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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도착한 엘븐하임의 갈라돈 의회.

겉으로 보기엔 영락없는 경로당이었지만, 의회라는 이름이 허명은 아닌지 제법 쓸만한 회의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어서들 오세요."

엘븐하임의 의장, 엘리가 우리를 맞이했다.

내가 먼저 김솔과 란슬롯을 데리고 회의실로 들어섰고, 뒤따라 들어온 민우와 송현구, 운양과 무림인들, 거기에 대수림의 핀드릭까지 하나둘 자리를 꿰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기사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직접 문의해온 차원들도 몇 개 되고요."

파리에서 만났던 수달, 해리스도 있었다.

'에코스'의 예술부 기자였던 해리스.

녀석도 아발론의 통폐합을 위해 한 손을 거든 참이었다.

파리에서 본 '작품'을 토대로 기사를 작성해준 덕에 지구의 평가 등급이 [B-]로 상향되었고, 무리 없이 아발론과의 통폐합을 진행할 수 있게 됐으니까.

다만, 잠시 아공간에 머무르던 녀석을 다시 불러낸 것은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다.

해리스는 소문으로나마 바르나울이 가지고 들어올 전력을 알고 있었으니.

뒤뚱뒤뚱 얇은 세 가닥 수염을 흔들며 해리스가 회의실로 들어왔고······.

"······오, 해리스 님! 이쪽에 앉으세요. ♬"

"······고, 고맙습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엘리가 그의 의자를 빼주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 해리스.

어딘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 탓에, 내가 엘리에게 물었다.

"······엘리, 원래 목소리가 그랬던가요?"

"제 목소리가♬ 어때서요?♪"

"······."

가슴에 손을 얹고는, 뮤지컬처럼 노래하듯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엘리.

다만, 일반적인 뮤지컬과 차이가 있다면······.

'귀가 썩어버릴 것 같아.'

노래를 더럽게 못 한다는 점이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소리를 이용한 공격인가?'

난데없이 우리의 귀를 더럽히기 시작한 엘리였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저의에 엘븐하임과의 동맹마저 의심되는 상황.

하지만 오래지 않아, 이어지는 엘프들의 행각을 통해 그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덜컹!

갑작스레 열린 회의실 문.

그 틈으로 커다란 액자를 든 에단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에단?"

"아, 신경 쓰지 마시고, 하던 이야기 마저 하세요. 회의실 벽이 좀 칙칙한 것 같아서."

재빨리 회의실 내부를 스캔한 그가 테이블 한쪽에 앉아 있는 해리스를 발견했고, 은근슬쩍 그 맞은편에 있는 벽에 가져온 그림 액자를 걸어두기 시작했다.

그러곤, 누군가 꼭 좀 들으라는 듯 홀로 중얼거렸다.

"우리 엘프들이 워낙 크리에이티브-한 탓에······ 회의실에 이런 그림 하나쯤은 있어야 집중이 되곤 하거든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 엘븐하임의 아름다운 풍경을······."

원색의 크레파스로 그려진 그림을 가리키며, 엘프들의 창조적인 혼을 강조한 에단이었지만······.

'······저딴 게 풍경이라고?'

회의실에 있던 그 누구도 그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화폭에 담긴 것은 형형색색으로 물든, 정체 모를 곤죽 그 자체였으니까.

잿빛에 가까운 보라색이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자아냈고, 중간중간 새로 추정되는 생물체가 썩은 얼룩처럼 묻어있었으며, 힘 조절을 못 한 것인지 종이 곳곳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미술은커녕, 현대미술 할애비가 와도 용납할 수 없는 그림.

존재 자체만으로도 극독한 죄를 짓는 듯한 흉물이 우리의 시선을 더럽히고 있었다.

그때 문득, 엘리가 했던 말이 메아리처럼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엘프들은 문화예술을 사랑해요.

'사랑이라는 게······ 짝사랑이었어······?'

시와 문학, 미술과 연극 등등 다방면의 예술에 관심을 보이던 엘프들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실력만큼은 그들이 보여준 사랑에 정확히 반비례하고 있었다.

다름 아닌 예술부 기자인 해리스에게 본인들의 예술을 인정받고 싶었던 모양이었지만······.

"······우욱."

정작 해리스는 벽으로부터 애써 시선을 피한 채, 새어 나오는 구역질을 애써 참아내고 있었다.

"다들 모였는가? 내가 회의자료를 준비해왔네. 아, 앞에 적힌 내용은 그냥 심심풀이로 보게. 회의 내용이 너무 딱딱한 듯싶어서."

마지막으로 엘프 장로 윌그라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를 빙자한 종이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고······.

나는 지옥의 묵시록을 받아든 것처럼,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볼 수 있었다.

뻥 하니 뚫린 앞니와 함께 나타나는 에단의 환한 미소,

건강하게 그을린 채, 선명하게 갈라지는 엘리의 삼두근,

노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굵직한 두께를 자랑하는 윌그라임의 종아리까지.

그저 홀로 바랄 뿐이었다.

엘프들이 부디 자신들의 진짜 적성을 깨닫기를.

.

.

.

잠깐의 혼란은 빠르게 진정되었다.

바르나울과의 싸움이라는 무거운 주제가 놓여 있었으니.

엘프들로부터 받은 충격이 만만치 않은 해리스였지만, 애써 정신을 차린 그가 우리에게 주의를 덧붙였다.

"고위계 흑마법사들이 여럿 모이면 흑마력의 뫼비우스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흑마력의 출력이 대폭 증가하고, 그 힘에서 비롯된 언데드들이 끊임없이 되살아나겠죠. 결국 배후에 숨은 흑마법사들을 처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겁니다."

가츠와 싸울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죽은 원혼들을 이용해 죽은 언데드를 되살렸던 바르나울.

원혼을 집어삼키는 '악마 포식자'를 이용해 대처할 수 있었지만, 지금처럼 방대한 흑마력을 이용할 뿐이라면 이야기가 달랐으니까.

'······언데드의 재생을 막을 수는 없겠구나.'

수천에 달하는 병마용의 병사들을 생각하면, 가뜩이나 숫자로는 열세인 상황이었다.

하물며 그런 놈들이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되살아나게 되는 상황.

물론 팍스맨들을 추가적으로 동원한다면 어느 정도 전력 차이를 메꿀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시체를 다루는 네크로맨서들이었다.

'사망자라도 한둘 나오는 순간에는······.'

죽은 자를 하수인으로 되살리는 흑마법사들이다.

자칫 한 번이라도 흐름이 넘어가게 된다면, 바르나울의 군단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게 될 공산이 컸다.

잘 훈련된 소수의 인력들로 맞붙는다는 전략만큼은 그대로 고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

결국,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저희가 아발론의 병력을 끌어오겠습니다."

아발론의 언데드들.

마찬가지로 죽지 않는 전력이었다.

이야기를 꺼낸 것은 란슬롯이었다.

아발론은 다름 아닌 기사들의 고향이기도 했으니.

하지만 그때, 운양이 의문을 제기했다.

"······그들이 정말 우리 편이 되어줄까요? 바르나울의 지배를 받고 있었을 텐데······."

"통폐합으로 지구로 떨어지게 된다면 바르나울과의 직접적인 연결이 끊어질 겁니다. 물론······."

란슬롯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곤, 씁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 관성이 남아 있기는 하겠지요."

그것이 설득이 필요한 이유였다.

흑마법사가 주입한 '사념'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언데드들.

과거 카멜롯의 기사들이 주인에 대한 '복종'을 중심으로 움직였던 것처럼, 아발론의 백성들 또한 바르나울이 설정한 특정한 사념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테니까.

"그래도 우리를 공격하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바르나울은 아발론을 군대로 쓸 생각이 없었거든요. 그저 공장을 돌리는 노예로 쓰려했죠."

불행 중 다행이라 할까.

바르나울이 아발론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영토도, 군대도 아니었다.

아발론에 각인된 사념은 '전투'가 아닌 영속적인 '노동'이었고, 그 명령이 뼛속 깊이 각인된 아발론의 언데드들은 죽지도 못한 채, 그 명령을 착실하게 이어 나가고 있을 터였다.

"우리를 공격하지는 않겠지만······ 도우려 하지도 않을 겁니다. 흑마법사들이 새겨놓은 '일하라'는 사념이 남아 있을 테니까요."

"기사들처럼 살려내는 건 어떨까요? 흑마법의 사념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테니······."

민우가 다른 방법을 제안해봤지만······.

"그건 어려울 겁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이번에는 드루이드, 핀드릭이 고개를 저었다.

세계수와 드루이드들이 있으니 아발론의 백성들 또한 되살려낼 수는 있겠지만, 그 많은 사람을 하나둘 살려내는 동안 바르나울이 가만히 앉아 기다려줄 리 만무했다.

하물며, 그렇게 되살린다 한들 문제는 여전했다.

살아난 그들이 전투 중 죽어 시체가 되기라도 한다면, 되레 바르나울의 전력을 키워줄 위험이 있었으니까.

결국······.

"어떻게든 언데드인 상태에서 설득을 해야 한다는 거네."

"맞습니다. 주군."

우리가 살려내야 할 것은 비단 그들의 육신뿐만이 아니었다.

아발론의 백성들은 수십 년째 바르나울의 톱니바퀴가 되어 있었고, 어느덧 꼭두각시 사물이 되어버린 그들에게 정신적인 생명까지 일깨워줄 필요가 있었으니까.

물론, 그것 하나에만 목을 맬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이미 바르나울과의 전투를 충실하게 준비해온 터였으니까.

"해보죠, 뭐. 그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진법의 설치가 끝난 터다.

이미 그 주변으로는 팍스FC의 기술자들이 만든 기관 장치가 촘촘한 기문진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용수가 이끄는 라이더들이 공중 폭격을 감행할 예정이었고, 전투 망치를 든 성기사들이 길을 여는 동안, 운양을 비롯한 팍스맨들이 인술진을 펼치며 흑마법사들의 숨은 위치를 추적해 나갈 것이었다.

나는 기사들과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아발론의 상황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어차피 포탈로 꾸준히 오가면 될 테니.'

바로 내일이었다.

병마용과 아발론, 두 개의 무덤이 하나로 겹쳐지는 날.

두 개의 벤다이어그램이 동일한 동심원을 공유하고 있었고, 그 주변을 진법이니, 흑마법의 사념이니 하는 복잡한 수식들이 감싸며 거대한 마법진을 이루고 있었다.

