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이따금씩 주선호에 대해서 혼자 고민하던 내용이 있다.
헌터랭킹 1위, 신창 주선호.
그는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각성한 헌터들, 그중에서도 S급 헌터들에게는 이상하리만큼 자비로운 편이었다.
주선호가 나에게 비밀을 이야기한 이후에도, 그가 나에게 한 입막음 조치라고는 짧은 협박이 전부였다.
그가 나에 대해서 무엇 하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단편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있음에도 나를 신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위험한 일을 꾸미고 있는 사람의 행보라기에는 지나치게 안일해보이는 태도였다.
오히려 나를 끊임없이 시험하고 감시하던 이지성의 태도야말로,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진 이들에게 어울리는 방법이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동료라고 생각하는 너희에게 하는 이야기다.'
허나, 지금이라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가 지금 우리의 앞에서 말한 쓸모있는 사람.
그건 분명 S급 헌터들을 지칭하는 이야기일 터였다.
그리고 주선호는 자신이 '동류'라고 판단한 인간들, 다시 말해서 상위 등급의 헌터들을 싫어하지 않았다.
설령 그들이 자신의 대의에 동참하지 않으며, 주선호 자신을 증오하고 원망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S급 헌터들을 자신의 동포라고 여길 터였다.
'내 생각이 맞다면 주선호는 천시예에 대해서도 커다란 반감을 가지고 있지 않을거다.'
그 이유는 당연히 하나였다.
내 눈앞에 있는 EX급 헌터의 눈에 비추어지는 세계는, 명확하게 흑과 백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니까 말이다.
십년전, 왕관을 따르는 자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신창, 주선호의 눈에 비추어지는 사람은 둘로 나뉘어버렸던 것이다.
'상위 헌터와 그 이외의 존재들. 주선호는 이미 자신이 품고갈 사람에 대한 선별을 마쳤어.'
반드시 살려야만 하는 사람.
그리고 끝내 죽어 사라질 사람.
그에게 있어서 '형제'가 될 수 있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로 구분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는 이미 정신지배의 가능성이 높은 이들을 완전히 포기한 상태였다.
"아무리 도시를 요새화시키고 자원을 비축한다고 한들, 결국 도시 내에 '왕관을 따르는 자'가 나타나면 모든게 끝나버리겠지."
그들이 언젠가 주선호 자신에게 총구를 겨눌 잠재적인 적이라고 판단한 셈이었다.
지나치리만큼 위험하고 편협한 시선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눈에는, 십년 전부터 사라지지 않았을 고독이 감돌고 있었다.
"인류 전부를 품고갈 수는 없다. 그러니 철저한 선별이 필요한거다."
인류의 최전선에 선 헌터의 선언.
그것을 마지막으로 주선호는 창을 어깨에 걸쳐매었다.
그리고는 요새도시의 중심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얼마든지 이야기해라. 형제들의 의견이라면 언제든지 들어보도록 하지."
"······."
"하지만 내가 내린 결정이 쉽게 변하는 일은 없을거다. 앞으로 몇명이 죽더라도 나는 우리의 미래에 필요한 일을 할 뿐이다."
나는 앞장서서 걸어가는 주선호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착잡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이지성의 모습을 보았다.
그림자사냥꾼, 이지성.
그는 대체 어떤 이유로 주선호를 그토록 따르고 있는가.
오늘만큼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사체로 뒤덮힌 필드의 한가운데.
그곳에서 말이 되지 못한 이지성의 한마디가 맴돌았다.
* * * * * *
엘리트 개체에 대한 주선호의 경고가 끝난 이후.
우리들의 게이트 공략은 비교적 순조롭게 이어졌다.
바깥에서 대부분의 기사들을 처리했던 모양인지, 건물의 내부에는 이전보다 적은 숫자의 괴물들만이 배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을 처치한 것은 당연하게도 선두에 선 주선호였다.
콰앙! 쾅-!
주선호는 자신의 마창을 휘두르면서, 우리를 가로막는 몬스터 대부분을 뭉개놓았다.
"저기 말이야. 아까 그거 대체 어떻게 한거야?"
물론 나는 중심부로 가는 도중에 서유화의 귀찮은 질문을 몇번 받아야만 했다.
"아까 그거라면······?"
"주선호랑 같이 필드에 있던 몬스터들을 한번에 쓸어버린거 있잖아."
내가 주선호와 함께 몬스터들을 쓸어버리는데 사용한 스킬, [징벌].
그에 대한 질문을 이번에 서유화가 꺼내온 것이다.
내가 어떻게 그만한 위력을 가지고 몬스터들을 쓸어버렸냐는 것이었다.
'하기야, 서유화 자체가 화력이 높은 편은 아니니까 그럴만도 한가.'
물론 그런 그녀의 질문이 완전히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S급 헌터, 풍랑의 경우 압도적인 화력을 순식간에 퍼붓는 타입이 아니었다.
태풍이 날아들어도 버티는 몬스터들은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그녀의 장점은 정령을 통한 안정적인 전투 밸런스에 있는 편이었다.
그런 이유때문에 헌터랭킹 14위라는 나름대로의 고평가를 받고 있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EX급 게이트쯤 되니까 애매한 육각형이라 그런지 쓸모가 줄어드는구나.'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나 역시도 게이트 내부에서 신수들을 불러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의 서유화는 전투지속능력만 배제한다면 내 하위호환이라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나는 그런 서유화를 향해서 안쓰러운 눈길을 보냈다.
자신이 보조계열 헌터에게 밀렸다는 사실이 분했던 것이었을까.
그런 내 시선에 서유화가 애써 변명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쓸모없는걸 보는 눈빛으로 쳐다보면 곤란해. 애초에 메이지들은 이게 평균인데······."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하, 그래? 당연히 아무 말도 안하셨겠지."
서유화와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이후에는 정찰에 나선 이지성을 기다리며, 필드의 중심부로 계속해서 나아갈 뿐이었다.
터벅, 터벅.
요새를 나아가는 헌터들의 발걸음 소리가 무너진 건물의 벽을 타고 울렸다.
중간중간마다 피로 쓰여진 수상한 메세지들이 우리를 반겨주기도 했다.
- [자동번역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 이 요새는 지옥이다.
- 빨리 밖으로 나가고 싶어.
- 미쳐버린 황제에게 경배를.
상당히 섬뜩한 내용을 담고 있는 메세지들과는 별개로, 더 이상 엘리트 개체가 튀어나오는 일은 없었다.
가장 힘든 관문을 비교적 순탄하게 넘어온 덕분이었을까.
그게 아니면 해당 게이트가 EX급 중에서도 유독 특정한 방향으로 치우쳐져있는 까닭이었을까.
요새의 심부에서 치뤄진 전투는 최초의 전투와 비슷한 난이도였다.
"슬슬 끝이 보이는군."
그리고 요새의 심장부에 있던 필드 보스의 경우, 이전의 전투와 다르게 일방적인 양상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마지막 전투를 치르게 된 보스는 거대한 의자에 눌러붙어있는 고정형 몬스터였으니까 말이다.
그것도 강력한 저주와 정신지배를 제외하고는, 물리적인 장점이라고는 전혀 내세울 수 없는 유형이었다.
- [필드 보스 : 노쇠한 장군 빅토르]가 출현했습니다.
- 위대한 황제의 명령이 이 땅의 모든 피조물에게 내려집니다.
고정형 몬스터.
이동이 불가능한 괴물들의 경우 공략 방식은 대부분 정해져있는 편이었다.
한점에 투사하는 막대한 화력.
그리고 그것은 EX급 헌터인 주선호에게 있어서 특히나 자신있는 분야이기도 했다.
그는 전세계의 어떤 헌터보다도 압도적인 화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오러 부스트]."
주선호는 눌어붙은 채로 눈을 굴리는 괴물을 보며 자세를 잡았다.
토벌대를 향해 날아오는 무수한 숫자의 저주들.
수많은 부정적인 효과들이 헌터들을 노리고 날아왔지만, 그것들 대부분은 전면에 나선 내 능력에 의해 파훼되었다.
괴물의 눈동자가 쏘아내는 저주는 내가 상쇄했으며, 괴물을 향해 쏘아내는 투창은 주선호의 손에서 준비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전투에 마무리를 지은 것은, 신창이라 불리는 남자가 전력으로 내던진 투창이었다.
"······버티느라 고생많았다."
EX급 헌터가 최대한으로 갈고닦은 단 한방의 공격.
콰아아아앙-!
막대한 기운을 품은 창은 괴물의 눈을 꿰뚫고 건물의 벽을 무너뜨렸다.
대기를 찢고, 살점을 찢으며, 그 뒤의 벽마저 찢어발기는 궤적.
그 공격은 무수한 체액을 대지에 흩뿌리게 만들었으며, 괴물이 뿌리내린 건물을 통째로 흔들리게 만들었다.
비명을 내지르며 터져나간 괴물.
그 흉측한 생명의 마지막 발버둥이 드디어 완전히 끝을 맺었을 때, 지칠대로 지쳐버린 헌터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익숙한 메세지였다.
- [필드 보스 : 노쇠한 장군 빅토르]를 처치했습니다.
EX급 게이트의 필드 보스가 죽었다.
해당 게이트의 지독한 여정을 마무리할 단 하나의 메세지.
익숙하면서도 낯선 메세지를 마지막으로 게이트가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무너지는 하늘의 너머로 보이기 시작한 풍경.
그것은 이른 아침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밝은 태양이었다.
* * * * * *
필드 보스를 공략한 이후, '요새도시 라바르그'로 향하는 게이트는 완전히 폐쇄되었다.
필드 내부의 몬스터를 전부 정리하는 것으로, 해당 공간이 붕괴되며 게이트가 조기에 폐쇄된 것이다.
그렇게 게이트가 사라진 이후, 나를 포함한 헌터들은 처음의 그 자리로 되돌아왔다.
다들 장시간 이어진 전투의 여파 때문인지 상당히 피곤해진 모양이었다.
"다들 고생많았다."
주선호는 눈이 퀭해진 헌터들을 보며 위로의 말을 전했다.
