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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선처

“온전한 신체와 자유로운 삶은 그녀가 지금껏 그토록 갈망하던 것이었다.” 썩은 내를 풍기던 몸과 가면으로 가려야만 했던 문드러진 얼굴은 더 이상 없었다. 눈을 뜨니, 거울 속엔 꽃다운 열여섯의 아리따운 여인만이 있을 뿐! 상림당가의 서출 둘째 딸 당염원의 몸에서 깨어난 그녀는 이복자매를 대신해 무시무시한 소문들을 달고 다니는 괴물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는 열두 명의 아내를 배 속에 삼켰다는 끔찍한 괴물은 없었다…. 그저 신비로운 분위기의 아름다운 남자, 설연산장의 장주 사릉고홍만이 있을 뿐이었다. 천성적으로 독을 내뿜어 아무도 곁에 둘 수 없었던 사릉고홍에게, 독을 도리어 약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특이한 체질의 당염원은 그토록 기다려 온 유일무이한 존재다. 하나, 전생에서 늙은 괴물에게 노예처럼 부려졌던 당염원은 그저 자유만을 갈구하는데…. 사릉고홍에게서 흘러나오는 독의 기운을 흡수하여 힘을 모아 이곳에서 탈출하고 마리라! 그때까진 그저 얌전히 그의 곁에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이 세계, 약육강식의 법칙이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에게 더없이 상냥한 사릉고홍에게 마음이 가고 마는데….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느껴본 당염원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원제: 莊主有毒之神醫仙妻

수천철 · Fantasia
Classificações insuficientes
756 Chs

9화. 무심코 가까워지다

9화. 무심코 가까워지다

그곳엔 푸른색의 넓적한 돌들이 구불구불한 마당 길에 깔려 있었고, 주변에는 하얀 눈과 서리가 가득했다. 그 뒤로는 매화가 흐드러지게 핀 매화나무숲이 그 끝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얀색, 연분홍색, 진분홍색의 꽃들이 찬란하게 빛을 발했다.

매림 앞에는 네 사람이 서 있었다. 각자 표정이 모두 달랐다. 그중 가장 과장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은 조철이었다. 그는 두 눈을 휘둥그레하게 뜬 채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조금 전 우레와 같은 고함을 질렀던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장주님, 주모님을 뵈옵니다.”

서수죽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목소리는 다소 잠겨 있었다.

나머지 세 사람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몸을 굽혀 인사했다.

사릉고홍은 당염원을 끌어안고 매림으로 나와 말했다.

“식사를 해야겠다.”

당염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릉고홍이 먼저 지나가자 나머지 네 사람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그 뒤를 따랐다. 조철은 여전히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손수 상대를 끌어안고 걸음을 옮기는 사릉고홍을 바라보았다. 마치 저 사람이 자신의 장주를 사칭하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는 듯 한참을 어버버거리다가 뒤늦게 숨을 헉 들이마시며 말했다.

“안은 거야? 장주님께선 다른 사람과 닿는 것조차 싫어하시는데, 지금 안은 거야?!”

서수죽은 담담하게 조철을 힐끗 쳐다보더니 점점 매림 속으로 사라져 가는 사릉고홍과 당염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깊고 어두웠다.

“장주님과 가까이했는데 죽지 않은 것을 이상히 여겨야 하는 것 아니오?”

조철은 가늘게 실눈을 떴다. 그 속으로 날카로운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놀라움과 충격에 빠져 있는 얼굴이었다. 송군경이 백옥 부채로 손바닥을 두드리면서 말을 이었다.

“죽지 않은 것으로도 모자라서 조금도 다치지 않았군.”

잠시 후 조철이 하하하 호탕하게 웃더니 말했다.

“그 말인즉슨, 우리가 드디어 장주와 오래오래 함께할 수 있는 주모님을 모셔 왔다는 건가? 하하하! 좋구나! 좋아!”

서수죽과 세 사람이 동시에 사릉고홍을 바라보았다. 뒤이어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모두의 눈에서 안도감과 기쁨이 느껴졌다. 이경 또한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 * *

설연산장에는 천하에서 가장 아름답고 진귀한 것들이 무수히 많이 모여 있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여기서 아름다운 것은 사람, 사물, 풍경 모두를 포함했다.

