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베이트 길드(2)
30. 베이트 길드(2)
"그쯤 하시죠."
미소를 띠며 여유롭게 등장한 남자. 그의 말에 강현이 손을 놓아주었다.
"아으으.."
마침내 강현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김현우가 인상을 찡그린 채로 손을 주물렀다.
"그쪽이 여기 양아치들 대장이야?"
"하하. 네 맞습니다. 저는 정의현이라고 합니다. 예상보다 재미있으신 분이었네요."
누구라도 기분이 상할만한 말이었지만 정의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여유롭게 받아쳤다.
"괜찮으시다면 성함을 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싫은데. 쓸 데 없는 잡설은 치우고 본론만 이야기하지."
강현의 대답에 정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다면야... 직설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베이트 길드의 간부로 들어오시죠."
"..."
"부, 명예 성장에 필요한 모든 것까지 아낌없이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강현의 예상처럼 정의현은 자신의 실력을 보고 영입하기 위해 대기하던 중이었다.
'저 남자만 잘 내세우면 베이트 길드는 충분히 한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길드로 성장할 수 있다.'
처음 강현에 대해 보고를 받자마자 정의현은 떠올린 생각이었다.
다친 부하들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미래의 사업 계획이 머릿속에 차올랐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강자. 무조건 우리가 영입해야 해.'
그 후로 정의현은 상상 속에서 이미 한국을 넘어 세계까지 뻗어나가는 길드를 창설했지만, 그것은 본인만의 망상에 불과했다.
"싫어."
강현은 '참지 않는 자'라는 칭호를 가진 사람답게 단호하게 대답했다.
"저도 처음부터 바로 받아들이실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제 명함을 드릴 테니 차차 생각해 보시죠."
강현의 무례한 태도에도 정의현은 웃으며 명함을 건넸다.
"흠..."
강현은 얌전히 명함을 받았다. 그리고 양 손으로 명함을 붙잡았다.
-부욱, 부욱!
붙잡힌 명함은 강현의 손 안에서 순식간에 수십 조각으로 찢겨나갔다.
"내가 아무리 쓰레기라도 너희처럼 양아치 짓은 안 하거든? 어디 삼류 조폭 같은 새끼들이 누구를 영입한다고."
-파라락
강현이 집어던진 명한 조각이 사방으로 휘날렸다.
그 모습에 내내 웃음을 고수하던 정의현의 입가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왜, 빡쳐? 제대로 한판 붙어볼까?"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으나 정의현은 필사적으로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그러나 그의 뜻대로 되지 않는 표정에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아닙니다... 오늘은 단지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요."
"지랄. 다음 기회 같은 소리 하네."
정의현의 말에 강현이 코웃음을 치고는 돌아섰다.
"만나서 개 같았고 다신 보지 말자."
강현은 산을 내려가며 속으로 안도했다.
'엿될뻔 했네.'
사실 던전을 클리어 한 직후라 마력이 많이 남지 않은 상태였다.
무려 100명이 넘어 보이는 능력자들 중에 누가 얼마나 강하고,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
온전한 상태에서 싸운다고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마력까지 바닥난 지금 싸운다면 십중팔구 자신이 박살날 것이 뻔했다.
"휴우..."
마침내 모든 스킬을 해제한 강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번틀리 2호에 올라탔다.
**
"김현우"
"예."
정의현의 부름에 김현우가 재빨리 다가왔다.
"사람 붙여놓고 저놈에 대한 건 사소한 것 하나까지 싹 다 알아내."
"알겠습니다."
김현우가 고개를 숙이며 떠나고, 곧이어 김성우가 정의현의 앞에 끌려왔다.
"이건 뭐야?"
"배신자입니다. 저놈의 길잡이를 자처했답니다."
길드원의 말에 갑자기 정의현이 함박 미소를 지었다.
"검."
정의현의 한 마디에 옆에 있던 길드원이 조용히 검을 건넸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그 모습에 죽음을 직감한 김성우가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살고 싶어?"
"예! 뭐든지 하겠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
-푸슉!
목숨만 살려달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의현의 검이 가차 없이 김성우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크헉..."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김성우의 눈이 치켜떠지고 입에서 울컥 피가 쏟아져 나왔다.
"감히 배신자가 살 생각을 해?! 버러지 같은 새끼!"
순식간에 태도가 돌변한 정의현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 얼굴은 웃음기 하나 없이, 악귀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
7월. 여름의 낮은 지독히도 길다.
시각은 이미 저녁 6시를 넘겼지만 여전히 뜨거운 태양은 전혀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우우웅
인상을 찌그리며 손으로 햇빛을 가리던 강현이 주머니에서 스마트 폰을 꺼냈다.
그리고 전화번호부를 열었다.
[김태수]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이름.
"7개월 만인가?"
튜토리얼이 시작되던 날, 강현은 김태수에게 꼴사납게 얻어맞고 30만 원을 받았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기에 몇 년은 흐른 기분이었는데, 생각만큼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신기했다.
"후우..."
무언가 결심을 한 표정으로 강현이 전화를 걸었다.
-살아있었네?
"당연하지. 인마."
-하하. 어쩐 일이냐?
반가운 친구의 목소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게 했다.
"오랜만에 술 한 잔 할래?"
-좋지. 우리 자주 가던 삼겹살집 가자.
"언제 나올 수 있어?"
-나는 지금 바로 돼.
"오케이. 기다리고 있을게."
**
약속 장소에 도착한 김태수가 열심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 자식은 기다린다더니 어디 있는 거야?"
아무리 둘러봐도 강현을 찾을 수 없자 전화를 걸려던 그때,
"야. 김태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김태수가 돌아봤다.
"어! 강현..?"
강현을 바라본 김태수가 한참을 눈을 끔뻑였다.
"너 강현이냐?"
"새끼. 오랜만에 봤다고 친구도 못 알아보네."
강현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지만 여전히 김태수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너 뭐 헬스 트레이너로 취직했어? 아니, 격투기 선수인가?"
강현은 반팔 밖으로 울퉁불퉁한 근육이 드러나 있었고, 눈에서는 형형한 빛이 났다.
한눈에 봐도 잔뜩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
김태수는 이 남자가 정말 삐쩍 마르고 흐리멍덩하던 자신의 친구 강현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그냥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어. 하하... 뭐하냐! 들어가자. 배고프다."
"어, 그래..."
사실 마지막이 워낙 껄끄러웠고, 오랜만에 보는 것이기에 조금 어색한 기분이 들기는 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달콤한 고기와 함께 몇 번의 술잔이 돌자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때는 내가 미안했다."
강현의 말에 김태수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지나간 일인데 뭐 자꾸 그러냐. 됐어. 다른 이야기해."
김태수의 말을 들은 강현이 웃었다.
'어릴 적부터 이런 놈이었지.'
항상 자신을 걱정해주고 정이 많았으며 뒤끝이 없었다.
정의로우며, 책임감이 넘치고 성실했던 김태수.
그는 항상 강현에게 좋은 친구이자 우상이었다.
"아현이는 잘 있지?"
"걔야 뭐 여전하지. 회사 잘 다니고 있어."
"그러냐."
"너는? 저번에 다니던 회사 계속 다녀?"
강현의 말에 김태수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나 이직했어. 단군 길드에서 서류 만지는 일 하고 있다."
"오, 단군 길드? 짜식 성공했네!"
아무리 세상 물정 모르는 강현이라도 현재 단군 길드의 위치가 어떤지는 잘 알고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그러한 곳에서 일을 한다는 이야기에 절로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우연하게 지인 소개로 들어갔어. 월급이 거의 2배는 차이가 나니까 욕심이 나더라."
"야. 그럼 좋은 건데 왜 그렇게 표정이 어두워?"
"그게 사실 아버지가 많이…."
김태수가 뭔가를 말하려던 순간, 가게 한쪽에서 소란이 들려왔다.
"야! 여기야?"
"좋네. 먹고 싶은 대로 시켜!"
"미친놈아! 돈 많냐? 어?!"
몇 명의 사내들이 거나하게 취한 채로 가게에 들어오고 있었다.
이미 시끌벅적한 가게임에도 남자들은 단번에 인상이 찌푸려질 만큼 큰 소음을 냈다.
"저 새끼들은 또 뭐야?"
남자들의 소란에 강현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야. 내버려둬. 술 먹는 고기 집에서 좀 시끄러우면 어떠냐."
뼈밖에 없던 시절에도 자존심이 강해서 곧잘 싸움에 휘말리곤 했던 강현이다.
이제 몸마저 우람해졌는데 어떤 사고를 칠지 몰랐기에 김태수가 나서서 강현을 말렸다.
"뭐, 그러네. 무슨 이야기 중이었지? 아버지가 뭐?"
"아냐. 술이나 마시자. 건배!
그렇게 즐거운 분위기에 몇 번의 술잔이 더 돌았다.
어느새 둘의 앞에 놓인 빈 소주병은 무려 6병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야. 강현 술 많이 늘었다?"
"새끼. 맨날 술 좀 잘 마신다고 째더니 이제 안 되겠냐? 크크."
"아직 멀었다. 인마."
둘이 농담을 주고받던 도중 갑자기 강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
"급똥."
"하하하."
강현의 말에 호탕하게 웃은 김태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녀와. 나도 담배 한 대 태우고 있을게."
"어."
잠시 후.
후련한 표정으로 화장실 나서던 강현. 그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뭐야!?"
강현은 다급하게 쓰러져 있는 김태수에게 달려갔다.
**
강현이 화장실을 간 직후.
담배를 피우러 나가던 김태수가 옆에서 들리는 소란에 멈춰 섰다.
"왜 이래요?!"
"야이, 씨발년아. 왜 이렇게 비싸게 굴어? 같이 좀 가자고!"
"이년들아 우리가 누군지 알아? 우리 한성 길드 소속이라고."
만취한 채로 가게에 들어와서 소란을 일으키던 남자들이 옆 테이블의 여성들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야. 말려야 하는 거 아냐?"
"쟤들 능력자 길드 소속이라잖아... 요즘 뉴스도 안 봤어? 능력자들 폭행사태에 휘말려서 불구 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주위에서 수군대는 소리를 들은 김태수가 상황을 파악했다.
어느새 김태수의 눈에는 취기가 달아나고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만 하시죠."
"넌 뭐야?"
"지금 이 사람들이 싫어하는 거 안 보여요? 장사하는 가게에서 뭐하는 짓입니까?"
단호한 김태수의 어투에 남자들의 인상을 구기며 일어났다.
"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 지랄이세요?"
"이거 뭐하는 놈이야? 우리가 누군지 알어?"
"꼰대 같은 새끼. 꼬나보면 뭐 어쩔 건데? 눈 안 깔아?!"
다가오는 남자들을 보며 김태수가 손을 내밀어 제지했다.
"계속 이러시면 경찰에…, 크헉!"
경찰을 부른다고 말하려던 김태수를 한 남자가 후려쳤다.
"경찰 부르면 뭐 어쩔 건데? 어쩔 거냐고?!"
-퍽, 퍽!
시간이 지날수록 일반인과 능력자의 격차가 커지고 있었다.
김태수는 평소 자기 관리의 일환으로 열심히 몸을 단련해왔지만, 던전에서 목숨을 걸고 몬스터를 상대하는 능력자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퉤! 버러지 같은 새끼."
"하하하! 야. 더 해봐."
쓰러진 김태수에게 한 남자가 침을 뱉었다. 일행들은 뒤에서 배를 잡고 낄낄거리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어휴. 별것도 아닌 놈이 무슨 정의의 사도처럼 나대기는."
"나는 완전히 무슨 히어로 영화 보는 줄 알았다니까?"
"하하하!"
"그만 하시죠오오오! 푸훕!"
남자들의 조롱에도 쓰러진 김태수는 신음을 내뱉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남 일에 신경 쓰면 이렇게 되는 거야. 알겠어? 아저씨?"
"끄으으윽..."
"우리 덕에 인생 경험했다 생각해."
김태수가 반응이 없자 남자들은 흥이 식은 표정을 지었다.
"쳇, 가자. 술맛만 떨어졌다."
"별 같잖은 것 때문에. 시발."
남자들이 떠나기 직전.
-덜컥
마침내 강현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뭐야!?"
31화 베이트 길드(3)
31. 베이트 길드(3)
쓰러진 김태수를 본 강현이 다급히 달려왔다.
"끄으으..."
신음하고 있는 김태수가 살아있음을 확인한 강현이 안도했다.
"저건 뭐하는 놈이냐?"
"저 새끼 친구인가 본데?"
그 모습을 보며 남자들이 낄낄거렸다.
"어이, 좆밥 친구. 저 좆밥 데리고 얼른 꺼져. 비위 상하니까."
조금 전 김태수를 구타한 남자가 다가오며 말했다.
"후우... 너냐?"
"뭐? 저 벌레 밟은 거 묻는 거면 나 맞는데?"
강현은 179cm로 제법 큰 편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강현을 완전히 내려다볼 정도로 장신이었다.
"왜? 불만 있어? 어디서 운동 좀 했다고 나대고 싶나 본데. 좋게 말할 때 저 쓰레기 데리고 꺼져라."
남자가 강현을 내려다보며 빈정거렸다.
-빠드득...
수많은 죽음을 경험하며 강현이 가진 일반적인 인간의 감정이란 것들은 마모되고, 비틀렸다.
그랬던 그가 오랜만에 찾은 안식.
평화로운 시간을 방해받고, 친구가 쓰러졌다는 사실에 강현의 눈이 뒤집혔다.
"하아..."
하지만 이미 폭력과 술의 쾌감에 거나하게 취한 이들에게 그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야. 꺽다리."
"뭐?"
"지금이라도 대가리 박고 진심으로 사과하면... 살려는 준다."
"야. 저 병신이 뭐라는 거냐?"
"하하하!"
강현의 말에도 남자들은 배를 부여잡으며 웃었다. 그것이 강현이 신경을 더욱 긁어댔다.
"그리고 내려다보지 마라."
"..."
"기분 나쁘니까."
"근데 이 새끼는 끝까지 허세충이네!"
