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novel

6

045화 [Episode 11] 조우 (1)

[어떻게 할까요?]

[고급 인력에게는 그만한 대우를 해 드려야겠죠. 저분들에게 방을 내어주고 그곳을 병원으로 만드는 건 어떨까요?]

[좋은 생각이네요.]

[찾아보면 간호 인력도 제법 있을 겁니다. 의료팀 구성부터 운영까지 다빈씨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렇게 의료팀 신설에 관한 모든 업무를 김다빈에게 전담시키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서예진은 여전히 거실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고, 소파에서는 까미가 팔자 좋게 늘어져 잠을 자고 있었다.

'하동건 파티는 문제없이 이동 중이고'

하동건 파티는 중앙역에서 자갈치역으로 이어지는 선로를 다이렉트로 통과하는 중이었다.

유혜린, 서예진과 함께 열심히 좀비들을 청소해 놓은 보람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스킬 포인트는 역시 거기에 투자해야겠지?'

미리 생각해 둔 스킬이 하나 있었다.

'절대자의 창고, 레벨업'

[집구석 절대자의 창고 스킬이 LV. 2가 되었습니다.]

[창고의 용량이 200kg으로 늘어났습니다.]

[현상 유지 기능이 추가되었습니다.]

[현상 유지] (패시브)

창고에 보관할 당시의 운동 상태를 그대로 보존합니다.

창고의 레벨을 올린 것은 이제 창고 용량을 늘릴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서예진의 쥐를 이용한 가스 폭발이나, 유혜린의 독안개 능력을 활용할 때 용량의 부족함을 느끼고 있던 와중이었다.

'용량이 두 배로 늘어났다. 이걸로 여유 있게 사용할 수 있겠어'

그리고 늘 그렇듯이 예상치 못한 선물이 한 가지 더 나왔다.

'현상 유지라'

그것의 기능에 대한 설명을 읽는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이미지 하나가 있었다.

'그게 가능할까?'

창고에서 물건을 소환하면 완전히 정지된 상태에서 나타나게 된다.

지금까지는 그게 너무도 당연한 일이어서 딱히 신경쓰지도 않고 있었다.

그런데 현상 유지라는 기능의 설명을 보니 그 의미가 다르게 느껴지고 있었다.

'운동 상태를 그대로 보존한다는 것은, 창고에서 소환할 때에도 그 운동 상태가 그대로 유지된 상태로 소환된다는 뜻이겠지?'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내가 힘껏 던진 창을 창고에 보관한 다음 소환하게 되면 처음 보관하던 속도 그대로 창고에서 튀어나온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마침 내게는 그런 상황을 극대화시켜 이용할 수 있는 물건이 하나 존재했다.

'상점 오픈, S&W M60, 38 구경 실탄 100발 구입'

+

허공에 나타난 권총을 잡고 실린더에 실탄 세 발을 채워 넣었다. 남는 것들은 창고에 보관해버린 후, 거실 창문을 열고 어두운 밤하늘을 조준했다.

창고 보관---

그리고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탄두!'

쏘아지는 총알을 창고에 보관하는 이미지를 그렸다.

탕!

화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지이이잉—!

총열 앞부분에 튀어나온 총알이 창고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된다.

일단, 여기까지는 완벽하다.

‐삑!

소파에 자리 잡고 있던 까미가 갑작스러운 총소리에 깜짝 놀라 펄쩍 뛰었고, 서예진도 양손으로 입을 가린 채로 깨어났다.

그녀가 창가에서 총을 들고 서 있는 나를 향해 물었다.

"재현님? 갑자기 왜?"

그러나 그것은 내 귀에 닿지 않았다.

너무 집중한 탓이다.

'내 예상이 맞다면-'

열린 창문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차가운 밤공기를 맞으며 허공을 노려봤다.

그리고.

'소환, 탄두'

밤하늘을 향해 탄두를 소환했을 때,

쐐애애액!

허공에 생성된 탄두가 곧장 밤공기를 찢으며 발사되었다.

총에서 발사되었던 속도 그대로

'미친'

머리끝에서부터 전율이 일었다.

'이거다!'

하동건 파티를 보조할 확실한 방법.

조커 카드가 생겼다.

자갈치역에 도착한 하동건 파티가 개찰구를 통해 밖으로 나왔다.

해당 역사는 고블린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제 고블린 무리 따위는 하동건 파티의 상대가 되질 않았다.

"케에엑!"

"끼엑!"

하동건 파티의 압도적인 무력에 오히려 고블린 무리가 도망치는 일이 발생했다.

그렇게 손쉽게 고블린들을 물리친 그들을 향해 소통의 반지를 사용했다.

[2번 출구로 나가시면 됩니다.]

2번 출구로 나오자 넘어진 버스와 자동차들이 뒤엉켜 있는 삼거리가 그들을 반겨주었다.

'여기서부터는 미지의 영역이다.'

서예진이 정찰을 통해 루트를 뚫어놨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는 영역이었다.

"재현님, 이제 어디로 가면 됩니까?"

[왼쪽 큰길을 따라서 1km 정도만 걸어가면 바로 목적지 근처입니다.]

그러나 그 1km의 거리를 주파하는 것이 만만치가 않았다.

첫 번째 건물의 모퉁이를 돌아간 순간.

"조심해!"

괴물이 튀어나왔다.

「육지 상어(Lv. 24)」

일전에 남포역에서 서예진의 생쥐를 잡아먹었던 육지 상어였다.

골목길에서 튀어나온 육지 상어가 날카로운 이빨을 앞세우며 하동건 일행에게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푸욱!

하동건의 창이 육지 상어의 옆구리를 찔렀고,

파각!

어느새 수인화를 마친 오언주가 육지 상어의 머리를 박살 내며 마무리했다.

[육지 상어(Lv. 24)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3,813,758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하동건이 외쳤다.

"건아 정찰!"

"죄송합니다."

김건이 눈을 감고 집중하자 멀리 날아갔었던 까망이가 날아와 주인의 어깨에 앉았다.

까막—

약간은 멋쩍은 듯한 울음소리와 함께 자신이 하늘에서 본 것들을 알려왔다.

"--선배, 아무래도 이 근처에 저런 것들이 꽉―"

김 건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주변에 있던 괴물들이 하나, 둘 존재감을 드러냈다.

"깔린 것 같아요."

찻길에는 대형차만한 덩치의 대게가, 하늘에는 창처럼 날카로운 코를 가진 청새치 떼가 하동건 일행을 향해 접근해오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먹잇감을 사냥하러 나타난 포식자의 눈빛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쐐애애액!

제일 먼저 하늘을 유영하던 청새치 떼가 돌진해왔다. 창날처럼 날카로운 콧날을 앞세운 상태였다.

타앙!

전투의 신호탄이 불을 뿜었다.

불시에 시작된 전투였음에도 하동건 파티는 능숙하게 맞받아쳤다.

"덕수야! 막아!"

"오케이!"

은빛 갑옷을 두른 강덕수가 김가영과 김 건의 앞을 막아섰다.

채챙!

청새치의 콧날이 강덕수의 갑옷에 막혀 튕겨 나갔고,

"웃차!"

할버드를 휘둘러 한 놈을 걷어냈다.

동시에

푸욱!

김가영의 스킬이 담긴 화살 하나가 청새치의 머리를 깔끔하게 관통했다.

[하늘 청새치(Lv. 16)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785,230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타앙—!

총을 들고 있는 것은 문병호뿐만이 아니었다.

마땅한 공격 수단이 없던 김 건에게도 총을 주었고, 그의 사격술은 생각보다 날카로웠다.

[하늘 청새치(Lv. 17)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899,202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그러나 적은 인원이서 수십 마리에 달하는 모든 청새치들을 마크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그들의 시야를 벗어난 한 두 마리가 뒤쪽에서부터 김다정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오지 마!"

김다정의 손에도 권총이 들려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불을 뿜은 적 없던 그녀의 총신이 처음으로 불을 뿜었다.

타앙—

그러나 눈을 감고 쏘는 총알이 목표를 맞출 리가 없었다.

당연하게도 총알은 빗나갔고, 청새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녀의 심장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꺄아아악!"

'창고 소환, 탄두'

결정적인 순간, 청새치의 앞에 나타난 총알 하나가 그대로 놈의 머리를 꿰뚫어버렸다.

[하늘 청새치(Lv. 17)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231,733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내가 직접 쏜 총알로 사냥했기 때문인지 정산비가 형편없었다.

"서예진씨!"

"네, 넵!"

"총 좀 대신 쏴 주세요."

"네? 총이요? 제가요?"

당황스러워하는 서예진에게 권총을 쥐여주며 말했다.

"네, 빨리요."

어차피 지금 시점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지금 하동건 파티가 전투를 치르고 있는 지역은 그녀의 감각 공유가 닿지 않는 곳이었으니까.

"어, 어디로 쏘면 되나요?!"

"아무 곳이나 상관없습니다!"

"예에?!"

"서두르세요!"

서예진은 눈을 질끈 감고는 아파트 벽면을 향해 총을 쏘았다.

'창고 보관, 탄두!'

타앙—! 탕—!

그녀가 쏘아낸 탄두는 곧바로 실전에 배치되었다.

'소환!'

[하늘 청새치(Lv. 17)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393,121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같은 방법으로 사냥하더라도 서예진이 쏘아낸 것으로 판정된 총알로 사냥하는 것은 그 효율이 6배였다.

"다 쐈어요!"

"장전하고 다시! 얼른!"

"네!"

될 수 있는 한 많은 탄두를 보관하기 위해 서예진을 혹사시켰다.

타앙! 탕! 탕!

총소리가 집안을 뒤흔들었고, 화약 냄새가 거실을 가득 채워갔다.

철컥.

"무, 무슨 일이에요?!"

