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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102

94화 참 쉽죠(2)

94. 참 쉽죠?(2)

B등급 던전 '파나스의 밀림'

"지금이라도 쫄리면 빠져."

"네가 인정하고 1,000만 원 주면 빠질게."

풀숲에 몸을 숨긴 정재선과 김연수가 실랑이를 벌였다.

"쉿. 조용히 해봐. 걸리면 엿 된다. 진짜로."

정재선과 김연수는 평소 D등급 던전에서 사냥을 했다.

비록 '파나스의 밀림'이 다른 B등급 던전에 비해 약한 몬스터가 등장한다고 하지만, 절대로 이들이 안심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끼야아아악-!"

"으윽!"

그때 들려오는 끔찍한 괴성.

던전의 보스 몬스터인 파나스가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베이는 것 같은 그 살벌함에 둘은 조용히 몸을 떨었다.

"조금 가까워진 것 같지 않냐?"

"그럴 일 없으니까 조용히 있어."

파나스의 밀림이 B등급인 이유는 온전히 저 보스몬스터 파나스 때문이었다.

놈은 이미 수많은 공략대를 찢어발겼을 정도로 강력한 거대 몬스터다.

피해자 중에는 완벽히 C등급 던전을 공략한 중견 길드도 포함되어 있었다.

"혹시라도 걸리면 우리는 그냥 죽는 거야!"

"나도 알고 있으니까. 제발 닥쳐."

파나스는 여느 보스 몬스터와 같이 코어를 지키고 있지 않았다.

평소 보스룸이라 불리는 정해진 출몰 구역이 없다는 뜻이다.

즉, 이 던전 전체가 놈의 영역. 보스룸이나 다름없었다.

"강현은 언제 오는 거야?"

"기다려 봐. 금방 올 거야."

"배데스 길드에 있다는 네 친구. 믿을 만한 거야?"

"당연하지. 인마!"

김연수의 의심하는 눈빛에 정재선이 발끈했다.

"분명 파나스의 밀림으로 온다고 했어. 우리랑 비슷하게 출발했으니까, 조만간 도착할 거야."

정재선의 말에도 김연수의 굳은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다.

"크큭. 그렇게 쫄리냐?"

"쫄기는, 강현이 안 와서 네 돈 못 받을 까봐 그렇지."

정재선의 말에 김연수가 어깨를 피며 허세를 부렸다.

-화악!

그때였다.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던전의 문이 열리며 빛이 뿜어져 나왔다.

'왔다!'

그곳에서 나타난 네 명의 남녀.

길드장 강현과 부길드장인 안유성과 신성아였다.

'윤나래 실물이 훨씬 예쁘네...'

'나보다 어리다고 들었는데.'

나머지 한 명은 요즘 뜨고 있는 간부 윤나래가 분명했다.

"오늘도 힘차게 시작해볼까?!"

"예에..."

던전에 들어온 강현이 밝게 외쳤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반응은 영 시원치 않았다.

귀찮아하는 것이 역력한 표정을 보며 정재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생각보다 강현의 위치가 공고하지 않은 건가...?'

보통 길드장은 길드 내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다.

길드장의 말에 저렇게 호응하지 않는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자자, 카메라 켜고. 준비됐어?"

"예."

"오케이. 큐!"

신성아가 카메라를 켜고 강현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배데스 길드의 마스터 강현입니다."

처음 강현의 영상은 정말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기획, 촬영, 진행까지 모두 일절 도움 없이 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의 영상은 지난번에 예고했듯이 바로바로!"

"두구두구두구..."

강현이 말을 끌자 윤나래가 예의 입 효과음을 냈다.

정말 하고 싶지 않지만, 억지로 한다는 티를 팍팍 냈기 때문에 보는 재미가 있었다.

"오우거 공략 영상입니다!"

-짝짝짝짝.

이어지는 무성의한 박수.

'실제로 보니 더 웃기네.'

하지만 이들의 꾸밈없는 모습이 의외로 좋은 반응을 이끌었다.

그래서 강현은 전문가를 붙여주겠다는 정부의 제안도 단호히 거절하고, 계속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영상을 제작했다.

"오우거를 모르는 분은 아마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주 몬스터의 표본 같은 놈들이기 때문이죠! 거대하고, 못생겼고, 힘도 아주 강한 오우거!"

"..."

"상당히 위험한 놈이지만, 여러 던전에서 자주 출몰하는 놈이기 때문에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고 공략 영상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와아아아..."

강현이 잠시 자신을 향한 환호를 만끽하는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좋습니다. 이제 오우거를 찾으러 가볼까요?"

그리고 곧장 일행과 함께 밀림으로 들어갔다.

정재선과 김연수는 조용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

**

"쉿! 저기 오우거가 있습니다. 여러분."

손가락을 코에 가져다 댄 강현이 심각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봤다.

카메라가 천천히 움직이며 거대한 녹색 괴물을 담았다.

"그럼 지금부터 공략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

"요즘 우리 영상을 따라 하는 분들이 있다던데... 이번 영상은 절대로 따라하시면 안 됩니다. 오우거한테는 안 돼요. 진짜 죽습니다."

강현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신성아가 카메라 앵글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오우거에게 다가갔다.

"우어어?"

태연하게 자신에게 걸어오는 강현을 본 오우거가 고개를 갸웃했다.

"으음, 이놈 유난히 큰 것 같은데?"

강현의 말대로 오우거는 유독 거대했다.

오우거의 신장은 평균 3m 중반으로 알려져 있는데, 강현의 앞에 있는 놈은 족히 4m는 넘을 것 같았다.

"시발, 하필 걸려도..."

잠시 인상을 찌푸리던 강현이 카메라를 보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변했다.

"여러분. 잘 보이시죠?! 이놈은 다른 오우거보다 유독 크네요."

강현은 오우거에게서 등을 돌린 채로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뭐하는 거야..? 위험하다고!'

뒤에서 오우거가 통나무를 들어 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긴장한 정재선의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아주 힘이 셀 것 같아요. 이번 촬영에 아주 적합한… 쿠엌!"

거대 통나무가 그대로 강현에게 작렬했다.

-퍽, 퍽! 쿵!

오우거가 휘두른 통나무에 맞고 날아간 강현은 작은 나무 몇 그루를 박살내고 바위에 처박혔다.

그 장면을 보는 정재선과 김연수의 눈이 부릅떠졌다.

'씨발... 뭐야!?'

'죽었어. 분명 죽었다고!'

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오우거에게 맨손으로만 얻어맞아도 어지간한 능력자는 그대로 절명한다.

그런데 다른 오우거보다 훨씬 거대한 놈이 전력으로 휘두른 통나무에 직격 당했다.

"아무리 강현이라도 이건..."

그때였다.

"켈록, 켈록!"

강현이 처박힌 바위에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아으, 생각보다 많이 아프네요. 여러분 오우거가 이렇게 위험합니다."

정말 아픈 사람처럼 잔뜩 인상을 찡그린 강현이 어깨를 두드리며 태연하게 걸어왔다.

"그럼 공략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우워어어!"

오우거는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한 것 같았다.

들고 있던 통나무를 내던진 놈이 강현에게 달려왔다.

-쿵, 쿵, 쿵!

놈이 발을 디딜 때마다 미세하게 땅이 울렸다.

"우어어!"

순식간에 접근한 놈이 강현의 머리보다 더 큰 주먹을 들어 올렸다.

"공략은 간단합니다."

그리고 강현의 머리통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주먹을 휘둘렀다.

"하압!"

기합을 내지른 강현이 손을 뻗어 오우거의 주먹을 받아냈다.

-치이이이이...

거대한 체구와 그에 걸맞지 않은 빠른 속도.

오우거의 주먹 안에 담겨있는 엄청난 힘에 바닥에 고정된 강현의 두 다리가 계속해서 밀려났다.

"일단 놈의 손을 붙잡습니다."

하지만 강현의 얼굴은 태연했다.

이윽고, 자신보다 몇 배나 큰 덩치를 멈춰 세우는 데 성공했다.

"흐아아아!"

"우어어!"

강현은 그대로 오우거와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인간과 거대 괴물의 힘 대결.

승자는 인간 괴물 강현이었다.

"우워어!"

강현에 의해 손목이 꺾인 오우거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자연스럽게 놈의 몸이 꼬이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렇게 손목을 틀어 주시고."

강현은 그 틈을 이용해 놈을 바닥에 메쳤다.

-콰아앙!

깔끔한 업어치기.

"바닥에 내친 다음."

"우어어...?!"

오우거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신보다 한참 작은 인간에게 힘에서 밀렸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자신을 들어 바닥에 메치기까지 했다.

"원퍼어어어어언-!"

어느새 놈의 머리 옆으로 다가간 강현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잔뜩 인상을 쓰고, 목에 핏대까지 세우는 것이 정말 온 힘을 다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치이!"

-퍼어억!

강현의 크고 단단한 주먹이 오우거의 턱에 작렬했다.

"이렇게 깔끔하게 주둥이를 날려주면 됩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머리 절반이 터져나간 오우거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죽었다.

"참 쉽죠?"

멀리서 그 장면을 지켜본 정재선과 김연수의 턱이 바닥에 닿을 듯 벌어졌다.

"1,000만 원 가져와라."

"어..."

정재선의 말에 김연수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까 어쩐지 더 현실감이 없다."

"그러게..."

오우거에게 맞고 멀쩡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힘으로 오우거를 제압해 버렸다.

그리고 주먹 한방에 터져나가는 머리.

"우리 길드원 전체가 덤비면 어떨 것 같냐?"

"뭐. 강현한테?"

"어."

"되겠냐?"

**

강현은 오우거를 마무리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냐."

신성아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뭐하는 놈들이지.'

처음에는 몬스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한테 무슨 볼일이지? 자객이라 하기에는 너무 마력이 약한데... 아니야. 혹시 마력을 숨기는 아이템이나 스킬이 있을지도 몰라.'

무엇하나 확실하지 않은 상황.

'차라리 나와서 시원하게 덤볐으면 좋았을 것을...'

분명 놈들은 이 던전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끝까지 몸을 숨긴 채로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누가 이기는지 한번 해보자고.'

강현이 생각을 정리하고 윤나래를 불렀다.

"로리 오타쿠."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요!"

"알겠으니까 다음 몬스터 끌어와. 얼른 오우거 영상 마무리하고 돌아가자."

"형. 보스는요?"

오우거를 끝내고 간다는 말에 안유성의 미간이 잔뜩 좁혀졌다.

"던전에 왔는데 보스도 안 잡고 간다고요?"

"여기 보스 유명한 거 몰라? 준비도 없이 덤비면 어쩌려고."

"언제는 무슨 준비를 했어요?"

"뭐 인마?"

안유성이 대놓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쫄았으면 그냥 쫄았다고 해요. 그런 핑계 같지도 않을 걸."

안유성이 도발을 걸어왔지만 강현은 애써 무시했다.

솔직히 이전에도 딱히 공략에 준비를 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기도 했으니까.

"에휴..."

한숨을 내쉰 강현이 나무 둥치에 기대어 섰다.

"그나저나 로리 오타쿠는 왜 또 안 와?"

윤나래가 떠나간 지 제법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숲에서는 여전히 고요한 풀벌레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오우거를 찾느라 늦는 것 같습니다. 이 던전에는 오우거 외에도 다양한 몬스터가 서식하니까요."

"이상하다. 여기에 오우거 엄청 많이 나온다고 하지 않았어?"

"맞습니다. 하지만 오우거 자체가 그리 흔한 몬스터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러면 처음에 발견한 놈은 운인가?"

분명 처음 발견한 놈은 숲에 들어오고 5분도 지나지 않아 마주쳤다.

그것도 다른 오우거보다 훨씬 거대한 놈을 말이다.

"쳇. 오우거 군락이 있을 정도라더니 구라였나 보네."

일반적으로 오우거는 가족 단위, 혹은 개별 생활을 한다.

하지만 이 던전은 우스갯소리로 오우거 군락이 있는 게 아니냐 할 정도로 많은 오우거가 출몰한다고 했다.

"분명히 그랬는데..."

슬슬 참을성이 부족한 강현의 인내심이 바닥나려 할 때쯤,

-두두두두두...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응?"

동시에 엄청난 양의 마력이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어어... 전부 준비해라."

강현은 직감했다.

무언가 잘못됐다.

"우어어어어!!!"

분명 오우거 한 마리와 함께 왔어야 할 윤나래.

정신없이 허공을 달리는 그녀의 뒤에는 족히 백은 돼 보이는 오우거 군단이 달라붙어 있었다.

"미친! 한 마리만 데려 오라니까!"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런 줄 알아요?!"

"닥쳐!"

오우거가 무려 백 마리다.

아무리 강현이라도 진지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으허어억!"

그때 강현의 뒤쪽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놈들은..."

"오, 오우거 부대다! 살려줘! 아니, 살려주세요!"

지금까지 줄곧 자신을 지켜보던 마력의 정체였다.

"네들은 뭐야?"

"잘못했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압도적인 오우거 부대의 위용에 두 남자는 완전히 패닉 상태였다.

'아무리 봐도 자객, 스파이, 암살자 같은 부류의 인간은 아닌데...'

잠시 고민하던 강현이 이들을 잡아 신성아에게 던졌다.

"얘들 데리고 피해 있어줘. 카메라 비싼 거니까 잘 챙기고."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신성아가 남자들의 목덜미를 붙잡고는 나무 위로 사라졌다.

"온다! 준비해!"

그사이 오우거는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으하하! 역시 형이랑 다니면 재미있다니까요!"

강현은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참았다.

"윤나래, 너는 끝나고 보자!"

강현의 짜증과 동시에 윤나래가 강현을 스쳐가고,

"우어, 우어, 우어어어!"

오우거 부대와 강현이 격돌했다.

95화 혼돈의 카오스(1)

95. 혼돈의 카오스(1)

"우워어!"

"우어, 우어, 우어!!"

보통 오우거 한 마리만 날뛰어도 주위는 완전히 초토화된다.

그런 오우거가 백이 넘게 모이자 정말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

"갑자기 이게 뭔 지랄이야!?"

모든 버프를 활성화한 강현이 우르그의 거대 망치를 꺼내 들었다.

"흐압!"

