용이 소모되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그의 말처럼, 다양한 장비를 필요할 때마다 불하받는 편이 나을 터.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뒤, 그에게 물었다.

"이해합니다. 그렇게 진행하시죠. 그럼 저건···?"

내 시선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우뚝 서 있는 전차.

탱크처럼 생긴 몸체 위로, 레이더와 미사일이 장착되어 있었으니.

유성철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바로 알아보시네요. 예상하셨다시피, 이번에 빌려드릴 물건입니다. K-31 천마라는 기갑 차량인데, 레이더를 통해 대공 유도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죠."

"오···"

그의 말대로, 제자리를 팽팽 회전하는 레이더가 눈에 들어왔다.

천마.

유도 미사일.

실로 웅장한 표현이었다.

물론 제대로 사용하려면 소총처럼 탄약과 기갑 차량을 각각 강화해야 하겠지만··· 자세한 활용 방법에 대해서는 차차 생각해보기로 했다.

"고맙습니다."

"뭘요. 도와주신 것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김 대령께서는 이번 기회에 저희와 백년가약을···"

"아아주 고맙습니다."

서둘러 그의 말을 잘라내며,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성큼성큼 팽팽 레이더를 돌리고 있는 기갑차량에 다가섰다.

팍스가 새 물건을 스캔했고,

[해당 상품을 '군부대' 카테고리에 수용합니다.]

[등록 비용 책정 중···]

띠링!

[등록에 필요한 비용은 마석 96 개입니다.]

그렇게, 내 아공간에 천마님을 모셨다.

***

상공회의소가 부여한 준비 기간은 일주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이 폭풍전야처럼 흘러갔다.

물론,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합참 본부와의 협력 하에, 주변 지역 괴물들을 사냥하며 본격적으로 마석을 수급했다.

독립문에 자리 잡은 트롤 부족을 토벌했고, 백련산에 숨어든 반 고블린 변종들을 소탕했으며, 신촌을 누비던 드레이크들에게 불맛을 보여주었다.

가족들의 성장 또한 잇따랐다.

김솔의 는 8위계 괴물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으며, 큰누나는 아예 영역 단위의 힐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형수 또한 버프 포션 개발에 착수했고 아버지는 새로운 포탑 설계도를 얻는 등 그들만의 성장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입찰 경쟁'의 전날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합참본부가 마련한 위기대응실에 모여앉았다.

그리고 놈들이 예고한 시간까지 단 24시간을 남겨두었을 즈음···

"···!"

"왔다···"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

다차원상공회의소에서 귀 차원에서 진행될 입찰 경쟁 내용에 관해 안내드립니다.

[입찰 경쟁 (대한민국-서울)]

등록번호 : 0471

장소 : 여의도

시간 : 24시간 뒤

조건 :

-지역 대표를 포함한 100인만 참여할 수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입찰 경쟁 시작 1시간 전까지 정해진 장소에 입장해야 하며, 이후로는 출입이 불가합니다.

내용 :

경쟁 시작과 동시에 에메스 차원의 스타팅 포인트에 '게이트 핵'이 생성됩니다. 핵은 12시간 뒤 자동으로 부화하며, 부화 시 에메스 차원과 연결된 게이트 포탈이 형성됩니다. 주어진 12시간 내로 게이트 핵의 부화를 저지하세요.

성공 시 : 승리 수당 및 별도의 보상 지급.

실패 시 : 여의도에 에메스 차원의 게이트 포탈 설치.

귀 차원의 번영을 응원합니다.

---

더불어, 우리의 적이 될 놈들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제공되었다.

띠링!

[에메스는 다차원에 등록된 중위계 차원으로, 에메스 여신을 숭상하는 성 기사단 전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신성력에 기반한 건축과 무기 생산이 특징이며, 최근 꾸준한 성장률을 통해 건실한 차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놈들의 비장한 포부도 전해졌다.

띠링!

[에메스 차원에서 보내온 사전 통보 메시지입니다.]

-미개한 야만의 존재들이여. 거룩한 에메스 여신의 철퇴를 받으라.

"햐···"

참으로 싸가지 없는 서두.

단 두 문장 안에 철퇴로 마침표를 찍는 것을 보니, 성질이 급해도 보통 급한 게 아닌 놈들이었다.

나름대로 싸움에 룰이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상공회의소가 전해준 정보에는 이번 전투에 참여하게 될 적들의 명단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참여 명단]

슈흐람 바이어 [8위계]

라미루스 헤니케 [8위계]

디프 다브렉 [8위계]

매디아니스 혼즈 [8위계]

토레 아르만···

···

"젠장······"

작전본부장 유성철이 머리를 움켜쥐었다.