그때까지만 해도 곤히 잠들어 있던 유혜린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표정으로 안방에서 나왔다.

타앙!

유혜린은 거실 벽면을 향해 총을 쏘아대고 있는 서예진의 모습을 보더니 자신의 두 뺨을 때려댔다.

"꿈이 왜 안 깨지?"

미안하지만 그녀에게 일일이 설명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나는 탄두를 저장하는 한편, 계속해서 하동건 파티의 보조를 위해 사용했다.

"다정아! 축복!"

"네, 언니!"

후미에서 달려드는 청새치들을 처리하느라 바쁠 때, 전방에서는 하동건과 오언주가 덩치 큰 대게와 대치하고 있었다.

「자이언트 크랩(Lv. 35)

쿠웅!

커다란 집게발을 피하며 대게의 품속으로 파고든 오언주가 대게의 관절을 꺾었다.

콰직!

대게의 다리 하나가 박살나며 그대로 균형을 잃었고,

푸욱!

놈의 입속에 하동건의 찌르기가 작렬했다.

-!!!

턱이 박살 난 대게가 버둥거리며 그를 공격했지만, 하동건은 능숙하게 거리를 벌렸다.

하동건은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창을 던졌다.

캉!

그러나 창은 단단한 키틴질 껍데기를 뚫지 못하고 튕겨져나갔다.

지이잉―

곧바로 창고 속에서 새로운 창을 소환해 하동건에게 지급해주었다.

다음 순간, 어느새 게의 등딱지 위에 올라간 오언주가 발을 크게 굴렀다.

쿠웅!

내장이 뒤흔들리는 충격에 빠진 자이언트 크랩이 몸을 떨어댔지만, 단단한 등딱지는 깨어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크허엉!"

카가각!

오언주의 손톱 공격에도 등딱지에는 긁힌 자국을 만들어내는 게 고작이었다.

슈슉!

"다들 비켜요!"

텔레포트로 나타난 문병호가 자이언트 크랩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그러나 녀석의 단단한 키틴질 껍데기는 무려 총알조차도 튕겨내고 있었다.

'엄청난 내구도다.'

솔직히 오언주의 힘으로 부숴지지 않던 시점에서부터 등딱지를 부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방법이 없나?'

저것은 평범한 껍질이 아닌 게 분명했다. 무언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이상의 충격을 줘야 한다.'

손톱 공격 같은 것보다는 망치로 내려치는 듯한 충격이 필요했다.

"크허어엉!"

어쩔 수 없이 등딱지를 파괴하는 것을 포기한 오언주는 나머지 아홉 개의 다리를 박살 내는 쪽을 택했다.

콰직!

자이언트 크랩의 다리는 오언주의 손에 의해 하나씩 확실하게 분질러졌다.

'절대자의 눈'

하동건 파티를 바라보는 시야를 유지한 채로 새로운 시야를 활성화시켰다.

'분명 있는 걸 봤는데'

새롭게 밝혀진 시야가 비추고 있는 것은 처음 만날 때부터 근육질로 뒤덮인 몸을 가지고 있었던 김민호의 집이었다.

없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역시나.

'있다!'

방 하나를 통째로 트레이닝 룸으로 만든 공간에 벤치프레스를 위한 쇳덩어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대충 봐도 100kg이 넘어 보이는 바벨은 그 자체로도 흉기였다.

'잠시 빌리겠습니다. 창고 보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기는 했지만, 아직 저 단단한 등껍질을 부수기에는 2% 부족했다.

'소환'

먼저 그것을 집구석 영역 내의 가장 높은 하늘에 소환했다.

육중한 바벨은 중력에 이끌려 자유낙하 했고, 그것이 땅에 충돌하기 직전.

'창고 보관'

극한까지 끌어 올려진 운동 에너지를 품은 바벨을 창고에 저장했다.

그리고.

[오언주씨]

"크름?"

[대게 등딱지가 보이게 점프해주세요.]

내 명령이 떨어지자 오언주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곧바로 점프했다.

콰아앙!

아스팔트가 박살나며 오언주의 몸이 높이 떠올랐다.

그러자 자이언트 크랩의 등딱지가 한눈에 보였다.

그곳을 향해

'바벨 소환!'

백킬로가 넘는 바벨이 그 속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등장했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콰직─!

단단하던 등껍질을 산산조각 내놓았다.

"크아앙!"

오언주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놈의 등딱지 위로 착지했고, 박살 난 등껍질 틈으로 손을 비집어 넣었다.

그리고.

우드득

그것을 그대로 잡아 뜯었다.

단단한 등껍질이 사라진 자리에는.

두근- 두근-

요동치는 심장이 있었고,

푸욱!

오언주의 발톱이 그것을 헤집었다.

[자이언트 크랩(Lv. 35)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931,732,266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046화 [Episode 11] 조우 (2)

자갈치역에서 본가로 이어지는 길은 수산물시장이 따로 없었다.

기어 다니는 물고기부터 시작해, 날아다니는 물고기까지. 그리고 대게와 가재 등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들이 활개치고 있었다.

자갈치 시장의 명성에 걸맞게 모든 해산물들이 총 집합한 모습이었다.

그 중에서 특히나 귀찮은 것은 아무래도 갑각류였다.

"이번엔 가재입니다!"

"뒤로 빠져!"

일전에 사냥한 대게와 마찬가지로 단단한 키틴질 갑옷으로 무장한 가재가 나타났지만, 이미 공략법을 숙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콰아아아앙!

가재의 등딱지에 포탄처럼 떨어진 바벨이 놈의 목숨을 앗아갔다.

[자이언트 랍스터(Lv. 30)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06,886,599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아쉽게도 내가 사냥한 것으로 되어 정산금이 짜긴 했지만, 지금 현재는 돈 보다는 길을 뚫는 게 우선이었다.

'미안합니다, 민호씨'

몇 번이나 사용된 바벨은 많이 망가져 있었다.

'물품 등록을 하고 새로 사드릴게요.'

이곳은 전체적으로 우리 아파트 근처보다 훨씬 위험한 환경이었다.

몬스터들의 평균 레벨도 높고, 그 숫자도 많은 터라 하동건 파티의 실력으로도 꽤 애를 먹을 정도인 것이다.

'창고 레벨을 올리지 않았더라면 위험했겠어!'

당장 첫 전투에서 김다정이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축복을 받지 못하는 오언주와 하동건의 전력이 크게 꺾였을 것이고, 지금처럼 안정적으로 몬스터들을 처치해나가지도 못했겠지.

더불어 축복의 기능은 단순히 신체 능력의 상승에만 있지 않았다.

우우웅

늦은 저녁.

더 이상 가로등 불빛도 기대할 수 없는 캄캄한 환경 속에서 김다정의 능력은 주변을 환하게 밝혀주는 등불이 되어주고 있었다.

지하철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축복을 받았을 때 뿜어져 나오는 빛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시각에 많이 의존하는 동물인만큼 캄캄한 밤을 밝혀주는 빛이 있다는 것은 전투에 커다란 이점이 되어주고 있었다.

"동건아, 뒤에!"

하동건의 뒤를 노리던 청새치 한 마리를 향해 탄두를 소환했다.

[하늘 청새치(Lv. 17)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326,284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이처럼 창고 기능을 통한 보조는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전투에 집중하는 내 표정은 심각하기만 할 뿐이었다.

'몬스터가 많아도 너무 많다.'

내 보조가 아니었다면 위험했을 상황이 몇 번이나 연출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사실상 지금 이 길은 원래 하동건 파티의 실력만으로는 뚫기 힘들다는 소리다.

그게 문제였다.

'하동건 파티가 버티기 힘들 정도라면, 평범한 사람들은 더더욱 버틸 수 없는 환경이라는 뜻이다'

무려 전원이 각성자로 구성된 파티였다.

그 뿐인가.

조합도 좋았고, 마땅한 공격 수단이 없는 문병호, 김 건, 김다정에게는 총기까지 쥐여 줬다.

그런데도 겨우 1km를 움직이는 데 애를 먹고 있으니 말 다했다.

'------가족들이 살아 있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본가에 가까워질수록 두려운 마음이 점차 커져가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 운이 좋아 살아남았을 수도 있어'

도저히 희망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하동건 파티가 공동어시장 부근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이제는 정말로 거의 다 왔다고 할 수 있었다.

처참하게 망가졌음에도 익숙한 거리의 풍경이 그리움을 자아냈다.

'저 골목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바로 집이다.'

그런데 그때 이상한 나무 하나가 도로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곧바로 하동건 파티를 향해 명령했다.

[정지하세요.]

대로변에 거대 나무라니.

'저게 뭐야?'

저런 게 있었던가?

그럴 리가 없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였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정도는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 것을 떠나서 도로 중앙을 막고 있는 나무를 시에서 내버려뒀을 리가 없지!'

그러니까 저것은 세상이 멸망하고 난 뒤에 나타난 나무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뜻하는 바는 명백했다.

'몬스터다.'

절대자의 눈으로 놈을 노려봤다.

「나무 거인(Lv. 32)」

'역시'

지금까지 해양생물 타입의 몬스터로 가득했던 탓에 자칫 잘못하면 저것을 평범한 나무라고 생각할 뻔 했다.

레벨도 30으로 꽤 높은 편일 걸 보면 아무것도 모른 채로 지나갔다가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었다.

하동건 파티를 향해 명령했다.

[저 나무, 몬스터입니다. 공격하세요.]

공격 지시를 내리자마자 오언주가 수인화를 하고, 김가영이 나무를 향해 화살을 쏘아냈다.

피슉!

피어싱 스킬이 담긴 화살은 나무를 완벽하게 관통했지만, 나무 거인을 잡았다는 메시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우드득―

나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우드드득—

[공격해요!]

몬스터가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줄 이유는 하등 없었다.