피로에 젖은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럼에도 내 경우는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다른 편이었다.
주선호와 함께했던 게이트 공략.
혼자라면 결코 마무리짓지 못했을 험난한 여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굉장히 많은 이득을 안겨주었다.
예를 들자면, 지금 내 눈앞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무수한 메세지들처럼 말이다.
- EX급 게이트를 성공적으로 공략했습니다!
- [폐쇄형 커뮤니티 : 자격 시험 2]가 종료됩니다.
- [황금의 라스테리오]가 시험을 통과한 당신의 능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 근력 능력치가 다음과 같이 변화합니다.
- 근력 : D → B+
- 신성 능력치가 다음과 같이 변화합니다.
- 신성 : E+ → D
성좌, 황금의 라스테리오가 나에게 내렸던 두번째 시험.
해당 시험이 이제서야 완전히 종료된 것이다.
EX급 게이트가 완성되기 전에 폐쇄에 성공했으니, 예정되어있던 보상을 받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드디어 해당 시험이 끝난건가.'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시험의 보상을 확인했다.
내가 이번 시험을 통해 획득한 것은 두가지 능력치였다.
내가 가진 근력 능력치가 B+로 상승했으며, 신성 능력치 역시 작은 폭이나마 성장했다.
그동안 등급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능력치가 이제서야 균형이 맞춰진 셈이었다.
'이정도면 근력 능력치도 A급 헌터들의 평균은 되겠어.'
더군다나 이번에 상승한 능력치는 다른 능력치도 아니고 무려 근력이었다.
헌터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직관적인 능력치 중 하나.
그런 능력치가 A급을 목전에 두고 있으니, 그 뿌듯함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신성력도 마력도 상당히 중요한 능력치지만, 남자라면 누구나 강한 힘을 갈망하기 마련이었다.
나 역시도 한숨자고 일어나서 헬스장에 찾아갈까 고민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흠······."
오죽하면 능력치가 크게 성장한 손이 근질거릴 정도였다.
지금의 나라면 얼마나 많은 무게를 들어올릴 수 있을 것인가.
내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것도 잠시.
머지않아 피로에 젖은 헌터들을 바라보고 있던 주선호가 입을 열었다.
"마지막에 쓰러뜨린 필드 보스에게서 아이템 하나가 나왔다."
EX급 게이트의 필드 보스에게서 나온 아이템.
그 이야기를 듣자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주선호에게 향했다.
다른 헌터들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었을까.
서유화와 이지성 역시 주선호를 향해 시선을 돌리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된 주선호는, 손에 쥐고 있던 무언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툭, 데구르르-.
주선호의 손길을 따라서 바닥에 떨어져내린 것은, 녹이 슬고 부식된 것처럼 보이는 낡은 검 한자루였다.
"저건······?"
"아무래도 주물의 일종으로 보이더군. 등급 자체는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주선호가 떨어뜨린 낡은 검.
해당 아이템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풍겨나오는 모습이었다.
EX급 게이트 안에서 출토된 아이템.
그 아이템은 공교롭게도 강력한 저주가 걸려있는 주물의 일종이었던 것이다.
"이 아이템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양보하도록 하지. 아무도 없다면 내 나름대로 처리할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겠다."
주선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해당 아이템으로부터 시선을 떼는 모습이었다.
아이템의 정체가 주물이라는 사실이 크게 거슬렸던 것이었을까.
이지성이 눈살을 찌푸리며 저주받은 검을 노려보았다.
"하필이면 게이트에서 나온게 주물이라고······?"
일본의 S급 헌터, 귀령에게나 팔아먹을 수 있을법한 물건.
이지성은 해당 아이템을 보고 그렇게 판단한 모양이었다.
다른 헌터들과는 다르게 저주의 영향을 받지 않는 나는, 그런 헌터들을 대신해 해당 아이템을 직접 확인해보았다.
스윽-.
바닥에 떨어진 아이템을 손에 쥐자, 외견에 비해 비교적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
그리고 그런 내 눈앞에는, 저주받은 검에 대한 정보가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 파멸검 트리바키아(S+) >
[ 아이템 설명 ]
- 머나먼 과거에 이름을 떨치던 명검이었지만, 이제는 지독한 저주에 잠식되어 뒤틀리고 말았습니다.
- 오직 저주받은 이들만이 다룰 수 있는 주물입니다.
- 강력한 저주에 물들어 장시간 접촉할 경우 주기적으로 부정적인 효과가 발생합니다.
[ 아이템 효과 ]
- 각인 : 해당 아이템을 실체화하지 않은 경우, 저주의 형태로 사용자의 손등에 새겨집니다.
- 부정축적 : 짊어지고 있는 저주의 숫자에 비례해 물리적인 영향력이 강해집니다.
- 파멸경로 : 상처를 입힐 때마다 짊어지고 있는 저주의 일부가 대상에게 공유됩니다.
- 불멸성 : 파괴되거나 변형되지 않습니다.
- 트리바키아 : 검에 축적된 모든 저주를 일시적으로 해방시켜 검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립니다.
S+등급 장비 아이템, <파멸검 트리바키아(S+)>.
해당 아이템을 마주한 나는 머리를 강하게 두드려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뭐야, 이거."
운명적인 만남.
그런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아이템이 내 손에 들려있었으니까 말이다.
81화
라이벌.
인생의 숙적은 누구에게나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 법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레이트 브리튼에서 가장 위대한 헌터라고 여겨지는 남자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검성, 아서 테브란트.
오랜 세월동안 누군가의 등을 쫓아왔던 그에게 있어서, 라이벌의 이름은 무척이나 무거운 법이었으니까 말이다.
"라스테리오··· 드디어 따라잡는데 성공했어."
유일한 EX급 헌터이면서, 인류 최강이라고 불리는 헌터— 신창(神槍).
그는 오랜 시간동안 검성보다 반발자국 앞서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에게서 '유일하다'라는 수식어를 떼어낼 시간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아서의 눈앞에는 무척이나 특별한 메세지가 떠올라있는 상태였다.
그것도 아서가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메세지가 말이다.
- [헌터 등급 : EX]에 도달했습니다!
- [천상의 검(S+)]의 등급이 다음과 같이 조정됩니다.
- 특성 등급 : S+ → EX
S급 헌터, 아서 테브란트.
그가 이제서야 EX급에 도달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신창에 이어서 두번째로 EX급에 도달한 헌터.
비록 그의 경쟁자가 먼저 도달하고서 한참이나 지난 뒤에야 이룬 업적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지금의 이 상황이 아서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뜻깊은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점점 벌어질 것 같았던 격차가 오늘에서야 다시 줄어든 셈이었으니까 말이다.
"이제는 주선호랑 나를 비교하는 그 지긋지긋한 기사들을 그만 볼 수 있게 된거라고!"
아서는 기쁨에 젖은 목소리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누군가를 향해 이야기했다.
그의 가장 오랜 친구이자, 어린 시절부터 그를 지켜보았던 보호자.
이제는 가족이라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존재를 향한 외침이었다.
비록 오랫동안 아서의 마음대로 이름을 바꿔불러왔다는 불상사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도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닐 터였다.
띠링-.
그런 아서의 외침에 호응하듯이, 아서의 눈앞에 성좌로부터의 후원 메세지가 떠올랐다.
- 성좌 [황금의 라스테리오]가 당신에게 100포인트를 후원했습니다.
- [황금의 라스테리오]가 당신이 이룬 업적을 칭찬합니다.
- 성좌 [황금의 라스테리오]가 당신에게 100포인트를 후원했습니다.
- [황금의 라스테리오]가 앞으로도 멈추지 말고 정진할 것을 요구합니다.
성좌, 황금의 라스테리오.
그는 메세지를 보내며 아서의 성취를 칭찬하는 모습이었다.
"당연히 그래야겠지. 한국의 신창을 넘어서기 전까지 멈출 생각은 없어."
그리고 그런 라스테리오의 메세지에, 아서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스스로 '엑스칼리버'가 아님을 어필하던 성좌는 여전히 아서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모든 이들이 그를 배신하는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마지막까지 그에게 남아있을 유일한 별.
그러한 별을 향해서 아서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때 받은 90만 포인트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빠르게 올라오는건 힘들었을거야."
- ······.
"그게 아니더라도··· 어린 시절에 당신에게 받은 힘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겠지."
어린 시절부터 반짝이던 별빛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아서의 황금빛 별은 결코 사라지는 일이 없을 터였다.
죽는 순간까지도 가슴속에 품은 채 꺼지지 않을 반짝임.
저 하늘에 떠오른 황금의 별은 아서에게 있어서 영원한 것이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빛 별을 마주한 채, 아서의 마음속에 거대한 파문이 퍼져나갔다.
"라스테리오. 항상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는 깊은 감사.
어린 시절부터 검을 휘둘러왔던 기사는 자신의 별에게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잠시 후.
아서는 전투의 여파로 망가져버린 싸구려 강철검을 주워들면서 이야기했다.
"그런데 성좌들은 포인트가 많은 편이잖아. 혹시 30만 포인트만 더 주면 곤란한가? 딱 그정도만 있으면 충분할 것 같은데."
약간의 아쉬움을 담은 가벼운 한마디.
그런 아서의 이야기가 흘러나온 이후, 짧은 침묵이 필드에 내려앉았다.
"······."
정적과 고요.
그 속에서 아서는 묵묵히 강철검을 바라보았다.
검성 아서에게 다시금 메세지가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이후였다.
- 성좌 [황금의 라스테리오]가 당신에게 100포인트를 후원했습니다.
- [황금의 라스테리오]가 어려운 협상이지만 노력해보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서는 그 메세지에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포인트를 가져오는건 성좌들에게도 퍽 곤란한 일인 모양이었다.
'황금'이라는 이름을 가진 라스테리오마저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 * * * * *
주선호의 주도하에 진행되었던 EX급 게이트의 공략.
해당 게이트의 폐쇄가 이루어지고 나서 어느덧 사흘이 흘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결국 게이트에서 출토된 아이템은 내 차지가 되었다.
EX급 게이트에서 나온 S+급 아이템, <파멸검 트리바키아(S+)>.