바르나울의 흑마술과 팍스FC의 물류망이 얽히며 크고 작은 불꽃이 사방으로 비산할 테지만······. 아무리 그 수식이 복잡하다 한들 결국 둘 중 하나의 결과로 이어질 터였다.

무한한 죽음으로 이어지거나, 유한한 생명으로 이어지거나.

"······한번 붙어 보자고."

곧 이어질 싸움으로부터 결정될 터였다.

공동 묘지의 공집합 (5)

103화 공동 묘지의 공집합 (5)

쿠구구구······!

지축을 울리는 진동 소리.

황금빛 장막이 거둬지며, 잠들어 있던 무덤 속 영혼들이 깨어났다.

절그럭. 절그럭.

아니, 사실은 영혼이 아니었다.

무겁고 질척한 몸을 끌어올린 병마용의 토병들.

그들을 휘감은 것은 원혼도, 사념도 아닌, 흑마법사들의 짙은 악의에 불과했으니까.

6위계에 달하는 10명의 흑마법사들이 공중 위로 거대한 보랏빛의 문양을 내던졌고, 하늘 위로 두둥실 떠 오른 흑마력의 기운이 땅속 깊이 묻혀 있던 오래된 유물을 건져 올렸다.

탁! 터억!

짧은 보폭을 내디디며, 좀비처럼 걸어 나오는 병마용의 토병들.

눈썹 한올 한올이 정교하게 새겨진 토병들의 얼굴이 흑마법의 기운을 받아 기이하게 뒤틀렸다.

"지금까지는 예상했던 경로대로 움직이는 것 같군요. 무난히 진법이 설치된 방향으로 이동할 것 같습니다."

드루이드, 핀드릭이 내게 말했다.

대수림과 엘븐하임에 공간 왜곡을 넣어 천혜의 요새를 만들었던 그들이다.

운양이 진법의 이론을 알려줬다면, 드루이드들은 진법의 실전 그 자체.

병마용 주변으로 예닐곱 개가량의 예상 경로를 지정했고, 경로를 따라 미로처럼 이어지는 정교한 기문진을 구축해둔 터였다.

딱히 의식이랄 게 없는 토병들이었지만, 나름의 인지력은 있는 모양이었다.

차곡차곡 무덤을 기어 올라온 놈들이 기문진의 입구에 세워진 석상 앞을 기웃거렸고······.

타악!

콰드득!

비너스상의 입술에서 나온 '매직 미사일', 그리고 의 손에서 빠져나온 '아이스 스피어'가 놈들의 몸통을 꿰뚫었다.

토병들의 몸에는 흑마력으로 만든 방어막이 둘려 있었다.

마법스크롤의 화력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서서히 놈들의 발목을 잡는 것 정도는 충분했고, 그 결과 좁디좁은 골목에 그럴듯한 병목현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콰아아아아앙!

하늘을 누비는 십수 대의 폭격기가 강화된 헬파이어 미사일을 투하했다.

활활 불길에 구워지는 토병들.

순간 자기(瓷器)로 변한 놈들의 이마가 윤기로 번들거렸다.

바르나울의 흑마법사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최소 백여 명의 이르는 휘하의 흑마법사들을 앞장세웠고, 새하얀 뼈로 이루어진 하운드독과 거대한 크기의 언데드 트롤을 풀어놓았다.

슈화아아아악!

화아아악!

지상의 흑마법사들이 하늘을 수놓은 십수 대의 폭격기를 향해 공격을 쏘아 보냈지만······.

슈우우우웅!

타앙!

함께 타고 있던 엘프들이 바쁘게 활을 들어 날아드는 공격을 격추시켰다.

꽈아아아아앙!

다시금, 무난하게 땅을 때리는 헬파이어 미사일.

진법을 이용해 놈들을 몰아넣고, 바로 그 자리에 위력이 큰 공격을 몰아넣는 전략이 무난히 먹혀들고 있었다.

토병들의 팔다리가 사방으로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누가 보더래도 바르나울이 한창 두들겨 맞고 있는 상황.

하지만 그런데도, 우리 중 그 누구도 상황을 낙관하지 못했다.

시체들의 시체가 돌탑처럼 쌓인 봉우리.

파악!

그 중심을 또 다른 토병의 손이 짚고 올라왔으니까.

꾸드드득!

꾸드득!

점토 찰흙처럼 뭉치고 쪼개지고, 덧붙여지며 새로운 형상으로 거듭난 토병들.

"징글징글하네······."

놈들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

바르나울이 지구에 들어온 불청객이었다면, 당당하게 초대장을 받아 들어오게 된 손님도 있었다.

[계산 완료됐습니다.]

['아발론'의 '지구' 차원으로의 통폐합을 진행합니다.]

쿠구구구구구······.

아발론과의 통폐합 과정.

조금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충격이 파도처럼 밀려들었고, 주변에 세워져 있던 갖은 건물과 집들을 바깥으로 밀어내며, 거대한 도넛 모양의 지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착입니다. 여기 내려드리면 되는 거죠?"

"예, 딱 좋네요."

우리가 도착한 곳은 병마용의 남쪽 끝.

그러니까, 곧장 아발론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였다.

정확히 따지자면 입구라 보기 어렵긴 했다.

가운데가 뻥 하니 뚫린 채, 도넛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아발론.

우리는 정확히 그 중심으로부터 빠져나온 참이었으니까.

"괜찮겠습니까? 아무래도 저도 같이 가는 편이······."

"용수 씨는 라이더들을 통제해주셔야죠. 그리고 아발론에 차나 비행기가 흔한 것도 아니니······."

우리와 함께 싸워줄 수 있도록, 아발론 사람들을 설득하러 가는 길이었다.

흑마법의 사념을 벗겨내야 하는 세밀한 작업이니만큼, 초장부터 낯선 외계의 운전 수단을 보여주며 산통을 깰 필요가 없었다.

"정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조심, 또 조심하셔야 합니다."

이용수와 인사를 나눈 나는, 란슬롯의 어깨를 텅텅 두드렸다.

애당초 아주 크지는 않은 아발론이었다.

'기사 보법'을 사용하는 란슬롯의 속도로도 충분히 돌아볼 수 있었기에, 그의 갑옷에 포탈 좌표를 찍어 란슬롯을 버스처럼 타고 가기로 했다.

탓!

가볍게 발을 뻗어나가는 란슬롯.

얼마나 빠른지, 발걸음 하나하나마다 세찬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얼마나 들어왔을까?

란슬롯의 등 뒤로 붙은 포탈을 통해, 점차 늘어가는 아발론의 풍경을 눈에 담아가던 중······.

"······뭐야 이게?"

나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우리가 지나온 장소.

도넛처럼 뻥 뚫려 있어야 마땅한 아발론의 중심부.

당연히 비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버젓이 거대한 성이 세워져 있었으니까.

"······카멜롯?"

몰라볼 수가 없었다.

눈부시게 하얀 성벽과 금실로 자수를 놓은 푸른색 휘장.

바르나울의 저주를 걷어낸 역천의 카멜롯과 완전히 똑같은 형상이었으니.

"······바르나울이 만들어 놓은 환영일 겁니다."

란슬롯이 씁쓸하게 덧붙였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아발론의 왕성.

하지만 바르나울은 마치 그것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듯, 거대한 환영을 아발론의 중심부에 뻔뻔하게 세워두고 있었다.

반면······.

카멜롯 성의 화려한 환영과는 대조적으로, 척박한 현실이 조각난 틈새처럼 눈을 스치고 들어왔다.

드르륵. 드르륵.

그림자처럼 비치는 수십 개의 공장 굴뚝.

무언가 꾸준히 나르고 있는 화물용 케이블카.

거기에 건물마다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는 컨베이어 벨트까지.

아발론 차원 전체가 바르나울의 완벽한 공장이 되었다는 말은 과연 허풍이 아니었다.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폐건물과도 같은 풍경이었지만······.

"감사합니다. 주군."

목적지를 향해 내달리는 중에도, 란슬롯은 내게 감사를 건넸다.

"정말 저를 아발론으로 데려다주실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일일 것이라고는······."

타닥!

그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주변을 곁눈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그마치 수십 년 만에 돌아온 고향이었으니까.

.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골목과 골목을 지날수록 아발론 백성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해골이라는 것만 빼면 다들 보기보단 멀쩡하네."

그들 모두가 해골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들이 화물용 케이블이든, 자동 컨베이어든 곳곳으로 뻗은 공장 시설에 잎사귀처럼 매달려 있다는 것이었는데, 조금도 쉬지 않고 손을 놀리며 정체 모를 부속품을 조립하고 있었다.

"저게 바르나울이 아발론에 부여한 사념이라는 거지? 미친 듯이 일하는 거······?"

"맞습니다. 분명 아발론 어딘가에 저 사념을 퍼뜨리는 사물이 숨겨져 있겠죠."

결국, 그게 우리의 임무였다.

바르나울이 아발론에 부여한 사념의 전모를 확인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부여된 사념을 퍼뜨리는 사물을 찾아내고 파괴하는 것.

그들을 옥죄는 사념만 사라진다면, 아발론의 언데드들을 든든한 조력자로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였다.

"다 왔습니다. 바로 이 집입니다."

살아생전 줄곧 존경받는 기사였던 란슬롯.

그의 종자를 만나러 온 것은.

허름하기 짝이 없는 집이었다.

반파된 지붕이 하늘을 향해 훤히 뚫려 있었고, 구멍을 지나는 커다란 물레방아가 집안으로 자그마한 원료들을 쉴 새 없이 실어 나르고 있었다.

"······.역시 여기 있었구나. 루크."

아발론의 기사단장, 란슬롯이 그의 종자를 찾아왔고······.

터엉!

"······주인님?"

란슬롯을 발견한 루크가 열중해서 조립하던 부품을 툭 하니 떨어뜨렸다.

"주인님! 대체 어떻게······!"

"······이야기하자면 길다. 루크."

달그락달그락 뼈를 흔들며 뛰쳐나오는 루크.

그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바르나울의 이야기가 사실이었군요······. 그냥 돌아오신 것도 모자라 아예 소생까지 하셨다니······ 실로 감개무량합니다. 저희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감동스런 재회의 순간이었지만······.

란슬롯은 훌쩍 걸어들어온 위화감을 놓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바르나울의 이야기라니."

"모르셨습니까? 바르나울이 생산량만 채우면 팬드래건 전하와 기사분들을 풀어주겠다고 약속했었으니까요. 혹시 팬드래건 전하를 모시고 오신 겁니까? 다른 기사님들하고요?"

