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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

10화

[커스텀 네트워크]를 통해 운영하는 S급 헌터 커뮤니티에는 다양한 인간군상이 모여있다.

기본적으로 커뮤니티라는게 그러하듯이,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 제 개성을 내보이는 것이다.

더군다나 내가 운영하는 S급 커뮤니티의 경우에는 언어와 국적,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수많은 헌터들이 모여있는 상황.

심지어는 그들을 통제할만한 관리자의 존재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만큼 그들이 보이는 개성 역시 다른 커뮤니티보다도 강렬한 편이었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화면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 야마자킨지 뭔지 도배하는거 진짜 짜증나죽겠네 [1] (망원동불주먹)

- ▶▷ 포인트 무한매입 1:1 문의 ◁◀ (yamazaki)

- 차라리 마산사나이 최두식 이 사람이 낫다고 생각하는게 [3] (frz0777)

- 다들.식사 맛있게.하셨는지요.^^ [3] (마산사나이 최두식)

- ▶▷ 포인트 구매합니다 엔 달러 1:1 문의 [7] ◁◀ (yamazaki)

- yamazaki 저거 본명 아닌가요? [11] (xkingx)

- 하루종일 리워드 얘기만 할거면 [3] (frz0777)

- ▶▷ 포인트구매 비싸게 사드립니다 ◁◀ [1] (yamazaki)

눈앞에 떠오른 커뮤니티의 게시글 목록에는 유독 많은 글을 작성한 이용자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해당 이용자의 닉네임은 'yamazaki'.

그는 포인트를 매입하겠다는 글로 게시판을 채워나가는 모습이었다.

게시판을 채워나가는 기세가 어찌나 대단했는지, '마산사나이 최두식'을 욕하던 닉네임조차 그를 옹호할 정도였다.

이른바 스팸 게시글을 작성중인 셈이었다.

"하··· 자리 좀 잡아간다 싶었더니, 이제 온갖 녀석들이 다 나타나는구나."

물론 해당 이용자가 S급 커뮤니티에 도배를 하는 이유야 뻔했다.

커뮤니티 활동으로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는건 오직 S급 헌터들 뿐이다.

그런만큼 그들과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커뮤니티 게시판을 선택했을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런 'yamazaki'를 가만히 놓아두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게시판에서 하루종일 [리워드]에 대한 이야기만을 꺼내는 이용자들은 지금도 게시판의 뜨거운 감자들 중 하나였다.

가끔가다 하는 질문이라면 몰라도, 하루종일 [리워드]에 대한 이야기만 반복하는 까닭이었다.

오죽하면 그들을 부르는 '리워드족'이라는 명칭마저 생겨났을 정도였다.

"하루종일 게시판에 도배만 하는데 제재는 해야겠지."

이용자명 'yamazaki'는 그런 리워드족들 중에서도 스팸에 가깝게 진화한 인물이었다.

나는 더 이상 그런 'yamazaki'의 만행을 두고볼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의의 철퇴를 꺼낼 시간이 된 것이다.

커뮤니티 관리자가 없다는 생각으로 마음껏 활개치게 놓아둘 생각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일단 정체부터 한 번 확인해볼까."

나는 'yamazaki'가 게시판에 올려놓은 포인트 매입 게시물 중 하나를 클릭해보았다.

툭-.

게시판에서 해당 게시글을 클릭하자 화면에 게시글의 내용이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 제목 ] ▶▷ 포인트 무한매입 1:1 문의 ◁◀

[ 작성자 ] yamazaki

[ 이용자 정보 ] 야마자키 아오 (34) / S급 / 귀령

커뮤니티 포인트 무한매입!

ノ ( *˘╰╯˘) ノ

전액 현금 가능!

달러 지급 가능!

엔화 지급 가능!

Paypal 가능!

Alipay 가능!

비트코인 가능!

( •̀∀•́ )✧

[ 댓글 0개 ]

[ 공지사항 / 수정 / 삭제 ]

게시글을 누르자 스팸 게시글을 작성한 작성자의 정보가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작성자의 이름은 야마자키 아오.

일본의 S급 헌터들 중 하나이면서, 귀령(鬼靈)이라는 이명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일본의 헌터들 중에서도 특출나게 강한 인물로, 내 머릿속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헌터랭킹에서도 상위권에 있는 인물이었다.

최근에 업로드된 '헌잘알' 채널의 영상에서도 9위로 소개된 인물인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에휴. 돈도 많은 인간이 왜 여기서 도배같은걸 하고 있냐."

그런 인물이 커뮤니티에서 도배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하기야, 최두식이나 천시예 같은 경우도 게시글과 현실의 모습이 매치가 되는 편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눈앞에 보이는 'yamazaki'의 게시글을 바라보던 나는, 그에게 어떤 처벌을 내려야할지 유심히 고민했다.

평범한 커뮤니티라면 여기서 영구차단과 같은 조치를 취했겠지만, S급 헌터 커뮤니티의 경우 조금 특별한 접근방법이 필요할 것 같았다.

해당 커뮤니티가 일반적인 유형의 커뮤니티는 아닌 까닭이었다.

"음··· 일단은 초범이니까 2주정도만 게시글 작성을 금지시킬까."

고민하던 내가 내린 조치는 결국 하나였다.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yamazaki'가 작성한 게시글을 전부 삭제했다.

그리고는 그를 향해 게시글 및 댓글 작성금지 조치를 적용했다.

- [이용자 : yamazaki]의 게시글 작성 권한을 박탈하시겠습니까?

- [이용자 : yamazaki]의 게시글 작성 권한이 박탈되었습니다.

- 해당 조치는 14일간 적용됩니다.

띠링!

익숙한 알림음과 함께 'yamazaki'에 대한 조치가 적용되었다.

그가 더 이상 커뮤니티 게시판에 스팸 게시글을 작성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는 해당 이용자를 단죄한 후에, 스팸 게시글이 사라진 게시판의 반응을 확인해보았다.

그러자 게시판에 나타난 변화를 느낀 것인지, 몇몇 이용자들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 여기 관리자도 있었어? (frz0777)

- 뭐야 삭제됐네 ㅋㅋㅋ [1] (망원동불주먹)

- 시스템이 자동으로 악성 이용자를 처리한 것입니까? [4] (thundershock)

- 도배 짜증나서 나가려고 했는데 지금보니까 다 지워져있네요 [1] (tex11)

그들은 하나같이 내가 내린 냉정한 결단에 환호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게시글을 삭제한 주체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갈리는 모양이지만 말이다.

나는 그런 게시판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권력이란 그와 어울리는 사람에게 쥐어졌을때 올바르게 쓰이기 마련이었다.

바로 나처럼 공명정대하고 지혜로운 사람말이다.

"다들 좋아하네. 진작에 좀 처리해둘걸 그랬나."

환호하는 게시판의 모습을 보며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좋아하는 모양이니 다행이었다.

나는 스팸 게시물에 크게 데인 그들을 위로해주기 위해, 그들에게 유익한 게시글을 하나 작성해주기로 했다.

헌터시대를 살아가는 헌터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담겨있는 게시글이었다.

타닥, 타다닥-.

반투명한 키보드에 손을 올려 내용을 입력한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게시글의 작성 버튼을 터치했다.

그와 동시에 게시판에 새로운 게시물이 추가되었다.

- 헌잘알 <〓 이분 유튜브 좀 괜찮은 것 같아요 ㅎㅎㅎ (거품판독기)< p>

커뮤니티 게시판을 이용하는 수많은 S급 헌터들.

그들에게 무척이나 유익한 게시물이 하나 추가된 순간이었다.

* * * * * *

대한민국의 헌터계에는 5대길드라고 불리는 길드들이 있다.

그들은 저마다 S급 헌터를 데리고 있으면서, 하나같이 한국의 헌터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이었다.

수많은 헌터들을 관리하고 육성하며, 그들을 이용해 게이트들을 공략해나가는 것이다.

천시예가 속해있는 '셀레스티아 길드'가 그 대표적인 예시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런 5대길드들 중 하나, '천둥 길드'의 토벌 작전을 촬영하는 중이었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라! 저 괴물들은 실수했다고 봐주는 법이 없으니까 말이다!"

"전원, 전투 준비!"

대한민국의 원로 헌터, 불사기사 최두식이 이끄는 천둥 길드의 토벌대.

그들의 전투현장을 내 카메라에 담기 위함이었다.

일전에 최두식과 약속을 나눴던 것처럼, 천둥 길드의 전투장면을 찍어 유튜브에 업로드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전투 현장에는 특별한 게스트 하나가 찾아와있었다.

바로 선글라스와 모자를 착용하고 있는 S급 헌터, 천시예의 존재였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곳에 찾아온거야?"

"오늘은 나도 일정이 없는 날이야. 그리고 한번쯤은 아저씨의 전투를 지켜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천시예의 허리춤에는 아무런 장비도 존재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늘은 순수하게 전투를 지켜보러 온만큼, 헌터 장비를 들고 오지 않은 것이다.

나는 그런 천시예를 바라보다가, 멀찍이 서있는 최두식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는 저 멀리 떨어진 전장에서, 나와 천시예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지금부터 자신의 전투를 지켜보라는 의미였다.

"아저씨도 오늘은 의욕이 넘쳐보이네."

"뭐, 그거야 그렇겠지."

물론 최두식이 의욕이 넘치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구독자 59만 3천명의 전설적인 유튜버가 그의 활약상을 촬영하러온 상황이 아니던가.

그런만큼 최두식 역시 더욱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차있을 터였다.

나는 전투를 준비하는 최두식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들고 있는 카메라로 최대한 줌을 당겼다.

가능한 최두식의 모습을 선명하게 찍기 위함이었다.

"전방에 메이지형 엘리트 개체 발견!"

"진형을 형성해라! 내가 선두에서 저 녀석을 붙잡는다!"

머지않아 카메라 너머로 보이는 최두식이 선두의 몬스터 무리와 충돌했다.

쿠웅!

묵직한 충돌음과 함께 전투가 시작되는 모습이었다.

전투의 양상은 당연하게도 일방적인 흐름이었다.

불사기사라고 불리는 S급 헌터, 최두식이 전면에 나가 적들을 붙들어놓았다.

한국 최고의 탱커답게 막대한 내구력을 가진 까닭이었을까.

엘리트 개체를 포함한 몬스터들의 공격은 최두식에게 흠집 하나 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콰앙! 콰아앙-!

거대한 불덩이가 최두식에게 떨어져내리며, 전면에서 방패를 들어올린 최두식이 그것을 저지했다.

- 그아아아아악!

- 크르르르르······!

수많은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최두식은 그런 괴물들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그들의 어그로를 착실하게 자신에게 붙들어놓는 모습이었다.

그를 둘러싼 몬스터들이 최두식을 물고 늘어지면서, 대부분의 몬스터가 최두식에게 묶여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간혹 어그로가 튀어 후방으로 움직이는 몬스터들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최두식의 뒤에 있던 탱커들에게 저지당하는 모습이었다.

최두식이 수많은 몬스터들을 자리에 붙들어놓고 있으면, 후열에 있던 헌터들이 일제히 원거리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최두식의 활약상을 보며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역시 불사기사쯤 되면 어그로 관리부터가 수준이 다르구나."

탱커의 어그로 관리는 예전부터 헌터 사회의 커다란 논쟁거리중 하나였다.

그러한 논쟁을 통해 소위 '회피형 탱커'라고 불리던 헌터들이 사장되는 사건을 거치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사기사의 어그로 관리는 경이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저게 일개 개인에게 가능한 일인가 의문이 들 정도로 말이다.

"아무래도 금방 전투가 끝날 것 같네."

"그러게 말이야."

나는 천시예의 이야기에 동의하며 카메라를 분주하게 움직였다.

불사기사 최두식의 개인능력을 바탕으로 원거리 딜러들의 대규모 포화가 이어졌다.

그 덕분에 엘리트 개체를 지키던 몬스터들의 숫자가 순식간에 줄어들고 있었다.

엘리트 개체의 상태 역시 정상처럼 보이지는 않았고 말이다.

그렇게 내가 최두식의 모습을 촬영하면서, 전투의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던 도중.

몸이 뒤틀려있던 엘리트 스켈레톤 메이지가 갑작스럽게 입을 쩍 벌리기 시작했다.

- 그워어··· 그어어어어······!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저주의 말이 귀를 훑고 지나갔다.

온갖 마경의 촬영을 뒤따라갔던 나같은 유튜버에게 있어서는 익숙한 장면이었다.

마경의 몬스터들이 간헐적으로 보이는 이른바 '발악 패턴'이었으니까 말이다.

- 그워어어······!

저주의 말을 내뱉는 엘리트 스켈레톤 메이지의 머리 위로, 거대한 얼음덩어리들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늘을 뒤덮는 냉기.

그와 동시에 세기 어려운 숫자의 얼음마법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범위가 어찌나 넓은 것인지, 나와 천시예가 있는 위치마저 뒤덮을 정도였다.

"—[강철의 가호]!"

엘리트 몬스터의 발악패턴에 최두식은 서둘러 그를 대비했다.

허나 최두식의 주변 범위라면 몰라도, 참관에 나선 우리가 있는 범위까지 커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쿠구구구궁-.

진동하는 하늘에서 거대한 얼음의 비가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콰앙! 쾅! 콰아앙-!

쏟아져내리는 냉기의 파편.

원거리 딜러들을 노리는 얼음조각들은 최두식에 의해 완전히 가로막혔다.

허나, 나와 천시예가 있는 위치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최두식은 다급하게 고개를 돌려, 우리들이 서있는 자리를 바라보았다.

낙하하는 파편들을 지켜보던 천시예의 손에서는 붉은 마력의 광채가 터져나오는 모습이었다.

"······."

후우-.

새어나오는 호흡.

그와 함께 천시예의 다리가 땅을 딛고 자세를 잡았다.

선명하게 빚어낸 마력의 칼날.

그리고 그것을 쥔 채 강하게 뒤틀리는 허리.

검을 휘두르기 위한 자세를 잡은 천시예가, 전력으로 허공을 향해 마력의 형체를 휘둘렀다.

콰과과과광—!

하늘을 가로지르는 빛의 궤적.

굉음이 터져나오며 하늘을 가득채운 얼음이 베여나가기 시작했다.

휘두름은 한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검격은 하나의 면을 이루었다.

하늘조차 베어가르는 붉은 궤적에 의해 대부분의 얼음조각이 잘려나가고——.

그중 재수없게 살아남은 조각 하나가 나를 강타했다.

- [긴급보호]가 활성화됩니다.

- 오늘은 더 이상 [긴급보호]를 활성화할 수 없습니다.

콰직-!

푸른 빛의 배리어를 강타하고서 터져나가는 얼음파편의 모습.

반투명한 배리어의 너머로, 당황한 얼굴의 천시예가 나를 바라보았다.

"······아. 미안."

아무래도 심각한 오해가 하나 더 추가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11화

산산조각난 채로 흩뿌려진 얼음조각.

서서히 희미해져가는 배리어.

그리고 그 너머에서 선글라스를 들어올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천시예.

잠시동안 내려앉아있던 어색한 침묵은, 이내 천시예의 짧은 사과로 끝을 맺었다.

"미안해. 힘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자신이 놓친 공격에 대한 미약한 부채감이라도 떠안고 있었던 것일까.

천시예는 당황한 얼굴로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무, 물론 같은 S급 헌터니까 내가 막아주지 않더라도 무사했겠지만······."

"······."

"그래도 정체를 들키기 싫어하는 것 같아서 대신 막아준건데, 그런식으로 파편을 놓칠줄은 몰랐어. 정말 미안해!"

나는 천시예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금세 이해할 수 있었다.

저 반응은 자신이 나를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에서 나오는 반응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내 정체가 노출될 위험에 처해있다는 것에서 기인한 반응처럼 보였다.

천시예는 내가 S급 헌터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당황한 얼굴의 천둥 길드원들이 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천시예는 내 정체를 비밀로 해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이런 방식으로 내 정체가 드러나는 일을 바라지는 않았을 터였다.

'설마, 내가 어쩔 수 없이 힘을 드러냈다고 생각하고 있는건가?'

어쩌면 파편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준 [긴급보호]조차도, 내가 숨기고 있는 능력 중 하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지원계 헌터의 방어막처럼 생기지 않았던가.

직접 체감해본 바로는 내구력도 상당히 괜찮은 것처럼 보였다.

고작해야 하루에 한번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여벌목숨이라는 단점이 있지만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정체를 숨겨주겠다는 약속을 어기려는건 절대 아니야."

나는 거듭해서 단순한 실수임을 주장하는 천시예를 바라보았다.

눈앞의 헌터를 놀려먹는 것도 충분히 재미있겠지만, 그보다는 후속조치를 하는게 우선이었다.

"알고 있어. 다만 다른 헌터들이 돌아오기 전에 이야기를 좀 맞춰둬야겠지."

"어······?"

나는 아직까지 정신을 못차리는 천시예에게 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한 이야기를 전했다.

"방금 전에 그건 네가 보호해준걸로 하자. 그걸로 괜찮지?"

"내가 지켜준걸로 하자고?"

"적어도 나같은 유튜버가 나서는 것보다는, S급 헌터가 나섰다고 하는 편이 더 신뢰도가 있겠지. 안 그래?"

내가 지금 벌어진 사태를 정리하기 위해 꺼낸 아이디어.

그것은 작전에 참여한 헌터들로 하여금, 천시예가 나를 보호해준 것처럼 위장하자는 이야기였다.