우리들 중에서 그 누구도 해당 아이템을 가지길 원치 않았던 까닭이었다.
해당 장비 아이템의 경우 등급만 무식하게 높을 뿐, 디메리트가 덕지덕지 달려있는 탓에 써먹기가 마땅치 않은 까닭이었다.
"백구야. 이거 괜찮아보이냐?"
- 왈! 왈왈왈!
S급 게이트, 버려진 신수들의 낙원.
그곳에서 나는 손등에 새겨진 저주를 백구에게 내보이며 이야기했다.
아이템 분배의 결과 지금의 내 손등에는 기이한 문신 하나가 남게 되었다.
뒤집힌 장검 모양의 문신.
자세히 바라보면 꺼림칙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편이지만, 멀리서 보면 단순한 타투처럼 보이기도 했다.
실체화하지 않은 저주가 문신의 형태로 손등에 새겨진 것이다.
- [자동번역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 "그대여, 불길한 물건을 가지고 왔군."
-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정화하는게 불가능한 물건으로 보인다."
지독한 저주가 걸려있는 아이템이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면 오염된 괴물이 몸에 품고 있던 물건이기 때문이었을까.
순백의 용은 <파멸검 트리바키아(S+)>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신수의 입장에서는 가까이 하기에 꺼려지는 물건인 셈이었다.
물론 나로서는 주물을 정화할 의사가 없었던만큼, 그 부분은 크게 문제가 될 여지가 없었다.
"나름대로 써먹을 방법이 있어서 가져온거야. 당장 정화할 생각은 없어."
애초에 내 실력으로 정화가 가능한 물건인지도 의문이었지만 말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때 나쁘지 않은 장비이기도 했다.
지금의 나는 A급 헌터의 평균 능력치보다 부족한 편이지만, 내 신체 능력치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는 상황.
이대로 계속해서 능력치가 성장하다보면 근접 전투가 필요해지는 시점도 찾아올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서 무기를 가지고 있는건 썩 나쁘지 않은 판단이라는 생각이었다.
"소지품 검사에도 들키지 않을거고··· 어떤 의미에서는 아서가 쓰던 검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더군다나 <파멸검 트리바키아(S+)>는 평범한 방법으로 검출해내기도 쉽지 않았다.
영국의 검성이 사용하는 [천상의 검]마냥 어디서든 검을 뽑을 수 있는 것이다.
휘릭-.
지금도 손을 흔들면 저주가 실체화되어 검의 형상을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휘익, 휘이익!
칙칙한 기운이 드리워진 파멸검을 허공에 휘두를 때마다, 그 궤적을 따라 검은 잔상이 드리워지는 모습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저주가 검격에 배어나오는 것이다.
"팔찌나 검이나 장시간 장착하고 있으면 저주가 쌓이는 물건이니까··· 시너지 자체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네."
- 왈왈! 왈왈왈!
"그래도 더 많은 저주를 짊어져서 나쁠 것도 없겠지."
막대한 저주를 짊어지고 막강한 힘을 휘두르는 것.
무거운 패널티와 강력한 리턴을 함께 가져가는 것이 해당 아이템의 효과였다.
허나, 나는 어떠한 저주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었다.
<파멸검 트리바키아(S+)>의 패널티는 전부 무시한 채, 그 강력한 성능만을 내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셈이었다.
그렇게 백구를 옆에 두고서 검을 휘두르던 내 머릿속에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오랜만에 야마자키한테 연락 좀 해볼까."
많은 저주가 쌓일수록 강해지는 것이 <파멸검 트리바키아(S+)>의 능력이었다.
그렇다면 S급 헌터인 귀령의 힘을 빌어 소소한 스펙업을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 나는 곧장 커뮤니티의 대화방을 열었다.
그리고는 지금도 커뮤니티를 구경하고 있을 'yamazaki'를 향해 간단한 메세지를 전송했다.
- 거품판독기 : S급 헌터 귀령님
- yamazaki : ( ˘・з・)
- yamazaki : 무슨 일이지?
귀령 본인이 커뮤니티 전문가의 관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yamazaki'의 답장은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도착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yamazaki'에게 자신의 용건을 간단하게 이야기했다.
- 거품판독기 : 저주 좀 걸어줘
- yamazaki : ?
- yamazaki : 헌터마스터?
- yamazaki : 어제 분명 걸었을텐데?!
- 거품판독기 : ㄴㄴ
- 거품판독기 : 나한테 걸어
내가 'yamazaki'에게 전달한 무척이나 간단한 부탁.
그것은 바로 자신에게 저주 좀 걸어달라는 부탁이었다.
일본 최강 헌터의 힘을 빌려서 저주 스택을 좀 채우려는 심산이었다.
물론 그런 내 부탁에 대한 'yamazaki'의 반응은 썩 시원찮은 편이었다.
"흠······."
내가 멍하니 서서 답장을 바라보는 것도 잠시.
머지않아 'yamazaki'의 메세지가 몇줄 더 추가되었다.
- yamazaki : 어이, 귀찮아.
- yamazaki : 내가 왜 통하지도 않는 녀석한테 저주를 걸어야 되는거야?
- yamazaki : (`・ω・́)
- 거품판독기 : ...
- yamazaki : 그렇게까지 저주에 걸리고 싶으면 흉가라도 혼자 들어가지 그래?
이용자명 'yamazaki', 일본의 귀령은 그런 내 부탁을 차갑게 거절하는 모습이었다.
일전의 내기가 그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겨주었던 것일까.
나에게는 저주를 걸 가치도 없다고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이건 내가 예상하던 반응이 아닌데."
나는 야마자키의 반응을 보며 난감한 기분이 되었다.
야마자키라면 무심히 저주를 걸어줄거라 생각했건만, 아무래도 그 절차가 상당히 번거로운 모양이었다.
저주라는게 헌터들의 스킬마냥 쉽게 날아가는게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포인트를 쥐어주고서 저주를 받는 것도 나름대로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축복도 아니고 고작 저주따위에 돈을 쓰기에는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포인트까지 주고 저주에 걸리기는 또 아까운데. 하··· 어쩔 수 없나?"
야마자키와의 대화내용을 보며 고민하는 것도 잠시.
결국 나는 고심끝에 다소 과격한 방법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알면서도 당할 수 밖에 없는 고급 트랩이었다.
타닥, 타다닥-.
내 손가락이 반투명한 키보드 위를 분주하게 움직였다.
- 거품판독기 : ㅋㅋ
- 거품판독기 : 실력이 부족하니까 내 저항력을 못뚫지 ㅋ
- yamazaki : ?
- 거품판독기 : 삐빅.
- yamazaki : 어이, 무슨 의미야.
- yamazaki : ?????
- 거품판독기 : ←
- 거품판독기 : 삐빅. 삐빅.
- yamazaki : (╬●∀●)
짧은 채팅이 오고간 이후.
대화를 나누던 'yamazaki'는 나에게 격렬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무릇 저주란 상대에 대한 깊은 증오로부터 시작되는 법.
일본의 귀령에게 저주를 받기 위한 1단계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것이다.
"······이거면 충분히 먹히려나?"
야마자키와의 대화가 끝난 이후.
나는 얌전히 낙원에서 백구를 쓰다듬으며 경과를 기다렸다.
야마자키가 무언가 반응을 보일거라 생각한 것이다.
내가 야마자키에게 설치한 트랩의 효과가 확실했던 것이었을까.
나는 머지않아 순백의 용으로부터 짧은 경고를 받게 되었다.
- [자동번역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 "무척이나 지독한 악의가 그대를 노리고 있군."
- "조심하는게 좋을 것이다."
귀령, 야마자키 아오.
그는 커뮤니티의 누구보다도 무척이나 원한에 충실한 남자였다.
"결국 못참고 걸어버린거냐."
그것도 굉장히 사소한 의미에서 말이다.
* * * * * *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마다 깊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구독자 130만 유튜버.
비밀 커뮤니티의 관리자.
잊혀진 신들의 성자.
누구라도 인생의 무거운 고민을 피해갈 수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러한 고민에 잠겨있는 것은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이 관계를 대체 어떻게 해결해야하나."
간밤의 잠버릇때문에 이불이 찌그러져있는 침대 위.
나는 그곳에서 이른 아침부터 고민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머릿속엔 한명의 S급 헌터에 대한 생각이 떠나가지 않고 있었다.
S급 헌터, 검귀(劍鬼) 천시예.
주선호와의 토벌을 마치고 난 다음날부터, 나는 매일 밤마다 천시예에 대한 고민을 이어왔던 것이다.
"후우······."
S급 헌터들 중 일부가 알고 있다시피, 검귀와 신창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은 편이었다.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천시예의 가족들이 희생된 사고에 있었다.
천시예는 오래전부터 가족의 원수인 신창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 주선호가 꺼냈던 이야기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엘리트 개체, 왕관을 따르는 자.
그 괴물을 쓰러뜨리기 위해 동료마저 제 손으로 죽였다는 것이 주선호의 주장이었으니까 말이다.
"주선호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천시예가 순순히 납득할리는 없겠지."
주선호는 정신지배를 당한 동료들을 자신의 손으로 처리했다.
주선호 나름대로 냉정한 판단을 내린 셈이었다.
허나, 냉정한 판단이라고 해서 모두에게 공감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가족이 희생당한 천시예라면 더더욱 그러할 터.
지금까지 주선호가 보였던 위험한 행보를 생각해보면, 천시예는 그 동기조차도 의심할 가능성이 컸다.
"천시예라면 오히려 주선호의 판단 자체를 의심할 것 같은데."
어떤 방법으로도 쉽게 해소할 수 없는 지독한 은원.
그것이 지금의 주선호와 천시예 사이의 상황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두 사람을 모종의 방법으로 휘어잡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주선호와 천시예.
양쪽에 일종의 안전장치를 걸어둘 필요가 있다는 뜻이었다.
"하··· 어떻게 하지?"
내가 비록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지만, 이런 부류의 고민에 그리 능숙한 편도 아니었다.
그렇게 내가 일주일동안 끌어안고 살던 고민에 끙끙 앓고 있는 것도 잠시.
