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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선처

“온전한 신체와 자유로운 삶은 그녀가 지금껏 그토록 갈망하던 것이었다.” 썩은 내를 풍기던 몸과 가면으로 가려야만 했던 문드러진 얼굴은 더 이상 없었다. 눈을 뜨니, 거울 속엔 꽃다운 열여섯의 아리따운 여인만이 있을 뿐! 상림당가의 서출 둘째 딸 당염원의 몸에서 깨어난 그녀는 이복자매를 대신해 무시무시한 소문들을 달고 다니는 괴물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는 열두 명의 아내를 배 속에 삼켰다는 끔찍한 괴물은 없었다…. 그저 신비로운 분위기의 아름다운 남자, 설연산장의 장주 사릉고홍만이 있을 뿐이었다. 천성적으로 독을 내뿜어 아무도 곁에 둘 수 없었던 사릉고홍에게, 독을 도리어 약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특이한 체질의 당염원은 그토록 기다려 온 유일무이한 존재다. 하나, 전생에서 늙은 괴물에게 노예처럼 부려졌던 당염원은 그저 자유만을 갈구하는데…. 사릉고홍에게서 흘러나오는 독의 기운을 흡수하여 힘을 모아 이곳에서 탈출하고 마리라! 그때까진 그저 얌전히 그의 곁에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이 세계, 약육강식의 법칙이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에게 더없이 상냥한 사릉고홍에게 마음이 가고 마는데….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느껴본 당염원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원제: 莊主有毒之神醫仙妻

수천철 · Fantasia
Classificações insuficientes
756 Chs

20화. 함께 가다

20화. 함께 가다

시간이 좀 지나자 당염원의 기분은 매우 좋아졌다. 그녀는 곧 쌍둥이 자매의 재촉을 못 이기고 사릉고홍의 앞에 가서 말했다.

“이들도 저와 함께 산장을 나가고 싶어 해요. 그래도 될까요?”

직설적인 당염원의 말에 엽연교와 엽목향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들은 뭐라 더 말할 수도 없기에 속으로 소리쳤다.

‘주모님! 그렇게 얘기하시면 안 되죠! 그저 가볍게 운을 띄우는 거면 되는데 그렇게 바로 여쭙다니요!’

사릉고홍이 그녀를 안으며 물었다.

“이들과 함께 가고 싶소?”

엽연교와 엽목향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당염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엽목향의 어깨 위에 있는 여우도 그들과 똑같이 당염원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제발!

“네.”

당염원은 자신이 여기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면 저들의 초롱초롱한 눈에서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그럼 함께 가도록 하시오.”

사릉고홍에게 당염원의 의견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와!”

“꺄아!”

두 사람과 여우 한 마리가 판에 박은 듯 똑같이 환호했다.

당염원은 흰 여우를 바라보다가 덤덤히 말을 뱉었다.

“살이 쪘네.”

“네?”

엽목향이 갸우뚱하더니 어깨 위에 있는 여우를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살이 찐 것 같네요. 우리 백려(白黎)가 살이 좀 쪘어. 연교야, 네가 또 나 몰래 백려한테 밥을 더 줬지?!”

그러자 엽연교가 단호하게 부정했다.

“뭔 소리야! 네가 준 거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나보다 더 백려와 친해진 건데?”

“흥! 질투하긴!”

엽목향이 백려의 흰 털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녀가 뒤이어 백려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밥은 절반만 먹도록 하자, 백려야!”

“끽!”

흰 여우가 짧게 울더니 동그란 눈으로 이 일을 초래한 범인인 당염원을 노려보았다.

‘너 때문에……! 네가……! 내 먹이 돌려줘! 내 먹이 내놔!’

당염원은 여우를 노려보며 눈썹 끝을 살짝 쳐들고 냉정히 말했다.

“여우는 놓고 가렴.”

“끼잉…….”

낑낑거리던 백려가 처량한 두 눈망울을 반짝이며 당염원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여우를 무시하는 자와는 함께하지 않겠어!’

당염원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여우를 한 번 보더니 말을 걸었다.

“네가 여우라고?”

‘울음소리는 개만도 못하는데.’

“미야옹―”

백려는 여전히 가련한 눈빛으로 당염원을 바라보며 속으로 흐느꼈다.

‘네 눈에 적나라하게 담긴 멸시를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하지 마라. 난 그냥 여우가 아니라 설월호(雪月狐)야. 하지만…… 하지만, 밖으로 나갈 수 있다면 지조? 그까짓 지조 따위 필요 없어!’

그때, 녹녹이 당염원의 머릿속에서 말했다.

「주인님, 이건 그냥 여우가 아니에요. 선수(仙獸) 혈통을 가진 설월호예요.」

그러자 당염원이 답했다.

“어쨌든 여우 아냐.”

「네, 여우지요!」

당염원은 백려가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는 것을 무시하곤 사릉고홍의 품에 몸을 파묻었다. 그러곤 한가로이 물었다.