그런 방식으로 내 정체가 S급 헌터같은게 아니라, 평범한 유튜버인 것처럼 이야기를 덮고 가려는 것이다.

이른바 거짓말의 거짓말을 하는 셈이었다.

거짓말이 두 번 겹치니 사실이 되었지만, 어쨌든 사실이니 양심의 가책은 느끼지 않았다.

죄책감을 느끼는건 천시예 하나로 충분한 것이다.

"소모성 아이템이든 비장의 스킬이든 어느쪽이든 상관없어. 적당히 그럴싸한 이야기면 괜찮아."

"······알았어. 아저씨가 오면 그렇게 이야기할게."

천시예와의 합의는 이걸로 끝이었다.

다른 헌터들이 다가오면 천시예가 적당한 이야기로 둘러댈테니 말이다.

그렇게 나와 천시예가 입을 맞춰놓고서 잠시 후.

"막내야! 어디 다친데는 없냐?"

발악 패턴을 보이던 언데드를 쓰러뜨린 최두식이 동료들과 함께 돌아왔다.

그는 S급 헌터인 천시예를 앞에 두고서도, 어디 다친 곳이 없는지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나이를 먹고 강해져도 최두식의 눈에는 여전히 아이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런 최두식의 이야기에 천시예는 말끔한 손을 내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괜찮아. 애초에 여기 있는 유튜버가 랭킹 8위로 꼽은 사람인데, 고작해야 그런걸로 다칠리가 있겠어?"

"그러냐? 그거 다행이구만. 그런데 방금 전에 그건 뭐였던거냐?"

천시예의 상태를 확인한 최두식은 나와 천시예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 물어왔다.

정확히는 나를 감싼 배리어에 대한 질문이었다.

천시예가 놓친 파편을 배리어로 막아냈으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의아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자 천시예는 한쪽 눈을 깜빡이며 최두식을 향해 이야기했다.

"어쩌다 실수로 하나를 놓쳐버려서, 어쩔 수 없이 아이템을 하나 사용했어."

"막내야. 평소에 수행을 게을리한 모양이구나! 우리 막내정도 되는 헌터가 그걸 놓치다니."

"······그러게 말이야."

돌아가는 흐름을 눈치챈 최두식 역시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천시예의 말에 맞장구쳤다.

툭, 툭-.

최두식의 두터운 팔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하마터면 우리 유튜버 분이 위험에 처할뻔했구만!"

최두식은 걱정하지 말라는 시선으로 나에게 윙크를 날렸다.

자기가 다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의미였다.

나는 그런 최두식과 마주한 채 멋쩍은 웃음을 짓는 수밖에 없었다.

"저로서는 천운이었죠. 그 유명한 검귀 옆에 붙어있어서 다행입니다."

"이거, 유튜버도 참 위험한 직업이겠어. 자네도 이런 상황 한두번 겪어본건 아닐거 아니야?"

"조회수 얻으려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그래도 불사기사의 전투를 촬영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뭐, 영광이랄 것까지야. 나도 자네같은 유명한 채널에 나가서 기분이 좋거든. 하하하-!"

주고받는 눈빛속에서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고갔다.

그리고 그런 흐름속에 휘말린 천둥 길드의 길드원들 역시, 최두식의 장단에 맞춰 웃어보이는 모습이었다.

"100만 구독자 찍으면 한 번 인터뷰하러 오겠습니다."

"100만 유튜버! 그거 부럽군! 나보다 더 잘벌게 되는거 아닌가 모르겠어!"

피비린내와 그을음으로 가득찬 게이트의 너머.

아무 일도 없었던 날의, 평온한 하루가 또 다시 지나갔다.

* * * * * *

불사기사 최두식의 토벌 작전으로부터 며칠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최두식의 토벌 영상을 최대한 멋지게 편집했으며,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낸 영상을 인터넷에 업로드했다.

'헌잘알' 채널의 컨텐츠 중에서도 가장 핫한 컨텐츠.

S급 헌터 분석영상이 업로드 된 것이다.

그런 내 분석영상이 업로드된 직후, 최두식은 곧바로 나에게 연락을 전해왔다.

커뮤니티 내부의 1:1 대화기능을 통한 연락이었다.

- 마산사나이 최두식 : 자네가.올린 영상.잘봤네.^^

- 마산사나이 최두식 : 무척이나.깔끔하게.잘나왔더군,,,

- 마산사나이 최두식 : 그런데.자네.저번에보니까

- 마산사나이 최두식 : 배리어 사용하는.반응속도가.예사롭지않던데

- 마산사나이 최두식 : 언제.한번.대련해볼.생각없나?^^~

최두식의 커뮤니티 이용자 닉네임, '마산사나이 최두식'의 이름으로 전해져온 메세지의 내용.

그것은 영상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언제 한 번 나와 대련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일전에 벌어진 사고에서 내 모습을 감명깊게 본 모양이었다.

하지만 커뮤니티 관리자인 내가 어떻게 그와 대련같은걸 한단 말인가.

하위등급 헌터인 내가 최두식과 할 수 있는 대련이라고는, 커뮤니티 내부에서 키보드 배틀을 벌이는 것밖에 없었다.

"내가? S급 헌터랑 대련을? 말도 안되는 소리지."

불사기사 최두식에게 한대맞고 쓰러지지나 않으면 다행인 일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최두식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하는 것을 선택했다.

- 거품판독기 : 죄송합니다 제가 몸상태에 문제가 있어서

- 거품판독기 : 가급적이면 직접 전투를 벌이는건 삼가하고 있습니다

- 마산사나이 최두식 : 그거.참.안타깝구만.

- 마산사나이 최두식 : 자네도.사연이.있겠지,,,,,

- 마산사나이 최두식 : 그럼.다음에.술한잔하지^^~

내가 정체를 숨기는 것에 적당한 이유를 대자, 최두식은 그제서야 알았다는 듯이 물러서는 모습이었다.

몸이 안좋아서 전투를 피하고 있다는 이유를 순순히 납득하고 넘어간 것이다.

만약 최두식이 내 말을 의심했다면 어쩔 수 없이 키보드 대련을 해야했을테니 나로서도 다행이었다.

"영상에 달린 댓글이나 확인해볼까."

그렇게 최두식과의 대화를 스무스하게 넘긴 이후.

나는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한 최두식의 전투영상을 클릭했다.

단독으로 S급 헌터의 전투영상을 촬영해온 것에 대한 구독자들의 댓글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딸깍-.

내가 스크롤을 내려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살펴보면, 가장 먼저 최두식의 전투에 대한 긍정적인 댓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최두식쯤 되면 대한민국 헌터의 원로정도 되는 까닭이었을까.

몇몇 헌터 채널에서 이모티콘으로 놀란 표정을 달아주는 모습이었다.

"S급 헌터 영상은 아무나 따오는게 아니지. 다들 부럽긴 한가보네."

헌터 유튜브계의 원로정도 되는 내 입장에서는, 그들 역시 내 가르침을 받고 커나가는 병아리 채널들에 불과했다.

그런 그들에게 내가 조그마한 도움을 베풀어주는 것으로, 대한민국 헌터 유튜브계에 선순환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구독자 59만 5천명의 거대 채널에는 그만한 영향력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내 영상에 댓글을 달아준 유튜버들의 댓글을 상단에 고정했다.

혹시라도 이 고정댓글을 통해 해당 채널에 조금이라도 유입이 발생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후배 유튜버들에게 베풀어주는 일종의 끌어주기인 셈이었다.

"그래도 일찍보러왔으니까 형이 인심써서 최상단에 고정해준다."

그렇게 몇몇 유튜버의 댓글을 고정해준 뒤에, 나는 스크롤을 내려 나머지 댓글들도 확인해보았다.

드륵, 드르륵-.

마우스 휠이 아래로 내려갈 때마다 조금 더 직설적인 표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영상의 심연에 달려있는 댓글들을 하나씩 읽어보았다.

- @gdfgdhwrwe : 최두식 = 음주운전 범죄자. 두 번 다시 헌터생활 못하게 만들어야함.

비교적 최근에 최두식의 음주운전 사태가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심연 아래에는 음주운전과 관련된 댓글들이 달려있었다.

추천도 제법 눌려있는걸 보니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 아래에 있는 댓글 역시 비슷한 양상이었다.

- @wtedgdfsd : 토벌작전도 술 마시고 들어간거 아닌가요

최두식의 음주운전을 비난하는 댓글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제아무리 S급 헌터여도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지탄까지는 피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S급 헌터에게 알콜이 어떻게 작용하는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턱을 괴고서 최두식과 관련된 댓글들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이번 영상은 댓글을 막아놓는 것도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았다.

"이미지 관리하려면 아무래도 당분간 고생 좀 하셔야겠네."

그렇게 내가 동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감상하던 도중.

지이잉-.

책상에 놓아두었던 내 스마트폰이 울렸다.

누군가에게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내가 전화를 연결해 스피커 모드를 설정하면, 스마트폰의 스피커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유호야. 나다."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 목소리의 주인.

그것은 '헌터사전'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 최우현이었다.

나는 그런 최우현을 향해 용건을 물어보았다.

"어, 형."

- "유호야. 너 지금 뭐하고 있냐?"

"나야 유튜브 댓글 관리하는 중이지. 무슨 일인데 그래?"

- "그러냐? 너한테 하나 물어볼게 있어서 전화 걸었는데."

지직-.

스마트폰 너머의 목소리가 끊기고서 잠시 후.

무언가를 확인하고 돌아온 것인지, 최우현이 나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 "너 대체 어떻게 천둥 길드에 촬영허가를 받아온거야?"

최우현이 나에게 꺼낸 질문.

그것은 내가 불사기사 최두식의 영상을 촬영해온 비결이었다.

12화

내가 운영하는 '헌잘알' 채널은 헌터 유튜브계에서 전설이라고 불릴만한 채널들 중 하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보다 구독자가 많은 유튜버는 얼마든지 있기 마련이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헌터사전' 채널의 관리자, 최우현처럼 말이다.

구독자 108만의 헌터 유튜버 최우현.

깔끔한 멘트와 보기 편한 영상으로 유명한 유튜버 최우현과 함께, 나는 지금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유호야. 어제 너가 올린 영상 다 보고왔다."

나는 눈앞에서 아메리카노를 들고 있는 최우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굉장히 담백한 영상을 만드는 편이지만, 자극이 부족해 구독자수에 비해 조회수는 적게 나오는 편이었다.

직관적이고 날카로운 분석으로 인기를 얻은 '헌잘알'과는 정반대의 타입인 것이다.

서로 반대성향의 채널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와 최우현의 사이는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적어도 이 업계에 있어서 이만큼 신뢰할 수 있는 유튜버는 많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대체 어떻게 최두식같은 거물의 촬영허가를 받아낸거야? 천둥 길드는 유독 촬영허가 안내주기로 유명한 곳인데."

"어떻게 천둥 길드의 허락을 받았냐는거지?"

나는 그런 최우현의 질문을 들으면서, 어떤식으로 이야기하는게 좋을까 고민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에게 S급 헌터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전달할 생각은 없었다.

천시예나 최두식과 친분이 생겼다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나는 그것을 대신해 적당한 이야기로 최우현에게 둘러대기로 했다.

"사실 내가 최근에 아는 사람이 하나 생겼거든."

"아는 사람?"

"그런데 그 사람이 헌터계에서 입김이 제법 강한 모양이야."

물론 최우현에게 하는 이야기는 전부 나 자신에 대한 내용이었다.

S급 헌터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는 내 영향력은 실제로 날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천시예나 최두식이 나를 S급 헌터로 오해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커뮤니티와 포인트가 대체할 수 없는 입지를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경매장이 개설된 이후로는 현금보다도 포인트를 선호하는 헌터들마저 나올 지경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 정도면 충분히 헌터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숨은 거물이라고 자칭할 수 있는 셈이었다.

정체불명의 거물 헌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최우현은 흥미에 젖은 눈으로 입을 열었다.

"대체 어떤 사람인데 그래? 다른 길드의 촬영약속까지 잡아줄 수 있을 정도야?"

"굉장히 박식한 사람이지. 헌터업계에 대해서도 잘 아는 분이기도 하고. 근데 본인에 대해 드러내는걸 별로 안좋아해서 말이야."

"······."

"그래서 정체를 알려주기는 좀 곤란하긴 한데, 다음에 좋은 기회가 생기면 형한테도 연락할게."

정체를 말해줄 수는 없다.

그 대신 좋은 기회가 생기면 숟가락을 얹을 기회를 주겠다.

이것이 내가 최우현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정체를 알리기 싫어하는 거물이라. 흥미가 가는 이야기이기는 하네."

"그 사람이 워낙 까탈스러운 성격이라서."

"유호 네가 그렇게 말할정도면, 내가 더 파고들어봐야 민폐만 되겠지. 그래, 알았다."

짧은 대화끝에 결국 최우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섰다.

더 이상 내 비밀에 파고들지 않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를 대신해 최우현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자신의 목을 축였다.

정체를 캐묻는 것 이외에도 무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것일까.

시원하게 커피를 들이킨 최우현이 나를 보며 말했다.

"아는 사람 하니까 말인데, 나도 최근에 대형 유튜버 하나랑 알게됐거든."

"구독자 100만명인 형이 그렇게 말할정도면 진짜 규모가 큰 유튜버겠네. 대체 어떤 유튜버랑 알게됐는데 그래?"

"너도 한번쯤은 들어봤을거야. '헌터마스터' 채널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

채널명, 헌터마스터.

해당 채널은 현재 헌터 유튜브계에서 가장 거대한 채널이었다.

구독자가 무려 300만명이나 되면서, 조회수도 몇백만 단위가 기본으로 찍히는 채널인 것이다.

그런 헌터마스터와 최우현이 만남을 가지게 된 모양이었다.

나로서도 확실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헌터마스터? 그 유명한 헌터마스터랑 형이 아는 사이가 됐다고?"

"어. 그 사람이 알고보니 재벌 3세······."

그렇게 나와 최우현이 대형 유튜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위이이이잉-.

갑작스럽게 사이렌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나왔다.

귓청이 터져라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패닉에 빠진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었다.

"이 소리는 설마······."

헌터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법한 소리.

이른바 '몬스터 경보'가 주위에 울려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 "금일 오후 2시 10분을 기해 해당 지역에 몬스터 경보를 발령합니다. 경보가 해제되기 전까지 대피소에 머무르시고 대피후에는 가능한 이동을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몬스터 경보.

게이트 너머의 몬스터 일부가 통제에서 벗어나 빠져나왔을때 발령되는 경보였다.

잠시 뒤면 이 주변지역에 게이트를 빠져나온 몬스터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사방에 메아리치는 사이렌 소리를 들은 최우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나에게 이야기했다.

"유호야.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해야할 것 같다."

"대피소로 들어가려고?"

"이 근처에 혜진이가 운영하는 빵집이 있어서, 무사한지 확인하고서 같이 대피하려고. 너는 어떻게 하게?"

나는 최우현의 이야기를 들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갑작스럽게 발령된 몬스터 경보에 당황한 것이었을까.

사람들이 하나같이 다급함에 젖어있는 채로 카페를 벗어나려고 몰려있는 모습이었다.

그러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을 어루만졌다.

"나도 당연히 대피소로 들어가야겠지."

TV 프로그램의 종말이 점점 가까워져가는 시대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서 발로 뛰어다니며 촬영하는 유튜버는 근본적으로 기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역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랜만에 자신의 가슴 안쪽에 있는 저널리즘이 들끓는 것을 느꼈다.

위험한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면, 누군가는 그 위험성을 알릴 필요성도 있는 법이다.

결코 조회수를 노리고서 현장에 남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먼저 가있어. 나는 조금 늦게 들어갈 것 같으니까."

나는 스마트폰을 조작해 카메라의 촬영모드를 설정했다.

화질은 조금 떨어지겠지만, 헌터들의 활약상을 촬영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촬영의 시간이었다.

* * * * * *

S급 헌터, 파천궁 오지후.

대한민국의 원거리 딜러들 중에서도 한손에 꼽히는 실력자인 그는 현재 전투현장에 단독으로 출동한 상황이었다.

몬스터 경보가 발령된 지역에서 오지후가 가장 가까운 상황이었기에, S급 헌터인 그에게 긴급출동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몬스터는 순식간에 토벌되었지만, 갑작스럽게 불려나온 오지후의 심기는 썩 좋지 않은 편이었다.

그 원인은 당연하게도 이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까닭이었다.

"이 시간에 몬스터 몇마리 더 잡았으면 포인트가 대체 얼마야."

5층짜리 빌딩의 옥상에 선 오지후는 불만가득한 목소리로 망가진 도로를 내려다보며 이야기했다.

강력한 힘에는 그만한 의무가 뒤따른다고 했던가.

S급 헌터들에게는 몇가지 재해상황에 대한 의무차출계약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니 정부에서 부르면 어쩔 수 없이 출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그렇게 출동을 나와 상대한 몬스터가 고작 C급에 불과한 잔챙이였으니, 오지후로서는 여간 심기가 불편한게 아니었다.

"그리고··· 저놈들은 무슨 목숨을 다섯개씩 들고다니는 인간들인가. 지 목숨이 달려있는 마당에 카메라 들고 돌아다니고 난리야."

물론 C급이라고 하더라도 사람 하나 묵사발내기엔 충분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지금 오지후의 시야에는 쓰러진 괴물의 모습을 촬영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진작 경보가 발령되었음에도 대피하지 않고 촬영을 위해 남아있던 것이다.

