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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마녀 (3).

6.

어비스넷에 올라온 삼류소설가의 글은 예전과 같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리고 많은 댓글이 달렸다.

123123 : 실패한 거야? 구출 작전이?

ㅁㄴㅇ : 군바리들이 하는 게 뭐 그렇지 뭐!

ㅇㅇ : 오히려 그냥 거기 똥별들 싹 죽이려고 하는 빅피쳐 아니었을까? 별들이 살아서 구조신호 보내는 것도 문제잖아?

결코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이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여러모로 모두가 달려들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긴 했다.

그리고 딱히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asdasd : 아니, 실패하면 그냥 둬야지. 또 뭘 구하러 간다는 거야? 2편을 왜 찍고 지랄이야!

여기서 핵심은 2탄이 있다는 점이었다.

김지운도 그게 문제였다.

'박호철 대장이라면 구출하러 추가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정말 그곳에 있는 별이 김지운이 아는 별이라면, 군부 입장에서는 구출해야 했다.

2탄을 찍든, 3탄을 찍든, 4탄을 찍든.

더군다나 박호철 대장이라면 외부로의 구조신호를 보낼 방법이 몇 개 있었다.

포폰 나뭇잎을 쓸 수도 있었고, 그보다 더 뛰어난 연락 아이템을 쓸 수도 있었다.

그래서 골치였다.

성공하면 거기서 끝날 일이지만 앞으로 실패가 거듭될수록 그 주변에 있는 이들이 입는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으니까.

'대체 뭐가 있는 거지?'

결정적으로 김지운이 생각하기에 이 작전이 실패했다는 것, 그 자체였다.

'폭격을 했는데?'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하고 전투기가 확산탄을 떨어뜨렸다는 것, 그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일단 위력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물론 확산탄이 만능이란 건 아니었다. 또한 폭격기처럼 그 자리를 쑥대밭으로 만든 것도 아니었다. 그 공격에 몬스터들이 전부 쓸렸을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그러나 정상적인 몬스터라면 그 확산탄이 떨어지는 순간 그곳에서 도망쳐야만 했다.

도망친 후에 그 폭격이 있는 지역으로는 오줌도 싸지 않는 게 정상이었다.

확산탄을 쏜 것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런 점 때문이었다.

그런데 확산탄을 쏘고도 도망치기는커녕 오히려 버티는 몬스터가 있다?

있을 순 있다.

어비스에는 아주 빌어먹을 몬스터들이 넘쳤으니까.

그러나 중요한 건 김지운 입장에서는 하등 좋을 게 없다는 점이었다.

'빌어먹을.'

다음 번에는 더 강력한 폭격이 올 터. 

저번 게 윗집에서 애기들이 뛰어노는 수준이었다면 다음 번에는 초등학생이 뛰어노는 수준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더 최악은 항의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할 수 있는 건 대비뿐.

"국회의사당으로 간다."

그리고 김지운이 그 대비를 했다.

7.

김지운, 그는 지도를 받는 순간 바로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나 혼자 간다."

여기서 김지운은 그 누구도 파트너로 두지 않았다.

그건 분명 특이한 일이었다.

김지운은 기본적으로 어비스에서 홀로 움직이는 일이 없었다.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짐짝이라고 하더라도 꼭 파티를 맺었다.

혼자일 때와 둘일 때의 생존율이, 위기 대처 능력이 차원이 다르다는 걸 아는 탓이었다.

그럼에도 김지운이 단독 행동에 나설 때가 종종 있었다.

임무가 쉬울 때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이번 일은 어렵다. 매우."

그 말에 모두는 의문을 제기했다.

"호른 오크를 처치하지 않았습니까?"

레드존인 국회의사당, 그곳의 가장 위험 요소는 이미 제거된 상태.

또한 그 이상의 위험 요소가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호른 오크보다 강한 개체가 있었다면 호른 오크가 거기를 제 영역으로 삼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또한 호른 오크 외의 몬스터가 있을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았다.

어지간한 몬스터들은 호른 오크와 오크 무리의 굶주림을 달래주는 식량이 되었을 테니까.

"몬스터는 문제될 게 없다."

김지운도 알았다.

"문제는 안개다."

그럼에도 그런 결정을 내린 건 그곳이 레드존이기 때문이었다.

그에 대해 김지운은 별 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시간이 금보다 귀한 세상.

단지 김지운은 남길 뿐이었다.

"1시간 15분, 그 안에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죽은 걸로 판단하고 행동해라."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대비를.

그렇게 말을 마친 김지운이 공기호흡기를 비롯해 장비를 챙기고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가는 길은 어려울 게 없었다.

국회의사당으로 가는 길은 이미 호른 오크와의 한차례 전투로 그나마 어슬렁거리던 몬스터들조차 부리나케 도망친 상태.

으어어어!

있는 건 여의도 공원 너머, 김지운이 미리 처리하지 못한 구역에 남은 어비스 좀비들뿐이었다.

그 역시 김지운에게 문제될 건 없었다.

거미줄을 펼친다,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김지운, 그는 움직였다.

타앗!

건물과 건물 사이를.

어려울 건 없었다.

김지운의 근력 스탯은 그가 바라던 50포인트, 그 이상을 훌쩍 뛰어넘은 상태.

체력 또한 넘치고 있었다.

그에게 건물과 건물 사이의 수 미터에 이르는 간격은 횡단보도의 하얀선과 하얀선 수준에 불과했다.

건물을 타고 오르는 것도 어려울 건 없었다.

김지운의 수중에 있는 헥타르 거미줄의 강도와 접착력은 김지운의 몸뚱이 정도는 우습게 견뎌낼 수 있었으니까.

물론 스파이더맨처럼 정말 도심 사이를 빠르게, 신속하게 질주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차이가 있었다. 짙은 안개라는 차이가.

시야가 제한된 공간에서는 아무래도 전력 질주를 하거나 그럴 수는 없는 일.

그러나 거미줄을 펼치고 어비스 좀비를 걱정하면서 이동하는 것보다는 훨씬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렇게 김지운은 단숨에 마주할 수 있었다.

'국회의사당.'

핏빛 안개로 뒤덮인 국회의사당, 그 드넓은 세상을.

그것을 본 김지운의 표정이 굳었다.

떠오른 탓이었다.

처음 레드존에 진입했을 때의 기억을.

사실 그때는 레드존이 어떤 곳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였다. 어비스 탐험이 막 이루어질 때였고, 클랜과 헌터들이 서로 정보를 거의 공유하지 않은 때였다.

삼족오 클랜의 경우에는 당시 레드존에 진입한 게 김지운, 그가 처음이던 때였다.

그래서 뼈저리게 경험했다.

'죽을 뻔했지.'

레드존은 그만큼 위험했다.

일단 레드존의 가장 큰 문제는 화이트존과 다르게 이성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급격히 줄어든다는 점이었다.

부레수 나뭇잎을 이용해도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채 5분에 미치지 못했다.

부레수 나뭇잎이 없으면? 헌터가 아닌 이들은 10초 안에 어비스의 방랑자가 됐다.

화재용 마스크 역시 그 유효시간이 화이트존에 비해서 40퍼센트 수준에 불과했다.

공기 호흡기 정도가 유효한 선택지란 의미.

하지만 그보다 더 골치 아픈 건 그거였다.

'몸이 굳어서.'

레드존의 안개에 진입하는 순간 마치 물속에 들어간 것 같이, 온몸이 무거워졌다.

아주 무거워지는 건 아니었다. 헌터들은 그 느낌을 두꺼운 옷을 입은 것 같다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그건 어느 정도 숙련된 경우였고, 처음 들어가는 이들에게는 적응기가 필요했다.

김지운, 그가 이곳에 혼자 온 이유였다.

다른 동료들이 그 적응기를 가지는 동안 기다릴 시간이 그에게는 없었으니까.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더 상위 안개에 들어가면 몸이 느끼는 느낌은 더 강해졌다.

그린존에 이르면 정말 몸이 물속에 들어간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근력을 최소 50포인트 이상 찍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였다.

물론 지금의 김지운에게는 모두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김지운 그가 마스크를 벗었다.

그리고 준비해온 공기 호흡기를 썼다.

8.

김지운이 떠난 이후 남은 이들은 어느 때보다 긴장한 채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김지운이 각오를 하라고 했다면 쉽지 않은 일이란 의미.

"대장이 왔다!"

하지만 그 걱정이 무색하게 김지운은 40분 만에 63빌딩으로 돌아왔다.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기대 이상의 성과가 있었다."

그렇게 등장한 김지운은 바로 보여줬다.

"이게 있을 줄은 몰랐다."

엄지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검은색 씨앗들을.

물론 모두는 그게 뭔지 몰랐다.

"이게 뭡니까?"

"호흐프 나무 열매다."

"어? 이게 그겁니까?"

그러나 그 명칭을 말해주는 순간 이영후가 놀란 반응을 보였다.

들어본 적이 있었으니까.

"이거 한 알 먹으면 3시간 버틴다면서요?"

호흐프 열매.

어비스에서 매우 보기 힘든 호흐프 나무의 열매로 효과는 어비스 안개에 대한 면역력이었다.

이영후의 말처럼 한 알 먹으면 화이트존에서 무려 3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레드존에서는 1시간을 버티지."

그 이상의 존에서도 효과가 있었다.

당연히 이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비스의 헌터들도 쉽게 쓰지 못하고 매우 긴급한 상황에서만 사용할 만큼.

"그런데 이거 오렌지존 이상에서만 구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더불어 매우 귀했다.

"15개나 있더군."

심지어 김지운이 가져온 호흐프 나무 열매는 김지운도 놀랄 만큼 있었다.

그게 김지운의 표현이 굳은 이유였다.

"국회의원 따위가."

당장 이영후의 반응만 보면 알 수 있듯이 그건 어지간한 관광객에도 지급되지 않는 물품이었다.

이게 지급된다는 것은 최소 레드존 이상에서 관광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였고, 그건 지극히 이례적인 경우였다.

"그것도 모두가 이름조차 잘 모를."

하지만 김지운이 이것을 가져온 의원실의 주인은 김철배 의원으로 이제 초선인 의원이었다.

여기서 김지운은 몇 가지 머릿속 퍼즐이 조합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였다.

"진네만."

"무슨 일이야?"

김지운, 그가 한동안 딱히 만나지 않던 CIA비밀작전팀 팀장 데이비드 진네만을 부른 것은.

"날 부른 걸 보면 괴물 관련된 일 같진 않고."

"김철배 의원, 알고 있는 건?"

그 질문에 데이비드 진네만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기브 앤 테이크."

"원하는 건?"

"고스트, 하나만 묻지. 이 빌어먹을 것들이 대체 뭐야?"

그 대목에서 김지운은 어비스에 대한 것을 설명해줬다.

대략적으로.

그리고 그것을 들은 데이비드 진네만은 기나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의외로 어비스에 대한 것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젠장, 부국장이 지랄하던 게 그래서였군. 이제야 그 지랄을 한 것들이 이해가 가."

징조가 있었으니까.

"테이크."

그러나 김지운은 데이비드 진네만이 감상에 젖는 것을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야. 첩보가 있었어. 중국 쪽의 어떤 집단이 한국의 국회의원들을 대거 포섭하고 있다고. 여야, 계파 구분 없이. 물론 단순한 로비였으면 우리가 나설 이유가 없었겠지만 그게 아니었어. 우리 쪽에서 판단한 건 마약 같은 강력한 무언가로 포섭한다고 생각했고, 그 중심에 김철배 의원이 있다는 걸 알게 됐지. 이제 와서 보면 다 알고 명령을 내린 거였어. 여하튼 그런 김철배 의원이 어떤 거래를 한다는 첩보를 알게 되었고. 그래서 여기에 왔지. 잡아보려고."

말을 하던 데이비드 진네만이 말을 잠시 멈추었다.

"중국 쪽에서는 이 계획을 절대일로라고 표현하더군. 일대일로를 뛰어넘는 계획."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데이비드 진네만은 이야기를 멈췄다.

김지운도 굳이 더 묻지 않았다.

모든 게 이해가 됐다.

흑랑 클랜이 왜 그토록 중요한 접대를 하려고 했는지.

이 물건이 어째서 김철배 의원의 의원실 금고에 있었는지.

'중국이 이 정도까지 들어왔을 줄이야.'

이해와 별개로 김지운은 꽤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기분 좋은 놀람은 아니었다.

'삼족오 클랜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했어.'

김지운이 은퇴하기 전에 중국 쪽 클랜의 진출은 삼족오 클랜이 분명하게 막았었다.

단순히 김지운이 있어서 그게 가능했던 건 아니었다.

김지운은 헌터일 뿐이었다. 아주 예리하고, 잘 드는 칼. 그걸 관리하고 사용하는 건 삼족오 클랜이었고, 마스터인 이도준이었다.

그런데 막기는커녕 오히려 미국 정보국이 나서는 상황까지 왔다?

'마녀도 알고 있었고.'

결정적으로 이게 아주 은밀하게 진행됐다면 마녀가 김철배 의원실에 이런 물건이 있는지 알았을 리가 없었다.

물론 김지운은 여기서 정치적 지형 따위를 고민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거였다.

중국 쪽 클랜들은 무언가를 할 여유가 있고, 중국 쪽 헌터들이 적잖게 한국에 있다는 것.

그건 폭탄이었다.

'사방이 지뢰밭이군.'

골칫거리가 그야말로 사방에 깔린 셈.

그때였다.

"어, 대장."

이영후가 다가왔다.

"저기, 지금 제 머릿속에 무슨 소리가 난 거 같습니다."

그 순간 김지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혹시 시계 자명종 같은 소리였나?"

"예? 예, 맞습니다. 땡! 하는 소리였어요."

"쿨타임 찬 거다."

현재 이영후가 가진 스킬은 단 하나.

그 쿨타임이 찼다는 것은 김지운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떨어진 한줄기 빛이었으니까.

비단 김지운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이영후의 표정도 달라졌다.

그때였다.

김지운이 품 안에 있던 것을 꺼내 이영후에게 건네줬다.

하얀 리자드맨의 구슬이었다.

천리안의 스킬 랭크가 높을수록 그 스킬 효과가 훨씬 강해질 터.

물론 그런 관점에서 보면 유리룡의 눈을 주는 게 훨씬 현명했지만, 김지운은 알았다.

스킬 랭크가 높아질수록 쿨타임이 늘어날 수도 있음을.

그리고 지금 김지운이 보고 싶어 하는 곳은 그렇게까지 먼 곳이 아니었다.

"용산, 국방부다."

63빌딩에서 국방부가 있는 곳까지 직선거리는 4킬로미터 남짓했으니까.

D랭크 천리안 스킬이라면 충분히 닿으리라 예상되는 거리였다.

"아니, 근데 대장."

물론 여기서 이영후는 생각했다.

"저번에도 그랬고, 그게 제가 가고 싶다고 훅 가지는 게 아닙니다."

스킬을 쓰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고.

"그리고 저 국방부 가본 적도 없습니다. 검색으로 사진 좀 본 게 전부입니다."

그 순간이었다.

"예? 어?"

말을 뱉던 이영후는 그대로 굳었다.

보였으니까.

'국방부다.'

사진에서 봤던 국방부가.

여기서 이영후는 당황하지 않았다.

'움직여.'

천리안의 장점 중 하나는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

그러니까 지금은 최대한 주변을 움직이면서 정보를 습득할 때였고, 해서 이영후는 달렸다.

숨이 막히거나 그런 건 없었다.

방해가 되는 건 오직 하나, 안개 뿐.

'새빨갛네!'

더불어 이영후의 주변 안개는 레드존이었다.

'성공에서 찍은 사진 봤을 때는 화이트존이었는데!'

어비스넷에 올라온 것과는 달랐으나, 이상할 건 없었다.

안개 속에 또 다른 존이 형성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더불어 지금 이영후가 신경 쓸 건 아니었다. 그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하는 게 우선.

해서 그는 국방부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면서 볼 수 있었다.

'아.'

초토화된 국방부 건물과 그 주변 풍경을.

전쟁병기가 만들어낸 무자비한 결과물을.

소름 끼치는 위력이었다.

'아······.'

그쯤에서 이영후의 눈에는 들어왔다.

누가 보더라도 특수부대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널브러져 있는 것을.

그것도 그냥 쓰러진 게 아니라 몸뚱이가 인형마냥 찢어진 채, 팔다리가 찢어지고, 상체와 하체가 뜯어진 채 있는 것을.

그제야 비로소 이영후는 깨달았다.

정말 소름 끼치는 것은 이곳을 초토화시킨 병기가 아니라 그 병기 앞에서도 멀쩡히 살아남은 몬스터라는 것을.

그리고 이영후는 볼 수 있었다.

크르르르!

'어, 저거? 서, 설마?'

이곳을 지옥으로 만든 몬스터의 정체를.

"이영후, 정신 차렸나?"

그 순간 세상이 바뀌었고, 김지운의 얼굴이 보였고, 그것을 보는 순간 이영후는 소리쳤다.

"트, 트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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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드래곤 마운틴 (1).

1.

"······죄송합니다, 트롤이라고 해서."

갑작스러운 도발 후에 정신을 차린 이영후가 바로 김지운에게 사과를 했다.

그러나 그런 사과에도 김지운은 딱히 표정이 풀어지지 않았다.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트롤이라니.'

물론 이영후가 자신을 트롤이라고 해서, 기분이 나빠져서 그런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김지운은 국방부 근처를 점령한 몬스터들이 트롤이란 사실에 반색했다.

트롤이 쉬운 몬스터란 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트롤은 화이트 클래스 몬스터였지만, 레드 클래스 몬스터들도 종종 씹어 먹을 만큼 강력한 개체였다.

특히 지금 인류가 가진 최고의 무기라고 할 수 있는 총이 통하지 않을 놈이었다.

놈의 가죽은 매우 두껍고, 그 회복력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니까.

K2소총의 탄창 서너 개를 낭비해도 제대로 죽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놈이었으니까.

그래서였다.

'실패한 이유가 분명했군.'

확산탄을 쏘고, 무장한 특수부대가 전멸한 것은.

확산탄 정도라면 트롤에게 적잖은 데미지를 주겠지만, 근접 노출된 개체가 아니라면 충분히 회복 가능한 피해였다.

그 후에 들어간 특수부대들, 그들 입장에서는 솔직히 최악의 상대였다. 트롤 상대로는 자동소총보다 차라리 공격력 E랭크 이상의 도끼가 훨씬 더 가치가 있었으니까.

물론 쉽다는 건 아니었다.

'트롤이 적잖게 있을 거다. 그리고 트롤이 무리를 짓는다는 것은 우두머리가 있다는 의미였다.'

그냥 상태만 놓고 보면 거긴 최악이었다.

하지만 김지운이 상상했던 최악들에 비하면 국방부 상황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우리 파티가 처리할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트롤은 김지운과 상성이 좋았다.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 김지운이라면 트롤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리스크는 있었지만, 지금 김지운이 보기에 저대로 놔두는 것에 비하면 그 리스크는 리스크도 아니었다.

'아니면 알려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트롤이 있다는 것을 국방부 장성 구출을 진행 중인 부대에 알려주기만 해도 작전 성공확률은 지극히 높아질 터였다.

단, 이 경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신분을 감추고 정보를 전달할 경우 군부가 믿을 가능성이 낮고, 반대로 신분을 드러내면 군부가 가만히 놔둘 일이 없다는 것.

솔직히 말해서 김지운은 지금 군부랑 접촉하고 싶지 않았다

예전부터 그랬다.

몇몇을 제외하면 정말 모두가 생각하는 군인다운 지휘관은 없었으며 지금 이 짓을 하는 지휘관은 김지운이 보기에 절대 그 몇몇이 아니었다.

여하튼 김지운에게는 선택지가 생겼다.

'1시간 안에 결정해야 한다.'

뭐를 고르든 김지운 입장에서 고민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결단은 빨라야 했다.

"이영후."

"예?"

"최대한 용산 관련된 정보를 수집해 주도록."

동시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예."

그리고 잠시 후 이영후는 보여줬다.

"대장, 이거 좀 보시죠."

2.

어비스넷에서 파티를 모집하겠다는 글은 자주 올라왔다.

그리고 대개 그런 글들에는 댓글이 달리지 않았다.

무시하거나 혹은 정말 절박한 이들은 댓글이 아니라 쪽지로 연락을 시도했으니까.

[제목 : 드래곤 마운틴 원정대 모집한다.]

[작성자 : 드래곤슬레이어]

[내용 : 어지간하면 여기서 아무하고나 손에 손잡고 놀고 싶진 않은데 이대로 가면 다 죽게 생겼다.

긴 말 안 한다. 국방부 쳐들어갈 헌터들 모집한다. 아무나 모집은 안 한다. 쪽지로 클랜하고 헌터 시절 능력치 보내줘라.

못 믿을 것 같으면 괜히 간보지 않아도 된다. 그 정도라면 사정이 급한 게 아니라는 거니까. 사정이 급한 헌터들이라면 알아서 연락할 테니까.]

그러나 이번 글에는 달랐다.

적잖은 댓글이 달렸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이 글에 동감하는 자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현시점에서 어비스넷을 이용할 정도라면 매우 특별한 자들이 수밖에 없었고, 특히 금전적으로는 부자인 이들이 많았다.

즉, 강남구나 용산구 같이 부촌에 사는 이들이 많았다. 그만큼 국방부 구출 작전에 영향을 받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가장 큰 건 그거였다.

ㅇㅇ : 드래곤슬레이어면 오크 맨손으로 잡은 헌터잖아?

ㅁㄴㅇ : 도그블린 데리고 개싸움 시킨 헌터이기도 하지.

이미 드래곤슬레이어가 어비스넷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적잖게 인증한 헌터라는 것.

또한 그의 활동 지역이 남산 쪽이란 것 역시 그 인증 과정에서 알려진 상태였다.

소위 네임드였다.

다른 건 몰라도 실력만큼은 분명 믿을 수 있는 네임드.

'꽤 실력 좋은 헌터다.'

김지운 역시 드래곤슬레이어가 인증한 사진들을 통해 그가 별의 유무를 떠나서 재능이 넘치는 헌터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 헌터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낼 리스크를 감수하고 이렇게 글을 썼다?