말을 하며 꺽다리가 강현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퍽!
꺽다리의 주먹이 강현의 턱에 정확하게 들어갔다. 그러나 강현의 고개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대로 멈춰 있었다.
"뭐, 뭐야..?"
마치 거대한 벽을 때린 느낌에 꺽다리가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내려다보지 말라고 했잖아."
-콰직!
꺽다리의 다리에 벼락과도 같은 로우킥이 작렬했다.
단번에 놈의 무릎이 기형적으로 뒤틀리며 뼈가 살을 뚫고 나왔다.
"끄아아아아!"
"이제 대가리 박고 사과해야지?"
무릎을 꿇은 채로 절규하는 꺽다리의 머리를 강현이 힘껏 후려쳤다.
-콰앙!
엄청난 속도로 꺽다리의 머리가 처박히며, 바닥에 깔려 있던 타일이 박살 났다.
"저, 저 새끼 뭐야..?!"
"야. 정상연!"
정상연이라 불린 꺽다리는 일행이 불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거 죽은 거 아냐?"
"저런 개새끼가!"
"씨발, 다들 장비 꺼내!"
악당들이 인벤토리에서 장비를 꺼내 강현에게 달려들었다.
"히야아아!"
"죽어!"
도검으로 무장한 능력자 3명.
누구라도 위기라 느낄 상황이었지만 강현은 여유가 넘쳤다.
심지어 장비조차 꺼내지 않고 멍하니 서있었다.
단지 '웨인의 비기'로 인해 몸을 찌르는 고통을 느끼며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오랜만에 손맛 좀 봐야겠네."
높아진 순발력으로 검을 휘두르는 놈들이 거북이처럼 느릿하게 보였다.
-부웅, 부웅!
마구잡이로 휘둘러지는 검격을 강현은 여유롭게 피했다.
그 모습은 마치 혼자만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 같았다.
"이익..! 이게 왜 안 맞아?!"
"뭐야 이게!?"
당황하는 남자에게 다가간 강현이 뺨을 후려쳤다.
-짜아악!
"푸헉!"
뺨을 맞고 날아간 놈이 그대로 테이블에 처박혔다.
고개를 처박은 채로 다리를 부들부들 떠는 것이 다시 일어나기는 힘들어 보였다.
"으으... 야수화!"
동료가 한방에 나가떨어진 것을 본 다른 놈이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놈의 눈이 빨갛게 변하며, 전신에서 짐승처럼 털이 돋아났다.
'저런 스킬도 있었네.'
그게 감상의 끝이었다.
강현은 무표정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크아아!"
짐승처럼 변한 남자가 손톱이 돋아나고, 비대해진 팔. 놈은 그 흉악한 팔을 강현에게 휘둘렀다.
-턱
그러나 그 강렬했던 기세와는 달리 놈의 손은 허무하게 붙잡혔다.
강현이 손아귀에 힘을 주며 손목을 꺾자 고통으로 인해 놈의 몸이 점차 무너졌다.
"이게 무슨..."
'야수화를 사용했는데 힘에서 밀리다니!'
믿을 수 없는 일에 놈의 눈이 치켜떠졌다.
-우드득
"화려하게 변신하기에 뭐 다를 줄 알았는데."
"끄아아!"
"실망이다."
강현이 남자의 손목을 완전히 비틀어 버렸다.
자신의 팔이 꺾일 수 없는 기이한 각도로 돌아가자 놈이 고통에 차 울부짖었다.
"저게 뭐야... 이 괴물 같은 새끼는 도대체 뭐냐고?!"
순식간에 동료들이 박살 나는 모습에 마지막으로 남은 남자가 패닉에 빠졌다.
"고운 말 좀 써라. 양아치 새끼야."
-콰직
남자에게 다가간 강현이 놈의 머리를 붙잡고 그대로 벽에 찍었다.
"끄어억!"
"그러게 왜 그랬어."
-콰직!
"끄으.. 사, 살려..."
-콰직!
"뭐라고?"
"미... 미안합..."
"안 들리는데?"
강현이 다시 한번 남자의 머리를 찍으려던 때였다.
누군가 강현의 손을 붙잡았다.
"뭐야?"
"그만해라. 나 괜찮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김태수가 강현을 붙잡은 것이었다.
"어?"
"그만하라고. 여기 사람들도 많아."
그제야 강현이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몰려든 사람들이 모두 공포에 떨며 자신을 보고 있었다.
-콰당
"하, 너무 비실해서 스트레스 풀고 말고 할 것도 없네."
남자를 집어던진 강현이 카운터로 다가갔다.
"미안해요. 오늘 장사 말아먹은 거랑 부서진 건 보상해 드릴게요."
"아닙니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괜찮으니까 계좌 불러주세요."
지금까지의 상황을 지켜본 주인이 보상이란 말에 기겁하며 손사래를 쳤다.
"정말 괜찮습니다!"
"저 양아치 만들지 마시고 그냥 불러 주세요."
"아닙니다! 정말 그러실 필요…."
한사코 주인이 거절하자 강현의 눈이 번뜩였다.
"불러 달라고요."
"15-4231-5446-xxxx 농업은행입니다."
눈이 마주친 주인이 잔뜩 얼어붙어서 계좌를 불러주었다.
"돈 보내드렸으니까 잘 확인해요."
송금을 마치고, 돌아선 강현이 김태수에게 다가갔다.
"후우, 가자."
"설마 했는데, 너도 능력자였어?"
"그렇게 됐네."
강현이 김태수와 함께 가게를 나가는 모습에 주인이 소리 높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한순간에 가게의 두 달 순이익을 벌어들인 주인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
가게 밖으로 나온 강현은 그동안의 일을 김태수에게 말해주었다.
사고로 부모님이 다치고, 그 후로 던전을 돈 이야기.
무려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의 일이었지만, 대화로 다른 이에게 전하는 것은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고생 많았네. 연락이라도 하지 그랬냐."
"미안. 정신이 없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김태수가 강현에게 길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뭐 높은 자리에 있고 그런 건 아니지만 추천 정도는 해줄 수 있어. 너 정도면 충분하니까 혹시나 단군 길드 생각 있으면 말해."
"그래. 고맙다."
강현은 아직 어딘가에 소속될 생각은 없었지만, 김태수의 마음을 알기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 헤어졌다.
"후우... 정신없었네."
마침내 집에 도착한 강현이 느껴지는 안락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누구 만나고 왔어? 술 냄새나네."
"태수 좀 만나고 왔어."
거실에서 TV를 보던 아현이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잘했어. 미친놈처럼 매일 혼자 던전에 처박혀있지만 말고 사회생활도 좀 하고 그래."
"하여간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쯧쯧."
강현은 혀를 차고 욕실에 들어갔다.
"야. 너 무슨 짓 했어?
잠시 후.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강현에게 아현이 말을 걸어왔다.
"무, 무슨 짓?"
찔리는 일이 있는 강현이 말을 더듬었다.
"그냥. 오늘 회사에 누가 찾아왔어. 너 아는 사람이라면서."
"뭐?"
예상치 못한 말에 강현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좁은 인간관계를 아무리 뒤져봐도 동생의 회사까지 찾아갈 만한 사람은 없었다.
"자기가 베이트 길드 소속이고, 너랑 잘 아는 사이라던데?"
"베이트..?"
베이트 길드라는 말에 강현의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
"네가 갑자기 연락이 안 된다고, 이것 좀 전해 달래."
"줘봐."
아현이 건네주는 쪽지를 강현이 다급히 낚아챘다.
--------------
강현 씨.
안녕하십니까.
베이트 길드의 길드장 정의현입니다.
며칠 전 강현 씨께서 저희의 제안을 거절하셨지만 아쉬운 마음에 다시 한번 연락드립니다.
혹시나 생각이 바뀌셨다면 아래로 연락 주십시오.
010-5296-1….
기다리겠습니다.
--------------
"이런 개새끼들이!"
쪽지를 읽은 강현이 빠르게 옷을 꺼내 입기 시작했다.
"야. 뭐야? 무슨 일인데?"
"너는 밖에 나가지 말고. 여기 가만히 있어!"
"이 시간에 어디가냐고오!?"
아현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강현이 현관문을 열었다.
"금방 올 거야!"
-쾅!
다급히 밖으로 나온 강현이 메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몇 번의 통화 연결음이 들리고, 전화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아, 강현 님이셨군요.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화 속 목소리는 정말 강현을 반기는 것처럼 해맑았다.
"엿 같은 가식 집어치워!"
강현이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협박이라면 상대 잘못 골랐다. 아현이한테 손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다 죽는 거야."
-이런 너무 극단적인 생각을 하시네요.
"극단적이야?"
-저는 그저 강현 님에게 연락을 드리기 위해 찾아갔을 뿐이에요. 푸후흐흡...
말을 하는 정의현의 목소리는, 웃음을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씨발 새끼가! 너 어디야?!"
-일단 화를 가라앉히시죠. 아직은. 해코지할 생각이 없으니까.
"..."
-그렇게 화내시다가 병원에 누워계신 어머니보다 먼저 혈압으로 쓰러져 버리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크크큭.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긴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잠시 숨을 고르자 조금 진정이 되는 느낌이었다.
놈은 이미 자신 대한 조사를 끝마쳤다. 여기서 흥분해서 좋을 것이 없었다.
"원하는 게 뭐야."
-길드 가입입니다. 시간은 아주 넉넉하게 이틀 드릴 테니 생각 바뀌시면 다시 연락 주시죠.
강현의 말에 대답한 정의현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뚝
통화가 종료되고 난 뒤에도 강현은 우두커니 서서 핸드폰을 바라봤다.
"넌 선을 넘었어."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강현이 씹어 내뱉듯이 말했다.
**
-우우웅.
야심한 시각.
갑자기 울리는 스마트폰에 김태수가 스마트 폰을 꺼냈다.
"강현?"
스마트폰 액정에는 강현의 이름이 떠있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김태수가 의아해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어.
"갑자기 무슨 일이야?"
-미안한데, 부탁할 일이 좀 있어서.
"부탁? 무슨 부탁인데?"
강현의 목소리는 어딘가 화가 난 것처럼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무언가 일이 터졌다는 예감에 김태수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너 혹시 베이트 길드라는 곳 알아?
"대형 길드니까 이름은 들어봤지. 그놈들 완전 악질이잖아. 그 자식들이 왜?"
길드의 본래 목적은 던전 클리어.
그러나 그 목적을 잊고 돈에 미쳐서 날뛰는 길드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중에서도 베이트 길드는 던전 점거, 능력자 강탈 등 불법적인 일을 행하며 돈을 긁어모으는 곳으로 유명했다.
-하아...
"왜. 무슨 일인데..?"
강현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자 김태수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베이트 길드랑 시비가 붙었는데. 그 새끼들이 아현이랑 어머니를 빌미로 협박을 하고 있어.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깜짝 놀란 김태수가 소리쳤다.
-나보고 지네 길드에 들어와서 똥개처럼 따르란다.
"허..."
-혹시 그놈들 정보 좀 알아봐 줄 수 있냐?
"후우. 기다려봐. 내일 점심까지 정리해서 보내줄게."
-알겠어. 고맙다.
통화를 종료한 김태수가 다급히 주위에 연락을 돌렸다.
32화 베이트 길드(4)
32. 베이트 길드(4)
다음날 점심.
사무실 근처의 한 카페에서 김태수는 강현을 만났다.
"여기.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베이트 길드에 모조리 조사했어."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김태수가 밤을 새워 조사한 자료를 넘겨주었다.
"고맙다."
서류를 읽어보는 강현을 지켜보며 김태수가 말을 이었다.
"알아보니 베이트 길드는 단순히 규모만 큰 길드가 아니었어."
"그러면?"
강현의 물음에 김태수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길드에 출처를 알 수 없는 엄청난 자금이 투입되고 있어. 단순히 돈이 많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그 말은..."
"어딘가 거대 기업에서 밀어주고 있다는 거지."
김태수의 말에 강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상관없어."
"뭐?"
"누가 밀어주든 당겨주든 관심 없다고."
"..."
"놈들 위치는 여기 적혀 있는 거지?"
"어. 그렇지..."
서류를 빠르게 넘기며 살펴보던 강현이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는 모습에 김태수가 당황했다.
"왜 빤히 쳐다보고 그래?"
"태수야."
"어."
"부탁 하나만 더 하자."
"무슨 부탁?"
"딱! 일주일. 단군길드에 말해서 일주일만 우리 가족 좀 지켜줘라."
"일주일...?"
이해할 수 없는 강현의 말에 김태수가 생각에 잠겼다.
"일주일로 뭐 어쩌려고?"
"나한테 생각이 있어. 가능하겠냐?"
"하아... 잠시만. 길드에 통화 좀 해보고."
스마트폰을 들고나간 김태수가 카페 밖에서 담배를 태웠다.
몸짓까지 해가며 무언가를 설명하려 용쓰는 모습. 그 모습을 보며 강현은 미안하고 고마웠다.
"후우..."
"됐어?"
잠시 후. 카페로 돌아온 김태수가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어. 가능하다 하신다. 길드장님이 직접 오케이 하셨대."
"고맙다! 태수야."
강현의 감사 인사에 김태수가 손사래를 쳤다.
"됐어. 그보다 뭘 어쩌려고 그래?"
"자세한 건 말하기 좀 그래. 내가 이 은혜는 꼭 갚을게."
"괜찮으니까. 네 일이나 잘 해결해."
김태수의 말에 강현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나 먼저 일어난다."
"벌써 가려고?"
"어. 바로 움직여야 할 것 같다."
"그래. 알아서 잘하겠지만. 몸조심해."
김태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준 강현이 카페 밖으로 나왔다.
"안영시, 함암동..."
다시 한번 베이트 길드의 사무실 위치를 확인한 강현이 번틀리 2호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부우웅
강현이 거칠게 액셀을 밟자 번틀리 2호가 쏘아지듯이 나아갔다.
-뚜우우, 뚜우우...
한창 도로를 달리던 도중 강현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오! 강현 씨. 결정은 하셨습니까?
