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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선처

“온전한 신체와 자유로운 삶은 그녀가 지금껏 그토록 갈망하던 것이었다.” 썩은 내를 풍기던 몸과 가면으로 가려야만 했던 문드러진 얼굴은 더 이상 없었다. 눈을 뜨니, 거울 속엔 꽃다운 열여섯의 아리따운 여인만이 있을 뿐! 상림당가의 서출 둘째 딸 당염원의 몸에서 깨어난 그녀는 이복자매를 대신해 무시무시한 소문들을 달고 다니는 괴물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는 열두 명의 아내를 배 속에 삼켰다는 끔찍한 괴물은 없었다…. 그저 신비로운 분위기의 아름다운 남자, 설연산장의 장주 사릉고홍만이 있을 뿐이었다. 천성적으로 독을 내뿜어 아무도 곁에 둘 수 없었던 사릉고홍에게, 독을 도리어 약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특이한 체질의 당염원은 그토록 기다려 온 유일무이한 존재다. 하나, 전생에서 늙은 괴물에게 노예처럼 부려졌던 당염원은 그저 자유만을 갈구하는데…. 사릉고홍에게서 흘러나오는 독의 기운을 흡수하여 힘을 모아 이곳에서 탈출하고 마리라! 그때까진 그저 얌전히 그의 곁에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이 세계, 약육강식의 법칙이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에게 더없이 상냥한 사릉고홍에게 마음이 가고 마는데….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느껴본 당염원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원제: 莊主有毒之神醫仙妻

수천철 · Fantasia
Classificações insuficientes
756 Chs

7화. 직접 해 주다

7화. 직접 해 주다

다섯 사람이 매림에 당도했을 때, 당염원은 이제 막 깊은 잠에서 깨어난 참이었다. 높은 침상과 푹신한 베개, 상쾌하고 맑은 향기까지, 이처럼 개운한 잠은 지금껏 자 본 적이 없었다.

당염원은 과거 약의 노예로 있던 시절 생겨난 습관으로 인해 잠에서 막 깨어났을 때 대개 잠시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설사 전날 밤 시약의 고통이 남긴 여파를 충분히 해소하고 잤다 하더라도, 그러한 상태가 계속해서 반복되니 회복 시간이 필요했다.

“일어났소?”

사릉고홍이 물었다.

당염원이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사릉고홍이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당염원의 상태를 알아채고 낮게 웃으며 물었다.

“간밤에 푹 잘 잤소?”

“으응…….”

당염원은 아직 채 잠에서 덜 깬 듯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훗.”

사릉고홍이 실소를 터뜨렸다. 그는 당염원의 머리를 자신의 품속으로 끌어안고 자신의 턱을 부드러운 머리칼 위에 가볍게 얹었다. 품에 안은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때 당염원은 자신을 본능에 맡겨 버렸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상쾌한 향기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짙은 독의 기운을 맡으며 더욱 파고들었다. 그녀는 심지어 간밤에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해 하지 못했던 일까지 하고 말았다. 그에게서 뿜어 나오는 독의 기운을 마셔 버린 것이다.

「으음, 독이다…… 독이야! 기분이 좋아요……!」

녹녹의 환호성 소리가 갑작스레 들려왔다.

일순간 당염원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다 상황을 인지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머리맡에서 사릉고홍이 뒤척이자, 이미 회복된 당염원의 정신도 함께 널뛰었다. 뒤이어 사릉고홍이 그녀를 품에서 놓아주고 지그시 바라보았다. 차가운 서리가 낀 듯한 눈동자에는 따뜻한 웃음과 부드러움이 녹아 있었다.

“이제야 잠이 깬 것 같군.”

“……네.”

당염원이 두 눈을 깜빡였다. 보아하니 눈치는 못 챈 것 같았다. 다시 말해 그녀가 독의 기운을 흡수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사릉고홍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당염원의 허리를 감싸 안아 침상에서 일어나 앉았다.

바로 이때 문밖에서 주묘랑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주님, 주모님. 일어나셨습니까?”

사릉고홍이 답했다.

“들어오거라.”

방문이 열리고 주묘랑이 걸음을 옮기자, 흰옷을 입고 세면도구를 받쳐 든 여섯 명의 여인이 그 뒤를 따라 들어왔다. 침상 위에서 서로를 안고 앉아 있는 둘의 모습에 주묘랑의 얼굴에서 특유의 따뜻하고 웃음기 어린 눈빛이 순간 사라졌다. 대신 약간의 충격과 놀라움이 떠올랐다.