'분명 파티가 만들어질 거다.'

어떤 식으로든 결과물이 만들어질 터.

여기서 김지운의 선택지는 더 늘어났다.

드래곤 슬레이어의 파티에 합류하거나 혹은 그에게 트롤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거나.

군부와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더 나아 보였다.

그리고 여기서 김지운은 선택지를 미루지 않았다.

"이영후."

"예, 말씀하시죠."

"쪽지 하나 보내라."

"쪽지요? 드래곤슬레이어한테요?"

"아니, 마녀한테."

"뭐라고 보낼까요?"

"의뢰를 완수했으니 만나자고."

3.

술은맥캘란, 그녀와의 이번 만남은 그때와 같았다.

장소는 노량진 수산시장이었고, 만남은 쪽지를 보내고 2시간 만에 이루어졌다.

차이점은 하나였다.

이번 만남은 1대1이라는 것.

[갑자기 데이트 신청해 줘서 기쁘네. 그래서 오늘 밥은 그쪽이 쏘는 거지? 술은 내가 쏠게.]

그 자리에서 술은맥캘란이 먼저 문자를 건넸다.

반면 김지운은 대답 대신 준비해 온 작은 종이 쇼핑백을 꺼내 술은맥캘란에게 전달했다.

그것을 본 술은맥캘란이 눈웃음을 지었다.

역시 자네야, 믿고 있었다고! 하는 눈웃음을.

그러나 그 눈웃음은 안에 있는 것을 보는 순간 달라졌다.

그녀가 아이패드 위를 빠르게 긁었다.

[4개? 지금 첫 판부터 장난질이야? 내가 그 의원 새끼가 가진 거 대충 숫자도 몰랐을 거 같아? 최소 10개 이상 있었을 텐데?]

그제야 비로소 김지운이 대답했다.

[15개가 있었다. 그중 우리 몫은 7개, 네 몫은 8개다.]

영문을 모르는 말을.

[그중 4개는 정보료로 미리 챙겼다.]

이어진 말에 술은맥캘란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분노가 아니었다.

[호흐프 나무 열매가 지금 어떤 건지 알지? 3시간짜리야.]

경고였다.

저울에 어울리지 않는 정보라면 그때는 알고 지낸 사이라고 하더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경고.

[최소한 국방부에 있는 몬스터들의 정체, 그 정도 수준의 정보는 줘야 할 거야.]

그리고 이어진 그 문장에 김지운은 대답하지 못했고, 그 모습에 술은맥캘란의 눈빛이 더 날카로워졌다.

설마 그 급의 정보도 아닌데 호흐프 나무 열매 4개를 챙길 속셈이었다고?

[천하의 퍼스트 킬러가 왜 이래? 저울질을 잘못하고? 어?]

그 사실에 김지운이 대답했다.

[그거다.]

[뭐?]

[국방부 몬스터 정보다.]

그리고 이어진 김지운의 대답에 이번에는 술은맥캘란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비유한 말인데 설마 그걸 가지고 왔을 줄이야?

어쨌거나 거래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녀가 한 말처럼 그 정보라면 호흐프 나무 열매 4개 정도는 충분히 줄만했으니까.

[트롤이다.]

그렇게 정보를 듣는 순간 술은맥캘란의 표정이 달라졌다.

김지운과 비슷했다.

굳은 표정을 지었고, 이내 이해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눈빛을 빛냈다.

느낀 것이다.

[너 잡으러 갈 거지?]

김지운이란 헌터는 절대 일부러 얼굴을 보고 만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특히 이런 세상에서는 더더욱.

최대한 리스크를 피하는 스타일이었다.

또한 이번 거래는 굳이 만나서 할 이유는 없었다. 기존에 하던 대로 거래를 하면 됐다.

술은맥캘란이 알아서 골렘으로 물건을 운반할 테니까.

그런데 그런 그가 직접 술은맥캘란을 찾아왔다면 그 이상의 원하는 게 있다는 의미.

[나랑 같이.]

실제로 술은맥캘란 역시 김지운이 무언가 협력을 원하기에 자신과의 미팅을 요청했다고 생각했다.

그곳이 지금 어비스넷을 가장 뜨겁게 만드는 국방부의 몬스터일줄은 몰랐지만.

하지만 듣는 순간 그녀는 이해했다.

[그래, 이래야 퍼스트 킬러지.]

눈앞의 김지운이 가진 그 별명을.

[최초는 다 네가 해야지. 이런 목숨 걸린 일을 다른 놈에게 맡기는 건 네 성격이 아니니까.]

더불어 그 별명이 생긴 이유도 알고 있었다.

김지운, 그는 결코 명성을 탐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단지 김지운은 자신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몬스터나 상황을 다른 이들이 해결하는 것을 믿지 못할 뿐.

그래서였다.

어비스에서 다들 골치 아파하는 재앙이 있으면, 김지운이 그것을 가장 먼저 잡게 된 건.

그 골칫거리를 다른 이에게 맡기는 게 김지운 입장에서는 더 불안한 일이었으니까.

물론 김지운이 움직이는 데에는 또 하나, 아주 중요한 게 있었다.

[드래곤슬레이어가 움직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테니까, 우리가 먼저 움직여서 처리하면 짭짤하겠네.]

메리트가 달콤해야 한다는 것.

지금도 그랬다.

지금 국방부에 있는 트롤만 처치하면 일단 특수부대가 진입하면서 가지고 온 물자를 노획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얻을 수 있는 물자 수준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작심하고 작전을 펼치는데 최소 2개 소대 정도 되는 전력이 투입됐을 터.

또한 몬스터를 처리해야 하는 만큼 탄약도 넉넉하게 챙겼을 터였다.

하물며 그곳은 국방부였다.

최전선 군부대만큼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기준을 벗어나는 수준의 무장이 갖춰져 있을 터.

[트롤 피는 짭짤하고 맛있지.]

결정적으로 트롤의 피는 매우 훌륭한 치료제였다.

정제를 해서 포션으로 만들어야 효과가 더 좋아지긴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효과가 적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생명줄과 같다는 의미.

여러모로 메리트는 높았다.

그럼 이제 남은 건 하나였다.

리스크.

사실 보이는 상황 자체는 그리 좋지 않았다.

일단 국방부 상황이 매우 안 좋았다. 1차 구출 작전 때문에 아수라장이 된 상태. 그 주변 몬스터들은 물론 헌터들까지, 모든 것들이 엄청난 경계를 한 상태였다.

또한 가는 길목도 문제였다.

밝히진 않았지만 여의도에 있는 김지운은 일단 원효대교나 마포대교를 건너야 했다.

어떤 몬스터가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리를 건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또한 국방부는 레드존으로 활동이 쉽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트롤이 문제였다.

예상했던 것보단 약한 몬스터이지만, 그 예상했던 몬스터가 아득한 몬스터였을 뿐 트롤도 말도 안 되는 괴물이었다.

당장 그곳에 투입된 특수부대원들이 인형마냥 뜯어지지 않았던가?

[너랑 나.]

그게 가장 큰 리스크였고, 그래서였다.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트롤은 장난이지.]

김지운이 마녀를 찾아온 이유.

둘의 능력 조합은 트롤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악몽과도 같았으니까.

[잡담이 길군. 대답은?]

그런 김지운의 제안에 술은맥캘란은 대답 대신 오른손을 내밀었다.

김지운이 그 손을 잡았다.

그 순간 들렸다.

[이수연과 파티를 맺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

'마녀하고 악수를 하는 건 이번이 네 번째로군.'

여러모로 새삼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

비단 김지운만 그런 건 아니었다.

[김지운,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 솔직히 다시는 못 들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같이 뛰는 건 이번이 다섯 번째인가? 그러고 보니까 마지막이 블루존이었지? 그 빌어먹을 머리 세 개 개새끼 잡으려고.]

이수연 역시 여러모로 새삼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

[그래서 디데이는 언제야? 손가락 세 개? 3일 뒤? 너무 늦지 않아?]

[세 시간 뒤에 국방부 근처, 정해진 위치에서 만난다.]

물론 이수연은 깨달았다.

[아, 씨발 떠올랐네.]

왜 자신이 김지운이란 능력 좋은 헌터를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았는지.

[그 빌어먹을 머리 세 개 달린 개새끼 잡고 너랑 다시는 악수 안 하겠다고 침 뱉었던 게.]

김지운은 언제나 따르는 입장에서 토가 나올 것 같은 계획을 세웠으니까.

[그래서 안 할 건가? 그럼 왼손 내밀도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헌터도 퍼스트 킬러의 지휘를 마다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퍼스트 킬러, 그는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헌터였으니까.

죽기 전까지는.

그러나 이제 그 죽음마저도 가짜였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 순간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할 거야, 미친놈아.]

이수연, 그녀가 그렇게 파티에 합류했고, 그 사실에 김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행은 몇 명 데려올 거지?]

그리고 이어진 물음에 이수연이 대답했다.

[응? 나 혼잔데? 내가 클랜하고 같이 다녔으면 지금 너랑 이야기하고 있겠니?]

[혼자? 저번에 2대2미팅은?]

[그야 뻥카지. 너인지도 모르는데 혼자인 걸 드러내는 병신짓을 내가 왜 하겠어? 왜 혼자라서 당황했어?]

그 대답에 김지운은 놀라지 않았다.

[아니, 예상했다. 네 술주정을 버티지 못해서 어비스 밖에서는 아무도 안 만나준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니까.]

[씨발.]

이 역시 예상 범주 내.

무엇보다 김지운은 필요 없었다.

[그리고 불의 마녀, 너만 있으면 충분하고도 넘치니까.]

그녀 이상의 전력이.

[그럼 국방부 근처에서 만난다. 자세한 위치는 쪽지로 전송해주지.]

[어디서 만나는데? 대충 말해줘 봐. 상호명이라도.]

[케이크하우스다.]

[디저트킬러새끼 아니랄까봐 미팅 장소도 케이크 카페네. 그런데 이런 곳은 어떻게 안 거야? 찾은 거야?]

[몇 번 갔던 데다. 오래 전에.]

그렇게 둘이 헤어졌다.

그로부터 3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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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드래곤 마운틴 (2)

4.

김지운, 돌아온 그가 국방부 행을 말했을 때 모두는 놀랐다.

당장 여의도 밖으로 한 발자국 나가는 것조차 엄청난 각오를 필요로 하는데 용산에 있는 국방부까지 간다?

저 한강 너머에 있는 그 지옥 같은 곳에?

이제 막 5킬로미터 러닝에 성공했는데 풀마라톤 대회에 나가야 한다는 말을 들은 것과 같았다.

아득했다.

그러나 놀람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가는 건 고강수와 나다."

김지운, 그는 이번 국방부행의 파트너로 고강수만을 골랐다.

고강수 역시 동료이긴 했지만 이영후와 강현중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예상 밖의 일이었다.

고강수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반면 김지운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일단 김지운은 여기서 믿을 만한 헌터 전부를 데리고 갈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모두가 떠나면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할 수 없었다.

또한 김지운이 보기에 모두가 간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필요한 건 한 명.

"이영후는 전투에 큰 도움이 안 된다. 또한 강현중, 네가 가진 사격 능력은 트롤 상대로 유효하지 않다. 남은 건 고강수 뿐."

그리고 셋 중에서 트롤 상대로 가장 도움이 되는 헌터는 고강수였다.

이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는 없었다.

의문은 고강수가 그리 믿을 만한 이가 아니라는 것.

당장 고강수 본인이 그랬다.

그는 김지운에게 충성을 바쳤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충성을 바치지 않았다.

사냥개처럼 뛰어줄 순 있지만, 사냥개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는 늑대였다.

"고강수, 불만 있나? 있다면 굳이 따라가지 않아도 좋다."

"아닙니다. 데려가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물론 고강수는 이 기회를, 강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 모습에 김지운은 더 이상 말을 건네지 않았다.

고강수가 길들여지지 않는 늑대란 것은 알았지만, 사실 그건 중요치 않았으니까.

이빨이 날카로운가, 아닌가, 그게 김지운에게는 더 중요할 뿐.

'고강수가 꽤 도움이 될 거다.'

더불어 이번 용산 원정에서 김지운은 고강수가 여러모로 도움이 되리란 걸 확신했다.

그렇게 김지운과 고강수가 용산으로 떠났다.

"이영후."

"예."

"얼려놓은 케이크 하나만 꺼내주도록."

그 말을 남긴 채.

5.

김지운, 63빌딩을 나온 그가 용산으로 가기 위해 잡은 루트는 다리가 아니었다.

'경부선을 따라 이동한다.'

한강대교와 원효대교 사이에 자리 잡은 철도용 다리를 따라 이동했다.

현명한 조치였다.

일단 한강 다리에는 이미 차량들이 대거 주차된 상태였다. 그만큼 어비스 좀비가 많았다.

반면 철로는 달랐다. 사람이 있을 가능성은 조금도 없었다.

단, 김지운은 말했다.

'용산역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용산역은 쳐다도 보지 말라고.

'폭주했던 전철이나 기차들이 용산역에 뭉쳐져 있을 것이다.'

김지운이 코스트코 양평점을 가기 전에 말했던 폭주의 끝이 용산역일 가능성이 높았고, 당연히 그곳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을 가능성이 컸다.

때문에 한강을 건너는 순간 김지운과 고강수는 철로에서 벗어났다.

이후에는 빠르게 이동했다.

때로는 지붕 위로.

으어어어!

때로는 어비스 좀비 사이를 가로 지르며.

당연히 이동 속도는 매우 느렸다.

본래대로라면 1시간이면 닿을 거리를 김지운과 고강수는 1시간 30분이 지난 후에야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들은 볼 수 있었다.

흔들흔들!

약속 장소였던 케이크 하우스, 그 디저트 카페 밖에 마련된 식탁과 의자에 앉아 손을 흔드는 마스크 쓴 여인을.

그 모습에 고강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또한 날카로워졌다.

마치 칼집에 넣어둔 칼을 뽑은 것처럼.

그 사실에 마스크 쓴 여인의 눈매가 바뀌었다.

이수연이 눈웃음을 지었다.

확신했으니까.

'새끼 어비스 출신 아니네.'

고강수의 내력을.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더불어 김지운이 그에게 자신이 얼마나 미친년인지 설명해 주지 않았다는 것까지.

그도 그럴 것이 보통 헌터들은 헌터를 마주하는 순간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영원한 아군도, 적군도 없는 것, 그게 바로 어비스였으니까.

특히 어비스를 조금이라도 경험해 본 헌터들이면 알았다.

이 어비스에서 다른 헌터들하고 이빨을 드러내고 사는 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

하물며 오늘은 대놓고 손잡으러 온 자리 아닌가?

물론 그 사실에 이수연은 별 감흥을 가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내밀 뿐이었다.

오른손을.

고강수 역시 그 손을 잡았다.

그렇게 세 명이 파티가 됐다.

그 순간이었다.

끄르르!

지척에서 가래가 끓는 듯한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에 고강수가 긴장한 표정으로 자세를 낮추고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봤다.

'처음 듣는 소리다!'

모르는 몬스터다, 헌터에게 그만큼 위험한 건 없었으니까.

반면 김지운과 이수연은 달랐다.

소리가 나는 순간 그 둘은 소리가 난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새하얀 안개 사이에서 흐느적거리는 3미터짜리 거인을.

끄르르!

트롤이었다.

끄르르!

그런 트롤의 외형은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피부가 마치 진흙처럼 보였다.

마치면 그대로 푹 들어갈 것처럼.

이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거대한 덩치였고, 양 팔의 길이가 서로 달랐다. 오른팔의 손은 땅에 닿을 법했으나, 왼팔의 손끝은 허리를 간신히 넘는 수준이었다.

움직임 역시 느릿하기 그지없었다.

무시무시하다기보다는 괴상하다, 라는 느낌이 가득한 괴물.

그러나 트롤은 어비스에서 매우 막강한 몬스터였다.

보이는 것과 달리 매우 잽쌌으며, 특히 저 긴 오른팔을 해머처럼 휘둘렀을 때의 파괴력은 상식 밖이었다.

자동차 하나쯤은 한 번에 박살을 내고도 남을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골치 아픈 것은 저 진흙 같은 피부에서 나오는 무시무시한 방어력과 회복력이었다.

그럼에도 김지운과 이수연, 둘은 걱정이 없었다.

트롤이 가진 치명적인 약점을 알았으니까.

끄르르!

바로 저 소리였다.

트롤, 놈이 숨을 쉰다는 것!

순식간이었다.

김지운, 그가 헥타르 거미줄을 염력으로 움직이며 단숨에 트롤의 목을 휘감았다.

끄르르륵!

그렇게 거미줄이 단숨에 트롤의 진흙 같은 피부를 파고 들어갔다.

그 상태에서 김지운이 거미줄에 점성을 넣었다.

끄르르르르르!

트롤이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당장 죽을 듯한 기세는 아니었다.

실제로 김지운이 지금 한 정도로 트롤의 숨통을 완전하게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람으로 따지만 목을 조르는 정도, 숨이 막힐 듯하지만 아직 숨통은 트여서 무언가를 할 수 있을 정도.

이 정도로는 결코 트롤을 처치할 수는 없었다.

'마녀.'

그래서 김지운은 이수연을 데려왔다.

화르르!

그녀가 자신의 손바닥 위로 불꽃을 만들었고, 그 불꽃은 그대로 제비 한 마리가 되었다.

"휘이!"

그리고 그녀가 휘파람을 부는 순간 그 새 제비가 그대로 단숨에 트롤의 머리를 향해 날아간 후에 트롤의 얼굴에 달라붙었다.

달라붙는 순간 그대로 제비는 다섯 마리의 도마뱀이 되어 눈을 덮고, 콧구멍을 파고들고 입 안으로 들어갔다.

끄르르르륵!

가뜩이나 숨이 넘어가 죽겠는데 코와 입 그리고 눈에 불덩이가 들어오자 트롤이 몸부림을 쳤다.

그런 트롤에게 김지운이 마지막을 날렸다.

허리춤에서 헝겊을 꺼내고는 그대로 헝겊 위에 가지 온 것을 뿌렸다.

가솔린을.

그렇게 가솔린을 적신 헝겊으로 트롤의 얼굴을 뒤덮었다.

화르르르!

끄르르르!

그렇게 트롤이 몸부림을 치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트롤을 처치했습니다.]

[도감에 트롤이 등록됩니다.]

[체력이 2포인트 상승했습니다.]

그 광경을 뒤늦게 확인한 고강수는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이렇게 잡다니.'

그만큼 김지운과 이수연 콤비의 사냥법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목을 조이고, 코와 입을 불꽃으로 막은 후에 가솔린으로 적신 헝겊을 뒤덮는다?

이보다 과연 고통스럽게 그리고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 방법을 고강수는 도무지 떠올릴 수 없었다.

반면 김지운과 이수연은 달랐다.

그 둘은 별 다른 감흥을 느끼지 않았다.

'역시 킬러, 솜씨 끝내주네.'

'마녀답군.'

그들에게는 특별할 게 없었으니까.

물론 그 둘이 보여준 것은 헌터들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김지운의 염력도 염력이지만, 이수연이 보여준 불장난은 불장난꾼들이 보면 기겁할 일이었다.

불장난으로 만들어낸 불꽃을 다루는 것은 연기를 다루는 것과 매우 비슷했다.

형태가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새를 만든다? 이건 노력의 유무가 아니었다. 타고난 재능의 유무.

하물며 이수연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새처럼 움직인 후에 달라붙는 순간 도마뱀으로 바꾸었다.

김지운이 은퇴하기 전에 그 정도 불장난이 가능한 불장난꾼은 다섯 명에 불과했다.

'그때보다 더 예리해졌다.'

그리고 지금 이수연의 솜씨는 김지운이 은퇴하기 전보다 나았다.

'놀진 않은 모양이군.'

김지운이 은퇴의 나날을 즐기는 동안 이수연은 현역으로 어비스를 모험했다는 증거.

여하튼 그 두 헌터가 단숨에 트롤을 잡았다.

매우 빠르게.

그리고 아주 조용하게.

솔직히 이 대목에서 가장 포지션이 애매해진 것은 고강수였다.

저 둘의 전투 속에서 그가 나설 곳은 어디에도 없어 보였으니까.

그러나 고강수는 별 의문을 가지 않았다.

이미 명령을 받았으니까.

[트롤의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낸 후에 핏물을 가지고 온 비닐 봉투에 담아라.]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6.

김지운 파티가 13마리째 트롤을 잡았을 때였다.

'국방부로 진입한다.'

김지운이 국방부, 그러니까 지도 앱으로 봤을 때 그냥 산지처럼 보이는 그 영역으로 진출했다.

동시에 모두가 지급된 호흐프 열매를 머금었다.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타이밍이었다.

끄르르르!

아직 주변을 맴도는 트롤이 더 있어 보이는데 여기서 진입을 한다?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는 없었다.

고강수는 이미 사전에 설명을 들었다.

[우리 목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트롤의 피를 모으는 것. 다른 하나는 구조대가 남기고 간 것들을 회수하는 것.]

애초에 김지운 파티의 목적은 장성들 구출이 아니었다.

일단 벙커에 숨은 장성들은 구하고 싶다고 해서 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 벙커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을뿐더러, 김지운 파티가 운 좋게 벙커에 도달했다고 치자.

그 벙커 너머에 있는 이들에 제 이름은 김지운, 헌터입니다, 라고 말하면 그들이 드디어 나를 구하러 왔군! 역시 자네야! 라고 문이 열릴 리가 만무했으니까.

그리고 나오더라도 김지운 파티는 그들을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도, 딱히 그들을 데리고 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챙길 걸 챙긴 후에 군부에 알리면 그들이 그때 2차 구출 작전을 펼칠 터.

그 후에는 이제 만나서 더러웠고, 다시 만나지 말자, 를 외치면 될 뿐이었다.

여하튼 김지운 파티는 굳이 트롤 몰살을 위해 악착 같이 덤벼들 필요가 없었다.

[열세 마리를 잡았으니 이제 안에 있는 트롤들이 나올 것이다.]

그걸 위해서 일부러 국방부 외부의 트롤들을 잡았다.

초인종을 열심히 누른 셈.

