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질긴 악연(1)
62. 질긴 악연(1)
배데스 길드를 위한 새로운 사무실이 마련됐다.
-이번에는 제발 날려먹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그게 내 잘못이에요? 갑자기 미친놈들이 사무실을 폭격한걸 뭐 어떡하라고요?"
-하아... 그냥 주의만 해달라는 말입니다.
"알겠어요. 왜 한숨을 쉬고 그래요. 복 나가게."
솔직하게 말하면 강현이 많은 일을 해준 것은 맞았다.
누가 뭐래도 특수 능력자 관리팀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한 것은 강현이다.
그럼에도 신태길은 자신의 머리카락과 행복을 위해서 강현을 빼버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 그리고 독은 고마워요. 잘 쓸게요."
-예.
"그럼 이만 끊습니다."
-강현 씨.
"예?"
볼일이 끝나고 전화를 끊으려던 강현을 신태길이 붙잡았다.
-요즘 무슨 일을 꾸미시는 겁니까?
"아, 저도 슬슬 길드를 키워볼까 싶어서."
-아니요. 저는 그 징그러운 피규어 판매에 대해서 말하는 겁니다.
"뭐요? 갑자기 무슨 피규어..."
순간 강현은 최근 길드 굿즈를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피규어도 팔고 있었어요..?"
-몰랐습니까?
"내가 봤을 때는 그딴 거 없었는데!?"
강현은 단순히 액세서리나 의류를 파는 줄로만 알았다.
서둘러 홈페이지에 접속한 강현이 문제의 피규어를 발견했다.
"이게 뭐야?!"
그곳에는 강현과 안유성의 모습을 본뜬 정밀 피규어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심지어 상당히 고가였다.
"이 역겨운 인형들은 뭐예요?"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혹시나 해서 묻습니다만... 상의를 탈의한 건 강현 씨 본인 아이디어입니까?
"그럴 리가 없잖아요!"
바지만 입은 채로 건방지게 웃고 있는 강현의 피규어는 상당한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이게 그... 불쾌한 골짜기인가 하는 그건가?"
-강현 씨에게 이미지를 생각하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사회적으로 문란을 일으킬 만한 행위를….
"씨벌!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사회적 문란이라는 표현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기분이 상한 강현은 그대로 통화를 종료했다.
"젠장... 이 자식은 뭔데 이렇게 인기가 많아?"
안유성의 피규어는 선주문이 이미 6,000개를 돌파하고 있었다. 이제 고작 500개가 넘어가고 있는 강현과는 10배가 넘는 차이였다.
"이것도 은근히 기분 나쁘네..."
솔직히 안유성의 외모가 빼어나다는 것은 자신도 알고 있다. 키도 크고 근육도 잘 빠졌다. 얼굴만 놓고 봐도 어지간한 아이돌 뺨치는 외모이기는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도 옷 입혀놓고 꾸몄으면 이렇게 차이 나지는 않았을 거라고..."
중얼거리던 강현이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뺨을 두들겼다.
"아니, 이게 아니지. 이딴 혐오스러운 인형은 당장 폐기 처분해야 해."
정신을 차린 강현이 사무실을 두리번거렸다.
"신성아!"
"그건 제 아이디어가 아닙니다만."
이미 통화를 듣고 있던 신성아가 재빨리 대답했다.
"안유성!"
"왜요."
"이딴 건 무슨 생각으로 만든 거야?!"
"형이랑 판박이로 만들었는데 문제 있어요?"
바닥에 쪼그려서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던 안유성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옷은 왜 벗긴 건데?"
"형이 평소에 몸 좋다고 자랑 많이 했잖아요."
"그,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야?!"
솔직히 자랑을 조금 하기는 했다.
그냥 아는 사람들에게 팔을 좀 만져보라 하고, 가끔 웃통을 까는 정도.
"그래서 다들 좋아했잖아?"
간혹 너무 커서 부담스럽다는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예술에 대해 모르는 이들이 하는 말일뿐이다.
"그래서 형이랑 99% 똑같이 만들어 주고, 몸매도 잘 드러나게 해 줬는데 뭐가 불만이에요?"
"아니…."
"이제 와서 부끄럽기라도 한 거예요?"
"그래도 나랑 상의 정도는 했어야지. 인마..."
"다음부터는 그렇게 할게요."
강현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이 새끼...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말리는 느낌이지?'
결국 대화를 포기한 강현이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피규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클릭을 몇 번 하자 역시나 굿즈에 대한 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번에 배데스 길드에서 굿즈 판매하던데.
-ㅇㅇ. 굉장히 매니악한 것들 위주이긴 한데 그래도 디자인은 나름 괜찮더라.
-게다가 퀄도 나쁘지 않은 게 돈 값은 하는 것 같았음.
-그래도 그런 거 사는 놈들이 있기는 함? 무슨 아이돌도 아니고 ㅋㅋㅋ 굿즈 파는 길드는 처음보네.
-거기 워낙 또라이들 집합소잖아. 근데 또 은근히 인기몰이 중이라는 게 함정이다만...
생각보다 반응이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강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도중 마침내 원하는 게시글이 보였다.
-거기 피규어 본사람 있냐?
-나 봤다ㅋㅋㅋ
-강현 피규어 봤음?
-ㅇㅇㅋㅋㅋ 근육 존나 부담스럽던데.
-그러니까 ㅋㅋ 무슨 노출증 관종인가 도대체 웃통은 왜 깐거임?
-게다가 피규어도 존나게 무섭게 생겼음. 꿈에 나올까봐 무섭다.
-ㄹㅇ 그거 완전 피규어가 아니라 사탄의 인형이던데?
-엌ㅋㅋ 사탄의 인형!
-사탄의 인형 미쳤냐고 ㅋㅋㅋㅋㅋㅋㅋ
-드립 돌았네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더 이상 글을 읽을 수 없었던 강현이 조용히 스마트 폰을 집어넣었다.
"시벌..."
**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폐공장.
흡사 공포영화 세트장 같은 음침한 장소에 콧노래가 울려 퍼졌다.
"흐음음~"
목소리의 주인은 안유성이었다.
"왜 그렇게 신났냐?"
강현이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안유성을 바라봤다.
"형이 창작의 고통을 알아요?"
"뭐라는 거야."
배데스 길드의 굿즈 판매가 본격화되면서 안유성은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었다.
분명 자신의 예술혼이 들어간 작품을 만드는 것은 즐거웠다.
하지만 창작에는 항상 고통이 따르는 법.
특히나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에 집중해본 적이 없는 안유성에게는 상당히 큰 부담이었다.
"이딴 그로테스크한 해골 액세서리나 만들면서 무슨 예술혼 타령이야?"
"형이 제 예술적 정신세계를 어떻게 알겠어요."
"네가 미쳤다는 건 잘 알고 있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강현이 스마트 폰을 확인했다.
"보자... 이쯤이 맞는 것 같은데?"
시간은 새벽 4시.
강현은 몬스터 파워를 구매하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하아, 오랜만에 스트레스를 풀 생각 하니 벌써부터 떨려요."
전투가 임박했다.
안유성이 들떠있는 이유 또한 그것 때문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던전에 들락날락하는데 뭐가 그렇게 좋아?"
"몬스터랑 사람이랑 같나요."
"너 같은 미친놈이랑 상종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유유상종이란 말을 모르는 강현이었다.
"뭐 보이는 거 있어?"
-없습니다.
강현이 말을 하자 귀에 연결된 초소형 무전기를 통해 신성아의 대답이 들려왔다.
"알겠어. 특이사항 있으면 바로 보고하고."
-예.
현재 신성아는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하루 중 가장 어둡다는 해가 뜨기 직전의 새벽이었지만, 그녀의 눈은 어둠을 꿰뚫어 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확실히 나한테도 걸리는 것이 없다는 말이지.'
강현은 마력을 감지하는 능력이 더욱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약속 시간이 이제 10분 정도 남았나?"
-정확히 13분 남았습니다.
"알겠어."
지루함에 강현이 스마트폰을 확인하려던 때였다.
-강현님. 차량 한 대가 접근합니다.
"오케이."
신성아의 말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현도 다가오는 마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잠시만, 기척이 한둘이 아닌데? 다른 건 뭐 보이는 거 없어?"
-차량 외에는... 아, 몸을 숨기고 접근 중인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그놈뿐만이 아니야. 최소 세 방향에서 접근 중이야. 잘 숨어 있어."
-예.
잠시 후, 약속 시간을 5분 남겨두고 강현의 앞에 승용차가 한 대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이들은 총 셋.
건장한 남성 둘과 조금 가녀려 보이는 여성 한 명이었다.
"석차빈 씨?"
강현이 준비한 가명이 여성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예."
"옆에 계신 분은 누구죠?"
"제 경호원입니다."
강현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여성이 말을 이었다.
"선글라스를 벗어주시겠습니까?"
강현과 안유성은 둘 다 짙은 선글라스를 쓴 상태였다.
"굳이 얼굴을 드러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신뢰의 문제죠. 워낙 흉흉한 세상이니. 후훗."
여성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계속 그대로 계신다면 거래는 여기까지입니다."
여성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강현이 선글라스를 벗었다.
"됐습니까?"
순간 강현은 자신이 직접 나온 것을 후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위험한 거래에 다른 인물을 보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쪽은 안 벗나요?"
여성의 말에 강현이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여전히 선글라스를 착용 중인 안유성이 보였다.
"뭐해 인마?"
강현이 슬쩍 안유성의 옆구리를 찔렀다.
"형. 그게..."
"야. 나도 모르는 거 보니까 들킬 일 없어. 얼른 벗어."
"저 여자. 아는 사람인데요?"
"뭐..?"
갑작스러운 안유성의 말에 강현이 당황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순간 강현이 큰 소리로 외치자 여성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왔다.
"문제가 있습니까?"
"하하. 아무 문제없습니다. 잠시만요."
강현이 안유성을 끌고 뒤로 갔다.
"어떻게 아는 사인데?"
"능력자 육성 학교 있잖아요."
"갑자기 거기가 왜 나와?"
"거기 대련 수업 때. 제가 손 박살 낸 여자. 기억 안 나요?"
강현은 어렴풋이 그런 기억이 떠올랐다.
"그게 저 여자라고?"
"네. 사실 그때 그렇게 한 것도 육감이 좋지 않아서였거든요. 오늘 보니까 역시 잘했네요."
"시벌...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안유성이 해맑게 웃었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하필 이 순간이 이런 식으로 만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야. 그래도 열 달이나 된 일인데, 네 얼굴을 기억할까?"
"저는 기억하잖아요."
"그러네."
할 말이 없었다.
"모르겠다. 일단 나와. 어떻게든 되겠지."
다시 여성 앞에 선 강현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선글라스를 벗는 건 좀 그러네요. 이 친구가 눈을 흉하게 다쳐서."
"..."
"어차피 그쪽도 돈만 받으면 그만이지 않아요? 거래는 제가 하는 거니까."
"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 여성이 자동차의 트렁크로 다가갔다.
그곳에서 수상해 보이는 007 가방을 꺼내는 여성을 보며 강현은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묘하게 낯이 익네...'
여성뿐만이 아니었다.
여성의 양쪽에 서있는 남자들도 어딘가 낯이 익었다.
'능력자 학교에서 만난 기억 때문인가?'
하지만 여성이야 그렇다 쳐도 남성들은 그곳에서 봤을 리가 없었다.
강현은 계속 고민했지만 결국 그 이유를 떠올리지 못했다.
"약은 이 가방에 들어 있습니다."
"확인부터 하겠습니다."
"돈부터 보여주시죠."
여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안유성을 불렀다.
"안 비서. 돈 가져와."
"예."
다행히 일이 순조롭게 풀렸다.
이제 이대로 약과 돈을 교환하기만 하면 된다.
그럼 돈에 부착된 초소형 위치추적기를 통해 적들의 근거지를 발견하고. 한 번에 일망타진하면 그것으로 끝이 난다.
-치지지..강, 치직.. 강현님!
그때 무전기의 소음과 함께 신성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거래 도중이기에 당황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들켰습니다! 플랜 B로 가셔야 합니다!
신성아의 무전이 들려옴과 동시에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무기를 꺼내 들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배데스의 강현. 듣던 대로 멍청한 놈이구나."
"뭐?"
"우리는 오래전부터 너희를 지켜봐 왔다."
갑작스러운 말에 강현의 미간이 좁혀졌다.
"스토커야 뭐야?"
"그때 배에 뚫린 구멍은 안녕한지 모르겠군."
"...?"
"어떻게 살아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야 말로 정말 죽여주마."
여성의 말과 동시에 강현의 머리가 번뜩였다.
"씨발, 기억났다!"
베이트 길드.
정의현.
마지막 오천왕.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었다.
강현이 베이트 길드 본사에 쳐들어가 죽었던 그날. 정의현에 곁에서 무게를 잡고 있던 다섯 명의 남녀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강현은 죽음 맞이했다.
"그래. 너희들. 어디 갔었나 했네."
생각해보면 정의현을 죽인 날.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나도 정말 보고 싶었다."
"흥. 이번엔 그때처럼 살아나지 못하게 아주 꽁꽁 얼려주…."
말을 하던 여성이 갑자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너, 너는...?"
"안녕?"
마침내 선글라스를 벗은 안유성의 얼굴을 본 것이다.
"네가 어떻게..."
"그러게요. 세상 참 좁네요. 하하하!"
"흥. 잘 됐어. 전부 죽어!"
여성에게 안유성은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아직도 시큰거리는 손을 떠올리며 그녀가 가장 강력한 마법을 사용했다.
-쩌저저적
엄청난 냉기가 일어나며 순식간에 바닥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어때? 그때보다 훨씬 발전했지?"
그사이 여성의 마법은 상당히 발전한 듯했다.
이전이 지면과 함께 발이 조금 얼어붙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냉기가 바닥을 타고 올라오며 강현의 전신을 얼렸다.
안유성은 이미 마법을 눈치채고 자리를 피한 이후였다.
"흥, 도망쳐 봤자 소용없어. 어차피 금방 찾아내서 죽여줄 테니까."
여성이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파드득, 파앙!
"응..?"
완전히 얼어붙어 있던 강현이 얼음을 깨부수며 몸을 움직였다.
"어, 어떻게..."