그게 아발론의 백성들이 공장 일에 열두하고 있는 이유였다.

아서와 기사들을 풀어주겠다는 바르나울의 거짓말.

그러한 감언이설에 의지한 채, 잔뜩 기대를 품은 루크였지만······.

"다른 기사들도 모두 살아 있다. 하지만······."

란슬롯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서는 죽었어.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럴 리가요! 주인님께서도 이렇게 멀쩡히 살아 돌아오셨는데요!"

"바르나울은 우리를 풀어준 적이 없다. 아이템에 실어버린 채 외차원으로 팔아버렸지. 이렇게 되살아난 것 또한 모두 다른 분의 은덕이었을 뿐이야."

란슬롯이 단호한 눈빛으로 사실을 전했다.

하지만 루크는 못 본 체 시선을 돌린 채,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들어오는 부속을 쉬지 않고 조립할 뿐이었다.

한참이나 입을 다물고 있던 루크가, 마침내 입을 뗐다.

"어쩌면 주인님 말씀처럼 바르나울이 우리를 속였을지도 모르죠. 실제로 약속했던 할당량을 야금야금 올려놓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 약속이 진짜일 수도 있잖아요? 만약 정말이었다면요?"

벌써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참이다.

사념이라는 이름 아래, 지독한 흑마법의 희망 고문에 절어있던 아발론.

루크에게는 더 이상 현실을 직시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

"제가 멈추면 B 생산라인이 동시에 마비돼요. B 라인에 있는 다른 사람들 생각도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카멜롯 성 근처에서 팬드래건 전하를 봤다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고······. "

"진짜였을 리가 없어. 바르나울의 허상이었겠지."

"아뇨, 팬드래건 전하는 살아계십니다. 살아계실 수밖에 없어요. 차라리······."

절그럭. 절그럭.

새하얀 두개골을 흔들며, 미친 듯이 부정하던 루크는······.

"수십 년 만에 나타난 내 주인이 허상이라는 편이, 더 신빙성 있는 추측 아닐까요?"

"······."

자잘한 기계 부속을 조립하며,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란슬롯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끼이이······.

있으나 마나 한 루크의 현관을 걸어 나올 뿐.

주변 곳곳으로 연결된 공장 설비들을 보며,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틀림없이 공장입니다. 공장을 파괴해야 해요."

란슬롯은 '공장'을 바르나울의 사념이 담긴 사물로 지목하고 있었다.

흑마법에 휘둘린 그들은 아직 아서가 살아 있다는 몽상에 빠져 있었고, 그를 구하기 위해 수십 년간 죽지도 못한 채 영원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진정해. 아발론 전체에 깔린 공장이라며. 파괴하는 동안 아발론 사람들이 우릴 가만히 두겠어?"

"그건······."

알게 모르게, 란슬롯은 흥분해 있었다.

그리움에 사무치던, 수십 년 만에 재회한 종자.

그가 자신을 귀신 취급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봤을 땐 없애야 할 건 공장이 아니야. 그보다는······."

나는 손가락을 들어, 아발론의 중심 지역을 가리켰다.

여전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카멜롯 성의 신기루.

저 번듯한 형상이 아서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아발론 사람들의 환상을 유지해주고 있었으니까.

"저걸 없애야지."

"······하지만 저건 환영일 뿐입니다. 파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에요."

"파괴할 수는 없지만, 빼앗을 수는 있어."

나는 곧장 팍스를 불러냈다.

아발론 사람들을 현혹하는 '카멜롯의 환상'.

어쩌면 그것을 '카멜롯'이라는 거대한 카테고리에 넣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으로 아공간에 저 환상을 집어넣을 거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비누 거품처럼 한순간에 녹아 없어질 카멜롯 성.

그림자처럼 드리울 텅 빈 공백의 자리가 아발론의 백성들에게 아서의 죽음을 알려줄 테니까.

"이제 알게 되겠지. 눈치 볼 것 없이 싸워도 된다는 걸."

공동 묘지의 공집합 (6)

104화 공동 묘지의 공집합 (6)

"이게 무슨 상황이야?"

바르나울의 10명의 흑마법사들로 이루어진 집단, .

그 우두머리인 플로란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이게 맞아? 우리가 이렇게 빌빌거리는 게?"

6위계에 달하는 고위 흑마법사들.

비록 최고라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바르나울 최고의 유망주들로 평가받는 그들이었다.

이들의 역할 또한 중요했다.

개척이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 상공회의소의 규제가 강하게 부여돼 있는 하위 차원들.

은 그런 하위 차원을 전담하는 바르나울의 특수 조직에 가까웠고, 지금껏 수십 개에 달하는 하위 차원들을 바르나울의 식민지로 복속시켜왔으니까.

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차원 존재라면, 마땅히 을 두려워했다.

상공회의소의 규제를 받는, 머나먼 이야기 속 고위 흑마법사들과는 달리, 10명의 6위계 흑마법사들로 구성된 은 눈 앞에 들이닥친 현실적인 위협 그 자체였으니까.

하지만······.

"이럴 시간이 없다. 한 시라도 빨리 세계수를 뽑아버리고 드루이드 놈들을 잡아 죽여야······."

이번만큼은 그들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수천 개의 토병들이 일제히 도열해 있었고, 이 피워올린 흑마력의 뫼비우스가 두둥실 떠오른 채, 토병들에게 흑마력을 전해주고 있었다.

무한은 아니지만, 무한에 가까운 띠가 토병들에게 끊임없는 흑마력을 보충해주고 있는 상황.

원래라면 동쪽으로 뻗어나가, 한국을 점령하고, 결과적으로는 엘프들이 있다는 태평양의 엘븐하임을 불태울 계획이었지만.. 

파사삭!

콰아아앙!

수천의 토병들은 병마용을 벗어나는 족족 길을 잃어버리거나, 부서졌다가 재생되기를 무한히 반복하며 흑마력을 축내거나, 그도 아니라면 좁은 길목에 콩나물 시루처럼 모여 도미노처럼 쓰러지기 일쑤였다.

"······이 새끼들 대체 주변에 뭔 짓을 해놓은 거야?"

환영인사도 이런 환영인사가 없었다.

문 밖으로 나가자마자 벌집이 되는데, 돌아보면 서 있는 곳이 문앞인지 창문인지도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 할까.

전투원으로 차출한 하급 흑마법사들이 언데드들을 부리며 전투를 보조하고 있었지만, 놈들이 세워놓은 기괴하면서도 방대한 방어진을 뚫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다른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쿠웅!

밧줄을 들춰맨 언데드 트롤이 깊은 구덩이를 밟고 올라왔다.

그러곤 텅- 하니 시체 한 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츠츠츠······. 

금루옥의(金縷玉衣)를 입은 채, 보랏빛 연기를 내뿜는 시체.

무언가 불만을 토로하는 듯, 그 보랏빛 연기가 혼란스럽게 요동쳤다.

"조금만 기다려. 너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니까. 그리고 어차피 다 되살아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투덜거리며 말을 받는 플로란.

그가 모종의 소통을 주고받는 이 시체의 정체는 다름아닌, 진시황이었다.

"네 사념이 다듬어져야 한다고. 대충대충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말이야."

그가 실제로 어떤 인물인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플로란이 재료로 삼은 것은 진시황에 관해 널리 알려진 세간의 평가와 야사들.

잔학함으로 무장한 채, 무한한 삶을 탐닉했던 비정한 군주의 사념을 바로 이 병마용 위로 피워내고 있었다.

"나도 마음이 급하다고."

흑마법사들의 천적인 드루이드와 세계수가 한 차원에서 동시발견된 상황.

본 차원에서도 지구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이제 막 개척이 시작된 하위차원에 불과했다.

심지어 가장 마음에 드는 병마용이라는 요람을 고른 터.

그런데 그 무덤에 갇힌 채 두드려 맞기만 한다면, 단순한 망신을 넘어 흑마법사로서의 인생 경로가 제대로 꼬여버릴 터였다.

"그건 안 되지. 안 될 일이지."

드루이드와 엘프들을 몰살하고, 세계수를 멸종시키고, 그만한 효용까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지구까지 식민지로 삼아야 수지가 맞을 것 같았다.

그때, 뫼비우스에 흑마력을 보충하고 돌아온 다른 이 플로란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되어 가? 이제 그 놈 슬슬 일어날 때가 됐나?"

형제들이 옥의로 덮인 진시황의 시체를 보며 물었다.

"거의 다 됐지. 밖은?"

"똑같지 뭐. 전투 흑마법사들한테 좀 더 밀어 붙이라고 할까?"

"아냐, 됐어 그러고 보니······ 여기 토병 중에 재밌는 놈들이 좀 섞여 있더라고."

플로란이 씨익 미소를 지었고, 언데드 트롤들이 그의 주변으로 몇 개의 토병을 질질 끌고 들어왔다.

쿠웅!

나란히 도열하자 다른 토병들과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났다.

손가락을 펼치고, 공을 굴리고, 춤을 추는 듯한 자세의 토병들.

죽은 진시황의 오락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기예꾼'들의 조각이었다.

"뭐, 놈들도 슬슬 막기가 버거워질 거야."

남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는 새로운 토병들.

하지만 여전히 무한히 되살아날 기예꾼들의 토병을 바라보며, 플로란이 씨익 웃음을 지었다.

***

아발론 중심부에 떠 있던 카멜롯의 환상.

팍스에게 요청하자마자, 거대한 신기루가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췄다.

"······성이······! 왕성이!"

"안 돼! 안 돼······! 팬드래건 전하!"

아발론의 백성들이 우왕좌왕 움직였다.

이제야 비로소 공장의 생산 라인이 멈췄고, 자리를 이탈한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길게 턱뼈를 늘어뜨렸고, 또 누군가는 눈물 한 톨 나오지 않는 해골의 텅 빈 눈자위를 비집으며 꺼이꺼이 말라 비틀어진 울음을 터뜨렸다.

"환상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바로 정신을 차리지는 못하는군요."

란슬롯이 말했다.

진짜 환상은 그들의 마음속에 있었을 것이다.

그게 정리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거겠지.

그리고······.

그때였다.

"······음?"

덜그럭! 덜그럭!

발굽 소리와 뼈다귀 소리가 한 데 섞인 소리.