주묘랑은 황급히 표정을 거둔 뒤 순백색 의복을 손에 받쳐 들고 침상으로 다가와 미소 지은 채 말했다.

“장주님의 명을 받아 주모님께서 입으실 의복을 만들라 하였는데, 시간이 다소 촉박해 제가 직접 진보각(珍寶閣)에서 옥과 잠사로 만든 의복을 가져왔습니다. 부디 마음에 드시길 바랍니다.”

사릉고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한 손으로는 당염원을 감싼 채 다른 한 손으로 침상 위에 놓여 있는 덧신과 신발을 직접 당염원에게 신겨 주기 시작했다.

그의 행동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채 반응하지도 못할 만큼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주묘랑은 헉 하고 입을 벌리다가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던 의복을 놓칠 뻔했다. 당사자인 당염원 역시 놀라움에 멍해져서는 입을 뗐다.

“제가 하겠습니다.”

“내가 도와주고 싶소.”

이 말을 할 때 사릉고홍의 눈동자가 자연스레 아래를 향하면서 촘촘한 속눈썹이 눈을 반쯤 가렸다. 코앞에서 바라보자 칠흑같이 새까만 그의 눈동자와 미소로 말려 올라간 입꼬리가 눈에 들어왔다. 단숨에 마음을 흔들어 놓을 만한 외모였다.

“아……, 네.”

당염원은 상황의 흐름과 분위기를 파악하여 때에 맞게 행동하는 데에 능했다. 신겨 준다 한들 자신이 손해 볼 것은 없었고, 이자가 윗사람이기도 했기에 당염원은 그의 말을 듣기로 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당염원은 아주 침착하고 평온하게 그가 시중드는 것을 받아들였다. 오직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주묘랑만이 놀라움에 얼굴에 미세한 경련을 일으킬 뿐이었다.

‘이 당연하다는 듯한 상황은 뭐지……?! 간밤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었던 거야?’

당염원에게 덧신과 신발을 모두 신겨 준 뒤 사릉고홍은 주묘랑이 가지고 있던 의복을 가져와 조심스레 입혀 주기 시작했다. 섬섬옥수 같은 그의 손가락이 당염원의 턱 아래에 있는 금 단추를 채우려 하자, 당염원이 매우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그가 더 쉽게 단추를 채울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둘 사이의 거리는 서로의 숨소리를 느끼기에 충분할 정도로 가까웠다. 그러나 표정은 더없이 평화로웠다.

“…….”

‘내가 지금 잘못 보고 있는 건가?’

주묘랑은 어찌해야 할 줄 몰랐다. 닭살 돋을 정도로 애정 어린 지금 이 분위기는 대체 뭐란 말인가?

마지막 단추까지 모두 채우자, 사릉고홍은 젖은 수건으로 당염원의 얼굴을 닦아 주고, 양치 도구를 든 채 그녀가 침상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가 가만히 당염원을 응시하더니 이내 웃음을 머금은 눈으로 말했다.

“원아.”

“네?”

사릉고홍을 바라보는 당염원의 눈빛이 다소 흔들렸다. 지금 자신의 이를 닦아 주겠다는 건가?

“아-”

“아……?”

당염원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묻어났다.

“그래. 아-”

사릉고홍이 미소 짓더니 양치 솔을 그녀의 작은 입 안에 살며시 넣었다. 그의 눈은 따뜻한 웃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비록 입 안에서 움직이는 솔로 인해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많은 생각을 하며 눈앞의 사내를 마뜩잖은 듯이 바라보았다.

‘설마 내가 양치도 스스로 못 할 거라고 생각하나? 아니면 일부러 날 우롱하는 건가?’

곧 사릉고홍이 다정한 눈빛으로 양치 솔을 입에서 빼낸 뒤 당염원이 입을 헹구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다음 일은 뒤편에서 말없이 기다리던 시녀에게 맡겼다. 사소하기 그지없는 아침 일과들을 모두 그가 직접 해 주는 모습을 보고 주묘랑의 표정은 점점 충격으로 굳어 갔다.

그는 좀처럼 다른 누군가에게 곁을 허락한 적이 없었다. 목욕조차도 시중 없이 혼자 할 정도였다. 하지만 소매가 넓은 옷을 걸치고 까만 머리칼을 등 뒤로 늘어뜨린 소박한 차림새에도 특유의 고아한 분위기는 항상 흘러넘쳤다.

잠시 후, 흰옷을 입은 여섯 명의 시녀들이 소리 없이 방에서 나갔다. 주묘랑은 다시 표정을 거둔 후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침 식사가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장주님과 주모님께서는 자리를 옮기시지요.”