그리고 야구 배트를 휘두르듯이 전력으로 휘둘렀다.

"우어?!"

맞은편에서 선두로 달려오던 오우거는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망치의 각도가 이상했다.

다급하게 피하려 했지만 이미 다른 오우거들이 뒤에서 밀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늦었어. 인마!"

-퍼억!

망치에 얻어맞은 오우거의 거체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우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고놈 목청 한번 좋네."

고통에 찬 비명이 온 숲을 울렸다.

오우거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뭔가 데자뷰 같은데..?"

어쩐지 익숙한 상황.

강현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움찔거리는 놈의 엉치뼈에 망치를 두드려 줬다.

"들어와.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은 특별히 무료 시술이다."

동료가 끔찍한 모습으로 죽은 것을 본 오우거들이 잠시 멈칫했으나,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뒤집고는 달려들었다.

"우어어어!"

강현은 거대한 오우거 사이를 날뛰며 쉴 새 없이 망치를 휘둘렀다.

어느새 전투에 난입한 안유성과 윤나래도 함께였다.

-콰앙, 쾅!

강현과 오우거가 격돌할 때마다 굉음이 울리고, 숲의 나무들이 부르르 떨었다.

"뭐가 끝이 없어? 진짜 돌아가기만 하면 두고 봐!"

"내가 뭘요!?"

"용케 네 이야기 하는 건 줄은 아네?!"

전투 도중 강현이 외치는 소리에 윤나래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형. 와요!"

그때 갑자기 터져 나온 안유성의 외침에 강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오긴 뭐가 온다는…."

말을 하던 강현의 몸이 굳었다.

'이거 설마...'

엄청나게 거대한 마력이 접근하고 있었다.

"시발..."

이미 피하기는 늦었다.

강현은 금세 체념하고 준비를 했다.

"끼야아아악-!"

하늘이 쩌렁쩌렁 울리는 엄청난 굉음.

전투 중이던 모두가 멈춰 선 채 귀를 틀어막았다.

강현은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봤다.

-펄럭, 펄럭!

15미터는 될 법한 거대 괴조.

수많은 능력자들을 학살한 보스 몬스터 파나스가 이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다더니..."

**

"끼아아아!"

괴성을 내지르는 파나스.

"우워, 우워!"

원시인을 보는듯한 오우거.

"하아..."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기는 강현.

세 개의 무리가 서로를 노려보며 팽팽하게 대치했다.

"저것들 뭐하는 거야?"

"대치하고 있잖아요."

"나도 눈 달려있어 새꺄. 그러니까 왜 대치하냐고."

"그걸 왜 물어요?"

"뭐?"

안유성이 강현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바라봤다.

"답지 않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냥 다 날리면 되지."

"너한테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쯧..."

혀를 찬 강현이 말을 이었다.

"지금 생각난 건데 말야. 몬스터도 서로 다른 종끼리는 싸우기도 하잖아?"

"예. 흔한 일이죠."

"아무래도... 저 보스 놈."

강현이 누가 들으면 안 될 말이라도 하는 듯 안유성의 귀를 잡아당겼다.

"다른 몬스터랑 사이가 나쁜 것 같다..!"

"그걸 이제야 눈치 챘어요?"

"뭐?"

안유성이 대놓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육감으로 진작 알고 있었죠. 그리고 스킬이 없다 해도 그냥 딱 보면 몰라요?"

"..."

"누가 봐도 사이가 안 좋아서 으르렁대고 있는데, 그걸 몇 분이나 고민하네."

"..."

"그러니까 형은 어울리지 않게 생각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몸이 가는 대로…."

"알겠으니까 닥쳐!"

안유성에게 소리친 강현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우워우!

"워우! 우워어어어!"

"우워, 우워, 우우우!"

"저것들은 도대체 뭐라 지껄이는 거야? 시끄러워 죽겠네."

심기가 불편해진 강현이 괜히 오우거들을 욕했다.

"워어, 워어어!"

오우거들은 계속해서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저들끼리 몸짓까지 이용해서 떠들어 대는 것이 중요한 회의를 하는 것이 분명했다.

굳이 해석하자면 이런 뜻이었다.

'도망치자!'

'싫다. 지금 도망치면 죽는다.'

'맞다. 우리는 모였다. 놈을 해치울 기회다.'

그 소란을 듣고 있던 강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우어, 우어! 시끄러워 새끼들아! 노이로제 걸리겠네."

강현이 소리쳐도 오우거가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하아... 혹시 쟤들 지금 뭐라는지 알 수 있냐?"

"지금 보스를 공격할지 아니면 그냥 도망칠지 회의하고 있어요."

"그래?"

안유성의 말을 들은 강현이 생각에 잠겼다.

"그렇단 말이지..."

팔짱을 낀 채로 눈을 감고 있던 강현이 갑자기 씨익 웃기 시작했다.

"그러면 내가 결정하기 편하게 해 줘야지."

"어떻게요?"

"너 계속 싸우고 싶다 했지?"

"예...?"

강현이 안유성의 어깨를 붙잡았다.

"매일 나한테 제대로 된 사냥 좀 하자고 징징거렸잖아. 안 그래?"

"징징까지는 아니고..."

"오늘도 보스 잡고 싶다면서? 그랬잖아?!"

"그렇죠..."

오랜만에 강현의 눈에 광기가 차올랐다.

그 눈을 마주한 안유성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형. 지금 제 육감이 굉장히 위험하다고 소리치는데요?"

"두근대지 않아?"

"...?"

"네가 제일 좋아하는 게 그거잖아. 위험한 거. 막! 피 튀기고 어? 그런 거잖아! 아니야!?"

"..."

차마 아니라고는 못하는 안유성이었다.

"너는 공중을 디딜 수 있는 스킬도 있으니까. 제격이네."

강현이 안유성의 허리춤을 붙잡았다.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 것인지 팔에 꿈틀거리는 근육과 함께 핏줄이 잔뜩 올라왔다.

"자, 잠깐! 지금 뭐하는…!"

"그냥. 즐겨!"

그리고 전력으로 안유성을 집어던졌다.

"가라! 안유서엉-!"

안유성은 한 마리의 새가 되어 파나스에게 쏘아졌다.

"좋아. 제대로 놀아보자고!"

[분노의 사자후가 발동됩니다]

**

오늘도 여유롭게 창공을 날던 파나스가 울부짖었다.

"끼아아아아아-!"

그 소리에 숲에 있는 몬스터들이 움츠러드는 것이 느껴졌다.

이 숲에서 자신은 절대자다.

닥치는 대로 부수고, 잡아먹는다.

숲의 몬스터들은 자신을 두려워하며 숨기 바쁘다.

"끼아아!"

그런데 성가신 놈들이 있었다.

바로 오우거다.

놈들은 유일하게 자신에게 저항하는 몬스터였다.

때문에 가급적이면 놈들이 뭉치지 못하게, 눈에 띌 때마다 찢어발겨 왔다.

"우어어어어어어어어-!"

그때 갑자기 엄청나게 커다란 비명이 들려왔다.

무언가 한이 담겨있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분명 오우거의 그것이다.

파나스는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우어어, 우어어!"

그곳에는 무려 수십 마리의 오우거들이 모여 있었다.

파나스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다.

놈들이 뭉쳤다고 해서 두렵지는 않았지만 성가신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끼아아아아아-!"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파나스가 울부짖었다.

하지만 놈들은 흩어지지 않고 여전히 모여 있었다.

게다가 오우거 근처에 인간까지 있었다.

제법 강한 마력이 느껴지는 것이, 그동안 찢어발겨왔던 인간들과는 조금 다른 듯했다.

"..."

그렇게 잠시간의 대치.

파나스는 고민을 이어갔다.

이대로 놈들과 싸울 수 있지만, 자신도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조금 전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것인지, 숲의 다른 몬스터들이 모여드는 것이 느껴졌다.

"..."

역시 지금은 자리를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무서워서 도망치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불필요한 싸움으로 자신의 고귀한 피를 흘리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가라! 안유서엉-!"

그때였다.

갑자기 지상에서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무언가가 빠르게 자신에게 날아왔다.

-푸화악!

그리고 자신의 눈동자에 날카롭고 묵직한 무언가가 틀어박혔다.

"으하하! 모르겠다. 놀아보자!"

"끼아아아아-!"

고통에 찬 파나스의 비명이 울리고, 전투는 시작됐다.

**

완전한 난전.

피아 구분이 없는 대 난투극.

-쾅, 쾅, 콰앙!

강현이 양 손에 마력구를 생성해 사방으로 집어던졌다.

"우워어어!"

"닥쳐!"

강현의 검이 먼지 틈에서 허우적거리는 오우거의 목을 갈랐다.

-퓨슈슉!

뿜어져 나오는 피를 막기 위해 목을 부여잡은 오우거가 미친 듯이 날뛰었다.

지나가던 고블린이 오우거의 발에 치여 하늘을 날았다.

"후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주변은 혼란의 극에 달해 있었다.

정말 던전 안의 모든 몬스터들이 모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바글바글한 놈들.

-쿠당탕! 와장창!

"개판이네. 개판이야."

파나스는 완전히 미친 싸움닭 같았다.

지상으로 내려온 놈은 연신 거대한 부리를 바닥에 찍어대고 있었다.

-투콰콰콰콰!

자칫하면 거대한 닭이 모이를 쪼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으나, 그 결과는 참혹했다.

부리가 바닥에 내려쳐질 때마다 몬스터들이 종류에 관계없이 찢어발겨지고 있었다.

"케에엑!"

하지만 몬스터들은 전의를 잃지 않았다.

평소라면 파나스를 보고 도망치기 바빴을 놈들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놈들도 눈이 뒤집혀서 파나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왜 이렇게 격하게 호응하는 거야?"

이건 강현이 의도한 상황이 아니었다.

강현은 사실 파나스의 시선만 분산시키면 성공이라 생각했다.

파나스와 오우거를 자극해서 놈들이 싸운다면 그것만으로 목표 달성인 것이다.

"까아아아-!"

시작은 좋았다.

강현과 안유성의 공격으로 파나스가 날뛰고, 예상대로 오우거는 파나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그 이후.

전투가 벌어지다 다른 몬스터들이 하나둘 참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쌓인 게 많았나."

강현이 보기에 몬스터들은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숲의 폭군을 처치하고, 평화를 가져올 기회 말이다.

-콰아앙!

어디서 날아온 것인지, 이름 모를 몬스터가 강현의 옆에 처박혔다.

"하아, 정신없어... 그냥 이대로 도망칠까."

판을 벌이기는 했는데, 뭔가 탐탁치가 않았다.

정신은 하나도 없고, 놈들은 자신에게 그다지 관심도 없었다.

"솔직히 이대로 나가고, 내일 와서 살아남은 놈만 잡아도 될 것 같은데."

"하하하하!"

"쟤는 즐거워 보이네."

안유성은 정말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고 있었다.

"으아! 모르겠다. 그냥 전부 정리하고 나가자."

순간 강현의 시야에 오우거가 들고 있던 거대한 통나무가 보였다.

미리 손을 써둔 것인지, 통나무의 끝은 제법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끄응차!"

그 통나무를 들어 올린 강현이 파나스를 바라봤다.

"정리하려면 우선 저 닭대가리부터 처리해야겠지?"

통나무를 든 강현의 근육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마치 한계까지 당겨진 고무줄처럼 팽팽해진 근육들.

악력을 견디지 못한 통나무가 우지끈- 하고 부서졌다.

"뒤져어!"

외침과 함께 한계까지 당겨졌던 근육이 쏘아졌다.

-부아아아앙!

동시에 일어나는 엄청난 풍압.

거대한 통나무가 하나의 총알이 되어 쏘아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놈을 스쳐 지나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쳇, 빗나갔네."

딱히 큰 기대를 하고 던진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빗나가자 괜히 아쉬운 강현이었다.

"후우. 그럼 제대로 움직여 볼까."

강현이 말을 하며 몸을 풀 때였다.

"끼아아아-!"

파나스가 또다시 괴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벌어진 놈의 부리 속으로 엄청난 마력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어..?"

순간 놈을 보던 강현이 당황했다.

"왜...?"

눈이 마주쳤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강현은 확신했다.

불을 머금고 있는 파나스와 자신의 눈이 마주쳤다.

"뭔데? 왜?!"

-호오오오오오오

파나스는 강현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마력을 모을 뿐이었다.

"왜 갑자기 나를 보는 건데!?"

-푸화아아아아!

그리고 뿜어져 나오는 화염.

파나스가 내뿜은 불꽃이 강현이 있던 곳 일대를 뒤덮었다.

**

"케륵, 케륵!"

고블린 게르선은 정신없이 숲을 내달렸다.

"끼아아아!"

계속해서 들려오는 파나스의 울부짖음. 드디어 놈과 한바탕 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케르르..."

오늘은 약속한 날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동료들은 소리의 근원지로 달려갔다.

가장 중요한 전력인 오우거들이 모여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케륵, 케륵!"

그 전장을 뒤로하고 게르선은 도망치고 있었다. 그곳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열심히 말이다.

"케륵..."

게르선도 도망이 비겁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살고 싶었다.

뒤를 돌자 멀리서도 그 위용을 뽐내는 파나스가 보였다.

저 숲의 폭군에게 덤비다니 그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다들 미친 게 분명했다.

"케륵?"

그때였다.

파나스의 옆으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빠르게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게르선은 실눈을 뜨고 그것이 무언인지 살펴봤다.

"케엑?!"

통나무.

그것은 거대한 통나무였다!

어째서 통나무가 하늘을 날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서 피해야...

-콰아앙!

그것이 고블린 게르선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96화 혼돈의 카오스(2)

96. 혼돈의 카오스(2)

"프흐르르!"

브레스를 뿜어낸 파나스가 거칠게 머리를 흔들었다.

하루에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 브레스.

한 번 사용하면 온몸에 힘이 빠지기 때문에 아끼려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설마 이곳의 모든 몬스터들이 자신에게 덤벼들 줄 몰랐기 때문이다.

"끼아아아-!"

상당히 피곤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오랜만에 뿜어낸 브레스에 놈들의 3분의 1이 잿더미로 변했다.

게다가 가장 증오하는 인간 놈을 처치할 수 있었다.