저들이 굳이 대피를 마다하고 남아있던 이유야 뻔했다.

보나마나 이곳에서 촬영한 전투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려는게 분명했다.

유튜브 쇼츠니, 틱톡이니, 인스타 릴스니 하는 곳에 자기가 찍은 영상을 올려 조회수를 챙기려고 하는 것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더니, 지금 돌아가는 꼴이 딱 그런 상황이었다.

"에휴··· [네트워크 접속]."

그렇게 몬스터의 시체를 촬영하는 시민들을 지켜보던 오지후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그가 이용자명 'tex11'로 활동하고 있는 폐쇄적인 게시판은, 최근 들어서 오지후의 가장 열렬한 취미들 중 하나로 급부상했다.

아무나 접속할 수 없는 게시판에서 S급 헌터들과 심도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까닭이었다.

처음에야 단순히 출석체크 포인트를 받기 위해 접속하던 것이었지만, 그가 [커뮤니티]에 정을 붙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그런 게시판에서도 오지후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이용자들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커뮤니티]는 오지후에게 있어서 마음의 쉼터나 다름없었다.

'영상촬영에 미친 놈들 욕하는 글이나 올려야겠네.'

오지후는 지금 가슴속에 들끓는 불만을 커뮤니티에 표출하기로 마음먹었다.

S급들만 모여있는 커뮤니티의 특성상, 일과 관련한 주제는 헌터들의 관심을 사기 쉬울 터.

그러니 이번 주제는 커뮤니티에 커다란 호응을 얻을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커뮤니티 게시판에 접속하고서, 오지후가 커뮤니티에 게시글을 작성하려던 순간.

그는 게시판에 작성되어있는 게시글 하나를 발견하고서 손가락을 멈춰세웠다.

"뭐야, 이거?"

오지후의 시선이 해당 게시글의 제목으로 향했다.

게시글의 제목에는 굉장히 익숙한 단어가 들어가있었다.

- 파천궁 전투 방금전에 보고왔는데 [1] (거품판독기)

파천궁 오지후.

다름아닌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있던 것이었다.

그에 오지후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손가락을 움직여 해당 게시글을 클릭했다.

툭-.

오지후의 손가락이 게시글을 클릭하자, 해당 게시글의 상세한 내용이 그의 눈앞에 출력되었다.

[ 제목 ] 파천궁 전투 방금전에 보고왔는데

[ 작성자 ] 거품판독기

옛날에 비해서 확실히 많이 성장했다는 느낌이 드네요.

명중률이야 당연히 말할 것도 없고.

전반적으로 마력출력이 높아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일회성 아이템에 많이 의존하던 습관도 이제는 버린 것 같아요.

원래 헌터랭킹 80위정도로 보고 있었는데 이제 71위정도는 줘도 될 것 같습니다.

[ 댓글 1개 ]

해당 글을 작성한 작성자의 닉네임은 '거품판독기'.

누가 보더라도 젊은 나이의 한국인이라고 생각할만한 닉네임이었다.

게시글의 본문에는 제 마음속 랭킹 80위였던 오지후를 71위로 조정하겠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칭찬인지 욕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다만 이 글을 읽는 오지후가 보기에 확실한 점이 한가지 남아있었다.

"S급 헌터가 하나 근처에 있었나? 그런데도 긴급출동을 안한거야?"

이 글을 작성한 S급 헌터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가 이 주변에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보였다.

어떤 헌터인지도 몰라도 그 낯짝은 한번 봐두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타닥, 타다닥-.

그렇기에 오지후는 해당 게시글에 'tex11'로 댓글을 작성했다.

[ 댓글 3개 ]

- frz0777 : 이명만 봐서는 한 5위쯤 해야될거같은데.

- tex11 : 너 어디있냐?

- tex11 : 지금 찾으러간다

오지후가 댓글을 작성하고서 잠시 후.

띠링-.

머지않아 알림소리와 함께 댓글이 갱신되었다.

오지후는 자신의 댓글에 달린 답글의 내용을 확인해보았다.

[ 댓글 4개 ]

- frz0777 : 이명만 봐서는 한 5위쯤 해야될거같은데.

- tex11 : 너 어디있냐?

- tex11 : 지금 찾으러간다

ㄴ 거품판독기 : ?

아무래도 '거품판독기'는 지금 커뮤니티를 조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방금 막 토벌을 마친 참이었으니, 어지간하면 멀리 가지 못했을 터.

오지후는 곧바로 자신의 고유 특성을 발동했다.

"—[심안]."

탐지계열 최상위 특성, [심안(S)].

장애물 너머의 적을 보고 조준할 수 있게 해주는 오지후의 능력이었다.

주변 반경의 모든 움직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제3의 눈이 활성화되었다.

파아아아앗-.

사방으로 확장되는 감각이 주변 공간의 모든 것을 읽어들이고, 그 흐름속에서 오지후는 어색한 움직임 하나를 포착해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손가락을 두드리는 듯한 움직임.

그리고 그 움직임은 명백히 타자를 입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찾았다."

S급 헌터, 오지후.

그는 커뮤니티에서 자신에 대한 평가를 늘어놓는 S급 헌터를 발견하고서 미소를 지었다.

커뮤니티 이용자명, '거품판독기'의 실체를 그의 두 눈으로 확인할 시간이었다.

13화

경보가 울려퍼진 이후에도 현장에 남아있던 나는, 운이 좋게도 S급 헌터의 전투영상을 스마트폰에 담아낼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S급 헌터들 중 하나, 파천궁 오지후의 영상을 촬영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몬스터 경보에 S급 헌터가 출동할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비록 C등급의 몬스터를 일방적으로 상대하는 광경에 불과했지만, 나는 해당 전투에서 오지후에 대한 자료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나는 이번 전투에서 오지후에게 생긴 몇가지 변화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전투 스타일이 조금 변했네. 마력 출력도 올라간 것 같고. 이만하면 랭킹을 조금 더 올려줘도 되겠어."

오지호의 전투를 분석한 나는 커뮤니티에 긍정적인 평가를 업로드했다.

오랫동안 국내 S급 헌터들의 전투영상을 분석해왔던 나였다.

그러니 내 관점에서 올린 게시글이 다른 S급 헌터들에게 많은 공감을 받을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허나, 정작 내 게시글에 달린 댓글은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커뮤니티 이용자명, 'tex11'.

오지후 본인이 직접 댓글을 달아왔으니까 말이다.

그것도 오지후가 직접 나에게 찾아오겠다는 댓글을 말이다.

"······뭐야? 전투가 끝나자마자 커뮤니티에 바로 들어온건가?"

나는 고개를 들어 주변 길목을 둘러보았다.

현재 내가 있는 골목은 전투가 벌어진 길목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이다.

아무리 S급 헌터라고 해도 이곳까지 찾아올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찾아오더라도 커다란 문제가 생길 것 같지도 않았다.

"어차피 긍정적인 평가만 남겼으니까 문제없겠지."

내가 커뮤니티에 남긴 글은 명백하게 오지후를 칭찬하는 글.

그런만큼 오지후 본인도 큰 반감은 없으리라는 계산이었다.

그렇게 내가 커뮤니티를 닫고 골목을 벗어나려던 순간.

띠링-.

알림음과 함께 화면속의 댓글이 갱신되었다.

[ 댓글 5개 ]

- frz0777 : 이명만 봐서는 한 5위쯤 해야될거같은데.

- tex11 : 너 어디있냐?

- tex11 : 지금 찾으러간다

ㄴ 거품판독기 : ?

- tex11 : 찾았다 ㅎㅎ

내가 작성한 게시글의 댓글창에, 나를 발견했다는 오지후의 댓글이 달려있었다.

평범한 인터넷 게시판이었다면 그냥 웃고 넘겼을만한 글이었다.

허나, 나는 해당 게시글을 발견하는 것과 동시에, 등뒤가 싸늘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댓글의 내용을 확인한 직후, 나는 곧바로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등지고 있던 건물의 난간 위.

그곳에 미디어를 통해 숱하게 목격해왔던 남자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여기있었구나. 거품판독기."

"······오지후."

귓가에 들려오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

그 직후 오지후가 건물의 난간에서 뛰어내렸다.

쿠웅-.

거대한 활을 든 채 지면에 낙하한 그는, 한쪽 팔로 바닥을 짚어 균형을 잡아내었다.

낙하한 오지후가 다시 자세를 되찾기까지는 1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야, [커뮤니티]에서만 보다가 이렇게 얼굴을 보니까 또 느낌이 다르네. 그렇지 않아?"

"······."

"그런데 얼굴이 내가 아는 S급 헌터들의 얼굴이 아닌데? 설마, 그쪽은 미등록 헌터인건가?"

오지후의 날카로운 시선이 나를 훑고 지나갔다.

마치 내 모든 것을 낱낱히 파헤치는 듯한 시선이었다.

나에게 시선을 향하는 오지후의 이야기는, 내가 천시예에게 처음 들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등록 S급 헌터.

내 정체가 자신의 실력을 숨기는 S급 헌터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촬영에 미친놈인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S급 헌터였을줄이야. 그런데 S급 헌터가 왜 미등록으로 다니지? 이유를 잘 모르겠는데."

나는 오지후의 시선을 받으며 그에게 어떤 대응을 해야할지 고민했다.

이미 천시예나 최두식같은 S급 헌터들에게는 내 정체가 미등록 S급 헌터라고 알려져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오지후에게도 같은 스탠스를 취하고서, 최대한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해야만 할 것인가.

내가 최선의 대응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면, 오지후가 나를 보며 혼자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쪽이 진작에 협회에 등록했으면 오늘 내가 이런곳까지 긴급출동 나올 일은 없었을거 아니야."

"······."

"그런 의미에서 신고하고··· 푼돈이지만 포상금이나··· 어··· 어어······?"

다만, 나를 바라보던 오지후의 이야기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나에게서 전혀 예상치 못한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었을까.

내가 의아해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말끝을 흐리던 오지후의 손가락이 내 가슴팍을 가리켰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위치.

그곳에는 내가 경매장에서 구입한 <오르타의 은총(S)>이 들어있었다.

"그거, 분명 내가 [경매장]에 올렸던 물건일텐데, 설마 그쪽이······."

아무래도 오지후가 내 주머니에 들어있던 부적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눈썰미가 좋은 모양인지 내가 가지고 있던 <오르타의 은총(S)>을 찾아낸 것이다.

더군다나 오지후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 아이템을 판매한건 다름아닌 오지후 본인이었다.

그렇다면 그 역시도 내가 1만 포인트에 이 물건을 구매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터.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야될지 대략적으로 감이 잡히는 순간이었다.

'오지후급의 헌터라면 다른 S급 헌터들에 비해 포인트 수급량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겠지.'

나에 대한 오지후의 감정을 호의로 돌리고, 그와 나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방법.

그 방법은 역시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눈앞의 오지후를 향해 덤덤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했다.

"100포인트."

"뭐······?"

내가 오지후를 향해 적당한 숫자를 부르면, 당황한 오지후의 시선이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시선이었다.

나는 그런 오지후에게 숫자를 올려 재차 이야기를 전했다.

"200포인트."

"그게 무슨······."

"300포인트."

"······."

"400포인트."

"······."

"500포인트."

"오, 오백 포인트······?"

그제서야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감이 잡힌 것일까.

내 이야기를 듣던 오지후의 눈동자가 휘둥그래 변했다.

500포인트.

출석체크 보상의 다섯배에 해당하는 금액.

그것이 무엇을 위한 금액인지 이해한 것이다.

"500포인트. 거기에 인터뷰까지. 내 비밀을 지켜주는 조건으로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지 않나?"

"······형님."

운영자가 눈앞에서 캐시를 복사해서 뿌리는 상황.

S급 헌터 오지후는 감히 그 제안을 거부하지 못했다.

* * * * * *

수많은 감사패들이 전시되어있는 오지후의 집.

한강뷰가 보이는 넓은 집에서 나는 비싼 와인이 담겨있는 글라스를 들고 있었다.

나에게서 500포인트를 선물받은 오지후가 나를 저녁식사에 초대한 것이다.

자취를 하면서 상당한 요리실력을 갖추게된 것이었을까.

오지후가 차려놓은 반찬들은 하나같이 정갈하고 깔끔한 편이었다.

물론 맛 역시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다.

오지후는 눈앞에서 와인잔을 기울이면서, 제 맞은편에 있던 나를 향해 이야기했다.

"이야, 설마하니 그 유튜버 '헌잘알'이 S급 헌터였을줄이야. 나는 진짜 꿈에도 몰랐어."

그렇게 말하는 오지후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걸려있는 모습이었다.

5일치 출석체크 포인트가 한번에 입금된 까닭이었다.

S급 헌터중에서도 하위권에 해당하는 오지후에게는, 500포인트조차 작지 않은 금액이었던 것이다.

"뭐, 헌터라고 할것까지도 없지. 주력으로 하는건 유튜브인데."

"아니, 나는 옛날부터 그 채널 구독하고 있었다니까? 분석이 일반인치고 되게 정확하다고 생각했는데, S급 헌터라면 그런 영상이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오지후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눈앞의 헌터에 대한 인식이 순식간에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예리한 눈을 가진 궁수 포지션의 원거리 딜러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오지후는 영상을 보는 눈이 확실히 뛰어난 편이었다.

진작부터 내 채널을 구독하고 있는 구독자였을줄이야.

오지후가 헌터로서의 자기계발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비록 그의 퍼포먼스 자체는 헌터 랭킹 71위에 불과하지만, 그의 헌터 지능은 그보다도 훨씬 더 높게 쳐줘야만 할 것 같았다.

"S급 헌터 오지후가 내 구독자라니, 이거 참 감계무량한 이야기인데."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서로 인연인데, 같이 건배나 하자고."

짠-.

오지후의 잔과 내 와인잔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나는 오지후에게서 받은 와인을 쭉 들이켰다.

고급 와인 맛은 솔직히 말해서 하나도 모르긴 하는데, 비싸서 그런지는 몰라도 싸구려 와인보다는 목넘김이 좋은 것 같긴 했다.

그렇게 짧은 건배를 나눈 직후.

고기를 집어먹고 있는 나에게 오지후가 이야기했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도 헌터 등록을 안하고 있는거야? 유튜버보다는 헌터 일이 수익이 더 만족스럽지 않나?"

그가 나에게 건넨 질문.

그것은 왜 내가 헌터 일을 마다하고서, 유튜버 일을 계속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거야 당연히 내가 헌터라고 하기 민망할정도로 약해서였지만, 그걸 오지후에게 그대로 이야기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나는 오지후에게 적당히 그럴싸한 이야기를 지어서 이야기했다.

"나한테는 돈보다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어서 말이야."

"······."

"그걸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어."

남자에게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는 까닭이었을까.

오지후는 그런 내 마음을 안다는 듯이, 우수에 젖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하나도 모르는 녀석이 저러고 있으니 웃음을 참는 것이 고역이기는 했다.

다만, 나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애달픈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지후와 나 사이에 일방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돈으로 모든걸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는거겠지."

"뭐, 결국은 그런 이야기야."

"사나이들의 일에는 낭만이란게 있는법이니까. 충분히 이해했어."

하나도 이해못한 오지후가 비어있던 내 와인잔에 와인을 따라주었다.

나 역시도 와인병을 들어 오지후의 잔에 그것을 마주 따라주었다.

짠-.

오고가는 잔속에서 나는 오지후의 성격을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내 생각보다도 감성적인 성격이면서, 포인트에 대한 집착이 무척이나 강한 편이었다.

내가 <오르타의 은총(S)>을 구매했다는 사실에 반응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아마도 포인트만 쥐어주면 어지간한 부탁은 전부 들어주겠지.'

적당한 포인트만 주면 어떤 부탁이든 다 들어줄만한 사람인 것이다.

현금 경제의 위에 군림하기 시작한 포인트 경제.

이것은 헌터 사회에서 내 영향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커뮤니티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어떤 기능이 추가될지 기대되는데.'

아직 고작 D등급에 불과한 특성인데도, 이만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특성 등급이 더 올라갔을 때는 어떠한 변화를 불러올 것인가.

내가 가진 특성, [커스텀 네트워크]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대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S급 커뮤니티 관리자의 미래를 향한 물음이 내 안에서 끊임없이 메아리쳤다.

앞으로도 수없이 반복해나갈 고민을 가슴속에 안은 채로, 나는 계속해서 오지후와 술잔을 주고받았다.

"헌잘알 채널이 100만 구독자가 되는 그날을 위하여!"

"100만 구독자를 위하여!"

물론, 지금 당장의 내 목표는 유튜브 100만 구독자였다.

14화

익명이라는 것은 때때로 사람의 마음에 그어진 선을 지워버리고는 한다.

고작해야 이름이 가려졌다는 사실만으로도,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이야기들을 꺼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각국을 대표하는 S급 헌터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S급 헌터들 역시 온갖 이야기들을 꺼내고는 했으니까 말이다.

오늘도 커뮤니티에서는 익명이라는 탈을 쓰고서 다양한 게시글들이 올라오는 모습이었다.

"오늘따라 커피가 진하게 잘 나왔네."

그리고 나는 현재 커피를 마시면서, 그런 커뮤니티의 게시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윽-.

손가락을 움직여 스크롤을 내리면 무수한 게시글들이 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게시판에 올라와있는 게시글들 중에는 상당히 인상깊은 글들도 여럿 존재하고 있었다.