전신 갑옷을 두른, 수십의 기마병이 우리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주변으로 자욱한 먼지가 피어올랐고, 사이사이 투구를 쓴 해골들이 커다란 사각 방패 사이로 뾰족한 창끝을 내밀었다.

그러곤 우리를 확실히 포위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해골마를 탄 대장 해골 하나가 고삐를 쥔 채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란슬롯 경."

"······베론."

"난데없이 경의 이야기 들리기에······ 설마설마 했는데 정말 돌아왔군요. 그것도 살아서······."

아무래도 란슬롯과는 일면식이 있는 사이인 듯했다.

너나할 것 없이 울부짖는 아발론의 백성들을 보며, 베론이 란슬롯에게 물었다.

"왕성이 사라진 이유······ 혹시 경과 관련이 있습니까?"

잠시 물끄러미 베론을 바라보던 란슬롯이, 무거운 입을 열었다.

"너는 경비단장이니 더욱 잘 알고 있겠지. 너, 마지막으로 왕성에 들어가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하나?"

"······왕성에 말입니까? 직접?"

란슬롯의 질문에, 베론은 당황스런 표정이었다.

이미 우리는 그 답을 알고 있었다.

허상으로 채워져 있던 아발론의 중심.

당연히 수십 년 동안 왕성의 땅을 밟지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 사실을 부인하려는 듯, 베론이 떠듬떠듬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야, 지금 왕성은 경비단 대신 바르나울이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바깥 지역의 치안을······."

"80년 동안? 이봐, 베론 경비단장.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80년.

란슬롯과 기사들이 아발론을 떠나온 시간이었다.

숫자로 들으니 그제야 감이 오는 것인지, 베론이 당혹스런 표정과 함께 홀로 중얼거렸다.

"그건······ 잠깐, 그게 80년이나 됐다고?"

서서히 카멜롯의 환상이 사라진 것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조금 전 만났던 란슬롯의 종자 루크처럼, 주변에 주어진 명명백백한 증거들까지 끝끝내 부인하려 들었을 테니까.

물론, 여전히 힘든 일이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 괴로움을 잊으려는 듯, 베론이 옆에 선 나를 보며 란슬롯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를 갖춰라. 내가 모시는 주인이시니까."

낯선 사람에 대한 충성 선언.

경비단장 베론이 화들짝 놀라, 버럭 소리를 질렀다.

"란슬롯 경, 당신······! 주인이라뇨. 이건 반역입니다!"

"아니, 베론. 아서는 죽었고, 아발론의 왕위 또한 끊어졌다. 그러니 새로운 분을 모시게 됐을 뿐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아서 님은······."

그 말을 하던 중에도 베론은 멈칫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이 분명했다.

"아서가 죽은 이유는 바르나울이 아서의 원혼을 다룰 수 없었기 때문이야. 거기에는 조금의 뒤틀림도 존재하지 않았으니, 흑마법사들이 사념으로 빚어낼 재료가 애당초 존재하질 않았지."

란슬롯이 천천히, 베론을 마주 보며 덧붙였다.

"카멜롯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였던 그날. 나는 아서의 죽음을 똑똑히 목도했다. 아서가 내게 아발론을 지켜달라는 유언을 남긴 것도, 그렇게 죽은 아서의 시체를 활용하지 못한 흑마법사들이 홧김에 그 시체를 소멸시켜버렸던 것도 모두 기억하고 있지. 내 팔뚝만 보더라도······ 아서와 공유하고 있던 맹세의 언약도 고스란히 사라져버렸어."

얼떨떨한 기색의 베론.

그가 몽롱하기만 했던 지난 80년을 회고하는 동안, 란슬롯도 기나긴 세월을 되짚었다.

"나 또한 너희처럼 80년의 세월을 허비했다. 아서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사념이 되었고, 바르나울은 그 후회를 재료로 나를 해골로 일으켰지. 뒤늦은 소원이 되레 내 자유를 빼앗았어. 카멜롯에 갇힌 채 수십 년간 이런저런 침략자들의 손에 놀아났고, 우리 아발론과 사정이 다를 바 없던 무고한 사람들을 베어 넘겼다. 심지어는 기사왕을 자처하는 자유개척 네크로맨서에게 붙잡혀 기사놀이를 하며 다른 차원을 정벌하기까지 했지. 모든 게 엉망진창으로 무뎌져 있었어."

베론의 턱이 살짝 벌어졌다.

그러곤 아발론의 중심지를 돌아보던 중, 자신의 눈자위처럼 텅 빈 채 사라져 버린 카멜롯 왕성을 바라보았다.

허전하기 짝이 없는 검은 안개 주변으로 병마용 위로 바르나울이 띄워놓은 흑마력의 고리가 8자 모양으로 은은하게 떠올라 있었다.

"대체······ 그럼 대체 어떻게······."

그가 나와 란슬롯을 번갈아보았다.

그러곤,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저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과거, 왕을 섬기던 란슬롯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는 나를 섬기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베론은 이제야 아서가 죽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한 모양이었지만, 누군가 그들을 끌어줘야만 한다는 생각만큼은 버리지 못한 듯했다.

스스로 생각할 힘을 잃어버린 채, 아서와 비슷한 위치에 선 내게 판단을 되묻는 베론.

아발론은 그만큼이나 약해져 있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카멜롯의 공백을 가리킬 뿐이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너희의 왕이 아니야. 이제 아발론에는 왕성도, 왕도 없으니까."

"아······."

그제야 쓸쓸한 기색으로 고개를 떨구는 베론이었지만······.

"그래도, 뭘 해야할지는 감이 오네."

그렇다고 안 도와주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다들 아서가 죽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는 거 아냐? 그럼 장례식을 해야지. 아무리 늦었어도."

병마용으로부터 자잘한 폭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팍스맨들의 함성, 기문진 곳곳에 설치해놓은 기관이 마법 스크롤을 찢으며 불과 화살을 내뿜는 소리가 드문드문 전해져왔다.

누구도 모를 수가 없었다.

우리가 치열한 전장 속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베론은 잠시 우두커니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곤,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내게 대답했다.

"그럼 조문객들을 모아야겠군요. 모두 하나같이 죽어있는 마당에 조문객이라······ 꼴이 참 우습겠지만요."

"그럼 더 좋지. 혼자 죽은 게 아니구나 하고 얼마나 위안이 되겠어?"

베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왕실 묘지에 세워진 종탑을 울리겠습니다. 백성들에게 왕족의 장례를 알리는 메시지거든요. 지난 80년간 울린 적이 없는 종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두 번이나 울릴 겁니다."

두 번 울리는 부고.

어쩐지 심상치 않은 울림에, 내가 되물었다.

"······그건 무슨 뜻인데?"

"아발론 전체에 내려지는 동원령입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무장하라는 뜻이죠."

란슬롯이 그 궁금증을 해소해주었다.

공동 묘지의 공집합 (7)

105화 공동 묘지의 공집합 (7)

"큰일입니다!"

병마용으로 진입할 준비를 하고 있던 팍스FC의 일원들.

그런 그들 앞으로 진법을 살펴보고 있던 드루이드, 핀드릭이 달려왔다.

"왜 그래요?"

"기문진이 뚫렸어요. 새로 나타난 놈들이 있습니다."

줄곧 활약하던 기관진식이었다.

실시간으로 토병들을 처리해준 덕에 병마용으로의 진입도 계획할 수 있었던 터.

하지만 당장의 방어선이 무너진 마당에, 공격을 강행할 수는 없었다.

핀드릭이 기문진이 파훼 된 남동쪽으로 그들을 안내했고, 도착하자마자 곧장 사태의 원흉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게슴츠레 눈을 뜬 김솔이 물었다.

"······생긴 게 왜 저래?"

지금껏 마주했던 토병들과는 달랐다.

길쭉한 몸을 갖고 있기도, 뚱뚱한 몸을 갖고 있기도 한 변칙적인 외양.

옆구리에 둥그스름한 항아리를 끼고 빙빙 돌리는 놈이 있는가 하면, 또 콧등에 기다란 창대를 올려놓고 묘기를 부리는 놈도 있었다.

큼지막한 달항아리를 껴안은 토병이 옆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곤 김솔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길쭉한 눈을 반달로 접으며 비적비적 걸어오기 시작했다.

병사라기보다는 서커스단원에 가까운 모습.

하지만 그들이 자아내는 유희에는 틀림없는 살의가 깃들어 있었다.

앞에는 건축 자재로 쌓아놓은 거대한 벽이 가로막혀 있지만, 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기예꾼'들의 행보를 눈여겨보던 핀드릭.

그가 기가 찬다는 듯 덧붙였다.

"분명 벽으로 가로막힌 공간입니다. 숨기는 걸 넘어 아예 공간을 왜곡해둔 곳인데······ 어떻게······."

스르륵.

기예꾼이 마법처럼 벽을 통과했다.

애초에 그곳은 벽이 아니었기 때문에.

"움직임에 원칙이랄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저놈 입장에선 그냥 재미로 벽으로 걸어간 걸 수도 있는 거죠······."

기예꾼들의 자유분방한 행동양식, 그것이 원인이었다.

거대한 구덩이나 다름없는 병마용은 사실, 사방이 뚫려 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었고, 드루이드의 공간 왜곡을 통해 사방으로 뚫린 공간을 고작 몇 개의 길로 좁혀둔 터였다.

"다행히 아직 뚫린 건 남동쪽뿐이지만······. "

북쪽, 서쪽, 아니, 그 어디든 터져 나올 수 있었다.

저 핀볼 같은 '기예꾼'들의 움직임이라면 머지않아 새로운 출구가 만들어질 테니까.

운양이 한숨을 꺼뜨렸다.

"······다른 방법이 없겠군요."

토병들의 움직임을 사실상 봉쇄했다고 여겼다.

아무리 죽지 않는 토병들이라지만, 미로처럼 꾸며진 기문진, 그리고 막강한 화력의 기관진식 앞에서는 산산이 흩어지는 모래 알갱이에 불과했으니까.

나선으로 흩어진 진법의 미로가 호리병처럼 토병들을 집어삼키고 있었고, 이제 남은 일은 병마용으로 진입해 바르나울의 본체라 할 수 있는 흑마법사들을 처리하는 일이었다.

"일단은 막아야 합니다."

"······그냥 들어가서 슥 해버리면 안 돼요?"

김솔이 제 목 주변으로 손날을 휘휘 저었다.

김솔과 운양은 충분한 경지에 올라 있었고, 다른 인원들 또한 오러와 내공 운용의 초입에 다다른 상태였으니까.