오늘 처음 본 놈이지만 파나스는 직감했던 것이다.

놈이 이 모든 일의 원흉이라고.

게다가 놈은 자신에게 위협적인 통나무를 던지기까지 했다.

"우어어!"

"케륵, 케엑!"

용케 브레스를 맞지 않은 몬스터들이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제 다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자신은 숲의 절대자.

나머지는 모두 하찮은 벌레일 뿐이다.

"끼아아악-!"

만족한 파나스가 다시 울부짖을 때였다.

"고맙다!"

"끼아...?"

갑작스럽게 들리는 목소리에 파나스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조금 전 브레스에 직격 당한 인간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설마 놈이 살아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한 파나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덕분에 올해 불가마 찜질방은 다 갔어. 새꺄!"

그리고 자신의 발가락에 무언가 엄청난 것이 내려쳐졌다.

-퍼어억!

"끼아아아아아-!"

**

-스스스스

-타닥, 타닥

나무가 타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으..."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사방으로 흩날리고 있는 재가 보였다.

-띠링, 띠랑!

[열기 내성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열기 내성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동시에 떠오르는 메시지.

"씨발... 진짜 죽을 뻔했네."

화염을 마주한 강현은 재빨리 바위 뒤로 몸을 숨기고, 엔트리아의 외피를 사용했다.

그럼에도 죽을 뻔했다.

전신에 화상을 입고, 그것을 치유하기 위한 마력이 뭉텅 빠져나갔다.

"하아, 다른 놈들은 괜찮나?"

주위를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잿더미뿐.

아직 타다 남은 오우거의 사체도 보였다.

"안유성은 걱정할 필요가 없기는 한데..."

어떻게는 자기 목숨은 챙기는 놈이니 괜찮을 것이다.

"신성아... 윤나래는 살았나?"

조심스럽게 마력을 운용해 주위를 느껴봤지만 소용없었다.

파나스의 브레스에 던전 내부의 마력이 요동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끼아아악-!"

저 멀리 파나스가 울부짖는 모습이 보였다.

"우, 웃어?"

어떻게 조류가 웃는 있다는 것을 자신이 이해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강현은 확신했다.

놈은 웃고 있었다.

"넌 뒤졌어."

입고 있던 옷은 사라졌고 로날드의 갑옷은 반파되었기에, 강현이 예비 갑옷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재빠르게 놈의 뒤로 이동했다.

'극강의 고통을 선사해 주마.'

여전히 웃고 있는 놈에게 접근한 강현이 우르그의 거대 망치를 꺼내 들었다.

"덕분에 올해 불가마 찜질방은 다 갔어. 새꺄!"

그리고 멍청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놈의 발가락을 내려찍었다.

-퍼어억!

"끼아아아아아-!"

성인 허리통만 한 놈의 발가락이 거대 압착기에 들어간 것처럼 납작해졌다.

동시에 발가락에 달려있던 날카로운 발톱이 통째로 뽑혀 나왔다.

"하하하! 이거 좋은데!?"

뽑혀 나온 발톱을 집어 든 강현이 해맑게 웃었다.

"끼아아아!"

그 모습을 본 파나스의 이성이 끊어졌다.

분노로 눈이 뒤집어진 파나스가 강현을 향해 전력으로 부리를 내려 찍었다.

-투콰과과가!

놈은 그 거대한 부리를 초당 세 번에 가까운 횟수로 내려쳤다.

부리가 한번 찍힐 때마다 땅이 울리며 움푹 파였다.

'한방이라도 맞으면 끝이다.'

저건 정말 위험했다.

강현이라도 맞는 순간 그대로 걸레짝이 될 것이 뻔했다.

강현은 재빠르게 부리를 피하며 머리를 굴렸다.

'약점이 어디지?'

강현도 이 정도로 거대한 놈을 상대한 적은 처음이었다.

머리를 굴려 봐도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투쾅! 콰앙!

잠깐 동안 강현의 근처에 부리가 내려 찍히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몇 번이나 연출됐다.

'모르겠다. 일단 올라가자!'

우선은 저 부리의 사정권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했다.

놈의 주위를 돌며 기회를 엿보던 강현이 힘껏 점프했다.

"마력 폭발, 마력 폭발!"

그리고는 자신의 발 아래에 연달아 마력폭발을 일으켰다.

"우아아아!"

강현은 발이 찢겨나가는 고통을 대가로 빠르게 허공으로 날았다.

단숨에 놈의 등에 안착한 강현이 씨익 웃었다.

"닭대가리야! 어디 또 해봐!"

파나스는 자신의 등에 올라탄 강현을 떨어뜨리기 위해 발버둥 쳤으나 소용없었다.

강현은 놈의 거친 털을 필사적으로 움켜쥐었다.

"일도 양단!"

장검을 꺼내 든 강현이 놈의 깊숙이 박아 넣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강현은 닥치는 대로 놈의 몸을 베었다.

거대한 덩치를 지닌 놈에게는 피부가 베이는 정도이겠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계속 파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안유성의 말처럼, 자신은 생각이랑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냥 이렇게 몸으로 때우는 것이 편했다.

"죽어, 죽어, 죽어어!"

-푸슈슈슉!

늘어가는 상처에 뿜어져 나오는 피가 작은 계곡을 이뤘다.

깜찍한 고통에 파나스가 비명을 내질렀다.

"우워워어!"

"케에에에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몬스터들의 눈에 점차 생기가 들기 시작했다.

두려움에 떨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던 그들에게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다.

몬스터들은 사력을 다해 파나스를 향해 뛰었다.

-퍼억, 퍽!

-투두두두두!

파나스는 정말 정신이 없었다.

우선 등에 붙은 진드기 같은 놈을 처리하고 싶었지만, 바로 앞에서 공격을 가하는 수백의 몬스터를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끼아아아-!"

결국 파나스는 결심했다.

바닥을 뒹굴어야 한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것이 목숨보다 소중하지는 않았다.

파나스가 전력으로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어, 어? 뭐야! 왜 이래 이거!?"

단숨에 수십 미터 높이로 뛰어오른 파나스.

놈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으아아아!"

갑작스럽게 타게 된 롤러코스터에 강현이 비명을 내질렀다.

무료로 탈 수 있는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였지만, 여기에는 안전바가 없었다.

즉, 탑승 비용이 목숨이다.

-콰아앙!

파나스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흙먼지와 함께 굉음이 울렸다.

"쿨럭! 갑자기 무슨 지랄을…!"

강현이 정신을 차리려는 찰나, 갑자기 파나스가 엎어진 그대로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끼아아아아!"

-콰과과과광!

놈이 몸을 구를 때마다 수십의 몬스터가 깔리고, 터져 나갔다.

이 덩치에 잘못 깔렸다간, 강현도 전신의 뼈가 갈려 연체동물이 될 것이 분명했다.

"으아악! 그만해! 이 미친 새대가리야!"

결국 강현이 파나스의 상처를 붙잡았다.

그리고 전신에 핏줄이 서도록 힘을 주었다.

"끄아아!"

-찌지지직

불쾌한 소음과 함께 파나스의 살점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공간이 생기자 강현은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으윽, 숨 막혀!'

놈의 피부 속으로 들어온 강현은 전신을 짓누르는 압력이 인상을 찌푸렸다.

끈적하면서도 미끈거리는 놈의 근육들이 강현을 터뜨릴 것처럼 압박해왔다.

'어떡하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력도, 체력도 바닥이다.

밖에서는 여전히 파나스가 몸을 뒹굴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안으로 계속 파고든다.'

생각을 정리한 강현이 몸을 비틀어 팔을 쑤셔 넣었다.

"마력 폭발!"

스킬을 사용하자, 퍼엉-하는 소음과 함께 파나스의 근육 안쪽이 크게 벌어졌다.

파나스가 고통에 힘을 주는 것인지 근육이 더욱 조여 왔다.

"크헉!"

강현은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코앞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모자라, 놈의 근육에 전신이 짓이겨진다.

고통에 익숙한 강현이라도 절로 신음성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른 능력자였다면 놈의 몸에 들어온 즉시 근육에 압사되어 죽었을 것이다.

그나마 체력 스텟이 압도적으로 높은 강현이기에 신음을 내뱉는 것으로 끝낼 수 있었다.

"마력 폭발!"

이를 더욱 꽉 깨문 강현이 다시 한번 마력폭발을 사용했다.

충격에 파나스의 근육이 너덜너덜해지고, 구멍이 생겨났다.

"이 정도면 되겠어."

어느 정도 검을 휘두를 만한 공간이 생기자 강현이 장인의 장검을 꺼내 들었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어 집중하고, 몸에 남은 마력을 검으로 유도한다.

-파스스스...

검에서 푸른 마력이 잠차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치 푸른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모양.

강현의 상태가 좋지 않아 완전한 모양을 갖출 정도로 마력을 통제하지는 못했다.

"됐어. 가보자고!"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지금 이 마력도 언제 바닥날지 모른다.

-스걱, 스걱!

강현은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검에 베이는 파나스의 단단한 근육이 두부처럼 잘려나갔다.

"크아아아!"

얼마 지나지 않아 강현의 앞에 거대한 구멍이 만들어졌다.

구멍 안으로 파나스의 내장이 보이고, 악취가 올라왔다.

완전히 만신창이가 된 강현이 실성한 듯이 웃었다.

"크큭... 이제 진짜 재미를 봐야지?"

강현이 망설임 없이 놈의 몸속으로 뛰어들었다.

**

"끼아아아..."

10미터가 넘어가는 거체를 가진 파나스가 쓰러졌다.

-쿠웅!

쓰러진 놈의 입가에서 핏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푸하하! 살았다!"

그 부리를 비집고 엉망진창인 강현이 밖으로 나왔다.

신선한 공기.

고작 몇 분이 지났지만 이 상쾌함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랐다.

"으으... 죽겠다. 진짜."

마력이 바닥나 걸레짝이 된 육체가 회복되질 않았다.

"여긴 끝난 건가?"

밖은 이미 초토화되어 있었다.

몬스터의 시체가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즐비했고, 지형지물도 완전히 엉망진창이었다.

"모르겠다. 일단 좀 쉬자..."

강현이 파나스의 머리를 침대 삼아 드러누웠다.

하늘이 유독 푸르렀다.

"날씨 좋네..."

"형. 여기 있었어요?"

그때였다.

옆에서 들려오는 태평한 목소리에 강현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에는 상당히 멀끔해 보이는 안유성이 걸어오고 있었다.

"거기 앉아서 뭐해요?"

"너 뭐하다가 이제 오냐...?"

"뭔가 감이 안 좋아서 브레스 나오기 직전에 피했죠. 으윽, 이게 무슨 냄새야?"

안유성은 강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악취에 코를 틀어막았다.

싸움이 끝나면 항상 피에 절여져 있는 안유성 조차 경기를 일으킬 정도니, 그 냄새의 심각함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형.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예요!? 어디 시궁창 냄새보다 더하네."

"됐어. 너랑 말할 기운 없으니까. 제발 꺼져..."

"으음..."

확실히 안유성이 보기에도 어떻게 살아있는 것인지 신기할 정도의 몰골이기는 했다.

강현이 아주 조금 안쓰러워진 안유성이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아... 시발... 내 인생."

드러누운 강현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렇게 했지?"

"..."

"분명 영상을 찍고 놀 때만 해도 즐거웠는데!"

"형. 마정석은 챙겼어요?"

"어."

강현이 인벤토리에서 파나스의 마정석을 꺼냈다.

"와, 지금까지 본 것 중에 제일 큰데요?"

"그러게. 이거라도 건졌으니 위안이 된다."

분명 어딘가 쓸 곳이 있을 것이다.

"강현 님. 괜찮으십니까?"

"어... 왔어?"

고개를 돌려보니 깨끗한 모습의 신성아가 걸어오고 있었다.

"으윽..."

"왜. 냄새가 그렇게 심해?"

"심한 것을 넘어서 좀 역겨운 것 같습니다."

"..."

거짓말은 하지 못하는 신성아였다.

"너도 무사했구나."

"당연하죠."

뒤이어 등장하는 윤나래.

다행히 난리를 잘 피한 것 같았다.

"강현 님! 최고입니다!"

"저도 배데스 길드에 받아주십시오!"

"응...?"

그때 어디선가 경박스러운 목소리들이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던전 입구부터 따라왔던 두 남자가 보였다.

"당신들은 누구…."

"팬입니다!"

팬을 자처하는 정재선과 김연수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배데스 길드에 뼈를 묻겠습니다!"

"하아..."

갑작스러운 상황에 강현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오늘 이 꼴을 보고도 오고 싶다고요?"

"저희는 확신했습니다. 강현 님은 앞으로 전설이 될 겁니다!"

오글거리는 말이지만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길드 입단 절차는 알고 있죠?"

"..."

모를 리가 없었다.

한동안 그것으로 대한민국이 시끄러웠으니까.

그리고 자신들은 그 지옥과도 같은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저, 저는...!"

고민하던 정재선이 갑자기 손을 번쩍 들었다.

"강현 피규어도 종류별로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강현이 한숨을 내쉬고는 안유성을 바라봤다.

"안유성."

"왜요?"

"저것들 쳐내."

97화 정모(1)

97. 정모(1)

파나스의 밀림 공략이 끝내고, 강현은 반쯤 실신한 상태로 길드 사무실에 실려 왔다.

"으어, 죽겠다."

샤워를 하고 소파에 드러누운 강현에게 신성아가 다가왔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일단 상처 회복은 다 됐는데, 이상하게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네."

"고생하셨으니 충분히 그럴만합니다."

"휴우, 수습팀은 보냈어?"

"예. 수습팀 2개 조를 보내고 조동원 씨가 이끄는 공략 3팀에게 호위를 맡겼습니다."

"잘했네."

그사이 규모가 커진 배데스 길드는 이제 정식으로 던전 부산물을 처리하는 수습팀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동안 그냥 버리거나 외부 업체에 맡겼는데, 이제는 길드 자체에서 해결할 수 있으니 상당한 이윤이 남을 것이다.

"피곤할 텐데 너도 좀 쉬어."

"예."

간단한 보고가 끝나고, 강현이 상태창을 열었다.