당연히 그 초인종 주인집에서는 트롤들이 아주 성난 상태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빈 집을 터는 것뿐!

물론 이 설명을 이수연에게는 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수연은 딱히 의문을 던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수연은 잘 알았다.

[낚시 할 거지?]

김지운이 어떤 식으로 물건을 회수할지를.

그리고 그 생각대로 김지운은 낚시를 시작했다.

국방부 건물을 향하는 길, 그 길에 널브러진 구조대원들의 시체를 확인 후에 접근하지 않은 채 염력으로 그 시체가 가지고 있는 장비들을 하나씩 챙겼다.

총을 챙겼고, 탄창을 챙겼고, 수류탄을 챙겼다.

스스스!

그 과정은 아주 조심스럽게 이루어졌다.

이제까지 김지운이 했던 그 어떤 작업보다도.

당연했다.

'이 시체는 트롤들의 식량이다.'

어비스의 몬스터들에게 어비스 좀비는 인간으로 따지면 그냥 잡초와 같았다.

먹을 것이 아니었다.

반면 그냥 시체는 달랐다. 어비스의 몬스터들에게는 아주 귀한 식사거리였다. 인간으로 따지면 원플러스짜리 한우 정도는 되는 셈.

그런 시체를 건드린다?

트롤 입장에서는 미치는 일이었다.

당장 시체 위치가 움직이기만 하더라도 트롤들은 거의 즉각 반응할 가능성이 높았다.

비단 이것만 그런 게 아니었다.

어비스에서도 이런 경우가 많았다.

기껏 몬스터를 잡아놓고는 더 강력한 몬스터가 그 몬스터를 차지하는 바람에 먼 발치에서 손가락만 빠는 경우가.

김지운에 대한 어비스 헌터들의 믿음과 신뢰가 높았던 이유 중 하나도 그 때문이었다.

김지운은 먼 발치에서 아이템을 회수하는 것을 정말 귀신보다 더 잘한다는 것.

이번에도 그랬다.

'솜씨 안 죽었네.'

김지운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잘 보이지도 않는 시체에서 무기들을 챙겼다.

K2는 물론 K15 경기관총을 시작으로 K14저격소총에 K201 유탄발사기.

'와, 이걸 낚네?'

그리고 M60기관총까지 가져왔다.

그렇게 모인 무기들의 수준은 이제까지 김지운이 확보했던 무기와는 여러 부분에서 위력이 달랐다.

이상할 건 없었다.

여기 들어온 특수부대원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투입된 게 아니었다.

몬스터란 가공할 괴물을 상대할 각오를 하고 온 이들이었고, 당연히 그들은 K2 같은 자동소총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강력한 무기로 무장할 수밖에 없었다.

'나쁘지 않은 성과다.'

김지운이 이곳에 온 이유이기도 했다.

구할 수 있는 화력이 다르다는 것.

여기서 김지운은 타이밍을 가늠했다.

'호흐프 열매 지속 시간이 20분 남았다.'

떠나야 할 타이밍을.

어비스에서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어비스에서는 시간이 중요했다. 전설 등급 아이템을 두고도 정해진 시간을 벗어나면 물러나야 했다.

목숨보다 귀한 건 없었으니까.

적어도 김지운은 그랬다.

'얼추 챙길 건 챙겼다.'

더불어 소득은 적지 않았다.

보람은 가득했다.

해서 김지운은 여기서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물러나고자 했다.

그 순간이었다.

끄륵, 끄륵!

조금은 다른 트롤의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에 김지운과 이수연이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동시에 그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그래, 그거야.'

알았으니까.

'트윈 헤드 트롤이다.'

이곳의 보스 몬스터가 다른 무엇도 아닌 머리 둘 달린 트롤이라는 것을.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김지운이 고강수에게 신호를 보냈다.

[보스 몬스터를 사냥한다.]

계획이 변경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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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드래곤 마운틴 (3).

7.

어비스에서 계획이 변경되는 경우는 많았다. 

뭐가 나올지도, 있는지도 모르는 어비스에서 원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적었으니까.

그렇기에 계획대로 진행되는데 그 계획을 변경하는 경우는 없었다.

제아무리 탐스러운 과실이 보여도 계획에 없으면 나중을 기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뛰어난 헌터일수록 더더욱 그랬다.

김지운도 그랬다.

그는 오늘 국방부에서 보스 몬스터를 조우조차 하지 않을 생각으로 왔었다.

잡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끄륵, 끄륵!

그러나 그 보스 몬스터가 트윈 헤드 트롤이란 걸 보는 순간 김지운의 계획이 바뀌었다.

이수연도 마찬가지였다.

즉, 이유가 있었다.

'트윈 헤드 트롤은.'

'레드존에서 가장 약한 보스 몬스터다.'

아주 분명한 이유가.

물론 다른 헌터들이 들으면 어처구니가 없는 이유였다.

트윈 헤드 트롤은 결코 약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일단 머리 두 개 달린 놈은 일반 트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덩치가 거대했다.

트윈 헤드 트롤은 작은 개체의 신장이 5미터 정도, 큰 놈은 7미터에 이를 정도! 2미터도 채 되지 않은 인간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아득한 거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방어력, 회복력, 파괴력, 체력 등 모든 부분에서 일반 트롤과는 비교를 거부했다.

그 둘의 차이는 어린 아이와 성인 남자의 차이, 그 이상이었다.

'몸뚱이 스펙 말고는 대단할 게 없다.'

달리 말하면 그뿐이었다.

그냥 일반 트롤보다 몇 배 강하다, 그 외에 트윈 헤드 트롤이 가지는 특이점은 없었다.

이게 레드존에서 트윈 헤드 트롤이 가장 나약한 보스 몬스터로 취급되는 이유였다.

레드 클래스의 보스 몬스터들 중에는 대부분이 아주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듣는 순간 환상을 보게 만드는 울음소리를 낸다거나 몸이 반쯤 투명해진다거나, 번개를 다룬다거나, 주변 몬스터들을 미쳐 날뛰게 만든다거나, 정신이 날아갈 정도로 지독한 냄새를 뿜는다거나.

무엇보다 김지운과 이수연, 그 둘에게는 가능했다.

'어차피 숨 쉬는 놈이다.'

그런 방어력과 회복력을 무시하고 트윈 헤드 트롤을 잡는 것이.

반면 메리트는 확실했다.

보스 몬스터를 잡으면 스킬 룬은 확정적으로 나왔으니까.

계획을 변경할 가치는 여러모로 충분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 전투에 돌입한 건 아니었다.

김지운 파티는 일단 소리가 난 방향으로 조심스레 이동했다. 그 후에 확인했다.

끄륵, 끄륵!

국방부 본관 입구 앞에서, 별을 가진 이들만이 고개를 숙이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그 입구 앞에 주저앉은 채 특수부대원의 몸뚱이를 서로 반씩, 상체와 하체로 나눠서 씹어 먹고 있는 트윈 헤드 트롤의 모습을.

제대로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새빨간 안개 속 세상이 허락하는 것은 어렴풋한 실루엣 정도만이 전부였으니까.

그러나 소리는 달랐다.

으드득으드득!

인간의 몸뚱이가 뼈째로 씹히는 소리는 조금의 가감 없이 김지운 파티의 귓가를 두드렸다.

섬뜩한 소리였다.

으드득!

'빌어먹을, 뇌리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다.'

그 냉혹하기 그지없는 고강수조차도 소리를 듣는 순간 눈동자가 흔들릴 만큼.

반면 김지운과 이수연은 달랐다.

그 소리를 듣는 둘의 눈빛은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익숙한 수준을 넘어 그들에게는 별로 감흥조차 느껴지지 않는 소리였다.

저보다 더 섬뜩한 소리를, 그러니까 인간이 산 채로 씹히는 소리도 적잖게 들어봤으니까.

도리어 이 순간 둘은 꽤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식사 중이다.'

'긴장이 풀렸어.'

야생의 짐승들이 그러하듯, 몬스터들 역시도 긴장한 상태에서는 식사를 하지 않았다.

너무 긴급하면 살기 위해서 식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역시 사냥하는 입장에서는 좋은 기회였다.

음식을 씹고 있는 중에는 씹는 소리에 청각이, 먹는 것의 냄새에 후각이 제 역할을 못했으니까.

어비스의 안개에서 두 감각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 것이었으니까.

물론 그런 이유로 식사 시간이 긴 몬스터는 많지 않았다.

트롤도 마찬가지였다.

놈의 식사시간은 5분을 넘지 않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이제 막 식사를 시작했다?

이 정도면 김지운과 이수연에게는 케이크와 위스키 판이 깔린 것과 같았다.

그 둘은 망설이지 않았다.

가장 먼저 김지운이 움직였다.

"사안."

보이는 세상을 바꾼 채.

그 순간 김지운의 눈에는 거대한 트윈 헤드 트롤의 모습이, 놈의 색깔이 보였다.

두 개의 머리도 보였다.

여기서 김지운은 망설이지 않았다.

헥타르 거미의 거미줄이 빠르게 트윈 헤드 트롤을 향해 날아갔고, 단숨에 두 머리의 목을 휘감았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트윈 헤드 트롤이 제대로 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끄엑, 끼엑!

그저 피 범벅이 된 주둥이로 비명을 내지를 뿐.

그 순간 이수연도 움직였다.

그녀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입고 있는 점퍼, 그 안주머니에서 은색 병을 꺼냈다.

소위 술꾼들이 술을 넣고 다니는 그 술병을.

이수연이 그 술병 안에 있는 것을 바닥에 흩뿌렸고, 그와 동시에 불을 만들어냈다.

화르르르!

그러자 이제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거센 불길이 만들어졌다.

심지어 불꽃의 색깔은 파란색이었다.

'불두꺼비의 침이군.'

김지운은 그 액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저 불두꺼비의 침 한 컵에 불을 지피면, 거의 하루 종일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것을 지금 트윈 헤드 트롤의 얼굴에 붙인다?

'끝장이다.'

트윈 헤드 트롤의 머리통이 하루 종일 불타오를 터였다.

물론 위력만큼 리스크도 있었다.

불장난으로 만들어낸 불꽃은 시전자에게 영향을 주진 않지만,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다른 종류의 일.

또한 불길이 거세질수록 다루기는 더더욱 힘들었다.

그냥 사육농가에서 볼 수 있는 젖소 등에 타는 것과 텍사스 로데오 대회에서 악명 높은 황소 뒤에 올라타는 것, 그 정도 수준의 차이가 있었다.

해서 김지운은 걱정하지 않았다.

불의 마녀는 그 악명 높은 황소 위에 올라탄 채 위스키 한 병을 비우고도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실 여인이었으니까.

그 예상대로 이수연은 거세진 불꽃으로 매 두 마리를 만들었고, 동시에 매를 날렸다.

그리고 날아간 매가 숨 막히는 소리를 내뱉는 트윈 헤드 트롤의 두 머리를 덮쳤다.

화르르르!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여기서 사냥은 사실상 끝이었다.

이대로 물러나기만 하더라도 트윈 헤드 트톨은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고, 죽음을 마주할 터.

그리고 어비스라면 물러나서 적당한 거리만 두고 지켜만 보면 될 뿐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어비스가 아니었다.

김지운 파티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해서 김지운은 수류탄 두 개를 꺼냈고, 그대로 수류탄을 트윈 헤드 트롤을 향해 던졌다.

제대로 조준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근처에 도달만 하면, 그러면 염력을 이용해 단숨에 원하는 곳에 넣을 수 있었으니까.

꺽, 꺽!

트윈 헤드 트롤의 주둥이에.

핑, 핑!

그렇게 입 안에 들어가 수류탄들의 안전핀들이 자동으로 뽑혔다.

그리고 잠시 후.

꽈과과광!

강렬한 폭발음이 들렸다.

섬뜩한 소리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섬뜩한 것은 트윈 헤드 트롤을 처치했음을 알리는 알림이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게 트윈 헤드 트롤이 가진 회복력의 수준이었다.

수류탄이 입 안에서 폭발해도 즉사하지 않는다는 것.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대로 버틸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 

머리통이 곤죽이 되고도 멀쩡히 살아 움직이는 몬스터가 어비스에 적잖게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트윈 헤드 트롤은 아니었다.

이윽고 들렸다.

[트윈 헤드 트롤를 처치했습니다.]

[도감에 트윈 헤드 트롤이 등록됩니다.]

[근력이 5포인트 증가합니다.]

사냥이 끝났음을 알리는 알림이.

그 순간 김지운이 고강수에게 다가가 말했다.

"고강수."

육성으로.

"이동한다."

그것은 긴급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의미, 때문에 고강수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없이 바로 움직였다.

트윈 헤드 트롤의 시체가 있는 방향으로.

그런 고강수에게 김지운은 말했다.

"그쪽이 아니다."

지금은 스킬 룬을 챙길 때가 아님을.

"이곳에서 도망친다."

그 순간 들렸다.

두두두두!

트롤 무리들이 폭음을 듣고 달려오는 소리가.

8.

어비스에서 헌터들을 가장 괴롭히는 건 시간이었다.

언제나 헌터들에게는 시간이 제한됐으니까.

그렇기에 헌터들이 명심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시간에 쫓기지 않는 것이었다.

김지운 역시 그랬다.

애초에 그는 말했다.

보스 몬스터 사냥을 하겠다고. 그 어디에도 아이템 확보라거나 그런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실수가 아니라 정말 목적이 보스를 사냥하는 것, 그것뿐이다.

그리고 김지운에게는 그게 당연했다.

보스 몬스터를 사냥한 후에 스킬 룬이 맺히기 까지는 생각보다 꽤 긴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보다 더 골치 아픈 건 그 소란을 주변 트롤들이 지켜만 볼 리 만무하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김지운은 수류탄도 썼고, 수류탄이 만들어내는 소란은 총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두두두두!

사실상 살아남은 모든 트롤들이 트윈 헤드 트롤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몰려왔다.

끄르르르!

그리고 우두머리의 처참한 몰골을 보는 순간 모든 트롤들이 분노 가득 찬 울음을 토해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트롤들은 죽은 우두머리를 위해 노래를, 진혼곡을 불러주는, 그런 감미로운 괴물들이 아니었다.

끄르!

끄어!

놈들은 보이는 모든 것을 상대로 난동을 뿌렸다.

나무를 뽑고, 건물의 창문을, 벽을 그리고 기둥을 부수었다.

그 파괴력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단단한 국방부 건물 벽이 종잇장처럼 부서질 정도였다.

콰과과광!

국방부 건물이 붕괴되거나 그러는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트롤들의 분노를 맞은 국방부 건물의 몰골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그때였다.

빠아아앙!

자동차 클랙슨 소리가 울렸고, 그 순간 트롤들 모두가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들렸다.

이미 분노에 빠진 트롤들에게 사고란 없었다.

끄르르!

모든 트롤들이 동시에 소리가 난 곳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했다.

그 후였다.

김지운과 이수연 그리고 고강수, 셋이 트윈 헤드 트롤의 시체 앞에 등장한 것은.

그렇게 등장한 셋은 머리통이 짓뭉개진 트윈 헤드 트롤의 시체를 보고 감상에 젖거나 그러지 않았다.

시간이 촉박했다.

'시체는 포기한다.'

여기서 모두는 트윈 헤드 트롤의 피를 포기했다. 매우 값진 것이었지만, 지금 이대로 시체를 처리하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많이 없는 바.

또한 여기서 트윈 헤드 트롤의 핏물을 건드린다는 것은 온몸으로 트윈 헤드 트롤 살해자임을 광고하는 꼴과 같았다. 트롤이 후각이 예미한 몬스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인간보다는 후각이 좋았다. 하물며 모든 몬스터들은 피 냄새에 매우 민감했다.

결국 노리는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트윈 헤드 트롤이 착용한 아이템이었다.

정확히는 트윈 헤드 트롤이 식사를 위해 놓아둔 무기였다.

무기 타입은 도끼였다.

트롤 입장에서는 그냥 평범한 수준의 도끼였지만, 플레이어의 기준에는 거대하기 그지없는 도끼였다.

[두개골 파괴자]

- 아이템 등급 : 유니크

- 11레벨 이상 착용 가능

- 근력 150포인트 이상 착용 가능

- 공격력 : D+랭크

- 내구도 : D+랭크

- 착용 시 근력 +13

- 착용 시 체력 +12

- 착용 시 마력 -8

- 대상의 두개골 명중 시 공격력 C-랭크로 증가

- 머리만을 쪼개기 위해 만들어진 도끼다. 매우 크다.

더불어 옵션 역시 도끼 크기만큼이나 강렬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모두의 시선은 그 도끼에 꽂히지 않았다.

꽂힐 수가 없었다.

활짝 핀 꽃, 그 꽃에 맺힌 스킬 룬이 보였으니까.

[룬(사이코메트리)]

- 등급 : 유니크

- 접촉한 것으로부터 기억을 읽어낸다. 스킬 랭크가 상승할수록 더 과거의 기억을 읽어낼 수 있다.

- 10레벨 이상 습득 가능.

- 음험한 사기꾼만 습득 가능.

사이코메트리.

누군가는 전투와 상관없는 스킬이라고, 별 쓸모가 없다고 생각할 만한 스킬이었다.

그러나 여기 있는 이들은 달랐다.

일단 이수연은 알았다.

'이 미친 게 여기서 나온다고?'

이 스킬의 값어치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어비스에서 적잖게 경험했던 바.

고강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비스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지만,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이 스킬의 값어치가 어지간한 전투 스킬 이상의 값어치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둘은 알았다.

'디저트 킬러한테 이걸 주면······.'

김지운에게 이걸 쥐어주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김지운 역시 알았다.

이 스킬을 자신의 추가된 슬롯에 넣기에 부족함이 없음을.

순식간이었다.

꿀꺽!

김지운이 바로 스킬 룬을 삼켰다.

그와 동시에 이수연을 향해 눈빛을 보냈다.

'이 값은 걸어두겠다.'

이 스킬 룬 값을 청부하라고.

상황은 거기까지였다.

챙길 것을 챙긴 김지운 파티는 자리를 벗어났다.

끄르르르!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김지운 파티가 있던 곳에 트롤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낌새를 느끼고 돌아온 녀석들이었다.

만약 김지운 파티가 나가는 게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적잖은 전투를 치러야 했을 터.

그 소리에 고강수와 이수연이 고개를 돌려 국방부를 바라봤다.

특히 그중 이수연의 눈동자에는 고민이 있었다.

'저기 있는 똥별들을 그냥 놔둬도 되려나?'

결국 가장 중요했던 폭탄은 남겨둔 상황이었으니까.

반면 김지운은 달랐다.

그는 저곳의 있는 별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김지운은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미련을 가지는 성격이 아니었다.

'트윈 헤드 트롤까지 잡았다. 그 후에 정보를 줬는데도 구출을 못 한다면 둘 중 하나다.'

관심 있는 건 후 상황이었다.

'능력이 없거나 아니면 애초에 구할 생각이 없었거나.'

자신이 떠나고, 이 정보를 전달한 후의 상황.

그거야말로 김지운의 운명에 영향을 주는 것이었으니까.

끄르르르!

그렇게 모두가 트롤들의 분노에 찬 울음을 배경음 삼은 채 마주했던 장소로 돌아왔다.

케이크하우스, 그 카페로.

그러나 숨 돌리는 이들은 없었다.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이제 계산부터 하자고.]

가장 먼저 오늘 얻은 수확을 나눠야 했다.

[총기랑 탄약은 대충 반씩 나누면 되겠고, 트롤 피도 반띵하면 되겠고, 스킬 룬은 먹었고, 도끼는 어떻게 할래? 필요해? 필요하면 가져가.]

여기서 이수연은 아이템과 룬을 양보했다.

물론 말 그대로 양보였다.

[대신 장부에는 분명하게 올려놔.]

훗날을 위한 양보.

사실 그건 꽤 비싼 양보였다.

[마녀에게 큰 빚을 졌다고.] 

그러나 김지운은 마다하지 않았다.

스킬 룬과 도끼, 둘 모두 김지운 입장에서는 크나큰 도움이 될 만한 아이템이었다.

무엇보다 이수연은 믿을 만한 헌터였다.

[나중에 술자리에 부르면 무조건 달려와서 누님이라고 고개 숙일 것, 이라고.]

덕분에 분배는 쉽게 끝났고, 이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과제를 마주해야 했다.

[자, 그럼 이제 여기서 헤어지자고.]

이 물건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

여기서 이수연은 별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녀에게는 골렘이 있었을뿐더러, 김지운 파티 입장에서는 그녀 처지를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김지운 파티였다.

이것들을 가지고 다리 근처까지 가는 것도 쉽지 않지만, 다리를 건너는 건 더더욱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 김지운은 간단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리어카를 이용한다.]

그 해결책에 고강수의 표정이 굳었다.

리어카를 끌고 여의도까지 간다? 평상시라면 못할 건 없었지만, 지금은 평상시가 아니었다.

가는 길이 리어카가 갈 수 있을 만큼 좋지 못했다.

특히 다리는 더더욱 상황이 안 좋았다. 일반 한강다리는 자동차와 어비스 좀비로 가득 찬 상황이었고, 그들이 왔던 철로는 리어카를 끌기에 결코 적합하지 않았다.

물론 김지운도 그 문제를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한 대응책도 준비해 왔었다.

[고강수, 네가 리어카를 들고 움직인다.]

그 메시지와 함께 김지운이 고강수에게 유리룡의 눈을 건네줬다.

[파워업 쓰고. 머리 위로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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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관악산채 (1).

1.

김지운, 그가 돌아왔을 때 모두는 놀랐다.

"고강수, 너 그거 어떻게 들고 온 거야?"

김지운이 아니라 리어카를 머리 위에 짊어지고 온 고강수의 모습에.

그만큼 고강수의 모습은 아포칼립스 세상을 경험한 생존자들에게도 놀라웠다.

지금 고강수가 든 리어카는 그냥 빈 리어카도 아니고, 그 안에는 무겁기 그지없는 무기와 탄약 그리고 트롤의 피가 가득 차 있었으니까.

"파워업 스킬을 쓴 거다."

달리 말하면 이게 헌터의 수준이었다.