띠링-.
그런 내 눈앞에 갑작스럽게 메세지 하나가 날아왔다.
"누가 보낸 메세지야? 잠깐만, 마산사나이 최두식?"
커뮤니티의 1:1 대화기능.
해당 기능을 통해 '마산사나이 최두식'이 나에게 대화를 걸어온 것이다.
"나한테 무언가 용건이라도 생긴건가?"
한국의 원로헌터, 불사기사 최두식이 나에게 무언가 할 이야기라도 생긴 모양이었을까.
나는 화면을 터치해 그런 최두식의 메세지를 확인해보았다.
툭-.
내 눈앞에 최두식이 보낸 메세지의 내용이 출력되었다.
- 마산사나이 최두식 : 아우야.
- 마산사나이 최두식 : 혹시.길드만드는데.관심있냐^^
커뮤니티 이용자 '마산사나이 최두식'으로부터의 메세지.
그 내용을 확인한 나는 의아한 얼굴로 화면을 응시했다.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최두식이 나에게 갑작스럽게 길드설립에 관심이 없냐고 물어본 것이다.
명목상으로 헌터 유튜버인 나에게 최두식이 보낸 제안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헌터 유튜버보고 헌터 길드를 설립하는 일에 관심이 없냐고 묻다니.
적어도 그가 메세지를 보내오기 전까지는 일말의 고민조차 하지 않았던 내용이었다.
"아니, 갑자기 나보고 무슨 길드를······."
그렇게 내가 고개를 저으며 최두식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려던 찰나.
띠링-.
다시 한 번 귓가에 알림음이 울려퍼졌다.
하지만 이번에 메세지를 보내온 것은 '마산사나이 최두식'이 아니었다.
또 다른 인물이 나에게 메세지를 보내온 것이다.
"이번에는 주선호야?"
나에게 깊은 고민을 안겨준 헌터 중 하나, '망원동불주먹'.
이번에는 그가 나에게 메세지를 보내왔다.
나는 주선호가 보낸 메세지의 내용 역시 함께 확인해보았다.
- 망원동불주먹 : 형제에게 하나 물어보도록 하지.
- 망원동불주먹 : 혹시 헌터협회의 임원이 되어볼 생각 있나?
주선호가 보내온 메세지의 내용을 확인한 직후.
나는 눈앞에 띄워져있던 대화창을 전부 닫아버렸다.
"······."
길드장과 임원.
두가지 내용에 대해 고민하던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엄청난 일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거지."
그게 아니라면 이런 제안들이 동시에 찾아올 일이 없을테니까 말이다.
82화
비교적 최근에 장만한 한강뷰 아파트의 거실.
창문 너머로 아침햇살이 드리워져있는 그곳에서, 나는 눈앞에 켜져있는 TV를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넷플릭스 전용으로 돌아가던 TV는 오늘따라 분주하게 뉴스를 내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지상파 뉴스에서 반복해서 보도중인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인 편이었다.
- "지난밤 천둥 길드의 최용후 길드장을 포함해 3명을 죽이고 달아난 용의자, 박성구 헌터의 행방이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 "현재 HETX의 구성현 팀장이 직접 토벌팀을 이끌고 수색을 진행중인 상황······."
-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헌터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야한다고 주장을······."
뉴스에서는 자그마치 길드장 살인사건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한국의 S급 헌터, 불사기사 최두식이 소속되어있는 천둥 길드.
지난밤에 해당 길드의 길드장이 살해당한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살인사건을 일으킨 범인은 다름아닌 천둥 길드 소속의 박성구 헌터.
대한민국의 A급 헌터 중 하나, 패검(覇劍)— 박성구가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나는 화면에 나오는 박성구의 얼굴을 보면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A급 헌터씩이나 되는 인간이 뭐가 아쉬워서 저런 짓을 했지?"
지금은 바야흐로 헌터의 시대다.
강한 헌터일수록 훌륭한 대우를 받는 시대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헌터라고 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것도 A급 헌터쯤 되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지는 편이었다.
A급 헌터는 모든 헌터를 통틀어 상위권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등급이었으니까 말이다.
"잃을 것도 많은 사람이··· 쯧."
S급 헌터만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들 역시 수많은 부와 명성을 가진 이들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헌터가 자신이 몸을 담고 있던 길드의 길드장을 죽이고 달아난 상황.
나로서는 그 동기가 쉽게 이해가는 상황은 아니었다.
"뭐, 천둥 길드정도 되면 헌터 협회에서도 나름 한자리 차지하고 있긴 하겠네."
다만, 그와는 별개로 주선호가 나에게 제안을 건넨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갔다.
협회에 공석이 생겼으니 그 자리에 자기 사람을 채워넣으려고 하는 것이다.
주선호가 같은 S급 헌터라고 생각하는 나라면 충분히 믿을만하다고 판단한 것일테고 말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남는 것은 오히려 최두식 쪽이었다.
"주선호야 자기 사람 꽂으려고 해서 그렇다고 치고, 최두식은 대체 무슨 의도로 그런 이야기를 꺼낸거지?"
불사기사 최두식.
그는 천둥 길드에서도 굉장히 커다란 입지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최두식이 나에게 길드를 차릴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본 이유.
나로서는 그 이유가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무슨 생각인지 짐작이 가질 않으니··· 본인한테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나."
결국 기나긴 고민끝에 내가 내린 결정은 하나뿐이었다.
최두식 본인에게 직접 그 이유를 물어보는 것.
그렇게 결정한 나는 곧장 커뮤니티를 실행했다.
그리고는 최두식을 향해 질문이 담긴 메세지를 전송했다.
- 거품판독기 : 형님.
- 거품판독기 : 무슨 일인지 좀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 마산사나이 최두식 : 아우야.
- 마산사나이 최두식 : 이번에.뉴스.봤냐^^
띠링, 띠링-.
내가 메세지를 전송하기 무섭게 최두식으로부터 답장이 날아오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답장을 보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타닥, 타다닥.
나는 그런 최두식을 향해 계속해서 메세지를 전송했다.
- 거품판독기 : 예. 안타깝게 됐습니다.
- 거품판독기 : 그런데 길드 창설에 대한건 갑자기 왜 물어보신건지....
- 마산사나이 최두식 : 채팅으로.하기에는.쬐금.길다^^
- 마산사나이 최두식 : 지금은.내가.좀.바쁘고.
- 마산사나이 최두식 : 이번주안에.만나서.이야기하자.^^~
- 마산사나이 최두식 : 내가.말한거.진지하게.고민해보고.
어떤 심오한 사연이 숨겨져있는 것이었을까.
최두식은 나에게 직접 만나서 대화하자고 이야기하는 모습이었다.
그것도 지금 당장은 중요한 일이 있으니 주중에 보자는 이야기와 함께 말이다.
그런 최두식의 답장을 보며, 나는 난감한 얼굴로 주선호와의 대화방에 접속했다.
"결국 만나기 전까지는 무슨 이야기인지 못들어보겠네."
길드 설립에 관심이 있냐는 이야기.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던 내용이라 그런지 고민이 많이 되기는 했다.
그리고 주선호가 이야기하는 임원에 대한 이야기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최두식과 비슷한 결일테고 말이다.
"······."
결국 나는 주선호에게 적당히 고민해본다는 뉘앙스의 메세지를 전송했다.
아무래도 한동안은 나 역시도 바빠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 * * * *
최두식의 제안으로부터 어느덧 닷새가 지났다.
그동안 A급 헌터 박성구의 새로운 범행에 대한 기사가 추가로 몇건 더 보도되었다.
HETX에 쫓기는 신세가 되어 도망치던 박성구가 도주행각을 이어가면서 또 다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A급 헌터의 위험한 행보는 온갖 헌터 유튜버들에 의해 화제가 되었으며, 내 유튜브 알고리즘에는 연일 패검 박성구와 관련된 내용이 떠오를 정도였다.
시민들 역시 미쳐날뛰는 A급 헌터의 존재에 적지 않은 불안감을 표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S급 헌터 최두식과 조용히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아우를 보는 것도 오랜만이구만."
상당히 프라이빗한 룸이 준비되어있는 어느 한정식집.
그곳에서 최두식은 테이블의 맞은편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최두식에게 인사를 전하고서는 자리에 앉았다.
며칠 사이에 시끄러운 사건들이 이어졌던 까닭이었을까.
나를 마주한 최두식의 얼굴은 피로로 가득차있는 모습이었다.
"주문은 내가 이미 해뒀다."
"······."
"오느라 고생했으니 술이나 한 잔 받아봐라."
최두식은 그렇게 말하며 내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투명한 술이 잔에 가득차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최두식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그 당시에 음주운전 논란에 휘말렸던 최두식과 셋이서 술을 마셨던 기억.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인연이 꽤 오랫동안 이어졌구나 싶기도 했다.
그렇게 나에게 술을 따라준 최두식은, 나를 향해 본격적으로 용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말한건 생각해봤냐."
"저보고 길드 차릴생각 없냐는 제안 말입니까?"
"그래, 아우야. 나는 농담으로 말한거 아니다."
최두식은 그렇게 말하며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매일같이 업로드하던 음식 게시글조차 며칠동안 올라오지 않은 상황.
그런 최두식의 주위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장난기따위는 보이지 않는 최두식이 먼저 술잔을 들었고, 나 역시 그를 따라 술잔을 마주들었다.
짠-.
한차례 술잔이 맞부딪힌 이후, 최두식은 무거운 목소리로 나에게 이야기했다.
"원래는 내가 천둥 길드를 나가서 조그만 길드를 하나 차리려고 했다."
"······."
"그때쯤이면 길드와 계약기간이 끝나기도 했고, 우리 막내도 길드를 옮길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최두식이 나에게 꺼낸 이야기.
그것은 최두식이 예전부터 천둥 길드를 나가서 다른 길드를 차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헌터들이 계약이 끝날때마다 길드를 자주 옮겨다니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러니 이번에는 본인이 길드를 차려서, 천시예를 받아들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허나, 며칠전에 길드장을 포함한 길드의 수뇌부가 길드소속의 헌터에게 살해당한 상황.
