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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주작의 현신

18화. 주작의 현신

심소담은 심일풍과 다른 사람들이 아주 경건하게 그 알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 속으로 몰래 비웃었다. 그들은 알을 향해서 거의 절을 올릴 것처럼 굴었다.

“성군, 부탁드립니다.”

심일풍은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공손하게 절을 올리며 부탁하였다. 하지만 결심과는 다르게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어서, 그의 떨리는 마음이 한눈에 보였다.

주작세가의 앞날을 밝힐 기회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심일풍이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는 처음부터 심가휘와 심가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의 능력으로는 자신과 겨룰 자격조차 없었다.

‘주작은 반드시 내가 가질 것이다.’

심가이와 심가휘가 슬며시 심일풍을 바라보았다. 그들도 타고난 능력이 있긴 했지만, 심일풍 앞에서 내세울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평소 그들은 심일풍과 대적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사촌 형제이지만 심윤과 심단의 사이가 좋지 않다 보니 자식들 사이도 당연히 좋지 않았다. 만약 심일풍의 능력이 강하지 않았다면, 심가이는 심가휘와 힘을 합쳐 사촌 오라버니를 억압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눈앞에 좋은 기회를 두고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속으로 심일풍이 주작의 미움을 받아 계약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저주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두 사람에게도 주작의 눈길을 받을 기회가 올 터였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얻지 못할 기회라면, 다른 사람도 그 기회를 잡지 못하길 바랐다.

하지만 주작세가의 3대들은 암투를 잘 숨겼다. 거기다 신역의 사제들은 주작세가 내부의 다툼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사제 열여덟 명이 각각 흑요석에서 열 걸음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주작 알을 중심으로 어깨를 맞대고 둥글게 섰다.

성군이 느린 걸음으로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주작 알 쪽으로 다가갔다. 그의 손에는 언제부터인지 손바닥 크기만 한 황금 나침반이 있었다. 황금 나침반 윗면에는 네 개의 원이 그려져 있었고, 원의 둘레에는 예스러운 그림이 새겨진 형태였다. 가장 바깥쪽 원에는 동서남북 방향으로 각각 마수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심소담은 성군과 거리가 있어서 멀찌감치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데, 성군의 손에 있는 황금 나침반은 계속 돌고 있었다.

잠시 후, 쨍그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황금 나침반의 바늘이 멈췄다. 그러자 아주 환한 빛이 황금 나침반에서 쏟아져 나왔다. 환한 빛이 쏟아지는 가운데, 공중에서 갑자기 붉은 형상이 나타났다. 마치 날개를 활짝 편 불새 같은 형상으로, 온몸에서 눈이 부실 정도로 강한 화염을 내뿜었다. 큰 불새가 공중에서 몇 바퀴를 돌더니, 갑자기 붉은빛으로 변하며 미동도 없던 주작의 알 속으로 스며들었다.

주작세가의 사람들은 모두 눈만 동그랗게 뜨고 멍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성군의 손에 있는 나침반이 도대체 어떤 물건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났다가 주작의 알로 들어간 불새가 환각인지 진짜인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

이것은 이미 그들의 인지능력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때 갑자기 넓은 동굴 안에 거대한 빛이 일렁이더니, 갑자기 땅이 진동하며 갈라져 균열이 생겼다. 심소담은 그 갈라진 틈 사이로 땅 밑을 볼 수 있었다. 끊임없이 분출되는 용암에, 붉은 마그마가 들끓었다.

갈라진 틈 사이로는 하얀 수증기가 올라와서 마치 뜨거운 찜통 위에 올라가 있는 것 같았다.

심소담은 동굴 안에서 벌어진 기이한 현상에 깜짝 놀랐다. 신역의 사람들은 침착했지만, 동굴 안에 있던 주작세가의 사람들은 모두 허둥댔다. 심가이와 심가휘 남매는 소란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시종에게 달라붙었다. 심일풍은 매우 당황하며 갈라진 땅을 피했는데, 평소의 멋진 모습은 보이지 않고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그때, 수의 목소리가 심소담의 머릿속에 울렸다.

「주작이 깨어나려고 하는구나.」

땅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울리며, 흑요석 위에 미동도 없이 놓여 있던 주작 알에 수많은 균열이 생겨났다. 그 균열 사이에서 눈을 찌를 것만 같은 붉은빛이 쏟아져 나왔다.

강렬한 열기가 동굴 안을 가득 메우더니, 붉은빛이 모두의 시야를 가렸다.

모두 붉은빛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공포에 떨고 있는데, 다행히 눈을 찌를 듯한 빛이 조금 옅어졌다.

그 빛들은 점차 흑요석 쪽으로 몰려갔고, 눈 깜짝할 사이에 흑요석 위쪽에 모여들었다. 거대한 화염은 그 위에서 활활 타올랐다.

잠시 후, 그 화염 속에서 하얗고 작은 손이 뻗어져 나왔다. 그 화염은 마치 그것을 알아본 것처럼 재빨리 하얀 손을 둘러싸더니, 뜨거운 열기를 거둬들이고 불꽃으로 만들어진 갑옷처럼 그 손을 뒤덮었다.

화염은 조금씩 사그라졌고, 그 안에서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나타났다.

그 사내아이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풀어헤쳤지만, 이목구비가 아주 아름다워서 신이 빚은 최고의 작품처럼 보였다. 아무리 아름다운 예술품이라도, 그 아이의 얼굴과는 비교되지 않을 것 같았다.

모두가 놀랄 만큼 신비롭고 아름답게 생긴 아이는 눈동자가 화염처럼 붉었다. 그 아이의 눈빛은 다른 아이들처럼 순진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아주 초연해 보였다.