지금 내 눈앞을 가득채우고 있는 화려한 게시글 라인업들처럼 말이다.

- 나 신창인데 [3] (망원동불주먹)

-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는 누구라고 생각해? [11] (ronaldo_7)

- 오늘도.꽃이.예쁘네요.^^ (마산사나이 최두식)

-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기위해 중국이 생각해낸 획기적인 방법 [3] (xkingx)

- 점심.만들어.머것어요 ^ O ^ [1] (swordmaster)

나는 오늘도 선명한 자기주장으로 가득차있는 게시글들을 바라보았다.

최두식한테 글쓰는법을 배웠는지 의심되는 천시예의 게시글부터 시작해서, 애국심에 미쳐있는 게시글, 댓글 하나도 안달리는데 묵묵히 적어나가는 게시글 등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용자명 '망원동불주먹'이 작성한 글이었다.

게시글의 제목은 '나 신창인데'.

적어도 게시글의 제목만 봐서는 무게감따위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저게 누구 닉네임이더라."

잠시동안 해당 게시글의 제목을 보며 고민하던 나는, 이내 게시글의 내용을 확인해보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였다.

툭-.

손가락을 움직여 화면을 터치하자 해당 게시글의 내용이 눈앞에 출력되는 모습이었다.

[ 제목 ] 나 신창인데

[ 작성자 ] 망원동불주먹

[ 이용자 정보 ] 주선호(29) / S급 / 신창

이중 게이트 현상 내가 직접 보고왔다

게이트 공략 한번도 못해봤을것 같은 이상한 박사 논문 들고와서 반박하던데

직접 보지도 못한 인간들이 이중게이트의 존재여부에 대해서 운운하는게 맞는건가?

[ 댓글 3개 ]

[ 공지사항 / 수정 / 삭제 ]

해당 게시글의 작성자 닉네임은 '망원동불주먹'.

그 정체는 신창 주선호 본인이었다.

"이게 진짜 주선호였네."

게시글의 내용으로 추정해보건데 누군가와 특정 현상에 대해 한참동안 논쟁을 벌였던 모양이었다.

익명 커뮤니티의 특성상 타인과의 논쟁은 자주 벌어지기 마련이었다.

다만 아무리 신창이라고 해도 논쟁에서 지는 것만큼은 참기 어려웠던 것일까.

그는 구태여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면서까지 제 권위를 내세우려는 것으로 보였다.

"다들 커뮤니티 들어와서 하나씩 추해져가는구나. 망원동불주먹이 뭐야, 망원동불주먹이."

나는 주선호의 닉네임을 보면서 헛웃음을 지었다.

TV에서나 보던 내 우상들이 점점 초라해져가는 모습은 마주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최두식이나 천시예도 그렇지만, 커뮤니티에서 마주한 주선호의 모습 역시 상당한 충격이었다.

커뮤니티와 현실, 양쪽 다 품격을 갖추고 지내는 것은 역시 나밖에 없는 것인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해당 게시글의 댓글창을 확인해보았다.

"······."

그러자 한층 더 웃음이 터져나오는 댓글의 내용을 마주할 수 있었다.

[ 댓글 3개 ]

frz0777 : S급들만 모여있다고 죄다 자기 정체가 신창이래

frz0777 : 농담아니고 일주일동안 신창만 5명은 본거같은데?

ronaldo_7 : 작성자가 신창이면 나는 검성이겠네 ㅋㅋ

작성자명 '망원동불주먹'이 작성한 글에는, 안타깝게도 그의 정체를 부정하는 댓글들이 달려있었던 것이다.

전세계의 모든 헌터들을 통틀어서 정점이라고 부를만한 수준에 올라있는 인물이 바로 신창 주선호였다.

유명한 이름인만큼 그를 사칭한 이들도 제법 있는 모양이었다.

'frz0777'이나 'ronaldo_7'이 그의 정체를 듣고서 비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이번에도 신창을 사칭하는 누군가가 나타난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신창의 정체를 의심하는 이들을 보면서 그들을 비웃었다.

"진짜 신창이라는걸 알면 어떤 반응일지 궁금해지는데."

특히나 상대가 진짜 신창이라면, 자기는 검성이라고 주장하는 'ronaldo_7'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했다.

영국의 검성은 한국의 신창에 버금가는 강자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S급 헌터, 검성— 아서 테브란트.

그는 내 마음속의 헌터 랭킹 2위를 차지할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적어도 인지도 면에서는 신창에게 꿇리지 않는 인물인 것이다.

나는 신창의 정체를 부정하며, 검성을 운운하는 ronaldo_7의 정체가 문득 궁금해졌다.

그렇기에 그의 정체를 확인해보기 위해, 게시판에 있는 ronaldo_7의 게시글에 들어가보았다.

[ 제목 ]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는 누구라고 생각해?

[ 작성자 ] ronaldo_7

[ 이용자 정보 ] 아서 테브란트(24) / S급 / 검성

사실 이건 질문이 아니야

정답은 이미 정해져있거든

'RONALDO 7'.

[ 댓글 11개 ]

[ 공지사항 / 수정 / 삭제 ]

게시글에 들어간 나는 곧장 작성자의 정체를 확인했다.

그러자 게시글의 상단에 적혀있는 익숙한 누군가의 이름이 보였다.

아서 테브란트(24).

그 이름을 확인한 나는 고개를 숙이며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얘도 진짜 검성이네."

이용자명 ronaldo_7의 정체는 정말로 검성이었던 것이다.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검성의 실체를 마주한 나는, 또 한차례 S급 헌터에 대한 인식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느꼈다.

밖에서는 멀쩡해보이던 녀석들이 왜 커뮤니티만 들어오면 기행을 보이는 것인가.

나로서는 안타까움을 금치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후우-.

무너져내린 지식의 요람을 마주하던 나는 한숨을 내쉬며 게시글 작성버튼을 클릭했다.

"어쩔 수 없지. 내가 건전한 게시글을 올려서 커뮤니티의 질을 높이는 수밖에."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역시 나부터 나서서 유익하고 좋은 글을 쓰는 수밖에 없을 터였다.

나는 커뮤니티의 분위기를 환기할 목적으로 교양있는 게시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타닥, 타다닥-.

게시판에 업로드할 게시글의 제목은 '냉정하게 판단한 헌터 랭킹 TOP5'.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했던 야심작의 진화 버전이었다.

1위인 신창 주선호를 시작으로 5위인 뇌제 알렉스까지의 이름이 적혀있는 리스트인 것이다.

내가 허공에 나타난 키보드를 두드려 게시글을 작성하고 나면, 머지않아 귓가에 익숙한 알림이 울리는 모습이었다.

띠링-.

귓가에 울린 알림소리에 나는 곧장 댓글창을 확인했다.

"뭐야. 벌써 댓글이 달렸나?"

갱신된 댓글창의 모습을 확인하자 나는 게시글에 달린 댓글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 마산사나이 최두식 : 최두식헌터님.이름이.빠졌네요.^^

해당 댓글을 보기 무섭게 나는 곧바로 커뮤니티를 종료했다.

참고로 불사기사 최두식의 헌터 랭킹은 11위였다.

* * * * * *

헌터의 본질은 무엇인가.

누구에게 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돌아올 대답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게이트 너머의 괴물들과 맞서 싸우는 것이 헌터의 본질이라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하루종일 커뮤니티나 하고 있는건 헌터 본연의 역할과는 거리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현재 인적이 드문 공터에 나와있었다.

제 한몸 지키기 위한 헌터로서의 단련을 위함이었다.

"슬슬 경매장에 소모품이 많이 올라오는구나."

그리고 그런 내 눈앞에는 커뮤니티의 [경매장] 메뉴가 띄워져있는 상황이었다.

[경매장]에 올라온 아이템들 중에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구매하기 위함이었다.

정확히는 적당한 가격에 올라온 소모성 아이템들을 매입할 생각이었다.

"적당히 양심적인 가격에 올라온 물건들 위주로 사들여야겠네."

내가 가지고 있는 S급 장비, <오르타의 은총(S)>은 소모성 아이템의 효과를 증폭시켜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전투보조 목적의 소모성 아이템을 구매해서, 그 효율을 증폭시켜 호신용으로 사용하려는 것이었다.

"어디보자. <파이어볼 스크롤(C)>··· <윈드커터 스크롤(C)>··· 대부분 등급이 C급인가."

나는 경매장에서 소모성 아이템을 검색해 적당한 가격대의 물건을 찾아보았다.

그러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C급의 마법 스크롤들이었다.

마법 스크롤들은 단순히 찢어버리는 것만으로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그러한 편리성 탓에 스크롤 한장의 가격이 경악스러운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대부분 300포인트에서 500포인트 수준인건가··· 나쁘지 않은 가격이야."

C급 스크롤들의 가격은 300~500포인트 사이의 시세를 형성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현금으로 볼때는 경악스러운 수준이었지만, 막상 포인트로 보니 크게 부담가는 금액은 아니었다.

300포인트면 3일간 출석체크를 하는 것만으로도 수급할 수 있는 포인트였다.

시장에 풀리더라도 그리 크게 지장이 없는 액수라는 이야기였다.

더군다나 내가 현금은 몰라도 포인트 하나만큼은 무한하게 복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던가.

돈복사 헌터인 내 입장에서 스크롤을 비축하는건 아무런 문제도 없는 일이었다.

"일단 물량이 적당히 남아있을 수준으로만 사둬야겠어."

경매장에서 스크롤들의 가격을 확인한 나는, 이내 손가락을 움직여 소모성 아이템들을 구매했다.

툭. 투욱-.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포인트가 빠져나가며 경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시야의 한구석에서는 내 결제내역을 알리는 메세지가 줄줄이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 <윈드커터 스크롤(C)>을 350포인트에 구매했습니다.

- <윈드커터 스크롤(C)>을 377포인트에 구매했습니다.

- <파이어볼 스크롤(C)>을 420포인트에 구매했습니다.

- <매직미사일 스크롤(D)>을 333포인트에 구매했습니다.

- <폭발형 마석(B)>을 511포인트에 구매했습니다.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팔랑이는 스크롤이 눈앞에 한장씩 떨어져내렸다.

띠링-. 띠링-.

더군다나 반복적으로 울려퍼지는 알림음은 나로 하여금 FLEX가 무엇인지 느끼게 해주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경매장에 나온 스크롤들을 양껏 쓸어담은 이후.

나는 내 앞에 수북하게 놓여있는 스크롤들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

<윈드커터 스크롤(C)>.

바람계열의 기초적인 공격마법들 중 하나가 담겨있는 스크롤이었다.

나는 그것을 손에 들어서는, 심호흡을 하며 스크롤의 끝을 붙잡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용해보는 스크롤이었다.

일개 유튜버의 수익으로는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물건이었기에, 이런식으로 쌓아놓고 사용하게 될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좋아. 어디 한 번 써보자."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스크롤을 힘차게 찢었다.

찌이익-.

찢겨나간 스크롤이 빛의 입자로 변해 흩어지기 시작하더니, 머지않아 시원한 바람이 나를 휘감는 모습이었다.

거칠게 흩날리는 머리카락.

나는 그 너머로 멀리 떨어져있던 바위를 노려보았다.

바위를 바라보며 그것을 겨냥한다고 생각하자, 나를 감싸던 바람이 빠르게 쏘아져나갔다.

휘잉! 카가가가각-!

바위가 갈려나가는 날카로운 소리.

무수한 돌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올랐다.

쩌저저적-.

그 직후 바위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수갈래로 쪼개졌다.

스크롤을 이용해 사용한 윈드커터가 단단한 바위 하나를 완전히 부숴버린 것이다.

나는 산산히 부서진 바위의 모습에 감탄에 젖은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기초마법치고는 위력이 말도 안되는데?"

고작해야 기초적인 마법으로 만들어냈다기엔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오르타의 은총(S)>.

소모성 아이템의 출력을 2배 증폭시키는 헌터 장비의 힘이 곁들여진 결과물이었다.

나는 처참하게 부서진 바위를 바라보다가, 다시금 바닥에 쌓여있는 스크롤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고작해야 C급 아이템을 사용했음에도 저런 수준인데, B급 아이템을 사용한다면 어느 정도의 위력을 보여줄 것인가.

지금 당장 다른 스크롤을 테스트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생긴 것이다.

"이번에는 조금 더 강한 마법을 사용해볼까."

내가 그런 생각으로 스크롤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히려던 순간.

지이이이잉-.

갑작스럽게 내 스마트폰에 메세지가 하나 도착했다.

나는 바닥을 굴러다니는 스크롤을 향해 뻗던 손을 멈춰세웠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을 꺼내 자신에게 날아온 메세지의 내용을 확인했다.

- 천시예 : 내일 시간 괜찮아?

- 천시예 : 부탁할게 하나 있는데

구독자 60만 유튜버인 나에게 메세지를 보내온, 무척이나 친숙한 이름의 S급 헌터.

천시예로부터의 메세지였다.

15화

천시예의 연락을 받고서 다음날.

나는 셀레스티아 길드 내부에서 천시예와 단둘이 마주했다.

천시예가 나를 불러낸 곳은 그녀를 위해 준비된 개인 트레이닝 룸이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셀레스티아 길드의 손님 자격으로 출입증을 받고 이곳에 들어왔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천시예의 용건 때문이었다.

천시예가 이번에 나를 부른 용건부터가 평소보다도 조금 더 특별했던 것이다.

"이전에 당신이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에서, 내가 전세계 헌터를 통틀어서 8위 정도라고 이야기했잖아?"

"그랬지. 지금도 그 정도 랭킹은 될거야."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 지금보다도 더 높은 순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

천시예가 나를 개인 트레이닝 룸에 호출한 이유.

그것은 내가 이전에 유튜브에 업로드했던 헌터랭킹 영상 때문이었던 것이다.

정확히는 그때 그녀가 받았던 랭킹에서 파생되어나온 이야기였다.

헌터랭킹 8위.

천시예는 자신에게 주어진 성적표에 아직까지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더 높은 랭킹으로 올라가냐는 말은······."

"당신은 S급 헌터들 중에서도 유독 다른 헌터를 분석하는걸 좋아하는 편이잖아. 나름대로 보는 눈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거야 그렇지."

"그렇다면 지금의 나에게 부족한 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을거 아니야?"

"······."

"내가 어떤 부분을 보강해야 조금 더 높은 랭킹으로 책정될 가능성이 있는지, 나는 당신한테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거야."

다시 말해서 나에게 컨설팅을 받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내 헌터랭킹 지표에서 그녀의 순위를 올릴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셈이었다.

물론 천시예가 나에게 이런 열의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헌잘알'은 맛집으로 치면 미슐랭이고 스포츠로 치면 발롱도르같은 곳이었다.

그러니 천시예 본인에 대한 정확하고 면밀한 분석을 나에게 듣고 싶어하는 것이다.

"단순히 [리워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나를 부른건 아니겠지?"

"빠르게 강해지는데에는 [리워드]만한 수단이 없겠지만, 그거야 다른 헌터들도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이잖아? 나는 그보다 더 심도깊은 조언을 들어보고 싶어."

천시예의 검은 눈동자가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든 강해져서 위로 올라가고 싶다는 천시예의 열의가 내 살갗을 통해 선명하게 전해져오고 있었다.

그녀가 이런 마음을 품은 배경에는, 최두식이 이야기했던 주선호와의 관계도 크게 작용했을 터였다.

어떻게 해서라도 신창 주선호의 경지에 한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이 가고 싶다는 이야기겠지.

그리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천시예가 나를 부른건 무척이나 탁월한 선택이었다.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어드바이스 해주는 것 자체는 문제없어."

"정말이야?"

"네 말대로 평소부터 다른 헌터들을 분석하는게 내 일이었으니까. 다른 랭커들과 비교해서 뭐가 부족한지 집어주는거야 어렵지 않지."

나는 매일같이 수많은 헌터들의 전투를 보고 그들에 대해 분석하고는 했다.

내가 올리는 전투 영상은 사실상 내 주관이 담긴 스카우팅 리포트에 가까운 셈이다.

실제로도 일부 길드의 경우에는 내 영상을 참고삼아 유망주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천시예가 원하는 부분을 정확히 집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내가 아무런 조건없이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지는 않을테지만 말이다.

"마침 잘됐네. 전에 약속했던 인터뷰 영상도 트레이닝룸에서 찍으면 괜찮겠어."

"······설마 오늘 촬영하려고?"

"셀레스티아 길드에 찾아올 기회가 얼마나 되겠어. 기왕 찾아온 김에 인터뷰를 겸해 훈련영상을 올리는 편이 좋겠지."

나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스마트폰을 꺼내 메모앱을 실행시켰다.

스마트폰의 메모장에는 내가 그동안 헌터들을 분석해오며 적어놓은 스카우팅 리포트가 있었다.

모든 헌터들을 6개 항목으로 나누어 해당 분야에서의 능력치를 시각화해놓은 것이다.

그리고 내 스마트폰에 저장되어있는 리포트들 중에는, 비교적 최근에 적은 천시예에 대한 내용도 남아있었다.

툭-.

나는 스마트폰에서 천시예에 대한 파일을 실행시켜서는, 터치펜을 이용해 간단한 메모를 적으며 이야기했다.

"며칠동안 따로 시간을 내서 어울려줄게. 그 대신에 다음에 내가 이야기하는 컨텐츠 찍는걸로 하자고."