곧바로 하동건의 창이 나무 기둥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놈의 몸에서 돋아나온 나무 촉수가 날아오던 하동건의 창을 막아냈다.

콰직!

촉수의 끄트러미가 박살나긴 했지만, 아무런 피해 없이 하동건의 창던지기를 막아낸 것이다.

나무가 하동건 파티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쿠웅—

육중한 몸이 움직일 때마다 바닥이 크게 진동했다.

슈슉

놈의 뒤쪽으로 텔레포트 한 문병호가 나무 괴물의 등을 향해 권총을 난사했다.

타앙— 탕—!

그것들은 놈의 몸체에 적중했지만, 딱히 의미 있는 타격을 입히진 못했다.

문병호의 권총 공격은 애꿎은 나무껍질만 간신히 깨부순 채로 튕겨나갔기 때문이다.

푸슉!

김가영의 화살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더 낫긴 했다.

피어싱 스킬이 걸려 있는 탓에 나무를 관통하며 바람구멍을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쿠웅—

나무 괴물은 자기 몸에 구멍이 뚫리든말든 아랑곳하지 않았다.

쿠웅!

놈이 지척까지 다가왔을 때,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던 것처럼 김다정의 축복을 받은 오언주가 선두로 나섰다.

"크릉!"

그녀를 향해 나무뿌리들이 채찍처럼 휘둘러졌고, 그것을 유려한 움직임으로 피해낸 오언주는 마침내 나무 괴물의 몸통을 공격할 수 있었다.

콰직!

나무 괴물의 몸통이 절반가량 터져나가면서 지금까지 중 가장 의미 있는 타격을 입혔다.

그러나.

콰드득—

오언주의 발밑에 있던 뿌리가 순식간에 자라나며 그녀의 발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크윽!"

콰드드득—

그것은 이내 두껍게 자라나더니 오언주의 하반신 전체를 완전히 속박했다.

추가로 뻗어 나온 뿌리가 오언주의 심장을 향해 날아들던 찰나.

슈슉!

목숨 걸고 오언주의 앞에 나타난 문병호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다시 텔레포트를 사용해서 사라졌다.

슈슉

'음?'

그때 나는 나무 괴물에게서 무언가 이상한 반응을 포착할 수 있었다.

'왜 공격이 멈췄지?'

문병호가 오언주 앞을 막아서며 나타난 순간이었다.

일순간이었지만, 나무 괴물의 공격이 멈추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혹시?'

나는 전열을 가다듬고 나무 괴물과의 2차전을 준비하는 하동건 파티를 향해 명령했다.

[오언주 씨만 뒤로 빠지고 나머지가 공격하도록 하세요.]

"네? 오언주씨를요?"

[네.]

오언주는 하동건 파티의 선봉장이었다.

그런 사람을 빼버리면 당연히 전력이 급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무 괴물은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만난 몬스터 중 가장 성가신 놈이었는데, 최고 전력을 빼버린다니 모두가 의아해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오언주가 군말 없이 빠지자 다른 이들도 얼떨떨해 하면서도 일단은 받아들였다.

"재현님 명령에 따른다. 오언주 씨가 뒤로 빠져서 가영이랑 다정씨를 지키고, 덕수 네가 앞으로 나와."

"오케이––! 근데 내가 할 수 있을까?"

"몸빵 하나는 단단하잖아."

"오, 오케이!"

하동건이 오언주를 향해 말했다.

"뒤쪽을 부탁드립니다."

"알겠어요."

오언주가 변신을 풀고 후방으로 빠지는 순간이었다.

신기한 일이 펼쳐졌다.

쿠웅—

"어?"

쿠웅—

오언주가 수인화를 풀고 인간으로 돌아간 순간 나무 괴물은 미련 없이 등을 돌리더니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뭐야?"

나무 괴물은 제일 처음 있었던 자리로 돌아가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주저앉아 다시 나무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다.

"재현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알고 계셨던 건가요?"

나도 일이 이렇게 흘러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탓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 건가'

생각해보면 나무 괴물이 공격을 시작해온 것도 오언주가 수인화를 한 시점부터였다.

게다가 나무 괴물의 공격은 줄곧 오언주 하나만을 노리고 있었다.

다른 일행들의 공격은 쳐내며 방어하기만 할 뿐 반격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언주를 뒤로 빼버린 것이다.

이제 보니 오언주가 문제가 아니라 수인화를 한 오언주의 모습이 나무 괴물을 자극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때였다.

쿠우웅!

나무 괴물이 다시 한 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만 놈이 움직인 방향은 하동건 파티가 있는 곳의 정반대방향이었다.

그곳에 등장한 것은 뱀처럼 육지를 기어 다니며 움직이는 육지 상어.

푸욱!

육지 상어는 나무 거인의 뿌리에 처참하게 꿰뚫린 채로 버둥거렸다.

쿠웅쿵

육지 상어를 제압한 나무 거인은 미련 없이 등을 돌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나무 거인의 뿌리 한쪽에는 꼬챙이가 된 육지 상어가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뭐야 저건?'

몬스터들끼리 싸우는 것이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같은 고블린들이라도 서로 싸워서 죽이기도 하고, 오크나 고블린이 싸우는 광경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나무 거인이 자기 영역을 침범한 육지 상어를 제압하는 장면이 이상할 것은 없었다.

'이상한 것은 어째서 인간은 공격하지 않냐는 거지.'

하동건 파티가 상당히 가까이 접근했음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나무처럼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는 중이었다.

'이대로 불살라버릴 수도 있지만...'

물리 공격에는 면역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중급 속성 마법(火)을 활용한 불은 놈에게 치명적일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일단은 그대로 두자'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몬스터들만 공격한다면 오히려 남겨두는 게 이득이었다.

여차하면 이놈이 지키는 영역 안으로 하동건 파티를 피신시킬 수도 있을 테니까.

[적의를 보이지 않는 것 같으니 나무 괴물은 무시하고 전진해주세요. 저기 아파트를 지나서 골목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동건 파티가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파트 너머의 골목길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무 괴물의 바로 옆을 지나쳐야 했기에 혹시나 모를 사태를 경계하며 천천히 지나갔다.

다행히도 하동건 파티가 모두 지나칠 때까지 나무 괴물은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하동건 파티가 골목길 안으로 진입하기 직전.

아파트 건물에 가려졌던 부분이 드러나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헉!'

그곳에는 거대한 나무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밤하늘의 달빛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자체적인 발광인지 희미한 빛을 내뿜는 신비한 분위기의 나무였다.

그 크기만 거의 20~30m 정도 되는데다 두께 또한 엄청났다.

그런데 하필이면.

'저긴~!'

그 나무가 자리 잡은 장소가 정확하게 우리 집이 있어야 할 곳이라는 점이 거슬렸다.

그것을 보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뇌리를 뒤덮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이를 악문 채로, 전신에 힘을 주고 있었다.

거실 창문으로 반사된 내 얼굴이 악귀의 그것처럼 일그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보기 전까진, 내가 그런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내가 이런 표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조차도 몰랐었다.

'죽여 버리겠어'

끓어오르는 분노라는 것이 그저 관용구인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전신의 피를 뜨겁게 달구는 이 감정을 보니 실로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저 괴물 같은 나무를 폭발시켜야만 성에 찰 것 같았다.

'가스로 가득 채우고 폭발시킨다. 하동건 일행은 가신 소환으로 불러들이면 돼.'

이성을 잃은 내가 하동건 파티에게 명령을 내리기 직전.

[근처에서 집구석 절대자의 혈족의 존재를 감지하였습니다.]

뜨겁게 불타오르던 머리에 차가운 시스템 알림이 끼얹어졌다.

-?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당신들 뭐야?!"

어둠 속에서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047화 [Episode 11] 조우 (3)

"누군데 우리 뽀삐를 괴롭히는 거여!"

하동건 일행의 헤드랜턴이 그곳을 비추자 모습을 드러낸 것은 50대 정도로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아저씨 아주머니들이었다.

"네?"

"어우 라이트 좀 꺼! 눈 아퍼!"

"앗, 죄송합니다."

그들은 태평한 걸음걸이로 하동건 파티를 향해 다가왔다.

아주머니들은 하동건 파티를 지나쳐 나무 괴물의 상태를 보더니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고야, 이거를 우야면 좋노, 구멍이 뚫리삤네."

"엄청 아팠겠구만."

"뽀삐야 괜찮아?"

그 직후 하동건 파티를 향해 불호령이 떨어졌다.

"보소! 이거 당신들이 한 거요?"

"아... 네."

"와 가만있는 아를 이 지경으로 만드노?"

"...죄송합니다."

심각하던 분위기도 잠시 옆에서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여기 좀 보소! 뽀삐 야가 또 한 건 했다아닙니까."

하동건에게 한 소리를 하고 있던 아저씨도 덩달아 육지 상어를 보러 갔다.

"와따 임마 이거 살이 확 올랐네. "

"야는 맛이 별로 없는데."

"뭐 지금이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집니까? 별로면 고마 먹지 마소."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솔직히 마구로 그것이 더 맛이 좋잖어."

"아이고오- 지랄을 한다. 지랄을 해."

절대자의 눈으로 전해져오는 친숙한 방언들을 듣고 있자니 긴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런가..'

모든 것이 단번에 이해가 됐다.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나무 몬스터의 존재도, 우리 집에만 생겨난 저 엄청난 크기의 나무도.

'각성했구나.'

누가 저런 힘을 지니게 됐는지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집에는 식물들이 가득했었다.

마당에는 나무나 꽃들이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었고, 옥상에서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시기마다 열매를 맺었다.

