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입궁
눈 깜짝할 새에 이틀이 또 지나갔고, 어느새 입궁 날이 되었다.
입궁 과정은 번거로웠다. 오경(*五更: 새벽 3시~ 새벽 5시)에 출발할 예정이라, 날도 밝지 않은 새벽부터 임씨는 아랫사람을 시켜 장신구함과 새 의복을 가지고 남궁월의 거처에 도착했다.
눈에 아직 잠기운이 가득한 남궁월을 보고, 임씨는 애정 어린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웃었다.
“우리 월이, 오늘은 할머니와 함께 처음으로 입궁하는 날이니, 이 어미가 예쁘게 꾸며 주고 싶었다. 보렴, 너를 위해 장신구들을 준비했단다. 내가 시집 올 때 친정에서 가져왔던 건데, 우리 월이가 하면 분명히 예쁠 거야.”
남궁월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착하게 화장거울 앞에 앉아 가만히 임씨의 손길을 받았다. 화장은 족히 반시진(*半時辰: 한 시간)이나 걸렸다.
“다 됐다.”
임씨가 만족해하면서 감탄하자, 남궁월이 고개를 들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거울 속 아홉 살 난 작은 소녀는 아직 앳돼 보였지만, 유일하게 고요한 두 눈은 나이를 넘어선 듯 성숙해 보였다.
최근에 요양을 한 덕에 좋아진 남궁월의 피부는 눈처럼 하얗고 부드러웠으며 매끄러웠다. 가는 머리카락은 양 갈래로 나뉘어 동그랗게 말려 올라가 귀여운 데다, 양옆에 청옥(靑玉)을 깎아 새긴 목단화가 박힌 금세공 머리장식과도 잘 어울렸다.
또한 남궁월의 귀에는 마름꽃 장식에 보석이 박힌 금색 귀걸이가 걸려 있었고, 손목엔 금꽃이 장식된 금팔찌를 차고 있었다. 이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남궁월은 사랑스럽고도 고귀해 보였다.
‘너무 과한 거 아닐까?’
남궁월이 미심쩍어하면서 미간을 좁혔으나, 거울 속 그녀의 뒤에서 기뻐하는 임씨의 얼굴을 보고는 이내 힘을 풀었다.
이전 생이었다면, 남궁월은 이렇게 꾸며도 큰언니 남궁옥의 미모를 절대 꺾을 수 없었다.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면 그걸로 됐어.’
그렇게 생각하자, 남궁월은 자기도 모르게 꽃처럼 활짝 웃었다.
“아가씨, 오늘 정말 너무 아름다우세요. 제가 봤을 땐, 큰아가씨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으세요!”
뒤에 서 있던 여종 의매가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줄곧 웃고 있던 임씨가 무언가 생각난 듯 재빨리 웃음기를 감췄다.
“당연하지!”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당연하다는 듯이 의매의 말에 화답했다.
“당연히 우리 월이가 제일 예쁘지!”
남궁흔이 눈을 비비며 남궁월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원래 이 시간엔 분명 잘 시간인데, 동생이 오늘 입궁한다는 걸 기억하고는 힘겹게 겨우 일어나 온 것이었다.
“흔아!”
“오라버니!”
임씨와 남궁월의 시선이 분산되었다.
“어머니!”
남궁흔이 원망스런 눈길로 임씨를 쳐다봤다.
“제가 어제 깨워 달라고 했잖아요!”
그러며 씩씩거리고 입을 삐죽였다.
“약속 왜 안 지켰어요!”
“미안하구나.”
임씨는 어쩔 수 없이 잘못을 인정했다.
오라버니가 아직도 뾰로통해있자, 남궁월이 얼른 화제를 바꾸려고 일어서며 말했다.
“어머니, 늦었어요, 백모님이랑 큰언니도 준비를 다 마쳤을 거예요.”
* * *
남궁월이 임씨와 남궁흔과 함께 영안당에 도착하자마자, 마침 조씨와 남궁옥도 막 도착했다.
남궁월의 치장을 본 조씨의 얼굴빛이 변했다. 이렇게 치장한 남궁월은 자신의 딸을 앞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거짓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월아, 이렇게 꾸미니…….”
“너무 예쁘다!”
남궁옥이 교모하게 조씨의 말을 끊고 들어와 웃으면서 남궁월의 양손을 붙잡고 칭찬을 퍼부었다.
“월아, 너 오늘 너무너무 예쁘다!”