"······알았어. 유튜브 영상에 한 번 더 나오는 정도라면 상관없어."

"원래는 포인트를 주면서 부탁해도 안해주는건데, 이번에 나한테 제대로 빚진거다."

"······."

"일단은 비슷한 계통의 헌터들이랑 비교해서 부족한 부분부터 확인하고 넘어가자."

나는 천시예의 스카우팅 리포트를 바탕으로 그녀의 장점과 단점을 체크했다.

천시예는 기본적으로 속도와 민첩성에 특화되어있는 근거리 딜러였다.

마력의 출력이나 안정성 자체는 다른 S급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그녀의 속도는 S급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하는 편이었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속도 하나만큼은 신창 주선호와도 비견될만한 수준인 것이다.

다만, 그외의 모든 능력치들이 주선호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편이었다.

"똑같이 검을 쓰는 헌터를 기준으로 이야기할때, 검성 아서 테브란트는 명백하게 네 상위호환에 속하는 헌터야."

"영국의 검성······."

"커다란 육각형에 가까운 유형이지. 속도만큼은 네가 조금 더 빠를지도 모르겠지만, 그마저도 미세한 차이에 불과할테고 말이야."

검이라는 무기 카테고리 안에서 봐도, 천시예는 검성한테도 밀리는 편이었다.

애초에 천시예의 전투패턴은 상당히 야성적인 모습에 가까웠다.

그게 그녀가 '검귀(劍鬼)'라는 이명을 얻게 된 계기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검성은 그런 천시예보다도 훨씬 더 깔끔하게 검을 휘두르는 유형이었다.

검술의 완성도면에서 천시예는 검성과 비교될 수조차 없는 수준이었다.

"특히나 검술면에서는 현저하게 차이나는 편이지. 물론 S급인 너한테 검을 가르치겠다고 나설만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

"그건··· 내 나름대로 계속해서 가다듬고 있어. 지나치게 형태에 얽매여있는 검술들이 내 손에 잘 익지않는 것 뿐이야."

"그렇다고 해서 네 전투스타일을 완전히 버리라는 이야기는 아니야. 사람한테는 저마다의 장점이 있는 법이니까. 재능을 잘 살려야겠지."

허나, 그렇다고 해서 천시예가 검성처럼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검귀로 남아야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천시예의 전투 스타일을 조금 더 살려주는 방향에 집중했다.

스윽-.

스마트폰의 화면을 넘긴 나는 저장해두었던 메모 목록중에서 기억에 남는 인물을 하나 찾아내었다.

내가 찾아낸 파일에는 최태진이라는 헌터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셀레스티아 길드에 속해있는 이들중에, 최태진이라는 이름의 B급 헌터가 있어."

"아··· 이름은 알고 있어."

"헌터 등급은 낮지만 검술의 완성도만큼은 상당히 높은 편이야. 검을 휘두르는 스타일이 너와 유사하기도 하고."

B급 헌터, 최태진.

그는 천시예와 마찬가지로 셀레스티아 길드에 속해있는 인물이었다.

B등급의 헌터였지만 검을 다루는 솜씨가 눈에 띄어 내가 주의깊게 보고있던 인물이었다.

나는 그런 최태진을 천시예의 검술 멘토로 추천했다.

"최태진한테 조언을 들어가면서 검을 교정해나가는게 좋을거야. 기본적인 신체 스펙이 월등히 좋은 편이니까, 검술의 완성도만 올라가도 7위까지는 노려볼만 하겠지."

"정말이야? 그 사람이 내 검술을 교정해줄 수 있다고?"

"태생 등급이 낮아서 그렇지 보기 드문 검의 명수야. 전투 방식도 비슷해서 시너지가 생기면 생겼지, 오히려 네 장점을 깎아먹는 일도 없을테고."

"······알았어. 네 말대로 검술에 대해서는 그 사람한테 물어볼게."

천시예는 잠깐 고민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이내 내 조언을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헌터랭킹을 올리기 위해 같은 길드원에게 검에 대해 배우는 것을 수락한 것이다.

물론 검술에 대한건 지금부터 이어질 장황한 조언들의 시작에 불과했다.

아직 내가 천시예에게 이야기할 내용은 수도 없이 남아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사용하고 있는 헌터 장비도 바꾸는 편이 좋을거야."

"설마 내 검을 말하는거야? 이거 상당히 비싼 물건인데······."

". S급 장비잖아. 비싼 물건인건 알고있는데 네 스타일이랑은 안어울려."

"아."

"아무래도 마력에 대한 보정효과가 붙어있는 장비가 더 낫겠어. 괜찮은 매물이 경매장에 올라와있으면 좋을텐데."

천시예가 가지고 있는 장비 역시도 교체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천시예는 무척이나 행운아였다.

내가 운영하는 S급 헌터 커뮤니티가 탄생한 이후, 모든 헌터들에게 제공되는 특별한 서비스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경매장].

헌터 세계의 값비싼 물건들을 포인트로 구매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말이다.

"당분간 경매장에 올라오는 매물들을 계속해서 찾아보고 있을테니까, 포인트는 가능한 쓰지말고 그대로 가지고 있어."

"포인트를 쓰지말라고? 그건 조금······."

"뭐라고?"

"······아, 알았어. 포인트는 전부 다 모아놓을게."

포인트를 쓰지 말라는 말에 잠시동안 눈이 떨리던 천시예였지만,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내 요구를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그런 천시예의 모습을 보며 나는 커뮤니티의 경매장에 접속했다.

그동안 시장교란을 경계하며 최상위 매물에 대한 접근을 자제해왔지만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아도 괜찮았다.

경매장의 최상단에 위치하고 있는 상위 1%의 초고가 매물.

모든 헌터들에게 있어서 영혼의 파트너라고 불리는 값비싼 물건.

무기 쇼핑의 시간이었다.

* * * * * *

일본의 후쿠오카에 위치한 변형 게이트의 안.

통칭 '마경'이라고 불리는 그곳에는 두명의 남자가 몬스터의 사체 위에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그중에서도 너저분한 옷을 입은 채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남자의 주변에는 냉기가 맴돌고 있었다.

S급 헌터, 야마자키 아오.

전세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귀령(鬼靈)'이라는 이명으로 통용되는 헌터였다.

일본의 모든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헌터 1위에 뽑힌 인물이기도 했다.

그에 대해 무수한 존경을 보내는 것은, 같은 S급 헌터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 그의 옆에 있는 후배 헌터가 그렇듯이 말이다.

"예? [커뮤니티]에 대신 글을 적어달라고요?"

야마자키 아오의 바로 옆에있는 헌터의 이름은 사토 료타.

'화염술사'라는 이명으로 불리며 S급의 벽을 간신히 넘어선 인물이었다.

일본의 귀령이 가장 다루기 쉬워하는 후배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당황해하는 후배가 그를 바라보면, 음침한 얼굴의 헌터는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이야기했다.

"그래. 네가 나를 대신해서 [커뮤니티]에 글을 작성해줘."

"선배도 S급 헌터니까 커뮤니티에 접속 가능하실거 아닙니까. 그런데 왜 굳이 저한테······."

"료타. 너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야. 가장 믿는 후배이기에 이런 일을 맡길 수 있는거지."

야마자키 아오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제 옆에 있던 후배의 어깨를 붙잡았다.

대선배의 눈에 깃들어있는 강한 의지를 마주한 화염술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대체 이 상황에 어떤 반응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모습이었다.

허나, 제아무리 친분이 있다고는 해도 귀령은 일본 헌터계의 기둥과도 같은 인물.

화염술사 료타에게 있어서 그런 선배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하는건 심히 어려운 일이었다.

"뭐··· 고작해야 글 좀 대신 적어주는 것만으로도 괜찮다면 알겠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적으면 되는겁니까."

결국 그의 절친한 S급 헌터 후배는 마지못해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만 것이었다.

귀령, 야마자키 아오는 그런 후배의 모습에 힘껏 입꼬리를 틀어올렸다.

그동안 그의 가슴에 쌓여왔던 답답함이 마침내 해소된 순간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는 [커뮤니티]를 띄워놓은 채 자신의 부탁을 기다리고 있을 후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런 후배를 향해, 그가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전했다.

"여러분은 'yamazaki'씨에게 내려진 14일 접근제한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예? 뭐라고요?"

당황에 젖은 후배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떨리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는 후배의 물음을 무시한 채, S급 헌터 귀령은 제 요구를 계속해서 관철해나갔다.

"'yamazaki'씨에 대한 14일 제한조치는 너무 과합니다. 그는 우리 모두에게 존경받을만한 이용자입니다. 가능한 그가 빠르게 커뮤니티에 복귀하길 기원합니다.—라고 게시글에 적어."

커뮤니티 이용자명 'yamazaki'를 석방하라.

그것이 야마자키 아오의 유일한 부탁이었던 것이다.

띠링-.

터무니없는 부탁을 하는 야마자키의 시야 한구석에서는 반투명한 메세지가 스쳐지나가는 모습이었다.

- 가 판매되었습니다.

이용자명 'yamazaki'가 [경매장]에 올려놓은 S급 무기, .

일본 최강 헌터의 오랜 소장품이 판매된 순간이었다.

16화

흔히들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는 한다.

허나 세상에서 가장 도구를 많이 따지는건 사실 각 분야의 장인들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최적의 장비.

그리고 자신을 위해 갖춰져있는 최적의 세팅.

무엇 하나 받쳐주지 않으면 어떤 장인이라도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기 어려운게 현실이었다.

괜히 전문가용 장비들이 비싸게 팔리는게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천시예에 대한 내 맞춤형 템세팅은 상당한 고민의 결과물이었다.

"어때. 손에 맞는 것 같아?"

셀레스티아 길드에 위치한 천시예의 개인 트레이닝룸.

나는 현재 그곳에서 새로운 장비를 착용한 천시예의 움직임을 체크하는 중이었다.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장비의 이름은 <운명검 아브락사스(S)>.

천시예가 기존에 사용하던 검보다도 조금 더 크고 무거운 검이었다.

커뮤니티의 [경매장]에 제법 비싼 가격에 올라온 것을, 천시예의 포인트에 내 포인트를 더해 구매한 물건이었다.

천시예 본인이 나에게 갚아야할 빚이 생겼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어색할줄 알았는데 내 생각보다는 잘 맞는 것 같아."

휘익, 휘이익-.

천시예는 손에 쥔 검을 허공에 휘둘러보며 이야기했다.

<운명검 아브락사스(S)>는 사용자의 마력출력을 보조하고, 공격횟수에 비례해 그 위력을 증폭시키는 유형의 장비였다.

검을 휘두를수록 서서히 그 위력이 강해지는 아이템인 셈이었다.

다만, 그 상승폭이 애매한 탓에 대부분의 헌터는 장시간의 전투가 아니면 충분한 효과를 얻기 힘들었다.

'까다로운 조건이 아니었다면 이것보다도 훨씬 더 비쌌겠지.'

계산대로라면 중국의 S급 헌터, 나선창 첸다오급은 되어야 상위권의 A급 장비정도의 효율이 나오는 편이었다.

이 장비의 최고효율에 도달하려면, 사실상 최상위권의 S급 헌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운명검 아브락사스(S)>는 천시예에게 최적화된 아이템이었다.

천시예는 공격의 위력 자체는 약한 편이지만, 그 속도만큼은 신창 주선호에 필적하는 헌터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이런 물건을 알고 있었던거야?"

허공에 검을 휘두르며 새로운 장비에 대해 평가하던 천시예는, <운명검 아브락사스(S)>를 허리춤에 되돌리며 나에게 물었다.

내가 헌터들의 실력에 대해서 잘아는거야 당연하다지만, 아이템에 대해서까지 박식한줄은 몰랐다는 듯한 질문이었다.

그에 나는 천시예에게 정직한 답변을 돌려주었다.

"유튜브 채널 '헌터사전'에 대해서 알고 있어?"

"아! 알고 있어. 헌터들 소식이랑 잡다한 이야기같은거 올리는 사람이잖아."

"나랑 친분이 있는 유튜버인데, 사실 이 사람이 아이템에 대해서 박식한 편이거든."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나라고 해도 모든 S급 장비에 대해서 다 아는 편은 아니었다.

다만, '헌터사전' 채널을 운영하는 최우현의 경우에는 달랐다.

그는 세계의 온갖 비싼 헌터장비들을 꿰뚫고 있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S급 장비에 대해서만큼은 나보다도 최우현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번 경매장 탐색에는 최우현이 보내준 자료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된 부분이 있었다.

"도움을 좀 받았어. 정확히는 자료를 받아서 분석해본거지만 말이야."

"다른 유튜버들과도 친하게 지내는 편이야?"

"알고 지내는 사람은 제법 있는 편이지. 물론 헌터사전만큼 친하지는 않지만."

따지고보면 천시예와의 첫만남도 최우현의 조력덕분이 아니었던가.

업계인들과의 친분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나에게 장비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천시예는, 검집을 쥔 채 근처에 있던 의자에 다가가 앉는 모습이었다.

데이터 측정이 끝났으니 잠시 휴식을 취할 모양이었다.

"당신한테 진 빚이 점점 많아져가는 기분이야. 언제쯤되어야 이걸 다 갚을 수 있는걸까."

후우-.

의자에 앉아서 한숨을 내쉬던 천시예가 나를 바라보았다.

새하얗게 바랜 머리카락 일부가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마음이 중요한거야. 우선은 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든 영상에 좋아요 버튼을 누르자."

"······."

"알림설정 해놓고 최신 영상 들어오는 것도 잊지말고."

반은 농담이지만 반쯤은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였다.

100만 유튜버가 되어 골드버튼을 받고 싶다는건 내 오랜 소망이었으니까 말이다.

천시예에게 받은 20억으로 아파트를 알아보는 지금도 이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100만 유튜버가 되어 더 많은 사람이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 내 이야기를 듣던 천시예는, 두눈을 가늘게 뜬 채 나에게 이야기했다.

"당신은 정말··· 자기 유튜브 채널에 대한 애착이 강한편이네."

"평생동안 일궈온 곳이니까 그만큼 소중할 수밖에 없는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다양한 헌터들을 볼 기회가 많이 생기기도 했고 말이야."

"······그렇구나."

"나는 예전부터 헌터들을 좋아해왔거든. 헌터들이 싸우는 모습도, 그 사람들이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전부 좋아하는 편이야."

헌터가 좋아서 유튜브를 시작했다.

전투의 열기가 마음에 들어서 그들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그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서, 저마다의 여정을 영상으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시간들이 쌓여서 나는 지금 이곳에 있다.

카메라 너머로 바라보는 S급 헌터들의 여정도, 커뮤니티 안에서 흘러나오는 S급들의 이야기도 어느 하나 좋아하지 않는게 없었다.

"그러니까, 너도 앞으로 더 강해져서——."

나는 허공에 띄워진 반투명한 창과 천시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언제나 치열한 전투를 치르며 스스로를 빛내는 S급 헌터.

그리고 그런 그들의 이야기로 가득차있는 커뮤니티.

어느쪽이든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것들이다.

그 두가지를 번갈아 바라보던 내가, 자애로운 시선을 천시예에게 향하며 무언가 이야기하려던 순간.

띠링-.

그런 내 시야에 게시판에 새로 업로드된 게시글 하나가 들어왔다.

- 거품판독기 <<< 얘 아는척 하는거 나만 열받나? [1] (망원동불주먹)

"신창을 처단하자."

"······응?"

의아해하는 얼굴의 천시예를 앞에둔 채.

나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신창 주선호 안티카페에 가입하기로 결심했다.

* * * * * *

고유 특성, [커스텀 네트워크]가 D등급에 도달한지도 어느덧 제법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내가 운영하는 커뮤니티 역시 S급 헌터들에게 중요한 역할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매일같이 경매장에 다양한 물건들이 올라오고 팔려나가며, 수많은 포인트가 커뮤니티 내부에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오는 유저들의 게시글 역시 큰폭으로 늘어나는 중이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매일같이 커뮤니티에 매달리는 유저들도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사람은 진짜 하루종일 게시판만 보는 모양이네."

예를 들자면 게시판에서 '마산사나이 최두식'으로 활동하는 불사기사 최두식이 있었다.

그는 매일같이 커뮤니티에 접속해 글을 올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물론 그런 최두식의 게시글에 댓글이 달리는 비율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었다.

최두식이 올리는 게시글이 하나같이 댓글을 달기 곤란한 내용뿐인 까닭이었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게시글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 제목 ] 오늘의.점심.메뉴입니다.^^

[ 작성자 ] 마산사나이 최두식

[ 이용자 정보 ] 최두식(61) / S급 / 불사기사

(사진)

맛있는.돼지국밥~^^

[ 댓글 0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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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돼지국밥을 먹었다는 내용의 최두식의 게시글.

거기에는 그가 먹은 돼지국밥의 사진마저 첨부되어있었다.

허나 그런 최두식의 게시글에는 아무런 댓글도 달려있지 않은 모습이다.

어차피 그가 점심에 또 다른 게시글을 올릴거라는 사실을 모두가 아는 까닭이었다.

물론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이런 최두식과 정반대의 인물도 존재하고 있었다.

바로 'frz0777'같은 인물이 대표적인 예시였다.

[ 제목 ] xkingx ← 이 사람 하루종일 중국 이야기만 하는데

[ 작성자 ] frz0777

[ 이용자 정보 ] 아샤 이바노프(20) / S급 / 빙하의 파편

다른글 적는거 본사람 있어?