앞서 우리와 한 차례 정보를 공유한 상황이다.

그 또한 위계와 척력을 두르고 있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명단에 적힌 적들의 수는 자그마치 100명.

해골 기사 하나로도 숨이 막혔던 정부군이었다.

그런 놈들이 100명이 떼거리로 몰려나온다니, 막막하기 짝이 없을 터.

모두가 긴장에 잠겨 있던 중···

"···?"

내게만 한 가지 메시지가 추가로 날아들었다.

---

다차원상공회의소에서 알려드립니다.

귀하는 지난 자유 개척 기간 동안 상공회의소에서 '서울' 지역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거둔 존재로 확인되었습니다.

상공회의소는 귀하를 24시간 뒤 진행될 입찰 경쟁의 '서울 대표'로 선정하였으며, 대표직을 수락할 경우 입찰 경쟁에 참여할 멤버 100인(본인 포함)을 직접 선정할 수 있습니다.

대표직을 거부할 경우 다음으로 높은 수익을 거둔 존재에게 선택 권한이 부여되며, 세 번 이상 대표직이 거부될 경우 서울 지역에 대한 입찰 경쟁이 자동 패배 처리됨을 안내드립니다.

대표직을 수락하시겠습니까? [Y/N]

---

'왜 나한테만 뜨는가 했는데···'

나도 모르는 새 수익률 1위를 찍어버린 모양이었다.

그 덕에 서울 대표가 되었고, 내가 원하는 인원으로 팀을 꾸릴 수 있게 된 것.

'차라리 잘됐네.'

[YES]

나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서울 내 수익률 1위 달성.

그건 내가 서울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강한 사람이라는 걸 의미하는 것이기도 할 테니.

순번이 뒤로 밀릴수록, 서울 지역의 승리 가능성 또한 한 발 뒤로 밀려나게 될 터였다.

하지만···

'사람이 좀 많은데.'

100명.

우리 가족을 통틀어도, 각성자는 채 10명이 되지 못했으니.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애처롭게 머리를 쥐어뜯고 계시는 유성철 본부장.

그에게 내가 서울 대표가 되었으며, 100명까지 참가자를 모집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적들의 전력은 여전히 막막하지만, 그에 맞서 싸울 전력을 스스로 꾸려볼 수 있게 되었으니.

그가 준비해온 파일철을 뒤적거렸다.

그러곤 합참이 보유하고 있는 각성자 중 누가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뇨."

내가 그의 말을 막아 세웠다.

"특등사수면 됩니다."

"예···?"

유성철이 바람 빠진 인형처럼 넋 나간 표정을 지었다.

특등사수.

스무 발 중 열여덟 발 명중이라는 엄격한 기준.

군 생활 중 총 좀 쐈다 하면 얻을 수 있는 영광스런 호칭이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새롭게 강화한 K2C1 소총.

나는 100명 모두에게 '템빨'을 떡칠할 작정이었으니까.

***

이튿날이 되었다.

100명의 명단.

우선은 나와 이용수, 그리고 두 누나를 명단에 포함시켰다.

명단에 포함되지 않는 카멜롯의 기사들을 제외한 뒤 남는 자리는 아흔여섯 개.

그 모두를 합참 본부가 선별한 특수부대원들로 채워 넣었다.

척척.

분대별로 움직이는 군인들.

손에는 하나같이 강화된 K2C1 소총이 들려있었고, 탄창에는 [감전] 탄환 세 발씩이 담겨 있었다.

'입찰 경쟁'이 시작되기 몇 시간 전.

우리는 차를 타고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에 입성했다.

여의도 전역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란 빛의 막이 씌워져 있었는데, 놀랍게도 내부에서 사람은커녕, 그 흔한 괴물 한 마리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 덕이었다.

한때는 정치, 그리고 금융의 중심지였던 여의도.

이제는 폐허가 되어버린 그곳의 전경을 한눈에 담아볼 수 있었으니.

그중 가장 상징적이었던 것은 다름 아닌 국회의사당이었다.

"···완전히 박살이 났군요."

이용수가 혀를 내둘렀다.

특유의 하늘빛 돔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직사각형의 건물 몸체가 폭삭 주저앉아 앉은 채, 뒤에 놓인 한강 물을 버젓이 전시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저건?"

그 위로 떠 있는 커다란 붉은색 홀로그램.

아래로 향하는 화살표에는 다음과 같은 거대한 글씨가 떠올라 있었다.

[게이트 핵 설치 지역]

상공회의소가 예고한 대로였다.