할아버지가 은퇴를 하신 뒤에는 옥상에 밭이 생기고 파, 양파, 상추, 가지 등으로 가득 들어차더니 가끔씩 밥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는 했었다.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꼭 직접 물을 퍼다 흙을 적시던 것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저 나무도 할아버지의 능력인 건가'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나무,

그것이 어떤 사람의 각성 능력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단순히 어떤 우연일 뿐이라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수천 명이 넘어가는 사람들을 시민으로 받아들이면서 만난 각성자의 숫자는 고작 다섯.

각성하는 것만도 극악의 확률이라는 소리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30레벨 나무를 수하로 다루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기능이 있을지 모르는 수십 미터 규모의 나무까지 자라나게 만드는 능력의 소유자?

여기까지 오면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그런 능력을 가진 각성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나 뿐이지.'

나와 비슷한 수준의 능력을 각성한 사람은 없으리라 확신했다. 그렇기에 집을 차지한 나무를 보고 분노한 것이었다.

저런 규모의 힘을 가진 몬스터들은 얼마든지 차고 넘칠 테니까.

'설마 이런 규모의 힘을 각성한 사람이 나 말고도 존재할 줄이야.'

그리고 그것이 내 가족일 줄이야.

이렇게 일이 잘 풀리는 건, 로또 두 번 연속으로 맞을 확률보다도 낮을 것이다.

물론 미국 로또 확률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가족들이 죽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20레벨 후반 몬스터가 심심찮게 돌아다니고, 하늘에는 10레벨대 후반 몬스터가 떼로 몰려다닌다.

30레벨 초반의 거대 갑각류는 물론이고 어쩌면 그 이상도 있으리라고 여겨지는 환경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평범한 인간이 도대체 무슨 수로 살아남는단 말인가?

이미 나는 상실감과 분노로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언제든지 폭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집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자라난 거대 나무의 모습이 기폭제 역할을 한 것뿐이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잘 풀리게 될 줄이야.

그토록 화를 낸 것이 오히려 부끄러워질 지경이었다.

분노한 시간이 겨우 몇 초 남짓이었으니 망정이지 조금만 더 있었으면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뻔 했다.

"하하."

허탈한 웃음을 짓고 있자니 서예진과 유혜린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어왔다.

"재현님 무슨 일이 있었나요?"

"...괜찮은 거죠?"

작전 진행 중에 갑자기 허탈한 웃음을 짓고 있으니 불안할 만도 했다.

"괜찮습니다. 아무 일도 아니에요. 다들 무사합니다."

어느새 하동건 일행은 육지 상어 해체 작업을 돕고 있었다.

레벨이 높은 만큼 월등한 신체능력 덕분에 빠르게 육지 상어를 해체할 수 있었고, 그 모습에 주변에서는 감탄사를 흘리고 있었다.

"아따 젊음이 좋긴 좋구만! 내가 20년만 젊었어도...!"

어느새 하동건 파티는 자연스레 짐을 짊어지고 아줌마 아저씨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소통의 반지를 사용했다.

[여러분 왼편에 거대한 나무가 있는 거 보이시나요? 거기가 제 본가입니다. ]

내 말의 저의를 파악한 하동건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들 죄송하지만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저희는 저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야할 것 같아서요."

"잉? 안 그래두 글로 가고 있는 중인데?~"

옆에 있던 아저씨가 언성을 높이며 물었다.

"뭐여? 우리 촌장님이랑 아는 사인겨?~"

그 말을 들은 내가 하동건 파티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촌장님 성함이 어떻게 되는지 여쭤보세요.]

하동건이 곧바로 앵무새처럼 내 말을 되풀이하여 물었고, 아저씨가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해주었다.

"우리 촌장님 이름? 이자 봉자 열자 쓰시는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역시 할아버지다.'

이봉열, 우리 할아버지의 성함이었다.

나와 성씨가 다른 이유는 할아버지가 외가 쪽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아빠가 결혼할 때부터 처가살이를 했기 때문에, 나도 태어날 때부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살아왔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집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모습이 더 자주 보이고 있었다.

이 주위만큼은 몬스터가 세상을 덮치기 직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부서진 건물도 없었고, 길거리에 널브러진 시체도 없었다.

그것들을 확인할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고 있었다.

"잠시만 여기 들렸다 가자고."

집 앞 주차장으로 쓰던 공간은 창고가 되어 있었는데, 그곳에는 육지 상어나 하늘 청새치와 같은 해양 몬스터들의 사체가 있었다.

더불어 그것들을 손질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이 많군.'

이곳에 모여 있는 이들만 어림잡아 백 명은 넘어갔다.

대부분이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아저씨 아주머니, 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다. 남부민동이라는 마을 자체가 청년은 거의 없고 평균 연령이 무척이나 높은 도시였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는 원래부터 수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물고기를 손질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익숙해 보였다.

근처에서는 아예 좌판을 펼쳐 놓고 곧바로 회를 떠서 먹는 사람들도 있었고, 불에 생선 굽는 고소한 냄새가 풍겨 나오기도 했다.

마치 자갈치 시장의 주체가 이곳으로 옮겨온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여기 놓고 가자고."

"또 잡았어?"

"그려, 아 맞다. 여기 새로 들어 온 아들인데 배고플 시간이니 회나 몇 점 먹입시다."

사시미 칼을 들고 있는 아저씨는 능숙한 손길로 육지 상어의 살점을 발라내었고, 그것을 그릇에 담아서 건넸다.

"자, 여기!"

초장과 와사비에 간장까지 준비 된 제대로 된 회 한 접시였다.

"여 앉아서 먹자고."

"젓가락은요?"

"없어, 그냥 맨손으로 먹으면 돼, 이렇게, 으음~"

나는 급하게 집에 있는 젓가락들을 그쪽으로 소환해주었다.

하동건 파티는 자연스럽게 젓가락을 집어들었지만, 허공에서 생겨난 젓가락을 목격한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어떻게 한 거여, 방금? 뭐, 마법사라도 되나?"

"아따 신기하네."

부담스러운 관심 속에서 하동건 파티는 회를 한 점 씩 입으로 가져갔다.

"음?~"

"으음!"

갓 잡은 생선으로 뜬 회였다.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맛있어요!"

"대박. "

"회 엄청 오랜만에 먹네."

"그려그려, 많이 먹어."

행복한 얼굴로 식사를 하는 하동건 파티를 위해 콜라 사이다 그리고 시원한 물까지 그곳에 소환해 주었다.

그러자.

"아, 아니?!"

"그거 콜라 아닙니까?"

"사이다! 사이다!"

하동건 파티에 관심을 가지고 주변에 모여 있던 어른들이 격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하동건을 비롯한 파티원들은 소환된 음료수들을 그들 쪽으로 건네며 말했다.

"드, 드실래요?"

"그래도 됩니까?"

"물론이죠."

"이, 이봐! 나 먼저 줘야지! 내가 그렇게 챙겨줬는데!"

"아저씨 것도 여기 있어요."

콜라와 사이다를 받아 든 사람들은 호들갑을 떨며 마셔댔다.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분들을 향해 이런 말을 해도 될 진 모르겠지만, 한 모금씩 아껴가며 먹는 모습이 좀 귀여웠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피식 웃으며 콜라와 사이다를 대량으로 구입하여 그들 옆에 소환시켰다. 더불어 물을 비롯해 라면, 쌀, 계란, 우유 등을 비롯한 식자재 등을 대량으로 풀어놓았다.

"아니!"

"이기 다 뭐꼬?!"

"이, 이거 다 우리 먹으라고 주는 기가?"

하동건이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것 같네요. 재현님이 선생님들께 주시는 선물 같아요."

"지저스 크라이시스, 재현님이 누고? 내 절이라도 올려야 되겠다. 니들 중에 누군데?"

"아, 여기에는 안 계십니다."

하동건의 말에 바닥에 무릎을 꿇을 준비를 하던 아저씨가 멍청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라꼬?"

잠시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는지, 다시 질문했다.

"뭐, 재현님이라는 아는 예수님이라도 된다나? 여기에 없으면 하늘에 있나?"

오언주가 웃으며 농담했다.

"어쩌면 정말 그런 건지도 모르겠네요."

창고에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난 물자 때문에 바빠졌다.

"다들 이것 좀 창고로 옮겨!"

"김씨! 이쪽으로 좀 와봐!"

그러는 동안 맨 처음부터 하동건 파티의 옆에 붙어서 친근하게 말을 걸던 아저씨가 물어왔다.

"호, 혹시 부탄가스나 가스버너 같은 건 없는감?"

곧바로 그것들을 상점에서 구매해서 풀어주었다.

"아따! 화끈하네잉!"

아저씨는 창고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것 좀 보소! 이게 내가 달라케서 나온 물건이오!"

"뭐여? 가스여?"

"가스? 진짜로?"

특히 생선을 굽고 있던 쪽에서의 반응이 격렬했다.

그곳에서는 나무를 떼는 방식으로 불을 피워서 요리를 하던 중이었다.

당연히 가스버너와 부탄가스의 등장에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진짜네?"

"여기! 여기 좀 갖다 줘 봐! 매운탕 좀 끼리 먹게!"

"라면, 라면부터 끓여 봐!"

창고 전체가 아주 들썩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우드드득-

무언가 심상찮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창고 지붕에서부터 입구까지 길게 이어지던 소리는 나무뿌리가 생장하는 소리였다.

나무뿌리 위에서 내려온 사람이 호통을 쳤다.

"와 이래 시끄럽노?"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끼고 머리가 반쯤 벗겨진 노인,

고집스러운 얼굴에서는 단단한 존재감이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

그리고 동시에,

[가신들이 집구석 절대자의 혈족과 조우하였습니다. ]

[혈족의 힘을 개방합니다.]

『이름 : 이봉열 (Lv. 55)

칭호: [혈족][이촌][드루이드]

신뢰도 : 88

각성 능력: 세계수의 수호자 』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건설 가능 항목에 '별채'가 추가됩니다.]