[ 댓글 5개 ]

[ 공지사항 / 수정 / 삭제 ]

커뮤니티 이용자명 'frz0777'.

러시아의 S급 헌터, 빙하의 파편— 아샤 이바노프.

그녀의 경우에는 매일같이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게시글을 올리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게시글에는 항상 많은 댓글이 달리고는 했다.

싸움구경이 세상에서 가장 재밌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만고의 진리인 까닭이었다.

"진짜 사람들이 늘 한결같구나.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를 않네."

물론 'frz0777'의 경우에는 매번 온갖 이유로 건수를 잡아 비난하는 스타일이었다.

때로는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아 비난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선을 넘은적은 없기에 제재는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녀가 조만간 선을 넘으면 어쩔 수 없이 제재하기는 해야겠지만 말이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frz0777'의 게시글을 닫았다.

그렇게 오늘도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지켜보던 도중.

"어. 뭐야."

툭-.

나는 눈앞에 보이던 커뮤니티가 갑작스럽게 종료되는 것을 확인했다.

내가 아무런 조작 커맨드를 입력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시야에 띄워져있던 커뮤니티가 갑자기 닫힌 것이다.

커뮤니티의 관리자인 나로서도 처음 마주하는 광경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내가 의문을 표한 채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머지않아 내 시야에 알림이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띠링-.

나는 익숙한 알림음과 함께 떠오른 메세지를 천천히 읽어보았다.

- [커스텀 네트워크(D)]에 충분한 에너지가 축적되었습니다.

- [커스텀 네트워크(D)]의 등급이 다음과 같이 조정됩니다.

- 특성 등급 : D → C

- [커스텀 네트워크(C)]의 안정화를 위해 다음 시간동안 모든 기능이 일시적으로 중단됩니다.

- 남은 예상 시간 : 8시간 59분 56초

가장 위에 보이는 메세지의 내용.

그것은 커뮤니티 내부에 상당한 에너지가 축적되어, [커스텀 네트워크]의 등급이 상승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다시 말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다시 한 번 진화에 성공했다는 의미였다.

다만 눈앞에 보이는 메세지의 내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예상 시간, 8시간 59분?"

특성의 진화에 대해 적혀있는 메세지의 바로 아래.

그곳에는 등급을 조정하는 동안 커뮤니티의 모든 기능이 중단된다는 내용이 존재하고 있었다.

일시적인 기능 중단.

이 내용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아니, [커스텀 네트워크]에 서버점검도 있었던거야?"

앞으로 9시간동안 커뮤니티가 서버점검에 들어가게 될거라는 이야기였다.

9시간동안 그 누구도 커뮤니티에 접속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나는 전혀 예상치못한 상황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상태창에 부착가능한 커뮤니티가 생길거라는 것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거기에 서버점검까지 있을거라고는 그 누가 예상했겠는가.

특성의 등급이 올랐다는 사실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9시간짜리 서버점검만큼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앞으로 9시간은 지나야 새로운 기능을 확인할 수 있는건가."

적어도 9시간은 지나야지 커뮤니티에 생긴 새로운 기능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허탈한 기분이 되어 의자의 등받이에 기대어누웠다.

강제로 접속을 금지당하니 헛웃음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내가 의자에 기댄 채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찾아 시선을 돌리려던 찰나.

지이이이잉-.

책상의 한구석에서 전화가 걸려온 스마트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누구한테 걸려온 전화지?"

손을 뻗어 스마트폰의 액정을 확인하면, 그곳에는 익숙한 이름이 적혀있었다.

최우현.

가장 친한 유튜버 지인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나는 곧장 통화버튼을 눌러 최우현과의 통화를 받아들였다.

"어, 형. 무슨 일이야."

- "유호야. 너 혹시 그거 알고있었냐?"

통화가 연결된 스피커의 너머.

그곳에서 진지한 분위기에 잠긴 최우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런 최우현의 질문에 그를 향해 되물었다.

"그거라니? 그게 대체 뭔데 그래?"

그러자 스피커의 너머에서는 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내용이 흘러나왔다.

- "S급 헌터들 말이야."

"······."

- "아무래도 그 사람들만 접속가능한 비밀 커뮤니티가 존재하는 모양이야."

내가 만들어낸 S급 헌터 커뮤니티.

아무래도 그 존재가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17화

동네에 위치한 한적한 카페.

그곳에서 나는 최우현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최우현과 다시 만나게 된 이유야 당연히 하나뿐이었다.

S급 헌터 커뮤니티.

내가 운영하는 비밀 커뮤니티의 존재를 최우현이 알게된 까닭이었다.

그렇기에 최우현과 직접 만나서, 그가 어디에서 그런 정보를 얻었는지 들어보기 위함이었다.

"내가 어디서 이만한 정보를 손에 넣었냐고?"

그리고 그런 내 맞은편에서, 최우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조차도 알지 못하는 정보를 그가 손에 넣었다는 생각에서였을까.

나를 보는 최우현의 눈빛은 오랜만에 자신감에 가득 차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최우현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했다.

"S급 헌터들이 아니면 접속할 수 없는 비밀 커뮤니티라면서? 그럼 주변에 S급이 있어야 알 수 있는 정보 아니야?"

"당연히 그렇지. 거긴 오직 S급 헌터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커뮤니티니까."

"그걸 형이 대체 어떻게 알게된거야?"

커뮤니티의 초대장은 오직 S급 헌터들에게만 배부되었다.

그러니 커뮤니티 내에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헌터가 아니라면, 결코 그 존재를 눈치챌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누가 최우현에게 그 존재를 알려주었는가.

내가 그에 대한 의문을 가진 채 최우현의 눈을 마주하면, 최우현은 제 앞에 놓인 커피를 들어올리며 이야기했다.

"유호야. 저번에 했던 이야기 기억하냐? 내가 거물 유튜버랑 알게됐다고 했잖아."

"어, 그렇지. 기억하고 있어."

일찍이 최우현이 이야기했던 거물급 유튜버.

바로 300만 구독자의 유튜버 '헌터마스터'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실 이것도 그 사람이 나한테 알려준 정보야."

"유튜버 헌터마스터가 형한테 커뮤니티에 대해서 알려준거라고?"

유튜브 채널명, '헌터마스터'.

그가 최우현에게 정보를 알려줬다면 정답은 둘 중 하나였다.

유튜버 본인이 S급 헌터이던가.

그게 아니면 S급 헌터와 친분이 있는 사이던가.

"그래. 그렇다니까? 그 사람 재벌3세에 인맥도 대단한 편이라서, 어떻게 그렇게 채널이 빠르게 성장했는지 알 것 같더라."

"헌터마스터 본인이 S급 헌터는 아닌거지?"

"절대 아니지. 재벌 3세가 S급 헌터 타이틀까지 달고있으면 그만큼 불공평한게 어딨겠어?"

그리고 '헌터마스터'는 그중에서도 후자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대형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재벌 3세.

그가 자신의 연줄을 이용해 대형 길드와 접촉할 수 있다고 한다면, 커뮤니티에 대한 정보를 취득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내가 운영하는 커뮤니티는 헌터들에게 있어서 정보의 보고와도 같은 곳이니까 말이다.

물론 최두식의 점심식사같은 하등 쓸모없는 정보들도 많이 있지만 말이다.

적어도 '헌터마스터'가 커뮤니티에 닉네임을 가진 인물이 아닌 것만큼은 분명해보였다.

"헌터마스터··· 평소에 제작하는 컨텐츠들도 하나같이 스케일이 큰편이더니, 그만한 재력이 있는 금수저여서 가능했던건가."

"그렇지. 조금 성격이 까탈스러운 편이긴 한데, 그래도 나름 괜찮은 사람이야."

300만 유튜버에 대한 최우현의 평가는 상당히 후한 편이었다.

거대한 체급만큼이나 인맥도 다채로운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최우현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최우현은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서는 테이블에 내려놓더니, 이내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마침 내가 그 사람한테 너에 대한 이야기를 해놨거든."

"나에 대해서 말해놨다고······?"

"다행히 그 사람도 너한테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모양이더라고. 그래도 300만 유튜버니까 너한테도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서, 기회가 되면 헌터 유튜버끼리 친목을 도모하자고 한 번 초대하기로 했는데 말이야."

씨익-.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은 최우현이 턱을 괴며 나를 보았다.

"그래서 유호야, 어떻게 할거냐?"

내가 원한다면 300만 유튜버, '헌터마스터'와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최우현의 이야기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S급 헌터 인맥들이 무더기로 생긴 지금, 그렇게까지 구미가 당기는 제안은 아니었다.

하지만 유튜버계의 거물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치만은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최우현 나름대로 나를 신경쓴 제안이 분명했기에, 나는 그런 최우현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형이 그렇게까지 말하는 사람이면 내가 당연히 참석해야지. 그게 어떻게 마련한 자리인데."

"그래. 너도 분명 만족할거다."

내가 최우현의 이야기를 받아들이자, 최우현은 그제서야 흐뭇해하는 표정으로 물러섰다.

그런 최우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일전에 그와 구두로 약속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좋은 기회가 오면 최우현에게도 연락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최우현 나름대로 나에게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려고 노력했을테니, 나도 그에게 무언가 적당한 보답을 할 필요가 있어보였다.

그렇기에 나는 눈앞의 최우현을 향해 이야기했다.

"다음주 토요일에 일정 비워둬."

"다음주 토요일에? 나 그날 C급 유망주들 컨텐츠 촬영있는데?"

"파천궁 오지후 알지?"

"어, 알지. 너 설마······."

"오지후의 토벌영상을 찍을 기회가 생겼거든. 형 자리도 같이 마련해볼게."

S급 헌터, 파천궁 오지후의 전투영상.

그 이야기를 들은 최우현의 눈이 번쩍 뜨였다.

"뭐? 파천궁 오지후? 그러면 당연히 그날 일정 다 취소하고 찾아가야지."

S급 헌터를 촬영할 기회가 생겼다는 이야기에, 최우현은 환호하며 모든 일정을 다 취소하겠다고 하는 모습이었다.

S급과 대면할 기회는 흔하지 않은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오지후와는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약속이었지만, 나는 별다른 걱정따위는 하지 않았다.

약속이야 지금부터 잡으면 그만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최우현의 시야를 피해 스마트폰을 아래쪽으로 내려서, 오지후에게 전달할 메세지를 입력했다.

- 신유호 : 오지후씨

- 신유호 : 다음주 토요일에

- 신유호 : 게이트 촬영 들어갑시다

타닥, 타다닥.

스마트폰의 액정을 두드려 오지후에게 메시지를 전송했다.

그러자 머지않아 오지후가 답장을 보내오는 모습이었다.

- 오지후 : ?

- 오지후 : 다음주 금요일까지 일정이 팍팍해서

- 오지후 : 그날은 좀 쉬고싶은데

빠르게 돌아온 오지후의 답장은 거절의 의사를 표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건 오지후의 진실된 마음이 아니었다.

사람의 말은 언제나 그 마음을 온전히 반영할 수만은 없는 법이었다.

그리고 사람의 진실된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마음을 열기 위한 열쇠가 필요한 법이다.

나는 오지후에게 장문의 이야기를 보내는 대신, 그의 마음에 닿을 가장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선택했다.

- 신유호 : 100

- 오지후 : ?

- 신유호 : 200

- 오지후 : 아

- 오지후 : 헌터한테 휴일이 어딨어

- 오지후 : 길드에는 내가 말해놓을게

- 오지후 : (이모티콘)

다행히 오지후는 자신의 진실된 마음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나는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해진 오지후의 모습에 만족하며 화면을 껐다.

"다행히 길드쪽도 문제는 없다네."

"고맙다, 유호야. 너 덕분에 파천궁 영상도 다 찍어보는구나."

나는 최우현의 감사인사를 즐기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였다.

우리 모두가 행복해진 순간이었다.

* * * * * *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온 나는 곧장 책상 의자에 자리잡았다.

어느덧 등급조정 메세지가 나온지 9시간이 지났으니, 지금쯤이면 서버점검이 완전히 끝났을 상황이었다.

그러니 커뮤니티에 접속해 여유롭게 [커스텀 네트워크]에 생긴 변화를 확인해볼 생각이었다.

"야아아아아-!"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물론 그런 내 상황과는 별개로, 창밖의 풍경은 그리 여유롭지만은 않아보였다.

창문 너머로 울려퍼지는 시끄러운 목소리.

그 상황을 짐작해보건데, 아무래도 취객 하나가 아래에서 난동을 피우는 모양이었다.

조금 지나면 진정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자리에 앉은 나는, 곧장 손가락을 움직여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네트워크 접속]."

띠링-.

익숙한 소리와 함께 눈앞에 반투명한 게시판이 출력되었다.

드디어 기나긴 점검이 끝나고 커뮤니티 서비스가 재개된 것이다.

그 사실을 기뻐하듯이, 게시판에는 다양한 유저들이 게시글을 써놓은 모습이었다.

- 와 드디어 접속되나 [1] (tex11)

- 아침.점심.저녁.한번에 보고가세요.^^~ (마산사나이 최두식)

- 드디어 복귀 완료 =( •̀д•́))) [3] (yamazaki)

- 스태프를 판매하던 이용자는 현재 접속 상태에 있습니까? [1] (thundershock)

- 여러분.정말 보고 싶었어요. ^ O ^ [2] (swordmaster)

눈앞에 보이는 게시판을 훑어보자, 다양한 유형의 제목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커뮤니티를 이용할 수 있게 되어 행복하다는 'swordmaster'의 게시글이나, 하루종일 올리지 못한 밥 사진을 한번에 올린 '마산사나이 최두식'의 게시글.

그리고 이제서야 접근제한이 풀린 것처럼 보이는 'yamazaki'의 게시글까지.

정말 많은 이용자들이 커뮤니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용자들에게 이 커뮤니티가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는 증거였다.

"뭐야. 일본의 귀령도 이번에 다시 돌아왔나보네."

그렇게 내가 눈앞에 떠오른 게시판을 바라보고 있던 도중.

띠링-.

다시 한 번 알림음이 들려오더니, 갑작스럽게 반투명한 화면이 시야를 뒤덮었다.

[커스텀 네트워크]의 등급이 오르면서 커뮤니티에 생긴 변화를 알려주는 메세지였다.

나는 시야에 떠오른 메세지를 위쪽부터 천천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 [신규 기능 : 의뢰]가 추가되었습니다.

- [의뢰]는 커뮤니티의 이용자들에게 특별한 임무를 제공해 [커스텀 네트워크]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하는 기능입니다.

- [의뢰]는 일정 주기로 초기화되는 [정기의뢰], 그리고 이용자들간에 의뢰를 맡길 수 있는 [개인의뢰]로 나누어집니다.

- [의뢰]를 해결하는 이용자에게는 보상으로 책정된 포인트가 자동으로 지급됩니다.

- [신규 기능 : 강력경고]가 추가되었습니다.

- [강력경고]는 [커스텀 네트워크]의 잔여에너지를 소모해 대상에게 죽음의 공포를 직면하게 하는 기능입니다.

- [강력경고]는 대상에게 어떠한 물리적 위해도 가하지 않습니다.

- [강력경고]는 하루에 한 번 활성화가 가능하며, 잔여 에너지가 부족한 경우 사용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

반투명한 화면을 훑고 지나가던 내 시선이 두가지의 새로운 기능을 포착했다.

[의뢰]. 그리고 [강력경고].

어느쪽이든 상당히 흥미로운 기능들이었다.

나는 화면에 보이는 기능들 중에서, 위쪽에 있는 [의뢰]에 대한 내용부터 다시 확인해보았다.

"[의뢰] 기능이라··· 포인트를 주는 퀘스트 같은건가."

주기적으로 생성되는 임무를 해결하고서 포인트를 받는 기능.

일종의 퀘스트에 가까운 기능인 셈이었다.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헌터들에게 포인트 수급수단이 한가지 더 늘어난 것이다.

사실상 [부산물 매각]의 상위호환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는거나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내 흥미를 끄는건 [개인의뢰]에 대한 항목이었다.

"[개인의뢰]··· 헌터들끼리 서로 포인트를 내걸어서 일을 시키는 기능인가보네."

[의뢰] 기능에는 [정기의뢰] 이외에도 이용자들끼리 의뢰가 가능한 [개인의뢰] 기능도 존재하고 있었다.

일당 대신 포인트를 걸고서 헌터들에게 일을 맡길 수 있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기능이었다.

아무래도 커뮤니티 이용자들 입장에서도 환영할만한 기능처럼 보였다.

그렇게 [의뢰] 기능에 대한 분석을 마친 이후에는, 시선을 아래로 내려 다음 기능을 바라보았다.

[의뢰]와 함께 이번에 새롭게 추가된 기능.

바로 [강력경고] 기능에 대한 것이었다.

"[강력경고]··· 설명만 봐서는 이전에 얻은 [긴급방어]와 비슷한 유형처럼 보인단 말이지."

하루에 한 번 사용이 가능하다는 제약이 붙어있는 [강력경고].

나에게는 그와 동일한 제약이 붙어있는 [긴급방어] 기능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위급한 상황이 생겼을때 한 번, 내 몸을 보호하는 방어막을 펼쳐주는 기능이었다.

불사기사 최두식의 전투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내 몸을 한차례 보호해주었던 기능이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공격 스킬은 아닌 것처럼 보이고··· 죽음의 공포라는게 대충 어떤 느낌인지도 잘 모르겠네."