마침내 통화가 연결되고.
스마트폰 너머로 역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결정했지."
-역시. 현명한 판단을 하실….
"네 대가리 깨부수기로."
-어?
"네 대가리 깨부수는 걸로 결정했으니까. 딱! 기다려라. 30분이 안에 도착한다.
-이런,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시고 그러….
정의현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현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
"이런 버러지 같은 새끼가!"
-쾅!
일방적으로 종료된 통화에 분노한 정의현이 책상을 내려쳤다.
"길드장님.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당장 길드원 전부 소집시켜!"
정의현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치자 주위 길드원들이 부리나케 흩어졌다.
"관심을 가져줬더니. 감히 서민 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기어올라?!"
흥분으로 가슴을 들썩이며 정의현이 차가운 냉수를 벌컥 들이켰다.
"30분 안으로 얼마나 모일 수 있어?"
"150명 이상은 모일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정의현의 화가 조금 누그러졌다.
"그놈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철저하게 대비하라고 전해."
"예."
잠시 후.
건물 밖에서 벼락이 치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정의현! 나와 이 새끼야!"
[스킬 분노의 사자후에 당합니다]
[사기와 능력치가 감소했습니다]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에 정의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동네 개새끼처럼 짖어대기는."
"길드장님 어떻게 할까요?"
"무슨 배짱으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제대로 교육을 시켜야지."
자리에서 일어난 정의현이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빌딩 홀로 가자 길드원들에게 포위된 강현의 모습이 보였다.
투구까지 써서 완전 무장한 모습이 정말 싸울 생각인 것 같았다.
"강현 씨."
"뭐?"
"이성적으로 판단하시죠."
"이성? 하하."
강현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면 그딴 식으로 행동하면 안 됐지."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가족을 찾아간 일이라면 제가 사과드리죠."
"..."
"우리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습니다."
말을 하는 정의현의 얼굴에 기괴한 웃음이 깃들었다.
"당신과 내가 힘을 합친다면 저 단군을 쓰러뜨리는 것도 가능하다. 이 말입니다. 제가 한 말의 무게를 이해하십니까?"
"아니."
"지금 이곳에만 200명이 넘는 길드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는 훨씬 많은 길드원들이 있죠."
"..."
강현의 무관심에도 정의현은 이미 자신의 생각에 심취해 있었다.
"그런 제게 부족한 것은 단 하나! 바로 베이트 길드의 얼굴입니다."
"..."
"길드원들의 선봉이 될 절대적인 강자 한 명! 그것만 갖춰지면 베이트 길드는 한국을 넘어 세계까지 뻗어나가서 마침내…"
"도저히 못 들어주겠네."
정신없이 열변을 토하던 정의현은 찬물이 끼얹어지자 멈췄다.
"이딴 오합지졸들 데리고 잘도 세계로 뻗어나가시겠어."
"..."
"닥치고. 지금이라도 대가리 박고 안 건드린다고 약속해. 그럼 조용히 넘어가 드릴게."
"역시 그랬던 거야..."
"...?"
"하찮은 천민 놈이 내 위대한 포부를 이해할리가 없지."
21세기에 나온 천민 발언.
정의현의 말을 들은 강현이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내려쳤다.
"아유! 멍청이! 저런 또라이 새끼랑 대화를 나누려 하다니! 강현아 정신 차려!"
"..."
"크흠... 그럼 간다."
말을 함과 동시에 강현이 쏘아지듯 달려 나갔다.
"저, 저 미친놈이! 전부 처리해!"
이 인원을 보고도 다짜고짜 덤벼들 줄 몰랐던 정의현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마력 구속."
"정신 오염!"
"가시 넝쿨."
사방에서 디버프와 구속 스킬들이 강현에게 날아갔다.
한눈에도 강현의 움직임이 둔해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크아아!"
[스킬 분노의 사자후에 당합니다]
[사기와 능력치가 감소했습니다]
그러나 조금 전의 괴성을 다시 사용하자 움직임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 보였다.
-콰아앙!
그리고 강현이 선두의 길드원들과 격돌했다.
"쿠헉!"
"으아아아!"
그 충격에 열 명에 달하는 능력자들이 날아가며 벽에 처박혔다.
"무식한 놈..."
예상보다 더욱 강한 강현의 힘에 정의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챙, 챙!
"으아아!"
"죽어!"
길드원들 사이에 들어간 강현은 마치 양 떼를 휘젓는 늑대와 같았다.
강현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길드원들의 갑옷이 종잇장처럼 찢어지며 피가 뿜어졌다.
"젠장... 무능한 놈들! 제압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죽여 버려!"
정의현이 외치자 길드원들이 본격적으로 공격 스킬을 발동했다.
사방에서 온갖 마법들이 강현에게 날아들었다.
엄청난 규모의 마법.
마치 불꽃놀이처럼 쏟아지는 마법에 피할 구석 따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콰앙! 쾅!
그러나 강현은 애초에 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앞으로 달려 나간 강현이 날아드는 마법에 온몸으로 부딪혔다.
"계속! 계속! 마법을 부어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강력한 폭발에 건물이 진동했다.
"으아아아! 그래. 개새끼들아! 오늘 다 같이 죽어보자!"
그때였다. 갑자기 소리친 강현이 양손을 들어 올렸다.
"마력폭발! 마력폭발! 마력폭발!"
-콰앙, 쾅! 쾅!
강현의 손에서 날아온 마력구가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건물 외벽이 터져나가며 빌딩이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
"으아악!"
"미친놈 건물을 무너뜨릴 셈이야?!"
그 충격에 두려움에 빠진 길드원들이 혼비백산하며 흩어졌다.
"허억, 허억..."
폭발로 인한 먼지에 싸움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잠시 후 먼지 사이로 온몸이 걸레짝이 된 강현이 드러났다.
"괴물 같은 놈."
거칠게 몸을 들썩이는 강현.
그가 한눈에 보기에도 지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겁을 집어먹은 길드원들은 다가서지 못하고 서로 눈치를 봤다.
"쓸모없는 것들. 쯧..."
순간 정의현의 얼굴에 아쉬움이 스쳤다.
'정말 엄청난 힘이다... 여기 있는 쓰레기들을 전부를 죽여서라도 맞바꾸고 싶어.'
하지만 이내 머리를 흔들며 체념했다.
'아냐. 저놈은 통제되지 않는 망나니야. 괜히 살려 뒀다가는 화만 부를 것이 분명해.'
생각을 마친 정의현이 옆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다른 길드원들과 달리 한눈에도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다섯 명의 남녀가 서있었다.
"너희가 나서야겠다."
정의현의 말에 가장 덩치가 거대한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뒤로 물러서!"
강현에게 다가간 덩치가 외치자 길드원들이 우르르 물러났다.
"이것들은 또 뭐야?"
"..."
"무슨 디x몬 오천왕 그런 거냐?"
강현의 빈정거림에도 다섯 명의 남녀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사람이 말을 하면 대답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어?"
"죽어라."
남자의 말이 떨어지자 옆에 있던 여성이 마법을 발동했다.
동시에 강현 주위의 땅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쩌저적
"이건 또 뭐야?!"
강현은 재빨리 발을 놀려 자리를 옮기려 했지만, 계속해서 얼어붙는 발바닥에 마음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마물의 꼬리."
그 모습을 본 다른 남자가 스킬을 사용했다.
-뚜둑, 쾅, 쾅!
촉수. 기괴하게 생긴 검은색 촉수가 주변의 땅을 뚫고 올라왔다.
"시발, 더럽게..!"
강현은 자신의 몸에 들러붙은 촉수를 떼어내려 했다. 그러나 촉수가 생각보다 강한 강도를 지니고 있어 쉽지 않았다.
"휘몰아치는 칼날!"
숨 돌릴 틈도 없이 다른 마법이 들이닥쳤다.
허공에 생겨난 수십 개의 칼날이 강현에게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채쟁, 챙! 챙!
"으아아!"
강현의 검과 갑옷에 날카로운 칼날이 부딪히자 소음과 함께 불똥을 튀겼다.
그러면서 이미 부서진 갑옷을 파고든 칼날이 살갗을 베며 핏물을 머금었다.
"끝이다."
충분히 강현을 제압했다 판단한 덩치가 앞으로 달려갔다.
"허억, 허억! 다구리치는 솜씨가 아주 국가대표 급이야?"
"죽어도 입만 떠다닐 놈이군."
-채앵!
"크윽!"
힘겹게 덩치의 검을 받아낸 강현이 신음성을 내뱉었다.
"으아아! 마력폭발!"
"소용없다."
거대한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남자는 강현이 던진 마력구를 손쉽게 피해냈다.
"마무리해라!"
그 말에 뒤쪽에 있던 남자가 준비한 마법을 발동했다. 그러자 허공에서 거대한 창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푸슉! 콰앙!
엄청난 속도로 날아든 창은 강현의 꿰뚫은 것도 모자라 땅까지 파고들었다.
"쿨럭! 크어어..."
배가 뚫린 채로 바닥에 고정된 강현이 핏물을 내뱉었다.
"너희 얼굴 기억해 뒀다..."
"가만 둬라. 마무리는 내가 직접 하지."
정의현의 말에 사람들이 뒤로 물러났다.
"불타는 밧줄"
마법을 사용한 정의현에 그것을 강현에게 던졌다.
-화르르륵!
"끄으으으으!"
"불에 타는 고통을 맛보면서 천천히 죽어라."
"끄아아!"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강현은 그렇게 1분 정도 신음을 내뱉다가 이내 고개를 떨어뜨리고는 잠잠해졌다.
"가서 확인해봐."
정의현의 말에 한 길드원이 강현에게 다가갔다.
-꿀꺽
긴장한 놈이 침을 삼키며 강현의 손목을 잡았다.
아무런 맥박이 느껴지지 않는다.
"죽었습니다!"
33화 복수(1)
33. 복수(1)
"죽었습니다!"
길드원의 말에 정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쯧. 벌레 같은 놈 때문에 괜히 피해만 봤군. 사상자가 얼마나 되지?"
"스물넷이 죽었고 다친 놈들은 아직 파악 중입니다. 중상자만 일단 서른을 넘어갈 것 같습니다."
부길드장 김현우의 말에 정의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씨발! 얻은 것도 없이 이만한 손해라니!"
"..."
"하아... 놈의 장비 수거하고, 인벤토리의 아이템들도 깡그리 챙겨와."
"예."
능력자가 죽고 나면 인벤토리에 있는 모든 물품이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아직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는 이야기지만 강탈을 주로 하는 길드와 능력자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길드장님!"
그때 갑자기 한 길드원이 다급하게 외쳤다.
"놈의 시체가 사라졌습니다!"
**
다음날 오후.
강현이 방에서 눈을 떴다.
[부활하셨습니다]
[레벨이 1 다운됩니다.]
[24시간 동안 모든 능력치가 50%, 절반 수준으로 감소합니다]
메시지를 본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시간은 벌었다."
사실 강현은 애초에 죽을 생각으로 베이트 길드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자신이 깽판을 쳐놓고 죽는다면, 거기서 놈들은 자신에게서 관심을 거두리란 생각에서였다.
시체가 사라지는 의문이 있을 수 있으나 보통 그것으로 부활을 연상 짓지는 못할 것이다.
"너는 절대 그냥 안 죽인다."
강현이 씹어 먹듯이 내뱉었다.
절대 정의현을 그냥 죽이지 않을 생각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6일.
이제 철저하게 정체를 숨기고 움직여서 차근차근 놈의 손발을 잘라낼 것이다.
그리고 놈의 공포가 극에 달했을 때. 정체를 드러내서 놈을 짓밟는다.
"정보를 좀 더 모아야겠어."
어차피 24시간 페널티가 끝날 때 까진 강현도 움직일 수가 없다.
그동안 강현은 베이트 길드에 대한 정보를 더 모으기로 결정했다.
"집에 있었네?"
저녁이 되고 퇴근을 한 아현이 방문을 열었다.
"어제는 던전 다녀온 거야?"
"어."
던전에 살다시피 하는 강현이 며칠씩 집을 비우는 일은 흔했다.
"야.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해야지. 전화도 집에 놔두고 가고 가출한 줄 알았잖아."
"미안."
평소와 달리 강현이 아무런 말없이 외박하자 괜히 신경을 쓰고 있던 아현이었다.
"으음..."
묘하게 가라앉아있는 강현의 분위기에 아현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최근 자주 있는 일이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저녁이나 먹자. 내가 삼겹살 사 왔어."
"맥주는?"
"당연히 사왔지."
강현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
"요즘 수입이 영 뜸하다?"
"소문이 너무 퍼져서 이제 저희 던전에 들어오는 놈들이 많이 줄었습니다."
베이트 길드의 간부직을 맡고 있는 안무민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다른 던전 털어서라도 좀 챙겨야 될 거 아니야?"
베이트 길드는 하나의 던전에 한 명의 간부가 배정된다.
그곳에서 파밍 되는 아이템은 원천적으로 길드에 징수되지만, 그 외적인 수입은 조금만 로비를 하면 모두 간부가 챙길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최근 베이트 길드의 악명이 퍼져 던전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줄자 덩달아 부가수입 또한 줄어들어 버렸다.
때문에 안무민은 아예 다른 던전까지 돌아다니며 물품을 강탈할 계획을 짰다.
"저게 뭐지?"
그때였다. 멀리서 처음 보는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남자는 무언가를 질질 끌며 다가오고 있었는데, 상당히 기괴한 분위기를 풍겼다.
"넌 뭐야?"
남자를 본 안무민이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이곳은 던전 내부에 위치해 있는 아지트.
이미 입구부터 길드원들이 철저하게 지키기에 다른 놈들이 절대 올 수 없는 곳이었다.
-털썩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것을 집어던졌다.
"최재욱..?"
최재욱은 분명 오늘 던전 입구를 지키는 팀의 팀장이었다.
여기서 이런 몰골로 쓰러져 있어선 안 된다.
"괴, 괴물이…."
-콰앙!
최재욱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날아온 마력구에 머리가 터져 죽었다.
"뭐야?!"