기사들의 , 그리고 무림인들의 을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흑마법사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 됩니다. 놈들이 밖으로 빠져나가면 곤란해요."

그건 어디까지나 바르나울의 전력이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막은 다음의 일이었다.

운양이 심각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지금 중국에는 널리고 널린 게 시체니까요."

멸망으로 인해 극심한 피해를 입은 중국이었다.

병마용만큼은 아니어도, 도심이나 민가에는 사람들의 시체가 발에 채듯 널려 있었으니까.

환각을 이용하는 바르나울의 능력을 떠올려본다면, 봉쇄에 실패했을 때 전장이 얼마나 더 기하급수적으로 넓어질지 차마 가늠할 수 없었다.

"가시죠."

"에잉······."

팍스FC의 일원들이 자리를 박차고 튀어 나갔다.

검을 사용하는 운양과 백민우가 한 축을 이루었고, 김솔과 송현구, 그리고 권룡을 비롯한 무투계열 무림인들이 또 다른 한 축을 구성했다.

슈와아아아악!

카아앙!

번갯불처럼 피어오른 불씨.

운양이 휘두른 검을 창술사 기예꾼이 막아냈다.

"······."

창술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쐐애액!

운양을 향해 재빠르게 장창을 내질렀고, 도포 자락을 휘날린 운양이 가볍게 공격을 흘려냈지만······.

파각!

창술사는 묘기를 부리듯 창대를 부러뜨리더니, 왼손으로 잡아든 장창을 운양의 어깻죽지로 빠르게 찔러넣었다.

타아아앙!

서둘러 보법을 밟은 백민우가 공격을 쳐냈다.

팽그르르!

단창이 빠르게 하늘로 솟구쳤지만······.

"······."

히죽히죽 입꼬리를 올린 창술사는 유유히 날아간 단창을 회수해 또다시 기다란 장창을 빚어낼 뿐이었다.

"······무기까지 제 몸이라 이거네요."

백민우가 덧붙였다.

놈들은 애당초 시체가 아니었다.

왕의 무덤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특수하게 제작된 공예품들.

거기에 흑마법사들의 사념을 덧씌운 것이니, 몸과 마찬가지로 무기가 재생된다 한들 이상할 것은 없었다.

변칙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는 바르나울의 새로운 토병들.

하지만 이번에는 운양이 눈을 빛내며 백민우에게 말했다.

"준비했던 대로 갑시다. 변칙은 놈들만 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한 달 내내 검무와 검법을 함께 수련했던 그들이었다.

운양과 백민우가 나란히 양옆으로 자리를 잡았고, 칼끝에 은은한 검기를 덧씌우며 중구난방이던 기예꾼들의 움직임에 새로운 규칙성을 강제하기 시작했다.

카앙!

타아아앙!

끝없는 계단처럼 이어지는 참격.

물처럼 흐르듯 움직이던 창술사가 한 발 한 발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

.

.

한편, 김솔과 권룡, 그리고 송현구 또한 한창 싸움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마주한 것은 몸통만 한 달항아리를 든 두 명의 기예꾼.

놈들은 항아리를 던지거나, 세차게 굴린 항아리 위를 밟고 튀어 올랐고, 기상천외한 방향과 속도로 주먹과 발을 내질렀다.

시시각각 날아드는 항아리.

파창!

김솔의 주먹에 두 개의 항아리가 연달아 터져나갔지만, 바닥을 구른 기예꾼이 순식간에 깨진 조각을 청소기처럼 빨아들였다.

파다다다닥!

파리처럼 두 손을 놀려 다시 빚어낸 항아리.

그 항아리를 또 다른 기예꾼에게 전달했고, 곧장 주먹에 항아리를 접붙인 놈이 송현구의 얼굴을 강타했다.

챙그랑!

"커헉!"

그 자리에서 터져나가는 도자기.

안에 담겨 있는 흑마력이 모래알처럼 비산했고, 송현구가 불처럼 달라붙는 보랏빛 연기를 마른세수로 애써 걷어냈다.

"······."

낄낄 웃음 짓는 토병들.

흙으로 빚은 허파로는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먼지 섞인 기분 나쁜 바람만이 쉭쉭 소리를 내며 흘러나올 뿐.

즐겁다는 듯, 놈들이 또다시 달항아리를 빚어냈지만······.

"뭘 또 처 웃고 앉았어?"

파창!

김솔이 항아리와 함께 토병의 머리를 박살 냈다.

절묘한 시간차로 주먹에 실리는 겹겹의 배리어.

까드드득!

토병이 두 손을 들어 주먹을 받아냈지만, 파도처럼 겹겹이 중첩되는 충격이 토병의 손을 물결처럼 깎아나갔다.

타앙!

콰아앙!

권룡, 그리고 정신을 차린 송현구 또한 토병들과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았다.

단순한 공방을 넘어 점점 우위를 점해가고 있었지만······.

"아! 언제까지 해야 해?"

문제는 기예꾼들 또한 결코 죽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창술사의 몸을 꿰뚫고, 항아리를 굴리는 묘기꾼의 머리를 박살 내고, 성기사들이 밀려드는 토병들을 가루로 만든 것이 벌서 수십 번째.

밀려드는 경로를 막아내고 있었지만, 놈들은 흑마법에 의해 실시간으로 되살아나고 있었으니까.

운양이 말했다.

"일단은 방어에 전념합시다. 아발론이 오든 안 오든······. 곧 있으면 정겸 대협이 합류할 테니까요."

그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토병들이 꾸준히 되살아나고 있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막아내고는 있었으니까.

앞으로 나갈 수도, 적진을 파고들 수도 없는 답답한 상황이었지만, 당장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물류센터에 기반한 무한한 화력.

정겸만 있다면 지금의 아슬아슬한 균형을 산산이 깨뜨릴 수 있을 테니.

"그때라면 직접 흑마법사들을 노려볼 수 있을 겁니다."

정겸의 화력이라면 토병들의 발을 묶고도 남았다.

팍스맨들과 무림인들의 발이 풀리기만 한다면, 검무와 진법을 펼쳐 병마용에 숨은 흑마법사들을 찾아낼 수 있을 터.

흑마법사들만 처치할 수 있다면 병마용의 토병들을 다시 흙으로 돌려보낸 채, 바르나울의 침략을 지구상으로부터 지워버릴 수 있었다.

충분히 실현 가능한 목표였다.

발이 묶인 건 바르나울 또한 마찬가지.

기관진식을 통해 자동사냥하던 흙 인형들을 직접 손으로 때려 부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파훼된 기문진 남동쪽 구역을 중심으로 토병들이 부서졌다 재생되기를 수십수백 차례 반복하고 있었을 즈음······.

"······저게 뭐지?"

토병들의 몸에는 저마다 흐릿한 흑마법의 실이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유난히 두꺼운, 밧줄에 가까운 선 하나가 서서히 끌어올려지는 것이 보였다.

병마용을 이루는 구덩이의 지평선.

그 지하 세계로부터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마차?"

네 마리의 말, 그리고 말들이 이끄는 화려한 장식의 마차였다.

모두가 흙으로 빚어져 있었지만, 한 가지는 달랐다.

다른 토병들이 희끄무레한 반죽과 같았다면, 말과 마차는 영롱한 은색으로 뒤덮여 있었으니까.

척!

푸르르!

마차가 지면에 올라서자마자, 벌컥 문이 열렸다.

그로부터 모습을 드러낸 것은······.

"······시황제?"

이번엔 흙이 아닌, 완연한 백골이었다.

구슬이 줄줄이 매달린 커다란 면류관과 황금색 자수가 박힌 용포.

누가 봐도 바르나울이 중국의 그 역사적인 인물을 되살린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쉬지 않고 기예꾼의 머리를 박살 내고 있던 김솔.

그녀가 게슴츠레 뜬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소재가 좀 다른데?"

해골의 얼굴 뼈가 슬라임처럼 꿈틀거렸다.

물결처럼 일렁이지만, 동시에 단단하게 농축된 액체.

찬란한 은빛 물체가 그의 창백한 시체를 감싸고 있었으니까.

이번에는 운양이 혀를 찼다.

"수은이라······ 과연 진시황답군요."

영생에 대한 과도한 집착.

그리고 수은에 대한 엇나간 믿음까지.

바르나울의 흑마력이 그의 두 가지 몽상을 동시에 실현해주고 있었으니.

하지만 흑마력의 성격을 띤 이상, 그런 시황제의 몽상은 명백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

"······."

텅 빈 눈자위를 드러낸 그가 한쪽 팔을 치켜들었고······.

슈와아아아아악!

콰과과과과과!

그의 양옆에서 쏟아진 수만 리터의 은빛 물결이 토병들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꾸물꾸물.

은으로 둘러싸인 토병들이 거울처럼 빛나는 동시에,

"······어?"

팍스맨들의 공격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타아앙!

티잉!

주먹질에도, 망치질에도 깨지지 않는 거울.

아예 부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한 내구력을 갖게 된 토병들이었다.

그리고, 그 영향에 따른 결과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거기 비잖아!"

"마, 막을 수가 없습니다!"

비명을 지르는 팍스맨들.

수은으로 만들어진 두꺼운 파도가 난반사를 일으키며 진법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그러곤 무너진 댐처럼, 토병들을 넘어 아예 바깥으로까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무거운 급류가 팍스FC의 일행들을 덮쳤다.

김솔이 방어막을 전개했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다.

수천 마리의 토병과 폭포수가 된 수은에 고무 오리처럼 휩쓸리려던 찰나······.

"······왔다! 왔어요!"

누군가, 하늘을 가리켰다.

이제는 팍스FC의 상징이 되다시피한 아공간 포탈.

세로로 길쭉한 푸른색 타원이 또 다른 물결을 자아내고 있었다.

대앵- 대앵-

안으로부터는 낯선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죽은 자의 마음을 울리는 청명한 종소리.

저승에서 기어 나온 시황제는 물론, 무덤을 지키던 토병들마저 공연히 소리가 흘러나오는 포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바로 그 포탈에서 나타난 것은······.

"······음?"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내민 정겸의 얼굴이었다.

그가 병마용 위로 우뚝 선, 진시황의 해골을 마주 보았고······.

"······눈치 없게 니가 일어나고 그러면 어떡해? 남의 장례식에."

지이잉.

주변 곳곳에 새로운 아공간 포탈을 전개했다.

병마용을 사방으로 둘러싼 포탈.