계속해서 몸이 얼어붙고 있었지만, 강현은 귀찮다는 듯이 가볍게 그것들을 털어냈다.
"어우, 시원하다."
"..."
"아까 뭐라고 했어? 얼음 안에 있는 다고 제대로 못 들었어."
강현이 몸에 붙은 얼음을 떼어내 씹어 먹었다.
-아그작, 아그작.
"너도 하나 줄까?"
63화 질긴 악연(2)
63. 질긴 악연(2)
"어, 어떻게?!"
자신의 가장 강력한 마법이 얼음 제조기로 변해버렸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바라보는 여성의 눈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뭐가 어떻게야. 그땐 내가 일부러 뒤져준 거니까 그렇지."
"젠장! 모두 공격해!"
여성의 신호와 함께 몸을 숨기고 있던 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방에서 마력이 끓어오르고, 곧이어 새벽하늘을 수놓은 마법의 향연이 펼쳐졌다.
-콰과가강!
강현이 있던 자리에 열 개가 넘는 마법들이 작렬하자 굉음과 함께 빛이 폭사됐다.
"바퀴벌레 같은 놈이야! 멈추지 말고 계속 공격해!"
"바퀴벌레는 너무하잖아?"
"...!"
바로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여성이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이런, 빠르다!'
그러나 강현의 움직임은 여성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목소리를 인지함과 동시에 움직였지만 팔을 붙잡히고 만 것이다.
"마력폭발."
-펑!
"꺄아아아아!"
여성의 팔을 붙잡은 채로 강현이 마력폭발을 사용했다.
초 근접에서 일어나는 폭발에 여성의 팔이 갑옷과 함께 터져나가며 허공을 날았다.
"유리 님!"
"제길! 멈추지 말고 공격해!"
주위에 있던 부하들은 당황했지만 잠시 뿐이었다.
자신의 상관이지만 필요하다면 버린다.
그들은 그렇게 교육받아왔다.
"불타는 화염의…."
마법을 영창하던 사내의 머리에 거대한 메이스가 날아들었다.
-퍼억!
메이스에 격돌한 사내의 머리가 수박 터지듯 터져나갔다. 그 파편이 옆에 있던 동료의 몸을 흠뻑 적셨다.
"어..?"
한순간에 동료의 피와 뇌수를 뒤집어쓴 남자가 그대로 굳었다.
"역시 이거지! 크하하하!"
"이게 무슨…."
남자 또한 말을 끝맺지 못하고 동료의 곁으로 떠났다.
죽기 전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온갖 내장이 엉겨 붙어있는 흉측한 메이스였다.
"안유성! 다 죽이면 안 돼! 가능하면 생포하라고!"
"노력해 볼게요!"
"하여간 저 또라이..."
그 뒤로도 적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그들은 분명 매우 강한 축에 속하는 능력자였지만, 강현과 안유성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했다.
"모두 물러나!"
결국 놈들이 버티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모두 신약을 복용해."
또 다른 상급자로 보이는 남자가 지시를 내렸다.
"뭐하는 거냐? 어서 복용해!"
"..."
하지만 놈들은 시선을 피하며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맞아. 약 같은 거 먹으면 안 돼. 그러니까 좋게 말할 때 넘겨라."
"어서 먹어!"
강현이 달려듦과 동시에 외침이 터져 나오고, 망설이던 놈들이 결국 푸른 알약을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아그작, 아그작, 꿀꺽!
약은 순식간에 조각나서 목을 넘어가고 뱃속에 도달했다.
"끄아아아아아!"
동시에 놈들의 전신에서 마력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뭐야. 저것들 갑자기 왜 저래?"
"형, 이럴 때는 일단 지켜보는 게 맞아요."
"왜?"
"그래야 적들이 더 강해지잖아요."
"이런 또라이가! 당장 움직여!"
강현은 멍청하게 적들이 강해지는 것을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으압!"
기합과 동시에 휘둘러진 검에 놈들의 목이 떨어져 나간다.
하나, 둘, 셋.
빠르게 적의 목이 떨어지고 강현이 네 번째 적을 향해 검을 휘두르던 순간이었다.
-탁
정신을 차린 놈이 강현의 검을 맨손으로 붙잡았다.
"크르르..."
"잡으면 어쩔 건데 새끼야!"
미련 없이 검을 놓은 강현이 곧장 놈의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마력폭발!"
강현의 양손에서 생성된 마력구가 동시에 터져나갔다.
-콰아앙!
"아으, 이건 최후의 수단인데."
마력폭발은 근접에서 사용할 시 그 자신도 피해를 받는다.
B등급의 방어구를 뚫고 들어오는 충격에 강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캬아아!"
단숨에 동료 넷이 죽었다.
다급해진 놈들이 사방에서 짓쳐들어왔다.
"뭐가 이렇게 빨라?!"
놈들은 기존에 약의 부작용으로 변했던 사람들과는 달랐다.
그들이 괴물처럼 변하며 신체능력이 급상승했더라면, 이들은 괴물 그 자체가 되었다.
-캉, 캉, 카앙!
이들의 손과 발은 완전히 인간의 그것을 벗어나 있었다.
강현의 검과 적들의 살이 부딪힐 때마다 검이 울렸다.
"야! 너는 뭐하고 있…. 크헉!"
안유성을 부르던 강현이 망치처럼 거대한 손에 맞아 날아갔다.
허공을 나르며 강현이 본 것은 수많은 적들에게 포위된 채로 미친 듯이 날뛰는 안유성의 모습이었다.
"크하하하! 이거라고! 그래!"
강현은 벌써 수차례 공격을 허용했지만 안유성은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적들을 유린했다.
비록 안유성의 힘이 부족한 탓에 공격력은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적들을 압도하는 것은 분명했다.
"아씨... 이거 묘하게 억울하네."
정확히는 자존심이 상했다.
"재능충은 다 뒤져야 돼!"
너덜너덜해진 갑옷을 벗어던지며, 강현이 달려 나갔다.
**
-피슉!
어두운 새벽.
빠르게 움직이는 화살을 식별하기에 적합한 시간은 아니었다.
"흥!"
그럼에도 남자는 어둠을 뚫고 날아오는 화살이 선명하게 보였다.
-채앵!
단검을 휘둘러 가볍게 화살을 쳐낸 남자가 계속해서 눈앞의 여성을 쫓았다.
'강한 놈이다.'
그런 남자에게 쫓기던 신성아가 다시 화살을 메기고는 남자를 겨냥했다.
"안 통한다!"
남자의 이름은 정선구.
강현이 베이트 길드에서 본 오천왕 중 한 명이었다.
"언제까지 도망치기만 할 거냐?!"
원래도 강한 능력자였던 그는 약물로 인해 더욱더 강한 힘을 손에 넣었다.
'일반적인 능력자 따위... 잡히기만 하면 단칼에 끝낸다.'
여유로운 남자와 달리 신성아는 꽤나 다급했다.
'얼른 처리하고 강현 님을 도와야 하는데...'
그녀의 특성상 1대1 대전에서는 약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강현을 따라다니며 근접 전투 능력도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그뿐이다.
이 남자는 한눈에 봐도 근접전에 특화된 능력자.
지난번 카페에서의 어중이떠중이들처럼 생각하고 상대했다가는 한순간에 당하고 말 것이다.
"소용없다니까!"
정선구가 끊임없이 날아드는 화살들을 신경질적으로 쳐냈다.
"오, 이제 싸울 마음이 들었나?"
마침내 자리에 멈춰 선 신성아를 보며 정선구가 미소를 지었다.
"뭐야? 자세히 살펴보니 제법 반반하게 생겼잖아?"
"..."
"이번 전투는 빠르게 끝내야겠어. 대신 침대 위에서 전투를 격하게 벌여 보자고."
정선구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어떤 전투에서든지 네 역할은 정해져 있어."
"..."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며 날 흥분시키는 역할이지. 푸헤헥!"
앞으로 벌어질 전투를 상상하며 정선구의 바지가 부풀어 올랐다.
입에서는 침까지 줄줄 흘리고 있는 그는 한눈에 봐도 정상은 아니었다.
"튀어나온 주둥이를 보니 '고블린 상어'가 생각나는군. 그렇게 혐오스럽게 생겨서야 여자 만나기도 쉽지 않았겠어."
"뭐, 뭐?!"
고블린 상어.
마귀상어 과의 심해 어류.
종종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기도 한다.
실제 존재하는 어류다.
"이 미친년이 뭐라는 거야?!"
외모 지적질에 잔뜩 흥분한 정선구가 거침없이 달려왔다
-챙, 챙!
"이딴 장난질은 집어치워!"
정선구의 단검에 화살이 튕겨나가며 불똥이 튀었다.
"일단 그 파렴치한 주둥이부터 고쳐주마!"
정선구의 단검들이 정신없이 몰아쳤다.
동체시력이 뛰어난 신성아는 모든 공격을 인지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공격을 대응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푸헤헤헥! 아까처럼 계속 지껄여 봐!"
신성아의 전신에 붉은 실선이 그어지며 피가 스며 나왔다.
"또 도망치는 거냐?"
재차 거리를 벌리며 신성아가 활을 꺼내 들었다.
"마력 화살!"
C등급 던전을 클리어하고 획득한 베난디 대전사의 활.
그 무기가 가지고 있던 능력인 '마력 화살'은 그녀의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다만 마력소모가 조금 심하니까 미리 잘 확인해둬.
대전사의 활을 건네며 강현이 했던 말.
강현에게는 조금이었지 모르나 그녀에게는 정말 살인적인 수준의 마력 소모였다.
대신 위력은 확실했다.
'단번에 끝낸다.'
현재 그녀가 마력 화살을 사용할 수 있는 횟수는 최대 5번.
그 안에 싸움을 끝내야 했다.
"이건 뭐야!?"
갑작스럽게 날아드는 마력 화살에 정선구는 깜짝 놀랐다.
'이건 못 막는다!'
그 안에 담긴 위력을 느낀 정선구가 다급히 몸을 틀었다.
-쐐애애액!
화살은 아슬아슬하게 정선구의 가슴을 비껴갔다.
"젠장. 귀찮게 하지 말고 그냥 죽어!"
악을 쓰는 정선구에게 재차 마력 화살이 날아갔다.
"마력 방패!"
가장 흔하지만 유용한 스킬.
마력 방패에 적중한 마력 화살이 폭발하며 마력 먼지가 일었다.
-피슉!
그때 먼지를 뚫고 재차 날아드는 화살.
정선구는 갑작스레 날아든 일반 화살을 인지하지 못했다.
화살은 정선구의 귓가를 스치며 상처를 냈다.
"으아아! 까불지 마라!"
이윽고 세 번째로 마력 화살이 날아들었지만 정선구는 몸을 틀어 손쉽게 피해냈다.
'이제 남은 것은 두 발...'
그러나 정선구는 이미 그녀의 코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여유롭게 화살이나 메기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죽어!"
"크억!"
단검은 피해냈지만 그 이후 들이닥친 돌려차기에 직격 당했다.
충격에 날아간 신성아가 담벼락에 부딪히며 시멘트 가루들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여유 따위 주지 않는다."
흙먼지에 가려 신성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정선구는 그녀가 있던 방향을 향해 달려갔다.
-쐐애애액!
"흐읍!"
흙먼지를 뚫고 날아드는 두 발의 마력 화살이 보였다.
'맞으면 끝이다!'
위력이 심상치 않은 기술이었다.
정선구가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그의 시간 감각이 느려지며, 화살의 경로가 또렷하게 보였다.
'일단 한발.'
허리를 뒤로 젖혀 머리를 향해 날아온 화살을 피해냈다.
'나머지 한발!'
또 다른 화살을 아슬아슬하게 옆구리를 스쳐갔다.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정선구의 눈에 마주 달려오고 있는 신성아가 보였다.
'흥. 마력이 떨어졌겠지. 이제 넌 끝이다.'
화살을 피하느라 억지로 비틀었던 허리가 천천히 돌아온다.
느려진 시간 감각 속에서 그녀는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조금만 더...'
자신이 몸의 균형을 되찾는 그 순간. 쏜살처럼 달려 나가 저 하얀 목을 꿰뚫어 피로 물들일 것이다.
'저게 뭐야?'
그때 달리던 그녀가 무언가를 집어던지는 모습이 보였다.
'유리병?'
무엇이든 관계없었다.
설사 화살이 날아오더라도 그 사이에 자리를 잡고 쳐낼 자신이 있었다.
'흥, 쓸 데 없는 발악은...'
-쨍그랑!
"집어치워!"
마침내 느려졌던 시간 감각이 돌아오고, 몸의 중심을 잡은 정선구가 자신에게 날아온 유리병을 빠르게 쳐냈다.
"이게 뭐야!?"
유리병이 깨지며 안에 담겨있던 찝찝한 녹색의 액체가 정선구의 얼굴을 뒤덮었다.
"응...? 끄아아아아아!"
그리고 액체에 뒤덮인 정선구의 얼굴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액체의 정체는 강현이 신태길에게 받아뒀던 독의 일부였다.
-혹시 모르니까 너도 좀 챙겨 둬.
-알겠습니다.
신성아는 독 따위 필요 없다 생각했지만 강현이 주는 것이기에 일단 챙겨뒀었다.
그 독이 중요한 순간에 그녀를 위기에서 구했다.
"이게 뭐냐고! 으아아!"
녹아내리는 얼굴을 붙잡으며 정선구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신성아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아직 한 병 남았다."
"뭐?!"
신성아가 또 다른 유리병을 들어 올렸다.
-쨍그랑!
강현이 준 독약은 두병이었다.
"끄아아아아!"
"이제 얼굴이 좀 볼만해졌군. 그래."
일반적으로 황산, 염산은 피부에 닿는 즉시 피부를 녹인다.
그러나 보통 사람보다 훨씬 강한 피부를 지닌 능력자에게는 사실 무기로서의 효용은 거의 없는 편이었다.
"끄으으윽..."
하지만 신태길이 건네준 약물은 무엇을 섞은 건지 강현조차도 순식간에 피부가 허물어질 정도로 강한 산성을 지니고 있었다.
"죽인다. 죽여! 죽여버리겠어!"
마침내 고개를 든 정선구의 얼굴은 완전히 허물어져 있었다.
피부가 벗겨져 근육이 드러난 그가 죽일 듯이 신성아를 노려봤다.