“오늘은 어떤 곡조를 배우나요?”

사릉고홍이 그녀를 안아 들며 자리를 벗어나면서 대답했다.

“한천(瀚天).”

매우 느긋하게 움직이는 듯하던 그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아주 먼 곳으로 이동해 있었다. 백려는 쫓아가려 했지만 이미 둘이 사라져 버린 뒤였다. 백려는 엽목향의 품에 안겨 울기 시작했다.

‘흑흑, 목향아! 너무 슬퍼. 날 만져 줘, 날 위로해 줘……! 나에게 맛있는 걸 줘!’

“착하지! 백려야, 주모님께선 아량이 넓으시니 오늘이 지나면 다시 네가 같이 가는 걸 허락해 주실 거야!”

옆에 서 있던 엽연교가 백려를 위로했다.

“끼잉-!”

백려는 너무나 슬프고 화가 났다.

‘저게 아량이 넓은 거야? 저건 쫌생이라고 해야 맞지! 그냥 좀 째려봤을 뿐인데! 오늘이 지나면?! 지나며언?! 내가 뭘 잘못했어? 잘못했냐고!’

엽목향이 백려의 작은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타일렀다.

“네가 잘못했어, 백려야. 그러게 왜 경솔하게 주모님을 노려보니? 이거 하나만 잘 기억해. 무슨 일이든 주모님께서 옳아. 너의 잘못이면 네가 잘못한 거고, 네 잘못이 아니어도 네가 잘못한 거야. 잘 기억해야 해. 알겠니, 백려야?”

“끼잉…… 끼잉…….”

백려는 더욱 서글피 울며 엽연교의 품으로 옮겨 갔다.

‘목향은 너무 무서워. 연교야, 날 위로해 줘!’

엽연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백려야. 목향의 말이 맞아. 잘못을 인정해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는 법이란다!”

“캬앙!”

‘그냥 죽어 버리겠어!’

그때 먼 곳에 있던 당염원이 고개를 돌려 약밭 쪽을 바라보다 입을 뗐다.

“처음엔 개처럼 울더니 그다음엔 고양이, 또 이젠 늑대 같네요. 대체 저놈을 뭐라 불러야 할까요?”

“다음부턴 당신 말을 듣도록 만들겠소.”

사릉고홍은 무덤덤하게 여우 백려를 팔아 버렸다.

한편, 사릉귀안은 먼 곳에 가만히 서서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차갑기만 하던 설연산장에 약간의 변화가 생긴 것처럼 보였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 역시 좀 더 활발해지고 밝아졌다.

* * *

며칠이 지나고, 겨울은 더 깊어져 곳곳에 서리가 얼었다.

설연산장 문 앞에 마차 한 대가 멈춰 섰다. 그것은 거대한 순백색 마차로, 햇빛을 받자 눈부시게 빛이 나 마치 얼음 조각 같았다. 용무늬가 새겨진 데다가 짐승이 울부짖는 모양의 화려한 금장식이 달린 마차는 그 자태가 위풍당당하고 고귀했다.

마차의 앞뒤에는 각각 두 마리의 짐승이 있었다. 백호의 몸에 금색 뿔이 나고 금색 날개가 달린 짐승은 두 눈동자도 금빛으로 반짝였고, 웅장한 위엄을 자랑했다. 입을 벌리자 희고 날카로운 이빨이 번뜩였다.

만약 이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곧바로 이것이 설연산장의 백요마차(白獠馬車)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마차 앞뒤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짐승은 백요수(白獠獸)로, 하루에 천 리를 갈 수 있고 하늘을 날고 물에도 들어갈 수 있으며, 지후에 견줄 수 있는 고수이기도 했다. 이 백요수는 무척이나 희귀한 동물이어서 볼 수도, 잡을 수도 없었다. 그런 백요수가 설연산장에는 무려 네 마리나 있었다. 심지어 마차를 끄는 용도로 쓰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염원은 사릉고홍과 함께 산장 문밖을 나갔다가 이 마차와 짐승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설연산장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주묘랑은 당염원이 그저 마차의 위엄에 놀란 것인 줄 알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만약 당염원이 놀란 이유를 알았다면 마냥 웃진 못했을 것이다.

당염원의 뒤편에는 수람, 엽연교와 엽목향, 이경, 서수죽 그리고 흰 여우가 있었다.

서수죽은 함께 길을 떠나는 것은 아니었다. 모두가 떠날 채비를 마치자 서수죽이 사릉고홍을 향해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장주님, 주모님, 편안한 여정 되십시오.”

사릉고홍이 그를 한 번 쳐다보더니 당염원을 안고 바로 백요마차에 탈 준비를 했다.

주묘랑은 마부 자리에 앉았고, 수람 등 나머지 사람은 자연히 백요수에 올라탔다.