그로부터 쏟아진 것은······.

와르르르르르!

달그라라락!

병장기로 무장한 수천 명의 해골.

그리고 그런 그들로 이루어진 백색의 폭포였다.

쏴아아아아아아!

병마용의 구덩이가 빠르게 메워졌다.

바르나울의 흑마법사들을 고스란히 무덤으로 되돌려보내는 것.

그것이 정겸이 의도한 장례식의 참된 취지였으니까.

공동 묘지의 공집합 (8)

106화 공동 묘지의 공집합 (8)

콰앙!

타아앙!

흰색, 그리고 은색이 벌이는 치열한 전투.

달그락거리는 뼈 소리가 지축을 울렸고, 토병들을 뒤덮은 수은이 줄줄 흘러넘쳤다.

"으아아아아아!"

"개새끼들아!"

마주한 상대가 다름 아닌 바르나울이니만큼, 아발론의 사기는 대단했다.

평화롭던 아발론을 침략한 것도 모자라, 그들이 사랑하던 왕 아서를 죽인 장본인들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오늘날의 대통령이나 정치인을 생각하면 안 됐다.

아발론의 백성들에게 있어 아서는 일종의 아이돌, 또는 정신적인 지주에 가까웠으니까.

예컨대 이런 식이다.

시청 앞 과장에서 대국민 아이돌의 장례식이 열린 상황.

수십만 인파가 대성통곡을 하던 중, 여전히 칼을 든 살인 용의자를 던져놓는다면?

'미쳐 날뛰어야 보통이니까.'

죽은 왕을 향한 사념으로 벼려진 뼈 무덤, 아발론.

백성들은 물론 휘하의 경비단, 기사단까지 모두가 하나같이 맹렬한 충동에 사로잡혀 있었다.

"죽여!"

"다 죽여어어어!"

아쉽지만 그 소원을 이룰 순 없었다.

바르나울의 토병들은 흑마력의 보충을 받아 끊임없이 되살아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직 아발론에는 바르나울이 남겨둔 흑마력이 잔존하고 있었고, 덕분에 아발론의 언데드들 또한 무너진 뼈 골격을 재생하며 끝없는 소생을 반복하고 있었다.

살의로 사무쳤으나, 결코 죽일 수 없는 죽은 자들의 카니발.

진짜로 죽은 존재는 단 하나, 나는 잘 알지 못하는 아서라는 이름의 어린 왕이었다.

달그락!

콰아아앙!

카앙!

먼지처럼 쌓인 슬픔이 분노라는 희열의 장작이 되었다.

살인자와 조문객이 벌이는 무덤 속의 드잡이는 커다란 축제와도 같았다.

수은으로 강화된 진시황의 토병들.

조금은 밀리는 듯 보였던 아발론이었지만, 베론을 비롯한 경비단과 기사단의 활약에 서서히 완벽에 가까운 균형을 맞춰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계속 저렇게 둘 수는 없지.'

자그마치 80년간 똑같은 굴레에 빠져있던 아발론.

그들에게 더 이상의 루프를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었고, 그 균형을 깨는 것이 내 역할이기도 했다.

꽈아아앙!

파삭!

사방으로 튀어 나가는 은빛 물방울.

그리고 모래 먼지처럼 흩어지는 바르나울의 토병들.

나는 수십 자루의 드워프제 전투 망치를 묠니르처럼 집어던졌고, 그건 시황제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콰아앙!

상반신이 통째로 사라져버린 옛 중국의 황제.

하지만 곧 모래폭풍과 수은 알갱이들이 모여들었고, 이내 원래의 형상을 되찾았다.

"······너도냐?"

죽여도 죽지 않는 걸 보면, 생전의 꿈을 죽어서 이룬 게 분명했다.

그 소원이 구천을 떠돌다 외계 침략자들의 하수인이 되는 건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놈이 재생되는 동안 토병들을 감싸고 있던 수은이 주르륵 바닥으로 흘러내렸으니까.

비록 찰나에 불과하긴 했지만, 대규모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이니만큼 작은 차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됐습니다! 우리도 움직이죠!"

"오! 답답해 뒤질 뻔!"

아발론의 백성들의 지원 덕에, 비로소 팍스맨들과 무림인들 또한 발이 풀렸다.

휘오오오오······.

지이이잉······.

어딘가에서는 푸른색으로, 또 어딘가에서는 황금색으로 은은한 빛이 피어올랐다.

내내 오러와 내공을 아껴두고 있던 팍스FC의 일원들.

사방으로 뻗어나간 빛이 흑마법사들의 실선을 선명하게 비췄다.

거미줄처럼 병마용 곳곳으로 뻗어있는 흑마력의 끈.

카멜롯의 기사들, 그리고 백민우와 운양을 비롯한 팍스맨 검사들이 합동 검무를 펼쳤다.

팽그르르······.

숨겨져 있던 실선이 토병들에 연결되어 있던 흑마력의 선과 절묘하게 교차했고, 검사들은 토병들을 베어 넘기며, 마치 사다리 게임을 하듯 숨은 흑마법사들의 위치를 탐색해나가기 시작했다.

곳곳으로 뻗어나간 실선들.

그중에는 줄이 꼬이거나, 단단한 매듭이 지어져 그 경로를 파악할 수 없는 곳도 있었다.

이번에는 김솔과 권룡을 비롯한 무림인들이 나섰고,

"이게 진짜 매듭이지! 하이브리드 흑염룡!"

"······쌍룡권!? 김소저! 태극권을 응용한 쌍룡권이라니요!"

호쾌한 주먹질과 함께 흑마력의 매듭을 올올이 풀어버렸다.

김솔이 동시에 피워낸 내공과 오러가 두 마리의 용처럼 서로를 감쌌다.

무림인들 또한 놀라 까무러치면서도 주먹을 내질러가며 함께 흑마력의 매듭을 넓게 펼쳐 보였다.

저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벌이는 난장.

하지만 그 모두를 아우르는 거대한 수식은 소름 끼치도록 명료했다.

그 모두를 황량한 아발론이 감싸고 있었고, 또 그 내부를 탐욕스러운 바르나울의 무덤이 감싸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거기 있었구나?"

매듭이 풀려버린 탓이다.

물결처럼 퍼져나간 흑마력의 실선이 십여 개의 등고선을 그렸고, 그 안쪽마다 두손을 하늘로 뻗은 채 삐질 땀을 흘리는 흑마법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겹겹이 둘러싸인, 찌그러진 원들의 중심부.

그 비어있는 중심을 향해, '악마 포식자'를 날려 보냈다.

쐐애애애애액!

"커허어어어억!"

피를 토하며 자리에 쓰러지는 흑마법사.

뾰족한 성창이 놈의 심장을 관통했고, 스위치를 누른 듯 십분의 일에 해당하는 실선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쉬이이이익!

빠아악!

수십 자루의 검끝이 기다란 선율을 그렸다면, 격투가들의 주먹은 그 사이사이로 커다란 박자를 때려 넣었다.

"어억!"

"허으으으윽!"

하나씩 발견되기 시작한 바르나울의 흑마법사들.

그렇게, 두 명의 흑마법사들을 추가로 처치했을 즈음이었다.

"······뭐지?"

훅.

훅.

토병들을 꼭두각시처럼 매달고 있던 실선들이 하나둘 촛붗처럼 꺼져 들어갔다.

지금까지 처리한 흑마법사들은 세 명이 고작.

하지만 한 눈에 보기에도 벌써 절반 이상의 술식이 걷어진 상태였다.

"이렇게 끝난다고?"

그에 따른 결과도 분명했다.

우수수 탑처럼 무너지는 토병들.

한창 죽음의 무도회를 벌이고 있던 아발론의 백골들이 신데렐라를 잃은 왕자처럼 우두커니 멈추어 섰다.

눈 깜짝할 사이, 대부분의 상대가 저절로 사라지고 있는 상황.

검무와 진법을 펼치며 흑마법사들의 환각을 추적하던 일행들 또한 가만히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쉬이이이······.

토병들을 감싸던 수은이 눈처럼 녹아 사라졌다.

위풍당당하던 중국의 옛 황제 또한, 찢어진 용포를 남겨둔 채 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얘네 왜 다 죽어버리는 거야?"

김솔이 아연실색하여 물었다.

놈들이 처리되는 건 좋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이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예상하던 방식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으니.

그때였다.

"주군!"

검무를 중단한 란슬롯이 황급하게 내게 다가왔다.

"당장 피하셔야 합니다!"

"뭐?"

소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였지만······. 이런 표정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눈동자에는 선명한 공포가 서려 있었으니까.

"갑자기 무슨 소리야? 피하라니?"

"위! 위를 보십시오!"

란슬롯이 휘적휘적 손을 올려세웠다.

그렇게,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을 때······.

"미친······."

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파지지지지지직!

······까드드득!

십여 미터 상공에 부유한 채, 보랏빛 광채를 뿜어내고 있는 흑마력 덩어리.

토병들을 재생시키던 8자 모양의 흑마력이 당장에라도 터질 듯 크게 부풀어 있었다.

후욱!

후우욱!

몇 개의 실선이 추가로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

수직으로 내려오는 단 한 가닥의 실선뿐이었다.

그 아래로, 홀로 남은 한 명의 흑마법사가 서 있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유연하고 화려한 궤적을 보여주던 흑마법사들의 선.

정작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수직으로 떨어진 단 하나의 매듭이었으니.

교수대를 나타내듯, 그 끝에는 선명한 올가미가 둥글게 묶여 있었다. 

꽈악.

올가미를 양손에 쥔 흑마법사.

이 거대한 무덤을 자신의 죽음으로 채우려는 듯, 놈이 자신의 묘비를 적어 내려갔다.

"내 이름은 플로리안이다. 대 바르나울의 흑마법사이자, 의 단장이었지."

녀석은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주변 곳곳으로 열린 게이트 포탈.

아발론을 끌고 들어온 장본인은 누가 보더라도 나였으니까.

무거운 체면을 순식간에 걷어낸 플로리안이, 울긋불긋한 안색으로 내게 물었다.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놈은 고개를 들어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욱한 먼지 주변으로 아른거리는 아발론의 도심.

지구와 한 몸이 된 아발론을 바라보는 녀석의 표정에는 당혹이 어려있었다.