남궁옥도 당연히 치장에 정성을 들였다.
그녀는 오늘 분홍색 옷을 입었다. 흑단 같은 머리는 양쪽으로 쪽을 져 금과 은으로 장식한 살구꽃 머리장식을 꽂았고, 귀에는 붉은 보석으로 새긴 꽃문양 귀걸이가 걸려 있었으며 손목엔 홍마노(紅瑪瑙) 팔찌를 찼다. 이 장신구들은 원래도 절색이던 미모를 돋보이게 만들어주어 그녀는 꽃처럼 아리땁고 고와 보였다.
이전 생의 남궁월은 남궁옥의 미모를 부러워했었다. 하지만 두 번의 생을 겪으면서 남궁월은 외모가 그저 겉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궁월은 살짝 웃으면서 담담하고 여유롭게 대답했다.
“백모님, 큰언니. 운 좋게 저도 할머니와 입궁해 황후마마께 인사를 드리게 되었으니, 당연히 남궁가에 누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무언가 말을 하려던 조씨는 곧 왕 어멈의 부축을 받으면서 나오는 소씨를 보았다. 이내 그들을 본 소씨가 입을 열었다.
“그래, 모두들 도착했구나. 출발하자꾸나.”
“예, 어머님.”
“예, 할머니.”
소씨와 조씨, 남궁옥은 이미 준비되어 있는 마차에 얼른 올라탔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남궁월은 임씨와 남궁흔을 안심시키려는 듯, 한번 웃어 보인 뒤에야 아낙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 위에 올라탔다. 이윽고 남궁흔의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남궁월의 귓가에 들려왔다.
“월아, 일찍 돌아와야 해!”
* * *
조씨, 남궁월, 남궁옥 세 사람은 황궁으로 가는 길에서도 쉴 수 없었다.
소씨는 궁중법도를 반복해서 강조하는 걸로도 모자라, 언행을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며 재차 신신당부했다. 이전에 그녀들에게 여러 번 외우게 시킨 게 무색해질 정도였다.
처음으로 하는 입궁이니만큼, 궁중법도를 행하는 데 절대로 실수해서는 안 됐다.
조씨와 남궁옥은 진중한 얼굴로 소씨의 말을 되뇌며 자신을 일깨웠다.
한편 남궁월의 마음은 그녀들보다 더 복잡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궁중법도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으므로 실수할 일은 없었기에, 다른 한편으론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황궁의 작고 세세한 모든 것들까지 명확히 기억하고 있을 정도니, 지금 이 상황에선 남궁월이 더 경험이 많다고 볼 수 있었다.
곧 마차가 황궁 문 앞에 도착했다.
관례에 따라 남궁가의 마차는 당연히 궁 안엔 들어갈 수 없었다. 이에 네 사람이 얼른 마차에서 내리자, 황후가 미리 보낸 환관이 길을 안내하러 궁 입구에서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소씨가 왕 어멈에게 눈짓을 한번 보내자, 왕 어멈은 그녀의 뜻을 바로 이해하곤 얼른 어린 환관의 소매 속에 무언가를 집어넣었다. 순간 어린 환관의 얼굴에 희색이 가득해졌다.
“노부인, 조 부인, 그리고 두 분 소저께서는 저를 따라 오십시오.”
어린 환관은 공손한 태도로 그녀들을 이끌며 황궁의 이곳저곳을 보여주었고, 궁전 몇 곳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었다.
익숙하고도 낯선 풍경을 보니 남궁월은 또다시 이전 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비참했던 순간, 폐위당한 그날, 가문의 멸문지화, 배반 등 여러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재생되었고, 곧 추억마저 차가운 절망으로 변해버렸다.
이윽고 남궁월의 감정이 격렬하게 끓어오르더니, 그녀의 두 눈에 깊은 한이 서렸다. 그때 남궁옥이 그녀를 불렀다.
“월아, 왜 그래? 혹 어디 안 좋니?”
그제야 남궁월의 정신이 돌아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을 제외한 사람들은 이미 봉난궁(鳳鸞宮) 앞에 도착해 있었고, 어린 환관은 네 사람의 방문을 고하러 안에 들어간 상태였다.
남궁월은 긴장으로 몸이 굳었지만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눈에 깃든 짙은 원한이 들킬까 봐, 그녀는 차마 남궁옥을 바라볼 수 없었다. 이내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큰언니, 난 괜찮아요. 황궁은 처음이라 너무 긴장한 것뿐이에요.”