다만 내 몸을 방어한다는 명확한 설명이 있는 [긴급방어]와는 다르게, 이번에 얻은 [강력경고]에는 두루뭉실한 설명만이 적혀있었다.

—대상에게 죽음의 공포를 직면하게 한다.

단순히 대상을 죽인다는 내용도 아니고, 죽을 것만 같은 공포를 느끼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커스텀 네트워크]에서 갑자기 즉사기가 튀어나오면 그게 더 공포스럽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설명만 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기능이었다.

"직접 한 번 써볼까."

새로운 스킬의 설명을 보며 고민하던 나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일단 한 번 써보기로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던 창가로 다가갔다.

소리를 지르고 있던 취객이 아직도 물러나지 않았던 것인지, 창밖에서는 여전히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비내리는··· 호남서어언······! 남행 열차에··· 우워어어어······!"

"······."

창문 아래로 지상을 내려다보면, 거기에는 비틀거리며 고성방가를 이어나가는 취객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알콜의 힘에 지배당하고 있는 모양인지, 인사불성이 되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이제 지친 모양인지, 허탈한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는 모습이었다.

나는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단독 콘서트를 벌이는 취객을 유심히 노려보았다.

- [강력경고]가 활성화됩니다.

- 오늘은 더 이상 [강력경고]를 활성화할 수 없습니다.

날카로운 시선이 그에게 향하는 듯한 감각.

그 직후, 커다란 소리를 내며 취객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털썩-.

자리에 주저앉은 취객의 눈동자가 휘둥그래 변한 모습이었다.

그는 무엇에 놀란 것인지는 몰라도, 거칠게 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허억, 허어억······!"

툭, 투욱-.

취객의 손길이 스스로의 목을 서서히 더듬어나갔다.

수차례 목을 어루만진 끝에 자신의 목이 정상적으로 붙어있단 것을 확인한 것일까.

그는 이내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더니, 겁에 질린 얼굴로 도망가는 모습이었다.

타다다다닥-.

취기가 달아난 취객이 부리나케 뛰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강력경고]를 향해 짧은 평가를 내렸다.

"진짜 겁만 주는 기능인가보네."

오늘도 애매한 기능 하나가 [커스텀 네트워크(C)]에 새롭게 추가되었다.

18화

며칠동안 이어지던 천시예에 대한 컨설팅 작업은 슬슬 막바지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몇가지 장비들이 교체되었으며, B급 헌터 최태진의 검술 강의 역시 심화과정에 들어섰던 것이다.

천시예는 새로운 장비들과 최태진의 검술에 빠르게 적응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직 검술의 완성도가 조금 부족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과 같은 성장속도라면 조만간 6위에 랭크시켜도 문제가 없어보일 정도였다.

내가 그 사실에 대해 천시예에게 이야기하자, 다음날 천시예로부터 짧은 메세지가 도착했다.

- swordmaster : 헌터 랭킹.언제 갱신해 ^ O ^ ?¿?¿

- swordmaster : 다음 버전.기대하면서.알람설정 했어 !¡!¡

천시예가 나에게 보낸 메세지의 내용.

그것은 갱신된 헌터랭킹에 대한 영상을 언제 게시하냐는 질문이었다.

그런 천시예의 메세지에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다음 버전이 나오려면 아직은 자료가 더 필요했다.

"알람설정은 당연히 해둬야지. 내가 그동안 해준게 얼만데."

물론 그 다음 내용은 볼 필요도 없는 이야기였다.

헌터 유튜브를 보는 사람이라면 내 채널에 구독과 알람설정을 하는건 상식과도 같은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나는 천시예의 메세지에 정확한 날짜를 전달해주는 대신에, 그녀에게 적당한 내용을 보내두는 것을 선택했다.

- 거품판독기 : 조만간 올라감

- swordmaster : ^ O ^

천시예와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천시예와의 짧은 대화를 마친 나는 채팅창을 닫고 게시판에 접속했다.

며칠 전에 새로운 기능을 업데이트한 덕분이었을까.

커뮤니티의 게시판에는 신기능에 대한 게시글이 잔뜩 올라오는 중이었다.

"[의뢰] 기능과 관련된 게시글이 꽤 많이 올라와있네."

커뮤니티에 추가된 새로운 기능, [의뢰].

기존에 있던 [부산물 매각] 기능을 아득히 상회하는 신기능의 존재에, 커뮤니티의 S급 헌터들이 잔뜩 흥분해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이용자들의 목소리로 뒤섞여있는 게시글들을 하나씩 천천히 살펴보았다.

- 의뢰 생기기전까진 3일에 한번씩 출근했는데 [1] (ronaldo_7)

- 사나이식.의뢰 해결.^^ [1] (마산사나이 최두식)

- 개인의뢰에 쓰레기치우기 올린거 어떤놈이야 [5] (tex11)

- 어차피 토벌할거면 의뢰목록에 있는거 먼저하는게 좋겠죠? [2] (firefox)

- 몇천포인트 주는 정기의뢰는 [2] (frz0777)

- xkingx는 이 글을 확인해야합니다 [1] (thundershock)

시야에 보이는 게시글들의 태반은 의뢰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차있었다.

오죽하면 '마산사나이 최두식'이 음식 사진 대신에 몬스터 사진을 올릴 정도였다.

커뮤니티의 모든 이용자들이 새로 생긴 기능에 푹 빠져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러한 게시글들중에는 유독 내 시선을 끄는 글도 존재하고 있었다.

이용자명 'tex11'— 파천궁 오지후가 올린 게시글이었다.

"쓰레기 치우기 의뢰는 또 뭐야?"

오지후가 올린 글은 제목만 봐도 범상치 않아보이는 모습이었다.

클릭하지 않아도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궁금한건 반드시 확인하고 보는 성격이었다.

나는 곧장 게시글 목록에서 오지후의 게시글을 클릭했다.

툭-.

해당 게시글을 터치하자 화면이 전환되며 오지후의 게시글이 출력되었다.

[ 제목 ] 개인의뢰에 쓰레기치우기 올린거 어떤놈이야

[ 작성자 ] tex11

[ 이용자 정보 ] 오지후(26) / S급 / 파천궁

(사진)

1포인트 줄테니 쓰레기 치우라는데

이거 말투보니까 yamazaki 아니야?

S급 헌터한테 1포인트 가지고 집앞에 쓰레기 치우라는게 맞냐?

애초에 너네집 쓰레기정도는 혼자 좀 치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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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후의 게시글에는 [개인의뢰] 게시판의 게시글 캡처와 함께, 다른 인물이 올린 의뢰의 내용이 적혀있었다.

해당 의뢰의 내용은 집앞에 있는 쓰레기봉투를 치우는 것.

그리고 의뢰에 대한 보상은 한봉지당 1포인트였다.

다만 해당 의뢰글에 특징적인 내용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익숙한 형태의 이모티콘이 박혀있다는 점이었다.

- ╰(*´︶ `*)╯

나는 해당 이모티콘을 확인하기 무섭게 게시글의 주인을 짐작할 수 있었다.

커뮤니티 이용자명 'yamazaki'가 의뢰글을 작성한게 분명해보였다.

"하다하다 S급 헌터한테 쓰레기 버리기를 시킬 생각을 다하는구나."

나는 'yamazaki'가 적은 의뢰글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S급 헌터들의 평균적인 연봉은 최상위권 스포츠스타들의 그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다시 말해서 겨우 1포인트 벌자고 쓰레기 버리러 일본까지 찾아갈 인물은 없을거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보상이 고작해야 1포인트밖에 안되는데다가, 그 내용이 쓰레기 치우기인걸 봐서는 장난삼아 올린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뭐, 어차피 장난글이겠지."

장난스러운 의뢰글의 내용에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댓글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갑작스럽게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나도 [개인의뢰] 게시판에 글을 하나 업로드할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이참에 나도 의뢰글이나 하나 올려볼까."

'yamazaki'의 의뢰글처럼 마냥 장난을 치기보다는, 적당한 포인트를 걸어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찾아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닥, 타다닥-.

나는 [개인의뢰] 게시판에 접속해서는, 적당한 포인트를 걸어 의뢰글 하나를 작성해서 올렸다.

[ 의뢰명 ] : 보디가드 구합니다

[ 보상 ] : 주당 1,000 포인트

[ 내용 ]

보디가드 채용합니다

정체 숨기고 수행원 역할 해주실분

주급 1천 포인트 보너스 있음

[ 수정 / 삭제 ]

의뢰글의 내용은 신변을 보호해줄 보디가드를 구한다는 것.

그리고 그 보상은 주당 1천 포인트였다.

반쯤은 간단한 여흥삼아서 적은 게시글이지만, 막상 누군가 찾아와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으로 적은 글이었다.

과연 이 금액에 찾아올 헌터가 몇이나 될까 싶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의뢰글이 업로드된 것을 확인한 직후,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커뮤니티 화면을 닫아버렸다.

"뭐, 시간 좀 지나면 게시판에서 몇번 언급되다가 적당히 묻히겠지."

한산하던 의뢰게시판의 한페이지에 조그마한 보탬이 된 순간이었다.

* * * * * *

최우현과의 약속으로부터 며칠 후.

나는 그가 이야기했던 헌터 유튜버계의 전설, 300만 유튜버 '헌터마스터'와 마주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나를 포함한 몇몇 유튜버들이 초대받은 장소는 강남에 위치한 럭셔리 파티룸.

해당 모임을 주최한 '헌터마스터'가 직접 섭외한 장소였다.

내가 헌터마스터가 준비한 모임장소에 들어서면, 그는 나에게 악수를 청하며 이야기했다.

"헌터마스터 박우성입니다. 그쪽이 바로 헌잘알 채널의······."

"헌잘알 신유호입니다. 300만 유튜버분을 이렇게 실제로 뵙게되니 신기하네요."

내가 헌터마스터에게 전한 이야기는 어느 정도 진심이었다.

S급 헌터를 직접 마주하는 정도의 신선함은 아니어도, 300만 유튜버를 직접 보는건 그럭저럭 신기한 일이었다.

내 정체를 들은 헌터마스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채널에 올리신 몇몇 영상을 흥미롭게 봤습니다. 잘못된 내용이 좀 보이긴 하는데, 그것 말고는 양질의 컨텐츠가 많더군요."

"예?"

허나, 나는 이어지는 헌터마스터의 이야기에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나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꺼내온 까닭이었다.

잘못된 내용이라니.

내 헌잘알 채널에 그런 내용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신유호씨?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하지만 내가 척수반사에 가까운 의문을 표하기 무섭게, 헌터마스터의 뒤에 있던 유튜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느냐는 듯한 무언의 압박이었다.

헌터마스터 역시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중이었다.

성격이 좀 까탈스러운 면이 있다더니, 최우현의 이야기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런 헌터마스터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별거 아니었습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우현을 따라 이 자리에 오기는 했지만, 이곳의 주인공은 명백히 헌터마스터였다.

굳이 그와 논쟁을 벌여 파티를 망칠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적당한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을 선택했다.

"신유호씨. 기왕 찾아오신거 서로에게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갔으면 하는군요."

헌터마스터 역시 나를 향해 그렇게 이야기하더니, 이내 사람 좋은 표정을 하며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헌터마스터가 주최한 파티에는 나 이외에도 다양한 유튜버들이 기다리는 중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뒤로는 한참동안 헌터마스터와 대화를 하지 못했다.

그 대신에 그가 준비해둔 파티음식을 먹으면서, 최우현과 함께 테이블에서 샴페인을 홀짝였다.

"유호야. 너무 신경쓰지마라. 그런 부분만 빼면 괜찮은 사람이야."

"별로 신경안써. 굳이 좋은날에 분위기 망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손에 든 와인잔을 기울여 샴페인의 향을 음미했다.

상당히 괜찮은 술을 준비해둔 것이었을까.

헌터마스터가 가져온 샴페인은 목넘김이 굉장히 부드러운 편이었다.

물론 와인에 대해서 잘은 모르기에, 그거 말고는 딱히 할말은 없었다.

'역시 괜히 찾아왔나.'

나는 이번 파티에 대한 감상을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유튜버들끼리 친목을 다지기 위한 파티라고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죄다 헌터마스터의 떡고물을 노리는 하이에나들이었다.

그를 제외하고는 다른 이들에게는 별로 관심도 없어보이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든 헌터마스터와 가까워지려고 발버둥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최두식 매드무비를 보는 편이 더 유익할 것 같았다.

'차라리 오지후한테 부탁하는 편이 더 도움이 되겠어.'

그렇게 내가 커뮤니티 화면을 띄워놓은 채로, 최우현의 이야기를 들으며 샴페인을 마시던 도중.

갑작스럽게 멀리서 들려오는 유튜버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었다.

"그러고보니 이번에 주신 정보, 굉장히 엄청난 정보던데··· 대체 그 [커뮤니티]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 알아내신겁니까?"

헌터마스터가 유튜버들과 나누던 대화의 주제.

그것이 이제서야 본 주제로 넘어간 것이다.

멀리서 들려오는 정보의 흐름에 나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머지않아 헌터마스터의 입에서 정보원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하하, 그거 말이죠. 사실 한국에 제가 친하게 지내는 S급 헌터가 하나 있습니다. 그 사람으로부터 얻은 정보입니다."

"S급 헌터와도 알고지낸다니··· 역시 우성이 형이야. 수준이 다르네."

"[커뮤니티]는 비교적 최근에 개방된 기능이죠. 이 기능을 사용하면 오직 S급 헌터들만이 이용가능한 커뮤니티에 접속할 수 있다고 합니다."

S급 헌터 커뮤니티.

헌터마스터로부터 그 실체를 들은 유튜버들의 눈이 흥미에 젖었다.

나와 최우현의 시선을 포함해, 파티룸에 있던 유튜버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

헌터마스터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 시선들을 받아내며, 파티룸에 있는 헌터들을 향해 자신이 아는 정보를 이야기했다.

"당연하지만 [커뮤니티]에는 여러분들이 아시는 유명한 헌터들··· 신창이나 검성, 검귀같은 인물들도 활동하는 중입니다."

"신창과 검성··· 그만한 거물들이 활동하는 커뮤니티라니······."

"제가 S급 헌터에게 들은 바로는, [커뮤니티]에는 아주 귀중한 정보들만이 돌아다닌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밖에서는 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들 말입니다."

"굉장히 흥미롭군요. 대체 어떤 이야기들이 돌아다니는겁니까?"

"예를 들어서, 불사기사 최두식··· 그 사람은 천둥 길드의 엄청난 비밀들을 매일 커뮤니티에 공유한다고 합니다."

"천둥 길드의 비밀······!"

"그리고 그런 비밀들 중 하나가 바로, 천둥 길드에서 B급 몬스터를 기르고 있다는 겁니다."

헌터마스터의 입에서 엄청난 이야기가 흘러나온 이후.

파티룸 전체가 전부 감탄으로 물들었다.

나 역시 그런 헌터마스터의 이야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커뮤니티에 속해있는 나조차도 모르는 사실을 헌터마스터가 알고 있던 까닭이었다.

'대체 언제 그런 내용을 올렸지?'

나는 곧장 커뮤니티 게시판에 접속해 최두식의 글을 검색해보았다.

이용자명, '마산사나이 최두식'.

익숙한 닉네임을 검색하자 그가 작성한 게시글이 주르르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 아침의뢰.해결완료.^^ (마산사나이 최두식)

- 맛있는.아침밥입니다.^^~ (마산사나이 최두식)

- 저녁의뢰.완료.^^ [1] (마산사나이 최두식)

- 오랜만에.실비집.왔네요.^^ (마산사나이 최두식)

- 이집.제육.쥑여줍니다.^^ [1] (마산사나이 최두식)

- 오늘.점심은.한식뷔페.^^~ (마산사나이 최두식)

나는 눈앞에 떠오른 최두식의 게시글들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어딜봐도 길드의 특급기밀처럼 보이는 내용은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최두식이 점심에 먹은 비장의 제육볶음이 천둥 길드의 기밀정보라면 크게 할말은 없겠지만 말이다.

'대체 뭐가 기밀인거지?'

내가 의아한 얼굴로 헌터마스터를 바라보면, 그는 계속해서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헌터마스터의 입에서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정보들이 흘러나왔다.

커뮤니티에 상주하는 나조차 감히 쉽게 얻을 수 없는 기밀들 말이다.

그는 하늘조차 모욕하는 특급기밀들을 계속해서 파티룸에 풀어내었다.

"그외에도 [커뮤니티]에는 엄청난 정보들이 숨어있습니다. 나선창 첸다오가 모든 S급들이 인정하는 랭킹 5위의 헌터라던가."

나선창은 내 공정한 헌터랭킹에서 41위를 차지하고 있다.

"신창 주선호와 검귀 천시예가 사실 비밀연애를 이어나가는 중이라던가."

주선호는 천시예의 철천지 원수다.

"검성 아서 테브란트가 음악회에 찾아가 클래식을 듣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던가."

아서 테브란트는 축구를 좋아한다.

"귀령 야마자키 아오가 [커뮤니티] 내부에서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커밍아웃 했다던가."

이건 나도 정확하게 아는게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직접 본인에게 물어보았다.

- 거품판독기 : yamazaki님 혹시 게이신가요?

- yamazaki : ?

- [yamazaki]가 당신을 차단했습니다.

- 더 이상 [yamazaki]에게 메세지를 전송할 수 없습니다.