그러나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화살 두 개였다.
"끄아아아아아아!!!"
양쪽 눈에 화살이 박힌 정선구가 소름 끼치도록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지금이 전보다 훨씬 보기 좋다. 나름 귀여운 맛이 있어."
**
현장을 정리하기 위해 등장한 공무원들.
그들을 이끌고 있는 신태길은 잔뜩 화가 난 상태였다.
"강현 씨. 어떡할 겁니까?!"
"나도 어쩔 수 없었다니까! 지금 내 상태 안 보여요?!"
오랜만에 로날드의 갑옷이 반파될 정도의 격렬한 전투였다.
자가 수복 기능이 있는 B등급의 무구지만 애초에 잘 부서질 일이 없던 그 갑옷이 완전히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적어도 한 놈은 살려 놨어야 할 거 아닙니까?"
"이 자식들이 이상한 약을 처먹더니 미쳐서 날뛰는 걸 어떻게 살려요? 나도 죽다 살아났다고!"
"후우..."
이래서야 적의 꼬리를 붙잡으려던 계획은 완전히 실패다.
오히려 놈들에게 위기감만 조성해 더욱 음지로 숨어들 지도 몰랐다.
"강현 님."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너 그건 뭐야?"
상당히 초췌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신성아. 그녀는 한 남자를 바닥에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우읍, 웁!"
"우웩!
신성아가 끌고 오는 남자의 모습을 본 직원들이 헛구역질을 했다.
이미 수많은 시체들을 보아온 그들에게도 남자의 상태는 구토를 유발할 정도로 역겨웠다.
"놈들의 중 한 명입니다. 아마 꽤나 높은 자리에 위치한 놈일 겁니다."
"아... 그래.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한 강현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예."
"그거 살아있는 건 맞지..?"
피부가 녹아내려 얼굴 근육이 드러나고 양쪽 눈에 화살이 꼽혀 있는 남자를 보고 강현이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아직 숨은 쉬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신성아의 말에 강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걸 보고 어떻게 걱정을 안 해...'
어쩐지 신성아가 조금 두려워지는 강현이었다.
64화 함정(1)
64. 함정(1)
빛과 그림자는 언제나 함께한다.
신태길은 항상 빛이 되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밝은 빛이 세상을 비출수록 그림자는 더욱 짙어지기 마련이다.
"끄아아아아!"
밀폐된 공간에 비명이 가득 들어찼다.
'세계 던전 관리 기구'의 한국 지부. 그 본청 지하의 심문실.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전혀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21세기와 어울리지 않는 원초적인 행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피차 힘 빼지 말고 쉽게 가지."
서류를 뒤적거리던 신태길은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X까! 너희들이 이 나라를! 세계를 망치고 있어!"
그에 반해 고문을 당하는 남자, 정선구는 상당히 팔팔해 보였다.
"어디 사이비 종교도 아니고... 도대체 그 괴이한 신념과 충성심이 어디서 나오는 거지?"
"너처럼 멍청한 정부의 개가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아, 그 멍청이도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주면 이 짓거리도 끝날 텐데."
답답한 마음에 신태길이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는 모른다..."
갑자기 정선구가 눈을 빛냈다.
진지한 표정을 지은 그의 눈에는 기이한 광기가 번득이고 있었다.
"그분만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
"그래. 그래서 나도 그분이랑 대화를 좀 나누고 싶은데."
"그건 안 돼."
"왜지?"
"너는 멍청한 정부의 똥개니까. 크크크크."
"씨발..."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온 이야기에 신태길이 마른세수를 했다.
"계속합시다. 죽지 않게 관리 잘해주시고, 힘이 좀 더 빠지면 다시 약물을 투여해보죠."
"알겠습니다."
직원의 대답을 들은 신태길이 심문실을 빠져나왔다.
"끄아아아아-!"
심문실 안쪽에서는 정선구의 처절한 비명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
-치이이이
살이 익으며 나는 소리.
평소라면 군침이 날만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본인의 살이라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으아아아아!"
피부가 녹아내리며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연출됐다. 그것을 지켜보는 강현의 입에서는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치이이이
피부가 맹독에 의해 녹아내리고, 동시에 육체 재생 스킬로 회복된다.
강현이 아무리 고통에 익숙하다지만 이건 정도를 넘어섰다.
점차 한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짜릿짜릿한데?!"
양동이에 받아둔 독극물.
그 안에 발은 담그고 있던 강현이 벌떡 일어났다.
[능력 독 내성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그렇지!"
독 내성(E)
능력 : 독에 대한 면역력을 강화한다.
설명 : 어떠한 종류의 독이든 관계없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이 감소한다.
최근에 얻은 능력인 독 내성.
그것의 등급을 상승시키기 위해 특별한 족욕을 시작한 지 어느덧 하루가 흘렀다.
"아오, 간만에 진짜 아팠네."
현재 강현의 체력 스텟은 40.
거기에 독 내성까지 지니고 있는 상태다. 이것은 조금 과장을 하자면 어지간한 독극물은 건강음료처럼 마실만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건 도대체 무슨 생화학 병기야?"
하지만 신태길이 보내준 독은 일반적인 수준을 뛰어넘는 맹독이었다.
-두 가지만 명심하시면 됩니다. 하나. 정말 비싼 물건이니 아껴서 쓸 것. 둘 사람한테는 절대 쓰지 말 것. 이것만 명심하십시오.
독을 건네며 신태길이 한 말이었다.
때문에 신성아가 범죄자의 얼굴을 젤리로 만들어버린 그날. 신태길의 말이 떠오른 강현은 그녀를 나무랐었다.
-들키면 신태길 팀장이 잔소리하니까 티 안 나게 쓰라 했잖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강현님.
-어?
-그놈은 인간이 아니라 고블린 상어였습니다.
-뭐..?
그리고 나머지 독은 전부 강현이 족욕을 하는데 들이부었다.
"으음... 어쩌다 보니 명심해야 할 것 두 가지를 다 어겨버렸네."
독 내성을 더 올리려면 독이 필요하다.
즉, 신태길의 도움이 필요했다.
게다가 직접 사용해 보니 이 독은 다방면으로 충분히 활용이 가능할 것 같았다.
"나만 견딜 수 있다면 전신에 펴 바르고 껴안기만 해도 죽어날 거야. 아니면 입에 머금고 있다가 뱉거나."
한동안 강현이 끔찍한 생각을 이어갔다.
"어쨌든 중요한 건 독이 더 필요하다는 건데... 전화해 봐야겠다. 재문아!"
"예..?"
"신태길 팀장한테 저번에 보내준 독, 더 달라고 해. 양 좀 넉넉하게 해서."
"그걸 왜 제가..."
"내가 하면 욕먹잖아! 그 양반 요즘 까칠하다고."
한재문은 현재 배데스 길드 소속이지만 그 이전에 신태길의 직속 부하이기도 했다.
'내가 해도 욕먹는데...'
그런 한재문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현은 여전히 족욕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길드장님!"
그때였다.
갑자기 사무실 문이 열리며 한시환과 함께 수호자 길드 출신들이 들이닥쳤다.
"뭐야."
"다 들었습니다. 어떻게 저희만 빼고 가실 수가 있습니까!?"
"무슨 말이야?"
"몬스터 파워와 관련된 놈들 말입니다."
사실 작전을 실행하기 전부터 강현은 이러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 예상했다.
그들의 길드장 박세현의 죽음과 몬스터 파워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너무도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일어나자 생각보다 더 기분이 언짢았다.
"너희들은 던전 돌고 있었잖아."
"미리 말해 주셨으면 모두 따라나섰을 겁니다."
따지듯이 말을 하는 한시환.
강현이 들고 있던 맥주 캔을 구겼다.
"그래서 내가 말 안 한 거야. 따라 나왔으면 어쩔 건데?"
"박세현 님의 복수를…."
"복수? 너희가? 내가 보기엔 박세현 씨 따라 개죽음이나 당할 것 같은데."
"말이 너무 심하신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저희도 어디 나가면 꿀리지 않는단 말입니다!"
길드원들의 반발에 강현이 시니컬하게 웃었다.
"그렇게 당해놓고도 아직도 현실을 모르냐. 다 같이 덤벼서 나 하나 이기지 못하는 놈들이 복수는 무슨 복수? 그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알기나 해?"
"싸워 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 아닙니까!"
"아니. 알아. 그러니까 억울하면 던전 돌고 더 강해져서 와."
"젠장!"
결국 참지 못한 길드원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저렇게 보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곁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조성찬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뭐 어쩌겠어. 사실이 그런 걸."
저들이 기분이 어떨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서 답이 없는 위로만 주고받는 것은 그의 방식이 아니었다.
"막말로 내가 무슨 쟤들 보모야?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면 알아서 해야지."
"그래도 길드장이시지 않습니까."
"길드장이면 우쭈쭈 하면서 돌봐줘야 하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만..."
"알겠지만 내 방식은 그런 게 아냐. 내가 가장 앞에서 쳐 맞으면서 달린다. 그 대신 따라오지 못하면 버린다. 그게 다야."
냉혹한 강현의 말에 조성찬의 얼굴이 굳었다.
"여기는 해선 길드가 아니야. 조성찬 씨가 운영하던 해선 길드가 얼마나 화목했고 가족처럼 지냈는지 나는 모르고 관심도 없어."
"..."
"그런데 그 길드가 힘이 없어서 박살 났다는 건 알고 있지. 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현실이 그렇잖아?"
"맞습니다..."
해선의 길드장이었던 조성찬.
본인부터가 힘이 없어서 죽을 위기에 처했었다.
강현이 아니었다면 그는 이미 길드와 함께 운명했을 것이다.
"내 첫 번째 신조는 말이야. '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길드의 첫 번째 신조 또한 누구보다 강해진다는 거고."
"예."
"조성찬 씨나, 저놈들이나 이런 길드인 줄 알고 들어온 거잖아? 본인이 원했기 때문에. 항상 말했지만 불만 있으면 언제든 나가."
강현이 짜증 어린 어조로 말하자 조성찬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내가 너무 심각하게 이야기했나?"
"아닙니다..."
"결론은 알지? 여기 길드명 배데스(Badass)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온 건 아닐 거라고 믿어."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강현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웃었다.
"맥주나 마셔야겠다. 조성찬 씨는?"
"주시면 저도 한 캔 마시겠습니다. 그리고 편하게 부르셔도 됩니다."
"에이, 그래도 나이가 있는데."
미소를 지은 강현이 조성찬에게 맥주 캔을 던졌다. 그리고 자신의 캔을 따고 단숨에 맥주를 비워냈다.
"크으, 좋네! 그나저나 재문아."
"예?"
"길드 자금 현황이 어떻게 되지?"
"그게..."
갑자기 자신에게 튄 불똥에 한재문이 식은땀을 흘렸다.
"그게? 뭐?"
"자금 현황이라 하시면..."
"지금 돈 얼마나 모았냐고."
"현재 여유 자금은 약 22억 700만 원 정도..."
"뭐? 왜 그것밖에 없어!?"
강현이 건네준 돈은 약 25억.
며칠 사이에 돈이 늘기는커녕 무려 3억이나 줄어들어 버렸다.
"그게..."
"그 징그러운 피규어 팔면 돈도 잘 벌릴 거라 해서 내가 그냥 그대로 하라 했잖아?"
"예..."
"가지고 있는 아이템도 전부 다 뿌려줬고."
"예..."
"던전도 매일매일 돌면서 돈을 떠다 바치는데! 왜 돈이 줄었어?"
"그게 시간이..."
한재문이 우물쭈물하며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강현의 인내심은 그리 좋지 않았다.
"어휴! 답답해!"
가슴을 두드리며 소리친 강현이 거칠게 냉장고 문을 열어젖히고는 맥주를 꺼냈다.
'네가 일 시킨 지 아직 일주일도 안 지났어. 이 미친놈아!'
한재문의 머릿속에서는 하고 싶은 말들이 넘쳐났다.
'제작하고, 홍보하고, 유통하고! 그 외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직원도 이제야 겨우 두 명 더 뽑아줘 놓고 뭐?! 혼자 길드 운영하고, 사업도 벌이고 내가 만능이야?! 나도 쉬고 싶다고!'
머릿속에만 넘쳐날 뿐이었다.
"맞아. 재문이 형은 좀 게으른 것 같아."
"..."
바닥에 엎드린 채로 스마트폰 게임을 하던 안유성의 말이었다.
'여기 때려치울까...'
**
보고를 받던 최민준이 이상을 찌푸렸다.
"이번엔 제법 타격이 크군."
"죄송합니다..."
"정선구, 선유리를 포함한 23명이 사망이라. 아, 정선구는 생포됐다 했나?"
"예."
최민준은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단체를 운영해왔다. 때문에 정부에서 추적해도 붙잡는 것은 결국 꼬리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직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간부가 붙잡혀 버렸다.
비록 그들이 전투 요원이라 아는 정보가 한정적이라고 하지만 간부는 간부.
일반 조직원들이 잡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문제가 일어날 것이 뻔했다.
"가장 큰 문제는 정선구가 이곳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거지."
"예..."
"일단 거처부터 옮겨야겠군."
자리에서 일어난 최민준이 어두운 방안을 돌아다녔다.
"좋지 않아... 계획이 이런 식으로 자꾸 뒤틀려서는 안 돼."
"주의하겠습니다."
"이번에도 강현이 방해했다고?"
"예."
"한두 번도 아니고... 슬슬 정말 짜증이 나려고 해."
베이트 길드부터 던전 브레이크, 그리고 최근에 몬스터 파워까지.
모든 굵직한 사건들에 강현이 연관되어 있었다.
"강현을 처리해야겠다."
"하지만 최민준 님. 지금까지의 놈의 행적들을 보면... 정말 불사신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입니다."
"..."
"이번에도 상급 전투원 스물을 거의 혼자서 처리했습니다. 그런 놈을 어떻게…."
"강현이 최동우와 친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예?"
최민준의 입에서 갑자기 최동우가 나오자 여성이 당황했다.
"맞나?"
"예... 확실한 정보입니다."
"그럼 선연호를 이용하지."
"선연호를 말입니까?"
이미 강현과 한차례 접촉했던 선연호.
그는 현재 대한민국 능력자 연합에서 핵심 간부를 맡고 있었다.