"근력 스탯이 100포인트를 넘기고, B랭크 정도면 경차 하나 정도 들어 올리는 건 문제없지."

인간이 한계를 가뿐히 벗어나는 수준.

하지만 감탄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봐야 트롤 수준이지만."

이렇게 강해지더라도 어비스의 몬스터들 기준에서는 개미와 사마귀 수준의 차이일 뿐이었다.

그들에게는 엄청난 차이지만 몬스터들에게는 그냥 언제든 짓밟을 수 있는 수준.

"그동안 상황은?"

"너무 조용해서 지루할 지경이었습니다."

어쨌거나 고강수의 힘 자랑에 모두가 감탄할 만큼, 그만큼 여의도에는 별 일이 없었다.

김지운 입장에서는 기꺼운 일이었다.

그러나 쉴 틈은 없었다.

돌아온 김지운은 일단 무기부터 체크했다.

대부분은 어느 정도 정비가 필요했지만, 다행히도 크게 고장이 난 무기는 없었다.

탄약도 체크했고, 그것들을 김지운이 아는 곳에만 숨겨 두었다.

그 후에는 다시 여의도를 정비했다.

어비스 좀비들을 처리했고, 동시에 백화점과 63빌딩 그리고 성모병원 사이의 길을 정비했다.

부릉!

길가에 장애물들과 같았던 자동차들을 치웠다.

그리고 그런 자동차들을 오아시스 지역 주변에 배치했다.

바리게이트를 만들었다.

사실 그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단순한 상식으로는 바리게이트를 만드는 게 안전하다고 여기겠지만 지금 세상은 단순한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아니었다.

"저기 대장."

일단 이런 바리게이트는 오크 정도 되는 몬스터들 상대로는 유효할지언정 트롤 정도면 되더라도 효과가 전혀 없었다.

"너무 티 나지 않습니까?"

반면 이런 식으로 인위적인 바리게이트를 다른 생존자들이 본다면 그들은 바로 이곳에 생존자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오크나 코볼트가 후진 기어를 놓고 후방카메라를 보면서 운전을 해서 바리게이트를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는 이는 없을 테니까.

즉, 이건 일종의 선언이었다.

이곳에 살아있음을 알리고, 동시에 이곳을 들어오기 위해서는 전쟁을 치를 각오를 하라는 선언.

"티가 나도 상관없다."

물론 그것도 있었다.

"이제 여기까지 오는 인간들은 보통 인간들이 아니니까."

더 이상 눈속임 따위가 먹히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

그렇게 열심히 여의도를 정비하고, 주변을 탐색하며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대장! 글 올라왔습니다!"

소식이 날아왔다.

[제목 : 드래곤 마운틴 공략 완료.]

[작성자 : 드래곤슬레이어]

[내용 : 긴 말 안 한다. 드래곤 마운틴 국방부에 있는 몬스터들 정리했다. 벙커는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다.

여하튼 몬스터 정리했으니까 괜히 여기 폭격하고 지랄하지 마라. 와서 그냥 똥별이든 뭐든 데리고 가라.

정 필요하면 쪽지 보내라. 길안내 해줄 테니까. 유료이긴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또 폭격하면 그때는 네놈들이 뒈진다.]

드래곤 슬레이어, 용산 국방부 청소를 위해 파티를 모집했던 그는 그 글과 함께 사진을 첨부했다.

처참하기 그지없는 용산 국방부 건물 앞에서 찍은 사진을.

- ㅇㅇ : 무슨 아재들 등산 동호회임? 꼰대 냄새 물씬 풍기네 ㅋㅋ

마치 등산을 하고 내려온 이들이 찍은 단체사진처럼 18명이 모여 저마다 엄지를 들거나 V자 표시를 한 채, 심지어 손으로 '드래곤마운틴 청소 동호회' 라고 쓴 플랜 카드를 펼친 채 찍은 그 사진에서는 적잖은 연륜의 냄새가 났다.

그러나 그 사실을 찌르는 이들은 없었다

ㄴ 123 : 야, 아가리 쪼개지 마. 지금 저 아재들이 작심하면 댓글 단 놈 머리통 쪼개는 건 일도 아님.

ㄴ qwe : 인터넷이 분노조절기능 소실시키는 건 확실한 듯. 이걸 보고 쪼개는 인간이 있을 줄이야.

지금 이 상황에서 레드존에 들어가서 몬스터들을 정리하고, 사진마저 찍는다는 것.

그것은 보통 수준이 아니라는 의미였으니까.

모두가 최소 10레벨 이상에 강력한 아이템으로 무장했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래서였다.

- ㅁㄴㅇ : 아까 그 아재 냄새 난다고 댓글 단 놈 댓글 삭제했네 ㅋㅋㅋ

섣불리 댓글을 달았던 이들 중에 적잖은 이들이 몸을 사렸다. 이제는 아이피 추적이라든가 그런 게 쉽지도 않고, 딱히 하려는 이들이 없음에도.

그런 시대였다.

어떤 식으로든 몸을 사려야 하는 시대.

조금이라도 여지를 남겨두면 밤잠을 설치는 시대.

그래서 더더욱 드래곤슬레이어의 글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 송도에사람있어요 : 용살자 형님! 여기 송도인데 저 구해주시면 정말 제대로 사례하겠습니다!

- 돼지국밥 : 용살자 햄 죽이네! 마, 부산 오면 쪽지 보내소! 풀코스 대접합니더!

몬스터에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던 상황에서, 모두가 몸을 움츠리고 하루의 생존을 기약하던 상황에서, 본격적으로 몬스터를 사냥하는 진짜 헌터가 등장한 것이었으니까.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셈이었으니까.

물론 진실을 아는 이들의 반응은 달랐다.

[술은맥캘란 : 새끼, 우리가 다 잡아놓은 거에 숟가락 올려놓고는 자랑질 장난 아니네.]

"대장이 다 했는데 그 이야기는 쏙 빼놓고 있네요."

그러나 그 진실을 굳이 드러내진 않았다.

애초에 드러낼 생각이었으면 이렇게 행동하지도 않았을 일.

"알아서 타깃이 되어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지."

오히려 김지운 입장에서는 드래곤슬레이어에 모든 이목이 집중되는 것이 더 이득이었다.

여하튼 그렇게 용산에 평온이 찾아왔고, 그 근처에 있는 여의도에도 평온이 찾아왔다.

그쯤이었다.

"요즘 살 만하네요."

모두의 입에서 이제 무언가 되는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고, 미소와 웃음 소리가 나올 무렵.

김지운이 고강수와 이영후 그리고 강현중을 불렀다.

그리고는 부동산에서 가져온 넓은 지도를, 서울 전지역이 보이는 지도를 펼치며 말했다.

"곧 지옥이 시작될 거다."

그 말을 한 김지운이 펜으로 여의도를 중심으로 주변에 큰 원을 그렸다.

"현재 여의도를 제외한 이 범위 내에서 발견된 오아시스는 코스트코 양평점이 유일하다."

김지운이 탐색한 범위였다.

"매우 상황이 안 좋다."

다른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렇게까지 생존자가 없을 줄은 몰랐습니다."

영등포구의 인구수를 생각하면 정말 끔찍한 상황이었으니까.

물론 김지운도 많은 이들이 어비스 좀비가 되었다는 것에 끔찍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위험하다. 생존자들이 없다는 것은 몬스터들을 막아줄 미끼가 없다는 거니까."

"예?"

"서울은 어비스의 몬스터들 기준에서 먹을 것이 풍족한 세상이 아니다. 결국 생존자들이 모여 있는 오아시스를 찾아 움직일 거다."

그러나 김지운이 더 우려하는 건 이 주변 몬스터들이 필연적으로 여의도에 올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영등포에 거주하는 몬스터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미 몬스터들을 지척에 온 상태였다.

"다행히도 여의도까진 못 오고 있지만."

김지운이 여의도를 떠나고 싶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이거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섬이 가지는 이점이 절대적이었다.

아무리 다리와 강을 건너는 게 쉽다고 하더라도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강을 건넌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특히 어비스의 안개는 몬스터들의 눈도 제 구실을 못하게 했다.

섬 너머가 더 특별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

그러나 이마저도 한계는 명확했다. 정말 강력한 몬스터들에게는 그런 것은 보이지 않을 테니까.

'거기 있는 이들은 다르지.'

결정적으로 김지운은 알았다.

국방부로 날아온 이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사이코메트리 스킬을 이용해서 그들이 남긴 무기의 정보를 읽었다.

많은 걸 읽은 건 아니었다.

사이코메트리 스킬은 그렇게까지 만능이 아니었다. 그 물건이 경험한 정보를 읽는 것이었고, 읽을 수 있는 시간에도 제한이 있었다. F랭크의 경우에는 24시간 내의 정보를, E랭크 48시간 순으로 늘어났다.

유리룡의 눈으로 B랭크를 만든 사이코메트리 스킬의 경우에는 120시간, 5일 전까지만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김지운이 알게 된 정보는 지극히 단편적이었다.

'오산기지, 그곳에 살아남은 자들은.'

하지만 그 단편적인 정보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예상대로.'

물론 김지운은 오산공군기지를 가장 강력한 후보로 두고 있었다.

국방부에 그렇게 빠르게 전투기를 보낼 수 있는 곳은 오산공군기지 혹은 평택미군기지 정도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예상한 것과 진실, 이 두 가지에는 절대적인 차이가 있는 상황.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곳의 상태는 예상 밖이었지만.'

오산기지는 활주로는 안개로 뒤덮여있었으나, 기지를 비롯해 주변 지역에 꽤 넓은 오아시스가 구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군인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건 놀라운 일이었다.

그냥 생존자들이 많이 있는 것도 보기 힘든데, 군수무기를 이용가능한 군부대가 그토록 남아있다?

생존자들이 들으면 기뻐할 일.

그러나 김지운은 그것을 동료들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그 정도로 전력이 온전한데 아직까지 구조 활동을 하지 않는 걸 보면 무언가 꿍꿍이가 있다.'

그들이 희망이란 보장은 너무 낮았다.

결정적으로 김지운은 봤다.

정확히는 느꼈다.

이곳으로 오는 헬기에 탄 특수부대원들의 분위기가 그냥 단순한 구조작전을 펼치는 이들의 분위기가 아님을.

'구조는 한다. 하지만 여차하면······ 제거한다.'

김지운은 그 분위기가 어떤 분위기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여기서 김지운은 답을 내렸다.

'오산공군기지의 지휘관은 장성들을 자기 머리 위에 둘 생각이 없다.'

별을 구출하는 이유가 그들을 구해서 지휘체계를 구축하는 게 아님을.

'그들이 다른 이들 손에 넘어가는 걸 원치 않는 거다.'

이 상황을 자신의 야망을 위해 이용해 먹으려는 인물임을.

여하튼 김지운 입장에서 지금 상황은 그야말로 폭풍전야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탐색 범위를 넓히고, 주변 몬스터 상황을 파악한다. 위협이 되는 몬스터는 그곳에서 제거한다."

움직여야 했다.

"그 과정에서 레벨을 올리고, 아이템을 수급하고, 전력을 강화한다."

그런 김지운의 말에 반박은 없었다.

있는 건 의문이었다.

"그럼 어느 쪽으로 갈까요?"

그 의문에 답을 내린 건 다름 아니라 강현중이었다.

"남쪽으로 가시죠."

"남쪽? 현중아, 뭐 아는 거 있어?"

그 말에 이영후가 고개를 갸웃했다.

"굳이 목동이나 강남 빼고? 강남 압구정이나 청담이 좋지 않나?"

사실 이영후는 다음 목적지로 강남 부촌을 꼽고 있었다.

"헌터들이나 관광객 애들 다 부촌에 사는데 , 걔들 터는 게 이득 아닌가?"

꽤 합리적인 이유로.

그런 이영후에게 강현중은 지도의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광명시 소하동에 화살부대가 있다."

"화살부대?"

"제52보병사단을 말하는 거다."

추가로 나온 김지운의 대답에 이영후는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군부대보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파밍하기 좋은 곳은 없을 테니까.

"당장 가죠!"

하물며 김지운과 총기의 조합은 최고의 조합 아니었던가?

물론 말처럼 쉬운 건 아니었다.

"쉽지 않다."

일단 여의도에서 거리가 상당했다.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는 거리가 결코 아니었다.

어떤 위험이 있을지도 몰랐다.

결정적으로 김지운은 생각하고 있었다.

"이게 있으니까."

툭툭!

말과 함께 김지운이 지도의 한 곳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이거? 서울대요?"

"관악산이다."

"관악산? 여기가 뭐 문제 있습니까?"

"관악산은 꽤 높다. 정상이 6백 미터는 넘을 거다."

"정확히는 632미터인데······ 아!"

그 순간 이영후가 깨달았다.

"안개가!"

이토록 높은 곳이라면 안개가 미치지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

물론 어비스의 안개란 게 무조건 일정 높이까지 차오른다, 그런 건 아니었다.

산을 타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고, 반대로 그냥 정말 성인 남자 가슴 언저리까지만 차오르는 경우도 있었다.

관악산이 전부 안개로 뒤덮였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그냥 일반적인 지역에 비해서는 그러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즉, 생존자들이 이곳에 몰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곳의 생존자들이라면 제52보병사단의 존재를 모를 리 없다. 무기로 무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들의 무장 상태는 군부대와 비슷한 수준일 가능성 역시 높다는 것.

"그러니 정보를 모은다. 만약 생존자 그룹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정보가 흘러나왔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든 혹은 그곳에 갔던 이들이든."

여하튼 지금은 조사를 해볼 때.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에 대해서 이영후가 어비스넷 서칭을 시작했다.

어려울 건 없었다.

이미 만든 프로그램에 화살부대, 제52보병사단, 광명시, 소하동, 관악산, 서울대 등 관련 검색어를 넣으면 그와 관련된 글을 싹 긁어올 수 있었으니까.

필요한 건 시간뿐.

"대장!"

그렇게 서핑을 하던 이영후가 김지운에게 말했다.

"이상한 정보가 있습니다."

"이상한 정보?"

"그게······ 관악산에 산채가 있다네요."

"산채?"

그 말에 김지운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 그러니까 무협소설에 나오는 녹림이란 집단에서 산적들이 자기들을 산채라고 하는데, 그 산채가 있다고 합니다. 관악산채라고······."

말을 하던 김지운의 눈매가 더 가늘어졌다.

"그리고 거기 관악산채주가 있는데 엄청 강하다고 합니다. 무공을 쓴다고 하네요. 무공으로 몬스터를 쓸어버린다고 합니다."

설명을 하는 이영후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압니다, 지금 제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는 거. 그런데 이 관악산채주란 표현이 꽤 여러 번 언급됩니다. 누군가 장난질을 한 걸 수도 있지만······."

평소라면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을 말이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 정보가 운명을 가를 수 있었다.

여러모로 조사가 필요한 대목.

그때였다.

"그리고 이거."

이영후가 이곳에 온 진짜 이유를 보여줬다.

"포폰 나뭇잎 중에 아무것도 안 적혀 있던 거 말입니다."

흑랑 클랜 서울지부를 쓸었을 때 얻게 된 또 다른 포폰 나뭇잎, 그곳에는 한자로 쓰여 있었다.

"관악산을 무너뜨려라, 라고 쓰여 있습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건 1시간 마다 확인하니까요."

명령이.

그것을 보는 순간 김지운은 고민하지 않았다.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 흑랑 클랜이 관악산을 점령한 상태이고, 화살부대로부터 무기를 수급한다면.'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면 그건 폭풍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물론 당장 이동한다는 건 아니었다.

김지운 파티는 그런 리스크를 짊어질 이유가 없었다.

"이영후."

"천리안 쿨은 다 찼습니다."

남은 건 하나.

"관악산이 문제군. 사진이 있나?"

천리안을 쓰기 위해서는 그 장소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가 필요하다는 것.

"사진은 필요 없습니다."

다행히도 그 부분에서 이영후는 어느 때보다 자신감 넘치는 반응을 보였다.

"저 서울대 출신이거든요. 관악산은 질리도록 올랐습니다."

아주 믿음직한 대답.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이영후가 천리안 스킬을 썼고, 그 순간 이영후가 영혼이 날아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있었다.

그로부터 잠시 후.

"으헉!"

이영후가 정신을 차리며 소리를 내질렀다.

"미친!"

그리고는 놀라며 말했다.

"대, 대장. 거기 진짜 산적이 있었습니다! 진짜 욕 나올 정도로 험악하게 생긴 대머리가 도끼 두 자루 들고 오크들을 썰어 버리고 있었습니다!"

"대머리?"

"예, 진짜 보는 순간 욕 나올 정도로 험악하게 생긴 대머리였습니다."

"얼마나 험악했지?"

"어후, 말도 마시죠. 제가 본 얼굴 중에 가장 험악했습니다. 덩치도 장난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상처도 장난 아니었습니다. 여기 머리통에 무슨 발톱 자국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그쯤에서 김지운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정수리부터 이마를 그리고 오른쪽 눈가까지를 그었다.

"이런 식으로 상처가 있었나?"

"예!"

"상처는 네 줄이었고."

"예! 그래서 가뜩이나 험악한 상판이 더 험악······ 어?"

그 대목에서 이영후가 놀라며 물었다.

"아, 아시는 분입니까?"

그 질문에 김지운이 대답했다.

"내 동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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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관악산채 (2).

2.

상황은 빠르게 진행됐다.

"관악산으로 간다."

그곳에 아는 얼굴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굳이 앉아서 계산기를 두드릴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 이영후가 본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장상태가 아닌 걸 보면, 위협은 없다."

그곳에 있는 생존자들이 총으로 무장된 게 아니라는 것을.

아직 제52보병사단을 털지 못했음을.

즉, 관악산 생존자 집단은 지금 김지운에게 조금의 위협도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더더욱 빨리 움직여야 했다.

지금 당장은 모르지만 몇 시간 후에는 상황이 전혀 다르게 바뀌었을 수도 있었으니까.

"강현중."

그리고 김지운은 이번 여정에 파트너로 강현중을 골랐다.

이 역시 당연했다.

관악산이라면 산악전투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바.

산악전투는 일반 평지에서의 전투와 모든 부분에서 달랐다.

강현중 같이 분명한 경험이 있는 이가 아닌 다른 이들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가 될 가능성이 컸다.

또한 오는 과정에서 제52보병사단도 들릴 예정이었다. 여러모로 강현중이 제격이었다.

이제 문제가 되는 건 하나였다.

"어떻게 가실 겁니까?"

가는 길이 먼 것도 먼 것이지만 생각 이상으로 복잡했다.

특히 안개로 가득 낀 도시에서 길을 찾아가는 것은 매우 어렵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지도를 보고 찾아가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는 의미.

해서 여기서 김지운이 내놓은 방법은 하나였다.

"샛강역을 시작으로 신림선 노선을 따라 이동한다."

변하지 않는 길을 따라 가는 것.

다행히도 한 번에 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

물론 그 길에 어떤 게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지금은 리스크를 염두에 둘 때가 아니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김지운과 강현중은 바로 망설임 없이 떠났다.

이동은 빨랐다.

김지운도, 강현중도 이제는 더 이상 어비스 좀비는 물론 어지간한 몬스터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헌터였기에.

또한 몬스터나 어비스 좀비도 없었다. 코스트코 양평점을 갔을 때와 너무나도 똑같이.

그러나 그 사실에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참사의 결과물이기에.

그렇게 이동하던 김지운 파티가 걸음을 멈춘 것은 서원역이었다.

목적지와 가장 가까운 관악산역까지는 두 개 정거장을 더 가야 하는 상황, 그러나 김지운은 여기서 망설임 없이 역 밖으로 나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종점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모른다.'

관악산역은 종점이라는 것.

신림선의 경우에는 자동 운행이라 폭주가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냥 지나치는 것과 종점에 몰리는 경우는 분명 달랐다.

그리고 여기서는 운이 좋기를 바라며 도박을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김지운과 강현중이 밖으로 나왔다.

쉴 틈은 당연히 없었다.

강현중이 바로 나침반으로 방향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돌려 걸음을 옮겼다.

'대장?'

반면 김지운은 바로 움직이지 않은 채 그대로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모습에 강현중의 눈이 커졌다.

누구보다 시간을 귀하게 여기는 김지운이 이렇게 하염없이 시간을 낭비한다는 것은 이유가 있다는 의미.

그리고 대개 그 이유는 몬스터 같은 위협이 왔을 가능성이 높았고, 해서 강현중은 전투를 준비했다.

그때였다.

스윽!

김지운이 손가락 세 개를 폈다. 전투 상황이 아니라는 수신호였다.

그러나 그 수신호를 준 후에 걸음을 내디디는 김지운의 표정은 전투에 진입했을 때만큼 굳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김지운, 그의 앞에 나무 한 그루가 있었으니까.

아스팔트를 뚫고 솟아오른 나무가, 새파랗기 그지없는 기둥에 새하얀 잎사귀와 사람 머리통한 새하얀 열매를 품고 있는 나무가.

'사리우 나무다.'

어비스에서만 볼 수 있는 나무였다.

그런 나무가 한 그루도 아니고, 서원역 근처의 아스팔트와 보도블록 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윽고 그 광경을 확인한 강현중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맙소사.'

몬스터만 넘어온 게 아니라 어비스의 식물이 넘어왔을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

더욱이 이건 그냥 넘어온 게 아니었다.

생태계가 바뀐다는 증거였다.

이제 정말 김지운과 강현중, 그들이 살던 세상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증거.

어떤 의미에서 몬스터를 마주한 것보다 더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김지운은 사리우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알았다.

'사리우 나무 열매는 일부 몬스터들의 주식 중 하나다.'

이건 꽤 중요한 문제였다.

김지운, 그는 몬스터들이 위험한 이유 중 하나가 굶주림 때문이라고 몇 번을 말했다.

그러나 몬스터들이 배가 부르기를 바라는 건 결코 아니었다. 김지운이 바라는 건 굶어 죽는 것이었지.

그런데 이렇게 몬스터들이 먹을 게 있다면? 놈들은 적당히 배를 채우고, 나름 만반의 컨디션을 갖출 수 있다는 의미.

'최악이군.'

거기까지였다.

김지운은 원래 목적지가 있는 관악산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직은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었으니까.