남궁옥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월아, 무서워 마. 황후마마께서는 인자하신 분이라고 들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그녀도 긴장이 되어 주먹을 살짝 쥐었다.
남궁월은 겨우 감정을 추스른 후, 고개를 들어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큰 언니.”
이때 안에서 한 궁녀가 나오며 안으로 들라 말하자, 남궁월은 반쯤 고개를 숙이고 그들을 따라 함께 들어갔다.
봉난궁 내부는 여전히 눈부시게 휘황찬란한 금빛 물결로 가득했고, 웅장하면서도 화려한 고유의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궁 안에서 나는 그윽한 향기에 모두 정신이 맑아졌다.
* * *
“황후마마, 귀비마마, 류비마마를 뵈옵니다.”
대전(大殿) 위 정중앙에 황후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봉황이 곧 날개를 펴고 날아가려는 모습이 생생하게 수놓아진 붉은 옷을 입고 있었고, 온화하면서도 기품이 넘쳐보였다.
“일어나거라.”
황후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었다.
“모두 앉거라.”
모두 자리에 앉자, 황후의 왼편에 앉은 한 비빈(妃嬪)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과연 남궁부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어여쁘군요. 이 두 소저들 좀 보세요. 용모가 참으로 곱습니다.”
그 비빈의 외모는 달빛 아래 핀 배꽃처럼 청초했다. 작고 갸름한 얼굴과 가느다란 버들가지 같은 눈썹은 가냘픈 분위기를 더했다.
촉촉한 두 눈은 마치 맑은 호수 같았고, 그녀의 자태는 바람에 흔들거리는 버드나무와도 같아 보는 이의 마음이 절로 설렜다.
남궁월은 빠른 속도로 그녀를 한번 힐끗 쳐다보았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그녀가 바로 2황자의 생모인 류비(柳妃) 같았다.
이전 생에서의 남궁월은 류비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때 현황영롱삼을 받지 못한 탓에, 류비가 2년 동안 병상에서 앓다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생의 류비는 괜찮아 보이는 것이, 병이 다 나은 듯했다. 그녀가 2년을 넘길지, 명운이 바뀔지는 이제 남궁월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었다.
이번엔 황후 오른편에 앉은 장 귀비(張貴妃)가 교태를 부리며 농담처럼 말했다.
“누가 아니랍니까. 과연 명문대가의 여식들답습니다. 미모만 뛰어날 뿐 아니라 정숙하고 예절도 몸에 배어 있으니, 훗날 어떤 복 받은 이가 이 남궁부 소저를 아내로 맞이할지, 참으로 궁금하군요.”
그녀는 류비와 전혀 다른 종류의 미인이었다. 그녀의 미모는 활짝 핀 모란꽃 같았다.
살짝 올라간 두 봉안(鳳眼)과 눈썹 언저리는 움직일 듯 말 듯 하여 사람을 이목을 끌어당겼고, 살짝 다문 탐스러운 붉은 입술은 한번 음미해 보고 싶게끔 했다.
황제가 끔찍하게 아낀다더니, 과연 요염하고도 아름다운 절색(絶色)이었다.
장귀비는 3황자 한능부(韓凌賦)의 어머니였기에, 남궁월에게는 익숙하고도 익숙한 사람이었다. 이전 생의 남궁월은 시어머니인 그녀를 매우 존경했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귀한 제 아들과 똑같이 연기에 너무 능해, 가면을 벗으면 그리 냉혹하고도 잔인한 인간일 수가 없었다.
남궁월의 눈에 순간 냉기가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얼굴은 평소와 같이 예의바른 표정이었다.
황후는 소씨를 붙잡고 몇 마디 담소를 나누었고, 조씨도 옆에서 계속 질문에 응했다. 남궁월과 남궁옥 둘만 아무 말 없이 딱딱하게 앉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잠시 후, 밖에서 갑자기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왔다.
태감 하나가 먼지를 휘날리며 밖에서부터 달려 들어와 살짝 몸을 굽히며 고했다.
“황후마마, 귀비마마, 류비마마를 뵙습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1황자 전하, 2황자 전하, 3황자 전하, 그리고 5황자 전하께서 문안을 드리시겠다며, 지금 궁 밖에서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어서 들라 하라.”
황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단정하고도 장엄하게 말했다.
옆에 있던 장귀비와 류비도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두 사람은 다년간 궁에서 생활하면서 여전히 식지 않는 황제의 총애를 받았고, 황자도 각각 한 명씩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