그런 상황에서 최두식은 다른 결정을 내린 모양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길드를 나가기가 쉽지가 않아."
"그 말씀은······."
"지금 나까지 밖으로 나가면 길드 꼴이 어떻게 될지 뻔히 보인다는 소리 아니겠냐."
길드의 수뇌부가 사라진 상황에서, 천둥 길드의 기둥인 최두식이 빠지면 벌어질 상황.
최두식의 머릿속에는 그 결과가 뻔히 그려지는 모양이었다.
"아우야. 나야 유명한 헌터니까 괜찮다고 치고, 길드장이 없는 길드가 무너지면 직원들은 어떻게 되겠냐, 이런 말이다."
"······."
"그 많은 사람들, 딸린 식구가 도대체 몇명인데. 최용후 그 인간도 죽은 마당에, 나는 길드 식구들 길바닥에 내모는 짓은 못하겠다."
지금 최두식까지 나가면 천둥 길드가 통째로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러니 최두식이 한동안은 길드에 남아있어야만 한다.
그게 최두식의 이야기였다.
다만 그 부분과 연결되지 않는 내용이 하나 존재하고 있었다.
바로 내가 길드를 차렸으면 하는 이유에 대한 내용이었다.
"크흠, 얘기가 길어지니까 목이 마르구만."
나는 비어버린 최두식의 잔에 다시금 술을 채워넣었다.
벌컥-.
잔을 들어올린 최두식이 술잔을 시원하게 비워버린 직후.
최두식의 입에서 그제서야 본론이 흘러나왔다.
"셀레스티아 길드. 워낙 유명해서 우리 아우도 잘 알고 있겠지. 근데 거기 길드장 놈이 아무래도 주선호 그놈이랑 끈이 있는 모양이다."
"셀레스티아 길드장이 주선호쪽 라인이라는 겁니까?"
"그래, 그놈이 아무래도 주선호한테 맥을 못쓰는 것 같단 말이지."
셀레스티아 길드의 길드장, 양호종 회장.
그와 주선호 사이에 깊은 연결고리가 존재하고 있다.
그것이 최두식의 주장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흠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주선호한테 형제라고 불리는 중인데?'
최두식의 눈앞에 있는 내 경우에는, 그보다 더 강한 연결고리가 존재하는 까닭이었다.
물론 그 사실을 모르는 최두식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우리 막내··· 시예 그 아이가 이번에 계약이 끝나면 바로 길드를 나올거란 말이다."
"천시예가··· 길드를······."
"대형길드에 환멸이 생긴 모양이라서, 아예 자율성이 보장되는 작은 길드로 가버리려는 모양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막내는 이제 파티가 필요없는 수준이란 말이지."
"검귀 레벨정도 되면 파티 없이도 혼자서 토벌작전이 가능할만한 수준이긴 합니다."
"그런데 그 길드장 놈들이, 우리 막내를 얼마나 등쳐먹으려 들지 뻔히 보인단 말이지."
계약기간이 끝나는 직후, 검귀 천시예가 새로운 길드를 구하게 될 것이다.
그것도 대형 길드보다는 작은 길드로 향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
그런 상황에서 최두식이 나에게 하려고 하는 부탁은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기왕이면 믿을 수 있는 사람하고 같이 길드를 차리는 편이 낫지 않겠냐는 이야기다."
"······그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접니까?"
"그래! 여기 있는 우리 '헌잘알' 유튜버, 아우라면 충분히 믿을 수 있지!"
믿을 수 없는 작자들에게 천시예를 맡길 바에야,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새로 길드를 만드는게 낫다.
그러니 S급 유튜버인 나, 헌잘알이 직접 길드를 운영해볼 생각은 없느냐-.
그것이 최두식이 내린 결론인 셈이었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실로 당황스러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주선호와의 연결고리가 싫어서 나간다는데, 나는 그 주선호의 일도 몇번 도와준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그렇게나 믿음직스럽다고?'
나는 그런 최두식의 태도에 조금은 의아함이 들기도 했다.
천시예는 최두식에게 있어서 딸처럼 여겨지는 헌터였다.
더군다나 이번 문제는 돈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사안이기도 했다.
그런데 천시예를 맡기기에는 다른 길드장들보다 내가 훨씬 더 믿음직스럽다니.
나로서는 그 믿음의 근거가 실로 궁금한 상황이었다.
"혹시, 제 어떤 부분이 그렇게까지 신뢰감이 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결국 나는 그 부분에 대해 솔직하게 최두식에게 물어보았다.
그런 내 질문을 받은 이후.
육회를 한점 집어먹은 최두식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답했다.
"여기 있는 아우라면 내가 충분히 믿을만하지! 암!"
"······."
"자그마치 S급 헌터나 되어가지고서, 돈 필요없다고 유튜버 한다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된다고 말이야."
"아."
"그런 아우가 우리 막내 푼돈 떼먹고 부려먹을 일이 뭐가 있겠나!"
최두식이 나에게 보이는 강한 믿음.
그 믿음의 근거를 들은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술병을 들어올렸다.
S급 헌터, 최두식.
그의 눈에는 내가 물욕에서 해탈한 초월적인 무언가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우리 아우의 미래를 위해 다시 한잔하지!"
그리고 그런 최두식의 앞에서, 타고난 거짓말쟁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잔을 들어올리는 것이 전부였다.
짠-.
비좁은 방에 또 한번의 건배소리가 울려퍼졌다.
내 커뮤니티 포인트— 999,999,999,999.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최두식에게 알려지지 않을 비밀이었다.
* * * * * *
최두식을 만나고서 돌아가는 길.
그에게 고민해보겠다는 대답을 남긴 나는, 현재 인적이 보이지 않는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최두식과 심도깊은 대화를 나눈 까닭이었을까.
어느새 복잡해진 머리를 조용히 혼자 길을 걸으면서 식히려는 생각이었다.
"평생 유튜브나 찍으면서 살거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들어서 유독 상황이 빠르게 바뀌는 느낌이었다.
커뮤니티 관리자, 잊혀진 신의 성자, 비밀 대화방의 구성원에 이제는 길드장까지.
이쯤되면 시대가 나를 변화의 중심으로 밀어넣고 있는게 아닌가 고민될 정도였다.
"후, 복잡하구만."
헛웃음을 지으며 걸어가는 내 입가에서는 옅은 알콜냄새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최두식은 취기조차 전혀 못느끼는 모습이었지만, 나는 아직 그정도 경지에는 닿지 못한 모양이었다.
알콜의 잔향이 여전히 주변에서 맴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터벅, 터벅-.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 내 발걸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사람 하나 없는 골목은 조용히 고민을 이어가기에 괜찮은 편이었다.
"아무도 없으니까 혼자서 생각하기에 좋긴 하네."
나는 골목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으며 계속해서 길을 걸었다.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을수록 골목이 점점 어두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최근 들어서 이런 어둠과 제법 친숙해진 듯한 기분이었다.
오래된 유적을 돌거나, 혼자만의 게이트를 조용히 탐험하거나.
그런 기억들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
그렇게 내가 길을 걸어가던 도중.
스윽-.
나는 갑작스럽게 뒤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인기척을 감지하고서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쉿-. 조용히."
아무것도 없던 장소에서 튀어나온 것마냥,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나타난 기척.
그리고 그런 인기척과 함께 내 앞에 날카로운 금속의 모습이 드러났다.
"죽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
눈앞에서 번뜩이는 사시미 칼 한자루.
붉은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검은색 코트.
귓가에 울려퍼지는 섬뜩한 목소리.
나에게 칼을 내보인 남자가 짙은 살기를 퍼뜨렸다.
남자는 나를 협박하듯이 내 귓가에 속삭이는 모습이었다.
"내가 헌터들 중에서는 등급이 굉장히 높은 편이라서 말이야."
"······."
"허튼 수작을 부리는 순간 바로 목이 날아갈거다."
오러가 일렁이는 칼날을 바라보던 나는, 금세 나에게 칼을 겨눈 남자의 정체를 눈치챌 수 있었다.
무법자마냥 한국을 헤집고 다니는 상위 등급 헌터.
수많은 시민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음에도, 아직까지 경찰과 군의 추격을 피해가고 있는 실력자.
인적이 없는 골목길에서 이런 짓을 벌일만한 헌터는 하나밖에 없었다.
"······패검, 박성구."
전(前) 천둥 길드 소속, A급 헌터.
패검(覇劍)— 박성구.
현재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범죄자가 나에게 찾아온 모양이었다.
83화
강한 힘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각국의 정부기관은 언제나 헌터들에게 엄격한 규제와 힘에 대한 책임을 강요해왔다.
헌터협회가 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대가'인 셈이었다.
물론 누구나가 그 목줄에 승복하고 굽힌 것은 아니다.
지금 나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박성구처럼, 거대한 규칙에 속하지 못하는 이들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지금 당장 휴대폰을 꺼내서 바닥에 던져."
압도적인 힘이라는 것이 항상 필요한 곳에만 쓰일 수는 없는 법이다.
인간을 벗어난 초월적인 힘.
그것은 누구의 손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제압하는게 불가능한 존재가 난동을 피우는 것.
그 상황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불러오는지는, 이미 '패검'이라는 이명을 가진 헌터가 수없이 증명해왔을 터였다.
"그리고 최두식과 어떤 관계인지 당장 내 앞에서 설명해라."
벌써 몇명이나 저 칼날에 의해 목숨을 잃었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상당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후우-.
눈앞의 사시미 칼에 비추어지는 자신의 얼굴에,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손을 움직였다.
'내가 최두식과 어떤 연관이 있는건지 확인하려고 찾아온건가.'
천둥 길드 소속의 A급 헌터였던 박성구.
그는 최두식과 모종의 은원관계라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식으로 나를 협박해 정보를 캐내려고 하고 있는걸 보면 말이다.
'A급 헌터와 이런식으로 엮이는 상황이 또 다시 찾아오게 될줄은 몰랐는데.'
지금껏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협박을 들어왔기 때문이었을까.
A급 헌터인 박성구의 협박은 참으로 무게감이 없어보였다.