그곳엔 만 그루의 매화나무가 일 년 내내 꽃을 피웠고, 온 땅에 티끌 하나 없는 흰 눈이 깔려 있었다. 꽃잎이 눈처럼 흩날리며 짙은 향기를 퍼뜨렸다. 향기를 맡던 당염원은 이내 매림의 맑은 향기가 사릉고홍에게서 나는 향기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다른 점도 있었다. 사릉고홍에게서 나는 향기는 더 은은하고 맑고 투명했다. 그리고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나는 듯했다. 또한 어느새 그 향기에 홀려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묘랑은 일찍이 매림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자 그녀는 손뼉을 쳐 아침 식사를 준비하도록 시켰다. 그녀는 사릉고홍이 당염원을 안고 의자에 앉을 때까지 기다리다 가져온 설옥연고를 그의 손에 넘겨주었다. 뒤이어 직접 아침 식사가 담긴 그릇들의 덮개를 열며 미소와 함께 당염원에게 말했다.

“이 아침 식사는 장주님의 분부를 받고 주모님께서 좋아하시는 것들로만 특별히 만든 것입니다. 맛보시면 아마 좋아하실 겁니다.”

당염원은 주묘랑이 ‘장주님’이라는 말에 특히 힘을 주어 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이해한 당염원이 고개를 돌려 사릉고홍을 향해 말했다.

“장주님의 보살핌에 감사드립니다.”

주묘랑의 눈가가 움찔거렸다. 비록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어딘가 영 이상하게 느껴졌다. 당염원의 표정과 말투가 너무 예의를 차리고 있었다.

그런데…….

주묘랑은 두 사람의 입술을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봐도 격렬한 입맞춤이라도 한 듯한 모양새였다. 주모님께서 아무 탈 없이 장주님과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도 모자라서, 입을 맞췄다니.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은 거라면 그건 정말 범상치 않은 것이었다.

당염원의 손목에 연고를 발라 주던 사릉고홍은 당염원의 말에 동작을 멈추더니 눈을 들어 잠깐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다시 열심히 연고를 발라 주며 말했다.

“고홍.”

“네?”

당염원이 어리둥절해져 물었다.

“사릉고홍, 내 이름이오.”

연고를 모두 발라 주고 난 뒤 설옥연고를 소매 안에 넣은 사릉고홍이 당염원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홍, 내 이름으로 부르시오.”

“아.”

당염원이 사릉고홍의 말을 받아들였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릉고홍은 계속 그녀를 바라봤다. 비록 표정에 변화는 없었지만, 당염원은 그 속에서 어떠한 집념을 볼 수 있었다. 뭐지? 지금 내 반응을 기다리는 건가? 당염원은 조금 전 그들이 했던 대화를 다시 되짚어 보다가 이내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녀가 떠보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고홍……?”

“그래, 원아.”

사릉고홍이 웃으며 답했다.

당염원은 이로써 일이 해결되었다 생각하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쪽에 있던 주묘랑은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그녀는 사릉고홍이 절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릉고홍의 마음에 들어온 당염원 역시 평범함과는 거리가 아주 먼 사람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설마 이게 바로 유유상종인가?

그도 그럴 것이 주묘랑은 사릉고홍이 웃는 모습을 아주 오랫동안 보지 못했었다. 그러나 당염원은 얼마나 범상치 않은지 사릉고홍을 웃게 만들었다. 주묘랑은 곰곰이 생각하다 미소 지었다.

아침 식사는 당가에서 당염원이 즐겨 먹던 담백하고 단 음식들 위주로 차려졌다. 이전 생에서 당염원은 음식을 먹은 적이 거의 없었다. 모두 늙은 괴물이 주는 단약으로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눈앞에 차려진 음식들이 꽤 맛있어 보였다.

매실죽, 오향만두, 계화꽃떡, 여의떡, 길상과(*석류)들이 풍성하게 한데 차려졌다. 당염원은 음식 주변으로 퍼지는 녹색의 약 기운들을 보고 눈동자를 빛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사릉고홍이 건네주는 숟가락을 받아 천천히 죽을 떠먹었다. 따뜻한 죽이 입 안에서 풍미를 가득 전해 왔다. 당염원은 맛을 음미하다 주묘랑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어!”

주묘랑은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누르며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이 음식들은 모두 주방 총책임자인 증 선생님의 솜씨입니다. 주모님께서 이토록 좋아하셨다는 걸 아신다면 무척 기뻐하시겠네요.”

당염원은 간단히 대답한 후 계속해서 죽을 먹었다. 그러다 그녀의 눈길이 은쟁반에 놓인 여의떡을 향한 순간, 길고 가는 손 하나가 여의떡 하나를 집어 그녀의 입가로 가져다주었다. 당염원은 눈을 돌려 사릉고홍을 바라보더니 떡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러자 사릉고홍이 미소 지었다.