3.

관악산.

서울 한강 남쪽에서는 가장 높은 산인 그곳은 등산객에게도 꽤 유명할 만큼 큰 산이었다.

또한 서울대학교가 위치한 산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관악산에 대한 이야기는 그 정도면 더 이상 나올 게 없었다.

강현중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관악산을 오르기 시작하던 강현중은 이내 안개가 사라지는 순간, 평범하기 그지없는 산의 풍경이 보이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는.'

처음이었으니까.

'안개가 올라오지 못했구나.'

아포칼립스가 시작된 이후 어비스의 안개가 미치지 못한 땅을 밟은 것은.

김지운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이영후의 천리안을 통해 이곳이 어비스의 안개가 미치지 못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안개로부터 자유로운 땅을 보는 순간 김지운이 역시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전율 같은 건 아니었다.

'이곳을 두고 전쟁이 일어나겠군.'

인류는 이제까지 경험했던 것보다 더 치열한 영토 전쟁을 치르게 되리라는 것.

물론 김지운은 이곳이 아주 안전한 곳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곳은 하늘을 나는 몬스터들에게는 그야말로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곳이었으니까.

당장 이 위로 유리룡이 지나간다면, 여기 있는 이들은 어떤 대비도 못한 채 심정지가 올 테니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생존자들이 몰려 들었다면,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몬스터들도 몰려올 게 뻔했다.

그 예상은 바로 현실이 됐다.

크아아아!

몬스터의 흉포하기 그지없는 울음 소리가 관악산을 울렸다.

"대장."

그 소리에 강현중이 김지운을 바라봤다.

사실 이 소리에 그 둘이 반응할 이유는 없었다.

소리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들렸으니까. 당장 그 둘이 위협 받을 일은 없었으니까.

또한 그 둘에게는 휴식과 정비가 필요했다.

이건 꽤 중요했다.

이곳에 김지운의 동료가 있는 건 맞다.

그러나 그 동료와 인연이 끝난 건 2년도 더 전이었다.

또한 김지운은 동료들에게 죽은 자였다.

다시 만났을 때 반가움보다는 오히려 의심 어린 시선을 보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세상은 아포칼립스 세상이었다.

친구는 물론 가족도 믿기 힘든 세상.

그런 세상에서 이곳에 있는 동료였던 자가 김지운을 반갑게 맞이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정비를 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고, 식사를 하고, 오감을 가다듬어야 했다.

으아아앙!

그러나 그 소리가 들리는 순간, 어린 아이, 이제 돌을 막 지났을 법한 앳된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상황은 달라졌다.

'아기다!'

강현중, 그가 움직였다.

'대장!'

그리고 김지운은 그보다 더 빨리 움직였다.

이윽고 둘은 볼 수 있었다.

크르르!

창과 칼을 든 코볼트 무리들이 한 무리의 생존자들과 대치하고 있는 것은.

사실 그건 이제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특별한 광경이 아니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 어디에서도 너무나도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조금 달랐다.

으아아앙!

생존자 무리는 너무나도 어렸다.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자 아이도 기껏해야 중학생 정도로 보였다.

"우, 울지 마. 울지 마 재혁아."

그런 여자 아이의 품에는 이제 막 돌이 지났을 법한 남자 아이가 안겨져 있었고, 그 주변에는 어리디 어린 아이들이 겁에 질린 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굳어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어린 생존자들에게 등장한 코볼트를 상대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당장 무기조차 없었다.

그나마 가장 나이가 많은 여자 아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소녀가 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으아아앙!

"괜찮아, 괜찮아 누나가 있잖아, 누나가."

본인도 공포에 질려 벌벌 떠는 손으로 남자 아이를 달래는 것.

너무나도 처량하고 처절한 광경.

크르르!

그러나 그 광경을 마주한 코볼트 무리에게는 그 어떤 감흥도 주지 못했다.

그 순간이었다.

크르르!

이제 맛볼 야들야들하기 그지없는 살코기 맛에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코볼트, 놈들의 목에 무언가가 닿았다.

크르르르륵!

그리고 그 순간 코볼트 여덟 마리가 동시에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코볼트들의 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교수형을 당하듯이.

끄르륵!

그런 코볼트들이 기괴한 비명을 내지르며 몸부림을 쳤다.

뿌드득!

그리고 그 몸부림 속에서 몇몇 코볼트의 목에서는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 경우는 즉사였다.

물론 살아남은 것들도 오래 살지는 못했다.

삽시간이었다.

[코볼트를 처치했습니다.]

모든 코볼트들이 조용히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데에는.

자연스레 산에 고요함이 깔렸다.

그때였다.

"네놈들!"

고요함 속에서 한 사내가 등장했다.

마치 성난 황소처럼.

무시무시한 기세를 풍기고 등장한 사내는 전력을 다해서 소리를 내질렀다.

"멈춰라!"

이윽고 단숨에 모습을 드러낸 사내는 이영후의 설명처럼 험악하기 그지없는 생김새였다.

"나는 관악산채의 주인, 관악산채주다! 우리 애들을 건드리면 내 무공에 머리통이 박살이 날 줄 알아라!"

그런 사내는 자신을 무협소설에 나올 법한 자기 소개를 했다.

놀라운 건 그 말이 너무나도 현실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 정도로 사내는 산적처럼 보였다.

'진짜 산적인가?'

강현중조차 잠시 착각을 할 정도.

물론 김지운은 달랐다.

그는 등장한 사내를 보는 순간 잠시 동안이지만 감상에 젖었다.

'살아있었구나.'

다시는 보지 못할 동료를 마주했다는 사실, 그 사실 앞에서는 김지운도 감상적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물론 상대는 달랐다.

"네놈들!"

부리나케 등장해서 아이들의 앞을 가로 막은 사내는 손에 든 도끼를 내세우며 말했다.

"정체가 뭐냐? 어디서 온 새끼들이야!"

그쯤에서 김지운이 대답했다.

"나다."

"나다는 무슨 씨발, 좆같은 소리 하지 말고! 어디서 온 새끼들이야? 당장 안 꺼져?"

"나다."

"꺼져! 당장 내 항마십팔장에 대가리 박살이 나고 싶지 않으면 꺼져! 

"박준호, 나다."

"뭐, 이 새끼야! 자꾸 나다, 나다 지랄하고 있어! 이 똥물에 튀겨 먹을 새끼······."

그쯤이었다.

"어?"

이제까지 살벌하기 그지없는 욕지거리를 내뱉던 사내가 이내 김지운의 얼굴을 확인한 듯 욕지거리를 멈췄다.

그제야 대화가 되리라 생각한 김지운.

그러나 그런 김지운의 예상은 빗나갔다.

"귀, 귀신이다!"

대화를 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4.

죽었다고 생각했던 이가 돌아왔다, 여러모로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설명을 하려면 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일.

"사, 살아계셨습니까?"

"운 좋게."

"그래, 그럴 줄 알았습니다! 우리가 살았는데 대장이 죽을 리가 없지!"

그러나 의외로 김지운의 동료였던 박준호는 김지운이 귀신이 아니란 걸 인지하는 순간, 그의 생존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믿음이 있었으니까.

"골렘에 똥칠할 때까지 죽지 않을 양반이 그렇게 갑자기 뒈질 리가 없지! 아무렴! 먹을 케이크가 한 가득인데!"

세상 모든 헌터가 죽어도 김지운은 죽지 않으리란 믿음.

"그런데 왜 갑자기 사라지신 겁니까?"

"죽기 싫어서."

그리고 은퇴한 이유 역시 바로 받아들였다.

"그럴 것 같았습니다. 저도 비슷했거든요."

박준호, 그는 김지운의 마지막 어비스 모험을 함께 했던 헌터였다.

김지운만큼은 아니지만 당시 기준에서는 어비스에서 가장 지옥 같았던 무대를 경험했다는 의미.

해서 알았다.

"대장 목숨으로 살아남은 후에 다들 심정이 비슷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다 죽을 거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비스에 들어가는 횟수가 엄청나게 줄어들었죠."

어비스가 어떤 곳인지.

그때부터는 박준호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마스터도 굳이 억지로 어비스에 투입하진 않더라고요. 어비스에 들어간 날보다 지구에 있는 날이 더 많아졌습니다."

"박준호."

그러나 김지운은 여기서 긴 이야기를 듣고 싶은 여유가 없었다.

"압니다, 대장 성격. 궁금한 거 질문하시죠."

박준호도 알기에 이야기를 멈췄다.

"클랜은?"

"솔직히 말해서 저는 거의 전력 외 상태입니다. 어비스 마지막으로 들어간 게 두 달 전이었습니다. 클랜 상황은······ 알 도리가 없죠. 잘 알려주는 스타일도 아니었고요."

"관악산에 있는 이유는?"

"아, 제가 서울대에 기부를 좀 했거든요. 그래서 연말에 친한 교수님하고 가볍게 저녁 식사하려고 직접 차 끌고 왔는데, 일이 터졌습니다."

"현재 이곳 상황은?"

"최악입니다. 모든 게 부족합니다. 먹을 거, 입을 거, 쓸 거 그리고 아이템까지. 그런 와중에 생존자들은 더 모여들고 있습니다. 제가 종종 시내로 가서 이것저것 구해오긴 하는데, 가당찮습니다. 그나마 서울대에 있던 식량하고 물품들이 있어서 버틴 건데, 그마저도 오래 갈 것 같진 않습니다."

"생존자 집단은 네가 이끌고 있는 건가?"

"뭐, 그렇습니다. 제 성격 아시잖아요? 이런 거 보고 못 넘어가는 거. 그래서 마빡에 이 상처도 생겼지만. 생각해 보면 대장도 비슷했죠."

"몬스터 상황은?"

"오아시스라서 그런지 대놓고 들어오는 놈은 없고, 종종 몇 놈들 오긴 합니다. 그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갑자기 숫자와 오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1일 기준으로 평균 1.5회에 14마리 정도였던 게, 이제는 평균 2.3회에 21마리쯤 됐습니다.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험악하기 그지없는 외모와 다르게 박준호의 설명은 매우 체계적이기 그지없었다.

이상할 건 아니었다.

김지운, 그의 옆에서 어비스를 돌아다니려면 이 정도는 기본으로 갖춰야 했으니까.

실제로 김지운이 아는 박준호는 매우 현명한 사내였다. 머리도 꽤 좋았다.

그래서 의문이었다.

"관악산채는 뭐지?"

왜 그가 무협 소설에서나 볼 법한 설정을 내세우는지.

그 부분에서 박준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처음 생존자들에게 어비스랑 헌터에 대해 말해주니까 다들 이해하는데 시간이 꽤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다음 생존자에게 나는 무공을 쓸 줄 아는 관악산채의 채주다! 하니까 바로 납득하더라고요. 뭐, 보시다시피 제 생김새가 좀 그렇잖습니까? 여하튼 효과도 제법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제 정체가 드러나서 좋을 게 없을 거 같았습니다. 우리 클랜이 좀 많잖아요? 가진 게. 대장 덕분에."

나름 박준호 입장에서는 생존을 위한 결정이었던 셈.

해서 김지운은 이 역시 이해했다.

"마지막 질문이다."

이제 이해가 안 가는 건 하나뿐이었다.

"근처에 군부대 있는 걸 모를 리 없을 터."

"제52보병사단 말씀하시는 거죠."

"왜 무장을 안 했지?"

그 강력한 총을 놔두고 도끼를 휘두르는가?

"군부대가 무장된 세력에 의해 점거된 상태입니다."

"점거한 세력은? 군대인가? 아니면 헌터인가?"

"아뇨, 조금 전 보신 놈들입니다."

"조금 전?"

"코볼트 무리가 군부대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 질문에 박준호가 대답했다.

"K2를 손에 쥔 채로."

매우 섬뜩한 대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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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관악산채 (3).

5.

종종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원숭이랑 인간이랑 싸우면 누가 이김?"

터무니없지만, 의외로 열렬하게 불타오르는 이야기가.

그리고 그런 이야기에는 꼭 그런 답이 나왔다.

"원숭이고, 고릴라고 총 한 방이면 끝장이야."

그만큼 총이란 무기는 인간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인간만이 쓸 수 있는 무기였다.

그런데 여기서 몇몇 이들은 의문을 던졌다.

총을 만드는 건 인간 정도의 기술력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그러나 과연 총을 쏘는 것은 인간만이 가능한 일일까?

사실 이에 대한 결론을 아는 건 불가능했다.

세상 어디에도 침팬지를 데려다가 총을 쏘는 훈련을 시키는 실험 따위를 하려는 이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분명한 건 총을 쏘는 것 자체는 정말 어려울 것 없는 작업이란 점이었다.

"코볼트가 총을 쏩니다."

김지운과 강현중의 표정이 굳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 말이 터무니없는 말이 아니라 매우 현실성이 높은 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말하는 박준호도 마찬가지였다.

"아시겠지만 코볼트는 활도 쏠 줄 아는 놈들입니다. 그에 비하면 총을 쏘는 건 일도 아닙니다."

어비스를 깊게 경험한 박준호는 몬스터들이 인간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영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총을 안 쏠 이유도 없고요."

그리고 매우 절박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건 꽤 중요한 부분이었다.

오크나 코볼트 같은 몬스터들은 자신들이 나약하다는 것을 알았고, 해서 무기에 굉장한 집착을 보였다.

더 강력한 무기가 있으면 서로 차지하기 바빴고, 가진 무기를 더 효율적으로 쓰고자 했다.

즉, 새로운 무기에 대해 굉장히 적극적이라는 의미였다.

비단 코볼트만이 아니라 오크나 리자드맨 등 도구를 다룰 줄 아는 몬스터들은 총을 다루는 법을 아는 순간 총을 쓸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골치 아프군."

여하튼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쉽지 않겠어."

이어진 김지운의 말에 박준호의 표정이 굳었다.

"예, 쉽지 않습니다."

말을 뱉는 박준호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봤다.

어느새 주변에 모여든 이들, 생존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오롯이 박준호만을 믿고 따르는 생존자들이.

더욱이 살아남은 이들은 성별도, 나이도 다양했다. 노인부터 아이까지.

아포칼립스 이후 박준호가 얼마나 대단하고, 고단한 나날을 보내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제 몸 하나를 가누기도 힘든 상황에서 박준호는 이토록 많은 이들을 데리고 버텨왔으니까.

그게 박준호란 인간이었고, 김지운이 기꺼이 이곳까지 오고자 했던 이유였다.

그가 아는 박준호라면 결코 위협이 될 리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곳에 있는 박준호는 다행히도 김지운이 알고 있던, 그때의 박준호였으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박준호는 이들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어렵다는 거였다.

"이들 전부를 데리고 가는 건······."

무기를 든 코볼트 무리가 관악산의 생존자들을 노리고 오는 것은 시간 문제인 바.

당장 이곳에 이미 오는 코볼트 숫자가 늘어나고 있었고, 그 코볼트들은 사실상 수색대와 같았다.

만약 몇 마리가 살아서 돌아간다면?

그때는 당장 이곳으로 쳐들어올 터.

그 전에 움직여야 했다.

사실 그나마 다행인 건 김지운이 왔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갈 수 있는 곳이 있으니 다행입니다."

김지운도 오아시스를 가지고 있을 터.

즉, 도망칠 곳이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박준호."

그런 박준호를 향해 김지운은 분명하게 말했다.

"저들을 데리고 이곳을 떠나 내가 있는 곳으로 가는 건 불가능하다. 그냥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이다."

그 말에 박준호가 놀라며 말했다.

"아니, 대장! 조금 전에 쉽지 않다고 말했잖습니까?"

코볼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김지운이 한 말을 알았으니까.

잘못들은 건 아니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쉽지 않다고 말한 건 이곳 사람들을 데리고 가는 걸 말한 게 아니다."

그런 박준호의 되물음에 김지운이 말했다.

"무장한 코볼트 무리를 처리하는 걸 말하는 거였지."

"네?"

그쯤에서 김지운은 더 이상 박준호와 대화하지 않았다.

"강현중."

"예."

"총으로 무장한 코볼트 무리, 숫자는 측정 불가. 위치는 제52보병사단. 처리하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나?"

그 물음에 강현중은 대답했다.

"세 시간만 주십시오."

6.

제52보병사단.

광명시 소하동에 위치한 그곳은 어지간한 이들이라면 다 알 법한 군부대였다.

유명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곳이 예비군 훈련장이라는 것.

또한 제52보병사단은 사단이긴 하지만 그 병력 수준이 다른 사단에 미치지 못했다.

일반인의 시선으로는 대단할 것 없는 군부대로, 그러니까 전쟁이 나면 저기가 우리를 지켜준다고? 진짜? 라는 생각이 들 만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인의 시선, 휴전국가인 대한민국의 군부대에는 언제든 무자비할 살상을, 만 단위를 가뿐히 뛰어넘는 학살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화력이 보유되어 있었다.

아우우우!

그리고 그 화력을 코볼트 무리가 두르고 있었다.

그 광경은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다.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덩치 큰 개들이 K2 자동소총을 들고 있다? 그럴싸한 느낌은 조금도 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제대로 된 사격이 가능해 보이지도 않았다.

인간의 신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자동소총을 코볼트들은 제대로 견착조차 할 리 만무.

사실상 자동소총을 권총처럼 손으로만 잡고 쏘는 격이었다.

코볼트 힘이 일반 성인 남자보다 좋다고는 하지만, 초월적으로 좋은 수준은 아닌 바.

제대로 된 사격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총을 든 코볼트의 존재감은 그 어떤 몬스터들보다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막연한 추측이 아니었다.

아우우우!

한 무리의 코볼트들이 하울링을 내지르자, 코볼트 무리들이 연병장에 몰려들었다.

그렇게 몰려든 연병장에는 오크 시체가 있었다.

무려 오십여 구가 넘는 시체가.

총알에 몸뚱이가 꿰뚫린 시체가.

그건 놀라운 일이었다.

본래 코볼트는 오크보다 약한 개체였다. 무리를 지어서 싸우면 비등하다고는 하지만, 최소 코볼트의 머릿수가 오크보다 세 배 이상은 많을 경우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보통 오크와 코볼트는 싸우지 않았다. 서로를 사냥감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 여기 코볼트들은 오크를 사냥하고 있었다.

아우우우!

심지어 코볼트들은 사냥해온 오크를 먹어치웠다.

그것은 본래 코볼트에게 있어 금기였다.

오크를 먹어치우면 그 피와 오크의 냄새가 몸과 털에 진하게 묻을 수밖에 없는 일.

더군다나 코볼트가 영리하다고 해도 사람들처럼 온갖 방법으로 몸의 냄새를 지우는 방법 따위를 알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오크를 먹는다는 것은 마주하는 모든 오크들과는 철천지원수가 되는 셈, 정말 굶어 죽기 전이 아니면 결코 먹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군부대를 점령한 코볼트들은 망설임이 없었다.

끄르를!

도리어 코볼트들은 오크를 먹어치우는 게 익숙한 듯 능숙하게 뼈가 없는 부위부터 이빨을 들이밀고, 단숨에 근육을 뜯고, 그 안쪽의 달콤한 내장부터 먹어 치웠다.

여기 있는 코볼트들에게는 이제 더 이상 오크는 무서운 상대가 아니었다.

언제든 먹어치울 수 있는 사냥감일 따름.

아우우우!

그 사실에 코볼트들은 어느 때보다 흥분하고 있었다.

손에 들어온 강력한 힘에 취하고 있었다.

투투투투!

그때 코볼트 한 마리가 흥분에 취해 하늘 위로 총성을 내질렀다.

그것은 위험한 일이었으나, 그 사실에 크게 놀라거나 경고를 건네는 코볼트는 없었다.

투투투!

아우우!

오히려 모두가 분위기에 취한 듯 하울링 사이로 총성을 내질렀다.

모두가 광기에 취하고 있었다.

그 때문이었다.

투투

아우우우욱!

그 광기 속에서 코볼트 몇 마리가 비명을 내지르며,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진 것을 바로 눈치 채지 못한 것은.

투투!

아우욱!

그러나 거듭된 총성 속에서 코볼트들이 쓰러지고, 이내 코볼트들이 비명을 내지르는 순간, 그 순간 이제는 모두가 눈치 챘다.

커헝!

자신들이 습격을 당했음을.

커헝!

그 사실에 코볼트들이 바로 전투 태세에 돌입했다.

그런 코볼트들의 눈에는 분노만이 가득 했다. 그 어디에도 공포감은 없었다.

손에 총이라는 막강한 무기가 있었으니까.

이 무기라면 트롤이 오더라도 싸워 이길 자신이 있었으니까.

투투투!

그 사실을 보여주려는 듯 코볼트들이 총성이 들린 방향을 향해 무차별적인 사격을 했다.

킁킁!

그때 코볼트 몇 마리가 코를 날름거리더니 이내 무언가를 포착한 듯 한 방향으로 달려갔다.

투투투!

그러면서 방아쇠를 당기는 코볼트들의 눈빛에는 이미 사냥을 완료한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투투!

그렇게 기쁜 표정을 지은 채, 머리통에 구멍이 난 채 죽었다.

투투투!

그 이후에도 몇 차례 공방이 계속됐고, 어느 순간부터 코볼트들은 알 수 있었다.

커헝, 커헝!

지금 자신들만이 죽어가고 있음을.

그제야 비로소 코볼트들 사이에서 공포라는 감정이 번지기 시작했다.

물론 코볼트들은 몰랐다.

진짜 공포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음을.

그것을 아는 건 한 명뿐이었다.

7.

'훌륭하군.'

먼 발치에서 강현중의 코볼트 소탕 소리를 듣고 있던 김지운은 짧게 감탄을 내뱉었다.

'예상대로.'

물론 이런 강현중의 활약은 예상한 바였다.

'총을 든 코볼트는 위협적이지만, 그뿐이지. 결국 코볼트일 뿐.'

일단 김지운은 총을 든 코볼트를 그렇게까지 위험한 몬스터로 분류하지 않았다.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아직 숙련도가 쌓일 만큼은 아니다.'

총이라는 무기가 쓰는 것은 쉬워도 제대로 쓰는 데에는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

'전술도 그렇고.'