그제야 안무민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이곳에는 자신을 포함한 다섯 명의 길드원이 있다.
그에 반에 놈은 혼자.
하지만 안무민은 알 수 없는 불길함이 몸을 지배하는 것이 느껴졌다.
"여기 대장이 누구냐?"
마침내 다가온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남자는 복면을 쓴 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다만, 옷 밖으로 드러난 근육이 인상적이었다.
"젠장! 한꺼번에 족쳐!"
안무민이 다급하게 외쳤다.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없었다.
저 남자는 입구의 길드원들을 죽이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선 저 남자를 죽여야 했다.
"으아아!"
안무민의 외침에 길드원들이 기합을 넣으며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척.
날아오는 검을 피한 남자가 검을 휘두른 놈의 얼굴을 붙잡았다.
-퍼엉!
남자가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남자의 손 안에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 손에 붙잡혀 있던 길드원의 머리가 단숨에 터져나갔다.
"미, 미친...!"
분명 남자의 손도 폭발력에 다친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 상처는 생기기 무섭게 순식간에 아물어갔다.
"끄아아!"
"사, 살려…."
-퍼걱!
나머지 길드원들의 처지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길드원들은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로 한명한명 머리가 터져 죽었다.
"으으, 으으으..."
겁에 질린 안무민이 뒷걸음질 쳤다. 놈의 바짓가랑이 사이가 축축하게 젖어들기 시작했다.
"살려줘... 원하는 게 뭐야?!"
"네가 아는 것. 전부."
**
-쾅!
화가 치밀어 오른 정의현이 주먹을 내려쳤다.
"끄응..."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 탁자에 금이 가는 것을 보며 부길드장 김현우가 신음을 내뱉었다.
"이게 몇 번 째야?!"
"죄송합니다..."
정의현의 호통에도 김현우는 고개를 숙일뿐이었다.
-짜악!
정의현의 손바닥이 거칠게 김현우의 뺨을 후려쳤다.
"죄송하면 다야? 어떤 새끼 소행인지 알아내란 말이야!"
최근 들어 계속해서 길드 소유의 던전이 습격을 받고 있었다.
해당 던전을 지키던 길드원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머리가 터져나간 채로 잔인하게 죽었다.
최대한 입단속을 시키고 있지만 이미 암암리에 길드원 사이에 소문이 퍼져버린 상태.
때문에 모든 길드원들이 몸을 사리며 던전에 들어가기를 꺼려하고 있었다.
"저희들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함정을 파놓고 기다린 적도 있었지만, 오히려 더 많은 길드원이 죽을 뿐이었습니다."
잔뜩 기가 죽은 김현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걸 변명이라고 지껄여? 해답을 내놓으란 말이야!"
흥분한 정의현이 김현우를 발로 차서 날려버렸다.
"끄윽..."
바닥에서 신음하던 김현우가 입을 열었다.
"길드장님. 아무래도 용병을 고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용병?"
갑작스러운 용병 이야기에 정의현이 의문을 표했다.
"안유성... 안유성을 불러야 합니다."
김현우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정의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 또라이 새끼를 어떻게 끌어들여?"
"놈은 싸움에 미친개입니다. 강자와 싸울 수 있다는 이야기로 잘만 구슬리면 분명 혹할 겁니다."
정의현이 한숨을 내뱉었다.
"결국 내가 설득하란 이야기군."
"죄송합니다..."
안유성.
세계를 주름잡는 굴지의 대기업 회장의 막내아들.
돈으로 놈을 구슬린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다.
하지만 김현우의 말대로 싸움을 미끼로 잘만 이야기한다면 충분히 놈은 미끼를 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 새끼랑은 다신 엮이기 싫었는데...'
잠시 고민하던 정의현이 결국 전화기를 들었다.
몇 번의 연결음이 들리고 전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우리 정의의 수호자! 정의구현의 대가 정의현 씨 아니에요?
시작부터 속을 긁는 말에 정의현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네 도움이 필요하다."
애써 화를 억누른 정의현이 말을 했다.
-대(大) 베이트 길드를 운영하시는 형이 무슨 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지? 아! 요즘 형 길드 개박살 나고 있다던데 그것 때문인가?
'이런 개새끼가..!
안유성은 한마디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비꼬며 정의현을 놀렸다.
정의현은 당장이라도 스마트폰을 집어던지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네 말이 맞다."
-그래서 나보고 도와달라고요?
"그래. 용의자는 단 한 놈이야."
-으흐음?
안유성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정의현이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놈은 아마 보통 강자가 아닐 거야. 분명 너도 크게 만족할 거다."
애초에 돈으로 안유성을 끌어들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눈치가 빠른 놈에게는 돌려 말할 것 없이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제가 왜 도와줘야 되는데요?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친한 사이였더라?
"부탁한다... 원하는 게 있으면 다 들어주겠다."
결국 정의현이 자존심을 구겨가며 부탁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이거이거. 부탁하는 사람 어조가 아닌데? 형. 좀 더 공손하게 해야죠. 크크큭.
"너 이 새끼!"
-어? 지금 새끼라 하셨나? 전화 끊을게요.
전화를 끊는다는 말에 정의현이 다급하게 외쳤다.
"잠깐! 잠깐만!"
-푸하하하! 이제 좀 공손해질 생각이 드셨어요?
분노로 인해 온 정의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가 겨우 입을 열었다.
"어떻게... 내가 어떻게 하면 되냐..."
-진정성 넘치게, '제발 부탁드립니다. 안유성님.' 하면 도와줄게요.
주먹을 꽉 쥔 정의현이 천천히 입을 열렸다.
"제발... 부, 부탁드립니다. 안유성 님..."
-와하하! 진짜 했어. 우와. 이 형 정말 급한가 보네? 기분이다. 공짜로 도와드릴게요.
"..."
-자세한 건 메시지로 보내요. 그럼 이만!
-뚝.
통화가 끊어지자마자 정의현이 스마트폰을 바닥으로 집어던졌다.
"으아아아! 이런 쳐 죽일 놈! 개새끼! 감히 나를 이딴 식으로 대해?!"
-쾅, 쾅, 쾅!
스마트폰을 짓밟아 부수는 것으로도 화가 풀리지 않은 정의현이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졌다.
길드장실은 금세 난장판으로 변해버렸다.
"이번 일만 끝내면 저 새끼도 손을 봐줘야겠어..."
말을 하는 정의현의 눈은 살기로 번뜩이고 있었다.
**
"그래서 언제 오는 건데요? 예?"
들려오는 목소리에 베이트 길드의 간부 김일우가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이번에도 허탕이면 재미없어요. 정말."
메이스를 허공에 휘두르며 짜증 어린 말을 하는 남자.
그는 한눈에도 범상치 않은 차림이었다.
머리는 노랗게 탈색하고 얼굴에 온갖 기괴한 피어싱을 하고 있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근육질의 몸이 모두 문신으로 뒤덮여 있어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죠."
절대로 심기를 거스르지 말라는 길드장의 명령이 아니더라도, 김일우는 눈앞의 남자를 어찌할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이미 남자에게 달려드는 몬스터가 어떤 꼴을 당하는지 봤기 때문이다.
'제대로 미친놈이야. 잘못 건드리다간 다 죽을지도 모른다.'
최근 길드에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결국 그것에 대한 대항마로 길드가 영입한 남자가 바로 이 안유성.
듣기로는 이제 고작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했는데, 얼굴과 몸을 봐서는 절대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아... 지루하다. 지루해. 저기 일우 씨라 하셨나?"
"예."
안유성의 말에 김일우가 재빠르게 대답했다.
"이번에도 허탕이면 길드장한테 정말 재미없을 거라고 전해줘요."
"알겠습니다."
김일우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해요?"
"예..?"
"지금 당장 가서 전달해요."
순간 김일우의 표정이 굳었다.
'이 핏덩어리 새끼가...'
자신보다 15살이나 어린 안유성이 완전히 하대하듯이 말하자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안 가요?"
그러나 그 기분은 안유성의 눈을 마주치는 순간 바로 사라졌다.
공포가 전신을 타고 올라왔다.
'놈은 길드장님에게도 마음대로 이래라저래라 하는 놈이야.'
자신 정도는 죽어나가도 신경조차 쓰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단번에 분노조절을 완료한 김일우가 던전의 일어난 순간.
"아, 됐어요. 왔네."
안유성이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아주 좋다고!"
한눈에 상대의 강함을 알아본 안유성이 신이 나서 외쳤다.
안유성의 고유 능력은 바로 육감.
굉장히 애매모호한 능력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을 주곤 했던 스킬이다.
"왔다. 왔어..."
그 육감이 안유성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저 남자와 부딪혀선 안 된다고.
당장 자리를 피해야 한다고 쉼 없이 위기를 알려왔다.
하지만 기다리는 것에 지쳐 있던 안유성은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그쪽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요? 크큭."
천천히 남자에게 걸어가며 안유성이 말했다.
그러나 복면을 쓴 남자는 아무런 말도 없이 안유성을 바라볼 뿐이었다.
"왜 멍청하게 서있어요? 왔으면 얼른 검이든 뭐든 꺼내야지."
이어지는 안유성의 말에 남자가 입을 열었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냐."
"응? 나를 아나? 저 아세요?"
안유성의 말에 남자가 복면을 벗어던졌다.
"안유성. 너도 베이트 길드였냐?"
"뭐야. 강현이 형?"
34화 복수(2)
34. 복수(2)
"뭐야, 강현이 형?"
예상하지 못한 강현의 등장에 안유성의 눈이 커졌다.
"오랜만이다."
능력자 교육 학교 이후, 안유성이 간간이 연락을 해왔지만 직접 얼굴을 맞대는 것은 처음인 둘.
강현 또한 예상치 못한 안유성의 등장에 당황했다.
"너도 베이트 길드였냐?"
강현이 아는 안유성은 확실히 미쳐있지만, 적어도 돈에 휘둘릴 남자가 아니었다.
이미 상상 이상의 부잣집 도련님인 그가 돈에 욕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혹시 베이트 길드를 밀어준다는 기업이 저 녀석의 집안인가...'
분명 김태수가 베이트 길드로 알 수 없는 거대한 자금이 유입된다고 했었다.
안유성의 집안이 굉장한 갑부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형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이런 양아치 새끼들이랑 저를 엮으면 섭섭하죠."
"뭐야. 그럼 왜 네가 여기 있는 건데?"
안유성의 대답에 강현의 의문은 더욱 커졌다.
"정의현 그 자존심밖에 없는 쓰레기가 굽히면서 부탁하는 게 너무 재미있는 거 있죠?"
"..."
"거기다 한바탕 할 기회도 있다 해서 일석이조로 온 거죠."
강현은 그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대략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그냥 저 미친놈은 싸움이 하고 싶어서 온 것이다.
"미안하지만 내가 좀 바쁘다. 얼른 저놈들 처리하고 다른데도 가야 하거든. 방해하지 말고 나와."
강현과 안유성의 대화를 듣던 김일우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렸다.
'무언가 잘못됐다.'
정황으로 보아 강현과 안유성은 구면을 넘어 제법 친분까지 있어 보였다.
불안감에 빠진 김일우가 다급히 안유성에게 다가갔다.
"안유성 씨! 지금 뭐하는 겁니까! 어서 약속대로 저 놈을 처리하세요!"
안유성이 싸늘하게 김일우를 노려봤다.
"쓰레기나 주워 먹는 폐기물 주제에 누구한테 명령이야?"
말을 한 안유성이 메이스를 들어 올렸다.
"뭐, 뭐야?! 너 이새…!"
그 모습에 김일우가 욕지거리를 내뱉었으나,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메이스가 작렬했다.
-콰직
거대한 못이 박힌 살벌한 메이스가 단번에 김일우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으악!"
"살려줘어!"
다른 베이트 길드원들 또한 안유성의 메이스에 유명을 달리했다.
"이제 됐죠? 사실 저도 이 쓰레기들 마음에 들지 않았었거든요. 크큭."
"..."
원래 목표였던 베이트 길드원이 모두 죽자 강현은 곧바로 등을 돌렸다.
"형. 지금 뭐하는 거예요?"
"바빠. 얼른 던전 클리어해서 증거 지우고 다른 곳도 가야 돼."
강현의 말에 안유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냥은 못 보내 드리죠."
"..."
"제가 꽤 오래 기다렸거든요. 이렇게 달아오르게 해 놓고 그냥 가시려고요?"
"그래서...?"
안유성의 말에 강현이 눈을 빛냈다.
"으음... 이렇게 하죠. 형이 저랑 싸워서 이기시면 베이트 길드 박살 내는 거 도와드릴게요. 이런 피라미들 보다 제가 더 고급 정보를 알고 있거든요."
안유성의 말에 강현이 말없이 스킬을 활성화했다.
'거인의 힘'과 '웨인의 비기'를 사용하자 전신에 힘이 들끓었다.
"와아! 도대체 그동안 얼마나 괴물이 되신 거예요? 크크큭, 크하하하! 너무 좋잖아?!"
강현이 본격적으로 싸울 마음을 가지고 스킬을 사용하자 안유성의 육감이 미친 듯이 경종을 울렸다.
단연코 이 정도로 격하게 육감이 반응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무리 너라도 안 봐준다."
어쩌면 이 싸움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말로 안유성을 설득하는 시도 정도는 해볼 수는 있다.
그러나 강현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김이현 이후로 오랜만에 제대로 된 강자와의 싸움이야.'
이런 전투는 허접한 놈들이 단체로 덤벼드는 그런 싸움과는 전혀 다른 짜릿함을 안겨 준다.
강현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
"갑니다!"
말을 함과 동시에 안유성이 탄환이 쏘아지듯 달려갔다.
어떤 스킬을 사용한 것인지 순간 스피드만은 웨인의 비기를 사용한 강현에게 근접한 수준.
그 속도는 지금까지 만난 모든 적들 중 단연 발군이었다.
-까앙!
강현의 검과 안유성의 메이스가 부딪히자, 쇠끼리 부딪친 거라고는 믿을 수 없는 굉음이 울렸다.