그동안 S급 헌터들과 오랫동안 생활하다보니, A급 헌터들에 대한 인식이 뒤틀리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그 초라한 협박이 나에게는 한없이 가볍게 들리는 상황이었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는거냐?"
물론 내가 이런 고민을 하는 와중에도, 박성구는 여전히 나를 향해 짙은 살기를 흘리는 중이었다.
"팔이라도 하나 날려버려야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생각인가봐?"
"박성구씨. 제가 사실 헌터들을 참 좋아합니다."
"뭐······?"
나는 그런 박성구에게 이야기를 전하면서, 등뒤를 향해 오른손을 뻗어 주먹을 쥐었다,
아무것도 쥐어지지 않은 손이 주먹을 뻗는 형태.
그 주먹의 끝이 겨냥하는 방향은 정확히 박성구가 있는 곳이었다.
그런 내 이야기를 들은 박성구가 조금은 당황한듯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려는거냐."
"제가 헌터들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인데··· 그렇다고 모든 헌터들을 좋아하는건 아니라서요."
스윽-.
허공을 향해 뻗은 손이 가볍게 움직였다.
아무것도 쥐어지지 않은 가벼운 손바닥.
허나 그렇기에 비로소 의미가 있는 움직임이었다.
"갑자기 정신나간 소리를—."
"그래서, 안타깝게도 박성구씨는 그 예외에 속하는 편입니다."
"대체, 무슨··· 커헉······!"
휘릭.
뒤집힌 손끝에서 흑색의 칼날이 뻗어나오며, 나에게 칼을 겨누고 있던 박성구의 배를 관통했다.
<파멸검 트리바키아(S+)>.
저주에 뒤덮힌 칼날이 피륙을 관통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푸욱-!
손끝에 전해져오는 감각과 함께 박성구가 다급하게 움직였다.
파멸검에 복부가 꿰뚫린 박성구가 나를 노리고서 사시미 칼을 휘두른 것이다.
허나, 애석하게도 박성구의 공격이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은 없었다.
겹쳐보이는 두개의 시야.
다가오는 미래를 확인한 내가 박성구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휘이익-!
허공을 휘저은 칼날을 휘두르던 박성구는 복부를 붙잡은 채 뒤로 물러섰다.
"커헉, 켁··· 커흐윽······!"
바닥을 엇디디며 기울어진 뒷걸음질을 치길 수차례.
얼굴을 일그러뜨린 박성구가 파멸검에 찔린 그의 복부를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끄으, 윽··· 서, 설마··· 헌터였던거냐······!"
검에 찔린 박성구의 복부는 질척거리는 어둠으로 뒤덮혀있었다.
파멸검에 찔린 상처가 검에 깃들어있던 저주에 감염된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지독한 저주를 짊어지고 있던 파멸검이다.
거기에다가 나에게 걸려있던 저주들 역시 더해졌으니, 그 위력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을 터였다.
툭, 툭-.
스스로의 복부를 다급하게 어루만지던 박성구가 나를 바라보며 외쳤다.
"너 이새끼, 내가 얼굴도 모르는걸 보니까··· 기껏해야 B급정도 되는 녀석같은데··· 감히 나한테 이따위 개수작을 부려!"
격노한 박성구가 칼을 든 오른손을 바로잡았다.
일반적인 나이프보다도 월등히 긴 칼날을 가진 흉기.
그것을 나에게 겨눈 채로 복부를 어루만지는 박성구를 보면, 그를 보는 내 입장에서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역시, A급 헌터라 그런지 몸이 튼튼하네요."
"닥쳐! 그 건방진 입을 통째로 찢어버리기 전에!"
후우, 후욱-.
복부의 통증을 가다듬기 위함인지, 박성구는 눈살을 찌푸린 채 호흡을 몰아쉬었다.
패검 박성구는 근접전투에 특화되어있는 A급 헌터였다.
그 육체의 회복능력도 무척이나 뛰어난만큼, 공격 한방에 쓰러질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
나는 눈앞의 헌터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헌터들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한때는 나 역시도 그들을 동경했으며, 또 눈앞의 헌터에게 관심을 가진적도 있었다.
허나 계절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듯이, 두 사람의 상황 역시 뒤바뀌었다.
패검 박성구는 범죄자가 되었으며, 나는 비밀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관리자가 되었다.
더군다나 그런 내 등에는 이전과 다르게 막대한 책임이 뒤따르고 있었다.
그러니, S급도 되지 못한 범죄자 따위에게 향할 동경이나 자비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네놈 머리통을 반으로 쪼개주마!"
타다다다닥!
나를 바라보던 박성구가 격노한 채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푸른 오러가 실려있는 칼날이 나를 노리고 휘둘러지는 모습이었다.
휘익, 휘이익-!
푸른 빛의 궤적이 빠른 속도로 허공을 수놓았다.
"———."
박성구의 성명절기인 패검(覇劍).
시원하고 선명한 연격이 나를 찢어발길 기세로 뻗어나왔다.
무척이나 매끄럽고, 또 강렬하다.
한때는 저 뛰어난 검술이 수많은 헌터들의 모범이 되었던 적도 있었다.
허나 지금은 그 모든 궤적이 내 털끝하나 건드리지 못한 채 무위로 돌아갈 뿐이었다.
"—[폭류]!"
카앙! 카가가가각-!
박성구의 칼날이 파멸검과 충돌하며 날카로운 금속성을 퍼뜨렸다.
교차하는 칼날.
날카로운 오러가 검을 부러뜨릴 기세로 움직이지만, 그가 마주하고 있는 <파멸검 트리바키아(S+)>는 꿈쩍도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모든 공격의 궤적을 예측하며, 부서지지 않는 검으로 그것을 막아낸다.
지금의 나는 패검 박성구를 정면에서 일방적으로 농락하고 있었다.
"너, 대체 누구야······!"
"······."
압도적이고 일방적인 흐름.
그 풍경을 마주한 박성구가 이를 악물고서 나를 마주했다.
검을 맞댄 박성구의 얼굴은 경악으로 가득찬 모습이었다.
"제자리에서 내 공격을 전부 막아냈다고?"
"······박성구씨."
"그게 가능할리가 없어! 고작해야 B급 따위가, 내 공격을 막아내는게 가능할리가······!"
그는 말도 안된다는 듯한 얼굴로 재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빛을 흘리며 쇄도하는 섬광.
그것이 순차적으로 내 파멸검을 타격하고선 빗겨나갔다.
카앙-! 캉! 캉! 캉!
반복적으로 울려퍼지는 금속 특유의 날카로운 충돌음.
검을 휘두르던 박성구의 눈이 이내 어떠한 추론에 도달했다는 듯이 휘둥그래 변하는 모습이었다.
"너 이새끼, 설마··· 미등록 헌터······."
나는 그런 박성구의 얼굴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지금의 내 능력치는 A급 헌터의 평균치에 가까웠다.
허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미래를 보고있다는 사실이었다.
오랫동안 수많은 헌터들을 분석해왔던 내가 말이다.
상대를 알고 그 공격의 궤적마저 안다는 것은, 나와 박성구 사이의 격차를 매꾸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나는 그가 어떻게 공격할지 알고, 또 어느 부분을 노려올지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의 공격을 무위로 돌리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카앙! 캉! 카가각-!
모든 공격이 틀어막힌 박성구의 생각은 어느덧 한방향으로 향한 모양이었다.
눈앞의 존재가 사실은 자신보다 우위에 서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니까, 박성구 스스로가 먹잇감이라고 생각했던 존재가, 사실은 그것과 정반대였을 가능성에 대해서 말이다.
"미등록 헌터··· 그것도 A급, 아니··· 설마 그보다 더 위인거냐······!"
"박성구씨. 당신도 알다시피 모든 헌터들에게는 등급이 있습니다."
"이런 씨··· 어떻게 이런 곳에 고등급의 미등록 헌터가······!"
검을 휘두르던 박성구가 안색이 어두워진 채 뒤로 물러섰다.
짧은 교전을 치르면서 무언가 느낀 점이 있는 모양이다.
내가 지금 그를 보면서 중요한 무언가를 느꼈듯이 말이다.
허나, 이제와서 그가 저지른 실수를 무르기에는 지나치게 늦은 상황이었다.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그 등급을 조금 더 엄격하게 보는 편입니다. 다가올 미래를 위해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인가-."
"—[겨, 격류]!"
"같은 실수를 해도 S급이 그랬다면 한번은 봐주겠지만, 아무래도 A급이 그러면··· 수준이 안맞잖아요?"
콰아아아앙-!
박성구의 스킬이 파멸검을 타고 비스듬히 꺾여나갔다.
그리고 그 여파를 고스란히 받아낸 벽면에 균열이 퍼져나갔다.
투둑, 투두둑-.
처참하게 갈라진 채로 무너지는 벽면.
무수한 파편이 길바닥에 쏟아져내리는 모습이었다.
"시끄러우니까 닥쳐!"
"······."
"나, 나 박성구야! 내가 그 패검 박성구라고—!"
이성을 잃은 채 찔러들어오는 칼날.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박성구를 향해 다시금 검을 찔러넣었다.
- [파멸경로]를 통해 2종류의 저주가 전염되었습니다.
내 손에 쥐어져있던 칠흑의 검이 박성구의 어깨를 꿰뚫은 직후.
검에 찔린 어깨가 짙은 어둠에 휩싸였다.
"끄으으··· 끄아아아악······!"
<파멸검 트리바키아(S+)>를 통해 전염된 저주가, 박성구의 전신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불길한 기운이 박성구를 한차례 훑고 지나간 이후.
툭, 투둑-.
박성구의 눈동자에서는 검은 눈물이 쏟아져나오는 모습이었다.
"아아, 아아아아악······!"
고통에 절규한 박성구는 스스로의 양쪽 눈을 감싸며 주저앉았다.
퉁. 데구르르-.
박성구의 손에서 떨어진 사시미 칼이 오러를 잃은 채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고작해야 2종류의 저주가 전염되었을 뿐인 상황.
그럼에도 박성구는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검을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아, 아파··· 끄윽, 꺼흐윽······!"