두 번째 이유는 총을 든 것과 총을 들고 싸우는 것, 둘 사이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강한 총을 가졌다고 이기는 게임이었다면, 모든 국가들이 특수부대 양성을 위해 무수히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할 리가 없었다.

'강현중에게는 애들 장난일 뿐.'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강현중의 실력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는 현역 특수부대원이었고, 이미 몬스터와의 전투 경험이 적잖게 쌓인 헌터였다.

결정적으로 김지운은 줬다.

'사안과 유리룡의 눈을 가진 강현중에게는.'

아주 강력한 아이템을.

사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이 전투의 승패를 의심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김지운은 분명 말했다.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즉, 김지운은 알고 있었다.

'뭔가가 나오기 전까지는 문제없다.'

이게 전부가 아님을.

'코볼트를 이끌고 있는 뭔가가.'

김지운 입장에서는 당연한 추측이었다.

일단 김지운은 코볼트가 영리하다는 걸 알지만 모든 개체가 영리한 건 아니었다.

유난히 특출 난 개체가 방법을 찾으면, 나머지 개체가 그 방법을 따라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대개 그 특출 난 개체는 보스 몬스터였다.

'베스트는 코볼트 주술사, 최악은 코볼트 로드. 그리고 황금털이 나오면 끝이다.'

더불어 그 보스 몬스터의 종류가 얼마나 되는지, 그 역시 김지운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쉽지 않다고 한 것이었다.

'상황은 코볼트 주술사일 가능성이 높지만, 코볼트 로드의 경우도 배제할 순 없다.'

코볼트 로드의 경우에는 옐로우 클래스의 보스 몬스터로, 매우 강인한 개체였다.

지금 김지운도 그 존재가 내뿜는 포스를 마주하는 순간 정신이 혼미해질 만큼.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황금털이 나오면 이곳을 떠야 한다.'

그리고 코볼트 종족의 정점에 있는 황금털은 블루 클래스 몬스터로, 김지운은 장담할 수 있었다.

'한반도를.'

그 황금털이 등장했다면 한국은 여름이 오기 전에 생존자가 천 명 아래로 줄어들 거라고.

그게 김지운이 지금 대기를 하는 이유였다.

최소한의 가능성을 대비하기 위해서.

그 순간이었다.

아루루루루루루!

기괴하기 그지없는 하울링 하나가 총성이 빗발치는 전장 사이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듣는 순간 소름이 돋을 법한 소리였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김지운의 눈가에는 어렴풋이 어려 있던 걱정이 사라졌다.

'코볼트 주술사다.'

가장 베스트 시나리오가 펼쳐졌으니까.

'저쪽이군. 저쪽.'

그 사실을 파악하는 순간 김지운은 준비했던 확성기를 염력으로 하늘 높이 띄었다.

이후 확성기를 작동시켰다.

삐이이이이!

매우 섬뜩한 소리가 확성기를 통해서 나왔고, 그 소리에 코볼트들이 놀라며 소리가 난 방향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파직!

그때 눈먼 총알 하나가 확성기를 관통하며 확성기를 산산조각을 냈다.

소리가 멈췄다.

그러나 김지운은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이것은 코볼트들을 향한 소리가 아니었으니까.

강현중, 그에게 보내는 소리였으니까.

'대장, 왔습니다.'

그리고 확성기 소리가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현중이 김지운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에 손을 옮겼다.

그 어떤 소리도 없이.

유리룡의 눈을 통해 B랭크에 도달한 귀신발 스킬의 위력이었다. 

이제 강현중이 전력으로 뛰어도, 수십 미터 높이에서 떨어져도 그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다가온 강현중은 바로 김지운에게 가지고 있던 유리룡의 눈과 모루뱀의 눈을 줬다.

'수고했다.'

사실 굳이 김지운이 나서지 않아도, 강현중 혼자만으로도 코볼트 무리를 처리하는 건 가능했다.

'이제는 내가 처리하지.'

그러나 김지운은 굳이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철컥!

김지운, 그가 저격용 소총인 K14을 장전했다.

그리고는 사안 스킬을 발동했다.

그러자 보였다.

1.5킬로미터 떨어진 제52보병사단의 연병장으로 나온 유난히 덩치가 거대하기 그지없는 코볼트의 모습이.

그것을 보이는 순간 김지운은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투웅!

그러자 들리는 묵직한 소리.

그로부터 잠시 후 들렸다.

핏!

아주 미약하기 그지없는 소리가.

[코볼트 주술사를 처치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코볼트 주술사가 도감에 등록됩니다.]

[마력이 3포인트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사냥의 소리가.

그 소리를 같이 들은 강현중이 속으로 감탄을 토했다.

'1.5킬로미터 거리에서 한 발에 명중이라니.'

김지운이 자신과 같은 군인출신인 건 알았지만, 이 정도 저격 능력을 가졌을 줄은 예상 못한 바.

반면 김지운은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또한 그럴 여유도 없었다.

이제부터 시작이었으니까.

[강현중, 이제부터 우리는 흑랑 클랜을 막아야 한다.]

진짜 전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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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몬스터 웨이브 (1).

1.

김지운, 그가 관악산을 목표로 삼은 가장 큰 이유는 그의 동료인 박준호의 존재 때문이 아니었다.

흑랑 클랜, 그들 때문이었다.

그들이 관악산을 점령하고, 제52보병사단에서 무기를 수급할 경우 김지운 입장에서는 정말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으니까.

'전용 포폰 나뭇잎이 있다는 것.'

더욱이 김지운이 보기에 이번에 움직인 포폰 나뭇잎은 전화로 따지면 핫라인과 같았다.

매우 긴급하고, 중대한 임무를 진행할 때만 쓰는 연락체계라는 것.

지금 그 핫라인으로 진돗개 경보 같은 게 떨어진 것과 같았다.

여기서 김지운은 한 가지 상황을 염두에 두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이런 명령을 내렸다는 것은 확실한 카드가 있다는 거다.'

다른 것도 아니고 온갖 위협이 존재하는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관악산을 점령한다는 것은 매우 강력한 믿을 구석 없이는 불가능한 일.

더불어 지금 같은 세상에서 믿을 구석은 수만이 넘는 무장한 군대 같은 게 아니었다.

그런 건 레드 클래스의 보스 몬스터가 내지르는 포스 하나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뿐이었다.

'헌터가 있다. 그것도 최소 수준급. 50레벨 이상의. 혹은 별을 가진.'

즉, 이번 작전의 배경에는 관광 따위는 하지 않는, 진짜배기 헌터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

물론 그 헌터가 어비스에서 이룩한 능력은 아포칼립스가 시작되는 순간 초기화됐지만, 가진 경험과 아이템은 초기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김지운은 어째서 그 정도 되는 헌터가 한국에 있는가, 그 부분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번 흑랑 클랜의 수작은 이제까지 김지운이 상대한 흑랑 클랜의 헌터들의 수준과는 차원이 다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강현중, 이제부터 코볼트 주술사로부터 아이템을 수거한다.]

때문에 코볼트 주술사가 가진 아이템이 중요했다.

[사이코메트리를 써서 봐야 한다. 코볼트에게 총 쏘는 법을 가르쳐준 게 누구인지.]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코볼트가 영리하다고 해도 그냥 총만 보고도 총을 쏘는 법을 떠올릴 만큼은 아니었다.

그 정도로 영리한 개체가 있었다면 총이 아니라 자동차를 운전하고 다니면서 오크들을 사냥하고 다녔을 터.

즉, 총을 쏘는 것을 보고 방법을 알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과연 제52보병사단에 있던 군인들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인지.]

여기서 김지운은 코볼트에게 총 쏘는 법을 보여준 이가 군인이 아닐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었다.

어비스의 안개로 자욱한 제52보병사단의 군인들은 무언가를 제대로 실행하기도 전에 전부 어비스 좀비가 됐을 테니까.

물론 확실한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확인을 하면 될 뿐.

그렇게 김지운과 강현중이 코볼트 주술사 시체가 있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다행히도 코볼트 무리들은 코볼트 주술사가 죽는 순간, 공포에 빠진 채 도망치고 없었고, 바로 아이템을 회수할 수 있었다.

회수한 건 세 가지였다.

하나는 김지운이 코볼트 주술사가 오른손에 쥐고 있었던 총이었다. 총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단지 추가적으로 정보를 읽기 위함이었다.

다른 하나는 왼손에 쥐고 있었던 보석이 달린 30센티미터 길이의 작은 지팡이였다.

[코볼트 주술사의 영혼이 담긴 보석 지팡이]

- 아이템 등급 : 유니크

- 16레벨 이상 착용 가능

- 공격력 : D-랭크

- 내구도 : F+랭크

- 착용 시 불장난 스킬 효과 25퍼센트 증가

- 착용 시 불장난 스킬 마력 소모량 20퍼센트 감소

- 코볼트 주술사가 제 영혼을 바쳐 만든 보석이 깃든 지팡이다. 강력한 불의 힘이 담겨져 있다.

그것은 불장난꾼 한정으로 매우 좋은 아이템이었다.

'꽤 강렬한 게 나왔군.'

김지운도 보는 순간 조금은 놀랄 정도.

물론 김지운이 아는 아이템들 중에는 이보다 더 좋은 아이템이 수두룩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별을 가진 헌터들이 소유한 아이템들의 레벨 제한은 대부분 50레벨 이상일 거라고.

특히 무기 아이템의 경우에는 아이템 레벨 제한이 더 높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마녀가 좋아하겠어.'

당장 이수연도 가진 무기 중에 50레벨 이하 무기는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비싼 값을 지불해서라도 가지고 싶을 만큼.'

그건 곧 흥정이 가능하다는 의미.

마지막 물건은 스킬 룬이었다.

[룬(아이언 스킨)]

- 등급 : 유니크

- 기력을 소모해 잠시 동안 피부를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든다. 스킬 랭크가 오를수록 피부의 강도가 증가한다.

- 1레벨 이상 습득 가능.

- 무식한 파수꾼만 습득 가능.

그것을 보는 순간 김지운의 눈빛이 빛났다.

'더 엄청난 게 나왔군.'

아이언 스킨.

무식한 파수꾼에게 있어서 무조건 스킬 슬롯에 넣어야 하는 필수 스킬이었으니까.

유니크 등급으로 구하는 게 쉽지 않은 스킬이었다.

특히 지금 시점에서는 그 값어치가 매우 높을 수밖에 없었다.

'B랭크만 되더라도 자동소총을 견딜 수 있다.'

현대 병기 일부를 무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여러모로 김지운 입장에서는 놀라운 소득이었다.

그러나 그 소득에 기뻐할 틈은 없었다.

'이제 관악산으로 돌아간다.'

아직 해야 할 게 많았으니까.

그렇게 추가적으로 적당히 무기를 챙긴 김지운과 강현중이 관악산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바로 박준호와 생존자 무리와 접촉하진 않았다.

"일단 쉰다."

휴식을 취했고, 그 사이 김지운은 사용했다.

"사이코메트리."

코볼트 주술사로부터 얻은 지팡이의 기억을 읽기 시작했다.

읽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건 동영상을 보는 것과 비슷했다. 단지 문제라면 그 동영상 길이가 지금 120시간짜리라는 것.

당연히 모든 것을 세세하게 읽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한 그럴 필요도 없었다.

김지운은 읽을 수 있는 가장 과거의 기억으로 갔다.

그리고 확인했다.

코볼트 주술사가 총을 쏘는지 안 쏘는지.

다행히도 바로 볼 수 있었다.

'싸우고 있다.'

코볼트 주술사와 코볼트 무리가 총을 든 무리와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것을.

'특수부대와.'

그저 강제 징병된 군인들이 아니라,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은 군인 무리들과.

심지어 그 군인 무리들은 화생방 대비용 마스크를 쓴 채 코볼트 무리를 상대하고 있었다.

여기서 김지운은 바로 눈치 챘다.

'국방부에 왔던 무리와 같다.'

그들이 어디 소속인지를.

비슷한 훈련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전술적인 움직임에서는 특색이 남기 마련이니까.

'오산기지에서 온 자들이다.'

물론 이상할 건 없었다.

현재까지 파악된 수도권 주변 군부대 중에서 가장 멀쩡한 곳은 오산공군기지였다.

그러니 특수부대가 움직인다면 그곳 소속이 움직일 가능성이 당연하게도 높았다.

문제는 그들이 이곳에 온 이유였다.

'여기에 올 이유가 없을 텐데?'

다른 곳도 아니고 오산공군기지에서 무기가 부족해서 제52보병사단까지 왔을 리는 없었다.

또한 김지운이 알기로 제52보병사단에 매우 전략적 특수 무기가 있거나 그런 것도 아니었다.

'섬멸전을 치른 것도 아니다.'

심지어 이곳에 온 특수부대는 제52보병사단의 상황을 파악하는 순간, 그 순간 적당한 교전을 치르며 빠져나갔다.

그게 지금으로부터 4일 전이었다.

그리고 4일 후 흑랑 클랜이 제52보병사단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오아시스인 관악산을 무너뜨린다고 했다.

이게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제52보병사단이 코볼트에 의해 점령되 상태이고, 그래서 관악산의 생존자들이 무기를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파악한 후에 이루어진 매우 합리적인 의사결정일까?

솔직히 여기서 김지운은 더 이상 '확실해질 때까지는 의심해서는 안 된다' 라는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오산기지의 지휘관이 흑랑 클랜과 손을 잡았다.'

그 둘이 진심 어린 악수를 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손에 칼을 쥔 채 전략적 악수를 한 것인지는 몰랐다.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김지운과 흑랑 클랜, 그 둘은 절대 같은 땅에서 살아 숨 쉴 수 없는 운명이었으니까.

그리고 김지운은 도망칠 곳도, 도망칠 생각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김지운이 눈을 떴다.

"대장, 무엇을 보셨습니까?"

그리고 나온 강현중의 물음에 김지운은 대답했다.

"상황이 최악이라는 것."

참담한 말을.

그러나 말을 뱉는 김지운의 표정은 달랐다.

"예상 범주 내이지만."

놀랄 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

"그러니까."

그래서였다.

"일단 미꾸라지부터 낚는다."

2.

김지운, 그가 돌아왔을 때 박준호는 놀라지 않았다.

"대장, 여전히 명줄이 끈질기시네요. 저보다 더."

세상 모두가 죽어도 김지운이 죽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성과는 있으셨습니까?"

"나름."

이어진 말에도 박준호는 놀라지 않았다.

김지운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과를 만들어낸 자였으니까.

"자동소총과 탄약을 확보했다. 그래서 말인데 박준호, 네가 보기에 믿을 만한 이들, 군대 경험이 있는 이들을 모아줘라.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이어진 말에 박준호의 표정이 밝아졌다.

지금까지는 사실상 박준호 혼자 생존자 무리를 지키고 있던 상황.

그런 와중에 총으로 무장한 이들이 보조해준다면 그보다 더 든든한 일은 없을 터.

비단 박준호의 생각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가 생존자 무리에게 지원자를 요청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열 명이 넘는 사내들이 지원을 했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제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제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모를 수는 없었으니까.

덕분에 삽시간이었다.

"지원자는 마흔여섯 명."

꽤 많은 지원자가 보였다.

더불어 나이대도 대부분 20대에서 30대로 젊었고, 모두가 군복무 경험이 있었다.

이상할 건 없었다.

"대학 가까이에 있어서 지원자가 많았군."

여기 지금 살아남은 생존자 중 상당수가 바로 서울대의 학생들이었으니까.

"일단 상황 설명을 간략하게 해주겠다. 현재 확보한 총기는 K2 15정, 탄약은 1천여 발 정도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에게나 지급할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해서 지원자를 받는다. 일단 특수부대 혹은 직업 군인이었던 자가 우선이다."

그러자 세 명이 손을 들었다.

"그다음은 현역 시절 특등사수였던 자, 그중에서 군대를 제대한지 2년이 되지 않은 자들."

이어진 말에는 스무 명이 넘는 이들이 손을 들었다.

"지원자를 좀 더 줄여야겠군. 일단 한 곳에 모이도록. 몇 가지 테스트를 할 테니까."

김지운은 그런 그들을 모았고, 모두가 긴장한 표정으로 김지운을 바라만 봤다.

"내가 하는 말에 집중해라. 중요한 말을 할 테니까."

그 순간이었다.

"肏操你祖宗十八代."

김지운 그의 입에서 중국어가 흘러나왔고, 그 사실에 대부분의 이들이 고개를 갸웃했거나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혹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단 한 명.

꿈틀!

단 한 명만이 그것을 듣는 순간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표정을 지었다.

꽈악!

그 순간 어느새 등장한 강현중이 그 꿈틀한 사내에게 다가가서 그대로 목을 잡았다.

기절시킬 기세로.

"크엑, 켁!"

그 사이 김지운은 그대로 잡힌 사내에게 다가간 후에 사내의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꺼낸 것은 다름 아니라 상자였다.

포폰 나뭇잎이 담긴 상자.

사이코메트리를 쓸 필요도 없이 바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네놈이 미꾸라지였군."

흑랑 클랜이 관악산에 심어둔 자를.

그쯤에서 김지운이 상황을 지켜보던 박준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자가 생존자 무리에 합류한 건가?

"······나흘 전이었습니다."

"소속은?"

"그런 걸 확인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아니, 그보다 조금 전에 뭐라고 하신 겁니까?"

"모른다."

"예?"

"그냥 동료가 가르쳐준 말이다. 뜻은 모른다. 하지만 중국인이면 무조건 듣는 순간 발끈할 거라고 했지."

박준호와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상대가 흑랑 클랜의 끄나풀인 걸 아는 순간, 더 이상 배려 같은 건 필요 없었다.

바로 조치에 나섰다.

강현중, 그가 바로 사내를 바닥에 넘어뜨린 후에 오른발로 사내의 오른손을 밟았다.

뿌득!

뼈를 단숨에 부러뜨렸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뿌드득!

강현중은 흑랑 클랜원의 두 무릎을 부러뜨렸다.

오로지 왼손만을 남겼다.

"끄륵!"

그러한 고통에 흑랑 클랜원은 비명을 내지르는 대신 삼켰다.

"네놈들."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미 모든 건 끝났다. 다 죽을 것이다."

자신이 그저 어중이떠중이 달리 매우 숭고하고, 견고한 헌터라는 표현.

"그 누구도 그분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내게 무슨 짓을 하더라도."

결코 자신을 고문해서 얻을 수 있는 것 따위는 없다는 의지의 표현.

그런 흑랑 클랜원의 의지에 김지운은 딱히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않았다.

감흥도 보이지 않았다.

필요 없었으니까.

놈이 무엇을 했는지, 다른 흑랑 클랜원들처럼 어렵고, 힘들고, 귀찮은 거래를 할 필요가.

김지운은 그저 읽을 따름이었다.

"사이코메트리."

놈이 가지고 있던 물건을.

그리고 이내 정보를 읽던 김지운이 눈을 떴다.

매우 날카로운 눈빛을.

"놈들이 알을 가져왔다."

그 눈빛 속에서 나온 그 말을 듣는 순간 단 한 명만이 반응했다.

"알? 설마 그겁니까?"

박준호, 그가 경악으로 물든 눈빛으로 말했다.

"힌의 열매?"

그것을 들은 강현중이 조심스레 말했다.

"힌의 열매란 게 어떤 겁니까?"

"어, 힌의 열매는 그러니까 그게 뭐냐면 옐로우 존에서 등장하는 힌이라는 몬스터가 키우는 열매인데 마치 알처럼 품······."

그 물음에 머릿속에 떠오른 모든 것을 설명을 해주려던 박준호의 말을 김지운이 가로막았다.

"힌의 열매에는 몬스터가 꼬인다. 과일 껍질에 초파리들이 꼬이는 것처럼."

김지운, 그가 짤막하게 말해줬다.

"그리고 지금 관악산에서 힌의 열매가 깨졌다."

"그럼?"

"이제 곧 이곳에 몬스터가 몰려들 거다. 파도처럼."

관악산이 지옥이 됐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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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몬스터 웨이브 (2).

3.

힌의 열매.

그것의 존재를 파악하는 순간 김지운은 일단 움직였다.

'힌의 열매가 위치한 곳은······.'

흑랑 클랜원이 힌의 열매를 깨뜨린 장소로.

길 따위는 없는 산 중턱으로.

그 산중턱에 솟아오른 소나무 위로.

김지운은 물론 강현중 그리고 박준호까지, 셋은 그렇게 도달했고 볼 수 있었다.

"씨발."

소나무 가지와 가지 사이에 걸쳐져 있는 새하얗기 그지없는, 정말 알 같은, 어린 아이 머리통만한 크기의 열매를.

그리고 그 열매가 쪼개져 있는 것을.

"진짜 힌의 열매네. 씨발. 이 빌어먹을 것을 또 보게 될 줄이야."

그것을 본 박준호의 입에서는 욕지거리가 거듭 튀어나왔다.

김지운의 표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얼굴 표정으로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다.

그만큼 힌의 열매는 어비스의 헌터들에게 있어서 악몽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냥 몬스터를 끌어모은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헌터들에게 있어서는 빌어먹을 일이었다.

그러나 힌의 열매가 고약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힌의 열매는 그저 단순히 몬스터들을 유혹하는 게 아니었다. 몬스터들에게는 일종의 마약이었다. 사람도 마약을 하면 괴물이 되어버리듯이, 힌의 열매의 냄새를 맡은 몬스터들은 그냥 눈이 돌아가 버렸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몬스터가 되어버린다는 의미.

그래서였다.

힌의 열매라는 표현대신 알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힌의 열매에 당해본 헌터들은 해리포터의 볼드모트마냥 그 단어를 언급하는 것조차 짜증냈으니까.

"대장, 이게 얼마나 고약한 겁니까?"

"어비스에서 나오는 아이템 중 절대 거래 및 지구로 가져와서는 안 되는 아이템 금지 목록에 들어가 있다. 위험도 순위로 따지면 15위쯤 될 거다."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클랜과 헌터들은 힌의 열매를 절대 거래 금지 품목으로 정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어비스에서 가져오는 것도, 소유하는 것도 용납치 않았다.

그 사실이 밝혀진다?

그 순간 모든 헌터와 클랜들에게 사냥을 당할 각오를 해야 할 터.