당염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 갈 채비를 하자, 곁에 있던 사릉고홍이 그녀를 불렀다.

자신을 향해 내민 그의 손을 보고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잡았다. 당염원은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그의 모습에 더욱 의아해졌다. 자신이 아무리 허약하다지만 스스로는 아무것도 못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무래도 설명이 필요하겠다 싶어 당염원이 말했다.

“저기, 저는 혼자 걸을 수 있을 만큼 건강해요.”

그러자 사릉고홍이 웃으며 답했다.

“그건 나도 잘 알고 있소.”

당염원은 사릉고홍의 품 안에 안겼다. 날렵한 몸매와 달리 그의 품속은 넓고 아늑해 그녀가 완전히 품에 들어가 감싸질 정도였다.

사릉고홍의 품속에서 고개를 든 그녀는 그의 부드럽고 따뜻한 눈빛이 일순간 변하는 것을 보았다. 다른 이의 심장을 파고들 정도로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순간 당염원은 본능적으로 그를 밀어내려 했다. 그러나 이미 그의 품속에 완전히 갇힌 뒤였다. 당염원이 말했다.

“절 죽이지 않겠다고 하셨죠.”

조금이라도 지체해선 안 될 말이었다.

그러자 사릉고홍의 얼굴빛이 다시 바뀌더니 이전의 따뜻한 눈빛이 되었다. 그는 한 손으로 당염원의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낮고 분명한 그의 목소리는 더없이 따뜻하고 부드러워 다른 이의 마음을 녹이는 힘이 있었다.

“절대 그대를 다치게 하지 않을 거요, 영원히.”

당염원은 그의 표정을 자세히 살폈다. 조금 전의 냉랭했던 그의 눈빛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녀는 그제야 몸에 주었던 힘을 풀었다.

“나는 당신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오.”

사릉고홍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두 눈은 맑고 따뜻했으며, 다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은 여리면서도 고집 센 평범한 사내아이를 연상케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런 그에게 누구도 화를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이 입을 열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다는 느낌에 당염원은 다소 메마른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누구에게 내는 건가요?”

사릉고홍의 눈에 남아 있던 당혹스러움의 기색이 다시 따뜻한 부드러움으로 바뀌었다. 그는 말없이 당염원의 오른손을 살짝 잡아당겼다. 그러자 희고 가녀린 그녀의 손목에 남아 있는 검푸른 상처가 눈에 띄었다. 심지어 어떤 부분에는 손톱이 살갗을 파고든 듯 초승달 모양으로 피가 배어 나온 자국이 남아 있었다.

“누가 그런 것이오?”

“이게 왜…….”

당염원은 하루가 지나 흉터가 남아 버린 자신의 손목을 보고 다소 놀라 말끝을 얼버무렸다. 그녀의 이전 몸에서와 달리 일부 상처는 이튿날이 되어서야 그 형태가 더욱 진해진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당염원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눈빛은 마치 불길이 이는 것처럼 강렬하게 반짝였다. 이내 그녀가 말을 이었다.

“당가의 둘째 부인이 한 짓입니다.”

이전 삶에서의 그녀는 약의 노예 노릇을 한 탓에 정신이 몽롱해 보이곤 했다. 그러나 그녀가 정말 넋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오히려 냉정한 면이 있어서, 때때로 늙은 괴물보다 더 매정하게 일을 처리하곤 했다. 그녀가 인내하는 것은 겉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았고, 그렇기에 별안간 타인을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면모가 없었더라면 늙은 괴물의 눈을 피해 그의 생명과도 같은 영보를 훔칠 수 있었을 리도 만무했다.

“화내지 않겠소.”

사릉고홍의 차가운 손가락이 깃털처럼 가볍게 그녀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그는 다른 한 손으로 그녀를 품에 꼭 안은 채 방을 벗어나며 주묘랑에게 말했다.

“설옥연고를 가져오너라.”

“……예.”

주묘랑은 고개를 숙인 채 굳어 버린 자신의 표정을 감추었다. 산장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설옥연고를 멍을 치료하겠다며 가져오라 했다. 이를 다른 사람들이 알면 또 무슨 반응을 보일까?

물론 설연산장에서 장주가 내린 명이라면 그게 설옥연고든 설연금단이든 모두 대령해야 했다. 주묘랑은 사릉고홍이 나가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바깥의 매림에서 조철 등 네 사람이 주모님께 문안 인사를 드리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그들이 사릉고홍과 당염원을 본 후 지을 표정을 상상하니 퍽 흥미로웠다.

주묘랑은 가벼운 마음으로 설옥연고를 가지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