검게 물든 눈물을 흘리는 박성구가 바닥을 기어다니며 고통을 호소했다.
방금 전까지 사람을 죽이려고 들었던 흉악한 범죄자가, 고작해야 저주따위에 굴복한 채로 바닥을 뒹구는 모습이었다.
"아악, 아흐윽··· 끄으으으윽······."
S급 헌터인 최두식에 대해 논하던 자신감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박성구는 제 목숨줄과 같은 무기마저 내버린 채 추락한 모습이었다.
방금 전에 흩뿌려진 파편의 위를 기어가는 박성구의 행동.
그 몰골이 참으로 추레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사, 사, 살려줘··· 죽고싶지 않아······."
"박성구씨. 이게 뭐하자는 겁니까?"
투욱, 툭-.
바닥을 향해 손을 뻗던 박성구는 갑작스럽게 내 신발을 붙잡았다.
흙먼지가 묻은 박성구의 손이 내 신발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마치 내 발에 매달리듯이, 가능한 힘을 넣어 다리를 끌어안은 채로.
박성구는 나를 향해 목숨을 구걸해왔다.
"당신, 미··· 미등록 헌터잖아······. 내가, 내가 잘못했으니까··· 여, 여기까지만, 해줘······."
나를 향한 일방적인 항복선언.
그것이 헌터 박성구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더군다나 박성구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저주에 걸린 박성구는 나를 향해서 아무 말이나 내뱉기 시작했다.
"끄윽, 윽··· 누, 누군지 몰라서, 그래서 그랬던거야! 다, 당신이 누군지 알았으면, 이런짓은··· 절대 안했어······!"
"하······."
"당신도··· 당신도 결국··· 뒤가 구린, 그런 일 하는 사람··· 아니야······? 내가, 다, 당신 말하는거··· 한가지는 들어줄테니까··· 제발······!"
무엇이든 한가지는 들어주겠다는 박성구의 선언.
그 이야기를 듣기 무섭게, 나는 자신과 박성구 사이에 강한 끈이 형성되었음을 느꼈다.
공포에 질린 인간을 내려다보는 폭군의 선.
그 경계를 앞에 두고서 나는 짙은 불쾌감을 느꼈다.
"제 명령이라면 무엇이든 하나는 듣겠다고 한겁니까?"
"그, 그래! 원하는 사람 있으면, 내가 하나 죽여줄테니까······!"
헌터에게는 급이 있다.
그리고 그 등급은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구분되는 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았을 때, 내 눈앞에서 바닥을 기는 헌터의 등급은 A급이었다.
내가 만들어낸 터전에 들어올 자격조차 얻지 못한 채, 자신보다 못한 이들을 괄시하며 힘을 휘두르던 A급 헌터.
내가 보기에 박성구는 퍽 쓸모가 없는 인간이었다.
"박성구씨 생각은 잘 알겠습니다."
결정을 내린 나는 파멸검을 역수로 들어올렸다.
푹-.
<파멸검 트리바키아(S+)>의 검끝이 박성구의 손등을 파고들었다.
짙은 어둠이 터져나오며 강력한 저주가 다시금 검을 타고 흘러들어갔다.
- [파멸경로]를 통해 1종류의 저주가 전염되었습니다.
- [파멸경로]를 통해 2종류의 저주가 전염되었습니다.
- [파멸경로]를 통해 1종류의 저주가 전염되었습니다.
푹! 푸욱-!
나는 손에 쥔 파멸검을 뽑아내고서, 다시금 박성구의 손등에 검을 찔러넣었다.
검을 밀어넣을 때마다 새로운 저주가 박성구에게 전염되었다.
그리고 그에 어우러지듯이, 박성구의 입에서는 짙은 비명이 터져나왔다.
"끄아아아아아악—!"
귓가에 울려퍼지는 섬뜩한 비명소리.
그것을 들으며 나는 조용히 검을 되돌렸다.
저주가 일렁이는 검이 어두운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것을 높게 들어올린 채로, 무수한 저주에 휩싸여 몸이 뒤틀리기 시작한 박성구를 바라보았다.
"아, 안돼! 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악······!"
뚜둑, 뚜두둑-.
저주에 진득하게 뒤덮힌 박성구의 모습이 점점 변형되어가고 있었다.
고통에 젖은 박성구를 향해서, 나는 그에게 전하는 마지막 명령을 고했다.
"박성구씨. 저랑 했던 약속 기억하고 있죠?"
"아악, 악! 끄으윽······!"
"제가 박성구씨한테 하는 명령입니다."
나는 손에 들고있던 파멸검을 집어던졌다.
콰드득-!
내가 던진 파멸검은 두터운 벽을 뚫고서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에 박성구는 안심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파멸검이 내 손끝을 떠났으니, 내가 그를 살려줄 것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나는 눈앞에 보이는 박성구를 향해 마지막 명령을 전했다.
그가 나에게 목숨을 구걸하며 한가지 명령을 약속했으니, 나는 그가 나에게 약속한 명령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스윽-.
바닥을 기던 박성구와 시선을 맞춘 내가 그에게 고했다.
"그럼 이제 약속대로 한명만 죽입시다."
"누, 누구를······?"
"—패검, 박성구."
나는 그렇게 박성구에게 마지막 명령을 전하고서 몸을 일으켰다.
[폭군]에 의한 강제효과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이만하면 박성구를 통해서 나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오는 일은 없을 터.
그러니 저 멍청한 인간을 이대로 놔두고 떠나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몸을 일으킨 나는 파멸검을 저주로 뒤바꾸기 위해 손을 들어올렸다.
터벅, 터벅-.
그리고는 발걸음을 옮겨 인적이 없는 골목의 입구로 향하려던 찰나.
나는 구석에서 우두커니 서있는 누군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
벽에 꽂혀있는 파멸검을 바라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
그런 그의 얼굴은 나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익숙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의 정체는 무려 S급 헌터였으니까 말이다.
"······구성현씨."
S급 헌터, 독왕 구성현.
HETX 소속의 헌터는 무척이나 성실한 인물인 모양이었다.
그것도 내가 곤란할 정도로 말이다.
"끄윽, 끄아아아악-!"
투둑-.
구성현을 마주한 내 뒷편에서는 섬뜩한 소리가 한차례 울려퍼졌다.
84화
세상에는 상식을 벗어난 물건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나 게이트와 관련된 것일수록 그러한 경향이 더 크다는 것은, HETX의 어떤 헌터가 오래전부터 깨닫고 있던 사실이었다.
S급 헌터, 독왕(毒王)— 구성현.
지금 그의 눈앞에 놓여있는 어떤 물건처럼 말이다.
"······."
돌벽을 파고든 채로 박혀있는 오래된 검 한자루.
그것은 오러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탁한 기운에 휩싸인 채, 흉포한 파동을 계속해서 퍼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검의 모습을 마주한 구성현의 입은 굳게 닫혀있는 상황이었다.
구성현의 눈앞에 떠오른 아이템의 설명이 지나치게 경악스러웠던 까닭이었다.
< 파멸검 트리바키아(S+) >
[ 아이템 설명 ]
- 머나먼 과거에 이름을 떨치던 명검이었지만, 이제는 지독한 저주에 잠식되어 뒤틀리고 말았습니다.
- 오직 저주받은 이들만이 다룰 수 있는 주물입니다.
- 강력한 저주에 물들어 장시간 접촉할 경우 주기적으로 부정적인 효과가 발생합니다.
[ 아이템 효과 ]
- 각인 : 해당 아이템을 실체화하지 않은 경우, 저주의 형태로 사용자의 손에 새겨집니다.
- 낙인 : 짊어지고 있는 저주의 숫자에 비례해 물리적인 영향력이 강해집니다.
- 파멸경로 : 상처를 입힐 때마다 짊어지고 있는 저주의 일부가 대상에게 전염됩니다.
- 불멸성 : 파괴되거나 변형되지 않습니다.
- 트리바키아 : 축적된 모든 저주를 일시적으로 해방시켜 검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립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설명을 확인한 구성현이 입술을 깨물었다.
S+급의 장비 아이템.
겉으로 보기에는 고등급의 장비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무척이나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등급이 높아도 그렇지, 이게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라고······?'
경악에 물든 구성현의 시선이 불길한 검신의 모습을 훑었다.
구성현이 보기에 이것은 장비의 탈을 뒤집어 쓴 일종의 주물이었다.
폐기할 수도 없으며 양도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물건.
오로지 그 사용자를 파멸시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장비인 셈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저주를 짊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지······?'
S급 헌터라고 해도 제대로 다루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검으로부터 느껴지는 꺼림칙함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손을 가져가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썩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허나,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금 이 자리에 그런 주물을 다루고 있는 남자가 서있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구성현 자신과 사이가 썩 좋은 편이 아닌 남자가 말이다.
"······구성현씨."
귓가에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그에 구성현의 시선이 어느덧 가까이 다가온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서있는 남자는 이미 구성현과 두차례나 마주했던 인물이었다.
때로는 언론인. 때로는 미등록 헌터.
그리고 이 자리에서 마주한 그의 모습은, 그보다도 조금 더 어두운 일면에 가까운 편이었다.
지금 구성현을 향해 인사를 건네고 있는 남자의 뒷쪽.
그곳에서는 구성현이 뒤쫓던 수배범 박성구가 스스로 목을 조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오랜만입니다. 이런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됐네요."
남자는 구성현을 향해 친근한 인사를 건네오는 모습이었다.
그 직후, 남자의 뒷편에서 섬뜩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투둑-.
수많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A급 헌터가 바닥에 쓰러진 것이다.
더군다나 쓰러진 박성구는 더 이상 미동조차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바, 박성구가······."
경악에 젖은 얼굴의 구성현이 멀찍이 떨어져있던 남자의 최후를 확인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구성현의 이야기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할 정도였다.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구성현의 머릿속에, 방금 전까지 눈앞의 남자가 나누고 있던 대화의 내용이 스쳐지나갔다.
- 그럼 이제 약속대로 한명만 죽입시다.
- 누, 누구를······?
- 패검, 박성구.