'힘, 속도. 모든 게 나보다 위야.'
안유성은 단 한 번의 부딪힘으로 모든 것을 눈치챘다.
그는 단순히 미친놈이 아니었다.
싸움에 대해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미친놈이다.
굳이 고유능력인 육감이 없더라도 강현의 신체 스펙이 사기 적이란 것은 잠깐의 움직임만으로 알 수 있었다.
'메이스로는 안 되겠어.'
격돌과 동시에 반동을 이용해 뒤로 물러난 안유성이 메이스를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인벤토리에서 평범한 장검을 꺼내 들었다.
"뭐야?"
그 모습에 강현이 인상을 썼다.
"제가 둔기를 쓰는 건 손맛이 좋아서인데, 손맛도 보기 전에 쓰러질 바엔 다른 걸 들어야죠."
"..."
"다시 갑니다!"
기합과 함께 안유성이 다시 달려들었다.
-부웅!
단번에 코앞까지 달려온 안유성.
강현은 곧장 검을 휘둘렀으나, 재빠르게 점프한 안유성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실망인데?!"
공중에 몸이 떠오른 순간 몸을 뜻대로 움직이기란 불가능하다.
즉, 거대한 표적에 지나지 않는다.
강현은 마력구를 생성해 안유성을 향해 집어던졌다.
-슈욱
"...!"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박찬 안유성이 손쉽게 마력구를 피했다.
-탓, 탓!
마치 허공에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안유성은 자유자재로 몸을 컨트롤했다.
"하아!"
허공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안유성이 정신없이 검을 휘둘렀다.
일반적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경로로 날아오는 검.
"크윽."
강현은 한 명이 아닌 수십 명에게 둘러싸여 공격을 받는 느낌이었다.
-카가가각!
안유성은 검을 맞대는 순간 교묘하게 흘려 내거나, 오히려 힘의 반작용을 이용해 거리를 벌렸다.
'역시 이 새끼는 괴물이야.'
분명히 신체 스텟은 자신이 압도하고 있었다.
안유성의 공격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보였고, 그것에 맞춰 대응했다.
그러나 안유성은 알고 있음에도 쉽사리 대응할 수 없는 방식만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가능하면 이건 자제하려 했지만...'
결국 강현이 다시 다가오는 안유성에게 마력 폭발을 사용했다.
강현의 양 손에서 마력구가 생성되어 안유성에게 쏘아졌다.
"이걸 누가 맞아줘요?"
자신에게 날아오는 마력구를 확인하고 전처럼 안유성이 마력구를 피하려던 찰나.
-콰앙!
안유성의 코앞에서 저들끼리 부딪힌 마력구들이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안유성이 폭발에 휘말린 것을 본 강현이 튕기듯 달려갔다.
피어오른 먼지 사이로 놈의 실루엣이 보였다.
'시야가 차단된 지금이 기회다.'
마침내 안유성의 앞에 도달한 강현이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먼지를 뚫고 나온 검이 눈을 찔러왔다.
강현이 있는 힘껏 목을 꺾었다.
-우드득
거친 움직임으로 인해 목뼈가 비명을 내질렀다.
"후우..."
그사이 다시 거리를 벌린 안유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육감이 아니었으면 위험할 뻔했어.'
폭발 직전. 안유성은 고유 스킬 육감으로 마력구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와 동시에 안유성은 곧장 인벤토리 있던 방패를 꺼내 들어 몸을 가린 것이었다.
"하하하! 형! 너무 재미있어요. 더, 더, 더 몰아붙여 줘요!"
안유성이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며 검을 휘둘러 왔다.
강현은 어쩐지 놈의 움직임이 처음보다 빨라진 것 같았다.
-카앙!
다시 한번 검이 격돌하고, 두 남자가 얼굴을 마주 보았다.
안유성은 정말 즐거운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넌 미친놈이야."
"누가 할 소리인데요?"
안유성이 바라보는 강현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허억, 허억..."
바닥에 드러누운 안유성이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내뱉었다.
안유성은 온몸에 자잘한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본인은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후우..."
강현도 그제야 허리춤에 손을 얹고 숨을 고를 수 있었다.
"하아, 비결이 뭐예요?"
"뭐가."
뜬금없는 안유성의 말에 강현이 물었다.
"형 아직도 남겨둔 거 있잖아요. 어떻게 그렇게 단기간에 강해졌어요?"
전투 도중. 겉으로 보기엔 안유성이 강현을 궁지로 몬 것 같은 장면들이 여러 번 연출되었다.
그러나 안유성은 강현이 끝까지 당황하지 않고 여유로운 태도로 싸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 뭔가 남았다는 거겠지.'
자존심이 상한 안유성은 강현의 바닥까지 드러내기 위해 온 힘을 쏟아부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저는 그런 거 없어요. 크큭."
둘은 그렇게 시답잖은 이야기를 한동안 이어갔다.
"야. 쓰잘머리 없는 소리는 여기까지 하고."
잠시 대화가 멈춰있던 때에 강현이 본론을 꺼냈다.
"이제 정의현 이야기 좀 하자."
강현의 말에 안유성이 입을 열었다.
"으음, 형. 한석에 정상수 회장 알죠?"
"한석? 그 식품회사?"
"예."
아무리 시사에 관심이 없는 강현이라도 알 수밖에 없는 이름이었다.
한국 최대 규모의 식품 회사 한석. 그곳의 회장이 바로 정상수였다.
"정의현은 정상수 회장의 숨겨진 혼외 자식이에요."
아침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스토리에 강현이 실소했다.
"그런 놈이 뭐가 아쉬워서 저런 길드를 운영해?"
"정의현 욕심이죠. 정상수 회장은 그래도 자식새끼라고 지원해주는 것 같고."
안유성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뭘 어떻게 해. 마저 손발 다 잘라내고 가서 족치는 거지."
"저도 끼워줄래요?"
안유성이 합류한다는 말에 강현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했다.
"네가 뭐 하러?"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쯧, 알아서 해라."
이유를 알 수 없었음에도 강현은 허락했다. 어차피 안유성의 생각을 알아보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으니까.
**
"지금 뭐라고 했지?"
정의현이 정말로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또 습격을…."
"또, 습격을, 그래. 계속 말해 봐."
코앞에서 완전히 눈이 뒤집힌 정의현의 얼굴을 마주한 김현우가 몸을 떨었다.
"죄송합니다!"
"으아아아!"
-쾅! 쾅!
정의현의 난동으로 순식간에 사무실의 집기들이 박살나기 시작했다.
"안유성 그 개새끼는 왜 연락이 안 되는 거야?!"
"아마 당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당해? 그 안유성이 당해?!"
안유성은 미친놈이지만 실력 하나는 확실하다.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 놈을 일대일로 이길 수 있을 만한 인물은 한 번도 없었다.
'아니, 딱 한번 있기는 했지.'
강현.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아 결국 죽일 수밖에 없었던 남자.
그러나 그놈은 분명히 죽었다.
시체가 사라지기는 했으나 그것이 놈이 살아났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놈의 동료들이 수작을 부린 건 줄 알았는데...'
본신의 능력이라기엔 너무 강력했기에, 분명 지원해주는 동료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때문에 시체가 사라진 것도 자연스럽게 놈의 동료들이 장비를 회수하기 위한 조치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놈 동료들 짓인가? 아니면 설마, 그때 죽지 않은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었다.
'이제는 정말 위험해. 자칫하다간 아버지에게 이야기가 새어나갈지도 몰라.'
초기에 자신의 아버지 정상수가 지원해준 자금으로 단번에 거대 길드를 창설할 수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사람이 죽어나간다면 정상수의 귀에 이야기가 들어갈지 몰랐다.
아니, 어쩌면 이미 들어갔을지도 몰랐다.
'이렇게 망할 수는 없다...'
결국 정의현이 최후의 보루를 선택했다.
-여보세요?
"나다."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의현이 긴장하며 말했다.
-예. 무슨 일이십니까?
"지원이 필요해. 아주 강한 놈들로."
-약속한 지원은 이미 해드리지 않았습니까? 자꾸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목소리가 귀찮다는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자 정의현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길드가 박살나기 직전이라고! 우린 동업자라면서?! 왜 그렇게 남일 인 것 마냥 가만히 있는 거야!"
결국 참지 못한 정의현의 소리쳤다.
-정의현 씨.
그러나 잔뜩 흥분한 정의현의 말에도 전화 속 목소리는 침착하기만 했다.
-금방 도와드릴 테니 걱정 말고 기다리고 계세요.
"정말인가..?"
-예. 지원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제야 정의현의 얼굴에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그럼 당장 부탁하도록 하지."
35화 복수(3)
35. 복수(3)
"예. 지원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정의현과의 귀찮은 통화를 끝내고 최민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이트에 추가 지원을 할까요?"
부하의 말에 최민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버려. 그딴 쓰레기 더 지원해 봤자 남는 것도 없다."
"정의현이 죽으면 정상수 회장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정상수 회장이 언급되자 최민준의 눈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래서? 내가 그 노인네 눈치를 보면서 기어야 된다. 이 말인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부하가 고개를 조아리며 사과했다.
"됐어. 하던 일이나 계속 진행해. 새로운 자금줄도 알아보고."
"알겠습니다."
**
일주일 뒤.
베이트 길드는 누가 보아도 이상함을 눈치챌 정도로 활동이 줄어들어 있었다.
-요즘 베이트 뭔일있나? 파밍 전용 던전도 자꾸 클리어하던데.
-그러게. 남아 있는 것도 관리 안하고 방치하는 것 같음.
-ㄹㅇ 나도 어제 소문 듣고 길드원들이랑 갔는데 던전 텅 비어있었음. 그날 파밍 대박 떠서 인당 삼백씩 챙겼다. 개꿀~
-그 돈귀신들이 뭔일이지?
-나 지인에 아는 사람이 베이트 길드 간부인데 누가 길드원 테러하고 다닌다고 했음.
-윗댓 뇌내망상 지리긴 하는데 기분은 좋네.
베이트 길드는 순수 인원수로 따지면 세 손가락에 들어갈 정도로 대형 길드였다.
그런 길드가 무너져간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인터넷에 퍼졌다.
그러나 누구도 무엇이 정확한 사실인지 알 수 없었다.
"야."
인터넷의 글을 확인하던 강현이 안유성을 불렀다.
"슬슬 마무리 지어야 될 것 같다."
"벌써 끝내려고요?"
한창 즐기던 와중이었는데 이제 끝내자는 말에 안유성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이 눈치채기 시작했어. 일 키우지 말고 끝내야지."
"그럼. 바로 길드 사무실로 쳐들어가요?"
"그놈들 쪽수가 얼마인데. 잘못하면 너랑 나도 당해."
"으음... 그럼 어떻게 하려고요?"
안유성의 물음에 강현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으로 크게 한방 날려줄 무대를 꾸며야지."
**
그날 밤.
정의현의 앞으로 의문의 쪽지가 도착했다.
내일 저녁 8시.
안영시 소서산에 있는 던전 '디스루핀의 숲'
지금이라도 길드를 살리고 싶다면 나와라.
쪽지를 읽은 정의현이 단숨에 그것을 구겨버렸다.
"이게 뭐야..?"
"길드장님 앞으로 쪽지입니다."
정의현의 물음에 김현우가 빠릿하게 대답했다.
"그걸 누가 몰라서 물어!?"
"죄송합니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정의현이 책상을 내려쳤다.
-콰직!
지난번에 부서진 이후 새로 장만한 책상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박살났다.
"감히 나를 가지고 놀아? 길드를 살리고 싶으면 나오라고..?"
정의현의 눈이 광기로 번뜩였다.
"내일 8시까지 얼마나 모일 수 있어?"
"현재 일단 인근에 위치한 길드원들은 300명 정도입니다만..."
"..."
"실제로 얼마나 모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길드원들은 자신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면 된다.
'얼마나 모일지 모른다.' 이런 대답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연달아 습격 사건이 터진 이후 이탈하는 길드원들이 많아졌습니다. 몇몇은 아예 연락을 끊어버려서..."
불법적인 일을 행하기에 베이트 길드의 모든 길드원들은 가입과 동시에 탈퇴가 금지된다.
길드원 모두가 약점 하나 정도는 붙잡혀 있었고, 그럼에도 탈퇴하는 놈들은 확실히 뒤처리까지 실시하는 중이었다.
"길드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놈들이 도망을 가?! 그런 놈들은 가족이고 뭐고 싹 다 족치란 말이야!"
"그게... 이탈 인원이 너무 많습니다. 안 그래도 불안한 상태에 같은 길드원을 공격하라는 명령까지 내리면 정말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김현우의 말에 정의현이 눈을 감았다.
"하아..."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
세상이 변하고 던전이 생긴 날. 그날 이후부터 자신의 앞 모든 것이 탄탄대로였다.
더 이상 가족들에게 멸시의 눈초리를 받지 않았다.
회사를 물려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좌절하지 않아도 됐다.
길드는 자신의 왕국이었고 그 속에서 자신은 왕이었다.
'이제 길드 없이는 살 수 없다.'
생각을 마친 정의현이 입을 열었다.
"김현우."
"예. 길드장님."
"돈이 얼마가 들든 상관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깡그리 길드원들 모아 와."
"알겠습니다."
**
다음날 저녁.
D등급 던전 '디스루핀의 숲'에 완전 무장을 갖춘 능력자 백여 명이 모여들었다.
"최민준은?"
"연락이 안 됩니다."
지원을 해주겠다는 말과 달리 놈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자신을 버린 것이다.
'상관없어. 어차피 예상한 일이다.'
오늘을 기점으로 베이트 길드는 다시 일어선다.
최민준, 그리고 이복형제들.
그 외에도 은연중에 자신을 무시하고 멸시하던 놈들.
이제 그 누구도 자신을 깔보지 못하도록 성장할 것이다.
"지금 몇 시지?"
"8시 3분입니다."
"개자식들. 감히 약속 시간에 늦다니."
정의현이 인상을 찌푸리며 발을 굴렀다.
"무슨 소리 안 들려?"
그때였다.