비록 전투 요원은 아니었지만 최동우가 가장 신뢰하는 인물 중 하나일 정도로 그 중요도가 컸다.
"민준 님. 선연호를 고작 이런데 이용하기엔 아깝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그에게 들인 공이 적지 않습니다."
"아냐. 이제 굳이 능력자 연합을 망가뜨릴 이유가 없어졌어. 여기서 더 이상 묵혀 놓기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빼낸다."
"..."
"그 마지막 임무로 강현의 처리를 맡기지."
"알겠습니다."
65화 함정(2)
65. 함정(2)
강현. 신성아. 안유성.
이제 셋이 함께라면 D등급 던전은 무난하게 공략할 수 있었다.
"하아, 오랜만에 레벨업인데?"
때문에 상대적인 난이도 하락이 일어났다.
강현이 너무 성장이 더뎌진 것이 아닌가 고민하던 차에 마침내 레벨이 올랐다.
▫이름 : 강현
▫칭호 : 튜토리얼 졸업자 외 3개
▫레벨 : 60 new!
▫상세 능력치 :
·근력 29 (+4)(+2) new!
·순발력 28 (+3)
·체력 30 (+3)(+8) new!
·마력 30 (+3)(+4)
·추가 스텟 : -
▫고유 능력 : 부활
▫능력 : 중급 검술(D), 하급 방패술(E), 최하급 석궁술(F), 중급 체술(D), 최하급 둔기술(F), 마력감지(D), 독 내성(E)
▫스킬 : 분노의 사자후(C), 상급 육체 재생(A), 일도양단(D), 거인의 힘(B), 마력폭발(D), 웨인의 비기(C), 엔트리아의 외피(C)
상태창을 확인한 강현이 흐뭇하게 웃었다.
"레벨업도 했고, 스텟도 하나 올랐어."
하나의 레벨업.
거기에 더해 레벨업과 별개로 체력 스텟 또한 하나 상승했다.
"레벨업 없이 스텟이 오른 건 오랜만이네."
초기에는 지독한 운동으로 스텟을 올렸다.
그 후에는 '웨인의 비기'을 써서 육체를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방법으로 스텟을 올렸다.
그마저도 이제는 효과가 떨어진다 느끼던 차에 때마침 스텟이 올라간 것이었다.
"체술이랑 엔트리아의 외피 등급도 올랐고..."
스텟창을 살피던 강현의 입이 눈이 크게 뜨였다.
"이것도 올랐어?"
마침내 강현의 주력 스킬.
'웨인의 비기' 등급이 상승했다.
웨인의 비기(C)
능력 : 활성화 시 마력을 제외한 모든 스텟 60% 증가. 시간이 지날수록 육체가 붕괴된다.
설명 : 오직 전투만을 위해 살아오며, 전투에 목숨까지 바친 미치광이 웨인. 평생 동안 더욱 격렬한 전투를 추구하던 웨인은 마침내 자신의 육체마저 파괴하며 극한의 힘을 끌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언뜻 보면 기존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수치가 변화했다.
50% → 60%
고작 10%의 변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계산해보면 기존보다 스텟 총합이 무려 9 포인트나 증가한다.
그만큼 몸의 부담이 커질 수도 있지만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은지 오래였다.
"다들 수고했어."
"형도요."
"이제 돌아가야지. 재문이한테 밴 보내라고 해줘."
"알겠습니다."
신성아, 안유성과 함께 길드의 밴을 기다리던 도중이었다.
-우우우웅
갑작스럽게 울리는 전화.
스마트폰을 확인하자 모르는 번호가 화면에 떠있었다.
"여보세요?"
-강현 씨?
"예. 누구시죠?"
-저는 선연호라고 합니다.
처음 듣는 듯한 이름에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기억하지 못하시는군요.
"예?"
-능력자 연합 소속으로 강현 씨에게 영입을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아! 기억났습니다. 오랜만이네요."
강현은 몇 달 전 자신에게 영입을 제안했던 사내가 기억났다. 그리고 이제는 탈 일이 거의 없는 번틀리 2호.
그 구석에 처박아둔 명함 또한 어렴풋이 떠올랐다.
"깜빡했네요. 제가 그때 명함을 잃어버려서요. 하하!"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죠?"
-강현 씨를 뵙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무슨 일로요?"
-최동우 연합장님과 관련된 일입니다. 자세한 것은 기밀이라 만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연호의 말을 들은 강현이 고민에 빠졌다.
"동우 형님과 관련된 일이라... 지금 당장 만나야 하나요?"
-가능하면 오늘 만났으면 합니다.
"으음..."
-괜찮으시다면 지금 강현 씨가 계신 곳에 바로 차를 보내겠습니다. 때마침 저녁이니 식사나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떠십니까?
평소라면 단칼에 거절할 제안. 하지만 최동우와 관련되어 있다니 모른척하기 힘들었다.
"그러죠."
-감사합니다. 혹시 원하시는 식사 메뉴가 있으십니까?
"음, 소고기가 먹고 싶은데...
-최고로 모시겠습니다.
절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강현이 억지로 붙잡았다.
-지금 계신 곳을 말씀해 주시면 바로 모시러 가겠습니다.
"여기 D등급 던전 무너지는 성벽 앞이요."
-아, 때마침 저희 직원이 근처에 있네요. 5분 내로 도착할 겁니다.
"예."
통화를 종료한 강현이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길드장으로서 비즈니스가 생겨버렸네."
"그냥 소고기가 먹고 싶었던 것 아닙니까?"
"아냐. 난 그냥 동우 형님이 걱정돼서 그러지..."
의혹이 가득 담긴 신성아의 눈을 피해 강현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팔짱을 낀 채로 자신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안유성이 보였다.
"형."
"왜."
"형은 돈을 벌어도 왜 그렇게 사람이 없어 보여요?"
"뭐 인마?!"
"사실이 그렇잖아요."
"그게 사실이더라도 너 같은 다이아 수저 새끼한테 듣고 싶은 말은 아니야."
그렇게 강현은 한동안 흙수저의 비애에 대해 필사적으로 설명했다.
"강현 씨. 모시러 왔습니다."
그때 낯선 남녀가 강현에게 다가왔다.
"능력자 연합?"
"예. 선연호 이사관님께 모시겠습니다."
"이사관이라... 높은 건가?"
사회경험이 그리 길지 않은 강현에게는 익숙지 않은 직급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최동우 연합장님 바로 다음 정도입니다."
"그래요? 생각보다 거물이셨네. 어쨌든 가죠."
"예."
그들의 차에 올라타며 강현이 손을 흔들었다.
"먼저 들어가서 쉬어라. 나는 일 좀 보고 갈게."
"알겠습니다."
"형. 몸조심해요."
"어? 그래!"
강현이 탑승한 차는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갔다. 그것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신성아는 눈을 떼지 못했다.
"무슨 일 있어요?"
"예?"
"누나가 평소보다 심각한 표정인 것 같아서요. 원래도 심각하지만."
"아닙니다. 그저..."
"그저?"
"이유 없이 불안한 느낌이 드는군요."
불안하다는 신성아의 말에 안유성이 미소를 지었다.
"누나 은근히 감이 좋네요?"
"예?"
"아니에요. 푸하~ 피곤하다. 가죠."
한차례 기지개를 켜며 안유성이 화제를 돌렸다.
때마침 길드 밴이 도착하자 신성아는 별수 없이 차량에 탑승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녀의 불안감은 가실 줄 몰랐다.
**
"가게가 상당히 외진 곳에 있네요?"
"예. 아무래도 이야기할 사안의 중요도가 있다 보니."
도심을 벗어난 서울 근교에는 의외로 조용한 곳이 많다.
선연호가 안내한 장소도 그러한 곳에 자리 잡은 조용한 한우 전문점이었다.
"고기만큼은 일품인 곳입니다. 제가 중요한 만남이 있을 때마다 항상 이용하는 곳이니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선연호가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선연호 씨. 뭐 하나만 물어볼게요."
"예. 말씀하시죠."
"능력자 연합에서 꽤나 높은 위치에 있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갑작스러운 강현의 질문에 선연호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맞습니다. 항상 최동우 님의 최측근에서 일하고 있죠."
"그런데 전투에서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것 같아서요."
"아, 그건 제가 사무직이라 그렇습니다."
"사무직?"
"예. 저도 능력자이지만 살생을 한다는 것이 께름칙해서요. 지금 레벨도 고작 3입니다."
"그렇군요..."
선연호의 대답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저를 보자고 한 용건은 뭐죠?"
"일단은 고기가 나왔으니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하는 게 어떻습니까? 이제 막 던전을 나오셔서 배도 고프실 것 같은데."
때마침 테이블 위로 새하얀 접시가 올려졌다. 그 위에는 선홍빛 소고기들이 부위별로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다.
"그게 좋을 것 같네요."
강현이 생각하는 소고기의 최대 장점은 속도이다. 오랜 시간을 익혀야 하는 돼지고기에 비해 소고기는 생으로 먹기도 하며, 취향에 따라 아주 조금만 익혀서 먹어도 무방하다.
"후루루룹!"
턱의 근육이 몇 번 움직일 때마다 오만 원이 사라졌다.
"고기는 마음에 드십니까?"
"예. 최근 다녀본 곳 중에 제일 좋네요."
"그거 정말 다행입니다."
"선연호 씨는 안 먹어요?"
"저도 먹고 있습니다. 하하."
미소를 짓는 입가와 달리 선연호의 눈은 날카롭게 빛났다.
'슬슬 반응이 올 때가 됐는데.'
강현이 마시는 물, 수저, 그 외에 그릇까지. 모든 곳에 독을 발라둔 상태이다.
단숨에 치명적인 효과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 강현이 독을 눈치채고 도망쳐서는 곤란했기 때문이다.
'서서히... 아주 천천히 죽여주지.'
몸의 신경들이 하나 둘 끊어지고,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는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헐떡이다가 전신이 마비되며 죽어라.'
때마침 선연호가 기다리던 반응이 왔다.
-쨍그랑!
음료를 들이켜던 강현이 들고 있던 컵을 바닥에 떨어뜨린 것이다.
"어..? 이거 왜 이래?"
강현이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선연호 씨..?"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그저 인류의 생존에 네가 방해됐을 뿐이야."
"개, 개소리야... 시발..."
몸을 부들부들 떨던 강현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털썩
그러나 금세 힘이 풀렸는지 다시 주저앉으며 테이블에 엎어졌다.
"조용히 인류를 위해 죽어라."
그 모습을 보며 선연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강현에게 다가가는 그의 손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마지막 배려로 고통 없이 보내주지."
변화를 끝낸 선연호의 손은 하나의 검과 같았다. 날카롭게 모아진 손끝이 강현의 목을 향해 쏘아졌다.
**
처음 고깃집에 들어선 순간.
강현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것들 왜 죄다 능력자야?'
카운터를 보는 직원.
서빙을 하는 종업원.
주방의 요리사.
심지어 다른 테이블의 손님까지.
하지만 이보다도 더욱 이상한 것은 선연호의 거짓말이었다.
'레벨이 3이라고?'
3 레벨이면 경우에 따라 웬만한 일반인보다 약한 경우가 허다했다.
타고나는 마력의 편차가 매우 심하기 때문이다.
'못해도 50은 돼 보이는데 어디서 개수작이야?'
눈앞에 선연호는 이들 중 가장 강한 마력을 품고 있었다.
'일단 장단에 맞춰서 놀아주지.'
마력을 느낄 수 있다는 사람은 아직 자신밖에 보지 못했다. 때문에 선연호도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고기가 맛있네요? 쩝쩝."
"마음에 드시다니 다행입니다."
그러나 한참이 자나도 아무런 일이 없었다.
가게는 평범하게 운영되었으며 먼저 온 손님들은 태연하게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가기까지 했다.
'내가 과민반응한 건가..?'
순간 강현의 마력이 날뛰기 시작했다.
'이게 왜이래?'
강현의 마력은 항상 육체를 재생하기 위해 움직인다. 그것은 상처를 입으면 더욱 가속화된다.
'아무런 상처도, 고통도 없다. 그런데 왜 마력이 날뛰는 거야?'
의문만이 쌓여가던 그때 강현이 이상을 감지했다.
'잠깐... 내 손이 왜 이렇게 느리지?'
신체부터 감각기관까지.
모든 것들이 점차 느려지고 있었다.
'지금 막 던전에서 나와서 피로 때문에 그런 줄 알았더니... 이딴 개수작을 벌여?'
머리가 멍했다.
-치이이이
불판에서 고기가 익는 소리만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호흡 주기도 알게 모르게 짧아지고 있어. 이 새끼 이거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마 자신이 '상급 육체 재생'과 '독 내성' 을 지니고 있지 않았더라면 진작 바닥을 뒹굴었을 것이다.
'동우 형님이 지시한 일인가? 왜? 아니면 정부에서? 이제 와서 나를?'
아무리 고민해도 배경을 짐작하기 힘들었다.
'일단 조져놓고 물어볼 수밖에 없겠네.'
음료가 든 잔을 집어 든 강현이 천천히 손에 힘을 풀었다.
-쨍그랑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난 선연호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 배려로 고통 없이 보내주지."
무언가 강력한 마력 변화가 일어나고, 자신에게 팔이 휘둘러지는 것을 본 순간.
-터억!
잽싸게 선연호의 손을 붙잡혔다.
"살생을 한다는 것이 께름칙해서요?"
"무슨..?!"
"지랄 좀 작작해라!"
66화 함정(3)
66. 함정(3)
"군이 나서야 할 때입니다!"
별들의 향연이었다.
거대한 테이블에 앉아있는 자들 모두가 장성이다.
"특수 능력자 관리팀은 이런 상황을 위해 조직된 곳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신태길이 태연하게 별들을 바라봤다.
"그깟 능력자들이 모여서 뭐가 된다는 건가?"
"그깟 능력자들이 초인적인 힘으로 괴수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어차피 총알 한방이면 다 쓰러질 놈들이야."
"맞아! 군대 앞에서는 능력자가 무슨 별거입니까!?"
회의실의 열기는 뜨거웠다.
논제는 하나.
'몬스터 파워' 유포자의 본거지를 누가 공격하는 것이었다.
"놈들은 지금까지의 능력자들과 차원이 다른 수준입니다. 군이 나서서 해결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럼 자네가 담당하는 그 특수 능력자란 자들이 나서면 해결된다는 보장이 있나?"