막연한 경고 따위가 아니었다.

실제로 힌의 열매를 가지고 장난을 치려는 헌터들이 있었고, 그들은 예외 없이 사냥을 당했다.

그 사냥꾼 중 가장 유명했던 게 바로 김지운이었다.

'내가 그때 붉은별 놈들을 잡은 후로 장난치는 놈은 없었는데.'

붉은별, 그러니까 북한 정부 소속 헌터들이 힌의 열매를 어비스에서 확보, 이후 지구에서 팔아먹은 것이 한국 국정원에 들켰고, 그때 삼족오 클랜이 나서서 응징을 했다.

당연히 그 응징 과정에서 삼족오 클랜은 가장 확실한 헌터를 보냈고, 그 헌터는 붉은별들을 몰살시켰다.

사람 죽이는 것을 장난으로 여기는 북한, 그곳의 수뇌부들이 보고를 받고 화를 내는 대신 겁에 질렸을 정도로, 아주 처절하고 철저하게.

그 후에 힌의 열매를 거래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물론 그건 오래 전의 일이었지만, 힌의 열매에 대한 헌터들의 위기감은 꽤 높았고, 그래서 거래는 물론 소유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막말로 헌터들은 이런 물건 가지고 싶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제 품에서 힌의 열매가 터지기라도 한다면?

심지어 힌의 열매는 씻어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야만 그 향이 사라졌다.

그런데 그런 힌의 열매가 관악산에 있었다.

'피가 식는군.'

솔직히 이건 김지운 입장에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지금 두 가지는 분명했다.

흑랑 클랜이 힌의 열매를 가지고 있다면 결코 한두 개 정도 가진 게 아니라는 것.

그도 그럴 것이 힌의 열매는 구하는 게 어렵긴 하지만, 다른 아이템들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힌의 열매는 나무에 계속 맺혔다.

열매 나무 위치 파악만 잘해두면 꾸준한 수급이 가능하다는 것.

'이걸로 놈들이 할 짓을 생각하면.'

두 번째는 흑랑 클랜이 힌의 열매를 모은 이유가 세계 평화나, 올바른 인류 가치를 세우기 위해서는 아니라는 것.

'빌어먹을.'

더군다나 지금 시점에서 힌의 열매는 놀라울 만한 아이템이었다.

단순히 몬스터를 끌어 모은다, 수준이 아니었다.

오아시스에 힌의 열매를 쓰면 몬스터들이 몰려올 테고, 그 후 힌의 열매가 효과를 다하는 순간 몬스터들은 오아시스를 벗어날 터.

원하는 지역을 점령하는데 이보다 더 확실하고 깔끔한 효과를 보여주는 아이템은 김지운도 쉽게 떠올릴 수 없었다.

더 나아가 국가적으로 봤을 때 골치 아픈 몬스터를 다른 나라에 떠넘기는 것도 가능했다.

김지운이 보기엔 이 시점에서 이보다 더 전략, 전술적으로 뛰어난 물건은 없었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의문도 들었다.

'이런 아이템을 쓴다는 건, 그냥 단순한 건 아니다. 이유가 있다.'

닭 잡는데 용 잡는 칼을 꺼내들었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터.

'쇼케이스일지도 모른다. 흑랑 클랜이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그리고 이유가 있어야 했다.

'그게 아니면 더 최악이다.'

이유 없이 그냥 닭 잡는데 용 잡는 칼을 꺼내들었다면 그건 합리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미친놈이란 의미였으니까.

생각은 여기까지였다.

이 이상 고민하는 건 무의미했다.

"힌의 열매의 지속 시간은 보통 19시간이다. 그리고 놈이 힌의 열매를 깨뜨린 건 3시간 전이다. 앞으로 16시간 동안 이곳으로 몬스터들이 몰려오기 시작할 거다."

결국 지금 마주해야 하는 선택지는 두 가지 뿐이었으니까.

"박준호, 스무 명 고를 수 있나?"

하나는 구할 수 있을 만큼 구하든가.

"그냥 여기서 뒈지겠습니다."

아니면 이곳에서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티든가.

"변하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군."

물론 김지운은 박준호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런 자였다.

생긴 것과 다르게 올바른 가치를 위해 제 스스로를 희생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자.

머리의 상처도 그래서 생겼다.

동료를 구하려고.

그래서 데리고 다녔다.

가장 위험한 곳까지.

박준호는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어줄 수 있고, 김지운도 목숨을 걸어줄 수 있었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별 수 없지."

김지운, 그는 여기서 박준호를 버릴 생각이 없었다.

"대장도 변함이 없네요."

그 사실에 박준호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밝은 미소를, 가장 무시무시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김지운은 그저 단순히 박준호를 도와주기 위해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게 아니었다.

'관악산은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만약 여기서 김지운과 박준호가 몬스터를 피해서 도망친다면?

흑랑 클랜이 바로 점거를 할 터.

더불어 이번에 들어오는 흑랑 클랜은 김지운이 여의도와 영등포에서 마주한 이들과 수준이 달랐다.

그들은 그냥 갑자기 주인을 잃은 들개들 수준이었고, 지금 올 이들은 정예들이었다.

특히 군대가 움직일 가능성이 컸다.

흑랑 클랜은 지금 오산공군기지와 긴밀한 관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으니까.

'어차피 군부대와는 협상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렇게 몰려오는 군대를 설득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이 삼족오 클랜이나, 어비스를 제대로 알 리 만무.

또한 그들에게 관악산의 생존자들이랑 무장한 무법자들을 구분할 방법 역시 있을 리 만무했다.

구분할 생각도 없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전투라 시작되면 모든 오감은 오로지 적을 죽이기 위한 정보만을 수용했으니까.

김지운도 그랬으니까.

당연히 관악산을 점거한 군대와 헌터들을 상대로 다시 관악산을 되찾는 건 불가능했다.

특히 이곳은 오아시스였다.

어비스의 전투보다는 지구의 전투 방식이 매우 유효하다는 의미.

'관악산을 점령하면 사실상 강남이 점령된다.'

그리고 관악산이 놈들 손에 들어가면 김지운의 집은 판자촌이랑 다를 바 없었다.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곳.

과대망상 같은 게 아니었다.

'견인곡사포만 배치해도 전부 사거리 범위 내이니까.'

쉽진 않겠지만, 시간을 들여서 155mm 견인곡사포를 배치한다면 여의도는 물론 용산까지도 충분히 포격이 가능했다.

여하튼 김지운 입장에서는 여기서 상황을 정리하는 게 최선이다.

"작전을 설명한다."

그리고 김지운에게는 나름 계획이 있었다.

"한 장소에서 오는 몬스터를 처리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

"역시 대장, 믿음직한 모습도 변함없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김지운의 모습에 미소를 짓는 박준호.

"그러니까 힌의 열매를 가지고 이동한다."

"그렇죠, 이동하면서 전장을 골라야죠. 그럼 누가 들고 움직입니까?"

"너."

"예?"

"박준호, 네가 들고 이동한다."

"제가요."

"그럼 내가 할까?"

그리고 이내 박준호는 깨달았다.

"······씨발, 제가 해아죠. 아무렴요."

김지운은 정말 그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음을.

그 순간이었다.

크우우우!

힌의 열매 냄새를 맡은 몬스터가 등장했다.

"오크 무리군."

그것을 확인한 김지운에게 강현중이 질문을 던졌다.

"저기 괜찮습니까?"

걱정을.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박준호가 하려는 짓은 강현중이 보기에 몸에 살코기를 걸어두고 굶주린 맹수들이 가득한 아프리카 초원에서 춤을 추는 것보다 더 미친 짓이었다.

그러나 김지운은 달랐다.

"강현중, 어비스에는 상처 따위는 금방 치료할 수 있는 것들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박준호는 제 머리에 난 상처를 치료하지 않았다."

그는 알았으니까.

"그 상처를 낸 게 황금털이었으니까."

박준호가 어떤 헌터인지.

크우우우!

그러는 사이 오크들이 왔다.

크우우우!

그야말로 파도처럼.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됐다.

4.

오산공군기지.

그곳의 크기는 어지간한 군부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그런 오산공군기지가 새하얗기 그지없는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그것 자체는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물론 세상 대부분이 안개로 뒤덮여 있었으니까. 

놀라운 것은 오산공군기지 자체는 안개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마치 돔구장과 비슷했다.

어비스의 안개가 오산공군기지를 돔구장처럼 덮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건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단순히 오아시스가 된 것만으로도 기적인데, 오산공군기지에는 막강한 무기는 물론 지금 상황에서 가장 확실한 이동수단인 전투기나 헬기 역시 다수 있었으니까.

다른 곳의 생존자들에게는 신에 대한 간절한 감사함을 절로 나올 법한 일.

그러나 오산공군기지의 생존자들 중에 자신들의 처지에 감사함을 느끼는 이들은 없었다.

애초에 그게 인간이란 짐승이었다.

등이 따듯하고, 배부르면 만족하기보다는 오히려 무언가를 더 바라는 짐승.

이준휘 준장도 그랬다.

오산공군기지의 공군작전사령부 부사령관인 그는 아포칼립스 세상이 오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별을 단 군인이라면 한 번쯤 꾸게 되는 전쟁 속에서 정점에 도달하는 꿈, 그 꿈을 현실이 되었다고.

물론 상황이 녹록한 건 아니었다.

다른 무엇보다 이준휘 준장을 골치 아프게 한 건 오산공군기지에는 별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당장 이준휘 준장 위로는 공군작전사령부 사령관이 있었고, 공군미사일방어사령부와 공군방공관제사령부 사령관 역시 이준휘 준장보다 계급이 높은 소장이었으며, 오산공군기지에 자리 잡은 주한미군인 제7공군에도 별들이 넘쳤다.

그곳에서 별 하나뿐인 이준휘 준장이 지휘권을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린샤오웨이."

눈앞에 있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는 아포칼립스가 된 세상에서, 그 누구도 안개를 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맨몸으로 오산공군기지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준휘 준장에게 이야기를 해줬다.

어비스와 헌터 그리고 클랜에 대한 이야기를.

그 후에 제안을 했다.

자신을 도와주면 자신 역시 전력으로 이준휘 준장을 돕겠다고.

이준휘 준장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여러모로 매력적이었으니까.

그 후에 린샤오웨이는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이준휘 준장에게 건네주었다.

마스크를 이용해 안개를 공략하는 방법부터, 몬스터를 사냥하고, 헌터가 되고, 아이템을 쓰는 방법까지.

또한 매우 강력하기 그지없는 아이템도 제공했었고, 그 과정에서 어비스 좀비와 몬스터의 공포로 지배당했던 오산공군기지는 빠르게 정상화됐다.

그 모든 과정을 지휘한 이준휘 준장의 영향력 역시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국방부, 그 건수 말인데."

이준휘 준장의 지휘 아래에 진행된 국방부 장성 구출 작전이 실패해버리고 말았다.

사실 실패 자체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골치 아프게 됐어. 헌터들이 처리하게 될 줄이야."

문제는 그가 하지 못한 것을 등산동호회로 보이는 조잡하고 조악하기 그지없는 헌터 모임이 처리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그 후에도 국방부 벙커에 숨은 장성들을 구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여러모로 반전이 필요한 대목.

그리고 그 반전은 린샤오웨이의 몫이었다.

그런 이준휘 준장의 말에 베이징대 유학파 출신인 김준섭 중령이 통역을 해주었고, 이내 린샤오웨이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번 관악산 정복만 끝난다면 다시 모든 게 잘 풀릴 거라고 합니다."

관악산.

그게 린샤오웨이가 준비한 반전 계획이었다.

계획 자체는 나쁠 게 없었다.

오아시스인 관악산을 점령한 후에 근처에 있는 제52보병사단에서 무기를 수급하고, 이후 다른 곳에서 강력한 포병 전력을 확보한 후에 관악산에 배치하면 서울 어지간한 지역은 얼마든지 정리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 성공하면 잘 풀리겠지. 성공한다면."

하지만 반대로 실패한다면?

더더욱 이준희 준장의 면이 서지 않을 터.

그리고 관악산을 점령하는 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일단 오산공군기지에서 관악산까지 거리가 짧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병력을 보내는 게 쉽지 않다는 것.

또한 조사 결과 관악산은 지금 적지 않은 무법자 무리들이 점거하고 있는 상태였다.

다행히도 그 무법자 무리들이 조사 결과 제52보병사단에서 무기를 수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파악했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 무법자 무리에는 꽤 실력 좋은 헌터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 상태였으니까.

"그런데 할 수 있겠어?"

여기서 이준휘 준장은 깊은 의심을 던졌다.

더 정확히는 속으로 저울질을 했다.

만약 린샤오웨이가 더 이상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되면 그와 그 부하를 제거하기로.

이상할 건 없었다.

'아니다 싶으면 정리해야지. 그래야 내가 산다.'

린샤오웨이와 손을 잡았다는 게 드러나면 이준휘 준장의 처지는 곤란해지고, 그 곤란함을 숨기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죽여서 없애는 것이었으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이준휘 준장 입장에서는 린샤오웨이를 압박해야 했다.

그래야 가진 카드를 짜낼 테니까.

그리고 이준휘 준장의 생각대로 린샤오웨이는 꺼내줬다.

"가장 믿을 수 있는 부하를 보냈다고 합니다."

가진 값비싼 카드를.

물론 이준휘 준장은 그 카드가 탐탁지 않았다.

"결국 초기화된 자들 아닌가? 이등병이나 다를 바 없는."

어비스에서 얼마나 날고 기는 헌터들이었는지는 솔직히 이준휘 입장에서는 알 도리도, 알 바도 없는 바.

그에 대해서 린샤오웨이가 통역사인 김준섭 중령에게 무어라 말했다.

"그래서 자신의 아이템을 줬다고 합니다."

"아이템?"

"나중에 다른 헌터들이나 클랜 마스터를 만나서 물어보면 아실 겁니다."

그 대목에서 린샤오웨이는 어느 때보다 진한 미소를 지은 채 김준섭 중령의 입을 통해 말했다.

"검은 이무기의 역린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리고는 린샤오웨이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퍼스트 킬러조차 애용했던 아이템이라고 합니다."

그런 린샤오웨이의 눈빛에는 한 가지 감정만이 있었다.

"그곳에 누가 있던, 어떤 헌터가 있건 살아남은 자는 없을 거라고 합니다."

아주 강력한 확신이란 감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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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몬스터 웨이브 (3).

5.

어비스는 RPG장르의 게임과 같았다.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도 똑같았고, 해서 각 직업들에게는 그 역할이 있었다.

이 대목에서 몇몇 이들은 질문을 던졌다.

가장 중요한 직업이 뭐냐고.

의외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쟁이 없었다.

모든 직업이 중요하다, 어비스에 차별은 없다! 같은 영양가 없는 답을 내놓아서 그런 게 아니었다.

"무식한 파수꾼 없이는 몬스터를 잡을 수 없다."

확실한 답이 있다는 것.

그만큼 무식한 파수꾼, 그러니까 탱커의 역할은 몬스터 사냥에 있어서 절대적이었다.

특히 어비스 더 깊은 곳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다른 직업들은 마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오로지 무식한 파수꾼만이 버틸 수 있다는 의미.

단, 여기서 무식한 파수꾼들이 몬스터를 상대하는 방법은 RPG게임과는 조금 달랐다.

육체를 강철처럼 연마하고, 강력한 갑옷을 두르고, 오는 공격을 전부 막아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애초에 어비스의 몬스터를 상대로는 그게 불가능했다.

톤 단위로 계산이 되고, 수백 미터 단위로 구분을 해야 하는 거대 몬스터를 상대로 몸싸움을 한다는 게 가능할 리 만무하지 않은가?

때문에 무식한 파수꾼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도망치는 능력이었다.

해서 헌터들은 이런 비유를 자주 썼다.

"미식축구로 따지면 러닝백이지."

그 덩치 좋은 라인맨이 아니라 공을 가지고 달리는 러닝백, 그게 무식한 파수꾼의 역할이라고.

코끼리 발 아래에서 쥐가 열심히 뛰어다니듯이 달리는 것이 러닝백의 가장 중요 능력이라고.

"박준호는 매우 뛰어난 파수꾼이었다."

그리고 김지운이 아는 무식한 파수꾼 중에서 박준호보다 뛰어난 자는 열 명이 되지 않았다.

그건 엄청난 일이었다.

김지운이 아는 뛰어난 헌터들이란 대부분 별을 가진 헌터들을 말함이었으니까.

그런 김지운의 설명에 감탄을 토해내던 강현중.

"그래서 박준호를 아는 이들은 그를 불렀지."

"혹시."

그 강현중이 이내 조심스레 제 의견을 말했다.

"슈팅스타, 그런 별명입니까?"

그 말에 김지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보다 더 좋고 직관적인 별명이다."

"직관적이라고요?"

"좆같은 대머리 새끼."

"예?"

"다들 그렇게 박준호를 불렀다."

말을 하던 김지운이 짧게 회상을 했다.

박준호가 활약하던 때를.

"이 바닥에서는 극찬이지."

둘의 이야기는 거기까지였다.

박준호, 그가 왔다.

품에는 깨진 힌의 열매를 미식 축구공처럼 든 채.

크우우우!

그리고 그 힌의 열매를 쫓는 삼백여 마리의 오크들을 자신의 등 뒤에 놓은 채.

그건 정말 미식축구 경기 같은 모습이었다.

보는 강현중의 입에서는 감탄이 나올 따름이었다.

'저렇게 달리는 게 가능해?'

평지도 아닌 관악산, 그곳에서 저렇게 달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는 산악훈련과 산악전투를 해봤기에 잘 아는 바.

크어어어!

실제로 강현중을 따라오는 오크들 대부분은 제대로 따라오기는커녕 넘어지고, 구르고, 서로 부딪치고, 난장판이 아니었다.

그러나 김지운은 달랐다.

그는 오히려 기다렸다.

'이제 시작이다.'

그저 단순히 잘 달리는 이를 러닝백이라고 하는 이는 없었다.

공을 가지고 적진을 파고들어 골에 도달하는 자들, 그게 러닝백의 진짜 역할이었으니까.

박준호도 그랬다.

약속된 장소에 오는 순간, 그 순간 박준호는 발을 돌렸다.

그리고 돌진했다.

크우우우!

오크 무리들을 향해서.

그 사실에 오크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다가오는 박준호를 향해 손에 든 무기를 휘둘렀다.

후우웅!

도끼나 칼 같은 날붙이들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할 만큼 미친 듯이.

그러나 박준호는 그 소리들을 피해내며, 오크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서 강현중은 잠시 정신이 멈췄다.

그가 보기에 지금 광경은 있을 수 없는 광경이었으니까.

반면 김지운은 달랐다. 

그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동시에 저건 신호이기도 했다.

자신이 오크들을 헤집는 사이, 이 빌어먹을 오크들을 처리하라는 신호.

김지운은 그 신호에 기꺼이 응했다.

투투!

김지운이 손에 든 K2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투투!

짤막하게.

투투!

그러나 쉴 새 없이.

그런 김지운의 공격에 오크들은 이렇다 할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채, 머리통에 구멍을 낸 채 쓰러졌다.

그쯤에서 강현중도 정신을 차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삽시간이었다.

3백여 마리의 오크들이 바닥에 널브러지는 데에 걸린 시간은.

그러나 휴식은 없었다.

이제 고작 30분은 지났을 뿐이었다.

끼이이!

이미 새로운 몬스터들이 오크의 뒤를 이어 힌의 냄새를 맡고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쯤에서 강현중도 더 이상 감탄에 빠지거나 그러지 않았다.

아우우우!

그때 두 번째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됐다.

'코볼트!'

앞서 오크보다 더 골치 아픈 몬스터였다.

근접 전투능력은 부족하지만, 코볼트들은 활과 같은 원거리 무기를 잘 썼으니까.

특히 관악산의 코볼트들은 총을 들고 있을 가능성이 제법 높았다.

그 예상대로였다.

아우우우!

등장한 코볼트들, 개중 몇 마리의 손에는 우려했던 대로 K2소총이 들려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제아무리 좆같은 대머리 새끼라는 극찬을 듣는 박준호도 자신을 노리고 오는 총을 보고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사전에 김지운과 강현중이 처리해야 한다는 의미.

그러나 쉽진 않았다.

아우우우!

몰려오는 코볼트의 숫자는 4백여 마리, 그런 놈들은 마치 개미떼처럼 한 덩어리로 뭉쳐서 오고 있었으니까.

곳곳에 있는 총 든 코볼트만을 노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분명 강현중의 상식으로는 그랬다.

그러나 김지운의 상식으로는 달랐다.

김지운은 달렸고, 이내 나무 한 그루를 디딤판 삼으면서 그대로 높게 도약했다.

아우우우우!

그렇게 몰려오는 코볼트 무리 위를 지나가며 그대로 손에 든 K2의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 투투!

그런 김지운의 총격에 코볼트들이 그대로 쓰러졌다.

총을 든 놈들만.

그게 헌터의 방식이었다.

땅을 밟고만 싸우는 게 아니라, 하늘을 날아다니면서도 싸우는 것.

막연한 비유가 아니었다.

정말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싸우는 경우도 있었다.

공중전에도 익숙해져야 한다는 의미였고, 실제로 김지운은 그 공중전에 매우 익숙한 헌터 중 한 명이었다.

그 짧은 순간 발 아래에 있는 몬스터들 중에 타깃만을 노리는 건 그에게 어려울 것 없는 일이었다.

'대단하다.'

그것을 본 강현중이 감탄을 삼키는 순간.

크르르르!

세 번째 파도가 왔다.

커헝커헝!

'도그블린!'

이번 파도는 어비스에서 가장 약한 몬스터라고 할 수 있는 도그블린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에 김지운과 박준호는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둘의 표정은 앞서 오크와 코볼트를 상대했을 때보다 더 굳어 있었다.

아는 탓이었다.

'이곳에 올 정도의 무리라면.'

'천 단위는 가뿐히 넘는다.'

그 예상대로였다.

두두두두!

몰려오는 도그블린은 그 숫자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났다. 땅을 울리면서 왔다.

총격 따위로 어떻게 막을 수 있는 수준의 파도가 아니었다.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맙소사.'

