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화. 성지 (4)
곧 천월이 고개를 들었을 때 운모한이 한 걸음 간격을 두고 앞에 서 있었다. 천월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운모한은 고개를 숙여 천월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천월은 서서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운모한은 홀연 몸을 미세하게 떨었다.
천월은 미간을 찌푸리며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꼴이 왜 그래요? 어제 잠을 못 자기라도 한 거예요?”
운모한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폐하께서 즉시 입궁하란 성지를 보내셨어요. 할 말 없으면 가볼게요.”
천월은 운왕과 용경이 대체 뭘 하고 있는지 몰래 숨어서 엿보려 했지만 운모한으로 인해 돌아갈 수가 없어 다시 궁으로 가겠단 마음을 먹었다.
“나도 막 궁에 가려던 참이었다. 같이 가면 되겠구나.”
그때, 갑자기 운모한이 돌아서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천월은 잠시 멍하게 그를 바라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향하는 운모한의 뒷모습을 보고 망설이다, 그의 뒤를 따라갔다.
운모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적당한 속도로 걸어 정문으로 향했다.
천월은 운모한의 뒤를 따라 걸으며 무언가 극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조금 전엔 용경과 이 길을 걸었는데, 지금은 운모한과 함께 걷고 있다니. 하지만 둘의 마음속 생각은 천차만별이겠지.’
운모한은 가는 내내 아무 말이 없었고 천월 역시 자연스럽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니, 앞에서 바쁘게 걸어오는 운 소왕과 마주쳤다. 운 소왕은 천월과 운모한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당황해했다.
“천월, 조부님 처소에서 왜 이렇게 빨리 나왔느냐?”
“조부님께서 절 보기 싫다고 하셨습니다.”
천월의 볼멘소리에, 운 소왕은 다시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경 세자는?”
천월이 다시 한 번 울분을 삭이며 뾰로통하게 이야기했다.
“경 세자만 모시고 가서 지금 술과 차를 마시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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