"없습니다."
"지금 장난해?!"
"하지만 군이 나서는 것보다 높은 확률로, 더 적은 피해로 적들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한창 토론이 벌어지던 도중 상석에 위치한 자가 손을 들었다.
"그만."
"하지만 대통령님! 지금은 계엄 상황입니다. 전시나 마찬가지인 상황에…."
"알겠네. 알겠으니 그만하게."
대통령 한승훈의 말에 모두가 입을 닫았다.
'하아, 골치 아프구먼.'
단순히 능력자와 군의 알력 다툼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정부.
특수 능력자 관리팀.
세계 던전 관리 기구.
흔히 '던전 관리 기구'라 부르는 것은 대한민국에 속한 조직이 아닌 세계적인 조직이었다.
한국에 있는 것은 그저 하나의 지부였을 뿐이다.
그에 반해 특수 능력자 관리팀은 대통령의 직속 조직이다.
'던전 관리 기구는 방관자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군은 점점 입지를 잃어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신태길은 대통령 한승훈과 뜻이 같으면서도, 진실 되게 국가와 능력자를 생각하는 인재다.
"이번에는 군이 나서는 게 맞는 것 같네."
대통령 한승훈은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변화하는 세계에 맞춰 발 빠르게 대응했고, 능력자의 중요성 또한 일찍이 깨닫고 있었다.
'지금은 이게 옳은 판단이야.'
하지만 아직 능력자들의 힘은 그리 강하지 않다. 아무리 강한 능력자라도 머리에 총알이 박히면 죽는다.
"이번에야 말로 완벽하게 그 일당들을 처리해야 하네. 더 이상 사회를 불안에 빠뜨릴 수는 없어."
"예."
"그리고... 꼭 생포해야 하네."
한 시간 가량 이어졌던 회의는 그렇게 끝이 났다.
**
어두컴컴한 새벽 3시.
모두가 잠든 시각에 바삐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다.
"돌격팀. 내부강습 준비."
이들은 바로 작전을 맡은 특수부대. 상관의 명령에 그들이 진형을 갖췄다.
-팅!
작은 소음과 함께 건물 내부로 향하는 문이 열리고, 동시에 대원들이 진입했다.
"이상 무."
"이상 무."
각자가 정해진 방향을 수색하고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대원들이 보고했다.
"돌격 분대 보고."
-치익, 돌격 2 진입 완료.
-돌격 3 진입 완료.
총 세 방향에서 진입한 돌격조.
그들 모두 건물에 들어섰다.
1층 점거를 완료한 대장이 무전을 켰다.
"엄호조 보고."
-건물 옥상 점거 완료.
"저격조 보고."
-특이사항 없음.
"여전히 건물 내부는 보이지 않나?"
-식별되는 적, 없다고 알림.
모든 분대의 보고를 들은 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말하지만, 사살은 최소한으로. 특히, 최민준이라는 남자는 반드시 생포하라는 명령이다."
-입감.
"돌격팀 기동."
대원들의 움직임은 은밀하면서도 기민했다.
오랫동안 혹독한 훈련을 받은 정예 중의 정예이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척, 척!
건물 내부로 들어선 그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모든 의사소통을 간결한 수신호로 나누고, 한 치의 낭비도 없는 움직임으로 나아갔다.
'이상해...'
빠르게 건물 내부를 점거하고 있었지만 대장의 표정은 어두웠다.
'분명 목표는 이 안에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아무런 교전 보고가 없었다.
건물 전체가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
그때 앞에서 이동하던 대원이 정지 신호를 보냈다.
-전방에 신원 미상의 남성 발견. 가면을 착용 중이다.
헬멧을 통해 흘러나온 대원을 목소리에 모두가 몸을 긴장시켰다.
-이런, 위치 발각!
"제압해!"
대장의 외침과 동시에 대원들이 뛰쳐나갔다.
"엎드려! 손 머리!"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대원들이 남자를 둘러쌌다. 그러나 남자는 총구가 코앞에 들이밀어져 있음에도 태연한 모습이었다.
"이제껏 기다렸더니 겨우 이런 놈들인가?"
"무릎 꿇어!"
"싫다면?"
"시간이 없다. 빠르게 제압하고 이동한다."
대장의 명령에 대원들이 남자에게 접근했다.
아니, 접근하려 했다.
"어...?"
"대장님. 몸이... 몸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온몸에 힘을 주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모든 대원들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투두두두!
-콰앙
동시에 건물 전체에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시작된 건가."
조용히 중얼거리는 남자.
대장은 도대체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이냐!'
대장 자신도 무려 40 레벨에 이르는 고위 능력자였다.
하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여러 명을 완벽하게 제압하는 스킬 따위, 들어보지도 못했다.
"너... 정체가 뭐냐..?"
남자는 대장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을 지나쳐 걸어갈 뿐이었다.
"이 새끼가! 무시하는 거냐!"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이렇게 만만히 보고 있을 줄이야. 생각도 하지 못했어."
긴장한 대장이 소리쳤지만 남자는 저 혼자 무언가를 중얼거릴 뿐이었다.
"끄윽, 끅!"
"끄으으."
붙잡힌 대원들이 갑자기 신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운 얼굴을 한 대원들.
-퍼억! 퍽!
그들의 목이 하나하나 차례대로 터져나갔다.
'말도 안 돼..,'
지금까지 저 남자가 한 일이라고는 그저 조용히 걸은 것뿐이다.
그런데 전원이 능력자로 이루어진 최고의 정예들이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죽어나가고 있다.
"끄으으..."
생각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금세 자신의 차례가 온 것이다.
엄청난 압력에 목이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이렇게 죽을 수는…'
**
"상황은?"
"지금 막 돌격조 전원 진입 완료했습니다."
"좋아."
지휘를 총괄하는 인문수 소장.
그는 현재 지휘통제실에서 실시간으로 대원들을 모니터하고 있었다.
"동이 트기 전에 작전을 끝낸다."
"예."
그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능력자? 웃기는군. 사회 부적응자 혹은 사이코 패스라 불리는 게 더 어울려.'
그는 능력자들을 혐오했다.
본인은 인정하지 않지만 열등감 때문이었다.
'그깟 튜토리얼? 괴물 좀 잡는 게 무슨 대수라고 말이야.'
이런 시기일수록 군이 강해져야 한다.
대통령이 계속해서 능력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것은 사회의 암 덩어리를 키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번 일로 좀 깨닫는 게 있겠지."
"예?"
"아닐세. 지금 상황은?"
"순조롭게 건물 내부로 진입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적을 발견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으음."
사전에 건물 내부에 사람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사이 감시를 뚫고 도망쳤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외부로 향하는 비밀 통로라도 있는 건가..."
"건물 설계상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문수 소장이 생각에 잠겨들던 때였다.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장님. 적입니다!"
"어디야?"
"돌격 1조입니다."
"카메라 돌려."
소장의 지시에 모니터 화면이 1조가 착용 중인 카메라로 옮겨졌다. 그러자 정체불명의 남자가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제압해!
외침과 동시에 뛰쳐나간 대원들은 순식간에 남자를 포위했다. 그러나 그 뒤로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뭐하는 거야? 얼른 제압하고 움직이라 해."
"이미 했습니다. 그런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답니다..."
"뭐?"
황당한 대답에 소장이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곳곳에서 총성이 들려왔다.
-치익, 여기는 돌격 3조 지원을... 으아아!
-여기는 엄호조, 기습이다!
-살려줘어!
사방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모든 카메라, 스피커들이 정신없이 날뛰었다.
"무슨 일이야?!"
"1팀 연결 끊어졌습니다!"
"2팀 당했습니다."
"3팀 마찬가…"
순식간에 모든 돌격팀과의 연결이 끊어졌다.
"젠장! 지원팀 추가 투입해!"
"예."
지원팀은 만일은 대비해 건물 밖을 포위하고 있던 대원들이었다.
"저격조는 앞으로 움직이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사살한다."
"하지만 소장님. 민간인일 수도..."
"지금은 전시야! 그냥 쏘라고!"
"알겠습니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었다.
소장이 밀려오는 불안에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우리는 철수한다."
"예?"
갑작스러운 명령에 부하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철수한다고! 뭔가 잘못됐어. 지금이라도 발을 빼야 해."
소장의 감은 꽤나 정확한 편이었다.
오랜 시간에 군에 있으면서 그의 육감 덕분에 위기를 벗어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당장 차량 준비시켜!"
임시 지휘소는 현장과 그리 멀지 않았다.
능력자들의 초인적인 이동 속도를 생각하면 금방 이곳에 도달할게 분명했다.
"소장님!"
"또 뭐야!?"
그때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인문수 소장의 고개가 신경질적으로 돌아갔다.
"지원팀과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뭐...?"
"소장님! 저격조도 통신 두절입니다."
보고를 듣는 그의 머리가 새하얗게 타들어갔다.
'젠장, 젠장! 무슨 일이냐고!'
단숨에 모든 대원들과의 통신이 끊어졌다.
무려 30명이 넘는 특수부대.
그들 하나하나가 실전을 경험한 베테랑들이었다.
'당장 이곳을 떠야 한다.'
갈 곳 잃은 그의 눈이 세차게 떨렸다.
소장의 눈과 마주친 부하들 또한 공포에 물든 눈을 하고 있었다.
"움직여! 철수한다!"
작전.
전우의 안위.
모든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숨이었다.
"출발해."
소장은 가장 먼저 지휘통제실을 벗어났다. 경호를 담당하는 특수 임무대와 운전수만 대동한 채였다.
부하들은 아직 장비를 정리하고 있었지만 그들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우우우우웅
소장이 차량에 탑승하자 운전수가 힘껏 액셀을 밟았다. 그러나 거친 엔진음만 들릴 뿐 차량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장님. 차량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보고와 동시에 멀리서 폭음이 들려왔다.
"뭐야?"
"검문소 방향입니다!"
"버, 벌써 거기까지 뚫렸다고?"
두려움에 빠진 소장이 양 손을 벌벌 떨었다.
"내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는데 죽으라고?! 씨발, 안 돼!"
분명 놈들도 검문소를 뚫고 지휘소를 정리하는데 시간이 제법 걸릴 것이다.
그사이 이곳에서 도망쳐야 한다.
"걸어서 움직인다!"
다급히 차량에서 내린 소장이 권총을 꺼내 들었다.
"다들 따라와!"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소장.
그는 마지막으로 전력으로 달린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허억, 허억!"
하지만 살고자 하는 의지는 고도 비만에 달하는 그의 몸도 잽싸게 만들었다.
"어딜 가는 거지?"
그럼에도 추악한 도피는 채 열 걸음도 넘기지 못했다.
"네가 지휘관인가."
어느새 낯선 남자가 소장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는...!"
인문수 소장은 그를 알아봤다.
가면을 쓴 남자.
불과 몇 분 전에 그가 활약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봤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역시 너희들은, 세상은 썩었어."
말을 하며 남자가 가면을 벗었다.
"후우, 조금 살 것 같군."
소장은 한눈에 그를 알아봤다.
창백한 피부에 날카로운 눈매.
큰 키에 마른 몸을 지닌 남자.
"최민준!"
남자는 바로 적들의 수괴, 최민준이었다. 사전에 보고받은 인상착의와 정확히 일치했다.
"사살해!"
최민준은 생포해야 할 1순위 목표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
"뭐해! 사살하라고 총을 쏘란 말이야!"
"소장님... 몸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운전수와 특수 임무대.
모두가 마네킹처럼 그 자리에 고정된 채로 멈춰있었다.
"으아아아!"
완전히 패닉에 빠진 소장이 권총을 난사했다.
-탕, 탕, 탕!
그러나 모든 총알은 최민준의 앞에 나타난 무형의 막에 의해 튕겨나갔다.
"부하들을 버리고 도망치다니, 쓰레기 같은 놈이야.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이 사회가 썩어가고 결국은 공멸의 길로 들어서겠지."
그를 보며 소장은 도망치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끄으윽, 끅!"
옆에 서있는 부하들이 숨이 막힌 채로 괴로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발, 제발 살려줘!"
무언가가 몸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아나콘다가 몸을 휘감고 있는 듯한 느낌.
두려움에 빠진 소장의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갔다.
"살려주게... 부탁이야..."
"마지막까지 추악하군. 죽어라."
"아, 안…"
-퍼엉!
무언가를 말하려던 소장의 머리가 단번에 터져나갔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최민준은 한동안 피로 얼룩진 흙바닥을 바라봤다.
그 눈은 기괴한 광기로 일렁이고 있었다.
67화 함정(4) 20.01.21
67. 함정(4)
침묵에 휩싸인 회의실.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다시 말해 보게."
한승훈 대통령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보고를 하던 대령은 떨리는 목을 가다듬었다.
"현재 투입된 대원 전원과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소장은?"
"마찬가지입니다."
"하아..."
단숨에 50명이 넘는 정예들이 죽어 나갔다.
심지어 보고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손쓰기 힘들 정도로 상황이 급박했다는 것이리라.
"아직 모르는 일입니다. 놈들이 전파를 방해하는 장비를 사용했더라면…."
"아니야. 그만하게."
한승훈 대통령이 어떻게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려 하는 장성의 말을 잘라냈다.
"신태길 팀장."
"예."
"특수 능력자 관리팀은 움직일 수 있나?"
"그것이..."
대답을 하는 신태길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도대체 뭣들 하는 거야?!'
사실 신태길은 처음부터 군이 실패하리라 판단했다.
때문에 한세연, 최동우, 강현을 비롯한 능력자들에게 연락을 돌린 상태였다.
'제발 전화 좀 받아라!'
한세연은 무작정 나올 수 없다고 한다.
최동우는 던전에 들어가 있다.
다른 능력자들은 이 일을 맡기기에는 역부족이다.
유일한 희망이라고는 강현뿐인데, 그는 몇 번을 통화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강현 길드장님은 던전 클리어 후에 능력자 연합의 간부와 저녁 식사 중이십니다.
다급히 한재문에게 전화를 했지만, 그도 강현의 정확한 소재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대통령님. 죄송하지만 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습니다."
"여의치 않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지금 능력자들과의 연락이..."
그때였다.
-우우웅
신태길의 스마트 폰이 진동을 토해냈다.