"대 바르나울이 고작 개척 차원 따위에 휘둘린 것. 세계수가 버젓이 살아 있는 것. 버러지 같은 드루이드 놈들이 세계수와 한 공간에 있는 것. 모두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쥐어뜯긴 바르나울의 코털 한 가닥 한 가닥을 거론하며, 파르르 목소리를 떤 플로리안.

하지만 이내 날아든 창백한 음성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저것만큼은 안 된다. 저건 여기 있어선 안 될 물건이야."

"······그걸 왜 니들 맘대로 정해?"

내가 대답했지만, 플로리안은 이미 이성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없애버려야 한다. 돌려놓을 방법이 없다면 아예 지워버려야······. 기왕에 너희도 다 죽어버려. 죽어버려라."

흑마력으로 된 올가미를 움켜쥔 채, 횡설수설하는 녀석.

지체하지 않고 성창을 쏘아 보냈지만······.

슈우우우욱!

플로리안의 몸을 그대로 통과해버렸다.

정직하게 내려온 실선에는 단 하나의 거짓만이 남아있었다.

플로리안은 이미 떠난 지 오래였다는 것.

하지만 그의 유령과도 같은 잔상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기어코 교수대의 올가미를 제 목에 걸기까지 했다.

슈우우우웅!

8자 모양의 흑마력 핵이 성큼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끄륵!"

쐐애애애애액!

마지막 남은 실선이 빠른 속도로 빨려들었고, 목이 졸린 플로리안의 잔영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공연히 바라볼 시간이 없었다.

거대한 보랏빛 광채를 등진 란슬롯이 내 어깨를 부여잡았으니까.

"주군! 이럴 때가 아닙니다!"

그 표정을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건 위계고 나발이고 아무짝에 소용이 없는 공격이라는 걸.

당장에라도 포탈에 몸을 숨겨야 할 판이었지만······.

"······잠깐 기다려 봐. 저거 자꾸 위로 올라가잖아."

흑마력의 핵은 서서히 하늘로 부유하고 있었다.

십수 미터 위에 있던 것이 어느덧, 30미터 높이까지 치솟은 상황.

위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폭발의 사정거리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갈 게 분명했다.

한편, 길 잃은 팍스맨들과 무림인들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 밖에 아발론에서 끌고 온 수천 명의 언데드들 또한 자리한 상황.

아무리 죽어도 되살아나는 언데드들이라지만, 주위를 감싼 아발론조차 무사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상품회수."

슈와아아아아악!

논의할 틈도 없었다.

사방에 깔아두었던 아공간 포탈을 다시 가동했고, 병마용 곳곳에 흩어져있던 일행들과 언데드들을 포탈로 순식간에 빨아들였다.

터엉!

그러곤 수십 개의 H빔을 빠르게 출하해 흑마력의 핵으로 향하는 계단을 만들었다.

안절부절 나를 지켜보고 있던 란슬롯이 그제야 알겠다는 듯, 내게 등을 낮췄다.

"가시죠, 주군. 모시겠습니다."

곧바로 그의 등에 업혔다.

란슬롯이 보법을 이용해 H형강을 빠르게 타고 올랐고,

탁!

타닥!

"일단 이쯤이면 됐어."

오래지 않아 흑마력의 핵보다 높은 위치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지상으로부터 대략 30미터쯤 될까?

어쩌면 그보다는 적을지도 몰랐다.

바로 아래에는 거대한 구덩이라 할 수 있는 병마용이 있었으니.

내가 한 일은 두둥실 떠오르는 흑마력의 핵 위로 넓적한 아공간 포탈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넓은 접시처럼 생겨난 포탈이, 풍선처럼 떠오르던 흑마력의 핵을 하늘에서 떠받쳤다.

"그래봤자 하나뿐이지만······."

물론, 마석만 지불한다면 더 많은 포탈을 설치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쓸모 있는 것은 딱 하나뿐이었다.

각성 첫날 나를 오크로부터 지켜주었던 포탈.

물리력을 가지고 있는 건 그것 하나뿐이었으니까.

쿠구구구······.

나름 최대로 크기를 키웠음에도, 핵에 비해 크기가 너무 작았다.

감싸서 덮는 것은커녕, 위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 고작.

무게 중심을 잡는 것조차 어려웠기에, 갸우뚱 솟아오르는 핵을 따라 십여 미터가량을 더 올라가야만 했다.

다행히, 발아래 놓인 무덤은 텅텅 비어 있었다.

토병들의 부서진 조각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을 뿐.

"······이제 한계입니다!"

"알았어! 다 끝나가!"

란슬롯의 재촉을 들으며, 몇 번의 시행착오를 추가로 거친 끝에, 

"됐다!"

마침내 흑마력 핵의 상승을 멈춰 세울 수 있었다.

보랏빛 태양과 함께 올라온 50미터 상공.

"상품회수!"

슈화아아아아악!

란슬롯과 함께 몸을 던졌고, 아공간 포탈 또한 우리를 집어삼켰다.

얇디얇은 포탈의 경계면을 지나는 동안, 그새 곳곳이 부풀어 오른 흑마력의 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번쩍!

섬광이 빠르게 우리의 눈가를 스쳤다.

그러고 난 다음······.

"······."

귀를 찢을 듯한 폭음이 뒤늦게 찾아왔다.

팍스 건설 (1)

107화 팍스 건설(1)

후두두둑!

세찬 모래 알갱이가 포탈 표면을 때렸다.

병마용의 토병들은 물론, 주변을 이루고 있던 지반 전체가 송두리째 날아갔다.

따끔따끔한 발뒤꿈치.

운동화 뒤꿈치가 새카맣게 그을려 있었다.

휘이이이이······.

투둑! 툭!

폭발의 충격은 포탈을 뚫고 들어오지 못했다.

하지만, 마치 두꺼운 유리창을 사이에 둔 것처럼 그 위력만큼은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핵무기야 뭐야······."

절로 소름이 돋았다.

급격하게 부풀어 오른 8자 모양의 흑마력.

선명한 빛이 그 경로를 따라 빠르게 회전했고, 그 결과 강력한 폭발로 이어졌다.

어쩌면 영화에서나 보던 버섯구름을 목격했을지도 모를 상황이었지만······.

"······아슬아슬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폭발이 더 커지지 않아 다행이고요."

핵 위로 씌워놓은 포탈 덕분에, 막대한 증기와 먼지만 하늘 위로 솟구쳤을 뿐이었다.

아공간 포탈이 무한에 가까운 방어력으로 흑마력의 폭발을 감당했고, 높이 또한 제한된 덕에 폭발 반경이 병마용 주변으로 국한됐다.

"미안하다. 조금만 더 빨랐으면 좋았을걸."

"아닙니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병마용을 둥글게 감싸고 있었던 탓이다.

안타깝게도, 란슬롯의 고향인 아발론 또한 피해를 보게 되었으니.

설치된 포탈을 통해, 박살 나고 있는 아발론의 풍경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어둑어둑한 물류센터의 복도.

연이은 돌풍과 부딪히는 돌먼지 소리 덕에, 거대한 태풍의 핵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나저나······ 대체 뭐야 저거?"

"흑마법사들이 사념을 끌어모아 폭발을 일으킨 겁니다. 지니고 있던 모든 사념을 털어 넣었었으니······.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겠죠."

사념(邪念).

인간의 비틀린 마음이 특별한 힘을 갖고 있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카멜롯의 기사들은 물론, 아발론의 백성들까지.

언데드를 일으키고, 움직이도록 하는 동력이 바로 그 사념에서 비롯한 것이었으니까.

다만 단번에 이렇게나 거대한 위력을 낼 수 있을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흔한 일은 아닙니다. 죽고 사는 문제를 떠나서······ 흑마법사들이 마지막 남은 사념을 내려놓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무덤에서 벌떡 일으킬 만큼 강한 욕망이다.

그런 욕망을 포기하면서까지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려 했다는 것.

아발론을 내어줄 수 없다는 바르나울의 의지가 여실히 전해지는 대목이었다.

일단은 놈들의 소원대로 되었다.

거대한 폭발의 여파가 아발론을 집어삼켜 버렸으니까.

그래도······.

"아발론 사람들은 멀쩡하다는 거지?"

다행히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예, 베론으로부터 소식을 들었습니다. 비석이 모두 왕실 묘역에 놓여있던 덕분에······."

아발론이 파괴된다면 그들의 원혼까지 위험할 수 있었다.

혹여나 귀속된 아이템이 파괴된다면 그와 함께 소멸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다행히, 그들이 귀속된 비석은 아발론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에 놓여 있었다.

"바르나울이 가장 튼튼하게 보강해둔 곳이라고 하더군요. 좋은 목적은 아니었겠지만······."

인생사 새옹지마였다.

아발론의 노동력을 안전하게 온존하려 했던 바르나울.

그 노림수가 되레 지구에 아발론의 불씨를 남겨둔 셈이 되었으니.

"왜 그렇게까지 아발론에 집착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아직 아발론의 사람들이 남아있었다.

지난 80년간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를 차차 알아가면 될 터.

지금으로서는 바르나울의 시도를 저지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후두두두두······.

투명한 포탈을 때리는 모래 먼지는 여전했다.

어두운 잿빛으로 뒤덮인 하늘.

우리는 천천히 이 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

폭풍이 잦아든 이튿날 오후.

대기를 채운 먼지들이 충분히 가라앉은 다음에야 우리는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살벌하네."

병마용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 자리에는 커다란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거대한 크레이터가 덩그러니 드러나 있을 뿐이었다.

"고맙습니다. 정겸 대협만 아니었다면······."

운양이 내게 감사를 전했다.

포탈을 덮어 핵의 폭발 반경을 최대한으로 줄였던 참.

병마용의 서쪽으로는 시안이, 그리고 동쪽으로는 웨이난 시가 있었고, 두 도시 모두 폭발의 사정권으로부터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형국이었다.

"다행입니다. 정말로요."

핵이 그대로 상공으로 치솟았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을지, 가늠조차 가질 않았다.

이제는 공처럼 비어버린 텅 빈 무덤.

우리는 곧장 다른 흔적으로 이동했다.

왕실 묘역에 모여 있는 비석들.

이제 아발론의 백성들을 되살릴 때가 되었으니까.

.

.

.

묘역을 가득 메운 아발론의 언데드들.

나는 그로부터 한 가지 흥미로운 해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전하께서······ 전하께서 우리를 지켜주셨어!"

아발론의 왕족들을 위해 만들어진 묘역이었다.

하지만 바르나울은 사람들의 원혼을 귀속시킨 묘비를 보관해야 했고, 결과적으로 아발론 왕실 묘역이 장소가 되었다. 