사릉귀안은 일찍이 준비를 마친 뒤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길게 냈다. 그러자 눈꽃이 휘날리는 허공 속에서 짐승의 낮은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날개가 네 개 달린 늑대의 몸을 한 짐승이 날아왔다. 사릉귀안의 앞에 내려앉은 짐승은 까맣고 매서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부드럽게 몸을 비볐다. 뒤이어 사릉귀안을 향해 몸을 숙였다.

당염원은 이 짐승이 잠깐이지만 자신을 차갑고 살기 어린 눈으로 보았음을 알아챘다. 보통 사람이라면 두려움에 놀라 자빠졌겠지만, 당염원은 그저 눈을 깜빡일 뿐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늑대의 매서운 검은 눈동자가 다시 바늘처럼 움츠러들자 살기 역시 사라졌고, 짐승은 다시는 당염원을 쳐다보지 않았다.

사릉귀안은 짐승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러곤 짐승 위에 올라타 당염원을 향해 웃어 보이며 말했다.

“검둥이는 형수님이 좋은가 보네요.”

좋다니, 그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검둥이라니, 어떠한 애정도 느껴지지 않는 이름이었다.

당염원은 더 이상 이들을 신경 쓰지 않고 사릉고홍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사릉고홍은 뜻을 알아채고 마차 문을 연 뒤 당염원을 안고 들어갔다.

사릉귀안은 마차 안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서 다소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지금 나에 대한 불쾌함을 드러낸 건가?!

당염원은 지금껏 자신이 표정을 전혀 숨기지 못한다는 걸 알지 못한 채로 항상 솔직하게 자신의 기분과 생각을 드러냈다. 그녀에게 원래 얼굴이 없었다는 걸 누가 알았겠는가? 물론 사릉귀안이 당염원의 얼굴에서 불쾌함을 눈치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백요마차의 내부는 바깥의 빛이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 차체가 매우 컸고, 바닥에는 하얀 융단이 깔려 있었다. 그 위로 침상, 병풍, 키 작은 탁자가 있었고 탁자 위에는 주전자, 물잔, 향로가 놓여 있었다. 모든 것이 간소했지만 어느 하나 정교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당염원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모든 생활습관이 사릉고홍을 통해 길러졌기 때문에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 모두 나날이 사치스러워졌다. 불편함과 고통이 무슨 느낌인지도 까먹을 지경이었다. 당염원은 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나중에 자유로워지면 반드시 내 세력을 키워야지. 설연산장보다도 더 좋으면 좋겠어. 그래야 날 무시하지 않을 테니까.’

“무슨 생각 하시오?”

사릉고홍이 낮은 목소리로 귓가에 대고 물어 왔다. 마치 봄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나중에 자ㅇ…….”

당염원이 의구심과 놀라움이 섞인 눈초리로 별안간 하던 말을 멈추었다. 점점 이 사내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지고 있었다.

“나중에?”

사릉고홍이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그러곤 당염원의 몸을 직접 돌려 눈을 마주 보았다.

그 두 눈은 맑으면서도 깊고, 차가우면서도 부드러웠다. 상반된 매력이 마음을 흔들었다.

당염원은 입술을 오물거렸다. 문득 이 사람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아졌다.

“나중에 설연산장에 버금가는 세력을 키우고 싶어요!”

‘자유’라는 두 글자는 금기어였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미 충분한 암시의 뜻을 가진 말이었다. 게다가 거짓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사릉고홍이 소리 내어 웃었다. 이때 눈부시게 밝은 당염원의 눈동자가 사릉고홍의 마음에 직접 닿아 그의 차가운 마음을 녹여 버렸다.

“이유가 무엇이오?”

‘자유! 자유를 누리려고요!’

하지만 당염원은 그대로 말할 수 없어 대답하지 않고 사릉고홍의 손을 밀더니 그의 품에서 나와 키가 작은 탁자 위에 엎드렸다. 그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으니 속이 이상하게 답답했다.

곧 그녀가 손을 뒤집자, 물방울처럼 둥근 단약이 손바닥에 올려져 있었다. 탁자 위 향로의 뚜껑을 열고 단약을 그 안에 넣으니, 단약에서 맑고 시원한 향기가 풍기기 시작했다.

사릉고홍은 가만히 당염원이 하는 짓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당염원이 향로 뚜껑을 닫자, 그가 갑자기 손을 뻗어 당염원을 자신의 품속으로 끌어당겼다. 뒤이어 턱을 당염원의 어깨에 가만히 댄 채 낮게 말했다.

“설연산장에 버금가는 세력을 원하면, 내가 주겠소. 그러니 화내지 마시오.”

“화 안 났어요.”

당염원은 어리둥절해져서 낮게 드리워진 사릉고홍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두 눈은 푸른 그림자에 덮여 몽롱하고 어두웠다. 또 차가운 달빛처럼 맑아서 보는 이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응.”

사릉고홍이 눈을 감고 콧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그는 당염원의 어깨에 기대어 마치 잠이 든 것 같았다.

당염원은 말을 이으려 했지만, 조용히 잠든 사릉고홍의 얼굴을 보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