048화 [Episode 11] 조우 (4)

남의 눈으로 보는 할아버지는 평소 내가 알던 할아버지와는 약간 다른 모습이셨다.

조금 더 엄하고 무섭게 보인다고 해야 할까.

나에게 보여주시던 자상한 모습들은 가족들에게만 보이는 모습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뭔가 훨씬 정정해지신 것 같은데.'

느낌상 20년은 젊어지신 것 같았다.

아마도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걸음걸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나이가 드시고, 뇌 쪽에 문제가 생기셔서 다리에 힘이 많이 빠졌던 할아버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나무뿌리 줄기에서 성큼 뛰어내리시거나, 성큼성큼 걷고 계셨다. 게다가 얼굴도 내가 어릴 적 추억 속의 할아버지만큼이나 젊어지신 것 같았다.

'각성 때문이겠지.'

무려 55레벨의 능력자였다.

신체 능력이 급격히 상승하는 건 당연했다.

더불어.

[세계수의 수호자 (패시브) (신화)]

-세계수에게 선택받은 자,

{세계수의 생명력}

{세계수의 축복}

{세계수의 가호화}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각성 능력은 알파벳 넘버링 대신 '신화'라는 등급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그 성능도 대단했다.

'엄청나다.'

스킬 하나에 여러 가지 부가 스킬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집구석 절대자 스킬과 유사한 점이 있었다.

'능력도 유전인 건가?'

그렇다면 더욱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른 가족들도 비슷한 능력을 각성했을 확률이 있다는 거였으니까.

그것도 평범한 능력과는 규격이 다른 능력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소통의 반지를 할아버지를 향해 사용해봤다.

[할아버지! 제 말 들리세요?]

그러나 애초부터 가신들 전용으로 만들어져 있는 만큼 할아버지에게 내 목소리가 닿는 일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타겟을 바꿔 김재현 일행에게 전달을 부탁했다.

[여러분, 제 할아버지이신데, 저 대신 안부 좀 전해주시겠습니까?]

마침 그곳에서는 하동건 일행과 친근하게 지내던 아저씨가 할아버지를 향해 하동건 파티를 소개해주고 있었다.

"이번에 새로 온 아들인데 어찌나 능력이 신통방통한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물건을 막 만들어냅니다. 이거 여기 있는 것들 전부 쟈들이 만들어 준 거 아닙니까."

"그래?"

할아버지는 창고에 잔뜩 깔려있는 물자를 한 번 훑어보고는 하동건 파티를 향해 다가왔다.

하동건이 제일 먼저 나서서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촌장님."

"촌장? 내가 와 촌장이고?"

"그게...."

무표정한 할아버지의 얼굴에 살짝 당황한 하동건이 말끝을 흐릴 때, 할아버지 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왔다.

"안그래도 물이 문제였는데, 이렇게 와 줘서 고맙데이."

"아, 저것들은 저희가 드린 게 아닙니다."

"뭐라꼬?"

할아버지는 다시금 창고 안에 가득한 물자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그럼 이기 다 어디서 나온기고?"

"저것들은 모두 재현님의 능력입니다. 저희들은 김재현님의 부탁을 받고 이곳으로 온 사람들입니다."

"뭐, 뭐? 재현이?"

할아버지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말을 이었다.

"내가 아는 그 김재현이 맞나? 우리 손주?"

"네, 맞습니다. 서면 아파트에 살고 있는 김재현님이요."

"아이고, 지금 니 말은 우리 재현이가 살아있다는 말이제?"

하동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그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급하게 등을 돌리며 말했다.

"그럼 내 좀 따라온나!"

"네?"

할아버지는 처음 나타날 때 타고 있던 나무뿌리 위로 올라와서는 하동건 일행을 향해 손짓했다.

"어여!"

하동건 파티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무뿌리에 올라탔다.

그들을 태운 나무뿌리는 곧바로 세계수를 향해 움직였다.

쿠드드득-

그와 동시에 내 마음은 기대로 부풀어 올랐다.

엄마, 아빠, 할머니가 저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만나러 갈 방법은 없었지만, 전초기지만 완성되면 절대자의 문 스킬을 이용해 본가로 직접 찾아가는 것도 가능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다 아까 할아버지와 만나며 떠올랐던 시스템 메시지가 생각났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건설 가능 항목에 '별채'가 추가됩니다.]

맞다. 건설 목록이 새로 생겨났었지.'

할아버지와 조우하자마자 별채'라는 항목이 생겨났었다.

잠시 절대자의 눈을 해제하고 곧바로 건설 모드를 진행해서 그것의 가격과 효과를 확인해 봤다.

-별채 (10,000,000,000 원)

<<별채 >>

집구석 밖에 설치되는 안전지대,

집구석 영역에 비례하며 별채의 영역도 함께 늘어난다.

{활성화} 될 시 일시적으로 집구석 선포가 된 영역과 동일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단, 집구석 절대자의 혈족이 거주하고 있을 때에만 {활성화}된다.

가격은 전초기지보다 8배 정도 비쌌지만, 파괴된다는 설명이 없는 것이 포인트였다.

전초 기지와는 달리 한 번 지어놓으면 파괴 될 일이 없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아파트 1단지를 먹으며 받은 건설 지원금 100억 원이 있었다. 모든 동에 태양열 발전기를 설치하고도 70억이 넘는 돈이 남은 상태.

30억만 추가로 투자하면 설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30억 정도는 이제 그리 부담스러운 금액도 아니었다.

'별채 건설.'

건설하기로 마음먹자 발 아래로 세계수의 모습과 별채의 범위가 푸르게 나타났다. 100억이나 드는 만큼 별채의 범위는 전초기지와는 차원이 달랐다.

세계수 전체를 감싸고도 나아가 수백 미터 규모의 돔 형태로 지어지는 꼴이었다.

모습과 그 크기가 내가 있는 이곳과 거의 흡사한 모양이었는데, 지금 모세혈관처럼 뻗어나간 도로만 빼면 딱 저런 정도 규모였다.

'내가 성장하는 것에 비례해서 별채의 범위도 함께 증가한다는 건가. 나쁘지 않군.'

이 정도 성능이면 100억이 아깝지 않은 투자라 할 수 있었다.

범위가 제한적인 전초기지보다도 수십 배의 가치를 하는 셈이었으니까.

'이건 고민할 필요가 없네.'

[해당 시설은 건설 기간(7일) 동안 집구석 절대자의 혈족 1명을 필요로 합니다.]

[정말로 설치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예.

지이이잉-

[별채 건설 완료까지 남은 시간]

-167시간 59분 59초

건설이 시작되는 전조를 확인하고 밖으로 나와 다시 절대자의 눈을 발동했다.

할아버지에게 별채가 건설되는 동안 범위 밖으로 나가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려던 순간이었다.

[가신들이 집구석 절대자의 혈족과 조우하였습니다.]

[혈족의 힘을 개방합니다.]

이름 : 김민심 (Lv. 21)

침호:[혈족][미촌]

신뢰도 : 99

각성 능력 : 없음

'할머니?'

익숙한 모습의 방의 돌침대 위에 할머니가 누워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저 곤히 잠에 빠진 모습이었다.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면, 지금은 아직 잠을 자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라는 점이었다. 더불어 할아버지의 슬픈 표정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여보, 당신, 야들 말 좀 들어 보시게."

할아버지가 저렇게 부드러운 말투로 할머니를 '여보'라고 부르는 것도 처음 듣는 것 같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우우웅-

할아버지의 손길을 따라 초록빛 생명력이 할머니에게로 전해져갔다.

뺨에서부터 시작된 생명력이 할머니 몸 전체를 아우르고 잠시 머물다가 몸 안쪽으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그러나 할머니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으셨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지금 이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계속해서 혼잣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야들이 글쎄 우리 재현이가 보내서 왔다고 하지 않는감? 재현이가 살아있어!"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소통의 반지를 사용했다.

[할아버지께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봐 주세요.]

오언주가 말했다.

"어르신, 재현님께서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 하십니다."

"재현이가? 재현이가 어떻게 알고?"

"재현님은 지금 저희의 눈을 공유하고 계십니다."

사실과는 약간 달랐지만, 굳이 정정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씀하셨다.

"괜찮다. 재현아, 할미 옆에는 이 할아비가 있잖느냐."

슬픔에 잠긴 할아버지의 표정을 보는 게 처음이었다.

항상 무표정에 가까운 표정을 짓고 있는 할아버지였는데, 지금은 차오르는 슬픔을 어찌하지 못하고 계셨다.

일그러진 얼굴 표정과 떨리는 목소리가 할아버지의 마음을 표현해주고 있었다.

"할미는 그냥 마음의 충격이 조금 컸던 것뿐이야."

오언주가 물었다.

"언제부터 깨어나지 못하고 계신 겁니까?"

"...그날부터라네."

그날,

몬스터가 나타나고 세상이 망하기 시작한 날부터 할머니는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재현미 이야기 좀 해 주게. 그 스마터 폰으로 목소리도 좀 들려줄 순 없나? 얼굴도 비주고 그러면 일어날 지도 몰라."

혼수상태에 빠진 할머니의 모습과 그 옆에서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할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어째서인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안도, 슬픔, 억울함, 두려움, 그리고 정확히 누구를 향한 건지 알 수 없는 분노,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심장을 헤집고 있었다.

'그래도, 그래도 살아계셔서 다행이다.'

더불어 할아버지의 각성 능력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할머니를 보살펴 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벌써 한 달 가까이 혼수상태에 빠진 할머니였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잠든 것처럼 보일만큼 건강하셨다.

모두 할아버지의 능력 덕분이었다.

'퀘스트 부여만 있었더라도'

돈이 얼마가 걸리던 할머니의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었을 텐데.