대화의 내용을 떠올린 구성현의 머릿속에 짙은 혼란이 내려앉았다.
눈앞의 남자, 신유호가 박성구와 맺은 약속.
그리고 신유호의 명령을 들은 박성구가 스스로 목을 조른 이유.
그 무엇 하나 제대로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무엇보다도 혼란을 가중시킨 것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태연하게 서있는 신유호의 태도였다.
"사소한 일이잖아요. 구성현씨."
오히려 그는 구성현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지어보이는 모습이었다.
휘익-.
신유호가 허공에 한차례 손을 흔들자, 방금전까지 구성현의 앞에 꽂혀있던 검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를 대신해 신유호의 손등에 검은 낙인이 새겨졌다.
베일에 둘러싸인 미등록 헌터.
그런 존재가 저 끔찍한 무기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다는 증거였다.
"구성현씨같은 훌륭한 S급 헌터들이 박성구같은 쓰레기들을 잡는건 당연한거겠죠."
"······."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끔씩은 과격한 실수가 나올 수도 있겠네요."
툭, 툭-.
검을 집어넣은 신유호의 손이 구성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대한민국 헌터계의 가장 깊은 어둠에 접하고 있는 남자가, 태연하게 정부 소속의 인사인 그에게 선언한 것이다.
지금 구성현의 눈앞에서 벌어진 미스테리한 사건.
그 상황 자체가 구성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이다.
흠칫-.
순진해보이는 얼굴로 꺼림칙한 소리를 내뱉는 신유호의 손길에, 그 손길에 닿은 구성현의 어깨가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구성현 팀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 그건······."
신유호의 시선을 받은 구성현이 그를 향해 무어라 이야기하려던 순간.
띠링.
구성현의 눈앞에 반투명한 메세지 하나가 떠올랐다.
메세지를 확인한 구성현이 자신도 모르게 말끝을 흐렸다.
- 경고! [폭군]에게 전한 맹세는 강제적인 효력이 발생하며, 어떠한 수단으로도 패널티를 무효화할 수 없습니다.
시스템 메세지가 그에게 전한 경고.
그것은 지금부터 구성현이 꺼내는 모든 맹세가, 결코 어길 수 없는 무언가로 변한다는 경고였다.
사람의 말을 그대로 박제시켜버린다는 기이한 문장.
그것을 마주한 구성현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내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에 강제적인 효력이 발생한다고?'
눈앞에 서있는 거물에게 그 무엇보다도 잘 어울리는 이명(異名).
더군다나 그에 뒤따르는 효과는 말도 안되는 것이었다.
신유호라는 남자에게는 그 어떠한 거짓 약속도 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으니까 말이다.
싸우다 죽을 것인가.
그게 아니면 불의에 순응할 것인가.
짦은 침묵.
그 속에서 고민하던 구성현이 주먹을 꽉 쥔채로 입을 열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HETX는 긴 교전 끝에 수배중이던 A급 헌터, 박성구를 사살했다."
"역시, HETX의 구성현 팀장님다운 멋진 활약이네요."
짝, 짝, 짝-.
구성현을 마주한 신유호는 그를 조롱하듯이 가벼운 박수를 쳤다.
박수소리를 듣던 구성현의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동안 우리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겁니다."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만 하겠지."
어떠한 방법으로도 무를 수 없는 무거운 맹세.
그것을 내뱉은 직후, 구성현은 자신의 목에 목줄이 매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짐승을 옭아매는 목줄.
그 무엇하나 구성현의 마음대로 말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 채, 신유호는 구성현에게 달려있던 바디캠을 챙겨들었다.
터벅, 터벅-.
그렇게 앞으로 걸어가던 신유호는 구성현을 향해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이는 모습이었다.
"저는 HETX, 좋아하는 편입니다."
의미심장한 신유호의 한마디.
그것을 끝으로 신유호는 구성현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가 떠나버린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제 목숨값으로 양심을 팔아넘긴 초라한 S급 헌터 하나뿐이었다.
* * * * * *
소란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온 저녁.
나는 피로에 젖은 몸을 은신처의 의자에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 진짜 피곤한 하루였네."
툭-.
손에 들고 있던 바디캠을 집어던진 나는 의자 위에 축 늘어졌다.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나니 의자에 들러붙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오늘 하루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벌어졌던가.
최두식과의 술자리에 박성구와의 전투, 거기에다가 구성현과의 예상치못한 만남까지.
하나같이 고작 하루사이에 벌어졌다고 보기에는 터무니없는 일들이었다.
"구성현 그 인간은··· 하, 왜 매번 그런 타이밍에만 나타나지?"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당황스러웠던 사건을 꼽아보자면, 단연코 구성현이 내 눈앞에 나타났던 일이었다.
S급 헌터, 독왕 구성현.
그가 이런식으로 곤란한 타이밍마다 모습을 드러내는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다.
내가 구성현을 마주한 것만 하더라도 벌써 세번이었으니까 말이다.
한번이야 그렇다고 쳐도, 세번이나 이러면 악연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구성현과 만난 수확이 아예 없지는 않다는 점이었을까.
나는 허탈한 얼굴로 눈앞에 떠오른 화면을 바라보았다.
- 커뮤니티 구성원, [독왕]에 대한 영향력이 50%에 도달했습니다!
- 지능 능력치가 다음과 같이 조정됩니다.
- 지능 : E+ → D+
오늘 밤에 구성현과 나누었던 대화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던 것일까.
구성현에 대한 영향력이 올라가면서 내 능력치 역시 큰폭으로 상승한 것이다.
다만, 해당 능력치를 보는 내 마음은 상당히 착잡한 편이었다.
능력치의 내용 자체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까닭이었다.
"아니, 그런데 내 지능이 이것밖에 안돼?"
지능 등급, D+.
마법에 대한 적성과 깊이 관련되어있는 능력치에 대한 판정이었다.
아무리 지능 능력치가 실제 IQ와 관련이 없다는걸 알아도, 저 앞에 달려있는 두글자때문에 불쾌한 기분이 드는건 어쩔 수 없었다.
누군가 나한테 지능이 D+밖에 안되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걸 모욕으로 받아들일 자신이 있는 까닭이었다.
"하, 좋은게 좋은거지. 일단 지능이 오르긴 했으니까 만족하자."
어느새 길게 자란 앞머리를 쓸어넘긴 나는 눈앞에 떠오른 상태창을 닫아버렸다.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일이 남아있었으니까 말이다.
오늘 최두식과 둘이서 나누었던 '길드 설립'에 대한 대화.
그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큰 고민거리였던 것이다.
"일단은 길드쪽이 문제네. 사실상 천시예를 위한 길드를 만드라는 이야기 같은데."
헌터계의 원로인 최두식은 나에게 길드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것도 천시예를 위한 작은 길드를 설립해달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이야기를 꺼낸건 최두식이었지만, 이번 제안은 주선호와도 깊게 관련되어있는 내용이기도 했다.
주선호 역시 내가 길드를 설립하길 내심 바라고 있는 눈치였으니까 말이다.
헌터협회의 임원자리에 유튜버 명함을 들고 앉을 수는 없으니, 명분을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인 셈이었다.
"뭐, S급 헌터가 들어오면 그 순간부터 길드 인식이 바뀌기야 하겠지."
길드를 개설하기 무섭게 S급 헌터가 들어오는 길드장이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어떨지 대충 짐작이 가기는 했다.
커뮤니티를 통해 연결되어있는 두 사람의 커넥션을 모르는 이상, 보통은 둘이 어떻게 친분이 있는지조차 의아할테니 말이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며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잠시.
머지않아 자세를 바로잡은 나는 책상위에 커뮤니티 화면을 펼친 채로 입을 열었다.
"하··· 그냥 길드 하나 확 차려버려? 130만 유튜버가 직접 길드 차리는 컨텐츠도 괜찮을 것 같은······."
허나, 그런 내 말은 끝까지 이어질 수 없었다.
무어라 이야기하려던 내 시야에 익숙한 화면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띠링, 띠링-.
시야를 가득 채운 익숙한 메세지.
그것은 갑작스럽게 나를 찾아온 새로운 시험이었다.
"같은··· 같은데······. 아."
혼자만의 고민을 이어나가던 나는 진지한 얼굴로 눈앞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떠오른 화면에는 세번째로 맞이하는 시험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 별자리 시험 : 이끄는 자의 자격 >
* [ 폐쇄형 커뮤니티 : 자격 시험 3 ]
- 당신은 84명의 커뮤니티 구성원을 이끄는 자로서, 그 자격을 증명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 멸망에 대비할 자격을 갖춘 이들만이 [????]를 허락받을 수 있습니다.
- 성좌 : [성채의 오르드]가 당신에게 걸맞은 시험을 개방했습니다.
- 시험에 통과하는 경우, [커스텀 네트워크(A)]의 등급이 다음과 같이 조정됩니다.
* [커스텀 네트워크] : A → S
- 시험에 실패하는 경우, [커스텀 네트워크]의 모든 기능이 정지합니다.
- 시험 내용 : 커뮤니티 구성원, [검귀]를 EX급으로 승급시키십시오.
- 제한시간 : 29일 23시간 59분
폐쇄형 커뮤니티를 선택한 이들에게만 개방되는 자격시험.
세번째로 새로운 시험을 개방한 성좌의 이름은 '성채의 오르드'였다.
그리고 그런 성좌가 나에게 요구하는 내용은 하나뿐이었다.
커뮤니티의 구성원 중 하나인 S급 헌터, 검귀 천시예를 승급시킬 것.
새로운 EX급 헌터를 내 손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이번 시험의 주제였던 것이다.
"잠깐만······."
성좌가 낸 시험의 내용은 상당히 갑작스러운 편이었다.
허나, 그보다도 더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 것은, 바로 이번 시험을 통과하는 것으로 주어지는 보상에 대한 내용이었다.
성좌 오르드가 나에게 제시한 보상.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이 능력을 각성했던 첫날부터, 그토록 강하게 열망해왔던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이번 시험을 통과하면 S급으로 승급시켜주겠다고?"
이번 시험의 보상.
그것은 자그마치 S급 헌터로의 승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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