"이보게 중요한 회의 중에 뭐하는 건가?!"
"저 친구 저거. 기본이 안 돼 있구먼!"
이때다 싶은 군의 장성들이 한두 마디씩 던지며 신태길을 물어뜯었다.
[썅놈]
그러나 액정에 뜬 이름을 본 신태길은 그러한 반응을 무시하고 벌떡 일어났다.
"왔다!"
"뭐가 왔다는 건가?"
"대통령님. 지금 능력자와 연락이 됐습니다. 죄송하지만 전화 한 통만 하겠습니다."
"허허, 그러게."
한승훈의 허락이 떨어지자 신태길이 잽싸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강현 씨! 뭐하다가 이제야 전화를 받는 겁니까?!"
-바빴어요. 그런데 원래 그렇게 집착이 심해요? 무슨 부재중이 열 통이 넘어.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닙니다. 강현 씨. 긴급 상황입니다."
신태길의 말에 강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나도 방금 전까지 존나게 긴급했거든요?
**
강현은 자신의 목으로 날아오는 선연호의 팔을 잽싸게 붙잡았다.
"살생을 한다는 것이 께름칙해서요?"
"무슨..?!"
"지랄 좀 작작 해라!"
동시에 선연호의 비어있는 복부로 주먹을 내질렀다.
"쿠헉!"
"안면 마사지 들어간다. 준비해!"
복부를 맞아 허리를 숙이고 있던 선연호.
강현은 그의 뒤통수를 붙잡고는 그대로 뜨거운 숯을 향해 내리꽂았다.
"마력폭발."
-콰아앙!
그리고 터져 나온 마력폭발.
강력한 폭발력에 단숨에 불길이 피어오르며 허공으로 재가 날아올랐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3초가 되지 않았다.
"젠장! 전부 공격해!"
그 모습을 본 종업원들이 다급히 무기를 꺼내 들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들어와 새끼들아!"
[분노의 사자후가 발동됩니다]
[모든 적들의 사기와 능력치가 감소했습니다]
'분노의 사자후'를 사용한 강현이 모든 버프 스킬을 활성화했다.
"좋았어."
레벨 업으로 컨디션은 최상이다.
독으로 인해 조금 몸이 둔해진 것이 느껴지긴 했으나, 놈들에게서 느껴지는 마력 수준을 생각하면 충분히 싸울 만하다 여겨졌다.
-우우우웅
그때,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의 진동이 느껴졌다.
"바빠 죽겠는데 누구야?"
-채앵!
날아오는 검을 힘껏 쳐내자 버티지 못한 상대의 손아귀가 찢겨 나갔다.
한순간에 무기를 잃고 허망한 표정을 짓는 놈.
강현은 일도양단을 사용해 놈의 목을 날려버리고는 적들을 향해 달려갔다.
-챙, 콰당!
"으아악!"
강현의 예상대로 적들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아니, 충분히 강한 능력자들이었지만 강현에게는 역부족이었다.
-퍽!
미처 파악하지 못한 사각에서 날아온 검격이 강현의 어깨를 내려쳤다.
분명 맨살에 가해진 공격이었지만 강현의 어깨엔 생채기가 생길 뿐이었다.
'웨인의 비기. 고작 한 등급 상승이지만... 전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야.'
무려 60에 달하는 체력 스텟.
이제 어지간한 날붙이로는 강현의 몸을 꿰뚫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이 자식! 뭐하는 괴물이야?!"
"크아아!"
예상보다 훨씬 강한 강현의 무력에 놈들이 당황하던 때였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선연호가 괴성을 내질렀다.
"뭐야? 안 죽었어?"
강현을 바라보는 선연호의 몸은 더 이상 인간의 그것이 아니었다.
기이한 빛깔을 띠는 그의 피부는 강철처럼 단단해 보였고 온몸에는 칼날 같은 날붙이가 드러나 있었다.
"너희들. 약쟁이였냐?"
"전원 각성상태로 돌입한다."
선연호의 목소리는 그 외형처럼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러나 기존의 몬스터 파워 복용자들과는 다르게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크륵, 크윽!"
"크아아!"
다른 적들 또한 괴성을 내지르며 하나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강현이 재빨리 달려나갔다.
"변신 시간을 주는 건 병신이지!"
놈들의 숫자는 20명 가량.
기존에 안유성과 함께 싸웠던 놈들의 숫자가 10명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굉장한 위기였다.
'그때보다 강해졌다고 했지만 혼자서 이 정도 인원을 상대하는 건 무리야. 최대한 숫자를 줄인다!'
아직 변신이 끝나지 않은 놈에게 도달한 강현이 힘껏 빌게인의 장검을 휘둘렀다.
"응..?"
그러나 원래라면 단숨에 놈의 몸을 두 동강 냈어야 할 검이 놈의 뼈에 걸려 멈춰 섰다.
"크윽, 죽어라."
강현이 당황해서 생긴 틈.
놈은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놈이 뻗은 발이 옆구리를 강타하자, 강현이 빠르게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쓰으읍... 아픈데?"
놈들의 근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강현보다는 낮았지만, 다른 최상위권의 능력자들은 상회하는 듯했다.
-우우웅
그때 또다시 스마트 폰이 울렸다.
"이거 잘못하면 부서지겠네."
격해지는 싸움에 혹여나 부서질 것을 염려한 강현이 스마트 폰을 미끄러지듯 멀리 집어던졌다.
"하나만 묻지."
"뭔데?"
본격적인 싸움을 준비하려는 찰나 선연호가 말을 걸어왔다.
"우리에게 협력할 생각이 아직도 없나?"
"너희가 뭔 줄 알고 협력을 해."
"우리는 너희가 아는 것처럼 단순한 테러 집단이 아니다."
"하는 짓거리가 단순한 테러 집단 맞구만."
"그 모든 것이 인류를 위해서다."
"뭐?"
뜬금없는 인류애의 고백에 강현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이대로 가면 인류가 얼마나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3년? 4년?"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길어도 3년 안에 무너지는 국가들이 나오기 시작할 거다. 버텨낸다고 해도 문제지. 5년을 견뎌내면 이 혼란이 끝나리라 생각하나?"
"..."
짐승의 목소리처럼 울리는 선연호의 목소리는 대사의 음험함을 더해주었다.
"5년 후에 세계는 반드시 멸망한다."
선연호의 말을 들은 강현은 예전에 단군의 한세연이 한 말이 떠올랐다.
-저는 5년 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3년. 그 안에 존립의 위기에 처하는 국가들이 나오기 시작할 겁니다.
이 둘의 어떤 정보를 토대로 이런 결론을 냈는지는 강현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허무맹랑한 근거를 가지고 말을 하는 것을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래서라니? 이대로라면 전 세계가 멸망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걸 막겠다는 새끼들이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키고, 이상한 약을 퍼뜨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너도 우리 조직에 들어온다면 이해할 거다. 그리고 강력한 힘 또한 손에 넣겠지."
선연호는 강현에게 힘을 과시하려는 듯 바닥에 떨어진 검을 집어 들었다.
-채애앵!
선연호의 손안에서 검날이 조각조각 나뉘며 바닥에 흩어졌다.
강현은 제법 오래전부터 했던 묘기지만 다른 능력자의 손에서 펼쳐지니 제법 신선했다.
"이건 어린애 장난에 불과하다."
"확실히 그러네."
강현의 삐딱한 대답에 선연호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네놈... 끝까지 진지하게 들으려 하지 않는구나!"
"너 같으면 괴물 새끼가 하는 말을 진지하게 듣겠냐?"
"이 약은 인류를 위한 수많은 희생으로 이뤄낸 것이다! 마침내 우리가 그 결과물! 그런 우리는 인류를 위해 희생하는 성자들이란 말이다!"
"미친놈."
기존의 약 부작용처럼 완전히 이지를 상실한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작용이 전혀 없지는 않은 듯 선연호는 흥분한 채로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있었다.
"인류를 위해, 인류를 위해, 인류를 위해! 이 모든 것은 인류를 위한 것이란 말이다!"
점차 광기에 젖어가던 선연호는 이제 완전히 미친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 너도 인류를 위해 죽어라..."
눈이 뒤집힌 채로 중얼거리는 선연호를 보며 강현이 씨익 웃었다.
"주둥이로 죽일래? 빨리 들어오기나 해. 새꺄."
"크와아아아!"
**
강현의 전투에 대한 재능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둔재.
천성적으로 약골이었던 강현이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이유는 노력과 경험, 그리고 수많은 죽음 통해 이뤄왔던 각성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과 가깝게 지내며 강현의 정신은 점차 삐뚤어졌고, 거칠어졌으며,
"곱게 뒤져 새끼야!"
한 마리의 짐승처럼 변해갔다.
-푸아악!
강현이 남자의 팔을 붙잡고는 힘껏 비틀어 뽑아냈다.
단숨에 남자의 어깨가 찢겨 나가고, 허공으로 보라색 피의 분수 쇼가 펼쳐졌다.
"크아아악!"
괴로워하는 남자를 뒤로한 채, 강현은 뽑아 든 팔을 전력으로 휘둘렀다.
-우지끈!
동료의 팔에 얼굴을 얻어맞은 여성의 목에서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여성은 곧장 팔을 들더니 자신의 턱을 돌려 뼈를 제자리에 끼워 맞추었다.
"하아, 하아..."
지금까지 자신을 상대한 적들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강현은 좀비 군단과 싸우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아주 빠르고, 강력하며, 단단한 좀비들을.
'젠장, 마력이 떨어지기 시작했어.'
놈들의 단단한 신체에는 빌게인의 장검이 잘 들지 않았다.
심지어 상처를 내더라도 단숨에 회복해 버리는 상황.
결국, 강현은 검을 버리고 육탄전으로 신체를 찢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냥 좀 죽어라. 제발!"
"케아아악!"
그 싸움은 더없이 치열했으며, 추했다.
서로의 방어력이 공격력보다 비정상적으로 강하니, 결노릴 수 있는 것은 신체의 급소 같은 연약한 부위뿐이었다.
"꺄악!"
방금 막 뼈를 끼워 맞춘 여성.
강현이 그녀의 턱을 다시 후려치자 고개가 180도로 완전히 돌아갔다.
그런 여성을 차서 날려버린 강현에게 다른 남자가 달려들었다.
칼날처럼 변한 팔을 빠르게 휘둘러 오는 공격.
강현은 자세를 낮춰 공격을 피하고는 남자의 국부를 붙잡았다.
"아, 안 돼!"
"마력 폭발!"
그것이 남자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남성성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장면에 모든 이들이 주춤했다.
"나도.. 나도 씨발!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고! 근데 어쩔 수가 없어."
그만큼 강현의 상태가 심각했다.
이제 놈들을 아홉밖에 처리하지 못한 상황.
비록 놈들 모두가 상처 입고 지친 상태라 하더라도 그건 강현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마력이 바닥나면 그때부터는 '상급 육체 회복'을 사용할 수 없고, 자연스럽게 '웨인의 비기'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진짜 끝이야.'
그런 강현의 상태를 알기나 한 것처럼 놈들이 다시금 공격을 시작했다.
'생각해라 생각! 이대로면 진짜 죽는다.'
광전사를 사용하기에는 불안하다.
이놈들 뒤에 어떤 적들이 있을지 모르고, 광전사의 시간이 끝나고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
우르그의 거대 망치를 꺼낸다고 해도 재빠른 놈들에게 닿을 수조차 없을 것이다.
-쾅, 쾅, 콰앙!
살가죽이 부딪쳐서 나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굉음이 울렸다.
초당 수십 개의 검과 주먹이 날아오는 상황에 강현의 몸에 상처들이 끊임없이 생기고 치유되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점차 치유되는 것보다 상처가 생기는 속도가 빨라지고, 피해가 누적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광전사를 써야 하나?'
이대로 멍청하게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몇 놈이라도 더 데리고 떠나는 것이 나아 보였다.
'젠장, 그런데 빌게인의 장검이 없잖아?!'
검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빌게인의 장검은 전투 도중 놈들에게 던져 버렸던 것이다.
'저기다.'
놈들의 뒤쪽에 떨어져 있는 붉은 장검이 보였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놈들은 강현을 거세게 압박하고 있었다.
"쿨럭!"
순간 집중력이 흩뜨려진 탓일까.
선연호의 손날이 강현의 배에 적중했다.
그 공격은 단숨에 강현의 스킬과 피부를 뚫고 배에 틀어박혔다.
"질긴 놈. 이제 끝이다."
"시벌... 다음에는 꼭 인벤토리에 넣어 놔야지..."
"다음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
미소를 지은 선연호가 강현의 목을 향해 팔을 휘두를 때였다.
-쐐애액!
어디선가 날아온 푸른빛이 선연호의 관자놀이에 틀어박혔다.
"커헉!"
화살에 맞은 선연호가 엄청난 속도로 바닥에 처박혔다.
그 모습을 본 강현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웃음을 토해냈다.
"죽으란 법은 없네... 하하!"
68화 치욕적인 패배
68. 치욕적인 패배
"길드장님을 구해라!"
"와아아!"
"박세현 님의 원수들! 죽어라!"
강현이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봤다. 그러자 보이는 길드원들.
배데스 길드원 전원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적들의 얼굴에 당혹이 떠올랐다.
"크으으..."
두개골이 훤히 보일만큼 살이 파인 선연호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뭣들 하는 거야? 전부 죽여 버려!"
저런 쭉정이 몇이 달려든다고 상황이 바뀔 거라 생각지는 않았다.
혹여, 바뀐다 해도 상관없었다.
선택은 같을 것이다.
도망칠 수는 없다.
임무를 실패할 바엔 죽는 것이 나았다.
"하나하나가 나라고 생각하고 상대해!"
강현도 길드원들에게 경고하며 선연호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아!"
상황은 순식간에 난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강현의 걱정과 달리 길드원들은 꽤나 선전하고 있었다.
그동안 강현을 상대로 대련을 해온 것이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현재 적들은 강현과 같은 무투파. 아니,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한 육체파다.
"공격을 막은 후에는 바로 빠져!"
강현을 상대로 신물 나게 싸워온 이들이었기에 강현보다 신체 능력이 약한 적들은 비교적 손쉬운 상대처럼 느껴졌다.
"이것들은 뭐야? 새로운 손맛인데?! 하하하!"