▫이름 : 강현

▫칭호 : 튜토리얼 졸업자 외 3개

▫레벨 : 69

▫상세 능력치 :

·근력 31 (+4)(+5)

·순발력 31 (+3)

·체력 32 (+3)(+13)

·마력 35 (+3)(+4)

·추가 스텟 : -

▫고유 능력 : 부활

▫능력 : 베일의 검술(D), 하급 방패술(E), 최하급 석궁술(F), 강현식 사투(B), 하급 둔기술(E), 마력감지(C), 독 내성(E), 마력운용(D), 열기 내성(D)

▫스킬 : 분노의 사자후(B), 상급 육체 재생(A), 일도양단(C), 거인의 힘(A), 마력폭발(B), 웨인의 비기(B), 엔트리아의 외피(B)

엄청나다는 수식어도 부족할 정도의 변화.

특히 능력과 스킬이 대거 상승했다.

차례대로 살펴보면 먼저 열기 내성이 무려 두 단계나 올라 D등급 되었다.

이는 처음 있는 일이었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진짜 통구이가 되어 죽을 뻔했으니까..."

그 외에 스킬은 분노의 사자후, 거인의 힘, 일도양단, 웨인의 비기가 한 등급씩 올랐다.

마치 그동안 막혀있던 성장이 폭발하듯 뚫린 느낌에 강현이 만족하며 웃었다.

"다 좋은데 말이야... 이건 왜 이렇게 빨리 오르는 거야?"

강현이 비교적 최근에 얻은 능력인 '강현식 사투'를 노려봤다.

"벌써 B등급이라니..."

다른 스킬이나 능력이 B등급에 오르기까지 했던 고생을 생각하면 비정상적으로 빠른 성장 속도였다.

"묘하게 불쾌하네..."

어쩐지 지저분하게 싸울수록 빠르게 성장하는 느낌에 강현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쯧. 됐다."

능력이 상승해서 나쁠 일은 없을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강현이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아! 시원하다."

청량한 탄산과 알코올이 뇌까지 짜릿하게 절이는 느낌이다.

강현은 불혹의 아저씨처럼 탄성을 내뱉던 도중 문득 무언가가 떠올라 사무실을 두리번거렸다.

"재문아. 어디 있어? 퇴근했나?"

"예. 길드장님 여기 있습니다..."

"왜 그렇게 구석에 박혀있어? 찾기 힘들잖아."

"죄송합니다..."

참고로 한재문은 최근에 사무실을 이사하고 나서 한 번도 자리를 옮긴 적이 없었다.

"됐고. 이번 영상 잘 나올 것 같으니까 편집 잘해야 된다!"

"저기... 영상 편집자는 제가 아닌데요...?"

"쓰읍!"

한재문이 답답한 말투로 말하자 강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그걸 몰라? 직접 말하기 귀찮으니까 너 시키는 거 아냐!"

"..."

강현의 당당한 태도에 한재문의 입이 잔뜩 튀어나왔다.

'강현 꼰대 새끼...'

**

연구소로 이동하는 길.

보닛에 불타는 듯한 글씨체로 'BadAss' 가 새겨진 밴이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슬슬 확인해 볼까?"

차량의 뒷좌석에 앉아있던 강현이 위튜브에 접속했다.

"이번 건 확실히 반응이 좋을 거야."

솔직히 자신이 생각해도 이번 공략은 대단했다.

전 세계 어디를 봐도 그만큼 거대한 보스 몬스터를 사냥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리고 우린 소수 정예로 움직였으니까."

거기에 일반적으로 수십 명이 공략하는 길드와 달리 고작 네 명으로 이뤄진 공략이기에 더욱 화제가 될 것이 분명했다.

"오... 확실히 잘 찍었네."

고작 하루 만에 편집자는 한편에 영화를 보는 듯한 영상을 만들어 냈다.

아마 영혼을 갈아 넣을 것이 분명했다.

-미친! 한 마리만 데려 오라니까!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런 줄 알아요?!

-닥쳐!

영상이 중반부에 들어서고, 갑자기 오우거가 대규모로 등장했을 땐 강현도 웃음이 터졌다.

"아, 윤나래! 정신머리를 차리게 해줬어야 했는데."

생각해 보니 이번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 윤나래를 혼내주지 못했다.

공략 후 너무 피곤했던 탓에 잊어버린 것이다.

강현은 사무실로 돌아가면 철저하게 정신교육을 하리라 다짐했다.

"돌아가면 한바탕 해야겠어."

마침내 영상이 끝나고, 강현은 떨리는 마음으로 댓글을 확인했다.

-오우거 한방에 터져나가는 거 실화임?

-ㄷㄷ... 이건 진짜 조작 아닌가? 말이 안되는데?

-이거 다음 보스사냥 하는 영상 보면 이건 애교다ㅋㅋㅋ 조작일 리가 없음.

강현이 만족스럽게 댓글을 살피던 도중 갑자기 인상을 구겼다.

상당히 불쾌한 댓글을 봤기 때문이다.

-윤나래 귀엽다.

-나는 신성아.

-ㄴㄴ 윤나래가 짱임. 로리 오타쿠 최고

-ㅋㅋㅋㅋㅋ

-원년 멤버 챙겨야죠. 굴러들어온 돌을 더 챙기는 건 아닌 듯.

강현은 아주, 아주 불쾌했다.

"아니, 이것들은 뭐 이런 쓸 데 없는 것 가지고 싸워?"

자신이 주인공이었어야 할 영상에 다른 무언가, 특히나 윤나래가 끼어든다는 것은 굉장히 아니꼬웠다.

-윤나래 너무 예쁘다. 배데스 같은 쓰레기 길드에 있기 아까운 듯.

그중 유독 강현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댓글이 있었다.

-배데스 같은 쓰레기 길드라니? 사실 배데스가 지금 우리나라 탑 아님?

강현이 답글을 작성하고, 1분도 지나지 않아서 알람이 울렸다.

-네 다음 배데스 직원.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슬슬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강현이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스마트폰을 두들겼다.

-탑은 아니더라도 10대 길드는 그냥 들어갈 것 같은데, 윤나래가 아깝다고?

-당연하지. 윤나래가 빠지는 게 뭐가 있음? 외모, 능력, 다 출중한데. 애초에 그런 양아치 소굴에 발을 들인 것 자체가 잘못임. 배데스 개쓰레기.

"이런 개새끼가..!"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강현의 손에 과하게 힘이 들어갔다.

-파지직...

액정이 한쪽이 박살난 것을 보고 나서야 강현이 호흡을 되찾았다.

"후우... 그렇게 나온다 그거지? 그러면 수준에 맞게 놀아줘야지."

분노에 부들부들 떨던 강현이 순간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씨익 웃었다.

-땅딸보에 절벽인 윤나래가 좋다고 달려드는 것 보니 네 수준도 알만하다. ㅉㅉ

-ㅅㅂ 말 다했냐? 너 어디 살아?

효과는 굉장했다!

-알아서 뭐하게?

-어디 사냐고. 현피 뜨자. 쫄려?

상대방의 답장에 강현이 헛웃음을 삼켰다.

-ㅋㅋㅋㅋㅋㅋ 현피? 너 내가 누구인지 알음??

-너? 방구석에서 부랄이나 긁어대는 새끼겠지. ㅋㅋㅋ 안 봐도 비디오.

다시 치솟는 혈압에 강현이 다급히 뒷목을 붙잡았다.

"씨벌..."

겨우 정신을 차리고, 강현이 다시 댓글을 달았다.

-뜨자. 어디로 가면 되는데?

-오늘 9시 태선공원 돌고래상 앞. 쫄리면 안 와도 돼. 나는 나감ㅋㅋㅋㅋ

때마침 길드 사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나 거기 근처 살거든? 너 안 나오기만 해라. 진짜 어떻게든 찾아내서 죽인다. 반드시.

-네네^^ ㅈㄴ무섭네. 어휴~

강현은 분노로 인해 호흡곤란이 올 지경이었다.

강현은 서둘러 호흡을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스마트 폰을 집어넣었다.

"하아, 내 얼굴 보고도 이렇게 씨불일 수 있나 보자. 새꺄."

**

역대급으로 힘들었던 전투를 끝내고, 마침내 강현이 연구소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한 건 하셨네요."

연구소 소장 정서빈은 웃는 얼굴로 강현은 맞이했다.

"그렇죠... 그런데 물건 홍보는 제대로 못했어요. 상황이 갑자기 그렇게 돼서."

"괜찮아요. 이미 충분히 효과를 보고 있으니."

강현이 올리는 영상은 24시간만 지나도 50만 조회수를 훌쩍 넘긴다.

햄버거가 나오는 영상은 이미 300만을 넘겼으니 홍보 효과는 제대로 나온 것이다.

"게다가 기업 투자자가 붙었어요."

"그거 잘 됐네요."

"혜성 그룹이에요."

"예?"

갑자기 나온 이름에 강현이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혜성이라면 그...?"

"맞아요. 안무석 회장이 있는 곳이에요."

"무슨 꿍꿍이래요. 제가 여기 연구소랑 일하는 거 모른데요?"

"당연히 알고 있죠. 안무석 회장은 오히려 강현 씨가 있기 때문에 이곳에 투자하는 거라고 했어요."

"노인네가 노망이 났나..."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이 혜성 그룹의 주요 전력인 강신 길드를 박살내고, 내기에서도 이긴 것은 맞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안무석 회장이 굽힐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더 이를 갈지 않으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강현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뭐, 혜성이라면 돈은 썩어 날 정도로 많을 테니 잘 된 거겠죠."

"맞아요. 덕분에 연구소가 망할 걱정은 안 해도 되네요. 하하!"

정서빈은 정말 기분이 좋은 듯 호탕하게 웃었다.

"이제 슬슬 무기를 보죠?"

안부 인사가 끝나고 강현이 드디어 연구소에 온 용건을 말했다.

오랜만에 빌게인의 장검을 만질 생각에 벌써부터 달아오른 것이다.

"후후... 예상보다 훨씬 더 결과가 잘 나왔어요. 놀라지 마요."

정서빈이 인벤토리에서 장검을 꺼내 주었다.

"호오..."

원래는 단순하게 붉은 색 장검이었지만, 지금은 검에 묘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은은하게 붉은빛이 흘러내리는 듯한 그 모습에 강현이 감탄했다.

"일단 외형은 만점인데요?"

"성능은 만점 그 이상일 거예요."

정서빈의 자신만만한 말에 강현이 서둘러 검을 확인했다.

"와아, 무게도 묵직한 게 아주 좋네요."

"강현 씨가 특별히 신경 써 달라 했으니까요."

"그리고 내구도도 엄청 올랐고, 잠깐만 이게 무슨 소리지?"

이름 : 빌게인의 영혼 장검

등급 : B+

내구도 : 799/800

설명 : 빌게인의 장검을 죽음의 기사 베일의 마정석을 이용해 훌륭하게 가공했다. 기존의 능력을 보존하는 상승시키는 동시에 죽음의 기사 베일의 영혼이 성공적으로 검에 안착했다.

능력 : 광전사, 내구도 강화, 자가수복

"죽음의 기사 베일의 영혼이 검에 안착했다."

"성공적으로 안착했죠."

"그게 무슨..."

순간 강현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러니까. 그 데스나이트의 영혼이 여기에 들어갔다 이거예요?"

"네.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에고 소드라니. 사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이기는 한데, 다행히도 성공적이었어요. 이걸 토대로 연구한다면 앞으로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릴게 분명해요!"

정서빈이 잔뜩 흥분해서는 열변을 토해냈다.

"으음..."

강현은 상당히 찝찝했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강현은 반드시 빌게인의 장검을 사용해야 했다.

-나는 너를 인정할 수 없다.

그때였다.

갑자기 강현의 머리가 울려왔다.

"응? 이게 뭔소리야?"

"아. 강현 씨도 들리나요? 검의 영혼이 직접 말까지 건다니까요. 정말 대단하죠?!"

"제발, 닥쳐봐요."

정서빈을 진정시킨 강현이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기사의 명예. 예의라고는 눈곱만큼도 가지지 못한 천박한 싸움꾼인 너 따위가 이 몸과 함께하려 하는가.

"하아...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무슨 일이에요? 검이 뭐라 했죠?"

"지금 이 철 쪼가리가 저를 인정하니 마니 떠벌리는데, 이거 문제 있는 거 아니에요?"

"인정이라...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검의 기존 능력을 사용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경우라 확신하지는 못하겠네요."

"결국 모른다는 거죠?"

"..."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긴 강현이 검을 바라봤다.

"너. 내 말 들리냐?"

-들린다. 천박한 인간.

"네가 인정하고 자시고, 이건 원래 내 검이거든?"

-하지만 지금은 내 몸이기도 하지.

"시벌. 그래서 뭐? 어차피 너는 검이야. 철 덩어리 주제에, 너 혼자서 돌아다니기라도 하려고?"

-그건 좀 힘들 것 같지만... 이런 것은 가능하지.

순간 검에서 엄청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퍼엉!

그 압력에 맞고 날아간 강현이 연구소 벽에 처박혔다.

"쿨럭! 이 썅놈이..."

"강현 씨! 괜찮아요?"

"저거 그냥 검에서 뽑아내면 안돼요? 저러면 싸울 수가 없잖아요!"

"그게... 당장은 불가능해요. 말했듯이 처음 있는 경우고, 검에 영혼이 안착된 것도 완전히 우연이라서..."

"하아..."

강현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검을 쥐었다.

-포기해라 천박하고 비겁한 인간. 나는 너와 함께할 생각이 없다.

"수식어 늘이지 마라."

-천박하고 비겁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멍청하기까지 한 인간이군. 언제까지 그렇게….

"수식어 늘리지 말라고 새꺄!"

순간 화를 참지 못한 강현이 전력으로 빌게인의 장검을 내려쳤다.

-까앙!

검면으로 바닥을 내려치자 충격에 검이 웅웅 울려댔다.

-크윽! 무슨 짓이냐? 이런 천박하고 비겁하고 멍청한 인간이 감히…!

"잠깐만. 너 지금 아프냐?"

-그, 그게 무슨 소리지? 이 몸은 죽음의 기사. 고통 따위는 잊은 지 오래다.