혈족들에게는 아예 퀘스트를 부여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할아버님, 잠시 실례해도 될까요?"

"뭣을?"

"제가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거든요.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김다정이 나섰다.

"그러시게."

할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지자 김다정이 할머니를 향해 손을 뻗었다.

우우웅

그러나 아쉽게도 김다정의 힐도 할머니의 상태를 호전시킬 수는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점을 눈치 챘다.

집 안이 너무 조용했다.

집에 사람이 있다면 성인 남녀 일곱 명이 집에 쳐들어왔으니 궁금해서라도 찾아올 법 한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것이다.

분명, 지금쯤이라면 2층에서 엄마 아빠가 내려왔어야 하는데,

불안한 마음으로 물었다.

[......오언주씨. 할아버지에 저희 부모님에 대한 것을 물어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오언주는 내 목소리를 듣고 할아버지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르신, 혹시 재현님의 부모님은 어디 계신 겁니까?"

"...... "

할아버지는 오언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재현이가 보고 있는 기라 했제?"

"네, 그렇습니다."

"그럼 재현이한테 말한다 생각하고 말하꾸마."

의미심장한 그 발언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재현아. 그 날은 엄마가 출근하던 날이다. 너거 아빠도 돈 벌러 나갔고."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마도 어디 잘 숨어 있을 끼라. 엄마 없으면 죽고 못사는 너거 아빠 성격상 바로 엄마한테 달려가지 않았겠나. 아마도 둘이 만나서 같이 잘 있을 끼다."

대충 전해져왔다.

할아버지도 엄마 아빠가 살아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나도 알고 있었다.

최소한 엄마나 아빠 중에 한 사람이 할아버지처럼 초월적인 능력을 얻은 게 아닌 이상, 두 분이 살아 계실 가능성은 한 없이 제로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러분, 다음 목표는 의황요양병원입니다. 거기서 그리 멀지 않으니 바로 출발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없었다.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지푸라기라도 움켜쥐기 위해.

"재현님...."

욕심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닙니다. 일단 오늘은 고생도 많이 하셨고, 시간이 늦었으니 저희 집에서 주무시고 내일 출발하는 게 좋겠네요.]

그때였다.

[근처에서 집구석 절대자의 혈족의 존재를 감지하였습니다.]

"응?"

시스템 말림이 말하는 '근처'라는 것은 하동건 파티의 근처가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 내가 있는 이곳, 아파트 단지의 영역 근처를 말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설마?'

이곳을 향해 '혈족'이 오고 있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엄마, 아빠다.'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예진씨!"

"어업, 네에?"

"주변에 있는 쥐들에게 명령해주세요."

"뭐, 뭐라고요?"

"가까이에 있는 생존자들을 닥치는 대로 찾아주세요. 지금 당장!"

나에게는 최고의 척후병이 존재했다.

갑작스러운 혈족의 등장으로 내가 정신없던 그때, 하동건 파티가 있는 본가 쪽에서 무언가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다.

철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촌장님! 촌장님! 큰일 났습니다요!"

안방에서 그것을 들은 할아버지가 대문 쪽으로 시선을 가져가자 문이 열리고 아까 봤던 아저씨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지금 당장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몬스터 떼가 쳐들어오고 있어요!"

몬스터 웨이브의 시작이었다.

049화 [Episode 11] 조우 (5)

이변이 나타난 것은 하늘에서부터였다.

저 멀리에서부터 하늘이 어둠에 물들고 있었다.

인간의 영향력이 멈추고, 인공적인 빛이 사라진 도시의 밤하늘은 달빛과 별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함이 되었다.

그런데 그 빛들이 짙은 어둠에 집어삼켜지고 있는 것이다.

'저게 다... 몬스터라고?'

울컥거리는 어둠의 정체는 바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몬스터들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어류들이 하늘을 날아오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자주 봤던 하늘 청새치부터 시작해서 그보다 덩치가 훨씬 커다란 하늘 고래까지 밤하늘을 어둠으로 뒤덮어가고 있었다.

쿠웅 쿵

곳곳에 흩어져 있던 나무 거인들이 할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육지 장어를 한 합에 잡아내는 나무 거인들이 서른 기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우우웅

할아버지가 손을 휘젓자 초록빛 생명력이 어느 나무 거인을 향해 흘러갔다.

하동건 파티와 전투를 벌이며 몸통에 구멍이 생겨난 나무였는데, 할아버지의 생명력에 닿는 순간 나무의 몸이 순식간에 치료되었다.

상처받았던 나무를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한 짓이라꼬?"

하동건이 대표로 고개 숙여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몬스터인 줄 알고 그만...."

"으음? 평소에는 나무처럼 가만히 있을 껀데?"

나는 하동건 파티를 향해 말했다.

[나무 거인이 공격했던 것은 오언주씨를 몬스터라고 오인했던 것 때문입니다. 오언주씨 할아버지께 직접 보여드리도록 하세요. 이제부터 함께 싸울 텐데 인지하고는 있어야 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오언주가 앞으로 나서서 할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이것 좀 봐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시작된 수인화,

우드득

오언주의 몸이 곰의 형상으로 변하자 곧바로 나무 거인들이 반응했다.

쿠웅

그러나 할아버지가 눈을 부라리자 나무 거인들은 걸음을 멈추고 다시 자리로 되돌아갔다.

"뭔 소린지 이해했다. 우리 나무가 먼저 잘못했구마."

그때쯤 어둠이 지척으로 다가왔다.

하동건이 창을 던질 준비를 하고 김가영이 화살을 재자 할아버지가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가만있으라."

"네? 하지만...."

"니들 눈에는 저것들이 우리를 공격하려는 것처럼 보이나?"

"네?"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다시 보니 무언가 이상하긴 했다.

이곳을 노린다면 슬슬 고도를 낮춰야 했다. 그러나 하늘을 물들이는 몬스터 떼는 수백 미터 상공에서 다가오고 있을 뿐이었다.

"저 움직임을 봐라, 저것들은 지금 우리를 공격하러 온 게 아닌거라, 이대로 놔두면 지나갈 끼다."

"네? 그렇다면 왜 ...?"

어째서 저 많은 몬스터들이 이곳을 향해 돌진해오고 있는 것일까.

"나도 모르제, 근디."

할아버지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모양새가 꼭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꼴 같구마."

저 많은 몬스터들이 공포에 질릴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아무튼 할아버지의 예측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하늘을 새까맣게 물들인 몬스터들은 대부분 하늘 위를 지나쳐갈 뿐이었다.

밤하늘의 빛이 완전히 사라지고 세계수가 뿜어내는 은은한 빛만이 사방을 밝히는 빛이 되어 주고 있었다.

"축복!"

검다정의 축복이 모든 사람들에게 깃들었다.

"음? 이건 또 뭐꼬,"

"신체 능력을 올려주는 힘이에요."

"이거 뭔 너거들은 다 하나씩 능력이 있는 기가?"

"재현님 덕분입니다."

"재현이 가가 능력이 대단한 거였구만, 허허."

하늘을 나는 물고기들이 온전히 피해 없이 지나치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파바바박!

지면에 가깝게 낮게 날던 청새치 떼가 높은 건물이나 아파트 벽면에 코가 꿰이고 있었다.

또한 적은 숫자는 아예 땅으로 떨어지기도 하였다.

그 모습을 본 할아버지가 우렁차게 외쳤다.

"건물 안으로 숨으라!"

여러 무기들을 꼬나 쥐고 전투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말 하나에 일사분란하게 흩어졌다.

일부는 처음 횟감을 쌓아두던 창고 안으로, 일부는 근처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으로 피신했다.

그리고,

우우우웅!

할아버지가 본격적으로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서부터 쏟아져 나온 초록빛 물결이 삼십 기의 나무 거인들을 덮쳤다.

쿠드드득!

그러자 나무 거인들의 덩치가 몇 배나 커지더니 이름에 걸맞는 거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은은한 초록빛을 뿜어대는 거대한 나무 거인, 그것들이 움직였다.

쿠웅! 쿵!

그들은 서로 긴밀하게 뭉치며 하나의 벽을 만들어냈다.

할아버지가 아직 옆에 남아 있는 하동건 파티를 향해 호통쳤다.

"니들은 뭐하노! 안 도망치고!"

"저희도 돕겠습니다!"

"필요읍다!"

그때쯤 바닥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놈들이 찾아온 것이다.

쿠구구구

어찌나 많은 양의 몬스터들이 쳐들어오는 것인지 땅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여러분, 아무리 몬스터들의 목적이 이곳이 아니라 해도 할아버지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숫자입니다. 도와드러세요.]

나 또한 전력을 다해 도울 생각이었다.

하동건 파티 전원이 굳은 결심을 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 있으라 캐도!"

"혼자선 힘드실 겁니다!"

"어허! 나, 참."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만용을 부린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곧이어 쳐들어온 몬스터들과의 부딪힘에서 곧바로 사라졌다.

쿠구구구구!

종류도 다양한 몬스터 떼가 지척까지 다가온 순간,

쿠우웅!

할아버지가 크게 발을 굴렀다.

그리고,

콰과과과과과과

바닥이 어마어마한 기세로 진동하더니,

콰아아앙! 콰아앙!

"!!!!"

곳곳에서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두꺼운 세계수 뿌리가 등장했다.

아스팔트를 뚫고 나온 그것들은 무식하게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붙잡았고, 그대로 건물과 건물 사이를 잇는 단단한 벽이 되었다.

갑작스레 생겨난 벽을 수많은 괴물들이 뭉쳐서 몸으로 밀기 시작했다.

뒤쪽에서 물량이 쏟아지고 있는 탓에 놈들에게도 선택지가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뚫고 지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푸부부!