"뭔 소리?"
"무슨 개 짖는 소리 같은 게..."
갑자기 길드원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곧이어 길드원의 말처럼 정의현의 귀에도 무언가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그 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었다.
"컹! 컹!"
"아우우!!!"
숲 안쪽에서 먼지구름이 피어나며 소리의 정체가 분명해졌다.
"저게 뭐야?!"
"몬스터다! 전부 대비해!"
한눈에 봐도 200마리가 넘어가는 엄청난 수의 디스루핀들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놈들의 선두에 익숙한 갑옷을 입은 남자가 뛰어오고 있었다.
"강현! 설마 했는데 정말 네놈이었구나."
선두에서 달리는 강현의 양 손에는 무언가가 잔뜩 들려 있었다.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정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유심히 들여다봤다.
점차 거리가 줄어들고, 마침내 강현의 손에 들린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새끼 디스루핀...?"
양손에 든 커다란 배낭에 새끼 디스루핀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때, 강현이 갑자기 새끼 디스루핀 한 마리를 꺼내서 허공에 집어던졌다.
"마력폭발!"
-콰앙!
스킬에 적중한 새끼 디스루핀이 공중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뒤쪽에서 달리던 디스루핀들의 몸에 조각난 살점과 핏물들이 흩뿌려졌다.
"크커컹!
"컹, 컹!"
정의현은 어째서 디스루핀들이 눈이 뒤집힌 채로 강현을 뒤쫓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저런 미친 새끼..."
자기 자식을 단체로 납치해간 것도 모자라서, 눈앞에서 터뜨려 죽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 어떤 생물이든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라! 디스루핀!"
마침내 코앞까지 다가온 강현이 있는 힘껏 배낭을 던졌다.
허공을 부유하던 배낭들이 한 번에 열리며 새끼 디스루핀들이 공중에서 쏟아졌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황당한 광경에 길드원들이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대형 유지해!"
정의현의 외침에 정신을 수습한 길드원들이 자세를 잡았다.
"마력폭발! 마력폭발!"
양 손에 마력구를 생성한 강현이 정신없이 앞으로 던지며 길을 뚫고, 순식간에 길드원 사이로 파고들었다.
-콰과과광!
그와 동시에 200마리가 넘는 디스루핀들이 쓰나미처럼 길드원들을 덮쳤다.
**
"길드장님! 일단 피하십시오!"
김현우의 말에도 정의현은 허망하게 서있을 뿐이었다.
"허허..."
갑자기 전개된 난전 속에서 길드원들이 허무하게 죽어나갔다.
사실 자신의 길드원 100명이면 저 정도 디스루핀 떼야 큰 피해 없이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 있는 강현으로 인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으아악!"
-콰직!
강현은 완전히 양 떼 속에 날뛰는 늑대였다.
그의 검이 휘둘러진 때마다 길드원이 갑옷 채로 잘려 죽었고, 디스루핀들은 완전히 이등분되었다.
"크하하하!"
뭐가 그리 신나는지 검을 휘두른 강현이 호탕하게 웃었다.
"길드장님 어서 자리를…."
"자리를 피하면 뭐가 달라지는데."
정의현이 담담한 어조로 김현우의 말을 잘라냈다.
"다 끝났다."
더 이상 아버지의 지원도 바랄 수 없다.
아니, 지원해 준다 해도 받을 자신이 없었다.
그 모습을 다른 가족들이 벌레 보듯이 지켜볼 것이 뻔했기에...
"그렇지. 어디 가려고 그래? 이제 끝났는데."
순간 정의현의 뒤에서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돌아서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마치 TV속 연예인처럼 잘 생긴 청년. 그러나 겉의 꾸밈과 풍기는 분위기가 외모를 압도하는 남자.
바로 안유성이었다.
"그래... 너도 한패였던 거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정의현은 완전히 끝이 났다 생각하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명심해라. 너희들도 언제까지 그렇게 달려 나갈 순 없을 거다."
"헛소리 지껄이는 거 보니 뒤질 때가 된 것 같긴 하네. 내가 도와줄게."
"..."
"나도 옛날부터 형 머리통은 한번 깨부숴 보고 싶었거든."
안유성이 메이스를 든 채로 장난스럽게 손목을 돌렸다.
'이런 게 주마등인가..?'
정의현의 머릿속에 지난 36년간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참 개같은 인생이었어. 큭.'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거대한 메이스를 끝으로 정의현의 기억이 끊어졌다.
**
"후아! 재미있었죠?"
"쯧쯧. 미친놈."
안유성의 말에 강현이 혀를 찼다.
"어쨌든 끝났네."
"그러게요. 벌써 끝이라니 좀 아쉬운데요?"
그들의 앞에는 수많은 능력자와 몬스터들의 사체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상태창."
▫이름 : 강현
▫칭호 : 튜토리얼 졸업자 외 1개
▫레벨 : 49
▫상세 능력치 :
·근력 26 (+2.5)(+2)
·순발력 25 (+2.5)
·체력 26 (+2.5)(+2)
·마력 26 (+2.5)(+4)
·추가 스텟 : -
▫고유 능력 : 부활
▫능력 : 중급 검술(D), 하급 방패술(E), 최하급 석궁술(F), 최하급 체술(F)
▫스킬 : 분노의 사자후(C), 상급 육체 재생(A), 일도양단(D), 거인의 힘(B), 마력폭발(D), 웨인의 비기(E), 엔트리아의 외피(F)
지난번 죽음으로 떨어졌던 레벨이 복구되고, 하나 더 오른 레벨을 확인한 강현이 스텟을 분배했다.
그 외에도 새로 얻은 최하급 체술, 등급이 상승한 일도양단을 보며 강현이 흐뭇하게 웃었다.
"레벨업 했어요?"
"어."
[칭호 '잔인한 가정 파괴범'를 획득합니다]
안유성의 물음에 답하던 강현이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야? 칭호도 받았는데..?"
"무슨 칭호요?"
"잔인한 가정... 아니, 기다려봐."
"...?"
알 수 없다는 얼굴을 한 안유성을 뒤로하고 강현이 서둘러 칭호를 확인했다.
잔인한 가정 파괴범 : 몬스터에게 가정이 없다는 것은 편견입니다. 경악할 만큼 잔인한 방법으로 수많은 가정을 파괴한 '당신에게만' 주어지는 칭호.
효과 : 근력 +2, 디스루핀의 적대감. 칭호 보유자는 타인에게 본능적인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뭐 이런 개같은 칭호가..."
뭔가가 잘못됐다.
시스템 메시지에 유독 강조된 '당신에게만'이라는 문구에서 강현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뭔데 그래요?"
"..."
강현이 안유성의 말을 무시하고 생각에 잠겼다.
'칭호는 장착하지 않아도 50%의 효과가 적용된다 했는데...'
그렇지 않아도 험악한 인상이다. 그런데 이제는 본능적인 공포감까지 일으키게 생겼다.
'나는 일상생활을 하지 말라는 건가? 왜 나한테만 지랄이야.'
"시벌..."
분명 어딘가에서 보고 있을 관리자를 생각하며 강현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나저나 형 레벨이 몇이에요?"
"방금 49됐네."
딱히 안유성에게 숨겨야 할 이유가 없었기에 강현이 그대로 이야기해주었다.
"높네요. 제가 방금 45가 됐거든요."
"별 차이도 안 나는데 뭐."
"지금까지 저보다 레벨 높은 사람은 형이 처음인데요?"
"그러냐."
사실 강현의 레벨은 50을 넘겼어야 했다. 그러나 20레벨 이후 몇 번의 죽음이 있었고, 부활할 때마다 레벨이 다운되기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이걸 어떡한다."
무려 100명이 베이트 길드원들이 죽으며 엄청난 아이템들이 쏟아져 나왔다.
원래도 약탈로 유명한 길드라 그런지 한명한명이 강현보다 더 많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뭐, 숫자는 많은데 딱히 실속 있는 게 없네."
"형이 다 챙겨가세요. 저는 필요 없으니까."
"나도 너 금수저인 거 알아. 새꺄."
일단 강현은 아이템을 챙겨놓기로 했다. 아무리 허접해 보이더라도 아이템은 비싸다.
지금까지 베이트 길드원들에게 빼앗은 아이템과, 오늘 얻은 것을 합치면 정말 장사를 해도 될 정도였다.
"진짜 아이템 장사나 시작할까..."
강현은 던전을 홀로 클리어할 수 있게 된 이후 돈에 대한 욕심이 버렸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기점으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세력을 모으려면 돈이 있어야 해.'
혼자서 강한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번에도 김태수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런 일을 벌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강한 세력이 있었다면 애초에 이런 시비 자체가 없었을지도 모르지.'
강현이 누구보다 강해지려는 이유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가족을 지키고 싶었고, 더 이상 무시받으며 살기 싫어서였다.
"야. 넌 내가 길드 만드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
"형이 만들면 저야 당연히 들어가죠."
강현의 말에 안유성이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왜 당연히 들어오는 건데?"
강현의 물음에 안유성이 씨익 웃음을 지었다.
"제 육감이 말해주거든요."
"뭘?"
"형이랑 같이 다니면 더 재밌는 일이 벌어질 거라고."
**
한석 그룹 회장실.
회장 정상수가 눈앞에 건방지게 앉아 있는 남자, 최민준을 노려봤다.
"이 일을 어떻게 책임질 거냐."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최민준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무심한 반응에 정상수의 언성이 높아졌다.
"넌 분명 정의현을 책임지고 키워준다고 말했다. 그래서 난 너에게 돈을 줬고. 그런데 지금 상황을 봐라!"
정의현이 연락 두절이 된 지 1주일이 지났다. 그동안의 정황상 죽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네가 내 아들을 꼬드기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그래서 저한테 하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이런 건방진 새끼... 잘못을 했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정상수의 말에 주위에 있던 십여 명의 남자들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하... 대가를 치러?"
"그래!"
"능력도 없는 쓰레기를 데리고 한국에서 가장 거대한 길드를 만들어 줬더니... 어이가 없군."
최민준이 실소하며 고개를 숙였다.
"죽여!"
정상수의 외침과 동시에 사방에서 남자들이 최민준에게 달려들었다.
"으읍!"
"이게 뭐야?!"
그러나 남자들은 단 한걸음조차도 뗄 수 없었다.
아무리 부들부들 떨며 힘을 주어도 손가락 하나를 까딱하는 것이 겨우.
거기에 더해 점차 목을 조여 오는 느낌에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이보세요. 정회장님."
그런 남자들을 병풍 취급하며 최민준이 정상수 회장에게 다가갔다.
"우린 분명 계약을 했고, 난 문제없이 계약을 이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딴 추잡스러운 짓거리라니 뭐하자는 겁니까?"
"너, 너...!"
최민준이 정상수의 코앞까지 다가가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다음에도 또 이딴 소리를 지껄이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이놈...!"
정상수가 대답을 하지 않고 자신을 노려보자 최민준이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으으윽!"
"대답하시죠. 아시겠습니까?"
"끄윽! 아, 알겠네!"
잠시 발버둥 치는 정상수를 내려다보던 최민준이 그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크헉, 허억, 헉!"
바닥에 쓰러진 정상수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약속된 돈은 오늘 내로 지급해 주시죠."
"..."
차마 최민준을 바라보지 못하고 정상수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최민준이 미련 없이 회장실을 떠났다.
"크헉!"
"허억, 허억!"
그제야 제압에서 풀린 직원들이 바닥에 쓰러지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36화 던전 테러(1)
36. 던전 테러(1)
베이트 길드라는 거대 길드가 사라졌다. 그로 인해 항간에는 바람처럼 떠도는 소문과 괴담들이 무성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그것도 한때뿐.
지금은 격변의 시대이다.
새롭게 등장하는 신흥 길드, 능력자들 사이에 베이트 길드라는 이름은 금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크아아! 죽어!"
강현은 여전히 혼자 던전을 떠돌았다.
이제는 사람들의 수준이 올라 E등급 던전도 포화할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강현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D등급 던전으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키에엑..."
검에 꿰뚫린 채 비명을 지르는 몬스터. 강현은 잠시 놈을 바라보다가 던전 내부로 향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제법 던전 깊숙이 들어왔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숨어있지 말고 나와라."
갑자기 자리에서 멈춘 강현이 중얼거렸다.
동시에 앞뒤로 열 명 가량의 사람들이 나타나며 강현을 포위하듯 둘러쌓다.
"크큭. 뭐야? 이 새끼 어떻게 알았대?"
"이야~ 감이 좋나 본데?"
"감이 좋았으면 도망쳤겠지."
"그러네? 크하하하!"
던전 안에서는 어떠한 전자기기도 사용이 불가능하다.
또한 던전이 클리어 되는 순간 그 안에 있던 모든 것들이 소멸한다.
다시 말하면 이보다 더 범죄를 저지르기에 적합한 장소는 없었다.
"하아, 또 지랄이네."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긴 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을 강탈하는 악당은 비단 대형 길드뿐만이 아니었다.
사회에서 범죄를 일삼는 놈들이 던전에 들어오고, 힘을 합쳐 소수로 다니는 사람들을 습격한다.
증거도 남기지 않으니 거리낄 것이 없었고, 그런 놈들 중엔 사람을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쓰레기들이 넘쳐났다.
"좋은 말로 할 때 가진 거 다 내놓고 꺼져."
이목구비가 자유분방하게 생긴 놈이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그 말 그대로 돌려줄게. 있는 거 다 내놓고 꺼지면 목숨은 살려준다."
강현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놈들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저런 미친놈이!"
"대장. 뭔가 이상하지 않아? 그냥 빼는 게…."
"빼긴 뭘 빼? 저렇게 허세 부리는 놈들 한두 번 봐?"
"물론 많이 봤지. 그렇긴 한데..."
"하여간 이 새끼는 간이 콩알만 해가지고."
던전에서 혼자 다니는 강현은 유독 이런 놈들과의 시비가 잦은 편이었다.
강현이 베이트 길드원들을 학살하면서 별다른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 것도, 이미 그런 자들을 수없이 만나며 죽여 왔기 때문이었다.