"그래? 그럼 한 번 더 해보지 뭐."

-잠깐!

들려오는 외침을 무시하고 강현이 이번엔 더욱 세게 검을 후려쳤다.

-까앙!

-크아아! 멈춰라! 네놈 제정신이냐?

-까앙.

-멈추라 했을 텐데! 정말 후회하고 싶은 거냐!

-까앙.

-그만, 멈추란 말이다!

-까앙, 까앙, 까앙!

-크아아아아!

수리한 지 얼마 안 된 검에 금이 가고 있었다.

강현은 끝장을 보려는 듯 우르그의 거대 망치까지 꺼내 들었다.

-네놈! 검을 부술 생각이냐!

"괜찮아. 이번에 자가수복 옵션 붙었더라."

-제발, 안 된다. 안 돼!

"돼!"

사악하게 웃은 강현이 전력으로 망치를 휘둘렀다.

98화 정모(2)

98. 정모(2)

"강현 씨! 연구소 무너뜨리려고 작정했어요?"

"안 무너졌잖아요."

피식 웃은 강현이 빌게인의 영혼 장검을 바라봤다.

"저거 자가수복 되는 거죠?"

"아마도요."

"왜 '아마도'인 건데요? 옵션에 새로 붙어 있었잖아요."

강현은 분명히 확인했다.

장검의 설명에 옵션으로 자가수복이 적혀있었다.

그렇다면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멀쩡하게 돌아올 것이다.

강현은 이미 로날드의 갑옷과 장인의 장검을 가지고 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자가수복을 가지고 있는 두 장비는 항상 반파 상태가 되도록 험하게 다뤄도 금세 수리가 됐던 것이다.

"그러니까. 저것도 놔두면 알아서 고쳐지겠죠."

"으음..."

고쳐지지 않았다.

강현은 식사를 하고, 차까지 한잔 마시고 왔음에도 그대로 부서진 채 놓여있는 장검을 보고 기겁했다.

"뭐야!? 왜 그대로인 건데!?"

물론, 한 시간 만에 무구가 뚝딱하고 수리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주 약간이라도 수리가 진행되고 있는 흔적이 보이기 마련인데 전혀 변화가 없었다.

"정서빈 씨. 이거 어떻게 된 거예요!?"

"일단 검을 집어 보세요."

강현이 다급히 검을 집어 들었다.

"야. 내 말 들리냐? 장난질하지 말고 얼른 검 수리해라. 남은 부분도 작살내기 전에."

"강현 씨. 잠깐 진정해봐요."

"후우...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요? 한 달 만에 본 내 검이. 그것도 B등급 보스 마정석을 갈아 넣은 검이 병신이 됐는데!?"

강현은 완전히 박살이 나 단검처럼 검신이 짧아진 장검을 들고 발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정서빈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 네가 부쉈잖아. 등신아...'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일단 지금은 검을 고쳐야 할 때였다.

"자가수복은 원래 검에 있던 능력이 아니라, 이번에 에고와 함께 생성된 능력이에요."

"그래서요?"

"새로 추가된 옵션은 기존에 있던 것과 다르게 무언가 다른 발동 조건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거죠."

"발동 조건이라..."

"강현 씨. 혹시 마력을 움직이실 수 있나요?"

갑작스러운 정서빈의 물음에 강현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뭐... 이제 와선 딱히 비밀도 아니죠. 어느 정도 조종이 가능해요."

점차 마력의 운용이 가능해지는 능력자들이 늘고 있는 추세였다.

아직 그 수는 극소수이고 그마저도 강현과는 수준 차이가 많이 났지만, 이제 마력운용, 마력감지가 더 이상 강현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 것만은 분명했다.

"그러면 검에 마력을 불어넣어보죠."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강현은 지체 없이 바로 마력을 운용했다.

강현의 손에 푸른 마력이 솟아오르고, 떠오른 마력은 다시 손에 들린 검으로 이동했다.

-우우우웅

그러자 신기하게도 검이 떨리며 게걸스럽게 마력을 먹어치웠다.

동시에 부러진 검신이 빠르게 재생되기 시작했다.

"오오. 이거 효과가 있는데?"

그렇게 검이 어느 정도 회복된 순간.

-크아아!

검 속에 잠들어 있던 베일이 다시 깨어났다.

"자고 있었냐? 불러도 왜 대답이 없어?"

-그걸 몰라서 묻느냐! 바로 네놈 때문이다! 네놈의 그 야만스러운 행동 때문에 내가 무려 수백 년 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고통이란 감각을 느끼고, 검이 부서져 영혼과 정신이…!

계속해서 베일이 지껄이자 머리가 웅웅 울리는 느낌이었다.

강현은 서둘러 검을 바닥에 후려쳤다.

"닥쳐. 닥쳐. 닥쳐! 왜 이렇게 말이 많아?"

-...

"진작 조용히 할 것이지."

마침내 베일이 얌전해지자 강현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당장 급한 불은 끈 것 같네요."

"후우... 이거 이 상태로 싸울 수나 있겠어요? 집중해야 하는데 이렇게 정신없이 지껄이고, 아까처럼 또 마력을 발산해서 날리거나 하면 어떡해요?"

"으음..."

강현의 의문은 합리적인 것이었다.

솔직히 정서빈은 딱히 해줄 말이 없기에 대충 둘러대기로 결정했다.

"일단은 새로운 능력을 얻었잖아요? 그리고 에고 소드. 즉, 영혼과 의지를 가지게 되었으니 앞으로 어떤 능력이 더 생길 수도 있는 거고요. 기존의 능력도 성장이 가능할지도 모르죠."

"그러니까. 해결책은 없다?"

"네."

의도가 들통나자 정서빈이 빙긋 웃었다.

"쳇. 분명히 눈치가 없는 편이라 들었는데..."

정서빈이 고개를 돌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아, 귀도 밝은 편이라는 말은 못 들었나 보네요."

강현이 한숨을 내쉬고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일단 알겠어요. 사용하다 보면 어떻게 돌파구가 나오겠죠."

"네."

"그리고 이건 이번에 얻은 마정석인데..."

강현의 입에서 마정석이란 말이 나오자 정서빈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위튜브 봤어요! 그 거대하고 불을 뿜는... 피닉스? 닭처럼 생긴 새죠?"

"파나스요. 여기."

강현이 마정석을 건네주자 정서빈이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좋아했다.

"이건 어디 쓰려고 그래요?"

"원래는 로날드의 갑옷을 개조하면 어떨까 싶었는데, 오늘 상태를 보니 딱히 그러고 싶지는 않고..."

잠시 고민하던 강현이 말을 이었다.

"그냥. 연구용으로 써줘요. 다음에 수리할 일 있으면 그걸로 수리하게."

"네. 고마워요."

"그럼 갑니다... 벌써 갔네."

강현이 인사를 하고 떠나려 했으나, 벌써 정서빈은 연구소 안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간 뒤였다.

"원래 저런 이미지였나..?"

**

그날 저녁.

강현은 인터넷 악플러를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인 태선 공원에 도착했다.

[21:01]

이미 약속 시간이 지난 상황.

솔직히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생각했다.

넷상에서 욕설을 주고받는 일이야 흔했기 때문이다.

강현도 그저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나온 것이었다.

"저건가?"

저 멀리 거대한 분수와 함께 한쪽 구석에 자리한 돌고래 조각상이 보였다.

"얼씨구?"

그곳에 접근하자 누군가 모자를 뒤집어쓴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꼴에 능력자라 이거지?"

마력을 살펴보자 꽤나 강한 마력이 느껴졌다.

이 정도 수치라면 마력만 놓고 봤을 때는 최소 자신과 동급이다.

"현피 어쩌고 하더니, 믿는 구석이 있기는 했나 보네."

상대가 능력자라는 것을 알아차리자 강현의 화가 더욱 솟구쳤다.

"시벌. 완전히 양아치 아냐?"

저 정도 수준의 능력자라면 굉장히 많은 전투를 거친, 꽤나 베타랑 일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통해 얻은 능력으로 한다는 것이 고작 현실 피케이(player kill)라니.

강현은 이참에 제대로 정신 교육을 하리라 다짐했다.

'딱 죽기 직전 까지만 패야지.'

가까이서 본 상대방은 의외로 매우 왜소한 체구였다.

179cm인 강현이 완전히 내려다볼 정도.

'여자였나 보네.'

하지만 능력자 세계에 성별, 체격은 의미가 없기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강현은 방심하지 않고 긴장을 유지한 채 상대를 불렀다.

"네가 여신나래냐?"

강현의 말에 앞에 있던 자가 고개를 들었다.

"핸섬케이(HandSome K)?"

그리고 여성과 강현과 눈이 마주쳤다.

"..."

짧게 흐르는 정적.

먼저 입을 연 것은 강현이었다.

"너 여기서 뭐하냐?"

"가, 강현..?"

"뒤질래?"

윤나래는 그저 입을 벌리고 멍하니 강현을 바라볼 뿐이었다.

"담배 꺼."

"예."

윤나래가 재빨리 담배를 버리고는 발로 비볐다.

"여기서 뭐하냐?"

"기, 길드장님은 뭐하는데요?"

"어떤 개족새가 우리 길드를 양아치라 해서 정의의 쓴맛을 보여주려고 왔는데."

"..."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너 담배도 폈었냐. 몰랐네."

"왜요. 담배 피우는 게 뭐 어때서요!?"

"그냥 몰랐다고. 왜 지랄이야. 죽이고 싶게."

"..."

강현의 입에서 점차 험한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너 평소에도 이렇게 사람들 만나서 힘으로 겁주고 그래?"

"이게 처음이거든요!?"

"오늘은 왜 나온 건데?"

"그 새끼가 땅딸보에 절벽이라고 개소리를!"

"뭐...?"

"아니... 그게 아니라. 길드장님이 댓글을 너무 험하게 다셔서 저도 모르게..."

그때였다.

"강현 님?"

"뭐야? 네가 여긴 무슨 일이야?"

어쩐 일인지 신성아가 이곳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어떤 쓰레기가 강현님 위튜브에 악플을 달기에, 손가락을 부러뜨리려 왔습니다."

"..."

신성아의 말에 강현과 윤나래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그냥 눈알을 파버리는 것도 괜찮겠네요."

"너 혹시 자주 이러냐...?"

"종종 나옵니다. 취미생활 정도로 여기고 있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윤나래의 등에서는 어느새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강현 님. 여기에 수상한 인간 못 보셨습니까?"

"..."

"여신나래라는 지저분한 닉네임을 쓰는 인간인데."

"뭐가 지저분하다는 거야!?"

"예?"

순간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윤나래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아, 저, 그, 음... 그게..."

무언가 말을 하려 했지만,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강현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이 너무 한심하게 보이면 경멸이 들 수도 있다는 것을.

"하아... 집에 가자."

한숨을 내쉰 강현이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

"크아아! 시원하다!"

배데스 길드 사무실.

강현과 신성아. 윤나래가 조촐한 맥주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불만 같은 거 있으면 지금 다 털어놔."

"..."

"우선 나도 그동안 너한테 좀 심하게 대한 것 같으니까. 미안하게 생각해."

"네..."

"그러니까 너도 오늘 여기서 뒤탈 없이 다 풀자!"

솔직히 말하면 강현도 윤나래가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제법 귀여운 구석이 있었고, 무엇보다 능력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나는 네가 이런저런 능력도 많고,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보거든."

"감사합니다."

윤나래도 자신의 잘못을 아는지 얌전하게 대답했다.

"너 정도의 마법사는 드무니까. 우리랑 합을 맞추는 게 쉽지 않겠지만 잘만 하면 분명 엄청난 시너지가 발휘될 거란 말이야."

"네..."

쌓여가는 맥주 캔.

윤나래는 능력자임에도 술이 그리 강하지 않은지 벌써 얼굴이 꽤나 달아올라 있었다.

"크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윤나래 씨의 능력은 어디에서도 쉽게 보지 못할뿐더러, 활용도가 매우 높습니다."

"맞아. 남자 좀 밝히는 건 문제가 안 돼. 그건 자연스러운 자연의 섭리! 이치라고."

"..."

"혹시 몰라. 계속 같이 있다 보면 안유성이랑 정이 들다가, 사랑이 싹틀 수도 있고.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총 연애경험 3회.

마지막 연애 6년 전.

3번 모두 막장 파국으로 치달은 연애고자 강현의 조언이었다.

참고로 연애 서적은 3권을 독파했다.

"그러니까. 너도 오늘 불만 같은 거 있으면 싹 다 털고, 어? 같이 잘해보자고."

"예... 그러면 하나만 이야기해도 돼요?"

"어어. 말해."

"저보고 로리 오타쿠라고 놀리지 마세요."

"당연히 안 그러지. 그게 그렇게 기분이 나쁘면 진작 말하지 그랬어? 하하!"

"벌써 수십 번이나 말했…."

"자! 사소한 건 넘어가자고. 또? 또 말해봐."

뭔가 이상했지만, 이미 술에 취해있던 윤나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땅딸보, 절벽이라고 그만 놀려요."

"한 번도 그런 적 없는데...?"

"댓글로 놀렸잖아요! 그만 하라고요!"

"아니, 그건 네가 먼저 양아치 길드라고 시작했잖아!"

"사람이 키 좀 작고, 가슴 좀 없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걸로 그렇게 어? 막 상처를 줘요!?"

"..."

"솔직히 당신도 어디 가서 여자 만나기 힘든 수준이에요. 알아!?"

순간 강현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강현은 필사적으로 호흡을 가다듬고 겨우 화를 가라앉혔다.

"그러니까 그건…."

"인상은 어디 조폭 두목처럼 생겨가지고 말이야. 심지어 하는 짓은 그것보다 더해!"

"..."

"그러니까 몇 년째 솔로인 거 아니에요?"

"우리 대화 주제가 조금 벗어난 거 같지 않냐?"

안면 부조화.

강현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가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잔뜩 취한 윤나래는 거칠 것이 없었다.

-탕!

큰 소리로 맥주 캔을 내려놓은 그녀가 삿대질을 했다.

"게다가 사람을 그렇게 막 대하는 것도 잘못됐어. 맨날 욕하고 때리고, 힘 좀 세면 다야?"