안유성은 여전했고,
-피슉, 피슉
"크륵!"
신성아는 언제나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투를 조율했다.
"허, 참..."
평소와 같은 모습이 펼쳐지자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튜토리얼을 통과한 후, 항상 혼자라고 생각해왔던 강현.
그는 언제부터인가 자신도 모르게 이들을 의지하고 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 얘들아 얼른 끝내고 소고기 회식 한번 하자!"
**
전투는 일방적으로 끝이 났다.
그렇지 않아도 지쳐있던 놈들은 강현이 직접 교육한 길드원들과 안유성을 당해낼 수 없었다.
-네놈들은 반드시 후회할 거다. 우리는 인류의 수호자인 것을..!
-수호자 길드 출신 앞에서 무슨 개소리야?
선연호는 마지막까지 통탄했다.
괴성을 내지르며 발악하던 그는 결국 머리가 곤죽이 되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어째 갈수록 하루하루가 힘들다."
"원래 인생이 그렇습니다."
"쳇, 아는 척은..."
강현의 말에 신성아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보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이런 소란을 냈는데 모르는 게 더 힘들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겠네."
하지만 이곳에서 길드 사무실까지의 거리는 제법 된다.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왔다 해도 시간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 해도 너무 빨리 온 거 아냐? 게다가 길드원들까지 데리고."
"사실 안유성 씨가 미리 말을 해줬습니다."
"어? 뭐라고?"
"강현 님이 위험할 거라고요."
신성아의 말에 강현이 안유성을 쳐다봤다.
"저는 그냥 누나가 불안하다고 하기에 감이 좋다고 말한 게 다예요. 길드원들 전부 끌고 여기까지 온건 누나가 한 거죠."
잘은 모르겠지만 신성아, 안유성의 도움으로 이들이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리라.
"고맙다. 너희들 전부."
강현은 새삼 코끝이 찡해졌다.
그저 콩가루 집단. 서로 이익을 위한 조직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을 위해 한달음에 뛰어오는 믿음직한 동료였다.
"내가 미안해. 너희들이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줄은 몰랐어. 앞으로 잘해보자 우리."
강현이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콧잔등을 슥슥 문질렀다.
"우엑. 형 극혐이네요."
"강현 님. 머리를 다치신 겁니까?"
"..."
항상 그렇듯 화목한 분위기는 10초를 넘기지 못했다.
"됐다... 됐어. 시발."
"..."
"뭘 쳐다봐!?"
심지어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길드원들 조차 대놓고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강현은 문득 전화가 왔던 것이 떠올렸다.
"핸드폰이 어디 있더라."
다행히 스마트 폰은 무사했다.
주문 제작한 특수 안전 케이스는 난전 속에서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부재중 전화x16]
[신태길 팀장]
[신태길 팀장]
⦙
[신태길 팀장]
1분 간격으로 와있는 부재중 전화는 묘한 광기마저 느끼게 했다.
'이 양반이 왜이래?'
전화를 걸자 신태길은 다짜고짜 소리부터 쳤다.
-강현 씨! 뭐하다가 이제야 전화를 받는 겁니까?!"
"바빴어요. 그런데 원래 그렇게 집착이 심해요? 무슨 부재중이 열 통이 넘어."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닙니다. 강현 씨. 긴급 상황입니다.
"나도 방금 전까지 존나게 긴급했거든요?"
-제발 부탁입니다. 정말 위기상황이란 말입니다.
간절한 신태길의 목소리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말해 봐요."
-강현 씨.
"예."
-지금 당장! 계엄사령부로 와주십시오.
"싫어요."
일말의 고민도 없는 칼답이었다.
-지금 농담할 때가…
"농담이 아니라! 방금 전에 약쟁이 놈들이랑 한바탕 했거든요? 지금 딱 죽기 직전이라서... 움직일 힘도 없어요."
강현은 그 뒤로 지금까지 있었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처음 선연호를 만난 일.
그가 갑작스레 자신을 다시 만나자 한 것.
그들이 약물 복용자라는 것.
그리고 약물의 부작용에 대한 것까지.
-으음, 그런 중요한 일이 있었군요.
모든 이야기를 들은 신태길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알겠습니다. 제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급하다면서요. 안 가도 돼요?"
-오실 겁니까?
"아니요."
-야이, 개...!
흥분해서 무언가를 말하려던 신태길이 한숨을 내뱉었다.
"개?"
-하아... 아닙니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크큭. 알겠어요. 수고해요."
통화를 종료한 강현이 통쾌하다는 듯이 웃어젖혔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
"신태길 팀장인 것 같던데..."
"어어, 요전부터 하도 까칠하게 굴기에 교육 좀 했어."
"예."
강현은 알지 못했다.
결국 아무도 부르지 못한 신태길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진땀을 빼고 있는지.
**
다음 날.
-딱, 딱, 딱...
길드 사무실에 앉아 있는 강현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딱, 딱...
"무슨 고민이 있으십니까?"
옆에서 새로운 재킷 디자인을 구상하던 신성아가 강현을 바라봤다.
"새로운 힘이 필요해."
"예?"
"새로운 힘 말이야."
어제의 싸움으로 강현이 깨달은 것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약하다.'
객관적으로 강현의 스텟은 최정상급이다. 거기에 여러 버프 스킬이 더해지면 말 그대로 압도적인 수치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강현 님은 이미 충분히 강하시지 않습니까?"
"아냐. 지금의 나는 그저 무식하게 힘만 세고 튼튼한 싸움꾼에 지나지 않아."
이것이 강현의 고민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강현은 모든 싸움을 압도적인 피지컬로 해결해 왔다.
그러다 상성이 좋지 않거나 어느 정도 피지컬이 비슷한 적을 만나자 자신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이었다.
"으음... 그럼 따로 원하시는 것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모르겠어. 검술을 본격적으로 배워봐야 하나."
초반 이후로 강현은 검술 연습을 따로 하지 않았다. 오직 실전으로 감각을 갈고닦았으며 기술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힘으로 해결해 왔다.
"아니면 좀 더 다양한 스킬이라거나..."
"마력이 항상 부족하시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강현의 모든 마력은 항상 '웨인의 비기'로 파괴되는 육체를 회복하는데 들어간다. 때문에 다른 스킬이 있더라도 활용하는 것에는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은 기술적인 능력을 올려야 하는데 말이지."
"예."
"어떻게 기술적인 능력을 상승시키지?"
"..."
"어디 검도장 좀 다닌다고 해서 검술 랭크가 올라갈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연습을 하시면..."
"허공에 칼질만 해서 어느 세월에 강해질 건데? 그 시간에 던전 돌아서 레벨업이나 하는 게 더 효율적이겠어."
"흐으음..."
강현과 신성아는 팔짱을 낀 채로 고민을 이어갔지만 도저히 해답이 보이지 않았다.
"역시 배우는 게 좋을 것 같아."
"누구에게 말입니까?"
"저기 저놈."
강현이 턱짓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고개를 돌린 신성아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창 단검을 던지며 놀고 있던 안유성이었다.
"안유성 씨 말입니까?"
"어. 인정하기 싫지만 저놈 재능충이잖아. 전투 센스 하나는 타고났다고."
"맞습니다."
"그러니까 저놈이랑 대련을 해야지. 그러다 보면 나도 좀 배우지 않을까?"
강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왜요?"
"한판 붙자."
"갑자기요?"
"어. 대신 서로 스킬 쓰지 말고, 노버프 상태로."
"재미없을 것 같은데..."
강현의 말에 안유성이 대놓고 시시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인마. 평소에 싸움이라면 미친개처럼 달려들던 놈이."
"형 스킬 빼면 약골이잖아요. 형은 제 상대가 안돼요."
"뭐 이 새끼야?"
순간 강현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길드 사무실에 앉아있던 이들은 갑자기 일어난 둘의 신경전을 흥미진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실이 그런데요 뭐. 형 스텟 빨로 안 밀어붙이면 저 이길 자신 있어요?"
"자신이 있지 왜 없어?!"
"육체 재생 스킬도 끄고요."
"으음..."
'상급 육체 재생'을 사용하지 말라는 말에 강현의 얼굴에 당혹이 어렸다.
"해,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 아냐!?"
"글쎄요... 그러면 대련해주는 대신 내기 하나 하죠."
"무슨 내기?"
"제가 이기면 형 피규어 제 마음대로 제작해서 팔게요."
"피규어...?"
"예. 피규어요. 크크큭."
안유성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클클거렸다.
"해. 대신 내가 이기면?"
"형이 이기면 형 피규어 판매 취소하고, 원래 그걸로 생겼어야 할 예상 수익금 제 사비로 채울게요. 최소 2배 이상으로."
"콜. 넌 뒤졌다. 옥상으로 따라와."
**
빌딩 옥상 위로 쓸쓸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강현이 평범한 장검을 들었다.
"준비됐냐."
"당연하죠."
맞은편에 서있던 안유성 또한 웃으며 검을 빼들었다.
"왜 검이야?"
"이 정도면 충분해요."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다."
"당연하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십여 명의 길드원들.
그들의 얼굴은 앞으로 일어날 전투에 대한 기대감에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크흥, 킁!"
그중에서도 특히 한재문은 콧구멍까지 벌렁거리며 흥분한 상태였다.
"룰은 두 개입니다."
가운데서 심판을 보는 신성아가 손가락을 펼쳤다.
"하나. 장검을 제외한 모든 스킬 및 장비 사용 금지."
"..."
"둘. 서로의 목숨을 빼앗지 않는다."
"오케이."
강현과 안유성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인지한 것으로 알고 시작하겠습니다. 파이트!"
어쩐지 조금 들뜬 신성아의 외침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강현이 땅을 박차고 튀어 나갔다.
'버프가 없다고 해도 스텟은 내가 유리하다.'
모든 아이템, 스킬이 제거됐다고 해도 강현의 기본 스텟은 굉장히 높다.
게다가 레벨도 안유성보다 높은 상황이니 스텟으로 밀릴 일은 절대 없었다.
"하압!"
안유성에게 다가온 강현이 수만 번 휘둘러온 경로를 따라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지금까지와 달리 그 검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그렇게 무식하게 휘두르는 걸 누가 맞아요?"
"아직 멀었어. 인마!"
빗나간 것에 개의치 않고 강현이 재차 검을 휘둘렀다.
-부웅, 팅. 팅, 팅, 팅!
일 초에 다섯 번이 넘게 휘둘러지는 검격.
지켜보는 이들이 가볍게 탄성을 내질렀다.
"장비 없이, 버프 없이도 지금의 우리랑 비슷한 것 같은데?"
"그러게. 확실히 스텟 하나는 사기야 정말."
강현과 안유성의 검이 닿을 때마다 불똥이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쉼 없이 몰아치는 강현의 기세에 안유성은 방어하기에 급급할 뿐이었다.
"여유 만만하더니 어떻게 된 거야?"
"이게 다예요?"
"뭐?"
"너무 시시하잖아요. 크큭. 놀면서 해도 될 거 같아요."
"이 새끼가…!"
순간 날아오는 검을 비스듬하게 흘려낸 안유성이 재빨리 강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감히 육탄전을 걸어와?'
안유성의 공세에 강현이 발끈했다. 몸싸움은 강현이 검술보다 더 자신 있는 종목이었다.
"하압!"
자신의 품으로 파고드는 안유성.
강현은 당황하지 않고 그의 얼굴에 니킥을 날렸다.
-터억
그러나 안유성은 예상했다는 듯이 몸을 틀어 무릎을 피해냈다.
그리고 강현의 목을 한 손으로 붙잡았다.
"레슬링 기술로 갑니다!"
"응?"
강현보다 낮을 뿐, 안유성의 스텟은 절대 떨어지는 편이 아니었다.
20이 넘는 근력은 한 팔로 사람을 들어 올리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초크슬램(chokeslam)!"
안유성은 강현을 들어 올리고는 다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순식간에 강현의 시야가 반전했다.
'이건...'
어릴 적 레슬링에서 본 하이테이커의 필살기.
초크슬램.
하이테이커가 그 기술을 쓸 때마다 거실을 뛰어다니며 좋아하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콰앙!
"쿨럭!"
옥상 바닥에 뒤통수부터 내쳐진 강현은 뇌진탕으로 인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유캔시미(you can't see me)!"
-퍼억
그 틈에 내려쳐진 안유성의 피스트 드롭!
안유성의 단단한 주먹과 격돌한 강현의 안면이 순간적으로 잔뜩 함몰됐다.
"으아아아! 이 새끼가 장난쳐?!"
안유성의 장난스러운 공격에 화가 난 강현이 발악했다.
"넌 뒤졌어!"
잔뜩 흥분한 강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알케이오(RKO)!"
달려오던 안유성이 강현의 머리를 붙잡고는 재차 바닥에 내리 꼽았다.
-콰아앙!
강현의 머리와 부딪힌 시멘트 바닥에서 굉음이 울리며 금이 갔다.
"으어... 어..."
단숨에 머리를 세 번이나 부딪힌 강현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회복이, 회복이 되지를 않아.'
평소라면 스킬로 뇌진탕을 회복하고 정신을 차렸겠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상황.
오랜만에 지속되는 어지러움에 강현은 속이 메스꺼운 느낌이었다.
"흐읍, 파운딩, 파운딩, 파운딩!"
그 기세를 타 강현의 위로 올라탄 안유성이 쉴 새 없이 주먹을 뻗어댔다.
"야... 저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냅 둬. 저기 끼어들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그리고 맨날 당하기만 했는데 이렇게 처맞는 모습 보니 좀 통쾌하지 않냐?"
"음, 확실히 그러네."
정신없이 주먹을 맞는 와중에도 길드원들의 대화는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강현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크하하하! 형 이렇게 계속 누워만 있을 거예요?"
-퍽, 퍽, 퍽, 퍽!
강현은 안유성을 밀쳐낼 생각도, 가드를 올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주먹을 무방비하게 허용했다.
"에이, 시시해. 이제 끝내죠."
양 손에 피범벅이 된 안유성은 한숨을 내쉬더니 강현의 몸을 짓눌렀다.
"심판, 카운트다운!"
외침과 동시에 달려온 신성아가 힘껏 바닥을 내려쳤다.
"원!"
"투!"
"쓰리! 땡땡땡, 경기 종료됐습니다."