놈들을 비집고 들어가던 세계수 뿌리에서 날카로운 가시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육지 상어(Lv. 24)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톱가오리(Lv. 23)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청색 꽃게(Lv. 29)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어지럽게 떠오르는 알림 메시지들,

정산금 메시지가 없는 이유는 할아버지가 직접 사냥한 몬스터들이기 때문이었다.

[혈족]

(신뢰도+10)% 만큼 모든 능력치가 증가하며, 혈족 칭호를 가진 이가 사냥한 몬스터의 경험치는 10배로 증가하여 절반씩 나눠가집니다. 단, 정산금의 경우 대상이 독점합니다.

혈족 칭호를 가지고 있는 할아버지는 정산금을 독점한다.

대신 10배로 증폭된 경험치의 절반인 5배를 내게 나눠주는 것이다.

"음? 이기 다 뭐꼬? 돈? 경험치?"

할아버지는 허공을 보며 혼란스러워 했다.

아무래도 혈족으로 등록되면서 처음으로 시스템 메시지를 보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할아버지의 옆에는 벙찐 표정의 하동건 파티가 가만히 서 있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55레벨의 수준?'

도와드린다니, 어불성설이었다.

방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발 한 번 구르는 것으로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사냥해버리다니,

괴물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할아버지가 가만히 있는 동안에도 나무 거인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들이 닥치는 몬스터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힘을 받아 거대화된 나무 거인들의 촉수는 그 단단하던 키틴질 갑옷조차도 무색하게 꿰뚫고 있었다.

[자이언트 크랩(Lv. 31)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자이언트 랍스터(LV, 29)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톱날 쫓게(Lv. 30)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그러고,

[스킬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쏟아지던 경험치의 향연이 결국 레벨업으로 이어졌다.

'레벨업이라고? 벌써?'

이렇게 빠르게 레벨업을 하게 될 줄은 몰랐기에 미처 준비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크읍!'

갑작스레 찾아온 격통으로 하동건 파티와 공유되던 시야는 꺼지고 우리 아파트 단지의 모습이 느껴졌다.

아파트 단지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돔 형태의 영역,

그것이 빠르게 영역을 넓혀갔다.

전신이 통째로 터져나가는 감각을 슬로우모션으로 만들어서 느낀다면 이렇지 않을까?

'크아아악!'

끝이 보이질 않던 고통이 끝난 것은 모세혈관처럼 퍼져나간 모든 도로를 집어삼킨 뒤, 반경 1km의 돔 형태가 완성되고 난 후였다.

"허억, 허억."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는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시민권을 부여하시겠습니까?]

범위가 범위이다 보니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시민권 부여 대상이 되었다.

대충 봐도 수천 명에 달하는 엄청난 인원이었다.

'이 중에... 엄마 아빠는 없나?'

일일이 확인하기 힘들만큼 엄청난 숫자였다.

그러나 추측해 보건데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경우를 생각해 볼 때, 혈족이 있었다면 시민권 부여에 대한 메시지가 아닌 혈족 관련의 메시지가 나타났을 것이다.

'엄마, 아빠는 이 범위 밖에 계신 거야.'

그곳은 지금 서예진이 열심히 찾아 헤매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가 찾으면 곧바로 반응이 올 것이었다.

'시민권 부여해.'

일단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받아들였다.

"재현님!"

유혜린이 쓰러지려던 나를 부축했다.

정신이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이대로 지쳐 쓰러질 여유가 없었다.

'절대자의 눈'

곧바로 절대자의 눈을 활성화시키며 할아버지가 계신 곳의 상황을 파악했다.

"이상하구마."

제일 먼저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왜 그러십니까, 어르신?"

하동건의 말투에는 이전보다 공손함이 곁들여져 있었다.

하긴 그런 압도적인 위용을 보고나면 누구나 저자세가 될 수밖에,

"예전에도 내가 잡은 몬스터들은 살이 다 없어지뿌긴 했거든? 근데 이제는 뼈도만 남기고 사라지뿌네."

하동건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건 아마도 재현님의 능력 때문일 겁니다. 저희도 원래는 사냥 뒤에 몬스터 사체가 남았었는데, 재현님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간 뒤부터는 몬스터들의 시체가 남지 않게 되었거든요."

"그래? 그럼 그 이상한 허공에 나타나는 글자들도 재현이 능력이가?"

"그렇습니다.

"희한한 능력이 구마."

상황을 보니 몬스터 웨이브는 무사히 넘긴 것 같았다.

몬스터들의 숫자는 혀를 내두를 만큼 많았지만, 정면으로 몰려오는 놈들만 처리하면 되었기에 결국 버텨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혼자서 해결할 규모는 아니었다.

그 많은 숫자의 몬스터를 혼자서 막아내다니.

게다가 할아버지는 지친 기색도 없으셨다.

'아무리 혈족의 힘이 개방되며 모든 능력치가 몇 배로 올랐다고는 해도'

신뢰도의 10배에 달하는 능력치를 올려주니 할아버지의 경우 거진 9배의 능력 상승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감안해도 이건 너무 엄청났다.

애초에 가지고 있던 능력이 엄청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니들도 몬스터를 사냥하면 사라져 뿐다는 거제?"

"그렇습니다."

"그라모 창고 가서 사람 좀 불러 온나."

"사람들이요?"

할아버지는 산 채로 나무뿌리에 붙잡혀 버둥대고 있는 해양 몬스터들을 턱짓하며 말했다.

"그래, 저거저거 회 쳐 먹을라면 갸들이 죽여야 살코기가 남을 거 아이가."

"불러오겠습니다."

할아버지의 말대로 평범한 사람들이 몬스터를 잡자 시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런 불편함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네.'

애초에 몬스터를 먹게 될 거라는 생각을 못해봤었다.

'물품 등록'

시험 삼아 죽은 청새치의 사체를 물품등록 해 봤다.

지이잉-

상점에 '생선'이라는 새로운 품목이 생겨났다.

'성공이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이었지만, 크기를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이거 하나로도 거의 백인 분은 나올 테니까,

그때였다.

[서예진이 집구석 절대자의 혈족과 조우하였습니다.]

[혈족의 힘을 개방합니다.]

곧바로 서예진에게 절대자의 눈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그곳에는,

"오빠야, 저기 좀 봐라. 우리 아파트 멀쩡하다!"

"그러네."

『이름 : 이지숙 (Lv. 50)

칭호: [혈족][일촌]

신뢰도 : 97

각성 능력 : 군림하는 자』

『이름 : 김동혁 (LV. 42)

칭호: [혈족] [일촌][호위무사]

신뢰도 : 93

각성 능력: 호신강기』

'엄마...! 아빠...!'

그립고 그러웠던 부모님이 계졌다.

[혈족 이지숙(군림하는 자)님에게 종속되어 있는 23명에게 시민권이 부여됩니다.]

'어?'

그것도 23명 전원이 작성자로 이루어진 집단을 데리고,

050화 [Episode 11] 조우 (6)

가부좌를 틀고 있는 서예진을 향해 말했다.

"그대로 이분들을 따라다녀 주세요."

부모님이 계신 곳은 영역 끄트머리에서도 수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나는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잡았다. 절대자의 문을 이용해 부모님이 계신 곳과 가장 가까운 지역으로 연결시켰다.

얼마 전 있었던 거인의 습격 때문에 대부분이 엉망진창이었지만, 부모님이 오고 계신 방향은 다행히 그 재앙이 빗겨나간 곳이었다.

건물에서 나온 내가 영역의 끄트머리에 도착했을 때, 저 멀리서 부모님이 이끄는 집단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최대한 힘차게 외쳤다.

"엄마! 아빠!"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절대자의 눈으로는 부모님의 표정까지 확실하게 보이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약간 당황한 눈치였다.

나는 그들을 향해 한 번 더 힘차게 외쳤다.

"엄마! 아빠! 저예요!"

그 순간, 엄마가 나를 향해 빠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50레벨 덕분인지, 혈족의 효과 덕분인지 정말로 어마어마한 속도로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살짝 무서운데'

그동안 일일퀘스트를 통해 근력이나 지구력 등 신체 능력이 제법 올리긴 했지만 저런 돌진을 받아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행히 엄마는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내 앞에 섰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으셨다.

"재현이니...?"

울먹거리는 엄마 얼굴을 보니 이상하게도 옅은 웃음이 나왔다.

"네, 엄마 저예요."

엄마는 천천히 다가왔다.

이미 혈족의 힘을 개방한 만큼 투명한 벽이 막아서는 일은 없었다.

영역의 경계선을 그대로 통과한 엄마는 천천히 내 얼굴에 손을 올리고, 쓸어내렸다.

어느새 굵은 눈물방울로 얼룩진 엄마의 얼굴이 정면에서 보였다.

"울지 마세요, 엄마."

엄마는 나를 와락 안더니, 주문처럼 되뇌었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가녀리게 떨리는 엄마의 등을 토닥여주며 말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었어요, 엄마."

그때쯤 아빠가 다가와서 덤덤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멀쩡해요."

"그래."

아빠와의 짧은 안부 인사를 마치고 부모님과 함께 온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엄마가 일하던 곳이 병원이기 때문인지 여자들이 많았다. 아마 대부분 간호사들이겠지.

그들 중 한 명은 개를 두 마리나 데리고 있었는데, 개나 고양이에게는 시민권 부여가 안 되기 때문에 내가 직접 허가해 줄 필요가 있었다.

"왕"

두 마리 모두 투명한 벽에 부딪히기 전에 출입 허가를 내려줬다.

확인해보니 개들의 주인은 김 건과 비슷한 종류의 사역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23명 모두가 각성자 라기 보다는 엄마에게 능력을 부여받은 건가'

가신 등록 시스템과 얼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군림하는 자 (전설)]

-왕의 자질을 가진 자

{종속의 계약}

{왕명 하달}

{왕의 축복}

저 종속의 계약이라는 것을 맺으면 능력을 각성하는 것이다. 무려 100명의 각성자를 아무 조건 없이 뽑아낼 수 있는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

'사기네'

초반에 각성의 유무가 생존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 지 생각해볼 때, 엄마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아빠가 가지고 있는 능력도 결국 종속의 계약으로 개방한 능력인 건가?'