"너희끼리 쿵짝 정도는 미리 맞추고 나오는 게 기본 아니야? 사람 불러놓고 뭐하는 거야?"
"저놈이 진짜!"
"죽고 싶냐?!"
강현의 빈정거림에 놈들이 잔뜩 흥분했다.
"전부 가만히 있어."
자유분방한 남자가 동료들을 제지했다. 아무래도 이들 사이에서 대장 노릇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후우, 우리도 피 보기 싫으니까 서로 좋게좋게 끝내자고."
"뭐? 좋게 끝내?"
마치 선심 쓰듯 말하는 놈의 모습에 강현이 실소했다.
"하, 너희들 맷돌 손잡이 아냐?"
"뭐?"
"맷돌 손잡이를 어이라고 해. 어이. 맷돌에 뭘 갈려고 집어넣고 맷돌을 돌리려고 하는데! 어라? 손잡이가 빠졌네?"
"..."
"그런 상황을 어이가 없다. 그러는 거야. 황당하잖아! 별것도 아닌 손잡이 때문에 해야 할 일을 못하니까. 지금 내 기분이 그래."
언젠가 꼭 한 번쯤은 따라 해보고 싶었던 유명 영화의 명대사였다.
"설마... 너 이 새끼..."
강현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어이가 없네?"
"시발! 그냥 죽여!"
놈들의 고함소리가 터져나옴과 동시에 강현이 '웨인의 비기'와 '엔트리아의 외피'를 활성화했다.
"흐압!"
가장 앞에 있던 대장이 검을 휘둘렀다.
검에 형형한 기운이 서린 것이 위력을 증가시키는 스킬을 사용한 것 같았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느리네.'
'웨인의 비기'를 활성화하면 높아진 순발력 수치로 인해 홀로 다른 시간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시간 속에서 굼벵이처럼 다가오는 검을 보며 강현이 손을 뻗었다.
충분히 피할 수 있었지만 현재 자신의 방어력을 알고 있기에 한 행동이었다.
'이러면 조금이나마 스킬 경험치가 상승하겠지.'
-턱!
강현의 손에 허무하게 붙잡힌 검.
자신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남자가 크게 당황했다.
"뭐야?!"
자신이 스킬을 사용하면 어지간히 단단한 몬스터의 외피 정도는 손쉽게 갈라버린다.
갑옷을 입은 사람을 뼈째로 이등분시킨 이력도 있는 그였다.
그런 자신의 검이 고작 건틀릿을 뚫고 들어가는 것에 그쳤다.
"내놔."
검날을 붙잡은 강현이 팔을 당겼다. 그 힘에 남자가 힘없이 앞으로 달려 나왔다.
"어, 어?! 으억!"
-퍽!
강현이 검에 매달려오는 남자의 얼굴을 발로 차서 날려버렸다.
이름 : 기사의 장검
등급 : D
내구도 : 210/250
설명 : 오래된 제…
설명을 읽을 가치도 없는 검이었다.
잠시 검을 살피던 강현이 그대로 놈들을 향해 집어던졌다.
-쐐액!
"크악!"
엄청난 속도라 날아간 검이 한 놈의 가슴에 틀어박히고, 그러고도 위력이 줄지 않아 놈의 몸이 수 미터를 날아가 처박혔다.
"..."
"뭐해? 계속 들어와야지?"
강현을 보는 놈들의 표정에 공포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
던전은 하나의 메인 코어와 수 개의 일반 코어로 이루어져 있다.
메인 코어가 있는 곳을 통칭 '보스룸'이라 부르고 일반 코어가 있는 곳은 '코어룸'이라 부른다.
그 코어룸에는 중간 보스급의 강력한 개체가 있거나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쿠어어어!"
이번 던전에서 코어룸을 지키고 있는 녀석은 바로 오우거였다.
[난폭한 오우거]
3m가 넘어가는 신장을 지닌 놈은 엄청난 근육에 뒤덮여 있었다.
게다가 터프하기는 얼마나 터프한지, 어지간한 공격 따위는 피할 생각도 없이 몸으로 견디며 돌격해 왔다.
강현은 모처럼 강한 몬스터의 등장에 신이 났다.
"우어어!"
압도적으로 거대한 망치.
한눈에 봐도 수백 킬로그램은 나갈 듯한 거대한 쇠망치를 든 놈이 엄청난 기세로 휘둘러 왔다.
'미친.'
-부우웅!
아무리 강현이라도 저런 공격에 맞는 것은 위험했다.
머리라도 맞는 날에는 재생이고 뭐고 단번에 죽는 것이다.
'그래도 저렇게 느려서야 맞고 싶어도 맞을 수가 없지.'
가볍게 오우거의 공격을 피한 강현이 힘차게 도약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우어?"
그리고 놈의 얼굴을 붙잡고 매미처럼 놈의 뒤통수에 매달렸다.
"마력폭발"
아무리 가죽이 질기고 단단해도 연약한 부위는 있기 마련다.
-콰앙!
손아귀가 터져나갈 것 같았지만 강현은 온 힘을 다해 오우거의 눈알을 붙잡았다.
덕분에 강현의 손 안에서 일어난 폭발력이 온전히 오우거의 머리통으로 향했다.
"끄..끄어어..."
결국 머릿속에서 일어난 폭발에 오우거는 칠공분혈을 일으키며 무릎을 꿇었다.
-쿠웅
"아으, 쓰라려라."
강현은 재생이 끝날 때까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기다렸다.
잠시 후 재생이 끝나자 쓰러진 놈에게서 마정석을 채취한 강현.
"슬슬 가볼까."
코어를 수거하기 위해 움직이던 강현이 갑자기 멈춰 섰다.
"잠깐만..."
그 시선은 오우거가 들고 휘두르던 망치에 가있었다.
"한번 확인해 볼까?"
이름 : 우르그의 거대 망치
등급 : D
내구도 : 994/1000
설명 : 다른 오우거보다 유달리 힘이 강했던 우르그가 사용하던 망치. 오직 내구도와 편의성만을 위해 만들어진 무기로 엄청난 무게를 자랑하기 때문에 우르그가 아닌 다른 이는 드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흐음... 지금 내 근력이 얼마지?"
아이템 설명을 읽은 강현이 근력 스텟을 확인했다.
▫상세 능력치 :
·근력 26 (+3.5)(+2)
"순수 근력이 26 에 칭호 3.5, 반지 2. 다해서 31.5 인가?"
자신이 생각하기에 제법 높은 수치 같았다.
"한번 들어보자."
망치 앞에 선 강현이 묘한 긴장감에 손을 비볐다.
"흐아아아아!"
기합과 함께 힘껏 망치를 붙잡은 강현. 그러나 전신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힘을 줬음에도 망치는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이 전부였다.
"거인의 힘."
스킬 없이 드는 것은 무리라 판단한 강현이 이번에는 거인의 힘을 사용했다.
이제 강현의 근력은 43.5 가 되었다.
"흐아아아!"
마침내 망치가 들어 올려지고, 강현이 있는 힘껏 바닥을 내려찍었다.
-콰아아앙!
땅이 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으으... 이걸로도 부족하네."
이렇게 힘겹게 휘둘러서야 도저히 무기로 쓰는 것은 무리다.
오기가 생긴 강현이 마지막으로 웨인의 비기를 사용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강현의 근력이 54까지 치솟았다.
"으아아아! 된다!"
비교적 가볍게 망치가 들어 올려졌다.
핏줄이 잔뜩 올라온 강현이 전력으로 망치를 휘둘렀다.
-콰앙! 쾅!
단 두 번의 망치질에 완전히 박살나는 던전의 벽을 보며 강현이 흡족하게 웃었다.
"괜찮은데? 윽! 아야야야..."
체력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근력으로 용을 쓰니 근육에 무리가 왔다.
"오래는 힘들겠어. 정상적으로 휘두를 수 있는 건 많아야 열 번 정도 되려나?"
잠시 고민하던 강현이 우르그의 거대 망치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지. 근력이야 더 올리면 되는 거고."
정리를 끝낸 강현이 코어 앞으로 다가갔다.
"이제 나가자."
평소라면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메인 코어가 있는 보스룸 까지 나아갔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저녁 약속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두근! 두근!
거칠게 박동하는 코어.
그 지지대를 잘라낸 강현이 코어를 챙기고는 포탈로 향했다.
**
강현의 약속은 바로 안유성과의 저녁 식사였다.
장소는 서울의 한 고급 레스토랑.
1인분에 무려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강현은 살면서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곳이었다.
"맛은 있네. 쩝쩝."
"그렇죠?"
식사는 안유성이 사는 것이기에 강현은 숨도 쉬지 않고 고기를 집어넣었다.
"여기 맥주는 안 파냐?"
"팔긴 팔죠. 뭐 필요해요?"
"하스나, 카이트 같은 거?"
"어휴."
강현의 저렴한 입맛에 안유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야."
5분도 지나지 않아 스테이크를 모조리 먹어치운 강현이 안유성을 불렀다.
"더 달라고요?"
"어어. 아니 그게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 강현이 발끈했다.
"너 좀 평범하게 다니면 안 되냐?"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너 때문에 사람들이 계속 쳐다보잖아. 인마."
사실 안유성은 단순히 외모만 놓고 보면 아이돌을 해도 될 정도로 미남이었다.
거기에 키는 182cm에 달하고 전용 운전기사까지 있는 부잣집 도련님.
이것만 놓고 보면 사실상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완벽한 남자임에 분명했다.
"네가 무슨 초세이언이냐? 머리를 노랗게 물들여서는. 쯧."
하지만 옷차림은 공연장에서나 볼 법한 펑크룩에 눈매도 살짝 풀려 있는 것이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어지간한 운동선수 뺨치는 근육, 전신을 뒤덮은 문신과 온갖 피어싱은 눈길을 끌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형도 은근히 꼰대였네요."
"뭐 이 새꺄?"
"형. 자기 피알(public relations), 개성도 몰라요? 요즘 시대가 어떤 때인데 그런 꼰대 마인드로 세상을 살아요?"
"고급 레스토랑에서 그딴 피알을 해서 어쩔 건데. 미친놈아. 여기에 쫓겨나지 않고 들어온 게 신기할 정도다."
생각해 보면 이런 장소에 저런 차림이라면 입구컷을 당할 법도 했지만, 안유성은 제 집 마냥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참나, 형은 왜 항상 저만 미친놈 취급하고 그래요?"
"뭐?"
"여기 사람들이 저 때문에 쳐다보는 줄 알아요? 저는 이 집 단골이라고요."
"그럼 나 때문이다?"
"예."
"뒤질래?"
안유성의 말에 강현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쯔쯧. 형도 거울 좀 보고 살아요. 인상도 좀 피시고."
"이게 말이면 다인 줄 아나!?"
사실 안유성이나 강현이나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외모다.
단순히 이들이 근육질이어서가 아니었다.
능력자가 많아지며 몸이 좋은 사람들이 제법 흔해진 세상.
물론 둘의 근육이 유별나긴 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분위기다.
"어휴. 됐다. 너랑 대화라는 걸 시도한 내가 잘못이지."
원래도 광기가 흘러넘치는 분위기였는데, 최근에는 '잔인한 가정 파괴범'의 효과까지 더해져 버렸다.
"저 사람 눈 뭔가 이상하지 않아?"
"좀 소름 끼치는 것 같은데..."
"차라리 옆에 있는 염색한 남자가 양아치스럽긴 해도 좀 더 나은 것 같아."
"쟤는 원래 재벌로 유명한 애잖아. 솔직히 잘생기기도 했고"
강현은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신체 덕에 듣고 싶지 않은 수군거림까지 들어야 했다.
"씨발... 선글라스를 쓰고 다녀야 하나."
"그걸로 안 될걸요?"
"닥쳐."
-우우웅
그때였다.
갑자기 울리는 진동에 강현의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김태수]
"웬일이지?"
통화를 연결하자 반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어. 강현아.
"태수 무슨 일이야?"
-너 혹시 오늘 밤이나 내일 중에 시간 좀 있냐?
갑자기 시간 약속을 묻는 김태수. 강현은 잠시 고민해봤지만 던전만 가지 않는다면 자신은 히키코모리 백수에 불과했다.
"나 시간 많지. 왜 무슨 일 있냐?"
-너 그럼 우리 길드장님 한번 만나보지 않을래? 길드장님이 보고 싶어 하셔서.
"나를?"
단군 길드의 길드장 한세연.
그녀는 모르겠지만 강현은 자신의 고향에서 던전 웨이브 사태가 벌어졌을 때 그녀를 본 적이 있었다.
아직도 그녀가 검을 휘두르던 모습이 머릿속에 생생했다.
-어. 저번에 네가 아현이 좀 신경 써 달라 했을 때, 길드장님 관심을 가지시더라고. 그래서 최근 베이트 길드 무너진 게 너 때문인 것도 알고 계시고.
"..."
-해서 이런저런 일로 너를 보고 싶어 하시는 것 같은데. 어떡할래?
확실히 단군 길드에겐 한번 신세를 졌었다.
이대로 모른 척 무시하는 것도 도리가 아닐 것이다.
"그래. 오늘 저녁에 바로 갈게."
37화 던전 테러(2)
37. 던전 테러(2)
-최근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던전 테러 사건에 정부는…
안유성의 스마트폰에서 정돈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뭐냐 그게?"
뉴스를 듣던 강현의 호기심이 동했다.
"형 이거 몰라요? 요새 누가 일부러 던전 파괴해서 몬스터들 탈출시키는 거 있잖아요."
"아아, 그거."
인터넷에서 워낙 시끄러웠기에 강현도 관심 있게 찾아본 본 기억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최초의 경험자일 수도 있겠다."
능력자 교육 학교의 마지막 날.
강현도 '케이카'가 나오는 던전에서 그러한 일을 겪은 적이 있었다.
"안 그래도 흉흉한데 뭔 지랄을 하는 건지."
"그러게요. 굳이 저렇게 안 해도 언제 뒤질지 모르는 세상인데 말이죠. 크큭."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을 이동하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번틀리 2호가 멈춰 섰다.