흥분한 윤나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이제는 신들린 것처럼 정신없이 떠벌리기 시작했다.

"!@#!$@"

그 모습을 보며 부들부들 떠는 강현에게 신성아가 귓속말을 했다.

"강현 님."

"왜."

"없애버릴까요?"

"나는 가끔 네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안 간다."

"저는 농담이란 걸 모릅니다만."

그사이 윤나래는 언제 꺼냈는지 담배까지 입에 문 채로 떠들고 있었다.

"솔직히! 나 정도면 어디를 가든 대접받는다. 이 말이에요. 그런데 여기는 뭐 맨날 병풍 취급이야. 병풍. 병풍은 키라도 크지! 후아!"

윤나래가 내뿜은 담배연기가 강현의 얼굴에 정면으로 뿌려졌다.

코를 찌르는 알싸한 향기.

강현은 정색하고 주먹을 내려쳤다.

-콰직!

두터운 원목 테이블이 단숨에 열여덟 조각으로 나눠지며 생을 마감했다.

"1절만 해라."

"네..."

한숨을 내쉰 강현이 머리를 쓸어 넘기고 있을 때였다.

"뭔 일 이래."

갑작스러운 진동에 확인을 하니 신태길의 전화였다.

"예."

-강현 씨. 큰일입니다.

"그래요? 공교롭게 저도 지금 큰일이 벌어졌거든요."

-예?

"혹시 탈모약 잘 듣는 거 있으면 좀…."

-강현 씨!

조금 화간 난 듯한 목소리에 강현이 입이 샐쭉하게 튀어나왔다.

"농담이에요. 농담. 그래서 큰일이 뭔데요?"

-강현 씨.

평소와 달리 잔뜩 무게를 잡고 말하는 모양새에 강현은 점차 불안해졌다.

"뭔데요..."

-선생님 역할 한 번만 해주셔야겠습니다.

"예?"

99화 무자비한 폭군(1)

99. 무자비한 폭군(1)

-선생님 역할 한 번만 해주셔야겠습니다.

"예?"

생각지도 못한 단어에 강현은 당황했다.

"선생님이라니. 무슨 소리예요?"

-말 그대로입니다. 능력자 육성 학교. 알고 계시죠?

"당연히 알죠."

-강현 씨가 이번에 능력자 육성 학교의 교육장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엄청 심각한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고작 한다는 이야기가 그거예요?"

-크흠... 나름 분위기 좀 잡아보고 싶었습니다.

"왜 안 하던 개그 욕심을... 아니지.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정신을 차린 강현이 진지한 태도로 돌아왔다.

"갑자기 저한테 그런 부탁을 하는 이유가 뭡니까?"

-요즘 강현 씨가 워낙 벌려놓은 일이 많지 않습니까? 인지도도 높고.

"그런데요."

-이번에 정재계 고위 인사들의 자녀가 능력자 육성 학교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중 몇몇이 강현 씨의 팬이랍니다.

"하아..."

강현은 금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있는 집안 자식들이 떼쓰는 걸 내가 가서 받아줘라?"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태길 씨. 내 성격 몰라요?"

-잘 압니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21세기 귀족 자제들이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면 내가 '아! 알겠습니다! 분부대로 합죠!' 하면서 열심히 샤바샤바 할 사람이에요?"

-뒤통수를 후리지 않으면 다행이겠죠.

"그걸 아는 사람이 이런 부탁을 합니까!?"

결국 참지 못한 강현의 언성이 높아졌다.

-알고 있어서 이런 부탁을 하는 겁니다.

"그게 무슨 개똥 같은 소리예요? 저보고 얘들 반 죽여놓으라고요?"

-예.

"예...?"

높으신 분들 자녀를 반 죽여 놓으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에 강현이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아시다시피 현재 정부... 그러니까 청와대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그거야 맨날 하는 소리고요."

-크흠...

솔직히 항상 어렵다는 말밖에 하지 않은 것이 사실인지라 신태길도 할 말이 없었다.

-정말 좋지 않아서 하는 말입니다.

"예예. 그래서요?"

-해서. 현재 대통령께서는 불가피하게 여러가지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입지를 넓혀야죠.

"고작 이런 일로 대통령의 입지가 넓어질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데요."

-최연화.

"그건 또 누군데요?"

갑자기 나타난 생소한 이름에 강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최강우 회장의 외동딸입니다.

"최강우 회장이면, 그 삼오 그룹의 회장이요?"

-예. 그 최강우 회장의 딸. 최연화가 이번에 입학하는 무리, 파벌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으음..."

-그리고 최강우 회장은 지독한 딸바보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늘그막에 본 유일한 외동딸이니 당연한 일이겠죠.

결국은 그 최강우 회장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그들을 강현이 교육시켜야 한다는 말이었다.

-최연화는 강현 씨의 극성팬이라고 합니다. 이번 기회에 환심을 사서 그 파벌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면 엄청난 힘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아까는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면서요? 그랬다가 애들 잘못되면 나는 책임 못 져요."

-최강우 회장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자기 딸을 정신 차리게 해 달라는.

"정신을 차리게 하라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늦둥이에 하나뿐인 딸이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과 살인을 밥먹듯이 하는 능력자들 사이에 부대낀다고 하는데 어느 아버지가 반기겠습니까.

"아..."

그제야 강현은 신태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신머리를 고쳐서, 다시는 능력자 이야기도 못 꺼내게 해라?"

-예. 강현 씨는 그들을 최대한 험하게 다뤄야 합니다. 단, 폭력을 동원하거나, 신체적인 장애를 일으켜서는 안됩니다. 당연히 죽어서도 안 되고요.

"흐음, 그런 거라면 괜찮네요. 재미있겠어요."

-그럼 승낙하시는 겁니까?

"우리야 운명 공동체인데 그 정도는 받아들여야죠. 날짜는 언제예요?"

-4일 뒤. 다음 주 월요일입니다.

"오케이. 알겠어요."

**

대략 1년 만에 다시 찾은 능력자 육성 학교는 상당히 새로웠다.

"반갑습니다. 이번에 강현 씨를 보조하게 될 정종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깔끔한 양복 차림에 포마드를 한 남자 정종호가 인사를 건넸다.

"예. 강현입니다."

"반갑습니다. 신성아입니다."

정종호는 원래 이 시설의 교육장이었다. 하지만 강현이 교육을 총괄해야 모양이 나왔기에 불가피하게 이번만 강현의 보조를 맡기로 결정했다.

"여기도 참 많이 바뀌었네요? 시설이 상당히 좋아졌어요."

"예. 강현 씨는 초기에 교육을 하셨으니, 더 그렇게 느끼실 것 같습니다."

초창기에 급한 대로 학교 건물, 체육관 같은 공공시설을 빌려서 했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정식으로 번듯한 건축물이 지어져 있었다.

"조만간 능력자 육성 학교 시스템도 대대적으로 개편될 예정입니다. 이제는 교육 대기 인원이 상당히 줄어들어서 더 양질의 교육이 가능하게 됐거든요. 게다가 기존의 상위 능력자들을 위한 특별 훈련 같은 것도 계획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오호..."

"지금도 강현 씨가 교육하던 때와 달리 교육 과정이 2주로 늘어난 상태입니다. 참 다행이지요."

"예?!"

강현이 들어선 안 될 말을 들은 사람처럼 화들짝 놀랐다.

"방금 뭐라 하셨죠?"

"상위 능력자들을 위한 특별 훈련을…."

"아니, 그다음."

"교육 과정이 2주로 늘어난…."

"신태길. 이런 개같은! 이렇게 뒤통수를 쳐!?"

교육 기간 2주.

강현은 전혀 듣지 못한 말이다.

씩씩거리던 강현이 신성아를 바라봤다.

"너는 알고 있었어?"

"예."

"그런데 말을 왜 안 한 건데!?"

"당연히 아실 줄 알았습니다. 2주 과정으로 바뀐 지 한 달은 넘었으니까요."

한 달 전. 그때면 한창 세계 던전 정상회담으로 바쁠 때였다.

강현으로써는 한참 전에 졸업한 능력자 육성 학교의 교육 개편 따위에 관심이 있었을 리가 없었다.

"이런 씨벌..."

강현이 서둘러 신태길에 전화를 걸었다.

-강현 씨. 무슨 일이십니까?

"신태길 씨. 알고 있었어요!?"

-뭘 말입니까?

"교육 과정이 2주로…."

-뚝.

강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 통화가 끊어졌다.

"아니. 이 양반이 진짜 미쳤나?"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끄아아아!"

강현이 발광하자 정종호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저, 저기 강현 씨..?"

"왜요!?"

"어차피 대부분의 교육은 제가 진행합니다. 강현 씨는 가끔 얼굴만 비추시고 필요할 때만 나와주시면 되니, 실질적인 출근은 며칠 되지 않을 겁니다. 그마저도 금방 끝나실 거고요."

"후우..."

정종호가 강현의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필사적으로 설명했다.

그제야 조금 진정한 강현이 숨을 골랐다.

"알겠어요. 일단 들어갑시다. 시간도 다 된 것 같으니."

**

강단 위에 올라서자 무려 200쌍의 눈동자가 몰려들었다.

강현은 오랜만에 느끼는 따가운 시선에 만족스럽게 웃었다.

"후후..."

그때 옆에서 어딘가 음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흐뭇하게 웃고 있는 신성아가 보였다.

"하여간 저 관종..."

이번 교육에 신성아가 따라온 것은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안유성은 귀찮다고 했고, 윤나래는 안유성이 안 가면 가기 싫다고 했다.

-강현 님! 꼭 가고 싶습니다! 정말 가고 싶습니다!

오직 신성아만이 열성적으로 손을 들며 가고 싶다고 했을 뿐이다.

"교육장님. 시작하겠습니다."

"예."

정종호는 공식적인 자리라 강현에게 교육장님이란 호칭을 사용했다.

강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마이크 앞으로 다가갔다.

"아아. 이번 교육을 맡게 된 강현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꺄아아아! 강현이다!"

"와. 시발. 진짜 강현이야. 이번 교육 뭐지?"

"완전 로또 맞았어."

강현이 교육했을 때와는 달리 어린 학생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중에서도 강현은 누가 최강우 회장의 딸. 최연화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강현 오빠! 너무 멋있어요!"

한눈에 보기에도 귀티가 줄줄 흘러내리는 그룹. 그 가운데서 호들갑을 떨고 있는 저 여자가 최연화가 분명했다.

'생각보다 애는 아니네.'

튜토리얼 시작 조건이 만 18세 이상이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1월 달.

듣기로는 최연화가 12월 생이라고 했으니, 어쨌든 20살인 것이다.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교육을 맡은 이상 호락호락하게 통과시켜줄 생각은 없습니다. 어중간하게 붙여봤자 던전에서 죽을 게 분명하거든요."

갑작스러운 강현의 말에 강당의 분위기가 차갑게 식었다.

"그러니까 이번에 떨어지는 사람은 주제를 깨닫고, 목숨 구했다 생각하세요. 멍청하게 다시 도전하지 말고."

"와씨. 박력 개쩔어!"

"오, 나 방금 소름 돋았다니까? 실제로 보니까 무슨 깡패 두목이 협박하는 것 같아!"

어린 학생들이라 그런지 리액션이 남달랐다.

그들은 나름대로 조용히 말한다고 한 것이겠지만, 강현의 귀에는 하나하나 선명하게 들려왔다.

"후후..."

"너는 왜 자꾸 그렇게 기분 나쁘게 웃는 건데?"

"아무것도 아닙니다. 후후..."

강현은 어째서인지 웃음을 한가득 머금고 있는 신성아를 노려봤다.

"그럼 길게 끌지 않고 끝내겠습니다. 앞으로…."

강현이 끝을 내기 위해 마무리 멘트를 하던 도중, 갑자기 말을 멈췄다.

"교육장님?"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종호가 당황하며 강현을 바라봤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그러나 강현은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는 듯 강당 한구석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거기 너."

그때 강현이 입을 열었다.

"너 말이야. 너. 알고 있잖아. 대가리 숙이지 말고 나와."

"..."

"내가 찾아가리?"

"저... 말인가요?"

"그래. 연기하지 말고 나와. 새꺄."

교육생들은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모두가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뭐지? 이벤트 같은 건가?"

"야. 뭐해 동영상 켜!"

그러한 소란을 뒤로하고 강현에게 불린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남자는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어느 모로 봐도 평범의 극치라고 불릴 만한 순한 외모.

말 그대로 평범남이었다.

"저한테 왜 그러세요..?"

꽤나 소심한 성격인 듯한 남자는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몸을 잘게 떨었다.

"연기하지 마라. 너 누구야?"

"저 박송민인데요..."

"그딴 거 말고. 너 여기 교육생 맞아?"

"예... 교육 신청해서 들어왔어요."

"각성한 지는 얼마나 됐는데?"

"초기에 각성했는데 대기자가 너무 많아서 이제야 교육받게 된 거예요."

"각성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이제야 교육받는다고?"

"예..."

남자는 정말 억울한 듯 사슴 같은 눈망울을 하고선 벌벌 떨었다.

강현은 학생들의 인적 사항이 적힌 서류를 들고 있던 정종호를 바라봤다.

"지금 얘가 하는 말 맞아요?"

"예. 서류상으로 잘못된 점은 없습니다. 이름 박송민. 나이 24세. 교육에 신청한지는 대략 11개월 정도 됐습니다. 그 외에는 깨끗합니다."

"으음..."

"간혹 이런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지난 교육만 해도 이런 교육생이 한 명 있었으니까요."

"그 교육생은 어땠어요?"

"예?"

"지난주에 있었다는 늦깎이 교육생. 싸움 잘했어요? 뭔가 특출나다거나."

"그런 건 전혀 없었습니다. 나이가 조금 많았다는 것 말고는 그냥 평범한 교육생들과 같았습니다."

정종호의 말에 강현이 씨익 웃었다.

"너도 들었지?"

"예...?"

"이 새끼가 끝까지 연기하네. 너 여기 사람들 많이 있다고 그거 믿고 깝치는 거면 착각이다. 나는 그딴 거 신경 안 써."

"..."

"너 지금 마력이 흘러나가지 않게 숨기고 있잖아. 현재 최상위급 능력자들도 거진 불가능한 묘기를 부리고서는, 네가 평범한 교육생이라고? 지랄을 해도 작작 해야지."