"만세! 이겼다."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린 안유성이 해맑게 만세를 외쳐댔다.
-짝짝짝짝!
다른 이들은 그 모습을 보며 힘찬 박수를 보내주었다.
'씨발 새끼들... 두고 보자.'
69화 검술 선생님 케르고(1)
69. 검술 선생님 케르고(1)
정부의 작전은 실패했다.
정예들만 추린 군의 특수부대는 허무하게 전멸당해 버렸다.
이 사실은 정재계 고위 인사들에게 암암리에 퍼져나갔으며, 소식을 들은 이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능력자.
그들의 힘과 성장 속도는 모두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대통령 한승훈은 친(親) 능력자 정책을 펼치며 능력자를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었다.
그런 대통령을 비웃으며 그가 능력자에 대해 잘못된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욕하던 이들이 모두 합죽이가 된 상태로 앉아있었다.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던전 정상회담까지 이제 고작 2달 남았습니다."
"크흠..."
이번에 두 번째로 열리는 세계 던전 정상 회담.
그것이 겨우 2개월 남은 시점에 대한민국은 아직 계엄령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빠른 시일 내로 해결하지 못할 시에 불가피하게 회담 장소를 옮길 수밖에 없다고 연락이 온 상태입니다."
대통령 한승훈의 말에 모든 장관, 장성들이 고개를 숙였다.
"이는 대한민국의 치욕입니다. 우리나라가 회담 장소로 지정된 이유는 현재 세계 어느 국가보다 안전하고 치안이 확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이런 일로 회담 장소가 옮겨지면 그게 무슨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러면... 이제 계엄을 해제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현재 사회를 불안하게 하던 몬스터 파워는 거의 회수가 완료된 시점입니다. 치안은 회복됐으며 던전은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습니다."
설명을 듣는 한승훈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갔다.
"그래서요?"
"대외적으로 문제가 없어 보이니, 우선은 계엄을 해제하고 놈들은 천천히 붙잡는 게..."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결국 폭발한 한승훈이 테이블을 내려쳤다.
"테러리스트의 핵심 인물들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고, 놈들이 개발하던 약물은 완성 단계에 이르렀는데! 그렇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일을 처리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
"그렇게 행사를 시작했다가 놈들이 테러라도 일으키면, 책임질 수 있습니까?"
평소 차분하고 분위기로 유명한 한승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명백히 옳았기에 의견을 제시했던 사람도 조용히 입을 닫았다.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떻습니까?"
그때 듣고 있던 던전 관리 기구의 한국 지부장, 박하란이 손을 들었다.
"말씀하세요."
"지금부터 2달간 서울 인근에 모든 던전을 철저히 관리하고, 완전한 클리어를 실시합니다."
"..."
"테러를 일으킬 원천을 차단하고, 회의 당일에는 모든 군, 경, 능력자를 동원해서 회의장을 철저하게 지키도록 하는 겁니다."
"..."
"만약 그사이 테러리스트를 찾더라도 국가적으로 손해를 볼 일은 없습니다."
박하란 지부장의 말은 조금 전 장성이 했던 말과 핵심은 같았다.
하지만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한승훈을 흔들었다.
"가능하겠습니까?"
대통령 한승훈의 물음에 박하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태로는 힘듭니다. 하지만 대통령께서 조금만 힘을 써주신다면 가능합니다."
"뭐가 필요합니까?"
"다들 아시다시피 현재 길드들이 무력으로 던전 점거해서 소유하고 있습니다. 던전을 클리어하려면 그들부터 몰아내야 합니다."
"그것만 해결되면 가능합니까?"
"일시적으로 던전 클리어에 대한 보상을 늘리고 능력자 연합과 함께 움직인다면 최소 80% 이상은 클리어, 통제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박하란의 말에 한승훈이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좋습니다. 그럼 한시적으로 길드의 던전 점유를 통제하겠습니다. 이것에 반하는 길드는 다소 강압적인 방법을 동원해도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회의 당일은 특수 능력자 관리팀도 모두 동원해야 합니다.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하도록 만들겠습니다."
신태길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한승훈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시작해 봅시다."
**
치욕적이었다.
너무 치욕적이라 걸을 힘조차 없었다.
-터벅, 터벅...
그날 이후 강현은 차마 길드 사무실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한동안 혼자 던전 돌 거니까 찾지 마라.
-형. 혹시 삐졌어요?
-닥쳐! 이 새끼야!
길드에는 혼자서 던전을 공략할 것이라는 말만 남기고 나왔다.
"해결책을 찾기 전에는 못 돌아가."
안유성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
"그 기생오라비 같이 생긴 얼굴을 짓뭉개지 않으면 평생 불면증에 시달릴 거야."
반쯤 혼이 빠진 상태로 걷던 강현이 마침내 목표에 도달했다.
C등급 던전 '기사 훈련소'.
"여기만은 정말 오기 싫었는데."
'기사 훈련소'는 등장하자마자 능력자들 사이에 유명세를 탄 던전이다.
그곳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이 뛰어난 검술 실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현재 강현의 목표인 '중급 검술(D)'을 상승시키는 데는 아주 적격인 던전이라 할 수 있었다.
"하아..."
그럼에도 강현이 이리 상심에 빠져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케륵!"
바로 던전에 등장하는 기사가 고블린이었기 때문이다.
"시벌. 나중에는 진짜 무슨 고블린 소드마스터도 등장하겠네."
고블린이 소드마스터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케에엑!"
강현의 앞에 나타난 고블린은 강현과 비슷한 키에 전신을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게다가 다른 몬스터들과 달리 강현에게 바로 달려들지 않고, 강현을 탐색했다.
"후우, 그래. 목표는 여기서 버프 스킬 없이 쓸고 다니는 거다."
놈들은 고작 고블린 주제에 소수 정예로 움직였다.
한 마리에서 최대 세 마리.
무려 C등급 던전임에도 말이다.
이 말은 그만큼 하나하나가 강력한 무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준비됐으니까 들어와. 꼴값 떨지 말고!"
"케르륵!"
강현이 검을 들고 자세를 잡자, 그제야 고블린 기사가 강현에게 검을 휘둘렀다.
-채앵!
검과 검이 부딪히자마자 강현은 느낄 수 있었다.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근력은 내가 압도적이다.'
아무리 단련했다고 해도 고블린은 고블린. 이미 레벨이 60에 도달한 강현은 차원이 다른 신체 스펙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도 단순히 힘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돼.'
그러면 이곳에 온 의미가 없다.
자신은 오직 검술 실력으로 놈을 찍어 눌러야 했다.
-챙, 챙!
강현과 고블린의 검이 어우러졌다.
막고, 베고, 피하고, 찌른다.
단순한 행위의 반복들이 엄청난 속도로 이뤄지며 서로를 할퀴었다.
-스걱!
순간 빈틈을 노리고 날아온 검.
강현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공격을 허용했다.
그의 단단한 피부가 베이고, 피가 흘러나왔다.
"케륵!"
기세를 잡았다고 생각한 고블린이 재차 검을 휘둘렀지만, 강현의 신속한 대응에 깜짝 놀라 물러났다.
"이깟 생채기로 무슨 착각을 하는 거야?"
강현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평소라면 몇 초도 지나지 않아 회복되었을 상처였지만, 강현은 '상급 육체 재생(A)'을 사용하지 않았다.
'신체 회복력만 믿다가는 큰 코 다친다.'
지금 자신은 다른 능력자들처럼 상처에 대한 경각심을 키울 필요가 있었다.
"그럼 다시 간다!"
힘찬 기합과 함께 강현이 다시 검을 휘둘렀다.
**
"케헤엑... 케헤엑..."
고블린 기사 '케르고'는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케헤에에엑!"
"피곤하냐? 좀만 더 힘 내봐."
고블린생 15년 중 저 인간은 단연코 최고의 미친놈이었다.
"나도 한번 회복해야겠네."
"케에엑!"
또 시작이다.
저 인간의 몸이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다.
"휴, 끝났다. 너도 다 쉬었지?"
도대체 몇 시간 동안,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완전히 쓰러뜨렸다고 생각하면 인간은 눈 깜짝할 새에 몸을 회복시켰다.
다시 혼신의 힘을 대해 피투성이로 만들어 놓으면, 또 순식간에 몸을 회복시킨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채앵, 챙!
"케흑!"
그러면서 힘은 얼마나 무식하게 강한지, 검을 마주할 때마다 손목이 시큰거릴 지경이었다.
최대한 기술적으로 검을 흘려냈음에도 말이다.
"케헤에엑! 케헥!"
억울한 마음에 케르고가 쉬어 터진 목으로 발악을 했다.
해석하자면, 왜 나한테만 지랄이냐는 뜻이었다.
"뭐라는 거야?"
케르고는 확신했다.
분명 저 인간은 진작 자신을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무슨 연습용 인형이라도 되는 것처럼 끊임없이 싸우기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배고프냐? 하긴, 나도 좀 그러네. 오늘은 이쯤 할까?"
"케헤헤엑!"
저 인간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몰라도 더 말을 시켜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어 체력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 오늘은 이만해야지."
"케헥, 케헥!"
"너 좀 마음에 든다. 내일 다시 보자."
인간이 갑자기 뒤돌아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케륵..? 케헥! 케헥!"
"알겠다고. 너도 푹 쉬어!"
자신이 위협적으로 외쳐봤지만, 인간은 싸울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케헬헬, 케헬켈록, 켈록!"
고블린 기사 케르고는 마침내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
다음 날.
"오늘도 그놈이랑 연습해야지."
강현은 가벼운 마음으로 던전에 들어섰다.
"음식도 넉넉히 챙겨 왔고. 좋아!"
어제는 아무 생각 없이 던전에 들어간 탓에 금방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먹을 것을 두둑이 챙겨 왔으니 며칠은 연습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있니~"
던전에 들어온 강현이 어제의 고블린을 찾았다.
"분명 어딘가 있을 텐데..."
하루 만에 다른 능력자들에게 사냥당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이곳은 고생에 비해 워낙 보상이 적어 인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례적으로 정부에서 교육용 보호 던전으로 지정한 C등급 던전이었지만, 찾는 이는 없는 그런 곳이었다.
"찾았다!"
마침내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고블린을 발견했다.
곳곳에 상처를 입었는지 붕대를 감고 있는 모습.
"뺨에 난 상처를 보니 저놈이 확실해."
어제 강현이 날린 회심의 일격으로 생긴 상처였다.
"후후..."
놈을 보자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하루 동안 쏟아부은 노력의 결실이 놈의 몸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야!"
강현이 부르는 소리에 놈이 고개를 돌렸다.
놈과 눈을 마주친 강현이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케, 케헥!?"
"뭐야? 반응이 왜그래?"
강현을 본 놈의 눈이 토끼처럼 치켜떠지고,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읏쌰, 오늘도 시작해 볼까?"
그러한 반응을 무시하고 강현이 짐을 풀고 있을 때였다.
"어, 뭐야? 어디가!?"
고블린이 등을 돌린 채로 헐레벌떡 뛰어가고 있었다.
**
고블린 기사 케르고!
항상 위풍당당했던 그는 던전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내달렸다.
"케헤에엑!"
기사의 명예? 이렇게 농락당하며 개죽음을 당할 바에는 버리는 게 나았다.
케르고가 괴성을 지르며 날뛰는 모습에 다른 고블린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케흑, 케흐헥!"
그렇게 모여든 이들에게 케르고는 필사적으로 지금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케르륵!"
"케륵, 케륵!"
그러나 자신의 말에도 다른 고블린들은 비웃을 뿐이었다.
"케흑, 케헤흑!"
"케륵! 케르르..."
굳이 해석하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제발, 도와줘!'
'닥쳐! 고블린 기사의 수치! 더 이상 떠벌리면 용서하지 않겠다.'
케르고는 미칠 지경이었다.
"케헤헥..."
결국 동료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케르고가 다시 자신의 구역으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야! 한참이나 찾았잖아!"
"케흑, 케헤헥!"
때마침 적절한 타이밍에 인간이 등장했다!
"뭐야? 뭐가 이렇게 많아?"
무려 스물이 넘는 숫자를 보고 인간은 당황한 것 같았다.
"이 던전에 이렇게 많은 숫자가 나왔었나?"
"케르륵..."
다른 고블린들도 눈앞에 나타난 인간을 보고 적대감을 드러냈다.
"흐음... 너무 많으면 연습에 방해가 되는데, 일단 숫자를 좀 줄일까?"
인간의 말이 많아졌다.
두려움에 빠진 것이 분명했다.
케르고가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동료들을 바라봤다.
"케헤헥!"
"크르륵! 케륵!"
케르고가 당장 인간을 찢어발기자 말했으나, 문제가 생겼다.
동료들이 너무 고지식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런 위급한 때에 기사의 도리를 찾으며 1대1 결투를 주장하고 있었다.
"케흐헥! 케흑!"
케르고는 최선을 다해 설득했으나, 결국 설득에 실패하는 듯했다.
"이것들이 왜 이렇게 말이 많아?"
고블린들을 본 강현이 모든 스킬을 활성화했다.
"일단은 검술 선생님 하나만 놔두고 전부 처리해야겠어."
전신에 차오르는 충만한 힘.
자리를 박차고 나간 강현이 고블린들에게 달려들었다.
"선생님은 잠시 비켜 있어!"
-퍼억!
강현이 가장 앞에 있던 케르고에게 옆차기를 날렸다. 케르고는 단번에 수십 미터를 날아 벽에 처박혔다.
"케에엑!"
그 뒤로 벌어지는 학살극.
무려 스물에 달하던 고블린 기사들은 고작 10분도 지나지 않아 전부 고깃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케르..."
그 모습을 멍하니 보던 케르고가 강현과 눈이 마주쳤다.
"준비 운동도 했겠다. 슬슬 훈련 시작해야지? 오늘도 잘 부탁해."
웃으면서 말을 하는 강현을 본 케르고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케륵, 케르르..."
굳이 해석하자면, '이건 꿈일거야...' 라는 뜻이다.
"케헬헬..."
이제 눈을 감았다 뜨면 저 인간은 사라지고, 자신은 꿈에서 깰 것이다.
"뭐하냐?"
꿈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케르고의 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케흐흐흑..."
70화 검술 성생님 케르고(2)
70. 검술 선생님 케르고(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