아빠가 가지고 있는 스킬.

호신강기 (S 등급)

정신력을 소모하여 몸 전체를 보호하는 강기를 만들어낸다. 강기를 두르고 있는 동안은 신체 능력이 3배 증가한다.

아빠의 스킬이 사기적인 이유는 스킬 설명에 '3배'라고 표기되어 있는 점이었다.

단순히 300%였다면 그렇게 엄청나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각각 신체 능력을 200%, 300% 올려주는 능력이 있다면 두 개의 스킬이 중첩되면 500%가 된다.

그러나 200% 증가에 3배 올려주는 스킬이 중첩이 되면, 300%가 '3배'가 되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900%의 효율을 지니게 되는 셈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아빠는...'

기본적으로 혈족들도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버프는 모두 챙긴다.

그러니 우선 신뢰의 힘 버프를 적용받는다.

'모든 능력치 93% 상승'

그리고 혈족의 효과를 생각하면.

'추가로 모든 능력치 930% 상승!'

이미 이 시점에 1123%의 효율을 지니고 있는 상태.

'여기에서 호신 강기를 두르게 되면'

최종적으로 3369%의 효율로 강화된 신체 능력을 지니게 된다는 소리였다.

'미쳤군'

레벨 몇 단계 수준은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는 보정이었다.

나머지 23명 중에는 아빠처럼 S급 스킬을 얻은 사람은 없었다.

각성자이긴 해도 C급이나 B급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비각성자와는 차원이 다르지'

일단 각성자가 되면 몬스터 사냥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차별점이 되는 것이다.

'어쨌든 이분들 덕분에 부모님이 무사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다!'

부모님이 이끌고 계시는 23명의 각성자는 시민권을 부여받았지만, 내가 시민권을 부여한 이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바로 엄마의 칭호 효과 덕분이다.

{일촌}

5명의 가신을 등록할 권한과 1%만큼의 시민권을 추가로 부여할 권리를 갖습니다.

현재 부여 가능 시민권 : (23/2,100 명)

※세금 징수 가능

그러니까 엄마가 이끌고 있던 23명에게 부여된 시민권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들의 상태창에 표시되는 신뢰도와 충성도도 내가 아닌 엄마를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퀘스트를 부여할 권한도 엄마가 가지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엄마가 이끌고 온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들께는 다섯 세대를 나눠드리겠습니다. 밥이나 라면 등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얼마든지 요구해 주십시오.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네?"

"따뜻한 물로 샤워도 좀 하시고 보일러 튼 방에서 편히 주무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을 비롯해 모든 이가 나를 이상한 사람 보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재현아, 정말 괜찮은 거 맞니?"

엄마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한 가득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아파트를 가리켰다.

"엄마, 저기 불 들어온 거 보이시죠?"

"어? 으응. 안 그래도 불이 엄청 많이 들어와 있어서 신기해하던 참인데..."

"전기고 수도고 전부 끊겨 버린 세상에서 저게 가능한 이유는 뭘까요?"

"어?"

잠시 절대자의 눈을 이용해 이 주변에 있는 건물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거인이 날뛴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기에 그나마 멀쩡한 건물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는 곳이었다. 마침 딱 적당한 빌딩이 하나 있었다.

건물 외벽의 유리가 박살난 탓에 지금은 조금 흉측한 몰골로 변했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불만 킬 수 있으면 되니까.

"다들 잘 보세요."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킨 다음.

따악!

핑거스냅을 치는 순간에 맞추어 그 빌딩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건물들에 불이 들어오게 만들었다.

파아앗!

반쯤 부서져 있지만, 밤 속에서 환하게 불이 켜진 도시의 모습은 그 어떤 화려한 공연 못지않았다.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목마르신 분?"

그리고 그들의 앞에 시원한 콜라를 소환시켰다.

얼떨결에 콜라를 잡아 든 사람들은 그것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머, 먹어도 되는 건가요?"

"물론이죠."

"저기.."

"네, 말씀하세요."

"혹시 제로 콜라는 없나요? 펩시"

나는 대답 대신 그가 원하는 물건을 소환시켜주었다.

"감사합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도 마구 요구하기 시작했다.

"환타는요?"

"사이다도 가능한가요?"

"다 가능합니다. 원하시는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씀해주세요."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기뻐하며 음료수를 마셨다.

그런 그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저를 따라오시죠."

"와아아아아!"

사람들은 환호하며 내 뒤를 따랐다.

***

절대자의 문을 이용해 아파트 단지로 이동한 다음, 먼저 엄마의 수하들에게 사용할 집들을 안내해줬다.

더불어 라면, 쌀, 계란, 우유 등 그들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모든 물품들을 배치해 주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찾아와 말씀해주세요."

그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당연했다.

그 날 이후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지 안 봐도 뻔했으니까.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것은 물론, 먹을 것이나 마실 물을 구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와서 그런 것들이 한 번에 해결되니 기쁠 수밖에 없겠지.

모든 인원을 내가 직접 안내한 뒤 부모님을 모시고 집으로 가려고 하던 그때였다.

엄마가 불안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재현아 그런데 이거 다 남의 집인데 우리가 이렇게 마음대로 써도 돼?"

그녀의 물음에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돌아오면 돌려줘야겠죠. 물론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은 걸 보면 그러긴 힘들 테지만.

아직 그런 사람은 나타난 적이 없었다.

"그런 건 걱정하지마시고, 우리 집으로 가요."

마지막으로 배분해준 세대의 현관문을 우리 집의 현관문과 연결시켜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어머님, 아버님! 안녕하십니까!"

미리 대기하고 있던 서예진과 유혜린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계속해서 능력을 사용한다고 땀에 젖은 서예진, 방금 자다 일어난 듯 머리가 엉망인 유혜린의 모습은 부모님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들 여기 우리 집 맞니?"

"-------네"

"그러면 이 분들은 우리 아들 여자친구야?"

"아니에요."

옆에 있던 아빠가 장난스럽게 너스레를 떨었다.

"이야. 우리 아들 인기 많네? 양다리?"

"그런 거 아니에요, 아빠."

"둘 다 참하네. 우리 아들 잘 부탁드려요."

그때 유혜린이 오버를 했다.

"서,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이런 게 충성도 100의 부작용인 걸까?

눈썹을 올리고 입술을 동그랗게 만 표정으로 아빠가 나를 향해 속삭였다.

"우리 아들 진짜 좀 하네?"

나는 아빠의 장난을 무시하며 서예진과 유혜린을 향해 말했다.

"두 분은 이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넵!"

그렇게 두 사람을 보내고 가족들만 남게 되었다.

"엄마랑 아빠는 좀 씻어야겠다."

두 분이 함께 목욕을 하시고 나온 뒤에 물었다.

"이제 좀 말해 봐요. 어떻게 두 분이 같이 오신 거예요?"

"너네 아빠 성격 알잖니. 그때도 나 퇴근하는 거 기다리고 있었는데, 일이 딱 터졌지 뭐야?"

아빠는 택시 일을 하셨는데, 엄마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반드시 차를 태워주곤 하셨다.

'다행이다.'

각성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엄마였다.

평소에도 워낙에 엄마에게 지극정성인 아빠였기 때문에 몬스터가 등장하는 순간 엄마의 곁에 있었고, 그 결과 두 분 다 무사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오시는 데 많이 힘드셨죠?"

"너희 아빠가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단다."

엄마가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빠의 손을 꼭 잡았다.

아빠도 엄마를 마주보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내가 기습적으로 말했다.

"할아버지는 잘 지내고 계세요."

"정말이니?"

"네. 할머니는..."

내 표정을 본 엄마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 있으셔?"

"지금 잠에 빠져 계세요."

엄마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얘는. 엄마 놀리지 마. 깜짝 놀랐네."

나는 더 없이 진지한 얼굴로 사실을 고했다.

"몬스터가 나타나기 시작한 그때부터 쭉 주무시고 계세요."

"...뭐?"

"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는 괜찮으실 거예요. 할아버지가 있으셔서."

엄마가 다시 슬픔에 잠긴 표정이 되어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지금부터 다 설명해드릴게요."

내가 얻은 능력과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 할아버지 쪽에 대한 일과 내 능력으로 인해 우리 가족이 가지게 된 능력까지.

그렇게 밤이 깊어 갔다.

가족들과 함께여서 그런지, 집 안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

일본의 나가사키 현.

그곳에서는 며칠 전부터 지상으로 해양 몬스터들이 떼를 지어 쏟아져 나오는 기현상을 겪고 있었다.

몬스터들이 떼를 지어 쳐들어오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많은 숫자가 내륙 안쪽으로 유입되면서부터였다.

고블린이나 오크에 비해 레벨이 높은 괴물들이 도시를 습격하며 간신히 살아남았던 생존자들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저, 저게 도대체 뭐야? 무슨 괴물 같은...!"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간신히 생존했던 미나쿠치 타카키는 바다에 나타난 거대 괴물을 보고 넋이 나가 있었다.

콰광—!

폭풍후 치는 바다 너머로 웅장하게 기립한 놈의 모습은 마치 신이 내린 재앙과 같았다.

저 괴물이 일본 본토로 밀고 들어오면 정말 모든 것이 끝장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

'간다고?'

괴물의 모습이 깊은 바다 속으로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놈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에야 미나쿠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휴우."

괴물은 어디를 향해 간 것일까.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저것이 향한 곳에는 반드시 잔혹한 파괴와 멸망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051화 [Episode 11] 조우 (7)