강현의 말에 박송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계속해서 잘게 흔들리던 몸의 떨림이 어느새 멈춰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들리는 고개.

그곳에는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눈빛을 한 남자가 있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자리를 옮기는 게 어때?"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네."

마치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

조금 전까지 덜덜 떨던 소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변화였다.

"내가 최근에 재미있게 본 씨름 만화가 있거든? 거기 이런 말이 나오더라."

뜬금없는 강현의 말에 박송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얼.땅.딱!"

"네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강현이 씨익 웃었다.

"얼굴은 땅바닥에 처박는 게 딱이야!"

100화 무자비한 폭군(2) 20.01.21

100. 무자비한 폭군(2)

강당에 들어선 박송민은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뒤쪽에 자리했다.

"후우..."

박송민의 정체는 바로 '자유 능력자 해방 연합' 소속의 특수 능력자.

이번에 한국을 맡던 강신 길드가 무너지자, 그것에 대해 복수하기 위해 찾아온 남자였다.

"감히 연합을 건드리다니... 강현. 후회하게 해주마."

자유 능력자 해방 연합은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반국가 단체였다.

러시아는 국가에서 능력자를 강압적으로 통제했는데, 거기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것이다.

-지금은 강신 길드로 충분하다.

연합이 처음부터 한국에 관심을 가지던 것은 아니었다.

시작은 러시아였지만, 이제 그들은 세계적인 조직.

처음부터 능력자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정책을 취한 한국은 그들에게 딱히 구미가 당기는 먹잇감이 아니었다.

이미 그들이 신경 써서 작업 중인 나라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세계 던전 정상회담 사건이 터지며, 한국의 능력자가 강하다는 것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대한민국의 능력자 수준이 예상보다 뛰어나군.

연합장은 만약을 대비해 한국에 심어두었던 강신 길드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하고.

동시에 세계적인 기업을 이끄는 안무석 회장을 조종하기 위해 세르게이를 파견했다.

세르게이는 정신 지배라는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기에 연합에서도 특별히 관리하던 인재였다.

위대한 혁명.

그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한 필수적인 인물.

그런데 세르게이가 죽었다.

그것도 심혈을 기울여 키우던 강신 길드 전체와 함께 말이다.

세르게이가 이미 조종하고 있던 유명한 자본가들을 함께 잃은 것은 물론이다.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

연합장은 분노했다.

그리고 복수를 다짐했다.

사실 세르게이와 강신을 처리한 것은 안유성이었지만 그들은 몰랐다.

사건 이후 대외적으로는 강현의 이름이 퍼졌고, 연합이 생각하기에도 안유성보다 강현이 그런 일을 벌였다는 것이 훨씬 납득하기 편했다.

'오늘이 네 마지막 날이다.'

덕분에 연합에서도 비밀리에 키우는 박송민이 직접 움직인 것이다.

강현이 이번 교육에 올 것이란 것은 첩자를 통해 얻은 정보이기에 확실할 것이다.

'왔다!'

강현이 등장함과 동시에 제법 강한 마력이 느껴졌다.

'무투파라고 들었는데, 마력도 생각보다 높아.'

마력을 느낄 수 있는 박송민은 강현에게서 느껴지는 강한 마력에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들리는 정보로는 마력 탐색에 일가견이 있다고 했지만... 상관없지.'

연합에서 만일을 위해 마력을 어느 정도 감춰주는 장비를 지원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만 해도 강현이 자신을 눈치챌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럼 길게 끌지 않고 끝내겠습니다. 앞으로…."

그렇게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어질 줄만 알았으나, 강현은 예상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너 말이야. 너. 알고 있잖아. 대가리 숙이지 말고 나와."

어째서인지 강현은 정확하게 자신을 알아봤다.

박송민은 당황을 숨긴 채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갔다.

'정보보다 훨씬 감지 능력이 뛰어난 건가...'

강현에게 걸어가며 박송민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여기는 민간인이나 다름없는 학생들이 모여 있는 자리다. 섣불리 움직이지는 못하겠지.'

여기 있는 인원 대부분은 만 18세.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한민국의 법으로는 아직 미성년자였다.

이렇게 어린 학생들 앞에서 강현이 함부로 움직일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새끼가 끝까지 연기하네. 너 여기 사람들 많이 있다고 그거 믿고 깝치는 거면 착각이다. 나는 그딴 거 신경 안 써."

박송민은 강현이 착각하기를 바라며 마지막까지 연기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강현은 이미 자신이 수상하다고 완벽하게 확신하고 있었다.

'우선은 자리를 옮기는 척을 하자. 그리고 방심한 틈을 타 불시에 기습하고 도망치는 거야.'

자신은 강하다.

연합에서 온갖 지원을 받으며 혹독한 훈련을 거친 전사 중의 전사이다.

정정당당하게 싸운다면 강현과 1대1로 붙어서 이길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강현의 길드원인 신성아가 있었고, 그 외에도 수많은 조교가 모여 있는 상태.

우선은 틈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자리를 옮기는 게 어때?"

그러나 강현의 반응은 박송민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내가 최근에 재미있게 본 씨름 만화가 있거든? 거기 이런 말이 나오더라."

이놈이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땅.딱!"

"네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생전 처음 듣는 단어.

순간 박송민은 당황했고, 그 당황은 작은 틈을 만들었다.

"얼굴은 땅바닥에 처박는 게 딱이야!"

동시에 강현이 달려들었다.

'이런 미친..!'

설마 이 타이밍에, 여기서 공격을 가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피할 틈도 없이 다가오는 거대한 손이 박송민의 얼굴을 붙잡혔다.

'무슨 괴물 같은 힘이냐!?'

박송민도 조직 내에서 근력이라면 최상위에 속했지만, 강현은 일반적인 범주를 아득히 넘어서 있었다.

필사적으로 버텼음에도 박송민의 몸이 마치 허수아비처럼 강현의 의도대로 휘둘렸다.

'아, 젠장...'

얼굴과 마룻바닥이 가까워진다.

**

"꺄아아아!"

"지금 진짜로 바닥에 꽂은 거야?!"

불시에 벌어진 일에 교육생들은 난리가 났다.

"쿠학!"

"벌써 정신이 나가면 안 되지!"

박송민이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강현이 재차 얼굴을 바닥에 내려찍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바닥을 긁었다.

-콰직! 콰드드드드드!

박송민의 얼굴이 마룻바닥을 박살 내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그와 함께 터져 나오는 피.

생전 처음 보는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몇몇 학생들이 그대로 실신했다.

"끄아아! 이거 놔라!"

"어쭈? 제법 단단한데?"

하지만 박송민은 여전히 정신을 잃지 않고 발악했다.

'이대로는 끝이다. 우선 스킬을 사용해서...!'

"이 새끼가. 정신을 못 차리네?"

-콰직!

"마력 움직이지 마라. 죽는다."

-콰드드드드! 콰앙!

강현은 절대 박송민의 머리를 놓지 않았다.

'실수하면 다른 교육생들이 다쳐.'

사실 처음부터 강현은 이럴 작정이었다.

놈을 손아귀에 붙잡기만 하면, 꼼짝 못 하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더불어 교육생들의 눈앞에서 참혹한 광경을 보여준다면 두려움에 떨 것이 분명했다.

'조금은 현실을 깨닫게 되겠지.'

이렇게 해서 충격을 받은 최연화가 떠나간다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일거양득인 상황.

"끄아아아! 이거 놔!"

"이거 왜 이렇게 쌩쌩해?"

하나 예상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박송민이 강현의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다는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조금 힘 조절을 했지만, 지금은 거의 전력으로 후려치는데도 버티고 있었다.

"끄으으! 지금이라도 놓으면 목숨은 살려 줄…."

-콰직!

"이게 어디서 허세야? 뒤질라고."

덕분에 강현의 원래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연출됐다.

이미 수차례 벽에 처박힌 박송민의 얼굴은 제대로 형체를 알아보기 조차 힘들었다.

당연하게도 주위의 벽과 바닥이 모두 박살 났다.

"커, 커헉..."

"이제 좀 얌전해질 생각이 들어?"

"주, 주..."

"주? 주 뭐?"

"죽여라. 퉤!"

박송민은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 침을 뱉었다.

얼굴에 끈적하게 눌어붙은 침과 피를 닦아낸 강현이 살벌하게 웃었다.

"그래."

강현은 박송민의 머리를 양손으로 붙잡고는 전력으로 내려쳤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건물 외벽이 박살 나고, 박송민은 온몸에 힘이 빠진 채로 축 늘어졌다.

"새끼가. 어디서 멋있는 척이야? 지가 무슨 주인공인 줄 알아."

무자비하고 압도적인 폭력.

쓰러진 박송민을 내던진 강현의 모습은 악마조차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만한 것이었다.

"저기... 괜찮으십니까...?"

상황이 일단락되자 정종호와 신성아가 다가왔다.

"예. 그나저나 강당이 부서져서 어쩌죠?"

"괜찮습니다. 여기 외에도 교육장소는 많으니까요. 그보다 걱정인 건 학생들의 상태가..."

"아, 애들이 보기엔 좀 그랬죠?"

"예..."

여기 있는 이들은 모두 튜토리얼 2단계를 통과한 각성자들이다.

즉, 튜토리얼 내에서지만 전투를 경험했다는 뜻이다.

게다가 요즘에는 전투 영상이 워낙 흔했기에, 대부분은 잔인한 장면을 보는 것에 대한 내성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건 학생들의 상식을 아득히 초월하는 폭력이었다.

그 폭력의 대상이 같은 인간이란 것도 그들의 충격에 일조했다.

"으음, 조금 심했나?"

몇몇 학생들이 바닥에 쓰러진 것이 보였다.

나머지 학생들도 대부분 속이 메스꺼운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뭐, 그거야 어쩔 수 없죠. 못 견디면 알아서 떨어져 나가는 거지."

의도보다 조금 과하게 진행됐지만, 어쨌든 목표 달성이라는 생각에 강현이 웃고 있을 때였다.

"꺄아아아!"

저 멀리 최연화가 완전히 눈이 뒤집힌 채로 연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강현 오빠! 너무 멋있어요!"

"응...?"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듯하다.

**

그날 저녁.

숙소로 돌아온 최연화는 여전히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다.

"으으으! 강현 오빠. 너무 멋있지 않아?"

최연화가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외쳤다.

"나는 솔직히 좀 무섭더라..."

"맞아. 나도 그래."

"왜? 완전 멋있지 않았어?"

"잔인하잖아. 사람을 그냥 때리는 것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그게 어때서?"

예상과는 다르게 친구들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최연화는 당황했다.

어찌 보면 최연화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미 몬스터와의 전투가 일상이 된 현실.

매일매일 수많은 능력자의 생명이 허무하게 꺼져간다.

그것도 전신이 갈가리 찢겨 나가면서 말이다.

그런 것에 비하면 오늘 강현이 한 행동은 결과적으로 상대를 죽이지는 않았으니, 관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비록 시각적인 효과는 그렇지 않았지만.

"영상으로 보던 것보다는 오히려 덜 잔인하지 않았어?"

"영상에는 모자이크 처리가 되잖아."

"아... 그런가?"

강현의 전투 영상은 특히나 대중들에게 많이 풀린 편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은 모자이크가 처리된 가공된 영상이다.

그에 반해 최연화는 돈을 이용해 항상 원본을 구해서 봤기에 자연스레 비위가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멋있기는 했어. 오늘 당한 그 남자 완전 위험한 범죄 조직 소속이라면서?"

"맞아. 얼마 전에 서울양양고속도로에서 난리 난 사건 있잖아. 그 사건의 주범들이랑 같은 조직이라던데?"

"확실히 강현이 대단하긴 해."

"그렇지? 헤헤."

그제야 기분이 풀어진 최연화가 가볍게 웃었다.

"역시 아빠한테 부탁하길 잘했어. 이번 교육이 끝나면 배데스 길드에 넣어달라고 말해야지."

"배데스라... 될까? 거기 들어가기 엄청 힘들다던데."

"배데스는 당장 레벨이나 능력은 상관없이 정신력만 본다잖아. 나 이래 봬도 튜토리얼 5단계까지 통과한 인재라고. 굳이 아빠 백이 없어도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생각해 보니 연화 말이 맞는 것 같아."

"맞아. 연화 너라면 분명히 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잔뜩 들떠있는 최연화를 뒤로하고 친구들이 저들끼리 눈짓을 주고받았다.

'적당히 기분 맞춰주자.'

사실 이들은 진심으로 최연화가 좋아서 함께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들의 부모가 반드시 최연화를 따르고, 비위를 맞춰 주라고 당부했기에 함께하는 것뿐이었다.

-나중에 네가 높은 곳에 올라섰을 때 꼭 필요한 인맥이다.

-최연화한테 잘 보여야 한다. 그게 엄마를 돕고 너도 돕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이들은 어릴 적부터 철저하게 사회에 대해 교육받아 왔다.

상대가 자신보다 강한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가.

이 두 가지 조건만 부합한다면 언제든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아부를 떨 수 있는 준비된 인재들인 것이다.

물론, 자신보다 약하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 이들을 깔보고, 무시하는 능력도 옵션으로 딸려 있었다.

"좋아. 일단 자자. 벌써 다음 교육이 기대돼서 두근거리기는 하는데, 체력을 보충해야 강현 오빠한테 잘 보이지."

"그래. 자자."

"다들 잘 자."

그렇게 능력자 육성 학교의 하루가 지나갔다.

101화 무자비한 폭군(3)

101. 무자비한 폭군(3)

화려했던 입학식이 끝나고, 이틀 동안 지루한 이론 교육이 이어졌다.

던전과 몬스터.

온갖 종류의 병장기들과 그것들을 다루는 유명한 능력자들까지.

언뜻 보면 유익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교육생 대다수는 이미 인터넷을 통해 더욱 양질의 자료를 보고, 공부를 해왔기에 그리 의미가 있는 시간은 아니었다.

"오늘은 병장기를 다루는 교육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셋째 날.

마침내 모두가 기다리던 실습이 시작됐다.