그렇다고 여기서 도그블린 무리로부터 피할 수도 없었다.

그랬다가는 코볼트들이 다른 생존자들을 노릴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박준호가 미친 듯이 움직이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리기 위해서.

물론 그렇다고 여기서 도그블린 파도를 향해 달려드는 건 아니었다.

그가 움직였고, 김지운 역시 움직였고, 강현중 역시 김지운을 따라서 이동했다.

'여긴?'

이윽고 강현중은 볼 수 있었다.

'연주대?'

관악산의 벼랑 끝에 세워진 전각인 연주대가.

'설마?'

그것을 본 강현중이 무언가를 떠올리는 순간, 그 순간 달려가던 박준호가 그 연주대 너머로 몸을 날렸다.

벼랑 끝에서 도약했다.

커헝, 커헝!

그리고 그런 박준호의 뒤를 이어 도그블린들이 그대로 벼랑 끝으로 도약했다.

도그블린이 절벽 아래로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박준호는 무사했다.

김지운, 그가 염력으로 날린 헥토르 거미줄을 잡고 벼랑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이윽고 도그블린들이 전부 벼랑에 떨어진 후에 비로소 김지운이 박준호를 끌어올렸다.

그건 아득한 광경이었다.

그 광경을 본 강현중조차 말문이 막힐 만큼.

그도 그럴 것이 절벽으로 몸을 던진다? 그건 미친 짓이었다. 낙하산을 가지고 있어도 하지 않을 짓.

아무리 김지운이 대기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강현중이라면 결코 하지 못했을 짓이었다.

"어우, 오랜만에 날아봅니다."

"그동안 편하게 사냥했던 모양이군."

"예, 대장 죽은 다음에는 대장만큼 미친 짓하는 인간은 없었거든요."

더 아득한 것은 김지운과 박준호는 이것을 그리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는 점이었다.

그 모습을 본 강현중은 확신했다.

'오늘 이곳에서 죽을 일은 없다.'

이곳이 몬스터들의 지옥이 되리라고.

그리고 그 확신은 곧 현실이 됐다.

해가 꺼지고 밤이 왔을 때.

투투투!

그때도 김지운 파티는 몬스터와 싸웠다.

그다음 날 해가 뜬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투투투!

여전히 전투는 거듭되고 있었다.

그러한 전투가 끝난 것은 해가 관악산의 꼭대기에 도달할 무렵이었다.

드디어 고요함이 깔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20레벨을 달성했습니다.]

[스킬 슬롯이 개방됐습니다.]

그 고요함 속에서 들려오는 그 알림에 김지운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

기나긴 전투로 달아오른, 과부하된 육체와 정신을 식히기 시작했다.

"후우."

아주 짧게.

1분 남짓 숨을 고른 김지운은 다시 움직였다.

그 모습에 자리에 주저앉은 강현중이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어디 가십니까?"

그 질문에 김지운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아직 잡을 게 있다."

6.

이제는 그 누구도 걷고 싶어 하지 않는 어비스의 안개.

그런 어비스 안개 속으로 세 명이 걸음을 내디디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쓰고 있는 군용 방독면만 아니라면, 그냥 동네 뒷산에 운동 삼아 등산하러 나온 것처럼.

물론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안개가 자욱한 곳은 곧 몬스터와 어비스 좀비의 영역, 그곳을 여유롭게 돌아다닌다?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나 놀랍게도 여유롭게 움직이는 그들은 단 한 번도 몬스터와 어비스 좀비를 만나지 않았다.

주변 경계를 하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곳곳에 지뢰처럼 배치된 몬스터와 어비스 좀비를 피해가고 있었다.

그 덕분이었다.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고, 종국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기가 관악산이군."

자신들의 목적지에.

그곳에 도달하는 순간 세 명의 헌터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쓰고 있던 방독면을 벗었다.

그제야 비로소 드러난 그들의 외모는 앳되기 그지없었다.

대학생으로 보일 만큼 젊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들은 대학생이었다. 중국에서 한국 대학으로 공부하러 온 유학생이었다.

물론 그것은 가짜 신분이었고, 그들의 진짜 신분은 다름 아니라 흑랑 클랜 소속의 헌터들이었다.

더불어 그들은 흑랑 클랜이 어린 소년, 소녀들을 데려다가 어비스에서 살아남기 위한 특수 훈련을 거쳐 키운 헌터들, 아랑(餓狼)이었다.

그야말로 헌터로 키워진 이들이었고, 나이와 상관없는 경험과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아랑, 굶주린 이리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탐욕스럽기 그지없었다.

정확히는 그렇게 키워졌다.

언제나 피에 굶주린 채, 마주한 몬스터나 헌터를 보면 죽을 때까지 물어뜯으라고.

당연히 그들에게 평범한 이들의 상식과 가치관을 바라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에게 사람은 그냥 장난감일 따름이었다.

"빌어먹을 언제까지 빵즈 놈들 말을 따라야 하는 겁니까?"

하물며 자신들보다 낮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은 장난감 취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개돼지와 비슷한 동물이라고 생각을 할 뿐.

"그리고 이번 건 우리가 움직일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기 모인 아랑들이 불만을 표현하는 건 그 때문이었다.

"힌의 열매를 터뜨렸잖습니까? 그럼 알아서 몬스터들이 싹 정리해줄 것 아닙니까?"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곳, 관악산에는 힌의 열매가 터진 상태였다.

당연히 몬스터들이 몰려들었을 테고, 그들은 힌의 열매를 쫓아 미친 듯이 움직였을 것이다.

"오아시스이니 몬스터들도 알아서 정리될 테고."

그리고 힌의 열매가 효과를 다하는 순간 정신을 차린 몬스터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이곳에는 안개가 없으니, 빨리 안개 너머로 도망치자고.

혹은 몇몇 몬스터들은 때를 놓치고 죽음을 마주했을 터.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관악산의 생존자들은 대부분 죽거나 혹은 안개 너머로 도망쳤을 것이다.

정리하면 힌의 열매를 오아시스에 터뜨리는 것은 집 안에 바퀴벌레 연기약을 터뜨리는 것과 같았다.

물론 바퀴벌레 약을 터뜨려도 바퀴벌레들 살아남기는 하지만, 그래봐야 간신히 살아남은 수준에 불과했다.

그냥 특수부대만 보내도 충분히 처리하고 남을 수준이라는 의미.

그래서 불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리까지 와서 남은 바퀴벌레들을 잡으라니, 이건 너무 비효율적인 것 아닙니까? 애초에 이런 짓을 하는 것부터가 이해가 안 됩니다. 힌의 열매가 얼마나 귀한 건데."

고작 그 정도 일에 다른 누구도 아닌 아랑이 투입된 셈이었으니까.

"그래도 따른다."

이 세 명 중 리더격인 청년 역시 자신들이 투입된 게 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불합리하다고 하더라고."

더불어 그 리더 역시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럼에도 움직이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분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절대적인 존재가 명령을 내렸다는 것.

"또한 이번 임무는 매우 중요하다. 이번 임무로 빵즈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이 세계에서 누구를 따라야 하는지. 무엇보다 서울을 점령해야 그것을 회수할 수 있다."

이어진 리더 청년의 말에 더 이상 불만은 없었다.

그리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청년이 손을 들었고, 그 제스처에 남은 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무언가가 온다, 라는 신호였으니까.

모두가 주변을 바라봤다.

하지만 딱히 무언가 보이는 건 없었다. 낌새도 없었다. 고요함과 적막감만이 느껴졌다.

그렇게 제법 시간이 흐른 후, 그 후에야 비로소 보였다.

덜덜덜!

한 사내가 누더기나 다름없는 코트를 걸치고 관악산을 헤매고 있는 것이.

그런 사내는 품에 아이로 보이는 것을 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랑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바퀴벌레가 살아남았군요."

그런 아랑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남은 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두 마리가."

결코 기분 좋은 미소는 아니었다.

그때 한 명이 말했다.

"거기 생존자이십니까?"

그 목소리에 아이를 품은 사내가 기겁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당장 달려오진 않았다.

긴장 가득한 모습을 보일 뿐.

"괜찮으십니까? 다치신 겁니까? 도와드릴까요?"

그때 청년이 어느 때보다 걱정과 우려가 섞인 목소리로 말을 건넸고, 그 말에 사내가 긴장을 풀며 말했다.

"사, 살려주십시오."

"이런! 오세요! 이쪽으로 오시죠! 아니, 저희들이 가겠습니다!"

그 목소리에 아랑 셋이 매우 걱정 어린 표정을 지으며 다가오는 사내를 향해 걸어갔다.

사내는 도망가지 않았다.

도리어 아랑 셋을 향해 알아서 걸어왔고, 그것을 본 아랑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진해졌다.

이윽고 사내가 다가오는 순간 한 명이 웃으며 중국어로 말했다.

"빵즈 놈이 우리 말을 이해할지 모르겠는데, 제안을 하지. 순순히 협조하면 곱게 죽여주마."

매우 재미있는 장난감을 본 사이코패스가 지을 법한 미소와 함께.

그 순간이었다.

"크헉!"

"켁!"

"크륵!"

미소를 짓던 세 명의 청년들이 숨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제 목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누군가가 목에 올가미를 건 후에 잡아당긴 것처럼.

쿵!

그렇게 쓰러진 청년들을 바라보던 사내가 바로 품고 있던 보자기에서 손을 넣었다.

그리고는 꺼냈다.

권총을.

타앙, 타앙!

사내는 꺼내자마자 바로 두 명의 머리통에 탄환을 박았다.

"끄르르륵!"

그리고 남은 한 명을 향해서 허리춤에서 꺼내든 도끼를 내리쳤다.

콰직!

단숨에 오른손을 잘라냈다.

"끄르르르!"

그 사실에 몸부림치는 청년에게 사내는 말했다.

"제안을 하지. 내가 묻는 말에 협조하면 곱게 죽여주마."

7.

린샤오웨이.

오산공군기지에서 머무는 그는 꽤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

군용식량이긴 하지만 삼시 세끼가 제공됐고, 원하면 커피와 다과를 매일 5회 정도 받을 수 있었으며, 따뜻한 온수로 목욕이 가능했다.

그건 지금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특혜였다.

특히 그는 앉아서 입을 몇 번 놀리는 것만으로,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이 모든 것을 제공 받았다.

마치 좋은 감옥처럼.

말 그대로였다.

린샤오웨이에게 제공되는 모든 호의는 그가 가만히, 제 숙소에 있을 경우에만 유효했다.

적당한 외부 활동은 가능하지만, 선을 넘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뀔 터.

개중에서도 누군가와의 접촉하는 것이 매우 제한됐다.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군.'

하지만 린샤오웨이는 개의치 않았다.

'헌터가 무엇인지.'

있었으니까.

그의 곁에 같이 다니는 부하는 헌터였으니까.

'안 그런가?'

'예, 맞습니다.'

음험한 사기꾼의 스킬 중 하나인 텔레파시를 소유한 자가.

당연한 말이지만 이 텔레파시를 이용해 린샤오웨이는 얼마든지 외부와 소통이 가능했다.

물론 그렇다고 안전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그가 상대하고 있는 이준휘 준장은 린샤우웨이를 사냥개로 바라보고 있었다.

쓸모없어지면 얼마든 끓여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린샤오웨이님, 이번 관악산 점령은 너무 과한 것 아닙니까? 힌의 열매는 물론 아랑들을 보낼 만한 건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렴, 과하지.'

그래서였다.

'그러니까 일부러 과하게 한 거다. 보여줘야 하니까.'

이번에 그가 관악산에 적잖은 투자를 한 것은.

'어비스가 어떤 세계인지 모르는 이준휘 준장에게 어비스가 뭔지를 보여줘야 하니까.'

쇼케이스였다.

어비스의 헌터가 어떻게 이 아포칼립스 세상을 상대하고, 다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그래서 힌의 열매를 썼다.

그건 어비스의 헌터들에게 일종의 핵배낭 같은 전략 무기였으니까.

그것을 보여주는 순간 이준휘 준장은 어렴풋이 느낄 것이다.

'누가 사냥개이고, 사냥꾼인지.'

자신의 명줄을 잡고 있는 게 누구인지.

물론 모든 것이 완벽한 건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생길 수 있는 일.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혹시 일이 잘 안 될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힌의 열매는 결코 쉽게 다룰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힌의 열매 때문에 옐로우 등급의 몬스터까지 꼬일 가능성도 있습니까?'

오히려 관악산에 엄청난 괴물을 들여 보내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아랑들을 보냈다.'

그 때문이었다.

'내가 가진 검은 이무기의 역린 장갑까지 주면서.'

린샤오웨이가 과한 지출을 한 것은.

동시에 과하게 했기에 린샤오웨이는 자신했다.

'결코 헌터나 몬스터에게 당하는 일은 없을 거다. 적의를 가지고 오는 이라면 최소한 파악하고 도망칠 순 있을 테니까.'

8.

김지운, 그가 숨어 있는 생존자 무리로 돌아왔을 때 강현중이 그를 반겼다.

"상황은 어떻게 됐습니까?"

"잘 처리됐다."

김지운의 대답은 담담했다.

"예상대로 잘 속아줬다."

이어진 말에 강현중이 고개를 갸웃했고, 그에 대한 설명은 박준호가 해주었다.

"생존자인 척 연기하고 파고 들어서 해치우신 모양이군요."

김지운이 어떤 식으로 헌터들을 상대했는지.

"예전부터 대장은 그런 거 잘했죠. 헌터들 방심시키는 거."

더불어 그게 김지운의 스타일이었다.

김지운은 정면승부 따위를, 힘과 힘의 대결을, 명예를 건 대결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쉽게 가는 방법이 있다면 그보다 더 쉬운 길을 찾는 것, 거기에 관심이 있었을 뿐.

이번에도 그랬다.

"경계심이 가득한 헌터들은 골치 아프니까."

김지운은 이곳에 오는 흑랑 클랜의 헌터들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상대로 기습을 한다?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컸고, 먹히더라도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내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특히 한 명이라도 놓치면 그때부터는 매우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게 분명했다.

해서 김지운은 생존자로 위장했다.

흑랑 클랜이 가지고 놀기 딱 좋은 상대로.

그리고 그런 노림수는 먹혔고, 김지운은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원하는 건 얻으셨습니까?"

"충분히."

정보를 얻었다.

'오산공군기지의 이준휘 준장이 흑랑 클랜과 손을 잡았다.'

국방부에서 일어난 장성 구출 작전과 이번 관악산 점령 작전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무엇인지.

'린샤오웨이 놈하고.'

그리고 지금 한국에 있는 흑랑 클랜의 VIP가 누구인지도 알 수 있었다.

더불어 그 얼굴은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흑랑을 따라나디던 새끼 흑랑 놈.'

흑랑 클랜의 최고 헌터인 흑랑, 그런 흑랑의 제자였다.

어비스에서 몇 번 얼굴을 봤다.

좋은 일로 본 건 아니었다.

여하튼 김지운은 린샤오웨이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사실 기억을 떠나서 만나기 전부터 꽤 유명인이었다.

린샤오웨이는 헌터이기 이전에 현재 중국의 국가주석인 시진핑의 최측근 중 한 명인 공산당 간부의 자식이었다.

그런 인물이 어비스에 들어왔다?

그냥 심심풀이로 들어왔을 리는 만무.

더군다나 중국이 어비스에 거는 기대는 보통 이들이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이었다.

중국의 운명을 걸고 있었다.

그러한 어비스에서 만약 엄청난 활약을 한다면?

한 가지는 분명했다.

현재 중국은 시진핑이란 주석이 독재나 다름없는 체제를 구축했고, 세상에 영원히 사는 독재자는 없다는 것.

언젠가는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것이며, 현 시점에서 중국의 정치세력이었던 태자당이나, 상하이방, 공청단은 현재 사실상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

그걸 린샤오웨이가 모를 리 없다는 것.

'왜 여기 있는지는 모르지만.'

여기서 김지운이 가진 의문은 린샤오웨이가 한국에 있는 이유였지만, 김지운은 그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그건 지금 당장 알 수 있는 일도 아니었으니까.

'이번에 막아서 다행이다.'

그나마 김지운 입장에서 천만다행인 건 관악산 점령을 막음으로써 시간을 꽤 벌었다는 것이었다.

만약 이대로 순조롭게 일이 진행됐다면 관악산이 점령되는 것이 아니라, 오산공군기지가 린샤오웨이의 손에 넘어갔을 터.

앞으로 린샤오웨이는 이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적잖은 수고를 더 해야 할 것이다.

큰 소득이었다.

"헌터 놈들 잡고 아이템은 안 나왔습니까?"

"제법 나왔다."

그 외의 소득도 상당했다.

"쓸만한 것들이."

여기 온 아랑들의 수중에는 지금 시점에서 구하기 힘든 아이템이 제법 있었으니까.

"오, 괜찮은 것들이네요."

특히 능력치를 올려주는 아이템들이.

"예전이면 쓰지도 않았겠지만."

물론 엄청난 수준의 헌터였던 박준호의 기준에서는 20레벨 이하짜리일 뿐이었다.

지금 시점에서는 매우 귀하지만, 놀랄 것은 하나도 없는 아이템들.

"응?"

그러나 그런 박준호의 눈빛이 장갑 하나를 드는 순간 달라졌다.

"어, 어? 어? 대장 이거?"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검은 이무기 역린 아닙니까?"

"그래, 역린이다."

그 대목에서 강현중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대체 어떤 아이템입니까?"

박준호는 설명 대신 아이템을 일단 건네줬고, 그러자 강현중의 눈앞에 창이 떴다.

[검은 이무기의 역린 장갑]

- 아이템 등급 : 레전더리

- 10레벨 이상 착용 가능

- 공격력 : F 랭크

- 내구도 : F 랭크

- 착용 시 모든 능력치 +5

- 검은 이무기의 역린을 이용해 만든 갑옷이다. 착용 시 감각이 매우 민감해진다.

물론 아이템 설명을 봐도 강현중은 이 아이템의 가치를 알 수 없었다.

"착용해 봐라."

그런 그에게 김지운이 말을 해줬고, 강현중은 바로 장갑을 착용했다.

장갑은 적당한 신축성이 있어서 착용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래서 더 의문이었다.

방어력도 대단해보이지 않았으니까.

'이게 대체 뭐라고?'

그러나 장갑을 끼는 순간 강현중은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아."

그런 그에게 김지운이 말을 해줬다.

"용의 역린은 민감하다. 가장 약한 약점이니까. 그중에서도 이무기의 역린이 가장 민감하다."

귓속말로 해도 잘 들리지 않을 만큼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런 이무기 중 하나인 검은 이무기의 역린으로 만든 장갑을 끼면 감각이 예민해진다."

그러나 강현중은 그 말을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오감이 달라졌다.

보이는 것이 더 잘 보였고, 맡아지지 않은 냄새가 맡아졌고, 뭘 먹은 것도 아닌데 입맛이 달라졌다.

심지어 피부로 느껴지는 것도 달라졌다.

감각이 정말 예민해졌다.

그 사실에 강현중은 이 아이템에 박준호와 김지운이 놀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것만 있으면······.'

"어비스 좀비나, 어지간한 몬스터들의 소리는 바로 눈치 챌 수 있지."

이 아이템은 지금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맵핵과도 같은 기능을 해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였다.

"그래서 대장도 무조건 끼고 다니셨죠."

김지운도 애용했었다.

정확히는 김지운이 애용하면서 유명해졌지만, 여하튼 김지운은 어비스에서 무조건 검은 이무기의 장갑을 꼈다.

"케이크 먹을 때만 빼고. 저거 끼면 모든 케이크가 맛이 쓰레기가 되어버린다고 하면서."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뺀 적이 없었다.

여하튼 큰 소득이었다.

정말 구하기 힘든 아이템이었으니까.

그리고 김지운에게 매우 중요한 아이템이었다.

'이게 들어오면 사냥이 더 수월해진다.'

김지운의 염력 컨트롤 능력 역시 강화시켜줬으니까.

그렇기에 김지운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박준호."

"예."

"여기 떠날 생각은 여전히 없나?"

그 질문에 박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여기가 제 집입니다."

여기서 김지운은 더 이상 박준호에게 같이 가자는 제안을 하지 않았다.

"그럼 이곳을 부탁한다."

오히려 이제는 김지운 입장에서 이곳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 왔으니까.

"필요한 지원은 최대한 해주겠다."

그것을 위해서 김지운은 무엇이든 할 생각이었다.

물론 문제점은 많았다.

김지운의 집인 여의도에서 이곳 관악산까지는 물자 보급을 할 만큼 여의치 않았다.

또한 여의도도 그렇게까지 물자가 풍부하다고 할 수 없었다.

"탄약하고 총만 있으면 제법 버틸 수 있습니다. 문제는 통신입니다."

그러나 가장 최악은 서로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파악하는 게 힘들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여의도까지 통신선을 까는 것이 그나마 방법이라면 방법이겠지만 그 역시 단선 등 유지관리가 쉽지 않았다.

"접시가 있으면 좋을 텐데."

"접시? 그게 뭡니까?"

물론 최선은 위성 통신이었다.

"위성으로 통신을 할 때 쓰는 거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위성 통신을 쓰는 이들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관악산 같은 곳에서 구할 수 있을 리 만무.

"잠깐만요."

그때였다.

"대혁아!"

박준호가 이름을 부르자 먼 발치에 있던 멀대 같은 키에 안경을 쓴 사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부, 부르셨습니까?"

"대혁아, 혹시 위성 통신이라고 알고 있냐?"

"압니다. 그거 전문으로 연구하는 연구실도 있어요."

"그래? 그럼 그 접시란 거 있어?"

"어, 그게······."

그 질문에 김대혁은 머리를 긁적였다.

"없어?"

"아뇨, 몇 개나 필요하신 건지 몰라서요."

이어진 말에 박준호는 물론 김지운도 반색했다.

"몇 개나 있지?"

"제가 하던 게 아니라서 잘 모르는데, 그래도 수십 개는 있을 겁니다. 올 가을쯤에 그쪽 연구실에서 대량으로 구매한 거 봤습니다. 저도 몇 번 써봤습니다."

수십 개란 말에 김지운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연구실 위치는 어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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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압구정 로데오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