사내아이의 몸을 감싼 화염은 마치 불꽃 갑옷 같았다. 그 사내아이는 공중에 살짝 떠 있었다.

아이는 체구가 작았지만, 양발을 교차하여 아주 오만하고 고집스러운 자태로 앉아 있었다. 붉은 눈을 지닌 아이는 한 손으로 턱을 받친 채,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주작세가의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고개를 들고 범상치 않은 그 사내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이미 그 아이의 신분을 추측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믿을 수가 없었다. 눈앞의 오만방자한 사내아이가 전설 속 주작이라니!

신수(神獸)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어리석은 인간들아, 내 휴식을 방해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겠지?”

음산한 목소리가 사내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약간 어린 티가 묻어나는 그 목소리가 동굴 안을 울리니, 동굴 온도가 바로 아주 높아졌다.

심가이와 심가휘는 갑자기 높아진 온도에 괴로워하며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두 사람은 고열이 스며들어 몸이 상하게 될까 걱정하며, 손으로 입과 코를 막았다.

사내아이가 오만한 눈빛으로 동굴 안의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웃고 있는 성군을 바라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 웃음, 참 보기 싫구나.”

그 아이가 작은 손을 휘젓자, 맹렬한 기세의 화염이 성군을 향해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러자 성군이 손에서 금빛을 내뿜더니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화염을 막았다. 화염과 금빛 광선이 충돌하면서 아주 거대한 소리가 울렸다.

“주작은 과연 소문대로 사납고 오만하군. 나는 신역의 성군이다.”

성군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요란한 소리가 뒤엉켰다.

아이의 몸을 한 주작이 콧방귀를 뀐 후, 화염을 거둬들였다.

“누가 이렇게 무례한가 했더니, 신역에서 온 자로군. 그곳 사람들은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구나. 나는 너희를 아주 싫어한다.”

주작은 입으로는 그들이 예의가 없다고 했지만, 다시 공격하지는 않았다.

성군이 그 아이를 주작이라고 부르자, 주작세가의 사람들은 자신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등급이 아주 높은 일부 마수들은 사람의 형상으로 변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 게다가 신수들은 일반 마수들보다 훨씬 더 강한 존재이니, 사람으로 변하기는 아주 쉬웠다.

눈앞에 있는 어린아이가 바로 사람의 형상을 한 주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주작세가의 사람들은 더욱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저 애가 바로 가문의 희망이었다! 그들 가문의 신수!

“주작 어르신! 저는 주작세가의 12대 자손입니다. 오늘 성군의 도움을 받아서, 주작 어르신을 귀찮게 해드리는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주작 어르신께서는 이미 오랫동안 주무셨지요. 저희 주작세가의 사람들은 모두 어르신께서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심일풍이 앞으로 나와 주작을 향해 절을 올리며 공손하게 말했다. 물론 그도 주작의 형상에 깜짝 놀랐지만, 주작은 감히 성군을 공격할 정도로 강했다. 그런데도 성군은 주작에게 화를 내지도 않고 오히려 예의를 갖춰 대했다. 이런 것을 보면, 신역의 사람들과 마수들은 보통 사람들은 모르는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주작은 조금 전 아주 잠깐 공격하였는데, 전신이 뒤흔들릴 정도였다.

그렇게 온전한 불꽃은 평생 본 적도 없었다. 그야말로 최고였다.

어떠한 마수도 주작의 능력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주작은 불 중에서도 최고의 불을 뿜을 수 있는 신수였다.

주작이 차가운 눈빛으로 한쪽 무릎을 세우고 꿇어있는 심일풍을 바라보더니, 붉은 입가에 아주 오만한 웃음을 지었다.

“나를 데리러 왔다고? 하하하! 사람들은 여전히 허무맹랑하구나! 나와 계약을 맺을 사람이 너냐?”

주작이 아주 직설적으로 말하자, 사람들은 모두 멍해졌다.

심소담은 눈앞에서 벌어진 아주 놀라운 상황에 눈만 껌뻑거리고 있다가, 신수가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웃었다. 심일풍은 아주 티 나게 주작을 치켜세웠지만, 전혀 호감을 얻지 못했다. 주작은 몇백만 년을 산 신수인데, 사람들의 잔꾀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돌아오시길 기다렸다고? 그는 그냥 주작과 계약을 맺고 싶을 뿐이고, 강한 능력을 얻고 싶은 것뿐이지 않은가!

심일풍은 주작의 호통에 말문이 막혀, 순간적으로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신수의 형상으로 나타나지 않은 것은 그래도 괜찮았다. 그는 아주 공손하게 말하였는데, 사람의 형상까지 하고 나타나 어찌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한단 말인가! 해도 해도 너무했다.

심일풍이 한참 만에 상처받은 마음을 추스르고 말했다.

“주작 어르신의 눈에 들 수 있다면, 제 자손들까지 복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겠지요. 주작 어르신, 저에게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주작이 심일풍의 간절한 표정을 보고, 붉은 눈썹을 살짝 꿈틀거리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꺼져라. 나는 네가 마음에 안 든다.”

마음에 안 든다…… 마…… 음에…… 안…… 든…… 다.

주작이 이 말을 내뱉자, 자신만만하던 심일풍은 순식간에 조각상이 된 듯 온몸이 뻣뻣해졌다. 오랫동안 주작세가의 인재로 불리며 자신 있게 살았는데, 그 자신감이 일순간에 깨져서 가루가 된 것이다.

심일풍은 멍한 눈빛으로 주작을 바라보았다. 그는 주작이 이렇게 단칼에 안 된다고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아직 아무것도 내보이지 않았는데, 바로 버려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