만일 우리가 놈들의 방어를 뚫지 못한다면, 바로 저 위치에 놈들의 차원으로 이어지는 게이트 포탈이 설치될 터.

머지않아 놈들의 병력이 이곳 여의도를 넘어 서울 전역으로 밀려들 것이었다.

부우웅···

차가 그와는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우리의 출발 지점이 바로 그곳에 있었으므로.

목적지에 다다르자, 이번에는 푸른색으로 표시된 홀로그램 화살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구 차원 스타팅 포인트]

그 아래 놓인 것은···

"···묘하네."

노량진 수산물 시장이었다.

아무래도 여의도 전체가 적들의 방어 구역이 되었고, 그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 우리의 스타팅 포인트가 형성된 모양.

[경쟁 1시간 전입니다. 참가자들은 스타팅 포인트로 입장해주세요.]

텅 비어버린 수산시장.

방치된 각종 해산물의 썩은 내가 코를 찔렀다.

놈들의 여의도 땅을 밟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언더독도 이런 언더독이 없었다.

몇 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에메스 차원의 존재들이 입장합니다.]

적들도 지구의 땅을 밟기 시작했다.

여의도 중심부에 리스폰된 그들은 이제 우리의 침입을 저지하는 한편, 다름 아닌 국회의사당이 서 있던 자리에 '게이트 핵'을 부화시킬 것이었다.

하지만···

"뭐야, 이 새끼들···?"

놈들은 우리의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여의도에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어야 마땅할 놈들이다.

하지만 시작을 불과 채 10분도 남겨두고 있지 않은 시점임에도, 놈들은 우리의 코앞에서 요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휘우!"

"에메스 여신의 이름으로!"

사이에 놓인 투명한 방호막.

아직 싸움이 시작되기 전이었기에, 서로를 향한 공격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그 너머에 있는 것은 수십 명의 성기사들이었다.

놈들은 저들의 깡통 갑옷을 칼로 캉캉 두드려대며, 여신의 찬가를 부르거나, 우리를 어떻게 고문하고 노예로 삼을 것인지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도발과 조롱.

그 절정은 우리가 놈들을 향해 미리 사격 자세를 취했을 때였다.

"흐흐, 역시 촌놈들은 예상을 벗어나는 법이 없구나. 총구부터 들이밀었던 차원이 어디 너네만 있었던 줄 알아? 그깟 장난감으로 백날 쏴 봐. 생채기 하나 나는지."

깔깔 웃어대던 놈이 돌연 매서운 표정으로 덧붙였다.

"뭐··· 모르면 죽어야지."

안다.

놈들 모두가 8위계의 괴물이라는 것을.

평범한 총알로는 놈들의 척력과 갑옷을 뚫을 수 없을 것이다.

원래라면.

스릉!

놈들이 검을 빼 들었다.

그러곤···

"킥킥···"

혓바닥을 꺼내어 검 면을 핥았다.

성기사 치곤 상당히 파격적인 퍼포먼스.

한편, 우리는 소총의 가늠자를 통해 놈들의 공연을 관망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이건 평범한 총이 아니었다.

미친 광신도들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특별히 마련한 은'총'이었으니.

[입찰 경쟁이 시작됩니다.]

[10, 9, 8 ··· ]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다.

[ 3, 2, 1···]

지이잉.

우리 사이를 가리는 장막이 거둬진 그 순간.

투두두두두두!

100여 개의 총구에서 세찬 총알이 쏟아져나왔다.

핑!

피잉!

놈들의 갑옷을 가볍게 뚫어버리는 총알.

심지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아흑!?"

"윽?"

탄환에 부여된 [감전] 옵션.

그것이 성기사들의 갑옷을 넘나들며, 짜릿한 감동을 선사했으니까.

단 세 발에 불과한 탄창이지만···

이 또한 문제없었다.

휙!

부대원들이 소총을 뒤로 집어 던졌다.

그러곤, 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새 소총을 집어 들었다.

당연히, 이미 탄알이 장전된 소총이었다.

투두두두두!

연이은 사격.

"아아아아하아악!"

놈들에게 짜릿한 은총을 내려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상하좌우 제각각으로 꺾이는 놈들의 팔다리.

옴짝달싹 멈춰선 놈들의 눈에는 후회와 절망이 서려 있었다.

피잉!

퉁겨져 나온 총알이 퐁당 수족관에 빠져들었다.

펄떡! 펄떡!

수조에 담긴 생선의 썩은 몸이 춤을 추었을 즈음.

당장 눈앞에는···

치이이-

수십 명의 성기사들이 갑옷째로 나뒹굴고 있었다.

펄떡!

짜릿한 감동과 함께.

35. 중력과 은총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