오랜만에 출근한 강현은 자신의 앞에 놓인 수많은 냉병기 중 장검을 집어 들었다.

"장검은 능력자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무기입니다. 그냥 무난해요. 처음에는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쓰다 보면 이것만큼 무난한 게 없달까."

강현이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후웅- 하고 강당을 울렸다.

"여기서 고작 며칠 교육받는다고 무슨 대단한 검술 실력을 가질 일은 없으니까. 대충 무기별로 느낌만 알아본다는 생각으로 임하세요."

"..."

"질문 있는 사람?"

한 남자가 손을 들었다.

"무기를 다루는 실력을 빠르게 늘릴 방법은 없나요?"

"없습니다. 재능이에요."

"예?"

"재능이라고요. 재능 없는 놈이 10시간 휘둘러야 배울 수 있는 내용을 재능 있는 놈들은 몇 번만 휘둘러도 배웁니다."

강현의 말에 남자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연습할 필요도 없는 건가요?"

"재능도 없는데 능력자 해 먹고 싶으면 죽어라 연습해야죠. 재능 있는 놈들이 던전 공략 끝나고, 다 같이 맥주 마시러 가는 그때. 재능 없는 놈은 다시 던전 들어가서 죽어라 뺑이쳐야 합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니 믿어도 좋아요."

"..."

"그런데 재능 없는 놈들 대부분은 그렇게 뺑이치다가 죽더라고. 아니면 그냥저냥 삼류 능력자로 남거나."

시작부터 사기를 깎아내리다 못해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자근자근 밟아버리는 강현의 말에 강당은 초상집 분위기로 변해버렸다.

"나는 다르겠지! 나는 분명 엄청난 능력을 타고난 재능러일 거야. 나는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자가 될 거야! 여기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법 될 텐데, 몬스터한테 잡혀서 사지가 찢겨나갈 때 후회해 봤자 늦어요."

"저... 교육장님."

"예?"

"조금 언어를 순화하시는 게..."

보다 못한 정종호가 나서서 제지하고 나서야 강현은 공격을 멈췄다.

"사설이 길어졌는데, 한번 봅시다. 내가 재능은 없지만, 재능 있는 놈들은 기가 막히게 알아보거든요. 다들 각자 연습해 보세요."

강현의 말에 교육생들이 저마다 무기를 집어 들고 휘두르기 시작했다.

강현은 어쩐지 1년 전 자신이 교육받던 때가 겹쳐 보여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제법 센스 있는 놈들이 있기는 하네.'

하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 강현은 교육자의 위치에서 이들 전체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확실히 전과는 달리 눈에 띄는 인물들이 몇몇 보이기는 했다.

'어딜 가든 재능충은 있다는 건가... 그래도 안유성 같은 놈한테 비빌 수준은 아닌 것 같지만.'

그렇게 한동안 멍하니 교육생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우와..."

"언니! 너무 멋있어요."

"교관님. 방금 어떻게 하신 건가요?!"

갑자기 교육장 한쪽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연신 무기를 휘두르고 있는 신성아가 보였다.

"하압!"

제법 먼 거리에서 신성아가 던진 단검이 정확하게 표적 정중앙에 꽂혔다.

'매일 길드 사무실에서 안유성이랑 저것만 하고 놀더니... 이렇게 써먹네.'

신성아가 틈만 나면 안유성과 단검 던지기 내기를 했던 것을 떠올리며 강현이 실소했다.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거야? 사람인가?"

"능력자들은 전부 교관님처럼 할 수 있는 건가요?"

"흠흠... 전부는 아니고, 실력 있는 일부 능력자들이 가능하기는 합니다."

"꺄아! 언니 근육 한 번만 만져봐도 돼요!?"

"얼마든지..."

그 사이에서 볼이 발갛게 상기된 신성아가 연신 콧잔등을 문지르는 것이 보였다.

신성아를 만나고 보았던 모습 중 가장 행복해 보였다.

"하여간 저 관종. 이때까지는 어떻게 참고 살았데. 쯧쯧."

까칠한 말과는 달리 강현도 그 모습을 제법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저기요. 제 자세 한 번 봐주시면 안 돼요?"

그때 제법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해맑게 웃고 있는 최연화와 그 무리가 보였다.

"예. 뭐... 한 번 해보세요."

강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얘를 진짜 어떡하면 좋냐.'

교육 첫날. 강현은 의도치 않은 싸움을 벌였고, 그 기회를 이용해 최연화를 충격에 빠뜨려 쫓아내려 했다.

그러나 그 시도는 처참히 실패하는 것을 넘어, 되려 역효과를 내버렸다.

강현을 보고 더욱 신이 난 최연화가 더욱 열정적으로 교육에 임한 것이다.

흔히 드라마에서 부잣집 따님이 보여주는 오만한 태도나, 제멋대로인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이질 않았다.

"어때요? 이렇게 휘두르는 게 맞나요?"

게다가 재능까지 출중하다.

지금도 다른 교육생들보다 확연하게 안정적인 자세가 눈에 들어올 정도.

'부잣집 자식들은 재능도 다들 타고나는 건가...'

한세연, 안유성, 최연화.

주위에 있는 재벌 자식들이 모두 이러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어... 좋네요. 원래 검을 배웠어요?"

"어릴 때부터 검도를 다녔거든요! 던전 사건 터지고 나서는 아예 능력자들을 불러서 배웠어요."

"아..."

역시, 돈이 최고였다.

"그렇게 무겁고 날카로운 걸 들고 휘두르면 무섭거나 힘들지 않아요?"

"아니요! 오히려 재미있는데요? 저 강현 오빠라 불러도 되죠?"

"응? 아..."

"오빠도 말 편하게 하세요."

"그래..."

"오빠 너무 멋있어요!"

"..."

뭔가 묘하게 말리는 느낌이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해피바이러스 공격에 강현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저도 이렇게 하다 보면 오빠처럼 강한 능력자가 될 수 있을까요?"

"으음... 네 고유 능력이 뭔데?"

"검의 가호요."

"검의 가호?"

"검을 들었을 때 정신이 맑아지고, 집중이 잘 돼요. 신체 능력도 상승하고요."

"아... 그렇구나."

"그리고 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 학습 능력도 훨씬 뛰어나게 해 줘요!"

사기다.

명백히 사기였다.

돈지랄로 철저한 조기교육을 받고 고유 능력까지 최적화된 인간.

고유 능력은 말 그대로 그 사람의 고유한 능력이다.

그 때문에 종류가 엄청 다양한데, 전투에 그다지 쓸모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최연화는 그런 고유 능력에서까지 축복을 받았다.

조건만 보면 단군의 한세연. 그 수준까지 도달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다.

'이 정도면 그냥 능력자를 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

강현은 최강우 회장이 어째서 딸을 뜯어말리지 않았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시키자니 불안하고, 놔두자니 너무 아까운 재능이지.'

능력자의 지위가 점점 올라가는 시대에 저런 재능은 정말 엄청난 축복이다.

능력자는 성별에 따른 신체 능력 차이도 없으니, 기본적인 전투 센스만 있다면 상위 1%의 능력자가 되는 것도 금방일 것이다.

"너희들도 연습 좀 해봐. 강현 오빠가 봐주시는데! 이런 기회가 날마다 오는 게 아니라고!"

"어어. 그래."

최연화에 나머지 친구들도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똑같은 장검을 들고 있었는데, 강현은 아마 최연화의 영향이 아닐까 싶었다.

'나머지는 딱히 특별할 게 없네.'

어쩌면 검이 아니라 다른 무기에 두각을 드러낼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강현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

"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합시다! 내일 또 죽어라 휘둘러야 하니까."

저녁이 되자 강현이 교육을 종료했다.

땀에 절어있는 교육생들은 저마다 앓는 소리를 하며 숙소로 돌아갔다.

"재미있었어?"

"예?"

"아주 신나 보이던데?"

"흠흠..."

강현의 말에 신성아가 헛기침을 했다.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은 것 같습니다. 저런 착한 아이들이 자라고 있으니까요."

대답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 강현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됐다! 일도 끝났으니 가서 소고기에 맥주나 한잔하자."

"예."

그렇게 강현이 교육장을 벗어나려던 때였다.

"강현 오빠!"

"응?"

복도 끝에서 최연화가 친구들과 함께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오빠~ 어디 가시는 거예요?"

다른 교육생들이 없어서인지 최연화가 제법 간드러진 콧소리를 넣어 강현을 불렀다.

"저녁으로 고기나 먹을 생각인데..."

"오빵. 저랑 친구들도 같이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네?"

사슴 같은 눈망울을 끔뻑거리며 말하는 최연화.

강현은 29년 만에 받아보는 애교 공격에 당황했다.

"저, 그러니까..."

"안 됩니다."

그때였다.

저승사자 같은 얼굴을 한 신성아가 최연화의 앞을 막아섰다.

최연화의 뒤에 서있던 친구들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교육생은 교육 기간 동안 지도자와 동행하지 않은 이상 학교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지도자한테 동행을 요청하는 건데요? 안 될까요? 제발 딱! 한번만요~."

하지만 최연화는 강했다.

신성아의 철벽에도 자신의 애교 공격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언니, 오빠. 한번만요~ 네?"

그런 최연화를 내버려 두고 신성아가 강현에게 귓속말했다.

"강현 님. 애교에 약하신 타입이었습니까?"

"뭐, 뭐라는 거야? 아니야!"

"제가 하지 못하게 할까요?"

"어떻게 할 건데?"

"혀를 뽑아버리겠습니다."

잔혹한 말에 강현이 토끼 눈이 되어 신성아를 바라봤다.

"진심은 아니지?"

"저는 농담이란 걸 모릅니다만."

"..."

강현은 가끔 생각한다.

신성아야 말로 정말 무서운 인간. 아니, 악마라고.

"후우..."

한숨을 내쉰 강현이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미안하지만 안 돼. 숙소로 돌아가."

"네? 왜요?"

"쓰읍... 안 그러면 교육 퇴소 조치할 거야."

"왜...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여기 있다. 돌아가."

결국 강현은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폭력이 동반된 협박으로 돌려보냈겠지만, 어째서인지 최연화에게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현이가 저렇게 했으면 좀 귀여워해 줬을 수도 있을 텐데...'

자신이 보내준 돈으로 펑펑 놀고 있을 강아현을 떠올리며 강현이 피식 웃었다.

**

그날 저녁.

"길드장님. 어디 가십니까?"

길드 사무실을 나서는 강현을 한시환이 붙잡았다.

"아, 그냥 저녁으로 소고기나 먹으러 갈까 해서요."

"저도 껴도 되겠습니까?"

"형. 저도요."

"소고기?!"

"길드장님! 저도 가고 싶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에 사무실에 있던 모든 길드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현이 일의 원흉인 한시환을 노려봤다.

"크흠, 요즘 길드장님 뵙기도 힘들고 이 기회에 다 같이 회식 한번 하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한시환 씨."

"예..."

"얼굴에 철판 까는 실력이 제법 늘었네요."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후우..."

한숨을 내쉰 강현이 지갑을 챙겼다.

"전부 따라와! 내가 쏜다!"

"와아아!"

그렇게 이동한 길드원만 무려 서른 명.

목적지는 인근에 위치한 단골 소고기 전문점이었다.

"쓰읍, 좀 많이 깨질 것 같은데..."

아주 비싼 고급 한우를 취급하는 곳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소고기는 소고기다.

100g에 이만 원이었기에 상당히 큰 지출이 예상됐다.

"전부 너무 많이 먹지 말고. 적당히 먹어!"

"예!"

멤버는 강현을 비롯한 신성아, 안유성, 윤나래. 조동원, 조성찬.

그리고 현재는 각 공략팀의 팀장과 부팀장을 맡고 있는 수호자 출신 길드원들.

그 외에 사무실에 남아있던 사무직원들이었다.

"으음... 강현 님. 한재문 사무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아! 재문이?"

순간 사무실에 있던 한재문이 떠올랐으나 강현은 애써 모른 척했다.

"어차피 재문이는 항상 바쁘니까 괜찮아."

"알겠습니다."

자주 있는 일이었기에 신성아도 더 이상 언급하지는 않았다.

"아, 잠깐만 다들 주목해 봐!"

한창 고기를 흡입하던 도중 갑자기 이목을 모았다.

그러자 모든 길드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수저를 내려놓고 강현을 바라봤다.

"다들 알다시피 내가 지금 임시로 교육장을 맡고 있잖아?"

"예."

"이번에 교육 과정이 바뀌면서 던전 사냥 시범이 생겼어."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거기 있는 조교들로 하는 건데 나는 공략팀 하나를 빼서 보여줄 생각이거든? 좀 험한 장면을 보여줘야 할 것 같아서."

"..."

"때마침 공략 팀장들이 대부분 모인 것 같네. 누구 자원할 사람 있어?"

강현의 말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뭐야. 아무도 없어?"

"..."

"한시환. 공략 1 팀장."

"예..."

강현이 자신을 부르자 한시환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왕 보여주는 거 최고 정예인 공략 1팀이 움직이는 게 좋지 않겠어요? 절대로 오늘 회식 때문에 복수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는 말고."

씨익 웃으며 말하는 모양새가 절대로 복수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기 싫으면 말해요. 다른 팀 시키면 되니까. 대신 만족스러운 모습 못 보이면, 팀장들 단체로 나랑 같이 던전 공략 갑니다. B등급 던전 세 개."

현재 길드의 공략 팀 중 B등급 던전을 가는 곳은 1팀뿐이었다.

그마저도 메인 코어는 제외하고, 노말 코어 정도를 공략하는 수준.

"명색에 배데스 길드에 간부진들이 모이는 건데, B등급 던전 세 개는 가뿐하지. 안 돼도 되게 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내 스타일 다들 잘 알죠?"

이미 영상으로 강현이 B등급 던전을 공략하는 모습을 본 팀장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이게 전부 한시환 팀장 때문은 아니고! 그냥 회식 온 김에 생각난 거니까. 다들 편하게 생각해요. 편하게! 그래도 나는 이왕이면 한시환 팀장이 나서 줬으면 좋겠네. 그게 모양도 살고."

"하아, 1팀이 하겠습니다..."

한시환이 반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케이!"

102화 무자비한 폭군(4)

102. 무자비한 폭군(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