- 관리자 권한으로 해당 조치를 해제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yamazaki의 응답은 굉장히 빠른 편이었다.

결국 헌터마스터의 이야기는 하나같이 맞는 이야기가 없었다.

그렇게 내가 헌터마스터의 이야기에 질린 채로, 손에 든 샴페인을 들이키려던 찰나.

헌터마스터의 입에서 충격적인 이야기가 다시 한 번 쏟아져나왔다.

"대한민국에 숨겨진 9번째 S급 헌터가 있을지도 모른다거나."

숨겨진 9번째 S급 헌터.

그 이야기를 듣기 무섭게 나는 사레가 들렸다.

"푸흐읍! 케헥, 켁······!"

"유호야, 괜찮냐?"

"켁, 케헤엑······!"

그와 동시에 모든 유튜버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순식간에 모인 이목.

이야기의 흐름을 끊은 나를 향해 쏟아지는 시선속에는 헌터마스터의 눈동자 역시 포함되어있었다.

유튜버 헌터마스터.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서 샴페인을 내뿜은 나를 향해 이야기했다.

"신유호씨. 혹시 제 이야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라도 있으셨던겁니까?"

파티룸의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화

"헌잘알님. 혹시 제 이야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라도 있으셨던겁니까?"

헌터마스터의 불만가득한 시선이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이야기의 흥을 깼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분명 9번째 S급 헌터가 존재한다고 말했었지.'

그가 이야기한 내용이 신경쓰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서 파티의 분위기를 망치기도 애매했다.

그렇기에 나는 애써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콜록, 콜록-.

짧은 기침을 터뜨린 나는 소파에 앉아있던 헌터마스터를 향해 이야기했다.

"죄송합니다. 목에 뭐가 걸린 모양이라서······."

"신유호씨."

"······."

"마음에 안드는 내용이 있으면 확실히 이야기하세요. 그런 표정으로 사람 무안해지게 바라보지 마시고."

허나 애써 무난하게 넘기려고 했던 내 노력이 무색하게도, 헌터마스터는 무엇이 불만이었는지 기어이 날 붙잡는 모습이었다.

연기력이 부족했는지 어색함을 숨길 수 없었던 내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대체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헌터에 대한 정보를 다루는 유튜버로서의 자존심인 것인가.

그게 아니면 모두가 그를 떠받드는 이 파티룸의 마력이었을까.

나는 그러한 고민을 하면서 헌터마스터와 시선을 마주쳤다.

"하기야, 매번 이상한 분석이나 올리는 분이 이런 정보를 판단할 능력이 있을리가 없죠."

다만, 그 뒤에 이어진 이야기에 이성이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한 분석.

헌터마스터가 이야기한 이상한 분석이라는건, 내가 운영하는 '헌잘알' 채널의 영상을 가리키는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두번째로 듣는 채널에 대한 모욕은 나에게서 자제의 감정을 거두어들였다.

조용히 밖에 나가려고 했건만, 그가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눈앞의 300만 유튜버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전부 다 틀렸습니다."

"지금, 뭐라고······."

"당신이 이야기한 정보들, 전부 다 틀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더 이상은 참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나를 모욕하고, 내 채널을 모욕하고, 내 영상을 보는 구독자들을 모욕하는 이야기였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서 그냥 넘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그가 서로 운영하는 채널의 정확성에 대해 논하길 원한다면, 나는 얼마든지 그 판에 끼어들어줄 용의가 있었다.

"신유호씨! 대체 당신이 뭘 안다고 그렇게 이야기하는겁니까?"

내 이야기를 들은 헌터마스터가 눈살을 찌푸렸다.

불만이 가득한 시선이 나를 노려보았다.

무거운 분위기속에서 수많은 유튜버들의 이목이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그러한 이목들을 끌어안은 채로, 나는 헌터마스터의 이야기를 전면부정했다.

"솔직히 말하죠. 방금 했던 이야기중에 맞는 정보는 딱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S급 헌터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가 존재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내 정보가, 지금 틀렸다고······!"

"나머지 정보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겁니까? 계속 듣고있자니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해야지. 하도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들려서 목이 막힐뻔 했습니다."

"신유호씨! 지금 나랑 해보자는겁니까! 당신같은 사람이 어디가서 이런 정보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애초에 조용히 나가려는 사람한테 대체 시비는 왜 자꾸 거는겁니까? 그냥 저 혼자 나갔으면 분위기 괜찮았잖아요."

째앵-!

그런 내 이야기를 듣던 유튜버 중 하나가 와인잔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바닥에 유리파편이 튀며 와인이 쏟아져내렸다.

와인잔을 던진 남자의 얼굴을 보면, 헌터마스터를 향해 '우성이 형'이라고 부르던 인물이었다.

아무래도 헌터마스터와 제법 친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너 대체 뭐야? 구독자 100만도 못찍고서 빌빌거리는 놈이, 좋은 취지로 사람들 모은 우성이 형한테 지금 뭐라고?"

"······."

"뭐? 헌잘알 채널? 너가 그렇게 헌터에 대해서 잘 알고있어?"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모습이었다.

"내가 지금은 은퇴하긴 했지만, 원래 C급 헌터였던것도 알고 있냐?"

터벅, 터벅-.

그는 나를 위협하려는 듯한 기세를 풍기며 다가왔다.

앞을 향해 내딛는 발걸음에는 상당한 힘이 실려있었다.

"그렇게 아는게 많으면 너가 대신 정보를······!"

나는 그가 헌터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조용히 그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 [강력경고]가 활성화됩니다.

- 오늘은 더 이상 [강력경고]를 활성화할 수 없습니다.

"······!"

털썩-.

[강력경고]가 활성화되며 남자가 무릎을 끓고 주저앉았다.

커다랗게 확장된 동공.

거칠어진 숨결이 남자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모습이었다.

"허억, 허어억······!"

"끼어들지마. 정신사나우니까."

툭. 투욱-.

바닥에 주저앉은 남자의 손길이 스스로의 목을 더듬는 모습이었다.

목이 베이는 듯한 공포라도 느낀 모양이었다.

[강력경고]에 휘말린 그는 고개를 숙인 채로 애써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를 무시하고서, 다시금 헌터마스터에게 시선을 돌렸다.

"박우성씨. 우리 솔직하게 이야기합시다. '헌터마스터' 채널이 정확한 정보 공유로 성공한 채널은 아니잖아요?"

"······."

"저도 나름대로 자부심 가지고 채널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적어도 당신이 이야기하는 말도 안되는 정보들보다는, 좀 더 검증되고 객관적인 정보 위주로 전달하려고 한단 말입니다."

후우-.

나를 바라보던 헌터마스터의 얼굴이 붉으스름하게 물들었다.

내 이야기를 받아들이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수많은 유튜버들 앞에서 그 신뢰도에 의문을 표했으니, 그의 입장에서는 모욕을 받는 기분일 터였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가 자초한 일인만큼 끝맺음은 확실히 지어야했다.

"헌잘알은 최신 정보나 헌터들 분석영상들 올리고, 헌터마스터는 스케일 커다란 예능 컨텐츠들 제작하고. 그게 유튜브에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포지션 아닙니까. 그런데 왜 자꾸 다른 사람 작업물을 깎아내리려고 합니까?"

내 눈앞에 있는 헌터마스터가 올리는 정보영상은 하나같이 무가치하다는 조언이었다.

나는 열기가 오른 것처럼 보이는 헌터마스터를 마주한 채, 남아있던 샴페인을 단번에 들이키고서 내려놓았다.

쿵-.

그리고는 헌터마스터를 내버려둔채로, 뒤를 돌아 파티룸의 입구로 향했다.

"적어도 제가 이 자리에서 들을만한 정보는 없는 것 같네요. 술은 잘마셨습니다."

짧은 작별인사.

그것을 전하고서 나는 파티룸의 문고리를 붙잡았다.

그런 나를 앞에 두고서, 등뒤에서 헌터마스터의 마지막 이야기가 들려왔다.

"신유호씨. 이런식으로 절 모욕하고서 당신이 계속 헌터 유튜버로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헌터마스터가 나에게 전하는 이야기.

그것은 사실상의 협박이었다.

그가 가진 인맥들을 이용해서, 온갖 길드에 압박을 넣겠다는 의미였다.

끼이익-.

나는 문을 열어젖히기 위해 손잡이를 붙잡은 채로, 헌터마스터의 마지막 경고에 대답을 돌려주었다.

"마음대로 하시죠. 저도 제 마음대로 할 생각입니다."

그것이 나와 헌터마스터 박우성의 마지막 대화였다.

쿵.

닫혀버린 파티룸을 뒤로 하고서, 나는 눈앞에 보이는 복도를 바라보았다.

친한 유튜버인 최우현의 권유로 찾아온 모임이었다.

비싼 술을 잔뜩 얻어마시기는 했다지만, 막상 돌아가려니 시간이 아까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내가 소란스러운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하면, 그런 내 뒤를 최우현이 빠르게 쫓아오는 모습이었다.

"유호야! 너 괜찮은거냐?"

파티룸을 빠져나온 최우현은 곧장 나를 걱정해왔다.

그에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이야기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형은 이대로 나와도 괜찮은거야?"

나보다는 최우현쪽이 걱정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헌터마스터와의 인맥을 필요로 해서 찾아온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최우현에게 똑같은 질문을 되돌려주자, 최우현 역시 나와 비슷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무리 인맥이 좋아도 그렇지, 내가 유호 널 어떻게 버리고 가겠냐?"

"이야, 유튜버 헌터사전님 굉장히 의리있는 분이셨네."

"당연하지, 임마. 그런데 아까 그 인간은 대체 왜 혼자서 꼬꾸라진거야?"

"글쎄. 바닥에 떨어진 유리조각이라도 밟았나보지."

기나긴 복도의 안쪽.

조금은 어색한 두 남자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 * * * * *

헌터마스터와의 만남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다음날.

나는 헌터마스터 채널에 대한 가벼운 평가를 커뮤니티에 업로드했다.

물론 이번일이 계기가 되어 감정적으로 작성한 글은 아니고, 평소부터 몇번씩 업로드를 생각하고 있던 내용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참으로 객관적이고 냉담한 평가였다.

[ 제목 ] 헌터마스터 이 유튜버는 그냥 아는게 없네요

[ 작성자 ] 거품판독기

채널에 맞는 내용이 하나도 없음

[ 댓글 2개 ]

[ 공지사항 / 수정 / 삭제 ]

내가 게시글을 올리고서 얼마 지나지 않은 이후.

내 게시글에 금세 첫번째 댓글이 달리는 모습이었다.

첫번째로 댓글을 작성한 이용자는 바로 'tex11'— 파천궁 오지후였다.

나는 오지후가 작성한 댓글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 댓글 2개 ]

- tex11 : 일반인이면 몰라도 상위랭크 헌터들이 보면 이상한 내용이 많긴해 ㅋㅋ

- tex11 : 그나마 헌터 예능정도만 볼만한 것 같은데

평소부터 '헌터마스터'의 정확성을 의심한건 나 하나만이 아니었던 것일까.

오지후 역시 내 생각에 동의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게시글에 달린 댓글에 만족하며 커뮤니티를 닫았다.

아침의 건전한 문화생활을 즐겼으니, 이제는 다음 스케줄을 위한 연락을 넣을 차례였다.

"이번에는 셀레스티아 길드쪽에 요청을 넣어볼까."

최근 들어서 셀레스티아 길드쪽에 자주 출입했던 까닭이었을까.

지금에 이르러서는 해당 길드가 상당히 친숙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셀레스티아 길드에 연락을 넣어, 길드의 유망주들 영상을 만들 수 있을지 섭외해볼 생각이었다.

"적당히 유망주들 촬영을 요청해보면 들어주겠지."

결정을 마친 나는 책상 위에 놓아두었던 스마트폰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의 전화번호부를 열어서는, 이전에 연락처를 받아두었던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링-.

전화의 발신음이 수차례 울려퍼진 이후.

머지않아 스피커 너머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예. 여보세요?"

셀레스티아 길드의 홍보팀 담당자의 목소리였다.

나는 익숙한 목소리를 향해 친숙하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 "아. 그 유튜버 분이시군요."

"예. 이번에 제가 셀레스티아 길드의 유망주들을 촬영해보고 싶어서, 혹시 촬영이 가능한지 문의드리려고 하는데요."

셀레스티아 길드는 유망주들 촬영요청을 잘 받아들이기로 유명한 편이었다.

해당 유망주들의 인지도를 올리는 홍보효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자고로 헌터들이란 사냥 이외에도, CF나 광고에도 자주 나오기 마련.

그러니 이번에도 길드에서 흔쾌히 받아들일거라는 생각에서였다.

- "혹시 유튜버 채널명이 어떻게 되셨죠?"

"헌잘알입니다. 구독자 63만 8천명의······."

- "아, 헌잘알 채널. 그랬죠.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확인하고서 알려드릴게요."

내가 촬영을 요청한 직후, 길드 직원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로부터 잠시 후.

내 전화를 받은 담당자는 나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전해왔다.

- "죄송하지만 어려울 것 같네요. 상부에서 갑자기 일부 유튜버들은 출입할 수 없다는 지시가 내려와서요."

"예? 그게 무슨······."

- "제 선에서 해결해드릴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칼같은 촬영거부의 의사.

더군다나 그 이유는 상부로부터의 명령때문이라는 담당자였다.

내가 그에 대한 의문을 제대로 표하기도 전에, 담당자와 연결되어있던 전화가 끊겼다.

툭-.

끊어진 통화화면을 바라보던 나는, 허탈한 기분이 되어 고개를 들어올렸다.

"하··· 위에서 내 촬영요청은 받지 말라고 했다고?"

셀레스티아 길드의 촬영거부명단.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내가 등재되어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내 머릿속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스쳐지나갔다.

- '신유호씨. 이런식으로 절 모욕하고서 당신이 계속 헌터 유튜버로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나와 마주했던 헌터마스터, 박우성이 나에게 이야기했던 경고.

그 경고가 사실이라고 한다면, 누가 이런 조치를 취했는지야 뻔했다.

헌터마스터.

그가 셀레스티아 길드의 인맥에게 압력을 넣은 것이 틀림없었다.

"하, 참. 어이가 없네."

설마 했더니 이런식으로 치졸하게 복수를 하려고 해올줄이야.

예상을 넘어서는 결과에 감탄하던 나는, 이내 손가락을 움직여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이런 조치가 나한테 통할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었다.

적어도 한국의 헌터업계에서 내가 '헌터마스터'따위보다 입지가 작을 리는 없을테니까 말이다.

커뮤니티에서 'swordmaster'와의 1:1 대화창에 들어간 나는, 천시예를 향해 가벼운 인사말을 전송했다.

- 거품판독기 : 헌터랭킹 6위(예정) 검귀님 계세요?

- swordmaster : 검귀.등장 ^ O ^

내가 말을 걸기 전부터 커뮤니티에 접속해있었던 것일까.

천시예는 빠른 속도로 나에게 답장을 전해오는 모습이었다.

그녀가 접속해있는 상황이라면 빠르게 대화를 진행해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아보였다.

나는 곧바로 천시예에게 용건을 이야기했다.

- 거품판독기 : 내가 셀레스티아 길드 블랙리스트에 들어갔다는데

- 거품판독기 : 아무리 검귀라도 이런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겠지?

- swordmaster : 어쩌다가.들어갔대 ㅜ O ㅜ ?¿?¿

- swordmaster : 조금만.기다려

- 거품판독기 : 혹시 헌잘알 채널이랑 같이 헌터사전 채널도 이야기해줄수 있어?

- swordmaster : 문제.없어용 ㅎㅅㅎ

다행히 천시예는 흔쾌히 내 요청을 들어주겠다고 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천시예의 대답에 안심하고서 답장을 기다렸다.

책상에 올려놓은 커피를 홀짝이며 조용히 화면을 바라보기를 십여분.

다른 일을 하면서 기다리는게 나을 것인가 하는 고민에 잠겨있으면, 머지않아 천시예로부터 답장이 도착했다.

- swordmaster : 해결했어용 ^ O ^

- swordmaster : 우리 길드.기자 출입증도 발급해준대 ㅎㅅㅎ

천시예로부터 나에게 돌아온 답장.

그것은 천시예가 나에게 걸려있던 촬영금지 조치를 해제했다는 이야기였다.

더군다나 거기에 그치지 않고서, 셀레스티아 길드의 기자 출입증을 받아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사실상 제한구역을 제외하면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해졌다는 이야기였다.

"역시 인맥에는 인맥으로 대응하는게 정답이구나."

내 생각이상으로 천시예가 일을 잘 처리해준 모습이었다.

다른 길드에 걸려있는 조치도 최두식이나 오지후랑 가볍게 이야기하면 해결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촬영금지 조치를 해결한 나는 그녀에게 짧은 감사인사를 전했다.

- 거품판독기 : 역시 헌터 랭킹 6위 ㄷㄷㄷㄷㄷ

- swordmaster : ㅎㅅㅎ

- swordmaster : 랭킹 영상.금방 올라오는거.맞지 ?¿?¿

나는 천시예로부터 전해져온 답장에 난감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여전히 헌터 랭킹 영상을 애타게 기다리는 중이었다.

천시예가 이렇게까지 발벗고 나서줬는데, 그런 그녀의 기다림을 무작정 외면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슬슬 자료들 정리하기 시작해볼까."

아무래도 다음 랭킹 영상제작을 조금은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2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