그 모습에 마음이 동한 당염원이 죽을 한 숟갈 뜨더니 사릉고홍의 입에 가져다 댔다.

“고홍도 먹어요.”

그녀는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이 그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사릉고홍의 얼굴에서 기쁨이 묻어났다. 이내 그는 웃으며 당염원이 건넨 죽을 받아먹었다.

그러자 그녀의 숟가락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에 기뻐진 당염원은 얼른 죽을 한 숟가락 떠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찰나의 기회도 절대 놓치지 않는 그녀였다.

주묘랑은 잠시 놀란 기색을 띠었지만, 이내 알 수 없는 기쁨을 드러냈다. 사릉고홍에게서 풍기는 독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다니! 그도 그럴 것이, 사릉고홍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고 이처럼 가까운 거리를 계속 유지하는 데도 그녀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당염원은 이에 그치지 않고 그에게 음식을 먹여 준 후 자신이 먹는 일련의 과정을 계속해서 되풀이했다. 산해진미의 음식에 천마독, 그리고 음식의 약기까지, 그야말로 만족스러운 아침 식사였다.

사릉고홍 역시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저 한편에 서있는 주묘랑만이 고역일 뿐이었다. 그들을 마냥 보고 있을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닭살 돋을 정도로 애정 어린 지금 이 분위기가 자신에게만 보이는 건 아닐 터였다.

식사를 마친 사릉고홍이 자신의 입가를 닦았다. 당염원은 아직 조금 남은 음식들을 가리키며 주묘랑에게 말했다.

“여기에 약을 좀 넣었구나.”

그러자 주묘랑의 얼굴에 다소 의아해하는 기색이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녀는 이내 웃으며 답했다.

“역시 주모님이시군요. 여기엔 모두 초약(草藥)이 들어 있답니다. 주모님의 몸 상태를 고려하여 증 선생님께 음식에 약을 좀 넣어 달라 부탁했습니다. 이리 하면 주모님께서는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시고, 몸 건강도 챙기실 수 있지요.”

정보에 따르면 당가에서의 당염원은 약을 다루는 데 소질이 없다 하였기에 음식을 먹자마자 알아차릴 줄은 몰랐다.

“요즘 줄곧 몸에 기운이 없는데, 잘 먹었어. 계속해서 이렇게 요리해 줄 수 있을까?”

주묘랑은 당염원의 눈에 비친 갈망을 느끼고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한 후 당혹스러움을 숨긴 채 답했다.

“주모님께서 좋아하신다면 얼마든지요.”

“그럼 부탁할게.”

당염원이 매우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기회를 눈앞에서 놓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주모님께서 만족하실 수 있도록 명 받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주묘랑의 몸이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푹 숙인 그녀의 목소리가 다소 떨리는 듯했다.

‘뭐지? 추운 걸까? 아니면 독에 중독돼서……? 하지만 독의 기운이 보이진 않았는데?’

“원아.”

그때 사릉고홍이 당염원을 불렀다.

“네?”

당염원이 고개를 돌려 답했다.

“너무 다른 이만 바라보지 마시오.”

사릉고홍이 손가락을 가볍게 그녀의 눈가에 갖다 댔다. 눈꺼풀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린 탓에 손가락이 간지러웠다. 사릉고홍은 그녀의 눈이 줄곧 다른 이를 향해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염원은 그의 손가락이 닿는 것을 느꼈다. 마치 그가 ‘너무 다른 이만 바라보지 마시오. 그렇지 않으면 눈을 파 버릴 테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너무 극악무도하게 생각한다고 여길 수 있지만, 그녀의 이전 삶에서는 늘 그런 식의 대우를 받았다. 무엇 하나라도 늙은 괴물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그에 맞는 응징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당염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후 다시 물었다.

“그럼 고홍을 보는 건요?”

사릉고홍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리는가 싶더니 빠르게 대답했다.

“그건 되오.”

“네.”

당염원이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한편 주묘랑은 입꼬리가 뒤틀렸다. 그저 몇 번 바라본 것일 뿐인데 장주님이 이토록 누군가에 대한 소유욕을 드러내다니! 게다가 자신이 언제부터 ‘다른 이’였단 말인가!

물론 이러한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주묘랑은 사람을 불러 남은 음식들을 모두 정리하게 한 후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장주님, 주모님, 저는 먼저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사릉고홍이 담담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방에서 나온 뒤, 주묘랑의 얼굴은 분노와 실소로 일그러졌다.

‘장주님, 십여 년간 장주님을 모신 저입니다. 제가 나가길 바라는 장주님의 눈빛을 알아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