돌탑처럼 쌓인 아발론의 공동묘지.

덕분에 언데드들은 무사할 수 있었다.

정작 아서의 시체는 이곳에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래 뭐, 그 양반이 지켜줬다고 치고······."

이제 다음은 내 일이었다.

언데드가 된 아발론의 백성들.

무한히 복사한 세계수를 자원으로 그들 모두를 되살려주어야 할 테니까.

성기사들이 수북이 쌓인 묘비를 하나하나 건져 올렸고······.

"다곤! 다곤이라는 사람 있습니까?"

"저, 접니다!"

호명된 해골 하나가 황급히 달려 나갔다.

묘비를 집어 든 드루이드들이 세계수의 가지를 흔들며 죽은 원혼을 위로했다.

그러곤 사물에 깃든 원혼을 조금씩 분리하는 한편, 세계수를 이용해 죽은 뼈에 천천히 조막만 한 살을 입혀갔다.

"으으으으윽!"

"참으시오. 더럽게 아프겠지만."

아발론의 백성들은 환희했다.

저승사자의 명부와 달리, 핀드릭의 호명은 생명을 가져다주고 있었으니.

언제 불릴지 모를 자신의 이름을 기다리며, 아발론의 백성들은 저마다 손을 붙잡고 춤을 췄다.

달그락!

달그라락!

아서의 생사에 얽매여, 영원한 굴레에 빠져있던 아발론.

이제는 텅 빈 무덤 앞에, 그들 모두가 자유를 되찾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베론?"

양 볼이 조금 수척하게 파여 있기는 했지만, 인간으로 되살아난 그는 준수한 소싯적의 얼굴을 뽐내고 있었다.

다가온 아발론의 경비단장이 내게 먼저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감사를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기뻐하고 있어요."

그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되살아난 아발론의 소년이 폴짝 뛰어 인파 속으로 돌아왔다.

아직은 해골인 그의 어머니가 까르르 웃으며 소년의 볼을 꼬집었고, 다시 돌아올 어머니의 부드러운 살결을 기다리며, 80년의 세월을 지나온 어린아이가 더없이 환한 미소를 피워냈다.

척!

내게 무릎을 꿇은 베론.

"아서 님이 저희를 지켜주셨다면······ 당신은 우리를 구원해주셨군요."

충성의 서약에 앞서, 무한한 감사에 가까운 것이었다.

상당한 전투력을 보여주던 아발론의 경비단과 기사단.

나로서는 든든한 전력을 새로이 얻은 셈이었다.

"뭘, 앞으로 잘 부탁해."

"물론입니다."

손을 뻗어 앉은 그를 일으켜주었고, 인사를 마친 베론이 그제야 란슬롯과 해후를 나눴다.

"······란슬롯 경."

"돌아온 걸 축하한다. 베론."

"이렇게 다시 만나 뵐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꿈에도······."

카멜롯의 다른 기사들도 분주히 쏘다녔다.

수십 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 친척, 동료, 친구들을 만나러 다녔고, 육성의 웃음과 딱딱거리는 턱뼈의 울림이 묘역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란슬롯이 베론에게 물었다.

"허기가 지나? 배에서 소리가 나는데."

"아, 그런 거였군요. 수십 년을 언데드로 있어서 그랬는지······ 이게 배고픈 건 줄도 몰랐네요."

움푹 들어간 자신의 배를 매만지던 베론.

문득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생각해보니 그 문제를 생각을 못 했습니다. 저 많은 수를 먹이려면 어마어마한 식량이 필요할 텐데······ 아발론에 건량이 남아 있을 턱도 없고요. 다들 언데드인 채로 머물러 있었어야 했던 건 아닐지······."

발을 동동 구르는 베론.

한편, 란슬롯 또한 그에 못지않게 심각한 표정이었다.

"베론. 건량이라고 했나?"

"예, 무슨 문제라도······?"

"정말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베론이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란슬롯을 마주 봤다.

나 또한 갑자기 무게를 잡는 란슬롯이 의아할 따름.

천천히 숨을 몰아쉰 란슬롯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되살아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오러의 근간은 건강한 신체에서 나오는 법. 체계화된 영양 섭취 훈련을 통해 그 이상의 성장을 도모해야 하는 법이다. 무엇보다······ 주군의 아공간에는 식량이 무한하게 쌓여 있으니까."

"무한이요······?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잘 기억해둬라. 식사는 훈련이다."

'······.'

내가 했던 이야기를 고스란히 써먹는 란슬롯.

한편, 베론은 그런 그의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어 있었다.

"지구에는 한우라는 생물이 존재한다. 포르쿠 고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맛과 영양을 가지고 있지. 이 한우라는 생물을 불에 구우면 붉은색 살결이 노릇노릇한 갈색을 띠기 시작해. 두툼한 조각을 잘라내면 안에는 여전히 핏기가 서려있지만······."

"핏기요? 덜 익은 게 아닙니까?"

"허튼소리! 거기에 모든 영양이 담겨 있어. 씹자마자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육즙이 입안 가득 터져 나오고, 정작 고기는 눈 녹듯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게 된다. 종국에는 입가에 자르르 번져 있는 기름기와 깊은 풍미만 남아 있을 뿐이지."

"아니, 무슨 마법도 아니고······ 세상에 그런 음식이 있단 말입니까?"

쩍 하니 입을 벌리는 베론.

꼬르륵. 꼬르르륵.

그의 배꼽시계가 미친 듯이 울리고 있었다.

다음으로 냉면을 비롯한 각종 면류에 대한 묘사가 이어졌고, 간장게장이니 양념게장을 비롯한 해산물을 지나, 뜨거운 물 하나로 완성되는 즉석식품들에 대한 찬미로 이어졌다.

아무리 봐도 조언이나 훈계가 아니었다.

저건······.

'······자랑?'

이제는 물류센터의 풍요에 완전히 적응해버린 그였다.

어느새 란슬롯이 양팔에 허리를 둔 채, 코를 드높이고 있었다.

그를 품은 팍스FC를 자랑스러워하며.

그때였다.

"······주인님. 그게 정말입니까?"

아발론에서 만났던 란슬롯의 종자였다.

아서의 죽음을 한사코 믿지 않으며, 종국에는 란슬롯의 존재마저 부정했던 루크.

그가 우물쭈물하며 조심스레 걸어오고 있었다.

"루크······."

루크는 여전히 죽은 해골의 상태였다.

하지만 란슬롯의 생생한 이야기가 그의 관념을 자극하며, 텅 비어있던 그의 사념에 새로운 욕구와 욕심을 채워 넣은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그때는 도무지······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서······."

"······."

꼬옥.

란슬롯은 말없이 뼈만 남은 루크를 안아주었다.

녀석은 바르나울이 부여한 사념에 휘둘렸던 것뿐이었으니까.

울음조차 허락되지 않은 가련한 해골은, 그저 갈비뼈를 떨며 눈물을 대신하고 있었다.

란슬롯이 루크에게 물었다.

"정말이냐고 물었느냐?"

"······예, 주인님. 정말 그런 게 존재한단 말입니까?"

그가 되물었지만······.

후욱!

란슬롯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주인님?"

란슬롯은 어느덧 망령으로 변해있었다.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구름 같은 꼬리를 길게 늘어뜨린 란슬롯.

유령이 된 그가 히죽히죽 웃으며 루크의 주변을 맴돌았다.

"당연히 허상이지. 자네 말대로 말이야. 허허."

"아앗······!"

보기보다 뒤끝이 있는 그였다.

웃음이 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좋았지만.

.

.

.

소생한 아발론의 백성들은 곧장 엘븐하임으로 보내졌다.

폭발에 휩쓸린 아발론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으니.

이미 유럽에서 건너온 수천 명의 인파가 기거하고 있는 엘븐하임이었지만,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엘븐하임 대륙은 수십만 명은 거뜬히 수용할 만큼 거대한 땅이었으니까.

정작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뭔 노숙자들도 아니고······."

갈라돈 의회와 엘프들의 움막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건물이 없는 엘븐하임이었다.

유럽에서 건너온 환자들 또한 대부분 군용 텐트에서 머무르고 있는 실정.

헐벗은 아발론의 백성들 모두가 대자연에 내동댕이쳐진 상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발론에서 넘어온 두 명의 청년이 환경의 열악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으으······."

"왜 그래? 어디 아파?"

"화장실.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하지만 숲 한복판에 화장실 같은 게 있을 턱이 없었다.

80년 만에 찾아온 생리현상을 참다못한 아발론의 청년.

그가 후다닥 수풀 사이로 들어갔다.

"······거기서 해결하려고?"

"괘, 괜찮겠지?"

당연하지만 될 리가 없었다.

낌새를 챈 엘븐하임의 장로, 윌그라임이 후다닥 달려왔고······.

"지금 뭐 하는 겐가! 거기서 볼일을 보면 어떡해?"

"히익! 죄송합니다! 너무 급해서 그만······!"

서둘러 허리춤을 고쳐 매는 청년.

윌그라임이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이익! 그 아까운 거름을! 그럴 땐 빨리 밭에 가서 싸야 할 것이 아닌가! 자! 저쪽 밭에 똥 모아 놓은 곳이 있으니 얼른 가서 해결하게!"

"아아! 그렇군요! 너무 오랜만이라 잊고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후다다닥!

청년이 밭 한가운데 놓인 거뭇거뭇한 똥 산 아래로 다가갔다.

"휘우! 살았다!"

그가 찬란한 햇빛 아래로, 흰 복숭아를 내밀었고······.

'아······.'

그 광경을 마지막으로 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문명화가 시급해.'

아발론을 탓하기에 앞서, 엘븐하임 또한 처지가 도긴개긴인 상황.

엘븐하임에 올 때마다 맡았던 진한 시골 소똥 냄새의 정체를 알고 나니,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역시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좋은 방법은 주거 환경의 개선이었다.

써봐야 편한 걸 안다고, 상하수도 시설만 깔아줘도 상황이 백배는 나아질 테니까.

그래서였다.

팍스FC의 새 사업 분야를 떠올린 것은.

한국은 물론, 일본과 중국, 미국과 유럽, 그리고 엘븐하임과 아발론까지.

땅과 사람들이 팍스FC를 중심으로 모여들고 있었으니까.

"······팍스 건설."

그런 이름이면 될 것 같았다.

팍스 건설 (2)

108화 팍스 건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