서울 인근에 위치한 단군 길드 소유의 빌딩.
여느 대기업의 본사들과 비교하면 그리 큰 규모는 아니다.
그러나 단군 길드는 회사로 치면 이제 설립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은 신생 기업이나 마찬가지.
그러한 것을 따져 봤을 때 확실히 상식적이지 않은 엄청난 자금력이었다.
"넌 뭔가 익숙한 것 같다?"
허락을 구하고 함께 온 안유성이 제법 익숙하게 건물 내부를 거닐었다.
"그야 저는 몇 번 온 적이 있으니까요."
"네가? 여긴 왜?"
"한세연. 그 누나랑은 던전 사태 이전부터 사교모임에서 만났었거든요."
사교모임이란 말을 들은 강현이 대놓고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한세연도 부자 집 따님이었나 보네. 끼리끼리 만나는구만."
잠시 던전 이전의 피폐했던 시절을 떠올린 강현이 괜히 심술을 부렸다.
"강현아!"
그때 강현을 발견한 김태수가 인사를 건네 왔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어. 어쩌다 보니. 저번에는 고마웠다."
"고맙긴. 친구끼리 돕는 거지. 얼른 가자. 길드장님 기다리신다."
김태수를 따라 오른 엘리베이터가 이동하고, 곧이어 빌딩의 최상층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문이 열리자 제법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김이현 씨?"
"네. 오랜만입니다 강현 씨."
"뭐야. 당신 단군 길드였어요?"
"맞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으로 하고 안으로 들어가시죠. 길드장님께서 기다리십니다."
김이현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길게 느껴지는 복도를 지나자 전망이 좋은 널찍한 사무실이 나타났다.
그곳에 단군 길드의 길드장.
한세연이 있었다.
"반갑습니다."
손을 뻗으며 인사하는 한세연.
강현은 그녀의 손을 힘차게 마주 잡았다.
"예. 강현입니다."
"누나. 오랜만입니다."
안유성도 한세연과 구면이란 것이 거짓말은 아닌지 제법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예. 안유성 씨. 오랜만이네요."
서로가 인사를 나누고, 강현이 고급스러운 소파에 몸을 뉘었다.
그러자 훤칠하게 생긴 남성이 다가와 처음 보는 차(Tea)를 품격 있게 내려놓았다.
"먼저 지난번 도움은 고마웠습니다. 진작 찾아뵀어야 하는 건데."
강현은 단군이 아현을 보호해 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아니요. 이 은혜는 제가 꼭 갚겠습니다."
"생각보다 정의로운 분이셨군요."
"정의 같은 거랑은 거리가 좀 멀고... 그냥 빚지고 사는 걸 싫어해서요."
강현의 우직한 말에 한세연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괜찮으시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제가 질질 끄는 걸 싫어해서."
"..."
"저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뭡니까?"
강현의 말에 한세연이 턱을 괴며 고개를 내밀었다.
"강현 씨는 현재의 평화가 얼마나 지속될 것 같습니까?"
"평화라..."
갑작스러운 한세연의 질문에 강현이 고민에 빠져들었다.
현재의 평화.
적어도 5년 안에 몬스터의 대규모 침공이 있으리란 것은 강현도 알고 있었다.
'확실히 8단계에서 봤던 장면은 충격이었지. 한세연도 그걸 봤을 테고.'
고민하던 강현이 입을 열었다.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제가 고민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
"그저 제가 강해지는 것. 일단은 그것만이 유일한 대비책이니까요. 그래도 아직 5년의 시간이 남았잖아요?"
강현의 말을 들은 한세연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5년 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길어야 3년. 그 안에 존립이 위태로워지는 국가들이 나올 겁니다."
예상과는 조금 다른 말에 강현이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이 모든 일을 알고 있는 신적인 존재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쪽에는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자가 있죠."
신적인 존재.
관리자에 대한 이야기가 분명했다.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말에 강현은 내심 놀랐지만, 속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했다.
굳이 여기서 자신이 튜토리얼 졸업자임을 알릴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흐음..."
"허무맹랑한 이야기라 생각하실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현재 던전 난이도의 상승폭만 봐도 앞으로의 위기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확실히 D 등급부터 난이도 많이 오르긴 했죠."
"예. 그리고 빠르게 강해지는 던전과 달리, 능력들의 성장은 금방 정체될 겁니다."
능력자의 성장이 정체된다.
한세연은 그것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뭐... 나도 슬슬 레벨업이 힘들어지기는 했지.'
강현이 생각에 잠긴 사이 한세연이 말을 이었다.
"레벨업. 강함의 상승이란 것은 단순히 몬스터를 많이 잡는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저도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강해지기 위해선 앞으로 더욱 대담해져야 합니다."
순간 한세연의 눈빛이 돌변했다.
"강현 씨가 사람을 얼마나 죽였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어차피 쓰레기들. 인류의 생존에 하등 필요가 없는 존재들이었죠. 저희들은 그런 자들 수백 보다 강현 씨와 같은 강인한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갑작스러운 한세연의 말에 강현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제의는 고맙지만 아직은 혼자 다니는 게 편합니다. 제가 싸우는 방식이 좀 거칠기도 하고."
"절대로 강현 씨의 발목을 붙잡는 일은 없을 겁니다. 최고의 정예들만이 함께 움직일 거니까요."
강현의 완곡한 거절에도 한세연은 설득은 끈질겼다.
"저를 높게 봐주는 건 고맙습니다만, 조금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솔직히 단군 길드에 들어간다면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단군 길드는 나랑 너무 맞지 않아.'
자신의 성장에 방해된다는 것은 부차적인 이유이다.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영웅 상은 아니지.'
세계를 구하는 구세주가 되겠다는 단군길드의 신조는 자신과 너무 맞지 않았다.
"강현 씨의 생각이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죠."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세연의 말에 강현이 미소를 지었다.
"저야 환영이죠."
**
강현이 떠나가고 난 뒤, 사무실에는 김이현과 한세연만이 남아 있었다.
"직접 만나보신 소감은 어떠십니까?"
"기대 이상이네요."
김이현의 물음에 한세연이 미소를 지었다.
"제가 관리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확실히 그의 눈빛이 흔들렸어요. 튜토리얼의 마지막까지 도달했다는 이야기죠."
"하지만 길드장님. 그는 단순히 선한 사람이 아닙니다."
"..."
"이번 베이트 길드 사건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한세연이 선악을 논하는 김이현을 지긋이 응시했다.
"김이현 씨."
"예. 길드장님."
"앞으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자는 선한 자가 아닙니다. 보다 강한 자죠.
"..."
"알아두세요. 선한 자들만 모여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말을 하는 한세연의 눈에서는 알 수 없는 광기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
E등급 던전과 D등급 던전.
고작 한 단계 상승이지만 거기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바로 등장하는 몬스터의 다양성.
"케륵, 케륵!"
E등급 까지는 대부분 단일 개체의 몬스터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D등급부터는 다르다.
한 던전 안에 여러 종류의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D등급 던전 '데이언스의 연구소'는 그러한 몬스터의 다양성이 극대화된 던전 중 하나였다.
"키에에엑!"
온갖 종류의 몬스터가 짜깁기된 키메라. 흉측한 외형을 한 놈들이 괴성을 내질렀다.
다양한 몬스터의 종잡을 수 없는 패턴으로 인해 '데이언스의 연구소'는 D등급 중에서도 최상급에 랭크돼있는 던전이었다.
-스걱
그 최상의 난이도를 가진 던전에 강현은 오늘도 홀로 뛰어들었다.
"확실히 까다롭네."
말을 하며 강현이 날아오는 몬스터를 두 동강 냈다.
"이게 던전 초입이라고?"
아직 던전에 들어온 지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았는데 만난 몬스터의 종류만 열 가지가 넘었다.
사실상 매번 전투를 치를 때마다 새로운 몬스터를 만난 것이다.
"크오오..."
"이건 또 뭐야?"
강현이 눈앞에 있는 거대한 몬스터를 보며 헛웃음을 삼켰다.
[키메라 고블린]
"진짜 어이가 없네."
머리는 분명 고블린이다.
그런데 몸은 3m 크기의 오우거의 육체를 사용하고 있었다.
"..."
그런 놈을 보자 강현은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오우거 몸뚱이를 그대로 붙일 거면 머리는 왜 합친 건데? 그냥 오우거를 놔두면 되는 거 아냐?"
"쿠아아아!"
강현의 말에 호응하듯 놈이 엄청난 고함을 내질렀다.
그리고 다짜고짜 입에서 침을 뱉었다.
"퉤에!"
푸르스름한 색.
한눈에 봐도 위험해 보이는지라 강현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
-푸시시식...
놈의 침에 닿은 바닥이 빠른 속도로 부식됐다.
"시벌. 무슨 히x라도 아니고..."
"쿠아아아!"
강현은 고블린이 싫었다.
정말 싫었다.
그런데 비대한 오우거의 몸뚱이를 하고, 산성 침까지 뱉어대는 고블린은 더욱 더 싫었다.
"넌 그냥 못 보내 주겠다."
"쿠아아!"
강현이 '웨인의 비기'와 '거인의 힘'을 모두 활성화했다.
그러자 바위도 단번에 박살 낼 수 있을 것 같은 거력 차올랐다.
몸이 터질 것만 같은 감각에 강현이 씨익 웃었다.
-쾅!
고블린이 휘두른 주먹이 바닥에 내려쳤다.
그 충격에 흙먼지가 비산했다.
"마력폭발!"
강현은 그사이 놈의 얼굴을 향해 마력구를 날렸다.
-퍼엉!
"쿠어어!"
두개골이 통째로 흔들리는 충격.
턱에 마력구가 적중된 고블린이 괴성을 내질렀다.
그 모습을 보며 강현은 인벤토리에서 우르그의 망치를 꺼냈다.
"쓰읍... 딱 좋네."
한눈에 봐도 굉장해 단단해 보이는 거대 쇠망치.
그것을 집어 든 강현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간다아아!"
그리고 쇠망치를 놈의 생식기를 향해 전력으로 쳐올렸다.
-퍼어억!
쇠망치와 거대한 살덩어리가 충돌하고, 그로테스크한 사운드가 울려 퍼졌다.
급소를 가격 당한 놈의 거체가 공중으로 조금 떠올랐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
놈이 내지르는 비명 소리는 단연코 강현이 지금까지 들은 몬스터의 비명 중 가장 구슬펐다.
그것이 놈의 마지막이었다.
"뭐야? 죽었어?"
강현은 놈의 얼굴을 발로 툭, 툭 건드렸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진짜 죽었구나."
강현은 마정석을 캐기 위해 단검을 꺼내들었다.
"..."
그러나 금세 다시 단검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영 찝찝하네..."
국부를 가린 가죽이 핏물에 축축하게 젖어가는 것을 보자 도저히 칼을 대고 싶지 않았다.
잠시 합장을 한 강현이 놈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
던전 안에서는 어떠한 범법 행위도 단속이 불가능하다.
폭행, 강간, 살인 등 중범죄라 칭할 만한 범법행위들이 일어나도 던전이 클리어 되는 순간 모든 증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아아악!"
오늘도 평화로운 던전 안에는 그러한 저질스러운 범죄행위가 만연하고 있었다.
"왜들 이러시는 겁니까."
굳은 표정의 여성이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
"웨둘 이뤄쉬는 궙니꽈아? 크큭."
그러나 남자들은 재미있다는 듯이 여성을 말을 따라하며 빈정거릴 뿐이었다.
"왜들 이러시는지 몰라서 물어?"
"모르겠습니다만."
"당연히 좋은 일 하려는 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너 같은 년을 우리가 왜 데려왔겠어?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 이년아."
자신을 둘러싼 남자들을 노려보던 여성, 신성아가 재빨리 단검을 꺼내 휘둘렀다.
"크악!"
뺨에 기다란 상처가 난 남자가 비명을 내질렀다.
"더 이상 다가오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이 썅년이!"
잔뜩 흥분한 남성이 다가오자, 신성아가 재차 단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 공격은 남자의 손에 맥없이 붙잡혔다.
"다시 지껄여봐. 뭐? 가만히 있지 않아?"
-짜악!
신성아의 팔을 붙잡은 남자가 거칠게 그녀의 뺨을 올려붙였다.
"그러게 왜 그랬어. 활쟁이 년이 이쑤시개 들고 설쳐서 뭐 어쩌려고?"
"가만히 있지 않아? 쿠헤헬헬! 가만있지 않으면 어쩌실 건데요?"
그에 호응하듯 동료들이 역겨운 미소를 지으며 혀로 입술을 훑었다.
"우리 나쁜 사람들 아니다? 그냥 같이 즐기자는 거야."
"내 물건 정도면 한방에 뿅 가지! 쿠헤헬!"
남자들은 이제 광기로 번득이는 눈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시발. 도저히 못 들어주겠네."
그때였다.
뒤쪽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남성들이 황급히 돌아섰다.
"쿠헤헬헬? 무슨 웃음소리가 이렇게 엿 냐냐."
갑자기 등장한 남성, 강현을 본 놈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넌 뭐야?"
"신경 쓰지 말고 가라. 다치기 싫으면."
"허허. 참..."
고대 영화에 등장하는 삼류 악당이나 할 법한 대사.
어처구니가 없어진 강현이 실소했다.
"형씨. 지금이라도 꺼지면 넘어가 줄 테니 그냥 가."
모여 있는 남자들을 헤치고 비대한 덩치를 지닌 사내가 걸어 나왔다.
남자는 사회에서 보기 힘든 거구였는데, 대충 보아도 120kg은 가볍게 넘어갈 것 같았다.
강현은 저런 덩치로 어떻게 D등급 던전까지 올 수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어이. 형씨. 내 말 안 들려? 꺼지라고."
돼지의 말에 강현이 한쪽 입꼬리를 비틀었다.
"근처에 도축장을 차렸나."
"...?"
"어디서 자꾸 돼지새끼 멱따는 소리가 들려?"
38화 던전 테러(3)
38. 던전 테러(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